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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왕산家의 독립운동사] (3) 허위·허겸의 죽음

    일제 헌병에게 체포당한 왕산 허위는 서울 서대문형무소로 압송돼 의병탄압 최고 지휘자이던 헌병사령관 아카시 겐지로에게 신문을 받았다. 의병을 일으킨 목적을 설명하는 왕산의 목소리는 당당했다.“일본이 한국의 보호를 부르짖는 것은 입뿐이요, 실상은 한국을 멸할 흑심을 가졌다. 우리들이 보고만 있을 수 없어, 사마귀가 수레바퀴를 멈추려 하듯 힘에 벅찬 의병을 일으킨 것이다.” 왕산은 또 일본 수사관이 의병활동에 앞장 선 자와 대장이 누구인지 추궁하자 “앞장선 자는 이토 히로부미고 대장은 나다.”라고 말한다. 이토 히로부미를 지목한 연유에 대해 왕산은 “이토 히로부미가 우리나라를 뒤엎지 않았더라면 의병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즉 앞장 선 자가 이토 히로부미가 아니고 누구인가.”라고 대답했다. 아카시는 왕산의 인품과 충성심에 감복해 왕산을 국사로 대우했다. 이토 히로부미에게 왕산의 목숨을 살려 달라고 청했지만, 허락이 나지 않았다. 결국 1908년 9월18일 왕산에 대해 사형이 선고됐고,10월21일 왕산은 교수형을 당했다. 서대문 형무소가 지어지고 최초의 사형 집행이었다. 형이 집행되기 전에 왜승이 명복을 빌기 위해 불경을 읽으려고 하자, 왕산은 “충의의 귀신은 스스로 마땅히 하늘로 올라갈 것이다. 혹 지옥에 떨어진다고 해도 어찌 너희들의 도움을 받아 복을 얻겠는가.”라며 물리쳤다. 제자 박상진이 왕산의 시신을 수습해 뒷날 고향 선산인 구미 선영아래에 모셨다. 왕산이 숨진 뒤 왕산가는 탄압하는 일제를 피해 야반도주하듯 고향인 구미를 떠나 만주로 건너가 유랑생활을 했다. 왕산과 함께 의병활동을 했던 형 성산 허겸은 1912년 이상룡 등이 독립운동기지 건설을 위해 만주에 조직한 자치기관인 부민단에서 10여년간 일했다. 부민단은 동포들의 자활과 교육사업에 중점을 두고 활동했으며, 성산은 남북만주와 노령을 무대로 활동하며 국내에 잠입했다 붙잡혀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성산은 출옥해 86세에 다시 만주로 가,1940년 90세를 일기로 주하현 하동에서 서거할 때까지 광복운동에 헌신했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동네 박물관서 여름방학 알차게!

    동네 박물관서 여름방학 알차게!

    여름방학을 맞아 우리 동네 박물관이 인기를 얻고 있다. 역사, 금융, 군사, 종교, 자연사 등 다양한 분야의 생생한 지식을 체험할 수 있다. 원시시대부터 근대까지, 시대별 역사와 생활사를 배우고 싶다면 선사주거지,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서울시립대학교 중앙박물관을 찾아가 보자. 신석기 빗살무늬 토기 등 신석기 유물과 일제치하의 지하 감옥 등을 보며 역사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다. 송파구 올림픽 공원에 자리한 몽촌역사관에서는 백제시대의 유물과 유적을, 궁중유물전시관에는 조선시대 궁중 유물을 볼 수 있다. 역사적 인물을 탐구하고 싶다면 세종대왕기념관과 허준박물관, 안창호기념관이 제격이다. 인물의 유물과 유적을 전시하고, 체험공간을 마련해 역사적 인물을 한결 가깝게 느낄 수 있다. 평소에 접하기 힘든 자료를 모아놓은 이색 박물관도 인기다. 화폐금융박물관에서는 각종 화폐와 관련 자료가, 육군박물관에서는 군사 유물이, 한국잡지박물관에는 각종 잡지가, 코리아나화장박물관에는 화장 관련 유물 5000여 점이 각각 관람객을 기다린다. 종이 미술박물관에서는 종이 접기나 종기 공예로 만든 작품을, 옹기박물관은 민속생활용품을, 국내 유일의 성서박물관인 평강성서유물박물관에서는 고대 이집트와 오리엔트 유물 2000여 점을 전시하고 있다. 박물관 관람시간은 오전 10시∼오후5시이며, 관람료는 대부분 무료이다. 월요일과 공휴일은 휴관하는 곳이 많아 방문 전에 확인해야 한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이길로 가면…여름잊고 심신 살찌우고

