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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사]

    ■ 감사원 ◇부이사관 승진 △특별조사본부 감찰정보팀장 김시관△행정·안보감사국 제2과장 권정주■ 국무조정실 ◇과장 전보 △총괄심의관실 기획총괄과장 權東泰△규제개혁1심의관실 규제총괄〃 金忠浩△조사심의관실 조사총괄〃 沈和石◇과장 승진△규제개혁기획단 기획총괄과장 金珍坤 ■ 교육인적자원부 △정책홍보관리실 최정식△국제교육정보화국 정병호 김경희△서울대 최광휘 노재명△제주대 윤창수△서울산업대 이상준■ 과학기술부 ◇과장급 전보 △동북아기술협력과장 김대기■ 보건복지부 △감사관 김시관△정책홍보관리실 국제협력관 직무대리 김정석△국무조정실 OECD서울센터 파견 조기원△장관정책보좌관 정홍원■ 여성가족부 ◇승진 △권익증진국 복지지원팀장 이성선◇파견△보건복지부 저출산고령사회정책본부 남점순■ 증권선물거래소 △경영지원본부 국제부장 鄭英源△유가증권시장본부 지원총괄팀장 申昌均△〃 종합시황총괄〃 姜洪起△〃 공시총괄〃 金俊憲△코스닥시장본부 지원총괄〃 文炳鎬△〃 상장총괄〃 徐南基△선물시장본부 선물시장총괄〃 崔重城△시장감시본부 시장감시지원부장 金載準△〃 시장감시〃 沈載承△감사위원회 감사실장 李喜說■ 화재보험협회 ◇부문장 △기획행정 金元鐵△위험사업 鄭義秀△기술연구 李斗炯 ◇지부장△중앙 洪淳萬△경기강원 李光烈△인천 申秉澈 ◇팀장△고객서비스 朴泰完△조사연구 孫英鎭△전기시스템 李相玹△건재환경 鄭在君△방재컨설팅 李福永△업무지원 尹禧相△품질인증 任弘淳■ 서울여대 △자연과학대학장 박원봉△산학협력단장 이기한△대외협력실장 조성원△방송국·학보사주간 정용길■ 신한은행 ◇본부장급 승진 △개인고객그룹 영업본부장 潘鍾永△IB그룹 〃 李熹承△가치혁신본부장 金瀅鎭◇부서장급 전보△점포개발부장 尹赫東△BPR추진부 팀장 李琴行 李載坤△기업금융팀장 吳暎鎭△종합금융시장부장 裵起範△IB사업〃 金祥鎭△투자금융〃 金正翼△전략투자팀장 姜鳳求△신탁부장 張聖秀△펀드사무관리실장 金寅煥△총무부장 尹勝郁△재무기획〃 李尙昊△여신심사〃 金善鶴△인사〃 李成洛△강북지점장 金亨珍△군인공제회관〃 李亨勳△노량진역〃 金和鎭△노원역〃 鄭泰佑△도곡남〃 朴玄俊△독산동〃 朴瑾濟△둔촌2동지점 개설준비위원장 李忠根△망우동지점장 鄭成太△목동해누리〃 姜大石△방배동〃 林壽△방학동〃 崔宗浩△봉천서〃 李鍾根△삼선교〃 李香馥△서소문〃 姜哲基△수락산역〃 郭峻碩△신도림동〃 李鍾國△여의도중앙〃 盧相來△일원역〃 沈弘植△잠원역〃 朴鍾愛△장지동지점 개설준비위원장 李東鎬△충무로역지점장 金相祿△한강로〃 李承權△고잔〃 盧奉善△봉담타운지점 개설준비위원장 鄭中鍾△분당구미동지점 〃 李淳雨△산곡중앙지점장 延秉壽△서현동〃 趙郁濟△용인보라지점 개설준비위원장 金洙日△의정부중앙지점장 尹鍾準△주안남〃 李允載△학익동지점 개설준비위원장 朴千鶴△화성병점지점장 崔興淵△마산〃 金永玟△강동 기업금융지점장 白用鉉△반포남 〃 鄭敦永△서초남 〃 趙大熙△스타타워 종합금융센터지점장 金楨開△여의도 종합금융센터장 李東煥△장한평 기업금융지점장 李基俊△창신동 〃 金龍浩△증평 〃 金鍾弼△런던지점장 梁熙昌△프로젝트투자팀장 吳昌洙△동국대지점 개설준비위원장 陳煐岸△서울광장지점장 張在守△역삼2동지점 개설준비위원장 承仁煥■ 신한금융지주 ◇승진 △상무 위성호△IR팀장 류승헌
  • 오래된 아파트 용산구 ‘최다’

    서울에서 오래된 아파트가 많은 지역은 용산구로 나타났다. 13일 닥터아파트가 서울시내 25개구 아파트의 노후도를 조사한 결과 용산구 아파트는 평균 18.1년으로 가장 오래됐다. 서울지역 전체 아파트의 평균 나이는 10.5년이다. 용산구에 이어 서대문구(14.8년), 중구(14.4년), 영등포구(14.3년), 종로구(12.4년), 강남구(11.5년)의 순이었다. 동별로 보면 용산구 이촌동의 아파트가 23.6년으로 가장 오래됐다. 이어 후암동(20.1년), 한강로 1가(19.5년), 보광동(18.7년) 등이 뒤를 이었다. 이촌동은 40개 단지 중 24개가 1970년대에 입주했다. 개별 아파트 중에서도 용산구 한남동 한성, 효창동 효창맨션은 1968년 입주해 서울시 전체 단지를 통틀어 가장 오래된 아파트로 꼽혔다. 이촌동의 시범, 중산, 삼각아파트 등도 1970년에 입주했다. 서대문구에서는 미근동(35년), 충정로(26.3년), 대현동(23.5년), 북아현동(22.3년) 등 순으로 건축연도가 오래됐다. 미근동에서는 1972년 입주한 서소문 아파트가 가장 오래됐다. 중구는 회현동(30년), 묵정동(25.5년), 장충동(20년) 등 순이다. 회현동의 제2시민, 삼풍, 평화 아파트는 1970년대 입주했다. 강남구에서는 압구정동에 노후 아파트가 많은 편이다. 압구정동 아파트는 평균 26.4년 됐다. 일원동 아파트는 평균 20.4년으로 나타났다. 송파구는 10.6년, 서초구는 10.3년이다. 송파구의 삼전동(18년), 오륜동(18년), 신천동(16.7년), 서초구는 반포동(16.1년), 잠원동(15.7년) 등 순으로 오래된 아파트가 많았다. 반면 강동구(9.3년), 성동구(9.2년), 강서구(8.5년), 양천구(8.1년) 등은 서울 평균 미만이다. 근래 새 아파트 입주가 많았던 동대문구는 평균 7.1년으로 건축연도가 가장 가까웠다.주현진기자 jhj@seoul.co.kr
  • 서울시 별관에 살림 차린 ‘32년 민원인’

    서울시 별관에 살림 차린 ‘32년 민원인’

    서울 중구 서울시청 서소문 별관 2동 2층 주택국 앞 복도의 소파에는 이부자리와 베개, 물병, 선풍기 등 세간살이(?)가 놓여 있다. 세간살이 옆에는 자그마한 체구의 한 할머니가 언제나 자리를 잡고 앉아 있다. 주택국장, 주거정비과장과도 웃으며 인사를 하고, 여직원들은 때로 차도 대접한다. 그는 공무원이 아닌 서울시의 최장기 민원인인 남미연(66)씨이다. 남씨는 1975년부터 서울시를 거의 매일 드나들었다. 그동안엔 낮에만 찾아오다가 2006년부터 집에도 안 가고 서소문 별관에 아예 눌러앉았다. 소리를 치거나 피켓도 들지 않아 일반 민원인이나 용역 직원처럼 보인다. 그의 얘기가 바깥에 알려지지 않은 이유다. ●“억울하고 답답… 서울시가 책임져야지요” “30년을 서울시와 싸웠는데 이제야 찾아왔어요? 필요없어요.” 그의 첫마디엔 언론에 대한 불만이 이만저만 묻어 있는 게 아니다. 하지만 그는 이내 저간의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았다. 사연은 1975년 무허가 건물에 살던 남씨의 오빠가 은평구 응암동의 건물 부지인 시유지 96㎡의 매입 계약을 하고, 계약금만 낸 채 사우디아라비아에 갔다가 사망하면서 시작된다. 당시 남씨는 오빠가 없는 동안 자신이 잔금을 냈다며 그 땅에 대한 권리를 주장했지만 이는 형제들과의 다툼이 됐다. 그러나 이후에 오빠의 친자라며 남모씨가 나타나 상속권을 주장했고, 법원은 그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시는 조카 남씨에게 명의를 넘겨줬다. 이때부터 남씨는 조카를 상대로 한 소유권이전등기 청구소송부터 서울시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청구소송까지 20년간 일곱번이나 소송을 했다. 하지만 서류를 챙기지 못한 그는 매번 졌다. 이 과정에서 쥐꼬리만 한 재산도 날렸고, 매일 담당과에 가서 매달리다 2004년엔 공무집행 방해로 벌금형을 받기도 했다. “명백한 내 땅을 서울시가 조카에게 주고도 누구도 책임지지 않아요. 당연히 서울시가 손해배상을 해야지요.” 그는 응암동 땅뿐 아니라 거주하던 은평구 진관외동 무허가 주택도 사기를 당해 입주권을 못 받았다. 행정을 모르는 그에게는 모든 게 ‘시의 잘못’이다. ●서울시 “도와주고 싶지만 근거 찾기 어려워” 서울시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억울한 점이 있어 보여 도와주려 해도 근거가 없다. 한때 18평 임대아파트 입주권을 제시했지만 거부를 당했다. 또 법원에서 시가 남씨에게 1000만원을 배상하라고 강제 조정했지만 그가 받지 않아 공탁했다. 그는 지난 30여년간의 서울시 주택국장과 주거정비과장, 팀장, 구청 담당자들의 이름을 거의 다 외운다. 어느 부서로 자리를 옮긴 것까지 안다. 공무원들은 남씨가 안 보이는 날이면 아픈 것 아닌가 걱정을 한다. 그는 당뇨와 갑상선항진증을 지병으로 갖고 있다. 지난 7월초, 남씨가 몸이 좋지 않아 일주일간 자리(?)를 비우자 직원들은 전화라도 해봐야 하는 것 아니냐며 궁금해했다. 김효수 주택국장은 “가능하면 도와줄 수 있는 방안을 찾고 있는데 시일이 너무 흘러 근거를 찾기가 쉽지 않다.”면서 “그래도 다시 한번 도울 방안을 찾는 중이다.”고 말했다. ●큰딸도 직장 휴직하고 동참 요즘 남씨의 1인 농성장에는 큰딸 이현정(45)씨가 동반자로 앉았다.‘밤에 무섭다.’는 남씨의 말에 직장을 휴직하고 함께 동참한 것이다. 남씨는 “처음엔 자식들도 나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더니 다 커서 내용을 알아보고 이제는 이해를 한다.”며 지난 세월을 되씹듯 말했다. 문제의 땅은 상속받은 오빠의 아들이 지난 2000년에 이미 팔아버렸다. 김성곤기자 sunggone@seoul.co.kr
  • [인사]

