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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0여가지 꽃에 담은 사랑 이별 그리움

    수백년 역사의 환청에 이끌려 지난해 연작 서사시집 ‘왕릉’을 발표했던 시인 이오장(56)씨가 이번에는 꽃에 취해 꽃밭을 헤매었다. 시인은 최근 발표한 여섯번째 시집 ‘꽃의 단상’(시문학사 펴냄)에서 모두 100여종의 꽃에 담긴 다양한 세계와 가치, 논리와 관념을 노래했다. “보름달빛에 피어난 꽃송이//뒤뜰 훤히 밝히는데//길 떠난 낭군은//머나먼 강 잘도 건넜는지//바느질 하는 아낙네 소맷자락//호롱불에 어른어른//어느새 동녘이 밝았네”(‘밤꽃’ 전문) “사막의 나라로/아버지는 돈벌러 나가고/취직한 어머니는/새벽녘에야 돌아와/얼굴 잊혀져갔다/…/아무도 없는 집 담장위로/꽃송이 피어오르던 날/기나긴 장마가 시작되었다”(‘부용화’ 가운데) 시인은 장미, 국화, 동백 등 화려하고 요란한 꽃뿐 아니라 죽도화, 말발돌이, 불두화, 솜다리, 보춘화, 상사화, 참나리, 광릉요강꽃 등 왜소하면서도 이름도 생소한 우리 산하의 각종 꽃과 뻔질나게 마주했다.100여종의 각기 다른 꽃은 시인의 손과 머리를 거쳐 각각의 눈으로, 이야기로, 설화로, 일상으로 풀어내졌다. 예술원 회원인 문덕수 시인은 “모든 작품에서 이미지와 설화의 두 갈래가 공존하고 있고, 작품에 따라 어느 한 특징이 두드러져 보인다.”고 평했다. 그는 또 “큰 담론이 아니라 사랑, 이별, 만남, 그리움 같은, 인륜적인 작은 서정적 에피소드를 담고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 설화조로 시작하는 시 ‘부용화’는 딸의 시점에서 불행한 가정의 이산 이야기를 담고 있다.7000원. 박홍환기자 stinger@seoul.co.kr
  • [시론] 러시아의 독도 표기 유감/박종효 모스크바대 객원교수 한국학센터

    [시론] 러시아의 독도 표기 유감/박종효 모스크바대 객원교수 한국학센터

    러시아에는 독도에 대한 일본의 부당한 주장이 잘 알려져 있다. 학계를 중심으로 한 사회여론은 한국의 영토로 독도를 지지하고 있다고 한다. 반가운 일이다. 오래전부터 일본은 러시아의 극동 관문은 동해라고 생각했다. 러시아 태평양 항로 중심에 있는 울릉도와 독도를 러시아의 진출을 방해할 수 있는 전략지역으로 판단했다. 울릉도는 한국의 소유로 이미 열강에 알려져 있지만 독도는 ‘리앙쿠르 바위섬’으로 지도상에 표시돼 있어 청·일전쟁 중에 일본이 댜오위다오(센카쿠)를 편입했듯이 러·일 전쟁을 시작하면서 1905년 2월22일에 일본 시네마현에 편입시켰다. 러·일전쟁에 앞서 일본은 울릉도에 통신부대를 설치하고 원산을 경유, 만주로 진격하는 일본군을 지휘했다.1905년 3월 쓰시마 해전에 앞서서는 독도에 탑망 시설을 두고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하는 러시아 함대를 전면적으로 포위하여 항해를 저지하는 데 성공해 태평양 2함대 사령관의 부상으로 지휘권을 위임 받은 태평양 3함대 사령관 네바가토프는 독도 해상에서 일본에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지금도 일본은 독도를 쓰시마해전은 물론 전 러·일 전쟁을 결정적으로 승리케 한 성지(聖地)로 생각한다고 한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현재 러시아의 지도에서 사용되고 있는 독도 호칭은 러시아의 전통적인 한반도 정책과 러시아의 전신인 구 소련이 얄타협정과 카이로 선언에 합류한 정신과도 모순된다. 러시아가 독도를 최초 발견한 1855년 지도에는 동도를 ‘올리부차’, 서도를 ‘메네라이’라고 표기했다.19세기 말부터 20세기초까지는 지도상에 리앙쿠르, 호네트, 올리부차, 메네라이라고 병기표기했다. 러·일전쟁 이후에는 다케시마라는 표기가 하나 더 붙어 명칭이 4개가 됐었다. 혁명 이후 1974년까지는 다케시마 호칭 하나만 사용하였다. 그리고 1970년대 페테르부르크에서 발행한 세계 도서사전에도 다케시마로 표시하고 일본 영토라고 하였다. 그 후 현재는 모든 지도에 프랑스 포경함 이름을 따라 리앙쿠르로 표기하고 있다. 이와 같은 표기는 러시아의 전통적인 일본군국주의 반대정책은 물론 한반도 우호정책과도 모순된다. 이같은 러시아의 표기는 한·일 어업조약에 따라 중립을 지키려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르나 독도는 한국의 삼국시대부터 고유한 영토다.1945년 광복 후에는 일본의 음모를 물리치고 계속 지금까지 63년간 실효적 점유를 하고 있으며 일본인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지금 같은 러시아의 독도 표기는 첫째, 전통적인 러시아의 한반도 우호정책에 모순된다고 볼 수 있다. 둘째, 한국은 쿠릴열도를 일본어로 지시마(千島)가 아닌 러시아어 쿠릴열도로 러시아 영토로 표기하고 있으나 러시아는 독도를 일본이 찬성하는 리앙쿠르라고 표기하여 무국적으로 놓아둔 것은 불공정한 처사인 것이다. 일본제국주의 식민지 때 다케시마라고 표기하여 일본 영토로 생각했었다면 지금은 당연히 독도로 호칭해야 옳다. 셋째, 한국이 독도를 실효적 점유를 하고 있으므로 다케시마 표기는 한국의 역사와 현실 그리고 영토 주권을 무시하는 태도로 비쳐질 수 있다. 한국은 19세기 중엽부터 러시아와 뿌리깊은 우호관계를 맺고 있다. 도서 명칭 문제에서도 러시아는 한국의 입장을 지지했으면 한다. 그래야 앞으로 동아시아의 국제관계는 물론 대일 도서정책에서도 동반자로 함께 갈 수 있다. 박종효 모스크바대 객원교수 한국학센터
  • 70년대 향수 자극한 시골 새댁의 모성애

    70년대 향수 자극한 시골 새댁의 모성애

    “사랑한다고 말할걸 그랬지/ 님이 아니면 못산다 할 것을/ 망설이다가 가버린 사람∼” 영화 ‘님은 먼곳에’(제작 타이거픽쳐스·24일 개봉)는 가수 김추자의 동명의 노래 한 줄에 모든 것이 담겨 있다.“니, 내 사랑하나?”는 말만 남기고, 베트남으로 떠나버린 남편. 주인공 순이(수애)는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 총성 요란한 1971년 베트남 전쟁터로 뛰어든다.‘님은 먼곳에’의 두 가지 키워드인 ‘음악’과 ‘여성’을 통해 영화를 짚어본다. ●음악으로 풀어낸 70년대 향수 이 작품의 연출자인 이준익 감독에게 ‘음악’은 ‘영상’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는 영화 ‘라디오스타’에서 ‘비와 당신’ ‘아름다운 강산’ 등의 7080 가요를 통해 아날로그 감수성을 건드렸고,‘즐거운 인생´에서 ‘불놀이야´ ‘한동안 뜸했었지´ 등 80년대 록음악으로 직장과 가정에서 소외된 40대 가장들의 울분을 폭발시켰다. 그는 이번엔 특유의 가창력과 섹시함으로 1970년대를 주름잡은 김추자의 히트곡들로 현대사의 아픔을 이야기한다. 이 감독은 “김추자의 목소리엔 영혼의 밑바닥에서 나오는 절절함과 처연함이 배어 있다.”고 말했다. 남편을 만나기 위해 평범한 시골 아낙네에서 베트남 위문공연단 가수로 변신한 순이. 그녀의 삶의 고단함과 서러움은 영화 속 노래들을 통해 전달된다. 첫장면부터 등장하는 김추자의 데뷔곡 ‘늦기전에’와 베트콩에게 붙잡힌 뒤 죽음의 위협 앞에서 절절하게 부르는 ‘님은 먼곳에’는 ‘음악은 모든 이념과 국적을 초월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남편이 전쟁터에서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소식을 듣고 순이가 미군들 앞에서 ‘수지 Q’를 부르는 대목에선 전쟁에 대한 인간의 분노와 절망을 그대로 드러낸다. 영화평론가 정지욱씨는 “‘님은 먼곳에’는 음악으로서 다양한 세대공감의 단초를 제공했다는 것이 큰 장점”이라면서 “그러나 감독의 이전 음악영화들과 별다른 차별점이 없고 초반에 지루한 전개를 보이는 것은 단점”이라고 말했다. ●여성의 시각에서 본 전쟁의 허무함 사실 순이의 베트남행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다. 가슴 속에 다른 여자를 품고 자신에겐 눈길 한번 주지 않는 남편을 찾으러 전쟁터에 뛰어든다는 설정 자체가 요즘 시각으로는 잘 이해되지 않는다는 것. 그렇다면 그녀는 어떤 대답을 하기 위해 그토록 애타게 남편을 찾았던 것일까. 영화는 여성성보다는 모성애에 더 초점을 맞춘다. 주인공 순이의 캐릭터는 분노와 원망보다는 포용과 치유의 상징에 가깝다. ‘님은 먼곳에’는 상당부분 주인공 수애의 전통적인 여성미에 기댄 영화다. 하지만 망사스타킹에 미니스커트나 핫팬츠를 입고 개다리춤까지 추는 그녀의 변신은 극적인 효과를 발휘한다. 순이는 수동적인 한 여성에서 점차 강인함과 당당함을 보이는 모성애를 지닌 인물로 변모한다.“우리나라에서 가장 한국적인 이미지를 지닌 배우인 수애에게서 예의 바르면서도 용감한 얼굴을 봤다.”는 이 감독은 “그런 그녀가 강인한 여성이 되어 전쟁터 한복판을 헤쳐나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 작품은 최근 영상 중심의 남성영화 일색인 영화계에 등장한 서사 중심의 여성영화라는 점에서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영화평론가 심영섭씨는 “여성의 시각에서 전쟁의 허무함을 전달한 것은 의미있지만, 순종적이고 외유내강형 여성에게서 삶의 구원을 얻는다는 메시지는 전형적인 남성과 여성의 이분법적 시각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서울신문 창간 104주년 특집-신문산업과 서울신문] 신문 위기 탈출구 ‘시민 이야기’서 찾아라