    이길로 가면…여름잊고 심신 살찌우고

    서울 근교 산으로 숲속여행을 떠나보자. 싱그러운 나무 향기에 취해 야생화와 곤충, 새들을 관찰하다 보면 아이들은 금세 숲속을 탐험하는 재미에 빠져든다. 서울시와 각 자치구는 매주 일요일에 자연탐방 프로그램 ‘숲속 여행’을 서울 근교 산 17곳에서 운영한다. 탐방코스에는 전문 숲 해설가가 동행한다. 코스가 완만해 가족 나들이에 제격이다. 참가비는 없지만 인기가 많아 인터넷 예약(san.seoul.go.kr)을 서둘러야 한다. 지난주 강남지역의 산에 이어 이번 주에는 앵봉산, 안산, 인왕산, 남산, 개운산, 오패산, 초안산, 아차산, 봉화산, 수락산 등 강북지역 10곳을 소개한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앵봉산 꾀꼬리가 많아 앵봉(鶯峯)이란 이름을 얻었다. 해발 230m로 높지 않지만 정상 인근은 경사가 급한 편이다. 온대림 숲의 마지막 천이단계에서 나타나는 서어나무를 비롯한 100여종의 수종과 각종 초본류, 지의류, 버섯 같은 균류가 살고 있다. 다양한 식물 덕에 곤충과 조류, 다람쥐, 청설모 등 야생동물이 터전을 잡았다. 특히 천연기념물 제323호인 황조롱과 맹금류인 말똥가리도 관찰되고 있다. ●탐방코스 3호선 구파발역 4번출구에서 만나 출발한다.7단계로 나뉘어 국수나무, 도토리, 아까시나무, 진달래, 소나무, 팥배나무, 서어나무 등 다양한 수종을 만난다. 정상에 자리한 서어나무 군락지에는 서울에서 보기 힘든 서어나무와 작살나무, 담쟁이덩굴, 물갬나무, 다릅나무 등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코스는 총 연장 2㎞로 3시간 정도 걸린다. 둘째·넷째주 일요일 오전 10시∼오후 1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주변 볼거리 서오릉은 사적 제198호로 경기도 고양시 용두동에 있다. 창릉 익릉 명릉 홍릉으로 구성돼 있는데 구리시의 공구릉 다음가는 조선왕실의 왕릉이다. 주변에는 먹을거리도 풍부하다. 통일로변에 위치한 구파발 인공폭포는 통일로의 이정표로 상징적인 공간이라 유명하다. ●가는길 지하철 3호선 구파발역에서 내려 4번출구로 나오면 집결지가 보인다. 버스는 7023,7723,7724,7731∼5,9703,9709,9710∼2번 등이 오간다. 탐방신청 및 문의는 강동구청 공원녹지과(350-1395). ■ 안산 무악(毋岳)이라고도 부른다. 산의 모양이 말안장, 즉 길마와 비슷하게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동쪽에 있는 현저동에서 홍제동을 넘는 고개를 길마재, 즉 안현이라고 했다. 안산은 인왕산에서 서쪽으로 비스듬히 뻗어 무악재를 이루고 솟은 산이다. 해발 295.9m. 조선왕조가 도읍을 한양으로 옮기면서 무악은 궁궐의 주산으로 주목받았다. ●탐방코스 서대문구청에서 출발한 탐방팀은 연흥약수터에서 안산의 역사와 문화를 소개받는다. 조선시대 기록인 ‘용재총화’에는 무악재 주변에 밤나무와 소나무가 무성했다고 하나 지금은 찾아보기 힘들다. 대신 1960년대에 난립한 무허가 집을 철거하고,1970년대부터 인공 수림을 조성하여 지금은 메타세쿼이어, 왕벚나무, 산수유, 모감주나무, 소나무, 당단풍나무, 잣나무 등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자연림으로 보존된 북쪽 비탈에는 진달래, 물오리나무, 노린재나무, 산초나무, 산벚나무 등이 드문드문 자리잡았다. 꿩, 메추라기, 박새, 딱따구리 등도 자주 눈에 띈다. 코스는 총 연장 2㎞로 3시간 정도 걸린다. 둘째 넷째 일요일에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주변 볼거리 안산 정상의 무악봉수대(서울시 기념물 제 13호)는 평안도와 황해도의 육로 봉화를 남산봉수대로 최종 보고하던 곳이다. 연희동에 있는 서대문자연사박물관은 2003년 7월에 개원했다.1층은 인간과 자연관,2층은 생명진화관,3층은 지구환경관으로 구성돼 있다. 서대문형무소도 독특한 볼거리다.1908년 경성감옥으로 문을 연 이후 우리의 항일 독립투사들이 옥고를 치른 곳이다. ●가는 길 지하철 3호선 홍제역 3번출구에서 7713,7738,7739번 버스를 타고 서대문구청 앞에 도착. 탐방신청 및 문의는 서대문구청 공원녹지과(330-1395) ■ 인왕산 해발 338.2m. 화강암으로 이뤄져 암반이 유난히 노출된 것이 특징이다. 북악산이나 남산보다 산세가 웅장하고 풍치가 아름답다. 광복 전까지만 해도 서울의 외곽을 둘러싸고 있던 산이었는데, 서울이 팽창하면서 중심부로 들어왔다. 인왕산에는 실제 사물과 닮은 기묘한 괴석들이 많다. 둥근 모자 모양의 모자바위, 돼지가 코를 들고 있는 듯한 돼지 바위 등이 유명하다. 산을 오르며 바위를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탐방코스 사직공원에서 출발해 단군성전, 황학정, 쉼터, 약수터를 돌아온다. 바위산이라 중턱 이상에는 수목이 별로 없지만, 산등성이에는 때죽나무, 국수나무, 팥배나무, 소나무 등이 오밀조밀 들어차 있다. 쉼터에 앉아 각종 나무의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고, 야생 조수와 계곡생태계 등을 배운다. 코스는 총연장 2㎞로 2시간 정도 걸린다. 둘째 넷째주 일요일에 운영한다. ●주변 볼거리 국사당(서울시 중요민속자료 제28호)은 서울을 수호하는 신당으로 무학동 인왕산 기슭에 있다. 원래는 남산 정상에 있다가 1925년 현 위치로 이전됐다. 일본인들이 남산 기슭에 신사인 조선신궁을 지으면서 더 높은 곳에 국사당이 있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겨 이전을 강요당했다. 선바위(서울시 중요민속자료 제4호)는 인왕산 서쪽 기슭에 있는 두 개의 거석이다. 마치 중이 장삼을 입고 서 있는 것 같다고 ‘선(禪)’자를 따서 선바위라 불렀다고 한다. 조선 태조와 무학대사의 상이라거나, 이성계 부부의 상이라는 전설이 있다. 자식 없는 사람이 바위에 빌면 효험이 있다고 전해진다. ●가는 길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1번 출구에서 내려 사직공원까지 도보로 5분 걸린다. 탐방신청 및 문의는 종로구청 공원녹지관(731-1459). ■ 남산 해발 265m로 서울의 중심부에 자리한 서울의 상징이다. 본래 이름은 인경산이었으나 조선왕조 태조가 1394년 도읍지를 개성에서 서울로 옮긴 뒤 궁궐 남쪽에 있다고 해 자연스럽게 남산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풍수지리상 남주작, 안산에 해당하는 중요한 산으로 태조는 나라의 평안을 비는 제사를 지내기 위해서 지금의 팔각정 자리에 국사당을 세웠다. 서울시가 1991년부터 ‘남산 제모습 가꾸기’사업을 실시하여 훼손된 시설물을 철거한 후 야외식물원, 한옥마을 등을 조성했다. ●탐방코스 남산전시관에서 출발하는 탐방코스는 볼거리가 풍성하다. 양생화단지, 팔도소나무림, 야외식물원, 숲속길, 서울성곽, 봉수대 등 숲속여행의 총 결정판이라 부를 만한다. 애국가 2절에 나오는 것처럼 ‘철갑을 두른 듯’ 소나무가 울창했던 곳이지만, 일제 시대와 광복 이후 크게 훼손돼 지금은 아까시나무와 신갈나무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다행히도 소나무 탐방로가 있어 아쉬움을 달랜다. 코스는 총 연장 4㎞로 3시간 정도 걸린다. 첫째 셋째 일요일, 둘째 넷째 토요일에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주변 볼거리 1975년에 설치된 서울 N타워(옛 남산타워)는 방송송신탑이다. 최근 리모델링을 끝내 휴식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안중근 의사의 유품과 유물이 전시된 안중근의사기념관(771-4195)과 명성황후 시해사건을 몸으로 막은 충신들을 기리는 장충단비가 놓인 장충공원도 구경할 만하다. 남산골 한옥마을에는 물이 흐르는 골짜기에 정자를 짓고, 전통한옥 5채를 옮겨 놓아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다. ●가는길 지하철 2호선 시청역, 지하철 3호선 동대입구역,4호선 서울역·회현역에서 15분 걸어가면 전시관 뒤편 맨발보드 앞에 야외식물원이 나온다. 이곳이 집결지다. 탐방신청 및 문의는 남산공원관리사무소(753-7060∼2). ■ 개운산 ‘나라의 운명을 새롭게 열었다.’는 뜻을 담은 개운사라는 절이 있는 곳이어서 개운산이라고 부른다. 동쪽으로는 정릉천과 월곡산이, 서쪽으로는 성북천과 북악산이 뻗어 있다. 두 물줄기는 용두동에서 만나 청계천에 합류한다. 성북구 중심에 위치한 자연산지형 공원이어서 쾌적한 주거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 ●탐방코스 “대화 없이 힘들게 하는 산행은 어린 두 딸에게 무리지만, 숲 해설가 선생님과 더불어 자세한 설명을 들으며 산책을 하듯 탐방을 마쳤습니다. 집에서 가까워 탐방 후에는 개운산을 둘러보며 휴일 오후를 보냈습니다.” 개운산을 다녀온 정옥씨 가족이 홈페이지에 남긴 글이다. 도심에 있어 수목이 울창하지 않지만, 산책로와 자연생태학습장이 잘 조성돼 있어 가족나들이에 제격이다. 때죽나무, 산딸나무, 국수나무 등 수목과 복수초, 비비추, 옥잠화 등 초화류를 자연학습장에 심어 놓았다. 산책로 주변에는 활엽수림과 침엽수림이 자리하고, 민들레, 제비꽃, 복수초 등이 자란다. 코스는 총 연장 1.5㎞로 약 3시간 소요된다. 첫째, 셋째 일요일에 탐방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주변 볼거리 서울성곽(사적 제10호)은 서울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조선시대 석축 성곽. 높이 40척(12m)의 돌로 쌓았고 둘레가 5만 9500척으로 서울 장안을 지키던 울타리다. 돌 틈에 노송이 뿌리를 내리고, 이끼와 넝쿨이 뒤덮여 있어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있다. 성락원(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378호)은 조선 말 철종 때 이조판서 심상응의 별장이던 것을 의친왕 이강이 별궁으로 사용하다가 그의 아들 이건이 살았다고 한다.6만여 평의 저택에는 소나무·참나무·다래나무·등나무 등 우리 고유의 조경수가 연못가와 산비탈에 우거져 있고 암벽과 폭포, 수석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가는 길 지하철 4호선 길음역 2번출구에서 도보로 5분 걸으면 집결지인 개운초등학교를 만난다. 탐방신청 및 문의는 성북구청 공원녹지과 920-3395∼7. ■ 초안산 도봉구 창동, 노원구 월계동에 자리한다. 해발 114.1m로 아담하다. 이곳에는 1000여기에 달하는 조선시대 무덤이 밀집해 있다. 흔히 ‘내시묘’라 부르는데 실제로는 내시의 무덤와 더불어 단장이 잘된 이름 있는 문중의 선산도 있다. 조선시대 ‘공동묘지’였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한국 전쟁 때 국군이 이곳에 ‘청동 저지선’을 치고 북한군과 치열한 접전을 벌여 지금도 당시의 방공호가 곳곳에 남아 있다. ●탐방코스 창골어린이공원에서 출발해 초안산 정상에 도착한 뒤 궁인 분묘군으로 내려오는 코스다. 주요 수종은 참나무류이다. 겉으로 보기엔 단순한 식생으로 보이지만 노박덩굴, 노린재, 누리장, 물푸레, 참싸리, 굴참, 산사, 산초, 오리, 단풍, 소나무, 상수리 등 다양한 수종이 자라고 있다. 생태육교에선 생태계의 파괴와 복원에 관한 설명이 이어져 자연보호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를 갖는다. 코스는 총 연장 2㎞로 소요시간은 약 2시간. 둘째·넷째주 일요일에 운영된다. ●주변 볼거리 초안산은 생태육교와 약수터 4곳, 배드민턴장 3곳, 인조잔디 축구장 1곳 등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다. 방학사거리에 있는 방학사계광장에는 환경조형물과 분수 등 수경시설을 만들어 시민들에게 개방했다. 조선시대 제10대 임금인 연산군(1476∼1506)과 왕비였던 거창군부인 신씨의 묘가 주변에 있다. ●가는 길 지하철 1호선 녹천역 2번 출구로 나와 주공 4단지쪽으로 5분 정도 걸어가면 창골어린이공원, 만남의 광장을 찾을 수 있다. 탐방신청 및 문의는 도봉구청 공원녹지과 2289-1396. ■ 아차산 해발 300m로 서울과 구리시에 걸쳐 있는 야트막한 산이다. 그러나 산 위에 서면 서울시를 둘러싼 모든 산과 시가지 전체가 한 눈에 들어온다. 특히 굽이치는 한강의 푸른 물과 강변의 풍광이 장관이다. 삼국시대 전략 요충지로, 특히 고구려 온달장군의 전설이 전해져 내려온다. 학문적 고증과 상관없이 주민들은 온달장군이 신라에 빼앗긴 한강유역을 되찾고자 이곳에서 싸우다가 전사하였다고 믿는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아차산에는 ‘온달샘’이란 약수터와 온달이 가지고 놀았다고 전해지는 지름 3m의 거대한 공기돌 바위가 있다. ●탐방코스 만남의 광장에서 출발해 생태공원, 소나무숲, 목본·초본식물 관찰대를 거쳐 아차산성에 도착하는 코스다. 총 연장 2㎞로 약 3시간 걸린다. 아차산은 화강암으로 이뤄져 주요 수종은 소나무다. 동부와 북부 산지에는 상수리나무가 많지만, 산의 높이가 낮아 다양한 나무의 경관보다는 아까시나무·물오리나무 등 인공림이 대부분이다. 대체로 멧비둘기·박새·붉은머리오목눈이·뻐꾸기 등이 관찰되고 천연기념물인 새매와 소쩍새도 볼 수 있다. 한여름 숲속에선 참매미의 울음소리가 귀청을 울린다. 첫째·셋째주 일요일 오전 10시 집결지에서 탐방 프로그램이 시작된다. ●주변 볼거리 워커힐 호텔 뒤편에 자리한 아차산성(사적 제234호)은 백제의 유산이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백제 책계왕(286년) 때 쌓은 성으로 삼국시대에는 중요한 요새였다. 용마폭포공원에 자리한 용마폭포는 청룡폭과 백마폭포 등 세 갈래 폭포줄기로 구분된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시원하다. ●가는 길 지하철 5호선 광나루역 1번출구로 나와 광장중학교 방향으로 10분 정도 걸어가면 만남의 광장과 만난다. 탐방신청 및 문의는 광진구청 공원녹지과(450-1395). ■ 봉화산 중랑구 상봉동, 중화동, 묵동, 신내동에 접해 있으며 일명 ‘봉우재’라고 불린다.1963년에 경기도 양주군 구리면에서 서울시에 편입됐다. 봉화산이란 이름만으로도 봉화와 관련이 있는 지역임을 알 수 있다. 북쪽의 한이산(汗伊山)으로부터 연락을 받아 남산으로 전달하는 아차산봉수대가 있던 곳이다. 봉수대 모형은 1994년 11월7일에 설치됐다. 해발 160m로 평지에 돌출된 독립구릉지역이다. 동쪽에 아차산 주능선을 제외하고는 북쪽으로 불암산과 도봉산, 양주 일대까지 조망할 수 있다. 서쪽과 남쪽으로도 높은 산이 없어 한강 이남까지 보인다. ●탐방코스 중랑구청에서 출발해 소나무 숲을 지나 봉수대(서울시 기념물 제15호)에 오른다. 중랑구 전경을 조망한 뒤 참나무숲을 거쳐 초본류 관찰대로 돌아오는 코스다. 총연장 1.5㎞로 길이가 짧고 산이 높지 않아 산책로로 그만이다. 주요 수종은 소나무지만, 태릉중학교로 내려가는 길에는 잣나무 군락이 조성돼 있다. 팥배나무, 국수나무 관찰대가 있고, 박새, 직바구리, 어치 등 텃새가 서식한다. 첫째·셋째주 일요일에 탐방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주변 볼거리 아차산봉수대(서울시 기념물 제15호)는 조선시대 통신 시설이면서 군사 시설이다. 평시에는 횃불 한 번, 적이 나타나면 횃불 두 번, 적이 가까이 오면 횃불 세 번, 지경을 침범하면 횃불 네 번, 적과 접전하면 다섯 번의 횃불을 올렸다. 낮에는 연기를, 밤에는 불을 올린다. 정상에서 약간 남쪽에 봉화산 도당인 산신각이 있다. 이곳은 400년 전에 주민들이 도당굿과 산신제를 지내던 곳이다.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 34호로 주민의 안녕과 결속을 위하고 대동의식을 고취시킨 마을 굿이다. 지금도 매년 음력 3월3일(삼월 삼짇날) 도당제를 지낸다. ●가는 길 지하철 1호선 신이문역이나 지하철 6호선 봉화산역에서 내려 지선버스 1223,2216번을 타고 중량구청 앞에 내린다. 구청 뒤 공원이 집결지다. 탐방신청 및 문의는 중랑구청 공원녹지과(490-3395). ■ 오패산 강북구 미아동과 번동, 성북구 장위동, 월곡동에 위치해 있다. 도심 한복판에 있으면서도 자연이 잘 보존된 편이다. 일명 빡빡산·벽오산·매봉짜 등으로 불린다. 남북으로 뻗어 동쪽으로 속칭 공주릉과 드림랜드를, 남쪽으로 동덕여대를 품고 있다. 해발 123m 오패산과 115m 봉우리,135m 벽오산 봉우리로 이루어져 나지막한 구릉지 형태다. 산기슭에는 예부터 자두나무가 많이 자생해 봄이 되면 수려한 꽃이 만발한다. 특히 수정 등 보석이 많이 나오고, 맞은편 초안산은 명당이라는 풍수지리설에 따라 고려의 중신들이 자주 다녀갔단다. ●탐방코스 강북구민운동장을 출발해 제1코스,2코스로 나뉜다.1코스는 벌리약수터, 대왕참나무숲, 복자기나무길, 꽃샘길, 참나무숲을 거쳐 정자와 율곡놀이터로 이어진다.2코스는 벌리약수터에서 군수나무 군락지, 야생화단지, 기념식수지, 소나무숲을 거쳐 정자에 닿는다. 아까시나무, 소나무, 참나무류, 팥배나무, 산벚나무 등 중부지방 자연상태의 수림에다 자작나무, 잣나무, 산딸나무 등을 꾸준히 식재해 숲이 울창하다. 산이 낮아 계곡은 없지만, 약수터가 있어 탐방객들이 즐겨 이용한다. 첫째·셋째주 일요일에 탐방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주변 볼거리 1987년에 개장한 드림랜드는 수영장, 골프연습장과 같은 운동시설과 문화시설을 갖추고 있다. 구민운동장은 각종 체육·문화행사를 개최하는 장소. 지난 4월 조깅트랙을 설치했다. 강북문화정보센터는 지하1층, 지상 4층 규모로 2001년 5월에 문을 열었다. 열람실, 정보실, 시청각실, 문화교실 등을 개방한다. ●가는길 지하철 4호선 수유역 3번출구로 나와 마을버스 9번이나 11번을 타고 10분 정도 가다 집결지인 강북구민운동장에 내린다. 탐방신청 및 문의는 강북구청 공원녹지과(901-2386). ■ 수락산 북쪽으로 불암산과 연결되고, 노원구 상계동과 경기도 의정부시, 남양주시 별내면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해발 637m로 높은 편이다. 수락산 능선의 암봉이 서울을 향해서 고개를 숙이고 있어 태조 이성계는 서울의 수호산이라 불렀다. ●탐방코스 임간휴게소에서 출발해 냇가와 향토꽃 전시장, 아까시나무숲, 명상의 숲, 숲속 길을 거쳐 바위 밑 샘터에 도착한다. 총 연장 3㎞로 다소 길다. 소요시간은 약 3시간. 향토꽃 전시장에서 야생화를 관찰하고, 꽃과 곤충의 관계를 살펴본다. 아까시나무 숲에선 흙 나무냄새 산림욕 보물찾기 등 숲속 체험거리가 가득하다. 숲속길이 나오면 청진기로 나무 소리를 듣고, 샘터에선 약수를 마신다. 대부분 돌산으로 화강암 암벽이 노출돼 있지만, 산세가 험하지 않다. 수락계곡과 노원골 일대 11㎞ 산책로는 산림욕하기에 좋은 곳이다. 둘째·넷째 일요일에 탐방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주변 볼거리 수락산 유원지는 남양주시 별내면 청학리에 있는 계곡 일대로 웅장한 석벽과 기암괴석이 많고 계곡이 수려하다. 예로부터 시인, 묵객이 즐겨 찾았다. 노원구 상계동에서 남양주시 별내면으로 넘어가는 덕릉고개에는 경기도기념물 제55호로 지정된 선조의 생부 덕흥부원군의 묘, 일명 덕릉이 자리한다. 수락산 중턱 남쪽 기슭에는 박세당이 김시습의 명복을 빌기 위해 중창한 석림사가 있다. 그 옆에는 박세당의 묘소와 영정각이 있다. 김시습은 1455년 수양대군의 왕위 찬탈 소식을 듣고 수락산에 숨어들었다. 박세당은 숙종 때 정쟁에 혐오를 느껴 관직을 포기하고 이곳에 은둔해 농사를 지으며 제자를 길렀다. ●가는길 지하철 7호선 수락산역 2번출구로 나와 도보로 10분 걸어 집결지인 수락산 입구에 도착한다. 탐방신청 및 문의는 노원구청 공원녹지과(950-3896).
  • 구한말 의병장 허위선생 손자2명 60여년만에 모국품에

