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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생활 무단 인용’ 김봉곤 작가 “젊은작가상 반납”

    ‘사생활 무단 인용’ 김봉곤 작가 “젊은작가상 반납”

    소설에 카카오톡 대화 내용을 무단 인용하고, 타인의 내밀한 사생활을 기재해 ‘강제 아우팅’(타인에 의해 성적 정체성이 공개되는 행위) 논란을 낳았던 김봉곤(35) 작가가 공식 사과했다. 사태 발생 약 열흘 만이다. 김 작가는 21일 트위터에 올린 입장문에서 “그간의 모든 일에 대해 사죄드린다”고 밝혔다. 그는 “부주의한 글쓰기가 가져온 폭력과 피해에 대해 다시 한번 사죄드린다”며 “고유의 삶과 아픔을 헤아리지 못한 채 타인을 들여놓은 제 글쓰기의 문제점을 뒤늦게 깨닫고 이를 깊이 반성한다”고 썼다. 논란은 지난 10일 트위터에 A씨가 본인이 김 작가의 소설 ‘그런 생활’에 등장하는 ‘C누나’이며, 작가에게 보낸 카카오톡 메시지가 무단 인용됐다고 주장한 데서 비롯됐다. 이어 지난 17일엔 자신이 김 작가의 첫 소설집 표제작인 ‘여름, 스피드’에 등장하는 ‘영우’이며 “이름을 제외한 대부분의 요소들이 소설 속에 적시돼 아우팅당했다”는 주장이 나와 논란이 더욱 가중됐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상에서는 독자들의 항의가 거세게 일어났으며, 해당 책들의 교환을 넘어 환불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김 작가는 올해 ‘그런 생활’로 받은 젊은작가상도 반납하겠다고 밝혔다. 문제가 제기된 소설들이 실린 ‘제1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과 ‘여름, 스피드’(이상 문학동네), ‘시절과 기분’(창비)는 현재 판매 중지된 상태다. 김 작가의 사과문 발표 직후 창비는 ‘시절과 기분’ 환불을 공지했다. 문학동네는 “후속 조치를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201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중편소설 부문에 당선돼 등단한 김 작가는 ‘오토픽션’(자전 소설)을 통한 퀴어 서사로 주목받았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유광혁 경기도의원, 지역문화예술 공동체의 상생을 위한 토론회 진행

    유광혁 경기도의원, 지역문화예술 공동체의 상생을 위한 토론회 진행

    “지역 문화예술은 지역 주민들의 삶과 이야기가 함께 할 때 생명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유광혁 경기도의원(보건복지위원회·더불어민주당·동두천1)은 20일 오후 2시 동두천 두드림뮤직센터에서 열린‘2020 상반기 경기도 정책토론 대축제- 지역문화예술 공동체의 상생을 위한 토론회’좌장으로 참석해 토론회를 진행했다. 유광혁 의원은 “문화와 예술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이어주는 인간 삶의 가장 중요한 동력이다. 공간과 시간 속에서 공동체 구성원들의 다양한 모습들과 서사가 녹아있을 때 문화 예술은 진정한 가치를 가지며 지역을 변화 발전시킬 수 있다”며“오늘 토론회를 계기로 동두천의 과거와 현재를 다시 살펴보고, 문화 예술을 통해 지역 주민 모두가 아름답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미래를 꿈꾸고 만들어 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유광혁 의원은 “동두천시의 문화적 도시재생에는 무엇보다 주민들의 주체적 참여가 중요한 만큼 이에 대한 지속적인 고민과 노력이 필요하다”며“도의회에서도 정책 대안 제시와 지원 역할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이날 토론회는 경기도와 경기도의회가 공동 주최로 열렸으며, 강윤주 교수(경희사이버대 문화예술경영학과)의‘동두천시의 공진화 전략’을 주제로 한 발제가 있었다. 토론에는 최기영 경기문화재단 학예사, 김현호 턱거리마을 활동가(주민들로 하여금 스스로 말하게 하라), 심아정 작가(다시‘기록’을 생각하다), 이경렬 변방의 북소리 활동가(정무적 판단으로 활동하는 문화예술 활동의 정치성), 임현숙 동두천문화원 부원장(지역민들과 상생할 수 있는 방향제시), 김동균 문화터미널 대표(지역문화예술 공동체의 상생을 위한 토론회: 동두천 문화사업)가 참여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퀴어 작가의 강제 아우팅… ‘문단의 윤리’를 묻다

    퀴어 작가의 강제 아우팅… ‘문단의 윤리’를 묻다

    ‘카카오톡 무단 도용’으로 시작된 김봉곤 작가를 둘러싼 논란이 문단 윤리에 대한 논의로 확장되고 있다. 커밍아웃한 퀴어 작가인 그는 ‘오토픽션’(자전 소설)을 통한 퀴어 서사로 주목을 받아 왔다. 올해 젊은작가상 수상작인 소설 ‘그런 생활’에 자신의 카카오톡 대화가 무단 인용됐다는 여성의 주장이 제기된 이래 추가로 작가의 소설로 ‘강제 아우팅’(타인에 의해 성적 지향·정체성이 공개되는 행위)을 당했다는 폭로까지 이어졌다. 여론은 들끓었고, 작가의 소설을 출간했던 문학동네와 창비는 판매 중지를 선언하고 나섰다.1차 발단은 지난 10일 트위터에 자신을 ‘그런 생활’에 등장한 ‘C누나’라고 밝힌 A씨가 글을 올린 데서 시작됐다. 그는 “‘C누나’의 말은 제가 김 작가에게 보낸 카카오톡을 단 한 글자도 바꾸지 않고 그대로 옮겨 쓴 것”이라며 “전체 분량은 원고지 약 10매”라고 밝혔다. A씨는 성적 수치심과 자기혐오를 불러일으키는 부분을 작가가 그대로 썼으며, 자신의 항의는 묵살됐다고 적었다. ‘그런 생활’은 ‘문학과사회’ 2019 여름호, ‘제1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문학동네), 김 작가의 소설집인 ‘시절과 기분’(창비) 등에 실렸다.17일에는 자신이 김 작가의 첫 소설집 ‘여름, 스피드’(문학동네)의 표제작에 등장하는 영우라고 주장하는 인물 B씨가 나타났다. 그는 트위터에 “이름을 제외한 대부분의 요소들이 소설 속에 적시돼 아우팅당했다”고 적었다. 문학동네와 창비는 애초 소극적인 입장을 밝혔다 ‘꼬리 자르기’라는 비판에 직면, 태도를 바꿨다. 두 출판사는 A씨의 폭로가 나온 직후인 14일 당사자의 문제제기 후 해당 내용을 즉시 수정했다고 밝혔다. 16일에는 수정 전 판매분을 수정 판본으로 교환해 주겠다고 공지했다가 B씨의 발언이 나온 17일부터는 해당 단행본 3권에 대해 판매 중지를 선언했다. 김 작가는 A씨에 대해 “미스커뮤니케이션에 의해 빚어진 일”이라고 밝혔으나 B씨 건에 대해서는 사실을 인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출판사의 판매 중지 선언에도 ‘김봉곤 사태’의 여진은 이어지고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서 출판사와 작가의 소극적인 입장 표명에 거듭 항의하던 독자들은 해당 책들의 교환을 넘어 환불을 요구하고 나섰다. 김 작가와 친분이 있는 작가들의 SNS를 찾아가 ‘왜 입장 표명을 하지 않느냐’는 식의 ‘사이버불링’도 빈번히 일어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자들의 폭로에 작가들도 분노했다. 김 작가와 함께 올해 젊은작가상을 수상한 김초엽 작가는 “소설의 가치가 한 사람의 삶보다 우선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계간 ‘창작과비평’ 가을호에 소설을 싣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역시 젊은작가상을 수상한 이현석 작가도 창비에서 발간하는 ‘창작과비평’, ‘문학3’ 보이콧에 이어 “제대로 된 사과가 나오지 않는다면 두 회사(문학동네·창비)와 맺은 출판 계약을 해지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오토픽션’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자신을 소설 속 영우라고 밝혔던 B씨는 입장문의 마지막에 “오토픽션이라는 이름하에 행하고 있는 지극히 개인적인 욕망의 갈취가 여전히 실재하는 인물들에게 가해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공론의 장에서 다시금 알릴 뿐”이라고 적었다. 최근 창비에 출판물 계약 해지를 요청한 정소연 작가는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오토픽션이니 하는 흰소리만 하며 작가를 고평가해 온 ‘선생님’들에게도 분명 책임이 있다”며 문단 비평에 대한 역할을 촉구했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우정과 사랑, 그 사이를 헤엄치는 영법

    우정과 사랑, 그 사이를 헤엄치는 영법

    강에서 똑바로 앞을 향해 헤엄치면 엉뚱한 곳에 가 닿는다. 물살 때문이다. 마티아스(가브리엘 달메이다 프레이타스 분)도 그랬다. 새벽에 그는 강에서 수영을 하다 전혀 의도치 않은 곳에 도착한다. 마티아스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밖으로 나왔다. 머릿속이 혼란스럽다. 지난밤 그는 죽마고우 막심(그자비에 돌란 분)과 딥키스를 했다. 일부러 한 건 아니었다. 또 다른 친구의 동생이 찍는 영화에 마지못해 출연했을 뿐이다. 만약 막심과 딥키스를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면, 비록 내기에서 졌다 해도 촬영을 한사코 거부했으리라. 그는 막심에게 성적인 매력을 느낀 적이 없으니까. 마티아스는 둘 사이의 관계는 우정이지 사랑이 아님을 확신하고 있다. 그런데 카메라 앞에서 막심과 딥키스를 하고 난 다음 마티아스는 멍해졌다. 그는 막심을 향한 자신의 마음이 우정에서 사랑으로 바뀌었을지도 모른다는 예감에 휩싸였다. 딥키스를 하지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방아쇠를 당겼고 총알은 발사됐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다. 마티아스는 똑바로 앞을 향해 헤엄치고 있다고 여겼을 테지만, 물살이 센 강물은 그를 예상치 못한 장소에 데려다 놓았다. 아직 본인의 변화를 직시할 용기가 마티아스에게는 없다. 막심과의 만남을 피하고 그와 거리를 두려 한다. 그러다 보니 마티아스의 언행은 부자연스러워졌다. 불안하고 폭력적인 모습마저 보인다. 마티아스의 변모를 막심이 눈치 채지 못했을 리 없다. 막심도 마티아스만큼이나 머릿속이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다만 거기에만 신경 쓰기에 막심에게 주어진 삶의 과제가 만만찮았다. 호주에 일자리를 얻어 얼마 뒤면 캐나다를 떠날 예정이었고, 금치산자인 엄마를 홀로 돌보고 있던 터라 이에 관한 처리도 미리 해 두어야 했다.둘 사이의 관계가 우정에서 사랑으로 전환됐다 해도 결과는 달라질 게 없다. 막심과 마티아스는 곧 헤어질 운명이다. 그렇지만 서로가 공유하게 된 특별한 정서를 이해하려는 노력까지 쓸모없지는 않다. 들여다보고 대화함으로써 두 사람은 새로운 단계로 진입하게 된 삶을 유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감독으로서 돌란은 이런 과정을 ‘마티아스와 막심’에게 담았다. 하나도 같은 리듬이 없다. 그는 때로는 느린 속도의 영상으로 급격한 감정의 진폭을 표현해 내고, 때로는 빠른 속도의 영상으로 섬세한 사건의 이면을 포착해 낸다. 장면의 병치와 대칭은 마티아스와 막심의 교차하는 심리 그 자체이고, 자칫하면 치기로 느껴질 법도 한데 돌란은 능숙하게 기법을 서사에 녹여 낸다. 그의 감각은 여전히 승하지만 감각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돌란은 천재에서 대가로 진화 중이다. 강 건너 목적지에 제대로 도달하려면 나아가는 방향은 비스듬해야 한다. 마티아스는 몰랐으나 막심 그리고 돌란은 그 사실을 안다.
  • 통일·반독재·저항… 신동엽의 수식어 깨고 싶다

