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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민족 태양숭배사상 반영 ‘빗살’ → ‘빛살’무늬토기로

    한민족 태양숭배사상 반영 ‘빗살’ → ‘빛살’무늬토기로

    신석기 시대의 대표적인 토기이자 한반도 최초의 문양을 담고 있는 것이 바로 ‘빗살무늬토기’다. 동아시아 인류가 정착과 농경 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음을 상징하는 유물이다. 토기 겉면에 새겨진 문양을 빗살에 빗대 붙인 이름이다. 그러나 서예학자이자 전각학자인 김양동 계명대 석좌교수는 지난 30년간의 연구를 통해 ‘빗살’이 아닌 ‘빛살’무늬로 불러야 한다는 독창적인 주장을 꾸준히 제기해 왔다. 김 교수는 최근 펴낸 ‘한국 고대문화 원형의 상징과 해석’(지식산업사)에서 이 같은 주장이 어디에 근거한 것인지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그는 먼저 “빗살무늬냐, 빛살무늬냐 하는 해석의 차이는 민족 사유의 시원과 원천에 대한 거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고 문제의식의 출발 배경을 밝혔다. 이어 “이 문양의 시원과 상징성은 천손족(天孫族)인 한민족의 태양숭배사상을 반영한 빛살무늬로 봐야 비로소 다른 문화의 본질과 그것의 발현됨까지 해석해 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즉 한국 고대문화 재해석의 비의를 품은 열쇠말이라는 것이다. ‘빗살무늬’는 일본 고고학자 후지다 료사쿠가 외국 학계에서 쓰이던 명칭을 즐문(櫛文)으로 번역한 것을 다시 직역한 명명이다. 단순한 명칭 문제가 아니다. 빗살무늬로 해석하는 것은 한반도 신석기 문화의 뿌리를 북유럽, 시베리아에서 기원한 것으로 보는 이론과 맞닿는다. 그러나 ‘시베리아 전래설’로 볼 수 없는 근거들을 연구자들이 지속적으로 제기하면서 2005년 즈음부터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도 이를 삭제하고 ‘발해문명권설’에 근거해 빗살무늬토기를 설명하고 있다. 다만 명칭에 있어서는 여전히 ‘빗살무늬’가 유지되고 있다. 김 교수는 “이런 오류를 밝히는 가장 확실한 증거는 토기를 엎어 놓고 위에서 내려다봤을 때 영락없는 해바라기 같은 태양문이 된다는 것이다. 이는 태양의 빛살을 문양화한 명확한 물징(物徵)임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그 연속선상에서 ‘비파형 동검’이 아닌 ‘청동 불꽃형 신검’, 신라의 금관총 금관도 ‘출(出)자형 금관’이 아닌 ‘불꽃무늬 금관’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서예가 이기우 선생에게 서예와 전각을, 한학자 임창순·신호열 선생에게 한문을, 민속학자 예용해 선생에게 한국의 전통미를 배웠고 계명대 미술대 학장으로 정년 퇴임했다. 김 교수는 “서예를 통해 동양미학의 기초를 배웠으며 전각을 통해 문자와 조형학을 알게 됐고 문양에 대한 독자적 해석을 가질 수 있었다”고 말했다. 비전공자라는 이유로 자신의 주장에 대해 아직까지 학계의 반응이 없음에 한탄하는 것이자 학계의 적극적인 토론과 논쟁을 촉구하는 얘기다. 시인 고은은 추천사를 통해 “고대 탐구의 새로운 기원을 이뤄낸 것”이라면서 “이것은 한국 고대사의 아시아적 혹은 동아시아적 광역을 통해 이제까지 볼 수 없었던 웅대한 서사시적 성취”라고 상찬한 뒤 ‘근원사관’(近遠史觀)이라고 부를 만하다고 적었다. ‘근원’은 김 교수의 별호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인사]

    ■국가인권위원회 ◇서기관 승진△기획재정담당관실 송오영△인권정책과 김재석 윤채완△조사총괄과 최낙영 ■문화체육관광부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실 보존과학부장 이용희 ■국민안전처 ◇실장급 전보△안전정책실장 정종제◇시도본부장 승진△경기도 재난안전본부장 강태석◇과장급 전보△안전사업조정과장 이형석△재난자원관리과장 신상용 ■특허청 △청장비서관 정경훈△전자부품심사팀장 마정윤△특허심판원 심판관 윤국섭 최대순 ■정보통신산업진흥원 △사업총괄본부장 한호현△전략기획단장 민병수△SW진흥단장 이혁재△클라우드사업단장 조유진△디지털콘텐츠사업단장 김효근△IoT·융합사업단장 전준수△글로벌사업단장 김득중△전자문서사업단 강현구△경영지원단장 박시춘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정책협력부장 조성재◇승진△바이오임상표준센터장 강덕진 ■한국감정원 △홍보실장 성주현 ■아시아타임즈 △대표이사 최회봉◇편집국△전무이사(편집국장 겸임) 조희제△편집위원 김영인△생활경제부장 최교서△정치경제부장 안준영△금융증권부장 서영백◇광고마케팅국△광고마케팅1부장 이국형 ■헤럴드 △CS본부장 송태광 ■서울파이낸스 △광고국장 박용근 ■경기대 △자연과학대학장 이호△국가고시실장 황태정△신문방송사주간(방송국장 겸임) 홍성철 ■동덕여대 △교무처장 황용일 ■신영증권 △감사총괄임원 위성승 ■대우조선해양 △상무 오두환 구신본 안정주 우제혁 김진태 한성곤 안호균 지영택 ■혼다코리아 ◇승진△전무 박종석 서정민
  • [책꽂이]

    [책꽂이]

    그녀에게(나희덕 지음, 예경 펴냄) 등단 26년 만에 낸 첫 시선집. 그간 발표한 시들 가운데 여자들의 내밀한 고민, 사랑의 열망과 그로 인한 통증, 자기만의 공간에 대한 갈망, 나이 듦에 대한 불안 등 ‘여성성’을 주제로 한 작품들을 엄선했다. 200쪽. 1만 2000원. 블랙박스(김경주 지음, 안그라픽스 펴냄) 에그플랜드 항공사의 비행기가 이륙한 뒤 밤 11시부터 자정까지 한 시간 동안 구름 속에 머물 때 기내에 있는 사람들에게 일어난 이야기를 담았다. 기내극으로 계획된 첫 시극 작품이다. 366쪽. 2만 3000원. 우리가 어느 별에서(정호승 지음, 열림원 펴냄) 한국 시단에서 독자적인 서정 세계를 구축한 작가의 산문집으로, 2003년 출간된 ‘위안’의 개정증보판이다. 세월호 참사,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탈북 시인의 시집에 대한 글 등 18편의 산문을 추가했다. 시 세계의 씨줄과 날줄이 된 이야기들이 솔직 담백하게 담겼다. 302쪽. 1만 5500원. 트렁크(김려령 지음, 창비 펴냄) 기발한 상상력과 사실감 넘치는 명쾌한 화법으로 인간 관계와 결혼, 사랑의 맨 얼굴을 생생하게 그렸다. 재치 있는 대화와 속도감 있는 문장이 생생함을 더한다. 작가는 ‘완득이’ ‘우아한 거짓말’ 등의 작품을 통해 대중적인 주제를 다루면서도 폭넓은 사유로 우리 삶의 기저에 가 닿는 깊이 있는 서사를 구축해 왔다. 216쪽. 1만 2000원.
  • [밀리터리 인사이드] 이순신 장군만 아는 당신을 위한 전쟁영웅 이야기

