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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철도파업 피해」 산업현장별 점점

    ◎컨테이너/운송비 3배 폭등 고속도 막혀 “이중고”/생산 50% 감축… 수도권 이틀분뿐/시멘트/수만t 야적… 장마철 유실 불보듯/석탄/벙커C유 공급 평소의 절반으로/유류/트럭·선박 수송… 1주이상 못버텨/철강 사상초유의 철도파업이 25일로 3일째에 접어들면서 산업활동과 수출전선에 「동맥경화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중량이 무거워 철도수송 의존도가 절대적인 철강제품류·시멘트·종이류에서 물류경화현상이 이미 가시화됐고 파업사태가 장기화되면서 그 파장이 생활용품에까지 미치고 있다.또 선적용 수출상품과 수입 원자재를 담은 컨테이너의 수송이 「일단멈춤」사태를 맞으며 해외의존도가 유난히 높은 우리 산업활동을 위기로 몰아넣을 조짐이다.때문에 지방의 대단위 공업단지를 비롯,산업현장에서는 철도파업이 더이상 계속되어서는 안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철도파업에 따른 피해현장을 긴급 진단해 본다. ▷시멘트산지◁ 전국 시멘트생산량의 45% 가량을 생산하는 충북 제천과 단양등지의 시멘트산업은 철도파업으로 직격탄을 맞고있다. 하루 1만1천여t의 시멘트를 생산해온 제천의 아시아시멘트는 철도파업이 시작된 23일 1천5백t을 줄여 9천6백t만을 생산한데 이어 24일에는 5천8백t으로,그리고 이날은 5천여t만을 생산했다.생산된 시멘트의 75%를 철도편으로 수송,판매해온 아시아시멘트는 철도파업과 함께 자체보유 차량이외에 긴급 임대해 하루 1백여대의 대형화물차로 비상수송에 나섰으나 수송량의 한계로 하루 5천t을 수송하는데도 애를 먹고 있다.또 단양군 매포읍의 한일시멘트도 하루 평균 1만8천여t을 생산해왔으나 지금은 56%(1만t)를 줄여 8천t만을 생산하는 성신양회,현대시멘트도 이같은 형편은 마찬가지이다. 이들 시멘트산업지대의 심각성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시멘트생산에 필수적 연료인 유연탄의 반입이 끊어져 앞으로 남은 2∼3일분의 유연탄마저 떨어지 질 경우 시멘트산업의 메카는 올스톱 될게 확실시 된다. 시멘트 생산과 수송의 마비는 곧바로 레미콘 생산중단으로 이어져 건설현장의 공사차질이 잇따르고 있다.하루 3백t의 레미콘을 생산했던 청주시 성산동 삼보레미콘은 철도파업이 장기화되면 시멘트부족으로 레미콘을 50t만 생산하고 있고 파업이 27일까지 계속될 경우 조업이 아예 중단될 위기를 맞고 있다. ▷탄전지대◁ 이번 철도파업으로 피해가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는 또 한곳은 강원도 탄전지대.석탄산업 합리화조치로 된 서리를 맞고 휘청대던 탄전업계가 유일한 원탄 운반수단인 철도마비로 곳곳에 쌓여있는 1백만t가량의 석탄판로마저 막혔기 때문이다. 국내 최대의 민영탄광인 정선군 사북읍 동원탄좌는 하루 평균 3천5백t의 원탄을 택백선과 중앙선을 통해 전국에 수송,판매해 왔으나 철도파업이 시작된 23일부터 화차배정이 중단되면서 채탄량을 고스란히 사북역 저탄장에 쌓아 놓고 있다.사북역 저탄장에는 최대저탄량인 8만여t이 쌓여있는 상황에서 3일사이에 수송중단으로 1만여t이 저탄시설없이 추가로 쌓여있어 장마철을 맞아 대부분이 유실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동원탄좌의 기획계장인 조동희씨(42)는 『지금이야 광부들의 노임등을 고려해 채탄작업을 강행하고 있지만 원탄수송 중단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조업중단이 불가피하다』고 애를 태웠다. 종업원 2천9백명에 하루 채탄량이 4천3백여t에 이르는 태백시 장성광업소를 비롯,태백·정선일대의 한보 어룡 경동 석공 도계광업소등 13개 탄광들도 형편은 똑같아 「무연탄이 팔려야 종업원이 산다」는 절박한 국내 탄광업계가 일대 위기를 맞고 있다. ▷수·출입항◁ 국내최대 수출·입 전진기지인 부산항이 화물수송적체로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다.철도운송이 중단되고 고속도로 이용이 폭증함에 따라 서울∼부산간 컨테이너 운반비가 평소보다 최고 3배나 올랐다. 부산항에서 가장 큰 자성대부두 야적장에는 20피트짜리와 40피트짜리 컨테이너가 평소보다 두배나 몰려 4∼5겹으로 쌓여 산을 방불케하고 있다.이 야적장에는 수송차량들이 꼬리를 물고 드나들고 있으나 밀리는 화물이 제때 처리되지 못해 컨테이너더미는 시간이 흐를수록 커지고 있다.또 수출입컨테이너의 국내 철도수송 집배지인 부산진역 야적장에는 컨테이너가 포화상태에 달해 컨테이너 작업이 아예 전면중단됐다.이에따라 운송회사에 적기수송차질을 항의하는 화주의 전화가 빗발치고 있다. 수출컨테이너는 수송에서 선적까지 3∼4일정도 여유를 두고 운송되기 때문에 당장은 큰 차질이 없지만 파업이 이번주말을 넘기면 선적지연이 속출해 업계는 클레임을 당하는 등 대외신용도를 크게 실추시킬 것으로 우려되고있다. 이들 무역업계와 화주는 수출입화물을 철도대신 차량을 이용한 육로수송으로 전환하고 있으나 수송차량이 절대부족한데다 용차료가 인상되고 교통체증마저 극심해 2중3중 어려움을 겪고있다.부산∼서울간의 경우 40피트 컨테이너 1개당 33만3천원하던 운송료가 이날에는 3배에 가까운 90만원대로 폭등,수송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철강공단◁ 국내산업활동의 뼈대와도 같은 각종 철강재등이 1차 생산재들이 쉴새없이 전국각지로 수송되어 가던 포항철강공단내 괴동역.포철등 포항철강공단내 강원산업,쌍용양회 포항공장,부산파이프등 10여개 굵직굵직한 대형 산업체들이 매일 필요로 하는 각종 원료와 생산제품 2만3천여t이 쌓여 있어야 할 화물야적장은 적막감이 감돌고 있다.이들업체가 파업으로 철도수송이 멈추자 급한대로 긴급한 화물을 모두 해상및 대형트럭에 의한 육상수송에 의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포항제철의 경우 열연코일등 생산제품 1만여t을 괴동역을 이용,인천·울산등지로 수송해왔으나 철도파업이후 해상및 트레일러로 긴급 대처하고 있다.국내 건축용 철근 생산량의 30∼40%를 차지하고 있는 강원산업의 경우 서울·경기권으로 수송하던 하루 1천여t의 철근을 대형트럭을 이용,수송하고 있어 부담이 60%이상 증가했다. 이와함께 부산파이프·한국 고로시멘트·쌍용양회 포항공장등도 제품및 원료수송을 트레일러등 대형 트럭으로 전환했으나 이들 제품이 워낙 무거워 트럭수송에는 한계가 있는 데다가 각종 화물운송이 육로에 의존되면서 교통체증으로 엄청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강원산업 포항공장 제품관리과장 김재달씨(40)는 『지금까지 비상대책으로 대형트럭을 이용하고 있으나 다음주까지 철도수송이 정상화 되지않으면 재고 물량이 증가할 뿐 아니라 트럭수송의 한계가 극에 달해 사실상 원자재와 제품수송이 전면 중단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석유화학공단◁ 광주,전남·북은 물론 진주·대구등 영남지방까지 전국적으로 휘발유와 벙커C유등을 공급하고 있는 전남 여천 호남정유의 유류 공급량은 철도파업이후 절반으로 줄어 들었다. 철도편을 통해 하루평균 2천5백여t을 공급해왔으나 수송수단마비로 이를 모두 3백여대의 탱크로리에 의존하게 됐고 수송역량 부족으로 불가불 평소의 절반수준도 못되는 1천2백t만을 간신히 공급하고 있어 조만간 전국에 유류부족상황이 가시화될 전망이다.. 또 하루 4만7천t의 각종비료를 생산,전량을 철도에 의존해 수송해온 남해화학은 사실상 비료수송이 전면 중단됐다.차량 20여대를 긴급동원하고 있지만 이는 열차수송량의 1∼2%에 불과한 실정이다. 삼남석유화학(주)도 화학섬유원료인 TPA 6백t분량 컨테이너박스 24개가 그대로 묶여 있다.긴급투입된 트레일러 30여대가 긴급 수송에 나섰으나 도로적체에 따른 육상수송비 부담으로 제대로 수송해내지 못하고 있다. 또한 쌍용시멘트 여수공장은 하루 철도 수송량 2천t를 육상으로 돌려 수송에 나서고 있으나 대형트럭 90여대밖에 확보하지 못해 인근의 광주·전남지역 시멘트대리점에마저 필요 물량을 대주지 못하고 있어 전국의 건축활동이 자칫 전면 중단되는 위기가 점쳐지고 있다.
  • 출퇴근길 대혼란/“지하철 오늘은 더 지옥” 시민 걱정

