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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재기이/조수삼 지음

    ‘‘내 나무’는 나무를 파는 사람이다. 그는 나무를 팔면서 “나무 사시오!” 하지 않고,“내 나무!”라고만 했다.…나무를 사려는 사람이 없어 틈이 나면 길가에 앉아 품에서 책을 꺼내 읽었다. 바로 고본(古本) 경서(經書)였다.’ 이 사람은 몰락한 양반층의 지식인인 듯하다. 그래서 차마 다른 장사꾼들처럼 “나무 사시오!”라고 존대하지 못하고,“내 나무!”라고 하대함으로써 양반 선비의 마지막 체면을 세우고 있는 모습이라는 것이다. ‘추재기이(秋齋紀異·조수삼 지음, 허경진 옮김, 서해문집 펴냄)’는 조선 후기 기이한 언행으로 장안에 이야깃거리가 되었던 인물 71명을 소개한 ‘저잣거리 열전’이라고 할 수 있다. 추재 조수삼(1762∼1849)은 화가로 유명한 조희룡이 ‘호산외기(壺山外記)’에 실은 ‘조수삼전’에서 그의 복 열두 가지를 들면서, 여덟 번째 복으로 담론을 들었을 만큼 뛰어난 이야기꾼이었다고 한다. ‘내 나무’에서 보듯 ‘추재기이’에는 신분질서가 무너지고 돈이 위세를 떨치기 시작하는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반 조선의 거리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 생생하다. 현실에서는 일어나기 어려운 이상하고 신비스러운 이야기를 담은 전기(傳奇)를 읽어주는 늙은이를 그린 ‘전기수(傳奇)’의 주인공은 ‘숙향전’,‘심청전’,‘설인귀전’ 등을 외워 사람들에게 들려주었다. 초하루는 (청계천의)첫째 다리, 초이틀에는 둘째다리에 앉고, 초사흘에는 이현(梨峴·청계천 4가 배오개다리 일대), 초나흘에는 교동 어귀, 초닷새에는 대사동 어귀, 초엿새에는 종루 앞에 앉는 식이었다. 그는 가장 재미있는 대목에 이르면 잠시 입을 다물었는데, 이때 사람들은 다투어 돈을 던졌다고 한다. 이를 요전법(邀錢法)이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이밖에도 원숭이를 구경시켜 빌어먹는 거지와 거리에 앉아 소리를 하여 먹고 사는 장님 악사, 팔뚝만 한 검은돌을 맨주먹으로 깨는 차력사, 안경알을 가는 절름발이 노인 등 조선 후기의 거리 풍경이 오늘날과 크게 다르지 않았음을 보여준다.9500원.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육의전 시전행랑터 이번엔 지켜야”

    “육의전 시전행랑터 이번엔 지켜야”

    서울 종로2가의 탑골공원과 이웃한 영동빌딩 신축부지에서 확인된 조선시대 육의전 시전행랑 유적을 이번에는 반드시 보존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유적을 흙으로 덮고 위에는 건물을 짓는 소극적인 방식이 아니라, 사적으로 지정하고 장기적으로는 ‘조선상업사박물관’ 등으로 만들어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선시대 대표적 상업유적 파괴 안돼 육의전은 조선시대 국가가 공인한 상점을 말한다. 시전은 상설점포, 행랑은 가게건물을 뜻한다. 조선은 태종 10∼14년(1410∼1414년) 서울 중심가에 대규모의 시전행랑을 지었다.2004년 종로1가 청진6지구를 재개발하는 과정에서도 이번에 확인된 것과 비슷한 형태의 시전행랑 유구가 대규모로 발견되었으나 보존하지 못하고 지금은 초대형 건물이 들어섰다. 학계에서는 조선시대 상업사의 복원을 위해서 그 핵심을 이루는 육의전 유적의 보존은 불가피하며, 특히 ‘친기업 정부’를 내세우며 경제살리기가 모든 가치에 우선하는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는 마당에 조선시대 대표적인 상업 유적을 파괴하는 잘못이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특히 영동빌딩 신축부지는 넓이가 500㎡에 못 미치는 등 규모가 작은 만큼 보상도 어렵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내세운다. 현재 영동빌딩 신축부지는 문화재위원회 매장문화재분과가 지하유구에 흙을 덮어 보존하라는 결정을 내려 공사가 중단된 상태이다. 건물의 신축 여부는 1차적으로 해당 지방자치단체인 서울시가 검토한 뒤 문화재위원회 경관심의분과에서 최종 결정하게 된다. 하지만 ‘르메이에르 종로타운’빌딩이 들어선 청진6지구의 전례가 있는 만큼 서울시나 경관심의분과가 건물을 짓지 못하게 하는 ‘완전 보존’으로 결론을 내리기는 쉽지 않은 분위기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게다가 시전행랑은 종로만 해도 과거 광화문에서 동대문까지 끊이지 않고 이어졌던 만큼 작은 규모라도 한번 보존 결정을 내리면 주변의 재개발사업이 쉽지 않은 문제도 고민스러운 대목이다. 조유전(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 토지박물관장은 “사적으로 지정한 뒤 국가가 사들여 보존하는 방법말고 다른 방법은 모두 눈가리고 아웅하는 꼴밖에는 되지 않는다.”면서 “문화재청은 친기업적인 정부가 들어서는 이때를 기회로 삼아 유적 곳곳이 파헤쳐지고 아파트가 들어선 풍납토성의 재판이 되지 않도록 앞을 내다봐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울시서 적극적인 보존대책 강구해야 조 관장은 또 “서울시도 많은 비용을 들여 한강을 개발하고 공원도 늘리는데 적극 나서고 있는 만큼 시전행랑의 보존은 사대문안에 역사문화공간을 늘리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면서 “토지 소유자들에게는 서울시가 개발하는 다른 지역의 상업용지와 과감하게 교환해주는 등 불이익이 돌아가게 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영동빌딩 부지를 발굴조사한 김홍식(명지대 교수) 한울문화재연구원장도 “조선시대 경상(京商·서울지역 상인) 유적은 종로뿐 아니라 동대문 밖 창신동에서도 발견되고 있는 만큼 보존대책이 필요하다.”면서 “이번에 발견된 시전행랑은 완전보존이 어렵다면 유구를 지하통로에서 유리창으로 볼 수 있도록 보존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54) 전남 곡성 태안사 능파각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54) 전남 곡성 태안사 능파각

