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서방
    2026-08-09
    검색기록 지우기
  • 신도
    2026-08-09
    검색기록 지우기
  • 2026-08-09
    검색기록 지우기
  • 배수
    2026-08-09
    검색기록 지우기
  • 재생
    2026-08-09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4,150
  • 대 중국 「인권경고」/서방,통첩 전달방침

    【홍콩=최두삼특파원】 9월초 북경을 방문하는 존 메이저영국총리는 서방측이 인권문제와 관련해 중국지도자들에게 보내는 최후통첩을 휴대할 것이라고 홍콩 스탠더드지가 29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영국총리관저의 고위소식통을 인용,메이저총리가 중국내에서 수천명의 반체제인사들이 투옥되거나 처형되고 수백만명의 자유로운 주장들이 묵살되는 그런 상황이 지속되는한 중국은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되돌아올수없다는 내용의 최후통첩을 전달할 것이라고 밝혔다.
  • “독재의 기둥” KGB 수술대에 오른다

    ◎「공포의 위상」 어떻게 바뀌나/개혁물결 반영,권한축소 불가피/휘하 30만 병력 국방부 배속 방침/총원 70만명에 한해 예산 49억 루블 소요 소련 공산독재정권의 「칼과 방패」로 무자비한 철권을 휘둘렀던 「비밀경찰」KGB가 역으로 철퇴를 얻어맞고 있다.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은 쿠데타실패 직후 국가보안위원회(KGB)의장에 개혁파 인물인 바딤 바카틴 전내무장관을 임명,KGB에 개혁바람을 예고했다.고르바초프는 28일 KGB 최고지휘부인 콜레기움(협의회)의 해체를 명령하고 KGB 휘하의 30만 국경경비대 병력을 국방부 통제하에 두도록 지시했다. 실무국장단과 부의장 7명이 포함된 협의회를 없애 개혁파 바카틴의장이 전적인 지휘권을 갖도록 했으며 본연의 정보활동외에 월권의 근거였던 군사조직을 또한 없애버린 것이다.거기다 진보적인 인사들로 조사단을 구성,KGB 고위층의 지난 쿠데타 개입여부 뿐만 아니라 「국민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던」KGB 활동 전반에 대한 감사를 실시하도록 한 것이다. 조사단은 오는 10월 중순까지 이 악명높은 「비밀경찰」의 실상을 적기하면서 새롭게 정립해야 할 국가보안위로서의 역할을 제시할 예정이나 KGB의 권위실추와 권한축소는 자명해보인다. 바카틴 신임의장은 『지금까지의 KGB는 거대한 독점 그 자체로서 일대 절단의 수술이 필수적이다』는 의견을 공공연히 피력하고 있다. KGB는 총 소속인원이 70만명으로 추정되고 공식적인 예산만도 49억루블(한화 약22조원)이다.이 기관의 활동영역을 미국과 대비시켜 보면 CIA의 해외정보활동,FBI의 국내중요범죄 수사,정부기관 동향파악,관세및 국경수비 그리고 일반시민에 대한 사찰권을 포괄 보유해왔다. 군·공산당과 함께 소련독재의 3대 기둥의 하나인 KGB는 지난 1917년 볼셰비키 혁명 직후 창설된 「체카」를 원조로 삼고 있다.혁명정부를 주도하고 있던 레닌은 국내외로부터의 반혁명 음모에 대처하기 위한 비상기구로 체카를 설치,그해 12월 출범시켰다.「바퀴를 조이는 나사못」이란 뜻의 체카는 처음 23명으로 구성되었는데 첫 책임자는 테러 예찬론자로 폴란드태생인 펠릭스 제르진스키였다. 체카는 출범한지 1년이 채안된 1918년 8월 레닌에 대한 저격사건을 계기로 반혁명분자들을 정식재판에 회부하지 않고 처형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게 됐다.그후 1919년 말까지 「혁명의 수비대」라는 기치아래 1백만명을 반혁명분자로 몰아 재판없이 처형했다. 소련은 신경제정책을 추진하면서 미국 차관을 얻기 위해 1922년 2월 체카를 폐지하고 내무인민위원부(NKVD)소속으로 국가정치보안부(GPU)를 설치한다.GPU의 책임자는 제르진스키가 그대로 맡았고 기구도 그대로였으며 23년 소련 헌법이 채택되자 GPU는 합동국가정치보안부로 바뀌지만 실체는 변동없이 똑같았다. 이 기구는 스탈린의 폭압정치를 거치면서 엄청나게 강화된 권한을 부여받고 무자비한 피의 숙청을 도맡았다.스탈린 시대의 이 기구 총책인 베리야가 53년 총살당한 뒤 54년 KGB로 개칭돼 오늘에 이르렀다. 85년 고르바초프가 집권하면서 KGB의 변화가 시작되었으나 89년 동구의 민주혁명 때까지만 해도 위성국 정보망의 상부조직으로서 공산독재체제의 유지에 전력을 기울여왔다.국내사찰요원 4만명,해외공작요원 2만명으로 추산되는 민간요원들은 동구민주화 이후에는 외국의 군사비밀과 경제기술분야 스파이활동에 중점을 두어오면서 서방원조식량의 소련내 배급을 감독하는 기능을 담당했다. KGB는 90년 5월 합법성을 원칙으로 하고 인권및 자유를 존중한다고 선언했으나 크류치코프 전임 의장은 「서방의 소련전복 기도」를 여러번 경고하는 등 보수적 성향을 드러내보인 뒤 이번 쿠데타에 주도자로서 참가했다.쿠데타 주도혐의로 기소된 13명 가운데는 크류치코프 의장 외에 3명의 KGB 고위인사가 더 연루되어 있다. KGB 일부에서는 이번 쿠데타에의 참여도 및 연루자들은 이 기구 전체로 보아 소수파에 지나지 않는다고 항변하고 있으나 쿠데타와 상관없이 KGB의 권한축소를 통한 위상재정립은 피할 수 없어 보인다. 민주화와 「비밀경찰」은 결코 양립할 수 없는 것이다.
  • 재기 시도하는 고르비

    ◎옐친 독주 공화국 반발도 한몫/“연방유지” 대세타고 역공세 펼쳐 소련의 앞날은 여전히 불투명하다.이는 옐친에 대해 월권행위를 하지말라는 고르바초프의 28일 경고로 확연히 드러났다.소련의 새 지도자로 급격히 부상하는 옐친에 대한 고르바초프의 반격이 시작된 것이다.쿠데타로 정치적 생명에 큰 타격을 받은 고르바초프가 이같은 반격을 가한 것은 소련의 연방제유지를 둘러싼 갈등이 계속되는데다 쿠데타후 옐친에의 반발이 가시화한데 따른 것이다. 옐친이 민주화의 새 기수로 등장한 것은 분명하다.그러나 옐친은 쿠데타후 많은 초헌법적 월권행위를 범했다.이는 옐친의 독재에 대한 서방의 우려를 불렀다.옐친은 또 러시아공화국의 주도를 지나치게 강조,몇몇 공화국들로부터 공산당독재에서 러시아공화국독재로 바뀔 뿐이란 반발을 샀다.이때문에 옐친과 공화국들간에 마찰이 생겼고 고르바초프에게 반격의 빌미를 제공했다. 연방체제의 유지는 고르바초프와 옐친 모두가 지켜야할 절대명제다.경제관계를 포함,끊임없이 제 목소리를 내는 각공화국들간의 이해조정,핵무기배치등 군사문제,대외관계조정등에 있어 연방제가 유지되지 않으면 소련은 필연적으로 파탄의 길밖엔 없다. 두사람은 이에 대해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그러나 연방정부의 권한폭에 대해선 큰 견해차를 보인다.연방정부의 권한축소가 불가피해도 연방정부의 지나친 약화는 연방제유지를 불가능하게 할수 있다.옐친은 이를 무시했다.이는 옐친의 실수이며 고르바초프의 반발을 더욱 효과적으로 만들지도 모른다. 고르바초프의 정치생명은 끝난 것으로 말해진다.사실 고르바초프가 이번의 타격에서 완전히 회복,과거의 절대적 권위를 유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그러나 소련은 아직도 고르바초프를 필요로 하고 있다.혼돈속의 소련을 안정시키는게 지금 고르바초프의 역할이다.그이후 고르바초프는 자연스럽게 배턴을 넘길 것이고 배턴을 이어받을 사람은 현재로선 옐친이 가장 유력하다. 이같은 인식은 옐친진영에서도 보여진다.옐친은 26일 새 연방대통령선거 불출마를 밝혔다.이는 옐친이 자신의 행동에 잘못이 있었음을 인정,고르바초프와 공생하겠다는 의사표시로 볼수 있다.따라서 고르바초프의 경고에 대한 옐친측의 큰 반발은 없을 것같다. 옐친에 대한 고르바초프의 경고는 고르바초프에게 또한번의 기회가 주어진 것이라고 할수 있다.그러나 이것이 고르바초프의 완전한 정치적 부활까지 이어지기는 힘들 것이다.단지 자신의 주도로 시작된 소련의 개혁이 완결될수 있는 기반을 닦을 기회가 주어진 것일뿐이다.
  • 일­북한 4차 수교회담/오늘 북경서 개막