    일제의 핍박에 쫓겨 조국을 떠나야 했던 의병장의 손자들이 60년 만에 고국 품에 안겼다. 주인공은 구한말 의병대장으로 활약했던 왕산(旺山) 허위(許蔿) 선생(1854∼1908)의 손자인 허 게오르기(62)ㆍ블라디슬라프(55) 형제. 이제는 백발이 된 키르기스스탄의 두 ‘고려인’들은 18일 독립유공자 후손으로서 특별귀화증을 받고 ‘대한국민’이 됐다. 이들은 “소수민족이라고 차별받을 때 마음속에 고이 품고 있던 고국이 60여년 만에 저희를 안아줬다.”며 감회를 밝혔다. 허 선생은 성균관에서 박사를 제수받은 뒤 중추원 의관, 정삼품 통정대부 등 관직을 거쳤다. 그는 일제에 의해 한국 군대가 해산됐던 1907년 의병대를 조직, 경기도와 황해도 일대에서 항쟁을 이끌었다. 특히 1908년 4월 정미의병 당시 ‘서울진공작전’을 주도했다. 그가 이끄는 의병은 1908년 2월 서울 동대문 밖 30리까지 진격했으나 일본군의 화력에 밀려 퇴각했다. 현재 동대문에서 청량리에 이르는 ‘왕산로’가 그를 기념하는 곳이다. 그는 같은 해 5월 2차 서울 탈환작전을 준비하다 일제 헌병의 습격을 받고 체포돼 9월 서대문형무소 ‘1호 사형수’로 옥사했다. 허 선생이 옥사하자 가족들의 고난이 시작됐다. 그의 가족들은 1915년 일제의 핍박에 못 이겨 만주로 떠났고 이들 중 4남인 허국 선생은(1971년 사망) 구 소련의 고려인 강제이주 정책 때문에 중앙아시아로 거처를 옮기던 중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에서 게오르기씨와 블라디슬라프씨를 낳았다. 허 선생의 공훈은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에 추서될 정도로 인정받았지만 그의 가족들은 오랫동안 ‘떠돌이’였다.1991년 키르기스스탄이 분리·독립하면서 키르기스인이나 러시아인도 아닌 ‘고려인’이었던 두 형제는 소수민족으로서 차별받았다. 이때부터 두 형제는 화물차 운전과 소작 농사 등 가리지 않고 일을 하면서 생계를 이어갔다. 두 형제는 2003년 중앙아시아의 고려인들을 영상으로 담아 온 국내 모 다큐멘터리 업체 관계자와 만나면서 고국에 돌아올 길을 찾게 됐다. 이듬해 이 업체를 통해 관련 사실이 국가보훈처에 통보됐고 지난해 법무부가 취업비자를 발급해 주면서 두 형제는 한국 땅을 밟았다. 국내 모 의료기기 제조업체에 취직한 두 형제는 1년여 뒤 국가유공자 후손에게 자격이 주어지는 ‘특별귀화’를 통해 대한민국 국민 자격을 얻게 됐다.두 형제는 “타국에서 서러운 시절을 겪었지만 한국은 언제나 자랑스러운 나라였다.”면서 “함께 온 자녀가 한국 문화를 배우며 커갈 수 있게 돼 참 만족스럽다.”고 기뻐했다.박경호기자 kh4right@seoul.co.kr
  • 가정의 달 가족과 함께

