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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설주, 정상회담 만찬 참석키로…남북 정상 배우자 첫 공식 만남

    리설주, 정상회담 만찬 참석키로…남북 정상 배우자 첫 공식 만남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부인 리설주 여사가 27일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는 판문점을 방문한다고 청와대가 밝혔다.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이날 판문점 브리핑에서 “김정은 위원장의 부인 리설주 여사는 오늘 오후 6시 15분쯤 판문점에 도착한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와 리설주 여사는 정상회담장이 있는 평화의 집에서 환담을 나눈 뒤 환영 만찬에 참석할 예정이다. 리설주 여사가 판문점에 오기로 하면서 역사상 남북 정상의 부인 간 첫 공식 만남이 이뤄지게 됐다. 2000년 당시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방북한 김대중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와 2007년 노무현 대통령 부인 권양숙 여사는 모두 공식적인 만남 없이 북한의 여성계 대표 등을 만났다. 당시 대화 상대였던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사실상 네번째 부인 김옥은 김정일 위원장의 중국·러시아 방문에 동행하기도 했지만, 공식 배우자 자격은 아니었고 북한 매체에도 언급되지 않았다. 다만 2000년 남북정상회담 만찬 때 이희호 여사와 김옥이 같은 테이블에 앉아 비공식적으로 한 자리에 모인 적은 있었다. 그러나 김정은 체제가 들어선 뒤 북한은 최고 지도자의 배우자로서 리설주 여사의 존재와 역할을 부각시켜왔다. 리설주 여사는 그 동안 김정은 위원장의 각종 공개 일정은 물론 집권 후 첫 외국 방문이었던 지난달 25~28일 방중 때 동행해 연회 및 오찬 등 일정에 참석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부인 펑리위안의 상대 역할을 수행한 것이다. 리설주 여사는 3월 5일 김 위원장과 우리 대북특별사절단의 만찬에 동석했고, 이달 1일 동평양대극장에서 열린 남측 예술단 공연도 김 위원장과 함께 관람하는 등 최근의 주요 남북교류 행사에도 모습을 드러냈다. 이렇게 김정은 부부가 함께 외교 석상에 나서거나, 외교 과정에서 리설주 여사에게 역할을 부여하는 것은 북한도 다른 나라들과 같은 방식으로 외교를 수행하는 ‘정상국가’임을 대내외에 선전하기 위해서라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사설] 오늘 남북 정상회담, 평화의 새 장 열자

    한반도의 명운을 가를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이 오늘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열린다. 문재인 대통령은 오전 9시 30분 군사정전위 회의실 앞 군사분계선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첫 만남을 하게 된다. 이어 의장대 사열 등 공식 환영식을 마치고 나면 회담장인 평화의집으로 이동, 오전과 오후 두 차례 정상회담을 한 뒤 합의문에 서명한 다음 이를 발표할 예정이다. 두 정상은 북한의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남북 교류 활성화 등 3대 의제를 두고 역사적인 담판을 벌이게 된다. 이전에 두 차례 정상회담이 있었지만, 이처럼 광범위하면서도 구체적인 의제를 테이블에 놓은 적은 없다. 2000년과 2007년 정상회담은 평화와 관계 개선에 방점이 있었지만, 이번 회담에는 비핵화와 항구적인 평화체제 구축이 핵심 의제로 올라 있다. 분위기는 무르익었다. 정상 간 핫라인이 개통되고 북한은 핵·미사일 실험 중단 선언을 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대북·대남 확성기 방송도 중단됐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도 미국을 방문해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을 만나 회담 준비를 비롯해 한반도 비핵화 달성을 위해 긴밀한 협의를 마치고 어제 귀국했다. 북핵은 한반도만의 문제가 아닌 전 세계적인 문제다. 오늘 정상회담을 취재하기 위해 내외신 취재진만 3000여명이 몰리는 등 세계의 관심이 온통 한반도로 향하고 있다. 회담이 성공적으로 끝나면 남북은 70년 대치를 끝내고, 이번 회담의 표어처럼 ‘새로운 평화의 시대’로 나아갈 수 있게 된다. 아직은 먼 얘기지만, 통일의 꿈도 꾸어 볼 수 있을 것이다. 비핵화의 문을 열면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것이다. 동북아의 불안정 해소는 물론 신냉전 구도의 완화에도 기여하게 된다는 점에서 세계사적 의미는 크다 하겠다. 그러나 그 전제조건은 김 위원장의 명확한 비핵화 선언이다. 김 위원장은 지난달 초 문 대통령 특사단과의 만남 등에서 ‘조건만 맞는다면 비핵화를 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바 있어 기대가 크다. 바람직한 것은 남북 정상이 회담이 끝난 뒤 있을 ‘판문점 선언’에 완전한 비핵화의 의지를 담는 것이다. 1953년 휴전협정을 맺은 자리에서 비핵화의 의지를 표명하고,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선언한다면 그 이상의 의미가 더 어디 있겠는가. 남북 정상회담은 그 자체로 역사적이지만 한미ㆍ북미 정상회담으로 가는 과정의 디딤돌이라는 점 또한 현실이다. 이번 회담에서 기대한 대로 신속한 비핵화 로드맵이 나오면 좋겠지만, 비핵화 의지만 표명하고 다른 2개 의제에 합의하는 선에서 그칠 수도 있다. 한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비핵화 입구가 이번 남북 정상회담이라면 출구는 북ㆍ미 정상회담이라는 점도 잊지 않았으면 한다. 덧붙여 이번 정상회담이 역사의 전환점이 될 중대한 회담인 만큼 준비에서 한 치의 실수도 허용되지 않는다는 점도 강조한다.