    【도쿄 연합】 제4차 일·북한 국교정상화 회담이 30,31일 양일간 북경에서 열린다. 이번 회담은 소련의 공산당 해체 등으로 사회주의 국가들이 많은 충격을 받고있는 가운데 열리는 회담일 뿐만 아니라 특히 북한은 소련사태후 처음으로 서방측과의 협상테이블에 자리를 같이 한다는 점에서 양국 현안은 물론 북한이 소련의 변혁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를 탐색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회담의 의제는 ▲관할권을 포함한 국교정상화에 관한 기본문제 ▲식민지시대의청구권 보상 전후보상 등을 비롯한 경제문제 ▲핵사찰 남북대화등 국제문제 ▲일본인처의 귀향등 기타문제등 4개항이다.
  • 김태촌 피고 담배소지/서울구치소 감찰조사

    법무부는 28일 폭력조직 「서방파」두목 김태촌피고인(43)이 양말속에 담배를 지니고 재판정에 출두한 사실과 관련,서울구치소에 대한 감찰조사에 나섰다. 법무부는 감찰조사결과,교도관들이 김피고인의 담배소지사실을 눈감아 주었거나 신체검색을 소홀히 한 사실이 적발되면 관계교도관을 징계할 방침이다.
  • 노 대통령 평통해외자문위원 격려사/요지

    소련의 불행한 사태는 우리에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레닌의 10월혁명이후 지난 74년간 공산주의의 종주국이던 소련에서도 공산당이 간판을 내리고 공산주의는 와해되었습니다. 동유럽의 모든 나라에서 공산주의가 몰락하고 소련에서 마저 공산체제가 무너진 이제 북한만이 폐쇄된 공산체제를 지탱할 수 있겠습니까. 이 개방된 세계에서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도도한 역사의 물결을 북한은 외면할 수도,거스를 수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분단과 전쟁의 비극을 가져다준 냉전체제 자체가 이제는 완전히 허물어 졌습니다. 북한은 변화할 것이며 그럴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한달뒤 남북한은 나란히 유엔의 회원국이 됩니다. 북한이 종래의 완강한 태도를 바꾸어 우리와 함께 유엔에 가입키로 한 것은 더 이상의 고립으로는 그들 스스로의 발전은 물론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각성의 시작일 것입니다. 우리가 한 나라가 아닌 두 회원국으로 유엔에 들어가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남북한이 통일로 가기 위해 불가피하게 거쳐야하는 중간단계일 뿐입니다. 남과 북이 상호실체를 인정하지 않고는 진정한 대화도,공존공영하는 관계도 이룰 수 없습니다. 「북방정책」은 우리가 평양으로 바로가는 길이 막혀있는 상황에서 모스크바와 북경,유엔을 경유하여 평양으로 가는 길을 트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나는 진정한 민주주의를 하는 것이 통일의 튼튼한 기반을 다지는 길이라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그동안 민주주의를 여는 전환기적 상황속에서 국민들의 어려움도 컸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 국민들은 민주주의에 대한 자신과 긍지를 갖게 되었습니다. 힘이 아니라 국민의 의사와 합의에 바탕한 민주적 안정이 굳건해지고 있습니다. 우리경제도 어려움은 안고 있으나 한해 8∼9%의 높은 성장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1996년 쯤이면 1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21세기에 들어서면 1만5천달러로 명실상부한 선진국이 될 것입니다. 냉전시대 서방세계의 변두리 나라였던 우리나라는 이제 미국과 일본,중국과 소련을 오가는 한가운데 있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21세기를 10년 앞둔 지금 한국은 새로운 국제질서의 형성을 앞장서 이끄는 이 세계의 한 중심국가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동서독이 통일을 이루었고,유럽이 하나가 되고 있습니다.한반도만이 냉전으로 분단된 땅으로 남아 있을 수 없습니다. 세계와 역사의 거대한 흐름이 우리의 자주통일시대를 재촉하고 있습니다. 이제 통일은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우리의 주도적 노력으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오늘을 사는 바로 우리 세대가 보릿고개가 길고 서러웠던 가난한 나라,전쟁이 모든 것을 폐허로 남기고간 나라를 번영하는 선진국으로 만들고 7천만 겨레가 한 울타리속에 살아갈 통일된 나라를 이룰 것입니다. 이제 우리에겐 그것을 이 세기안에 이룰 수 있다는 희망과 자신이 넘칩니다. 앞으로 몇년간이 우리 겨레의 장래와 운명을 가름하는 중대한 분수령이 될 것입니다. 이 민족적 소망을 이루는데 온 국민은 물론 세계의 한민주 모두가 뭉쳐야 할 때입니다.
  • 대소 경원 저울질/서방,폭·시점 논란

    ◎“정정불안” 들어 「구체지원」 유보/독/“6백억 마르크가 상한” 기존입장 고수/미/“즉각 원조”·“향배 따른 대응” 이견 팽팽 보수강경파의 쿠데타 이후 대부분의 서방선진국들이 소련에 대한 경제지원에 원칙적인 합의를 이루고 있는 가운데 그 규모와 시기선택을 위한 각국의 움직임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서방선진7개국(G­7)회의 현의장인 존 메이저 영국총리는 28일 미메인주의 케네벙크포트로 가서 휴가중인 부시대통령과 만나 대소원조문제를 협의했으며 이번 주말에는 모스크바를 방문,고르바초프대통령과 옐친 러시아공대통령을 만나 경제지원문제를 협의할 예정이다. 또 29일에는 런던에서 G­7정상들이 개별특사회담을 열어 대소원조를 위한 정치적 방향을 설정하고 30일에는 이를 바탕으로 G­7재무차관들이 파리에서 회담을 갖고 구체적 원조방안을 수립할 계획이다. 이에앞서 EC 12개 회원국들은 27일 브뤼셀에서 긴급 외무장관회담을 갖고 대소경제지원방향을 논의했으며 세계은행(IBRD)은 이날 소련의 산업을 돕기 위한 3천만달러의 기술지원을 승인했다. 그러나 소련내 각공화국의 잇따른 독립선언등 정정의 불확실성 때문에 아직까지 획기적인 지원방안은 제시되지 않고 있어 「긴급수혈」을 기다리고 있는 소련측의 애를 태우고 있다.이는 서방측이 원하는 수준까지의 개혁을 돕기위해 누구에게 얼마만한 규모로 원조를 제공해야 할것인가에 판단을 유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소련에 대한 최대의 재정지원국인 독일은 기존 고르바초프대통령에 대한 약속분인 6백억마르크(미화3백40억달러)이외의 더이상 원조는 불가능하다는 종전의 고르바초프지원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또 향후 대소원조에서 가장 큰몫을 차지하게 될 미국의 경우 찬반논란이 무성한 가운데 아직 입장을 결정짓지 못하고 있다.소련사회의 변혁을 시작한 고르바초프를 도와 개혁작업을 완수토록 해야한다는 주장이 있는 반면에 새 역사의 주역인 옐친의 향배를 보아 지원해야 한다는 상반된 견해가 팽팽히 맞서 있는 것이다. 그러나 쿠데타이전 그레고리 야블린스키등 소련 개혁파 경제전문가들과 함께 소련 개혁의 대가로 서방세계가 원조를 제공한다는 이른바 「대협상」(GRAND BARGAIN)이라는 경제지원 청사진을 마련했던 하버드대의 교수들은 소련사태의 전개속도와 임박한 경제적 위험으로 볼때 지원을 더이상 미룰수 없다고 강조하고 즉각 실행을 촉구했다. 한편 27일 고르바초프대통령과 옐친 러시아공대통령,나자르바예프 카자흐공대통령,아카예프 키르기스공대통령등이 모여 앞으로 10일 이내에 새로운 경제협정에 조인하기로 합의한 것은 붕괴분위기의 소련방내에 공화국간의 협력이 아직도 가능하다는 한 예를 보여주었다. 따라서 오는 9월초에는 신연방조약이 체결되는 등 일련의 소련 자구노력에 따라 서방세계의 대소원조는 그 시기나 규모를 훨씬 소련측에 유리하게 이끌수 있을것으로 전망된다.
  • 전술핵 1만5천발/소 15개공에 산재

