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서안
    2026-08-12
    검색기록 지우기
  • 유인
    2026-08-12
    검색기록 지우기
  • 영남
    2026-08-12
    검색기록 지우기
  • 순방
    2026-08-12
    검색기록 지우기
  • 예우
    2026-08-12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2,002
  • “이란 핵 저지, 협상 우선” vs “말로 할 시간 지나”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취임 후 처음으로 이스라엘을 방문해 이스라엘에 대한 우호를 과시했다. 그러나 이란 핵에 대한 대응 방안을 놓고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공동 기자회견장에서 이견을 드러내는 등 아슬아슬한 장면도 펼쳐졌다. 사흘 일정으로 중동 순방길에 나선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이스라엘 텔아비브에 도착해 네타냐후 총리와 정상회담을 한 뒤 공동 기자회견에서 “핵무기는 이 세상에서 가장 사악한 무기”라면서 “이란 핵 개발을 막기 위해 이스라엘과 긴밀히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스라엘을 방어하는 것은 미국의 신성한 의무이고 우리의 동맹은 영원할 것”이라면서 “미국은 아이언돔(이스라엘의 미사일 방어체제)에 올해 2억 달러를 지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네타냐후 총리는 “유대인의 권리를 지지해 준 데 감사한다”면서 “미국이 이란 핵 개발을 저지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화답했다. 하지만 미묘한 입장 차이도 표출됐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란 핵과 관련해 “만일 외교가 실패하면 모든 수단을 강구할 것”이라며 무력 사용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으면서도 “우리는 외교적으로 해결하는 것을 선호하며 아직 그럴 시간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자 네타냐후 총리는 “지금까지의 외교와 제재는 이란 핵 개발을 중단시키지 못하고 있다”고 이견을 드러냈다. 또 오바마 대통령이 이란이 핵무기를 가지려면 적어도 1년은 더 걸릴 것이라고 한 데 대해서도 네타냐후 총리는 “뭐라고 말해도 중요한 것은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는 점”이라고 뼈 있는 말을 던졌다. 오바마 대통령은 2011년 네타냐후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팔레스타인 문제와 관련, 1967년 이전의 국경선으로 이스라엘이 철수하도록 요구하면서 네타냐후 총리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이후 두 사람은 껄끄러운 관계를 이어 왔다. 이를 의식한 듯 두 사람은 이날 화기애애한 모습을 연출하려 애썼지만 주요 현안에 대한 시각차는 감추지 못한 셈이다. 오바마 대통령의 이스라엘 방문 이틀째인 21일 팔레스타인 무장조직이 로켓 공격을 감행했다고 이스라엘 경찰이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무장정파 하마스가 통치하는 가자지구에서 로켓 두 발이 발사돼 이스라엘 남부에 떨어졌으나 인명 피해는 없었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행정중심지인 서안지구의 라말라를 방문해 팔레스타인 독자 국가 건립을 지지했다. 그는 이날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마무드 아바스 수반과 정상 회담을 한 뒤 기자회견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은 그들만의 국가를 가질 권리가 있다”며 “미국은 팔레스타인이 이스라엘의 점령을 끝내고 독립적인 주권 국가를 수립할 수 있도록 헌신하고 있다”고 밝혔다. 워싱턴 김상연 특파원 carlos@seoul.co.kr
  • [이슈&이슈]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D-40…준비상황 보니

    [이슈&이슈]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D-40…준비상황 보니

    국내 최고 자연 생태관광지인 순천만 일대에서 ‘2013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가 열린다. 다음 달 20일부터 10월 20일까지 6개월간 ‘지구의 정원 순천만’이란 주제로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열리는 국제행사다. 전체 공정률 94%로 시설물 공사 대부분이 마무리 단계에 있어 정확히 40일 후면 세계 23개국 84개의 정원이 화려한 모습으로 눈앞에 펼쳐진다. 정원박람회장의 총면적은 111만 2000㎡로 크게 주박람회장과 국제습지센터, 수목원으로 구분된다. 주박람회장은 세계 전통 정원 11곳과 62개의 참여정원, 11개의 테마정원이 조성되고 세계적인 정원디자이너들과 설치예술가들이 참여해 독특한 작품들을 선보인다. 세계적인 건축가이며 조경 설계가인 찰스 쟁스가 설계한 순천만 호수와 바람의 언덕 등 정원들이 하나씩 제 모습을 갖춰가고 있어 완성된 박람회장에 대한 기대감을 높여주고 있다. 수목원에는 한국정원, 정원나무도감원, 편백휴양숲 등이 조성돼 가벼운 산행을 즐길 수 있고, 피톤치드 가득한 자연 속의 휴식을 체험할 수 있다. 수목원 전망대는 순천만에서 박람회장과 도심까지 조망할 수 있어 사진작가들의 필수 방문지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한방체험센터도 빼놓을 수 없다. 622㎡ 면적에 전시관, 체험관, 치유관, 한방 카페가 들어서게 된다. 이곳은 야생 한방 재료와 정원의 식물들을 활용해 방문객들이 직접 웰빙 생활을 위한 다양한 시도를 체험해볼 수 있도록 설계한 공간이다. 국제습지센터와 주박람회장을 연결하는 꿈의 다리도 볼거리다. 컨테이너 30개를 활용해 평범한 다리에서 세계 최초의 다리 미술관으로 변신한 꿈의 다리는 상하이엑스포 한국관을 디자인한 강익중 작가가 외부를 디자인했다. 내부에는 전 세계 어린이들의 꿈과 희망을 담은 작품 14만여점으로 꾸며졌다. 정원박람회 기간 중 지역 문화예술인을 중심으로 시내 일원에서 다양한 문화예술행사가 펼쳐진다. 각종 공연과 전시회 등 모두 136개 프로그램으로 95개 팀이 참여한다. 거리 공연과 격조 높은 실내공연, 정원박람회 취지에 맞는 전시회 등이 마련된다.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조직위는 또 정원박람회 기간 동안 박람회장이 생태 놀이터가 되도록 다양한 준비를 하고 있다. 관람객들이 박람회장에서 가장 편안하고 안전하게 즐길 수 있도록 중점을 두고 있다. 먹거리, 즐길거리 외에도 주차문제 등으로 불편함이 없도록 준비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여성 관람객들을 위한 특화 서비스도 마련됐다. 영·유아를 데리고 온 관람객을 위해 박람회장 2곳에 수유실과 미아보호소를 설치, 필수용품과 전담 인력을 배치한다. 이와 함께 여성 및 장애인 화장실도 별도로 마련해 여성이 행복한 정원박람회로 만들 계획이다. 정원박람회가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국민적인 관심을 끄는 이유는 정원박람회만이 가진 자체 경쟁력 때문이다. 정원박람회는 산업박람회와 달리 개최 이후 철거하거나 리모델링할 필요 없이 시민들을 위한 휴식공간으로 활용되고, 시간이 흐를수록 수목과 꽃이 풍성해져 그 가치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시간이 지날수록 아름다워지는 박람회장은 시민들의 소중한 자산으로 남아 후손에게 유산으로 남는다. 정원박람회 가치를 일찍이 간파한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이미 150여년 전부터 정원박람회를 개최해 왔으며 중앙정부나 지방정부 차원에서 10년 또는 2년 주기로 전략적으로 박람회를 개최해 도시를 생태적으로 디자인해왔다. 일본은 1990년 오사카에서, 중국은 1999년 쿤밍에서 정원박람회를 최초로 개최해 각각 2300만명, 1000만명 이상이 방문한 성공적인 행사로 치러냈다. 특히 쿤밍박람회장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매년 150만명 이상의 관람객이 방문하고 있다. 순천시에서도 참가해 정원을 조성한 지난해 중국 서안박람회는 178일 동안 1572만명이 방문했다. 정원박람회는 1조 3000억원의 생산 유발 효과와 6700억원의 부가가치 효과를 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정원박람회를 전후로 1만 1000여개의 일자리가 창출될 것으로 기대된다. 호텔 5곳을 비롯해 71곳에 6860실을 확보해 1일 1만 6000여명의 숙박이 가능하도록 했다. 국제 수준에 걸맞은 안락한 숙박시설 확보를 위해 기존 모텔을 중저가 고급 숙박 시설인 가족형으로 전환하고 있으며 자연을 벗 삼아 즐길 수 있는 오토캠핑장도 조성하고 있다. 도·농 통합도시인 순천은 농촌지역에 만들어 놓은 펜션, 한옥 등이 있어 숙박하면서 농촌 체험도 할 수 있고, 단체 숙박은 청소년수련소와 유스호스텔, 에코촌 등으로 유도한다. 정원박람회 조직위는 정원박람회가 자연과 인간이 어우러져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외국에 가지 않고 중세 유럽의 전통정원과 현대 예술이 갖는 정원의 역사까지 한눈에 볼 수 있으며 힐링으로 우리의 몸을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도 체험할 수 있다. 사전 입장권 판매는 현재 62만여장으로 목표 80만장에 77%에 이르고 있다. 6개월간 400만명 관람객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1700여명의 자원봉사자들이 배치된다. 순천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낯선 터키의 중심 ①콘야 Konya, 베이쉐히르

