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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찰,백산서당 수색/서적 1천여권 압수

    서울시경은 25일 하오 법원으로부터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은평구 녹번동 109 백산서당을 수색,사회주의 경제를 찬양하는 내용을 담은 「정치경제학」 등 불온서적 1천1백여권을 압수했다.
  • 9살 어린이 유괴살해/20대 검거

    ◎야산에 암장뒤 부모에 돈 요구/“롯데월드 구경가자” 강남오락실서 꾀어/범인,“빚진돈 5백만원 갚으려 범행했다” 서울 청담국민교 3학년 김희성군(9ㆍ강남구 청담동 88)이 지난달 26일 전자오락실에서 유괴된뒤 10일만인 7일 숨진 시체로 발견됐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7일 김군을 유괴,살해한 김무경씨(27ㆍ절도전과1범ㆍ동작구 신대방1동 618의99)를 붙잡아 범행을 자백받고 미성년자약취유인 및 살인,사체유기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김씨는 지난달 26일 상오11시쯤 서울 강남구 신사동 661의3 「서당」전자오락실에서 숨진 희성군과 함께 1시간 가량 전자오락을 한뒤 『잠실 롯데월드를 구경시켜 주겠다』고 꾀어 지하철 편으로 서울 서초구 서초동 화물터미널 부근의 야산으로 데려갔다. 김씨는 희성군으로부터 집전화번호와 보호자의 인적사항 등을 알아낸뒤 희성군의 뒷머리와 얼굴을 돌로 3차례 내리치고 두손으로 목을 졸라 살해한 뒤 시체를 부근 숲속에 버린채 달아났다. 김씨는 지난2일 낮12시쯤 희성군의 아버지 김병숙씨(52ㆍ우암실업자재창고 관리인)에게 전화를 걸어 몸값으로 2천만원을 요구했다. 김씨는 이틀뒤인 4일 희성군의 아버지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하오1시 서울발 대구행 고속버스 6번 좌석에 돈 2천만원을 갖다 놓으라』고 요구하는 등 3차례나 약속장소를 바꿔가며 돈을 받으려다 6일 낮12시쯤 약속장소인 경기도 부천시 역곡역 앞길에서 서성거리다 미리 잠복중이던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조사결과 김씨는 강남구 압구정동 엘리트아카데미라는 가정학습지 판매회사에서 영업사원으로 일하다가 최근 실직한데다 지난 7월초부터 동거중인 애인 하모양(23)과의 생활비와 신용카드미결제금 등 빚 5백만원을 갚을 돈을 마련하기 위해 강남에 사는 부자집 자녀들을 범행대상으로 물색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 개혁과 좌절… 재임 15개월/떠나는 경제팀의 공과와 향후 진로

    ◎개혁추진에 현실과 거리 못좁혀/조 전부총리 휴식 취하며 집필작업은 계속/김 전농수산 지역구 자주 다니며 의정 전념 그 어느때보다도 경제각료들이 대거 경질된 것이 이번 개각의 최대 특징이 되고 있다. 6개 경제부처중 5개부처와 청와대경제수석이 동시에 갈렸기 때문이다. 그만큼 퇴임경제장관들이 재임했던 기간은 우리경제의 어려움이 컸던 시기였고 물러난 장관들에게는 고독한 시간이었던듯 하다. 경기는 한달이 멀다하고 내리막길을 걸어왔고 흑자시대의 구가도 수출쇄락으로 끊기는가 싶은 시기였다. 또한 통상마찰과 농수산물을 비롯한 수입개방 등에 따른 부작용의 잇따른 돌출,특히 민주화ㆍ자유화 바람을탄 쏟아진 각계의 목소리,그에따른 토지공개념의 확대실시,금융실명제의 도입추진등 그야말로 격변의 시기였다. 역대 부총리 가운데 그만큼 재계와 여당으로부터 인기를 끌지못한 부총리도 드물 것이다. 토지공개념이나 금융실명제등에 관한 그의 개혁정책은 민정­민자당으로 이어지는 여당내의 성장론자들에게 공격의 표적이 됐다. 