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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국이 다 내 고향”… 생전 뜻 따라 고향 흙 대신 마사토 뿌려

    김영삼 전 대통령이 26일 오후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영원한 안식에 들었다.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불꽃처럼 타올랐던 88년 인생의 마지막 육신은 장군 제2묘역 우측과 장군 제3묘역 왼쪽 능선에 자리잡았다. 2012년 차남 현철씨가 지관인 황영웅 영남대 교수와 함께 둘러보고 정해둔 곳으로, 풍수지리상 봉황의 왼쪽 날개에 해당하는 곳이다. 이날 오전 10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진행된 발인 예배는 수원중앙침례교회 김장환 목사가 집전했으며 유족과 김수한 전 국회의장, 김덕룡 전 의원 등 측근, 정관계 인사 100여명이 함께했다. 40분에 걸친 발인 예배 후 조문은 정오까지 이어졌다. 이후 김 전 대통령의 관을 실은 검은색 링컨 리무진과 유족, 장례식 참석 인사들을 태운 버스들이 국회로 이동했다. 영결식을 마치고 국회를 떠난 운구 차량은 오후 4시 10분쯤 서울 상도동 사저를 들렀다. 동네 주민 100여명은 골목 입구에서부터 도열해 눈시울을 붉히거나 휴대전화 사진을 찍으며 고인의 마지막 길을 애도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애도합니다’라고 쓰인 검은 플래카드도 내걸렸다. 장손 성민씨가 영정을 들고 약 5분간 집 안을 한 바퀴 돌았다. 장남 은철씨 등 직계가족 15명이 뒤를 따랐다. 현관 복도를 지나 왼쪽 안방, 맞은편 식당을 지난 영정은 고인이 손님을 맞이했던 거실에서 제자리로 한 바퀴를 돌았다. 거실 벽면 가운데는 고인이 직접 쓴 ‘송백장청’(松栢長靑) 휘호가 걸려 있었다. 1969년 성북구 안암동에서 거처를 옮긴 이래 고인이 46년간 거주했던 상도동 자택은 고인은 물론 주변인들에게 단순한 집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민주화 운동의 거점이자 김대중 전 대통령의 동교동 자택과 함께 민주화 논의의 성지였다. 고인이 차량 초산 테러를 당했던 곳도, 23일간 가택연금을 당했던 곳도 이곳이었다. 이어 운구 행렬은 자택에서 500m가량 떨어진 김영삼대통령기념도서관 앞을 지났다. 생전의 김 전 대통령이 “매일 출퇴근하고 싶다”고 되뇌었다던 곳이다. 방향을 튼 운구 차량은 당초 예정 시간인 오후 4시보다 40분 늦게 동작구 사당동 국립서울현충원에 도착했다. 눈발이 날리는 궂은 날씨 속에서도 조문객들이 몰려들었다. 마지막 의식은 국군 의장대의 받들어총, 조악 연주와 함께 시작됐다. 충혼당 앞에서 열린 안장식은 고인에 대한 경례, 헌화·분향, 운구, 하관, 흙을 관 위에 뿌리는 허토 순으로 이뤄졌다. 250석 규모의 식장 맨 앞줄엔 부인 손명순 여사 등 유족 대표와 김수한·박관용 전 국회의장이 자리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손학규 전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외 동교동계 인사들, 장의위원, 일반 시민 등 500여명이 참석했다. 차남 현철씨가 유족 대표로 헌화했고 정의화 국회의장이 조문객 대표,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이 장례 집행위원장 자격으로 헌화했다. 운구는 조곡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약 150m 떨어진 묘소 예정지까지 10여분간 이뤄졌다. 11명의 의장대가 태극기로 감싼 관을 조심조심 옮겼다. 현철씨는 하관하는 모습을 먹먹한 얼굴로 바라봤다. 뒤늦게 도착한 손 여사는 양쪽의 부축을 받고 맨 앞에 서서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하관을 지켜봤다. 허토 의식 후 평소 고인과 친분이 깊었던 고명진 목사가 부활대망예배를 집전했다. 본격적인 허토가 시작되자 현철씨는 무궁화가 그려진 관 상판 위에 흰 국화꽃잎을 두 손으로 수북이 집어 두번 뿌리고 흙을 뿌렸다. 전 국회의장들도 한 삽씩 손을 보탰다. 관이 흙에 가려 보이지 않게 되자 참지 못한 현철씨가 “아버님, 아버님” 소리 내어 흐느꼈다. 손 여사의 충혈된 눈에서도 눈물이 계속 흘러내렸다. 군악대의 조총 발사, 묵념 속에 참석자들은 각자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고인의 고향인 경남 거제도에서 가져온 흙 대신 일반 마사토가 허토에 사용됐다고 한다. “전국이 다 내 고향”이라고 했던 고인의 뜻을 받들어서다. 관은 유족들이 마련한 것으로 고동색에 윤기가 조금 도는 나무 무늬만 있는 수수한 관으로 알려졌다. 묘소 봉분 앞에는 ‘제14대 대통령 김영삼의 묘’라고 새겨진 3.49m 높이의 목재 임시 묘비가 세워진다. 돌로 제작한 실제 비석은 내년 1월쯤 제막한다. 안장식이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난 현철씨는 “국민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아버님께서 하늘에서라도 우리나라를 위해 끊임없이 걱정하고 지켜보시리라 생각한다”면서 “아버지의 유언인 ‘통합과 화합’이 우리 사회와 국민 전체에 큰 울림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 北 끝내 침묵 왜?

    김영삼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국가장’으로 치러졌지만 북한은 끝내 일언반구도 없었다. 2009년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당시 이튿날 바로 관영매체를 통해 관련 소식을 전하고 김정일 국방위원장 명의의 조전을 보냈던 북한은 김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에 대해서는 짧은 보도조차 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1994년 김일성 주석의 사망 이후 남측에서 불거진 조문 파동에 대한 북한의 불편한 감정이 지속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영삼 정부가 김 주석 사망 뒤 전군에 특별경계령을 내리고 조문 방북과 추모 행사를 금지하자 북한은 김 전 대통령의 실명을 거론해 가며 ‘민족의 역도’, ‘극악한 원수’ 등 원색적인 표현을 동원해 비난했다. 이후 남한 대학가에서 ‘김일성 분향소’가 발견되고 ‘주사파논쟁’으로까지 확대되면서 남북 관계는 회복 불능 상태로 빠졌다. 한때 김 전 대통령은 취임 일성으로 “어느 동맹국도 민족보다 더 나을 수는 없다”며 획기적인 대북 정책의 전환을 시사했던 적도 있다. 김 주석이 돌연 사망하지 않았더라면 첫 남북 정상회담의 주인공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아닌 김영삼 전 대통령의 몫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1993~94년을 기점으로 북핵 문제가 불거지면서 김 전 대통령의 대북 정책은 근간에서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다. 김 전 대통령은 “핵무기를 갖고 있는 상대와는 결코 악수할 수 없다”며 대북 강경 정책 기조로 선회했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여의도 블로그]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조문 정국만 같아라

    김영삼 전 대통령이 서거한 22일부터 영결식이 마무리된 닷새간의 조문 정국을 취재하며 든 생각이다. 정치권은 ‘정쟁’과 ‘막말’이라는 악습을 잠시 멈췄다. 대신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에서 고인을 기렸다. 한가위를 지내는 가족들처럼 한데 모여 두런두런 추억을 회상했고,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정계를 비롯한 각계각층의 누적 조문객 수만 해도 3만 7400여명에 이른다. 고인과 구원(仇怨)이 깊은 이들이 함께 자리해 의미는 더컸다. 1979년 12·12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뒤 김 전 대통령의 정치활동을 막았던 전두환 전 대통령이 대표적인 인물 중 하나다. 고인은 자신이 대통령에 오른 뒤 전 전 대통령을 구속시켰다. 그럼에도 전 전 대통령은 빈소를 방문, 차남 현철씨와 10여분간 대화를 나눴다. 당시 전 전 대통령과 함께 구속된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재헌씨도 빈소를 찾아 거동이 불편한 아버지의 조의를 대신 전했다. 김 전 대통령의 측근 그룹인 ‘상도동계’와 정치적 라이벌 관계였던 ‘동교동계’도 서울시청 분향소에서 상주 역할을 했다. 2108명의 장례위원에는 여야와 계파 구분 없이 현역의원 248명이 포함됐다. 김 전 대통령이 유언처럼 남긴 ‘통합’과 ‘화합’의 메아리도 정치권에 울려 퍼졌다. 새누리당 정병국 의원은 “(김 전 대통령이) ‘화합과 통합’이라는 큰 숙제를 남겼다. 그 숙제를 풀기 위해 더욱 열심히 뛰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새정치민주연합 박수현 원내대변인도 “지역과 계층, 세대와 이념의 갈등을 풀어내고, 여야가 진영 논리에서 벗어나 ‘통합과 화합’의 정신을 실현해야 한다”고 화답했다. 결국 남은 건 정치권의 행동과 실천이다. 다음달 9일 종료되는 정기국회 내 산적한 현안 해결이 벽에 부닥칠 때마다 여야는 지난 닷새간의 조문 정국을 되돌아보길 바란다.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영원한 의회주의자 ‘마지막 등원’… 고인의 육성 들리자 오열

