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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1회 한국민속예술축제 폐막

    제41회 한국민속예술축제에서 전남의 ‘운곡 대보름 액막이굿’이 대통령상인 종합최우수상을 받았다. 전남 순천 낙안읍성 민속마을에서 25일부터 27일까지 열린 민속예술축제에서 국무총리상인 종합우수상은 경남 ‘마산 불모산 영산제’에 돌아갔다.또 ▲충북 ‘생거 진천농요’와 ▲전북‘부남 방앗거리 놀이’ ▲경북‘고령새가지 농악’ ▲제주 ‘논 다루는 소리’ ▲인천‘근해도서지방의 상여소리’가 각각 문화관광부장관상인 우수상을받았다.순천시 운곡마을에서 행해진 대보름 액막이굿은 풍요를 기원하고 질병과 재앙을 막기 위한 집단의 주술적 마을축제다. 부문별 수상작 및 수상자는 ◇공로상▲대전 산소골 상여놀이▲울산쇠부리놀이▲서울 마들놀이 ◇장려상▲평북 별상마마성황부군 도당굿▲충남 선학리 지게놀이 ◇노력상▲함남 돈돌날이▲황해 황해도 만수대탁굿▲광주 광산들노래▲경기 이담농악▲강원 춘천외바퀴수레싸움▲대구 고산농악▲부산 수영농청놀이▲평남 평양검무◇지도상▲부산문덕수◇연기상▲충북 덕산노인회서동철기자 dcsuh@
  • 순천서 내일까지 민속예술축제

    묻혀있던 전통민속예술을 발굴·보전하기 위한 제41회 한국민속예술축제가 25일 전남 순천의 낙안읍성 민속마을 야외마당에서 막을 올렸다. ‘신명나는 민속예술,하나되는 우리 문화’를 주제로 27일까지 계속되는 이번 축제에는 서울 ‘마들농요’ 등 16개 시·도와 이북 4개도를 대표하는 20개 종목이 공연부문에 나왔다.또 지난해 대통령상을받은 강원도 철원의 ‘상노리지경다지기’ 등 5개팀도 시연부문에 참가하여 민속예술의 진수를 선보인다. 특히 대전의 ‘산소골 상여놀이’와 충북의 ‘생거 진천농요’,전남의 ‘운곡 대보름액막이굿’,경북의 ‘고령 샛가지농악’,제주의 ‘논 다루는 소리’ 등 10개 종목은 처음 소개된다. 순천 서동철기자 dcsuh@
  • “경복궁 주차장 어찌하오리까”

    복원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경복궁 안에는 ‘궁궐 제모습 찾기’와는거리가 먼 세 개의 공간이 자리잡고 있다.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민속박물관,그리고 중앙박물관과 마주보고 있는 주차장이다. 민속박물관은 경복궁 복원 계획에 따라 2009년까지 다른 곳으로 옮긴다는 계획이다.중앙박물관은 2003년 용산에 새 건물이 세워지면 조선왕조역사박물관으로 용도가 바뀐다.왕조역사박물관도 경복궁 완전 복원을 위해서는 장기적으로 궁궐 밖으로 나가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벌써부터 나왔다. 그러나 주차장만은 2009년 마무리될 경복궁 1단계 복원계획에 언급이없는 것은 물론 후속 복원에 따른 검토도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앞으로도 조선왕조 정궁의 역사성을 대책없이 훼손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경복궁 박물관이 새삼스럽게 관심사가 되고 있는 것은 극심한 교통난때문이다. 최근 경복궁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삼청동길은 주말은 물론평일에도 관람객들이 타고 오는 차량들로 극심한 정체가 빚어진다. 교통경찰관들도 삼청동에서 동십자각으로 이어지는 편도 2차로의 1개차로는 아예 관광버스와 승합차들에게 내어주고 주차를 묵인한다.이렇다 보니 경복궁이나 두 박물관을 찾는 내외국 관광객들은 물론 삼청동길을 통행하는 시민들의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1,931평 넓이의 경복궁 주차장이 문을 연 것은 지난 85년.지상에 버스 48대와 승용차 31대,지하 1·2층에 각각 승용차 110대와 88대를수용할 수 있다.적지않은 규모지만,수요에는 크게 못미친다.서울시민들에게는 대중교통을 이용토록 유도한다지만 수학여행 온 학생들,나아가 외국인 관광객을 태운 관광버스까지 진입이 어려운 것은 생각해볼 문제다. 그럼에도 주차난은 앞으로 심해지면,심해졌지 저절로 풀려가는 일은결코 없을 것이다.지금도 교통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경복궁 2단계 복원계획을 세우며 주차장을 아예 없애는 결정을 내리기는 사실상 불가능할 수 밖에 없다. 결국 세계 어느나라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든 ‘왕궁안의 주차장’을당연시 여긴다면 모를까,경복궁을 복원할 계획이라면 늦었지만 이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문화관광부를 중심으로 ‘경복궁 안’을 책임지고 있는 문화재청 뿐 아니라 ‘경복궁 밖’을 관리하는 서울시등 관계기관이 함께 모여 주차장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가를놓고 머리를 맞대야 할 때이다. 서동철기자 dcsuh@
  • 인문학교수 200여명 선언서 “정부는 인문학 육성 지원을”

    ‘인문학의 위기 타개’를 부르짖는 인문학 관련 대학교수들이 ‘대정부 선언서 채택’이라는 ‘단체행동’을 하고 나섰다. 지난 20∼21일 안동대에서 열린 전국대학인문학연구소협의회(회장권기호 경북대교수)가 마련한 학술대회가 계기가 됐다. 이 자리에는 전국 560개 대학의 인문학 관련 교수 200여명이 참여했다. 인문학자들이 채택한 선언서의 제목은 ‘인문학 육성지원을 촉구하는 우리들의 결의’.이들은 인문학 위기의 가장 큰 원인으로 ‘인문학의 실용성은 오히려 인문학의 본질에 가장 충실할 때 극대화된다는사실을 간과하고 시장논리를 대학사회까지 확산시킨 대학정책 당국의정책적 오류’를 지목하며 지원정책의 활성화를 촉구했다. 그러나 비판에만 머무르지 않고 인문학이 본질에서 벗어나 위기를 자초한 데대한 깊은 반성과 중심학문으로 위상을 다시 확립하는데 앞장서겠다는 각오를 함께 담았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참여학자들은 무엇보다 ‘인문학자의 위기’가 ‘인문학의 위기’를부추기고 있는 현실을 강조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1996년부터 시행된 있는 학문후속세대 지원및 1999년부터 시행된 보호학문지정의 범위가 강화되어야 하고,구체적인 제도적 장치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현재 전국대학의 시간강사가 6만 3,000명이고,박사과정에 있는 예비학자도 수만명에 이르는 만큼 보호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 전국 100여 대학에 설치되어 있는 인문학 관련 연구소가 연구인력 및 예산의 부족이 심각한 상황이므로 세재상의 혜택 등을 통하여기업의 지원을 유도함으로서 유급연구원이나 연구교수로 적극 채용하여 인문학 연구를 활성화시키는 방안도 제시했다. 나아가 대학이나 대학연구소 뿐 아니라 비제도권에 대한 지원의 활성화도 촉구했다.대학 밖에서는 인문학강좌가 부흥하고 있는 만큼 인문학자가 활동할 공간을 넓히는 것은 물론 시민교육을 강화하는 차원에서도 제도적 지원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인문학자들은 이와 함께 영상문화 매체를 분석 비평하는 작업을 새로운 인문학의 영역으로 편입시키는데 필요한 지원 및 인문·사회과학 및 과학기술 분야 연구결과의 공유체계를 확립하고 파급장치를 시급히 구축하는 방안을 요청했다. 서동철기자
  • 佛문명비평가 기 소르망 아셈포럼서 주제발표