    [서울신문 창간 104주년 특집-신문산업과 서울신문] 신문 위기 탈출구 ‘시민 이야기’서 찾아라

    신문의 미래에 대한 글을 부탁받았습니다. 창간기념 특집호에 실린다니 희망적이어야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는 사실 신문의 미래를 잘 모릅니다. 들려오는 풍문은 두 가지입니다.‘암담하다.’와 ‘그래도 길이 있다.’입니다. 저는 후자를 믿습니다. 이건 인식이 아니라 믿음입니다. 미래를 안다고 말하는 두 종류의 인간이 있습니다. 모호하게 말하면 점쟁이, 분명하게 말하면 사기꾼입니다. 학문도 미래를 추론하는 한 가지 단서만을 제시할 수 있을 뿐입니다. 일찍이 가수 전인권은 미래를 탐문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의 과거는 어두웠지만, 나의 과거는 힘이 들었지만, 그러나 나의 과거를 사랑할 수 있다면, 내가 추억의 그림을 그릴 수만 있다면, 행진, 행진, 행진하는 거야. 나의 미래는 항상 밝을 수는 없겠지, 나의 미래는 때로는 힘이 들겠지, 그러나 비가 내리면 그 비를 맞으며 눈이 내리면 두 팔을 벌릴 거야, 행진 행진 행진하는 거야.” 1980년대 들국화의 히트곡 ‘행진’의 한 대목입니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건 미래의 전망이 아니라 과거에 대한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추억의 그림을 그릴 수 있고, 그걸 사랑할 수 있다면 눈비도 껴안고 나아갈 수 있다고 합니다.‘자아의 서사’가 있다면 과거의 힘으로 미래로 행진할 수 있다는 말처럼 들립니다. 물론 행진의 결과가 주체의 태도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미래의 운명은 환경의 변화와 주체의 행동이 반응하는 화학방정식입니다. 그런데 왜 이 노래는 환경에 적응하는 민첩함보다 주체의 꿋꿋함을 거듭거듭 강조하고 있을까요? 알기 어렵고 변화시키기 어려운 미래의 환경보다, 너무 잘 알고 마음만 먹으면 변화도 가능한 현재의 주체를 통해 미래를 대하는 것이 지혜롭다는 의미가 아닐까요? 그래서 저도 ‘뉴미디어 환경에서 신문의 미래’란 주문을 이렇게 바꿔 보았습니다. 더 나은 신문의 미래를 위해 현재 기자들은 무얼 해야 할까? 신문이 위기라고들 합니다. 다들 이유를 진단합니다. 뉴미디어 환경에서 매체 경쟁력이 약화됐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신문사의 경영 노하우가 신통찮다는 진단도 있습니다. 그리고 간혹은 언론의 신뢰도 하락도 지목됩니다. 다 맞는 얘깁니다. 이에 따른 타개책이 제시됩니다. 매체겸영이 매체경쟁력을 살려줄 거라고 합니다. 뉴스룸 통합이 생산비를 절감해줄 거라고도 합니다. 기자의 전문화가 기사 품질을 높일 거라는 견해도 있습니다. 몇몇 현장기자는 기사체를 바꾸자고 합니다. 다 그럴 듯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건 위기의 대상이 ‘언론’이 아닌 ‘언론사’로 가정된다는 겁니다.‘신문의 위기’는 ‘뉴 미디어 환경에서 신문사의 산업적 위기’를 줄여 놓은 말 같습니다. 일선기자들도 상당수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촛불집회에서 드러났듯, 신문의 위기는 다른 곳에 있습니다.‘성장한 시민사회 속에서 신문의 신뢰성 위기’가 본질에 가깝습니다. 신뢰성 하락은 산업적 위기가 아닌 저널리즘의 위기입니다. 환경의 변화가 아닌 주체의 행동이 원인입니다. 위기의 대상은 ‘언론사’가 아니라 ‘언론’으로 가정되는 것이 합당합니다. 혹자는 언론사가 있어야 언론도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합니다. 그건 경영자의 시각입니다. 언론이 있어야 언론사도 있다고 보는 게 기자의 시선입니다. 언론사가 있어야 언론이 있다는 주장은 경영과 편집의 조직 위계를 확인하는 말에 다름 아닙니다. 기자가 이런 생각을 한다면, 편집권 박탈에 순응하고 있다는 고백에 다름 아닐 것입니다. 촛불집회는 ‘언론’의 위기가 ‘언론사’의 위기를 불러온다는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조중동의 보도에 화난 시민들은 절독운동과 광고주 압박 운동을 펼쳤습니다. 촛불집회는 ‘일부 세력’에 의한 행동이라고 보기에는 규모가 너무 큽니다. 지금은 종교단체까지 동참하고 있습니다. 조중동은 촛불집회의 성격을 민심의 폭발로 보지 않았습니다. 6월11일자 지면은 그 엄청난 집회를 건조한 시위기사로 처리하고 있습니다. 의견이래야 보수단체의 소규모 집회를 촛불집회와 기계적 균형을 갖춰 편집하면서 ‘의견의 다양성’을 주장하는 정도였습니다. 폭력에 대한 우려를 가불하는 글도 몇 있었습니다. 전체적인 편집의 수사학이 초라한 ‘물타기’였습니다. 시민들의 의견을 반영하는 기사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촛불집회 보도는 조중동의 완벽한 참패였습니다. 그것이 평소의 정치적 성향 때문인지, 참여정부와 치열한 전투를 치르고 진보정권 내려앉히기에 성공을 거둔 나머지 이명박 정부에 대한 과도한 애프터서비스의 책임을 느낀 탓인지, 촛불집회 초기에 변화의 행방을 잘못 판단한 편집과정의 실수 때문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마 ‘에브리싱 콤비네이션’이겠지요. 어쨌든 조중동은 엄청난 자산을 까먹었습니다. 당장의 절독과 광고 감소가 문제가 아닙니다. 초·중·고생들의 이목까지 집중된 인터넷에서 입은 이미지 손상을 돈으로 계산하면 얼마나 될까요? 그 반사이익을 경향과 한겨레가 챙겼습니다. 두 신문은 촛불집회의 성격 규정은 옳았지만, 표현의 수위는 매우 선정적이었습니다. 아마 세계 유력지를 불러 모아 촛불집회 보도 콘테스트를 했으면 하위권에 머물렀을 겁니다. 그럼에도 시민들은 절대적 지지를 보냈습니다. 왜 그럴까요? 시민들이 조중동은 없었고 한겨레와 경향은 있었던 그 무엇에 목말랐던 게 아닐까요? 저는 그게 시민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언론의 대리인 역할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대의 민주주의에서 언론은 정부에서 일어나는 일을 시민들에게 알리는 역할을 해야 하지만 그 반대 역할 역시 중요합니다. 하지만 시민의 생각을 정책자에게 알리는 일은 매우 소홀합니다. 현재 취재관행으로 보면 구조적인 사각지대입니다. 대부분의 취재가 출입처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시민의 존재를 염두에 두는 감각 자체가 퇴화한 것 같습니다. 촛불집회에서 나타난 분명한 사실은 시민사회의 의지를 정책자에 알리는 언론의 역할을 시민들이 요구하고 나섰다는 것입니다. 더불어 현재의 언론이 민주주의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질문하고 나섰다는 것입니다. 촛불이 꺼지고 광장의 함성이 사라진다 해서 언론에 대한 시민들의 의심과 요구가 다 사라졌다고 생각하면 오산일 것입니다. 이제 시민들은 ‘사실보도’를 표방하는 언론의 수사학에 좀체 속지 않습니다. 눈 밝은 이들이 보도의 문제점을 인터넷에 올리면 귀 밝은 이들이 여기에 맞장구치는 거리의 미디어비평이 상당한 수준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묻습니다.‘사실보도’의 의미는 다만 사실을 알고 있다며 발언권을 독점하기 위한 슬로건이 아니었나? 그래서 객관주의의 정치적 사용맥락은 엘리트주의가 아니었나? 사건 기사처럼 건조하게 기사를 쓰면 객관적이라고 생각하는 습관은 시민의 위치가 아닌 국가의 위치에서 사물을 바라보는 시점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닌가? 저는 요즘 내러티브 저널리즘에 흥미가 많습니다. 개인의 이야기를 전면화하는 내러티브 저널리즘은 기사를 흥미 있게 쓰는 글쓰기 전략이기 이전에 개별적 인간을 존중한다는 철학적 함의가 있습니다. 저널리즘에서 현장과 사실의 강조는 일반화하지 말고 개별성을 오래 응시하라는 주문입니다. 그건 제도와 개인이 충돌하는 곳에서 개인의 자리에 서라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가장 치열한 언론의 현장은 연기가 모락모락 나는 교통사고 현장이 아니라, 모든 개별적 삶이 사회제도와 충돌하는 바로 그곳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문화평론가
  • 도난된 400년 전 셰익스피어 희곡집 회수

