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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재봉의 영화읽기] 호텔 르완다

    [하재봉의 영화읽기] 호텔 르완다

    북아일랜드 폭탄 테러 사건으로 체포된 평범한 아일랜드 청년의 무죄를 증명하는 과정을 그린 다니엘 데이 루이스 주연의 <아버지의 이름으로>.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쓴 사람은 테리 조지였다. 그는 북아일랜드에서 체포되어 런던에서 재판을 받았던 청년의 실제 사건을 철저하게 조사하고 완벽하게 자료 수집한 후, 실화에 바탕을 둔 뛰어난 극영화를 만들었다. <호텔 르완다>는 1994년 르완다 전역에서 벌어진 후투족과 투치족의 종족 분쟁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외형적으로도 잘 구분이 안 가는 후투족과 투치족은 르완다가 20세기 초 벨기에 식민지로 있을 때부터 갈등관계를 빚어 왔다. 벨기에는 르완다를 효율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후투족과 투치족을 구별하는 부족 신원카드를 만들었고, 소수의 투치족을 서구식 교육으로 훈련시켰다. 1960년대 초 벨기에가 철수하고 식민지는 르완다와 부룬디로 분리된다. 르완다는 후투족이 통치하고 부룬디는 투치족이 다스리지만, 르완다에도 수많은 투치족이 거주하고 있었다. 투치족은 르완다애국전선을 만들어서 후투족의 살육으로부터 투치족을 보호하려고 했다. 2500명의 유엔 군대가 후투족과 투치족의 내전을 막기 위해 르완다에 배치되었지만 유엔평화유지군은 그들의 행동을 감독만 할 수 있었다. 1994년 4월 6일, 후투족 과격주의자들은 평화협정을 맺은 르완다와 부룬디의 대통령이 탄 비행기를 공격해서 모두 살해하고 르완다에 있던 투치족 고위 인사와 중도파 후투족들을 살해한다. 그로부터 약 백일 동안 백만여 명에 가까운 르완다인이 살해되었다. 이 끔찍한 종족 분쟁은, 함께 살아온 타종족을 증오해서 그 종족의 씨를 말리기 위해 어린이와 부녀자를 표적으로 참혹한 살해가 전개되었다. 하지만 서방 각국은 애써 이 학살을 외면하려고 했다. 영화 <호텔 르완다>는 인류 사상 가장 잔혹한 학살이 벌어졌던 바로 그때의 사건을 다루고 있다. 이 영화의 감동은, 실화에 바탕을 두고 전개되는 생생한 소재 발굴과 디테일한 묘사로 사건 현장의 생동감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데서 비롯된다. 르완다의 수도 키갈리에 있는 벨기에 기업 소유의 특급호텔 ‘밀 콜린스’의 지배인인 폴(돈 치들 분)을 중심으로 백만 여 명이 학살된 비극적 현장의 참혹함을 긴장감 있게 보여주고 있다. 밀 콜린스 호텔에는 외국인들이 많이 머물고 있고 유엔군의 보호를 받고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안전지대로 생각되자 과격 후투족의 학살을 피해 많은 투치족 피난민들이 몰려들기 시작한다. 지배인 폴은 후투족이지만 부인은 투치족이었다. 폴은 후투족의 학살로부터 무고한 사람들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후투족 장군에게 지속적으로 뇌물을 주고, 또 그 동안 밀 콜린스 호텔을 방문했던 해외의 저명 인사들에게 수없이 전화를 해서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르완다 사태에 대한 국제적 여론을 환기시킨다. 밀 콜린스 호텔에는 무려 1268명의 투치족 난민들이 몰려들었다. 그들은 한 방에 수십 명이 머물고 복도에서 새우잠을 자면서 언제 들이닥칠지 모를 후투족 과격파의 살해 위협에 떨고 있었다. 평범한 호텔 지배인 폴이 처음부터 영웅이었던 것은 아니다. 그는 인간에 대한 존엄성, 생명에 대한 외경심을 갖고 있는 보통의 시민이었다. 하지만 끔찍한 대량학살로부터 자기 가족을 지키려는 그의 노력은 점차 이웃들로 손을 뻗치기 시작한다. 결국 그는 그를 믿고 밀 콜린스 호텔로 모여든 1268명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한다. 마치 아프리카판 <쉰들러 리스트>를 보는 것 같은 폴의 용기 있는 행동은 <호텔 르완다>가 발생하는 감동의 원천이다. 이야기의 긴박감으로부터 우리는 잠시도 화면에서 눈을 뗄 수 없는 긴장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폴이 지키려고 노력하는 가장 소중한 인간의 생명, 존엄성, 가족의 가치 등이 우리에게 깊은 공감대를 주기 때문이다. <호텔 르완다>는 후투족과 투치족의 내전을 본격적으로 보여주지는 않는다. <킬링 필드>같은 학살 장면의 직접적 노출은 최소화해서 표현되고 있다. 이야기는 철저하게 호텔 지배인 폴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평범한 사람이었지만 인간의 생명과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영웅이 되어 가는 그의 모습은 우리를 깊게 감동시킨다. 그가 자기 목숨의 위협을 받으면서도 굳게 지키려고 노력했던 그 가치가 우리 삶에서 무엇보다 소중한 것임을 우리는 잘 알기 때문이다. 테리 조지 감독의 의도대로 관객들은 <호텔 르완다>를 보고 난 후 부끄러움을 느끼게 된다. 우리 주변에서는 아직도 이처럼 생명의 소중함을 짓밟고 인간적인 권리를 말살하는 비인간적, 비윤리적 학살이 쉴새없이 자행되고 있으며 우리는 우리 자신의 안락하고 소중한 삶만을 생각한 채 그런 비극적 현장으로부터 자신을 의도적으로 소외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폴 역의 돈 치들은, 주로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작품을 통해 우리에게 알려졌다. 아카데미 수상작 <트래픽>(2000년)에서 스티븐 소더버그와 처음 만난 후 계속해서 <오션스 일레븐>부터 <오션스 투엘브>를 거쳐 <오션스 써틴>까지 함께 작업하고 있다. 흑인 중에서도 석탄처럼 검은 가장 새까만 피부를 갖고 있는 그는, <애프터 선셋>(2004년)과 <대통령을 죽여라>(2004년),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 <크래쉬>(2004년) 등에서 조연급으로 활약한 바 있다. 타렌티노의 <재키 브라운>의 원작 소설을 쓰기도 했던 엘모어 레오너드의 소설을 각색해서 영화로 만든 <티쇼밍고 블루스>로 감독 데뷔를 앞두고 있기도 하다. 그 외에도 르완다 유엔평화유지군의 올리버 대령 역으로 출연한 닉 놀테는 로버트 드니로와 공연한 <케이프 피어>(1991년)에서 생애 최고의 연기를 보여준 바 있지만, <호텔 르완다>에서는 평화 유지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무고한 사람들이 학살되어 가는 것을 지켜 볼 수 밖에 없는 안타까운 입장을 표현하고 있다. 호텔 밀 콜린스의 소유주인 벨기에 기업 회장으로 출연한 장 르노, 르완다의 종군 기자로 등장하는 <글래디에이터>의 로마 폭군 호아킨 피닉스 등은 각각 자신의 존재감만으로도 영화를 꽉 채워주는 좋은 배우들이다. 테리 조지 감독은 돈 치들이 맡은 호텔 지배인 폴을 중심으로 균형감각 있게 인물을 배치하고 사건을 끌고 가면서 르완다 학살의 야만적 모습을 생생하게 표현한다. 외형적으로는 르완다 사태의 핵심에서 비켜서 있는 것 같지만 그러나 디테일한 세부 묘사와 살아 있는 캐릭터 확립으로, 종족 분쟁의 비극적 모습을 훨씬 더 리얼하게 그리는 데 성공하고 있다.       월간 <삶과꿈> 2006.10 구독문의:02-319-3791
  • ‘코소보 갈등’ 재점화

    ‘코소보 갈등’ 재점화

    |파리 이종수특파원|발칸반도가 다시 국제사회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를 조짐이다. ‘코소보 영유권’을 골자로 한 세르비아의 새 헌법이 28,29일(현지 시간) 실시한 국민투표에서 통과될 것이 유력하기 때문이다. 세르비아의 독립 감시기구인 ‘자유민주주의 선거센터’는 29일 “표본조사 결과 660만여명의 유권자 중 투표에 참가한 53.5% 가운데 96%가 새 헌법에 찬성했다.”고 밝혔다. 전체 유권자의 과반수가 찬성하면 새 헌법은 승인된다. 보이슬라브 코슈투니차 세르비아 총리는 이날 국영텔레비전에 출연해 “세르비아의 단일성에 대한 국민적 열망과 코소보가 세르비아 영토의 일부라는 것을 명백하게 보여준 역사적 순간”이라고 말했다. 물론 코소보 영유권을 명시한 새 헌법이 국제법상 강제력은 없다. 지난 1999년 내전 종식 이래 코소보는 유엔이 관할해 왔기 때문이다. 프랭크 위스너 코소보 담당 미국 특사가 국민투표 직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 이후 코소보는 세르비아의 주권에서 벗어나 있다.”고 못을 박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세르비아 정부는 새 헌법안에 무게를 두고 있다. 서방과 친한 보리스 타디치 대통령마저 “새 헌법이 세르비아와 코소보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새 헌법은 세르비아 연립정부와 코소보 독립을 추진해 온 유엔간 갈등의 불씨가 될 전망이다. 유엔측 6개국 접촉그룹은 코소보의 최종 지위 문제를 연내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상정할 계획이다. vielee@seoul.co.kr
  • [씨줄날줄] 韓商대회/우득정 논설위원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는 1978년 말 개혁개방 노선으로 전환했다. 하지만 서방 자본가들은 어느 누구도 중국을 거들떠보지 않았다. 이때 돈보따리를 싸들고 조국을 찾은 이들이 동남아 화교였다.1990년대 초까지 중국 투자액의 80%이상이 화교 자본이었다. 화교 자본의 힘을 꿰뚫어 본 덩샤오핑(鄧小平)은 리콴유(李光耀) 싱가포르 총리를 앞세워 전세계에 흩어진 화교상들을 하나의 네트워크로 묶는 작업에 나섰다. 지난해 서울에서 8차 회의가 열린 세계화상대회다. 마오쩌둥(毛澤東) 시절만 해도 화교는 ‘조국을 등진 배신자’로 취급됐다. 그러나 개혁개방 이후 그들은 중국 고도성장의 일등공신이다. 전세계 168개국,6000만명을 웃도는 화교들이 2조달러에 이르는 유동자산으로 중국에 ‘실탄’을 공급하고 산간 오지까지 뻗친 유통망을 통해 ‘Made In China’ 상품을 실어날랐기 때문이다.1997년 말 아시아권을 휩쓴 외환위기 때 중국과 타이완·홍콩·싱가포르 등 화교 경제권이 건재할 수 있었던 것도 화교자본 덕분이라는 게 정설이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기업 절반이상이 화교와 연관됐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세계화상대회를 본떠 2002년 10월 ‘한상(韓商)네트워크 구축’ 발표와 더불어 제1차 세계한상대회를 개최했다.175개국,663만명에 달하는 재외동포를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해 ‘윈-윈’하자는 취지다. 전체 인구 대비 재외동포 비중으로 세계 2위, 재외동포 숫자만 따져 세계 5위인 우리로서는 때늦은 감마저 없지 않다. 국경을 초월한 무한경쟁시대를 맞아 세계 곳곳에 퍼져 있는 한상은 살아 있는 정보망이자 신경망이다. 이를 제대로 활용하면 해외진출은 물론, 외자도 힘들이지 않고 유치할 수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체결되면 100만명에 이르는 재미 한국상인은 소중한 전초기지가 된다. 지난해 섬유특화전에 이어 올해엔 내일부터 사흘 동안 부산 벡스코에서 ‘식품·음식’을 주제로 열린다. 해외 1000명을 포함, 모두 2500명이 참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음식 특화전을 계기로 ‘대장금’에서 점화된 전통한식 한류 열풍이 세계 곳곳으로 확산되길 기대한다. 우득정 논설위원 djwootk@seoul.co.kr
  • [오일만 기자의 여의도 프리즘] 北·中 애증 관계는 2인3각의 묘한 게임

