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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든 초등생 대상 ‘찾아가는 문화공연’...성남형교육 지원 145억원 투입

    경기 성남시는145억원의 사업비를 들여 ‘5년차 성남형교육 지원 사업’을 편다고 12일 밝혔다. 이 사업은 부모의 소득·지위와 관계없이 공평한 배움의 기회를 제공해 사교육비 부담을 덜고, 창의적인 인재 양성을 목적으로 한다. 사업 대상은 성남지역 156곳 모든 초·중·고, 특수학교 학생 10만5369명이다. 초등학교 72곳 4만7917명, 중학교 46곳 2만5913명, 고등학교 36곳 3만1136명, 특수학교 2곳 403명이 수혜 대상이다. 올해 성남형교육 지원 사업은 학교문화예술 교육과 안전교육 강화에 중점을 뒀다. 모든 초등학교 대상 ‘찾아가는 문화공연’을 성남형교육 지원 사업 내용에 새로 포함했다. 중학교 1학년 대상 미디어아트 전시 관람·체험을 신설했고, 교육연극 수업 지원을 지난해 30곳 초중고교에서 35곳으로 확대했다. 특수학급 대상 교육연극수업도 한다. 안전교육 강화를 위해 초교 6학년, 중학교 2학년, 고등학교 1학년 대상 심폐소생술 교육·운영비 지원을 학급당 10만원에서 15만원으로 늘렸다. 초교 1·2학년 대상 찾아가는 어린이 안전캠프, 초교 4학년 대상 찾아가는 자전거 안전교육도 포함했다. 이와 함께 학생들의 꿈과 끼를 펼칠 수 있도록 156곳 모든 학교의 학생 자율동아리와 독서동아리의 지원금을 지난해 13억6900만원에서 올해 14억2800만원으로 증액했다. 성남형교육은 사업 예산 투입 외에 성남시청, 맹산·판교환경생태학습원, 은행식물원, 지구촌체험관, 성남FC 홈경기장 등 지역사회의 인프라를 활용해 학생들의 창의 체험 활동과 학교 교육과정을 지원해 공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 쾌속 교통망 KTX∙SRT 인접 단지 프리미엄 ‘톡톡’ ‘천안아산역 THE LIV’ 눈길

    쾌속 교통망 KTX∙SRT 인접 단지 프리미엄 ‘톡톡’ ‘천안아산역 THE LIV’ 눈길

    KTX∙SRT 고속열차가 인접한 단지가 부동산 시장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KTX나 SRT 같은 고속열차의 경우에는 일반 지하철과는 다르게 보다 빠른 속도로 단거리 지역은 물론 대전이나 울산, 부산 등 광역이동이 수월하기 때문에 실수요자들 사이에서 선호도가 높다. 실제로 KTX∙SRT 인근 분양 단지들은 분양시장에서 그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금융결제원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경기도 화성시 동탄2신도시 C11블록에서 분양한 ‘동탄역 롯데캐슬’은 평균 경쟁률 77.54대 1의 우수한 성적으로 1순위 마감했다. 단지 바로 앞에는 SRT 동탄역이 있어 이를 통해 서울 수서역까지 약 15분이면 도달가능해 많은 청약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또한 같은 시기 강원도 강릉시 송정동에서 분양한 ‘강릉 아이파크’는 최고 21.6대 1의 청약경쟁률을 기록하며 여타 지역 경쟁률을 웃돌았다. 이 단지의 경우 단지 인근 KTX 강릉역(경강선)을 이용하면 강릉에서 서울까지 접근이 쉬워 청약자들에게 좋은 호응을 얻었다. 프리미엄도 상당하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자료에 따르면 SRT 수서역에서 가까운 서울 강남구 수서동 일원에 위치한 ‘강남데시앙포레’ 전용면적 59㎡의 초기 분양가는 3억 원 선이었지만 지난 1월에 9억3,000만 원에 거래돼 6억 원이상의 프리미엄을 붙었다. 또한 SRT 동탄역을 도보로 이용할 수 있는 동탄2신도시 내에 분양한 ‘시범우남퍼스트빌’ 전용면적 59㎡A는 공급 당시 분양가가 2억5,700만 원이었으나 지난 1월 2억4,100만 원의 웃돈이 붙어 4억9,800만 원에 거래됐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이 두 단지의 경우 SRT 수서역과 동탄역이 각각 단지 인근에 위치해 있어 서울 진입은 물론 광역이동이 수월하기 때문에 분양 당시부터 많은 이들의 관심을 샀다”고 말했다. 한편 근거리 내 KTX∙SRT 천안아산역이 위치해 서울 접근성이 높아 향후 높은 프리미엄이 기대되는 단지가 있다. 이테크건설이 충청남도 배방읍 장재리 1739번지 일원에 짓는 ‘천안아산역 THE LIV’가 바로 그 주인공. ‘천안아산역 THE LIV’는 뛰어난 교통망을 자랑한다. 단지 1㎞ 내에 KTX∙SRT 천안아산역이 위치해 있으며 이를 이용해 20분 대로 서울 진입이 가능하며 이 외에도 지하철 1호선 아산역, 경부고속도로, 천안논산고속도로 등을 이용해 광역으로 이동이 수월하다. 풍부한 생활인프라도 장점이다. ‘천안아산역 THE LIV’ 인근에는 이마트 펜타포트점, 이마트 트레이더스, 롯데마트 CGV 천안펜타포트점, 갤러리아백화점 센터시티점, 천안시청, 천안교육지원청과 농협플러스센터, 삼성화재, 미래에셋, 현대해상 등 금융관련 기관이 밀집해 있는 금융벨트까지 갖춰져 있어 편리한 생활을 누릴 수 있다. 여기에 충청∙대전권 최대 규모의 여성병원, 소아병원, 내과 검진센터가 들어오는 첨단 복합 여성병원과 3층 규모 도서관(북카페 포함) 및 상생협력센터, 도시통합관제센터가 들어서는 천안아산 복합문화정보센터가 들어설 예정으로 향후 준공이 완료되면 주거편의성이 더욱 개선될 전망이다. 단지 인근에는 다양한 학군이 조성돼 있어 우수한 교육환경이 돋보인다. 연화초, 설화중∙고교가 도보통학이 가능한 거리에 있으며 아주나 유치원, 연화초 병설유치원, 선문대학교 아산캠퍼스와 나사렛대학교 등이 단지 인근에 자리잡고 있어 탄탄한 교육환경은 물론 풍부한 임대수요까지 기대할 수 있다. 이 외에도 단지 주변으로는 지산체육공원, 용곡공원, 장재천 호수공원 등이 있으며 특히 단지 바로 옆 근린공원까지 조성돼 있어 쾌적한 주거환경 속에서 취미 및 여가생활이 가능하다. 한편 ‘천안아산역 THE LIV’는 지하 4층~지상 45층, 3개 동, 전용면적 77~84㎡, 오피스텔 총 593실 규모다. 전용면적별로 살펴보면 △77㎡A는 230실, △77㎡B는 242실, △84㎡ 121실로 구성된다. ‘천안아산역 THE LIV’의 견본주택은 충청남도 아산시 배방읍 장재리 1628번지 일원에 위치하며 입주예정일은 2021년 3월이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길섶에서] 현수막/서동철 논설위원

    며칠 전 찾은 경북 의성은 여전히 축제 분위기였다. 곳곳에 현수막이 수도 없이 걸려 있었다. 당연히 ‘마늘 소녀’의 평창동계올림픽 컬링 돌풍을 축하하는 내용이다. ‘장하다 의성의 딸들 수고했데이’ 같은 문구는 읍내에서 흔히 볼 수 있었고, 선수들의 고향 마을로 가면 ‘자랑스러운 봉양의 딸’이나 ‘자랑스러운 분토의 딸’처럼 세분화되기도 했다. ‘안경 언니’ 김은정 선수는 봉양면 분토2리 출신이다. ‘김원구·황정화의 딸 김선영 은메달 획득’ 같은 문구도 있었다. 안평면 신월리 주민들이 걸어 놓은 것이다. 올림픽이 아니더라도 농촌 마을 주변을 달리다 보면 ‘누구누구 자식이 이렇게 훌륭하게 됐다’는 현수막을 종종 만난다. 뜻밖에 얼마 전 서울에서도 그런 현수막을 봤다. 강남 지역이지만 단독주택과 다세대주택으로 이루어진 한적한 마을이었다. 어느 집 자식이 사법연수원인가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는 내용이었던 것 같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제대로 모르는 우리 아파트 단지라면 이런 일이 가능할까 싶었다. 최소한의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하니 부러웠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씨줄날줄] 초수 행궁/서동철 논설위원

    [씨줄날줄] 초수 행궁/서동철 논설위원

    올해는 세종대왕(1397~1450) 즉위 600주년이다. 다양한 기념행사가 열리는 가운데 충북 청주시가 내년 가을까지 초정 행궁을 복원한다는 소식도 들린다. 행궁이란 임금이 머무는 임시 궁궐이다. 오늘날 초정(椒井)의 세종 당시 땅이름은 청주목 초수(椒水)였다. 세종실록에는 ‘물맛이 호초(胡椒) 같은 것이 있어 이름하기를 초수라 한다’는 대목이 보인다.세종은 다양한 질환에 시달렸다. 팔다리가 붓고 아픈 각기병과 피부병이 늘 그를 괴롭혔고, 당뇨병에서 비롯된 안질도 심각했다. 별다른 치료법이 없었던 당시 세종은 온천과 광천수의 효과에 적지 않게 의존했다. 세종은 1444년 초수 행궁에 123일에 걸쳐 다녀갔다고 한다. 태조를 비롯한 조선왕조 초기 임금들은 고려의 역대 왕들처럼 황해도 평산 온천을 자주 찾았다. 세종은 1433년 충청도 온수현에 행궁을 짓고 행차를 시작한다. 오늘날의 온양온천이다. 이후 온양은 조선 왕실의 가장 중요한 온천이 됐다. 하지만 임금의 행차는 왕비와 세자를 비롯한 왕실 구성원은 물론 조정 대신까지 포함되는 경우가 많았으므로 규모가 컸고, 비용도 많이 들었다. 오가는 길 주변 백성도 행차에 필요한 물품을 대고 노역을 제공해야 했으니 고초는 컸다. 세종이 도성(都城)에서 가까운 온천을 찾는 데 집착한 것도 이 때문이다. 1438년 “경기도에서 온천을 찾는 사람에게는 후한 상을 주고 해당 읍의 칭호를 승격시킬 것”이라고 공표한다. 노력은 실패로 돌아갔다. 이 과정에서 온천이 있음에도 신고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해 부평부를 부평현으로 강등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그런데 청주목 행궁에 행차하던 해, 초수가 목천현과 전의현에도 나온다는 소식에 세종은 또다시 “초수가 충청도에는 다 있는데, 어찌 본도(本道)에만 없겠느냐”면서 “만약 초수를 보고 알리는 사람이 있거든 상을 주기로 하고, 마땅히 도내 각 고을 수령들로 하여금 찾아보게 하라”고 경기도 관찰사를 채근하기도 한다. 초수 행궁은 1448년 불타고 만다. 4년 만에 사라진 것이다. 세종은 실화(失火)한 사람을 국문한다는 소식에 “지금 농사일이 바쁘니 속히 놓아 보내라”고 했다. 초수 행궁의 옛 모습을 되살리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복원의 근거가 없다는 것은 문제다. 행궁 자리가 어디인지조차 모른다. 정조 때 그려진 ‘온양별궁전도’(溫陽別宮全圖)를 모범으로 삼으면 어떨까 싶다. 그림을 보면 왕의 침전과 목욕 시설을 제외한 부속 시설은 모두 초가일 만큼 거창한 것과는 거리가 있다. 소박하지만 기품 있는 행궁을 기대해 본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이후락 청산가리 품고 방북... 역대 대북 특사 모습은?

