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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책선거 원년으로]공약을 보면 시대상이 보인다

    [정책선거 원년으로]공약을 보면 시대상이 보인다

    역대 대통령 선거에서 제시된 공약의 대부분은 엇비슷할 뿐만 아니라 장밋빛 일색이다. 이전 정부에서 이루지 못한 정책을 계속 가져다 썼고, 선심성 공약을 마구 베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약에서 당시 시대 흐름과 후보의 철학을 찾을 수 있다. ●의외로 진보적인 노태우 공약 1987년 6월 항쟁으로 어쩔 수 없이 직선에 나선 노태우 후보의 공약은 상당히 진보적이다. 비록 김영삼 정부에서 실현됐지만 전면적인 지방자치제 실시를 약속한 이는 노태우 후보였다. 밀폐수사 금지, 토지공개념 확대, 출자총액제한, 재벌의 소유·경영 분리, 작전지휘권 재조정 등이 진보적 공약으로 꼽힌다. 1987년 대선에서 민정당 정세분석실장을 맡아 공약 전반을 기획했던 최병렬 한나라당 전 대표는 “당시 여당은 일단 정권을 연장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있었기 때문에 민주화와 인권 관련 공약이 우선시됐다.”고 회고했다. 인천국제공항, 경부고속철도, 서해안고속도로 등 굵직한 사회간접자본(SOC) 계획의 대부분도 이때 나온 공약이다. 동해안 국제공항, 서울~영동 고속철도 건설과 같은 무모한 공약도 나왔다. 당시 공약 개발의 기획자였던 전병민(현 한국정책연구원 고문)씨는 “전두환 정권은 물가를 잡느라 SOC 투자를 하지 못했다.”면서 “노태우 후보는 정부와 공무원의 역량을 총동원해 건설 공약을 내놓았다.”고 말했다. ●농촌에 발목잡힌 김영삼 공약 1992년 집권 여당인 민자당의 김영삼 후보는 ‘개혁’에 초점을 맞췄다.‘후보자 본인 및 배우자 직계존비속 재산공개’를 첫번째 공약으로 내세울 만큼 강한 의욕을 보였다. 집권 이후 이 공약을 지켰고, 대통령의 재산공개는 현재 1급 이상 고위공직자 재산공개 제도의 기틀을 마련했다. 김영삼 후보는 특히 농촌 공약에 많은 신경을 썼다. 당시 농촌은 우루과이라운드(UR)의 거센 쌀 시장 개방요구에 직면해 있던 터였다. YS는 공약집에 ‘쌀은 수입하지 않는다.’고 공언했고, 노태우 정부가 말기에 추진했던 10년간 42조원이 투자되는 농어촌구조개선 사업을 공약으로 계승했다. 그러나 결국 1995년 12월 UR협상이 타결돼 야당과 농민으로부터 ‘정권퇴진’의 압력에 시달려야 했다. ●IMF·자민련 변수에 얽매인 김대중 공약 김영삼 정부 막판에 터진 외환위기 사태는 김대중 후보가 대통령의 꿈을 이루는 중요한 계기가 됐지만, 자신의 경제철학이었던 중산층·서민을 위한 ‘대중경제론’을 접어야 하는 원인으로 작용했다. 금융실명제 유보와 출자총액제한제도의 제한적 적용 등 이전 정부보다 후퇴한 경제정책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대선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정책위 의장이었던 김원길 한국여자농구연맹 총재는 “악마의 돈도 마다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회고했다. 보수적인 자민련과 ‘후보 단일화’를 약속하는 바람에 내각제 개헌을 공약에 포함시켜야 했다. 김대중 후보가 가장 자신감을 보였던 통일공약보다는 ‘북한의 군사적 위협 억제’와 같은 안보공약이 우선했다. 남북정상회담 개최는 공약집 끝머리 항목 ‘남북기본합의서에 기초한 남북관계 개선’의 괄호 속에서 겨우 찾을 수 있을 만큼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분배·성장이 충돌한 노무현 공약 노무현 후보의 공약은 토론의 산물이다. 공약 입안에 가담했던 브레인들은 “정책 브레인 사이에 치열한 논쟁을 거쳐 공약이 완성돼 갔다.”고 전한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정치인 위주로 꾸려졌던 이전 정부와 달리 모두 진보적인 학자로 채워진 데서도 정책에 대한 참여정부의 깊은 관심을 찾을 수 있다. 처음 공약을 입안했던 장하원·유종일·서동만·정해구·유시민·정태인 등 진보적인 학자들은 북유럽형 사민주의와 사회대타협, 차별철폐, 분배에 무게를 뒀다. 역대 후보들의 단골 공약인 ‘작은 정부’는 신자유주의적이라는 이유로 배제됐다. 부동산 개발을 통한 경기 부양책도 언급되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성장정책이 추가됐다. 연 7% 성장이 공약으로 나오자 일부 학자는 결별을 선언하기도 했다.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을 지낸 정태인 성공회대 교수는 “선거가 가까워지고, 야당의 이념공세가 거세지면서 성장형 공약이 많이 개입됐다.”고 소개했다. 노 대통령의 전매특허인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 공약도 처음에는 동북아 국가간 연대에 무게중심을 뒀다. 하지만 물류허브(중심), 금융허브 등 경쟁·성장정책이 끼어들면서 ‘동북아 중심국가’로 변해 갔다.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이정우 경북대 교수 등이 현 정부 비판의 선두에 선 것도 노 대통령의 공약과 정책이 그만큼 논쟁적이었다는 것을 방증한다. 이창구 김민희기자 window2@seoul.co.kr
  • 오산리유적 박물관 26일 개관

    강원 양양 오산리유적은 한국 신석기시대 연구의 메카나 다름없는 곳이다.1977년 남대천에서 가까운 자연호수인 쌍호(雙湖)를 농지로 전용하기 위해 작업을 벌이다 토기와 석기가 무더기로 나왔다. 이후 6차례에 걸쳐 지표조사를 거쳐 서울대 조사단은 1981년부터 1987년까지 본격적인 학술발굴조사를 벌이게 된다. 오산리유적에서 나온 유물은 탄소연대측정 결과 하한이 지금으로부터 8000년전인 BC6000년으로 나왔다. 당시까지만 해도 한반도의 신석기는 연해주를 기원지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오히려 연해주보다 1000∼2000년이 앞서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신석기 문화 전파 경로를 규명하는데 결정적인 자료로 평가받으면서 오산리유적은 1997년 사적으로 지정되고, 선사박물관 추진 계획도 본격화된다.2001년 11월 착공된 선사박물관 건물은 2005년 9월 완공됐다. 오산리선사유적박물관이 내부 전시시설을 마무리하고 26일 정식으로 문을 연다. 쌍호에서 신석기유적을 처음 확인한 지 30년만이다. 박물관 내부는 1080㎡의 전시실을 비롯하여 기획전시실, 수장고, 세미나실로 이루어졌다. 오산리를 비롯한 일대의 유적에서 출토된 선사유물 450점을 전시하는 등 영동지역의 선사문화 양상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2009년까지는 100억원을 더 들여 체험시설과 탐방로도 설치한다. 양양군은 26일 오후 2시 열리는 개관식에서 오산리유적의 발굴을 주도한 임효재(한국전통문화학교 초빙교수) 전 서울대 교수와 유적의 보존에 공이 큰 고경재 전 양양문화원장 등에게 감사패를 주기로 했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고려청자 수천점 900년만에 ‘햇빛’

