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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소 우호·경협 더욱 다져질듯/소 쿠데타 실패이후의 양국관계

    ◎시베리아개발등 투자사업 박차/대북·유엔정책 수행에 자신감/북한,혼란 가중… 폐쇄노선 설땅 잃어 소련 보수강경파의 쿠데타가 「3일천하」로 끝남으로써 한소우호협력관계는 더욱 공고해질 것같다. 노태우대통령도 22일 언론발표를 통해 이 점을 강조했 듯이 이번 사태는 한소관계가 한반도와 동북아지역에서 지니는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정부로서는 30억달러의 대소경협과 관련,미국 등 일부 서방국가들로부터 성급하다는 눈총을 받아왔으나 이번 사태를 통해 소련과의 경제협력관계를 더욱 가속화할 수 있는 명분을 얻었다고 볼 수 있다. 더욱이 대소경제원조에 난색을 표시했던 서방국가들도 세계평화와 안정을 위해서는 소련의 지속적인 개혁정책을 지원해야 한다는 점을 충분히 인식했다고 볼때 오히려 한국의 선도적인 대소협력자세는 새삼 평가될 만한 것이다. 정부는 대소경협을 예정대로 집행하는 것은 물론 한소어업협정 등 각종 협정체결과 시베리아개발 등 투자사업에도 더욱 박차를 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소련쿠데타실패가 남북한관계,특히 북한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클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소련에 쿠데타가 일어나자 이례적으로 신속 보도하고 쿠데타세력을 고무·찬양하는 태도로 나왔다가 「실패」이후에는 사실보도도 없이 침묵을 지키고 있다. 이는 북한이 지금 노선의 혼란을 일으키고 있음을 뜻한다.이번 사태는 또 폐쇄정책을 고수하며 부자세습체제로 권력이양을 추구하고 있는 북한의 입지를 더욱 좁히고 있다. 이제 소련이 군부등 보수강경파를 배제하고 서방국들의 지원하에 개혁·개방정책을 가속화시켜나갈 것이 분명한 상황에서 북한은 국제사회의 거대한 개방압력에 직면하게 될것이다. 따라서 북한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민주화와 개방이라는 대세의 흐름을 뼈저리게 느낄 것이며 앞으로의 남북한 관계에서도 그같은 징후들이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그들은 소련에 쿠데타가 나자 돌연 오는 27일의 제4차평양남북고위급회담을 남쪽의 콜레라발생을 이유로 판문점에서 회담을 열자는등 대화거부자세를 취했으나 조만간 태도변화를 보일 것으로 보인다. 오는 9월 남북한이 유엔에 가입하고 유엔총회에서 한반도문제가 다뤄질 경우 소련은 종전보다 더 전향적인 자세로 우리에게 우호적인 입장을 표명할 것으로 관측된다. 전반적으로 보아 이번 소련사태를 계기로 한소관계는 더욱 강화될 것이며 우리의 대유엔외교,대북정책은 확실한 자신감 속에 강도 높게 추진될 것이 분명하다. ◎노 대통령 소 사태 언론발표 전문 나는 소련이 불행한 사태를 큰 유혈없이 단기간에 극복하고 헌정질서를 회복한 것을 환영합니다.고르바초프대통령이 모스크바에 귀환하여 합헌적인 통치권을 회복하고 있는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소련의 갑작스런 사태에 우리는 충격과 우려를 금할수 없었습니다.세계에 냉전질서를 종식시키고 한소관계를 정상화한 고르바초프대통령의 안위에 대해서도 큰 걱정을 했습니다. 세번에 걸친 정상회담을 통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세계의 평화에 관해 깊은 마음을 주고 받은 나로서 지난3일간은 인간적으로도 매우 고통스런 시간이었습니다. 우리는 소련의 사태가 비단 소련 국내문제일 뿐 아니라 세계의 장래는 물론 우리와도 직결된 문제임을 실감했습니다. 오늘의 사태진전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향한 소련국민의 결의와 용기의 위대한 승리입니다.옐친 러시아공화국 대통령을 비롯한 소련지도자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과 지도력이 그것을 이끌어냈습니다.나는 이에 대해 소련국민과 지도자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소련사태에 대해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단합되고 효율적인 행동은 소련사태의 정상화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자유와 민주주의는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역사의 흐름이 되었습니다.세계는 이 조류를 더욱 진전시켜 평화롭고 화해로운 하나의 세계를 실현하는데 협력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나는 세계 각국이 소련이 현재 맞고 있는 어려움을 극복하고 개혁을 진전시키도록 적극적인 지원을 해나가기를 바랍니다. 소련사태의 정상화를 전기로 한소우호협력관계가 더욱 강화되고 지속적으로 발전될 것으로 믿습니다.
  • 미 대사 소에 급파

    【워싱턴 AP 로이터 UPI 연합】 조지 부시 미대통령은 20일 실각한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의 권력회복을 미국과 서방측이 지지하고 있으며 「불법 쿠데타」를 일으킨 공산당 강경파에는 경제원조가 제공되지 않을 것이라고 보리스 옐친 소련러시아 공화국 대통령에게 말했다. 그는 이날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이날 옐친 대통령과 전화로 회담하여 이같이 말했다고 밝히고 그러나 고르바초프 대통령과도 접촉하려고 여러차례 시도했지만 실패했다면서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건강상의 이유로 하야했다는 쿠데타 세력의 공식발표는 「낡은 속임수」라고 말했다.
  • 미의 외교 목조르기 주효했다/부시,왜 강력대응했나

    ◎“반개혁세력”국제사회서 고립 압력/옐친 지원·차관취소 천명,기세 꺽어 조지 부시 미대통령은 쿠데타로 고르바초프대통령을 전복시킨 소련의 새 지도부를 국제사회의 이단자로 고립시키기 위한 외교적 조치를 취하기 시작했다.그는 또 이 쿠데타에 대한 가시적인 저항의 심벌로서 보리스 옐친 러시아공화국대통령을 지원하고 나섰다. 부시대통령은 20일 회견에서 『이 불법적인 쿠데타가 효력을 갖는한 우리는 쿠데타음모자들에게 미국과 정상적인 관계는 없을 것임을 분명히 할것』이라고 말했다.그는 소련의 새 지도부를 이라크및 리비아와 같은 「이단정권」으로 비유했다. 이날 워싱턴에서 휴양지 케네벙크포트로 다시 돌아온 부시대통령은 옐친에게 전화를 걸어 그의 거국적인 쿠데타 반대호소와 헌정회복 요구에 지지를 표명했다. 이와 함께 부시는 미국의 쿠데타 반대를 강조하기 위해 로버트 스트라우스 주소신임대사를 모스크바에 급파했다.스트라우스는 모스크바에서 수일간 체재한 뒤 워싱턴으로 다시 돌아와 부시에게 소련정세등을 보고할 예정이다. 부시는 또 소련사태에 대한 서방측의 공동보조를 모색하기 위해 제임스 베이커 국무장관을 나토 긴급회의에 파견했다. 부시의 이같은 조치는 걸프사태때 이라크를 응징하기 위한 국제적 컨센서스 구축에 사용했던 방식을 그대로 답습한 것으로서 국제적 규범을 벗어난 행위는 용납될 수 없음을 분명히 하겠다는 뜻이다. 부시가 노린 「국제적 컨센서스」는 굳어져 가고 있는 느낌이다.EC(유럽공동체)는 모스크바에 대한 10억달러 이상의 원조중단선언과 더불어 고르바초프의 북귀를 요구하고 나섰고,케야르 유엔 사무총장은 소련지도부에 대해 최대한의 자제력 발휘와 사태의 평화적·합법적 해결을 촉구했다. 폴란드의 레흐 바웬사대통령은 『고르바초프의 실각으로 유럽에서 미국과 나토의 강력한 군사력 유지 필요성이 입증됐다』고 말했다. 부시는 또 동구지도자들과의 대화를 통해 『동구각국의 민주화는 후퇴될 수 없다』고 다짐했다. 부시와 그의 고위보좌관들은 소련의 쿠데타가 좌절되기를 바라고 있다.그러나 대응방안은 고르바초프의 권좌복귀가가까운 장래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전제 아래 수립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부시가 지금까지 내보낸 메시지는 한마디로 말해 「미국은 소련의 개혁파를 지지하며 쿠데타 지도자들의 권위를 정당화시킬 협상은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부시는 앞으로 케네벙크포트 해변의 개인별장에서 남은 휴가 2주일을 보내며 소련사태를 주시,대책을 협의해 나갈 예정이다.그는 케네벙크포트에서 러시아공화국 외무장관을 만날지도 모른다.옐친은 휘하 외무장관의 미국파견을 고려중인 것으로 알려졌다.이번 사태와 관련,부시는 소련에 대한 미국정부의 차관보증·곡물수출·기술원조 등이 중단될 것이라고 거듭 천명했다. 부시는 주소대사로 임명한 스트라우스로부터 당초 예정보다 2주일 빠르게 부임선서를 받았다.그러나 스트라우스는 미국이 모스크바의 현 지도부를 합법정부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에서 소련측에 신임장을 제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부시는 밝혔다.스트라우스는 자신의 임무를 『모스크바에 가서 자유와 민주주의 원칙,그리고 법치에 관해 아주 분명하고 솔직하게 주지시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부시는 옐친과 다시 통화할 계획이며 고르바초프와의 접촉도 계속 시도할 예정이다. 현재 미국정부는 고르바초프의 소재와 상황에 관해 알지 못하고 있다.말린 피츠워터 백악관대변인에 따르면 백악관은 백악관 구내전화와 유사한 통상적인 크렘린 호출채널을 통해 고르바초프와의 통화를 시도하고 있으나 불재중이라는 답변만을 듣고 있다는 것이다. 부시대통령은 설령 개혁주의자가 포함됐더라도 고르바초프가 배제된 소련정부에 대한 지원문제는 검토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부시는 고르바초프가 와병중이라는 모스크바 성명과 소련 국민의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경제개혁을 지속하겠다는 소련 신정부의 주장을 불법적인 권력찬탈의 호도책으로 볼뿐 진실이라고 생각하지는 않고 있다. 부시는 또 미국이 고르바초프를 좀 더 많이 도와줬더라면 이번 쿠데타를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주장이나 그의 정책을 고르바초프 운명에 너무 밀착시키고 있다는 비난도 일축하고 있다.그는 『민주주의에 대한 최상의 희망』이 그의 정책이라고 강조하며 이번 쿠데타의 결과가 무엇이든 소련과 동구에서 민주주의와 개혁의 물결은 거스를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 소 사태가 우리경제에 미치는 영향/긴급대담

