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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골계 피난작전

    전북 익산과 김제에서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AI)가 발생함에 따라 우리나라 전통 닭으로는 유일하게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충남 논산의 연산 화악리 오골계가 분산 배치된다. 문화재청은 익산 및 김제와 가까운 논산에서 천연기념물 제265호 화악리 오골계를 사육하고 있는 지산농원(대표 이승숙)과 협의해 오골계를 멀리 떨어진 여러 지역으로 나누어 보호하기로 했다고 13일 밝혔다. 이에 따라 1000여마리의 화악리 오골계는 당분간 경북 봉화와 인천 중구에 각 300마리, 경기 동두천에 400마리가 분산되어 사육된다. 앞서 문화재청은 AI 발생 직후부터 충남도, 논산시, 농림부와 방역대책을 세웠고, 화악리 오골계 농장에서는 면역성이 강한 특수사료를 주고, 출입자를 통제하는 등 예방에 노력해 왔다.AI에 감염되면 발생지역을 중심으로 일정 거리에 있는 모든 가금류는 폐기해야 한다. 따라서 직접 감염되지 않는다해도 주변 농장에서 AI가 발생하기만 해도 천연기념물 오골계는 영원히 사라질 수도 있는 상황이다.서동철 기자 dcsuh@seoul.co.kr
  • 권진규의 아틀리에·나주 한옥 영구 보존

    권진규의 아틀리에·나주 한옥 영구 보존

    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은 서울 성북구 동선동에 있는 조각가 권진규의 아틀리에를 권씨의 동생인 권경숙씨로부터 기증받았다. 앞서 문화유산기금은 전남 나주의 전통마을에 있는 한옥을 매입해 보수 및 복원을 거쳐 영구보존키로 했다. 동선동 아틀리에는 권진규가 1959년 일본에서 귀국한 뒤 1973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작품활동을 한 예술의 산실이다. 작업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등 보존가치를 인정받아 2004년 등록문화재 134호로 지정됐다. 문화유산기금은 이번에 생활공간과 작업실은 물론 유품 일부도 기증받았다. 1930년대에 지어진 나주 한옥은 풍산 홍씨의 집성촌인 다도면 풍산리 도래마을에 있다. 본채와 사람장, 부엌이 근대적 특성을 보여주고 있으며, 주변 가옥 및 마을 전체적인 보전 차원에서도 중요한 위치에 자리하고 있다.1억원의 매입 비용은 재단의 모금과 유한킴벌리의 후원으로 충당했다. 기금은 권진규의 아틀리에는 미술가들이 머물며 작업을 할 수 있는 레지던스 프로그램(Artist-in-Residence) 용도로 활용하고, 주기적으로 공개하기로 했다. 또 나주 한옥은 복권기금의 지원으로 원형을 복원한 뒤 지역 특산물의 나주반을 일부 전시하고 지역의 생활상과 마을의 역사를 보여주는 공간으로 꾸밀 계획이다. 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이사장 윤상구)은 한국내셔널트러스트(공동대표 문국현·양병이)가 2004년 ‘최순우 옛집’을 복원하면서 소유권을 출연받아 설립한 공익법인이다. 그동안 강화 매화마름 군락지, 최순우 옛집, 동강 제장마을을 각각 시민유산 1,2,3호로 명명하고 보전활동을 벌여 왔다. 문화유산기금은 13일 나주 한옥은 시민유산 4호, 권진규 아틀리에는 시민유산 5호로 각각 선포했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명품 고악기 무상임대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은 13일 바이올리니스트 박예지, 첼리스트 변새봄·이정란에게 세계적인 명품 고악기를 무상으로 임대하는 전달식을 가졌다. 재단은 지난달 두 차례 오디션을 거쳐 대상자를 선발했다. 이날 박예지에게는 1724년경 제작된 카를로 주세페 테스토레의 2분의1 사이즈 바이올린, 변새봄에게는 1861년 만들어진 주세페 로카의 첼로, 이정란에게는 1600년경 제작된 지오바니 파올로 마치니의 첼로가 전달됐다. 이들은 3년동안 악기를 무상으로 쓸 수 있으며, 보험금도 재단에서 부담한다. 재단은 1993년부터 유망 음악 영재들에게 고악기를 빌려주는 악기 은행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악기 은행에는 과다니니, 몬타냐나, 과르네리, 테스토레, 세자르 칸디, 로카, 마치니 등 21점의 명품 고악기가 등록되어 있다.서동철기자 dcsuh@seoul.co.kr
  • 중앙박물관에 클래식이 흐른다

    중앙박물관에 클래식이 흐른다

    국보 제83호 삼산관반가사유상은 국립중앙박물관의 불교조각실에서도 별도의 전시공간에 모셔져 있다. 사라져가는 희망을 상징하는 캄캄한 통로를 따라 안으로 들어서면, 구원의 손길을 내밀듯 미소를 지으며 관람객을 맞는다. 앞에는 두 사람쯤 앉을 수 있는 자리가 있는데, 관람석이라기보다는 예배석이라고 해야 할 이 작은 의자의 존재로 전시실은 그대로 법당이 된다. 중앙박물관의 가장 큰 자랑거리는 용산에 새로 지은 박물관 건물이 아니라, 바로 이 전시공간이 아닐까를 곰곰이 생각하게 만들 만큼 인상적이다. 토요일인 지난 9일 저녁 중앙박물관은 어둠에 잠긴 산사(山寺)처럼 고요했다. 야간개장이 이루어진 이날 오후 6시 이후 박물관 관람객은 모두 149명에 그쳤다고 한다. 불교조각실이 ‘묵언수행’을 하고 있는 동안 박물관 입구의 으뜸홀에서는 목관오중주가 특유의 단아하면서도 빛나는 음색을 뽐내고 있었다. 코리아목관앙상블이 들려주는 요한 슈트라우스의 ‘피치카토 폴카’와 스코트 조플린의 ‘디 엔터테이너’가 흥겨웠지만, 청중은 스물 다섯명을 넘지 않았다. 중앙박물관은 지난달 8일부터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에 밤 9시까지 문을 열고 있다. 앞서 지난 3월부터 매달 마지막 수요일에 ‘야간개장’을 했다. 목관오중주 연주회가 포함된 ‘음악이 흐르는 박물관’ 프로그램도 야간개장을 확대함에 따라 관람객을 늘려보겠다는 뜻에서 마련했을 것이다. 지난달 확대 이후 야간개장 관람객은 모두 2332명으로 전체의 0.9%에 머물렀다. 지난 6일 하루의 낮 관람객이 1만 5029명이니, 하루 평균 333명이라는 야간개장 실적은 드러내고 싶지 않은 숫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박물관의 부담은 커졌지만, 관람객에게는 다양하고 수준 높은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는 기회가 됐다. ‘음악이 흐르는 박물관’은 16일과 30일에는 국악실내악단 스케치,23일에는 오아시스현악사중주단을 초청해 오후 6시와 7시30분 미니 콘서트를 갖는다. 어른 2000원, 청소년 1000원, 어린이 500원의 박물관 입장료만 내면 콘서트도 즐길 수 있다. 더 큰 혜택은 낮이라면 불가능한 체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삼산관반가사유상은 중앙박물관에서 가장 인기있는 전시품이지만, 오후 8시를 넘어서면 10분 이상 ‘독대’할 수도 있다. 이번 주말 저녁에는 가족과 함께 야간개장이 ‘실패’하고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아보자. 관람객이 차츰 늘어나 야간개장이 ‘성공’을 거두기 시작하면 관람객의 즐거움은 훨씬 줄어든다는 역설이 재미있는 중앙박물관이다. 글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나비부인’ 이유있는 흥행