    ■ 법무부 ◇전보 및 파견 △법무부 국제형사과 검사 곽규택 △서울고검 검사 이용민 △부산고검 검사 홍종호 △대구고검 검사 손순혁 △서울중앙지검 검사 오원근 배창대 조석영 △서울동부지검 검사 김준성 △서울남부지검 부부장검사 이상규 △서울서부지검 부부장검사 유일석 △의정부지검 검사 박영수 △고양지청 검사 박광섭 △인천지검 형사2부장 박진영 부부장검사 이원곤 △부천지청 검사 이동재 △수원지검 검사 정종욱 △성남지청 부장검사 정종욱 이임성 △평택지청 검사 박재휘 △춘천지검 검사 김대룡 △서산지청 검사 김현진 △대구지검 형사2부장 정성윤 부부장검사 최재호 △부산지검 부부장검사 이형택 검사 이기선 정미경 김수현 △광주지검 검사 차승우 △공정거래위원회 파견 검사 노상길 △여성가족부 파견 검사 방정숙◇신규 임용 △의정부지검 검사 유광렬 △고양지청 검사 배석기 김성동 △인천지검 검사 진정길 유경필 △부천지청 검사 김종철 △수원지검 검사 정영섭 김효섭 임선화 △성남지청 검사 윤대영 △안산지청 검사 황성연 임승철 △대전지검 검사 김정훈 이동원 △대구지검 서부지청 검사 이영준 △김천지청 검사 권방문 △부산지검 검사 조찬만 박사의 김기윤 △부산지검 동부지청 검사 이소연◇의원면직 △하인수(인천지검 형사2부장) △안혁환(성남지청 부장) △최영운(서울중앙지검 검사) △이현정(평택지청 검사) △조수연(대전지검 검사) △신승기(부산지검 검사)■ 예금보험공사 ◇1급 승진 △리스크감시2부 부장 李康綠 △상시감시1팀 팀장 崔孝洵 △인력개발부 부장 鄭旺鎬 △비서실 실장 金炫哲 ◇2급 승진 △상시감시5팀 팀장 鄭贊衡 △청산지원부 팀장 全相五 ◇3급 승진 △영남지사 徐龍燮 △기획조정부 申斗湜 ◇4급 승진 △적기정리부 姜始亨 △혁신기획실 洪承徹 △기금운용실 李陳炯 △혁신기획실 康俸準 △금융분석부 金廷錫 △보험정책실 金孝根 ◇팀장 전보 △정보시스템실 팀장 柳大日 △경영지원실 팀장 金錫泰 △리스크감시2부 팀장 朴炳翰 △홍보시스템실 팀장 韓昌南 △조사부 팀장 鄭東鎬 △감사실 팀장 李秉昊 △적기정리부 팀장 金 勳 △청산지원부 팀장 李會于 △국제업무실 팀장 鄭燦平 △인력개발부(학술연수) 權彛勇 △인력개발부(학술연수) 朴昞基 ■ 서강대 △학생문화처장 우찬제■ 서울보증보험 ◇승진 △순천지점장 정병규△전략영업부장 임대기△마케팅실 보상지원팀장 이인표◇전보△신용채권부장 허정범△상업신용〃 전병선△재무관리〃 두준호△경영전략실장 신보선△자산운용부장 박철△감사실장 김규진△준법감시〃 고일석△총무부장 최찬규△심사〃 서종석△소비자신용〃 조국제△상품개발〃 이득영◇지점장△인천 백경직△삼성 고정곤△서초 김선철△신사동 조충제△수원 김원섭△서대문 최중호△부산 김봉래△안산 정병규△진주 유해진△울산 한종호△포항 조용옥△부평 송헌수△동래 권석재△부전동 박봉호△여수 김동현△대구 윤규동△ 성남 손광수△강릉 김종오△김해 조철호△순천 임재근△제주 문경철△춘천 김용태△군산 이용선△창원 하진호◇보상서비스지원단장△강북 배영규△강남 이영옥■ 서울증권 ◇임원 △PB본부장(상무보) 李聖照 ◇팀장 △SSP추진팀 李誠埈 △영업추진팀 金起演■ 외환은행 ◇지점장 △강남구청역지점 김창섭 △강남역지점 김선우 △강서지점 권원철 △광양지점 정채주 △구로지점 김형구 △남가좌동지점 정명상 △동울산지점 유영규 △둔촌동지점 서길원 △마산중앙지점 장성화 △마포남지점 한승욱 △만촌역지점 신용락 △반월공단지점 장시원 △봉천동지점 박선배 △분당정자지점 오태균 △사상지점 황승국 △삼산지점 이성원 △삼성노블카운티WM센터지점 권혁채 △삼정동지점 전우용 △서린지점 박일동 △서초남지점 진성오 △성남지점 박윤재 △성산동지점 정기호 △송탄지점 김동현 △신림역지점 김순천 △신촌지점 김원태 △안동지점 양재일 △역삼역지점 김학성 △연남동지점 박인수 △연산동지점 박정식 △연희동지점 송병덕 △영통지점 홍순한 △울산지점 강규찬 △의정부지점 오광준 △이태원지점 이종익 △인천지점 전상기 △일원역지점 여운선 △주엽역지점 여규업 △죽전지점 박찬일 △청주북지점 이동헌 △충무로지점 박용철 △탄현지점 윤창룡 △태평로지점 정경선 △파주지점 류병준 △평택지점 이동규 △하남공단지점 박정규 △학동역지점 김유택 ◇개인금융부문장 △가락지점 김회문 △광화문지점 김창선 △군자동지점 이정재 △논현동지점 김판균 △둔산지점 신동렬 △방배동지점 최용식 △소공동지점 윤옥순 △용인지점 설동기 △울산지점 최영식 △잠실역지점 정찬성 △태평로지점 주영근 ◇기업금융부문장 △논현남지점 김경수 △서소문지점 정종효 △선수촌지점 신영락 △스타타워지점 전병세 △영업부 이종인 ◇본점 부서장△개인마케팅부 오재환 △기업전략영업본부 손훈 △뱅킹시스템개발부 송영훈 △신용기획부 김용구 △여신심사부 김용완 △인사운용부 윤종웅 △증권수탁부 이인석 △투자금융부 조인균 △e-Business사업부 유선무 △IT업무지원부 김경수 ◇본점 팀장 △감사부 유영철 △기업마케팅부 유운기 △신용기획부 강동훈 △신용기획부 김청운 △신용기획부 최석근 △여신관리부소속 관리역 김우겸 △여신관리부 박철 △여신관리부 정일홍 △여신심사부 이태균 △여신심사부 조시형 △여신심사부 한철수 △여신정리부 이승민 △여신정리부 최형삼 △외환업무부 강태신 △전략여신부 박종현 △정보개발팀 이주화 △카드신용관리팀 김성은 △카드심사팀 지정화 △카드채권관리팀 조태복 △카드특수관리팀 채충기 △투자금융부 한상한 △e-Business사업부 홍진균 △IT운영부 한주희 ◇개설준비위원장 △교하지점 장치규 △동탄남지점 정우진 △중동신도시지점 안상동 △창원대방동지점 신기석 △한티역지점 김일수
  •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31) 양반의 신문화운동에서 민중종교로 번진 천주교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31) 양반의 신문화운동에서 민중종교로 번진 천주교

