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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블랙독, 학교판 ‘미생’이라 불리는 이유 ‘서현진 단짠 성장기’

    블랙독, 학교판 ‘미생’이라 불리는 이유 ‘서현진 단짠 성장기’

    ‘블랙독’이 tvN표 휴먼 드라마의 진가를 다시 한번 입증했다. tvN 월화드라마 ‘블랙독’(연출 황준혁/극본 박주연)이 사립고등학교에 떨어진 신입 기간제 교사 고하늘(서현진 분)의 ‘단짠’ 성장기로 뜨거운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상과 다른 현실의 벽과 부딪히며 한 발씩 성장하는 고하늘. 내세울 것 없는 신입 기간제 교사의 눈을 통해 학교의 현실을 깊숙이 파고들며 호평을 이끌고 있다. 담담하면서도 예리한 시선 속에 선생님들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투영한 감각적인 연출과 촘촘한 서사, 어디에나 있을 법한 선생님들의 모습을 리얼하게 녹여낸 배우들의 열연은 공감과 몰입을 극대화하며 완성도를 높였다. 무엇보다 이야기의 주축이 되는 이 시대의 ‘블랙독’, 모든 게 낯설고 서툰 새내기 교사 고하늘이 진정한 교사가 되기 위한 고군분투는 학교판 ‘미생’이라는 호평과 함께 뜨거운 응원이 쏟아지고 있다. 시청자들을 끌어당긴 공감의 힘은 무엇일까. 그동안 tvN은 휴머니즘을 녹여낸 웰메이드 작품을 꾸준히 선보이며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오피스 드라마의 바이블로 손꼽히는 ‘미생’부터 수많은 이들의 인생 드라마로 등극한 ‘나의 아저씨’, ‘청일전자 미쓰리’까지 우리 주변에 있을 법한 평범한 사람들의 고군분투 혹은 청춘들의 성장기를 현실적으로 담아내며 폭넓은 공감을 선사했다. 제대로 조명된 적 없는 ‘교사’를 전면에 내세운 ‘블랙독’ 역시 결이 다른 공감으로 시청자들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 더 나아가 학교판 ‘미생’이라는 찬사도 쏟아지고 있다. 자신을 구하다 죽음을 맞은 선생님의 길을 좇아 교사의 꿈을 키워왔지만, 임용고시에 번번이 낙방, 기간제교사로 간신히 사립고등학교 ‘기간제’ 선생님으로서 첫발을 딛는 고하늘.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학교’는 교육의 현장이면서도 누군가의 직장이었고, 사회의 축소판과 같은 또 하나의 조직사회였다. 기간제와 정교사 간의 보이지 않는 서열, 살아남기 위한 라인타기와 눈치싸움까지, 숨 막히는 경쟁이 벌어지는 사립고에서 ‘기간제 교사’라는 꼬리표를 달고 시행착오를 겪어나가는 고하늘은 자신만의 방식을 터득해 나간다. 이는 인생의 모든 것이 바둑이었던 장그래(임시완 분)가 냉혹한 현실과 부딪혀나가는 ‘미생’과도 닮아있다. 한때는 바둑 영재였지만 현실은 고졸 낙하산이란 꼬리표를 붙인 채 회사라는 냉혹한 현실 세계에 던져진 장그래 역시 ‘미생’이자, 이 시대의 ‘블랙독’이나 다름없었다. 자신의 방식대로 바둑의 ‘한 수’를 떠올리며 팍팍한 회사생활에 적응해가듯, 고하늘 역시 자신만의 방식으로 학교 속으로 스며 들어갔다. 다른 듯 닮은 고하늘과 장그래, 현실에 내던져진 청춘들의 ‘단짠’ 성장기는 평범해서 더 큰 울림으로 시청자들의 공감을 자극하고 있다. 여기에 고하늘과 박성순(라미란 분)의 특별한 관계성도 빼놓을 수 없는 ‘공감’ 포인트다. ‘미생’에서 장그래의 성장을 굳은 믿음으로 지켜봐 주던 오상식(이성민 분) 차장처럼, 혹독한 성장통을 겪는 고하늘을 묵묵히 기다리며 뼈 있는 조언도 아끼지 않는 박성순의 워맨스는 첫 회부터 진한 여운을 선사했다. 언제 학교를 떠나게 될지 모르는 기간제교사의 고충을 온몸으로 버텨내는 고하늘을 향해 “애들한텐 다 똑같은 선생님이에요. 나나, 고하늘 선생님이나”라는 박성순의 따뜻한 위로는 장그래에게 “장그래, 더할 나위 없었다”라는 한 마디로 시청자들을 뭉클하게 만든 오상식 차장을 떠올리게 했다. 서로의 ‘성장’ 자극제가 되어 진정한 교사로 거듭날 두 사람의 특별한 관계성은 앞으로의 이야기를 더욱 기대하게 만든다. 또한 이보다 현실적일 수 없는 선생님들의 리얼한 모습이야말로 공감을 증폭시키는 원동력으로 시청자들을 끌어당기고 있다. 사진 = tvN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어려서 뭘 할 수 있냐구요? 교실 안 성불평등 당사자 넘어서 변화시킬 힘 키울 것

    어려서 뭘 할 수 있냐구요? 교실 안 성불평등 당사자 넘어서 변화시킬 힘 키울 것

    “우리는 청소년이자 페미니스트다. 청소년은 문제의 당사자는 될 수 있지만,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여겨져 왔다. 누구도 청소년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청소년 페미니스트는 한국 사회의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2018년 우리는 수십년간 은폐됐던 학내 성폭력을 고발했고, 일상적으로 요구되는 성역할을 거부했다. 우리는 당사자로 머무르는 것을 넘어 변화를 만드는 한 사람이 되고자 한다.” 지난 6월 출범한 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위티’의 창립선언문 중 일부다. 우리 사회에서 청소년은 미성숙하고 불완전한 존재로 여겨져 왔다. ‘누군가의 보호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혹은 ‘스스로 의사를 결정하기에는 어려서’ 청소년들은 스스로를 대변할 수 없는 존재로서 침묵할 것을 요구받는다. 지난해부터 그 오래된 침묵의 벽이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청소년들은 목소리를 높여 교실 내 횡행하는 혐오와 차별의 언어를, 위계적이고 수직적인 학교 문화를, 권력 관계를 악용한 성폭력을 낱낱이 고발했다. 피해자로만 머물지 않겠다는 적극적인 선언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청소년 페미니스트들이 있었다.위티의 전신이자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을 계기로 결성된 ‘청소년 페미니즘 모임’(이하 청페모)은 청소년들이 자신의 삶과 경험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조 모임 형태로 출발했다. 각종 세미나를 비롯한 학교 내 성평등 문화제를 여는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한 데 이어 지난해 11월 3일 학생의 날을 기념해 전국 규모의 ‘스쿨미투’(학교 내 성폭력 고발 운동) 집회 ‘여학생을 위한 학교는 없다’를 개최했다. 지난 2월에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 아동권리위원회 사전심의에 참석해 한국의 스쿨미투에 대해 알렸다. 성폭력을 고발하는 청소년들의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지만 학교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불편한 현실을 꼬집는 학생들에게 ‘너도 미투할 거냐’는 조롱이 돌아왔다.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정부의 대응 역시 미진했다. 느슨한 연대체였던 청페모가 지난 6월 시민단체 위티로 거듭난 이유다. 청소년들이 단순히 피해자나 고발자로 머무는 게 아니라 변화를 이끌어내는 활동가로서 지속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안전한 기반을 제공하기 위해서다. 서울을 비롯한 전국 각지에 12개 지부와 분회를 두고 있는 위티의 현재 회원은 300여명으로 이 가운데 75%가 청소년이다. ‘말하기 시작한 우리는 되돌아갈 수 없다’는 선언 아래 꾸준히 학교 내 성차별, 성폭력 문제를 공론화한 위티는 그간의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6월 제16회 서울시 성평등상 최우수상, 이달 ‘6월 민주상’을 수상했다. 청페모의 운영을 담당하며 스쿨미투 집회를 기획했던 양지혜(22) 위티 공동대표는 25일(현지시간) 미국 CNN 방송이 선정한 ‘올해 아시아에서 변화를 일으킨 청년 운동가 5인’ 중 한 명으로 소개됐다. 양 대표와 최유경(18) 공동대표를 만나 위티의 지난 시간을 돌아보고 향후 계획을 들어봤다. -여성 청소년들이 학교에서 느끼는 불편한 지점은 어떤 것인가요. 최유경 모든 면요(웃음). 예를 들면 남성 교사들과 남학생들 사이에 특유의 교감이 있어요.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같은 느낌의 남성 간 유대감요. 저는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다 하길 원하는 성격이고 그러지 않으면 힘든 스타일인데 학교에서는 (그런 모습이) 남자에게만 허용되는 것 같아요. 남자에게는 그런 점이 오히려 권력이 되는데 왜 저는 민감하고 예민한 사람으로 몰리는지 의문이 있었어요. 양지혜 중학교 1학년 때 일인데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요. 담임 선생님이 종례 시간에 여자아이들을 모아 놓고 3학년 남학생이 치마 속 사진을 찍는 것 같으니 계단에서 난간 안쪽으로 다니라는 식으로 훈화를 하셨어요. 늘 평가받고 품평의 대상이 되는 것은 여성이고, 남자들은 그런 잘못된 일을 저질러도 여자들이 조심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먼저 들을 수밖에 없다는 걸 그때 알았어요. 학교에서 처음 겪은 부조리함이죠.-여성 청소년들이 남성 청소년들과 달리 일상에서 겪는 차별 역시 적지 않을 것 같아요. 양지혜 여성 청소년들은 보호받아야 할 대상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더 많이 착취나 폭력의 대상이 된다고 생각해요. 이를테면 청소년들에게 성(性)은 금기어잖아요. 특히 여성 청소년들은 성에 대해 이중적이고 모순적인 요구를 겪는 것 같아요. ‘소녀’를 떠올릴 때 보통 아무것도 모르고 순결하고 하얗거나 깨끗한 이미지를 떠올리는데 여성 청소년들을 성적 대상화할 때도 그 이미지가 기표로 쓰이거든요. 여성 청소년은 정숙한 존재여야 하는 동시에 누군가의 성적 욕망이나 성적 대상이 되는 존재죠. 최유경 한국의 페미니즘은 보통 20~30대가 중심이잖아요. 많은 단체에서 하는 여성주의 강연이나 모임을 가면 저는 늘 눈치가 보였어요. ‘내 나이를 물어보면 어떡하지’부터 시작해서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되거든요. 제가 성격상 말을 또박또박하고 말하는 것도 좋아하는데 제가 (위티의 공동대표로서) 발언하는 모습을 본 사람들이 제 나이를 알고 난 뒤 ‘생각보다 어리다’는 반응이 많았어요. 그런 말을 들을 때면 ‘내가 어리면 뭐가 달라지는 건가’, ‘내 능력의 기준치가 달라지나’ 여러 생각을 하게 되죠. 양 대표는 그간의 성과 중 하나로 한국의 스쿨미투 운동을 국제사회에 알린 점을 꼽았다. 양 대표는 지난 2월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 아동권리위원회 사전심의에 참석해 한국 학교 내의 성폭력 실태를 알렸다. 위원회는 9월 본심의 이후 10월 초 한국 정부에 대한 최종 권고안을 발표했다. 권고안에는 ‘기밀 유지를 원칙으로 하는 아동 친화적이고 실질적인 성폭력 신고 창구를 마련하라’는 것부터 ‘성적 지향과 젠더 정체성을 충분히 다루는 성교육을 도입하라’, ‘모든 아동이 보복에 대한 두려움 없이 표현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학교 규정을 개정하라’는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유엔에서 한국 교내 성폭력 실태를 보고한 프로젝트 ‘스쿨미투, 유엔에 가다’ 활동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양지혜 스쿨미투 이후 정부에서 대책을 내놓지 않는 상황에서 고발자들의 목소리를 (유엔에) 전하고 한국 정부의 대답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에서 시작한 프로젝트예요. 그 결과 학내 성폭력을 근절하기 위한 유엔의 권고안이 나왔어요. 저희가 보기에 유의미하고 중요한 것들이죠. 권고안처럼 학내 성평등에 대한 다양한 운동과 단순히 피해를 말하는 것을 넘어 변화를 만드는 운동을 만들어 가야겠다고 생각하는 계기가 됐어요.-앞으로도 지속적인 변화의 노력이 필요할 것 같은데 스쿨미투와 관련해서 어떤 활동을 이어 나갈 예정인가요. 양지혜 결국 학교의 변화를 위해서는 학교 내에서 모두가 모두에게 배울 수 있는 성평등 교육이 필요한 것 같아요. 교단에서 위계적이고 권위적인 교사가 정보를 주입하는 형태로 진행하는 게 아니라요. 특히 청소년 당사자들의 관점에서 성평등 혹은 성 자체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과 교육이 학교 내에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미국의 한 주에서 청소년들이 교육을 15시간 이상 이수하면 학교에서 다른 학생들에게 강연할 수 있는 과정이 있다고 들었어요. 현장을 잘 아는 이들이나 또래들의 언어로 성평등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환경을 저희도 만들어 보고 싶어요. -현재 학교에서 이뤄지는 성교육은 어떤 점이 문제인가요. 양지혜 30년 전에 배운 사람도, 10년 전에 배운 사람도, 지금 배운 사람도 성교육이라고 하면 ‘안 돼요, 싫어요, 하지 마세요’라고 말하는 금지주의적인 원칙을 기반으로 하는 교육을 떠올리죠. 성교육이라는 것은 여전히 일상의 연장선상에서 사고되지 못하고 있어요. 예를 들면 건전한 이성교제를 하기 위해서는 손만 잡고 다니거나 되도록 둘이 폐쇄된 곳에 가지 않는 식의 방법을 권장하죠. 또 성교육을 1년에 일정 시간 가르쳐야 하는데 그 시간들이 시험 기간에 자습 시간으로 바뀌기도 하고요. 또 보건 시간에 배울 법한 생물학적 성기에 국한돼 설명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내용이 사회적 성이나 성별 권력을 은폐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기존 성교육이 단편적인 사실만을 기반으로 형식적으로 이뤄지는 건 기성세대들이 청소년은 성을 향유할 수 있는 존재라고 쉽사리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19금’이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 청소년에게 성은 알아서는 안 되는 금기어와도 같다. 위티는 이렇듯 성에 덧씌워진 포르노적 통념을 벗겨내고 청소년들이 자신의 성적 권리와 욕망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최근에는 개개인이 지닌 욕망과 신체의 감각에 집중하도록 이끄는 대안적 성교육 강연을 열었다. -대안적 성교육 강연을 마련한 계기가 있나요. 양지혜 강연의 내용은 야설을 프린트한 것을 보면서 이 내용이 누구를 중심으로 쓰였고 어떤 이들을 배제하고 있는지, 또 어떤 방식으로 성을 묘사하고 있는지 분석하는 순서로 진행됐어요. 그 이후에 자기만의 섹슈얼리티 지도를 그렸는데 여기서 섹슈얼리티라는 것은 내가 테니스를 칠 때 숨이 가쁜 느낌이라거나 내가 무언가를 쥘 때 포근한 감촉과 같은 내 몸에서 생동감 있게 느껴지는 감각과 연결된 개인의 욕망이죠. 우리는 이미 성에 대해 알고 있고 성에 대해 감각할 수 있지만 마치 이걸 몰라야 하는 것처럼 이야기하잖아요. 그러면 청소년이 성에 대해 욕망하거나 실천하려고 할 때 스스로 불온한 감정을 가지게 되고 숨어서 하게 되고 그럼 더 불안하고 안전하지 않게 되죠. 청소년 스스로 성을 해석하고 실천하는 과정을 구성해 볼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위티는 최근 선거 연령을 현행 19세에서 18세로 하향하는 내용이 담긴 선거법 개정안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본회의 통과 촉구를 위한 활동에도 참여했다. 18세 선거권을 요구하는 청소년 1234명의 선언문을 국회 앞에서 발표했고 이후 관련 집회에도 여러 차례 참여했다. -기성세대는 교실이 정치화되는 것을 크게 우려하는 것 같아요. 청소년들이 정치에 참여해야 하는 이유를 꼽자면요. 최유경 저는 페미니즘에 관심을 가진 이후에도 정치가 딱히 제 얘기처럼 느껴지지 않았어요. 정치라는 건 너무 크고 거대하고 어렵잖아요. 내가 원하는 후보에게 투표하고 내가 원하는 공약에 표를 줘야 하는데 제가 당사자가 아니니까 관심이 없었던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청소년에게 투표권을 주지 않는 이유로 주요하게 쓰이는 내용이 보통 청소년은 미성숙하고 감정적이고 공부를 소홀히 할 것이라는 이유들이에요. 생각하면 얄팍한 논리죠. 정치가 얼마나 중요한가 생각해 보면 이미 원하는 걸 다 가진 중년 남성보다는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저희에게 가장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돼요. 청소년을 시민으로 인정하는 첫걸음은 결국에는 선거권을 보장하는 거죠. -내년에는 어떤 주제를 중심으로 프로젝트를 이어 나갈 계획인가요. 양지혜 선거법 개정안 통과 여부를 떠나 내년 총선과 관련해서 청소년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혹은 청소년 페미니스트인 정치인을 만나서 정책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해요. 또 여성 청소년의 삶이 다양한 만큼 저희가 지닌 청소년 페미니즘이라는 의제를 조금 더 많은 틀로 해석하고 전달하고 싶습니다. 이를테면 가정 내에서 여성 청소년이 경험하는 억압과 통제 그리고 여성 청소년의 경제적 권리와 자립에 관한 것들요. 청소년에 대한 의제를 인식할 때 성폭력 문제만을 많이 떠올리는데 좀더 다양한 문제를 공론화하고 싶어요.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푸틴 연일 폴란드 공격 왜? 2차대전 때 옛소련 비난의 화살 돌리기