    ‘나비부인’ 이유있는 흥행

    지역 문예회관들이 힘을 합쳐 스스로 살 길을 찾아보겠다는 절실한 노력이 실마리를 찾기 시작했다. 경기지역문예회관협의회(경문협) 회원 극장들이 공동 제작한 오페라 ‘나비부인’이 ‘대박’을 터뜨린 것이다. 지난달 8∼9일 부천시민회관 공연이 만원사례를 이루었고,16∼17일 고양 어울림극장 공연은 85%의 객석점유율을 기록했다. 입소문을 타고 지난 8∼9일 안산문화예술의전당에 이어 오는 16∼17일 의정부예술의전당 공연은 일찌감치 매진됐다. 지역 문예회관이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는 오페라를 개별적으로 제작한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이웃한 문예회관들이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다면 제작 비용은 그만큼 줄어들게 마련이다. ‘나비부인’의 제작비는 5억원이다.2억 5000만원은 복권기금에서 지원받고,2억 5000만원을 4곳에서 똑같이 나누어 냈다. 부천은 마케팅, 고양은 홍보, 안산은 제작감독, 의정부는 행정과 예산집행 등 역할도 분담했다. 예술감독 임헌정에 연출가 김학민, 지휘자 김덕기, 이제는 ‘빅3 오케스트라’의 하나로 떠오른 부천필하모닉, 소프라노 김유섬과 테너 이현, 바리톤 최종우 등 화려한 제작·출연진에도 1만∼7만원으로 비교적 저렴하게 티켓값을 책정할 수 있었던 이유이다. ‘시설은 훌륭한데 내용이 빈약하다.’는 가슴앓이에 한결같이 시달리는 문예회관들에 ‘시장원리에 근접한 우수 콘텐츠의 개발’이라는 풀리지 않던 방정식의 해법이 제시된 셈이다. 경기지역 13개 문예회관의 공연기획 실무자가 주축인 경문협은 2004년 8월 출범했다.‘공공극장들이 네트워크를 구축해 공동으로 시장을 형성하면 비용을 절감하고, 효용성을 극대화하는 것은 물론 프로그램의 질을 높이는 데도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는 문제의식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이들은 그동안 극단 사다리의 ‘이중섭 그림속 이야기’를 초청한 공동구매, 의정부 이미숙 무용단의 창작 무용극 ‘귀천’과 안산의 국악뮤지컬 ‘반쪽이전’의 지역예술단체 프로그램 교환, 프라하 마리오네트 인형극단의 ‘돈조바니’를 초청한 해외프로그램 공동기획 사업 등을 펼쳐왔다. 공동제작 사업도 ‘나비부인’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록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을 6곳의 회원 문예회관에서 모두 15차례 공연했다. 전체 객석점유율은 70% 정도였지만, 공동제작의 의미를 살리고 성과도 이끌어냈다는 평가가 나왔다. 내년에는 중소극장용 가족뮤지컬 ‘개구리 왕자’를 제작할 계획이다. 규모를 줄이려는 것은 되도록 많은 극장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뜻이다.‘나비부인’도 당초에는 7곳의 극장이 공연을 희망했지만, 오케스트라 연주공간이 좁아 포기하고 만 곳도 있었기 때문이다.‘개구리 왕자’는 회원 극장뿐 아니라 서울지역에서도 장기공연해 ‘가외수익’을 올린다는 구상이다. 경문협의 출범을 주도한 소홍삼 의정부예술의전당 공연계장은 “우리가 가능성을 보임에 따라 영남권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권역별 모임이 활성화되어 문예회관들이 제자리를 잡고, 지역의 개성을 살린 독특한 프로그램들도 많이 개발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한국 고고학 1906년 시작됐다

    근대적 의미에서 한국 발굴의 역사는 일본인 이마니시 류(今西龍·1875∼1932)가 경주 북산고분군을 발굴한 19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따라서 올해는 한국 고고학의 발굴 역사가 100주년을 맞는 해가 된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8일 경주 교원드림센터에서 갖는 ‘신라고분 발굴조사 100년’ 학술 심포지엄은 주제를 ‘신라’로 제한하기는 했지만, 사실상 ‘한국 고고학 발굴 100년’을 기념하는 행사라 해도 좋다. 발굴의 역사가 한 세기,1946년 우리 손으로는 처음인 경주 호우총 발굴도 60주년을 맞았지만, 아직 기초적인 발굴 조사 연구의 기반조차 마련되어 있지 못한 상태이다. 윤형원 경주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실장은 “경주지역에서 그동안 발굴한 고분이 1500개에 이르지만, 신라 고분의 종합적인 양상을 알 수 있는 기초연구는 답보 상태”라면서 “봉분이 있는 신라 고분이 몇개나 되는지도 모르는 만큼 학술조사를 위한 기초연구를 어떻게 할 것인지를 모색해 보자는 것이 행사의 취지”라고 말했다. 심포지엄은 원로들의 회고로 시작된다. 사이토 다다시(齋藤忠) 일본 다이쇼 대학 명예교수가 ‘일제하의 신라고분 발굴조사’, 천마총과 황남대총을 발굴한 김정기 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이 ‘국가에 의한 신라고분 발굴조사’, 윤용진 경북대 명예교수가 ‘대학에 의한 신라고분 발굴조사’를 발표한다. 특히 우리 나이로 99세인 사이토 교수는 1930년대 경주박물관의 연구원을 역임하며 황오리1호분 등 신라고분을 여럿 발굴했고, 부여 군수리절터에서는 보물로 지정된 백제 금동보살입상과 납석제좌불을 직접 수습했다. 신라 고분 발굴의 역사도 정리된다. 요시이 히데오(吉井秀夫) 일본 교토대학 교수가 ‘일제강점기 경주 신라고분 발굴조사’, 차순철 경주문화재연구소 전문위원이 ‘해방 이후부터 현재까지 경주 신라고분 발굴조사’를 발표한다. 새로운 과학적 발굴조사 방법의 정보를 공유하는 프로그램도 있다. 오현덕 국립문화재연구소 유적조사연구실 연구원은 ‘신라고분에서의 지하물리탐사’, 박동일 드림Tns 대표는 ‘신라고분에서의 3D스캔측량 적용’을 소개한다. 윤형원 학예연구실장은 “이번 심포지엄에선 신라 고분을 제대로 연구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 최대한 많은 사람들로부터 얘기를 들을 계획”이라면서 “경주지역에는 지금도 발굴이 이뤄지지 않은 고분이 수없이 많지만 발굴을 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도 의견을 모아 보겠다.”고 말했다.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동대문운동장 역사는 이어질까

