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서대문
    2026-04-20
    검색기록 지우기
  • 전문화
    2026-04-20
    검색기록 지우기
  • 대도시
    2026-04-20
    검색기록 지우기
  • 경계
    2026-04-20
    검색기록 지우기
  • 발전소
    2026-04-20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2,970
  • 신원철 서울시의회 의장, 진영 행안부 장관에게 “지방의회 목소리 들어달라” 요청

    신원철 서울시의회 의장, 진영 행안부 장관에게 “지방의회 목소리 들어달라” 요청

    서울시의회(의장 신원철)는 지난 2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진영 행정안전부 장관과 간담회를 갖고 “지방의회 목소리를 들어달라.”라고 요청하였고, 진영 장관은 “지방의회 입장을 중앙에서 대변하는 역할 하겠다.”라고 답했다. 이 날 간담회에는 신원철 서울특별시의회의장(서대문1), 김정태 지방분권TF단장(영등포2), 서윤기 운영위원장(관악2), 김제리 의원(용산1)이 참석하여 ‘서울시의회 자정결의안’을 소개하고, ‘서울시의회 건의안’을 전달하였다. ‘서울시의회 자정결의안’은 서울시의회가 스스로 지방의회 인식 개선의 계기를 마련하고, 준엄한 시민사회에 진정성을 보여주고자 만든 것이다. 이 결의안은 서울시의회 본회의를 통과하고 전국시·도의회의장협의회에 공식안건으로 상정, 만장일치로 의결·통과되어 ‘지방의회 자정노력’은 전국 시·도의회에서 추진된다. 신 의장은 “지방의회가 무조건적인 요구만을 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이번 자정결의안의 충실한 이행을 통해 지방의회는 스스로 책임성·청렴성 강화를 위해 노력하여 지방의회 신뢰 회복과 주민대의기관으로서의 역할을 다 하고, 그에 걸맞은 제도 개선 등을 요구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서울시의회에서 진영 장관에게 전달한 ‘서울시의회 건의안’에는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지방자치법 전부개정법률안」에 대해 지방의회에서 요구하는 4가지 건의안과 정부에서 직권으로 상정할 수 있는 지방의회 관련 시행령·부령 개정 요구가 담겨 있다. 김 단장은 “정부 발의로 30년 만에 「지방자치법 전부개정법률안」이 국회에 제출된 것은 정말 환영한다. ‘정책지원 전문인력 도입’, ‘지방의회 인사권 독립’이라는 지방의회 숙원과제 해결의 숨통이 트인 것 같다.”라면서도 “자치입법권 강화, 인사청문제도 도입, 정책지원 전문인력의 1 대 1 매칭, 기초의회까지 포함하는 인사권 독립도 꼭 국회 심의과정에서 반영되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이어 서 위원장은 “30년 전의 지방자치 모습으로 활동하려니 맞지 않다. 이제 지방자치를 제대로 실시할 때가 되었다.”면서 “서울시의회는 세계 최고의 지방의회가 될 자신이 있다. 도쿄, 런던보다 못할 것 없으니, 잘할 수 있도록 지지해 주길 부탁드린다.”라고 말했다. 서울시의회 건의내 용을 전달받은 진 장관은 “서울시의회가 지방의회를 선도적으로 이끌고 있다. 앞으로도 많은 역할을 해주길 바라고, 건의하신 내용들 잘 살펴보겠다.”면서 “지방분권이 잘 되기 위해서는 지방의회의 견제권한과 역량이 강화되어야 한다는 확신 가지고 있다. 서로 힘을 합쳐 지방분권이 한 단계 도약하도록 노력하자.”라고 답했다. 마지막으로 신 의장은 “오늘 간담회 내용을 전국시·도의회 의장들에게 모두 전달하여 전국 지방의회가 한뜻으로 지방분권을 위해 노력하겠다.”라며 간담회를 마쳤다. 이번 간담회는 진영 장관의 지역구인 용산구 제1선거구 3선 시의원(제8,9,10대)인 김제리 의원의 주선으로 이루어졌으며, 행정안전부에서는 서승우 자치분권정책관, 안경원 선거의회과장이 배석하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조선일보 주관 청룡봉사상 특진 폐지하라”

    “조선일보 주관 청룡봉사상 특진 폐지하라”

    22일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 앞에서 언론소비자주권행동 등 18개 시민단체 회원들이 조선일보의 경찰청 청룡봉사상 공동 주관 및 수상자 1계급 특진 폐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들은 “(과거) 장자연 수사팀 관련 경찰관이 청룡봉사상을 받은 것은 권언유착”이라며 “경찰 조직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조선일보와 공동 주관하는 청룡봉사상의 1계급 특진 혜택을 폐지하라”고 촉구했다. 도준석 기자 pado@seoul.co.kr
  • ‘충격과 파격’ 예술 퍼포먼스 ‘업사이클링 프로젝트’ 막 올라

    ‘충격과 파격’ 예술 퍼포먼스 ‘업사이클링 프로젝트’ 막 올라

    성범죄 피해자 고통 무용에 담아베스트셀러 ‘쇼코의 미소’ 연극도관객과 함께하는 조각 예술 무료개성충만한 예술가들이 파격적인 예술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업사이클링 프로젝트’가 서울 서대문구 연희예술극장에서 이달부터 8월 말까지 3개월간 진행된다. 22일 연희예술극장에 따르면 지난 20일 시작된 업사이클링 프로젝트는 카페와 극장이 결합된 공연장소를 다양한 예술가들이 모여 그들만의 공간으로 재창조해냈다. 뮤지컬, 판소리극, 연극, 힙합, 한국무용, 현대무용, 전시 퍼포먼스, 그래피티 등 여러 예술 장르의 프로그램들이 관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프로젝트는 극장 측이 지난 2월 한 달간 참가신청을 받아 최종 10개 팀을 선정했다. 이 가운데 베스트셀러 소설인 ‘쇼코의 미소’, ‘빛의 호위’ 두 원작 작품을 연극으로 엮은 ‘옾 프로젝트’는 기대를 모은다. 성범죄 피해자들의 고통을 무용으로 표현한 빛아트컴퍼니의 ‘영혼컬렉션’도 눈길을 끈다. 빛아트컴퍼니는 케이블음악방송 ‘Mnet’ 프로그램인 ‘댄싱9’ 출신 무용수와 배우로 꾸려져 끈을 목에 묶어 성범죄 피해자들의 아픔을 절절하게 그려낼 예정이다. ‘이브아아트’에서 준비하는 표현주의적 실험극인 ‘피의 결혼’은 영국 에딘버러 축제 초청작이다. 즉흥적인 페인팅을 통해 인물의 감정을 표현한 작품으로 피를 주제로 해 섬뜩한 느낌을 준다.연극 ‘김종욱찾기’ 음악감독인 김려령 감독이 대표를 맡은 ‘LEAD H&P’의 뮤지컬콘서트에는 배우 송광일, 이유종 등 5명이 출연한다. 그래피티 아트와 힙합 공연을 함께 준비하는 ‘렐라맙스’(Relamobbs)팀도 눈여겨볼 만하다. 다음달 18~23일 ‘색욕’이란 주제로 진행되는 조각, 공예, 설치 등 전시 퍼포먼스인 ‘굄성, 91’은 무료로 볼 수 있다. 1991년생 예술가들이 뭉쳐 팀을 이룬 ‘굄성 91’은 즉석에서 사람을 조각하는 전시를 선보인다. 이때 관객들이 참여해 머리, 상체, 하체 등을 함께 만드는 시간도 갖는다. 윤영인 연희예술극장 총괄 프로듀서는 “이 프로젝트는 기존의 것을 재활용해 새로운 가치를 부여해보자는 뜻으로, 기존 제품에 국한돼 있는 ‘업사이클링’(Upgrade+Recycling=Upcycling)을 공간에 부여해보자는 의미로 시작됐다”면서 “기존의 경직된 관람 대신 음료 등을 마시며 자유롭게 공연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공연·전시 기간이 각기 다른 만큼 자세한 내용은 연희예술극장 홈페이지 등에서 확인하면 된다.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美버클리음대 싱어송라이터 강이채 새달 15일 콘서트