    가정의 달 가족과 함께

    오늘은 어린이날입니다. 소파 방정환 선생은 1923년 우리나라에서 처음 치러진 어린이날 기념식에서 ‘어른에게 드리는 글’을 서울 곳곳에 뿌렸습니다. ‘어린이를 내려다 보지 마시고, 쳐다 보아 주십시오.’ ‘어린이에게 경어를 쓰되, 보드랍게 해 주십시오.’ ‘잠자는 것과 운동하는 것을 충분히 하게 하여 주십시오.’ ‘어린이를 책망하실 때에는 쉽게 성만 내지 마시고 자세히 타일러 주십시오.’ 83년이 지난 지금도 되새겨 봄직한 말입니다. 어른들의 욕심에 어린이들을 가둬 놓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게 합니다. 사진은 지난 2일 경기도 파주시 임진각 평화누리에서 열린 ‘어린이 평화축제’에 참여한 새싹들입니다. 쉴새없이 돌아가는 팔랑개비처럼 어린이들의 마음과 몸도 무럭무럭 자라났으면 좋겠습니다. 글 김유영기자 carilips@seoul.co.kr 사진 이언탁기자 utl@seoul.co.kr ■ 알뜰파에 안성맞춤 동네서 ‘잔치’ 즐겨요 가 정의 달인 5월.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을 때에는 각 구청에서 여는 행사들을 확인해보자. 동네에서 열려 거리도 가까운데다 대부분 무료여서 ‘알뜰파 가족’에게 안성맞춤이다. 영화, 연극, 뮤지컬, 전통문화 체험, 클래식 공연 등 종류도 다양하다. ●가족 나들이 떠나요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은 5일부터 7일까지 ‘역사야 포토야 형무소가자.’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직원들이 일제시대 남학생, 여학생, 헌병, 수감자 복장을 하고 수감생활, 사형집행, 형무소 출감 등을 보여준다. 일제시대 4만여명의 애국지사들이 투옥됐고 해방 이후에도 민주화운동 인사들이 수감된 역사적인 장소다. 금천구는 13일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 주관으로 산기슭공원에서 ‘어린이 책문화 큰 잔치’를 연다. 동화책 읽어주기, 동화책에 나오는 전래놀이(고양이 쥐잡기, 줄다리기, 아카시아 파마 해보기, 대동놀이 등) 체험, 친환경 먹을거리 장터 등이 마련된다. 강서구는 5일부터 7일까지 허준박물관에서 왕실과자 만들기, 총명탕 시음, 한약비누 만들기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와! 어린이 세상이다 중구는 5일 충무아트홀 건물 전체를 어린이들의 놀이터로 바꾼다. 대극장, 소극장, 갤러리 등지에서 판화체험, 신문지놀이 등 놀이미술, 어린이 마임극인 ‘빨간코 아저씨의 이야기보따리’, 재활용 인형들이 펼치는 ‘띠용이와 떠나는 환경 캠프’, 장난감 나라 전시회 등이 열린다. 서대문구는 7일까지 서대문문화회관대극장에서 어린이들에게 책읽기의 즐거움을 안겨주는 뮤지컬인 ‘책키북키’를 보여준다. 노원구는 26일부터 27일까지 노원문화예술회관에서 호두까기 인형과 해설을 곁들인 발레여행을 진행한다. 이국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스페인춤, 아라비아춤, 중국춤 등을 감상할 수 있다.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 성동구는 5일 소월아트홀에서 사상좌춤, 사당춤, 사자춤, 양반춤 등 총 7과장을 선보이는 봉산탈춤 완판 공연을 연다. 고등학교 교과서에 수록된 고전으로 서민생활의 어려움과 특권 계층 비판 의식이 담긴 중요무형문화재다. 종로구는 7일까지 인사동 일대에서 (사)인사전통문화보존회 주관하는 ‘인사전통문화축제’를 연다. 떡메치기, 길쌈시연, 짚풀공예 등 체험 프로그램이 펼쳐지고, 경기민요·남도민요·태평무 등 공연을 즐길 수 있다. 송파구는 주말마다 서울놀이마당에서 마들농요, 송파산대놀이, 선소리산타령, 호남살풀이춤 등을 놀이판을 벌인다. 용산구는 20일 전쟁기념관에서 궁중 혼례를 재현한 결혼식을 선보인다. ●‘로맨스 그레이’를 위해서 어버이날을 위한 행사도 있다. 강남구는 18일 강남구립문화회관에서 ‘부부를 위한 사랑의 콘서트’를 연다. 가수 김종환을 초대해 ‘사랑을 위하여’‘존재의 이유’‘사랑하는 날까지’ 등의 노래를 선사한다. 광진구는 광진문화예술회관에서 가수 김수희와 최진희를 초청,‘孝 콘서트’를 연다. 강북구 문화정보센터, 도봉구의 쌍문동 청소년문화의 집, 동작청소년 문화의 집 등은 말아톤, 피노키오, 나니아 연대기 등 가족용 영화를 상영한다. 특히 노원구는 9일 서울여대 잔디밭에서 ‘찰리와 초콜릿 공장’을 보여준다. 봄기운이 도는 캠퍼스에서 가족간의 우애를 다질 수 있는 기회다. 김유영기자 carilips@seoul.co.kr
  • [서울의 문화재] (8) 봉황각

    [서울의 문화재] (8) 봉황각

    유관순, 서대문형무소, 제암리 학살사건.3·1운동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과 사건들이다. 하지만 3·1운동의 출발점이었던 봉황각은 그 중요성에 비해 덜 알려진 것 같다. 봉황각은 의암 손병희 선생이 3·1운동 지도자들을 키워낸 곳이다. 지난달 28일 강북구 우이동 산 자락에 있는 봉황각을 찾았다. 봉황각은 삼각산 도선사로 올라가는 언덕에 있다. 이곳은 현재 도로가 나 있지만 과거엔 인적이 뜸한 산 속이었다고 한다. 의암 선생은 이 비밀 장소에서 3·1운동을 계획했다. 처음 본 봉황각에서는 의연함이 느껴졌다. 큰 처마와 단단해 보이는 문살에서 뜨거운 기운이 느껴졌다. 봉황각은 ‘乙’모양으로 동학에서 하늘과 땅을 뜻하는 ‘弓乙’(궁을)의 ‘乙’을 형상화한 것으로 보인다. 문을 열자 의암 선생이 눈을 크게 뜨고 내려다 보고 있었다. 영정 사진이지만 눈빛은 형형하게 살아 있다. 요즘도 천도교 교인들이 여기서 수련을 한다고 한다. 과거에 손병희 선생이 교회 간부들과 했던 모습을 상상해 봤다. ●손병희선생이 1912년 세워 의암은 먼저 경술국치일에 교인들 앞에서 “10년 뒤 주권을 되찾겠다.”면서 “계획이 있으니 나를 따라달라.”고 밝혔다고 한다. 그리고 토목공 21명을 모아 1912년 봉황각을 세운다. 여기서 보국안민(報國安民)을 내세우고 거사를 위해 천도교 지도자들을 교육시킨다. 일본의 삼엄한 감시가 있었지만 봉황각에서 독립운동을 계획할 수 있었던 것은 천도교가 종교단체이기 때문이다. 의암은 독립운동은 종교 지도자들이 중심이 돼야 한다고 믿었다. 이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슬람의 자살 폭탄 테러와 베트남 전쟁 때 지도층에 항거하며 스스로 화형을 감행한 승려들이 떠올랐다. 실제로 3·1운동 당시 봉황각에서 교육받은 천도교 지도자들은 가장 용기있는 행동을 보였다고 한다. 평북 정주 천도교 지도자였던 최제일은 오른손에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외치자 일본 군경은 그의 오른팔을 잘랐고, 그가 다시 왼손으로 태극기를 들자 또 왼팔을 자르고, 다시 입에 태극기를 물자 목을 쳤다고 한다. 교회에 갇힌 채 총격을 당하고 불에 타 죽은 제암리 희생자의 상당수도 천도교인이었다고 한다. ●상하이 임시정부에 자금도 전달 의암 선생도 3·1운동으로 일본 군경한테 갖은 고초를 당했다.1920년 병 보석으로 나왔을 때 폐인으로 쓰러진 채 들것에 실려나왔다고 한다.1922년 5월 건강을 회복하지 못 하고 세상을 뜨기 전까지 상하이 임시정부에 자금을 전달하는 데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고 전해진다. 그는 현재 봉황각 바로 옆 언덕에 묻혀 있다. 처음에는 일본의 감시로 형편없는 묘소였는데 광복 후 생전에 학교를 설립하는 데 의암 선생한테 큰 도움을 받은 고 조동식 박사가 은혜를 잊지 못 하고 현재와 같은 큰 묘로 개장하고 탑골공원에 그의 동상을 세웠다고 한다. 또 백범 김구 선생도 광복 후 귀국하자마자 이곳을 찾았다고 한다. 백범은 임시정부 요인들과 함께 “이 분이 아니었다면 우리가 어떻게 버텼겠느냐.”면서 눈물을 글썽였다고 한다. 강북구청은 봉황각의 의미를 뒤늦게나마 깨닫고 2004년부터 봉황각 3·1독립운동 재현 행사 때 관내 인사와 학생들과 함께 ‘3·1절 만세 운동 재현 행사’를 벌이고 있다. 그러면서 거리 주변 음식점 주인들에게 봉황각이 꽤 알려졌다. 사실 그 전까지만 해도 인근 사람들은 도선사는 알아도 봉황각은 잘 몰랐다고 한다. 그동안 봉황각이 역사적 의미에 비해 제대로 평가받지 못 했다는 걸 생각하게 했다. 다행히 풍수지리학적으로 이곳 봉황각 자리와 의암 손병희의 묘소는 명당이라고 한다. 주변이 삼각산에 둘러싸여 있는 것이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서 그 분들의 힘찬 기운이 흘러나와 나라에 도움이 되길 기원해 본다. 글 박지윤기자 jypark@seoul.co.kr
  • 야호! 일요일 역사여행 아하! 그렇구나