    ◎역마다 항의·차표 환불요구 불새통/귀가길 버스·택시에 몰려 도로 혼잡 전국이 「교통대란」에 몸서리친 하루였다. 예상보다 훨씬 빨리 덮쳐온 철도파업과 지하철 거북이운행의 여파로 출퇴근길 교통지옥에 시달린 시민들의 질타와 분노의 목소리가 메아리졌다. 게다가 서울지하철이 24일 새벽 첫차부터 총파업에 들어간다는 소식에 시민들은 당장 다음날부터 더 심해질 교통지옥현상을 걱정했다. 국민들은 『시민의 발을 볼모로 이같은 지경까지 이르게 해서야 되느냐』며 사태를 원만히 해결하지 못하고 파국에 이르게 한 파업근로자들과 정부를 함께 질책했다. 이날의 출퇴근길은 한마디로 불편과 짜증의 연속이었다. 역마다 오지 않는 열차를 기다리며 발을 동동 굴렀고 어쩌다 오는 전동차는 꽉 들어찬 승객들로 큰 혼잡을 빚었다. 평소 50분정도 걸리던 인천∼신도림 29㎞구간이 1시간50분 걸렸고 40분정도 소요되던 부천∼서울시청구간도 1시간30분이상 걸렸다. 이 때문에 사람들이 택시·버스정류장으로 한꺼번에 몰려 아수라장을 이뤘으며 승용차·화물차 할것없이 출퇴근수단으로 동원돼 서울외곽의 길목이 한때 마비상태를 빚었다. ▷수도권전철◁ 퇴근시간이 되자 전철과 지하철의 지연운행으로 출근길에 이미 혼쭐이 난 경인·경수지역 시민들이 아예 지상교통으로 몰려들면서 경인로·시흥대로등 이 방면의 주요도로가 전철노선과 함께 엄청난 혼잡을 빚었다. 특히 본격적인 퇴근시간이 시작된 하오7시쯤부터는 인천및 부천방면의 버스가 출발하는 영등포역앞과 지하철2호선 당산전철역앞 시외버스정류장등이 몹시 붐볐고 신도림역앞 광장에는 퇴근시간이 시작되기도 전부터 택시들이 줄지어 몰려들어 합승에 열을 올렸다. 경인전철과 2호선지하철의 환승역인 신도림역에서는 하오6시부터 승객들이 몰려 20∼30분 간격으로 불규칙하게 도착하는 열차의 진행위치를 안내방송해 열차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붐비기는 했지만 아침 출근길의 당황하던 모습에 비해서는 차분한 편. 반면에 춘천이나 의정부방면으로 퇴근하는 시민들이 종로5가등에서 출발하는 시내버스와 좌석버스로 몰리는 바람에 버스가 초만원사태를 빚었으며 아예 초저녁부터 대중교통수단이용을 포기한 채 「총알택시」에 합승해 퇴근을 서두르기도. 서울역앞 인천·부평행 직행버스승강장에는 하오7∼8시무렵에 평소보다 두배이상 많은 5백여명이 한꺼번에 몰려 장사진을 형성했다. ▷철도◁ 기관사들의 갑작스런 파업으로 열차운행이 중단되는 바람에 서울역을 비롯해 각 역은 열차를 타지 못한 시민들로 큰 혼란. 서울역측은 철도청에서 내려보낸 긴급열차운행조절표에 따라 1백22개의 정기열차편 가운데 시민들이 많이 이용하는 부산행 무궁화호등 27개 열차만 긴급편성해 운행. 서울역측은 기관사파업으로 평소 상하행승객 7만여명이 이용했으나 긴급편성한 열차를 이용하는 승객은 2만여명밖에 안될 것으로 예상. 이에따라 이날 상오 청량리역에는 철도운행중단소식을 미처 알지 못하고 나온 승객들이 환불을 요구하며 역무원들에게 거세게 항의하는 모습. 상오9시40분쯤 신도림역에서는 열차지연운행에 흥분한 승객들이 늦게 도착한 K20열차의 기관실로 몰려들자 기관사가 이를 피해 도망가는바람에 열차가 30분이상 정차했다.구로역에서는 역에 들어오려고 입구에 대기해 있던 K26열차를 승객들이 불법정차차량으로 오인,기관사 서문규씨(47)를 폭행하고 열차에 돌을 던져 유리창이 깨지기도 했다. 이날 상오8시30분쯤 수색역구내에서 출고중이던 부산행 9시15분발 무궁화열차에 시동을 거는 순간 객화차검수원 40여명이 운행중지를 요구하며 열차에 돌을 던져 열차유리창이 깨지고 기관사가 달아나는 소동이 벌어졌다.
  • 모자/새로운 멋 연출/패션 소품 정착

    ◎의상·얼굴형 맞춰 20대서 40대까지 고르게 분포/외출할땐 양산 대용… 소재도 밀짚·면사 등 다양 모자가 본격적인 패션상품으로 자리잡았다. 2∼3년 전만해도 패션쇼의 모델이나 일부 「튀는」멋쟁이들이 주로 쓰고 다니는 것으로 여겨졌던 모자가 이제 실용성과 멋을 동시에 추구하는 생활소품으로 정착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모자는 방한용등을 제외하곤 아무리 햇볕이 따갑고 날씨가 무더워도 휴양지가 아니고서는 모자를 쓰는 것을 어색하게 여기는 분위기였던 것이 사실.그러나 이제는 「서태지」문화권에 드는 10대와 패션시장의 주구매층인 20대를 비롯,30·40대 주부에 이르기까지 고른 소비층을 확보하며 생활 가까이에 다가서 있다. 최근 이같은 모자의 패션소품화 정착은 전반적인 생활의 실용화 추세에 기인한다.이와함께 「나의 멋을 최대한 발휘하는데 거리낄 것이 없다」는 사고를 가진 신세대들이 패션의 주 소비층으로 등장하고 소매없는 옷등 모자를 통해서 완벽한 연출이 되는 의상이 유행하기 때문이라고 패션전문가들은 분석한다. 모자를 사기위해 명동에 나왔다는 주부 박소영씨(35)는『지난해까지는 외출할때 양산을 들고 다녔으나 올 여름은 모자를 쓰는 것이 자연스럽고 간편할 것같다』며 나이에 어울리게 우아한 스타일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요즘 여성들에게 가장 인기를 끄는 스타일은 한여름 대표적인 스타일인 밀짚모자를 비롯,면데님 소재를 이용한 벙거지스타일과 야구모자,면사로 짠 손뜨개 니트모자등.밀짚모자형태로 짜여진 모자에는 천연소재로 만든 꽃·리본을 붙이거나 머리 둘레 부분을 시폰 스카프로 덧씌워 여성스런 분위기를 연출한 형태등이 많이 선보인다. 색상도 아이보리 베이지 백색등 기본색 외에 푸른색과 꽃날염 무늬등이 유행색상으로 부각되고 있다. 패션 액세서리로 분류되는 모자는 의상과의 조화및 신체조건,얼굴형 등과 맞추는 것이 기본이다. (주)세기모자 디자인실 천순임실장은『모자는 코디네이션의 마지막 마무리를 하는 소품으로 생각하고 맞춰써야 가장 큰 효과를 볼 수있다』고 말한다.천씨의 도움말로 올바른 모자 선택법을 알아본다. ▲옷=캐주얼한 복장이면 야구모나 모택동스타일이 좋고 챙이있고 장식이 달린 것은 여성스러운 분위기의 의상에 맞춘다.모자를 구입할 때는 자신의 옷과 비슷한 색조나 같은 소재를 고르는 것이 좋다. ▲키=키가 큰 사람은 큰챙을,작은 사람은 작은 챙을 선택하는 것이 무리가 없다. ▲얼굴=길고 야윈 얼굴인 경우 모자의 산이 낮고 챙 크기가 적당한것,둥근 얼굴은 풍성한 산에 적당한 챙으로 얼굴을 가려주면 좋다.또 네모난 스타일은 산이 풍성하고 챙이 어느정도 있는 모자가 얼굴의 각을 커버해주며 달걀형은 챙의 폭이 중간정도이고 산이 너무 높지 않은 스타일을 선택하도록 한다.
  • 미연방 담배세 45센트로 인상/하원세입위 가결

    【워싱턴 로이터 연합】 미하원 세입위원회는 16일 연방담배세를 오는 99년까지 45센트로 인상하는 안을 통과시켰다. 보건법안을 작성중인 민주당 의원들간의 정치적 타협에 따라 통과된 이 담배세인상은 샘 기본스 하원세입위원장 서리가 선호해온 60센트 인상안보다 하향 조정된 것이다. 보건법안을 다루고 있는 다른 몇몇 하원 위원회들은 60센트 이상의 담배세 인상을 요구해왔다. 하원세입위도 현재 보건법안을 다루고 있고 동위원회의 몇몇 위원들이 45세트이상의 인상을 바라고 있어 이 문제가 다시 거론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 미연방담배세는 24센트이다.
  • 무구의 특징(백제를 다시본다:17)