    통일·반독재·저항… 신동엽의 수식어 깨고 싶다

    올해는 신동엽 시인 탄생 90주년을 맞는 해다. 독자들의 뇌리에 서사시 ‘금강’과 서정시 ‘산에 언덕에’, ‘진달래 산천’, ‘껍데기는 가라’ 등으로 남아 있는 선생의 작품 세계는 오랜 금기의 세월을 뚫고 이제 우리 시대의 최전선에 서 있다. 선생의 작품은 분단과 독재 시대에 민족과 저항의 키워드로 줄곧 소환됐고 또 그러한 역할을 충분히 해냈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로 빚어진 인류 문명의 위기에 즈음해서 선생의 시적 사유와 실천과 형상은 어떤 대안적 지평으로 다가오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장남 신좌섭 서울대 의예과 교수를 통해 이러한 선생의 현재적 가치와 그 확장성을 들을 수 있었다.●토착정서의 핵심 가치, 전경인 정신 아들의 입장에서 신동엽 선생의 가장 중요한 저력이랄까 자산은 무엇이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가난한 농민으로 태어나 스스로 농사를 짓지는 않았지만, 토착정서랄까 농경정신을 가장 기본으로 생각하신 것이 하나고요. ‘백제’라는 멸망했으나 끊임없이 정신이 호출되는 나라가 다른 하나라고 할 수 있지 않나 싶어요.” 아닌 게 아니라 선생은 토착정서를 통해 동학을 비롯한 민중종교 사상을 소화해냈고, 사회주의나 아나키즘도 자기 것으로 거르고 녹여 받아들였다. 이러한 힘으로 선생은 전쟁과 독재 치하에서도 정결하고도 견고한 삶으로 일관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시인 김수영이 선생을 두고 한 “너무 모더니즘의 세례를 받지 않은 시인”이라는 평이 떠올랐다. 1950년대 한국 시단을 유행병처럼 휩쓴 모더니즘 열풍에서 비켜서면서 신동엽 선생은 등단작 제목처럼 ‘이야기하는 쟁기꾼’으로 훤칠하게 등장한 것이다. 1959년 신춘문예 입선작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를 두고 신동엽문학관장 김형수 시인이 “케이팝 경연대회에 판소리를 들고 나간 격”이라고 한 말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선생이 강조한 ‘전경인(全耕人) 정신’은 이러한 토착정서의 핵심 가치가 된다. “얼마 전 돌아가신 김종철 선생께서 생태를 이야기하려면 신동엽 시의 도가적 상상력을 읽으라고 한 말씀이 떠오릅니다. 그만큼 아버님은 단순 기능자를 벗어나 온전하게 대지에 뿌리를 내린 정신을 강조하셨죠. 스물두 살에 쓰신 ‘엉뚱한 이론’이라는 산문에서는 두뇌 운동의 탈선과 과잉을 비판하셨는데, 문명의 맹목적 확장을 경계하신 거지요.” 선생의 사유 저변에는 초기부터 노장사상, 원시반본 정신 같은 것이 흐르고 있었던 셈이다. 신 교수는 아버지의 현재적 의미를 이러한 대안적 사유 곧 ‘대지적 상상력’이라고 명명할 수 있는 심층적 원천에서 찾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민족과 저항을 넘어 ‘시인 신동엽’으로 이렇게 신동엽 선생은 ‘민족시인’이라는 그간의 규정을 훌쩍 넘어서고 있다. “대지, 전경인, 흙 같은 원초적 개념을 통해 아버지의 시가 새로 걸어오는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근원적이고 궁극적인 지향으로 말미암아 선생의 작품은 어떤 시인들보다 내구성과 확장성이 크게 다가온다. 그는 “아버지 앞에 붙었던 통일, 반독재, 저항이라는 호칭이 한 시대의 요청에 의해 주어졌다”면서 이제 수식어가 달라질 때가 온 것 같다고 했다. ‘산문시’나 ‘술을 많이 마시고 잔 어젯밤은’ 등을 읽어 보면 신동엽 시인의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광범위한 스펙트럼은 사유 체계에서만이 아니라 장르 선택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다양한 장르를 통한 실험정신이 선생을 폭넓은 ‘시인 신동엽’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신 교수는 “해방 직후에 가난한 민중들에게 깨달음을 주려면 시와 음악과 무용 같은 종합적인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셨다”고 떠올렸다. 기타를 끼고 살았고, 노래도 잘 불렀던 아버지는 오페레타 ‘석가탑’, 시극 ‘그 입술에 파인 그늘’ 같은 동시대 누구도 꿈꾸지 못한 양식들을 남겼다. 선생은 서정시, 서사시, 장시, 산문시, 오페레타, 시극, 연극, 방송대본 등에 모두 진력했다. ‘금강’을 술회하는 인터뷰에서는 교향시극 쓰듯이 썼다고 토로했고, 타계 직전에는 서사시 ‘임진강’을 구상하기도 했다. 이 작품이 완성됐다면 한국문학은 빼어난 분단 서사시 하나를 더 간직하게 됐을 것이다. 이제 신동엽 시인의 텍스트는 시전집과 산문전집, 그리고 몇 종의 평전으로 완미하게 정리된 듯하다. 하지만 아들로서는 미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더 방대하고 정치한 자료를 망라한 본격 평전이 나와야 합니다. 쓰는 시절의 한계가 있을 수 있고, 자료의 한계도 있었을 겁니다. 약전(略傳)을 넘어 보완된 자료를 텍스트로 한, 그때는 안 보이던 것을 담은 평전이 나오길 고대합니다.”●외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의 트라이앵글 신 교수의 할아버지는 경북 분이었는데 부여로 흘러들어와 극진한 사랑과 전적인 신뢰로 외아들 신동엽의 큰 힘이 돼 주었다. 그 사랑과 신뢰는 신동엽의 인생 갈피마다 회복과 의지의 원천이 됐을 것이다. 1990년에 돌아가셨으니 아들이 떠난 후 21년을 더 부여를 지키신 것이다. 신 교수의 외할아버지는 사회주의에 바탕을 두고 이론을 전개했던 농업경제학자 인정식 선생이다. 일제강점기 말에 전향을 했고, 해방 후에는 북으로 가셨다. 남쪽에 남겨진 외할머니와 어머니는 이때부터 힘겨운 생을 사셨다. “어머니를 매개로 외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연결되는 것을 느껴요. 외할아버지 전집을 읽으면 사라져 가는 농촌문화를 안타까워하시는 대목이 나옵니다. 아버지의 생태학적 견지와 어머니의 짚풀문화가 연결되면서, 세 분이 아스라하게 연결되는 것을 느낍니다.” 신 교수의 어머니 인병선 여사는 ‘짚풀문화’에 애정을 가지고 전국을 다니면서 실물적 자료들에 대한 섭렵과 고증과 수집을 마다하지 않았다. 짚풀문화와 관련한 자료 연구로 짚풀문화가로서 입지를 세우기도 했다. 1993년에 개관한 짚풀생활사박물관이 바로 그 결실이다. “그것들은 빨리 삭아 오래 가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진이나 녹화로 다 기록해 세월이 흘러도 재현할 수 있도록 만드셨어요. 이제 박물관장도 제가 맡았어요. 저희 가계(家系)가 모두 제게로 흘러 들어왔습니다.” ●오랜 생애의 빛과 빚을 품은 ‘시인 신좌섭’ 신 교수는 서울대 의예과에 입학한 1978년, 의사라는 안정된 비전을 던지고 10년간 노동운동에 투신했다. 군대를 포함해 13년간 바깥에서 내면을 다지고 돌아왔다. 지금은 어떻게 하면 사회에 기여하는 의사를 양성할 수 있을까에 최선의 관심을 두고 있다. “제가 주로 하는 일은 가르치는 일과, 숙의민주주의에 퍼실리테이션(facilitation)을 결합하는 일입니다.” 퍼실리테이션은 사람들 사이에 소통과 협력이 활발하게 일어나 합의에 도달하도록 하는 행위를 말한다. 신 교수는 이러한 범주가 부모님의 생과 어긋나지 않는다고 했다. 이때 우리는 아버지라는 거대한 산그늘에서 벗어나 아버지와 어머니의 짐을 지고 그것을 완성해 가는 ‘숙의민주주의자 신좌섭’의 모습에 가닿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전경인’ 정신의 현대적 실현 과정이기도 할 것이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에게 이처럼 오랜 생애의 빛이자 빚으로 우뚝하시다. 신 교수는 생애에서 두 번의 큰 고통을 겪는다. 2014년에 겪은 참척의 슬픔과 최근에 겪은 병고가 그것이다. 그 과정에서 2017년에 첫 시집을 냈고, 작년에는 아버지 50주기로 바쁜 일정을 소화했다. “이제부터는 차분하게 뭔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그 일은 시작(詩作), 아버지와 어머니의 남겨진 일들, 퍼실리테이터로서의 활동일 것이다. 신 교수는 몇 번이고 ‘차분하게’라는 말을 반복했다. 신동엽 선생과 자신의 작품 중 애착이 가는 시편을 들려 달라는 부탁에 신 교수는 아버지의 ‘좋은 언어’와 그에 대한 일종의 오마주인 자신의 ‘좋은 언어를 주소서’를 조심스럽게 건넨다. 1970년 유고로 발표된 ‘좋은 언어’는 “때는 와요/우리들이 조용히 눈으로만/이야기할 때”라면서 언어 과잉의 세계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들려준다. ‘좋은 언어를 주소서’는 시집 ‘네 이름을 지운다’ 마지막에 배치한 작품으로서 “이승엔 더 이상/아름다움을 담을 그릇이 없나니”라면서 아버지에 대한 경모(敬慕)를 숨기지 않는다. 그는 “아버지의 작품은 이상적인 새로운 세상에 관해 암시를 주는 작품이어서 정말 아끼고 있다”고 했다. 인병선 여사의 “그의 시는 지금도 살아 있는 생명체로 우리 속에서 힘차게 날갯짓을 하고 있다”는 말이 아들에게도 그대로 해당했던 것이다. 신동엽 시인의 ‘전경인’ 정신을, 아들의 웅숭깊은 사유를 통해 새로 만날 수 있었던 한여름 어느 날이었다. 한양대 교수·문학평론가 [용어 클릭] ■전경인(全耕人) 정신은 ‘온전히 토지에 발을 붙이고 사는 존재’라는 뜻으로, 서구사상이나 외래문명에 대응해 온 신동엽 시인의 철학 사상을 뜻한다.
  • 통일·반독재·저항… 신동엽의 수식어 깨고 싶다