    1791년 전라도 진산에서 윤지충과 권상연이 모친상을 당해 제사를 지내지 않고 신주를 불사르자, 천주교 신자를 어떻게 처리하느냐 하는 문제가 불거졌다. 양반층의 천주교 신자가 대부분 남인이었으므로, 탕평책을 내세웠던 정조는 영의정 채제공의 입지를 약화시키지 않으려고 그들을 교화시켜 유학에 전념하도록 하였다. 이에 따라 양반 신자들이 많이 천주교 신앙을 버렸으므로, 자연히 중인층의 비중이 높아졌다. 조광 교수는 ‘조선후기 천주교 지도층의 특성’이라는 논문에서 진산사건(1791) 이후 신유교난(1801)까지의 천주교 지도층을 38명으로 선정하고, 이 가운데 중인이 21명으로 55%라고 분석하였다. 그러나 신분미상자 3명을 제외하고 통계를 내면 60%로 높아진다. 중인 지도층 시대가 열린 것이다. ●천주신자 신주를 불사르다 초기에 성직자가 없었던 조선 천주교에서는 중요한 교리 문제가 생길 때마다 북경에 사람을 보내 유권 해석을 구하였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인물이 나무장사를 하던 윤유일(尹有一)인데,1789년에는 가성직제도(假聖職制度) 자문,1790년과 1792년에는 성직자 파견 요청을 위해 북경에 다녀왔다. 그는 1790년에 돌아와 “천주교에서는 조상 제사를 금한다.”는 사실을 신자들에게 알림으로써 큰 동요를 일으켰다. 진산군에 살던 선비 윤지충(尹持忠)은 고산 윤선도의 6세손으로 다산 정약용의 외사촌인데,25세에 진사가 되었다. 이듬해(1784) 겨울 서울에 올라와 역관 김범우의 집에서 처음으로 천주교 서적을 빌려보고,3년 후 정약용 형제들에게 교리를 배워 입교하였다.1791년 여름에 어머니 권씨가 세상을 떠나자, 천주교 교리를 지키기 위해 제사를 지내지 않고 신주를 불살랐다. 외사촌 권상연도 그와 행동을 같이 하였다. 친척과 유림들이 그 사실을 알고 관가에 고발하였다. 진산군수 신사원이 회유도 하고 위협도 하였으나, 그들은 교리가 타당하다고 주장하며 신앙을 고수하였다. 전주감영에서 혹독한 고문으로 배교를 강요했지만, 끝까지 굽히지 않자 12월8일에 참수하였다. ●정조 “미혹된 중인을 교화하라” 이 와중에 수많은 신자들이 체포되었는데, 정조는 탕평 정국을 어지럽히지 않으려고 교화정책을 썼다. 형조에서 11월11일에 “사학(邪學) 죄인 정의혁·정인혁·최인길·최인성·손경윤·현계온·허속·김계환·김덕유·최필제·최인철 등 11명을 혹은 형조의 뜰에서 깨우쳐 감화시키기도 하고, 혹은 그 집안 사람들로 하여금 간곡히 깨우쳐 회개하도록 했습니다.”라고 아뢰었다. 이 가운데 신분이 알려진 최인길과 최인철은 역관, 손경윤과 현계온·최필제는 의원이다. 이 말을 들은 정조는 이렇게 전교하였다. “중인 가운데 잘못 미혹된 자들에 대해 반드시 그 소굴을 소탕하려는 것은 한편으로 그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자는 것이요, 한편으로는 백성을 교화시켜 좋은 풍속을 이루려는 것이다. 중인 무리들은 양반도 아니고 상인(常人)도 아닌 중간에 있기 때문에 가장 교화하기 어렵다. 그대들은 이 뜻을 알아서 각별히 조사하여 혹시 한 명이라도 요행으로 누락시키거나, 한 명이라도 잘못 걸려드는 일이 없게 하라. 모두 새사람이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정조는 중인들의 불만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그들이 천주교에 심취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으며, 그것은 그들의 잘못이라기보다 사회구조인 문제라고 파악하였다. 그래서 탄압하기보다는 교화시켜 새사람을 만들려 했던 것이다. ●성경 언문번역본 보급… 평민신자 확보 최필공(崔必恭)은 의원인데, 경거사괴(京居邪魁), 즉 서울에 사는 사학 괴수로 지목되었다. 김범우에게 교리를 배우고 1790년에 입교한 그는 큰길에서 두려워하지 않고 군중을 향해 노방전도를 하였다. 그래서 ‘정조실록’ 15년(1791) 10월23일조에 “예전에는 나라의 금법을 두려워해 어두운 골방에서 모이던 자들이 지금은 대낮에 마음대로 행하고 공공연히 전파한다. 예전에는 깨알같이 작은 글씨로 써서 겹겹으로 싸 상자 속에 감추어 두었는데, 지금은 제멋대로 간행하여 경향에 반포한다.”고 개탄하는 홍낙안의 편지가 실릴 정도였다. 그가 열렬한 전도활동으로 천주교 지도층이 되자, 조정에서 그를 회유하였다. 작은아버지와 동생이 간청하자 신앙을 버리고 종9품 심약(審藥) 벼슬을 받았으며, 아내를 얻어 장가들고, 집도 구했다. 결과적으로 모범적인 배교자가 되었기에 정조는 “최필공같이 완악한 자도 교화되었다.”는 말을 자주 했으며,“최필공의 예에 따라 도신(道臣)이 직접 가르치고 경계하여 개과천선한 효과가 있으면 방면하라.”고 지방관들을 타일렀다. 그러나 다시 교회에 들어가 열성적으로 신앙생활을 했으므로, 순조가 즉위하자 1801년에 정약종·이승훈 등의 지도자 5명과 함께 참수되어 순교하였다. 초기 천주교 서적은 한문으로 되어 있어 지식층만 읽었다. 양반으로는 남인 학자들 사이에 신앙과 관계없이 널리 읽혔으며, 중인들도 북경을 드나들며 수입해 읽었다.‘승정원일기’ 정조 9년(1785) 4월9일조에 “서양 천주의 책이 처음 역관 무리로부터 흘러들어오기 시작한 지 여러 해 되었다”는 유하원의 상소가 실렸으니, 이승훈이 북경에서 영세를 받고 돌아온 1784년 이전에도 역관들이 북경에서 천주교 서적을 수입해왔음을 알 수 있다. 역관 최창현(崔昌顯)은 이승훈이나 이벽 같은 남인 학자들과 교유하며 천주교 서적을 얻어보다 1784년 겨울에 입교했는데, 성격이 온순하면서도 활동적이어서 총회장으로 추대되었다. 진산사건 이후에 신자층이 평민으로 확산되자, 그는 평민 신도들에게 교리서를 읽히기 위해 ‘성경직해(聖經直解)’를 언문으로 번역해 보급하였다. 그가 도피생활중에 병이 들어 집으로 돌아오자 배교자가 밀고하여 체포되었다. 포청에서는 혹독한 고문에 못이겨 배교했지만, 국청에 넘겨지자 배교를 취소했다. 호교문(護敎文)까지 지어 적극적으로 신앙을 지켰으므로,4월8일에 정약종과 함께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되어 순교하였다. 1801년 신유박해 때에 “책판(冊板)을 찾으러 간다.”는 신도의 진술이 있었고, 사학도로 적발된 사람 가운데 인쇄나 출판작업에 종사하는 각수(刻手)가 있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목판본으로 인쇄한 교리서들이 중인과 평민 신자층에게 널리 보급되었음을 알 수 있다. 천주교 교리서와 성경 번역을 통해, 암클로 천대받던 언문이 새로워졌다. ●중인, 주문모 신부 입국 돕다 순조가 즉위하면서 천주교 탄압이 시작되자, 몇 년 동안 신자들 사이에 숨어 지내던 중국인 신부 주문모(周文謨)가 1801년 3월15일에 자수하였다. 많은 신자들이 박해를 당해 숨어 있을 곳도 마땅치 않을 뿐 아니라, 혼자 살아 남기도 미안했기 때문이다. 영부사 이병모는 그가 조선에 들어온 과정을 정조에게 이렇게 아뢰었다. “어린 시절부터 서양 학문에 종사하다가 북경 천주관(天主館)에 전입했다고 합니다. 이승훈이 사서(邪書)를 구입해 온 뒤에 정약종의 무리가 사사롭게 양인(洋人)과 왕래하여 교주(敎主) 얻기를 요구했는데, 천주관에 와 있는 양인은 정원이 있어서 한 사람이라도 다른 곳에 가게 되면 저들이 알게 되므로, 수업하던 중국 사람을 우리나라에 내보낸 것입니다.” 이튿날 주문모 신부를 신문했는데, 그는 아직도 조선말이 서툴러 한문으로 필담하였다. “갑인년(1794) 봄에 조선인 지황(池璜)을 만나 동지사(冬至使) 행차 때에 변문(邊門)이 통하므로 책문(柵門)으로 나왔습니다.(줄임) 처음에 만났던 지황은 을묘년(1795)에 포도청에서 죽었습니다. 저는 의주에서 서울까지 학습하기를 원하는 여러 사람의 집을 옮겨다니며 지냈습니다.” 그가 영세를 주었다고 자백한 사람 가운데 은언군의 부인 송씨와 며느리 신씨의 이름이 나와, 주문모 신부뿐만 아니라 그들에게도 죽음을 내렸다. 주문모 신부는 6년 전에 이미 잡힐 뻔했는데, 신부는 달아나고 악사(樂師) 지황, 역관 최인길, 나무장사 윤유일만 잡혀서 매맞아 죽었다. 노론에서는 남인 정권이 자파 천주교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안내자 3명을 때려죽여 입을 막았다고 비난했다. 윤유일은 몰락한 양반이지만, 지황과 최인길은 중인이었다. 초기 천주교에서 중인과 평민의 비중이 커진 사실에 대해 조광 교수는 “남인 학자들의 신문화운동에서 민중종교운동적 차원으로 전환되었다.”고 분석하였다. 이벽이 1780년대에 한문으로 썼다는 ‘성교요지’에서 신분의 평등을 주장했지만, 정약종이 1790년대에 언문으로 쓴 ‘쥬교요지’에서는 더 이상 신분평등을 주장할 필요가 없어졌다. 허경진 연세대 국문과 교수
  • [병자호란 다시 읽기](29)이괄(李适)의 난(亂)이 일어나다Ⅲ