  • [단독] 신생아 RSV 확진에도… 보건소 늑장 대응

    [단독] 신생아 RSV 확진에도… 보건소 늑장 대응

    동작구 조리원 신생아 절반 감기 의심 신고했지만 병원 약 처방 뿐 2명 확진 뒤에야 보건소 역학조사 “2주 전 나섰더라면” 산모들 분개서울 동작구 청화병원의 산후조리원에 머물던 신생아 2명이 폐렴을 일으킬 수 있는 RSV(호흡기세포융합바이러스) 확진 판정을 받은 사실이 지난 23일 알려지면서 보건 당국이 역학조사에 나섰다. 하지만 이 병원 산모들은 2주 전쯤 보건소에 RSV 감염이 의심된다고 신고했지만, 보건소가 손을 놓고 있다가 뒤늦게 대응에 나섰다며 성토했다. 26일 동작구보건소 관계자는 “신생아 2명이 RSV 양성 판정을 받은 사실을 지난 23일 인지했다”며 “24일 조리원에 역학조사를 나갔고 조리원에 있던 산모와 신생아를 대상으로 모니터링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청화병원 측은 “24일 동작구보건소 역학조사팀이 (양성 판정을 받은 신생아가 머문) 조리원 2관의 직원 전체와 연관성이 있다고 의심되는 신생아 6명 및 산모 6명의 검사를 의뢰했고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라며 “적극적으로 대처하고자 조리원 2관의 일시 휴업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보건소로부터 RSV 검사를 받으라고 통보받은 산모 최모(32)씨는 “이달 초 조리원에 있을 때부터 우리 아이를 비롯해 신생아들이 감기 증상을 보였다”며 “RSV가 전국적으로 유행한다는 얘기를 들어 산모들이 아이의 증상을 의사에게 말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고 말했다. RSV는 전염성 강한 바이러스로 영유아의 경우 기관지염이나 폐렴으로 악화될 수 있다. 최근 한 달 사이 대전과 부산, 경북 포항 등의 산후조리원에 머물던 신생아들도 잇따라 RSV 양성 판정을 받았다. 최씨는 지난 10일 아이와 함께 조리원을 퇴소했지만 그날 이후 아이의 감기 증상은 악화됐다. 같은 시기 조리원에 있었던 신생아들도 퇴소 후 감기가 심해졌다는 소식을 들은 최씨는 지난 11일 동작구보건소에 “신생아들이 감기 증상을 보이는 데 RSV에 감염된 것 같다. 역학조사를 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보건소는 “산모가 신생아와 함께 개인적으로 RSV 검사를 받고 확진을 받아야 우리가 역학조사를 할 수 있다”고 답했다고 최씨는 전했다. 이후 최씨와 같은 조리원 건물에 있던 20여명의 신생아 중 10여 명이 감기 증상을 보였고, 일부는 기관지염, 중이염, 폐렴으로 악화돼 병원 치료를 받기에 이르렀다. 최씨는 “퇴소 후 아이를 데리고 다시 청화병원에 갔지만 병원 측은 병명은 얘기해주지도 않고 약만 조제해줬다”고 말했다. 결국 지난 13일과 15일 퇴소한 신생아 2명이 RSV 확진 판정을 받자 동작구보건소는 지난 25일 최씨를 비롯한 조리원 산모들에게 이같은 사실을 알렸다. 최씨는 “2주 전 RSV 감염이 의심된다고 신고했을 때 보건소 측이 즉각 역학조사에 나서거나 ‘와서 검사를 받아보라’고 한마디만 했어도 조기에 RSV를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분개했다. 이에 대해 보건소 관계자는 “23일에 RSV 양성 확진을 인지했다”며 “그전에는 보건소가 역학조사 등의 조치를 취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남북정상회담 일정에 리설주 동행하나…임종석 “협의 안 끝나”

    남북정상회담 일정에 리설주 동행하나…임종석 “협의 안 끝나”

