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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ocal] 충남 부여에 신동엽문학관

    ‘껍데기는 가라’의 민족시인 신동엽(1930∼69) 문학관이 내년 10월 고향인 충남 부여에 건립된다. 부여군은 26일 모두 18억원을 들여 부여읍 동남리 군청 옆 그의 생가 뒤에 100평 규모의 문학관을 세울 계획이다. 문학관에는 40평 규모의 전시실, 자료전시실(25평), 자료보관실 등 갖가지 자료와 유품이 전시된다. 전시실에는 시인의 유족으로부터 원고와 유품 5000∼6000점을 기증받아 전시할 계획이다. 군은 문학관이 완공되면 해마다 시낭송회, 문예창작 및 독서교실 등을 열고 신동엽문학제도 개최할 계획이다. 부여에는 신동엽 시인의 생가, 백마강변 선화공원에 서정시 ‘산에 언덕에’가 새겨진 시비가 있고, 능산리고분군 옆 부여읍 염창리에 묘가 있다. 신 시인은 ‘껍데기는 가라’ 외에 장편 서사시 ‘금강’과 ‘4월은 갈아엎는 달’ 등 참여시를 지어 한국문단의 대표적인 저항시인으로 꼽히고 있다. 부여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책꽂이]

    ●고서점의 문화사(이중연 지음, 헤안 펴냄) 조선 후기부터 일제 강점기를 거쳐 고서점이 쇠퇴의 길에 이른 1960∼1970년대까지 헌책방의 문화사를 다뤘다. 일제 강점으로 우리의 고서 유통은 억제됐다. 서울 종각에서 남대문에 이를 정도로 성행했던 고서점 거리는 자취를 감췄다. 책은 일본인이 장악한 북촌(충무로)의 서적유통에 대항해 남촌(관훈동·인사동 등 종로)의 우리 고서 유통이 성장한 과정을 살핀다. 길거리 노점 서적유통에서 근대적인 서점 경영으로 발전한 한남서림(1905년 설립)을 비롯해 미모사, 남만서점, 마리서사 등 고서점의 모습을 소개한다.1만 4000원. ●괴테와 다산, 통하다(최종고 지음, 추수밭 펴냄) 18세기 후반∼19세기 초반 한국과 서양을 대표하는 지성인인 정약용과 괴테의 생애와 철학을 추적해 비교 분석. 문호 괴테는 화가이기도 했다. 다산 또한 여러 점의 산수화를 남겼다. 두 사람은 카메라 옵스쿠라라는 장치를 이용해 사진을 찍듯이 그림을 그렸다. 괴테는 평생 정치권력의 지원을 받으며 자신의 재능을 최대한 발휘한 천재였다. 반면 다산은 처음에는 왕의 총애를 받았지만 결국 당파정치에 희생된 수난의 지식인이었다.1만 2000원. ●알고보면 매혹적인 죽음의 역사(기류 미사오 지음, 김성기 옮김, 노블마인 펴냄) 19세기 영국의 시인이자 라파엘 전파에 속한 뛰어난 화가인 로세티. 그는 영원한 사랑의 표시로 죽은 아내 엘리자베스의 관에 자신의 시집을 넣었다가 7년 뒤 이를 발굴해 출간했다. 고대 그리스 철학의 3대 유파(키니코스학파, 스토아학파, 에피쿠로스학파)는 자살을 장려했다. 스토아철학자 에픽테토스는 이렇게 말했다.“뛰노는 아이들처럼 당당히 떠나라. 아이는 놀다가 지치면 이제 그만 놀겠다고 한다. 그처럼 그대도 모든 게 시시하게 느껴지면 세상을 떠나는 게 좋다.”역사의 이면에 숨겨진 사랑과 죽음에 관한 에피소드들을 엮었다.1만 2000원. ●한국사 제왕열전(황원갑 지음, 마야 펴냄) 한국사의 여명기를 밝힌 고조선의 국조 단군왕검, 부여의 맥을 이어 백제를 세운 개국시조 온조대왕, 천년제국 신라의 건국시조 박혁거세, 조선의 문예부흥기를 이끈 문화군주 정조 등 역대 제왕들의 일대기.“단군왕검은 동물인 암곰의 자식이 아니라 실존했던 우리의 조상”이라고 말하는 저자(한국풍류사연구회 회장)는 기자는 고조선으로 도망쳐온 망명객에 불과할 뿐, 주 문왕이 기자를 조선에 봉했다거나 기자조선이 있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한다.8000원. ●지도자의 조건(프란체스코 알베로니 지음, 홍재완 옮김, 교양인 펴냄) 이탈리아의 사회학자이자 저널리스트인 저자가 제시하는 창조적 지도력의 실체. 저자는 “지도자의 기본자질 중 하나는 불안함을 극복하는 능력”이라고 말한다. 그 한 예로 나폴레옹은 새로운 전투를 시작하기 전에 항상 편안하게 잠을 자곤 했으며 나폴레옹의 이런 행동은 병사들에게 안정감을 줬다는 것이다.1만 2000원.
  • [책꽂이]

    ●율리시스(제임스 조이스 지음, 김종건 옮김, 생각의나무 펴냄) 아일랜드 더블린을 배경으로 1904년 6월16일 오전 8시부터 다음날 새벽 2시까지 단 하루(정확히 18시간) 동안 전개되는 등장인물의 일상을 그렸다. 리오폴드 블룸과 그의 아내 몰리 블룸, 예술가를 꿈꾸는 스티븐 디덜러스가 중심인물. 저자가 1906년 구상을 시작,1914년 말부터 집필에 들어가 8년만인 1922년에 출간한 대작이다. 영어 외에 프랑스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등 10여개의 외국어가 사용된 이 소설에는 고어와 폐어, 속어, 비어, 은어 등이 뒤섞여 있어 읽기가 쉽지 않다.3만 8000원.●충만한 힘(파블로 네루다 지음, 정현종 옮김, 문학동네 펴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칠레 시인 네루다가 만년에 펴낸 시집. 독재자 곤살레스 비델라 정권이 무너진 뒤, 네루다가 칠레로 돌아와 10여년간 산티아고 해안가의 작은 섬 이슬라 네그라에서 머물며 쓴 시들을 묶었다.‘시인의 의무’ ‘다림질을 기리는 노래’ ‘알스트로메리아’등 30여편이 실렸다.7500원.●체 게바라 시집(체 게바라 지음, 이산하 엮음, 노마드북스 펴냄) ‘20세기의 가장 완전한 인간’으로 평가받는 체 게바라(1928∼1967)가 남긴 일기 등 산문 가운데 ‘시적인 것’을 뽑아 시 형태로 꾸민 책. 체 게바라의 혁명에 대한 열정, 인간적 번민과 사랑을 엿볼 수 있다.1987년 제주 4·3사건을 다룬 장편서사시 ‘한라산’으로 필화사건을 겪은 ‘체 게바라 마니아’ 이산하 시인이 2002년 ‘먼 저편’이라는 제목으로 펴낸 책의 개정판.8500원.●심우도(이설산 지음, 연인M&B 펴냄) 심우도(尋牛圖)는 본성을 찾아 수행하는 단계를 동자나 스님이 소를 찾는 것에 비유해 묘사한 불교 선종화. 석가세존은 성불하기 전에 고타마 태자라 불렸는데, 고타마는 바로 소를 뜻한다.‘달이 구름을 벗어나다’ ‘뒤에 오는 이도 없고 앞에 가는 이도 없다’ ‘미륵의 문을 활짝 열다’ 등 9편의 구도소설 작품이 실렸다.1만원.●튤슈를 사랑한다는 것은(아지즈 네신 지음, 이난아 옮김, 푸른숲 펴냄) 권위있는 국제 풍자문학상인 황금종려상(이탈리아), 황금고슴도치상(불가리아) 등을 수상한 터키의 국민작가 아지즈 네신(본명 메흐멧 누스렛)의 단편집. 표제작을 비롯해 ‘품을 수 없는, 안길 수 없는’ ‘찰나에 만나다’ 등 6편이 실렸다.9500원.
  • “한국서 모국어 제대로 배우겠다”

    “복서 생활을 마치는 데 쓸쓸함은 있어도 후회는 없습니다.” 북한 국적의 첫 프로복싱 세계챔피언 홍창수(32·일본명 도쿠야마 마사모리)가 링을 떠났다.16일 일본 언론에 따르면 전 세계복싱평의회(WBC) 슈퍼플라이급 챔피언 홍창수는 지난 15일 일본복싱위원회(JBC) 관서사무국에 은퇴서를 냈다. 통산전적 32승(8KO)3패1무. 기자회견에서 그는 “(WBC 밴텀급 도전자에) 지명되지 않은 걸 보고 은퇴를 결정했다.”면서 “인생의 절반을 바친 복서 생활을 마치는 데 쓸쓸함은 있어도 후회는 없다.”고 말했다. 2000년 8월 한국의 조인주를 꺾고 WBC 슈퍼플라이급 왕좌에 올라 북한 국적으로는 사상 첫 프로복싱 세계챔프가 된 홍창수는 북한으로부터 노력영웅과 인민체육인 칭호를 받았지만 일본에서는 냉대를 받았다. 역대 일본 선수 가운데 세 번째 ‘롱런’인 8차 방어에 성공하는 등 복싱 실력은 인정했지만, 벨트에 ‘ONE KOREA’라는 글자를 새긴 채 선전하는 그가 눈에 고울 리 없었기 때문. 한때 잃었던 타이틀을 2005년 7월에 되찾은 뒤 지난해 2월 1차 방어에 성공한 그는 “슈퍼플라이급에서 할 일은 다했다.”며 지난해 말 타이틀을 반납했고, 한 체급을 올려 밴텀급 도전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WBC 밴텀급 챔피언 하세가와 호즈미(27)가 4차 방어전 상대로 자신이 아닌 심피웨 베치카(남아공·5위)를 14일 지명하자 은퇴를 단행했다. 지지통신에 따르면 홍창수는 조만간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방한한다. 시간적 여유가 생긴 만큼 한국에서 모국어를 제대로 배워보겠다는 생각에서다. “관서일본 복싱계에 보은하고 싶다는 그의 말로 미루어 지도자의 길을 걸을 수도 있다.”고 현지 언론들은 내다보고 있다.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이오장 시인 연작서사시집 발간

    옛말에 “사연 없는 무덤 없다.”고 했다. 하물며 ‘만인지상’의 지위에 있던 왕의 무덤이야 오죽할 것인가. 서쪽으로 해가 넘어가는 해거름 나절의 왕릉을 가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잘 정돈된 왕릉 구석구석에서 스멀스멀 새어 나오는 수백년 역사의 신비를 느낄 수 있다. 어떤 순간에는 일갈하는 왕의 목소리까지 환청으로 들려오기도 한다. 시인 이오장씨도 그 환청에 이끌려 2년여 동안 왕릉을 찾았다. 태조부터 순종까지 조선왕조의 왕과 왕비 능은 물론 비운의 사도세자 융릉까지 46개의 능을 발품을 팔아 모두 찾아봤다. 그리고 왕들이 하고 싶었던 말들을 모아 ‘왕릉은 말한다’ 연작 서사시를 썼다. 이번에 이를 한번에 묶어 시집 ‘왕릉’(토우 펴냄)을 냈다. “…/손수 무너뜨리고 세운 내 나라 조선에서/아들에게 자리 뺏기고/어린 자식까지 잃었을 땐/인왕산을 무너뜨리고 싶었다/…/마지막 유언 한마디 들어주지 않고/무덤에 갈대를 씌운 아들은 뭐라 했을지/…”(왕릉은 말한다1-태조 이성계 건원릉 가운데) ‘왕자의 난’으로 권좌에서 밀려난 태조의 고뇌와 건원릉 주변의 갈대밭에 얽힌 사연 등이 녹아 있다. 이처럼 ‘왕릉’에 실린 시들은 대부분 역사적 사실과 그 의미 등을 담고 있다. 주석으로 각 왕릉의 주인에 대한 세세한 설명을 정성껏 붙였다. 시인은 “누구나 사연이 있고,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간직하고 살지만 통치자로서 왕의 말은 현재 시각으로도 일치하는 점이 많아 중단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왕이 하고 싶었던 말이 자꾸 귀청을 울려 시작한 게 왕릉 연작시가 되고 말았다고 설명했다. 그래서일까, 그의 시의 화자는 모두 왕릉의 ‘주인’들이다. 유승우 인천대 명예교수는 “시인은 철저한 역사의식을 갖고 시를 쓰고 있다.”면서 “왕릉의 시를 빗대 오늘의 우리에게도 큰 교훈을 준다.”고 평했다. 박홍환기자 stinger@seoul.co.kr
  • [책꽂이]

