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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초과학연구단장 후보 11명 압축

    기초과학연구단장 후보 11명 압축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기초과학연구원(IBS·원장 오세정)의 50개 연구단장 자리를 놓고 내로라하는 과학자들이 경합에 들어갔다. ‘과학계 별들의 전쟁’이라고 불릴 정도다. IBS는 “지난 2월 말까지 진행된 1차 연구단장 공모에 신청한 101명의 국내외 석학 가운데 11명을 최종 평가 후보로 선정했다.”고 12일 밝혔다. 또 가능한 한 올해 안에 25명의 단장을 확정할 방침이다. 일단 최종 평가에 오른 후보는 ▲패트릭 다이아몬드 미국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 교수 ▲서동철(찰스 서) 미 스크립스연구소 교수 ▲정상욱 미국 러트거스대 교수 등 외국인(해외국적자) 3명과 ▲오용근 미국 위스콘신대 교수 ▲김은준·유룡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 ▲신희섭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뇌과학연구소장 ▲김기문 포스텍 교수 ▲노태원·현택환·김빛내리 서울대 교수 등 한국 국적의 과학자 8명이다. 유룡, 신희섭, 현택환, 김빛내리 교수 등은 한국 과학의 정점인 국가과학자이다. 다른 교수들 역시 각 분야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분야별로는 생명과학이 4명, 화학과 물리가 3명씩, 수학 1명이다. 후보들은 다음 달 말 학술대회와 연계한 공개 심포지엄과 평가위원 간 비공개 토론을 거칠 예정이다. 최종 결과는 5월 중에 이뤄진다. IBS는 첫 단장을 최소 1명에서 최대 2~3명 뽑을 계획을 세워 놓고 있다. 연구단장이 되면 자신이 원하는 주제로 연구과제를 채택, 최대 50명의 연구진을 구성할 수 있다. 또 100억원의 연구비 사용에 대해서도 전권을 갖는다. IBS 관계자는 “1차 연구단장 후보들은 향후 연구단장을 선정할 때 기준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상징적인 의미까지 고려했다.”면서 “분야별 안배, 지역적 고려 등을 배제하고 오로지 연구성과와 가능성에만 초점을 맞춰 심사했다.”고 밝혔다. 이번 1차 평가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신청자들은 2년간 연구단장 후보 풀에 들어간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유럽 여행에 악센트를 주다