    하루 앞으로 다가온 남북정상회담 일정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부인 리설주 여사 동행 여부에 관심이 모아진다.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회 위원장인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은 26일 경기 일산 킨텍스에 차려진 남북정상회담 메인프레스센터(MPC)에서 가진 브리핑에서 “아직 협의가 완료되지 않아 리설주 여사의 동행 여부를 결정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임종석 실장은 “저희로서는 (회담 당일은 27일) 오후에 혹은 만찬에 참석할 수 있기를 많이 기대하고 있지만 아직 확정적으로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그간 북한 최고지도자들의 배우자들은 공식 석상 전면에 나서는 일이 드물었다. 특히 외교 행사에서 공식 배우자 자격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일은 거의 없었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사실상 네번째 부인이었던 김옥은 김정일의 중국·러시아 방문에 동행하기도 했지만, 공식 배우자 자격은 아니었다. 북한 매체에 언급되지도 않았다. 그러나 김정은 집권 이후 북한은 최고지도자의 배우자로서 리설주 여사의 존재와 역할을 전면에 부각시키기 시작했다. 그 동안 리설주 여사는 김정은 위원장과 함께 각종 공개 일정에 함께 한 데 이어 집권 후 첫 외국 방문이었던 지난달 25~28일 방중 때 연회와 오찬 등 공식 일정에 참석했다. 특히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부인 펑리위안의 상대 역할을 명확히 수행했다. 리설주 여사는 3월 5일 김정은 위원장과 함께 우리 대북특별사절단 만찬에 동석한 바 있다. 지난 1일 동평양대극장에서 열린 남측 예술단 공연도 김정은 위원장과 함께 관람하는 등 최근 이뤄진 주요 남북교류 행사에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 14일에는 중국 예술단의 방북 공연에 김정은 위원장 없이 홀로 관람, 다른 나라 정상의 배우자들처럼 독자 활동에 나서는 모습을 처음 보이기도 했다. 이렇게 김정은 부부가 함께 외교 석상에 나서거나, 외교 과정에서 리설주가 역할을 맡는 것은 북한도 다른 나라들과 같은 방식으로 외교를 수행하는 ‘정상국가’임을 대내외에 부각시키기 위해서라는 분석이 나온다. 북측이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도 이런 효과를 거두기 위해 이번에는 리설주 여사가 김정은 위원장과 동행해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를 만날 가능성이 있다. 나아가 김정숙 여사와 별도로 남북 최초로 ‘퍼스트레이디 회동’을 가질 수도 있다. 앞서 2000년 1차 정상회담 때 방북한 이희호 여사나 2007년 2차 정상회담 때 방북한 권양숙 여사는 북한의 여성계 대표들을 만나는 데 그쳤다. 다만 이번 정상회담이 실무적 성격이고, 회담이 열리는 판문점도 비교적 제한된 공간이기 때문에 두 정상 배우자들이 함께할 만한 일정이 마땅치 않다는 전망도 나온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기획] 한국 근·현대 건축의 토대가 된 건축가 김중업의 세브르가 3년 2개월

    [기획] 한국 근·현대 건축의 토대가 된 건축가 김중업의 세브르가 3년 2개월