    통일·반독재·저항… 신동엽의 수식어 깨고 싶다

    올해는 신동엽 시인 탄생 90주년을 맞는 해다. 독자들의 뇌리에 서사시 ‘금강’과 서정시 ‘산에 언덕에’, ‘진달래 산천’, ‘껍데기는 가라’ 등으로 남아 있는 선생의 작품 세계는 오랜 금기의 세월을 뚫고 이제 우리 시대의 최전선에 서 있다. 선생의 작품은 분단과 독재 시대에 민족과 저항의 키워드로 줄곧 소환됐고 또 그러한 역할을 충분히 해냈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로 빚어진 인류 문명의 위기에 즈음해서 선생의 시적 사유와 실천과 형상은 어떤 대안적 지평으로 다가오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장남 신좌섭 서울대 의예과 교수를 통해 이러한 선생의 현재적 가치와 그 확장성을 들을 수 있었다.●외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의 트라이앵글 신 교수의 할아버지는 경북 분이었는데 부여로 흘러들어와 극진한 사랑과 전적인 신뢰로 외아들 신동엽의 큰 힘이 돼 주었다. 그 사랑과 신뢰는 신동엽의 인생 갈피마다 회복과 의지의 원천이 됐을 것이다. 1990년에 돌아가셨으니 아들이 떠난 후 21년을 더 부여를 지키신 것이다. 신 교수의 외할아버지는 사회주의에 바탕을 두고 이론을 전개했던 농업경제학자 인정식 선생이다. 일제강점기 말에 전향을 했고, 해방 후에는 북으로 가셨다. 남쪽에 남겨진 외할머니와 어머니는 이때부터 힘겨운 생을 사셨다. “어머니를 매개로 외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연결되는 것을 느껴요. 외할아버지 전집을 읽으면 사라져 가는 농촌문화를 안타까워하시는 대목이 나옵니다. 아버지의 생태학적 견지와 어머니의 짚풀문화가 연결되면서, 세 분이 아스라하게 연결되는 것을 느낍니다.” 신 교수의 어머니 인병선 여사는 ‘짚풀문화’에 애정을 가지고 전국을 다니면서 실물적 자료들에 대한 섭렵과 고증과 수집을 마다하지 않았다. 짚풀문화와 관련한 자료 연구로 짚풀문화가로서 입지를 세우기도 했다. 1993년에 개관한 짚풀생활사박물관이 바로 그 결실이다. “그것들은 빨리 삭아 오래 가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진이나 녹화로 다 기록해 세월이 흘러도 재현할 수 있도록 만드셨어요. 이제 박물관장도 제가 맡았어요. 저희 가계(家系)가 모두 제게로 흘러 들어왔습니다.”●오랜 생애의 빛과 빚을 품은 ‘시인 신좌섭’ 신 교수는 서울대 의예과에 입학한 1978년, 의사라는 안정된 비전을 던지고 10년간 노동운동에 투신했다. 군대를 포함해 13년간 바깥에서 내면을 다지고 돌아왔다. 지금은 어떻게 하면 사회에 기여하는 의사를 양성할 수 있을까에 최선의 관심을 두고 있다. “제가 주로 하는 일은 가르치는 일과, 숙의민주주의에 퍼실리테이션(facilitation)을 결합하는 일입니다.” 퍼실리테이션은 사람들 사이에 소통과 협력이 활발하게 일어나 합의에 도달하도록 하는 행위를 말한다. 신 교수는 이러한 범주가 부모님의 생과 어긋나지 않는다고 했다. 이때 우리는 아버지라는 거대한 산그늘에서 벗어나 아버지와 어머니의 짐을 지고 그것을 완성해 가는 ‘숙의민주주의자 신좌섭’의 모습에 가닿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전경인’ 정신의 현대적 실현 과정이기도 할 것이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에게 이처럼 오랜 생애의 빛이자 빚으로 우뚝하시다. 신 교수는 생애에서 두 번의 큰 고통을 겪는다. 2014년에 겪은 참척의 슬픔과 최근에 겪은 병고가 그것이다. 그 과정에서 2017년에 첫 시집을 냈고, 작년에는 아버지 50주기로 바쁜 일정을 소화했다. “이제부터는 차분하게 뭔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그 일은 시작(詩作), 아버지와 어머니의 남겨진 일들, 퍼실리테이터로서의 활동일 것이다. 신 교수는 몇 번이고 ‘차분하게’라는 말을 반복했다. 신동엽 선생과 자신의 작품 중 애착이 가는 시편을 들려 달라는 부탁에 신 교수는 아버지의 ‘좋은 언어’와 그에 대한 일종의 오마주인 자신의 ‘좋은 언어를 주소서’를 조심스럽게 건넨다. 1970년 유고로 발표된 ‘좋은 언어’는 “때는 와요/우리들이 조용히 눈으로만/이야기할 때”라면서 언어 과잉의 세계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들려준다. ‘좋은 언어를 주소서’는 시집 ‘네 이름을 지운다’ 마지막에 배치한 작품으로서 “이승엔 더 이상/아름다움을 담을 그릇이 없나니”라면서 아버지에 대한 경모(敬慕)를 숨기지 않는다. 그는 “어버지의 작품은 이상적인 새로운 세상에 관해 암시를 주는 작품이어서 정말 아끼고 있다”고 했다. 인병선 여사의 “그의 시는 지금도 살아 있는 생명체로 우리 속에서 힘차게 날갯짓을 하고 있다”는 말이 아들에게도 그대로 해당했던 것이다. 신동엽 시인의 ‘전경인’ 정신을, 아들의 웅숭깊은 사유를 통해 새로 만날 수 있었던 한여름 어느 날이었다. 한양대 교수·문학평론가 ●토착정서의 핵심 가치, 전경인 정신 아들의 입장에서 신동엽 선생의 가장 중요한 저력이랄까 자산은 무엇이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가난한 농민으로 태어나 스스로 농사를 짓지는 않았지만, 토착정서랄까 농경정신을 가장 기본으로 생각하신 것이 하나고요. ‘백제’라는 멸망했으나 끊임없이 정신이 호출되는 나라가 다른 하나라고 할 수 있지 않나 싶어요.” 아닌 게 아니라 선생은 토착정서를 통해 동학을 비롯한 민중종교 사상을 소화해냈고, 사회주의나 아나키즘도 자기 것으로 거르고 녹여 받아들였다. 이러한 힘으로 선생은 전쟁과 독재 치하에서도 정결하고도 견고한 삶으로 일관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시인 김수영이 선생을 두고 한 “너무 모더니즘의 세례를 받지 않은 시인”이라는 평이 떠올랐다. 1950년대 한국 시단을 유행병처럼 휩쓴 모더니즘 열풍에서 비켜서면서 신동엽 선생은 등단작 제목처럼 ‘이야기하는 쟁기꾼’으로 훤칠하게 등장한 것이다. 1959년 신춘문예 입선작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를 두고 신동엽문학관장 김형수 시인이 “케이팝 경연대회에 판소리를 들고 나간 격”이라고 한 말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선생이 강조한 ‘전경인(全耕人) 정신’은 이러한 토착정서의 핵심 가치가 된다. “얼마 전 돌아가신 김종철 선생께서 생태를 이야기하려면 신동엽 시의 도가적 상상력을 읽으라고 한 말씀이 떠오릅니다. 그만큼 아버님은 단순 기능자를 벗어나 온전하게 대지에 뿌리를 내린 정신을 강조하셨죠. 스물두 살에 쓰신 ‘엉뚱한 이론’이라는 산문에서는 두뇌 운동의 탈선과 과잉을 비판하셨는데, 문명의 맹목적 확장을 경계하신 거지요.” 선생의 사유 저변에는 초기부터 노장사상, 원시반본 정신 같은 것이 흐르고 있었던 셈이다. 신 교수는 아버지의 현재적 의미를 이러한 대안적 사유 곧 ‘대지적 상상력’이라고 명명할 수 있는 심층적 원천에서 찾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민족과 저항을 넘어 ‘시인 신동엽’으로 이렇게 신동엽 선생은 ‘민족시인’이라는 그간의 규정을 훌쩍 넘어서고 있다. “대지, 전경인, 흙 같은 원초적 개념을 통해 아버지의 시가 새로 걸어오는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근원적이고 궁극적인 지향으로 말미암아 선생의 작품은 어떤 시인들보다 내구성과 확장성이 크게 다가온다. 그는 “아버지 앞에 붙었던 통일, 반독재, 저항이라는 호칭이 한 시대의 요청에 의해 주어졌다”면서 이제 수식어가 달라질 때가 온 것 같다고 했다. ‘산문시’나 ‘술을 많이 마시고 잔 어젯밤은’ 등을 읽어 보면 신동엽 시인의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광범위한 스펙트럼은 사유 체계에서만이 아니라 장르 선택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다양한 장르를 통한 실험정신이 선생을 폭넓은 ‘시인 신동엽’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신 교수는 “해방 직후에 가난한 민중들에게 깨달음을 주려면 시와 음악과 무용 같은 종합적인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셨다”고 떠올렸다. 기타를 끼고 살았고, 노래도 잘 불렀던 아버지는 오페레타 ‘석가탑’, 시극 ‘그 입술에 파인 그늘’ 같은 동시대 누구도 꿈꾸지 못한 양식들을 남겼다. 선생은 서정시, 서사시, 장시, 산문시, 오페레타, 시극, 연극, 방송대본 등에 모두 진력했다. ‘금강’을 술회하는 인터뷰에서는 교향시극 쓰듯이 썼다고 토로했고, 타계 직전에는 서사시 ‘임진강’을 구상하기도 했다. 이 작품이 완성됐다면 한국문학은 빼어난 분단 서사시 하나를 더 간직하게 됐을 것이다. 이제 신동엽 시인의 텍스트는 시전집과 산문전집, 그리고 몇 종의 평전으로 완미하게 정리된 듯하다. 하지만 아들로서는 미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더 방대하고 정치한 자료를 망라한 본격 평전이 나와야 합니다. 쓰는 시절의 한계가 있을 수 있고, 자료의 한계도 있었을 겁니다. 약전(略傳)을 넘어 보완된 자료를 텍스트로 한, 그때는 안 보이던 것을 담은 평전이 나오길 고대합니다.” 한양대 교수·문학평론가
  • 송인서적 기습 회생절차… “인터파크, 이게 최선입니까”

    송인서적 기습 회생절차… “인터파크, 이게 최선입니까”

    대한출판문화협회와 한국출판인회의 등 18개 출판 단체가 지난달 29일 서울 삼성동 인터파크 본사 앞에서 인터파크 규탄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2017년 80% 채무탕감, 2020년 또 탕감요구?’, ‘인터파크 OUT’이라는 팻말을 들고 비난 목소리를 높였다. 업계 2위 서적 도매상 인터파크송인서적이 지난달 8일 경영난을 이유로 갑작스레 기업회생 신청을 한 게 발단이 됐다. 졸지에 책값을 날릴 위기에 처한 출판인들은 3년 전 인터파크가 송인서적을 인수할 때 책임경영을 약속해 놓고 출판인들을 배신했다고 분노했다.●2400개 출판사 127억원 채무… 30억 피해 예상 인터파크송인서적의 상황이 심상치 않은 조짐을 보인 것은 지난달 2일이다. 모기업인 인터파크 측은 이날 인터파크송인서적 이사회 점심식사 자리에서 지원 중단을 예고하고, 5일에는 인터파크송인서적에 문서로 이를 통보했다. 사흘 뒤인 8일 인터파크송인서적은 법원에 기업회생 신청서를 냈다. 인터파크송인서적은 이날 보도자료에서 “독서량 감소에 따른 서적 도매업 환경 악화와 오프라인 서점 업계의 대형 서점 쏠림 현상이 심화했다. 2017년 회생 절차로 말미암은 영업력의 타격을 회복하는 데에도 어려움이 있었다. 코로나19로 이런 상황이 더욱 악화됐다”고 밝혔다. 장덕래(인터파크 도서사업부장) 인터파크송인서적 관리인은 이와 관련해 “송인서적 인수 이후 상위 1000개 출판사 가운데 10%가 책을 공급하지 않고 있어 영업실적이 악화하고 있으며, 동종 업계보다 수익률이 계속 떨어지는 추세였다”고 말했다. 그는 “인터파크송인서적이 여기까지 오게 된 데에는 인터파크가 50억원을 내고 유상증자까지 50억원을 추가로 냈기 때문인데, 이런 상태에서 영업을 계속하면 피해가 더 커질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며 회생 신청 배경을 설명했다. 단행본 출판사와 전국 서점을 잇는 서적 도매업체로 입지를 굳힌 송인서적은 1997년 외환위기 당시 1차 부도를, 10년 뒤인 2017년에는 또다시 부도를 냈다. 두 번 모두 출판사들이 채무를 탕감해 줘 기사회생할 수 있었다. 인터파크가 2017년 송인서적을 인수할 당시 200억원 가운데 출판사가 탕감한 금액이 무려 130억원에 이른다. 업계 1위였다가 부도를 낸 송인서적은 인터파크가 인수한 이후 곧바로 웅진 북센에 이어 업계 2위까지 회복했다. 갑작스런 회생신청인 데다 채무 대부분이 책이어서 정확한 집계를 산출하기 어렵다. 인터파크송인서적과 거래하는 출판사가 2400곳 정도로, 거래 금액도 제각각이다.유성권 한국출판인회의 부회장은 “현재 인터파크 상거래 채권은 128억원, 채무는 127억원 수준이다. 여기에 인터파크송인서적 내 재고가 21억원 정도”라면서 “채무를 70억원 정도 회수할 수 있다고 예상하면 출판사들이 입을 직접적인 피해액은 25억~30억원 수준”이라고 말했다. 장 인터파크송인서적 관리인은 이에 대해 “채권이 137억원, 채무가 110억원 정도다. 인터파크송인서적은 매 분기별로 서점으로부터 채권을 확인하고 있기 때문에 시간이 좀 걸릴 뿐이지 채무를 거의 다 회수할 수 있다”면서 “출판계에 미치는 피해가 미미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피해도 피해지만 출판인들은 무엇보다 모기업 인터파크 측의 도덕성을 문제로 삼고 있다. 한국출판인회의 자료에 따르면 인터파크송인서적의 2018년 전체 매출은 254억원, 영업손실은 21억원이었다. 그러나 지난해에는 매출이 403억원으로 크게 늘었고, 영업손실은 14억원으로 줄었다. 출판계는 이런 상태였다면 내년쯤 손익분기를 맞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여기에 회생 신청 과정에서 보인 인터파크 측의 태도가 출판인들의 화를 돋웠다. 김학원 한국출판인회의 회장은 지난달 30일 인터파크송인서적 사태 설명회에서 “전국 2400개 출판사와 900개 서점이 인터파크송인서적의 지분 27%를 가진 주주들인데, 일방적으로 회생절차 신청 통보를 받았다”고 했다. 기업회생 신청 직전에 인터파크송인서적이 출판사에 책 주문을 크게 늘린 점도 고의성이 다분하다고 보고 있다. 윤철호 대한출판문화협회장은 “1~4월 합친 것보다 5월 한 달 매출이 많았다. 매출이 늘어난 줄 알았는데, 이게 고스란히 허공에 날아가 버리고 오히려 손해로 돌아오게 된 상황이라 출판인들의 분노가 매우 크다”고 말했다. 출판계에서는 모기업인 인터파크가 수익성이 떨어지는 자회사를 털어내고자 코로나19 상황에서 고의로 회생을 신청했다고 보고 있다. 유 출판인회의 부회장은 “인터파크가 송인서적을 인수할 당시 정보기술(IT) 노하우를 활용해 새로운 출판유통을 해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인터파크는 대표이사와 최고재무관리자(CFO)를 파견한 것 외에 송인서적 운영에 별다른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이번 사태 이후 사임한 강명관 전 인터파크송인서적 대표이사는 “부도났던 기업을 출판인들이 도와 살린 데다 매출도 점차 늘어나는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인터파크가 회생을 신청해 개인적으로는 아쉬운 부분이 없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투자자 처지에서는 나름의 우선순위가 있는 것 아니겠느냐”고 토로했다.●인터파크 불매운동까지… ‘청산형 회생’ 분수령 인터파크송인서적은 오는 9월 28일까지 회생 계획을 내야 한다. 다른 인수자가 없는 상황인 데다 책이 공급되지 않는 상황에서 회생은 요원한 상태다. ‘책’이라는 재화의 특성 탓에 시간이 갈수록 피해는 커질 수밖에 없다. 매달 2억원에 이르는 인터파크송인서적의 인건비도 계속 빠져나간다. 출판사가 발을 구르며 조급해하는 이유다. 출판인들은 지난달 15일 채권단 대표단을 꾸려 대응에 나섰다. 지난달 29일에는 출판인 궐기대회로 인터파크를 압박하고, 한편으론 인터파크와 물밑 협의를 진행 중이다. 채권단은 현재로선 회생보다 청산이 더 낫다고 가닥을 잡았다. 도진호 채권단 대표는 “채권단 회의 결과 피해를 최소화하려면 회생이 아닌 청산이 더 낫다는 의견이 우세했고, 17일 채권단 설명회에서 이런 의견을 결정했다. 이어 20일에는 인터파크에 ‘청산형 회생’을 요구하는 공문을 보냈다”고 말했다. 도 대표는 “회생의 경우 채권자의 75% 이상이 동의하지 않으면 파산하고, 이후 빚을 청산하는 작업에만 1~2년이 걸린다. 청산을 우선하는 ‘청산형 회생’을 인터파크가 받아들이면 시간도, 피해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장 인터파크송인서적 관리인은 “출판계에 피해가 없도록 해야 한다는 데에는 인터파크도 적극적으로 동감하고, 여기에 모든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면서도 “청산형 회생을 받아들일 수 있을지는 따져 봐야 한다. 현재의 채권단 대표단이 2400개 출판사 모두를 대표할 수 있는지 우선 법원의 판단이 필요하다”며 한발 물러났다. 채권단의 ‘청산형 회생’ 카드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또다시 격랑에 휩싸인다. 격앙된 출판인들 일부가 인터파크에 가압류 신청을 하자고 하며 인터파크 불매운동을 주장한다. 온라인 인터파크 서점에 책을 보내지 말자는 ‘보이콧’까지 거론된다. 특히 이번 사태는 서적 도매업의 미래에 관한 숙제를 출판인들에게 또다시 던졌다. 윤 출판문화협회장은 “이번 사태로 업계 1위 도매업체인 웅진 북센의 시장 지배력은 더 커지고, 소규모 출판사·서점은 공급과 수급에 어려움을 겪게 됐다. 출판인들이 머리를 함께 맞대고 문제를 풀기 위해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글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그래픽 이완형 기자 whl@seoul.co.kr
  • 판매중지까지 간 ‘김봉곤 사태’… 문단 윤리를 묻다

