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서산 부석사
    2026-08-17
    검색기록 지우기
  • 별도 대응
    2026-08-17
    검색기록 지우기
  • 사조
    2026-08-17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79
  • 고려 불상, 고국 왔지만… 너무 늦었다는 ‘法’

    고려 불상, 고국 왔지만… 너무 늦었다는 ‘法’

    국내 문화재 절도단이 일본 사찰에서 훔쳐 온 고려시대 불상의 소유권은 일본 측 사찰에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고려 때 약탈당한 문화재를 훔쳐 온 것이라 원주인인 국내 사찰이 소유권을 주장했지만 대법원은 오랜 기간 불상을 보유했던 일본 간논지(觀音寺·관음사)에 소유권이 이미 넘어갔다고 봤다. 대법원 1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26일 대한불교조계종 서산 부석사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금동관음보살좌상을 돌려 달라고 제기한 유체동산 인도 소송에서 원심의 원고 패소 판결을 확정했다. 앞서 한국인 문화재 절도단 일당 9명은 2012년 일본 쓰시마섬 간논지에 보관된 높이 50.5㎝, 무게 38.6㎏의 이 불상을 훔쳤고 국내에서 22억원에 처분하려다가 경찰에 적발됐다. 불상은 정부가 몰수해 대전국립문화재연구소에 보관했다. 이에 부석사는 “과거 왜구가 고려를 침탈했을 때 약탈당한 문화재여서 원소유자에게 반환해야 한다”며 2016년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1심에서는 고려시대 서주 부석사와 현재의 서산 부석사를 같은 곳으로 볼 수 있는지가 쟁점이었다. 1심 재판부는 불상이 당시 왜구에 의해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약탈당한 것이고 부석사 소유로 인정해 2017년 1월 부석사 승소로 판결했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6년간 심리 끝에 지난 2월 “이미 취득 시효가 완성됐다”며 불상이 간논지 소유라고 판단했다. 일본 옛 민법상 소유 의사를 갖고 20년간 평온·공연하게 타인의 물건을 점유한 자는 그 소유권을 취득할 수 있다. 대법원은 옛 섭외사법(현 국제사법) 법리에 따라 취득 시효가 만료되는 시점에 물건이 소재한 곳(일본)의 법을 적용했다. 대법원도 “부석사의 청구를 기각한 원심 판결 결론은 정당하다”며 2심과 같은 판단을 유지했다. 이날 판결 직후 부석사 주지 원우 스님은 “이번 판결은 과거 불법적으로 반출된 문화재에 대한 약탈 주체의 소유권을 모두 인정한 것과 같다”고 반발했다. 대한불교조계종도 입장문을 내고 “강제로 빼앗긴 문화재에 대한 소유자의 정당한 권리를 가로막은 반역사적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반면 일본에서는 크게 환영했다. 간논지의 다나카 세쓰료 주지는 NHK에 “안도했다. 불상이 쓰시마섬에 돌아와서 지역민들이 안심하는 모습을 보는 게 가장 바라는 것”이라고 밝혔다. 일본 정부 부대변인인 무라이 히데키 관방 부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정부는 불상이 간논지에 조기 반환될 수 있도록 한국 정부에 촉구하겠다”고 말했다. 불상을 보관 중인 문화재청은 “법무부 등의 반환 결정이 내려지면 이에 따를 것”이라고 밝혔다.
  • 대법원 “고려 불상은 일본 것” 조계종 “반역사적 판결”

    대법원 “고려 불상은 일본 것” 조계종 “반역사적 판결”

    약탈 문화재인 고려시대 불상의 소유권이 일본 사찰에 있다는 대법원 판결을 두고 대한불교조계종이 “강한 유감”을 표했다. 대법원 1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26일 충남 서산 부석사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금동관음보살좌상’을 돌려달라고 제기한 유체동산인도 소송에서 원심의 원고 패소 판결을 확정했다. 고려시대 불상인 ‘금동관음보살좌상’은 한국인 문화재 절도단이 2012년 일본 대마도 간논지에 보관된 것을 훔쳤고 국내에서 22억원에 판매하려다 경찰에 적발됐다. 이후 대전국립문화재연구소에 보관하던 것을 부석사가 “원소유자에게 반환해야 한다”며 2016년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1심은 부석사가 승소했지만 2심 재판부는 “취득 시효가 완성됐다”면서 일본의 손을 들었다. 이날 대법원이 “부석사의 청구를 기각한 원심판결 결론은 정당하다”며 최종적으로 일본의 소유권을 확정했다. 판결 이후 조계종은 “서산 부석사 ‘금동관음보살좌상’은 1330년 조성되어 서산 부석사에 봉안됐으며, 조선 초기 왜구의 약탈로 강제로 일본으로 건너갔다는 사실은 기존 판결로 충분히 검증되고 인정됐다”면서 “약탈문화재임이 명명백백함에도 대법원은 부석사의 정당한 항고에 대하여 약탈문화재의 특수성을 외면한 채 단순한 취득시효 완성을 이유로 기각 결정을 내렸다”고 비판했다. 이어 “강제로 국외 반출된 도난문화재에 대하여 취득시효를 인정하는 것은 상식적으로도 어불성설”이라며 “이번 대법원의 판결은 강제로 빼앗긴 약탈문화재에 대한 소유자의 정당한 권리를 가로막은 반역사적 판결일 뿐만 아니라 전 세계 약탈문화재 문제의 해결에 있어서도 최악의 판례가 될 것이다. 국제법적 이념과 국제 규약의 취지에도 정면으로 반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판결이 확정됐지만 조계종은 불상의 환지본처(제 자리로 돌아감)를 위해 노력한다는 입장이다.
  • 금동관음보살좌상, 일본 소유권 인정…대법 “약탈했지만 취득 시효 완성”

    금동관음보살좌상, 일본 소유권 인정…대법 “약탈했지만 취득 시효 완성”

    국내 문화재 절도단이 일본 사찰에서 훔쳐 온 고려시대 불상의 소유권은 일본 측 사찰에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고려 때 약탈당한 문화재를 훔쳐 온 것이라 원주인인 국내 사찰이 소유권을 주장했지만, 대법원은 오랜 기간 불상을 보유했던 일본 간논지(觀音寺·관음사)에 불상 소유권이 이미 넘어갔다고 봤다. 대법원 1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26일 대한불교조계종 서산 부석사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금동관음보살좌상(불상)’을 돌려달라고 제기한 유체동산인도 소송에서 원심의 원고 패소 판결을 확정했다. 앞서 한국인 문화재 절도단 일당 9명은 2012년 일본 대마도 간논지에 보관된 높이 50.5㎝, 무게 38.6㎏의 이 불상을 훔쳤고 국내에서 22억원에 처분하려다 경찰에 적발됐다. 불상은 정부가 몰수해 대전국립문화재연구소에 보관했다. 이에 부석사는 “과거 왜구가 고려를 침탈했을 때 약탈당한 문화재여서 원소유자에게 반환해야 한다”며 2016년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1심에선 고려시대 서주 부석사와 현재의 서산 부석사를 같은 곳으로 볼 수 있는지가 쟁점이었다. 1심 재판부는 불상이 당시 왜구에 의해 비정상적 방법으로 약탈당한 것이고 부석사 소유로 인정해 2017년 1월 부석사 승소로 판결했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6년간 심리 끝에 지난 2월 “이미 취득 시효가 완성됐다”며 불상이 간논지 소유라고 판단했다. 일본 옛 민법상 소유 의사를 갖고 20년간 평온·공연하게 타인의 물건을 점유한 자는 그 소유권을 취득할 수 있다. 대법원은 옛 섭외사법(현 국제사법) 법리에 따라 취득시효가 만료하는 시점에 물건이 소재한 곳(일본)의 법을 적용했다. 대법원도 “부석사의 청구를 기각한 원심판결 결론은 정당하다”며 2심과 같은 판단을 유지했다. 이날 판결 직후 부석사 주지 원우 스님은 “우리 대법원이 무력적 불법적 약탈을 합법화한 것”이라며 “이번 판결은 과거 불법적으로 반출된 문화재에 대한 약탈 주체의 소유권을 모두 인정한 것과 같다”고 반발했다. 반면 일본에서는 크게 환영했다. 간논지의 다나카 세쓰료 주지는 NHK에 “안도했다. 불상이 대마도에 돌아와서 지역민들이 안심하는 모습을 보는 게 가장 바라는 것”이라고 밝혔다. 일본 정부 부대변인인 무라이 히데키 관방부 부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정부는 불상이 간논지에 조기 반환될 수 있도록 한국 정부에 촉구하고 간논지를 포함한 관계자들과 연락을 계속하며 적절히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불상을 보관 중인 문화재청은 “법무부 등의 반환 결정이 내려지면 이에 따를 것”이라고 밝혔다.
  • ‘왜구가 약탈한’ 부석사 불상…대법원 “일본에 돌려주라” 확정