    [밀리터리 인사이드] 이순신 장군만 아는 당신을 위한 전쟁영웅 이야기

    6월은 ‘호국보훈의 달’입니다.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는 의미를 담고 있죠. 그렇다면 여러분은 나라를 위해 헌신한 전쟁영웅에 대해 얼마나 많이 알고 있나요. 이런 질문을 하면 대다수 사람들은 ‘이순신 장군’부터 거론할 겁니다. 풍전등화의 나라를 위기에서 구한, 지금도 성웅(聖雄)으로 불리는 존경받는 위인이죠. 하지만 교과서에 단 한 줄만 언급된, 아니 우리가 따분하다고 덮어버린 역사책 속에 숨겨진 전쟁영웅은 수없이 많습니다. 저는 이번에 우리가 몰랐거나 지나쳤던 6·25 전쟁의 영웅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독일의 영웅 서사시 ‘니벨룽겐의 노래’처럼 웅장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지치고 각박한 삶이지만 지금의 우리를 있게 해 준 그분들을 한번 쯤은 되새길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 전하는 이야기입니다. ●국민 성금으로 산 중고 초계정, 첫 승전보를 올리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은 19만명(한국군 10만명)의 병력과 소련이 제공한 T-34 전차 240여대를 앞세워 파죽지세로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불과 사흘만인 28일 수도 서울을 빼앗게 됩니다. 전차는 커녕 변변한 대전차 무기조차 갖추지 못한 우리 군은 눈물을 머금고 후퇴를 거듭할 수 밖에 없었는데요. 전쟁발발 다음날 깜짝 놀랄 만한 승전보가 전해졌습니다. 전쟁 직전 손원일 초대 해군참모총장과 해군 지휘부는 장병들의 월급과 국민 성금 1만 5000달러와 정부지원금 4만 5000달러를 합한 6만 달러를 들여 미 해군의 450t급 중고 초계정을 구입했는데요. 초계정은 연안을 감시하는 작은 전투함입니다. 참고로 우리 최신 이지스함 세종대왕함 배수량이 7500t(만재 배수량 1만t)이니 정말 작은 함정이죠. 선박이 진해 해군기지에 들어온 시기가 전쟁 발발 불과 두 달 전인 4월 10일입니다. 무장조차 없었던 선박에 3인치 함포 1문과 포탄 100발을 어렵게 갖췄습니다. 드디어 27일에는 ‘PC-701’이라는 함명을 받고 ‘백두산함’으로 불리게 됐습니다. 전쟁 당일 진해 해군본부는 백두산함에 동해로 출동하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백두산함은 초계임무 중 울산 앞바다에서 덩치가 두 배인 1000t급 괴선박을 발견합니다. 깃발이나 표식이 없었지만 함정을 북한군 상륙함으로 판단한 백두산함 지휘부는 해군본부로 “600명의 북한군이 승선한 채 전속력으로 남하하고 있다”고 긴급보고했습니다. 부산항을 노려 남하한 것이 분명해 보였습니다. 위협사격을 가하자 적선이 중기관총과 주포로 대응했고, 곧 백두산함의 3인치 주포가 불을 뿜었습니다. 4시간의 교전 끝에 26일 오전 1시 30분쯤 적선은 포탄에 명중돼 물 속으로 가라앉았고, ‘대한해협 해전’이라는 이름으로 6·25 전쟁 첫 승전으로 기록됐습니다. 치열한 교전 끝에 장전수 전병익 중사, 조타수 김창학 하사가 전사했습니다. 김창학 하사는 침몰 위기에 놓인 적함이 집중적으로 조타실을 공격해 중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조타실 키를 놓지 않았다고 합니다. 당시 백두산함 함장이었던 최용남 중령은 태극무공훈장을 받았고, 소장으로 진급해 해병대 1사단장에 오른 뒤 1998년 타계했습니다. ●수류탄과 화염병 뿐…적의 자주포를 육탄공격하다 6·25 전쟁 영웅으로 또 심일 소령이 있습니다. 심 소령은 함경남도 단천군 출신으로, 서울대 사범대 재학 중 육군사관학교 8기로 입학한 당시로서는 엘리트 군인이었는데요. 전쟁 발발 당일 6사단 7연대 대전차포대 2소대장(소위)으로, 춘천·홍천지구 전투에서 남하하는 10여대의 SU-76 자주포를 발견했습니다. 그는 적이 가까이 다가오길 기다렸다가 2문의 57mm 대전차포 발사를 명령하게 됩니다. 하지만 아무런 피해도 입히지 못했죠. SU-76은 이름만 자주포이지 전면에 35mm 장갑을 갖춰 당시 우리 군 입장엔 전차나 다름없었습니다. 초라한 무기에 좌절감을 느낀 것도 잠시, 그는 포탑을 돌리지 못하는 자주포의 특성상 좌우 측면이 취약할 것이라는 판단을 내리고 5명의 특공대를 편성합니다. 이어 수류탄과 화염병을 들고 적의 포탑 위로 돌진하는 육탄 공격을 감행해 자주포 3대를 격파하는 성과를 거뒀죠. 이런 방식은 전차에 대한 공포심을 사라지게 했을 뿐만 아니라 전선 곳곳에서 적 전차를 효과적으로 저지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습니다. 이후 충북 음성군, 경북 영천군 등지에서 벌어진 전투에 잇따라 참전했고 1951년 1월 26일 7사단 수색중대장으로 강원 영월군에서 정찰 활동을 하던 중 북한군의 총에 맞아 안타깝게 전사했습니다. 심 소령에게는 사후 태극무공훈장이 수여됐습니다. 심 소령의 동생으로 셋째 동생 심익은 1952년 17세의 어린 나이로 학도병으로 참전했다가 실종됐고, 경찰관이었던 둘째 동생 심민은 1960년 32세의 나이로 과로사하는 아픈 가족사를 남겼습니다. 보훈처는 올해 6월의 6·25 전쟁영웅으로 세 형제의 어머니인 고(故) 조보배 여사를 선정하기도 했습니다. ●훈장 하나 못 받았지만…북한군 간담을 서늘하게 한 ’구월산 여장군’ 여성 전쟁영웅으로는 ‘구월산 여장군’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이정숙 여성유격대원이 있습니다. 그의 활약상은 1965년 최무룡 감독의 영화 ‘피어린 구월산’과 고우영 화백의 만화 ‘구월산 유격대’를 통해 알려지기도 했는데요. 6·25 전쟁 직전 북한군에 의해 부모와 남편을 잃은 그는 1950년 10월 황해도 안악군에서 처음 ‘서하무장대’를 결성, 적의 후방에서 게릴라 활동을 벌였습니다. 이후 그는 중공군에게 많은 부하를 잃고 고향 황해도로 돌아온 육군본부 김종벽 대위의 ‘구월산 유격대’에 합류했고, 김 대위의 보좌관으로 많은 전투에 참여했습니다. 1951년 1·4 후퇴 당시에도 후퇴하지 않고 구월산에 남았는데요. 제대로 된 보급을 받지도 못한 채 적의 후방을 기습공격해 탈취한 물자로 생존해야 했지만 늘 그들의 가슴은 뜨거웠습니다. 같은 달 18일 고립된 재령유격부대를 구출하기 위해 촌부로 가장한 채 밤새 100여 리를 걸어 적 포위망을 뚫고 89명을 구출하는 전공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올해 여군으로는 처음으로 보훈처가 선정한 2월의 6·25 전쟁영웅으로 선정됐습니다. 지금도 일부 대원이 생존해 있지만 유격대를 이끌던 이정숙씨조차 훈장하나 받지 못했고 올해 뒤늦게 아들이자 구월산유격대 청장년회장인 김광인(60)씨가 참전 유공자 증서를 받았습니다. 6·25 전쟁 훈·포장은 1953년 12월 31일부로 종결한다는 이승만 정부 당시 법 조항이 걸림돌이 됐다고 합니다. 북한이 2013년 42일간 억류했다가 추방한 미국인 메릴 뉴먼(당시 85세)씨는 6·25 전쟁 당시 이 구월산 유격대와 함께 활동했다고 밝히면서 유격대의 활약상에 관심이 집중됐는데요. 그는 추방 뒤 공식 성명을 통해 북한 가이드에게 구월산 유격대원 생존 여부를 묻고 “구월산도 가고 싶다”고 말했다가 오해를 받고 억류됐다고 밝혔습니다. 6·25 전쟁에서는 유엔군, 특히 압도적 다수였던 미군의 희생도 많았습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흥남철수’도 사실 미군이 목숨을 걸고 중공군의 진격을 저지해 이뤄졌습니다. 역사상 미군이 가장 고전한 전투 중 하나인 ‘장진호 전투’입니다. 당시엔 미국 언론의 조롱까지 받았지만 종전 후에는 전략적으로 승리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인천상륙작전 이후 한국군과 미군은 압록강을 목표로 북진을 거듭했죠. 동부전선을 맡았던 미 10군단은 1950년 11월 해병대 1사단을 주력으로 한국군과 함께 함경도 개마고원의 장진호에 도달했습니다. 하지만 이 때 이미 중공군이 장진호 북쪽까지 진출한 상태였고, 병력은 1만 5000명인 한미 연합군의 8배에 가까운 12만명에 달했습니다. 7개 사단으로 구성된 중공군 제9병단은 미군이 주력인 연합군을 장진호 계곡으로 몰아넣고 섬멸작전에 돌입했습니다. ●중공군에 패해 후퇴하면서도 피난민을 구한 그들 11~12월 이 지역에는 영하 20~32도를 오르내리는 혹한이 이어졌다고 합니다. 해발 1000m 산악지대여서 살을 에는 추위가 전투만큼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습니다. 전체 미 해병대 1사단 사상자 7200명의 절반인 3600명이 동상으로 쓰러졌을 정도였습니다. 부상자에게 사용할 약품이 얼어터지고 총은 사용하지 않으면 얼어붙어 작동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니 당시 추위는 우리의 상상을 넘어서는 수준이었을 겁니다. 침낭 속에 들어가 잠을 청하고 싶었겠지만 중공군의 기습을 대비해야 해 강제로 지퍼를 올리지 못하게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미군을 에워싸고 단숨에 전멸시킬 기세였던 중공군은 미 해병대의 악착같은 반격에 사망자만 2만 5000명, 부상자 1만 2500명의 극심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결국 중공군 제9병단은 이곳 동부전선에서 결정적인 타격을 입어 서부전선의 제13병단과 합류하지 못하고 부대 재편을 위해 휴식기를 가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중공군의 추격을 뿌리치고 성공적으로 후퇴해 흥남에 도착한 미군은 전세계가 깜짝 놀랄만한 결정을 했습니다. 김백일 1군단장과 의사 출신 민간인 고문관 현봉학씨의 설득으로 에드워드 알몬드 미 10군단장이 민간인 피난민까지 모두 철수시키기로 결정하게 된 것입니다. 당시 공로로 현씨는 ‘한국의 쉰들러’라는 별명을 얻었죠. 그는 종전 뒤 미국 버지니아대, 콜롬비아대, 펜실베니아대에서 의대 교수로 활약, 의학 발전에 공헌했고 2007년 미국 뉴저지주 뮐렌버그병원에서 눈을 감았습니다. 부두를 떠날 때 미군이 시설과 군수 물자를 폭파하면서 일부 민간인이 희생돼 논쟁이 있긴 합니다만, 흥남 철수 작전은 2차 세계대전의 ‘됭케르크 철수 작전’과 더불어 가장 성공한 철수 작전 중 하나로 평가받습니다. 흥남 철수 당시 피난민들을 도왔던 또 한 명의 영웅이 있는데요. 라루 선장은 배에 실었던 무기를 모두 버리고 1만 4000명이라는 어마어마한 인원의 피난민을 태우라고 지시합니다. 가장 많은 사람을 구한 배로 기네스 기록을 수립하기도 했죠. 배 안에서 5명의 새 생명이 태어날 정도였습니다. 그는 이후 아픔을 겪은 한국인들을 떠올리며 ‘마리너스’라는 이름을 얻어 가톨릭 수도회인 베네딕토회 수사가 됐습니다. 그는 당시 항해에 대해 이렇게 회고했다고 합니다. “어떻게 그렇게 작은 배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태울 수 있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한사람도 잃지 않고 그 끝없는 위험들을 극복할 수 있었는지. 그해 크리스마스에 황량하고 차가운 한국의 바다 위에 하느님의 손길이 우리 배의 키를 잡고 계셨다는 명확하고 틀림없는 메시지가 내게 와 있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밀리터리 인사이드] 이순신만 아는 당신을 위한 전쟁영웅 이야기