    최소한 8000점 이상의 청자를 싣고 전남 강진의 가마에서 개경(지금의 개성)으로 가다 침몰한 것으로 추정되는 고려시대 화물선이 충남 태안반도 앞바다에서 발견됐다. 고려왕실과 사원에서 쓰던 최고 수준의 청자를 적재하고 있다는 점에서 1976년의 신안유물선 이후 최대의 수중 발굴로 기록될 전망이다. 국립해양유물전시관은 지난 5월18일 주꾸미를 잡던 어민이 고려청자를 수습한 충남 태안군 근흥면 정죽리 대섬 앞바다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이 배를 확인했다고 24일 발표했다. 유홍준 문화재청장은 “이번에 발견된 청자는 고려 인종·의종 연간의 전성기 것으로 실생활에 쓰여진 것으로는 최고급품”이라면서 “육안으로 2000여점을 확인했으며, 묶음으로 쌓여 있고 주변에도 흩어져 있어 최소한 8000점에 이를 것”이라고 말했다. 도자기 전문가인 윤용이(문화재위원) 명지대 교수는 “이번에 발견된 뚜껑이 달린 통형청자는 1146년 경기 장단에 있는 고려 인종의 장릉에서 나온 것과 그대로 닮아 있다.”면서 “이 배의 침몰시점을 12세기 중후반으로 잡는데 중요한 자료”라고 설명했다. 수중 탐사 결과 청자 운반선은 동서 방향으로 가로누워 있었다. 선체 잔해는 동서 7.7m, 남북 7.3m에 걸쳐 뚜렷하게 남아 있다. 옛선박 전문가인 최항순 서울대 조선공학과 교수는 “고려시대 선박은 길이가 폭의 3.3배에서 3.5배 정도”라면서 “이 배는 최장 25m의 길이에 총톤수 200t에 근접하는 크기”라고 추정했다. 그는 특히 “이런 정도의 크기라면 도자기를 7단으로 적재할 수 있는 만큼 한 단에 2000점을 쌓았다면 1만 4000점 정도가 실렸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문화재청은 침몰선이 발견된 대섬 앞바다를 사적으로 가지정하는 한편 8월부터 본격적인 발굴을 시작해 12월까지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태안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태안 앞바다 청자 침몰선 발굴·인양 현장

    충남 태안 앞바다의 고려시대 침몰선에 실려 있는 청자는 그동안 서남해안에서 잇따라 발굴이 이루어진 다른 침몰선의 그것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쉽게 말해 왕이나 귀족의 무덤에 껴묻거리로 특별히 제작한 청자를 예외로 한다면, 왕실과 귀족, 승려들이 실생활에 쓰던 것으로는 최고 수준이다. 실제로 2002∼2003년 군산 비안도와 2003∼2004년 군산 십이동파도,2006∼2007년 군산 야미도에서 모두 1만점이 넘는 청자가 수습되었지만, 도자기 역사를 규명하는데는 중요한 역할을 했음에도 모양과 빛깔은 그리 좋지 않은 중하급품이었다. 하지만 태안 대섬 청자는 아직까지 한 점이 인양된 참외형 주전자처럼 몇몇 특별한 형태가 아니라, 대종을 이루는 사발과 찻그릇이라도 하나하나가 박물관에 진열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기형이 뛰어나고 빛깔도 훌륭하다. 1983∼1984년 전남 완도 어두리의 12세기 고려선박에서 도자기 3만여점이 발굴된 적이 있음에도, 태안 대섬을 송·원대 도자기 2만 2000여점 등을 수습한 1976년의 전남 신안 중국 무역선 이후 최고의 수중발굴이라고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윤용이 명지대 교수는 “상감청자가 확인되지 않는 반면 상감청자의 전단계로 흰선을 그려 넣은 백니청자가 나온 것은 침몰연대를 파악하는데 도움을 준다.”면서 “사발과 대접, 접시, 찻그릇은 물론 승려가 쓰던 바릿대까지 다양한 그릇이 쏟아져 청자의 편년에 결정적 도움을 줄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편 침몰선이 발견된 태안 대섬 해역은 신진항에서 3㎞ 남짓, 국방과학연구원이 마주 보이는 육지와는 불과 1㎞도 떨어지지 않았다. 주꾸미 어장으로 각종 선박이 빈번하게 오가는 데다 스킨스쿠버를 즐기는 사람도 많아 고려시대 선박이 그동안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을 불가사의하게 여기는 분위기이다. 태안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도난문화재 거래 원천봉쇄

    문화재청은 도난문화재의 거래에 민법상 ‘선의 취득’ 규정을 적용하지 않도록 문화재보호법을 개정해 27일부터 시행한다. 그동안은 도난문화재나 유실된 문화재라 하더라도 사들인 뒤 일정 기간이 지나면 선의 취득 규정에 따라 소유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문화재청은 또 1999년 이후 신고제로 운영하던 문화재 매매업을 허가제로 전환하는 한편 매매업자의 자격기준도 크게 강화한다. 문화재청은 “문화재사범은 공소시효가 지나도 처벌할 수 있도록 했음에도 문화재 도난이 오히려 늘어났다.”면서 “선의 취득 규정이 문화재 도난을 방조하고, 장물을 알선하는 일부 문화재 매매업자의 수준에도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법을 개정했다.”고 밝혔다.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신진작가 10명의 ‘열’전

    “학교에서 배운 것보다 훨씬 생동감 있고 실질적이어서 좋았어요.(권경환)”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운영하는 인사미술공간이 올해로 3회째 신진작가 10명을 배출했다. 서울 원서동 인사미술공간에서 열리고 있는 ‘열’전(8월26일까지)에는 1977년생부터 1983년생까지 그야말로 풋풋한 ‘새내기’ 작가 10명이 수줍게 열정을 드러낸다. 인사미술공간은 워크숍을 통해 2005년부터 ‘미술계에서 전업작가로 살아남기 위한 필수교육’을 실시하고 있다.미술대학과 큐레이터 등으로부터 추천받은 작가 25명 가운데 10명을 뽑아 넉 달간 ‘신진작가수첩’ 워크숍을 진행했다. 포트폴리오 작성법, 글쓰기의 실제, 국내외 레지던시(작가 입주 창작 프로그램) 활용, 지원금 신청서 작성요령 등 학교에서는 좀처럼 접하기 어려운 살아 있는 교육이다. 인사미술공간의 강성은 큐레이터는 “인맥에서 벗어나 공공기관에서 제도적으로 작가들이 성장할 수 있는 인프라를 제공한다는 취지”라고 프로그램의 의의를 설명했다.지난 2005년 신진작가수첩에 참여했던 김보민은 이제 홍콩 크리스티경매, 스페인 아르코 아트페어 등에서 활약하는 국제적인 작가가 됐다. 또 2006년 참가한 진기종은 아라리오 갤러리 전속작가가 됐고, 안정주는 핀란드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이제 막 미술계에 조심스레 발을 내딛는 작가들의 재기발랄한 작품은 한국 미술의 미래를 가늠해 보게 한다. 올해 신진작가수첩에 참여한 권경환(30)은 인터넷으로 내려받은 검은 화면에 흰색 연필로 미사일의 불빛과 하얀 연기를 그려넣은 사뭇 실험적인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 바로 그 지점에서 작가의 상상력은 빛을 발한다. 이소정(28)은 한지 바탕에 수묵으로 그린 ‘나는 엄마에게 물었습니다’라는 작품을 냈다. 스스로 ‘마마걸’이라고 고백하는 작가는 이를 통해 한국 성인 여성이 겪는 억압을 표현한다. 이밖에 관광엽서나 관광객의 비디오를 편집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거나(함혜경), 아바타 그림 위에 불투명 유리를 씌운(손서현) 작품도 눈길을 줄 만하다.(02)760-4722.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경국대전 등 문화재 6건 보물 지정