    판매중지까지 간 ‘김봉곤 사태’… 문단 윤리를 묻다

    ‘카카오톡 무단 도용’으로 시작된 김봉곤 작가를 둘러싼 논란이 문단 윤리에 대한 논의로 확장되고 있다. 커밍아웃한 퀴어 작가인 그는 ‘오토픽션’(자전 소설)을 통한 퀴어 서사로 주목을 받아왔다. 올해 젊은작가상 수상작인 소설 ‘그런 생활’에 자신의 카카오톡 대화가 무단 인용됐다는 여성의 주장이 제기된 이래 추가로 작가의 소설로 ‘강제 아웃팅’(타인에 의해 성적 지향·정체성이 공개되는 행위)을 당했다는 폭로까지 이어졌다. 여론은 들끓었고, 작가의 소설을 출간했던 문학동네와 창비는 판매 중지를 선언하고 나섰다. ●카톡 내용 무단 인용, 강제 아웃팅… 이어진 폭로 1차 발단은 지난 10일 트위터에 자신을 ‘그런 생활’에 등장한 ‘C누나’ 라고 밝힌 A씨가 글을 올린 데서 시작됐다. 그는 “‘C누나’의 말은 제가 김 작가에게 보낸 카카오톡을 단 한 글자도 바꾸지 않고 그대로 옮겨 쓴 것”이라며 “전체 분량은 원고지 약 10매”라고 밝혔다. A씨는 성적 수치심과 자기혐오를 불러일으키는 부분을 작가가 그대로 썼으며, 자신의 항의는 묵살됐다고 적었다. ‘그런 생활’은 ‘문학과사회’ 2019 여름호, ‘제1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문학동네), 김 작가의 소설집인 ‘시절과 기분’(창비) 등에 실렸다. 17일에는 자신이 김 작가의 첫 소설집 ‘여름, 스피드’(문학동네)의 표제작에 등장하는 영우라고 주장하는 인물 B씨가 나타났다. 그는 트위터에 “이름을 제외한 대부분의 요소들이 소설 속에 적시되어 아웃팅 당했다”고 적었다. 문학동네와 창비는 애초 소극적인 입장을 밝혔다 ‘꼬리 자르기’라는 비판에 직면, 태도를 바꿨다. 두 출판사는 A씨의 폭로가 나온 직후인 14일 당사자의 문제제기 후 해당 내용을 즉시 수정했다고 밝혔다. 16일에는 수정 전 판매분을 수정 판본으로 교환해주겠다고 공지했다가 B씨의 폭로가 나온 17일부터는 해당 단행본 3권에 대해 판매 중지를 선언했다. 김 작가는 A씨에 대해 “미스커뮤니케이션에 의해 빚어진 일”이라고 밝혔으나 B씨 건에 대해서는 사실을 인정한 것으로 알려졌다.●판매중지 선언에도 이어지는 여진… “문단 비평에도 책임” 출판사의 판매중지 선언에도 불구하고 ‘김봉곤 사태’의 여진은 이어지고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상에서 출판사와 작가의 소극적인 입장 표명에 거듭 항의하던 독자들은 해당 책들의 교환을 넘어 환불을 요구하고 나섰다. 김 작가와 친분이 있는 작가들의 SNS를 찾아가 ‘왜 입장 표명을 하지 않느냐’는 식의 사이버 불링도 빈번히 일어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자들의 폭로에 작가들도 분노했다. 김 작가와 함께 올해 젊은작가상을 수상한 김초엽 작가는 “소설의 가치가 한 사람의 삶보다 우선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계간 ‘창작과비평’ 가을호에 소설을 싣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역시 젊은작가상을 수상한 이현석 작가도 창비에서 발간하는 ‘창작과비평’, ‘문학3’ 보이콧에 이어 “제대로 된 사과가 나오지 않는다면 두 회사(문학동네·창비)와 맺은 출판 계약을 해지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오토픽션’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자신을 소설 속 영우라고 밝혔던 B씨는 입장문의 마지막에 “오토픽션이라는 이름하에 행하고 있는 지극히 개인적인 욕망의 갈취가 여전히 실재하는 인물들에게 가해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공론의 장에서 다시금 알릴 뿐”이라고 적은 바 있다. 최근 창비에 출판물 계약을 해지를 요청한 정소연 작가는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오토픽션이니 하는 흰소리만 하며 작가를 고평가해 온 ‘선생님’들에게도 분명 책임이 있다”며 문단 비평에 책임을 촉구했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김봉곤 작가, 성적 대화 인용 논란… 왜 수정 사실 공지 안했나

    김봉곤 작가, 성적 대화 인용 논란… 왜 수정 사실 공지 안했나

    김봉곤(35) 작가가 올해 젊은작가상 수상작인 단편 소설 ‘그런 생활’에 지인과의 카카오톡 대화 내용을 동의 없이 인용했다는 주장이 나와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김 작가는 자전적 경험에 기반한 ‘퀴어 서사’로 문단에서 많은 주목을 받는 작가다. 해당 소설은 2019년 ‘문학과사회’ 여름호에 첫 게재된 것을 시작으로 이듬해 4월 출간된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문학동네), 5월 출간된 작가의 소설집 ‘시절과 기분’(창비)에 실렸다. ●C씨 “성적 수치심, 자기 혐오 불러일으키는 부분 그대로 실어” 지난 10일 트위터에는 스스로를 ‘그런 생활’에 등장한 ‘C누나’라고 밝힌 인물이 글을 올렸다. C씨는 “‘C누나’의 말은 제가 김봉곤 작가에게 보낸 카카오톡을 단 한 글자도 바꾸지 않고 그대로 옮겨 쓴 것”이라며 “전체 분량은 원고지 약 10매”라고 밝혔다. 그는 김 작가가 2019년 5월 ‘그런 생활’을 발표하기 전, 작품에 등장시켜도 될 지 물은 적이 있으나 어느 정도 가공을 하리라고 예상하고 허락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 생활’을 처음 읽었을 때, 김 작가가 제 말을 띄어쓰기 하나 토씨 하나 바꾸지 않고 그대로 베껴 쓴 것, 우리가 했던 대화 중 성적 수치심과 자기혐오를 불러일으키는 부분을 그대로 쓴 것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C씨는 김 작가에게 항의해 수정을 약속받았으나, ‘문학과사회’와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시절과 기분’ 등 지면 세 곳에 해당 부분이 모두 수정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제가 변호사를 선임한 다음에야 김 작가는 원고를 수정했으나, 원고 수정 사실을 공지해달라는 제 요청은 지금까지도 무시당하고 있다”고 적었다. C씨에 따르면 C씨의 카카오톡 대화 내용이 담긴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시절과 기분’은 약 7만부 가량 배포됐다. 10년 차 문학 편집자인 C씨는 12일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명예훼손 소송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김 작가는 다음날인 11일 트위터에 입장문을 올렸다. 그는 “(C씨가) 주로 ‘그런 생활’의 소설적 완성도를 거론했기에, 저는 C씨의 코멘트를 항의와 수정 요청이 아닌 소설 전반에 대한 조언으로 이해했다”고 말했다. 이어 “(C씨의) 문제제기 후 이 부분에서 분명 소통이 미흡했음을 인지했고, 작가로서 미리 세심하게 살피지 못한 점에 대해 먼저 사과드린다”고 했다. 김 작가는 또한 “(C씨는) 소설 발표 1년여가 지난 시점인 지난해 4월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 특정 대사가 수정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했다”며 “즉각 사과하고 수정을 약속했다”고 말했다. 이후 김 작가는 ‘문학과사회’ 에 온라인 열람 서비스 중지를, 문학동네와 창비에 수록작 수정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수정 사실 왜 공지 안했나… 문학동네 “당사자, 작가 주장 엇갈려” 해당 사실이 알려진 후 트위터에는 문학동네와 창비의 입장 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빗발쳤다. 문학동네는 올린 입장문에서 지난 5월 8일 사안을 인지한 뒤 젊은작가상 심사위원들에게 알리고, 수정 원고를 보내 재심사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이어 “심사위원들은 해당 내용이 전체 작품을 판단하는 데 결정적인 요소가 아니라는 의견을 보내왔다”고 전했다. 수정 사실을 공지 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사용 허락 과정과 수정 이유에 대한 당사자의 주장과 작가의 주장이 일치하지 않는 사안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창비는 따로 입장을 내지 않았다. SNS 등에서는 이러한 출판사와 작가 측 해명이 석연찮다는 주장이 많다. 특히 책의 수정 사실을 공지하지 않은 이유에 대한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올초 이상문학상 사태로 절필을 선언했던 윤이형 작가는 13일 트위터에 “이번 일이 이상문학상 사태와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심사가 두 번 이루어졌고 작품집 내용이 수정된 것을 독자들이 계속 모르고 지나갈 수 있었다는 게 이해가 안 된다. 입장 차가 있었더라도 공지는 해야 했다”고 적었다. 김 작가는 이에 대해 지난 12일 서울신문과의 전화 통화에서 “(C씨가) 내밀한 대화가 공개된 것에 대한 고통을 호소했는데, 개고 사유를 고지해 (그 쪽으로) 관심이 쏠릴 수가 있어 고심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개인적인 미스커뮤니케이션에서 시작된 문제이고, 그것에 대해 사과하고 수정 요청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그 이후의 문제에 대해서는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메밀밭’ 지나 만난 모던보이… 평창에 깃든 이효석 문학혼