    문화적 측면에서 아시아와 유럽이 안고 있는 공통의 고민은 경제적논리를 앞세운 미국의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는 점이다.그런 점에서아시아·유럽 정상회의(ASEM)는 두 지역의 ‘문화적 생존’을 위해공동전선을 구축해야하는 과제도 안고 있다. ASEM 문화행사의 하나로 23∼25일 경주 호텔 현대에서 ‘사이버 시대의 문화’를 주제로 아시아·유럽 포럼(추진위원장 이어령 전문화부장관)이 열린다.프랑스의 문명비평가 기 소르망은 주제발표를 통하여‘세계의 미국화’가 가속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ASEM이 어떤 역할을해야하는지 방향을 제시할 예정이어서 눈길을 끈다. 미리 공개된 원고에서 소르망은 미국의 독주속에 문화적 다양성이 종언(終焉)을 고해가고 있는 상황을 강하게 비판한다. 발표문의 제목은 ‘디지털 격차(Digital divide)’.미국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존 게이지 부회장이 만들었다는 이 개념을 바탕으로 얘기를풀어간다. 소르망은 이 개념이 모든 세계는 단일한 발전 양식을 향한 하나의 경로를 따른다고 보는 것 같다고 설명한다.이면에는 기술 또는 기술적진보가 발전의 핵심이라고 생각하는 강력한 이데올로기적 신념이 놓여있다는 것이다. 소르망은 그러나 이런 이데올로기를 공유할 수는 있지만 당연한 것으로 간주해서는 절대로 안된다고 강조한다.미국 중심의 서구 모델을따르지 않는 다른 형식의 진보를 배제시키기 때문이다.무엇보다 기술과는 다른 요인,예컨대 문명이나 지속가능한 질적 발전 등을 고려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소르망은 이런 개념들이 이미 전세계 정치·경제,그리고 국제기구의엘리트들에 의해 폭넓게 공유되고 있다는 현실을 인정한다.따라서 이같은 개념을 무효화시키자는 것이 아니라 그 사용에 제한을 두자고제안한다. 소르망은 무엇보다 디지털 격차라는 개념의 결과는 반드시라고는 할수 없지만,대체로 미국식 삶의 방식에 따라 세계가 통합되는 문제를안고 있다고 우려한다.나아가 미국이 세계 질서를 관리하는 임무를맡고 있다는 가정 아래 보편적인 언어로서 영어를 요구하고 있다는것이다. 소르망은 또 디지털 격차 개념을 기반으로 한 신경제(e-economy)는하나의 진보일 수는 있으나,다양성의 상실이자 새로운 형태의 독재일수 있다고 강력히 비판한다. 신경제는 덜 합리적인 사회적 문화적 관습을 파괴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결국 양적 진보만이 아닌 또다른 발전방향을 찾기위해서는 균형감각과 다양성을 지켜야하며 그것이 바로ASEM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러면서 소르망은 ASEM국가들에게 하나의 제안을 한다.“각자의 인터넷 사용자가 영어가 아니라 모국어로 자기 자신을 표현하고 다양성을 지킬 수 있게 해주는 기술을 연구하는데 투자하라”는 것이다.이를 테면 아직 발전하지 못한 자동 번역 시스템이 쉽게 쓰여질 수 있도록 하면 독특한 문화를 전달하는 모국어를 보호할 수 있지않겠느냐는 뜻인 것 같다. 서동철기자 dcsuh@
  • “고려 문화재 100여점 개성에 묻었다”

    한국전쟁 당시 국립 개성박물관이 소장한 100여점의 고려시대 문화재가 국군이 후퇴할 때 후방으로 옮겨지지 못하고 현지에 매장됐다는증언이 나와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국회 문화관광위원회 소속인 민주당 심재권(沈載權)의원은 당시 개성박물관장이었던 원로 미술 사학자 진홍섭(秦弘燮·82·) 박사로 부터 최근 이같은 사실을 확인했다고 20일 밝혔다. 심의원에 따르면 진박사는 박물관 소장유물을 안전하게 보전하기 위해 한국전쟁 발발 1년전인 1949년에 쌍영총 고구려 벽화조각 3점을비롯해 중요 유물 대부분을 서울로 후송했다. 진박사는 다음해 전쟁이 일어나고,그해 10월 함락됐던 개성이 수복되어 박물관에 복귀했으나 중공군 참전으로 다시 피난길에 오르게 되자곧 수복되리라는 생각에 마을사람 2명·수위 1명과 함께 개성박물관이웃에 문화재 100여점을 묻었다는 것이다. 진박사는 이때 매장한 문화재 가운데는 모양이 특이하고 우수해 가끔학술지에 소개되고 있는 민천사(旻天寺) 고려석불과 청자 다수가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현재 개성박물관은 옛 건물을 헐고 1980년대에 신축한 것으로 알려졌으나,이 때 땅속에서 문화재가 나왔다는 소식이 없는 만큼 아직 그곳에 묻혀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서동철기자 dcsuh@
  • 외규장각 도서반환 ‘절반의 성과’

    한국과 프랑스가 지난 19일 정상회담에서 ‘상호 교류와 대여’라는기본원칙에 따라 외규장각 도서 반환문제를 내년 말까지 마무리짓기로 한 것은 일단 협상이 7년 동안이나 이어졌다는 점에서는 상당한진전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한국쪽에서는 사실상의 ‘등가교환’이라는 점에서 명분을잃었다는 비판에 직면하고 있고,프랑스쪽에서도 국립도서관 직원들이 눈물로 반발했던 1993년 합의의 재판이라는 점에서 ‘반환과 대여’라는 실질적인 움직임에 이를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반환 협상의 한국쪽 대표인 한상진(韓相震) 한국정신문화연구원장은20일 “프랑스쪽 대표인 자크 살루아 감사원 최고위원과 가진 3차 협상 결과의 핵심은 프랑스가 그동안 교류 대상에서 제외했던 어람용유일본(御覽用 唯一本)을 돌려주겠다는 데 있다”고 말했다. 반면 한국이 프랑스에 장기 임대 방식으로 맞교류하려는 것은 프랑스에는 없으나 국내에는 4∼8권의 복본(複本)이 있는 같은 시기(1630∼1856),같은 제목의 비어람용 의궤라는 것이다. 교류 대상이 될 수있는 비어람용 의궤는 모두 228책이다. 미테랑 전 프랑스 대통령이 1993년 방한 당시 김영삼(金泳三) 대통령에게 전한 ‘휘경원원소도감의궤 상(徽慶園園所都監儀軌 上)’ 은어람용이지만 유일본은 아니다.외규장각 도서 297권은 대부분 ‘어람용’이며,이 가운데 64책이 한국에 없는 ‘유일본’이다.한국은 11월6일 파리에서 열리는 제4차 협상을 통하여 ‘유일본’ 교류를 완결한뒤 2001년까지 외규장각 도서 모두를 반환받는다는 구상이다. 협상 결과에 대한 국내 학계의 반응은 당연히 차갑다. 1993년 이후대부분의 역사학 및 국제법 학자들은 등가교환론을 일관되게 반대해왔기 때문이다.이런 방식은 정당하게 소유권을 가진 문화재에나 적용할 수 있는 것으로 이를 수용하면 외규장각 도서의 프랑스도서관 소장을 합법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 분명하다는 이유다. 학계에서는 이번 협상 과정을 놓고 “현대 한국의 가장 큰 문제점인당대주의가 다시 드러났다”는 데서부터 “‘유일본’이니 ‘어람용’이니 하며 중요성을 저울질하는 협상이라면 고서적상과 무엇이 다르냐”는 데 이르기까지 다양한 비판이 나오고 있다. 반면 이번 협상 결과가 한국과 프랑스 모두 정부 차원에서는 할 수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는 시각도 없지는 않다.한 원장도 “국제관계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 윈­윈의 틀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원칙 아래 협상에 임했다”고 말한다.그러나 어느 정도 국민들의 이해를 이끌어낸다 해도 1993년의 예에서 보듯 프랑스는 물론 우리 도서관 관계자까지 설득시켜 ‘실력 행사’를 막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서동철기자 dcsuh@
  • 문화관광위 대한매일 소유구조 개편 촉구