    ●어느 미친 사내의 고백(존 카첸바크 지음, 이원경 옮김, 비채 펴냄) 어느 날 정신병원에서 젊은 여간호사가 잔인하게 살해된다. 대학시절 괴한으로부터 성폭행당한 어두운 기억을 지닌 여검사가 살인범을 잡기 위해 홀로 수사를 벌인다. 하지만 살해되는 환자들은 늘어만 가고 사건은 점점 미궁에 빠진다.‘그 여름의 절정’ ‘하트의 전쟁’ ‘정당한 이유’ 등의 작품을 발표하며 스릴러 마니아들의 폭발적 반응을 얻고 있는 저자의 대표작. 이 소설은 인간의 심리를 한올 한올 파고드는 치밀한 관찰과 반전의 미학이 돋보이는 ‘심리 스릴러의 교본’이란 평을 듣는다.1만 5000원. ●영문학과 사회비평(여홍상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19세기 영시에 관한 글 모음집. 콜리지는 존 밀턴이 제러미 벤덤과 함께 19세기의 대표적인 사상가로 꼽은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이자 평론가다. 기존 생태론적 비평가들이 소홀히 다룬 콜리지의 산문과 시를 생태학적 측면에서 고찰한다. 영국 빅토리아조를 대표하는 시인 로버트 브라우닝의 2만 1000행이 넘는 장시 ‘반지와 책’에 나타난 빛과 색채의 이미지를 분석한다.‘오러리 리’로 유명한 엘리자베스 배릿 브라우닝 시의 사회비평적 주제를 러시아 비평가 미하일 바흐친의 ‘대화주의’이론을 적용해 분석한 글도 눈길을 끈다.1만 5000원. ●내 입에 들어온 설탕 같은 키스들(김선우 지음, 미루나무 펴냄) “낭만적인 ‘초사’의 분위기로 미루어 보건대, 멱라강 물 속에서 사랑하는 이의 혼이 부르는 듯해 돌을 봉황처럼 껴안고 강물 속으로 뛰어든 광인 굴원이라면 어떨까요.” 시집 ‘도화 아래 잠들다’ 등을 펴낸 저자는 ‘초사(楚辭)문학의 시조’ 굴원에게 연인이 있었다면 ‘우국’이라는 허울을 뒤집어쓰고 유배지에서 자살을 감행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렇듯 저자에게 사랑은 모든 것을 이루어 주는 힘이다.9800원. ●보이지 않는 도시들(이탈로 칼비노 지음, 이현경 옮김, 민음사 펴냄) 환상과 알레고리가 어우러진 3부작 ‘우리의 선조들’로 유명한 작가의 후기 대표작. 베네치아의 젊은 여행자 마르코 폴로와 황혼기에 접어든 타타르 제국 황제 쿠빌라이의 도시에 관한 이야기로 꾸며진 이 소설은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서사와 주인공은 없다. 작가는 55개의 ‘보이지 않는 도시들’에 대한 이야기를 기억·욕망·교환·기호·이름·죽음 등 다양한 속성들과 연결해 풀어가며 인간과 도시의 관계에 대해 살핀다. 저자는 보르헤스, 마르케스와 함께 현대문학의 3대 거장으로 꼽힌다.7500원.
  • [책꽂이]

    ●독일인 겐테가 본 신선한 나라 조선,1901(지그프리트 겐테 지음, 권영경 옮김, 책과함께 펴냄) “제주도 한라산처럼 형용할 수 없는 웅장하고 감동적인 광경을 제공하는 곳은 지상에 그렇게 흔하지 않을 것이다. 두개의 아네로이드 기압계로 신중하게 측정해본 결과 분화구 맨 가장자리 높이는 해발 1950m다.” 독일 베를린 태생인 저자는 처음으로 한라산 높이를 1950m로 측정한 지리학자이자 기자. 쾰른 신문사 기자로 1901년 조선을 방문해 이 여행기를 썼다.‘스웨덴기자 아손,100년전 한국을 걷다’ ‘영국화가 엘리자베스 키스의 코리아,1920∼1940´ 등과 같은 맥락의 책이다.1만2000원.●인물로 본 8·15 공간(장을병 지음, 범우사 펴냄) ‘8·15 정국’의 주역인 여운형, 김구, 이승만 세사람의 정치활동과 미국과의 관계를 살폈다. 해방 정국이 아니라 8·15 정국이라고 표현한 것은 해방후 38선을 경계로 남북이 미국과 소련의 군정하로 편입된 만큼 가치중립적 차원에서 논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원로 정치학자인 저자는 여운형과 김구는 민족주의적 성향이 너무 강해 미국의 한반도 정책과는 조화될 수 없어 제거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한다. 또‘미국인보다 미국을 더 사랑하는 사람’으로 일컬어지는 이승만의 주도로 대한민국이 수립됐지만 남한 단독정부의 수립은 동족상잔을 불러일으키는 사단을 만들어냈다고 말한다.1만5000원.●20세기 포토다큐 세계사 3∼5(미하엘 슈튀르머 등 지음, 김남섭 등 옮김, 북폴리오 펴냄) 1권 ‘중국의 세기’,2권 ‘영국의 세기’에 이어 나온 러시아, 독일, 아일랜드 세기편. 러시아편에서는 제정 러시아 시기를 거쳐 1,2차 세계대전과 1917년 사회주의혁명을 겪어낸 러시아 민초들의 고단한 삶을 보여 준다. 독일편에서는 홀로코스트를 저지른 나치의 나라 독일의 역사를 다룬다. 아일랜드편에는 ‘세계에서 가장 슬픈 민족의 서사시’라는 부제가 붙었다. 정치·군사·종교적으로 투쟁을 거듭한 나라 아일랜드. 그러면서도 조이스, 베케트, 예이츠를 낳고 록그룹 U2를 낳은 아일랜드를 아름다운 풍광과 함께 소개한다. 각권 5만원. ●색채의 마력(하마모토 다카시 등 지음, 이동민 옮김, 아트북스 펴냄) 금색과 노란색은 비슷하지만 역사적으로 그 위상이 매우 달랐다. 금색은 기독교 사회에서 신과 같은 권력을 상징했고, 일본에서도 금각사나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립식 황금 다실에서 볼 수 있듯 위력이 대단했다. 반면 파란색은 고대 유럽에서는 켈트족이나 게르만족의 색이라서 불길하고 야만스럽다고 생각됐지만, 대항해 시대에 인도에서 인디고라는 염료를 수입하면서 질 높은 파란색이 만들어져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었다. 프랑스 혁명 때는 파란색 제복을 입었던 왕실근위대가 민중의 편에 서면서 파란색은 국민의 색이 됐다. 색채에 관한 에세이.1만2000원.●과학의 수사학(앨런 그로스 지음, 오철우 옮김, 궁리 펴냄) 과학자들이 독자에게 어떻게 자신의 이론을 설득력 있게 제시했는가를 수사학적 관점에서 분석. 다윈의 ‘종의 기원’, 베이컨의 ‘새로운 애틀랜티스’, 뉴턴의 ‘프린키피아’, 왓슨의 ‘이중나선’ 등에 나타난 문체와 논거 배열 순서 등을 살폈다.1만5000원.
  • [토요영화]

    ●아멜리에2(MGM 오후 9시5분) ‘대서양 위에 떠 있는 한 마리 나비의 날갯짓이 태평양에 허리케인을 일으킬 수 있다.’는 카오스 이론을 두 남녀의 운명적인 만남에 접목시킨 독특한 영화.‘아멜리에2’는 우연으로 보이는 일상의 소소한 사건들이 연쇄반응을 일으켜 뜻깊은 만남을 만들어내고 우리를 행복하게 해준다는 설정의 영화다. 수많은 등장 인물들이 서로 알게 모르게 얽혀들면서 마침내 두 남녀의 만남이 이뤄진다. 영화의 헤로인 오드리 토투의 풋풋한 매력이 묻어나는 로맨틱 코미디. ●이니셜D(KBS2 밤 12시25분) “부와∼왕” 굉음을 내뿜으며 거침없이 질주하는 자동차 경주. 스피드와 열정, 젊음이 어우러진 흥겨운 영화에 빠져보자. ‘이니셜 D’는 자동차 경주를 통해 청춘의 방황과 좌절, 희망을 그린 영화다. 만화적인 상상력과 비현실적인 이야기가 영화의 흐름을 종종 끊어놓지만 총알처럼 질주하는 스피드에서 일상탈출의 해방감을 만끽할 수 있다. 낮에는 주유소 아르바이트, 밤에는 아버지를 도와 두부 배달을 하는 고등학생 다쿠미(저우제륜).5년 동안 험한 아키나 고갯길을 운전한 탓에 프로선수 뺨치는 레이싱 실력을 갖게 된다. 어느 날 두부 배달을 하던 그는 유명 아마추어 카레이서 다케시(위원러)의 차를 앞지르게 된다. 이로 인해 일약 ‘레이서의 신(神)’이란 칭호를 얻고, 프로선수를 비롯한 레이서들의 도전을 받게 된다. 어머니가 없는 탓인지 말주변도 없고 무엇이든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소극적인 성격의 다쿠미. 왕년의 유명 카레이서였지만 지금은 늘 술에 취해 사는 아버지. 아버지는 자식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지 못하고, 아들 역시 그런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한다. 자동차가 이들의 유일한 공통분모다. 비록 두부 배달차이지만 도요타 AE86 자동차는 경쾌한 스피드를 자랑한다. 평범한 차에 튜닝을 해 고갯길이나 난코스에서도 뛰어난 주행 성능을 자랑한다. 하지만 이들 부자의 상황을 대변이라도 하듯, 이 차는 유명 프로레이서와의 경주에서 맥을 못추고 만다. 인물간의 갈등이나 서사적 이야기 구조보다는 속도감 넘치는 자동차 경주에 초점을 맞춘 영상이 보는 이를 흥분으로 몰아간다.4600만부 이상 팔려나간 동명 만화는 TV 애니메이션 시리즈로 만들어져 시청자를 사로잡았다. 컴퓨터 게임으로도 제작돼 큰 인기를 끌었다.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새영화] 300 - 300인 전사, 100만 대군과 맞붙다