    전남 곡성은 섬진강을 끼고 있는 아름다운 고장이지요. 읍내에서 섬진강을 따라 남쪽으로 한동안 달리면 두물머리에 자리잡은 전라선의 압록역이 나타납니다. 여기서 오른쪽 길로 접어들면 이번에는 보성강을 끼고 달리는 강변 드라이브 코스가 이어지지요. 이렇게 4㎞ 정도를 가면 왼쪽으로 보성강을 가로지르는 태안교가 나타나는데, 신라 말 선불교를 일으켜 세운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인 동리산문(桐裏山門)의 종찰인 태안사로 가는 길목이 되지요. 해발 753.7m의 동리산 들머리에 있는 절은 이곳에서 6㎞쯤 더 들어가야 합니다. 태안사는 6·25전쟁을 겪으며 많은 피해를 입었음에도 동리산문을 연 적인선사 혜철(785∼861)과 제2대 조사인 광자대사 윤다(864∼945)의 부도 및 탑비를 비롯하여 볼 만한 문화유산이 적지 않습니다. 계곡에 놓인 능파각(凌波閣)은 무심코 지나치기 십상이지만, 태안사의 이름을 알리는 데 한몫을 하고 있지요. 능파각은 다리 위에 누각을 세운 누교(樓橋)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누교의 역사는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지요. 백제 무왕(재위 600∼641) 때 건립된 것으로 알려진 전북 익산 미륵사터에서는 아래는 석조 다리이고, 위는 목로 회랑으로 추정되는 유구가 조사되었습니다. 국립문화재연구소가 발굴한 경주의 월정교는 누교로 복원하고자 현재 설계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지붕이 있는 다리는 여배우 메릴 스트립이 출연한 영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에도 등장합니다. 미국 아이오와주 디모인에 있는 로즈만 다리와 할리웰 다리라고 하지요. 하지만 능파각이 미국의 지붕달린 다리와 다른 것은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전각으로도 기능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능파각은 천왕문의 역할을 대신하는 것으로 알려집니다. 일반적으로 천왕문은 절의 일주문 안쪽에 세워지지요. 가운데 통로를 중심으로 양옆에는 금강역사상을 모시는 것이 보통입니다. 악귀나 부정한 기운이 통과할 수 없으니 그 내부는 청정도량이 됩니다. 그런데 불교에서 다리는 사바세계와 피안의 세계를 연결시켜주는 경계를 상징한다고 하지요. 아래로 동리산 계곡의 맑디 맑은 물이 끊이지 않고 흘러내려가는 능파각은 부처님 앞으로 나아가기에 앞서 속세에서 더럽혀진 마음을 깨끗이 씻어버리는 장소라는 상징성 또한 부여되어 있습니다. 능파교에 금강역사를 모시지는 않았지만, 그것 만으로도 천왕문에 해당하는 역할을 충분히 해내고 있다고 보아도 좋겠지요. 하지만 지금 능파교가 있는 곳은 일주문 밖이어서 천왕문의 상징성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는 듯합니다. 주변에 충혼탑과 연못을 조성하면서 능파각 밖에 있던 일주문을 안으로 옮겨놓은 결과라고 합니다. 능파각은 신라 문성왕 12년(850) 혜철이 창건했다는 속설이 전하고 있지요. 하지만 좀 더 믿을 만한 ‘태안사사적기’는 영조 13년(1737)에 지은 뒤 1923년까지 4차례에 걸쳐 중수했다고 적었습니다. 능파각은 1996년에도 해체하여 썩은 재목을 교체하고 다시 세우는 보수작업이 이루어졌지요. 이렇듯 보수가 잦은 것은 폭우가 내리면 계곡이 넘치기 일쑤이고, 평소에도 습기가 목재에는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일 것입니다. 임보 시인은 ‘능파각’에서 ‘개울 위에 다락을 세웠으니 누각(樓閣)이요/개울 위에 다리를 놓았으니 교량(橋梁)이요/개울 위에 절문을 얹었으니 산문(山門)이다/동리산 계곡 물 위에 뜬 봉황의 집’이라고 읊었습니다. 짤막한 시에서 능파각의 성격까지도 잘 묘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동리산이라는 이름을 풀어보면 ‘오동나무가 우거진 숲’이라는 뜻이라고 하니 능파각을 ‘계곡 물 위에 뜬 봉황의 집’이라고 표현했나 봅니다. 이제 자동차를 타고 태안사를 찾으면 능파각을 건너지 않고도 곧바로 절 마당에 닿습니다. 하지만 조금 걷더라도 계곡의 운치를 느끼면서 시인이 ‘봉황의 집’이라고 감탄한 능파각에 들러 잠시 쉬어가는 것도 좋겠습니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부고]

    ●고수윤(법무사)성윤(전 삼성조선 이사)광윤(전 삼양사 〃)상윤(약사)씨 모친상 홍광식(창원지법 통영지원장)씨 빙모상 28일 마산의료원, 발인 31일 오전 9시 (055)249-1402●이종걸(배명고 교사)씨 별세 이종권(한화갤러리아 상무)종화(KBS 직원)씨 형제상 29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31일 오전 11시 (02)3410-6916●김인렬(경희한의원 원장)씨 부친상 유병욱(자영업)김일섭(엠티아이 이사)권광석(우리금융그룹 부장)씨 빙부상 29일 울산 굿모닝병원, 발인 31일 오전 6시30분 (052)256-7593●김형철(전국택시공제조합 경기지부 대리)씨 부친상 류치열(보험연수원 부장)씨 빙부상 29일 충북 진천장례식장, 발인 31일 오전 9시 (043)537-9972●이돌이(전 은평소방서 팀장)성돌(송파구청 사무관)씨 모친상 김순석(전남대 법대 학과장)씨 빙모상 28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31일 오전 6시 (02)3010-2294●김영우(경남일보 사회부장)씨 모친상 29일 진주의료원, 발인 31일 오전 8시 (055)740-8259●김윤규(Seoul Heinz 상무이사)씨 부친상 28일 이대목동병원, 발인 30일 오전 10시 (02)2650-2742●정영면(에이안 대표·전 MBC애드컴 국장)금면(비얄로마 이사)광면(법무사사무실)씨 모친상 서동원(전 적산건설 부장)이만근(전 KAIST 근무)씨 빙모상 29일 여수 성심병원, 발인 31일 오전 7시 (061)653-0499●오윤주(한겨레신문 충북담당기자)씨 조모상 29일 대전 평화원장례식장, 발인 31일 오전 8시 (042)250-9411
  • 조선왕릉·공룡해안 세계유산 등재 신청

    문화재청은 남한의 조선시대 왕릉 40기를 망라한 ‘조선왕릉’과 남해안 일대의 공룡 발자국 및 공룡알 화석을 포함한 ‘한국의 백악기 공룡 해안’을 세계유산으로 유네스코에 등재를 신청했다고 29일 밝혔다. 이 유산들은 앞으로 1년 반 동안 현지실사 등의 평가과정을 거쳐 내년 6월말 이후 스페인에서 열리는 제33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등재 여부가 최종 결정된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메조 소프라노 이지민 10년만에 고국 무대에