    국회 문화관광위원회의 19일 문화관광부 국정감사에서는 대한매일과연합뉴스 등 정부가 지분을 보유한 언론사의 독립성 보장과 관련, 소유구조 개편의 필요성이 적극 제기됐다.의원들은 특히 최근 두 언론사의 개혁작업이 진전을 보이고 있다는데 의견을 같이하고,최종적인결정권한을 갖고있는 정부의 전향적인 자세를 촉구했다. 한나라당 박종웅(朴鍾雄)의원은 “문화부는 국유재산 관리법상 하자가 있다는 문제로 두 언론사의 소유구조 개편에 소극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면서 “주식환수 문제는 정부가 의지를 갖고 적극 나서서 주도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특히 “대한매일은 감자와 증자를 통해 정부 소유지분을 낮추고 우리사주제 도입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이는 바람직하며 정부도 적극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나라당 심규철(沈揆喆)·정병국(鄭柄國)의원은 “정부는 언론을소유할 필요가 없는 만큼 정부가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대한매일과연합뉴스의 주식을 처분할 것”을 요구했다.정의원은 소유구조의 개편방향으로 “소액위주의 국민주 방식을 통하여 국민의 언론으로 만드는 방안”을 제시했다. 한나라당 남경필의원(南景弼)도 “대한매일과 연합뉴스의 개혁방안은 각각 노조를 중심으로 많은 제안이 이루어졌고,유효한 방안들도상당히 제시됐다”면서 “대한매일 처럼 노사가 합의,개혁이 다소 진전된 양상을 보이고 있는데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면 이런 노력은 결국 허사로 돌아갈 것”이라고 정부의 적극적인 자세를 요구했다. 이에 대해 김한길 문화관광부장관은 “소유구조 개편의 필요성을 충분히 공감하고 있다”면서 “각계 인사가 참여하는 언론발전위원회를 통해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낸다면 정부에서 충분히 지원할 용의가있다”고 답변했다. 서동철기자 dcsuh@
  • 유네스코 신청 무형문화재 5종 선정

    문화재청은 유네스코의 ‘인류구전 및 무형문화유산 걸작’으로 2001년 이후 지정을 신청할 잠정목록으로 판소리와 강릉단오제·옹기장·처용무·제주칠머리당굿 등 5종목의 중요무형문화재를 선정했다고 18일 밝혔다. 이에 앞서 문화재청은 지난 8월 2001년 걸작후보로 ‘종묘제례 및 제례악’을 선정했으며,영상물 제작 등의 준비가 마무리되는대로 지정신청서를 유네스코에 내기로 했다. 유네스코는 올해말까지 각 회원국으로부터 걸작후보 신청을 받은 뒤세계 각 지역 출신 9명으로 구성된 심사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내년 5월 첫번째 ‘인류구전 및 무형문화유산 걸작’을 발표할 예정이다. 서동철기자 dcsuh@
  • 正祖시대의 역사적 의미는 ?

    올해는 정조(1752∼1800)가 서거한지 200주년이 되는 해다.정조와 각별한 인연이 있는 서울대와 한신대가 나란히 특별전을 갖는다.서울대규장각의 설립 역사는 정조대로 거슬러 올라가고,한신대는 정조가 세운 화성을 중심으로 한 수원문화권에 자리잡고 있다. 서울대 규장각(02-880-5671)이 마련한 ‘정조,그 시대와 문화’특별전은 17일부터 11월4일까지 열린다.조선후기 문예부흥을 이끈 정조시대의 정치와 문화를 음미해보고,우리 전통문화가 바람직스러운 미래사회를 열어가는데 주요한 지표가 될 수 있도록 하는데 초점을 맞추었다고 한다. 특별전은 ▲정조의 생애 ▲규장각 ▲정책 ▲문화와 예술 ▲출판문화▲생활상 등 6개의 소주제로 90여종의 관련 자료를 선보인다. 이에 앞서 14일 서울 예술의전당 미술관에서 막을 연 한신대 박물관(031­370-6594)의 추모특별전은 정조 치세 24년의 문화와 예술을 총체적으로 조명한다.25일까지. 주요 출품작으로는 정조가 직접 쓴 ‘화성행궁(華城行宮)’현판과 ‘제문상정사(題汶上精舍)’,정조가 글을 짓고 써서 송시열 사당에 내려준 ‘대로사비(大老祀碑)’등이 있다.이밖에 ▲정조시대 명신·명필들의 육필과 비문탁본 ▲김생·한석봉 등 역대명필들의 집자비문▲화성과 사도세자 릉이 융릉,정조의 릉인 건릉의 조각문양 탁본 등이 전시되고 있다. 서동철기자
  • 국립민속자료관 건립 목소리 높다