    ‘메밀밭’ 지나 만난 모던보이… 평창에 깃든 이효석 문학혼

    “돌밭에 벗어도 좋을 것을, 달이 너무도 밝은 까닭에 옷을 벗으러 물방앗간으로 들어가지 않았나. 이상한 일도 많지. 거기서 난데없는 성 서방네 처녀와 마주쳤단 말이네. 봉평서야 제일가는 일색이었지.” (소설 ‘메밀꽃 필 무렵’ 중에서)한여름 밤의 객줏집 토방 더위를 견디다 못해 등목을 하러 나간 개울가에서 하필이면 달이 너무도 밝은 까닭에 물레방앗간으로 들어가고야 만 허생원이란 사내가 있다. 지금에야 허생원이라는 호칭이 어울리지만 20여년 전에는 어디 그랬을까. 여름도 여름이거니와 혈기 왕성한 젊음 자체가 더위를 한층 더 못 견디게 했을 밤이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 대체 달이 얼마나 밝으면 한밤중에 개울가에서 옷도 못 벗을 정도였을까. 아니면 그곳에 있는 어떤 여인의 기척을 듣고 끌리듯 들어가게 된 사내의 겸연쩍고 뒤늦은 핑계였을까. 달보다 더 환한 그이가 하필이면 ‘봉평서 제일가는 일색’이고 우는 낯빛이니 그야말로 선뜻 달래 주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어쩌면 뻔한 운명. 그런 밤에는 그 여인이 아닌 누구라도 우는 모습을 달래 줬을 터이지만, 하필 그 여인이라는 이 얄궂은 소설적 장치라니. 소설은 그 둘을 밤새 물레방앗간에 머물게 한 뒤에 다음날 아침이 채 밝기도 전에 허생원을 도피시킨다. 둘만의 꽃잠을 뒤로하고 줄행랑친 사내 대신 홀로 남겨진 여인은 달도 차지 못한 아이를 낳고 친정에서마저 내쳐진다. 핏덩이 아이와 함께 도망 나온 미혼모의 삶이야말로 우리가 흔히 짐작할 수 있는 고난 그 자체였을 터. 지금이라면 온갖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나 배드 파더스 같은 사이트에 올려라도 두겠지만, 때는 바야흐로 1920년. 장돌뱅이는 장돌뱅이대로, 객줏집 주모가 된 애 딸린 여인은 여인대로의 신산한 삶을 이어갈 수밖에 없는 애석한 소설의 흐름이 있다. 그리고 그 문장들을 내내 달빛과 그것을 되비춘 메밀꽃밭이 있다.●여름이면 생각나는 ‘메밀꽃 필 무렵’ 달 아래서 소금을 흩뿌려 놓은 듯 빛나는 메밀밭을 뒷배로 둔 물레방앗간 서사가 올여름에도 돌아왔다. 아니 메밀꽃이 피는 시기여야 하니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노을을 등에 지고 걸어오는 장터의 당나귀들처럼 슬며시 오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이 다 달빛이 너무 이지러져서 메밀밭이 소금을 흩뿌려 놓은 듯이 밝았던 까닭이다. 예나 지금이나 인간사 모든 일들은 다 햇빛 아래서, 달빛 밑에서 이루어지는 것들 아니겠는가. 개울가와 메밀밭이 오밤 중에도 대낮처럼 밝았던 까닭이라는 미문을 등에 지고 허생원과 동이가 왼손을 휘두르며 아직도 길을 걷고 있는 중이다. 강원도 평창 아니 봉평의 풍경이다. 순전히 소설가 이효석이 그려 놓은 메밀꽃밭을 찾으러 객줏집과 개울가 그리고 물레방앗간을 보러 다녀왔다. 호는 가산, 평창 봉평면에서 출생한 이효석은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를 거쳐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숭실전문학교, 대동공업전문학교 교수로 재임했다. 1928년 ‘도시와 유령’을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구인회에 합류하기도 했다. 미문을 활용한 심미주의적 문학관과 프롤레탈리아적 세계관으로 고향 마을 농민들의 신산한 삶을 여실히 그려 낸 작품들로 유명하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메밀꽃 필 무렵’과 ‘수탉’, ‘돈’을 포함해 ‘해바라기’, ‘황제’, ‘화분’, ‘벽공무한’ 등이 대표작으로 꼽힌다.●평창·평양·서울 오가며 인간 배경에 천착 이효석의 삶은 고향인 평창과 서울 그리고 평양으로 이어지는데 그는 서울 살이의 피폐함과 도시민의 향수 그리고 고향을 주요 배경으로 한 향토적인 내용의 소설을 주로 쓰며 인간의 삶과 배경에 관해 천착했다. 그리하여 그의 작품세계는 시가지와 농촌, 향수와 도시의 삶에 대한 동경이 교차해 나타난다. 어느 한 가지에 집중된 시선보다는 사회의 여러 모습에 고루 눈을 돌렸으며, 고향 마을의 가난하고 피폐한 삶일지언정 그들의 삶을 바라보는 데 어떤 잣대를 들이대지도 않았다. 미학적인 문장과 인간에 대한 애정을 보다 깊이 있게 드러내고자 했다. ‘동반자 작가’ 운동에도 참여하면서 유진오, 채만식, 유치진 등과 함께 한국에서도 계급주의 문학 운동이 왕성하게 일어나게 기여했다. 그의 소설이 핍진한 삶과 인간 군상들이 주변의 풍경과 어우러져 보다 매혹적인 문장으로 그려지는 이유인 셈이다. 봉평과 경성을 오가며 보낸 유년기와 경성과 평양을 오가며 직접 경험한 삶의 여러 모습들이 대상에 대한 감각적이고도 섬세한 묘사 능력이 뛰어난 소설을 쓰게 하는 데 큰 지향점이 돼 주었던 듯싶다. 1942년 5월 25일 병으로 세상을 뜨기 전까지도 그는 소설을 썼고, 사람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사랑했다. 그가 인간에 대한 애정과 삶에 대한 진정성을 놓지 않은 작가로 추앙되는 이유다. 그에 대해 이리 자세히 쓰는 이유는 ‘나는 과연 작가 이효석에 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에 대한 물음 때문이었다. 작가가 되기 전에는 국어 교과서의 지문과 언어영역 문제집에서 문제를 풀었고, 한컴타자교사의 ‘메밀꽃 필 무렵’을 타자 연습 삼아서 필타했다. 또 효석 백일장에서는 땡볕에 앉아 시제를 기다리던 습작 시절의 일도 뇌리를 스쳤다. 살면서 이래저래 너무 많이 들은 작가의 이름과 작품명, 여기저기에서 볼 수 있는 ‘메밀밭’의 서사 덕분에 오히려 소설가 이효석을 더 모르고 지내 온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서였다. 소설을 쓰며 학생들을 가르치는 입장이 돼서도 그 사정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이효석 문학상 수상 작품집’의 작품들을 찾아 읽거나 ‘효석 백일장’에서 학생들이 몇 명 정도 입상을 했는지 묻는 사람이 돼 있기도 한 실정이었다. 그래서 더 가보고 싶었다. 아니 가봐야 했다. 내가 아는 소설가 이효석은 원두 커피를 아주 사랑해서 서울과 평양, 평창을 오가며 원두를 구했다는 커피 애호가이자 축음기로 LP를 듣는 것이 취미고 프랑스 여배우를 좋아하기도 한, 스키가 취미인 멋쟁이였다. 이효석 선생의 커피 이야기는 내 단편소설 ‘커피 다비드’(‘유빙의 숲‘, 문학동네)에도 실려 있다. 직접 로스팅을 하고 커피를 내려 마시는 내가 이효석 선생을 만난다면 가장 먼저 건네고 싶은 원두는 케냐AA 피베리다. 홀빈(Hole Bean)인 까닭에 숙성도 오래 걸리지만 커피의 진주 혹은 에센스라고 불릴 정도로 맛과 향미가 뛰어난 원두이기 때문이다. 그와 함께 봉평 메밀꽃 주변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이런저런 질문을 하고 싶다. “그 여인을 꼭 그렇게 불행하게 만들어야 했나요.” “그런데 나중에 허생원이랑 다시 잘 되나요?”●마을 어귀서부터 느껴지는 ‘이효석 마을’ 봉평에 도착하기도 전에 이곳이 이효석의 고장, 메밀꽃 군락이구나를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봉평 장터와 효석문화마을 어귀에서부터 달려드는 여러 가지 글자들은 모두 이효석과 ‘메밀꽃 필 무렵’을 가리켰다. 동이네, 물레방앗간, 메밀꽃, 충주집, 허생원, 효석로, 효석공원 등등의 상호명들이 즐비해 있던 탓이었다. 그야말로 ‘이효석을 위한, 이효석에 의한’ 마을이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는 괴테 생가와 괴테 로가, 체코의 프라하에는 카프카 생가와 그 마을이 있다. 셰익스피어와 몽고메리, 헤르만 헤세, 카뮈 등 세계적인 문호들이 나고 자란 곳에는 어김없이 그들을 기리는 거리와 생가, 도서관을 비롯해 그의 문학을 경외하고 기념하려는 것들로 넘쳐난다. 나 역시도 세계 곳곳을 여행하면서 꼭 빼놓지 않고 찾아보았던 여행지들 중에 하나가 작가들의 생가와 그들이 특히 자주 드나들었다던 카페(그곳에서 마시던 음료)와 거리였다. 우리나라에서도 그러한 장소를 꼽는다면 단연 평창의 이효석 문화마을이 아닐까. 문인들의 거리를 따라 대한민국 작가 로드맵을 만들어 볼 수도 있으니 말이다. 코로나19로 생활과 마음이 위축돼 있어 ‘코로나 블루’라고 불리는 시대다. 선뜻 어디를 나서기도, 습관처럼 방학 때마다 미리 사둔 비행기 티켓을 꺼내 볼 수도 없는 날들이 돼 버렸다. 그때 책장에 있는 이효석의 책 한 권을 뽑아 들고 문득 평창으로 ‘홀로라도’ 훌쩍 떠나 보는 것은 어떨까. 격리를 해야 하는 때에는 책으로 여행을, 그리고 잠시 바람을 쐬어야 할 적에는 그 책을 배경으로 한 마을에서 작가와 작품을 보다 현실감 있게 만나 볼 수 있는 기회를 추천해 본다. 선뜻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대에 문득 어디라도 가고 싶을 적에는 봉평으로 그리고 이효석의 문장 속으로 물레방아가 물을 휘감아 돌듯이 그렇게. 그러다 보면 길 위에서 허생원을 만날 수도, 왼손잡이 동이를 만날 수도 있겠다. 그들과 같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면 넌지시 고향을 물어볼 수도 있는 일 아니겠는가. 혹시 어떤 인연을 만나게 될 수도 있잖은가. 어떤 사랑은 그렇게 시작될지도 모른다. 그 옛날의 허생원과 성처녀의 그 마음처럼 말이다. 활짝 핀 메밀꽃밭을 배경으로, 달빛 아래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게 된다면 좋겠다. 한없이 휘도는 물레방앗간에서라면 그야말로 금상첨화겠다. 올여름과 가을에는 각자의 메밀꽃밭과 물레방앗간으로 떠나보시길. 소설가 이은선
  • 엔니오 모리코네 첫 내한공연, 오늘 밤 TV서 본다

    엔니오 모리코네 첫 내한공연, 오늘 밤 TV서 본다

    SBS는 지난 6일 별세한 영화 음악의 거장 엔니오 모리코네의 2007년 첫 내한 공연을 10일 방송한다. 이 공연은 1부 삶과 전설, 2부 신화의 모더니티, 3부 비극, 서정 그리고 서사시의 시네마로 구성됐다. ‘언터쳐블’을 시작으로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피아니스트의 전설’, ‘석양의 무법자’, ‘석양의 갱들’, ‘미션’, ‘시네마천국’ 등의 명곡들을 만나볼 수 있다. 엔니오 모리코네는 1928년 이탈리아 로마에서 태어나 클래식 음악을 전공하고 1955년 영화 음악을 시작했다. 이후 500여 편에 달하는 곡을 작곡해 영화보다 더 유명한 영화음악을 다수 남겼다. 특히 드라마, 호러, 스릴러 등 장르를 넘나들며 자신만의 독특하고 향수 어린 감수성과 감미로운 선율을 선보였다. 2007년 첫 내한공연에서는 엔니오 모리코네가 직접 지휘를 맡았으며, 다섯차례의 커튼콜을 받은 것으로 유명하다. 2011년 5월 데뷔 50주년을 기념해 한 번 더 내한 공연을 가졌다. 밤 11시 10분 방송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 흑인 캐스팅보다 역사 미화에 주목… 뮤지컬 ‘해밀턴’도 논란

    흑인 캐스팅보다 역사 미화에 주목… 뮤지컬 ‘해밀턴’도 논란

    유색인종 배우들이 출연해 미국 건국 역사를 이야기하는 브로드웨이 최고 인기 뮤지컬 ‘해밀턴’이 흑인 인권 운동을 계기로 최근 논란의 중심에 섰다. 배우의 인종·국적에 얽매이지 않는 ‘컬러 블라인드 캐스팅’으로 한때 미국의 문화 다양성을 상징한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조지 플로이드 사건’을 계기로 미 과거사에 대한 재평가 바람이 불며 이 작품을 바라보는 시선 또한 달라지고 있다. 디즈니 스트리밍 서비스 디즈니 플러스는 미 독립기념일 휴일인 지난 3일(현지시간) 뮤지컬 ‘해밀턴’의 영상물 버전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이자 초대 재무장관인 알렉산더 해밀턴의 이야기를 다룬 이 작품은 2016년 토니상 11개 부문을 석권하고 한때 최고가 티켓 가격이 100만원까지 치솟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해밀턴’의 안방극장 상륙에 독립기념일 연휴 동안 디즈니 플러스의 다운로드 건수가 급증하기도 했다. ‘해밀턴’은 흑인 배우가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 역할을 맡는 등 흑인·라틴계 배우를 캐스팅하는 전복적 시도로 백인 중심의 미국 역사를 새롭게 다루며 주목받았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관람한 후 출연진을 백악관에 초청하는 등 한때 ‘오바마 시대의 뮤지컬’이라는 평가까지 받았지만 안방극장에서 이 작품을 바라보는 시선은 4년 전과 조금 달라졌다. 조지 워싱턴, 토머스 제퍼슨과 같은 건국 주역들의 동상 철거 운동까지 벌어지는 상황에서 이들을 미화한 ‘영웅 서사’를 불편하게 바라보는 사람이 늘었기 때문이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해밀턴’의 제작진은 이 뮤지컬이 계속해서 젊은 예술가들과 유색인종 활동가들에게 영감을 주기를 바라지만, 일부는 백인 노예 소유주들을 다룬 이 작품이 과연 ‘기회와 정의’라는 미국의 신화를 말할 수 있는지 회의적으로 본다”고 지적하며 “‘해밀턴’은 미 백인 과격주의자들의 역사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보여 준다”는 역사학자 리라 몬테이로 럿거스대 교수의 견해를 소개했다. 최근 ‘심슨 가족’ 등 애니메이션에서 백인 성우가 유색인종 캐릭터의 더빙을 맡지 않겠다고 밝히는 등 인종 이슈가 미 대중문화계 화두가 되고 있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지적도 나온다. 뉴욕타임스는 “이제는 단순히 유색인종 배우가 백인 역할을 맡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며 “미국은 여전히 인종 문제와 싸우고 있다”고 전했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코로나19, 돼지독감에 페스트까지…중국발 전염병에 불안감

    코로나19, 돼지독감에 페스트까지…중국발 전염병에 불안감

    코로나19가 휩쓴 중국에서 신종 돼지독감 바이러스에 이어 흑사병까지 전염병이 잇따라 발견 혹은 발생하면서 불안이 커지고 있다. 전 세계에서 1200만명 가까이 확진되고, 54만명 가까운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간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팬데믹)이 종식되지 않은 상황에서 또 다른 전염병이 2차, 3차로 덮칠까 우려하는 분위기다. 中네이멍구 목축민 1명 흑사병 확진 판정 6일(현지시간) 중국 네이멍구 자치구 바옌나오얼시 위생건강위원회에 따르면 전날 이 지역 목축민 1명이 림프절 흑사병 확진 판정을 받아 조기 경보 4단계 중 2번째인 ‘비교적 심각(3급)’ 경보를 연말까지 발령했다. 흑사병은 쥐벼룩에 물려 세균에 감염된 들쥐나 토끼 등 야생 설치류의 체액이나 혈액에 접촉하거나 벼룩에 물리면 전염될 수 있다. 사람 사이에서는 폐 흑사병 환자가 기침할 때 나오는 작은 침방울(비말) 등을 통해서 전염이 이뤄진다. 신종 돼지독감 팬데믹 가능성 경고도 나와 앞서 지난달에는 중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소속 연구진이 팬데믹 가능성이 있는 신종 돼지독감 바이러스가 발견됐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G4’로 명명된 이 바이러스는 신종인플루엔자(H1N1) 계통으로 돼지 간에 전파되지만, 사람도 감염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연구진은 사람과 유사한 감염 증상을 보이는 패럿을 이용한 바이러스 실험에서 신종 바이러스가 다른 바이러스보다 더 심각한 증상을 유발하며, 전염성이 강하고, 인간 세포에서도 자가복제됐다고 밝혔다. 돼지 사육장에 근무하는 이들을 상대로 한 항체검사에서 전체 노동자의 10.4%가 이미 이 바이러스에 감염됐던 것으로 나타났다. 아직 사람 간 감염 사례는 보고되지 않았지만 바이러스가 변이를 거쳐 사람 간 감염이 이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 연구팀은 바이러스가 새롭게 발견된 것인 만큼 사람들은 이에 대한 면역력이 거의 없으며, 계절성 독감으로는 G4에 대한 항체가 생기지 않는다는 점도 지적하면서 팬데믹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중국 정부는 지난 1일 이 문제를 주시하고 있다면서 어떠한 바이러스의 전파도 막기 위해 필요한 모든 조처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중국 CDC는 신종 바이러스가 즉각적인 팬데믹 위협은 아니라고 결론내렸다. 국내 중앙방역대책본부는 “혹시 모를 대유행에 대비해 면밀한 관찰과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중국 탓? 바이러스는 잠복하다 여건 맞으면 창궐” 다만 학계에서는 중국에서 전염병 발병이 가장 먼저 관측된다고 해서 해당 세균이나 바이러스의 기원을 중국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는 견해가 나온다. 톰 제퍼슨 영국 옥스퍼드대 증거기반의학센터 선임연구원은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에 “많은 바이러스가 전 세계 곳곳에 활동을 중단한 상태로 있다가 여건이 유리해지면 창궐한다”고 전염원의 일반적 특성을 설명했다. 제퍼슨 연구원은 “이는 바이러스들이 생겨났을 때처럼 빠르게 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덧붙였다. 1918년 서사모아제도에서 발생한 스페인 독감은 단적인 사례로 거론된다. 제퍼슨 연구원은 “30%가 스페인독감으로 사망했는데, 그들은 바깥 세계와 아무런 소통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런 사건을 설명할 수 있으려면 바이러스가 반드시 어디서 와서 어딘가로 가기보다는 항상 존재하고 인구밀도나 환경 상황 등 무엇인가로 인해 불이 붙는 것으로 봐야 한다”며 이러한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레깅스 보라고 운동하는 거 아냐, 날 찾으려는 거야!