    유럽 여행에 악센트를 주다

    유럽 여행에 악센트를 주다 유럽을 여행하는 방법은 많다. 특히 어떤 항공사를 이용하느냐에 따라 그 여정은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그려내기 마련이다. 이번 여행은 벨기에의 브뤼셀로 들어가 독일과 룩셈부르크를 거쳐 프랑스 파리에서 되돌아오는 일정이다. 자칫 일반적인 유럽 여행이 될 수 있는 동선이지만 여기에 특별한 ‘스톱오버’가 전체 분위기에 변화를 줬다. 중동 지역의 독특한 문화와 광활한 사막 그리고 푸른 바다가 어우러진 카타르에서의 ‘스톱오버 투어’는 새로운 느낌의 유럽 여행을 연출하게 한다. 에디터 트래비 글·사진 Travie writer 서동철 취재협조 카타르항공 www.qatarairways.co.kr 1 벨기에 브뤼셀의 골목길에서 만난 거리의 악사 2 야경이 더욱 아름다운 그랑플라스는 브뤼셀의 상징과도 같다 3 젊은이들의 낭만으로 가득한 하이델베르크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또 하나의 목적지 Doha도하 늦은 밤 인천국제공항을 출발한 비행기는 현지 시각으로 새벽 5시 즈음 카타르의 수도 도하에 도착했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도하는 온통 모래빛깔이다. 땅도 건물도 모두 사막을 닮았다. 그 옆으로 넘실거리는 페르시아만의 짙푸른 바다가 마치 신기루처럼 느껴질 정도. 유럽으로 향하는 길이었지만 이곳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아라비아 반도의 동쪽 해안에서 바다를 향해 엄지손가락 모양으로 툭 튀어나온 카타르는 작은 나라다. 면적은 우리나라의 경기도 정도이며, 인구는 외국인을 합쳐도 200만 명에 불과하단다. 그러나 지구상에서 카타르를 무시할 수 있는 국가는 없다. 자그마치 152억 배럴의 원유와 5,700조 배럴의 천연가스를 보유한 ‘부자나라’이기 때문이다. 이 척박해 보이는 땅에서 2006년 아시안게임이 개최됐고, 2022년 월드컵이 열릴 예정이다. 도하의 거리로 나서면 이슬람문화에 대한 자긍심과 부국으로서의 자신감을 동시에 감지할 수 있다. 웨스트베이 지역에는 우후죽순처럼 마천루들이 솟아오르고, 도로를 질주하는 차량들은 하나같이 고급 승용차들이다. 건너편 부둣가에서 바라본 웨스트베이 지역은 마치 미래 도시처럼 사막 한가운데 비현실적으로 떠 있는 것만 같다. 이슬람 전통 복장을 한 이들이 값비싼 스포츠카를 끌고 도하시티센터(도하에서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쇼핑몰)로 달려와 명품 쇼핑을 하는 풍경은 이국적이라는 표현만으론 부족할 지경이다. 하지만 카타르의 매력은 역시나 가장 카타르다운 것에 있었다. ‘올드 수크Old Souq’라 불리는 재래시장에는 중동의 색채가 담뿍 묻어난다. 좁은 골목길을 따라 이리저리 발걸음을 옮기다 보면 그네들의 과거와 현재가 뒤엉킨 채로 여행객을 맞이한다. 여유롭게 물담배를 피우거나 그늘에 앉아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 시커먼 천으로 온몸을 휘감고 장을 보러 나온 이슬람 여성들이 어우러진다. 이름 모를 향신료가 코를 간질이고, 원색적인 양탄자는 올라앉으면 금방이라도 날아오를 것처럼 상상력을 자극한다. 일용잡화에서부터 앵무새와 토끼 등 애완동물과 고풍스러운 골동품까지 볼거리들이 즐비하다. 올드 수크와 함께 도하를 방문하는 여행객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코스는 바로 ‘사막 사파리 투어’이다. 사륜 구동 SUV를 타고 도하에서 약 1시간 정도 달리면 광활한 모래사막이다. 사막에 진입하기 직전, 접지력을 높이기 위해 타이어에서 바람을 조금 빼면 준비 완료. 롤러코스터를 방불케 하는 사막 어드벤처가 시작된다. 거대한 파도와도 같은 사구를 달리는 차는 위아래로 숨 가쁘게 출렁거린다. 차가 뒤집힐 듯한 아찔한 상황을 수도 없이 연출해내면서도 운전기사는 눈 하나 꿈쩍하지 않는다. 경사가 80도에 가까운 사구 정상에서 추락하듯 달려가는 데에 이르면 입에서는 저도 모르게 즐거운 비명이 터져 나오기 마련이다. 그렇게 요동치던 차를 멈추고 사막 한가운데 내려서면 작렬하는 태양 아래 끝없이 펼쳐진 모래언덕이 눈을 아련하게 한다. 그리고 사막 끝에 드러나는 페르시아만의 짙푸른 바다는 사막과 기묘한 대비를 이루며 시선을 붙잡는다. 숨 막히는 사막의 더위를 깜빡 잊을 만큼 장관이 아닐 수 없다. T clip.도하 스톱오버 프로그램 사막 사파리 투어 4륜 구동 SUV를 타고 카타르 남쪽 사막을 달리는 프로그램이다. 요금은 4시간 기준으로 2~3명은 1인당 65달러, 4명은 1인당 55달러이며, 1명의 경우 2명 요금을 지불해야 한다. 도하 시티투어 가이드를 겸한 한국인 운전자와 승용차를 타고 올드 수크, 매시장, 웨스트베이 등 도하의 주요 관광지를 둘러보는 일정이다. 요금은 4시간 기준으로 2~3명은 1인당 75달러, 4명은 1인당 63달러이며, 1명의 경우 2명 요금을 지불해야 한다. *카타르 비자는 공항에서 신용카드(30달러)로만 결제할 수 있다. 문의 페가수스코리아(도하 스톱오버 프로그램 예약 대행사) 02-733-3441 1 부둣가에서 바라본 웨스트베이는 마치 신기루 같다 2 상상력을 자극하는 올드 수크의 양탄자들 3 이슬람 전통복장을 한 공예품들이 지갑을 열게 한다 4 사막에서 바라본 페르시아만의 짙푸른 바다 카타르항공 카타르의 수도 도하를 기점으로 하는 카타르항공은 우리나라에서는 비교적 낯선 항공사이다. 하지만 비행기에 오르는 순간 서비스와 안전에 대한 불안감은 씻은 듯이 사라진다. 한국인 승무원이 배치되어 있어 언어에 따른 불편함을 전혀 느낄 수 없으며, 쇠고기와 닭고기로 구성된 메인 요리는 한식 스타일로 조리되어 한국인들의 입맛에도 잘 맞는다. 또 여유로운 좌석이 비행의 피로를 덜어주는 것도 큰 장점이다. 카타르항공은 현재 98대의 항공기로 유럽, 중동, 아프리카 등 세계 102개 노선을 운항하고 있다. 특히 도하를 경유하여 유럽 25개 도시를 연결하고 있어 유럽을 여행하려는 한국인들에게 편리하다. 항공 리서치 전문기관인 스카이트랙스Skytrax에서 선정한 세계에서 6개뿐인 5성급 항공사인 만큼 기내 서비스도 수준급이며, 경쟁력 있는 요금도 매력적이다. 퍼스트클래스나 비즈니스클래스 고객이라면 도하국제공항의 ‘프리미엄 터미널’을 이용할 수 있다. 9,000만 달러의 비용을 들여 지난 2006년 완공한 프리미엄 터미널은 여느 항공사 라운지에서 맛볼 수 없었던 서비스를 제공한다. 줄을 설 필요 없이 별도의 체크인 서비스를 받을 수 있으며, 스파, 수면실, 샤워실, 레스토랑 등의 시설을 모두 무료로 즐길 수 있다. 경유지 도하에서의 스톱오버 프로그램은 덤이다. 문의 카타르항공 02-3708-8571, www.qatarairways.co.kr 유럽연합의 작은 거인 Brussels 브뤼셀 카타르 도하를 뒤로하고 다시 비행기에 올라 도착한 곳은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이다. 프랑스와 네덜란드 사이에 자리한 벨기에는 처음 유럽을 여행하는 사람이라면 잠시 스쳐가거나 건너뛰는 작은 나라에 불과할 것이다. 하지만 카타르가 그랬던 것처럼 벨기에 역시 남다른 저력을 발휘하는 국가이다. 유럽연합EU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본부가 브뤼셀에 자리잡고 있어 벨기에의 수도뿐 아니라 유럽의 수도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 수준에 있어서도 여느 유럽 국가들에 뒤처지지 않는다. 와플, 초콜릿, 맥주 등 벨기에의 먹을거리는 유럽에서도 유명하며, 최근 할리우드 극장판으로 제작된 애니메이션 <개구쟁이 스머프>도 벨기에에서 태어나 세계로 뻗어나갔다. 대문호 빅토르 위고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이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던 ‘그랑플라스Grand-Place’는 브뤼셀의 상징으로 세계 각국의 여행자들을 벨기에로 이끈다. 그랑플라스로 이어지는 구시가지의 풍경은 예스러움과 현대인들의 여유로움으로 가득하다. 거리의 악사들은 흥겨운 음악으로 발걸음을 가볍게 하고, 사람들은 과일과 시럽을 잔뜩 올린 와플을 들고 거리를 활보한다. 보는 것만으로도 달콤함이 느껴지는 초콜릿 가게와 거리 곳곳에 세워진 조각들에 한눈을 팔다 보면 어느새 탁 트인 광장에 다다르게 된다. 1998년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대광장, 즉 그랑플라스이다. 직사각형의 그랑플라스를 둘러싸고 있는 고딕과 바로크 양식의 건축물들은 정교한 조각품을 떠올리게 할 만큼 화려함을 자랑한다. 시청사, 왕의 집, 길드하우스 등 건축물 대부분이 15~17세기에 지어진 것들로 광장 한가운데 서 있으면 중세시대로 시간여행을 온 듯한 느낌이다. 이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96m의 높이로 우뚝 솟아 있는 시청사이다. 그랑플라스의 건축물 가운데서도 가장 섬세한 외벽 조각으로 하나하나 찬찬히 살펴보는 것이 좋다. 첨탑 꼭대기에는 브뤼셀의 수호천사인 미카엘 대천사가 황금빛으로 조각되어 있다. 시청사 옆길로 5분 정도 걸어가면 브뤼셀의 또 다른 상징인 ‘오줌싸개 동상(마네캥-피스Manneken-pis)’을 만날 수 있다. 사진으로 먼저 동상을 본 여행객들이라면 “애걔!”라는 실망스런 감탄사가 튀어나오기 마련이다. 그도 그럴 것이 크기는 60cm에 불과한 데다, 여느 유럽 거리에서 흔하게 만날 수 있는 조각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손을 허리춤에 올리고 거만한 자세로 오줌을 누고 있는 이 꼬마 녀석에 얽힌 이야기는 자못 대단하다. 프랑스 군대가 브뤼셀에 불을 질렀을 때 이 꼬마가 오줌을 누어 불을 껐다고 하며, 14세기에 한 제후의 왕자가 오줌을 누며 적군을 모욕한 것이 모델이 되었다고도 한다. 어느 것이 정설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오줌싸개가 벨기에의 ‘수호 꼬마’인 셈이다. 이 때문에 오줌싸개 동상은 수차례 약탈당하는 곤욕을 치르기도 했단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이 벌거벗은 꼬마의 옷이 수백 벌에 달한다는 것. 외국 정상들이 브뤼셀을 방문할 때마다 선물한 옷들로 그랑플라스의 왕의 집에 전시되어 있다. 꼬마의 옷 중에는 한복도 있다고. 1 그랑플라스 시청사의 섬세한 외벽 조각 2 벨기에에 왔다면 와플은 꼭 맛봐야 한다 3 오줌싸개 동상 앞에 모인 여행객들 T clip. 벨기에에 왔다면 꼭 맛봐야 할 것이 바로 ‘와플’이다. 와플이란 이름은 독일어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하지만 그 원조는 벨기에이다. 벨기에 와플은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벨기에 수도 이름을 딴 ‘브뤼셀 와플’과 동부 도시의 이름을 딴 ‘리에주 와플’이 그것이다. 브뤼셀 와플은 바삭바삭하고, 리에주 와플을 부드러운 것이 가장 큰 특징이라고. 그랑플라스 주변을 돌아다니다 보면 와플 가게를 흔하게 만날 수 있다. 바나나, 딸기, 크림, 초콜릿 시럽 등 상상을 초월할 만큼 푸짐한 토핑을 올린 와플은 여행 중 간식거리로 부족함이 없다. 가격은 1~3유로 정도. 1 웅장하다 못해 보는 이를 압도하는 쾰른 대성당 2 쾰른 대성당의 아치형 중앙 회당 3 오리 한 마리가 유유히 흐르는 네카어강을 바라보고 있다 4 담소를 나누는 하이델베르크의 대학생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웅장한 자태에 반하다 Ko”ln 쾰른 벨기에 브뤼셀에서 동쪽 국경을 넘어 독일의 쾰른으로 달려간 이유는 단 하나, ‘쾰른 대성당Cologne Cathedral’ 때문이다. 시내 중심에 157m의 높이로 솟아 있는 두 개의 첨탑은 웅장하다 못해 압도적이다. 건물 외벽에 새겨진 정교한 조각들은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냈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이다. 1996년 유네스코는 ‘인류의 창조적 재능을 보여주는 보기 드문 작품’이라고 평가하면서 쾰른 대성당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쾰른 대성당이 지어진 것은 1248년부터이다. 1164년 한 대주교가 동방박사 세 명의 유해가 담긴 성물함을 가져왔고, 이를 안치하기 위해 성당을 짓기 시작했다고 한다. 공사가 중단된 시기도 있었지만, 1880년 완공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약 650년에 이른다. 이 때문에 건물 외벽의 색깔이나 석질이 조금씩 다른 것도 눈에 띈다. 완공 이후 1884년까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었으며, 현재 스페인 세비야 대성당과 이탈리아 밀라노 대성당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고딕 양식의 성당이다. 첨탑이 서 있는 서쪽 입구로 들어서면 아치형의 중앙 회랑이 144m의 길이로 소실점을 그리며 뻗어나간다. 바닥부터 천장까지의 높이는 약 43m이며, 기둥에 조각된 석상들은 성모 마리아와 예수 그리고 예수의 열두 제자들이다. 좌우 창가에는 스테인드글라스가 햇빛을 받아 은은하게 빛나고 있다. 엄숙하고 경건하며 신비롭기까지 한 성당 내부에 서면 저도 모르게 두 손을 모으고 기도를 올리게 된다. 젊은 낭만의 도시 Heidelberg 하이델베르크 룩셈부르크로 들어가기 전 들른 도시는 독일 남서부에 자리한 낭만의 도시 하이델베르크이다. 라인강의 지류인 네카어 강을 따라 달리던 차가 하이델베르크에 들어서자 주체할 수 없는 젊음의 열기가 느껴지기 시작한다. 카를 테오도르 다리를 중심으로 삼삼오오 모여 앉아 담소를 나누는 학생들과 도도히 흐르는 옥빛 강물 그리고 크고 작은 광장을 연결하는 고풍스러운 하우프트 거리 등이 방문객들을 낭만 여행으로 이끈다. 하이델베르크는 인구가 10여 만명에 불과한 작은 도시지만 이 가운데 대학생이 약 3만명에 달한다고 한다. 1386년에 설립돼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으로 꼽히는 하이델베르크대학이 있기 때문. 수백년의 세월 동안 학구열을 불태운 이 도시는 칸트, 괴테, 야스퍼스 등 세계적인 학자와 문학가들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네카어강을 건너 독일의 유명 철학자들이 즐겨 걸었다는 ‘철학자의 길’을 걷다 보면 누구나 골똘히 사색에 잠기게 된다. 하이델베르크가 ‘대학도시’로 불리는 까닭이다. 카를 테오도르 다리 중간에 서서 뒤를 돌아보면 ‘하이델베르크 고성’이 눈에 들어온다. 세모꼴에 울긋불긋한 마을 지붕들 너머로 고고하게 자리하고 있는 이 고성은 하이델베르크의 상징에 다름 아니다. 13세기에 축조되기 시작한 하이델베르크 고성은 17세기에 이르기까지 여러 군주를 거치며 파괴되고, 복원되고, 증축되며 지금에 이르렀다. 이 때문에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등 다양한 형식의 건축물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기도 하다. 고성에 오르면 종탑, 성문탑, 루프레히트 궁, 프리드리히 궁 등 여러 건물들이 있는데, 30년 전쟁과 왕위계승전쟁을 거치면서 훼손된 부분이 적지 않다. 하지만 고성의 아름다움은 세월 속에서 더욱 여물어 여행객들의 눈을 사로잡는다. 도시 전체가 하나의 요새 Luxembourg 룩셈부르크 파리로 향하는 길에 방문한 룩셈부르크는 유럽 지도에서 찾아보기도 힘들 만큼 작다. 독일과 프랑스 사이에 끼여(?) 있는 듯한 지정학적인 위치로 인해 이 지역을 차지하기 위한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부르고뉴가, 합스부르크가, 프랑스, 네덜란드, 프로이센의 지배를 받아오며 중세 400년 동안 파괴와 복원이 되풀이됐다. 룩셈부르크 독립의 꿈은 1839년에 이르러서야 이루어졌다. 지금은 유럽재판소, 유럽의회 사무국 등이 룩셈부르크에 자리하고 있어 브뤼셀과 함께 EU의 중심지로 기능하고 있다. 구시가지를 걷다 보면 곳곳에서 아픈 역사의 흔적들을 만나게 된다. 외침에 대항해 단단한 방패를 들듯, 높은 성벽과 포대가 완고하게 도시를 두르고 있는 것이다. 도시 전체가 하나의 요새와도 같은 형국이다. 가장 유명한 성채는 ‘복포대Casemates Du Bock’이다. 군사적 요충지는 전망 또한 좋기 마련이어서 복포대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일품이다. 알제트 운하가 회색지붕들 사이를 유유히 흘러가고, 숲과 마을이 어우러지는 모습은 룩셈부르크의 지난했던 역사를 잠시 잊게 한다. 1차 세계대전 때 희생된 이들을 기리는 황금의 여신상이 있는 ‘헌법광장Constitution Square’에서 바라보는 풍경도 장관이다. 페트루세 계곡을 따라 울창한 숲이 이어지고, 그 중간 즈음에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를 연결하는 ‘아돌프다리Pont Adolphe’가 멋들어진 아치를 자랑한다. 1903년에 완공된 아돌프다리는 높이 46m, 길이 153m에 이르는 석조 다리이다. 건설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아치교로 세계의 이목을 끌기도 했다. 헌법광장에서 길을 건너면 ‘노트르담대성당Notre Dame Cathedral’이다. 유럽의 여느 성당들과 비교하면 화려하지도 웅장하지도 않지만, 단정하고 간결한 모습이 매력적이다. 성모마리아 조각이 중심에 있는 파사드를 지나 안으로 들어서면 단아한 외관과는 달리 화려하고 장중한 내부가 모습을 드러낸다. 스테인드글라스와 파이프오르간 그리고 벽면과 기둥의 정교한 조각들이 반전의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유럽의 문화 수도 Paris 파리 이번 여정의 마지막 목적지 파리는 유럽 여행을 마무리하기에 가장 훌륭한 장소였음에 틀림없다. 유럽 여행을 계획한다면 빠질 수 없는 곳일 뿐더러 몇 번을 방문한다고 해도 질릴 리 없고 그리워지기까지 하는 도시이기 때문이다. 프랑스 혁명 100주년을 기념해 1889년 완공된 에펠탑은 여전히 파리의 랜드마크 역할을 하고 있었고, 세계 최대의 개선문으로 꼽히는 에투알 개선문의 당당한 자태는 변함이 없었다. 세계 각국의 유물과 미술품으로 가득한 루브르박물관과 19세기 인상파 작품들로 유명한 오르세미술관 역시 파리를 방문했다면 놓칠 수 없는 명소이다. 유람선을 타고 센강을 따라 명소들을 둘러보는 일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이번 파리 여행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낸 곳은 ‘뤽상부르공원Jardin du Luxembourg’과 ‘몽마르트르Montmartre 언덕’이었다. 여행의 마지막인 만큼 여유로운 휴식과 느긋한 산책을 즐기기로 했던 것. 뤽상부르공원은 1615년 건축된 뤽상부르 궁전에 딸린 프랑스식 정원이다. 파리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원이며, 파리지앵들이 가장 사랑하는 휴식처로 잘 알려져 있다. 화창한 날씨라면 뤽상부르공원은 온통 일광욕을 하는 이들로 가득하다. 공원 곳곳에 놓인 벤치와 의자에 앉아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으며 햇볕을 만끽한다. 스케치북에 공원의 모습을 담는 젊은 미술학도들의 모습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공원을 거닐다 보면 그늘진 숲길과 넓은 잔디밭, 수많은 조각상들과도 조우하게 된다. 책 한 권과 커피 한 잔을 들고 햇볕 다사로운 곳에 앉아 시간을 보내 보자. 짧은 시간이지만 파리지앵이 되어 보는 것이다. 파리 시내에서 가장 높은 언덕에 자리한 몽마르트르는 그 이름만으로도 낭만이 흘러넘친다. 좁은 골목길을 따라 올라가면 언덕 꼭대기에 사크레쾨르 대성당이 하얗게 빛나고, 계단 옆 잔디밭에는 햇볕에 취한 사람들이 옹기종이 모여 앉아 있다. 언덕의 높이는 130m에 불과하지만 뒤를 돌아보면 파리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사크레쾨르 대성당 오른편으로 가면 에펠탑까지 조망할 수 있다. 언덕 한쪽에는 거리의 화가들이 예술의 향기를 뿜어낸다. 여행객들과 그들의 초상화를 자신의 스타일대로 그려내는 화가들은 몽마르트르의 고유한 풍경이다. 레스토랑의 야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맥주나 와인을 음미하며 이 풍경을 즐기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술은 한 잔이면 족하다. 몽마르트르의 독특한 분위기에 먼저 취하기 마련이니까. 1 숲과 마을 그리고 알제트운하가 장관을 이루는 복포대 2 마네 특별전이 열리고 있는 오르세 미술관 3 몽마르트르 언덕에서 캐리커처를 그리고 있는 화가 4 룩셈부르크의 노트르담대성당의 외관은 단정하고 간결하다 5 헌법광장에서 바라본 아돌프다리 6 뤽상부르공원은 파리지앵들이 가장 사랑하는 휴식처다 7 샹젤리제 거리를 오가는 파리지앵들 8 센강에서 바라본 에펠탑과 파리시내의 야경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위 기사는 기사콘텐츠 교류 제휴매체인 여행신문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관한 모든 법적인 권한과 책임은 여행신문에 있습니다.
  • 경상북도 봉화-산골마을에 퍼지는 ‘워낭소리’

    경상북도 봉화-산골마을에 퍼지는 ‘워낭소리’