    ◎“당분간 과실송금·자본회수등에 지장”/진출기업 정상조업… 경협에 급변 없어/연방정부로 수출입창구 단일화 가능성/“미의 대소정책도 변수… 유연한 대응방안 수립을 소련사태가 혼미를 거듭함에 따라 소련에 진출한 기업을 비롯한 경제계의 관심도 온통 소련에 쏠려있다.현재 활발히 추진되고 있는 대소경제협력은 어떻게 될 것인가,소련과의 경제관계는 과연 계속될 것인가.앞으로 소련정국의 향방이 우리 경제에도 지대한 영향을 줄것이기 때문이다.소련진출의 선두인 진도의 정효현 소련담당상무와 소련경제전문가인 현대경제사회연구원 이기영박사와의 대담을 통해 소련사태가 우리 경제에 미칠 영향과 진출기업들의 현황,우리의 대처방안 등을 알아본다. ▲이기영실장=소련의 정국혼미가 3일째 계속되고 있습니다.현 상태로 봐선 군부를 등에 업은 강경보수파의 쿠데타의 성공여부를 점치기는 어렵습니다.그러나 다른 나라의 사례에서 흔히 볼 수 있었듯이 국민들의 반발이 완강하지 않는한 군부 쿠데타는 성공해왔고 미국 또한 결국 그 정권을 인정해왔습니다. 만에 하나 고르바초프가 재집권하거나 옐친등과 같은 제3의 인물이 소련의 새지도자로 떠오를 가능성도 배제할수는 없는 상황입니다. ▲정효현상무=고르바초프 실각이후 현지 지사로부터 들어오는 연락으로 보아 소련의 쿠데타 상황이 외신이나 국내언론을 통해 알려진 것만큼 심각한 정도는 아닌 것 같습니다.모스크바나 레닌그라드등 큰 도시를 제외한 대부분 소련 국민들은 정치적 격변에도 불구하고 예전대로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고 밖에서 느끼는 것만큼 큰 우려를 나타내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오늘 아침에는 크렘린궁의 통행이 통제되고 러시아공화국 청사 부근에는 2천여명의 시민이 몰려있으며 유혈충돌도 있었지만 일상생활에는 별지장이 없다는 연락이 왔습니다.따라서 현재로선 쿠데타의 성공여부나 내전확산등을 점치기는 어렵다고 봅니다.앞으로 2∼3일이 고비인것 같습니다. ○소련인들 정상생활 ▲이실장=어쨌든 쿠데타세력은 국민들의 소요에 대비해 미국등 외국의 반응을 포함,대내외 경제문제까지도 충분히 고려한 단계에서 고르바초프축출을 시도했을 것입니다.경제문제에 국한해서 우리가 직시해야 할 부분은 소련경제의 현실인식입니다.소련은 지난 5년간 고르바초프가 추진해온 페레스트로이카 정책과는 상관없이 3년째 경제성장이 감소하는 추세에 있으며 이기간동안 3백%이상의 인플레이션과 심각한 실업문제로 고민하고 있습니다.특히 식량문제는 심각합니다.따라서 앞으로 누가 집권하든 대내적으로 물가의 동결을 비롯해 생필품및 식량의 배급제등 강력한 통제경제정책을 추진하고 대외적으로는 국내 경제의 피폐를 막기 위해 상당부분 개방하는 유화책을 쓸 것으로 보입니다. ▲정상무=현재 소련에 투자를 하고 있는 기업은 우리 진도를 비롯 현대종합상사·삼성물산 등 7개업체입니다.진도는 지난 83년부터 중개상을 통해 레닌그라드에 모피시장을 개척했고 85년에는 우리 정부 및 소련 정부의 허가를 받아 현지 공장을 세웠습니다.진도가 소련에 본격 진출한 것은 「JIN DO RUS」현지 법인을 설립한 89년부터입니다.그동안 주로 소련을 찾는 외국 관광객을 대상으로 상품을 판매해큰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이실장=한소간 경제협력은 지난 89년이후 급격히 증가했습니다.교역규모만 해도 88년 3억달러에서 지난해는 9억달러로 늘었습니다.특히 양국간 시베리아개발사업이 추진되면서 대소교역은 급진전을 보이고 있습니다. 지난 5월 고르바초프대통령의 방한이후 30억달러 차관약속은 나름대로 큰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일부에서는 이미 건네준 5억달러에 대한 회수가 어렵지 않을까 우려하는 시각도 있지만 사태가 어떻게 진행되든 멀리보아 계획대로 주는 것이 바람직할 것 같습니다.30억달러는 우리에게 무척 큰 돈입니다.그러나 소련측으로선 별 것 아닐 수도 있습니다.우리가 안주겠다면 그들로선 「주기 싫으면 그만두라」고 가볍게 여길 수 있는 규모입니다.그러나 장기적인 안목에서 대소수출의 전망과 원만한 정치·경제적 협력관계를 위해 30억달러정도는 충분히 투자할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 ○상당부분 개방할것 ▲정상무=보수파와 군부가 집권에 성공하더라도 이들 신집권층은 소련이 자체적으로 물자 및 자원 등을 조달할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서방과의 경제협력 및 타협을 추구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또한 페레스트로이카(개혁)와 글라스노스트(개방)를 표방한 고르바초프가 지난 85년 집권한 뒤 소련인들의 외국여행과 외국인들의 소련방문이 급증,많은 소련인들이 자유와 자본주의의 좋은 점을 맛보았기 때문에 보수파가 기왕의 개혁정책에서 후퇴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이번 쿠데타로 인해 한소경제교류 및 협력이 지장을 받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봅니다.그러나 보수파가 집권할 경우 당분간 통제정책을 실시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과실송금 투자자본의 회수가 원활히 이루어질 수 있을지 걱정됩니다. 레닌그라드에 있는 지사 직원들에 따르면 현지 공장은 이번 사태에도 불구하고 정상적으로 가동되고 있답니다.현지 직원들도 평소와 다름없이 모두 출근해 일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실장=소련에 진출한 다른기업들도 예정대로 일을 하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이번 쿠데타가 성공한다면 새로운 집권층은 국내적으로는 1∼2년간 물자관리를 하고 가격통제정책을 강력히 추진하는등 강경한 정책을 추구할 것으로 예상되며 4∼5년간의 내부진통이 전망되지만 대외적으로는 외국과의 경제협력을 위해 유화정책을 펼것으로 전망됩니다. 국내기업으로서는 소련의 상황보다는 오히려 미국의 입장을 고려해야하는 문제가 있습니다.미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국내기업이 소련에 계속 진출하는것은 한미관계상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정상무=고르바초프가 재기하게 되면 기업들의 어려움은 없겠지만,군부가 실권장악에 성공할 경우에는 그들의 통제경제나 자유경제에 대한 정책기조에 따라 기업들의 대응방안이 좌우될 것입니다.진도의 경우는 고르바초프가 집권하기 전부터 소련에 진출했기 때문에 근본적인 변화는 없겠지만 다른 기업들은 보수파가 집권할 경우 그들이 유화조치를 취하더라도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입니다. ○차관약속 지키도록 ▲이실장=보수파의 등장으로 한소우호관계가 근본적으로 변하지는 않을 것입니다.소련은 동북아에서 미국및 일본의 영향력을 막을 필요가 있기 때문에 한국과의 관계가 멀어지는 것은 원치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한소경제관계도 큰 틀은 변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됩니다.경제관계는 큰 타격이 없을 것이며 오히려 이런 기회가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봅니다. 위험은 있지만 장기적인 견지에서 투자효과는 클 가능성도 높기 때문에 기업들이 이번 사태로 서둘러서 대소진출을 포기하거나 지나치게 관망만 할 필요도 없다는 생각입니다. 당분간은 대소수출이 격감될것이 불가피하겠지만 장기간이 필요한 자원개발과 관련된 진출은 별로 큰 영향을 받지는 않을 것으로 봅니다. 이번 사태로 보수파가 집권할 경우 시계의 추는 분명히 뒤로 가겠지만 그 시계는 이미 스탈린시대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을것이며 오히려 이번 사태를 통해 연방정부로 진출창구가 단일화될 가능성도 있기때문에 투자가 용이해질수도 있다고 봅니다. 보수파의 경제정책은 중요한 핵심상품및 기업에 대한 통제이기때문에 현재와 큰 차이는 없을 것입니다. ○장기적으로 유리해▲정상무=소련은 방대한 나라입니다.모스크바 주변 큰 도시 몇개를 제외한 다른 지역 주민들은 아직까지도 자유시장경제가 어떤 것인지조차 모르고 있습니다.그들에게 있어서 중앙정부가 자유시장체제를 택할 것이냐 사회주의 경제체제를 유지할 것이냐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이실장=「소련은 일반적으로 못사는 나라」라고 평가하는 것은 큰 잘못입니다. 빵과 생필품을 사기 위해 몇시간동안 줄을 서야하는 겉모습만 보고 평가해서는 안된다는 뜻이지요.이것은 자본주의 국가들의 고물가·고임금정책과는 달리 저물가·저임금정책의 차이일 뿐입니다.소련은 어디까지나 미국 다음의 강국이며 그만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나라입니다. ▲정상무=동감합니다.소련의 잠재력은 시장성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큽니다.지금은 생필품등 실생활에 필요한 제조업이 뒤떨어져 우리에게 기술협력을 요청하고 있지만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이 분야에서도 무서운 저력을 과시하게 될것입니다.그런 의미에서 정치적 격변상황이 문제되더라도 대소경제관계는 계속 발전적으로 이끌어가야 합니다.최근 몇년사이 우리의 황금시장으로 떠오른 동구권에 대한 진출을 위해서도 단기적으로는 손해가 되더라도 꾸준히 교역량을 늘려 나가는 것이 바람직합니다.(이기영 현대경사연 소련실장·경제학 박사/정효현 주식회사 진도 소련담담상무)
  • 소 중앙통제기능 회복땐/교역활성화 가능성 높아/무역진흥공사 전망

    대한무역진흥공사는 고르바초프의 실각으로 서방의 대소교역은 단기적으로 줄어들겠지만 강력한 중앙통제체제가 등장함으로써 최근의 혼란과 불확실성이 사라져 오히려 비지니스 추진이 유리해질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21일 무공이 내놓은 「소련사태 보고서」에 따르면 대부분의 서방기업들은 현재 추진 중인 사업을 계속하겠다는 뜻을 지니고 있고 사태가 진정되면 대소교역이 정상 또는 그 이상 활성화될 것이라는 조심스러운 낙관론이 지배적이라고 분석했다.
  • 「소 대반전드라마」에 뜬눈 밤샘

    ◎시민들,고르비 권좌 복귀소식에 안도 표정/탱크 몸으로 막은 용기에 찬사/업체등선 현지 정황파악 분주/“북한빗장 열리는 계기됐으면” 소련의 강경보수파들이 결행한 쿠데타가 실패로 끝났다는 소식이 전해진 21일 밤 시민들은 모스크바 현지에서 연출되는 「역전 드라마」를 밤늦게까지 TV화면을 통해 지켜보며 한결같이 안도의 표정을 지었다. 시민들은 특히 무력에 의해 합헌적인 정권을 붕괴시키려 한 반란세력의 탱크와 총칼앞에 분연히 맞서 위대한 민권의 승리를 창출해낸 소련 시민들의 용기와 자유수호정신에 대해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또 일부 시민들은 지난 89년 6월 발생한 중국 천안문사태와 이번 소련사태를 대비시켜 가며 쿠데타가 실패하게 된 배경과 향후 전망등에 관해 밤을 세워가며 의견을 나누기도 했다. 이날 밤 언론기관등에는 쿠데타 실패의 사실여부및 반란 주역들의 행방을 묻는전화가 빗발쳤으며 「모스크바 8인방」의 정권 찬탈극이 「3일천하」로 끝났음을 확인했다. 소련에 진출한 일부 기업체에선 간부들이 회사에 나와 그동안의 불안을 털어내고 현지 지점이나 거래처와 전화연락을 시도하며 정확한 사태및 향후 전망을 파악하는등 바쁘게 움직였다. S대학생 김봉수군(22)은 『이번 소련에서의 쿠데타실패는 민주주의를 갈망하고 있는 소련국민의 승리이자 자유와 평화를 사랑하는 모든 세계인의 승리』라고 정의를 내리고 『지난 19일 사태가 터진뒤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가 보여준 단합된 힘이 쿠데타를 주도한 8인비상사태대책위원들의 무릎을 꿇게했다』고 분석했다. 서울D고교 교사 김재봉씨(38)도 『이번 사태를 계기로 공산주의는 몰락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보수강경파에 의해 주도된 쿠데타를 내심 반겨왔던 북한이 큰 충격을 받을 것 같다』고 진단했다. 이밖에 회사원 김정섭씨(35·동부고속 인사과)는 『밤늦게까지 TV를 지켜보면서 자유의 존엄성과 가치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을 했다』면서 『소련사태가 이처럼 빨리 끝난 것은 개혁과 개방의 물결속에서 소련국민의 인권존중과 헌법수호정신이 살아있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주부 하유미씨(28·노원구 중계 아파트 124동)는 『TV를 지켜보면서 흥분에 몸을 떨었다』면서 『지난 19일 이후 우리나라와 소련·북한과의 관계가 다시 악화되는 것이 아닌가 우려했으나 이같은 걱정이 사라지게 돼 반갑다』고 말했다.
  • 소 쿠데타 61시간만에 왜 실패했나

