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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시 이코노미/ 해냄 펴냄

    일본이 경제 발전에 박차를 가하던 1960년대 이후 일본항공(JAL)의 비행기는 외국 공항에 착륙할 때마다 카메라와 섬유, 소형 전자제품을 활주로에 가득 쏟아냈다. 하지만 일본으로 돌아갈 때는 화물칸이 늘 비어 있는 것이 JAL의 고민이었다고 한다. 1971년 새로운 화물시장 개척 임무를 맡은 오카자키 아키라는 일본에 생선초밥(스시) 붐이 급격히 일면서 붉은 살 생선 참치의 공급이 시장의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데 주목했다. 일본에서는 참치 가운데서도 가장 고급품으로 치는 참다랑어가 당시 미주지역의 어부들에게는 ‘버리는 생선’이었다. 오카자키가 캐나다 동부해안의 프린스 에드워드 섬을 찾았을 때도 어부들의 반응은 “당신 같으면 그런 것을 먹겠느냐.”는 것이었다. ●참치의 무역거래에 바탕 둔 문화경제적 탐방기 우여곡절 끝에 1972년 여름 26㎏의 참다랑어 한 마리가 트럭에 실린 채 캐나다 동부해안을 떠나 36시간만에 미국 뉴욕의 JFK 국제공항에 도착했고, 다시 JAL의 DC8에 실려 14시간의 비행 끝에 도쿄 하네다 공항에 내려졌다.‘스시’가 일본의 국민음식에서 글로벌 문화상품으로 발돋움하는 첫걸음을 내딛는 순간이기도 했다. 미국 ‘보스턴 글로브’ 기자인 사샤 아이센버그가 쓴 ‘스시 이코노미’(김원옥 옮김, 해냄 펴냄)는 생선초밥의 재료가 되는 참치의 무역거래에 바탕을 둔 문화경제적 탐방기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이 책을 쓰기 위하여 2년 동안 5개 대륙의 14개 국가를 직접 찾아가 취재했다고 하는데, 이런 노력을 기울일 만큼 ‘스시’가 매력있는 주제로 떠올랐음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미국 메릴랜드 토슨의 작은 마을에는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9개의 생선초밥집이 밀집되어 있어서 ‘스시 벨트’라고 불린다. 그러니 아이센버그가 “미국에는 지금 너무나도 많은 ‘스시 바(bar)’가 있어 ‘스시’는 이제 매력있는 주제를 넘어 진부한 주제가 되었을 지경”이라고 토로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나아가 로스앤젤레스의 서던 쓰나미(Southern Tsunami)는 전미국에 2000곳이 넘는 ‘스시 테이크아웃’ 매장을 운영하여 해마다 2억 5000만달러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 고유의 문화가 세계인의 입맛에 맞게 글로벌화되었을 때 얼마만한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일 것이다. ●돈·권력·사람 그리고 시대의 상호연결성의 산물 도쿄의 쓰키지 어시장에서는 매일 새벽 5시에 경매가 이루어진다. 출품되는 참치의 원산지를 살펴보면 ‘스시 무역’이라고 표현해도 좋을 만큼 참치의 네트워크가 얼마나 전세계적으로 퍼져 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뉴욕 롱아일랜드가 원산지인 자연산 참다랑어와 스페인과 터키의 양식 참다랑어, 일본 북부 아오모리현의 오마에서 잡은 참다랑어, 마셜제도산 눈다랑어, 멕시코 엔세나다산 양식 참다랑어가 한 자리에서 경매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스시 붐’은 필연적으로 자원고갈을 가져왔는데,1977년 900t이었던 호주 포트링컨의 참치 어획량은 급감하기 시작했다.“일본과 호주가 너무 많이 우려먹으면서 어장을 망가뜨렸다.”는 반성이 나오면서 호주 정부는 1984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어획쿼터를 도입하기도 했다. 아이센버그는 “바다에서 생선초밥집으로 가는 참치의 여정만큼 세계화의 복잡한 역학을 뚜렷하게 드러내는 것은 없지만 ‘스시의 권력’은 다국적기업이나 정부가 아닌 개인으로부터 나온다.”면서 “‘스시’는 돈, 권력, 사람, 그리고 시대의 상호 연결성이 발명한 요리”라고 말했다.1만 5000원.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53) 경북 영천 거조암 오백나한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53) 경북 영천 거조암 오백나한

    은해사 거조암은 경북 영천의 청통면 사무소가 있는 네거리에서 서북쪽으로 난 찻길을 따라 팔공산 자락으로 올라가면 나타납니다. 이름에서는 깊은 산중의 작은 암자 같은 느낌이 물씬하지만 학교 운동장만큼이나 넓은 주차장을 만나면 처음 이미지는 간데가 없어지지요. 차에서 내려 영산루 아래로 난 계단을 오르면 바로 절 마당입니다. 거조암을 찾는 사람들은 큰법당인 국보 제14호 영산전에 먼저 눈길을 빼앗기게 됩니다. 수덕사 대웅전에서 감탄했던 맞배지붕의 아름다움에 부석사 무량수전의 안정감이 더해진 듯한 느낌이 드는 데는 다 까닭이 있습니다. 수덕사 대웅전이나 무량수전처럼 고려시대 장인들의 작품이기 때문이지요. 이 건물을 해체보수할 때 고려 우왕 원년(1375)에 지었다는 기록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정면 7칸에 측면 3칸의 영산전은 남아 있는 고려시대 건축물 가운데서도 규모가 가장 크지요. 여느 법당과는 달리 중앙에 하나밖에 없는 문으로 들어서면 갑자기 왁자지껄한 기운이 느껴집니다. 법당을 메운 오백나한이 무슨 즐거운 일이라도 펼쳐지기를 기다리는 듯 제각각의 표정과 몸짓으로 앉아 있습니다. 가운데 불단에서는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거느린 석가여래가 이 광경을 인자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지요. 곁에는 아난과 가섭을 비롯한 석가의 10대 제자와 16나한의 모습도 보입니다. 석가가 인도의 영축산에서 제자들에게 ‘법화경’을 설법하는 광경이 바로 이랬을 것입니다. 당시의 이벤트를 불교에서는 영산회상(靈山會相)이라고 하는데, 영산전은 바로 이 모습을 재현한 법당이라고 할 수 있지요. 영산전에는 부처와 보살을 제외하고 모두 526분의 나한이 모셔져 있습니다. 나한(羅漢) 혹은 아라한(阿羅漢)은 인도어의 아르한(Arhan)을 음역한 말입니다. 석가의 가르침으로 깨달은 이를 가리키지요.‘깨달으면 곧 부처’라는 선불교가 꽃을 피우면서 우리나라에서도 나한이 신앙의 대상으로 자리잡았을 것입니다. 다양한 견해가 있다지만, 오백나한은 부처가 입적한 해 마갈타국의 왕사성 밖에서 부처님의 말씀으로 경전을 만들고자 모인 ‘제1결집’에 참여했던 오백비구에서 비롯되었다는 설명이 그럴 듯하게 들립니다. 예나 지금이나 나한은 다른 불교조각과는 달리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표현할 수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16나한부터 인도에서 중국으로 전해질 때 외모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없었다고 하니 그들보다 법계가 낮은 오백나한은 말할 것도 없었겠지요. 거조암 오백나한상은 영파 성규가 당시의 거조사를 중창한 조선 순조 5년(1804)을 전후하여 조성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노승에서 동자승까지 다양한 세대를 망라하여 나한에 대한 전 시대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고, 상상력의 한계를 실험해 본 것은 아닐까 여겨질 만큼 표정과 자세가 모두 다르고 표현이 자유분방한 것도 영·정조시대를 지나면서 나타난 새로운 시대적 분위기가 반영된 결과라는 것입니다. 거조암 오백나한을 원숙한 조각이라고 표현할 수는 없겠지만, 마치 캐리커처를 그리듯 대상의 특징만을 간결하게 잡아낸 솜씨에서는 현대적인 감각이 물씬 느껴집니다. 온몸에 두껍게 발라진 호분칠과 결코 전문가의 솜씨라고 할 수 없는 얼굴의 서툰 채색조차도 영산전을 즐거운 축제의 현장으로 탈바꿈시키는 데 단단히 한몫을 하고 있지요. 여기에 흔히 불상에서 보이는 이상화의 흔적을 찾을 수 없고, 어떤 외래 밑그림의 영향도 받지 않은 순수한 한국인의 얼굴을 그대로 형상화했으니 어찌 친근하지 않겠습니까. dcsuh@seoul.co.kr
  • “다보탑 수리기록” 주장에 잇단 반론