    이후락 청산가리 품고 방북... 역대 대북 특사 모습은?

    문재인 대통령이 서훈 국가정보원장과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대북특사로 파견할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역대 대북특사의 모습에 관심이 쏠린다.대북특사(밀사)의 시작은 1972년 5월 김일성 국가주석을 극비리에 만난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었다. 이 부장은 만약의 사태엔 자결을 위해 청산가리 캡슐을 양복 주머니에 넣고 방북했다. 전두환 정부 때인 1985년 10월엔 장세동 안기부장이 방북했으나 88올림픽 공동 개최를 이뤄내는 데 실패했다. 노태우 정부 때인 1990년 9월에는 서동권 안기부장이 방북했으나 정상회담 합의엔 이르지 못했다. 제1차 남북 정상회담을 한 달여 앞둔 2000년 5월 경, 국가정보원이 올린 김정일 당시 국방위원장과 관련된 서면보고서, 영상자료, 관련 서적 10여 권의 요약본을 살펴본 김대중(DJ) 대통령은 임동원 당시 국정원장에게 이같은 지시를 내린다. ▲김 위원장이 어떤 인물인지 알아보고 ▲정상회담에서 협의할 사안에 대해 설명하고 입장을 들어보며 ▲공동선언 초안을 사전에 합의해 올 것 등이다. 남북이 이미 그해 4월 중국 베이징에서 만나 정상회담에 합의했지만 세부 항목에 대한 조율은 쉽지 않았다. 임 전 원장은 5월 27일 방북했다가 DJ의 금수산궁전 참배를 요구하는 김용순 노동당 대남담당 비서에게 거부 의사를 밝히고 당일 밤 귀환했다. 임 전 원장은 6월 3일 다시 방북해 이번엔 김정일 앞에서 1시간 동안 우리 측 입장을 설명했다. 김정일은 “김 대통령의 뜻을 잘 설명해주어 매우 잘 이해가 되었습니다. 평양에 오시면 존경하는 어른으로, 전혀 불편함이 없도록 품위를 높여 잘 모시겠습니다”라고 했다.2005년 6월 17일에는 정동영 당시 통일부 장관이 노무현 대통령의 특사 자격으로 북한을 방문해 김정일 위원장과 면담, 북한을 6자회담으로 복귀시키는 등 북핵문제를 협의했다. 2007년 10월 2차 정상회담을 앞두고도 대북특사가 평양을 찾았다. 정부는 2007년 8월 8일 “2차 남북 정상회담을 28∼30일 연다”는 사실을 발표하며 대북특사 파견 사실을 뒤늦게 공개했다. 김만복 당시 국정원장이 2, 3일과 4, 5일 두 차례에 걸쳐 노무현 대통령의 특사 자격으로 평양을 방문해 친서를 전달했다. 앞서 7월 초 우리 정부가 먼저 북한에 고위급 접촉을 제안했다는 사실도 이날 공개됐다. 2차 회담은 북한 수해로 연기돼 10월 2일부터 4일까지 평양에서 열렸다. 문재인 정부의 이번 대북특사는 대표적인 ‘공개 특사’가 될 예정이다. 김정은을 만난 한국 인사는 2011년 12월 김정일 사망 후 조문단으로 방북한 이희호 여사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정도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추리의여왕2’ 권상우-최강희, 新 추리군단과 만남...이다희-박병은 등장

    ‘추리의여왕2’ 권상우-최강희, 新 추리군단과 만남...이다희-박병은 등장

    ‘추리의 여왕2’ 권상우, 최강희, 이다희, 박병은이 한자리에 모인다. 2월 28일 방송된 KBS2 드라마 ‘추리의 여왕 시즌2’(이하 ‘추리의 여왕2’) 1회가 첫 방송부터 시청자 눈길을 잡았다. 이날 방송에서는 거침없는 ‘서동서 마약견’ 형사 하완승(권상우 분)과 ‘자유의 몸으로 돌아온 추리퀸’ 유설옥(최강희 분)의 판타스틱한 공조 수사가 화려한 시작을 알렸다. 이어 1일 방송되는 2회 분에서는 새로운 추리군단의 윤곽이 드러날 전망이다. 미모의 파티쉐 정희연(이다희 분)과 뇌섹남 프로파일러 우성하(박병은 분) 경감이 등장을 앞두고 있는 것. 이들은 2회에서 시작되는 미스터리한 사건을 두고 하완승, 유설옥 콤비와 함께 추리에 나설 예정이다. 시즌1에서 유설옥의 동경의 대상이자 하완승과 수사 방식에 따른 차이로 대립각을 세웠던 우 경감(박병은 분)이 이번에는 또 어떤 냉철한 프로파일링을 보여줄지 호기심을 자극한다. 또 이번 시즌에서 새롭게 합류한 캐릭터인 정희연(이다희 분)이 어떤 활약을 펼치게 될지도 시청자의 기대를 모으고 있다. 한편 ‘추리의 여왕2’는 장바구니를 던져버린 설옥과 막강한 추리군단을 거느리고 돌아온 완승이 크고 작은 사건을 해결하며 숨겨진 진실을 밝혀내는 생활밀착형 추리드라마다. 매주 수, 목요일 오후 10시 방송된다. 사진= 추리의 여왕 시즌2 문전사, 에이스토리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추리의 여왕2’ 권상우, 최강희 결혼식 현장 급습 “이 결혼 무효”

    ‘추리의 여왕2’ 권상우, 최강희 결혼식 현장 급습 “이 결혼 무효”

    ‘추리의 여왕2’ 권상우와 최강희가 판타스틱한 결혼대소동과 함께 시즌2의 화려한 시작을 알린다.한층 더 커진 스케일의 사건과 함께 돌아오는 KBS 2TV 새 수목드라마 ‘추리의 여왕 시즌2’(극본 이성민, 연출 최윤석 유영은, 제작 추리의 여왕 시즌2 문전사, 에이스토리)에서 첫 회부터 두 사람의 아웅다웅 케미가 폭발할 예정이다. 특히 오늘(28일) 밤 10시에 찾아오는 1회에서는 두 사람의 판타스틱 결혼대소동을 예고하고 있다. 앞서 아름다운 신부로 변신한 유설옥(최강희 분)의 웨딩드레스 자태가 공개돼 많은 추측이 생겨났던 터. 이후 하이라이트 영상에서도 이 결혼은 무효라며 소란을 일으키는 하완승(권상우 분)의 행동이 궁금증을 더욱 키웠다. ‘서동서 마약견’이라 불리는 형사 하완승이 이혼 후 자유의 몸으로 컴백한 ‘추리퀸’ 유설옥의 의문의(?) 결혼식 현장을 급습한 사연에 관심이 상승한다. 이처럼 첫 회부터 속도감 있는 스펙터클한 사건들이 펼쳐지며 그야말로 꿀잼 방송을 보장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시즌1에서 ‘완설 커플’로 불리며 사랑받았던 이들의 트레이드마크인 티격태격, 아웅다웅 케미 역시 변함없이 이어질 전망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전보다 조금 더 미묘한 분위기를 타고 두 사람에게 간질간질한 로맨스의 기류가 더해질 것이라고. 무엇보다 “추리의 여왕에서 서로가 아닌 상대 배우는 생각할 수 없다”고 할 만큼 또 한 번 환상의 수사 파트너로 변신할 권상우와 최강희의 차진 연기 호흡이 최고의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게 만들고 있다. 이처럼 호기심 가득한 사건의 연속과 기막힌 추리에 분홍빛 설렘까지 한 겹 얹은 ‘추리의 여왕 시즌2’는 다가오는 봄을 유쾌하고 흥미진진하게 물들일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한편 장바구니를 던져버린 설옥과 막강한 추리군단을 거느리고 돌아온 완승이 크고 작은 사건을 해결하며 숨겨진 진실을 밝혀내는 생활밀착형 추리드라마 ‘추리의 여왕 시즌2’는 오늘(28일) 밤 10시에 첫 방송된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씨줄날줄] 또 하나의 외규장각 약탈품/서동철 논설위원

    [씨줄날줄] 또 하나의 외규장각 약탈품/서동철 논설위원

    지금 국립고궁박물관의 ‘조선의 국왕’ 전시실에 가면 최근 프랑스에서 돌아온 ‘효명세자빈 책봉 죽책’(孝明世子嬪冊封竹冊)을 만날 수 있다. 조선은 왕실의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 그 내용을 새겨 보관했는데, 주인공이 왕이나 왕비이라면 옥책(玉冊), 세자나 세자빈이라면 대나무를 엮은 죽책(竹冊)을 만들었다.효명세자는 순조의 맏아들로 21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효명세자빈 풍양 조씨는 헌종의 어머니로 효명세자가 익종에 추존되면서 신정왕후가 됐다. 그는 82세까지 살면서 흥선군의 둘째 아들 고종으로 하여금 왕위를 넘겨받게 하고, 3년 동안 수렴청정을 하기도 했다. ‘효명세자빈 책봉 죽책’은 강화도 외규장각에 보관되어 있었지만 그동안 불탄 것으로 알고 있었다. 1866년 병인양요 당시 강화도를 점령한 프랑스 해군이 외규장각 수장품 가운데 의궤 등을 약탈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프랑스군은 퇴각하면서 강화행궁과 강화유수부는 물론 외규장각에도 불을 질렀으니 약탈한 것보다 훨씬 많은 자료가 잿더미가 됐다. 당시 외규장각 수장품은 강화부 외규장각 봉안 형지안(形止案)의 존재로 알 수 있다. 형지안이란 ‘현재의 상황을 적어 놓은 문서’라는 뜻이다. 프랑스의 침략이 있기 9년 전인 1857년의 마지막 봉안 상황을 정리한 이 형지안은 옥책·죽책 같은 왕실 귀중품 99점과 도서류 1007종, 5067책을 보관하고 있었음을 알려 준다. 여기에 ‘효명세자빈 책봉 죽책’이 있다. 그런데 프랑스군이 정리한 ‘전리품 목록’을 보면 ‘887㎏ 남짓의 은괴 19상자와 외규장각 비치품 359점’이 전부다. 구체적으로는 ‘가철된 큰 책 300권, 가철된 작은 책 9권, 흰색 나무상자에 든 작은 책 13권, 또 다른 작은 책 10권과 8권, 지도 1부, 평면천체도 1부, 족자 7개, 대리석판 3개, 백색의 대리석판이 들어 있는 작은 상자 3개, 3개의 갑옷과 투구, 가면 1개’다. ‘가철된 큰 책’은 의궤를 지칭할 것이다. ‘효명세자빈 죽책’은 ‘백색의 대리석판’, 곧 옥책을 넣은 작은 상자에 함께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프랑스군이 의궤 같은 서적은 국립도서관에 넘긴 반면 옥책이나 죽책같은 왕실 귀중품은 내용을 알아보는 노력도 없이 자국 고관대작들에게 선물로 뿌렸다는 것이다. ‘효명세자빈 책봉 죽책’은 프랑스 경매에 나온 것을 사들였다고 한다. 의궤도 297점을 영구대여 형식으로 돌려받았지만, 1점은 영국에 있고 2점은 행방을 알 수 없다. 또 무엇이 어디서 나타날지 아무도 모른다. 외규장각 약탈의 역사가 수습되려면 아직도 시간이 필요하다.
  • [서동철 논설위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전략적 요충지 강릉에서… ‘김씨 왕국’ 원대한 꿈 품었을까