    같은 사회주의 국가인 북한과 중국은 참으로 묘한 관계다. 지난 93년 3월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로 시작된 한반도 북핵위기는 벌써 14년째로 접어든다. 이 시간을 돌아보면 중국과 북한은 애증이 교차되는,‘2인3각’의 묘한 게임을 펼쳐 왔다는 인상이 강하다. 지난 9일 북한의 핵실험 직후 일본과 서방 언론들을 통해 “중국은 믿을 수 없는 나라다. 결정적 순간에 도와주지 않는다.”는 김정일 위원장의 발언이 소개된 적이 있다. 믿었던 우방 중국이 되레 지난 7월 미사일 발사 직후 유엔 결의와 미국의 대북 금융제재에 동참하는 현실에서 김정일 위원장의 ‘배반감’이 생생하게 묻어 있다. 중국 지도부 역시 마찬가지다.5세대 지도부를 이끄는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은 김 위원장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이 정설이다. 후 주석은 대권을 쥐기 전 사석에서 “인민을 굶기는 지도자는 자격이 없다.”며 북한 지도부를 우회적으로 비판하곤 했다. 그런 그가 2002년 11월 당총서기로 등극했고 한때 북·중 정상회담이 추진된 적이 있었지만 후 주석의 반대로 무산됐다는 후문이다. 물론 1년5개월 뒤인 2004년 4월 양국 정상회담이 열리지만 중국 지도부는 나름대로 북·중 관계의 변화를 모색한 시기와 일치한다. 우선 중국은 61년 체결된 ‘조·중우호협력조약’의 수정을 은밀히 검토했다. 싱크탱크인 사회과학원을 중심으로 한 중국 학계는 “중·조우호조약의 군사 자동개입 조항을 삭제해야 한다.”는 주장을 노골적으로 제기한다. 한반도 전쟁에 휘말리지 않으려는 일종의 보호막이다. 중국 외교부 일각에서도 ‘혈맹’에서 ‘정상적 국가관계’로의 격하를 추진한 흔적과 맥이 닿는다. 그러나 최종 결정권자인 후진타오 당총서기는 고민 끝에 당과 군부의 손을 들어주었다. 시시각각 조여 오는 미·일 군사동맹의 ‘중국 포위전략’ 때문이다. 미·일 군사동맹이 남으로 타이완과 필리핀, 동으로 일본과 한국, 서로는 아프카니스탄과 우즈베키스탄 등 옛소련에서 독립한 국가를 포괄하는 촘촘한 ‘포위망’을 구축하고 있다는 중국 지도부의 전략적 판단이다. 동북아에서 ‘북한의 전략적 가치를 포기할 수 없다.’는 최종 결론을 도출했다. 이러한 중국의 고민을 누구보다 잘 아는 김정일 위원장이 우방 중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과감한 ‘북핵 도박’에 나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후 주석은 지난 19일 탕자쉬안(唐家璇) 국무위원을 평양에 급파했다. 말썽 많고 ‘위험한’ 북한 김정일 정권을 설득하고 더 이상 사태 악화를 막아 보자는 중국의 위기의식 때문이다. 현 시점에서 중국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핵무기를 보유한 북한의 실체가 아니다. 바로 북한 정권이 붕괴되고 세계 최강 미국의 군사력과 압록강에서 대치하는 일이다. 적어도 중국은 ‘김정일 정권 이후’에도 자신들의 전략적 이익이 확보되지 않는 한 지금의 ‘현상유지’에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는 안보 지형에 갇힌 형국이다. oilman@seoul.co.kr
  • [이슬람 문명과 도시] (21) 우리와 닮은 친근감 키르기스스탄의 수도 비슈케크

    [이슬람 문명과 도시] (21) 우리와 닮은 친근감 키르기스스탄의 수도 비슈케크

    키르기스스탄의 수도 비슈케크에는 어딜 가나 길이 있다. 하얀 포플러 줄기가 끝없이 가로수가 되어 길을 잇고 길을 만든다. 실크로드의 길이다. 그리고 길에는 사람이 있고 양떼가 가끔씩 길을 메운다. 카자흐스탄의 알마티를 떠나 대상들이 지쳐버릴 때쯤 나타나는 오아시스의 도시가 비슈케크다. 중앙아시아의 지붕인 천산산맥을 따라 펼쳐지는 풍요와 설렘의 길이다. 3개월은 족히 걸렸을 실크로드 길을, 비행기로 5시간 반 만에 비슈케크에 도착한 것은 가을이 한창 무르익을 때였다. 소비에트 시절 뚫어 넓은 길에는 마로니에 낙엽이 나부끼고 하얀 수염을 바람에 흩날리는 노인과 아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첫 인상은 우리와 매우 닮았다는 친근감이다. 우즈베키스탄이나 카자흐스탄 등 이웃의 다른 투르크계 사람들보다도 훨씬 우리의 모습을 많이 닮아 있었다. 해맑은 웃음을 싱긋 건네는 아이들의 웃음은 석류보다도 눈부시고, 포도만큼이나 싱그럽다. 다음날 날이 밝자 무작정 시내로 걸어나왔다. 소비에트 시절의 계획도시답게 인적도 드문 길은 사통팔달 시원하게 뚫려 있다. 하얀 대리석으로 지은 시내 중심가 관공서 건물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단층으로 된 초라한 벽돌집이다. 키르기스스탄이 오랜 소련연방 통치를 벗어나 독립한 것은 1991년. 그렇지만 공산당 출신의 아스카르 아카예브가 초대 대통령이 되어 독재권력을 유지한 결과, 지난해에는 민중혁명으로 새로운 정부가 들어섰다. 서방화를 꾀하며 3000명가량의 미군주둔을 허용하고, 새로운 도약을 꿈꿔보지만, 이웃 강국인 우즈베키스탄의 위협과 자원의 제한으로 삶의 질은 쉽게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흉노 역사를 밝힌 노인 울라가 발굴한 유물 처음 찾아보는 이 나라의 역사와 과거를 더듬어 보기 위해 습관처럼 역사박물관부터 들렀다. 시내 한복판 대통령궁 옆의 역사 박물관에는 찾는 사람이 거의 없어 직원들 몇 사람만 나를 구경하고 있었다. 소비에트 시절의 홍보 전시관 같은 2층을 지나 3층에는 키르기스의 역사시대 유물들이 잘 정리되어 있었다.3층 난간에는 투르크 시대 석상들을 초원에서 옮겨 놓았다. 제주도의 돌하르방을 연상시키듯이 7∼8세기 무덤을 지키던 수호신상들이다. 원래 유목전사들은 죽으면 화장을 했다는데,10세기 이후 이슬람을 받아들이면서 매장관습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석상들의 오른손은 물그릇을 들고, 왼손은 칼을 들고 있다. 물을 마시면서 칼을 잡던 돌궐시대 유목전사들의 맹약의식이 잘 표현되어 있다. 무엇보다 이곳에는 놀랍게도 흉노역사를 세상에 알린 노인 울라의 발굴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1924년 러시아 지리학회 소속의 코즐로프 탐험대가 212개의 고분을 발굴하게 되는데, 그 중 상당수가 기원 전후 흉노귀족의 것으로 판명되었다. 아직도 색상이 선명하게 남아 있는 2000년 전 인류최초의 카펫을 바라보는 감동은 표현할 길이 없다. 그밖에도 각종 금속제품과 펠트 위에 아플리게 기법으로 장식한 수공예품 등을 보며 책에서만 읽었던 흉노의 역사적 실체를 확인하는 기쁨을 혼자서 만끽했다. 키르기스 사람들의 역동적인 삶의 현장을 호흡하기 위해 대시장인 오쉬 바자르로 달려갔다. 그 옛날 실크로드를 따라 찾아 온 상인들이 눌러 앉아 장사를 해 오던 곳이다. 빼곡히 들어선 가게 사이 길로 사람들이 몰려든다. 길을 걷는다기보다는 인파에 떠밀려가는 느낌이다. 인구 100만의 키르기스 사람들이 모두 모인 것 같다. 좁은 골목 길마다 각기 다른 물품들이 줄을 잇고, 거대한 삶의 거래가 이루어진다. ●오쉬 바자르에서 만난 고려인 아주머니 없는 것이 없단다. 코너를 돌 때마다 과일, 공산품, 토산품, 수입 잡화, 음식점 등이 차례로 나타난다. 눈에 띄는 것은 특이하게 생긴 전통 모자다. 염소 털로 곱게 짜서 금실로 수를 놓은 칼팍이라는 모자는 키르기스 남성들의 명예와 존재의 상징이다. 처음 뜨거운 목욕탕에서 머리의 열기를 보호하기 위해 썼다는 칼팍이 이제는 모든 공식행사나 축제 때 빠질 수 없는 전통 모자가 됐다. 식품코너에서는 어김없이 하얀 김치가 등장하고, 고려인 아주머니가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손님을 맞이한다.“안녕하세요.”란 말에 대뜸 “코리아에서 왔수까?”라는 질문과 함께 표정이 달라진다. 먼 길을 찾아온 서울 한국 손님에게 좌판 한 구석을 가리키며 앉아서 김치국시 한 그릇 말고 가란다. 이곳에도 1만 8000명가량의 고려인들이 살고 있다고 한다.1937년 블라디보스토크와 연해주에서 시작된 스탈린에 의한 한국인 강제이주의 한과 핏줄에의 강한 집착은 이처럼 중앙아시아 전역에 슬픈 역사를 남긴 채 이어지고 있었다. 양고기 꼬치구이인 샤슬릭 두 줄에 모처럼 고향의 맛이 담긴 국시 한 그릇을 비우고 40숨을 주었다. 그래야 우리 돈 1000원 남짓한 값이다. ●아타 베이릭 학살 현장에서 서서… 다음날 아침 일찍 서둘러 천산산맥 줄기를 따라 북쪽으로 달렸다. 비슈케크에 온 김에 꼭 들러야 할 곳이 있었다. 바깥 세상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아타 베이릭 학살기념관이다.1938년 11월15일,138명의 키르기스 지식인들이 스탈린 정권에 의해 집단학살당한 채 매장된 엄청난 사건의 현장이다. 당시 공산정권에 협조를 거부한 작가와 교수, 민족지도자들은 하룻밤 사이에 비밀리에 체포되어 갖은 고문 끝에 모두 처형당하게 된다. 아무도 없는 외진 곳에서 행해진 세기의 학살은 우연히 숨어서 그 모습을 지켜본 한 농부의 몫으로 남는다. 농부는 임종을 앞두고 가슴에만 품고 있던 그 비밀을 18살의 딸에게 전하고, 조국이 독립을 쟁취하는 날 이 사실을 알리라는 유언을 남긴다.1991년 키르기스스탄이 자주독립을 선포한 후, 이미 70대의 노파가 된 딸이 이 사실을 공표함으로써 역사의 뒤안길에 묻혀버릴 뻔했던 잔혹한 역사가 빛을 본 것이다. 홀로 묵념하고 서서 조용히 감회에 젖어 있는데, 백발이 성성한 관리인 할아버지가 희생자 중에는 한국인 2∼3명이 들어있다며 자료를 들쳐주었다. 윤상신·강태주 같은 이름이 분명하다. 연해주에서 겨나 낯선 땅에서 정치적 희생이 되어 한 많은 생을 마감했을 원통함과 마지막 순간을 떠올리며 그들의 영혼에 한 줌 간절한 위안을 실어 보낸다. 길거리에서 만난 비슈케크 시민들은 반갑게 눈웃음을 보낸다. 남자들은 칼팍 모자를 쓰고 여성들은 면화로 된 편안한 점박이 치마를 입었다. 놀랍게도 이곳 주민들의 거의 80% 이상이 이슬람교를 믿고 있음에도 차도르를 쓴 여성들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어느 이슬람 국가에서나 쉽게 눈에 띄는 모스크도 찾을 길 없었다.120년 가까운 소비에트의 점령 하에서 전통적인 삶의 방식은 변질을 강요당했고, 이슬람 문화는 철저하게 말살되었다. 금요일 주일 예배가 열리는 날, 비슈케크에서 몇 안되는 모스크를 힘들게 찾아보았다. 오후 1시쯤 예배하러 몰려든 사람들의 대부분이 젊은 남성들이었다. 독립한 지 이제 겨우 15년. 조금씩 잃어버린 종교와 전통을 찾아가는 비슈케크 시민들의 발길에서 희망을 읽었다.
  • 파키스탄 모델에 이란과 공조 가능성