    ◎성 방어용 철제가시 마름쇠 이채/제조술 훌륭… 활에 발사장치 덧달아/보병 판갑옷은 철판으로 만든 통형/용·봉황문양 장식한 고리칼은 훌륭한 공예품 철기문화는 동서나 고금을 막론하고 국가의 융성을 좌우한다.정복국가에서 무기는 철기문화의 꽃이기도 하다.사실상 정복국가로 성장한 백제의 무기에 대한 기록은 거의 없다.그래서 실상을 고분 따위에서 출토된 매장유물을 통해 알아볼 수 밖에 없지만,분명히 훌륭한 무기를 가지고 있었다. 사비성 옛터인 충남 부여읍 부소산성에서 얼핏 불가사리처럼 보이는 철기가 출토되었다.얼마전의 일인데 그 철기는 마름쇠(철질여)라는 일종의 방어용무기였다. 4개의 가시로 이루어진 마름쇠는 어느 방향으로 놓아도 첨예한 가시 하나가 위쪽을 향해 세워지도록 고안되었다.그 중에 가장 큰 가시 하나에 구멍이 뚫려 여러개의 마름쇠를 끈으로 연결할 수도 있다. ○삼국사기에 기록 기막힌 방어용 무기다.마름쇠를 끈으로 연결,성밖에 둘러놓으면 가시덩굴 역할을 하는 동시에 성벽 위에서 던지면 적을 살상하거나쫓아버리는 무기 구실을 한다.「삼국사기」기록에도 나오는 이 무기는 부소산성 출토품이 유일한 실물이다.그 당시 마름쇠를 성밖에 둘러놓으면 요즘 현대식 방어용무기 클레모어지뢰를 매설한 만큼이나 수비를 하는데 마음을 놓았을 것이다. 활과 화살,쇠뇌(노)는 공격용 무기이자 원거리 무기이기도 하다.그 대표적 유물로 전남 나주 신촌리 9호고분 출토품이 있다.이 활은 활채의 정탈목을 지나고 있는 활고자 부분이 휘어진 모양으로 보아 만궁이었을 것으로 여겨진다.화살촉은 쇠로 만든 까닭에 유물이 많이 전해지는데,크게 넓적촉과 뾰족촉으로 나누어진다.그 형태도 다양해서 넓적촉의 경우 도끼날 모양의 부인형족,삼각 및 오각형촉,좌우로 날개가 뻗친 양익족이 있다.그리고 송곳 모양의 원추형촉,촉몸이 좌우로 갈라진 우형족은 뾰족촉에 속한다. 백제인들은 활에 발사장치를 덧달아 활이 더 멀리 나가고,관통력이 강한 화살을 쏠 수 있는 쇠뇌를 사용했다.서울 풍납토성에서 출토된 아는 바로 이 같은 발사장치다. 그리고 베는데 사용한 검과 칼,찌르는기능의 쇠창과 끌모양무기(착형무기),적을 걸어서 당기는 갈고리와 쇠낫,내려치는 쇠도끼가 있다.서로가 접근한 가운데 사용되는 이들 무기류는 근거리 무기,외날칼인 도중에는 칼몸이 길고 칼자루 뒤끝인 병두가 둥근고리로 된 고리칼(환두대도)은 훌륭한 공예품이기도 하다.왜냐하면 민고리칼(소환두대도)도 있지만 고리에 용,봉황,잎새문양을 넣은 고리칼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칼자루 뒤끝의 둥근 고리 안에 장식무늬가 있는 환두대도 중 나주 신촌리 9호분에서 나온 삼엽문환두대도는 특히 유명하다.철지에 금판을 씌운 타원형 병두 고리의 중심 장식이 금동삼엽형으로 되어 있다.손잡이에는 고기비늘무늬를 돋친 은판으로 감았다.또 칼자루 끝 고리에 타출문(정출문)의 돋친 은판을 씌우고 고리 안에는 봉황의 머리를 장식한 고리칼(단봉환두대도)) 역시 이 고분에서 발견되었다. 이밖에 무령왕릉출토품이 있다.타원형 고리 표면에다 용을 새기고 고리안에서 여의주를 입에 문 용머리를 장식한 고리칼(김동장환두대도)이다.고리칼은 아무데서나 출토되는 것이아니다.왕릉이나 규모가 큰 수장급 무덤에서만 나온다.그러고 보면 고리칼은 무기의 기능도 물론 있지만,요새 개념으로 말하면 지휘도라고도 할 수 있다. 고대사회가 전쟁을 할때 필수적으로 등장하는 무기의 하나가 쇠창(철모)이다.창몸이 모난 송곳 모양인 방추형,쌍날칼 모양의 검신형,자루를 끼우는 착병부에 3가닥의 창몸이 달린 삼지창이 있다.착형무기는 자루를 끼우는 부분은 다른 창들과 같지만 날 부분이 뾰족하지 않고 끌날처럼 넓적하게 생겼다. ○오늘날의 지휘도 기병전에서 빼놓을 수 없는 무기는 쇠갈고리(철구)다.인마를 베고 찌르는 큰칼과 장창을 휘두르면서 적을 걸어당기는 중요한 무기가 쇠갈고리인 것이다.부여 부소산성에서 나온 쇠갈고리를 보면 몸체의 뾰족한 끝쪽은 휘어져 갈고리를 이루고,다른쪽은 자루를 끼울 수 있게 만들었다.몸체의 한쪽이 두가닥으로 갈라진 또다른 쇠갈고리도 부소산성에서 출토되었다.쇠낫도 걸어당기는 무기로 쓰였다.백제의 쇠낫은 날부분이 안쪽으로 약간 휘고 기단부분이 한쪽으로 말려있다. 오늘날의 쇠도끼는 장작을 패고 도구를 만드는데 쓰이는 일종의 공구다.하지만 삼국시대의 도끼는 육박전을 할때 쓰인 중요한 무기다. 이러한 사실은 고구려 고분벽화(안악 3호분·평양역전 2호분·약수리벽화고분)에 그려져 있는,도끼를 어깨에 멘 무사 대열도에서 엿볼 수 있다.또 백제의 병사가 신라의 장군 눌최를 도끼로 쳐죽였다는 「삼국사기」의 기록에서도 도끼의 역할이 나타난다.고분에서 드러난 백제의 쇠도끼에는 단조품과 주조품이 있다.단조한 쇠도끼에는 어깨를 갖춘 것과 날끝이 약간 넓고 어깨가 없는 것으로 분류된다. ○투구·방패 발견안돼 우리가 사극영화를 보노라면 갑옷으로 치장한 늠름한 무사를 대하는 경우가 있다.그러나 갑옷은 옷이 아니고,방어용 무기류에 속한다는 사실을 알아야한다.갑옷에는 판갑옷(단갑)과 비늘갑옷(찰갑)이 있으나,이들 두가지 모두 조각만 나와 온전한 백제의 갑옷을 만나지 못하고 있다.보병이 주로 입었던 판갑옷은 철판을 오려 못을 박아 두들겨 붙인 형태(철제삼각판정체단갑)다.목가리개(경갑)와 어깨가리개(견갑)를갖추었지만,여닫이(개폐)장치가 없는 통형이라는 사실은 알 수 있었다. ○동물뼈로도 제조 갑옷이라고 하면 흔히 쇠를 연상하게 마련이다.그런데 백제인들은 쇠가 아닌 동물의 뼈를 갈아서도 갑옷을 만들었다.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공원조성을 위해 발굴한 몽촌토성 출토품 뼈비늘갑옷(골제찰갑)이 그것이다.이렇듯 백제인들이 입었던 갑옷의 윤곽은 밝혀지고 있으나,투구와 방패가 발견되지 않았다.본래 갑옷(갑)과 투구(주)는 일습을 이루어야 하기 때문에 두가지를 붙여 갑주라는 말을 쓰고 있다. 「삼국사기」는 갑옷에 대한 기록을 남기고 있다.김갑을 비롯해 금휴개,명광개라는 갑옷 이름이 기록되었다.이들 갑옷은 신라 고분인 김관총에서 나온 금동갑옷과 같은 것이 아니었나 한다. 백제의 무기가 풍기는 분위기는 비록 무기라 할지라도 공포적이 아니라는 사실이다.삼국의 무기가 거의 그렇듯 당시 중국의 무기에 비해 부드러운 느낌을 안겨준다.뛰어난 제철기술을 보유했음에도 공포의 모서리를 순화시킨 까닭은 무엇일까.아마도 부여 능산리 출토 김동용봉봉래산향로에 담긴 종교적 심성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제철술/철기문화 한성시대에 이미 발달/철 불에 달군뒤 두들겨 무기 제작 고대 역사무대에서 무기는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제철기술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제철은 철광석에서 철을 뽑아 정련,사용 목적에 적절한 조직형태를 만들어내는 기술이다.여기에는 담금질,뜨임 등의 열처리 공정과 함께 필요한 모양을 갖추는 성형술이 뒤따른다. 무기의 경우는 특히 강도에 따라 우월성이 판가름나기 때문에 철재의 강성이 요구되었다.사비시대 백제의 철기제조기술은 이미 상당한 수준에 이르러 철제무기류 또한 우수한 것으로 가려졌다.사비시대 백제강역에 속했던 오늘날 충남 부여와 논산지역 고분에서 출토된 무기류는 이를 잘 입증했다.포항제철기술연구소와 고려대생산기술연구소가 실시한 이 지역 출토 손칼(도자)에 대한 화학성분 분석에서 철재가 고탄소강으로 밝혀진 것이다. 고탄소강은 저온(섭씨8백∼1천1백도)에서 뽑은 괴련철을 숯불로 장시간 열을 가한 뒤 계속두드려 탄소가 침투되게 한 철재.이때에 내부에 낀 불순성분이 빠지고 쇠가 매끄러워지면서 강성을 얻을 수 있다.그리고 저탄소강의 강도를 높이기 위해 불에 달구어 두들김작업이 끝날 때마다 물속에 담가 급랭시키는 방법도 썼다.지금도 대장간에서 이런 식으로 칼과 낫 따위를 만드는 것을 더러 보게된다. 백제는 일찍부터 철기문화를 발전시켰다.「일본서기」를 보면 백제의 근초고왕이 일본사신에게 철제 40장을 주었다는 기록이 나온다.현재 일본 이소노카미신궁(석상신궁)이 신물로 여기는 가운데 소장하고 있는 칠지도 역시 백제가 일본에 준 단철의 칼이라 할 수 있다.「태화4년(AD369년)에 백련강철로 만들어 백제 왕세자 기생 성음이 위왕지에 주면서 후세에 전하라」는 명문이 들어있다.이 시기 역시 근초고왕 때 일이다. 그리고 한성시대(?∼?년)백제유적인 서울 성동구 구의동 고분출토 쇠도끼와 철촉을 분석한 결과 실제 고탄소강으로 밝혀졌다.도끼날의 경우 높은 온도에서 여러번 두들겨 공랭한 흔적을 보였다.이렇듯 백제는 한성시대에 이미 철기문화를 꽃피웠다.
  • 바그다드·암만/모술의 유적들(아랍서 지중해까지:3)