    美버클리음대 싱어송라이터 강이채 새달 15일 콘서트

    미국 버클리음대 출신 싱어송라이터 겸 바이올리니스트 강이채(31)가 다음달 15일 서울 서대문구 연희예술극장에서 소극장 콘서트 세번째 시리즈 ‘비밀의 방 Ⅲ’을 연다. 22일 강이채 소속사인 프라이빗커브에 따르면 강이채는 이번 공연에서 클래식에서 대중음악까지 음원에서는 들을 수 없었던 다양한 음악들을 작곡 및 편곡해 선보인다. 프라이빗커브 관계자는 “‘비밀의 방’은 강이채의 엉뚱하고 기발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관객들과 소통하는 공연”이라고 설명했다. 강이채는 그룹 이채언루트 멤버로 현재 솔로 활동과 재즈 오케스트라인 ‘디어 재즈 오케스트라’의 지휘를 맡고 있다. 가수 아이유, 김필, 정세운 등 다양한 아티스트들의 편곡 활동에 참여하며 프로듀서로서의 입지를 굳혀 가고 있다. 2016년 10월 발매한 ‘래디컬 파라다이스’(Radical Paradise)는 K-인디차트 3위에 올랐다. 2017년 한국대중음악상 팝 부분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예매는 이날 정오부터 멜론티켓(ticket.melon.com, 1899-0042) 통해 가능하다. 자세한 사항은 프라이빗커브 공식홈페이지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이화학당 재학 시절 유관순 열사 미공개 사진 공개

    이화학당 재학 시절 유관순 열사 미공개 사진 공개

    3·1운동 당시 일제에 맞서 만세 시위를 주도한 독립운동가 유관순 열사(1902~1920)의 이화학당 시절 사진이 100년 만에 처음 공개됐다. 이때까지 알려진 것 중 가장 앳된 모습이다. 이화여대는 21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역사관에서 유관순 열사의 사진 2점을 최초로 선보였다. 기존에 알려진 열사의 사진은 1920년 서대문형무소에서 찍힌 것과 1918년 이화학당 보통과 졸업 때 찍은 단체사진 등 3장이 전부다. 이번에 공개된 사진은 열사가 이화학당 보통과에 입학한 직후(1915~1916년)와 고등과에 재학하던 때(1918년)로 추정된다. 당시 나이는 15~16세. 이화여대는 창립 133주년 및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한 특별전시 ‘이화의 독립운동가들’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사진을 발견했다. 이화역사관은 24일까지 사진 원본을 전시한다.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 “18세기 장편 소설, 남성 아닌 여성이 썼다”

    “18세기 장편 소설, 남성 아닌 여성이 썼다”

    남성들이 한글소설 썼다고 알려졌지만 180권짜리 ‘완월회맹연’도 여성이 집필 그 방대함 다룬 ‘백탑파’ 다섯 번째 소설 “소설사를 논할 때 김시습의 ‘금오신화’, 허균의 ‘홍길동전’, 김만중의 ‘구운몽’·‘사씨남정기’, 이인직의 ‘혈의 누’, 이광수의 ‘무정’만 가르칩니다. 조선시대부터 중요한 소설들은 다 남자들이 쓴 것처럼. 그런데 1700년대 대장편의 시대가 열렸는데, 보니까 여자들이 쓰고 읽었다는 거죠.” 18세기 조선에는 100권, 200권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분량의 한글 소설이 있었다. 이걸 쓰고 읽는 이는 뜻밖에 여성이었다. 김탁환(51) 작가의 장편 ‘대소설의 시대’(민음사)는 정약용, 박지원, 박제가 등 18세기 실학파를 중심으로 형성된 집단 ‘백탑파’를 다루는 시리즈의 다섯 번째 소설이다. 김진, 이명방 등 시리즈의 고정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철저히 포커스는 대소설을 쓰고 필사하고 유통하는 여성들에 맞춰져 있다. 지난 20일 서울 서대문구 연희문학창작촌에서 만난 작가는 대학(서울대 국어국문학과) 때 교수님 서가에서 그 많은 궁체의 한글 소설들을 처음 접했다고 했다. “사대부 계층의 남자들이 쓰고 여자들이 읽었다고 배웠는데 이상했어요. 연애를 할 때 여자가 느끼는 감성들, 한 집안에서 처와 첩이 치고 박고 싸우는 사건들. 정말 남자가 썼으면 자료 조사 열심히 했나 보다 이런 생각을 했죠.” 그의 의심처럼 최근 180권에 이르는 ‘완월회맹연’ 같은 당대 대소설들이 여성들의 손에 쓰여졌다는 연구 결과들이 나왔다. 여기서 시작해 작가는 23년째 ‘산해인연록’을 써서 매달 혜경궁 홍씨에게 바치는 여성 작가 ‘임두’를 만들어 낸다. 199권까지 잘 써오던 임두는 뜻밖에 5개월째 200권을 쓰지 못하고, 궁에서는 김진과 이명방을 호출해 사정을 알아보라 명한다. 의아한 한문들의 향연인 목차 속 ‘곽장양문록’, ‘쌍천기봉’, ‘소현성록’ 등은 그 시절 소설들이다. 누락된 역사를 상기시키기 위해 일부러 넣었다. “1700~1800년대 한글로 된 소설을 아무도 모르는 겁니다. 목차를 보는 순간 ‘읽을 수 있나’ 겁을 주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괴작이라 망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하하.” 백탑파 시리즈 첫 번째인 ‘방각본 살인사건’(2003)은 18세기 후반 판을 사야 하고, ‘각수’라는 이가 돈을 받고 글을 판에 새기던 자본주의적 소설 생산 방식을 다룬 반면 이 시대 여인들의 소설 생산은 전적으로 아날로그적이다. “전자는 시중에서 사람들이 책을 사서 읽은 반면 후자는 계층이 훨씬 높은 사람들이 시간 제약과 돈 한두 푼 아끼려고 판을 줄여야 하는 일도 없이 무한대의 연재를 계속해 왔습니다.” 국학의 발전에 따라 백탑파에 대한 연구 성과도 점점 쌓이고 시리즈도 살아 있는 생물처럼 기반 서사가 발전하는 형국이다. 소설 속 등장인물들의 말은 단편의 시대에 홀로 장편의 시대를 사는 작가 김탁환이 하는 말과 다름없다. ‘하루를 양분하여 절반은 쓰고 절반은 읽는다’는 것(1권 198쪽), ‘대작을 이어 쓰려면, 소설가 외엔 직업을 버려야 한다’는 것(1권 23쪽) 등이다. 백탑파 외에도 틈틈이 ‘거짓말이다’(2016), ‘살아야겠다’(2018) 등 굵직한 단행본 장편을 써내려오고 있는 작가다. 그는 실제 오전에는 쓰고, 오후에는 읽는다. 1년에 두 달 ‘안식월’을 제외하고는 하루에 200자 원고지 20장씩 꼬박꼬박 쓴다. 2009년 교수직을 그만둔 이래 행정·회의·교육·잡문이 없는 시간 속 오로지 장편소설에만 매진하고 있다. “독자들이 되게 이상하대요. 백탑파 이야기이긴 한데, 김탁환이라는 사람이 얹혀서. 이종 듀엣곡 같다고 해야 하나. 한 피아노에 두 명이 앉아서 치는.” 그래서 작가는 “대소설의 시대가 내 인생 소설 같다”고 했다. 궁금해졌다. 작가가 장편을 고집하는 이유. 그렇게 쓰여진 장편소설이야말로 제대로 문제를 파악할 수 있는 글쓰기 방법이라는 게 작가의 생각이다. “장편소설 한 편을 쓰는 데 최소 3년 정도 걸린다고 하면 1000일 정도 되는 거죠. 장편은 어떤 문제와 다루고 싶은 주인공에 대해서만 천 번 생각할 수밖에 없게 나를 강제하는 장르예요.” 천 번 생각하고 공부한 흔적으로, 그의 책은 그 옛날 200권짜리 책처럼 읽힌다. 술술.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주변 시세 반값에 살 자리… 서울 ‘1역+1청년주택 시대’ 연다