    레깅스 보라고 운동하는 거 아냐, 날 찾으려는 거야!

    살을 빼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잘 먹기 위해서 운동하는 여자가 최근 화제다. 주인공은 코미디TV ‘맛있는 녀석들’의 출연자인 코미디언 김민경이다. ‘맛있는 녀석들’의 유튜브 콘텐츠 ‘시켜서 한다! 오늘부터 운동뚱’에서 그는 운동 경험이 전무하지만 어떤 동작이든 척척 해내는 ‘로보캅’으로 변신했다. ‘근수저’(근육 금수저)라고 불리며 무거운 운동 기구를 번쩍번쩍 들어 올리는 그의 모습에서 건강한 자극을 받아 운동을 시작했다는 반응이 이어진다. 특히 여성 시청자들이 김민경에게 환호하는 건 그가 다이어트 강박으로부터 해방감을 선사하기 때문일 터다. 유독 여성에 대한 외모 규범이 엄격한 사회에서 여성의 몸은 온갖 시선이 쏠리는 ‘전쟁터’나 다름없다. 날씬하고 아름다운 몸매를 가꾸지 않으면 ‘자기 관리’를 하지 않는 나태한 사람으로 치부당하는 까닭에 여성은 늘 자신을 감시하고 검열한다. 그런 가운데 운동 후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오늘도 잘 놀고 잘 먹었다’고 말하는 김민경의 모습이야말로 여성들에게 진한 쾌감을 선사한다. 오프라인에서 여성들을 위한 운동 수업을 기획하고 유튜브에서 운동 채널을 운영하는 사회적기업 ‘운동친구’가 지난 4월부터 활동을 시작하게 된 목적도 이와 맞닿아 있다. ‘운동친구’는 여성에게 운동의 목적이 반드시 ‘아름다움’일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리고자 한다. 여성들이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부터 벗어나 나의 시선으로 내 몸을 바라보게 하는 것. 맹목적인 다이어트가 아니라 신체를 단련하기 위한 목적으로 운동을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것. 나의 안전을 지킬 수 있는 체력을 키우기 위해 운동을 하도록 돕는 것이 ‘운동친구’가 탄생한 이유다. ‘운동친구’의 대표이자 지난해 3월 출간한 에세이 ‘운동하는 여자:체육관에서 만난 페미니즘’의 저자 양민영씨와 ‘운동친구’에서 일일 운동 수업을 기획하는 이효나씨, 운동 영상 콘텐츠를 제작하는 강지영씨를 만나 여자들이 운동을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들어 봤다. -‘운동친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요. 사회적기업 형태로 운영하는 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양민영 지난해 책 ‘운동하는 여자’를 냈을 때 이벤트성으로 여성들을 위한 일일 운동 수업을 진행했었어요. 계속 이어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었어요. 고민하다 운동을 사회적인 문제로 접근하면 사업의 형태로 진행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됐어요. 검색해 보니 우리나라 10~20대 여성은 60대 여성보다 운동을 안 한다는 자료가 있더라고요. 이건 사회적인 문제라는 확신이 들었어요. 그래서 사회적기업가 육성 사업에 지원을 했고요. 지난 4월부터 활동을 시작했는데 지금까지 일일 운동 수업을 두 번 진행했어요. 지난 5월부터는 유튜브 채널을 개설해서 집에서 할 수 있는 운동 영상을 제작해 올리고 있는데 시간이나 비용 면에서 운동하기 어려운 분들의 반응이 좋았어요. 온·오프라인 채널을 통해 여성들이 생활 속에서 손쉽게 운동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을 기획하려고 합니다. -일일 운동 수업을 진행한 소감은요. 양민영 운동 종목에 따라서 외부 전문가들을 초빙해서 수업을 진행하고 있어요. 지금까지 역도를 이용한 데드리프트 운동과 호신 발차기 기술을 익힐 수 있는 운동을 함께했어요. 참가자들이 여자들끼리 수업을 해서 안전한데다 남자들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서 좋았다는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어요. 나중에는 대규모 운동회를 한다든지 여성들이 참여하는 대회도 열어 보고 싶어요. 이효나 첫 수업 때는 한국에서 크로스핏 역도를 가장 잘 하는 여성 전문가가 지도하셨고, 두 번째 수업 때는 격투기 선수 생활을 10년 한 분이 가르쳐주셨어요. 저는 그냥 운동을 잘하는 여자들이 운동을 지도하는 모습을 보고만 있어도 고무되더라고요. 여자 분들이 멋있게 운동하는 모습을 보면 ‘멋있다.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는 기분이 들거든요. 다들 그런 부분도 좋아해주었어요. 세 사람은 취미로 운동을 시작했다. 양 대표는 처음에는 다이어트 목적으로 유산소 운동을 시작했다가 약 5년 전부터 크로스핏을 하면서 근력 운동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이씨는 친구 권유로 무에타이를 시작한 이후 격투기와 주짓수를, 강씨는 1년 전부터 개인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프로젝트 팀에서 여성들을 위한 운동회를 개최한 것을 계기로 럭비와 유사한 얼티미트와 헬스 트레이닝을 하고 있다. 각각 다른 이유로, 다른 종목으로 운동을 처음 접했지만 세 사람이 운동을 통해 얻게 된 효과는 비슷했다. -운동을 하면서 느낀 삶의 변화가 있나요. 양민영 체력이 좋아진 것과 더불어 정서적인 면에서 큰 도움을 받았어요. 예전의 저는 생각만 많고 행동은 못하는 사람이었어요. 생각한 것 중 한두 가지를 실행으로 옮길까 말까였는데 운동을 하면서 ‘무조건 내가 움직여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죠. 행동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체화하다 보니 다른 일을 할 때도 ‘할 수 있겠구나. 해보자’ 이런 도전 의식이 생기더라고요. 이효나 케틀벨 같은 도구를 이용한 운동을 할 때 처음부터 무거운 걸 들어 올릴 수는 없잖아요. 몇 주에 걸쳐서 점점 더 무거운 케틀벨을 들다 보면 하는 만큼 느는 게 운동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는 평소에 벼락치기를 하거나 어떻게든 꼼수를 부리는 사람이었는데 운동에서는 그런 게 안 통하거든요. 꾸준히 하면 된다는 점을 알게 된 후로는 긍정적인 사람이 된 것 같아요. 양 대표는 지난해 펴낸 에세이 ‘운동하는 여자’ 중 ‘레깅스, 너 보라고 입은 게 아닙니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이렇게 짚었다. ‘파이고 달라붙는 옷까지 갈 것도 없이 여성의 몸은 가만히 있어도 대상화된다. (중략) 남성들이 이 말을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만약에 눈앞에 어떤 여성이 운동을 하고 있다면 그는 운동을 하는 동시에 자신을 대상화하는 시선과 맞서는 중이다’라고. 신체를 단련하는 공간인 체육관이 여성들에게는 생각보다 자유롭지 못한 공간임을 짚는 구절이다. -체육관에서 다른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불편했던 적이 있나요. 강지영 운동을 배우고 싶어서 헬스장에 상담을 하러 갔는데 트레이너가 저를 보더니 ‘지금도 딱 보기 좋은데 운동을 왜 하느냐’고 묻더라고요. 근력을 키우기 위해서 체육관에 간 건데 트레이너는 무조건 제가 살을 빼러 왔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러다가 친구랑 헬스장에 가서 운동을 하고 있는데 주변 남자들이 저랑 친구를 너무 뚫어지게 쳐다봐서 운동 자체를 하기 싫더라고요. 양민영 미국 사람들은 조깅을 많이 하잖아요. 어떤 통계를 봤는데 조깅하는 여성 열에 여덟아홉명은 조깅을 하다 성추행 발언을 들었다고 하더라고요. 여성이 밖에 나와서 몸을 움직이는 것은 다른 사람의 시선을 끌고 싶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근력 운동 중에 데드리프트를 하려면 엉덩이를 뒤로 많이 빼야 하는데 어떤 여성이 그런 동작을 하면 미디어는 보통 섹시함과 연결하잖아요. 여성들이 운동이 힘들고 할 여건이 안 되니까 못하는 경우도 있지만 사실 시선 때문인 경우도 많아요. -운동으로 몸을 단련하면서 내 몸을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졌을 것 같은데요. 양민영 예전엔 제 다리가 가늘지 않아서 불만이 많았어요. 그땐 ‘다리는 가늘지 않지만 키는 크니까 괜찮아’ 이런 식으로 제 자신을 평가했어요. 막상 운동을 해보니까 하체가 발달하고 뼈대가 큰 건 힘을 내고 운동을 하기에 굉장히 좋은 조건이더라고요. 돌아보니 틀에 제 몸을 가둬놓고 있었던 거죠. 서른 살 넘어서까지 한 번도 제 몸을 주인이 되어서 바라본 적이 없었다는 게 충격이었어요. 늘 어떤 물건을 평가하듯이 바라본 게 제 스스로에게 미안한 일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이효나 운동을 하기 전에는 제 팔다리를 이렇게까지 쭉쭉 뻗어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격한 운동을 하기 전까지는 제 몸이 얼마나 많은 기능이 있는지도 몰랐고요. 그저 시각적인 부분에서만 제 몸을 바라봤죠. 신체 외적인 부분만 몰입해서 본다면 1㎝, 1㎏이 중요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시야를 넓히면 오히려 운동을 할 때 몸이 어디가 아픈지, 어떤 느낌이 드는지 감각에 집중하게 되죠. 상대적으로 노출이 많아지는 여름철이 아니어도 한국은 늘 다이어트 열풍이 거세다. 눈과 귀를 현혹하는 온갖 다이어트 식품과 병원의 각종 시술 광고가 넘쳐난다. 여성의 경우 ‘꿀벅지’, ‘애플힙’, ‘황금 골반’을 갖추지 않으면 이상적인 체형에서 벗어난 듯 사회는 늘 다이어트를 강요한다. ‘운동친구’의 운영진들은 특히 여성 청소년들이 건강보다 몸매를 가꾸는 데 집중하는 상황을 우려했다.-다이어트 산업은 여성들의 삶에 깊숙이 침투해서 다양한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아요. 양민영 다이어트 마케팅의 문제는 ‘아, 살을 못 빼면 이 사회에 적응을 못하는 거구나’ 하고 압박한다는 점이에요. 어떤 전문가들은 자기 만족을 위해 적당한 다이어트는 괜찮은 것이라고 하죠. 생각해 보면 다이어트에는 상한선이 없는 것 같아요. 그 기준은 계속 올라가잖아요. 더 큰 문제는 연령대의 제한도 없다는 거예요. 아이들의 외모를 두고도 ‘완성형 미모’라는 식으로 평가를 하잖아요. 성형 광고도 지하철과 같은 일상 공간에 너무 많이 노출되어 있고요. -맹목적인 다이어트보다 나 스스로를 위한 운동에 힘쓰는 게 중요한 이유를 꼽자면요. 양민영 운동은 제가 온전히 자립하는 과정에서 꼭 필요한 요소라고 생각해요. 나의 안전과 나의 자유를 내가 스스로 책임지는 게 자립이잖아요. 그런데 우리 사회는 여성은 남성과 파트너가 되어야 하고 그 남성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한다는 개념을 어릴 때부터 계속 주입하는 것 같아요. 격투기를 배웠을 때 그 운동이 제 안전과 관련되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체력 면에서도 그렇고 외부 위협에 대해서도 그렇고요. 혹시 누가 나를 공격할 때 어떻게 막아야 하는지 배울 수 있었거든요. 다른 여성들도 그걸 경험했으면 좋겠어요. -‘운동친구’가 앞으로 여성들에게 선사하고 싶은 운동 경험은 어떤 것인가요. 양민영 나중에는 많은 여성들이 뭉쳐서 할 수 있는 운동을 해보고 싶어요. 여성들에게 승리하는 경험을 선사하고 싶습니다. 여성들은 뭉쳐서 뭔가를 이뤄낸 경험을 해 본 적이 드문 것 같아요. 장기적으로는 팀별 스포츠를 경험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준비할 예정입니다. 또 이런 움직임이 붐이 되고 이런 사회적 분위기가 어린 여성들에게까지 확산되면 좋겠어요. 저희가 일일 수업을 마치고 운동이 끝나면 참가자들에게 메시지를 써달라고 부탁하거든요. 과거에 운동을 하지 않았던 나에게 편지를 쓰거나 혹은 15살의 어떤 여성에게 운동을 왜 해야 하는지 깨달은 바가 있으면 써달라고요. 그렇게 모은 메시지들을 어떤 방식으로든 전달하고 어린 친구들도 운동을 즐길 수 있는 문화를 만들고 싶어요.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초보 야구감독의 경영 철학 ‘숫자 너머 사람 마음을 보라’