    낯선 터키의 중심 ①콘야 Konya, 베이쉐히르

    식민지를 찾는 나라들의 교차로에 자리해 왕조의 흥망성쇠와 함께한 중앙 아나톨리아는 여행자들에게 카파도키아로 대표되는 땅이다. 영화 <스타워즈>의 루크가 자란 그 땅은 영화映畵보다 영화榮華스럽고 경이롭다. 중앙 아나톨리아에는 카파도키아와 더불어 콘야, 카라만 등 금은 낯설고 생소한 도시가 존재한다. 초라한 유명세에 가려졌지만 그 이면에 화려한 역사를 품고 있는 이들 도시는 미지의 여행을 꿈꾸는 여행자를 자극한다. 메블라나의 흔적을 쫓아 콘야 Konya “오라! 오거라! 네가 누구든지 오라.” 1200년경, 이슬람 수피즘을 기반으로 탄생한 메블라나교는 이교도도 무신론자도 거짓을 행한 자도 차별 없이 받아들이는 크고 너그러운 마음을 바탕으로 교리를 펼쳤다. 그리고 지금, 메블라나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도시 콘야에서는 여행자들에게 메블라나의 가르침을 이야기한다. 콘야의 역사와 정을 느끼고 싶은 이라면 누구든 오라고. 이 계절, 터키의 해거름은 한국보다 이른 시간에 시작된다. 더욱이 콘야의 하루 해는 이스탄불보다 짧아 콘야의 밤은 길고 지루하기만 하다. 낯선 곳에서의 저녁 나들이가 조금은 긴장되지만 콘야의 거리를 걷기에 이보다 좋은 때는 없다. 이국적인 풍경에 이끌려 발걸음을 멈출 때마다 “어디에서 왔냐?” “어디를 여행할 거냐?”로 출발하는 과도한 관심을 받게 되니 말이다. 열 길 사람 속은 모르는 법이라 했지만 이방인에게 특별히 각별해 보이는 콘야 사람들의 친절은 묘하게도 한국인들의 정과 닮아 있다. 수백년 전 메블라나의 가르침이 콘야 사람들의 정서와 닿아 있는 듯 콘야는 ‘메블라나의 철학과 함께 평화, 평안 그리고 관용의 도시가 됐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메블라나는 콘야의 긍지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태어나 콘야에서 깨달음을 얻은 메블라나 젤라레띤 루미(1207~1271). 여전히 많은 이들의 정신적 지주로 칭송을 받는 그는 그의 아버지와 함께 ‘메블라나 박물관’에 묻혀 있다. 메블라나 박물관은 셀주크제국의 장미 정원을 하사 받아 조성된 메블라나교의 수행장을 개조해 1926년 문을 연 곳이다. 여러 이슬람 지도자들의 묘 가운데 메블레비들메블라나교의 수행자이 쓰는 긴 모자를 쓴 메블라나와 그의 아버지의 묘는 가장 크고 화려하게 장식돼 있다. 메블라나가 생전에 입던 의복, 용품과 더불어 이슬람의 예언자인 무함마드의 턱수염을 보관한 유리 상자도 흥미롭다. 일부러 향을 입힌 것도 아닌데 상자의 작은 구멍으로 향 냄새가 끊임없이 새어 나온다. 메블라나 박물관은 물과 나무가 존재하는 이슬람의 천국을 지향하여 조성됐다. 잘 꾸며진 정원의 한 켠에서는 실물 크기의 인형들을 전시해 메블레비의 생활을 재현해 놓았다. 메블레비들은 생활이 곧 수행이었다. 심지어 밥을 먹을 때에도 메블라나교의 평등의 원칙에 맞춘 순서와 법도를 따라야 했다. 메블레비는 1,001일 동안의 혹독한 수행을 거쳐야 했는데 수행에는 세마 의식 또한 포함됐다. 세마 의식은 터키 여행의 개인적인 로망이었다. 빙글빙글 하얀 치마가 만들어 내는 어지러운 원圓은 블루 모스크나 지중해의 따뜻한 햇살, 고등어 케밥을 순위에서 밀어낼 정도로 신비로워 보였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여행은 운이 좋다. 메블라나교 종교의식의 한 형태이며 수행의 방법이자 명상의 한 종류인 세마를 접하기에 콘야보다 적합한 곳을 찾기는 힘들 테니 말이다. 매주 토요일 저녁 8시30분, 콘야의 메블라나 컬처 센터에서는 세마 공연이 무료로 진행된다. 이곳에서 진행되는 세마는 공연이자 일종의 의식이라 지루한 감이 없지 않다. 터키어로 1시간여 의식에 관한 설명이 지속돼 이슬람교도가 아닌 여행자들은 이내 지치곤 한다. 본격적인 의식은 세마젠세마 의식을 행하는 사람이 쉐이흐세마젠을 이끄는 사람의 손에 입을 맞추고 크게 원을 따라 나아가며 시작된다. 아주 느린, 세 번의 인사를 마치고 세마젠이 입고 있던 망토를 떨어트리면 비로소 회전하는 행위가 시작된다. 지루함을 떨치고 절정을 향해 내달리는 시간, 머리에 스카프를 두른 한 관객이 눈물을 터트린다. 뜨거운 덩어리가 목까지 차오르고 그들의 절실함을 지루하다 비웃은 무지를 반성하니 의식이 더욱 성스럽게 다가온다. 세마 의식에서 도는 행위는 신과의 합일점을 향해 가는 길이며, 가슴에 손을 얹는 것은 유일신에게 다가가 하나가 된다는 의미다. 점차 빠르게 돌기 시작하는 세마젠은 하늘의 축복을 받기 위해 오른손 손바닥을 위로, 세상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 왼손 손바닥을 아래로 향한다. 세마젠은 돌고 또 돈다. 치마를 휘날리며, 크게 원을 그리며. 그렇게 정신없이 돌다가 신호에 맞춰 순간 정지를 하는데 모든 세마젠이 흐트러짐 없이 꼿꼿이 몸을 가눈다. 세마 의식이 보여주는 수행의 길은 코끼리코 몇 바퀴도 이겨내지 못 하는 중생에게는 멀고도 먼 길임에 틀림없다. 세마 의식 외에 콘야에서는 종교적인 수행의 흔적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코란, 수학, 물리학 등을 가르치던 ‘카라타이 신학교’와 하디스를 읽기 위해 세워진 ‘인제 미나레 신학교’가 대표적인 예. 두 신학교 모두 옛 교실을 활용해 박물관을 조성했는데 카라타이 신학교의 타일 장식과 인제 미나레 신학교의 해시계, 아랍어로 쓰여진 1200년대의 경전 등이 볼 만하다. ▶travie info 메블라나 박물관┃관람시간 오전 9시~오후 4시40분 입장료 3TL 카라타이 신학교┃관람시간 오전 9시~정오, 오후 1시~오후 5시 입장료 3TL 인제 미나레 신학교┃관람시간 오전 9시~정오, 오후 1시~오후 5시 입장료 3TL 작은 도시, 크게 품다 베이쉐히르와 콘야 주변 Beyşehir & Around Konya 콘야에 며칠 머물면 인근의 작은 도시들이 눈에 들어온다. 유명세를 타지 않아 여행자들의 발길이 뜸한 도시들이지만 그들만의 이야기를 따뜻하게 품어 안고 있다. 콘야에서 차로 1시간 정도 걸리는 베이쉐히르도 그런 도시다. 베이쉐히르에 닿기 전, 라벤더샘이라 불리는 ‘에프라툰프나르’로 향한다. 기원전 12세기인 히타이트 시대, 바람의 신, 태양의 신 등 히타이트 신을 부조해 연못 위에 세운 기념비는 세월이 무색할 정도로 정갈하다. 땅에서 샘솟아 맑디 맑은 연못의 물은 기념비를 포함한 사위를 그대로 투영한다. 에프라툰 프나르의 샘물은 그 옛날, 플라톤이 찾아와 마셨다고 한다. 작은 도시 베이쉐히르는 베이쉐히르 호수가 감싸안고 있다. 베이쉐히르 어디에서나 눈에 들어오는 호수는 낭만과 일상이 공존하는 시민들의 공간이다. 셀주크제국 당시 부족장의 이름을 딴 ‘에쉬레포울루 자미’는 단아하면서도 화려한 모습으로 베이쉐히르 호숫가에 자리하고 있다. 장대한 규모는 아니지만 전세계 사원 중 나무로 만들어진 최초의, 유일한 사원이다. 베이쉐히르 사람들은 그래서 애석해 한다. 베이쉐히르를 모르는 사람들이 에쉬레포울루를 알 리가 없다는 것이다. 베이쉐히르라는 이름을 어떻게든 알려야 한다는 것이다. 에쉬레포울루 자미를 유네스코 세계유산 후보로 등록한 지금, 사람들은 베이쉐히르라는 이름을 함께 알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에쉬레포울루는 겉보다 안이 아름다운 사원이다. 지붕을 받치고 있는 400여 개의 서까래는 거의 원형 그대로 중후한 나뭇결을 뽐내고 쭉 뻗은 나무 기둥은 위용을 머금었다. 호두나무로 만든 민바르이슬람교단는 못을 사용하지 않았으며 아랍어를 미로처럼 조각해 놓았다. 가운데에는 알라, 밑에는 무함마드, 옆에는 모함마드 제자의 이름을 비롯해 코란 경전을 적었으며, 민바르 옆면은 해와 별 등 천체를 조각했다. 사원 내부의 가운데에는 우물이 자리했다. 뚫린 지붕에서 떨어진 물이 우물에 고이면 여름에는 천연 에어컨이 되고 겨울에는 냉동고가 된다고 했다. 강수량을 확인하는 데에도 우물은 유용했다. 콘야 인근에는 그밖에도 역사적인 가치를 지닌 수많은 유적지가 자리한다. 콘야의 남동쪽 춤라의 작은 시골에 자리한 ‘차탈회육’은 요르단강 서안의 예리코에 이어 전세계에서 두 번째로 손꼽히는 인류의 집단 거주 지역이다. 신석기 시대인 기원전 7,000년경부터 공동 생활을 한 흔적과 농경 사회를 그린 벽화 등 가치 있는 유물들이 이곳에서 발견됐다. 차탈회육 공동 거주지의 집들은 야생동물의 침입을 막기 위해 문을 만들지 않았으며, 집과 집이 서로 연결돼 있었다고 한다. 차탈회육은 2012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됐다. 작은 카파도키아라 불리는 ‘클리스트라’는 콘야 남서쪽에서 멀지 않은 곡유트르에 자리하고 있다. 바위를 파 만든 수도원의 모습과 흡사해 작은 카파도키아라 불리는 곳이다. 성경에는 사도 바울이 콘야와 얄바츠 사이(비시디아 안디옥), 클리스트라(루스드라)를 방문했다고 적고 있다. 사도 바울이 제자 디모데를 만난 곳도 이곳이라고 한다. 콘야에서 멀지 않은 실레의 ‘성 헬레나 기념 교회’도 볼거리다. 크리스트교를 공인한 콘스탄틴 대제의 어머니인 헬레나의 방문을 기념해 327년에 지은 교회로 터키의 현존하는 교회 건물 중에서는 가장 오래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에디터 트래비 글·사진 Travie writer 이진경 취재협조 터키항공 www.turkishairlines.com ※위 기사는 기사콘텐츠 교류 제휴매체인 여행신문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관한 모든 법적인 권한과 책임은 여행신문에 있습니다.
  • 오바마 이스라엘행… 중동 중재 나서나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재임 중 처음으로 이스라엘을 방문한다. 제이 카니 백악관 대변인은 5일(현지시간) “오바마 대통령이 올봄에 이스라엘과 요르단강 서안지구, 요르단 등을 방문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 이스라엘 언론은 오바마가 다음 달 20일 이스라엘에 도착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오바마는 대통령 후보 시절인 2008년에 이스라엘을 찾은 적이 있으나 대통령이 된 뒤로는 방문하지 않았다. 그는 2009년 이집트 카이로에서 연설을 하고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했으나 이스라엘은 방문국에 포함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이스라엘에서는 “오바마가 방문하지 않은 중동 국가는 동맹국인 이스라엘뿐”이라는 볼멘소리가 나왔다. 오바마는 대통령에 취임한 뒤 전임 조지 W 부시 정부 때 소원해진 아랍 세계에 손을 내밀면서 상대적으로 이스라엘과는 거리를 두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2011년 5월 오바마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국경은 1967년 중동전쟁 이전에 존재했던 경계에 근거해야 한다”고 제안한 데 대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정부가 강력히 반발한 이후에는 줄곧 불편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대신 오바마는 미얀마와 외교관계를 복원하는 등 아시아 쪽에서 외교적 치적을 쌓으려는 행보를 보여 왔다. 역대 미 대통령들이 중동 평화협상에 노력을 쏟았으나 결국 분쟁이 반복되는 한계를 간파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따라서 오바마가 2기 임기를 시작하자마자 이스라엘을 방문하는 것을 놓고 일각에서는 노선 변화의 서막을 예고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 등이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중동평화 협상을 중재했던 방식을 오바마 역시 시도하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신임 존 케리 국무장관이 첫 해외 출장지로 중동을 선택한 것도 주목된다. 케리 장관은 지난 3일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과의 통화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중동평화 협상에 관심이 크다”고 밝힌 바 있다. 뉴욕타임스는 그러나 “(오바마의) 방문은 평화협상을 되살리려는 야심찬 노력이라기보다는 악화된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복원하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카니 대변인도 “이번 방문은 미국과 이스라엘 정부의 새 임기 출범에 맞춰 관계를 강화하기 위한 기회”라면서 “이란, 시리아 문제 등이 논의될 것”이라고 했다. 한편 이스라엘이 이날 시리아와의 접경지역에 단거리 미사일 방어 체계인 ‘아이언돔’을 추가 배치했다고 밝히면서 중동 지역의 불안이 가중되고 있다. 워싱턴 김상연 특파원 carlos@seoul.co.kr
  • [부고]

