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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와대 뒷산 개방… 광화문엔 광장 조성

    청와대 뒷산 개방… 광화문엔 광장 조성

    서울 광화문 앞 일대가 근처 문화관광부, 주한미국대사관 부지와 함께 대규모 광장으로 조성된다. 광화문은 원래 위치대로 남쪽으로 14.5m 앞당겨져 목조건축물로 다시 지어지며, 광화문으로 들어가는 사각형 플랫폼인 월대(月臺)와 해태상도 원래대로 복원된다. 또 여의도 면적의 4분의3에 해당하는 청와대 뒤 북악산 일원 193만평이 오는 4월 숙정문 일대를 시작으로 내년 10월까지 전면 개방되며, 숙정문·숭례문 등 4대문이 포함된 서울성곽이 복원돼 서울을 ‘유네스코 역사도시’로 등재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유홍준 문화재청장은 24일 서울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북악산 전면개방과 서울성곽 복원, 광화문 일대 광장 조성 등을 골자로 한 ‘서울 역사도시 조성계획’을 발표했다. 1968년 1·21 사태 이후 청와대 경호상 일반인의 통행이 통제됐던 청와대 뒷산인 북악산이 올해와 내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전면 개방된다. 오는 4월 홍련사∼숙정문∼촛대바위에 이르는 1.1㎞ 구간이 먼저 개방되며 10월까지 와룡공원∼숙정문∼촛대바위 구간인 1.6㎞가, 내년 10월까지 북악산 팔각정에서 창의문까지의 구간이 추가로 개방된다.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이 오는 2009년까지 원래 모습으로 복원돼 위용을 되찾게 된다. 임진왜란때 소실돼 1865년(고종2년) 복원된 광화문은 1968년 철근콘크리트로 중건되면서 원래보다 북쪽으로 14.5m, 동쪽으로 10.9m 옮겨졌다. 또 경복궁 중심축에서 동쪽으로 5.6도 틀어졌던 것이 이번에 원래 자리로 돌아가 남산이 아닌 관악산을 바라보게 됐다. 또 소실됐던 월대도 광화문 앞에 52m 규모로 복원되며, 기존 해태상은 원래 월대에서 35m 앞에 두기로 했으나 교통 등을 감안, 새로 생기는 월대 끝에 위치하게 됐다. 월대가 복원됨에 따라 광화문 앞에 일반인을 위한 광장이 조성된다. 문화재청은 숙정문 개방에 맞춰 서울성곽 18.2㎞중 유실·멸실된 구간 7.7㎞를 2015년까지 복원하기로 했다. 서대문·서소문 복원도 검토하기로 했다. 유 청장은 “서울성곽 및 광화문 복원을 통해 이 일대를 정비, 서울을 ‘세계역사도시’로 유네스코에 등록신청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사설] ‘서울 역사도시’에 거는 기대

    서울이 ‘수도 600년’에 걸맞은 멋진 변신을 준비하고 있다. 문화재청이 발표한 ‘서울 역사도시 조성 계획’에 따르면 광화문 일대가 원래대로 복원되고 서대문·서소문을 비롯한 성문과 성곽이 최대한 되살아난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전이 예정된 문화관광부·미국대사관 자리에는 광화문 광장을 조성하고, 통행금지 구역인 청와대 뒤 북악산 자락을 전면 개방한다. 서울이 역사도시로서 한층 격상된 면모를 갖추는 동시에 시민을 위한 자연친화적이자 안락한 공간이 대폭 늘어나는 것이다. 서울은 조선 개국이래 한국사회의 정치·경제·문화적 중심지로 기능해 왔지만 현재 서울의 모습에서 그 역사적 축적을 체감하기란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말이 좋아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세계적인 도시이지, 실제로는 난개발의 전시장이나 다름없는 게 서울의 초상(肖像)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 까닭이야 6·25 전화(戰禍)와 1960년대 이후 추진된 개발일변도 정책에 있지만, 이제라도 서울의 역사성을 강화하고 시민 휴식공간을 확대하는 작업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극심한 찬반 논쟁 속에 시작한 청계천 복원사업이, 막상 끝난 뒤에는 서울시민을 비롯한 국내외 방문객들에게 큰 사랑을 받아 유·무형의 엄청난 가치를 생산하고 있음을 우리는 이미 경험했다.‘서울 역사도시’ 조성 계획도 정부 각 부처와 서울시의 자발적인 협력 아래 한치의 차질 없이 추진되어야 한다. 그래서 모든 사업이 완료되는 2015년에는 서울이 역사의 숨결과 최첨단 문명이 적절히 어우러져 함께 숨쉬는 진정한 역사문화 도시로 거듭나기를 기대한다.
  • [인사]

    ■ 산업자원부△생활산업국장 趙石△원전사업기획단장 吳日煥■ 전국경제인연합회 ◇부장 승진 △강호영 김보수 권태홍 정진◇전보△기획조정실장 원용득△미디어홍보실장 임호균△경제조사본부장 이승철△산업조사본부장 이병욱△사회협력본부장 박찬호△지원본부장 유재준△노동복지팀장 정대순△기업정책팀장 양세영△기업도시팀장 한동률△FTA팀장 김용옥△윤리경영팀장 전동선△국제협력실장 박대식△인력개발팀장 박재성△사업지원팀장 권희철■ 외환은행 ◇국내 점포장△강남역 金大煥△광양 朴正圭△군자동 李賢△김해 朴喜甲△남영동 李南雲△대림역 任正淳△도곡로 禹聖濟△둔촌동 姜柄俊△마산 金益萬△반포동 許桓烈△방배동 朴文哲△병점 卞龍煥△부평 徐泳根△부평역 鄭世根△북울산 鄭世鎭△산본 申學基△삼성역 申鉉世△상계동 崔豪喆△서면 朴鍾牧△석암 權寧卓△송파동 姜錫宇△수유동 洪昇杓△안암동 金景熏△양산 金洙先△양재동 文鍾健△여수 金永哲△역삼동 成鍾燮△용산전자 崔寅喆△을지로 朴洪鍾△작전동 申鉉宰△장유 洪承稷△정릉 裵点泰△정자동 徐東振△진주 柳在鎬△창원 金圭八△토지(가스)공사 曺幸燮△하남공단 朴仁秀△홍제역 李尙根△화곡역 禹奭允△화정역 金年洙△휘경동 南廷浩 ◇개인금융 지점장△광산 張三洙△마산 蔡炳麟△부평 姜哲秀△울산 劉永奎△주안공단 李善煥△천안 李廷祜△청담역 박연파△퇴계로 尹熙哲△하남공단 金永來 ◇기업금융 지점장△사당역 白正基△서소문 朴湧澈 ◇대기업금융 지점장△대기업영업1본부 李炳九 金三煥 禹基鉉 ◇해외영업점장△동경 李奭勳△상해 鄭尙鉉△마닐라 全棕培 ◇본점 부장 △기업마케팅 金漢祚△여신심사 全鎭△여신정리 李亨起 ◇본점 팀장 △급여후생 金庚淑△산업분석 金濚奎△국제여신 韓勇甲△업종5팀 朴亨根△개인여신 李在憙△지방채권정리 金淸雲△외화자금 朴俊植△자금기획 奇晟根△기업진단 申東烈 ◇해외현지 법인장 △N.Y Financial Co. 閔泳秀 ◇개설준비위원장 △선수촌WMC센터 金明玉■ 신한생명(단장) △수도지원단장 裵浩耿(부장)△복합TM고객부장 曺權燮(지점장)△강서 崔在圭△서초 尹承相△사당 裵森容△남대구 金星煥△남부산 權東久△한양AM 李光杓△중부법인AM 尹泰元△BCTM 金柄浩△보람ACE 尹相逢(팀장)△리스크관리 金武河△회계 金源宇△CM 崔振基△변액보험운영 任君宰△종합금융 金凞松△계약조사 姜榮恩△콜센터 鄭炯民△고객만족 禹弘均■ 월드건설 ◇승진 △영업본부장 직대 상무 조영호△개발 이사 이경철△영업 이사 장해주△기술 이사 김요안
  • 서울 시의원은 ‘귀족 의원’

    “시의원도 국회의원처럼?”서울시의원들은 이르면 내년 6월 청사에 개인 사무실을 마련하고 인턴보좌관도 두게 된다. 지방의원 유급화에 따른 시의원들의 전문성 강화를 위한 것이다.21일 서울시와 서울시의회에 따르면 양측은 중구 덕수궁길에 나란히 있는 시의회 별관 7·8층과 지하철건설본부가 들어선 시청 별관 2동의 7·8층에 시의원 102명의 개인 사무실을 별도로 마련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시의원들의 성과를 미뤄봤을 때 개인 사무실 마련은 시기상조라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서울시의회는 예산 46억원을 확보, 이미 사무실 설계를 마쳤으며 이달중으로 시공업체를 선정할 계획이다. 이어 내년 3월쯤 지하철건설본부가 중구 서소문의 순화빌딩(잠정)으로 이사가는 대로 사무실 공사를 착공,6월 전후로 공사를 끝낼 계획이다. 시의원들은 그동안 시의회 별관 7·8층의 사무실을 공동으로 이용했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시의원 한 명당 8평의 사무실을 얻게 되고, 매월 100만원 안팎을 받는 인턴 보좌관도 한 명씩 배치된다. 시의회 별관과 시청 별관 2동의 7·8층은 통로가 설치되어 연결된다. ●“전문화위해 사무실 확보” 시의회는 그동안 무보수 명예직이었던 시의원들이 유급화(연봉 7500만∼8000만원 예상)되면서 의원들의 전문성 강화가 요구되는 데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의회 임동규 의장은 “국민 20만명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은 의원 사무실은 물론 비서관·보좌관 등 8명의 인력을 지원받고 있지만, 시의원은 시민 10만명을 대표하는데도 별다른 지원을 받지 못했다.”면서 “폭넓은 자료수집·조사 등을 통해 시민들에게 질높은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개인 사무실 마련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국공공자치연구원 김현소 부소장은 “시의원의 전문화를 위한 개인 사무실의 필요성은 공감하지만 그동안 대부분의 시의원들의 성과를 미뤄봤을 때 개인 사무실이 필요할지 의문”이라면서 “공간 확보보다도 시의원들의 자질향상이 우선순위”라고 말했다. ●사무실 빨리 마련해달라 빈축 한편 시의원들은 대부분 임기를 3개월 앞둔 내년 2월까지 사무실 공사를 끝낼 것을 요구하고 있어 빈축을 사고 있다. 서울시 고위 관계자는 “임기도 끝나는 마당에 벌써부터 서두를 필요는 없지 않으냐.”면서 “시청사를 신축한다고 하니까 시의원도 덩달아 자신들의 공간을 요구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고 말했다. 현재 전국 13개 광역의회 가운데 의원 개인 사무실이 설치된 곳은 광주·대전·전북·전남·경남·제주 등 6곳이다. 이들 의회 의원들은 19∼51명 수준이지만, 서울시의회 의원들은 102명에 달한다. 김유영 김기용기자 carilips@seoul.co.kr
  • [모임]

    ●배재 94회(28기) 송년모임 14일 오후 7시, 서울 서소문 배재빌딩 배재반점 (02)752-7666
  • [수도권플러스] 서울시 청사 30일 철거 시작

    서울시 본관 뒤쪽 청사 철거공사가 오는 30일 시작된다. 새 건물을 지을 공사비는 2125억원으로 결정됐다. 서울시는 1일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신청사 건립 계획안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입찰공고는 9일 낼 예정이다. 이에 따라 감사관실과 경영기획실, 도시계획국, 재무국은 적십자중앙원 이전으로 비어 있는 서소문별관 사무실로 옮긴다. 비상기획관은 남산 소방방재본부 사무실로, 교통국 교통지도단속반은 종로소방서 자리에 있던 옛 복지재단 사무실로 임시 이전한다.
  • [Zoom in 서울] ‘새청사 짓기’ 새달 스타트