    초보 야구감독의 경영 철학 ‘숫자 너머 사람 마음을 보라’

    회사 경영난에 산하 야구팀 해체 위기인사고과로 해고하는 임원진과 달리데이터에 가려진 선수 마음 읽는 감독 루저 성장 서사 속 경영자 ‘이즘’ 발견 올 초 인기리에 종영된 SBS 드라마 ‘스토브리그’는 ‘팬들의 눈물마저 마른 꼴찌팀에 새로 부임한 단장이 남다른 시즌을 준비하는 뜨거운 겨울 이야기’다. 박민규 작가의 소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은 만년 꼴찌 삼미의 팬이었던 소년 이야기다. 이토록 유독 야구에 관해서는 꼴찌, 루저를 다룬 얘기가 많다. 야구가 워낙 인간사를 집약한 스포츠이기도 하지만, 야구판에서의 루저가 곧 사회에서의 루저로 이어지는 까닭도 있는 것 같다. 루저의 성장 서사 만큼 흔하지만 재밌는 것도 없다.소설 ‘루스벨트 게임’도 야구 루저에 관한 얘기다. ‘한자와 나오키’ 시리즈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일본 작가 이케이도 준의 밀리언셀러가 국내에 번역, 출간됐다. 한국에서는 ‘케네디 스코어’로 통하는 ‘루스벨트 게임’의 뜻은 “야구에서 가장 재미있는 게임 스코어는 8대7”이라는 미국 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대통령의 말에서 따왔다. 전자부품을 만들어 납품하는 중소기업 아오시마제작소는 사회인 야구팀을 운영하고 있다. 한때는 잘나갔지만, 지금은 패배의 연속이라 회사 직원들도 응원을 꺼리는 팀이다. 팀의 감독은 에이스 투수, 4번타자와 함께 업계 라이벌이자 야구로도 경쟁 중인 미쓰와전기로 내빼버렸다. 전 세계적인 경기 불황의 여파로 회사가 어려워지자, 내부에서는 야구팀을 해체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진다. 오후에는 줄곧 훈련을 하며, 대개가 파견직원으로 이뤄진 야구팀을 보는 눈길이 고울 수가 없다. 여기에 고교 야구팀 감독 경험이 전부라는 햇병아리가 신임 감독으로 부임한다. ‘루스벨트 게임’은 짜릿한 야구의 승부와 긴박한 기업 경영의 세계가 절묘하게 겹쳐 재미를 만들어 낸다. 데이터의 세계인 야구와 마찬가지로, 기업 경영도 작지 않은 부분에서 데이터에 기반한다. 구조조정을 결정한 아오시마제작소는 숫자로 매겨진 인사고과에 따라 직원 해고를 결정한다. 이때 기초가 되는 숫자는 객관적으로 보이지만, 기실 객관적이지 않다. 해당 사원과 다툼이 있는 상사가 결정권자로서 점수를 매기고, 본인 자신은 일 안 하는 한량인 경우가 수두룩하다. 구조조정을 실무적으로 진행하는 총무부장이자 야구팀 담당자 미카미의 고민은 여기서 온다. 데이터 너머의 사람을 보는 것이 미카미의 일인 탓이다. 대학에서 스포츠과학을 전공해 선수 기용에 데이터를 적극 활용하는 신임 다이도 감독에게, 데이터는 무기이기보다도 선수들 마음을 읽는 지표다. 숫자 너머를 봐야 한다는 깨달음은 회사 전체를 경영하는 임원진에게는 철학일 수밖에 없다. 아오시마제작소의 전임 사장이자 지금은 회장으로 물러난 아오시마는 현 사장인 호소카와에게 말한다. “해고가 따르는 사람의 숫자를 줄일 때에는 경영자의 ‘이즘’(ism)이 필요하네”(55쪽) ‘루스벨트 게임’이 말하는 8대7이라는 스코어는 득점도, 실점도 많이 했다는 뜻이다. 이 소설에 점수를 매기라면 사실 ‘루스벨트 게임’이 될 것 같다. 속도감 있는 전개, 통쾌한 대사 등이 주는 재미가 득점의 영역이라면, 착한 사람들의 얘기가 주는 오글거림은 실점의 영역에 속한다. 그럼에도 세상을 바꾸는 것은 착한 사람들이 품는 희망이라는 전제를 감안하면, 소설을 읽으며 오글거림에 대처하는 항마력(손발이 오그라드는 글이나 사진을 보고 버틸 수 있는 수치를 뜻하는 신조어)이 조금은 늘어날 것 같다. ‘7대0의 열세라면 8점을 빼앗으면 되지 않는가?’라는 소설의 주제는 야구에서도, 인생에서도 실현 가능하기 때문에.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장덕천 부천시장, 코로나위기 유연한 대응…후반기 10대 역점사업 제시

    장덕천 부천시장, 코로나위기 유연한 대응…후반기 10대 역점사업 제시

    장덕천 경기 부천시장이 1일 민선7기 2주년을 맞아 지난 2년간 가장 큰 성과로 다가올 미래를 똑똑하게 대비하며 일궈낸 스마트시티 분야 성과를 꼽았다. 이날 장 시장은 “사상 초유의 코로나19 위기 속에서도 부천시는 다가올 미래에 더 유연하게 대응하며 더 살기 좋은 도시로 성장해나갈 것”이라고 포부를 밝히며 후반기 10대 역점 과제를 발표했다. 장 시장은 부천형 스마트시티 조성 계획은 기초 지자체 중 유일하게 국토교통부의 ‘스마트시티 챌린지’ 본사업에 선정돼 위상을 확고히 했다. 교통 분야에서 성과도 주목된다. 부천시는 제26회 ITS 세계대회 지방정부 명예의 전당상, 지능형교통체계(ITS) 정부혁신 대통령 표창 등을 수상하며 스마트한 기술력을 입증했다는 호평을 받았다. 시는 버려지는 에너지 업사이클링을 통한 미세먼지 저감 사업은 제16회 대한민국 지방자치 경영대전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하며 지속가능한 개발을 견인하는 선도적 환경 정책으로 인정받았다. 2년 연속 민선7기 공약 평가 최고 등급(SA)을 받으며 그 성과를 인정받은 장 시장은 “앞으로의 2년은 생활 전반을 아우르는 10대 역점과제를 통해 시민이 누리는 새로운 부천을 채워가는 내실 있는 과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래 부천의 신성장 핵심 동력, 대규모 개발 사업 추진 시는 5대 핵심 개발사업을 미래 부천 신성장의 핵심 동력으로 삼아 추진할 방침이다. 대장 신도시는 지난 5월 공공주택지구로 지정·고시되며 날개를 폈다. 시는 대장 신도시가 4차 산업 기반의 첨단산업을 유치하는 등 자족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68만㎡ 용지를 공급할 계획이다. 부천 영상문화산업단지도 상동 일원에 38만 2743㎡ 부지에 문화산업 융·복합센터를 비롯해 미디어 전망대, 국립영화박물관, e-스포츠 경기장 등을 조성하며 뉴콘텐츠생산 거점화를 위한 선봉에 나선다. 종합운동장 일대 융·복합개발사업은 연구·개발(R&D)시설뿐만 아니라 9만 9000㎡의 공원 녹지축을 조성하며 미래형 친환경 도시건설에 앞장선다.오정 군부대 복합개발사업은 오정동 일원 56만 1968㎡의 부지에 공공·기반시설을 확보하고, 이를 새로운 동력 자원으로 삼아 신·구도심간 균형발전을 도모한다. 부천역곡지구는 수도권 주택난 해소를 위한 주택단지 조성과 더불어 19만㎡의 공원녹지축을 형성해 동부권역의 녹색 주택단지의 한 축을 담당할 계획이다. ●문화의 산업화로 날개를 단 부천 시는 미래성장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문화의 산업화에 주력하며 문화콘텐츠 메카로의 부상에 박차를 가한다. 이를 위해 가장 먼저 웹툰융합센터와 문화예술회관, 작동 군부대 교육·과학·문화 테마파크를 조성하며 문화도시 부천의 도시브랜드를 굳건히 할 문화 인프라를 탄탄히 조성할 방침이다. 문화의 산업화를 선도할 수 있는 핵심요소인 창의인재의 육성에도 과감히 투자할 방침이다. 이를 위해 콘텐츠기업의 인재육성부터 성장까지 이어지는 모든 과정을 지원하는 시스템을 마련할 계획이다. 콘텐츠산업의 원천인 스토리 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스토리텔링 아카데미도 함께 운영한다. 시도 글로벌 플랫폼과 미디어 스트리밍 발전에 발맞춰 과감히 혁신하기로 했다. 부천시가 자랑하는 문화콘텐츠를 활용한 국제적 권위의 시상제도를 운영해 창조적 동기를 부여할 계획이다. 한국만화박물관은 공간과 기능을 재편성해 웹툰과 디지털만화 중심으로 창조적으로 개편한다. ●변화를 선도하는 부천형 스마트시티 조성 시는 정보통신기술(ICT)와 빅데이터 등 신기술을 접목해 주차·교통·복지 관련 도시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발 앞서 준비하고 있다. 공유경제 플랫폼을 통해 교통·안전·환경 등 도시문제를 해결하는 ‘스마트시티 챌린지 사업’부터 1년간 1055억원의 통행시간 절감 편익을 제공하는 ‘지능형 교통시스템 구축’에 이르기까지 보다 스마트한 주차·교통 서비스를 시민에게 제공할 계획이다. 스마트한 안전도시 구현에도 힘쓴다. 방범관리 분야에서는 도시관제시스템을 스마트시티 통합플랫폼과 연계하여 도시안전망을 구축할 뿐 아니라 지능형 CCTV 7700대를 활용해 관제 효율성을 개선할 방침이다. 상수도 분야에서도 스마트 관망관리 인프라를 구축해 효율적으로 수질을 관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정서사회적 유대감 속 협업 통해 “지역사회 통합돌봄 선도” 시는 돌봄이 필요한 주민이 지역사회와 함께 어울려 살아갈 수 있도록 주거와 요양, 돌봄, 독립생활 등을 통합적으로 지원하며 지역주도형 사회서비스 정책을 펼친다. 이를 위해 10개 광역동 행정복지센터를 거점으로 종합사회복지관이나 지역자활센터 주민이 힘을 합쳐 대상자 맞춤형으로 지원할 방침이다. 공공뿐 아니라 민간과도 협업을 통해 다양한 거점 인프라를 연계한다. 연계 대상은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등 발전된 스마트 기술뿐 아니라 사회적 농업인 케어팜까지도 포함한다. 다양한 매체와의 연계를 통해 어르신이 노후에도 사회적 안전망 속에서 건강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사통팔달 교통망 갖춘 부천, 교통안전은 ‘덤’ 시는 격자형 교통 인프라를 구축하며 광역교통 개선 대책을 마련할 계획이다. 원종~홍대입구 광역철도가 대장신도시에 연결될 수 있는 연구용역을 진행하는 한편, 소사~대곡(서해안) 복선 철도 개통, 제2경인선 옥길 경유 유치, GTX-B 노선 구축을 통해 도시철도망도 확충한다. 이 외에도 경기 남부 2·3기 신도시를 동서로 연결하는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D)의 최적 노선을 도출하기 위해 타 지자체와도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시민 모두가 행복한 교통안전도시 구축에도 힘쓴다. 어린이부터 장애인에 이르기까지 누구도 소외되지 않도록 어린이 보호구역 등 교통안전시설을 강화하며, 사례 위주의 현장교육을 통해 대중교통 안전 서비스도 개선할 계획이다. ●부천형 도시재생사업과 주차장 조성으로 살아나는 원도심 원도심 주거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주차장과 도로·공원·생활 SOC 사업을 추진하며 부천형 도시재생사업도 본격적인 물꼬를 텄다. 춘의동 일대는 연구·개발(R&D) 종합센터와 지상 뫼비우스 광장 조성을 통해 고부가가치 신산업을 육성하며 경제기반형 도시재생에 한 발짝 다가간다. 원미동과 심곡동 일대도 공유경제 조직, 마을관리협동조합 등을 설립하며 주민공동체 회복에 앞장선다. 펄벅의 숨결을 품은 심곡본동 일대도 지역 정체성 회복을 위해 문화 활성화, 커뮤니티케어센터를 조성할 예정이다. 시는 2025년까지 원도심과 전통시장, 개발제한구역을 대상으로 48개소 7140면의 공영주차장을 조성할 방침이다. 또 주택정비사업과 함께 조성될 ‘아파트 같은 마을주차장’과 학교·종교시설 등을 개방 공유해 조성하는 주차장 등 2025년까지 199개소 7732면의 새로운 주차 공간도 확보할 계획이다. 장덕천 부천시장은 “올해 2월 1일 부천시에 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발생한 이후 모두가 전 세계적 재난 상황에서 어느 때보다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며, “하지만 위기 속에서도 부천시를 믿고 연대해주신 시민들과 헌신적인 노력으로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달려가고 있다”고 감사의 마음을 표했다. 이어 “부천시는 선제적인 행정처분과 현장점검으로 종교 단체 내 코로나19 확산을 예방하고 요양병원 코호트격리, 대형물류센터 전수검사 등 적극적으로 코로나19에 대응하며 특별 방역대책을 추진해 왔다”고 강조했다. 또 “재정도 적극 투입해 시민들이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전 시민과 외국인에게 지급한 재난기본소득과 정부 긴급재난지원금을 100% 지원해 경제 방역에 나섰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장 시장은 “앞으로 2년은 위기 속에서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며 시민들과 더불어 나아가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말하고, “더운 날씨에 어려우시더라도 마스크 쓰기는 나를 보호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를 보호하는 것이라는 연대 의식에 함께해주고, 개인 방역에도 계속해서 철저를 기해 새롭고 안전한 부천으로 모두 함께 나아가자”고 당부했다. 이명선 기자 mslee@seoul.co.kr
  • 시골 어른신 38명이 쓴 시 101편, 시집 발간