    ‘왜구가 약탈한’ 부석사 불상…대법원 “일본에 돌려주라” 확정

    한국 도둑이 일본서 훔쳐온 불상초유의 국외 문화재 소송 번져 한국도둑들이 일본에서 훔쳐온 충남 서산 부석사 제작 ‘금동관음보살좌상’ 소유권이 일본에 최종적으로 넘어갔다. 국내 초유의 국외 문화재 소송이다. 대법원 민사1부(주심 대법관 오경미)는 26일 대한불교 조계종 부석사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유체동산인도 소송에서 부석사의 상고를 기각했다. 대법원은 “항소심 판결에 사찰의 실체와 동일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지만 판결은 정당한 것으로 수긍할 수 있다”고 기각 이유를 밝혔다. 10년 넘게 진행된 이 불상 소유권 소송은 1심에서 부석사가 이겼고, 항소심에서는 일본이 승소했다. 이 불상은 김모(당시 69세)씨 등 한국 문화재절도단이 2012년 10월 6일 일본 간논지(觀音寺·관음사)에서 훔쳐 온 것이다. 대법원은 “(1330년부터 현재까지) 부석사의 인적요소인 승려 등의 계속성을 완전히 상실하거나 물적 요소인 종교시설 등이 완전히 소실된 것으로 볼 만한 자료는 없다”며 “부석사가 독립한 사찰로서의 실체를 유지한 채 존속해 원고에 이르렀다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고 밝혀 항소심이 사찰의 동일성과 연속성에 의문을 제기한 것과 판단을 달리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타인의 물건이더라도 일정 기간 문제없이 점유했다면 소유권이 넘어간 것으로 보는 ‘취득 시효’ 법리에 따라 불상의 소유권이 정상적으로 간논지에 넘어갔다고 봤다. 일본의 옛 민법은 “20년간 소유의 의사로 평온 및 공연하게 타인의 물건을 점유하는 자는 그 소유권을 취득한다”고 규정했다. 대법원은 국제사법에 따라 취득시효가 만료될 때 물건이 소재한 곳의 법을 따르는 게 맞는다고 봤다. 대법원은 “간논지는 취득시효가 완성된 1973년 1월 26일 일본 민법에 따라 이 불상의 소유권을 취득했고, 2012년 불상을 절도당하기 전까지 점유했다”며 “불상이 고려 때 왜구에 약탈당해 불법 반출됐을 개연성이 있다거나 우리나라 문화재라는 사정만으로 이런 취득시효 법리를 깰 수는 없다”고 했다. 1심 부석사 승, 2심 간논지 승 1·2심 재판부는 모두 ‘왜구가 불상을 약탈해 갔다’는 것을 인정했지만 소유권에 대한 판단은 달랐다. 부석사의 손을 들어준 대전지법 제12민사부(당시 재판장 문보경)는 2017년 1월 1심에서 “증여나 매매 등 정상 방법이 아니라 도난이나 약탈로 간논지에 운반돼 봉안됐다고 보는 게 맞는다”며 부석사가 소유주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그 근거로 1951년 간논지 관계자가 불상에서 발견한 결연문을 꼽았다. 결연문에 ‘고려국 서주(현재 서산) 부석사 결연문’이라고 쓰고 시주자 32명의 이름이 적혀 있다. 재판부는 “불상이 이전되는 경우 주는 쪽에서 복장물을 빼고 어디에서 만들고 어디로 옮겨지는지 적어 보낸다는 것이 조계종과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이 불상에는 그런 것이 없다”고 판시했다. 이어 “조계종은 서주 부석사와 현 부석사는 동일한 사찰이라고 밝혔다”고 약탈 불상을 원주인에게 인도하라고 했다. 간논지의 손을 들어준 대전고법 제1민사부(당시 재판장 박선준)는 지난 2월 항소심을 열고 “불상을 제작한 서주의 부석사와 지금의 부석사가 동일하고 연속성이 있는지 증명해야 하나, 제출 증거들을 보면 동일·연속성을 인정하기에 부족하다”고 판시했다. 이어 “불상이 외국에 있었던 만큼 국제사법에 따라야 한다. 이 법은 동산 및 부동산의 물권을 소재지법으로 결정하라고 한다”며 “일본 민법이 점유 소유권을 20년을 정한 만큼 간논지 등록시기로 보면 1973년 1월 소유권이 완성됐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부석사는 “이 불상은 문화재여서 취득시효가 적용돼서는 안된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330년(고려) 부석사가 제작한 높이 45.5㎝, 둘레 56㎝, 무게 38.6㎏의 불상은 소송이 끝나지 않아 대전 국립문화재연구소 유물수장고에 보관 중이었으나 이날 판결로 간논지로 되돌아갈 전망이다.
  • “약탈과 절도”로 충돌한 ‘문화재 한일전’ 1승1패…최후의 승자는[전국부 사건창고]

    “약탈과 절도”로 충돌한 ‘문화재 한일전’ 1승1패…최후의 승자는[전국부 사건창고]