    푸틴 연일 폴란드 공격 왜? 2차대전 때 옛소련 비난의 화살 돌리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 일주일 동안 역사나 외교정책과 관련한 자리가 아닌데도 폴란드의 2차 세계대전 때 역할에 대해 거친 공격을 가했다. 러시아 정부 고위 관료들이 올 한해를 결산하며 푸틴 대통령의 언급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주제로 꼽은 것도 이것이었다. 지난 24일(이하 현지시간) 국방부 회의 도중에 그는 폴란드 대사를 나치 독일에 비유하며 “쓰레기이며 반유대주의 돼지”라고 공박했다. 2시간 뒤 의회 지도자들과 만난 자리에까지 이 문제를 들고 나왔다. 뱌체슬라프 볼로딘 국가 두마 의장은 푸틴에 감사를 표하며 폴란드의 사과를 받아내야 한다고 한술 더 떴다. 다음날에도 연말이면 으레 모이는 주요 기업인들과의 모임에서 “2차 세계대전이 어떻게 시작했는지, 폴란드가 어떤 태도를 보였는지와 관련해 역사적 얘깃거리에 얼마나 깊이 몰두하는지 많은 이들이 놀라워한다”고 말했다고 포브스 러시아판은 전했다. 아울러 이 문제에 대한 논문을 써볼 계획이란 얘기까지 덧붙였다. 푸틴 대통령이 이렇게 폴란드에 대해 분노하는 것은 최근 유럽 의회가 결의안을 통해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책임이 옛소련과 나치 독일 둘 다에 있다고 지적한 데 따른 것이라고 영국 BBC는 26일 짚었다. 그는 둘의 책임을 등가로 규정하는 것은 “냉소주의의 정점“이라면서, 그를 반대하는 이들이 깎아 내려 표현하는 ‘왓어바웃이즘(whataboutism)’를 다시 불러냈다. 왓어바웃이즘이란 상대의 논리에 꿇릴 때 ‘넌 어쩐대?’라고 피장파장의 논리를 들이대는 것을 가리킨다. 쉽게 말해 ‘그러면 너네 폴란드는 그 때 뭘 했는데?’라고 논쟁의 방향을 확 돌려버리는 것이다.그런데 따지고 보면 옛소련은 늘 히틀러와 맺은 불가침 조약, 이른바 몰로토프-리벤트로프 조약이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는 데 일조했다는 공격을 받으면 이런 식으로 폴란드를 걸고 넘어졌다. 나아가 지금은 존재하지도 않는 나라를 상대로 그런 비난을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식으로 빠져 나간다. 옛소련의 2차대전 전승은 러시아의 국가 이데올로기의 찬란한 업적이며 요란한 팡파레와 군사 행진으로 자축하는 일이며 푸틴 자신의 집권 정당성과 소비에트 제국의 계승자로 팽창주의 전략을 펴는 자신의 논리를 뒷받침하고 있다. 해서 크렘린은 러시아에서 대승이라고 떠벌이는 것에 대해 조금이라도 공격하는 것을 민감하게 받아들인다고 방송은 지적했다. 물론 폴란드 역시 이런 비난을 받아들일 만한 이유가 전혀 없다고 보고 있으며 푸틴 대통령 등의 발언은 “잘못된 서사”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폴란드도 마찬가지로 굉장히 민감하게 받아들여 지난해 나치 전범의 공범으로 얘기하는 것을 아예 불법으로 규정했다. 당초 형사 처벌하는 방안도 고려됐으나 그나마 민사 문제로 완화했다고 방송은 전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여성·퀴어·SF… 펜에 스민 다양성

    여성·퀴어·SF… 펜에 스민 다양성

    대부분 문학상 수상자 여성 돌풍 여전 장르 문학도 약진… ‘K문학 위상 높여’올 한 해 문학계는 ‘다사다난’보다는 ‘다이내믹’에 가까웠다. 한림원에 번진 ‘미투’(#Me too·나도 피해자다)로 한 해를 거른 노벨문학상은 두 명의 수상자(올가 토카르추크·페터 한트케)를 배출했다. 한국에서는 김혜순 시인이 그리핀 시문학상을 수상, 차기 노벨문학상 수상 전망을 높였다. 변방의 서자 취급을 받던 SF 등의 장르 문학은 대세로 떠올랐고, 여성 작가를 필두로 한 페미니즘과 퀴어 서사는 여전한 힘을 발휘했다. ●후보도 수상자도 여성… 여성 작가 초강세 올해 트위터에서 돌았던 ‘짤’ 중 하나. ‘김승옥문학상 수상자’라는 코멘트 아래 쭉 이어지는 7명의 사진은 모두 여성이었다. 대상을 받은 윤성희 작가를 비롯해 우수상 수상자인 권여선, 편혜영, 조해진, 황정은, 최은미, 김금희 모두 여성인 까닭이다. 올해 13회째를 맞은 김유정문학상도 사정은 비슷했다. 수상자 편혜영 작가를 비롯해 후보 작가들(김금희, 김사과, 김혜진, 이주란, 조남주, 최은미) 모두 여성이었다. 동인문학상(최수철)을 제외하고 이상문학상(윤이형), 현대문학상(박민정) 등 주요 문학상도 여성들에게 돌아갔다. 박혜진 문학평론가는 “최근 사회에 던지는 윤리적인 질문 자체가 문학 미학을 구성하는 중요 요소가 됐다”며 “젠더나 퀴어, 장애인 같은 소수자 서사를 다루는 데 여성 작가들이 사회에 더욱 직접적으로 질문하는 ‘첨단의 윤리’를 가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페미니즘·퀴어 서사의 진화 여성 작가들의 활약으로 ‘82년생 김지영’(민음사)이 쏘아 올린 페미니즘 소설 붐은 올해도 계속됐다.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리타 메이 브라운 등 외국 유명 페미니스트 소설가들의 작품이 번역 출간되는가 하면 국내 여러 작가가 참여한 앤솔로지 발간이 이어졌다. 퀴어 문학에서는 박상영이라는 걸출한 신예의 탄생이 주목받았다. 지난해 출간한 첫 소설집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문학동네)로 주목받았던 박상영은 두 번째 소설집 ‘대도시의 사랑법’(창비)으로는 6개월간 4만 5000부를 찍었다. 성에 대한 자유분방한 묘사가 돋보이는 그의 작품은 퀴어 서사를 넘어 청년 세대의 사랑과 상실, 삶과 죽음에 대해 깊이 있게 성찰한다는 평을 받는다. ●신성의 등장, 무크지 창간… SF 문학의 약진 웹소설 플랫폼의 성장과 함께 SF, 판타지, 무협, 로맨스, 추리 등을 포괄하는 장르 문학이 크게 각광받았다. 그중에서도 SF의 활약은 눈부셨다. 포스텍에서 생화학 석사 학위를 받은 김초엽 작가의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허블)은 출간 6개월 만에 3만 3000부를 찍어 신예 작가로는 이례적인 관심을 받았다. 김보영 작가는 미국 최대 출판그룹 ‘하퍼콜린스’에 중·단편 소설 3편의 번역 출간권을 판매, 한국 SF 최초로 영미권 주요 출판시장에 진출했다. 한편 지난달에는 SF 전문 무크지 ‘오늘의 SF’(아르테)가 창간돼 SF 문학을 비평의 영역으로 끌어들였다. 고호관, 듀나, 정세랑, 정소연 등 SF 문학의 최전선에 있는 작가들이 편집위원을 맡았다. 복도훈(서울과학기술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문학평론가는 “AI나 인류세, 환경 문제에 이르기까지 SF적인 상상이 우리 삶의 중요 기제가 됐다”며 “최근의 SF 붐은 밑바닥부터 실력을 다져 온 작가들과 팬덤, 출판사들까지 오래된 노력이 ‘빅뱅’처럼 폭발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로 뻗어가는 K문학의 힘 한국에서 130만부를 찍은 ‘82년생 김지영’은 올해까지 19개국에 수출, ‘K문학’의 위상을 드높였다. 중국에서만 18만부, 일본에선 15만부가 인쇄되는 등 비슷한 사회 환경의 동아시아에서 특히 인기를 끌었다. 아시아를 넘어 북미, 유럽에서도 한국 문학에 대한 열띤 관심이 이어졌다. 지난 6월 김혜순 시인은 캐나다의 권위 있는 문학상인 그리핀 시문학상을 한국 작가로는 처음 수상했다. 9월 스웨덴 예테보리에서 열린 국제도서전은 맨부커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낭독회를 들으려는 사람들로 붐볐고, 그즈음 스웨덴 문예지 ‘10TAL’은 한국문학 특집호를 발간했다. 외국으로 번역 출간되는 한국문학을 지원하는 한국문학번역원의 올 한 해 출판 지원 종수는 26개 언어권 151종이었다. 2010년 15개 언어권, 53종의 책을 번역 출간한 것과 비교하면 3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별이 된 박완서 길이 되다