    국립민속아카이브(자료관)를 세워달라는 민속학계의 요청이 거세다. 이미 지난 8월 ‘민속기록보존 어떻게 할 것인가’를 주제로 학술발표회를 열어 그 당위성을 확인해 놓았다.이후에도 이두현 전서울대교수를 비롯한 몇몇 원로 민속학자들은 “민속아카이브가 설립되면 평생 모은 각종 자료를 기증하겠다”는 뜻을 밝히며 ‘무언의 압력’을 가하고 있다. 민속아카이브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20세기의 기록’을 남겨놓는 것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20세기 100년은 전통적인 삶이급격한 서구문명의 충격,여기에 일제식민지 시대까지 거치면서 파행과 굴절을 거듭한 시대이다. 이런 시대를 총체적으로 조망하여 민족생활사의 맥락에서 정리하는것은 민속학계 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의 과제라는 것이다.그러면서 실제로 우리는 20세기 초반에 이루어졌던 수많은 의병전쟁의 사실기록 하나 제대로 확보하지 못했고,민족생활사의 엄청난 구전자료도 미처 정리하지 못하지 않았느냐고 반문한다. ‘2000년대 초반의 몇년’이라는 시점이 중요한 것은 전세기의 민속자료가 비교적 풍부하게 남아있고,인물들도 살아있기 때문이다.이 시기를 놓치면 20세기의 민속적 삶을 담고 있는 자료 모두를 놓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나아가 민속학자들은 이 자료관이통일시대에 남북한의 이질성을 극복하는데도 결정적인 토대로 작용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민속학계는 민속아카이브가 추진된다면 크게 3가지 형태가 있을 수있다고 보고 있다.▲민속과 관련있는 기존의 기관에 부속기관으로 실치하는 방안과 ▲정부기록보존소를 만들듯 독립기관으로 세우는 방안 ▲평화박물관이나 통일박물관 설립논의가 나오고 있는 것과 관련하여 남북의 풍습을 한꺼번에 보여줄 수 있는 일종의 ‘20세기 자료관’을 세우는 방안이 그것이다. 주강현 문화재위원은 “일반 수집가에게 박물관이 있고 도서수집가에게 도서관이 있다면,무형문화재연구자에게는 아카이브가 필수적”이라면서 “일제 및 해방 이후 구비문학 1세대가 대거 퇴장하는 이 순간,그들이 수집한 무형의 자료를 한 자리에 모아 자료센터의 기능을할 수 있는공간을 어떤 형태로든 확보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동철기자 dcsuh@
  • ‘문화없는 거리’에 문화를 심자

    정부에 ‘문화’를 내건 부처가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문화예술계를 ‘관리’하기 위해 이런 부처가 필요한 시절도 있었을지 모른다.그러나 이제는 누가 뭐라 해도 ‘지원’하기 위해 존재한다는데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문화예술이 이른바 시장원리대로 잘 굴러가는 선진국이라면모를까,우리 문화담당 부처엔 아직 비어있거나,모자라는 곳을 채우는 임무도 함께 맡겨져있는 것 같다.민간이 맡기에는 현실적으로 역량이 못미치는 부분도 적지않기 때문이다. 10월은 ‘문화의 달’이고,특히 20일은 ‘문화의 날’이다.문화의 달과 날을 제정한 것은 1972년.권위주의 정부 시절 문화예술인들에 대한 유화책이라는 시각도 없지 않지만,그만큼 문화가 없었기에 일년에 한달,그것도 아니면 일년에 하루만이라도 문화를 생각해보자고 만들었을 것이다. 문화의 달은 그동안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이제 10월 한달은 문화예술이 홍수를 이룬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이달만해도 전국에서 1,220개의 각종 문화예술행사가 열린다.국민들의 문화의식이 높아진데 따른 것이지만,문화의 달 같은 캠페인이 크든 작든 영향을 미쳤음을 부인할 수 없다. 정부 차원의 문화의 날 행사는 올해도 이어진다.‘만나며 나누며’를 주제로 한 올 행사는 서울 대학로와 명동·홍대앞 등 3곳이 중심이다.대학로에서는 한해의 문화예술적 성과를 돌아보는 야외공연,명동에서는 마임과 마당극,홍대앞에서는 인디밴드들이 릴레이공연을 펼치는 식이 될 것이라고 한다. 알차고 다채로운 행사임에 분명하고,시민들에게 하루저녁 즐거움을주기에 모자람이 없어 보인다.그러나 이날 행사는 민간인이 주축이된 ‘2000 문화의 달 행사추진위원회’가 주관하지만,비용은 정부쪽에서 부담한다.문화정책의 연장선상에서 기획하고,추진해야 할 할 행사라는 얘기다. 축제로서 문화의 달과 문화의 날 행사가 의미없는 것은 아니다.그러나 초심(初心)으로 돌아가면 더 좋지않겠느냐는 것이다.당초 문화의달과 날이 우리 사회에서 가장 부족했던 ‘문화’를 채우자는 뜻을지녔듯이,이제는 우리 문화예술에서 가장 발전이 뒤진 장르나,소외되어 있는 지역에 힘을 모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예를 들어 대학로나 명동·홍대앞처럼 어떤 형태로든 문화가 존재하는 곳이 아니라,문화가 없는 곳을 새로운 문화의 거점으로 만드는 데 힘을 쏟는 것은 어떨까.이미 ‘기존의 문화’가 되어버린 ‘1,220분의 1’에 정부가 지원을 집중하는 모습은 ‘비어있거나,모자라는 부분을 채우는 기능’과는 정말 거리가 있다는 생각이다. 서동철기자
  • 내년은 ‘지역문화의 해’ 열린 문화축제의 場으로…