지난 1월 당ㆍ정간에 금융실명제를 둘러싸고 논란이 일었을때 그는 『국민의 80%는 실명제를 지질할 것』이라며 정치권(또는 정치권을 통한 재계)의 압력에 맞섰다. 그에 대한 재벌들의 불평은 대단하다. 대부분의 재벌들은 그가 「대기업(물적구성)은 존속시키되 재벌(인적구성)은 해체돼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믿고 있다. 이때문에 조전부총리는 재벌들 사이에는 「지독하게 짠 사람」이라는 악평과 함께 「현실을 모르는 부총리」로 통했다. 조부총리는 17일 경제기획원에서 가진 이임사를 통해 자신이 추구했던 개혁정책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경사진 경기장에서 축구를 한다면 위에서 내려차는 쪽은 유리하다. 그러나 거꾸로 올려차는 쪽은 불리해진다. 경사진 경기장에서 좋은 경기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할수 없는 것과 같이 경제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경제의 밑바탕에 대한 정지작업이 필요한 것이다』 그는 재임하는 동안 안정기조 유지와 불형평 시정을 위한 제도개혁을 끈질기게 밀어 붙였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두가지는 모두 정치권과재계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소재였다. 그래서 그는 정치권에서 통용되던 「국민적 합의」라는 용어를 경제에도 도입해 자신의 정책에대한 방패막이로 활용하기도 했다. 형평과 정책결정과정의 민주화는 조전부총리가 폈던 정책내용과 업무스타일을 결정하는 두가지 요인이었다. 형평은 토지공개념등 제도개혁의 추진으로 나타났다. 그는 정책결정과정의 민주화를 중시해 주요정책에 대한 관계부처간의 의견이 모아지지 않을 때는 두번 세번 똑같은 회의를 반복했다. 이때문에 그가 내놓은 정책마다 「실기했다」는 비난이 따라 다녔다. 그러나 중대한 정책결정일수록 국ㆍ과장급 실무자들의 판단을 최대한 존중해 기획원 안에서 그의 평판은 좋은 편이었다. 그는 퇴임을 보름쯤 앞둔 어느날 「부총리 재임시의 역할을 자평해달라」는 주문을 받고 『아주 특별한 시기에 특별한 자리에서 일했다고 생각한다』고 답한 적이 있다. 17일 기획원을 떠나던날 같은 질문에 대해 『최선을 다한 것을 위안으로 삼는다』고도 했다. 외압과 싸우면서 개혁정책을 펴나간데 대한 심정적 자긍심과,자신의 개혁을 제대로 받아들여주지 않은 주변의 현실여건에 대한 아쉬움이 뒤섞인 착잡한 심경의 일단을 느낄수 있었다. 조전부총리가 퇴임후 어떤 일을할 것인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그러나 막상 갈곳은 마땅치 않아 보인다. 그는 재임시 『요즘도 책을 보느냐』는 질문에 대해 『틈틈이,옛날에 대한 향수가 남아서…』라고 짤막하게 답했다. 이로 미루어 볼때 그는 아직도 모교인 서울대로 돌아갈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는 입각직후인 지난 88년 12월 대학에는 사표를낸 상태이며 그동안 줄곧 『학교로 돌아가지 않을것』이라고 말해 왔다. 조전부총리는 재임중에 퇴임후 무엇을할 계획이냐는 질문을 종종 받았다. 그는 그때마다 진반농반으로 『한문서당을 열겠다』고 대답하곤 했다. 그래서 한때 기획원에는 소천서당(그의 호를딴 서당이름)이란말이 유행하기도 했으나 그의 진의는 확인할 수 없다. 그는 당분간은 휴식을 취하면서 입각으로 중단했던 「한국경제론」의 한글판과 영어판 집필작업을 계속할 것으로전해진다. 한편 재임기간중 한은법개정,증시침제 등으로 고통을 겪어야했던 이규성 전재무장관은 퇴임후 제2의 인생을 준비하겠다고 밝혔으나 민간기업이나 재무부관련기관으로 갈생각은 추호도 없다는 생각을 강력히 내비췄다. 