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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3일 TV 하이라이트]

    [13일 TV 하이라이트]

    ●다큐멘터리 3일(KBS2 오후 10시25분) 서울 종로에서 혜화동을 잇는 거리 ‘대학로.’ 골목과 건물마다 옹기종기 모여있는 소극장이 130여개가 넘는 이곳에선 오늘도 수많은 연극과 뮤지컬이 오르내린다. 민주화의 거리로, 연극인들의 보금자리로 조금씩 다른 표정을 지어 보인 곳. 오늘 우리는 어떤 모습의 대학로를 발견할 수 있을까. ●TV쇼 진품명품(KBS1 오전 11시) 한국전쟁 60주년을 맞아 진품명품을 찾아 온 특별한 의뢰품. 60년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편지 한 장. 바로 한국전쟁 당시 부천 군수에게서 받은 위문편지라는데. 모두를 눈물 짓게 한 의뢰인의 가슴 뭉클한 사연은? 더불어 의뢰품을 통해 민간인으로 구성된 제2국민병과 전시 상황을 알아본다. ●김수로(MBC 오후 9시45분) 조방은 천군 이비가를 찾아가 자신이 가지고 있던 제천금인의 목걸이를 보여주며 수로에 대한 진실을 말한다. 야철장을 짓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신귀관과 석탈해. 석탈해의 그러한 모습을 안타깝게 여긴 아진의선은 하늘이 내린 대장장이로 불리던 일서라는 사람을 알려주고, 탈해는 그를 찾아 백제로 떠난다. ●연예매거진(OBS 오후 9시20분) 가수 비의 MTV 최고 액션스타상 수상, 타블로의 스탠퍼드 대학 졸업 관련 진실공방, 그리고 제4회 ‘뮤지컬 어워드’ 이하늬, 시아준수, 박건형, 오만석, 정성화 등 수상 배우들이 총출동한다. 2010년 최대 화제작 ‘포화속으로’의 출연진 권상우, 탑, 차승원, 김승우 등의 유쾌한 입담이 돋보인 시사회 현장도 찾아가본다. ●한국영화특선 <감자>(EBS 오후 10시50분) 18세 복녀는 80원에 천성적으로 게으른 20살 연상의 홀아비에게 팔려 궁핍한 집안살림을 돕는다. 염전에 나가 일을 하던 복녀는 염전감독에게 몸을 빼앗기는데 그 이후로 처세 방향을 바꾼다. 구멍가게 주인, 한약방 주인 최주부, 중국인 왕서방의 정부가 된 복녀는 어느덧 넉넉한 살림살이를 장만하게 되는데…. ●녹색충전 일요일(KBS2 오전 8시10분) 알로에 재배만 20년, 연간 수확량만 해도 700여톤. 알로에 및 가공품 매출 연간 4억원. 도전과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열정을 가진 경남 거제의 젊은 농사꾼, 이웅일씨의 성공비법을 들어본다. 또 노화 방지는 물론, 전립선암 예방에도 좋은 효과를 주는 토마토의 새빨간 비밀을 파헤친다. ●신비한TV 서프라이즈(MBC 오전 10시45분) 재앙의 현장에서 목격되는 괴생명체. 목격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 괴생명체는 대형 참사가 일어나기 직전, 참사의 현장에 나타난 것으로 밝혀졌는데…. 일본 에도시대 온 도시를 불바다로 만들었던 대화재가 단 한 장의 기모노에서 비롯되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과연 그 진실은 무엇일까.
  • [한국 학자가 본 한국전쟁] 박종효 모스크바대 한국학센터 명예교수

    [한국 학자가 본 한국전쟁] 박종효 모스크바대 한국학센터 명예교수

    전 세계적으로 한국전쟁이란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6·25가 발생한 지도 어느덧 60년이 됐다. 그러나 지금도 잘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 있다. 그 이유는 6·25와 직접 연관이 있는 옛 소련의 비밀문서가 완전히 공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천안함 침몰사건의 원인을 조사하면서 우방국 전문가는 물론 러시아와 중국 전문가도 초청했다. 공정하게 사고의 원인을 조사하려는 태도때문에 국제적인 공신력을 높이고 한국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천안함 사건 조사처럼 6·25도 이제 스탈린과 김일성에 관한 자료가 완전 공개돼야 한다. 그래야 천안함 사고원인 조사에서 보인 국제공조와 권위 있는 결론을 내릴수 있다. 이제까지 6·25에 관한 연구는 국내자료나 서방측의 자료에 의존해 왔다. 공정성이 결여돼 있다. 6·25는 공산진영의 종주국 소련과 스탈린이 직접 관련돼 무기를 지원하고, 공군과 군사고문관을 파견하여 작전을 총괄했다. 게다가 마오쩌둥의 해방군까지 끌어들였던 것이다. 러시아연방 외무성 문서 보관소 자료와 크렘린 문서보관소에 소장되어 있는 이들 문서가 빠짐없이 공개돼야 지금까지 한국이 주장해 왔던 북한의 남침설이 확정될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이와 다른 주장을 펴왔다. 그 주장이 무엇이든 한국은 참이냐 거짓이냐를 가리려 하지도 않고 무조건 거부해 왔다. 6·25는 스탈린의 승인과 마오쩌둥의 지원약속이 없었다면 발발이 불가능했었다는 것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이 모든 사실을 확인한다는 차원에서 러시아 측 자료가 절대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현재도 1994년 러시아 초대 대통령 옐친이 한국정부에 전달한 6·25 스탈린 관련문서가 일반에게는 공개되지 않고 있다. 많은 진실이 일반인에게 투명하게 공개되지 못한 채 의문으로 남아있다. 천안함 조사의 핵심이 공정성에 있다면 6·25는 역사적 진실에 있다. 진실이 올바로 밝혀지지 않거나 왜곡될 때 혼란이 야기되고 분열이 생기는 것이다. 이번에 6·25 60주년을 맞아 서울신문을 통해 러시아 측 자료가 일반독자에게 공개되는 것은 큰 의미 있는 일이다. 광복 이후 일부 역사학자들은 민족주의 사관을 내세우면서 과거 식민지 사관에서 탈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작 자신들은 일본 측이나 미국 측 사료에 의존하는 한계를 보였다. 스스로의 연구역량을 저하시켜 민족사관을 정립하지 못한 모순을 반복했다. 그러므로 이제 6·25는 물론 해방 이후 미소 냉전시기 및 남북관계와 기타 국제관계를 밝히는데도 러시아 사료가 도움이 될 것으로 믿는다. 6·25 발생에 대한 책임이 북한 측에만 있다는 주장이 옳은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한국전쟁이 발생하게 되는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서도 그렇다. 6·25가 단순히 김일성의 요구로 스탈린이 승인을 하고 모택동의 후원약속으로 발생하게 된 것은 아닌 것이다. 멀리는 일제가 1910년 한국을 합병하면서 항일독립운동을 시작하던 초기에 마침 러시아 혁명이 성공하면서 그 영향을 받았다. 특히 러시아 극동지방을 무대로 한 항일애국단체와 중국 상해 및 동북지방에서 활동하던 항일애국단체들이 서로 민족주의 진영과 공산주의진영으로 분열돼 투쟁하기 시작했다. 1945년 일본이 무조건 항복하고 남북을 미소가 분할해 군정을 실시하면서 자연스럽게 민족주의 진영은 서울로, 공산주의 진영은 평양으로 집결했다. 미소 냉전이 시작되면서 서울 미소공동위원회에서 신탁통치문제를 놓고 충돌하기 시작한 뿌리가 있다. 결국 광복이 되면서 남북으로 귀국한 양대 세력이 각각 미소 군정의 비호 하에 정부를 구성하고 김일성은 스탈린의 공산주의 확장정책에 힘을 얻고 마오쩌둥이 중국 본토장악에 고무돼 미군이 한국에서 철군을 시작하자 통일의 기회로 보고 남침을 감행한 것이다. 러시아 측의 자료없이는 한국의 근현대사 연구는 물론 6·25에 대한 진실을 가려내기 어려운 까닭이다.
  • 안보리 이란 제재 실효성 논란