    [Zoom in 서울] ‘새청사 짓기’ 새달 스타트

    서울시 새청사 건립이 당초 늦어질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다음 달 1일 조달청에 공사 발주 의뢰를 시작으로 본격 추진된다. 다음 달 중순이면 본청에 입주해 있는 부서가 이전되고 내년 1월초 철거공사가 시작될 전망이다. 서울시는 이같은 내용의 새청사 건립계획 및 부서 이전계획을 마련해 이명박 서울시장에게 보고·확정했다고 28일 밝혔다. 청사는 태평로 1가 31일대 현 청사 부지에 2000억여원을 투입, 지상 22층 연면적 8만 8000㎡ 규모의 최첨단인텔리전트 빌딩으로 건설된다. ●늦어도 내년 5월 착공 서울시가 확정한 신청사 건립계획에 따르면 다음 달 1일쯤 조달청에 턴키(설계·시공일괄입찰)방식으로 시공사 선정을 의뢰한다. 조달청은 서울시 공모에서 최우수작으로 뽑힌 7건을 바탕으로 90일 동안 기본설계 기간을 준 뒤 3월 말쯤 시공사를 선정한다. 설계공모에서 최우수작을 낸 회사와 컨소시엄을 맺으면 가점(3점)을 부여한다. 부서 재배치는 다음 달 중순부터 시작된다. 이 기간 철거업체를 선정, 내년 1월초부터 본격적인 철거작업에 나설 계획이다. 대략 2008년 말 준공해 2009년 입주한다는 계획이다. 가급적 주변에 피해를 줄이고, 빠른 입주를 위해 패스트트렉 방식을 채택했다. 늦어도 이명박 시장 임기 내인 5월에는 착공이 가능할 전망이다. ●새 사무실 안 얻는다 보존키로 한 시청 본건물 전면부 외에 증축된 건물은 모두 철거한다. 이에 따라 부서의 재배치가 불가피하다. 하지만 사무실을 임대하지 않고 기존 건물을 최대한 활용하기로 했다. 임대료가 너무 비싸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서울시 최동윤 총무과장은 “비어 있는 서소문 별관 혈액원동과 남산의 시 소유 건물을 활용, 부서를 재배치할 계획”이라며 “다른 건물을 임대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본청에는 시장 집무실과 보좌 기능 부서만 남는다. 대변인실, 홍보기획관, 경영기획실내 예산과, 기획과, 행정국 가운데 총무과, 행정과, 인사과, 재무국에서는 재무과가 잔류부서다. 나머지는 모두 서소문 별관으로 옮긴다. 서소문 별관에 있던 뉴타운사업본부는 12월 말 해체 예정인 남산의 청계천추진본부로 옮겨 간다. 이곳에는 소방방재본부가 있어, 비상기획관실도 업무 연관성을 고려해 이곳으로 옮긴다. ●향후 과제 대형 건설업체인 현대건설 삼성물산 대림산업 GS건설 포스코건설 등이 참여해 기술력을 겨룰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부지가 협소한 데다가 본청 건물의 일부를 보존키로 해 설계에서 이들의 실력이 제대로 나올지 미지수다. 또 자칫하면 덕수궁 주변에 초대형 시청이 들어서 나홀로 빌딩이 될 수 있다. 또 태평로 쪽으로 시청이 돌출돼 태평로를 따라 광화문 사거리와 경복궁으로 이어지는 경관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신청사 시공사 선정에서는 설계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할 것”이라며 “열악한 여건을 최대한 활용, 미관과 실용성을 함께 갖추는 업체가 유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성곤 김기용기자 sunggone@seoul.co.kr
  • [Zoom in 서울] ‘새청사 짓기’ 새달 스타트

    [Zoom in 서울] ‘새청사 짓기’ 새달 스타트

    서울시 새청사 건립이 당초 늦어질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다음 달 1일 조달청에 공사 발주 의뢰를 시작으로 본격 추진된다. 다음 달 중순이면 본청에 입주해 있는 부서가 이전되고 내년 1월초 철거공사가 시작될 전망이다. 서울시는 이같은 내용의 새청사 건립계획 및 부서 이전계획을 마련해 이명박 서울시장에게 보고·확정했다고 28일 밝혔다. 청사는 태평로 1가 31일대 현 청사 부지에 2000억여원을 투입, 지상 22층 연면적 8만 8000㎡ 규모의 최첨단인텔리전트 빌딩으로 건설된다. ●늦어도 내년 5월 착공 서울시가 확정한 신청사 건립계획에 따르면 다음 달 1일쯤 조달청에 턴키(설계·시공일괄입찰)방식으로 시공사 선정을 의뢰한다. 조달청은 서울시 공모에서 최우수작으로 뽑힌 7건을 바탕으로 90일 동안 기본설계 기간을 준 뒤 3월 말쯤 시공사를 선정한다. 설계공모에서 최우수작을 낸 회사와 컨소시엄을 맺으면 가점(3점)을 부여한다. 부서 재배치는 다음 달 중순부터 시작된다. 이 기간 철거업체를 선정, 내년 1월초부터 본격적인 철거작업에 나설 계획이다. 대략 2008년 말 준공해 2009년 입주한다는 계획이다. 가급적 주변에 피해를 줄이고, 빠른 입주를 위해 패스트트렉 방식을 채택했다. 늦어도 이명박 시장 임기 내인 5월에는 착공이 가능할 전망이다. ●새 사무실 안 얻는다 보존키로 한 시청 본건물 전면부 외에 증축된 건물은 모두 철거한다. 이에 따라 부서의 재배치가 불가피하다. 하지만 사무실을 임대하지 않고 기존 건물을 최대한 활용하기로 했다. 임대료가 너무 비싸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서울시 최동윤 총무과장은 “비어 있는 서소문 별관 혈액원동과 남산의 시 소유 건물을 활용, 부서를 재배치할 계획”이라며 “다른 건물을 임대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본청에는 시장 집무실과 보좌 기능 부서만 남는다. 대변인실, 홍보기획관, 경영기획실내 예산과, 기획과, 행정국 가운데 총무과, 행정과, 인사과, 재무국에서는 재무과가 잔류부서다. 나머지는 모두 서소문 별관으로 옮긴다. 서소문 별관에 있던 뉴타운사업본부는 12월 말 해체 예정인 남산의 청계천추진본부로 옮겨 간다. 이곳에는 소방방재본부가 있어, 비상기획관실도 업무 연관성을 고려해 이곳으로 옮긴다. ●향후 과제 대형 건설업체인 현대건설 삼성물산 대림산업 GS건설 포스코건설 등이 참여해 기술력을 겨룰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부지가 협소한 데다가 본청 건물의 일부를 보존키로 해 설계에서 이들의 실력이 제대로 나올지 미지수다. 또 자칫하면 덕수궁 주변에 초대형 시청이 들어서 나홀로 빌딩이 될 수 있다. 또 태평로 쪽으로 시청이 돌출돼 태평로를 따라 광화문 사거리와 경복궁으로 이어지는 경관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김성곤 김기용기자 sunggone@seoul.co.kr
  • [취업·알바]

    ●서울시 베트남어 통역과 번역을 맡을 지방계약직 공무원(전임 라급) 1명을 모집한다. 베트남어 통역·번역 관련 학위를 취득한 뒤 3년이상 경력이 있어야 한다.25일(금)까지 이력서 등을 서소문별관 2동 10층 홍강개발지원반으로 접수하면 된다.(02)3707∼8397.●계명대 벤처창업보육사업단 25일(금) 양재2동 ㈜해리코리아 교육장에서 ‘나는 투잡스로 미래를 준비한다.’는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한다. 투잡스 아이템·창업준비·수익성 등을 꼼꼼히 살펴볼 수 있다.(053)620-2035.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45)조선 정조 北道 원수 주형채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45)조선 정조 北道 원수 주형채