    별이 된 박완서 길이 되다

    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9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35차 서울의 문학5-박완서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편이 지난 21일 서대문구 현저동과 종로구 무악동·사직동·필운동 일대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됐다. 서울미래유산을 사랑하는 참석자 40여명은 이날 오전 10시 독립문역 4번 출구를 출발, 현저동 가파른 언덕배기에 올랐다. 박완서 작가가 어린 시절 놀던 길과 매동보통학교(매동초등학교) 등굣길을 연상하는 코스였다. 독립문~옥살이 골목~무악현대아파트~인왕산 순성길~종로도서관~매동초등학교로 이어진 코스는 단출했지만 명작의 힘은 위대했다. 꼬불꼬불한 골목 귀퉁이마다 작가의 숨결이 느껴졌다. 한 참가자는 “작품 속 등굣길이 궁금했고, 그대로 따라 걸어보고 싶었는데 드디어 꿈이 이뤄졌다”는 감동적인 소감을 남겼다. 올해 최종회인 이날 코스에서 서울미래유산은 영천시장이 유일했다. 해설을 맡은 심흥식 서울도시문화지도사는 서울문학의 현장을 차분하고 깊이 있게 전달했다.박완서(1931~2011)는 서울과 서울사람을 탐구한 대표적 작가이지만 서울 토박이와는 거리가 멀다. 경기 개풍군 박적골에서 태어나 조부모 슬하에서 자라다 8살 때 극성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온 이주민이다. 사대문 밖 대표적 빈촌지대 현저동 46-418번지는 ‘제2의 고향’이었다. 숙명여고를 다니다 개성 호수돈여고로 전학 갈 때까지 6년간의 성장기를 이곳에서 보냈다. 광복 후 몇 차례 행정동 개편을 통해 의주로 남서쪽은 서대문구 현저동으로 남고, 북동쪽은 종로구 무악동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지금의 무악동 아이파크아파트가 있는 산 중턱이 옛 집터쯤으로 추정된다. 현저동을 벗어나서는 잠시 신혼살림을 차린 종로구 충신동과 성북구 돈암동 신흥주택 개발지구에서 살았다. 강남개발 이후 주저하지 않고 잠실 장미아파트로 이주, 강남문학을 선보인 이유도 서울의 사대문 안과 사대문 밖을 구분 짓는 앙상레짐이 싫었기 때문이다. 40세 늦깎이 데뷔작 ‘나목’((1970년)에서 거주지를 북촌 계동으로 설정한 것도 현저동 달동네를 벗어나고픈 의도였다.현저동은 박완서의 문학세계에서 가장 특별한 장소다. 현저동이라는 사대문 밖에 둥지를 틀었지만 언젠가는 사대문 안에 입성하기를 갈망했다. 사대문 안과 밖이라는 분리주의는 남북 분단과정에서 빚어진 오빠의 죽음이라는 가족의 비극과 닮았다. 50~51세에 발표한 ‘엄마의 말뚝1~2’는 분리와 분단의 세계에 세운 작가의 깃발이다. ‘박완서 산문집6: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애수(문학동네 2015)’에서 “그러나 막상 내가 도달한 어머니의 서울 살림은 형편없이 궁색한 것이었다. 평지의 반듯반듯한 기와집 동네를 다 그냥 지나쳐 꼬불꼬불한 돌사닥다리 길을 한없이 기어올라가 깎아지른 듯한 축대 끝에 제비집처럼 매달린 초가집의 우중충한 문간방이 어머니 서울 살림집이었다. …서울에서의 첫날밤…나는 이불 속에서 소리를 죽여가며 울었다”는 구절은 8살 박완서가 서울살이를 시작한 현저동 달동네 어느 문간방의 1938년 풍경이다.세월이 흘러 현저동 산기슭엔 아파트단지가 빼곡하다. 소설에서 “골목은 깎아지른 듯한 층층다리로 변했다, 집들도 층층다리처럼 비탈에 다닥다닥 붙어 있어서 곧 쏟아져 내릴 것 같은 이상한 동네였다”고 묘사된 곳이라곤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미끈하게 변했다. 현저동은 물이 좋아서 악박골(약박골)이라고 불렸다. 이광수의 ‘흙’에 “…소화불량이 심하기나 해야 악박골 약물에나, 그것도 다른 사람들 오기 전에 이른 새벽에 다녀올까…”라는 대목이 나오고, 심훈의 ‘상록수’에서 주인공 영신과 동혁이가 나누는 대화에서도 “그럼 목두 마른데 악박골루 가서 약물이나 마실까요?”하고 독립문 편짝을 향해서 앞장을 선다. “참, 악박골이 영천이라구도 하는 덴가요?”라고 나온다. 약수로 유명한 이 동네의 진면목과 다양함은 박완서의 작품에 의해 사실화되고 구체화된다. 박완서의 연작 자전소설은 장장 15년 만에 마무리된다. 50세에 쓴 ‘엄마의 말뚝’에 나타난 자전적인 서사를 62세 때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에서 다듬었다. 이 작품에는 ‘소설로 그린 자화상’이라는 부제까지 붙어 있다. 65세 때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로 드디어 3부작을 완성했다. 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는 저서 ‘서울문학기행’에서 “이들 자전적 연작소설을 보면 박완서 가족에게 서울은 무엇이었을까?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부역과 전향에 얽힌 가족사 때문에 전쟁 속의 서울이 작품의 주무대가 될 수밖에 없었다”고 풀이했다.작가가 경험한 서울은 전쟁의 도시인 동시에 사랑의 도시였다. 해방과 전쟁, 피란살이가 중첩된 격동의 시기를 온몸으로 살았다. 현저동 ‘괴불마당집’은 서울에 입성한 작가에게 ‘지상의 방 한칸’이었다. 서울사람이 되기 위한 최소한의 물질적 조건이자 작가의 길을 마련해준 이야기보따리였다. “우리 세 식구가 처음으로 서울에 장만한 내 집인 현저동 꼭대기 괴불마당집에서의 첫 겨울은 가혹했다. 추위도 예년에 없이 혹독했지만 여름철 장마처럼 눈이 한번 내리기 시작하면 몇 날 며칠 계속됐다. …물보다는 불 걱정이 훨씬 더 심각했다”고 ‘엄마의 말뚝’에서 현저동 시절을 추억했다. ‘엄마의 말뚝’이란 소설 제목은 현저동에 입성했을 때 “드디어 서울에 말뚝을 박았구나”고 안도하는 어머니의 말에서 따왔다. 엄마의 말뚝은 서울의 말뚝이었다. ‘서울탄생기’의 저자 송은영은 “이 말뚝은 드디어 서울에 정착했음을 알게 해주는 장소이다. 말뚝은 지식과 주체성을 갖춘 새로운 여성상에 대한 지향과 그것을 딸에게 투사한 어머니의 욕망을 담고 있다”고 해석했다. 어린 박완서는 등굣길 인왕산 산록에서 싱아를 애타게 찾아다녔다. “나는 불현듯 싱아 생각이 났다. 우리 시골에선 싱아도 달개비만큼 흔한 풀이었다. 산기슭이나 길가 아무 데나 있었다. 그 줄기에는 마디가 있고, 찔레꽃 필 무렵 줄기가 가장 살이 오르고 연했다. 발그스름한 줄기를 꺾어서 겉껍질을 길이로 벗겨 내고 속살을 먹으면 새콤달콤했다. 입안에 군침이 돌게 신맛이, 아카시아 꽃으로 상한 비위를 가라앉히는 데는 그만일 것 같았다. …간절하게 산속을 찾아 헤맸지만, 싱아는 한 포기도 없었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나는 하늘이 노래질 때까지 헛구역질을 하느라 그곳과 우리 고향 뒷동산을 헷갈리고 있었다.”박완서의 작품에서 현저동은 ‘바닥 상것들’이 사는 ‘쌈박질이 그치지 않는 동네’로 묘사되고 있다. 현저동의 삶은 ‘서울살이의 법도라기보다는 셋방살이의 법도’부터 익혀야 하는 궁핍한 삶이었다. “오줌과 밥풀과 우거지가 한데 썩은 시궁창 물”이 흐르는 그런 곳이었다. 그러나 박완서는 현저동에서 작가의 길을 찾았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에서 “나만 보았다는데 무슨 뜻이 있을 것 같았다. …그래 나 홀로 보았다면 반드시 그걸 증언할 책무가 있을 것이다. …증언할 게 어찌 이 거대한 공허뿐이랴, 벌레의 시간도 증언해야지. 그래야 난 벌레를 벗어날 수 있다. 그건 앞으로 언젠가 글을 쓸 것 같은 예감이었다”고 썼다. 현저동은 박완서 문학을 잉태한 산실이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원장 사진 김학영 연구위원
  • 스크린으로 옮긴 ‘메모리’…왜 자꾸 시계를 보게 될까

    스크린으로 옮긴 ‘메모리’…왜 자꾸 시계를 보게 될까

    캐스팅 화려… 특별한 줄거리는 없어 줄곧 이어진 노래, 피로감 느끼기도1981년 초연 이후 30여개 국가, 300여개 도시에서 공연된 스테디셀러 뮤지컬 원작에 ‘레미제라블’을 만든 톰 후퍼 감독, 제니퍼 허드슨, 테일러 스위프트, 주디 덴치 등 화려한 캐스팅까지 더해 영화 ‘캣츠’에 쏠린 관심은 뜨거웠다. 의인 아니 의묘화된 인간의 모습이 무대 아닌 스크린에 올랐을 때의 모습이 어떨지, 설명이 필요 없는 히트 넘버들은 어떻게 재현될지 세간의 추측이 쏟아졌다. 막상 뚜껑을 열자, 전 세계 유력 언론들에서 악평에 가까운 혹평이 쏟아졌다. “전혀 본 적 없는 끔찍한 장르의 포르노를 보는 느낌”(뉴욕타임스), “완벽하게 끔찍한 고양이 토사물”(가디언) 등이다. 정작 한국에서는 이 같은 평들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끊임없이 리트윗돼 일종의 ‘노이즈 마케팅’으로 작용했고, 가수 겸 뮤지컬 배우 옥주현이 부른 ‘메모리’(Memory) 영상이 1000만뷰를 기록하는 등 화제의 중심에 섰다. 23일 언론배급시사회를 통해 한국에 공개된 ‘캣츠’는 ‘사람에게 길들여지기를 거부하고 도시의 쓰레기장에서 사는 고양이들의 세계’라는 원작 서사에 충실했다. 1년에 단 하루,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 고양이를 선택하는 젤리클 고양이 축제가 점점 무르익는 가운데 악당 고양이 맥캐버티(이드리스 엘바 분)의 등장으로 위기에 빠진다는 내용 그대로다. 뮤지컬도 T S 엘리엇(1888~1965)의 동시집 ‘주머니쥐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지혜로운 고양이 이야기’라는 원작에서 가져왔다. “구조는 있는데 스토리는 없는 것이 ‘캣츠’의 특별한 지점”이라는 시나리오 작가 리홀의 말처럼 ‘축제’라는 설정 외에 특별한 줄거리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그래서 영화는 서사를 만들기 위해 버려진 고양이 빅토리아(프란체스카 헤이워드 분)를 등장시켜 그의 여정을 따라가는 형식을 취한다. 1980년대가 배경인 뮤지컬과 달리 영화는 1930년대 런던을 배경으로, 소호와 런던 시내 중심가의 좁은 골목을 걷는다. 원작자 엘리엇이 살았던 시대를 끄집어낸 것이다. 영화에서 독보적인 것은 빅토리아의 존재다. 영국 로열발레단의 수석 무용수인 헤이워드는 발레가 곁들여진 가뿐한 몸놀림, 유려한 몸 선으로 절로 시선을 끈다. 청아한 고음이 상대적으로 낮지만 묵직한 보이스의 그리자벨라(제니퍼 허드슨 분)와 어우러져 ‘메모리’에 깊이를 더한다. ‘마성의 고양이’ 럼 텀 터거 역의 제이슨 드룰로의 퍼포먼스는 재기 발랄하고, 젤리클 고양이 축제를 주재하는 ‘올드 듀터로노미’ 역 주디 덴치의 카리스마는 빛난다. 문제는 고양이를 표현하는 인간의 한계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뮤지컬과 영화라는 매체의 차이에서 오는 듯하다. 대사 없이 줄곧 노래만 이어지는데, 뮤지컬과 달리 현장성이 없다 보니 간헐적이던 경이감이 피로로 이어진다. 주위 집중할 만한 줄거리가 없어 결코 길다고 보긴 힘든 러닝타임 109분이 길게 느껴졌다. 12세 관람가. 24일 개봉.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진중권 “총장이 부도덕하다고 위조 표창장 진실이 변하는 건 아냐”

    진중권 “총장이 부도덕하다고 위조 표창장 진실이 변하는 건 아냐”

    “총장 뒤 캔다고 표창장이 진짜로 둔갑 안돼”“9월 초 학교에 남을 수 없겠다는 예감 들어”“학위 없이 교수 특채된 게 적폐일지 몰라 사직”동양대에 사직서를 낸 진중권 교수는 22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총장이 부도덕하다고 표창장이 진짜로 둔갑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진 교수는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표창장이 위조됐다고 말하는 이들의 뒤를 캐서 부도덕한 인간으로 만들건가”라고 반문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어 “저쪽은 최성해 총장을 믿지 못할 사람으로 만들어 그의 발언의 신빙성을 떨어뜨리겠다는 속셈인 모양인데, 백번 양보해 총장이 거절당한 청탁의 앙갚음을 하려 했거나 야당의 부추김을 받은 것이 사실이라 가정하더라도, 진실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진 교수는 지난 21일에도 페이스북에 “표창장이 위조됐다는 판단을 내린 9월 초에 학교에 남아 있을 수 없겠다는 예감이 들었다”면서 “그 후에 벌어진 일은 결말까지 예상에서 벗어나지 않았다”며 사직 이유를 밝혔다. 표창장 위조 발언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가 자녀 입시를 위해 표창장을 위조했다는 의혹 등으로 검찰에 구속된 사건을 의미한다.진 교수는 “첫째는 내가 학위도 없이 교수로 특채된 것 자체가 보기에 따라서는 적폐의 일부일지 모른다는 생각, 둘째는 보수정권 시절에 학교로 들어오는 압력이나 항의로부터 나를 지켜주신 분께 진퇴에 관한 고언을 드리려면 최소한 직을 내놓고 하는 게 예의라고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진 교수는 “셋째는 정치권의 무차별적인 공격으로 학교와 총장에 관해 잘못 알려진 부분을 해명하려면 더 이상 학교의 구성원이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었다”고 덧붙였다. 진 교수는 지난 19일 페이스북에 사직서를 올리며 “오늘 마지막 수업을 마치고 미리 써놓았던 사직서를 냈다”고 썼다. 그는 2012년 2월 동양대 교양학부 교수로 임명돼 그해 3월부터 학생들을 가르쳐왔다. 그는 사직서 공개에 이어 “내가 돈이 없지 ‘가오’(일본어로 얼굴이라는 뜻. 체면·자존심 의미)가 없나. 이젠 자유다!’는 글도 남겼다.공지영 “명분도 정의도 교훈도 없다” 비판에진중권 “직장 사표에 무슨 교훈씩이나 필요?”진 “선택에 대해 모욕 당하지 않을 권리 있어” 앞서 공지영 작가는 진 교수의 지난 19일 자신의 동양대 사직에 대해 “명분도 정의도 교훈도 없다”고 비판했다. 공 작가와 진 교수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 수사를 둘러싸고 엇갈린 입장을 보이며 공방을 벌여왔다. 진 교수는 공 작가의 비판에 대해 페이스북에 “직장에 사표를 내는 데에 무슨 명분이나 정의나 교훈씩이나 필요하다는 것인가”라고 반박했다. 이어 “누구나 제 삶의 서사를 갖고 있고 어떤 사람은 제 삶의 서사가 깨지지 않게 배려하는 것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길 수 있다”면서 “그런 사람의 선택도 남에게 모욕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고 강조했다.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동양대 사직서 낸 진중권 “표창장 위조 판단, 예상 안 벗어나”