    메조 소프라노 이지민 10년만에 고국 무대에

    차이콥스키의 오페라 ‘에프게니 오네긴’에서 흑인영가 ‘깊은강(Deep River)’까지…. 메조 소프라노 이지민이 오랜만에 한국 무대에 선다.1998년 서울 오페라 페스티벌에 ‘카르멘’으로 출연한 뒤 꼭 10년만이다. 그녀는 그동안 ‘심플리 솔풀(Simply Soulful)’이라는 가스펠 모음집으로 흑인영가의 본고장 미국에서부터 바람을 일으켰다. 음반에 참여한 ‘주빌리 싱어즈’ 및 브로드웨이 뮤지션들과 뜻을 모아 만든 ‘이지민과 친구들(Geeminn Lee&Friends)과는 가스펠 쇼를 만들어 미국을 순회하고 있다. 9·11 참사 2주기에는 공식 추모집회에서 독창자로 공연했다. 그런가 하면 여전히 헨델의 ‘메시아’나 로시니와 페르골레지의 ‘마태수난곡, 바흐의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아’, 브람스의 ‘알토 랩소디’처럼 종교적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정통 콘서트에도 솔로이스트로 자주 초청받는다. 러시아 마린스키 오페라와 미국 뉴욕 그랜드 오페라, 워싱턴 오페라 카메라타, 뉴저지 스테이트 오페라의 ‘카르멘’과 ‘나비부인’,‘세빌리아의 이발사’,‘아이다’,‘피가로의 결혼’,‘리골레토’,‘노르마’에도 출연했다. 경원대 성악과 2학년 시절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 음악원으로 유학을 떠났고, 이후 미국에서 활동하며 경력을 쌓은 그의 인생역정이 그의 레퍼토리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번 독창회에서도 차이콥스키와 레온카발로, 로시니, 비제, 생상의 오페라 아리아와 ‘깊은 강’ 같은 흑인영가, 그리고 ‘인 더 가든’ 같은 심플리 솔풀에 수록된 가스펠에 이르는 다양한 장르의 노래를 선보인다. ‘이지민 초청 독창회’는 26일 오후 7시30분 서울 세라믹아트홀에서 열린다. 피아노는 한지은. 전석 2만원.(02)3411-4668.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2월 3일, 차이콥스키에 빠지다

    2월 3일, 차이콥스키에 빠지다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International Tchaikovsky Competition)가 시작된 것은 1958년 3월이다. 냉전이 한창이던 당시 미국의 반 클라이번이 피아노 부문에서 우승해 국제적인 화제가 되었고, 바이올린 부문에서는 러시아의 발레리 클리모프가 정상에 올랐다. 이후 4년마다 열린 콩쿠르의 우승자를 짚어보면 피아노 부문에서만 2회 공동우승을 차지한 블라디미르 아슈케나지와 존 옥던을 비롯하여 안드레이 가브릴로프, 미하일 플레트네프, 보리스 베레조프스키 등 거물이 즐비하다. 바이올린에는 기돈 크레머와 엘마 올리베이라, 빅토리아 뮬로바가 있고,1962년부터 시작된 첼로 부문에서는 다비스 게링가스, 보리스 페르가멘시코프의 이름이 보인다. 이 콩쿠르는 한국과도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데,1974년 정명훈이 미국 국적으로 피아노에서 2등을 차지하면서 일약 국민적 영웅으로 떠오르기도 했다.1990년에는 성악 남자 부문에서 최현수가 당당히 1등을 차지했고, 이후 바이올린의 엘리스 박과 제니퍼 고, 피아노의 백혜선과 임동민이 입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피아니스트 백건우와 바이올리니스트 김남윤이 심사위원으로 참가한 지난해 콩쿠르는 제13회였다. 선배들이 쌓아놓은 명성에 걸맞은 실력을 갖춘 쟁쟁한 실력의 신인들이 배출되었는데, 이들이 대거 한국을 찾아온다. 서울신문과 한국차이콥스키협회가 공동주최하는 ‘2007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 수상자 아시아투어 콘서트’는 새달 3일 오후 2시30분과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다. 지난해 첼로 부문 1등을 차지한 세르게이 안토노프와 피아노 부문에서 1등 없는 2등에 오른 미로슬라브 쿨투셰프, 성악 여성 부문 2위의 메조소프라노 올레시야 페트로바, 그리고 바이올린 부문 5등을 차지한 한국의 신현수가 협연자로 나선다. 레퍼토리는 슬라브적 향취가 가득한 대표적인 명곡들로 짜여졌다. 오후 2시30분 연주회에서 안토노프가 드보르자크의 첼로협주곡 작품 104, 페트로바가 차이콥스키의 오페라 ‘오를레앙의 소녀’에 나오는 아리아 등, 쿨투셰프가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 2번을 들려준다. 오후 8시는 모든 레퍼토리가 차이콥스키이다. 쿨투셰프는 피아노협주곡 1번, 안토노프는 ‘로코코 주제에 의한 변주곡’, 신현수는 바이올린협주곡 작품 35를 협연한다. 이들의 아시아 순회연주는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 수상자 협회(ATCS)’가 마련한 것.1990년 6월 설립된 ATCS는 차이콥스키를 기념하고 콩쿠르 입상자들이 더욱 커나갈 수 있도록 활동 공간을 넓혀주는 역할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번에 입상자들과 함께 오는 러시안 심포니 오케스트라(RSO)도 ATCS가 1996년 설립한 것이다. 각종 콘서트와 페스티벌에 참여하는 것은 물론 차이콥스키 국제 청소년 음악 콩쿠르의 메인 오케스트라로도 활동하고 있다. 지휘는 유리 트카첸코. 한편 지난해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는 임동혁과 윤소영이 피아노와 바이올린에서 각각 4등을 차지했으나, 이번 연주회에는 참여하지 않는다.3만∼15만원.(02)2000-9752.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겨울철 불청객 ‘통풍관절염’ 대처법