    도난된 400년 전 셰익스피어 희곡집 회수

    영국에서 10년 전 도난된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400년 전 희곡집의 첫 ‘폴리오판’이 경찰에 회수됐다. 영국 북동부 더럼시(市) 경찰은 1623년 출간된 셰익스피어 희곡집 첫 폴리오판을 훔친 혐의로 51세 남성을 체포했다고 11일 밝혔다. 2절지 크기의 이 희곡집은 영어로 된 출판물 중 가장 중요한 것으로 평가되는 작품 중 하나로, 수백만달러의 가치가 있다. 첫 폴리오판이란 셰익스피어의 36개 희곡을 담아 1623년 출간된 폴리오 판형본을 말하는 것으로, 셰익스피어 사후 7년 만에 친구인 존 헤밍스와 헨리 콘델에 의해 출간됐다. 당시 첫 폴리오판은 모두 750부가 인쇄됐으며 이 가운데 3분의 1 가량이 현존하지만 완전한 형태로 보존된 것은 40부에 불과하다. 완전본은 무려 1천500만파운드(약 300억원)의 가치를 인정받는다. 이 폴리오판은 1998년 더럼대 도서관에서 전시되던 중 7세기 서적 및 원고들과 함께 도난됐다. 더럼대는 당시 이 같은 고서 장물은 합법적 구매자들에게 팔아넘길 수 없을 것이라고 밝혔으며, 이후 10년 간 경찰은 이 작품들의 행적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나 지난달 16일 한 남자가 미국 워싱턴의 폴저 셰익스피어 도서관에 자신이 소장한 첫 폴리오판의 진본 여부 감식을 요청하면서 오랜 기간 미궁에 빠졌던 도난사건에 해결의 실마리가 잡혔다. 이 남자는 자신이 국제사업가이며 쿠바에서 이 폴리오판을 구입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도서관 사서들은 멀쩡한 외형에도 불구, 책의 끝 부분과 첫 몇 페이지가 손실된 것을 수상하게 여겼다. 도서관은 책의 진위 여부 확인을 위해 이 남성에게 책을 임시로 맡아두겠다고 했고, 뒤이은 조사를 통해 이 책이 더럼대 소장본임을 확인했다. 이어 미 연방수사국(FBI)이 이 남성의 소재 파악에 나섰고, 결국 공조 수사 끝에 영국 경찰은 더럼 인근의 워싱턴 마을에 살고 있는 용의자를 체포할 수 있었다. 되찾은 첫 폴리오판은 현재 미 워싱턴의 폴저 도서관에 보관 중이다. 미국 작가인 빌 브라이슨은 “이 책은 영국의 뛰어난 문학적 유산 가운데 하나”라며 “서적이 원 소재지로 돌아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행렬에 기꺼이 동참할 것”이라고 말했다. 더럼대는 이번 용의자의 체포로, 셰익스피어 희곡집 첫 폴리오판과 함께 도난된 ‘캔터베리 이야기’의 저자인 제프리 초서의 시가 담긴 15세기 서류와 8세기 초 영어 서사시인 ‘베이오울프’(Beowulf) 1815년판, 그외 1612년판 지도와 시집 등도 함께 되찾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사진=Durham University 연합뉴스@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놈놈놈’을 보는 두가지 시선

    ‘놈놈놈’을 보는 두가지 시선

    하반기 영화계 최대 기대작인 ‘놈놈놈’이 17일 개봉을 앞두고 베일을 벗었다. 다양한 인종이 뒤엉키고 총칼이 난무하는 1930년대 중국 만주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 영화는 200억원에 이르는 제작비, 올해 칸 국제영화제 비경쟁부문 진출 등으로 숱한 화제를 뿌렸다. 하지만 영화는 영화로 말하는 법. 감독의 연출과 배우의 연기, 두가지 관람포인트를 짚어가며 ‘놈놈놈’을 전격 해부한다. ●최신 감각에 아날로그 감수성 더한 ‘김치 웨스턴’ ‘놈놈놈’의 김지운 감독은 삭풍이 몰아치는 황야를 배경으로 긴장감 넘치는 총잡이들의 서부극에 매료됐고, 이를 이른바 ‘김치 웨스턴’으로 불리는 한국형 서부극이라는 독특한 장르로 구현해 냈다. ‘장화, 홍련’‘달콤한 인생’ 등 충무로에서 스타일을 강조한 영화로 일가를 이룬 김 감독은 중국 사막을 무대로 펼쳐지는 장대한 스케일과 시원한 영상미로 한국영화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영화적 감각으로는 최첨단을 달리면서도 감독은 제작과정에서는 아날로그적 감성을 견지했다. 서양에선 잊혀지고, 국내에선 1960∼70년대 유행했던 만주 웨스턴을 부활시킨 것은 물론 외화 ‘인디아나 존스’처럼 컴퓨터그래픽(CG)보다는 배우들의 실제 액션과 거친 카메라 워킹으로 생생한 느낌을 살렸다. 정체불명의 보물지도를 놓고 세명의 조선인과 일본군, 마적단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은 꿈을 좇아 끊임없이 질주하는 인간의 근원적인 욕망을 반영한다. 김 감독은 “잊혀졌던 아날로그의 생생한 힘과 원시적인 기운에서 나오는 박진감을 표현하려고 애썼다.”고 말했다. 단 스타일의 강조로 인한 상대적인 서사의 부재는 이 영화 성패의 최대 걸림돌이다. 국내 개봉판은 지난 5월 칸 영화제 출품 버전의 도입부와 엔딩을 수정하고, 시대적인 배경과 캐릭터에 대한 설명을 늘려 대중성을 높였다. 영화적 메시지냐, 순수 오락영화의 미덕이냐는 이제 온전히 관객의 선택에 달렸다. ●송강호+이병헌+정우성=? 이 영화의 제작자인 바른손의 최재원 대표는 “앞으로 주연급 톱스타 세명이 한 영화에 다시 모이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놈놈놈’은 최근 한국 영화에서 보기 드문 스리톱 주연의 영화다. 세르지오 레오네의 ‘석양의 무법자’(The Good,The Bad And The Ugly)에서 제목을 빌려 왔지만, 세 인물 사이에 뚜렷한 선악의 기준은 없다. 대신 인물 캐릭터는 영화속에서 새롭게 구성됐다. 이 가운데 중심축이 되는 것은 단연 ‘이상한 놈’ 윤태구 역의 송강호. 헬멧을 쓰고 오토바이를 타고 황야를 질주하는 모습부터 웃음을 자아내는 그는 코믹과 정극 연기를 오가며 자칫 무겁게 흐를 수 있는 극의 균형을 잡는다.‘스타일’의 진수를 보여주는 이 영화의 최대 수혜자는 정우성이다. 카우보이 복장을 한 채 한줄로 밧줄을 타거나, 후반 추격신에서 말을 타고 장총을 쏘는 장면은 압권이다. “솔직히 영화 출연을 쉽게 결정하지 못했다.”고 밝힌 이병헌은 손가락을 서슴지 않고 자르는 등 카리스마 넘치는 악역으로 남성팬들을 사로잡는다.“촬영현장이 열악해 경쟁의식보단 동지의식이 생겼다.”고 말하는 세 배우. 하지만 각자 맡은 캐릭터의 개성이 너무나 뚜렷해 오히려 산만한 느낌을 주는 것은 단점이다. 이들의 의기투합이 의미있는 시너지 효과를 낼지,‘부적절한 조합’으로 주저앉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3년 발품 들인 국토백과전서