    ●진규석(경일대 교수)순석(동방합동법률사무소 변호사)씨 모친상 김대중(전 두산중공업 부회장)황영목(전 대구고등법원장)정재황(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씨 장모상 8일 영남대병원, 발인 10일 오전 8시 (053)620-4242 ●이필주(자영업)원주(시티미디어 광고관리팀장)씨 모친상 조재산(자영업)김용배(대능종합철강 부장)씨 장모상 7일 서안산장례식장, 발인 10일 오전 9시 (031)491-4455 ●이선호(충북도 자치지원팀장)씨 모친상 8일 청주 참사랑병원, 발인 10일 오전 9시 (043)298-9200 ●진수형(한국거래소 경영지원본부장)수인(전 삼성화재 근무)수원(동명 감리단 단장)수호(사업)씨 부친상 주영욱(사업)씨 장인상 8일 여의도성모병원, 발인 10일 오전 8시 (02)3779-1918 ●신광호(한라산업개발 토건환경부문장)씨 장인상 8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0일 오전 6시 30분 (02)3410-6912 ●김종찬(STX 부장)종건(자영업)씨 부친상 이정남(한국방송카메라기자협회 사무국장)조성진(진양애드콤 대표)한석훈(여천열쇠 대표)씨 장인상 8일 장수의료원, 발인 10일 오전 7시 (063)351-8050 ●박태호(KBS 예능국장)씨 장모상 8일 여의도성모병원, 발인 10일 오전 7시 (02)3779-2182
  • [키워드로 보는 2013] 불안한 중동, 갑갑한 유로존…해법은 정치다

    2013년 세계는 다양한 도전과 기회를 맞이할 전망이다. 아시아에선 영유권 분쟁을 비롯한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이 가열될 것으로 보이며, ‘아랍의 봄’ 이후 중동 지역의 불안과 변화도 지속될 전망이다. 유럽과 미국의 경제위기에 따른 서방 민주주의와 영향력 쇠퇴, 이란·북한의 핵개발 등도 주요 도전과제로 꼽힌다. 이순녀 기자 coral@seoul.co.kr 김미경 기자 chaplin7@seoul.co.kr ■ 동아시아 긴장고조 미국과 중국의 동시 권력재편으로 새로운 G2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올해는 중국의 아시아 패권 장악 정책과 미국의 아시아 중시 정책이 노골적으로 부딪치며 긴장이 고조될 가능성이 높다. 미 의회가 지난 연말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에 대한 일본의 행정관할권을 인정하는 내용과 타이완에 F16 C·D전투기를 판매할 것을 행정부에 요구하는 내용의 국방수권법을 통과시키자 중국이 즉각적으로 성명을 내고 강력반발한 것은 갈등 증폭의 전초전으로 볼 수 있다. 지난해 격화됐던 동아시아 영토분쟁의 암운도 쉽게 걷히지 않을 전망이다. 특히 지난 연말 실시된 일본 총선에서 극우 노선을 내세운 자민당이 승리함에 따라 아시아의 안보지형이 더욱 복잡해졌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아베 신조 총리는 방위계획대강(방위대강) 및 미·일방위협력지침(일명 가이드라인)의 수정, 집단적 자위권 확보 등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향한 로드맵을 제시하며 중국 견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중국도 중국 항공기의 센카쿠 비행에 일본 자위대가 또다시 전투기를 발진시킬 경우 전투기 투입으로 맞설 것이라고 경고하는 등 첨예한 대립을 예고하고 있다. 중국은 또한 필리핀, 베트남 등 주변국과 영유권 분쟁을 빚고 있는 남중국해에서도 강력한 실력 행사로 위협을 가하고 있어 언제든 화약고로 변할 수 있는 상황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최근 기사에서 “40여년간 동북아시아의 질서를 유지해왔던 평화와 번영의 원칙이 흔들릴 위험에 처했다”면서 “동북아시아가 제2의 냉전을 겪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 중동 혼란 지속 시리아 유혈사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 이집트 내분 등 중동 지역의 불안은 올해도 지속될 전망이다. 시리아는 정부군과 반군 간 22개월간 계속된 내전으로 4만 20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다. 수세에 몰린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이 화학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관측에도 불구하고 국제사회가 여전히 적극적인 개입을 주저하고 있어 사태 해결의 실마리는 풀리지 않고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 해법 찾기도 갈 길이 멀다. 팔레스타인의 유엔 ‘비회원 옵서버 국가’지위 획득으로 양측의 평화협상은 새 국면을 맞고 있다. 이스라엘은 이에 대한 보복으로 팔레스타인 측에 반환해야 하는 관세 수입 송금을 중단하고, 요르단강 서안과 예루살렘 주변에 정착촌 주택 건설을 승인해 팔레스타인과 국제사회의 반발을 유발했다. 중동지역 내 반이스라엘 정서가 더욱 높아지면서 이스라엘과 중동 주변국 간 긴장도 더욱 고조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아랍의 봄’을 성공적으로 맞이했다는 평가를 받았던 이집트 등 일부 아랍권의 미래도 불투명하다. 철권통치자 호스니 무바라크를 몰아낸 이집트는 60년 만에 처음으로 자유민주 선거를 통해 6월 무슬림형제단 출신인 무함마드 무르시 대통령을 선출했지만 이슬람주의자와 세속주의자 간 갈등이 끊이지 않는다. 리비아와 예멘도 ‘아랍의 봄’ 여파로 정권이 바뀐 이후에도 이슬람주의자의 급부상과 무장 단체의 세력 확장으로 정국 혼란이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 기로에 선 유로존 경제위기 2010년 그리스의 구제금융 신청으로 촉발된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경제위기는 세계경제에 먹구름을 드리우며 2013년에도 가장 큰 우려 대상으로 자리잡고 있다. 일각에서는 유럽연합(EU)의 제도적 장치 및 각 국의 자구책 마련 등으로 유로존이 경제위기의 터널을 통과할 수 있을 것이라는 조심스러운 전망이 제기되지만, 재정난과 일자리 창출 등 여전히 넘어야 할 산이 많아 유로존 위기는 올해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12월 EU로부터 유로존 은행들에 대한 감독권을 부여 받은 유럽중앙은행(ECB)의 마리오 드라기 총재는 최근 2013년도 유로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종전의 0.5%에서 -0.3%로 대폭 낮췄다. 드라기 총재는 “유로존 경제활동 위축이 2013년에도 확대될 것이며, 후반기에 점진적으로 경제활동이 강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유로존 위기 해결을 주도해온 독일은 긍정적 전망을 내놓고 있다. 독일 정부 경제자문위원회는 2013년 세계경제 전망 보고서에서 “(유로존 위기가) 길고 어두운 터널 끝에서 빛을 보이기 시작했다”고 진단했다.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은 포르투갈과 아일랜드가 금융시장의 신뢰를 상당히 회복했고, 그리스가 진지한 개혁에 나섰다는 점을 유로존 위기 극복의 성과로 꼽았다. 국제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지난 12월 그리스의 국가 신용등급을 6단계나 상향 조정한 것도 유로존의 위기 탈출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그러나 스페인의 구제금융 신청 지연과 프랑스의 신용등급 하락 가능성, 더딘 구조조정 등의 복병이 도사리고 있다. ■ 흔들리는 서방 민주주의 유럽의 경제위기와 함께 미국도 ‘재정절벽’ 위기 등 경제가 흔들리면서 서방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했으며, 이 같은 현상은 올해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에 따르면 미국과 유럽이 재정·금융위기에 대처하지 못하면서 서방 선진국의 민주주의 모델이 위기를 맞았으며, 이는 2013년 가장 시급한 도전이라고 지적했다. 문제는 경제에서 발생했지만 근본적 약점은 정치라는 것이다. 서방의 계속되는 경제적 실패는 국력 면에서 국제적 지위가 약화, 국제무대에서의 역할과 국익 추구 등의 부진으로 이어지고 있다. 포린폴리시는 “수십년 동안 미국과 유럽은 국제적 거버넌스(통치·관리)의 두 중심으로 국제적 문제 해결에서 경험을 쌓아왔으나 이 같은 자산은 모두 자신들의 거버넌스의 성공에 달려 있다.”고 지적한 뒤 “이들의 모델이 더 이상 성공할 수 없으면 세계는 리더십을 찾기 위해 다른 곳을 바라볼 것”이라고 밝혔다. 경제위기로 촉발된 미국의 국제사회에서의 영향력 축소는 올해도 이어질 전망이다. 미군은 2014년 말까지 아프가니스탄에서 대부분의 병력을 철수시킬 예정이며, 이에 따라 파키스탄과 이란, 인도, 중앙아시아 등 아프간 주변 국가들은 이미 미군의 아프간 철수 후 그들의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한 정책을 마련하고 있다. 미국의 재정적자와 지출삭감 필요성은 앞으로 몇년 내 미국이 국제적 역할을 축소할 수밖에 없음을 시사한다. 포린폴리시는 “미국의 후퇴에 따른 조정이 따를 것이며 이는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 이란·북한 핵개발 위협 이란과 북한의 핵개발 위협은 올해 국제사회가 직면한 최대 도전과제가 될 전망이다. 지난해 이란은 미국 등 국제사회로부터 강력한 제재를 받아 인플레이션, 실업난 등 핵개발 추진에 따른 엄청난 대가를 지불해야 했다. 그러나 이란은 꼬리를 내리지 않고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을 확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스라엘은 이란과의 전쟁도 불사하겠다고 벼르고 있고, 미국은 전쟁보다는 협상을 앞세우며 소극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오는 22일 총선을 앞두고 있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지난달 선거 유세에서 “시간이 지나가고 있다.”며 이란의 핵개발을 중지시키는 것을 최우선 정책으로 둘 것이라고 밝혔다. 네타냐후 총리는 앞서 외신기자 회견에서 “이스라엘은 이미 레드라인(금지선)에 도착해 있다.”며 “이란이 일단 농축을 시작하게 되면 핵무기 프로그램을 막을 기회는 완전히 없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2013년 봄이나 여름에는 이란이 핵폭탄을 만들 수 있는 양의 우라늄을 농축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하면서, 국제사회의 보다 강력한 제재를 요청했다. 그러나 이란에 대한 이스라엘의 초강경 정책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재선과 전쟁 반대 여론, 총선 결과 등에 따라 유동적일 것으로 전망된다. 이란의 핵개발도 농축 정도에 따른 줄타기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지난 12월 장거리 로켓을 발사한 북한의 핵개발도 이달 중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제재 결과에 따라 향방을 가늠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미 북한의 3차 핵실험 등이 예상되는 가운데 협상 재개가 주목된다.
  • ‘영웅’ 아바스, 앞으로 어쩌나