    [병자호란 다시 읽기](29)이괄(李适)의 난(亂)이 일어나다Ⅲ

    1624년 2월10일 이괄이 서울로 입성한 직후, 도원수 장만은 관군을 이끌고 서울을 향해 달렸다. 장만은 초조했다. 반란군에게 도성을 내주고 국왕으로 하여금 파천 길에 오르게 만든 일차적 책임이 자신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장만은 파주 혜음령(惠陰嶺)에 이르러 부원수 이수일(李守一)과 남이흥, 정충신 등 장수들을 불러모아 작전 회의를 열었다. 장만은 두 가지 계책을 제시했다. 서울로 달려가 결전을 벌이든가, 적의 보급로를 차단하고 남쪽에서 원군이 오기를 기다려 세력을 키운 뒤 공격하자는 안이었다. 그는 사실 지구전을 생각하고 있었다. ●관군 승기 잡자 관망하던 민심 돌아서 정충신은 지구전에 반대했다. 그는 즉시 서울로 달려가 안현(鞍峴)을 장악하자고 주장했다. 높은 고개를 차지하여 진을 친다면 도성을 내리누르게 될 것이고, 관망하고 있는 도성 백성들도 관군 편으로 붙을 것이라고 했다. 또 반란군이 공격해와도 지형의 이점 때문에 승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장만은 정충신의 계책을 받아들였다. 관군은 안현을 향해 내달렸다. 정충신이 제일 먼저 연서역(延曙驛, 지금의 은평구 역촌동)을 통과하여 안현에 도착했다. 그는 정상으로 달려 올라가 봉수대를 지키는 병사를 생포했다. 정충신은 평상시의 봉화(烽火)를 올리도록 하여 이괄의 진영에서 안현이 탈취된 사실을 눈치채지 못하게 했다. 이윽고 관군의 병력이 속속 안현으로 집결했다. 때마침 동풍이 크게 불어 이괄 진영은 관군이 안현으로 모여드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이튿날 아침에야 이괄은 관군이 안현을 접수한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러나 그는 느긋했다. 이미 승승장구해온 터라 관군을 가볍게 보는 마음이 생겼던 것이다. 이괄은 항왜들을 이끌고 연서역으로 나아가 장만을 생포하려는 계책을 세웠다. 한명련(韓明璉)은 도성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안현을 공격하여 승리를 거둠으로써 민심을 얻어내자고 건의했다. 이괄의 반란군은 부대를 둘로 나눠 안현을 향해 진격했다. 한명련이 항왜 수십 명과 정예 포수를 이끌고 선봉에 서고, 이괄은 중군이 되어 싸움을 독려했다. 아침 6시쯤부터 격전이 벌어졌다. 도성의 백성들은 성이나 높은 곳에 올라가 두 진영의 싸움을 지켜보았다. 전황은 밑에서 위쪽으로 공격하는 반란군에게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화살과 총탄이 제대로 맞지 않았다. 더욱이 장만 등은 도성을 내준 것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도 분전했다. 오전 11시쯤까지 이어지던 싸움의 중간에 바람의 방향마저 바뀌었다. 반란군 쪽으로 서북풍이 불었다. 관군은 승기를 잡았다. 반란군 진영에서 사상자가 속출했다. 많은 수가 안현을 향해 기어오르다가 벼랑에서 떨어져 죽었다. 한명련도 화살에 맞은 뒤 퇴각했다. 전투 장면을 구경하던 도성 백성들은 반란군이 수세에 몰리자 돈의문(敦義門)과 서소문(西小門)을 닫아 버렸다. 관망하던 민심의 향배가 정해진 것이다. 퇴로가 막힌 반란군은 숭례문 쪽으로 향하거나 마포 서강(西江) 방면으로 도주했다. 여염으로 숨어 들어간 자들도 있었다. ●기익헌 등이 반란군 지휘부 9명 죽여 2월11일 밤 아홉시 무렵, 이괄과 한명련은 패잔병을 이끌고 수구문(水口門)을 통해 서울을 탈출했다. 다음날 새벽 삼전포(三田浦)를 경유하여 광주(廣州)까지 달아났다. 이괄은 광주목사 임회(林檜)를 살해하고 경안교(慶安橋)라는 곳에서 병력을 수습하려 했다. 12일 아침, 정충신 등이 병력을 이끌고 추격해 왔다. 안현에서 패한 이후 반란군은 이미 기세가 꺾였다. 얼마 되지 않는 관군의 공격에 변변하게 저항도 해보지 못하고 무너졌다. 이괄은 고작 60여명 정도의 기병만 거느리고 다시 이천(利川) 쪽으로 달아났다. 이괄을 따라가던 흥안군은 광주 소천(昭川) 쪽으로 도주했다. 관군 또한 지쳐서 추격을 멈추고 있을 때, 이괄의 진영에서 포수 한 사람이 도망쳐 왔다. 그는 반란군 내부에 이괄과 한명련의 목을 베려고 시도하는 자가 있다고 알려 주었다. 막다른 골목에 몰리자 자중지란이 일어났던 것이다. 이튿날 새벽 정충신이 관군을 이끌고 이천 묵방리(墨坊里)에 당도했을 때 상황은 이미 종료되었다. 반란군 가운데 기익헌(奇益獻) 등이 이미 이괄과 한명련 등 지휘부 아홉 명을 살해한 상태였다. 한명련의 아들과 조카만 간신히 달아나고 반란군은 궤멸되었다. 흥안군은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여염으로 숨어들다가 체포되었다. 그는 서울로 압송되어 돈화문 앞에서 살해되었다. 한남원수(漢南元帥) 심기원(沈器遠)과 훈련대장 신경진(申景 )이 ‘흥안군이 선조의 아들이고 인조의 숙부지만 참역(僭逆)에 가담했으니 아무나 죽일 수 있다.’는 명분을 내세워 죽였던 것이다. 흥안군은 이괄에 의해 추대된 지 불과 4일 만에 몰락하고 말았다. 인조 일행은 안현 전투에서 승리했다는 소식을 천안에서 들었다. 하지만 13일 새벽, 도주하던 적이 달려들 것을 우려하여 공주로 들어갔다.2월15일, 참수된 이괄의 머리가 공주에 도착했다. 인조와 신료들은 군용(軍容)을 벌여놓고 이괄의 수급(首級)을 받는 의식을 거행했다. 반정을 일으켜 어렵사리 잡은 권력을 1년이 채 못 되어 내놓을 뻔하다가 다시 잡는 순간이었다. ●난의 후유증 인조는 2월18일 공주를 출발하여 22일에 서울로 귀환했다. 난민들이 불을 질러 창경궁이 불탔기 때문에 인조는 경덕궁(慶德宮)으로 들어갔다. 도성은 엉망이었다.“모든 재물이 바닥나서 열흘 먹을 저축도 없는 상황”이라는 보고가 올라왔다. 민심이 흉흉한 것이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였다. 며칠 사이에 궁궐의 주인이 바뀌었다가, 다시 바뀌면서 처참한 살육전이 벌어졌다. 이미 파천하기 직전인 2월7일, 인조 정권은 옥에 갇혀 있던 정치범들을 즉결 처분했다. 광해군때 정승을 지냈던 기자헌(奇自獻)을 비롯하여 역모 가담 혐의를 받았던 37명의 목을 베었다. 이들은 의심은 받았지만, 혐의를 부인하고 있었던 데다 심문도 채 마치지 않은 상태였다. 이원익이 “기자헌은 반역에 가담한 죄상이 없는 데다 폐모론에도 반대했다.”고 애써 변호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정권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심이 반정공신들의 여유를 빼앗아 갔다. 격변의 와중에서 무고하게 목숨을 잃은 백성들도 적지 않았다. 안현 싸움에서 패한 이괄군이 도주하기 전에 80여 명을 학살했고, 관군이 서울을 접수하면서 다시 처참한 학살이 빚어졌다. 좌의정 윤방(尹昉)은 인조에게 ‘적에게 붙었던 백성 가운데 자신이 처단한 사람만 200명’이라고 보고했다. 백성들 가운데는 무고한 사람을 살해하여 ‘반란군의 머리’라면서 수급을 가져다 바치는 자들이 있었다. 비록 잠깐이었지만 이괄이 도성을 점령했던 동안 서울의 민심은 인조정권에 몹시 적대적이었다. 백성들은 이괄군을 맞이하고, 창경궁에 불을 지르고, 내탕(內帑)을 훔치고, 반정공신들의 저택을 점거했다. 인조반정 성공 직후 자살한 박승종(朴承宗) 집안의 노비들은, 대가가 서울을 나가자마자 반정공신 김류의 집을 접수했다. 박승종의 며느리는, 역시 공신 가운데 실세였던 이귀의 집에 들이닥쳐 문을 봉해버렸다. 반정 직후 김류가 박승종의 저택을, 이귀가 박승종의 아들 박자흥(朴自興)의 저택을 차지한 데 대한 보복이었다. 인조가 환도한 뒤 또 다른 보복이 자행되었다. 서울을 비운 사이에 피해를 당한 관인이나 사대부들은 환도하자마자 의심나는 대상자들을 포도청에 고발했다. 그 때문에 ‘포도청의 감옥이 가득 찼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다. 아예 직접 대상자들의 집으로 쳐들어가 재물을 약탈하는 자들도 있었다. 이괄의 난은 진압되었지만 인조정권은 여러 면에서 한계를 드러냈다. 논공행상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이괄로 하여금 거병하게 만든 것 자체가 심각한 문제였다. 후금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는 와중에 내란을 치르면서 조선의 군사적 역량은 심하게 훼손되고 말았다. 인조정권은 숨 돌릴 겨를도 없이 민심을 수습하고 국방력을 재건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
  • 서울시직협, 오세훈 시장 고발

    서울시 공무원직장협의회(직협)는 18일 “오세훈 서울시장이 직협의 정당한 활동을 방해했다.”면서 “직권남용·업무방해 등 혐의로 오 시장을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하고 중앙지법에 업무방해금지 가처분신청을 냈다.”고 밝혔다.직협 관계자는 “오 시장이 법리 해석에 오류가 있는 변호사의 일방적 자문을 근거로 직협의 대표자 변경 등록을 거부하고 서소문 별관에 있는 직협 사무실도 폐쇄해 직협의 정당한 활동을 방해했다.”고 주장했다. 직협은 지난 4월9일 직협 대표 선거를 실시했으나, 서울시가 “선거 과정에서 정족수를 채우지 못했다.”면서 선거결과를 인정하지 않자 6월5일 재선거를 실시해 김민호(주택기획과 7급)씨를 대표로 선출했다. 그러나 서울시는 “직협 재선거를 위한 임시총회 소집공고를 전임 직협 대표가 해야 하나 또 절차를 지키지 않아 선거 결과는 원인무효”라면서 직협의 대표자 변경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
  • [Metro] 다산플라자 BI 제작

    서울시는 2일 통합민원처리 시스템인 ‘다산플라자’의 BI(브랜드 아이덴티티)를 내놓았다.BI는 다산 정약용 선생의 위민(爲民), 청렴(淸廉), 창의(創意)를 각각 황색과 청색, 녹색으로 표현했다. 황색은 시민고객을 행정의 중심에 두겠다는 의지이며, 청색은 다산정신의 청렴성을, 녹색은 창의적인 노력을 각각 담고 있다. 다산플라자는 서소문 별관에 마련된 민원상담 공간에서 모든 민원을 방문·전화(국번없이 120번)·인터넷으로 신속하게 일괄처리하는 시스템이다.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
  • 고가차도 디자인을 입는다

    고가차도 디자인을 입는다

    도시의 흉물로 변한 서울 시내 고가차도가 ‘스트리트 퍼니처’(집안의 가구처럼 거리를 장식하는 미술품)로 변신한다. 서울시는 20일 고가차도에 스트리트 퍼니처 디자인 기법을 도입해 새 단장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우선 올해부터 2010년까지 서소문·아현·회현·서대문·문래·약수·화양·강남고속버스터미널·북부간선도로·내부순환로 등 고가차도 10곳을 모두 393억여원을 들여 리모델링하기로 했다. 도심에 위치해 시가지를 통과하면서 경관을 훼손하거나 주변이 재개발되면서 조화를 잃은 곳을 우선 선정기준으로 삼았다. 특히 서소문 고가차도를 시범사업으로 선정, 내년 4월까지 새 단장(조감도)한다. 서소문 고가차도는 최근 실시한 설계 현상공모에서 최우수작으로 당선된 작품인 ‘타임 코리도(시간의 회랑)’에 따라 리모델링된다. 전체 18개의 교각이 컬러 외장재와 현란한 조명시설로 단장되고 이 중 주요교각 2개는 서울의 역사와 발전의 시간을 상징하는 모래시계 형상의 조형물로 거듭난다. 차도 아래쪽에는 바닥분수와 조명등이 도입된다. 기존 구조물에 덧붙여질 외장재로 깨끗하면서도 관리가 쉬운 알루미늄 및 컬러 강판을 사용하기로 했다. 시설물의 관리에 지장이 없도록 외장재 내부와 주요 부재에는 모니터를 통해 관찰할 수 있는 카메라와 자동화 로봇 등을 설치할 예정이다. 서울시는 아울러 시내 전체 고가차도 104개 중 우선 리모델링되는 10개와 철거 민원이 있는 혜화고가차도 등 6개를 제외한 나머지 88개도 미관을 저해하는 정도, 철거 민원, 재정 여건 등을 고려해 2010년부터 연차적으로 리모델링을 추진할 계획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고가차도를 스트리트 퍼니처로 새 단장하면 서울의 브랜드 가치와 관광 경쟁력이 강화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
  • “옥상을 푸르게 푸르게”