    영원한 의회주의자 ‘마지막 등원’… 고인의 육성 들리자 오열

    유신 독재와 목숨을 내걸고 싸웠던 영원한 의회주의자이자 9선 의원인 김영삼 전 대통령이 마지막으로 국회를 찾은 26일, 오전부터 흩날리던 진눈깨비는 오후 2시쯤부터 함박눈으로 변했다. 체감 기온 영화 5도의 추위와 하늘을 뒤덮은 눈보라는 고인과 결코 ‘영결’(永訣·죽은 사람과 산 사람이 영원히 헤어짐)하고 싶지 않을 유족들은 물론 장례위원, 주한 외교단과 조문 사절, 각계 인사와 시민들의 마음을 더 비통하게 만들었다. 6·25전쟁 직전인 1950년 장택상(1893~1969) 의원의 비서관으로 정계에 입문한 ‘거산’(巨山·김 전 대통령의 호)의 정치 역정이 제1공화국에서 제6공화국까지 여야를 넘나들며 한국 현대사를 관통했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시켜주듯 세대와 정파를 가리지 않은 다양한 추모객들이 영결식장을 찾았다. 특히 김 전 대통령의 ‘영원한 맞수’였던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동교동계 전현직 의원들도 대거 참석하는 등 고인의 유훈대로 화합과 통합의 장을 연출했다. ●이명박 前대통령·권양숙 여사 참석 전직 대통령 중에서는 이명박 전 대통령 내외가 유일하게 참석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는 차가운 날씨와 건강상의 이유로 불참했다. 차남 김홍업 전 의원이 대신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부인인 권양숙 여사는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은 불참했다. 주최 측은 1만여석을 마련했지만 갑작스러운 한파 탓에 곳곳에 빈자리가 눈에 띄었다. 오후 1시 50분쯤 김 전 대통령의 영정과 유해를 모신 검은색 링컨 리무진 운구차가 국회로 들어서자 식장에 모여 있던 내빈과 추모객이 기립했다. 부인 손명순 여사와 은철·현철씨, 혜영·혜경·혜숙씨 등 직계가족과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서청원 최고위원, 김 전 대통령의 ‘오른팔’이었던 최형우 전 내무부 장관, 박관용 전 국회의장, 김덕룡 전 의원, 이원종 전 청와대 정무수석, 김광석 전 청와대 경호실장 등 상도동계 인사들이 비통한 표정으로 운구를 맞이했다. 김동건 아나운서의 개식 선언과 함께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의 약력 보고가 이어졌다. 정 장관은 “헌정 사상 최연소 국회의원이자 최다선 국회의원으로 의원직 제명과 2차례에 걸친 가택연금을 당하셨다”고 설명했다. 장례위원장인 황교안 국무총리의 조사와 김영삼민주센터 이사장을 맡고 있는 김수한 전 국회의장의 추도사가 계속됐다. 고인과 가족들의 종교인 기독교를 시작으로 불교, 천주교, 원불교 등 4대 종교의 추모 의식이 끝난 뒤 김 전 대통령의 생전 모습이 담긴 기록 영상물이 상영되면서 숙연함은 정점으로 치달았다. 박정희 독재 정권과 맞서며 일갈한 “아무리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1985년 전두환 정권에 의해 가택연금을 당했을 당시 경찰 앞에서 “날 감금할 수는 있어. 이런 식으로 힘으로 막을 순 있어. 그러나 내가 가려고 하는 민주주의의 길은 말이야, 내 양심은, 마음은 전두환이 빼앗지는 못해”라는 고인의 육성이 흘러나오자 곳곳에서 울음이 터져 나왔다. ●상영된 기록영상물 유족이 직접 골라 반면 대통령 재직 시절 어린이날 행사 중 여자 어린이가 “대통령 할아버지가 ‘학실히’(확실히)라고 하신 걸 많이 봤는데 정확하게 발음해 주세요”라는 짓궂은 부탁을 했음에도 김 전 대통령이 활짝 웃으며 “학실히”라고 응하는 인간적인 면모가 드러났을 땐 영결식장 곳곳에서 웃음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마지막에는 김 전 대통령의 흑백사진을 배경으로 “누구나 신바람 나게 일할 수 있는 사회, 우리 후손들이 이 땅에 태어난 것을 자랑으로 여길 수 있는 나라가 신한국입니다. 우리 모두 이 꿈을 가집시다”라는 1993년 2월 25일 대통령 취임사가 나왔다. 영상에 담긴 자료 화면은 유족들이 직접 고른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휠체어를 탄 손 여사가 석석원 전 청와대 비서관의 도움을 받아 헌화 및 분향에 나섰고 차례로 직계 유족들이 한 명씩 단상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이어 권양숙 여사와 이명박 전 대통령 내외, 정의화 국회의장, 박한철 헌법재판소장, 양승태 대법원장, 황교안 총리,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원유철 원내대표,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와 이종걸 원내대표, 정의당 심상정 대표 등 의회 지도자들까지 차례로 헌화와 묵념을 했다. 마지막을 장식한 건 김 전 대통령의 애창곡으로 알려진 가곡 ‘청산에 살리라’였다. 최현수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바리톤)와 청소년합창단이 함께 불렀다. 전직 국가원수에 대한 예우에 따라 3군(육해공군) 통합 조총대가 21발의 조총을 쏘아 올리고 조악 연주가 울려 퍼지면서 1시간 20분의 영결식이 마무리됐다. 김 전 대통령도 30여년을 함께한, 분신과도 같던 국회와 ‘영결’했다. 영결식에서는 김 전 대통령을 모셨던 이들은 물론 한때 경쟁하거나 대립했던 인사들도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새정치연합 권노갑 상임고문, 김옥두·이훈평 전 의원, 한광옥 국민대통합위원장, 한화갑 한반도평화재단 이사장 등 동교동계 인사들이 대거 참석한 것이다. 이들은 김 전 대통령 서거 당일부터 함께 빈소를 지킨 데 이어 영결식과 동작동 현충원에서 진행된 안장식까지 동행했다. 이 밖에 전남 강진 흙집에서 칩거하다가 부음을 접하고 서울로 올라와 줄곧 빈소를 지켰던 손학규 새정치연합 전 상임고문과 박원순 서울시장, 남경필 경기도지사도 눈에 띄었다. ●與 “업적 재평가” 野 “민주주의 사수” 김수한 의장은 영결식이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거산은 가셨지만 그 뜻은 앞으로 더 확산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무성 대표는 “후배들이 (김 전 대통령의) 개혁을 완수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면서 “개혁 업적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표는 “당신께서 평생 싸워 이룬 민주주의가 다시 흔들리고 역사가 거꾸로 가는 상황에서 떠나보내게 되니 한없이 착잡하다. 이젠 후배들에게 남겨진 몫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경제활성화 3법 등 與野 갈등 여전… ‘YS 유훈’ 실천 미지수