    ◎공화국 독립사태로 통제문제 우려/전문기술 없어 독자사용은 못할듯/핵가방 탈취때도 고르비 협력없인 사용불가능 한때 쿠데타세력들의 손아귀에 넘어갔던 소련의 핵무기통제권은 현재 소련 중앙정부가 회수,핵의 위협은 일단 없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19일 쿠데타세력들이 핵가방을 고르바초프대통령에게서 빼앗았다는 소식에 미국등 서방각국들은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이들이 핵무기의 보턴을 누를수도 있는 돌발사태에 대한 우려 때문이었다. 그러나 체니 미국방장관이 밝혔듯이 핵의 위협은 없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체니장관은 지난 25일 NBC­TV와의 회견에서 『구데타기간중 핵무기사용의 위험은 없었다』고 밝혔다.아나톨리 체르나예프 고르바초프보좌관도 이점에 대해 『이들은 고르바초프의 도움없이는 핵을 사용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군사도서출판으로 권위있는 영국의 제인스출판사가 펴낸 「소련최고사령부」편집자인 리처드 우프씨도 『소련의 핵무기배치체제로 보아 쿠데타세력들이 암호를 사용할 수 없을 것』으로 분석,핵사용의위험성을 배제하고 있다.핵무기가 실제로 발사되기 위해서는 대통령·국방장관·군참모총장 등 3인의 협조가 있어야만 가능한데다,당시 이들의 쿠데타에 대한 입장이 각기 달랐으므로 핵무기사용은 불가능했었다는 것이다. 한편 미정부의 한 관계자는 이번 쿠데타세력들이 핵가방을 손에 넣은 것은 핵전쟁을 계획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핵」이 현대핵국가에서 최고권위의 상징이었기 때문에 핵가방을 확보했던 것이라며 핵위협은 존재하지 않았다는 분석을 했다. 즉 강경보수파들이 자포자기상태에서 핵버튼을 누를 수도 있다는 「핵공갈」을 했을 뿐이라는 것이다.또 이를 계기로 옐친등 반공산주의지도자들은 일부 최고권력자들만이 핵무기를 손에 넣는 것을 방지하는 강구책을 마련할 것으로 전망했다. 현재 이 핵통제권을 누가 확보하고 있는지 분명하지 않으나 스코크로프트 안보담당보좌관등 미국의 전문가들은 『고르바초프나 옐친의 통제하에 놓여 있을 것』이라고 조심스레 밝힌다. 그러나 공화국들이 독자적인 군창설을 계획하며 분리독립을 추진하고있어,연방내 곳곳에 흩어져 있는 전술·전략핵무기의 안전은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다. 겐셔 독일외무장관은 이문제를 이미 지난달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연방해체로 핵보유공화국이 생길 것』이라며 지적,서방측이 소련과 새핵무기감축협상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소련전략핵무기의 80%는 러시아공화국에 배치돼 있으며,1만5천발에 이르는 전술핵은 공화국 도처에 흩어져 있어 통제에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우프씨등 전문가들은 『각 공화국들이 핵무기사용에 필요한 전문기술을 가지고 있지 않아 모스크바의 통제를 받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며 다른 견해를 밝혔다. 샤포스니크프 신임국방장관은 이와관련,『지상군은 공화국이 통제할 수도 있다』면서 『그러나 핵무기는 결코 연방에서 공화국에 넘겨줄 수 없다』고 강조,앞으로 분리독립을 추진하는 공화국과의 협상에서 가장 첨예한 문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 중국,대대적 하방운동 다시 시작

    ◎소 정변에 위기감… 전역에 간부 파견/신강 자치구선1급 전시비상체제 돌입 【홍콩=최두삼특파원】 소련정변으로 위기의식에 사로잡힌 중국 공산당은 60년대 문화혁명때처럼 도시의 주요 간부들을 시골에 내려보내 농민사상교육을 전담케 하는 이른바 하방운동을 다시 시작하는등 대대적인 이념무장강화 캠페인에 들어갔다고 홍콩의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지가 28일 보도했다. 이 하방운동으로 중국 전역에 걸쳐 수천명의 각급 기관간부들이 본래의 직무를 중단한채 약5∼6개월동안 벽촌에 배치돼 농민들을 대상으로 사회주의 우월성을 교육시키고 당세포조직을 강화해 나갈것이라고 이 신문은 전했다. 이밖에도 중공당은 주민들의 이념강화를 위해 ▲6·4천안문사태이후 중지해온 서방과의 이념교류를 앞으로 2년간 추가 중단 ▲의사들의 농촌 무료봉사활동 전개 ▲모택동선집등 「양서」읽기운동 전개 ▲정규교육기관에서 강택민총서기의 당창건 70주년기념 연설문과 서방측의 화평연변(평화적 수단에 의한 체제전복공작)에 대한 토론 활성화 등을 추진할계획이다. 【도쿄 연합】 중국인민해방군은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이 복귀한 지난 21일부터 신강위구르 자치구에서 제1급전시비상 체제에 들어갔다고 일 요미우리신문이 28일 북경 소식통을 인용,보도했다. 이는 소련 각공화국의 독립이 중국의 민족 독립운동에 파급되는 것을 중국정부가 강하게 우려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이 신문은 풀이했다. 신섭은 원래 위구르인이 압도적인 다수를 점하고 있었으나 신중국이 성립된 후 한주의 이주가 계속돼 현재는 자치구 총인구 1천5백만명 가운데 45%를 한족이 차지하고 있다.
  • 옐친의 소련/공산독재 막 내리다:5