    [밀리터리 인사이드] 이순신만 아는 당신을 위한 전쟁영웅 이야기

    6월은 ‘호국보훈의 달’입니다.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는 의미를 담고 있죠. 그렇다면 여러분은 나라를 위해 헌신한 전쟁영웅에 대해 얼마나 많이 알고 있나요. 이런 질문을 하면 대다수 사람들은 ‘이순신 장군’부터 거론할 겁니다. 풍전등화의 나라를 위기에서 구한, 지금도 성웅(聖雄)으로 불리는 존경받는 위인이죠. 하지만 교과서에 단 한 줄만 언급된, 아니 우리가 따분하다고 덮어버린 역사책 속에 숨겨진 전쟁영웅은 수없이 많습니다. 저는 이번에 우리가 몰랐거나 지나쳤던 6·25 전쟁의 영웅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독일의 영웅 서사시 ‘니벨룽겐의 노래’처럼 웅장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지치고 각박한 삶이지만 지금의 우리를 있게 해 준 그분들을 한번 쯤은 되새길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 전하는 이야기입니다. ●국민 성금으로 산 중고 초계정, 첫 승전보를 올리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은 19만명(한국군 10만명)의 병력과 소련이 제공한 T-34 전차 240여대를 앞세워 파죽지세로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불과 사흘만인 28일 수도 서울을 빼앗게 됩니다. 전차는 커녕 변변한 대전차 무기조차 갖추지 못한 우리 군은 눈물을 머금고 후퇴를 거듭할 수 밖에 없었는데요. 전쟁발발 다음날 깜짝 놀랄 만한 승전보가 전해졌습니다. 전쟁 직전 손원일 초대 해군참모총장과 해군 지휘부는 장병들의 월급과 국민 성금 1만 5000달러와 정부지원금 4만 5000달러를 합한 6만 달러를 들여 미 해군의 450t급 중고 초계정을 구입했는데요. 초계정은 연안을 감시하는 작은 전투함입니다. 참고로 우리 최신 이지스함 세종대왕함 배수량이 7500t(만재 배수량 1만t)이니 정말 작은 함정이죠. 선박이 진해 해군기지에 들어온 시기가 전쟁 발발 불과 두 달 전인 4월 10일입니다. 무장조차 없었던 선박에 3인치 함포 1문과 포탄 100발을 어렵게 갖췄습니다. 드디어 27일에는 ‘PC-701’이라는 함명을 받고 ‘백두산함’으로 불리게 됐습니다. 전쟁 당일 진해 해군본부는 백두산함에 동해로 출동하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백두산함은 초계임무 중 울산 앞바다에서 덩치가 두 배인 1000t급 괴선박을 발견합니다. 깃발이나 표식이 없었지만 함정을 북한군 상륙함으로 판단한 백두산함 지휘부는 해군본부로 “600명의 북한군이 승선한 채 전속력으로 남하하고 있다”고 긴급보고했습니다. 부산항을 노려 남하한 것이 분명해 보였습니다. 위협사격을 가하자 적선이 중기관총과 주포로 대응했고, 곧 백두산함의 3인치 주포가 불을 뿜었습니다. 4시간의 교전 끝에 26일 오전 1시 30분쯤 적선은 포탄에 명중돼 물 속으로 가라앉았고, ‘대한해협 해전’이라는 이름으로 6·25 전쟁 첫 승전으로 기록됐습니다. 치열한 교전 끝에 장전수 전병익 중사, 조타수 김창학 하사가 전사했습니다. 김창학 하사는 침몰 위기에 놓인 적함이 집중적으로 조타실을 공격해 중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조타실 키를 놓지 않았다고 합니다. 당시 백두산함 함장이었던 최용남 중령은 태극무공훈장을 받았고, 소장으로 진급해 해병대 1사단장에 오른 뒤 1998년 타계했습니다. ●수류탄과 화염병 뿐…적의 자주포를 육탄공격하다 6·25 전쟁 영웅으로 또 심일 소령이 있습니다. 심 소령은 함경남도 단천군 출신으로, 서울대 사범대 재학 중 육군사관학교 8기로 입학한 당시로서는 엘리트 군인이었는데요. 전쟁 발발 당일 6사단 7연대 대전차포대 2소대장(소위)으로, 춘천·홍천지구 전투에서 남하하는 10여대의 SU-76 자주포를 발견했습니다. 그는 적이 가까이 다가오길 기다렸다가 2문의 57mm 대전차포 발사를 명령하게 됩니다. 하지만 아무런 피해도 입히지 못했죠. SU-76은 이름만 자주포이지 전면에 35mm 장갑을 갖춰 당시 우리 군 입장엔 전차나 다름없었습니다. 초라한 무기에 좌절감을 느낀 것도 잠시, 그는 포탑을 돌리지 못하는 자주포의 특성상 좌우 측면이 취약할 것이라는 판단을 내리고 5명의 특공대를 편성합니다. 이어 수류탄과 화염병을 들고 적의 포탑 위로 돌진하는 육탄 공격을 감행해 자주포 3대를 격파하는 성과를 거뒀죠. 이런 방식은 전차에 대한 공포심을 사라지게 했을 뿐만 아니라 전선 곳곳에서 적 전차를 효과적으로 저지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습니다. 이후 충북 음성군, 경북 영천군 등지에서 벌어진 전투에 잇따라 참전했고 1951년 1월 26일 7사단 수색중대장으로 강원 영월군에서 정찰 활동을 하던 중 북한군의 총에 맞아 안타깝게 전사했습니다. 심 소령에게는 사후 태극무공훈장이 수여됐습니다. 심 소령의 동생으로 셋째 동생 심익은 1952년 17세의 어린 나이로 학도병으로 참전했다가 실종됐고, 경찰관이었던 둘째 동생 심민은 1960년 32세의 나이로 과로사하는 아픈 가족사를 남겼습니다. 보훈처는 올해 6월의 6·25 전쟁영웅으로 세 형제의 어머니인 고(故) 조보배 여사를 선정하기도 했습니다. ●훈장 하나 못 받았지만…북한군 간담을 서늘하게 한 ’구월산 여장군’ 여성 전쟁영웅으로는 ‘구월산 여장군’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이정숙 여성유격대원이 있습니다. 그의 활약상은 1965년 최무룡 감독의 영화 ‘피어린 구월산’과 고우영 화백의 만화 ‘구월산 유격대’를 통해 알려지기도 했는데요. 6·25 전쟁 직전 북한군에 의해 부모와 남편을 잃은 그는 1950년 10월 황해도 안악군에서 처음 ‘서하무장대’를 결성, 적의 후방에서 게릴라 활동을 벌였습니다. 이후 그는 중공군에게 많은 부하를 잃고 고향 황해도로 돌아온 육군본부 김종벽 대위의 ‘구월산 유격대’에 합류했고, 김 대위의 보좌관으로 많은 전투에 참여했습니다. 1951년 1·4 후퇴 당시에도 후퇴하지 않고 구월산에 남았는데요. 제대로 된 보급을 받지도 못한 채 적의 후방을 기습공격해 탈취한 물자로 생존해야 했지만 늘 그들의 가슴은 뜨거웠습니다. 같은 달 18일 고립된 재령유격부대를 구출하기 위해 촌부로 가장한 채 밤새 100여 리를 걸어 적 포위망을 뚫고 89명을 구출하는 전공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올해 여군으로는 처음으로 보훈처가 선정한 2월의 6·25 전쟁영웅으로 선정됐습니다. 지금도 일부 대원이 생존해 있지만 유격대를 이끌던 이정숙씨조차 훈장하나 받지 못했고 올해 뒤늦게 아들이자 구월산유격대 청장년회장인 김광인(60)씨가 참전 유공자 증서를 받았습니다. 6·25 전쟁 훈·포장은 1953년 12월 31일부로 종결한다는 이승만 정부 당시 법 조항이 걸림돌이 됐다고 합니다. 북한이 2013년 42일간 억류했다가 추방한 미국인 메릴 뉴먼(당시 85세)씨는 6·25 전쟁 당시 이 구월산 유격대와 함께 활동했다고 밝히면서 유격대의 활약상에 관심이 집중됐는데요. 그는 추방 뒤 공식 성명을 통해 북한 가이드에게 구월산 유격대원 생존 여부를 묻고 “구월산도 가고 싶다”고 말했다가 오해를 받고 억류됐다고 밝혔습니다. 6·25 전쟁에서는 유엔군, 특히 압도적 다수였던 미군의 희생도 많았습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흥남철수’도 사실 미군이 목숨을 걸고 중공군의 진격을 저지해 이뤄졌습니다. 역사상 미군이 가장 고전한 전투 중 하나인 ‘장진호 전투’입니다. 당시엔 미국 언론의 조롱까지 받았지만 종전 후에는 전략적으로 승리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인천상륙작전 이후 한국군과 미군은 압록강을 목표로 북진을 거듭했죠. 동부전선을 맡았던 미 10군단은 1950년 11월 해병대 1사단을 주력으로 한국군과 함께 함경도 개마고원의 장진호에 도달했습니다. 하지만 이 때 이미 중공군이 장진호 북쪽까지 진출한 상태였고, 병력은 1만 5000명인 한미 연합군의 8배에 가까운 12만명에 달했습니다. 7개 사단으로 구성된 중공군 제9병단은 미군이 주력인 연합군을 장진호 계곡으로 몰아넣고 섬멸작전에 돌입했습니다. ●중공군에 패해 후퇴하면서도 피난민을 구한 그들 11~12월 이 지역에는 영하 20~32도를 오르내리는 혹한이 이어졌다고 합니다. 해발 1000m 산악지대여서 살을 에는 추위가 전투만큼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습니다. 전체 미 해병대 1사단 사상자 7200명의 절반인 3600명이 동상으로 쓰러졌을 정도였습니다. 부상자에게 사용할 약품이 얼어터지고 총은 사용하지 않으면 얼어붙어 작동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니 당시 추위는 우리의 상상을 넘어서는 수준이었을 겁니다. 침낭 속에 들어가 잠을 청하고 싶었겠지만 중공군의 기습을 대비해야 해 강제로 지퍼를 올리지 못하게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미군을 에워싸고 단숨에 전멸시킬 기세였던 중공군은 미 해병대의 악착같은 반격에 사망자만 2만 5000명, 부상자 1만 2500명의 극심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결국 중공군 제9병단은 이곳 동부전선에서 결정적인 타격을 입어 서부전선의 제13병단과 합류하지 못하고 부대 재편을 위해 휴식기를 가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중공군의 추격을 뿌리치고 성공적으로 후퇴해 흥남에 도착한 미군은 전세계가 깜짝 놀랄만한 결정을 했습니다. 김백일 1군단장과 의사 출신 민간인 고문관 현봉학씨의 설득으로 에드워드 알몬드 미 10군단장이 민간인 피난민까지 모두 철수시키기로 결정하게 된 것입니다. 당시 공로로 현씨는 ‘한국의 쉰들러’라는 별명을 얻었죠. 그는 종전 뒤 미국 버지니아대, 콜롬비아대, 펜실베니아대에서 의대 교수로 활약, 의학 발전에 공헌했고 2007년 미국 뉴저지주 뮐렌버그병원에서 눈을 감았습니다. 부두를 떠날 때 미군이 시설과 군수 물자를 폭파하면서 일부 민간인이 희생돼 논쟁이 있긴 합니다만, 흥남 철수 작전은 2차 세계대전의 ‘됭케르크 철수 작전’과 더불어 가장 성공한 철수 작전 중 하나로 평가받습니다. 흥남 철수 당시 피난민들을 도왔던 또 한 명의 영웅이 있는데요. 라루 선장은 배에 실었던 무기를 모두 버리고 1만 4000명이라는 어마어마한 인원의 피난민을 태우라고 지시합니다. 가장 많은 사람을 구한 배로 기네스 기록을 수립하기도 했죠. 배 안에서 5명의 새 생명이 태어날 정도였습니다. 그는 이후 아픔을 겪은 한국인들을 떠올리며 ‘마리너스’라는 이름을 얻어 가톨릭 수도회인 베네딕토회 수사가 됐습니다. 그는 당시 항해에 대해 이렇게 회고했다고 합니다. “어떻게 그렇게 작은 배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태울 수 있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한사람도 잃지 않고 그 끝없는 위험들을 극복할 수 있었는지. 그해 크리스마스에 황량하고 차가운 한국의 바다 위에 하느님의 손길이 우리 배의 키를 잡고 계셨다는 명확하고 틀림없는 메시지가 내게 와 있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세상 모든 것이 무너지는 순간, 지켜야만 했다

    세상 모든 것이 무너지는 순간, 지켜야만 했다

    “영화 초반에 아이를 살리고 희생하는 지질학자가 나옵니다. 너무도 처절하고 아름다운 장면이어서 내가 맡으면 안 되겠냐고 감독에게 물었을 정도였죠. 관객들에게 인간의 기본적인 선한 마음, 이타심을 믿게 하는 그런 영감을 줄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드웨인 존슨 “인간의 선한 마음 믿게 하는 영감 줄 수 있을 것” 28일 오후 중국 베이징의 한 호텔에서 한국, 중국, 필리핀 등 아시아 5개 나라 기자들과 만난 배우 드웨인 존슨(사진 위)은 우락부락한 근육질 몸매에서 쉬 떠올리기 힘든 섬세한 감성을 담아 영화 ‘샌 안드레아스’를 설명했다. 브래드 페이턴 감독 역시 “누구나 다 영웅이 될 수 있고, 사람은 본능적으로 남을 위해 희생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서 “죽음을 앞둔 이가 아이에게 마지막 순간 ‘눈을 감으라’고 말하는 장면은 인본적이며,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이었다”고 거들었다. 다음달 3일 개봉을 앞둔 영화 ‘샌 안드레아스’는 지금껏 전례 없었던 진도 9.6 규모의 대형 지진이 빚어낸 대참사를 그리고 있다. 샌 안드레아스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일대 1000㎞에 걸쳐져 있는 단층이다. 오랫동안 캘리포니아에서 거대한 지진이 단속적으로 발생하는 근본적 이유다. 영화 시작부터 ‘미국의 자존심’으로 통하는 후버댐이 순식간에 와르르 무너진다.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가 엿가락처럼 늘어지다가 툭 끊어지며, 건물 15층 높이의 쓰나미가 도시 전체를 덮친다. 실제로 언제든 발생할 수 있는 대재난이기에 영화의 설정은 충격적이다. 영화 속 레이(드웨인 존슨)는 대참사 속에서 아빠와 남편으로서의 역할에 본능적으로 집착한다. 베테랑 소방구조팀장이건만 몇 년 전 함께 떠난 래프팅에서 막내딸을 지켜내지 못한 채 아이가 숨져가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던 자책감이 너무도 큰 탓이다. 존슨은 “나도 실제 딸이 있고, 딸을 구해야 할 상황이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재난영화지만 가족의 교감·갈등해소에 집중 영화는 재난영화의 공식을 그대로 따라간다. 하지만 빈곤한 서사를 상쇄할 만한 컴퓨터그래픽(CG)은 대리 체험만으로도 대참사의 긴장감과 공포감을 느끼게 만든다. 페이턴 감독은 “먼 거리에서 보는 재난 영화가 아니라 관중을 영화 속으로 끌어들여서 배우들의 감정과 두려움을 직접 느끼게 하고 싶었다”면서 “큰 규모의 재난 영화지만 가족이 서로 교감하고 갈등을 풀어가는 부분에 집중했다”고 말했다. 다만 여전히 지난해 4·16 세월호 참사에서 자유롭지 못할 한국사회에서 바닷물에 잠겨가는 딸 블레이크(알렉산드라 다드다리오)의 모습 등은, 보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럽기 짝이 없다. 사실 영화의 짜릿함은 재난 그 자체가 주는 것이지만, 진짜 비참한 현실은 재난 그 이후에 펼쳐진다. 하지만 영화는 많은 죽음과 도시의 궤멸을 뒤로하고 살아남은 이들의 고통보다는 희망에 주목한다. 금문교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대형 성조기가 나부끼고, 사람들은 손을 맞잡고 기도한다. 주인공 레이는 “이제 뭘 해야 하지?”라는 아내의 질문에 “이제 다시 세워야지”라고 대답한다. 미국의 재건을 뜻하고, 또한 해체됐던 가족의 복원을 얘기하는 장면이다. 실낱같은 생존의 가능성을 뚫고 살아남은 사람들이 또 다른 희망을 기약하는 결말은 진부하지만, 어쨌든 현실은 반드시 그래야만 하기 때문이다.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는 마지막 장면에 흐르는 노래는 ‘캘리포니아 드리밍’이다. ‘잠든 뒤에나 만날 수 있는 따뜻한 낙원’ 같은 캘리포니아가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아비규환의 공간으로 바뀐 상황에서, 느리게 편곡된 채 흐르는 노래는 수많은 죽음에 대한 진혼곡이다. 12세 관람가. 베이징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남북이 한 무대 서야 비로소 완성”