    경제활성화 3법 등 與野 갈등 여전… ‘YS 유훈’ 실천 미지수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서거에 따른 ‘조문 정국’으로 일시 멈춘 ‘정치 시계’가 26일 영결식을 기점으로 다시 빠르게 돌 전망이다. 김 전 대통령이 남긴 ‘통합과 화합’ 유훈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갈등이 봇물처럼 터져나올 가능성이 높다. 당장 정기국회 종료(12월 9일)가 2주일여 앞으로 다가온 상황에서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의 힘겨루기가 다시 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여당은 이번 정기국회에서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과 경제활성화 관련 3법, 노동개혁 관련 5법 등에 대한 우선 처리를 요구하고 있지만 야당은 부정적이다. 야당은 협상 조건으로 누리과정(3~5세 무상보육) 예산에 대한 국고 지원 확대를 내걸고 있는 반면 여당은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여당은 야당이 법안 처리에 협조하지 않을 경우 새해 예산안을 국회 수정안이 아닌 정부 원안대로 법정 처리시한인 다음달 2일 본회의에 상정하겠다며 압박하고 있다. 여야는 또 프랑스 ‘파리 테러’ 이후 관심이 높아진 대테러방지법과 북한인권법을 정기국회에서 처리키로 했지만 법안에 담길 구체적인 내용을 놓고 입장 차가 여전한 만큼 진통도 예상된다. 내년 4월 총선에 적용할 선거구 획정 협상 역시 견해차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렇듯 여야의 주장이 얽히고설킨 상황이라 정기국회 종료 직후 12월 임시국회 개회설이 벌써부터 흘러나오고 있다.내년 총선을 겨냥한 여야의 ‘집안 싸움’도 격화될 가능성이 높다. 새누리당은 오는 30일 최고위원회의에서 ‘공천 룰’을 만드는 공천특별기구 구성 방안을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친박근혜계와 비박근혜계는 지난 2개월여 동안 ‘안심번호 국민공천제’ 도입, 공천특별기구 인선, 공천심사위원회 조기 출범 등을 놓고 사사건건 충돌해 왔다는 점에서 험로가 예상된다. 앞서 김무성 대표와 서청원 최고위원, 원유철 원내대표는 지난 19일 만나 공천 문제를 논의했지만 진전은 없었다. 새정치연합도 서거 정국 기간에 잠복했던 지도체제를 둘러싼 주류와 비주류 간 갈등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안철수 전 공동대표는 오는 29일 문재인 대표의 ‘문(재인)·안(철수)·박(원순) 3인 공동 지도부’ 제안에 대해 입장을 빍힐 예정이어서 주목된다. 비주류 측이 제기하는 오픈프라이머리(완전국민경선제) 도입 주장도 아직은 ‘꺼진 불’로 보기 어렵다. 장세훈 기자 shjang@seoul.co.kr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첫 국가장 5일간의 기록

    26일 영결식과 안장식을 마친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은 처음으로 국가장(國家葬)을 치른 국가원수로 기록에 남게 됐다. 김 전 대통령이 지난 22일 패혈증과 급성심부전증으로 서거한 뒤 정부는 국가장법에 따라 24일 황교안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국가장 장례위원회를 설치하고 장례 기간에 조기를 게양토록 했다. 법에 따라 장례 기간은 5일로 했다. 모두 2222명으로 구성된 장례위원회에는 정부 측 추천인사가 808명이었고, 유족 추천 인사는 부위원장을 맡은 김봉조 민주동지회 회장 등 1414명이었다. 정치적 행동을 같이했던 상도동계뿐 아니라 동교동계 인사들도 적잖이 장례위원에 포함돼 화합과 통합을 상징했다. 서울시가 지난 23일 낮 12시부터 서울광장에 야외 분향소를 차리고 시민의 조문을 받는 등 각 지방자치단체와 재외공관에서는 별도로 분향소를 설치·운영했다. 행자부에 따르면 25일 오후 11시까지 전국 221개 지자체 분향소를 방문한 조문객은 16만 2596명이었다. 지자체 분향소가 본격적으로 차려진 23일에는 3만 9602명, 24일에는 5만 2295명, 25일에는 6만 9399명 등 애도와 추모 분위기가 장례 기간 내내 계속됐다. 국회의사당에 차려진 정부대표 분향소에는 총 3033명이 고인을 애도했다. 지난해 11월 19일 시행된 국가장법은 기존 ‘국장·국민장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면서 국장(國葬)과 국민장(國民葬)을 국가장이라는 명칭으로 통합했다. 2009년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당시 국장과 국민장을 놓고 벌어진 논란 이후 두 방식을 하나로 합친 것이다.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
  • 중절모·선글라스 쓰고… ‘은둔의 장남’ 모습 드러내다

    중절모·선글라스 쓰고… ‘은둔의 장남’ 모습 드러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국가장이 엄수된 26일 베일에 꽁꽁 가려져 있던 김 전 대통령의 장남 은철씨가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내 눈길을 끌었다. 세간에 널리 알려진 차남 현철씨와 달리 은철씨는 그동안 존재 자체가 불분명하다고 할 정도로 공개적인 행보를 자제해 왔다. 은철씨는 김 전 대통령이 서거한 지난 22일 서울대병원에 마련된 빈소에 잠시 나타났다가 몸을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건강이 좋지 않아 이후 빈소를 제대로 지키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때문에 취재진도 그의 모습을 포착할 수 없었다. 이날 영결식에서도 은철씨는 외부의 시선을 피하려는 듯 중절모와 선글라스로 얼굴을 최대한 가린 모습이었으며, 걸을 때 가족들의 부축을 받았다. 은철씨는 김 전 대통령이 가택연금 됐던 1982년 결혼을 한 뒤 미국으로 건너가 정치와는 거리를 두고 ‘은둔의 삶’을 살아왔다. 은철씨 결혼 당시 신군부는 ‘장남 결혼식에는 참석할 수 있게 해 주겠다’며 김 전 대통령을 회유했지만, 김 전 대통령은 결혼식을 다녀오면 다시 연금된다는 사실을 알고는 “전두환에게 도움이 되는 짓은 안 한다”며 이를 거부한 것으로 알려진다. 당시 김 전 대통령은 “나는 아버지이기 이전에 정치인”이라는 말을 남겼고, 결국 은철씨는 아버지 없이 결혼식을 올렸다. 이후 은철씨는 미국에서 사업을 꾸려왔고 종종 한국을 방문한 것으로 전해졌다. 은철씨가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다는 증언도 있다. 이명박 정부 시절 청와대 춘추관장을 지낸 이상휘 위덕대 부총장은 최근 라디오에 출연해 김 전 대통령 집권기인 1996년 은철씨가 술값도 치르지 못할 정도로 곤궁했다는 일화를 소개했다. 이 부총장은 “당시 술집 주인이 대통령 아들인 걸 알고 굉장히 놀랐다”며 “당시만 하더라도 상당히 자신에 대해서 억울하다고 할까, 약간 기가 많이 눌린 듯한 느낌도 많이 있었다”고 회상했다. 김 전 대통령 슬하 2남 3녀 중 세 딸은 김 전 대통령이 대선에 도전한 1992년 즈음 모두 결혼해 미국으로 건너갔으며 평범한 주부로 살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강병철 기자 bckang@seoul.co.kr
  • [자치단체장 25시] 시민들과 通·전문가와 通… 통할수록 ‘통통’해지는 창원

