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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대 영부인들 스타일·근황

    역대 영부인들 스타일·근황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입관식에서 말없이 남편을 떠나보낸 손명순(87) 여사는 이화여대 3학년 때인 1951년 결혼, 65년을 한결같이 헌신한 전형적인 ‘내조형’이다. 민주화 투쟁을 비롯한 YS의 한평생 정치 역정은 손 여사 없이 불가능했다는 게 주변의 전언이다. 1988년 13대 총선 때 전국에서 지원유세 요청이 쇄도하는 바람에 정작 YS의 부산 지역구는 손 여사가 발로 뛰었다. 당시 명절 때면 서울 상도동 자택에서 거제도 멸치를 나눠 줬다. 온갖 인사들이 “나도 상도동계”라며 멸치를 받아갔는데 “나는 손명순계”라고 재치 있게 말하는 이는 멸치를 더 타갔다. 2011년 결혼 60주년 회혼식에서 YS는 “그동안 참으로 고마웠소. 맹순이(명순이)가 예쁘고 좋아서 60년을 살았지”라며 볼에 입맞춤을 했다.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93) 여사는 적극적인 ‘동지형’이다. 이화여대를 졸업하고 미국 유학까지 다녀와 당시로는 드물게 신여성이었던 그는 남편의 굴곡진 정치인생에 가장 가까운 정치적 동지였다. DJ 납치사건 및 사형선고, 6년에 걸친 옥바라지, 망명생활 등 정치적 혹한기를 함께 견뎠다. DJ는 생전 이 여사를 일컬어 “영원한 동반자이자 동지”라며 애틋함을 표시했다. 2009년 DJ 서거 당시 입관식 때 넣은 메모에 “너무 쓰리고 아픈 고난의 생을 잘도 참고 견딘 당신을 나는 참으로 사랑하고 존경했습니다”라고 이 여사는 적었다. 고령이지만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으로 지난 8월 방북하는 등 DJ 유훈인 남북평화를 위한 활동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68) 여사는 ‘쓴소리형’이다. 현안에 대해 노 전 대통령에게 솔직하게 쓴소리를 가장 많이 한 사람이 바로 권 여사였다고 한다. 반지를 팔아 노 전 대통령의 고시공부를 뒷바라지할 만큼 열혈적인 면모도 있었다. 현재는 노 전 대통령 유지를 기리고 묘역을 관리하기 위한 재단법인 ‘아름다운 봉하’ 이사장으로 봉하마을에서 조용히 지내고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부인 김윤옥(68) 여사는 ‘퍼스트레이디 외교’를 가장 활발하게 펼친 ‘활동가’형이다. 이 전 대통령 재임 중이던 2009년 한식세계화추진단 명예회장을 맡았고, ‘밥퍼’ 나눔 운동을 비롯한 각종 대외행보를 활발하게 펼쳤다. 퇴임 후엔 문화계 행사에 자주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마당발 내조’로 회자됐던 전두환 전 대통령의 부인 이순자(76) 여사는 불법 비자금 조성 추징 등으로 최근에는 심리적으로는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전 전 대통령 부부는 지난달 대구공고 총동문회에 커플 모자를 쓰고 참석하고, 지난 3월 한정식집에서 단둘이 생일파티를 하는 등 여전한 금실을 과시하고 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부인 김옥숙(80) 여사는 유일하게 어록이 없는 영부인으로 기억될 만큼 ‘그림자 내조’를 내세우며 고전적인 현모양처 스타일을 고집했다. 현재는 와병 중인 노 전 대통령을 간호하며 은둔 생활 중이다. 2013년 6월 검찰이 노 전 대통령의 벌과금 미납 착수에 나서자 김 여사가 직접 대검찰청에 탄원서를 내기도 했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 국회엔 검은색 대형 애도 현수막… 지방 200여곳 6만여명 조문

    국회엔 검은색 대형 애도 현수막… 지방 200여곳 6만여명 조문

    쌀쌀해진 날씨에도 불구하고 24일 고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은 정·재계 주요 인사와 일반 시민의 추모 행렬이 사흘째 계속되며 ‘문전성시’를 이뤘다. 저마다 김 전 대통령과의 인연을 소개하며 ‘그의 정신을 받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까지 사흘간 서울대병원 빈소를 찾은 조문객은 총 2만여명을 훌쩍 넘겼다. 홍준표 경남지사는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많은 국가 개혁을 하신 분인데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때 많은 국민이 비난하는 것을 보고 가슴이 아팠다”며 “새롭게 다시 한번 재조명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과거 검사로 활약하며 ‘모래시계 검사’라는 별칭까지 붙었던 홍 지사는 1996년 김 전 대통령의 권유로 정치에 입문한 ‘YS키즈’다. 1990년 3당 합당 당시 김 전 대통령과 결별하고 노무현 전 대통령, 홍사덕·이철 의원과 함께 꼬마 민주당을 창당했던 이기택 전 의원도 빈소를 찾아 유족을 위로했다. 이 전 의원은 “김 전 대통령은 오늘의 이 대한민국을 민주주의 국가로 만드는 데 누구와도 비견할 수 없는 가장 탁월한 공을 세운 분”이라며 “이분의 민주주의 정신을 따라서 이 나라가 더욱 성숙한 국가로 발전돼 나가길 빈다”고 말했다. ●김기춘 “민주화 과업 이룩한 역사적인 국가원수” 안희정 충남지사는 “반독재 민주화 운동을 이끌었던 지도자를 잃어 매우 애통하게 생각한다”며 “우리에게는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야 할 책무가 맡겨진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조문록에 ‘고인께서 반독재 민주화 투쟁의 선두에 계실 때, 저는 이제 막 민주화 운동에 합류한 꼬마 대학생이었습니다. 고인으로부터 큰 은혜를 입고 삽니다’라는 글을 남겼다. 1992년 14대 대선을 이틀 앞두고 부산 초원복집에서 지역 기관장들과 김 전 대통령에 대한 지원방안을 논의하며 ‘우리가 남이가’라는 건배사를 외쳤던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도 유족을 위로하면서 한동안 빈소에 머물렀다. 김 전 비서실장은 “김 대통령께서는 산업화 토양 위해서 민주화의 역사적 과업을 이룩하신 역사적인 국가원수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의 ‘정치적 아들’을 자처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서청원 최고위원, 손학규 전 새정치연합 상임고문 그리고 ’상도동계’ 김수한 전 국회의장, 홍인길 전 청와대 총무수석도 사흘째 빈소를 지켰다. 재계에서는 손경식 CJ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등이 발걸음을 했다. 손 회장은 “고인은 우리나라 민주화와 금융실명제 등 선진 제도를 도입한 훌륭한 지도자”라며 애도를 표했다. 벳쇼 고로 주한 일본대사는 ‘일본 국민과 정부를 대표해서 마음 깊이 조의를 표한다’라고 조문록에 쓴 뒤 “큰 위인을 잃었다”고 말했다. 가족들은 애써 슬픔을 참아가며 문상객을 맞이했다. 차남인 현철씨는 아침 일찍 나와 빈소를 지키며 문상객의 손을 하나하나 잡아가며 예를 표했다. 이어 오전 11시쯤 휠체어를 탄 채 빈소에 등장한 손명순 여사는 여전히 충격이 가시지 않은 모습으로 눈물을 흘리며 조용히 슬퍼했다. 손 여사는 좋지 않은 건강에도 불구하고 4시간가량 빈소를 지켰다. 김 전 대통령의 처남 손성환(82)씨는 빈소를 찾아 “새해마다 상도동에서 세배를 해서 이번에도 가게 될 줄 알았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김 전 대통령과 크고 작은 인연을 가진 시민들의 발길도 이어졌다. 정수선(61·여)씨는 태극기에 싼 액자를 소중히 안은 채 장례식장을 찾아 “1970년 부산의 한 선거 유세장에서 김 전 대통령을 만나 사진에 사인을 받았는데 그것을 액자에 넣고 태극기에 싸서 여태까지 보관하고 있다”고 말했다. 당시 정씨가 “꼭 대통령이 되세요”라고 소리치니 김 전 대통령이 “꼬맹이가 귀엽다”며 사인을 해줬다는 것이다. 정씨는 “살아 계셨을 때 다시 한번 직접 뵙고 싶었는데, 돌아가시고 나서야 이렇게 찾아왔다”며 눈물을 보였다. ●통일민주당 창당 방해 주범 김용남씨도 빈소 찾아 일명 ‘용팔이 사건’으로 알려진 1987년 통일민주당 창당 방해 사건의 주범인 김용남(64)씨도 김 전 대통령의 빈소를 찾았다. 홍인길 전 청와대 총무수석은 김씨를 만난 뒤 “(김씨가) 목사가 됐다더라. 조문을 길게 하진 않았으나 기도하고 묵념을 오래 했다”고 전했다. 서울 여의도 국회에 마련된 정부 대표 분향소에는 이종걸 원내대표를 비롯한 새정치연합 의원 30여명은 국회 분향소를 찾아 단체로 헌화와 분향을 했다. 정부 분향소가 위치한 국회 본관 전면에는 ‘근조,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서거를 삼가 애도합니다’라고 적힌 검은색 대형 현수막도 새로 내걸려 한층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추모가 이뤄졌다. 전국 자치단체에 설치된 200여곳의 분향소에도 이날 오후 6시 현재 6만명이 넘는 조문객이 방문해 김 전 대통령의 서거에 애도를 표했다. 특히 김 전 대통령의 고향인 경남 거제시 대계마을 생가 옆에 마련된 분향소에는 사흘 동안 3000여명이 방문했다. 이곳 분향소에는 김 전 대통령이 졸업한 장목초등학교 재학생 67명 전원이 찾아 고인을 추모했다. 거제가 지역구인 김한표 새누리당 의원도 “1990년대부터 김 전 대통령의 경호 담당으로 인연을 맺어 왔다”며 하루 종일 분향소를 지켜 눈길을 끌었다.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 설치된 분향소에서는 동교동계(김대중 전 대통령 가신 그룹) 권노갑·김옥두·이훈평 전 의원과 상도동계 정병국 의원, 김덕룡·박희부 전 의원 등이 상주를 자처하며 조문객을 맞았다. 2009년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때도 상도동계가 함께 서울광장 분향소에서 조문을 받으며 품앗이한 전례가 있다. ●반기문 “국제사회 존경받는 나라 노력” 해외 주요 도시에 마련된 분향소에서도 추모 행렬은 계속됐다. 주한 미국대사 출신인 성 김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 겸 부차관보는 23일(현지시간) 워싱턴 DC 소재 주미대사관에 마련된 분향소에 미국 정부 대표 자격으로 찾아 조문을 했다. 김 부차관보는 헌화와 묵념을 한 뒤 “우리는 한국의 발전을 위해 중요한 기여를 한 김 전 대통령을 매우 존경한다”며 “(김 전 대통령은) 한국이 민주주의로 기적적인 변모를 하는 데 가장 중심적 인물 중의 한 명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뉴욕 대한민국 유엔대표부에 마련된 분향소를 찾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고인의 뜻을 따라 대한민국이 잘 살고 국제사회의 존경을 받는 나라가 되도록 노력하자”고 말했다. 정부는 해외 주재 우리 공관에 분향소를 마련해 공관원들과 교민들이 찾을 수 있도록 했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특별기고] “자유민주주의 향한 헌신·희생 국가발전 커다란 밑거름 될 것”