    북한 핵개발의 종착역은 어디일까. 핵개발을 중단하라는 미국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핵을 손에 쥔 파키스탄의 모델을 따르면서, 이란과의 핵정책 공조 가능성도 점쳐진다. 국방연구원 김태우 박사는 18일 “북한과 파키스탄은 서방국들의 저지에도 불구하고 핵 개발을 추진, 핵 보유국으로 인정받으려는 과정 등이 유사하다.”면서 “북한은 1970년대 중반부터 파키스탄 칸 박사로부터 핵 개발과 관련해 깊숙이 도움을 받으며 전반적인 벤치마킹을 해왔다.”고 진단했다. 파키스탄은 인도가 1974년 최초로 핵실험을 강행하자 핵개발에 착수했다. 알리 부토 정부는 유럽의 대학 강단에서 15년 동안 활동하다 귀국한 압둘 카디어 칸 박사를 책임자로 공학연구소를 세웠다. 미국은 파키스탄이 아프가니스탄 접경지역에서 미국의 반소련 ‘지하드(聖戰)’를 돕고 있다는 점 때문에 핵개발을 감시하면서도 침묵을 지켰다. 하지만 소련군이 아프간에서 철수한 1989년부터는 핵 개발 중단 압력을 넣기 시작했다. 파키스탄은 결국 1998년 5월에 핵 실험에 성공해 인도와 함께 핵 보유국으로 부상했다. 하지만 북한과 파키스탄의 차이점도 있다. 파키스탄은 인도와 경쟁하면서 군사적 안보차원에서 핵개발을 했지만, 북한은 체제유지라는 정치적 목적이 강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국제문제조사연구소 이기동 박사는 이날 연세대 통일연구원이 주최한 세미나에서 북한 핵실험의 배경에는 ‘보루협상’이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보루협상이란 마지막까지 쫓기다 막다른 길에서 국면을 전환시키는 것으로 국면전환은 바로 6자회담 복귀를 뜻한다.”고 지적했다. 북한이 앞으로 이란과 핵정책 공조에 나설지도 관심거리다. 북한은 핵실험을 했고, 이란은 아직 핵실험 단계에 이르진 못했다. 하지만 국제사회의 우라늄 농축 중단 요구를 거부하며 ‘서방 강대국이 독점하는 핵 기술을 확보하고 부수적 과실로 에너지를 얻는’ 목적으로 핵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북한과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북한과 이란의 동시다발적인 핵개발 추진은 미국 등 국제사회 대응의 초점을 흐릴 수 있다는 점에서 공조의 가능성이 없지 않다. 영국의 군사전문지인 제인스 디펜스 위클리는 최근 북한이 핵실험 강행 시 이란과 실험결과를 공유하거나 이란 관계자들을 옵서버로 파견하는 것을 허용할 수도 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이란은 자체 핵 개발이나 핵실험을 하지 않고도 핵무기를 개발하고 핵실험을 실시한 것과 똑같은 이득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국의 압력에 핵개발을 포기하고 외교관계를 복원한 리비아식 핵 해법은 북한의 핵실험으로 완전히 물건너 간 셈이다. 국제사회의 강력한 제재와 추가핵실험이 맞부딪치는 종착역이 파국일지, 대타협일지 주목된다.박정현기자 jhpark@seoul.co.kr
  • [유엔 반기문총장 시대] 북핵 ‘막후 해결사’ 역할 기대

    차기 유엔 사무국의 수장이 된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에게 산적한 현안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가장 커다란 난관은 단연 북핵 문제로 집약된다. 북핵 문제는 한반도는 물론 동아시아와 전세계 안보 문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당면 국제적 이슈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유엔 사무총장 선출 이후 반 장관은 CNN 등 언론과의 인터뷰 등에서 “북핵 문제 해결에 중점을 둘 것”이라며 북핵 해결 의지를 거듭 피력했다.●16년 외교현장서 북핵 직·간접 관여 반 차기 유엔 총장이 북핵 문제 해결에 적임자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는 듯하다. 그는 외교부 미주국장으로 있던 90년대 초반부터 1·2차 북핵위기와 지난해 9·19 공동성명, 최근 북한 핵실험 사태에 이르기까지 무려 16년간 외교 현장에서 북핵문제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해 왔다. 반 장관은 차기 총장으로 공식 선출된 직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유엔에 한반도 전담 특사를 임명해 상시 유지하면서 한반도 문제 해결에 큰 관심을 갖고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그의 머릿속에 ‘북핵 해결 구상’이 서 있다는 방증이다. 한국의 외교 장관보다 훨씬 커진 유엔 사무총장의 권한으로 북핵 문제에 보다 효율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의미도 담겨 있다.●“北 방문할 수도 있다” 의지 밝혀 그는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방북 용의’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사태진전과 여러 상황을 봐가며 생각해볼 문제지만 김정일 위원장이 초청할 경우 북한을 방문할 수도 있을 것”이라며 의미심장한 답변을 했다. 한반도 핵위기가 극단으로 치달을 경우 국제 갈등 조정자로서 ‘막후 해결사’ 역할을 수행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그러나 유엔 사무총장이 한국 정부의 입장을 전적으로 대변할 수 없는 ‘국제 조정자’라는 점에 유념해야 한다. 더욱이 북핵 문제 등의 국제적 사안은 국제 역학 관계상 미·중·영·프·러 등 5개 상임이사국이 포함된 안전보장이사회에서 해법이 결정된다. 유엔 사무 총장이 실질적으로 관여할 ‘공간’이 그리 크지 않다는 지적도 이런 맥락이다. 올해로 창설 61주년을 맞은 유엔은 스스로의 역할과 능력에 대한 ‘회의론’이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바로 회원국들의 유엔 개혁 요구가 반 차기 총장이 직면한 가장 중요한 내부과제가 된 것이다.●`안보리 개편´ 등 난제 실마리 찾아야 특히 안보리 개편 문제는 서방 강대국과 비동맹·개도국간의 첨예한 의견 대립으로 좀처럼 실마리를 찾지 못하는 사안이다. 이외에 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WMD) 확산, 마약 거래·자금 세탁 등 범죄활동, 국가간 빈부격차와 인종·종교 갈등 등의 해법 도출을 위한 국제적 협력을 이끌어 내는 것도 차기 총장의 몫으로 남아있다. 이에 대해 ‘조화의 리더십’을 강조하는 반 차기 총장은 “다양한 국제적인 도전에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유엔 사무국의 관료주의 타파와 전문성 제고 등 체질 개선에 나설 계획”이라고 강조했다.오일만기자 oilman@seoul.co.kr
  • [北 핵실험 파장] ‘北 核개발의 대부’ 서상국

    파키스탄에 ‘핵의 아버지’인 카디르 칸(71) 박사가 있다면, 북한에는 서상국(68) 박사가 있는 것으로 13일 알려졌다. 북한의 핵실험을 포함해 북한의 핵개발을 주도한 인물은 서상국 김일성종합대학 물리학부 강좌장(학과장)인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김일성대 강좌장이란 공식직함을 갖고 있지만, 국방위원회의 ‘극비위원’인 것으로 전해진다. 그가 사는 아파트는 국가안전보위부 요원들이 철저히 경호를 하고 있으며 건강에 이상이 생기면 프랑스 등 서방국가에서 치료를 받을 정도로 ‘특별대우’를 받고 있다고 한다. 대학에서 강의는 거의 하지 않고 평양북도 영변의 핵시설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면서 핵실험을 포함해 북한의 핵계획과 관련된 정책을 입안·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1966년 28세의 젊은 나이에 박사학위를 받은 수재로 옛 소련에서 유학생활을 하고 돌아온 서씨는 유학시절의 인맥을 활용해 핵관련 시설이나 부품을 북한으로 반입하는 역할을 맡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조선중앙통신은 서씨가 지난 30여 년간 후대교육사업과 과학연구사업을 벌이면서 ‘양자역학’,‘소립자이론’ 등 40여 편의 저서와 100여 건의 가치있는 소논문을 집필했으며 8명의 박사와 20여명의 학사(석사)를 키워냈다고 1998년 소개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그해 11월30일 당시 60회 생일을 맞은 서씨에게 핵개발을 추진한 공로로 환갑상을 전달하기도 했다. 서씨가 북한 핵개발의 ‘대부’라면 도상록 김일성종합대학 핵물리 강좌장은 북한 핵이론의 기반을 닦은 선구자다.1903년 함경남도 함흥시 회상구역에서 태어난 도씨는 1932년 일본 도쿄대학 물리학과를 졸업했다. 개성 송도중학교에서 물리교사로 활동할 당시 ‘헬륨화 수소이온에 대한 양자역학적 취급’이라는 논문을 발표해 국제학계에 이름을 알리기도 했다. 그는 광복 후 서울대학에서 일할 계획이었으나 김일성 주석의 자필 초대장을 받고 김일성종합대학 창립준비위원회에서 일을 시작했으며 물리학부 초대 학부장, 물리강좌장, 핵물리강좌장 등을 지냈다.북한의 ‘조선대백과사전’은 도씨에 대해 “핵구조이론, 양자역학, 원자로물리 등 교과서와 참고서 30여 종을 집필하고 핵가속장치를 비롯한 핵물리 실험장치를 개발하는 등 ‘원자력 부문의 첫 교육자’라고 평가했다. 그는 1990년 사망했다.박정현기자 jhpark@seoul.co.kr
  • 시대 읽는 통찰력·감수성 독자시선 사로잡아