    [새영화] 300 - 300인 전사, 100만 대군과 맞붙다

    영화 ‘300’의 이야기는 단순하다. 기원전 480년, 페르시아 크세르크세스 왕이 100만 대군을 이끌고 그리스를 침공한다. 그리스 연합군의 결성이 늦어지고 부패한 의회가 전쟁에 반대하자 스파르타의 레오니다스 왕은 300명의 최정예 전사들을 이끌고 테르모필레 협곡을 지키러 나선다. 이 협곡은 산과 바다 사이에 위치한 좁은 길로 페르시아가 그리스를 치려면 반드시 거쳐야 할 곳. 스파르타 전사들은 이곳의 지형을 십분 활용하며 뛰어난 전술로 페르시아 군을 번번이 격퇴시킨다. 그러나 배신자로 인해 샛길이 알려지고 궁지에 몰린 레오니다스 왕을 비롯한 전사들은 치열한 전투 끝에 모두 장렬하게 전사한다. 이 간단한 이야기를 118분간 끌고 가는 힘은 화려한 영상이다. 영화 ‘300’의 원작은 프랭크 밀러의 동명 만화(그래픽 노블). 독특한 스타일을 자랑하는 그의 작품이 영화화된다는 것은 새로운 볼거리를 얻는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는 이번 영화에서 총 제작 지휘까지 맡아 ‘씬 시티’와는 또 다른 차원의 영상미를 선보여 기대를 무너뜨리지 않았다. 역사적 사실에 기초했지만 만화가 원작인 만큼 영화 ‘300’에서 재현된 스파르타는 초현실적이다.‘글래디에이터’나 ‘트로이’ 같은 기존의 전쟁 서사물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인 것. 감독 잭 스나이더는 원작의 질감을 그대로 살리기 위해 ‘크러쉬 기법(특정 이미지가 가진 어두운 부분을 뭉개서 영화의 콘트라스트를 바꿔 색의 순도를 향상시키는 방법)’을 고안했고 결과는 대성공. 마치 그림 하나하나가 살아 움직이는 듯한 영상은 시적이고 비장미가 넘친다. 슬로 모션이 빈번하게 사용되지만 적절한 강약 조절로 오히려 역동성이 강조돼 시종일관 시선을 붙잡는다. 캐릭터들도 상상력이 넘쳐 난다. 크세르크세스 왕은 위용에 걸맞게 거인처럼 묘사됐고, 전투 장면에 등장하는 페르시아 정예군 ‘임모탈’을 비롯한 괴수와 동물들도 기기묘묘하기 그지없다. 전쟁 영화인 만큼 유혈이 낭자하고 폭력이 난무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 팔·다리가 떨어져 나가는 것은 물론 목이 잘려나가는 등 신체 훼손 장면이 심심찮게 등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회화체적인 영상 때문인지 정서적 충격은 그리 심하게 느껴지지 않는다.15일 개봉,18세 관람가.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OUR STORY] 봄마중 가는 길은 행복하다

    [OUR STORY] 봄마중 가는 길은 행복하다

    봄이 멀지 않았다. 반가운 사람들이 나누는 인사가 겨울옷을 먼저 벗어냈다.“겨울이 매섭다.”던 사람들,“이제 겨울도 끝물”이라더니 며칠 새 “봄 다 됐네.”로 인사말을 바꾼다. 어느새 풍향을 달리한 바람에는 겨울의 혹독한 살풍경 대신 남녘의 살가운 햇볕이 얹혀 온다. 그 바람 끝에 얼굴을 디밀고 흠흠 꽃내음을 맡으려는 도시인들에게 봄은 반갑게 풋풋한 품을 연다. 남녘의 시인이 보낸 편지글 속에서도 물씬 봄의 향기가 묻어난다. 그의 매화예찬은 오롯하게 피어나는 홍매화의 서정이기도 하고, 시한을 힘겹게 넘어온 우리들의 월동기이기도 하다. 이 겨울 내내 저 매화를 기다려 왔습니다. 겨울이 유난히 추웠기에 그대와 나란히 서서 꽃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얼어서 터진 남루의 손등 감추지 않고, 그대의 손을 잡고 꽃 앞에 서고 싶었습니다.(중략)오늘 홍매화꽃 사태 속에서 그대는 나의 꽃이었습니다. 우리는 억겁 인연의 가지에서 만난 따뜻한 햇살과 꽃이었습니다. 나는 그대에게로 무너지는 햇살이었고, 그대는 나에게로만 피는 꽃이었습니다.’(정일근 시인의 ‘사람의 사랑도 꽃이 될 수 있으니’ 중에서) 그 시인의 오감을 일깨운 봄의 장대한 서사가 막 시작되려 한다. 봄, 그 현란한 ‘만화방창(萬化方暢)’의 조화 속에서 목숨이란 목숨은 모두 새 뼈를 얻고, 거기에 새 피와 살을 얹어 또 한 해를 준비할 것이다. 모두들 길가로 나서 어디에서 흘러들었는지도 모르는 익숙한 향기에 다시 취할 것이고, 나설 길을 찾지 못한 사람들은 아련하게 추억할 것이다. 언젠가 이빨 시리게 맞았던 이른 봄날의 아릿한 바람과 그 바람에 실려온 아름다운 가슴앓이를. 문득, 꽃집에 다발로 실려와 놓인 남녘의 솜털 보드라운 버들개지의 벙그는 아퀴가 눈길을 끈다. 그 곁에 각시처럼 자리를 잡은 목련의 물오른 꽃망울이 수줍다 못해 부르르 제 몸을 떨고 있다. 화려한 봄 축제의 기억은 겨울이 길었던 사람들의 가슴에서 먼저 꽃망울을 터뜨린다. 봄이다. 남녘은 벌써 분주하다. 매화는 난분분하며 온 천지에 향기를 퍼뜨리고, 수더분한 산수유는 마을 어귀나 산발치에 아무렇게나 서서 겨울의 수묵에 샛노란 생명의 명도(明度)를 더한다. 아쉬운 무엇이 있어 더 머뭇거릴 것인가. 짧디나 짧은 봄, 그 봄으로 가자. 살 떨리게 반가운 꽃들을 찾아서.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 남도로 떠나는 봄맞이 여행 우수를 지난 봄이 경칩을 향해 줄달음 치고 있다. 봄처녀들의 가슴이 까닭없이 울렁거리기 시작하는 것도 이맘때. 겨울이 맥없이 꼬리를 감추는 모습에서 서운함도 느껴지지만, 그렇다고 오는 봄이 달갑지 않을 이유 또한 없다. 남도의 들녘에서는 벌써 꽃소식이 전해온다. 문득 엉뚱한 상상이 고개를 쳐든다. 꽃이 북상하는 속도는 얼마나 될까? 남도의 끝자락 해남에서 서울까지는 천리길, 400㎞정도 된다. 이곳에서 전해진 꽃소식이 10일 뒤면 서울에 가 닿는다니, 하루에 40㎞정도 가는 셈이다. 오는 봄을 맞으러 전라남도 무안과 함평 등을 다녀왔다. 세발낙지와 함평한우 등 먹거리와 은빛 숭어가 뛰노는 함평만 등 볼거리가 많아 봄맞이 하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다. 글 사진 무안·함평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한우와 나비의 고장 함평 남도에 오면 가장 정감이 가는 것이 농가의 지붕. 팔작지붕이며 우진각 지붕 등 우리 고유의 지붕형태가 고스란히 살아 있는 집들이 꽤 많다. 멋들어지게 뻗어나간 처마를 보라. 마치 파란 봄하늘 속으로 훨훨 날아갈 것만 같지 않은가. 기능성만 강조하느라 멋없이 지붕 위를 싹뚝 잘라버린 양옥집에 비할 바가 아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머리만큼은 서양 것에 양보하지 않겠다는 올곧은 자존심이 엿보인다. 점심 무렵 도착한 함평읍. 봄빛이 완연하다. 아직 겨울에 발목잡힌 도회지만 생각하고 걸쳐입은 두툼한 방한복이 여간 거추장스럽지 않다. 얇아진 옷만큼이나 오가는 주민들의 표정도 밝고 가볍다. 사실 함평은 이제껏 여행지로서는 특출나게 내세울 것이 없는 곳이었다. 함평을 유명하게 만든 것은 나비축제(www.hampyeong.jeonnam.kr). 우리나라에서 열손가락 안에 꼽히는 관광축제다. 올해는 5월 3∼8일까지 열린다. 나비 외에 유명한 것이 천지한우.‘전라도 소값을 좌우한다.’는 함평 우시장 덕분에 질좋은 한우고기를 싼값에 먹을 수 있다. 근동에서 음식솜씨 좋기로 소문이 자자한 금송식당(061-324-5775)에 들어섰다. 생고기를 주문했더니 금방이라도 핏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검붉은 한우고기가 쟁반 가득 담겨 나왔다. 주인 김정애(50)씨의 음식자랑이 거침없이 이어졌다.“소고기는 앞다리를 먹어야 하지라. 앞박살, 양지, 홍두깨, 아롱사태, 부채뼈 살 등 5가지 부위가 골고루 섞여 있응께 맘껏 드시쇼.” 생고기 1인분 1만 7000원, 생고기 비빔밥은 5000원을 받는다. # 감태향 가득한 돌머리 해안 달고 쫄깃한 한우 생고기로 허기를 채운 다음 돌머리(石頭)해수욕장으로 향했다. 바다를 향해 뻗어나간 육지의 끝이 바위로 되어 있어 돌머리라 했다. 돌부리가 해수명당과 연결돼 있다 해서 광산 김씨들이 묏자리를 잡은 곳이기도 하다. 물오른 봄바다. 감태(甘苔) 냄새가 코를 찌른다. 언제든 질리지 않는 해조류 특유의 비릿하고 상큼한 향기다. 함평만 너머로는 해제반도가 손에 잡힐 듯 다가선다. 바닷물을 방조제 형태로 막아 만든 2700평의 수영장이 독특하다. 썰물 때도 해수욕을 즐길 수 있도록 노천 바다수영장을 만든 것. 수영장 둑이 높지 않아서 밀물 때 바닷물이 흘러들어와 자연스레 물갈이가 된다. 바닷물과 함께 들어온 물고기들도 썰물 때면 꼼짝없이 갇히게 될 터. 사람과 물고기들이 너나없이 한 곳에서 놀게 될 듯하다. # 펄떡거리는 숭어회 함평만과 해제반도 칠산 앞바다에서 잡아올린 숭어는 눈가에 황금색을 띠는 참숭어. 제철에다 자연산이다. 숭어껍질은 살짝 데쳐 소금장에 찍어먹는데, 꼬들꼬들 씹히는 맛이 그만이다. 숭어회 역시 달고 쫀득하기 이를데 없다. 윤기 자르르 흐르는 붉은색 살을 보면 침이 절로 괸다. 바닷물에 한번 씻어놓으면 살이 더욱 꼬들꼬들해진다. 회를 뜨고 남은 뼈로끓인 매운탕은 국물맛이 달고 시원하다. 조금 때는 숭어가 잡히지 않기 때문에 사전에 확인을 하는 것이 좋다. 돌머리관광횟집(061-322-9228) 주인장의 음식솜씨가 제법 알려져 있다. 숭어회 1접시에 3만원을 받는데, 싱싱한 자연산 석굴 등 해산물이 푸짐하게 곁들여진다. ■ 무안에서 즐기는 5색 진미 무안 들녘은 황토땅. 차라리 붉은 색에 가깝다. 황토 들판 옆으로 푸른 양파와 마늘밭, 그리고 파아란 하늘이 대조를 이루고 있다. 먹거리 천국이기도 하다. 한번 나들이에 5가지 감칠 맛을 맛볼 수 있다 해서 ‘무안 5미(五味)’라는 이름이 따로 붙었다.짚불 삼겹살, 양파 한우, 도리포 숭어, 영산강 장어, 무안 낙지 등. 들과 바다에서, 그리고 강에서 ‘오색진미’를 맛볼 수 있다. 들에서 나는 별미로는 단연 돼지짚불구이. 목포에 홍어삼합이 있다면, 사창리에는 짚불삼겹살 삼합이 있다. 삼겹살과 양파김치, 기젓(갯벌 게로 만든 젓갈) 등이 어우러져 조화를 낸다. 암퇘지 삼겹살과 목살, 목등심 등을 볏짚을 이용해 1분정도 구워먹는데, 고기 속에 스며든 짚의 향긋한 냄새가 일품. 두암식당(061-452-3775)이 많이 알려져 있다. 삼겹살과 양파김치 원조를 자랑하는 곳. 김정순 할머니가 문을 연 이래 2대에 걸쳐 50년 동안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1인분 한 판에 6000원. 강에서 나는 음식으로는 명산리 장어구이가 첫손 꼽힌다. 영산강에서 불과 5분 거리에 장어마을이 형성돼 있다. 영산강 장어는 한때 바닥을 긁으면 그물 그득 잡힐 정도로 유명했다. 영산강 하구둑 축조 이후 장어가 크게 줄긴 했지만, 명산장어집(061-452-3379)은 3대째 명성을 이어오고 있다.4미(1㎏ 4마리)에 4만원. 장어집 인근에는 동양 최대의 백련 서식지가 있다. 숭어와 더불어 바다에서 나는 먹거리로 세발낙지를 빼놓을 수 없다. 일에 지쳐 쓰러진 소에게 먹이면 벌떡 일어선다는 스태미나 식품. 주낙으로 건져 올리는 게 아니라 뻘에서 삽으로 파서 꺼낸다. 착 달라붙는 힘이 여간 아닌데다 맛 또한 일품이다. 무안 낙지는 통째로 먹어야 제맛이다. 특히 산낙지를 대소금에 비벼 잠시 기절시킨 다음 먹는 ‘기절낙지’는 별미 중 별미. 무안읍 공용터미널 뒤편에 기절낙지집들이 몰려 있다. 하남횟집(061-453-5805), 청계수산(061-453-5256) 등이 유명하다. 한 마리당 6000∼7000원. # 봄은 바다에서도 자란다 현경면 월두포구는 달머리(月頭)라는 이름만큼이나 아름다운 곳. 우리나라 최초의 갯벌 습지 보존지역인 함해만이 이곳 해운리에서 해제반도 만풍리까지 이어진다. 수령 300년 된 곰솔나무가 마을의 수호신처럼 서 있는 가운데, 오른편 갯벌엔 연둣빛 감태가 푸르름을 뽐내고, 왼쪽편엔 초록빛 바다가 바람에 넘실댄다. 땅과 바다, 그리고 하늘이 맞닿은 절묘한 풍경이다. 제 아무리 바람이 매섭고 파도가 거칠어도 밀려오는 봄기운을 막을 수는 없는 것. 붉은 생명력을 토해내는 황토밭과 푸른 바다 위로 봄빛이 찬란하다. ■ 기차타고 꽃마중 가요 ●섬진강 매화 청송여행사(www.114ktx.com)는 3월10일 오전 7시 30분 영등포역을 출발해 임실 청매실농원, 익산 등을 둘러보고 오후 10시 30분에 용산역으로 돌아오는 상품을 마련했다. 어른 4만 3000원, 어린이 4만원.1577-7788. 홍익여행사(www.7788tour.co.kr)는 매화향 가득한 섬진강과 남원 등을 둘러본다. 용산역 오전 7시 출발, 오후 10시 49분 도착.3월17,18일. 어른 4만 9000원, 어린이 4만 6000원.(02)717-1002. ●진해군항제 벚꽃 3월31일과 4월1,4,5,8일 등 총 6회 운행한다. 진해 해군사령부, 제왕산 등을 돌아본다. 서울역 오전 7시 10분 출발, 오후 10시 50분 도착. 어른 5만 5000원, 어린이 5만 3000원. 경인관광여행사(www.ktx7788.co.kr 032-343-7788),KTX관광레저(www.ktx21.com 1544-7786), 지구투어 네트워크(www.jigutour.co.kr 1566-3035), 홍익여행사 ●쌍계사 십리 벚꽃 남원 재래시장과 춘향테마파크, 하동 화개장터, 십리벚꽃길 등을 둘러보는 상품. 용산역 오전 7시 출발, 오후 10시 30분 도착.4월7,8일. 어른 3만 9000원, 어린이 3만 8000원. 홍익여행사. ●금오산 왕벚꽃 금오산 왕벚꽃과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 등을 둘러본다. 서울역 오전 8시 출발, 오후 10시 도착.4월13일. 어른 4만 4000원, 어린이 4만 2000원.KTX관광레저. ●해인사 벚꽃 해인사와 홍류동 계곡의 벚꽃길을 돌아보는 상품. 서울역 오전 8시 출발, 오후 10시 10분 도착.4월13일. 어른 4만 6000원, 어린이 4만 3000원.KTX관광레저. ●환상의 섬 외도 꽃과 나무, 그리고 바다로 둘러싸인 섬 거제시 외도와 학동 몽돌해변, 바람의 언덕 등을 돌아보는 상품. 매주 금, 토요일 오후 10시 47분 영등포역을 출발해 다음날 오후 10시 6분 서울역으로 돌아온다. 어른 8만 9000원, 어린이 7만 5000원. 경인관광여행사. ●매화 축제와 오동도 동백 오후 10시30분 용산역을 출발, 광양 매화마을과 여수 오동도를 둘러보고 다음날 오후 10시 용산역으로 돌아온다.3월 17일. 어른 6만9000원, 어린이 6만5000원.KTX관광레저. ●섬진강 매화축제와 향일암 해돋이 여수 향일암 해돋이와 광양 매화축제 등을 둘러본다.3월23,24일. 서울역에서 오후 10시50분 출발해 다음날 오후 9시50분 돌아온다. 어른 6만 4000원, 어린이 5만 9000원.KTX관광레저. ■ 둘러볼 만한 곳 ●고막천교 궁궐이나 관청 등이 아닌 순수 민간지역의 다리로는 가장 오래된 곳.700여년 전인 고려 원종 15년(1274)에 세워졌다. 서민들이 애용하던 질그릇 같은 투박함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보수공사를 해놓아 옛모습이 적잖이 사라진 것이 흠. 함평으로 향하는 2번국도변에 있어 주의깊게 보지 않으면 지나치기 십상이다. 함평군청 문화관광과(061)320-3733. ●자산서원 곤개 정재청(1529∼1590)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서원. 함평군 엄다면 제동마을에 위치하고 있다. 남인과 서인의 정권교체가 이뤄질 때마다 설립과 철거가 반복되면서 정치적으로 주목받던 장소. 현재 이곳에 남아 있는 정재청의 문집 ‘우득록’은 호남사림의 인맥이나 동향 등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사료로 평가된다.
  • [어린이책꽂이]