    [서동철 논설위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전략적 요충지 강릉에서… ‘김씨 왕국’ 원대한 꿈 품었을까

    모르는 사람이 없겠지만,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인천공항에서 서울과 평창을 거쳐 강릉을 잇는 경강선 고속철도가 개통됐다. 대관령국도에 의존하던 강릉과 영서(嶺西)의 교통은 앞서 1975년 왕복 2차로의 영동고속도로가 뚫리면서 새로운 차원에 접어들었다. 이후 대관령고개를 넘는 대신 여러 개의 터널로 이은 4차로 확장공사가 2001년 마무리되면서 영동고속도로는 훨씬 편안해졌다.이제 서울역에서 KTX 열차에 올라 1시간 40분이면 강릉이다. 하지만 지하터널로 백두대간을 지나는 경강선을 타면 결정적인 여행의 재미 하나는 포기해야 한다. 대관령 고개 너머에 펼쳐진 강릉시내와 동해바다의 장관이 그것이다. 대관령에서 강릉을 바라보면 산과 바다가 제법 멀리 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영동지방에서는 드물게 토지는 넓고 비옥하다. 강릉 도심의 서쪽은 태백산맥의 준령이 가로막고 북쪽은 야트막한 산이 동서로 길게 이어져 겨울바람을 차단한다. 그 남쪽으로는 남대천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른다. 조선시대 강릉도호부는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길지(吉地)다. 그러니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발굴조사에서는 심곡리와 홍제동, 옥계면 현내리와 주수리 등에서 구석기시대 유물이 출토됐다. 초당동을 비롯한 신석기시대 유적은 헤아리기 어렵다.강릉은 예(濊)의 옛 땅이었다. 이때부터 하슬라((河瑟羅)라는 이름이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이후 고구려와 신라가 이곳에서 빈번히 맞부딪친다. 고구려에는 남쪽에 세력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적 요충이었고, 신라에도 북방 진출을 위한 전초기지일 수밖에 없었다. 하슬라가 신라의 영역에 완전히 편입된 것은 진흥왕(재위 540~576) 시대라고 한다. 이후 하서소경(河西小京)과 명주(溟州)로 잇따라 이름과 지위가 바뀐다. 하서는 하슬라의 한자식 표기다. 고려시대에는 1263년(원종 4년) 강릉도, 1308년(충렬왕 34)에는 강릉부, 1389년(공양왕 1) 강릉대도호부로 변화를 겪는다. 오늘날에도 흔히 쓰이는 임영(臨瀛)은 공양왕이 붙인 강릉의 별호(別號)다. 대도호부 체제는 조선시대로 이어졌다. 강릉은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세계적 해변 휴양도시로 완전히 거듭나고 있다. 강릉은 태백산맥과 동해바다, 경포호만으로도 아름다움의 극치다. 여기에 켜켜이 쌓인 역사와 그 역사가 남겨 놓은 다양한 전통문화, 이 도시의 새롭고도 특별한 경쟁력이라고 할 수 있는 ‘커피 문화’는 여행자에게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오늘은 강릉이 가진 흥미로운 역사 하나를 소개하려 한다. 주인공은 김유정과 김주원 부자(父子)다. 태종무열왕의 후손이라고 한다. 모두 생몰 연대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으나 통일신라가 하대로 접어드는 8세기 중·후반을 살았다. 김유정이라면 낯설어도 김무월랑과 연화부인에 얽힌 설화라면 익숙한 분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이 ‘남대천 월화정 설화’를 가장 자세히 적어 놓은 글은 ‘홍길동전’을 지은 강릉 출신 고산 허균의 ‘별연사고적기’(鼈淵寺古迹記)라고 한다. 김무월랑은 강릉에 머무는 동안 연화부인과 사귀었다. 그런데 무월랑은 경주로 돌아간 뒤 소식이 없었다. 연화부인은 편지를 써서 연못에 던졌는데 잉어가 물고 갔다고 한다. 어느 날 경주의 무월랑 집에서는 잉어를 시장에서 사 왔는데 배 속에 연화부인의 편지가 들어 있었다. 두 사람은 다시 만나 결혼하게 됐다는 이야기다. ‘고려사’ 악지(樂誌)에 나오는 ‘명주가’(溟州歌)의 배경설화이기도 하다. 강릉 남대천 남쪽의 바위 언덕 위에는 월화정(月花亭)이 있다. 무월랑과 연화에서 한 글자씩을 따서 이름 지은 정자다. 1933년 강릉대도호부의 객사인 임영관의 부재를 가져다 지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의 월화정은 1936년 대홍수 때 남대천이 범람해 휩쓸려 간 것을 2003년 복원한 것이다. 연화부인의 집이 이 주변에 있었다고 한다. 연화정은 남대천을 사이에 두고 강릉중앙시장과 마주 보고 있다. 중앙시장은 이제 강릉을 찾는 관광객이라면 한 번쯤 들러야 하는 명소가 됐다. 남대천을 가로지르는 옛 동해북부선 다리는 최근 인도교로, 철로를 걷어낸 시장 골목은 ‘월화거리’로 새 단장했다. 김유정과 연화부인의 혼인은 중앙귀족과 상당한 세력을 가진 지방호족의 결합을 의미한다. 두 사람의 아들이 강릉 김씨의 시조인 김주원이다. ‘삼국사기’를 비롯해 통일신라를 다룬 각종 사서(史書)에는 그의 이름이 예외 없이 등장한다. 선덕왕이 785년 후사(後嗣) 없이 죽자 군신(群臣)은 김주원을 왕으로 추대했다. 그런데 김주원이 때마침 홍수로 알천(閼川)이 범람해 건너지 못하게 되자, 대신들이 ‘이는 하늘의 뜻’이라며 상대등 김경신을 추대했으니 곧 원성왕이다. 왕위쟁탈전에서 패한 김주원은 명주로 낙향했는데, 원성왕은 786년 그를 명주군왕(溟州郡王)으로 책봉했다. 식읍(食邑)은 강릉은 물론 오늘날의 통천·양양·삼척·울진·평해에 이르렀다고 한다.강릉 성산면 보광리 대관령 중턱에는 명주군왕 김주원의 무덤이 있다. 다만 당초의 무덤인지는 확실치 않은 것으로 전한다. 지금의 무덤은 조선 명종 때 강릉 부사와 강원도 관찰사를 지낸 후손 김첨경이 복원한 것이다. 이름처럼 왕릉을 방불케 한다. 군왕이라는 호칭은 좀 낯설다. 원성왕은 당나라로부터 선덕왕의 ‘검교태위 계림주자사 영해군사 신라왕’(檢校太尉 鷄林州刺史 寧海軍使 新羅王)의 작위를 물려받기도 했던 인물이다. 이를 두고 비정상적으로 왕위에 오른 원성왕이 스스로 황제국의 제후라는 것을 내보여 대외적 입지를 강화하면서 국내적으로는 특정 지역 세력을 군왕에 봉하는 일종의 봉작제(封爵制)로 황제적 지위를 행사하려 했다는 학계의 시각도 있다. ‘동국여지승람’에는 ‘김종기는 김주원의 아들인데 작위를 물려받아 왕이 됐다. 김정여는 김종기의 아들인데 처음 조정에 벼슬해 상대등에 이르렀고, 명원공에 책봉됐다. 김양은 정여의 아들인데 김명의 난(亂) 때 신문왕을 도와 사직을 안정시켰고 명원군왕에 추봉됐다’는 대목이 보인다. 김주원 말고도 아들 김종기와 증손 김양이 군왕에 오른 것이다. 김주원 집안이 신라왕의 책봉을 받는 군왕에 머물지 않고 스스로 독립적인 국가를 추구했다는 연구도 있다. 김주원은 당나라의 수도를 모방해 장안(長安)이라는 이름의 수도를 정했는데, 오늘날 남대천 북쪽의 장안동이 그 흔적이라는 것이다. 당나라의 장안은 고유명사이면서 동시에 천자(天子)의 국도(國都)를 통칭하는 일반명사라고 한다. 사실이라면 김주원의 꿈은 원성왕의 그것보다도 컸다. 명주군왕묘는 강릉시가 제작한 관광지도에도 소개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내비게이션의 안내를 받으면 어렵지 않게 찾아갈 수 있다. 무덤 입구의 숭의재(崇義齋)는 김주원을 기리는 사당이다. 정문에는 삼왕문(三王門)이라는 현판이 보인다. 세 사람의 군왕, 곧 김주원, 김종기, 김양을 기념하는 의미가 있겠다. 무덤 일대를 돌아본 전체적 인상은 이렇다. 강릉 김씨 종중의 기념물이라는 시각을 덜어내고 객관적 역사를 부각시키면 훨씬 더 진정성 있는 문화유산이 되지 않을까 싶다. 글 사진 dcsuh@seoul.co.kr
  • [길섶에서] 강원도 치킨/서동철 논설위위원

    평창동계올림픽 개폐회식장인 대관령면의 올림픽플라자 옆으로는 송천이 흐른다. 송천은 도암댐을 지나 아우라지에서 골지천에 합류한다. 조양강을 이룬 물줄기는 정선읍내를 지나 영월에 다가가면서 동강이 된다. 메밀전이 맛있는 고장을 관통하는 물줄기다. 평창올림픽의 본부 역할을 하고 있는 횡계에는 다른 ‘메밀전 문화권’에는 없는 먹거리가 있다. 바로 황태다. 송천 주변은 몇 해 전까지 황태덕장이 즐비했다. 지금도 현대적인 올림픽플라자와 옛날 방식 그대로인 100m 밖 황태 덕장의 조화는 절묘하기만 하다. 개인적으로 전통적인 조리법으로 만든 메밀전과 황태구이는 그 자체로 맛있다. 그렇다 해도 메밀과 황태라는 강원도 대표 재료의 정체성을 훼손하지 않는 새로운 먹거리의 개발은 환영하고도 남을 일이라고 생각한다. 며칠 전 평창 여행에서 횡계 황태가스와 봉평 메밀닭강정을 맛봤다. 황태가스는 기대가 컸고 맛도 나쁘지 않았지만 다음에도 주문하지는 않을 것 같다. 메밀닭강정은 한국화한 미국식 치킨을 다시 평창화한 음식이 아닌가 싶다. 누가 봐도 ‘강원도 치킨’이다.
  • [서동철 칼럼] 정선·평창·강릉의 ‘올림픽 이후’