    좋은 작품을 빚어내는 천부적 재능을 부여받은 작가는 극히 소수로 제한된다. 다양하고 풍부한 지적 수준과 역사관, 시대를 읽는 통찰력,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는 감수성, 그리고 이야기를 실타래처럼 뽑아내는 상상력 등을 두루 겸비해야 함은 두말 할 것 없고, 타인이 공감하고 소설의 구조를 끌어가는 객관화의 능력과 그 자신만의 고유한 색, 즉 독특한 표현 방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더구나 다수의 훌륭한 작품을 발표해낸 작가에게는 남들이 뒤따를 수 없는 각고의 근면성이 보태어질 것이다. 오르한 파묵의 작품을 읽은 사람이면 누구나 그가 이러한 능력을 두루 갖춘 작가임에 이의를 달 사람이 없을 것이다. 오르한 파묵은 동서양의 문화 충돌과 그 극복 과정을 다룬 작품들로 유명하다. 터키는 유럽과 아시아의 접점에 위치하고 있는 지리적 특수성으로 인해,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서방 문화와 동방 문화가 교통하는 길목이었다. 유사 이래 그의 조국은 양 방향에서 유입되는 문화들로부터 정체성을 찾는 것이 늘 중요한 화두가 되어 온 것을 감안하면 이는 어쩌면 당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문제는 현재에도 터키에서 늘 토론거리가 되고 논쟁거리가 되는 최대의 담론으로 남아 있다. 독자들이 말하는 파묵 작품의 난해성과 모호성은 그가 소설을 창작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내용의 창안과 새로운 형식과 기법에 대한 실험을 지속적으로 추구해 온 결과물이다. 그는 최근의 작품에서 다른 작가들이 시도하지 않은 새로운 소설 형식을 창안해 내었을 뿐 아니라 포스트모더니즘적인 계열로 분류할 수 있는 소설 기법을 시도했다. 하지만 파묵이 시도하는 새롭고 실험적인 요소가 그의 소설을 읽고 이해하는 데 방해를 주거나 그다지 난해하지 않게 독자들에게 다가서는 점에서 그의 작가적 역량을 높이 사야 할 것이다. 파묵은 현재 장편소설 ‘순수 박물관’을 집필하고 있다.이난아(한국외대 터키어과 강사)
  • [北 핵실험 파장] 북핵 충격이 낳은 궁금증 Q&A

    “우리는 이제 어떤 세상에 살게 되는 건지….” 북한의 핵실험 사태가 가져올 군사적 파장이 관심사로 대두했다. 군사전문가들의 견해를 토대로 문답형식으로 알아본다. Q 핵 앞에서 재래식 무기는 무용지물인가? A “적이 핵을 보유할 경우 아군 재래식무기의 위력은 ‘0’으로 전락한다.”는 속설이 있다. 그만큼 핵의 파괴력이 엄청나다는 말이다. 하지만 수준이 급성장한 첨단무기로 핵무기 시스템을 사전 제압할 수 있다는 주장도 정부 군사당국자들을 중심으로 제기된다. ‘재래식’이란 말이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무기 수준이 첨단화됐다는 것이다. 각종 위성과 공중조기경보기(E-X), 고고도 및 중고도 무인정찰기(UAV) 등으로 북한군의 동향을 사전 포착한 뒤 F15전투기, 스텔스기 같은 가공할 무기로 적의 핵기지와 지휘부를 사전에 괴멸시킬 수 있다는 주장이다. 지하 핵실험과 달리 미사일 발사나 항공기를 통한 핵공격 징후는 바로 포착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반면 아무리 첨단무기라도 핵기지를 100% 제압하기는 불가능하다는 주장도 상존하다. 특히 북이 만일 폭발 규모 1kt(TNT 1000t급 폭발력) 이하의 소형 핵탄두를 개발해 휴전선에 산재한 야포 등에 배치한다면 선제 제압이 상당히 어려워질 수 있다. 수천개의 대포 중 단 몇 발만 발사에 성공해도 수도권은 쑥대밭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직까지는 북한이 소형 핵탄두를 개발할 기술이 안 된다는 관측이 우세한 편이지만, 일각에서는 북한이 이미 소형화에 성공했다는 분석도 있다. 최근에는 티타늄과 같은 가벼운 신소재 개발로 과거에 비해 소형화가 쉬워졌다는 얘기도 들린다. Q 북한은 남한에 핵을 쏠까? A 만일 북한이 핵무기를 사용한다면 미국보다는 남한이 우선적인 표적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미국과는 직접 맞붙을 기술이 안 되고 거리도 먼 반면, 인접한 남한에 대해서는 미사일이 아니더라도 하다못해 핵배낭이나 방사능물질 살포로도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핵은 ‘너 죽고 나 죽고’식의 마지막 자위수단이라는 점에서 북의 선제 핵 도발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2차 세계대전 때 미국이 일본에 원폭을 투하한 이후 수많은 격랑을 거치면서도 전 세계적으로 한번도 핵무기 사용이 없었다는 점이 예시된다. 미국으로부터 직접 공격을 받아 생존이 경각에 달린 경우가 아니라면 자멸을 수반하는 핵도발을 감행할 리 없다는 것이다. 북한이 자체 정변으로 핵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했을 때가 사실은 더 위험하다. 옛 소련 붕괴시 서방 국가들이 우발적인 핵 사용을 가장 우려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Q 남한도 핵을 가질 수 있을까? A 북 핵실험 사태 후 “우리도 핵을 가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일부에서 나오고 있다. 하지만 미국이 반대할 게 뻔하고, 우리한테도 득이 될 게 없어 실현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남한한테마저 핵을 허용할 경우 미국이 전 세계를 상대로 핵 확산을 통제할 명분이 없어지기 때문에 결코 허용치 않을 것이란 분석이 대세다. 남한으로서도 미국의 첨단 핵우산 아래에 있는 게 오히려 더 안전하다는 지적이 있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北 핵실험’ 이란 핵개발 부채질?

    ‘北 핵실험’ 이란 핵개발 부채질?

    북한 다음 차례는 이란인가. 북한 핵실험은 동북아 군비경쟁뿐 아니라 당장 불붙고 있는 이란의 핵개발 노력에 기름을 붓는 꼴이 됐다. 조지 부시 행정부엔 이란 핵개발이 북한의 경우보다 더 예민하다.‘현재진행형’인 이란 핵개발이 미국 대외정책의 우선순위에 있는 중동평화 계획을 흔들고 있는 까닭이다. ●“북핵 이란 이전이 더 걱정” 부시 미 대통령이 9일(현지시간) 성명에서 가장 우려한 점도 북한의 핵기술 ‘이전’ 가능성이다. 이란과 시리아에 미사일 기술을 이전한 북한이 핵도 확산시킬 땐 가만 있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사실상 ‘금지선’을 그은 것이다. 이란은 예상대로 같은 ‘악의 축’인 북한 편을 들고 나왔다. 중동의 이란, 동북아 북한이 서로 힘을 합쳐 국제사회 제재를 무력화시키는 형국이다. 이란은 이날 국영 라디오를 통해 “북한의 핵실험은 미국의 압력 때문”이라며 “미국이 위협을 가하고 굴욕감을 준 데 대한 반작용”이라고 주장했다. 또 핵 비확산에 대한 미국의 이중적 잣대에 책임이 있다고 부각시켰다. 그러면서 이란은 자신들의 핵개발이 북한과는 차원이 다름을 강조하고 있다. 에너지 획득이란 평화적인 사용이 목적인 만큼 우라늄 농축을 중단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란 “제재는 녹슨 무기”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제재를 가한다면 이란도 안보리 5개 상임국과 독일에 제재를 가하겠다고 맞섰다. 이란은 석유를 무기 삼지 않겠다고 밝혀왔지만 한국 등에 부분적인 경제 보복을 가한 경우는 있다. 이란이 북한과 달라서 덜 위험하다는 지적도 있다.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하지도 않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도 허용하고 있어서다. 게다가 이란은 상당한 정도의 민주주의를 하는 나라다. 특히 하조 푼케 베를린자유대 교수는 “북한은 이미 핵폭탄을 보유했을 수 있지만 이란은 수년이 걸릴 것이기 때문에 차원이 다르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서방 국가들의 생각은 다르다.“이스라엘을 지도에서 없애겠다.”고 한 아마디네자드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만큼 위험 인물로 본다. 이스라엘은 이란이 북한 선례를 따를 수 있다며 북핵 실험을 강력히 규탄했다. 그러나 북핵 사태에 이란을 다루기가 전략적으로 더 어려워졌다. 당장 이번주에 열리려던 안보리 제재 방안 논의가 차질을 빚게 됐다.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고문인 로버트 아인혼 전 미 국무부 비확산담당 차관보는 AP통신에 “안보리의 관심이 북한에 집중돼 이란핵에 대한 안보리 대응 논의가 며칠 또는 몇주간 미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중국 등이 석유대국인 이란에 대해 제재를 꺼려 이란 제재 합의안을 도출하는 것이 북한보다 훨씬 어렵다고 내다봤다. 박정경기자 olive@seoul.co.kr
  • [데스크시각] 식민주의 원조와 짝퉁/임병선 국제부차장

    서울의 자기네 대사관에서 받아온 비자를 제시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느물거리는 미소를 흘리는 세관원은 “리턴 티켓 온리!”를 되풀이한다. 서부 아프리카의 부국, 가나 수도 아크라 국제공항에서 일행의 발은 1시간반이나 묶여 있었다. 가나를 떠나는 비행기 표를 보여 주지 않으면 공항을 빠져나갈 수 없다는 것이었다. 입국 심사대 주변에 주저앉아 “우리가 불법체류할까 걱정된다는 건가? 참 별 걱정 다 한다.” “통행료 달라는 거 맞지?” 어쩌고 하고 있는데, 일단의 동양인이 몰려 들어온다. 여자 둘에 일행이라야 다섯밖에 안 되는데 짐은 집채만 하다. 느물거리던 그 세관원이 다가와 말을 건다.“중국인들인데, 영어를 전혀 못한다. 그래서 말인데, 너희 말 통하겠니?” 미국에서 공부하면서 중국인과 많은 얘기를 나눠본 친구를 보냈더니 잠시 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돌아왔다.“쟤들, 어떻게 여기까지 왔나 모르겠어. 영어는 고사하고 자기 이름도 한자로 쓸 줄 모르는데, 어휴.” 그랬다. 나중에 보니 가나 세관은 중국인을 위해 따로 한자로 만든 서류까지 갖춰 놓고 있었다. 일행은 거기서 말로만 듣던 인해전술의 실체를 절감했다. 일단 보내 놓으면 뚫릴 것이라는. 중국이 사람만 보낸 것은 아니다. 일본을 제치고 곧 외환보유고 1위로 올라선다는 중국은 ‘세계의 공장’을 돌리는 석유를 확보하기 위해 아프리카에까지 돈 보따리를 풀어헤치고 있다. 원자바오 총리는 올해만 벌써 두 차례 순방했다. 미국이 눈꼴 시렸던 모양이다. 지난달 중순 월스트리트저널에는 기막힌 기사 하나가 실렸다. 싱가포르에서 열린 서방선진 7개국(G7)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 회의에 참석한 티모시 애덤스 미 재무부 차관이 중국이 얼마 전 가나와 르완다에 약속한 수출 금융 지원을 문제 삼으며 공동성명에 이를 지적하는 내용을 넣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것이다. 애덤스 차관은 지난해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 아프리카 개발펀드(ADF)를 채널로 600억달러에 달하는 42개 최빈국의 채무를 탕감한 사실을 적시하며 중국의 책동이 무임승차라고 목청을 높였다. 이같은 ‘쪽박 깨뜨리기’는 빈국의 부채를 탕감해 보건이나 교육, 빈곤퇴치 프로그램에 전념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더니 중국이 그 틈을 비집고 선심이나 펑펑 쓰고 있다는 비난에 다름 아니다. 거칠게 말하자면 아프리카 빈국들 버릇 고치려고 단속했더니 느닷없이 나타나 물 흐리더라는 것이다. 그는 G7이 중국을 제재하지는 않겠지만 “도덕적 압력”을 가할 것이라고 했다. 한데 미국이나 G7이 “도덕적 압력” 운운할 자격이 있느냐는 데 문제가 있다. 영화 ‘지옥의 묵시록’의 원작이기도 한 조지프 콘래드의 소설 ‘암흑의 핵심’에는 “위엄있는 선의(善意)를 가지고서 그 거대한 이국적 세계를 통치해야 한다는 생각이 담겨 있었어.”라는 대목이 나온다. 식민주의의 원조 격인 유럽과 미국의 ‘위엄있는 선의’ 경쟁은 이제 G7 전체와 중국 인도의 드잡이로 바뀌는 모양이다. 짐바브웨 출신이면서 국제이주기구(IOM) 프리타운 사무소 대표로 일하고 있는 앤드루 초가는 아프리카 엘리트들의 부패가 다른 나라들의 선의를 가로막고 있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의 얘기는 “관료들이 축재한 떡고물이라도 빈민들에게 돌아가게 된다.”는 것. 넘쳐흐르는 물이 언젠가는 바닥을 적실 것이라는 절박한 호소인 셈이다. 앞의 책에서 지적한 “피부색이 다르고 우리보다 코가 약간 낮은 사람들을 상대로 자행하는 약탈”에의 유혹은 원조든 짝퉁이든 매한가지일 것이다. 가나 출신 사무총장의 뒤를 이어 한국인이 유엔 수장에 오를 것이 확실시 되고 있다. 벌써 개도국 원조 확대 목소리가 들려온다. 짝퉁 식민주의의 유혹, 간단치 않을 것이다. 임병선 국제부차장 bsnim@seoul.co.kr
  • ‘서민층 지지’ 룰라 재선이 보인다