    시골 어른신 38명이 쓴 시 101편, 시집 발간

    ‘신랑이 멋져 보이기도 했어/ 첫날밤에 신방에서 저고리를 벗기는데/ 서로 부끄러워서 손도 안 잡고 잤어/ 입도 안 맞추고/ 그냥 남매처럼 잤어’(박달막 ‘첫날밤’ 경남 하동군 횡천면 상남마을과 횡보마을 80대 어르신 38명의 인생 여정이 오롯이 담겨 있는 시 101편을 엮은 시집이 나왔다. 국립 경상대학교 인문도시 하동사업단은 하동군과 공동으로 횡천면 상남마을과 횡보마을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시를 가르치는 ‘실버 세대를 위한 꿈결 인문학 체험’사업을 진행해 어른신들이 직접 쓴 시를 모아 ‘가로내띠기의 행복’이라는 제목의 시집을 발간했다고 1일 밝혔다.제목에 나오는 가로내는 하동 횡천강의 순우리말이다. 두 마을 어르신들의 인문학체험은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이 지원하는 인문도시사업의 하나로 2017년 부터 시작했다. 그동안 경상대학교 대학원 문화콘텐츠학과(학과장 김겸섭), 하동문학관(관장 최영욱 시인), 소설가 하아무(박경리문학관 사무국장), 시인 박순현·현임옥·진효정(이병주문학관 사무국장) 등 경상대와 하동문인협회 회원들이 어른신들의 시쓰기 교육을 도왔다. 이같은 배움을 통해 38명 어르신들은 지나온 긴 인생 여정을 시로 표현했다. ‘내 인생의 시작은/ 열둘 시댁 가족을 안고 살았다/ 구름 속에 달빛같이 흐렸다/ 흙과 땅을 다 섞어 강이 된 인생/ 그 강에 아들딸이 태어나고 자랐다/ 달빛 같은 내 인생/ 사십 명이 넘는 식구들 속에/ 보름달같이 환하다’ 박권옥 어르신은 ‘내 인생 시작은’이라는 짧은 시 한편을 통해 그가 걸어온 인생 역사를 연속되는 사진처럼, 서사시처럼 펼쳐놓았다. 김행주 어른신은 ‘가장 행복했을 때’라는 시에서 ‘남편이 독신이라 애기를 기다리다/ 첫아를 낳았을 때 우리 가정/ 웃음꽃이 활짝 폈지/ 시어머니께서 낮참 밤참/ 따끈하게 해다주면 신랑이/ “우리 각시는 배가 참 큰갑소” 하더라네/ 그때 어찌나 부끄럽던지’라면서 행복했던 옛날을 추억했다. 박덕선 어르신이 쓴 ‘어머니/ 어머니/ 내 어머니/ 어머니 딸도/ 이제 이름 써요/ 박덕선’이라는 내용의 시 ‘어머니’는 어린 시절 당시 딸이어서, 또 가난해서 배우지 못한 한이 시구 사이사이마다 왈칵왈칵 쏟아져 나오는 듯하다. 박말달 어르신은 결혼해 ‘첫날밤’의 부끄러웠던 추억을 시 ‘첫날밤’을 통해 살며시 떠올리며 꺼내놓았다. 경상대 인문도시 하동사업단은 오는 4일 오전 10시 하동군 횡천면 상남마을회관에서 시집 출판 기념행사를 한다. 코로나19에 따른 사회적 거리 두기 실천으로 시집 전달식만 간소하게 할 예정이다. 진주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박철현의 이방사회] 이방인이 살아남는 법

    [박철현의 이방사회] 이방인이 살아남는 법

    예기치 못한 코로나19 사태로 지난 몇 달간 밀렸던 공사대금을 얼마 전에 전부 받았다. 두 곳으로부터 1000만엔과 400만엔, 한국 돈으로 1억 5000만원에 달하는 거금이지만, 회수작업에 내가 한 일은 거의 없다. 일을 소개해 준 중개인에게 전화 두어 번 돌린 것이 전부다. 읍소전화를 받은 중개인이 그들과 직접 만나 입금을 재촉했다. 중개인은 중국동포이다. 옌볜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2002년 일본에 건너와, 누구나 그랬겠지만 온갖 고생을 겪고 지금은 도쿄 아사쿠사에서 제법 유명한 부동산 회사를 경영하고 있다. 아사쿠사는 원래 외지인에게 배타적인 곳이었다. 이 유래는 에도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황거를 비롯한 에도막부의 중심부를 야마노테(山の手), 신분이 낮은 서민들이 거주했던 주변부를 시타마치(下町)라고 불렀다. 우에노는 외지인의 야마노테 출입 여부를 검사하는 관문이고 오카치마치는 황거나 에도막부를 지키는 하급무사들의 거주지였다. 이러한 전통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도쿄 중심부를 감싸듯 운행하는 JR동일본의 순환선 노선 이름은 야마노테선이며 우에노 역은 센다이, 모리오카 등 도호쿠 지역과 니가타로 대표되는 조에쓰 지역 거주민들이 신간센을 타고 도쿄에 들어올 때 가장 먼저 도착하는 관문이 됐다. 도쿄 중심부와 주변부를 나누는 접경지역에 아사쿠사가 있다. 아사쿠사는 그 자체로 주변부의 중심지였다. 매스컴은 이를 두고 시타마치의 자존심과 전통이라 미화하지만, 실제로 이곳에 거주하는 외지인들에겐 꽤 곤혹스러운 동네이기도 했다. 원 거주민들이 외지인을 쉽사리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나마 지금은 상당히 많이 나아졌다. 올해는 코로나19로 공쳤지만, 외국인 관광객이 근 7년 동안 폭발적으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나는 그 이전의 모습, 즉 외지인을 배척하던 시절의 아사쿠사를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2010년부터 거의 살다시피 하고 있다), 이 중국동포 중개인이 아사쿠사에 자리잡기까지 얼마나 고생했을지 짐작할 수 있다. 한번은 그에게 어떻게 부동산 회사를 하려고 했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그의 답은 간단했다. 공인중개사 자격증이 가장 돈을 많이 번다는 것 때문이었다.그는 독립하기 전에 아사쿠사의 다른 유명한 부동산 회사에 다녔는데 매매거래를 할 때마다 몇백만엔씩 수수료를 받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일 년에 서너 건만 해도 보통 직장인 1년 연봉 넘게 벌겠다는 생각에 부동산 중개사 자격증 공부를 시작했다. 너무 쉬웠다고 말한다. 하긴 그럴 법도 하다. 다니고 있는 직장이 부동산 회사이고 중국 출신이니 한자는 누워서 떡 먹기다. 한 번 만에 합격했는데 회사에서 자격증 수당 5만엔을 매월 가산해 줘서 깜짝 놀랐다고 한다. 이런 면에서 보면 확실히 공인중개사 자격증이 가장 가성비가 뛰어나다. 절대적 공부량이 공인중개사의 서너 배인 행정서사는 자격증을 따 봤자 초봉 20만엔이 채 안 되는데, 부동산 자격증은 회사에 취직해도 자격증 수당을 따로 받고 매매라도 성사시키면 보너스가 따로 나온다. 그는 독립한 지 4년 만에 아사쿠사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해졌다. 한국인과 중국인 관광객, 그리고 거주민이 늘면서 3개 언어를 동시에 구사하는 그의 주가는 폭등했다. 빈 점포, 빈 방을 채워 달라며 그를 찾아오는 건물주들이 날이 갈수록 늘어났고, 그는 단기간 내에 입주자를 찾아냈다. 때로는 입주자의 편을 들면서 건물주를 설득하기도 했다. 내가 하는 공사도 그렇다. 큰돈이 오가는 리폼 공사를 중국동포인 그가 가져와, 한국 뉴커머인 나에게 맡긴다. 십 년 전만 해도 일본업자 아니면 절대 안 맡긴다는 일본인 건물주들이 그의 설득에 넘어간다. 반신반의하지만 결과물을 보여 주면 만족하며 금세 다른 건물도 맡긴다. 물론 나도 일을 주고 때때로 대금회수 같은 잔일을 마다하지 않는 그에게 공사대금의 5%를 소개료로 지급한다. 정확한 납기와 깨끗한 돈 거래가 모든 비즈니스의 기본이다. 이것만 잘 지키면 이방인, 차별 등등의 단어는 들어설 자리가 없다. 국가와 상관없이 위기상황일수록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코로나19 핑계만 대지 말고 최소한의 성의와 기본을 보이는 사람이 결국 마지막까지 생존할 것이다.
  • 데뷔 7년차에 첫 홈런 이성곤... 내색하지 않는 아버지 이순철에 팬들 뭉클

    데뷔 7년차에 첫 홈런 이성곤... 내색하지 않는 아버지 이순철에 팬들 뭉클

    이순철 SBS 해설위원의 아들 이성곤(28·삼성 라이온즈)이 지난 26일 롯데 자이언츠전에서 데뷔 7년차에 첫 홈런을 쳤고, 다음날에는 3안타 1홈런으로 만점 활약을 펼쳤다. 하지만 그는 인터뷰에서 아버지에 대한 언급을 의식적으로 피하는 모습을 보였고, 이후 야구 비평 프로그램인 SBS ‘베이스볼S’에 출연한 이순철 위원도 “해설위원의 자격으로 말하겠다”며 공사를 엄격히 구별하는 모습을 보여 팬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평소 이순철 위원은 이성곤이 타석에 들어설 때면 의식적으로 침묵을 지키거나 다른 선수들보다 더 냉정하게 말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날 방송에서도 이순철은 아들을 칭찬하자 “누가 보면 박병호처럼 홈런왕한 줄 알겠네”라며 과도한 띄워주기를 경계했다. 또 전화를 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이성곤과 함께 방을 쓰는 룸메이트를 언급하며 “문자를 주고받았다”고 했다. 자신이 다른 야구 선수들의 부모들보다 야구계에 미치고 있는 영향이 더 크기 때문에 눈에 띄지 않아야 한다는 신념이 엿보이는 행동으로 보인다. 이날 방송에서 이순철 위원은 “모임 도중 방송국으로 왔다”며 “이성곤 선수가 야구를 너무 잘했다간 PD의 갑질에 의해 스튜디오에 너무 많이 불려올 것 같다”고 했다. 누리꾼들은 “PD 갑질이라고 말했지만 모임에 나오면서 얼마나 뿌듯했겠냐”고 했다. 이성곤은 대학을 졸업 한 뒤 1군보다 2군에 머문 시간이 길었다. 보통의 야구 선수들이라면 프로에 지명받아 데뷔한 것만으로도 야구 실력을 증명한 것이지만 프로야구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아버지의 경력과 비교될 수밖에 없었다. 이순철은 해태 타이거즈 유일한 신인왕, 프로야구 올타임 올스타 멤버, 우승반지 7개, 골든글러브 5개 등 프로야구 감독을 거쳐 해설위원으로 오랜 기간 활동해왔다. 경기가 끝난 뒤 인터뷰에서 이성곤은 의식적으로 아버지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고 외삼촌·어머니·할머니만을 언급했다. 이에 대해 이순철 위원은 “서운한데요. 제 이야기는 안하기 때문에”라고 했다. 아버지를 넘어서야 하는 아들의 이야기인 ‘오이디푸스 서사’는 프로스포츠계 화제가 되고 있다. 이순철 위원과 타이거스에서 함께 뛰었던 이종범의 아들 이정후(22·키움히어로즈)는 “아버지를 존경해서 야구 선수가 됐다”며 “아버지의 통산 기록을 넘는 게 프로 선수로서의 목표”라고 여러 차례 밝혔다. 이종범·이정후 부자는 2017년 프로야구 사상 최초로 동시에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기도 했다. 키움 히어로즈 감독을 맡아 팀을 한국시리즈 준우승으로 이끈 장정석 KBS 해설위원의 아들 장재영(18)은 올해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진출이 유력했지만 코로나19로 인해 MLB 신인 드래프트가 40라운드에서 5라운드로 축소되면서 최근 아버지가 이끌었던 팀 키움 히어로즈에 입단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농구대통령’ 허재의 아들 허훈(25)은 지난 시즌 아버지도 받지 못한 정규리그 MVP를 탔고 국내 선수 최초로 20어시스트, 20득점을 달성하기도 했다. 최영권 기자 story@seoul.co.kr
  • “동대문구청 나눔서가서 책 바꿔 가세요”

    서울 동대문구는 임시 개관한 구청 1층 ‘동대문 책마당도서관’ 한편에 ‘나눔서가’를 마련했다. 나눔서가에는 주민들이 기증했거나 구청 독서사랑방에 있던 책 등 총 1600여권이 비치됐다. 읽고 싶은 책이 있으면 본인의 책을 가지고 와서 1대1로 교환할 수 있다. 신청은 구청 1층 책마당도서관 대출데스크에서 한다. 김동현 기자 mose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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