    [서동철 칼럼] 정선·평창·강릉의 ‘올림픽 이후’

    강릉 오죽헌시립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강릉에서 한국의 미(美)를 읽다’ 특별전에 가면 옛 지도 한 장을 만날 수 있다. 고려 충렬왕 34년(1308) 설치되어 조선 고종 33년(1896) 강릉군(郡)으로 개편되기까지 명맥을 이은 강릉부(府) 지도다. 지도는 대개 북쪽을 위에 두고 남쪽을 아래에 놓게 마련이지만, 동해에서 내려다본 듯 강릉 관아를 중심으로 서쪽 태백산맥을 위에 배치해 눈길을 끈다.이 지도는 오죽헌박물관 상설전에도 출품되어 있었다. 하지만 평창동계올림픽을 기념하는 특별전에 나오면서 관람객이 지도 앞에 머무는 시간은 훨씬 길어졌다고 한다. 관람객은 올림픽 개막식에 이어 폐회식이 열리는 평창올림픽플라자와 썰매 종목 경기가 열리고 있는 평창슬라이딩센터가 지도의 어디쯤인지, 설상 종목 경기가 펼쳐지는 정선알파인센터는 또 어디 있는지 궁금할 수밖에 없다. 지도를 자세히 보자. 올림픽플라자가 있는 대관령면은 조선시대 강릉 땅이었음을 알 수 있다. 횡계역(驛)이 표시되어 있을 뿐 주변에 규모 있는 마을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말을 갈아타는 역은 국가의 통신과 교통 및 운송 시스템의 최일선에 있는 정거장이었다. 대관령면은 도암면이 2007년 이름을 바꾼 것이다. 도암면은 옛 강릉군에서 1906년 정선군에 편입된 데 이어 1931년 평창군 소속이 됐다. 알파인센터는 정선 가리왕산에 세워졌다. 평창 진부면 장전리에서 정선 회동리로 넘어가는 가리왕산 줄기 말목재(마항치)에는 강릉부삼산봉표(江陵府蔘山封票)가 있다. 산삼 채취를 막고자 일반인의 출입을 금지하는 표석으로 영조 시대 세워진 것으로 학계는 추정한다. 비석의 왼쪽에는 정선계(旌善界), 오른쪽에는 지명마항(地名馬項)이라고 새겨 놓았다. 표석을 세웠을 당시에는 이곳이 강릉부와 정선군의 경계였다. 그런데 알파인센터는 삼산봉표에서 정선 방향이 아닌 평창 방향인 동쪽에 자리 잡고 있다. 가리왕산은 강릉부에서 평창군, 다시 정선군으로 행정구역이 바뀌었다. 이렇게 보면 올림픽이 열리고 있는 강릉올림픽파크는 물론 평창과 정선의 경기장 모두 강릉부 옛 땅에 자리 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오늘날의 행정구역으로는 세 곳의 기초자치단체로 나뉘어 있지만, 오랜 세월에 걸쳐 자연스럽게 형성된 하나의 문화권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경기장 입지를 선정한 사람들이 이런 역사적 배경을 인식하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본다. 평창올림픽을 앞두고 정선·평창·강릉을 돌아보면서 새삼스럽게 눈에 들어온 것이 있었다. 아름답다는 말로는 표현이 부족한 축복받은 자연이었다. 물론 강릉과 그 앞바다가 지중해 같은 고대문화의 발상지는 아니다. 대관령 줄기 역시 알프스보다 덜 극적인 생김새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경포대 바닷가에서 바라보는 태백산맥의 풍경은 지중해에서도, 알프스에서도 느낀 적 없는 감동을 주었다. 더구나 강릉은 독특한 분위기의 문화도시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강릉의 커피 문화는 전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카페 앞으로는 동해, 뒤로는 태백산맥이 보이는 자연환경이 아니라면 커피맛은 덜할 것이다. 나아가 강릉이 가진 문화유산이 지역민의 기대를 뛰어넘는 문화적 자산으로 탈바꿈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평창은 당연히 겨울 스포츠의 성지(聖地)가 될 것이다. 정선은 일부 주민의 생각은 다를지 모르지만, 그동안 개발의 손길에서 벗어나 있었던 것이 오히려 장점이다. 친환경 휴양지의 결정적 조건이기도 하다. 정선·평창·강릉은 각개약진할 것이 아니라 해양 문화와 산악 문화를 아우르는 하나의 문화권으로 발전을 추구했으면 좋겠다. 제주도를 넘어서는 국제적 관광지로 조건은 이미 갖추었다. 경포 바닷가에서 마주친 올림픽 관광객들의 찬사는 그것을 분명히 확인시켜 주었다. 이런 인식을 꿈틀거리게 만든 것이 평창올림픽의 가장 큰 성과가 아닐까 싶다. 세 지역은 ‘올림픽 이후’가 더욱 중요하다.
  • [서동욱의 파피루스] 올림피아의 황금빛 경기마차를 찾아서

    [서동욱의 파피루스] 올림피아의 황금빛 경기마차를 찾아서

    올림픽이 개막됐다. 지구의 물리 법칙 아래 있는 사물 가운데, 아주 독특한 사물인 인간의 신체가 자신의 지배자인 물리를 뛰어넘으려고 시도하는 장엄한 광경이 올림픽에는 있다. 나에게 올림픽이라면 무엇보다 고대 그리스의 올림픽이다. 마라톤 평원을 달려 승전보를 전한 그리스 병사의 고독한 발걸음에서 마라톤이라는 스포츠가 태어난 것처럼 올림픽은 고대 그리스인들의 삶과 떼어 생각할 수 없다. 고대 올림픽은 모든 시대 운동 경기의 이상을 간직하고 있는데, 그를 통해 우리는 운동이란 무엇이고 시합이란 무엇인지, 나아가 인간의 위대함이란 어떤 것인지 해답을 얻을 수 있다. 최초의 역사학자 가운데 한 명인 헤로도토스는 ‘히스토리아’에서 올림픽에 관해 인상 깊은 이야기를 전한다. 그리스 정벌에 나선 페르시아인들은 그리스인들이 정기적으로 올림피아에서 체육대회에 몰두한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경기에서 이긴 승자는 어떤 상품을 얻는가? 금품이 아니라 고작 올리브 가지로 엮은 관이 수여된다는 말을 듣고 페르시아인들은 한탄한다. “그대는 어찌하여 우리로 하여금 하필이면 이런 인간들과 싸우게 만들었는가? 금품이 아닌 명예를 걸고 경기를 하는 사람들과!” 그리고 우리가 잘 알듯 페르시아는 그리스를 이길 수 없었다. 그리스군은 금전을 위해 싸우는 자들이 아니라 명예를 위해 올림피아에서 겨뤘던 운동선수들이었기 때문이다. 이 짧은 일화만큼 올림픽이 무엇인지 선명하게 보여주는 것도 없다. 그것은 신체라는 보이는 사물을 통해 명예라는 보이지 않는 덕을 드러내는 일이다. 미인 대회처럼 신체 자체의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행사도 있지만, 아름다운 덕이 보이도록 신체를 사용하는 이들도 있는 것이다. 정치, 사업, 학문, 연예. 세상 어떤 직종도 덕의 현시를 위해 이토록 신체를 알뜰히 활용하지는 못한다. 오로지 스포츠밖에는. 올림픽의 많은 종목의 기원에는 전쟁이 있다(활을 쏘고 창을 던지고 마라톤의 승전보를 전하고). 그럼에도 올림픽이 전쟁 연습 같은 것이 아닌 까닭은 바로 저렇게 신체를 통해 보이지 않는 덕을 보이도록 만드는 것이 스포츠이기 때문이다. 올림픽은 개인의 덕뿐 아니라 공동체의 덕도 요구한다. 올림픽 기간에 도시국가들은 전쟁을 멈추었다. 쉽지 않은 일이다. 전쟁의 중단은 격한 분노 속에서 살육하던 이들의 내면에서 날뛰는 학살자를 단번에 죽이는 일이다. 모든 민족이 가진 태초의 신화는 인간이 겪은 최초의 사건으로 전쟁과 살해(가령 오시리스의 살해, 아벨의 살해)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스포츠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그런데 자제심이라는 덕 없이는 개최가 불가능한 고대 올림픽은 스포츠가 인간의 타고난 살육 본성에 제동을 걸 수 있다고 증언하는 것이다. 요컨대 이는 스포츠라는 인간의 문화적 고안물이 인간의 타고난 본성을 제도(濟度)하겠다는 도전의 표현이다. 올림픽은 또한 인간에게 운동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깨달음을 준다. 플라톤은 ‘국가론’에서 영혼의 덕은 타고난 것이 아니고 습관이나 운동을 통해 체득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덕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교실에 앉아 선생님의 수업을 들어야 한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런데 플라톤은 운동을 통해 덕에 대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우리가 가져야 하는 정직, 인내, 절제, 용기, 협조 같은 덕은 책상에 앉아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저 덕목의 의미를 머릿속으로 외우는 것이 관건이 아니라, 몸으로 체득하는 것이 핵심인 까닭이다. 덕의 체득은 몸을 움직이는 노력, 연습, 바로 스포츠를 통해 가능하다. 인내와 절제 없이는 달성할 수 없는 체력, 너그러움과 협조 없이는 생각할 수 없는 팀워크를 보라. 스포츠는 신체와 동시에 영혼을 성장시키는 연습장인 것이다. 오래전 올림피아의 부서진 옛 경기장에 서서 횔덜린의 시구를 되뇐 적이 있다. “테베도 아테네도 시들고 올림피아에는 무기도 황금빛 경기마차도 소리 내지 않는다.” 횔덜린은 고대 그리스의 상실을 비가 ‘빵과 포도주’에서 이렇게 탄식했다. 현대인들의 운동 시합이란 바로 저 황금빛 마차가 우레와 같은 소리를 내던 옛 올림픽을 고대인들보다 더 훌륭하게 복원하려는 시도 아닐까? 책략이나 선전의 노예가 아닌 진정한 덕의 올림픽.
  • ‘멋’ 올림픽…한옥마을 일출ㆍ설화 품은 월화정 ‘금메달감’

    ‘멋’ 올림픽…한옥마을 일출ㆍ설화 품은 월화정 ‘금메달감’