    [자치단체장 25시] 시민들과 通·전문가와 通… 통할수록 ‘통통’해지는 창원

    안상수(69) 경남 창원시장은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원내대표 2번에 당 대표까지 지낸 중진 정치인이다.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수사 검사로도 잘 알려졌다. 지난 22일 서거한 김영삼 전 대통령이 발탁해 15대 국회의원에 당선돼 정계에 입문했다. 지난해 지방선거 때 경남도지사 출마를 준비하다 ‘체급’을 낮춰 창원시장 선거에 나서 여유 있게 당선됐다. 주변에서 격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의견도 있었다. 안 시장은 “고향에서 주민들을 위해 봉사하고자 하는데 격이 무슨 문제냐”면서 “그런 것을 따지는 것은 권위적인 생각”이라고 일축했다. 오히려 그는 “광역시 규모인 창원시 발전을 위해서는 큰 인물이 필요하다”고 역설해 시민들의 지지를 이끌어 냈다. 지방행정가로 변신해 1년 5개월여 시정을 이끌어온 안 시장은 “고향에서 시장으로 일하는 지금이 가장 신나고 보람을 느낀다”면서 “창원시가 도시 규모에 걸맞게 발전하기 위해서는 광역시 승격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난 18일 오후 3시 창원시청 2층 시민홀. ‘일류교육도시를 말하다’라는 주제를 놓고 ‘갑론을박 시민 300인 원탁토론회’가 열렸다. 도시 규모에 비해 교육 수준이 뒤처진다는 지적이 많아 시가 시민들의 의견을 듣고 개선 방안을 찾기 위해 마련한 자리였다. 안 시장은 인사말에서 “오늘 토론회에서 나온 좋은 의견들을 시정에 반영해 일류 교육도시가 되도록 하겠다”며 기탄없는 의견 제시를 당부했다. 공개 모집한 지역 학생·학부모·교사 등 250여명이 토론자로 참여했다. 이들은 30여개 둥근 테이블마다 8~9명씩 둘러앉아 창원시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놓고 3시간여 동안 열띤 토론을 벌였다. 안 시장도 토론자로 7번 테이블에 앉았다. 한 학부모가 “창원에 좋은 특목고나 특성화고가 없어 우수한 학생들이 외지로 많이 나간다”고 지적하자 안 시장은 “광역시가 되면 특목고도 만들 수 있어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외지로 나가지 않고, 교육 수준도 높아지게 된다”고 설명했다. 창원시는 안 시장이 취임한 뒤부터 시정과 관련해 토론회를 자주 한다. “시민들이 원하는 시정을 위해서는 수시로 각계각층 의견을 많이 듣는 게 중요하다”는 안 시장의 의사소통 방식에 따랐다. 그는 취임 뒤 미래전략위원회, 균형발전위원회, 창원시정연구원, 창원산업진흥재단, 관광진흥위원회 등 5대 핵심기구를 구성했다. 이들 기구에 박재완 전 기획재정부 장관, 이환균 전 건설교통부 장관, 박양호 전 국토원장 등 최고 전문가들을 책임자로 영입하고 수시로 토론회를 하며 자문을 받는다. 각 분야 최고 전문가들의 지식과 노하우를 시정에 활용하겠다는 뜻이다. 앞서 안 시장은 오전 9시 시장실에서 간부 공무원들과 ‘테마가 있는 도시공원 조성 방안’ 정책을 놓고 40여분에 걸쳐 정책토론회를 했다. 정책토론회는 주요 정책을 결정할 때마다 간부 공무원들과 토론하는 자리다. 이날 토론회는 안 시장 취임 뒤 90회째다. 박봉수 산림녹지과장이 “진해구 장복산 공원에 치유 센터와 풍욕장 등의 시설을 갖춘 치유의 숲을 조성한다”고 설명하자 안 시장은 “현장에 가 보니 편백숲 속에 설치된 나무계단이 경사가 심해 유격 훈련장처럼 힘이 들더라. 시민들이 편백숲에서 편안하게 쉬면서 책을 보거나 명상하며 심신을 치유할 수 있는 시설이 조성되면 좋겠다”는 의견을 내놨다. 안 시장은 “돈을 많이 들여 곳곳에 도시공원을 만드는 것보다 선택과 집중을 해서 외지인들도 찾아와 즐길 수 있도록 관광형 테마공원을 우선 추진하자”고 정책 방향을 정했다. 토론회를 마친 안 시장은 부서업무 결재를 한 뒤 오전 11시 30분 3층 제3회의실에서 열린 ‘프로야구 NC다이노스 관중 유치 협약식’에 참석했다. 지역 각계 대표와 이태일 NC다이노스 구단 대표 등이 참석했다. 안 시장은 “프로야구가 시민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시민 화합에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며 관중 유치에 협조를 당부했다. 창원시는 기존 마산야구장 자리에 NC구단이 홈구장으로 쓸 최고 시설의 야구장을 내년에 착공해 2018년 완공할 예정이다. 이날 안 시장의 마지막 일정은 오후 6시 풀만호텔에서 열린 아시아와 남미 등 15개 나라 관광협렵국 관광실무자 초청 팸투어 환영 만찬이다. 한국관광공사 주최로 한국을 방문한 관광 관련 고위 공무원과 여행 관계자 50여명이 참석했다. 안 시장은 환영사에서 “대한민국 대표적인 첨단산업과 관광도시인 창원시 방문을 환영하며 본국으로 돌아가 창원시를 많이 홍보해 달라”고 부탁했다. 오후 7시 30분 대구로 출발하는 팸투어 참가자들을 배웅한 뒤 귀가했다. 안 시장은 옛 창원·마산·진해 3개 시 경계지역인 웅남동에 작은 아파트를 구입해 부인과 함께 지낸다. 도심에서 벗어난 곳으로 주변에 산과 체육공원 등이 있어 운동하기에 좋은 곳이다. 그는 아침 4시 30분쯤 일어나 1시간여 동안 신문을 훑어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5시 30분 집 근처 야산 체육공원으로 나가 2시간여 동안 운동을 한다. 운동장을 10바퀴 뛰고 근력 운동 등을 한다. 안 시장은 앞으로 정치 행보에 대해 “대한민국을 반듯하게 경영해 보고 싶은 꿈을 갖고 있다”면서 “차기 대통령 후보 경선에 참여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그는 “대선 후보 경선에 나가 완전한 지방분권제 실시, 제왕적 대통령제 종식과 분권형 대통령제 실현을 위한 개헌 등 저의 정치 철학을 국민께 설명드리고 평가받고 싶다”고 말했다. 안 시장은 “대통령 후보 경선 참가는 시장직을 유지한 상태에서 할 수 있다”면서 “시정에는 조금도 소홀함이 없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안 시장은 “창원시가 미래 100년을 먹고살기 위해서는 첨단산업과 관광산업 두 분야를 집중적으로 개발·육성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글 사진 창원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그가 떠나는 날, 눈이 내렸습니다

    그가 떠나는 날, 눈이 내렸습니다

    그가 그토록 뜯어고치고 싶어 했던, 그럼에도 여전히 고칠 게 많은 이 세상과 김영삼 전 대통령이 영원히 작별했다. 지난 22일 서거한 김 전 대통령의 국가장(國家裝) 영결식이 26일 국회 본청 앞에서 거행됐다. 오후 2시부터 1시간 20분간 눈이 내리는 가운데 거행된 영결식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과 부인 김윤옥 여사는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와 나란히 ‘통합’과 ‘화합’을 유언으로 남긴 김 전 대통령의 영정 앞에 헌화했다. 영결식에는 김 전 대통령의 부인 손명순 여사와 차남 현철씨 등 유가족은 물론 헌법기관장, 주한 외교사절, 각계 대표와 시민 등 7000여명이 참석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감기 증세로 영결식에 참석하지 못하고 대신 영결식 전 서울대병원에 마련된 빈소를 찾아 고인의 영정을 배웅했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과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도 건강 문제로 영결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장례위원장인 황교안 국무총리는 조사를 통해 “우리는 오늘 민주화의 큰 산이었던 김 전 대통령과 영원히 이별하는 자리에 있다”며 “대통령님이 염원한 평화롭고 자유롭게 번영하는 나라를 만드는 게 우리가 해야 할 몫”이라고 말했다. 김수한 전 국회의장은 추도사에서 “(김 전 대통령에게) 혹독한 탄압이 간단없이 자행됐지만 ‘잠시 살기 위해 영원히 죽는 길을 택하기보다 잠시 죽지만 영원히 사는 길을 택하겠다’는 대통령님의 숭고한 의지를 꺾지 못했다”고 회고했다. 영결식 후 운구 행렬은 고인이 46년간 살았던 동작구 상도동 사저에 들른 뒤 그곳에서 2㎞ 떨어진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에 종착(終着)했다. 김 전 대통령이 영면에 든 이날 서울 기온은 영하로 떨어졌고, 시민들은 몸을 한껏 웅크린 채 종종걸음을 쳤다. 김상연 기자 carlos@seoul.co.kr
  • [김영삼 前대통령 국가장] 조의 표하는 시민들

    [김영삼 前대통령 국가장] 조의 표하는 시민들

    김영삼 전 대통령 서거 나흘째인 25일 서울 태평로 서울광장에 마련된 고인의 분향소에서 한 시민이 상주 역할을 하는 분향소 관계자들에게 절을 하며 조의를 표하고 있다. 박윤슬 기자 seul@seoul.co.kr
  • [김영삼 前대통령 국가장] 김무성의 ‘상주 정치’… YS 정치적 자산 물려받나