    ◎3천년전 앗시라아왕국 성터 곳곳에/날개 달린 황소상엔 위엄 서려… 성마티 수도원은 “회교이방지대” 이탈리아 사람들은 언제나 쾌활하고 붙임성이 좋았다.이십여명의 이탈리아인들이 모술 유적 관광길에 줄곧 우리와 동행했는데 그들은 계속해서 즐겁게 떠들고 노래를 불렀다.그바람에 우리도 잠시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암만에서 바그다드로 오는 길에 우리와 동행했던 두명의 독일인에 비하면 이들은 얼마나 쾌활하고 사교적인가? 고고학자라는 독일인들은 시종 음침한 표정으로 자기네 끼리만 쑥덕거리고 이방인과는 좀처럼 대화를 트려고 하지 않았다.버스 한대에 이탈리아인들과 동승해서 상오 열시쯤 호텔을 빠져나갔다.뜨거운 햇빛이 모스크의 하얗고 둥근 지붕 위에서 이글거리고 있었다.비교적 널찍한 고도의 거리에는 차량도 인적도 보이지 않았다.흙으로 견고하게 지은 낮은 건물 처마 밑을 자세히 보면 남루한 아라비아 의상을 걸친 두세사람이 그늘에 숨어앉아 바깥 거리를 조용히 바라보고 있다.시내를 벗어나 동남쪽으로 40㎞쯤 달려갔을때 황량한 들 가운데 흙벽돌로 제법 높이 세운 벽이 나타났다.주위에 철조망을 둘러놓고 엉성한 출입문도 만들어 놓았다.관리인인 노인이 나와서 커다란 자물통을 끄르고 우리를 울타리 안으로 안내했다.이탈리아인들이 대동한 자국인 가이드가 말했다. 『이곳이 두번째 수도였던 님루드요.니네베에 비하면 제법 볼게 많이 있어요』 ○성벽내부 잘 보존 수도라는 말이 아주 야릇하게 들렸다.흙벽돌 몇장을 쌓아놓은 폐허를 놓고 수도라니.그러나 사르곤왕의 북서궁과 남서궁이 존재했을 때 이곳 성벽이 연장 8㎞에 달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이라크 국내에는 만개의 유적지가 있는 걸로 알려져 있다.모술은 이라크에서도 대표적인 역사유적도시이며 특히 아시리아제국의 네개의 수도들이 티그리스 강을 끼고 도시 근교에 자리잡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아수르,님루드,니네베,코르사바드등인데 이가운데서도 님루드가 비교적 부조품과 장식들을 충실히 유지하고 있었다.성벽 내부에는 뜻밖에 많은 유적들이 있었다.그것들은 선명하고 완전했으며 이제야 우리는 기원전 천년에 실재했던 왕궁의 위엄을 실감할 수 있었다.왕의 연회장으로 들어서는 입구에는 터번을 두른 인자한 표정의 석상 둘이 나란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안뜰 한쪽 벽에 부조된 날개 달린 거대한 황소상은 특히 강한 인상을 주었다.거대한 날개는 섬세하고 아름다웠으며 다리의 근육에는 힘이 넘쳤다.짧고 날카로운 쐐기 모양의 설형문자가 촘촘하게 기록된 석판들이 여러개 있었다.이 문자가 바로 뒷날 페니키아 문자를 거쳐 지금 쓰이는 알파벳의 시조가 된 문자이다. 성벽 바깥 들에는 비교적 옷을 깨끗하게 입은 아이들이 즐겁게 뛰어놀고 있었다.주변에 인가가 없으므로 이 아이들은 다른 지역에서 소풍을 왔을 것이다.자세히 살펴보니 저쪽 언덕 아래 부모들이 차를 세워놓고 기다리고 있었다.수메르인의 후손들이 삼천년 고도의 유적에 와서 천진난만하게 뛰어놀고 있는 것이다.함께 사진을 찍자고 했더니 빨간 스웨터를 입은 예쁜 소녀는 얼굴을 붉히며 달아난다.간신히 사진 한장을 찍었는데 소녀는 곧 검은 차드르를 둘러쓴 엄마 쪽으로 달려가버렸다.저아이도 멀지않아 차드르로 해맑은 얼굴을 감추고 말겠지.이런 생각을 하자,왠지 마음이 무거워졌다. 「니네베는 거대한 도시이며 이곳을 한번 돌아보는데 사흘이 걸린다」구약의 「요나서」에는 이런 글귀가 나온다.(요즘 쓰는 구약은 니느웨로 표기하고 있다).「요나서」의 요점은 극도로 타락한 니네베를 징벌하기 위해 여호와가 요나를 파견하는 것으로 되어있다.이 기록에 따르면 니네베는 당시 부와 번영의 상징이었다.그러나 우리가 그곳에 갔을 때 니네베는 5m 높이의 성벽 일부와 세개의 성문으로 겨우 지난날의 흔적을 지탱하고 있었다.세개의 성문도 최근 몇년사이에 이라크 문화부의 노력으로 복원되었다고 한다.이곳에도 님루드에서 봤던 것과 아주 흡사한 날개 달린 황소상이 입구를 장식하고 있었다.이것은 그동안 흙속에 묻혀 있던 것으로 1941년 큰 비가 왔을 때 우연히 발견된 것이라고 한다. ○부와 번영의 상징 니네베 성 근처의 잔디가 돋아난 야트막한 언덕에 아주 작은 모스크가 하나 있었다.낮은 담장으로 전면만 둘러친 이 작은 건물은 이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으로 눈길을 끌만한 별다른 특징은 없었다.누군가가 저것이 요나의 무덤이라고 말했다.그제서야 사람들의 눈길이 그곳으로 쏠렸다.「선지자 요나의 모스크」로 이름지어진 이 무덤은 니네베가 발굴되던 1847년 비슷한 시기에 발견되었다.그 무덤을 바라보면서 요나의 전설과 방금 둘러본 니네베 성벽의 선명한 황소상이 함께 연상되었다.니네베를 구하려고 요나는 이곳에 왔으니까 그 무덤이 여기 있는 것은 아주 자연스럽다.그러나 니네베는 실재했고 요나의 실재는 육안으로 증명된 것이 없다.저 무덤마저 요나의 전설을 증거해주지는 않는다.이것은 예수의 부활만큼이나 내게는 난해하고 복잡한 문제였다. 모술시 교외의 성 마티 수도원으로 가는 길에 버스속에서는 작은 해프닝이 벌어졌다.이탈리아인들이 노래를 불러대자,우리 쪽 한사람이 갑자기 경쟁심이 생겼는지 사회자격인 이탈리아인 가이드에게 우리 일행중에 칸초네 가수가 있노라고 허풍을 친 것이다.마치 기다렸다는듯 젊은 이탈리아인들이 박수를 치고 괴성을 질러댔다.그바람에 갑자기 칸초네 가수가 된 나는 달리는 버스에 앉아 난생 처음 노래를 부르지 않을 수 없었다.사실은 이탈리아인들 앞에서 이탈리아말로 노래를 부른다는게 약간 어깨가 으쓱해지는 일이기도 했다.「아름다운 너의 얼굴」­이 노래는 한때 결혼식장에서도 두어차례 부른 경험이 있었다.그리고 이탈리아인들 가운데 제법 아리따운 처녀와 젊은 부인들도 섞여 있었다.이방인 관객들이 환호성을 올렸고 이것을 계기로 아시리아 고토를 여행하다 우연히 합류하게 된 한국인과 이탈리아인들 사이에 이해와 우정의 폭이 한층 넓어졌다. 1271년 실크로드를 따라 모술을 방문했던 마르코 폴로는 「동방견문록」에서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모술은 거대한 왕국이며 여러 인종들이 살고있다.마호메트를 신앙하는 아랍인들,그밖에 그리스도를 따르는 다른 종족들이 있다.이들 그리스도 신자들은 로마교회법을 따르지 않는 다른 종파들인데 네스토리우스파,야곱파,아르메니아파가 그것이다.­이 기록을 보더라도 모술 지방에는 회교 뿐 아니라 비록 소수나마 여러 종파의 기독교인들이 거주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이라크 국내 종교적 분위기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믿는 것과 달리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었다.유태인을 증오하는 사담 후세인도 아시리아의 기독교인에 대해서는 호감을 갖고 있으며 그의 심복으로 걸프전 당시 협상창구역을 맡았던 타리크 아지즈도 아시리아계 기독교인이다. ○차드르 착용 안해 깎아지른듯한 높은 산 중턱에 요새처럼 견고하게 지어진 회색건물이 바라다보였다.이것이 서기 4세기에 세워진 마크로우브산의 성 마티 수도원이다.버스가 가까스로 산중턱 수도원 입구까지 기어올라갔다.사람들이 들어가는 길목의 그늘에 앉아 쉬고 있고 노점을 차리고 애세서리나 담배를 파는 여인들도 있었다.이쪽 분위기는 조금 달랐다.차드르를 착용한 여인이 하나도 없다는 점이었다.남자들의 의상도 제멋대로다.모두가 기독교도들인 탓일 것이다.마티 수도원은 야곱파의 본산이며 인근에 메르기란 기독교 마을도 있었다.그 마을을 잠시 방문했을 때 이층집 베란다에서 바깥거리를 바라보는 여인의 멋진 옷차림과 아름다운 자태,그리고 이방인의 시선을 조금도 꺼리지 않는 개방적인 태도가 무척 인상적이었다.수도원 내부에는 예배실과 수많은 방들,그리고 큰 동굴같은 우물도 있었다.많은 방에는 신자들이 가족과 함께 와서 묵고 있었는데 그들은 병자의 쾌유나 소망성취를 기원하러 찾아온 손님들이었다.그 손님들보다 훨씬 많은 동서양의 관광객들이 수도원 마당으로 몰려들어오고 있었다.이곳이 인기가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마크로우브산 중턱으로 찾아오는 길이 험하다는 점을 제외하면 수도원 내부에 특별한 볼거리는 없었다.사람들은 이곳이 알라신의 바다에 홀로 떠있는 그리스도의 섬이란 점 때문에 더욱 흥미를 갖는 것이 아닐까? 만약 방문자가 기독교인이라면 특별한 감회를 느끼는건 당연할 것이다.
  • “개만도 못한…”/김문수(일요일 아침에)

    임어당의 수필 「중국의 개 이야기」에 「우룡」이라는 개가 소개되어 있다. 중국의 삼국시대 제씨가 기르던 그 개는 늘 주인을 따라다녔다.그러던 어느날 제씨가 술에 곯아떨어져 교외의 들판에서 잠이 들고 말았다.그런데 때마침 그 지방의 태수가 사냥을 나와 들판에 불을 질렀다.우룡은 위험을 느껴 주인의 옷을 물어 당기는 등 온갖 방법을 다 썼으나 허사였다.우룡은 할수없이 그곳에서 25m쯤 떨어진 웅덩이로 가 온 몸에 물을 묻혀 주인 주변에 뒹굴어 잔디밭을 적셨다.그런 일을 수없이 반복했으므로 들불은 제씨가 누워있는 곳까지 번지지를 않았다. 이튿날,제씨가 눈을 떴을 때 이미 우룡은 지쳐서 죽어 있었고 사방이 불에 타 있었으나 자기가 누워 있는 주변만은 물에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그는 우룡이 자기를 살려 놓고 죽은 것을 알고 목놓아 울었으며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태수에게 탄원하여 사람처럼 관에 넣어 정성껏 장례를 치렀다.그 무덤이 지금도 제남이라는 곳에 남아 있다고 한다.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와 똑같은 내용의 전설이 우리나라에도 곳곳에 널려있고 무덤 앞에는 의구총이라 새겨진 비석까지 세워져 있다.경북 선산군 도개면의 의구총을 비롯하여 전북 임실군 오수면,전남 낙안읍성,충남 부여군 홍산면에도 있다.이북에도 평남 용강군,평양 선교리에 이런 의구총이 있다고 한다. 이렇듯 똑같은 전설을 지닌 의구총이나 의구비 또는 의구탑이 곳곳에 널려 있으니 그 전설의 사실성 여부가 의심스럽지 않을 수 없다. 만약 우리나라의 의구총들이 중국의 「우룡」이라는 충견의 얘기를 모방한 것이라면 왜 모방했으며 또 왜 전국 곳곳에 그런 무덤들을 만들게 했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충견의 이야기를 매개로 백성들에게 충효사상을 진작시키려는 목적의 가짜 의구총,가짜 의구비일 수도 있겠고 또는 그곳에서 개만도 못한 사람이 어떤 사건을 일으켰기 때문에 그 고장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불어넣기 위해 국가시책으로 세우게 했을 수도 있다는 추리가 가능하다.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 여러곳의 의구비,의구총,의구탑이 지닌 전설이 그토록 똑같을 수가 있단 말인가.만약 그렇다고 한대도상속을 노리고 부모를 살해한 박한상의 이 천인공노할 패륜과 같은 사건은 아니었을 것이다.아마도 박한상은 역사 이래 가장 극악무도한 패륜일 것이다. 그가 범죄를 저지른 때가 어버이날이 들어 있는 가정의 달 5월임을 생각하면 더욱 더 몸서리가 쳐진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끔찍한 사건이 발생한 원인에 대해 황금만능주의,교육부조리,과보호,도피성 외국유학 등을 들어 입을 모으고 있다.필자도 물론 동감이다.그러나 나는 그런 원인에다 또 한가지 중요한 원인을 덧붙이고 싶다.그것은 다름 아닌 우리 사회가 조장한 잔인성이 바로 그것이다. 어릴때부터 전자오락실에서 몸에 배게 만드는 잔인성,영화관에서의 그 잔인한 살인장면… 그렇게 자란 아이들의 심성이 어떻겠는가. 기성세대들은 가난했을망정 자기네가 자라던 옛날이 좋았다고 말한다.그러나 그 시절이 반드시 모든 사람들에게 있어 다 좋았던 시대는 아니다.또 인류는 과거의 역사나 문화에만 집착할 수가 없는 것이다.나라의 장래를 위해서 고도의 기술진보도 필요하며 산업화도 필요한 것이다.다만 그 기술과 산업의 그늘 때문에 미풍양속이나 전통문화가 고사하는 것이 탈인 것이다.도덕적 향상이 뒤따르지 않는 산업·기술의 발달은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공자의 말씀대로 「하늘이 친 그물은 하도 커서 엉성한 것 같지만(천망회회)그 그물을 빠져나갈 수 있는 것은 없기(소이불루)」때문에 극악무도한 패륜이 밝혀졌지만 앞으로 또 이런 패륜이 저질러지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 물론 대부분의 신세대들의 삶은 밝고 믿음직스러워 기성세대들로 하여금 문자 그대로 「후생가외」를 느끼게 하지만 이렇듯 존경스러운 마음이 아닌 「후생가공」을 느끼게 한다면 나라의 장래가 어떻게 될 것인가. 후생들에게 공포를 느끼지 않으려면 그들의 덕육이 최우선이다.
  • 러 외채 상환 재조정/서방채권국 파리클럽­러 합의