    문화재청은 조선조 통치체제의 대강을 규정한 기본 법전인 ‘경국대전(經國大典)’을 비롯한 6건의 문화재를 보물로 지정했다고 20일 밝혔다. 보물로 지정된 ‘경국대전’은 1471년 펴낸 권3의 예전(禮典)으로 현존하는 ‘경국대전’의 여러 판본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다. 이밖에 ▲선국사 건칠아미차불좌상 및 복장유물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 권1 ▲묘법연화경삼매참법 권상 ▲대불정여래밀인수증다라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 권1 ▲영산회상도가 보물로 지정됐다.서동철기자 dcsuh@seoul.co.kr
  • ‘보편주의 함정’ 벗어나기

    ‘신앙 공동체에서만, 혹은 그 내부에서만 대화를 하겠는가?아니면 신성은 모든 것을 포괄한다는 믿음에 따라 바깥에 있는 사람들의 하느님을 추구하는 행위에도 흠이 없는 고결함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겠는가?’ 런던의 유대인대학 총장을 역임한 종교학자 조너선 색스는 종교에 헌신하고 있는 전 세계 사람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하지만 그 대답이 긍정적일 수 없다는 것을 그 자신부터가 너무나 잘 안다.‘종교란 그것이 해답의 일부가 되지 않으면, 문제의 일부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차이의 존중-문명의 충돌을 넘어서’(조너선 색스 지음, 임재서 옮김, 말글빛냄 펴냄)는 책의 제목이기도 하지만, 전 세계가 겪고 있는 종교간 갈등을 치유할 수 있는 최종적이고 유일한 처방이기도 하다. 지은이는 최근 세계 주요 종교의 부흥은 자유주의적인 신앙보다 보수적인 신앙 위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설명한다. 보수적인 종교운동의 힘은 현대성에 저항하는 데서 나타나는데, 그것은 세계 자본주의가 낳은 부작용에 대한 깊은 환멸을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부작용이란 불평등과 소비주의, 착취, 만연한 빈곤과 질병에 대한 대처 능력 부족, 지역의 전통과 문화를 무시하는 구제불능의 둔감함, 물질적 풍요와 나란히 가는 영혼의 빈곤함이다. 그 결과 열성 신도를 끌어모으는 동력은 현대적인 종교의 모습이 아니라 저항으로 특징지어지는 종교의 반현대적인 모습에서 나오게 되었다고 분석한다. 지은이는 오늘날 문명충돌의 근본적인 원인 제공자로 ‘진리나 궁극적 실재를 찾기 위해서는 특수성에서 보편성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는 플라톤 시대 이후 서구 사상을 지배한 패러다임을 지목한다. 오늘날은 세계 자본주의라는 보편적인 질서 속에 살고 있는데, 그것이 지역적이고, 전통적이고, 특수한 것을 위협한 결과가 9·11테러라는 것이다. 지은이는 이제 플라톤의 유령을 깨끗하게 몰아내어 지역적이고, 특수하고, 독특한 것에 대한 존중으로 보편주의의 균형을 잡아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하나의 문화나 종교의 이름으로 인위적인 통일성을 부과하려는 시도는 하나의 체계가 번창하기 위한 조건이 무엇인지를 오해한 결과라는 것이다.1만 5000원.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올 여름엔 중국을 읽자”

    올 여름휴가철 출판계의 화두는 단연 중국이다. 중국에 대한 관심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지만 최근의 관심은 ‘미래의 잠재적인 강대국’ 수준을 훨씬 뛰어넘고 있다. 중국이 한국의 미래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되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게 한다. 중국물 열풍은 전방위적이다. 국내 역사학자들이 참여한 중국사가 새로 집필되고, 서구인의 시각으로 서술된 만리장성의 역사도 나왔다. 중국이 세계 시장에서 보여주고 있는 무서운 추진력을 우려 섞인 시선으로 바라보는가 하면, 중국의 문화를 들여다보며 그 바탕을 이해하려는 노력도 줄을 잇고 있다. 최근 발간된 중국 관련서를 소개한다. ‘아틀라스 중국사’(김병준 등 지음, 사계절 펴냄,2만 7000원)는 중국사에 대한 우리의 지식은 초보적이라는 반성에서 출발했다. 각 시대사의 전문가인 김병준 한림대 교수가 고대, 박한제 서울대 교수가 중세, 이근명 한국외국어대 교수가 근세 전기, 이준갑 인하대 교수가 근세 후기, 김형종 서울대 교수가 근현대를 나누어 썼다. 나열식을 배제한 글맛 나는 글쓰기와 128컷의 역사지도,155개 도판이 이해를 돕는다. ‘장성, 중국사를 말하다’(줄리아 로벨 지음, 김병화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펴냄,1만 8000원)는 ‘오랑캐’와 ‘중화’를 갈라온 만리장성에 대한 집착과 그에 읽힌 일화로 이른바 중화주의의 실체를 드러낸다.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중국사로 박사학위를 받은 지은이는 “진시황의 만리장성은 최근에 만들어진 신화일 뿐 몇 천년 된 만리장성이란 없다.”고 주장한다. ‘중국이 뒤흔드는 세계’(제임스 킹 지음, 최규민 옮김, 베리타스북스 펴냄,1만 7700원)는 독일 철강산업의 자존심과도 같았던 루르강변의 제철소는 통째로 뜯어다 양쯔강 하구에 재조립한 중국기업이 등장한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와 로이터통신의 아시아 특파원으로 20년 동안 중국을 취재한 지은이는 중국이 뒤흔드는 세계가 곧 눈앞에 펼쳐질 것이라고 장담한다. ‘동양적 가치의 재발견’(위잉스 지음, 김병환 옮김, 동아시아 펴냄,1만 2000원)은 동양문화가 현대인의 삶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설명했다. 하버드대 출신의 중국 역사학자인 지은이는 동양인들이 미래 세계 문화의 창생 과정에서 공헌을 하려면 반드시 계속하여 자신이 이미 갖고 있는 정신자원을 발굴하고, 자신이 이미 이룬 가치체계를 갱신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자 속 과학 이야기’(다이우싼 지음, 천수현 옮김, 이지북 펴냄,1만 3500원)는 ‘한자는 인간의 역사와 함께 진화한다.’고 역설한다. 한자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상형문자인데, 옛사람들이 관찰과 사고를 통해 객관적인 사물을 간략하게 묘사한 것이다. 따라서 상형문자는 옛사람들이 이룩한 수많은 창조와 발명을 다채롭고 생동감 넘치게 보여 준다는 것이다. ‘제갈량 문화유산답사기’(제갈량 편집팀 지음, 허유영 옮김, 에버리치홀딩스 펴냄,1만 5000원)는 중국 최고의 지략가인 제갈량이 남긴 역사의 흔적을 따라간다. 그가 17세부터 54세까지 지났던 삶의 발자취를 찾아보며 21세기적 사고방식으로 제갈량의 현대적 의미를 재조명한다. 이밖에 사마천의 ‘사기(史記)’에 나타난 치인전략에서 교훈을 얻어보자는 ‘사기의 인간경영법’(김영수 지음, 김영사 펴냄,1만 6000원)이나 최근의 중국차 열풍 속에 중국 차문화의 발상지를 찾아간 ‘무이암차-녹차 청차 홍차의 뿌리를 찾아서’(맹번정 박미애 지음, 이른아침 펴냄,1만 5000원), 중국 고대의 성·가족문화를 해부한 ‘혼인의 문화사’(김원중 지음, 휴머니스트 펴냄,1만 5000원)도 중국 붐에 가세하고 있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어떤 제목이 독자와 통할까