    주변 시세 반값에 살 자리… 서울 ‘1역+1청년주택 시대’ 연다

    앞으로 서울에서는 하나의 역세권에 하나 이상의 청년주택이 들어서는 ‘1역 1청 시대’가 열린다. 지하철역 307곳 전체에 청년들의 극심한 주거난을 해결해 줄 ‘역세권 청년주택’이 둥지를 틀게 됐기 때문이다. 서울시가 청년 주거 복지의 핵심 정책으로 2016년부터 적극적으로 드라이브를 걸어온 역세권 청년주택이 다음달부터 청년들에게 ‘살 자리’를 품게 해 준다. 다음달 말 강변역 인근의 서울 광진구 구의동 청년주택이 오는 12월 준공을 앞두고 처음 입주자 모집에 나서면서다. ●구의동 청년주택, 15㎡ 임대료 18만~19만원 역세권 청년주택 사업은 서울시가 용도지역 상향, 용적률 완화, 절차 간소화, 건설 자금 지원 등을 제공하면 민간 사업자가 역세권(역 승강장에서 350m 이내)에 주거 면적의 100%를 임대주택으로 지어 청년과 신혼부부(19~39세)에게 공급하는 정책이다. 목표는 2022년까지 8만호 공급이다. 이 가운데 20%인 1만 6000호가 공공 임대, 80%인 6만 4000호가 민간 임대로 수혈된다. 올해 서울에서는 구의동을 시작으로 네 곳의 청년주택이 입주자 모집에 나선다. 9월에는 서대문구 충정로3가(72-1) 충정로역, 10월에는 성동구 용답동(233-1) 장한평역, 11월에는 마포구 서교동(395-43) 합정역의 역세권 청년주택이 입주자 공고를 내면서 내년 1~3월 청년들에게 문을 연다. ‘전세 난민’으로 속수무책으로 도심 밖으로 떠밀려 나야 했던 청년들, 자가용 없이 일과 학업으로 분초를 쪼개며 사는 청년들이 교통도 편리하고 기반 시설도 탄탄히 갖춰진 역세권을 ‘삶터’로 품게 된 셈이다.●“취약계층에 혜택 주는 친서민 주택정책” 도시계획 전문가인 강병근 건국대 건축학과 명예교수는 “그간 우리 사회에서는 신도시가 됐든 재건축·재개발이 됐든 역세권에서는 대형·분양 주택이 주로 공급되며 역세권의 모든 혜택을 기득권이 갖는 게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역세권 청년주택은 길이 멀어 출퇴근하기 힘든 사람, 교통비라도 아껴야 할 사람, 시간에 쫓기는 사람 등 원래 역세권에 살아야 할 취약계층에 가장 먼저 혜택을 주는 주거 정책으로, 역세권을 서민들에게 돌려준다는 의미가 크다”고 짚었다. ●임대료, 공공 주변시세 55%·민간은 85~95% 역세권 청년주택을 둘러싼 가장 뜨거운 관심사는 역시 임대료다. 서울시는 공공 임대주택 임대료를 주변 시세의 55%, 민간 임대주택 임대료를 주변 시세의 85%(특별공급)~95%(일반 공급)로 책정했다고 21일 밝혔다. 당장 다음달 입주자 공고를 낼 구의동 역세권 청년주택 공공 임대의 경우 전용면적 15㎡는 보증금 4000만~4235만원에 월 임대료 18만~19만원을 내면 된다. 강변역 주변 시세의 51.4~54.3%에 불과하다. 신혼부부를 위한 전용면적 31㎡의 경우에는 보증금 6575만원에 월 임대료 26만원으로 인근 시세의 59.1% 정도다. 민간 임대도 임대료를 연간 5% 이상 올리지 못하게 해 급격한 임대료 상승이 이뤄지지 않도록 했다.●도심 공실 빌딩·호텔도 주택으로 변신 최근에는 도심 호텔을 역세권 청년주택으로 탈바꿈시키는 사례도 눈길을 끈다. 종로구 동묘역 인근의 베니키아호텔(지하 3층~지상 18층)이 내년 1월 238가구가 사는 청년주택으로 바뀌는 것. 이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가을 유럽 순방 때 도심의 공실 업무용 빌딩이나 호텔을 주택으로 전환하는 구상안을 밝힌 게 현실화한 첫 사례다. 이충기 서울시립대 건축학부 교수는 “중국 관광객을 위해 마련한 도심 호텔이나 사무용 빌딩들이 경쟁력이 없어지며 공실이 빈번하다. 하지만 주거 수요는 1인 가구 급증, 세대 분리 때문에 계속 늘고 있어 이런 건물의 용도를 전환해 소형주택, 공유주택 등을 정책적으로 계속 시도해 공급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현재 서울에서 진행되는 역세권 청년주택 사업은 총 92곳(3만 5459호)에 이른다. 사업시행인가가 완료된 곳이 31곳, 사업시행인가가 진행되는 곳이 40곳, 사업시행인가가 검토되는 곳이 21곳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민간 참여가 활발하지 않았으나 역세권 범위를 확대하고 용도지역 변경 요건 등을 완화하면서 최근에는 신청이 늘어나 2022년까지 8만호 공급을 순조롭게 달성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92곳서 사업 … 2022년까지 8만 가구 공급 공공 임대주택에서는 청년 1인 가구는 6년, 신혼부부는 아이가 있을 경우 최대 10년까지 거주할 수 있다. 민간 임대주택의 거주 기간은 8년이다. 거주 기간이 짧다는 지적도 있다. 이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역세권 청년주택은 장기적으로 정착하는 주거공간 개념이라기보다 청년들이 저렴한 임대료로 역세권에 살면서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자금을 축적하거나 주택 지역으로 들어갈 수 있게 돕는 ‘주거의 사다리’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시는 주거 공간뿐 아니라 도서관, 다용도실, 체력단련실, 창업지원센터 등 청년들이 서로 교류하고 취미, 취업 등 다양한 활동을 구가할 수 있는 커뮤니티시설도 모든 역세권 청년주택에 들여보낼 예정이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수사권조정안, 민주적 원칙 부합”… 문무일 정면 반박한 민갑룡

    “수사권조정안, 민주적 원칙 부합”… 문무일 정면 반박한 민갑룡

    기자간담회서 文총장 주장 조목조목 비판 “패스트트랙 안건, 지정과정서 쟁점도 없어여야 간 의견 수렴… 입법 거의 마무리 수준”민갑룡 경찰청장이 국회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된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이 민주적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문무일 검찰총장의 주장을 정면 반박했다. 민 청장이 문 총장의 발언을 공개적으로 비판한 건 처음이다. 민 청장은 21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수사권 조정 법안은 민주적 원칙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는 “현 정부 들어서 (수사권 조정) 논의를 시작해서 각 기관의 의견을 수렴하고, 총리까지 나서서 법무부·행정안전부 장관과 함께 합의문을 만들었다”며 “정부 합의안에 기초해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가 열렸고, 많은 의견 수렴과 토론 과정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패스트트랙 지정 과정에서도 수사권 조정과 관련해선 쟁점이 거의 없을 정도로 민주적인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쳤다”고 설명했다. 검찰이 주장하는 ‘검찰 패싱’(검찰 의견 묵살하기)은 없었다는 의미다. 수사권 조정 법안 내용이 민주적 원리에 어긋난다는 문 총장의 주장에 대해서도 민 청장은 “민주주의의 실체인 견제, 균형, 권한 배분의 관점에서 논의를 해서 다듬어진 안”이라며 “가장 민주적인 절차를 걸쳐서 민주적 형식에 충실한 내용을 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여야 간 의견이 거의 수렴된 상황이고 조금만 더 가다듬으면 입법을 마무리할 수 있는 정도에 이르렀다”며 “외부 요소에 의해서 지연되면 안 되고 신속하게 입법 절차가 마무리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전날 당정청 협의에서 논의된 정보경찰 개혁에 대해서는 통제 방안의 조속한 입법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검찰은 지난 16일 박근혜 정부 시절 총선에 불법 개입한 혐의를 받는 강신명 전 경찰청장을 구속했다. 민 청장은 “(검찰의 정보경찰에 대한) 수사는 수사로 봐야 한다”며 “수사 결과에 대해 뼈저리게 반성하면서 과오가 재발하지 않도록 필요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정보경찰 활동 범위와 역할을 규정하는 것에 공감한다”며 “정보활동의 개념과 범위를 명확히 하는 방향으로 입법이 마무리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100일 맞은 5·18 역사왜곡처벌농성단

    100일 맞은 5·18 역사왜곡처벌농성단

    5·18 역사왜곡처벌농성단이 21일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전두환 전 대통령 자택 앞에서 플래카드를 들고 농성 100일맞이 집회를 하고 있다. 정연호 기자 tpgod@seoul.co.kr
  • 100일 맞은 5·18 역사왜곡처벌농성단