    안보리 이란 제재 실효성 논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9일(현지시간) 통과시킨 이란에 대한 추가 제재 결의안의 실효성을 둘러싼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제재안을 주도한 미국은 “역사상 가장 강력한 제재안”이라고 자평하고 있는 가운데 과거 세 차례의 제재에도 핵개발 의지를 꺾지 않은 이란을 더욱 고립시키는 것은 실익이 없다는 지적이 만만찮다. 더욱이 이번 결의안의 의미가 안보리 상임이사국들이 결속, 이란에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불과하다는 자조 섞인 평가도 나오는 실정이다. 유엔 안보리는 이날 해외에서 영업하는 이란은행에 대한 제재, 이란 국내의 은행 거래감시, 이란의 유엔 무기금수 조치 연장, 제재 대상 기업의 확대 등을 담은 4차 제재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제재안은 브라질과 터키가 반대하고 레바논이 기권한 가운데 12대2로 통과됐다. 이란은 즉각 반발했다.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은 “결의안은 단 1페니의 가치도 없으며 쓰레기통에 던져버려야 할 아기 손수건에 불과하다.”고 거세게 비난했다. 모하마드 카자이 유엔주재 이란대사 역시 “소수 서방국가들의 적대행위에 굴복하지 않고 우리의 권리를 지킬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대표를 던진 브라질 룰라 대통령은 “안보리를 약체화시키고 있다.”면서 “이란은 협상을 바라고 있는데 힘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쪽이 교섭을 원치 않는다.”며 이란을 옹호했다. 터키 아흐메트 다부토글루 외무장관도 “(이란과의) 합의는 죽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란 언론들도 안보리와 서방 각국을 강력하게 비난했다. 제재안의 실질적인 효과 자체에 의문을 표시하는 시각도 적지 않다. AP통신은 “제재에 새로 포함된 기업과 기관들은 이미 제재와 연관돼 있는 곳들이며, 무엇보다 이란은 제재를 피하는 법을 잘 알고 있다.”고 전망했다. 미국외교협회(CFR)의 제임스 린제이는 로스앤젤레스(LA)타임스에서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이 1년전 약속했던 ‘이란에 대한 중대한 제재조치’들은 이번 결의안에서 찾아볼 수 없다.”면서 “이란을 둘러싼 치킨게임(양보하지 않을 경우 양쪽 모두 파국으로 치닫게 되는 극단적인 게임이론)이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전문가들은 이번 제재가 이란을 서방에서 더욱 고립시킴으로써 핵개발에 더욱 매달릴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또 브라질과 터키의 행보로 미뤄 국제사회가 분열될 조짐마저 낳고 있다는 우려도 제기했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한국전쟁 60주년 기획]김일성 각본, 스탈린 연출, 마오쩌둥 주연