    2001년은 문화관광부가 선정한 ‘지역문화의 해’다.지역 문화예술인들은 정부의 결정에 박수를 보내고 있고,어느 때 보다 기대도 큰 것같다.‘지역문화의 해’의 바람직스러운 추진방향을 점검해본다. ‘지역문화의 해’는 어디로 가야할까.해답은 지역문화가 어떤 문제를 갖고 있는가를 살펴보는 일이 출발점이 될 것이다. 현재 지역문화가 갖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외화내빈으로 요약할 수있을 듯 하다.웬만한 기초자치단체도 어디에 내다놓아도 손색이 없을 문예회관·미술관·박물관을 갖고 있다.또 축제 붐이라고 할 만큼화려한 문화예술제가 전국에서 매일이다시피 벌어진다. 그러나 겉모습이 그럴듯한 공연장은 대부분 가동율이 50%에 못미친다.그것도 결혼식이나 민방위훈련을 빼면 30% 선에 그친다.지역주민들의 문화욕구는 매우 높지만 축제라는 ‘판’을 벌여도 찾는 사람은소수에 불과하다.대부분의 축제가 지역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기보다는,어떻게 하면 관광객을 끌어들여 수입을 올리느냐에 촛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역문화의해’는 지역의 문화투자를 정상화시키는 해가되어야 한다.사실 ‘지역문화의 해’가 수백억원의 예산을 확보하는것도 불가능하지만,확보한다 해도 전국의 16개 광역자치단체와 232개 기초자치단체로 나누면 액수는 보잘 것 없어진다.그런만큼 ‘지역문화의 해’ 조직위원장은 많은 돈을 써서 화려한 이벤트를 벌이기 보다는,중앙과 지방의 협조·지원체계를 구축하는 스타일이 바람직스럽다. 과거회귀적인 지방자치단체의 문화투자도 문제다.지역 축제는 대부분 역사나 전통을 주제로 삼는다.그 고장 출신 예술가들의 기념관이나시비 건립도 경쟁적이다.물론 역사와 전통을 되살리는 것은 좋은 일이다.그러나 단순한 과거사의 재현이나 과거 인물을 기념하는데 머무르는 것은 생각해볼 일이다.예를 들어 경남의 한 시는 지역출신 대중가수와 작곡가를 기념하는 향토박물관을 지을 계획이다.그러나 한때일세를 풍미한 사람들이었다고는 하지만 이미 40∼50대가 아니면 이들을 알지못한다.20∼30년 뒤,시민 대부분이 이들을 모르는 시점이됐을 때 이 기념관이 어떤 기능을 할지 고려해야 한다. 문화투자가 과거지향적이다 보니 젊은이를 위한 문화가 없어지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지방자치단체 관계자나 장년층 이상은 ‘예향’이라고 자랑이 대단해도 젊은층은 전혀 실감할 수 없다.몸과 마음으로 즐기는 문화가 아니라 머릿속으로만 자부심을 강요당한다. 지역문화가 파행을 면치못하고 있는 데는 ‘전문인력의 부재’가 가장 큰 원인이라고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지적한다.물론 각 지역에서도 문제의 심각성을 충분히 깨닫고는 있지만,폐쇄성이 적지않은 걸림돌이 된다. 공연예술계의 한 인사는 “속된말로 동네 텃세가 사라져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외지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문제를 ‘밥그릇 지키기’차원에서 대응할 것이 아니라,자신들에게 도움이 되고 능력을 갖춘사람이라면 찾아가서라도 모셔가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부산국제영화제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중앙에서 영화 및 문화행정에 30년 이상 경험을 쌓은 인물이 집행위원장을 맡은 데 상당한 이유가 있지 않느냐고 반문한다.결국 이들 외부 전문가가 장기적으로 지역의 전문가도 길러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지역문화의 해’는 문화예술계와 정부가 지역문화를 새롭게 인식하는 해가 되어야 한다.그러나 이른바 중앙의 인식 변화에 못지않게 지역에서도 열린마음을 갖고 문화를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어야 할것 같다. 서동철기자 dcsuh@. [기고] ‘지역문화의 해'에 바란다‘. 언제부터인지 ‘지역’은 ‘주변’과 유사한 개념으로 받아들여진다. 서울이 중심이라면 지역은 변두리 정도에 머물러 왔다고나 할까. 문화를 말할 때 적어도 선진국의 것을 상위로,후진국의 문화를 하위로 인식하던 때를 벗어났다면 지역에 대한 생각도 분명 달라져야 한다.문화는 그 자체로서 가치가 인정되어야지 무엇과 비교하여 순위를 매긴다는 것이야말로 극복해야 할 하위문화이다.표준이 미덕이던 시절 지역문화는 중앙을 닮기에 급급했지만 70∼80년대를 지나면서 지역은 스스로를 돌아보기 시작했다.새천년의 첫해를 마무리하는 지금여전히 ‘정체성’에 대한 회의를 떨치지 못하면서도 지역문화는 활발한 개화의 몸짓을 하고 있다. 2001년 ‘지역문화의 해’는 진정한 지역문화의 표상을 보여주는 해가 되어야 한다.중앙정부가 굳이 지역문화의 해를 지정하지 않아도고장마다 가장 치열한 화두는 바로 이 문제다.그런만큼 각 지역마다이를 기회로 삼아 진지하게 자기 문화의 정체성을 고민해보고 지향점에 대한 비전을 얻는다면 더없이 값진 수확이 될 것이다. 중앙은 중앙대로 의존도만 높이고 수명은 짧은 일회성 지원이 아니라,예술인들이 창작에 열중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고 개성있는 문화권을 개발하는 등 기반 조성에 힘써주길 기대한다. 우리 고장을 예로 들자면 전통적인 문화와 예술의 보고(寶庫)를 자임하는 전주는 전통을 지켜가며 그 뿌리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모색에분투하고 있다.‘지역문화의 해’에는 이 넘치는 욕구를 잘 담아내는 일에 중앙정부가 힘을 보태겠다는 의지가 담겨있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중앙의 시각이 아니라 지역의 시각에서 ‘지역문화의 해’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중앙이 지역이라는 상대를 주체로 인정하는 순간 ‘지역문화의해’는 상쾌하게 출발할 수 있을 것이다. 김 선 희 전주시 문화관광과 문화팀장. *음악평론가 탁계석씨“대학교수의 지역공연 활성화 필요”. “지역문화의 해를 성공적으로 이끌려면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 지역대학의 참여가 무엇보다 절실하다”음악평론가로 공연예술정책 전문가이기도 한 탁계석씨는 “지역문화의 해에 공연예술분야의 학과를 갖고 있는 대학이 참여하면 적은 비용으로 큰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한다. 탁씨는 공연예술 교수는 공연실적을 연구실적으로 인정하는 제도를최대한 활용하자고 말한다.예를 들어 음악교수는 연구실적 점수를 쌓기 위한 연주회를 가질 수 밖에 없다.이 연주회를 대도시가 아니라중소도시나 농어촌지역에서 갖도록 하자는 것이다. 실제로 적지않은 음악교수들이 연구실적을 쌓기위해 사재를 털고,어렵게 대관하여 연주회를 갖고 있다.그러나 연주회를 지역에서 갖는다면,지역주민과 음악교수 모두에게 큰 이익이 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현재 지방자치단체들이 갖고 있는 문예회관 등 공연시설의 가동율은평균 30% 정도.지역주민을 위한 음악교수들의 연주회라면 얼마든지무료대관이 가능하다.자치단체쪽에서 보면 수준높은 연주회를 돈들이지 않고 유치할 수 있고,교수쪽에서 보아도 경제적 부담 없이 연구실적을 쌓고,장기적으로는 ‘지역시장’ 활성화에 따라 활동무대도 넓히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이런 구상이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각 대학이 교수들의 지역연주회를 예술의 전당이나 세종문화회관 등에서 갖는 연주회에 버금가는 연구실적으로 인정해주는 것이 필수적.레퍼토리도 학구적이기보다는 청중이 즐길 수 있도록 대중적일 수 밖에 없다는 점도 고려해야한다고 탁씨는 덧붙인다. 서동철기자
  • “가요 ‘휘파람’ 저작권 침해”

    북한이 최근 북한과의 협의없이 북한가요를 담은 음반을 판매하고있는 국내음반사에 대리인을 보내 공식항의하고,문화관광부에도 항의서한을 보내는 등 남북 사이의 저작권 문제가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북한의 조선만경무역상사는 최근 일본의 저작권 관리회사 만대의 관계자를 서울음반과 동아기획에 보내 탈북가수 김은실의 ‘기러기떼날으네’와 길정화의 ‘휘파람’ 등의 음반이 저작권료 지급없이 유통되고 있는데 항의했다. 서동철기자 dcsuh@
  • ‘8~9세기… 신라의 위상’ 학술대회