    서울 광진구에서 꽃집을 운영하는 김세영(가명·54)씨는 사계절 중에 유독 겨울을 싫어한다. 지병인 ‘통풍성 관절염’ 때문에 수시로 손발이 붓고 통증을 느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사가 조언한 대로 몇가지 수칙을 지킨 결과, 통증이 조금씩 가라앉는 것을 경험했다. 과연 통풍성 관절염의 증상을 효과적으로 억제하는 방법이 있을까? 통풍성 관절염의 증상은 주로 엄지 발가락, 발목, 무릎 등의 부위가 붓는 것으로 시작되는데, 퇴행성 관절염처럼 쑤시는 듯한 통증이 특징이다. 초기에는 가벼운 통증과 함께 몸에 열이 나다가 만성이 되면 통증이 더욱 심해진다. 통풍성 관절염의 원인은 단백질 성분의 하나인 ‘퓨린‘(purine)과 밀접한 관련성이 있다. 퓨린이 몸 속에 들어오면 서서히 분해되면서 ‘요산’(尿酸)을 만든다. 통풍성 관절염은 이 요산이 체내에 과도하게 쌓이면서 생기는 병이다. 따라서 퓨린의 섭취를 최대한 줄여야 통풍성 관절염을 효과적으로 예방할 수 있다. 퓨린이 많이 포함된 음식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술’이다. 특히 맥주에는 요산을 만드는 ‘핵산’(核酸)이 다량 포함돼 있기 때문에 가능하면 멀리해야 한다. 생활 속에서 주로 접하는 음식 가운데 퓨린이 많이 들어가 있는 것은 계란 노른자, 돼지고기, 푸른 생선, 젓갈, 곱창 등이다. 술과 이런 음식을 같이 섭취하면 증세가 급속히 악화되기 때문에 안주는 가능하면 과일이나 오이, 당근 등의 야채로 준비해야 한다. 수시로 물을 마시는 것도 통풍성 관절염의 증상을 완화시키는데 효과적인 방법이다. 물을 많이 마시면 소변을 자주 누게 되고 자연스럽게 요산이 체외로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버터, 치즈 등 유지방이 많이 포함된 음식은 퓨린의 함유량이 적기 때문에 크게 주의하지 않아도 된다. 감자나 고구마 등 탄수화물이 많은 음식도 마찬가지다. 식이조절만으로 통풍성 관절염을 완벽하게 대비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스트레스’는 통풍성 관절염을 악화시킬 수 있기 때문에 음식과 마찬가지로 주의해야 한다. 통풍성 관절염이 생겨 간헐적인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하면 최대한 안정을 취하는 것이 좋다. 얼음찜질을 하거나 베개를 받쳐 관절염이 생긴 부위를 높여주는 것도 통증을 완화시키는데 도움이 된다. 요산의 생성을 억제하는 ‘알로퓨리놀’, 요산의 배설을 촉진하는 ‘프로베네시드’와 같은 치료제를 꾸준히 복용하는 것도 중요하다. 다만 알로퓨리놀은 골수 생성을 억제하고 간기능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의사와 충분히 상담한 뒤에 복용해야 한다. 정현용기자 junghy77@seoul.co.kr ■ 도움말 연세대 신촌세브란스병원 류마티스내과 이수곤 교수, 바른세상병원 서동원 원장, 현대유비스병원 박승규 원장
  • ‘단양 수양개 문화운동가’ 김재호 고문 출판기념회

    ‘단양 수양개 문화운동가’ 김재호 고문 출판기념회

    단양 수양개 유적이 세계적인 구석기 유적으로 자리매김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김재호 단양향토문화연구회 고문의 ‘단양과 그 이웃의 선사문화´ 출판기념회가 학자·전문가와 지역인사 등 200명이 참석한 가운데 25일 충북 단양 대명리조트에서 열렸다. 이 자리에는 이융조 한국선사문화연구원장과 임효재 서울대 명예교수, 정영화 문화재위원, 최무장 연천선사박물관장, 배기동 한국박물관협회장 등 대표적인 고고학자들이 대부분 참석했다. 또 역사학자인 김정배 전 고려대 총장과 미술사학자인 문명대 전 동국대 교수, 문화재정책학자인 정기영 한국전통문화학교 초빙교수, 황규호 ‘한국의 고고학’ 상임편집위원 등 관련 분야 인사들이 대거 자리를 함께했다. 김 고문은 자신이 창설한 단양향토문화연구회 회장으로 1995년 수양개 구석기 유적 발굴 현장을 방문한 것을 계기로 이듬해부터 4차례에 걸쳐 수양개 국제학술대회를 여는데 사재를 털었고, 이후에도 한국 구석기 고고학의 후원자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는 1997년에는 서울신문사가 제정한 제13회 향토문화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글 사진 단양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스시 이코노미/ 해냄 펴냄

    일본이 경제 발전에 박차를 가하던 1960년대 이후 일본항공(JAL)의 비행기는 외국 공항에 착륙할 때마다 카메라와 섬유, 소형 전자제품을 활주로에 가득 쏟아냈다. 하지만 일본으로 돌아갈 때는 화물칸이 늘 비어 있는 것이 JAL의 고민이었다고 한다. 1971년 새로운 화물시장 개척 임무를 맡은 오카자키 아키라는 일본에 생선초밥(스시) 붐이 급격히 일면서 붉은 살 생선 참치의 공급이 시장의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데 주목했다. 일본에서는 참치 가운데서도 가장 고급품으로 치는 참다랑어가 당시 미주지역의 어부들에게는 ‘버리는 생선’이었다. 오카자키가 캐나다 동부해안의 프린스 에드워드 섬을 찾았을 때도 어부들의 반응은 “당신 같으면 그런 것을 먹겠느냐.”는 것이었다. ●참치의 무역거래에 바탕 둔 문화경제적 탐방기 우여곡절 끝에 1972년 여름 26㎏의 참다랑어 한 마리가 트럭에 실린 채 캐나다 동부해안을 떠나 36시간만에 미국 뉴욕의 JFK 국제공항에 도착했고, 다시 JAL의 DC8에 실려 14시간의 비행 끝에 도쿄 하네다 공항에 내려졌다.‘스시’가 일본의 국민음식에서 글로벌 문화상품으로 발돋움하는 첫걸음을 내딛는 순간이기도 했다. 미국 ‘보스턴 글로브’ 기자인 사샤 아이센버그가 쓴 ‘스시 이코노미’(김원옥 옮김, 해냄 펴냄)는 생선초밥의 재료가 되는 참치의 무역거래에 바탕을 둔 문화경제적 탐방기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이 책을 쓰기 위하여 2년 동안 5개 대륙의 14개 국가를 직접 찾아가 취재했다고 하는데, 이런 노력을 기울일 만큼 ‘스시’가 매력있는 주제로 떠올랐음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미국 메릴랜드 토슨의 작은 마을에는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9개의 생선초밥집이 밀집되어 있어서 ‘스시 벨트’라고 불린다. 그러니 아이센버그가 “미국에는 지금 너무나도 많은 ‘스시 바(bar)’가 있어 ‘스시’는 이제 매력있는 주제를 넘어 진부한 주제가 되었을 지경”이라고 토로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나아가 로스앤젤레스의 서던 쓰나미(Southern Tsunami)는 전미국에 2000곳이 넘는 ‘스시 테이크아웃’ 매장을 운영하여 해마다 2억 5000만달러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 고유의 문화가 세계인의 입맛에 맞게 글로벌화되었을 때 얼마만한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일 것이다. ●돈·권력·사람 그리고 시대의 상호연결성의 산물 도쿄의 쓰키지 어시장에서는 매일 새벽 5시에 경매가 이루어진다. 출품되는 참치의 원산지를 살펴보면 ‘스시 무역’이라고 표현해도 좋을 만큼 참치의 네트워크가 얼마나 전세계적으로 퍼져 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뉴욕 롱아일랜드가 원산지인 자연산 참다랑어와 스페인과 터키의 양식 참다랑어, 일본 북부 아오모리현의 오마에서 잡은 참다랑어, 마셜제도산 눈다랑어, 멕시코 엔세나다산 양식 참다랑어가 한 자리에서 경매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스시 붐’은 필연적으로 자원고갈을 가져왔는데,1977년 900t이었던 호주 포트링컨의 참치 어획량은 급감하기 시작했다.“일본과 호주가 너무 많이 우려먹으면서 어장을 망가뜨렸다.”는 반성이 나오면서 호주 정부는 1984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어획쿼터를 도입하기도 했다. 아이센버그는 “바다에서 생선초밥집으로 가는 참치의 여정만큼 세계화의 복잡한 역학을 뚜렷하게 드러내는 것은 없지만 ‘스시의 권력’은 다국적기업이나 정부가 아닌 개인으로부터 나온다.”면서 “‘스시’는 돈, 권력, 사람, 그리고 시대의 상호 연결성이 발명한 요리”라고 말했다.1만 5000원.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규방문화의 세계여행’ 한눈에 본다