    동대문운동장 역사는 이어질까

    근대문화유산 등록제도가 야구인들의 가두시위로까지 번진 서울 동대문운동장 철거의 해법이 될 수 있을까. 야구인들은 6일 동대문운동장을 철거하고 ‘디자인 콤플렉스’와 녹지공원을 만들겠다는 오세훈 서울시장의 계획에 크게 반발하고 있다. 야구인들은 동대문운동장이 한국 근대체육의 상징적 장소이자, 한국 야구의 역사성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만큼 역사유적으로 보존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근대문화유산 등록제도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문화재청도 그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근대문화유산의 범위를 ‘개화기를 기점으로 6·25전쟁 직후까지 건설·제작·형성된 문화재를 중심으로, 그 이후에 생성된 것일지라도 멸실 훼손의 위험이 커 긴급 보호조치가 필요한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동대문운동장도 당연히 해당한다는 논리이다. 문화재청은 이미 전문가 3명을 동대문운동장에 보내 현지조사를 마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고민도 적지 않다. 현재 풍물시장으로 쓰이고 있는 동대문운동장 종합경기장은 1926년에 준공됐다. 반면 동대문야구장은 1959년 본부석 및 내야스탠드에 이어 1962년 외야 스탠드가 만들어졌다. 보존 요구가 큰 야구장의 역사성이 종합경기장에 크게 못미친다는 사실이다. 보존한다면 오히려 종합경기장 쪽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따라서 현지조사도 종합경기장에 초점을 맞추었다. 문화재청은 나아가 종합경기장 전체를 보존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무리라는 생각이다. 상징적으로 스탠드 일부를 남기는 방안을 염두에 두고 있다. 한편 서울시는 동대문운동장의 근대문화유산 등록 가능성이 대두됨에 따라 철거문제에 문화재 전문가를 참여시킨 가운데 문화재청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여론의 추이가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사실 문화재청으로서는 새로 선출된 서울시장이 내놓은 역점사업에 앞장서 제동을 거는 데 적지 않은 부담을 갖고 있다. 따라서 이 관계자의 얘기는 동대문운동장이 ‘패션의 메카’로 탈바꿈하기보다 생명력 있는 구장으로 남아있기를 원하는 여론이 강력하게 조성되기만 한다면, 부담을 덜어내고 ‘적극적 보존정책’으로 전환할 수도 있다는 암시가 아닐 수 없다. 이에 대해 서울시측은 “이미 발표된 정책입장에 변화가 없다.”고 밝히고 있어 추이가 주목된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3000년전 인도인 한반도서 벼농사?

    3000년전 인도인 한반도서 벼농사?

    강원 정선군 아우라지 유적의 청동기시대 고인돌에서 출토된 사람 뼈가 백인의 것일 가능성이 있다는 유전자 분석 결과가 나와 주목되고 있다. 서울대 의대 해부학교실 신동훈 교수가 5일 아우라지 유적을 발굴 조사하고 있는 강원문화재연구소의 의뢰로 인골을 분석해 보니 영국인과 비슷한 DNA 염기서열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한반도에서 백인에 가까운 것으로 보이는 인골이 나온 것은 1965년 충북 제천 황석리 13호 고인돌에 이어 두번째. 당시 BC430년이라는 방사선 연대 측정 결과가 나왔다. ‘아우라지 사람’은 3000년 전에 해당하는 BC970년 정도로 강원문화재연구소는 추정한다. 황석리와 아우라지는 남한강으로 연결되는 동일생활권이다. 얼굴 전문가인 조용진 한서대 교수는 황석리 사람을 복원해 본 결과 완전한 서양인의 모습이었다고 한다. 그는 “황석리 사람처럼 생긴 사람들이 지금도 남한강변인 원주와 충주 지역에 집중적으로 살고 있다.”고 설명했다. 신동훈 교수는 아우라지 인골이 백인의 것인지 확신을 갖기에는 아직 이르다고 조심스러워 한다. 하지만 학계에서는 벌써부터 백인의 유전인자와 고인돌 문화를 전해받은 인도인들이 바닷길로 한반도에 건너와 벼농사를 지었고, 죽어서는 고인돌에 묻히지 않았겠느냐는 주장이 김병모 한양대 명예교수 등을 중심으로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김병모 교수는 “개인적으로는 이 인골의 주인공이 인도에서 벼농사 전래 경로를 따라 동남아시아를 거쳐 한반도에 들어왔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말 가운데 400여개 어휘는 인도토착어인 드라비다어에서 유래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면서 “쌀은 살(Sal), 풀은 풀(Pul), 벼는 비야(Biya), 메뚜기는 메티(Metti), 농기구인 가래는 가라이(Kalai) 등이 그것으로 벼농사 기술과 함께 소개됐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처럼 ‘아우라지 사람’의 존재는 청동기시대 한반도와 인도를 비롯한 남방과의 교류가 그동안 알려진 것보다 훨씬 활발했음을 보여주는 직접 증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 학계의 중요한 화두로 떠오를 전망이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강승민양 카사도 첼로콩쿠르 우승

    첼리스트 강승민(사진 왼쪽·19·한국예술종합학교 4학년) 양이 일본 하치오지에서 3일 폐막한 제1회 가스파르 카사도 국제 첼로 콩쿠르에서 우승했다고 5일 알려왔다. 상금은 150만엔(약 1200만원). 홍은선(오른쪽·18·서울예고 3년) 양은 3위에 입상했다. 초등학교 6학년때 금호 영재오디션을 통해 데뷔한 강승민 양은 동아일보 콩쿠르 1위, 요한슨 콩쿠르 1위, 영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2위 등을 차지했다.서동철기자 dcsuh@seoul.co.kr
  • 55년동안 쓴 일기장 박물관 기증

    서울 광진구 자양동에서 한약방을 하는 박래욱(68)씨가 55년 동안 쓴 일기장 98권을 국립민속박물관에 기증했다.1950년부터 2005년까지 기록한 박씨의 일기는 1997년 한국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다. 박씨는 1961년부터 2003년까지 금전출납부 10권,1971년부터 2001년까지 한약처방전 16권과 도민증, 국민병역신고증, 인감증명원 등 산업화에 따른 사회격변 속에서 쓰여진 갖가지 자료를 함께 기증했다. 1938년 전남 장성에서 태어난 박씨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어머니의 권유로 시작한 일기를 지금도 계속 쓰고 있다. 그는 1971년 한약업사 자격을 취득하고 한약방을 열었다. 그의 일기에는 12살 소년이 겪은 한국전쟁 이야기가 나온다.1950년 8월25일 금요일에는 “분주소에서 유격대라는 사람들이 왔다. 반동분자의(박씨의 아버지는 경찰관이었다.) 가산을 몰수하여 위대한 수령 동지의 사업에 써야 한다고 했다. 지난번에도 가산을 몰수해 갔는데 그때는 식량만 가져갔다. 그런데 이번에는 옷과 살림살이 일체를 가져갔다.”고 증언했다. 박씨의 일기에는 당시의 물가도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다.1956년 당시 물가는 돼지고기 반근 100환, 목욕 50환, 이발비 60환, 영화관람료 30환, 필름 400환, 버스요금 10환, 신문대금 300환, 혈액검사 40환, 성냥 10환, 학생배지 60환 등이었다.400환짜리 필름값이 돼지고기 한 근의 두 배나 되는 등 공산품이 농·축산품보다 훨씬 비쌌음을 알 수 있다. 신광섭 민속박물관장은 4일 “우리 박물관에 가장 부족한 자료가 바로 20세기 것”이라면서 “박씨의 기증품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연구자료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서동철기자 dcsuh@seoul.co.kr
  • 백건우,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집 녹음 … 내년 사상 초유 전곡 연주회