    ◎「유럽형 정치」 추구 가치관 대혼란/보혁갈등 지속… 국민의식 성숙이 과제로/「쿠데타재판」은 뉘른베르크재판 우려 소련공산당의 활동이 중지됨에 따라 러시아공화국이 마치 전후의 폐허같은 소연방의 실질적인 유산상속자가 됐다.경제는 물론 정부조직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해야한다. 역사상 모든 정쟁의 승리자들이 그랬듯이 러시아지도자들도 우선 ▲자신들의 권력강화 ▲구체제청산작업 ▲국제적인 승인을 받기위한 외교노력에 나서는등의 수순을 밟을 것이다. 쿠데타의 실패는 소연방의 원심력을 엄청나게 증가시켰다.신연방조약 체결문제를 놓고 고르바초프­옐친­나자르바예프 카자흐공 최고회의 의장의 3자간 최종담판이 진행되고 있지만 앞으로 소연방이 어떤 모습으로 다시 태어날지 섣불리 짐작하기 힘든 상황이다.분명한 것은 적어도 러시아공화국 서쪽에 위치한 연방공화국들 누구도 이제 다시 소연방에 종속되려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연방대통령은 이제 상징적인 국가원수의 권위만 겨우 유지하게 되겠지만 이런 약화된 권력으로 연방정부가 얼마나 오래 유지될지도 사실은 의문이다.영련방과 같은 형태,아니면 주권국가연합(Confederation)이 될 것이라는 전망들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70여년동안 소의 지배이데올로기였던 공산주의가 물러감에 따라 소련전역은 당분간 엄청난 가치관의 혼란을 피할수없게 됐다.1945년 2차대전 종전이후 나치당에 대해 내렸던 조치들이 공산당에 그대로 되풀이되고 있다.당은 범죄집단으로 규정돼 모든 활동이 중지됐고 재산은 국가에 몰수됐다.라트비아정부는 알프레드 루빅스 공산당제1서기를 벌써 체포했고 뉘른베르크의 전범재판이 소련땅에서 재현될 것이란 우려가 나돌고있다. 공산주의 청산과정에서 러시아공화국이 과연 어떤 태도를 보일 것이냐도 관심거리이다.러시아정부는 벌써 쿠데타 주도세력들에 대한 수사에 일체 연방정부의 간섭을 배제시켜놓고 있다.공산당·KGB청산작업이 자칫 반문명적인 폭력을 수반치않을까 하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이들에 대한 처리방식은 향후 소연방의 주인이 될 러시아정부의 성격을 가늠하는 중요한 잣대가될수 있을 것이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소공산당이 순순히 자진 해산의 절차를 밟아 「여러 정당중의 하나」로서의 새 지위에 빨리 적응하는 일이다. 그다음으로는 외교적으로 과연 누가 소련의 실질적인 대표자가 될 것이냐는 문제가 있다.발트해3국 등은 이미 연방정부의 존재를 부인하고 있다.에스토니아정부는 벌써 대표단을 옐친에게 보내 그를 모스크바의 유일한 지도자로 대우했다.고르바초프와 옐친 두사람중 누가 과연 소의 진짜 지도자인가.G­7을 비롯한 서방국들은 대소경제지원문제를 결정하기전에 이의 해답을 구해야 한다.당분간 이 두사람과 서방지도자들간에 미묘한 「카드놀음」이 연출될 것이다.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모스크바의 실질 권한이 이제 옐친의 손에 있다는 것이다.과거 서방국들이 고르비와 상대했던 것은 그가 소의 실제 권력자였기 때문이다.현실적인 서방정치인들이 더이상 고르바초프에게 집착할 이유가 이제는 없어졌다. 신연방조약 체결문제,공산당과 KGB 등 구체제청산문제,그리고 대외관계수립 등 공산주의 이후 소련이 안고 있는 문제,어느 하나 간단한 것이 없다.제한적이지만 구세력들의 반발도 있을테고 연방정부와 러시아,러시아와 여타 공화국간의 권력 게임 또한 조용히 처리될 문제는 아니다. 이런 난제들에도 불구하고 소련의 장래에 대해 낙관적인 견해를 갖게하는 중요한 요인 중 하나가 쿠데타세력에 저항하면서 보여준 소련국민들의 성숙한 민주의식이다. 공산주의이후 소련이 가는 길은 지금까지의 모든 비정상적인 것을 정상으로 되돌리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다시말해 그것은 헌법·법·질서를 존중하는 유럽정치 문화에로의 편입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모스크바 시민들이 보여준 시민정신은 이 작업이 그렇게 어렵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해주었다.
  • 김태촌에 불리한 증언 모두 번복/「서방파」 부두목 증인채택

    ◎서울형사지법 서울형사지법 합의21부(재판장 이근웅부장판사)는 27일 하오2시 폭력조직 「서방파」두목 김태촌피고인(44)에 대한 범죄단체조직등 사건 20차공판을 열고 이 조직의 부두목 손하성씨(40)를 증인으로 채택했다. 이날 변호인측은 『이 사건 재판과정에서 검찰이 가장 중요한 증인으로 삼아온 손씨가 지금까지 검찰과 법정에서 진술한 내용이 모두 사실과 다르다는 뜻을 밝혀왔다』면서 『이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손씨를 증인으로 채택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에대해 검찰은 『손씨가 3차례에 걸쳐 법정에서 진술한 증언이 여러 반대신문에도 불구하고 일관돼 있어 진실임이 밝혀졌고 이제와서 심경변화를 일으킨 것은 김피고인측의 협박에 따른 것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 사건의 중요증인인 손씨가 위증죄를 감수하고라도 진술을 번복할 의사를 밝힌 이상 새로운 증언은 매우 중요하다』고 증인채택신청을 받아들였다.
  • 권력스타일에 전제요소 많다/옐친 그는 누구인가/비판적 시각

    ◎공산당해체등 자신의 서명만으로 “해결”/서방,잇단 초헌법적 행위에 우려의 눈길 이번 소련의 쿠데타진압을 전후해서 옐친 러시아공화국 대통령이 취하고 있는 일련의 권력행사를 두고 서방의 각국에서 우려의 소리가 일고 있다. 그것은 그의 정책집행스타일이 초헌법적이어서 극히 위험스런 발상이라는데에 근거하고 있다.아무리 비상사태라 해도 서명하나만으로 모든 법률을 초월하는 「대통령령」을 남발하는 것은 서방의 눈으로 볼때 그 자체가 모순이고 동시에 가뜩이나 불안정한 소련의 장래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는데서 주목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물론 지금으로서는 옐친의 쿠데타진압에 이은 실권장악에 따라 그의 정책방향이나 방법에 대해 반대는 있을 수 없다해도 실제로 공산당해체와 더불어 반발이 예상되는 많은 현안으로 사태는 유동적이라고 볼때 그의 스타일이 문제가 된다는 지적이다. 일본에서는 소련의 정치상황은 옐친대통령에 의한 「역쿠데타의 양상」을 띠고 있다며 상황의 진전을 염려하는 시각이 확대되고 있고 미국의 한 국제문제전문가의 『그에게는 전제주의요소가 너무 많다』는 한마디가 옐친의 스타일을 상징적으로 잘 대변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옐친대통령은 ▲쿠데타진압과정에서 『공화국내의 소련군·연방내무부·국가보안위원회(KGB)를 러시아공화국의 직할하에 둔다』고 선언한 뒤 ▲쿠데타 관계자의 체포를 공화국 검찰청에 지시했고 ▲모스크바시의 공산당본부 봉쇄조치에 이어 23일 소련군·KGB와 치안기관의 당조직 해산을 명한 대통령령 등의 조치가 모두 보수파 일소를 시도하면서 자신의 권력장악을 위해 법률이 정한 절차를 무시한 옐친스타일의 대표적인 실례로 꼽히고 있다. 또 쿠데타관련으로 공백상태에 있는 연방내각의 잠정인사에 자신의 측근들을 임명토록 한 것도 형식적으로는 고르바초프대통령의 동의를 받은 것이나 실제로는 「연방대통령에 의한 지명,소련최고회의의 승인」이라는 수순을 밟지 않고 우선 임명부터 한 것이다. 더욱이 지금까지 연방정부의 관할아래에 있어 온 국가중추시설의 하나인 모든 통신시설과 직원을 쿠데타의 재발방지라는 이유를 내세워 러시아공화국관할로 옮긴 25일의 대통령령도 연방정부의 기능을 근본적으로 잠식한 옐친대통령의 강권발휘로 분석되고 있다. 원래 대통령령은 고르바초프대통령이 보수적인 최고회의의 심의절차를 생략하기 위해 만들어 낸 것으로 소연방헌법은 대통령은 헌법의 범위내에서는 대통령령을 자유로이 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그것을 옐친공화국대통령이 남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옐친의 의도는 어디에 있는가.그는 고르바초프대통령의 권력기반이 되어온 소련공산당의 해체를 통해 공화국 확립,시장경제 이행,정치·경제개혁을 방해해 온 보수파를 완전히 제거하고 나아가 명실공히 실권장악을 위해 옐친류의 정면돌파를 시도하고 있다는 것이 이곳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그러나 자신의 개인적인 최종목표가 무엇이고 소련이 여전히 어려운 상태인 가운데 옐친대통령의 발언권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는 사실은 별도로 하더라도 어떻든 민주화·개혁운운하면서 국회심의없는 서명 하나만의 헌법초월행위는 또다른 반발과 함께 독재자가 될위험성을 안고 있다는 것을 현단계에서 서방은 걱정하는 것이다.
  • 종주국 소 공산독재의 조종을 들으며…/각계 반응