    한국자수박물관이 국내외에서 30년동안에 걸쳐 펼친 전시회를 종합하는 특별전을 부설 콘템포 갤러리에서 3월5일까지 연다. ‘규방문화의 세계여행’이라고 이름붙인 이번 전시회에서는 1984년 영국 빅토리아앨버트박물관에서 가졌던 특별전의 포스터를 비롯하여 이 박물관의 전시를 알리는 80점 남짓한 각국의 포스터가 선을 보인다. 자수박물관은 1978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박영숙 수집 한국 전통자수 500년 전’을 시작으로 프랑스, 미국, 영국, 독일, 벨기에, 호주, 이탈리아, 뉴질랜드, 일본 등에서 모두 69차례 전시회를 가졌다. 허동화 자수박물관장은 “이번 전시회가 한 작은 사립박물관이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서, 우리 문화의 가치를 다시 한번 되새길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53) 경북 영천 거조암 오백나한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53) 경북 영천 거조암 오백나한

    은해사 거조암은 경북 영천의 청통면 사무소가 있는 네거리에서 서북쪽으로 난 찻길을 따라 팔공산 자락으로 올라가면 나타납니다. 이름에서는 깊은 산중의 작은 암자 같은 느낌이 물씬하지만 학교 운동장만큼이나 넓은 주차장을 만나면 처음 이미지는 간데가 없어지지요. 차에서 내려 영산루 아래로 난 계단을 오르면 바로 절 마당입니다. 거조암을 찾는 사람들은 큰법당인 국보 제14호 영산전에 먼저 눈길을 빼앗기게 됩니다. 수덕사 대웅전에서 감탄했던 맞배지붕의 아름다움에 부석사 무량수전의 안정감이 더해진 듯한 느낌이 드는 데는 다 까닭이 있습니다. 수덕사 대웅전이나 무량수전처럼 고려시대 장인들의 작품이기 때문이지요. 이 건물을 해체보수할 때 고려 우왕 원년(1375)에 지었다는 기록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정면 7칸에 측면 3칸의 영산전은 남아 있는 고려시대 건축물 가운데서도 규모가 가장 크지요. 여느 법당과는 달리 중앙에 하나밖에 없는 문으로 들어서면 갑자기 왁자지껄한 기운이 느껴집니다. 법당을 메운 오백나한이 무슨 즐거운 일이라도 펼쳐지기를 기다리는 듯 제각각의 표정과 몸짓으로 앉아 있습니다. 가운데 불단에서는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거느린 석가여래가 이 광경을 인자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지요. 곁에는 아난과 가섭을 비롯한 석가의 10대 제자와 16나한의 모습도 보입니다. 석가가 인도의 영축산에서 제자들에게 ‘법화경’을 설법하는 광경이 바로 이랬을 것입니다. 당시의 이벤트를 불교에서는 영산회상(靈山會相)이라고 하는데, 영산전은 바로 이 모습을 재현한 법당이라고 할 수 있지요. 영산전에는 부처와 보살을 제외하고 모두 526분의 나한이 모셔져 있습니다. 나한(羅漢) 혹은 아라한(阿羅漢)은 인도어의 아르한(Arhan)을 음역한 말입니다. 석가의 가르침으로 깨달은 이를 가리키지요.‘깨달으면 곧 부처’라는 선불교가 꽃을 피우면서 우리나라에서도 나한이 신앙의 대상으로 자리잡았을 것입니다. 다양한 견해가 있다지만, 오백나한은 부처가 입적한 해 마갈타국의 왕사성 밖에서 부처님의 말씀으로 경전을 만들고자 모인 ‘제1결집’에 참여했던 오백비구에서 비롯되었다는 설명이 그럴 듯하게 들립니다. 예나 지금이나 나한은 다른 불교조각과는 달리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표현할 수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16나한부터 인도에서 중국으로 전해질 때 외모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없었다고 하니 그들보다 법계가 낮은 오백나한은 말할 것도 없었겠지요. 거조암 오백나한상은 영파 성규가 당시의 거조사를 중창한 조선 순조 5년(1804)을 전후하여 조성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노승에서 동자승까지 다양한 세대를 망라하여 나한에 대한 전 시대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고, 상상력의 한계를 실험해 본 것은 아닐까 여겨질 만큼 표정과 자세가 모두 다르고 표현이 자유분방한 것도 영·정조시대를 지나면서 나타난 새로운 시대적 분위기가 반영된 결과라는 것입니다. 거조암 오백나한을 원숙한 조각이라고 표현할 수는 없겠지만, 마치 캐리커처를 그리듯 대상의 특징만을 간결하게 잡아낸 솜씨에서는 현대적인 감각이 물씬 느껴집니다. 온몸에 두껍게 발라진 호분칠과 결코 전문가의 솜씨라고 할 수 없는 얼굴의 서툰 채색조차도 영산전을 즐거운 축제의 현장으로 탈바꿈시키는 데 단단히 한몫을 하고 있지요. 여기에 흔히 불상에서 보이는 이상화의 흔적을 찾을 수 없고, 어떤 외래 밑그림의 영향도 받지 않은 순수한 한국인의 얼굴을 그대로 형상화했으니 어찌 친근하지 않겠습니까. dcsuh@seoul.co.kr
  • “다보탑 수리기록” 주장에 잇단 반론