    정조9년(1785) 봄이었다. 그 무렵 서울에서는 천주교인 수십 명이 오늘날의 명동천주교회를 결성했고, 그것이 문제가 돼 이른바 을사박해가 일어났다. 마침 전국적인 지하조직망을 가진 것으로 조사된 또 한 번의 ‘정감록’ 사건까지 발생해 세상인심이 뒤숭숭했다. 결국 정감록 사건의 주모자 몇은 사형을 받게 되었는데, 그 가운데 주형채(朱炯采)라는 평민지식인이 끼어 있었다. 당시 심문 기록에는 주형채에 관한 단편적인 정보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실로 구슬을 꿰듯 주워 모아보면 주형채의 일생은 역사상 이름조차 제대로 남기지 못한 조선후기의 허다한 평민지식인 또는 술사들의 삶을 대변한다. 더욱이 그들은 체제에 저항한 일부 양반들과 긴밀한 협조관계를 유지했다. 그런 점에서 주형채의 삶은 더욱 관심을 끈다. ●주형채의 ‘범죄행위’ 정감록 사건의 또 다른 주범인 문양해는 동지 주형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함경도 영흥이 고향인데 향악선생(香嶽 속명은 김정 또는 김호)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흉악한 말을 많이 했다고 한다. 편지에 쓰인 흉악한 구절을 문양해는 자기의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며, 예를 든다.“하늘이 내리는 재앙과 시국의 변천이 이와 같으니 이제 진인(眞人)이 마땅히 나와야 할 것이고, 우리들은 사람들을 모아 어지러운 세상을 바로 잡을 반정(反正)을 일으켜야 할 것입니다.” 향악선생은 이 편지를 상자 속에 깊이 감추어 두었고,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다. 언젠가 향악선생이 외출한 틈을 타서 평소 호기심이 많았던 문양해는 몰래 편지를 꺼내 보았다고 했다. 문제의 편지가 지리산에 도착한 것은 아마 사건 발생 한 해 전인 정조8년 정월로 짐작되는데, 주형채가 하필 왜 그 시점에 이런 편지를 보내왔는지 문양해는 까닭을 모르겠다고 했다. 주형채가 향악선생과 교제를 시작한 것은 오래 전이었다. 적어도 사건 발생 15년 전에 시작되었다고 했다. 주형채는 얼굴 생김이 괴상하고 못났지만 눈빛이 날카롭게 번쩍여 사람을 쏘아보듯 하였다. 주형채와 향악선생 사이에는 오랫동안 편지가 오갔다. 지리산에서 함경도 영흥까지는 근 2000리나 되는 먼 길인데도 서로 소식을 전했던 것이다. 그들 사이에서 편지 심부름을 한 이는 혜준 스님이었다. 혜준은 오래 전 함경도의 어느 사찰에 잠시 머문 적이 있었다. 그 때 그는 주형채와 친해졌고 그것이 인연이 되어 그 뒤로도 함경도를 자주 왕래하였다. 사건 당시 혜준은 경상도 하동에 있는 영원사에 몸을 담고 있었다. 향악과 ‘괴이한’ 편지를 주고받은 것 외에도 주형채는 여러 차례 불온 문서를 조작했다고 한다. 그는 “멀리 귀양가는 노래”를 지어 조정의 잘못을 비난하고 민심을 선동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주형채는 아니라고 끝까지 부정했다. 그 노래는 충신이 멀리 귀양 갈 때 지은 시라고 누군가로부터 들었기 때문에 그저 베껴두었을 뿐, 다른 의도가 전혀 없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발뺌이 용이하지 않았다. 주형채는 장차 자기가 왕이 되겠다는 주장을 동지들 앞에서 서슴없이 했던 것으로 입증되었기 때문이다. 함경도의 평민지식인 주형채는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던 ‘불순세력’과 연합해 조선왕조의 전복을 꾀했다.‘정감록’ 사건을 종결짓는 마지막 확정 판결의 일절은 이랬다.“이율, 양형, 문양해, 홍복영 등 여러 역적들이 반역을 음모해 여러 도에서 거사를 도모하면서 주형채를 북도의 원수로 정하였다. 그들이 서로 왕복하며 주도면밀하게 반역죄를 꾸민 사실은 여러 죄수들의 심문과정에서 샅샅이 드러났다. 대역부도(大逆不道)한 죄인들을 군율에 의거하여 한강 모래밭에서 효시(梟示)하라.”(실록, 정조 9년 3월22일 신미) ●천문과 점술의 대가 주형채 정감록 사건에서 “북도 원수”로 거론된 주형채에게는 사실 특별한 능력이 있었다. 그의 이웃사람들은 무엇이든 조금이라도 아리송한 일이 생기면 주형채를 찾아갔다. 주형채의 집은 함경도와 평안도 두 도가 만나는 접경지대에 있어 양도의 사람들이 그를 따랐다. 주형채는 이를 테면 ‘만물박사’였으며, 여러모로 평민들의 교사역할을 담당했다. 정감록 사건이 발생하기 일년 전인 정조8년 12월 초7일부터 사흘 동안 별자리에 이상이 있었을 때도 많은 사람들이 주형채에게 물어왔다. 당시 주형채가 관찰한 바로는 위성(危星), 실성(室星), 벽성(壁星) 앞에 20여 개의 별이 벽을 쌓고 늘어섰었다. 그 가운데 붉은 기운이 있어 상서롭지 못했다. 특히 여러 별 가운데서도 장군성(將軍星)과 태백성(太白星)이 서로 사흘 동안 싸우다 1도(度) 거리로 멀어졌다. 그 때 태백성이 어깨로 장군성을 부딪쳐 여러 번 이겼다 졌다 했는데, 이 모든 것이 흉한 조짐이었다. 주형채는 이같은 현상이 조선이나 중국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으므로, 해로울 일이 조금도 없다고 주민들을 달랬다고 주장했다. 사람들은 난리를 염려해 피란을 고려하고 있었지만 자기가 만류했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조정의 심문관들은 주형채의 말을 곧이듣지 않았다. 관리들이 보기에 주형채는 민심을 선동해 피란행렬을 조장한 혐의가 짙었다. 실제로 그 무렵 함경도에는 남쪽으로 이주하는 사람들이 많았다.‘정감록’에 예언된 십승지가 모두 남쪽에 있는 관계로, 북도 사람들은 여차하면 남쪽으로 옮길 태세였다. 그들의 상당수는 이미 십승지를 찾아 이동을 시작했다. 주형채와 같은 평민지식인들은 이주운동에 음양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그러나 주형채는 관리들의 문제제기를 부정했다.“저는 주민들을 타일렀습니다.‘현명한 임금이 다스리는 시대에 어찌 피란가는 일이 있겠는가´ 라고 말입니다.” 평민 주형채는 본래 고향 사람 장진익에게서 글을 배웠다. 그의 스승은 사건 당시 이미 사망한 지 오래 되어 화를 면했다. 유교의 기본 경전은 물론이고 천문과 점술까지 통달한 주형채는 향악선생과 같은 도사는 물론이고 점술인들과도 친한 사이였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주형채는 자신의 주변 인물들을 보호하기 위해 철저히 함구했다. 모진 고문에도 불구하고,“제게는 제자나 동문생도 전혀 없었으며, 도사나 점술인은 원래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주형채는 의리가 무척 강했던 사람이며, 의지가 대단했다. 그러나 사건을 수사한 조정의 입장에서 보면, 주형채는 대단한 악질이었다.“주형채는 본래 흉악하고 요사스러운 놈으로 천문 역법과 점술, 둔갑술 등 갖은 술수를 써서 백성들을 속이고 인심을 선동하는 것을 일삼았다. 몰래 역적이 될 마음을 먹고 밤낮으로 기회를 엿보았으며, 스스로 ‘대장’이라 떠들기도 하고, 혹은 ‘도원수’라고 칭했다. 더러는 10만의 군사를 모을 수 있다고 했고, 혹은 영흥(永興)의 군사용 창고를 접수하겠다고 하였다. 심지어는 제가 세울 나라의 국호를 제(齊)나라라고까지 했다. 놈은 마음속으로 이것도 작다고 생각했던지 중국 황제를 만나 추천을 받아 자기가 임금이 될 거라고 했다. 또한 꿈의 해몽을 빙자해 신하로서는 감히 꺼낼 수도 없는 말을 멋대로 지껄인 편지가 남아 있다. 지극히 흉악한 죄상이 지금까지 압수된 문서 중에 이미 역력히 드러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놈은 자기 죄를 한마디도 인정하지 않았다.” 이것이 조정의 판단이었다. 평민지식인 주형채의 생각으로는 잘못된 것이 있다면 그 때의 부정 불의한 세상이요, 조정이었다. 자기와 자기 동료들은 아무런 죄도 없었다. 따라서 썩어빠진 관리들이나 임금 앞에서 죄를 인정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살점이 떨어지는 혹독한 고문을 묵묵히 견디면서 주형채는 단 한마디도 잘못을 빌지 않았다. 누구에게도 사태의 책임을 전가하지 않았다. ●주형채가 지하조직에 편입된 계기 ‘정감록’ 역모사건의 소용돌이에 주형채가 휩쓸리게 된 것은 물론 그가 지하조직에 가담했기 때문이다. 그가 지하조직에 가입하게 된 데는 몇 가지 계기가 있었다. 첫째, 주형채는 이 사건에서 핵심적 역할을 담당한 문양해 일가와 인연이 깊었다. 문양해의 삼촌 문광도는 함경도 문천에서 잠시 감목관(監牧官 목장업무를 담당하는 관리)을 지낸 적이 있었다. 그 때 그곳을 여행하던 주형채가 천문에 관한 일로 문광도와 토론을 벌였고, 이를 계기로 여러 문씨들을 사귀게 되었다. 문씨 일가는 충청도 공주의 평민으로 학식이 뛰어났다. 그들은 홍국영의 가까운 친족 홍낙순이 충청감사가 되었을 때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홍 감사가 충청도 감영(監營)에 계실 때 많은 은혜를 입었고, 감사께서 저희 집에 찾아오셔서 만났습니다.” 문양해의 아버지의 진술 중에 이런 말이 나온다. 평민 문광도 역시 홍낙순의 후원으로 감목관 벼슬을 얻은 게 틀림없다. 주형채는 이런 문광도와 서로 기맥이 통하게 됨으로써 장차 문양해 및 홍복영(홍낙순의 아들)과 뜻을 같이 하게 되었다. 둘째, 정감록 사건의 또 다른 주역 양형과도 깊이 사귀게 되었다는 점이다. 주형채의 사촌 주형로는 이미 양형을 알고 지냈다. 주형로(일명 주형일)는 사건 당시 충청도 단양에 머물고 있었다. 양형은 주형로를 통해 주형채란 존재를 알고 있었는데, 자기 친척 문광도에게서 주형채에 관한 이야기를 다시 전해 듣게 되자 호기심이 발동했다. 양형과 주형채는 서로 연락해 만나게 되었고, 그들의 사이는 곧 절친한 관계로 발전했다. 양형은 서울 입동에 사는 중인이었다. 낮은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워낙 글재주가 출중했던 그는 서울의 양반 홍복영 및 이율과도 매우 친한 사이였다. 정조 초년, 홍복영은 충청감사로 임명된 아버지 홍낙순을 따라 공주에 내려가 있었다. 그 때 의약에 관한 일로 홍낙순은 고민을 하던 중 양형이 의술에 밝다는 소문을 듣고 불러 상의한 적이 있었다. 양형의 처방이 적중했던지 의술을 매개로 그들은 서로 친해졌다. 홍낙순 일가가 서울로 돌아온 뒤 양형과 홍씨들은 더욱 가까워졌다. 홍복영은 양형의 살림이 어려울 때 도와주기도 했다. 그들은 때때로 편지를 주고받았으며, 나중에 함께 공모해 하동에 지하조직의 거점을 마련했다. 양형과 가까워진 주형채 역시 이 조직에 포섭된 것은 물론이었다. 셋째, 주형채와 홍복영은 끝까지 그 점을 부인했지만, 주형채는 여러 해 전부터 홍복영 일가와 알고 지냈다고 봐야 한다. 홍복영의 삼촌 홍낙빈은 주형채와 친밀해 편지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였다. 정조 5년(1781) 세도정치가 홍국영이 실각하자 가까운 친척 홍낙빈도 함경도 갑산으로 유배되었다. 그 때부터 주형채는 홍씨 일가와 밀접한 관계를 갖게 되었다. 그들은 다들 왕조의 전복을 꾀하였다. 위에서 살핀 몇 가지 경로를 통해 주형채는 ‘정감록’ 사건의 주역들과 마음을 합친 것으로 생각된다. 주형채와 양형, 문양해, 홍복영 등이 지하조직을 형성해 나간 과정을 살펴보면 뜻밖에도 두 가지 사실이 부각된다. 하나는 18세기 조선사회에서 중인 또는 평민 지식인들이 끊임없이 지리적으로 이동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들은 한 곳에 오래 머물러 살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주형채처럼 고향을 지키고 사는 경우에도 자주 이웃 지방을 여행해 사교범위를 확장하고 있었다. 둘째, 평민 또는 중인 지식인들은 계층을 뛰어넘어 양반들을 사귀는 데 열심이었고, 양반들 역시 여러 가지 이유로 하층지식인들과 접촉하였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조선시대 양반들은 같은 신분층에 속하는 식자들만 사귀었을 것으로 짐작하는 경향이 있지만 사실은 완전히 달랐다. 양반과 평민지식인들은 그것이 비록 평교(平交 평등한 교제)는 아니었다 해도 인생의 다양한 국면에서 서로 만났던 것이다. ●주형채가 속한 전국규모의 지하조직 주형채는 조직의 상층부를 상당히 잘 알고 있었으나 하부구조를 정확히 파악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대다수의 조직원들은 지하조직의 일부를 알고 있었을 뿐이다. 이 조직의 전모를 파악하고 있던 지도층 인사는 문양해 정도였다. 문양해는 심문을 받는 과정에서 지하조직의 얼개를 비교적 자세히 설명한 적이 있다. 북도의 원수는 주형채였지만 그 밑에 여러 명의 두목이 활동했다. 함경도 안변에는 조상호와 유덕휘가, 그리고 강원도 통천에는 유경일이 대도독(大都督)이라 불렸다. 고성의 칠송정에 사는 권생만 역시 대도독으로 통했다. 그들은 일단 유사시 지역사령관으로 능력을 발휘할 참이었다. 이들 가운데서도 특히 유경일과 권생만은 지리산의 향악선생과 가끔 연락을 취하고 있었다. 문양해는 사건 발생 2년 전에 그들이 향악선생에게 편지를 보낸 사실을 기억한다고 했다. 그밖에 황해도 봉산에 있는 이형윤과 황주에 사는 정몽로도 해서지방의 괴수로 손꼽혔다. 고위간부는 아니었지만 평안도 곽산에 살던 박필현도 이 조직의 일원이었다. 주형채 등의 명단은 지리산 거점에 보관 돼 있던 두루마리에 모두 적혀 있었다 한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서울 사는 양반들도 이 지하조직에 상당수 포함되어 있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은 앞에서도 이름이 언급된 이율과 홍복영이었다. 진사 이율은 한양 이현에 살았는데 홍씨 일문에 보낸 편지에서,“이 세상을 보지 아니 할 때는 언제입니까? 제 뜻을 온 세상에 널리 펴지 못하게 된다면, 한탄한들 무엇 하겠습니까?”라며 반역의 뜻을 비쳤다. 서소문 밖에 살던 진사 정래정과 정래익도 지리산의 향악선생에게 편지를 보내 조정을 비방하였다.“우리가 비록 재주가 없고 불민하지만 거사하는 날에는 조영흥(趙永興 이름은 미상)이나 주공(朱公 주형채)의 부하가 되기를 원합니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여기서 보듯 주형채는 조직 내에서 상당한 실력자로 인식되었다. 물론 지하조직을 총괄한 이는 향악선생이었고, 그를 측근에서 보좌한 이가 문양해였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향악선생이 끝내 체포되지 않은 가운데 이 사건은 종결된다. 어쩌면 향악선생이란 인물 자체가 허구였을 수가 있다. 문양해가 가공의 향악선생 노릇을 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렇다면 문양해야말로 실은 지하조직의 괴수였던 셈이다. 문양해는 문장에 능한 미혼의 노총각으로 비승비속의 도사였다. 지하조직에서는 충청도출신 인사들의 참여도가 높은 편이었다. 특히 공주지방 사람들이 많이 포함돼 있었으며, 내포지방의 양반들도 여러 명이 관여했다. 조직의 실질적인 우두머리 문양해 일족이 공주 출신이었던 데다, 조직을 경제적으로 뒷받침한 홍복영의 아버지 홍낙순이 충청감사를 역임한 것과 관련이 있다. 예컨대 공주 효포 출신의 권우는 지하조직에 적극 가담했다. 그는 향악선생에게 보낸 편지에서 “선생님의 재간은 천고에 뛰어납니다. 제게 아들이 하나 있는데 마땅히 보내서 글을 배우도록 하겠습니다. 훗날 거사할 기일을 정확히 알려주면 매우 다행이겠습니다.” 이밖에 공주의 상대장리에 사는 진규도 향악선생과 함께 흉악한 묘책과 비밀스러운 계책을 짰다고 한다. 공주 유구역의 홍정유, 한산의 정탁 3형제, 태안의 조수정과 조수인 형제, 역시 태안에 사는 가명정(賈命正) 등도 조직에 합류했다. 당진의 조두진, 서홍기, 한제만, 대흥의 이인치도 관련이 있었다. 상대적으로 전라 경상 양도의 참여도는 무척 낮았다. 전라도 광양의 오성겸과 이춘홍이 군비 조달에 기여하기로 내정되어 있었을 뿐이다. 특히 경상도 쪽은 조직원이 아예 전무했다. 그것은 이 지하조직이 노론 출신의 홍국영 잔당과 긴밀하게 연계돼 있었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남인의 세력근거지인 경상도 인사들은 이 조직을 외면했던 것이다. 국가전복이라는 정치적 목적을 가졌으면서도 이 조직은 다분히 종교적인 색채가 짙었다. 하필 그 거점을 지리산에 둔 것은 안전은 물론 신비스러운 성격을 부여하기 위해서였다. 이 조직의 실체는 문양해의 진술을 통해 어느 정도 밝혀진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이 비밀스러운 조직이었던 만큼, 그리고 심문과정에서 마지못해 털어 놓은 이야기란 점에서 불충분한 점이 적지 않다. ●동학의 원조 지하조직에 가담한 사람은 다양했다. 이율과 홍복영 등 실세한 양반이 한 축을 이뤘다면, 지하조직의 운영을 직접 담당한 실질적인 주도층은 중인 이하의 평민지식인들이었다. 주형채, 양형 및 문양해가 바로 그들이었다. 이 사건은 이미 18세기 후반에 정치 종교적인 성격을 띤 전국규모의 민중운동이 준비되고 있었음을 알려주는 실례다. 이런 운동 경험은 지속적으로 축적되어갔다. 그 결과,19세기 말 동학이 대두하자 각지의 농민은 순식간에 동학의 기치 아래 모여들어 거대조직을 만들어냈다. 빗방울이 바로 바다에 이르지는 않는다. 하지만 고인 빗물은 어디엔가 웅덩이를 이룬다. 푸른역사연구소장
  • 하나로텔 본사 여의도로 이전