    ‘서민층 지지’ 룰라 재선이 보인다

    ‘이변은 없다?’ 새달 1일 치러지는 브라질 대통령 선거에서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대통령의 재선이 유력시된다. 지난해부터 집권 노동자당을 괴롭혀온 정치공작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룰라 대통령의 지지도는 1차투표 당선에 필요한 50%에 육박하고 있다. 27일 발표된 여론조사에서도 룰라 대통령의 지지율은 48∼49%를 유지했다.2위 제랄도 알키민 전 상파울루 주지사와의 차이는 16%포인트. 기권·무효표를 제외한 유효득표율에서는 53%를 기록했다. 현지 언론들은 룰라 대통령이 결선투표까지 가지 않고 무난하게 당선을 확정지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정치공작 스캔들 ‘찻잔속 태풍’ 그쳐 집권당의 야당의원 매수 스캔들 등 ‘메가톤급’ 악재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탄탄한 재선가도를 달려온 것은 재임기간 기록한 양호한 경제성적 덕분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취임 첫해인 2004년 브라질 경제는 10년 만의 최고치인 5.2%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새로 창출한 일자리만 해도 150만개가 넘었다. 좌·우를 넘나드는 유연한 정책으로 서방 투자가들의 근심을 붙들어매는 데 성공한 것이 주효했다. 수출상품인 철광석, 콩 등의 해외 수요가 늘면서 무역과 재정 모두 흑자로 돌아섰다. 덕분에 2004년 세계 15위에 그쳤던 브라질의 경제규모는 이듬해 한국을 밀어내고 11위를 기록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견실한 경제성장으로 빈곤과 불평등을 감소시켰다.”고 평가했다. 여론조사기관 다타폴랴가 27일 발표한 국정운영 평가에서도 ‘매우 잘한다.’와 ‘잘한다.’는 응답이 47%에 달했다.‘잘 못한다.’ ‘매우 잘 못한다.’는 17%에 그쳤다. ●성장·분배 병행으로 서민층 붙잡아 룰라 대통령에 대한 지지는 북부와 북동부 지역에서 특히 높다. 브라질 경제를 양적으로만 성장시킨 것이 아니라 분배 정책을 병행함으로써 지지세력인 서민층의 마음을 붙잡아두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특히 룰라 정부가 채택한 기아 퇴치 사업과 저소득층 생계수당 지급, 최저임금 인상 조치 등은 ‘만족스럽진 않지만 서민에 가까운 대통령’이라는 평가를 얻게 만든 원동력으로 꼽힌다. 브라질은 국민의 4명 중 1명꼴인 4200만명이 최저생계비 이하의 소득을 올리는 극빈층이란 점에서 이들의 지지를 얻는 것은 대권을 얻는 지름길로 여겨져 왔다. 룰라 대통령은 최저임금을 물가 상승률의 3배인 17%나 인상함으로써 절대적 지지를 확보했다. 반면 의사 출신으로 상파울루 주지사를 지낸 알키민 후보는 지나치게 귀족적인 풍모로 서민층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했다. 여기에 지난 5월 상파울루주의 교도소 연쇄폭동까지 겹치면서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데 실패했다. 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 [씨줄날줄] 오 보/ 진경호 논설위원

    미 뉴스위크지가 지난 5월 흥미로운 기사를 실었다.20년전 자신들이 보도한 ‘40세 대졸 백인 미혼여성의 결혼 확률이 테러범에게 죽는 것보다 낮다’는 기사가 오보라는 내용과 함께 당시 기사가 다룬 ‘노처녀’ 11명 중 8명이 결혼한 근황을 소개한 것이다. 유난스럽다 싶은 이 기사에는 오보(誤報)에 대한 미국 언론의 위기의식이 담겨 있다. 지난 몇 년간 잇단 오보로 신뢰도에 큰 타격을 입은 유력지들이 ‘오보와의 전쟁’에 나섰고, 뉴스위크 기사도 이런 흐름을 타고 있는 것이다. 고의든 과실이든 오보로 몸살을 앓기는 나라 안팎이 비슷하다. 미국만 해도 지난해 부시 대통령의 군복무 특혜의혹 오보로 CBS 간판앵커 댄 래더가 물러났다.1981년 8세 마약중독 소년의 생활을 그려 퓰리처상까지 받은 워싱턴포스트의 ‘지미의 세계’는 역사상 가장 유명한 ‘날조기사’로 남아 있다. 뉴욕타임스는 2003년 창간 152년 최악의 오점이라는 ‘제이슨 블레어 기사조작 사건’을 겪었다. 우리의 경우 언론환경이 달라 이런 한탕주의식 날조기사는 비교적 적다. 그러나 사실확인에 소홀한 ‘카더라’식 인용보도는 좀처럼 줄지 않는다. 특히 무절제한 외신 인용은 고질적인 병폐다.1992년 김일성 주석의 신년사를 사회주의 패배 선언으로 해석한 일본 교도통신 보도를 여과없이 국내 언론이 인용, 법석을 떤 적이 있다.14년이 지난 지금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북한 미사일 발사만 해도 국내 언론은 오보 여부를 따질 겨를도 없이 일본 언론을 좇기 바빴다. 중동 문제를 서방언론에 의존해 바라보는 문제도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어제는 전직 미 국무부 관리가 가상해서 작성한 강석주 북한 외무성 부상의 발언을 각 언론사가 대대적으로 보도하는 촌극을 빚었다. 한 언론사의 1차 오보에 마감시간에 쫓긴 각 언론사들이 제대로 사실확인을 거치지 않은 채 앞다퉈 보도한 결과다. 16세기 마르틴 루터가 신문을 ‘거짓말(Lugenie)’이라고 한 것을 보면 오보의 역사는 근대 언론의 역사에 버금간다 하겠다. 지난달 한국기자협회 설문에 응한 기자 300명의 45%가 ‘신뢰하는 언론이 없다.’고 답했다. 자기부정 단계에 다다른 언론 불신의 시대다. 낙종보다 오보가 두려울 때 답이 보일 것이다. 진경호 논설위원 jade@seoul.co.kr
  • 영화에 진출하는 TV 연출가

    영화에 진출하는 TV 연출가

    『10년안으로 「베니스」, 「칸느」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차지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겠다』 연출가 이남섭씨(李南燮·36)가 영화감독으로 「데뷔」하면서 펼치는 포부. 직접 TV「드라머」를 쓰고 연출하던 솜씨로 영화에서도 각본·감독 겸업의 양수겹장이다. TV연출가가 영화감독으로 진출한 예는 『미워도 다시한번』의 정소영(鄭素影)감독에 이어 두번째다. 공교롭게도 이남섭·정소영 두사람은 KBS-TV에서 4년 가까이 함께 일한 동료PD, 연출과 집필을 겸했다는 점에서도 공통점을 갖고있다. 이남섭씨의 처녀작품이 될 영화는 구정 「프로」로 개봉될 『의리(義理)의 사나이 돌쇠』다. KBS-TV의 인기연속극으로 역시 李씨자신이 극본을 쓰고 연출을 맡았던 『녹슬은 단검(短劍)』이 원작이다. 1월25일 TV방영(放映)이 끝나기가 바쁘게 영화촬영도 끝냈으니까 TV극의 영화화(映畵化)에도 초 「스피드」의 기록을 세운 셈이다. 촬영기간이 불과 8일이었다는 점도 李씨의 일솜씨를 자랑하는게 된다. 그의 TV이력은 KBS-TV의 개국(61년 12월)과 함께 시작됐으니까 이미 10년 경력의 「베테랑」이다. 그가 꼽는 대표작품은 『배신자(背信者)』 『사직골 구(具)서방』 『잡았네요』 『녹슬은 단검(短劍)』. 이 4편중 3편이 영화가 됐지만 연속극으로서도 모두 성공한 작품이다. 특히 『잡았네요』이후의 『녹슬은-』같은 「코미디」극은 새로운 유행어를 탄생시키면서 TV가(街)에 선풍을 일으킨 작품들이다. 『이른바 예술 작품으로 「데뷔」못하는게 좀 서운합니다. 그러나 문제작을 들고 나간다는 결의보다는 우선 흥행부터 성공시켜놓고 볼 생각이죠. 영화계 안에서의 기반부터 닦아놓고 그 다음에 하고싶은 영화를 만들 참입니다』 『의리(義理)의 사나이 돌쇠』는 「코믹·터치」의 사극(史劇)이지만 TV 「드라머」에서 불가능했던 분야를 개혁, 완전히 새로운 영상을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처음으로 「메거폰」을 잡아본 뒤의 소감은 『영화가 TV보다 수월하다』는 것. 『TV는 녹화하는 순간 「카메라」 조명, 편집등 기술적인 문제까지 동시에 해야하는 까다로움과 시간에 쫓기는 피로감이 있지만 영화는 기술적 여건의 제한이 적어 훨씬 여유를 느꼈다』한다. 서울大 불문과(佛文科)를 나온 李씨가 영화감독에 뜻을 둔 건 대학 2학년 때부터. TV 연출을 맡으면서 차차 자신이 생겼고 63연도에 도불(渡佛)하여 1년가량 본격적인 영화공부를 했다. 『그곳에서 이른바 세계적인 감독의 영화를 매일 한두편씩 보았죠. 「칸느」「베니스」등 권위있는 영화제에서 수상한 영화들, 정말로 멋이 있읍니다. 영화야말로 모든 예술중에서 가장 다양한 표현수단이 될 수 있어요』 『한국영화는 소재도 문제지만 「테크닉」이 너무 떨어져요. 소설을 그림으로 읽어주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감정, 분위기 묘사가 천편일률이고 대사가 맞지 않요. 대체로 말이 너무 많고』 신중하면서도 날카로운 비판을 털어놓는 李감독은 국산영화가 관객을 잃고있는 이유가 『작품의 질이 낮기때문』이라고 못박았다. 그가 만들고 싶은 영화는 『춘향전(春香傳)』같은 한국고유의 소재를 가지고 현대적인 「테크닉」을 구사한 작품. 고유문화의 전승(傳承)을 주제로 현대적인 영화를 만들고싶단다. 뜻대로 된다면 내년쯤 「유럽」에 가서 그곳 영화를 좀더 보고올 예정. TV「탤런트」 김난영씨(金蘭榮·28)가 부인이고 두 동생 창홍(昌弘·30), 만홍(萬弘·27)씨가 DBS, KBS-TV의 「프로듀서」인 방송가족. TV극 『녹슬은 단검』에 출연했던 김난영씨는 남편의 「데뷔」영화에서 남정임(南貞任), 박노식(朴魯植) 등과 공연(共演)한다. [선데이서울 70년 2월 1일호 제3권 5호 통권 제 70호]
  •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둘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둘