    [한국전쟁 60주년 기획]김일성 각본, 스탈린 연출, 마오쩌둥 주연

    한국전쟁의 기원에 대한 학설은 대략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대표적인 학설이 ‘남침설’이다. 2차 세계대전 후 옛 소련이 자국의 팽창주의에 따라 북한을 부추겨 남한의 무력통일을 획책했다는 주장이다. 대척점에 서 있는 학설이 ‘북침설’이다. 미국이 한국을 조종해 북으로 쳐들어갔다는 주장이다. 중간적 입장에서 나온 것이 ‘남침유도설’이다. 대체로 북한의 북침설을 옹호하는 수정주의적 사관이다. 냉전해체 이후 공개된 러시아문서는 분분한 학설을 일거에 정리하는 ‘스모킹 건(결정적 증거)’의 역할을 했다. 한국전쟁을 전후해 스탈린과 마오쩌둥 그리고 김일성이 주고받은 대화록과 편지가 담긴 극비문서들이 쏟아져 나온 것이다. 이제 서방세계는 물론 러시아와 중국의 학자와 일반인들에게도 북한의 남침설은 다시 뒤집히기 어려운 정설로 자리 잡았다. 전쟁을 일으킨 발발자는 누구일까. 전쟁의 주체는 남침설과 북침설, 남침유도설 등 어느 학설에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남침설은 스탈린의 김일성 사주설, 스탈린과 마오쩌둥의 공모설, 마오쩌둥 주도설 등이 주류를 이룬다. 지금은 대체로 스탈린과 마오쩌둥 두 사람을 전쟁발발의 공동주체로 본다. 김일성은 괴뢰로 취급해 평가절하하고 있다. 한국전쟁의 발발 원인을 국내적 요인보다, 냉전체제라는 국제적 요인에서 찾은 결론이다. ●스탈린·마오쩌둥 한국전 공동주체 북침설의 입장에서는 이승만을 전쟁의 주동자로 본다. ‘김일성 저작집’ 제6권을 보면 김일성은 1950년 6월25일 새벽 3시 노동당 정치위원회와 내각 합동 비상회의를 소집해 “리승만 도당의 괴뢰군들이 오늘 새벽 38선 전역에 걸쳐 공화국 북반부를 반대하는 불의의 무력침공을 개시하였습니다. 적들은 이미 38선 이북지역으로 1~2km 침공하였습니다.”라고 연설했다. 지금은 북한주민들만 그렇게 믿는다. 중국군이 펴낸 책자에는 ‘1950년 6월25일 새벽, 38도 선에서 오랫동안 계속되어 오던 소규모 무장충돌과 마찰이 마침내 질적인 변화를 일으켜 한반도에서의 대규모 내전으로 전면적으로 폭발했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중국은 초기 한국전쟁을 ‘내전’으로 보고 있으며, 미군 등 유엔군 참전과 중국의 개입 이후를 ‘국제전쟁’이라고 보는 시각을 갖고 있다. 한때 수정주의 이론이 득세했다. 스톤의 ‘한국전쟁 비사’와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의 기원’에서 영향을 받았다. 이들은 한국전쟁의 기원을 1945년 해방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좌우이데올로기로 나뉜 불완전한 해방의 연장 선상에서 전쟁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심지어 스탈린의 옆에서 전쟁결정 과정을 지켜봤던 후루시초프가 ‘회고록’에서 “김일성이 한국전쟁을 일으켰다.”라고 밝혔지만, CIA 공작설을 거론하면서 믿지 않았다. 그러나 수정주의 이론은 러시아문서가 비밀에서 해제돼 세상에 공개되자 설득력을 잃었다. 냉전이 해체되면서 이데올로기적 제약이 사라진 것이다. 커밍스는 자신의 이론을 부분적으로 수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론적으로 한국전쟁은 김일성이 각본을 썼고, 스탈린이 연출했다. 스탈린은 처음에는 김일성의 저돌적인 전쟁공세에 머뭇거리기도 했지만 밑질 것이 없다고 여겼다. 전쟁을 승인하고 군사원조를 제공했으며 마오쩌둥을 설득해 동맹국으로 끌어들였다. 군사고문단을 보내 전쟁준비부터 휴전까지 직접 챙겼다. 1953년 그가 죽지 않았더라면 휴전협정 조인은 더 미뤄졌을 것이고 꽃다운 생명의 희생은 더 늘어났을 것이다. ●“김일성은 꼭두각시”… 평가절하 러시아 극비문서가 공개되기 전까지 한국전쟁에서 마오쩌둥의 역할에 대한 평가는 절하된 감이 있다. 갑자기 압록강 국경을 넘어 나타난 중공군의 인해전술에 의해 연합군이 압록강에서 38선 이남까지 밀려난 정도로밖에 알려지지 않은 측면이 있다. 김일성이 전쟁발발을 선창했다면, 스탈린은 총연출을 맡았다. 주역은 사실상 마오쩌둥과 중국이었다. 마오쩌둥은 전쟁을 측면에서 조종했고, 참전을 선택했고, 치렀다. 1950년 9월15일 미군이 인천에 상륙하고 나서 압록강 국경까지 진군했다. 이때부터 한국전쟁을 주도한 것은 중공군이었고, 휴전협정의 관장자도 중국이었다. 마오쩌둥은 한국전쟁의 당당한 주연배우로 등장했다. 마오쩌둥은 소련과 미국이 38선 분할통치에 합의했기 때문에 소련 지상군이 동원되면 미군을 끌어들이는 구실이 된다고 봤다. 하지만 중국해방군은 예외라고 판단했다. 스탈린과 마오쩌둥의 참전을 이끌어낸 김일성의 역할도 무시할 순 없다. 주지안룽 동양학원대학 교수는 저서 ‘모택동은 왜 한국전쟁에 개입했을까’에서 “김일성은 온 힘을 기울여 소국의 지혜로 대국의 지도자를 움직이게 하는 일류의 연기를 펼쳤다.”라고 평가했다. 러시아말과 중국말에 능했던 김일성은 양국 수뇌와 외교관 사이를 오가면서 스탈린에게는 ‘마오쩌둥 카드’를 내밀고, 마오쩌둥에게는 ‘스탈린 카드’로 말을 바꾸는 절묘한 ‘양다리 외교’를 펼쳤다. “마오쩌둥은 평화적 수단에 의한 남북통일은 불가능하며, 통일은 군사적 수단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스탈린에게 전달했다. 김일성을 꼭두각시로 깎아내리는 시각도 있지만, 한국전쟁의 시나리오를 쓴 사람은 분명히 김일성이었다. 다만 중공군이 압록강을 넘은 1950년 10월 19일 이전까지 전쟁을 총지휘한 사람은 스탈린이었다. 그는 북한의 군비 요청 사항 중 90% 이상을 지원했다. 1950년 6월15일 평양주재 소련대사 스티코프는 ‘6월25일 새벽에 진격한다. 조선인민군이 옹진반도를 공격하고 서쪽 연안으로 총공격을 가한다. 적 주력부대는 서울 근방에서 괴멸되고 서울과 춘천, 강릉이 동시 점령될 것이다. 최종적으로 남한은 해방될 것이다.’라고 크렘린에 보고했다. 비밀문서에 나타난 전쟁개시일과 전황이 정확하게 일치함을 알 수 있다. 실제 사흘 만에 서울이 점령됐고, 8월20일쯤에는 낙동강 전선을 제외한 남한영토의 90% 이상이 적의 수중에 떨어졌다. 스탈린은 김일성을 총사령관으로 임명하는 한편 소련군 군사고문단장인 바실레프스키 원수에게 서울의 총사령부에 상주토록 조치했다. ●기고만장해진 北, 中 홀대 스탈린은 전선이 교착상태에 빠지자 8월25일 김일성에게 다음과 같은 친서를 보냈다. ‘조선인민의 위대한 해방투쟁에 찬사를 바친다. 미군개입으로 부분적으로 실패하는 것에 당황할 필요가 없다. 북한은 고립되어 있지 않으며, 지원할 맹우들이 곁에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조종사를 지원하는 방법을 검토하겠다.’ 김일성은 용기백배해 다음날 노동당 정치위원회를 소집했다. 북한지도부는 ‘친애하는 동지 스탈린의 아버지와 같은 심려와 지원이 조선인민들에게 큰 도움이 되고 있다.’라는 내용의 공식 회답문을 채택했다. 전세가 불리해지자 바실레프스키 원수는 9월21일 ‘소련군 제147사단 84전투기연대 소속 전투기 야크-9형 40기의 파견을 모스크바에 요청했고 승인받았다. 소련 공군이 한국전에 참전했다. 바실레프스키 원수는 ‘소련 조종사가 전투에 참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미군에게 숨길 수는 없다. 공중전에서 행해지는 교신이 러시아말로 이뤄지기 때문이다.’라고 보고했다. 성공확률 5000분의1에 불과한, 무모하기 짝이 없는 작전으로 보였던 인천상륙작전의 역사적인 성공은 전쟁의 흐름을 180도 바꿔 놓았다. 인민군과 소련군사고문단은 이 작전의 의미를 부정하는 잘못을 저질렀다. 중국은 서방 측 보도를 보고 이 사실을 알았다. 스탈린은 상륙작전에 제대로 대비하지 못한 잘못을 문책해 스티코프 대사를 경질했다. 인민군은 패주에 패주를 거듭했다. 다급해진 김일성과 박헌영은 9월29일 ‘적이 38선을 넘을 때 대비해 소련 측의 직접적인 군사원조를 부탁한다.’라며 보병지원을 요청하는 편지를 보냈지만 스탈린은 응하지 않았다. 마지막 희망은 중국이었지만 여의치 않았다. 급기야 스탈린은 10월13일 ‘중국은 군사개입을 거부하고 있다. 귀하는 소련이나 중국으로 탈출을 준비하고 부대 및 병기를 대피할 필요가 있다.’라는 절망의 통첩을 김일성에게 보냈다. 한국전쟁에 개입한 소련, 중국 그리고 미국 지도자들의 주요 관심사가 한반도가 아니라 일본열도라는 사실이 러시아 비밀문서에 자주 등장한다. 데이비드 핼버스탬은 ‘콜디스트 윈터’에서 “미국이 한국을 위해 죽을 각오로 싸울 태세를 갖춘다는 게 아주 뜻밖의 일은 아니었다. 미국이 정말 염려했던 것은 한반도가 아니라 일본이었다.”라고 주장했다. 마오쩌둥은 김일성과의 회담에서 “일본이 분쟁에 개입하는 일은 아마 없을 것.” “미군의 전투력이 일본군 이하이므로 우리가 이긴다.”라는 발언을 했다. 일본에 대한 생각이 은연중에 드러난 것으로 보인다. 스탈린도 마찬가지였다. ●美·中·소련 관심대상은 日 스탈린은 패색이 짙어진 10월8일자 김일성에게 보낸 전문에서 일본을 막으려면 중국의 참전이 필요한 논리를 폈다. 스탈린은 ‘국제정세를 보면 군국주의 세력이 부활하지 못한 일본은 미국을 원조할 수 없다. 중국이 소극적인 자세를 유지한다면 일본 군국주의 부활을 막지 못한다. 전쟁이 불가피하다면 미국의 동맹자 일본 군국주의자들이 되살아나는 미래보다 지금이 우리에게 훨씬 유리하다. 이승만 치하의 남한이 미국과 일본의 대륙에 대한 전진기지가 될 수년 후보다 지금이 유리하다.’라고 썼다.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하기 전까지 총사령관 맥아더 원수는 점령국 일본에서 황제처럼 군림했다. 전쟁을 지휘하는 동안 한국에서 하룻밤도 보내지 않았다. 그는 1952년 미국 대통령선거에 출마할 유력한 공화당 후보로 점쳐지고 있었다. 한국전쟁 최대의 판단오류 중 하나였던 ‘중국 불개입론’은 그의 신념이었다. 이 때문에 ‘2차 세계대전이 낳은 위대한 장군’ 맥아더는 불명예스럽게도 전쟁 기간에 파면당하는 신세가 됐다. 연합군의 ‘크리스마스 공세’는 중공군의 개입시기를 앞당겼다. 노주석 논설위원 joo@seoul.co.kr
  • 유엔 안보리 ‘이란 4차제재안’ 통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9일(현지시간) 핵 프로그램 중단 요구를 수용치 않고 있는 이란에 대한 제재 결의안을 통과시켰다고 주요 외신들이 일제히 보도했다. 이란에 대한 추가 제재가 가시화되면서 이란과 서방 간 갈등이 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15개국 중 상임이사국 등 12개국 찬성 안보리 5개 상임이사국의 찬성을 포함, 15개국 이사국 가운데 12개국이 이란에 대한 네 번째 추가 제재에 찬성했다. 터키와 브라질은 반대표를 던졌으며 레바논은 기권했다. 이란 추가 제재에 미온적인 입장을 유지해 왔던 상임이사국 중국은 제재 수위를 낮추는 방안을 제시했지만 결국 제재 자체를 반대하지는 않는 것으로 입장을 선회했다. 2006년과 2007년에는 유엔 안보리 15개국 이사국의 만장일치 찬성으로 각각 1, 2차 제재가 결의됐고 2008년에는 찬성 14표, 기권 1표로 3차 제재가 가결된 바 있다. AP통신은 이란 제재 결의안의 최종안은 해외여행 금지, 자산동결 등 제재가 부과되는 ‘블랙 리스트’에 40개 이란 기업과 기관, 이란 핵기술 센터 책임자인 자바드 라히키를 추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에 따라 결의가 채택되면 이란 관련 제재 대상 기업 및 기관 수는 35개에서 75개로 늘어난다. 40개 신규 제재 대상 중에는 이란 혁명수비대와 관련된 곳이 15개, 핵이나 미사일 관련 활동에 연루된 혐의를 받는 곳이 22개, 이란 해운(IRISL)과 관련된 곳이 3개인 것으로 전해졌다. 최종안에는 이와 함께 유엔 회원국들이 이란 핵프로그램에 기여한다고 볼만한 합리적 근거가 있을 경우 화물 검색에 협조하고, 이란과 보험 및 금융거래를 하지 말 것을 요구하는 내용도 담고 있다.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은 이번 제재안에 대해 “이란에 대한 가장 강력한 제재가 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란 “서방과 모든 핵협상 중단할 것” 이란은 서방과의 모든 핵 협상을 중단하겠다는 강경 입장을 굽히지 않으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은 이미 8일 “제재안을 채택해 우리를 협상 테이블에 앉힐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실수라는 점을 미국 정부와 서방에 말해 왔다.”면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모하마드 카자이 주 유엔 이란대사도 “핵무기비확산조약(NPT)에 가입조차 하지 않고 있는 이스라엘은 놔두고 핵무기도 없고 NPT 가입국인 이란에 대해서는 제재를 추진한다.”면서 “이란에 대한 추가 제재는 엄청난 실수를 저지르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란은 우라늄 농축 등 자국의 핵 프로그램이 원자력 에너지 확보를 위한 평화적 목적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서방은 이란이 농축 우라늄을 축적해 결국 핵무기 개발을 시도할 것이라며 제재를 추진해 왔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한국전쟁 60주년 기획] 러 문서보관소 ‘한국전쟁사 寶庫’ 자료공개로 ‘북침설’ 사장시켜