    100일 맞은 5·18 역사왜곡처벌농성단

    5·18 역사왜곡처벌농성단이 21일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전두환 전 대통령 자택 앞에서 플래카드를 들고 농성 100일맞이 집회를 하고 있다. 정연호 기자 tpgod@seoul.co.kr
  • 이화여대, 유관순 열사 이화학당 시절 사진 2점 최초 공개

    이화여대, 유관순 열사 이화학당 시절 사진 2점 최초 공개

    유관순 열사 이화학당 재학 시절 친구들과 찍힌 모습“앨범 내력, 사진 촬영 시기, 인물 생김새로 볼 때 유관순 확실”24일까지 대중에 사진 공개 3·1 운동 당시 일제에 맞서 만세 시위를 주도한 독립운동가 유관순 열사(1902~1920)의 이화학당 시절 사진 2점이 최초로 공개됐다. 이때까지 알려진 유 열사의 모습 중 가장 앳된 모습이다. 이화여대는 21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이화역사관에서 이때까지 발견되지 않은 유관순 열사의 사진 2점을 선보였다. 이번에 공개된 사진은 유관순 열사가 이화학당에 재학하던 때로 추정된다. 첫 번째 사진은 유관순 열사가 이화학당 보통과에 입학한 직후(1915~1916년), 두 번째 사진은 고등과에 재학하던 시절(1918)로 추정된다. 당시 유 열사의 나이는 15~16세로 알려졌다. 사진 검토 작업에 참여한 정병준 이화여대 교수(사학과)는 “두 사진 모두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사진 속 모습으로 연대를 추측할 수 있다”면서 “앨범의 내력과 사진 촬영 시기, 인물 생김새로 봤을 때 유관순이 확실하다”고 말했다.기존에 공개된 유 열사의 사진은 1920년 서대문형무소에서 찍힌 옥중 사진과 1918년 보통과 졸업 당시 찍은 단체사진 등 3장이 전부다. 정혜중 이화역사관장은 “이번에 발견한 사진들은 현재까지 알려진 유 열사 사진 중 가장 앳된 모습으로 추측된다”고 설명했다. 또 정 관장은 “이화학당은 창립기념일 등 특별한 날에 흰 옷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면서 “이런 점을 미루어볼 때 촬영일은 5월 31일 이화학당 창립기념일이나 다른 특별한 날이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번 사진은 이화여대가 창립 133주년 및 3·1 운동 100주년을 기념한 특별전시 ‘이화의 독립운동가들’을 준비하며 이화역사관에서 소장한 사진첩(‘Ewha in the past’)을 살펴보는 과정에서 발견했다. 총 89권에 달하는 이 사진첩에는 1886년 이화학당 창설 시기부터 1960년대까지의 학교 관련 사진이 정리돼 있다. 1권부터 8권까지는 이화학당 창설 시기부터 1945년 해방 이전 이화여자전문학교 시기의 사진이 있는데, 이 중 유관순 열사의 사진은 1번과 4번 사진첩에서 발견됐다. 유관순 열사는 1915~1916년경 이화학당에 편입해 1918년 이화학당 보통과를 졸업했고, 1918년 4월 고등과 1학년에 진학해 1919년까지 학교를 다녔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만세시위를 주도하다가 일본 헌병대에게 체포됐고, 1920년 9월 28일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 중 영양실조와 고문 후유증으로 순국했다. 이화역사관은 이번에 발견된 사진 원본을 오늘부터 이달 24일까지 4일간 일반에 공개할 예정이다.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 독립투쟁 다룬 첫 영화 ‘자유만세’… 월북배우 편집된 ‘반 토막 필름‘