    1950년대 이후 서구 건축이 한국에 본격적으로 도입되는 단계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는 평가를 받는 김중업. 한국 건축계의 거장인 그의 서거 3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전(김중업, 르 코르뷔지에를 만나다-파리 세브르가 35번지의 기억)이 지난달 31일부터 6월 17일까지 안양예술공원 김중업건축박물관에서 열린다. 김중업이 세계 현대 건축계의 거장 르 코르뷔지에의 파리 세부르가 아틀리에에 3년 2개월간 머물며 그가 참여한 작품을 살펴보고, 건축의 시작점을 확인하는 의미 있는 전시다. 동시에 한국 현대건축이 서구 모더니즘 건축을 직접 받아들이는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30대 초반의 김중업은 1952년 베니스 제1회 국제예술가대회에서 르 코르뷔지에를 처음 만났다. 일을 배우고자 다시 파리로 찾아간 김중업에게 르 코르뷔지에가 낸 첫 과제는 인도 샹디갈 청사 옥상정원 설계안. 김중업은 태극문양 정원을 설계해, 승락을 받았다. 그 만남을 계기로 파리 세브르가 35번지에 있는 르 코르뷔지에의 아틀리에에서 일할 기회가 주어졌다. 아틀리에 일원으로 일하는 동안 김중업은 르 코르뷔지에 후기 12개 작품에 참여해 180여 장에 달하는 도면에 자기의 이름을 또렷이 새길 수 있었다. 세계 건축의 흐름과 경향을 몸소 체험하면서 세브르가에서 익힌 건축이론과 실무는 그의 건축인생 40년 동안 남긴 200여 개의 프로젝트와 작품의 토대가 됐다. 프랑스 건축가인 르 코르뷔지에가 유럽, 인도 등 7개국에 남긴 그의 17개의 건축물은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됐다김중업과 세계 현대건축계의 거장인 르 코르뷔지에와의 만남은 단순히 개인 차원을 넘어 한국 건축사에 매우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다. 정인하(54) 한양대 건축학 교수는 그의 논고 ‘김중업 건축의 이해’에서 “김중업은 파리 세브르가에 머물며 현대건축사에서 가장 중요한 건축물들이 설계되는 과정을 지켜보았다”며 “이것은 세계 현대건축의 흐름에 능동적으로 참여하지 못했던 한국건축이 본격적으로 여기에 뛰어드는 출발점을 의미한다”라고 강조했다. 또 “한국건축과 서구건축 사이를 직접 소통시키는 접점”이라며 의미를 부여했다. 그동안 근대건축의 대부분을 일본이라는 필터를 통해 이식했다는 점에서도 한국 근·현대 건축사에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이번 전시는 김중업의 파리 세브르가에서의 건축 여정을 시간순으로 쫓아가 보며, 르 코르뷔지에의 아틀리에에 근무하며 참여했던 작품이 무엇이고, 그 과장에서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살펴보고 있다. 모듈러 이론이 적용된 르 코르뷔지에의 개인 사무실과 김중업이 밤새워 작업했던 아틀리에를 부분적으로 복원해 당시 상황을 이해하도록 도왔다. 김중업이 참여한 르 코르뷔지에의 주요 10개 작품의 원본 도면 124점과 스케치를 대여해 전시한다. 파리 근교 뇌이의 ‘자울 주택’, 프랑스 북서부 낭트 레제의 ‘유니테 다비타시옹’, 인도 샹디갈의 의사당·행정청사·고등법원·주지사 관저, 인도 아메다바드의 방직자협회 회관·쇼단 저택 등 김중업이 참여했던 작품의 의미와 그의 역활을 소개한다. # 낭트 레제 ‘유니테 다비타시옹’, 뇌이 ‘자울 주택’‘유니테 다비타시옹’은 프랑스 정부가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심각한 주택난을 해결하기 위해 계획한 대규모 공동주택 프로젝트다. 세계 최초이자 현대식 아파트의 모태가 됐다. 처음 지어진 프랑스 마르세유 ‘유니테 다비타시옹’은 길이 137m, 폭 25m, 높이 70m에 이르는 철근 콘크리트 건물로 브루탈리즘을 표방했다. 르 코르뷔지에가 제시한 현대건축의 5원칙 중 1층 필로티와 옥상정원이 적용됐다. 23개의 다양한 평면에 총 337세대로 이뤄졌다. 8, 9층에는 식료품점, 호텔 객실. 세탁소 등 상업시설이 있고, 옥상테레스에는 초등학교와 유치원. 도서관. 운동공간 등 다양한 편의시설이 들어섰다. 김중업이 참여한 낭트 레제의 유니테 다비타시옹은 마르세유에 이어 두 번째로 지어진 건축물로 규모가 약간 작다. 