    경북 봉화는 ‘소’같다. 긴 속눈썹에 크고 깊은 눈망울, 무던하고 천진한 입매의 그 소를 닮았다. 봉화가 영화 <워낭소리>의 촬영지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경북 봉화는 ‘소’같다. 긴 속눈썹에 크고 깊은 눈망울, 무던하고 천진한 입매의 그 소를 닮았다. 봉화가 영화 <워낭소리>의 촬영지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시간의 채찍질에도 아랑곳없이 길가의 풀을 뜯는 소처럼, 봉화는 오지라 불러도 좋을 산골어귀에서 당신과 나의 고향인 듯 터를 잡고 있던 탓이다. 잠시 봉화라는 달구지에 몸을 실어 볼 것. 딸랑… 딸랑… 아련하고도 청량한 워낭소리가 산바람에 실려 환청인 듯 들려올 것이다. 에디터 트래비 글·사진 Travie writer 서동철 취재협조 봉화군청 culture.bonghwa.go.kr 1 최 노인의 집은 누추하지만 정겨웠다. 마당 한 쪽에 걸려 있는 액자에는 영화 속 장면이 담겨 있어 <워낭소리>를 추억하게 한다 2 영화의 주요 장면과 줄거리가 새겨져 있는 마을 입구의 조형물 3 최 노인과 누렁이가 논길을 걸어가는 모습을 재현한 동상도 마을 입구에 서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누렁이, 여기 잠들다 차는 봉화 읍내를 지나 내성천을 건너고 다시 봉긋한 산들로 둘러싸인 마을에 들어선다. 여기 어디쯤이라는데, 여느 호젓한 시골에서 흔히 만나볼 수 있는 풍경에 영화 <워낭소리>의 흔적은 찾을 길이 없었다. 그러던 중 넓은 논 사이로 가지런히 난 흙길을 따라 터덜터덜 느릿한 걸음을 옮기는 소 한 마리가 눈에 들어온다. 그 뒤엔 거짓말처럼 영화 속 주인공인 최 노인이 달구지에 실려 있다. 하루의 노동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30년 넘게 반복되어 온 풍경이 그렇게 재현되고 있었다. 변한 것은 소 한 마리뿐이다. 영화에 나왔던 소는 죽어 땅에 묻혔고, 지금은 튼실해 보이는 젊은 소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푸석푸석했던 털은 윤기가 흐르고 할아버지처럼 바싹 말랐던 몸은 근육질을 자랑한다. 요 녀석의 나이는 일곱 살, 이 누렁이도 그전 누렁이처럼 마흔 살(사람으로 치면 120살쯤 된다고 한다)까지, 잘 살아 줄까? 그들이 걸어 나왔던 길을 되짚어 가니 누렁이와 할아버지의 일터가 나타났다. 논밭 주위로는 영화 속 대사가 적힌 벤치들이 수시로 발걸음을 붙잡는다. “말 못하는 짐승이라도 나한테는 이 소가 사람보다 나아요.” “농약 치면 소 먹고 죽어. 사료 먹이면 살쪄서 애 못 낳아!”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귓전을 울리듯 생생한데, 그중 한 대사에 코끝이 찡하다. “노인네들 겨울 잘 보내라고 나무를 이레 해놓고 떠났다 아입니꺼.” 그 옆엔 누렁이가 묻힌 무덤과 비석이 자리하고 있다. ‘누렁이(1967~2008)’ 할아버지 최고의 친구이자, 최신의 농기구, 최고급 자가용인 누렁이가 그렇게 잠들어 있었다. 이제는 코뚜레와 워낭을 내려놓고 편히 쉬고 있을는지. 일터에서 할아버지 댁까지는 약 1km 정도. 소처럼 느릿하게 걸어 봉화군 상운면 하눌리에 자리한 할아버지의 집에 들어서니 영화 속 정경이 그대로 펼쳐진다. 이른 새벽 허연 김을 뿜어내며 쇠죽을 끓이던 솥이며, 여기저기 쌓여 있는 나뭇짐 그리고 아담한 외양간 들이 묻혀 있던 기억을 속속 끄집어낸다. 외양간에는 아까 그 젊은 누렁이가 긴 혀로 여물을 먹고 있다. 가끔씩 녀석의 턱에 매달린 워낭이 딸그랑 소리를 냈다. 그 워낭소리가 산사의 풍경소리처럼 청아하게 마당에 울린다. 어쩌면 변한 것은 없는지도 몰랐다. 우직한 일소들은 하나같이 똑 닮아서 크고 깊은 눈망울에 덤덤하고 천진한 입매를 하고 있다. 그 믿음직한 얼굴과 몸짓이란. 할아버지를 부탁해! 1 거북바위와 연못 그리고 가지런한 돌다리가 환상적인 궁합을 이루는 청암정 2 충재 종택은 고향 할머니의 품처럼 넉넉하다. 소풍을 나온 아이들도 할머니 댁에라도 온 듯 마음껏 재잘거린다 3 계곡에 바짝 다가선 석천정사는 자연에 가까이 다가서기 위한 옛 사람들의 노력을 엿보게 한다 4 향기로운 전통차를 음미하며 청량산의 풍광까지 감상할 수 있는 안심당은 청량사의 명물이다 5 청량산의 하늘다리는 보는 것만으로 오금을 저리게 한다. 하지만 그 위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장쾌하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금닭의 품속으로 걸어 들어가다 할아버지와 누렁이를 뒤로하고 찾아간 곳은 ‘석천정사石泉精舍’이다. 내성천의 지류인 석천계곡을 따라 오르다 보면 울울창창한 숲길을 지나 멋스러운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너르게 흐르던 물길은 좁아지며 콸콸콸 시원한 물소리를 내고, 그 물길만큼이나 수려한 석천정사가 자연 속에 폭 파묻힌 채로 방문객을 맞이한다. 석천정사는 16세기 중반 충재 권벌의 장남인 청암 권동보가 고향으로 돌아와 지은 것이다. 정사를 정자와 구분할 때 잠을 잘 수 있는 공간의 유무를 따진다는데, 그래서인지 꽤 규모가 크다. 돌로 축대를 쌓아올리고 계곡에 바짝 붙어선 모습은 자연에 가까이 다가서기 위한 옛 사람들의 노력을 엿보게 한다. 정사에 올라서면 계곡과 바위와 숲이 온통 ‘내 것’인 듯 유유자적한 풍경이 펼쳐진다. 석천정사에서 더 상류로 올라가니 갑작스레 숲이 잦아들고 너른 평지가 나타났다. 그 너머로 기와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충재 권벌이 조선시대 기묘사화로 관직에서 물러나 자리를 잡기 시작해 안동 권씨의 집성촌을 이룬 곳이다. 경주의 양동마을, 안동의 하회마을과 내앞마을 그리고 이곳 ‘닭실마을’까지를 영남의 4대 길지로 꼽는단다. 뒤로는 야트막한 산이 버티고 있고, 앞으로는 넉넉한 논과 밭이 이어지다간 깨끗한 물길이 마을을 감싸고 흘러간다. 마을 이름도 풍수지리적으로 금닭이 알을 품고 있는 형상이라는 금계포란金鷄抱卵에서 따온 것이다. 세월을 살짝 비껴간 듯한 마을은 고향의 냄새로 가득하다. 명절 때면 500년 전통을 자랑하는 닭실마을의 한과를 만드는 손길이 분주하고, 우뚝한 솟을대문을 자랑하는 충재 종택에는 안동 권씨의 일가친척들이 모여 전 부치는 냄새가 진동할 터이다. 가지런한 돌담길을 따라 걷다 보면 기억 속의 할머니가 버선발로 달려 나올 것처럼 정감 그득한 마을이다. 닭실마을 동쪽에 자리한 ‘청암정靑巖亭’은 마을 산책의 즐거움을 절정에 이르게 한다. 거북이 모양의 넓적하고 거대한 바위 위에 정자를 짓고, 그 주위를 둥글게 파서 연못을 만들었다. 정자를 등에 진 거북이가 연못 위를 노니는 형상이랄까. 연못을 건너 정자로 넘어가는 약 6m의 돌다리도 멋스럽기 그지없는데, 우리나라의 직선으로 된 돌다리 가운데 가장 긴 것이라고. 거북바위, 정자, 돌다리, 연못이 기막힌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이 어딘가 낯익다면 기억을 더듬어 보시라. 특히 청암정의 돌다리는 <동이>와 <바람의 화원>을 비롯해 여러 드라마와 영화에서 주인공들의 애틋한 장면이 연출되었으니 꼭 한 번 건너봐야 한다. 원수를 만나는 외나무다리가 아니라, 비껴갈 수 없는 사랑의 외돌다리(?)이니 운명적인 만남이 이뤄질지도 모를 일 아닌가. 닭실마을┃주소 경북 봉화군 봉화읍 유곡리 963 문의 054-674-0963 www.darsil.kr 열두 연꽃잎으로 감싸인 청량사 청량산(870m)으로 오르는 길은 만만치 않았다. 일주문에서 시작된 가파른 길은 ‘청량사淸凉寺’까지 부단히도 이어지며 장딴지를 묵직하게 했다. 사찰의 경내로 진입해서도 마찬가지. 어찌 이런 지형에 사찰을 건립할 생각을 했던 것인지 경이로울 만큼 가람배치가 독특하다. 가파른 산의 경사면에 건물을 올리려니 높다란 석축을 만들 수밖에 없었고, 이 때문에 여느 산사들보다 더욱 입체적인 가람배치가 형성된 것이다. 이른 아침 산안개가 자욱하게 몰려드는 경내에 서 있자니 주위가 온통 봉우리들로 가득하다. 주봉인 장인봉을 비롯해서 선학봉, 자란봉, 자소봉, 탁필봉, 연화봉, 향로봉 등 12개 봉우리가 우뚝우뚝 솟아 있고, 청량사는 그 한가운데에 자리한 형국이다. 열두 연꽃잎에 감싸인 꽃술이 바로 청량사인 셈이다. 특히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5층 석탑에 서면 청량산의 장쾌한 풍경이 펼쳐져 산행의 고단함을 단숨에 날려버린다. 원효대사가 663년 창건했다는 청량사에는 그 깊은 역사만큼이나 많은 이야기들이 전해 오고 있다.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안동으로 피난을 왔다가 이곳 청량사에 들렀다고 한다. 약사여래를 모신 ‘유리보전琉璃寶殿’의 현판이 바로 공민왕의 친필이라고 하며, 사찰 오른편에 자리한 응진전에는 공민왕과 그의 부인인 노국공주의 영정이 걸려 있기도 하다. 또 통일신라 말기의 뛰어난 학자였던 최치원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고운대와 독서당, 명필 김생이 10년간 은거하며 글을 썼다는 김생굴, 퇴계 이황이 성리학을 집대성한 청량정사 등이 산 곳곳에서 여행객에게 이야기를 건네는 듯하다. 청량사에서 숨을 돌리고 다시 산길을 더듬어 한 30분 정도 오르면 ‘하늘다리’이다. 해발 800m의 높이에 자란봉과 선학봉을 연결하고 있는 하늘다리는 보는 것만으로 아찔하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길고 가장 높은 현수교라는데, 발을 디딜 때마다 조금씩 출렁이는 것이 오금을 저리게 한다. 하지만 다리를 건너기 시작하면 좌우로 펼쳐지는 풍경이 장관이다. 태백산맥 끝자락에 걸린 봉화는 면적의 83%가 산이다. 산과 산들이 중첩을 이루며 하늘 끝으로 멀어져 가고, 그 사이사이 작은 마을들이 들어선 모양새는 아득하고 또 신비롭다. 청량사로 되돌아와서 산을 내려오려는데 어디선가 그윽한 차향이 흘러나온다. 시원한 통유리로 청량산의 정경을 감상하며 솔바람차, 오미자차, 작설차 등 전통차를 음미할 수 있는 찻집이다. 그 이름도 ‘안심당安心堂’이다. 차 한 잔을 시키고 창밖을 바라본다. 문득 영화 <워낭소리>가 떠올랐다. 누렁이가 세상을 떠나자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이 가파른 산길을 올라와 5층 석탑 앞에서 소의 영혼을 위해 기원을 드렸다. 멀리서 들려오는 산새소리가 마치 워낭소리인 듯 ‘딸랑’ 귓전을 스치고 지나간다. 청량산도립공원┃주소 경북 봉화군 명호면 청량로 255 문의 054-679-6653 mt.bonghwa.go.kr Travel to Bonghwa ▶봉화 찾아가는 길 경상북도 봉화를 찾아가는 관문 도시는 영주, 안동, 영양, 울진, 태백 등지다. 사통발달 길이 통해 있지만 자가용을 이용하지 않을 경우 시내버스나 택시로 갈아타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서울에서 영주까지 기차(무궁화호)로는 3시간 30분 정도가 소요된다. 영주와 봉화를 오가는 버스는 하루 종일 5~10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봉화버스터미널 054-673-4400, 영주여객(시내버스) 054-633-0011 ▶봉화에서 가볼 만한 곳 재래시장의 질펀한 흥겨움‘봉화시장’ 봉화군청에서 철길을 건너면 왁자한 시장골목이 시작된다. 봉화시장은 예로부터 영월, 삼척, 울진, 안동, 예천 등지에서 장을 보러 올 만큼 사람들로 붐벼 ‘들락날락 봉화장’이라는 유행어까지 있었다고 한다. 최근에는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지원하는 전통시장 활성화 시범사업인 ‘문전성시 프로젝트’가 한창 진행 중이어서 장보는 재미가 더욱 쏠쏠해졌다. 오일장(2, 7일)이 서는 날이면 각설이 공연에 민속품 경매까지 흔히 볼 수 없는 장터 풍경이 펼쳐지니 살 것이 없더라도 눈이 즐겁다. 시장문화사랑방 054-674-2008 이몽룡은 실존인물이다! ‘계서당’ 봉화 읍내에서 내성천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이몽룡의 생가로 알려진 계서당이 나온다. <춘향전> 연구의 대가로 알려진 연세대 설성경 교수가 오랜 연구 끝에 이몽룡이 실존 인물이었음을 밝혀낸 것. 이몽룡은 본래 봉화의 성이성이란 사람이었는데, 계서당은 그가 1610년 즈음 건립하여 후학을 가르치던 곳이라고 한다. 이중으로 기단을 올려 높다랗게 지은 사랑채와 오른쪽 끝에 만들어놓은 간이 화장실(?)이 볼거리이다. 주소 경북 봉화군 물야면 가평리 301 그 씁쓸하고 톡 쏘는 맛! ‘오전약수’ 봉화군에는 두내, 다덕, 오전 세 개의 약수터가 유명하다. 그중에서 물야면 오전리에 자리한 오전약수는 위장병과 피부병에 특효가 있기로 잘 알려져 있다. 조선시대 전국 약수대회에서 1등 약수로 선정됐다고도 하니 그 명성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탄산이 많이 함유되어 있어 톡 쏘는 맛이 강하고, 철도 많아 매우 씁쓸한 것이 특징이다. 강원도와 경상도를 넘나들던 보부상들이 발견했다고 하여 약수터 옆에는 보부상 조각이 서 있기도 하다. ▶봉화의 맛 3선 송이돌솥밥 봉화는 매년 9~10월 즈음에 ‘봉화송이축제’를 개최할 만큼 자연산 송이가 맛난 지역이다. 송이돌솥밥은 얇게 저민 송이를 밥 위에 살짝 얹고 쪄낸 것으로 향긋한 송이의 향이 입 안을 감도는 맛이 일품이다. 봉화읍내의 ‘솔봉이’ 식당이 송이돌솥밥으로 유명하다. 송이돌솥밥 1만5,000원, 송이전골 1만5,000원, 송이구이 4만원. 주소 경북 봉화군 봉화읍 내성리 232-11 문의 054-673-1090 봉성돼지숯불구이 봉화군 봉성면에는 ‘봉성돼지숯불단지’가 형성되어 있어 식사 때가 되면 돼지고기 굽는 냄새가 진동을 한다. 예전에는 이곳에 시장이 있었는데, 암퇘지 고기를 소나무 숯불에 구워내는 남다른 향에 사람들이 장보는 것도 잊고 고기를 즐겼다고. ‘상봉숯불식당’도 봉성돼지숯불단지에 자리한 식당 가운데 하나이다. 돼지숯불구이 9,000원, 생삼겹살 1만원. 주소 경북 봉화군 봉성면 봉성리 363-1 문의 054-672-9783 봉화한약우 봉화는 산악지형이라는 지역적 특성상 작약, 당귀 등 약초 재배가 활발하다. 이러한 한약재를 첨가한 사료를 먹여 키워낸 한우를 ‘봉화한약우’라 한다. 올레인산을 비롯한 불포화지방산의 함량이 높기로 잘 알려져 있다. 봉화읍내에 자리한 ‘은하숯불회관’도 봉화한약우 전문식당이다. 육회 3만원, 생갈비살 2만원, 소고기버섯전골 1만원. 주소 경북 봉화군 봉화읍 내성리 352-2 문의 054-673-1303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위 기사는 기사콘텐츠 교류 제휴매체인 여행신문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관한 모든 법적인 권한과 책임은 여행신문에 있습니다.
  • “국가관 확고하고 소신 뚜렷한 인재 골라내는 게 좋은 공무원 임용제도”