    야호! 일요일 역사여행 아하! 그렇구나

    ‘손병희 선생, 유관순 열사, 김대중 전 대통령, 조봉암 진보당수, 문세광(육영수 여사 저격범), 문익환 목사. 이들이 수감됐던 곳은?’이 질문에 고개를 갸우뚱한다면 당신의 역사지식은 반쪽 짜리다. 각기 다른 시대, 전혀 다른 사건의 주체인 이들은 모두 서대문형무소에 갇혀 있었다. 흔히 일제 때 독립투사들이 옥고를 치른 곳으로만 알려져 있는 이곳이 해방 이후 수십년간 이어진 철권통치의 상흔까지 함께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은 많이들 알지 못한다. 서대문형무소의 이면에 자리한 비밀과 사연을 시민단체 KYC(한국청년연합회)가 26일부터 ‘평화길라잡이’라는 안내 프로그램을 통해 일반에 알린다. ●해방뒤 87년까지 민주열사등도 옥고 치러 현재 서대문형무소에는 일제 때 독립운동가들이 겪은 고초를 보여주는 전시실은 마련돼 있지만 해방 이후 1987년까지 교도소로 쓰였던 사실에 대해서는 기록이 전혀 없다. 그러나 이 기간에 국가권력에 의해 탄압받은 많은 민주인사가 이곳에서 옥고를 치렀다. 고 문익환 목사도 그중 한 사람이다. 지난해 8·15 민족 대축전 때 문 목사의 부인 박용길 장로는 이곳의 고문실을 둘러보며 “우리 남편도 76년 3·1 민족구국선언을 발표한 다음날 여기에 투옥됐었지.”라고 탄식하기도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내란음모죄에 휘말려 사형선고를 받은 뒤 수감됐던 곳도 여기다. 최근 민주화운동으로 인정받은 ‘인혁당 사건’의 피해자들, 이승만 정권 시절 간첩으로 몰려 최후를 맞은 진보당 조봉암 당수가 사형 집행 직전 투옥된 곳이기도 하다. 박정희 정권시절 민족일보를 통해 평화통일과 남북교류의 논조를 펼쳤다가 61년 간첩 혐의로 사형당한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의 한도 서려 있다. 국제저널리스트협회는 사형 집행 이듬해에 조 사장에게 국제기자상을 추서하기도 했다. 고 육영수 여사를 저격한 문세광과 10·26사태를 일으킨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도 여기에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밥에 이물질많아 여운형선생은 이빨 부러지기도 ‘평화길라잡이’에서는 투옥된 독립투사들의 고초도 소개된다. 일제 때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 독립투사들의 식기 안에는 1부터 10까지 숫자가 표시돼 있었다. 수감자의 독립운동 정도 등에 따라 1∼10등급을 나눠 식사량을 달리 했기 때문이었다. 밥에 이물질도 많이 들어 있어 이곳에서 옥살이를 한 여운형 선생은 돌을 씹어 이가 부러지고 턱을 다쳐 출옥 뒤에도 많은 후유증을 겪었다고 한다. 수감자들에게는 쌀 10%, 보리나 조 50%, 콩 40%로 된 밥이 나왔다. 해방될 무렵에는 콩 대신 콩깻묵만 줘 많은 사람들이 영양실조로 사망하기도 했다. ‘평화길라잡이’에서는 3개월 과정의 교육을 받은 15명이 안내자로 나선다. 현주 간사는 “학생들의 체험 및 참여학습 기회가 많아지면서 서대문형무소 등 역사적인 현장을 찾는 시민들이 늘고 있으나 제대로 된 역사를 설명해주는 경우는 드물다. 그동안 서대문형무소를 보면서 일본에 대한 증오심만을 키우게 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국가 권력에 의해 희생당한 민주 열사 등 묻혀졌던 부분도 부각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프로그램은 매주 일요일마다 진행된다. 참가신청 및 문의 인터넷 www.peace2u.or.kr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인간시대] 오덕만 위례문화역사연구회 회장

    [인간시대] 오덕만 위례문화역사연구회 회장

    서울 송파구 오금동 위례문화역사연구회 오덕만(47) 회장은 ‘배워서 남 주자.’란 좌우명을 품고 역사를 가르친다. ●문화기행·국토 체험학습 등 역사 가르치기 온 힘 “지식은 칼과 비슷합니다. 어떤 이는 사람을 해치는 데, 어떤 이는 사람을 이롭게 하는 데 사용합니다. 지식을 남에게 어떻게 줄 것인지 고민하며 배우는 게 그래서 중요합니다.” 그는 주중에는 40∼50대를, 주말에는 10대를 가프친다. 몽촌역사관 몽촌토성 백제고분 등 한성백제유적지에서 활동하는 문화재 해설사 50명이 모두 오 회장의 제자다.2002년부터 3년간 잠실5·6동에서 역사문화기행을 이끌었고, 송파문화원에서 6년째 역사문화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오 회장이 역사 강의를 시작한 것은 10여년 전, 아들(20)과 딸(18)이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이다. 주말이면 아이들 손을 잡고 역사유적지를 찾아다녔다. 좀더 재미있고 풍부하게 가르쳐 주고자 역사책과 신문을 꼼꼼히 챙겼다. 아이들이 즐거워하자 친구들도 ‘역사탐방’에 끼워 달라고 졸라댔다. ●목사직도 뒤로하고 ‘현장 체험 주말학교´ 열어 그렇게 입소문을 타더니 현장체험 주말학교가 개교했다. 본업이던 목사직도 내놨다. 초·중·고생 300명이 역사탐구·탐방반, 생태·문화체험반 등으로 나뉘어 공부한다. 주말학교는 철저히 현장 중심이다. 책과 인터넷을 통해 문화유적지를 배우고, 직접 방문해 보고 느끼는 수업이다. 궁궐, 서대문형무소, 광화문 육조거리, 국립민속박물관 등 책에서 배운 지식을 현장에서 몸으로 배운다. 방학 때는 국토체험학습인 ‘스스로 찾아가는 우리나라’가 6박 7일 동안 진행된다. 초등학생 5∼6명이 한팀을 이뤄 문화유적지 관련 과제를 해결하며 국토 남단에서부터 서울로 올라오는 것이다. 학생들은 길잡이, 살림꾼, 기록장 등의 역할을 맡아 팀을 이끈다. 과제는 ‘동양척식주식회사가 현재 무슨 건물로 사용되는가.’ 등이다. 선생님이 동행하지만 절대 조언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엄청 싸웁니다.‘너는 걸음이 늦다.’‘왜 너만 몰래 사먹냐.’그러면서 서로 돕고 의지하는 법을 터득하죠.” 아이들은 친절한 지역주민들에게 ‘세상이 참 아름답다.’는 것도 배운다.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길을 물으면 “고생한다.”며 고구마나 과일을 준다. 지도를 얻으러 군청을 방문하면 공무원 아저씨가 “밥 먹고 가라.”고 붙잡는다. 길을 잃어 택시를 타면 운전사 아저씨가 “여행 즐겁게 하라.”며 돈을 받지 않는다. “뉴스를 통해 본 세상은 참 무섭지 않습니까. 강도, 살인사건이 대부분이니까요. 하지만 직접 우리나라 구석구석을 돌아다녀 보면 참 따뜻하고 고마운 사람이 많습니다.” 아이들은 세상 속에서 자신감과 더불어 장래의 꿈을 발견한다. “확실한 동기가 있어야 공부도 열심히 합니다. 아이들은 국토체험을 하며 자신의 장점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다.’는 구체적인 미래를 설계하죠.” 아이들은 스스로 길을 찾는 놀라운 능력을 지녔다고 오 회장은 설명했다. “문제는 기성세대입니다.” ●“사회와 부딪치며 체득토록 유도하는 게 참교육” 기성세대는 그동안 다양한 교육을 받을 기회를 갖지 못했단다. 그래서 남과 다른 것을 용납하질 못한다. 옆집 아이가 학원을 몇 개씩 다닌다고 하면, 우리 아이도 보내야 할 것 같아 안절부절 못한다. 소수로 남기가 두렵기 때문이다. 아이를 독립된 인격체로 존중하질 못한다. 항상 끌어안고 자신이 닦아 놓은 길만 밟으라고 강요한다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은, 우리가 경험한 것과 완전히 다릅니다. 우리처럼 가라고 가르치는 것은 소용 없습니다. 사회와 부딪치며 아이들이 몸으로 배우도록 도와주는 것이 최선의 교육입니다.” 오 회장은 이러한 교육법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 아들은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홈스쿨로 중·고등학교 과정을 마쳤다. 중국 어학연수를 다녀오고, 경주 굴불사에서 선무도 수련생활을 거쳤다. 스스로 원하는 것을 찾는 시간이었다. 아들은 제주관광대학을 다니고 있다. 딸은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작곡에 흥미를 느꼈다.6학년이 되자 창작 동요제에 작품을 출품해 대상을 받았다.“아이가 표현하고 싶은 음악을 악보로 옮기는 방법만 가르쳤을 뿐입니다.” 딸은 작곡가의 꿈을 가꾸며 국악고등학교를 다닌다. 오 회장 덕분에 역사를 배워 남에게 나눠주는 새로운 세대가 우리나라 곳곳에서 성장하고 있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업계소식-행사] ‘3·1 운동 정신 계승전’ 오는 26일까지

    [업계소식-행사] ‘3·1 운동 정신 계승전’ 오는 26일까지

    (사)한국서예협회(이사장 전명옥)가 주관하는 ‘3·1 운동 정신 계승전´ 야외 전시회가 오는 26일까지 서대문형무소역사관 및 주변 거리에서 열린다. 참된 평화와 광복의 의미를 함께 찾고 표출하며 공유하고자 기획된 이 전시회는 260명의 작가가 제작한 600개의 깃발을 서대문형무소역사관과 독립공원(서대문구 현저동) 구립 이진아도서관 등에 설치해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마지막 날인 26일 오후 2시엔 퍼포먼스 행사가 있을 예정이다. ▲작가와 함께 하는 대형 서예쓰기 ▲순국선열의 명언 따라쓰기 ▲서예가에게 배우는 서예교실 ▲선열에게 글 남기기 등 일반인이 참여하는 다양한 주말프로그램도 마련돼 있다. 이 전시회를 기획한 전명옥 이사장은 2004년 고구려사 왜곡문제를 표현한 ‘규탄! 고구려사 왜곡 규탄 깃발전´과 2005년 ‘독도사랑 역사바로세우기전´ ‘광복 60주년 기념 깃발전´ 등의 전시회를 진행하기도 했다. 모든 전시를 야외와 인터넷으로 하는 등 시민 참여의 기회를 확대하는 데 노력했다는 게 협회측의 설명이다. 관계자는 “삼일절을 기념해 열리는 이번 전시회는 다양한 참여행사로 봄나들이에 나선 가족에게 교훈적인 역사현장을 제공할 것”이라고 전했다.
  • “살려만 놨어도…”유족 서대문형무소 사형장 헌화