가능하다면 30년간의 경제관료 경험을 바탕으로 대학강의를 맡고 싶다는게 그의 희망인듯 하다. 또 농수산물 수입개방에 따른 홍역을 치렀던 김식 전농수산부장관은 재임시 소홀히한 지역구(전남 강진ㆍ완도군)에 대한 관리에 온힘을 쏟을 예정. 주변에서는 노태우대통령과 막역한 관계나 호남출신의 유력한 출신이 없다는 점을 고려할때 민자당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지않겠느냐는 관측도 유력하다. 의원직을 겸임했던 한승수 전상공부장관은 앞으로 지역구인 춘천을 종전보다 자주 다니며 지역구활동에 전념할 뜻을 밝혔다. 이봉서 전동자부장관은 당분간 부친(국제화재해상보험 이필석회장)이 경영하고 있는 사업에는 관여할 생각이 없고 그동안 공직생활에 쫓겨 하지 못했던 경제에 관한 연구활동에 전념할 계획.
  • 무료한 노인들 소일거리가 없다/경로당에 모여 화투ㆍ장기가 고작

    ◎여가 활용 프로 개발 시급 노인들의 여가를 선용하기 위한 각종 프로그램의 개발이 시급하다. 줄잡아 3백만명을 웃돌것으로 추산되고 있는 60세이상 노인 가운데 80만명이 가입하고 있는 전국 1만6천4백63곳의 경로당에서 조차 마땅한 프로그램이 없어 고스톱 등 화투놀이나 바둑장기 등으로 소일하는게 고작이기 때문이다. 관계전문가들은 날로 고령화되고 있는 우리 사회의 실정을 감안할 때 노인들이 보다 건전하고 생산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다양하게 개발돼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특히 노인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하려고만 들면 큰 부담없이 손쉽게 마련할 수 있는 것이라는 점에서 정부의 복지정책이 미흡하다는 지적을 서슴지 않고 있다. 이들은 종합적이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하는데는 상당한 기간과 비용 등이 따른다하더라도 산이나 들 거리 등에서의 자연보호활동이나 생활주변에서의 폐품수집활동,골목길 꽃가꾸기,가로등 켜고 끄기,교육용비디오 등을 통한 사회교육 등은 잘만 운용하면 노인들에게 손쉽게 보람과 기쁨을 줄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고 예시하고 있다. 이와함께 다소 비용이 드는 프로그램이라 하더라도 정부 등 관계기관이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 독지가나 관련단체의 협력을 구한다면 어렵지 않게 해결할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더구나 관계기관이 지역별ㆍ계절별로 3∼4개씩의 프로그램 모델을 마련하면 대량생산 등에 따른 경비절감과 함께 각 노인단체들의 선택의 여지도 늘어나 보다 효과적일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진단했다. 대한노인회중앙회 신강순기획국장(64)은 『일부 노인정에서는 나름대로 조기청소,교통정리보조,한문서당개설,사회발전에 적응할 수있는 비디오상영,산업시찰 등과 같은 프로그램을 개발해 운영하고 있으나 대부분의 노인정에서는 무엇을 해야할지 몰라 고스톱ㆍ바둑ㆍ장기 등으로 소일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정부가 프로그램을 개발해 제공하면 노인복지 뿐 아니라 지역사회발전에도 큰 보탬이 될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90년대를 연다/새희망을 가꾸는 사람들:10ㆍ끝