    [한국전쟁 60주년 기획] 러 문서보관소 ‘한국전쟁사 寶庫’ 자료공개로 ‘북침설’ 사장시켜

    1994년 6월2일. 당시 러시아를 방문한 김영삼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마친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은 검은 서류상자 하나를 건넸다. 흔히 ‘옐친 문서’라고 불리는 이 서류는 1949년 1월부터 1953년 8월까지 옛 소련과 중국, 북한 간에 오고 간 극비자료였다. 모두 230여건, A4용지 800쪽 분량의 자료 속에는 김일성의 선제타격작전계획과 스탈린의 3단계 작전지침 그리고 마오쩌둥의 전쟁개입 과정 등이 소상하게 담겨 있었다. 이 자료가 공개되면서 김일성과 좌익진영에서 주장해 오던 ‘북침설’은 소설이 됐다. 한국전쟁에 관한 연구는 옐친 문서 공개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다. 이전까지는 미국, 일본 등 서방 측 자료에 일방적으로 의지한 탓에 ‘반쪽짜리’에 불과했다. 전쟁발발자인 스탈린, 마오쩌둥, 김일성이 주고받은 극비문서에 대한 분석 없이는 한국전쟁의 기원과 발발에 대한 연구의 가치는 떨어진다고 볼 수 있다. 러시아와 조선이 첫 수교를 맺은 1884년부터 일제에 의해 외교권이 강탈당한 1905년까지 두 나라는 긴밀한 우호 관계를 맺었다. 고종의 아관파천(1896년)에서 알 수 있듯이 러시아는 우리 근세사에서 10년 넘게 한국전쟁 이후 미국과 같은 역할을 누렸다. 제국주의 열강 앞에 촛불처럼 흔들렸던 한반도의 정세와 이권약탈사가 러시아 비밀문서 속에 고스란히 들어 있다. 한국전쟁 발발과 휴전 이전까지, 휴전 이후 1980년까지 남북한과 러시아 두 나라 사이에 일어난 모든 공개, 비공개 외교문서가 포함돼 있다. 러시아라는 거울을 통해 조선후기와 대한제국, 남북 분단 시기의 내밀한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러시아에는 20여개의 국립 문서보관소가 있다. 러시아 외무성 산하 제정러시아 대외정책 문서보관소와 혁명 이후부터 현재까지의 문서를 보존하고 있는 러시아연방 대외정책 문서보관소가 한국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특히 제정러시아 대외정책문서보관소와 국방성중앙문서보관소에는 부지기수의 한반도관련 문서가 소장된 것으로 추정된다. 모스크바 크렘린 러시아연방 대통령 문서보관소는 한국전쟁관련 문서의 보물창고이다. 전쟁준비 단계에서 휴전협정이 이뤄진 1949년부터 1953년까지의 극비문서들이 먼지를 뒤집어쓴 채 서가에 꽂혀 있다. 일반적으로 문서보관소의 출입증을 받으려면 소속 학교나 연구소에서 작성한 출입신청서를 제출해야 한다. 연구할 제목을 비롯해 인적사항을 적은 신청서를 내고 나서 출입허가가 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연락이 오면 가서 문서목록 속에서 필요한 문서를 찾은 뒤 신청하게 된다. 외무성 연방문서보관소는 허가절차가 까다롭다. 3개월 만에 허가가 나오기도 해서 연구자들로부터 원성이 높다. 특히 한국전쟁 사료가 있는 연방대통령 문서보관소는 일반 연구자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특별허가를 받은 문서보관소 관계자의 협조를 얻어야 자료접촉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서보관소의 여러 부서에서 문서를 각각 접수하고 있고, 또 문서의 성격에 따라 담당자와 정리자가 달라 문서의 날짜가 다르거나 잘못된 사례도 허다하다. 옛 소련 국가안보위원회(KGB) 문서 보관소는 여전히 금역이다. 박종효 모스크바대 한국학 센터 명예교수가 최근 펴낸 ‘러시아연방 외무성 대한정책 자료1,2’(도서출판 선인)도 이 같은 발품의 산물이다. 러시아 내 한국사료 발굴의 권위자인 박 교수는 지난 16년 동안 문서보관소를 찾아다니면서 관계 문서를 찾아 번역하고 자료집으로 정리했다. 박 교수는 “한·러 관계사의 1차 사료인 러시아 대한정책 자료가 한국전쟁 등 한·러 관계사 연구에 길잡이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노주석 논설위원 joo@seoul.co.kr
  • [한국전쟁 60주년 기획] “통일은 결코 무력으로 안 된다”

    [한국전쟁 60주년 기획] “통일은 결코 무력으로 안 된다”

    한국사의 가장 비극적인 사건을 일으켜 한민족의 분단에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은 역사 너머로 사라졌다. 그러나 민족의 통일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전쟁에 대한 이야기는 출판물과 영화로 신세대에 전해지고 있다. 전쟁이 발생한 지 60년이 지났는데도 한반도는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폭발 가능성이 큰 곳이다. 불안정한 휴전하에서 남북한은 준전시 상태로 유지됐다. 금방이라도 군사적 충돌이 재현될 것 같았지만 위기를 극복했다. 그동안 남한에서는 경제발전이 우선, 군사문제는 이차적인 순위로 밀려났고, 북한은 선군 정치로 일관해 왔다. 지난 세기 러시아도 소비에트시대의 군사적 분쟁에 휩싸여 있었다. 러시아사람들 사이에서도 한국전쟁에 대한 기억이 잊혀져 가고 있다. 한국전쟁 당시 북한에 파견됐던 옛 소련 공군 출신과 한반도의 현황을 좀 더 깊이 연구해 보려고 하는 학자들만이 잊지 않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제 서방세계의 정보를 자유롭게 얻는 러시아 신세대는 한국전쟁을 북한의 돌발적인 남침으로 알고 있다. 그들은 한국전쟁을 그 전쟁에서 승리해 공산주의 체제를 한반도의 남쪽까지 확산시키고 미국을 중국과의 군사대결에 끌어넣는다는 것에 목적을 두고 스탈린이 직접 주도해 행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대부분의 러시아 전문가들은 한반도에서 발생한 한국전쟁은 외부적인 영향보다도 내부적인 요소가 더 크게 작용했다고 본다. 필자는 더 나아가서 제1차 대전의 마지막 단계에 일어난 제정 러시아 붕괴의 결말이었던 적군(赤軍)과 백군(白軍) 간에 벌어진 내전과 제3차 전쟁의 서곡이 충분히 될 수 있었던 남북한 간 동족상잔의 유혈전쟁, 그 두 전쟁 사이에 일종의 유사성이 있다고 본다. 결국은 러시아에서 적색테러와 백색테러, 한국의 공산테러와 반공테러 등은 우리 양국에서 시민적 자유와 민주사회의 형성과정을 수십 년 거꾸로 돌려놓았다고 볼 수 있다. 흥미로운 유사성이 또 하나 있다. 러시아는 제정 러시아가 남긴 폐허 위에서 일어나 20년 만에 세계 역사상 가장 유혈적인 제2차 대전에서 승리를 거두었으며, 반세기에 걸쳐 미국과의 군사 정치적 세력균형을 유지해온 강대국으로 변했다. 전후 한국에서도 같은 능력을 볼 수 있다. 3년 동안의 한국전쟁으로 수백만 명의 희생자를 내고 전 국토가 폐허가 되었다. 예를 들어 민간인의 피해는 여러 통계에 의하면 150만명 내지 400만명에 달해 제일 컸다. 제2차 대전 당시 소련의 인구손실과 대비할 수 있다. 남북한은 경제적으로도 큰 피해를 보았다. 남한의 경제적 피해 규모는 30억달러로 평가되었으며 북한은 4200억원이었다. 북한의 피해는 남한보다 훨씬 더 컸다. 왜냐하면 2년 동안 미 공군의 공습으로 북한의 경제기반이 깡그리 파괴됐기 때문이다. 남한은 전쟁의 피해에도 단 한 세대 만에 아시아 국가 중에 일본에 버금가는 산업대국이라는 지위와 세계 12대 경제 강대국 대열에 드는 국가로 성장했다. 북한의 발전은 그다지 두드러져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자기보존과 생존에 있어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고, 핵클럽에 사실상 가입을 선언한 상태다. 올해는 한국전쟁 발발 60주년과 동시에 한국전쟁에 개입했던 러시아와 수교한 지 20주년이 되는 해다. 한반도에는 1950년 전쟁 직전의 긴장이 지배하고 있다. 그러나 통일은 무력으로 할 수 없다는 교훈을 한국사람 자신들이 잘 알고 있다. 물론 그동안 힘의 배분이 변화되어 북한과 남한의 경제력과 군사력은 예전과 비교해 뒤바뀌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60년 전에 무력통일을 실패한 대가로 수많은 희생과 고통을 치러야 했다면 오늘날은 휴전선 쌍방에서 대량 살상무기를 포함한 군비의 축적규모를 살필 때 어떤 전쟁 시나리오도 전쟁이 발생하게 된다면 아예 한민족의 존재 여부 자체가 의심스럽게 될 확률이 높다고 볼 수밖에 없다. 러시아로서는 한반도뿐만 아니라 극동에 평화가 유지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 중국요리 ‘中’자도 모르는 왕서방