    “1심에서 사형 판결이 나오자 질리는 저에게 남편이 ‘괜찮다.’며 웃어보였습니다.2심에서 또 사형이 선고되자 남편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군요. 대법원에서 사형이 선고되니 둘다 얼이 빠졌습니다. 대법관 13명이 나가고 한참 뒤까지 분을 못참고 손에 든 양산을 부서져라 앞의 의자에 내리쳤습니다.‘당신들은 살인자’라고 소리치다가 끌려 나왔습니다.”<고 우홍선씨의 아내 강순희씨> 인혁당 사건에 대해 30년 만의 재심결정이 내려진 서울중앙지법 311호 법정 방청석의 맨 앞줄을 차지하고 앉아있던 머리가 희끗희끗한 아내들은 결정문 낭독이 끝나자 일어나 힘차게 박수를 쳤다. 울다웃다를 반복하다 이들은 버스를 타고 남편과 동생이 사형당한 서대문형무소를 찾았다. 이들은 사형장 교수대 입구에 흰 국화를 한 송이씩 놓으며 눈물을 훔쳤다. 이씨는 “공산주의자의 아내로 낙인찍히며 살아온 삶도 억울했지만,30년 동안 유족의 목소리를 외면한 사법부가 더 원망스러웠다.”고 했다. 재판장인 이기택 부장판사는 결정문을 읽기에 앞서 “가장 가슴 아픈 것은 이 자리에 피고인들이 없다는 것, 그것도 재심 대상 판결로 사형을 당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라면서 “이런 사정들은 이 재판의 역사적 위치와 함께 재심을 통한 피고인들의 권리 구제의 한계를 말해주는 것이기도 해 마음이 무겁다.”고 사과했다. 재심이 이루어지더라도 이미 사형이 집행된 피고인석은 비워둔 채 공판을 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게 된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문화 캘린더]

    ●서울 노원구 29일(화) 오후 7시에 노원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 ‘노원구립 여성합창단 정기음악회’를 연다. 바이올리니스트 유진박, 코리아나의 홍화자, 바리톤 김종천, 소프라노 김경아 등이 출연한다. 예매는 노원문화예술회관에서 하며, 입장료는 2000원이다.(02)950-3411. ●서울 강동구 다음달 1일(목) 강동구민회관에서 열리는 제10회 강동목요예술무대에서 베르디의 오페라 ‘리골레토’를 선보인다. 국립오페라단 이상균의 연출과 고성진의 지휘로 진행된다. 관람료는 R석이 5000원, 어른 3000원, 청소년 1000원이다. 입장권 예약 및 판매는 구 홈페이지에서 오는 28일(월) 아침 10시부터 시작된다.(02)480-1410 ●서울 양천구 23일(수) 양천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국립발레단 초청 갈라 콘서트’를 준비했다. 각 발레 작품의 하이라이트 여러 개를 뽑아서 보여준다.‘지젤 그랑 파드되(2인무)’‘차이코프스키 파드되’‘라 실피드 중 파드되’,‘백조의 호수 중 파드 트로와’ 등으로 구성된다. 관람 희망자는 전화(02-2650-3410∼3)로 신청하거나 구 홈페이지에서 신청하면 된다. 입장료는 무료. ●서울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을사늑약 100주년을 기념해 다음달 11일(일)까지 특별기획전 ‘을사늑약 100년, 풀어야 할 매듭’을 개최한다. 을사늑약이 무효임을 증명하는 자료들이 전시되고 학술강연회와 순국선열 추모공연이 함께 진행된다.(02)363-9750∼1.
  • [자치센터 탐방/서대문구 이진아도서관] 갤러리 같은 도서관 문화·정보 한자리에

    [자치센터 탐방/서대문구 이진아도서관] 갤러리 같은 도서관 문화·정보 한자리에

    “도서관 맞아?” 서울 서대문구 현저동 ‘이진아 기념도서관’은 갤러리 같다.1층 현관에 들어서면 ‘ㅁ’자형 건물 가운데에 있는 작은 정원이 반긴다.4층까지 올라가면서 보이는 정원의 자작나무는 도서관의 딱딱한 느낌을 없애준다. 복층으로 된 3·4층 ‘종합자료실’은 명당으로 꼽힌다. 통유리 너머로 보이는 인왕산의 풍광 때문에 도저히 독서에만 집중할 수 없는 분위기다. ●아름다운 기부로 만들어지다. 지난 9월15일 개관한 이진아도서관은 한 중소기업 사장이 서대문구에 50억원을 쾌척해 지어졌다. 주인공은 현진어패럴 대표인 이상철(58)씨.2003년 6월 미국 보스턴에서 공부하던 둘째딸 이진아(당시 20세)양이 교통사고로 숨지자 소중한 딸의 이름을 기려 기금을 기탁한 것이다. 서대문구는 구비·시비를 더해 총 85억원을 들여 도서관을 지었다. 고(故) 이양의 생일에 맞춰 개관하기 위해 앞당겨 개관했으며 자료대출·반납 등 실질적인 도서관 이용은 10월말쯤부터 가능하다. 이진아도서관 이정수 관장은 “아름다운 기부로 지어진 도서관인만큼 다른 도서관보다 훨씬 값진 문화공간으로 만들도록 노력하겠다.”면서 “바로 앞에 있는 서대문형무소역사관(사적 제324호)과 더불어 과거·현재·미래가 공존하는 지역 사회의 구심점이 되는 곳으로 꾸미겠다.”라고 말했다. ●친환경적인 문화공간 이진아도서관은 지하1층·지상4층, 연면적 836평으로 총 열람석 300석 규모다. 칸막이가 빽빽하게 쳐있는 수험생 위주의 ‘독서실’의 개념을 벗어나 정보열람실의 개념으로 만든 게 특징이다. 각 열람실별로는 이용 연령층별로 세분화해서 보다 주민들이 보다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1층의 모자(母子)열람실은 36개월 이상의 유아부터 미취학 아동과 어머니가 함께 이용할 수 있다.‘어린이전자정보열람실’(1층)은 초등학생이 CD 및 디지털 자료를 열람하거나 인터넷을 검색할 수 있으며 ‘멀티문화 감상실’(2층)은 중학생 이상의 연령층이 영화·음악·어학 관련 CD나 DVD를 검색하고 비디오 테이프를 볼 수 있도록 꾸며졌다. 문화사랑방·도예방(2층)은 주부와 어린이들이 독서토론, 공예, 창의력 개발 학습, 논술 수업 등을 할 수 있다. 종합자료실(3·4층)에는 일반도서 3만여권과 연속간행물 100여종이 갖춰져 있다. 이진아도서관의 또다른 특징은 공공기관으로는 친환경적인 지열난방시스템을 도입했다는 것이다. 도서관 주변에 지하 150m까지 20여개의 구멍을 뚫어 만든 천공관을 통해 지열(地熱)을 모아서 심야전력을 이용하는 방식이다. 공해를 내뿜는 가스·기름을 사용하지 않을뿐 아니라 에너지 비용도 절감되는 장점이 있다. ●“인터넷으로도 공부해요” 주민들이 직접 책을 빌리고 반납하는 ‘도서 자가 대출·반납 시스템’을 도입한 것도 독특하다. 책에 무선고주파(RF)칩을 부착해 대출·반납기에 대면 저절로 기록이 남는 것이다. 대형 레코드가게 등의 물품에 부착돼 있는 장치로 대출·반납기에 등록을 하지 않고 출입문을 나서면 ‘삑’하는 경고음이 들린다. 사서는 단순반복적인 업무를 벗어나 책 선정작업 등 주민들을 위한 실질적인 서비스에 집중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책의 위치를 파악해 도서관을 보다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게 된다. 다만 이 시스템에 미숙한 어린이·노인은 사서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홈페이지(www.sdmljalib.or.kr)에도 별도의 ‘디지털도서관’이 갖춰져 있다. 구체적으로는 ▲영어·일어·중국어 등을 접할 수 있는 디지털 학습관 ▲1000권의 전자책(e-book)을 열람할 수 있는 전자책 도서관 ▲초등학생 수준의 한자 학습에 게임을 도입한 한자학습관 등을 이용할 수 있다. 이진아도서관은 3호선 독립문역 4번출구로 나와 서대문독립공원 뒤 영천사 가는 방향에 있다. 간선버스는 471·701·702·703·704·720·752, 지선버스는 7019·7021·7023·7025·7712·7737·155·156·157·158·158-2·158-3, 광역버스는 9701·9703·9705·9709·9710·9711·9712번을 이용하면 된다. 문의 (02)360-8600∼3. 김유영기자 carilips@seoul.co.kr
  • ‘참회의 마라톤’