    “다보탑 수리기록” 주장에 잇단 반론

    1966년 불국사 석가탑을 보수하는 과정에서 나온 문서 뭉치인 묵서지편(墨書紙片)의 하나인 ‘불국사무구정광탑중수기(佛國寺无垢淨光塔重修記)’는 석가탑이 아닌 다보탑을 수리한 기록이라는 주장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같은 연구 결과가 학계에 보고된 23일 “한쪽 측면에서만 보면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만,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전혀 다른 결론이 나올 수 있다.”는 강력한 반론에 직면하면서 논란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한정호 동국대 경주캠퍼스박물관 전임연구원과 최연식 목포대 교수는 이날 서울 동국대에서 열린 한국목간학회의 제1회 월례발표회에서 나란히 ‘중수기’를 다보탑과 연결 짓는 주장을 펼쳤다. 묵서지편에 들어 있는 ‘불국사서석탑중수형지기(佛國寺西石塔重修形止記)’는 석가탑을 보수한 기록이 맞지만 ‘무구정광탑중수기’는 다보탑을 고친 기록으로 어떤 이유에선가 석가탑에 들어간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앞서 남동신 덕성여대 교수는 지난해 5월 한국역사연구회 웹진에 기고한 글에서 “우리가 만약 아무런 선입견 없이 중수기 자체를 읽는다면, 그 내용이 석가탑이 아니라 다보탑에 더 어울린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고 논의에 불을 지폈다. ●쌍탑은 반드시 그 탑에만 봉안 안해 남 교수는 당시 무구정광탑은 보통명사일 뿐 아니라, 무구정경을 봉안하였다고 해서 반드시 무구정광탑이라고 불린 것도 아니었고, 석가탑과 다보탑처럼 쌍탑인 경우, 특정 탑에 대한 기록이 반드시 그 탑에만 봉안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는 탑 해체 보수와 관련된 부재의 명칭도 앙련대, 화예, 통주, 제석, 사자 등 다보탑의 그것에 걸맞는다고 했었다. 그러나 지난해 국립중앙박물관이 주도한 묵서지편의 판독에 참여한 이승재 서울대 교수는 토론에서 “그렇다면 석가탑에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나온 사실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이 무구정경도 고려 초기에 다보탑에 있었던 것을 끄집어 내어 석가탑에 집어 넣었다는 말이냐.”고 반문했다. 이 교수는 “석가탑에서 무구정경이 나왔다는 사실은 지금 우리가 석가탑이라고 부르는 불국사 서석탑을 당시 사람들이 무구정광탑이라고 인식했다는 명확한 증거가 되는데, 이런 명백한 사실을 애써 외면하고 어떻게 고려 초기 사람들이 석가탑을 서석탑으로 부르면서 다보탑은 무구정광탑이라고 불렀다고 주장할 수 있느냐.”고 따졌다. 이 교수의 문제제기에 두 사람의 발표자와 토론자로 자리를 함께한 남 교수는 명확한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 ●종합적 고려땐 전혀 다른 결론 한 연구원은 이날 ‘중수기’에 보이는 사리장엄구와 일본의 국립도쿄박물관 소장 ‘오쿠라 컬렉션’의 ‘전 경주 남산 출토 사리장엄구의 목록을 비교한 결과도 발표했다. 다보탑 창건 당시의 유물뿐만 아니라 고려 시대에 추가로 넣은 유물에 이르기까지 완벽하게 일치하는 것은 오쿠라 컬렉션의 사리장엄구가 다보탑 출토품이라는 사실을 입증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주장에도 토론자로 나선 주경미 부경대 연구교수는 “중국 당나라 때 사찰인 법문사 탑 출토품에도 비교적 완벽하게 품목이 기록돼 있지만 실제 발굴품과는 차이가 많았던 만큼 ‘중수기’와 출토유물을 끼워 맞추어 해석하는 연구방법론도 좀더 조심스럽게 진행할 필요가 있다.”고 제동을 걸었다. 그는 또 “석가탑과 오쿠라 컬렉션의 소장품 가운데 은제용기는 모두 은판을 두드려서 모양을 만든 뒤 조금 깊게 선각을 해서 울룩불룩하게 타출한 효과를 표현하고 있는데, 이것은 안압지 금동판불 등에 나타난다는 점에서 7∼8세기 것”이라면서 “한 연구원이 이 은제용기를 11세기 것으로 보는 데는 형식적 측면에서 어려운 점이 있다.”고 덧붙였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함평군 영·호남 화합 ‘보은의 장학금’

    함평군 영·호남 화합 ‘보은의 장학금’

    이석형(사진 오른쪽) 전남 함평군수가 22일 부산시청을 방문, 지난 2005년 함평군의 폭설피해 복구를 돕다 숨진 고 이익주 부산시 행정관리국장의 아들 정석(고신의대 4년)씨에게 200만원의 장학금을 전달했다. 장학금은 함평군 학교면 번영회 서동열 회장이 고 이 국장의 유족을 위해 사비로 함평군에 기탁한 것이다. 고 이익주 국장은 2005년 12월27일 사상 유례없는 폭설로 막대한 피해를 입은 함평군을 방문해 복구작업을 도운 뒤 부산으로 돌아오던 길에 갑자기 쓰러져 병원으로 옮겼으나 숨졌다. 이 군수는 “당시 함평군에는 2m가 넘는 눈이 쌓여 정말 절박한 상황이었는데 이 국장 등 부산시 공무원들이 도와줘 큰 힘이 됐다.”며 “이 국장의 희생이 공직자의 아름다운 마지막 모습으로 영원히 기억되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함평군은 영호남 화합을 위해 몸을 아끼지 않았던 고인의 희생정신을 기려 이듬해 3월29일 함평군 학교면 고막소공원에 추모비 등을 세우고 매년 추모행사를 열고 있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흥분한 중앙박물관

    김홍남 국립중앙박물관장이 21일 중앙박물관의 관장 직급을 차관급에서 1급으로 낮추고, 조직을 문화재청에 통합하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정부조직법 개정안에 강한 유감을 표시했다. 김 관장은 이날 기자간담회를 갖고 “국가 대표박물관을 정부의 말단 행정기구로만 보아서는 안 되며, 독립성과 자율성을 보장해 주어야 한다.”면서 “문화재청이 국립박물관을 포괄하고 있을 때 있을 수 있는 시행착오를 예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관장은 특히 국회가 법안 심의과정에서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뜻을 여러 차례 피력하면서 “정부조직법 개정의 졸속 협의에 대한 가장 적절한 대처라고 생각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김 관장은 별도로 배포한 ‘문화재청의 국립박물관 통합론 근거의 문제점’에서는 “한반도 대운하 사업을 위하여 국립박물관 흡수통합이 필요하다는 문화재청의 보고가 인수위의 판단 근거가 됐으나 이는 왜곡된 것이고, 문화재행정기관과 박물관이 분리된 외국의 사례가 없다는 보고도 허위”라고 문화재청을 강도 높게 비난했다. 대운하 건설사업에 따라 중앙박물관이 발굴 조사에 투입할 수 있는 인력은 50명 미만에 불과한데도 문화재청이 흡수통합을 주장한 것 등은 어불성설이 아닐 수 없다는 것이다. 김 관장은 “당초 이 자리에서 사퇴 용단을 내리려고 했으나 폭풍우에 휘말린 배에서 선장이 배를 돌보지 않고 뛰어내리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면서 “당장 뛰어내리지 않고 배가 순항하는 것을 지켜보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사물놀이 즐기게 글로벌센터 만들어야”