    ◎“공산회귀는 불용”… 국민이 등돌렸다/명분없는 거사에 군수뇌부 적전분열/경원동결등 서방의 강경대응도 큰 몫 전세계에 충격을 던진 소련의 쿠데타가 3일천하로 끝난 이유로는 ▲쿠데타에 대한 국민들의 강렬한 저항 ▲저항선봉장으로 나선 옐친에 대한 미온적인 대응 ▲쿠데타 지도부의 내분 ▲군장악의 실패등을 들수 있으며 그외에 간접적인 원인으로는 소련에 대한 서방세계의 강력한 압력도 들수 있다.그러나 한마디로 말한다면 소련국민들의 호응을 전혀 받지 못한 것이 쿠데타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이다.그것은 또 쿠데타의 주역들이 처음부터 국민들의 동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무모하게 쿠데타를 일으켰다는 뜻이기도 하다. 3일간의 짧은 기간동안이긴 하지만 탱크로 무고한 시민을 깔아뭉개는 무자비한 무력탄압 앞에서 국가비상사태위원회의 시위금지령과 통금령을 무시하고 20일 하룻동안에만 80만에 가까운 시민들이 반쿠데타 시위를 벌이는 한편 육탄으로 탱크를 저지한 소련국민들의 용기는 진정 놀라운 것이었다.과거 수차례에걸친 소련에서의 정변때마다 거의 무관심으로 일관했던 소련국민들이 이처럼 용기있게 변한 것은 바로 고르바초프대통령의 개방정책이 소련국민들의 의식수준을 크게 향상시킨 결과라고 할수 있다.따라서 이번 쿠데타가 3일천하로 끝난 것은 결국 쿠데타 주역들이 고르바초프의 신병은 체포할수 있었지만 고르바초프의 개방정책이 국민들의 가슴속에 불어넣은 자유정신마저 가둬둘수는 없었던데 따른 당연한 귀결인 것이다. 지난 3일간의 쿠데타 진행과정을 지켜보면 이번 쿠데타의 주역들이 처음부터 아무 계획도 없이 『일단 일부터 일으키고 보자』는 형태로 상황이 벌어졌다는 느낌을 지울수 없다.이들은 그동안 누려오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지난 20일 체결될 예정이었던 신연방조약만은 어떤 일이 있어도 저지해야겠다는 초조감에서 쿠데타 성패의 결정적 요인이 되는 군장악과 국민동향,지도부내의 결속등을 사전에 치밀하게 점검하지 못한 상태에서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다. 이처럼 사전준비가 미비된 상태에서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쿠데타에 대한 국민들의 반응이 과거처럼 무관심으로 나타나지 않고 적극적인 저항으로 나타나자 비상위는 당황할수 밖에 없었다. 쿠데타의 절대적 동조세력으로 생각했던 공산당이 중앙위원회 성명을 통해 쿠데타를 비난하고 나선 것은 비상위에 결정적인 정신적 타격이 된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타격은 비상위내부의 적전분열로 나타났다. 쿠데타 발생 이틀이 안돼 비상위의 8인 멤버중 3명이 『건강상의 이유로』사임했다는 것이 쿠데타 지도부의 내분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지도부내의 분열과 함께 군을 확실하게 장악하지 못한 것도 쿠데타 실패의 중요한 원인이다.비상위는 당초 군부내에 냉전종식에 따른 군위상 축소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이 많은 것으로 판단,일단 쿠데타가 일어나면 군 대다수가 이에 동조할 것으로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물론 군부가 상당한 불만을 품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국민들의 격렬한 저항에 직면하자 평소 「국민의 군」이란 자부심을 갖고 있던 소련군은 『우리 국민들에게 총부리를 돌릴수는 없다』는 쪽으로 급선회함으로써 쿠데타가 실패로 끝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게 됐다. 이번 쿠데타에서 서방이 보인 대응도 쿠데타실패를 간접적으로 도운 한 원인이 됐다고 할수 있다.고르바초프의 실각소식이 전해지자 서방측은 한결같이 고르바초프의 복귀를 요구하며 서방의 경제지원을 갈구하는 소련에의 원조를 동결시켰다.서방세계는 또 반쿠데타 저항세력의 선봉에 선 옐친 러시아공대통령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을 보냄으로써 옐친으로 하여금 국민저항을 극대화할수 있도록 했다. 결국 국민들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조속한 개혁의 완결이란 점을 무시하고 오히려 개혁을 지연내지는 후퇴시키는 쪽으로 기치를 들고 시작됐다는 점에서 소련에서의 쿠데타는 처음부터 실패할수 밖에 없었던 것이었고 국민들의 진정한 바람 앞에선 무력도 아무 소용이 없음을 보여준 하나의 해프닝이라고 할수 있다. ◎“3일천하” 쿠데타 일지/비상위 구성→불복선언→서방 경원동결→유혈충동→비상위 분열→병력 철수→고르비 귀환 소련의 강경보수파가 21일 소련역사상 처음 「월요정변」으로 기록될군사쿠데타를 야기한지 3일만에 국가비상사태위원회가 해체됨으로써 이들의 꿈은 「3일 천하」로 끝나고 말았다.모스크바정변 소식이 전해진것은 19일 상오4시.소련전역에 6개월시한의 비상사태가 선포되면서 언론과 출판물의 검열이 시작됐다.방송국들도 쿠데타군에 접수되어 방송이 통제됐다. 타스통신은 크리미아반도 휴양지에서 휴가중이던 고르바초프가 실각되었다고 전하면서 대통령직을 겐나디 야나예프부통령이 승계하고 8인으로 구성된 국가비상사태위원회가 전권을 인수했다고 보도했다.그러나 기세 좋게 몰아 붙이던 쿠데타세력들은 옐친의 시민 불복종운동촉구와 총파업선동으로 시작부터 예상치않던 장애물에 직면했다. 보수파들에 의해 야기된 쿠데타가 시련을 맞기 시작한것은 정변이 발생한지 8시간만인 19일 정오.옐친 러시아공대통령이 국가비상사태위원회의 포고령을 무효라고 선언하며 반쿠데타 봉기를 부추기자 모스크바 시민들은 이미 모스크바시내에 진입했던 중무장 소련군과 치열한 몸싸움을 벌이며 강력히 저항했다. 부시 미대통령은 이날 휴가를 중단하고 긴급대책회의를 연뒤 기자회견을 갖고 하오5시 소련의 군사쿠데타를 강력히 비난했으며 대소원조를 보류할것임을 시사했다. 이튿날 쿠데타세력들은 위기감을 느꼈는지 상오6시 일류신76 수송기 60대를 동원,모스크바로의 병력을 증강했으나 이에 맞서는 소련국민들의 시위는 세를 더해갔다. 그후 러시아공내에 주둔하고 있던 무장병력들은 러시아공 의사당을 향해 진격해 들어갔으며 21일 새벽 급기야 유혈충돌로 15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처음의 상황과는 달리 쿠데타세력이 시민들의 강력한 저항에 주춤거리고 서방세계의 외압이 가중되는 가운데 국가비상사태위원회는 이날 최후의 「히든카드」를 내보였다. 군내 강경파인 모이셰프군참모총장이 전면에 나서고 그로모프중장(전아프가니스탄 주둔군사령관)과 바렌니코프 지상군총사령관이 실세로 급부상한 것이 그것이다. 쿠데타 지도자들은 마지막 발악이라도 하려는듯 「최후의 항전」을 위해 전열을 가다듬으며 무력충돌도 불사하려는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그들은 그뒤 10시간만에 대세가 기울었다고 판단한듯 강경입장을 누그러뜨리고 고르바초프와의 면담을 시도했다. 루키아노프 소연방 최고회의의장이 크림반도로 고르바초프를 만나기 위해 떠났으며 소련 국방부는 비상사태가 선포된 지역에 배치됐던 병력들에 대해 철수명령을 내렸다.이어 모든 포고령이 무효화되고 고르바초프가 모스크바 귀환길에 오름으로써 보수파들이 주연한 「쿠데타」드라마는 61시간만에 막을 내렸다.
  • 고르비 정치생명 어찌되나/쿠데타 실패로 당연히 복귀

    ◎인기 하락… 옐친에 승계 유력 고르바초프는 다시 복귀할 것인가 아니면 이대로 정치생명을 끝낼 것인가. 소련 보수파가 주도한 「궁정 쿠데타」가 실패로 끝남에 따라 고르바초프의 재기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로 부각되고있다. 신집권세력의 정권장악 성공여부와 밀접한 관계에 있던 고르바초프의 운명은 쿠데타가 실패쪽으로 가닥이 잡힘에 따라 일단 권좌 복귀쪽으로 기울어지고 있다. 부시 미국대통령을 비롯한 서방각국의 지도자들 뿐 아니라 반쿠데타 저항운동을 주도해온 옐친 러시아공화국대통령까지도 보수파의 쿠데타식 집권이 불법이라고 비난하며 고르바초프의 원상복귀를 강력히 촉구했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그가 연방대통령으로 되돌아오는 것 외에는 다른 길이 없을 것같다.쿠데타 주도세력이 명분으로 둘러댔던대로 고르바초프가 『대통령직을 수행할 수 없을 정도로 건강이 악화』된 것이 사실이라면 물론 사정이 다르다.그가 지난 87년 두차례나 심장마비증세를 일으켰다는 보도도 한때 있었다.그러나 이제까지 그의 정열적인 업무수행과 관계자들의 발언을 종합해볼 때 고르바초프의 중병설은 어디까지나 변명에 지나지 않을뿐 그의 건강에는 이상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이번사태이후 한때 사망설이 나도는 등 소재와 안전여부에 관한 우려는 아카디 볼스키 소련과학산업연맹위원장이 20일 고르바초프와 통화함으로써 말끔히 해소됐다. 그러나 고르바초프가 대통령직에 복귀한다고 해서 그의 입지가 예전과 변함없이 탄탄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그는 이번 사태를 통해 해외에서의 높은 인기에 반해 국내에서의 형편없는 지지도를 확인하며 지도자로서의 이미지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은 셈이다.보수강경파를 숙청하는 등 나름대로 정권기반 다지기 작업에 나서겠지만 저하된 국민들의 지지를 회복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그의 집권은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이다.신연방조약이 체결된 뒤 머지않아 치러질 연방대통령 직선에 의해 옐친 이나 다른 개혁파 인사에게 국가원수 자리를 넘겨줄 공산이 크다.오히려 그에 앞서 연방인민대표대회에서 간선에 의해 평화적인방법으로 권좌에서 밀려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말하자면 고르바초프의 향후 집권기간은 길어야 1∼2년에 지나지 않을것 같다.그후에는 물론 회고록을 집필하는 등 「보통사람」으로서의 노후생활을 보내야한다. 물론 이번 쿠데타에 대한 저항과정에서 눈부신 활약을 벌여 차기집권이 유력시되는 옐친이 자신은 계속 러시아공화국대통령으로 남고 권력이 대폭 축소된 연방대통령으로 고르바초프를 지원할 경우 그가 계속 집권할 가능성도 없지않다.옐친의 입장에서 볼 때 과거 냉전시대와는 달리 화해의 시대에서는 군부의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적은 여건에서 신연방조약 체결이후 외교·국방 등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권한을 공화국에 넘겨줘야할 실권없는 연방대통령보다는 자원관할권 등 막강한 권한을 지닌 러시아공화국대통령 자리를 더 선호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그럴 경우 고르바초프와 옐친이 각각 내정과 외교로 역할을 분담할수 있다.고르바초프는 심하게 말하면 국제무대에서의 「얼굴마담」역에 만족해야 하는 것이다. 아무튼 명실상부한 소련대통령으로서의 고르바초프의 시대는 이제 내리막길로 접어들었다고 볼수 있다. 물론 쿠데타가 성공했거나 쿠데타세력과 개혁저항세력이 내정으로 치닫는 장기대치로 돌입하는 경우보다는 고르바초프에게 있어서 한결 나은 결과다.쿠데타가 성공했을 경우 다른 개혁파 인사들과 함께 숙청대열에 포함됐을 것이고 장기대치상태 지속의 경우에는 자칫하면 처형대상이 됐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고르바초프는 이번 사태에서 나름대로 커다란 교훈을 얻었을 것이다.권력핵심부의 장악과 대중의 지지기반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된 것이 그것이다.
  • 쿠데타 실패이후의 정국풍향은(크렘린 대지진:3)

