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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달의 독립운동가 조병세 선생

    ◎“을사5적 처단” 궐밖서 상소항쟁/79세 노구 이끌고 “조약체결무효” 호소/국권회복 가망없자 유서남기고 자결 국가보훈처는 12월의 독립운동가로 충정공 조병세(1827∼1905년12월1일)선생을 선정,발표했다. 선생은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광무황제(고종)에게 을사5적의 처단과 조약의 무효를 각국에 밝힐 것을 요청하는 상소를 올린 뒤 자결,순국한 애국지사다. 서울 회동이 고향인 선생은 26세때인 1852년 관계에 나가 사간원 정언·헌납·홍문관교리 등 조선시대 대쪽 같은 선비가 거치는 삼사의 요직을 두루 역임했다. 1884년 김옥균·박영효 등 개혁파 인사가 주도한 갑신정변이 실패로 끝나고 1894년 갑오개혁이 실시되기까지 10여년간 선생은 이조·예조·공조판서를 거쳐 우의정·좌의정을 역임하면서 갈수록 커지는 외세의 간섭에 맞서 부국강병을 통한 자주적 국권수호에 힘썼다. 그러나 갑오개혁과 을미사변을 거치면서 일본의 국권침탈이 더욱 심화되고 일제를 몰아내기 위한 의병항쟁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자 선생은 이를 좌시하지 않았다. 1896년난국을 헤쳐갈 인재의 등용과 재정안정을 골자로 하는 19개조의 차자(상소의 일종)를 올려 서정개혁을 건의했다. 그럼에도 정국은 외세의 간섭 속에서 자주적 외교노선과 부국강병책을 강구하지 못했고 일본과 러시아에 각종 이권을 내주는 등 혼미를 거듭했다.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의 강압으로 1904년 한·일협정이 맺어져 일제가 추천하는 재정·외교고문관이 한국의 재무·외무관계의 모든 업무를 관장하고 다음해 2월 재외국공사들이 소환되어 한국의 외교활동이 중단되는 등 국권은 더욱 기울어갔다. 이렇게 조국이 백척간두의 어려움에 처하자 선생은 79세의 노구를 이끌고 시폐 5조의 상소를 올려 광무황제에게 개혁의 필요성을 간곡히 상소했다. 선생의 노력도 헛되이 1905년 11월17일 일제의 강권으로 황제의 윤허도 받지 않은 한국의 외부대신과 일본의 특명전권공사 사이에 을사조약이 체결됐다. 을사조약은 일본이 외무성을 통해 한국의 외국에 대한 관계 및 사무를 감리·지휘하고 한국의 개항장과 필요한 곳에는 일본인 이사관을 두어 모든사무를 관리한다는 치욕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조약으로 대한제국은 자주적 외교권을 상실한 것은 물론 내정조차 일본통감의 지휘를 받아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이 소식을 들은 선생은 『나라가 이미 망하였으니 신하로서 따라 죽음이 마땅하다』는 비장한 각오로 신병을 무릅쓰고 상경,광무황제에게 을사5적의 처단과 조약이 무효임을 각국에 밝힐 것을 요청하는 상소를 올렸다. 그러나 일제의 압력에 눌린 황제는 선생의 상소에 미온적이었다.선생은 다시 대신을 이끌고 의분에 찬 상소를 올리는 한편 영국·독일·미국·프랑스·이탈리아등 5개국 공사에게 공한을 보내 국제공법에 따라 합동회의를 열어 조약을 부인하는 성명을 낼 것을 호소하기도 했다. 일본측은 황제를 협박,이들을 궁궐에서 내쫓게 하였으나 선생은 대한문 밖에서 석고대죄하며 상소항쟁을 계속했다. 거듭된 상소에도 국난을 바로잡을 수 없음을 통분히 여긴 선생은 가마에서 극약을 마셔 자결한다. 자신의 목숨으로서 광무황제를 비롯한 국민 모두의 자각과 국가존망의위급함을 알리기 위함이었다. 선생은 자결하기 전에 써놓은 유언과 각국 공사에게 보내는 서한,국민에게 당부하는 피끓는 유서를 남기고 이날 하오6시쯤 세상을 떠나니 이때 나이 79세였다. 선생의 순국소식을 접한 조야의 수많은 인사가 국가의 장래와 더불어 선생의 죽음을 애통해 했다. 종로 네거리에서 거행된 장례식에는 유생은 물론 기생조차 참여한 수천명의 군중이 선생의 우국충정의 정신을 기렸다. 선생의 유서를 게재한 대한매일신보는 논설에서 「한마디 한글자가 사람으로 하여금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게 한다」고 선생의 죽음을 아쉬워했다. 선생의 유서를 요약하면 이렇다. 「신이 죽은 후에는 큰 결단을 내리시어 제순·지용·근택·완용·중현 등 5적을 대역부도로 처단하시고 각국 공사에게 교섭하여 위약을 깨끗이 없애버리고 국가의 명맥을 회복하신다면 신의 죽는 날이 사는 해가 되겠습니다」 그의 죽음이 곧바로 국권회복으로 나타나지는 않았으나 독립운동의 큰 거름으로 1945년 광복을 일궈낸 힘이 되었다.정부는 지난 62년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순국 90주기를 맞아 선생은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됐다.
  • 우르치바다뤼 태양·지구물리연(시베리아 대탐방:53)

    ◎2백56개 안테나 스테이션은 “세계 최대”/태양 전파 측정·분석… 지구환경 변화 등 탐지/90년부터 연방정부 예산 끊겨 연구활동 부진 이르쿠츠크 서남쪽 2백㎞ 우로치바다뤼 마을에 가면 대형 위성안테나 수백개가 십자가 모양으로 늘어선 것을 볼 수 있다. 이곳은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이르쿠츠크지부산하의 태양·지구물리연구소가 설치한 태양전파측정용 안테나다.설치된 전파측정용 안테나는 정확히 2백56개나 된다.직경 2.2m크기의 이들 안테나는 우로치바다뤼 산중턱에 가로 6백22m,세로 6백22m되는 땅에 십자형태로 설치돼 있다. 안테나가 많은 것은 태양의 각 부분에서 들어오는 방사능 및 각종 우주선을 골고루 잡기 위해서다.「안테나스테이션」의 30명의 연구원은 바로 태양에서 들어오는 이들 전파를 분석,태양의 진화과정,지구의 환경변화를 탐지해낸다.태양에서 나오는 전파의 소소한 움직임을 통해 태양이 지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가를 알아낸다는 것이다. ○렌즈 직경 2m 망원경도 이 연구소가 갖춘 또 하나의 「보물」은 태양관측용 망원경이다.이 망원경은 바이칼호 이웃의 리스트비얀카산과 크라스노야르스크 교외의 사야니라는 곳에 각각 설치돼 있다.망원경 렌즈의 직경은 2m로 이 연구소에서 직접 제작한 것이다. 이 연구소는 지난 92년까지만 해도 지구물리연구소에 불과했다.여기에 「태양」을 끼워넣은 것은 지구를 연구하다보니 자연히 태양을 분석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연구진들의 의사가 반영된 것이다.연구소는 최근 태양망원경을 통해 찍은 마그네틱 사진과 산중에 설치된 위성안테나에서 받은 각종 전자파을 분석해 몇가지 새 사실을 발견했다.마그네틱 필름을 알파라인을 비춰 찍어낸 태양사진을 분석한 결과 태양에서 지구에 보내지는 전자파의 질과 양이 각각 다르게 나타났고 일정한 주기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예를 들면 태양은 지구에 대해 11년을 주기로 빛을 강하게 보내기도 하고 여리게 보내기도 한다는 것이다.이 주기는 1989년에 시작됐고 오는 2000년에 다시 시작할 예정인데 주기를 관찰한 결과 오는 2천년대에는 태양과 지구 사이에 별다른 물리적 변화가 없을것이라고 연구원들은 밝혔다.이 연구소 실험실장 발레리 스코모로프스키씨는 『태양 표면의 미세한 온도변화가 지구표면에는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데 이 변화가 당분간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기상이변 원인도 밝혀 연구소의 연구대상 전파는 주로 지상 70㎞에서 1천㎞ 사이에 있는 것들이다.이 공간은 성층권의 상부 전리권으로 지구에서 볼 때는 태양과의 상관관계가 가장 큰 공간이라는 것이다.연구소측은 이 공간에서의 전파들과 태양 표면관찰결과를 분석하면 북극에 오존의 변화량을 감지,지구 환경을 보다 적극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현재까지의 분석결과 시베리아 북극에 오존이 적어지기 시작한 것은 환경문제보다는 태양 표면열에 의한 지구 온도변화 때문인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이를 응용하면 최근 빈번하는 지구 각지의 기상이변의 원인도 밝힐 수 있을 것으로 연구소측은 보고 있다.연구소는 또 위성통신의 통신장애가 일어나는 이유를 밝히기 위한 연구도 활발히 진행시키고 있다.스코모로프스키 실험실장은 『보통 위성의 평균수명은 12년』이라면서 『태양의 생리를 모르면 비싼 돈을 들여 위성을 띄워도 관리부족으로 위성수명 자체가 크게 위협을 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연구업적에 큰 도움을 준 전파측정용 안테나는 사실 지난 1980년 호주에서 발명돼 이용돼 왔다.당시 안테나 개수는 32개.따라서 1984년에 완성된 이곳의 2백56개 안테나스테이션은 전세계에서 가히 독보적인 것이다.안테나의 수가 중요한 것은 이들 각각의 안테나가 태양으로 부터 들어오는 각 전파를 더 깊이 분석하기 때문인데 과학적으로 2백개 이상의 전파측정용 안테나를 서로 연결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 지금까지 태양물리학자들의 지적이었다.일본의 경우 「태양연구소」인 미야마연구소가 지난 92년에 완성한 안테나 스테이션의 안테나 수도 1백60개가 고작이었다. ○일보다 10년 앞서 설치 이와 관련,이 연구소의 한 연구원은 『이미 사망한 미야마연구소의 다나카박사는 호주연구소의 두배까지는 안테나 설치가 가능하지만 더 이상의 설치는 불가능하다고 선언했다』면서 『러시아의 이 연구소를 답사한 뒤 그는 이 연구소의 능력에 놀랐었다』고 회상했다.이 연구원은 『일본이 태양연구소를 발족한 1992년만 해도 컴퓨터과학이 발달하고 미국등 서양기술진이 총동원됐었다』면서『러시아의 이 연구소는 그보다 이미 10여년전에 완성된 것』이라는 사실을 지적했다. 그밖의 장비도 모두 10여년이 지난 것들이지만 우리나라에는 없는 것이 대부분이다.일식 때도 관측이 가능한 전전후 코로나그라프(코로나관측장비),진공태양망원경,우주선분광사진기등이 그것이다.북극 노릴스크지방에는 연구를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종합자기·전리측정 위성스테이션도 갖고 있다. 세계 첨단의 유능한 일꾼과 장비를 갖추고 있음에도 이 연구소는 빛이 바래지고 있다.90년부터 연방정부의 예산이 끊겨버렸고 자체 편성예산으로는 연구원의 월급도 주기 힘든 상황이라는 것이다.때문에 태양물리학계의 「거성」들이 최근 2년사이에 한 두명씩 다른 나라로 새 일자리를 찾아가기 시작했다며 관계자들은 우려를 표명했다.현재까지 미국과 스페인으로 모두 10여명이 빠져나갔으며 앞으로도 몇사람의 박사가 일본으로 빠져나갈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 생활용품업계 중국진출 활발/신발·가방 등

    ◎“인건비 저렴” 해외투자 56% 차지 고임금과 인력난에 시달려 온 국내 생활용품업계가 중국에 해외투자를 집중하고 있다. 22일 통상산업부가 집계한 생활용품업체의 해외 투자국별 현황에 따르면 지난 6월말 현재 해외에 투자한 업체는 모두 7백41개로 투자금액은 4억8천1백20만달러에 이르고 있다. 이 가운데 중국 투자건수는 4백19건으로 전체의 절반이 넘는 56.5%를 차지하고 있다. 그 다음은 인도네시아 74개,필리핀 62개,스리랑카 30개,베트남 28개 등 동·서남아 진출업체가 2백60개로 35.1%를 기록하고 있으며 기타국가는 62개업체로 8.4%이다. 생활용품 업계의 중국 진출이 활발한 것은 동남아 국가 등에 비해 거리가 상대적으로 가까운데다 인건비가 싸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진출업체를 보면 삼익악기와 영창악기가 각각 하얼빈과 천진에 공장을 설치,피아노 프레임을 제작,국내로 들여와 완제품을 생산하고 있으며 기호상사는 북경에 핸드백과 지갑공장을 설립했다. 업체별로는 신발업계가 66개로 가장 많으며 신변용품 63개,가방 54개,가구44개,완구와 혁제품이 각각 35개,가발 22개 등의 순이다. 이들 업체들은 국내 본사공장에서는 제품기획 및 신제품 개발을 통해 고부가가치제품을 생산하고 중국 투자공장에서는 노동집약적인 중급제품 및 부분품을 생산,수출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통산부는 생활용품 업체들이 중국과 이러한 보완적 분업체계를 구축,경쟁력을 향상시키고 있어 앞으로 대 중국 협력체제는 더욱 가속화 될 것으로 전망했다. 한편 생활용품 업체의 연도별 해외투자 추이를 보면 89년 이전 81개 업체에서 93년 4백70개 업체,지난해 6백97개 업체로 집계되는 등 임금이 급격히 상승하고 인력난이 가중된 90년을 고비로 크게 늘고 있다.
  • 정보통신·자동차 등 주력업종 6개 확정/(주)쌍용