    하나로텔레콤은 다음달 2일 본사 사옥을 두루넷이 입주한 서울 여의도 아시아원 빌딩으로 옮긴다. 내년 하나로텔레콤과 합병 예정인 두루넷은 지난 9월 중순부터 기존 한나라당 당사로 쓰였던 여의도 ‘아시아원’ 빌딩의 8,9층을 빌려 사용하고 있다. 회사측은 “서울 중구 태평로 신동아화재빌딩과 서소문동 유원빌딩으로 이원화된 본사 사무실을 통합해 업무 효율성을 높이고 임차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이전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 [취업·알바]

    ●서울시 건축과 지방별정직 공무원 항공사진판독사(7급상당) 2명을 채용한다. 관련 학위 및 경력이 있어야 한다.24일(월)까지 서울시 건축과(서울시청 서소문별관 2동 2층)에 신청서를 직접 제출해야 한다.(02)3707-8259.●경기 안산상공회의소·안산1대학 25일(화) 오후 3시 안산1대학 강석봉 기념관에서 ‘새얼굴 새가족 2005 뉴 페이스 채용박람회’를 개최한다. 안산·시흥지역 실업계 고교 및 대학 졸업자가 대상이다. 반월·시화공단 입주업체 100여 곳의 인사 담당자가 나와 현장면접 등을 통해 인력을 채용한다.(031)410-3030.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이팔성 서울시립교향악단 대표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이팔성 서울시립교향악단 대표

    총명한 아이를 위해 어머니 뱃속에서 들었다. 커서는 로맨스로, 사랑의 선율로 다가왔다. 답답할 때면 가슴을 뻥 뚫어주는 시원함이 그만이다. 그렇다. 언제 들어도 감동의 그 이름 ‘클래식’이다. 올 가을엔 클래식이란 옷으로 한번쯤 갈아입으면 어떨까. 그래서 사랑의 칵테일에 흠뻑 빠져보자. 지난 2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서울시립교향악단(서울시향)의 ‘정명훈과 서울시향의 새로운 출발’이라는 연주회에서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다름 아닌 3000여석의 객석을 100%의 유료관객으로 꽉 메운 것. 이는 서울시향 60년 역사상 실내연주로는 처음 있는 일로 기록됐다. 물론 세계적인 지휘자 정명훈씨의 유명세도 있었지만 과거와는 달리 무료관객이 거의 없었다는 점에서 음악계에서는 일단 긍정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인다. 서울시향은 이날 정씨가 지휘하는 슈베르트의 미완성교향곡 등과 함께 확 달라진 모습을 선보여 박수갈채를 받았다. 여기엔 몇 가지 까닭이 있다. 우선 ‘변신’이란 두 글자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재단법인 서울시향의 이팔성(61) 대표가 그 변신의 선두에 서 있다.37년 동안 금융맨으로 일해오던 중 4개월 전 ‘예술 최고경영자(CEO)’로 새 옷을 갈아입어 화제가 됐다. 말단 은행원으로 출발해 한빛증권(우리증권 전신) 대표이사 사장까지 지낸 그가 서울시향의 경영을 맡게 되리라곤 아무도 예상치 못했기에 더욱 그랬다. 이 대표는 한빛증권 사장 시절 공격적인 경영방식과 튀는 아이디어로 5년 연속 흑자기록을 세워 주목을 받았다. 지난 6월1일 서울시향 대표로 취임한 그는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많은 변화와 감동을 창출해내고 있다. 먼저 서울시향을 독립 재단법인으로 만들었다. 이어 엄격한 오디션을 통해 철저히 실력 위주의 단원으로 재무장했다. 외국인을 포함, 세계 각국의 유명 음악대에서 공부한 내로라하는 실력파들이다. 또한 정씨 외에도 노르웨이 출신의 아릴 에멜라이트와 태국의 웅그랑시 등을 부지휘자로 영입, 세계적 수준의 지휘진을 구성했다. 지난 4개월 동안 서울시향은 기획연주 7회, 실내악 연주 1회, 오페라 ‘탄호이저’와 영국 로열발레단의 ‘신데렐라’ 및 ‘마농’ 반주 10회, 서울광장에서 열린 ‘광복60주년 기념음악회’와 ‘청계천 새물맞이 음악회’ 등을 개최했다. 특히 서울대병원, 세브란스병원, 용산도서관, 도봉도서관 등지에서 ‘찾아가는 음악회’를 열어 시민과 함께 호흡하는 등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음악 애호가들도 “예전에 우리가 알고 있던 서울시향은 깨끗이 잊어달라.”며 아낌없이 찬사를 보낸다. 원래 서울시향의 뿌리는 1945년 김생려의 주도로 창단된 ‘고려 교향악단’에 두고 있어 올해로 탄생 60주년이 되는 셈. 그동안 백건우와 장영주 같은 세계적인 연주자들을 배출해냈다. 최근 들어 경쟁률이 더욱 높아져 서울시향 단원이 되는 것을 하늘의 별따기로 여긴다. 한 단원은 “음악의 사법고시에 합격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비유한다. 세종문화회관 4층 서울시향 집무실에서 이 대표를 만났다. 우선 취임 4개월 동안 예술 CEO로 색다른 경험을 많이 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자 “기업이나 예술계나 마찬가지다. 저마다 다른 악기로 연주하는 단원들이 앙상블을 이루어야 좋은 소리가 나는 법”이라면서 “과거에는 그저 듣는 관객이었지만 지금은 고객이라는 말로 다 바꿨으며, 우린 그들에게 철저히 애프터서비스의 정신으로 다가가야 한다.”고 비장한 각오를 피력했다. 아울러 “세계적인 지휘자와 우수한 단원들로 (서울시향은)최고의 클래식 상품을 추구하고 있다. 끊임없이 공격적 마케팅으로 고객을 끌어들이고 그러다보면 후원회도 생겨나게 되며 이럴 경우 고질적인 재정자립의 문제는 저절로 해결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금융계에 있을 때보다 경영의 어려움이 더 많지 않으냐는 질문에 “마케팅에 있어서 제약이나 한계가 어느 정도는 뒤따르지만 무슨 일이든 어떻게 하느냐가 관건이다.”고 대답했다. 또한 “음대 출신이 아닌 법대 출신이었기에 오히려 서울시향에서 일하게 된 것 같다.”면서 원래 클래식 음악을 잘 몰랐지만 지금은 출퇴근 때는 물론 시간만 나면 들을 정도로 스스로 많이 변했다며 웃는다. 개인적으로는 베토벤에 푹 빠졌다고 귀띔했다. 앞으로 서울시향을 어떤 식으로 변화시킬 것인지 물었다.“현재 90%의 재정지원을 10%대로 떨어뜨리는 것을 큰 목표로 하고 있다. 자체공연장 건립과 후원회 결성도 중요하다.”면서 “이를 위해 전직 고위층이나 사회 명망가들도 (서울시향)이사진에 끌어들일 계획이다. 아마 4년 후에는 런던심포니나 뉴욕필하모니처럼 세계적인 오케스트라로 우뚝 서게 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이와 함께 서울시내 각 구청은 물론 병원과 도서관 등 서울시민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가 수준높은 음악을 들려줄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국민소득이 2만∼3만달러에 이르면 클래식 향수층은 더욱 늘어난다고 전망했다. 그는 은행 지점장 시절부터 특유의 공격적 아이디어로 이름을 날렸다. 특히 지난 93년 한일은행 남대문지점을 전국 은행 수신고 1위 점포로 끌어올렸다. 경쟁 지점인 상업은행 남대문지점 명동지점 서소문지점과 조흥은행 반도지점 등을 따돌리고 전국 최고 점포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화제가 됐다. 또한 본점 영업1,2부장을 지내면서도 다른 시중은행 영업부와 수신경쟁에서 항상 앞서나갔다. 이를 인정받아 한일은행에서 최연소 임원이 된다. 99년 5월 한빛증권 사장에 부임했을 때에도 가장 먼저 한 일은 역시 ‘변신’. 영업직에만 적용했던 성과급을 관리직에도 도입했으며, 같은 계열의 은행과 증권사 간에 인적교류에도 앞장섰다. 또한 한빛증권을 찾으면 종합 재테크가 가능하도록 여러 아이디어를 내놓아 주목을 받았다. 이 대표는 ‘가을 전어’로 유명한 경남 하동군 진교의 평범한 농가에서 태어났다. 고향 얘기가 나오자 “진교의 전어와 섬진강 다슬기 요리를 먹으면 최고가 아니냐.”면서 어릴 적 가난 때문에 밥 대신 전어로 허기를 채웠던 적이 많았다고 회고했다. 진교 고등학교 시절에는 영문학자가 되려고 했다. 집안에서는 선생님이 되라며 사범학교 진학을 권유했다. 하지만 워낙 미술과목에 취미가 없어 이를 포기했다. 결국 나중에는 행정가의 길을 걷는다는 명분으로 고려대 법대를 선택했다.67년 대학졸업 후 한일은행에 입행한 것이 인연이 돼 37년 동안 금융계에 몸담았다. 대학 다닐 때 결혼한 그는 슬하에 딸 셋을 두었다. 이중 셋째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 금융계통에서 근무 중이다. 평소 건강관리를 위해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자택 인근의 아차산을 어김없이 오른다. 골프는 싱글수준. 취미인 바둑은 금융계에서도 적수가 드물 정도의 1급 실력. 그러나 요즘에는 되도록 바둑을 멀리한다. 대신 클래식 듣기로 취미를 바꿨다. 또한 만나는 사람마다 “클래식 음악이 이렇게 좋은 줄 몰랐다.”는 말로 전도하기에 바쁘다. 인터뷰 도중 여러 곳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그 중에는 초대권을 요청하는 전화도 있었다. 하지만 “요새는 초대권을 아예 없앴다.”고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의 경영방식과 정신무장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정명훈과 함께하는 서울시향은 분명 우리의 수도를 대표하는 브랜드로 거듭날 것입니다. 또한 고객감동으로 세계를 향한 비상의 날개를 활짝 펴겠습니다.” k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44년 경남 하동군 진교 출생 ▲62년 진교 고등학교 졸업 ▲67년 고려대 법대 졸업 ▲67년 한일은행 입행 ▲79년 동 도쿄지점 주재 ▲85년 동 오사카지점 주재 ▲89년 동 국제부 차장 ▲93년 동 남대문지점장 ▲94년 동 본점 영업1,2부장 ▲96년 동 본점 상근이사 ▲97년 동 부산경남본부장, 상무이사 ▲99년 한빛증권 대표이사 사장 ▲2002∼04년 9월 우리증권 대표이사 사장 ▲05년 6월 서울시향 대표 ■ 상훈 국제금융발전 공로로 재무부장관상(83,87년) 대통령표창(수출입유공,93년)
  • [인사]