    [김영삼 前대통령 국가장] 김무성의 ‘상주 정치’… YS 정치적 자산 물려받나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서거를 계기로 ‘상도동계의 막내’였던 새누리당 김무성(얼굴) 대표가 상주 역할을 자처하면서 김 전 대통령의 정치적 자산을 물려받을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 대표가 서청원 최고위원 등 친박(친박근혜)계와의 공천권 갈등을 당분간 잠재우면서 YS의 정치적 기반인 부산·경남(PK)에서 정치적 위상을 높이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 대표는 25일 국회에서 열린 당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대인의 사고방식을 가진 그분은 오로지 애국과 민생을 최우선으로 두었고 국민에 대한 사랑으로 통합과 화합의 리더십을 제시해 주었다”고 했다. 또한 페이스북에 올린 추도사에서 “위대한 개혁의 아이콘으로서 보수와 진보, 좌와 우의 이분법적 사고로 표현할 수 없었던 큰 어른이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중요한 회의 일정 외에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빈소에서 상주를 자처하고 있다. 김 대표와 서 최고위원이 서로 상주 역할을 자임하면서 친박계와의 공천권 갈등이 소강 국면에 들어선 것은 김 대표에게는 다행스러운 일이다. 새누리당 내 공천특별기구 구성과 조기 공천심사위원회 출범 여부를 놓고 계파 갈등 양상에 직면했던 김 대표는 김 전 대통령 서거를 계기로 그의 유훈인 ‘통합’과 ‘화합’을 강조하며 통 큰 정치인의 이미지를 구축하려 노력하고 있다. 또한 김 전 대통령의 ‘정치적 아들’이라는 점을 부각함으로써 PK 지역에서 YS의 정치적 자산을 물려받는 후계자로서의 상징성을 얻을지도 관심을 모은다. 김 대표로서는 최근 ‘대구·경북(TK) 물갈이론’이 PK 지역까지 번진 것이 달갑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YS의 서거로 PK에서 정치적 위상을 높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김 대표는 지난 22일 빈소를 단체로 방문한 부산 지역 의원들과 대화하던 중 TK 물갈이론이 화제에 오르자 “물갈이, 물갈이하는 사람들이 물갈이 된다”고 뼈 있는 농담을 던졌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김 대표가 PK 지역에서의 정치적 위상 강화를 위해 ‘빈소 정치’를 활용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 [김영삼 前대통령 국가장] 문재인의 ‘조문 정치’… 무미건조한 ‘YS 껴안기’

    [김영삼 前대통령 국가장] 문재인의 ‘조문 정치’… 무미건조한 ‘YS 껴안기’

    ‘김영삼(YS) 전 대통령 조문 정국’에서 적극적으로 ‘상주 정치’를 펼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달리 문재인(얼굴)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보여준 행보는 ‘두문불출’에 가까웠다. 문 대표는 김 전 대통령이 서거한 지난 22일 오전 서울대병원 빈소를 찾아 합동 조문한 이후 특별한 정치 일정을 잡지 않았다. 25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개관식에 참석하기 위해 광주를 찾기 전까지 감기 몸살을 이유로 최고위원회의에 불참하기까지 했다. 당 안팎에서는 ‘문·안·박’(문재인·안철수·박원순) 연대 논란 등 당 내홍 상황 때문에 일부러 대외활동을 자제하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다. “우리 모두가 상주”라며 YS의 ‘정치적 아들’을 자처한 김 대표와 비교하면 “민주주의 정신과 철학을 기리고 계승하겠다”는 문 대표의 조문 메시지는 무미건조한 ‘모범답안’ 같은 느낌을 줬다. YS와 경남중·고교 선후배 사이이자 동향 후배인 인연을 밝히기도 했지만, YS를 야당 역사의 한 축으로 재평가하려는 움직임 등에 대한 적극적인 설명은 부족했다. 오히려 이번 조문 정국에서 주목받은 야권 인사는 빈소를 계속 지킨 손학규 전 상임고문이었다. 당 일각에서는 문 대표가 좀더 적극적이고 반복적으로 ‘YS 껴안기’를 시도했어야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내년 총선에서 부산 출마 요구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 비춰 보면 PK(부산·경남) 지역 맹주였던 김 전 대통령의 서거는 PK에 기반하고 있는 자신의 존재감을 알릴 좋은 기회일 수 있었다. 당 관계자는 “이번 조문 정국은 문 대표로서는 자신의 정치적 출발이 PK임을 대외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자리였다”면서 “김 전 대통령의 민주주의 업적을 강조하려면 부마항쟁 같은 예라도 들었어야 했다”고 아쉬워했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YS 유언 ‘통합·화합’ 강조… 사회 아픈 문제 제대로 짚어”

    “YS 유언 ‘통합·화합’ 강조… 사회 아픈 문제 제대로 짚어”

    “김영삼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서울신문이 일관되게 강조한 키워드는 그가 유언으로 남긴 ‘통합과 화합’이었다. 우리 사회의 가장 아픈 문제를 제대로 짚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김광태 온전한커뮤니케이션 회장·전 삼성전자 전무) “파리 테러 이후 국내에서도 테러 위험이 주요 이슈로 떠올랐는데 테러방지법 입법을 둘러싼 논란을 ‘3대 포인트’로 정리해 표와 함께 소개한 기사가 좋았다.”(홍현익 세종연구소 안보전략연구실장) 지난 한 달 동안의 서울신문 보도에 대해 평가하고 개선점을 모색하는 독자권익위원회(위원장 박재영 서울대 행정대학원 객원교수) 회의가 25일 서울 중구 세종대로 본사 회의실에서 열렸다. 78회째인 이번 회의는 ‘메르스 사태 보도’, ‘성완종 리스트 사건 보도’ 등 특정한 주제를 정해 집중적으로 논의했던 지금까지의 회의 틀을 벗어나 정치·사회·경제·국제·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해 권익위원들이 자유롭게 토론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권익위원들은 ‘광화문 민중총궐기 대회’, ‘김영삼 전 대통령 서거’, ‘파리 테러’ 등 국내외 이슈에 대한 서울신문의 보도 태도와 지면에 대해 평가와 비판, 제언을 했다. 박 위원장(전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은 “김영삼 전 대통령 서거와 관련해 재미있는 에피소드나 공적 위주의 기사도 좋지만, 김 전 대통령 시대의 밝은 면과 함께 어두운 면을 다각도로 분석해서 우리 세대가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는지를 제시하는 미래지향적인 보도에 초점을 맞추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영찬(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위원은 문화면을 집중적으로 분석했다. 그는 “문화 기사에 할애하는 지면이 한정적이고 기획기사가 적은 게 아쉽다”며 “젊은 독자층에게 접근하려면 모바일 플랫폼에서도 활용할 수 있는 문화 저널리즘을 구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를 위해 정치·경제·사회와 맞닿아 있는 문화 이슈에 대한 심층취재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상제(한국금융연구원 기획협력실장) 위원은 “서울신문 ‘현장행정’ 시리즈와 같이 행정 및 지방자치단체 분야 보도에 강한 서울신문의 장점을 살릴 필요가 있다”며 “외부 정책연구소와 연계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모색해 기획기사가 실제 행정 개혁으로까지 이어지는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하면 좋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김광태 위원은 “세계보건기구(WHO) 가공육 발암물질 발표 논란 등 국민의 혼란을 야기한 주제에 대해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현상 묘사에만 그친 것은 아쉽다”며 “근본 원인을 진단하고 나름의 대안까지 제시할 수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경기가 어려울수록 독자들은 경제면을 관심 있게 읽으며 전략을 세우고 싶어 한다”며 “경제·산업 분야에서 단순한 정책 소개 기사보다는 독자에게 와 닿는 가계경제나 재테크 전략 등을 주제로 한 심층기사가 많이 보였으면 한다”고 제안했다. 홍 위원은 “지난 14일 광화문 폭력시위와 과잉진압 논란과 관련해 단순한 현상 보도보다는 왜 시위가 벌어졌고 어떻게 과격한 형태로 발전이 됐으며, 어디까지가 합법의 영역인지 등 상황의 이면까지 객관적으로 짚어줘 독자가 스스로 판단할 수 있게 도와주었으면 한다”고 했다. 김희리 기자 hitit@seoul.co.kr
  • [김영삼 前대통령 국가장] ‘가택 연금’ vs ‘구속’ 역사적 악연… 전두환 前대통령 빈소 찾아