    ◎이념문제로 사회불안 야기시키는 일 사라져야/소 현대사가 민주체제의 우월성 입증/자유의 맛본 시민들이 권위주의 거부/북한도 더 큰 사태 맞기전에 개방·개혁 나서야/정정 안정때까지 경원 신중히… 우리는 조기통일준비 서두를때 소련 공산당과 연방의 붕괴를 지켜본 각계 인사들은 자유와 인권을 맛본 사람들을 권위주의 체제로 묶어 놓으려는 시도는 역사의 물길을 되돌리려는 어리석은 짓임을 다시 한번 확인해주는 것이라는데 의견을 모았다. 이들은 경제운용의 지표가 없는 공산주의의 경제적 실패에 환멸을 느낀 소련국민들 사이에 서방세계등 자본주의체제의 풍요와 자유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넓어져가면서 소련공산당의 붕괴를 가속화시켰다고 말했다. 이들은 이같은 사태가 종국적으로는 북한의 개방과 개혁을 불러 일으켜 통일이 앞당겨 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나종일씨=소련에서의 거대한 「지각변동」은 예상된 것이다.20세기초 유럽 근대사상인 합리주의의 대안으로서 「착취가 없는 완전한 인간상」을 정립하려 했던 소련식 정치발전모델이실패한 것이다. 빵과 자유를 맛본 소련사람들을 정치·경제·사회적인 면에서 의식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은 이제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종교적인 권위를 빌리지 않고 순수한 인간의 힘만으로 합리적인 사회를 구축할 수 없다는 것이 확인된 셈이다. 더욱이 60년대부터 소련은 혁명적 개혁을 통해 지도자와 정치제도를 바꾸는 외에 소유욕과 공격적인 속성을 가진 인간마저도 「창조적 개조」의 대상에 넣었으나 인간의 본성은 여전히 「의식적인 통제대상」으로 할 수 없음이 증명된 것이다. 소련에서의 「지각변동」은 가까운 중국·북한에도 조만간 「미진」을 일으킬 것으로 보이며 가까운 장래에 이같은 움직임이 소련내 보수·반동세력에 의해 멈춰질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김봉석씨=보수·반동세력의 쿠데타가 3일천하로 막을 내린후 소련 공산당이 급격히 몰락하게 된 것은 경제적 실패에 가장 큰 원인이 있다고 본다. 이미 공산당이 주장했던 「공동분배」는 권위주의적 통제체제아래에서 「공동빈곤」만을 초래했으며 개인의 자유와 인권이존중되지 않는 사회에서는 어떤 이상적인 이념이나 사상도 한낱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여실히 입증됐다. 차제에 북한도 더이상 자멸의 길을 걷지 말고 하루속히 개방과 개혁의 역사적 장으로 나설 것을 촉구한다. △김성태신부=소련 공산주의의 몰락은 종교적으로 볼때 유신론의 무신론에 대한 극복으로 이해된다. 소련 정부통제에 의해 겉으로는 종교가 사라진 듯했지만 내적으로는 종교적 흐름이 계속돼온 것을 알 수 있다.그리스도교의 한 계통으로 러시아에 유입된지 1천년이나 된 동방정교회가 1세기에도 못미치는 탄압을 받았다고 사라진다는 것은 예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소련의 최고지도자인 고르바초프도 어렸을때 할머니 손에 이끌려 세례를 받았다고 한다. △임동승씨=비록 쿠데타라는 계기가 있었다고는 하나 70여년간 계속된 소련의 공산체제가 이처럼 쉽게 허물어지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 특히 개별 공화국의 독립 움직임과 함께 연방체제가 급속히 해체됨에따라 소련의 앞날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다.그런 측면에서 우리가 지금까지 경주해온 연방중심의 협력관계는 당연히 공화국중심으로 전환돼야 하겠지만 당분간 사태진전을 관망하는 것이 바람직스럽다고 본다.즉 연방정부와 약속한 30억달러 경협이행문제를 당장 저버릴 수는 없겠지만 우선 혼란이 진정될 때까지 현금결제가 가능한 교역에만 치중하고 투자는 유보하는 지혜도 발휘해야 할 것이다.소련은 지금 정치적으로 보수세력의 위협이 상존하고 있는데다 경제적으로도 비록 시장경제체제로 전환한다 할지라도 상당기간동안 혼란을 겪을 것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고흥문씨=최근의 소련사태는 자유민주주의 이름 아래 진행된 민중혁명으로 18세기 프랑스혁명에 비견할 역사적 사건이다.이로써 공산주의는 종막을 고하게 되었다.잔여 공산국가,특히 북한에 미칠 영향을 예의주시하여 서두르지 말고 통일준비작업에 나서야 한다. 현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소련혁명의 완성이다.여기에는 두가지장애,즉 경제문제와 소수민족문제가 있다.따라서 생필품 부족 등으로 허덕이는 소련에 대해 서방국가들의 지원이 조속히 이루어져야 한다.또 소련의 각 공화국들의 독립선포로 연방이 해체될 경우 정치불안과 유럽정세의 불안정이 예상되는데 이점에 대한 미국과 유럽국가들의 협력도 절실하다. △이재운씨=소련 공산당의 몰락은 소련 자체의 사회주의 붕괴보다도 다른 공산국가들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데 더 큰뜻이 있다. 아직까지 사회주의를 지키고 있는 중국도 소련의 영향을 받아 노선을 수정하지 않을수 없을 것이고 민주화의 길을 걸을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도 이같은 국제정세와 뒤처진 내부경제사정 등으로 사회주의 노선을 끝까지 견지할수 있을까 의문스럽다. 유엔공동가입과 국제적 핵사찰승인,일본과의 수교문제등 방향전환조짐을 보이고 있는데에서 북한의 변화된 모습은 이미 읽을수 있고 더욱 가속화되리라 전망한다. 이러한 때에 우리는 교류와 협력을 통한 대북접촉을 더욱 강화해 나가 남북한의 동질성 회복과 통일의 길을 앞당기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허영자씨=소련 공산당의 몰락은 공산주의 이념이 그 인도적이고 범인류적인 세계적 이상으로서의 성격에도 불구하고 실패하고 말았음을 선언하는 것이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현실보다는 이상에 치우친 그같은 이념이 70여년간 지탱해왔다는 사실이 기적으로 여겨지기조차 한다. 소련 공산당의 붕괴와 공산주의 이념의 붕괴는 자동적으로 자유민주체제의 우월성을 입증해 주었다.그러나 우리는 그에 자만하지 않고 자유민주체제의 약점을 보완·치유하는 등 궤도수정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자유민주주의체제 또한 「부익부·빈익빈」현상 같은 분배의 불공평 등 많은 문제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비로소 하나가 된 세계는 인류공동체로서의 의식을 공유하고 현재의 진통을 잘 수습,마무리하여 명실공히 인류의 진보와 번영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 옐친의 소련/공산독재 막 내리다:4