    “남북이 한 무대 서야 비로소 완성”

    “광복 70주년을 맞아 당초 취지를 살려 남북한 성악가들이 함께 무대에 오를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네요. 북한의 바리톤, 테너 등이 남한에 와서 한 무대에서 공연을 한다면 참으로 아름다울 겁니다.” 13년 만의 재공연을 앞둔 창작 오페라 ‘주몽’의 대본작가 김용범(61) 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의 소회다. 김 교수는 리브레토(오페라 대본·운문희곡)의 권위자다. 지난 20일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 19층 기자클럽에서 그를 만났다. 오페라 ‘주몽’은 2002년 초연된 ‘고구려의 불꽃-동명성왕’을 새롭게 각색했다. 고구려 건국신화를 토대로 주몽 일대기를 그린 작품으로, 다음달 6~7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무대에 오른다. 김 교수를 비롯해 2002년 공연 작업을 함께했던 작곡가 박영근, 연출가 김홍승 등이 다시 뭉쳤다. 이들은 당시 남북한이 함께 노래할 수 있는 오페라를 만들어보자고 의기투합했다. 북한이 고구려 중심 역사관을 갖고 있는 것을 감안해 주몽 일대기를 작품화하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다. 김 교수는 “요즘 남북 분위기가 얼어붙어 있어 남북 공동공연 말조차 끄집어내지 못하는 게 안타깝다”고 한숨지었다. 김 교수는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에 실린 한문서사시 ‘동명왕 편’을 토대로 1998년 대본 작업에 들어갔다. 주몽이 북방의 강대한 나라를 성립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춰 창작했다. 2002년 공연 이후 큰 변화가 생겼다. 2006년 드라마 ‘주몽’이 인기를 끌면서 주몽이 대중들에게 익숙해진 것. “2002년 그때만 해도 동명성왕은 사람들에게 생뚱맞았습니다. 드라마가 대박을 치면서 사람들이 주몽, 소서노 등 인물들에 친숙해졌죠. 제목도 오페라 주몽으로 바꾸고 내용도 다시 다듬었습니다.” 김 교수는 소서노와 유리왕 캐릭터를 강화했다. 소서노는 고구려·백제를 세운 역할에 비해 2002년엔 캐릭터가 미약했는데 이번엔 주몽과 대등하게 대본을 다시 썼다. 초연 땐 없었던 소서노의 아리아도 새로 넣었다. 유리왕도 새로운 기능과 역할을 부여했다. 김 교수는 “소서노와 유리왕 강화는 ‘오페라 유리’ 탄생을 예고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바그너의 4부작 ‘니벨룽겐의 반지’와 같은 작품을 만들고 싶어요. 우리도 세계에 자랑할 만한 장엄한 신화를 갖고 있습니다. 주몽, 유리왕, 광개토대왕으로 이어지는 커다란 물줄기를 3부작 오페라에 담고 싶습니다. 유리왕, 광개토대왕을 무대에 올릴 즈음엔 남북한 성악가들이 한 무대에서 노래를 부를 수 있지 않을까요. 제 바람입니다.” 고구려 3부작 오페라 대본 작업을 위한 기초 작업은 충분히 했다. 1992년 한·중수교 전부터 중국의 고구려 역사 현장을 답사했고, 2012년 옌볜대학 교환교수로 갔을 때에도 6개월간 고구려 현장을 돌며 재조사했다. 현지 조사를 토대로 1990년대 초반엔 ‘신 새벽’ ‘고구려의 불꽃’ ‘황조가’ 등 서사 무용 3부작을 창작했고, 시집 ‘고구려 시편’ 등도 냈다. 오페라 대본은 노래로 불러야 하는 시다. 대화가 기본인 연극 대본과 다르다. 시와 희곡을 다 쓸 수 있어야 오페라 대본을 소화할 수 있다. 오페라 대본 작가가 드문 이유다. 김 교수는 박목월 시인의 제자로, 1974년 ‘심상’ 신인상을 받으며 시인으로 등단했다. 희곡은 유민영 단국대 석좌교수에게 배웠다. 그는 “등단 이후 활자에서 벗어나 사람들 귀에 들려주는 시를 쓰고 싶었다”며 오페라 대본을 쓰게 된 동기를 들려줬다. “시가 활자 안에 갇혀 있는 게 답답했어요. 작곡가가 작곡하지 않았다면, 성악가가 불러주지 않았다면, 제 시는 활자 속에 계속 갇혀 있었을 겁니다.” 김 교수는 앞으로 페르시아 대서사시 ‘쿠시나베’와 김만중의 ‘구운몽’ 등 세계화할 수 있는 작품의 오페라 대본을 쓰려 한다. 쿠시나베는 페르시아 왕자가 나라가 망한 뒤 중국을 거쳐 신라로 와서 신라공주와 결혼, 신라에서 힘을 키워 페르시아로 돌아가 복수하는 내용이다. 구운몽은 새문안교회 게일 목사가 영역해 영국 런던에서 발간, 전 세계에 소개된 작품이다. “일흔 살 전에 두 작품을 무대에 올리고 싶어요. 창작 오페라 한 편을 무대에 올리는 데 보통 4년이 걸립니다. 작품을 구상하고 쓰는 데 1년, 작곡하는 데 1년 반에서 2년, 연습하는 데 1년 걸리죠. 잘 익은 김치처럼 숙성된 작품을 써서 국내외에 내놓고 싶습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데스크 시각] 다시 케네디를 생각한다/김상연 특별기획팀장

    [데스크 시각] 다시 케네디를 생각한다/김상연 특별기획팀장

    “국가가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묻지 말고, 여러분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자문해 보라”라는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의 명언은 반세기가 지난 오늘 읽어 봐도 대담무쌍하다. 국민의 표로 먹고사는 정치인이 감히 이런 말을 내뱉을 때 그의 뇌에서 두려움을 담당하는 부위는 마비되는 것인지 머릿속을 열어 보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특히 눈앞의 선거에 당선되기 위해서라면 나라 살림이야 어떻게 되든 말든 유권자에게 온갖 아첨을 다 떠는 한국 정치에 익숙한 사람에게 케네디의 이런 말은 호메로스풍의 서사시만큼이나 비현실적으로 들린다. 아니, 호남에 가서는 호남 총리론을 꺼내고, 충청도에 가서는 충청 총리론을 떠들고, 온갖 공짜라는 공약은 모조리 남발하고, 공무원 집단의 표가 두려워 나라를 부도로 몰고 갈 공무원연금 개혁에 미적거리는 오늘날 대한민국 정치인들의 행태가 오히려 더 판타지스러운 것도 같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문득 이런 상상을 해 본다. 만약 케네디가 한국의 정치인이었다면 그런 명언을 감연히 입에 올릴 수 있었을까. 정치는 그 나라 유권자의 수준을 반영한다고 하지 않나.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헌법의 첫머리를 읽으면서 케네디를 생각한다. 권력의 부당함으로부터 국민의 권리를 강조할 때의 민주(民主)는 저항적·반응적이지만, 국민의 책임과 주인 의식을 강조할 때의 민주는 주도적·능동적이다. 54년 전에 케네디는 민주의 개념을 후자(後者)로 확장한 공로가 있다. 그런데 국민의 손으로 직접 뽑은 대통령이 6명이나 되는 지금까지도 우리의 민주 의식은 전자(前者)에만 갇혀 있는 것 같다. 국민이 주인 의식을 갖지 못할 때 민주는 파행한다. 정부가 마음에 안 든다고 시위 도중 태극기를 불태우는 식의 행동이 나오는 것이다. 태극기 방화는 표현의 자유냐 아니냐이기 이전에 주인 의식의 문제다. 태극기는 대통령의 것도, 경찰의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태극기의 주인은 바로 일개 국민으로서의 ‘나’다. 그러므로 태극기를 훼손하는 것은 스스로를 국기의 주인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얘기가 된다. 주인 의식이 있는 국민은 시위를 하더라도 국기를 소중히 다루고 무고한 기물을 파손하지 않는다. 주인 의식이 있는 국민은 대통령이나 정부가 마음에 안 든다고 5년을 원망만 하며 허송세월하지 않는다. 주인 의식이 있는 국민은 자신의 불행을 죄다 국가의 탓으로 돌리지 않는다. 주인 의식이 있는 국민은 종속변수 y가 아니라 독립변수 x의 삶을 산다. 주인 의식이 있는 국민에게 민주는 안티테제가 아니라 테제다. 정부가 마음에 들 때만 애국하는 원칙이 있다면 이 나라는 벌써 오래전에 지구상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5000년을 이어온 이 나라의 주인은 대통령도, 국회의원도, 재벌도 아니다. 이 땅의 주인은 일개 국민으로서의 당신과 나다. 이 나라는 검은돈을 받고도 발뺌하는 고관대작들, 파렴치한 병역 기피자들, 약아빠진 원정출산자들이 아니라 국가로부터 별로 받은 것이 없어도 묵묵히 군대에 가고 누란의 위기에서 자신을 던지는 국민들이 명운을 쥐고 있는 것이다. 도성을 버리고 도망친 임금이 도리어 공을 세운 자신을 질투하고 모함하고 고문해도 배 12척을 수습해 나라를 구한 수군통제사는 임금이 아니라 자신이 이 땅의 주인이라고 여겼기에 기꺼이 백의종군했다. carlos@seoul.co.kr
  • 간신의 시대, 아직 끝나지 않았소