    백건우,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집 녹음 … 내년 사상 초유 전곡 연주회

    피아니스트 백건우가 전국 10곳에서 독주회를 갖는다. 이번 독주회는 3년 동안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32곡을 모두 음반에 담는 대장정의 두번째 해 작업을 결산하는 의미를 갖는다. 그는 이번에 독주회와 함께 베토벤의 초기 소나타를 묶은 2세트 4개의 콤팩트디스크(CD)도 내놓는다. 앞서 전곡 녹음을 시작한 지난해 소나타 16∼26번을 3개의 CD로 펴냈다. 이로써 베토벤 전곡 녹음은 소나타 27번에서 32번에 이르는 6곡만 남겨두었다. 내년 가을엔 9개의 CD로 이뤄진 ‘백건우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집’이 세상에 나온다. 백건우는 이를 기념해 내년 12월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7일 동안에 베토벤의 소나타를 모두 연주하는 한국 음악사상 초유의 연주회를 갖는다. 이번 순회 독주회에서 백건우는 모차르트, 베토벤, 슈톡하우젠, 바그너의 작품을 들려준다. 베토벤에게 영향을 주었거나, 영향을 받은 이의 작품을 모아 독일음악사에서 베토벤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보여주겠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눈길은 베토벤의 작품에 쏠린다. 작품번호 90번의 소나타 27번과 작품번호 101번의 28번은 아직 녹음하지 않은 작품들이다.27번은 백건우가 “분명히 후기의 영역에 들어간다.”고 설명한 작품이다. 베토벤이 고전파 작곡가에서 낭만파 작곡가로 변모해 가는 초입에 있는 작품이다. 베토벤의 소나타 전곡 연주가 ‘피아니스트의 에베레스트산 오르기’라면 백건우가 남겨놓은 후기의 6곡은 ‘정상등정’에 해당하는 중요한 작품들이다.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전집을 녹음한 사람은 빌헬름 박하우스와 블라디미르 아슈케나지, 클라우디오 아라우, 알프레드 브렌델 등 모두 20세기 음악사를 장식한 명연주가들이다. 백건우가 ‘데카’(DECCA)라는 메이저 음반 레이블로 베토벤 소나타 전집을 펴낸다는 것은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대가의 반열에 올랐음을 뜻한다. 올해로 진갑(進甲)을 맞은 백건우도 “나에 대한 믿음이 생길 때 비로소 녹음할 수 있는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고 한다. 언제나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는 그는 관심을 끊을 수 없게 만드는 존재이다.(02)751-9607.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원주 R석 10만원… 경남 양산선 2만5000원

    원주 R석 10만원… 경남 양산선 2만5000원

    ◈ 티켓값 지역따라 희비 피아니스트 백건우의 전국 순회 독주회는 14일 울산 현대중공업 예술관에서 시작해 30일 의정부 예술의전당에서 피날레를 장식한다. 백건우 독주회가 열리는 10곳의 티켓값을 비교해보면, 수도권 밖 주민들은 여전히 문화적 불평등 속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다. 프로그램은 전국이 똑같지만, 원주, 전주, 광주, 울산 주민의 부담은 수도권 주민보다 훨씬 크다. 반면 서울 2곳과 경기 수원·안양·의정부 등 모두 5차례 공연이 열리는 수도권에서는, 조금만 발품을 팔면 더욱 저렴한 가격에 골라서 즐길 수 있다. 티켓값이 가장 비싼 원주 치악예술관의 26일 공연은 R석이 10만원,S석이 8만원이다.21일 전주 소리문화의전당도 R석이 9만원,S석이 7만원으로 원주를 뺨친다. 학생석이 1만 5000원인 것이 그나마 위안거리다.28일 광주와 14일 울산은 가장 비싼 티켓이 각각 8만원과 6만원이다. 반면 19일 서울 예술의전당 공연은 R·S·A석이 각각 6만·4만·2만원이다. 같은 서울이라도 노원문예회관의 23일 공연은 R·S·A석이 6만 5000·5만 5000·4만 5000원으로 예술의전당보다 오히려 비싸다. 의정부는 서울 노원구와 맞붙어 있다. 의정부 예술의전당에서 30일 열리는 공연은 R·S·A·B석이 각각 5만·3만·2만·1만 5000원이다. 노원구 주민들이 ‘역류’할 수도 있다. 가까운 수원과 안양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 수원 경기도문예회관의 29일 독주회는 R·S·A석이 각각 5만·4만·3만원이나 16일 안양문예회관은 4만·3만·2만원으로 1만원씩 싸다. 형편에 맞는 공연을 골라서 갈 수 있는 주변 지역 주민들에게는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눈길을 끄는 곳은 경남 양산이다. 문화회관에서 열리는 15일 공연은 R·S·A석이 각각 2만 5000·2만·1만 5000원이다. 원주 공연의 평균 4분의1도 되지 않는다. 클래식 음악의 저변을 넓히고자 이번만큼은 양산시가 파격적으로 지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양산시라고 모든 공연을 이렇게 지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티켓값의 차이는 지역의 음악 수요 및 공연장의 크기와 관련이 있다.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은 2523석이지만, 원주 치악예술관은 660석에 불과하다. 백건우는 사정이 어려운 중소도시에선 개런티를 깎아주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비슷한 제작비에 객석이 적으면 그만큼 티켓값은 올라가게 마련이다. 음악회를 주최하는 지역의 영세 매니지먼트는 큰 공연장이라고 하더라도, 관객이 들어찬다는 보장도 없는데 무작정 티켓값을 낮출 수는 없다. 이처럼 지역민들이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불가피한 격차’를 메워주는 것이야말로 문화정책이 수행해야 할 일이다. 서울 예술의전당 공연이 음악팬들의 부담을 줄일 수 있었던 것은 티켓값의 30%를 지원하는 CJ문화재단의 ‘위 러브 클래식’ 캠페인에 힘입었다. 노원문화회관 공연이 더 비싼 것도 이 때문이다.CJ문화재단이 세상의 눈이 모이는 곳에 지원을 집중하기보다 원주·전주·광주에 눈을 돌렸더라면 훨씬 더 큰 칭찬을 받을 뻔했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광화문 해체 돌입…‘제모습 찾기’ 3년 대공사