    [특별기고] “자유민주주의 향한 헌신·희생 국가발전 커다란 밑거름 될 것”

    존경하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서거를 진심으로 애도합니다. 평소 불굴의 의지와 집념이 강한 분이셨고 그간 재활 치료가 조금씩 호전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있어 꼭 회복하셔서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인사드릴 날을 기다렸는데 급작스러운 서거 소식에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김 전 대통령은 저를 정치에 입문시켜 주신 정치적 스승이고 개인적으로 아버지와 같은 분입니다. 제가 영국 대학에서 정치학을 가르치던 시절인 1993년 3월 청와대의 부름을 받아 문민정부에서 공보, 정무비서관으로서 김 전 대통령을 모셨던 5년간은 제 생애 가장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김 전 대통령께서는 특히 군정을 종식하고 문민정부 시대를 연 국가지도자로서 긍지와 자부심이 남다른 분이었습니다. 치열한 국익을 다투는 외교 무대에서 김 전 대통령은 주권국가의 입장을 당당하게 내세웠습니다. 취임 초 1993년 11월 미국 빌 클린턴 대통령과 백악관 정상회담에서 북한 핵 문제를 다룰 때 미국의 포괄적 접근과는 다른 철저한 남북한 상호 사찰을 요구했습니다. 또 한·미 팀스피릿 훈련 중단 문제는 한반도의 중요한 안보 사안인 만큼 당사자인 한국의 대통령이 우선 결정할 문제라고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그 때문에 정상회담이 예정보다 길어지고, 클린턴 대통령이 불편한 기색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중국 최고지도자로서는 역사상 처음 한국을 방문한 장쩌민 국가주석은 한·중 간 역사 공조를 통해 일본 오사카에서 개최됐던 APEC 정상회담에서 ‘시위 산책’을 통해 일본의 과거사에 대한 진지한 반성과 사과를 촉구하기도 했습니다. 대북 관계에 있어서도 김 전 대통령은 주도권을 놓치지 않으려 했습니다. 1994년 북한 핵 위기 고조 당시 미국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 군사 합동 가능성에 직면해 이를 반대했고, 카터 전 대통령의 중재외교에 의한 남북 정상회담 합의를 이끌어 내며 한반도의 위기를 기회로 바꿨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김일성 주석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남북 정상회담은 무산됐고 그 귀중한 기회는 현실화될 수 없었습니다. 만약 그 당시 예정대로 남북 정상회담이 이뤄졌다면 한반도의 역사는 달라졌을 것입니다. 지금도 가장 애석하게 생각되는 부분입니다. 김 전 대통령은 클린턴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자주 했습니다. 주로 한·미 동맹 현안과 북한 핵 문제에 관한 얘기를 많이 했지만 1997년 말 외환위기 때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습니다. 두 분 사이의 마지막 정상회담은 1997년 11월 캐나다 밴쿠버에서 있었습니다. 그때 클린턴 대통령은 “한국은 경제의 기초가 튼튼해서 동남아와 같은 외환위기는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상황이 어려워질 경우 미국이 지원하겠다”라고 안심시켰습니다. 며칠 후 청와대 대통령집무실에 클린턴 대통령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평상시에는 워싱턴 백악관에서 전화를 걸지만 이번에는 대통령 휴양지인 캠프 데이비드 산장에서 전화가 걸려 온 것이었습니다. 클린턴 대통령은 거두절미하고 “각하, 오늘은 제가 중요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한국의 경제 상황이 심각한 것 같습니다. 국제통화기금의 긴급구제금융을 받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만약에 그렇지 않으면 한국은 국제금융시장에서 심하게 응징받을 것입니다”라고 대본을 읽듯 얘기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불과 며칠 전만 해도 밴쿠버에서 클린턴 대통령의 발언에 고무됐던 김 전 대통령은 아연실색했습니다. 반기문 당시 외교안보수석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모골이 송연한 부분입니다. 불과 며칠 사이에 워싱턴의 분위기가 바뀐 것이었습니다. 가슴이 철렁했던 순간이었습니다. 김 전 대통령을 청와대에서 5년 동안 모시면서 국내에서, 그리고 일선 외교 현장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또 경험했습니다. 김 전 대통령은 옳다고 믿는 일은 끝까지 밀어붙이는 투사적인 강인함과 함께 진솔하고 따뜻한 인간미를 가진 분이었습니다. 대통령을 5년간 모시면서 청와대 녹지원에서 아침 5시에 하루도 거르지 않고 새벽 조깅을 하였습니다. 저를 비롯한 30대 중반의 젊은 비서관들은 밤늦게 일하다가 새벽에 늦거나 간혹 빠지는 일도 있었습니다. 하루를 빠지면 대통령께서는 그다음 날 새벽 조깅 때 “니 어제 안 나왔제”라고 족집게 지적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틀을 연달아 빠지면 대통령께서는 아무 말도 안 하셨습니다. 화가 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다음 날 새벽에 나가면 대통령께서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니 어데 아프노?” 하고 물어보시는 것이었습니다. 김 전 대통령께서는 그처럼 따뜻한 인간적인 매력을 갖추신 분이었습니다. 오늘 대한민국은 소중한 국가지도자 한 분을 잃었지만 당신께서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바치신 헌신과 사랑, 그리고 빛나는 민주화와 세계화의 업적은 앞으로 국가 발전과 남북통일을 위한 커다란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그 대도무문의 정신을 저희들이 계속 이어 가겠습니다.
  • [김영삼 前대통령 서거] ‘위안부 문제’ 對日 도덕적우위 이끌어