    서울 중구의 한 중국음식점. 타이완, 중국에서 온 여행객들이 본국의 요리를 맛보기 위해 즐겨 찾는 관광식당이다. 중국에서 10년간 경력을 쌓은 주방장이 요리하는 곳으로 소문 나 있다. 하지만 맛이 이상하다는 관광객들의 불평이 끊이질 않았고 소문은 수사기관에 들어갔다. 수사 결과, 이 주방장은 요리경험이 전혀 없을뿐더러 브로커를 통해 불법 취업한 상태였다. 관광식당 지정도 불법으로 이뤄졌다. 일반식당을 관광식당으로 만들어주는 것을 미끼로 해외 인력을 불법 취업시키고 돈을 챙기는 ‘국제 불법 인력 알선’ 브로커들이 활개치고 있다. 경찰은 지난 달 타이완 출신 화교 브로커 왕모(63)씨를 사문서 위조 및 직업안정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했다. 또 이들한테서 건네받은 위조 조리사자격증으로 관광식당을 지정받은 서울과 경기 지역 식당 주인 7명도 불구속 입건했다. 달아난 모집책 송모(45)·이모(45)씨 등 2명은 검거에 나섰다. 이들은 관광식당에 관심을 가진 식당 주인들에게 관광식당 지정에 필요한 현지 조리사 자격증 등을 위조해 주고 관광식당 허가에 필요한 서류 작성과 수수료 납부 등을 도맡아 처리해 줬다. 대신 한국에서 취업을 원하는 중국인 등에게 1500만~2000만원을 받고 식당에 취직시켰다. 중국집 주인들은 본토의 관광객들을 유치할 수 있고, 월 100만원 안팎의 싼 인건비로 관광식당 허가 조건에 맞는 ‘현지 주방장’ 딱지를 얻을 수 있다는 점에 매력을 느꼈다. 현행 관광진흥법상 관광식당으로 지정받으려면 현지에서 조리사 자격을 취득하고 경력 3년 이상이거나 현지에서 6개월 이상 조리교육을 받은 요리사 중 한 명을 고용해야 한다. 경찰은 전국 1786곳(서울 781, 경기 277, 부산 122)의 관광식당 중 일부는 불법 관광식당일 개연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수사를 펴고 있다. 하지만 해당 정부 부처는 정확한 실태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는 “관광협회에 위탁을 해 놓은 상태라 고용현황 등은 파악하기 어렵다.”는 입장이고, 관광협회 관계자는 “점검 절차 등을 강화했지만 허술하게 발급되는 자격증 확인은 어려운 형편”이라고 말했다. 백민경기자 white@seoul.co.kr
  • [新 차이나 리포트] G2 중국, 세계를 호령하다 ⑥ 美 패권 넘보는 군사력

    [新 차이나 리포트] G2 중국, 세계를 호령하다 ⑥ 美 패권 넘보는 군사력

    중국이 군사력의 첨단화, 현대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막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세계 2위의 군사비 지출 국가로 올라선 중국은 국방비의 상당 부분을 인민해방군의 현대화, 무기체계의 첨단화에 쏟아붓고 있다. 타이완에 대한 패트리엇(PAC)-3 미사일 판매 문제로 미국과의 갈등이 고조되던 1월 초 중국은 자국 군사력과 관련된 의미 있는 실험을 통해 미국을 상대로 사실상 ‘무력시위’에 나섰다. 중국은 1월11일 미사일 요격실험에 성공했다고 관영 신화통신을 통해 전 세계에 알렸다. 지상발사형 중간비행단계(GMD) 미사일 요격 실험으로, 가상의 적으로부터 날아오는 미사일을 요격미사일을 이용해 대기권 밖에서 폭파했다. 그만큼 정교한 레이더 시스템을 갖췄다는 얘기다. 중국 외교부는 “실험은 방어적인 것이었으며, 특정 국가를 대상으로 한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지만 군사전문가들은 “미국이 추진 중인 미사일방어(MD) 체계를 중국도 갖추기 시작했다는 신호를 보낸 것”이라고 해석했다. 미국과 군사적으로 경쟁할 준비가 돼 있으니 타이완 문제에 개입하지 말라는 경고를 보낸 셈이다. ●국방비지출 20년간 연평균 16% 증가 미사일 요격실험 성공 소식을 전한 지 채 일주일도 지나지 않은 1월17일 중국은 세 번째 베이더우(北斗) 항법위성 발사에 성공했다. 중국판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인 베이더우(영문명 COMPASS) 시스템 구축 계획은 2012년까지 10여개의 위성을 쏘아올려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위치정보를 수집하고, 2020년까지는 5개의 정지위성과 30개의 궤도위성을 배치해 전 세계의 위치정보를 확보하는 목표를 갖고 있다. 지난 2일 네 번째 위성을 쏘아올렸다. 서방 측은 군사적 활용에 주목하고 있다. 군 최고위급 인사가 언급한 대로 ‘우주무기’ 개발 및 배치가 시작된 것 아니냐는 것이다. 미사일 요격 실험에도 베이더우 위성을 활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의 올 국방예산은 5321억 1500만위안(약 93조원)에 이른다. 지난 20년간 연평균 16%대였던 국방예산 증가율이 올해 처음으로 한 자릿수인 7.5% 증가에 그쳤지만 군사전문가들은 숨겨진 예산이나 실제 집행과정에서의 예산추가 등을 감안하면 올해도 실제로는 두 자릿수의 증가율을 보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군사비를 많이 지출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 돈은 다 어디에 쓰이는 것일까. 원자바오(溫家寶) 총리는 지난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정부업무보고에서 “국방과학 연구와 무기장비 건설에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스웨덴의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의 2009년 연감에 따르면 중국은 2004년부터 5년간 전 세계 무기시장에서 거래되는 무기의 11%를 사들여 1위에 올랐다. 중국이 2000년 이후 러시아로부터 사들이는 무기체계 및 군사기술 비용은 연평균 20억달러가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기경보기 등 공개… 항모 건조 착수 198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인민해방군의 현대화 작업은 특히 2000년대 들어 방향을 크게 틀었다. 1980년대 후반 100만명의 병력을 감축하고, 지역 군을 축소하는 등 비대한 구조를 슬림화하는 데 중점을 뒀던 것과는 달리 최근 들어서는 장비 현대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순항미사일 등 다양한 신형무기체계를 생산, 배치하는 한편 외국무기 및 군사기술의 도입을 확대하고, 정보전 능력을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10월1일 베이징 톈안먼(天安門) 광장에서 진행된 건국60주년기념 열병식은 그동안의 성과를 만천하에 과시하는 자리였다. 핵을 탑재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조기경보기 등이 처음으로 선보였다. 하지만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중국은 최첨단 전투기인 젠(殲)-11, 미 대륙까지 날려보낼 수 있는 ICBM 둥펑(東風)-41 등을 갖추고 있고, 항공모함 건조에도 착수했다. 핵추진 잠수함 대부분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전략 핵미사일 부대인 제2포병의 최고 책임자 징즈위안(靖志遠) 사령원은 지난해 초 “신형 핵무기와 장비의 기술개발에 박차를 가해 과학기술 강군 전략을 완성하자.”고 주장한 바 있다. 바로 직전 공개한 국방백서에서는 “신형 핵무기 개발을 중단했다.”고 밝힌 중국이다. 군사대국의 길을 걷고 있는 중국에 대해 미국, 일본 등 서방은 ‘중국 위협론’을 제기하며 우려하고 있다. 이에 대해 중국은 “어떤 경우에도 선제공격을 하지 않을 것이며 오로지 주권과 영토를 지키기 위한 방어적 국방 개념을 고수하고 있다.”고 항변한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 기업사냥꾼 변신한 조폭