    다양한 미디어가 날마다 수많은 콘텐츠를 쏟아내며 경쟁하고 있다.‘무엇을 전달할 것인가.’보다도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가 더 중요한 문제가 됐다. 어떠한 콘텐츠라도 내용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제목이 달리지 않으면 독자의 선택도 없다. ‘클릭을 부르는 인터넷 뉴스 헤드라인’(박희석 지음, 커뮤니케이션북스 펴냄)은 좋은 제목을 달아 잡다한 정보들 틈에서 보석 같은 기사를 골라 읽도록 도와주는 방법을 일러준다. 서울신문 온라인뉴스부 전문위원인 지은이는 20년 이상을 ‘제목달기’에 고심한 종합편집부장 출신. 그는 “인터넷으로 독자들을 만나기 시작하면서 제목의 표현 하나하나에 반응이 폭발적으로 달라지는 것을 체험할 수 있었다.”면서 “제목을 통해 독자와 상호작용하는 길을 모색하고자 이 책을 썼다.”고 밝혔다.1만 5000원.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48인 인생행로 바꾼 명저들

    레이프 에스퀴스는 24년 동안 로스앤젤레스의 빈민가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호바트 불르바 초등학교는 90%가 극빈층이었고, 영어가 모국어인 아이는 한 사람도 없었다. 전원이 무료급식으로 아침과 점심을 해결해야 했다. 교사가 되기 전 레이프가 가장 좋아한 책은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이었다. 인종차별과 폭력, 위선으로 가득찬 사회를 따돌리듯 달아나며 펼치는 여정이 감동적이었다. 하지만 교사가 된 그에게 허크는 정답이 되지 못했다. 허크식 해법은 교실에서 절대로 달아나서는 안 되는 그에게는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 아내가 권하는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를 펼쳐들었다. 이미 몇 차례 읽었지만, 그동안 알고 있던 ‘백인 여성을 강간했다는 혐의를 뒤집어 쓴 흑인 남자를 통해 정의를 되찾는 스토리’보다 훨씬 많은 것을 이야기하고 있음을 깨달았다고 한다. 변호사 애티커스는 사건을 수임하고 아이들이 “이길 것 같아요?”라고 묻자 조용하게 “아니….”라고 대답한다. 하지만 애티커스는 떠나지 않고 법정으로 걸어들어가 투쟁한다. 책을 읽던 레이프는 자신도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그에게는 교실이 바로 법정이었다. 좋은 교사란 포기하지 않는 교사라는 것이다. 그는 정말 멋진 선생님이 되고 싶다면, 아이들이 이렇게 되었으면 하고 바라는 사람이 되겠다고 결심한다. ‘내 인생을 바꾼 한 권의 책’(잭 캔필드, 게이 헨드릭스 지음, 손정숙 옮김, 리더스북 펴냄)에 실려있는 이야기이다. 레이프가 교육현장에서 어려움을 느끼고 돌파구를 찾아가는 과정은 한국의 평범한 교사들과 다르지 않다. ‘내 인생…’의 집필에 참여한 48명은 나름대로 미국에서는 배우·작가·변호사·경영자·환경운동가·방송인 등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지만,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는 않다. 게다가 ‘허클베리 핀의 모험’이 좋은 책이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감동을 주지 못할 수도 있듯이,‘앵무새 죽이기’ 같은 책들이 누구나 꼭 읽어야 하는 명저라고 강변하지도 않는다. 다만 인생을 변화시키는 힘을 가진 존재는 책이 아니라 독자 자신이라는 사실을 일러준다. 스스로 깨닫고 실행하는 것만이 인생을 바꾸는 힘이 된다는 것이다.1만 3000원.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최병현 고고학회장이 본 ‘매장문화재 조사 개선안’

    최병현 고고학회장이 본 ‘매장문화재 조사 개선안’

    고고학계가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다. 대외적으로는 문화재청이 추진하고 있는 ‘매장문화재 조사 제도개선 방안’이 개선이 아닌 개악이라며 철회를 요구하는 강경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런가 하면 현재 감사원 감사를 받고 있는 전국 30여개의 발굴조사 전문기관 대부분은 ‘조사원 중복투입’처럼 실정법에 어긋난 그동안의 관행에서 자유롭지 못한 형편이다. 한국고고학회 회장을 맡고 있는 최병현(59·문화재위원) 숭실대 사학과 교수는 논란의 중심에 서 있을 수밖에 없다. 최 교수는 “개인 비리가 있다면 반드시 바로잡아야 할 부분”이라면서도 “하지만 비리가 발굴 제도 체제에 근본적인 허점이 있어 빚어지는 문제라면 감사도 제도를 고쳐주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화재청이 중복발굴 권장 최 교수는 “대형발굴장 주변의 민원성 소형발굴에 대해 오히려 중복발굴을 권장했던 것이 문화재청이고, 나를 비롯한 문화재위원들”이라면서 “문화재청이 요청하는 중복발굴에 뛰어들었던 발굴기관들이 낭패를 당하고 있는데도, 그렇게 만든 당사자는 나 몰라라 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 교수는 1973년부터 10년 남짓 당시 문화재관리국 문화재연구소 소속으로 경주에서 천마총, 황남대총, 안압지, 황룡사를 발굴하며 현장경험을 쌓아 문화재청이 ‘친정’이나 다름없다. 뿐만 아니라 현직 문화재위원회 매장문화재분과위원으로 ‘제도권’에 몸을 담고 있는 탓인지 그의 문화재청 비판에는 비장함마저 느껴졌다. 중복발굴이란 같은 조사원과 장비를 2곳 이상의 발굴현장에 투입하여 조사비를 더 많이 타내는 것. 지난봄, 한 발굴조사기관의 원장과 학예조사실장이 구속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최 교수는 “법의 칼을 갖다대면 범죄지만 중복발굴을 하지 않으면 발굴조사기관은 운영이 되지 않고, 발굴 수요에 맞춰갈 수도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발굴요원 일당 현장인부보다 적어 문화재청이 고시한 올해 ‘매장문화재 조사 용역 대가기준’은 대학을 졸업한 보조원이 하루 6만 4821원으로 7만 4000원인 현장인부보다도 적다. 그것도 중복발굴을 하지 않으면 인건비에서 기관운영비까지 일정부분 떼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고고학계가 반발하고 있는 문화재청의 매장문화재 제도개선 방안은 ▲사전 문화재 지표조사가 필요한 사업대상지를 3만㎡ 이상에서 10만㎡ 이상으로 늘리고 ▲발굴일수 100일 이상이면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받아야 하던 것은 200일 이상으로 늘리며 ▲1만㎡ 이하의 발굴허가권은 시·도로 넘기는 것을 주요내용으로 한다. 고고학계는 수도권 신도시와 행정도시, 혁신도시, 기업도시의 동시 추진으로 조사인력이 크게 부족하여 개발일정에 차질이 빚어질 것을 우려한 조치로 보고 있다. 최 교수는 “한해 1000건 남짓 발굴이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치는 것은 한달에 10∼20건 정도”라고 했다. 발굴 요건을 완화하면 사업자들이 발굴일수는 180∼190일로 조정하고, 발굴면적은 10만㎡ 이하로 쪼개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받는 개발사업은 사라지고 개발지역의 유적은 대부분 파괴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권한 지방이양시 민원에 밀릴 것 그는 또 “균형발전을 위한 권한의 지방이양은 이론적으로는 좋은 이야기지만 규제를 목적으로 하는 문화재보호법과는 근본적으로 상충되는 것”이라면서 “지역의 민원해결이 가장 중요한 역할인 시도지사가 당장 다음 선거에 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문화재 보호에 나설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게다가 당초 문화재청이 마련한 19개항 가운데는 ▲발굴조사 이후 보존 결정이 내려진 유적의 토지를 국가가 사주는 ‘토지매수청구권’과 ▲지표조사비와 발굴조사비의 국고지원을 확대하는 등 글자 그대로의 개선안도 없지 않았지만, 기획예산처의 반대로 삭제된 것도 안타까운 일이라고 했다. 최 교수는 “지금처럼 개발수요가 한꺼번에 밀어닥치는 상황에서 매장문화재 조사의 수요와 공급을 맞추기란 어느 시대, 어느 나라도 불가능하다.”면서 “결국 문화재청이 개발에 따른 정부 일각의 압박에 굴복하여 문화재 파괴를 조장할 것이 아니라 중심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27) 경북 풍기읍 용두 당간머리장식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27) 경북 풍기읍 용두 당간머리장식