    (주)쌍용은 22일 주력업종을 조정하고 사업구조를 재편성해 20 01년에는 수출 1백20억달러 등 13조원의 매출을 달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주력업종으로 정보통신·중공업·자동차·석유화학·철강금속·자원개발 등 6개분야로 정했으며 해외거점은 1백10개로 늘리기로 했다.중국·일본·미국·동남아·서남아·유럽 등 6개 해외본부의 연계경영도 강화할 계획이다.또 본사조직을 기존 27부 61과 23팀에서 43팀으로 통합 개편했다.
  • 서울신문에 미친 사회풍속도 세태 50년:Ⅱ(서울신문50돌 특집)

    ◎70년대/「보릿고개」 넘기자 미니스커트 상륙/비상계엄 후유증 「카더라 통신」 난무 70년대 70년대는 유신체제라는 스펙트럼이 처음부터 끝까지 국민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잣대로 작용했다. 유신체제는 우선 「우리도 한 번 잘살아보세」라는 새마을운동 노래로 국민들의 새벽단잠을 깨우며 다가왔다. 전국 농·어촌에 새마을기가 나부끼기 시작했으며 동남아시아 국가등 해외에서도 새마을 붐을 불러 일으켰다. 서울신문도 71년부터 정부의 본격적인 사업전개에 앞서 새마을가꾸기 선두부락을 소개하는 기획물 「번영을 가꾸는 희망가족 시리즈­의욕의 현지,북돋는 자립,땀흘린 보람의 합창」이란 고정컷으로 본지 최초의 새마을운동 기획물을 72년초까지 50회에 걸쳐 연재함으로써 이 운동의 확산에 큰 몫을 담당했다. 72년 3월24일자 사설에선 이 운동을 「농민들이 스스로 잘살기 위해 자조·자립·협동하는 정신의 계발」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70년 7월7일 경부·호남고속도로 개통에다 71년 3월31일 서울·부산 자동전화 개통은 「일일생활권」이라는신조어를 만들어 냈다. 정부의 이러한 불도저식 경제 최우선 정책으로 국민들의 배고픔도 어느 정도 해결되기 시작해 국민들의 얼굴에 미소가 띠기 시작했다. 환해진 모습은 먼저 옷차림에서 띠였다.67년 가수 윤복희씨가 선보인 미니스커트는 73년에는 무릎위 17㎝위까지 올라갔을 정도로 그 길이가 짧아져 경찰이 경범죄처벌대상에 미니스커트 길이를 포함시켜 자를 들고 다니며 이를 단속하는 진풍경을 빚기도 했다.남자들의 긴 머리도 마찬가지였다. 대학생들을 비롯한 청년들은 청바지를 즐겨 입고 통기타와 생맥주로 이어지는 이른바 「청통맥문화」를 만끽했다.「사랑해」「왜불러」등의 포크송이 거리를 메웠으며 「아침이슬」「고래사냥」등 금지곡도 양산됐다. 72년 7·4 남북공동성명은 통일을 염원해 온 국민들에게 벅찬 감격과 흥분으로 소용돌이쳤다. 이날자 본지는 「피맺힌 4반세기…이제 전쟁은 사라지는가! 3천리에 벼락환성」「대화있는 남·북대결의 시대 열리다」라는 제목으로 당시 시민들의 반응을 실감있게 전하고 있다. 강하면 부러진다고 했던가. 70년 11월 13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며 근로조건개선을 요구하며 평화시장 교복공장에서 재단사로 일하던 전태일씨의 분신자살 사건은 이러한 고도성장 드라이브 정책이 필연적으로 맞을 수 밖에 없는 종착점을 예고한 사건과 다름 없었다. 72년 10월 17일에는 비상계엄선포로 국회가 해산되고 대학이 문을 닫고 신문·통신마저 사전검열을 받으면서 국민들은 「카더라 방송」「유비통신」으로 불리는 소문에 귀를 기울이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졌다. 행정부의 시녀로 전락한 유신국회의원들이 장충체육관에서 「체육관 대통령」을 뽑는 「거수기」로 변한 것이나 비상계엄 아래서도 반체제 인사들의 저항과 민주회복운동,양심선언 등이 계속된 것도 궁극적으로는 하나의 사건을 예고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유신정권은 「그때 그사람」이라는 노랫가락 속에 울린 몇발의 총성과 함께 79년 10월26일 막을 내렸다. 10·26사태 뒤엔 「한다면 합니다」란 말과 5·17후의 떡고물 얘기가 유행했다.부정축재자로 지목된 L씨가 자신은 떡(정치자금)은만졌으나 고물(부스러기돈)만 떨어졌다는 말에서 비롯되었다. 70년대 종반은 79년 12월 12일 신군부의 군사반란에 이어 80년 5·17일 쿠데타로 또 다른 군사정권 시대를 예고하고 있었다. ◎80년대/“금융사기” 장영자에 “큰손” 조롱/테러범 김현희에 구혼 줄잇고/“탁치니 억하고 죽었다”엔 분노 79년 10월26일 독재자 박정희의 죽음을 뒤로 하고 80년대를 앞두고 있을 때만 해도 국민들은 비로소 「서울의 봄」을 맞게 됐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79년 12월12일 이른바 12·12 군사반란으로 정권탈취를 노린 신군부는 압제와 서슬 퍼런 군사독재의 시대로 80년대를 열고 있었다. 80년 5월17일 군사쿠데타를 일으켜 군권을 장악한 신군부는 18일 군부독재 연장기도에 맞서 광주에서 발생한 항의시위를 공수부대 특전단을 동원해 총검으로 유혈진압하는 비극을 초래했다. 결국 신군부는 그해 9월1일 전두환 정권을 탄생시킨다.그리고 이날부터 TV에는 「땡전뉴스」가 등장하게 된다.9시 뉴스는 어김없이 『전두환 대통령께서는…』으로 시작됐던것이다. 80년 11월12일에는 언론통폐합과 언론기본법 등이 제정돼 기자들은 강제해직을 면치못했고 언론은 통폐합 됐다. 이같은 압제는 학생운동의 흐름에도 영향을 미쳤다.학생운동은 광주항쟁에서의 좌절을 계기로 반미라는 새로운 흐름으로 표출됐고 급기야 82년3월18일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이 발생했다.이는 85년 서울·광주 미문화원 점거로 이어졌다. 82년 5월에는 장영자 금융사기 사건이 발생했다.6천억원대에 달하는 건국후 최대의 금융사기사건으로 이때부터 사람들은 씀씀이가 큰 사람을 「큰손」이라 일컫기도 했다. 분단의 아픔은 80년 대에도 지워지지 않았다.83년 9월1일에는 사할린 부근에서 항로를 이탈한 대한항공 보잉007기를 소련의 전투기가 공격,승객과 승무원 등 탑승자 2백69명 전원이 사망했고 그해 10월9일에는 서남아시아 순방에 나선 전두환 대통령을 수행하던 서석준 부총리 등 고위관리 13명이 미얀마 양곤의 아웅산묘소에서 북한공작원이 설치한 폭탄에 절명,분노를 자아냈다. 그같은 분노는 87년 6월 테러범 김현희가 대한항공 858기에 폭탄을 설치,1백51명의 승객 전원이 사망하는 사고로 절정에 달했다.그러나 압송돼온 김현희의 미모에 반해 결혼하고 싶다는 남성들의 문의가 쇄도했다는 웃지 못할 뒷얘기도 남겼다. 87년 1월14일 박종철군 고문치사사건도 시대의 아픔을 공유케 했다.「탁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발표는 폭력적인 공권력과 인권침해에 대한 국민적인 저항을 불러 일으켜 6·29선언을 낳게 했다.민주화를 염원하는 국민들의 요구에 굴복해 나온 이 선언은 후에 「죽이구」선언으로 회자되기도 했다. 이처럼 어두운 시대였지만 변화의 물결도 뚜렷했다.80년 컬러TV 시대가 개막됐고 82년에는 통행금지가 해제됐다.또 비디오문화가 새롭게 열리기 시작하면서 외설문화의 범람을 초래하기도 했다. 80년에는 또 대입본고사 폐지,대학정원의 졸업정원제 등을 내용으로 하는교육개혁조치와 함께 과외 전면금지가 단행 됐다.이에 따라 숨어서하는 과외가 성행,수백만원대의 과외풍조가 생겨났으며 「쪽집게과외」 등 돈으로 교육을 사는 세태를 낳기도 했다. 82년 중·고생 두발자율화,83년 교복자유화 등의 조치는 청소년들의 유흥업소 출입 등 많은 문제를 양산하기도 했으며 유니섹스모드의 유행을 가져오기도 했다. ◎90년대/3D기피 현상속 세계화 바람타고 외국어 수강 “붑” 93년 2월25일 제 14대 김영삼 대통령 취임과 함께 「문민정부」가 탄생했다.5·16 이후 30여년만에 민간대통령이 탄생한 만큼 90년대는 사회 모든 분야에 변화의 바람을 몰고 왔다. 안으로는 금융실명제 등을 통해 사회개혁의 기치를 높이 드는 사이 49년간 북한을 통치해온 김일성이 사망하고 김정일체제가 들어서는 등 안팎으로 많은 소용돌이가 있었다. 그러나 진정으로 90년대를 특징짓는 함축적인 표현은 이른바 「X세대 문화」다. 뒤돌아볼 겨를 없이 성장가도를 달려온 부모·선배 세대가 만들어 놓은 과실을 향유하는 신세대들의 시대인 것이다. 그들에게는 개인주의적이고 향락주의적이라는 부정적인 측면과 함께 개성적인 새대라는 의식이 공존 한다.알아들을 수 없는 「랩」을 흥얼거리며 록카페를 드나드는 「오렌지족」인가 하면 마음만 먹으면 배낭하나 덜렁 메고 유럽이고 미국이고 가고 싶은 곳은 어디라도 찾아나서 모험을 즐기기도 하는 세대들인 것이다. 컴퓨터 없이는 아무 것도 할수 없지만 정보화시대를 앞당기며 국제화와 세계화를 이끌 첨병도 바로 그들이다. 젊은이들의 문화가 인간성 상실로 인한 황금만능주의와 개인주의적 대중문화의 병폐를 양산하기도 하지만 그들에게 그것은 컴퓨터나 외국어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는 30∼50대 「컴맹세대」가 느끼는 세대간의 문화적 격차일 뿐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성수대교 붕괴사고,서울 아현동 가스폭발사고,삼풍백화점 붕괴 등 90년대 들어 빈발하고 있는 대형사고들은 선배세대들의 부정적 부산물일 뿐이며 그점에서 그들은 오히려 피해자인 것이다. 하지만 즐기는 신세대로서의 그들은 3D 기피현상이라는 어두운 한 단면을 90년대에 그려내고 있기도 하다.「고학력 구직난,저학력 구인난」현상과 외국인근로자의 양산도 바로 그들의 시대를 특정짓는 모습들이다.
  • 파랑도를 만들자(서울신문 50돌 특집)