    “다보탑 수리기록” 주장에 잇단 반론

    1966년 불국사 석가탑을 보수하는 과정에서 나온 문서 뭉치인 묵서지편(墨書紙片)의 하나인 ‘불국사무구정광탑중수기(佛國寺无垢淨光塔重修記)’는 석가탑이 아닌 다보탑을 수리한 기록이라는 주장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같은 연구 결과가 학계에 보고된 23일 “한쪽 측면에서만 보면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만,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전혀 다른 결론이 나올 수 있다.”는 강력한 반론에 직면하면서 논란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한정호 동국대 경주캠퍼스박물관 전임연구원과 최연식 목포대 교수는 이날 서울 동국대에서 열린 한국목간학회의 제1회 월례발표회에서 나란히 ‘중수기’를 다보탑과 연결 짓는 주장을 펼쳤다. 묵서지편에 들어 있는 ‘불국사서석탑중수형지기(佛國寺西石塔重修形止記)’는 석가탑을 보수한 기록이 맞지만 ‘무구정광탑중수기’는 다보탑을 고친 기록으로 어떤 이유에선가 석가탑에 들어간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앞서 남동신 덕성여대 교수는 지난해 5월 한국역사연구회 웹진에 기고한 글에서 “우리가 만약 아무런 선입견 없이 중수기 자체를 읽는다면, 그 내용이 석가탑이 아니라 다보탑에 더 어울린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고 논의에 불을 지폈다. ●쌍탑은 반드시 그 탑에만 봉안 안해 남 교수는 당시 무구정광탑은 보통명사일 뿐 아니라, 무구정경을 봉안하였다고 해서 반드시 무구정광탑이라고 불린 것도 아니었고, 석가탑과 다보탑처럼 쌍탑인 경우, 특정 탑에 대한 기록이 반드시 그 탑에만 봉안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는 탑 해체 보수와 관련된 부재의 명칭도 앙련대, 화예, 통주, 제석, 사자 등 다보탑의 그것에 걸맞는다고 했었다. 그러나 지난해 국립중앙박물관이 주도한 묵서지편의 판독에 참여한 이승재 서울대 교수는 토론에서 “그렇다면 석가탑에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나온 사실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이 무구정경도 고려 초기에 다보탑에 있었던 것을 끄집어 내어 석가탑에 집어 넣었다는 말이냐.”고 반문했다. 이 교수는 “석가탑에서 무구정경이 나왔다는 사실은 지금 우리가 석가탑이라고 부르는 불국사 서석탑을 당시 사람들이 무구정광탑이라고 인식했다는 명확한 증거가 되는데, 이런 명백한 사실을 애써 외면하고 어떻게 고려 초기 사람들이 석가탑을 서석탑으로 부르면서 다보탑은 무구정광탑이라고 불렀다고 주장할 수 있느냐.”고 따졌다. 이 교수의 문제제기에 두 사람의 발표자와 토론자로 자리를 함께한 남 교수는 명확한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 ●종합적 고려땐 전혀 다른 결론 한 연구원은 이날 ‘중수기’에 보이는 사리장엄구와 일본의 국립도쿄박물관 소장 ‘오쿠라 컬렉션’의 ‘전 경주 남산 출토 사리장엄구의 목록을 비교한 결과도 발표했다. 다보탑 창건 당시의 유물뿐만 아니라 고려 시대에 추가로 넣은 유물에 이르기까지 완벽하게 일치하는 것은 오쿠라 컬렉션의 사리장엄구가 다보탑 출토품이라는 사실을 입증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주장에도 토론자로 나선 주경미 부경대 연구교수는 “중국 당나라 때 사찰인 법문사 탑 출토품에도 비교적 완벽하게 품목이 기록돼 있지만 실제 발굴품과는 차이가 많았던 만큼 ‘중수기’와 출토유물을 끼워 맞추어 해석하는 연구방법론도 좀더 조심스럽게 진행할 필요가 있다.”고 제동을 걸었다. 그는 또 “석가탑과 오쿠라 컬렉션의 소장품 가운데 은제용기는 모두 은판을 두드려서 모양을 만든 뒤 조금 깊게 선각을 해서 울룩불룩하게 타출한 효과를 표현하고 있는데, 이것은 안압지 금동판불 등에 나타난다는 점에서 7∼8세기 것”이라면서 “한 연구원이 이 은제용기를 11세기 것으로 보는 데는 형식적 측면에서 어려운 점이 있다.”고 덧붙였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규방문화의 세계여행’ 한눈에 본다

    한국자수박물관이 국내외에서 30년동안에 걸쳐 펼친 전시회를 종합하는 특별전을 부설 콘템포 갤러리에서 3월5일까지 연다. ‘규방문화의 세계여행’이라고 이름붙인 이번 전시회에서는 1984년 영국 빅토리아앨버트박물관에서 가졌던 특별전의 포스터를 비롯하여 이 박물관의 전시를 알리는 80점 남짓한 각국의 포스터가 선을 보인다. 자수박물관은 1978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박영숙 수집 한국 전통자수 500년 전’을 시작으로 프랑스, 미국, 영국, 독일, 벨기에, 호주, 이탈리아, 뉴질랜드, 일본 등에서 모두 69차례 전시회를 가졌다. 허동화 자수박물관장은 “이번 전시회가 한 작은 사립박물관이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서, 우리 문화의 가치를 다시 한번 되새길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사물놀이 즐기게 글로벌센터 만들어야”