    “옥상을 푸르게 푸르게”

    올해안으로 축구장 9개 넓이의 녹지가 서울시내 건물 옥상위에 만들어진다. 14일 서울시와 녹색서울시민위원회에 따르면 건물 옥상 55곳에 모두 2만평에 이르는 ‘녹색지붕’을 연내 조성할 계획이기 때문이다. 지난 2000년 이후 7년간 옥상녹화사업으로 얻은 2만 1326㎡(약 6451평)의 3배 규모의 옥상정원이 새로 생기는 셈이다. 축구장의 일반적 규격이 약 7140㎡(가로 105m×세로 68m)인 것을 고려하면 9.2개의 축구장이 들어갈 공간이다. 서울시는 이날 일단 옥상녹화 사업의 대상지 55곳(3만 2172㎡·9732평)을 확정했다. 여기에 추가경정예산 27억원이 서울시의회의 승인을 받으면 모두 2만평에 이르는 녹지공간을 조성할 예정이다. 가장 넓은 녹지공간이 새로 생기는 곳은 서초구 서울고속버스터미널 옥상.1만 3306㎡, 약 4000평이 삭막한 시멘트바닥에서 푸른 녹지로 변한다. 이어 금천구 가산동 대륭테크노타운, 양천구 목1동 CBS방송국을 비롯해 용산구 숙명여자대학교 순헌관·광장동 장로회 신학대 등 민간건축물 36곳(2만 6238㎡)이 사업대상이다. 종로구민회관·강북구민회관·남대문경찰서·송파구 연화청소년독서실·서초구 잠원동사무소 등 19곳(5934㎡)에도 새로운 녹지가 생긴다. 시는 지난 3월 옥상녹화 사업 신청을 받은 결과 모두 128개 건물이 신청을 해왔으며 이 중 공공성과 접근성에 대한 구조안전진단을 실시해 대상지를 선정했다고 밝혔다. 하반기부터는 적합한 장소를 먼저 발굴한 뒤 건물주 등을 설득하는 사업방식도 함께 진행할 계획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서울의 땅 값이 이미 천정부지로 뛴 상황에서 도심에 녹지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옥상녹화는 필수적”이라면서 “2010년까지 총 10만평 규모의 옥상녹지를 조성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서울시는 옥상녹화 사업의 활성화를 위해 8월 말까지 서울시청 서소문별관 옥상 ‘초록 뜰’에서 매주 목요일에 녹지사업 설명회와 체험행사를 개최하기로 했다. 참가신청은 서울시 조경과 인터넷 홈페이지(green.seoul.go.kr)에서 하면 된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Zoom in 서울] 서울 도심 확 바뀐다

    [Zoom in 서울] 서울 도심 확 바뀐다

    서울시가 짓고 있는 새 청사와 인근 지하상가 등을 잇는 전방위 지하보행 네트워크가 단계적으로 구축된다. 여기엔 소공로 인근 지하상가가 포함되며, 시청 서소문별관과 청계천쪽의 지하상가 등을 포함하는 방안도 검토될 전망이다. 시청을 중심으로 한 도심상권 활성화와 시민의 행정서비스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도심 재창조 프로젝트 마스터플랜’의 하나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14일 “도심 재창조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해 서울을 역사와 자연이 어우러진 명품도시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시는 도심을 남북 4대 축으로 나눠 재정비한다. 도심 1축은 경복궁·광화문∼세종로∼북창동∼남대문시장∼서울역∼남산 구간으로, 국가 상징가로로 조성한다. 서울역 광장은 주변 민간건물 12동을 철거해 광장면적을 2000㎡(606평) 확장한다. 서울역 앞 고가도로는 2009년 철거에 들어가 2011년 작품성을 가미한 도시명물로 새로 건설한다. 북촌·인사동·삼청동∼관철동∼청계천∼삼각동∼명동을 잇는 도심 2축은 역사·전통과 첨단공간으로 조성한다. 창경궁∼종묘∼세운상가∼퇴계로∼남산을 잇는 도심 3축은 녹지로 연결된다. 도심 4축은 대학로∼흥인지문(동대문)∼청계천∼동대문운동장∼장충단길∼남산 구간은 패션·디자인 산업의 메카로 육성된다. 동대문 주변에는 1800여평 규모의 녹지광장이 조성된다. 이와 관련, 오는 2010년 6월 완공 예정인 서울시 신 청사와 소공로 등 주변 지하공간을 잇는 지하 네트워크를 추진한다. 시청사∼소공로 상가 구간 140m는 2010년 연결된다. 또 시청사에서 남대문지하상가∼소공동 지하상가, 을지로 입구∼시청으로 이어지는 2.2㎞를 잇는 방안도 장기 과제로 추진한다. 시는 오는 9월 용역을 발주할 계획이다. 서울시는 도심재창조 사업에 모두 6243억원가량이 들어갈 것으로 전망했다. 김성곤기자 sunggone@seoul.co.kr
  • [김성호 전문기자의 종교건축 이야기] (28) 절두산 천주교 순교 성지