    “국가관 확고하고 소신 뚜렷한 인재 골라내는 게 좋은 공무원 임용제도”

    “10여년 전부터 소신 있는 공무원의 목소리가 사라져 가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예전엔 무리한 지시를 하는 장관이 집어던진 결재 서류를 한 장 한 장 주으면서도 ‘그래도 장관님, 안 되는 건 안 되는 겁니다.’ 하던 공무원이 드물지 않았어요. 좋은 공무원 임용제도란 이렇듯 국가관이 확고하고 소신이 뚜렷한 인재를 골라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성열(59) 대한지적공사 사장이 35년 공직생활을 마무리하고 퇴임한다. 그는 지적공사 사장으로 재직한 3년 동안 굵직한 성과를 남기면서 오랫동안 소극적 분위기에 젖어 있던 조직에 활기를 불어넣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10일 서울 여의도 지적공사 사옥에서 만난 이 사장은 임기가 끝나는 시점임에도 열성적인 ‘지적맨’의 모습이었다. ●국내 최고의 공무원 인사정책 전문가 하지만 5급 공무원 채용제도를 놓고 논란이 한창인 탓인지 공무원 임용정책에 대한 그의 경험담이 더욱 귀에 쏙쏙 들어오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옛 총무처 인사과장부터 행정자치부 인사국장, 중앙인사위원회 사무처장, 소청심사위원회 위원장, 중앙공무원교육원장 경력이 보여 주듯 그는 공무원 인사정책에 관한 한 국내 최고의 전문가다. 이 사장은 “공무원은 국가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존재”라면서 “정책은 어떤 요리사가 요리하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는 만큼 그 요리사에 해당하는 공무원은 공직을 평생의 보람으로 삼아 평생 국가를 위해 헌신하겠다는 확신이 있는 사람이 뽑힐 수 있도록 여론을 모아 주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행시 출신이 특채보다 헌신성 점수 높아” 그는 특히 “5급 공무원 특채를 늘리는 인사정책은 행정고시 출신의 제너럴리스트가 주도하는 공직사회에 전문성을 불어넣는다는 차원에서는 원칙적으로 수긍할 수 있는 얘기”라면서 “하지만 일선에서 일하다 보면 국가관과 헌신성이라는 측면에서 박사학위나 전문자격증을 따서 쉽게 공직사회에 입문하는 특채 출신보다 행정고시 출신에게 높은 점수를 줄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그는 나아가 “당연히 행정고시 출신이라고 모두 훌륭한 인재는 아닐 것”이라면서 “국가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고시낭인이라고 부르며 비판적으로 보기도 하지만, 난관을 돌파하고 의지력 있는 공무원이 되기 위한 열정은 대부분 고시공부를 하는 동안 키운다는 점에서 무의미한 시간이라고 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우리 손으로 국토 재측량 시동 보람” 국가 지적 업무의 실무책임자로서 이 사장의 업적은 ‘지적 재조사’ 사업의 기반을 마련했다는 것이다. 그는 “식민지배를 위해서는 지적 현황을 파악하는 것이 우선인 만큼 일제가 우리나라를 침략하면서 가장 먼저 한 일도 전국적인 측량이었다.”면서 “우리 지적 업무가 여전히 당시의 측량 결과를 답습하고 있는 것이 안타까웠는데, 100년 만에 전 국토를 우리 손으로 재측량하는 사업의 시동을 건 것이 다행스럽다.”고 말했다. 지적 업무의 수출도 활발해졌다. 그의 임기 동안 아제르바이잔과 자메이카, 몽골,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에서 측량, 토지등록, 교육, 컨설팅 사업을 벌여 모두 1000만달러 이상을 벌여들였다. 토지의 경계를 확정하는 업무의 특성상 토지 주인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은 불만족스러울 수밖에 없는 구조임에도 2007년 81.6점이던 기획재정부 주관 공공기관 고객만족도를 지난해 88.9점으로 끌어올린 것도 임직원 모두가 자랑스러워하는 대목이다. 그런 그에게 사장 재직 시절 가장 큰 보람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는 조용히 지적공사 인터넷 홈페이지를 열어 직원들이 자신에게 보낸 이임인사를 보여 주었다. 수백 개는 됨직한 인사말 가운데 이런 글이 보였다. ‘퇴임하신 뒤 지나가는 걸음에 사무실에 한 번 들러 주시면 막걸리 한 잔 대접하겠습니다.’ 이게 가장 큰 보람이라며 이 사장은 활짝 웃었다. 글 서동철 부국장 dcsuh@seoul.co.kr 사진 이종원 선임기자 jongwon@seoul.co.kr
  • [경술국치 100년]뮤지컬·특별전·순례로 부활한 3人의 우국충정

    [경술국치 100년]뮤지컬·특별전·순례로 부활한 3人의 우국충정

    한·일강제합병조약 체결 100주년인 올해는 일본의 식민통치를 거부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 국민들에게 항일정신을 일깨운 수많은 우국지사의 100주기이기도 하다. 경북 안동·영양 일대는 어느 지역보다 많은 자정(自靖·자결)순국자를 배출했다. 경술국치 100주년을 맞아 단식으로 순사한 향산 이만도 선생과 그의 조카 이중언 선생, 또 향산의 제자로 동해 바다에 스스로 걸어들어가 도해(蹈海) 순국한 벽산 김도현 선생 등 세 분 의병장의 역사 현장을 찾아가 본다. 지금 안동은 향산과 이중언 선생을 기리는 분위기가 가득하다. 향산의 우국충정은 ‘락’이라는 뮤지컬로 만들어져 안동댐 민속촌의 동산서원에서 오는 10월까지 공연된다. 때 맞춰 한국고전번역원은 ‘향산집’ 7권 가운데 1권을 먼저 번역해 내놓았다. 이중언 선생은 국가보훈처가 주관하는 ‘8월의 독립운동가’로도 선정됐다. 안동독립운동기념관에서는 ‘나라 위해 목숨 바친 안동선비’라는 주제로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보여주는 특별기획전을 새달 30일까지 갖는다. 1842년에 태어난 향산은 퇴계 이황의 후손이다. 1866년 대과에 장원급제한 그는 ‘선비로 나라에 일신을 바친 자는 위태로움을 보면 목숨을 바쳐야 한다.’는 부친의 당부를 실천에 옮겼다. 향산은 1876년 병자수호조약 체결을 반대하며 상소를 올린 면암 최익현 선생을 변호하다 파직됐고, 1895년 명성황후가 시해된 을미사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켰다. 1905년에는 을사늑약의 무효를 주장하는 상소를 올리기도 했다. 합병조약이 맺어지자 단식 24일 만에 순국했다. 퇴계종가와 묘소가 있는 안동시 도산면 토계동에 있던 향산의 종가는 안동댐 건설로 수몰될 위기에 이르자 1975년 안동시 안막동으로 옮겨졌다. 선생의 순국을 기리는 가장 중요한 기념물이라고 할 수 있는 유허비는 시내에서 자동차로 40분 남짓 걸리는 예안면 인계리 청구마을 앞에 자리잡았다. 유허비각 주변에는 자그마한 크기의 향산공원이 조성됐다. 1949년 세워졌다는 유허비의 앞면 글씨는 백범 김구가 썼고 뒷면의 추도사는 위당 정인보가 지었다. 향산과 한 마을에서 1850년 태어난 이중언 선생은 1879년 대과에 급제하여 사헌부 지평 등을 지냈으나 외세의 발호를 목격하고는 낙향했다. 을미사변이 일어나자 예안의진(義陣)의 전방장으로 함창의 태봉전투를 이끌었다. 을사늑약이 체결되고 외교권이 박탈되자 ‘청참오적소(請斬五賊疏)’를 올려 을사오적의 목을 베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향산과 다르지 않은 궤적이다. 그는 향산의 부음을 들은 10월10일 선조의 사당에 참배하고 단식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수많은 친지와 제자가 중단할 것을 권유했지만 선생은 ‘모두 부질없는 소리’라며 들으려 하지 않았다. 11월5일에는 순사가 찾아와 단식을 중단시키려 하자 “쫓아내지 않으면 내가 칼로 베겠다.”며 물리친 뒤 옷매무새를 정돈하고는 숨을 거두었다. 단식 27일 만이었다. 그는 가족들에게 봉서를 하나 남겼는데 ‘나의 갈 길은 사생취의(捨生取義), 목숨을 던져 의로움을 택하는 것뿐이다. 동포들이여 오직 힘쓰고 또 힘쓰라.’는 ‘경고문’이었다. 향산의 흔적을 찾는 것도 그랬지만, 영양유생 벽산의 자취를 찾아가는 길도 쉽지 않았다. 전국 곳곳의 작은 음식점까지 친절하게 안내해 주는 자동차 내비게이션도 순국지사의 유적은 철저히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벽산은 1852년 현재의 영양군 청기면 상청리에서 태어났다. 마을에선 1580년 처음 지어진 벽산의 생가와 1958년 세워진 유허비를 비롯하여 그의 흔적을 여럿 찾아볼 수 있었다. 특히 눈길을 끈 것은 마을 뒷산의 검산성(劍山城)이다. 벽산이 사재를 털어 쌓은 것이다. 길이 200m 남짓에 불과하고 높이도 2m가 채 되지 않는다. 하지만 뒷편으로는 깎아지른 절벽 아래로 하천이 흘러 자연해자의 역할을 한다. 결코 간단치 않은 방어력을 발휘했을 것이다. 벽산은 실천적이고 전투적이었다는 점에서 의병사에 특별한 족적을 남겼다. 그는 1896년 청량산에서 모병하여 8개월 동안 항쟁했고, 1906년에는 고종의 비밀명령을 받아 활동했으나 이듬해 2월 일본군에 체포되어 6개월 동안 대구감옥에서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그의 구국활동은 무력항쟁에 그치지 않고 상소운동을 벌이거나 서양 각국의 공사관이 만국공법론에 의거해 포고문을 보내 지원을 요청하는 등 외교론적 방법을 병행했다. 벽산은 병든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상례가 모두 마무리되기를 기다려 1914년 영덕군 영해읍 대진 앞바다에서 순국한다. 동포들에게 충의로서 일제에 복수할 것을 강조하고 자신은 죽어서라도 기어이 왜를 멸망시키겠다는 내용의 글 ‘우리동포에게(與國內同胞)’는 순사 전날인 11월6일 새벽 반송정에서 남긴 것이다. 죽어서도 왜적으로부터 나라를 보호하겠다며 경주 감포 앞바다에 대왕암 수중릉에 묻혔다는 신라 문무왕의 염원과 닮은꼴이다. 벽산이 순국한 대진 산수암(汕水巖)에는 1971년 도해단(蹈海壇)이 세워졌고, 해마다 선생의 생일인 음력 7월14일 기념행사가 열린다. 산수암의 북쪽에는 대진해수욕장, 남쪽에는 대진항이 자리잡고 있다. 도해단을 찾아간 지난 23일에는 벽산의 96주기를 기념하는 ‘도해단 전례’가 있었다. 폭염경보가 내려진 35~36도의 뙤약볕 속에서 대구와 안동, 영양 등지에서 승용차며 전세버스를 타고 온 100여명의 사람들이 선생의 우국정신을 기리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글 사진 안동·영양·영덕 서동철부국장 dcsuh@seoul.co.kr
  • [경술국치 100년] 60여명 단식·할복·음독으로 일제 항거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에 따르면 한말의 자결순국은 1905년 5월 주영공사서리 이한응이 처음이었다. 그는 1904년 제1차 한·일협약으로 대한제국이 사실상 외교권을 빼앗긴 데 이어 영국의 인도 점령과 일본의 대한제국 점령을 상호 인정하는 내용의 제2차 영·일동맹이 추진되자 영국정부에 항의하다 음독했다. 이후 1919년 칠곡 유생 유병헌이 총독부에 세금납부를 거부한 채 옥중 단식자결을 하기까지 모두 60명이 다양한 방식의 죽음으로 일제에 항거했다. 2007년 작성된 이 기록은 그러나 북한지역의 통계는 제외된 것이다. 또 남한지역에서도 1920년 안동 유생 이명우와 권성 부부가 ‘나라를 잃고 10년 동안 분통함과 부끄러움을 참았으나 이제는 충의의 길을 가겠다.’는 ‘비통사(悲痛辭)’를 남기고 함께 음독한 사실이 최근 새로 밝혀지는 등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순절자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국가보훈처도 새로 드러난 15명 안팎의 자결순국자를 유공자로 인정할 것인지 심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따라서 앞으로 조사 및 연구 결과에 따라 한말 자결순국자의 숫자는 지금보다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한응이 순국한 1905년에는 영의정 조병세가 음독하고 민영환이 할복한 것을 비롯해 김봉학, 이상철, 홍만식, 송병선, 이봉환, 이봉학 등 9명이 목숨을 끊어 저항했다. 1910년에는 8월29일 강제합병이 공표되어 자결순국이 잇따르는 상황에서 9월29일 퇴직 관원과 군인, 노인 유생 등에게 이른바 은사금을 지급한다는 발표는 타오르는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이해에만 35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전 성균관박사 김근배와 전 중추원 의관 송주면은 우물에 몸을 던졌고, 전 궁중내관 반하경은 할복했다. 청원의 김정환은 스스로 목을 베었고, 관인 정동식은 전주 공북루에 목을 매는 자경(自縊)을 택했다. ‘매천야록’으로 유명한 황현은 절명시 4편을 남기고 음독했다. 중추원 의관을 사직한 장태수 등은 곡기를 끊었다. 백정 황돌쇠도 순사했다. 1911년에는 유생 장기석이 일왕의 생일인 천장절 기념식 참석을 거부하여 투옥된 뒤 옥중 단식했고 1912년에는 을사오적을 성토한 ‘토오적문’을 쓴 송병순이 은사금을 거절하고 독배를 들었다. 1913년에는 창릉참봉을 지낸 노병대가 단식했고, 1914년에는 의병장 김도현이 바다에 몸을 던졌다. 1916년에는 대종교 초대 교조 나철이 구월산 삼성사에서 순절했다. 이렇듯 타협을 거부한 우국지사들의 자결순국이 이후 항일운동에 정신적 동력으로 작용했음은 물론이다. 서동철 부국장 dcsuh@seoul.co.kr
  • [경술국치 조약체결 100주년] 망국의 암운속 한쪽선 의병항쟁… 다른쪽선 일어 배우기