    김영삼 전 대통령은 집권 후 대일 외교에서도 나름의 성과를 거뒀다. 그중에서도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정부의 주도적 해결을 언급해 도덕적 우위를 확보한 것은 지금까지도 정부의 기조로 남아 있다. 위안부 문제는 1991년 고 김학순 할머니가 피해 사실을 최초로 공개 증언한 뒤부터 공론화돼 김영삼 정부 출범 직전에는 한·일 양국 간 감정적 현안으로 부상한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김영삼 정부는 1993년 3월 출범 직후 ‘도덕적 우위에 입각한 자구조치’를 선언해 피해자에 대한 금전적 보상은 일본에 요구하지 않고 정부가 직접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1965년 체결된 한·일청구권 협정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됐다는 입장을 보인 일본으로서는 금전적 보상을 요구하지 않겠다는 정부의 입장 표명이 상당한 압박으로 작용한 것이다. 이원덕 국민대 일본연구소장은 23일 “당시 김영삼 대통령이 위안부 문제를 둘러싸고 공식 책임 인정과 사죄는 일본이 해야 하고 피해자 구제는 정부가 하겠다는 원칙을 밝힌 것은 지금까지도 우리 정부의 기조로 유지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위안부 문제가 불거지며 또다시 금전적 요구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갖고 있던 일본으로서는 김영삼 정부가 예상치 못한 발상의 전환을 하면서 일본 내 양심세력의 호응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됐다. 이 때문인지 일본은 1993년 8월 고노 요헤이 당시 관방장관이 일본군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 담화’를 발표했다. 또 1995년 8월에는 식민지배를 사죄한 ‘무라야마 담화’가 이어졌다. 그렇지만 이 같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임기 후반부 김영삼 정부는 김 전 대통령의 직설적인 어법이 화근이 되면서 한·일관계가 악화되기도 했다. 1996년 시작된 한·일 어업협정 개정 협상 과정에서 배타적경제수역(EEZ)의 경계 획정 문제와 독도 영유권 문제가 맞물리면서 양국은 얼굴을 붉히는 상황을 맞이했다. 결국 1998년 1월 일본은 한·일 어업협정 파기를 일방적으로 선언해 뒤를 이은 김대중 정부는 이 문제를 매듭짓기 위해 힘겨운 협상을 거쳐야 했다. 이제훈 기자 parti98@seoul.co.kr 강병철 기자 bckang@seoul.co.kr
  • [김영삼 前대통령 서거] DJ·盧 서거 때와 다른 北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서거에 대해 북한은 당일(22일)은 물론 23일에도 별다른 보도를 하지 않았다. 또 조전도 보내오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김 전 대통령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다는 점으로 미뤄 특별히 조의 입장을 밝히거나 조문단을 파견하진 않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북한 관영 및 선전매체들도 이날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공개 활동 외에 김 전 대통령의 서거와 관련해선 별다른 언급을 내놓지 않았다. 앞서 북한은 2009년 8월 18일 김대중 전 대통령과 2009년 5월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당시에는 모두 다음날 관영매체를 통해 관련 소식을 보도했다.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조전을 통해 “심심한 애도의 뜻을 표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북한은 1993~1994년 1차 북핵 위기가 터졌을 때 김 전 대통령이 ‘핵과는 결코 손을 잡지 않겠다’고 천명하며 강경하게 대처한 데 대해 아직까지도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북한은 김 전 대통령을 대북 강경론자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당국 또는 김 제1위원장의 명의로 조전을 보내거나 조의를 표할 가능성이 낮다”고 전망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김 전 대통령 시절 북한과의 관계가 좋았다고 평가하긴 어렵지만 남북이 1994년 정상회담 개최까지 합의하는 등 의미 있는 행보를 보인 바 있고, 중단됐던 당국 간 대화가 기지개를 켜는 현시점에서 북측이 조전을 보내는 등의 ‘예의’를 표할 수도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특히 오는 26일 당국 간 대화를 위한 실무접촉 과정에서 우리 측에 간접적으로 조의를 표할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김영삼 前대통령 서거] “정치인 富가지면 부덕한 일”… 상도동 자택 등 전재산 사회 환원

    김영삼(YS) 전 대통령은 생전인 2011년 전 재산의 사회 환원을 약속했다. 경남 거제도 땅 등 52억원을 사단법인 김영삼민주센터에 기부했고, 서울 동작구 상도동 자택은 부인 손명순 여사 사후에 소유권을 센터로 기부토록 했다. YS 사후 그의 이름으로 남아 있는 재산은 사실상 전무한 셈이다. 이와 별도로 경남 거제시 장목면 외포리 생가 옆에는 거제시가 운영하는 ‘김영삼 대통령 기록전시관’이 있다. YS 측 관계자는 23일 “상도동 자택 근처에 있는 김영삼 대통령 기념도서관은 현재 준공 검사까지 마쳐 내부 인테리어만 손보면 되는 단계”라면서 “도서관 기증 및 운영 주체를 놓고 장기간 협의해 왔는데, 서울대와 중앙대 중 현재 중앙대와 얘기가 오가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YS 측근이었던 문정수 전 부산시장은 “본인 명의의 집 외에는 땅 한 평 가진 것이 없었고, 가지고 있는 재산은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것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 전 대통령은 평소 ‘정치인이 부를 가지는 것은 부덕한 일이다’라고 말했고 이를 몸소 실천한 분이었다”고 회고했다. YS를 기억하는 새누리당 중진들은 이날 청와대 시절에도 소탈했던 그와 부인 손 여사를 회고했다. 문민정부에서 대통령비서실 제2부속실장을 지낸 4선 정병국 의원은 “당시 ‘청와대에 가면 배를 곯고 나온다’는 우스갯소리가 유행처럼 번졌다”고 말했다. 음식을 무서울 정도로 빨리 해치우는 YS 특유의 급한 성격 때문이었다. 정 의원은 “VIP(대통령)가 먹는 속도가 워낙 빨라 칼국수가 나오면 뚝딱 해치우시는데, 정작 국무위원이나 내빈들은 젓가락을 채 들지 못했다”면서 “나중에는 청와대에 들어간다고 하면 배고프지 않도록 모여서 미리 밥을 먹고 들어가기도 했다”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손 여사는 청와대 경내에 있는 많은 과일나무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봄엔 살구, 가을엔 감이 잔뜩 열렸는데 손수 따다가 비서진들에게 일일이 나눠줄 만큼 잔정이 깊었다. 대통령 당선 전엔 수행 비서들을 “비서 아저씨”라고 부르며 챙겼다고 한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김영삼 前대통령 서거] “된다 생각하면 밀어붙여… 정치 감각 탁월”

    김영삼(YS) 전 대통령 서거 이틀째인 23일 그의 정치적 라이벌이었던 고(故) 김대중(DJ) 전 대통령 측 동교동계 인사들이 조문 행렬을 이어 가며 고인을 애도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는 이날 차남 홍업씨, 새정치민주연합 박지원 의원 등과 함께 빈소를 찾았다. 이 여사가 김영삼 전 대통령의 부인 손명순 여사, 차남 현철씨 등과 악수를 나누며 위로를 전하자 현철씨는 “(어머니가) 충격이 없진 않으시다”고 말했다. 이 여사와 휠체어를 타고 마주한 손 여사는 “오래오래 사세요”라며 건강을 기원했다. 앞서 오전에는 동교동계 좌장 격인 새정치연합 권노갑 상임고문과 이훈평, 박양수 전 의원 등이 빈소를 다녀갔다. 동교동계 인사들은 YS에 대해 한목소리로 “추진력과 결단력이 뛰어났던 승부사”라고 회고했다. 동교동계 막내인 새정치연합 설훈 의원은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한번은 DJ에게 YS의 장점을 묻자 ‘YS는 된다고 생각하면 끊임없이 밀어붙인다’는 답이 돌아왔다”고 전했다. 그 예로 1986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위한 서명운동을 추진할 때 DJ가 100만명을 목표로 제시하자 YS가 “100만명이 뭐꼬. 1000만명은 돼야지”라고 했다는 일화를 소개했다. 설 의원은 또 “YS와 DJ는 주변에 사람들이 있으면 서로 말을 높였지만 둘만 있을 땐 말을 놓는 것을 여러 번 목격했다”고 밝혔다. 같은 당 문희상 의원은 “두 분이 쪼개졌을 당시 YS의 기분이 나쁠 때 누가 옆에서 DJ 욕을 하면 웃음을 짓는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로 서로 앙숙이었다”면서도 “나라를 위해서라면 서로 굉장히 챙기며 힘을 합쳤다”고 말했다. 문 의원은 “DJ가 생전에 ‘나는 논리적이어서 (일을 진행하려면) 한참 걸리는데, YS는 말보다 행동이 빠르더라’고 했다”고 회고했다. DJ의 비서실장을 지낸 박 의원은 “동물적 정치 감각은 YS, 논리적 사고는 DJ가 탁월했다”며 두 전직 대통령의 리더십을 비교했다. 장진복 기자 viviana49@seoul.co.kr
  • [김영삼 前대통령 서거] ‘김영삼 기념 도서관’ 내년 3월 문 연다