    ◎건축공학적 측면/「콘크리트 중력식」으로 건설 바람직/용도따라 다양한 건설공법 활용/경제성 인정된 「재킷」식도 한방법/제환규 삼성중공업 이사 해상에 건설되는 인공섬은 그 기능에 따라 구조물의 하부가 해저면에 고정된 고정식 해양구조물과 해상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이동식 해양구조물로 대별할 수 있다.또 용도에 따라 석유·천연가스 등의 자원을 생산하는 생산용 구조물과 해양·기상·지구환경 관측,항로안전,해난수색·구조 등을 위한 종합해양과학기지용 구조물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이동식 해양구조물은 구조물 자체가 이동할 수 있고 재사용가능한 특성을 가지고 있으나 주로 해저자원개발에 사용되고 있는 구조물이므로 파랑도에 건설하기 위한 인공섬의 용도에는 부합하지 않기 때문에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기로 한다. 고정식 해양구조물에는 매립식·콘크리트중력식,재킷구조물 등이 있는데 각각의 구조형식 및 특성은 다음과 같다.먼저 매립식 인공섬은 수심이 얕은 해역에서 육상 혹은 해저의 토사를 채집하여 매립한 후 해면주위에 침식방지용 시설을 하고 외곽방파제를 설치하는 것이다.그러나 파랑도주위는 빠른 조류로 인해 매립토를 부설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이 방법은 현실적으로 적용이 곤란하다 하겠다.지금은 백지화된 부산 인공섬이 이 방법으로 구상됐고 일본 간사이공항이 이 방법으로 건설됐다. 다음 콘크리트중력식은 매립식 인공섬의 수심이 1백50m정도로 깊어짐에 따라 제작설치비가 상승하고 공기가 장기화되는 난점을 해결하기 위해 개발된 것으로 콘크리트구조물을 자체의 하중으로 해저면에 밀착시켜 고정위치를 확보하고 구조물 전체의 안정성을 유지하는 방법이다.짧은 시간 안에 빠른 조류에도 설치할 수 있고 재질이 콘크리트이기 때문에 해수에 부식되지 않는 장점이 있어 현실적으로 바람직한 방법중의 하나라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재킷구조물은 해양자원개발에 선구적인 역할을 한 해양구조물로서 석유생산 혹은 시추장비,관측용 장비,거주구 등을 설치한 갑판구조물,그리고 이를 지지하는 재킷과 구조물 전체를 견고히 해저에 고착시키는 기둥으로 구성돼 있으며 수심 1백m이내의 해역에서 주로 설치된다.석유생산을 포함한 해상작업용과 수심 20∼30m정도의 항내하역 접안시설용 등으로 가장 많이 설치된다.이 방법은 국내에서도 세계적인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근본적으로 인공섬 건설은 어떤 목적으로 사용할 것인가에 따라 방법이 결정돼야 한다.단순히 종합해양과학기지용 구조물의 형태로 사용할 경우 기술적·경제적으로 그 타당성이 입증된 재킷형식의 고정식 플랫폼 건설이 바람직하고,종합해양과학기지용 구조물을 포함한 규모가 큰 주거시설 및 어업전지기지 등의 형태로 사용할 경우 콘크리트중력식이 바람직하다.특히 이 형식은 향후 인공섬의 확장이 필요할 경우 기술적·경제적으로 매우 유리하다고 할 수 있다. ◎국제법적 측면/“국내 대륙붕 일부”… 법적지위 선점/해양관할권 분쟁 사전방지의 효과/권무상 해양연구소 정책부장 이용가능한 자원의 감소와 계속적인 인구증가로 세계각국은 식량,자원의 획득 및 영토확대의 가능성을 보이고 있는 해양으로 눈을 돌리게 되었다. 특히,해양구조물의 설치가 용이한 해저산 등이 존재하는 해역은 그 공간적 이용의 잠재력이 매우 큰 곳으로,우리나라 서남해에 위치한 이어도가 바로 그 좋은 예라고 하겠다. 이어도는 해양법협약의 규정상 도서가 아니며,지질학적으로 해저산으로 분류된다.해양법 협약에서는 항시 수면위에 둘러싸여 있는,자연적으로 형성된 육지지역을 도서로서 규정하고 있다.이러한 해저산은 그 존재를 이유로 해 어떠한 해양관할권의 주장도 가능하지 않지만 해양과학조사연구와 자원개발,해운,어업,통신,기상관측 및 군사적 목적으로의 활용가치가 매우 높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어도는 국내법적으로는 1952년 인접해양에 대한 주권을 선언한 평화선 선포구역 내에 있으며,1970년에 제정된 해저 광물자원 개발법상의 해저광구 중 제4광구에 위치한 우리나라 대륙붕의 일부이기도 하다.한편 한일어업협정에 따르면 이 수역은 공동자원조사수역에 속한다.향후 중간선원칙에 따라 주변국들과 해양경계선을 획정한다면 이어도는 한국측 해양관할권 깊숙이 위치하게 돼 중국 일본 등의 해양관할권 주장으로 인한 국제분쟁의 발생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하겠다. 그러나 현재 국제법상 논점은 앞서 언급한 평화선,해저광물자원개발법 등의 일방적인 국내법적 조치와 대외적 효력의 문제이다.평화선 선포이래 한일어업협정의 체결과 중일어업협정의 체결,그리고 해저광물자원개발법의 제정 및 한국의 해저광구 설정에 대한 중국의 강력한 항의 등으로 평화선과 해저광물자원개발법의 실질적 효력에 의문을 제기하는 견해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평화선의 효력을 부인하는 경우도 이어도의 상부 수역은 공해로서,그리고 하층토는 대륙붕으로서의 법적지위를 갖게 된다.따라서 대륙붕의 탐사와 개발에 관련된 해양구조물을 이어도에 설치하는 것은 우리나라의 전속적인 권리에 속하게 되며,타국이 이러한 목적의 해양구조물을 설치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의 동의를 구하여야 할 것이다. 이 밖에 대륙붕의 탐사와 개발 이외의 목적의 해양구조물 설치는 공해자유의 원칙에 따라 우리나라는 물론 어떠한 국가라도 타국의 적절한 해양이용을 방해하지 않는 한 가능한 것이다.우리나라가 이어도에 해양과학기지를 건설하는 것은 향후 해양관할권이 확정되는 시점 이전에 이어도수역을 선점해 동북아 해역에서의 해양연구 활동을 선도하며,또한 미래의 우리 해양 영토에 외국의 해양구조물의 존재로 인한 분쟁발생 가능성을 미연에 방지한다는 점에서도 매우 중요하게 생각된다.
  • 내가 본 파랑도(서울신문 50돌 특집)

    ◎한국해양연구소 이동영 박사는 말한다/“「태풍의 길목」 기상관측의 최적지”/기상예보 정확성 높여 태풍피해 최소화/대륙붕 개발·어업전진 기지로도 활용 『파랑도는 해양기상 연구와 구난활동·어업 전진기지로서의 활용은 물론 지구환경 변화 감시에도 이상적인 장소입니다.과학기지를 건설해 한국 해양연구의 일류화와 국제사회에 공헌하는 초석을 마련했으면 좋겠습니다』 미국 플로리다대에서 해양공학박사 학위를 받고 조교수로 재직하다 85년 귀국 직후부터 파랑도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해양공학자 이동영박사(46·한국해양연구소 해양환경공학실장).87년부터 4차례나 격랑속의 파랑도 현장을 답사하면서 기지건설 기초 조사등을 벌여온 이박사를 만나 그간의 연구 성과와 바람직한 파랑도 이용 방안등을 들어 보았다. ­개인적으로 관심을 갖게 된 동기는 무엇입니까. ▲귀국후 폭풍에 의한 재해방지 관련연구를 하게 됐는데 현장 관측자료가 전혀 없는 것입니다.태풍이 지나가는 동지나 해상에 고정 관측소가 하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간절히 하게 됐습니다.미국에서의 경험에 의하면 해양 한복판에 고정구조물이 있으면 해양과 대기의 경계면에서의 와동에 의한 운동량이나 열,수증기,각종 가스등의 이동량을 직접 측정할 수 있기때문에 해양및 기상예측을 더 정확히 할 수 있거든요.그러던 차에 87년 「전설의 섬 이어도」라는 방송 프로그램에 초대돼 현지를 방문하면서 「이거다」 싶은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동안 연구성과는 어떻습니까. ▲해양과학기지 건설에 필요한 설계조건 도출을 위한 기초조사와 각종 관측연구를 했습니다.정부간 해양위원회(IOC)가 「하나뿐인 지구를 살리자」는 목표로 세계 해양관측 시스템(GOOS) 구축을 제안해 와 90년부터 「국가 종합해양 관측망 구축」을 국책연구과제로 수행하면서 동북아 지역에서의 고정연속 관측소의 필요성이 현실화됐기 때문이지요.97년까지 구조물 완공을 목표로 94년부터 파고 조위계 설치 암석채집 정밀수심 측량등을 했지요.과거 태풍 자료와 7년간의 파랑자료,위성자료등을 모으고 시뮬레이션해 설계 조건을 구했어요.섬주변에 등부표를 설치해 제한된 관측도 시도해 봤습니다. ­과거에도 파랑도 개발계획이 있었지요. ▲파랑도의 최초 이용계획은 1938년 일제시대때 일본인들에 의해 구체적으로 작성됐습니다.당시 일본은 나가사키에서 상해를 연결하는 해저케이블 부설계획을 세웠는데 거리가 너무 멀어 중간 지점인 파랑도에 인공섬을 건설키로 했어요.2차대전으로 인해 실현되진 못했습니다.그후 개발계획은 87년 어업전진기지로 활용하기 위해 부두 물양장등 대형시설을 갖춘 축구장만한 크기의 인공섬 건설계획을 세웠으나 이 역시 수조원이 소요되는 무모한 계획으로 판단돼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파랑도 인공섬,혹은 연구기지는 어떻게 추진되는것이 바람직하다고 보십니까. ▲파랑도는 태풍에 의한 큰 파도로 구조물의 설계 시공이 어렵고 경비가 많이 들므로 철저한 사전 조사와 연구를 거쳐 기본 설계,실시에 들어가야 합니다.우선 해양 기상 부이를 설치해 운영하면서 자료에 의한 기초연구를 수행해 나가고 고정 구조물은 최소한의 규모로 설치해 시범 운영하면서 충분한경험을 쌓은 후 규모를 키우는게 바람직하다고 봅니다.정보화 사회와 우주개발시대에 걸맞게 통신과 지구환경 모니터링에도 활용할 수 있도록 국제 위성 프로그램과 연계하면 큰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활용도가 넓은 만큼 국내에서는 여러 관련부처를 망라한 기획위원회가 발족돼 부처간 업무분담과 사업추진및 활용 운영방안을 협의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파랑도 과학기지는 어떻게 활용됩니까. ▲정확한 해양예보와 기상예보,조류등 해양학적 연구측면은 물론 환경 감시,해상교통 안내,구난기지로서의 활용과 나아가서는 대륙붕 개발을 위한 전초기지등 다양한 활용이 기대됩니다.사실 우리나라는 육상에는 매 14㎞마다 하나씩 조밀한 자동 기상관측망을 유지하고 있지만 해상에는 기상관측소를 하나도 제대로 운영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편서풍대에 있는 우리나라는 서쪽 지역의 기상 관측자료가 중요한데 여기에 기상관측소를 설치할 경우 기상예보의 정확성을 크게 높여 국가 산업,경제에 파급효과가 클것입니다.파랑도에는 이미87년부터 해운항만청에서 등부표를 설치해 국제적으로 공표했는데 등대를 설치하면 매년 10만척이 넘게 이지역을 지나가는 선박들의 항해지표로서 국제사회에 크게 공헌할수도 있습니다.제주도 전설에 나오는 「전설의 섬」에 대한 국민적 정서와 환태평양 시대를 맞아 전세계로 활동 무대를 넓히려는 세계화 추진 차원에서도 상징적인 계획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97년 완공계획이 지연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성수대교 사고 이후 구조물의 안전성 문제가 재삼 제기됐고 예산상의 문제점도 있어 그렇습니다.우리나라는 각종 연안문제가 많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관측시스템 개선이 시급한데 해운항만청,수로국,기상청등 관련부처에서 이를 위한 예산 확보가 어려운 것을 보면 안타깝습니다. ­그밖에 파랑도 건설에 장애가 있다면 어떤 것이 있습니까. ▲규모에 따라 인접국가와 영토 분쟁 소지가 있고 또 환경감시를 행할 경우 인접국들을 자극할까 하는 점입니다.따라서 초기에는 규모를 최소화해 국제 분쟁을 피하면서 실익을 추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획득된 자료들을 국제사회에 제공해 지구환경 문제에 한국의 역할 수행으로 국위를 선양할 수 있게 추진하는것도 방법입니다.건설이후 유지 운영도 과제가 되겠지요. (결론적으로 이박사는 충분한 사전 준비와 국가의지,기상연구자들의 적극적 자세가 파랑도 사업의 열쇠가 됨을 강조했다) ◎파랑도 전설/폭풍만나 표류하던 한 선원이 도착… 과부들만 모여사는 환상의 외딴섬에 파랑도가 곧 「이어도」인지 과학적으로 규명할 길은 없으나 제주도의 대표적 부녀노동요인 「이어도 허라…」의 가사내용을 음미해 보면 파랑도와 그럴싸하게 맞아 떨어지는 부분이 많다. 특히 파랑도가 한국 최남단 마라도에서 서남쪽으로 81해리,중국 동도에서 북동쪽으로 1백35해리에 위치한 제주도와 중국사이의 수중 암초라는 사실과 노래가사중의 「강남가는 남해항로의 절반지점에 이어도가 있다」는 내용이 부합됨을 들어 「이어도전설」을 허구로만 볼수는 없다는 주장도 있다. 파랑도가 설사 이어도가 아닐지라도 제주사람들 특히 제주여인들에있어 이어도는 상상의 섬이요,사후에 돌아갈 피안의 섬이다.그것은 바다로 나가 돌아오지 않는 아들이나 남편이 이어도에 있으며 자신들도 결국 그곳으로 떠날것을 굳게 믿고있기 때문이다. 혹자는 「이어도」는 바다로 나간 남편을 잃은,과부들만 모여사는 기쁨과 슬픔이 교차되는 환상의 섬이라고도 일컫는다. 향토사가인 제주민속박물관 진성기 관장(60)은 이에 관계되는 전설로 다음과 같은 내용이 구전돼 내려오고 있다고 말한다. 『먼 옛날 지금의 제주도 북제주군 조천리 마을에 고동지라는 젊은남자가 살고 있었다.어느 해인가 중국으로 국마진상을 가게돼 고동지는 동료들과 함께 수십척의 배에 말을 가득 싣고 조천포구인 「수진개」를 떠났다. 배가 수평선쯤에 이르렀을때 갑자기 폭풍이 몰아치기 시작했다.폭풍이 점점 심해지면서 배는 표류하기 시작했고 몇날을 떠다니다 마침내 어느 한 섬에 도착하게 됐다.동료들을 모두 잃은채 고동지가 도착한 곳은 바로 「이어도」였다. 이어도는 고기잡이 간 어부들이 태풍을 만나 수중고혼 되는 바람에 남자어른이 없는 이른바 과부섬이었다.고동지가 도착하자 과부들의 환영은 대단했다.이집 저집에서 다퉈가며 고동지를 묵도록해 고동지는 밤낮없이 이 과부 저 과부를 전전해가며 꿈같은 나날을 보냈다.그러나 그 즐거움도 잠시뿐,날이 갈수록 무엇인가 허전해지는 자신을 느꼈다. 비가 몹시 내리던 어느날 고동지는 처마에서 낙숫물이 뚝뚝 떨어지는것을 보게됐다.마치 고향집 처마밑에서 떨어지는 낙숫물 소리처럼 들렸다.불현듯 고향에서 밭을 갈고 멧돌을 돌리고 있을 아내와 부모형제가 그리워졌다.아내를 만나고 싶은 생각이 불길처럼 솟았다. 고동지는 바닷가를 배회하며 멀리 수평선 너머에 있을 아내의 이름을 부르고 또 불렀다.이후 달밝은 밤이면 더욱 고향이 그리워졌고 고향이 그리워지면 늘 바닷가를 찾았다. 초승달이긴 해도 달빛이 유난히 밝던 어느날 밤.고동지는 밀려왔다 밀려가는 파도를 보며 저도 모르게 노래를 읊조렸다.자신의 신세를 달래는 구슬픈 노래가락이었다. 이어도허라 이어도허라. 이어 이어 이어도허라. 이엇말 허민 나 눈물난다.이엇말랑 말앙근 가라. 강남을 가난 해남을 보라. 이어도가 반이엥 해라. 여기서 「강남」은 중국이며 「해남」은 바로 남해항로인즉,강남가는 길목 절반쯤에 있는 「이어도」에 내가 있으니 불러달라는 애절한 내용이었다. 이어도사람들은 이 고동지의 노래를 듣기 위해 모여들었고 많은 여인네들이 그의 처지를 동정하게 됐다.고동지의 노래를 듣고는 잃어버린 남편을 그리며 우는 과부들도 많았다.이윽고 「이어도노래」는 파도에 실려 멀리 퍼졌으며 그 누구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가 됐다. 그후 고동지는 뜻밖에 중국상선을 만나 그 배의 도움으로 고향으로 돌아오게됐다.이어도에서 고동지를 섬기며 사랑했던 한 여인도 함께 따라왔다. 고향 사람들은 태풍으로 죽은줄 알았던 사람이 살아 돌아왔다며 큰 잔치를 벌였다.고동지의 아내는 남편을 극진히 보살펴준 이어도여인을 받아들여 한 가족이 되게했다.
  • 「파랑도」를 종합해양과학기지로(서울신문 50돌 특집)