구조와 사용한 재료, 세부에 있어 차이가 있다. 김중업은 가구 계획 입면도와 단면도, 가구 도면을 그렸다. 프랑스와 독일에 총 5개의 유니테 다비타시옹이 지어졌다.파리 근교 뇌이에 위치한 자울 주택은 1955년에 완공된 두 채의 집이다. 르 코르뷔지에가 발전시킨 브루탈리즘의 미학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도장하지 않은 콘크리트, 벽돌, 타일과 같은 재료를 노출, 거친 상태 그대로 사용하는 등 새로운 건축언어를 표현했다. 김중업은 자울 주택 B동 종단면도를 그렸다. #인도 샹디갈 프로젝트“샹디갈의 엄청난 프로젝트를 책임지고 때로는 울고 때로는 웃는, 뼈를 가는 제작의 세계에 몰입한 체험이 나에게 건축에의 참 눈을 뜨게 해주었다.” 김중업은 1984년 출간된 자신의 작품집에서 샹디갈 프로젝트 참여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인도 북부 펀자부주의 수도인 샹디갈은 르 코르뷔지에가 유일하게 실현시킨 계획도시다. 1947년 펀자브주가 인도와 파키스탄의 영토로 각각 분활 되면서 인도에 속한 펀잡주의 새로운 수도 계획은 시작됐다. 이곳에 지어진 기념비적인 건축물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김중업이 아틀리에 일원일 됐을 무렵 이미 캐피털의 배치가 완료돼, 주요 건물의 설계가 진행 중이었다. 김중업은 행정청사 평면도를 시작으로 장관 구역 입면 등 도면 작업에 전념했다. 길이 254m 높이 9층의 대규모 건물인 행정청사는 6개 블록으로 구성됐다. 김중업이 디지인한 장관구역 입면은 건물 정면 기준으로 시각적 중심에 해당한다. 전체 입면을 차양 장치인 브리즈 솔레이유로 구성하면서 장관 구역은 다른 패턴으로 처리해 상징적 변화를 꾀했다. 건물 내부 코어는 부드러운 곡선 형태로 디자인해 건물 외면의 딱딱한 느낌을 상쇄했다. 김중업은 건물의 중심인 장관구역 입면을 비롯 행정청사 남서측 입면, 장관구역 8층 평면, 1, 2층 평면도 등을 그리며 중요한 역할을 했다.김중업이 단면도 4장을 그린 샹디갈 의사당 건물은 지붕의 상·하원을 상징하는 원뿔형 천창이 돋보인다. 메인 건물을 반듯한 직사각 형태로 올리고 한쪽에 완만한 곡선 형태의 건물을 더해 전체적으로 조화로운 느낌을 줬다. 거대한 곡선의 지붕은 옥상에 그림자를 만들고 햇빛과 비를 막는 기능을 한다. 고등법원은 의사당과 마주 보게 배치됐다. 건물 본체와 분리된 파라솔 형태의 지붕은 상징적 의미를 지닌 동시에 기후를 조절하는 기능적 역할을 한다. 김중업은 고등법원의 대형법정, 법정 홀 등의 태피스트리를 제작했다. # ‘아메다바드의 방직자협회 회관’, ‘쇼단 저택’아메다바드는 인도 최대 면화 생산지 중 하나인 구자라트 주의 중심지로 대표적인 방직공업도시다. 르 코르뷔지에는 샹디갈의 도시계획을 진행하면서 동시에 이곳에 방직협회회관, 사라바이 저택, 빌라 쇼단의 건물을 지었다. 르 코르뷔지에는 방직협회회관 입면에 브리즈 솔레이유를 부착, 인도의 기후와 문화가 그대로 배어 있는 전통적인 주거양식을 반영했다. 르 코르뷔지에의 전형적인 건축형태인 필로티가 대지를 받치고 있고, 벽면은 인도의 방직공장에서 볼 수 있는 벽돌을 사용했다. 김중업이 설계한 램프는 서서히 올라가면 강을 조망할 수 있고, 2층 포럼과 옥상 정원에 갈 수 있는 계단에 도달하도록 설계됐다 이와 함께 방직자협회 한 후원자를 위해 설계된 쇼단 저택은 시원한 통풍과 그늘을 제공하기 위해 브리즈 솔레이유로 둘러져 있다. 거대한 슬래브로 된 파라솔 형태의 지붕을 설치해 건물 전체를 강한 빛과 열기를 막았다. 김중업은 방직자협회회관, 쇼단 저택 등 도면 일부를 그렸으나 참여 비중은 크지 않았다. 김중업은 1955년 10월 르 코르뷔지에로부터 편지 한 통을 받는다. 건강상의 문제로 업무량과 사무실 규모를 줄이기로 했다는 내용이었다. 1955년 12월까지 업무를 마친 후 1956년 2월 귀국했다. 