    3년 발품 들인 국토백과전서

    1964년 ‘사상계’ 신인문학상 수상과 함께 등단한 소설가 박태순(66)은 타고난 여행문학 작가이다. 국토기행(紀行) 문집으로 ‘작가 기행’ ‘국토와 민중’ 등을 펴냈고, 역사인물기행 ‘인간과 역사’, 한국기층문화 기행 ‘사상의 고향’ 등을 발표했다.1991년에는 서울신문에 중국기행 ‘신 열하일기’를 연재했다. 작가들에게 여행은 사실 떼내버리기 힘든 몸속의 장기 같은 것이긴 하지만 도대체가 그의 타고난 여행벽은 세월의 무게조차도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아직까지 왕성하다. ●인문지리·사회상·인물 등 아울러 작가는 3년 전 또다시 배낭과 펜을 챙겨들고 나섰다. 이번에야말로 국토문화대계, 국토백과전서라고 할 만한 살아 움직이는 국토인문학의 결과물을 내놓자고 스스로를 다잡았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발벗고 길에 나서는 일’과 ‘문닫고 글과 씨름을 벌이는 작업’에 꼬박 3년 동안 외곬으로 매달렸다. 최근 출간된 ‘나의 국토 나의 산하’(전3권, 한길사 펴냄)에는 이처럼 그가 발벗고 길에 나서서 찾아낸 우리 국토 39군데의 진면목이 고스란히 실려 있다. 작가의 기존 기행문집과 마찬가지로 자연예찬이나 주관적인 감상문 형태의 여행기와는 사뭇 다르다. 국토의 인문지리와 사회변동 양상, 그 역사속의 인물과 문학까지 아우르는 일종의 국토백과전서라고 할까. “백두산은 오늘의 한국인들에게 과연 무엇일까. 앞전도 아닌 뒷전에서 알현하는 송구스러움을 뭐라 여쭐지 참으로 민망하다. 이육사의 ‘광야’를 떠올리며 나는 고개를 숙인다.‘모든 산맥들이/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차마 이곳을 범하던 못하였으리라.’ 나는 초라하고 남루하며 궁색하다.…시인은 나를 꾸짖는다. 너는 이 산을 오른 것이라 생각하겠지만, 실인즉 범하고 있는 게 아닌지 느끼기나 해보는가.”(제1권 113∼114쪽,‘거대한 뿌리 백두산’ 가운데) 기행문들은 성격에 따라 세 권에 나뉘어 수록돼 있다.‘나의 국토인문지리지’라는 부제가 붙은 1권은 청계천, 백두산, 지리산, 임진강 등을 탐방한 내용을 토대로 거대담론으로서의 ‘서사국토’를 담고 있다. “오오 거리는 나의 모든 설움이다”로 마무리되는 김수영의 시 ‘거리’를 텍스트 삼아 청계천을 산책한 작가는 도시화(복개)와 역도시화(복원)를 거듭한 ‘천변풍경’을 보여주면서 그 안의 사람들을 ‘고독한 군중’으로 명명했다. ●지리산 등 39곳 진면목 재발견 2권 ‘시인의 마음으로’에서는 국토가 들려주는 미시담론을 알록달록 색깔있게 들려주고 있다.‘무진기행’ 등의 문학작품이나 옛 선비들의 문예기행을 뒤좇아 국토의 동남해안-중남해안-서남해안으로 이어지는 작가의 순례기행에서는 우리 국토의 맛깔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마지막 3권 ‘인간의 길 시대의 풍경’에서는 동해안 종단기행과 중부내륙 횡단기행의 두 코스를 따라가며 길에서 건져 올린 인간과 시대, 길과 풍경에 대한 생각들을 담았다. 작가는 종횡무진 발품을 판 이번 국토기행에서 과연 새로운 무엇을 발견했을까. 작가는 “국토 언어는 기본적으로 희망의 언어일 수밖에 없다.”면서 이번 국토체험의 의미를 ‘부드러운 국토의 발견’으로 요약했다. 국토를 알면 알수록 자신의 인생이 충실해지고 생활이 넓어진다는 작가는 도시문학, 농촌문학, 향토문학, 역사문학이 있는 것처럼 ‘국토문학’이 당연히 있어야 하고, 이번 작업은 ‘국토기행문학’의 형태일 수 있다고 했다. 책 속에는 ‘장승’ ‘초가’ 등 민속적 피사체에 천착한 베테탕 사진작가 황헌만씨가 작가와 함께 다니며 촬영한 국토사진들이 함께 수록돼 있다. 각권 1만 8000원. 박홍환기자 stinger@seoul.co.kr
  • 삼양동서 고대 집터 14곳 발견… 적갈색 경질토기 다수 출토

    삼양동서 고대 집터 14곳 발견… 적갈색 경질토기 다수 출토

    탐라국 형성기 제주의 선사문화를 보여주는 대규모 주거지가 드러나 1999년 사적 제416호로 지정된 제주시 삼양동 일대에서 또다시 대규모 집터가 발견되고 유물이 쏟아졌다. 삼양동에서는 사적지에 선사유적전시관이 세워진 이후에도 삼양유원지부지와 세무서사택부지, 삼화택지개발지구 등 개발이 추진될 때마다 어김없이 대규모 유적과 유물이 확인되고 있다. ●원형·직사각형 집터 함께 나타나 탐라문화재연구원은 삼양1동의 단독주택신축부지 500㎡를 발굴조사한 결과 원형 집터 7곳과 직사각형 집터 6곳, 정사각형 집터 1곳 등 주거지 14곳을 확인했다고 2일 밝혔다. 이 유적에서는 BC2세기 이후 AD2세기 무렵까지 이 지역에서 집중 제작된 적갈색 경질토기도 많이 나왔다. 입구가 넓고 밑바닥은 좁은 이른바 삼양동식 토기가 주류를 이룬다. 특히 원형 집터와 직사각형 집터가 서로 중첩된 상태로 확인됨에 따라 선사시대에서 탐라국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먼저 등장한 직사각형 집터를 원형 집터가 대체했다는 고고학계의 통설은 재검토가 불가피해졌다. 이번에 발굴이 이루어진 곳은 사적 지정 구역에서는 400m 떨어진 음나물내 동쪽으로 해발 155.1m의 원당봉으로 오르는 들머리에 해당한다. 그동안에는 조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지역으로, 지표 조사 결과 주변에 유적이 폭넓게 분포하고 있었다. 탐라문화재연구원은 “사적으로 지정된 1만 4132.9㎡를 비롯하여 삼양유원지부지와 삼화지구, 그리고 이번 지표조사에서 유물이 발견된 지역을 모두 합치면 삼양동 일대 유적 및 유물 산포 범위는 무려 40만평(132만㎡)에 이른다.”고 설명했다. 제주공항에서 동쪽으로 10㎞쯤 가면 나타나는 삼양동은 서쪽에 삼수천, 동쪽에 음나물내가 북쪽 바다로 흐르고, 해안선을 따라 지하수가 바닷물과 만나면서 솟아오르는 용천(湧泉)이 여럿 있다. 제주도에서는 드물게 양질의 점토도 퇴적되어 있어 예부터 사람이 살기에 적당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이런 환경을 바탕으로 현재도 조사가 진행되고 있는 삼화지구에서는 신석기시대에서 청동기시대를 거쳐 탐라성립기에 이르는 유적과 유물이 확인되고 있다. 또 삼수천변을 중심으로 신석기시대 초기단계인 고산리식토기와 타제돌화살촉이 나왔고, 음나물내의 서편에서는 청동기시대의 직사각형 집터와 토기 윗부분에 돌아가며 구멍을 뚫은 공열문토기, 옹관묘 등이 출토되었다. 특히 삼화지구에서는 후기 구석기시대 대표유물의 하나인 몸돌이 나와 제주에 구석기시대부터도 사람이 살았을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몸돌은 작은 석기를 떼어내는 몸체가 되는 돌이다. ●유적공원 만들고 청동기시대 주거지 재현 이렇듯 삼양동이 제주 선사문화의 근거지로 떠오름에 따라 조만간 이 일대 유적을 어떻게 보존할 것인지를 놓고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앞서 삼화지구를 개발하고 있는 한국토지공사는 일단 유적공원을 만들어 청동기시대 주거지를 재현하고 유물전시관도 세운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번에 발굴된 단독주택신축부지도 현장 보존이 불가피하다는 판단이 대세를 이룸에 따라 사업주는 관계당국에 부지 매입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단독부지의 발굴조사는 지난 3월12일 시작되어 오는 11일 마무리된다. 글 사진 제주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이준익 “수애는 모성애의 DNA를 가진 여성”

    이준익 “수애는 모성애의 DNA를 가진 여성”

    2005년 영화 ‘왕의 남자’로 천만 관객을 사로 잡은 이준익 감독이 3년 만에 ‘님은 먼곳에’를 선보인다. ‘님은 먼곳에’(감독 이준익 ㆍ제작 타이거픽쳐스)의 제작보고회가 열린 30일 오전 서울 이화여고 100주년 기념관에서 이준익 감독은 전쟁을 소재로 한 영화에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유를 밝혔다. 이준익 감독은 “지난 수 십세기 동안 전쟁을 소재로 한 영화들은 남성 중심적이었다.”며 “평범한 여성의 시각에서 영화를 만드는 것이 전쟁을 객관적으로 보여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여주인공으로 수애를 택한 이유를 묻는 질문에 이 감독은 “모든 남성의 첫사랑은 어머니라고 생각했고 그런 내면을 가지고 있는 여배우가 누구일까 고민했다.”며 “지금 여배우 중 수애는 모성애의 DNA를 가진 여성”이라고 수애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마지막으로 이준익 감독은 “순 제작비가 70억이지만 실제로 영화의 비주얼을 보면 200억정도 들어 보이는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님은 먼곳에’는 지금까지 찍은 나의 작품 중 가장 재미있다.”며 영화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베트남전 당시 수많은 장병들 앞에서 매혹적인 모습으로 노래하고 있는 어느 여가수의 흑백 사진 한 장에서 시작된 영화 ‘님은 먼곳에’는 보다 리얼한 베트남전과 광활한 서사를 담아내기 위해 한국과 태국을 오가는 5개월 간의 촬영을 거쳤다. 이준익 감독이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최초의 작품으로 한 여성의 시선으로 바라본 베트남전의 참상과 그 안에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그린 ‘님은 먼곳에’는 다음달 24일 개봉한다. 서울신문 NTN 정유진 기자 / 사진 = 한윤종 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伊현대사 되짚는 시간여행