    [김영삼 前대통령 서거] ‘김영삼 기념 도서관’ 내년 3월 문 연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생애를 기리고 시민들을 위한 교육 공간 등으로 활용될 ‘김영삼 기념 도서관’(이하 도서관)이 이르면 내년 3월 문을 연다. 23일 사단법인 김영삼민주센터에 따르면 도서관은 2012년 4월 서울 동작구 상도동 김 전 대통령 자택 인근에서 첫 삽을 뜬 뒤 올 9월 준공돼 조경, 내부 전시 등 마무리 공사를 마치고 내년 봄 개관한다. 지하 4층, 지상 8층 규모의 도서관 건물 중 ‘전시관’으로 쓰이는 지하 1층~지상 2층에는 김 전 대통령의 일대기와 문민정부 당시 김 전 대통령의 업적을 보여주는 문서, 영상, 사진 등 사료 5만여점이 전시된다. 도서관으로 운영되는 3~5층에는 정치를 포함한 인문·사회과학 분야 서적 약 1만권을 비치해 학생이나 주민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김정열 김영삼민주센터 사무국장은 “김 전 대통령이 생전 자신의 자택 때문에 인근 상도동 주민들이 검문검색을 받는 일이 많아 평소에 주민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면서 “도서관을 주민 개방형으로 만든 이유도 김 전 대통령이 주민들에게 보답하고 싶은 뜻이 컸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도서관은 연구·교육 공간으로도 활용된다. 6~7층에 들어설 연구실에서는 김 전 대통령이 국가 전략 구호로 내세웠던 ‘세계화’를 비롯해 ‘민주주의’, ‘인권’ 등을 주제로 한 학술 연구가 진행된다. 김영삼민주센터 측은 강연장 및 세미나실로 이용될 지하 2층에서 ‘정치 아카데미’를 열어 정치인 초년생 및 국회의원 비서관들을 위한 교육 강좌를 진행하거나 각 분야 명사들을 섭외해 ‘테드’(TED·명사들의 릴레이 강연)를 여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김영삼 前대통령 서거] YS “독재자의 딸” 독설 퍼붓다가 2012년 대선 지지 ‘지독한 애증’

    박근혜 대통령이 23일 영면에 든 김영삼(YS) 전 대통령을 조문했다. 박 대통령이 예를 갖춰 애도를 표했지만 그동안 두 사람은 악연에 가까웠다. 정치적 앙숙 관계가 대를 이은 탓이 크다. 1998년 2월 대통령직 퇴임을 계기로 일선 정치 현장을 떠난 YS와 같은 해 4월 보궐선거를 통해 정계에 입문한 박 대통령 사이에 직접적 연결 고리는 없다. YS 입장에서는 정적이자 박 대통령에게는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 갈등의 촉매제 역할을 했다. 박 전 대통령 집권 시절 민주화 투쟁을 주도했던 YS는 대통령 퇴임 직후인 1999년 김대중 정부의 ‘박정희 기념사업’ 지원에 대해 “쿠데타를 일으키고 민주 헌정을 중단시킨 박정희씨를 찬양하는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날 선 비판을 했다. 당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박근혜 부총재는 “자신이 하면 옳다고 주장하고 남이 하는 것은 부정하는 반사회적 성격의 인물이 다시는 정치 지도자가 돼서는 안 된다”고 맞받아쳤다. YS는 박 전 대통령을 향해 “독재자”, 박 대통령에 대해서도 “독재자의 딸”이라는 표현을 서슴지 않았다. YS는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에서 이명박(MB) 후보를 공개 지지했다. 이어 YS의 측근들도 잇달아 ‘MB 지지’를 선언하면서 결국 박 대통령은 경선에서 고배를 마셨다. YS는 2012년 새누리당 대선 경선에서도 김문수 후보를 격려하면서 경쟁 상대였던 박 대통령을 “칠푼이”라고 평가절하했다. 당시 대선을 8개월여 앞두고 치러진 총선에서는 YS의 차남인 김현철 전 여의도연구소 부소장이 새누리당에 공천 신청을 했다가 탈락했다. 당시 박 대통령은 당의 수장인 비상대책위원장이었다. 이때 YS가 격노한 것으로 알려졌고, 현철씨는 “선대로부터 내려온 무자비한 정치 보복”이라면서 탈당했다. 그러나 YS는 2012년 대선 직전 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 의사를 표명했다. 박 대통령도 당선 직후 YS에게 전화를 걸어 감사 인사를 전했다. 장세훈 기자 shjang@seoul.co.kr
  • [김영삼 前대통령 서거] “클린턴 꽉 눌러줬다고 자랑” “난방 잘 안 되는 좁은 방에서 생활”

    [김영삼 前대통령 서거] “클린턴 꽉 눌러줬다고 자랑” “난방 잘 안 되는 좁은 방에서 생활”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입관식이 23일 오전 유가족 4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거행됐다. 유가족의 뜻에 따라 기독교식으로 진행됐다. 황금색 수의를 입은 김 전 대통령은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띤 평온한 모습으로 관 속에 누웠다. 부인 손명순 여사가 김 전 대통령을 한동안 말없이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고, 다른 가족들도 끝내 오열했다. 시린 가을비가 그치고 한층 쌀쌀해진 날씨 속에서도 김 전 대통령을 향한 애도의 물결은 끊이지 않았다. 정치권 거물들은 물론 대기업 총수들까지 대거 조문 행렬에 동참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등 상도동계 인사들은 서울대병원에 차려진 빈소를 줄곧 지키며 조문객들을 맞았다. 조문객 수는 오후 10시 기준 9300여명이었으며 누적 1만 2500명에 달했다. 빈소를 찾은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는 김 대표와 만나 ”호(號)가 거산(巨山)이다, 거대한 산. 일생을 풍미한 양반”이라면서 “(김 전 대통령은) 외국 원수들, 특히 미국 대통령을 만나고 오면 ‘내가 꽉 눌러 줬다’며 기싸움한 얘기를 아주 자랑스럽게 말씀하셨다”고 밝혔다. 이 전 총재는 김 전 대통령에 의해 감사원장으로 전격 발탁됐지만 국무총리 시절 대통령과 갈등을 빚으며 서로 불편한 관계가 됐다. 이 전 총재는 자신이 방명록에 남긴 사자성어 ‘음수사원’(飮水思源)을 언급하며 “물을 마시면 물이 어디서 왔는지 생각하라는 뜻인데, 지금 우리나라에 민주주의가 생활화돼 있다. 마치 공기처럼. 그래서 민주주의가 어디서 왔는지 잘 모르고, 세상이 하도 좋아져서 잘 못 느낀다”면서 “민주주의의 주역이었던 김 전 대통령이 이렇게 서거하시니까 어떻게 민주주의를 이뤄 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김 대표는 “우리나라 민주주의는 김 전 대통령이 만들었다”고 화답했다. 정운찬·김황식·정홍원 전 국무총리 등도 잇달아 조문을 했다. 정운찬 전 총리는 “총리를 할 때 세종시 개선안을 가지고 몇 번 뵀는데, 꼭 (개선안을) 관철시켜야 한다며 많이 격려해 주셨다”고 전했다. 김 전 총리는 “상도동 자택으로 찾아뵀을 때 난방도 제대로 안 되는 좁은 방에서 생활을 하시더라”고 소개하며 “원칙에 충실하고 바른길이라면 좌우 살피지 않고 앞으로 나가는 모습을 후학들이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전 대통령의 경남중학교 후배인 정홍원 전 총리는 “대한민국 역사의 한 축을 담당한 어르신”이라며 안타까워했다.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도 빈소를 찾아 헌화하고 묵념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남인 노건호씨도 이날 저녁 빈소를 방문했다. 노씨는 “민주화의 투사로서 아버지께서도 항상 존경해 오신 분”이라고 짧게 말했다. 노씨는 김 대표, 이완구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 등과 함께 자리해 대화를 나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구본무 LG그룹 회장,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박병원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등 재계 인사들의 발길도 이어졌다. 형제간 경영권 분쟁을 겪고 있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 측은 각각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 명의로 조화를 보냈다. 신격호 총괄회장이 직접 빈소를 찾을지도 관심사다. 93세의 고령인 신 총괄회장은 거동이 어렵지만 김 전 대통령과 생전에 각별했던 사이로 알려졌다. 이날 서울시가 마련한 서울광장 분향소에는 김 전 대통령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려는 시민들의 발길이 줄을 이었다. 특히 노신사가 유독 많았다.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김영삼 前대통령 서거] 생존해 있는 3명의 전직 대통령 근황은