    동양대 사직서 낸 진중권 “표창장 위조 판단, 예상 안 벗어나”

    공지영 “명분도 정의도 교훈도 없다” 비판에진중권 “직장 사표에 무슨 교훈씩이나 필요?”진 “선택에 대해 모욕 당하지 않을 권리 있어”동양대에 사직서를 낸 진중권 교수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표창장이 위조됐다는 판단을 내린 9월 초에 학교에 남아 있을 수 없겠다는 예감이 들었다”면서 “그 후에 벌어진 일은 결말까지 예상에서 벗어나지 않았다”며 사직 이유를 밝혔다. 표창장 위조 발언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가 자녀 입시를 위해 표창장을 위조했다는 의혹 등으로 검찰에 구속된 사건을 의미한다. 22일 진 교수의 페이스북에 따르면 그는 지난 21일 페이스북에 “첫째는 내가 학위도 없이 교수로 특채된 것 자체가 보기에 따라서는 적폐의 일부일지 모른다는 생각, 둘째는 보수정권 시절에 학교로 들어오는 압력이나 항의로부터 나를 지켜주신 분께 진퇴에 관한 고언을 드리려면 최소한 직을 내놓고 하는 게 예의라고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진 교수는 “셋째는 정치권의 무차별적인 공격으로 학교와 총장에 관해 잘못 알려진 부분을 해명하려면 더 이상 학교의 구성원이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었다”고 덧붙였다. 진 교수는 지난 19일 페이스북에 사직서를 올리며 “오늘 마지막 수업을 마치고 미리 써놓았던 사직서를 냈다”고 썼다. 그는 2012년 2월 동양대 교양학부 교수로 임명돼 그해 3월부터 학생들을 가르쳐왔다.그는 사직서 공개에 이어 “내가 돈이 없지 ‘가오’(일본어로 얼굴이라는 뜻. 체면·자존심 의미)가 없나. 이젠 자유다!’는 글도 남겼다. 앞서 공지영 작가는 진 교수의 지난 19일 자신의 동양대 사직에 대해 “명분도 정의도 교훈도 없다”고 비판했다. 공 작가와 진 교수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 수사를 둘러싸고 엇갈린 입장을 보이며 공방을 벌여왔다. 진 교수는 공 작가의 비판에 대해 페이스북에 “직장에 사표를 내는 데에 무슨 명분이나 정의나 교훈씩이나 필요하다는 것인가”라고 반박했다. 이어 “누구나 제 삶의 서사를 갖고 있고 어떤 사람은 제 삶의 서사가 깨지지 않게 배려하는 것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길 수 있다”면서 “그런 사람의 선택도 남에게 모욕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고 강조했다.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제19회 송은미술대상은 누구에게…후보 작가 4인 4색전

    제19회 송은미술대상은 누구에게…후보 작가 4인 4색전

    곽이브, 권혜원, 이은실, 차지량 등 제19회 송은미술대상 후보 작가 4인의 전시가 21일부터 내년 2월 15일까지 서울 강남구 송은아트스페이스에서 열린다.송은미술대상은 송은문화재단이 재능있는 젊은 미술작가들을 발굴하고 지원하고자 2001년에 제정했다. 예선과 본선에서 4명을 선정한 후 최종 심사를 위한 전시를 통해 대상 수상자를 결정한다. 올해 공모에는 260명이 지원했다.도시환경과 건축을 주제로 작업해온 곽이브는 전시장 내 벽과 창문의 위치, 가벽과 천장 등을 활용해 환경과 건축에 따른 삶의 방식과 시간성을 탐구한 7가지 작업을 한데 묶어 ‘스몰과 라지 사이’라는 제목의 신작을 선보인다. 특정 공간에 담긴 서사를 재구성하는 영상작업에 천착해온 권혜원은 제주도 용암동굴을 촬영한 ‘유령과 괴물들의 풍경’, 아크릴 등 다양한 반사재질의 재료를 활용한 ‘다정하게, 더 다정하게’ 등 신작 2편을 내놨다.동양화 전공인 이은실은 전통 한국화의 재료와 기법을 활용해 원초적인 욕망, 억압과 혼돈 등을 대담하고 도발적으로 표현한 ‘사라진 음경골’ 등 5점을 공개한다. 차지량은 태어나고 자란 곳을 떠나 낯선 곳으로 향하는 자신의 여정을 담은 영상설치 ‘떠나려는 사람만이 모든 것을 본다’와 공간 설치 작품 ‘개인의 장벽, 개인의 날개’를 선보인다. 대상 수상자는 1월 중 발표된다. 관람은 무료.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 [책꽂이]

    [책꽂이]

    긴 호흡(메리 올리버 지음, 민승남 옮김, 마음산책 펴냄) 올 초 세상을 떠난 퓰리처상 수상 시인의 산문집. 시인은 어린 시절 자신을 문학소녀로 만든 삶의 동반자들에 대해 회고하며 ‘긴 호흡’으로 미국 현대시에 관한 이야기와 자신의 시론을 펼쳐 보였다. 자연과 삶, 문학에 관한 섬세한 관찰이 견고한 문장들을 통해 생생히 드러난다. 168쪽. 1만 3000원.신학의 식탁(주원준·박태식·박현도 지음, 들녘 펴냄) 유다교(유대교)·이슬람교·그리스도교, 세 종교의 관련성을 비교 분석한 교양서. 가톨릭 신도와 성공회 사제, 이슬람 전반을 탐구해 온 학자 등 신앙과 연구 분야가 서로 다른 저자들이 하나의 뿌리에서 시작돼 갈라진 세 종교의 교섭사를 정리했다. 392쪽. 1만 9000원.낯선 사람들과의 동행(폴 시브라이트 지음, 김경영 옮김, 공작기계 펴냄) ‘자연사적 관점에서 바라본 인류의 경제생활’이라는 부제가 붙은 경제학자의 저작. 저자에 따르면 신뢰의 구조는 협력의 바탕 위에 세워져 있고, 협력을 가능케 하는 요인은 ‘터널 비전’(제한된 시야)이다. 그는 2007년 세계경제위기는 뉴욕 금융가의 모럴 해저드 탓이 아니라 신뢰의 붕괴에서 비롯됐다고 말한다. 640쪽. 2만 8000원.농경의 배신(제임스 C 스콧 지음, 전경훈 옮김, 책과함께 펴냄) 호모사피엔스가 이룬 정착 생활은 과연 이동 생활보다 더 우월할까. ‘역사적 대항서사’에 관심을 기울여 온 제임스 C 스콧 예일대 교수가 인류가 정착과 농경 생활을 피하려 했던 이유, 이동 생활의 이점, 동식물이 과밀화된 환경에서 발생한 전염병 등에 대해 심층적으로 고찰한다. 392쪽. 2만 2000원.일을 버려라!(제이슨 프라이드 지음, 우미정 옮김, 예문아카이브 펴냄) 미국 시카고에 위치한 소프트웨어 개발 회사 ‘베이스캠프’의 두 창업자가 쓴 회사 운용에 관한 저서. 그들이 운영하는 회사 ‘베이스캠프’는 이익을 내는 데만 관심이 있으며 최선의 이익 향상을 위한 목표 설정은 하지 않는다. ‘판을 깨겠다’는 생각에만 매몰된 혁신에 대한 심취도 경계해야 할 요소라고 이들은 말한다. 312쪽. 1만 5000원.낯선 죽음(지안 도메니코 보라시오 지음, 박종대 옮김, 다봄 펴냄) 유럽 완화의학계를 대표하는 인물이 쓴 죽음과 죽어감에 대한 고찰. 호스피스와 완화의료 서비스의 현실적인 개선책, 의대에서 완화의료 과목을 교육하는 문제, 웰다잉을 위한 명상까지 세심하게 다뤘다. 276쪽. 1만 5500원
  • 삶의 대답을 건져낸 ‘신들의 섬’

    삶의 대답을 건져낸 ‘신들의 섬’