    ◎기상관측·수자원개발 탐사 등 활용/한반도 주변해역 환경오염도 감시/이상희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위원장 □지구기후는 인류생활의 기초,해양기상은 지구 환경변화의 원인 지구표면의 71%는 물로 덮여있어 최근 세계적인 기상학자들은 육지기상보다 바다기상에 더욱 관심을 두고 조사·연구하고 있다.기후변동 문제는 국제적으로 정치·외교·사회문제를 일으키고 있다.산업혁명 이후 누증된 온난화가스의 영향은 기후변화를 초래하는 결과를 가져와 지구표면이 점점 더워지고 해면상승이 일어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1987년에 오존층을 파괴하는 오염물질인 프레온(CFC)가스의 생산량을 감소시켜야 한다는 「몬트리올 의정서」가 채택되었고,1992년 리우 유엔환경개발회의에서는 기후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온실가스 배출규제,대체에너지 개발 및 에너지효율 극대화 방안 등을 내용으로 하는 「기후변화 기본협약」이 주창돼 대부분 국가에서 동의했다. 따라서 우리는 이제 지구기후의 변화를 자연현상의 어쩔 수 없는 조화로 간주해 그 폐혜를 피동적으로 감수하는 차원에서 벗어나 기후변화의 원인을 세밀히 파악하고 분석해 기후변화로 인한 재해를 최소화시키고 더 나아가서 마치 제갈공명이 동남풍을 예측해 적벽대전에서 대승을 거두듯이 이러한 기후변화를 잘 활용할 수 있는 지혜와 국민적 대책이 필요한 시점에 있다고 할수 있다. 우리나라 영토에는 오래전부터 해양관측기지,어업전진기지,더 나아가서 무한한 해양자원의 개발기지로 적합한 천혜의 자연적인 고도가 있었다.전설속의 「이어도」라고 확증은 안되지만 극동지역 해상교통의 요충지인 동지나해 중앙에 위치하고 있는 파랑도(Socotra Rock)가 바로 천혜의 해상 전진기지인 것이다. □지구상 최후의 프론티어,해양개발 1961년초 미국의 케네디대통령이 「해양은 지구상에 남아있는 최후의 프론티어」임을 주창한 이래,미국과 프랑스등 선진국들은 새로운 관점에서 해양개발을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인류역사상 과거에는 단순히 어업을 통한 생계유지와 교통수단으로만 이용해오던 해양을 20세기 과학기술의 진보와 더불어 지구기상 및 환경변화의 관측과 자원의 개발 등 인류생활의 주요한 터전으로 새롭게 이용하려는 노력이 국가 전략사업으로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 해양개발의 동향은 급속한 과학기술의 발전을 배경으로 해양개발의 가능성이 비약적으로 고조돼 가고,인간의 물질적인 충족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충족을 바라는 의식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해양에 대한 개발요청이 다양화 해가고 있으며,더 나아가서는 지구환경문제가 세계적인 관심사로 대두됨과 동시에 지구가 본래 갖고있는 정화능력 등의 유한성에 관한 인식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등 새로운 움직임이 활발히 일고 있다. 해양개발대책중 주요한 사업은 「해양자원의 개발」이다.첫째,우리나라 동물성단백질 공급량의 60%를 차지하는 해양생물 자원이 개발돼야 하며 둘째,심해저에 부존해 있는 망간,코발트,니켈 등 하이테크산업의 원자재가 되는 광물자원의 중장기적인 안전공급체제를 확립하기 위해서 「해양 광물자원의 조사·개발」사업이 수행돼야 한다.셋째,해양유전·천연가스의 탐광과 조력·파력·온도차 등의 해양에너지 개발사업이 이뤄져야 한다.세계적으로 청정하고 무한정한 자연에너지의 탐사·개발활동은 바다로 향하고 있는 것이 최근의 동향이다.넷째,「해양공간의 이용」이다.도시화의 진전,산업구조의 변화,지역 및 국제적 교류확대,여가시간 증대,고령사회 등에 대비해 무한한 해양공간을 이용할 수 있는 과제가 국가적 과제로 부각되어야 할 것이다.이와함께 국제적인 해양환경보전 문제 등을 위해 해양의 조사연구사업 등 해양을 보전하고 개발할 수 있는 전진기지의 구축은 시기적으로 매우 절실한 과제이다. 국가정책의 우선순위는 이제 미래 지향적이고 국민생활의 풍요와 함께 인류전체의 문제에 대한 장기적인 시각에서 종래의 현실위주의 단편적인 발상을 뛰어 넘어야 할 것이다. □해양개발 전진기지,파랑도를 개발하자 지금까지 해양환경 보전 및 해양개발에 대한 정책은 실체적이고 충분한 자료에 근거하지 못하고 국지적이고 간접적인 조사에 의존하여 해양개발계획이 수립·시행됨에 따라 막대한 예산의 낭비와 태풍·해일 등의 자연재해에 많은 인명 및 재산피해를 입고 있을뿐 아니라 연안 및 해양환경오염,해운업·수산업 등 해양산업의 안전성·경제성 결여 등의 문제점을 노출해 왔다.따라서 이제부터는 원격탐사 기술과 현지 관측망을 통한 수치 해양예보 기술과의 연계 등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근본 대책이 절실히 요구된다. 파랑뿐만 아니라 해양오염·해상풍·해수유동·이상해면 변동·연안퇴적물 이동,해양 기초생산량의 추정 등 한반도 주변 해역에서의 중요한 해양환경 요소를 종합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예보할 수 있는 전진기지를 설치하고 이에 대한 계속적인 연구·개발을 통해 관련 정부기관과 산업계 등에 제공함으로써 연안이용·개발,자연재해 방지,해양환경 보전,해양산업 지원 등 국가적 과제수행에 핵심적 역할을 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파랑도는 이와 같은 종합적인 해양과학기지를 설치하는데 최적지로 손꼽히고 있다.파랑도와 제주도 사이의 거리 1백50㎞는 세계기상기구(WMO의 World Weather Watch)의 제언사항인 고층 기상관측망의 평균격자거리에 해당돼 고도·기온·바람·제트기류·습도·기압·해무·구름 등의 기상을 관측하는데 아주 적합한 장소로 평가되고 있어 국가적 차원의 종합해양전진기지 건설·활용계획이 매우 바람직하다.이러한 계획은 각 정부부처뿐 아니라 사회지도층이 관심을 갖고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파랑도를 해양개발 전진기지로 활용코자 함에는 육상의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해양기상·해상관측 예보의 정확성을 높여 자연재해를 사전에 예측하고 대비할뿐 아니라,해양개발을 통해 인류의 삶을 오래도록 풍요롭게 하는 새로운 터전을 마련하고,더 나아가서는 해상영역의 확대와 국제적으로 배타적인 영역을 확보할 수 있는 국가적 목표를 실현할 수 있기 때문에 파랑도 해양과학기지 건설계획은 범부처적인 공동협력사업으로 적극 추진해야 할 것이며 이의 조기건설을 위한 예산조치 등 정책적 지원이 아쉬움없이 실천되어야 할 것이다. ◎수중섬 파랑도 어디있나/마라도 서남쪽 152㎞… 면적 37만㎡ 4.6m 물밑에… 암초 맑은날 뚜렷이 파랑도는 동경1백25도 북위 32도 동지나해 중앙에 위치한 수중 섬이다.우리나라 최남단 섬 마라도에서 서남쪽으로 1백52㎞,일본의 도리시마(조도)에서 서쪽으로 2백76㎞,중국의 퉁타오(동도)에서 북동쪽으로 2백45㎞ 떨어져 있으므로 3국중 우리나라에서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다.그러나 앞으로 2백해리의 배타적 경제수역을 선포할때는 3국에 모두 포함된다. 파랑도는 1900년 영국 상선 소코트라호가 발견,영국 해군성에 통보해 국제적으로는 소코트라 암초로 불리고 있다.지형은 길이가 남북 약 5백m,동서 약7백50m로 넓이는 약 37만5천㎡며 암초 정상은 해수면 하 약4.6m까지 돌출돼 있다. 논란은 있지만 파랑도는 제주도민의 전설에 나오는 이어도일 것으로 많은 전문가들은 생각하고 있다.
  • 장군총과 장수왕 후손(압록강 2천리:12)