    간신의 시대, 아직 끝나지 않았소

    조(祖)도, 종(宗)도 되지 못한 왕은 후세에게 손가락질을 받았지만 500년 남짓이 흐른 뒤 예술인들 사이에서만큼은 절대 인기남으로 거듭났다. 1961년이 그 첫 시작이었다. 신상옥 감독은 영화 ‘연산군-장한사모’를 내놓은 뒤 국내외 각종 영화제를 휩쓸었고 거장의 반열에 올랐다. 1987년 이대근, 강수연이 출연한 ‘연산군’, 1988년 임권택 감독의 ‘연산일기’가 뒤를 이었고, 이준익 감독의 ‘왕의 남자’(2005년)가 1000만 관객 영화 대열에 올라서며 예술창작의 대상으로서 더없이 비극적이면서도 매력적인 인물, 연산군에 대한 서사의 정점을 찍었다. 이 밖에도 방송 3사가 앞다퉈 7~8차례에 걸쳐 드라마의 중심 혹은 주변 인물로 연산군을 다뤘다. 또한 이윤택 연출가는 ‘문제적 인간-연산’으로 연산군에 대한 또 다른 연극적 해석을 이뤄내기도 했다. 조선 최대의 폭군이자 패륜왕, 비극적으로 어머니를 잃은 콤플렉스 덩어리 아들, 난잡한 향락을 추구한 성도착자, 당쟁의 틈바구니에서 약화되는 왕권을 붙잡으려 발버둥쳤던 미욱한 왕 등 여러 얼굴을 지닌 존재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무엇을 부각시켜도 극적인 갈등과 긴장감이 팽팽했다. 다시 한 번 연산군이 돌아왔다. 이제는 ‘간신’의 곁에 서 있는 인물이 됐다. 연산군(김강우 분)은, 수십년 동안 봐왔으니 이제는 익숙해질 법도 하건만 여전히 불편한, 예의 패악스러운 광기를 드러냈다. 민규동 감독의 ‘간신-왕 위의 왕’은 제목 그대로 조선조 500년사 속 대표적인 간신으로 꼽히는 채홍사 임사홍(천우진 분)·임숭재(주지훈 분) 부자를 앞줄에 내세웠다. 권력을 능멸하는 간신의 시선으로 연산군을 지켜봤고, 능멸당할 수밖에 없는 권력의 무기력함을 강조했다. 비루한 광기의 왕 연산군은 간신 임숭재에게 사정하듯 매달린다. “나 때문에 하늘이 검어졌어. 제발 멈추게 해달라, 제발.” 칼을 자신의 목에 겨눈 채로 건네는 연산군은 다시 분노와 욕망에서 비롯한 슬픈 광기를 발작적으로 터뜨린다. 설령 훗날의 역사가 그를 간신으로 기록할지언정 연산군에게 있어 입안의 혀와도 같은 충신이었던 임숭재는 눈물로 더 큰 쾌락을 약속한다. 후반부로 치닫는 영화의 결론적 장면을 암시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영화의 도입과 중간중간 서사에 대한 설명이 필요한 대목을 창(唱)으로 풀었다. 사극의 성격을 감안해 배치한, 참신한 연극적 장치면서 민규동 감독 특유의 감각적 영상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기법이다. 장녹수를 연기한 뮤지컬 배우 차지연이 구성진 소리꾼 역할을 겸했다. 영화 속 임숭재는 조선 각지의 미녀 1만명을 궁 안으로 그러모아 이들에게 ‘색(色) 트레이닝 및 배틀’을 시켜서 연산군의 간택 대상을 차츰 좁혀 나간다. 속이 훤히 비치는 치마 안에 속곳만 입고 궁을 활보하는 여인네들이 우글우글 하며 각종 방중술의 구체적인 내용과 여러 체위를 수련하는 높은 수위의 장면들이 오가니 영화의 청소년관람불가 성격은 더욱 분명해진다. 영화 ‘중독’에 이어 다시 한 번 파격적인 연기를 감행한 임지연이 비밀을 품고 있는 여인 단희 역할을 맡았고 지난해 데뷔작 ‘봄’으로 밀라노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은 이유영이 조선 최고의 명기 설중매를 연기했다. 눈요기에 가까운 노출 장면의 향연에 이어 중간부터 임숭재와 단희의 애틋한 연정을 품을 수밖에 없었던 사연이 등장하고, 또 그토록 무조건적으로 탐했던 권력의 덧없음을 깨닫는 임숭재의 갑작스런 심경 변화 등이 오히려 영화의 일관된 주제의식을 거슬리게 만든다는 점은 안타깝다. 오는 21일 개봉.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문학은 아날로그적 삶을 표현하는 중요한 방법”

    “문학은 아날로그적 삶을 표현하는 중요한 방법”

    한국계 재미 작가 이창래(50·프린스턴대 문예창작과 교수 겸 연세대 석좌교수)는 대중적인 인기에 연연하지 않는다. 인간에 대한 순수한 열정으로 작품을 쓴다. 그런 열정이 매년 노벨문학상 유력 후보로 거론되는 배경이다. 그는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노벨 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건 기쁜 일”이라며 “유행이나 돈을 쫓지 않고 사람들을 진지하게 이해하는 작가로 알아주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 간담회는 작가 데뷔 20주년을 맞아 1995년 첫 장편소설 ‘영원한 이방인’(원제 ‘Native Speaker’·알에이치코리아)을 더 완성도 높은 번역으로 재출간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창래 작가는 “‘영원한 이방인’을 다시 소개하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20년이 지났지만 제겐 큰 의미를 지니는 작품입니다. 당시 미국의 작은 시골마을에서 대중적 인기나 시류가 아닌 언어, 뉴욕, 사람들에 대한 열정으로 쓴 순수한 작품입니다. 보편적인 정서로 마음을 울리는 주제를 다뤘기 때문에 지금 다시 읽어봐도 만족스러워요.” ‘영원한 이방인’은 정치적 사건에 연루된 한국계 미국인 ‘헨리 파크’를 앞세워 이방인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었던 한 남자의 삶과 정체성 문제를 다뤘다. 출간 당시 미국 평단으로부터 유려하고 아름다운 문체와 서정적이고 긴장감 넘치는 서사라는 찬사를 받았다. 이듬해 ‘펜/헤밍웨이 문학상’ 등 6개 주요 문학상을 석권하며 화제를 모았다. 지금까지 ‘영원한 이방인’을 비롯해 ‘척하는 삶’ ‘생존자’ ‘가족’ ‘만조의 바다 위에서’ 등 5권의 장편소설을 냈다. 최근엔 세계 자본주의를 다룬 신작 집필에 들어갔다. 그는 “문학은 우리의 아날로그적인 삶을 표현하는 중요한 방법 중 하나”라고 했다. “우리의 삶은 수로 환산될 수도 없고 디지털화될 수도 없습니다. 디지털시대지만 우리 인생에는 디지털로 담을 수 없는 미스터리한 면이 많아요. 문학은 우리 자신을 찾아가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문학이 얼마나 중요한지 젊은 세대들이 꼭 알아줬으면 해요.” 자신의 뿌리는 한국이라고 강조했다. “미국 작가지만 제 기반은 한국인입니다. 한국인으로 인식해 준다면 자랑스러울 것 같습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시대의 고통 장르의 소통

    시대의 고통 장르의 소통

    1895년 이탈리아 국왕의 은혼식을 기념해 처음 창설된 이래 베니스비엔날레는 항상 그 시대 예술의 최전방에 있었다. 지난 9일(현지시간) 개막식과 함께 6개월 대장정에 돌입한 제56회 베니스비엔날레도 예외일 수 없다. 예술이 정치·사회·경제적 이슈를 다루는 게 시대적 요구라는 것은 이번 전시의 주제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2002년 독일 카셀도큐멘터, 2008년 제7회 광주비엔날레 총감독을 맡아 매번 사회적 메시지가 강한 주제를 던졌던 나이지리아 출신 오쿠이 엔위저 총감독이 올해 제시한 주제는 ‘모든 세계의 미래’다. 본전시에 초청받은 53개국 136명의 작가와 국가관 전시에 참여한 89개 나라의 커미셔너 작가들이 나름의 방식으로 총감독이 던진 주제에 다양하게 응답했다. 산업사회에서 후기 산업사회로 넘어가면서 생긴 문제들, 개인의 소외, 환경 재난과 인종 갈등, 전쟁, 이민자 문제를 다룬 작품이 유독 많다. ●전쟁·인종갈등·환경·이민자… 묵직한 응답 이번 비엔날레에서 영예의 황금사자상 국가관상을 받은 아르메니아관 전시는 100년 전 있었던 아르메니아 대학살을 상기하며 오늘날의 평화를 갈구하는 뜻이 담겼다. 리비아, 시리아, 미국, 영국, 터키 등 아르메니아 출신으로 외국에 흩어져 사는 현대미술 작가들이 참여했다. 아르세날레 전시장 입구의 긴 통로에는 가나 출신의 이브라힘 마하마가 포대와 로프를 기워 만든 설치작품 ‘아웃오브바운즈’가 배치돼 있다. 석탄과 코코아 무역에 쓰였던 낡은 포대는 아프리카 내부의 공급과 수요 문제를 다룬다. 벽에는 미국 작가 브루스 나우먼이 ‘죽음’, ‘욕망’, ‘증오’라고 쓴 네온작품을 선보였다. 그 옆방에는 대포, 총기류, 탄피, 사슬톱이 늘어서 있다. 6년 만에 본전시에 초대된 한국 작가 3명의 작품도 하나같이 사회적 주제를 다루고 있다. ●영상·연극과의 결합… 퍼포먼스의 진화 미디어 아트 중 영상이 강세를 이어가고 있다. 영상이 빠지면 작품이 안 될 정도다. 특이한 점은 미술과 영화의 경계가 다소 모호해지면서 임흥순의 ‘위로공단’처럼 영상 작품의 길이가 길어지고, 다분히 영화적이고 서사적인 측면이 부각되고 있다는 것이다. 영상물과 다른 여러 가지 표현 방식이 혼합돼 오감을 자극하는 하이브리드 예술의 급부상도 눈에 띈다. 이번 베니스비엔날레의 또 다른 특징으로는 그동안 ‘변방의 실험적인 장르’로 치부되던 퍼포먼스의 대약진을 꼽을 수 있다. 올해 공식 참가 작품 중 50개가 퍼포먼스를 포함하고 있다. 형식도 예술가 한 사람의 행위예술이 아니라 다양한 방식의 퍼포먼스 실험이 진행 중이다. 주제관에는 아예 이런 장르의 작품을 소개하는 무대까지 갖춰 놓았다. 이곳에서는 영화감독이자 작가인 아이작 줄리언의 ‘자본론’ 낭독 퍼포먼스가 펼쳐진다. 퍼포먼스의 방식도 매우 다양하다. 본전시에 초대된 김아영은 중동에 근로자로 파견됐던 아버지와의 인터뷰 기록과 국제유가 추이를 통해 에너지원인 석유와 이를 둘러싼 국제외교 등을 다룬 ‘제페트, 그 공중정원의 고래기름을 드립니다, 쉘3’를 보이스 퍼포먼스와 함께 선보였다. 김아영이 대본을 쓰고 김희라 작곡가의 곡을 붙인 뒤 현지에서 섭외한 7명의 성악가가 지휘에 맞춰 소리를 낸다. 이용우 심사위원은 “올해는 유난히 퍼포먼스가 많이 등장했다”며 “미술이란 이런 것이라는 개념은 이제 사라지고 다양한 장르가 함께 호흡하고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하이브리드 예술로 현대미술이 진화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설명했다. 글 사진 베니스(이탈리아)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백남준 후예들 베니스 홀리다…“건축과 하나 된 실험적인 영상미…시적이고 매혹적”

    백남준 후예들 베니스 홀리다…“건축과 하나 된 실험적인 영상미…시적이고 매혹적”