    [김영삼 前대통령 서거] 생존해 있는 3명의 전직 대통령 근황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대통령을 역임하고 퇴임한 사람은 현재까지 총 10명이다. 지난 22일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서거로 이제 생존한 전직 대통령은 전두환(84), 노태우(83), 이명박(74) 대통령 등 세 사람이다. ●전두환… 동문 체육대회 챙기는 등 외출 잦아 1931년생으로 가장 고령인 전 전 대통령은 심신쇠약 증세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대외 활동이 잦은 편이다. 그는 지난해 8월 연희동 이웃사촌으로 와병 중인 노 전 대통령의 자택을 직접 방문해 병문안을 하면서 화제가 됐다. 지난달에는 부인 이순자 여사의 손을 꼭 잡은 채 대구공고 총동문회 체육대회에 참가해 동문들로부터 깍듯한 환대를 받기도 했다. 현재 회고록 집필도 직접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0일에는 한·미 법무부 간의 회담 결과에 따라 전 전 대통령의 미국 내 재산 112만 6951달러(약 13억원)가 한국으로 반환되기도 했다. ●노태우… 10년 투병에 의사소통도 어려운 편 반면 한 살 아래인 노 전 대통령은 10년 넘게 자택에서 와병 중이다. 2002년 전립선암 수술 이후 입·퇴원을 반복하며 의사소통이나 거동은 힘든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10월엔 천식 증세로 서울대병원 특실에 입원한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현재는 부인 김옥숙 여사의 간호를 받으며 주로 집 안에서 지내고 있다. ●이명박… 회고록 쓰고 4대강 홍보에 외교까지 이들보다 열 살 정도 아래인 이 전 대통령은 가장 활발한 외부 행보를 하고 있다. 재임 때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테니스를 즐기고 올해 1월엔 청와대 참모들과 함께 정책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을 출간하기도 했다. 평소 골프와 테니스로 건강을 다져 온 이 전 대통령은 2013년엔 자전거를 타고 북한강변을 직접 돌며 4대강 업적을 소개하기도 했다. 당시 팔당역에서 출발해 대성리까지 약 25㎞를 자전거로 이동했다. 2013년 퇴임 직후 첫 해외 일정으로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을 만나는 등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외교 행보도 꾸준히 해 오고 있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김영삼 前대통령 서거] “가슴 깊은 위로…” 美·中 공식 애도

    세계 각국 정부와 의회가 22일(현지시간)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서거에 대해 공식적으로 애도를 표했다. 백악관은 이날 성명을 내고 “미국 국민을 대신해 한국 국민에게 가슴 깊은 위로를 보낸다”며 “김 전 대통령은 한국이 민주주의로 전환하는 가장 도전적인 시기에 한국 국민을 이끌었으며,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평화로운 정권 교체의 선례를 남겼다”고 평가했다. 백악관은 “한국의 평화와 안정, 번영에 대한 김 전 대통령의 헌신은 늘 기억될 것”이라며 “그의 업적은 미국과 한국의 깨질 수 없는 관계 속에 깊이 간직돼 있다”고 강조했다. ●美 “평화로운 정권 교체 선례” 에드 로이스(공화) 하원 외교위원장도 성명에서 “김 전 대통령은 군부 통치에서 다수당에 의한 민주주의로의 평화로운 이양을 위한 토대를 놓는 데 많은 역할을 했고, 이를 바탕으로 한국이 발전해 왔다”고 강조했다. 김 전 대통령과 가까웠던 빌 클린턴 전 미 대통령은 이날 언론에 보낸 논평에서 “김 전 대통령의 비전과 희생이 한국의 완전한 민주화 실현에 기여를 했다”고 평가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미국과 한국 사이의 동반자 관계를 심화하고 지역 안보와 협력을 증진하기 위해 김 전 대통령과 협력했던 것이 자랑스럽다”고 강조했다. ●中 언론, YS 반부패 개혁 주목 중국 외교부도 훙레이(洪磊) 대변인 명의 성명에서 “김 전 대통령이 재임 기간 중·한(한·중) 관계 발전을 위해 공헌했다”며 애도를 표시했다. 중국 언론들은 김 전 대통령 서거와 장례절차 소식을 속보로 전하며 관심을 드러냈다. 중국 언론은 특히 김 전 대통령의 반부패 개혁에 주목했는데,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집권 뒤 추진 중인 반부패 사정 정국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 [씨줄날줄] 대통령의 유언/강동형 논설위원

    김영삼 전 대통령이 마지막으로 남긴 유언은 통합과 화합이다. 고인이 된 김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는 “(아버지가) 평소에 안 쓰시던 ‘통합’과 ‘화합’을 써 무슨 의미냐고 묻자 ‘우리가 필요한 것’이라고 말씀하셨다”고 전했다. 이후 김 전 대통령이 의사 표현이 힘들었기 때문에 ‘통합과 화합’은 김 전 대통령이 마지막 남긴 마지막 글이자 유언이 된 셈이다. 김 전 대통령의 유언에서 현재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분열과 갈등을 치유해 달라는 염원을 읽을 수 있다. 김 전 대통령은 물론 역대 대통령의 유언에서도 시대 상황과 자신이 걸어온 길을 함축하는 의미를 읽을 수 있다. 김 전 대통령의 유언은 동지이면서 경쟁자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유지(遺志)와 상당히 닮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남긴 유지는 화해와 용서, 평화였다. 2009년 8월 23일 이희호 여사는 국장 중 서울광장에서 발표한 대국민 메시지를 통해 “화해와 용서, 평화, 어려운 이웃을 사랑하는 행동의 양심으로 살아가기를 간절히 원한다. 이것이 남편의 유지”라고 밝혔다. 두 대통령의 유언이 닮았다는 것은 화해와 용서가 있어야 통합과 화합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DJ가 방법론을 이야기했다면 YS는 도달해야 할 목표를 이야기한 셈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보다 3개월 앞서 급서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서는 “사는 것이 힘들고 감옥 같다”로 시작해 자신의 가족과 지인들에게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화장해라”라고 맺고 있다. 양 김과 김종필 전 총리의 3김 시대를 역사 속에 묻고 새로운 시대를 여는 맏형이 되기를 갈망했던 ‘노 전 대통령다운 유서’라기보다는 ‘인간적인 유서’로 많은 사람이 공감했던 기억이 난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2006년 서거한 최규하 전 대통령과 1990년 서거한 윤보선 전 대통령은 기억할 만한 유지를 남기지 않았다. 박정희 전 대통령도 1979년 급작스런 서거로 유언을 남기지 못했지만 많은 이들이 ‘내 일생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라는 휘호를 유지로 받들고 있다. 1965년 서거한 이승만 전 대통령의 유언은 신약성경 갈라디아서 5장 1절 말씀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마라.’ 이 전 대통령은 유족들에게 “이 말이 내가 우리 민족에게 주는 유언이야. 반드시 자유를 지켜야 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과 해방 후 한국전쟁을 경험한 대통령에게 어울리는 유언이라 할 수 있겠다. 대통령의 유지는 한 나라를 이끌었던 지도자가 남긴 말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말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실천하느냐가 중요하지 않겠는가. 강동형 논설위원 yunbin@seoul.co.kr
  • [김영삼 前대통령 서거] 정부, 장례업무 최대한 예우 총력전