    ◎장대석 1만개 사용… 거대한 “동양의 피라미드”/밑면 넓이 9백㎡·높이 12m… 꼭대기 돔형/광개토대왕 아들 장수왕의 무덤 추정/하얼빈 거주 고지겸씨 “내가 장수왕 후손이다”/「고씨족보」 제시… 고구려 연구 귀종한 자료 평가 집안시에는 7천8백여기에 이르는 고구려 무덤들이 있다.이들 고분을 한데 뭉뚱그린 호칭이 이른바 연구고구려고분군이다.무덤은 신분에 따라 크기나 형태가 차이를 보였다.규모가 큰 무덤으로 천추총과 태왕릉,장군총이 꼽히는 데 모두가 돌무지무덤(적석총)이다.이 가운데 장군총은 크기를 떠나 짜임새로 보아 고구려 돌무지 무덤의 백비라함이 옳을 것이다. 장군총이 누구의 무덤이냐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대략 광개토대왕과 그 아들인 장수왕으로 압축해왔으나 오늘날 중국에서는 장수왕 쪽에 더 비중을 두고 있다.장군총 역시 집안의 다른 고구려 유적들 처럼 오랫동안 잊어버린 유적이었다.고구려가 멸망한 이후 중국 동북대륙의 주인들이 자주 바뀌고 전란이 계속되었기 때문이다.그리고 집안이 봉금지로 묶인 것도그 이유의 하나라 할 수 있다. ○고구려 돌무덤의 백미 그런데 장군총이 세상에 다시 알려진 것은 5백여년전이라고 한다.산동성 연대에 살던 유씨 형제가 살길을 찾아 집안땅으로 왔다가 이 무덤을 발견했다는 것이다.형제의 본업이 석공인지라 돌을 다듬어 가지런히 쌓은 거대한 석조 조영물에 관심이 쏠렸을 것이다.무덤이라는 사실을 곧 알게 된 형제는 무덤의 주인공을 놓고 서로 욱신각신 쟁론을 벌였다. 형은 무덤이 크고 돌을 쌓은 솜씨로 보아 황제가 묻힌 황릉일 것이라는 말을 먼저 꺼냈다.이에 동생은 중국의 변방에 있는 무덤이라는 이유를 들어 변방수비를 담당했던 장군의 무덤이라고 맞섰다.동생의 추리가 더 설득력이 높았다.그래서 형제는 장군의 무덤으로 결론을 내렸다.그 뒤에 장군의 무덤이라는 말이 여러 사람의 입으로 전해 내려와 무덤이름이 장군총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장군총은 통구평야를 서남향으로 내려다 볼 수 있는 자리에 축조되었다.무덤을 축조한 재료는 화강암이다.국내성에서 20㎞떨어진 오녀봉에서 채석한 돌이 분명하데,오녀봉은 선경을 방불케해서 고구려시대에 거선봉이라고 했다.전설에 따르면 오녀봉의 돌은 황금색을 띠어 옥황상제의 궁전을 짓는데도 사용했다는 것이다.그만큼 석질이 좋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한다. 고구려의 불가사의 장군총은 피라미드형이다.쌓아올린 돌은 화강암을 장방형 입방체 규격으로 만든 장대석이다.장대석의 표면은 일일이 갈아 매끄럽게 처리했다.장군총을 쌓는데 1만1천여개의 장대석이 들어갔다니 당대의 대역사임에 틀림이 없다.돌의 크기는 일정치는 않으나 제1층은 가급적 큰돌을 쌓았고 올라가면서 조금씩 작아졌다.제1층에는 4단의 장대석을,2∼7층까지는 각층을 모두 3단씩 쌓았다. 제1층의 평면은 각변의 길이 31.5m나 되는 정사각의 네모꼴로 그 넓이는 9백㎡에 이르고 있다.이 무덤은 특이하게도 네 모서리를 동·서·남·북 방향에 맞도록 배치했다.그리고 제1층에는 쌓아올린 장대석들이 밀려나오지 않게 각 면에 길다란 버팀돌(호분석)을 3개씩 기대어 세웠다.무덤 높이는 12.4m로 맨 꼭대기는 돔형에 가까운 기단석으로 마무리했다. ○매년 태왕릉 찾아 참배 고구려는 장수왕 때인 서기 427년에 평양으로 도읍을 옮겼다.그럼에도 장수왕이 오늘날 장군총으로 불리는 돌무지무덤에 묻혀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장수왕이 생전 조상들의 곁으로 돌아가고 싶어한 어떤 유언에 의해 집안(국내성)에 묻히는 꿈이 사후에 이루어졌을 것이다.지금 전적으로 믿을만한 사연은 못 되지만 장군총을 발견한 유씨형제가 제5층 동남쪽 장대석을 반년에 걸쳐 징으로 쪼아 묘실에 들어갔다고 한다.그 때에 묘실안 황금등잔의 불이 꺼지지 않고 타더라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기적이 분명한 데 근년에 또 다른 기적 같은 소식이 들려왔다.장군총에 묻힌 장수왕의 후손이라는 사람이 나타난 것이다.현재 흑룡강성 하얼빈에 살고 있는 고지겸(67)노인이 그 장본인이다.1948년 하얼빈 의학부를 졸업하고 1956년 대련의과대학을 거쳐 흑룡강성 의학정보연구소 부소장을 지냈다.그는 어려서 부터 할아버지와 아버지로 부터 고구려 왕족의 후예라는 말을 듣고 자랐다.1921년에 필사한 족보가 있었으나 문화혁명 때 불태워졌다. 그러나 개혁개방이 현실로 다가오자 뿌리찾기에 나섰다.요령성 해성시 대고려방진에 사는 종친을 찾아가 족보를 다시 보고 자신이 고구려 제20대왕인 장수왕 후손임을 알게되었다.이어 길림성 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 손옥량 소장에게 족보감정을 의로한 결과 고구려왕손 연구의 귀중한 자료라는 긍정적 평가를 얻어내기도 했다.또 고씨종친들의 못자리판인 요양,대안,해성,철령 등지를 찾아다닌 끝에 「고구려 왕실후손­요양의 고씨족보」와 「명대 요양동녕위세습지휘사와 그 가족의 연구」등 설득력있는 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요즘 「고구려사화」라는 저술의 집필을 끝냈다.생전에 조상의 뿌리를 모두 찾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 하얼빈방송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맏아들 고홍(47)을 끌어들였다.그는 1989년부터 청명절이 돌아오면 하얼빈에서 퍽이나 먼 길인데도 집안까지 와서 태왕릉과 장조묘를 배알하고있다.위대한 조상을 찾는 희열속에 살아가는 고지겸.그는 오늘 중국 동북지방에 살고 있는 대고구려인이지도 모른다. 고구려 유적들,특히장조총을 돌아보고 집안시 태왕향에 들어서고 나서 길에서 만난 모든 사람이 고지겸과 같은 사연을 안은 고구려인 후예라는 착각에 빠지곤했다.호태왕(광개토대왕)이나 장수왕의 기상이 넘쳐 흘렀을 옛 고구려 도읍지 집안에서 새삼 느껴야 한 애달픈 심사가 있다면 국내성이 오간데 없다는 현실이다.국내성 성벽의 석축이 사람들 키 만큼 겨우 남아 여느집 담장처럼 되었다. 그 나지막한 성벽 아래로 고구려인을 닮아보이는 집안 사람들이 노점을 차렸다.그리고 궁궐이 서있었을 법한 성벽너머로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 역사의 흥망성쇠를 실감케했다.
  • 해외건설수주 올 38% 늘어/10월까지 145건 67억달러

    ◎동·서남아 지역이 77% 차지 해외건설공사 경기가 매우 좋다.시장도 확대되면서 주력지역이 중동에서 동·서남아로 바뀌었으며 단순공사보다 개발형공사의 비중이 높아졌다. 2일 건설교통부에 따르면 올들어 지난 10월말까지 해외건설공사 수주실적은 모두 1백45건,67억4천2백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1백3건,48억9천9백만달러에 비해 건수는 41%,금액은 38%가 늘었다. 이 중 자본을 투자하고 공사 이익을 갖는 개발형공사 수주실적은 21건,7억7천8백만달러로 작년 같은 기간의 9건,2억9천만달러보다 건수와 금액이 모두 3배 가까이 급증했다. 전체 수주액을 지역별로 보면 동·서남아가 전체의 77%인 51억7천8백만달러로 최대 시장임을 나타냈고 중동이 7%인 5억달러,기타 10억6천4백만달러 등이었다.지난해 같은 기간의 경우에는 총 수주금액중 중동이 27%,동·서남아가 63%,기타 10%였다. 연도별추이는 90년 67억7천만달러를 고비로 92년 30억3천8백만달러,92년 27억8천3백만달러로 떨어졌으나 93년 51억1천7백만달러로 회복세를 보이면서 94년에는 74억4천1백만달러를 기록했다. 수주국가를 보면 말레이시아가 12억7천5백만달러로 가장 많았고 싱가포르 12억7백만달러,인도 8억9백만달러,인도네시아 7억9천8백만달러,루마니아 4억9천6백만달러,필리핀 3억1천8백만달러,리비아 2억7천9백만달러 등의 순이다. 업체별로는 현대건설이 20억1천만달러로 선두이며 (주)대우 17억4천5백만달러,쌍용건설 5억7천만달러,삼성건설 5억1천6백만달러로 4개 업체가 5억달러 이상의 수주실적을 올렸다. 건교부는 연말까지 수주실적이 80억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내다봤다.
  • 「국가 기간 교통망」 주요 내용

    ◎「일」·「격」 자형 동북아 물류 중심지로/철도­동서남북 5개 고속철망/도로­16개 노선 간선망 확충/항만­군산·아산·포항등에 조성/항공­무안에 국제선 신공항 건설교통부가 18일 발표한 국가 기간교통망 구축계획안의 내용을 요약한다. ▷철도◁ ◇고속철도=전국 주요 도시를 연결하는 「일」자형 고속철도망을 구축하고 남북 2개축(호남고속철도,동해선 복선전철화)과 동서 3개축(동서·경부고속철도,경전선 복선전철화)을 구축한다. ◇산업철도=20 01년까지는 비용이 적게 드는 복선화,전철화사업에 주력하고 20 02년부터는 호남·동서·동해선 등 주요 간선철도를 신설한다. ◇남북교통망=남북 2개축인 호남고속철도에 개성∼평양∼신의주축을 신설하고,동해선에는 원산∼함흥∼나진축을 건설한다.동서 4개축인 경전선·경부고속철도·동서고속철도·평원선(평양∼원산)도 구축한다.장기적으로는 시베리아횡단철도(TSR) 및 중국횡단철도(TCR)와 연계를 추진한다. ▷도로◁ ◇간선고속도로망=전국의 모든 지역에서 30분 내 간선고속도로망에 도달할수 있도록 남북 7개노선과 동서 9개노선으로 구성된 격자형 고속도로망을 구축한다.대도시권에는 고속순환도로를 건설하고 다른 지역에서 들어오는 통과차량을 분산시키는 방사순환형 도로망 체계도 건설한다.남북 7개축 중 4개축(목포∼서울∼신의주,광주∼서울∼만포,마산∼원주∼혜산,부산∼강릉∼선봉)은 남북한을 연결할 수 있는 도로축을 형성한다. ◇국도=공단·항만·공항·관광지 등 대규모 교통유발시설과 전국 간선망과의 연계·보완도로를 우선 확충한다.주요 국도는 4차선화하고 상시 교통혼잡구역인 시내통과 국도는 우회 건설한다. ▷해운·항만◁ ◇서해안시대 항만개발=20 11년까지 5만t급 62선석의 군장신항,10만t급 28선석의 아산항,98년까지 5만t급 5선석 수용규모의 인천항을 각각 개발하고 20 05년까지 5만t급 7선석의 동해항 2단계 사업을 시행한다. ◇신항만 개발=97년까지 5만t급 5선석의 인천북항,20 21년까지 31선석의 새만금,20 11년까지 3만t급 20선석의 보령지구,20 11년까지 5만t급 24선석의 포항 영일만,20 11년까지 5만t급 13선석의 목포신외항을 개발한다. ▷항공·공항◁ ◇신공항=20 10년 이후를 대비,김해국제공항에 국제기준의 새로운 활주로를 건설하고 미주·구주노선이 취항하도록 하며 전남 무안군에 20 00년까지 국제선 1백10만명과 국내선 7백70만명,화물 7만t규모의 신공항 건설을 추진한다. ◇지방공항=청주 신공항·호남 신공항·영동 신공항·대구공항 등 권역별로 국제공항화하며 수색·춘천·창원·전주·남원 등 군비행장시설에 민자를 유치,경비행장을 건설한다.원주·사천 등 기존 군용대형비행장에 민항용 시설을 추가하는 한편,울진·울릉도 등에 경비행장 개발을 추진한다. ◎소요재원 360조원 어떻게 조달하나/국고서 240조… 채권발행·민자로 120조 마련/교통세율 조정­고속도 통행료 인상 등 추진 정부가 발표한 국가 기간교통망 구축계획의 성패는 투자재원을 어떻게 조달하느냐에 달려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96년부터 20 11년까지 16년동안 단계적으로 진행될 대역사인 기간교통망 구축계획에 소요되는 재원은 모두 3백60조원.이중 2백40조원이국고이고 1백20조원은 국공채·민자 등으로 조달할 계획이다. 우선 교통세율의 조정을 통해 오는 98년까지 탄력세율 30%를 활용,세액을 상향 조정한다는 방침이다.96년1월1일 기준으로 ℓ당 3백45원인 휘발유의 특별소비세를 4백48원으로,40원인 경유의 특소세를 52원으로 각각 올린다는 계획이다. 두번째로 외국에 비해 국·공채의 발행 규모가 적은 데다 사회간접자본(SOC)건설비를 사실상의 수혜자인 다음 세대도 분담한다는 취지에서 국·공채의 발행 규모를 연간 5천억원을 더 늘릴 방침. 셋째로 수익자 부담을 높일 계획이다.서비스 제공의 25% 수준인 고속도로 통행료를 오는 20 01년까지 50%로 높여,연평균 1천억원의 증수효과를 거둘 예정이다.국제 평균의 40∼70% 수준인 공항시설 이용료와 항만시설 사용료도 20 01년까지 현실화하는 한편,요금 차별화 등의 새로운 마케팅 전략도 도입할 방침이다. 이밖에 부족한 재원은 민자유치를 통해 충당할 방침이다.
  • 한국 등반대 2명 에베레스트 등정