    한국 도둑들 일본서 불상 훔쳐‘조폭’이 범죄자금 지원초유의 국외문화재 소송 번져 ‘문화재 한일전’이 10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2012년 한국 도둑들이 일본 간논지(觀音寺·관음사)에서 훔쳐 온 금동관음보살좌상의 소유권을 충남 서산시 부석사가 주장하면서 국내 초유의 국외문화재 소송이 벌어졌다. 1심은 부석사 승·항소심은 간논지 승, 현재 상고심이 진행 중이다. 대법원의 판단은 향후 절도 문화재 소유권의 잣대가 될 것으로 보여 관심이 크다. 12일 서울신문이 입수한 1·2심 판결문 비교 분석과 본지 취재에 따르면 불상 절도 사건은 2012년 10월 6일 오후 8시쯤 일본 쓰시마섬 간논지에서 발생했다. 김모(당시 69세)씨 등 한국 문화재절도단 4명이 문이 잠기지 않은 사찰에 침입해 이 불상을 훔쳤다. 높이 45.5㎝, 둘레 56㎝, 무게 38.6㎏으로 1330년(고려) 부석사 제작품이다. 왜구가 약탈해간 것으로 1973년 일본 나가사키현 유형문화재가 됐다. 절도 자금은 경남 마산 P파 조직폭력배 장모(당시 51세)씨가 댔다. 김씨는 국내 문화재 공소시효가 강화(발생→발견 시점)돼 밀매가 쉽지 않자 장씨에게 “약탈당한 우리나라 문화재가 일본에 많으니 훔쳐 와 팔자”고 꼬드겼다. 장씨는 4500만원을 제공했고, 김씨는 공범들을 끌어들여 범행에 나섰다. 범행 한 달 전 일본 현장도 사전 답사했다. 김씨 일당이 일본에 건너가 것은 범행 3일 전인 10월 3일이었다. 김씨 등이 쓰시마섬 사찰을 돌며 범행을 끝내자 장씨는 골동품 보따리상 손모(당시 60세)씨를 동원했다. 손씨는 일본에 건너가 절도 문화재들을 배낭과 가방에 넣고 10월 8일 후쿠오카현 하카타항을 출발해 같은날 오후 6시 20분쯤 부산항에 도착했다. 김씨 등이 훔친 문화재는 부석사 불상 외에도 통일신라 동조여래입상, 고려시대 대장경도 있었으나 한국에서 소유권을 주장하는 이들이 없어 반환조치됐다. 이 사건을 수사한 대전경찰청 관계자는 “일본은 스님이 잠을 안 자는 무인 사찰이 많아 절도하기 어렵지 않지만 대장경은 사찰 지붕을 뚫고 훔쳤다”며 “손씨는 ‘가짜 골동품’이라고 속여 부산항을 통과했다”고 했다.김씨는 장씨의 어시장 창고에 장물을 보관하면서 이듬해 초 판매책 임모(당시 51)씨와 짜고 밀매에 나섰고, 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의 아버지 A씨에게 부석사 불상을 12억원에 팔기로 했다. 이 과정에서 A씨는 사진만 보여주는 임씨가 수상쩍어 문화재청에 진품 여부를 문의했다. 불상은 이미 인터폴에 적색수배돼 있었다. 김씨 등 4명은 구속기소돼 최고 징역 4년까지 받았고, 장씨 등 5명은 불구속기소됐다. 이 소식을 접한 부석사 스님과 신도들은 2013년 2월 불상 반환금지 가처분 후 2016년 4월 불상 보관 주체인 한국 정부를 상대로 유체동산 인도 소송을 제기했다. 절도범들은 모두 형을 마쳤지만 민사소송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처럼 약탈·절도에 소송으로 뒤엉키고 외교 문제로 비화한 사례는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1·2심 재판부는 모두 ‘왜구가 불상을 약탈해 갔다’는 것을 인정했다. 왜구 ‘종관’이 1526년 조선으로 건너와 악행을 저지르다 불교 수행을 쌓은 뒤 이듬해 일본에 돌아가 간논지를 창건했다. 이 때 종관이 부석사에서 빼앗은 이 불상을 자신의 간논지에 봉안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소유권에 대한 판단은 달랐다. 도둑들 “우린 애국자다” 부석사의 손을 들어준 대전지법 제12민사부(당시 재판장 문보경)는 2017년 1월 1심에서 “증여나 매매 등 정상 방법이 아니라 도난이나 약탈로 간논지에 운반돼 봉안됐다고 보는 게 맞는다”며 부석사가 소유주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그 근거로 1951년 간논지 관계자가 불상에서 발견한 결연문을 꼽았다. 결연문에는 ‘고려국 서주(현재 서산) 부석사 결연문’이라고 쓰고 시주자 32명의 이름이 적혀 있다. 재판부는 “불상은 현세에서 재앙을 없애고 복을 부르고, 후세에서는 극락에 태어나길 원해 제작한다”면서 “불상이 이전되는 경우 주는 쪽에서 복장물을 빼고 어디에서 만들고 어디로 옮겨지는지 적어 보낸다는 것이 조계종과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이 불상에는 그런 것이 없다”고 판시했다. 이어 “조계종은 서주 부석사와 현 부석사는 동일한 사찰이라고 밝혔다”고 약탈 불상을 원주인에게 인도하라고 했다. 훔쳐왔다고 해도 국내로 반입한 국외문화재를 소송으로 돌려받을 수 있는 가능성을 연 판결이어서 주목받았다. 김씨 등은 재판 과정에서 “일본이 약탈해간 우리 문화재를 가져왔으니 우리는 ‘애국자’다”고 주장했다. 당시 문화재청 관계자는 “한국에 남아 있었으면 국보나 보물로 지정됐을 것”이라고 말했다.1심 부석사 승, 2심 간논지 승“고려 사찰과 현 부석사 같나”부석사 “문화재 취득시효 없다” 간논지의 손을 들어준 대전고법 제1민사부(당시 재판장 박선준)는 지난 2월 항소심을 열고 “불상을 제작한 서주의 부석사와 지금의 부석사가 동일하고 연속성이 있는지 부석사 측이 증명해야 하나 지금까지 제출한 증거들을 보면 동일·연속성을 인정하기에 부족하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이어 “불상이 외국에 있었던 만큼 국제사법에 따라야 한다. 이 법은 동산 및 부동산의 물권을 소재지법으로 결정하라고 한다”며 “일본 민법은 ‘20년간 평온·공연하게 물건을 점유하면 소유권을 취득한다’고 한 만큼 간논지가 종교법인으로 등록된 1953년 1월부터 따지면 1973년 1월 소유권이 완성됐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부석사 측은 “이 불상은 문화재여서 취득시효가 적용돼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이에 재판부는 “일본법에 ‘시효 취득’을 부정하는 규정이 없고, 한국 문화재보호법도 ‘문화재를 국외로 수출하거나 반출할 수 없다’고만 규정하고 있다. 이 불상은 양도 등을 금지한 국유문화재도 아니다”고 받아들이지 않았다. 1심 선고 전후로 일본 정부가 항의성 발언을 쏟아내고, 중요한 재판 때마다 NHK, 도쿄TV 등 일본 유력 언론사들이 취재진을 파견해 불상을 둘러싼 한일 양국의 관심이 매우 첨예하고 뜨거운 것을 반영했다. 부석사는 상고했고, 대법원 민사1부는 최근 따져볼 가치가 충분하다고 판단해 심리를 시작한 것으로 전해졌다. 상고심에 따라 대전 국립문화재연구소 유물수장고에 보관 중인 불상의 안식처가 정해진다.대법원 심리 착수지자체 증거 찾기, 전국 불교계 탄원 2심에서 패하자 충남도·서산시는 부석사 경내에서 고려 부석사와 같다는 증거 찾기에 나섰다. 충남역사문화연구원은 지표조사로 어골문 기와 등 고려시대 유물을 발굴했다. 곧 정밀 발굴조사도 착수한다. 불교계는 전체가 나서고 있다. ‘전쟁과 화재 등으로 사라진 옛 사찰 터에 재건된 현존 사찰을 부정한 판결은 한국 전통 사찰 전체를 부정하는 것’이라는 입장이다. 전국 주요 25개 사찰이 대법원에 탄원서를 제출했고, 부석사가 속한 조계종뿐 아니라 천태종 등 종파를 떠나 120개 사찰이 탄원서를 받고 있다. 전문가 사이에서는 “불상을 만든 부석사가 돌려받아야 한다” “다른 국외문화재 환수를 위해서라도 훔쳐 온 문화재는 일본에 반환하는 게 좋다” 등 의견이 팽팽하다. 이상근 문화유산회복재단 이사장은 “대법원이 본안심리에 착수한 만큼 전망이 나쁘지 않다”면서 “부석사가 최종심에서 이기면 일본과 약탈 문화재 공동활용 등을 논의할 수 있는 물꼬를 틀 수 있다. 이 부분은 유럽에서도 논의가 활발하다. 발전적으로 고민하고 협의하면 외교 마찰도 없을 것”이라고 했다.
  • “왜구가 훔쳐간 ‘부석사 불상’ 일본에 못 준다”…불교계에 지자체도 나섰다

    “왜구가 훔쳐간 ‘부석사 불상’ 일본에 못 준다”…불교계에 지자체도 나섰다

    한국 도둑들이 일본에서 훔쳐온 부석사 금동관음보살좌상 소유권이 항소심에서 패소해 일본에 돌려줄 위기에 처하자 불교계는 물론 자치단체까지 ‘대법원에서의 부석사 최종 승소’를 위해 발벗고 나섰다.충남 서산시는 28일 부석사의 역사성을 회복하기 위해 충남역사문화연구원과 함께 부석사 관련 문화재 조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항소심 재판부가 “불상이 제작됐다는 고려시대 서주(당시 서산 지명)의 부석사와 현재 서산 부석사의 동일성과 연속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일본 손을 들어줬기 때문이다. 시는 부석사 역사를 실증적으로 확인하기 위해 전체 사역 범위(3만 3480㎡)에 대한 지표조사를 시작하고 발굴조사 등에 들어갈 계획이다. 이를 통해 당시와 현재의 부석사가 같다는 것을 입증할 참이다. 부석사는 통일신라 때인 677년(문무왕 17년)에 의상대사가 창건하고 무학대사가 중수했다고 전해진다. 높이 50.5㎝, 무게 38.6㎏의 금동관음보살좌상은 부석사에서 1330년대 제작됐으나 고려 말이나 조선 초 왜구에게 약탈 당해 1520년대부터 일본 간논지(觀音寺·관음사)에 보관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불상은 김모(당시 69세)씨 등 한국 문화재절도단이 2012년 10월 일본으로 건너가 간논지에서 훔쳐왔다. 김씨 등은 어시장 창고에 불상을 보관하면서 2013년 초 판매책 임모(당시 51세)씨와 짜고 밀매에 나섰다. 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의 아버지 A씨에게 12억원에 팔기로 했으나 사진만 보여주는 임씨를 수상히 여긴 A씨가 진품 여부를 알아보기 위해 문화재청에 문의하는 과정에서 범행이 들통 났다. 김씨 등은 재판 과정에서 “일본이 약탈한 문화재를 가져왔으니 우리는 애국자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부석사가 2016년 4월 불상 소유권을 주장하며 소송을 냈고, 1심을 맡은 대전지법 민사12부(재판장 문보경)는 2017년 1월 “불상 속에 있던 종이 결연문에 ‘서주’라는 제조지역과 시주자명이 써 있고, 다른 사찰로 옮겨간 기록이 없다(즉, 왜구의 약탈로 일본에 넘어갔다는 얘기)”고 부석사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인 대전고법 민사1부(재판장 박선준)는 지난 2월 “1333년 고려 때 서주의 부석사가 불상을 제작한 것은 인정되지만 지금의 부석사와 동일한지 증거가 부족하다”며 “1527년 조선에서 불상을 양도받았다는 일본 간논지 측 주장도 확인이 안되지만 취득시효(20년)가 완성된 만큼 간논지에 소유권이 있다. 문화재 보호 관련 국제법과 협약에 따라 점유시효를 인정해야 한다”고 뒤집었다. 부석사 측은 지난 13일 상고했지만 항소심 판결로 미뤄 ‘부석사의 역사성 입증’이 대법원에서도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서산시가 직접 입증에 나선 것이다. 이완섭 시장은 “환지본처(還至本處·본래의 자리로 돌아간다)라는 말처럼 불상이 부석사로 돌아올 수 있도록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했다. 조계종 교구본사와 국내 100대 사찰 등 불교계도 최근 대법원에 총 18건의 진정서와 탄원서를 제출했다. 수덕사 주지 도신은 탄원서에서 “항소심 재판부에 깊은 실망과 분노를 느낀다”며 “왜구에게 약탈 당하고 아직 환수 못한 수많은 문화재를 영원히 되찾을 수 없게 만든 부당 판결”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불상은 법원의 최종 판결이 끝나지 않아 현재 국립문화재연구소 수장고(대전)에 보관돼 있다.
  • [세종로의 아침] 고려불상 판결을 보며/임병선 문화체육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고려불상 판결을 보며/임병선 문화체육부 선임기자