    독립투쟁 다룬 첫 영화 ‘자유만세’… 월북배우 편집된 ‘반 토막 필름‘

    해방을 맞이한 1945년 8월 15일부터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기까지 5년간은 한국영화사에서 ‘해방기’로 부르는 시기다. 해방기 영화계에서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일제 말기 국책영화사에 소속되어 군국주의 선전영화를 만들던 영화인들과 그 영화사에 소속되지 않고 영화 작업을 쉬었던 영화인들이 다시 조우해 함께 영화를 만든 점이다. ‘조선영화가 계속 만들어질 수 있을까’라는 생존의 문제 앞에 친일부역 문제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해방기 문화예술계의 상위 조직들이 좌우 진영의 논리로 이합집산을 거듭할 때 이에 따른 영화계 조직의 구성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좌익 진영의 주도로 우익까지 아우른 조선문화건설중앙협의회 소속으로 1945년 9월 24일 조선영화건설본부가 설립되었을 때, 그 구성원은 일제 말기 조선영화제작주식회사에 참가했던 영화인들이 대부분이었다. 11월 5일에는 좌익 강경파의 주도로 조선프롤레타리아영화동맹이 설립되었는데, 최고 지도부를 제외하면 역시 이데올로기와 관계없이 참가한 기술 파트 영화인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한 달여 만인 12월 6일 두 조직은 조선영화동맹으로 통합되는데 이 때 지도부 면면만 보더라도 친일부역과 이념 성향을 초월한 인선임을 알 수 있다. 영화 작업의 특성상 인적 관계나 기술적 전문성을 더 중요하게 고려한 결과였다. 어지러운 해방 정국 그리고 1948년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전후한 시기, 최인규의 ‘자유만세’(1946)를 통해 ‘조선영화’가 어떻게 ‘한국영화’로 거듭나게 되었는지 살펴본다. ●미국영화의 범람과 열악한 제작 환경 해방기 영화계 상황은 미국영화의 장악과 조선영화의 위기로 요약된다. 1948년 4월 23일자 서울신문 기사에 의하면 1945년 11월부터 1948년 3월까지 미국 극영화가 422편, 미국의 뉴스영화는 289편이 수입되었는데 그중에서 극영화 400편, 뉴스 250편이 중앙영화배급사(CMPE)의 영화였다. 미국 9대 영화사의 배급 대행을 담당한 중앙영화배급사는 실질적으로 미군이 관장한 단체였다. 1946년 2월 일본에 도쿄사무소를 설립한 것에 이어 4월 조선사무소를 설치하고, 미국영화가 조선 영화시장을 장악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이처럼 미국영화가 극장가를 독식하는 가운데 같은 시기 조선 극영화는 17편이 제작되는 데 그쳤다. 해방 후 첫 극영화로 이규환의 ‘똘똘이의 모험’(1946)이 개봉하고, 최인규의 ‘자유만세’가 상징적인 의미에서 ‘해방영화’로 인정받으며 흥행에 성공했지만, 당시 영화계는 영화 필름을 구하는 것조차 쉽지 않아 극영화 제작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연극 무대에 영화 장면을 덧붙여 공연하는 연쇄극이 다시 만들어지는가 하면 일반적인 상업영화용 필름인 35㎜ 대신 16㎜ 영화가 만들어졌고, 변사를 써야 하는 무성영화가 만들어질 정도로 기술적으로도 퇴보했다. 현재 필름이 보존되어 있는 영화 중에서 16㎜ 무성으로 만들어진 ‘검사와 여선생’(윤대룡·1948), 16㎜ 발성으로 제작된 ‘청춘행로’(장황연·1949)가 대표적인 예다. 미국영화에 비해 상영할 영화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보니,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영화들도 다시 개봉했다. 1946년 2월 서울극장(해방 전 경성극장)에서 일제의 국책영화 ‘군용열차’(서광제·1938)가 ‘낙양의 젊은이’라는 제목으로 재편집 후 상영되어 물의를 빚었고, 3월에는 일제의 검열로 창고에 있던 ‘신개지’(윤봉춘·1942)가 빛을 보았다. 5월 우미관에서는 무성영화 ‘청춘의 십자로’(안종화·1934)가 다시 상영되기도 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앞둔 시점, 영화계는 건국이라는 절대적 과제와 궤를 같이할 수밖에 없었다. 대표적으로 ‘경찰 영화’와 독립운동가들을 내세운 영화를 들 수 있다. 조선해양경비대의 지원을 받은 ‘바다의 정열’(서정규·1947)을 위시로, 경찰 조직의 후원을 받은 ‘수우’(안종화·1948) ‘밤의 태양’(박기채·1948)이 정부 수립 직전 속속 공개되었다. 가장 대중적인 범죄액션 장르를 통해 경찰의 기능과 밀수 근절을 선전하는 영화들이었다. 또한 계몽문화협회를 주축으로 ‘의사 안중근’(이구영·1946), ‘윤봉길 의사’(윤봉춘·1947) 등 일제치하 애국지사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들이 만들어졌다. 이처럼 계몽과 건국을 키워드로 한 극영화의 등장은 새로운 국가·국민 만들기와 맥을 함께하는 것이었다. 물론 괴기물 ‘목단등기’(김소동·1947)처럼 순수한 오락영화도 만들어졌지만, 최은희의 영화배우 데뷔작 ‘새로운 맹서’(신경균·1947)처럼 대중이 좋아하는 멜로드라마 장르를 빌어 건국과 관련된 주제를 담아낸 영화들이 선보였다.●해방기 영화인들이 총출동한 ‘자유만세’ 해방 1주년을 기념해 ‘해방 경축 영화’로 기획된 ‘자유만세’는 일제강점기 조선영화계를 대표하던 영화인들이 모여 의기투합한 프로젝트였다. 전창근(‘복지만리’(1941) 감독)의 각본으로 최인규가 연출을 맡았고, 촬영은 한형모(‘태양의 아이들’(1944)로 촬영기사 데뷔), 조명은 김성춘(‘살수차’(1935)의 조명 기사), 편집은 양주남(‘미몽’(1936)의 감독)이 맡았다. 또한 고려영화주식회사의 배급으로 고려영화협회가 제작을 맡았고 사회사업 단체인 ‘향린원’(‘집 없는 천사’(1941년)의 배경)이 공동제작으로 참가했다. 1930년대 중후반 조선영화계를 대표하던 고려영화사의 인맥이 그대로 이어졌음을 알 수 있다. 단 고려영화사의 대표였던 이창용이 빠지고, 최인규의 형인 최완규가 기획과 제작을 맡았다. 또한 감독 안종화, 안석영, 윤봉춘, 이규환도 ‘연출응원’으로 이름을 올린 것에서 당시 영화계를 대표하던 인물들이 모두 나선 것을 알 수 있다. ‘자유만세’는 어떤 내용으로 해방의 기쁨을 담아냈을까. 영화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일제의 패망이 짙어지던 1945년 8월 어느 날, 독립운동을 하다 친구 남부(일본어 발음으로 나베·독은기)의 배반으로 투옥되었던 최한중(전창근)은 동료(박학)와 함께 탈출을 감행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동료는 사살되고, 그 혼자 탈출에 성공한다. 한중은 대학병원 간호사 혜자(황려희)의 집으로 은신해 지하조직의 무장봉기를 다시 주도한다. 동료 박(김승호)이 다이너마이트를 운반하다 일본 헌병에 붙잡히자 한중은 그를 구출한 후, 우연히 남부의 애인인 미향(유계선)의 아파트로 피신한다. 한중을 숨겨준 미향은 그에 매료되어, 지하조직이 있는 지하실로 찾아가 정보와 자금을 전달한다. 그 뒤를 밟은 헌병대에 의해 미향은 사살되고 한중 역시 총상으로 대학병원으로 옮겨진다. 한중을 사모하던 혜자는 헌병이 잠든 틈을 타 그를 탈출시킨다. ‘자유만세’는 해방 이후 한국영화에서 일제치하의 무장독립운동을 묘사한 첫 번째 작품으로 기록된다. 제목처럼 해방의 감격을 활극·멜로드라마 장르에 잘 녹여내 해방기 극장가에서 최고 흥행 성적을 거두었다. 영화는 1947년까지 계속해서 상영되었고 “조선영화 최초 외국판으로 ‘자유만세’(고영 작품) 중국판이 만들어져 중국으로 수출”되기도 했다(경향신문 1947년 6월 15일자). 흥미로운 대목은 1948년 이후에는 영화의 상영 기록을 찾아볼 수 없는 점이다. 이후 ‘자유만세’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 영화 필름은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한국영화’가 된다는 것의 문제 ‘자유만세’가 다시 공개된 공식적인 기록은 1975년 ‘흘러간 명화 감상회’에서였다(동아일보 1975년 7월 5일자). 영화진흥공사가 8·15 광복 30주년을 기념해 해방 이후 한국영화 12편을 선정하고 상영회를 개최한 것이다. 한편 당시 기사는 1940년대 작품으로 유일하게 ‘자유만세’가 포함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고려영화사 사장 최완규가 프린트 1벌을 지금까지 보관해 온 덕분이라고 설명하며 “월북한 연기자가 출연진에 들어 있어서 그 상영 당시 많은 장면이 가위질을 당했고 현재 남아 있는 프린트는 상영시간으로 50분밖에 되지 않는다”는 흥미로운 내용을 전한다(경향신문 1975년 6월 28일자). 즉 원래 개봉 버전인 100분의 러닝타임이 당시 삭제 검열 등을 거치며 한국영상자료원에 보존 중인 51분 버전과 비슷한 분량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문제가 된 월북 배우는 바로 박학과 독은기였다. 아이러니하게도 현재 보존된 버전에서 두 배우의 모습은 삭제되었지만 둘의 모습을 확인하는 것 역시 가능하다. 먼저 영화의 시작부, 한중(전창근)과 그의 동료(박학)가 서대문 형무소를 탈출하는 장면이다. 박학의 얼굴이 잘 드러나지 않는 빠른 편집으로 구성된 숏들의 경우 그대로 살리고 총에 맞아 죽은 그의 얼굴의 클로즈업은 당시 검열에서 삭제되었다. 이렇게 파악할 수 있는 이유는 현재 필름에는 나중에 촬영한 다른 배우의 얼굴이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헌병대 형사 남부(독은기)의 경우 시나리오상 그가 처음 등장하는 장면에서, 다른 인물의 클로즈업으로 완전히 교체되었다. 그런데 그가 애인 미향(유계선)의 집에서 그녀를 만나고 가는 장면에서는 삭제되지 않은 그의 뒷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새로운 배우들의 모습이 들어간 필름은 과연 언제 만들어졌을까. 현재로서는 구체적인 정황을 파악하기 힘들지만, 현재 보존본의 오프닝 크레디트에 나오는 정보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먼저 영화 처음에 등장하는 해설 자막이다. “29년을 경과하는 동안 6·25사변 등 역사의 격동을 겪으면서도 기적적으로 보존”되었다는 문구에서 이 영화의 재공개를 결정한 1975년 시점을 기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녹음은 특히 전반에 있어서 실패”(경향신문 1946년 10월 24일자)라는 당시 기사 내용에도 불구하고, 현재 보존된 ‘자유만세’ 프린트가 매우 선명한 녹음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도 주목해야 한다. 특히 인물들의 대사 중 시나리오상 자주 등장하는 ‘조선’이라는 말은 전부 ‘한국’으로 바뀐 것에서 새롭게 녹음한 버전임을 확신할 수 있다. 이는 오프닝 크레디트에서 현상, 인화를 ‘한국영화문화협회’에서 담당했다는 정보와 연결해 봐야 한다. 한국영화문화협회는 미국의 민간원조기구인 아시아재단으로부터 기증받은 영화기자재를 관리하기 위해 1956년 7월 설립된 단체인데, 카메라부터 녹음기까지 각 기재들은 1957년 1월 개소한 정릉스튜디오에 설비했다. 즉 다시 녹음한 프린트의 제작은 1957년 이후의 어느 시점에 이루어졌다는 말이 된다.정리하면 ‘자유만세’의 필름은 1948년 시점 검열을 받아 상당한 장면들이 삭제되었고, 1957년부터 1975년 재공개 사이 새로운 장면의 촬영과 편집, 재녹음 등 각 단계를 거쳐 새로운 프린트가 만들어졌다. 현재로서는 각 단계가 한 번에 이루어졌는지 별개로 진행되었는지 구체적인 과정과 시점을 특정하기 힘들지만, 새로운 ‘자유만세’의 프린트 제작이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한국 사회가 ‘한국영화’를 규정하려고 고민하던 시기와 맞닿아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자유만세’는 당국의 검열로 월북 영화인들의 출연 장면이 삭제된 후 다시 편집되고 녹음된 후에야 비로소 ‘한국영화’가 될 수 있었다. 정종화 한국영상자료원 선임연구원
  • “올해 서울 민간아파트 절반이 분양가 9억원 초과…강북으로 확산”