    ■ 국무조정실 ◇전보 (국장급) △사회정책심의관 李秉珍△복지여성심의관 權忠植△환경노동심의관 柳忠烈△규제개혁기획단기획총괄팀장 李在洪◇승진 (부이사관)△국가평가인프라구축추진단 기획총괄팀장 李昌洙(서기관)△정책상황실 金永漢◇파견 (민간(SK))△국무조정실 張相辰■ 산업자원부 ◇과장급 전보 △전략물자제도과장 沈成根△전략물자운영과장 白斗玉 ◇과장급 승진△승강기사고조사판정위원회 사무국장 李長翰 ◇서기관 전보△기후변화대책팀장 李材洪△총무과(경리) 徐東久△혁신기획관실 田允鍾△자원개발과 崔祐碩△산업기술정책과 李沅柱△생물화학산업과 朴眞緖△균형발전정책담당관실 金政會△캐나다 천연자원부 파견 金榮信■ 외환은행 ◇국내영업점장 △동수원 趙幸坤 △마포 金鉉二 △서현역 朴奉洙 △63빌딩 張文成 △강서 金哲濟 △구로 朴德緖 △금오 朴昌榮 △김포 柳相喆 △논현동 金賢 △부천 趙南卨 △수원 金廷湧 △신평 유영식 △안산 李正德 △압구정중앙 曺吉洪 △약수역 金天淨 △인사동 許洞桓 △천안 趙恒益 △천호역 李承夏 △탄현 李鎬連 △가락 崔恩誠 △가정동 崔龍根 △구의동 房龍敏 △남가좌동 張英化 △남천동 林興俊 △반월공단 韓勝旭 △사직동 芮大根 △산본 張三洙 △삼성전자 李海天 △서대전 韓福求 △서방 申奇浩 △선릉역 李喜重 △성남 朴榮俊 △성수역 李興純 △수지 李瑢馥 △오류동 김항년 △이촌동 李在植 △인천 金亨九 △창동역 李聖洙 △청주 安東濬 △토평 郭大鎬 △포이동 楊文炳 △호계동 趙時顯 △SBS 李仁珩 △고잔 申龍燮 △과천 金旺雄 △노은 柳在浣 △만촌동 金時克 △삼천동 鄭甲泳 △안동 崔明雲 △이매동 洪性雲 △진량공단 金承九 △강릉 張相烈 △구월동 崔榮一 △도곡역 金南兒 ◇소매금융 지점장△광주 林時權 △광화문 李廷一 △논현역 李容夏 △동수원 邊萬里 △부산 朴釘奎 △서린 全良鎭 △야탑역 權五政 △인사동 尹基協 △63빌딩 宋善出 △구미 鄭然壕 △방배동 金成德 △송파동 金彩吉 △안양 丁英鎭 △여의도광장 金榮一 △연남동 文昌濬 △의정부 吳昇埈 △포이동 楊在道 △서대문 吳海赫 △스타타워 金遠泰 △신갈 金顯哲 △여의도 李根太 △익산 金大集 △창원 張致圭 ◇기업금융지점장△도당동 鄭在德 △서소문 李相泌 ◇본점 부서장△금융기관영업 鄭淸源 △외환업무 權五焄 △PB지원 張善旭 ◇해외현지법인장 △독일한국외환은행 李在哲■ 하나은행 ◇본부장 승진 △경수중기업금융본부 金龍煥 ◇지점장 전보△트윈타워지점 權泰均 △남동중앙지점 柳成旭 △삼성역기업센터지점 韓圭泰 △신영통지점 姜成默 △강남대로지점 李昌根 △충신동지점 鄭義烽 ◇부실팀장 전보△법인영업부장 徐一範 △하나금융지주회사 설립기획단 安永根 △공보팀장 李翼秀■ 코트라(KOTRA) △구주지역본부장 겸 프랑크푸르트무역관장 李善寅
  • 13일 오전4시~15일 자정 세종로·숭례문 일대 통제

    광복절인 15일 광복절 기념행사 기간 서울도심을 통과하는 시내버스가 우회 운행된다. 정부 주최로 경북궁 앞에서 열리는 경축식 및 ‘차 없는 거리 축제’와 관련, 세종로 광화문 입구(경복궁 앞)∼이순신장군 동상(광화문사거리) 구간이 13일 오전 4시∼15일 자정까지 통제됨에 따라 35개 노선 버스 756대가 의주로, 신문로, 우정국로로 돌아간다.또 숭례문광장에서 열리는 국민축제 행사와 관련, 이 일대를 지나는 36개 노선 버스 1352대가 15일 오전 6시부터 자정까지 서소문로, 의주로, 퇴계로 등으로 우회한다. 서울시립교향악단 음악회와 관련해서는 행사장인 서울광장을 지나 을지로 입구로 운행하는 3개 노선 버스 71대가 15일 오후 7∼10시 을지로 입구에서 남대문로로 우회한다.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취업· 알바]

    ●서울시 월드컵공원 29일(금)까지 공원홍보를 담당할 지방계약직공무원 라급 1명을 채용한다. 신문·방송·홍보관련분야 석사학위 또는 3년이상 경력이 있어야 한다. 서울시청 자연생태과(서울시청 서소문별관 1동 12층)로 방문 접수만 가능하다.(02)6360-4606.●인천시 도시개발공사 다음달 8일(월)까지 사장을 공모한다. 응모자격은 만 40세 이상으로 ▲지방공기업 유경험자▲국가·지방자치단체가 설립한 공기업 또는 투자·출연기관의 3년 이상 이사급 근무자▲4급 이상 국가·지방공무원으로 3년 이상 근무자▲우량 상장기업의 상임임원으로 3년 이상 근무자다. 임기는 3년이고 연임 가능하다.(032)440-2254.●경기도 제2청 다음달 20일(토)까지 ‘경기북부 온라인 채용박람회’를 개최한다. 홈페이지(north.gg.incruit.com)를 통해 등록하는 기업체와 구직자는 누구나 무료로 참여할 수 있다.(031)850-2332∼4.●부천 만화정보센터 다음달 말까지 세계만화가대회 및 부천국제만화축제에서 활동할 진행요원을 모집한다. 통역(영어·일어·중국어 등), 행사운영, 전시, 학술 등의 부문으로 나눠 뽑는다. 홈페이지(www.wcc7.net)에서 신청서를 내려받아 제출하면 된다. 유니폼·기념품·수당 등이 지급된다. 행사는 오는 9월 30일(금)∼10월 3일(월) 열린다.(032)320-3745∼6.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한진그룹 (2)-2세 경영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한진그룹 (2)-2세 경영