    “사물놀이 즐기게 글로벌센터 만들어야”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원서동 ‘공간사랑’에 원조 사물놀이 멤버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김덕수는 장고, 이광수는 꽹과리, 최종실은 북, 그리고 남기문은 징을 잡았다. 지금부터 꼭 30년 전인 1978년 ‘사물놀이’가 데뷔 공연을 가졌던 바로 그 자리.1986년 서른 넷의 짧은 생을 마감한 김용배 대신 남기문이 자리잡았고,1970∼1980년대 실험문화의 요람이었던 공간사랑도 이젠 더 이상 극장이 아니다. 3월6일과 7일 이틀동안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30주년 기념공연을 갖는 네 사람이 이날 기자회견을 갖기에 앞서 10분 남짓 호흡을 맞췄다.1994년 ‘국악의 해’를 맞아 예술의전당에서 공연한 뒤 14년 만에 한 자리에 선 것이다. 최종실(54) 중앙대 교수는 “30년 전 그 자리에서 소리를 내 보니 감회가 새롭다.”면서 “저에게는 두드리는 순간이 가장 행복하니 사물놀이야말로 내 운명”이라고 말했다. 이광수(56) 대불대 교수는 “20세기에 사물놀이가 국악의 한 장르로 만들어졌다면 21세기에는 다시 발돋움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거들었다. 사물놀이 한울림 교육원을 이끌고 있는 김덕수(56)씨는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세계 문화시장에서 우리의 장단이 주류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그 신명을 승격시키는 노력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막내뻘인 남기문(50) 국립국악원 민속단 지도위원은 “30년 전 저도 이 소극장의 객석에서 사물놀이의 탄생을 지켜보며 부러워했던 기억이 있다.”고 돌아봤다. 네 사람은 이날 사물놀이의 ‘글로벌 센터’를 만들어야 한다는 데 뜻을 모았다.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이라면 반드시 사물놀이를 즐기고 갈 수 있는 여건을 만들고 싶다는 것이다. 네 사람이 앞으로 미주와 유럽을 순회하고, 국내 7∼8개 도시도 찾아가는 계획을 세운 것도 이런 분위기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믿음에서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성남 아트센터·고양 아람누리 올 공연 해외물 일색

    성남 아트센터·고양 아람누리 올 공연 해외물 일색

    경기도 분당신도시의 성남아트센터와 일산신도시의 고양아람누리는 물리적인 거리는 서로 멀리 떨어져 있지만 만만치 않은 라이벌이자 똑같은 고민을 안고 있는 동업자이다. 각각 수도권의 남부와 북부를 대표하는 문화공간으로, 주민들의 문화 수준 또한 서울보다 높으면 높았지 낮지 않다는 자부심 또한 다르지 않다. 두 곳의 올해 공연계획을 들여다 보면 예술의전당 뺨칠 만큼 호화롭다. 성남아트센터는 5월 세계적인 안무가 지리 킬리언이 이끄는 네덜란드 댄스 시어터에 이어 9월에는 정명훈이 지휘하고 중국 출신의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랑랑이 협연하는 이탈리아 라 스칼라 오케스트라의 공연이 있다. 10월에는 바이올리니스트 힐러리 한과 캐나다 밴쿠버 심포니 오케스트라, 세계적인 바리톤 토마스 햄슨이 베리비에 체임버 오케스트라와 함께하는 무대가 마련된다.11월에는 지난해 성남아트센터가 기획한 성남국제청소년관현악축제에서 지휘자로 데뷔한 첼리스트 장한나가 런던 체임버 오케스트라와 앙상블을 펼치기로 했다. 고양아람누리는 2월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와 성 토마스 합창단의 공연을 시작으로 3월에는 자크 루시에 트리오,5월에는 소프라노 안젤라 게오르규와 클로드 볼링,6월에는 바이올리니스트 장영주와 오르페우스 체임버 오케스트라, 첼리스트 미샤 마이스키가 협연하는 드레스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공연이 줄줄이 벌어진다. 또 9월에는 가족으로 이루어진 세계적인 기타앙상블 로스 로메로스의 50주년 기념 콘서트와 이탈리아 볼로냐극장 오페라의 ‘토스카’,11월에는 바이올리니스트 나이젤 케네디와 폴리시 체임버 오케스트라,12월에는 발레리 게르기예프가 이끄는 러시아 마린스키 오케스트라의 공연이 이어진다. 3월 세계적인 실내악단 이 무지치와 10월 중국 중앙발레단의 ‘홍등’은 두 공연장이 공동으로 유치한 공연.‘홍등’은 영화감독 장이머우가 자신의 같은 이름 영화를 발레단을 위해 연출하여 화제를 모든 작품이다. 그러나 화려할수록 그 대가는 비싼 법. 성남아트센터의 올해 예산은 270억원으로 이 가운데 53억원이 공연에 들어간다. 아람누리와 어울림누리를 운영하는 고양문화재단은 210억원의 예산 가운데 60억원 남짓을 공연 사업에 쓴다. 예술의전당을 능가하는 공연 예산을 갖고 있지만, 수준급의 대관 공연을 유치하는 것은 쉽지 않으니 대부분 직접 주최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주민 복지의 향상을 내걸고 출범한 마당에 티켓값을 ‘현실화’할 수도 없어 눈길을 끌 만한 공연이라면 표가 매진되어도 상당한 폭의 적자가 불가피하다. 올해 주요 일정이 해외물 일색으로 화려함이 지나치다는 느낌이 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개관 4년차인 성남아트센터가 프로그램의 다양성에 조금씩 눈떠가고 있는 모습을 보이는 반면 2년차인 고양아람누리가 화려하기만 한 라인업을 짠 데서는 후발주자의 조급함이 느껴진다. 지금의 예산도 공연장 이름을 알리겠다는 대형공연 위주라면 결코 많을 수 없겠지만, 주민들에게 다가가는 실속형 무대와 조화시킨다면 결코 적지 않다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다. 이렇게 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이 바로 기획력이다. 해외물 수입 위주의 절름발이 공연장이 되지 않기 위해서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일 것이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금됫박’ 상받은 두산맨 4명 ‘흐뭇’

    ‘금값 올랐다고 금됫박 쪼갤 수도 없고…’ 17일 서울 강동구 길동의 연강원. 서동수 두산중공업 부사장(발전BG장) 등 ‘2008 두산 경영대상’을 받은 네 명의 두산맨들이 활짝 웃었다. 이들의 손에는 금됫박이 들려 있었다. 두산은 지난해 이 상을 처음 도입하면서 상품으로 금됫박을 도입했다.‘한 말(斗) 두 말 모아 큰 산(山)을 이루라.’는 사명의 의미를 담아서다. 문제는 1년새 급등한 금값이다. 됫박의 크기는 가로 6㎝, 세로 6㎝, 높이 4㎝. 금 50돈, 은 30돈이 들어간다. 지난해에는 금 한 돈의 평균 시세가 8만원이어서 금값만 400만원짜리 됫박이었다. 올해는 평균 시세가 11만원으로 껑충 뛰었다. 그룹측은 “그렇다고 됫박 크기를 줄일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지난해와 똑같은 크기로 제작했다.”고 밝혔다. 이 바람에 올해 됫박의 가치는 금값만 550만원으로 불었다. 뜻하지 않게 150만원을 더 챙긴 올해 수상자들은 속으로 웃었다.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연경, 담배의 모든것/안대회 옮김