    “영상이 시적(詩的)이고 매혹적이다.”“한국관의 건축적 특성을 살린 놀라운 디스플레이를 선보였다.”“실험적인 미학과 혁신적 기술을 접목해 영상 작품의 새로운 차원을 열었다.” 제56회 베니스비엔날레 국제미술전의 공식 개막을 사흘 앞두고 6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베니스의 카스텔로 공원(자르디니)에서 전 세계 언론과 미술 관계자 및 전문가들을 상대로 막을 올린 한국관 전시에 찬사가 쏟아졌다. 이숙경 큐레이터가 커미션을 맡은 문경원·전준호 작가의 신작 ‘축지법과 비행술’은 종말적 재앙 이후 지구의 육지 대부분이 물에 잠기고 한국관이 부표처럼 떠도는 가운데 한 인물이 보내는 ‘어느 하루’의 경험을 담은 7채널(각 10분 30초) 영상설치 작품이다. ●건물 밖에서도 영상 관람… 한국관의 건축적 특성 살린 장소특정적 작품 한국은 1986년 베니스비엔날레에 처음 참가한 이후 전시관이 없어 이탈리아관 작은 공간을 배정받아 참가하던 중 1995년 자르디니 전시장에 27번째 국가관으로 독립된 전시공간을 갖게 됐다. 그러나 한국관은 기존의 벽돌건물을 살리고, 주변 경관을 가리지 말라는 까다로운 조건 때문에 유리벽과 곡선형 벽 구조, 여러 개의 다면체로 전체 공간이 될 수밖에 없었다. 건축적 특수성이 크게 부각되긴 했으나 결과적으로 미술 작품을 전시하는 공간으로서는 적절치 않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이숙경 큐레이터는 “한국관이 들어선 지 20년이라는 의미를 살리고, 한국관의 건축적 특성을 제약이 아니라 도전적인 요소로 활용해 자르디니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싶었다”면서 “7개의 채널이 건축물과 함께 하나의 작품을 이루고 있는 장소특정적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일반적으로 영상 작품은 실내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지만 이번 작품은 유리로 된 곡면과 직각 벽을 적극적으로 살려 외부를 향해 2개의 고화질 LED 화면을 설치함으로써 건물 바깥에서도 관람이 가능하도록 했다. 3㎜ 크기의 극소형 전구를 사용한 LED 화면은 중소기업인 베이직 테크에서 만들었다. ●제작부터 편집까지 1년 6개월의 긴 여정… 시간과 공간의 중첩 ‘축지법과 비행술’은 공간의 안과 밖, 시간의 과거와 미래를 넘나드는 투과적 설정과 미래의 관점에서 현재를 돌아보는 독특한 서사 방식을 구사한다. 작품 구상부터 제작 및 편집까지 총 1년 반이 걸린 영상은 인류의 생존자로 보이는 한 인물(배우 임수경 분)이 미래의 실험실에서 보내는 일과를 담고 있다. 이 인물은 자신이 누구인지 모른 채 매일 리셋되어 하루를 살아간다. 그의 머리에는 모든 인류의 기억들이 내재된 ‘바이오 라이트’가 심어져 있다. 똑같이 반복되도록 프로그램된 일상에 오류가 나자 이 인물은 동요하고, 오류의 원인을 찾느라 여러가지 시도를 하면서 과거의 흔적들과 만난다. 구석진 방에 설치된 화면에서는 17세기 베니스에 살았던 여인이 등불을 들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모습이 보인다. 낯선 풍경이 이어지다 어느 순간 그가 돌아온 곳은 2015년 베니스의 자르디니다. 자신에 대한 자각 속에 현재를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문경원 작가는 “예술이 답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과거와 미래를 상상 속에서 오가면서 현재의 삶에 변화를 줄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시공간을 이동하고자 하는 욕망을 담은 ‘축지법과 비행술’이라는 은유적 표현을 택했다”고 말했다. 전준호 작가는 “예술이 미래의 인류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궁금증에서 시작한 프로젝트였다”면서 “우리가 우려하는 것처럼 기계적인 삶이 지배하는 미래가 아닌, 노동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나’를 잃지 않게 하는 기능을 예술이 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작품을 제작했다”고 말했다. 한국관 전시는 영국의 아트리뷰, 이탈리아 미술전문 온라인 매체 아트리뷴과 주요 일간지 코리에레 델라 세라 등 해외언론에서 전시 개막 이전부터 주목할 만한 전시로 소개됐다. 특히 국제 미술계 주요 인사들이 한국관을 방문해 문경원·전준호 작가의 신작에 큰 관심을 보였다. 영국 런던 서펜다인갤러리의 한스울리히 오브리스트 디렉터는 “영상과 건축이 환상적으로 통합됐다. 이 전시를 봤다면 백남준이 무척 좋아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프랑스 파리의 팔레드도쿄 장 드 르와지 관장은 “전시관 안팎의 경계를 허물며 영상이라는 미디엄의 한계를 뛰어넘은 훌륭한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세계적 아티스트인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와 아니쉬 카푸어도 전시장을 찾았다. 글 사진 베니스(이탈리아)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미술 한류의 미래 ‘물의 도시’서 묻다

    미술 한류의 미래 ‘물의 도시’서 묻다

    지구촌 최대의 미술잔치인 제56회 베니스비엔날레가 오는 9일(현지시간) 공식개막돼 11월 22일까지 6개월간의 대장정에 들어간다. 올해는 1895년 베니스비엔날레가 탄생한 지 120년이 되는데다 개최 장소인 카스텔로 자르디니 공원 내에 한국관이 설치된 지 20년이 되는 해여서 더욱 각별하다. 1986년 첫 참가한 이후 꾸준히 존재감을 각인시킨 한국은 올해 회화부터 설치, 퍼포먼스까지 그 어느 때보다 다양한 장르와 세대의 작가들이 대거 참여할 예정이어서 기대와 관심을 모은다. 베니스비엔날레 행사는 크게 총감독이 그 해의 주제를 중심으로 기획하는 본전시, 각국이 자체적으로 작가를 선정해 작품을 소개하는 국가관 전시, 베니스비엔날레재단의 승인을 얻고 참가비를 납부한 후 갖는 병행전시 등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올해 본전시 총감독은 나이지리아 출신 오쿠위 엔위저(52·독일 하우스데어 쿤스트 디렉터)가 맡아 ‘모든 세계의 미래(All the World’s Futures)’를 주제로 제시했다. 53개국 136명의 아티스트가 참여하며 이 중 임흥순(46), 김아영(36), 남화연(36) 등 한국작가 3명이 초청됐다. 한국작가의 본전시 진출은 6년 만이다. 제주 4·3을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 ‘비념’을 감독한 임흥순은 캄보디아, 미얀마, 베트남 등에서 일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상작품 ‘위로공단’을 선보인다. 김아영은 중동에 파견됐던 작가 아버지의 기록에서 영감을 받은 설치와 퍼포먼스 ‘제페트, 그 공중정원의 고래기름을 드립니다, 쉘’을, 남화연은 17세기 네덜란드 황금시대의 튤립파동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한 영상작품 ‘욕망의 식물학’을 각각 선보인다. 6일 오후 개막하는 한국관 전시는 문경원(46)과 전준호(46)가 공동작업한 영상 설치작품 ‘축지법과 비행술’로, 이숙경(런던 테이트미술관 아시아태평양미술연구소 책임큐레이터)이 커미셔너를 맡았고 배우 임수정이 출연한다. 한국관의 구조적 특성을 살려 전시공간 전체를 아우르는 7개 채널 영상설치작업으로 종말적 재앙 이후 지구의 육지 대부분이 물에 잠기고 한국관이 부표처럼 떠도는 상황에서 한 인물이 겪는 경험과 의도된 만남을 표현한다. 1995년 26번째로 독립된 국가관으로 탄생한 한국관의 과거·현재·미래뿐 아니라 국가관의 경계를 넘어 베니스비엔날레의 역사적 서사를 담은 작품이다. 본전시 주제와도 잘 부합되고 이용우 세계비엔날레협회장이 한국인 최초로 올해 베니스비엔날레 심사위원에 초대돼 한국관 수상도 기대해 볼 만하다. 병행전시에도 한국 작가들이 대거 참여한다. 벨기에 보고시안재단이 주최하고 국제갤러리가 후원하는 ‘단색화’전(7일~8월 15일)이 팔라초 콘타리니 폴리냑에서 열린다. 박서보, 정상화, 하종현, 이우환, 고 정창섭 등 맹위를 떨치는 단색화 작품이 세계 미술관 관계자들과 큐레이터들이 집결한 베니스에서 소개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팔라초파카논에선 광주를 근거로 활동하는 비디오 아티스트 이매리가 상하이 히말라야 뮤지엄 소속 중국작가들과 함께 작품을 소개하고, 나인드레곤헤즈 주최로 팔라초로레단엘암바시아스토레에서 열리는 ‘점프인투언노운’에도 박병욱 등 한국작가 10명이 참가한다. 이 밖에 개막기간 중 베니스 일원에서 열리는 다양한 특별전시에서도 한국 작가들이 역량을 과시한다. 런던에서 활동하는 독립큐레이터 김승민이 저바수티재단 후원으로 기획한 전시 ‘베니스, 이상과 현실 사이’에는 구혜영 등 개성이 강한 한국의 젊은 작가 8명이 참여한다. 네덜란드 비영리재단인 GAAF가 주최하는 ‘개인적인 구축물’전에는 이이남, 한호 등의 작품이 소개되고 팔라초모라에선 프랑스 거주작가 남홍의 퍼포먼스가 열릴 예정이다. 한국화가 박병춘은 카포스카리 대학 초대로 이 대학 미술관에서 ‘채집된 풍경’이라는 주제로 한국화의 현대적 가능성을 선보인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과학자들이 말하는 ‘허블 후계자’ 제임스웹은 어떤 망원경?

    과학자들이 말하는 ‘허블 후계자’ 제임스웹은 어떤 망원경?

    “허블이 모든 교과서를 다시 쓴 것처럼, 제임스웹 역시 다시 쓰게 될 것” 우주의 놀랍고 아름다운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준 허블 우주망원경이 25주년을 맞이했다. 하지만 미국항공우주국(NASA)은 외계 생명체의 탐색을 위해 우주의 깊은 곳까지 들여다볼 수 있는 더 강력한 망원경을 필요로 하고 있다. NASA는 허블 망원경보다 성능이 100배 뛰어난 ‘제임스웹 우주망원경’(JWST)이 우리의 염원을 이룰 뿐만 아니라 빅뱅 후 2억 년이 지난 초기 우주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NASA는 제임스웹을 ‘135억 년 전 초기 우주의 암흑 속에서 탄생하고 있는 최초의 별과 은하를 들여다보기 위해 적외선 시야를 가진 강력한 타임머신’이라고 묘사했다. 제임스웹을 만들고 발사하는데 드는 총비용은 애초 35억달러(약 3조8000억원)였으나 최근 88억달러(약 9조5000억원)까지 늘어났다. 하지만 NASA는 이 차세대 망원경이 오는 2018년 10월부터 허블의 뒤를 이을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본다. 제임스웹의 책임과학자인 마크 클렘핀 박사는 “제임스웹의 실제 임무는 우주에서 초기 은하를 찾는 것”이라면서 “또 그 능력을 사용해 우주의 매우 어두운 부분에서도 별이 탄생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제임스웹의 중량은 허블의 절반 수준인 6.4t이지만, 주 반사경을 베릴륨으로 제작해 지름을 6.5m까지 늘였다. 이는 2.4m인 허블의 2.5배에 달한다. 유럽우주국(ESA)과 캐나다우주국(CSA) 등이 참여한 제임스웹에는 4개의 주요 관측 장비가 실린다. 근적외선 카메라와 근적외선 분광기, 중적외선 장비, 미세유도 센서로 각 장비는 통합 과학장비 모듈에 장착된다. 제임스웹의 장비탑재를 담당하고 있는 매트 그린하우스 박사는 적외선 능력을 통해 먼 천체를 관측하고 카메라 셔터를 오랜 시간 개방 상태로 유지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린하우스 박사는 “제임스웹의 집광력은 허블보다 70배 더 좋다. 따라서 거대한 주경과 적외선 능력을 조합하면 우주의 서사시와 같은 과거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제임스웹은 또 물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외계행성을 찾아 우주 어딘가에 있을 외계 생명체를 탐색하는 데 이용된다. 이미 2009년 발사된 NASA의 케플러 우주망원경이 천문학자들을 위한 수천 개의 외계행성을 확인했지만, 제임스웹은 외계 생명체 탐사를 위한 연구를 더욱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린하우스 박사는 “제임스웹은 생명의 증거가 되는 외계행성의 대기에서 생물학적 특징을 찾을 가능성이 높다”며 “내부에는 광학적으로 외계행성의 대기를 연구할 수 있는 장비와 센서가 있어 대기의 구성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생명체 탐색에 큰 진전을 이루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제임스웹은 허블이 지상 610km 상공을 공전하는 것과 달리 지구에서 150만 km 떨어진 라그랑주점 ‘L2’를 돌게 된다. 이는 지구와 달 사이의 거리보다 4배 더 먼 거리로 지구의 중력이 미치지 않아 빛의 왜곡이 없다. 또 태양이 항상 지구 뒤에 가려 태양 빛의 방해 없이 먼 우주를 볼 수 있고 망원경에 설치되는 가림막은 지구와 달에서 반사되는 빛도 막아준다. 제임스웹은 오는 2018년 10월 프랑스령 기아나 우주센터에서 ESA의 로켓 아리안 5호에 실려 우주로 떠날 예정이다. 그린하우스 박사는 “허블이 모든 교과서를 다시 쓴 것처럼 제임스웹 역시 다시 쓰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NASA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23일 뚜껑 여는 ‘어벤져스2’ 빛과 그늘… 94% 예매대란 이어 갈까