    팔레스타인의 유엔 옵서버국 승격을 이끌어낸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이 2일(현지시간) 시민들의 뜨거운 환대 속에 금의환향했다. AFP통신 등에 따르면 아바스 수반은 이날 요르단강 서안에 위치한 임시 수도 라말라에 도착, 축포를 쏘고 국기를 흔들며 환호하는 시민 5000여명 앞에서 “이제 우리는 국가다. 세계가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했으며 팔레스타인의 자유와 독립을 지지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어 “팔레스타인이 유엔에서 역사적인 성과를 이뤄냈다.”면서 “긴 여정이었고, 압박도 거셌지만 우리는 굳세게 버텨내 마침내 승리했다.”고 감격스러워했다. 아바스는 지난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통해 팔레스타인의 국가 자격을 얻으려다 실패한 데 이어 자신이 속한 파타당과 대립관계인 가자지구의 무장정파 하마스가 최근 이스라엘과의 교전을 통해 세력을 확대하면서 상대적으로 위상이 축소되는 듯했다. 그러나 이번 옵서버국 승격으로 단번에 영향력을 회복하게 됐다. 자신감을 되찾은 아바스는 팔레스타인의 내부 통합을 재차 강조했다. 그는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과제는 파타당과 하마스 간 화해”라면서 “통합에 필요한 과정들을 연구하겠다.”고 다짐했다. 하마스의 고위 간부 살라 바르다윌도 화해를 위한 신속한 만남을 제안하는 것으로 화답했다. 하지만 ‘영웅’ 아바스 앞에는 여전히 험난한 길이 놓여 있다. 이스라엘은 유엔 총회 결정 직후 서안지구에 3000여채의 정착촌 건설 계획을 발표한 데 이어 2일에는 팔레스타인을 대신해 징수했던 세금의 송금을 중단하는 등 보복 조치를 이어갔다. 만성적인 재정난에 시달리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공무원의 월급 대부분을 이 세금에 의존하고 있어 송금 중단이 장기화할 경우 심각한 위기에 처할 수 있다. 이스라엘은 유럽을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의 비난으로 외교적 고립 위기에 처했다. 3일 영국, 프랑스, 스웨덴 정부는 각각 자국 주재 이스라엘 대사를 외무부로 불러 불법 정착촌 건설안에 대해 강력히 항의했다. 영국 외무부 대변인은 “이스라엘이 계획을 철회하지 않으면 엄중한 조치가 따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고 밝혔다. 러시아와 독일 정부도 우려를 표시하며 계획 철회를 촉구했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팔’ 비트는 이스라엘

    팔레스타인의 유엔 비회원 옵서버국 승격에 맞서 ‘불법 정착촌 건설’이라는 보복에 나선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대신해 징수한 세금 송금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유발 스타이니츠 이스라엘 재무장관은 2일(현지시간) 각료회의 시작 전 “우리는 처음부터 팔레스타인의 지위 승격은 (그에 합당한) 대응이 따를 것이라고 밝혀 왔다.”면서 “이번달 대리 징수한 세금을 팔레스타인에 송금할 의사가 전혀 없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약 1억 2000만 달러(약 1300억원)의 세금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에 전달되지 않을 것이라고 현지 일간 하레츠가 보도했다. 이스라엘 정부는 1994년에 체결한 파리 협정에 따라 팔레스타인을 대신해서 징수한 각종 세금을 매달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에 송금해 왔다. 한편 미국과 영국이 팔레스타인의 유엔 옵서버국 승격에 대한 보복으로 불법 정착촌 건설을 발표한 이스라엘을 난타했다. 팔레스타인의 국가 지위 격상에 반대했던 미국과 기권표를 던진 영국이 이스라엘의 도발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1일 워싱턴의 싱크탱크 브루킹스연구소 산하 사반중동정책센터에서 열린 포럼에서 “이스라엘의 정착촌 건설은 평화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윌리엄 헤이그 영국 외무장관 역시 “이스라엘의 정착촌 건설은 국제법 위반으로 양측 간 신뢰를 약화시킬 것”이라며 계획 철회를 촉구했다. 하지만 이는 미국이나 영국의 친(親)이스라엘 정책의 변화는 아니라고 영국 일간 가디언은 지적했다. 이스라엘 정부는 유엔이 팔레스타인의 지위를 비회원 옵서버국가로 격상시킨 지 24시간도 지나지 않은 지난달 30일 서안과 동예루살렘에 3000여채의 신규 주택 건설안을 승인했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팔레스타인 마침내 유엔 ‘옵서버 국가’ 자격 획득

    팔레스타인 마침내 유엔 ‘옵서버 국가’ 자격 획득

    하나의 국가로 인정받기 위한 팔레스타인의 ‘65년 외로운 투쟁’이 마침내 결실을 맺었다. 유엔 총회는 29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의 지위를 표결권 없는 ‘비회원 옵서버 단체’에서 ‘비회원 옵서버 국가’로 격상하는 결의안을 표결에 부쳐 193개 회원국 가운데 찬성 138표, 반대 9표의 압도적인 표 차로 통과시켰다. 외신들은 “이스라엘과의 ‘두 국가 평화 해법’을 살릴 마지막 기회다. 유엔이 팔레스타인에 출생증명서를 발급해 달라.”는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의 22분간의 간곡한 연설이 국제사회를 움직였다고 보도했다. 미국, 이스라엘의 맹렬한 반대와 한국, 영국, 독일 등 41개국의 기권도 독립국을 향한 팔레스타인의 비상을 가로막진 못했다. 가결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팔레스타인 서안·가자지구에서는 수천명의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신은 위대하다.”고 외치며 감격의 환호성을 쏟아냈다고 AP통신 등이 전했다. 이번 표결로 지난 14~21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 간 가자교전으로 입지가 약화됐던 아바스의 정치적 기반도 강화될 전망이다. 아바스의 라이벌이자 가자지구를 통치하는 하마스도 “팔레스타인의 해방을 위한 새로운 승리”라며 환영했다. 당장은 축제 분위기지만 팔레스타인은 미국과 이스라엘발 후폭풍에 직면하게 됐다. 표결 직후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실은 “팔레스타인이 이스라엘과 맺었던 기존 협정을 위반했다.”며 “이에 상응하는 행동을 취하겠다.”고 경고했다. 실제 몇 시간 뒤 이스라엘의 한 관리는 “동예루살렘과 서안지구에 주택 3000채를 새로 건설하겠다.”고 밝혔다고 AFP통신이 보도했다. 앞서 이스라엘은 지난해 팔레스타인이 유엔 독립국 지위 신청을 강행하자 이 지역에 주택 1100채를 건설하겠다고 압박한 바 있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비생산적 표결”, 수전 라이스 유엔 주재 미 대사는 “양측 간 직접 평화협상 재개에 장애물이 될 것”이라며 합동 공세를 폈다. 수사적 압박보다 더 큰 위협은 미국의 대규모 원조 중단이다. 팔레스타인 경제는 연간 예산의 35%(2011년 기준)를 해외 원조에 의존할 정도로 피폐하다. 이번 표결로 팔레스타인은 유엔 기구들과 함께 미국으로부터 수십억 달러의 지원 자금을 잃을 위기에 놓였다고 AFP는 전했다. 미국 정부는 아바스 수반에게 2억 달러(약 2166억원) 규모의 원조를 중단하겠다고 경고해 왔다. 일부 미 상원의원들은 국방수권법에 팔레스타인에 대한 원조 액수를 50% 삭감하라는 내용을 넣으라고 제안한 상태다. 지난해 팔레스타인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정회원국 신청을 했을 때 미 의회는 팔레스타인에 대한 1억 9200만 달러 규모의 지원을 중단했다. 지난해 10월에도 팔레스타인이 유엔 산하기관인 유네스코 정회원국 지위를 얻자 미국은 유네스코 전체 예산의 22%를 차지하는 자국의 재정 지원을 끊은 바 있다. 대외 무역은 이스라엘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팔레스타인중앙통계청(PCBS)에 따르면 팔레스타인 수출의 89%, 수입의 81%가 이스라엘과의 거래다. 하지만 팔레스타인의 꿈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팔레스타인 당국자들은 지난해 9월 미국의 거부로 좌절됐던 유엔 정회원국 신청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정회원국 격상은 안보리를 거쳐야 하는 만큼 상임이사국인 미국의 반대가 있는 한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팔레스타인, 국가 지위로 승격 확실시

    독립국가를 이루겠다는 팔레스타인의 ‘반세기 염원’이 실현된다. 29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 국가 지위 승격과 관련한 유엔총회 표결에서 193개 유엔 회원국 가운데 3분의2 이상이 지위 승격에 찬성할 것으로 보인다고 AP통신 등이 보도했다. BBC는 팔레스타인 관계자의 말을 인용, “150~170개 국가가 찬성표를 던질 것”이라고 전했다. 표결에 앞서 마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은 팔레스타인의 지위를 현재의 ‘표결권 없는 옵서버 단체(entity)’에서 ‘비회원 옵서버 국가(state)’로 높여달라는 신청서를 제출한다. 미국, 이스라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미 중국, 유럽 등 대부분의 국가가 지지 입장을 밝힌 터라 지위 격상은 사실상 확정된 것이나 다름없다. 지난해 9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는 상임이사국인 미국의 ‘비토’로 정회원국 승격을 퇴짜 맞았으나 총회 표결은 회원국 3분의2(129개국) 이상 찬성으로 결정되기 때문이다. 바티칸처럼 옵저버국이 되면 팔레스타인은 간접적으로 국가 지위를 인정받게 된다. 유엔총회 참석은 물론 국제협약 체결, 유엔 및 국제기구 가입 등이 가능해진다. 이스라엘이 두려워하는 건 팔레스타인의 국제형사재판소(ICC) 가입이다. 팔레스타인이 이스라엘로부터 점령당한 영토를 반환받기 위해 ICC를 통한 법적 행동에 나설 수 있기 때문이다. 2008~2009년 가자전쟁의 전범 혐의로 이스라엘을 제소할 수도 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팔레스타인이 이스라엘의 불법 정착촌 건설에 대해 제네바협약 위반으로 제소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이번 국가 지위 격상을 통해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과의 평화협상에서 향후 국경 위치와 불법 정착촌 건설, 난민 귀향 보장 등 핵심 현안에 대한 입지를 강화할 것으로 관측된다. 팔레스타인은 유엔이 1967년 3차 중동전쟁 당시 이스라엘에 점령당한 가자지구와 서안지구, 동예루살렘 등에서 팔레스타인을 독립국으로 인정해줘야 협상 재개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가자교전 지휘’ 이스라엘 국방장관 돌연 정계은퇴

    이스라엘 안보 정책의 컨트롤타워인 에후드 바라크(70) 국방장관이 내년 1월 총선을 앞두고 돌연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이는 이스라엘이 이란의 핵무기 개발을 놓고 국제사회를 압박하는 동시에 ‘아랍의 봄’ 이후 중동 질서가 재편되는 중요한 시점에서 불거진 것이어서 배경과 파장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바라크 장관은 26일(현지시간) 텔아비브 국방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내년 1월 22일 총선 이후 새 정권이 들어서면 국방장관에서 물러날 것”이라고 밝혔다고 AFP 등이 보도했다. 그는 “정계 활동에 지쳤고 정치 말고도 나라에 이바지할 수 있는 길은 많다.”면서 “가족과 함께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도 했다. 2007년 국방장관에 임명된 그는 그간 수차례 이란의 핵무기 개발을 막기 위해 이스라엘이 선제 공격에 착수할 수 있다고 경고하는 등 이스라엘 안보 정책을 지휘해 왔다. 지난 21일까지만 해도 그는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와 가자지구에서 8일간의 교전을 이끌었다. 이스라엘 정부와 미국 정부 간의 입장 차를 중재하는 비공식 특사 역할도 도맡아 왔다. 1999~2001년에는 총리를 지낸 베테랑 정치인이다. 그의 갑작스러운 사퇴 배경을 두고 여러 관측이 나온다. 바라크 장관은 가자교전 휴전 협상에 서명하기를 원했으나, 내각 일부에서는 이를 반대했고 이에 집권 리쿠드당이 장관 교체를 압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스라엘의 이란 핵시설 공격과 관련, 미국의 입장을 어느 정도 수용할지를 놓고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와 의견 충돌을 빚었다는 설도 있다. 바라크 장관의 은퇴 발표 직후 네타냐후 총리는 “바라크 장관의 결정을 존중하고 국가안보에 기여한 그의 공로에 감사한다.”는 성명을 냈다. 지난해 독립당을 창당한 바라크 장관은 네타냐후의 연정 파트너다. 그의 사임은 내년 총선에서도 재집권이 확실시되는 ‘매파’ 네타냐후 정권에서 ’온건파’가 분리된다는 의미라고 AP통신은 지적했다. 이스라엘 강경파들은 그가 건축 승인 보류 등으로 서안지구 정착촌 건설을 약화시킨다고 비난해 왔다. 후임으로는 모세 얄론 부총리와 사울 모파즈 전 국방장관 등이 꼽힌다. 한편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와의 전쟁에서 단거리 미사일 방어 시스템인 ‘아이언돔’으로 하마스의 로켓포를 방어하는 데 성공한 이스라엘은 이번엔 중거리 미사일 요격 시스템을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이스라엘군은 25일 “반경 300㎞ 안의 미사일이나 로켓포를 공중에서 격추할 수 있는 ‘다윗의 돌팔매’를 시험 가동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2014년에 실전 배치될 예정이다. 최재헌기자 goseoul@seoul.co.kr
  • 서울 아파트값 0.01%↓… 송파 대형 하락폭 커