    #둘째날 평창 대관령면 횡계리에 들어서자 비로소 올림픽 분위기가 풍겼다. 과거 슬럼 같았던 동네 이목구비가 놀라울 정도로 바뀌었다. 천변 황태덕장 자리에 올림픽 개폐회식장이 들어섰고 상가들은 하나같이 반듯하게 치장됐다. 조직위 차량도 넘쳐났다. 점심 시간이 가까워지자 제법 체증이 생겼다. 개막을 나흘 앞두고도 이런데 대회 기간 차를 갖고 들어가면 옴짝달싹 못할 것 같았다. 황태회관은 이곳에서 가장 큰 식당 중 하나다. 아침부터 황태가스를 할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한단다. 황태구이가 1만 3000원, 황태가스는 1만 8000원이다. 황태가스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주도한 평창 메뉴 개발 훨씬 전부터 이 집에서 만들어낸 메뉴라고 했다. 처음엔 새로운 맛이네 싶었는데 조금 먹으니 물리고 오히려 늘 먹던 황태구이가 훨씬 우리 입맛에 맞다는 진리를 절감하게 만들었다. 외국인에게 황태의 매력을 맛보게 하기 위한 메뉴란 점에서 높은 점수를 줘야 하나 망설여졌고, 너무 비쌌다. 또 하나 이 가게의 아쉬운 점은 중국과 동남아 출신으로 보이는 직원들이 괜히 테이블 주위를 왔다 갔다 하며 자기들끼리 수다 떨거나 손님을 보며 괜히 웃어대는 것이었다.그 뒤 대관령 산신을 만나러 갔다. 옛 대관령휴게소를 통해 선자령 오르는 길로 2㎞ 정도 지나니 굿당이라 깎아내림당하는 대관령국사성황사가 나온다. 신라 때 범일 국사를 대관령 산신으로 모셔 강릉 단오제를 지내는 곳이다. 칼바람이 장난 아닌데 실제로 굿이 진행 중이었다. 누군가의 비원이 어떤 이승의 악업을 풀기 위해 저렇듯 간절할까 궁금해졌다. 선자령 오르며 늘 다니던 길을 이번 평창 대회를 맞아 새로운 눈으로 보게 됐다. 다시 횡계로 돌아와 부추탕수육으로 유명한 진태원에 들렀다. 대기명단에 전화번호를 적어두면 자리가 빌 때쯤 연락하는데 5분 지체되면 다음 팀으로 넘어가니 자동차 등에서 대기하다 얼른 뛰어가야 한다. 대기 명단 적을 때 처량했던 느낌과 달리 안에 들어가니 여유가 넘쳐난다. 혼밥을 드는 이도 있었다. 탕수육은 인터넷에서 봤던 것보다 부추와 양배추 양이 적었다. 그저 이 추운 고장에서 색다름을 즐기는 정도였고 짬뽕도 인상적이지 않았다. 황태덕장도 둘러보니 평창에는 더이상 가볼 데가 없어 오후에 강릉 다녀온 뒤(뒤에 나온다) 다시 평창한우타운으로 넘어왔다. 널찍한 주차장이 단체 손님을 많이 받는 집이란 걸 말해 준다. 정육점에서 고기를 사 옆 식당으로 넘어가 구워 먹는 시스템이다. 한우 채끝과 안심은 1등급, 등심은 1등급 투플러스를 한 팩씩 담고 명이나물을 얹었더니 8만원이 조금 안 됐다. 식당은 테이블 간격이 널찍해 가족 단위로 한우를 즐기기에 최적이었다. 종업원들은 친절하고 잘 교육받은 느낌이었다. 자녀 둘을 데리고 온 부부가 판을 다섯 차례나 손수 교체하는 것을 보며 우리는 한 번도 갈지 않고 구워 먹었다. 강릉 일정 마치고 귀경 길에 다시 들러 고기만 사들고 집에 들고올 정도였다면 설명이 되겠는가?#셋째날 강릉 체육기자들 사이에선 평창동계올림픽 개최로 이득을 보는 건 평창보다 강릉일 것이란 얘기가 많다. 우리가 잃어버리고 잊은 옛 도시의 정취와 유적들을 돌아보는 쏠쏠한 재미를 안기기 때문이다. 둘째 날 오후 강릉대도호부관아와 임영관을 찾았다. 관아는 전남 나주목아와 거의 비슷한 느낌이다. 임영관은 지방에 부임한 관리들이 묵고 궁궐을 향해 망궐례를 올리던 곳인데 젊은이들이 찾는 월화거리나 중앙시장에서도 가까워 둘러볼 만하다. 상당히 큰 규모의 유적이 비교적 잘 보전돼 놀라웠다. 다음날 월화정에서 바라보니 이곳에 이들 관청을 세운 이유가 또렷했다. 대관령 옛길 근처 성산면 보광리의 김주원 묘를 찾았다. 김주원은 신라 태종무열왕의 6세손으로 왕위계승 회의에 물난리 때문에 참석하지 못해 왕에 오르지 못했고 나중에 다시 기회를 만났으나 물리쳐 명주(강릉의 옛 지명)군왕으로 봉해졌던 강릉김씨의 시조다. 산 중턱에 있지만 진입로도 잘 닦여 있고 마을버스 종점이기도 했다. 김주원의 무덤은 크고 웅장하지만 입지가 옹색하기 짝이 없다. 아들 헌창과 손자 범문의 반란 실패로 제대로 장례를 치를 여력이 없었지 않았을까 짐작했다. 대관령박물관에 들렀다. 수요일 휴관하는 점이 색달랐다. 일인당 1000원인 입장권을 받는데 강릉과 대관령 사는 이들만의 특색 있는 컬렉션을 기대한 이들에겐 실망을 안겨줬다. 홍귀숙이란 분이 평생 모은 유물을 기증해 2003년 세워졌다. 대관령 옛길을 지나가다 망중한을 즐기는 정도의 의미랄까?횡계에서 한우를 먹고 다시 강릉으로 넘어와 오죽한옥마을에서 잠을 청했다. 보급형은 10만원을 받았는데 깔끔한 객실에 무엇보다 따듯한 난방이 만족스러웠다. 주중에 5만원 받는, 사무실 2층 숙소도 괜찮겠다 싶었다. 경내를 산책하다 솔숲 위로 삐죽 솟아나는 일출의 영향으로 한옥이 붉게 물드는 색다른 재미도 만끽할 수 있었다.초당순두부마을이 멀지 않아 늘 가던 할머니순두부집을 찾았다. 앞의 낡은 집을 허물고 새롭게 건물을 올렸는데 웬일인지 순두부를 미지근하게 내와 감동을 덜었다. 월화정에 들렀다. 신라 때 연화부인이 물고기를 길렀는데 그 물고기가 김무월랑(金無月郞)에게 편지를 전해줘 사랑을 이뤘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옛 동해북부선 철길 옆에 있었는데 1961년에 철거된 것을 2004년 강릉김씨 대종회가 명주군왕 김주원의 뜻을 좇아 관리하고 있다. 옛 철교 대신 들어선 인도교(중간에 아래가 훤히 보이는 유리 구간도 있다)를 걸어 중간에 이르니 왼쪽 고루포기산부터 선자령까지, 남대천, 강릉 전경이 장쾌하게 펼쳐진다. 인도교를 내려가니 월화거리가 쫙 전개되고 성남중앙시장 상인들이 장사 준비에 분주하다. 들은 게 있어 꽈배기하는 곳 어디냐고 물었더니 상인들이 아래 좌판을 가리킨다. 과메기다. 수십 번 꽈배기라고 외쳤으나 그들은 과메기라고 받아친다. 어허 이런.월화거리 오른편 현대식 먹거리 가게들이 공사 막바지에 열중하고 있다. 왜 진즉 하지 않고 그러고 보니 인도교 초입 벤치에 앉은 여인 조각도 야릇하다. 성희롱을 조장하는 것 같다. 여인이 왼쪽을 돌아보는데 곁에 남자가 앉아 고개를 돌리면 그럴듯한 사진이 된다고 만든 것 같았다. 어허 참. 바로방 제과점을 찾았는데 이제 막 기름솥에 불을 붙였다. 오전 9시 40분인데 영업은 10시 30분부터란다. 길 건너편 목욕탕 주차장에 차를 댔는데 앞에 퇴락한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올드록 하우스 범핑이란 가게인데 늦은 밤 맥주 홀짝이기 좋은 곳으로 여겨졌다.언제부터 이렇게 커피홀릭이 됐나 싶은 대한민국, 커피문화의 성지로 여겨지는 강릉의 모태 격인 테라로사를 가기 전 반드시 여러분에게 둘러보라고 권할 곳에 갔다. 굴산사지. 신라 때 절터인데 높이 5.3m의 당간지주가 태백산맥을 발아래 두고 버티고 서 있다. 당간지주란 절 입구에 깃발을 꽂던 돌기둥인데 이토록 큰 것이 있었나 싶고 강릉 사람들의 기개를 엿볼 수 있었다. 신라 유물은 모두 아담했는데 여기는 고구려인의 기상을 닮은 듯 웅대하다. 굴산사지는 요즘 감각으로 봐도 정말 컸던 것 같다. 조금 들어가면 옛 절터에 부도가 서 있다. 대관령 국사성황사에 산신이 돼 모셔진 범일 국사 것이라고 한다. 강릉 가면 늘 들르는 테라로사에서 커피와 치즈케이크를 맛본 뒤 바로방 들러 야채빵에 고로케, 도넛을 샀다. 두 팀 앞세우고 샀는데 뒤로 어느새 10명 이상 긴 줄이 서 있다. 꽈배기는 오후 3시쯤 나온다고 해 포기했다. 점심은 강릉의 마지막 식사답게 생선찜으로 채웠다. 이모네생선찜에서 가오리로 많은 생선을 덮어씌운 생선모둠찜을 시켰다. 둘이면 소자도 충분하다는데 사진 때문에 중자를 시켰더니 양이 장난 아니다. 생선에 간을 전혀 안 해 국물에 자기가 원하는 만큼 적셔 먹는다. 아주 맛있지는 않지만 가족 나들이로 찾기 좋은 곳이었다.오죽헌 근처 녹색체험센터에서 열리는 강원국제비엔날레 2018-악의 사전을 보러 갔다. 제목도 괴상했는데 들어가자마자 성조기 등 선진 8개국(G8)을 갈기갈기 찢어놓은 작품이 손님을 맞는다. 뜨악했으나 한 시간 정도 둘러본 총평은 올림픽 보러 온 김에 한 번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소감이었다. 특히 난민 배에 올랐다가 헬리콥터에 구조되는 가상현실(VR)이 인상적이었다. 오죽헌에서 개최하는 ‘강릉에서 한국의 미를 읽다’ 전시회는 강릉만의 특색 있는 아름다움이 뭐 없나 눈을 까뒤집고 찾는 우리를 여전히 실망시켰다. 솔향수목원에서 해가 진 뒤 시작하는 ‘미디어아트쇼 청산별곡’을 보러 갔다. 진입로 안내부터 안전 교육까지 세세하게 관람객 편의를 돕고 추운 날씨에도 마음을 다해 안내 해설을 하는 이들이 감명 깊었다. 한 시간 정도 계곡과 숲을 오르내리며 인공 빛으로 뭔가 스토리를 들려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심지어 산 중턱에 인공 달을 만들어 비추기까지 했다. 하지만 차라리 30초라도 불과 빛을 완전히 끄고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을 만끽하는 게 더 좋지 않았겠나 생각했다. #나가며 기름값 15만원어치를 써가며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평창과 정선, 강릉만의 먹거리와 볼거리를 찾으려 했다. 만족스러운 것도 있었고 ‘왜 이렇게밖에’ 싶은 구석도 한둘이 아니었다. 올림픽을 치른다고 확 바뀌지 않을 것이란 새삼스러운 진실도 마주했다. 많은 것이 바뀌고 새로워져야 한다. 그러자면 시설이나 인프라보다 역시 사람이 먼저다. 그걸 2박 3일 동안 절감했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길섶에서] 어떤 ‘노쇼’/서동철 논설위원