종로에 사무실을 연 김중업은 세브르가의 체험을 바탕으로 자기만의 독특한 경지를 구축하며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33명의 목숨을 앗아간 마포구 창전동 와우아파트 붕괴사고(1970년) 등 정부의 건축 정책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1971년 강제 출국 당한 후 1978년 귀국할 때까지 10년을 포함, 그의 건축인생 40여년동안 유작인 올림픽공원의 평화의 문까지 200여개의 프로젝트와 작품을 남겼다. 특히 한국 건축의 전통적인 구축성을 근대적인 방식으로 표현한 ‘주한 프랑스 대사관’(1960년)은 한국 건축사의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꼽힌다. 남상인 기자 sanginn@seoul.co.kr
  • 통상환경 악화로 수출 비상… 17개월 연속 증가세 꺾이나

    통상환경 악화로 수출 비상… 17개월 연속 증가세 꺾이나

    17개월 연속 증가하며 경제 성장을 견인해 온 수출이 이달 들어 감소세로 돌아서거나 증가율이 대폭 둔화될 전망이다. 정부와 수출 기업에 비상이 걸린 것이다. 미국의 통상 압박과 미·중 무역전쟁 등 주요 2개국(G2) 리스크와 함께 북핵 리스크 완화로 원화 강세까지 겹치는 등 수출 하방 압력이 커져서다.산업통상자원부는 20일 코트라와 무역보험공사 등 수출지원기관과 산학연 관계자 등이 참석한 ‘무역정책협의회’와 ‘주요 업종 수출 점검회의’를 잇따라 개최해 4월 수출 동향을 점검하고 업종별 수출 진작 방안을 논의했다. 김영삼 산업부 무역투자실장은 “올해 1분기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10.3% 증가해 3월까지는 증가세가 유지됐다”면서 “하지만 4월 수출은 주요국 보호무역 조치와 환율 하락, 주요국 통화정책 정상화에 따른 국제 금융시장 불안전성 심화 등 대외 통상 환경 악화로 증가를 낙관하기 어렵다”고 우려했다. 여기에 지난해 4월 수출이 많아 전년 동기 대비 수출 증가율이 확 떨어지는 기저효과까지 겹칠 전망이다. 회의에서는 정보기술(IT) 분야 경기가 좋고 국제 유가도 상승세여서 이달에도 13대 수출 주력 품목 중 반도체와 컴퓨터, 석유제품, 석유화학 등은 수출 증가세가 계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반면 수주 잔량이 감소한 선박과 최대 수출 시장인 북미 지역 판매가 부진한 자동차, 수출 단가가 하락한 디스플레이 액정표시장치(LCD) 등의 수출은 줄어들 것으로 봤다. 산업부는 수출 증가율 둔화 폭을 최소화하기 위해 오는 23일부터 전문무역상사를 대상으로 단기수출보험 할인을 시행하기로 했다. 전문무역상사가 신시장 개척과 품목 다변화의 첨병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중소기업 제품을 수출할 경우 보험료 할인율을 25%에서 35%까지 확대한다. 베트남·브라질·이란 등 신흥시장에 수출하면 보험료를 10% 깎아 준다. 오는 8월 완료를 목표로 했던 ‘지사화 사업’ 800여건도 5월로 앞당긴다. 지사화 사업이란 코트라 해외 무역관 등 공공기관 해외 거점에서 중소·중견기업의 해외지사 역할을 수행하며 수출을 돕는 서비스다. 산업부는 3400개 기업에 1200억원 규모의 수출 바우처도 발급하기로 했다. 원·달러 환율 하락으로 인한 중소·중견기업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지난달 말에서 다음달 4일까지로 연장한 환변동 보험 지원 확대의 추가 지원도 검토한다. 산업부는 ‘코리안-메이드’(Korean-Made, 한류 브랜드 경쟁력 활용) 전략의 일환으로 패션의류와 화장품, 액세서리 등 ‘K스타일 산업’의 글로벌 진출을 적극 지원하기로 했다. 한류 열풍의 중심지인 태국, 싱가포르 등 신남방 지역을 중심으로 수출 상담회에 한류스타를 초청, 공연·팬사인회 등을 여는 ‘한류 융합 상품전’을 개최한다. 현지 유통망과 협력해 판로 개척을 지원하는 등 다양한 한류 연계 마케팅으로 한류 상품 붐업도 유도하기로 했다. 장은석 기자 esjang@seoul.co.kr