    [김영삼 前대통령 국가장] ‘가택 연금’ vs ‘구속’ 역사적 악연… 전두환 前대통령 빈소 찾아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25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 마련된 김영삼 전 대통령의 빈소에는 조문객 발길이 나흘째 이어졌다. 특히 김 전 대통령과는 질긴 악연이 있는 전두환 전 대통령과 노태우 전 대통령은 본인이 직접 가거나 장남을 통해 영결식을 하루 앞두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정적’을 배웅했다. 전 전 대통령은 오후 4시쯤 굳은 표정으로 빈소에 들어섰다. 다소 야위었지만 몰려든 인파 속에서 혼자 거동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비교적 정정한 모습이었다. 전 전 대통령은 방명록에 ‘고인의 명복을 기원합니다’라고 눌러 적은 뒤 영정 앞으로 향했다. 조심스레 목례와 분향을 한 뒤에는 차남 현철씨를 비롯한 유족들의 손을 하나하나 잡아가며 조의를 표했다. ●전 前대통령 유족들 위로 후 10분 뒤 떠나 김 전 대통령과 전 전 대통령의 ‘35년 악연’은 10·26 사태 직후인 1980년 전후부터 시작됐다. 김 전 대통령은 12·12 사태로 권력을 잡은 전두환 정권에 의해 상도동에 가택 연금을 당했다. 1983년에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3주년을 맞아 23일간 단식투쟁으로 전두환 정권에 맞섰다. 취임 이후에는 하나회 척결을 통한 숙군을 단행했고, 1995년에는 전 전 대통령과 노 전 대통령을 군사반란 주도와 수뢰 혐의로 구속했다. 전 전 대통령은 헌화 뒤 접객실에서 현철씨와 유족들을 위로했다. 건강 상태를 묻는 현철씨에게 “나이가 있으니 왔다 갔다 하는 거다”라며 “이제 담배 안 피우고 술 안 먹고 그러니까 좀 나아졌다”고 답했다. 이어 “임의로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냐. 자다가 싹 가버리면 나를 위해서도 그렇고 가족을 위해서도 그 이상 좋은 일은 없다”고 말했다. 10분간의 짧은 조문을 마치고 장례식장을 떠나던 전 전 대통령은 취재진을 향해 “수고들 하시라”라고 말했지만 ‘(조문을) YS와의 역사적 화해라고 볼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는 답변을 하지 않고 떠났다. 역시나 김 전 대통령 집권 당시 구속되는 악연을 가진 노 전 대통령은 장남 재헌씨를 대신 보냈다. 재헌씨는 “이 나라의 대통령이셨고 한때 아버님과 국정도 같이 운영하셨고, 이어서 대통령도 되셨다”며 “정중히 조의를 드리는 것이 도의라고 생각하고 아버님도 또 그렇게 말씀하셨다”고 말했다. 현철씨는 미소를 지으며 조문에 대한 감사를 표했다. ●YS 막내딸 “부친의 過 부각돼 안타깝다” 재헌씨는 아버지가 특별히 전한 메시지가 있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지금 거동하기 힘들기 때문에 가서 정중하게 조의를 표하라고 전하셨다”고 답했다. 노 전 대통령이 YS정부에서 겪은 ‘고초’에 대해서는 “(아버지께서) 그런 말씀은 딱히 없었다”고 말했다. 83세인 노 전 대통령은 2002년 전립선암 수술 이후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면서 연희동 자택에서 10년 넘게 투병하고 있다. 영결식을 하루 앞둔 빈소에는 김 전 대통령과 크고 작은 인연을 간직한 사회 각계 인사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권영진 대구시장은 “1987년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단일화 운동을 할 때 찾아뵙고 (단일화를) 요청드린 적이 있었다”며 “그 이후에 (김 전 대통령이) 그걸 못 해서 후배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씀을 하셨다”고 말했다. 15대 총선에서 김 전 대통령의 발탁으로 정계에 입문한 이른바 ‘YS키즈’ 정의화 국회의장도 독일 공식 일정을 일부 취소하고 급거 귀국해 빈소를 찾았다. 정 의장은 “외환위기에 대한 모든 책임을 고인에게 다 가하는 측면이 있었다. 젊은 사람들은 오해를 할 수가 있다”며 “(김 전 대통령이) 안 계셨으면 우리는 유신독재로 다 망치는 거다”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의 막내딸인 혜숙씨도 기자들과 만나 “모든 지도자는 공과 과가 있다”며 “과가 부각된 것이 안타깝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결혼 후 미국 워싱턴 DC서 생활해 온 그는 “평소 다정다감한 아버지였다”며 “업어주시기도 하고, 막내딸이니만큼 정말 사랑을 많이 받았던 것 같다”고 회고했다.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거로 활약한 야구선수 박찬호씨는 “올라갈 때가 있으면 내려갈 때가 있다고 조언해 주면서, 늘 겸손한 마음을 갖고 국민에게 사랑 받는 선수로 성장하라는 뜻깊은 말씀을 하신 게 기억난다”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은 1997년 11월 LA 다저스에서 빼어난 성적을 거둔 박씨를 청와대로 초청해 “올해 우리나라는 빛낸 가장 자랑스러운 한국인”이라고 칭찬했었다. ●신동빈·권오준·삼성 사장단 등 재계도 애도 서거 첫날부터 빈소를 지켰던 ‘상도동계’ 김수한 전 국회의장, 홍인길 전 청와대 총무수석, 김기수 전 대통령 수행실장은 이날도 아침 일찍부터 조문객을 맞이했다. 손학규 전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서청원 최고위원, 정병국 의원도 나흘째 빈소를 지켰다. 재계에서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권오준 포스코 회장, 최상순 한화그룹 부회장, 이관우 전 한일은행장 등이 빈소를 찾았다. 유족들은 하루 앞으로 다가온 영결식을 준비하기 위해 문상객을 맞이하는 틈틈이 회의를 했다. 유족들은 26일 오전 10시 서울대병원에서 발인 예배를 가진 뒤 영결식이 열리는 여의도 국회로 이동할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대통령 집안이 3대째 기독교 신앙을 지키고 있어 예배 형식으로 발인을 하는 것이다. 예배가 끝난 뒤 운구차는 서울대병원을 떠나 오후 2시쯤 국회에 도착할 예정이다. 전국에 설치된 220여개 분향소에는 지금까지 15만명이 넘는 추모객이 다녀갔다. 여의도 국회에 설치된 정부 대표 분향소에는 심상정 대표를 비롯한 정의당 의원들과 강신명 경찰청장, 박근희 삼성사회공헌위원회 부회장을 비롯한 삼성 주요 사장단 50여명 등이 방문하며 추모 행렬을 이어갔다. ●정상회담한 日 무라야마 전 총리도 분향소 찾아 해외에서도 조문이 이어졌다.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일본 총리는 도쿄의 주일본 한국대사관에 마련된 분향소를 찾아 고인에 대한 예를 표했다. 김 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 인연이 있는 무라야마 전 총리는 지난 22일 서거 소식이 전해지자 “그 시대 한국에 가장 잘 어울리는 대통령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26일 영결식에도 참석할 예정이다. 류전민(劉振民) 중국 외교부 부부장을 비롯한 중국 정부 조문단도 베이징 주중 한국대사관 1층에 마련된 분향소를 찾아 조문을 했다. 류 부부장은 방명록에 “침통한 심정으로 애도를 표시한다”(沈痛悼念)는 글을 남겼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김영삼 前대통령 국가장] YS에 대한 세대별 이미지

    김영삼(YS) 전 대통령에 대해 국민들이 갖고 있는 이미지는 세대별로 어떻게 다를까. 지난 22일 서거 후 김 전 대통령의 민주화 투쟁 이력과 리더십이 새롭게 부각된 가운데 그에 대해 세대별로 연상하는 각각의 키워드를 사람들의 말과 행동을 통해 종합해 봤다. 김 전 대통령 서거 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갓(God·신)영삼 시리즈’, ‘YS는 못말려’ 등 생전 김 전 대통령의 직설 화법을 잘 나타내는 어록들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이를 퍼나르는 사람들은 주로 그의 재임기에 초·중·고교를 다녔던 청년 세대다. 이들은 김 전 대통령이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대통령도 아니데이. 죽어도 국립묘지 못 간다”라고 했던 일화 등을 퍼나르며 ‘사이다’(자신의 감정 등을 속시원하게 대신 해 주는 말), ‘패기갑(甲)’ 등 찬사를 보내고 있다. 회사원 전모(30)씨는 “어록이나 조선총독부 철거 등의 행보를 보면 ‘사이다’이지만 IMF(국제통화기금) 사태의 원인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공(功)과 과(過)가 ‘반반’인 인물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총학생회 선거를 맞아 대학들의 ‘선거 공백’으로 분향소 설치가 미진한 가운데 최근 고려대 커뮤니티 ‘고파스’ 등에는 분향소 설치를 촉구하는 글 등이 올라오기도 했다. 그러나 청년 세대에게는 YS가 동시대의 인물이 아니라 마치 ‘위인전 속 인물’로 느껴지는 시대적 거리감도 있었다. 회사원 김슬기(29·여)씨는 “책상에다 ‘나는 대통령이 된다’를 붙이고는 커서 진짜 대통령이 된 의지의 사나이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며 “위인전 속 인물로 느껴진다”고 말했다. 임기 말인 1997년 정부가 IMF에 구제 금융을 신청했을 당시 20~30대였던 중장년들에게 YS는 국내 외환위기로 상징되는 경제적 빙하기와 뗄 수 없는 인물로 각인돼 있다. 당시 군대를 제대해 갓 복학했던 회사원 김모(41)씨도 마찬가지다. 김씨는 “학교 선배들이 대기업에 합격해 입사를 기다리다 갑자기 취소돼 좌절하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 바람에 취업한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한턱 쏘는 훈훈한 미담 대신, 오히려 입사 취소된 선배들에게 후배들이 위로의 술을 사줘야 했던 살풍경한 기억이 떠오른다고 했다. 그는 “IMF 사태가 전적으로 YS 때문은 아니지만, 일정 정도의 책임은 있다고 본다”고 평했다. 주부 김모(50)씨도 “당시는 엄마들끼리 ‘누구 아빠, 회사 갔어요?’라고 묻는 게 민망할 만큼 실직 가장이 많았던 시기”라며 “그분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으니 한 시대가 비로소 지나간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노년층에게 김 전 대통령은 ‘영원한 민주화 투사’다. 서울광장에 마련된 분향소를 찾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트렌치코트와 중절모 차림의 노신사들이 많았다. 분향소 설치 첫날인 23일 조문을 하러 1시간 30분 거리를 달려왔다는 허철행(78·경기 평택)씨는 “나는 경상도 출신도 아니고 개인적인 연고도 없지만 젊은 시절부터 줄곧 존경해 왔다”며 “신군부에 맞서 23일간의 단식 투쟁도 마다하지 않던 대쪽 같은 모습이 눈에 선하다”고 말했다. 같은 날 분향소를 찾은 강대성(65·건축업)씨는 “본인이 남긴 ‘대도무문’(大道無門)이라는 말을 평생 온몸으로 실천해 온 분”이라며 “하나회 척결이나 금융실명제 실시 등 그분의 사나이다운 면모가 없었으면 오늘날 우리나라에 민주주의는 없었을 것”이라며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했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 [김영삼 前대통령 국가장] ‘건강 악화’ 朴대통령, 영결식 참석 끝까지 고심