    “사물놀이 즐기게 글로벌센터 만들어야”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원서동 ‘공간사랑’에 원조 사물놀이 멤버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김덕수는 장고, 이광수는 꽹과리, 최종실은 북, 그리고 남기문은 징을 잡았다. 지금부터 꼭 30년 전인 1978년 ‘사물놀이’가 데뷔 공연을 가졌던 바로 그 자리.1986년 서른 넷의 짧은 생을 마감한 김용배 대신 남기문이 자리잡았고,1970∼1980년대 실험문화의 요람이었던 공간사랑도 이젠 더 이상 극장이 아니다. 3월6일과 7일 이틀동안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30주년 기념공연을 갖는 네 사람이 이날 기자회견을 갖기에 앞서 10분 남짓 호흡을 맞췄다.1994년 ‘국악의 해’를 맞아 예술의전당에서 공연한 뒤 14년 만에 한 자리에 선 것이다. 최종실(54) 중앙대 교수는 “30년 전 그 자리에서 소리를 내 보니 감회가 새롭다.”면서 “저에게는 두드리는 순간이 가장 행복하니 사물놀이야말로 내 운명”이라고 말했다. 이광수(56) 대불대 교수는 “20세기에 사물놀이가 국악의 한 장르로 만들어졌다면 21세기에는 다시 발돋움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거들었다. 사물놀이 한울림 교육원을 이끌고 있는 김덕수(56)씨는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세계 문화시장에서 우리의 장단이 주류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그 신명을 승격시키는 노력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막내뻘인 남기문(50) 국립국악원 민속단 지도위원은 “30년 전 저도 이 소극장의 객석에서 사물놀이의 탄생을 지켜보며 부러워했던 기억이 있다.”고 돌아봤다. 네 사람은 이날 사물놀이의 ‘글로벌 센터’를 만들어야 한다는 데 뜻을 모았다.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이라면 반드시 사물놀이를 즐기고 갈 수 있는 여건을 만들고 싶다는 것이다. 네 사람이 앞으로 미주와 유럽을 순회하고, 국내 7∼8개 도시도 찾아가는 계획을 세운 것도 이런 분위기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믿음에서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흥분한 중앙박물관

    김홍남 국립중앙박물관장이 21일 중앙박물관의 관장 직급을 차관급에서 1급으로 낮추고, 조직을 문화재청에 통합하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정부조직법 개정안에 강한 유감을 표시했다. 김 관장은 이날 기자간담회를 갖고 “국가 대표박물관을 정부의 말단 행정기구로만 보아서는 안 되며, 독립성과 자율성을 보장해 주어야 한다.”면서 “문화재청이 국립박물관을 포괄하고 있을 때 있을 수 있는 시행착오를 예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관장은 특히 국회가 법안 심의과정에서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뜻을 여러 차례 피력하면서 “정부조직법 개정의 졸속 협의에 대한 가장 적절한 대처라고 생각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김 관장은 별도로 배포한 ‘문화재청의 국립박물관 통합론 근거의 문제점’에서는 “한반도 대운하 사업을 위하여 국립박물관 흡수통합이 필요하다는 문화재청의 보고가 인수위의 판단 근거가 됐으나 이는 왜곡된 것이고, 문화재행정기관과 박물관이 분리된 외국의 사례가 없다는 보고도 허위”라고 문화재청을 강도 높게 비난했다. 대운하 건설사업에 따라 중앙박물관이 발굴 조사에 투입할 수 있는 인력은 50명 미만에 불과한데도 문화재청이 흡수통합을 주장한 것 등은 어불성설이 아닐 수 없다는 것이다. 김 관장은 “당초 이 자리에서 사퇴 용단을 내리려고 했으나 폭풍우에 휘말린 배에서 선장이 배를 돌보지 않고 뛰어내리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면서 “당장 뛰어내리지 않고 배가 순항하는 것을 지켜보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성남 아트센터·고양 아람누리 올 공연 해외물 일색

    성남 아트센터·고양 아람누리 올 공연 해외물 일색

    경기도 분당신도시의 성남아트센터와 일산신도시의 고양아람누리는 물리적인 거리는 서로 멀리 떨어져 있지만 만만치 않은 라이벌이자 똑같은 고민을 안고 있는 동업자이다. 각각 수도권의 남부와 북부를 대표하는 문화공간으로, 주민들의 문화 수준 또한 서울보다 높으면 높았지 낮지 않다는 자부심 또한 다르지 않다. 두 곳의 올해 공연계획을 들여다 보면 예술의전당 뺨칠 만큼 호화롭다. 성남아트센터는 5월 세계적인 안무가 지리 킬리언이 이끄는 네덜란드 댄스 시어터에 이어 9월에는 정명훈이 지휘하고 중국 출신의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랑랑이 협연하는 이탈리아 라 스칼라 오케스트라의 공연이 있다. 10월에는 바이올리니스트 힐러리 한과 캐나다 밴쿠버 심포니 오케스트라, 세계적인 바리톤 토마스 햄슨이 베리비에 체임버 오케스트라와 함께하는 무대가 마련된다.11월에는 지난해 성남아트센터가 기획한 성남국제청소년관현악축제에서 지휘자로 데뷔한 첼리스트 장한나가 런던 체임버 오케스트라와 앙상블을 펼치기로 했다. 고양아람누리는 2월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와 성 토마스 합창단의 공연을 시작으로 3월에는 자크 루시에 트리오,5월에는 소프라노 안젤라 게오르규와 클로드 볼링,6월에는 바이올리니스트 장영주와 오르페우스 체임버 오케스트라, 첼리스트 미샤 마이스키가 협연하는 드레스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공연이 줄줄이 벌어진다. 또 9월에는 가족으로 이루어진 세계적인 기타앙상블 로스 로메로스의 50주년 기념 콘서트와 이탈리아 볼로냐극장 오페라의 ‘토스카’,11월에는 바이올리니스트 나이젤 케네디와 폴리시 체임버 오케스트라,12월에는 발레리 게르기예프가 이끄는 러시아 마린스키 오케스트라의 공연이 이어진다. 3월 세계적인 실내악단 이 무지치와 10월 중국 중앙발레단의 ‘홍등’은 두 공연장이 공동으로 유치한 공연.‘홍등’은 영화감독 장이머우가 자신의 같은 이름 영화를 발레단을 위해 연출하여 화제를 모든 작품이다. 그러나 화려할수록 그 대가는 비싼 법. 성남아트센터의 올해 예산은 270억원으로 이 가운데 53억원이 공연에 들어간다. 아람누리와 어울림누리를 운영하는 고양문화재단은 210억원의 예산 가운데 60억원 남짓을 공연 사업에 쓴다. 예술의전당을 능가하는 공연 예산을 갖고 있지만, 수준급의 대관 공연을 유치하는 것은 쉽지 않으니 대부분 직접 주최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주민 복지의 향상을 내걸고 출범한 마당에 티켓값을 ‘현실화’할 수도 없어 눈길을 끌 만한 공연이라면 표가 매진되어도 상당한 폭의 적자가 불가피하다. 올해 주요 일정이 해외물 일색으로 화려함이 지나치다는 느낌이 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개관 4년차인 성남아트센터가 프로그램의 다양성에 조금씩 눈떠가고 있는 모습을 보이는 반면 2년차인 고양아람누리가 화려하기만 한 라인업을 짠 데서는 후발주자의 조급함이 느껴진다. 지금의 예산도 공연장 이름을 알리겠다는 대형공연 위주라면 결코 많을 수 없겠지만, 주민들에게 다가가는 실속형 무대와 조화시킨다면 결코 적지 않다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다. 이렇게 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이 바로 기획력이다. 해외물 수입 위주의 절름발이 공연장이 되지 않기 위해서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일 것이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연경, 담배의 모든것/안대회 옮김