    광화문 해체 돌입…‘제모습 찾기’ 3년 대공사

    ■ 담장 330m 복원 철근콘크리트로 지어진 광화문을 철거하고 일대를 옛 모습대로 복원하는 작업이 4일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오는 2009년 말까지 복원되는 건물은 광화문을 비롯해 용성문, 영군직소, 수문장청, 군사방 등 모두 12동 169평이다. 임금이 다니던 폭 7.7m, 길이 100m의 어도(御道)와 안팎의 담장 330m도 평균 3.5m 높이로 옛 모습을 찾는다. 정부는 이날 오후 2시 경복궁 흥례문 앞 마당에서 ‘경복궁 광화문 제모습 찾기 선포식’을 갖는다. 12월4일은 1394년(태조 3년) 경복궁을 창건하고자 땅을 파기에 앞서 지신(地神)에게 제사 지내는 개토제(開土祭)를 했던 날이기도 하다. 선포식에서는 광화문의 용마루를 들어내는 이벤트와 함께 공사기간 동안 가림막으로 사용될 설치미술가 양주혜씨의 상징조형물 제막식도 베풀어진다. 광화문은 경복궁의 정문이자 남문으로 북문인 신무문, 동문인 건춘문, 서문인 영추문과 함께 1395년(태조 4년)에 지어졌으며,1426년(세종 8년)에 지금의 이름을 얻었다. 광화문은 1492년 임진왜란으로 불탄 이래 1867년(고종 4년) 다시 지었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에 조선총독부 청사가 경복궁 안에 들어서면서 1927년 건춘문 북쪽으로 옮겨졌다. 하지만 한국전쟁 과정에서 다시 불탔고,1968년 현 위치에 불완전한 모습으로 세워져 오늘에 이르렀다. 광화문 제모습 찾기 사업이 마무리되면 모두 129동 6207평의 건물이 복원돼 고종 당시 원형의 40%를 회복하게 된다. 문화재청은 경복궁 복원정비사업으로 ▲1990년 침전 권역 ▲1999년 동궁 권역 ▲2001년 흥례문 권역 ▲2005년 태원전 권역을 복원했다. 한편 박정희 전 대통령이 쓴 한글 현판은 이웃한 국립고궁박물관으로 옮겨져 전시된다. 새로운 현판은 광화문 복원이 마무리되는 2009년에야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현판은 1867년 중건 서사관인 임태영의 현판글씨를 모사하거나, 아예 새 글씨를 의뢰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히고 있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원형 되찾을까? 향후 3년간 ‘광화문 제모습 찾기’로 경복궁이 상당부분 옛 모습을 되찾을 것으로 보이지만 ‘원형’에 이르기까지에는 갈 길이 멀다. 먼저 동십자각과 서십자각의 원형 회복이 쉽지 않다. 동십자각은 광화문에서 삼청동길로 접어드는 경복궁 남동쪽 모서리에 있는 건물이다. 경복궁의 남동쪽 망루였지만, 궁궐의 담장 일부를 허물어 길을 내는 바람에 지금은 섬처럼 남아 있다.1929년 일제가 경복궁에서 조선박람회를 열면서 궁장(宮墻)을 헐어낸 것으로 알려진다. 남서쪽 망루인 서십자각은 아예 사라졌다. 역시 일제가 1923년 광화문에서 영추문 쪽으로 전차선로를 깔면서 철거했다. 동십자각이 제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것과 달리 서십자각은 원래의 위치조차 불분명하다. 경복궁의 남서쪽 모서리에서 지금보다는 남쪽과 서쪽으로 각각 10m 정도는 바깥쪽에 서있던 것으로 추측한다.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려면 발굴조사가 필요하다. 문화재청은 경복궁의 남동쪽 담장을 동십자각에 잇거나, 서십자각을 옛 자리에 복원하는 계획을 아직 세우지 못하고 있다. 복원했을 경우 ‘교통대란’을 넘어 일대 도로의 기능이 사실상 중단되는 상황으로 치닫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모습 찾기’에 따라 광화문을 현재보다 남쪽으로 14.5m, 서쪽으로 10.9m 옮겨 짓고,5.6도 틀어졌던 축을 원래대로 되돌린다고 해도 경복궁의 남동쪽과 남서쪽 모서리는 현재의 위치와 달라지지 않는다. 복원될 경복궁의 남쪽 외곽 담장 역시 옛 자리가 아닌 ‘현실’을 수용해 세워질 수밖에 없게 됐다. 궁궐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광화문 앞에 배치했던 넓고 높직한 섬돌인 월대(月臺)도 제모습을 찾기 어렵게 됐다. 길이 52m인 월대를 복원하면 광화문 앞의 자동차 통행이 사실상 불가능한 것은 물론 정부중앙청사도 일부 침범할 수 있다. 경복궁 안에 있는 국립민속박물관과 국립고궁박물관, 궁궐 안의 주차장 문제도 해결해야 할 장기 과제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3일 “경복궁 복원정비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털어놓았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동·서양 도자기 교류사 한눈에

    동·서양 도자기 교류사 한눈에

    옛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영화를 그대로 보여주어 터키를 찾는 관광객의 필수 방문 코스가 된 이스탄불의 톱카피 궁전 박물관(Topkapi Sarayi Muzesi)은 세계 최고 수준의 동양도자기 컬렉션으로도 유명하다. 줄잡아 1만 2000여점에 이르는 중국과 일본의 명품 도자기를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톱카피의 동양도자 컬렉션은 중국과 일본의 ‘내수용’이 아닌 유럽 및 이슬람권 수요자의 취향에 맞추어 만든 ‘수출용’이다. 수출자기의 양상을 문화교류사 차원에서 비교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가치를 인정받는다. 그 톱카피 궁전 박물관이 갖고 있는 중국과 일본의 수출자기 80여점이 한국에 온다.‘동서도자교류의 접점-터키’라는 주제로 제4회 국제도자비엔날레가 열리는 내년 4월28일부터 6월24일 사이에 경기도 광주에 있는 조선관요박물관에서 전시된다. 터키가 자랑하는 국보급 유물이지만 6·25전쟁에 참전한 데 이어 2002년 월드컵축구대회에서도 우의를 과시한 ‘형제국’인 만큼 2007년 한·터키 수교 50주년을 맞아 흔쾌히 반출을 허가했다고 한다. 이번에 한국에 오는 톱카피 도자기는 14세기에서 16세기에 이르는 중국의 명·청대 청화백자가 주류를 이룬다. 또 몇몇 일본 백자가 시대별·양식별로 조명될 예정이다. 당시 이슬람문화권을 겨냥해 중국과 일본이 제작한 수출자기의 양상을 살펴볼 수 있다. 특별히 이번 전시회는 동아시아의 수출자기가 터키의 전통 도자문화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살펴 보는 기회도 제공한다. 이를 위해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과 치니리 키오스크 타일미술관, 터키&이슬람 미술관, 사드베르크 하님 미술관, 코냐 카라타이 박물관의 대표적인 터키 자기 80여점도 출품된다. 유례가 없는 전시회지만, 관계자들은 고민도 없지 않았다. 전시회가 한국 도자기에 전해주는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자문(自問)하면 더욱 그랬다. 최건 조선관요박물관장은 “중국은 앞선 기술로 이슬람과 유럽을 석권했고 일본도 명·청이 교체되는 혼란기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지만 조선은 교류에서 단절되어 있었다.”면서 “이후 중국과 일본은 수요자의 취향에 부응하느라 쇠퇴하는 양상을 보였지만, 침체기였던 조선은 오히려 훗날의 시각으로는 독특한 아름다움을 지닌 백자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서동철 기자 dcsuh@seoul.co.kr
  • 안익태 ‘친일논란’ 약될까