    글 김성동 | 사진 이승희 길이 끝나는 곳에는 공항이 있었다. 가없고 위 모를 하늘길 좇아 어디론가 떠나고 또 돌아오는 하늘 밑에 벌레들로 공항 기다림방(대합실)은 저자바닥이었는데, 견딜 수가 없었다. 오박육일 동안 필사적으로 곡차만 마셨으므로 화두가 자꾸 끊어졌다. 금방이라도 무엇이 넘어올 듯 구역질이 치밀어오르면서 라리라라리 삼삼은 구요 구구는 팔십일로 어지럽고 울렁거리고 빠개지듯 골치는 또 쑤셔오는 것이었다. 날카로운 쇠붙이로 애를 훑어내리는 것 같은 속쓰림을 달래기 위해서는 다시 또 곡차를 마셔야 할 것이었는데, 사바하. 주막은 보이지 않았고 향고양(담배) 또한 올릴 수 없었다. 눈이 내리고 있었다. 어머니가 시집올 때 풀솜할머니(외할머니)가 원앙금침에 넣어주셨다는 햇솜처럼 희고 탐스러운 함박눈이 만다라꽃잎처럼 쏟아져내리고 있었다. 네 둘레는 온통 깨끗하게 빨아 넌 옥양목 호청 빛깔이었는데 뿡빵뿡빵 자동차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동구권에는 눈이 드물다는데, 손뼉 소리인가. 알제리 바닷가에서 비롯될 토굴생활을 북돋워주는 축하의 박수 소리. 길게 내어뿜는 망상번뇌 너머로 보이는 것은 비행기였고, 나는 숨을 삼키었다. 길라잡이하는 번역원 사람은 내가 인천공항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알고 차례를 밟고 있지만, 미안하다. 나는 알제리 보살과 뫼르소 바닷가로 갈 것이었다. 우리는 남몰래 짬짜미(밀약)를 하였고 이제 그 처녀보살 마하살만 나타나면 된다. 길라잡이한테 인생 노선이 바뀐 것을 말하고 알제리 가는 비행기표를 끊으면 된다. 나는 바지 속에 손을 넣어 강연료가 담긴 봉투를 만져보았다. 청춘의 한 시절이 빗살처럼 스치고 지나간다. “눈을 감으셔요.” “눈을 감으라구요?” “얼르응.” 나는 눈을 감았고 여자사람이 말하였다. “꼭 감으셔야 돼요.” “꼬오옥.” “꼬옥.” 감고 있던 두 눈을 힘주어 더욱 감던 나는 “아” 하고 숨을 삼키었다. 숨이 멎는 것 같았다. 내 입술에 와 닿는 내 것이 아닌 입술의 느낌을 똑똑하게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뫼르소 바닷가로 갑니다.” 다식판으로 박아낸 것처럼 선이 뚜렷한 입술을 떠올리며 나는 몸을 돌리었지. 그리고 옆허구리(옆구리) 서늘한 산죽山竹 밭 틈서리로 희미한 치받이(오르막)를 도두밟아(발끝에 무게를 두어 힘들게 밟아) 올라가는데, 아흐. 귀여운 처녀였지. 어여쁜 여자였지. 사랑스러운 보살이었지. 오도독오도독 소리가 나게 이빨로 꼭꼭 깨물어주고 싶을 만큼 너무도 귀엽고 너무도 어여쁘며 너무도 사랑홉아서(사랑스러워서) 아흐 숨 한 번 쉬는 동안에도 팔만사천 번씩 입 주기를 하여주고 싶은 사람이었지. “우우-” 퍼부어내리는 눈발을 향하여 소리를 질렀는데, 대답이 없다. “우우-”는 그 여자사람과 짬짜미한 군호(암호)였다. 산속에서 길을 잃었을 때는 물론하고 보고 싶을 때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입 주기를 하고 싶을 때면 쓰기로 한 비밀주였다. “알제리이이-” 산속 아닌 바닷가라서 거시기하기는 하지만 그곳 또한 중생들 사는 사바세계리니. 무엇을 하든 두 사람 밥이야 굶겠는가. 유럽·아프리카 중생들하고 참선도 하고 명상도 하고 바둑도 두다가 안 되면 진서도 가르치고 붓글씨도 가르치고 정 안 되면 콩트라도 쓰고 에세이라도 써서 알제리보살이 번역해서 원고료 받으면 되지 않겠는가. 지아비는 씨 뿌리고 지어미는 밭 매면 되지 않겠는가. 땀 흘려 일하는 틈틈새새로 본디 성품자리 들여다보면 되지 않겠는가. 나날 삶이 이와 같을진대 서방정토로 가지 않고 또 어디로 가겠는가. 알제리여, 횃불을 밝히지 말라. 우리 함께 어둠 속을 걷자. 그렇다. 집시가 되자. 나는 염불을 때릴 테니 너는 알제리와 불가리아 민요를 불러라. 알제리는 오지 않는데, 나는 무엇을 기다리는가. 진실로 내가 기다리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아침부터 밤까지 그리고 또 아침부터 밤까지 내가 얼을 기울여 기다리고 있는 것은 짜장(정말) 무엇이란 말인가. 부처를 이루기 위한 위없는 깨달음의 세계인가. 한뉘(한평생)를 던져서라도 오직 한 장 그림으로 건지고 싶은 관음보살 미소인가. 영육을 던져 한 자루 뼈로 합쳐질 수 있는 오롯한 여인인가. 넋의 문학인가. 죽음인가. “전화 좀 받아보세요.” 길라잡이한테 잡혀 기다림방으로 들어가는데 손전화기를 건네준다. 알제리였다. “나는 알제리를 못갑니다.” “그런 법이….” “부모님한테 들켰어요.” 서쪽에서 왔다가 동쪽으로 갔고 동쪽에서 왔다가 서쪽으로 갔다니 우습구나 달마 찾는 중생이여 동쪽에서 오면 서쪽이 되고 서쪽에서 오면 동쪽이 되니 온 곳은 어디요 간 곳은 또 그 어드메더란 말이뇨. 내 마음 김성동_열여덟에 고등학교를 자퇴, 출가하였고 스물아홉에 운명처럼 환속했습니다. 하산 이태 후에 대표작 <만다라>(1978)를 세상에 냈고, 그때 평단은 “우리 문학계도 드디어 순도 높은 구도소설 한 점을 얻었다”며 그의 비범한 역량에 찬사를 보냈습니다. 그간 작가는 소설 <풍적風笛> <피안의 새> <꿈> <길>, 산문집 <미륵의 세상 꿈의 나라> <생명기행> 등을 통해 존재의 근원에 대한 치열한 고뇌를 보여주었습니다. 월간<샘터>2006.09
  • [토요영화]

    ●러시아 하우스(MGM 오후 7시) 공공연한 비밀이 있다. 냉전 시절, 군비경쟁을 벌였다지만 소련은 미국의 적수가 못됐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 당시 무시무시한 대량살상무기를 가졌다 해도 이라크가 미국을 이기리라 생각한 사람도 없었다. 기술적 의미로든, 정치적 의미로든 북한이 미국까지 실제 핵탄두를 날릴 수 있으리라 믿는 사람도 없다. 어찌보면 상식인 것 같은데 ‘국가안보’ 딱지가 붙으면 그만 어깨가 딱딱하게 굳는다. 소련과 동구권 붕괴 직후에 만들어진 작품답게 영화 ‘러시아 하우스’는 공산주의 국가의 힘이란 게 알고보니 그다지 대단하지 않았다는 내용을 전제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당시로는 드물었던 소련 현지 촬영을 통해서다. 작가모임에 끼어 소련을 여행하던 영국 출판인 발리. 여행 중에 소련 작가 단테를 만나는데, 그 뒤 이 사람은 출판을 검토해달라며 책 한 권을 전달한다. 냄새를 맡은 정보부는 바로 따라붙는다. 책을 확인해보니 내용은 단순했다. 소련의 핵무기 관련 기술이란 게 너무 형편없는 수준이어서 서방세계에 위협이 되기 어렵다는 것. 이를 확인하기 위해 영국 정보부는 발리를 첩보요원으로 훈련시켜 소련으로 투입, 단테와 접촉하게 한다. 발리는 미모의 연락책 카티야를 통해 단테를 만나는데, 단테가 실은 소련 최고 과학자 야코프이고 책을 만든 것도 소련과학자들의 협동작업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 야코프를 매개로 해서 CIA와 KGB가 본격적인 대결에 들어가지만 발리는 이 대결에 회의를 느끼는데…. 이제는 많이 늙어버린 숀 코너리와 미셸 파이퍼의 매력적인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1990년작,122분. ●아홉살 인생(채널CGV 오전10시 40분) 70년대 가난했던 시절을 배경으로 아이들의 성장기를 다룬 위기철 작가의 베스트셀러 ‘아홉살 인생’을 스크린으로 옮겼다. 에피소드 위주인 원작과 달리 성장드라마의 낯익은 공식, 서울에서 전학 온 새침데기 여자와 시골에 사는 순박하고 우직한 남자의 결합이라는 고전적인 레퍼토리를 도입했다. 뻔한 설정임에도 지겹지 않았던 것은 오디션을 통해 선발된 14명의 아역배우들이 나이를 뛰어넘는 탁월한 연기를 선보였기 때문. 특히 이세영과 김석은 주인공 장우림과 백여민 역할을 능숙하게 소화해냈다. 한국에서도 호평을 받았을 뿐 아니라, 일본 개봉 때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뮌헨’을 제치고 관객만족도 1위를 기록했었다.2004년작,105분.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열린세상] 분쟁은 메카사에서 일어난다/김재두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