    “올해 서울 민간아파트 절반이 분양가 9억원 초과…강북으로 확산”

    올해 서울에서 분양된 민간 아파트 중 분양가 9억원 이상 아파트가 전체 물량의 절반에 달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20일 부동산정보서비스 직방에 따르면 2015년부터 지난 15일 이전에 공개된 입주자 모집공고 기준으로 서울에 분양된 민간아파트를 분석한 결과, 분양가 9억원 초과인 서울 민간아파트 비율은 2015년 12.9%, 2016년 9.1%, 2017년 10.8%에 2018년 29.2%, 2019년 48.8%로 나타났다. 9억원은 공시가격 기준으로 종합부동산세 과세 대상이 되는 액수다. 지난해 분양가 9억원 초과 아파트의 92.2%는 강남 3구에서 분양됐지만, 올해는 한강 이북 서울의 비율이 45.4%로 큰 폭으로 증가한 것이 특징이다. 한강 이북 서울은 기존 한강과 맞닿아 있는 마포, 용산, 성동, 광진 외에도 서대문과 동대문 등 도심으로 분양가 9억원 초과 분양 사례가 확산하고 있다고 직방은 설명했다. 이에 따라 분양가 구간별로 6억원 초과~8억원 이하 아파트의 비중은 지난해 33.4%에서 올해 4.4%로 급감했고, 분양가 8억원 초과~11억원 이하는 작년 22.3%에서 올해 44.9%로 급증했다. 전용면적 84㎡ 아파트의 분양가격대별 비율은 8억원 이하가 2015~2017년 70~80%를 차지했다가 지난해 45.4%, 올해 17.0%로 지속해서 줄어드는 추세다. 반면 올해 전용 84㎡의 분양가 8억원 초과∼12억원 이하는 72.2%로 비율이 증가했다. 일반 가구의 선호도가 가장 높은 국민주택규모 전용면적 84㎡의 분양가도 8억원 초과가 대세가 된 것이다. 직방은 “매매 가격 상승과 신규 분양 아파트에 대한 수요가 분양가 상승의 일차적 원인”이라면서 “공공에서 직접 분양가를 책정하고 분양에 나서는 방식이 주된 추세여서 서울에서는 분양가를 조정할 수 있는 여지가 많지 않은 것도 분양가 상승의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서울의 경우 재개발·재건축 등의 사업 방식이 아파트 분양에 주를 이루고 있어 고분양가 자제에 조합들의 협조가 쉽지 않은 점도 분양가를 상승시키는 원인”이라고 덧붙였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뮤지컬로 되돌아보는 제주 독립운동가 최정숙의 삶

    뮤지컬로 되돌아보는 제주 독립운동가 최정숙의 삶

    제주 여성 독립운동가 최정숙(1902~1977) 선생의 삶이 뮤지컬로 재조명된다. 천주교 제주교구 3·1운동 100주년 기념위원회는 다음달 3~5일 제주아트센터에서 창작 뮤지컬 ‘최정숙-동 텃져 혼저 글라’(날이 밝았다 어서 가자의 제주어)를 무대에 올린다고 19일 밝혔다. 이번 공연은 최정숙의 어린 시절부터 독립운동, 투옥, 귀향 후까지 일대기를 그린다. 유년 시절, 서울 상경, 3·1운동, 일제에 붙잡힌 최정숙, 귀향 후 이야기 등 전 생애를 아우른다. 최정숙 역은 올해 초 공개 오디션을 통해 선발된 박신영이 맡았다. 연출은 이충훈, 극본은 이은미, 작곡은 윤순이 맡았다. 원작은 현미혜씨의 소설 ‘샛별의 노래’다. 기념위원회는 “교육자, 의사 그리고 독립운동가로서 최정숙의 모습을 통해 인간의 삶은 인간다워야 한다는 교훈과 이웃을 사랑하는 희생정신을 이야기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다음달 26일부터 30일까지 서울 광화문 아트홀에서도 공연할 예정이다. 무료 공연이며 공연 시간은 1시간 30분이다. 제주 출신인 최정숙 선생은 서울 경성관립여자고등보통학교 사범과에 재학 중이던 1919년 79명에 이르는 소녀결사대를 이끌고 시위에 나서다 체포돼 그 해 11월까지 서대문형무소에서 약 8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이후 제주로 돌아와 여성 권리 신장을 위한 ‘제주여자청년회’, 여성 문맹 퇴치를 위한 ‘여수원’ 설립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교육·의술활동에도 매진하며 초대 제주도교육감(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교육감)을 지냈다. 정부는 199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 제주 황경근 기자 kkhwang@seoul.co.kr
  • 정운현 총리 비서실장, 나가미네 야스마사 주한 일본대사와 저녁 식사

    정운현 총리 비서실장, 나가미네 야스마사 주한 일본대사와 저녁 식사

    정운현 총리 비서실장은 최근 나가미네 야스마사 주한 일본 대사에게 지난해말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과와 관련, “신일철주금 등 일본 기업들이 한국측 변호인들을 만나 소통할 것을 권유했다”고 말했다. 앞서 한국 변호인들은 강제징용 손해배상 판결 이행을 촉구하기 위해 도쿄의 신일철주금 사옥을 방문했으나 문전박대를 당했다. 정 실장은 지난 16일 SNS에 올린 글에서 전날인 15일 서울 성북동에 위치한 주한 일본대사 관저에서 나가미네 야스마사 대사와 만나 저녁 식사를 함께 한 사실을 공개하면서 이 같이 밝혔다. 이 자리에는 우리 측에서 5명, 일본 측에서 3명, 양측 통역 각 1명 등 모두 10명이 참석했다. 정 실장은 SNS에서 “이번 회동은 내가 지난 달 나가미네 대사 일행에게 인사동에서 저녁 식사를 대접하고, 며칠 뒤 서대문 안산을 같이 산행한데 대한 나가미네 대사의 답례차 초청 모임이었다”고 했다. 지난해 10월 말 대법원의 한국인 강제징용 배상 판결 이후 한일관계가 역대 최악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가운데 양국 정부간의 공식적인 만남은 아니라도 두 사람 간의 이런 ‘물밑 소통’이 얼어붙은 한일 관계 회복을 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정 실장은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 이후 한일 양국은 불편한 관계이지만 관계 정상화를 희망한다면 어떠한 형태로든 대화가 지속돼야 한다”며 “이날 모임은 비록 사적모임이지만 그런 노력의 일환이며 오래지 않아서 양국이 90년대 ‘김대중·오부치 시절’을 회복해 서로에게 좋은 이웃이 되길 바란다”고 적었다. 그는 이어 “기본적으로 서로는 자국의 이익을 염두에 두고 만나지만 서로 마음을 열고 대화하다 보면 서로에게 득이 되는 길을 찾아낼 수도 있다”며 “난제일수록 서로 만나 얼굴을 보면서 풀어야 하는 법”이라고 말했다. 최광숙 선임기자 bori@seoul.co.kr
  • 정운현 총리 비서실장, 나가미네 야스마사 주한 일본대사와 저녁 식사

    정운현 총리 비서실장은 최근 나가미네 야스마사 주한 일본 대사에게 지난해말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과와 관련, “신일철주금 등 일본 기업들이 한국측 변호인들을 만나 소통할 것을 권유했다”고 말했다. 앞서 한국 변호인들은 강제징용 손해배상 판결 이행을 촉구하기 위해 도쿄의 신일철주금 사옥을 방문했으나 문전박대를 당했다. 정 실장은 지난 16일 SNS에 올린 글에서 전날인 15일 서울 성북동에 위치한 주한 일본대사 관저에서 나가미네 야스마사 대사와 만나 저녁 식사를 함께 한 사실을 공개하면서 이 같이 밝혔다. 이 자리에는 우리 측에서 5명, 일본 측에서 3명, 양측 통역 각 1명 등 모두 10명이 참석했다. 정 실장은 SNS에서 “이번 회동은 내가 지난 달 나가미네 대사 일행에게 인사동에서 저녁 식사를 대접하고, 며칠 뒤 서대문 안산을 같이 산행한데 대한 나가미네 대사의 답례차 초청 모임이었다”고 했다. 지난해 10월 말 대법원의 한국인 강제징용 배상 판결 이후 한일관계가 역대 최악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가운데 양국 정부간의 공식적인 만남은 아니라도 두 사람 간의 이런 ‘물밑 소통’이 얼어붙은 한일 관계 회복을 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정 실장은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 이후 한일 양국은 불편한 관계이지만 관계 정상화를 희망한다면 어떠한 형태로든 대화가 지속돼야 한다”며 “이날 모임은 비록 사적모임이지만 그런 노력의 일환이며 오래지 않아서 양국이 90년대 ‘김대중·오부치 시절’을 회복해 서로에게 좋은 이웃이 되길 바란다”고 적었다. 그는 이어 “기본적으로 서로는 자국의 이익을 염두에 두고 만나지만 서로 마음을 열고 대화하다 보면 서로에게 득이 되는 길을 찾아낼 수도 있다”며 “난제일수록 서로 만나 얼굴을 보면서 풀어야 하는 법”이라고 말했다. 최광숙 선임기자 bori@seoul.co.kr
  • 송아량 서울시의원, 한일 청년들과 간담회…‘교류의 닻 올랐다’