    [경술국치 조약체결 100주년] 망국의 암운속 한쪽선 의병항쟁… 다른쪽선 일어 배우기

    1910년, 경술년 새해를 맞은 대한제국은 여전히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하지만 사회 곳곳에는 이미 망국의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 있었다. 1월1일자 대한매일신보의 1면 논설 ‘융희(隆熙) 4년을 맞이하노라’에서도 이 같은 분위기는 그대로 감지된다. 논설은 당시를 ‘고해에 빠지고 민족이 지옥에 휩쓸린 시대’로 정의했다. ‘한국의 영웅을 다시 일으키고 악마를 격퇴하여 국가가 다시 틀을 갖추고, 아시아 동방에 독립의 깃발을 높이 올리며 민족이 웅비하여 한반도 강산에 자유의 단을 크게 다시 세울지어다.’라며 재기를 축원했지만, 확신은 점차 옅어졌다. ●일본인 이권 좇아 서울에 몰려 이런 분위기 속에서도 의병의 저항은 계속됐다. 3월6일자에는 ‘평산군 지방에서 이진용·한정만 의병장이 거느린 의병이 예성강 어귀로 나아가다 온정원주재소의 일본 헌병들을 보고 높은 언덕에서 습격했고, 일병은 30분동안 접전하다 탄환이 떨어지는 등 형세가 위급해지자 물러나 구원대를 청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하지만 일본의 득세는 대세가 되어가고 있었다. 4월10일자에는 ‘최근 일어를 배우는 풍조가 갈수록 높아져 일어학교와 일어를 배우는 사람이 늘어만 간다.’면서 ‘물론 개중에는 정의를 세우고자 일어를 배우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노예의 성질을 양성하는 학교이고, 학생’이라고 개탄했다. 급기야 4월30일자에 ‘학부는 한글이 필요하지 않다고 하여 국문연구회를 폐지하고 한문과 일문을 섞어서 일본 교과서와 같이 편찬한다고 한다.’는 기사가 나온다. 5월3일부터 5일까지는 일본에 주도권을 내주는 산업 생산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었다. 어업을 보면 ‘한국은 어선이 1만 2411척에 어부가 6만 8520명, 일본은 어선 3898척에 어부가 1만 6644명인데, 고기를 잡아 번 돈은 한국인이 314만 9100환인데 일본인은 341만 8850환으로 더 많다.’고 지적하면서 ‘이밖에도 정치적 영향으로 경제의 상황은 날로 곤란하여 전국 상업계의 이익이 필경 모두 일본인 손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렇게 되니 이권을 따라 일본인들도 몰려들었다. 6월4일자에는 ‘5월 말 경성에 사는 일본인을 조사하니 8381호에 3만 2672명으로 호수는 전달보다 166호, 인구는 남자 510명, 여자 386명이 늘었다.’는 소식이 떴다. 5월29일 한일병탄조약의 당사자인 데라우치 마사다케가 제3대 한국 통감으로 임명됐다. 6월3일자에는 ‘통감이 갈렸다 하니 이완용, 조중응, 유길준 등은 어깨에 바람이 났고, 송병준, 이용구 등은 새같이 뛰고 살쾡이같이 웃으니 그 품행의 천박함은 자연히 드러나는 것’이라고 매국대신들의 모습을 전했다. 서글픈 한국인들의 군상은 이들 친일대신에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데라우치와 병탄조약의 양대주역인 이완용은 1909년 12월22일 종현천주교회 앞에서 인력거를 타고 가다 이재명 열사에 피습됐다. 이완용은 요양차 온양에 머물렀는데, 6월21자에는 ‘총리대신 이완용이 온양에 내려간 이후 문병하러 가는 사람이 답지하여 차부와 마부들이 뜻밖에 많은 삯을 받는 까닭에 많은 사람이 총리가 그곳에 오래 머물기를 바란다.’는 기사가 실렸다. ●병탄상보 8월28일자 끝으로 폐간당해 반면 이재명 열사는 ‘공평치 못한 법률로 나의 생명은 빼앗으나 나의 충성된 혼백은 빼앗지 못할 것’이라며 ‘생전에 이루지 못한 한은 죽어서라도 기어이 이루겠다.’고 일본인 재판장을 꾸짖고, 9월13일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망국의 암운은 갈수록 짙어졌다. 6월18일자에는 ‘동경에서 보내온 전보를 받아보니, 한국에 대한 정책은 이미 결정되었으니, 그 결정을 실행할 때 일어날 수 있는 소동을 처리할 대책도 이미 마련되었고, 다만 이후 한국인을 어떻게 무마하며 어떻게 통치할 것인가 고심하고 있다.’고 병탄을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를 알렸다. 마침내 8월28일자에는 ‘합병조약성립의 상보’를 싣고 ‘한일합병의 선언서와 조약 기타 관제는 29일에 발표하기로 결정을 하였다더라.’고 전했다. 이날자 신문을 끝으로 대한매일신보는 발행을 중단했고, 이튿날인 8월29일 대한제국도 막을 내렸다. 서동철 부국장 dcsuh@seoul.co.kr
  • [경술국치 조약체결 100주년] 매국경축가를 아시나요

    [경술국치 조약체결 100주년] 매국경축가를 아시나요

    ‘경축하네 경축하네/이천만 국민 다 죽어도 나혼자 살면 제일이네/안 입고 안 먹을리있나 돈과 비단은 안 챙겼겠나/고대광실 좋은 집에 예쁜 여자와 즐기고/금으로 지은 옷, 옥으로 만든 음식 먹으며 내 몸이 가장 중요하니/국민은 무슨 소용인가(慶祝일세 慶祝일세/이천만生靈 다 죽어도 唯我獨生 제일일세/無依無食할리있나 無無帛하단말가/고대광실 好家舍에 絶代佳人 行하고/依玉食 自取하니 身外無物이라/국민은 何用인고)’ 을사늑약이 체결된 직후인 1905년 11월 서울신문의 전신인 대한매일신보(이하 신보)에 실린 ‘매국경축가(賣國慶祝歌)’의 일부이다. ‘나라 팔아먹은 것’을 ‘경축’한다는 반어법으로 통렬히 비판한 이 풍자가사의 주인공은 짐작처럼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일제에 넘기는 을사늑약에 찬성한 박제순·이완용·이지용·이근택·권중현 등 을사오적이다. 신보는 ‘매국경축가’를 시작으로 1910년 8월28일 일제에 의해 폐간될 때까지 지속적으로 항일 풍자가사를 게재했다. 특히 1909년 11월17일부터는 아예 시사만평의 역할을 하는 풍자가사를 싣는 ‘사회등(社會燈)’이란 고정란을 만들었다. 신보의 풍자가사는 엄혹한 시절 침략자와 그에 동조하는 자들을 문학의 형식을 빌어 참아내기 힘든 수준의 독설과 야유, 냉소로 비판했다는 점에서 경술국치 100년을 맞아 새롭게 주목되고 있다. ‘사회등’을 비롯한 신보의 항일 풍자가사는 단재 신채호가 직접 참여하여 제작하는 등 그 형성 전개의 주인공이라는 국문학계의 연구 성과도 있다. 단재는 몸담고 있던 황성신문이 을사늑약 체결 직후 정간된 직후 신보로 옮겼고, 1906년부터 블라디보스토크로 망명한 1910년 5월까지 주필로 활약했다. 따라서 작자가 ‘매국대신’으로 되어있는 ‘매국경축가’도 단재가 구상부터 집필, 게재까지 이끌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신보는 1907년 7월부터 9월 사이에는 민요를 바탕으로 한 풍자가사 23편을 싣는다. ‘교육을 하자니 할 수 있나/벼슬을 하자니 할 수 있나/…오적·칠적 십이인이/한국을 망하게 하였으니/동상세워 기념하세/좋구나 매화로다’라는 ‘매화타령’ 역시 ‘매국경축가’에 못지않은 반어법으로 국운이 쇠잔해감을 안타까워하며 매국노들을 질타했다. 신보의 풍자가사는 ‘사회등’의 이름으로 나간 것만 610편이다. ‘매국경축가’와 민요풍의 풍자가사 등 이전 것까지 합치면 모두 634편에 이른다. ‘사회등’을 비롯해 신보에 실린 방대한 분량의 풍자가사를 ▲부정적인 행태를 보여준 인물의 군상을 종류별로 한데 모아 비판하는 유형비판기와 ▲직접 이름을 거론하여 비판하는 실명비판기로 나누어 분석한 권오만 서울시립대 명예교수의 견해는 주목할 만하다. 1908년 1월24일자에는 ‘칠협약에 얻은 공명/정부수석 높였으니/…/이 술 한 잔 잡으시면 만고죄인 되시리다’는 ‘유하일곡(流下一曲)’이 실렸다. 기생이 대신들의 만찬에 동원되어 술을 따르면서 부르는 권주가의 형식으로, 대신들을 뭉뚱그려 욕보이고 있다. 하지만 실명으로 대신들을 거론하지는 않았다. ‘칠협약’이란 ‘대한제국은 한국통감의 지도를 받아야 한다.’는 내용 등을 담은 1907년의 정미7조약을 말한다. 그러나 1909년 4월18일자에는 한일병탄 직후 일제로부터 공로자로 인정받아 자작 작위에 은사금까지 챙겨 조선 최고의 부호가 된 ‘망국대부 민영휘’가 실명으로 등장한다. 또 당대의 세도가로 군림하던 송병준은 요리접시나 돈냥을 받고 벼슬을 팔아먹으며 이토 히로부미에게 꼬리치는 추악한 매국노로 그려졌다. 권 교수는 “의병전쟁이 아직 곳곳에서 계속되고 미래에 대한 희망이 있던 1907~08년에는 부정적인 인물에게도 개과천선을 권고할 수 있었다.”면서 “하지만 국권 회복에 대한 기대가 절망으로 바뀐 1909년부터는 치유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실명으로 상처 입히고 벌주고 파괴하는 거친 풍자의 단계로 나아갔다.”고 설명했다. 서동철 부국장 dcsuh@seoul.co.kr
  • “월드컵보도 심층분석·재미 돋보여”