    서울 아파트값 0.01%↓… 송파 대형 하락폭 커

    11월도 끝으로 달려가면서 9·10 대책의 혜택을 볼 수 있는 시간도 불과 한달 조금 넘게 남았다. 취득·등록세 감면 혜택을 노린 매수자들이 중개업소에 전화를 넣고 있지만 사겠다고 나서지는 않고 있다. 향후 아파트 가격 하락 추세와 세제 혜택을 두고 저울질하는 모양새다. 하지만 관심의 대상도 급매를 넘어서 ‘급급매’라고 게시된 아파트에 한정됐다. 지난주 서울의 아파트 매매가격이 0.01% 하락한 것 이외에 다른 지표상의 변화는 없었다. 송파구는 대형 하락폭이 크다. 송파동 삼성래미안 161㎡가 2000만원 떨어져 8억~8억 6000만원, 문정동 올림픽훼밀리 105A㎡도 1000만원이 떨어져 급매가 6억 5000만원부터 나와 있다. 노원구는 중계동 일대가 내렸다. 중계동 중계무지개 72㎡가 750만원 하락해 1억 9500만~2억 1000만원, 중앙하이츠아쿠아 115A㎡가 1000만원 떨어져 4억 3000만~4억 7000만원에 물건을 구할 수 있다. 분당 수내동 파크타운서안 228㎡는 4000만원이나 떨어져 급매가 10억원부터 가격이 형성됐다. 전셋값은 강남의 상승세가 여전하지만 다른 지역은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다. 부동산 관계자는 “강남과 일부 학군 지역이 움직이고 있지만 아직 서초를 제외하고는 특별한 움직임이 없다.”고 말했다. 서초구 방배동 서리풀e편한세상 155㎡는 5000만원 올라 7억~8억원에 전세를 구할 수 있다. 서초동 더샵 122㎡도 2000만원 올라 4억 9000만원에 물건이 나와 있다. 분당은 중소형의 전셋값 상승이 매섭다. 수내동 파크타운대림 109㎡는 3억~3억 3000만원에 전세를 구할 수 있다. 김동현기자 moses@seoul.co.kr
  • 뜨는 하마스 지는 아바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공습을 계기로 아랍권을 비롯한 국제사회에서 하마스의 위상은 올라간 반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인 마무드 아바스의 존재감은 묻히고 있다고 로이터통신이 2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하마스 지도자들은 최근 정전 협상 중재를 위해 가자지구를 방문한 터키 외무장관과 이집트 총리, 튀니지 외무장관 등과 잇달아 회동하며 강화된 위상을 과시했다. 전날 이집트에서 진행된 정전 협상장에도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협상 상대로 아바스가 아닌 하마스의 지도자 칼레드 메샬이 참석했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적극 지원해 온 미국도 아바스를 배제하는 모양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무함마드 무르시 이집트 대통령에게 3차례나 전화를 걸어 사태 해결을 논의한 반면, 아바스와는 전혀 통화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21일 요르단강 서안의 라말라를 방문해 아바스와 회동할 예정이지만 그가 정전 협상에서 영향력을 발휘할 것으로 기대하지는 않고 있다. 아바스는 대내적으로도 국민들의 신망을 잃고 있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가산 알카티브 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대변인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과거의 세력이 됐고, 하마스가 새로운 핵심 세력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파타당이 이끄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와 강경파인 하마스는 연정 수립과 해체를 반복하다 2007년 이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요르단강 서안을, 하마스는 가자지구를 통치하고 있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이·팔 휴전 불발… 힐러리, 긴급 중재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정전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진 가운데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이 21일(현지시간)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습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중재 외교 활동에 나섰다. 반 총장은 이날 요르단강 서안지구 라말라에서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과 만나 이스라엘에 대한 대응 공격을 즉시 중단하라고 요청했다. 정전 협상 중재를 위해 급파된 클린턴 장관도 라말라에서 아바스 수반과 정전 협상의 중재자인 무함마드 무르시 이집트 대통령을 차례로 만나 미국은 이·팔 간 교전을 중단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양측 교전이 8일째로 접어든 21일 사상자만 속출하고 있다. 이날 낮 12시쯤 이스라엘 텔아비브의 국방부 청사 인근에서 버스 한 대가 굉음과 함께 폭발해 17명이 부상을 입었다고 AP·AFP통신이 보도했다. 경찰은 “폭발의 원인이 아직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다”고 밝혔지만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테러 공격”이라고 규정했다. 이에 이스라엘 측은 가자지구의 정부청사 등에 무차별 공습을 가해 이날 팔레스타인인 9명이 숨졌다고 AFP통신이 밝혔다. 이로써 팔레스타인 사망자는 146명으로 늘었다. 앞서 20일 가자지구에서는 이스라엘에 협력한 것으로 의심되는 주민 6명에 대한 공개 총살이 자행됐다. 가자지구 중심부 가자시티 라드완 지역에서 얼굴에 복면을 한 사람들이 이스라엘 부역자로 알려진 주민 6명을 한 명씩 총살했다고 AP통신이 전했다. 하마스 산하 무장조직 이제딘 알카삼 여단은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밝혔다. 이들이 이스라엘에 하마스 대원과 로켓 발사 장소 등의 정보를 제공했다는 게 하마스 측 주장이다. 이날 한때 정전 임박 소식이 흘러 나왔으나 이스라엘이 일부 조건에 반대하면서 합의는 불발됐다. 하마스 측은 ‘공은 이스라엘에 넘어갔다.’는 입장이다. 이집트 카이로에 파견돼 있는 하마스 협상팀은 “21일까지 휴전은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이스라엘 정부가 휴전 제안에 답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오사마 함단 하마스 대변인은 “(중재자인) 이집트는 교전 종식을 위해 미국의 확실한 지지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마크 레게브 이스라엘 총리실 대변인은 “외교적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면서 “우리는 ‘타임아웃’(일시적 휴전)엔 관심이 없고, 이스라엘이 하마스의 로켓포 공격 아래 살지 않는 새로운 현실을 원한다.”고 밝혔다. 에후드 바라크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비공개 협상에서 하마스의 휴전 의지를 판단하기 위해 24시간 동안 로켓포 발사를 중단할 것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이란이 21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통치하는 무장 단체 하마스에 군사적 지원했다고 밝혔다. 이란 의회의 알리 라리자니 의장은 공식 웹사이트를 통해 “팔레스타인 국민들과 하마스가 이스라엘의 공격을 잘 막아내고 있는 것이 자랑스럽다.”며 “하마스에 경제적·군사적 지원했다”고 밝혔다. 한편 90%의 명중률을 자랑하며 하마스발 로켓을 무력화시키고 있는 이스라엘의 미사일 요격 시스템 아이언돔에 미국이 뒷돈을 댄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은 2010년 아이언돔 개발 비용으로 2억 500만 달러(약 2200억원)를 지원했으며 올해도 이미 7000만 달러를 대줬다. 추가 지원도 논의되고 있다. 현재 아이언돔 제조업체 ‘라파엘어드밴스드디펜스시스템’은 미사일 수요를 맞추기 위해 밤낮 없이 공장을 ‘풀가동’ 중이다. 지난 14일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습 이후 아이언돔 5개 포대에서 발사된 미사일 수는 360발에 이른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흔하지 않은 안동 그 소소한 맛과 멋