    ◎페레스트로이카 가속이 붙는다/권력구조 변화등 후유증 뒤따를듯/서방의 경원 가시화… 동서화해 공고히 소련의 강경보수파들의 쿠데타가 「3일천하」로 막을 내린것은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페레스트로이카가 좌초의 위기에서 부활했음을 의미한다. 잠시 거꾸로 가던 「크렘린의 시계」가 멈추고 소련은 다시 페레스트로이카시대로 회귀하고 있는 것이다. 고르바초프의 개혁으로 자유의 실체를 체험한 소련국민들이 보수파를 거부하고 있음이 이번 쿠데타를 통해 실증됨으로써 소련의 개혁과 개방은 더욱 촉진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쿠데타 실패는 오랜 공산주의 체제에서 살았던 소련국민들의 의식이 크게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소련은 이같은 국민들의 의식변화를 바탕으로 보다 빠른 속도로 민주주의가 지배하는 사회로 변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소련의 보수적 성향은 아직도 매우 깊다. 그러나 이번 강경보수파들의 쿠데타 실패는 소련 사회가 민주적 체제로 전환하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을 시사하고 있다고 볼수 있다. 쿠데타의 후유증에서벗어나 소련이 안정을 되찾은 후 소연방들은 예정대로 신연방조약을 체결할 것으로 보인다. 신연방조약 체결을 거부한 발트해 3개 공화국은 비롯 6개 공화국이 조약체결을 할지는 미지수이지만 각 공화국간의 관계는 호전될 가능성이 높다고 볼수 있다. 고르바초프를 축출한 강경보수파의 쿠데타가 실패한후 일단 고르바초프가 다시 소련의 최고지도자로 복귀했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그러나 이번 쿠데타로 큰 상처를 입었다고 볼수 있기 때문에 과거와 같은 강력한 지도력을 발휘할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많은 소련문제 전문가들은 고르바초프는 보수와 개혁파간의 완충역할을 하며 행정수반으로서의 권한을 확보하는 것이 전부일 것으로 전망한다. 고르바초프의 시대가 다음 선거까지 이어질지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시각이 적지않다. 반면 고르바초프의 계속 집권가능성을 예상하는 전문가들도 적지 않다. 국제정치에서의 고르바초프의 위상과 그의 개혁정책을 감안할때 소련국민들이 그의 계속집권을 지지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이들은 이번 쿠데타로소련에서의 그의 비중이 더욱 중요시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지적한다. 고르바초프 대통령과 함께 향후 소련정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지도자는 보리스 옐친 러시아공화국 대통령이다. 옐친 대통령은 이번 쿠데타의 성공을 저지한 「피플파워」의 구심점이었다. 옐친은 쿠데타로 소련이 침묵할때 분연히 일어나 쿠데타를 비난하고 반쿠데타 운동을 선도했다. 이러한 그의 역할은 소련국민들과 서방세계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이는 옐친이 소련의 최고 지도자로 등장할 가능성이 높아졌음을 의미한다고 볼수 있다. 옐친이 집권할 경우 소련의 시장경제로의 전환이 보다 빨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옐친은 그동안 소련의 경제난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보다 빠른 시장경제도입 뿐이라고 강조해왔다. 그러나 옐친이 주장하는 급진경제개혁을 도입하지 않더라도 소련의 경제개혁은 더욱 빨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고르바초프가 추진하고 있는 사회주의와 시장경제를 접목시키는 「경제실험」이 아직 결실을 맺지는 못하고 있지만 지난 70년간의 공산주의 경제실험이 실패로 끝났음이 증명되었기 때문에 소련은 경제개혁에 박차를 가하지 않을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서방세계도 소련의 경제개혁을 보다 적극화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일부 국제 정치학자들은 서방세계의 미온적인 대소 경제지원이 소련의 경제난을 악화시키고 쿠데타로까지 이어졌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들은 미국도 소련에 대한 경제지원에 보다 관대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미국은 소련의 「불확실성」 때문에 대소 경제지원을 주저해왔다. 미국의 이같은 정책으로 독일을 제외한 대부분의 서방선진국들도 소련에 대한 경제지원에 인색했었다. 소련의 강경보수화 움직임이 일단 실패로 끝났기 때문에 고르바초프의 신사고를 바탕으로 한 동서화해의 새로운 국제질서가 정착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소련의 쿠데타로 한때 냉전의 어두운 그림자가 어른거렸었으나 냉전구도는 일단 청산되었다고 볼수 있다. 소련 지도부가 앞으로 어떤 외교정책을 추구할 것이냐에 따라 국제정치 기류가 크게 바뀌겠지만 소련이 보다 개방화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국제정치의화해무드는 더욱 공고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소련의 「피플파워」는 공산주의로의 회귀를 거부했다. 소련국민들은 보다 개방된 민주주의 사회를 희망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세계지도가 하나의 「민주주의」 세계로 통합되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 옐친 결국 해냈다/선봉서 「반쿠데타」주도… “정신적 지주역”

    ◎국내외 지지 급상승… 「고르비이후」예약 고르바초프를 축출한 강경보수파의 이번 쿠데타를 실패로 이끄는데 가장 큰 공을 세운 사람은 보리스 옐친 러시아공화국 대통령이다. 그는 19일 쿠데타 발생직후 러시아공 의사당앞에 진주한 탱크위에 올라가 국민들에게 총파업과 시민불복종을 외치며 신군부의 보수회귀를 끝까지 막아내는데 성공했다. 더욱 극적인것은 그가 지난 6월 러시아공화국 최초의 민선대통령에 선출된 이후 고르바초프의 미온적인 개혁정책을 강력히 비난하며 사임요구까지 해왔기 때문에 쫓겨난 고르바초프의 원상회복을 위해 쿠데타세력에 과감히 맞선 그의 행동은 소련국민뿐 아니라 미국 등 우방국에도 소련내 「마지막 희망」으로 간주돼 왔다. 그는 쿠데타군의 탱크로 둘러싸인 러시아공 의사당안에서 자신이 러시아공화국의 통제를 계속할 것을 선언하고 쿠데타에 가담했던 모든 군인들과 KGB요원들에게 대열 이탈을 촉구하는 등 반쿠데타세력의 정신적 지주역할을 해왔다. 이같은 옐친의 용감한 행동에 힘입은 광원들이 파업을 단행했으며 전국적으로 수십만의 시민들은 쿠데타 저지시위에 가담함으로써 쿠데타세력이 발붙일 곳을 잃게 했던 것이다. 따라서 옐친은 이번사태로 말미암아 국내적으로는 러시아공화국뿐만 아니라 다른 공화국에서도 엄청난 지지를 얻게됐으며 더욱이 서방지도자들로부터 전폭적 지지를 얻어냄으로써 「고르바초프 이후」의 자리를 굳혔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고르바초프와 동갑인 1931년생으로 우랄산맥의 한 농가에서 출생한 그는 우랄공과대학에서 공부했으며 55년 건설기술자로 졸업했다.61년 공산당에 입당,67년부터 85년까지 지방당에서 일하던중 81년 중앙위원으로 승진했다. 고르바초프가 페레스트로이카 추진을 위한 심복으로 85년 그를 모스크바로 불러온후 그는 급속도로 지위를 높여 정치국의 소장멤버가 되었고 농업분야의 총책임자로 승진됐었다.그러나 개혁의 속도를 가속화하라는 그의 끈질긴 요구때문에 고르바초프로부터 멀어지게 됐고 87년에는 모스크바시 당위원장직에서 해임됐으며 90년 7월에는 공산당을 탈당하기까지 했다.이같은 그의 과감한 행동은 국민들 사이에서의 인기를 더욱 높여주었다. 그러나 그는 지난 4월부터는 고르바초프와 일종의 공동전선을 구성,민주적이고 시장경제지향적인 새로운 소련을 건설하는데 힘을 모아왔다. 공개적인 상호비난은 중단됐고 옐친은 연방정부와 소련공화국간에 새로운 연방조약을 체결하려는 고르바초프의 노력에 가장 큰 지지를 보냈었다.고르바초프는 이에대한 보답으로 공화국들의 주권을 확대하고 그들에게 권력을 이양하는데 동의했던 것이다. 어쨌든 이번 쿠데타에서 강력하게 고르바초프를 지지한 옐친의 용감한 행동은 러시아공화국뿐 아니라 소련전체의 대중지도자로,또 국제적인 지도자로 그를 변신케 하는 중요한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 서방국들 “경원중단”압력 본격화