    ●출동! 시간구조대(류가미 지음, 삼성출판사 펴냄) 동아시아 문명 발상지인 황하에서 문명이 성립되지 않았다면? 그리스에서 민주주의가 완성되지 않았다면? 이 책은 이같은 가정에서 출발, 역사를 뒤바꾸려는 시간테러단과 이를 지키려는 시간구조대간의 대결 형식을 빌려 인류역사를 재현해낸 역사 판타지.1권은 황하의 홍수를 막아 하나라의 첫번째 왕이 된 우임금 이야기,2권은 크레타 왕궁에 있는 미로 속에서 미노타우로스와 싸우는 테세우스 왕자를 구해내는 이야기다. 각권 9500원. ●십장생을 찾아서(최향랑 지음, 창비 펴냄) 십장생은 도교의 신선사상에 토대를 둔 것으로, 장수의 상징인 열가지 자연물을 가리킨다. 해, 소나무, 학, 사슴, 불로초(영지버섯), 바위, 물, 거북, 산, 구름. 때론 곧고 푸른 대나무와 신선의 땅에서 난다고 하는 복숭아가 포함되기도 한다. 십(十)은 상하좌우 모든 것이 갖춰진 완벽함을 나타내는 숫자이기도 하다.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춰 쓴 십장생 이야기.1만원. ●맛있는 들풀(마루야마 나오토시 지음, 김창원 옮김, 진선아이 펴냄) 어린 잎을 따서 고명으로 쓰는 초피나무, 껍질을 벗겨 나물로 먹는 섬조릿대, 어린순을 무쳐 먹는 독활, 어린잎을 튀겨 먹는 호장근…. 봄이면 산과 들에 지천으로 깔리는 들풀은 잡초로만 보이지만 사실은 우리의 소중한 먹거리다.60여종의 들풀을 세밀화로 소개한 생태교육 도감.7500원. ●그림으로 보는 세계 생활사(앤 밀라드 등 지음, 홍순철 옮김, 창해 펴냄)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빵 몇조각을 약간 구운 다음, 다시 물을 섞어 체로 걸러 맥주를 만들었다. 바이킹은 어떻게 살았을까. 선원이며 전사이자 탐험가였던 바이킹은 다른 나라를 공격하고 약탈하는 해적이었지만 훗날 아이슬란드 등 유럽의 여러 지역에 정착했다.‘사가’라 불리는 서사시는 용감한 바이킹 영웅들의 이야기를 담은 것이다. 인류의 첫 문명에서 20세기 초반까지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다룬 세계사 그림책.2만 4000원. ●박쥐(팅 모리스 지음, 이충호 옮김, 베틀북 펴냄) 박쥐의 종류는 950종 이상. 얼음으로 뒤덮인 북극과 남극지역을 제외한 거의 모든 곳에서 산다. 보통 박쥐의 속도는 시속 10㎞. 그러나 박쥐 중에서 가장 빨리 나는 붉은박쥐는 시속 60㎞ 이상으로 날 수 있다. 박쥐는 종류마다 소리를 내는 곳이 다르다. 관박쥐는 코로, 갈색박쥐는 입으로 초음파를 낸다. 어린이 스스로 자연을 탐구하고 관찰할 수 있도록 꾸민 그림책.8500원. ●임경업전(하상만 옮김, 청솔 펴냄)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한 군담소설. 우리나라 고전은 작가가 누구인지 모르는 이본(異本)이 많다.‘임경업전’의 이본은 36가지나 된다. 임경업은 병자호란 당시 호국(청나라)이 가장 두려워한 조선의 장수. 볼모로 잡혀간 세자와 대군을 구하기 위해 몰래 호국에 들어간 임경업은 독보의 배신으로 뜻을 이루지 못한다. 조선으로 돌아온 임경업은 역적 김자점의 음모로 죽고 만다.8000원.
  • 불륜·엽기… 日소설 판친다