    1977년 어느날, 국립경주박물관에 기차편으로 가마니에 싼 무거운 수하물 하나가 배달되었습니다. 풀어보니 황금빛이 찬란한 용의 머리로, 당간(幢竿)의 꼭대기를 장식했던 것이었습니다. 지금은 국립대구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는 금동용머리는 경북 영주군 풍기읍에서 하수도 공사를 하다가 발견되었지요.9세기 통일신라시대 것으로 높이가 65㎝에 이르러 당당한 모습입니다. 당간이란 ‘절 앞에 세워 불·보살의 위신과 공덕을 표시하고 벽사적인 목적으로 당(幢)이란 깃발을 달기 위한 깃대’라고 작고한 고고미술사학자 김원룡 선생은 정의했습니다. 풍기의 금동용머리에는 턱밑의 공간에 도르레를 만들어 놓았지요. 깃발을 달기 위한 장치이니 당간의 일부분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셈입니다. 당간은 대부분 사라져 좀처럼 보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당간지주(幢竿支柱)는 절의 들머리에서 쉽게 만날 수 있지요. 두 개의 석재를 위로 올라갈수록 갸름하게 깎아 마주세워 놓은 당간지주는 보통 쇠로 만든 당간을 튼튼하게 고정시키는 구실을 합니다. 풍기에서 가까운 부석사와, 소수서원이 들어선 숙수사터에도 훌륭한 통일신라시대 당간지주가 남아있습니다. 그러니 풍기읍내에서 찾아낸 용머리 장식을 부석사나 숙수사와 연결지어 상상해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겠지요. 미술사학자인 강우방 이화여대 교수는 당간과 당간지주에 깃발까지 갖춘 건조물 전체를 ‘삼국유사’에 나오는 대로 법당(法幢)이라고 부르자고 제안했습니다. 단순히 절의 존재를 알리는 표시에 그치지 않는 신앙의 대상이었다는 점에서 적절해 보이는 이름입니다. 충남 공주 갑사와 충북 청주 용두사터에는 당간이 상당 부분 남아있어 풍기의 용머리 장식과 연결지으면 완전한 법당의 위엄있는 모습을 짐작할 수 있겠지요. 두 당간은 모두 철제 원통을 연결하여 만들었습니다. 용두사 것은 64㎝ 높이의 원통 20개가 남아있는데, 당간에 새겨진 ‘용두사철당기(龍頭寺鐵幢記)’에 따르면 당초엔 30개였다고 하지요. 원통 높이만 19.2m에 이르니 기단에 용머리 같은 장식이 더해지면 20m를 넘었을 것입니다. 법당은 중앙아시아와 중국에서도 만들어졌지만, 중국에서 통일신라시대에 해당하는 것은 둔황 막고굴(莫高窟) 제331굴의 것이 유일하다고 합니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통일신라시대 당간만 23기에 이르고 고려·조선시대 것을 모두 합치면 수백기가 당간지주로 흔적을 남겨놓고 있습니다. 절에 불상과 석탑이 있어야 하는 것처럼, 절의 입구에는 법당이 당연히 서 있어야 한다는 인식이 퍼져있었다는 뜻이겠지요. 이렇듯 한국이 ‘법당의 나라’가 된 것을 두고 한국고대사를 전공한 신종원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전통적인 천신(天神) 숭배와 연관지어 해석합니다. 요즘도 강원도를 비롯한 몇몇 지역에서는 당간을 짐대라고도 부르는데, 짐대란 마을의 안녕과 농사의 풍요를 기원하며 마을 입구에 세우는 솟대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입니다. 신 교수는 통일신라시대에 현재와 같은 법당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솟대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의 목재 당간이 세워졌을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전통적인 천신은 불교가 수용되고 나서도 존엄을 잃지 않았는데, 솟대가 마을 어귀에서 내부를 성역화하듯 당간에도 절이 차지하고 있는 사역(寺域)을 성역화하는 역할을 부여했다는 것입니다. dcsuh@seoul.co.kr
  • 지자체들, 혁신도시 특성화 올인

    지자체들, 혁신도시 특성화 올인

    전국 10개 혁신도시가 지역 여건과 특성을 살린 ‘맞춤형 도시’로 조성된다. 건설교통부, 국가균형발전위원회와 이전 기관들이 정한 도시 건설의 기본 틀에다 지방자치단체의 견해가 접목된 형태다. 아직 결정을 하지 않은 지자체들은 건설 내용을 조율 중이다. 17일 지방자치단체에 따르면 한국농촌공사와 전남 나주시는 최근 광주·전남 공동 혁신도시가 들어서는 전남 나주시 금천면 석전리에 15만㎡의 전원마을을 조성하기로 했다. 나주시의 건의에 따라 한국농촌공사가 352억원(국비 40%)을 들여 15만㎡의 부지에 76가구의 전원주택 마을 조성을 결정했다.2008년 5월 착공해 2009년 말 완공한 뒤 추첨해 30가구는 이주민, 나머지는 입주공공기관 임·직원을 배정한다. 이 전원마을에는 교육·문화·복지·의료 등에 걸쳐 최고급 서비스가 제공된다. 경남 진주시 호탄동·문산읍·금산면 일대 406만 3000㎡에 조성되는 진주혁신도시에는 진주종합운동장이 들어선다. 진주시는 2010년 전국체전 개최를 위해 21만㎡의 종합운동장 건립 부지를 혁신도시 내에 추가로 배치했다. ●원주는 웰빙도시로 강원 원주시는 원주시 반곡동 일대에 들어서는 혁신도시를 지역여건 및 이전기관 특성을 살려 ‘참살이’ 웰빙도시로 조성한다. 원주혁신도시에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국민건강보험공단, 한국관광공사 등이 입주하며 원주시는 혁신도시 건설 전부터 첨단 의료·건강도시 조성을 역점적으로 추진해 왔다. 원주시는 혁신도시안에 민자유치로 컨벤션센터도 건립할 계획이다. 울산 중구 우정동 함월산 중턱에 들어서는 혁신도시는 전국 최고의 경관도시가 될 전망이다. 울산시는 태화강이 한 눈에 바라보이는 전망좋은 곳에 띠 형태로 길게 위치한 혁시도시 입지여건을 최대한 살려 혁신도시 건설방향을 경관 중심의 에너지 절약형 도시로 정했다. 동서 방향으로 위치한 긴 생태 녹지축을 따라 그린 애비뉴(Green Avenue)를 조성해 도시중앙에는 공공기관을 배치하고 양측면에 주거 용지를 배치한다. 친 환경도시 울산의 이미지를 살려 혁신도시내 모든 건물·가로등 등 에너지가 필요한 시설에는 태양광·태양열·지열 등 이용 가능한 신재생 에너지 시설을 설치한다. ●대구는 모든 건물에 태양광 발전 시설 대구시에는 태양광을 이용하는 솔라시티 혁신도시가 들어선다. 동구 신서동에 조성되는 혁신도시 안 모든 건물에 태양광 발전시설을 설치하고 건물은 태양광을 최대한 많이 받을 수 있도록 모두 남향으로 배치한다. 대구시는 내년 예산에 5000만원의 확보해 혁신도시 신재생 에너지 공급시설 적정배치 등에 관한 용역을 발주할 예정이다. 전북 전주시는 농업·생명 중심도시로 조성되는 전주혁신도시에 인구 1만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중·저밀도의 3개 전원마을을 조성한다. 경북 김천시에 건설되는 혁신도시 한복판에는 생태습지와 교통공원, 에너지 파크 등을 갖춘 대규모 생태공원과 소공원(8개), 소하천(3개) 등을 배치해 친 자연환경 도시로 조성된다. 울산시 관계자는 “전국 자치단체마다 지역 이미지와 여건을 최대한 살리는 최고 여건의 혁신도시를 건설하기 위해 아이디어를 짜내고 있다.”고 말했다. 전국종합 울산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고려시대 ‘보협인다라니경’ 빛 보다