    ◎시장경제로의 「험난한 실험」 돌입/서방지원 받아도 상당기간 혼란 예상/국민들,과도기적 고통 감수할지 의문 고르바초프가 추진해온 페레스트로이카(개혁)는 어디까지나 생산수단에 대한 사적소유를 철폐하고 인간에 의한 인간착취의 기반을 제거해버린 10월혁명의 연속선상에 놓인 사회주의체제 내에서의 개혁추구였다.비록 서방세계와 트로츠키주의자들로부터 자본주의화라는 칭송과 비판을 각각 받기는 했지만 부패한 관료주의에 점진적인 메스를 가함으로써 관료들에게 빼앗겨버린 인민들의 권력을 되찾아 보다 효과적으로 활용하자는 것이었다.이는 사회주의를 발전시키자는 것이었을 뿐 사회주의의 포기는 결코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관료주의 제거노력은 사회전반에 걸쳐 뿌리깊게 퍼져있는 관료 특권층들의 반발에 직면해 개혁을 지지부진하게 만들 수 밖에 없었다.페레스트로이카를 시작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 소련의 극심한 경제난은 수년이 지나도록 개선될 조짐을 보이기는 커녕 오히려 악화됨에 따라 페레스트로이카의 추진과정에도 영향을 미쳐 궤도수정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상당부분 유토피아적인 당초의 목표가 개혁진전의 자체논리에 의해 자본주의식 시장경제로의 급진적인 전환이라는 보다 현실적인 것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거세게 분출된 것이다. 6년이 넘는 페레스트로이카 시행기간동안 소련경제가 나아진 것은 거의 없다.그결과는 죽도 밥도 아니었다.생활필수품 부족과 실업자 증가 등 오히려 예전보다 악화됐을 뿐이다.어떤 형태의 개혁에서든지 수반될 수 밖에 없는 과도기적 혼란이기는 하겠지만 혼란의 끝이 안보인다는데 그 심각성이 있다.경쟁도 창의력 발휘도 없는 사회주의의 틀을 벗어던지지 못한데 따른 당연한 귀결인 것이다. 결국 기득권층의 불만이 폭발된 불발 쿠데타를 계기로 페레스트로이카는 변질이 불가피해졌다.사회주의의 완성이란 측면에서의 페레스트로이카는 소련 공산당의 해체와 함께 종말을 고했다고 하는 편이 오히려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자본주의로의 전환을 향한 급진개혁을 의미하는 새로운 용어가 나와야 할 때가 된 것이다. 새로운 실세로 자리를 굳힌 옐친 러시아공화국대통령은 급진개혁만이 살길이라는 입장이다.고르바초프식의 점진개혁으로는 안된다는 것이다. 옐친 자신은 사회민주주의자임을 자처해왔기 때문에 그가 추구하는 급진개혁이 사회주의를 포기하고 자본주의로 향하는 것인지 아니면 사회주의 테두리내에서 시장경제로의 전환을 꾀하는 것인지 아직 분명치 않은 점은 남아있다.그러나 지금까지 그의 언행을 살펴볼때 사회주의 지향적인 측면은 거의 찾아보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오히려 자본주의 예찬론자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당장 국영기업과 농장을 매각해 사유화시키고 1백% 자율권을 부여하며 국가보조금을 폐지해 수요와 공급의 시장경쟁원리에 의한 가격자유화를 실시해야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고 보면 생산수단의 사유화를 부인한 사회주의와는 일단 거리가 멀다.시장경제체제를 유지하면서도 상당수 국영기업을 보유하고 철저한 사회보장제도를 실시하고 있는 북구식 사회민주주의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직까지 사회보장제도나 국영기업 대량육성 등에 대한 옐친의언급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옐친은 사회주의식 시장경제라는 고르바초프의 어정쩡하고 애매한 개념을 부정하고있는 것이다. 따라서 옐친은 앞으로 어떻게 바뀔지는 모르지만 경제적인 측면에서 우선 현재는 자본주의자로 분류해도 될 것 같다.정치적인 면에서는 현재의 소련 공산주의가 소수 특권층만을 위해 실현돼있다고 맹렬히 비난하면서 다당제를 주장하는 등 민주주의적인 면모를 지닌 것만은 틀림없다. 북구의 사회민주주의와 일부 제3세계국가에서의 자본주의 독재체제가 엄연히 존재하고 있기는 하지만 사회주의와 독재의 관계가 그러하듯이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간에 선택적 친화력이 있는 점으로 미뤄볼 때 일단 소련의 향후 진로가 민주자본주의로 정립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귀결일지도 모른다. 소련의 앞날은 경제개혁의 성패에 달렸다.시장경제체제로의 전환이 자리를 잡기까지에는 수십년이 필요하다.경제체제 전환에 따른 막대한 자금수요가 서방세계의 시기적절한 지원에 의해 충족되지 않을 경우 엄청난 대혼란에 빠질 수 밖에 없는 운명이다.미국은 아직도 소련에 대한 일말의 의구심을 버리지 않고있는 상태이고 독일은 통일 뒷처리에 막대한 예산을 쏟아붓고 있으며 일본은 북방영토문제가 걸려있는 등 현재 서방세계의 대소경제지원여건이 좋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형편이다. 서방의 원조가 원활히 이뤄진다 하더라도 상당기간의 혼란은 불가피한데 과거 70여년간 적당히 일하는데 익숙해있는 소련국민들이 허리띠를 졸라매며 이같은 과도기적 고통을 묵묵히 참아줄 수 있을지 의문이다.왜곡된 평등의식을 지닌 상태에서 이미 억만장자가 출현하는 등 시장경제에 따른 빈부격차를 감수할 것으로 장담하기도 어렵다. 각부문에서의 경제회생노력이 톱니바퀴처럼 조화를 이뤄나가지 못하고 삐끗한다면 엊그제 쿠데타에 온몸으로 저항했던 소련국민들이 하루아침에 과거회귀로 돌변,「자본주의의 꼭두각시」를 타도하자고 나설지도 모른다.공산주의라는 실험을 실패로 끝낸 소련은 이제 또다른 실험의 문턱을 막 지나가고 있는 셈이다.
  • EC등 28국,발트3국 독립 승인/벨기에 외무 발표

    ◎미국도 조만간 추인할듯 【브뤼셀 AFP 연합 특약】 EC(유럽공동체)12개국은 27일 리투아니아와 라트비아·에스토니아등 발트해연안 3개공화국의 독립과 주권을 승인하기로 결정했다고 마크 아이스켄스 벨기에 외무장관이 발표했다. 이에앞서 소련의 발트해 연안 3개 공화국의 독립을 승인한 국가는 26일 하오 현재 18개국에 달한다고 코펜하겐에 와있는 레나트 메리 에스토니아공 외무장관이 밝혔다. 한편 조지 부시 미국대통령은 26일 미국은 소련의 발트해 3개공화국에 대한 외교적승인에 매우 가까이 접근하고 있다고 말함으로써 승인이 임박했음을 시사했다. 부시대통령은 미국을 방문한 브라이언 멀로니 캐나다총리와 함께 가진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탈소독립을 선언한 리투아니아·라트비아·에스토니아공화국에 대한 완전한 승인에 매우 근접하고 있다』고 말하고 그러나 국경문제를 지칭한 듯 『여기에는 몇가지 해결해야할 문제가 있다』고 덧붙였다. 캐나다정부는 앞서 이날 아침 캐나다가 발트해 3개공화국을 공식 승인한다고 발표,다른 일부국가들에 의한 승인조치의 뒤를 이었는데 이는 미국이 언제 이와같은 조치를 취할 것인가라는 의문을 불러 일으켰다. 덴마크는 26일 소련 발트해 연안 3개 공화국에 대사 파견을 결정,서방국가로서는 처음으로 발트 3국과 전면적인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 대외 경제연,소 사태이후 전망