    [김성호 전문기자의 종교건축 이야기] (28) 절두산 천주교 순교 성지

    1만명에서 많게는 2만명의 순교자를 냈다는 이 땅의 천주교 역사는 그야말로 처절한 박해의 점철이다.‘박해의 역사’란 말 그대로 곳곳에는 목숨을 던져 신앙을 지켜낸 천주교 선구들의 외침을 소리없이 전하는 흔적들이 산재해 있다.‘휘광이´(천주교에서 망나니를 부르는 말)의 칼날 아래 피를 뿌리며 스러져간 숱한 순교자들 가운데 지금까지 성인 품에 오른 이는 103위이다. 지난 1984년 시성(諡聖)되어 성인의 반열에 오른 이들 103위의 영혼은 뒤늦게나마 위로받은 채 빛을 발했다. 하지만 아직도 그 존재조차 인정받지 못한 순교자들은 부지기수다. 전국의 천주교 순교터 가운데 절두산 성지(서울 마포구 합정동 96의1·사적 399호)는 이름 나지 않은 무명의 초기 신자들이 가장 많이 피를 흘린 성지이다. ‘절두산’(切頭山). 이름만 들어도 소름이 돋는 순교 터이다. 수천명(3000∼7000명)이 이곳에서 목숨을 잃은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정작 신원이 파악된 순교자는 고작 29명에 불과하다. 그나마 24명만 이름과 행적이 확인됐고 나머지 5명은 이름만 겨우 알 수 있을 뿐이다. ● 교황 요한 바오로2세 참배 지난 1984년 한국천주교 200주년 기념행사 참석차 한국에 온 교황 요한 바오로2세가 공항에서 곧바로 직행해 참배했던 곳도 이곳이다. 이 땅에선 어떤 험한 일이 있었을까. 옛 양화진 일대를 포함하여 사적지로 지정된 이 순교 성지는 지금의 이름과는 달리 원래 경치가 빼어나기로 유명했던 곳. 양화진 동쪽 봉우리의 절두산은 ‘동국여지승람’이며 ‘세종실록’등에 ‘머리를 높이 든 형상’, 혹은 ‘누에가 머리를 치켜든 형세’라 하여 ‘가을두(加乙頭)’니 ‘잠두봉(蠶頭峰)’의 이름으로 전한다. ‘동국여지승람’에서 강희맹은 그 형상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서호는 도성에서 10리도 안 되게 떨어져 있는데, 산이 푸르고 물이 푸러 형승이 나라에서 제일 간다. 호수 남쪽에 끊어진 언덕이 있는데 형상이 큰 자라 머리 같으며 혹은 잠두라고 불린다.” 그 말마따나 늘상 풍류객들이 산수를 즐기고 나루손들이 그늘을 찾던 평화로운 곳으로, 중국의 사신이 오면 반드시 유람선을 띄웠다고 한다. 그렇듯 한가롭게 명승을 이루던 양화나루와 잠두봉이 피비린내 나는 ‘절두’의 극형지로 변한 것은 바로 병인년인 1866년의 병인양요 때문이다. 그해 두차례의 프랑스 함대가 양화진까지 침입해온 배경에 천주교 신자들이 있었음을 확인한 대원군과 조정이 박해의 칼을 들었다. “양이(洋夷)로 더럽혀진 한강 물을 서학(西學) 무리들의 피로 씻어야 한다.”며 프랑스 함대가 쳐들어온 바로 그 양화진을 보란 듯이 사형지로 삼은 것이다. 당시 절두산에서 처형을 하기 전 내건 포고문에서 “천주교인들 때문에 오랑캐들이 여기까지 왔다. 그들 때문에 우리의 강물이 서양의 배로 더럽혀졌다. 그들의 피로 이 더러움을 씻어내야 한다.”는 내용이 확인되었다고 한다. 교회사연구소와 순교자현양위원회가 조사한 대로라면 이곳에서 휘광이의 칼이 피를 뿌렸던 시기는 1866년 10월부터 이듬해 7월까지였다. 황해도 출신으로 시흥 봉천동에서 잡혀온 이의송(프란치스코)과 그의 아내 김엇분(마리아), 아들 붕익(바오로)이 순교한 것을 시작으로 수천명이 9개월간 차례로 목숨을 잃어간 것이다. 절두산에서 천주교 신자들이 처형되는 동안 천주교 신자들의 주 처형지였던 새남터와 서소문 밖 네거리에선 형이 집행되지 않았다고 한다. 당시 조정에서 얼마만큼 절두산 처형을 집요하게 진행했는지를 알 수 있다. 당시에도 재판의 형식과 절차가 있었을 터이지만 절두산의 처형은 무지막지한 선참후계(先斬後啓)였다. ● 순례성당·박물관 등 웅장하게 세워져 “일단 먼저 머리를 자르고 본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곳 순교자들에 관한 기록은 29명만 빼놓곤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다. 이곳을 성지로 삼은 천주교계는 1962년 ‘가톨릭 순교성지’ 기념탑을 세웠다가 병인박해 100주년을 맞은 1966년 기공식을 갖고 그 이듬해에 종탑과 순례성당, 박물관으로 구성된 절두산 기념관을 웅장하게 세워놓았다. 사제관을 겸한 순교성인시성기념관을 지나 야외전시장으로 발길을 옮기다 보면 오른쪽에 3층의 기념관이 우뚝 섰다. 순교자기념상을 쳐다보면서 오른쪽 경사로를 따라 오르면 가장 먼저 ‘절두산’이라 새긴 바윗돌이 섬뜩하게 다가온다. 계단과 소로를 조금 더 올라 꼭대기에 닿으면 형 집행 때 썼던 형구들을 전시해놓은 진열장이 당시 처형장의 분위기를 전한다. 진열장 정면에 박물관, 그 오른쪽에 성당 출입문이 따로 나 있다. 기념관은 잠두봉의 지형을 그대로 살린 채 순교자들의 정신을 오롯이 담았다고 한다. 성당 안에 들어서면 전통 갓의 모양을 한 돔 형태의 스테인드글라스 천장에서 쏟아지는 빛이 중앙 제대와 독서대, 해설대, 감실을 환히 비춘다. 양쪽 벽을 두른 14처며 천장에서 제대 앞으로 내리건 십자고상, 부활절에만 밝힌다는 제대옆 부활초, 죄인이 목에 쓰는 칼을 형상화한 독서대의 모습이 독특하다. ● 순례객들 발길 끊이지 않아 신자석 오른쪽으로 난 계단을 내려서면 바로 성해실. 교황 요한 바오로2세가 가장 먼저 찾은 공간으로 순교 성인 27위와 무명 순교자 1위가 모셔져 있다. 왼쪽 위에는 빈 공간이 마련된 채 앞으로 봉안될 순교자 6위를 기다리고 있다. 바로 옆 박물관은 그야말로 한국 천주교 박해의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공간. 절두산 순교뿐만 아니라 한국 교회의 발자취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꾸며놓았다. 초대 교회 창설을 보여주는 이벽, 이가환, 정약용의 유물과 순교자 유품, 형구(刑具)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으며 한국 두번째 사제인 최양업 신부 일대기 31점을 포함해 유중철 요한, 이순이 루갈다 동정부부 일대기 27점도 들어 있다. 박물관에서 나와 야외전시장으로 내려서면 병인박해 때 교수형을 집행하던 형구들이며 희생자들의 행적을 재현해 놓은 갖가지 전시물들이 당시의 상황을 생생하게 전한다. 김대건 신부 동상을 비롯해 오타 줄리아의 묘, 박순집의 묘, 남종삼 성인의 흉상과 사적비가 순례객들을 차례로 맞는다. 한 집안 열여섯명이 한꺼번에 희생된 박순집 일가의 이야기를 새긴 비석 앞에는 순례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순교 성지를 다지기 위한 작업이 한창일 무렵 “너무 많은 사람의 목을 잘라 절두산으로 부른다.”는 주민들의 증언을 계기로 이름이 붙여졌다는 ‘절두산 성지’. 무명 순교자들의 정신을 기리고 위로하기 위해 천주교계가 어렵사리 마련해 놓았지만 그 형세는 마치 칼을 쓰고 처형을 기다리는 순교자의 모습을 닮아 있어 순례객들을 안타깝게 한다. 기념관과 사제관 앞쪽을 가로지르는 당산철교와 성당 아래쪽 강변북로, 일산 방향으로 뻗은 지하차도가 ‘ㄷ자’ 모양으로 성지를 옥죄고 있다. 한국 천주교 사상 가장 혹독했다는 ‘병인박해’의 순교자들은 지금도 신음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kimus@seoul.co.kr 사진 김명국기자 daunso@seoul.co.kr ● 정확한 순교 위치는 어디? 수천명 천주교 신자의 목숨을 빼앗은 절두산 순교 성지. 그 많은 순교자들이 희생된 처형장의 위치를 놓고 천주교계는 엇갈린 견해를 보이고 있다. 정확한 처형 장소는 어디일까? 일반적으로 알려진 처형장은 절두산 잠두봉 꼭대기인 지금의 순례성당 제대 뒤쪽의 이른바 ‘치명터’. 어차피 신자들의 처형장면을 사람들이 잘 볼 수 있는 곳을 택했다면 한강에 인접한 봉우리 꼭대기였을 것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실제로 천주교계가 성지 조성을 하면서 접촉한 주민들은 “절두산 꼭대기에서 칼로 신자들의 목을 쳐서 그 시신을 강물에 던졌다.” “한 오랏줄에 여러 명의 교우들을 결박하여 산 채로 낭떠러지 밑 강물로 밀었다.”는 말을 들은 것으로 증언했다고 한다. 이같은 증언을 토대로 순교자 기념탑을 절두산 꼭대기에 세웠고, 나중에 이 탑을 헐고 마련한 기념관과 성당도 그 자리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선 많은 사람들이 올라 형을 집행하기엔 절두산 꼭대기가 비좁고, 각종 기록과 증언으로 미루어 볼 때 양화나루 앞 길가 평지가 처형지였다는 주장이 더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같은 입장은 정부측의 관련자료나 교인들의 증언집인 ‘병인박해 순교자 증언록’ ‘치명일기’에서 모두 처형지를 절두산 꼭대기가 아닌 ‘양화진두’ ‘양화진 진터’ ‘양화진 진’ ‘양화진’ 등으로 밝히고 있다는 근거를 들고 있다. “양화진두에서 군민을 많이 모아놓고 천주교 신자들의 목을 베어 머리를 달아 대중들을 경계시켰다.”라는 정부측 기록의 ‘진두’와 천주교회측 자료의 ‘양화진 진터’ ‘양화진 진’ ‘양화진’이 일치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런 근거로 미루어 순교 장소는 당산철교로 인해 순교기념관에서 성지가 분할된 동쪽의 꾸르실료 건물, 즉 세계성체대회기념교육관과 잠두봉의 중간 어느 지점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 서울시 민원서비스 만족도 89% ‘껑충’

    서울시 민원서비스 만족도 89% ‘껑충’

    서울시의 바뀐 민원서비스가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달 10일 문을 연 ‘다산플라자’와 ‘120 다산콜센터’의 민원서비스 만족도를 조사한 결과 89.0%의 시민이 “만족한다.”고 답했다고 13일 밝혔다. 이는 민원서비스 개편전인 지난해 12월 ‘하이서울 시민봉사실’ 이용 만족도 81.3%에 비해 크게 개선된 수치이다. 다산플라자는 시청 서소문 별관의 민원상담 공간을 통합해 시민봉사실을 리모델링한 것이며,120 다산콜센터는 전문 상담원들이 전화로 시민민원을 처리하는 제도다. 항목별로 보면 다산플라자 내 시설물과 편의시설에 대한 만족도가 89.6%로, 지난해 만족도 64.0%에 비해 급상승했다. 전문 민원안내도우미 배치로 인한 서비스만족도도 96.5%로 전년 82.7%에 비해 13.8%포인트나 증가했다. 또 민원 담당자를 만나기 위해 기다리는 대기시간이 적당했는지에 대해서는 86.1%가 만족을 나타냈다. 이 역시 지난해 76.7%의 만족도에 비해 10%포인트이상 증가한 수치다. 이외에도 민원실 담당 공무원이 친절하고 공정했는지에 대한 만족도도 87.3%(전년도 81.3%)로 나타났다. 담당자가 일을 능숙히 처리했는지에 대해서도 85%(전년도 81.8%)가 만족한다고 답했다. 특히 전화로 민원을 처리하는 ‘120 다산콜센터’의 서비스 만족도는 몰라볼 정도로 높아졌다. 콜센터 서비스를 이용한 67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종합만족도는 85.2점으로, 과거 민원상담전화 만족도 41.6점에 비해 2배 이상 높은 점수를 받았다. 시 관계자는 “콜센터 상담원으로 다양한 분야에 전문성을 갖춘 퇴직 공무원을 채용하는 등 다각적인 노력으로 민원만족도를 더 높이겠다.”고 밝혔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성수대교 세계 유일 ‘예술다리’로

    “성수대교를 ‘디지털아트 브리지’로 만듭시다.” 서울대 미대 학장 출신으로 서울시가 지난 1일자로 영입한 권영걸 디자인서울총괄본부장(부시장급)이 8일 시 간부들을 대상으로 디자인 특강을 했다. 서울시가 낙후된 도시 디자인의 업그레이드를 위해 디자인총괄본부를 만든 데다가 총괄 지휘자인 권 본부장의 인기까지 더해져 이날 강의에는 많은 관심이 쏠렸다. 서울시 서소문청사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을 비롯, 시 간부들이 참석한 가운데 ‘시민들은 어떤 공간에 끌리는가’라는 주제의 특강에서 권 본부장은 성수대교를 ‘디지털아트 브리지’로 만들자고 제안했다. 성수대교 트러스(교량 상부와 교각 사이의 철골 구조물)의 옆면 전체에 대형 디스플레이 패널을 설치해 미디어아트 작품 등 다양한 영상물을 상영하는 ‘예술다리’로 만들자는 것이다. 권 본부장은 “성수대교에 아트 브리지가 만들어지면 세계 유일의 ‘예술다리’가 된다.”면서 “세계적인 미디어 아티스트들의 작품을 수시로 상영할 수도 있고, 계절이나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상영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의 제안은 서울시 역시 한강 교량의 조명을 바꾸는 방안을 검토 중인 가운데 이뤄진 것이어서 채택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권 본부장은 “시민들이 사진 찍고 싶어 하는 포인트가 많으면 그 공간은 디자인이 잘됐다고 한다.”며 “앞으로 시내에 이런 장소를 많이 만들겠다.”고 계획을 밝혔다. 권 본부장은 다음달에는 서울시 전 공무원을 대상으로 디자인 특강을 할 계획이다.김성곤기자 sunggone@seoul.co.kr
  • [Metro] 시청 별관 가스충전시설 준공

    서울시는 1일 천연가스 충전시설의 안전성을 알리기 위해 시청 서소문별관 후문에 천연가스 충전시설 ‘서울 클린 스테이션’을 준공했다고 밝혔다. 액화천연가스(LPG) 충전소와 달리 저장시설이 아니라 안전하다. 또 교통혼잡을 막기 위해 밤 9시 이후에만 천연가스 차량을 충전할 방침이다.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
  • [인사]