    흔하지 않은 안동 그 소소한 맛과 멋

    흔하지 않은 안동 그 소소한 맛과 멋 경상북도 안동에 다녀왔다. 안동 하면 즉각적으로 따라붙는 하회마을은 들르지 않았다. 상대적으로 덜 알려지거나 비교적 새로 생긴 곳들을 주로 둘러봤다. 한국을 대표하는 양반 마을을 논외로 하더라도 안동에는 볼거리가 쏠쏠했다. 물론 퇴계 이황을 배향하는 도산서원을 찾아 선생의 덕을 추모하는 것은 잊지 않았다. 에디터 트래비 글·사진 Travie writer 노중훈 1 신세동 벽화 마을. 생기 없던 마을은 3년 전 벽화가 그려지기 시작하면서 한결 밝아졌다 2 벽화 마을 초입의 마싯타 카페. 원래 구멍가게가 있던 자리에 두 달 전 문을 열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벽화로 거듭난 마을 점심 무렵, 안동에 도착했다. 허기를 느낄 정도는 아니었지만 속이 출출했다. 어디를 가나 배꼽시계는 근면하고 성실했다. 안동에서 가장 오래된 전통시장인 구시장에 들어섰다. 서문 부근에 찜닭 전문 식당들이 많았다. 그중 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일하는 분이 ‘순한 맛, 보통 맛, 매운맛’ 중 하나를 고르라고 했다. 매운맛을 먹고 싶었으나 “정말 맵다”는 아주머니의 반응에 보통 맛을 주문했다. 조언 한 가지. 매운맛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매운맛을 시켜야 한다. 보통 맛은 입속의 점막을 자극하지 않는다. 토막 난 닭고기와 당면, 감자 등이 수북하게 쌓인 접시가 상에 올랐다. 매콤하고 달콤하고 간간한 찜닭은 익숙한 맛이었고, 익숙해서 젓가락질을 멈출 수 없었다. 구시장에서 신세동까지 걸었다. 신세동은 안동 시내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지만 오랫동안 세월의 적막을 경험해야 했다. 택시조차 들어가기를 꺼려하는 달동네였다. 변화는 3년 전 찾아왔다. 안동대 출신의 예술팀이 마을에 벽화를 그리고 조형물을 설치한 것이다. 처음에 데면데면하던 주민들도 마음을 열고 ‘마을 꾸미기’에 동참했다. 그 결과 신세동은 화사한 얼굴로 거듭났다. 몇몇 주민은 벽화의 모델이 되어 주었다. ‘복덩이 할머니’로 불린다는 김화순 할머니와 손자, 그리고 옆집 여자아이가 옥탑방 건물 벽면의 대형 초상화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왼쪽 골목으로 접어들면 철가방을 든 채 오토바이를 타고 있는 동네 중국집 배달원이 담벼락에 그려져 있다. 오르막길의 흰색 담장에서는 중년 혹은 초로의 사내가 얼굴에 은은한 미소를 띠고 있다. 동네에서 마주친 한 어르신께 “할머니 얼굴은 왜 없어요?‘라고 여쭈자 ”저기 아래로 내려가서 모퉁이를 돌면 내 얼굴도 볼 수 있다“며 수줍어하셨다. 벽화 마을 초입, 그러니까 동부초등학교 바로 앞에는 손바닥만한 카페가 자리했다.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인도풍의 그림부터가 범상치 않았다. 이곳은 원래 30여 년간 구멍가게가 있었던 자리라고 한다. 범상치 않은 외모의 카페 주인은 과자나 라면 등을 올려놓던 가게 선반을 그대로 남겨두었다. 여기에 자신이 갖고 있던 소품들과 추억의 물건들을 적절하게 배치했다. 그랬더니 창업에 드는 비용이 150만원에 불과했다. 게다가 월세는 겨우 10만원이다. 하지만 제일 부러웠던 것은 그의 눈썰미와 인테리어 감각, 그리고 여유로운 삶의 태도였다. 마을 구경을 마치고 다시 시내로 돌아와 땀도 식히고 다리쉬임도 할 겸 맘모스제과의 문을 열어젖혔다. 맘모스는 지난해 미슐랭 가이드가 별 세 개를 부여하면서 새삼 화제를 모았지만 이미 40년 가까이 안동 시민들의 ‘궁금한 입’을 책임졌던 전통의 빵집이다. 세월의 흐름과 사람들의 기호에 복속하지 않을 수 없었겠지만 생각보다 세련된 외부 모습과 내부 분위기는 좀 아쉽기도 했다. 단팥빵, 블루베리 파이, 맘모스 빵 등을 사서 한 입씩 베어 물었더니 까까머리 중학교 시절, 같은 반 친구의 부모님이 운영하던 동네 제과점의 풍경이 떠올랐다. 제과점을 나올 때 마음속에 따뜻한 물이 차올랐다. 학문의 길이 막히면 길을 걸었다 도산서원은 학창 시절 단골 시험 문제였다. 출제자들은 도산서원이 세워진 내력과 사액서원으로서의 의의, 퇴계 이황의 발자취 등을 무던히도 물어봤던 것 같다. 문화해설사의 꼼꼼한 설명을 길라잡이 삼아 도산사원의 안팎을 차분하게 들여다보았다. 강당인 전교당, 기숙사인 농운정사, 서고인 광명실, 한석봉이 썼다는 편액, 퇴계가 유난히 아꼈다는 매화나무 등은 시간 여행을 위한 매개물이었다. 도산서원은 익숙했지만 예던길은 낯설었다. 예던길은 퇴계가 도산서원과 청량산을 오가면서 걸었다는 오솔길이다. 강변을 끼고 있는 개인 소유의 땅에 접근할 수 없어서 길은 현재 온전하지가 않다. 길의 허리가 뚝 끊긴 것이다. 지방자치단체에서 강을 돌아가는 산길을 새로 놓았지만 예전 강변길의 운치를 따라잡을 수는 없을 것이다. 어쨌든 퇴계는 학문의 이치를 구하다 ‘생각의 길’이 막힐 때마다 예던길을 소요했다고 한다. 후학 양성에 진력했던 성리학의 대가는 일평생 자문자답을 멈추지 않았다. 하루해가 저물었다. 밤이 찾아오면 더욱 아름다워진다는 월영교로 차를 몰았다. 안동댐 아래 물길을 가로지르는 다리는 교각은 콘크리트로, 상판은 나무로 되어 있었다. 다리가 수면에 비치는 모습이 나름 운치 있었다. 사람들은 다리 중간쯤에 놓인 팔각 정자 월영정에서 살랑바람을 맞았다. 그날 밤 영월교의 낭만을 더욱 북돋워 줄 밤안개는 끝내 피지 않았다. 저녁 식사는 문어숙회로 갈음했다. 문어 내장이 별도로 제공됐다. ‘먹물 맛’이 고소했다. 울진 후포항에서 올라온 쫀득쫀득한 문어를 적당하게 썰어 소주 몇 잔과 함께 입 안에 털어 넣었다. 이튿날 아침, 안동에 산재한 다양한 박물관 가운데 산림과학박물관을 노크했다. 문패에 걸맞게 나무와 숲, 생태계에 관한 자료들이 꼼꼼하게 전시돼 있었다. 화요일 오전, 박물관은 적막했다. 거대한 박물관을 온전히 소유하고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묘했다. 박물관 주변을 산책했다. 탐방로가 잘 조성돼 있었다. 이름 모를 나무들과 야생화들에게 눈인사를 건넸다. 연못은 물낯이 보이지 않을 만큼 수많은 연잎을 들쓰고 있었다. 성곡동의 온뜨레피움은 열대식물과 허브의 천국이었다. 아이들을 위한 체험 공간이 마련돼 있어 가족 단위 나들이객에게 적합해 보였다. 안동을 떠나기 전 운흥동의 갈비 골목에서 늦은 점심을 해결했다. 생갈비의 맛도 준수했지만 고기를 다 먹을 즈음 나오는 두 가지의 찌개가 인상적이었다. 갈비뼈에 김치와 감자를 넣고 끓여낸 갈비김치찌개와 우거지를 듬뿍 넣은 된장찌개는 ‘고기 먹은 후 냉면’이라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전혀 생각나지 않게 해주었다. 김치찌개는 달착지근한 반면 된장찌개는 구수하고 시원했다. 밥 한 공기 반을 후딱 해치웠다. 서울로 올라오는 길 내내 배가 든든했다. 1 매표소에서 도산서원으로 이어진 길 2 아이들이 창밖을 내다보는 신세동의 벽화 3 미슐랭 가이드로부터 별 세 개를 받아 화제를 모았던 맘모스제과 4 간고등어, 헛제삿밥과 더불어 안동이 자랑하는 구시장의 찜닭 5 운흥동 갈비 골목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travie info 찾아가기 중앙고속도로 서안동 IC를 이용하면 된다. 서울 출발을 기준으로 2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먹거리 안동찜닭을 먹은 곳은 구시장의 위생찜닭(054-852-7411)이다. 2~3인용 2만5,000원, 4~5인용 3만8,000원. 옥동의 오렌지향기(054-852-3559)는 문어숙회와 굴, 두 가지 메뉴만을 취급한다. 굴은 겨울철에만 내놓는다. 문어는 간장과 고추장, 두 가지 소스에 찍어 먹는다. 2만3,000원. 운흥동에 자리한 백조숯불갈비(054-859-4988)의 생갈비는 1인분에 1만9,000원. 밑반찬도 정갈하다. 숙박 안동호반자연휴양림(054-855-8687)을 추천한다. 한옥과 초가집 형태의 숙박 시설에 종갓집, 처갓집 등의 이름이 붙어 있다. 방 세 개가 있는 처갓집은 비수기 기준으로 1박에 6만원이다. 각 방마다 화장실이 딸려 있어 편리하다. 주변 환경도 고즈넉하다. * 9월28일부터 10월7일까지 탈춤공원과 하회마을 일대에서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www.maskdance.com)이 열린다. 세계 각국의 탈춤 공연을 비롯해 다채로운 체험 행사가 곁들여진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위 기사는 기사콘텐츠 교류 제휴매체인 여행신문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관한 모든 법적인 권한과 책임은 여행신문에 있습니다.
  •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98) 청송 관리 왕버들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98) 청송 관리 왕버들

    나무가 있는 아름다운 풍경을 만나면 사람들은 사진을 찍는다. 이 같은 자연스러운 행동을 스위스 태생의 영국 작가 알랭 드 보통은 책 ‘여행의 기술’에서 ‘아름다움을 소유하려는 본능적 욕구의 발현’이라고 했다. 덧붙여 그는 아름다움을 제 안에 온전히 담는 방법으로 순식간에 완성되는 사진보다 데생이 더 효율적이라고 강조했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긴 시간 동안 바라봐야 하기에 자연스레 마음 깊숙이 풍경을 담아둘 수 있다는 데에 근거한 이야기다. 그는 마침내 “그림을 배우기 위해 자연을 보라고 가르치기보다는 자연을 사랑하기 위해 그림을 그리라.”는 존 러스킨의 말을 인용하며 아름다움을 소유하는 방법에 대한 에세이를 마무리했다. ●사라진 청송 지역의 자랑, ‘만세송’ “이 자리에 왕버들과 함께 서 있던 소나무가 청송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소나무라는데 그게 없으니 아무래도 허전해요. 더구나 청송 지역의 상징이 소나무라잖아요.” 시간의 흐름을 그림에 담아내는 젊은 화가 이장희(39)씨가 청송 관리 왕버들에 내려앉은 세월의 흔적을 그림에 담아낸 뒤 던져 온 이야기다. 천연기념물 제193호인 청송 관리 왕버들은 그의 이야기처럼 바짝 붙어 있던 ‘만세송’과 함께 바라보는 느낌이 독특한 나무였다. 왕버들과 소나무를 그리 잘 어울리는 조합이라고 할 수야 없지만 이 마을에서 두 나무의 어울림은 절묘했다. 넓은 품을 가진 왕버들 곁에서 소나무는 곧게 뻗은 줄기가 훌쩍 솟구친 채 개울가로 가지를 늘어뜨리고 서 있었다. 왕버들이 초록 잎을 내려놓으면 소나무의 푸름이 도드라졌고 봄이 돼 왕버들에 물이 오르면 소나무는 생명이 약동하는 소리가 잦아든 채 다소곳이 왕버들 가지의 반대쪽으로 고개를 숙였다. 마치 잘 어울리는 한 쌍의 부부처럼 자연스럽고도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문화재청에서 왕버들 앞에 천연기념물임을 알리는 근사한 입간판을 세우자 청송군에서는 ‘만세송’(萬歲松)이라는 소나무의 이름을 또렷이 새긴 비석을 소나무 앞에 보란 듯이 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청송의 자랑이기도 했던 만세송이 싹둑 잘린 밑동만 남긴 채 왕버들 곁을 떠났다. 뎅그렇게 만세송 표지석만 남아 을씨년스럽게 느껴지는 풍경이 화가의 눈에 거슬렸던 모양이다. ●전쟁터에서 돌아오지 않는 임 그리워 “2008년 봄이었죠. 만세송에 좀나무병이 들었어요. 반드시 살릴 생각으로 대여섯 달 동안 애를 썼지만 방법이 없더군요. 할 수 없이 베어냈지요. 만세송 표지석은 진작에 철거하려 했는데 아쉬움이 남아 미적거리다가 여태 그대로 두게 된 겁니다.” ‘군목’(郡木)으로 보호하던 나무를 잃게 돼 아쉽다며 청송군청 문화관광과의 문화재담당 우용훈(52)씨도 안타까움을 털어놓았다. 군청에서는 만세송에서 받은 솔씨로 후계목을 키워 만세송이 서 있던 자리 옆에 심어놓았지만 아직 어린 나무에 불과한 탓에 살아있을 때의 만세송을 떠올리기는 쉽지 않다. 만세송의 부재가 더 안타까운 것은 왕버들과 한 쌍을 이루며 전해 오는 전설 때문이기도 하다. 옛날 이 마을에는 채씨(蔡氏) 성을 가진 처녀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그의 아버지가 전쟁터에 나가게 되자 처녀를 좋아하던 한 총각이 아버지 대신 전쟁에 나가기를 청했다. 전쟁이 끝나고 돌아와 혼사를 치르겠다는 약속을 전제로 한 제안이었다. 아버지의 허락을 받은 총각은 처녀와 이별 인사를 나누며 이 자리에 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 전쟁이 끝나고 돌아올 때까지 나무를 보며 자신을 잊지 말라는 당부와 함께 심은 나무가 지금의 관리 왕버들이다. 처녀는 혼인을 위해 목숨까지 던진 총각의 열정에 감동해 그를 기다리며 왕버들을 정성껏 보살폈다. 나무는 부쩍부쩍 자랐고 얼마 뒤 전쟁은 끝났다. 그러나 날이 가고 달이 지나도 총각은 돌아오지 않았다. 처녀는 타오르는 그리움을 견디지 못한 채 그새 훌쩍 자란 나무에 목을 매 목숨을 끊었다. 처녀가 죽은 자리 곁에는 얼마 뒤 소나무 한 그루가 자라나 처녀의 한 많은 죽음을 지켜주었다. 만세송이 그 나무다. 전설처럼 왕버들과 만세송은 처녀 총각이 살아생전에 이루지 못한 인연을 나무가 되어 이루는 듯한 형상으로 오랫동안 사이좋게 그 자리를 지켜 왔다. ●원래 크기의 절반을 잘라낸 고통도 겪어 마을 어귀 길목에 서 있는 당산나무로 사람들이 정월대보름에 꼬박꼬박 당산제를 지낸 왕버들은 문화재청에서 공들여 관리하고 있다. 키 10.2m, 가슴높이 줄기둘레 6.5m에 이르는 관리 왕버들은 특히 사방으로 뻗은 가지에서 돋은 푸른 잎이 무성해 단아하고 무척 건강해 보인다. 그러나 이 나무 역시 만세송 못지않은 시련을 겪었다. 나무는 원래 이보다 훨씬 컸다. 1967년에 관리 왕버들의 키는 지금의 두 배 가까운 18m나 됐다고 한다. 당시 서쪽으로 난 큰 줄기에 들어찬 벌집을 제거하고 썩은 줄기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나무 줄기의 상당 부분을 잘라내야 했다. 그로 인해 키가 반으로 줄어들었지만 그나마 몇 차례의 수술로 건강은 회복할 수 있었다. 줄기 중심부에는 여전히 당시의 고통을 간직한 수술 흔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 있다. 나무 앞에 서면 전쟁터에서 돌아오지 않는 임을 그리워하던 꽃다운 처녀의 얼굴이 아른거리고 처녀의 한을 달래듯 솟아오른 한 그루의 소나무도 떠오른다. 줄기의 절반을 잘라내야 했던 수난은 물론이고 곁에 붙어 있던 만세송을 떠나보내며 왕버들이 겪었을 이별의 깊은 통증도 느껴진다. 나무줄기를 따라 흩어진 시간의 흐름을 고스란히 담아내려 애면글면하는 화가의 마음속 통증까지 더불어 느낄 수밖에 없는 관리 왕버들의 가을 풍경이다. 글 사진 청송 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 gohkh@solsup.com ▶▶가는 길:경북 청송군 파천면 관리 721. 중앙고속국도의 서안동나들목으로 나가서 안동시 길안면을 지나 지방도로 914호선을 이용해 동쪽으로 16.5㎞ 남짓 가면 청송군에 닿는다. 국도 31호선과 만나는 청송교차로가 나오면 직진해 교차로를 건넌 뒤 달기약수탕 방면으로 좌회전한다. 개울을 건너서 청송시외버스터미널 방면으로 좌회전하여 1.7㎞ 더 간다. 언덕을 넘으면 마을이 나오고 교차로 모퉁이의 빈터에 나무가 있다. 나무 바로 앞에는 자동차를 세울 수 없으므로 마을 안쪽으로 들어가서 자동차를 세우고 걸어 나오는 게 좋다.
  •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 이야기] (97) 안동 용계리 은행나무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 이야기] (97) 안동 용계리 은행나무