    오기로 해놓고 오지 않는 것을 영어로 ‘노쇼’라고 하나 보다. 음악회처럼 티켓을 미리 팔았는데 손님이 오지 않으면 객석 분위기가 썰렁해지는 것 말고 주최 측 손해는 없지만, 예약한 손님을 무작정 기다릴 수밖에 없는 식당들은 고충이 적지 않은 모양이다. 어쨌든 ‘노쇼’를 줄이자는 캠페인이 있기 전부터 예약을 ‘펑크’ 낼 상황이면 되도록 식당에 전화를 걸어 알려 주곤 했다. 그런데 가끔은 식당 주인들로부터 “전화를 해 주어 고맙다”는 말을 듣기도 한다. 그만큼 ‘약속을 어기는 손님이 식당 운영에 미치는 악영향이 큰 모양이로군’ 하고 생각하고는 했다. 그런데 며칠 전 강릉 여행길에 그런 짓을 했다. 인터넷을 검색해 맛있다는 생선찜집에 예약을 했는데, 도착해 보니 통화한 사실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고는 “혹시 속초에 전화한 것 아니냐”고 반문하면서 껄껄 웃는다. 메뉴도 같고, 식당 이름도 같다고 했다. 같은 강원도니 당연히 전화의 지역번호도 같다. 속초 식당에 양해를 구했더니 뜻밖에 친절하게 받아준다. 하긴 속초로 갈 손님이 강릉에 예약하는 일도 잦다고 한다. 이런 ‘생쇼’가 있나.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맛’ 올림픽…깔끔 담백 꺾지 매운탕ㆍ두툼한 송어회 ‘국대급 맛’

    ‘맛’ 올림픽…깔끔 담백 꺾지 매운탕ㆍ두툼한 송어회 ‘국대급 맛’

    평창동계올림픽 경기를 보러 가는 이들에겐 경기를 재미있고 무엇보다 따듯하게 보는 일도 중요하겠지만, 경기 앞뒤로 어디로 가 뭘 먹고 어디에서 무엇을 즐기느냐도 머리를 지끈거리게 하는 일이다. 세상은 넓고 가볼 데는 많다고 되뇌는 후배와, 세상은 넓고 먹을 것은 많다고 답해 주는 선배가 함께 2박 3일 강원 평창과 정선, 강릉을 돌아봤다. 경기장 근처 유명하다는 음식, 가봐야 할 곳들을 찾았다. 객관적으로 재량하기보다 이렇게 동선을 짜 보면 어떨까 하는 마음, 솔직히 제멋대로 잡았다. 딱딱한 문화 정보 안내와 틀에 갇힌 메뉴 소개를 멀리하고 실수와 착각, 우연한 인연까지 담아 본다. 그게 여행이 주는 진짜 즐거움이니 말이다. #첫날 평창과 정선 4일 오전 9시쯤 평창군청 앞 올림픽 대종(大鐘)을 마주했다. 아침 햇살 속에 대종은 금방이라도 고고성을 평창읍에 울려 퍼뜨릴 것 같았다. 그러나 푸욱 웃음이 터졌다. 대종 제작에 6억원, 누각 꾸미는 데 1억 7000만원이 들었다는 안내 글 때문이었다. 할 말을 잃었다. 헛헛한 마음을 무엇으로 달래나, 일요일 아침인데 올림픽시장 가게들은 문을 열었을까 싶었는데 별 걱정을 다했다. 영하 15도는 족히 될 법한 날씨인데도 벌써 서너 집이 문을 열어 추운 기색 하나 없는 할머니들이 메밀전 등을 부치고 있었다. 메밀모둠 중자와 만둣국을 주문했는데 모둠의 양이 푸짐하기 이를 데 없다. 더욱이 만둣국엔 수수와 조를 넣은 콩밥을 반 공기쯤 주는데 조리대 너머 공기 건네며 일요일 이른 아침 찾아온 이들의 사연을 살피는 마음씨가 새롭다.메밀모둠보다 강렬했던 것이 알타리무와 배추김치였다. 아삭거리는 식감이 압권이었고 단맛이 너무나 자연스러워 설탕 넣은 것 아니냐는, 실례되는 질문을 던지고 말았다. 당연히 그럴 리 없다고 했다. 배를 채우고 커피를 마시며 후배가 짠 동선에 일대 수정을 가했다. 지도를 펴 보니 후배가 대단한 착각을 했다는 게 확연해졌다. 올림픽시장이 있는 평창읍은 개회식과 스키점프 경기가 열리는 대관령면 횡계리와 40분 이상 떨어진 곳인데 이곳을 여행 기점으로 잡은 것부터가 문제였다. 스노보드 경기가 열리는 봉평면 태기리 보광휘닉스파크에서도 자동차로 30분 걸리니 봉평 식당들에서 느낄 맛을 굳이 올림픽시장 찾아 볼 일은 더더욱 아니었다. 또 곧바로 횡계 올라가는 것보다 정선 알파인스키 경기장 주변을 둘러보고 그곳에서 자고 다음날 횡계로 올라가는 것이 합리적이란 결론을 내렸다. 그렇게 동선을 수정한 뒤 평창군 방림면 마을도서관을 가보기로 했다. 하지만 일요일 오전 10시가 넘었는데도 면사무소와 나란히 문이 굳게 잠겨 있었다. 나날이 그 의미가 퇴색하는 마을 공동체에 대한 염원과 기억들을 소환하고 싶은 우리의 바람은 이뤄지지 못했다.점심은 정선 가는 국도 변 시골가든에서 잡고기매운탕으로 했다. 손님은 단 한 테이블이라 불안하기 이를 데 없었다. 가게 안에는 ‘전국노래자랑’ 트로트 노래만 가득했고 난로 위에는 정체불명의 시커먼 고기가 앉혀 있었다. 테이블 위에 탄 것 같은 햄 두 조각을 비롯해 밑반찬들이 젓가락질을 하고 싶은 생각을 차버렸다. 그런데 말이다, 이 집 반전이다. 매운탕이 A급이다. 좀처럼 보기 힘든 1급수 어종인 꺾지까지 넣은 매운탕이었다. 고추장을 네 숟가락은 퍼넣었음 직한 국물은 무슨 조화인지 묵직하지 않고 깔끔하고 담백했다. 감자를 이렇게 많이 넣은 매운탕도 찾기 힘들 것 같았다. 소자를 시켰는데도 양이 장난 아니다. 감자 맛도 일품이었다. 묵직해진 배를 이끌고 아리랑박물관을 둘러봤다. 아리랑이 이렇게 오래전부터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았구나 하는 것을 새삼스럽게 일깨워 주는 레코드며 잡지, 신문 기사 등이 가지런히 정리돼 있어 볼만했다. ‘대지’의 작가 펄 벅이 아리랑을 주제로 책을 낸 것이나 미국의 재즈 싱어 냇 킹 콜이나 프랜시스 레이 악단 등이 연주한 아리랑을 헤드폰으로 들을 수도 있었다. 일인당 2000원씩 입장료를 내고 정선 문화상품권 1000원짜리 네 장을 돌려줘 정선시장 가서 쓰면 된다고 하니 그것도 횡재한 것 같은 기분을 안겼다. 근처 정선 문화예술센터에서는 A팝 공연이 열린다며 중고생들이 분주히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하지만 대회 개막을 닷새 앞둔 날 정선읍 풍경은 올림픽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천변 아파트 여러 가구에 여러 나라 국기가 게양돼 펄럭이고, 다리 위나 주요 도로에 펄럭이는 대회 홍보 배너만이 펄럭이고 있었다. 축제를 앞둔 흥청거림은 체감되지 않았다. 우리는 농악패라도 오일장 거리를 휘저었으면 하고 바랐지만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대회 개막하면 몰아서 하려나 보다 생각하고 말았다. 문화상품권에다 약간의 현금을 더해 회동집 들러 올챙이국수와 수수부꾸미를 먹었다. 정말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먹어야 했던 이곳의 선조들의 애환에 공감하지 못하고 뭔가를 씹어 보려 하면 그냥 목구멍으로 쑥 넘어가 버리는 맛의 허무함을 절절히 느끼며 헛웃음을 삼켰다. 하릴없어진 우리는 산삼봉표를 찾으러 갔다. 세상에나, 중국에 조공을 바치려는 조정의 안간힘으로 함부로 산삼 캐가지 말라고 봉표를 붙여놓은 게 정선 알파인스키 경기장 근처에 있다고 했다. 가리왕산 휴양림 가면 볼 수 있겠다 싶어 30여분을 달려갔는데 휴양림 직원들은 모르겠다고 도리질을 해댄다. 길도 안 좋고 눈도 제법 쌓여 있을 것이며 어스름이 찾아드니 포기할 수밖에. 휴양림을 나오니 아가씨 한 명이 걸어간다. 읍내 버스터미널 앞까지 태워 줬다. 대회 의전 일을 돕는다고 했는데 휴양림 숙소에 먹을 게 없어 나오는 길이라고 했다. 혼자 묵는 게 아닐 텐데 왜 혼자 길을 떠난 것일까 궁금했다. 이곳에 존재하지도 않는 듯한 문화의 그림자를 찾겠다며 인터넷에서 조그만 실마리를 잡았다. 산골다방 오월, 뭔가 우리가 찾는 문화의 원형질이 꿈틀거릴 것 같았다. 다시 차를 몰아 매운탕 먹었던 길로 접어들어 구절리역 근처로 향했다. 자동차 내비게이션은 분명 이곳이 산골다방 오월이라고 가리키는데 찾을 수가 없다. 서너 바퀴를 돌다 나중에는 차에서 내려 직접 골목을 쑤셔 다녔다. 국숫집 외관이 똑 커피 가게의 그곳이다. 내비도 정확히 그 집을 목적지로 가리켰다. 얼마 전 폐업하고 국숫집으로 전향했는데 그나마 장사가 안 돼 문을 닫았다. 이제는 열차도 다니지 않는 구절리역 구내와 역전은 마치 서부극 무대처럼 쓸쓸했다. 근처 사람들로 북적이는 커피숍이 딱 하나 눈에 띄어 계단을 올라 창문 너머 들여다보니 평창동계올림픽 자원봉사자들이 모여 컴퓨터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커피 한잔 마실 공간이 없구나 싶었다. 정선에서 곤드레나물밥 말고 다른 특색 있는 것을 먹어 보려고 인터넷을 뒤졌고, 고향이 이 근처인 회사 직원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청했지만 결론은 곤드레밖에 없었다. 다른 집은 문을 닫아 산마실에 들어가 정식 둘을 시켰다. 점심을 든든히 먹은 터라 들어갈 곳이 없겠다 싶었는데 밥이 술술 들어가는 게 신기했다. 되직한 강된장도 맛있었고, 심심하면서도 깊은 맛이 나는 도토리묵무침, 약간 태운 듯해 구수하게 나온 누룽지 숭늉을 게눈 감추듯 먹었다. 널찍하면서도 편안한 가게 풍경, 그림과 글씨 족편들도 마음을 편안하게 해줬다. 여관 잡는 게 신기할 정도로 어렵지 않았다. 여주인들이 퉁명한 점만 빼고는 여느 도시의 여느 모텔과 마찬가지인 표준화된 객실을 5만원에, 둘 중 조금 나중에 지어진 듯한 곳에 들어가 짐을 풀었다. 저녁을 먹은 뒤 송어회를 야밤의 메뉴로 정했다. 산마실 바로 맞은편인데 횟값으로 1만 3000원만 받는단다. 왜 이렇게 싸요 했더니 몸소 양어장을 해서란다. 테이블 없이 포장 판매만 한다. 유들유들한 주인장은 흥정 솜씨가 기차다. 메뉴판에는 비빔야채 등을 다 합해도 1만 9000원이면 되는데 우리는 배춧잎 두 장을 건네고 말았다. 모텔에 돌아와 송어회를 놓고 잔을 기울였다. 이렇게 배가 부른데 이렇게 송어회가 맛있다니, 과거 송어회 좀 한다는 식당 가서 먹어본 것보다 훨씬, 더더더 맛있다. 350g인데 보통 일회용 용기에 얼음 깔고 제법 두툼하게 네 줄로 깔고 가장 맛있다는 배바짓살 몇 점을 올려놓아 푸짐하기 이를 데 없었다. 다음날 아침 속이 편한 게 또 신기했다. 술도 식사도 제법 해치웠고 송어회 양도 장난 아니었는데 좋은 공기 덕인지 개운했다. 모텔을 오전 7시 30분쯤 나와 어디 편의점 가서 커피라도 마셨으면 하고 42번 국도를 다시 타 진부 나들목으로 향했다. 갑자기 도로 왼편에 샬레풍의 건물이 눈에 띄어 차를 돌렸다. 카페 아르미스, ‘로미지안 수목원’의 전초 기지 같은 곳인데 집을 앉힌 모양새나 인테리어가 고급스럽다. 편백 향이 은은한 가운데 음악 들으며 책 읽기 딱 좋았다. 주인장 손진익(78) 엘베스트 그룹 회장의 지독한 아내 사랑이 만들어낸 치유의 공간이었다(조만간 서울신문 사람들 란에 인터뷰를 게재할 예정이다). 정선에서 커피를 제대로 음미할 수 있는 곳을 찾았다는 느낌에 우리는 만세 삼창이라도 하고 싶을 지경이었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강남구는 어떤 곳…전체 주택 중 아파트가 78%, 금융ㆍ벤처ㆍ의료 등 특화도시