    【파리 로이터 연합】 서방 채권국들의 모임인 파리클럽은 러시아 외채의 상환일정을 재조정해 올해에만도 70억달러가 넘는 러시아의 외채 상환부담을 덜어주기로 4일 합의했다고 프랑스 재무부가 발표했다. 파리클럽 의장국인 프랑스 재무부는 세르게이 두비닌 러시아 재무장관 서리가 이끄는 러시아 대표단과 서방측 관계자들이 지난 2일간의 협의 끝에 이같은 합의에 도달했다고 밝혔다.
  • 노년기의 아름다움/송혜진(굄돌)

    글쎄…,노년이 죽음으로 곧장 이어지지만 않는다면 늙는 것처럼 아름다운 일이 또 어디 있을까라는 생각을 종종 해본다.급히 서두를 일 없는 느긋한 생활에 대한 열망이 커질수록 멋있는 노년생활에 대한 기대가 크다.별다른 병없이 이따금 감기치레나 한번씩 할 정도의 건강,그리고 궁핍하지 않을만큼의 경제적 여유가 전제되어야 겠지만,내가 기대하는 노년의 모습이란 이렇다. 우리 음악중에서 가장 한배가 느린 「영산회상」중의 「상령산」이나 가곡 「이수대엽」을 매일아침 일상에 쫓길 일 없이 그 유연한 가락에 빠져보기도 하고 절승지의 아름다운 유적들을 찾아가 며칠이고 머물면서 자연과 문화와 함께 호흡해 온 우리음악의 진면목을 누릴 수 있는 날들을 기대한다. 흔히 우리음악이 지닌 여러가지 아름다움 중에 하나로 「풍상의 미」가 꼽힌다.바람과 서리로 휘늘어진 늙은 소나무,천년 넘은 세월동안 비바람을 맞아 자연의 일부처럼 자리잡고 서 있는 경주 남산의 석불들,늦은 가을날 서리를 맞고서야 비로소 향기가 깊어지는 국화꽃처럼 우리음악은음악인들의 삶의 연륜을 통해 빛을 발한다.그리고 그 연륜은 대를 물려 켜켜이 쌓여 선율이 되고 여백이 되었다. 그러나 우리음악의 아름다움은 그저 관심없이 바라볼 때에는 무실할 정도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뿐만 아니라 이 특성은 요즘 사람들이 「웬 음악이 이렇게 느리고 재미없느냐」면서 외면하는 대표적인 요인이기도 하다.그러므로 이것을 진정한 아름다움으로 느끼며,하나로 동화되기까지는 감상자 또한 연륜을 갖추어야 할거라는 생각이 들고,그때마다 아직도 「새파란」내가 국악의 아름다움 운운하는 것이 마음 캥긴다. 바로 이런 점들이 내게 노년을 아름다운 세월로 기대하게 해준다.어서 늙어 우리음악이 지닌 풍상의 미에 동화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지는 것이다.그리고 뭣도 모른채 「머리」에 담긴 섣부른 지식만을 가지고 우리음악에 대해 써낸 젊은 날의 글들을 한편한편 다시 펼치면서,거기에 깃든 속기를 모두 씻어내는 일을 꼭하고 싶다.
  • 녹청자/고려청자의 시원 아니다

    ◎연세대 「고려·조선시대 사기그릇 특별전」서 밝혀져/귀족용 청자·서민용 녹청자 함께 제작/굽없는 납작밑바닥 형태,조선초까지 사용 고려시대 녹청자는 중국 청자의 영향을 받아 신라 질그릇과 청자 중간에 나타난 청자의 시원인가,또 당시에 이 그릇을 사용한 계층은 누구인가.이러한 질문에 대한 해답이 연세대박물관 주최 「고려·조선시대 사기그릇 특별전」(5월9∼6월17일)을 통해 명확히 제시되었다. 녹청자는 우선 서민들의 수요욕구를 채워주기 위해 청자와 함께 제작된 막청자라는 결론이 나왔다.이같은 사실은 연세대박물관이 특별전을 위해 녹청자를 수집하는 가운데 전국의 가마터를 조사한 결과 밝혀졌다.그러니까 고려왕실을 비롯한 귀족사회는 양질의 청자를 사용한 반면 일반계층은 조잡한 막청자에 해당하는 녹청자를 사용한 것으로 보고있다. 그리고 녹청자는 청자의 시원이 아니라는 것이다.녹청자를 같은 가마에서 청자와 함께 구어냈던 옛가마터는 전국에 널리 분포된 것으로 조사되었다.10세기말 고려초기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한 사기가마터는 경기도 용인군 서리,전남 해남 진산리와 함평 양재리,인천시 경서동 등에 남아있다.그리고 고려중기(1100∼1250년)의 가마터는 전남 강진과 전북 부안지역에 널리 흩어졌다.특히 11세기 후반부터 해안 가마들은 녹청자 대량생산시대를 맞아 전국적으로 보편화 됐다는 것이다. 그같은 근거는 지난 84년 전남 완도 어두리 앞바다에서 인양된 3만6백72점에 이르는 고려 녹청자에서 찾고있다.왜냐하면 방대한 분량의 녹청자가 한꺼번에 해저에서 인양되었다는 것은 대량제작에 따른 대량수송과정에 일어난 선박침몰사고로 볼 수 있기때문이다.어두리 해저유물 녹청자는 전국 청자가마터 출토품이나 각 지역에서 수집한 녹청자처럼 그릇생김새가 다양한 것으로 가려졌다. 녹청자는 대접류와 보시기,접시,잔과 잔받침,몸통이 큰 유병과 광구병,고려의 전형적 매병,합,항아리 등이 전해지고 있다.녹청자 항아리의 경우는 고려시대 질그릇 항아리 모양을 닮았는데,인천 경서동과 전남 해남 진산리 가마에서 많이 발견되었다.이같은 전통으로 미루어 녹청자는 토착적도자문화로 재해석되는 것이 마땅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되고 있다. 녹청자 그릇생김새의 특징중 하나는 굽이 없는 납작밑바닥(평저)이 많다는 점이다.납작밑바닥은 병과 항아리는 물론 접시에서도 발견된다.이는 선박 등을 이용해 그릇을 운송할때 넘어져 깨지는 것을 미리 막기위해 고안된 기형으로 풀이됐다.이번 특별전에는 납작밑바닥 녹청자가 많이 출품되어 일본학계가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일본학계는 지금까지 일본에 산재된 납작밑바닥 녹청자는 중국이나 일본에서 만들어진 반자기성 그릇으로 해석해왔다.그러나 이번 특별전을 통해 납작밑바닥 녹청자가 한국에서 많이 수집됨으로써 인식을 달리하게 되었다.녹청자가 일본으로 흘러들어갔을 소지는 얼마든지 있다.이번 전시회를 위한 가마터 조사결과 녹청자의 전통이 고려에서 끝난 것이 아니라 조선시대 초기 분청사기가마에서도 발견되기 때문이다.이처럼 녹청자가 15∼16세기쯤 조선시대에 분청사기와 함께 구어졌다는 사실도 처음 밝혀진 것이다. 녹청자란 모래 따위의 잡물이 섞인 태토 위에 회유계통의 유약을 씌워 구어낸 조질의 청자.그래서 표면이 거칠고 녹갈색이나 고동색의 유색을 띠고 있다.지금까지는 중국의 청자 영향을 받아 9세기말에서 10세기초에 만들어진 시원적 청자 성격의 그릇으로 보아왔다.따라서 질그릇에서 청자로 가는 중간단계쯤의 그릇으로 해석되기도 했다.
  • “실용성과 품격 함께”/「준보석류 액세서리」 인기

    ◎18K 금·큐빅·양식진주·자연석 주로 활용/개성있는 멋 즐기는 신세대여성들에 각광 생활을 합리적이고 경제적으로 이끌어 가는 신세대 여성들의 의식구조에따라 보석에대한 인식도 자기과시나 재산가치에서 단순히 멋내기를 위한 수단으로 점차 그 개념이 바뀌어 가는 추세이다.이에따라 진짜 다이아몬드나 루비같은 값비싼 보석류 보다는 14K와 18K의 금에 큐빅과 양식진주를 비롯,자연석을 이용해 만든 장신구가 다양한 디자인으로 대중화 되고 있다. 이런 종류의 제품은 특히 진짜 보석과 달리 가격이 저렴한 동시에 대량 생산되는 값싼 이미테이션 제품과는 또다른 분위기를 낼 수 있어 날로 그 수요가 느는 추세이다. 올 여름에는 특히 80년대 중반이후 퇴조했던 백금제품이 금제품을 앞지르는 분위기 속에서 전체적으로 백금 하나만을 사용하기 보다는 금과 은에 백금의 콤비로 색상의 변화를 주거나 은제품에 부분적으로 금부 혹은 금박을 사용,색상의 대비효과를 노리는 동시에 가격을 내리게 한 장식품들이 눈에띄게 늘어나 20·30대 멋쟁이 젊은 여성들의 눈길을 모으게 한다. 이달 초 서울 서대문구 대신동에 금속공예 작품의 전시와 교육을 겸한 전문점 「주얼리 하우스」를 개관한 공예전문가 김경아씨(37)는 『현대는 실용성과 함께 개성을 중시,금 몇돈 등보석의 가격을 따지기 보다는 디자인,즉 옷차림과의 어울림을 먼저 생각하고 혹시 잃어버려도 부담을 갖지 않기위해 준보석류를 택하는 사람들이 많은것 같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금속공예 작가들이그동안 순수 예술작품으로만 해오던데서 벗어나 작은 공방등을 마련하고 자신들의 작품을 상업화 하는 추세가 늘면서 젊은 여성들의 취향에 맞는 각종 액세서리들을 본격 생산하게 된후에 그런 분위기가 확산됐다고 볼 수 있다. 『솜씨가 있는 일부 젊은 여성들중에서는 아예 한두달쯤 금속공예 강좌를 받고 직접 자신이 원하는 장식품을 만들어 사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는 전문가가 아니어도 요즘에는 왁스작업 등으로 손쉽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이 개발돼 웬만한 작품은 누구나 만들 수 있으며,설령 잘 못만들었다 해도 스스로 만들었다는 성취감이 있어 나만의 멋내기 작품으로 자신있게 착용한다는 것이 김씨의 설명이다.이들은 대개 작품을 만들때 보석상에서는 취급하지 않는 각종 이름없는 돌들을 사용,남들이 갖지 못하는 독특한 작품들을 만들어 낸다.이런 종류의 장식품들은 매장에서 싸게는 2만∼3만원에서 비싸도 10만원 이하로 판매돼 그동안의 보석류 가격에 비하면 전혀 부담이 없다.
  • 달맞이/손정박(굄돌)