    조직폭력배가 ‘기업 사냥꾼’으로 진화했다. 경영보다는 회사 돈을 지능적으로 빼돌렸다. 서울중앙지검 강력부(부장 김영진)는 2006년 8월 사채로 코스닥 상장 의류업체 A사를 인수, 회사 돈 43억 8000만원을 횡령해 주가조작 자금으로 쓴 혐의로 폭력조직 범서방파 간부 김모(38)씨 등 2명을 구속 기소하고 2명을 불구속 기소했다고 6일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김씨는 A사가 자기자본 잠식으로 관리종목에 지정되자 2007년 1월 223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시행했다. 이때 대금 161억원 상당을 사채로 납입했다가 다시 돈을 인출해 빚을 갚는 ‘가장납입’ 수법을 활용했다. 회계 관련 전문지식으로 코스닥 상장사를 불법적으로 삼킨 공인회계사와 그의 의뢰로 기업 간 분쟁에 끼어든 ‘검은 해결사’ 조폭도 적발됐다. 공인회계사 김모(48)씨는 무자본 또는 불법 ‘차입매수(LBO)’ 방식으로 2007년 1월 코스닥 상장 경비업체 B사와 전자칩 부품제조업체 C사를 인수하고 회사 돈 79억 2800만원을 횡령한 혐의로 공인회계사 김모(48)씨를 구속 기소했다. 또 김씨가 인수한 기업의 경영에 개입해 26억 6000만원의 회사 자금을 빼돌린 광주 콜박스파 행동대원 송모(43)씨 등 3명을 구속 기소하고 박모(42)씨를 불구속 기소했다. 차입매수란 인수대상 기업의 자산을 담보로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려 기업을 인수하는 것을 말한다. 원칙적으로는 다른 자산을 해당 기업에 제공해야 하지만 김씨는 마음대로 221억원에 이르는 C사 자산을 이용했다. 또 C사 자금을 빼돌려 B사 인수과정에서 발생한 채무를 갚는 등 개인적으로 쓴 것으로 확인됐다. B사를 되파는 과정에서 인수자가 김씨의 불법 행위를 확인, 계약 이행을 거부하자 조폭 송씨를 동원해 협박하려 했다고 검찰은 전했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민간 구호선 공격한 이스라엘군 영상 파문

    민간 구호선 공격한 이스라엘군 영상 파문

    민간단체의 구호선을 공격한 이스라엘에 대한 비난이 거세지고 있는 가운데 사건 당시의 영상이 공개돼 화제다. 이스라엘군이 열영상 카메라를 이용해 촬영한 이 영상은 병사들이 배에 내리는 순간부터 총을 꺼내 들기까지의 과정이 기록돼 있다. 구호선을 정선시키기 위해 헬기에서 밧줄을 타고 첫 병사가 내려오자 몽둥이를 든 사람들이 병사를 집단으로 공격하기 시작한다. 쇠파이프로 보이는 물체와 의자까지 가져와 병사들을 공격하는 모습이 확인되고 한 병사는 배 밖으로 던져지기도 한다. 영상의 마지막 부분에는 총을 꺼내 든 병사가 보인다. 일부 사상자가 발생했는지 이스라엘 병사를 공격하던 사람들이 머리 위로 손을 올린 모습도 확인된다. 이 영상은 이스라엘군이 자위권 차원에서 발포가 이뤄졌다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사건 직후 공개한 것으로 동영상을 본 네티즌들 사이에선 벌써부터 격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대체로 민간인, 그것도 구호단체의 사람들에게 총격까지 가한 것은 지나치다는 평이지만 일부 네티즌들은 “저 정도면 자위권을 인정해야한다.”며 맞서고 있다. 한편 이번 사건은 지난 31일 새벽(현지시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130㎞가량 떨어진 공해상에서 가자지구에 전달하기 위한 구호물자를 실은 선단을 이스라엘군이 제지하면서 발생했다. 이번 사건으로 구호선에 타고 있던 10여 명의 민간인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지자 아랍권뿐 아니라 서방국들의 비난이 쏟아지고 있으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긴급 소집되는 등 이스라엘이 심각한 외교적 위기에 몰리고 있다. 특히 사망자 대부분이 터키인으로 전해지자 터키 외무부는 “무고한 민간인들을 공격함으로써 이스라엘은 인명과 평화를 위한 활동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기고 있음을 다시 한번 명백히 드러냈다”고 비난하고 나섰다. 또 “공해 수역에서 일어나 국제법을 심각히 위반한 이번 행위는 양국 관계에 회복하기 어려운 손상을 가져올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이스라엘은 지난 2007년 6월 가자지구를 강경파 무장정파인 하마스가 장악한 이래 제한적인 구호품의 반입을 제외하고 이곳을 원천봉쇄하고 있다. 사진 = 동영상 캡처 서울신문 M&M 최영진 군사전문기자 zerojin2@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對北제재조치 이후] 양국 언론 정상회의 엇갈린 시선

    “누구도 비호 않겠다.” Vs “한반도의 평화 안정 파괴행위를 반대할 뿐” 30일 제주도에서 폐막된 한·일·중 3국 정상회의 결과를 전하는 한·중 양국 언론 보도에는 천안함 사태를 보는 양국의 엇갈린 시선이 그대로 묻어났다. 외신들은 “한국과 일본이 중국을 설득하는 데 실패했다.”는 평가를 내렸다. 한국 언론들은 “누구도 비호하지 않겠다.”는 원자바오 총리의 발언에 대해 조심스럽게나마 중국의 태도 변화를 말해주는 것으로 보도했다. ‘누구’를 북한으로 해석하며 시시비비가 명백해질 경우 북한을 더 이상 비호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인 것이다. 반면 중국 언론들은 정상회담 결과를 신속하게 전하면서도 원 총리의 발언 가운데 평화와 안정에 방점을 뒀다. 관영 신화통신은 한·중 정상회담 소식을 전하면서 원 총리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파괴하는 어떠한 행위도 반대하며 규탄한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특히 원 총리가 “적극적으로 6자회담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한 점을 부각시켜 평화적 해결을 모색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서방 언론들도 원 총리가 북한을 비난하지 않은 것은 기존 입장에 변화가 없기 때문이라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AFP통신은 “한국과 일본이 중국 압박에 실패했다.”고 보도했다. AP통신 역시 원 총리가 유엔 안보리로 이번 사건을 끌고 가려는 한국에 지지를 표명하지 않은 점에 초점을 맞췄다. 일본 산케이신문은 “3국 정상이 적절한 대처에는 합의했지만 유엔 안보리 회부에 대해서는 논의가 없었고, 중국과의 온도차가 부각됐다.”고 보도했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품절男’ 사이먼디-노유민, 방송 퇴출 위기?

    ‘품절男’ 사이먼디-노유민, 방송 퇴출 위기?