    한진 조씨가(家)의 2세들이 창업주 고 조중훈 회장의 그늘에서 벗어난 지 3년.4형제의 ‘홀로서기’가 정착된 가운데 이제는 선친이 다져놓은 반석에서 세계 일류 수송기업을 향해 달리고 있다. 지난 3년간 2세들의 경영 성적표는 ‘기업은 물려 받는 것이 아니라 가꾸어 나간다는 것’임을 증명해준다.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도 “전문경영인으로서 자립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것이 선친으로부터 물려받은 가장 큰 유산”이라고 말한다. ●조중훈 회장의 자식 교육 고 조 회장은 자식들에게 인성에서는 검소와 성실을, 일에서는 프로를 강조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자식들을 엄격하게 교육 시켰지만, 때론 애틋한 부정을 내비치기도 했다. 또 선진 지식을 습득하도록 조기 유학을 보내 자식들에게 전문가의 길을 걷도록 했다. “미국 유학 시절 때입니다. 부친은 틈틈이 자신의 육성이 담긴 테이프를 저에게 보내 격려를 했었습니다. 힘들 때마다 부친의 자식 사랑을 확인하면서 큰 힘을 얻은 거죠. 그리고 저도 1주일에 한번씩 아버지께 편지를 썼죠. 부친은 ‘훌륭한 경영자가 되기 이전에 훌륭한 인간이 되어라.’,‘현재의 조건에서 행복을 찾아라. 행복은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찾는 것이다.’를 가르치곤 했었습니다.”(조양호 회장) 조양호 회장과 부친과의 일화 한 토막. 조 회장이 유럽여행을 떠날 때 부친은 궁색하지 않도록 3000달러를 경비로 줬다. 조 회장이 여행을 끝내고 홍콩에서 부친을 만났을 때, 그는 부친이 건네준 돈의 절반인 1500달러을 돌려드렸다. 그는 돈을 절약하기 위해 기차를 타고 다니며 1∼2달러짜리 값싼 여인숙에서 잠을 잤다고 한다. 이후 부친은 조 회장의 검소한 생활과 관리 능력을 신뢰하게 되었단다. 말은 안 했지만 장남의 됨됨이와 장차 그룹의 후계자로서 자질을 테스트했던 것이다. ●4형제의 소그룹 독립경영 “4형제 모두 대한항공에서 경영수업을 시작했지만, 선친(고 조중훈 회장)께서는 자식들의 전공과 성격 등을 감안해 주요 계열사를 맡기신 것 같습니다. 항공은 그룹의 주력 업종이고, 전문 기술의 이해가 필요한 만큼 공대 출신인 제가 맡게 됐고, 둘째(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는 국내에서 대학을 졸업한 데다 성격도 걸걸해서 건설·중공업에 적합하다고 판단하셨죠. 또 국제 비즈니스 마인드가 필요한 해운쪽은 사교적인 셋째가 적성에 맞을 것으로 보셨고, 막내는 금융분야 공부를 죽 해왔으니 그룹의 금융을 책임지도록 하셨습니다. 선친은 이미 1990년대 초부터 이같은 밑그림을 그려놓고, 자식들을 관련 계열사에서 꾸준히 트레이닝을 시켰다는 생각이 듭니다.”조양호 대한항공 회장은 4형제가 각각 항공과 중공업, 해운, 금융을 맡게된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한진그룹은 2002년 조중훈 회장의 별세 이후 4형제간 ‘독립 경영’을 정착시켰다. 그룹 후계구도를 일찌감치 ‘교통 정리’한 데다 확실한 계열 분리를 위해서는 독립경영이 선결돼야 한다는 4형제간의 합의에 따른 것이다. 그로부터 3년 후 한진 주요 계열사의 ‘성적표’는 독립경영의 성과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대한항공은 지난해 세계적인 항공사 독일 루프트한자의 19년 아성을 깨고, 화물수송 부문에서 1위를 차지했다. 한진중공업은 국내 조선업체들이 적자에 허덕이던 지난해 367억원의 흑자를 기록했으며, 한진해운은 지난해 사상 최대의 경영성과를 올렸다. 메리츠증권은 동양화재의 금융지주회사 전환을 통해 제2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한진은 올해 창립 60돌을 맞아 계열사간 지분 정리를 마무리짓고, 확실한 ‘홀로서기’에 나설 전망이다. 한진중공업은 사실상 그룹으로부터 계열 분리가 마무리됐으며, 금융(동양화재)은 지난 3월 계열 분리를 끝냈다. 4형제의 독립 경영이 자리잡으면서 계열사간 의존 관계도 시나브로 엷어지고 있다. 대한항공과 한진해운은 주보험 거래처를 조정호 회장이 수장인 동양화재에서 다른 대형 보험사로 옮겼으며,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이 이끄는 한일레저는 한일 컨트리클럽내에 있던 대한항공 광고판을 철수시켰다. 또 금융계열사인 한불종합금융은 사무실을 서울 중구 해운센터에서 인근 파이낸스센터로 옮겼다. ●항공 전문가 조양호 회장 “회장님의 ‘러브레터’ 받았습니까.”,“이번주에는 두번이나 받았습니다.”대한항공 임원 사이에 오가는 아침 대화 가운데 하나다. 한 임원의 설명이다.“조 회장께서 해외 출장이 잦다 보니 업무를 주로 온라인으로 처리하는데, 좀 부족하거나 따로 지시할 내용이 있으면 담당 임원에게 이메일을 보내요. 임원들은 이를 회장님의 ‘러브레터’라고 부릅니다. 조 회장께서 워낙 전문가이다 보니 내용이 아플 때가 많죠.”이어 “모언론사 기자가 국내 그룹 회장들의 인터넷 실력을 확인하기 위해 늦은 밤에 질문서를 보낸 적이 있었습니다. 조 회장은 본인 메일을 확인한 뒤,‘이런 질문은 홍보실에 문의하십시오.’라고 메시지를 보낸 모양이에요. 그 기자가 회장들로부터 되받은 유일한 메일이었고,30분만에 답장이 왔다고 하더라고요.” 조양호(56) 대한항공 회장은 늦은 밤에도 노트북을 열어 회사 현황을 파악하고, 결재도 한다. 의문 나는 사항은 담당 임원에게 이메일을 보내거나, 전화로 질문을 한다. 직원들도 이제는 회장이 밤중에 결재한 서류를 보아도 더 이상 놀라지 않는다. 조 회장은 국제 항공업계에서 알아주는 거물급 인사다.2000년 출범한 세계적 항공동맹체 ‘스카이팀’ 결성 과정에서 잘 드러난다. 그가 미국 델타항공의 레오뮬린 회장과 의기 투합해 결성키로 한 ‘스카이팀’은 당시 참여항공사 문제로 난관에 부딪쳤다. 조 회장은 평소 친분이 두터운 에어프랑스와 알리탈리아의 최고경영자(CEO)를 집요하게 설득, 결국 ‘스카이팀’에 참여토록 했다. 그가 일궈놓은 스카이팀은 이제 국제 항공동맹체의 핵심으로 자리잡았다. 그는 또 30년간 대한한공에서 잔뼈가 굵은 항공 전문경영인이다. 영업·정비·전산·자재·인사·총무 등 항공사 경영에 필수적인 분야를 두루 섭렵했다. 그의 설명은 이렇다.“전문경영인에게 권한과 책임을 부여하되, 경영의 잘잘못을 지적하는 경영인이 되어야 합니다. 특히 항공사 경영은 제조업과 달라 전문적인 경영 능력없이 권위만을 앞세워 경영권을 행사할 수 없는 특수한 업종입니다. 저는 조종사들과 전문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경비행기를 직접 조종할 수 있는 훈련도 받았습니다.” 조 회장이 2003년 그룹 회장에 취임하면서 임직원에게 던진 첫 일성은 ‘세계 최고의 종합 물류기업’이었다. 이를 위해 2010년까지 항공 여객운송 세계 10위, 항공 화물운송 세계 1위, 해상운송 세계 3위, 국내 육운 1위라는 목표를 제시했다. 그는 인하대 공대를 거쳐 미국 남가주대 경영대학원 경영학 석사, 인하대 경영학 박사 출신이다. ●선 굵은 조남호 회장 조남호(54) 한진중공업 회장은 4형제 가운데 가장 선이 굵은 경영스타일을 보여준다. 직원에게 많은 권한을 위임하지만 그에 따른 책임도 철저히 따진다. 경영진이 일일히 챙기다 보면 실무 책임자의 활동 폭이 좁아지고, 책임감있는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는 판단에서다. 1995년 인천 영종도의 남측방조제 건설 에피소드는 그의 스타일을 엿볼 수 있다. 한진은 당시 최대의 국책사업이었던 인천국제공항 공사에 남측방조제를 맡았다. 서해안은 조수간만의 차가 크고, 유속이 빨라 물막이공사 진행이 지지부진했다. 급히 대안을 찾아야 할 상황이었다. 또 북측방조제 공사는 경험많은 국내 굴지의 건설사가 맡은 터라 서로 자존심을 걸고 공기단축에 매달렸다. 이 때 조 회장(당시 부회장)은 현장 책임자를 직접 방문,“현장을 말아 먹든 말든 모든 권한은 당신에게 있다. 당신을 믿으니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꼭 해내리라 믿는다.”며 전권을 위임했다. 그 결과 여러 개의 바위로 5t이상의 돌망태를 만들어 쌓아나가는 획기적인 아이디어로 공사를 조속히 끝냈다. 더구나 경쟁사의 북측방조제 완공보다 간발의 차이로 일찍 끝내 업계에 화제가 되기도 했다. 준공식 날 헬기를 타고 현장에 도착한 조 부회장은 현장 책임자와 만나자마자 뜨거운 포옹을 하며, 눈시울을 붉혔다고 한다. 조 회장은 국내에서 경복고와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했지만 해외 근무경험은 풍부하다. 선친에게도 필요하면 바른 말을 했고, 부하 직원을 포용하는 스타일이다. 조 회장은 1971년 입사, 네덜란드와 중동, 동남아 등에서 근무하며 해외 건설사업의 개척자 역할을 담당했다. ●‘국제통’ 조수호 회장 조수호(51) 회장은 해운업계의 ‘국제통’으로 통한다.1991년 우리나라가 국제해사기구(IMO)의 상임이사국 가입을 위해 발벗고 나설 때, 정부가 그를 로비스트(?)로 낙점할 정도였다.1년 중 절반 이상을 해외에서 보내며, 세계 곳곳에 지인들을 심어 놓은 조 회장이 적격 인물로 판단됐기 때문이다. 조 회장은 각국 대표를 일일이 찾아 다니며 협력을 요청, 결국 이사국 선임을 이뤄냈으며,93년에는 IMO이사국 연임에 공헌하기도 했다. 그는 딸만 둘이다. 딸들을 위해 주방에서 요리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대놓고 말한다. 그래서일까. 조 회장은 해운업계의 ‘페미니스트’로 불린다. 여성은 배에 태우지 않는다는 해운업계의 금기를 깨고, 한진해운은 1995년 국내 최초로 12명의 여성 해기사(항해사, 기관사)를 선발했다. 또 1997년에는 여성주재원을 파견했으며,2000년에는 최초의 여성 일등항해사를 배출했다. 특히 대졸 신입사원 가운데 여성 비율이 절반에 육박한다. 조 회장은 미국 남가주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1979년 대한항공에 입사했다.85년 한진해운 상무를 시작으로 10년만인 94년 사장으로 취임했으며,2003년 7월 회장직에 올랐다. 그는 20년간 해운업 ‘한 우물’만 판 전문경영인이다. 한진해운은 컨테이너선과 LNG선 등 150여척의 선박과 전세계 53개의 항로를 운영, 연간 1억t 이상의 화물을 수송하는 국내 최대의 선사다. 지난해 매출액 6조 2000억원, 순이익 6457억원을 기록했다. ●금융그룹 시동 건 조정호 회장 98년 한진투자증권(현 메리츠증권)의 재무구조는 최악이었다.900억원의 적자를 기록했으며, 자기자본은 411억원으로 퇴출 위기에 몰렸다. 이를 반전시킨 주인공이 조정호(47) 메리츠증권 회장이다. 당시 조 회장은 푸르덴셜증권 자회사인 PAMA(푸르덴셜에셋매니즈먼트아시아)로부터 510억원의 외자 유치에 성공한 뒤, 강력한 리더십으로 이듬해에 순이익 753억원, 자기자본 2156억원으로 불려놓았다. 외자 유치에는 평소 친분이 있었던 PAMA 코리아 대표인 김한 사장의 도움이 컸다. 이 인연으로 김 사장은 2003년 메리츠증권 부회장으로 스카우트된다. 김 부회장은 “메리츠증권과 PAMA를 결혼시킨 중매쟁이로서 맡은 역할을 다하기 위해 메리츠증권에 오게 됐다.”고 말했다. 조 회장은 나서기를 꺼려한다. 그러나 발동이 걸리면 끝장을 보는 스타일. 지난해 ‘우수영업직원 격려행사’에 참석했던 조 회장은 직원들에게 직접 만든 ‘드라큐라주(포도주 폭탄주)’를 돌리며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이끌었다. 또 무대에 나가 자신의 18번곡을 멋지게 부르기도 했다. 조 회장은 최근 PAMA의 메리츠증권 지분 인수를 진두지휘하며,‘금융그룹’을 향한 시동을 걸고 있다. 지분 인수에 성공하면 동양화재를 정점으로 메리츠증권과 기존 한불종합금융을 아우르는 자산규모 3조원대의 중견 금융그룹을 이끌게 된다. 조 회장은 남가주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했으며, 스위스 IMD 경영학 석사 출신이다. 영어와 불어에 능통하다. ●조씨가 3세는 ‘공부중’ 조씨가 3세들은 이제 결혼 적령기에 접어든 이들이 많다. 유독 중매 결혼이 많았던 조씨가에서 3세 결혼은 어떻게 될까.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 얘기다. “부모가 하라고 해서 요즘 젊은 애들이 그대로 따릅니까. 중매든, 연애든 사람만 좋으면 저는 반대할 생각 없습니다. 시대도 옛날하고 많이 달라지지 않았습니까.” 조 회장과 이명희(56)씨는 장녀 현아(31)씨와 장남 원태(29)씨, 차녀 현민(22)씨 등 1남2녀를 두고 있다. 현아씨는 99년 미국 코넬대학에서 호텔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현재 대한항공의 호텔기판사업본부 기내판매팀장을 맡고 있다. 활달한 성격에 국제적 감각이 뛰어나며, 항공업무 전반에 대해 해박하다는 평이다. 원태씨는 대한항공 경영전략본부 부팀장(차장)으로 일하다가 지난달 미국 남가주대 MBA(경영학 석사)를 밟기 위해 출국했다. 본격적인 경영수업에 앞서 능력을 더 키우는 것이 낫겠다는 조 회장의 판단에서다. 조 회장은 “능력과 관심이 있다면 모를까, 자식이라는 이유로 경영에 참여시키지는 않겠다.”면서 “전문가적인 자질을 지녀야 한다.”고 밝혔다. 인하대 경영학과 출신인 조 차장은 합리적 사고에 일에 대한 책임감이 강하다. 막내 현민씨는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다. 형제 가운데 유일하게 연애 결혼한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과 김영혜(54)씨는 1남1녀를 두고 있다. 장남 원국(29)씨와 장녀 민희(25)씨는 현재 미국 유학 중이다. 조수호 한진해운 회장의 2세들은 현재 일본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다. 조 회장의 부인인 최은영(43)씨가 롯데가 출신으로 일본에 적지 않은 일가 친척이 있기 때문이다. 장녀 유경(19)씨와 차녀 유홍(17)씨 등이 있다. 조정호 메리츠증권 회장과 구명진(41)씨는 1남2녀를 두고 있다. 장녀 효재(16)양은 국내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으며, 원기(13)군은 미국으로 조기 유학을 떠났다. 막내 효리(4)양이 있다. ●한진그룹의 대표 CEO 이종희(63) 대한항공 총괄 사장은 전형적인 외유내강형 CEO다. 경상도 사투리가 무뚝뚝하기보다 사근사근할 정도다. 그러나 78년 항공사에서 가장 바쁜 자리인 영업스케줄 과장 시절에는 5년간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일을 할 정도로 독종 기질이 다분하다. 이 사장은 대한항공 공채 1기 출신으로 정비·자재·기획·영업 등을 두루 거쳤다. 겉보기에는 소탈한 전문경영인으로 보이지만 업무만큼은 빈틈이 없다는 평이다. 매달 책 3권 이상을 읽을 정도로 독서파이기도 하다. 대구 출신으로 대구상고와 단국대 경영학과, 연세대 경영대학원을 나왔다. 김정웅(63) 한진중공업 건설부문 사장은 실무형 리더로 1993년부터 국가 최대의 국책사업인 인천국제공항 건설 현장소장과 총괄본부장을 맡아 성공적으로 공사를 마쳤다. 인하대 토목과를 졸업했다. 홍순익(59) 한진중공업 조선부문 사장은 국내 조선 1번지에서 출발한 한진중공업을 세계 조선기술 센터로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적임자라는 평이다. 홍 사장은 서울고를 거쳐 서울대 조선공학과를 나왔다.70년 대한조선공사(현 한진중공업)에 입사한 뒤, 외국계 회사에서 수석 엔지니어와 동종 대형업체의 조선소장, 미국선급협회(ABS) 부사장을 역임했으며,2001년 다시 조선 현장에 복귀한 정통 조선맨이다. 박정원(60) 한진해운 사장의 집무실 문은 언제나 열려 있다. 직원들 중 누구라도 할 이야기가 있으면 언제든 올라오라는 뜻에서다. 그는 평사원 출신 CEO로서 포용력과 리더십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직원들의 생각을 직접 듣기 위해 평사원 및 특정 부서와 호프타임을 자주 갖는다. 서울 출신으로 중동고와 한양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했다. 김한(51) 메리츠증권 부회장은 글로벌 마인드와 감각을 갖춘 CEO다. 서울대와 미국 예일대 MBA 출신이다. golders@seoul.co.kr ■ 조씨 부자의 ‘사진 사랑’ 항공사의 수장으로서 숱한 해외 여행 때문일까. 고 조중훈 회장과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의 취미는 똑같이 사진 촬영이다. 솜씨도 아마추어 수준을 넘어선 프로급이다. 일만큼이나 취미도 극성스러운 것이 부자간 닮은 꼴이다. 고 조 전 회장은 공식 업무에서 벗어나면 카메라를 메고 낯선 땅 이곳저곳을 두루 돌아다니며, 이국의 풍물과 사람사는 모습 등을 카메라에 담았다고 한다. 그는 그렇게 찍은 사진들을 1985년 ‘이집트 고대문화 사진 전시회’에 내놓았다. 또 그의 사진 작품이 수만 점에 달해 한때는 개인 사진전을 준비하기도 했다. 고 조 회장은 사진 취미에 대해 이렇게 밝힌 적이 있다.“유별난 호기심에서 비롯된 것도 있지만 자주 해외에 나가는 사업 특성과도 무관치 않습니다. 여기에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남은 그 많은 감동과 경이를 많은 분들과 나누고 싶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장남인 조 회장의 사진 실력도 이미 재계에서 유명하다. 그는 해외 출장에서 찍은 작품으로 달력을 제작,4년째 지인들에게 선물로 주고 있다. 취미 활동을 비즈니스로도 활용하는 조 회장이 처음 사진을 찍게 된 계기는 중학교 때 부친으로부터 카메라를 선물로 받으면서다. 조 회장은 부친을 따라 여행을 자주 다녔는데, 부친이 항상 카메라를 갖고 다니며 사진 촬영을 하는 것을 보면서 사진에 대한 꿈을 키웠다고 한다. 그는 지금도 해외 출장 때면 디지털카메라와 캠코더를 분신처럼 꼭 챙긴다. 그리고 노트북에 작품을 담아 놓은 뒤 기념으로 촬영한 사진들을 지인들에게 직접 메일로 보내준다. 그가 사진 촬영에 이렇게 빠지는 데는 자신이 원하는 모습을 의지대로 잘 표현할 수 있고, 간직할 수 있다는 점과 기계는 거짓말을 하지 않고, 넓은 세상을 작은 렌즈에 담아 낸다는 점을 꼽았다. 그도 부친만큼이나 취미에 열성적이다. 평소 국내외 사진 전문잡지를 보면서 마음에 드는 것은 스크랩을 해뒀다가, 작품 활동에 참고한다. 또 사진 전문가와 만날 기회가 있으면 미진한 부분을 곧잘 묻기도 한다. 바쁜 해외 출장 중에도 차량으로 이동하다 차창 밖의 멋진 풍광이 눈에 들어오면 그냥 지나치지 않고, 차를 세워 촬영을 할 정도다. 조 회장은 “해외에 예정된 행사보다 하루나 이틀 정도 일찍 출발해 사진을 찍기 위해 도시 주변을 돌아다닌다.”면서 “사진은 잠시 잊었던 삶의 소중한 순간과 기억을 되살려주는 신비한 힘이 있다.”고 말했다. golders@seoul.co.kr ■ 대한항공의 ‘화물 수송사’ “국제항공운송협회(IATA)로부터 어제 연락이 왔는데, 대한항공이 지난해 항공화물 수송 부문에서 세계 1위를 차지했다고 해요. 이번주에 공식 발표가 있을 것으로 보이는데…. 동북아 물류중심기지 건설에 대한항공이 일조를 했다는 점에서 뿌듯합니다.” 지난달 29일 서울 서소문 KAL빌딩에서 만난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은 상기된 표정으로 이같이 밝혔다. 당시에는 아직 공식 발표된 내용이 아니라서 그런지,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지만 대한항공 창사 36년만에 세계 항공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는 자부심은 도드라져 보였다. 그러나 대한항공이 세계 항공화물 수송 분야에서 톱이 되기까지 우여곡절과 애환도 적지 않았다. 대한항공이 화물사업을 시작한 것은 민영화 2년 후인 1971년 4월. 서울∼일본 도쿄∼미국 LA를 잇는 태평양 노선에 화물기를 처음으로 취항하게 된 것. 한·미 항공협정을 개정할 정도로 어렵게 노선을 취득했지만 막상 실어나를 화물이 없는 상황이 터졌다. 시도도 못하고 주저앉을 수 없다는 심정에서 당시 대미 수출품의 대부분이 가발인 점을 착안, 직원들에게 가발 수출업체를 찾아 나서라는 특명을 내렸다. 그러나 가발업체 대부분이 소규모 중소기업으로 찾는 것조차 힘들었다. 다행히 수출조합을 방문해 주소를 얻고, 복덕방에서 위치를 알아냈지만 또 다른 걸림돌이 있었다. 이제 막 출발한 대한항공에 대한 불신이 적지 않았던 것. 결국 애국심에 호소하며 설득전까지 치러가며 겨우 승낙을 받았다. 또 당시 해외 비즈니스맨들이 주로 이용하던 조선호텔 프런트를 찾아 숙박부를 뒤져가며, 접촉에 나서기도 했다. 이런 고생끝에 대한항공의 첫 화물기는 휴항없이 태평양을 건너게 됐다. 대한항공의 항공화물 변천사는 우리나라의 산업 발달사와 맥을 같이 한다.1970년대 초반에는 가발과 스웨터 등이 화물의 주종을 이뤘으며,70년대 중반부터 80년대에는 모피류와 전자제품,1990년대에는 전자제품과 의류 등이 시장을 주도했다. 최근에는 반도체와 휴대전화,LCD 등 고가의 IT제품이 주종을 이루고 있으며, 휴대전화만을 위한 전세기가 인도에 운항한 적도 있다. 대한항공은 또 별난 특수화물을 수송한 경험도 많다.1983년 11월에는 B747화물기로 서울대공원에 수용될 동물 418마리(54t)를 미국 댈러스에서 서울까지 수송,‘현대판 노아의 방주’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또 핵연료와 탱크, 헬리콥터 등 다른 항공사들이 좀처럼 수송할 수 없는 특수화물을 실어나른 경험도 쌓았다.94년에는 89마리의 미국산 말을 제주로 수송한 것을 시작으로 매년 경주마들을 실어 나르고 있으며, 무역전시장(COEX)내에 개장된 아쿠아리움(대형수족관)에 전시될 상어 35마리 등 희귀 어류들을 호주로부터 운송한 적도 있다. 또 운송이 까다롭기로 유명한 악어 72마리를 성공적으로 수송하기도 했다. golders@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서울시 청사 증·개축 아이디어 공모 건축사만 참가허용 논란