    새달 5일 열리는 ‘안익태 탄생 100주년 기념음악회’는 때맞춰 다시 불거진 주인공의 친일논란으로 유쾌하기만 한 잔치가 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하지만 이번 논란이 소모적인 신경전에 머물지 않고,‘안익태 연구’의 방향타를 올바르게 돌리는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갈길이 멀기는 하지만 기대도 갖게 한다. 안익태는 1906년 12월5일 평양에서 태어났다. 그의 탄생일에 열리는 기념음악회는 최근 발굴된 교향시 ‘마요르카’를 한국 초연하고, 역시 알려지지 않았던 성악곡 ‘아리랑고개’와 ‘이팔청춘’을 선보이는 뜻깊은 자리이다. 피날레는 물론 애국가가 들어있는 ‘코리아 판타지’가 장식한다. 그럼에도 음악회가 다소 풀이 죽은 분위기 속에 준비되고 있다는 것은 안익태기념재단이 지난 23일 서울시내 한 호텔에서 마련한 기자간담회에서도 충분히 감지할 수 있었다. 질문은 음악회의 내용보다 친일논란에 따른 재단의 대책을 요구하는 데 집중됐다. 재단도 주인공이 일제의 꼭두각시정권인 만주국을 찬양하는 ‘축전음악’을 작곡·지휘하는 등 ‘협조적’이었다는 인상을 줄 우려가 짙은 자료가 공개된 것이 마음에 걸리는 듯, 주인공이 남겨놓은 다양한 양상의 애국심을 애써 강조하는 모습이었다.하지만 주인공에 대한 열정적인 변호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사실만 나열해도 국민들이 직접 보고 판단할 수 있도록 선생의 활동을 담은 각국의 신문·잡지·공연기록·동영상을 2∼3년이 걸리더라도 모두 정리하겠다.”는 재단의 의지였다. 안익태기념재단은 1992년 출범했지만, 그동안에는 일종의 친목단체에 머물렀다. 그럼에도 주인공이 세상에 없는 마당에 온갖 논란은 재단으로 수렴하기 마련이었다.사실 안익태의 자료 수집과 정리는 주인공의 이름을 건 기념재단이라면 강산이 변한다는 10년이 훨씬 지난 지금은 벌써 끝마쳐 놓았어야 할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재단을 이끌며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사람은 그저 음악이 좋아 한해 수억원씩 지원하는 경제인 출신 이사장과 보수도 없이 일한다는 피아니스트 사무국장이다. 결코 체계적으로 보이지 않는 일회성 행적 추적에 머물고 있는 우리 음악학계가 조금은 미안해해야 할 일은 아닐까. “선생의 긍정적인 모습뿐 아니라 부정적인 모습까지 드러내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재단의 뜻이 이번에는 빛을 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려면 친일논란을 불러일으킨 자료를 발굴한 이들을 포함해서 다양한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두 힘을 합치는 노력이 중요할 것 같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인사]

    ■ 서울신문 △미디어지원센터 심의위원 오병남△온라인뉴스부 전문위원 박희석△편집국 문화부 문화전문기자 서동철△논설위원실 논설위원 함혜리(부국장급) 황성기△제작국 대구공장장 최명철△경영전략실 전략기획부장 강성남△투자개발실 투자개발〃 김철홍△편집국 편집〃 장상규△〃 공공정책〃 박대출△〃 지방자치〃 강동형△〃 경제〃 손성진△〃 사회〃 오승호△〃 문화〃 박선화△편집국 편집행정팀장 김점옥△시설관리본부 임대사업〃 정성주■ 연합뉴스 ◇승진 (부국장대우) △편집국 부국장(국제뉴스 담당) 문정식△스포츠레저부장 김용윤△경남지사장 윤대복△제주〃 홍정표△뉴스편집부 이기승△천안주재 이우명△L.A특파원 장익상(부장대우)△엔터테인먼트부장 이희용△정치부 통일외교팀장 지일우△산업부 현경숙△국제뉴스1부 김홍태△워싱턴특파원 이기창△외국어뉴스국장석(해외연수) 황두형△고객지원부장 정태성△총무부 남맹우△뉴미디어사업부 주홍완◇전보△논설위원 권오연△사회부장 이병로△외국어뉴스1〃 이선근△외국어뉴스2〃 장윤주△영상취재〃 이희열△마케팅〃 김선한△영상제작〃 이창섭△디지털뉴스〃 문병훈△뉴미디어사업〃 송정호△DB센터〃 김정열△전략사업부 영업관리팀장 노종철△정보사업국 사업관리〃 임창운■ 한국일보 (편집국)△수석부국장 송태권 △부국장(정치담당) 이계성 △부국장(경제·기획담당) 이종재■ 한국석유공사 ◇전보 △신규사업단장 金性勳△총무관리처장 梁正一△경영혁신〃 崔在洙△개발총괄〃 梁東龍△탐사사업〃 林洪根△비서실장 李龍國△건설처장 金重賢△건설기술〃 韓炳浩△신규사업〃 申有眞△생산운영〃 鄭文鉉△기술개발실장 金承鎬△시추선사업처장 孫景洛△개발설계팀장 朴相准△사업총괄〃 劉定晩△개발운영〃 柳基虎△탐사개발〃 南在九△해외탐사2〃 姜勇羽△시추선사업〃 成弼鍾△국내탐사〃 崔秉龜△유전매입〃 尹宗錫△생산계획〃 延九欽△생산운영〃 柳尙秀
  • [데스크시각] 서울시장님,그거 문화재 되겠습니까? /서동철 공공정책부장