    ‘서울 사는 귀족집 자제들은 그저 담배를 피울 줄만 알지, 담배씨를 심고 잎을 거두며 뿌리를 북돋고 키우는 일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그 과정을 전혀 모른다. 그러고서야 옥같이 귀한 음식을 배불리 먹으면서도, 곡식을 경작하고 수확하는 어려움을 모르는 자와 다를 것이 하나도 없지 않은가.’ 이옥(李鈺·1760∼1815)은 ‘연경(烟經)’을 쓰는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이옥은 18세기 조선 사회에서 자유분방한 글쓰기를 주도하여 벼슬길에 나서지 못하는 불우한 생애를 보냈지만, 같은 이유로 우리 문학사에서 특별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인물.‘시경’도,‘서경’도 아닌 ‘연경’이라니…. 담배 이야기를 경전으로 떠받들어 놓은 이옥의 문학적 상상력이 제목에서부터 독자들을 미소짓게 한다. ‘연경, 담배의 모든 것’(안대회 옮김, 휴머니스트 펴냄)은 조선시대 담배에 관한 최고의 저작으로 꼽히는 이옥의 ‘연경’을 중심으로 담배에 관한 글을 한데 모은 18세기 조선의 흡연문화사라고 할 수 있다. ‘연경’은 영남대도서관에 필사본 형태로 소장되어 있다가 몇 해 전 학계에 보고되었으며, 이를 토대로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가 전면적 분석을 가해 자신이 관여하는 한국학 잡지 ‘문헌과 해석’에 원문을 영인해 소개했다. 그러자 KT&G가 재빨리 나서 ‘연경’의 전체 번역을 사보에 연재했다는 일화를 남겼다. 금연운동으로 담배의 입지가 축소되어 가는 마당에 ‘연경’이 펼친 담배 예찬론은 담배 제조 회사로서는 매우 반가웠을 것이다. 내친김에 안 교수는 조선 후기 담배와 관련되는 각종 문헌자료를 뒤지다 보니 아예 한 편의 조선후기 담배 문화사를 완성할 수 있었다. ‘연경’의 가치는 한 편의 재미있는 저작으로 그치지 않는다고 안 교수는 설명한다. 안 교수는 “이옥은 사소하고 무의미하다고 여겨지던 사물도 저술의 대상으로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했다.”면서 “‘연경’은 당시 우리 학술계 내부에서 중대한 변화가 일어났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로도 주목해야 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1만 4000원.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52)후삼국통일의 기념비 개태사 삼존불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52)후삼국통일의 기념비 개태사 삼존불

    요즘에는 흔히 대학 이름을 따서 지하철역 이름을 짓는다지만, 한때는 역에 절 이름을 붙이는 것이 유행이었던 것 같습니다. 동해남부선의 불국사역이나 호남선의 백양사역, 경원선의 망월사역, 중앙선의 희방사역이 그렇지요. 경전선의 다솔사역에는 이제 여객열차가 서지 않고, 여천선의 흥국사역은 여천산업공단의 화물터미널이 되었습니다. 호남선 개태사역은 절 이름이 붙여진 역 가운데서도 단연 특별하지요. 기차를 타고 지나치면서 절의 면모를 살필 수 있는 유일한 역이기 때문입니다. 호남선이나 전라선 열차를 타고 남도로 내려가다 서대전역이 막 지났다는 안내방송이 나오면 언제나 개태사의 안부가 궁금해 슬금슬금 왼쪽 차창 밖 산기슭으로 눈길을 돌리게 됩니다. 개태사가 있는 충남 논산시 연산면은 ‘황산벌’이라고 설명하면 더욱 이해가 빠르겠지요. 백제의 결사대가 장렬하게 산화한 이곳에는 계백장군의 것으로 전하는 무덤이 있고, 최근 바로 곁에 백제군사박물관이 세워져 계백장군의 충절을 기리고 있습니다. 백제와 신라의 황산벌 싸움으로부터 276년이 지난 936년 이곳에서는 후백제와 고려가 맞붙게 되지요. 견훤의 큰아들인 신검이 이끄는 후백제군은 지금의 경북 선산 동쪽으로 추정되는 일리천에서 왕건에게 대패한 후유증이 컸던 탓인지 싸움다운 싸움 한번 해보지 못하고 항복하고 맙니다. 개태사는 바로 고려 태조 왕건이 후삼국통일이라는 대업을 달성한 승리의 현장에 세워졌습니다. 신검의 항복을 받고는 곧바로 착공하여 4년 남짓한 공사 끝에 태조 23년(940) 낙성법회가 열립니다. 개태사(開泰寺)라는 이름은 ‘태평한 시대를 연다.’는 뜻으로 태조 왕건이 직접 지었습니다. 절이 자리잡은 황산도 ‘하늘이 보호한다.’는 의미에서 천호산(天護山)이라고 바꾸었지요. 왕건은 친히 발원문을 짓는 등 이 절이 갖는 상징성을 널리 알렸습니다. 개태사는 이렇듯 태조의 발원으로 창건된 고려의 대표적인 국찰이었지만,1000년이 넘는 세월이 흐른 지금 이 절의 분위기는 고즈적함을 넘어서 스산할 지경입니다. 그렇다해도 이 절에는 고려시대 불교조각의 첫장을 연 보물 제219호 석조삼존불상이 있어 역사적 의미는 퇴색하지 않습니다. 창건 당시 개태사는 상당히 넓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발굴 조사 결과 절터는 석조삼존불이 있는 현재의 개태사와 북쪽으로 400m쯤 떨어진 옛터, 그리고 동쪽으로 150m쯤 떨어진 산중턱까지 미쳐있습니다. 당시의 영화가 어떠했을지 짐작할 수 있겠지요. 석조삼존불은 가운데 본존불의 키가 4.15m이고, 왼쪽의 협시보살은 3.5m, 오른쪽의 협시보살은 3.21m 정도입니다. 사진으로는 장난스러워보였던 삼존불을 실제로 대하면 위압감마저 듭니다. 미술사학자들이 아미타삼존불로 분류하고 있음에도, 전각을 미륵이 머무는 용화대보궁(龍華大寶宮)으로 이름지은 것도 개태사를 찾는 중생들이 삼존불에서 미륵의 권위를 느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삼존불은 동시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 제기되어 논란이 빚어지기도 했습니다. 왼쪽 협시보살의 조각솜씨가 조금 더 정교한 만큼 본존과 오른쪽 협시보살은 나중에 왼쪽 협시보살을 모델로 조각되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절터의 전면적인 발굴로 원래 조각의 흔적이 나타난다면 이런 주장이 힘을 얻을 수도 있겠지요. 개태사의 창건이 새로운 통일왕조의 개막을 선포하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면, 석조삼존불은 후삼국통일의 기념비 그 자체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여행길에 지나치는 개태사역은 작은 시골정거장에 불과하지만 그 이름이 담고 있는 의미는 결코 작지 않습니다. dcsuh@seoul.co.kr
  • 제주 반닫이, 강원도 소나무 썼다