    고려 후기 불교조각사의 공백을 메울 수 있을 만큼 뛰어난 13세기 목조관음보살좌상이 경북 안동에서 발견됐다. 이 불상에서는 1007년(고려 목종 10년) 개경(개성) 총지사(摠持寺)에서 찍어낸 보협인다라니경(寶印陀羅尼經)을 비롯한 9종의 희귀 목판인쇄물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왔다. 더불어 비단으로 만들어진 여자용 저고리가 나와 고려시대 복식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문화재청과 대한불교조계종 문화유산발굴조사단은 2002년부터 추진하고 있는 불교문화재 일제조사 사업에 따라 안동 보광사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각종 유물을 확인했다고 16일 밝혔다. 박상준 조계종 조사단 문화재조사팀장은 “지난 5월29일 불상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몇몇 유물이 흘러내렸다.”면서 “확인 결과 내부에 봉안된 대부분의 복장유물은 사라졌고, 나머지도 훼손이 진행될 위험이 높아 부득이하게 수습조사를 벌였다.”고 설명했다. 학계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목조관음보살좌상은 높이 111㎝에 무릎 너비가 70.5㎝이다. 신라 금관을 연상시키는 화려한 보관을 비롯해 섬세하고 아름다운 장식으로 멋을 냈다. 손영문 문화재청 상임전문위원은 “12∼13세기 조각은 남아 있는 것이 많지 않다.”면서 “화려하게 꽃피운 고려시대 불교문화의 높은 품격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걸작”이라고 평가했다. 5개의 목판으로 이루어진 보협인다라니경은 32×45㎝ 크기의 종이에 각각 3개와 2개의 목판이 찍혀 있다. 소형 목판인쇄물을 이렇게 찍은 뒤 잘라서 연결하여 두루마리로 만드는 것이 보통이라는 점에서 목판인쇄물의 제작방법을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총지사 보협인다라니경은 월정사 석탑 출토품이 현재 보존처리되고 있으며, 일본도쿄국립박물관도 소장하고 있다. 국내 개인 소장품도 있으나 현재는 소장처가 알려지지 않고 있다.조사단은 이처럼 13세기 불상에 11세기 인쇄물이 봉안되어 있는 것은 다라니경을 비롯한 목판을 오랜 기간에 걸쳐 사용했기 때문으로 추정했다. 수습된 목판인쇄물은 다음과 같다.▲보협인다라니경 ▲범서총지집(梵書摠持集) ▲정원신역(貞元新譯)화엄경소 권6 ▲금강반야바라밀경 ▲백지묵서불설인왕반야바라밀경 ▲소전동(所詮童) ▲잡문 ▲범자(梵字)다라니 ▲인본(印本)다라니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조선왕실의궤 반환하라”

    일본 궁내청에 보관되어 있는 조선왕실의궤의 반환을 추진하고 있는 조선왕실의궤환수위원회가 일본 외무성을 방문해 의궤의 반환을 촉구키로 했다. 봉선사 혜문 스님과 월정사 법상 스님 등 환수위 대표단은 일본 참의원 외교방위위원회 소속 오가타 야스오(공산당 부위원장) 의원의 주선으로 17일 의궤 반환을 안건으로 일본 외무성을 찾는다고 16일 밝혔다.일본 외무성의 누구와 만날지는 아직 확정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오가타 의원은 지난 5월 일본 참의원 116회 외교방위위원회에서 아소 다로 외상에게 의궤의 반환을 강력하게 요구했다.오가타 의원은 환수위가 일본 국회에 의궤반환청원서를 제출한다면 자신이 대표소개의원으로 나서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궁내청에 있는 조선왕실의궤는 1922년 조선통감 데라우치 마사다케가 오대산 사고에서 보낸 것으로 명성황후국장도감의궤(明成皇后國葬都監儀軌) 등 72종에 이른다. 한편 환수위가 서울중앙지법에 일본정부를 상대로 의궤반환을 위한 민사조정신청서를 접수함에 따라 오는 24일 민사조정이 예정되어 있으나 일본쪽에서 응할지는 미지수다.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전신 화상 민영이 수술 성공할까

    민영이(6)는 3년 전, 시골 할머니 집에 놀러갔다가 펄펄 끓는 가마솥에 빠졌다. 기적적으로 목숨은 건졌지만 75%의 화상으로 피부가 딱딱하게 굳어지면서 관절까지 망가졌다. 하지만 민영이는 밝게 자라고 있다. 지난봄,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더욱 개구쟁이가 되었다. 햇빛을 피해 늘 집에만 있던 민영이에게도 함께 뛰어놀 친구들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쩍 밝아진 딸아이의 모습을 보는 아빠 박혁기(44)씨의 마음은 무겁다. 목 부분의 흉터가 성장에 장애가 되는 바람에 얼굴이 한쪽으로 기울어져 성장해 가고 있기 때문이다. MBC ‘닥터스’는 16일 오후 6시50분 ‘미라클’ 코너에서 수술을 앞두고 있는 ‘꼬마천사’ 민영이를 만나본다. 의료진은 이번 수술이 더욱 어렵고 위험할 것이라고 한다. 목 부위의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위해서는 여러 각도를 고려하여 피부를 이식해야 하는데, 피부의 상처가 깊기 때문이다. 민영이의 수술은 순조롭게 성공할 수 있을까. ‘응급실 24’는 경기남부권역센터인 아주대학교병원을 찾아 ‘응급실의 해결사’인 차수현씨를 만난다. 매순간 분초를 다투는 긴박한 응급실에서 문제가 생길 때마다 나타나는 이가 전공의 3년차인 차씨. 원인 모를 출혈로 쇼크 상태에 빠진 환자부터 한밤중 욕설과 난동으로 의료진을 바짝 긴장하게 만든 정체불명의 환자까지 ‘요리’하는 차씨의 활약을 담았다. 또 뛰어놀다 다리를 다쳤다는 6살 꼬마는 이미 모든 처치가 끝난 상태였다. 알고 보니 동네 의원의 치료가 미덥지 못했던 아버지가 다시 대학병원 응급실을 찾은 것. 여섯 번째 응급실 방문이라는 ‘꼬마악동’은 무사히 치료를 받고 돌아갈 수 있을까.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헤이그 특사 혼 서린 덕수궁 중명전 2009년까지 옛모습 되살린다