    ‘장미의 이름’‘푸코의 진자’로 널리 알려진 기호학자이자 세계적인 작가인 움베르토 에코(76)가 다섯번째 소설을 내놓았다. 기억상실증에 걸린 주인공이 과거의 기억을 되살려가는 과정을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여행하듯 종횡무진 넘나드는 ‘로아나 여왕의 신비한 불꽃’(전2권, 이세욱 옮김, 열린책들 펴냄). ●기억상실 주인공 추억과 사랑 되찾아 ‘로아나 여왕’은 하나의 ‘큰 이야기’와 하나의 ‘작은 이야기’가 마치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탈리아 파시즘에 관한 거대 서사에 자신의 첫사랑이라는 소소한 이야기가 절묘하게 결합돼 있다. 그런 만큼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지 아니하면 읽어내기가 쉽지 않다. 옮긴이 이세욱씨는 “무솔리니 시대의 파시즘 등 이탈리아 현대사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따라잡기가 쉽지 않다.”며 “그러나 조금 집중해 전체적 맥락을 파악하면 에코의 그 어느 작품보다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작품은 소설 그 자체로서도 독특한 실험성을 띤다. 소설에는 단테의 ‘신곡’ 등 고전 문학에서부터 영국 작가 렌 데이턴의 첩보소설 ‘국제첩보국’ 등 현대 대중소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학 텍스트들이 정교하게 얽혀져 있다. 그 위에 1940∼50년대 이탈리아를 생생하게 되살리게 해주는 이미지들을 섞고 작가 자신의 개인적 추억까지 불어넣었다. 그런 복잡다단한 작업을 거쳐 탄생한 것이 바로 이 ‘삽화소설’이다. 소설은 밀라노에 사는 고서적 전문가 잠바티스타 보도니(일명 ‘얌보’)가 심혈관 계통의 사고로 혼수상태로 빠졌다가 깨어나지만 기억상실증에 걸리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런데 ‘얌보’의 기억상실증은 좀 특이하다. 공적인 기억이나 백과사전적인 기억은 그대로 남아 있지만 개인적인 기억은 모조리 사라져버린 것이다. 온갖 소설의 구절들이나 곱셈과 피타고라스의 정리는 뚜렷하게 기억나지만 정작 자신의 이름은 나올듯 말듯 혀끝에서 맴돈다. ‘얌보’의 부인은 개인적 기억을 되살려주기 위해 그의 고향인 솔라라로 데리고 간다. 시골집에서 ‘얌보’는 다락방에 잔뜩 쌓여 있는 수많은 읽을 거리들을 만난다. 장난감과 판화, 만화, 모험소설, 추리소설, 파시스트의 정치선전 팸플릿…. 그의 손때가 묻은 읽을 거리들은 단순한 읽을 거리가 아닌 추억이다. 이 시간여행을 통해 ‘얌보’는 첫사랑을 되살리고 전쟁을 만나며 자기 삶과 정면으로 마주한다. 그러나 자신만의 기억은 떠오르지 않고 그 수많은 자료들이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도 알 수 없어 ‘얌보’는 더 큰 혼란에 빠지고 만다. ●에코 “인터넷은 아주 멍청한 신이다” 고대, 중세에 달통한 에코는 온라인 매체와도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렇다고 인터넷광은 아니다. 에코는 인터넷 이용 시간의 대부분을 이메일과 날씨를 확인하는 데 사용한다.“인터넷을 통해서만 정보를 접하게 된다면 우리는 남들과는 전혀 고립된 나만의 백과사전을 만드는 우를 범하게 된다. 인터넷은 모든 정보를 담고 있되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구분하지 못한다. 인터넷은 신이다. 하지만 아주 멍청한 신이다!” 에코의 ‘인터넷관(觀)’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로아나 여왕’의 출간에 맞춰 소설 속에 등장하는 작품인 에밀리오 살가리의 ‘산도칸-몸프라쳄의 호랑이들’, 에드몽 로스탕의 ‘시라노’, 빅토르 위고의 ‘웃는 남자’ 등 세 편의 소설도 이번에 함께 나왔다. 각권 1만 800원.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아시아인의 지혜·기개 보여 주고파”

    “아시아인들의 지혜와 용기를 보여 주고 싶었죠.” 새 영화 ‘적벽대전-위대한 전쟁의 시작’(새달 10일 개봉) 홍보차 방한한 우위썬(吳宇森·62) 감독이 24일 서울 광진구 W호텔에서 기자들과 만났다.‘적벽대전’은 소설 ‘삼국지’ 중 가장 풍부한 이야깃거리를 담고 있는 전투 적벽대전을 영화화한 전쟁서사극. 영화 ‘윈드토커’ 이후 6년여 만에 한국을 찾은 감독은 “열살 때 유리창에 삼국지에 등장하는 영웅들을 그리고 반대편에서 손전등으로 이를 비추는 놀이를 할 정도로 ‘삼국지’의 열혈 팬이었다.”면서 “‘영웅본색’ 시리즈의 제작을 마친 뒤 18년 동안 이 영화를 만드는 꿈을 꿨지만, 당시엔 자본과 기술 등 제작 환경이 여의치 않았었다.”고 털어놨다. 그동안 ‘삼국지’는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들에서 주요 소재로 활용돼 왔다. 그런 만큼 감독은 인물 캐릭터와 메시지에서 기존 작품들과의 차별성을 두는 데 중점을 뒀다고 강조했다. “기존 ‘삼국지’의 인물들이 신격화되었다면, 저는 인간적인 영웅을 표현해내고 싶었어요. 단지 역사속 먼 인물들이 아니라 현재 우리의 모습을 비춰볼 수 있도록 했죠. 더러 대규모 전쟁 장면은 잔인하기도 하지만, 반전의 메시지도 함께 전하고 싶었어요.” 그는 이 작품에서 각각 손권군 명장 ‘주유’역의 량차오웨이(梁朝偉)와 유비군 책사 ‘제갈량’ 역의 진청우(金城武) 등 톱스타들을 주연배우로 내세워 인간적이고 감성적인 영웅들을 그려냈다. 뿐만 아니라 영화는 중국, 한국, 일본 등이 투자한 800억원 규모의 범아시아 프로젝트로도 주목받아 왔다. “그동안 할리우드에서 수많은 영화를 찍었지만, 서양인들이 아시아인들의 문화와 정신을 완벽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죠. 중국 당대의 전쟁서사극이지만, 인물들을 통해 아시아인들의 지혜와 기개를 서양에 보여 주고 싶었어요.” 영화의 절반가량을 찍고 나서 이미 예산을 초과해 자신의 연출료까지 제작비에 털어 넣었다. 하지만 그는 “꿈을 위한 도전에 후회는 없다.”고 말했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유교사회 조선, 성적 에너지가 넘쳤다?

    유교사회 조선, 성적 에너지가 넘쳤다?

    “윤리사회를 지향했던 조선, 그 이면에는 윤리로 전혀 통제되지 않는 성적 에너지가 넘쳤다?” 18세기 초 양반사회에는 춘화가 널리 퍼져 있었다.18세기 후반에 ‘금병매’를 읽지 않은 양반은 ‘수치’로 여겨졌다. 이처럼 강렬했던 조선사회의 성적 욕망을 성리학은 어떻게 억압했을까. 성은 가부장제와 어떻게 긴밀하게 엮여 들었을까.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가 조선시대 문학을 통해 그 해답을 찾는다. ●윤리로도 통제 안된 성적 욕망 한국한문학회(회장 박성규 고려대 교수)가 21일 단국대에서 ‘한국한문학과 성담론’을 주제로 하계학술대회를 연다. “고운 눈길은 칼날이라 하고 굽은 눈썹은 도끼라 하며, 통통한 뺨은 독약이며, 매끄러운 피부는 숨어 있는 좀이라고 하는 것을.…이것이 어찌 가장 치명적인 해가 아니랴.”고려의 이규보는 ‘색유’에서 성의 강한 쾌락을 독에 비유했다. 성이 권력과 국가의 몰락을 낳은 원인이라는 것. 이 생각은 조선의 가부장제가 만들어지는 바탕이 된다. 강 교수는 이이, 이덕무, 이익 등 성리학자들이 일제히 “성욕을 억제하라.”고 주장했던 이유를 설명한다. 이덕무는 “색을 밝히는 사람은 결국 색욕에 굶주려 죽는 귀신이 된다.”고,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사람만은 남자와 여자가 어울려 싸다니며 밤이야 낮이야를 가리지 않으니 금수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위협(?)했다. 그러나 가부장제가 확고했던 18·19세기 조선에서는 성에 대한 표현이 들끓었다. 특히, 민요와 사설시조·평시조, 가요 등의 구비문학에서는 노골적인 성적 욕망이 드러난다. 실제로 채록된 구비 서사 텍스트에는 성적 기교와 자위, 동성애, 동물애, 구강성교 등 현대의 모든 성적 행위가 나타난다고 강 교수는 말한다. ●남성 성욕 관철… 여성 성욕 금기 “사람이라면 누군들 정욕이 없겠는가. 내 딸이 남자에게 혹하는 것이 다만 너무 심할 뿐이다.”라는 어우동의 어머니 정씨의 말은 억압된 유교사회에서도 성적 욕망이 여전히 발동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강 교수는 “성적 절제를 주장한 성리학의 의도는 가부장적 가족친족제를 실현하려는 것”이었으며 거기에는 ‘남성 성욕의 일방적 관철과 여성 성욕의 일방적 금기’라는 목표가 도사리고 있었다고 지적한다. 한국사학계나 국문학계에서 성담론은 연구의 사각지대에 있었다. 강 교수는 “성담론 연구는 권력 관계의 실체를 꿰뚫어 보는 것이지만 한국 사학계나 국문학계에서는 성 연구가 정치나 경제 같은 근엄한 주제 아래 묻혀 있었다.”고 연구 배경을 밝혔다. 이밖에도 진재교 성균관대 교수의 ‘조선조 후기 문예공간에서의 성담론의 빛과 그늘’, 윤채근 단국대 교수의 ‘조선 후기의 섹슈얼리티:정념에서 이익으로’, 김경미 이화여대 교수의 ‘19세기 성담론과 소설 속의 섹슈얼리티 재현 양상’ 등 4개의 발표가 이뤄진다. 학회 연구이사인 정민 한양대 한국한문학과 교수는 “미국과 일본 등에서는 성을 활발하게 학술 담론으로 논의하지만 국내에서는 그 풍속도나 문화사적 연구가 전무하다.”고 대회 취지를 밝혔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책꽂이]