    제주 반닫이, 강원도 소나무 썼다

    나무는 왕성하게 자란 해는 나이테가 넓고, 기후 변화로 환경이 나빠지면 성장도 느려져서 나이테가 좁아진다. 이렇듯 환경의 변화가 기록으로 남는 나이테의 특성에 착안하여 목재의 연대를 측정하는 방법이 연륜연대법(dendrochronology)이다. 방사성탄소(C14)연대법의 목재 측정오차가 최고 ±100년에 이르는 반면 연륜연대법은 1년 단위까지 연대를 측정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1990년 이후 살아있는 고목과 고건축물의 목재를 지속적으로 조사하여 서기 1200년부터 800년동안에 걸친 연륜연대기 데이터베이스를 확보해 놓았다. ●연대와 목재의 산지도 밝혀 박원규 충북대 산림과학부 교수와 김요정 충북대 농업과학기술연구소 연륜연구센터 연구권, 김삼대자 전 국립민속박물관 유물과학과장은 이 연륜연대기 데이터베이스를 바탕으로 대표적인 고가구인 반닫이의 연대를 측정했다. 박 교수팀은 국립민속박물관과 덕성여대박물관, 온양민속박물관, 상명대박물관, 충남대박물관, 숙명여대박물관이 소장한 반닫이 17점의 나이테를 데이터베이스와 비교하여 정확한 연대뿐 아니라 목재의 산지도 밝혀낼 수 있었다. 조사 대상 반닫이는 일부라도 소나무가 쓰인 것으로 한정되었는데, 연륜연대기 데이터베이스가 현재는 소나무 것만 구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박원규 교수팀의 연구 내용은 국립민속박물관이 발간하는 계간 학술지 ‘민속학연구’의 최근호인 제21호에 실렸다. 연구에서 덕성여대박물관이 소장한 경기지역 주석장식 반닫이는 ‘1688∼1801년’이라는 절대연도가 부여되었다.1801년 직후에 벌채된 나무를 사용했다는 뜻이다. 이번에 조사된 반닫이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다. 하지만 주석장식은 1900년대 이후 것으로 추정되었다. 두드려 만든 단조가 아니라 쇠를 판형으로 만든 뒤 오려내는 판조였기 때문이다. 판조는 1870년 이후 수입되어 사용되었다. 따라서 이 받닫이는 1800년 초에 제작된 것이며,1900년 초에 장식을 교체하는 대규모 수리가 있었던 것으로 새롭게 결론지을 수 있었다. 이 반닫이는 그동안 1870년 이후 양식으로 분류되어 왔다. ●19세기 원거리 목재수송 방증 특기할 만한 것은 상명대박물관이 소장한 제주도 반닫이였다. 뒷널에서 채취한 나이테는 101개로 데이터베이스와 비교하여 보니 강릉객사문의 연대기로 ‘1782∼1882년’의 절대연도가 부여되었다. 강릉객사문에 쓰여진 것과 같은 강원도 일대의 목재로 제주도 양식의 반닫이가 제작되었다는 뜻이다. 제주도의 식생은 저지대는 난대림이어서 주로 활엽수가 자라고, 고지대는 전나무류인 구상나무가 주류를 이루기 때문에 큰 재목을 쉽게 구할 수 없어 다른 지역에서 수급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병사들의 훈련을 목적으로 세워진 제주시의 관덕정도 소나무 목재가 대부분 강원도 지역의 연륜패턴을 보여주고 있다고 연구팀은 덧붙였다. 제주뿐만 아니라, 국립민속박물관이 소장한 영광지역의 전라도 반닫이도 강릉객사문의 연대기인 절대연대 ‘1775∼1871년’이 주어졌다. 연구팀은 “가구용 목재는 질이 좋아야 하기 때문에 원거리라도 부피가 크지 않은 것은 운송하여 사용했을 가능성이 크다.”면서 “특히 가까운 곳의 목재자원이 고갈됨에 따라 19세기에 접어들면 원거리 목재운송이 활발해지고,19세기 말에는 상업적 목재거래가 보편화되었다.”고 설명했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박지원 친필글 담긴 문집 ‘영대정집’ 발견

    박지원 친필글 담긴 문집 ‘영대정집’ 발견

    조선후기 대표문인 연암(燕巖) 박지원(1737∼1805)이 문장 유형을 남녀 사랑에 빗대어 쓴 친필글과 글이 포함된 필사본 문집이 발견됐다. 단국대 사학과 김문식 교수는 13일 “학교에 소장된 연민(淵民) 이가원 선생의 기증도서 ‘연민문고’에서 연암의 산문 23편을 선별·편집한 ‘영대정집’을 찾아냈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이 영대정집이 건(乾), 곤(坤) 2책으로 연암 집안에서 소장한 것임을 보여주는 ‘연암산방’도장이 찍힌 희귀한 판본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연암은 영대정집 서문에서 “남녀간 사랑에 세 가지 형식이 있듯 문장에도 세 가지 유형이 있다.”고 주장했다. 첫째는 문학작품에 등장하는 절세미인과 만나 눈짓으로 나누는 사랑. 그러나 연암은 이는 군자와 숙녀의 만남일 수 없다고 지적했다. 두번째 사랑은 귤을 던지거나 작약꽃을 주며 남자와 장난을 치는 여인과의 사랑이나 그는 정숙한 사람은 이런 여자를 보면 토할 지경이라고 썼다. 세번째 사랑은 산골 마을에 사는 늙은 농부가 키운 처녀와 보리 열 가마를 수확하는 농부집 아들과의 사랑이다. 연암은 슬픔이나 즐거움이 극에 달하지 않는 시골사람다운 사랑이 문장의 유형과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태안 주민들을 위한 ‘아름다운 음악회’

    태안 주민들을 위한 ‘아름다운 음악회’

    정해년도 몇 시간 남지 않은 지난해 12월31일 정명훈 서울시교향악단 예술감독은 예술의전당에 아이디어를 하나 내놓았다. 원유 유출 사고로 고통을 겪고 있는 충남 태안 주민들을 위해 음악회를 열자는 것이었다. 예술의전당은 서둘러 중소기업중앙회에 이번 기회를 대기업 위주로 이루어지고 있는 사회공헌 활동의 물꼬를 중소기업 쪽으로도 잇는 시발점으로 삼는 것이 어떠냐고 권유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300만 회원사의 뜻을 모아 태안 주민 돕기 성금 1억 5000만원을 내놓기로 1월4일 결정했다. 예술의전당은 다시 연주 공간 확보를 위해 콘서트홀의 보수기간을 줄여 음악회를 갖기로 확정했다.SBS도 흔쾌히 참여하여 홍보를 맡기로 했다. 이날이 1월5일로, 정명훈 예술감독이 제안한 지 불과 엿새 만이었다. 이렇듯 아름다운 마음이 모여 이루어지는 무대가 바로 20일 오후 5시에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태안주민을 위한 음악회’이다. 프로그램은 말러의 교향곡 1번 ‘거인’으로 태안에 닥친 불행을 극복하려는 주민과 자원봉사자의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헌신을 상징한다. 아나운서 출신 진양혜의 설명으로 태안의 복구 상황을 담은 영상도 상영된다.‘당연히’ 정명훈 예술감독과 서울시향 단원은 물론 진양혜도 무료로 출연한다. 중소기업중앙회와 예술의전당, 서울시향, 문화관광부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신청하면 추첨으로 800명에게 관람기회를 제공한다. 공연장에는 별도의 모금함을 마련해 자율적으로 태안 주민을 위한 따뜻한 마음을 전할 수 있다. 중소기업중앙회의 협찬금과 현장에서 모금한 성금은 음악회가 끝난 뒤 콘서트홀 로비에서 출연진 등이 직접 진태구 태안군수에게 전달하기로 했다.(02)580-1300.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원각사 100돌’ 1년내내 공연