    【카트만두 AFP 연합 특약】 한국 등반대 2명이 암반투성이인 서남쪽 등반로를 통해 세계최고봉인 에베레스트봉(8천8백48m)정복에 성공했다고 네팔 관광부가 17일 발표했다. 관광부는 김영애(31)와 박중훈(24)두 대원이 현지 안내원 앙 다와 타망(26)및 키파 세르파(33)의 도움을 받아 지난14일 에베레스트봉 등정에 성공,25분간 정상에 머물면서 태극기와 네팔국기를 꽂았다고 말했다. 5명의 한국등반대(대장 조형규)는 오는 25일 카트만두로 돌아올 예정이라고 관광부는 덧붙였다.
  • 한반도내 적대성 상존 입증/3년만의 북한군 침투

    ◎군강경파 입김 추정… 평화노력에 찬물/대통령 외유중 아군경계능력 시험한듯 17일 새벽 북한군 1명이 휴전선을 넘어 침투하려다 사살된 사건은 대립 차원을 넘어 적대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남북관계의 현주소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물론 이에 대한 대부분의 책임은 북한쪽에 있다.우리의 평화 노력에는 아랑곳 없이 북한은 무력에 의한 대남적화 목표를 견지하고 있다는 것이 이번 사건에 대한 군당국의 평가다. 북한군의 침투는 지난 92년 5월22일 중서부전선인 철원지역에서 북한군 3명이 아군과 총격전 끝에 전원사살된 이래 3년만이다.새정부 출범 직후 핵확산금지조약(NPT)탈퇴로 긴장국면이 조성되기도 했지만 북한은 얼마전까지 적어도 겉으로는 한반도 평화무드 조성을 위해 나름대로 애를 쓰는 듯한 제스처를 보여 왔다.최근 우성호문제 등으로 다시 꼬이긴 했지만 남북관계는 중·장기적 시각에서 그런대로 무난할 것으로 전망됐다. 이런 상황 등을 감안할 때 이번 북한의 무장군인 침투는 「예상밖의 사건」으로도 받아들여 진다. 국방부고위당국자는 사살된 북한군이 잠수복에 검은색 오리발을 착용한 것으로 미뤄 특수전부대 소속 병사로 추정된다고 밝혔다.현장에서는 오리발 1쌍과 총번이 없는 M­16 소총 2정및 수류탄 1발이 비닐봉지에 싸인채로 발견됐다.따라서 사살된 병사 말고 도주한 북한군이 적어도 1명 이상은 될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현장에서 발견된 오리발에는 「ROCKET」라는 표시가 돼 있고 「MADE IN JAPAN」이라고 새겨져 있었다.이는 지난 92년 사살된 북한군이 착용한 오리발과 똑같은 것이다. 그러나 이들 북한군은 과거 남한 깊숙히 침투했던 공비와는 임무 성격이 다른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이 우리측의 판단이다.전방의 아군 병력및 무기체계 비치현황을 탐지하고 유시시 침투로 확보를 위한 정찰조로 보인다고 국방부 당국자는 설명했다. 특히 김영삼 대통령의 캐나다및 유엔 순방으로 우리군에 특별경계 강화 지시가 내려져 있는데다 한미간 연례 군사훈련인 「독수리 연습」이 진행되고 있는 시기라는 점에서 우리군의 비상시 경계능력을 시험해 보려는 의도도 엿보인다는 지적이다.어찌보면 통상훈련의 성격도 짙다는 것이다.북한의 특수전 부대는 대략 10만명 가량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번 사건은 최근 북한 김정일이 군 수뇌부에 대한 인사에서 보수·강경파를 전면에 내세운 뒤에 나온 첫 작품이라는 점에서 앞으로 북한의 대남정책의 방향을 감지케 해주고 있다.군총참모장에 기용된 김영춘(73·차수)과 인민무력부 총정치국장에 임명된 조명록(71·차수)등이 대표적인 보수·강경파로 꼽히고 있다. □무장공비 침투 주요일지 ▲58년2월16일=부산발 서울행 KNA기 및 탑승자 34명 간첩에 의해 납북. ▲68년1월21일=124군부대 무장공비 31명 청와대기습위해 서울침투,29명 사살·1명 생포·1명 자폭. ▲70년4월4일=격열비열도 간첩선 침투,사살 17명. ▲75년9월11일=전북 고창 2명 침투,사살 1명. ▲76년6월19일=중동부전선 3명 침투,전원 사살. ▲79년10월11일=동부전선 비무장지대 3명 침투,1명 사살. ▲80년3월23일=한강하구에 3인조 수중침투,전원 사살. ▲80년11월3일=전남 횡간도에서 무장간첩 3명사살. ▲81년6월21일=충남 서산서 무장간첩선 격침,사살 9명·생포 1명. ▲81년7월4일=임진강 상류 1명침투,사살. ▲82년5월15일=동해안 2인조 출몰,사살 1명. ▲83년6월19일=임진강에 3인조 무장공비침투,전원사살. ▲84년9월24일=무장간첩 1명 대구에 출현,시민3명 살상후 음독자살. ▲85년10월19일=부산 청사포 간첩선 침투,격침. ▲86년8월5일=중부 비무장지대안 선제사격,쌍방 8백여발 총격전. ▲87년11월21일=중부비무장지대에서 총격도발,아군 1명 부상. ▲89년10월14일=북한 경비정 1척 연평도 서남방 해역 침투후 도주. ▲90년6월7일=북한군 3명 대성동지역 군사분계선 80m월경. ▲92년5월22일=중서부전선 3명 침투,전원사살.
  • 「96 세계경제 전망」/이한구 대우경제 연구소장

    ◎“새 형태의 통상압력 개도국 괴롭힌다”/환경보호 강요… 상품제조 규제/저금리 힘입어 내년 세계경제 4% 성장/일본·EU 2∼3% 성장… 미국·중극은 둔화 한국무역협회 주최로 열린 「96년 세계경제 전망」을 주제로 하는 세미나가 13일 서울 삼성동 무역회관에서 열렸다.이날 세미나에는 이한구 대우경제연구소 소장과 김영대 한국은행 이사,유장희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원장 등이 참석,열띤 토론을 가졌다.「세계경제 회복세 계속될 것인가」란 주제로 발표에 나선 이한구 소장은 내년의 세계경기는 체감적인 면에서 금년보다 다소 어두울 전망이나 세계물가 안정과 국제 저금리 추세 등으로 세계적인 성장기반은 확충된다고 내다봤다.다음은 이 소장의 발표 내용. 내년의 세계경제는 올해와 비슷한 성장률을 보인다.IMF(국제통화기구)는 내년의 성장률을 4.1%(올해 3.8%)로 잡았다.그러나 내년의 명목성장률은 올해의 9.4%보다 훨씬 떨어진 1.5%에 불과할 전망이다. 즉 WTO(세계무역기구)의 기능한계와 이에 따른 쌍무간 통상마찰이 기승을 부려 세계의 교역증가율은 올해 9%에서 내년에는 6%로 줄어든다.특히 경제블록의 역외국 차별성향과 개도국에 대한 반덤핑 부과조치가 빈번히 제기될 경우 세계 무역이 크게 감소될 가능성도 있다. 국제 환경변화에 따른 새로운 형태의 통상압력이 개도국을 괴롭힐 것으로 보인다.종래 관세와 비관세 장벽을 통한 「상품규제」가 상품제조 과정에서 환경보호와 소비자안전 장치,각종 환경마크 부착 등을 강요하는 「상품제조 규제」로 전환되기 때문이다. 지적 재산권 보호 등의 투자장벽과 함께 각국의 구조 및 제도상의 차이가 새로운 통상마찰로 대두된다.그러나 세계물가는 개도국의 재정팽창과 자원무기화로 인플레 유발 요인은 있지만 비교적 안정세가 기대된다.특히 가격파괴와 국제 저금리,국제 원자재 가격의 안정추세가 지속돼 선진국 물가는 2%대에서 안정을 취한다.개도국은 올 20%선에서 13%로 크게 둔화되며 구 사회주의권도 점차 진정세로 돌아설 것으로 보인다. 선진국은 구조조정을 겪으면서 성장률이 둔화(95년 2.5%에서 96년 2.4%)되며 개도국은 아시아권과 서남아·아프리카의 순조로운 성장(95년 6.1%에서 96년 6.2%)이 기대된다.러시아 등 체제전환 경제권은 비교적 안정세로 돌아설 전망이다. 국가별로 보면 미국의 경제 성장률은 올해 2.6%에서 내년에는 2.3%로 떨어져 「부진한 성장세」가 예상된다.그동안 억제됐던 인플레 압력이 현실화,3%대의 물가상승이 예상되고 실업률의 경우 최근의 경기 둔화세를 반영,내년에는 6%대로 악화된다.무역수지의 경우 미국정부의 공격적인 통상정책과 경쟁력의 제고로 올보다 개선된다.장기금리하락(94년말 이후 1.46%포인트)으로 금융비용 부담이 덜어진다. 일본경제는 올 0.7%에서 내년엔 2.4%의 성장이 기대된다.침체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재정지출이 인플레 요인으로 작용,소폭의 물가상승이 예상된다.경기확산으로 인한 고용효과가 커지지만 실업률은 3%대의 진입이 실패할 것이다. 경상수지의 경우 미국의 통상 및 시장개방 압력으로 흑자폭이 감소된다.그러나 일본정부는 국내경기 회복을 위해 재정팽창과 엔화 약세유도,금융완화 등의 복합처방이 올 4·4분기부터 효과로 발휘될 것이다. 유럽연합(EU)의 경우 올해와 내년 모두 3%의 성장률을 기록,안정적인 성장이 기대된다.독일 경제권(마르크 경제권)은 3%대의 안정적인 성장세가 유지되나 통화 약세국들은 경기부양 차원에서 실시된 자국통화의 평가절하와 금리 인하로 인플레 압력이 더욱 커질 전망이다.실업률은 두자리대를 지속,사회문제가 될 것이다. 중국경제는 올 10.6%에서 내년엔 9.6%로 성장률이 둔화된다.미국과 일본 등의 통상마찰이 심화되고 원자재와 기계류의 수입증가로 흑자가 점차 줄어든다.등소평 사후와 WTO 가입 여부가 경제변혁의 핵이 된다. 아시아 개도국의 성장률은 내년엔 7%(올해 7.5%선)로 다소 둔화된다.엔화강세 퇴조와 선진국의 견제로 수출환경이 악화되기 때문이다.베트남과 필리핀·인도 등 성장대열에서 소외됐던 국가들의 성장세가 두드러질 전망이다.
  • 지진공포(외언내언)

    지구촌이 때아닌 지진공포에 휘말리고있다.일본 중국 동남아 알래스카등 주로 환태평양 화산대를 따라 곳곳에서 크고 작은 지진이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아직은 큰 피해를 낼만큼 강한 지진이 발생한 것은 아니나 동시다발 내지 군발의 지진들이어서 큰지진의 불길한 전조가 아닌가 하는 두려움으로 불안해하고 있다. 특히 불안과 공포가 심한 곳은 지진의 나라 일본인 것 같다.관동대지진으로 유명한 도쿄에서 서남 1백여㎞ 떨어진 태평양연안의 세계적 온천관광지 하코네(상근)·아다미(열해)등에 인접한 이즈한토(이두반도)는 배를 타고 있는것 같은 착각을 느낄 정도로 연일 땅이 흔들리고 있으며 6일엔 6명의실종자까지 났다. 이웃 중국에서 24만명의 희생자를 낸 76년 당산 대지진이 금년과 같이 불길한 윤8월이었다고 해서 지진공포가 확산되고 있는 점도 일본사람들의 불안을 더욱 자극하고 있다. 고베(신호)시를 페허로 만든 한신(판신)대지진 직후요 관동지진 같은 대지진이 일어나기 쉬운 주기일뿐 아니라 후지산이 폭발할지도 모른다는 경고까지 나오던 참이어서 공포심은 더하다.워낙 지진이 많은 나라여서 국민생활 자체가 온통 내진체제를 갖추고 있는 일본이지만 지난번 한신지진으로 그런 준비가 얼마나 보잘것없고 무력한 것인가도 새삼 실감한 터여서 더욱 그렇다고 한다. 우리 한반도도 지진안전지대는 아니다.우리기록 중 가장 피해가 컸던 것은 통일신라시대인 779년의 경주에서 발생했던 것으로 1백여명이 사망했다는 기록이 있다.한동안 조용하던 지진이 90년대 들어 빈번해지는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은 불길하다.6일밤 동해 속초·울진 앞바다 지진과 8일 아침의 울산 앞바다 지진은 금년들어 백령도 등에 이은 25번째 지진이다.한반도도 점차 지진활동기로 접어드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러워진다. 우리도 이제는 지진 대비노력이 낭비라고만 생각해서는 안될 것이란 생각이 든다.
  • 일 군발지진 6천1백56회