    23일 뚜껑 여는 ‘어벤져스2’ 빛과 그늘… 94% 예매대란 이어 갈까

    ‘어벤져스-에이지 오브 울트론’(이하 어벤져스2)이 한국 극장가를 통째로 집어삼키고 있다. 23일 개봉을 앞두고 예매점유율이 무려 94%가 넘는다. 같은 기간에 극장에 내걸릴 나머지 열 편 안팎의 영화들은 0%대다. 완벽한 블랙홀 수준이다. ‘어벤져스2’는 꼭 1년 전 서울에서 보름 동안 촬영했다. 초대형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곳곳에 마포대교, 세빛섬, 상암DMC, 강남대로 등 서울의 풍경이 나온다는 생각만으로도 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잔뜩 높였다. 당시 한국관광공사는 ‘4000억원의 직접 홍보 효과 및 2조원의 국가 브랜드 가치 상승효과’를 공식적으로 발표하기도 했다. 무성한 소문 속에 지난 21일 오후 영화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한국의 시장성을 증명하듯 북미 개봉보다 1주일 앞섰다. 영화에 대한 평가는 극단적으로 엇갈린다. ‘어벤져스2’가 드리운 빛과 그늘을 따라가 봤다. [UP] ‘마블 영웅’ 총집합… 화려해진 3D…141분 안 아깝네! 오락영화로서 부족함 없는 141분이었다. 아이언맨, 토르, 헐크, 캡틴 아메리카 등 영화 한 편을 너끈히 책임졌던 슈퍼 히어로의 드림팀이 한자리에 모인 것은 기본. 비중이 높아진 호크 아이와 블랙 위도를 비롯해 쌍둥이 남매 퀵실버와 스칼릿 위치 등 새로운 얼굴의 존재감도 남다르다. 때문에 ‘어벤져스 2’는 마블의 오리지널 멤버와 차세대 주역이 총출동한 ‘마블의 종합선물세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화는 ‘아이언맨’ 토니 스타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손끝에서 시작된다. 그는 지구의 평화를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평화 유지 프로그램을 개발하지만 오류가 발생해 울트론이라는 악당이 탄생한다. 40년 전 마블코믹스 유니버스에 등장해 시리즈 사상 최악의 적으로 평가받는 울트론과 더욱 강해진 어벤져스의 한판 전쟁은 전작보다 한층 업그레이드된 볼거리를 자랑한다. ‘어벤져스2’는 1편의 제작비 2억 달러를 뛰어넘어 2억 5000만 달러(약 2700억원)가 투입됐고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 23개 지역에서 촬영을 진행했다. 한국 촬영분은 어벤져스와 울트론의 싸움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초입부에 10분 남짓 등장한다. 영화 속에 지명이 등장하는 곳은 서울과 뉴욕이 유일할 정도로 존재감은 확실하다. 세빛섬은 저명한 유전공학자 닥터 헬렌 조(수현)가 있는 연구소로 등장하고 상암 디지털미디어시티와 강남대로에선 울트론과 어벤져스의 시가전이 전개된다. 어벤져스 히어로들이 마포대교와 한강 위로 날아다니는가 하면 캡틴 아메리카(크리스 에반스)는 마포대교와 문래동 등에서 액션을 펼친다. 블랙 위도(스칼릿 조핸슨)는 오토바이로 강남역 뒷골목을 아슬아슬하게 누빈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중간중간 들리는 한국어와 스쳐 지나가는 한글 간판은 분명히 반가울 만하다. 3D도 효과적으로 구현됐다. 극 초반 ‘로키의 창’을 찾기 위해 어벤져스가 히드라 기지를 공격하는 장면이나 후반부의 복제된 울트론과 어벤져스의 총공격 장면은 마치 눈앞에서 벌어지는 듯한 입체감을 선보인다. 전편에 비해 다양해진 캐릭터만큼 이야기도 깊어졌다. 아이언맨과 캡틴 아메리카의 대립각은 물론 헐크와 블랙 위도의 러브라인, 쌍둥이 남매의 끈끈한 관계 등 인물 구도가 세밀하게 그려졌고 슈퍼 히어로들이 인간과 영웅 사이에서 겪는 고뇌도 심도 있게 그려진다. 아쉬움에 자리를 뜨지 못하는 관객을 위해 ‘어벤져스3’ 쿠키영상도 기다리고 있다.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DOWN] 초라한 서울 도심… 웃픈 악당들… 전편보다 볼품없네! ‘어벤져스’ 마니아들은 제각각 알아서 지구를 지켜 온 슈퍼 히어로들이 다시 한자리에 모습을 드러낼 날만 기다려 왔다. 물론 흥분도와 흥행 성적이 꼭 정비례하지는 않음을 ‘어벤져스1’이 확인시켜 주긴 했다. 당시 707만 4867명의 관객이 봤다. ‘아이언맨3’(900만명) 한 편만도 못했다. 지난 21일 모습을 드러낸 ‘어벤져스2’는 ‘전편을 능가하는 속편은 없다’는 영화계의 해묵은 속설을 한 번 더 입증시켜 줬다. 화려한 볼거리에 매달리며 뭇 마블코믹스 영웅들이 몽땅 등장하고 새로운 캐릭터까지 가세하다 보니 영화의 서사는 종종 갈 길을 잃어야 했다. 또 다른 속편을 기약하는 장면에서 등장하는 새 악당 캐릭터는 곳곳에서 터져 나온 관객의 실소를 감내해야 했다. 최근 액션 영화의 추세는 절대성의 부정에 있다. 악당은 외부에 비쳐지는 악행에 대해 나름의 철학 체계를 갖추고 있다. 또 영웅의 인간적 고뇌는 중요한 갈등 요소다. ‘어벤져스2’에서도 이 공식을 답습했다. 인류를 멸망시켜야 지구의 평화가 지켜진다고 믿는 울트론은 토니 스타크(아이언맨)와 브루스 배너(헐크)의 작품이다. 마구 때려 부수고, 패싸움을 벌이는 장면 중간중간 울트론은 “인간은 질서와 혼란을 별개의 것으로 생각하지”라는 등의 철학적 대사를 날리고, 영웅들은 각자의 방식대로 ‘영웅 놀이’에 대한 회의를 품는다. 안타깝지만 깊이가 부족해 ‘배트맨-다크나이트’의 아류에 머물 따름이다. 또 10분 남짓짜리 서울 도심 액션 장면이 확인되며 ‘2조원의 국가브랜드 가치 효과’라는 장밋빛 기대는 간판이 노출된 강남역 주변 떡볶이집과 족발집의 매출 상승 기대감 정도로 다소 줄어들 위기에 놓였다. 1년 전 한국의 모습을 돌아보면 얼굴이 화끈거리기까지 하다. 한국관광공사, 서울시 등이 나서서 쌍수를 들어 국내 촬영을 환영했고, ‘어벤져스2’ 제작팀은 100억원 국내 제작비용에 30억원을 환급받았다. 강변북로에서 청담대교로 접어드는 뒤편으로 펼쳐진 한강과 곳곳에서 눈에 띄는 한글 광고판 정도가 서울임을 드러내고 있다. 국적 불명의 지하철이며, 어디가 어딘지 모를 한국 아닌 듯한 도로들도 튀어나오며 스쳐 간다. 할리우드 영화 속 자랑스러운 서울을 기대했던 관객들이라면 실망을 품을 수밖에 없다. 또한 1편을 보지 않았다면 1편을 섭렵하고 극장을 찾거나 아예 포기하는 편이 낫다. 마구 때려 부수는 슈퍼 히어로임에도 각자 나름의 곡진한 사연들을 품고 있는데 별다른 설명 없이 불친절하게 풀어 간다.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들이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사진 거짓을 찍다

    사진 거짓을 찍다

    일반적으로 사진은 ‘순간의 진실을 담는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과연 그럴까? 사실 사진은 태생적으로 거짓말에 능했다. 사각의 프레임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피사체 사이의 거리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앵글에 따라 완전히 다른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서울 평창동 토탈미술관에서 23일부터 열리는 ‘거짓말의 거짓말: 사진에 관하여’전은 사진이 얼마나 능수능란하게 거짓말을 하는지를 보여 준다. 전시에는 30대부터 80대까지 사진, 조소, 회화 등 다양한 분야를 전공하고 사진이라는 영상 예술에 천착한 작가 18명이 참여한다. 사실을 정확하게 기록하는 다큐멘터리 사진부터 여러 대상을 조각조각 찍은 사진들로 실재하지 않는 상황을 합성하는 포토 콜라주, 누군가 찍은 사진들로 가상의 기억을 만들어 내는 서사적 사진, 일상의 공간을 카메라의 시선으로 낯설게 만들어 보이는 작품까지 다양한 작업들이 소개된다. 자유로운 상상력을 동원한 이미지의 차용, 몽타주 등으로 조작된 초현실적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황규태는 비약적으로 확장된 낡은 시계의 이미지로 하늘의 별자리를 보는 듯한 ‘천상열차분야지도’를 선보인다. 비누 조각을 찍고 확대한 구본창의 작품은 파스텔 색의 아름다운 오브제를 보는 듯하다. 윤병주는 자신이 살았던 화성시와 우주의 화성이 동음이의어라는 데 착안해 도시개발로 훼손되는 화성의 풍경을 우주의 화성처럼 기록한 작업을 선보인다. 권순관은 노근리 사건이 일어났을 것으로 추정되는 숲 사진을 촬영한 ‘어둠의 계곡’을 보여 준다. 그는 “역사의 힘, 이데올로기의 힘 앞에서 사진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다시 생각하면서 사진의 나약함과 도구화되는 측면을 담아 보려 했다”고 말했다. 김태동의 작품은 한밤중이나 새벽에 서울을 배회하다 만난 사람들을 모델로 동작대교 아래, 한강 고수부지를 담았다. 노순택의 작품 ‘잃어버린 보온병을 찾아서’는 연평도에서 촬영한 것이고 박진영의 낡은 오브제들은 일본 후쿠시마에서 수습된 물건들이다. 장소와 사람, 사건에 대한 배경 설명을 듣지 않으면 전혀 짐작할 수 없는 기록사진들이다. 상상력을 기반으로 새로운 허구를 만들어 내는 작업도 있다. 백승우는 미국의 다양한 지역에서 수집한 오래된 슬라이드 필름을 사진으로 현상해 작업 참여자 8명에게 선택하도록 한 뒤 개인의 기억과 경험, 혹은 지어낸 이야기로 내러티브를 쓰도록 했다. 원성원은 사진 콜라주로 가짜 공간을 만들었다. 열대우림 속에서 현대적 기기를 사용하며 시원한 옷차림으로 휴식을 취하는 자신의 모습, 커다란 수족관 같은 공간을 콜라주 기법으로 선보였다. 정연두는 자동차극장처럼 차 안에 앉아 기계를 작동하면 전면 스크린에 자신의 모습이 비치는 작품을 설치했다. 셀카봉으로 사진을 찍고 결과물을 본 뒤 만족하는 요즘 시대에 음악을 들으며 이처럼 스크린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 위안을 얻기도 한다고 작가는 이야기했다. 김도균과 문형민, 정희승의 작품들은 익숙한 장소와 일상의 모습이 카메라의 앵글을 통해 얼마나 다르게 보일 수 있는지를 알 수 있다. 김진희는 저마다 상처가 있는 여성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사진을 찍었다. 토탈미술관은 전시와 연계해 한국사진작가론 특강,작가와의 대화,다큐멘터리 영화 상영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전시는 6월21일까지.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쉽게, 끝까지 읽는 용비어천가