    정부가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고,1907년 헤이그 특사 파견이 결정된 덕수궁 중명전의 복원공사를 맡아 2009년까지 마무리짓기로 했다. 올해는 외부의 변형된 부분을 철거하고 지하층을 보수하며, 내년과 후년에는 내부 구조물의 원형복원과 외부 지형의 정비작업을 벌이게 된다. 중명전은 서울시가 2005년 복원공사를 시작했으나 예산부족을 이유로 중단했다. 문화재청은 본격적인 공사에 앞서 13일 중명전에서 헤이그 특사 파견 10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전 ‘대한제국 1907 헤이그 특사’의 개막식을 가졌다.9월2일까지 계속되는 특별전은 일제의 침탈 과정과 우리의 국권회복 노력을 23건의 역사적 유품 및 380점의 사진 자료로 보여준다. 이준·이상설·이위종 특사의 사진을 1면에 실은 1907년 7월9일자 ‘만국평화회의보’와 헤이그 특사 위임장 사본, 특사들이 묵었던 헤이그의 데용 호텔 사진 등이 눈길을 끈다. 배재학당이 소장한 아펜젤러 사진첩에 수록된 건립 초기 중명전의 모습과 1934년 잡지 ‘조선’에 실린 사진도 이 건물의 역사를 보여준다. 1897∼1901년에 황실도서관으로 건립된 중명전은 1904년 경운궁(현재의 덕수궁)의 대화재 이후 고종이 평상시 거처하는 편전이 됐으나 이후 외국인의 사교클럽, 민간회사의 임대사무실, 유료주차장 등으로 사용됐다. 김종수 궁능관리과장은 “중명전은 항일독립운동의 기폭제가 된 헤이그 특사의 역사적 의미와 활동상을 재조명하는 최적의 장소”라면서 “그동안 방치되다시피한 중명전에서 대한제국의 기구한 운명을 직접 체험하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주가 급등… 그러나, 거품은 아니다”

    2000포인트를 코 앞에 둔 현재의 주가가 거품은 아니지만 상승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지적이 많다. 이에 따라 증권업협회는 오는 16일 33개 회원 증권사 긴급 사장단 회의를 갖고 현재 주가 급등에 대한 대응방안을 논의하기로 했다. 13일 증협 관계자는 “너무 빨리 과열되는 시장 상황에 따라 개인 투자자가 추격 매수에 가담, 손실을 볼 수 있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회의가 열리게 됐다.”고 밝혔다. 굿모닝신한증권 정의석 투자분석부장도 “증시의 포트폴리오가 잘 구성돼 있어 업종별로 선순환이 되면서 업종이 돌아가면서 주가를 끌어올리고 있어 강세장 자체에 대한 문제는 없다.”면서도 “현재 증시의 상승 속도는 분명히 염려할 만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시장의 최대 악재는 다른 경제상황은 나아지지 않는데 주식시장이 홀로 너무 빨리 오르는 것. 그러나 전문가들 최근 주가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지만 기업실적 호조와 경기동향 등이 든든하게 받쳐주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코스피 상승률은 연초 대비 37%로 과거에도 이 같은 상승장이 있었다. 신영증권 김세중 투자전략팀장은 “코스피 2300포인트 이하에서는 버블을 논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김 팀장은 한국 증시의 중장기적 적정 주가수익률(PER)이 15배로 추정되는데 현재 12.4배라고 했다. 올해안에 PER가 15배로 오른다면 코스피 목표치는 2200,12개월 내에 도달하면 2300이다.신영증권은 우리 증시가 2009년 PER가 15배가 될 것이라고 봤으나 도달 시기가 빨라질 수 있다고 예상했다. 김 팀장은 “지금처럼 강력한 수급 보강으로 PER가 당장 15배로 상승한다고 해도 특별히 버블이라고 말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메리츠증권 심재엽 투자전략팀장은 “다음주 2000포인트를 넘어 추가 상승세가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심 팀장은 지수가 크게 상승했다고 차익실현에 나서지 말고 추가 매수에 나서는 게 바람직하다고 충고했다. 하나대투증권 서동필 연구원은 “금리인상에 이어 삼성전자 2분기 실적발표까지 주요 불확실성이 사라지면서 시장의 변동성이 줄어 소강국면에 들어설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서 연구원은 그러나 “1900포인트에서 들어오는 자금은 2000포인트를 바라보지 않으면 들어올 이유가 없는 자금이고, 조정 폭도 충분히 감내할 수 있는 수준에서 머물 것”이라고 덧붙였다. 조정은 불가피하지만 추가 상승여력은 충분해 보인다는 설명이다.전경하기자 lark3@seoul.co.kr
  • 14일 ‘이준 열사 순국 100주년’…헤이그 추모 열기