    박근혜 대통령이 건강상의 이유로 26일 국회에서 거행되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영결식 참석이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박 대통령은 열흘간의 다자회의 해외순방 강행군으로 감기와 체력 저하 증세가 나타나 청와대 참모진들이 영결식 참석 여부를 고심하고 있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25일 “해외 순방 마지막 날인 지난 22일 점심과 저녁도 거른 채 아세안 관련 정상회의 일정을 소화하는 등 강행군으로 피로가 누적됐고, 감기 증세가 크게 악화됐다”면서 “영하권 날씨에 1시간 30분짜리 야외 영결식은 무리일 수 있다는 의견이 있다”고 전했다. 청와대는 이날을 포함해 이번 주 예정된 외부 일정을 취소했다. 박 대통령은 앞서 23일 새벽 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뒤 이날 낮 빈소를 찾았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첫 국가장인 데다 현직 대통령들이 전직 대통령의 서거 때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영결식에 참석해 온 점을 들어 참석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2009년 8월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때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부인 김윤옥 여사와 함께 국회에 마련된 빈소를 찾아 조문했고 영결식에도 참석했다. 다만 같은 해 5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때는 노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정부에 책임을 물으며 분위기가 격앙되자 노 전 대통령 측이 참석을 만류했다. 2006년 10월 최규하 전 대통령의 서거 때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빈소에 이병완 비서실장을 보내 유족과 직접 통화하며 위로의 뜻을 전했으나 경복궁 앞뜰에서 열린 국민장 영결식에는 직접 참석했다. 이지운 기자 jj@seoul.co.kr
  • [서동철 칼럼] 낭만이 있던 정치를 떠나 보내며

    [서동철 칼럼] 낭만이 있던 정치를 떠나 보내며

    김영삼 전 대통령(YS)이 서거한 직후 TV에 비친 빈소의 표정은 뭔가 모르게 드라마적인 데가 있었다. 한다 하는 정치인들이 다투어 찾아와 ‘나는 그의 정치적 아들’이라거나 ‘그는 나의 정치적 대부’라고 고인을 추모하는 장면부터가 현실이 아니라 영화적 설정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YS의 오른팔로 불렸던 최형우 전 의원이 불편한 몸을 이끌고 빈소에 들어서면서 대성통곡을 하는 모습도 그랬다. 개인적으로 ‘정치적 보스’를 정성을 다해 추도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나는 왜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눈물도 흘리지 못했을까’하며 회한에 잠길 지경이었다. 일종의 ‘시대착오’를 느끼게 한 것은 빈소의 표정뿐만이 아니다. YS의 삶을 다룬 보도가 쏟아지면서 공(功)을 부각시켰든, 과(過)를 강조했든 보고 읽으며 ‘우리 정치에도 저런 모습이 있었나’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YS가 오랜 민주화 투쟁에 이어 3당 합당이라는 도박으로 대통령에 오른 과정을 빠짐없이 지켜본 세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YS의 인생역정이라고 해봐야 별것이 있겠느냐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TV에는 내가 기억하는 바로 그 장면이 비치고 있건만 지루하게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신선하게 다가오는 것은 뜻밖이었다. 오늘날 정치판에서는 눈 씻고도 찾아볼 수 없는 ‘로망’이 담겨 있기 때문은 아닐까 짐작한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반독재 투쟁 시절 당시 YS 모습이 오늘날 새롭게 느껴지는 것도 이유는 있다. 야당 총재 시절 YS의 반정부 발언을 날것 그대로 언론에서 접하기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회의원직을 박탈당하고 했다는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유명한 발언이 곧바로 보도가 이루어졌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니 “암흑적인 정치, 살인 정치를 감행하는 이 정권은 필연코 머지않아서 쓰러질 것”이라고 했던 ‘예언’도 당시에는 직접 들을 수 없었을 개연성이 크다. 민주화에 기여하지 못한 사람에게 YS의 용기는 부럽고도 고맙다. 한편으로 “서슬 퍼런 시절 주변을 움직이게 한 것은 YS의 인간미”라는 회고도 인상에 남는다. 측근이 실수를 저지르면 “한강물에 뛰어내려라”고 호통을 치기도 했지만, 상도동 집에 가면 YS는 늘 ‘밥 묵고 가래이’, ‘고생 많재’라며 다독여줬다는 것이다. 이런 인간미와 더불어 YS의 시대를 낭만의 시대로 기억하게 하는 요인의 하나는 유머집이다. “고생하던 부인이 퍼스트레이디가 되었다”는 덕담에 “집 사람은 절대 세컨드 아이다”했다는 유머가 대표적이다. 이제는 진부하기까지 하지만, 당시는 일간신문에서 대통령 부인의 사진을 다른 사람의 사진으로 잘못 썼다고 담당기자가 사표를 내는가 하면 대통령 부인의 이름이 발매된 신문도 아닌 교정지에서 한 자가 틀렸다고 시말서를 써야 했던 시대가 불과 얼마 전이었다. ‘YS는 못 말려’가 나온 것은 문민정부 출범 직후인 1993년 4월 초순이었다. 문화부 출판담당 시절 책이 나왔음을 알리는 간담회에 참석한 인연이 있다. 유머집에는 안기부장의 국무회의 불참에 YS가 “장관들이 대통령과 회의하는데 부장이 어떻게 자리를 차지하노”라고 일갈하는 대목도 있다. 안기부가 아니고 다른 기관이었다면 충분히 했을 만한 실수라고 시중에서는 키득댔다. 실제로 루마니아 독재자 차우셰스쿠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자 “차씨”라고 한 적도 있다. 이 유머집은 출판사의 모험이 아니었다. 출판사가 YS 측근과 소통하며 만든 책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지극히 교과서적인 정치 홍보 전략이지만, 오늘날의 정치 문화라면 용납할 수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YS에 대한 평가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외환위기를 초래하며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해야 했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하지만 “내가 하나회를 척결하지 않았다면 김대중도, 노무현도 대통령이 될 수 없었을 것”이라는 회고도 이제는 가볍게만 들리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평가는 이제 역사에 맡길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싸울 때는 싸우고 웃을 때는 웃는 인간미 있는 정치마저 역사가 되어서는 안 된다. 낭만이 있는 정치가 이루지 못할 꿈이어서야 되겠는가.
  • 의사 출신 정의화 국회의장 “퇴임 후 대북 보건지원 사업”

    의사 출신 정의화 국회의장 “퇴임 후 대북 보건지원 사업”