    강남의 옛 지명인 논고개(논현), 학마을(학동), 청숫골(청담), 말죽거리(역삼), 독부리(도곡), 한티(대치), 개펄(개포) 등에서 알 수 있듯 한적한 농촌 지역이었다. 1963년 서울로 편입되면서 서울의 대표 현대 도시로 성장했다. 1970년대 서울 도시개발계획을 시작으로 신사동·압구정동·삼성동·대치동·개포동부터 수서동·일원동 지역까지 대단위 아파트 단지가 개발됐으며, 구 전체 주택에서 아파트가 차지하는 비율이 78%로 높다. 무역·금융과 벤처·첨단산업이 밀집한 테헤란로, 패션과 예술의 중심지가 된 압구정·청담동, 화랑과 가구 업종이 특화된 삼성·논현동, 대한민국 의료관광 중심인 신사동 등이 있다. 향후 영동대로 지상·지하 복합 개발과 국내 최고층 빌딩이 될 현대차 사옥인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 건립, 수서역세권과 세텍 부지 개발 등 초대형 개발 사업 완공을 계기로 또 한번 변신할 전망이다.
  • [서동철 논설위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금산→전주 침범 왜군 두 차례 격전… ‘곡창 ’ 호남 지킨 관군ㆍ의병들

    [서동철 논설위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금산→전주 침범 왜군 두 차례 격전… ‘곡창 ’ 호남 지킨 관군ㆍ의병들

    큰 대(大) 자에 이길 첩(捷) 자, 대첩이란 곧 크게 이긴 싸움을 이른다. 흔히 임진왜란의 3대첩이라면 1592년 8월 이순신 장군의 한산도대첩과 같은 해 10월 김시민 장군의 진주대첩, 그리고 이듬해 2월 권율 장군의 행주대첩을 들곤 한다. 꺼져 가던 목숨을 가까스로 이어 가게 하는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물론이다. 임진왜란은 1592년 4월 14일 발발했다. 고니시 유키나가와 소 요시토시가 지휘하는 왜군 1만 8700명을 태운 배는 전날 밤 이미 부산진 앞바다를 가득 메웠다. 왜군은 이튿날 안개가 걷히자 상륙해 부산진성을 포위했고 첨사 정발이 이끄는 500명 남짓 조선군은 전원이 장렬히 전사한다. 이후 왜군은 우리가 잘 아는 대로 한양도성을 향해 파죽지세로 북상한다.북변 방비에서 용맹을 떨치던 신립 장군이 갑작스럽게 삼도순변사에 임명된 이후 충주 탄금대에서 배수의 진을 치고 왜군과 싸우다 처참한 패배를 당한 것이 그로부터 보름도 지나지 않은 4월 28일이다. 탄금대 패전 소식이 알려지자 조정은 우왕좌왕했고, 결국 선조는 한양을 떠나 의주로 피난길에 오르게 된다. ●이치 승리로 권율 전라도 순찰사 올라 행주대첩 한편으로 왜군은 곡창 호남으로 진출하려 안간힘을 썼는데 당연히 군량미를 조달하기 위함이었다. 왜군이 장악한 부산진-한양 라인에서 호남으로 가는 방법은 수군(水軍)이 해로를 장악하거나, 보군(步軍)이 진주를 공략해 서진(西進)하거나, 지금은 충청도 땅이 된 전라도 금산에서 이치(梨峙)를 넘어 전주로 가는 방법이 있다. 그런데 왜 수군은 5월 7일 옥포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의 조선 수군에 대패해 기세가 꺾였고, 보군은 곽재우, 김면, 정인홍 등이 이끄는 경상도 의병에 가로막혀 쉽사리 서쪽을 넘보지 못했다. 결국 고바야카와 다카카게가 이끄는 1만 병력으로 하여금 이치를 공략하게 했다. 배치재라고도 하는 이치는 오늘날 충청남도 금산군과 전라북도 완주군의 경계에 해당한다. 해발 340m의 고갯마루에 서면 완주 쪽으로 ‘호남의 금강산’이라 불릴 만큼 수려한 대둔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임진왜란 당시에는 골짜기에 배나무가 많아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광주목사 권율은 7월 8일 1500명 남짓한 군사를 지휘해 험준한 지형을 최대한 이용한 복병전으로 왜군을 격퇴한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이후 관군(官軍)이 거둔 첫 번째 대승이었다. 권율은 이치의 승리로 전라도 순찰사에 올랐고, 같은 직함으로 이듬해 행주대첩의 명장이 된다. 권율의 휘하에는 화순 동복현감 황진도 있었다. 세종시대 명재상 황희의 5대손이라고 한다. 황진 역시 이치 승리로 익산군수 겸 충청도 조방장에 올랐다. 이듬해 충청도 병마절도사로 승진한 그는 경기도 죽산 전투 이후 패퇴하는 적을 경상도 상주까지 추격해 연전연승하기도 했다. 그는 2차 진주성 전투에서 왜군을 막아내다 머리에 조총을 맞고 전사했다. ‘선조실록’에는 이런 대목이 보인다. ‘왜장(倭將)이 또 대군(大軍)을 출동시켜 이치를 침범하자 권율이 황진을 독려해 동복현의 군사를 거느리고 부장 위대기·공시억 등과 재를 점거해 크게 싸웠다. 적이 낭떠러지를 타고 기어오르자 황진이 나무를 의지해 총탄을 막으며 활을 쏘았는데 맞지 않는 것이 없었다. 종일토록 교전해 적병을 대파하였는데, 시체가 쌓이고 피가 흘러 초목(草木)에서 피비린내가 났다. 황진이 탄환에 맞아 조금 사기가 저하되자 권율이 장수들을 독려했기에 이길 수 있었다. 왜적은 조선의 3대 전투를 일컬을 때 이치 전투를 첫째로 쳤다’●부친 순국 소식에 장ㆍ차남 참전 나섰다 모두 전사 당시 왜군은 충청도와 전라도에서도 의병에게 큰 타격을 입고 있었다. 이치 전투 당시 권율 장군의 휘하에도 적지 않은 의병이 가세해 있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전라도 담양에서 의병을 일으킨 고경명은 7월 3일 관군과 합동으로 금산성을 공격하다 순국한다. 옥천의 조헌은 700명의 의병을 이끌고 8월 18일 금산성을 공격했지만 모두 순절하고 만다. 금산의 칠백의총(七百義塚)은 이들의 무덤이다. 전라도 익산 유생 이보와 소행진은 금산에서 들려온 조헌 의병의 순절 소식에 400명 남짓한 의병을 규합한다. 이들은 금산으로 향하다 8월 27일 이치에서 왜군과 맞닥뜨렸다. 400명의 무명 의병은 급조한 활, 낫과 쇠스랑 같은 농기구를 들고 왜군과 백병전을 벌이다 모두 순국했다. 소행진의 큰아들 소계는 아버지 장사를 마치자 금산으로 달려갔고, 작은아들 소동도 형의 순국 소식에 금산으로 달려가 전사했다. 소동의 부인 민씨는 강화 친정에서 남편 소식을 듣고 자결했다.●권율 대첩비 1940년 왜경이 파괴… 1964년 재건 이치에 가려면 대전통영고속도로는 금산, 호남고속도로는 논산이나 전주를 경유하게 된다. 그런데 이치 전투라는 하나의 역사를 기리건만 유적은 ‘금산 이치대첩지’와 ‘완주 이치전적지’로 나뉘어 있다. 이치대첩지는 충남 기념물 154호로, 이치전적지는 전북 기념물 26호로 각각 지정되어 있다. 금산이 1963년 충남에 편입되면서 이런 현상은 더욱 굳어졌다. 완주 전적지는 이치 정상에 있다. 길가에 ‘이치전적지’라 새긴 비석이 있고, 그 안쪽으로 ‘무민공(武愍公) 황진장군 이현(梨峴)대첩비’가 보인다. 이치전적지 비석은 1993년, 이현대첩비는 2006년 세운 것이라고 한다. 대첩비 뒤편에 숨어 있는 ‘이치대첩유허비’(遺墟碑)에서는 그래도 세월의 흔적이 조금은 느껴진다. 전적지 옆에는 휴게소가 있다. 탐방객은 휴게소 주차장에 차를 세우게 마련인데, 전적지는 전북 완주군 운주면, 휴게소와 주차장은 충남 금산군 진산면으로 행정구역이 갈린다. 이곳에서 금산쪽으로 1.5㎞쯤 달리면 대첩지가 나타난다. ‘이치대첩문’이라는 한글 현판이 걸려 있는 외삼문으로 들어서면 권율 장군을 기리는 충장사와 대첩비각이 보인다. ‘도원수권공이치대첩비’(都元帥權公梨峙大捷碑)는 당초 금곡사(金谷祠)와 함께 1902년 건립됐다. 하지만 1940년 일본 경찰이 비석과 사당을 모두 파괴했고, 지금의 비석은 1964년 다시 세운 것이다.●무명 의병 희생 외면하다 2016년 ‘반성 비석 ’ 세워 이치전적지와 이치대첩지는 행정구역뿐 아니라 기리는 주체도 갈려 있다. 전적지는 황진의 기념물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면 대첩지는 완벽하게 권율 중심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기념물이 승리한 관군의 역사만 기억할 뿐 무명 의병의 희생은 외면하고 있다는 반성도 뒤따랐다. 2016년 전적지에 400명의 무명 의병을 기리는 작은 비석이 세워진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름하여 ‘임란순국무명사백의병비’다. 이런 글귀도 보인다. ‘관군의 주력부대가 승리를 거둔 7월 전투는 세상에 자세히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의병이 주도한 8월 전투는 제대로 기억되지 못한 채 묻혀지고 있다. 그것이 아쉬워 이 비를 세워 바로 알리고자 한다.’ 글ㆍ사진 dcsuh@seoul.co.kr
  • [씨줄날줄] 황병기, 오에 겐자부로/황성기 논설위원