    최근 출간된 일본 소설 두편의 일부분이다. 윗글은 초로의 번역가와 17세 소녀의 일탈적 사랑을, 아랫글은 폐경증후군에 시달리는 중년의 여성 아티스트와 20대 초반의 영화감독 지망생의 사랑을 그리고 있다. 동년배간의 연애사가 아닌 현격한 나이차가 있는 남녀간 열애를 다루고 있다는 점 외에 아쿠타가와상, 나오키상 등 일본의 대표적인 문학상 수상작가들의 작품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작품을 읽은 뒤의 느낌은 어딘지 개운치 않다. 그래서일까,“누구나 한번쯤 이런 사랑을 꿈꾼다.” “에로티시즘의 극치”라는 출판사들의 홍보 문구가 유난히 커다랗게 보인다. 일본 소설의 홍수 속에서 노골적이고, 가학적인 성애장면을 묘사하거나 정서상으로 납득할 수 없는 불륜을 그린 함량미달의 작품들까지 봇물처럼 우리 문학시장에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1990년대초 무라카미 하루키로부터 시작된 일본 소설붐은 에쿠니 가오리, 오쿠다 히데오, 온다 리쿠, 이시다 이라 등 개성이 톡톡 튀는 대중소설 작가들이 소개돼 급속하게 우리 소설독자층을 잠식중이다. 지난해 국내에 출간된 일본 문학작품은 509종 153만부로 455종 123만부의 미국 문학을 넘어섰다. 베스트셀러 100위권 안에 무려 31권의 일본소설이 올랐다. 반면 공지영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포함한 우리 소설은 겨우 23권에 불과했다. 독자들이 우리 소설을 외면하고 일본소설을 찾게 되면서 판권가격도 급속하게 뛰고 있다. 몇년 전만 해도 200만∼300만원에 불과하던 일본 소설 판권은 요즘 800만∼1600만원대로 뛰었고,1억원이 넘는 작품까지 등장했다. 출판사들의 과당경쟁이 빚은 풍경이다. 전문 에이전시까지 등장해 가격경쟁을 부채질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함량미달의 작품들은 이런 경쟁구도 속에서 자연스럽게 우리 소설시장에 진입하고 있다. 한 문학 전문출판사 대표는 “일본 소설이 너무 무분별하게 들어오고 있다.”면서 “엄마 친구와의 사랑을 그린 불륜소설, 엽기살인 등을 다룬 3류소설까지 버젓이 우리 서점가를 장식하고 있다.”고 고발했다. 하지만 이같은 일본 소설의 인기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2000년대 들어서면서 독자들이 우리 소설을 외면하게 된 이유를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사에서 이야기 중심으로 우리 소설이 다양해지고 있는 것은 고무적이지만 계층별로 다양한 작품들이 쏟아져 나오는 일본 소설에는 아직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 문학계의 공통된 진단이다.소설가 조정래씨는 일본 소설의 범람에 대해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라고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았지만, 문학계는 함량미달의 일본소설까지 유입되는 현실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박홍환기자 stinger@seoul.co.kr
  • 그리스 로마 서사시로 고전읽기의 해법 제시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에는 같은 사물이나 인물이 늘 같은 말로 표현돼 있다. 예컨대 가만히 앉아 있는 아킬레우스를 묘사할 때에 ‘발 빠른 아킬레우스’라고 하는 식이다. 왜 그런 어색한 표현을 쓴 것일까. 서양고전학을 전공한 강대진(서울대 강사)씨는 그의 저서 ‘고전은 서사시다’(안티쿠스)에서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그것은 이른바 ‘공식구(formula)’라 불리는 것으로, 음송시인이 운율을 맞추기 위해 외우고 있던 구절을 필요할 때마다 반복해서 사용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탄탄한 구조를 지닌 고전작품이라는 말을 흔히 듣는다. 하지만 정작 그 구조라는 것이 어떤 식으로 짜여져 있는지는 잘 모른다. 저자는 그리스·로마 서사시의 구조를 하나하나 짚어가며 작품들 간의 연관성을 분석한다. 저자에 따르면 ‘아이네이스’의 전반부 4장은 ‘오디세이아’를 본받아 이동과 모험을 그린 것이며, 후반부 4장은 ‘일리아스’를 따라 전투내용을 담은 것이다. 두 작품의 소재가 모두 ‘저승여행’이라는 점도 같다. 요컨대 ‘아이네이스’는 호메로스를 모방하면서도 그 내용을 변형한 것이라는 얘기다. 저자는 그리스·로마 서사시를 통해 구체적인 고전 읽기의 해법을 제시한다.‘시인은 과거의 행복과 현재의 고통을 대조한다.’ ‘이야기가 등장하는 순서는 시간 순이 아니다.’ ‘때로는 모순적인 내용이 나란히 놓인다.’ ‘시인은 로마 역사를 찬양하지 않는다.’ 등등.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고전을 직접 읽고 느껴야 한다는 점이다. 저자는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에게 내린 계시의 말을 독자에게 결론으로 들려준다.“들어서 읽어라!” 1만 8000원.김종면 기자 jmkim@seoul.co.kr
  • [하재봉의 영화읽기] 열혈남아

    [하재봉의 영화읽기] 열혈남아

    글 하재봉 시인, 영화평론가, 동서대 교수 나는 울었다. 가슴 속에서 뜨거운 것이 뭉클 솟구쳐 올라왔다. 올해 74세인 어머니 생각이 났다. 좋은 영화는 영화 속의 허구적 이야기에 넋 놓고 빠져들게 하는 게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스크린 밖의 자신의 현실을 생각하게 한다. 시사회 전의 무대인사는 까칠했었다. 설경구는 대뜸 “우리 영화는 비주얼도 없고…“라며 부정적 발언을 늘어놓다가 “영화를 보신 후에 어머님께 전화 한 통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말을 마쳤다. 그의 말대로 영화가 끝난 후, 나는 저절로 휴대폰을 꺼내 어머님께 전화를 드렸다. 그런데 “이 번호는 등록되지 않은….“이라는 메시지가 흘러나왔다. 다시 한번 살펴보았지만 분명히 어머니 전화번호였다. 그때서야 나는, 어머니가 휴대폰을 정지하셨다는 것을 알았다. 2년 예정으로 아프카니스탄으로 떠난 막내딸 휴대폰을 갖고 계신 어머니는 자신의 휴대폰을 정지시킨 것이다. 분명히 몇 달 되었을 텐데 나는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열혈남아>는 복수와 배신이라는 조폭 장르의 흔한 공식으로 전개된다. 소년원에서 만난 자신의 친형 같은 선배를 죽인 조폭 대식(윤제문 분)에게 복수를 결심하고 대식의 고향인 전남 벌교로 내려간 조폭 심재문(설경구 분)의 일주일 동안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재문은 혼자서 국밥집을 하며 살아가는 대식의 어머니 점심(나문희 분)에게 접근한다. 대식이 언제 내려오는지 정확한 정보를 알기 위해서다. 대식을 살해할 기회를 엿보면서 대식이 참석하기로 되어 있는 벌교읍 체육대회가 열릴 때까지 기다리면서 재문은 이상한 감정에 휩싸인다. 재문이 겪게 되는 혼란은, 자신이 복수해야 할 대상의 어머니에게서 모정을 느끼면서 비롯된다. <열혈남아>는 복수를 꿈꾸는 주인공의 비극적 삶을 다룬다는 점에서 느와르 영화의 계보에 속해 있지만, 그러나 이 영화의 개성은, 조폭 장르 안에 서사를 가두는 게 아니라 가족을 매개로 해서 휴먼드라마로 확장시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장르의 영리한 변주를 시도하고 있는 <열혈남아>의 매력은 오히려 비주얼 효과 없이, 과장된 세트나 조명에 의한 인위적 설정 없이, 있는 그대로의 투박한 삶을 투박하게 보여주는 데서 발생한다. 도입부는 머리에 기름을 발라 멋지게 뒤로 빗어 넘긴 재문이 동료 모친의 회갑연에서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다. 이 장면은 조직 내에서 차지하고 있는 재문의 위치를 보여주는 데 목적이 있다. 조직과 겉도는 재문은 상명하복의 규율이 엄격한 조직 내의 선배들에게까지 까칠하게 들이댄다. 결국 그는 조직의 허락 없이 자신의 친형 같은 선배를 죽인 다른 조직의 거물 대식을 살해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대식에게 원죄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전에 재문과 선배는 원래 목표로 삼았던 인물을 착각해서 다른 사람을 살해했고, 그 조직의 중간 보스인 대식이 재문의 선배에게 복수한 것이다. 그러나 재문은 자신의 앞에서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죽어가던 선배를 모른 체하고 도망쳐야 했다. 재문은 대식을 살해하기로 마음먹고 대식의 고향인 전남 벌교로 내려간다. 일주일 뒤, 벌교읍 체육대회에 대식이 참석하기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조직에서는 벌교 출신의 새내기 조직원 문치국(조한선 분)을 대식에게 붙여준다. 대식을 도와주려는 게 아니라 일종의 감시 역할이다. 벌교에 도착한 재문은 숙소를 정하고 대식의 어머니 점심이 운영하는 국밥집에 들린다. <열혈남아>의 진정한 영화적 매력은 재문과 점심의 첫 만남이 이루어지면서부터다. 손은 하얗고 말투나 인상은 더러운 재문이 건달임을 쉽게 알아챈 점심은 자신의 아들 생각이 나면서 재문을 따뜻하게 대해준다. <열혈남아>가 상투적 조폭영화나 휴먼드라마의 함정을 잘 피해 나간 것은, 재문과 점심의 관계가 과장된 인위적 설정을 벗어났기 때문이다. 점심은 재문을 손님 대하듯 하는 게 아니라 잘못을 저지른 아들을 꾸짖듯이 거리감을 두지 않고 대한다. 재문 역시 점심에게 반말을 하며 막 대하는 것 같지만 점심이 먼 시내로 일을 보러 가면 자신의 차로 태워주기도 하고, 뻘에서 일하고 있는 동네 아낙들 새참 가져다 줄 때도 자신의 차로 모셔다 주기도 한다. 점심에게는 두 아들이 있다. 큰아들 대식은 조폭이 되었지만 둘째 아들은 원양어선을 타고 남극 근처로 나갔다가 실종된 지 6개월 째다. 하지만 점심은 자신의 아들이 실종되었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아들에게 이상이 있다면 당연히 자신의 몸에도 뭔가 신호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일이 절대 없다는 것이다. 점심의 상식으로는 실종된 둘째가 분명히 살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재문에게 옷을 입혀 보고 우체국에 가서 그 옷을 소포로 보낸다. 시장에 갔다가 돌아오는 차 안에서 점심에게 심수봉의 ‘백만송이 장미’ 테이프를 건네는 재문의 모습을 그러나 감독은 클로즈업으로 잡지 않는다. 신인 이정범 감독은 담담하게 재문과 점심의 관계가 진전되기를 기다린다. 옥상 빨랫줄에 걸어 놓은 재문의 꽃무늬 셔츠는 다가올 핏빛 죽음을 암시하고 있다. 점심이 둘째 아들의 옷을 고르다가 재문에게 사준 꽃무늬 티셔츠는, 재문을 자신의 또 다른 아들로 받아들이는 점심의 마음이 들어 있다. 그리고 그것은 이 땅의 모든 어머니들이 세상에 나가 상처받고 다친 몸으로 결국 자신이 태어난 고향, 어머니에게 돌아올 때 아무 조건 없이 자식을 껴안아 주는 모든 어머니들의 마음이기도 하다. 우리가 <열혈남아>에 감동하는 것은, 단순히 복수를 꿈꾸는 조폭과, 그가 살해하기로 마음먹은 인물의 어머니에게 느끼는 모성애 때문은 아니다. 그것은 재문과 점심이라는 특정한 인물의 관계를 뛰어 넘어, 모든 어머니와 자식의 관계로 확장된다. 거기에서 <열혈남아>의 아우라가 발생한다. 벌교 체육대회를 앞두고 밤하늘에서 피어나는 불꽃은, 짧지만 화려하고 아름답게 자신의 생을 마감한 인물의 상징적 변주다. 재문과 치국의 관계도 중요하게 설정되어 있는데, 치국은 재문을 감시하기 위한 조직의 하수인을 벗어나 또 다른 역할을 해야 한다.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부르는 복수의 악순환은 치국의 마지막 행위에서 선명하게 드러나야 하는데, 조한선은 자기에게 주어진 역할을 하기는 했지만 그 이상 발전하지는 못했다. 따라서 <열혈남아>는 재문의 복수극에서 발생하는 혼란 과정을 담은 영화가 되었다. 그러나 이 영화가 더 깊은 맛을 우러내기 위해서라면, 치국의 혼란 또한 섬세하게 드러났어야만 했다. 결정적 흠이 없는 것은 아니다. 마지막 순간, 절제된 서사로 무섭게 우리의 가슴속을 파고 들던 감독은 어쩐 일인지 절제의 끈을 놓아 버린다. 마지막 순간에는 터져도 된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그러나 이것은 매우 위험한 도박이다. 영화의 중심이 흔들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식탁 위에 엎드린 재문의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떨어지고, 그것을 보고 오열하는 점심의 절규는 지금까지의 절제된 감성과 품위를 무너뜨리고 있다. 설경구는 <박하사탕>의 김영호도, <오아시스>의 전과 3범 홍종두도 아닌, <열혈남아>의 심재문을 창조해냈다. 이글거리는 복수의 눈빛 속에 상처받은 영혼의 아픔과 비열함 혹은 망설임을 담아내는 그의 연기는 최상치에 도달한 장인의 어떤 것이다. 그리고 또한 이 영화는 나문희의 발견이기도 하다. 비록 마지막에 신파로 흐르려는 감성적인 부분이 제어되지 못하고 조금 흔들리기는 했지만 그것은 감독의 몫이다. 그녀는 온전히 제 몫을 해냈다. <열혈남아>는 흔한 조폭 느와르 장르의 공식을 따라가면서 전개되다가 느닷없이 전혀 다른 상황으로 개입시킴으로써 우리를 혼란에 빠트린다. 그러나 그 혼란은 즐거운 혼란이다. 좋은 영화는 이렇게 상투적 어법을 거부하고 삶의 사실성을 우리에게 되돌려 주면서 나 자신의 삶을 생각하게 만든다. <열혈남아>가 그렇다.     월간 <삶과꿈> 2006.12 구독문의:02-319-3791
  • [박성서의 가요X파일](2)‘산너머 남촌에는’의 박재란