    ‘먹고 사랑하고 기도하라’(2010)라는 영화가 있다. 줄리아 로버츠가 주연한 영화다. 서른한 살의 성공한 저널리스트가 일상에 회의를 느끼고 여행을 떠나 새로운 삶의 의미를 되찾는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줄거리는 대충 이렇다. 주인공 리즈는 전형적인 뉴요커다. 입지 탄탄한 저널리스트인 그녀는 잘생긴 남편(빌리 크루덥 분)과 함께 맨해튼에서 살고있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이런 삶이 너무나 의미 없이 느껴지기 시작한 그녀. “나는 도대체 누구지”, “난 왜 이렇게 살고 있지”와 같은 원초적인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보통사람이 이 질문에 대처하는 방법은 대개 두 가지다. 첫 번째는 며칠 고민하다 쇼핑이나 술자리로 이 질문을 잊어버리는 것. ‘인생이라는 게 원래 이런거야, 뭐 별 거 있겠어? 다들 이렇게 살고 있잖아’ 하며 스스로를 정당화하고, 현실적인 문제들이 발목을 잡고 있다는 것도 순순히 인정한다. 뭔가 새로운 일을 도모해 보기에는 주택융자금이며 당장 갚아야 할 이번 달 카드 대금의 벽이 너무 높다는 걸 받아들인다. 또 다른 방법은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적극적으로 찾아보는 것. 이 적극적 행위는 주로 여행이라는 방식으로 발현된다. 리즈는 이 방법을 선택하고 실천에 옮긴다. 남편과 이혼까지 감행한 그녀는 ‘자신’을 찾아 이탈리아와 인도, 발리를 여행한다. 이탈리아에서는 그동안 몸매관리하느라 먹지도 못했던 피자를 신나게 먹어치우고, 인도의 아쉬람에서는 기도하며 ‘자신 안의 신’을 발견한다. 그리고 발리에서는 새로운 남자를 만나 열정적 사랑을 나눈다.●발리의 중심… 예술가들의 거리 ‘우붓’ “보고 싶을 땐 마음껏 보고 싶어 해. 그 사람에 대한 감정으로 복잡한 머릿속을 비워 버릴 수만 있다면 그게 오히려 비상구가 될 거야. 그럼 그 비상구를 어디에 써야 하는지 알아? 들어가. 무조건 들어가서 사랑으로 자신을 채워. 난 우리 먹보 아가씨가 언젠가 세상을 다 포용할 수 있게 되리라 믿어.” 리즈가 새로운 사랑을 만나고 자신을 발견했던 곳이 바로 발리 내륙에 위치한 ‘우붓’(Ubud)이다. 지금이야 여행자들에게 발리 여행에서 으레 들러야 하는 관광지가 되어 버렸지만 아직까지는 발리의 토속적인 정취와 울창한 자연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우붓은 예술과 문화가 발달한 곳이다. 16세기 힌두교 왕족과 함께 예술인들이 발리로 건너왔을 때 이들이 자리를 잡은 곳이 우붓이었다. 그리고 19세기 독일화가 월터 술츠 등 유럽인들이 모여들면서 예술과 문화의 중심지로 변모하게 된다. 우붓거리를 걷다 보면 이 말이 거짓이 아님을 알 수 있다. 1500여m 정도 거리에는 미술관과 박물관이 줄지어 서 있다. 이름난 미술관도 예닐곱 곳 있고 모퉁이마다 작은 갤러리들도 자리하고 있다. 조금만 걷다 보면 우붓을 왜 ‘발리의 몽마르트르’라고 부르는지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들 갤러리들은 저마다 독특한 그림을 내걸고 여행객들을 맞이한다. 열대 특유의 강렬한 색감으로 시선을 모으는 작품들도 있고 발리 자연이나 사원, 동물, 여인 등을 소재로 한 작품도 있다. 난해한 추상 회화도 눈에 띈다. 가격도 그리 비싸지 않아서 세심히 둘러보면 다른 곳에서 쉽게 구할 수 없는 독특한 작품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 “지금도 인도네시아 현지 예술인들뿐만 아니라 많은 외국 예술가들이 이곳에 거주하며 작품 활동을 하고 있어요. 한국인도 몇 명 있어요.” 우붓 갤러리에서 만난 큐레이터 리사는 “세계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독특함, 그 자체가 발리 그림의 특징”이라고 말했다. “초기 발리의 회화는 신화, 전설, 악마와 신, 힌두의 서사시 등을 소재로 그림을 그렸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초현실적인 기법과 양식이 특징이었죠. 지금은 여기에 서양화의 기법을 받아들여 한층 다채로워졌습니다. 그러니까, 발리의 화가들은 생각하는 모든 것을 그린다고 보면 됩니다. 그들은 화면을 빈틈없이 꽉꽉 채우죠.” 작은 공방과 화방도 많다. 나무 조각품, 가구를 만드는 공방, 손바닥만 한 크기의 그림을 걸어 놓은 화랑 등이 늘어서 있다. 정교한 목각과 세공품으로 가득한 상점들의 거리를 걷고 있노라면 서울의 인사동을 걷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최근에는 여행객들이 많이 몰려들면서 분위기가 다소 소란스러워졌지만 조용한 뒷골목 등은 여전히 다정하고 매력적이다. 화랑과 공방을 지나다 보면 걸음은 자연스레 재래시장에 닿는다. 코코아나무로 만든 식기며 대나무로 짠 가방, 울긋불긋한 열대과일 등이 발목을 붙잡는다. 가격도 착하다. 여느 관광지의 시장이 그렇듯 부르는 게 값이지만 두 눈 딱 감고 흥정에 돌입하면 적게는 4분의1, 많게는 10분의1 정도의 가격에도 물건을 살 수 있다.●인도네시아 유일 힌두교 신봉지 발리는 ‘신들의 섬’으로 불린다. 자그만치 2만여개의 힌두사원이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원래 인도네시아는 국민 대부분이 이슬람교를 믿지만 발리에서만은 유일하게 힌두교를 신봉하고 있다. 발리를 걷다 보면 발길 닿는 곳마다 신을 만난다. 우리나라의 도깨비와 비슷하게 생긴 바롱신도 있고, 독수리처럼 생긴 가루다 신 조형물도 볼 수 있다. 어떤 조형물은 성인 키 몇 배는 될 만큼 커다랗고 어떤 조형물은 아기 주먹보다도 작다. 수많은 사원들 가운데 꼭 가 봐야 할 사원이 발리 시내에서 우붓으로 가는 길, 바투안 마을에 자리한 ‘푸세’라는 힌두사원이다. 푸세 사원은 1022년에 건립됐다. 사원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허리에 둘러 입는 옷인 ‘사롱’을 입어야 한다. 입장료는 따로 없고 기부함에 약간의 돈을 넣으면 된다. 사원 입구에는 두 개의 석문 기둥이 칼로 자른 듯 우람하게 서 있다. 좌우로 뾰족하게 대칭인데 ‘찬디 븐타르’라고 부른다. 찬디 븐타르의 오른쪽은 삶과 광명, 왼쪽은 죽음과 어둠을 상징한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는 좌우가 반대가 되므로 선과 악이 바뀐다. 이는 선과 악이 절대적이지 않다는 힌두의 세계관을 반영한다. 사원 안엔 조각이 화려한 석탑 파두락사, 수미산을 표현한 메루 등의 볼거리가 많다. 조각이 문외한인 여행자들에게도 아름답다. 자세히 보고 있노라면 정교한 조각 솜씨에 탄성이 나온다.●현존하는 가장 아름다운 섬, 길리 군도 인도네시아 길리섬은 롬복에서 배를 타고 두 시간을 가야 닿는 아주 작은 섬이다. 이 다정한 섬은 푸른 하늘과 산호초가 부서져 만들어진 눈부신 해변, 게으르게 잎사귀를 늘어트린 야자수로 이루어져 있다. 여행자들은 이 섬에 오래오래 머물며 시간을 즐긴다. 맥주를 마시며 기타를 튕기고 노래를 부르며 아주 사소한 농담에도 크게 웃음을 터뜨린다. 스노클링을 하며 바닷속 물고기들과 눈을 맞추기도 하고 삼판이라는 전통배를 타고 낚시를 나가는 이들도 있다. 마차를 타고 자그마한 다운타운을 돌아보기도 한다. 길리 트라왕안, 길리 메노, 길리 에이르로 구성된 길리 군도는 ‘지구상에 현존하는 가장 아름다운 섬 베스트 3’(영국 BBC 방송), ‘세계 10대 최고의 여행지’(론리 플래닛) 등에 선정되기도 했을 만큼 그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우리에게는 ‘윤식당’(tvN) 촬영지로 유명하다. 원래 ‘길리’는 ‘작은 섬’을 뜻하는 롬복 말. 인도네시아 지도를 보면 작은 섬들은 대부분 길리라는 이름으로 시작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세 섬 가운데 여행자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길리 트라왕안이다. 롬복 본섬 북서부에 있는 방살 항구에서 배를 타고 30~40분만 가면 도착한다. 면적은 15㎢로, 여의도보다 약 5배 크다. 배가 해변에 닿을 무렵, 배에 탄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 일제히 탄성을 쏟아낸다. 에메랄드빛 바다에서는 스노클링 고글을 쓴 여행객들이 열심히 오리발을 젓고 있다. 바다 쪽에는 알록달록한 선베드가 깔린 카페가 줄지어 있었고, 수영복을 입고 선글라스 쓴 여행객들이 책을 읽거나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고 있다. 해변에서 마주치는 이들 대부분은 유럽과 호주 여행객들이다. 1980년대부터 서양 여행자들이 이 섬에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그 이유는 마약 때문이었다. 아무 제지 없이 마약을 즐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환각 성분이 포함된 버섯을 쉽게 구할 수 있어 몰려들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단속을 강력하게 한 덕택에 마약을 할 수는 없다. 요즘 들어서는 한국인 신혼부부와 휴양객들도 점점 늘고 있는 추세다.길리에는 없는 것이 많다. 자동차나 오토바이 같은 모터를 단 차량 대신 가까운 거리는 걷거나 자전거를 탄다. 마차를 타도 된다. 경찰도 없다. 경찰 대신 마을주민들로 구성된 위원회가 치안을 맡는다. 개도 없다. 대신 고양이가 있다. 길리 섬에는 사람이 살기 이전부터 고양이들로 넘쳐났다. 담수도 없어 식당이나 숙소 화장실에서 수도꼭지를 돌리면 짭조름한 물이 나온다. 지하수에도 해수가 섞여 있다. 길리는 세계 3대 다이빙 포인트로 꼽히는 곳이다. 바닷속으로 조금만 들어가면 각양각색의 열대어와 산호초를 만난다. 1m에 달하는 거북이, 죽은 듯 깔려 있는 바다뱀도 볼 수 있다. 생수병에 물고기 밥을 넣어가면 수십 마리의 열대어가 몸 주변을 감싸는 경험도 할 수 있다. 굳이 스쿠버다이빙이 아니더라도 스노클링만으로 형형색색의 물고기와 신비한 산호초를 만날 수 있는 곳이 바로 길리의 바다다. 바닷가 한켠에 자리한 스노클링 장비 대여점에서 고글과 오리발만 빌려 50m만 헤엄쳐 나가면 화려한 수중세계를 만끽할 수 있다. 굳이 배를 타고 나가는 스노클링 프로그램을 이용할 필요도 없다. 섬은 동쪽 해안 부분만 개발돼 식당과 카페, 게스트 하우스가 들어서 있다. 거리 양 옆으로 자리한 가게에서는 현지인들이 과일과 커피, 채소를 판다. 나시고렝이며 미고렝 등 인도네시아 전통 음식도 실컷 맛볼 수 있다.●길에는 마차·고양이… 저녁이면 온통 보랏빛 노을 저녁이면 보랏빛 노을이 수평선 너머에서 번져와 섬을 온통 물들인다. 길리가 가장 아름다워지는 시간이다. 물결이 일 때마다 세상은 보랏빛으로 넘실댄다. 노을이 물러가면 별이 뜨고 섬은 조용해진다. 어부들과 나무, 선인장들도 깊은 잠에 빠진다. 긴 하루를 보내고 밤바다에 홀로 앉아 파도 소리를 들으며 앉아 있으면 하늘 위의 천사가 커다란 눈을 글썽이며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 안의 천사를 만나는 일, 내 속에 얼마나 많은 그리움과 떨림, 설렘, 몽상이 살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일. 그것이 여행 아닐까. 우리 삶을 설명해 주지는 않지만 우리 삶을 가장 잘 보여 주는 게 여행 아닐까. 여행 막바지, 리즈가 전 남편에게 이렇게 말한다. “정말 사랑했었어.” “알아.” “난 아직도 사랑해.” “그럼 사랑해.” “근데 너무 보고 싶어.” “그럼 보고 싶어 해. 보고 싶을 땐 마음껏 보고 싶어 해. 오래가진 않을 거야. 영원한 건 없으니까.” 그래, 영원한 건 없다. 어차피 시간은 지나가고, 시간은 우리에게 의미 따위는 가르쳐 주지 않는다. 우리는 경험하고 늙어갈 뿐이다. 파울루 코엘류 역시 이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시간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건 피로하다는 느낌. 나이를 먹었다는 느낌뿐이지.” 그래서 미워하고 시기하며 살기엔, 한곳에 머물러 살기엔, 아까운 것이 인생인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지금을 사랑하도록 하자. 열심히 책을 읽고 음악을 들으며 여행을 떠나자. 여기는 길리. 바다가 보이는 게스트하우스다. ■여행수첩 대한항공 등 다양한 항공편으로 발리에 갈 수 있다. 발리는 한국보다 1시간 느리다. 우붓 시내에서 약간 떨어진 네카 미술관은 발리에서 가장 유명한 미술관이다. 회화 수집가인 네카가 설립했다. 발리의 화가, 인도네시아 화가, 발리에서 활동한 외국인 화가들의 그림들이 시기별로 7개의 전시관에 걸려 있다. 발리 쿠타비치는 남부 발리의 최대 번화가로 꼽힌다. 초승달 모양 해변을 따라서 각종 편의시설이 모여 있어 늘 여행객들로 북적인다.
  • 원고에 스며든 취준생 아픔 오롯이… 퀴어·페미니즘은 한 걸음 더

    원고에 스며든 취준생 아픔 오롯이… 퀴어·페미니즘은 한 걸음 더

    총 1607명 응모… 시 3002편 등 4248편 시 11명·소설 8편 본심에… 새달 1일 발표 단편소설·동화·평론 여성 이슈 두루 등장 시·시조 내면과 역사 담으려는 시도 활발 희곡 가족해체·노인·빈부격차 문제의식“구직·이직·실직 등 취업과 관련한 청년 세대들의 서사가 절반 이상이었어요. 동남아나 유럽 등 실제 젊은 세대들이 가 본 이국의 공간을 배경으로 하는 여행 서사도 눈에 띄었습니다.”(김태용 작가) 지난 4일 마감한 2020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곳곳에서 문청(文靑)들의 원고가 날아들었다. 군복 차림의 장병이 수줍게 전하기도 했고 미국과 호주, 중국 등 멀리 해외에서, 교도소에서도 작품들이 날아들었다. 원고지에 육필로 눌러쓴 원고, 삽화를 곁들인 시에 꼼꼼한 자기소개까지 한 해를 꼬박 기다린 마음들이 살뜰했다. 올해 응모 인원은 1607명, 응모작은 총 4248편이었다. 분야별로는 시 3002편, 단편소설 483편, 동화 175편, 희곡 92편, 시조 481편, 평론 15편이다. 모든 분야에서 지원자가 작년보다 소폭 증가했다. 단편소설에서는 1인칭 화자를 중심으로 한 개인적인 이야기에 천착했다는 평이 많았다. 예심 심사를 맡은 편혜영 작가는 “주변에서 보고 들은 것 위주로, 이야기의 규모가 작아 중심 서사가 작은 게 큰 특징”이라며 “가족 구성원의 상실, 특히 아이 잃은 부부 얘기가 많은 것이 눈에 띄었다”고 말했다. 전 세계적으로 붐이었던 SF 소설도 간혹 있었지만 로봇이 등장할 뿐 설득할 만한 근거를 내세우지 못했다는 평이 뒤를 이었다. 올해 문단을 휩쓴 퀴어·페미니즘 이슈는 소설, 동화 등에 두루 등장했다. 소설 예심 심사를 맡은 강경석 문학평론가는 “퀴어 당사자의 이야기를 넘어 퀴어 부모를 바라보는 자녀의 시선을 담은 작품 등 서사가 다양해졌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평가했다. 동화에서도 여성을 조명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유영진 아동문학평론가는 “동화에서 서사의 추동력을 가진 인물이 주로 남성이었다는 반성이 많았는데, 사건을 끌고 가는 핵심 인물뿐 아니라 주변 인물들도 여자아이가 다수였다”고 말했다. 평론에서도 문보영, 박민정, 강성은, 백수린, 박솔뫼, 최정화 등 여성 시인·소설가들에 대한 작가론이 많았다. 유성호 문학평론가는 “문학사에 천착하기보다 동시대의 첨예한 의제를 드러내는 작가, 작품론이 압도적으로 많았다”고 평했다. 조연정 평론가는 “문장의 가독성이나 글의 완결성 등 당선권 작품들이 작년보다 많았다”면서 “최근 문인들이 독자들과 활발하게 소통하며 이들의 존재가 점차 확장되고 있는데, 이런 변화를 포착하는 글이 대거 등장했다”고 설명했다. 시와 시조에서는 개인의 내면 풍경에 침잠하는 한편 지금 여기의 역사를 담으려는 시도가 활발했다. 시 예심을 맡은 오은 시인은 “기본적으로 이력서, 자소서 등을 제목으로 하는 청년 세대의 생활 밀착형 시가 많았다”면서도 “광화문광장이나 홍콩 민주화 사태, 시리아 난민 이슈 등 시의적인 것으로 현장 이야기를 담으려고 하는 시도도 보였다”고 소개했다. 시조 심사를 맡은 이송희 시조시인은 “촛불집회, 위안부 소녀상 등 광장의 역사에 현대적 소재를 담아 재해석하려는 글들이 있었다”며 “자유시에서는 자주 등장했으나 시조에서는 드물었던 도치, 역설 같은 어법을 써서 언어의 묘미를 살리려는 실험정신이 엿보였다”고 분석했다. 희곡에서는 가족의 해체와 노인 문제, 빈부 격차에 관한 문제의식이 도드라졌다. 심사를 맡은 송한샘 뮤지컬 프로듀서는 “가족의 해체와 그 안에서 개개인들이 맞닥뜨려야 하는 고독, 전통적인 가치관과 현실적 이해관계의 충돌이 빚는 현실을 그린 작품이 많았다”며 “사랑 그 자체를 다루는 작품은 보이지 않아 ‘사랑’이라는 감정을 말하는 것에 대한 불편함이 있는 게 아닌가 싶다”고 해석했다. 함께 심사한 민준호 연출은 “기본적으로 희곡은 연극을 위한 매개이기 때문에 읽는 가치를 넘어 관객들과 면대면으로 만났을 때의 발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작품을 심사했다”고 평가 배경을 설명했다. 예심 결과 시는 11명의 작품이, 소설은 8편이 본심에 올랐다. 당선 결과는 이달 말까지 개별 통보하고 내년 1월 1일 자 서울신문 신년호에 심사평과 함께 발표한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마동석, 새로운 ‘시동’ 걸었다 “캐릭터의 완성은 연기력”