    [김영삼 前대통령 서거] 정부, 장례업무 최대한 예우 총력전

    정부는 김영삼 전 대통령 국가장과 관련, 23일 관계 부처 회의를 열어 고인과 유족에 대해 최대한의 예우를 갖춰 총력을 기울이기로 뜻을 모았다고 밝혔다. 오는 26일 영결식 때까지 행정자치부는 장례 기본계획 수립과 영결식 주관 등 장례 업무를 총괄하고 기획재정부는 예비비 등 장례비용 지원, 외교부는 각국 특사 및 외교사절 안내와 해외 공관 분향소 설치 등을 지원하기로 했다. 또 국방부와 국가보훈처는 국립묘지 안장 등을 주관한다. 아울러 문화체육관광부는 언론 지원, 경찰청은 경호·경비 등 지원, 각 지방자치단체는 분향소 설치 등을 적극 뒷받침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정종섭 행자부 장관을 위원장으로 한 장례집행위원회는 유가족과 장례위원 구성에 대해 협의했다. 또 정재근 차관을 단장으로 한 행자부 실무추진단은 합동분향소 운영 상황과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진 빈소의 조문객 편의 등을 점검하며 바쁜 하루를 보냈다. 김 전 대통령 조문을 위한 서울 등 전국의 합동분향소는 국회의사당에서 영결식을 마치는 오는 26일까지 조문객을 맞는다. 지난 22일 오후 늦게부터 비가 내린 지역이 많아 전국의 분향소 설치 작업에 차질을 빚기도 했다. 서울의 경우 정부 대표 합동분향소인 국회의사당 본관 현관 앞과 서울광장, 강남·강동·강서 등 서울 25개 자치구 구청에 모두 분향소가 설치됐다. 물론 서울대병원에서도 조문할 수 있다. 성북구는 분향소 입구에 비치한 영정사진, 조문록 등 일체의 자료를 정부기록물로 관리하는 한편 유족에게도 사본을 전달할 예정이다. 송한수 기자 onekor@seoul.co.kr
  • [김영삼 前대통령 서거] YS 사후 ‘평가 반전’… “민주화·하나회 척결 功이 더 크다”

    [김영삼 前대통령 서거] YS 사후 ‘평가 반전’… “민주화·하나회 척결 功이 더 크다”

    지난 7월 서울신문 창간 111주년 대국민 여론조사에서 ‘역대 대통령 중 누구를 가장 존경하는가’란 질문에 김영삼 전 대통령을 꼽은 응답자는 0.3%에 불과했다. 박정희(33.6%)·노무현(29.3%) 전 대통령은 물론 ‘숙명의 맞수’ 김대중 전 대통령(12.8%)에 한참 못 미쳤다. 전두환(1.8%) 전 대통령에 못 미쳤고 이명박(0.9%)·노태우(0.5%) 전 대통령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지난 8월 여론조사기관 한국갤럽의 광복 70주년 여론조사에서도 ‘우리나라를 가장 잘 이끈 대통령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서 김 전 대통령을 꼽은 응답자는 1%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난 22일 김 전 대통령이 타계한 뒤 고인에 대한 평가는 ‘과’(過)보다 ‘공’(功)으로 무게추가 쏠리는 분위기다. 1990년 ‘3당 합당’ 이후 김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에 인색했던 야권도 예외는 아니다. “민주화의 큰 산”(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 “온 국민의 애도를 받기에 모자람이 없다”(정의당 심상정 대표) 등 긍정 일색이다.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추모 열기나 삼삼오오 빈소와 분향소를 찾는 일반 조문객들을 보면 ‘외환위기를 불러온 대통령’보다는 민주화 투쟁과 금융실명제 등 개혁 이미지를 먼저 떠올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사회적인 분위기를 반영한다. 소모적 정치 갈등이 심한 데다 사회의 큰 어른, 원로가 없는 분위기 속에서 현대사의 주역이었던 분에 대한 좋은 평가가 주를 이루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신율 명지대 교수(정치외교학)는 “김 전 대통령이 ‘하나회’ 정치군인들을 척결하지 않았다면 김대중과 노무현(정부)도 불가능했고, 그런 측면들이 뒤늦게 평가받는 것”이라며 “보수·진보의 진영 논리가 뚜렷한 상황에서 고인 같은 자유주의자가 설 땅은 없었다. 그래서 저평가된 측면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고인에 대해 야박한 평가를 하지 않는 한국 사회 특유의 문화 때문이란 분석도 있다. 여전히 3당 합당의 충격은 물론 임기 중 외환위기 초래, 차남 현철씨의 국정 농단 등이 국민의 뇌리에 남아 있지만 한편으로 잠시 미뤄 놓은 것뿐이란 얘기다. 전문가들은 전직 대통령에 대해 호불호가 아닌 역사적 맥락에 따른 객관적 평가의 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정치평론가인 박상병 박사는 “대선에서 국민에게 약속했던 시대적 소명을 완수했는지를 놓고 평가해야 한다. 예컨대 김영삼 전 대통령은 문민정부, 김대중 전 대통령은 외환위기 극복과 첫 정권 교체, 노무현 전 대통령은 탈권위, 이명박 전 대통령은 글로벌 금융위기 속 경제 살리기, 박근혜 대통령은 보수의 혁신”이라면서 “동시에 시대적 소명에 걸맞은 인재풀을 등용했는지, 핵심 공약 사항을 완수했는지 등을 따져 보면 어느 정도 객관적인 평가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소장은 “이념에 치우쳐 평가해서는 안 된다. 호불호에 따라 사적 감정과 이데올로기 때문에 달라질 수 있다”면서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가 필요하며 단기간에 평가가 이뤄지는 것도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신 교수도 “모든 전직 대통령은 공과가 있다. 쿠데타처럼 비정상적인 수단을 동원해 정권을 잡은 사람이 아니라면 지도자로 선출한 국민이 있고 제도적 적통성을 가진다”며 “사후에 공정한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김대중·김영삼 두 전직 대통령을 뜻하는 ‘양김(兩金) 시대’ 이후 통합·화합의 시대정신을 이끌어 갈 새로운 리더십도 필요하다. 김 교수는 “양김의 시대정신은 민주화였고 불가피하게 보스 정치나 정치의 사유화 측면도 있었지만 이젠 그런 리더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며 “다양성과 다원성의 기반 위에서 협의성을 높이는 소통형 리더십이 필요한 시기”라고 말했다. 박 박사는 “총재나 제왕적 당권을 가진 사람이 공천권을 손에 쥐고 정당을 좌지우지하는 시대는 끝났다”면서 “다원화된 원내 시스템의 의사 결정 구조를 통해 당을 실질적으로 주도할 수 있는 ‘권위 있는’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김영삼 前대통령 서거] 취임 10여일 만에 ‘하나회’ 척결…관료화된 조직 청산 여전히 숙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생전 자신의 최대 업적으로 꼽는 것 가운데 하나가 ‘하나회’ 척결로 대표되는 군 개혁이다. 김 전 대통령은 30여년간 한국 정치사의 기득권 집단으로 자리잡던 군부에 과감히 칼을 들이댔고,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집권 계기가 된 12·12(1979년)를 ‘쿠데타적 사건’으로 규정해 문민통제의 초석을 쌓은 것으로 평가된다. 반면 개혁이 인적 청산에만 그쳐 20여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군내 인사 잡음, 조직 이기주의, 방산비리 등은 청산할 적폐로 남아 있다. 전 전 대통령의 집권 기반이 된 군내 사조직 하나회는 단순한 친목 모임이 아니라 배타적 인맥을 형성해 요직을 독식하고 군이 공공연히 정치에 개입하는 통로로 뿌리내려 왔다. 김 전 대통령은 취임 10여일 만인 1993년 3월 8일 하나회 출신인 김진영(육사 17기) 당시 육군참모총장과 서완수(육사 19기) 국군기무사령관을 전격 경질했다. 이어 한 달도 되지 않은 4월 2일 군부의 실세였던 안병호(육사 20기) 수도방위사령관과 김형선(육사 19기) 특전사령관을 해임했다. 김영삼 정부는 박정희 정부 시절인 1974년부터 30조원 규모를 투자한 전력 증강 사업(율곡사업) 비리에도 칼을 들이댔다. 이를 통해 이종구, 이상훈 전 국방장관, 김철우 전 해군참모총장, 한주섭 전 공군참모총장 등 전직 군 최고위 간부들이 방산업체와 무기중개상 등으로부터 수억원에서 수천만원까지 뇌물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 구속되기도 했다. 12·12와 하나회 연루인사, 율곡비리 등과 관련해 전역 조치되거나 해임·전보된 장성만도 50여명에 이른다. 취임 첫해에 군단장급 장성의 62%, 사단장급의 39%가 교체된 셈이다. 김 전 대통령의 군 개혁은 취임 직후부터 3개월 동안 파격을 거듭하며 전광석화처럼 진행했기에 성공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는 후보 시절부터 12·12 사태의 피해자인 정승화 전 육군참모총장과 교분을 갖고 군내 문제를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다만 개혁이 인적 청산에 그쳐 본질적 적폐를 뿌리 뽑기에는 갈 길이 멀다는 평가를 받는다. 우리 군은 1993년 9조 2154억원이던 국방예산이 올해 37조 4560억원으로 늘어날 정도로 성장했다. 하지만 현재도 방산비리 문제가 지속되고 있을 뿐 아니라 인사를 둘러싼 논란이 지속되는 등 전투형 강군과는 거리가 멀다는 평가다. 박휘락 국민대 정치대학원 교수는 23일 “김영삼 정부 이후 우리 군 인사 관행이 정권 교체에 따른 한풀이, 유력자와의 친분에 따른 정실인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면서 “보신주의와 관료화된 조직은 여전히 후임 대통령들이 풀어야 할 숙제”라고 지적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재계 “경제 선진화·부패 척결 일조… 경제 발전에 매진하겠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에 재계도 일제히 추모의 뜻을 내비쳤다. 경제단체들은 22일 잇달아 논평을 내고 김 전 대통령이 금융실명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공직자 재산 공개 등 우리나라가 부정부패를 근절하고 투명한 사회로 나아가는 데 일조했다는 점을 기렸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이날 “경제계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에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으며 고인의 명복을 빈다”면서 유족들에게 심심한 애도와 위로의 뜻을 표한다고 전했다. 이어 “김 전 대통령은 OECD 가입을 추진해 한국 경제의 위상을 높였고 국민들이 자신감을 가지도록 했다”고 높이 평가했다. 특히 “재계는 김 전 대통령이 우리나라가 투명하고 진정한 선진국이 되도록 노력하신 생전의 업적을 기리며 우리 경제가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대한상공회의소도 논평을 통해 “김 전 대통령은 대한민국 민주주의 정착을 위해 평생을 바치셨다”면서 “금융, 부동산실명제를 도입해 경제개혁을 이끌었고 하나회 척결과 고위 공직자 재산 등록 의무화를 통해 사회 부정부패 척결에도 커다란 업적을 남겼다”고 강조했다. 또 한국경영자총협회는 “고인이 오랜 기간 민주화를 위한 열정과 헌신을 통해 ‘문민정부 시대’를 열었다”며 “경제 선진화 기틀을 마련한 고인의 업적을 기린다. 국민 모두 슬픔을 이겨 내고 국가 경제 발전을 위해 매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중견기업연합회는 김 전 대통령이 “1990년대 확대된 경제 규모와 고도화된 산업구조에 걸맞은 규제 개혁을 통해 대한민국 시장경제 체제의 효율성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면서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가 초래되면서 국민에게 지우기 어려운 고통과 아픔의 기억을 남긴 것은 아쉬운 한계로 지적될 수 있지만 이는 경제 선진화를 위한 체질 개선의 계기였다”고 밝혔다. 중소기업중앙회도 “김 전 대통령은 중소기업청 개청, 벤처기업법 제정 등 중기·벤처 지원의 틀을 새로 마련하는 등 중소기업에 대해 각별한 애정을 보였다”며 “특히 (고인은) 일류 정보기술(IT) 강국이 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전했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 ‘악연’ 전두환 “좋은 곳 가셨을 것”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이 전해진 22일 전직 대통령을 비롯한 주요 정치권 인사들은 고인의 업적을 기리며 애도의 뜻을 표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보도자료를 통해 “근래 언론 보도를 통해 병고에 시달린다는 소식은 듣고 있었는데 끝내 건강을 회복하지 못하고 유명을 달리했다”며 “기독교 신앙이 깊었던 분이니까 좋은 곳으로 가셨을 것”이라고 위로했다. 건강상의 이유로 직접 문상을 하지 못한 노태우 전 대통령도 측근들에게 김 전 대통령의 서거에 깊은 애도를 표한 것으로 전해졌다. 두 전직 대통령은 문민정부 시절 김 전 대통령이 ‘과거사 바로 세우기’ 작업을 추진했을 당시 뇌물 수수 혐의 등으로 구속된 ‘악연’이 있다. 빈소를 직접 찾은 이명박 전 대통령은 “산업화와 민주화의 완전한 한 축이 떠났다”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이 전 대통령은 “서울대병원에 계실 때 병문안을 갔었는데 그때 꼭 완쾌해서 전직 대통령끼리 자주 뵙자고 했더니 고개를 끄덕이셨다”고 회고한 뒤 “오늘 퇴원을 하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이 나라의 마지막 남은 민주화의 상징이 떠나셨다”고 말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인 이희호 여사는 보도자료를 통해 “우리 국민들은 김 전 대통령을 대한민국을 변화시킨 대통령으로 기억할 것”이라며 명복을 빌었다. ‘양김’으로 불리는 두 전 대통령이 민주화 투쟁의 동지이자 영원한 정치적 경쟁자였던 점에서 이 여사는 “김 전 대통령은 남편과 함께 민주화를 위해 오랫동안 투쟁했다”고도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도 “김 전 대통령은 민주화운동과 문민정부 출범을 통해 민주주의의 길을 넓힌 지도자로 노 전 대통령의 정치 인생에도 영향을 끼친 분”이라며 고인의 명복을 기원했다. 독일을 공식 방문 중인 정의화 국회의장은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통해 “우리나라 민주화의 최선봉장이었던 이 시대의 영웅을 잃은 슬픔을 무엇에 비견하리오”라며 깊이 애도했다. 장진복 기자 viviana49@seoul.co.kr
  • 상도동 주택가 조기 걸려… 주민들 “큰 정치인이셨는데” 애통