    ‘품절남’으로 밝혀진 사이먼디와 노유민이 네티즌들의 귀여운 질투를 받고 있다. 힙합그룹 슈프림팀 멤버 사이먼디와 NRG 출신 노유민이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 새 코너 ‘뜨거운 형제들-아바타 소개팅’에서 “여자 친구가 있으니 품절남은 빠져라!”는 이유로 제외 당할 위기(?)에 처했다. ‘뜨거운 형제들-아바타 소개팅’은 네 유부남(탁재훈, 박명수, 김구라, 한상진)의 조종을 받아 네 미혼남 (박휘순, 노유민, 사이먼디, 이기광)이 소개팅에 나서는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이 실제 소개팅 내용을 다루고 있는 만큼, 여자친구의 존재가 확인된 사이먼디와 노유민을 향한 네티즌들의 불만이 커져가고 있는 것. 사이먼디는 지난 해 12월 SBS ‘김정은의 초콜릿’에 출연해 “2년 된 여자 친구가 있다.”고 열애 사실을 공개한 바 있다. 사이먼디의 여자친구는 ‘홍대여신’으로 유명한 레이디 제인으로 두 사람은 이미 2년 넘게 열애중인 것으로 밝혀졌다. 노유민 역시 지난달 28일 방송된 SBS ‘마이파트너’에서 “노서방 사랑해요”라는 여자친구의 메시지를 공개하며 뜨거운 애정을 과시했고 많은 예능프로그램에서 여자 친구의 존재를 인정했왔다. 방송직후 네티즌들은 “여자 친구까지 있는 사람들이 그라믄 안돼. 휘순이형 생각해서라도 그라믄 안돼.”, “소개팅녀들은 아무것도 모르던 눈치던데 보기 좀 그랬다.”, “아무튼 어디를 가나 있는 것들이 더한 법”, “여자 친구도 있으면서, 박휘순한테 미안하지도 않냐” 등으로 상당수의 의견이 ‘박휘순’을 지목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이에 아이디 ‘슈프림피자라지에콜라1’을 쓰는 사이먼디의 팬은 “안 된다. 이제야 겨우 이름 알리기 시작했는데 안 된다. 1년 6개월만 사람하나 살리는 셈 치고 봐주세요. 그 안에 자리 잡겠지요.”라고 눈물의 소감을 남겼다. 한편 23일 방송분에서 사이먼디에게 에프터 신청을 했던 주보비는 2005년 종영한 KBS 드라마 ‘반올림1’에 출연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사진 = 레이디 제인 미니홈피, 노유민 미니홈피 캡처 서울신문NTN 전설 인턴 기자 legend@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對北제재조치 이후] 北 수교국에 ‘결백’ 강변… 냉랭한 반응

    [對北제재조치 이후] 北 수교국에 ‘결백’ 강변… 냉랭한 반응

    북한이 160개 수교국을 상대로 천안함 사태는 자신들과 무관하다며 결백을 강변하는 외교전을 펼치고 있는 것으로 27일 알려졌다.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은 지난 20일 천안함 침몰 원인이 북한의 어뢰공격이라는 조사결과가 나온 이후 세계 각국의 해외공관 등을 통해 주재국 정부에 “우리는 천안함 침몰과 무관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북한 외교관들은 “한국정부가 증거를 날조해서 생사람을 잡는 것이다. 우리가 무엇 때문에 그런 짓을 저지르겠느냐.”고 결백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은 북한의 주장을 접수한 각국 정부가 우리 정부에 그 사실을 귀띔해 주면서 드러나게 됐다. 소식통은 “외교 관행으로는 다른 나라와의 외교 교섭 내용을 다른 이해 당사국에 알려주지 않는 게 보통”이라면서 “하지만 이번엔 북한 소행이라는 증거가 워낙 압도적인 데다 한국의 국력이 북한을 한참 앞서기 때문에 주저없이 한국 편에 서려고 이런 정보를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북한의 천안함 외교전은 전체 수교국을 상대로 이뤄지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서방국가를 비롯해 한국과 가까운 여러 나라가 조사결과 발표 직후 신속하게 대북 비난 성명을 발표하는 바람에 역부족을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베트남과 같이 북한과 비교적 가까운 나라까지도 조사결과가 나온 직후 대북 비난 성명 발표에 동참하면서 북한의 외교력은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이런 현상에는 한국이 최근 집중적으로 추진한 ‘전략적 동반자 관계 맺기’가 일조했다는 분석도 있다. 외교통상부 관계자는 “전략적 동반자 관계는 단순한 수사(修辭)가 아니라 위기 상황에서 입장을 같이하는 국가 관계를 말한다.”면서 “여러 나라와 적극적으로 맺은 전략적 동반자 관계가 이번에 빛을 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과 베트남은 지난해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맺었다. 또 강국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인도가 이번에 예상보다 신속하게 대북 비난 성명을 발표한 것도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1월 인도를 방문해 맺은 전략적 동반자 관계 덕택이라는 게 정부의 진단이다. 반면 전통적으로 북한과 가까운 캄보디아, 라오스, 그리고 아프리카와 동구권 일부 나라들의 경우 북한과의 관계 때문에 대북 비난 성명을 발표할지를 놓고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 소식통은 “아직 성명을 발표하지 않은 나라들도 천안함 사태가 북한 소행이라는 조사결과는 의심치 않는다는 입장”이라면서 “다만 북한과의 관계를 들어 한국 정부에 곤혹스러운 속사정을 털어놓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새신랑 은지원, 아내 ‘러브레터’에 함박웃음

    새신랑 은지원, 아내 ‘러브레터’에 함박웃음

    ‘품절남’ 은지원이 아내의 러브레터를 공개했다.23일 방송된 KBS 2TV ‘해피선데이-1박 2일’ 수학여행 특집에서 MC 강호동 김C 이승기 은지원 이수근 김종민 MC몽은 각자 가족이 만들어준 도시락을 싸왔다.점심시간에 은지원은 도시락 뚜껑을 열자 아내가 쓴 쪽지가 나왔다. 은지원도 예상하지 못했던 쪽지라 아내의 깜짝 선물에 행복한 미소를 지어 깨소금같은 신혼생활을 짐작케 했다.은지원의 아내는 “사랑하는 서방님”으로 편지를 시작했다. 이어 “방송하느라 고생이 많은데 맛있는 거 해주지 못해서 정말 미안해.”라며 “수근이 형아가 맛있는 거 싸올 것 같으니까 눈치껏 뺏어먹어.”라고 말했다.또 “그래도 정성은 최고로 담았으니까 꼭꼭 씹어서 다 먹고 와. 서방님 존경하고 사랑해요.”라며 애정을 과시했다.이날 은지원의 아내는 하와이 출신답게 수학여행 도시락으로 ‘초딩’ 은지원의 입맛에 맞춘 소시지와 칠리소스를 싸줘 ‘1박 2일’ 멤버들의 관심이 집중됐다. 한편 은지원은 지난 4월 20일 미국 하와이에서 2세 연상의 첫사랑과 결혼식을 올렸다.사진 = KBS 2TV ‘해피선데이-1박 2일’ 방송 캡처서울신문NTN 강서정 인턴기자 sacredmoon@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푸틴 “1980년대 KGB 산업스파이로 활동”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가 1980년대 동독에서 산업스파이로 활동하면서 서방의 민감한 기술과 산업기밀을 수집하는 임무를 수행했다고 밝혔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푸틴총리가 최근 러시아 과학원 회의에서 이런 발언을 했다고 1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1985~1990년 동독 드레스덴에서 옛 소련의 국가안보위원회(KGB) 스파이로 활약했던 푸틴 총리는 당시 서방과 기술 격차가 갈수록 벌어지는 것을 조금이라도 막기 위해 자신이 본국에 전달한 정보를 상부가 무시한 것에 좌절감을 느꼈다고 회고했다. 드레스덴은 당시 동독 최대의 컴퓨터 제조업체 로보트론이 본사를 두고 서방 제품을 기초로 제품을 만들었던 곳이었다. 그는 “내가 다른 부서(KGB)에 근무할 당시 우리와 외국인 동료가 특별한 수단을 통해 얻은 성과가 소련 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았던 1980년대 말의 상황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고 당시 지도부에 대한 강한 유감을 나타냈다. 푸틴 총리가 KGB 소속 정보요원이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얘기다. 하지만 그가 서방의 컴퓨터 관련기술을 소련에 넘기는 임무를 수행했다는 증언이 일부 있었을 뿐이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이소은, 美 로스쿨 유학 중 ‘일시 귀국’

    이소은, 美 로스쿨 유학 중 ‘일시 귀국’

    가수 이소은(28)이 미국 명문대 로스쿨로 유학을 떠난 지 1년 만에 일시 귀국했다. 이소은은 지난해 미국 시카고에 있는 노스웨스턴대 로스쿨에 입학해 이달 초 1학년 과정을 마친 뒤 잠시 한국에 들어왔다. 이소은은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3주 후에 다시 미국으로 떠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이소은은 최근 귀국을 앞두고 미니홈피에 올린 글을 통해 “이런 1년이 내 삶에 또 올까. 수도 없이 나에 대한 실망과 여기서 뭐하고 있나 하는 후회와 모자란 뇌세포를 원망하며 펑펑 울면서 잠든 지난 1년”이라며 힘들었던 유학 생활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또 “지난 1년간 추수감사절과 설날도 혼자 생일도 도서관에 처박혀 보내며 외로움이 어떤 어려움보다 견디기 어렵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다.”고 외로웠던 타국 생활을 반추했다. 한편 지난 2007년 고려대 영문학과를 졸업한 이소은은 ‘국제 인권 변호사’의 꿈을 안고 지난해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이소은은 지난 1999년 1집 ‘소녀’로 데뷔해 ‘작별’, ‘서방님’, ‘키친’ 등의 히트곡으로 인기를 끌었다. 사진 = 이소은 미니홈피 서울신문NTN 오영경 인턴기자 oh@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조폭 칠순잔치에 경찰특공대 출동