    ‘서울 사는 귀족집 자제들은 그저 담배를 피울 줄만 알지, 담배씨를 심고 잎을 거두며 뿌리를 북돋고 키우는 일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그 과정을 전혀 모른다. 그러고서야 옥같이 귀한 음식을 배불리 먹으면서도, 곡식을 경작하고 수확하는 어려움을 모르는 자와 다를 것이 하나도 없지 않은가.’ 이옥(李鈺·1760∼1815)은 ‘연경(烟經)’을 쓰는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이옥은 18세기 조선 사회에서 자유분방한 글쓰기를 주도하여 벼슬길에 나서지 못하는 불우한 생애를 보냈지만, 같은 이유로 우리 문학사에서 특별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인물.‘시경’도,‘서경’도 아닌 ‘연경’이라니…. 담배 이야기를 경전으로 떠받들어 놓은 이옥의 문학적 상상력이 제목에서부터 독자들을 미소짓게 한다. ‘연경, 담배의 모든 것’(안대회 옮김, 휴머니스트 펴냄)은 조선시대 담배에 관한 최고의 저작으로 꼽히는 이옥의 ‘연경’을 중심으로 담배에 관한 글을 한데 모은 18세기 조선의 흡연문화사라고 할 수 있다. ‘연경’은 영남대도서관에 필사본 형태로 소장되어 있다가 몇 해 전 학계에 보고되었으며, 이를 토대로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가 전면적 분석을 가해 자신이 관여하는 한국학 잡지 ‘문헌과 해석’에 원문을 영인해 소개했다. 그러자 KT&G가 재빨리 나서 ‘연경’의 전체 번역을 사보에 연재했다는 일화를 남겼다. 금연운동으로 담배의 입지가 축소되어 가는 마당에 ‘연경’이 펼친 담배 예찬론은 담배 제조 회사로서는 매우 반가웠을 것이다. 내친김에 안 교수는 조선 후기 담배와 관련되는 각종 문헌자료를 뒤지다 보니 아예 한 편의 조선후기 담배 문화사를 완성할 수 있었다. ‘연경’의 가치는 한 편의 재미있는 저작으로 그치지 않는다고 안 교수는 설명한다. 안 교수는 “이옥은 사소하고 무의미하다고 여겨지던 사물도 저술의 대상으로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했다.”면서 “‘연경’은 당시 우리 학술계 내부에서 중대한 변화가 일어났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로도 주목해야 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1만 4000원.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52)후삼국통일의 기념비 개태사 삼존불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52)후삼국통일의 기념비 개태사 삼존불

    요즘에는 흔히 대학 이름을 따서 지하철역 이름을 짓는다지만, 한때는 역에 절 이름을 붙이는 것이 유행이었던 것 같습니다. 동해남부선의 불국사역이나 호남선의 백양사역, 경원선의 망월사역, 중앙선의 희방사역이 그렇지요. 경전선의 다솔사역에는 이제 여객열차가 서지 않고, 여천선의 흥국사역은 여천산업공단의 화물터미널이 되었습니다. 호남선 개태사역은 절 이름이 붙여진 역 가운데서도 단연 특별하지요. 기차를 타고 지나치면서 절의 면모를 살필 수 있는 유일한 역이기 때문입니다. 호남선이나 전라선 열차를 타고 남도로 내려가다 서대전역이 막 지났다는 안내방송이 나오면 언제나 개태사의 안부가 궁금해 슬금슬금 왼쪽 차창 밖 산기슭으로 눈길을 돌리게 됩니다. 개태사가 있는 충남 논산시 연산면은 ‘황산벌’이라고 설명하면 더욱 이해가 빠르겠지요. 백제의 결사대가 장렬하게 산화한 이곳에는 계백장군의 것으로 전하는 무덤이 있고, 최근 바로 곁에 백제군사박물관이 세워져 계백장군의 충절을 기리고 있습니다. 백제와 신라의 황산벌 싸움으로부터 276년이 지난 936년 이곳에서는 후백제와 고려가 맞붙게 되지요. 견훤의 큰아들인 신검이 이끄는 후백제군은 지금의 경북 선산 동쪽으로 추정되는 일리천에서 왕건에게 대패한 후유증이 컸던 탓인지 싸움다운 싸움 한번 해보지 못하고 항복하고 맙니다. 개태사는 바로 고려 태조 왕건이 후삼국통일이라는 대업을 달성한 승리의 현장에 세워졌습니다. 신검의 항복을 받고는 곧바로 착공하여 4년 남짓한 공사 끝에 태조 23년(940) 낙성법회가 열립니다. 개태사(開泰寺)라는 이름은 ‘태평한 시대를 연다.’는 뜻으로 태조 왕건이 직접 지었습니다. 절이 자리잡은 황산도 ‘하늘이 보호한다.’는 의미에서 천호산(天護山)이라고 바꾸었지요. 왕건은 친히 발원문을 짓는 등 이 절이 갖는 상징성을 널리 알렸습니다. 개태사는 이렇듯 태조의 발원으로 창건된 고려의 대표적인 국찰이었지만,1000년이 넘는 세월이 흐른 지금 이 절의 분위기는 고즈적함을 넘어서 스산할 지경입니다. 그렇다해도 이 절에는 고려시대 불교조각의 첫장을 연 보물 제219호 석조삼존불상이 있어 역사적 의미는 퇴색하지 않습니다. 창건 당시 개태사는 상당히 넓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발굴 조사 결과 절터는 석조삼존불이 있는 현재의 개태사와 북쪽으로 400m쯤 떨어진 옛터, 그리고 동쪽으로 150m쯤 떨어진 산중턱까지 미쳐있습니다. 당시의 영화가 어떠했을지 짐작할 수 있겠지요. 석조삼존불은 가운데 본존불의 키가 4.15m이고, 왼쪽의 협시보살은 3.5m, 오른쪽의 협시보살은 3.21m 정도입니다. 사진으로는 장난스러워보였던 삼존불을 실제로 대하면 위압감마저 듭니다. 미술사학자들이 아미타삼존불로 분류하고 있음에도, 전각을 미륵이 머무는 용화대보궁(龍華大寶宮)으로 이름지은 것도 개태사를 찾는 중생들이 삼존불에서 미륵의 권위를 느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삼존불은 동시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 제기되어 논란이 빚어지기도 했습니다. 왼쪽 협시보살의 조각솜씨가 조금 더 정교한 만큼 본존과 오른쪽 협시보살은 나중에 왼쪽 협시보살을 모델로 조각되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절터의 전면적인 발굴로 원래 조각의 흔적이 나타난다면 이런 주장이 힘을 얻을 수도 있겠지요. 개태사의 창건이 새로운 통일왕조의 개막을 선포하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면, 석조삼존불은 후삼국통일의 기념비 그 자체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여행길에 지나치는 개태사역은 작은 시골정거장에 불과하지만 그 이름이 담고 있는 의미는 결코 작지 않습니다. dcsu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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