    상도동 주택가 조기 걸려… 주민들 “큰 정치인이셨는데” 애통

    김영삼 전 대통령이 서거한 22일 서울 동작구 상도동 고인의 자택 인근에는 하나둘 조기가 내걸렸다. 김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안타까워하는 시민들은 먼발치에서 집을 바라보며 애통한 표정을 지었다. 굳게 잠긴 채 몇몇 경호원들만 지키고 선 집 앞은 적막감이 맴돌았다. 이날 오전 5시 서거 소식을 접하고 검은 리본이 달린 조기를 직접 집 앞에 내걸었다는 정광수(74)씨는 김 전 대통령을 “이웃들에게 먼저 인사를 건넬 만큼 정겹고 인정이 많았던 분”이라고 기억했다. 정씨는 “1986년에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당시 거물 정치인이던 대통령이 직접 조문을 왔을 만큼 이웃들에게는 항상 따뜻한 모습을 보였다”고 말했다. 상도동에 26년째 살고 있는 김상현(55)씨는 “김 전 대통령의 공과에 대해 말들이 많이 나오지만 그 엄혹했던 군사정권 시절에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던 모습만큼은 국민들이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아침 조깅을 즐겼던 김 전 대통령을 기억하는 이웃들도 많았다. 20년 넘게 상도동에 거주해 온 전덕현(59)씨는 “이웃들과 배드민턴을 즐기는 등 우리에겐 대통령이기 이전에 마을의 어른이었다”고 회상했다. 이날 오후에 조기를 내건 최상오(72)씨는 “명절이 되면 정치인들이 상도동으로 오는 모습을 수년째 봐 왔는데 이제 마을이 적막해지게 됐다”며 “김대중 전 대통령에 이어 김영삼 전 대통령까지 돌아가시는 걸 보니 한 시대가 넘어가는 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의 고향인 경남 거제시 장목면 외포리 바닷가 대계마을과 거제종합운동장 체육관 등 2곳에 설치된 분향소에는 평소보다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와 생가와 기록전시관 등을 둘러보며 애도했다. 바닷가 마을 입구에 있는 생가와 기록전시관을 방문한 가족 단위 관광객 등은 분향소 앞에 있는 방명록에 이름을 적고 국화 한송이씩을 든 채 조문했다. 김 전 대통령의 큰아들과 친구라고 밝힌 한 주민(59)은 “대한민국 민주화에 크게 기여한 대통령이 돌아가셔서 슬프다”며 “그분이 우리나라 민주화에 남기고 가신 업적은 길이 기억될 것”이라고 말했다. 외포리 주민 가운데 김 전 대통령과 가장 가까운 사이인 6촌 동생 김양수(63)씨는 서거 소식을 듣지 못한 채 대구잡이를 나갔다가 오후 늦게 돌아와 뒤늦게 소식을 들고 눈물을 흘렸다. 그는 “대통령께서 지난해 이맘때 고향에 들러 선산도 둘러보고 가셨는데, 건강이 좀 안 좋기는 하셨지만 이렇게 갑자기 가실 줄을 몰랐다”며 침통해했다. 권민호 거제시장은 중국 출장 일정을 마치고 이날 오후 1시 귀국하자마자 기록전시관으로 달려와 분향소를 지켰다. 권 시장은 “민주화의 화신인 김 전 대통령의 서거를 전체 거제시민과 함께 애도한다”면서 “그분의 목숨 건 민주화 투쟁의 결과로 오늘날 우리가 자유로운 삶을 누리고 있다”고 기렸다. 거제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서울 조용철 기자 cyc0305@seoul.co.kr
  • [사설] ‘민주화의 별’ 김영삼 전 대통령 서거를 애도하며