    ◎한­소 경제협력 가속화 예상/“소 물자난으로 소비재 수입 서두를듯/우리 정부,공화국과 관계증진 힘쓸때”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27일 「쿠데타실패이후 소련경제 및 세계경제전망」이라는 보고서에서 『소련의 쿠데타실패로 소련경제개혁전망이 밝아짐에 따라 한소간 경협도 빠르게 진전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우리정부와 기업은 신연방조약체결 등 소련의 제도변화를 예의주시하면서 연방위주사고에서 벗어나 공화국과의 관계증진에 노력해야할 것이라고 이 보고서는 지적했다. 보고서의 주요내용은 다음과 같다. ▷소련경제전망◁ 쿠데타실패로 지금까지 경제개혁에 제동을 걸어온 소련보수파세력이 크게 약화돼 본격적인 시장경제체제로의 전환이 빠른 속도로 추진될 것이다. 특히 서방제국이 이번 사태를 계기로 대소경제지원에 좀더 적극적인 자세를 보일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단기적으로 소련경제의 어려움은 지속될 전망이다.신연방조약체결에 따른 정치안정과 경제개혁에 대한 뚜렷한 청사진이 나오기전까지 서방으로부터의 본격적 경제지원과 경협증대를 기대하기 어렵다. 따라서 금년도 소련의 GNP는 15∼20% 하락할 것으로 예상되며 소련경제의 침체현상은 적어도 2년간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또 연방과 공화국간의 문제가 조속히 해결되지 못하거나 개혁파간에 갈등이 계속될 가능성도 있어 경우에 따라서는 심각한 국면을 맞을 수도 있다. ▷세계경제◁ 소련내 보수파의 제거와 개혁파의 입지강화로 세계경제와 무역은 일단 긍정적인 영향을 받을 것이다. 소련의 개방과 개혁이 본격화되면 서방의 대소경제 및 기술지원이 점차 증대되고 이에따라 서방의 소련에 대한 투자와 교역도 활기를 띨 것이다.미국의 대소무역에 대한 최혜국대우부여,소련의 IMF·IBRD 준회원국 가입 등이 앞당겨질 것이며 자유세계국가와의 경제교류기회도 그만큼 확대될 전망이다. 소련의 쿠데타발생이후 불안한 움직임을 보였던 유가는 사태진정과 외화획득을 위한 소련의 원유수출확대 등으로 상대적으로 안정될 것이며 국제시장의 환율도 쿠데타이전의 수준으로 돌아가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그러나 소련의 개혁이 가속화될 경우 서방측의 대소지원자금수요로 국제금리가 다소 오를 가능성은 있다. ▷한소경협◁ 소련경제개혁의 전망이 밝아짐에 따라 한소경제협력은 더욱 다양화 되고 빠르게 진전될 것으로 전망된다. 소련은 물자부족을 극복하기 위해 우리기업으로부터 8억달러의 원료 및 소비재차관관련 수입을 서두를 가능성이 있다. 쿠데타실패를 계기로 시장경제체제로의 전환이 보다 빠르게 실행될 것이어서 자원개발,제조업분야 및 호텔산업등 다방면에서 추진되고 있는 대소합작투자는 더욱 적극적으로 추진될 것이다. 아울러 연방과 공화국간의 경제권한이 명확해질 것이므로 소련극동지방의 연해지방·하바로프스크·아무르주·캄차카주·사할린주 및 야쿠트자치공화국으로 구성된 「극동지역 경제연합체」창설이 가속화되고 나홋카 사할린 등의 경제특구계획도 구체화 될 것으로 예상돼 우리기업의 소련극동지역 진출도 본격화 될 전망이다. 그러나 신연방조약의 체결로 대부분의 경제권한이 연방정부로부터 공화국정부로 이양될 가능성이 높아 우리기업과 정부는 기존의 연방위주의 사고에서 벗어나 공화국차원의 경제조직개편과 변화를 주시하면서 공화국 및 지방당국과의 관계증진에 노력해야 할 것이다.아울러 서방기업의 대소진출이 활발해질 것에 대비,대소투자의 경우 서방기업과 컨소시엄을 형성,공동진출하는 방안을 적극 모색할 필요가 있다. 대소진출에 있어 우리업체간 과당경쟁을 피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돼야 하며 소련이 갖는 정치·외교적 중요도를 감안해 대소관련 민관협력체제를 갖춰야 할 것이다. 한소경협전망이 밝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단기적으로는 소련경제의 침체,외환부족,루불화의 불태환성,정정불안등 수많은 장애요인이 있는 만큼 장기적인 안목에서 신중한 경협추진이 요망된다.
  • 군·소수민족 동향에 초비상/중국

    ◎1급 경계령속 연일 사상교육/각군/부주석이 자치구 선무순회/소수민족/「제2천안문사태」 우려속 조직적 움직임은 없어 소련의 대정변에 충격을 받은 이웃 공산대국 중국은 전군에 1급 비상경계령을 내린 가운데 정치사상교육에 열을 올리고 있다.각종 신문과 방송들은 지난 주말부터 『사회주의노선을 고수하자』는 국가부주석 왕진의 발언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는가하면 느닷없이 전통의상을 입은 소수민족들의 환한 모습을 1면에 싣기도 했다. 이는 소공산체제 붕괴와 발트해 3국등 소수민족의 독립움직임과 같은 불똥이 중국쪽으로 떨어지는 것을 막기위한 고육지책이라고 홍콩신문은 전하고 있다. 어쨌든 중국지도부는 쿠데타발생 첫날인 19일 당정치국회의를 소집,우선 인민해방군에 1급비상령을 내리기로 결정했다.이같은 조치는 사회적 혼란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지만 동시에 군인들의 발목을 붙잡아두자는 의미도 있었다.홍콩 스탠더드지는 1급비상령과 함께 모든 군인들의 절대적 안정을 확보하고 소정세변화의 의미를 교육시키며 동시에 각종 루머의 차단을 지시했다고 보도했다. 첫날 정치국회의에서는 ▲고르비의 실각은 찬양할 일이다 ▲중국은 8인 비상위원회를 승인해야 한다 ▲중소관계는 더욱 강화돼야 한다는 3개항을 결의했으나 이 내용이 당하부조직까지 전달되기도 전에 고르비의 복귀소식이 들려왔다. 그러자 이번에는 당원로들까지 참석한 정치국확대회의가 22일 열렸다.이 자리에서 등소평은 사회주의의 장래가 고립무원의 상태에 빠졌다며 크게 낙담했다고 전해지고 있다.이 자리에서는 보수파 지도자 등력군이 중국의 진로에 대해 『우리로서는 모든 역량을 총동원해서 「화평연변」(평화적방법으로 사회주의체제를 변혁시키려는 서방측의 공작)을 막아내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의 길이 없다』고 주장했다.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지는 이날 회의에서 화평연변을 막기위해 이념·문화·교육·경제 등 모든 분야에서 자본주의사상 침투를 저지하는데 총력을 기울이기로 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소련사태가 발트해 3국의 독립문제로까지 넘어가자 중국은 여기에도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국가부주석 왕진은 소수민족문제로 가장 골치아픈 신강자치구를 1주일간이나 순회하면서 공산주의 선전에 열을 올렸고 덩달아 보도기관들도 왕의 발언을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어쨌든 중국지도부는 소련의 쿠데타 발생및 실패와 같은 쇼킹한 뉴스에도 『그것은 소련 내정문제로 소련인민들이 알아서 할일』이라며 너무 흥분하지도 당황하지도 않는 침착한 태도를 보여줬다.하지만 쿠데타실패에 그들이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는 미루어 짐작하고도 남는다. 일반시민들의 경우 소련의 공산체제몰락에 축배를 든 사람들이 많았을 것으로 보이나 아직까지 이에 동조하는 어떤 조직적인 움직임은 없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6·4천안문사태의 악몽이 이들을 짓누르고 있는게 분명하다.
  • “격변” 소련/경협 차관등 당분간 늦춰질듯