    송아량 서울시의원, 한일 청년들과 간담회…‘교류의 닻 올랐다’

    서울특별시의회 송아량 의원(더불어민주당, 도봉4)은 지난 15일 의원회관에서 ‘마쓰시타 정경숙(松下政經塾)’ 제39기생들과 ‘새로운 시대를 여는 청년세대의 국제연대’ 주제로 간담회를 가졌다. ‘마쓰시타 정경숙(松下政經塾)’은 파나소닉 창업자인 마쓰시타 고노스케(松下幸之助)가 일본을 이끌 리더를 육성하기 위해 1979년 사비 70억 엔을 투자하여 설립한 정치가양성기관이다. ‘마쓰시타 정경숙’ 제39기생들은 청년정책 발전을 위한 인적교류와 상호협력 일환으로 서울시의회를 방문했다. 이동현 청년특별위원회 위원장(더불어민주당, 성동1)과 이승미 의원(더불어민주당, 서대문구3)이 참석해 ‘마쓰시타 정경숙’ 제39기생들을 환영했다. 이날 간담회는 4차산업혁명 시대를 이끌어가는 선진화된 청년정책 구현과 스마트농업 육성 정책 마련 등 한국과 일본 청년들의 협력과제와 전망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이뤄졌다. 송 의원은 “한일청년 간 교류를 통해 정책 등을 서로 벤치마킹하는 것이 역량 강화의 한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면서 “더불어 잘 사는 지속가능한 사회의 발전을 위해 국제사회 연대협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송 의원은 “이번 방문을 시작으로 한일 청년들의 지속적인 관계 발전이 이뤄져 교류의 기회가 더 많아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3000여개 봉제공장, 그 골목길엔 과거·현재가 살아 숨쉬다

    3000여개 봉제공장, 그 골목길엔 과거·현재가 살아 숨쉬다

    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9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3회 창신동의 재발견’ 편이 지난 11일 창신 1·2·3동에서 진행됐다. 지하철 동대문역 7번 출구 앞에 모인 참가자 40여명은 민주화운동유가족협의회 회원들이 생활공동체를 이뤄 살아가는 ‘한울타리의 삶’ 한울삶에서 투어를 시작했다.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창신동 봉제거리 박물관’ 골목길을 따라 올라간 뒤 이움피움 봉제역사관에서 ‘봉제의 모든 것’을 관람했다. 가수 김광석이 1975년부터 1990년까지 살았던 집에는 부친 김수영씨의 국가유공자 명패와 김광석의 창신동 시절을 기리는 바닥 동판이 붙어 있었다. 이토 히로부미의 수양딸 ‘요화’ 배정자의 이름이 새겨진 거대한 비석이 남아 있는 대한불교 원효종 총본산 안양암~세계적인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을 기억하는 집~1956년에 지어진 석조 고딕양식의 전형 동신교회~순댓국집으로 변한 화가 박수근의 화실 겸 집터~한때 ‘연예인아파트’로 주가를 올렸던 동대문아파트를 2시간 30분 동안 돌았다. 어린 시절을 창신동에서 보낸 고교 역사교사 출신 엄태호 해설사가 창신동 설화를 깊고 차분하게 들려줬다.동대문이 곧 창신동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동대문은 동대문 안쪽 마을이 아니라 동대문 밖 마을을 일컫는다. 길 이름도 동대문 안은 종로고, 문밖은 왕산로다. 조선시대 동대문 밖은 길 이름이 존재하지 않았다. 서울에는 광화문 앞 육조거리와 새문안(서대문)에서 동대문까지 이어지는 운종가(종로)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종로의 시전, 서소문 밖 칠패시장과 함께 서울의 3대 시장인 배오개(이현)시장과 이 전통을 이은 광장시장도 성 안에 있었다. 현재의 동대문시장은 동대문 바깥 창신동을 주 무대로 한 신흥 시장이다. 본래 동대문 밖 10리(성저십리)는 서울을 지키는 훈련도감 소속 하급 군인과 가족의 거주지였기에 이들이 재배하는 야채류가 상거래의 중심 물품이었다. 1905년 설립된 광장시장이 최고의 포목상가로 발돋움하면서 이를 뒷받침하는 창신동 지역의 공간과 취급품목의 변화를 가져왔다.창신동은 도성의 동쪽에서 도성 안으로 진입하는 문밖 동네였다. 성저(城底)란 성 밖 10리에 이르는 지역이지만 경기도가 아니라 서울의 행정구역 안에 포함되는 특수한 행정구역을 이른다. 서울의 좌청룡(左靑龍) 낙산을 따라 형성된 유서 깊은 동네다. 도성~강원도~함경도를 오가는 길목이어서 고려시대 서울이 남경(南京)일 때부터 번성했다. 창신동은 조선시대 인창방의 ‘창’자와 숭신방의 ‘신’자를 따 1914년 일제강점기 때 급조된 지명이다. 이웃 숭인동 또한 숭신방의 ‘숭’자와 인창방의 ‘인’자를 따서 만들었다. 창신동은 인창방이고, 숭인동은 숭신방인데 교묘하게 순서만 바꿔치기했을 뿐이다. 민족정기를 훼손시키려고 장난질을 했지만 지명의 원상회복은 요원하다. 행정구역상 동대문구 창신동이었다가 1975년 종로구에 편입됐다. 낙산 아래에는 종로구 이화동과 동숭동, 성북구 보문동과 삼선동, 동대문구 신설동 등 3개 구청 관할지역이 맞물려 있다.창신동은 예로부터 ‘돌산’ 낙산의 기운과 아름다운 풍광을 즐기려 찾아든 권세가의 별서가 들어선 한가로운 지역이었다. 창신초등학교 남쪽 창신1동 82번지쯤에는 동지(東池)라고 불린 사대문 밖 4개 연못 중 하나가 있어서 정자동이라고 불렸다. 사색붕당이 각축하던 시절 동지의 연꽃이 많이 피면 동인이 득세하고, 천연동 서지 연꽃이 많이 피면 서인이 득세한다고 해 양당이 서로 연꽃을 뭉개거나 연못을 메우던 시절도 있었다. 창신1동 128 창신초등학교는 불교계가 도심포교를 위해 지은 원흥사의 옛 터다. 조계사로 옮겨가기 전까지 조선불교의 총본산이었다. 지하철 6호선 창신역 부근에 있던 청룡정은 한량들의 활터였다. 창신동 202번지에는 실학자 이수광이 ‘비를 피하면서 청렴하게 살고자’한 비우당이 있다. 창신3동 7번지에는 단종비 정순왕후의 일화가 깃든 자지동천 우물이 있어서 이웃 숭인동의 동망봉, 정업사지, 여인시장과 어울려 순애보를 이루고 있다. 창신2동 옛 궁골 어림은 봉숭아와 앵두 등 붉은 열매를 맺는 나무가 많아서 홍숫골 또는 홍수동(紅樹洞)이라고 불렸다.낙산 전체가 거대한 화강암 덩어리여서 무속신앙의 대상이 됐다. 창신3동 서일국제경영고등학교 근방 당고개(당현) 바로 위 큰 바위에는 마을의 수호신 낙산신령을 모시는 도당(都堂)이 있었다. 조선 말 점술가 200여호가 마을을 이루고 있었으나 총독부건물 신축용 돌을 떼어가는 바람에 미아리고개로 옮겨 갔다고 한다. 창신동은 2개 사립대학교와 최초의 민간 여학교 창립의 터이기도 했다. 창신초등학교가 있는 원흥사지에는 동국대의 전신 명진학교가 처음 자리잡았고, 1932년 중앙보육학교를 인수한 중앙대 설립자 임영신이 창신동에서 학교를 키웠다. 이후 1938년 흑석동에 교사를 신축해 중앙대로 발전시켰다. 창신1동 225번지 현재의 종로구민회관 일대는 1933년 설립된 최초의 민간 설립 여학교 동덕여중고가 방배동으로 이전하기 전까지 교사였다. 1898년 개설된 서대문~종로~동대문~청량리 간 전차가 창신동을 지나가면서 노동자와 도시빈민들이 틈입했다. 한국전쟁 이후 피란민, 귀국동포, 사대문 안 철거민까지 몰리면서 도심 인접 달동네로 변모했다. 일제강점기 성벽 아래 토막촌이 해방 이후 판잣집과 도시형 한옥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1916년부터 8년 동안 낙산 돌산에서 조선총독부와 경성부청(서울시청) 신축용 석재 채취가 본격화되면서 창신동은 피폐해졌다. 채석장 낙석사고가 빈번했고, 강도와 살인 사건은 물론 화재가 자주 발생해 치안위험지대의 오명을 뒤집어썼다.어쩌다가 창신동에 ‘봉제 DNA’가 깃들게 됐을까. 1958년부터 청계천 상류가 복개되면서 1961년 평화시장이 설립된 게 결정타였다. 동대문의류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주거지대화한 것이다. 1970년대 이후에는 평화시장 일대 의류생산 공장들이 대거 창신동으로 이전하면서 동대문 의류산업의 배후지대가 형성됐다. 공장과 주거지, 소비시장이 삼위일체를 이루는 특이한 공간이 자리잡은 것이다. 무허가 판잣집이 도시형 한옥으로 바뀌고, 채석장 자리에 창신시영아파트 3동이 세워졌다. 1964년부터 1969년 사이에 동대문스케이트장과 동대문아파트, 동대문상가아파트, 낙산시민아파트가 차례로 건립되면서 면모를 일신했다. 1971년 동대문종합시장, 동화시장이 설립되고 시외버스터미널이 들어서면서 봉제노동력이 주거지로 쏟아지고, 주거지 내 봉제공장이 확산됐으며 창신동에 봉제인력시장이 생긴 것도 역할을 했다. 이처럼 창신동은 1960~70년대 서울의 도시산업화 과정에서 봉제공장 지대화했다. 동양 최대 규모의 패션산업이 동대문 일대에 불야성을 이루고 있지만 배후지대인 창신동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그러나 동대문을 밝히는 보석은 골목골목에 숨어 있다. 동대문시장의 원단이 오토바이에 실려 창신동에 도착하면 옷의 본을 만드는 패턴작업장에서 재단·재봉을 거쳐 안감·주머니·단추를 다는 ‘마도메’, 다림질·포장 등 완성과정의 ‘시아게’를 마치면 옷이 완성된다. 3000여개의 작은 공장들이 마치 살아 있는 유기체인 양 움직인다. 의류의 기획과 생산, 유통과 판매가 원스톱으로 맞물려 돌아가면서 최신 유행의 옷 한 벌이 하루 안에 뚝딱 탄생하는 마법이 일어나는 것이다. 완제품은 오토바이를 타고 의류쇼핑의 메카 동대문시장으로 옮겨져 전 세계로 팔려나간다. 이 옷에는 ‘메이드 인 창신동’이라는 상표가 붙어 있지 않다. 우리는 이 옷의 고향이 창신동이라는 사실을 모른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장 사진 김학영 연구위원
  • 창업 새싹들 가좌로 가자