    ●하워드 진, 세상을 어떻게 통찰할 것인가(데이비드 바사미언 인터뷰, 강주헌 옮김, 랜덤하우스 펴냄) 노엄 촘스키와 함께 미국을 대표하는 비판적 지식인으로 꼽히는 역사학자 하워드 진의 사상을 그와의 인터뷰를 통해 풀어썼다. 전쟁기계로 전락한 미국을 비판하는가 하면, 마이클 무어와 밥 딜런 등 예술가의 역할까지 다양한 주제들에 대해 논의했다.1만 2800원.●기인 기사(奇人 奇事)(송순기 지음, 간호윤 엮음, 푸른역사 펴냄) 근대 유학자였던 송순기의 야담집 ‘기인기사록’에서 조선시대의 별난 사람, 별난 사건들을 추려 엮었다. 빼어난 미모로 본처를 기겁하게 만든 평양기생, 아버지를 대신해 전장에 나간 아들 등 24가지 별난 사연들이 흥미롭다. 서사의 재미는 물론, 한 시대의 진정성을 엿보게 하는 야담의 매력을 확인할 수 있다.1만 3900원.●두 남자의 산티아고 순례일기(전용성·황우섭 지음, 한길사 펴냄)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는 두 작가가 요즘 한창 새로운 여행지로 ‘뜨고’ 있는 스페인 산티아고를 현장안내하느라 35일 동안 작정하고 다리품을 팔았다. 산티아고 가는 길이 왜 ‘희망과 치유의 길’로 사랑받고 있는지를 짭짤한 글맛으로 일러주는 일기 형식의 여행기.1만 6000원.●저항의 인문학(에드워드 사이드 지음, 김정하 옮김, 마티 펴냄) 미국의 문화비평가 에드워드 사이드의 생전 마지막 책으로, 인문학자들의 현실참여 문제에 대해 깊이 고민했다. 서구 고전만을 진정한 인문학이라 치켜세우며 역사와 노동, 여성학과 젠더, 아프리카·아시아 문학의 존재를 외면하는 미국 신인문주의자들의 행태는 바람직한 인문학의 방향이 아니라고 지적한다.1만 5000원.●상식과 교양으로 읽는 유럽의 역사(만프레드 마이 지음, 장혜경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주요 인물과 사건을 중심으로 유럽역사의 맥락을 짚는 교양역사서. 유럽의 정신적 고향인 그리스, 초강대국으로 떠오른 유럽연합에 이르기까지 유럽 변천과정의 이슈들을 핵심만 뽑아 간추렸다.1만 2000원.●시가 있는 골프(이종현 지음, 나눔사 펴냄) 시인이자 골프 전문기자인 저자가 시, 산문, 사진을 두루 곁들여 쓴 골프 에세이.“성공한 인생에는 남들보다 뛰어난 감수성이 있다.”고 주장하며, 골프그린에서의 단상들을 따뜻하면서도 생명력 넘치는 감성으로 풀어썼다.1만 2000원.●숲 속 그늘자리(이태수 지음, 고인돌 펴냄) 생태 세밀화가 이태수가 5년 동안 전국 곳곳을 뒤져 계절에 따라 순환하는 동식물들의 모습을 담았다. 세밀화와 나란히 해당 동식물의 핵심이 될 만한 정보들을 짧은 시 형식으로 서정넘치게 묘사했다.1만 4800원.
  • ‘이주와 이산의 서사’ 학술대회

    경희대 비교문화연구소(소장 윤우섭)는 13일 오전 9시30분 국제캠퍼스 중앙도서관 피스홀 및 대회의실에서 경기문화재단과 공동으로 ‘글로벌 자본주의 시대 이주와 이산의 서사’를 주제로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한다.
  • 맥주만 마시고 가버린 여우들아

    맥주만 마시고 가버린 여우들아

    피서객들이 돌아간 텅빈 바닷가엔 파도소리만 가득할 뿐. 수많은 발자국들이 찍힌 모래톱을 파도가 밀려와 지우면서 남기고 간 사연들을 씻어내고 있다. 눈부신 태양과 젊음과 낭만이 넘치던 바다. 피서지에서 생긴 사연들을 대천(大川)해수욕장 어느 대학생「티·룸」의 낙서판을 통해 모아본다. 5천명이 스쳐간 다방에 갖가지 사연 담은 책5권 3년전부터 『젊은이들의 광장을 마련하기 위해서』대천(大川)에 「비치」다방을 시작했다는 이희조(李喜朝)(외대(外大)3년)은 텅빈 바닷가를 내다보며 올해「피서지에서 생긴일」들을 들려준다. 그러면서 아무렇게나 철한 두툼한 낙서책 5권을 내준다. 늦장마 덕분에 별로 재미를 못보았다는 올해 대천해수욕장 경기지만 그래도 5천여명의 젊은이들이 거쳐갔다는 「비치」다방에 그들이 남기고간 낙서사연들. 8절 백지위에 「사인·펜」「볼·펜」「매직·펜」만년필, 심지어는 연필까지 동원해서 끄적여 놓은 글과 그림들. 『이것들(낙서)을 보는 재미에 혼자 남고 말았읍니다. 이제 슬슬 나도 짐을 꾸려야겠읍니다. 올 여름 대천얘기는 이속에 다 들어있으니 읽어보십시오』 「비치」다방 주인겸 「마담」겸 「플레이어」인 이(李)군의 얼굴에 아쉬움이 어리는 것 같다. 즐겁게 놀기 전에 우선 네주머니부터 살펴봐라, 멍청아! 아마도 이 친구는 천방지축 모르고 놀다가 보니 예정일보다 훨씬 일찍 빈주머니가 됐던 모양. 뒤에 오는 후배들을 위해 선배로서 충고하고있다. 그러나 이 선배님의 충고를 귀담아 듣지 않은 후래자(後來者)가 있었던 모양이다. 형님말쌈이 옳은 줄 미처 몰랐읍니다. 멍청한 놈 셋이서 돈 털리고 알거지가 돼서 쫓겨 갑니다. -20·얼간이 3형제 얼간이 노릇 하고 간 친구가 이들 뿐만은 물론 아니었던 모양. 공갈조의 구애문(求愛文)도 있고 “왔노라 즐겼노라 가노라” 올해는 대천(大川)이 소천(小川)으로 변했구나. 멍만들고가는 사나이. 빈주머니를 달고 갈곳을 몰라하는 서글픈「캥거루」신세여! 오늘 가버린 세 마리 여우들. 어제 밤새 맥주 사줄 때는 한마디 언질도 없더니… 덕분에 중량급에서 초경량급으로 전락한 초라한 내 지갑. 즐거워야 할 피서지가 이상과 같이 주로「경제적」인 타격으로 우울하게 변해버린 경우도 많지만 색다른 이유 때문에 울고 간「케이스」도 많다. 살갗을 태우러 왔다가 마음만 태우고 가다. 제발 하느님이시여 이 못난 놈에게도 「걸·프렌드」라는「프레센트」를! 사람 환장하겄는디, 우짤고. 이 머스마들은 속 없이「코피」만 마시고 있을 참인가베. 바다에 오면 마음이 넓어지는 법. 소위「깡」을 부려보고 싶은 용기가 남녀 누구에게서나 절로 우러나오는가 보다. E大생이 난생 처음 술을 마셨어요. 알딸딸합니다. 그이와 나는 3일 전에 만났어요. 다음날 「키스」할 뻔 했어요. 오늘 난 어떻게 해야 좋겠어요? 너는 뭐냐? 나는 나다. -배짱 네것이 내것이고 내것도 내 것이다. -도둑놈 구애(求愛)작전도 가지가지. 그럴싸하게 자화상을 「스케치」한 옆에다 친절하게 숙소 약도와 함께 서울집 전화번호까지 적어놓은 세심파가 있는가 하면, 단도직입적으로 자기에게 오라는 식의 반 공갈조의 협박구애문까지 있다. 새나라의 처녀들은 일찍 시집갑니다. 아직까지 「쥔 없는 몸」은 옆 「덴뿌라」집으로 연락바랍니다. 대한민국에서 제일 질 좋은 「물건」다수 입하! 선착순. 빈털터리 한탄·우울한 푸념도 곳곳에 <찾습니다> 바닷가에서「척추」뼈 한개 잃었읍니다. 찾아주시는 분에겐 「갈비」뼈 한개 드리겠읍니다. 여관 207호실로 <자술서> 주소: ○○호텔 A특호실 성명 : 멀거니 (내가 항상 눈을 멀건히 뜨고 있어서 친구가 지어준 아호임) 상기 본인은 너무 외로와서 24일 밤12시부터 1시까지 고성, 괴성등으로 이름모를 처음만난 또한 친구와 주민(특히여자)들의 마음을 싱숭생숭「메이크」했기에 자술합니다. 현재 괴로움의 감옥에 갇힌 몸이오니 부드러운 구원의 손길을 목말라 합니다. 낙서를 해놓은 걸 보면 대개 그 사람의 인품은 물론 직업까지도 알수있다고 한다. 학생이라면 전공하는 학과를 통해 세상을 풀이해보려는 본능이 있는가 보다. 제길! H₂O + NaCl + MgCl₂ …나+자외선=깜둥이+쓰리고+아프고… -서을공대 하필이면 비오는 날 태어난 죄로 소금을 빚어야 했고, 하필이면 해뜨는 날 태어나서「아이스케키」장수가 됐고, 하필이면 빚갚는 날 태어나서 거지가 됐고, 하필이면 구름 낀 날 태어나서 대천에서 우울해야하는 인과관계. -J대 철학과 K생 5권의 낙서집 가운데서 가장 통쾌하며 시원한 낙서는「하니발」의 명언을 이용한『왔노라! 즐겼노라! 가노라!』였다. <대천에서 공영명(公英明)기자> [선데이서울 71년 8월 29일호 제4권 34호 통권 제 151호]
  • 극사실 vs 추상, 극과극 ‘전시 맞불’

    극사실 vs 추상, 극과극 ‘전시 맞불’