    ‘원각사 100돌’ 1년내내 공연

    원각사는 지금의 서울 광화문 새문안교회 자리에서 판소리와 창극, 그리고 새로운 형태의 연극을 올린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극장이다.1902년 협률사라는 이름으로 설립되었는데,1906년 문을 닫은 뒤 1908년 7월 이인직·박정동·김상천이 건물을 빌리고 내부를 수리해 극장을 만들었다. 정동극장은 원각사의 옛 터전에서 가까운 서울 중구 정동에서 ‘원각사의 복원’이라는 이념으로 1995년 출범했다. 이 극장의 마당에 원각사를 중심으로 ‘근대 5명창의 한 사람’으로 창극 활성화에 앞장섰던 이동백의 동상이 세워진 것도 이 때문이다. 정동극장이 원각사 설립 100돌을 맞아 연중기획으로 대대적인 기념행사를 갖는 것은 ‘원각사의 적자(嫡子)’라는 정체성을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각인시키고 싶다는 의도일 것이다. 정동극장의 원각사 기념무대는 1월과 6월,10월에 집중적으로 펼쳐진다. 이달 ‘정동명인뎐’에 이어 6월에는 젊은 감각을 가진 새로운 시대의 전통예술인들 4명을 선정하여 예술세계를 집중적으로 소개하는 ‘아트 프런티어’,10월에는 원각사 설립 주역의 한 사람인 이인직이 자신의 1908년작 신소설을 바탕으로 공연한 ‘은세계’를 무대에 올린다. 손진책이 연출을 맡아 현재 완전히 새로운 감각의 ‘은세계’를 창조하는 작업에 한창이다. ‘정동명인뎐’은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인간문화재) 14명을 포함한 80명의 명인·명창·명무가 참여한 가운데 11일 막을 열어 26일까지 열리는 ‘작은 극장의 큰 무대’이다. ‘창극의 탄생’을 주제로 삼은 11∼12일은 판소리 다섯마당과 입체창 ‘수궁가’, 그리고 ‘흥보가’와 ‘심청가’의 한 대목을 인간문화재급 명창들의 소리로 즐길 수 있다. ‘춘향가’와 ‘심청가’의 인간문화재 성우향과 성창순,‘흥보가’와 ‘수궁가’ 보유자 박송희와 남해성, 그리고 ‘적벽가’의 보유자인 송순섭과 보유자 후보 김일구가 이틀 동안 나누어 출연하는 초특급 무대이다. 왕기석과 유수정, 김학용, 정미정, 임향님 등 차세대를 이끌고 갈 명창도 대거 등장한다. 18∼19일은 ‘안팎의 우리 춤’이다. 김주홍과 노름마치의 ‘비나리’에 이어 고성오광대의 인간문화재 이윤석의 ‘덧뵈기 춤’과 ‘밀양백중놀이’ 보유자 하용부의 ‘밀양북춤’이 펼쳐진다. 채상묵과 임이조, 윤미라, 김운선 등 대표적인 춤꾼들이 망라됐다. ‘소리와 악기’를 주제로 삼은 25∼26일은 명인들의 산조와 각 지방의 토속적인 소리들이 어우러진다. 인간문화재 문재숙과 이생각, 김영재가 각각 보유하고 있는 가야금산조와 대금산조, 거문고산조를 들려준다. 서도소리 인간문화재 이은관의 ‘배뱅이굿’과 경기민요 보유자 이춘희의 ‘긴아리랑’, 김영임의 강원소리, 최경만의 ‘호적풍류’ 등도 마련된다. 피날레는 이광수와 한국민족원의 비나리가 장식한다. 오후 7시30분.2만∼3만원.(02)751-1500.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창덕궁 새 영문이름 ‘비밀정원의 궁전’

    앞으로 국보 몇호니, 보물 몇호니 하는 일련번호가 없어진다. 또 건축물이나 동산뿐 아니라 사적과 천연기념물도 국보로 지정된다. 이렇게 되면 창덕궁, 제주자연유산, 무령왕릉 등도 국보가 될 수 있다. 문화재청은 이런 내용을 담은 ‘문화재 등급·분류체계 개선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10일 밝혔다. 국가유산은 문화유산과 자연유산으로 나누고, 국보를 상위점으로 하위 분류는 보물, 무형문화재, 천연기념물, 명승 등 4가지로 단순화한다.또 국보와 보물은 일련번호를 없애고 대신 사적 제○호, 건축문화재 제○호, 미술문화재 제○호 등 하위분류 번호를 매기게 된다. 국보 제1호인 숭례문은 `국보 숭례문(건축문화재 제1호)´, 보물 제1호인 흥인지문은 `보물 흥인지문(건축문화재 제2호)´과 같이 표기되는 것이다.이와 함께 소리 나는 대로 표기하고 있는 경복궁(Gyeongbokgung), 불국사(Bulguksa) 등 외국인이 이해하기 어렵고 흥미를 유발하지 않는 이름도 고치기로 했다. 경복궁은 `The Grand Palace of Joseon Dynasty´, 창덕궁은 `The Palace of Secret Garden´ 등으로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아울러 조선 왕릉의 국문 표기도 왕릉의 주인공을 쉽게 알 수 있도록 ‘조선 태조 건원릉’,‘조선 세조 광릉’,‘세종대왕 영릉’ 등으로 묘호를 함께 표기하기로 했다.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3년반 원없이 터지고 원없이 일하다 갑니다”

    “3년반 원없이 터지고 원없이 일하다 갑니다”

    “3년 반 동안 원없이 일하고, 원없이 터지다가 갑니다. 그래도 문화재를 전문으로 다루는 기자들에게는 비판받지 않은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유홍준 문화재청장이 10일 국립고궁박물관 카페테리아에서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참여 정부의 임기가 한달 이상 남은 상황에서 그의 조금 이른 듯한 ‘고별 간담회’는 일찍 마음을 정리하고 ‘제자리’로 돌아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보였다. ●“원각사탑 중앙박물관으로 옮길 계획” 베스트셀러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로 스타 미술사학자로 떠오른 그가 문화재청장에 임명된 것은 2004년 9월1일. 그는 ‘백제의 미소’로 유명한 충남 서산마애불의 보호각을 최근 철거한 것을 언급하며 “그것 한 가지 하는데 임기를 모두 보낸 것 같다.”며 문화재 행정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유 청장은 “야외에 석조문화재를 노출시키는 것이 어떻게 보호냐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지만, 탑골공원의 원각사터십층석탑처럼 유리벽으로 싸놓으면 제대로 보호하는 것이냐.”고 반문하면서 “앞으로 원각사탑은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기고 탑골공원에는 복제품을 세우는 것으로 정리했다.”고 밝혔다. ●“대통령 취임식 근정전에서 해도 좋을 듯” 유 청장은 이날 “광화문으로 청장을 시작하여, 광화문으로 청장을 끝내는 것 같다.”고 광화문 복원에 대한 애정을 다시한번 표현했다. 그는 “새 정부에서는 여의도가 아닌 광화문 광장에서 취임식을 갖는 방안도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고 전하고는 “경복궁의 근정전은 어떨지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한반도 대운하로 화제가 이어지자 유 청장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운하가 지나는 곳의 문화재 지표조사는 문화재청이 맡도록 특별법에 넣고, 발굴도 국책발굴단을 만들어 하면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고 보고했다.”고 적극적으로 ‘운하 추진 대책’을 마련했음을 시사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대운하를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는 질문에는 “(문화재청장을 물러난) 2월26일에 대답하겠다.”면서 웃었다. 유 청장은 퇴임하면 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로 돌아간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잡식동물의 딜레마/다른세상 펴냄