    경의중앙선 가좌역이 창업 새싹을 키우는 인큐베이터가 된다. 서울 서대문구는 15일 사회적경제마을자치센터에서 한국철도공사와 협약식을 열고 역사 유휴공간을 활용해 ‘소셜벤처 육성 공간’을 마련한다고 밝혔다. 협약에 따라 철도공사는 가좌역사 내 186㎡의 공간을 제공한다. 서대문구는 다음달까지 리모델링을 거쳐 이곳을 6~10개 소셜벤처기업 직원 40여명이 일할 수 있는 규모의 사무공간으로 꾸미고, 7월 입주를 완료한 뒤 개소식을 갖는다. 다음달 중 입주기업 모집 공고에 들어간다. 재무 건전성, 지역사회 기여도, 사회적경제 가치 실현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따져 선정한다. 앞서 서대문구는 2017년 3월 사회적경제마을자치센터를 세워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과 더불어 소셜벤처기업 60여곳에 주변 시세의 10분의1 수준 임대료로 창업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벤처기업 수요가 몰리면서 추가 공간을 모색해 왔다는 설명이다. 문석진 구청장은 “철도공사 결정으로 신규 사업을 추진할 때 가장 걸림돌인 공간 확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면서 “지역경제와 청년 일자리 창출에 기여할 수 있도록 공간 조성과 운영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김희리 기자 hitit@seoul.co.kr
  • “층간소음 해결 안 해줘” 70대 경비원 폭행해 숨지게 한 40대 징역 18년

    “층간소음 해결 안 해줘” 70대 경비원 폭행해 숨지게 한 40대 징역 18년

    법원 “범행 당시 사망 가능성 인지”“우발적 행위 인정하나 심신미약으로 볼 수 없고 피해 회복 안 돼” 술에 취해 고령의 아파트 경비원을 무차별 폭행해 사망하게 한 40대 남성에게 법원이 징역 18년의 중형을 선고했다.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1부(부장 조병구)는 15일 살인 혐의로 기소된 최모(46)씨에게 “사회적 약자라고 할 수 있는 70대 고령의 경비원을 무참히 폭행해 결국 생명을 빼앗은 죄는 절대 가볍지 않다”면서 징역 18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잔인한 수법과 피해자와의 체격 차이, 피해자 외상 부위와 정도, 범행 직후의 현장 등을 볼 때 피해자가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느꼈을 것으로 보인다”면서 “피해자가 많은 피를 흘리고 쓰러진 것을 알면서도 피고인은 경찰에 신고하거나 구호 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범행 현장을 떠났고, 이 때문에 결국 피해자가 사망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또 “피고인은 재판 과정에서 폭행한 것은 맞지만 살해할 의도가 없었다고 주장하지만, 살인의 고의는 반드시 살해 목적과 계획이 있어야 인정되는 게 아니라 자신의 행위 때문에 사망 결과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음을 예견하면 충분하다”면서 “피고인은 자신의 반복된 가격 행위로 피해자가 사망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범행 당시 장면이 찍힌 폐쇄회로(CC)TV를 보면 피고인이 비틀거리는 등 술에 취한 점은 인정되지만, 무엇보다 존엄한 생명을 침해한 살인죄는 이유를 불문하고 절대 용인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만, 재판부는 “피고인이 평소 사회적 약자인 경비원에게 ‘갑질’을 일삼으며 계획적으로 살인하려 했다고 보이진 않는다”고 봤다. 최씨는 지난해 10월 29일 오전 1시 45분쯤 술을 마신 뒤 자신이 거주하던 서대문구의 한 아파트 경비실로 찾아가 근무 중이던 경비원 A씨(72)를 마구잡이로 걷어차 뇌사에 빠뜨리고 나서 사망하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최씨에게 폭행당한 A씨는 가까스로 경찰에 신고하고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의식을 잃고 쓰러진 뒤 끝내 숨졌다. 최씨는 경찰 조사에서 “경비원이 층간소음을 제대로 해결해주지 않아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가, 재판에 넘겨진 후 “술에 취해 우발적으로 범행했을 뿐 피해자에게 악감정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지난달 24일 열린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선량하고 평범한 사람의 일상을 보호하는 것은 국가의 기본 책무이고, 생명권은 최후의 기본권”이라면서 최씨에 대해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이날 선고 직후 피해자 아들은 서울신문과 만나 “70대 고령에 경비원이라는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한 범죄에 희생된 아버지는 다시 돌아올 수 없는데, 대한민국 법은 살아있는 피고인의 사정을 고려한 것 같아 아쉬운 점이 있고 항소 여부는 생각 중”이라면서 “아직도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하는 비슷한 범죄가 자주 일어나는 것을 보면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낀다”고 말했다.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