    서울시청사 증·개축 절차가 본 궤도에 올랐지만 시민들은 청사 건립에서 철저히 배제된 느낌을 주고 있다. 서울시는 4일 오전 10시 시청 서소문별관 13층 대강당에서 ‘시청사 증·개축을 위한 건축설계 아이디어 공모 현장 설명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는 건축사·설계사무소 직원 등 60∼70여명이 참석해 청사 증·개축에 대한 높은 관심을 반영했다. 특히 약 10개 업체는 즉석에서 응모신청서를 작성, 제출하기도 했다. 이번에 실시되는 아이디어 공모는 본 설계(실시설계)에 앞서 새로 지어질 건물 외관과 주변 건물과의 조화 등으로 실제 설계·시공 과정에서는 당선작이 반영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아이디어 공모에서 최우수작에 선정된 7개 업체는 이후 실시설계·시공사 선정과정에 일정 점수 이상의 가산점을 부여받는다. 특히 시청사 증·개축의 경우 설계와 시공을 한꺼번에 맡기는 ‘턴키방식’으로 진행되기 문에 이번 아이디어 공모는 곧 시청사신축의 시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날 행사 참가자격은 건축사 자격을 취득하고 건축사 사무소를 개설한 사람 등에게만 부여됐다. 이에 대해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한다는 박정규(27·서울 동작구 사당동)씨는 “시청사와 같이 상징성이 있는 건물일수록 시민들의 아이디어를 반영해야 한다.”면서 “참신한 생각이 반영된 설계안을 채택하려면 대학생이나 일반인들도 아이디어를 낼 수 있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시 관계자는 “일반인·대학생까지 참가자격을 부여하면 현실성·전문성이 떨어지고, 턴키방식 공사를 맡을 역량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이어 “오히려 아이디어 공모 형식은 대형 건설사뿐만 아니라 중소 건축사무소에도 기회를 부여할 수 있어 참여폭을 확대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같은 주장은 설득력이 다소 부족하다. 국제공모를 통해 진행하고 있는 ‘한강 노들섬 예술센터’ 건립에 대한 아이디어 공모에는 현직 건축가뿐만 아니라 건축전공 학생들도 응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디어 공모는 오는 13일까지 응모신청서를 제출한 업체만 참여할 수 있다. 다음달 26일 작품이 마감돼 다음달 31일 입상작이 발표된다. 빠르면 오는 10월중 공사가 발주돼 내년 3월부터는 증·개축 공사가 시작될 전망이다. 완공은 2009년으로 계획돼 있다. 고금석기자 kskoh@seoul.co.kr
  • 돼지고기의 새로운 발견