    [박성서의 가요X파일](2)‘산너머 남촌에는’의 박재란

    ‘삼천만의 연인’이었던 ‘꾀꼬리가수’ 박재란씨는 빼어난 외모만큼이나 당시 옴니버스 음반들의 커버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데뷔 때부터 전성기였던 1960년대 중반까지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음반 재킷을 장식했던 가수가 바로 박재란씨로 필자가 확인한 것만도 무려 100여종. 아울러 스크린에도 진출,1959년 박종호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손석우씨가 주제가를 맡은 영화 ‘비오는 날의 오후 세시’에서는 미남, 미성의 가수 손시향씨와 함께 특별 출연해 주제가와 함께 연기를 선보였고 이어 1961년, 영화 ‘천생연분(박성호 감독)’에서는 타이틀 롤을 맡아 열연했다. 또한 1962년 발표된 히트곡 ‘님’은 가사 중 ‘창살 없는 감옥’이라는 단어를 타이틀로 이듬해 영화로까지 제작되었다. 아울러 이 노래 ‘님’은 2001년, 작사가 차경철씨 출생지인 울산의 대운산 입구에 노래비까지 건립됐다. 방송과 영화, 취입과 공연 등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던 시절, 전국을 누비던 ‘박재란 쇼’는 언제나 몰려드는 관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무리한 일정으로 인해 폐가 나빠져 약으로 버티면서도 하루에 무려 30곡이나 되는 노래 연습과 취입을 해야 했어요. 젊었을 때니까 가능했던 일이었겠지만 무엇보다 대중들의 환호가 가장 큰 힘이었지요.” 무대에서 생긴 병은 다음 무대에서 치유되었을 정도로 그에게서 노래는 어려움을 이겨낸 치료제이자 면역력을 키워준 힘이었다.‘대중들 앞에서의 삶’이 전부였던 그에게도 비로소 ‘자신만의 인생’이 펼쳐진다.1959년, 영화주제가 ‘장마루촌의 이발사’를 연습하기 위해 작곡가 김광수씨 집에 갔다가 운명처럼 남편 박운양씨를 만난 것. 동갑내기이자 당시 성균관대생이었던 박운양씨는 작곡가 겸 연주인 김광수씨가 출연하는 ‘무학성 카바레’의 단골로 서로 의형제를 맺은 사이. 그와의 사랑이 시작되면서 행복과 불행이 동시에 찾아왔다. 그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 바로 1989년 ‘한번만 더’로 사랑받았던 가수 박성신씨다. 아울러 남편이 영화제작에 손을 댔다가 결국 사기를 당하면서 경제적 어려움이 시작된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함께 쇼 단체를 만들어 전국 공연에 나서기도 했지만 세상일을 모르고 살았던 이들에게 결코 만만치 않았다. 결국 100평 남짓하던 서울 후암동 2층집에서 용산 단층집으로, 또 갈현동 전셋집으로 전락하며 가세가 급격히 기울어갔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부부간의 불화로 인해 결국 이혼을 택한 뒤 1973년 혼자 미국행 비행기에 오른다. LA에 도착한 그는 나이트클럽 ‘타이거’에서 노래 부르는 것을 시작으로 재기에 안간힘을 썼다. 동시에 한국을 오가며 음반을 발표하며 방송에도 종종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이 무렵 미국 시민권을 가진 연예인들이 이따금씩 귀국해 활동하는 것에 대해 ‘국고를 해외로 빼돌린다.’는 투서사건이 발생, 국내 활동이 일체 중단되자 그 역시도 점차 대중들로부터 잊혀져 갔다. 더구나 1979년, 아파트 화재로 모든 걸 잃는다. 밑바닥까지 내려간 그의 생활은 재기에 집착할수록 오히려 그 집념이 병이 되어 심장과 신장에 이상이 오는가 싶더니 급기야는 악성 위궤양으로 발전, 음식물을 삼킬 수 없는 상태에까지 이르렀다. 유년시절 숱한 잔병치레를 통해 강한 면역력을 키운 동시에 어려웠던 시대를 향해 희망의 메시지를 던졌던 가수 박재란. 이제 그는 스스로 ‘긍정적으로 대할수록 긍정적으로 되는’, 이른바 ‘피그말리온 효과(Pygmalion Effect)’를 몸으로 실천하고 있는 듯 여겨졌다. 너나없이 어려운 시절이었기에 오히려 밝은 모습으로 대중들 앞에 나섰던 그, 스스로의 ‘피그말리온 효과’는 지금에 와서 새삼 그를 지탱해주는 에너지이다. 현재는 선교활동을 통해 ‘노래하는 전도사’로 ‘제2의 삶’을 살고 있다. 대중음악평론가 sachilo@empal.com
  • 우리와 친근한 ‘몽골 설화’ 161편

    몽골은 800년 전쯤 문자가 도입되기 전까지 수세기에 걸친 역사를 음유시인들이 노래, 일종의 서사시로 전했을 정도로 기록문학보다는 구비문학의 전통이 강한 나라다. 이같은 전통에 의해 다양한 영웅서사시와 전설, 여럴(행운을 비는 축시), 마그탈(찬미하는 시) 등이 지금까지 전해오고 있다.‘몽골의 설화’(데. 체렌소드놈 엮음, 이안나 옮김, 문학과지성사 펴냄)는 구비문학 작품을 집대성한 책이다. 신화·동물담·신이담·영웅담·생활담 등 모두 161편의 몽골지역 설화들이 체계적으로 정리돼 있다. 설화 가운데는 우리 옛이야기와 비슷한 것들이 많아 눈길을 끈다. 책에 실린 ‘타르바간은 왜 발가락이 네 개가 되었나’ 이야기는 ‘삼국유사’ 경문왕조에 나오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와 비슷하다. 부랴트 부족의 기원설화인 ‘호리대 메르겡’은 ‘선녀와 나무꾼’의 줄거리와 매우 흡사하다. 몽골의 저명한 구비문학 연구가인 편자는 “몽골 민중에게는 재능있는 이야기꾼과 호르(몽골 전통 현악기) 연주자를 무엇보다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존경해 온 아름다운 전통이 있다.”며 “이름난 설화꾼, 서사시 창자(唱者)를 집이나 궁에 모셔다 이야기를 시키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말한다. 몽골 민중의 위트와 풍자, 상상력이 살아 숨쉬는 옛이야기들을 한데 모은 이 책은 몽골의 역사와 문화를 밑바닥부터 이해하는 데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한다.2만원.김종면 기자 jmkim@seoul.co.kr
  • 2월 첫날에 만나는 3색 필름

    ‘미녀는 괴로워’ ‘마파도2’ 등 한국 영화의 강세가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2월의 첫날 외화 세편이 동시에 도전장을 내민다. 서사 액션, 미스터리가 가미된 로맨틱 코미디, 가족애를 설파한 휴먼코미디 등 장르도 다양하다. 매력 포인트를 짚어본다. ● 아포칼립토-멜 깁슨표 대하서사시… 그러나 잔혹한 가혹한 운명에 맞선 고대 마야 전사의 이야기를 다룬 ‘아포칼립토’는 잔혹하고 폭력적인 장면 때문에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작품이다. 마야문명이 번창하던 시절, 평화로운 부족 마을의 젊은 전사 ‘표범 발’은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날 다른 부족의 전사들이 침략해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표범 발’은 고대 마야도시로 끌려간다. 제물로 바쳐질 뻔하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그는 아내와 아들을 구하기 위해 필사의 탈출을 감행하고 적들의 집요한 추격을 받는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로 예수의 고난을 생생히 그려 스크린을 피로 물들였던 멜 깁슨이 원시시대 부족간 생존 다툼을 진짜처럼 그려냈다.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무명의 배우들을 캐스팅했으며, 배우들은 모두 고대 마야어로 연기했다. 비교적 보존상태가 양호한 멕시코의 열대우림 지역에서 촬영된 영화는 반 이상이 추격신이라 시종 손에 땀을 쥐게 한다. 그러나 펄떡이는 사람의 심장을 파내고 머리에서 피가 공중분사되는 등 적나라한 묘사가 많아 객석에서는 진저리 치는 소리가 끊이질 않는다.18세 관람가. ● 스쿠프-우디 앨런의 달콤쌉싸래한 블랙 유머 ‘스쿠프’는 요즘 인기인 카카오가 99% 함유된 초콜릿처럼 달콤하기보다는 쌉싸래한 맛을 안겨주는 영화다. 지난해 ‘매치포인트’로 관객을 매료시켰던 우디 앨런이 좀더 가볍게 포장해 들고 나온 작품. 로맨틱 코미디에 서스펜스까지 가미돼 보는 맛이 쏠쏠한 수작이다. 세상을 하직하고 황천길을 가던 기자 조 스트롬벨(이안 맥셰인)은 기막힌 특종거리를 듣게 된다. 그것은 바로 영국의 귀족남 피터 라이먼(휴 잭맨)이 악명 높은 연쇄살인범이라는 것. 특종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그는 참지 못하고 런던에서 휴가를 즐기고 있는 미국인 기자 지망생 산드라(스칼렛 요한슨) 앞에 나타나 이를 알려준다. 산드라는 마술사 시드니 워터맨(우디 앨런)을 끌어들여 피터에게 접근하고, 점차 그에게 빠져들면서 갈등을 겪게 된다. 감독은 서른일곱번째 작품에서 맛깔스러운 대사와 넘치는 유머로 재무장해 관객을 원없이 웃겨준다. 세상에 완전범죄는 없다는 결말을 위한 마지막 반전은 다소 약하지만 용서할 만하다.12세 관람가. ● 클릭-우리네 가장의 비애… 내 인생 돌려줘 애덤 샌들러의 ‘클릭’은 제 몫은 충분히 하는 코미디 영화다. 할리우드 영화의 단골 소재인 일만 알던 가장의 개과천선이 주제. 내 인생 내 맘대로 살고 싶은 대리만족도 있다. ‘진주만’의 케이트 베켄세일이 아내 도나로 나오며,‘디어 헌터’의 창백한 영혼 크리스토퍼 월켄이 나이 지긋한 모습으로 마이클을 시험에 들게 하는 천사 모티로 나온다. 늘 일에 쫓기는 가장 마이클(애덤 샌들러). 승진이 걸려 있는 프로젝트 마감이 코앞인데 아내와 아이들의 불평은 끊이질 않는다. 그에겐 일상 자체가 복잡하고 귀찮다. 통합리모컨을 사러 쇼핑몰에 들른 그는 인생을 맘대로 조정할 수 있는 ‘만능 리모컨’을 얻게 된다. 아내의 잔소리는 음소거, 애완견 배변보기는 빨리감기, 얄미운 직장상사를 한방 먹일 때는 일시정지로. 그러나 치명적인 부작용이 있었으니. 빨리감기를 반복해 눌렀더니 리모컨이 제멋대로 1년,5년,10년의 세월을 건너 뛴다. 어느덧 정신을 차려 보니 머리 허연 그의 곁엔 아무도 남아 있질 않았다. 성공 가도를 달려도 곁에 가족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교훈이 웃음 가운데 절절히 배어 있는 영화다.12세 관람가.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문화마당] 신시(神市)의 새벽을 열자/최동호 시인 고려대 국문과 교수