    “일본이 과거 한국에서 저지른 잘못을 반성하고 사죄하는 마음으로 달렸습니다.” 광복 60주년을 맞아 일본 지식인들이 과거를 참회하고 일본과 한국의 평화를 기원하는 ‘피스-런’(Peace-run) 마라톤 행사가 열렸다. 일본 도쿄학예대학 와타나베 마사유키(渡邊雅之ㆍ51) 교수 등 일본인 13명과 서울마라톤클럽 회원 6명은 17일 오전 서울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을 출발해 임진각까지 47㎞ 코스를 완주했다. 참가자들은 찜통 같은 무더위와 습한 날씨 때문에 달리다 섰다를 여러차례 반복한 끝에 출발 8시간만인 오후 4시, 임진각 자유의 다리에 도착했다. 이들은 한국어와 일본어로 ‘평화 달리기’라고 적힌 붉은색 티셔츠를 맞춰 입었으며 달리는 내내 태극기와 일장기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임진각에 도착하자마자 이들은 북녘 땅을 향해 묵념을 올린 뒤 평화의 종각에서 통일을 기원하는 타종 행사를 열었다. ‘피스-런’ 마라톤 행사는 와타나베 교수의 의지가 있어 가능했다. 지난해 서대문 형무소를 혼자 방문한 그는 한국의 독립 투사들이 일본에 저항하다 숨진 형무소를 보면서 일본인으로서 깊은 죄책감을 느꼈다. 어떤 방법으로라도 일본이 한국에 사죄해야 한다고 생각한 그는 고민 끝에 공무원, 회사원, 교사 등 마라톤 동호회 회원을 모아 한국에서 참회의 마라톤을 열기로 결심했다. 단순한 사죄와 참회에 그치지 않고 양국의 평화를 기원한다는 의미에서 행사 이름도 ‘피스-런’으로 결정했다. 와타나베 교수는 6월26일 일본 돗토리현(鳥取縣)에서 열린 100㎞ 울트라마라톤 대회에서도 제주도의 민속의상을 입고 윤동주 시인의 서시를 일본어와 서툰 한국어로 낭독하기도 했다.그는 “일본에 저항하다 사망한 애국지사들을 기리기 위해 마라톤 출발점을 서대문 형무소로 정했으며 한국 분단에 일본의 책임이 있기 때문에 최종 목적지를 임진각으로 정했다.”고 말했다.이효연기자 belle@seoul.co.kr
  • 北대표단, 서대문형무소 둘러봐

    ‘8·15 민족대축전’에 참석한 북측 대표단이 분단 이후 ‘최초’라는 수식어를 붙여가며 파격 행보를 계속하고 있다. 지난 14일 국립현충원 참배에 이어 광복 60주년인 15일에는 서대문 형무소와 백범기념관을 방문했다.16일엔 국회를 방문하고, 입원 중인 김대중 전 대통령도 방문할 예정이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이날 오후 서울 백범기념관에서 열린 남북 당국 공동행사에서 “평화를 통해 번영을 누리고 번영을 통해 평화를 공고히 해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해 가자.”고 제의했다.●“김구 선생과 김일성 주석 인연” 북측 대표단은 서울 백범기념관에 도착, 김신 백범기념사업회장 등 김구 선생의 아들·손자와 환담했다. 북측 단장인 김기남 노동당 비서는 “북측대표단이 온 걸 알면 선친이 기뻐하실 것”이라는 김 회장 말에 “김 주석의 보천보 무장투쟁에 감격한 김구 선생이 사절을 김일성 장군께 보냈고 이는 역사적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최성익 조선적십자위 중앙부위원장은 백범기념관에서 행한 연설에서 “쌍방사이 실질 화해와 신뢰의 확고한 구축을 위해 귀측의 국립현충원에 대한 참관도 진행했다.”면서 “체제·이념 대결에서 벗어나 우리 민족끼리 이념에 토대해 풀어나가자는 확고한 입장”이라고 말했다. 최 부위원장의 연설은 사전에 준비돼 배포된 것이다. 통일부 관계자는 “북한 사전에 참배란 말은 주술적 의미가 깃든 것이라 잘 쓰지 않고, 김일성 주석의 시신이 있는 금수산기념궁전을 ‘참관’했다고 표현한 사례들이 있다.”고 말했다.●“김주석님의 삼촌도 옥사하셨다” 오전 10시50분쯤 정동영 통일부 장관, 김기남 단장 등 남북 당국 70여명은 민간 대표단보다 30여분 앞서 도착, 일제 독립투쟁의 상징인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을 둘러봤다. 김기남 단장은 정동영 통일부 장관과 참관 소감을 나누며 “(일제 때)처형된 선열 중에는 민족주의자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들이 다 포함돼 있고 그중에서 김일성 주석님의 삼촌되는 분, 사랑했던 친위군사들도 몇명 있다.”고 밝혔다.●임동옥 부부장 오찬서 자작시 임동옥 북측 통일전선부 제1부부장은 15일 정 통일장관 주최 환영오찬에서 자작시를 소개했다. 정 장관이 “북에서 대남사업을 총괄하고 계시는 ‘무서운 분’인데 이번에 대표단에 포함돼 깜짝 놀랐다.”고 임 부부장을 소개하자, 작은 수첩을 꺼내 “우리는 서울을 보았다/이국의 도시가 아니었다…중략…평양과 서울은/똑같은 우리것/우리 민족의 것이로구나/쭈욱해도(술잔을 들이켜는 것)단번에 너무도 쉽게 통하는/우리는 정말 통일로 살아야 할 하나로구나.”란 시를 낭독했다. 김 단장은 박재규 전 통일부 장관이 고이즈미 일본 총리가 서대문 형무소를 다녀갔다고 하자 “짐승이 아닌 이상 느끼는 바가 있었겠지요.”라고 말하기도 했다.김수정 나길회기자 crystal@seoul.co.kr
  • 日교과서 채택저지 성금 서울시 1억3200만원 전달

    “이시하라 도지사와 도쿄도가 강경대응을 해왔다면 서울시는 이성에 호소하려는 것 입니다.” 이명박(사진 오른쪽) 서울시장은 3일 오전 서울시청 접견실에서 ‘아시아 평화와 역사 교육연대’ 서중석(왼쪽) 상임 공동대표에게 일본의 역사왜곡 교과서 채택 저지를 위한 성금 1억 3200만원을 전달하며 이같이 말했다. 성금은 지난달 4일부터 시 본청과 각 사업소, 자치구, 투자·출연기관 임직원 6만 5000명이 십시일반으로 모았다. 이 시장은 “일본·중국 등 주변국이 역사를 왜곡하는 상황에서 시 공무원들이 위기의식과 역사의식에 동감, 모금운동에 적극 협력했다.”면서 “자율적으로 돈을 모았는데도 마치 강제모금을 한 것만큼이나 많은 성금이 걷혔다.”고 말했다. 한편 이 시장은 “한국으로 수학여행을 오는 일본인 학생들이 주로 묵을 남산 유스호스텔이 내년 5월 만들어지면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등과 연계해 일본의 독도·역사왜곡 문제를 가르쳐주는 교육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성금을 전달받은 서 대표는 답례로 한·중·일 3국의 역사학자들이 공동 편찬한 중학생용 역사교재 ‘미래를 여는 역사’를 이 시장에게 전달했다.고금석기자 kskoh@seoul.co.kr
  • [의회] 지역경제 활성화 역점

    [의회] 지역경제 활성화 역점

    “새로운 것을 개발하는 것도 좋지만 이미 있는 것들을 잘 가꿔 나가면서 지역 경제 활성화를 꾀해야 할 것입니다.” 서대문구 기창표(54) 의장은 관내에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안산, 홍제천 등 다른 자치구에서 없는 것들이 많다면서 이들 자원을 꾸준히 가꿔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대문형무소를 관광명소화 앞장” 기 의장은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운영권이 서대문구에서 서대문 시설관리공단으로 넘어간 만큼 최근 열린 임시회에서 서대문형무소역사관 발전기금이 폐지됐다.”면서 “그러나 서대문구뿐만 아니라 중앙정부 역시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열린우리당 우상호 국회의원(서대문 갑)의 발언을 인용,“현역 국회의원 가운데 40여명이 현재 서대문형무소역사관으로 쓰이는 서울구치소를 거쳐갔다.”면서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은 ‘민주 열사·애국 투사’의 고향으로 한국 근·현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장소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기 의장은 독일 아우슈비츠 감옥에 다녀왔던 경험도 소개하면서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은 붉은 벽돌과 어우러지는 옛날 건축물로 인해 데이트 코스로도 이용되는 등 아우슈비츠 감옥 이상의 역할을 하고 있다.”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그는 “관광객에게 기념품을 판매하는 가게가 있었던 아우슈비츠 감옥과 달리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은 아직 관광사업을 벌일 만한 기반이 갖춰지지 않았다.”라면서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 하루 평균 2000∼2500명의 관광객이 다녀가는 만큼 건너편 영천시장 주변에 ‘특화사업 단지’를 조성해 지역 경제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방안도 생각해 봐야 한다.”고 제안했다. ●안산 가꾸기에 골몰 기 의장이 서대문형무소역사관 다음으로 중요한 자원으로 꼽는 것은 ‘안산’이다. 안산은 서대문구 한가운데에 있을 뿐만 아니라 시내에서 가까운 요충지에 있다. 그는 “서대문구청에 접해 있는 안산에는 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지만 충정로에 접해 있는 안산은 겨울철이면 벌거숭이가 되는 실정”이라면서 “안산에 단순히 운동기구를 설치하거나 약수터를 정비하는 차원을 넘어서서 장기적으로 체계적인 마스터플랜을 수립해 안산을 가꿔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홍제천을 청계천처럼” 현재 추진중인 홍제천 복원 역시 기 의장의 관심사다. 그러나 청계천 복원사업과 같은 맥락의 사업취지는 좋지만 예상보다 많은 예산이 수반될 것으로 보고 있다. 기 의장은 “홍제천은 인근의 지하철 용수를 끌어당겨 쓸 수 있는 불광천과 달리 한강물을 끌어와야 하는 만큼 현재 잡혀 있는 예산(500억∼600억원)도 부족할 것으로 보인다.”면서 “생태계 복원과 시민공원 확보 등을 위해 서울시 차원에서 하천살리기 사업이 진행되는 만큼 서울시의 전폭적인 지원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김유영기자 carilips@seoul.co.kr
  • ‘6월의 독립운동가’ 김동삼 선생