    딱히 길 위에 나설 일도 없지만 며칠 만에 한번 길을 나설라치면 집 앞의 큰 나무가 걱정돼 발걸음을 재우쳐 돌아오는 한 노인이 있었다. 서둘러 돌아오는 길에는 반드시 나무 앞에 오래 서서 ‘할배, 잘 있었소?’라고 안부를 물었다. 비가 적어 가뭄이 드는 때면 어김없이 나무의 혼령이 ‘목이 마르다, 물 좀 달라.’고 간절히 하소연하는 꿈에 시달렸다. 나무의 안녕은 곧 할머니의 평안이었고 나무의 영화는 할머니의 명예였다. 경북 안동 길안면 용계리 은행나무 앞 관리사무소에서 살아가는 월로댁 할머니 이야기다. ●‘월로댁’ 할머니 죽는 날까지 나무 곁에 한가위 명절을 지내고 서서히 나무도 가을 채비를 해야 할 즈음 월로댁의 구수한 입담으로 풀어내는 나무 이야기를 듣기 위해 깊은 산골 용계리를 찾았다. ‘은행나무 기념관’이라는 문패가 돋보이는 나무 앞의 아담한 집 한편에 마련된 월로댁의 살림방으로 들어가는 쪽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은행나무를 가족처럼 여기던 월로댁 할머니는 지난봄에 돌아가셨어요. 이제 공식적으로 나무를 관리하는 사람은 없지만 마을 분들 모두가 정성껏 나무를 보살피지요.” 천연기념물 등 안동시의 문화재를 관리하는 문화예술과 이미선(43) 주무관은 마치 제 어머님이 돌아가신 것처럼 서운해하는 목소리로 월로댁 할머니의 부음을 알려줬다. 세상 누구보다 극진하게 나무를 지켜 왔던 나무 지킴이 월로댁 할머니가 그렇게 이승을 떠났다. 어린 시절부터 나무 곁에서 살아왔고 나무가 죽음의 위기에 처했던 1987년부터는 아예 나무 앞 관리소에 보금자리를 잡아 죽는 날까지 나무 곁을 떠나지 않고 홀로 나무를 바라보며 살아온 명실상부한 ‘나무 지킴이’였다. 이태 전 가을에 만났던 월로댁 할머니는 외딴 골짜기에서 홀로 사는 게 무섭지 않으냐며 허투루 던진 질문에 ‘무섭긴 뭐가 무서워! 저리 큰 나무가 지켜주는데!’라고 당당하게 대거리했다. 그때만 해도 건강했건만 세월의 흐름을 따라 월로댁은 나무 곁을 떠나고 말았다. 언제 보아도 크고 융융한 기세의 용계리 은행나무가 사뭇 쓸쓸해 보이는 것도 분명 곁에서 생로병사의 고통을 어루만지며 세월의 흐름을 함께 바라보던 월로댁 할머니의 부재 탓이리라. “어릴 때 제일 재미있었던 놀이가 나무에 기어오르는 일이었죠. 원래 저 나무가 초등학교 운동장에 있었거든요. 제가 그 초등학교 1회 졸업생이에요. 늘어진 굵은 가지에 매달리는 건 물론이고 저 줄기 위쪽에 나 있는 큰 구멍은 숨바꼭질할 때 숨어들기 가장 좋은 명당이었지요.” 월로댁 부재의 아쉬움을 메워 준 건 용계리 이장 권광협(49)씨였다. 수몰된 용계 마을에서 월로댁 할머니와 함께 자라온 그는 월로댁 못지않게 용계리 은행나무의 역사를 고스란히 바라본 산 증인이다. 천연기념물 제175호인 용계리 은행나무는 매우 특별한 나무다. 약간의 호들갑이 허용된다면 ‘세계 어디에서도 이만큼 특별한 나무’를 찾아볼 수 없다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댐 건설 수몰 위기, 마을 청원으로 극복 권씨의 이야기대로 길안초등학교 용계분교장의 운동장 한편에 서 있던 나무는 학교 아이들뿐 아니라 마을 사람 모두의 평안을 지켜준 마을 당산나무이기도 했다. 평화롭게 서 있던 은행나무에 위기가 찾아온 것은 1987년, 임하댐 건설 계획이 나오면서부터였다. 댐이 완공되면 창졸간에 마을은 물속에 잠겨야 했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지만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댐 근처의 동산 위로 옮겨 갔다. 그러나 고스란히 물속에 갇힐 수밖에 없게 된 나무 때문에 사람들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조상 대대로 살아온 마을과 집을 내놓은 사람들은 공사 담당자들에게 나무도 살려 달라고 애원했다. 하지만 나무는 쉽게 옮겨 심을 수 없을 만큼 컸다. 키 31m에 가슴 높이 줄기 둘레가 14m인 거목으로, 가슴 높이 줄기 둘레만으로는 우리나라 최대의 은행나무다. 끈질기게 이어진 마을 사람들의 간곡한 청원 끝에 공사를 맡은 한국수자원공사는 정부의 지원을 얻어냈고 나무 이식 공사를 결정했다. 정확히 하자면 다른 곳으로 옮겨 가는 이식(利殖)이 아니라 높이만 들어 올리는 상식(上植) 공사라고 해야 한다. ●23억 투입 4년 공사 ‘나무 이식의 표본’ 무모할 정도로 큰 규모의 용계리 은행나무에 대한 상식 공사는 H빔 공법을 이용해 나무를 조금씩 들어 올리는 방식으로 시작됐다. 마침내 나무는 원래 있던 자리에서부터 15m 높이까지 들어 올려졌고 나무 주변에는 자연스레 인공 산이 쌓였다. 결코 빠르게 진행할 수 없었던 이 상식 공사는 1990년부터 1993년까지 4년에 걸쳐 이뤄졌고 공사에 들인 비용은 무려 23억원이었다. 단 한 그루의 나무를 살리기 위해 이 정도의 비용을 들인 예는 세계적으로도 찾아볼 수 없다. 이 공사를 이후 도시 개발 과정에서 나무 이식의 표본으로 삼게 된 건 자연스러운 결과다. “공사 때 뿌리와 가지를 상당 부분 잘라냈어요. 여전히 큰 나무이기는 하지만 옛날에 비하면 무척 왜소해진 겁니다. 그래도 물속에 갇힌 옛 우리 마을을 돌아볼 수 있는 나무가 남아 있다는 게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모릅니다.” 수몰 위기를 이겨내고 우뚝 서 있는 고향의 당산나무를 바라보는 권씨의 선한 눈길에는 세상의 모든 고향, 혹은 이 땅의 모든 사람살이를 향한 지극한 애정이 한가득 담겼다. 글 사진 안동 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 gohkh@solsup.com ▶▶가는 길 경북 안동시 길안면 용계리 744. 중앙고속국도의 서안동나들목으로 나가서 안동 시내로 들어선 뒤 반변천을 건너 국도 35호선으로 갈아타고 길안면으로 간다. 길안면사무소 앞에서 지방도로 914호선을 이용해 동쪽으로 3.5㎞ 남짓 가면 오른쪽으로 천지휴게소가 나온다. 고갯길을 2㎞쯤 더 가면 개울가에 삼거리가 나오는데 여기에서 좌회전해 마을길로 개울을 끼고 5㎞ 들어가면 임하댐이 나오고 건너편으로 나무가 보인다.
  • [길을 품은 우리 동네] (3)여수 돌산읍 방답길