    이른바 나당연합군이 백제와 고구려를 물리치고 신라를 삼국의 패자로 만든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그러나 통일 이후 국제사회에서 신라의 지위를 깊이 생각해 본 사람은 많지않을 것 같다. 한국사학회와 백산학회가 6∼7일 경주에서 가진 ‘8∼9세기 아시아에 있어서 신라의 위상’학술대회는 그런 점에서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경주세계문화엑스포 행사의 하나로 열린 이 대회에 일본과 중국의 학자가 참여하여 다양한 시각을 보여준 것도 뜻깊었다. 이기동(李基東) 동국대교수는 9세기 일본 승려 엔닌(遠因)이 쓴 ‘입당구법순례행기’를 바탕으로 당시 중국 도처에 깔려있던 신라인의눈부신 활약상을 강조했다.실제로 미국 하버드대교수 출신으로 케네디행정부 시절 주일대사를 지낸 에드윈 라이샤워가 지적한대로,당시일본인들이 중국을 왕래하려면 신라상인의 배편을 이용하지 않고는불가능했을 만큼 신라인들은 동아시아의 제해권을 장악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윤명철(尹明哲) 동국대교수도 “통일신라인은 고구려와 백제의 개척정신과 해양능력을 계승하여 부를 창출하였고,당연히 국제환경속에서 정치 외교적 위치도 비중있게 격상됐다”면서 “동아지중해가 완벽하게 지중해적 성격의 기능을 발휘한 시대가 이 시기”라고 신라의지위를 높이 평가했다. 나아가 변인석(卞麟錫) 아주대교수는 “그동안 서안(西安)과 종남산(終南山) 일대를 답사한 결과 적지않은 신라의 사적을 찾아냈다”면서 “신라인들이 당나라가 이룩한 국제적 문화창출에 큰 역할을 담당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적극적 해석을 하기도 했다. 반면 첸샹솅(陳尙勝) 중국 산뚱대교수는 “현재의 산뚱성에 설치됐던 신라원을 신라 교민활동의 결과라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당나라가신라승려들의 구법활동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정책을 썼음을 증명해주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면서 “신라관은 당 조정이 신라에서 온 조공사절단이 묵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전용여관일 뿐”이라고 국내학자들과는 다른 시각을 내놓았다. 서동철기자
  • 맛깔스런 옛 한글서한 읽는다

    “전일에 오천냥을 보내라 하였는데 삼백냥만 보내니 괘씸한 마음 어디다 말하랴.이번에도 명령을 듣지 않으면 사정 두지 않으렷다”한글날을 기념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겨레의 글,한글’특별전에 출품된 ‘활빈당 발령장(活貧黨 發令狀)’은 이렇게 서슬 퍼렇게 시작한다.이 편지는 삼남지방에 큰 세력을 가지고 있던 활빈당이 1902년 12월 하순부터 다음해 1월 하순까지 다섯 차례에 걸쳐충청도 회인 정부자에게 보낸 협박장이다. 발령장은 이어 “우리는 세가지 잘하는 것이 있으니,집에 불놓기와유부녀 겁탈하기,그리고 파묘(破墓)”라고 겁을 준다.당한 정부자는치가 떨리는 노릇이었음이 분명하지만,오늘 이 협박장은 슬그머니 관람객들을 미소짓게 한다.한글이 아니라 한문으로 씌어졌다면 이런 ‘재미’를 느낄 수 있을까. 지난 3일 막을 연 ‘겨레의 글…’특별전은 한글이 우리 문화에 어떤 영향을 끼치면서 오늘에 이르렀는지를 체계적으로 살피고 있다.전시는 주제별로 옛 전적을 나열하는 방식이어서,전시실에 들어설 때는부담감도 없지는않다.그러나 “더도말고 30분만 투자하겠다”는 마음으로 차근차근 둘러보노라면 곳곳에서 느껴지는 쏠쏠한 재미와 함께 ‘한문의 시대’를 헤치고 온 ‘한글의 힘’을 실감할 수 있다. 전시실에서 들어서면 국보 제70호 ‘훈민정음 해례본’이 관람객을맞는다.간송미술관이 소장한 ‘훈민정음…’은 일반에는 처음 공개됐다.전시회에는 ‘훈민정음…’을 비롯한 국보 3건 8점과 ‘월인석보’ 등 보물 10건 16점이 대거 선을 보이고 있다.그러나 관람객들의머리를 끄덕이게 하는 것은 몇몇 문화재 때문이 아니라 ‘한글이 성장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득력있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불교와 한글’이나 ‘한글과 동학’‘한글과 천주교’에서는 한글이 서민대중을 교화하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수단으로 활용됐음을 보여준다.마찬가지로 ‘여성과 한글’에서는 한글이 한문을배울 기회가 봉쇄된 여성층에 파고들어,고소설 등 문학발전에도 크게 기여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무엇보다 현종(1641∼1674)이 셋째딸 명안공주를 시집보내고 쓴 “시집에 가서 밤에 잠이나 잘 잤느냐.그리 덧없이 내어 보내 섭섭무료하기가 가이없어 하노라.너도 우리 생각하느냐”는 애틋한 편지는 한글이 뿌리내림에 있어 왕실의 역할을 실감케한다. 이번 전시회는 특히 감정이 무덤덤해진 연인들이라면 한번쯤 찾아볼것을 강력히 권하고 싶다.이응태(1556∼1586)의 부인이 먼저 죽은 남편의 무덤에 함께 묻은 한장의 편지 때문이다.“당신이 나에게 마음을 어떻게 가져왔고,또 나는 당신에게 어떻게 마음을 가져왔었나요”로 시작되는 이 편지를 함께 읽는 것 만으로도 서로의 마음을 다잡게하는데 충분할 것 같다.특별전은 오는 11월5일까지 열린다. 서동철기자
  • “병든 한글’은 나에게 오라”

    병든 한글을 치료하는 병원이 있다.이름하여 ‘우리말 병원’.소재지는 ‘한글문화연대’의 홈페이지(www.urimal.org)다.한글문화연대는“우리가 아니면 아름다운 우리 한글을 누가 지키겠느냐”며 지난봄발족한 시민단체다.얼마전 ‘우리말은 우리의 밥이다’라는 제목으로 한글사랑을 담은 반듯한 책 한권을 펴낸 개그맨 정재환이 부대표로활동하는 바로 그 단체라면 설명이 빠를까. 우리말 병원은 문을 연지 얼마되지 않았기 때문인지 ‘환자’들이 크게 북적거리지는 않는다.그도 그럴 것이 자기 몸이 아픈 것을 스스로 깨닫고 찾아오는 환자는 거의 없다.대신 거리를 방황하는 ‘중환자’들이 이 병원의 자원봉사자들에게 업혀 들어오기 일쑤다.우리말 병원은 작지만 ‘종합병원’으로 갖추어야 할 조직은 모두 갖추었다.접수창구가 있고,입원창구와 퇴원창구도 눈에 띤다.다만 ‘공문발송’실이 별도로 만들어져 있는 것은 다른 병원에서는 찾아볼 수 없을 것 같다. 접수창구엔 지금까지 101명의 환자가 찾았다.진찰 결과 입원이 필요하다는 판정을 받은 환자는모두 37명.한 다이어트 식품 광고는 ‘며칠’을 ‘몇일’로 적는 바람에 입원했다.철도청은 피서객들의 자동차를 운반해주는 제도를 ‘Car rail’로 이름붙였다가 ‘중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자동차 열차’,하다못해 ‘카 레일’로 표기만바꾸었어도 입원하는 신세는 면할 뻔 했다고 한다.한글문화연대의 대표가 일하는 대학은 교내 전화번호부 표지에 ‘Telephone Directory’라고 대문짝만하게 써 넣었다가 ‘미주 한인사회에서나 볼 수 있는 전화번호부’라는 지적을 받았다. 서울경찰청을 상징하는 ‘포돌이’는 한글표기가 영문표기의 4분의 1밖에 안됐다.경찰순찰차도 한글은 없고 ‘POLICE’라는 영문표기만눈에 띠어 “경찰이 외국인만을 위해 존재하는줄 아는 것 같다”는소견과 함께 ‘입원불가피’로 결정났다.방송사들은 단골 입원환자다.한 프로그램은 ‘南北의 窓’이라고 제목을 썼다가 “빨리 입원시켜 하루빨리 제정신을 차리게 해야한다”는 판정이 내려졌다. ‘공문발송’실에서는 일단 환자가 입원하면 ‘보호자’에게 편지를띠운다.이를테면철도청에는 “올해는 늦었다면 내년부터라도 열차이름을 바꾸는 것이 좋지않겠느냐”고 호소하는 내용이다.문제는 지난3월 첫 환자가 입원했음에도 아직 퇴원한 환자가 하나도 없다는 것. 게다가 광고문·상품안내글·표지판 문구 등을 고쳐주는 ‘건강진단실’까지 문을 열었건만,자신의 건강을 미리 확인하려는 사람이 전혀 없다는 것도 이 병원 의사들을 슬프게 한다. 한글문화연대의 김영명 대표(한림대 정치외교학과교수)는 “우리말병원에서 보낸 공문에 별로 반응은 없었지만 격려나 해명전화를 걸어오는 곳은 몇 군데 있었다”면서 “역사가 짧고 여건이 좋지 않지만우리 일이 공중에 헛손질하는 격은 아님을 알게 되었다”고 이 병원일에 의미를 부여했다. 서동철기자 dcsuh@
  • 한글 유공자·세종문화상 수상자 발표