    독일을 공식 방문 중인 정의화 국회의장은 24일(현지시간) “국회의장 퇴임 후 보건의료지원을 포함한 대북 인도적 지원 사업을 하고 싶다”고 밝혔다. 정 의장은 우어줄라 맨레 한스자이델 재단 이사장을 만나 이같이 말한 뒤 “한스자이델 재단에서 북한을 위해 추진 중인 사업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고 밝혔다고 국회의장실이 전했다. 신경외과 의사 출신이기도 한 정 의장은 “특히 동·서독 의료보건협정 체결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면서 “대한민국은 독일 통일에 부러움과 존경을 갖고 있으며 한반도 평화통일을 이뤄 세계 인류평화에 기여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이에 맨레 이사장은 “정 의장이 북한과의 대화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는 점을 알고 있다”면서 “남북 대화는 과정의 어려움은 있지만 불가능하지는 않다고 본다”고 답했다. 이어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서거와 관련, “김 전 대통령의 서거일은 독일의 지도자인 헬무트 슈미트 전 총리의 국장일”이라면서 “양국 국민은 큰 지도자의 서거에 깊은 애도의 뜻을 표할 것”이라고 조의를 표했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사설] 노동개혁 제때 못해 겪은 외환위기서 교훈 얻길

    올 정기국회 회기를 불과 2주 남겨 놓고도 여야는 쟁점 현안을 두고 평행선 대치만 계속하고 있다.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노동개혁 관련 5개 법안, 그리고 무상보육 예산 문제 등 굵직한 현안은 쌓였는데 26일 본회의 개최 여부도 불투명하다. 심지어 며칠 전 서거한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후광을 서로 내년 총선에서 활용하려고 새로운 정쟁을 벌이는 판이다. 여야 모두 김 전 대통령이 마지막 남긴 통합과 화해라는 유지의 속뜻이 정략보다 민생을 앞세우라는 주문임에도 이를 외면하는 형국이다. 그러잖아도 출범 초부터 무한 정쟁으로 생산성은 역대 최악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19대 국회다. 그런데도 26일 본회의에 올릴 안건마저 확정하지 못한 채 여야 지도부는 민생과 무관한 입씨름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김무성 대표와 서청원 최고위원 등 새누리당 지도부가 “그의 정치적 아들”이라거나 “나의 정치적 대부”라는 등 YS의 이미지를 차용하기에 급급한 것도 국민의 눈높이로 보면 민망한 일이다. 물론 “이들은 정치적 아들이 아니라 유산만 노리는 아들”(이종걸 원내대표)이라는 식의 새정치민주연합 측의 비아냥도 정쟁에 찌든 소아병으로 비치는 건 마찬가지다. 해는 저물고 날은 어두워지는데 아궁이에 불을 지필 요량은 않고 길거리에서 삿대질만 하고 있는 꼴이다. 오죽 답답했으면 박근혜 대통령이 어제 국무회의에서 “맨날 립서비스만 하고, 민생이 어렵다면서 제 할 일은 안 하는 것은 위선”이라며 또다시 국회의 입법 지연 사태를 맹비난했겠나. 김영삼 전 대통령이 서거한 22일은 우리가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한 날이기도 하다. 이처럼 국가 부도 일보 직전의 상황으로 몰리기까지 김 전 대통령과 당시 내각의 경제관리 실패 책임이 가장 크긴 하다. 다만 노동법 개정을 결사반대했던 당시 야권이나 노동계의 책임이 없다고도 할 수 없다. 1996년 12월 문민정부는 노동법을 김대중 총재가 이끌던 야당인 국민회의의 반대를 뚫고 날치기 처리한 뒤 거센 여론의 역풍을 맞았다. 그러나 1997년 3월 새 노동법을 처리했으나,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확보하지 못하면 구제금융을 주지 않겠다는 IMF의 압력에 굴복, 결국 법안을 재개정해야 했다. 호미로 막을 수 있는데도 가래로도 못 막는 우를 되풀이할 순 없다. 이는 노동계도 각별히 유념해야 할 명제다. 노사정위에 참여해 온 한국노총이나 민중 총궐기를 부르짖는 민주노총이나 근로기준법 등 노동개혁 5대 법안에 대해 반대만 할 게 아니라 합리적 대안을 제시하기 바란다. 그 이전에 이들 상급단체에 가입하지 않은 조합원들이 급증하는 까닭부터 음미해 봐야 한다. 합산해도 10%도 안 되는 가입률로는 대표성은커녕 양대 노총이라는 용어 자체가 외람될 정도다. 두 단체가 노동자를 대변한다는 진정성을 인정받으려면 소수 정규직 노조만 쳐다보지 말고 고용 불안에 떠는 비정규직과 노동시장에 막 진입하려는 청년층부터 먼저 제도적으로 배려해야 한다. 여야와 노동계가 9·15 노사정 대타협 정신을 살려 5대 법안을 이번 회기 내에 반드시 절충해 내기를 당부한다.
  • ‘민주화·큰 인물’ 부각 속 정치적 함의 압축

    ‘민주화·큰 인물’ 부각 속 정치적 함의 압축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빈소에서는 ‘방명록 정치’가 한창이다. 특히 정치권 인사들이 김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애도하며 남긴 메시지에는 정치적 함의가 가득했다. ‘사자성어형’, ‘업적 칭송형’, ‘명복 기원형’, ‘에피소드형’ 등 그 형태도 다양했다. 어떻게 하면 남다른 메시지를 남길까 고민한 흔적도 엿보였다. 여권 인사들은 대체로 김 전 대통령이 ‘큰 인물’이었다는 점을 부각했다. 이인제 새누리당 최고위원은 ‘역사의 거인, 영면하소서’라고 남겼다. 박찬종 변호사는 ‘直情徑行(직정경행·생각한 것을 꾸밈없이 행동으로 나타냄)의 신념의 지도자’라고 적었다.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길 없는 곳에 새 길을 열고 문 없는 곳에 큰 문을 여신 시대의 큰 별께 바칩니다’라고, 홍준표 경남지사는 ‘담대함으로 대한민국을 개혁하신 업적을 우리 국민들은 모두 기억합니다’라고 썼다. 야권 인사들은 주로 ‘민주화’라는 업적을 기리는 데 초점을 뒀다. 한화갑 한반도평화재단 총재는 ‘각하의 정치 역정은 한국 현대사의 한 부분입니다’라는 글을 남겼다. 이기택 전 민주당 총재는 24일 ‘영원한 민주주의 지도자’라고 적었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이 땅에 민주화의 역사를 만든 큰 별’이라고, 같은 당 안철수 의원은 ‘고인의 민주화에 대한 신념과 헌신은 국민들 가슴속에 오랫동안 기억될 것입니다’라고 썼다. 천정배 의원은 ‘군정 종식의 역사적 위업을 남기신…’ 이라며 민주화를 강조했다. 여권으로 정계에 입문했다가 지금은 야권에 몸담고 있는 손학규 전 새정치연합 상임고문은 ‘민주 정신과 개혁 정신은 우리 역사에 영원히 빛날 것입니다’라는 방명록 글귀로 김 전 대통령의 업적과 인물 됨됨이를 동시에 칭송하기도 해 눈길을 끌었다. ‘미스터 쓴소리’ 조순형 전 의원도 ‘한국 민주주의를 지켜 낸 우리 시대 거인’이라고 쓰며 양쪽을 아울렀다. 방명록은 개성 넘치는 내용들로 넘쳐났다. 수천명이 펜을 잡았지만 똑같은 글귀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는 ‘음수사원’(飮水思源)이라는 사자성어로 강렬한 울림을 던졌다. 물을 마실 때 그 물이 어디서 왔는지 생각하라는 의미로,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민주주의가 김 전 대통령을 비롯한 선대 정치인들의 투쟁과 희생의 산물임을 잊지 말라’는 정치적 메시지를 단 네 글자에 압축해 담았다. 양승태 대법원장은 ‘민주주의를 일으킨 천하장수’라고 표현했다. 안희정 충남지사는 ‘통합과 화합의 그 말씀을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쓰며 김 전 대통령의 유훈을 되새겼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김 전 대통령의 좌우명을 인용해 ‘大道無門(대도무문)의 그 길 우리가 따르겠습니다’라고 적었다. 자신의 이름 외에 가장 짧은 메시지를 남긴 인사는 이명박 전 대통령으로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라고만 썼다. 일반 시민인 박종숙씨는 애도의 편지로 방명록의 한 페이지를 가득 채웠다. 권철현 전 주일대사는 ‘저를 정계로 이끌어 주셨던 각하. 감사합니다’, 이낙연 전남지사는 ‘아침에 가면 사모님의 시래깃국, 밤에 가면 대통령님의 와인을 주셨던 상도동을 기억하며 감사드립니다’라고 추억담을 기록했다. 이 밖에 박근혜 대통령과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 등 방명록 작성을 하지 않은 정치권 인사도 적지 않았다.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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