    【도쿄 AFP 연합】 일본 태평양 연안에서 3일 아침까지 경미한 지진이 계속돼 지난달 29일 상오 7시 이래 6천1백56회의 진동이 기록됐으며 이중 1백회는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체감지진이었다고 기상청이 밝혔다. 이 지진의 진앙은 도쿄 서남방 약 1백㎞ 지점인 이즈(이두)반도 이토(이동)시 해역의 얕은 바다다. 앞서 2일 자정부터 같은날 상오 8시까지 8시간 동안 4백7회의 지진이 기록됐고 이중 체감지진은 5회였으며 지난 2시간 동안에는 3백29회의 지진이 있었으나 한 기상청 당국자는 화산활동의 징조는 포착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리히터 규모 3.7의 체감지진은 3일 상오 7시29분에도 일어났으나 파손이나 인명피해에 관한 보고는 없었다. 기상청 민간자문단체인 화산분화예지위원회 위원장 이다 요시아키(정전희명) 동북대 교수는 이즈반도의 지진이 태평양 해저의 어떤 화산폭발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 마약 비상/밀매량 3년새 4배이상 늘었다

    ◎「쿤사 헤로인」 적발 계기로 본 소비실태/소비층 확산… 의료인·주부들까지 복용/환각범 71% 16∼19세… 청소년 위해 심각/“10배이상 이익 남는다” 국제조직 국내침투 가속 집중적인 단속에도 불구하고 마약 및 환각제 사용이 줄어들지 않고 있다. 통계상 수치가 줄어들더라도 이는 느슨해진 단속으로 적발건수가 줄어든 것을 의미할 뿐 실제로는 복용자가 계속 늘어간다는게 이 방면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진단이다. 더욱이 최근에는 환각성이 강한 헤로인이나 코가인 등이 동남아·중국·아프리카·남미 등지에서 무더기로 밀반입돼 이제 우리나라도 더 이상 「마약 안전국」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마약류의 국제적인 암거래 루트로 최근 우리나라가 심심찮게 등장하고 있는 점도 주목할만하다. 지난 1일 마약왕 쿤사의 헤로인 3.5㎏(경찰추산 1천4백억원)을 국내에 밀반입하다 경찰에 붙잡힌 윤우근(38·보석가공업)씨와 서상봉(31·건축업)씨의 사건에서 이를 엿볼 수 있다. 윤씨등은 지난 8월 14일 서울 W호텔에서 「미스터 조」로 불리는 태국인운반책에게 5천3백만원을 주고 헤로인을 넘겨 받아 국내 판매루트개척에 나섰으나 이같은 정보를 입수하고 끈질긴 추적을 벌인 경찰에 덜미를 잡혔다. 이들은 미얀마에서 쿤사를 직접 만나 국내잠입을 모의하는 등 대담성을 보여 수사관들을 놀라게 했다. 이보다 앞서 지난달 18일 검찰에 적발된 박철홍(32·구속)씨등 일당 3명은 중국 단동에 히로뽕제조공장을 차려놓고 국내및 일본에 2백80억원대의 마약류를 공급한 것으로 드러나 한국·중국·일본의 「3각거래설」을 뒷받침했다. 박씨는 검찰에서 『중국의 경우 아편 이외의 마약에 대한 단속이 거의 없어 원료를 구하기 쉽고 제조도 용이한 반면 한국은 미국등 다른 나라에 비해 10배 이상의 이익을 남길 수 있는 최대의 판매국』이라고 털어놨다. 이처럼 마약류가 국내외에서 끊임없이 「공급」되는 것은 「수요」가 있기 때문이다.즉 「암거래」되는 마약류시장에서도 시장경제원리가 성립한다는 반증이다. 단속이 심해지면 심해질수록 마약류의 값은 천정부지로 치솟는다.국내 밀반입이 어려운 만큼 부르는게 값이다. 여기에는 우리나라가 지난 80년대까지만 해도 대표적인 히로뽕 수출국이었으나 당국의 단속이 강화되면서 더이상 제조가 쉽지 않은 것도 한몫 거들고 있다. 마약류 상습복용자 사이에 가장 흔한 히로뽕 값도 들쭉날쭉이다. 89년까지만해도 1회 투약분이 5천∼1만원 수준이었으나 92년부터 값이 오르기 시작,요즘은 20만∼28만원을 호가한다.시중에 나도는 물량이 적어 돈을 주고도 구하기 힘든 실정이라고 이 방면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귀띔한다. 이는 일본이나 미국의 2배,중국 대만등 동남아 각국의 10배 수준이다.일단 들여오기만 하면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되는 셈이다.국제마약조직들이 우리나라를 「선망의 대상」으로 삼아 침투를 노리는 것도 바로 이때문이다. 더욱 우려할 만한 일은 마약류가 신분계층을 가리지 않고 전국민 속으로 점차 파고들고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에는 일부 연예인이나 유흥업소 종사자,비뚤어진 유학생들이 마약류사범의 「단골손님」이었으나 최근에는 가정주부 뿐만 아니라 학생·회사원·운전사·의료인으로까지 복용대상이 확산돼 우려를 낳고 있다. 특히 가정주부의 경우 92년까지는 전체 마약사범의 0.5∼0.8%수준에 그쳤으나 지난해는 1.7%로 2배 이상 뛰어 문제의 심각성을 노출하고 있다.가정주부들은 마약복용으로 가정파탄은 물론 이혼까지 한 사례가 허다한 실정이다. 환자및 승객의 생명을 책임진 의사와 운전사의 비율도 각각 4.8%,2%에 이르러 대책마련이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당국에 적발된 마약밀수물량도 92년 8백g,93년 1천6백g,지난해에 이어 올해는 이미 3천2백여g을 넘어섰다. 청소년들의 심신을 좀먹는 환각물질의 남용도 시급히 해결할 과제다. 지난해 적발된 환각물질 흡입사범은 모두 4천4백49명으로 이 가운데 16∼19세가 71.2%로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15세 이하도 8.4%나 됐다. 또 무직과 학생의 점유율이 각각 51.9%와 30.4%로 이들에 대한 선도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으로 분석됐다. 한 수사관계자는 『환각물질 흡입은 그 자체의 폐해외에도 절도,폭력,살인,강도,강간,남녀혼숙 등 다른 범죄의 유발원인이 된다는 점에 심각성이크다』고 지적하고 『학교주변이나 도심부근 야산 등 취약지역을 중점감시하고 대중매체·캠페인 등을 통한 예방교육을 강화하는 한편 소년원 수용자에 대한 약물의 오·남용방지 교육을 강화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얀마산 국내 직접 반입은 처음”/쿤사 헤로인 첫 적발 김현식 경위 『미얀마에서 생산된 헤로인이 국내로 직접 반입되고 있다는 제보를 듣고 처음에는 귀를 의심했었습니다』 미얀마산 헤로인의 국내밀반입을 첫 적발,검찰의 내로라하는 마약 전문수사관들조차 놀라게 한 서울 성동경찰서 조사 1반장 김현식(59)경위는 3일 검거당시의 상황을 설명하면서 흥분이 채 가시지 않은 모습이었다. 이들이 태국의 마약왕 쿤사헤로인 국내 밀반입사건 제보를 접한 것은 지난 달 16일.곧 조사1반직원 7명으로 특별반을 편성하고 사실확인에 들어갔다. 마약수사에 별로 경험이 없는 수사관들이었지만 「제보」를 끈질기게 추적,쿤사헤로인을 국내로 밀반입한 주범 윤우근(38·보석가공업)씨와 서상봉(31·건축업)씨를 구속하는 개가를 올렸다. 『우리나라가 국제적인 마약암거래의 경유지로 이용되고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이번처럼 헤로인이 미얀마 생산지에서 직접 국내로 들어온 것은 처음이어서 정말 놀랐습니다.생활수준이 높아지면서 마약사범이 늘어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우리도 이제는 마약밀반입을 근절하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을 하루빨리 마련해야될 것 같습니다』 김반장은 마약류가 신분계층을 가리지 않고 확산되는 것에 대해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그는 또 『이번 사건이 터진 뒤 보름동안 한 번도 집에 못들어갔다』고 전하고 『국제적인 마약운반책으로 알려진 태국인 「미스터 조」를 놓친 것이 못내 아쉽다』고 두주먹을 불끈 쥐었다. ◎헤로인 생산·유통경로/미얀마­중 국경등서 연 30t 생산/일명 「황금의 삼각지대」… 세계 3대 생산지중의 하나/쿤사 등 2개조직이 지배,한·일 등 거쳐 미·가로 반출 헤로인의 세계 3대 주요 생산지로는 동남아의 「황금의 삼각지대」,서남아의 「황금의 초생달지대」 그리고 멕시코를 중심한 중남미지역이 꼽힌다. 「황금의 삼각지대(Golden Triangle)」란 미얀마와 라오스의 태국인접 국경지역 그리고 태국·미얀마의 중국국경지역을 일컫는다. 몇년전만해도 태국을 중심으로한 미얀마·라오스인접지역이 주생산지였으나 최근 중국국경지역으로 거점을 옮겨가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미얀마의 태국인접 국경지역에는 쿤사(Khunsa)와 와(Wa) 등 2개의 무장 마약조직이 할거,생산지를 지배하고 있다.특히 쿤사는 10여개의 정제소를 직영하고 있으며 최근 미얀마정부군과 대결하면서 무기구입 비용을 대기 위해 헤로인생산량을 대폭 늘리고 있다는게 국제마약전문가들의 분석이다. 90년 들어 헤로인생산의 새로운 본거지로 자리 잡은 미얀마의 중국인접 국경지역에서는 연간 30t이 생산되고 있다.이 지역이 각광받게 된 것은 미얀마∼중국∼홍콩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밀수루트가 개발되면서부터였다.마치 정치투쟁을 하는 단체명과 비슷한 버마민족민주전선·버마민족 민주동맹군,그리고·와(Wa) 등 3개 조직이 이 「황금의 삼각지대」를 분활지배한다. 「황금의 초생달지대(Golden Crescent)」는 서남아시아의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이란지역을 중심으로 조성돼 있다.특히 유럽지역 헤로인 압수량의 75%와 미국내 압수량의 25%를 이 지역산이 차지한다.또 아프리카 및 아라비아반도 등의 경유지에서 적발되는 헤로인의 대부분이 이 지역에서 생산된 것이다. 멕시코·콜롬비아·과테말라의 중남미는 최대 소비국인 미국의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다는 지역적 특성때문에 위협적이다. 멕시코의 경우 93년 한햇동안 약 4.9t의 헤로인이 생산된 것으로 추정되며 주로 국경지대를 통해 반입된다.최근에는 에콰도르·페루 등지에서도 헤로인 원료인 양귀비가 재배되고 있다는 보고이다. 이밖에 독립국가연합소속 벨로루시·러시아·우크라이나 등지에서 양귀비재배가 성행하고 흡입도 한다는 점은 세계 헤로인공급시장의 확대라는 측면에서 주목되는 현상이다. 「황금의 삼각지대」에서 생산된 헤로인은 편리한 지리적조건과 교통체제를 가진 태국을 1차 경유지로 세계시장에 공급된다.방콕을 주 거점으로 이용해 왔지만 최근 베트남을 경유하는 루트도 자주 이용되는 추세다. 최근 부쩍 늘어난 미얀마의 중국인접 국경지역산 헤로인은 운남성이나 광서성에서 광동성을 거쳐 마카오·홍콩으로 나간다. 중국이나 태국 등 1차 경유지를 통해 밀반출된 헤로인은 한국·일본·홍콩·싱가폴 등 경유지를 발판으로 미국·캐나다·유럽 등 대량 소비지로 향하는 것으로 마약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그러나 종래 헤로인의 주요 경유지에 불과하던 중국·홍콩·한국·일본 등에서의 소비현상이 점차 확산되고 있으며 특히 중국의 경우 중독자만 15만명에 이를 정도로 심각하다는 것이 마약관계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국내의 경우 80년대 들어 중간 경유지로 주로 이용돼 왔으나 91년 3.19㎏,92년 22㎏,93년 22.4㎏ 등 헤로인밀반입량이 점차 늘어나면서 더이상 경유국이 아니라 소비국화되는 추세를 보여왔다.
  • 단풍 지리산 새달 13일 절정/설악 10일…중남부 하순께“장관”