    [씨줄날줄] 황병기, 오에 겐자부로/황성기 논설위원

    199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오에 겐자부로(83)에게 아들과 딸 두 자녀가 있는데 딸의 딸, 즉 손녀의 이름이 가야(伽耶)이다. 가야란 이름은 오에가 가야금의 명인 고 황병기 선생의 음악을 좋아했기 때문에 붙였다. 가야금(伽耶琴)의 가야에서 딴 것이다. 오에의 작품을 번역하면서 1995년 처음 그와 만나게 된 박유하 세종대 교수(일본문학)는 “십수년 전 오에 선생에게서 손녀 얘기를 듣고는 황병기 선생의 CD를 사서 드린 적도 있다”고 말했다. 오에는 일찍이 우리의 음악에 관심이 있었다. 일본의 음악평론가 아키 미쓰오는 ‘한국 음악의 선열함, 판소리를 듣다’란 1982년 글에 이렇게 쓰고 있다.“1980년 10월 도쿄 이케부쿠로에서 ‘판소리를 듣는 모임’이란 공연이 열렸다. 음악과 연극, 문학이 섞여 만들어 내는 판소리의 원초적인 우주론에 주목한 오에 겐자부로 등이 발기인이 되어 김소희라는 한국의 1인자를 불러 가진 공연이었다.” 오에는 2000년 지휘자 오자와 세이지와 가진 대담(요미우리신문)에서 장애인인 아들 얘기를 꺼내며 “아들은 인간의 말은 잘 이해 못 하지만 음악의 말은 정확히 이해합니다. 그가 음악을 열중해서 듣게 되어서 나와 아내에게 기쁨이 돌아왔습니다”라고 밝혔다. 음악이 치유의 능력을 지니는 것 같다는 오에의 관심은 황병기의 가야금 세계에도 미쳤을 것이다. 82세를 일기로 그제 타계한 황병기가 가야금을 접한 것은 1951년 피란지 부산에서였다. 그와 경기중·고 서울대학교를 함께 다닌 강신표 전 이화여대 교수는 “대신동에 차려진 경기중학교의 천막 교사와 집을 오가던 중 3짜리 병기는 학교 근처에 있던 고전무용소의 가야금 소리에 매료됐다”고 말한다. 강 교수 회고에 따르면 서울 가회동 황부잣집에서 태어난 황병기는 어릴 적 ‘영감쟁이’라 불렸다. 그는 “워낙 부잣집이라 과객도 많고, 가정교사도 있었던 때문인지 아는 것도 많았고 어린 나이에 달관한 듯한 태도였다”고 말한다. 중 1때 종로구 원서동 휘문고 옆 행림서원에서 구입한 버트런드 러셀의 ‘철학은 무엇인가’를 읽고는 친구 강신표에게 건넨 황병기였다. 황병기는 어느 인터뷰에서 ‘어떤 인물로 기억되고 싶으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나는 이제 죽겠죠. 그러면 그걸로 사라졌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유언에 제 무덤이나 비석이나 이런 걸 일절 만들지 말라고 했어요. 죽음 다음에까지 기억되고 그러는 것을 원하지 않아요.” 논어의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기쁘지 아니한가’란 대목을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고 가야금과 더불어 살아온 명인다운 말이다.
  • 강남구 장애인 직업재활센터, 통합지원센터로 탈바꿈

    강남구 장애인 직업재활센터, 통합지원센터로 탈바꿈

    서울 강남구 수서동에 위치한 장애인 직업재활센터가 다양하게 늘어난 장애인 복지수요에 발맞춰 리모델링된다.구는 153억 6000여만원의 구비를 들여 기존 2층짜리 건물을 7층으로 증축하는 공사를 실시한다고 31일 밝혔다. 인프라 확충과 동시에 복지서비스를 통합 제공하는 장애인 통합지원센터로 바뀌는 것이다. 구는 앞서 지난해 1월 정밀안전진단과 내진성능평가를 마쳤다. 지난해 11월 설계용역을 진행했으며, 이달 안에 착공해 내년 7월 준공할 계획이다. 지하 1층, 지상 7층 9570.97㎡(2895.2평) 규모의 장애인 통합지원센터에는 직업적응훈련장·근로작업장(3층)과 발달장애인 평생교육센터·장애인 가족지원센터(4층)이 새롭게 들어선다. 또 5·6층에는 장애인복지관과 장애인전용 다목적 강당을 설치해 수서·세곡 지역의 늘어난 복지수요를 충당할 방침이다. 6층에 설치되는 강당은 외부활동이 제한된 장애인을 위한 체육시설로 쓰인다. 구는 장애유형, 정도, 특성을 고려한 맞춤형 편의제공 사업을 실시 중이다. 근거리 무선통신 기술인 ‘비콘’을 활용한 시각장애인 무장애길 조성, 시각장애인을 위한 강남구 내 외식업체 대상 점자메뉴판 보급 사업, 강남 인터넷 강의를 활용한 청각장애인 온라인 학습환경 조성 사업 등이다. 이규형 사회복지과장은 “이번 공사를 통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상호 깊은 이해와 관심을 가지고 더불어 생활하는 강남을 만들어 갈 수 있도록 장애인 배려 정책을 적극 추진하고 장애인이 모든 영역에서 차별을 받지 않는 따뜻한 환경을 만들어 가겠다”고 말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씨줄날줄] 고속도로 무료 통행/서동철 논설위원

    [씨줄날줄] 고속도로 무료 통행/서동철 논설위원

    얼마 전 강원도 삼척에 다녀오던 때의 이야기다. 휴일 교통체증을 피해 오전 6시 반쯤 서울을 출발했다. 중부와 영동고속도로를 거쳐 강릉에서 동해고속도로로 갈아타고 죽서루에 닿기까지 238㎞를 달리는 데 3시간이 조금 넘게 걸렸다.그런데 오후 늦은 시간 서울로 돌아올 때는 상황이 달랐다. 내비게이션은 영동고속도로를 이용하는 것이나 국도를 타는 것이나 비슷하게 시간이 걸릴 것이라 안내했다. 삼척에서 태백을 거쳐 제천까지는 국도, 다시 평택~제천 고속도로, 중부내륙고속도로, 영동고속도로, 중부고속도로를 이용해 서울로 오는 데 6시간이 훨씬 넘게 걸렸다. 238㎞라고 했다. 영동 지역에 갈 때마다 교통 상황은 엇비슷하다. 최근 강릉에서 돌아오는 길에도 곳곳에 놓인 안내판이 일러주는 대로 우회 국도를 상당 구간 이용했다. 영동고속도로가 놓이기 전 강릉에 다녀오는 것과 다름없었다. 산 넘고 물 건너는 국도는 피곤하기는 해도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고속도로보다 달리는 맛이 있어 좋지 않으냐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평창동계올림픽을 유치했을 때도 평소에도 불편하기만 한 영동고속도로가 마음에 걸렸다. 그동안 서울~양양 고속도로가 완전 개통됐고, 서울~강릉 간 KTX 선로도 놓여 교통량 분산 효과가 적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삼척이나 강릉을 다녀온 경험에서 보듯 영동고속도로는 혼잡하기만 하다. 꽉 막힌 영동고속도로 걱정은 평창올림픽조직위원회도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 결과 승용차나 버스를 이용하는 관람객은 원주·횡성·동해·삼척·속초·고성·양양의 환승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개최 도시 환승 주차장과 경기장까지는 무료 셔틀버스를 이용토록 했다. 주어진 여건에서는 최선을 다한 교통 대책이다. 그런데 더불어민주당, 정부, 청와대가 어제 평창올림픽과 패럴림픽 기간 동안 8개 고속도로 요금소에서 통행료를 받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면온·평창·속사·진부·대관령·강릉·남강릉·북강릉 요금소다. 편의를 높여 티켓 판매 등 올림픽 참여도를 높이겠다는 취지일 것이다. 하지만 통행량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조직위원회의 교통 대책과는 완전히 거꾸로다. 차량 2부제로 교통량을 줄이겠다는 강릉시와 올림픽 성공을 위해 불편함을 참으려던 강릉시민들도 적지 않게 혼란스러울 것이다. 여기에 올림픽이 한창일 설 연휴 기간에도 전국 고속도로는 무료라고 한다. 인터넷을 달구고 있는 ‘선심’ 논란과는 별개로 올림픽 경기 일정에 문제가 없을지 걱정이다. dcsu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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