    14일 ‘이준 열사 순국 100주년’…헤이그 추모 열기

    |헤이그(네덜란드) 이종수특파원|‘1000년을 기억할 100년전 큰 죽음’ 14일은 100년 전 ‘망국의 한’을 호소하러 헤이그로 왔던 특사 3인 가운데 한 분인 이준 열사가 순국한 날이다. 열사의 추모식이 열리는 헤이그를 향해 12일 오전 파리를 출발했다. 파리 북역에서 초고속열차를 타고 벨기에 브뤼셀 미디역에서 내려 일반 열차로 갈아탄 뒤 4시간 만에 헤이그(Den Haag)HS역에 도착했다.100년 전 6월25일 이준, 이상설, 이위종 이른바 ‘헤이그 특사’ 세 분이 내린 곳이다. ●기념관 건물 입구 ‘태극기 휘날리며´ 한국 최초의 검사 이준은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전세계에 알리라는 고종의 밀명을 받고 대장정에 나섰다. 일제의 감시가 살벌해 조국 땅을 다시 밟을 수 없을지도 모르는 길이었다. 그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이상설·이위종 열사를 각각 만난 뒤 시베리아를 거쳐 독일 베를린, 벨기에 브뤼셀을 거처 64일 만에 HS역에 도착했다. 낯설고 어색한 풍경의 이국 거리를 지나갔을 열사 3인. 헤이그HS역 정면으로 난 길을 따라 10분쯤 걸어가니 와건스트라트(Wagenstraat)124A번지에 자리한 이준 기념관이 나왔다. 울분을 못이긴 열사가 순국한 드 용(De Jong) 호텔을 개조한 곳이다. 방문객을 맞은 것은 건물 입구에 당당하게 펄럭이는 태극기와 정문의 “이 집은 이준 열사가 순국하신 역사적인 집입니다.”라는 문구다. 좁고 가파른 나선형 계단을 올라가니 이기항 이준아카데미 원장과 송창주 이준기념관 관장이 ‘유럽 한민족 평화제전’을 준비하느라 분주했다. 독립기념관의 지원을 받아 이준기념관도 14일 재개관했다. 당시 만국평화회의는 6월15일부터 10월18일까지 열렸다.3인의 특사가 도착한 것은 6월25일. 기념관에서 걸어서 10분 떨어진 빈넨호프의 회의장에 도착했으나 일제의 방해로 회의에 참석할 수 없었다. 국권을 상실한 나라의 ‘슬픈 숙명’이었다. 주미 공사를 지낸 아버지 이범진을 따라 다니며 서양 문물에 일찍 눈을 뜬 이위종 열사가 기자회견을 열고 일제 만행을 고발하는 등 백방으로 노력하던 중 7월14일 이준 열사가 순국하면서 3인의 투쟁도 종지부를 찍는다. 이준 기념관에는 다양한 자료들이 ‘그날의 역사’를 증언하고 있다. 특사 3인의 이동 경로, 고종의 특사 신임장, 을사늑약 무효를 알리는 트리뷴지 기사…. 대부분 이 원장 부부가 손수 일본·러시아·네덜란드 문서보관소와 도서관의 마이크로필름 등을 뒤져서 모은 것이다. 이날 네덜란드를 관광한 뒤 벨기에로 넘어가는 도중에 기념관을 찾았다는 양윤정(33)씨는 “굳이 100주년이 아니더라도 유럽 여행을 하는 사람이라면 한번 들러야 할 곳”이라고 말했다. ●獨·佛 교민들 단체방문 줄이어 열사의 넋을 기리는 ‘제의’는 13일 오전 시내 한 호텔에서 국제학술회의로 막이 올랐다. 평화제전 위원장인 이홍구 전 국무총리는 “헤이그 특사의 사명은 현실적으로 성공할 수 없는 노력이었지만 독립을 지켜갈 수 있는 스스로의 힘과 지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말했다. 김삼웅 독립기념관장은 “만국평화회의는 일제가 지칭한 것이고 당신 언론에서는 ‘제2차 헤이그 평화회의’,‘세계평화회의’ 등으로 표현했다.”며 “이준 열사 순국은 이후 국내외 자결 순국, 의열 투쟁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14일에는 기념식과 다양한 문화행사가 열린다. 헤이그시는 이날을 ‘이준 평화의 날’로 지정했다. 한국·네덜란드 예술가들의 공동 기획으로 헤이그 특사 3인의 도착 장면도 재현한다. 이날 행사에는 김정복 보훈처 장관, 최종무 주 네덜란드 한국 대사,W 데이트만 헤이그 시장 등 국내외 인사 120여명이 참석했다. 독일·벨기에·프랑스 등 인근 국가 교민들도 버스를 동원해 단체로 방문하는 등 700여명이 참석했다. vielee@seoul.co.kr ■대한매일신보 ‘그날의 이준’ ‘이준씨가 만국평화회의에 한국 파견원으로 갔던 일은 세상사람이 다 알거니와, 어제 동경전보에 따르면 그가 충분(忠憤)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자결하여 만국사신 앞에 피를 뿌려서 만국을 경동(驚動)케 하였다더라.’ 이준 열사가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분사(墳死)한 소식을 서울신문의 전신인 대한매일신보가 1908년 7월18일 호외로 전한 기사의 한 대목이다. 황성신문은 다음날 대한매일신보의 기사를 받아 ‘이준씨는 분기를 이기지 못하여 자기의 복부를 할부(割剖)하였다는 전보가 도래하였다는 설이 유(有)하더라.’고 이후 오랫동안 믿음을 준 할복자살설을 기정사실화했다. 대한매일신보의 호외는 이준 열사의 서거 소식에 앞서 급박한 대한제국 정부의 움직임을 먼저 다루었다. 기사는 ‘내각대신 여덟분이 회동하여 어제 오후 7시부터 12시까지 황상폐하를 알견하고 해아(海牙·헤이그)에 위원을 파송함으로 당하시는 곤란을 면하실 방책을 올렸다.’고 적었다. 그 방책이란 ▲광무 9년 11월17일에 체결한 신조약에 어보를 찍고 ▲통치를 대신할 황제의 섭정을 추천해야 하며 ▲황제가 직접 동경에 가서 ‘일황폐하’에게 사과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신조약이란 1905년 을사늑약으로, 고종이 이때까지 정식으로 비준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대한매일신보는 ‘황상폐하께옵서는 이 세 가지를 다 윤허치 아니하셨다더라.’고 보도했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이준열사 외손녀 유성천여사 “100주기 감회 남달라” |헤이그(네덜란드) 이종수특파원|이준 열사의 외손녀 유성천(80) 여사가 열사의 순국 100주년 추모식을 맞는 감회는 뜻깊었다.13일 학술대회가 열리고 있는 헤이그 시내 한 호텔에서 만난 유 여사는 어머니(이준 열사의 외동딸)에게 들은 이야기를 중심으로 이준 열사와 가족들에 대한 기억을 들려줬다. 그 속에는 독립운동가 가족이 겪은 신산한 삶이 오롯이 녹아 있다. 유 여사는 “외할머니가 헤이그에서 외할아버지가 사망했다는 통지를 받은 뒤 큰 충격을 받아서 심장병으로 고생하시다가 결국 제가 초등학교 2학년때 심장판막증으로 돌아가셨다.”고 말했다. 이어 이준 열사 가족의 삶과 관련 “일제 강점기여서 애국 지사 집안은 말도 삼가해야하는 상황이었을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외할머니는 동지적 입장에서 외할아버지를 이해하고 내조를 잘 하셨다고 들었는데 헤이그 특사로 가기 전에 독립운동하시다가 투옥되셨을 때 굳건하게 옥바라지를 하셨다고 들었다.”라고 덧붙였다. 100주기를 맞은 소감에 대해 “90주기에 참석한 뒤 귀국하면서 10년 뒤에 다시 이곳에 올 줄 생각도 못했다.”며 “많은 교민들이 오시고 행사를 위해 여러 분들이 노고를 아끼지 않으셔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vielee@seoul.co.kr ■ 이기항 이준아카데미 원장 “청소년에 민족의식 고취” |헤이그 이종수특파원|1991년부터 이준 열사 기념식을 시작한 이기항(71) 이준아카데미 원장이 열사의 순국 100주년을 맞는 소회는 남달랐다. 12일 헤이그 이준평화박물관에서 만난 이 원장은 기념식 준비에 정신없이 바빴다. 이준 열사 기념사업에 뛰어든 동기를 물었더니 소박하게 대답했다.“우연히 발을 담갔다가 ‘호랑이 등 탄’ 심정으로 지금까지 왔습니다.” 거창한 명분 대신에 매번 상황이 그의 발을 기념 사업에 한 발짝씩 끌어당겼다는 것이다. 1972년 상사 주재원으로 왔다가 사업가로 변신하며 네덜란드에 살던 이 원장은 그저 간헐적으로 열사의 묘적지를 참배하던 교포였다. 격년으로 추모식을 주관하던 이 원장에게 1992년은 이준 기념사업에 큰 전환을 가져왔다. 네덜란드 일간 NRC신문에서 이준 열사가 순국하기 전까지 묵었던 데 용 호텔이 재개발로 매각될 위기에 처했다는 뉴스를 접했다. 3년 노력 끝에 1995년 사재 20만달러를 쾌척해 ‘사고’를 쳤지만 더 큰 일이 다가왔다. 호텔을 기념관으로 건립하기 위한 자금이 문제였다. 해서 한국에 들어와 소식을 알리고 전경련을 찾아가 기념관 건립 자금을 협찬받았다. “내 나이가 우리 나이로 70이 넘었습니다. 더 바랄 것도 없이 그냥 많이 보고들 갔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청소년들이 많이 와서 민족의식을 고취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viele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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