    상식에서 벗어나는 판결을 보며 실망할 때가 적지 않다. 엊그제 한 정치인의 아들에게 건네진 50억원의 퇴직금을 뇌물로 볼 수 없다는 판결도 검찰의 부실 수사가 원인을 제공했을 것이란 점을 감안해도 많은 이들이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1일 대전고법 재판부(부장 박선준)가 일본 나가사키현 쓰시마섬의 사찰 간논지(觀音寺)에서 한국인 절도범들이 훔쳐 2012년 10월 국내에 들여온 고려불상의 소유권이 간논지에 있다는 뜻밖의 판결을 내렸다. 검찰과 법원이 법리란 좁은 울타리에 갇혀 얼마나 그릇된 판단을 내리는지 잘 드러난다. 그들에겐 600년을 돌아볼 안목이 없는 것일까? 이들 절도범을 의협심 넘쳐 왜구가 약탈해 간 우리 문화재를 되찾아 온 영웅으로 떠받들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들은 값어치 나가는 불상을 국내에서 판매해 이득을 챙기려 했다. 검찰은 이들을 절도 혐의로 기소하면서 불상을 일본에 돌려주려 했다. 이 과정에서 서산 부석사는 이 불상이 왜구에게 약탈당한 문화재이니 자신들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 국가를 대리해 법무부, 다시 말해 검찰이 피고가 됐다. 1심 재판부는 2017년 1월 원고의 손을 들어 줬다. 검찰은 항소했다. 불상 안에서 발견된 결연문의 진위가 의심스럽다며 이 불상이 가품이란 주장을 폈다. 그러면서 간논지를 재판참고인으로 부르자고 했다. 코로나 팬데믹 때문에 간논지 측의 재판 참여는 한참 뒤에야 이뤄졌다. 대한민국의 법률적 위임자이며 정부의 대리인인 검찰이 국가의 문화유산과 국민의 재산권 보호를 망각했다고밖에 볼 수가 없다. 2심 재판부는 과거와 현재의 부석사가 동일한 단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검찰의 주장, 60년 가까이 불상을 소유했으니 일본 민법에 따라 소유권을 취득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간논지의 주장을 그대로 들어줬다. 왜구가 약탈했다고 볼 만한 근거가 상당하다면서도, 또 ‘1527년 간논지를 창설한 종관이 이 사건 불상을 조선에서 넘겨받았다’는 간논지 측의 주장을 “의심스럽다”고 판단하면서도 이렇게 판결했다. 판결문에 눈을 의심케 하는 대목이 있다. “1953년부터 도난당한 2012년까지 60년간 소유의 의사로 불상을 평온·공연하게 점유해 취득시효(20년)가 완성됐다”며 “불상이 불법 반출된 것이라고 하더라도 취득시효의 완성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며, 이는 국내 민법에 의하더라도 마찬가지”라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민사소송은 소유권의 귀속을 판단할 뿐이며, 최종 문화재 반환 문제는 유네스코 협약이나 국제법에 따라 결정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소유권’과 ‘반환’이 별개라는 편의적 발상이 어떻게 법리적으로 뒷받침되는지 궁금하다. 유네스코 협약이나 국제법에 따라 결정할 문제라면 원고와 피고 참가인의 협의를 중재한다든가 정부 간 협의 결과를 기다려 보는 것이 어땠을까. 국외소재문화재재단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우리 문화재 22만 9655점이 27개국에 흩어져 있는데 41.64%인 9만 5622점이 도쿄국립박물관 등 일본에 있다. 지금도 많은 이들이 이 문화재를 찾아오기 위해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 6년이나 시간을 끌던 항소심 재판부의 결론이 왜 이 시점에 나왔는지도 궁금하다. 일본 언론은 과거 정부 시절에 씌운 ‘반일(反日)은 무죄’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려는 우리 사법부의 몸짓이라는 기사를 쏟아내며 반색하고 있다. 이런 반응을 듣는 재판부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 조계종 ‘약탈 고려불상 日 소유권 인정’ 판결에 “한국불교 역사성 무시” 반발

    조계종 ‘약탈 고려불상 日 소유권 인정’ 판결에 “한국불교 역사성 무시” 반발

    대한불교조계종이 일본에 약탈됐다가 한국인 절도단 4명이 다시 한국으로 반입한 ‘금동관음보살좌상’의 소유권이 일본 사찰에 있다는 대전고법 2심 판결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했다. 조계종은 3일 기획실장 성화 스님의 명의로 발표한 입장문에서 “고려 시대인 1330년 제작된 ‘금동관음보살좌상’의 소유자가 서산 부석사이며 조선 초기 왜구들에 의해 약탈되어 일본으로 건너가게 되었다는 사실은 1심 판결에서도 인정된 바 있다”면서 “2심 판결에서 677년에 창건된 부석사의 영속성을 부정하고 동일성을 인정하지 않은 판단은 2000년 한국불교의 역사성과 조계종의 정통성을 무시한 판결”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금동관음보살좌상’의 소유권 분쟁은 2012년 10월 한국인 절도단이 일본 나가사키현 쓰시마의 사찰 간논지에 보관하던 것을 훔쳐 부산항으로 반입하면서 시작됐다. 한국 경찰과 문화재청이 수사 끝에 2013년 초 절도단을 검거했고 이후 국립문화재연구원이 불상을 보관했다. 간논지와 일본 정부는 반환을 요구했지만 부석사 측의 반환 중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이 받아들이면서 소송권 분쟁이 이어졌다. 불교계는 이 불상이 1330년 무렵 충남 서산 부석사에 봉안됐다가 왜구에 약탈당한 것으로 보고 환수 운동에 나섰다. 부석사는 2016년 국가를 상대로 불상 반환 소송을 제기했다. 2017년 1월 1심 재판부는 불상의 원래 소유자가 부석사인 것으로 추정되고 “도난이나 약탈 등 방법으로 일본으로 운반돼 봉안되어 있었다고 봄이 상당하다”며 부석사에 돌려줘야 한다고 판시했다. 그러나 2심에서 다른 결과가 나왔다. 2심 재판부는 지난 1일 “1330년 고려 시대 부석사에서 해당 불상이 제작됐다는 사실은 인정된다”면서도 “원고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현재 서산 부석사가 과거 서주(서산의 고려시대 명칭) 부석사와 동일한 종교단체로 연속성을 갖고 유지됐다는 점을 충분히 입증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또 “왜구가 불상을 약탈해 일본으로 불법 반출했다고 볼 만한 상당한 정황이 있다”면서도 “다만 간논지가 법인을 취득한 1953년 1월 26일부터 불상을 절취당한 2012년까지 불상을 계속해서 점유했기 때문에 소유권을 인정할 수 있다. 취득시효(20년)가 완성돼 소유권이 인정된다”고 했다. 조계종은 “불법적으로 약탈된 문화재의 시효취득을 인정한 것도 약탈문화재에 대한 면죄부를 주는 판결로 전 세계 약탈문화재 해결에 있어서 가장 나쁜 선례를 제공하는 몰역사적 판결”이라고 비판하며 “국가와 민족의 역사와 정서를 담고 있는 문화재는 원래의 자리에 위치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며 불가피하게 약탈되거나 도난당한 문화재는 반드시 환수되어 후대에 계승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국가와 국민의 기본 책무”라고 강조했다. 부석사 측에서 상고 의사를 밝힌 만큼 소유권 분쟁은 대법원으로 넘어가게 됐다. 조계종은 “부석사 ‘금동관음보살좌상’은 물론이고 아직도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도난문화재 환수를 위하여 종단은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전했다.
  • 日 “한국서 ‘반일=무죄’ 공식 깨졌다”