    잡식동물의 딜레마/다른세상 펴냄

    우리는 무엇을 먹고 사는가. 미국의 저널리스트인 마이클 폴란은 지 메이스(Zea Mays)라는 열대 출신 식물이라고 단언한다. 바로 옥수수다. 예컨대 치킨 너깃은 닭이 아니라 옥수수 덩어리다. 너깃에 쓰인 닭은 옥수수 사료를 먹고 자랐고, 반죽의 접착제로는 옥수수 전분, 코팅제로는 옥수수 가루가 쓰인다. 너깃을 옥수수 기름으로 튀기는 것은 물론 너깃을 먹음직스럽게 보이게 하는 금빛 착색제, 선도를 유지시켜 주는 구연산도 모두 옥수수에서 비롯되었다고 설명한다. 뿐만 아니라, 청량음료도 역시 옥수수 덩어리다.1980년대 이후 거의 모든 탄산음료와 과일주스는 고과당옥수수시럽으로 단맛을 내고 있기 때문이다. 청량음료 대신 맥주를 주문해도 마찬가지인데, 맥주 역시 옥수수에서 정제한 포도당으로 발효시킨다. 따라서 패스트푸드점에서 치킨 너깃을 먹으며 음료수를 마시고 있다면 옥수수에다 옥수수를 먹고 있는 꼴이라는 것이다. ●무엇을 먹어야 하는가? 폴란은 ‘잡식동물의 딜레마’(조윤정 옮김, 다른세상 펴냄)에서 독자들에게 ‘무엇을 먹어야 하느냐.’고 묻는다. 유칼립투스처럼 생긴 이파리를 먹으면 되는 초식동물 코알라나, 아프리카 초원을 뛰어다니는 거의 모든 동물이 먹잇감인 육식동물 사자는 걱정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잡식동물은 자연이 제공하는 많은 먹을거리 가운데 어떤 것이 안전한지 알아내고자 뇌의 많은 공간과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눈 앞에 놓여 있는 먹을거리가 질병을 일으키거나 목숨을 앗아갈 가능성이 있을 때는 특히 더 그렇다. 그것이 인간을 포함한 잡식동물이 가진 딜레마라는 것이다. 옥수수의 사례는 ‘나는 지금 무엇을 먹고 있는가?’라거나 ‘이 음식은 어디서 온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하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음을 깨닫게 해 준다. 이 책은 고전적인 사고방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 ‘산업적 음식사슬’을 거슬러 올라가는 일종의 탐험기이기도 하다. 맥도널드에서 출발하여 냉동트럭, 창고, 도살장, 공장식 농장, 목장, 식품과학 실험실, 조미료회사, 석유 정유소, 곡물창고를 거치면 결국에는 아이오와주의 망망대해 같은 옥수수밭에 이르게 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렇다고 유기농 산업은 믿을 만한가. 폴란은 유기농에 대한 근거 없는 믿음에도 경고를 보낸다. 유기농 전문점에 있던 수송아지 스테이크에는 다음과 같은 라벨이 붙어 있었다. 이 소는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곳과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곳…충분한 공간과 적절한 시설을 제공받았고, 같은 홀스타인 소들과 함께 지냈다.’는 것이었다. ●유기농 산업은 믿을 만한가? 폴란은 이 대목이 무척 훌륭하다고 생각했는데, 다음 순간 완전히 가공되지 않은 원유를 파는 다른 낙농업체의 제품에 씌어 있는 ‘일년 내내 푸른 방목장에서 풀을 뜯어먹고 살았다.’는 대목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갑자기 수송아지 스테이크에는 왜 ‘방목장’이 빠져있는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방목되지 않고, 초원의 풀을 뜯어먹지 않고 자란 ‘유기농 송아지’라니…. 유기농 상점에서 식품을 고르는 사람이야말로 문학평론가나 저널리스트의 능력을 갖추어야 할 판이라고 푸념한다. 폴란은 ‘잡식동물의 딜레마’가 먹는 즐거움에 관한 책이라고 강조하면서도 어떤 음식이 즐거움을 주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하지는 않는다. 대신 그는 이 탐험의 끝에서 사냥총을 들고 숲으로 달려가 야생 돼지를 잡고 버섯을 캔 뒤 농장에서 얻어온 수확물들로 저녁 식탁을 준비한다. 그는 이를 두고 “내가 마지막으로 찾은 음식은 완벽한 식사라고 할 만했다.”고 술회했다. 그것이 진수성찬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많은 노동이 집약되어 있는 식사를 동료들과 함께하면서 지금 먹고 있는 음식과 관련된 모든 것들을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2만 5000원.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조선시대 무덤 한눈에 본다”

    “조선시대 무덤 한눈에 본다”

    무덤 앞에 세워져 주인공의 신분을 알리고 생전의 공덕을 칭송하는 비석은 크게 신도비(神道碑)와 묘갈(墓碣), 묘표(墓表)로 나누어진다. 조선시대에 신도비가 왕릉과 2품 이상의 무덤에 세워졌다면 묘표는 신분의 제약 없이 소략한 내용을 단순한 형태의 비석에 새겼다.3품 이하 중간 품계와 양반사대부의 비석인 묘갈은 신도비보다는 작고 묘표보다는 컸다. 그런데 제주도의 무덤에는 신도비나 묘갈은 거의 없고 묘표가 주류를 이룬다고 한다. 높은 품계에 이른 사람이 적었던 탓도 있지만 비와 바람이 많은 데다 무른 현무암이 쉽게 마멸되는 환경적인 원인도 없지 않다고 한다. 비석을 자주 교체할 수밖에 없어 오래된 묘표도 많지 않다는 것이다. 국립민속박물관이 전국에 있는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을 현지조사한 결과를 담은 e북 ‘조선시대 묘제(墓制) 자료집’을 내놓았다.‘초분(草墳)’과 ‘한국의 제사’를 펴냈던 민속박물관이 한국인의 통과의례 분야에서 내놓은 또 하나의 연구 성과이다. 무덤은 죽은 사람을 위한 공간인 동시에 조상에 대한 효와 숭모의 마음이 시각적으로 드러난다는 점에서는 지극히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공간이기도 하다. 이 자료집에 ‘죽은 자, 또한 산 자의 공간, 무덤’이라는 부제가 붙여진 것도 이런 이유일 것이다. DVD와 책자로 이루어진 이 자료집에는 사대부 무덤 225기와 제주도 무덤 33기, 왕실 무덤 47기 등 모두 305기의 무덤을 조사한 내용과 1만 1000장에 이르는 이미지가 담겼다. 상장례뿐 아니라 사회, 정치상까지를 보여주는 조선시대 무덤에 대한 종합 자료집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자료집에는 무덤의 입지와 구성물 배치, 좌향(坐向), 봉분에서부터 동자석(童子石), 석수(石獸), 혼유석(魂遊石) 등 각종 석물에 대한 기본 정보와 피장자 정보 등 조사한 무덤에 대한 총체적인 정보를 담았다. 예를 들어 DVD를 작동시킨 뒤 ‘권근과 경주 이씨’를 클릭하면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에 있다는 무덤의 위치와 함께 여말 선초의 문신 겸 학자로 호는 양촌이며 1409년 향년 58세로 사망하여 경기도 광주에 안장되었다가 1443년 지금의 위치로 이장되었다는 인물에 대한 기초정보가 소개된다. 또 ‘무덤개관’으로 권근의 합장무덤은 봉분의 크기가 가로 760㎝에 세로 760㎝, 높이 260㎝에 호석은 높이가 70㎝이며 해발고도 155m 지점에 남향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고, 아울러 20장 남짓한 현장사진으로 무덤의 전경과 각종 석물의 모습을 자세히 파악할 수 있도록 했다. 신광섭 국립민속박물관장은 “그동안 조선시대 무덤은 왕릉을 제외하면 자료가 전무했던 상황”이라면서 “이 자료집이 종합적 기초자료가 부족한 조선시대 상장례 문화 연구에 기여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 자료집은 비매품으로 도서관, 박물관 등 공공기관에만 배포되며 일반인은 국립민속박물관 홈페이지(http:///www.nfm.go.kr)에서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51)양주 회암사 지공선사 부도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51)양주 회암사 지공선사 부도