    육조(六曹)거리였던 세종로에서 조선시대 관아(官衙)의 흔적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1967년이다. 당시까지만 해도 대원군 시대에 부활된 삼군부(三軍府)의 청헌당(淸憲堂)이 남아 있어 옛 체신부의 일부가 들어 있었다. 이 청헌당을 공릉동의 육군사관학교로 옮기고 지은 것이 정부중앙청사이다. 문화재를 몰아낸 자리에 관청 건물을 세운다는 것은 요즘 같은 ‘보존 지상주의’시대에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당시 정부는 아예 청헌당을 건축자재로 매각하는 방안까지 검토했다고 한다. 자칫 붐을 이루던 일본인 기생관광용 요정으로 추락할 수도 있었다. 조선초기 삼군부에서 예조(禮曹)로, 다시 삼군부로 역사를 이어온 터에 중앙청사가 지어지는 과정을 몰문화적 군사정권의 횡포로만 보고싶지는 않다. 개발시대에도 개발시대 나름의 논리는 있게 마련이다. 당시 청헌당 보존과 중앙청사 건립을 국민투표에 부쳤다면 ‘조국 근대화’시대에 걸맞은 현대식 정부청사에 기꺼이 ‘한 표’를 던질 국민이 아마도 더 많지 않았을까. 요즘 경복궁이 단계적으로 복원되어 옛 모습을 조금씩 찾아가면서, 조선시대 육조거리도 복원하면 더욱 훌륭한 문화관광자원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2000년 역사도시 서울이 고풍스러운 모습을 조금이라도 되찾기를 바라는 보통사람들의 목소리일 것이다.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이 계획대로 이루어진다는 전제가 필요하지만, 이들은 세종로 주변의 정부기관들이 옮겨간 이후 정부의 의지만 있다면 황당한 꿈만은 아니라고 날개를 편다. 물론 문화예술 관련 시민사회단체들은 벌써부터 정부기관이 떠난 세종로는 문화공간과 열린광장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정부는 중앙청사까지 매각해 행정도시 건설비에 충당하겠다는 완강했던 방침에서 한발 물러서 길 건너편의 문화관광부 청사만 매각한다는 수정안을 최근 내놓았다. 문화재로 떠받들어지는 건축물이라고 지을 때부터 후세의 인정을 받겠다고 벼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특히 궁궐도 아닌 관아는 쓰임새에 충실하면 되지 않았을까. 청헌당이 서울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것은 조선시대 조정의 관아라는 희소성이 먼저 작용한 것은 틀림없다. 나아가 지금도 날선 듯 치켜올라간 청헌당의 처마선에서 열강의 침략이 가시화되던 시기, 문약(文弱)해진 조선의 분위기를 추슬러 보겠다는 의지를 읽었다면 너무 ‘오버’하는 것일까. 깊은 뜻은 몰라도, 중앙청사라도 보존하겠다는 정부의 방침은 일단 환영할 만하다. 중앙청사의 보존은 20세기 후반기 대한민국 정부의 ‘물리적 흔적’을 남기는 일이기 때문이다. 육조거리가 복원되면 참 멋있겠다고 생각하면서도, 흔쾌하지 않았던 것도 한 시대를 조금 더 되살리기 위해 다른 한 시대를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중앙청사는 예술품일 수 없지만 ‘정부의 역사’라는 측면에서 중요한 문화재라고 생각한다. 개발독재시대 권위주의의 상징이라는 비난은, 한편으로 이 건물에 내포된 시대정신이기도 하다. 같은 차원에서 이조(吏曹)터에 자리잡은 문화부 청사를 팔겠다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는 것도 아쉽다. 조선왕조에서 대한민국에 이르는 ‘관가(官街)’라는 세종로의 역사성이 훼손되리라는 것은 너무나도 뻔하기 때문이다. 정부청사를 보존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놓고도 이렇듯 골치가 아픈데, 고유한 건축양식마저 완전히 생명력을 잃어버린 마당에 상징성있는 관청 건물을 새로 짓는 것은 정말로 큰 일이다. 21일 아침 서울신문은 서울시가 새청사를 세우는 데 속도를 내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너무 서두르지 말라는 판에 박힌 충고는 하고 싶지 않다. 다만 ‘문화시장’이 되겠다는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이것만은 묻고 싶다. “시장님, 새로 짓는 건물이 훗날 문화재가 되겠습니까?” 서동철 공공정책부장 dcsuh@seoul.co.kr
  • 동심… 젊음… 가을을 부른다

    동심… 젊음… 가을을 부른다

    가을 문턱에 지상파 방송사들이 다채로운 노래대회를 방송, 눈길을 끈다. MBC는 패기 넘치는 대학생들의 축제 ‘2006 MBC 대학가요제’를 30일 대구 경북대에서 개최한다. 김성주 아나운서와 이효리의 사회로 진행되는 이번 대회에는 지난달 27일 2차 예선을 거쳐 선발된 최종 12개 팀이 본선 무대에서 대학생 특유의 새롭고 다양한 음악을 선보일 예정이다. 1977년 첫 회를 시작으로 올해 30주년을 맞은 MBC 대학가요제는 ‘30년의 젊음…죽지 않아!’라는 주제로 다양한 축하공연과 함께 지난 30년의 역사를 돌아보는 특별한 시간도 마련된다. 특히 장애인 2명이 멤버로 참여하는 한국재활복지대학 밴드 ‘Z’가 출연, 관심이 쏠린다. 대회 본선에 장애인이 참가하는 것은 처음이다. 이 그룹은 1급 시각장애인인 홍득길(드럼)과 2급 지체장애인인 이민호(보컬)를 비롯, 유승현(기타), 서동철(기타), 신동민(베이스), 서민경(건반), 김다솔(보컬) 등 7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우리의 공연을 보고 장애인들이 힘을 더 냈으면 좋겠고, 음악계에 장애인들이 더 많이 진출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창작 국악동요를 발굴, 보급하기 위해 마련된 ‘2006 국악동요제’는 8일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열린다. 올해로 20주년을 맞이한 국악동요제는 국악동요 잔치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되살리는 자리.12개 팀의 창작 국악동요 경연과 함께 역대 수상곡 중 인기곡 모음, 무용계의 신동 이승훈 어린이의 공연, 백운초등학교 널뛰기부 어린이들의 흥겨운 무대 등으로 이뤄진다. 1987년 이후 총 257곡의 수상작을 탄생시켰고,‘뒷산에 올라’‘맑은 물 흘러가니’ 등 8곡이 음악교과서에 실렸다. 후원사인 KBS 1TV에서 추석을 맞아 다음달 3일 낮 12시부터 한시간 동안 녹화 방송한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옴부즈맨 칼럼] 호우·홍수·폭염 보도 ‘미흡’/심재철 고려대 언론학부 교수