    日 “한국서 ‘반일=무죄’ 공식 깨졌다”

    한국 법원이 한일 사찰 간 소유권을 놓고 다퉈 온 고려시대 불상의 일본 반환을 판결하자 일본의 상당수 언론들은 한국 내 ‘반일(反日)은 무죄’라는 공식이 깨졌다고 분석했다. 2일자 주요 뉴스로 이번 판결을 보도한 요미우리신문은 “보수적인 윤석열 정부 출범 후 한일 최대 현안인 징용공(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일본 내 표현) 소송 문제가 해결될 분위기가 만들어지면서 이번 (한국) 사법부의 판단도 이 흐름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특히 이 신문은 “1심 판결을 뒤집은 2심 판결은 반일이라면 뭐든지 용서된다는 ‘반일 무죄’의 흐름이 바뀌었다는 것을 보여 준다”고 봤다. 우익 성향 산케이신문도 같은 평가를 내렸다. 이 신문은 “한일 관계 최대 현안인 징용공 문제 해결에 대한 양국 정부의 협의가 마무리 단계에 들어가면서 관계 개선이 이뤄지는 분위기 속에 한국의 사법부가 찬물을 끼얹는 일을 피하게 됐다”고 진단했다. 진보 성향 마이니치신문 역시 “한국 정부는 대법원 판결이 나올 때까지 적극적인 대응을 하지 않으면서 불상 문제가 한일의 중요한 현안이 되지 않도록 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일본 정부는 공식 입장을 통해 한국 정부를 압박했다. 정부 대변인인 마쓰노 히로카즈 관방장관은 전날 정례 기자회견에서 “아직도 반환되지 않은 불상이 이른 시일 내 일본으로 올 수 있도록 한국 정부에 촉구하겠다”고 말했다. 한국 외교부 당국자는 이날 “사법부 판단에 대해 행정부가 입장을 밝히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을 아끼는 데 그쳤다. 문제의 고려시대 금동관음보살좌상은 일본 나가사키현 쓰시마섬에 있는 사찰인 간논지에 있었지만 한국인 절도범들이 2012년 10월 훔쳐서 국내로 들여왔다. 서산 부석사는 과거 이 불상을 제작한 사찰이라며 국가를 대상으로 인도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2017년 1심 재판부는 부석사의 손을 들어 줬다. 하지만 대전고등법원은 1일 “왜구가 불상을 약탈해 불법 반출해 간 증거가 인정되나 문화재 보호에 관한 국제법과 협약에 따라 점유시효를 인정해야 한다”며 일본에 반환하라고 판결했다. 부석사 측은 대법원에 상고할 계획이다.
  • ‘반일=무죄’ 공식 깨졌다는 日…부석사 불상 반환 판결 후폭풍

    ‘반일=무죄’ 공식 깨졌다는 日…부석사 불상 반환 판결 후폭풍

    한국 법원이 한일 사찰 간 소유권을 놓고 다퉈온 고려시대 불상의 일본 반환을 판결하자 일본의 상당수 언론들은 한국 내 ‘반일(反日)이 무죄’가 되는 공식이 깨졌다고 분석했다. 2일자 주요 뉴스로 이번 판결을 보도한 요미우리신문은 “보수적인 윤석열 정부 출범 후 한일 최대 현안인 징용공(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일본 내 표현) 소송 문제가 해결될 분위기가 만들어지면서 이번 (한국) 사법부의 판단도 이 흐름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라고 풀이했다. 특히 이 신문은 “1심 판결을 뒤집은 2심 판결은 반일이라면 뭐든지 용서된다는 ‘반일 무죄’의 흐름이 바뀌었다는 것을 보여준다”라고 봤다. 우익 성향 산케이신문도 같은 평가를 내렸다. 이 신문은 “한일 관계 최대 현안인 징용공 문제 해결에 양국 정부 협의가 마무리 단계에 들어가면서 관계 개선이 이뤄지는 분위기 속에 한국의 사법부가 찬물을 끼얹는 일을 피하게 됐다”라고 진단했다. 진보 성향 마이니치신문 역시 “한국 정부는 대법원 판결이 나올 때까지 적극적인 대응을 하지 않으면서 불상 문제가 한일의 중요한 현안이 되지 않도록 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전망했다. 일본 정부는 공식 입장을 통해 한국 정부 압박에 나섰다. 정부 대변인인 마쓰노 히로카즈 관방장관은 전날 정례 기자회견에서 “아직도 반환이 이뤄지지 않은 불상이 이른 시일 내 일본으로 올 수 있도록 한국 정부에 촉구하겠다”라고 말했다. 한국 외교부 당국자는 2일 “사법부 판단에 대해 행정부가 입장을 밝히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을 아끼는데 그쳤다. 문제의 고려시대 금동관음보살좌상은 일본 나가사키현 쓰시마섬에 있는 사찰인 간논지에 있었지만 한국인 절도범들이 2012년 10월 훔쳐서 한국으로 들여왔다. 서산 부석사는 이 불상을 과거 제작한 사찰이라며 국가를 대상으로 불상 인도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2017년 1심 재판부는 부석사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대전고등법원은 1일 “왜구가 불상을 약탈해 불법 반출해 간 증거가 인정되나 문화재 보호에 관한 국제법과 협약에 따라 점유시효를 인정해야 한다”며 일본에 반환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부석사 측은 대법원에 상고할 계획이다.
  • “훔친 고려불상 日에 돌려줘라” 1심 뒤집혔다

    “훔친 고려불상 日에 돌려줘라” 1심 뒤집혔다

    한국 절도범들이 일본에서 훔쳐 온 고려 때 금동관음보살좌상 소유권이 1심과 달리 항소심에서 일본에 넘어갔다. 대전고법 민사1부(재판장 박선준)는 1일 불상 제작자로 알려진 충남 서산 부석사가 국가(한국)를 상대로 낸 유체동산(불상) 인도 청구 항소심에서 부석사의 청구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1333년 고려 때 서주(서산) 부석사가 불상을 제작한 것은 인정되지만 지금의 부석사와 동일한지 증거가 부족하다”며 “왜구가 불상을 약탈해 불법 반출해 간 증거가 인정되나 문화재 보호에 관한 국제법과 협약에 따라 점유시효를 인정해야 한다. 일본 간논지(觀音寺)가 법인을 취득한 1953년부터 절도당한 2012년까지 불상을 점유했다”고 밝혔다. 2017년 1월 1심 재판부는 “불상 속에 있던 종이 결연문에 ‘서주’라는 제조지역과 시주자명이 쓰여 있고, 다른 사찰로 옮겨 간 기록이 없다(왜구의 약탈)”며 부석사의 손을 들어줬었다. 이 불상은 현재 국립문화재연구소 유물수장고에 보관 중이다. 부석사 측은 대법원에 상고하겠다고 밝혔다.
  • 한국 도둑이 훔쳐온 부석사 불상…항소심 “일본에 돌려줘라”

    한국 도둑이 훔쳐온 부석사 불상…항소심 “일본에 돌려줘라”