    19일 오후 5시 서울 논현동 임페리얼 팰리스호텔. 이 호텔에서는 영등포지역 폭력조직 새마을파의 전 두목 이모(70)씨의 고희연이 열렸다. 행사에는 양은이파, 칠성파, 범서방파 등 전국구 폭력조직원 200여명이 초청됐다. 서울지방경찰청은 이례적으로 폭력조직에 행사 자제를 요청하는 한편 서울청 폭력계·광역수사대 형사와 기동대 1개 중대를 급파해 주변 검문검색을 실시했다. 또 유사시에 대비해 경찰특공대를 대기시켰다. 경찰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담을 앞두고 안정적인 사회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조직폭력배들의 대규모 행사에 대해 검문검색을 실시한 것. 서울청은 조직폭력배가 경조사 행사를 빙자해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버젓이 호화행사를 개최하고 세력을 과시하는 사례가 빈번해 시민들의 불안감이 높아진다고 판단, 강력 대처키로 했다. 실제로 2008년 이후 서울 역삼동 인근의 호텔에서 폭력조직이 연 결혼식과 장례식, 고희연은 10여차례나 된다. 서울청은 폭력조직이 다른 조직폭력배를 초청하거나 조직 간 연계를 위한 행사가 열릴 경우 사전에 행사 규모를 억제하도록 요청하고, 필요시 병력을 집중 배치하고 있다. 또 검문검색을 통해 수배자를 검거하고, 폭력조직이 경조사 행사를 빙자해 조직운영자금을 모집할 경우 집중 수사한다. 폭력조직원에 대한 채증활동을 통해 향후 기획수사 자료로 활용한다는 방침도 세웠다. 이 밖에 사우나나 찜질방 등 대중목욕탕 업주들에게 협조를 구해 불안감을 조성하는 문신을 한 폭력배들의 출입을 제한하는 안내문을 비치하도록 할 예정이다. 출입을 요구하며 소란을 피우는 폭력배는 112 및 해당서 강력범죄 수사팀으로 신고하도록 해 즉각 업무방해로 형사처벌하기로 했다. 서울청 관계자는 “폭력배들이 세력을 과시하기 위해 정상회담 하듯이 서울시내에서 대규모 행사를 여는 것은 국민 불안감을 초래할 수 있다.”면서 “G20 정상회담을 앞두고 최대한 행사를 자제하도록 유도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현용기자 junghy77@seoul.co.kr
  • [천안함조사 오늘 발표] 어뢰에 한글·번호… 조잡한 합금… ‘스모킹 건’ 北 겨냥

    [천안함조사 오늘 발표] 어뢰에 한글·번호… 조잡한 합금… ‘스모킹 건’ 北 겨냥

    천안함 침몰 원인과 가해자를 밝혀줄 ‘스모킹 건(smoking gun·결정적 증거)’이 발견된 것으로 알려졌다. 자칫 영구미제로 남을 것이란 우려까지 낳았던 이번 사건에서 극적 반전이 이뤄진 셈이다. ① 어뢰 스크루 파편의 문자들 군은 지난 주말 조사결과 발표 전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으로 쌍끌이 어선을 이용해 백령도 사건해역 인근 해저를 촘촘히 수색하던 중 어뢰 스크루 파편을 발견했다. 스크루라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형태가 보존되어 있으며 번호까지 적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파편에서 숫자와 한글같은 문자 형태를 발견한 것으로 전해졌다. 아라비아 숫자 ‘1’이 적혀있고 한글 ‘번’이 명확하지 않지만 적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덕분에 조사결과 발표에 북한의 소행을 명시할지 고민하던 합조단의 분위기는 반전됐다. 합조단은 현재 문자의 서체를 확인 중이다. 단지 문자만으로 북한에서 사용하는지 여부를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북에서 사용하는 서체와 일치하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작업이다. ②스크루 재질 게다가 스크루 파편의 재질도 결정적 증거가 될 수 있다. 발견된 스크루 파편이 앞서 발견됐던 3㎜ 정도의 알루미늄 합금보다 훨씬 조각이 커 재질 분석에 용이해졌기 때문이다. 어뢰의 스크루가 천안함같은 수상함이나 잠수함에 쓰이는 것과는 다른 합금재질이란 점을 고려하면 이 파편이 어뢰의 스크루라는 것을 객관적이고 과학적으로 증명하는 셈이다. 미국과 독일 등 서방에서 사용되는 어뢰의 스크루는 플라스틱 종류를 사용하는 반면, 중국과 러시아 등에서 개발된 어뢰의 경우 대부분 특수 알루미늄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어뢰 제조국을 찾는데 결정적인 단서가 되는 것이다. 특히 제조국을 찾고 식별된 일련번호를 대조하면 어뢰를 수입한 나라를 확인할 수 있게 된다. 이번에 수거된 스크루가 알루미늄 합금인 데다 합금 방법이 정교하지 않고 조잡한 것으로 알려져 미국이나 독일 등에서 제조된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군당국은 보고 있다. 게다가 앞서 발견된 파편 중 일부가 우리 군이 7년전 확보한 북한의 훈련용 어뢰 재질과 동일한 것으로 분석됐다는 점도 주목된다. [포토] 천안함, 그날의 아픈 기억…이 어뢰가 ③화약 이와 함께 천안함 연돌(연통) 부분과 침몰 해저에서 발견된 화약 등이 증거가 되는지에 대해선 아직까지 명확하지 않다. 현재 합조단에서 확인한 화약은 RDX와 HMX, TNT 등인데 이 물질은 모두 일반적인 폭발물에서 모두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배합비율과 입자구조에 대한 분석을 통해 화약제조 방식을 찾아낼 수 있지만 현재까지 합조단이 발견한 화약흔은 극소량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각에서 스크루를 추진하기 위한 화약이 7년전 군이 확보한 북한의 훈련용 어뢰에서 나온 화약과 일치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지만 그 근거가 명확치 않다. RDX나 HMX의 경우 폭속(폭발속도)을 높인 고폭약에 사용되는 물질로 스크루 추진을 위한 이른바 연료로 사용되는 화약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TNT의 경우 대부분의 화약에 사용되지만 이 경우도 직접 연관성을 찾는데는 무리라는 것이다. 어뢰에 사용된 화약임을 입증할 순 있지만 가해자를 찾는데 결정적 증거가 될 순 없다는 것이다. 국내의 한 화약전문가는 “폭속을 높인 화약을 분석하면 화약을 제조한 시설이 어느 나라에서 만든 것인지 추정할 수 있지만 단순히 RDX나 HMX, TNT만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물질의 분자구조까지 확인해야 하는 부분으로 쉽지 않은 과정”이라고 말했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美 “이란 핵문제 아직 안 끝났다”

    이란이 17일(현지시간) 브라질과 터키의 중재로 자국의 농축 우라늄 상당량을 해외로 반출하기로 합의했으나 생산을 멈추지는 않겠다고 밝혀 논란을 낳고 있다. 미국 등 서방 측에선 일단 환영의 뜻을 나타내면서도 이란이 유엔 제재를 교묘하게 비켜가면서 사실상 농축우라늄 생산기지로 활동하려는 의도가 아닌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라민 메흐만파라스트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이란이 보유하고 있는 3.5% 농축 우라늄 1200㎏을 터키로 반출하고 그 대가로 의료용 원자로 가동에 필요한 20% 농도 농축 우라늄 120㎏을 돌려받게 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은 “핵 연료 교환 합의 후속 조치로 미국·러시아·영국 등이 이란 핵 프로그램과 관련해 새로운 대화에 착수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합의는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시우바 브라질 대통령과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총리가 테헤란을 방문해 아마디네자드 대통령과 회담한 뒤 세 나라의 외무장관들이 합의서에 서명함으로써 이뤄졌다. 이란 정부는 1주일 안에 합의내용을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공식 통보할 예정이다. IAEA 회원국들이 합의안에 동의하면 이란은 1개월 안에 농축 우라늄을 터키로 보낼 계획이다. 이란은 그러나 3.5% 농축우라늄 반출과 별개로 20% 농도의 농축 우라늄 생산활동은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이란 핵 논란은 이번 합의에도 불구하고 상당기간 이어질 전망이다. 로버트 기브스 미 백악관 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이번 합의를 긍정적인 진전이라고 평가하면서도 “이란은 자국의 핵 프로그램이 평화적 목적을 위한 것이라는 주장을 국제 사회에 확신시키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밝혔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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