    “월드컵보도 심층분석·재미 돋보여”

    30일 본사 6층 회의실에서 열린 서울신문 독자권익위원회 제37차 회의에서는 남아공월드컵 관련 기사에 대한 분석·평가가 주를 이뤘다. 다문화 가정과 관련된 기획기사와 문화 캠페인에 대한 주문도 이어졌다. ‘스포츠와 문화’를 주제로 열린 회의에는 위원장인 김형준 명지대 교수를 비롯해 이문형 산업연구원 연구위원, 이청수 서울시의회 환경수자원위원회 수석전문위원, 김형진 변호사, 이영신 이화여대 학생 등이 참석했다. 서울신문에서는 이동화 사장, 이목희 편집국장, 황진선 문화홍보국장, 서동철 편집국 부국장, 김영중 체육부장, 이경숙 편집2부 차장 등이 함께했다. ●‘울지마, 4년 뒤 더 행복할’에 가슴 찡 이문형 위원은 “스포츠는 액티브하기 때문에 신문의 한계가 분명하다.”면서도 “월드컵 기록실을 마련해 전체 일정을 알아보기 쉬웠고, 심층적인 분석기사가 돋보였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어떻게 돈을 벌어서 분배하는지 등 흥미유발 기사도 적절했다.”고 평가했다. 이영신 위원은 “1면에 월드컵 록밴드인 트랜스픽션 인터뷰를 실은 것이나 큰 사진과 함께 파격적으로 편집했던 부분이 참신했다.”면서 “칼럼이나 ‘월드컵 비타민’을 통해 궁금증을 해소해 준 노력이 돋보였다.”고 말했다. 다만 “제목에 과도하게 희망을 불어넣은 것이나, 애국심을 너무 강조했던 점, 군사용어가 많았던 점은 아쉽다.”고 지적했다. 이청수 위원은 “박지성의 사진과 ‘울지마, 4년 뒤 더 행복할 대~한민국’이라는 제목이 1면에 나왔는데, 가슴이 찡했다.”면서 “2010년 월드컵의 사회학은 2002년과의 차이를 다뤘다. 국민의식 성숙도와 관계된 건데 서울신문이 잘 정리했다.”고 말했다. 김형진 위원은 “월드컵과 관련해 1면 톱기사 큰 제목으로 뽑은 게 5~6회 되는데 단일 스포츠로 굉장히 파격적인 대접이다. 그동안 생각지 못했던 내용을 기사로 충실하게 전달했다.”고 평가했다. 김형준 위원장은 “2002년 4강 전력과 이번 전력을 체계적으로 비교분석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이어 “2002년 월드컵을 통해 젊은 세대들이 정치적 효능감을 가졌다. 사회학자, 심리학자, 정치학자, 스포츠 전문가 등이 모여서 월드컵 좌담회를 하는 건 어떨까.” 제안했다. ●“문화사각지대 해소 캠페인 주도하길” 김형준 위원장은 “문화 사각지대에 있는 분들이 굉장히 많다. 기업의 사회환원 차원에서 빈곤층에 좌석을 할당하는 캠페인을 서울신문이 주도하는 것은 어떨까.”라면서 “서울신문의 특성을 살려 66개 기초단체장별로 문화의 질을 조사해 지역별 문화 불균형을 해소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김형진 위원은 “월요일마다 연재되는 ‘고전 다시읽기’는 필자에 따라 초점과 동떨어진 얘기를 하는 경우가 있다. 인문학과 고전을 소개한다는 기본 취지에 맞게 진지하고 소박한 글쓰기를 주문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청수 위원은 “방송계 결산이 적절했다. 일정한 기간을 두고 자주 정리해 주면 좋겠다. 또 방학이 시작되는 만큼 부모와 학생들이 함께 볼 수 있는 공연이나 전시안내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늘어나는 다문화 가정에 더 관심을” 늘어나는 다문화 가정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았다. 김형준 위원장이 “다문화 가정은 사회통합에 중요한 화두가 될 것”이라고 말했고, 이동화 사장도 “다문화 가정이 100만명을 넘어섰다. 차별이 누적되면 결국 폭발할 텐데, 다른 신문과 차별화해 보도할 방침이다.”라고 강조했다. 이목희 편집국장은 “월드컵 보도방향은 ‘젊게, 감동적으로 가라. 다소 과장해도 된다.’는 거였다. 덕분에 광고카피 같은 멋진 제목이 나왔다.”면서 “우리 신문이 딱딱한 느낌이 있어서 튀어 보려는 일환이라고 생각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동화 사장은 “월드컵은 본질적으로는 스포츠지만, 정치적·사회적 이벤트인 만큼 충분히 지면을 할애했다.”면서 “위원들의 다양한 의견을 잘 정리해 적절한 대안을 제시하겠다.”며 회의를 마무리했다.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 서울신문 독자권익위 5월회의… ‘선거와 지방자치’ 토론

    서울신문 독자권익위 5월회의… ‘선거와 지방자치’ 토론

    26일 열린 서울신문 독자권익위원회 제36차 회의에서는 6·2지방선거 관련 기사에 대한 분석·평가가 이뤄졌다. 남은 기간 후보자 정보제공 등 선거보도에 대한 주문도 쏟아졌다. ‘선거와 지방자치’를 주제로 본사 6층 회의실에서 열린 회의에는 위원장인 김형준 명지대 교수와 심재웅 한국리서치 상무이사, 권성자 ‘책 만들며 크는 학교’ 대표, 이청수 서울시의회 환경수자원위원회 수석전문위원, 김형진 변호사, 한경호 소방방재청 기획조정관, 이영신 이화여대 학생 등이 참석했다. 서울신문에서는 이동화 사장, 박재범 주필, 황진선 문화홍보국장, 서동철 편집국장직무대행, 손성진 부국장, 이도운 정치부장, 류찬희 사회2부장, 권혜정 편집1부 차장 등이 자리를 함께했다. ●“터무니없는 공약 걸러내는데 도움을” 권성자 위원은 “선거 자체에 대한 홍보와 친절한 설명이 부족했던 것 같다. 광역단체장 선거에 가려 교육감 선거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잘 모르겠다.”며 아쉬움을 표시한 뒤 터무니없는 공약을 걸러내는 데 도움이 되는 기사 등을 주문했다. 심재웅 위원은 “26일자 여론조사 분석기사는 선거기간 봤던 어떤 다른 기사보다도 가장 잘 쓴 것 같다. 심도 있는 분석으로 아주 정밀하게 보도한 것 같다.”고 평가했다. 다만 “여러 기획기사가 기계적 균형을 좇은 점 등은 아쉽다.”고 덧붙였다. 이청수 위원은 “투표장에 가기 전에 선거공보는 꼭 읽어 보고 가라는 등 유권자를 ‘이끌어 주는 기능’이 좀 부족했다.”고 지적하고 “당선과 낙선 이후에도 후보들을 끝까지 추적하는 등 선거 이후 후속보도에 많은 신경을 써달라.”고 요청했다. 김형진 위원은 “최근 신문들의 편향성이 지나쳐서 제목만 봐도 뭘 말하려 하는지 알 정도인데 서울신문은 주관이나 편견 없이 공정하게 보도했다.”고 평한 뒤 “다만 보도 내용이 다소 적었던 것 같다. 남은 기간 양을 늘려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한경호 위원은 “공약 실현 가능성을 비교 분석하고 집중 검증한 것을 높이 평가한다.”면서 “지면이 허락한다면 전 후보자에 대한 정보 특집을 최종적으로 다시 한번 다뤄 주면 좋겠다.”고 부탁했다. 이영신 위원은 “기획을 많이 한 것이 놀랍다. 선거공약 대해부, 공직선거법 기획 등이 좋았다. 또 ‘선거 펀드’에 대한 궁금증을 잘 풀어줘 독자 입장에서 노력을 인정한다.”면서 “후보자에 대한 구체 정보를 어디서 얻을 것인지 등 투표일을 대비한 가이드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후보자 모르고 찍는 일 없게 안내를” 김형준 위원장은 “독자들이 제일 궁금한 건 선거의 인과관계에 대한 부분이다. 남은 기간 여기에 집중해 주면 좋겠다.”고 말하고 “후보자를 모르고 찍는 일이 없도록 후보 도우미 사이트라도 소개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대해 이동화 사장은 “선거법이 까다로워 보도 과정에도 애로점이 적지 않다.”면서 “위원들의 다양한 의견을 지면에 반영, 유권자들이 후보자를 파악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지운기자 jj@seoul.co.kr
  • “천안함 공정보도 돋보여… 대안제시 필요”

    “천안함 공정보도 돋보여… 대안제시 필요”

    서울신문 제35차 독자권익위원회가 28일 오전 7시30분 ‘국방과 안보’를 주제로 본사 6층 회의실에서 열렸다. 이날 회의에는 독자권익위 김형준(명지대 교수·정치학) 위원장과 이청수(서울시의회 환경수자원위원회 수석전문위원)·심재웅(한국리서치 상무이사)·이문형(산업연구원 연구위원)·권성자(책 만들며 크는 학교 대표)·이영신(이화여대학 사회학과 재학)·홍수열(자원순환사회연대 정책팀장)·김형진(교통안전공단 고문변호사)·한경호(소방방재청 기획조정관) 위원이 참여해 서울신문의 보도에 대한 견해를 제시했다. 본사에서는 이동화 사장, 황진선 문화홍보국장, 김인철 심의팀장, CRM팀 손석구 팀장 및 윤정두 부장, 편집국의 서동철 부국장, 이도운 정치부장, 김상연 정치부 차장, 오이석 기자 등이 자리를 함께했다 위원들은 지난달 26일 발생한 천안함 사건에 대한 서울신문의 보도와 관련, “감정의 치우침이 없는 공정한 보도를 위해 노력했다.”고 긍적적인 평가를 하면서도 심층적인 분석과 대안제시를 요구했다. 이문형 위원은 “서울신문은 보도가 정확했고 감정이 절제됐다.”고 평가하면서도 “전문가 기고 등을 통해 안보 문제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는 기사가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권성자 위원은 “천안함 사건이 대형 재난 사건인데도 ‘군 내부의 사고’가 되면서 국민들의 알권리가 제한받는다는 느낌을 받았다.”면서 “민간에서 재난 상황이 발생했을 때 국가가 관리해주는 느낌을 받았던 것처럼 (군내 재난상황도) 시스템적으로 정부가 관리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다룬 보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에 대한 언론의 보도 행태에 대해 스스로 반성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한경호 위원은 “언론보도가 문제가 많다고 했는데 이번 사건의 원인을 규명한 뒤에 반성과 평가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청수 위원도 “서울신문은 다른 신문에 비해 궁금증을 많이 해소해 주는 역할을 했다.”면서 “언론사의 보도를 믿는 독자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도록 신중히 보도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심재웅 위원은 “사건 발생 뒤 열흘 동안 대한민국 저널리즘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언론에 대한 실망감을 표시하면서 “저널리즘이 침몰했다고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심 위원은 특히 “천안함 지면이 너무 많아 보도 과잉이라고 느꼈다.”면서 “미국에 비해 우리 신문은 감정적인 부분이 3배가량 많은 거 같다.”고 지적했다. 홍수열 위원은 “북한과의 연계성에 대한 보수의 성급한 단정, 진보언론의 연계 차단과 달리 서울신문은 예단을 하지 않고 일관된 자세를 유지한 것이 좋았다.”면서도 “때로는 중도를 취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고 꼬집었다. 이영신 위원은 “천안함 사건 기사 작성에 전문가 실명을 표기해 준 점이 굉장히 좋았다.”면서도 “감정적인 부분의 내용이 많이 들어가 아쉬운 면도 있었다.”고 말했다. 김형진 위원은 “국민들이 안보를 바라보는 시각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해 분석하는 기사도 필요하다.”고 말하고 “미국, 중국 등 이해당사국이 아닌 국제사회의 시각도 소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형준 위원장은 “대형사고가 발생했을 때의 취재보도를 위한 매뉴얼이 필요하다.”면서 “일부 기자에게 충분한 시간을 두고 취재활동을 통해 분석 기사를 쓰도록 해주는 시스템도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이어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없어진 것에 대해 이번 정부가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도 보도해 달라.”고 당부했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피아노에 달걀껍질로 무늬… 현대적 응용 가능”