    ◎기온 급강비 대비 방풍 재킷 갖춰야 가을여행의 백미 「단풍 산행」철이다. 해마다 이맘때면 전국의 명산마다 만산홍엽의 아름다운 자태를 만끽하려는 단풍 인파로 물결을 이루게 된다. ○예년보다 고운 빛깔 기상청은 올 단풍 시기가 예년보다 2∼3일 빠르며 강수량이 적고 일교차가 큰 전형적인 가을 날씨를 보여 올 단풍이 유난히 고운 빛깔을 띨 것으로 내다봤다. 따라서 이미 산봉오리가 붉게 타오른 설악산 등 북부지역은 다음달 중순, 속리산·내장산 등 중·남부지역은 하순에서 11월초까지 형형색색의 단풍으로 절정을 이룰 전망이다. 전국 대부분의 유명산이 단풍의 명소지만 이들 명산 안에서도 특히 아름다운 계곡을 골라 짧은 일정으로 찾아 보는 것도 좋다. 단풍철 산행은 기온변화가 심하고 일몰 뒤 기온이 급강하므로 방풍 재킷 등 보온 장구를 반드시 갖추고 일몰전 하산하는 것이 상식이다. ○가족관광 “안성맞춤” ▷월악산(1097m) 송계계곡◁ 충북 제원군에 위치한 국립공원. 단풍 절정기는 다음달 16일쯤이다. 서남쪽 한수면 송계리 송계계곡은 월악산에서도 가장 단풍이 아름다운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특히 승용차를 이용하는 일반 관광객들에게 안성맞춤이다. 용이 승천했다는 와룡대를 비롯,신라시대 8공주가 목욕재계하고 국운을 빌었다는 팔랑소,제2금강이라 불리는 망폭대와 월광폭포,물과 숲이 정아한 자연대가 유명하다. ▷가야산(1430m) 홍류동계곡◁ 경남합천과 거창군을 둘러싸고 있는 국립공원으로 해인사 입구의 홍류동 계곡이 단풍의 으뜸이다. 다음달 21일쯤 절정을 이룬다. 가을단풍이 붉게 타오르면 계곡 물도 붉은 빛으로 흐른다 해 붙여진 이름이다. 주위의 천년 노송과 함께 10여리에 걸쳐 비경을 이루고 있다. 신라말 학자 최치원의 시가 새겨진 「치원대」와 그가 바둑을 두었다는 「농산정」이 있으며 3대 사찰의 하나인 해인사도 함께 찾아야 할 곳이다. ○산홍·수홍·인홍 만끽 ▷지리산(1915m) 피아골◁ 전남 구례,경남 함양·산청군 등에 두루 걸쳐있는 국립공원 1호. 워낙 규모가 크고 코스가 다양해 10여차례 찾아야 진면목을 알수 있는 곳이다. 다음달 13일이 절정. 피아골은 단풍은 지리산 10경중의 하나. 온 산이 붉게 물들어 산홍이고 단풍이 맑은 물에 비쳐 수홍,경치를 바라보는 사람도 붉게 물드니 인홍이라 하여 「3홍」으로 불린다. 지리산 제2봉인 반야봉 중턱에서 발원,연곡사에서 계곡을 따라 2㎞쯤 오르는 길목이다. 이와함께 단풍 관광의 메카인 설악산의 외설악 비선대와 천불동계곡,내설악 백담사에 이르는 코스가 많은 사람들이 찾는 명소다.
  • 전승공예대전 대상/조대용씨 「희자귀갑문발」/국무총리상엔 박경옥씨

    ◎수상작 266점 발표 제20회 전승공예대전(전통공예문화상품공모전)에서 영예의 대상인 대통령상은 대나무를 가늘게 쪼개 명주실로 촘촘하게 엮은 발인 「희자구갑문발」을 출품한 조대용씨(45·경남 통영시 광도면 노산리 333)에게 돌아갔다. 문화체육부가 주최하고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이 주관,15일 수상작을 발표한 이번 대전에서 ▲국무총리상은 「채화칠국당초문례물함」을 낸 박경옥씨(38·서울 용산구 한남동 770의9) ▲문화체육부장관상은 「목각수월관음도목판」을 출품한 조정훈씨(39·서울 종로구 관훈동 196의5)와 「입사문구류」를 낸 이경자씨(42·경기 안성군 보개면 지좌리 252)가 각각 차지했다. 그밖의 수상자는 다음과 같다. ▷특별상◁ ◇문화재위원장상 △박광훈의 「저고리」(직물)△이영란의 「천불도」 ◇문화재관리국장상 △정정순의 「한산백모시」 △박래헌의 「분청상감 인화문항아리」 ◇한국문화예술진흥원장상 △천문종의 「먹감이층장」 △최헌열의「인동당초문등메」 ◇한국문화재보호재단 이사장상 △양옥도의 「남경대」 △이병숙의 「자수십장생병풍」 ▷장려상◁ ◇목칠=서신정 양유전 정수화 김영범 정인석 박왕규 김정렬 ◇직물=최복희 이은임 차명순 박영애 ◇도자=방병선 이효규 유병호 고영학 ◇금속=박문열 이경노 박종군 조성준 노용숙 김승희 ◇기타=라서환 김희정 고영을 엄익평 ◇피모각골=강병출 오응서 권오덕 박극환 방은성 ▷입선◁ ◇목칠=최선희 최정목 정명채 이정곤 이상호 한만호 정진호 강태형 황구영 윤선열 김영규 강경생 박숙열 김규장(2개 작품) 조찬형(〃) 박현덕 조정훈(3개 작품) 이덕희 방영오 손현숙 조길자 정대호 최종관 이재도 이관익 김선갑 방기섭 최상훈 임충휴 정완식 유제창 정경만 김영렬(2개 작품) 배금룡 방대근 이종덕 정인석 김남일 고재경 김기찬 김성호 이복수 이의식 ◇직물=최복희 유국여 전한효 권명자(3개 작품) 김미옥(3개 작품)백문기 손경숙 배분령 이은임 이일지(2개 작품)박성호 정정순 박광훈 이말순 이순동 유필교 주영숙 이병숙 김점호 이옥호 김은향 방연옥 이춘세 양이석 김이환 박경임 홍경자(2개 작품)이영애 이민숙김남심 김긍겸 장정자(2개 작품) 문영표 박영애 권기호 곽노월 ◇도자=진종만(2개 작품)방병선 김해익 마순관 이일파 박영숙 손유순 천세영(2개 작품)이승옥 이홍규(2개 작품)임재영(2개 작품) 노영수 박병호(2개 작품) 김봉태(2개 작품)박철원(2개 작품)박래헌 홍성표 김재동(2개작품)이장수 김선희 하두용 조세연 고영학 이병길(2개 작품)서강석(2개 작품)최한식 박병금 권영배(2개 작품)이해권 백철(2개 작품)조석호(2개작품)이은규(2개 작품) 김성태(2개 작품)박국현(2개 작품)조현권 ◇금속=장정환 이경노 이형근 김승모 오태홍 임천석 박종군 정윤숙 한상춘 전동열 이성술 이점술 이종덕 손완주 조성준(2개 작품)김일갑 ◇기타=김앵랑 조미숙 이환우(2개 작품)장용훈(2개 작품)김무언 김용철 이상재(2개 작품)장금숙(2개 작품)김명숙 장석 신계원 이경민 임준호 강헌행(2개 작품)한명자 김영희 이혜원(2개 작품)장도영 이경희(2개 작품)고광용(2개 작품)이재원 임순희(2개 작품)김주훈 노재경 서순임(2개 작품)조청희(2개 작품)김희정 임선아 하남선(2개 작품)하정선(2개 작품) 이형자 안여선 정숙애 구은자 이용삼(2개 작품)조석인(2개 작품)엄익평 임정애 봉선옥 ◇피모각골=이옥례 김춘일 박계수 박종학 박성규 송옥수 배창수 서남규 문상호(2개 작품) ◎대상 수상 조대용씨/“대발에 매달러온 30년세월 보상받아 뿌듯” 『이처럼 큰 상을 받게 되리라곤 기대하지 못했는데 의외의 상을 받게돼 기쁩니다』 15일 제20회 전승공예대전에서 영예의 대통령상을 받은 조대용씨(45)는 지난 30년간 문 대발에만 매달려온 세월이 헛되지 않았다며 『이번 수상을 더 좋은 작품을 만들라는 채찍으로 삼겠다』고 말했다. 조씨는 중학교를 졸업하던 지난 66년부터 아버지에게 발을 만드는 작업을 배우기 시작해 군복무 3년을 빼놓곤 오로지 이 작업에만 매달려왔다.지금까지 모두 전승공예대전에 11차례나 출품해 지난 90년 문화부장관상을 받은후 올해 대상을 거머쥐었다. 수상작 「희자귀갑문발」은 통영에서 나는 질 좋은 왕죽을 가늘게 쪼갠 2천5백개의 대올을 촘촘하게 엮었는데 발의 변두리에 아자 무늬,안쪽 중앙부에는희자를 명주실로 엮어 수놓아 세공이 뛰어나다는 평을 얻었다. 『마디가 고운 대를 구해 말리는데만 4개월,제작에 4개월등 모두 8개월이 걸렸습니다.이전엔 주로 검정색실을 사용해 발 전체의 무늬가 선명한 작품을 해왔는데 이번엔 대나무의 색깔과 미색실을 조화시켜 은은한 무늬를 느끼도록 시도한게 좋은 반응을 얻은 것 같습니다』
  • 전설의 고장/귀양지 순례/이색소재 역사기행 첫선

    ◎삼국유사의 현장기행­설화 얽힌 60여곳 오늘의 모습/유배지 역사 기행­오지의 선비·의인 발자취 찾아 독특한 소재를 다룬 역사기행서 2권이 최근 나란히 출간돼 눈길을 끌고 있다.「삼국유사의 현장 기행」(문예산책 펴냄)과 「유배지 역사 기행」(집현전)이 그것.그동안 나온 답사기들이 유적이나 문화현장을 포괄적으로 소개한 것과는 달리 이 책들은 선명한 주제를 골라 관련장소들을 집중 조명한 것이 특징이다. 「삼국유사의 현장 기행」(이하석 지음)은 사라진 신화·설화의 세계를 오늘에 되살리는 답사기.삼국사기와 함께 한국 고대사의 양대 역사서인 삼국유사는 특히 우리 고유의 정서를 풍부한 상상력으로 그려낸 것이 장점으로 꼽힌다. 시인이자 중견 언론인인 지은이는 삼국유사에 실려 있는 신화·전설의 현장으로 독자를 안내,유적의 보존 상태를 점검하고 문화예술적 의의를 새롭게 자리매김해 준다.모두 60여곳을 찾았는데 경주 불국사,감포 문무왕수중릉등 몇몇을 제외하고는 일반인들에게 생소한 장소이다. 예컨대 경남 울산 시가지에서남쪽으로 10여리 떨어진 울산시 황성동 세죽마을 앞바다에는 처용바위가 있다.삼국유사에 「신라 헌강왕이 동해 용왕의 아들 처용을 얻었다」고 기록한 옛 개운포가 바로 이곳이다. 지은이는 처용설화의 내용과,그 설화가 현대문학에 어떻게 수용돼 있는지를 들려준다.이어 「너무 투명해 밑바닥까지 보이던」이곳 바닷물이 불과 10여년사이에 심하게 오염되고,따라서 정월 보름이면 처용바위에 제사를 지내던 주민들이 다들 떠나버린 현실을 개탄하고 있다. 이에 견줘 원광대 신규수교수(국사교육학과)가 지은 「유배지 역사 기행」은 조선시대 절대왕권 아래 희생된 선비·문인들이 귀양살이한 지역 14곳을 밟았다.유배지라는 성격대로 제주도·보길도·흑산도등 섬이 대부분이고 내륙지방의 경우는 전남·강원도에 한정돼 있다.을사조약 체결후 의병을 일으켰다 실패한 의병장 9명이 끌려간 일본 쓰시마섬도 포함됐다. 이 유배지들은 아직도 개발이 덜 된 편이다.그 땅에 귀양살다 간 당대의 지식인들이 남긴 자취는 지금도 주민생활 속에 남아 있다.중종 때 개혁에 앞장서다 모함을 당한 조광조가 유배된 곳은 전남 화순군 능주면.조광조가 사약을 받기까지 이곳에 머문 기간은 비록 한달에 불과하지만 그 존재는 이 지역을 절의·학문을 기리는 「의향」「문향」으로 키웠다. 지은이는 왜 유배지만을 찾아다녔을까.신교수는 유배지에서 시대적 불리를 넘어선 자기완성을 찾는다.『유배라는 극악한 현실을 새출발의 계기로 삼아 가장 아름다운 예술의 완성이,가장 심오한 학문의 집대성이,가장 활기찬 현실의 반성과 모색이 꽃피었다』고 결론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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