    “우리는 애국자다”고 한 한국 도둑들의 항변은 항소심에서 물거품이 됐다. 도둑들이 일본에서 훔쳐온 고려 때 충남 서산 부석사 제작 금동관음보살좌상 소유권은 1심을 뒤집고 항소심에서 일본으로 넘어갔다.대전고법 민사1부(재판장 박선준)는 1일 불상 제작자로 알려진 충남 서산 부석사가 국가(한국)를 상대로 낸 유체동산(불상) 인도 청구 항소심에서 부석사의 청구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1333년 고려 때 서주(서산) 부석사가 불상을 제작한 것은 인정되지만 지금의 부석사와 동일한지 증거가 부족하다”며 “왜구가 불상을 약탈해 불법 반출해간 증거가 인정되나 문화재 보호에 관한 국제법과 협약에 따라 점유시효를 인정해야 한다. 간논지가 법인을 취득한 1953년부터 절도 당한 2012년까지 불상을 점유했다”고 밝혔다. 1심을 맡은 대전지법 민사12부(재판장 문보경)는 2017년 1월 “불상 속에 있던 종이 결연문에 ‘서주’라는 제조지역과 시주자명이 써 있고, 다른 사찰로 옮겨간 기록이 없다(즉 왜구의 약탈로 넘어간 것)”고 부석사의 손을 들어줬었다. 소송은 김모(당시 69세)씨 등 한국 문화재절도단이 2012년 10월 일본으로 건너가 간논지(觀音寺)에서 이 불상을 훔쳐오면서 불거졌다. 경남 마산 조직폭력 장모(당시 51세)씨가 활동자금을 댔다. 불상은 높이 50.5㎝, 무게 38.6㎏으로 1330년대 부석사에서 제작됐으나 고려 말이나 조선 초 왜구의 약탈로 일본에 건너간 것으로 추정된다. 김씨 등은 절도에 성공하자 일본과 부산을 오가는 골동품 보따리상 손모(당시 60세)씨를 동원했다. 손씨는 일본으로 건너가 김씨로부터 건네받은 절도 문화재들을 배낭과 가방에 넣어 그해 10월 8일 낮 12시쯤 후쿠오카현 하카다항을 출발해 같은날 오후 6시 20분쯤 부산항에 도착했다. 김씨 일당이 훔친 문화재는 부석사 불상 외에도 통일신라 불상인 동조여래입상과 고려시대 대장경도 있다. 김씨 등이 귀국 이틀 전 오후 6시부터 11시까지 쓰시마섬 사찰들을 돌면서 훔친 것이다. 대장경은 사찰 지붕을 뚫고 절도했다.소송으로 번진 부석사 불상 외에는 소유권을 주장하는 이들이 없어 일본에 돌려줬다. 김씨 등은 장씨의 어시장 창고에 불상을 보관하면서 2013년 초 판매책 임모(당시 51)씨와 짜고 밀매에 나섰다. 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의 아버지 A씨에게 12억원에 문제의 부석사 불상을 팔기로 했으나 사진만 보여주는 임씨를 수상히 여긴 A씨가 진품 여부를 알아보기 위해 문화재청에 문의하는 과정에서 범행이 들통 났다. 일당 9명이 차례로 검거됐다. 김씨 등 4명은 구속돼 최고 징역 4년형을, 장씨 등 5명은 불구속 기소됐다. 김씨 등은 재판에서 “일본이 약탈한 문화재를 가져왔으니 우린 애국자다”고 주장했다. 이어 부석사는 2016년 4월 소유권을 주장하며 우리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부석사 측은 “약탈 당한 문화재는 점유 취득이 인정되지 않는다. 한국 민법에 따라 소유주를 가려야 한다”면서 “왜구가 약탈해간 불상이 분명한데 자기 소유가 아닌 것을 알면서도 점유하는 ‘악의의 무단점유’는 대법원 판례에 따라 점유취득 시효가 없다”고 강조했다. 간논지 측은 서면을 통해 “일본 민법으로 소유권을 따지면 우리 것”이라고 반박했다.1973년 일본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이 불상이 절도 당해 한국에서 법적 소송으로 번지자 일본 장관 등이 항의 발언을 발표하는 등 한일 간 외교마찰로 비화됐다. 국내 문화재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불상을 제작한 부석사가 돌려받아야 한다” “다른 국외문화재 환수를 위해서 훔쳐온 것은 일본에 반환하는 것이 좋다”는 등 의견이 팽팽하게 맞섰다. 부석사 측은 이날 항소심 선고 후 대법원에 상고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불상은 최종 판결이 나지 않아 국립문화재연구소 수장고(대전)에 보관돼 있다.
  • “절도범 반입한 고려불상 소유권은 일본…반환여부는 별개”

    “절도범 반입한 고려불상 소유권은 일본…반환여부는 별개”

    일본에 있다가 절도범에 의해 국내로 들어온 고려시대 불상에 대해 2심 법원이 1심 판결을 뒤집고 일본에 돌려줘야 한다고 판결했다. 대전고법 민사1부(부장 박선준)는 1일 서산 부석사가 국가(대한민국)를 상대로 낸 유체동산(불상) 인도 청구 항소심에서 1심을 뒤집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일본 간논지(관음사)에 있던 금동관음보살좌상은 2012년 10월 문화재 절도범들이 훔쳐 국내로 반입했다. 서산 부석사는 ‘1330년경 서주(서산의 고려시대 명칭)에 있는 사찰에 봉안하려고 이 불상을 제작했다’는 불상 결연문을 토대로 왜구에게 약탈당한 불상인 만큼 원소유자인 부석사로 돌려 달라고 요구하며 소송을 냈다. 2017년 1월 26일 1심은 여러 증거를 토대로 ‘왜구가 비정상적 방법으로 불상을 가져갔다고 보는 게 옳다’는 취지로 부석사 측 손을 들어줬다. 2심 재판부도 일단 이 불상이 왜구에 의해 약탈돼 불법 반출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은 인정했다. 재판부는 “1330년 서주에 있는 부석사가 이 사건 불상을 제작했다는 사실관계는 인정할 수 있으며, 왜구가 약탈해 불법 반출했다고 볼만한 증거도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당시 부석사가 현재의 부석사와 동일한지에 대해선 의문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당시 부석사가 현재의 부석사와 동일한 종교단체라는 입증이 되지 않아 소유권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어 “1527년 조선에서 불상을 양도받았다는 일본 간논지 측 주장 역시 확인하기 어렵다”면서도 “1953년부터 불상이 도난당하기 전인 2012년까지 60년 이상 평온·공연하게 (불상을) 점유해 온 사실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취득시효(20년)가 완성된 만큼 소유권이 인정된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다만 민사소송은 단지 소유권의 귀속을 판단할 뿐이며, 최종적으로 문화재 반환 문제는 유네스코 협약이나 국제법에 따라 결정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1심 이후 6년 만에 뒤집힌 원고 패소 판결에 부석사 측은 즉각 반발했다. 부석사 전 주지인 원우 스님은 “용기 있는 대한민국 판사가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면서 “이후 법적 절차는 변호사와 상의해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원고 측 김병구 변호사도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부석사의 동일성을 입증하기 위해 수많은 자료를 제출했고, 서산시에서 지표조사까지 했는데 같은 부석사가 아니라는 재판부의 결론을 인정할 수 없다”며 대법원에 상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소유권 다툼 대상인 높이 50.5㎝·무게 38.6㎏의 이 사건 불상은 한국인 절도범들이 2012년 10월 일본 간논지에서 훔쳐 국내로 들여왔다. 현재는 대전 국립문화재연구소 수장고에 보관돼 있다. 국가를 대리해 소송을 맡은 검찰이 ‘불상과 결연문의 진위를 명백히 밝혀야 한다’며 항소해 6년 만에 항소심이 열렸다.
  • [속보] “절도범이 반입한 고려불상 소유권은 일본” 법원 2심 판결

    [속보] “절도범이 반입한 고려불상 소유권은 일본” 법원 2심 판결

    일본에 있다가 절도범에 의해 국내로 들어온 고려시대 불상에 대해 2심 법원이 1심 판결을 뒤집고 일본에 돌려줘야 한다고 판결했다. 대전고법 민사1부(부장 박선준)는 1일 서산 부석사가 국가(대한민국)를 상대로 낸 유체동산(불상) 인도 청구 항소심에서 1심을 뒤집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일본 간논지(관음사)에 있던 금동관음보살좌상은 2012년 10월 문화재 절도범들이 훔쳐 국내로 반입했다. 서산 부석사는 ‘1330년경 서주(서산의 고려시대 명칭)에 있는 사찰에 봉안하려고 이 불상을 제작했다’는 불상 결연문을 토대로 왜구에게 약탈당한 불상인 만큼 원소유자인 부석사로 돌려 달라고 요구하며 소송을 냈고, 2017년 1월 26일 1심은 여러 증거를 토대로 ‘왜구가 비정상적 방법으로 불상을 가져갔다고 보는 게 옳다’는 취지로 부석사 측 손을 들어줬다.
  • “일본법 따라야” VS “약탈 문화재에 점유권 없다”