    ◎한소 경제교류 어떻게 돼나/연방 붕괴… 제반협정 효력 여부문제/러시아공과 교류 활성화 모색해야 정부는 소련공산당이 붕괴하고 각 공화국이 잇따라 독립을 선언하는 등 소련 사태가 다시 불투명해짐에 따라 대소경협문제와 관련,소연방정부와 각 공화국간의 관계가 정립될 때까지 당분간 소련사태의 진전상황을 관망한다는 신중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26일 관계당국에 따르면 정부는 당초 소련의 쿠데타가 실패로 끝나고 고르바초프대통령이 다시 권좌에 복기함에 따라 30억달러에 이르는 대소경협차관 제공을 비롯,소비재수출,자원공동개발 등 제반 경협을 즉각 재개할 방침이었으나 옐친이 새로운 실력자로 부상하는 등 소련내의 정정이 급변함에 따라 이같은 소련내부의 사태변화가 한소경제관계에 미칠 파장을 분석중이다. 정부는 특히 소연방내의 15개 공화국중 발트해연안3개공화국을 비롯,8개 공화국이 독립의사를 밝히는등 연방의 해체위기로까지 치닫고 있어 그동안 연방정부와 체결했던 투자보장협정등 경제관련 제반협정의 효력존속 여부에 관한문제도 제기될 가능성에 대비하고 있다. 정부는 그러나 소련의 경제여건상 서방국가의 경제원조를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 경우라도 소연방과 합의한 경협차관 30억달러의 집행과 상환에는 차질이 없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정부는 또 소연방정부와의 협력관계를 지속시키는 한편으로 러시아공화국 등 개별공화국과의 경협도 추진하는 등 대소경협창구를 다각화 하는 방안도 모색중이다. 소련사태가 급박하게 돌아감에 따라 삼성·현대·럭키금성상사 등 국내 업체들도 현지 지사와의 긴밀한 연락을 통해 현지상황을 수시 점검하는 한편 소련사태대책회의 등을 열어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다. 관련업계는 현재까지 소련내부의 상황파악에 주력하고 있으나 소련내의 개혁과 시장경제로의 전환이 급속히 추진된다 하더라도 상당기간 경제불안이 계속될 것으로 보고 대규모 신규투자사업의 상담에는 신중을 기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다. ◎미·EC등 서방의 대응자세/개혁가속화 위해 지지 본격화 방침/EC/「시장경제 시간표」등 요구… 신중한 태도/미­일 미국·일본·EC 등 서방각국은 소련경제의 자본주의 이행을 돕기 위한 대소경제지원 문제를 놓고 각각 엇갈린 반응을 보이는 등 혼선을 빚고 있다. 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 등 대부분의 EC국가들은 지난 7월 열린 서방7개선진국(G7)정상회담에서 대소경제지원에 지나치게 인색했던 것이 소련의 쿠데타 발생을 촉발시킨 한 요인이었다고 지적하면서 서방국가들이 본격적인 대소경제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특히 영국정부는 대폭적인 대소경제원조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G7의 고위급회담 개최를 요구했다. 독일과 이탈리아도 소련에 시장경제체제가 정착될 수 있도록 원조를 대폭 확대하고 소련의 IMF(국제통화기금)·세계은행 정회원가입 등을 추진,이들 국제금융기관을 통한 대소금융지원이 이루어져야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프랑스정부는 옐친이 이끄는 러시아공화국의 연방내 지위가 강화될 것에 대비,러시아공화국에 대한 원조제공 등 소련내 각 공화국과의 경협추진을 검토중이다. 그러나 미국·일본등은 아직도 소련내의 정정불안 요인이 남아있는 만큼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정착시킬 수 있는 보다 단호한 개혁조치가 선행되지 않는 한 대소지원확대를 서두르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미국정부는 소련측에 대해 구체적인 경제개혁 일정을 제시할 것을 요구했으며 일본정부도 쿠데타실패 이후 진행되고 있는 소련내의 민주화 흐름은 환영하지만 ▲군부의 동향 ▲각 공화국의 연방탈퇴 ▲보수파의 잔존 등의 불안요인을 들어 대규모 금융지원에는 신중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 서방은 환영일색… 북한·중국은 당혹/소 공산당 몰락사태 각국 반응

    ◎“공산당 해체는 필연적”,개혁 기대/서방/논평없이 짧게 보도… 초조감 암시/북한/“기관지 정간등 부당”… 불쾌감 표명/중국 【워싱턴·런던·파리·북경·도쿄 외신 종합 연합】 세계각국의 대부분 지도자들은 25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이 공산당 서기장직 사임발표와 함께 당중앙위 해체를 촉구한 「사건」에 대해 공산주의 체제의 전세계적인 사망을 알리는 조종이라고 환영의 뜻을 표시했으나 공산당이 집권하고 있는 북한 중국 쿠바 베트남 등은 논평없이 보도하거나 우려하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메인주 케네벙크포트에서 휴가중인 조지 부시미대통령은 25일 『고르바초프대통령의 당서기장직 사임은 소련의 개혁을 가속화시키는 진일보』라고 평가했다. 존 메이저 영국총리는 25일 『소련공산당의 해체를 환영한다』면서 『공산주의는 전세계적으로 애도하는 사람도 없이 사멸하고 있다』고 논평했다. 메이저총리는 『공산주의는 항상 기만에 기초했다』면서 『공산당은 소련인민들로부터 영향력을 상실했기 때문에 해체는 필연적』이라고말했다. 롤랑 뒤마 프랑스외무장관은 『고르바초프의 당서기장직 사임은 소련의 개혁속도가 가속화되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라면서 『소련 국민들의 이해에 부응하는 새롭고 독창적인 구조를 창출하는 것은 소련국민들에게 달려 있다』고 밝혔다. 헬무트 콜 독일총리는 『서방국가들이 현명하다면 그들은 즉각적으로 대소원조에 착수할 것』이라고 말했으나 고르바초프의 당서기장직 사임에 대해서는 논평하지 않았다. EC(유럽공동체)의장국인 네덜란드의 외무대변인인 디그 이스타는 『EC는 소련에 신민주주의시대가 도래하도록 소련에 남아있는 장애물을 제거하기 위해 대소협력을 할 것』이라면서 『소련에서의 급진적인 조치가 소련인민의 자유및 기본권을 고려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한편 북한의 관영 평양방송은 25일 소련관영 타스통신을 인용,고르바초프대통령의 공산당해체성명을 논평없이 짧게 보도했으며 공식적인 입장은 밝히지 않고 있다. 중국은 TV와 라디오를 통해 고르바초프대통령의 당서기장직 사임을 국제뉴스톱으로 보도했으나 관영신화통신을 통해 소련공산당기관지 프라우다등의 발행정지처분결정을 부당하다고 보도,중국지도부가 현 소련 정세에 불쾌감을 갖고 있음을 암시하기도 했다. 쿠바는 고르바초프대통령의 당서기장직 사임을 논평없이 보도했으며 쿠바정부 및 공산당은 소련공산당의 해체움직임과 관련,성명을 발표하지 않았다.
  • “우리는 어디로”/벼랑의 중국·북한

    ◎「소 공산당 붕괴」의 파장막기 안간힘/쿠바·베트남도 결국엔 개방 불가피 공산주의 종주국인 소련에서 공산당이 사실상 해체의 길로 접어든 것은 북한 중국 베트남 쿠바등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공산국가들에 충격을 던져주며 불가피하게 엄청난 파급효과를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들 잔존공산국들은 소련의 격변에 대한 공식반응을 아직까지 보이지않으며 집안단속에 부심하고 있으나 의도에 관계없이 지난 89년 동구권 민주화 이상의 개방및 개혁압력에 직면할 수 밖에 없게 된 것이다. 이들 공산국들은 우선 국내적으로 동구권처럼 소련에 의해 심어진 위성국가식 공산주의체제가 아니라 자생적인 독특한 「우리식 공산주의」라는 점을 내세워 공산체제 유지의 당위성을 부각시키면서 국민결속을 꾀할 것 같다.외교적으로는 유일한 공산주의 대국인 중국과 유대관계를 강화시켜나갈 전망이다. 중국은 소련공산당 붕괴에 따른 파급효과라는 내부의 급한 불을 끄기 위해 우선 당장은 사상적인 단속을 강화해나가겠지만 경제건설을 위해 서방측과 협력관계를 유지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과감한 개방정책을 실시할 수도 있을 것으로 분석된다.그렇지 않을 경우 제2의 천안문사태와 같은 민중봉기가 일어날 가능성도 다분히 있는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이 과감한 개방으로 돌아설 경우 북한의 공산주의도 분수령을 맞게된다.북한당국이 아무리 북한식 사회주의의 우월성을 강조한다 하더라도 한계가 있기때문에 계속 국가로 남아있기 위해서는 주민을 상대로 한 내부적인 기만정책 보다는 남북한의 유엔가입을 계기로 국제무대 전면에 나와 고립감을 면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며 궁극적으로는 이같은 정책을 취할 수 밖에 없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기대하고 있다. 특히 북한은 쿠바와 함께 소련에 대한 경제·군사의존도가 높기때문에 개혁파가 집권한 소련이 당장 원조를 중단할 경우 엄청난 경제파탄에 직면하게 된다.국제시장가격의 절반이하 수준으로 공급돼온 소련의 원유가 대부분 옐친이 이끄는 러시아공에서 생산되는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 원유공급이 중단되거나 국제가격으로 인상되면서 경화결제가요구될 경우 감당할 수 없는 경제적 부담을 안게된다. 이같은 경제파탄은 결국 국민들의 불만을 살 수밖에 없기때문에 이들 공산국들을 국제시장으로 뛰어들게 만들고 그러기 위해서는 개방과 개혁이 불가피하게 수반될 수밖에 없을 전망이다.이과정에서 공공연한 반체제 움직임이 폭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결국 이들 잔존공산국들은 단기적으로 어떤 수단을 구사하든지 간에 장기적으로는 공산당의 영향력이 쇠퇴하고 정치적다원주의로 접어드는 선택을 본의아니게 강요당하고 있는 셈이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