    삼국유사를 읽지 않고 한국의 문화와 역사를 말할 수 없다. 누구나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되풀이해 다시 읽어야 하는 책이 삼국유사이다. 삼국유사에는 한국인의 원형적인 사고와 생활 감정이 담겨 있다. 오늘의 한국인들이 천년전 또는 그 이전의 자기의 모습을 알고 싶다면 삼국유사를 다시 거울처럼 들여다보아야 한다. 최근에 간행된 이어령 선생의 ‘삼국유사 이야기’에서 우리는 새롭게 해석된 삼국유사의 신화적 코드를 발견하게 된다. 그리스나 로마의 신화에 익숙한 젊은이들에게 우리 것을 돌아보기 위해 삼국유사를 다시 읽어 보라고 말하고 싶다. 왜 우리에게는 서양의 것과 같은 신화가 없느냐고 아쉬워하는 젊은이들은 ‘삼국유사 이야기’를 읽어야 할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서구의 신화와 한국의 신화의 차이를 명쾌하게 깨닫게 될 것이다. 우리 신화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이 ‘단군신화’이다. 서양의 신화가 대립과 투쟁의 역사를 보여 주는 것이라면 한국의 신화는 고행과 조화의 역사를 보여 주는 것이다. 동굴 속에 들어가 100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호랑이와 곰이 인간이 될 것이라는 금기는 자기 자신과의 싸움을 통해 인간이 되려는 동물의 자기극복 과정을 보여 주는 통과의례이다. 동굴 속에서 호랑이와 곰이 서로 싸워서 승리를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금기를 지키는 인내심을 통해 인간과 동물의 경계를 넘어설 수 있다는 문화적 코드가 단군신화의 첫머리에 담겨 있다. 곰에서 변신한 웅녀가 매일같이 신단수 아래 와서 환웅에게 빌어 인간의 몸으로 변신한 환웅과 관계를 가져 아들을 낳으니 그가 바로 단군이다. 한국인의 역사가 바로 단군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여기서 되짚어 보고 싶은 것은 신들의 역사에서 인간의 역사가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천제의 아들 환웅이 인간을 이롭게 할 땅을 찾아 태백산 꼭대기 신단수 아래로 내려와 신시를 열었다는 것도 간과할 수 없다. 신시는 신과 인간이 만나는 자리이면서 하늘과 땅의 조화가 이루어지는 곳이다. 한국인의 역사의 시원을 거슬러 올라가 만나게 되는 최초의 지점이 신시이다. 하늘과 땅이 인간과 어우러져 최초의 역사가 시작된 신시를 지금 우리가 돌이켜 생각해 보아야 하는 것은 현실의 상황이 복잡하고 미래가 어둠이 덮인 새벽처럼 불투명해 보이기 때문이다. 2002년 월드컵 당시 우리는 마치 신시가 다시 열리는 것과 같은 환호와 축제의 날을 맞이한 적이 있다. 역사의 전개란 항상 기쁨과 희망으로 전개되는 것은 아니다.20세기 한국사는 그야말로 다른 어느 세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고난의 연속이었다. 거의 기적적으로 이를 극복하고 이제 바야흐로 선진국 대열에 동참하려는 이 순간, 역사는 우리에게 또다시 새로운 시련을 부여하고 있다. 이때 우리는 단군신화에서 곰이 역경을 극복하고 인간으로 탈바꿈하여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였던 것처럼 견인의 정신으로 이를 극복해야 한다. 역사를 개척해 나가는 민족은 시련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어떤 민족이나 국가든 시련과 도전을 이겨내지 못하면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져 갔다. 우리는 단군으로부터 오천년의 역사와 더불어 국내외의 모든 역경을 극복해 왔다. 그러한 경험이 우리 민족을 강인하게 만들어 왔던 것이다. 비단 단군신화에 대한 것만이 아니다. 이어령 선생의 ‘삼국유사 이야기’는 처용, 김유신, 수로부인, 바보 온달 등 풍요롭고 흥미 있는 이야기들을 새로운 문화적 코드로 읽어내면서 한국인의 원형적 캐릭터와 서사의 근원을 심도 있게 밝혀 준다. 날카로운 통찰과 예지에 빛나는 그의 이야기들은 오늘과 내일의 우리가 나갈 길을 밝혀 주는 확실한 길잡이가 될 것이다. 최동호 시인 고려대 국문과 교수
  • 판사(判事)님도 검사(檢事)님도 몽땅 가짜 였네

    판사(判事)님도 검사(檢事)님도 몽땅 가짜 였네

    서울 서대문구 서소문동 37번지. 하루 평균 2만명의 사람들이 억울한 사연, 골치 아픈 사연을 갖고 찾아드는 곳이다. 대법(大法) 고법(高法) 지법(地法), 대검(大檢) 고검(高檢) 지검(地檢)이 자리잡고 있는 이 곳은 언제나 사람과 법(法)이 씨름하는 장소. 이 서소문동 37번지엔 법의 허점을 악용하는 야바위꾼들도 많다. 가짜판사, 가짜검사에서 가짜입회 서기, 심지어는 가짜 사동까지. 걱정하는 제소인(提訴人)을 만나자 “사촌은 검사, 매부는 판사” 5월 7일 서울지검 수사과는 검사를 사칭, 소송 중에 있는 사건을 잘 처리해 준다고 속여 14만원을 받아먹은 최경섭(崔庚燮·36)을 법률사무 취급 단속법 위반과 공무원자격 사칭 혐의로 구속했다. 그러나 최를 수사하던 수사관들은 최와 공모한 자 중에 가짜판사 박몽규(朴夢圭·43·도주) 가짜 입회서기 양(楊)모(44·도주) 심지어는 가짜 법원 사동 이(李)모양(19·D여고생)까지 있는 것을 알아내고 깜짝 놀랐다. 이들 가짜 4인조는 가짜 「이동법정」을 만들어 법을 잘 모르는 순진한 사람들을 등쳐왔던 것. 이들의 끄나불로서 「건(件)」을 물어오는 「브로커」역에는 주범 최의 일가인 최원영(53)이 앞장섰다. 지난 2월부터 법원주변의 사건「브로커」 소탕작전을 벌여오던 수사관들도 이처럼 치밀, 완전 무결한 가짜 5인조를 잡아내기는 이번이 처음. 자기 할아버지로부터 상속받은 땅 3천90평(싯가 6천만원 상당)을 사기 당한 장(長)모씨(48·서울영등포구 신림동 85)는 민사소송 3년에 지칠 대로 지쳐버렸다. 그런 어느 날 명동 어귀에서 친구 L씨를 만났다. 장씨는 L씨에게 자기의 억울한 사연을 호소했다. 그러자 L씨와 동행중이던 최원영은 『그런 일이라면 우리 사촌이 검사고 매부가 판사니까 걱정말라』며 장씨앞으로 바싹 다가 앉았다. 최는 장씨에게 『사건이 해결될 때까지의 비용은 내가 댈 터이니 끝나거든 50만원만 내라』고 제의. 6천만원짜리 재산을 날리게 된 장씨는 구세주를 만난듯 최의 제의를 받아 들였다. 다음날 장씨는 최의 소개로 검사라고 사칭하는 최경섭을 법원주변 다방에서 만났다. 최경섭은 장씨의 하소연을 점잖게 다 듣고 나더니 『그런 일 같으면 걱정 마시오. 우리 매부가 박몽규판사니 이따 저녁때 술이나 한잔 사면 잘 해결될 거요』했다. 자기 이름 석자도 제대로 쓸줄 모르는 장씨는 이 가짜검사를 연방 『영감님, 영감님』하며 굳게 믿었다. 이 날 저녁 서울 청진동에 있는 「백양관」이란 술집엔 술상이 벌어졌다. 가짜검사 최경섭이 가짜판사 박몽규를 데리고 나타나 연방 『영감님』하고 받드는가 하면 가짜 입회서기 양은 최를 보고 『검사영감』이라고 불렀다. 최일당의 「쇼」는 어찌나 완벽했던지 장씨에게 『판사영감이 사건당사자와 함께 술마시는걸 좋아 안하니 옆방에 가 있으라』고 하며 「브로커」최와 함께 옆방에서 따로 술상을 받게 했다. 장씨가 가만히 들으니 가짜 최검사가 가짜 박판사에게 자기 소송사건을 얘기하고 협조를 구하는 것. 판사 역시 『좀 어렵겠지만 최검사 하고 같이 하면 안되겠소?』하며 너털웃음. 장씨는 술값이 몇10만원이 되어도 억울하지 않을 기분이었다. 최 일당은 한수 더떴다. 술좌석이 한창 무르익고 「호스테스」들의 웃음소리가 낭자할 무렵 여고학생복을 입은 이양이 장씨방에 나타났다. 도장찍은 백지 주었더니 상대방 돈받고 소송취하 『여기 저희 박판사님 계시지요?』 장씨가 웃방에 있다고 알려주니 이양은 그 방으로 건너가 지방법원장이 밤에 댁으로 전화해 달란다고 전했다. 장씨는 이말을 듣자 『행여… 』하던 의심까지 깨끗이 없어져 버렸다. 이들은 이 날밤 「백양관」을 나오며 『기분이 그렇지 않으니 2차 해야겠다』고 해서 장씨는 또 1만원을 주었다. 이래서 이 날 술값 지출은 4만원. 이런 술 좌석이 대여섯번 계속되었다. 그 때마다 『공탁금을 걸고 시작하자』느니, 『사기로 형사소송부터 걸자』느니 장씨로선 알아 듣지도 못할 소리를 지껄였다. 마침내 가짜 최검사는 박에게 주어야겠다며 14만원을 요구. 장씨는 돈을 얻어다 최에게 주었다. 그러자 최는 백지 두장을 내어 놓으며 『이제 다 되었으니 도장만 찍으라』고했다. 장씨는 그대로 도장을 눌렀다. 며칠뒤 법원에 간 장씨는 깜짝 놀랐다. 3년째 계류중이던 자기의 민사소송이 자기 이름으로 깨끗이 취하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덜컥 의심이 난 장씨가 검사, 판사명단을 뒤져보았을때 이들 일당의 이름은 하나도 없었다. 가짜에 속아 돈뺏기고 소송까지 취하당했으니 꿩잃고 알 잃은 셈. 장씨에게서 백지도장을 받은 최일당은 장씨의 민사소송 상대방을 찾아가 소송취하를 조건으로 또 돈을 받아먹고 소송을 취하해 버렸던 것. 결국 장씨의 고발로 주범인 가짜검사 최는 쇠고랑을 차게 되었지만 공범인 박, 양등은 도망가고 말았다. 이들 가짜 5인조는 모두 사법서사 사무소의 사무원 출신들. 그래서 까다롭고 알기 어려운 법의 맹점을 이용, 선량하고 법을 잘 모르는 소송 당사자들을 등쳐온 것이다. 사법서사 사무소 출신 등 법률 좀 아는 것을 기화로 법원주변을 돌아다니는 이런 법원야바위꾼들중엔 전직 경찰관, 전직 변호사사무소, 사법서사사무소의 사무원, 전직 법원직원이 대부분이다. 5월 9일 구속된 김동주(金銅柱·58)는 현직 S변호사회 사무장으로서 업무상 과실치상으로 구속된 박모씨를 석방시켜 준다는 조건으로 10만원을 받어먹고 덜컥. 그런가 하면 역시 구속된 허복만(許福滿·37·서울 성북구 중곡동 150)은 전국을 무대로 지난 4월에도 이모씨를 석방시켜 준다는 조건으로 45만원을 우려먹다가 구속. 5월 9일 구속된 윤석문(尹錫文·44·서울 용산구 보광동 산6) 역시 허와 같은 사법서사 사무원출신으로 사문서위조로 구속된 김모를 적부심에서 풀어 준다고 15만원을 받아 먹고 피해자의 고발로 잡혀 들었다. 이들은 모두 법원주변을 무대로 선량한 사람들을 등쳐 오던 법원기생충들. 결국은 법에 의해 교도소 신세를 지게 되었지만 이밖에도 억울하게 이들 기생충에게 피해를 입는 사람은 부지기수다. 법원주변에서 서성거리다가 가까이 다가와 친절을 보이며 사건내용을 묻는 사람은 1백명이면 1백명 모두 이런 유의 악덕 「브로커」란게 서울지검 수사관들의 얘기.
  •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3)송석원시사의 인재 장혼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3)송석원시사의 인재 장혼