    ■ 스포츠서울21 △경영기획실장(국장급) 鄭相敏△경영기획실 재경부장 張在爀△독자서비스부장 姜宗中■ 법무부 ◇기술서기관 승진 △인천공항 출입국관리사무소 전산실장 姜信鴻■ 산업자원부 △산업정책팀장 成允模△전력산업팀장 金學道△에너지관리팀장 成始憲△지역산업팀장 李云鎬△산업기술정책팀장 金準東△마산자유무역지역관리원장 崔元道■ 보건복지부 △정책홍보관리실 홍보관리관 이동욱■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기술경제연구센터 소장 張眞圭△기술경영연구센터 〃 李正源■ 산은자산운용 (본부장)△글로벌투자본부 徐起源△AI〃 金榮根 (팀장)△해외투자팀 許圭栢△PF팀 金宇一■ 우리은행 ◇영업본부장△강남1영업본부 김동오△서대문〃 조진형△대구경북〃 최칠암△종로〃 이승서△호남〃 조용기△송파〃 주재범△관악동작〃 유성근△영등포〃 백경훈△부산중부〃 兼 부산지역센터장 김철호△구로금천〃 이창식△강동〃 정징한△경기중부〃 임채권△강북〃 장영수△동대문〃 백용주△중랑〃 손근선△부천〃 박성재△광진성동〃 박임석△경기동부〃 강원△서울시청〃 兼 서울시청지점장 김경완△본점기업〃 이공희△중앙기업〃 고시묵△트윈타워기업〃 박의선△강남중앙기업〃 윤상구△중부기업〃 박관성△종로기업〃 이희종△경수기업〃 박상인△경인기업〃 전규환△부산경남기업〃 허환△영업부 최승남 ◇센터장△여신관리센터 임철진 ◇수석부장△고객만족센터 김진석△재무기획팀 김승규△대기업심사팀 김시병 ◇부장△개인영업전략팀 김종천△중소기업〃 이성원△카드〃 이광구△HR〃 김석민△영업지원팀 신현석△기관영업팀 유구현△투자금융팀 남기명△프로젝트〃 장안호△유동화〃 김형찬△단기〃 우형걸△전략기획팀 정기화△시너지팀장 김양진△리스크총괄팀 안형덕△법무팀 김영화△홍보팀 김종운△e-비즈니스사업단 백종선△우리금융지주파견 정화영 김경희 최정훈 이점수 박강석 ◇수석부부장△주택금융사업단 박화재△외환〃 김기용△여신정책팀 한희섭△〃관리센터 김종원△총무팀 방영주 ◇수석심사역△개인/SOHO심사팀 이한기△중기업〃 우상용 ◇수석검사역△검사실 이석진 김남기 소병민 ◇수석감리역△영업지원팀 배재운 김태령 ◇지점장△강남갤러리 최광복△공덕동 이완규△광진구청 권병기△낙성대 윤순호△남역삼동 박성열△논현동 허영렬△대방동 김태환△대치동 이동연△도로교통공단 이삼우△둔촌동 김세범△둔촌역 배낙형△등촌동 민용식△목동 권기혁△무역센터 이경희△법조타운 윤제호△서소문 한상훈△서여의도 조성권△센트럴시티 최상학△송파 박기석△수송동 임익봉△신림로 황인호△신반포 김기선△신월1동 주용민△아크로비스타 이남희△압구정역 김병효△양재남 배상열△양재중앙 김칠수△연세 최창영△용산역 유영규△종로5가 김신달△중랑교 임동호△창동북 최병기△청담동 김승록△청량리 이해철△테크노마트 이문훈△테헤란로 이창환△한강로 최두현△한경센터 이헌주△화양동 양병일△SH공사 김한식△부평 이목한△석남동 김원동△연수동 김철수△군포 박동원△대화역 이창재△병점 이인호△부천내동 조현근△서현남 조규종△서현동 이범창△송우 유재설△안성 김정일△안양1동 정영자△오리역 이승옥△의정부남 천창환△정왕동 정만섭△하안동 이재효△호계동 정기영△온양 김광호△홍성 이훈규△남부민동 정정규△신평동 남기송△온천동 김원식△초량 유성모△내외동 김용식△반송동 나대성△대봉동 김춘상△구미 이두수△상무 윤재승△진월동 이진우△하남공단 이용권△순천 설연길△명동종금 최대근△상해 이길영 ◇지점개설준비위원장△까치산역 손중완 ◇전략영업지점장△전략영업본부 이희운 김민성 ◇기업영업지점장△본점기업영업본부 이동건△삼성〃 윤성효△중앙〃 김대수△종로〃 문기형 이동호△남대문〃 정화재 양군필 김형남△강남〃 강성일△경수〃 최원호△경인〃 이봉우 ◇설립추진위원장 △중국우리은행 김대식■ 제일·제일Ⅱ저축은행 (제일저축은행) ◇임원 승진△총무부 이사 김환철△자금부 〃 정진수△기획실 〃 김정록 ◇전보△본사영업부장 박재순△본사개인금융〃 표경호△장충동지점장 이관호△논현동〃 이한덕△분당〃 최문규 (제일Ⅱ저축은행) ◇임원 승진△강남지역본부장 이사 임형기■ 국민일보 ◇승진 △교계협력본부 국장 음한국△광고마케팅국 부국장 김태순△판매국 판매지원팀장 겸 지방팀장(부국장대우) 박문종△창간20주년사업기획단 사사편찬위원(부장) 박동수■ 한겨레신문사 ◇승진 (부국장대우)△편집국 지역부문 孫圭聖△광고국 광고영업1부장 李承鎭(부장)△편집국 사회정책팀 李根永(부장대우)△편집국 교열팀 車漢弼△〃 산업팀 尹英美△〃 통일팀 金成杰△편집국장석 金周性△경영지원실 총무팀장 朴東南△광고국 광고제작〃 李眞炯△〃 광고영업1부 금융〃 李在元△판매국 수도권영업부 강북〃 李成煥△경영지원실 경영기획〃 鄭太喜◇보직△창간20주년 기념사업팀 기획위원 徐基喆
  • 서울시 상담공간 ‘다산플라자’ 개관

    서울시 상담공간 ‘다산플라자’ 개관

    서울시의 민원서비스가 위민(爲民), 청렴(淸廉), 창의(創意)의 다산 정신을 담아 새롭게 태어난다. 서울시는 10일 시청 서소문 별관에 모든 민원을 해결하는 상담 공간인 ‘다산플라자’를 열고, 수준 높은 민원서비스를 제공하는 ‘다산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다산 프로젝트는 ▲다산플라자(방문민원) ▲120다산콜센터(전화민원) ▲사이버 다산(인터넷민원) ▲다산패트롤(현장민원) 등 4가지로 압축된다. 이날 오세훈 시장은 새로 문을 연 다산플라자에서 “다산 프로젝트는 서울시의 모든 민원처리를 시민의 입장에서 재설계하고, 고객만족을 넘어 고객감동으로 이어지는 행정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허탕치는 민원은 없다 254평 규모의 ‘다산플라자’에는 9개 예약상담실, 변호사·회계사 등에게 상담하는 전문상담실, 인터넷활용공간, 무인민원발급기 등을 설치했다. 전화(02-120)나 인터넷(www.seoul.go.kr→전자민원→민원상담)으로 예약해 원하는 시간에 담당공무원을 만나 민원 상담을 할 수 있다. 민원인에게는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민원 처리 현황을 알려준다. ‘120다산콜센터’는 민원상담원이 시민들의 궁금증을 1차로 상담하고, 여기서 문제점을 해결하지 못하면 담당공무원과 직접 전화를 연결해주는 제도다. 시는 다산콜센터를 운영하면 민원 담당공무원을 파악하고 연결하는 데 최고 67분(2006년 3월 고충처리위원회 조사)이 걸리던 대기시간이 크게 줄고, 하루 1만 5000여건의 민원전화를 처리할 것으로 분석했다. 이달말부터 근무시간(평일 오전 9시∼오후 6시) 전후 1시간을 연장해 상담을 받고,5월말까지 상수도 민원전화 121번과 통합할 계획이다.9월부터는 상담원을 150명까지 늘리고, 주택·건축·세무 등 전문 민원상담원도 배치해 정식으로 운영한다. ●인터넷으로 편리하게 한방에 오는 9월부터 서비스를 시작하는 ‘사이버 다산’은 현재 서울시 홈페이지에 분산된 7종의 민원처리 사이트를 통합해 한 곳에서 민원을 빠르게 해결할 수 있는 전자민원 포털사이트다. 민원 신청과 처리절차 안내, 신청하기 전에 허가 가능 여부를 확인하는 시뮬레이션 기능도 제공된다. 또 ‘다산패트롤’은 단순 반복적으로 제기되는 민원이나 현장 해결이 필요한 민원에 대해 현장기동반을 파견해 민원을 현장에서 신속하고 정확하게 해결하는 제도이다. 시는 이러한 민원서비스 개선 작업을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민원업무 통합, 개선과제 발굴, 교육 지원 등을 맡는 ‘고객만족추진단’을 구성해 6월부터 운영할 방침이다. ●집단민원 1호는 ‘철거민’ 이날 다산플라자 오픈식이 끝난 뒤 도시계획 철거민들이 찾아와 행사를 마치고 돌아가는 오 시장에게 집단민원을 제기했다. 강서구 장지·발산지역에 입주권을 받았다는 이들은 오 시장 앞을 가로막고 “서울시가 철거 때 원가 이하로 다른 아파트에 입주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약속했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고 주장했다. 일부는 큰 소리를 내거나 무릎을 꿇고 호소하기도 했다. 오 시장은 “상황을 파악해 보겠다.”면서 관계자들과 면담을 주선한 뒤 자리를 떴다. 높은 문턱, 불친절, 대기시간, 재방문 등 4가지 장벽을 없애는 ‘4무(無) 민원서비스’를 정신으로 삼은 다산 프로젝트가 처음 만난 집단민원을 어떻게 해결할지 귀추가 주목되는 부분이다.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서울시 상담공간 ‘다산플라자’ 개관