    문화관광부는 제554돌 한글날을 맞아 한글 발전에 공이 큰 이남덕 전이화여대교수(80)에게 은관문화훈장을 주기로 했다.또 김상준 한국방송공사 아나운서실장(55·문화부문) 등 5명을 제19회 세종문화상 수상자로 선정,5일 발표했다.시상은 9일 오전 10시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리는 한글날 기념식 석상에서 있다. 수상자 명단은 다음과같다. ◆ 한글발전 유공자 ▲은관문화훈장 이남덕▲문화포장 이발렌찐(70·모스크바 문학대학교수)▲대통령 표창 박붕배(74·한국국어교육연구원 원장) 이상보(73·국민대 명예교수)▲국무총리표창 로스 킹(39·미국 콜롬비아대 교수) 정인관(57·서울 구산중교감) 문형호(57·서울 광남고교사)◆ 세종문화상 수상자 ▲대통령상 김상준 김석득(69·연세대 명예교수·학술부문) 유강식(42·한국전기연구소 연구단장·과학기술부문)대전맹학교(교육부문) 황병무(61·국방대학원교수·국방안보부문)서동철기자 dcsuh@
  • ‘월인석보 제15’등 5건 보물로 지정

    전북 순창군 구암사 소장 초간본 ‘월인석보 제15’를 비롯한 5건의문화재가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보물로 지정됐다고 문화재청이 4일 밝혔다.새로 지정된 다른 보물은 경북 김천시 직지사에 소장된 고려 후기 불경 필사본인 ‘백지금니금강보문발원합부’(白紙金泥金剛普門發願合部)와 조선초 활자본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유몽인 위성공신 교서’(柳夢寅 衛聖功臣 敎書·유효주 소장),조선 효종대 장군인 ‘김완 영정’이다. 석보상절과 월인천강지곡을 합친 월인석보 1권1책 중 보물 745호로지정된 제15(34.0 ×21.5∼22.4cm)는 이 책 완질이 전해지지 않는 가운데 세조 당시에 나온 초간본이며 빠진 곳이 전혀 없다는 점에서 15세기 국어와 불교 및 서지학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서동철기자 dcsuh@
  • 오늘 단기 4333년 개천절 되짚어 본 단군