    [길을 품은 우리 동네] (3)여수 돌산읍 방답길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한 희극인은 이 대사를 통해 성과주의에 젖은 이 사회에 의미를 곱씹어 봐야 할 웃음을 던졌다. 학업이든 운동이든 생활 속 대부분의 경우 이 말은 꽤 들어맞는다. 하지만 우리가 딛고 선, 매일 걷고 있는 그 길은 땅 위에서 있었던 모든 것을 기억한다. 오랜 시간이 지나 주변 환경이 바뀌더라도 길은 어떤 형태로든 그곳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엑스포로 분주한 전남 여수에서 차로 30분을 더 달려 도착한 곳, 돌산읍 방답길. 이곳에서는 영토와 백성을 지키기 위해 적진 한가운데로 몸을 던졌던 조선 두 영웅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이순신, 이순신과 함께 남도를 지키다 여수 세계 박람회로 분주한 5월의 무덥던 날. 고속철도(KTX)를 타고 도착한 여수 엑스포역은 엑스포 관람객들로 열기가 더욱 뜨거웠다. 수많은 인파를 뒤로한 채 여수 바다 위로 시원하게 뻗은 돌산대교를 지나 왜란(倭亂)의 흔적을 품고 있는 한적한 마을에 닿았다. 북쪽은 산지가 둘러싸고 있고 남쪽과 서쪽으로는 남해에 접한 작은 마을, 여수시 돌산읍 군내리. 마을이 워낙 작은 탓에 마을을 가로지르는 주요 도로인 ‘방답길’은 총 연장 800m가 채 되지 않는다. 방답길이라는 도로명은 조선시대 이곳에 있었던 ‘방답진성’에서 유래한다. 방답진은 조선 전라좌수영에 소속된 수군기지로 1523년(중종 18년)에 설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임진왜란 당시 방답진의 수령은 첨사 이순신이었다. 하지만 여기서의 이순신은 국민 대부분이 ‘성웅’으로 일컫는 그 이순신이 아니다. 첨사 이순신(李純信)은 충무공 이순신(李舜臣)과는 한글 동명이인이다. 충무공 휘하의 무장으로 옥포해전에서 큰 공을 세운 뒤 당포·한산·부산 등에서 왜적을 대파한 인물로 기록돼 있다. 그로부터 414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중년의 두 순신이 지키던 그곳은 인생의 황혼기를 맞은 촌로들이 텃밭을 일구고, 그물질을 하며 새 역사를 기록하며 살아간다. 현재 방답진성은 대부분이 훼손됐지만 방답길을 따라 마을 중심부로 걸어가다 보면 남해를 끼고 있는 오른쪽에서 그 흔적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개인 소유의 작은 텃밭 사이로 길게 이어진 약 4m 높이의 성곽을 통해 방답진성의 규모와 형태를 짐작할 수 있다. 남아 있는 성곽을 방풍벽 삼아 밭을 일구고 있는 마을 주민 고종빈(75)씨는 어릴 적 부모님과 조부모님들로부터 전해 들은 이야기를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고씨는 검은 흙이 묻은 손가락으로 성벽을 따라 성벽이 끊어진 지점까지 크게 가리키며 “옛날에는 밤 12시가 되면 성문에서 북을 울리고 문을 닫았어요. 성 안 놈이든, 바깥 놈이든 문이 닫히면 꼼짝없이 해가 뜰 때까지 기다려야 했죠.” 고씨의 표현 중 “성 안 놈”과 “성 바깥 놈”이라는 표현은 이 마을에서 자주 들을 수 있었다. 방답진성은 훼손돼 사라졌지만, 아직도 생활 깊은 곳에 그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이다. 군내리는 예나 지금이나 행정과 생활상의 기준에 방답진성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금의 도로명 주소도 옛 성문이 자리했던 동·서·남문을 중심으로 구분된다. 서문을 기준으로 안쪽이면 ‘서안길’, 바깥쪽이면 ‘서외길’이 되는 식이다. 서문 밖, 즉 서외길을 따라 나오면 곧 ‘굴강길’이 나온다. 방답진에서 전함과 배 등을 만들거나 수리할 수 있도록 굴강(堀江)을 낸 것에서 유래한다. 난중일기에는 이곳에서 거북선을 건조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굴강은 때마침 물이 빠져나가 6~8척의 작은 고깃배만이 뭍 위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다시 방답길을 따라 남쪽으로 걷다 보면 가로 1m, 세로 1.3m 크기의 바위가 길 모퉁이에 나타난다. 방답진성 남문이 있던 곳의 주춧돌이다. 주춧돌 외에는 남문의 흔적을 찾을 수 없지만, 주춧돌 바로 옆 가게는 ‘남문상회’라는 이름을 쓰고 있다. ●다시 방답진으로 마을을 살린다 이처럼 군내리는 방답길과 굴강길, 서외길, 남안길 등 마을의 모든 길이 오랜 역사를 품고 있지만, 아직 대부분이 미발굴 상태다. 현재 전남대 이순신해양문화연구소에서 이 지역에 대한 연구·조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여수시는 그 결과를 바탕으로 방답진성 복원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여수시 민원지적과의 김한종 주무관은 “여수시의 경우 이번 엑스포를 계기로 교통 등 경제 발전을 위한 인프라가 어느 정도 개선됐고, 엑스포 효과도 기대하고 있다.”면서 “군내리는 역사적 가치가 높은 만큼 방답진성을 복원해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한편 역사 교육의 장으로도 운영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충호 돌산읍장은 “현재 군내리의 주 수입원은 농업과 어업이지만 전체 인구가 1000명이 되지 않고, 주민의 80%가량이 40대 이상이기 때문에 새로운 수익 창출 방안이 절박한 상황”이라며 방답진성 연구와 복원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여수시 관계자들은 방답진 복원은 단순한 관광지 개발을 넘어, 이 땅에 기록된 역사를 되살리면서 새로운 역사를 이어가도록 하는 꼭 필요한 사업이라고 입을 모았다. 글 사진 여수 박성국기자 psk@seoul.co.kr ●4회는 경기도 과천 ‘추사로’를 소개합니다.
  • ‘치유의 공간’… 용산공원, 생태를 품는다

    ‘치유의 공간’… 용산공원, 생태를 품는다

    2016년 이전하는 서울 용산 미군기지에 들어설 용산공원의 밑그림이 ‘치유의 공간’으로 확정됐다. 정부는 올 하반기부터 이 같은 기본계획안을 바탕으로 45억원 규모의 기본설계를 진행한 뒤 실시설계를 거쳐 2017년 용산공원 조성공사의 첫 삽을 뜨게 된다. 국토해양부는 첫 국가공원인 용산공원의 국제 설계 공모전 결과, 건축가 승효상씨와 네덜란드의 세계적 조경가 아드리안 구즈의 공동 작품인 ‘미래를 지향하는 치유의 공원’이 선정됐다고 23일 밝혔다. 이 작품은 242만여㎡ 규모의 용산공원을 자연과 역사·문화를 치유하는 공간으로 정의하고, 국가적 상징성과 생태·경관축을 구현한 것이 특징이다. 한국의 대표적 경관인 산과 골, 연못을 현대적으로 재현했으며 남산과 용산공원, 한강을 잇는 생태축을 복원했다. 또 다리를 활용해 공원 내부와 주변 도시를 효과적으로 연결시켰다. 공원의 중심에는 습지를 활용한 호수가 들어서게 된다. 소셜미디어를 활용한 공원 이용 프로그램도 미래지향적인 아이디어라는 평가를 받았다. 총 사업비는 실시 설계 이후 확정되지만 다른 공원 조성사업의 사례와 용산공원의 면적을 감안하면 약 1조 2000억~1조 5000억원 선이 될 것으로 보인다. 심사위원인 김영대 영남대 건축학부 교수는 “전체 공원을 다문화공원, 생산공원(텃밭), 관문공원 등으로 주제에 따라 6개 구역으로 나눈 뒤 다양한 콘텐츠를 담을 계획”이라며 “인위적인 건축물에 의해 갇힌 남산과 한강 사이의 생태공간을 복원해 국가공원의 기능을 부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칠진 용산공원조성추진기획단장도 “완벽한 그림을 미리 그려놓지 않고 국민 의견을 수렴해 최종적으로 공원을 완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설계공모전에선 서안알앤디 디자인팀이 2등을, 미국 제임스 코너 필드 오퍼레이션과 삼성에버랜드 컨소시엄이 3등을 차지했다. 유기적인 조경을 중시하는 아드리안 구즈와 기하학적 구조를 앞세운 제임스 코너(미국)의 맞대결로 관심을 끌었으나, 용산공원의 역사성을 고려해 미국 센트럴파크를 벤치마킹한 코너의 작품이 결선에서 밀린 것으로 전해졌다.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뻥튀기’ 수요 예측… 2조5000억 세금 낭비

    ‘뻥튀기’ 수요 예측… 2조5000억 세금 낭비

    경남 김해시가 심각한 재정부담이 된 부산·김해 경전철 민자사업을 반성하고 교훈으로 삼기 위한 백서를 발간했다. 김해시는 12일 국내 최초로 정부시범사업으로 추진된 부산·김해 경전철의 20년간에 걸친 추진상황을 담은 ‘부산·김해간 경전철 20년사’라는 제목의 백서를 펴냈다고 밝혔다. ‘국내 최초 경전철 정부시범사업’이라고 소제목을 붙였다. 김해시는 244쪽 분량의 이 백서에 개통된 뒤 이용객이 당초 예상보다 턱없이 적어 김해·부산 두 시가 막대한 재정부담을 피할 수 없게 된 부산·김해 경전철 사업의 추진에서 개통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을 자세하게 담았다. 1992년 8월 12일 국무회의 의결을 통해 경전철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정부시범사업으로 선정된 과정부터 2002년 12월 13일 사업시행자 지정을 거쳐 실시협약체결, 준공, 개통에 이르기까지 과정을 사실 그대로 상세하게 정리했다. 특히 정부가 이 사업 성사를 위해 2차례나 민간 투자자를 공모했다가 여의치 않자 1998년 12월 31일 사회간접자본시설 투자시 최소운영수입보장(MRG) 규정을 담은 민간투자법을 개정한 배경도 담아 놓았다. 백서에는 또 부산·김해 경전철과 관련해 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과 이명박 정부에서 추진됐던 주요 상황과 정책결정 과정 등도 기록했다. 김해시는 이 백서를 정부, 부산시, 경남도, 사업시행자 등과 정부시범사업으로 추진된 부산~김해 경전철의 MRG 문제 해결 방안을 마련하는 데 활용할 계획이다. 김해시 윤정원 교통환경국장은 “부산·김해 경전철 추진과정의 정확한 정보를 시민들에게 제공해 경전철과 관련한 각종 논란을 해소하고 앞으로 민자사업을 추진할 때 반면교사로 삼자는 뜻에서 백서를 발간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9월 개통된 부산~김해 경전철은 이용객이 7개월간 하루 평균 2만 9583명으로 당초 국토부와 사업자가 협약 때 예측했던 17만 6000명의 16%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 때문에 부산과 김해시는 내년부터 20년간 해마다 1000억원이 넘는 비용을 민간사업자에게 지불해야 할 처지다. 김해시의 경우 20년간 1조 5000억원을 물어야 한다. 김해시는 사업추진 당시 용역기관에서 이용객 예측을 터무니없이 엉터리로 하는 바람에 지자체가 큰 재정부담을 떠안게 됐다며 이같은 내용도 백서안에 있는 그대로 담았다고 밝혔다. 김해시와 부산시는 부산~김해 경전철 사업을 국내 최초로 정부시범사업으로 추진한 정부에도 책임이 있기 때문에 MRG 부담금 가운데 50%를 국비로 지원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김해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