    서울시 상담공간 ‘다산플라자’ 개관

    서울시의 민원서비스가 위민(爲民), 청렴(淸廉), 창의(創意)의 다산 정신을 담아 새롭게 태어난다. 서울시는 10일 시청 서소문 별관에 모든 민원을 해결하는 상담 공간인 ‘다산플라자’를 열고, 수준 높은 민원서비스를 제공하는 ‘다산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다산 프로젝트는 ▲다산플라자(방문민원) ▲120다산콜센터(전화민원) ▲사이버 다산(인터넷민원) ▲다산패트롤(현장민원) 등 4가지로 압축된다. 이날 오세훈 시장은 새로 문을 연 다산플라자에서 “다산 프로젝트는 서울시의 모든 민원처리를 시민의 입장에서 재설계하고, 고객만족을 넘어 고객감동으로 이어지는 행정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허탕치는 민원은 없다 254평 규모의 ‘다산플라자’에는 9개 예약상담실, 변호사·회계사 등에게 상담하는 전문상담실, 인터넷활용공간, 무인민원발급기 등을 설치했다. 전화(02-120)나 인터넷(www.seoul.go.kr→전자민원→민원상담)으로 예약해 원하는 시간에 담당공무원을 만나 민원 상담을 할 수 있다. 민원인에게는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민원 처리 현황을 알려준다. ‘120다산콜센터’는 민원상담원이 시민들의 궁금증을 1차로 상담하고, 여기서 문제점을 해결하지 못하면 담당공무원과 직접 전화를 연결해주는 제도다. 시는 다산콜센터를 운영하면 민원 담당공무원을 파악하고 연결하는 데 최고 67분(2006년 3월 고충처리위원회 조사)이 걸리던 대기시간이 크게 줄고, 하루 1만 5000여건의 민원전화를 처리할 것으로 분석했다. 이달말부터 근무시간(평일 오전 9시∼오후 6시) 전후 1시간을 연장해 상담을 받고,5월말까지 상수도 민원전화 121번과 통합할 계획이다.9월부터는 상담원을 150명까지 늘리고, 주택·건축·세무 등 전문 민원상담원도 배치해 정식으로 운영한다. ●인터넷으로 편리하게 한방에 오는 9월부터 서비스를 시작하는 ‘사이버 다산’은 현재 서울시 홈페이지에 분산된 7종의 민원처리 사이트를 통합해 한 곳에서 민원을 빠르게 해결할 수 있는 전자민원 포털사이트다. 민원 신청과 처리절차 안내, 신청하기 전에 허가 가능 여부를 확인하는 시뮬레이션 기능도 제공된다. 또 ‘다산패트롤’은 단순 반복적으로 제기되는 민원이나 현장 해결이 필요한 민원에 대해 현장기동반을 파견해 민원을 현장에서 신속하고 정확하게 해결하는 제도이다. 시는 이러한 민원서비스 개선 작업을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민원업무 통합, 개선과제 발굴, 교육 지원 등을 맡는 ‘고객만족추진단’을 구성해 6월부터 운영할 방침이다. ●집단민원 1호는 ‘철거민’ 이날 다산플라자 오픈식이 끝난 뒤 도시계획 철거민들이 찾아와 행사를 마치고 돌아가는 오 시장에게 집단민원을 제기했다. 강서구 장지·발산지역에 입주권을 받았다는 이들은 오 시장 앞을 가로막고 “서울시가 철거 때 원가 이하로 다른 아파트에 입주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약속했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고 주장했다. 일부는 큰 소리를 내거나 무릎을 꿇고 호소하기도 했다. 오 시장은 “상황을 파악해 보겠다.”면서 관계자들과 면담을 주선한 뒤 자리를 떴다. 높은 문턱, 불친절, 대기시간, 재방문 등 4가지 장벽을 없애는 ‘4무(無) 민원서비스’를 정신으로 삼은 다산 프로젝트가 처음 만난 집단민원을 어떻게 해결할지 귀추가 주목되는 부분이다.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헬스장 텅텅… “나, 떨고 있니”

    헬스장 텅텅… “나, 떨고 있니”

    20일 오후 5시 서울시의회 지하 1층 체력단련실. 평소 이 시간이면 샤워를 하거나 운동을 하는 공무원들이 왕왕 눈에 띄었지만 이 날은 불이 꺼진 채 텅 비어 있다. 이같은 현상은 서소문 시청 별관 15층에 있는 체력단련실도 마찬가지였다. 아예 업무 시간이 지난 후에도 운동을 하는 인원이 많이 줄었다는 게 이곳에서 운동을 하는 공무원 K씨의 얘기다. 퇴출후보 선정을 위한 3% 명단제출 이후 서울시 공무원들이 바짝 ‘군기’가 들었다. 퇴출후보 선정이 단발에 그치지 않고 계속될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기 때문이다. ●자리 비우는 간 큰 공무원 줄어 퇴출파동 이후 달라진 풍속은 자리를 비우는 공무원이 줄었다는 것. 평소에는 일과 중에 사람을 만나거나 연금매장을 찾는 공무원도 있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빈자리를 찾기 쉽지 않다. 전화통을 붙들고 잡담을 하는 공무원도 거의 없다.3% 퇴출 후보 선정 이후 나타난 긍정적 효과다. 별관에 있는 건강복지국의 한 과장은 “‘현장시정추진반’이 상설화될 것이라는 얘기가 돌면서 전출 대상자든 아니든 모두 긴장을 하고 있다.”면서 “긴 기간 자리를 비우는 공무원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다른 한 과장은 “일과시간에 못 간다면 연금매장이나 이발소를 왜 두느냐.”고 볼멘소리를 했다. ●전출 대상자들 “날 뽑아 주오” 1397명의 전출 후보자 가운데 데려다 쓸 직원을 골라서 제출해야 하는 시한(21일)을 하루 앞두고 전출대상자들은 각 과·팀장을 대상으로 읍소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받아주는 과가 없으면 25일 2차 전입 대상자가 돼 이 부서 저 부서에 사정을 해야 하고, 자칫 그때도 선택을 받지 못하면 현장시정추진단으로 가야 하기 때문이다. 당사자뿐 아니라 과·팀장들도 다른 부서로 전화를 해 자신이 데리고 있던 직원을 받아 달라고 하는 등 분주히 움직였다. 장기근무로 전출 대상이 된 한 직원은 팀장이 알선한 과로 가지 않겠다고 버티기도 했다. 이를 두고 한 팀장은 “배부른 공무원이 아직도 있다.”면서 “현장시정추진단에 가서 일을 해보라.”고 질타하기도 했다. ●반발 여진 아직 지속 전출 대상자 명단 발표 이전에 비해 강도는 약화됐지만 3% 퇴출후보 선정에 대한 반발은 지속되고 있다. 서울시소방방재본부가 최근 정원 5600명 가운데 160명의 3% 퇴출후보를 확정하자 소방공무원들은 “2교대로 격무에 시달리는데 퇴출이라니 이해할 수 없다.”고 반발했다. 서울시의 한 과장은 “소방공무원들이 고생하는 것은 알지만 어느 조직이나 조직에 해를 끼치는 직원은 있다.”면서 “원칙은 소방방재본부에도 동일하게 적용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서울시공무원노조는 1500여명의 공무원이 참석해 투표를 통해 고위직 공무원 퇴출후보를 선출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다. 김성곤기자 sunggone@seoul.co.kr
  • 서울시 헬스장 텅텅… “나, 떨고 있니”

    서울시 헬스장 텅텅… “나, 떨고 있니”

    20일 오후 5시 서울시의회 지하 1층 체력단련실. 평소 이 시간이면 샤워를 하거나 운동을 하는 공무원들이 왕왕 눈에 띄었지만 이 날은 불이 꺼진 채 텅 비어 있다. 이같은 현상은 서소문 시청 별관 15층에 있는 체력단련실도 마찬가지였다. 아예 업무 시간이 지난 후에도 운동을 하는 인원이 많이 줄었다는 게 이곳에서 운동을 하는 공무원 K씨의 얘기다. 퇴출후보 선정을 위한 3% 명단제출 이후 서울시 공무원들이 바짝 ‘군기’가 들었다. 퇴출후보 선정이 단발에 그치지 않고 계속될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기 때문이다. ●자리 비우는 간 큰 공무원 줄어 퇴출파동 이후 달라진 풍속은 자리를 비우는 공무원이 줄었다는 것. 평소에는 일과 중에 사람을 만나거나 연금매장에 찾는 공무원도 있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빈자리를 찾기 쉽지 않다. 전화통을 붙들고 잡담을 하는 공무원도 거의 없다.3% 퇴출 후보 선정 이후 나타난 긍정적 효과다. 별관에 있는 건강복지국의 한 과장은 “‘현장시정추진반’이 상설화될 것이라는 얘기가 돌면서 전출 대상자든 아니든 모두 긴장을 하고 있다.”면서 “긴 기간 자리를 비우는 공무원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다른 한 과장은 “일과시간에 못 간다면 연금매장이나 이발소를 왜 두느냐.”고 볼멘소리를 했다. ●전출 대상자들 “날 뽑아 주오” 1397명의 전출 후보자 가운데 데려다 쓸 직원을 골라서 제출해야 하는 시한(21일)을 하루 앞두고 전출대상자들은 각 과·팀장을 대상으로 읍소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받아주는 과가 없으면 25일 2차 전입 대상자가 돼 이 부서 저 부서에 사정을 해야 하고, 자칫 그때도 선택을 받지 못하면 현장시정추진단으로 가야 하기 때문이다. 당사자뿐 아니라 과·팀장들도 다른 부서로 전화를 해 자신이 데리고 있던 직원을 받아 달라고 하는 등 분주히 움직였다. 장기근무로 전출 대상이 된 한 직원은 팀장이 알선한 과로 가지 않겠다고 버티기도 했다. 이를 두고 한 팀장은 “배부른 공무원이 아직도 있다.”면서 “현장시정추진단에 가서 일을 해보라.”고 질타하기도 했다. ●반발 여진 아직 지속 전출 대상자 명단 발표 이전에 비해 강도는 약화됐지만 3% 퇴출후보 선정에 대한 반발은 지속되고 있다. 서울시소방방재본부가 최근 정원 5600명 가운데 160명의 3% 퇴출후보를 확정하자 소방공무원들은 “2교대로 격무에 시달리는데 퇴출이라니 이해할 수 없다.”고 반발했다. 서울시의 한 과장은 “소방공무원들이 고생하는 것은 알지만 어느 조직이나 조직에 해를 끼치는 직원은 있다.”면서 “원칙은 소방방재본부에도 동일하게 적용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서울시공무원노조는 1500여명의 공무원이 참석해 투표를 통해 고위직 공무원 퇴출후보를 선출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다. 김성곤기자 sunggon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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