    ◎부시,“고르비 복귀시켜라”/EC정상 23일 긴급회담/일서도 서방과 공동보조 취하기로 【워싱턴·런던·파리·도쿄 외신 종합】 미국및 유럽공동체(EC)등 서방국가들은 20일 소련의 강경보수파들이 고르바초프대통령을 축출한데 대한 보복으로 대소 경제·외교적 제재를 강화하고 있다. 부시 미대통령은 이날 성명을 통해 쿠데타 지도자들을 인정하기를 거부하고 그들에게 고르바초프를 대통령직에 복귀시키라고 촉구했다. 부시대통령은 또 옐친러시아공화국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그의 고르바초프 복권움직임을 적극 지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고르바초프와의 전화통화는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부시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밝혔다. 유럽공동체도 고르바초프 축출에 대한 항의표시로 대소경제원조의 대부분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허드 영국외무장관이 밝혔다. EC는 13억5천만달러의 대소원조를 승인해 놓은 상태다. EC외무장관들은 이에앞서 헤이그에서 회동,대소 경제지원과 소련상황등에 대해 논의했다.허드장관은 대소경제지원 중단에 대해 프랑스·벨기에·네덜란드등이 신중한 태도를 보였지만 결국 대소경제지원중단에 동의했다고 말했다. 허드장관은 또 소련상황과 향후 대소정책을 논의하기 위해 EC정상회담이 23일 개최될 것이라고 밝혔다.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외무장관들도 21일 브뤼셀에서 특별회의를 갖는다. EC는 대소경제제재와 함께 실각한 고르바초프대통령을 만날 장관급 대표단을 소련에 파견할 계획이라고 프랑스정부대변인이 말했다. 이 대변인은 23일로 예정된 EC정상회담직후 EC대표단이 소련으로 떠날 것이라고 말했다.그러나 그는 대표단이 고르바초프와 만나기위해 새로운 지도자들과 접촉을 해야한다 하더라도 이같은 접촉이 새로운 정권을 인정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덧붙였다. 한편 가이후(해부준수)일본총리도 『소련의 현재 상황은 헌법절차에 따라 이루어진 정당한 것』이 아니라고 밝혀 소련의 새 지도부를 인정하지 않고 있음을 시사했다.이에따라 일본은 대소경제지원을 중단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 미,대소경협 중단 촉구/부시의 대 서방국성명 한국에 전달

    미국정부는 20일 소련사태와 관련,서방국들의 대소경협중단을 촉구한 부시대통령의 성명을 도널드 그레그주한 미대사를 통해 우리정부에 전달해 왔다고 외무부의 한 당국자가 밝혔다. 그레그대사는 이날 방한중인 토머스 피커링유엔주재대사가 이상옥외무장관을 예방한 자리에 배석,부시대통령의 성명을 전달했다.
  • 소련은 어디로 가고있나(크렘린 대지진:2)

    ◎강권통치 각 공화국과 충돌 가능성/민족분규 무력진압땐 유혈 불가피/서방서 지원 외면… 경제회생 기대난 정변 이틀째인 20일에도 모스크바는 겉으로는 평온을 유지하고 있다. 크렘린궁주변을 비롯한 시내 요로와 외곽도로 곳곳에 10여대 혹은 서너대씩의 탱크들이 포진해 있지만 별다른 긴장감을 자아내지는 않고 있다. 표면적으로 「쿠데타」세력들의 거사가 별 저항없이 성공한것 같은 분위기다. 그러나 국가비상사태위원회 8인의 면면들을 보면 당장의 정권탈취 성공여부에 관계없이 이들이 과연 현재 소련이 안고 있는 제문제들을 제대로 풀어나갈 수 있을지 극히 의심스럽다. 지난19일 기자회견에서 이들은 한결같이 고르바초프가 시작한 개혁정책을 계속 펴나가겠다고 다짐했다.하지만 야나예프대통령직무대행을 비롯한 8명 모두 과거 브레즈네프시절에나 등장함직한 인사들이다.한결같이 젊은 나이에 공산당에 가입했고 공장노동자출신에 보안기관 유관자들로 개혁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모두들 통제·명령위주의 통치스타일에 향수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아무리 보아도 이들이 경제난·민족문제·대서방관계·민주화 등 현재 소련이 해결해야할 각종문제들을 처리하는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우선 경제문제에 있어 고르바초프는 페레스트로이카 추진 5년만에 비로소 바람직한 개혁의 모델을 찾아내 이제막 본격적인 개혁작업에 들어가는 중이었다. 오는 9월1일을 기해서는 토지주택의 사유화가 일제히 시작될 예정이었다. 가격자유화정책도 초기 국민들의 저항이 어느정도 자라앉고 자리를 잡아가는 과정이었다. 그러나 비상위 8인들은 모두 경제면에서 중앙집중적 명령경제의 신봉자들이다. 그러나 소련경제는 사유화·시장경제화 외에 다른 대안이 없다는 진단이 이미 내려져 있는 상태이다. 무엇보다 우려되는 것은 발트해 3국 등 연방공화국들과 중앙정부와의 관계이다. 국가비상위가 거사의 첫째 명분으로 내세운 것이 연방의 와해를 막고 영토를 보전한다는 것이었다.따라서 거사 날짜도 신영방조약 체결직전으로 택했던 것이다. 하지만 민족문제 역시 몇년의 진통끝에 고르바초프가 찾아낸 최대 공약수가 신연방조약이었다.신연방조약에 대해서는 러시아공화국,우크라이나공화국을 비롯한 9개 공화국이 서명을 약속했고 불서명 입장을 밝힌 나머지 6개 공화국과도 타협의 여지는 남아 있었다.그런데 국가비상위는 이 신연방조약의 체결을 백지화하고 앞으로 국민투표를 실시해 새 연방모델을 찾아 내겠다고 밝혔다. 이에따라 이미 독립의사를 천명한 발트해 3국과 국가비상위가 충돌,또 다시 유혈사태를 빚을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지난19일 대부분의 공화국들이 비상위의 지시를 따르지않고 독립의 길을 계속 가겠다고 밝혔다. 옐친 러시아공화국대통령이 지난19일 기자회견에서 말했듯이 쿠데타정권이 들어섬에 따라 소련은 국제사회로부터의 비난과 고립을 피할 수 없게 됐다.미국 영국 독일을 비롯한 모든 서방국들이 대소경제원조동결 등 제재조치를 취하기로 결정했다. 소련은 이미 과거 동구위성국들이 제공하던 시장을 모두 잃었다.여기에 서방 지원마저 끊어질 경우 소련경제가 살아날 길은 없다는 것이 이곳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폭력과 공포정치 외에 국가비상위가 내놓을 수 있는 카드는 사실상 있을 것 같지 않다. 특히 군과 KGB세력내에도 고르바초프,옐친세력이 만만치 않게 있는 것으로 알려져 향후 이들의 태도 또한 주목되고 있다. 지난19일 하오 기자회견에서 야나예프를 비롯한 국가비상위 위원들은 고르바초프의 신상에 대한 질문에 시종 『그는 지금 요양중이고 건강이 좋아지면 다시 대통령직에 복귀할 것』이라는 등의 답변을 해 실소를 자아내게 했다.쿠데타를 한 사람들의 자신있는 태도도 보여주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모습이었다. 일부에서는 야나예프로 과도체제를 굳힌 다음 야조프국방장관이나 크류치코프KGB의장등이 결국 실권을 잡고 본격적인 대반동정치를 펼칠 것이라는 전망들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이곳의 많은 관측통들은 이번 사태를 『잠시 정권을 잡을 수는 있겠지만 결국은 실패할 쿠데타』로 보고 있다. 지금 소련이 안고 있는 문제들이 결코 쿠데타로 해결될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이유에서이다.
  • 소 정변 충격/미·유럽 경기회복에 “찬물”/한은

    ◎세계경제에 미치는 영향분석/소의 원유수출 줄어 값폭등 가능성/내전땐 난민 홍수… 독,인플레 불가피 고르바초프의 실각으로 빚어진 최근의 소련사태가 에너지가격의 상승을 초래하고 미일등 주요 선진국의 경기회복을 지연시켜 세계경제를 크게 위축시킬 것으로 분석됐다. 20일 한은은 고르바초프의 실각이후 세계경제는 소련측이 서방국가에 공급해오던 원유와 가스의 수출감소및 중단이 우려돼 1,2차오일쇼크와 걸프전쟁에 이어 또다시 에너지값의 폭등을 초래할 가능성이 클 것으로 지적했다. 국제원유가격은 고르비의 실각이 전해진 19일 미국 뉴욕상품거래소에서 9월인도분 텍사스경질유가 전날보다 배럴당 1.17달러가 뛴 22.47달러에 거래됐으며 이같은 상승추세는 소련정국의 불안으로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달러화의 급상승및 일본과 독일등 주요국들의 경제성장이 둔화돼 미국의 수출이 감소되고 성장률도 크게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미국경제의 회복속도를 떨어뜨리는 것은 물론,경우에 따라서는 침체국면으로까지 빠뜨릴 위험이 있다는것이다. 이에따라 미연방준비위원회(FRB)는 소련사태의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또다시 금리인하를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이번 사태로 가장 큰 경제적 피해가 예상되는 나라는 독일로 피해의 정도는 소련사태가 내전으로 확대되는지 여부에 따라 달라진다. 통독이후 인플레에 시달리는 독일은 동구에서의 경제개혁이 이번의 소련사태로 실패할 경우 동구국가들로부터의 난민유입이 예상돼 마르크화의 폭락및 인플레의 가속화등이 우려되는 상황을 맞고 있다. 독일은 최근 연방은행이 금리를 인상했으나 이같은 인플레의 우려때문에 또다시 금리인상압력을 받게되고 유럽경제의 회생에 찬물을 끼얹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또 소련사태가 악화되면 독일 금융시장으로부터의 급속한 자금이탈로 마르크화의 하락을 더욱 부채질할 것으로 보인다. 또 소련이 준회원국으로 국제통화기금(IMF)에 참여하는 문제와 EC국가의 대소경협지원등이 사실상 백지화될 가능성이 커 주요 선진국과 소련간에 형성된 기존의 경제협력관계도 급속히 냉각,세계경기를 후퇴시킬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 반고르비 쿠데타를 보고/한승조 고려대교수·정박(특별기고)