    “피아노에 달걀껍질로 무늬… 현대적 응용 가능”

    “한국 나전칠기에 대한 유럽사람들의 애정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따뜻합니다. 그동안 소품 위주로 나갈 수밖에 없었던 유럽에 나전칠기의 정수를 보여 줄 수 있게 되어 뜻깊습니다.” 이탈리아 로마의 국립민속미술박물관( Museo Nazionale delle Artie Tradizioni Popolari) 에서 8일부터 5월12일까지 ‘한국의 나전과 칠공예 특별전’이 열린다. 이 전시회의 한국 측 운영집행위원장인 이칠용(63) 근대황실공예문화협회 회장은 4일 “이탈리아는 유럽 역사 문화의 중심지이자 해마다 4000만명 이상이 찾는 관광대국”이라면서 “이탈리아 사람들은 물론 이 기간 로마를 찾는 전 세계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국 나전칠기의 아름다움을 알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시회는 민속미술박물관 측이 지난해 로마에서 열린 서울시무형문화재인 김은영씨의 매듭전이 성황을 이루는 것을 보고는 이탈리아 주재 한국대사관에 요청해 이루어졌다고 한다. 여기에 문화재청이 흔쾌히 재정지원을 결정하면서 공예분야에서는 드물게 규모있는 전시회가 성사됐다. 이 회장은 “정부에서 도와주면서 판매에 부담이 없어진 전시회인 만큼 칠기분야 11개 장르를 모두 포함시켰다.”면서 “특히 피아노 건반 뚜껑에 달걀껍질로 무늬를 넣은 난각칠기 등은 우리 전통공예가 얼마든지 현대적으로 응용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명인 28명 작품 55점 전시 전시회에는 목심칠기(나무), 금태칠기(금속), 칠피공예(가죽), 지승공예(꼰 한지), 와태칠기(옹기), 패세공(조개껍질)과 다양한 색깔의 옻으로 그리는 칠화칠기, 삼베 등으로 형태를 만드는 건칠기 등 옻칠 명인 28명의 작품 55점을 선보인다. 칠을 입히는 목기인 ‘백골’과 칠의 바탕그림인 ‘도안’도 소개한다. 백골을 보여 주는 것은 목기를 두고 흔히 플라스틱이 아니냐고 묻는 오해를 풀어 주기 위한 것이다. 또한 나전칠기장인에 가려 있는 백골장인과 도안장인의 고마움도 부각시키겠다는 뜻도 담겨 있다고 한다. 옻칠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보여 주고자 옻나무와 채취한 옻도 가져간다. 이 회장은 “전시장에는 바티칸 등 천주교 근거지와 가까운 점을 고려해 나전칠기로 만든 십자가 등 성물(聖物)도 전시한다.”면서 “바티칸 관계자를 초청하여 한국 나전칠기가 전 세계 천주교회의 전례용품으로 보급될 수 있을지도 타진할 것”이라고 의욕을 보였다. ●나전칠기로 만든 聖物도 선봬 나전칠기 장인으로서 칠기공예 활성화와 보급운동에 힘써온 이 회장은 2000년부터 현재까지 유럽지역에서만 모두 23차례에 걸쳐 전시회 및 판매전을 주도했다. 올해도 파리국제박람회에 참여하여 한국 공예품 판매전을 펼친다. 그는 “그동안 에펠탑 근처를 포함해 파리에만 15곳의 한국 공예품 가게가 생겼고, 런던의 영국박물관 앞에도 한국공예품점이 문을 열었다.”면서 “한국공예 알리기 노력이 조금씩 성과를 거두고 있는 증거라는 점에서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글 서동철부국장 dcsuh@seoul.co.kr 사진 도준석기자 pado@seoul.co.kr
  • “문화 산업화 방향 제시를”

    “문화 산업화 방향 제시를”

    제34차 서울신문 독자권익위원회 회의가 9일 ‘문화 및 엔터테인먼트’를 주제로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 19층에서 열렸다. 이날 독자권익위 김형준(명지대 교수) 위원장과 권성자(책을 만들며 크는 학교 대표), 박용조(진주교대 교수), 이문형(산업연구원 연구위원), 이영신(이화여대학보사 편집국장), 이청수(서울시의회 위원), 심재웅(한국리서치 상무이사) 위원 등이 참석해 서울신문 문화 기사에 대한 전반적인 견해를 제시했다. 본사에서는 이동화 사장, 황진선 미디어아카데미 소장, 김인철 부소장을 비롯해 서동철 문화담당 부국장, 안미현 문화부장 등이 참석했다. ●시의적절 인터뷰·이메일 활용 돋보여 참석 위원들은 문화 콘텐츠를 다룬 기사를 통해 교육 및 산업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을 주문했다. 권성자 위원은 “영국에서는 유치원때부터 스토리 텔링 교육을 통한 창의적인 사고를 기르고 있다.”면서 “문화 콘텐츠 기사를 다룰 때 체계적인 문화예술 교육을 할 수 있는 교육적인 부분까지 신경써 달라.”고 말했다. 박용조 위원은 “문화 기사는 학습 및 교육의 소재로도 좋다. 통사적 접근이 아니라 생활사, 문화사 중심으로 접근하는 기사가 많아져야 한다.”면서 “이를 다룰 때는 자문화 중심적이 아니라 상호주의적 시각, 세계주의적 관점이 반영되야 한다.”고 말했다. 이문형 위원은 문화를 어떻게 산업화시킬 수 있는 가에 대한 고민을 기사에 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위원은 “한국이 아시아에서 문화산업면에서 비교우위를 점하고 있는데, 동아시아 문화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방안 및 지역 균형 발전과 문화산업의 국제화에 대한 방향 제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문화면에 자주 나오는 인터뷰 기사의 형식 및 내용에 대한 지적도 이어졌다. 심재웅 위원은 “사회면 기사도 스토리 텔링이 가능한데, 문화부 기사에서는 그 중요성이 더 요구된다.”면서 “‘주말데이트’ 코너의 경우 내용은 좋지만, 모범 답안 같은 인터뷰가 많아 독특한 시각과 개성이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이영신 위원은 “지난 한달간 문화면에 실린 비, 고현정, 고수 등 스타들의 인터뷰가 시의적절했고, 평소에 쉽게 접할 수 없는 해외 팝스타들과의 이메일 인터뷰 시도도 좋았다.”면서 “그러나 영화 분석 기사의 경우 영화계의 고질적인 문제점을 지적한 경우가 있었는데, 이에 따른 심층적인 대안도 제시돼야 한다.”고 말했다. ●“문화관련 우수 논문 공모·소개를” 한편 김형준 위원장은 “전국의 학보사와 서울신문을 연계해 젊은 독자들을 끌어들이고, 졸업시즌인 2월에는 문화와 관련된 우수 논문을 공모받아 소개하는 것도 문화면을 좀더 풍부하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동화 사장은 “문화면은 속보성보다 얼마나 특화되고 공감되는 기사들로 구성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면서 “정보도 주고, 읽으면 즐거운 알찬 기사들로 독자 여러분께 다가가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언론 균형감각 깨진 것이 갈등 원인”

    심각해지는 우리 언론의 갈등과 반목을 언론 외부의 시각에서 진단하고 치유하기 위한 토론회가 관훈클럽 주최로 11일 경주 현대호텔에서 열렸다. 한국언론재단 후원으로 지난 6월 제주도에 이어 두번째로 열린 토론회다. 토론회에서 언론인 출신 주제발표자 4명은 위기에 처한 우리 언론의 문제점을 직시하고 자성과 의식전환으로 공동발전을 이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손태규 단국대 언론영상학부 교수는 “한국의 저널리즘은 죽었다.”고 규정하고 “우리 언론의 문제는 기자들의 정체성 결여와 노동의 가치를 인식하지 못하는 데 있다.”고 지적했다. 전여옥 한나라당 의원은 “우리 언론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바보의 벽’에 갇혔다.”고 진단했다. 민주당 박영선 의원은 “언론의 반목과 갈등의 위기는 균형이 깨졌기 때문”이라며 “이는 자사 이익에 따라 보도하고 편집하는 것으로, 미디어법만 보더라고 특정 언론을 염두에 두고 진행되고, 균형이 깨진 보도가 난무했다.”고 강조했다. 이인용 삼성전자 부사장은 “커뮤니케이션은 본질적인 한계가 있으며, 언론이 추구해야 할 것은 객관적이고 공정한 사실관계의 검증을 통해 이 같은 한계를 극복하려는 최소한의 노력”이라고 말했다. 이어 진행된 종합토론에서 참석자들은 “자신의 주장이나 기사가 사회적 공존이라는 가치와 갈등해소라는 지향점을 얼마나 반영하고 있는지 반성해 봐야 한다.”, “자사 이기주의가 기자정신, 시대의식을 압도해 기자가 생활인화되고 있다.”, “신문이 어느 정도 색깔을 갖는 것은 당연하지만 팩트(사실)와 논쟁이 섞여 들어가는 것이 문제”라는 등 다양한 의견을 제시했다. 경주 서동철기자 dcsuh@seoul.co.kr
  • “건강 기사, 국민들 불안해하지 않도록”

    “건강 기사, 국민들 불안해하지 않도록”

    서울신문 제31차 독자권익위원회가 19일 오전 7시30분 ‘보건·복지·건강’을 주제로 본사 6층 회의실에서 열렸다. ●“여러 부서가 공조하는 기사 필요” 이날 회의에는 독자권익위 김형준(명지대 교수·정치학) 위원장과 이청수(서울시의회 환경수자원위원회 수석전문위원)·심재웅(한국리서치 상무이사)·이문형(산업연구원 연구위원)·박용조(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수석부회장)·권성자(책을 만들며 크는 학교 대표)·이영신(이화여대학보사 편집국장)·홍수열(자원순환사회연대 정책팀장) 위원이 참여해 서울신문의 보도에 견해를 제시했다. 본사에서는 이동화 사장, 김인철 미디어연구소 부소장, 손석구 미디어연구소 CRM 팀장, 편집국 서동철 부국장, 임창용 정책뉴스부장, 심재억 문화부차장 등이 자리를 함께 했다. 위원들은 최근 보건·복지·건강 분야가 다양하게 연관된 만큼 여러 부서가 공조하는 기사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심재웅 한국리서치 상무이사는 “8월18일자 신종플루 지면은 정책뉴스부, 정치부, 사회부, 사회2부 등 다양한 부서의 시각이 실려 있어 좋았다.”고 평가했다. 이영신 이화여대학보사 편집국장도 “기사 가운데 ‘치료거점병원 의사도 환자도 모른다’는 정부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의미있는 내용이었다.”고 말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하반기에 신종플루가 대확산될 때를 대비해서 신문사에 신종플루 대응TF를 만들어야 한다.”며 “특파원을 활용해 외국에서는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실어달라.”고 요청했다. 다만 과장되게 보도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심재웅 한국리서치 상무이사는 “17일 1면 기사에서 신종플루를 ‘공포’라고 규정한 것은 과도한 표현이었다.”며 “국민들이 불안해하는 만큼 즉흥적인 기사는 지양해야 한다.”고 말했다. ●“건강면 40~50대 대상으로 특화해야” 위원들은 건강기사의 경우 주요 독자인 40, 50대를 대상으로 특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문형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중장년층이 특히 건강에 관심이 높다.”며 “최근 유네스코에 등재된 동의보감 등을 시리즈로 구성하는 등 로열티를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박용조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수석부회장은 “우리나라 성인 30%가 조루증 고민(8월 10일자)기사 하단 조루 관련광고가 실린 것은 신문 윤리에 어긋난 것이다.”며 질책했다. 이에 대해 이동화 서울신문사 사장은 “ 여러가지 조언을 참고해서 독자의 입장이 더 많이 반영되는 보건·복지·건강 기사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이민영기자 min@seoul.co.kr
  • “공직자 평가지수 만들어 모니터링을”

    “공직자 평가지수 만들어 모니터링을”