    헨리 키신저는 향후 지구촌에서 발생 가능성이 가장 큰 분쟁은 화석연료를 둘러싼 갈등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그는 미래를 이야기했지만 지구촌은 이미 그 갈등의 터널에 들어와 있다. 인류가 당면한 분쟁을 생각할 때 필자는 메두사와 메카사를 떠올리곤 한다. 메두사는 ‘지배하는 여자’라는 의미를 가진 그리스 신화의 괴물이다. 원래는 아름다운 소녀였으나, 여신 아테나의 신전(神殿)에서 해신(海神) 포세이돈과 정을 통한 죄로 아테나 여신의 저주를 받아 무서운 괴물로 변하게 된 것이다. 메카사(ME-CA-A-SA)는 중동(Middle East), 중앙아시아(Central Asia), 아프리카(Africa), 남미(South America)를 잇는 화석연료 분포 벨트인데 메두사의 슬픈 운명을 연상하며 필자가 즐겨 사용하는 약어다. 메카사는 향후 ‘에너지 질서를 지배하는 벨트’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자원의 축복’은 혼자 오지 않고 ‘분쟁에 의한 갈등’과 함께 오기 마련이라 반인반사(伴人伴蛇)인 메두사의 이미지와 일치하는 점이 있다. 중동과 중앙아시아에 매장된 오일과 천연가스를 합치면 72∼73%에 달하며 아프리카를 포함할 경우 80∼84%에 이른다. 남미 베네수엘라는 이미 에너지 강국이지만 오리노코강 유역의 매장량이 공식적으로 인정받으면 세계 최대 매장국인 사우디아라비아의 매장량을 능가할 수도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매장량을 현재 생산량 기준으로 나누어 보면 중동이 81.6년으로 가장 길고, 중남미 40.9년, 아프리카가 33.1년인 반면 유럽 21.6년, 아시아·오세아니아 14.2년, 북미 11.8년 순이다. 미국과 유럽으로 대표되는 서방진영은 불과 10∼20년 이후면 자국 내 화석자원이 고갈될 수도 있다는 절박함을 가질 수 있다. 물론 새롭게 발견되는 곳이 있긴 하지만 대형 유전은 드물고 그나마 심해유전같이 채굴조건도 열악하다. 이란과 이라크같이 싼 비용으로 채굴 가능한 유전은 드물며 신규 발견되는 대형유전은 아프리카에 몰려 있다. 그러나 세계 인구의 4%를 차지하는 미국의 경우, 매년 세계 총생산량의 4분의1에 해당하는 석유를 소비하고 있다. 이 간단한 데이터는 무엇을 의미할까? 그것은 불안함, 긴장, 분쟁을 의미한다. 동물도 불안을 느끼면 살 길을 찾아 분주하게 움직인다. 하물며 인간이 오죽할까? 21세기 들어 정상외교가 벌어진 지역을 점으로 찍어 보면 메카사로 집중된다. 석유시장 최대의 사기업인 엑손 모빌은 보유 물량 기준으로 보면 세계 12위에 불과하다. 국유화 조치로 인해 국영 기업이 상위권을 싹쓸이한 탓이다. 석유시장은 이제 시장의 논리를 떠나 국가의 의지가 충돌하는 분쟁의 장(場)이 된 셈이다. 토머스 바넷은 자신의 저서 ‘펜타곤의 새 지도’(Pentagon’s New Map)에서 9·11 사태 이후 지구촌의 국제 질서 형성 추이와 그 속에서의 미국이 해야 할 임무를 제시한 바 있다. 그는 세계화(globalization)야말로 미국의 초강국 지위 존속을 위한 도구로 보고 이를 토대로 향후 국제 질서 재편의 흐름을 대테러전과 연계하여 설명하였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중심국(Core)이 주변국(Non-intergrating gap)을 안보 차원에서 공동관리해야 한다는 요지이다. 그는 이 논리로 인해 펜타곤의 전략 자문으로 발탁되었고 실제로 미국의 해외 전력 재배치는 그의 개념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바넷이 주변국으로 지정한 갭 지역은 앞에서 언급한 메카사 지역과 정확히 일치하고 있다. 미국은 메카사가 반미라는 연결고리로 굳게 이어지는 것을 막고자 노력 중이다. 그러나 군사력 일변도의 접근은 아름답던 소녀를 메두사로 만들 수도 있다. 이것이 21세기 분쟁의 현 주소다. 김재두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
  • [김형효교수의 테마가 있는 철학산책] (38) 자본주의와 소비사회의 비판에 대하여

    [김형효교수의 테마가 있는 철학산책] (38) 자본주의와 소비사회의 비판에 대하여

    미국의 거대한 자본주의에 늘 정신적 대립각을 세워 온 유럽은 자본주의의 극복이라는 명제를 3세대에 걸쳐 시도했었다.1세대의 극복시도가 마르크스와 엥겔스와 레닌으로 대표되는 공산주의 운동이었다. 이 운동은 소비에트 사회주의가 거대한 관료주의의 괴물로 치달음으로써 실패했다. 소련의 붕괴가 이를 입증한다.2세대는 네오 마르크시즘 운동으로서 관료화에 빠지지 않고 도덕적 이성에 의하여 소외로부터의 인간해방을 목표로 하는 아도르노, 마르쿠제, 하버마스 등 이른바 독일의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철학사상을 기본으로 삼았다. 이들의 철학사상이 지닌 고매한 도덕적 이상주의에도 불구하고 나는 몇 가지 거리감을 지울 수 없었다. 첫째로 60년대 내가 유학생이던 당시의 한국은 아직도 고도자본주의 사회에로 진입할 기미도 없었던 저개발 최빈곤국이었다. 반대로 신좌파운동은 그들 사회가 이미 맛보고 있는 풍요한 고도자본주의를 바탕으로 삼고 그 자본주의를 극복하자는 것인데, 이들 사상을 한국사회에 적용하는 것은 20세기 프랑스 사회학자 레이몽 아롱이 경고한 ‘지식인의 아편’인 혁명적 관념의 유희에 빠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나는 떨쳐버릴 수 없었다. 둘째로 나는 이들이 주장하는 이상사회의 실현이 가능하겠는가 하는 현실성에 큰 의문을 가졌었다. 관념적으로 아무리 멋져도 현실적인 실현가능성이 희박하면, 나는 그것이 빛 좋은 개살구와 같다고 늘 생각했다. 더구나 인간사회는 지우고 다시 쓸 수 있는 연습장이 아니기에, 관념적 사유로 현실을 대체하겠다는 혁명적 발상을 나는 저어했다. 특히 1세대 ‘사회주의=관료주의’의 실패가 늘 나로 하여금 2세대 신좌파운동의 사상에 선 뜻 동의하기를 어렵게 했다. 더구나 그 당시에 나의 철학공부를 이끌어 주던 두 정신의 스승이 있었는데, 프랑스의 메를로-퐁티와 가브리엘 마르셀이었다. 전자는 사회주의 사상에 심취했다가 소련의 스탈린주의가 실현하는 사회주의 혁명의 낭만적 허구를 보고서 이상주의 사상의 거짓을 고발한 철학자였다. 그는 또 현실역사가 이성의 빛과 의미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이성이 정리하지 못하는 애매모호성으로 엮어진다는 것을 서술하면서, 인간역사를 오직 의미의 역사로 환원하고자 하는 과잉 도덕적 명분주의를 비판했다. 그리고 후자는 가톨릭 철학자로서 인류의 역사세계가 이미 ‘깨어진 세계’인데, 그 세계에서 악을 박살내겠다는 결심으로 굳어진 절대선 지향이 결국 국가주의적 나치즘과 계급주의적 공산주의와 같은 광적인 격정의 정치체제를 만들게 된다고 고발했다. 다음 3세대의 자본주의적 비판운동이 다시 등장했다. 해방적 이성의 자기 소외극복 운동으로 마르크시즘을 승화시키려는 2세대 노력이 물거품으로 변한 마당에서 생긴 포스트 모던적인 운동이 3세대의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가 이미 너무 농염하게 성숙하여 마르크스주의로 새 사회를 창조하기가 어려운 경지에 이르러, 비마르크스적인 자본주의의 극복이 시도되었다. 이번에는 독일과 달리 프랑스의 푸코, 들뢰즈, 알튀세르, 보드리야르를 중심으로 한 사회사상의 운동이 생겼다. 이들 사상의 공통점을 몇 마디로 요약하기는 어렵지만, 자본주의적 정치권력의 상품적 대중화를 비판하는데 있다. 그러나 이들의 사상은 자본주의가 인간에게 심어 놓는 무의미한 허무주의적인 흐름을 그대로 빨리 노출시켜 자본주의가 허무주의로 종말을 맺게끔 하는 의도를 지니고 있다 하겠다. 이들은 약간씩 허무주의자들이다. 들뢰즈와 알튀세르가 좌우간 자살로 삶을 마감했고, 푸코가 에이즈병에 걸려 50대에 일찍 세상을 떠난 것도 특이한 일이겠다. 보드리야르의 사회사상을 잠시 훑어보자. 단적으로 보드리야르의 사회사상은 초월의 정신을 망각한 현대 소비사회의 정신부재의 경박성을 슬퍼하면서, 그런 삶의 경박성의 원인이 바로 소비사회의 자본적 본질인 모든 것의 기호화(signalization)에 있다는 것이다. 전통사회에서 물건은 어떤 가치에 대응했었다. 사용가치든 교환가치든 물건은 인간의 구체적 욕망의 충족을 만족시켜 주었다는 것이다. 집은 어떤 정신적이고 내면적 가치를 가족에게 주었었다. 그러나 이제 집은 단지 상상적인 상품의 기호적 가치만을 지시해서 헌 물건 버리고 새로 사듯이 시세차익을 노리는 투기의 소비품목에 불과하다.TV프로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앉아서 리모컨으로 쉽게 손가락 끝으로 바꾸듯, 모든 것은 소비자의 순간적 변덕에 따라 움직이는 기호와 같은 ‘환영’(幻影=simulacrum)에 불과하다. 고도소비사회에서 자동차도 기능가치로 소유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유행이나 삶의 스타일이나 허세나 으쓱대고 싶은 욕망의 환영을 만족시켜 주는 일시적 대용물일 뿐이다. 그런 욕망의 환영은 마치 옛 사회주의 소련의 한 청년이 서방 자본주의의 대명사 같은 블루진을 입고 다니거나, 아프리카 부시맨의 어떤 사나이가 비행기에서 떨어진 서방 콜라병을 무슨 신주단지처럼 모시고 싶어하는 그런 환영과 유사하다 하겠다. 중요한 것은 블루진이나 콜라병이 그 자체로서 의미를 띠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다른 사람들과 다른 차이의 기호를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소비사회에서 모든 이들은 다른 이들과 다른 어떤 기호의 환영을 소비하고 싶어한다. 마르크스가 비판한 자본주의의 본질은 노동과 정신적 가치 등 모든 것이 다 시장의 교환가치로 전환되어 상품화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와 같은 마르크스의 비판이론은 이미 지나간 시절의 가치유물에 불과하고, 이제 사회는 모든 것이 기호적 교환과 같은 ‘흉내내기’(simulation)의 차원으로 전락하여 실재적 가치가 다 사라졌다는 것이다. 모든 흉내내기의 환영은 소비사회가 부추긴 차이화의 조작 코드에 인간이 멋모르고 덩달아 춤추는 껍데기에 불과함을 연상시킨다고 보드리야르는 진단한다. 차이화 코드는 소비사회가 소비자를 유혹하는 차별화 기호의 놀이에 해당한다. 그래야만 소비자가 차이의 환영 속에서 각각 섹시(sexy)해지기 위해 돈을 마구 쓴다. 섹시하다는 것은 소비시장에서 상품으로 잘 전달되기 위하여 남들을 유혹하는 기호고, 각자는 대중사회에서 차이를 표시하기 위하여 과감히 더 섹시하게 튀어 보이게끔 스스로를 기호화한다. 모든 이는 다 섹시한 차이를 연출하기 위해 환영을 좇는다. 보드리야르가 그의 저서 ‘소비사회’에서 기술한 것처럼 ‘소비는 기호(sign)가 흡수하고 기호에 의하여 흡수되는 과정이다.’ 모든 것이 영상으로 비쳐진다. 브라운관이나 컴퓨터의 화면, 유리처럼 투명하나 절연체와 같은 차가운 매체의 통로를 통하여 세상을 구경하거나, 백화점의 상품을 훑어본다. 충격적인 자동차 사고를 목격하고도 자동차 유리를 통하여 감정이 절연된 상태에서 구경하는 정도의 감정만 사람들이 갖는다. 서로 관여하는 진실이 우러나오지 않는다. 그것은 금방 지나가는 일시적 참상에 불과하고, 먼 나라에서 전쟁이 터져도 그것은 TV화면의 순간적 그림으로 보는 환영일 뿐이다. 사람들이 지하철에 우굴거리나 그들이 사람들이라고 여겨지기보다 오히려 사람들의 환영에 지나지 않게 된다. 그냥 사람 비슷한 환영들이 득실거릴 뿐이다. 아무도 대중을 사람들의 실재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사회는 현실을 실제로 느끼지 않고, 차가운 기호로 대체되어 실제로 느낀 척 흉내낼 뿐이다. 보드리야르는 이런 소비사회를 형이상학적 근거를 상실한 ‘환영’의 사회,‘흉내내기’의 사회라고 불렀다. 이런 사회를 그는 또한 실재가 증발되고 환영이 진짜보다 살을 그 위에 더 덧붙이는 ‘초과실재’(hyperreality)의 사회라고 명명했다. 이 초과실재가 바로 환영이고 흉내내기의 허상과 같다. 그는 이런 환영의 흉내내기와 같은 기호가치(value-sign)만이 비대해진 소비사회에는 환영처럼 무수하게 지나가는 기호적 ‘초과실재’에 의하여 인격의 파탄이 내부에서 일어난다고 말했다. 이런 파탄을 그는 ‘내파적 폭력’(implosive violence)이라 불렀다. 예컨대 게임이나 쇼핑에 미친 사람이 상상적 초과실재를 현실로 착각하고 자기 내부에서 환영으로 배가 불러 파열한다. 본디 내파(內破=implosion)는 음운론적으로 외파(外破=explosion)에 대한 반대개념으로 영어의 ‘tap(탭)’,‘cut(컷)’에서 파열자음의 음가인 ‘t’,‘k’ 등이 첫 발음에서는 바깥으로 폭발하는 외파적 파열음이 되지만, 끝 발음의 파열자음인 ‘p’와 ‘t’는 밖으로 폭발하지 않고 안으로 파열이 잠기는 그런 음가를 지닌다. 이것이 외파음에 대한 내파음의 의미다. 과거의 문명은 마르크스의 분석처럼 외부의 모순(계급투쟁)으로 외파하는 구조를 지녔지만, 현대 소비사회의 본질은 스스로 인간이 기호처럼 흉내내기를 하다가 많은 기호에 헛배가 불러 내부에서 내파하여 폭발하는 폭력구조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보드리야르가 본 소비사회에 대한 허무적 진단이다. 자본주의를 극복하려는 3세대의 주장인 보드리야르의 사회학이 소비사회의 병을 진단하는 예리한 통찰력을 지니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나는 그의 사상이 소비적 인간사회를 구원하는 약이 아니고, 오히려 허무주의적 결말을 예견하는 것에 다름 아니라고 본다. 풍요와 편리, 그리고 낭비와 배금주의를 동시에 가져온 이중적 얼굴의 자본주의를 극복하고자 하는 서구의 사상은 마르크스로부터 보드리야르에 이르기까지 자본주의적 소비사회의 병리(病理)를 잘 보았으나, 그 병을 치유할 수 있는 생리(生理)를 제대로 읽지 못했다고 나는 늘 생각해왔다. 나도 그 생리를 알지 못해 많은 시간 헤맸지만, 최근에 해체적인 존재론적 사유가 자본주의의 극복을 위한 생리의 길이란 것을 터득하게 되었다. 자본주의의 이기적이고 물질적 소유론을 그 동안 서구는 도덕적 형이상학적 당위의 가치론으로 극복하려고 시도하였기에 성공하지 못했다고 여겨진다. 마르크시즘이나 네오 마르크시즘은 자본주의의 본능적 소유론에 비하여 반본능적 정신의 소유론에 다름 아니다. 본능적 소유론을 치유하는 길은 역시 자연적 존재론에 의해서 가능하지, 인위적 당위론으로 불가능하다. 보드리야르의 허무론도 결국 형이상학적 실체의 붕괴를 소비사회가 촉진했기 때문에 반사적으로 생긴 반본능적 형이상학적 소유론에 대한 그리움과 같다. 그러나 거기에 그의 사회학의 큰 약점이 있다 하겠다. 이것을 다음주에 더 설명하련다.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철학
  • [OUR STORY] 어부 2대 전어잡이 어로장 손대봉씨