    위항시인들이 주관하는 백일장인 백전(白戰)에 수백명이나 참석할 수 있었던 까닭은 송석원시사의 중심인물이었던 천수경이나 장혼이 한양 인왕산에서 커다란 서당을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위항시인 이경민이 편찬한 위항인들의 전기집 ‘희조질사(熙朝 事)’의 천수경편에 의하면 “한달에 60전을 내게 하니…(줄임)배우는 아이가 많게는 300명이나 되었다.”고 한다.“(제자 가운데)나은 자가 못한 자를 가르쳤다.”고 했으니, 조를 나누어 가르칠 정도로 체계를 갖춘 기업형 서당이었음을 알 수 있다. 장혼의 서당에도 아들과 손자 또래의 제자들이 모여 글을 배웠다. ●교정 보고 책 만드는 일로 반평생을 보낸 장혼 장혼(張混·1759∼1828)의 아버지 장우벽(張友壁)은 날마다 인왕산에 올라가 노래를 불렀다. 사람들이 그가 노래 부르는 곳을 가대(歌臺)라고 불렀다. 장우벽 자신은 글을 웬만큼 알았지만, 총명한 아들 장혼을 서당에 보내지 않았다. 문장을 잘 지어도 쓸 데가 없는데다, 오히려 중인 신분의 한계를 탄식하며 처절하게 세상을 살아갈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혼의 어머니 곽씨가 집에서 글과 역사를 가르쳤다. 아버지는 떠돌아다니며 노래를 불러 가난한 집안 살림은 장혼이 도왔다. 여섯살 때에 개에 물려 오른쪽 다리를 절었지만, 나무하고 물 긷는 일을 도맡아 했다. 학문을 좋아하던 정조가 1790년에 옛 홍문관 터에 감인소(監印所)를 설치하고 여러가지 책들을 인쇄하여 반포하려고 하자, 오재순이 장혼을 사준(司準)에 추천하였다. 교정 보는 일을 맡은 사준은 정9품 잡직이었는데, 기술직 중인들이 맡는 말단 벼슬이었다. 그는 “원고와 다른 글자를 살피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솜씨가 마치 대나무를 쪼개는 것 같았다. 규장각의 여러 고관들 가운데 칭찬하지 않는 이가 없어 모두 그에게 일을 맡겼다.”고 한다. 책 한권을 다 만들면 의례 품계를 올려주는 법인데, 그는 번번이 받지 않고 사양하였다. “적은 봉급은 어버이를 모시기 위해 받지만, 영예로운 승진은 제가 욕심내는 것이 아닙니다.”라고 이유를 밝혀, 정조가 봉급을 더 많이 주었다. 모친상을 당한 3년을 빼고는 1816년까지 줄곧 사준으로 일하며, 사서삼경을 비롯해 ‘이충무공전서’ ‘규장전운(奎章全韻)’ 등의 책들을 간행하였다. 정조의 문집인 ‘홍재전서(弘齋全書)’도 장혼이 교정을 보았다. 장혼이 교정을 잘 본다고 소문이 나자 궁중뿐만 아니라 민간에서도 그에게 교정을 부탁하였다. 금속활자를 만들려면 워낙 비용이 많이 들어 민간에서는 대개 목판으로 인쇄했는데, 재산이 넉넉하고 인쇄할 책이 많은 집안에서는 개인적으로 활자를 만들기 시작했다. 자기 문중의 책을 다 찍은 다음에는 그 활자를 남에게 빌려주며 돈을 받기 때문에 처음에 많은 자본을 들이면 어느 정도 상업성도 있었다. 돈암(敦岩) 박종경(朴宗慶·1765∼1817)은 누이가 순조의 생모 수빈 김씨였다. 순조가 즉위하고 정순왕후가 수렴청정을 하면서 지극한 총애를 입어 호조판서에 오르고 훈련도감을 맡았다. 그는 가통을 세우기 위해 5대 이하의 유고를 모아 ‘반남박씨 오세유고(潘南朴氏五世遺稿)’를 편집했으며,1816년에 정교한 금속활자를 직접 만들어 세고와 함께 아버지의 문집 ‘금석집(錦石集)’을 인쇄하였다. 청나라 취진판(聚珍版) 전사(全史,二十一史)의 글자를 자본으로 인서체(印書體) 동활자 20만자를 주조한 것이다. 박종경이 개인적으로 만든 활자를 전사자(全史字), 또는 그의 호를 따서 돈암인서체활자(敦岩印書體活字)라고 한다.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는 주변에 빌려줘 여러 종류의 책이 만들어졌다. 박종경의 활자로 인쇄한 초기 십여종의 책은 대부분 장혼이 교정하였다. ●목활자 만들어 서당 교재를 인쇄 인왕산 서당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던 장혼은 ‘천자문’ 말고도 여러가지 교과서의 필요성을 느꼈다. 자기 서당에 찾아오는 아이들을 효과적으로 가르치기 위해서도 그렇지만, 직접 찾아와 배우지 못하는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서도 좋은 교과서가 필요했다. 중국의 역사와 인물 위주로 만들어진 ‘천자문’이 좋지 않은 교과서라는 점에 대해서는 다산 정약용을 비롯해 많은 학자들이 이미 비판해, 나름대로 대안 교과서를 만들고 있었다. 장혼이 처음 만든 교과서는 ‘아희원람(兒戱原覽)’이다. 제목 그대로 아이들이 보아야 할 내용을 가려뽑은 책이다. 정리자체 철활자를 빌려 1803년에 인쇄하였다. 그런데 남의 활자를 빌려오려면 비용이 많이 들고 불편했다. 그래서 인쇄 전문가였던 장혼은 스스로 필서체(筆書體) 목활자를 만들었다. 웬만한 책을 만들려면 금속활자를 10만개 넘게 주조해야 했는데, 장혼의 재산으로는 불가능했기 때문에 나무로 활자를 만들었던 것이다. 윤병태 교수(전 충남대문헌정보·작고)는 이 목활자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장혼이 만든 목활자는 폭 12mm 내외, 높이 8mm 내외의 비교적 폭이 넓은 납작한 평면을 가진 활자로 보인다. 그 자체(字體)는 필서체로 되어 있으며, 다른 관주활자(官鑄活字)에 비해 약간 작은 아름다운 글씨체로 보인다. 활자의 자본(字本)을 누가 썼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기록도 보이지 않으나, 김두종은 초예(草隸)에 능한 장혼의 의장(意匠)으로 보인다고 하였다.” 장혼이 처음 목활자로 인쇄한 교과서는 ‘몽유편(蒙喩篇)’과 ‘근취편(近取篇)’ ‘당률집영(唐律集英)’ 세권이다. 모두 “경오활인(庚午活印)”이라는 인기(印記)가 있다. 경오는 1810년이니 그가 송석원시사의 중심인물로 활동하던 시기이다. 목활자는 금속활자보다 빨리 닳아서 찍을수록 글씨가 뭉툭해지는 단점이 있는데,1810년에 인쇄된 책들은 글자체가 비교적 정교하다. 장혼이 만든 목활자는 크기가 작지만 만든 솜씨가 정교하면서도 글자 모양이 예뻐서, 이 활자로 찍은 책들은 금속활자본과 달리 부드러운 맛이 있다. 장혼이 직접 짓거나 편집한 책은 위항시인 333명의 시 723수를 천수경과 함께 편집한 ‘풍요속선(風謠續選)’에서부터 우리나라 역사를 요약한 ‘동사촬요(東史撮要)’까지 24종이다. 그는 자신의 책만 인쇄한 것이 아니라 1816∼1818년 위항시인들의 책 5종을 자신의 목활자로 인쇄해 주었다.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는 최성환이 이 활자를 인수해서 장혼의 제자나 후배 문집 5종을 인쇄했다. 그의 문집인 14권 분량의 ‘이이엄집(而已集)’은 끝내 간행되지 못해 필사본으로 남아 있다. 그가 편집 인쇄한 책들을 통해 위항문화가 널리 퍼졌으며, 그의 서당 제자들이 금서사(錦西社)와 비연시사(斐然詩社)로 인왕산 시사의 대를 이었다. ■ 아희원람이란 ‘아희원람(兒戱原覽)’은 고금의 사문(事文) 가운데 아이들이 찾아보아야 할 내용을 열가지 주제로 가려뽑은 책이다. 1803년에 제작된 본에는 동국(東國)·수휘(數彙)·보유(補遺)가 더 실렸다. 몽유편(蒙喩篇)은 낱글자로 배웠던 천자문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만든 어휘집이다. 상권에는 신형(身形)·연기(年紀)·칭호(稱號)·위분(位分)·명물(名物)의 기본어휘 1049개에 동의어나 유사어가 붙어 있다. 우리말 어휘도 383개나 실렸다. 하권은 인명록인데 덕행(德行)부터 이단(異端)까지 일곱 부류 1 441명의 이름을 실었다. 근취편(近取篇)도 어휘집인데 13장까지는 네글자로 된 속담과 고사숙어 1046개, 그 다음에는 세글자로 된 고사숙어 98개, 그 다음에는 두글자로 된 숙어 192개를 실었다. 아희원람은 윤병태 교수가 확인한 판본만도 7종이나 될 정도로 자주 인쇄돼 널리 읽혔다. 허경진 연세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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