    서울 사간동 화랑가에는 지금 한판 자존심 대결이 한창이다. 사실주의 작가 조덕현(51·이대 조형예술대 교수)이 국제갤러리에서 8년만에, 단색조 회화로 알려진 추상화가 최인선(44·홍익대 미대 교수)이 학고재에서 3년만에 각각 개인전을 열고 있는 것. 극사실에서 추상으로, 추상에서 극사실로…. 부지런히 발길을 옮기며 ‘온탕냉탕’ 이완과 수축을 반복하는 감상의 뒷맛이 짜릿하지 않을까? #조덕현 ‘리 컬렉션(Re-collection)’전 조덕현이 무려 8년만에 갖는 네번째 개인전은 한마디로 ‘두 여자 이야기’다. 한국 패션계의 살아 있는 전설로 통하는 디자이너 노라 노(80)와, 재일교포 출신으로 1993년 영국의 일간지 ‘데일리 메일’의 경영주인 영국 귀족 로더미어 자작과 결혼한 로더미어 부인(한국명 이정순·58). 말할 수 없이 화려했지만 누구보다 드라마틱한 인생을 살아온 두 여인을, 그들의 앨범 속 사진을 베껴 그리는 화법을 동원해 미술의 울타리 안으로 초대했다. 사진보다 더 생생한 그림들 위에는 신기하게도 암시와 은유가 넘쳐난다. 아무런 정보 없이 전시장을 들어선 관객은 움찔 놀라게 된다. 양쪽 벽면에 노라노와 로더미어 부인의 무명 치마저고리 차림의 흑백 초상화가 걸려 있고, 초상화 속 치맛자락이 액자 밖으로 나와 전시장 바닥으로 길게 늘어져 있다. 어디까지가 그림이며, 어디부터가 진짜 무명천인지 경계가 묘한 감상이 압권이다. 전시장에 걸린 대부분의 작품들은 얼핏 진짜 흑백사진 같다. 하지만 이들 모두 두 여인의 앨범 속 사진들을 연필과 크레용 비슷한 콩테로 그린 그림들. 회화 및 설치작품 38점을 동원한 전시는 두 인물의 ‘역사’를 복원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전시장 1층에서는 노라노의 인생 파노라마가 정교하게 재구성됐다. 경성방송국 설립자였던 아버지, 최초의 여성 아나운서였던 어머니, 한창 전성기 때 자신이 디자인한 옷을 입은 배우 문희 등이 모자이크화처럼 그의 한평생으로 맞물린다. 2층 로더미어 공간도 마찬가지. 일본에서 태어나 미국과 프랑스에서 유학했고, 단 한번도 한국에 살아본 적 없으면서도 사무치게 한국을 그리워해온 여인. 벽안의 남편 유해를 무주 백련사에 모신 사연 등이 한편의 이야기가 되어 전시장에 굽이굽이 흘러넘친다. 전시장을 돌고나서 마치 두 편의 일대기를 읽은 듯한 착각에 빠진다면, 작가의 의도에 딱 걸려들었다는 얘기다.“워낙 서사에 관심이 많아 전시로 이야기를 만들어 보고 싶었다.”며 “보이는 대로 느끼는 대로 받아들이면 될 것이고,(작품을)어떻게 보든 모두 다 정답”이라 말하는 작가다.7월5일까지.(02)733-8449. #최인선 ‘새 회화와 뉴드로잉’전 단색조 회화를 고집해온 작가 최인선을 기억하고 있다면 이번 전시는 ‘변신’이라는 해석 말고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가만히 놔둔 색깔이 없을 정도로 다양한 원색을 동원해 내놓은 신작이 460여점. 대형 모자이크 그림으로 이어붙이기 전의 개별 작품들을 모두 헤아린 수치이나, 놀라운 집중력과 직감을 자랑하는 작가임에는 틀림이 없다.460여점 모두를 근 1년만에 ‘쏟아’냈다. “솔직히 자기 작품을 스스로 복제하며 예술세계를 이어가는 작가들이 많다.”고 단언한 작가는 “나 역시 한 가지 주제 혹은 기법에 매몰된 작가로 기억되고 싶진 않다.”며 원색의 추상세계로 급선회한 배경을 귀띔했다. 모노크롬으로 대변되는 이전 작품들이 순수추상이었다면, 이번 작품들에선 최소한의 구상 이미지를 짚어낼 수 있는 여지가 생겼다는 점도 달라진 면모. 수평과 수직이 교차한 그림들을 빽빽이 잇댄 작품들과 프린트 위에 그림을 그려넣은 추상화들이다. 눈 밝은 관객이라면 작품 속에 숨겨진 실내 이미지를 찾아내보는 재미도 쏠쏠하겠다. “더 젊은 시절에 무채색 그림만 그렸던 게 후회스럽다.”고 서슴없이 내뱉을 만큼 작가는 지금 색(色)의 잔치에 걷잡을 수 없이 푹 빠져 있다.18일까지.(02)720-1524.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이대통령 취임 100일]새정부 ‘美쇠고기 협상’ 기점으로 ‘날개없는 추락’

    [이대통령 취임 100일]새정부 ‘美쇠고기 협상’ 기점으로 ‘날개없는 추락’

    “인선을 잘못해 ‘강부자 내각’을 구성했다. 정무 능력 부재다. 정책 조율을 못한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민심을 무시할 정도로 소통에 서투르다.” 취임 100일을 이틀 앞둔 1일 이명박 정부를 향한 평가로는 이같은 혹평이 주를 이룬다. 국민들이 정권과의 ‘허니문’ 대신 ‘조기 이혼’을 요구하며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간 형세다. 각종 조사에서 이 대통령 지지율은 20% 대 초반을 기록했다. 유례가 없는 일이다. 정치컨설팅업체 폴컴의 윤경주 대표는 “20%로 떨어진 지지율이 50%대로 회복되기는 어렵다. 회귀해도 30% 정도”라고 내다봤다. 상황이 이만큼 악화됐다. ●인선 잘못한 ‘강부자 내각’ 구성 참여정부의 낮은 인기를 발판으로 삼았던 이 대통령이지만, 최근 전임 노무현 정부에 쏠렸던 비판을 고스란히 물려받는 모양새다.‘무능’ 또는 ‘아마추어리즘’에 대한 비판이 그것이다. 여러 형태로 제기된 비판이 ‘무능’이라는 요소로 수렴되고 있다.‘강부자 내각’은 원래 도덕성 논란으로 연결됐지만, 애초부터 새 정부에 높은 도덕성을 기대하지 않았던 탓에 곧 사그라졌다. 하지만 청문회에서 장관들이 우물쭈물한 태도를 보이자 인선 문제는 “주변에 사람이 그렇게 없나.”라는 식의 ‘무능’에 대한 비판으로 비화됐다. 취임 초기 이 대통령이 정부 업무보고를 받고 즉석에서 생필품 50개 물가 관리를 지시할 때에는 즉흥적인 행보가 도마에 올랐지만, 역으로 ‘실무형·CEO형 리더십’이라는 매력이 부각됐다. 하지만 이후 물가가 오르고 경기가 침체되면서 문제가 생겼다. 윤경주 대표는 “정부가 물가를 희생하거나 환율·금리 운용을 잘못한 측면이 있다. 또 최근 쇠고기 협상 과정에서 번역을 잘못하는 등 정부의 무능한 모습이 드러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경제보다는 정치개혁에 초점을 맞춘 참여정부 때에 비해 이번 정부에 무능이 덧씌워졌을 때 더 큰 타격이 생길 것”이라면서 “경기가 호전되기 전에 지지율이 회복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경제 대통령 이미지도 잠식당할 위기 전문가들은 미 쇠고기 문제 해법을 통해 남은 임기 동안의 정국을 예상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역경을 겪은 뒤 이를 극복하는 ‘영웅적 서사 구조의 삶’을 살아온 이 대통령이 자신의 경험칙대로 움직일지, 새로운 형태의 리더십을 발휘할지가 관전 포인트다. 정치 컨설턴트인 김윤재 변호사는 “여야 정쟁하듯 국민과 정쟁을 할 생각이 아니라면 청와대가 전면적 쇄신을 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그는 “촛불시위 배후를 거론하며 시위대와 일반 시민을 분리하고, 시위대를 고립시켜 버린다면 매우 불행한 일이 발생할 것”이라면서 “국민과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국민들은 아직 참여정부를 선택한 손으로 찍은 이명박 정부에 미련이 남아 있다고 본다.”면서 “국민들도 재협상 요구가 받아들여졌을 때 미국과의 관계 악화 등을 감내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밀턴은 ‘청교도적 혁명가’였다