    ◎춘성 물로 분교장 갈재웅 교사/두메산골서 「새싹 키우기」 23년/탄광촌등 어려운 벽지학교서만 근무/TV 잘 안나와 학습자료 직접 만들어 강원도 춘천에서 배를 타고 소양강 물줄기를 2시간쯤 거술러 올라가면 물로리 나루터에 이른다. 나루터에서 내려 산길을 따라 다시 20분쯤 가다보면 사철나무울타리가 둘린 조그만 두메학교가 나온다. 강원도 춘성군 북산면 상천국민학교 물로분교이다. 학교라야 1학년부터 6학년까지 고작 22명의 학생이 교실 2개에 나뉘어 공부하는 곳이다. 상급반인 4∼6학년 학생을 한 교실에서 가르치고 있는 분교장 갈재웅교사(47)는 이 조그만 학교에 90년대의 꿈을 걸고 있다. 다가오는 2천년대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그 시대의 주인공이 될 새싹들을 바로 키우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믿고있기 때문이다. 『교사생활 23년동안 주로 벽지학교만 돌아다녔지만 4년전 처음 이곳에 부임했을 때만해도 지금까지 일해온 어느곳보다 사정이 딱한 곳이었다』는 갈교사는 『그러나 아이들만은 그 어떤 어린이들보다 순박하고 티없이 맑았으며 배우려는 의욕이 강했다』고 말했다. 갈교사는 처음 3개월동안 주말마다 시내에 나가 학습자료를 사오고 교무실과 숙소에서 밤을 새워가며 「복수학습간접지도자료」를 만들었다. 이 학습방식은 마름모꼴의 나무상자 각면에 학년별로 공부할 단원의 요점과 문제 등을 쓴 카드를 게시하고 설명을 한뒤,학생들에게 스스로 문제를 풀게하고 어려운 부분은 보충설명을 해주는 식의 이를테면 옛 서당식 개별학습 방법이다. 갈교사의 이같은 학습방법은 상당한 효과를 거두어 학생들이 도내실력평가와 중학교 배치고사 등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고 갈교사 스스로도 도교육위로 부터 우수상을 받았다. 지난66년 춘천교육대학을 졸업한뒤 철원국민학교에 첫발령을 받은 그는 그동안 모두 13차례의 상을 받았다. 갈교사는 어린시절을 산골에서 보낸 탓에 낙후된 교육환경에서 어렵게 공부하는 학생들만 보면 더욱 애착이 가고 돕고 싶어 교직생활의 반이 넘는 동안을 강원도 탄광촌에 있는 구절ㆍ백전국민학교 등 남들이 꺼리는 벽지 학교를 전전했다. 『이곳은난시청지역이라 TV도 제대로 나오지 않기 때문에 시간이 나는대로 시내에 나가 동화책을 사다 학생에게 주고 빈테이프로 1∼3학년을 맡고있는 전갑찬교사(35)와 육성으로 「오성과 한음」 「이순신장군」 등 옛날이야기와 위인전을 녹음해 학생들에게 들려주고 있다』는 갈교사다. 이 학교에서는 1학년이라도 일찍 집에 갈수 없다. 아침에 학생들을 태우고 온 2t짜리 동력선이 하오4시에나 떠나기 때문이다. 배를 기다리는 학생들을 위해 어쩔수 없이 「전일제수업」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수업을 마친 뒤에는 6학년이 저학년을 가르치기도 하고 편을 갈라 축구경기를 시키는 등 학생들끼리 어울릴수 있는 시간을 주고있다. 『벽지에서 일하다 보면 가장 기쁠때가 제자들이 의젓한 중학생이나 사회인이 되어 찾아 올때』라는 갈교사는 『이미 결혼할 나이가 된 제자들이 주례를 부탁하고 있다』고 웃음지었다. 『대부분의 주민들이 도시로 빠져나가 학생들이 점차 줄어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해왔듯이 어려운 환경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을 위해 정성을 다할 결심입니다』 어려운 여건속에서도 묵묵히 참교육을 실천하고 있는 갈교사가 90년대에 걸고있는 희망은 획기적인 처우개선도 교원노조도 아니고 단지 두메학생들에게도 다른 학생들과 똑같은 교육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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