    ◎“볼셰비키노선 회귀는 시대착오”/소 국민은 이미 자유·개방맛을 아는데… 타스통신은 소련의 미하일 고르바초프대통령이 건강상의 이유로 대통령직을 사임하였고 대통령의 권력은 겐나디 야나예프부통령이 승계했다고 지난 19일 제1보를 내보냈다.이것은 결코 정상적인 권력승계가 아니라 하나의 정변이라는 것은 누구의 눈에도 명백하다. 앞으로 8인의 국가비상사태위원회가 국정을 담당한다는데 그 면면을 보면 고르바초프의 개혁정책으로 인하여 신변의 위협을 느껴온 구세대 공산당보수파가 군부,그리고 비밀경찰의 도움을 받아 쓸데없이 일으킨 작난인 것처럼 보인다.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에 전념해온 고르비정권의 중도하차는 오래전부터 예견되어 온 일이었다.러시아혁명이 난지 74년,그동안에 저질렀던 이념적 오류와 정책적 과오,그리고 공산당독재의 적폐가 단시일내에 한사람의 지도자 힘으로 개혁될 것으로 기대할 수가 없다.고르비의 개혁노선은 공산당의 정치노선과 정반대되며 오랫동안 금기시되어 왔던 소련체제의 민주화,자본주의경제제도의 도입,대서방화해와 협력증진을 추진하려는 것이었다.70여년동안 안간힘을 다해 실시해오던 노선과는 정반대의 길로 가는 개혁노선이므로 순탄하기를 기대할 수가 없는 일이다.도리어 서두르면 서둘수록 개혁노력에 대한 반동도 거세질 수 밖에 없었다. 고르바초프정권은 그동안 주요세력으로부터 정반대의 압력을 받아 왔다.첫째 소련공산당이 추구해왔던 이념이나 정책이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었음을 깨닫고 개혁을 보다 근본적으로,그리고 하루바삐 추진하려는 개혁세력의 압력이다.그런데 오늘의 공산당조직은 개혁을 방해해온 직업관료층,노멘클라투라들에 의하여 장악되어 있으므로 그 조직을 가지고 개혁노선의 성공을 기대하기가 어렵다.그러므로 공산당을 탈퇴하여 개혁적인 민주정당을 만든다음 선거를 통하여 집권해야겠다고 주장해 왔다.둘째는 소련공산당의 이념과 정책이 기본적으로 옳은 것이었지만 오늘에 와서 약간의 조정과 조완적개혁의 필요성은 인정한다.그러나 소련체제의 붕괴나 변질을 초래하는 개혁은 용납할 수 없다는 보수파세력들의 반대압력이다. 고르바초프대통령은 초기에는 개혁주의세력과 손을 잡고 개혁을 추진하였다.그러나 실시하는 개혁마다 기대했던 성과보다는 예상하지 못했던 혼란과 부작용이 나타나는 것을 보면서 고르비의 개혁의욕은 약화되기 시작한 것이 사실이다.실제로 생필품부족·물가앙등·생산부진·실업의 증가로서 국민생활이 심각하게 위협받게 된데다가 연방공화국의 독립운동으로 소련의 체제와괴의 위협에 직면하였기 때문이다.또 무엇보다도 정권수호는 하고 볼 일이니 보수세력의 반발을 무마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그러다 보니 고르비는 개혁세력을 실망케하고 또 그들의 반발을 일으켜 양면협공의 궁지에 몰리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고르비개혁정책의 최고 두뇌이자 이론가인 알렉산드르 야코블레프가 공산당으로부터 출당을 당하는 불상사가 일어났다.이것은 고르바초프가 발길질 당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야코블레프는 8월16일 공산당지도부내의 스탈린공산주의자들이 모두 개혁파대표들을 당에서 제거할 음모를 꾸미고 있으며 11월에 열릴 제26차 당대회에서는 고르바초프대통령까지 당에서 밀어낼 것이라고 경고하였다.이것도 보수파들의 거사를 앞당기게 한 요인일 것이다. 현재 수백대의 탱크가 크렘린궁 근처에 집결해 있고 수천명의 군중이 항의시위를 하고있다.옐친은 보수파들의 비상사태선포를 불법이라고 단정하고 고르바초프대통령의 복귀를 요구하는 총파업및 시민불복종운동을 촉구하였다.소련의 군부와 비밀경찰의 힘만으로도 쿠테타는 얼마든지 일으킬 수가 있다.그러나 그들이 정권을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다고는 보지 않는다. 1964년 소련의 보수적인 당관료와 군부·비밀경찰이 흐루시초프를 권좌에서 몰아낸 다음 20년동안 브레즈네프를 정점으로 하는 노멘클라투라의 지배체제도 묶어둘 수가 있었다.그러나 이런일이 오늘날 소련에서 되풀이될 것같지가 않다.그 이유는 개방사회와 자유의 맛을 본 소련시민이 60년대나 70년대의 권위순종적이며 무지몽매한 정치의식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오늘날 소련의 최대문제는 첫째 경제난이고 둘째 연방해체의 경향이고 세째 민주화의 과제이다.그런데 보수파가 집권해서 해결할 수 있는 과업이 하나도 없다. 첫째 소련의 경제난은 외국의 원조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인데 소련의 군부정권이 어떻게 얻을 수 있겠는가.둘째 보수세력이 신연방조약을 없앤 다음에는 공화국의 독립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무한정 국력을 마모하게 된다.셋째 소련을 가장 효과적으로 침체·멸망으로 몰고가는 요인이 공산당독재이다.그런데 그것을 유지하면서 누가 소련의 민주화를 인정해 주겠는가.또 소련이 다시 냉전정책으로 복귀한다고 해서 지금 지구상에서 소련을 무서워할 나라가 있을까.이런 부질없는 짓을 보수세력이 최후발악적으로 저지르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이번 반고르비 쿠테타는 결국 소련의 민주·개혁세력을 내실있게 다져주고 반볼셰비키노선과 새 역사창조를 위한 대장정을 촉발하는 계기가 될것으로 나는 보고있다.
  • 실패불씨 잉태한 소 쿠데타/「8인 비상위」 성공할 것인가

    ◎서방지원 끊겨 경제파탄 해결불투명/옐친의 국민저항 극대화여부도 변수/군부내의 결속도 확고하지 못해 문제로 고르바초프의 실각소식이 전해진뒤 세계의 관심은 소련의 새 지도부가 그들의 체제를 정착시켜 권좌를 유지해 나갈수 있을 것인지 아니면 또다른 저항에 직면,혼돈과 무질서 속으로 빠져들 것인지에 모아지고 있다.이와 관련 부시 미대통령이 지난 19일 기자회견에서 『쿠데타란 실패할 수도 있음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히고 미국내 소련전문가들 대부분이 쿠데타의 실패 가능성을 점치는 분석을 내놓고 있는 것은 매우 흥미롭다. 이같은 분석이 나오고 있는데는 물론 몇가지 근거를 들수 있다.그러나 아직까지는 쿠데타의 실패를 단언할수 있는 확실한 근거라고 할만한 것은 하나도 없다고 할수 있으며 따라서 이같은 분석은 어느 측면에서 볼때 미국의 희망사항을 피력한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고 볼수 있다. 쿠데타의 실패가능성을 점치는 근거는 ▲개혁파와 시민들이 쿠데타에 격렬히 저항할 것이란 예상 ▲새 지도부가 현재의 소련경제의 난국을 해결할 수단을 갖고 있지 못하며 서방의 경제지원 중단등으로 경제가 오히려 더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 ▲쿠데타 지지와 관련,소련군내부의 결속이 확고하지 못하다는 점등 세가지를 들수 있다. 부시 미대통령은 『민주주의와 정치적 개방을 유지하려는 소련국민들의 의지는 매우 확고하다.이같은 변화가 뒤집어 질수 있다고 말하기에는 너무 이르다』고 말하고 『국민들이 일단 자유를 이해하고 자유의 단맛을 알았으며 민주주의의 가동을 경험했다면 과거로 역행을 바라지 않을 것으로 나는 믿고 있다』고 말했다. 고르바초프의 실각소식이 전해지자 보리스 옐친 러시아공화국대통령이 즉각 총파업과 시민불복종운동을 촉구하고 나섰으며 이에 호응,러시아등 3개 공화국의 탄광들이 파업에 돌입하는 한편 옐친을 지지하는 시민들이 모스크바 시내로 진입하는 소련군 탱크들을 육탄으로 저지하고 나선 것등은 일단 소련국민들이 과거 소련에서의 권력교체시와는 달리 고르바초프를 실각시킨 이번 쿠데타를 쉽사리 용인하지 않을뿐 아니라 이에 저항할준비가 갖춰져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수 있다. 이와 관련,소련문제전문가들은 반쿠데타 세력의 핵심이라 할수 있는 옐친을 소련지도부가 자유롭게 풀어준 것은 큰 실수라고 지적한다.이들은 또 옐친이 쿠데타에 대한 소련국민들의 저항을 얼마나 극대화시킬수 있느냐에 따라 쿠데타의 성패가 갈릴수 있다고 말한다.이들은 이와함께 국민들의 저항이 극심해질 경우 소련이 내전의 수렁에 빠질 가능성도 있다고 말하고 있다. 쿠데타세력이 일단 고르바초프를 축출하는데는 성공했지만 고르바초프가 안고 있던 여러 문제들은 그대로 새 지도부에 넘겨졌다.그중에서도 고르바초프의 인기를 떨어뜨린 결정적 원인이 된 경제위기를 해결하는데 있어 새 지도부가 그럴만한 능력이 있는지 또 그럴 의지가 있는지에 대해 많은 소련전문가들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야나예프가 유엔에 보낸 전문에서 『개혁은 계속될 것』이라고 밝히면서도 시장경제에 대해선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은 점,국가비상사태위원회의 첫 경제조치가 식료품등 생필품가격의 인하와 배급제에대한 통제강화로 나타난 점등을 볼때 소련의 경제개혁은 상당히 후퇴할 것으로 추측된다.더욱이 소련에 대한 서방의 경제지원이 중단되면 소련경제는 지금까지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악화될 것이며 소련상점의 텅빈 진열대가 빠른 시일내에 상품으로 가득 채워지지 못한다면 소련국민들이 고르바초프에게 했던 것처럼 새 지도부에 등을 돌릴게 분명하다. 쿠데타와 관련,소련군내부의 결속이 확고한지에 대해서도 많은 전문가들은 회의적이다.비록 군부내 고위간부들간엔 고르바초프의 축출에 대해 의견일치가 이뤄진게 사실이라 해도 젊은 장교들을 주축으로 한 소장그룹내에선 여전히 고르바초프의 개혁정책에 대한 지지세력이 상당수 존재하고 있다.이와 관련,지난 19일의 쿠데타에 동원된 것은 보리스 푸고내무장관산하의 보안군일뿐 연방군자체는 아직 쿠데타에 대해 관망자세를 보이고 있다는 주장도 나와 관심을 끌고 있다. 대체로 이같은 상황들이 소련에서의 쿠데타가 실패할수도 있다는 근거로 제시되고 있다.그러나 이로 인해 소련의 새 지도부가 쫓겨나기까지는 빨라도 몇개월은 걸릴 것이다.따라서 이번 쿠데타는 장기적으로 볼때는 실패의 가능성을 잉태하고 있지만 단기적으로는 성공한 것으로 봐야할 것같다.
  • 정변 소용돌이… 혼미의 모스크바/이기동특파원