    “일본법 따라야” VS “약탈 문화재에 점유권 없다”

    “일본 민법에 따라 불상 소유권은 우리에게 있다”(일본 관음사) VS “약탈 문화재에 점유 취득권 없다”(한국 부석사)10년 전 한국 도둑들이 일본 쓰시마 간논지(觀音寺)에서 훔쳐온 고려 금동관음보살좌상 소유권을 놓고 항소심에서 벌이는 한일 간 다툼이 치열하다. 대전고법 민사1부(부장 박선준)가 17일 연 재판에서 간논지 측은 서면을 통해 “일본 민법에 따라 소유권을 따져야 한다. 이에따라 불상 권리는 우리에게 있다”고 주장했다. 1527년 간논지를 창설한 종관이 한국에서 적법하게 불상을 들여와 500년 가까이 공공연하게 점유해 소유권을 ‘점유 취득’했다는 것이다. 반면 충남 서산 부석사 측은 “한국 민법에 따라 소유주를 가려야 한다. 특히 약탈 당한 문화재에 대해서는 점유 취득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부석사 측 변호사는 재판 후 “이 불상은 14세기 왜구가 약탈해 가져간 것이 분명하다”며 “자신들 소유가 아닌 것을 알면서도 점유하는 ‘악의의 무단점유’의 경우 대법원 판례에 따라 점유 취득 시효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어 “문화재보호법은 특별법으로 다른 법보다 우선한다. 국가가 문화재를 적극 보호해야 한다”고 했다. 지난 6월 재판 때 직접 참석했던 다나카 세쓰료 간논지 주지는 “적법하게 불상을 취득했다는 근거를 일본으로 돌아가 찾아보겠다”고 했으나 현재까지 관련 자료를 제출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분쟁은 김모(당시 69)씨 등 한국 문화재절도단이 2012년 10월 일본으로 건너가 간논지에서 이 금동불상을 훔쳐오면서 불거졌고, 한·일 간 외교마찰로까지 비화됐다. 불상은 높이 50.5㎝, 무게 38.6㎏으로 1330년 부석사에서 제작됐으나 고려 말이나 조선 초 ‘왜구’의 약탈로 일본에 건너간 것으로 추정된다. 부석사가 2016년 4월 소유권을 주장하며 우리 정부를 상대로 소송해 이듬해 1월 승소했다. 국내 초유의 국외문화재 소송에서 김씨 등 절도단은 “일본이 약탈해간 문화재를 가져왔으니 우린 애국자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1심 재판부는 “불상에 ‘고려국 서주(서산)’ 기록은 있으나 이전기록이 없다”며 부석사의 손을 들어줬다. 항소심 6년째로 재판이 모두 끝나지 않아 불상은 국립문화재연구소 유물수장고에 보관 중이다. 다음 재판은 오는 10월 26일 열린다.
  • 도둑들이 훔쳐온 불상…“일본이 합법 취득한 증거 있느냐”

    도둑들이 훔쳐온 불상…“일본이 합법 취득한 증거 있느냐”

    10년 전 한국 도둑들이 일본 쓰시마 간논지(觀音寺)에서 훔쳐온 고려 금동관음보살좌상 소유권을 놓고 벌이는 15일 항소심에 간논지 주지가 출석했다. 1심 재판부는 “불상에 ‘고려국 서주(서산)’ 기록은 있으나 이전기록이 없다”며 고려 때 이를 제작한 것으로 전해진 충남 서산 부석사의 손을 들어줬었다.대전고법 민사1부(부장 박선준)가 이날 연 항소심 재판에 출석한 간논지 다나카 세스료 주지는 “부석사의 소유권을 입증할 것이 부족하다. 일본·한국민법 시효에 따라 소유권은 간논지에 있다”며 “이 불상은 1953년 종교법인으로 관음사가 설립된 이후 분명히 우리가 소유해왔다”고 주장했다. 이어 “관음사가 신앙의 대상으로 삼아 소중히 지켜왔다”면서 “이 불상은 간논지 뿐 아니라 쓰시마현 나가사키의 재산”이라고 덧붙였다. 다나카 주지는 또 “10년 전 절도단이 불상을 훔쳐 불법적으로 한국에 흘러들어갔을 때 헤아릴 수 없이 슬펐다”면서 “그 세월에 불상 반환을 바라는 간논지 임원 2명이 세상을 떠났다. 하루 속히 우리에게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호소했다. 이날 재판은 일본어 통역사가 배치돼 동시통역으로 진행됐다. 부석사 측은 “간논지에서 1527년쯤 이 불상을 적법하게 취득했다고 주장하는데, 그 어떤 증거도 없다. 간논지 측에는 있느냐”고 따져물었고, 간논지 측은 “일본으로 돌아가서 찾아보겠다”고 답변했다. 사건은 김모(당시 69)씨 등 한국 문화재절도단이 2012년 10월 일본으로 건너가 간논지에서 이 금동불상을 훔쳐오면서 한·일 간 외교마찰로 비화됐다. 불상은 높이 50.5㎝, 무게 38.6㎏으로 1330년 부석사에서 제작됐으나 고려 말이나 조선 초 ‘왜구’의 약탈로 일본에 건너간 것으로 추정된다. 부석사는 2016년 4월 소유권을 주장하며 우리 정부를 상대로 소송했고, 이듬해 1월 승소했다. 국내 초유의 국외문화재 소송인 재판에서 김씨 등 절도단은 “일본이 약탈해간 문화재를 가져왔으니 우린 애국자다”고 주장했다. 현재 이 불상은 재판이 끝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압수돼 국립문화재연구소 유물수장고에 보관 중이다. 부석사 원우 스님은 이날 재판 직후 취재진과 만나 “간논지 측에서 출석했으니 이제는 소유권 분쟁이 일단락이 될 것”이라고 했다. 또 일본 취재진 수십명이 몰려와 재판을 참관하고 재판이 끝난 뒤 다나카 주지를 인터뷰하는 등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다음 항소심 재판은 8월 17일 오후 2시에 열린다.
  • ‘한·일 불상 소유권 분쟁’ 일본 사찰 적극 대응 나서

    절도범에 의해 일본에서 국내로 들어온 고려 금동관음보살좌상(불상) 제자리 찾기 소송과 관련해 일본 사찰 측이 적극 대응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2012년 10월 국내로 반입되기 전까지 불상을 보관하고 있던 일본 나가사키현 쓰시마(대마도)의 사찰 간논지(관음사) 측이 최근 재판부(대전고법 민사1부)에 각종 서류 열람과 복사를 신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충남 서산의 대한불교 조계종 부석사가 국가(대한민국)를 상대로 낸 불상 인도 항소심이 2017년 1월부터 진행 중인데, 간논지 측이 외교채널을 거쳐 의견을 개진하던 그동안의 모습과는 달리 변론에 필요한 자료를 챙긴 뒤 자신들의 주장을 재판부에 직접 피력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지난해 11월 간논지 측은 이 사건 보조참가인 신청을 해 재판부로부터 허락을 받았다. 민사소송법 제71조에 따라 소송 결과에 이해 관계가 있는 제3자는 한쪽 당사자를 돕기 위해 소송에 참가할 수 있다. 간논지 측은 오는 30일로 예정돼 있던 변론기일에 대해 변경 신청을 했고, 재판부도 이를 받아들여 다음 변론 일정은 6월 15일로 잡혔다. 경우에 따라 간논지 측 인사가 국내 법정에 직접 출석할 가능성도 있다. 법조계 관계자는 “공정한 소송절차 진행을 위해 재판부가 보조참가인의 의견을 들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한 사안”이라며 “시일이 더 걸리더라도 변론과 심문을 충분히 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고 전했다. 간논지 측이 우리나라에 반환을 요청하는 불상은 높이 50.5㎝·무게 38.6㎏인 금동관음보살좌상이다. 지난 2016년 4월 서산 부석사는 ‘1330년경 서주(서산의 고려시대 명칭)에 있는 사찰에 봉안하려고 이 불상을 제작했다’는 불상 결연문을 토대로 “왜구에게 약탈당한 불상인 만큼 원소유자인 우리에게 돌려줘야 한다”며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이후 2017년 1월 26일 1심은 여러 증거를 토대로 ‘왜구가 비정상적 방법으로 불상을 가져갔다고 보는 게 옳다’는 취지로 부석사 측의 손을 들어줬고, 국가를 대리해 소송을 맡은 검찰은 곧바로 항소했다. 검찰이 항소와 함께 낸 불상 이송 집행정지 신청이 받아들여져, 불상은 현재 대전 국립문화재연구소 수장고에 있다.
  • [씨줄날줄] ‘직지’ 반환 보증/서동철 논설위원