    돼지고기의 새로운 발견

    ■ 돼지고기의 새로운 발견 돼지가 요즘 인기 상한가를 치고 있다. 돼지고기가 중금속 등 공해물질을 정화한다는 속설을 뒷받침하는 연구결과가 알려진 까닭이다. 돼지고기의 지방은 사람의 체온보다 낮은 온도에서 녹기 시작해 대기오염이나 식수 등을 통해 몸안에 쌓인 중금속을 몸 밖으로 밀어낸다는 것이 학계의 공통된 연구결과다. 특히 돼지고기의 불포화지방산은 폐에 쌓인 탄산가스 등의 공해물질을 중화시켜 주기 때문에 탄광이나 건설현장 등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습관적으로 돼지고기를 즐겼다. 또 인·칼륨 등의 무기질이 풍부해 성장기 어린이와 수험생의 영양식으로 매우 좋다. 한국 사람들은 연간 평균 17.3㎏의 돼지고기를 먹는다. 이는 전체 육류 소비량의 52%를 차지해 절반을 웃돈다. 돼지고기는 기름기가 많아 웰빙에 어긋난다며 한때 기피식품이었다. 한영실 숙명여대 한국음식연구원장은 “돼지고기에 콜레스테롤 성분이 많이 함유되어 있어 고혈압 등 성인병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는 편견”이라고 일축했다. 돼지고기는 다른 육류에 비해 비타민B1을 독보적으로 많이 함유하고 있다. 비타민B1은 체내의 당질이 에너지화할 때 필요하다. 특히 뇌세포와 신경세포는 포도당만을 에너지원으로 삼기 때문에 비타민B1이 필수적이다. 돼지고기 100g당 비타민B1은 0.72∼0.96㎎으로 다른 고기에 비해 10배 이상 많다. 성인이 하루 필요로 하는 양은 1.1∼1.3㎎으로 부족하면 기억력 상실과 집중력 산만, 어깨결림 등을 일으키기 쉽다. 한 원장은 “돼지고기는 조충의 알이나 시모충이 기생하는 경우가 있으므로 날로 먹는 것은 금물이며 반드시 속까지 익혀 먹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돼지고기 가운데서도 삼겹살이나 목살 등이 아닌 항정살·가브리살·갈매기살·볼살 등이 특히 인기다. 이들 부위는 돼지고기 같지 않은 맛이 오히려 매력이다. 항정살은 돼지의 목에서 어깨까지 연결되는 목덜미살로 돼지 한 마리에서 200∼400g 정도 나온다. 모서리살, 치마살, 안살, 천겹살 등으로도 불린다. 살 사이에 하얀색 지방이 고르게 분포되어 부드러우면서도 졸깃한 맛이 느껴진다. 소고기의 차돌박이 같은 느낌이다. 이런 까닭으로 ‘돼지고기의 진주’라는 칭호도 얻고 있다. 요즘엔 오아시스란 이름으로도 팔리고 있다. 갈매기살은 돼지 내장의 한 부위, 즉 ‘횡격막(橫膈膜)’에 붙어 있는 고기. 횡격막을 우리말로 뱃속을 가로로 막고 있는 막이란 뜻에서 ‘가로막’이라고 한다. 이게 발음이 변해서 갈매기살이 됐다고 한다. 가로막살, 안창고기 등으로 불린다. 근육질의 힘살로 고급이라기보다는 담백한 맛이 특징이다. 가브리살은 등겹살 또는 황제살, 등심덧살이라고 불린다. 등심위의 두꺼운 지방층 사이에 약간의 살코기로 소수의 아는 사람들만 먹어 왔던 부위다. 씹는 질감이 부드러우면서 쫀득쫀득한 맛이 난다.‘뒤집어 쓰다’는 뜻의 일본어 ‘가부루’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볼살은 뽈살, 구멍살, 눈살, 아구살로 불리는데 돼지머리의 양쪽 살이다. 한 마리에 200g정도밖에 안 나온다. 고기를 구우면 부풀어 좀 커진다. ■ 도움말 농협중앙회 축산물위생교육원 장영수 교수, 목우촌김제육가공공장(063-540-6700) 글 이기철기자 chuli@seoul.co.kr 사진 류재림·도준석기자 jawoolim@seoul.co.kr ■ 이집이 맛 좀 돼지 고기(482-0415) 서울 천호동 현대아파트 뒤쪽 먹자골목의 ‘고기’는 돼지고기 특수부위를 표방한 집이다. 돼지의 특수부위가 한마리당 200∼400g 정도로 적게 나오는 까닭에 이 집은 대전·충남양돈농협과 계약, 전량을 공급받고 있다. 이 집의 불판 연기를 빨아들이는 구조가 희한하게 생겼다. 구이기의 연통구조와 석쇠 등으로 오너 주방장 김진석씨가 특허까지 받았다. 아무리 먹어도 옷에 고기 냄새가 배지 않게 설계됐다. 고기는 삼겹살도 있지만 볼살(200g·7000원)과 가브리살(300g·8000원)이 대표 메뉴다. 생고기에 참기름과 후추·마늘 등을 넣고 3∼4일 정도 숙성했다. 돼지 특유의 냄새가 전혀 없다. 두 가지를 비교해서 구워 먹어 보면 맛의 차이가 확연하다. 볼살은 찰떡처럼 둥글둥글하게 잘라 고소한 맛을 낸다. 볼살보다 더 얇고, 유백색에 가까운 가브리살은 부드럽고 담백하다. 양파와 부추를 채썰어 넣은 고추냉이(와시비)에 찍어 먹으면 된다. 대앞(333-5152)과 분당(031-753-9233)에도 있다. 고릴라(756-2003) 서소문 호암아트센터 맞은편 순화동 골목의 고릴라의 주종목은 ‘모서리살’(8000원)로 부르는 항정살이다. 드럼통 스타일로 둥근 탁자를 놓아 운치를 냈다. 고기와 술 한잔하기에 좋은 분위기다. 먹기 적당한 크기로 썬 항정살을 불판에 구워 먹는다. 항정살은 돼지고기가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신선한 느낌이 든다. 그래서인지 씹히는 질감이 유별나게 탱탱하고 쫄깃하다. 약간 매운 고추씨를 넣은 새콤한 양념장에 부추와 양파를 적셔 내는데 비릿하면서도 담백한 항정살과 같이 먹으면 궁합이 잘 맞는다. 매콤새콤하면서도 달콤한 뒷맛이 남는 이 집의 소스는 다른 항정살집의 표준이 되다시피 했다. 고기를 먹은 후 나오는 된장찌개는 순하고 부드러운 맛으로 커다란 그릇에 몇 가지 나물을 넣고 밥과 함께 비벼 먹는 사람들도 많다. 토·일요일은 휴무. 떼부짱(514-8770) 서울 압구정동 한양파출소 맞은편 하나은행 골목으로 들어가 프린세스호텔을 지나면 나온다. 압구정동의 야리야리한 손님들이 많이 찾아 ‘물좋은 고깃집’으로 통하며 항정살(9000원)이 전문이다. 한 입에는 조금 크게 잘라 나오는데 굽는 동안 살이 도톰하게 오른다. 약간 조미가 됐다. 씹을수록 배어나오는 육즙이 고소하다. 매운 고추씨를 넣고 만든 새콤, 짭짤한 간장 소스가 항정살의 담백한 맛과 잘 어울린다. 무채나물·상추 등의 야채와 버무려오는 파무침도 몇 번을 청해서 먹을 만큼 상큼하게 잘 무쳐 내온다. 흔하지 않게 참숯을 사용하는 것도 눈길을 끈다. 고기를 먹은 후에는 살얼음을 띄워 오는 새콤달콤한 김칫국의 김치말이국수(5000원)도 괜찮다. 점심은 하지 않으며 오후 5시에 문을 연다. 못이저(514-4587) 성수대교 쪽에서 관세청4거리 쪽으로 가다 4거리 조금 못 미쳐 신한은행과 GS25편의점 골목으로 들어가면 나온다. 쇠고기가 전문이지만 ‘안살’이라 부르는 항정살을 더 많이 찾는다. 주변의 기름을 말끔히 제거하고 길쭉하고 도톰하게 썰어오는 항정살은 오도독 씹히는 질감이 그만이다.130g에 1만 3000원으로 다소 비싼 편이다. 삭은 고추로 만든 소스와 고추씨로 만든 소스 2가지가 있는데 항정살과는 맛이 잘 어울린다. 이밖에 서울 은평구 신사동 지하철 6호선 응암역 2번출구 근처의 신사돼지뽈살(354-6854)은 볼살과 가브리살을, 대전시 관저동 뽈따구이(042-1292)는 볼살 구이, 역시 대전시 중리동 가구거리 근처의 부자고기촌(042-625-2010)은 가브리살로 인기가 높다. 또 남서울CC진입로에서 용인·수지 쪽으로 1㎞쯤 가면 나오는 삼다가(031-719-6692)는 가브리살과 갈매기살, 항정살로 유명하다. 짚불구이 삼겹살로 유명한 일산신도시의 짚불삼겹살(031-901-3363)은 짚불항정살(9000원)을 시작했으며, 경남 창원시 동성아파트 옆의 황철운숯불갈비(055-282-8201)는 갈매기살과 가브리살(각 5500원)을 전문으로 한다. 전북 전주시 중화산동의 목우촌명가(063-228-9279)는 삼겹살과 갈비를 제외한 돼지고기 특수부위를 전문적으로 팔고 있어 부위별로 골고루 맛볼 수 있는 게 장점이다. ■ 이정도는 알아야돼지 ●분홍색에 결이 고운 돼지고기를 골라야 고기의 색깔이 약간 분홍색이 나면서 광택이 있는 담회색이 좋다. 지방색은 희고 굳은 것이 대체로 연하고 냄새도 없어 좋다. 결이 곱고 탄력이 있는 고기가 신선하고 어린 돼지고기라 연하고 맛있다. 반면 고기 색깔이 창백하면 퍽퍽한 맛이 나며 진한 암적색인 경우 늙었거나 오래 보관된 고기일 수 있다. ●돼지고기와 새우젓은 찰떡 궁합 돼지고기와 잘 어울리는 것은 짠맛의 새우젓. 옛날 새우젓 장터로 유명한 마포나루에는 돼지우리가 없었다고 전한다. 이유인즉 음식 찌꺼기로 들어간 새우젓을 먹은 돼지의 장기가 모두 녹아 살아남은 돼지가 없었기 때문이란다. 한영실 숙명여대 한국음식연구원장은 “단백질이 소화될 때 필요한 분해효소는 프로테아제인데 새우젓이 발효되는 동안 프로테아제를 많이 생성해 소화제 구실을 한다.”고 설명한다. 또 새우젓의 짭짜름한 맛이 식욕을 돋우기도 한다. ●된장·생강은 누린내를 잡아 된장과 생강은 돼지고기 특유의 누린내를 없애는 작용도 하지만, 고기 맛을 깊게 하면서 구수하게 살려주는 역할도 한다. 큰 냄비에 물을 넉넉히 붓고 된장을 덩어리지지 않게 골고루 풀어 잘 섞은 다음, 껍질을 벗겨 얇게 저며 썬 생강을 넣고 끓이다가 돼지고기를 넣고 무르도록 푹 삶는다. 덩어리 고기를 삶을 때 무명실로 돌돌 감아 모양을 잡아주는 것도 중요하다. 그래야 살이 단단해지고 모양이 흐트러지지 않는다. ●랩으로 싸서 냉장 보관 냉동 돼지고기는 요리하기 하루 전에 냉장고에서 해동한다. 그러면 고기의 맛있는 육즙이 흘러나오지 않아 퍼석거리지 않는다. 또 조리 직전에 고기를 자르되 고기 결과 직각이 되도록 썬다. 돼지고기는 쇠고기보다 3배나 빨리 상하는 까닭에 오래 보관하지 않는 것이 좋다. 고기 덩어리째 보관하면 1주일가량 냉장고에서 보관이 가능하다. 랩으로 싸면 냉장실에서도 3일간 보관이 가능하다.
  • “하버드大와 당뇨병 공동연구”

    난치병 환자의 줄기세포 배양에 성공한 서울대 황우석 교수팀이 미 하버드대와 당뇨병 치료법에 대한 공동개발에 나선다. 황 교수는 3일 서울 서소문동 대한항공 빌딩에서 열린 후원증서 전달식에 참석해 “미국 하버드대 줄기세포연구소 더글러스 멜턴 박사와 당뇨병 및 몇가지 질병에 관한 치료법 개발에 관한 공동연구를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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