    ◎1만 시민군,“범죄파쇼 타도” 빗속시위/도로 곳곳 교통차단… 「가판신문」동나/“연방특수군 접근” 러시아공 청사 긴장/반쿠데타 기갑부대도 「옐친 지키기」일전태세 ○…20일하오 5시40분(현지시간)모스크바 강변에 위치한 러시아공화국 정부청사 앞광장엔 결전을 앞둔 전장의 긴장이 감돌고 있다.소연방군특수군이 접근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진 가운데 러시아시민군 1만여명이 모여 러시아공화국 사수를 다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옐친 러시아공화국대통령의 집무실이 있는 흰색 고층건물을 러시아시민들은 미백악관을 본따 「화이트 하우스」라고 부른다.20일 하오 현재 화이트 하우스로 향하는 모든 차도는 러시아시민군들에 의해 완전 차단됐다. 러시아공화국 정부를 접수하기 위해 소연방특수부대가 접근하고 있다는 소식이 무전기등으로 속속 시민군측에 전달되고 있다. 갈리닝가와 크라스노프리스니얀스키리단가에 이르는 드넓은 화이트 하우스 광장주변에는 종일 내리는 비에도 불구하고 1만여명의 시민·학생·노동자들이 모여서 「범죄 레드 파시트스 분쇄」 「러시아공화국사수」를 외치고 있다. 수천명의 젊은 노동자 학생들은 스스로 시민군을 구성하고 시위를 주도하고 있다. 모스코니기갑부대와 다만스카야기갑부대소속 탱크 3대,장갑차 3대,수송차량 10여대가 광장에 이미 포진,시민들의 격려를 받으며 역시 전의를 다지고 있다. 모스크바교외에 주둔하고 있는 이들 기갑부대는 2차대전때 독일군과 싸운 소련 최정예기갑부대이다.이들이 옐친 지지를 내걸고 그 선발대가 14일 하오부터 이곳으로 진입한 것이다. 트랙터 트롤리버스 10여대와 일반버스 10여대가 광장 곳곳에서 바리케이드를 치고 있고 탱크 포신 버스지붕위에는 시민들이 빽빽히 올라앉아 역시 「공산주의독재 타도」를 외치고 있다.버스창문들 마다에도 「공산주의 범죄자들을 몰아내자」「레드 파시스트 물러가라」는 등의 구호가 빽빽히 나붙어 있다. 화이트 하우스 정문으로 올라가는 계단에도 각목·콘크리트보드 등으로 완전히 바리케이드가 쳐져 있다.바리케이드 앞에는 머리띠를 두르고 간혹 단검을 손에든 젊은 시민군 수십명이 줄지어 서서 계단아래쪽 시민들에게 흥분하지 말고 침착하자고 외치고 있다. 한 젊은 시민군은 메가폰을 손에들고 『소련특수군이 접근하고 있으니 어린이 부녀자들은 집으로 돌아가라.우리는 평화를 원한다.우리는 맨손으로 맞서겠다』고 외치고 있었다. 옐친대통령을 비롯한 모든 러시아공화국 정부인사들도 화이트 하우스안에서 연방특수군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어둠이 깔리자 불을 환히 밝힌 화이트 하우스건물의 창문들이 이들의 결의를 대변해주는 듯하다. ○“저항좌절땐 망명정부” ○…안드레이 코자레프 러시아공화국외무장관은 20일 파리에 도착,쿠데타지도자들에 대한 옐친 러시아공화국대통령의 저항이 실패로 끝날경우 망명정부를 구성할 것이라고 밝혔다. 코자레프장관은 이날 기자들에게 망명정부수립이 자신의 이번 서방국가 방문 임무중의 하나라고 말했다.그러나 그는 이같은 상황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코자레프장관은 워싱턴도 방문,미국지도자들이 옐친의 반쿠데타 저항을 적극지지해줄 것을 촉구할 예정이다. ○…모잠비크 주재 소련대사관 타이피스트 3명이 남아프리카공화국 정부에 정치적 망명을 신청했다고 남아공외무부의 한 대변인이 20일 발표. 이 대변인은 몇주전 이웃한 스와질랜드를 통해 합법적으로 남아공에 입국한 이들이 정치적 망명을 신청했으며 현재 소련정부와 이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분노한 수백명의 시위대들이 19일 고르바초프를 축출한 강경주의자들이 파견한 군대를 저지하기 위해 러시아공 의회건물로 통하는 길을 가로질러 바리케이드를 설치. 급진적 개혁주의자 보리스 옐친 러시아공화국 대통령의 호소에 대한 반응으로 군중들은 도시 중심부의 칼리닌가를 가로 질러 목재 조각등 인근 건축 공사장에서 가져온 장비들을 실은 두 대의 무궤도 전차를 주차해 놓았다. 인권운동가 옐레나 본네르를 포함한 옐친 지지자들은 모스크바강 둑 위의 백색러시아공화국 의회건물 주위를 돌기도. ○인기 전날보다 떨어져 ○…모스크바시민들 사이에 국가비상위의 인기는 전날에 비해서 계속 떨어지고 있다. 이즈베스티야지의 한 기자는 『8인위는 개인의 정권욕을 앞세워 국가장래를 생각않고 구체적인 정책대안도 없이 쿠데타를 저질렀다』고 말하고 이번 쿠데타는 반드시 실패할 것이라고 주장. 또 한 시민은 『탱크를 사용하는 권력은 진짜 권력이 아니다.권력은 합법적으로 국민이 선출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역시 이번 쿠데타는 실패할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공화국의 한 대의원은 『고르바초프대통령이 지금까지 개혁정책을 수행하는데 있어서 너무 많이 보수파들의 눈치를 살폈고 그때문에 결국 이같은 사태가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해말 셰바르드나제가 독재가 임박했다고 경고를 했을 때에도 고르비는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고 지적. ○비내리자 일당 되찾아 ○…19일 하오부터 내리기 시작한 장대비가 20일 들어서는 가랑비로 바뀌고 모스크바시내 사람들은 거의 일상의 생활로 되돌아갔다. 그러나 미대사관이 있는 사도바야가 러시아공화국정부 청사 앞등 시내곳곳의 도로 통행이 차단돼 엄청난 교통혼잡이 빚어지고 있다. ○…국가비상위는 프라우다·이즈베스티야·소비에츠카야로시아를 비롯,6종의 신문만 발행을 허용하고 나머지는 모두 발행을 중지시켰다. 시내 가판대에는 신문을 사려는 시민들로 긴줄을 이루었으나 모든 신문들은 1면에 국가비상위원회에서 발표한 포고령을 거의 같은 크기로 싣는등 비슷한 내용들. ○미­소 전화통화 폭주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축출 소식이 전해지자 소련과 미국간의 전화통화가 폭주,평소보다 1백배나 많은 통화가 이날 오갔다고 미국전신전화회사의 한 직원이 말했다. 이 직원은 소련의 강경 공산주의자들이 정부를 접수했다는 발표가 있은 뒤 미소간 국제전화가 『폭주했다』고 밝히면서 전화가 불통되지는 않았으나 통화하는데 시간이 지체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 「비상위」 강경파 3인 권력전면에/크렘린 실세는 누구인가

    ◎크류치코프 KGB의장·야조프 국방·푸고 내무/권력중추장악… 「파워트리오」 부상/「대행」야나예프는 「얼굴마담」 인듯 소련 개혁의 기수 고르바초프 대통령을 몰아내고 최고권력을 차지한 것으로 보이는 「국가비상사태위원회」의 8인 가운데 누가 실세일까. 고르바초프 실각 이후 서방세계는 잠정적으로 권력장악에 성공한 것으로 보이는 「비상사태위원회」의 실체 파악에 분주하다. 지난 19일 쿠데타 직후 비상사태위원회는 겐나디 야나예프부통령(54)이 헌법에따라 대통령 직무를 수행한다고 밝혀 일단 야나예프가 소련의 얼굴을 대표하는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야나예프는 급진개혁주의자인 보리스 옐친 러시아공화국대통령등 고르바초프의 복귀를 주장하는 개혁지향세력들의 반발과 분리독립을 거세게 요구하고 있는 공화국들의 움직임을 제어,「비상위」가 지키고자 하는 연방체제를 형성하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러시아태생인 그는 법률·역사학자 출신으로 지난해 12월 고르바초프에 의해 부통령직에 임명되기 전까지는 중앙정치무대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당시 그를 부통령으로 승인했던 인민대표회의는 1차투표에서는 과반수이상이 그를 거부하기도 했을만큼 정치적인 역량을 발휘하지 못했던 인물이다. 야나예프가 명목상이지만 대통령직무를 수행하게 된것은 이번 쿠데타의 대외적 모양새를 고려할 수 밖에 없었을 것으로 추측되는 주도세력들이 온건적인 야나예프의 정치적 성향을 고려했기 때문이라 볼 수 있다.이러한 점은 「비상위」가 쿠데타 직후 밝힌 성명에도 드러난다.「비상위」는 성명에서 쿠데타의 정당성을 고르바초프의 무리한 개혁정책으로 인해 피폐화된 경제회복과 분리독립을 요구하는 공화국들로 인해 무너지는 연방체제 고수에 두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이 성명의 내용은 그동안 고르바초프의 개혁정책으로 입지가 상당히 약화된 군부등 보수강경파들이 일관되게 주장해온 것과 일맥상통하고 있어 이번 쿠데타의 실세가 누구인지 엿볼 수 있게 한다. 즉 크류치코프 KGB의장(67),드미트리 야조프 국방장관(67),보리스 푸고 내무장관(54)등 이른바 「보안 트리오」가 이번 쿠데타를 주도했으며 앞으로 소련의 대서방정책과 국내경제정책등을 추진하게 될것으로 추측된다. 지난 87년 서독의 루스트군이 소련방공망을 뚫고 모스크바 광장까지 경비행기 세스나기를 몰고와 인책경질된 스콜로프에 이어 국방장관에 오른 드미트리 야조프는 중앙아시아군관 사령관과 극동사령관을 역임했다. 지난해 12월,내무장관직에 오른 푸고는 공산당내 강경파의 선두주자로 지난달 미·소양국의 START(전략무기감축)협정체결과 때를 맞춰 리투아니아공화국 수비대원 7명을 사살한 사건의 배후에 내무부가 개입됐다는 설이 나돌 정도로 과격파로 알려져있다. 크류치코프 KGB의장은 워싱턴 포스트지가 CIA정보를 인용,소련 권력서열 2인자로 부상했다고 보도한 인물로 지난 67년 이래 줄곧 KGB에 몸담아 왔다. 이들 「보안트리오」와 같은 선상에서 볼 수 있는 인물로 발렌틴 파블로프 총리(53)를 들 수 있다. 재정통으로 보수강경파인 그는 G­7회담에 참석,서방원조를 요구했던 고르바초프를 비난해 서방기업인에게는 요주의 인물로 여겨지고 있다. 이들 「보안트리오」외에 이번 쿠데타의 핵심배후세력으로 올레크 바클라노프 국방위 제1부위원장이 거론되기도 한다. 바클라노프는 우크라이나 태생으로 지난 83∼89년 동안에는 우크라이나 하르코프에서 미사일 부품을 만드는 군수공장 책임자 역할을 하기도 했던 군·산복합체의 대표격인 인물. 일본 외무성은 그가 고르바초프의 개혁정책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군·산복합체를 대표하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이번 쿠데타의 실세로 분석하기도 했다. 이밖에 바실리 스타로드브체프 농민동맹위원장(59)과 국영기업및 산업시설협회장 티자코프는 농민들과 광공업 종사자들의 동요를 막기위해 이번 「비상위」에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 「보안트리오」등 보수강경파가 주도세력인 이번 쿠데타세력은 군·경찰등 물리적인 힘을 가지고 있지않아 속수무책인 옐친을 비롯한 개혁주창세력을 누르고 당분간은 계속 소련을 장악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고르바초프의 경제정책에 따라 나타난 경제난을 빌미로 쿠데타를 벌인 만큼 「빵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가에 따라 쿠데타의 성공여부는 판가름될 것이다.
  • 한소경협의 재조정(사설)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의 실각으로 우리와 소련간의 경제협력문제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한국의 대소경협문제는 그 목표가 남북간 경협은 물론이고 궁극적으로는 분단극복을 위한 장기 전략의 성격을 띠고 있다.양국간 협력은 순수한 경제협력이라기 보다는 정치와 경제가 접목된 협력으로 보는게 일반적 시각이었다. 중진국인 우리가 소련에 대하여 앞으로 3년간 10억달러의 은행차관을 비롯하여 소비재 및 플랜트 등 30억달러의 차관을 공여키로 했다는 자체가 양국간 경협의 성격을 집약해 주고 있는 것이다.정부베이스 이외의 우리업계 대소협력(투자)의 경우는 양국간 각종 협정이 체결된지 얼마되지 않고 루블화의 태환성 문제로 아직은 시동단계에 있는 실정이다. 무역면에서는 지난해 총 교역규모가 8억8천만달러에 이르렀고 올 상반기 중에는 5억1천만달러에 달했다.무역거래신장률이 빠르게 움직이고 있기는 하지만 우리의 대공산권무역에서 소련이 차지하는 비중은 13% 정도이다.이런 상태에서 고르바초프가 실각함으로써 앞으로 한소간 경협관계가 어떻게 유지될지 아직은 분명치 않다. 그러나 현재까지 한소간 경협관계현황만을 놓고 본다면 고르바초프 실각으로 인해 우리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일부의 예상과는 달리 그다지 크지 않을 것이라는게 우리의 판단이다.순수히 경제적 대차대조표면에서 보면 결정적인 손실을 입거나 당할 위험은 없다고 하겠다.다만 우리기업의 소련내 자원개발을 비롯한 장기적 관점에서의 투자협력은 상당한 후퇴가 불가피할 것이다. 이번에 새로 정권을 잡은 세력의 성격이 보수적이고 정권변동과정에서 예상되는 혼미를 감안하면 한국과 소련간의 경제협력관계는 앞으로 최소한 2∼3년간은 냉각상태를 면치 못할 것으로 예견된다.물론 소련의 국가비상사태위원회가 민주화 및 시장개혁을 계속 추진하고 외국과 체결한 각종 협정을 준수할 것이라고 밝히고는 있다.그러나 자유시장 경제는 정치와 달리 냉엄하고 현실적인 이해관계를 기본원리로 하기 때문에 우리민간기업의 대소 무역및 투자가 상당기간 스톱상태를 보일게 거의 분명하다.이번 정변이 일어나기 전에도 많은 국내 기업들이 소련의 외환사정과 정정불안 등을 감안하여 대소진출에 적극성을 보였다기 보다는 탐색전을 펴왔다고 할 수 있다. 대소경협에 있어서 문제는 우리정부가 소련에 제공키로한 30억달러 규모의 공공차관이다.소련은 이 차관의 경우 양국간 합의된 사항이므로 자금지원을 당초 계획대로 추진해 줄 것을 요청할 공산이 크다.그렇지만 한소간 경협문제는 고르바초프 정권때 약속된 것이다.정권이 바뀔 경우는 차관 공여와 관련된 합의사항의 이행여부가 불투명해 진다. 제공된 차관의 상환여부를 비롯하여 경협과 관련된 여러가지 정치적 합의사항 또한 매우 불확실한 상황이다.뿐만 아니라 소련의 이번 정변은 동서간의 데탕트무드를 근본적으로 바꿔 놓을 우려도 없지 않다.그러므로 자유진영권에 있는 우리 또한 서방선진국들과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하면서 대소경협문제를 처리해 나가는 것이 합당한 정책방향이라고 생각한다.
  • 국제질서 파장과 크렘린의 진로/긴급대담