    국가보훈처는 구한말 민족교육에 힘을 쏟고 상하이(上海) 국민대표회의 의장으로 활동한 김동삼(1878∼1937) 선생을 ‘6월의 독립운동가’에 선정했다고 31일 발표했다. 경북 안동 출신으로 1907년 유인식 선생과 협동학교를 설립·운영했으며,1911년 서간도로 망명한 뒤 신민회 동지들과 경학사와 신흥강습소를 설립하는 등 독립군 양성에 힘썼다. 3·1운동 직후엔 부민단을 한족회로 개편하고 서로군정서를 조직해 항일 무장투쟁에 앞장섰으며,1922년 통군부를 대한통의부로 확대·개편해 만주지역의 독립군단체로 재건했다. 1931년 9월 북만주로 이동해 항일무장투쟁을 계획하다가 하얼빈에서 일본 경찰에 체포돼 평양지방법원에서 10년형을 선고받았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 1937년 4월 순국했다.
  • [의회] “구민위한 사안엔 정치색 떠나 한목소리 내는 의회 만들겠다”

    [의회] “구민위한 사안엔 정치색 떠나 한목소리 내는 의회 만들겠다”

    “서대문구 구민들의 발전을 위한 사안이라면 정치색을 떠나 한 목소리를 내는 의회를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서대문구의회 기창표(54) 신임 의장은 “구의원은 주민들과 가장 밀착된 사안을 다루는 사람들인 만큼 ‘생활민원 해결사’ 역할을 자처해야 한다.”면서 “의원들끼리 신뢰를 바탕으로 한 토론·대화를 통해 구민들에게 신뢰를 받는 의회를 만들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폐품 주워 이웃 돕는 ‘리어카 아저씨’ 기 의장은 전임 의장이 선거법 위반으로 물러난 뒤 지난 3월29일 취임했다. 3선인 그는 의장으로 취임하기 전에는 ‘리어카 아저씨’로 더 유명했었다. 기 의장은 초선의원으로 당선된 95년부터 최근까지 한밤중에 리어카를 끌고 주택가에서 폐품을 수집했다. 동네 한바퀴 도는 것으로 ‘1석4조’의 효과를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보도블록이 깨진 것은 없는지, 가로등은 환하게 켜져 있는 지 등을 살피고, 폐품을 수집한 돈으로는 불우이웃을 도왔다. 또 쓰레기도 치우고 건강까지 관리할 수 있었다. “밤 12시부터 새벽 2시까지 동네를 돌아다니는 게 쉽지만은 않았지만 남들보다 더 부지런하게 뛴다는 생각으로 일했습니다. 구의원은 구의원답게 쓰레기, 보안, 복지 등 생활민원에 신경을 써야 한다는 마음가짐에서였죠.” ●회기 중엔 ‘송곳 질의’ 이런 탓인지 기 의장은 구의회가 열릴 때마다 날카로운 질문을 해 ‘송곳 의원’이라는 별명도 붙었다. 이달초 지역시민단체인 ‘서대문의정참여단’이 지난 117회 정례회를 바탕으로 조사한 보고서에서 구의회에서 가장 발언을 많이한 의원으로 뽑히기도 했다. 기 의장의 발언 건수는 3.88건으로 평균치인 1.79건의 두 배를 넘었다. 기 의장은 98년 서대문역사관 건립추진위원회 등에 참여했던 경력 때문인지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을 ‘민족의 성지’로 가꾸는 데에도 관심이 많다. 국내외에서 하루 5000여명이 몰려드는 만큼 서대문로터리 부근을 정비하고 지역경제를 활성화할 수 있는 방안을 구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국가나 시 차원의 전폭적인 예산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글 김유영기자 carilips@seoul.co.kr 사진 김명국기자 daunso@seoul.co.kr
  •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 가볼까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 가볼까

    1908년 일제가 대한제국 시대에 ‘경성감옥’으로 만들어 1987년까지 ‘서울구치소’로 쓰였던 ‘서대문형무소역사관’. 그동안 서대문감옥, 서울교도소 등 여러번 이름이 바뀌었지만 한국근현대사의 아픔은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일제시대에는 4만여명의 애국지사들이 투옥됐고 해방 이후에도 민주화 운동자들이 수감됐었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은 지난 98년 문을 연 뒤 현재 역사교육의 현장뿐만 아니라 드라마·영화 촬영지, 연인들의 데이트코스 등으로도 애용되고 있다. 특히 최근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독도 관련 망언 등의 문제와 맞물려 방문객은 하루 평균 2500여명에서 5000여명으로 두 배 이상 늘었다. ●고증 거쳐 일제시대 상황 재현 역사관 양성숙 학예사는 “일제가 우리민족에게 저지른 일을 관람객에게 보여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하기 때문에 학생들의 견학코스로 인기가 높다.”며 “국가기록원, 국사편찬위원회 문서 등을 바탕으로 철저한 고증을 거쳐 당시 상황을 재현해 놓았다.”고 말했다. 역사관을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곳은 일제시대 때 ‘보안과 건물’을 개조해서 만든 ‘역사전시관’이다. 벽에 만들어진 관이라는 뜻에서 ‘벽관’으로 불렸던 고문기구에 직접 들어갈 수 있다. 김현지(공릉초6)양은 “사람 한 명이 간신히 들어갈 수 있도록 만들어져 사흘 동안 이 곳에 갇히면 온몸이 마비되어 죽게 된다는 말이 실감난다.”고 몸서리를 쳤다. 밀랍인형이 잔혹한 고문장면, 옥중투쟁모습 등을 재현한 장면도 볼 수 있다. ‘제13옥사(공작사)’에서는 벽에 뚫린 구멍에 머리를 넣으면 전기고문을 당하는 착각이 들도록 의자가 부르르 떨리는 전기고문, 손톱을 빼는 고문, 상자에 가둬놓는 고문 등을 체험할 수 있다. 유관순 열사가 순국했다는 여성옥사(일명 유관순굴)에서는 높이는 1.48m로 허리를 똑바로 펼 수도 없는 1평 미만의 독감방들을 볼 수 있다. ●‘모래시계’ 배경이 됐던 사형장 역사관 뒤편에 자리잡은 사형장은 80년대 암울했던 시대상을 그린 드라마 ‘모래시계’에서 태수(최민수 역)가 우석(박상원 역)에게 ‘나 떨고 있니?’라는 유명한 대사를 남긴 곳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애국지사에 대한 성역화 작업과 유족들에 대한 배려 차원에서 이 곳을 개방하지 않고 있다. 사형장에 들어서면 사형수들이 붙들고 통곡했다는 ‘통곡의 미루나무’ 한 그루가 관람객들을 맞는다. 사형수들의 한이 서려 있어 미루나무가 잘 자라지 않는다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일제시대 당시 400여명이 이 곳에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것으로 추산된다. 사형장 안에는 사형수가 앉는 의자 위로 당시에 실제로 쓰였던 굵은 동아줄이 내려져 있다. 개폐식 바닥이 내려가면 의자가 떨어지면서 사형이 집행되는 방식이다. 사형장 바로 옆에는 일제가 사형을 집행한 시신을 형무소 밖 공동묘지까지 몰래 버리기 위해 뚫어놓은 비밀통로인 ‘시구문’이 있다. 일제가 만행을 감추기 위해 이 곳을 폐쇄했으나 92년 입구에서 40m까지 복원됐다. ●봄나들이 코스로도 가볼만 역사관에는 세월의 흔적을 알려주는 철근 녹슨 자국, 바래진 외벽 등이 남아 있어 사진동호회나 ‘디카족’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특히 실제 수형시설이었던 ‘10·11·12옥사(獄舍)’는 역설적이게도 신혼부부들의 웨딩촬영장소로도 종종 쓰인다. 인물을 생생하게 보이게 하는 빨간색 벽돌건물이 시내에서 흔치않다는 게 이유다. 역사관인 영화 ‘친구’,‘광복절특사’, 드라마 ‘토지’ 등의 배경으로 쓰이기도 했다. 역사관은 2시간에 20만원의 장소이용료를 받지만 지나치게 상업적인 목적으로는 대여를 해주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우고 있다. 오전 9시30분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하며 매주 월요일 휴관한다. 관람료는 어른 1500원, 청소년 1000원, 어린이 500원.3호선 독립문역에서 내려 서대문형무소박물관 출구를 찾으면 된다. 문의 (02)363-9750. 글 김유영기자 carilips@seoul.co.kr 사진 정연호기자 tpgod@seoul.co.kr
  • 신안군 수재집안서 두번째 장관 나왔다

    신안군 수재집안서 두번째 장관 나왔다

    “장산도 수재 집안에서 장관이 또 나왔네.” 장하진 여성부 장관의 집안 내력이 화제다. 장 장관은 김대중 정부에서 산업자원부 장관을 지낸 장재식 전 민주당 의원의 조카. 전남 신안군 장산도의 만석꾼이었던 장씨 집안은 장관과 국회의원, 교수, 의사, 변호사, 공기업 사장을 여럿 배출한 호남의 명문이다. 장 장관의 할아버지인 병상씨 4형제는 모두 독립운동가. 병상씨는 독립운동 혐의로 투옥돼 광복이 되고 나서야 서대문형무소에서 출옥했다. 큰할아버지 병준씨는 백범 김구 선생의 측근으로 상해임시정부에서 외무부장을 지냈다. 작은할아버지 홍재씨는 광주학생운동에 참여했다가 체포돼 모진 고문 끝에 타계했다. 홍염씨는 도쿄유학생 사건 당시 프랑스로 망명한 뒤 만주 신흥무관학교를 나와 독립군으로 활약했다. 병상씨는 슬하에 4남2녀를 두었다. 맏아들인 정식씨는 전남대 의대 안과 교수였고, 장 장관의 아버지 충식씨는 한국은행을 다니다 도의원을 지냈다. 셋째인 영식씨는 한국전력 사장을 역임했다. 막내인 재식씨는 과거 호남 출신으로는 드물게 국세청 차장과 주택은행장을 역임한 조세와 금융전문가다. 장 장관의 형제와 사촌들은 학자가 많다. 특히 진보적인 경제학자로 이름을 떨치고 있다. 동생 하성씨는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로 소액주주운동과 재벌개혁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여동생 하경씨는 광주대 교수,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을 거친 막내 하원씨는 열린우리당 정책실장이다. 재식씨의 아들 하준씨와 하석씨는 각각 영국의 케임브리지대와 런던대 과학철학과 교수. 하준씨는 케임브리지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기 1년 전에 경제학부 교수로 임용돼 학계를 놀라게 한 주인공. 그는 한국인 가운데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인사로도 꼽힌다. 서동철기자 dcsu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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