    서울신문 제29차 독자권익위원회가 27일 오전 7시30분 ‘정치와 행정’을 주제로 본사 6층 회의실에서 열렸다. 이날 회의에는 독자권익위 김형준(명지대 교수·정치학) 위원장과 박용조(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수석 부회장)·이청수(서울시의회 환경수자원위원회 수석전문위원)·심재웅(한국리서치 상무이사)·홍수열(자원순환사회연대 정책팀장)·이영신(이화여대학보사 편집국장) 위원이 나와 서울신문의 정치·행정·정책 보도와 관련해 다양한 견해를 제시했다. 본사에서는 이동화 사장, 김인철 미디어연구소 부소장, 손석구 미디어연구소 CRM 팀장, 편집국 구본영·서동철 부국장, 곽태헌 정치부장, 임창용 정책뉴스부장 등이 자리를 함께 했다. ●“사전·사후보도 더욱 충실히” 위원들은 서울신문이 특화하고 있는 정책 심층 진단코너인 월요기획 ‘정책진단’에 높은 점수를 주면서도 최근 사교육 통제 논란 등 일부 이슈에 대한 심층 분석과 사후 보도가 부족해 아쉽다고 입을 모았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서울신문의 특화된 정치·행정의 경우 ‘어드밴스&애프터(사전 사후보도)’를 통해 한 두달 전 이슈를 먼저 점검하고 재난발생 등 사고를 줄이는 방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면서 “서울신문만의 장관 평가지수를 만들어 공직사회 개각 등을 모니터링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박용조 한국교총 수석 부회장은 “월요일 정책진단은 다른 신문과 차별화돼 있을 뿐만 아니라 내용면에서 아주 우수하다.”면서 “다만 정책과 국민 간에 이해관계를 부각시켜 국민의 눈길을 잡고 독자의 이해를 돕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학업성취도 평가 등 꾸준히 살펴봐야 할 주요 보도에 대한 사후보도가 전혀 이뤄지지 않아 아쉬웠다면서 정책실현 가능한 대안을 제시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정책 보도시 행정부가 내놓은 보도자료에 무비판적으로 몰입하거나 노무현 전 대통령 검찰 수사 때처럼 검찰이나 경찰 등의 수사자료에 대한 확인 없는 보도는 자제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연대 정책팀장은 “행정부의 보도자료에 쉽게 매몰되는 경향이 있어 잘못된 사실 관계와 비판을 통한 심층 분석을 해줄 필요가 있다.”면서 “5월1일자 감사원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된 ‘지방자치단체 행정심판 패소처리 ‘뭉그적’이란 기사는 국민 권익과 매우 밀접한 영향이 있었는데 패소건수나 지자체가 왜 늑장을 부리는지 등 추가 취재가 됐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26일 보도된 ‘멜라민 파동 후속대책 용두사미’ 기사를 예로 들어 정책의 사후 검증 기능을 평가하기도 했다. 위원들은 특히 23일 서거한 노무현 전 대통령 보도와 관련해 ‘노 전 대통령 조문,이념·정파 갈려서야(5월26일)’ 등 편가르기식 대응을 자제할 것을 당부하는 사설이 잇따라 실린 것에 대해 공감하면서도 익명의 정부·검찰 관계자 멘트에 의존해 조각난 ‘쪽지식’ 기사를 올리거나 무비판적 보도에 대한 따끔한 질책도 이어졌다. ●“정치 기사에서 전투용어 지양을” 심재웅 한국리서치 상무이사는 “언론이 장례를 편가르기로 활용하지 말 것을 주문하며 중심을 잡아주는 게 중요하다.”면서 “언론에서 낙종의 두려움 때문에 작은 정보들이 증거나 여과 없이 정보 보고형 보도가 되는 경우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영신 이화여대학보사 편집국장은 실명보도 원칙과 파키스탄 사태 등과 같은 국제정치와 관련 국민이 이해하기 쉬운 기사를 써줄 것을 당부했다. 아울러 정치기사와 관련, ‘내전, 무혈쿠데타, 입법전쟁, 전열 정비’ 등 전투용어를 쓰지 말 것과 제목과 내용이 맞지 않는 기사나 ‘심증보도’도 배제해줄 것을 요청했다. 이에 대해 이동화 서울신문사 사장은 “좋은 지적이며 반성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며 “분위기에 빠져들지 않고 미리 문제와 대안을 제시하는 신문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강주리기자 jurik@seoul.co.kr
  • ‘오빠’ 이상민 삼성 잔류

    올 프로농구 자유계약선수(FA) 시장의 최대 화두였던 이상민(37)과 이정석(27)이 나란히 원소속팀 삼성 잔류를 택했다. 삼성은 안준호 감독-서동철 코치와 3년 재계약을 한 데 이어 리그 최강의 가드진을 고스란히 유지해 2009~10시즌 또 한번 정상 도전에 나설 진용을 구축했다. 삼성은 13일 이상민과 계약기간 2년에 연봉 2억원, 이정석과는 계약기간 5년, 연봉 2억 5000만원에 사인했다고 밝혔다. 이상민은 “2007년 삼성 입단 후 구단과 팀 동료의 전폭적인 신뢰 속에 편안하게 농구에만 전념할 수 있었다. 지난 시즌 우승을 놓쳐 아쉬웠지만 오히려 더 단합하게 된 계기가 됐다.”고 소감을 전했다. 또 SK는 역시 FA 선수로 풀린 문경은(38)과 연봉 6000만원에 1년간 재계약했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프로농구] KCC가 더 뼈아프다?

    둘 모두 심상치 않다.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7전4선승제)의 흥행 아이콘이자 감동적인 플레이로 팬들의 혼을 쏙 빼놓고 있는 삼성 이상민(사진 왼쪽·37)과 KCC 하승진(오른쪽·24)이 나란히 부상으로 신음하고 있는 것. 만성적인 허리 통증으로 팀 훈련에 거의 참가하지 못한 채 침술 치료로 버텨온 이상민은 26일 5차전에서 두 번이나 쓰러졌다. 2쿼터에선 속공을 저지하던 KCC 임재현과 오른쪽 무릎을 제대로 부딛혀 들것에 실려나갔다. 3쿼터에선 오른쪽 발목을 다쳐 또한번 벤치로 물러났다. 4쿼터 초반 이정석이 턴오버를 쏟아내는 상황에서도 안준호 감독이 그대로 갈 수밖에 없었던 속사정이다. 2승3패로 몰린 ‘가드 왕국’ 삼성에는 강혁과 이정석 등 이상민의 ‘대체재’가 충분하다. 하지만 큰 경기에서 이상민의 존재감은 상상 이상. 클러치 상황에서 3점포와 총알같은 페너트레이션은 전성기에 못지 않다. 올시즌을 끝으로 자유계약선수(FA)로 풀리는 터라 어느 때보다 강한 승부욕을 불태우고 있다. 벌써부터 삼성 수뇌부에선 “이상민을 잡겠다.”는 말이 나올 만큼 그의 활약은 놀라웠다. 삼성 서동철 코치는 “무릎 쪽 근육이 부어있고 걸을 때도 통증이 꽤 있다. 팀 훈련은 소화하지 못하지만 내일은 뛸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승진의 상태는 더 좋지 않다. 농구를 시작한 이후 이렇게 많은 경기를 소화한 적이 없는 하승진은 피로가 누적된 상태였다. 25일 4차전에서 넘어지면서 상대 선수의 발등을 밟아 발목을 접질렸다. 5차전에서 진통소염제 주사를 맞고 테이핑을 하면서 전의를 불태웠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24분여 동안 8점 5리바운드. 5차전이 끝난 뒤 밤 늦도록 얼음찜질로 붓기를 뺏고, 27일에는 숙소에서 가까운 분당의 한 병원을 찾아 레이저 치료를 받았다. 발목에 작용하는 하중을 줄이기 위해 목발을 짚고 다닐 만큼 통증이 심각한 상황. 그러나 6차전을 내줄 경우 흐름상 KCC가 불리해지는데다 하승진의 절대적인 비중을 감안하면 출전이 불가피하다. 하승진의 전담트레이너인 남혜주 박사는 “본인의 의지가 너무 강해서 말린다고 해도 듣지 않을 것 같다. 다른 동료들과 마찬가지로 마지막 경기란 각오로 버틸 것”이라고 설명했다. 운명의 6차전은 29일 오후 7시 KCC의 안방인 전주에서 열린다. 연세대 13년 선후배의 부상 투혼에 따라 6차전의 향방은 물론 우승트로피의 주인도 달라질 전망이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시선이 오래 머무는 문화면을”

    “시선이 오래 머무는 문화면을”

    제28차 서울신문 독자권익위원회 회의가 22일 ‘문화와 예술’을 주제로 본사 6층 회의실에서 열렸다. 이날 회의에는 독자권익위 김형준(명지대 교수) 위원장과 권성자(책을 만들며 크는 학교 대표), 박용조(진주교대 교수), 이문형(산업연구원 연구위원), 이영신(이화여대학보사 편집국장), 이청수(서울시의회 위원), 정정훈(변호사), 홍수열(자원순환사회연대 정책팀장) 위원 등이 참석해 서울신문 문화 기사에 대한 전반적인 견해를 제시했다. 본사에서는 이동화 사장, 박재범 미디어연구소장을 비롯해 서동철 문화담당 부국장, 김문 문화부장 등이 참석했다. ●독창적인 문화 기획기사 늘리길 참석한 위원들은 문화면 기사가 신문의 특성과 경쟁력을 결정한다는 의견에 대부분 동의했다. 이문형 위원은 “문화면은 독창적 기획으로 신문을 특성화시킬 수 있는 부분”이라면서 “시선이 오래 머물 수 있는 면을 짜야 한다.”고 말했다. 이 위원은 “레츠고, 음식 등 콘텐츠 강화와 더불어 외고청탁도 늘려야 한다.”고 대책을 제시했다. 문화정책 및 문화교육 기사 강화도 콘텐츠 확장의 한 방법으로 제시됐다. 권성자 위원은 “새롭게 등장하는 문화콘텐츠들을 사람들이 익숙해질 수 있게 전해주는 기사가 많았으면 한다.”면서 또 “‘엄마와 함께 읽는 동화’ 등 일부 코너를 NIE교육에 활용하고 그 사례를 소개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했다. 홍수열 위원은 “공연이나 전시회 정보 외에 변화하는 문화정책 뉴스들도 중요하게 다뤄야 한다.”면서 “문화현상을 심도 있게 다뤄 그 대책을 고민하는 기획기사도 필요하다.”고 했다. 문화 기획기사의 부족은 다수 위원들이 아쉬운 점으로 들었다. 김형준 위원장은 “문화섹션의 키워드를 확실히 잡고 독자들이 스크랩을 하고 싶게 만드는 기획기사를 써야 한다.”고 했다. 김 위원장은 “공연이나 영화감상법 등 문화를 이해하는 방법들을 소개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했다. ●예술작품 컬러풀하게 소개를 대중문화 기사가 상대적으로 적어 지면이 무겁게 느껴진다는 지적도 있었다. 정정훈 위원은 “기사가 클래식, 무용, 국악 등 소위 고급문화에 많이 치중돼 있다.”면서 “젊은이들의 의지와 열정을 살려주는 젊은 감각, 팍팍한 세상을 살아가는 힘을 주는 기사가 필요하다.”고 했다. 박용조 위원은 “행사를 주제별로 묶거나 과학과 예술, 가정과 예술 등의 방법으로 월별 테마를 정해 묶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했다. 박 위원은 또 “그림, 사진 등 예술작품을 컬러풀하게 실어 독자들에게 감상의 기회를 줬으면 한다.”고도 했다. 이영신 위원은 컬러풀한 지면 소개를 역시 강조하면서 “딱딱한 기사체를 벗어나 새롭고 독특하게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법을 계속 고민하길 바란다.”고 했다. 문화소외계층을 배려한 기사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의견도 있었다. 김 위원장은 “문화소외계층에 대한 배려의 시각을 가지고 정부에 대안을 제시하는 등의 시도가 있으면 좋을 것”이라고 했고 이청수 위원은 “시에서 시행하는 지역축제나 일부 공연장에서 시행하는 저가·무료 공연도 꾸준히 소개하길 바란다.”고 조언했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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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신문 <편집국>△수석부국장 박희석△부국장 서동철 이춘규△편집2부장 류기혁△문화〃 김문△편집1부 차장 권혜정△정책뉴스부 〃 이도운△정치부 〃 이종락△경제부 〃 안미현<논설위원실>△논설위원 김성호 진경호 김종면 오일만<미디어연구소>△심의위원 신연숙 우득정 조명환 황성기<감사부>△감사부장 심우섭<경영기획실>△HR운영부장 양승현△시설관리〃 임용천△상암DMC추진팀장 김철홍△기획위원 박해옥△창간행사준비TF팀장 박대출<제작국>△기술부장 박상훈<광고마케팅국>△기획위원 황진선△마케팅기획부장 강두석△마케팅지원〃 김정남△공공마케팅팀장 이웅진<독자서비스국>△기획위원 오풍연△독자지원부장 정원태△서울〃 마종수△지방〃 정치록△발송〃 신천식<신성장사업국>△기획위원 강석진 최명철△부국장 강동형△문화홍보부장 전성준△신재생에너지사업〃 고영도△사업개발〃 임철재△전시사업〃 이창석<기획사업국>△OOH사업부장 안창섭<멀티미디어국>△기획위원 이용원 ■전북도 △새만금·군산 경제자유구역청 행정지원부장 전용준 ■금호아시아나그룹 ◇부사장 승진 및 전보 △금호타이어 황동진◇상무보 전보△금호타이어 김형우 조동근△아시아나IDT 윤동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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