    한낮에는 시름시름 볼품 없어도,후줄근한 여름밤 달빛에 이끌려 방죽따라 걷다가 만나는 달맞이꽃은 얼마나 싱그러운가.뒷산에 올라 구멍 낸 깡통에 불씨넣고 휘휘 돌려 불굴렁쇠 만들어가며 맞이하던 정월대보름달은 마음마저 환하게 하지 않는가.바위고개 숨어서 님 마중하던 음전이의 마음이 얼마나 설레고,먹지않아도 배불렀을까를 상상하면 괜히 안면근육 위로 당겨진다. 어쨌든 마중간다는 말에는 기다림 속에 설렘과 기대감 부풀리고 만남 이루어 기쁨과 환희 갖게 된다는 의미가 내포되고,소식에 의한 확신이나 징조에 따른 예견에 근거하여 이루어진다. 얼마전 미국에서 온 친구의 얘기,곧 전쟁이 터지는 곳으로 가는구나 하고 와보니 도대체위기감이 아무데서도 느껴지지 않는단다. 글쎄,역사의 지혜로 이제는 평화공존에 대한 기미를 더 강하게 느끼는 것일까.아니면 몸서리쳐지는 전쟁의 악몽은 애써 외면하는 것일까.그도 아니면 인간은 바보가 아닌한,같은 실수를 두번 저지르지 않으며 엄혹한 시련으로 또다시 이 민족을 시험할 만큼 잔인한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확신때문일까. 공산주의가 언필칭 약한 고리인 제정 러시아를 뚫고 유라시아 대륙건너 중국을 휩쓸고 거센 와류형성하면서 제3세계까지 튀어 번질 때는 무섭기도 했지만,이제는 고인물로 정착돼 가고 있다고 여기기 때문일까.증오와 투쟁에 근거하는 사상은 심성의 아주 적은 부분만을 나타낼 뿐이며,이기와 무한경쟁을 절제없이 허용하는 사상은 사회적 정의로 규제받는 것이 추세이다. 지금 우리가 느끼는 기미는 도대체 어떤 것이며,그징조에 따른 예견은 어떻게 내려야 하는가.달맞이 갈 때처럼 신나고 기쁜 마음 일게하는 그런 예견을 광범위하게 공유할 수만 있다면….
  • 여성 머리패션 올가을·겨울/생머리·땋아올린 머리 유행

    ◎세팅·드라이·파마 등 인공적 꾸밈 퇴조/젤 등 이용 「나만의 분위기」 자연스럽게 연출 오는 가을 겨울,여성들의 머리패션은 땋은 올림머리등 도구를 사용하지 않고 직접 손으로 연출하는 무공해 머리패션이 유행할 것 같다. 이같은 경향은 최근 전세계 패션을 주도하고 있는 자연과 환경보호주의,동양적 민속풍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머리카락에 손상을 주는 퍼머머리 대신 몽골리언 시뇽(땋은 올림머리)이나 지그재그 밥(앞머리를 지그재그 형태로 내린 단발)등의 커트머리가 대표적인 스타일로 나타난다. 최근 「그레이스 리 커팅 클럽」은 지난해에 이어 두번째로 다가오는 시즌의 유행예상 머리패션 설명회를 개최하고 올 가을과 겨울의 헤어모드를 제시했다.여기서 선보인 머리모양들은 드라이어나 셋팅등의 기구를 이용한 인위적인 꾸밈을 배제하고 순수한 커트선과 빗질·땋기 등을 젤등으로 표현한 머리모양이 대부분. 헤어디자이너 안옥희씨는『크고 둥근 서양인의 눈매 대신 작고 가는 동양인의 자연스러운 눈매를 그대로 살려주는 형태로 변하는화장법에 이어 머리형태에 까지 자연·동양풍 유행이 강화되고 있다』고 최근 흐름을 설명했다. 즉 동양인의 투박한 머리숱을 그대로 살려 단순하게 묶거나 생머리 자체를 위로 땋아 올리는 방법들이 세계적으로 유행을 하고 있다는 것. 컬렉션에서 제시된 몇가지 스타일을 소개한다. ▲매직 봅…뒷머리는 얼굴 쪽으로 쏠리는 단발머리,앞머리는 날카로운 분위기로 뾰족하게 자른 스타일.뒤로 빗으면 한결 부드러운 멋으로 현대적인 이미지를 강조하는 직장여성에 알맞다. ▲몽골리언 시뇽…일직선이나 지그재그 또는 부드럽게 처리한 앞머리를 제외한 전체 머리카락을 세갈래 이상으로 땋아 위로 올려 단정하게 또는 자유스럽게 연출한다.가정에서 다양하게 응용할 수 있는 스타일. ▲스트레이트 업…셋팅이나 드라이를 하지않고 생머리 그대로 올리는 스타일.머리속의 묶는 끈이나 핀을 그대로 노출시키는 액세서리 효과로 귀엽고도 우아한 분위기를 낸다.최근 유행하는 미시(Missy)족에 인기를 끌 것같다. ▲쇼트 시뇽(짧은올림머리)…짧은 머리의 X세대에어울리는 스타일.젤이나 스타일링 제품으로 윗머리를 동그랗게 말아 고정시키고 나머지는 뒤로 깔끔히 빗어 올림머리처럼 보이게 처리한다.
  • 국악과 어우러진 추동복 패션쇼

    ◎안지히·최지숙 등 6명 참가… 70점씩 선보여 우리 전통의 청아한 국악과 현대 패션쇼의 만남. 대한복식디자이너 협회(KFDA 회장 안지히)는 지난 3∼4일 서울 호텔신라 다이너스티홀에서 우리 전통 악기의 연주와 복합음악을 배경으로 제6회 컬렉션 「삶과 에너지」를 개최,큰 관심을 모았다. 이날 패션쇼는 94·95 가을·겨울 유행의상을 소비자와 백화점 의류바이어들에게 미리 선보인 정기 트렌드 쇼. 국립국악원 협찬으로 국악의 은은한 분위기와 현대음악이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 최지숙 이윤혜 조명례김해련 김연주 안지히씨 등 6명의 디자이너가 각각 60점씩을 선보였다. 외국 대형 의류업체의 국내시장 진출을 극복하고 세계패션의 흐름에 부응하면서도「철저하게」우리의 옷을 제시하기 위해 「국악의 해」를 기념,전통음악을 배경으로 쓰게 됐다는 것이 KFDA측의 설명. 카프다 패션쇼가 제시한 올 가을 겨울의 주된 패션흐름은 롱코트 롱재킷등 길고 가늘게 흐르는 선과 강한 원색보다 회색 자갈색 검은색등 자연색상을 위주로 한 동양적 민속풍.작품성위주보다는「입고 싶다」는 느낌이 든다는 것이 관객들의 반응이다. 「소유에서 존재로」를 주제로 쇼의 첫무대를 장식한 디자이너 최지숙씨는 아이보리 베이지 자연색상과 니트 쉬폰 소재등을 이용,깔끔하고 단정한 의상들을 선보였으며 김해련씨는 부드러운 색조의 옷에다 진주장식 코사지등의 액세서리로 가을 분위기를 낸 옷등을 5무대로 구분,선보였다. 조명례씨는 「절정」을 주제로 흑백 과 강한 원색의 대비에 도시의 경쾌함을 담은 작품을 제시,호평을 받았으며김연주씨는 「평화로움에의 귀향」을 주제로 절제되고 풍성한 느낌의 옷을 선보였다. 흑백의 배합을 주로 한 의상이 특징인 이윤혜씨는 무성영화시대의 복고적인 분위기를 재조명한 롱재킷과 조끼등을 선보이고 미니스커트와 커다란 블라우스로 자유스런 멋을 가미했다. 국립국악원 연주자 노부영씨의 대금독주로 무대를 펼친 안지히씨가 선보인 의상은 조선초기 우리옷의 선과 빅토리아 시대의 귀족풍의 옷등을 가장 현대스럽게 재연한 재킷과 코트,원피스등.10개 무대가 모두 북과 피리 꽹과리,현대음악이 조화된 배경음악을 사용해 눈길을 모은 안씨는 은색 금속소재를 사용한 의상에다 청동 탈바가지의 디자인을 응용한 액세서리를 함께 써 전통과 미래를 동시에 표현했다.
  • 궁궐/서울정도 6백년 기념 문화재 재건사업