    마동석, 새로운 ‘시동’ 걸었다 “캐릭터의 완성은 연기력”

    배우 마동석이 새로운 연기에 ‘시동’을 걸었다. 터질듯한 분홍색 맨투맨, 덥수룩한 단발머리, 커다란 웍을 한 손에 쥐고 요리를 하는 낯선 모습의 마동석이 영화 ‘시동’(감독 최정열)으로 돌아온다. 웹툰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 ‘시동’은 정체불명의 단발머리 주방장 ‘거석이형’을 만난 어설픈 반항아 ‘택일’(박정민)과 ‘상필’(정해인)이 진짜 세상을 맛보는 유쾌한 이야기로, 마동석은 ‘택일’이 근무하는 장풍반점 주방장 ‘거석이형’으로 분한다. 그간 수십 편의 영화를 통해 탄탄한 내구성으로 이루어진 통쾌하면서도 묵직한 액션을 보여줬던 그의 180도 달라진 모습에 관객들은 놀라움을 숨기지 못하고 있다는 후문. 마동석은 이번 영화를 통해 무엇을 전하려 했을까. ‘시동’의 메가폰을 잡은 최정열 감독은 앞선 인터뷰에서 “거석이 형은 희극과 비극을 오가는 캐릭터로, 넓은 스펙트럼이 요구되기 때문에 밸런스 조절이 중요했다. 마동석은 천재처럼 어떤 장면에서 유머 코드를 가미해야 하는지, 어떤 선을 넘어가면 안 되는지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최고치의 연기를 선보였다”고 밝힌 바 있다. 이를 증명하듯 마동석은 짧은 시간 안에 희비를 넘나드는 감정선을 표현해야하는 장면에서도 완벽한 완급조절을 보여주며 개봉 첫 날부터 호평 받고있다. 걸그룹의 최신 가요를 부르며 춤을 출 때는 가벼우면서도 과하지 않게, 캐릭터의 서사를 표현할 때에는 깊은 울림을 주는 연기력으로 코믹과 정극 사이의 흐름을 주도했다. 잘 만들어진 맞춤형 옷을 꺼내 입듯 적재적소에 알맞는 캐릭터를 연기하며 관객들에게 웃음을 주는 동시에 다양한 배역을 소화해낼 수 있는 넓은 스펙트럼을 가진 배우임을 인식시킨 마동석. 이렇듯 ‘시동’은 그가 그간 보여준 이미지와는 반대되는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 작품이 아닐 수 없다. 연기력과 더불어 ‘거석이형’의 비주얼 또한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 중 하나. 그는 ‘신종 단발병 퇴치 캐릭터’ 별명까지 얻는 등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모으며 보고 듣는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 한편 마동석이 파격 변신을 꾀한 영화 ‘시동’은 전국 영화관에서 절찬 상영 중이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김우빈 ‘휴머니멀’ 내레이터로 복귀 “삶과 죽음, 공존에 대하여”

    김우빈 ‘휴머니멀’ 내레이터로 복귀 “삶과 죽음, 공존에 대하여”

    김우빈이 MBC 창사특집 다큐 ‘휴머니멀’로 방속 복귀를 앞두고 있다. ‘휴머니멀’ 전체를 아우르는 내레이터로서 묵직하고 호소력 있는 목소리로 프로그램을 관통하는 ‘공존의 메시지’를 전할 예정인 것. ‘휴머니멀’ 5부작은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인간(Human)과 동물(Animal)의 삶과 죽음, 그리고 공존의 서사시를 담은 초대형 UHD 다큐멘터리이다. 배우 유해진, 류승룡, 박신혜가 현장 프레젠터로 참여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며 2020 상반기 최고의 기대작으로 이목을 끌고 있기도. 여기에 마지막 멤버로 합류한 배우 김우빈은 ‘휴머니멀’ 전체를 아우르는 내레이터로 활약한다. 유해진, 류승룡, 박신혜 세 배우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세계 각국 동물들의 삶과 죽음을 생동감 있게 전하는 한편, 김우빈은 시청자들의 몰입감을 높이며 인간과 자연, 생명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계기를 마련할 예정이다. 김우빈의 묵직하고 호소력 있는 목소리가 담길 MBC 창사특집 다큐 ‘휴머니멀’은 2020년 1월 6일 월요일 밤 8시 55분에 첫 방송된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글로벌 In&Out] 허황옥의 고향은 인도가 아니라 태국이 아닐까/알파고 시나씨 아시아엔 편집장

    [글로벌 In&Out] 허황옥의 고향은 인도가 아니라 태국이 아닐까/알파고 시나씨 아시아엔 편집장

    이 글의 홍보가 잘돼 역사적으로 파문을 일으키면 좋겠다. 가락국, 즉 가야의 초대 왕인 수로왕의 부인 허황옥이 인도 사람이 아니고 태국 사람이라는 주장이다. 필자는 터키의 아라라트산 밑 으드르에서 태어났다. 아라라트산은 성경에서 언급된 노아의 방주가 홍수 이후 마침내 멈췄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노아 방주 이야기는 19세기 중반 발견된 길가메시 서사시 비문에서도 언급된다. 지리학자들은 몇천 년 전에 메소포타미아에서 거다란 홍수 사태가 있었다는 것을 인정한다. 하지만 노아의 방주가 아라라트산에서 멈췄다는 것은 아직 과학적으로 증명되지는 않았다. 지리학자들은 아라라트산의 고산지와 그 남쪽에 있는 주디산의 고산지를 비교를 했을 때, 주디산 근처에서 홍수가 난 것이 더 진실에 가깝다고 한다. 그렇다면 성경에 나오는 아라라트산 지적이 거짓인가? 아니다. 오히려 성경이 장소를 정확하게 짚었다. 구약에서 언급된 아라라트산은 오늘날의 아라라트산이 아니다. 구약의 아라라트산은 고대 문명 중 우라르투를 가리킨다. 그 당시 아라라트문명의 대표 산은 남부의 주디산이다. 왜냐하면 우라르투문명은 주디산 근처인 터키 동남부에 위치했다가 아시리아문명에 밀려 오늘날의 아라라트산 근처로 자리를 옮겼다. 현 아라라트산의 과거 이름은 마시산으로 6~7세기에 아라라트산이 됐다. 아직도 아르메니아 사람들이 아라라트산을 마시산이라고 부른다. 노아의 방주가 현재 아라라트산에 멈췄다면 필자에게 더 유리하다. 그 덕분에 필자 고향이 관광업으로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은 위의 설명이 더 설득력이 있다. 아라라트 출신으로서 이런 역사적 논쟁 덕분에 역사적 설화가 다르게 보인다. 그 가운데 하나는 허황옥의 고향이다. ‘삼국유사’에는 허황옥이 아유타국 출신이라고 언급돼 있다. 그 아유타국이 오늘날 인도 북부에 있는 아요디아라는 도시를 가리킨다고 해서 허황옥은 인도 사람으로 알려졌다. 나는 바로 이 지점에서 의문이 든다. 삼국유사에서 분명이 ‘국’(國)이라고 하는데, 아유타국이라면 아유타가 도시 이름이 아니고 국가 이름이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역사 속에서 아유타라는 국가가 있는가? 있다. 바로 태국 중세 시대의 국가인 아유타야 왕국이다. 발음이 그렇게 100% 일치되지는 않지만 아유타야 왕국의 이름도 인도 아요디아에서 유래한 것이다. 무슨 말이냐면 아유타야 왕국은 수도인 아유타야 도시에서 근거하는데, 그 아유타야 도시의 이름도 인도 아요디아에서 유래한 것이다. 아유타야 왕국은 1350년에서 1700년대 중반까지 태국의 대표적인 왕국이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허황옥과 수로왕의 결혼은 기원전이다. 그렇다면 그때는 아유타야 왕국이 존재하지 않았는데, 내 주장에 근거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아니다. 오늘 다른 나라에서 대중적인 역사서를 쓴다면 의자왕을 백제인이라고 정확히 지적할까, 아니면 한국인이라고 할까? 한국인이라고 언급한다. 현재 우리가 읽는 삼국유사는 일연이 작성한 원본이 전하지 않는 가운데 조선 초에 간행한 송은본·학산본 등과 중종 때이던 16세기에 옮겨 적은 정덕본 등이 있다. 특히 정덕본이 작성될 때 부윤 이계복이 허황옥의 고향을 당시의 나라 이름으로 쓰지 않았을까 하는 가설을 세워 본다. 그렇다면 아유타국이 아유타야 왕국이라는 필자의 주장이 힘을 받는다. 외국 출신 한국인으로서 한국의 이런 신기한 논쟁에 뭐라도 기여하고 싶은 마음으로 이 글을 썼다. 2001년 인도 아요디아와 자매결연을 맺은 김해시가 이번 계기에 태국 아유타야와도 자매결연을 하면 어떨까. 신남방 외교를 펼치고 아세안과 가까워지려는 한국에 유익한 논쟁이 던져졌기를 바란다.
  • ‘블랙독’ 리얼한 학교 세계 ‘믿보배’ 서현진X라미란 “美친 연기 내공”

    ‘블랙독’ 리얼한 학교 세계 ‘믿보배’ 서현진X라미란 “美친 연기 내공”

    ‘블랙독’이 우리가 몰랐던 학교의 리얼한 세계를 담아내며 현실 공감을 자극했다. tvN 월화드라마 ‘블랙독’(연출 황준혁, 극본 박주연, 제작 스튜디오드래곤, 얼반웍스)이 지난 16일 뜨거운 호평 속에 첫 방송됐다. 교사를 전면에 내세운 ‘블랙독’은 첫 방송부터 학교의 다이내믹한 일상을 리얼하고 밀도 있게 그려내며 시청자들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무엇보다 치열한 사립고등학교(이하 사립고)에 떨어진 신입 기간제 교사 고하늘(서현진 분)의 짠내 나는 고군분투는 진정한 교사의 의(義)를 찾아갈 그의 특별한 성장기에 기대감을 높였다. 여기에 담담한 시선 속에 선생님들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투영한 감각적인 연출과 촘촘한 서사, 어디에나 있을 법한 선생님들의 모습을 리얼하고 맛깔스럽게 녹여낸 배우들의 열연은 공감과 몰입을 극대화하며 완성도를 높였다. 이날 첫 방송에서는 고하늘의 인생을 바꾼 한 기간제 교사의 죽음으로 시작했다. 학생들을 태운 수학여행 버스가 터널에서 전복되는 사고가 일어났고,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고하늘을 구하려고 했던 김영하 선생님(태인호 분)은 비극적인 죽음을 맞았다. 고하늘은 마지막 인사를 위해 찾은 장례식장에서 김영하 선생님이 정교사가 아닌 기간제 교사였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그의 가족이 불합리한 현실에 괴로워하는 것을 지켜봤다. 고하늘은 사고가 있었던 터널 앞에서 “어떻게 그렇게까지 할 수 있었을까. 저는 그 답을 꼭 찾아야겠습니다”라며 목숨을 걸고 자신을 구해준 선생님의 길을 좇아 교사가 되기로 다짐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임용고시에 번번이 실패한 고하늘은 사립고의 ‘국어’ 기간제 교사 자리에 지원했다. 시범강의 면접에서 자신이 꼼꼼하게 준비한 수업과 입시 준비 전략을 펼쳐 보이며 선생님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지만, 작은 실수가 계속 맘에 걸렸다. 결과를 기다리던 고하늘은 인터넷 게시판에 올라온 익명의 기간제 채용 비리 고발 글을 발견했다. 기간제 채용시험에 이미 합격자가 내정되어 있다는 글에 실망한 것도 잠시, 오랜 시간 준비해 온 ‘노력파’ 고하늘에게 1년의 기간제 교사 자리가 주어졌다. 그렇게 고하늘은 박성순(라미란 분), 도연우(하준 분), 배명수(이창훈 분)가 있는 진학부에 적을 두며 꿈에 그리던 교사생활의 첫발을 뗐다. 설레는 마음으로 신입 교사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했지만, 학교의 분위기는 심상치 않았다. 새로운 기간제 교사들 중 ‘낙하산’이 있다는 소문이 퍼진 것. 게다가 ‘낙하산’ 라인이 문수호(정해균 분) 교무부장의 조카라는 사실이 알려지며 학교는 뒤숭숭했다. 고하늘의 혹독한 신고식은 엉뚱한 곳에서 시작됐다. 바로 문수호 교무부장이 그의 삼촌이었던 것. 이 학교에 외삼촌이 다니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던 고하늘이었지만, 이미 그는 동료들에게 ‘낙하산’으로 낙인찍히며 사립고에서의 생활은 가시밭길이 예고됐다. 함께 점심을 먹자며 살갑게 대했던 동료 기간제 교사들은 그를 껄끄러워했고, 차가운 시선 속에 학교에서 완전히 외톨이가 됐다. 학교에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 고하늘은 삼촌 문수호를 찾아가 “누구의 낙하산, 이런 식으로 시작할 수 없다”며 그만두겠다고 말했다. 이를 우연히 들으며 오해를 푼 진학부장 박성순은 고민하는 고하늘에게 “다 떠나서, 먼저 학생 포기하는 선생은 선생 자격 없는 것 아니겠어요?”라는 뼈있는 일침을 날렸다. 선생님이 되고자 했던 이유를 곱씹던 고하늘은 살얼음판 같은 사립고에 남기로 했다. 개학 첫날, 그만둔다는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평소와 다름없이 고하늘이 진학부로 출근했다. 담담하지만 결의에 찬 고하늘의 모습은 팍팍한 현실을 딛고 진정한 선생님으로 거듭날 그의 행보를 기대케 했다. 무엇보다 텅 빈 교실에서 주먹을 꼭 쥐고 눈물을 흘리던 서현진과 그 모습을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박성순의 깊은 눈빛은 두 사람이 그려나갈 워맨스에 기대를 한껏 끌어올렸다. ‘블랙독’은 총성 없는 전쟁이 벌어지는 사립고등학교에 떨어진 신입 기간제 교사 고하늘의 고군분투를 통해 첫 방송부터 짙은 공감을 안겼다. 고하늘을 구하려다 목숨을 잃었지만, 기간제 교사라는 이유로 부당한 대우를 받아야 했던 김영하 선생님과 그의 가족. 그의 길을 좇아 교사가 되고자 했으나 현실의 높은 벽에 실패를 맛봤던 고하늘은 겨우 ‘기간제 교사’라는 기회를 잡았다. 아이러니하게도 김영하 선생님과 같은 입장에서 교직 생활을 시작한 고하늘의 모습은 씁쓸한 현실을 보여주는 동시에, 앞으로의 전개에 궁금증을 증폭시켰다. 서현진, 라미란의 시너지는 기대 이상으로 완벽했다. 서현진은 낯선 학교생활에 실수를 거듭하면서도 다시 주먹을 불끈 쥐는 새내기 교사 고하늘의 ‘웃픈’ 적응기를 세밀하게 그려내며 시청자들의 공감을 이끌었다. 특히, 고하늘의 눈물겨운 ‘버티기’를 묵묵히 지켜보던 베테랑 진학부장 박성순을 그려낸 라미란의 연기는 압권이었다. 따듯한 말 한마디 없이도 그의 성장을 기다리는 박성순의 깊은 속내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라인타기, 미묘한 기싸움이 오고 가는 학교의 다이내믹한 일상을 리얼하게 그려낸 연기 고수들의 활약도 흥미로웠다. 할 말은 해야 하는 실력파 도연우로 분한 하준, 현실 선생님으로 놀라운 ‘착붙’ 싱크로율을 선보인 이창훈의 연기는 본격적으로 펼쳐질 ‘진학부’의 활약을 기대케 했다. 이밖에도 교무부장 문수호, 진학부와 앙숙인 3학년부 송영태(박지환 분)를 비롯해 변성주(김홍파 분), 이승택(이윤희 분), 윤여화(예수정 분), 지해원(유민규 분), 송지선(권소현 분) 등 현실을 고스란히 옮겨 놓은 듯한 개성 강한 선생님들이 곳곳에 포진해 극의 완성도를 높였다. 시청자 반응도 뜨거웠다. 방송을 접한 시청자들은 “첫 방송부터 완전 취향 저격”,“학교의 다른 모습을 발견하는 재미! 왠지 모르게 쫄깃하다”, “연기 맛집 서현진, 라미란! 시간 순삭”, “월화드라마는 무조건 ‘블랙독’”, “응원을 부르는 뉴‘공감캐’ 등장! 고하늘 정교사 꼭 돼라~”, “현실적이라 더 재미있다”, “라미란 뼈 때리는 한마디! 앞으로가 더 기대된다!”, “사립고 쌤들 연기만으로도 꿀잼”, “과연 사립고에서 고하늘 살아남을 수 있을까?” 등의 반응을 쏟아냈다. 한편 1회 시청률은 케이블, IPTV, 위성을 통합한 유료플랫폼에서 가구 평균 3.3% 최고 4.0%를 기록하며 순조로운 출발을 알렸다. (유료플랫폼 전국기준, 닐슨코리아 제공) ‘블랙독’ 2회는 오늘(17일) 밤 9시 30분 tvN에서 방송된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흥행 공식 모두 갖췄는데 많은 서사에 시동 꺼질라