    김영삼(金泳三·YS) 전 대통령이 어제 새벽 역사 속으로 들어갔다. 대한민국 제14대 대통령이 88세의 일기로 영면한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은 그의 아호인 거산(巨山)처럼 현대사의 굽이마다 뚜렷한 족적과 공과를 남겼다. 우리는 헌정사의 거목(巨木)을 잃은 상실감이 적지 않을 온 국민과 함께 그의 서거를 애도한다. 아울러 부인 손명순 여사 등 유족들에게도 깊은 위로의 마음을 표한다. 이제 고인이 생전에 열망했던 민주화의 완성이나 신(新)한국의 건설은 남은 우리 모두의 몫이 됐다. 김 전 대통령의 파란만장한 정치 일생에는 우리 현대사의 부침과 영욕이 고스란히 아로새겨져 있다. 누가 뭐래도 대한민국은 2차 세계대전 후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룩한 유일무이한 나라다. 이 같은 기적을 거론하면서 그 눈부신 성취의 양대 축인 민주화에 앞장섰던 김 전 대통령을 빼놓고 말하긴 어렵다. 엄혹했던 권위주의 정부 시절 의원직 제명과 가택 연금, 그리고 목숨을 건 23일간 단식 등 고인에게 가해졌던 혹독한 탄압과 그의 응전은 우리 사회가 민주화로 가는 가시밭길 같은 역사 그 자체였다. ‘정치인 YS’에 대해서는 호오(好惡)와 포폄(褒貶)이 엇갈릴 수 있겠지만,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던 그의 신념처럼 이 땅에 ‘민주 헌정’을 뿌리내리게 한 공적은 높이 평가해야 마땅할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이 국민과 함께 걸어온 역정(歷程)을 되돌아보자. 그를 슬픔 속에서 떠나보내는 이 순간 고인의 과보다 공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고인은 평생의 정치적 라이벌이자 동지였던 김대중(DJ) 전 대통령과 협력과 경쟁을 통해 이 나라 민주주의를 꽃피우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지 않은가. 대한민국이 2차 세계대전 후 신생국 중 가장 짧은 기간에 민주화를 일궈 냈다는, 세계적 평가는 많은 부분 고인과 DJ의 영전에 받쳐야 할 헌사일 수 있다. ●민주화, 군정 종식의 기수 YS 양김(兩金)이 펼친 유신 반대나 대통령 직선제 관철 투쟁은 대한민국 민주화의 원동력이었다. 이들의 4반세기에 걸친 민주화 대장정이 대통령직선제에 대한 국민의 열망과 결합해 1987년 5년 단임제를 기반으로 한 민주적 헌정질서를 이끌어 내면서다. 그래서 YS의 14대 대통령 당선은 고인의 민주화 노력에 대한 보상일 수도 있겠지만, 헌정사에서 군 출신 대통령의 집권을 끝내고 문민 시대를 다시 열었다는 데 더 큰 의미를 부여해야 할 것이다. 1992년 대선에서 이겨 문민정부를 출범시킨 고인의 대통령으로서의 치적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군내 사조직이었던 하나회 척결 등으로 군부에 힘이 실린, 32년간의 권위주의 통치를 종식시키고 문민 시대를 연 공적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가 솔선한 공직자 재산공개, 그리고 금융실명제 실시 등으로 부패 척결을 제도화한 공적도 빼놓을 수 없다. 고인이 광주 항쟁을 민주화운동으로 승화시키고 5공 신군부에 유혈 진압의 죄를 묻는 등 우리의 불행했던 과거사를 정리하려 했던 시도도 동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뇌리에는 뚜렷하게 각인돼 있다. 물론 고인의 이런 정치 역정에 대해 여전히 명암과 긍정·부정적 평가가 교차한다. 어찌 보면 그가 이끈 문민정부의 공과는 훗날 사가(史家)들로부터 엄정한 재평가를 받아야 할 대목도 없지 않을 게다. 특히 ‘호랑이를 잡기 위해 호랑이 굴로 들어간다’는 명분으로 단행한 ‘3당 합당’이나 이른바 ‘역사 바로 세우기’ 행보가 그렇다. 전자는 집권을 위해 비판의 대상이었던 노태우 정권과 손잡았다는 점에서, 후자는 몇몇 악재와 비리로 문민정부가 흔들리는 국면에서 이를 덮으려 자의적으로 단행한 것처럼 비치면서 벌써 국민적 비판의 도마에 올라 있다. 더구나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받게 되기까지 김 전 대통령에게 지워진 정치적 책임과 흠결도 분명히 존재한다. ●이어받아야 할 신(新)한국 건설의 꿈 DJ에 이어 YS의 서거로 소위 ‘3김(金) 정치’ 시대도 저물어 가고 있다. 다만 3김 정치의 한 꼭짓점이었던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아직 생존해 있긴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빛이 바래기 시작한 3김 정치식(式) 정치 행태와 강고한 지역주의로부터 우리 정치가 일정 부분 자유로워진다는 의미도 없지 않을 게다. 당장 아직도 우리 정치권에 유령처럼 배회하는 지역주의의 망령부터 배격해야 한다. YS의 상도동계니 DJ의 동교동계니 하는, 소위 가신 정치의 폐해를 상기해 보라. 차제에 정치권이 지역감정의 피해자이면서도 지역 갈등을 등에 업고 정치 생명을 연장했던 3김의 정치 행태와는 영원히 절연해야 한다. 거듭 강조하거니와 양김의 퇴장은 3김 정치가 드리운 부정적 그늘을 확실히 걷어 낼 적기다. 더욱이 1987년 5년 직선제 개헌 이래 절차적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자리 잡아 가는 시점이 아닌가. 지금이야말로 권위주의에 대한 반발로 국리민복을 추구하는 국가 정책에마저 흑백 논리로 접근해 발목을 잡던 것을 당연시하던 양김 시대의 이분법과도 결별할 때다. 올해로 광복 70주년을 맞았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아직 선진 복지국가의 문턱에서 맴돌고 있다. 무릇 시민의 자유와 공공성의 조화로운 추구가 민주공화정 운영의 핵심 원리다. 그런데도 작금의 우리 사회에선 제 몫을 찾으려는 목소리는 높지만, 공동체에 헌신하는 움직임은 미약하다. 공공·노동·교육·금융 등 이른바 4대 개혁은 여전히 난항이다. 이는 어쩌면 김 전 대통령의 생전에 치유하려 했던 신(新)한국병이 더 위중하다는 증좌인지도 모르겠다. 김 전 대통령의 서거를 계기로 그가 이루려 했던 신한국 건설은 남은 국민 모두의 책임이 됐다. 다만 그나 그가 속했던 3김 정치의 긍정적 유산은 물려받되 부정적 측면은 소거하는 일은 여야 정치권에 주어진 엄숙한 소명이다. 그중에서도 합리적 토론과 소통으로 이른바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를 완성해 정치가 더는 국가 발전의 걸림돌이 안 되게 하는 게 으뜸가는 시대적 과제일 것이다. 다시 한번 옷깃을 여미며 김 전 대통령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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