    ‘단군은 단순히 민족주의적 신화의 우상인가 아니면 역사적 실체인가’최근 언론사 사장단과 문화계 인사 등 남측 인사들의 잇따른 북한 단군릉 방문을 계기로 강단 학자와 재야 사학자들의 논쟁이 다시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또 단군학회는 2일 단기4333년 개천절을 앞두고 단군을 중심으로 한 상고사 관련 교과서 개정을 위한 대규모 학술대회를 열어 학계 안팎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최근 가열되는 단군논쟁은 지금까지와는 색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 단군이 신화적 존재든 역사적 사실이든 그 실체를 규명해야 하며 그것이 민족구심을 위한 사상정립의 대안이 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그요체다. 우선 실체 규명의 차원에서 일고있는 단군실재론 재조명론은 주류학계의 입장을 강하게 비판한다.현행 초·중·고교 국사교과서에 반영되고 있는 주류 학계의 고조선 건국과 단군조선의 기원,강역에 대한 기술이 수정돼야 한다는 주장이다.이들은 ▲초·중학교 교과서가단군의 건국과 관련 “곰이 웅녀가 돼 환웅과 결혼해 단군을 낳았다”는 신화화된 내용만을 싣고 있고 고교 교과서에선 ▲고조선의 실재를 인정하면서도 단군을 신화적 인물로 규정하며 ▲한반도의 청동기를 기원전 10세기로 보면서 단군 건국은 기원전 24세기(2333년)로 적고 있음은 모순이라고 말한다.기원전 2500년경의 역사를 입증하는 고조선의 고고학적 증거들이 발견되고 있는데도 이같은 기술이 나오고있는 것은 주류 학계가 일제의 황국사관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재야학자들 사이에선 단군조선의 세력범위에 대해서도 만주·한반도 일대에서 한반도 전역으로 확산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일고있다. 이같은 논의는 최근 북한의 접근방식과 맞물려 더욱 확산되고 있다. 북한의 학계는 단군이 민족의 시조임을 부정했으나 단군릉에서 5,011년 전의 단군유골이 출토됐다며 93년 단군릉발굴보고를 내고,94년 단군릉을 대대적으로 재건,공개했다.이후 관련유적과 기념물을 정비하면서 매년 전 학계를 동원해 단군과 상고사 학술회의를 개최해오고있다. 남측 학계는 이에대해 “정치적 관점에서 다루고 있다”는 시각이주류를 이루고 있긴 하지만 “남북간 관련정보를 공유하고 양측 주장을 검증할 공동연구의 장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적지않게 제기되고있다. 또다른 논의는 단군의 역사적 실체를 재해석,민족통일과 세계의 미래에 기여할 보편적인 담론을 만들어 내야 한다는 것이다.단군은 학파와 종교를 초월해 공유할 수 있는 민족 정체의식을 확립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같은 단군의 실체규명에 대한 논의는 더욱번져나갈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최근 논의가 ▲학문으로의 기본요건에 충실해야하고 ▲단군의 모습을 시대과제에 맞게 재해석,민족성원들을 실천의장으로까지 이끌어내 민족적 과제를 해결하는데 필요한 동력을 형성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즉 민족에 대한 애정은 덕목이 될 수있지만 그 애정이 과학적 엄격성을 약화시키는 명분이 돼선 안된다는것이다. 한말·일제기의 단군은 저항민족주의의 요구에 부응했지만지금은 다르다는 지적이다. 현재 단군에 대한 인식은 혼란 그 자체다.강단 학자들 간 뿐만 아니라 ‘강단학계’와 ‘재야학계’,그리고 국민들의 편차가 너무 크다. 실제로 최근 월간 ‘뉴휴먼丹’이 전국의 18세 이상 성인 5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선 54%가 단군을 역사속의 실존인물,34%가 신화속의 인물이라고 답했다.종교별로도 개신교신자는 32%만이 실존인물이라고 한 반면 비개신교 신자는 50∼68%가 실존인물로 보고있는 것으로 나타나 큰 편차를 보여주고 있다.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정영훈 교수(정치학)는 “지금의 단군연구는 전체적으로 만연한 혼란상 정리를 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며 “학계는 엄격한 사료를 근거로 다양한 가능성들에 대해 문을 여는 개방적인 자세로 공동연찬의 장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성호기자 kimus@. *교과서에 나타난 단군. “1970년대 시험문제를 1990년대 교과서 내용에 근거해 채점한다면정답이 바뀌거나 문제자체가 성립하지 않는 것도 적지않다.지난 20∼30년 동안 국사교과서의 무책임성을 교정하지 않고 되풀이 한다면 언젠가는 이 문제로 소송이 벌어지는 사태도 올 것이다” ‘한국 상고사의 쟁점-국사교과서 개편방향과관련하여’를 주제로2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개천절 기념 학술토론회에서 정영훈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교수의 주제발표 내용 가운데 일부다. 우리나라는 국사교과서를 1974년부터 국정으로 편찬하고 있다.정교수의 지적은 그동안 우리 국사교과서가 다루어 온 상고사의 문제점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문제점은 고조선 및 단군에 대한 기술에서도적지않게 나타난다. 인문계 고등학교 교과서를 보면 고조선의 중심지를 놓고 74년판은“고조선의 옛 지역에 낙랑군이 설치되었다”면서 지도에 낙랑을 평양지역에 표기함으로써 중심지가 평양지역임을 나타냈고,이런 서술은 82년판까지 이어졌다.90년판부터 “고조선은 랴오닝(遼寧)지방을 중심으로 성장하여 점차 인접한 군장사회들을 통합하면서 한반도까지발전하였다”고 하여 중심지가 이동해왔음을 밝혔다.96년판부터는 “초기에는 요령지방에 중심을 두었으나,후에 대동강 유역의 왕검성을중심으로 독자적인 문화를 이룩하면서 발전하였다”고 이를 분명히했다. 단군이 고조선의 건국자인가 하는문제를 놓고도 미묘한 차이가있다.74년판은 그저 단군신화가 존재했고 단군신화가 고조선사회를이끌어가는 세계관의 구실을 했다고만 언급했다.그러나 82년판에 단군왕검은 제정일치 시대의 족장이었다고 적음으로써 고조선의 건국자가 단군일 수 있음을 암시했다.기원전 2333년이라는 건국연대를 소개했다는 것은 상당한 진전으로 평가되지만,단군왕검을 고유명사가 아닌 일반명사로 해석함으로써,고조선의 건국시조로 분명한 인상을 심어주지 못했다.이같은 서술경향은 90년판과 96년판에도 이어지고 있다. 서동철기자 dcsuh@. *북한 단군릉 답사기. 98년 11월 첫 방북취재 중 평양시 강동군 문흥리 대박산 기슭에 위치한 단군릉을 방문했다.북에 오기 전에 사진으로 보기는 했지만 능입구에 도착한 순간 그 규모에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눈부신흰색 화강암 계단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고,그 정상에는 피라미드를연상시키는 단군릉이 우뚝 솟아 있었다.그런데 능 입구에 모서리 일부가 떨어져 나간 오래된 비석이 하나 서 있었다.높이는 2m 정도.1936년에 세워진 ‘단군릉 기적비(紀蹟碑)'였다.비석에는 수많은 한자 이름들이 새겨져 있었다.일제가 이 곳에 위치한 단군릉을 파괴하자 이에 분노한 뜻있는 조선인 인사들이 단군릉 수축기성회(修築期成會)를 조직,단군릉을 보존 관리하기 위한 기금을 모았는데 성금을 기부한사람들의 이름을 새겨 놓았다는 내용의 비문이 적혀 있었다.기자는다시 한번 놀랐다.그러면 일제하에서도 이 곳에 단군릉이 있다고 알려져 있었다는 말인가.해설 강사는 일제하 뿐만이 아니라고 했다.조선시대에 간행된 ‘고려사’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평양의 단군릉에 대한 기록이 있고 ‘조선왕조실록’에도 숙종·영조·정조 조에 강동의 단군묘를 수리,관리했다는 기록이 나온다는 것이다.또한 단군릉 주변의 지명도 대박산(밝은 산),단군호,단군동,아달동 등 단군과 관계있는 것들이 많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고 한다.북의 역사학자들 사이에서도 평양 단군릉의 실재 여부를 두고 논쟁이 많았는데 김일성 주석이 단군릉으로 알려진 강동군의 작은 무덤을 실제로 발굴해 진위를 과학적으로 밝히라는 교시를 내렸다. 역사학자들이 발굴을 시작한 결과 사람의 뼈가 나왔는데 남자의 것으로 추정되었다.유럽의 전문 연구기관에 의뢰해서 전자스핀공명법으로 뼈의 연대를 추정한 결과 5011년전(오차 267년)의 것이라는 결과가 나와 이 뼈를 단군의 것으로 인정하고 있다. 해설 강사의 설명을 들으며 화강암 계단을 올랐다.계단은 무려 279개.돌계단 중간에는 선돌을 연상시키는 돌기둥이 대문처럼 세워져 있었고 양쪽 끝으로는 단군의 네 아들과 여덟명의 신하상이 능을 호위하듯 서 있었다.모두 눈부신 흰색 화강암들이었다.279개의 계단을 다오르자 한 변이 50m, 높이 22m,9층 계단식 무덤인 단군릉이 위용을드러냈다.1994년에 준공되었음을 기념해서 모두 1,994개의 화강암 돌로 짜맞추었다고 했다.이처럼 숫자에 의미를 부여해 건축하는 것은북의 건축물 곳곳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이다. 단군릉의 모양은 광개토왕릉으로 추정되는 퉁거우의 장군총을 본뜬것이라 했다.무덤의 네 모서리에는 코끼리 만한 돌호랑이상이 세워져있었고, 그 앞에는 높이7m의 비파형 동검이 서 있었다.비파형 동검은 고조선의 대표적 무기다.능 뒤쪽에는 무덤 안으로 들어가는 출입문이 있었다.안으로 들어가보니 이곳에서 발굴된 86개의 단군과 그아내의 뼈가 나무관 내부의 밀폐된 유리관 속에 보존되어 있는데 빛과 습기·공기로 인한 손상을 막기 위해 유골은 참관시키지 않는다고했다. 평양 단군릉에 대해서는 실재성에 대한 근거도 있고,또 그에 대한반론도 있다.이 문제는 앞으로 남북의 역사학자들이 합동연구로 밝혀내면 될 일이다.또한 북이 ‘민족의 시조' 단군릉을 그처럼 거대하게개건한 것은 ‘평양'이 아니라 ‘민족'을 내세우기 위함이라고 보는 편이 보다 합리적인 시각일 것이다. 평양 신준영기자 jun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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