    [씨줄날줄] ‘직지’ 반환 보증/서동철 논설위원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파리에서 로즐린 바슐로 프랑스 문화부 장관을 만났다. 황 장관은 인류의 가장 오랜 금속활자 인쇄본인 ‘직지‘의 한국 전시를 요청했고 바슐로 장관은 압류 우려가 없다면 적극 검토해 보겠다고 했다. 서산 부석사 관음보살좌상의 사례가 바슐로 장관의 뇌리에 떠올랐을지 모른다. 2012년 도둑이 일본 대마도에서 훔쳐 온 고려시대 불상을 두고 제기된 소송에서 1심 법원은 왜구의 약탈품으로 인정해 부석사의 손을 들어 주었고, 2심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직지’, 곧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은 콜랭 드 플랑시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그는 1886년 조선과 프랑스 간 ‘조불수호통상조약’의 비준 문서를 교환하는 임무를 띠고 처음 한국에 왔다. 이듬해 초대 주한프랑스대리공사에 임명돼 1891년까지 서울에 머물렀고, 1895년 다시 총영사 겸 주임공사로 부임해 1906년까지 한국 생활을 했다. 플랑시가 한국에서 수집한 서적과 도자기는 매우 방대한 규모로 현재 서적은 프랑스국립도서관과 국립동양어대학, 도자기는 세브르국립도자박물관, 국립기메동양박물관, 루앙도자박물관이 나누어 소장하고 있다. 플랑시가 서울에서 한국 자료를 수집하는 과정의 일단은 프랑스 지리학자 샤를 바라의 기록이 남아 있어 짐작할 수 있다. 플랑시가 조선에서 생산된 모든 물건의 견본을 구입하고 있다는 소문을 퍼뜨리자 상인들이 아침부터 떼를 지어 몰려들었고, 오후에는 플랑시가 프랑스어를 가르치는 조선인 비서들과 서울 거리를 누비며 민속적 가치가 있는 물건을 눈에 띄는 대로 사들였다는 내용이다. 황 장관이 자신 있게 “‘직지’가 압류되는 일이 없도록 정부 차원에서 보증할 것”이라는 취지로 대답할 수 있었던 것도 플랑시의 수집 방법이 적어도 ‘무력으로 빼앗는 방식’은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직지’의 한국 전시가 성사된다면 그 자체로 매우 뜻깊다. 그럴수록 ‘직지’의 가치를 세계인에게 널리 알리는 일종의 확장성도 고민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황 장관은 바슐로 장관에게 “2024년 파리에서 하계올림픽이 열리는 만큼 두 나라 주도로 올림픽에서 각국 문화를 체험하는 ‘컬처림픽’을 개최하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한국 출판 문화의 깊이를 알릴 좋은 기회다. 파리에서는 ‘직지’를 포함한 한국 인쇄 및 서적 문화 자산을 총동원한 대규모 특별전을 가졌으면 좋겠다. 파리에 이어 유럽 및 미주의 문화 중심지에서 순회 전시회를 갖고 ‘직지’의 고향 청주에서 피날레를 장식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그렇게 ‘직지’의 의미가 세계인에게 각인됐을 때 ‘직지’가 한국에 있어야 할 당위성도 극대화될 것이다.
  • 정부 “日서 반입한 고려 관음보살상은 진품”

    정부 “日서 반입한 고려 관음보살상은 진품”

    문화재 절도단이 일본 대마도 관음사에서 훔쳐 국내로 밀반입한 ‘금동관음보살좌상’이 진품으로 밝혀졌다. 불상은 소유권을 주장하는 서산 부석사의 품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커졌다. 대전고법 제1민사부(재판장 박선준)는 15일 대한불교조계종 부석사가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유체동산인도 청구 소송 항소심 세 번째 변론 기일을 진행했다. 이날 재판에서 정부 측은 탄소 연대측정 결과 1330년대 충남 서산의 부석사에서 제작된 진품이라고 인정했다. 이에 부석사 측 변호인은 “대한민국 문화재청 감정 결과 불상이 진품인 것으로 밝혀졌다”면서 “불상이 위작이라는 주장을 철회한 것에 대해 환영하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불상이 부석사의 작품이라고 밝혀지면서 재판이 가속도를 내고 있다. 대전고법은 피고 측에 일본 관음사 측의 소송 참여가 언제 이뤄질 수 있는지 다음 기일 전까지 명확히 해 달라고 요청했다. 재판부는 한 차례 더 재판을 진행할 때까지 일본 관음사 측의 참가 의사가 불명확하거나 없다면 재판을 종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앞서 절도단은 2012년 일본 대마도 관음사에 있던 금동관음보살좌상을 훔쳐 국내로 반입했다. 일본 정부가 2016년 불상 반환을 요구하던 중 부석사가 불상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며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불상은 고려시대인 14세기 초에 만들어져 부석사에 있던 것을 고려 말 왜구가 약탈, 일본으로 넘어간 것으로 추정된다.
  • “일본서 훔쳐온 금동불상 ‘가짜’ 아니다”…도둑들 “우린 애국자”

    “일본서 훔쳐온 금동불상 ‘가짜’ 아니다”…도둑들 “우린 애국자”

    한국 절도범들이 일본 쓰시마 간논지(觀音寺)에서 훔쳐 들여온 고려 금동관음보살좌상이 가짜라는 주장이 철회됐다.대전고법 민사1부(부장 박선준)가 15일 충남 서산시 부석사에서 우리 정부를 상대로 낸 유체동산 인도 항소심을 연 가운데 정부를 대리한 검찰이 “금동불상과 결연문의 진위에 대해 더이상 다투지 않겠다”고 밝혔다. 1330년 부석사에서 이 불상을 제작했다는 문화재청의 감정 결과를 받아들이겠다는 것이다. 검찰은 지난 7월 재판에서 한국 도둑들이 2012년 이 불상을 훔쳐 부산항을 통관시킬 때 ‘위작’이라는 소견을 낸 감정위원을 증인으로 신청해 줄곧 가짜라는 주장을 해왔다. 대신 재판 진행과 관련한 검찰과 부석사의 입장은 엇갈렸다. 검찰은 “관음사가 지난해 말 ‘명확한 소유권을 주장하기 위해 재판에 참여하겠다’고 한 만큼 관음사 측이 참여할 때까지 늦춰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부석사 측 변호사는 “관음사 참여 의사가 분명치 않다. 계속 진행해 결론을 내야 한다”고 맞섰다. 결국 재판부는 “다음 공판까지 관음사의 참여 의사가 분명하지 않으면 재판을 종결하겠다”고 밝혔다. 다음 재판은 오는 11월 24일 오후 3시에 열린다.사건은 김모(당시 69)씨 등 한국 문화재절도단이 2012년 10월 일본으로 건너가 관음사에서 이 금동불상을 훔쳐오면서 한·일 간 외교마찰로 비화됐다. 불상은 높이 50.5㎝, 무게 38.6㎏으로 1330년 부석사에서 제작했으나 이후 ‘왜구’의 약탈로 일본에 건너간 것으로 추정된다. 국내 초유의 국외문화재 소송인 이 재판에서 김씨 등 절도단은 “일본이 약탈해간 문화재를 가져왔으니 우린 애국자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1심 재판부는 “불상에 ‘고려국 서주(서산)’라는 기록은 있으나 이전된 기록이 없다”며 부석사의 손을 들어줬다. 일본이 우리 정부에 유감을 표하고 반환을 요구하고 있으나 재판이 끝나지 않아 불상은 현재 대전 국립문화재연구소에 보관 중이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