    [OUR STORY] 어부 2대 전어잡이 어로장 손대봉씨

    점점 높아 가는 가을 하늘 아래 오곡백과가 풍성함을 더해간다. 뭍에서 말이 살찐다면 바다에서는 전어가 토실토실하게 살이 오른다.‘봄 도다리, 가을 전어’라는 속담처럼 가을 먹을거리의 대표주자는 단연 전어. 맛도 영양도 그야말로 만점일 때다. 이쯤되면 ‘제철에 먹은 전어 한 마리 열 보약 안부럽다’(?)는 말이 생길 법도 하다. 호남의 어느 지방에서는 ‘귀한 샛서방에게만 내어 준다’해서 샛서방고기라고도 불린다나. 전어(錢魚)는 고대중국의 화폐모양과 비슷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제는 전어가 말그대로 돈되는 생선이 되었으니, 처음 뜻이야 어찌됐든 이름값을 톡톡히 하고 있다.‘2006 전어축제’가 열리고 있는 충남 서천의 홍원항과 마량항 등에서는 해마다 이맘때면 전어굽는 냄새가 솔솔 풍겨온다.‘집나간 며느리도 돌아온다’고 할 만큼 고소한 냄새다. 어디 며느리뿐일까. 전국에서 찾아온 식도락가들이 산과 바다를 이룬다. 불과 10년전만 해도 전어가 이곳에서는 천대받는 생선이었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 전어냄새에 이끌려 마량항을 찾았다. 서해에서는 드물게 일출과 일몰을 모두 볼 수 있는 곳. 사위가 시나브로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저녁 6시쯤 소형 FRP선박인 돌고래2호에 올라타고 전어잡이 체험에 나섰다. 글 사진 서천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손대봉 어로장의 전어잡이 18년 선수(船首)에 서서 바다를 응시하고 있던 어로장 손대봉(51)씨가 “동쪽에서 샛바람이 불면 고기가 머리아파 안일어날 낀데…. 오늘 전어잡기는 고마 틀린 것 같네예.”라며 넋두리를 늘어놓았다.“다른 생선들은 대체로 물이 움직이는 시간대, 즉 들물(밀물)이나 날물(썰물)때 많이 잡히지만, 전어는 들물과 날물이 교차하는 시간대에 주로 잡히지예.1시간 남짓 물흐름이 정지되는 데, 펄속에서 유기물들을 먹던 전어가 그 시간에 다른 펄을 찾아가기 위해 일제히 이동한다 아입니꺼. 바로 그때 신속하게 양조망을 풀어서 잡는기라예.” 마량항 앞바다에는 벌써 30여척의 전어잡이 어선들이 몰려들어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전어떼가 나타났다는 무전이 들어오면 신속하게 이동해야 됩니더. 불과 5분사이에 배들이 집결한다 아입니꺼. 속도경쟁이 대단하지예. 이 배도 휘발유를 사용하는 145마력짜리 고성능 엔진을 두개나 달았지예.” 다른 배들보다 3∼4분정도 늦게 항구를 나선 돌고래 2호는 두시간 가까인 선단주변을 맴돌기만 할 뿐, 좀처럼 그물을 내릴 기회를 잡지 못했다. 어선에서 하나둘씩 불을 밝히자 마치 조그마한 시골읍내를 연상케 할 만큼 휘황찬란해졌다. 그물내리기를 포기하고 귀항하는 뱃전에 앉아 담배를 피워 문 손씨는 “3∼4개월만에 아파트 한 채를 짓기도 하고, 날리기도 할 만큼 투기성이 강한 게 전어잡이라예. 못잡는 경우도 많지만, 하루 수천만원 수입을 올리는 날도 적지 않아예.”경남 하동태생인 손씨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전어잡이에 나섰던 베테랑 전어잡이. 마량항에서 전어를 잡기 시작한 것은 11년쯤 된다.8월초까지는 고향에서 자신의 배를 이용해 전어를 잡다가 이맘때부터 11월초까지 이곳에서 ‘용병’생활을 한다.“콜레라 파동이 났던 2000년에는 단 한마리도 못잡았어예. 잡아도 사가는 사람이 없으니까예. 앞이 캄캄했다 아입니꺼.”대박은 이듬해인 2001년에 터졌다.“10월쯤 경기도 안산의 시화호에 사는 정보원에게서 전어가 많이 들어왔다는 연락을 받고는 트레일러에 배를 싣고 밤을 새워 올라갔지예. 그날 하루동안 전어를 21t이나 잡았다 아입니꺼.5t 물차로 꼬박 12시간을 실어 날랐지예. 돈으로는 1억1천만원 정도 됐고예.”그날 이후로도 2억여원이상 순수익을 올릴 만큼 수입이 짭짤했다. 이튿날 새벽 6시. 손씨를 비롯한 선원들이 굳은 표정으로 마량항을 나섰다.20분정도 나갔을까. 어군탐지기에 전어떼가 포착됐다. 배가 둥그런 원을 그리는 동안 손씨 등 선원들은 신속하게 그물을 내리기 시작했다.300m정도되는 양조망이 모두 풀려나간 시간은 불과 20여초. 곧바로 마량항에 대기하고 있던 전어운반선 돌고래 1호에게 무전을 날렸다. 전어가 제법 들었는지 그물을 올리는 선원들의 입가에 보일 듯 말 듯 미소가 번져갔다. 오늘 잡은 전어는 450kg정도. 금액으로는 2000만원가량 된다. “전어는 내 삶의 일부라예. 전어덕에 애들 셋 모두 대학보냈고, 이제 초등학교 다니는 막내딸만 교육시키면 됩니더.”오랜 원양어선 생활끝에 지난 91년 귀국한 손씨는 마흔이 훨씬 넘은 나이에 늦둥이 막내딸을 보았다며 멋쩍게 웃었다.“전어잡이는 60세까지만 할낍니더. 그 다음부터는 이제까지 고생만 한 집사람이랑 천천히 세계일주나 하며 살끼고예. 돈예?그 동안 잡은 전어만도 100억원어치는 넘을 거라예. 재산에는 별 욕심없어예. 부모님 잘모시고, 애들 잘 길렀으면 됐다 아입니꺼.”과장도 심하다. 설마 100억씩이나 벌었을까만은, 어쨌거나 손씨의 인생은 만선에 가까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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