    쉽게, 끝까지 읽는 용비어천가

    한국학중앙연구원이 ‘역주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를 발간했다. 원문과 번역문을 한눈에 대조하며 살피게 한 대역본이다. 박창희 전 한국외대 교수가 대역했다. ‘용비어천가’는 조선 세종 때 선조인 목조(穆祖)에서 태종(太宗)에 이르는 여섯 대의 행적을 노래한 125장의 악장 서사시다. 중국 역대 제왕에 비교해 칭송하며 조선의 건국과 통치가 하늘의 뜻임을 역설한다. 한글을 창제한 조선 세종의 명에 따라 정인지·권제·안지 등이 1445년에 125장의 한글 악장을 짓고 한시를 덧붙여 그 뜻을 해석했으며, 역사적인 내용을 담은 주해를 포함한 10권의 책이 1447년에 완성됐다. 훈민정음으로 기록된 최초의 문헌이자 ‘월인천강지곡’과 함께 악장 문학의 대표작으로서 첫손에 꼽힌다. 이렇듯 한글 연구의 중요한 사료지만 문제는 해독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해동육룡(海東六龍)이 나라샤 일마다 천복(天福)이시니, 고성(古聖)이 동부(同符)하시니’(여섯 성인이 웅비하시어, 하는 일마다 모두 하늘이 주신 복이 있습니다. 이는 중국의 옛 성군들과 같으십니다.)로 시작하는 1장이나 ‘불휘 깊은 남간 바라매 아니 뮐쎄 곶 됴코 여름 하나니’(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으므로 꽃이 화려하고 열매가 풍성합니다.)와 같은 2장은 중·고교 교과서에 실리며 국민적으로 애송되기도 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용비어천가의 본문 125장은 각 장마다 짧은 두 줄에 지나지 않지만 너무 함축적이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방대한 내용이 덧붙여져야 한다. 완역을 표방한 번역이 딱 한 번 있었지만 번역만 있고 설명은 없으며, 그나마도 오역이 너무 많다는 비판에 끊임없이 시달렸다. 상하 2권으로 분책한 이번 신국판 역주본 분량이 각각 780쪽과 924쪽에 이른다는 점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역주 용비어천가’는 원문과 번역문을 한눈에 대조하며 살필 수 있도록 구성됐고, 본문과 주석의 내용을 분리해 주석을 읽는 번거로움 때문에 본문의 흐름을 놓치지 않도록 재편집했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새 영화] ‘반짝이는 박수 소리’

    [새 영화] ‘반짝이는 박수 소리’

    손재주 있고 부지런하지만 냉이와 잡초도 구분하지 못해 엄마의 핀잔을 듣곤 하는 아빠, 그리고 그 못지않게 부지런한 데다 야무지며 빈틈없는 또순이 엄마. 여기에 딸 하나, 아들 하나. 한국 사회 어디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흔한 가족 구성원의 모습이다. 다만 조금 다른 부분이 있다. 아빠와 엄마가 모두 청각장애인이다. 아이들은 건청인. 눈이 마주치지 않으면 대화는 없다. 부엌 불 위 압력밥솥이 칙칙거리고, 밥그릇에 숟가락이 달그락거리고, 텔레비전은 소리 대신 자막을 전한다. 그 사이사이에 손짓과 몸짓, 표정을 동원한 바쁜 수다가 단절음과 함께 이어진다. 부모는 갓 태어난 아이 옆에서 손바닥을 맞부딪치며, 스스로 듣지 못하는 그 소리에 고개를 돌리는 아이의 표정을 보고 안심하며 또 감탄했다. 이제 막 말을 배우는 아이는 입이 아닌 손으로 옹알이를 했다. 조금 자란 초등학교 1, 2학년 때는 엄마, 아빠의 입과 귀가 됐다. 은행에 전화해 빚이 얼마인지 물어야 했고, 왜 자신이 부모 대신 전화해야만 했는지를 낯선 이에게 말해야 했다. 혹은 철없는 또래 악당들에게 놀림받고 속앓이하면서 더 공부를 잘하고, 더 착한 모습을 남들에게 보여줘야 했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고, (실제로) 빨리 어른이 되었다”는 말은 간절한 바람이었고 가슴 아린 성취였다. 다큐영화 ‘반짝이는 박수 소리’는 청각장애 부모의 삶, 그들과 함께 지내며 훌쩍 자란 자식의 삶을 덤덤한 시선으로 따라간다. 아빠는 2층짜리 집을 짓는 게 꿈이다. 1층에는 바리스타 자격증을 가진 아들에게 카페를 내주고, 2층에서 유유히 전원생활을 누리고 살겠다는 소망이다. 엄마는 스무 살 넘은 아들을 뭐 그리 걱정하느냐며, 언제까지 젖을 줘야 하느냐고 아빠를 타박하면서도 그 꿈을 오롯이 함께 가꾸고 있다. 작품 후반부 노래방에서 엄마는 ‘애모’를 부르고, 아빠는 곁에서 열심히 따라 부르며 탬버린을 친다. 음치, 박치지만 진지한 표정으로 감정을 담뿍 담아 부르는 부모의 모습은 영화를 찍고 내레이션까지 맡은 큰딸 이길보라 감독이 말한 것처럼 ‘그 자체로 완전하고 견고한 그들의 세상’을 상징한다. 영화의 서사와 주제 의식은 아빠, 엄마가 젊은 시절부터 꼼꼼히 찍어 놓은 결혼 및 육아 동영상과 사진에 상당 부분을 의존하고 있다. 결혼 전날 함을 팔고 사며 벌이는 침묵 속 흥정, 신혼여행 떠나는 기차 속 아빠, 엄마의 앳된 모습, 직접 들려주지 못해 틀어 놓은 기계음의 노래를 따라 흥얼거리는 어린 딸 등의 모습이 담긴 동영상은 작품을 완결 짓는 데 필수 불가결한 요소다. 아빠와 엄마는 등장인물로서 영화 엔딩 크레디트에 이름을 올렸지만 기실 공동 연출, 촬영한 공동 작품이나 마찬가지다. 평단의 호평 속에 여성인권영화제 관객상, 장애인영화제 대상,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옥랑문화상 등을 잇따라 받았다. 23일 개봉. 전체 관람가.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스마트폰 시대 사고·판단력 퇴화 우려…인문학적 지혜로 축복 제대로 누려야”

    “스마트폰 시대 사고·판단력 퇴화 우려…인문학적 지혜로 축복 제대로 누려야”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스마트폰으로 대변되는 ‘스마트 시대’이지만 인류에게는 축복이자 재앙이 될 수 있습니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청년들 앞에 강연자로 나섰다. 신세계그룹은 9일 고려대 인촌기념관에서 열린 ‘세상을 바꾼 청년 영웅, 나폴레옹’이란 주제의 인문학 콘서트를 시작으로 ‘2015 지식향연’ 프로그램의 문을 열었다. 신세계그룹의 인문학 강연은 이날 고려대를 시작으로 제주대, 건국대 등 전국 10개 대학에서 진행된다. 1000여명의 대학생들이 모여 진행된 이날 강연에서 정 부회장은 인문학 중흥에 대한 의지 등을 밝혔다. 실제로 신세계그룹은 인문학적 소양 등을 지닌 인재를 채용하기 위해 지난해 11월 신입사원 채용부터 스펙이 아닌 오디션 방식으로 인재를 선발하고 있다. 정 부회장이 스마트 시대를 축복이자 재앙으로 표현한 것은 기술의 발달이 인류에게 편리를 제공해 주지만 인간 본연의 능력인 사고력과 판단력이 퇴화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정 부회장은 “스마트 시대의 위기란 기술 자체에 대한 비난이라거나 시대를 과거로 되돌리자는 낡은 제안이 아니다”라며 “우리의 한계를 극복하도록 돕는 스마트 시대의 축복을 ‘제대로’ 누리자고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 부회장은 강연장을 가득 메운 청년들에게 스마트 시대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3가지 방안을 제안했다. 첫째로 인문학적 지혜가 담긴 글을 읽는 것, 둘째로 많이 생각하고 직접 글을 써 볼 것, 셋째로 주변 사람들과 토론하는 연습을 많이 하는 것 등이다. 그는 “역사책 속에는 문학과 철학이 공존한다”며 “역사적 인물들의 삶은 문학적이고 드라마틱한 서사가 가득하고, 역사적 사건들 속에는 그 시대를 지배하는 철학이 깃들어 있다”며 인문학적 글을 읽으려고 할 때 역사책부터 읽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 베니스로 간 한국예술 20년…현대미술의 미래를 묻다

    베니스로 간 한국예술 20년…현대미술의 미래를 묻다

    다음달 9일부터 6개월간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열리는 제56회 베니스비엔날레 국제미술전의 한국관에서는 ‘축지법과 비행술’이라는 제목의 영상설치 작품이 선보인다. 국가적 경계가 허물어진 가상의 미래에 현대미술에 대한 진단과 재성찰을 담은 작품이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9일 서울 대학로 아르코미술관에서 한국관 전시커미셔너인 이숙경(영국 테이트미술관 아시아태평양 미술연구소 책임큐레이터)씨와 문경원·전준호 작가가 참석한 가운데 한국관 전시설명회를 가졌다. 올해는 비디오 아티스트인 백남준 선생을 비롯한 미술계 인사들의 노력으로 베니스비엔날레 중심부인 자르디니 공원 내에 한국관이 설립된 지 20년을 맞는 해다. 이숙경 전시커미셔너는 “한국관 설립 20주년이라는 중요한 의미를 살리기 위해 한국관의 과거, 현재, 미래를 다룰 뿐 아니라 베니스비엔날레 자체의 역사적 서사를 담아 문경원·전준호 작가의 축지법과 비행술을 소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불확신과 불안정이 팽배하는 현시대에 예술의 역할과 의미를 지속적으로 탐구해 온 두 작가의 이번 작업은 올해 비엔날레의 전시총감독인 오쿠이 엔위저가 기획하는 국제전 주제인 ‘모든 세계의 미래’와도 긴밀하게 맞닿아 있다”고 덧붙였다. 10분 30초짜리 영상물 7개를 전시공간의 특성을 살려 설치하게 될 축지법과 비행술은 종말적 재앙 이후 지구의 육지 대부분이 물속에 잠기고, 베네치아 언덕배기에 위치한 자르디니 공원의 한국관만이 부표처럼 떠 있게 된다는 전제에서 시작된다. 이 제한된 공간에서 한 인물이 겪는 이상한 경험과 다양한 시간들이 영상물에 담긴다. 예술에 대한 관점을 은유적으로 풀어낸 작품을 보면서 관람객들은 예술의 미래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지게 된다. 전 작가는 “축지법과 비행술이라는 것은 현실과 동떨어진, 중력과 반대되는 것이지만 인간이 꿈꾸고 있는 것이다. 서로 다른 개념들의 경계에서 이어 주는 예술이 바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한국관의 건축적 특성이 전시하기에 좋은 조건이 아니었지만 도전하는 마음으로 흥미롭게 작업했다”고 말했다. 문 작가는 “시나리오를 쓰고 텍스트로 개념을 발전시켜 나가는 과정에서 영화감독, 뇌과학자, 신화학자 등 다양한 전문가가 참여해 시너지 효과를 냈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번 영상작품 촬영을 위해 경기 양주의 스튜디오에 실제 한국관과 동일한 모형을 만들었다. 두 작가의 첫 공동 제작 영상작품으로 2012년 카셀도큐멘터에 선보인 ‘뉴스프롬노웨어’에 출연했던 배우 임수정이 출연료 없이 촬영에 동참했다. 작품에 등장하는 일체의 의상 디자인과 전시관 홍보용 가방은 패션디자이너 정구호가 작업했다. 글 사진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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