    한반도를 둘러싼 기상변화를 올해의 국내 최대뉴스로 꼽을 만하다. 지난 5월 고비사막에서 불어온 황사가 한반도를 덮치더니 7월 들어 태풍 ‘에위니아’가 제주를 포함, 남부지역을 강타했다. 이어 중부지역에 장마전선에 따른 집중호우가 쏟아졌고,35도를 상회하는 불볕더위가 전국에 몰아쳤다. 이번 여름 물난리로 수도권에선 고양시가 399㎜에 이르는 물폭탄을 맞았으며, 한강둔치가 4년만에 전부 잠겼고, 안성천 지류의 제방이 무너졌다. 평촌과 인제에선 마을이 순식간에 없어지는 산사태가 발생, 또다시 수많은 이재민이 발생했다. 장마가 걷히자 이젠 ‘한낮의 폭염이 열대야’로 이어지면서 8월중순까지 불볕 더위가 맹위를 떨칠 것이라고 한다. 이같은 기상변화를 다룬 서울신문의 뉴스보도 성적은 얼마나 될까. 언론학 전공자로서 개인적인 평가를 해보면 100점 만점에 63점으로 합격선을 넘었다고 본다. 하지만 집중호우와 홍수에 이어 새로 시작된 폭염에 대한 스트레이트 기사는 평균 49점 정도로 낙제점을 줄 수밖에 없다. 우선 TV보도와 비교해 새로운 정보가 별로 없었다. 인쇄매체의 자연재해 보도라면 노란색 비옷으로 한껏 멋을 낸 TV기상캐스터보다는 한 차원 높은 분석적인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또한 독자가 현장에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필력이 있어야 한다. 단신의 스트레이트에서도 독자가 꽉 찬 긴장감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서울신문의 보도는 외신기사를 읽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과연 일산의 물폭탄 기사와 전국을 강타한 폭염기사가 ‘발로 뛰며 얻어낸 기사’일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현장의 긴박감을 느낄 수 없었다. 신문은 무엇보다도 재난극복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생겨날 수밖에 없는 감동을 독자에게 선사해야 한다. 그러지 않는다면 사회구성원이 재난 보도를 통해 ‘심리적 안정감’을 얻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재난수습에 필수적인 신문 고유의 ‘주변환경 감시’를 제대로 할 수 없다. 이해가 서로 다른 집단의 자본을 끌어내 국가 위기를 극복하며 ‘사회 공동체’를 유지시키는 역할을 해낼 수도 없다. 물론 재난보도도 다른 스트레이트처럼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왜 그리고 어떻게”라는 5W1H에 초점을 맞춰서 기사를 쓸 수밖에 없다. 재난의 와중에서 피해상황을 한눈에 파악하는 게 생각만큼 쉽지도 않다. 하지만 인쇄매체가 전자매체와 경쟁하기 위해서는 피해가 어떻게 발생했으며 왜 그런 피해가 났는지에 대해서 분석적인 시각을 제공해야만 한다. 특히 한반도를 둘러싸고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기상변화와 자연재해에 대해 서울신문은 왜 그런 변화가 일어났으며, 정부는 어떠한 대책을 세워야 하는지에 대해 독자들에게 보다 설득력있는 기사를 제공해야 한다. 그런 관점에서 7월21일자 서동철 공공정책부장의 ‘수해대책마저 양극화하나’라는 데스크 시각과 7월29일자 이종락기자의 ‘재해보험 확대로 국고손실 줄여야’와 ‘외국의 재해보험 경우는’이란 기획기사가 눈에 띄었다. 특히 이기자가 보도한 ‘연 2만원 내면 최고 2700만원 보상’이란 풍수해 보험기사는 서울신문이 캠페인을 벌여도 좋을 정도로 훌륭한 기사였다. 물론 이 보도는 서울신문이 특종한 기사는 아니다. 하지만 다른 경쟁사가 일주일전 이런 내용을 단발성 가십으로 다룬 반면에 서울신문은 이를 재해를 극복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안으로 제시했다. 사실 선진국에선 재해보험이 없다면 주택융자를 받을 수 없다. 신문의 재난 보도는 피해규모를 정확히 파악해 보도하는 것 이상으로 재난이 왜 발생했으며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에 대한 대책까지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서울신문을 포함해 국내 어느 언론도 최근 한반도에 대규모 재난을 동반하는 기상변화가 왜 그렇게 빈번히 일어나는지에 대한 의문을 풀어주지 못했다. 심재철 고려대 언론학부 교수 shim@korea.ac.kr
  • [데스크시각] 수해 대책마저 양극화하나/ 서동철 공공정책부장

    수해로 가족을 잃거나, 삶의 터전이 송두리째 망가져버린 분들께는 송구스러운 망언이 되겠지만, 그래도 세상은 조금씩 좋아지고 있는 것 같다. 서울 강북의 중심지로 부상하고 있는 용산은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도 가슴까지 차는 물을 헤치고 대피하는 주민들의 사진이 신문을 장식하기 일쑤였다. 마포 서강도 사정은 비슷해 제식구 먹여살리기도 힘겨운 북한이 수해를 당한 남쪽의 ‘불우이웃’들에게 ‘구호미’를 보내주어 ‘김일성 떡’ 잔치가 벌어졌던 해프닝마저 있었다. 이른바 ‘버블 세븐’의 핵심으로 떠오른 목동이 상습침수지역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은 또 얼마나 될까. 지겨울 정도로 잦았던 수해는 그만큼 대비하는 ‘노하우’도 키웠다. 물론 이번에도 일산신도시의 지하철역이 잠기고, 안양천의 둑이 터지는 바람에 양평동 주민들이 고통을 겪었다. 하지만 두 곳의 물난리는 우리 사회가 크게 달라졌음에도, 여전히 변치 않은 이웃 공사장 책임자의 의식구조 때문이지 투자가 부족했기 때문은 아니다. 오히려 여강(驪江)으로 불리는 여주 남한강이 지역의 전설에 나오는 황마(黃馬)처럼 날뛰는 급류로 주민들을 공포에 떨게 했고, 한강도 위험수위를 오르내렸음에도 정말 ‘큰 일’로 이어지지 않은 것은 인상적이었다. 한강에 홍수경보가 내려졌던 지난 16일 한 라디오 방송의 진행자는 “한강시민공원이 완전히 잠겼으니 어떻게 하느냐.”고 광나루에서 행주산성 어귀에 이르는 한강 둔치가 모조리 서해바다로 떠내려가기라도 한듯 발을 동동굴렀다. 이어진 서울시 관계자의 설명대로,‘홍수터’로도 불리는 둔치가 큰물에 대비한 여유공간이라는 사실을 이 진행자는 아마도 몰랐던 듯하다. 잠수교(潛水橋)가 물에 잠긴 것은 제 이름값을 한 것이라고 쳐도, 올림픽대로와 강북강변도로가 침수된 것은 시민들에게 이번 폭우의 심각성을 짐작케 했다. 하지만 이것도 당장의 ‘불편’을 상징할지언정 당장의 ‘위험’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었다. 올림픽대로와 강북강변도로는 큰 비가 오면 물에 잠길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 났기 때문이다. 두 간선도로는 곳곳에 놓인 기존의 한강다리 아래를 지난다. 당연히 다리 아래는 다른 구간보다 훨씬 낮게 만들 수밖에 없었음은 자동차를 타고 가면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훗날 대대적인 정비가 필요한 대목이다. 이렇듯 세상은 좋아지고 있다지만, 서울과 몇몇 수도권 신도시에 국한되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지하철역이 잠긴 인재(人災)와는 별개로 일산신도시는 삽시간의 폭우로 교통이 그리 오래지도 않은 동안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자 하수관로 정비를 소홀히 했느니, 배수로에 수초가 많아 물흐름을 늦추었다느니 원인 분석이 만발했고, 대책도 거의 즉각적으로 나왔다. 이번 폭우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강원도 산간지역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되는 등 겉으로는 국가적 관심이 쏟아지고 있는 듯 보인다. 하지만 ‘물폭탄’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를 피하여 주민들이 다시 집을 지을 수 있도록 ‘물길지도’라도 만든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더구나 정부가 다목적댐 건설 카드를 다시 내민 것은, 설사 한두개 댐은 수긍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서유기’ 만화에 나오는 사오정처럼 엉뚱했다. 최상류 주민들에게 피해가 집중되었는데, 댐 아래 중하류의 안전에 대책의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이다. 강원도에서도 부서진 집을 대충 수리해 소나기만 내려도 밤잠을 못 이루는 글자 그대로의 복구(復舊)가 아니라, 새로운 터전에서 안전하게 살 수 있도록 돕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야 관광객들도 이 대한민국 최고의 참살이 체험장을 안심하고 다시 찾을 것이다. 온갖 양극화론(論)으로 위화감이 가득한 나라에서 수해 대책마저 서울 다르고, 강원도 달라서야 되겠는가. 서동철 공공정책부장 dcsu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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