    ◎헐렸던 경복궁복원… 숭정전부터 “우뚝”/숭정문·회랑등과 함께 마무리공사 한창/자정전·태녕전등 「2단계 공사」 9월부터/운현궁은 고증없이 증축한 회랑 보수작업 착수 서울 옛 도성안에는 아직도 여러 궁궐이 남아있다.경복궁을 비롯,창덕궁·덕수궁·창경궁 등이다.역사교육장으로 때로는 휴식의 장소로 사랑받는 전통공간이 되어왔다.이들이 모두 조선의 궁궐임을 쉽사리 안다. 그러나 잃어버린 조선의 궁궐들을 아는 이들은 흔치 않다.잃어버렸을 뿐 아니라 까맣게 모르는 조선의 궁궐,그것은 바로 경희궁(사적271호)과 운현궁이다.5대궁의 하나인 경희궁은 서울 종로구 신문로1가 서울고등학교 자리에 있었다.모두가 헐리고 2채는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궁궐터마저 철저히 파괴되어 버렸다. 그 경희궁이 제모습을 찾기시작했다.1907년 일제통감부가 중학교를 세우면서 헐린 조선의 궁궐이 되살아나고 있는 것이다.서울시가 정도6백년을 맞아 기념사업으로 추진한 경희궁 복원이 실현되어 정전인 숭정전부터 우뚝세워졌다.그리고 숭정문이 들어서고 회랑이 둘러쳐졌다.오는 9월 준공을 목표로 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다. ○궁궐터마저 파괴 일제가 민족의 정기를 말살하기 위해 왕기가 서린 경희궁을 해체하고 긴 식민통치를 펴는 동안 자취없이 사라진 경희궁.조국광복을 맞고도 한동안 염두에 두지 못한 경희궁복원이야기가 나오더니,지난 87년부터 궁터발굴이 진행되었다.그리고 착공 6년만에 잃어버린 궁궐모습을 떠올렸다.서울시가 이번 1단계 복원사업에 쏟은 예산만도 58억1천3백만원에 이른다. 서울시는 경희궁정비 2단계사업으로 오는 96년까지 편전인 자정전,임금의 초상화를 봉안했던 태령전,임금이 신하들을 접견한 흥정당 등을 복원한다.숭정권 뒤편에 터를 잡았던 자정전 자리는 명지대건축문화연구소가 확인한 바 있다.자정전은 기단지의 호석및 바닥전돌이 발굴됨으로써 이미 복원되고 있는 숭정전축과 일치하고 있음을 밝혀냈다. 「궁궐지」에 의하면 경희궁은 본래 외전과 내전이 좌우에 나란히 놓이고 전체적으로 동향을 하고있는 것으로 되어있다.정궁인 경북궁과는 아주 다른 양상을 보인다.경복궁은 남향으로 외전과 내전이 앞뒤에 구성되었다는 점과 다른 것이다.또 경희궁은 정문을 바른쪽 모퉁이에 배치한 것도 특이하다. 이같은 점은 처음 이궁으로 지었던 창덕궁에서도 찾아진다.결국 의도적으로 경복궁보다는 격식을 덜 차렸다는 이야기가 된다.각 건물의 배치는 우선 외전의 경우 숭정전을 서쪽에 앉혀 동향을 바라보게 하면서 주위는 행각을 돌린 가운데 사방에 문을 냈다.숭정전 뒤에는 후전인 자정전이 있고 주변에 태령전이 위치했다.숭정전 오른편 즉 북쪽에 흥정당,그 주변에 왕이 책을 읽는 장소인 존현각과 석음각을 두었다는 것이다. ○58억들여 6년 공사 오른쪽 내전으로는 정침인 회상전,융복전,장락전이 있었다.그 주위에는 용비·봉상이라는 누각과 연못,연회장인 광명전을 배치했다.궁의 외부 출입문은 모두 5군데로 되어 있으며,동북쪽 모서리에 있는 흥화문이 정문이다.경희궁은 흥화문을 거쳐 내전 앞을 지나 서쪽 끝의 외전 정전에 도달하는 특수한 구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경희궁의 전각들은 거의 모두 헐려 없어졌으나 정전인수정전과 정문인 흥화문,후원의 정자 황학정이 남아있다.정전은 1926년 조계사에 매각되어 동국대 캠퍼스에 다시 세워졌다.정면 5칸,측면 4칸의 단층 팔작기와 지붕을 한 주심포양식의 건물.1686년 처음 지은 이 건물은 조선 중기의 건축양식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흥화문 역시 1686년에 세워졌다.지난 1932년 일본인들의 절 박문사로 옮겼다가 지난 88년 제자리에 복원되었다.지난 1923년 민간인에게 팔렸던 황학정은 서울 사직공원 사직단 뒤편으로 옮겨 복원했다. 경희궁은 야주현대궐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다.그것은 정문인 흥화문의 현판 글씨가 명필이었고 글에서 광채가 나 밤에도 훤히 비추었다는데서 유래한다.흥화문의 현판글씨는 경복궁 동무광에 보관되어 있다. ○교육장으로 활용 서울시는 경희궁을 현재 건립중인 시립박문관과 연계,역사문화공간으로 활용할 계획.경희궁 경내를 야외문화전시공간으로 조성하는 한편 궁중가례를 재현시켜 국내외인들에게 볼 거리를 제공한다는 것이다.그리고 수시로 전통문화행사를 유치키로 했다. 서울시는 경희궁 복원사업 이외에 종로구 운니동 운현궁(사적257호)복원계획도 정도6벡년 기념사업에 포함시켰다.시는 83억2천8백만원을 들여 지난해 토지(2천1백48평)와 건물을 매입,현재 보수작업을 펴고있다.40억3천7백만원을 들여 회랑을 신축하는 등의 보수공사를 오는 95년12월까지 마무리할 계획이다. 이 역사전통공간은 대원군유품을 비롯한 고미술품전시장,전통예절교육장,고건축 연구학습장,전통혼례식장,민속놀이마당으로 활용된다.이를 위해 72평의 회랑을 새로 짓고 마당 3백40평을 확장키로 했다.그리고 고증없이 최근에 증축한 부분을 제거,옛 모습을 되살린다는 것이다. 운현궁은 본래 흥선대원군의 사저다.조선 후기의 주택건축물로,고종이 임금자리에 오른 뒤 대폭확장하면서 궁으로 부르게 되었다.현재의 건물은 대원군이 섭정을 하던 1863∼1873년에 지어진 것이 대부분이다.담에는 4곳의 대문을 설치했다.그 안에는 아재당을 비롯 사랑채인 노안당,안채인 이로당,노안당,선조들을 모신 사당 등을 두었다. 흥선대원군 이하응이 음산한 겨울날 숨을 거두는것으로 시작되는 김동인의 장편소설 「운현궁의 봄」무대이기도 하다.파락호 시절에 겪었던 수모와 시련,이를 극복하고 섭정의 권좌에 도달한 대원군의 체취가 서린 역사현장이다.그래서 운현궁은 풍운의 근세사 바로 그것인지도 모른다. > ▷경희궁 약사◁ ▲1620년(광해군12년)이궁으로서의 경덕궁을 지어 궁궐 모습을 갖춤 ▲1623년 인조가 즉위하면서 정사를 보기 시작함 ▲1654년(문종8년)숙종이 이 궁의 회상전에서 태어남 ▲1688년(숙종14년)경종이 이 궁의 융복전에서 태어남 ▲1760년(영조30년)궁명을 경희궁으로 개칭함 ▲1777년 정조가 이 궁의 숭정문에서 즉위함 ▲1835년 헌종이 숭정문에서 즉위함 ▲1907년 일제 통감부가 궁 서쪽에 중학교를 세움 ▲1915년 경성중학교(서울고 전신)가 궁터에 들어서면서 본격적으로 파괴 ▲1922년 전매국 관사용지로 궁터를 파는 등 4만1천여평으로 축소됨 ▲1923∼32년 황학정,숭정전,회상전 뿔뿔이 이축됨 ▲1974년 서울고 이전과 더불어 부지를 현대에 매각 ▲1984년 서울시가 공원을 조성하기 위해 교환형식을 빌려 부지를 확보함 ▲1985∼87년 경희궁 복원계획에 따라 궁지발굴(단국대) ▲1987년 신라호텔 정문으로 사용하던 흥화문을 지금의 자리로 다시 옮겨 복원 ▲1989년 숭정전 발굴(명지대) ▲1990∼94년 숭정전,숭정문,회랑공사
  • 어버이날 가장 받고 싶은건 옷/신세계백화점,780명 설문조사

    ◎전체의 19.4% 차지… 건강용품·핸드백순 돌아오는 어버이날 선물로 어떤 것이 적당할까.최근 한 백화점의 조사에 따르면 부모들의 경우 일상생활에서 항상 필요로 하는 품목을 선물로 받고 싶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세계백화점이 지난 4월11∼20일 서울시 거주 성인남녀 7백8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부모들이 받고 싶어하는 선물 1위는 전체의 19.4%를 차지한 가디간·셔츠·블라우스 등 의류인 것으로 조사됐다.2위는 건강용품(18.6%)이었으며 3위 핸드백·지갑류(15.3%),4위 향수·화장품류(11.2%),5위 액세서리·보석류(8.6%),6위 화훼류(8.3%),7위 여행·효도관광(5.9%)등의 순으로 집계됐다. 한편 한국노인문제연구소 박재간소장은 『대부분의 부모들이 자녀가 무엇이 필요하냐고 물어도 아무것도 필요치 않다는 식으로 답해 선물 정하기에 어려움이 많다』면서 봉투에 돈을 넣어 전달하는 것도 좋은 선물이 된다고 권한다.이 방법이 못마땅할 때는 부모와 함께 백화점이나 시장에 직접 가서 물건을 보고 고르거나 상품권을 구입해 드리는것도 괜찮다.
  • 산악용 자전거/초보자엔 50만∼60만원대 적당

    ◎본격 레포츠철 맞아 선택요령을 알아본다/앞바퀴 완충장치·「퀵레버」 갖춘게 좋아/몸에 잘 맞아야… 키 170㎝ 이상땐 사이즈 18 무난 수많은 산악용 자전거 중에서 어떤것을 골라야 할까.본격적인 레저·스포츠시즌을 맞아 시중에 10만원대의 국산품부터 승용차 값과 맞먹는 8백만원대의 수입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산악용 자전거(MTB)가 선보이고 있으나 마땅한 안내나 지침이 없어 소비자들의 선택을 어렵게 하고 있다. 산악용 자전거를 집 근처에서 타겠다면 별문제지만 본래의 의미에 맞게 운동삼아 등산로 등 비포장길에서 탄다면 선택이 쉽지 않다.다행히 최근에는 환경·건강붐에 힘입어 삼천리자전거·코렉스 등 국내업체에서도 고급MTB를 개발,시판하고 있어 소비자의 선택의 폭을 넓혀주고 있다. 국내에 선보이고 있는 변속기어 21단이상의 고급MTB로는 코렉스의 「콤포」「터보」시리즈,삼천리자전거의 「헬릭스」「프로임팩트」시리즈 등을 들수 있다.이들 제품은 가볍고 견고한 카본파이버 두랄루민 등 신소재와 고급부품을 사용한 MTB로 같은 가격대의 수입자전거에 비해 성능이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가격은 45만∼2백80만원선. 수입품으로는 대만산의 「자이언트」,일본산의 「아라야」,미국산의 「클레인」「캐논데일」「마운틴사이클」등이 나와있는데 「자이언트」만 빼곤 가격대가 다양하지 못하고 선수용급의 고급품 일색이어서 과소비를 부추기는 일면도 없지 않다.액세서리인 헬멧(2만∼17만원)을 비롯해 실내에서 훈련할수 있는 연습용 롤러(25만원선),지난해말부터 자동차지붕에 자전거용 캐리어 부착이 허용됨에 따라 운반용 캐리어(4만∼25만원)도 다수 선보이고 있다. 지난해 국내 MTB대회 챔피언인 권령학씨(퍼포먼스코리아 MTB상담역)의 도움말로 초보자가 MTB 고르는 요령을 살펴보면 우선 가격대로는 50만∼60만원대의 제품이 무난하다.초보단계를 지나면 통상 더 좋은 자전거를 원하게 되므로 자전거를 어느정도 아는 사람이면 처음부터 1백만원대의 제품을 택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또한 운동을 목적으로 하는만큼 몸에도 잘 맞아야 한다.키가 1백70㎝이상인 사람이면 사이즈18(인치·프레임의 높이),그보다 작으면 사이즈16,더 크면 사이즈 20,22가 적당하다.또 비포장길을 자주 다니게 되므로 가급적 앞바퀴에 서스펜션 포크(완충장치)가 장착되고,퀵레버가 달려있어 공구가 없이도 앞뒷바퀴를 쉽게 분리,수리할 수 있는 제품이 좋다.페달을 돌려보아 변속기어가 제대로 작동하는지도 반드시 확인해보아야 한다.
  • 국민 실망시킨 국회(사설)