    밀턴은 ‘청교도적 혁명가’였다

    올해로 탄생 400주년을 맞은 영국의 시인 존 밀턴(1608∼1674). 사람들은 흔히 그를 서사시 ‘실낙원’의 저자쯤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우석대 박상익(역사교육학과) 교수는 밀턴은 서사시인이기 이전에 정치가, 사상가, 법률가 등 다양한 면모를 갖춘 ‘혁명가적’ 작가라고 힘주어 말한다. 박 교수는 최근 펴낸 ‘밀턴 평전-불굴의 이상주의자’(푸른역사)을 통해 학계에서조차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밀턴의 삶과 사상의 정수를 재조명한다. ‘셰익스피어에 버금가는 대시인’이란 단순한 수식만으로는 밀턴의 세계를 압축할 수가 없다.1608년 영국 런던 칩사이드에서 태어나 케임브리지대 크라이스트 칼리지에서 문학석사 학위를 받을 때까지 밀턴의 별명은 ‘크라이스트 칼리지의 숙녀’였다. 곱상한 외모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보통의 남학생들이 좋아하는 사교활동에는 도무지 관심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밀턴은 그런 암띤 모습과는 달리 예기치 않은 순간에 혁명가적인 기질을 드러내기도 했다. 잉글랜드 종교개혁 이후 프로테스탄트와 가톨릭 진영이 극심하게 대립하던 대학시절의 면모가 그랬다. 그는 가톨릭 옹호파인 스튜어트 왕조의 종교 탄압을 비판하는 글을 공개, 급진적 프로테스탄티즘을 지지하기도 했다. 미래 청교도 혁명가로서의 기질이 일찌감치 싹트고 있었던 셈이다. ●실명의 비운에 굴하지 않은 비범함 책은 밀턴의 청년기, 주변인물들과의 관계, 시대적 정황 등을 폭넓게 살핀다. 밀턴에게 생애 최대의 시련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시력상실이었다. 문필가로서 한창 왕성한 의욕을 보이던 36세 즈음부터 8년 동안 서서히 시력을 잃어 44세에 완전히 실명하고 마는 운명의 혹독함을 견뎌야 했다. 그는 자신의 병력(病歷)에 대한 자전적 기록을 유독 많이 남겼다.“(내 눈은) 가장 좋은 시력을 가진 사람의 눈과 마찬가지로 아무런 혼탁도 없이 맑고 명료하다.”는 기록에서는 실명의 비운에 굴하지 않은 비범함을 읽을 수 있다. 성경과 그리스·로마의 고전에 대한 탁월한 지식을 바탕으로 현란한 수사법을 구사했던 글꾼이었으나, 사실 밀턴에겐 혁명적 법률가의 기질이 뚜렷했다.1642년 17세나 아래인 어린 신부가 결혼한 지 두달 만에 친정으로 가서 돌아오지 않자 ‘이혼론’을 펼쳐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부른 주인공이었다. 이혼을 금지한 성경 사상에 정면으로 맞서는 파격이었다. 간통, 불감증 등 특이사안이 아니면 이혼이 엄격히 금지됐던 당시 잉글랜드 법률에 반기를 든 ‘이혼론’은 훗날 그가 견지한 정치사상의 일면을 투영한 것이기도 했다.“(결혼과 마찬가지로) 잘못된 정부가 ‘무가치한 속박’을 초래한다면, 인간복리의 정당한 목적에 위배되므로 그 정치적 계약은 구속력을 갖지 못한다.”는 게 밀턴의 주장이었다. ●잉글랜드 법률에 반기 든 ‘이혼론´ ‘이혼론’으로 정치·사회적 반발에 맞닥뜨린 이후 밀턴은 사상·표현의 자유를 공언하기도 했다. 언론자유의 경전으로 꼽히는 저작 ‘아레오파기티카’에 그의 사상의 일면이 그대로 투영돼 있다.“국가에 대해 건전한 조언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자유롭게 말할 수 있고, 그렇게 할 수 있고 할 의지가 있는 사람이 칭송받을 때, 그리고 그렇게 할 수도 없고 할 의지도 없는 사람이 침묵을 지킬 수 있을 때, 이것이 진정한 자유다. 한 나라에 이보다 더 큰 정의가 있을 수 있겠는가?” 밀턴을 향한 저자의 개인적 편향이 드러나는 대목도 없진 않다. 그럼에도 그의 생애와 사상을 꿰뚫는 저자의 해박함 덕분에 미덕이 많은 책이다. 단순한 연대기적 나열이 아니라 시점을 이리저리 섞어 놓았는데도 책의 짜임새가 튼실하다. 번역 어투가 아닌, 쉽고 명쾌한 글 전개 또한 편안하다.1만 5900원.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죽음을 통한 삶과 생명의 이해

    죽음을 통한 삶과 생명의 이해

    “작가보다 몇 수 높은 독자들이 있는가 하면, 천자문의 천지현황(天地玄黃)을 3년 넘게 읽어도 ‘도로아미타불’인 독자들도 있게 마련입니다. 송두리째 삼켜 버릴 책이 있는가 하면, 어떤 책은 삼킨 것을 몇 번이고 토해내 씹고 삼키고 또 씹어야 하는 책도 있지요.” ‘난해 작가의 대명사’ 박상륭(68)씨가 장편소설 ‘잡설품(雜說品)’(문학과지성사 펴냄)을 내놓았다.1969년부터 캐나다 밴쿠버에서 거주하고 있는 작가가 창작집 ‘소설법’ 이후 3년 만에 선보이는 작품이다. 인간이 해탈에 이르는 과정을 들려주는 ‘잡설품’은 1975년 구도 이야기를 다룬 대표작 ‘죽음의 한 연구’와 고행 이야기를 그린 ‘칠조어론’에 이은 ‘죽음의 한 연구’ 시리즈의 완결편이다.‘죽음의 한 연구’는 가상의 고장 ‘유리’의 육조(六祖) 촌장 이야기.‘칠조어론’이 작가가 칠조(七祖)라고 ‘참칭’하며 펼치는 설법을 담고 있다면,‘잡설품’은 주인공 시동이 고행 끝에 해탈하는 팔조(八祖)가 되는 과정을 그렸다. 조(祖)는 불교 선종의 조사(祖師)를 일컫는데, 초조(初祖) 달마로부터 육조(六祖) 혜능까지 이어졌다. ‘잡설품’은 경전과 소설의 사잇글이라는 뜻의 ‘잡설’에다 불교 경전에서 내용을 담는 그릇으로 사용되는 ‘품’을 덧붙였다.“세상에는 두 종류의 잡설이 있지요. 하나가 철학자 니체가 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이고 나머지 하나가 나의 글이죠.‘차라투스트라는’가 몰락의 축에서 쓴 글이라면,‘잡설품’은 상생의 축을 바탕으로 썼습니다. 추상적인 것도 물질로 구상화해 사고하는 서구적 한계를 벗어나 마음속에 우주가 깃든 추상적 이미지의 동양 정신을 풀어 보려고 했죠.” 소설도, 서사시도, 경전도 아닐 수 있지만 소설이나 서사시, 경전 모두로도 읽힐 수 있다 보니 이 글의 제목을 ‘잡설’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소설은 작가 자신이라 할 패관을 화자로 등장시켜 극과 시의 형태를 종횡무진 오가며 주인공 시동이 해탈하는 과정을 그려낸다.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동서고금의 신화와 설화, 종교와 철학을 한데 아우르며 작가의 화두인 ‘죽음’을 통한 삶과 생명의 이해라는 문제의식을 펼쳐낸다. 작가가 소설은 쉽게 썼다고 여러 번 강조했지만 소설 자체가 형이상학적인 심오한 철학을 담고 있는 까닭에 읽기에 적잖은 공력과 인내가 필요하다. 소설은 인간 본연의 문제를 깊이 있게 짚어낸다.“오늘날 물질적으론 매우 풍요롭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정신은 날로 황폐해지고 있습니다. 타락한 현대 우리 사회를 극복하는 방법은 바로 본연의 인간성을 회복하는 것이죠.” 난해한 소설을 쓰는 작가라는 평가에 대해서도 한마디했다. 하나의 책이 모든 계층 독자들의 기호에 맞아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다는 것. 작가는 “난해하다, 난삽하다, 읽을 수 있는 글이 아니다라는 말은 일견 찬사일 수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작자와 독자 사이를 소원하게 하는 만큼 작가로서는 매우 손해를 보게 만드는 말”이라고 털어놨다. “허리도 아프고 고혈압·당뇨 등 온갖 성인병은 다 갖고 있어요. 아직까지 다음 작품은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절필 선언은 아니지만, 물러날 때가 되면 물러나야지….” 작가는 “이제 마지막 이민 길 가는 기분”이라며 “즐겁게 죽는 연습이나 해야겠다.”며 허허롭게 웃었다.1만 4000원. 글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 해외 정상급 무용수 한자리

    해외 정상급 무용수 한자리

    해외 발레단서 활약하며 이름을 떨치고 있는 정상급 무용수들이 한 무대에 서는 공연이 서울서 열린다. 다음달 5·6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서 펼쳐지는 ‘세계 발레스타 페스티벌’. 세계 주요 발레단의 무용수들이 클래식 발레와 컨템포러리 발레의 하이라이트를 골라 보여주게 된다. 개성 강한 정상의 무용수들이 겨루는 춤 기량을 통해 다채로운 발레 레퍼토리의 명장면을 감상할 수 있는 갈라공연이다. 초청된 무용수들은 프랑스 파리오페라발레단, 러시아 키로프발레단·볼쇼이발레단, 오스트리아 빈 오페라 발레단, 독일 뮌헨국립발레단, 영국 로열발레단, 네덜란드 국립발레단, 이탈리아 라 스칼라 발레단, 핀란드 국립발레단의 14명. 이들이 보여줄 레퍼토리도 각양각색이다. 무엇보다 각 무용수들이 자신의 대표작들을 보여준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파리오페라발레단의 마뉴엘 레그리와 도로시 길버트는 18세기를 배경으로 맥밀란이 안무한 호화로운 발레 ‘마농’을 보여주며 키로프발레단의 레오니드 사라파노프와 올레샤 노비코바는 영국 낭만시인 바이런의 서사시를 토대로 만든 고전 발레극 ‘해적’ 파드되(2인무)로 팬들과 만난다. 볼쇼이발레단의 드미트리 벨로골로프체프와 안나 안토니체바의 ‘스파르타쿠스’도 세계적으로 이름난 작품. 박해에 항거하는 스파르타쿠스의 투쟁을 역동적인 남성 군무로 담아낸 고전발레다. 한국 출신 무용수도 만날 수 있다. 핀란드 국립발레단에 소속된 하은지가 주인공. 하은지와 자코 에롤라는 남녀 무용수의 대조적인 몸짓이 특징인 정통 고전발레 ‘그랑 파 클래식’과 지리 킬리안의 ‘작은 죽음’을 갖고 무대에 오른다. 클래식 발레 ‘백조의 호수’‘돈키호테’에 이어 롤랑 프티의 현대무용 ‘타이스’도 볼 수 있다. 5일 오후 7시30분,6일 오후 5시.(02)581-2964. 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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