    ◎모스크바 정변… 동북아엔 새 변수로/계획된 시나리오… 개혁은 지속전망/세계질서에 또 「불확실성시대」우려/국제무대 영향력행사 한계에 봉착/세계여론 무시 못해 서방과 경협은 계속될듯/군부집권땐 북한과 관계강화 예상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의 갑작스런 실각은 「신데탕트」로 함축되는 신국제질서의 대변화의 가능성을 예고하고 있다. 지금 전세계는 충격속에서 모스크바의 긴박한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번 사태는 특히 유엔동시가입을 계기로 한 남북한교류확대및 통일전망에 대해서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사단법인 평화연구소 김남식연구위원과 외교안보연구원 서병철교수와의 긴급좌담을 통해 이번 사태가 세계질서와 동북아역학구조및 남북한관계에 미칠 영향에 대해 진단해 본다. ▲김남식위원=고르바초프대통령에 대한 소련내 보수세력의 제동은 충분히 예측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소련은 85년 고르바초프대통령이 집권해 개혁·개방정책을 추진하면서 6년여만에 엄청난 변화를 겪었습니다.이전까지의 기본노선을 전환해야 할 정도였습니다.사회주의와 상반되는 요소들이 강화되면서 연방국가가 지탱키 어려울 정도의 어려움에 직면했습니다.그러나 이같은 변화가 고르바초프가 원했던 개혁·개방노선이었는가에 대해서는 대부분 소련사람들은 아니다라고 얘기할 것입니다. 소련내부에서는 고르비의 개혁이 애당초 국민적 합의도출에 의한 것이 아니었고 결과적으로 소련사람들에게 불리한 상태로 간다는데 대해 불만이 팽패해 왔습니다.특히 소련정권이 수립된 이후의 기득권 세력에게는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고 할 수 있었습니다. 고르비는 개방과 개혁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다시피 추진해왔습니다.갈등속에서라도 합의과정을 거쳤더라면 괜찮았겠지요. ▲서병철교수=보도가 사실이라면 현 국제질서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엄청난 사태라고 하겠습니다.우리가 가장 두려워했고 기피하려 했던 사태라는 점에서 경악을 금치 못합니다. 고르바초프는 동서긴장완화와 신데탕트의 산파역으로 전인류의 평화정착에 기여했습니다.그의 정책이 완전한 결실을 보기전에 이같은 사태가 벌어졌다는 것은 세계질서를 또다시 「불확실의 상태」에 빠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우려됩니다. 고르비가 의욕적으로 추진해 온 개혁·개방정책은 그 이전까지의 강경한 공산주의 이념과는 본질적으로 판이하게 달랐습니다.그만큼 저항세력도 많을 수밖에 없었습니다.특히 군부와 KGB는 강력한 억압정치를 통해 소련을 사실상의 초강대국으로 유지시켜 왔으나 그같은 위치마저 흔들리게 된 현실에 직면해서는 보이지 않는 반발을 보여왔습니다.그같은 반발이 이번에 표면화됐다고 하겠습니다.어쨌든 국제질서 뿐 아니라 동북아나 한반도에 대해서도 역학관계의 변화를 점치게 하는 큰 사건입니다. ▲김위원=그러나 보수세력이 주도해 이루어진 사건이라고 하더라도,또 누군가 정권을 잡는다고 하더라도 소련의 대외정책이 근본적인 궤도수정을 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여집니다.고르바초프의 개혁·개방정책에 맞물려 일어난 동구사태등 탈냉전을 통한 평화질서의 큰 흐름은 거부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이제까지 소련의 개혁·개방정책은대서방 특히 미국과의 관계와 뒤엉켜 추진돼 왔기 때문에 보수세력이 아무리 못마땅하더라도 갑자기 변경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번 사태가 소연방의 존속에 대한 위기감과 불투명한 경제·사회발전 전망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사태를 주도한 보수세력도 연방내의 정치적 안정에 주력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또 어떻게 하면 소연방을 지켜나가겠느냐에 초점이 맞춰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이점에서 고르바초프를 중심으로한 개혁파가 추진해 온 계획에도 근본적인 변화는 없을 것으로 봅니다. ▲서교수=동감입니다.소련의 개혁정책은 근본적으로 국민생활의 질을 향상시키는데 근본목적이 있었습니다.보수강경파가 정권을 장악하더라도 다른 방법을 통해 국민적 욕구를 충족시킬만한 가능성이 없습니다.따라서 고르바초프가 추진해 온 신사고에 의한 대서방협력및 경제개혁정책등은 설사 속도는 늦어질망정 그대로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소련국민들도 강경보수세력에 의한 중앙통제식 경제체제로의 회귀를 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김위원=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 국가들은 종전까지 모든 정책을 추진함에 있어 이를 합리화시키는 이론제시를 선행했습니다.그러나 고르바초프는 군부등 극우 보수세력들의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개혁·개방에 대한 충분한 설득을 하지 못했습니다.이 과정에서 불만세력들은 무언중 조직화될 수 있었습니다.이번 사태가 신연방헌법 조인을 앞두고 일어났다는 점에서 그동안 참고 참았던 세력들이 오래전부터 계획한 시나리오에 의해 일으킨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가지 권력을 승계한 야나예프부통령은 허수아비에 불과하다는 생각입니다.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인물이라는 점에서 헌법상 절차에 따라 직책을 이어 받은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보수세력들 특히 8인연방위원회는 당분간 내부혼란 극복에 주력할 것입니다.이 점에서 옐친러시아공화국 대통령에게도 손을 대지 못할 것으로 봅니다. ▲서교수=군부에 의한 쿠데타라고 하더라도 현재 소련이 직면한 경제적 어려움을 고려할 때 이번 사태를 계기로 소련이 군비강화쪽에 주력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소련은 현재의 군사력을 유지하기 위한 경비조달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또 바르샤바조약기구마저 해체된 현상황에서 소련은 과거 브레즈네프독트린과 같은 방식으로 동구권국가들에 대해서도 간섭할 위치에 있지도 않고 그럴만한 힘도 없습니다.앞으로 소련은 국제정치에 있어 영향력을 행사하는데 깊은 딜레머에 빠질 것입니다. ▲김위원=이번 사태를 맞고보니 남북한 유엔가입문제가 고르바초프 집권시에 실현된 것만은 무척 다행스럽다는 생각입니다. ▲서교수=그렇습니다.남북교류의 물꼬가 트인 점이라든지 소련과의 국교수립도 마찬가지입니다.아직도 소련내에서는 독일통일에 대해 불만여론이 많다지 않습니까. ▲김위원=동서냉전이 해체되는 상황에서 벌어진 이번 소련사태가 지금까지의 국제적 흐름을 근본적으로 역류시킬 수는 없다고 봅니다.다만 국제적 추세에 비해 평화정세로 바뀌는 상황이 굼뜬 캄보디아·한반도등 아시아지역에 이번 사태가 어떤 영향을 미칠지 크게 주목됩니다. 우선 아시아의 집단안보체제를 통한 평화유지라는 소련측 입장이 고르바초프시대에 정립된 것이 아니라 브레즈네프시대에 마련된 정책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점에서 아시아 자체의 상황변화가 없는한 크게 변하지 않으리라 봅니다. 그러나 중국과의 협력관계,특히 안보적 차원의 협력관계는 과거보다 깊숙이 연결될 가능성이 있습니다.같은 맥락에서 소련내 보수세력과 북한과의 관계는 일단 더 가까워질 것으로 보아야 하겠지요. 따라서 만약 소련내에 군부가 주도하는 정권이 들어선다면 혹은 군부가 배후조종하는 정권으로 바뀐다면 소련은 한국보다 북한과의 관계를 중시할 것이므로 남북관계나 아시아안보환경에도 일정한 영향을 미치리라 봅니다. ▲서교수=소련이 강경노선으로 선회할 경우 과거의 사회주의권 국가들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서 일단은 노력할 것으로 봅니다.그러나 대다수 사회주의권 국가들이 이미 공산당 유일체제를 버렸기 때문에 과거와 같은 형태의 소련과의 주종관계는 재현되기 어려울 것입니다.특히 동유럽에서의 대소관계는 고르바초프시대에 방향전환한 그런 상태가 계속 지속될 전망입니다. 한반도문제로 국한해 본다면 북한은 그동안 소련의 신정치의 영향을 받아 총리회담 등을 통해 화해 제스처를 써온 것도 사실입니다.그러나 고르바초프의 실각을 계기로 북한은 지금보다 더 보수·강경입장을 내세울 가능성이 있습니다. ▲김위원=대소수교를 비롯해 우리의 북방정책의 성공으로 정치·경제·문화 등 모든 부문에서 한소관계의 발전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이번 사태가 터져나왔습니다.우리의 북방정책의 성공은 소련의 대한반도정책이라는 소련측의 요구와 일치됐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고르바초프의 개혁·개방정치에 제동이 걸리게 된다면 한반도 정책에도 일정한 변화가 생길 수 있을 것입니다. ▲서교수=소련내에서는 지금까지 고르바초프의 개혁정책에 대해 반기를 들고 쿠데타를 일으킬 가능성을 갖고 있는 군부를 중심으로 한 반대세력이 엄존한 것도 사실입니다만 소련이 제2·3류의 낙후국으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개혁을 추진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도 또한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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