    여야의 이번 국회운영은 아주 잘못 되어있다.정치인지 장난인지 알수가 없다.이런 국회가 왜 필요한가하는 물음이 나오는것도 무리가 아닐 정도다.여당 단독으로 총리인준안을 처리했지만 언제나 우리국회가 소수야당의 볼모신세를 면할 것인지 답답하다. 무엇보다도 국회가 야당의 주장에 밀려 국무총리임명동의안처리를 다른 의안과 연계하고 일주일이상 지연시킨것은 헌법정신을 위배한 중대한 문제다.총리인준은 대통령이 행정부를 효율적으로 운영하기위해 입법부에 가부간 의사를 묻는 형식절차다.국회로서는 찬반의사표시가 권리이자 의무라고 할수있다.그런데도 동의절차를 상무대국정조사서처리와 연계해서 정치흥정의 대상으로 삼아 처리를 지연시킨것은 국회의 직무유기이며 무능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국회의장이 말한바와 같이 국회는 먼저 행정부에대해서 해야할일을 하고나서 잘잘못을 따져야하는 것이다.야당이 예산심의나 총리임명동의등과 같은 절차문제를 정치투쟁의 수단으로 삼는 행태는 시정되어야한다. 뿐만 아니라 삼권분립의 원리에 비추어보면 국회는 당연히 이행해야할 형식절차를 기피함으로써 대통령의 정당한 고유인사권의 행사를 방해한,부당행위를 한것이라 할 수 있다.국회가 대통령의 국무수행 방해라는 횡포를 부린것이다.이것은 견제와 균형을 통해 국정을 함께 다루어야할 국회와 행정부의 정상적인 관계를 저해하고 긴장을 조성하는 일이 될수있다.어떤 의미에서는 삼권분립의 근간을 흔드는 대단히 바람직하지않은 일이다.따라서 이 일은 국회가 책임을 져야하며 행정부에 사과하고 재발방지를 보장해야한다. 또한 국회의 횡포에 따른 국정의 장기공백을 막기위해 총리서리제도의 도입등 보완책도 강구되어야 할것이다. 다음으로,소수야당의 횡포가 시정되어야한다.과거 권위주의시대에는 여당이 다수의 힘을 가지고 소수당을 무시하고 독주하는 횡포가 문제였는데 문민시대에 와서 역전현상이 빚어지고있다.다수당의 횡포가 아니라 소수의 횡포다.원칙도 없고 한계도 없으며 오직 당리당략과 정치공세뿐이라는 인상을 준다. 국정조사서 협상에서 계좌추적만 받아주면 증인문제에 신축성을 보이기로 한 것을 하루아침에 뒤집고 증인문제에 따른 인권침해는 관심도 없다.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흠집내기에만 열을 올리는 듯한 자세다.민주당의 태도와 관련해 장외인사의 이름이 거명된다는 자체가 민주당의 책임이다. 야당이 실력저지대신 표결에 불참했지만 끝까지 국정조사와 인준안처리의 연계를 주장한 것은 설득력이 없다.일주일씩이나 국정을 마비시킨 파행국회로 야당이 정치불신이외에 무엇을 얻었는지 자문해 볼 일이다.
  • 고무줄 헌법해석(이동화칼럼)

    정치는 장난인가,싸움인가.요즘 정치권을 바라보면 한편으로는 불안하고 또 한편으로는 서글픈 생각이 든다.여야관계나 국회의 모습이 시대의 변화와 요구에 부응하기는 커녕 외면내지 역행하고 있는듯한 느낌이 강하게 들기 때문이다. 예민하게 돌출해 있는 북한핵문제,우루과이 라운드(UR)에 의한 개방압력등 힘을모아 대처해도 어려운 사안들이 우리를 압박하고 있는 현실에서 이처럼 정쟁으로 힘을 낭비하는 것이 과연 국민들의 눈에 어떻게 비칠까.한반도에서 전쟁이 나느니,어떠니하는 얘기가 공공연히 보도되고 쌀시장개방이다,금융시장도 열라는등 경쟁력과 준비도 없이 안방을 열어야 하는 판에 이런 일과도 관계없고 국민의 직접적인 이익과도 상관없이 정치판이 돌아가고 있음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일이다. 최근의 총리임명동의 건만해도 그렇다.야당이 총리경질을 호재로 생각해 정치공세를 취할수 있겠으나 거기에도 한계는 있다.정치공세는 반대표를 던지고 그것을 최대화하는 노력으로 족하다.오히려 내각을 빨리 안정시켜 국정에 임하도록 도와줄 책임이 정치권에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신임총리의 국회동의를 늦추고 나아가 내각불신임권을 없앤 헌법의 정신을 무시한채 국무위원 모두에 대해 하나하나씩 해임건의안을 내놓았으며 찬반토론을 거쳐 처리하자는 주장은 해도 너무 한 것이며 위헌논쟁을 일으킬 만한 사안이다. ○아전인수식 정치공세 이회창파동후 정국의 모습은 이성과 원칙을 잃고 있다.정치공세에는 논리가 없다.야당의 주장을 보면 우리의 권력구조가 대통령중심제에 내각제가 가미되어 있다고 헌법해석을 정치공세에 아전인수식으로 맞추고 있다. 그러나 헌법에는 분명히 대통령이 국가의 원수이고 국가를 대표하며 정부의 수반이다.총리는 대통령이 임명하고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각부를 통할하며 대통령을 보좌한다고 규정되어 있다.명백한 대통령중심제인 것이다.이런 관계가 애매해지면 국정운영의 질서가 무너진다. 시비의 여지가 있을수 없는 이런 사안을 놓고 「대통령이 헌법을 유린했고 개혁대상」이라고 자의적인 비난을 하고 있다.대통령이 헌법을 유린했다면 보통일이아니다.탄핵의 사유가 될수 있다.따라서 보다 자세한 논리와 설명이 있어야 마땅하다. 오히려 대통령은 헌법을 지키기 위해 굳이 총리서리를 임명치 않고 국회동의를 얻어 임명키위해 내정자로 발표했다.그랬기에 국회나 정치권도 이에 상응하여 법대로 지체없이 처리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매사를 정치만능의 사고속에 흥정과 편법으로 처리하려는 것은 민주주의와 참다운 정치를 위협하는 태도라고 비판을 받을수밖에 없다. ○「해임안」처리 40시간 국무위원 해임건의안도 그렇다.22명에 대한 개별적 안건을 처리할 경우 각각 제안설명 30분등 무려 40여시간이나 걸린다는 계산이다.하루종일 장관해임안으로 시작해서 끝나도 시간이 모자라 다시 회기를 연장해야 될판이다.잘못된 구습의 극치를 보는 느낌이다.이렇게 국정을 희화화해서 무엇을 얻겠다는 것인가.국민의 지지를 얻고 수권정당으로서의 자리를 굳힐수 있을 것인가,신뢰를 잃고 미숙하다는 평을 들을 것인가,자문해 볼일이다. 물론 야당도 이의 관철을 염두에 둔것이 아니라 「상무대국정조사」의 절차문제를 유리하게 이끌기 위한 양동작전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전·현직 대통령을 근거없이 참고인 명단에 넣은 것도 그런 맥락으로 보인다.민자당도 여러가지 가능성을 놓고 대응하겠지만 그 전제는 뚜렷이 인식하고 협상에 나서야 할것이다.원칙없이 정치절충에 매달리는 사고방식은 한때를 잘 넘길수 있을지는 몰라도 앞으로 더큰 난관을 몰고올수 있다. 요즘 여당이 있는지,무엇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소리가 번지는 상황이다.최근 민자당이 대통령과 총리의 권한을 구분하여 홍보자료를 내놓은 것도 많은 사람을 실소케 한 일이다.홍보하기로 결정을 했다고 홍보하고 그다음에 내용을 홍보했으니 얼마나 효과가 있었는지 의문이다. 당직자들이 소신과 논리를 갖고 국민을 설득하면 되는 일이 아닌가.오죽하면 대통령제 아래에서 대통령권한을 홍보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는지 자문하고 책임을 통감해야 할일이다. 대통령이 선거없는 해에 국가경쟁력을 높이려는 의욕적 자세를 보이고 있으면 당정은 이를 어떻게 해서든지 총력 뒷받침해야 할것이다.이를 제대로 못할때 벌써부터 자기네의 정치적 몫을 키우려는 일부정치세력의 끈질긴 공세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정신차려야 한다.
  • 레슈니한 증후군/X염색체 이상 남아에 발병

    ◎입술·손톱 물어뜯는 자해행위 심해/팔 부목으로 고정,행동교정치료 효과/환자 가족들 정보교환모임 결성 필요 「레슈니한 증후군」을 아십니까. 올해 12세난 승민(가명)이는 아랫입술이 문드러져 형체 조차 찾아 보기 힘들고 양쪽 손톱은 흉할 정도로 짓무러져 있다.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틈만 나면 입술과 손톱을 물어 뜯는등의 자해행위를 하기 때문이다. 갓 태어나선 정상아와 별반 다름없던 승민이는 생후 1백일쯤 처음 이상스런 조짐을 보였다.백일사진을 찍어주러 사진관을 찾았던 부모들은 그가 고개를 잘 가누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아채린 것이다.그 뒤 경증의 뇌성마비 판정을 받고 부모등에 업혀 6세가 될 때까지 매일 대학병원을 오가며 재활치료를 받았지만 승민이의 병세는 호전되기는 커녕 갈수록 다리가 꼬이어 가는등 악화되기만 했다. 9세가 되던 어느날 승민이는 방문 모서리에 기대어 TV를 보다가 넘어져 입안에 상처를 입은 뒤 부터 아랫입술을 깨물기 시작했다.말리고 야단쳐도 막무가내였다.승민이도 자신의 의지로 제어할 수 없는 일이었다.피가 나고 고통이 와도 계속 물어 뜯었다.한 쪽 아랫입술이 거의 문드러지자 반대쪽을 깨물었다.보다 못해 치과에 데려가 이빨에 고무밴드를 씌우는등 온갖 수단을 다 써봐도 소용이 없었다.입술이 거의 없어질 무렵 이번엔 손가락을 물어 뜯었다. 그리고 지난달 승민이는 뇌성마비아가 아닌 「레슈니한 증후군」환자인 것으로 최종 판명됐다. 레슈니한 증후군은 선천적으로 뇨산대사를 하는 효소가 결핍되어 체내에 뇨산이 과다하게 쌓임에 따라 생기는 병.뇨산효소를 만드는 유전자가 X염색체의 한 쪽에 붙어 있기 때문에 이 유전자가 손상될 경우 X염색체가 2개인 여성은 이 병에 걸리지 않고 X염색체가 1개인 남자에서만 발병한다. 지난 64년 미국에서 처음 보고된 뒤 인구 10만명에 4명 꼴로 발생하고 있다.우리나라에는 최근 승민이를 포함해 4명이 발견됐다.이처럼 발병률에 비해 국내 환자수가 적게 보고되는 것은 이 질환에 대한 확진법이 없고 전문의의 인식마저 턱없이 낮기 때문이다.지금까지 확인된 환자 4명 모두 일본에서 검사를 받았다. 서울대의대 최용교수(소아과)는 『레슈니한 증후군 환자는 뇌성소아마비·과뇨산요증·자해행위등의 증상을 복합적으로 나타낸다』며 『얼핏보면 뇌성마비와 매우 흡사하기 때문에 간과하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즉 상당수에 이를 것으로 보이는 레슈니한 증후군 환자들이 뇌성마비아로 오진되는 바람에 치료·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최교수는 따라서 『2세 이후에 입술및 손톱을 물어 뜯는등 자해행위를 하거나 아기 기저귀에 뇨산결정체가 묻어 나오면 이 질환을 한번쯤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승민이의 행동치료를 맡고 있는 연세대 보건과학대학 정보인교수(재활학)는 『약물요법으로 요산치를 떨어뜨릴 수는 있어도 자해행위까지 감소시키지는 못한다』며 『일단 발병하면 치료가 어렵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자해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행동교정을 해주는 길 밖에 없다』고 밝혔다.실제로 승민이의 경우 팔을 부목으로 고정시켜 손톱을 깨물지 못하도록 행동교정을 한 결과 매우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것이다.정교수는 또 『이런 환자를 둔 가족들이 공통적으로 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꺼려 치료에 지장이 많다』고 지적,『전문적인 정보교환이나 행동교정에 필요한 도구 개발을 위해서는 환자 부모들의 모임 결성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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