    경기도 양주시에 있는 회암사는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걸쳐 이름을 떨친 거찰이었습니다. 태조 이성계가 무학대사를 머물게 하고 불사가 있을 때마다 참례토록 한 것은 물론 상왕으로 물러앉은 다음에는 아예 이곳에서 도를 닦았던 것으로도 유명하지요. 하지만 조선이 성리학을 국교로 삼은 마당에 왕실의 권위를 등에 업고 번성한 회암사는 더더욱 유생들의 집중 견제를 피할 수 없었습니다. 쇠락해가던 회암사는 조선 중기 이후 어느 때인가 폐허가 되고 말았습니다. 회암사터는 1997년부터 발굴조사가 이루어지면서 그 전모가 드러나고 있지요. 발굴 현장에 마련된 전망대에 오르면,262칸에 이르렀다는 전성기 회암사터의 규모에 놀라게 됩니다.14세기의 대(大)여행가로 새롭게 주목받는 지공(持空·1300∼1363)의 부도는 그가 중창한 회암사가 있는 천보산 중턱에 법제자인 나옹과 무학의 부도와 나란히 세워졌습니다. 고려 불교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킨 지공은 본명이 디야나바드라(Dhyanabhadra·提納薄陀)로 인도의 마가다국(摩竭提國) 출신입니다. 그는 히말라야산맥을 넘고 원나라 수도 연경을 거쳐 충숙왕 13년(1326년)에는 고려에 들어와 ‘환생한 부처’로 극진한 환대를 받으며 3년 가까이 머물게 되지요. 지공은 1328년 연경으로 돌아간 뒤에는 고려인들이 세운 법원사(法源寺)에 머물렀습니다. 그러자 나옹과 백운, 무학 등이 다투어 원나라로 건너가 그의 문하에서 수학하게 되지요. 지공의 가르침에는 개혁사상이 담겨 있었던 듯 나옹은 고려 말 개혁정치를 시도한 공민왕의 왕사(王師)가 되고, 무학은 이성계를 도와 조선왕조를 엽니다. 지공은 1361년 11월 겨울 입적하는데,1368년 원나라가 멸망하는 과정의 혼란 속에 그의 유골을 네 사람의 제자가 나누었다고 합니다. 이들 가운데 두 사람이 고려로 가져온 유골이 회암사와 장단 화장사, 묘향산 안심사에 나뉘어 안치된 것입니다. 마가다국에서 고려에 이르는 지공의 행적은 목은색이 지은 지공의 회암사 부도비명 병서에 자세히 전합니다. 지공은 인도의 동북부에서 해안을 따라 남하하여 오늘날의 스리랑카에 이르는 인도의 전역을 여행했습니다. 그럼에도 인도사(史)는 14세기 초에 이르면 인도의 대부분은 이슬람의 영향권에 들었고, 이를 전후한 시기에 힌두교가 성행하기 시작하였던 반면 불교는 거의 사라졌다고 서술하고 있다고 하지요. 하지만 지공의 행적을 보면 적어도 인도의 동부는 당시 불교의 전통이 강하게 존속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공은 처음엔 바닷길로 중국으로 가고자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오늘날의 미얀마와 말레이반도의 초입까지 진출했다가 돌아선 것으로 짐작되고 있지요. 이후 인도 서부의 사막과 히말라야산맥을 넘어 티베트와 운남, 연경을 거쳐 고려에 이르게 됩니다. 그는 고려에서도 개경에만 머물지 않고 금강산과 양산 통도사에서도 설법을 했습니다. 지공은 티베트에서는 주술사가 독약을 타놓은 차를 마셔야 했고, 하성(蝦城)에서는 이교도들로부터 얻어맞아 이가 부러졌으며, 중국의 양자강 상류에 속하는 대독하(大毒河)에서는 도적을 만나서 알몸으로 도망가기도 했습니다. 이렇듯 지공의 발자취를 담은 기록은 당시 아시아 각국의 지리와 민속, 종교를 밝히는 매우 중요한 단서입니다. 지공을 모로코 탕헤르 출신으로 이슬람세계와 중국을 여행한 이븐 바투타(1304∼1368)와 비교되는 대여행가로 주목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또한 회암사에 있는 지공의 부도를 더욱 주목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dcsuh@seoul.co.kr
  • “관객과 가까이서 호흡하겠다”

    황병기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이 올해부터 매달 국립극장 별오름극장 무대에 오른다. 가야금의 명인으로 더욱 유명한 황 감독이지만 연주자가 아닌 ‘사랑방 음악회’ 해설자의 자격이다. 이 음악회는 국립국악관현악단이 관객들과 더욱 가까워져야 한다며 황 감독 자신이 기획한 것. 지난해 세 차례에 걸친 ‘실험’에서 자신을 얻어 올해부터는 상설공연으로 확대했다.●`사랑방 음악회´ 해설자로 무대 올라 별오름극장은 74석에 불과한 작은 무대이다. 보통 50∼60명 남짓한 단원이 무대에 오르는 국악관현악단의 덩치에는 걸맞지 않는다. 하지만 황 감독은 오히려 다양한 악기편성이 국악관현악단의 장점을 살려 재미를 가미한 실험정신을 관객과 호흡하며 펼칠 수 있는 최적의 공간으로 만들었다. 황 감독은 “지난해 ‘사랑방 음악회’의 객석을 채운 관객들의 반응은 뜨거웠다.”면서 “많은 이들이 국악을 가까운 곳에서 섬세하게 듣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실감했다.”고 말했다. 관객뿐만 아니라 단원들도 ‘사랑방 음악회’를 환영하고 있다. 독주나 실내악을 하고 싶어 하는 단원들이 기량을 가다듬어 ‘실전’에 나설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올해부터 매달 상설공연으로 확대 올해 첫 무대인 24일의 주제는 ‘삼현육각’. 원래 피리 둘을 비롯해 대금과 해금, 장구, 북으로 이루어진 악기 편성을 뜻하는데, 이런 구성으로 연주하는 전통음악을 지칭하기도 한다. ‘삼현영산회상’의 피날레에 해당하는 ‘함녕지곡’을 서곡으로 해금수석인 김영미가 연주하는 지영희류 해금산조, 최훈정의 피리독주 ‘상령산’, 박경민의 대금독주 ‘청성자진한입’에 이어 민속악 합주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대풍류’로 대미를 장식한다.‘사랑방 음악회’는 7월을 제외한 매월 넷째주 목요일 오후 7시30분에 열린다. 전석 2만원.(02)2280-4115.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태극기 근대 문화재 등록 추진

    태극기의 근대 문화재 등록이 추진된다. 백범 김구 선생이 서명한 태극기를 비롯해 상하이 임시정부 태극기, 광복이 머지않다는 뜻으로 ‘불원복(不遠復)’이라고 쓴 의병장 고광순의 태극기 등이 검토 대상이다. 문화재청은 광복 60주년을 맞아 근대 문화재의 범위를 부동산뿐 아니라 태극기 등 역사적 가치가 높은 동산으로 넓혀 광복절이 있는 8월쯤 등록할 계획이라고 7일 밝혔다.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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