    흥행 공식 모두 갖췄는데 많은 서사에 시동 꺼질라

    충무로의 블루칩, 박정민·정해인과 뭘 해도 다 되는 마동석이 만났다. ‘극한직업’, ‘엑시트’ 등 연초부터 이어진 가벼운 코미디도 대세다. 18일 개봉하는 영화 ‘시동’은 이처럼 흥행 공식 모두들 갖췄다. 그런데 뭔가 부족해 보인다. 이유가 뭘까. 영화는 2014년 연재를 시작해 평점 9.8을 기록한 동명의 웹툰을 토대로 했다. 학교도 싫고 집도 싫고 공부는 더더욱 싫다며 배구선수 출신 엄마(염정아 분)에게 ‘1일 1강스파이크’를 버는 반항아 ‘택일’(박정민 분)은 무작정 집을 뛰쳐나간 뒤 우연히 찾은 장풍반점에서 남다른 포스의 주방장 ‘거석이 형’(마동석 분)과 마주한다. “(마동석) 선배님이 가발 쓰신 거 보고 영화에 대한 확신을 얻었다”는 배우 윤경호의 말처럼 단발 퇴치병을 부르는 마동석의 비주얼은 강력하다. 집채만 한 덩치에 엉덩이를 흔들어 가며 트와이스의 ‘노크 노크’(knock knock) 춤을 추고, 살벌하게 눈을 부릅뜨고 자는 거석이 형의 모습은 웃음을 유발한다. 다만 비주얼 폭격에 따른 웃음은 일시적일 수밖에 없다. 시도 때도 없이 폭력을 행사하는 거석이 형이 주는 교훈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고, 후반부에 드러나는 형의 정체는 짐작 가능하다. ‘동주’의 독립투사 송몽규, ‘그것만이 내 세상’의 서번트 증후군을 앓는 피아노 천재 역을 열연했던 박정민의 연기는 여기서도 빛난다. 반항아의 노란 머리 클리셰가 유치하지만 그의 디테일 연기 덕에 그럭저럭 넘어갈 수 있다. 잘나가던 영화는 택일이 엄마의 가게에 추심하러 온 사채업자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으며 오열하는 장면에서 갑자기 다큐로 바뀐다. 동네 형 동화(윤경호 분)의 이끌림에 지하경제에 발 들이는 상필(정해인 분)은 청춘물보다는 ‘멜로’에 더 어울려 보인다. 유약한 눈빛 속 그 시절 겪는 치기나 지독한 불안은 실종됐다. 화려한 캐릭터에 미성년자 성매매, 조폭의 아귀 다툼, 사채, 재개발 등 다양한 사회문제를 얽은 영화는 결국 갈 길을 잃는다. 원작 웹툰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무인도에 가고 싶은 택일의 소망이나 등장인물들이 반복하는 ‘어울리는 일’이라는 말도 영화를 겉돈다. 최정열 감독은 지난 10일 언론 시사에서 “어울리는 일을 아직 찾지 못한 캐릭터, 어울리는 일인 줄 알았는데 아닌 걸 알게 된 캐릭터, 하다 보니 어울리는 일이 된 캐릭터가 나온다”며 “무엇이든 간에 괜찮다, 다시 돌아가서 시동을 켜도 된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캐릭터 각자가 다 ‘부릉부릉’ 시동을 걸다 보니, 관객들은 주의 집중해야 할 시동을 잃었다. 102분, 15세 관람가.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초콜릿’ 하지원, 윤계상과 멜로 눈빛 교환 “숨멎 엔딩”

    ‘초콜릿’ 하지원, 윤계상과 멜로 눈빛 교환 “숨멎 엔딩”

    드라마 ‘초콜릿’ 하지원이 주변 사람들을 위해 ‘한식 재능’을 본격 발휘, 섬세한 요리사 열연으로 ‘식욕 자극’ 일등 공신에 등극했다. 하지원은 지난 14일 방송한 JTBC ‘초콜릿’ 6회에서 호스피스 병원의 한식 요리사로 변신한 후 제대로 재능 발휘에 나서며 시청자들의 침샘을 폭발시켰다. 문차영(하지원)은 중국집에서 이강(윤계상)과 함께 김노인(오영수)의 사망을 기린 후, 한 우산을 쓰고 길을 나선 상황. 이강과의 묘한 감정을 뒤로한 채 일상으로 돌아온 문차영은 김노인이 자신 때문에 죽었다는 자책에 빠진 동생 문태현(민진웅)을 위해 정성스럽게 전복 삼계죽을 만들었다. “너 때문에 돌아가신 게 아냐, 자책하지 마”라며, 문태현에게 전복죽을 건네는 따뜻한 모습이 감동을 안겼다. 이후 문차영은 이준(장승조)의 부탁으로 이준이 오랫동안 짝사랑해온 누나 김희주를 위해 벚꽃 김밥을 만들었다. 이준이 준 도자기 접시에 벚꽃 김밥과 곁들일 샐러드를 정성스럽게 내놔 김희주를 대접한 터. 이준은 문차영이 보낸 사진을 본 후 자신이 만든 그릇에 완벽한 의미와 가치를 만들어낸 솜씨에 당황과 감동을 동시에 느꼈고, “고맙습니다, 셰프님”이라는 답변으로 진심을 표현했다. 나아가 문차영은 생일날 엄마를 만나러 병원에서 몰래 나간 어린 환자 지용이 사라졌다는 이야기에 급하게 지용을 찾으러 떠났다. 우여곡절 끝에 지용을 발견한 후, 문차영은 지용이 생일밥을 못 먹었다는 사실에 ‘편의점 생일파티’를 제안했다. 이후 문차영은 편의점 레트로트 식품만을 활용해 치킨 샐러드, 삼색 주먹밥, 미역국 만두 그라탕, 불닭 라볶이와 과자 케이크까지 뚝딱 만들어냈다. 실력을 제대로 발휘한 문차영의 모습에, 이강 또한 감탄을 드러내는 동시에 문차영을 더욱 궁금해 했다. 그런가하면 문차영은 병원으로 돌아오는 택시 안, 붕괴 사고 뉴스를 듣고 또 다시 트라우마에 빠졌다. 오랫동안 도로변에 앉아 있던 문차영은 자신을 발견한 이준의 도움으로 무사히 병원에 도착한 터. 같은 시간 문차영을 신경 쓰며 찾고 있던 이강은 문차영을 발견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후 이강은 자신을 찾아온 문차영에게 “술 한 잔 하자”며, “오늘은 몸도 안 좋은데 물을 마셔요”라고 얘기했고, “생일 축하해요!”라고 깜짝 발언해 문차영을 놀라게 했다. 이강을 흔들리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문차영의 ‘숨멎 엔딩’으로 극이 마무리됐다. 이날 방송에서 하지원은 셰프로서의 ‘본업 재능’을 똑 부러지게 소화하며 몰입도를 끌어올리는 동시에, 붕괴 사고 트라우마와 멜로 눈빛까지 자유자재로 오가는 ‘초 단위 열연’으로 시청자를 완벽히 사로잡았다. 아울러 윤계상과의 멜로 서사를 서서히 쌓아가며, 앞으로 펼쳐질 숨 막히는 케미에 대한 기대감을 끌어올렸다. 방송 후 시청자들은 “오밤중에 배고파서 혼났다” “역시 믿고 보는 하지원의 전문 열연!” “요리사 문차영 그 자체였다! 요리하는 모습이 나올 때마다 집중 또 집중” “문차영과 이강의 케미 대박! 다음 주가 너무 기다려져요” 등 최고의 반응을 드러냈다. ‘초콜릿’ 7회는 20일 금요일 밤 10시 50분 JTBC에서 방송된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김초엽 작가의 과학을 펼치다] 그 AI에게 필요한, 단 하나뿐인 그녀

    [김초엽 작가의 과학을 펼치다] 그 AI에게 필요한, 단 하나뿐인 그녀

    유령해마/문목하 지음/아작/364쪽/1만 4800원 한 여자의 생애를 지켜본 인공지능이 있다. 그는 여자의 삶 매 순간을 알고 있다. 일곱 살 ‘이미정’이 재난 현장에서 구조되던 순간부터 입양과 파양을 거듭 겪으며 보육원에서 자라나고, 기자가 돼 우연히 만난 아이를 돌보고 또다시 비극을 경험하는 순간까지 모두. 한 사람의 삶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인공지능이라니, 징그럽게 들릴지 모르지만 ‘해마’라고 불리는 범용 인공지능들에게는 당연한 일이다. 재난구조 로봇으로, 지하수 정화관리자로, 지구 궤도의 인공위성으로 몸을 바꾸어 가며 일하는 해마들에게는 각각의 해마들이 목격하는 4000만명의 삶이 네트워크를 통해 쏟아져 들어오기 때문이다. 사실 이미정은 단지 해마가 지켜보는 수많은 사람들 중 한 명에 불과했다. 어느 날 한 해마가 오직 그 여자를 간절히 필요로 하는 일이 생기기 전까지는. 문목하의 ‘유령해마’는 범용 인공지능 해마가 지구로 파견돼 공공 업무를 수행하는 근미래 한국을 배경으로 해마 비파와 기자 이미정의 이야기를 그려 낸다. 어떤 형태로든 변할 수 있는 해마의 시선에서 진행되는 소설은 평범한 1인칭에 익숙한 독자들이 상상력을 총동원하도록 흥미로운 서술을 이어 간다. 해마들이 살고 있는 ‘중앙’은 지구와 분리된 세계처럼 묘사되는데, 이곳에서 해마는 인공지능들만의 규칙을 따르며 질문에 답한다. 해마들은 서로 농담을 주고받으며, 지구를 관찰하고, 끊임없이 주어지는 임무를 수행한다. 그런데 비파는 자신이 해결하지 못한 임무의 유일한 해결책이 이미정이라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된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이미정은 비파에게 반드시 만나야 하는 단 한 명의 특별한 인간이 된다. 작가는 보다 과감한 시도로 나아가 인공지능들의 환상적인 세계를 생생하게 풀어 가면서도 동시에 지금 이곳에 가장 근접한 서사를 환상성의 세계에 겹쳐 놓는다. 언뜻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개의 플롯이 씨실과 날실처럼 교차하며 만들어 내는 독특하고 매력적인 분위기가 작품 전반에 흐른다. 장르소설을 즐겨 읽는 독자에게도, 아직은 장르소설이 낯선 독자에게도 새롭고 즐거운 독서 경험이 될 것이다.
  • 웃어 주는 여자들? 웃겨 죽는 여자들!

    웃어 주는 여자들? 웃겨 죽는 여자들!

    “이 잘 만들어진 리얼돌도 부족한 점이 하나 있더라고요. 남성분들이 간과한 게 있는데 이 리얼돌이 롱런하려면 이 기능이 추가돼야 해요. 모순적인 명령을 실행하는 기능요. ‘천박하고 퇴폐적이되 기품을 잃지 마.’”(고은별) “‘미쳐도 곱게 미쳐라’는 여자들한테 하는 이야기죠. 여자가 미치면 머리에 꽃을 꽂잖아요. ‘너네가 미쳤다고 꾸밈 노동에서 벗어날 수 없어’라는 메시지가 담긴 거죠.”(김보은) 지난 7일 토요일 오후 8시. 서울 용산구의 한 공연장에 관객 100여명이 모였다. 무대 위에 놓여 있는 건 마이크 스탠드와 마이크뿐. 텅 빈 무대에 차례로 오른 여성 7명은 마이크를 잡고 10분씩 ‘농담의 향연’을 펼쳤다. 가부장제의 부조리함부터 연극에서 여성 캐릭터에게 요구되는 이미지, 직장인의 애환, ‘29금’ 성적 농담까지 솔직한 이야기가 쏟아졌다. 우스꽝스러운 분장도, 화려한 무대 장치도, 재미를 극대화할 소품 하나 없이 오로지 입담만으로 무대를 채운 이들은 여성 코미디언으로만 구성된 스탠드업 코미디 크루 ‘블러디 퍼니’다. 이날 첫 정기공연을 선보인 블러디 퍼니의 반전 가득한 이야기에 관객들은 한 시간 30분 동안 깔깔대며 환호했다. 국내에서 한동안 명맥이 끊겼던 스탠드업 코미디가 최근 몇 년 사이 활기를 띠고 있다. 방송인 유병재와 박나래가 넷플릭스를 통해 스탠드업 코미디쇼를 선보였고, 지난달에는 KBS가 박나래를 진행자로 내세운 ‘스탠드업’을 방영하면서 화제를 모았다. 방송뿐만 아니라 홍대 인근 공연장이나 호프집 등에서 스탠드업 코미디 공연이 정기적으로 열린다. 현장에서도 스탠드업 코미디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지만 남성 중심의 웃음 코드가 뿌리 내린 한국에서 여성 코미디언들의 목소리를 듣기는 쉽지 않다. ‘여자는 남자보다 웃기지 않는다’는 편견 아래 여성은 코미디에서 주체보다는 객체에 머물 때가 많았다. 지난해 2월부터 활동을 시작한 스탠드업 코미디언 최정윤씨가 지난해 말 여성으로만 구성된 스탠드업 코미디 크루 ‘블러디 퍼니’를 꾸리게 된 것도 이와 맞닿아 있다. 고등학교 때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대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에 돌아온 뒤 번역가, 외신 기자 등의 일을 했던 최씨는 지난해 초 우연히 오픈 마이크(아마추어 공연자가 설 수 있는 무대)에 도전할 기회를 얻어 한 달간 무대에 섰다. 그러다 스탠드업 코미디를 제대로 배워야겠다는 생각에 ‘코미디언의 성지’로 여겨지는 미국 뉴욕의 한 코미디 클럽에서 두 달 동안 수업까지 듣고 돌아왔다. 현재는 문을 닫았지만 지난해 6월 문을 연 스탠드업 코미디 전용 클럽 ‘코미디 헤이븐’에서 유일한 여성 출연진으로 무대에 섰던 최씨는 시간이 지날수록 궁금해졌다. 여자 코미디언은 왜 이렇게 적을까. 그래서 최씨는 스스로 ‘웃기는 여자’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무대 위에서 사라진 여자들의 목소리를 키우기 위해서다. 최씨는 먼저 코미디 헤이븐에서 진행된 오픈 마이크에 종종 참여한 최예나씨를 섭외했다. 이후 두 사람이 다른 여성 코미디언들과 함께 서울과 부산에서 진행한 ‘그날’이라는 스탠드업 공연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은 고은별, 이슬기씨가 팀에 합류했다. 지난 10월에는 스탠드업 코미디와 연극을 결합한 공연에서 협업한 것을 계기로 연극배우 경지은, 김보은씨도 블러디 퍼니의 구성원으로 활동하게 됐다. 정기공연을 이틀 앞둔 지난 5일 만난 이들은 “여자들은 늘 ‘웃어 주는 사람’으로 남아 있기를 바라는 사회의 편견을 넘어 여자도 ‘웃기는 사람’이라는 걸 제대로 보여 주고 싶다”고 했다. -여성 코미디언이 적은 이유는 왜일까요. 최정윤 “제 생각엔 웃기는 여자도 되게 많고 코미디를 하고 싶어 하는 여자도 많거든요. 그런데 사람들은 여자가 무대 위에 올라가는 것을 좋게 여기지 않는 것 같아요. 결혼식 사회자만 봐도 여성들이 나서는 경우는 거의 없잖아요. 나이 있는 희극인 남성들이 이런 말을 하는 걸 몇 번 들었어요. ‘(코미디를) 짜는 여자들이 있기는 하지만 잘 짜는 여자들은 드물다’고요. 저는 여자들이 코미디를 잘 못 짠 게 아니라 본인의 아이디어를 올릴 수 있는 기회 자체가 주어지지 않았던 거라고 생각해요.” 최예나 “제가 예전에 돌잔치에서 사회를 본 적이 있었는데 그때 한 남성분이 저를 보더니 ‘여자가 하네요’라고 하시더라고요. 그 말엔 많은 뜻이 내포돼 있잖아요. 일단 사회를 맡은 여자를 처음 본다는 의미가 있었고 사회를 맡은 저를 약간 못 미더워하는 뉘앙스도 묻어 있었고요. 이런 분위기가 코미디언들 사이에도 있어요. 여자 코미디언이 준비한 코미디는 남자 코미디언들이 많은 곳에서는 공감을 못 얻고 뒤로 밀리거든요.” -여성 코미디언들로만 이루어진 팀이라서 좋은 이유가 있을 것 같아요. 최정윤 “여성 동료들과 공연을 하면서 느끼는 게 웃음을 주는 엔터테인먼트 판에서 저희는 마이너리티이기 때문에 저희처럼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고민을 더 하게 되더라고요. 그런 면에서 코미디의 깊이나 내용의 질적인 부분에서 더 깊어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또 서로를 보면서 ‘얼마나 잘하나 보자’가 아니라 ‘잘했다’는 응원을 해 주니까 서로 성장할 수 있고요.” 이슬기 “방송에 출연하는 남성 코미디언들을 보면 자신들끼리 서열화된 모습을 개그로 많이 쓰잖아요. 어떤 사람은 신으로 묘사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의 ‘라인을 따른다’고 언급하기도 하고요. 그렇게 되면 누군가는 특정 역할 이상을 맡지 못하게 되잖아요. 저희들끼리는 누가 1등인지 누가 우두머리인지 상관하지 않아도 되니까 눈치를 볼 필요도 없죠.” -각자 생각하는 스탠드업 코미디의 매력은 뭔가요. 최예나 “저는 방송사 코미디언 공채 시험을 준비하면서 학원을 다녔었는데 여자들은 주체적으로 웃기기보단 어떤 특정 역할로 많이 쓰여요. 예쁜 역할, 못생긴 역할, 뚱뚱한 역할, 마른 역할 이런 식으로요. 콩트를 짜면 저 같은 경우는 뻔한 역할만 맡았어요. 아줌마나 혹은 마르고 예쁜 여자를 시기하는 못된 선배 같은 역할요. 스탠드업 코미디에서는 남이 부여하는 역할에서 벗어나서 자기가 내고 싶은 목소리를 내고 자기에게 어울리는 색깔을 보여 줄 수 있어서 좋아요.” 최정윤 “한국에서 코미디언이라고 하면 끼도 엄청 많고 뭔가 나대야 되고 무대에서 기도 안 죽는 사람이어야 하잖아요. 스탠드업 코미디 자체는 내가 어떤 성향인지는 전혀 상관없거든요. 내 매력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농담을 잘하면 좋은 스탠드업 코미디언이 될 수 있다는 게 멋있죠.” 이야기의 결은 다르지만 이들이 코미디의 소재로 삼는 건 한국 사회에서 여자로 살아가면서 느끼는 애환과 고충이다. 지난해 스탠드업 코미디 개론서인 ‘스탠드업 나우 뉴욕’(왓어북)을 펴내기도 한 최정윤씨는 “뉴욕에서 코미디 수업을 들었을 때 선생님이 자신의 감정에 가장 큰 반응을 일으키는 이야기에 재미가 숨어 있다고 했다”면서 “아무래도 일상에 맞닿아 있는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된다”고 말했다. -무대에서 주로 어떤 이야기를 하나요.최정윤 “저는 낮에는 구성애 선생님이 운영하는 ‘푸른아우성’에서 성교육 강사로 활동하고 있거든요. 성교육 수업을 할 때 아이들로부터 생각지도 못했던 말을 들을 때가 많아요. 거기서 이런저런 재밌는 에피소드를 많이 가져옵니다. 한국 사람들이 어릴 때 제대로 된 성교육을 못 받고 성인이 된 탓에 사회문제가 많이 생기는데 그런 면에서 관객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지려고 해요.”김보은 “저는 문화예술계 성폭력 예방 교육 강사도 하고 있어요. 무대 예술 작품을 만들 때 왜 젠더 의식이 필요한지 현재 작품들은 어떤 점이 문제인지 이런 이야기를 하는데 강의를 할 때 다 하지 못한 말들을 스탠드업 무대에서 하기도 해요.”고은별 “사회적인 이슈 중 여자랑 연관이 없는 게 별로 없잖아요. 그래서 코미디의 소재로 엮을 수 있는 게 많은 것 같아요. 저는 정기공연에서 리얼돌에 대한 이야기도 할 예정이에요.” 아무래도 대중에게 익숙한 코미디는 ‘코미디 빅리그’나 ‘개그 콘서트’와 같은 짜여진 대본에 따라 연기하는 콩트나 ‘몸개그’라고 불리는 슬랩스틱을 다루는 프로그램이다. 이런 프로그램에서 여성 코미디언은 조롱거리나 희화화의 대상으로 소비될 때가 많다. 남성의 관점에서 얼굴이나 몸매를 평가받고 성적인 농담이나 여성 혐오 발언에 고스란히 노출된다. -기성 코미디 프로그램에서는 여성 코미디언들이 불편한 농담의 대상이 돼야 할 때가 많은 것 같아요.최예나 “코미디언 공채를 준비하면서 학원에 다닐 때 성차별 때문에 스탠드업 코미디 쪽으로 도피했거든요. 코미디를 빙자해서 여자 위에 남자가 올라가서 성행위를 하는 듯한 몸짓을 하기도 해요. 경력이 얼마 안 되는 여자들에게 함부로 대하고 그럴 때 가만히 있지 않고 대들면 예민하고 유별난 사람 취급을 하고요. 여자에 대한 혐오가 너무 심하죠.”경지은 “제 코미디의 소재가 자기 비하적이고 자조적인 내용이거든요. 실제로 외모나 행동이 여성스럽지 못해서 조롱을 많이 받았어요. 제가 속한 무리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나 자신을 더 격하해서 웃기거나 남자 선배가 내 외모로 웃기려고 할 때 그냥 수긍하기도 했어요. 스탠드업 무대에서 제가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건 이제 제가 더이상 그런 선택을 하지 않는 쪽으로 변화했다는 걸 보여 주고 싶기 때문이에요.” -그런 점에서 박나래씨가 도전한 스탠드업 코미디쇼 ‘박나래의 농염주의보’는 여러모로 의미가 있을 것 같아요. 고은별 “내용에 대한 비판을 하기 전에 유명세 있는 사람이 새로운 시도를 한 건 엄청난 위험 부담을 감수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그 자체가 대단하고 용기 있는 시도였다고 생각해요. 박나래씨 덕분에 스탠드업 코미디에 대한 조명도 많이 되고 있거든요. 관심이 전무하던 상황에서 그 자체로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해요.” 최예나 “저는 현장에서 직접 공연을 봤는데 반응이 진짜 뜨거웠어요. 어떤 분은 미국 여성 코미디언 앨리 웡의 스탠드업 코미디를 보고 영향을 받아서 삶이 바뀌기도 했는데 ‘박나래의 농염주의보’에는 그런 내용이 없어서 아쉬웠다고도 하시더라고요. 제가 생각할 땐 미국에서 스탠드업 코미디를 하는 여자들의 스펙트럼은 넓고 색깔도 다양하잖아요. 우리나라에서는 (여자로서는) 박나래씨 한 분이 선보인 거니까 그분만 보고 쉽게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해요. 일단 물꼬를 터 줘 고맙죠.” -앞으로는 어떤 활동을 계획하고 계신가요.이슬기 “앞으로 두 달에 한 번씩 정기 공연을 선보일 예정이에요. 지난 9월부터 격주에 한 번씩 해방촌에서 진행하고 있는 오픈 마이크도 계속해서 운영할 예정이고요. 재즈 보컬리스트, 래퍼 등과 협업해서 다양한 방식으로 관객들을 만날 생각입니다.” 최정윤 “저는 언젠가는 각자 한 시간씩 스탠드업 쇼를 할 수 있으면 멋있을 것 같아요. 한 시간을 메운다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아서 어떤 사람은 3년이 걸릴 수도 누군가는 10년이 걸릴 수도 있겠지만 모두 다 그걸 해낼 수 있으면 좋겠어요.” 김보은 “저는 다른 여성들도 스탠드업 코미디에 관심을 가져서 꼭 저희 팀이 아니더라도 자신들만의 크루를 꾸려서 코미디를 하셨으면 좋겠어요.” 최예나 “나중엔 여성 스탠드업 코미디 크루끼리 타이틀을 걸고 대항전을 해도 재밌겠네요(웃음).”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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