  • 전시행정 vs 역사성 복원…질곡의 광장개발 역사

    전시행정 vs 역사성 복원…질곡의 광장개발 역사

    “전시성 사업에 1000억대 시민 혈세를 들이겠다고 한다. 오세훈 시장 때 700억에 이어 또 1000억, 광장이 시장 홍보 무대가 돼서는 안 된다” 안철수 바른미래당 서울시장 예비후보가 1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지난 10일 박원순 시장이 발표한 ‘새로운 광화문광장 조성 기본계획’을 정면으로 비판한 내용이었다. 광화문광장을 3.7배(1만 8840㎡→6만 9300㎡)로 확장하려는 박 시장의 계획이 3선 연임을 위한 홍보 사업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안 후보 역시 지난 대선 당시 ‘광화문광장 확장’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정치인과 행정가들의 ‘광장 집착’의 배경에는 결국 선거와 맞물려 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상징적인 대형 건축 공사는 이를 결정한 사람의 업적처럼 평가되기 때문이다. 이런 흐름은 과거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쭉 이어질 전망이다. ● 불도저 김현옥의 유산…체제선전의 장 여의도광장직장인들의 쉼터로 자리 잡은 여의도공원은 1916년 일제가 건설한 여의도 비행장과 활주로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여의도 비행장은 광복 이후에도 유지됐고, 이곳에서 대한민국 공군이 창설되기도 했다. 서울의 복판에 위치한 덕에 20년에 가까운 기간 공군의 최대 기지로 자리했다. 비행장으로만 쓰던 공간의 성격을 통째로 바꾼 건 ‘불도저 시장’으로 불리던 김현옥 전 서울시장(1966.3.31.~1970.4.15 재임)이다. ‘토목’과 ‘건축’을 지상 목표로 삼았던 김 시장은 ‘여의도 개발계획’을 밀어붙였다. 홍수가 잦던 여의도의 제방을 쌓을 재료를 마련하기 위해 밤섬을 폭파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그런데 김 시장이 추진하던 마포 와우아파트가 1970년 4월 8일 붕괴되며 사직했고, 여의도 개발은 다음 시장에게로 넘어갔다. 와우아파트 붕괴로 대책을 마련하던 서울시는 여의도를 개발할 자금이 크게 부족한 상태였고, 후임 양택식 전 시장(1970.4.16.~1974.9.1 재임)은 여의도 개발을 민간에게 맡겼다. 이 과정에서 여의도 비행장의 거대한 활주로는 ‘5·16 광장’이라는 이름으로 재탄생한다. 이후 5·16광장은 국가가 주도한 다양한 관변 행사의 무대가 됐다. 5공화국 당시 5.18 민주화 운동 1주년 행사 및 민중들의 반정부 운동 차단 목적으로 치러진 ‘국풍81’이 대표적이다. 체제 선전의 장이었던 여의도광장은 김영삼 정부에 이르러 변화를 모색했고, 1999년 2월 서울특별시 시립공원인 여의도공원으로 재탄생하며 지금의 틀을 갖췄다. ● 헬게이트 교차로에서 시민 휴식터로…서울광장조선 후기 고종의 강제퇴위를 요구하는 일제를 반대하는 ‘고종 반대시위’부터 4.19 혁명, 6월 민주항쟁, 2002년 월드컵 거리응원 그리고 촛불 혁명에 이르기까지. 시청 앞 광장의 역사는 늘 민중과 함께했다. 그러나 2004년 ‘서울광장’으로 재탄생하기 전까지 시청 앞 광장은 ‘아스팔트 도로’에 지나지 않았다. 시청 앞 광장은 광장보다는 ‘교차로’로서의 기능이 강했다. 세 네 겹으로 뒤엉킨 도로는 늘 교통체증을 유발했고, 평상시 보행자가 광장에 들어가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시청 앞 광장은 복잡한 교통 체계 탓에 ‘사고 다발 지역’으로 악명이 높았다. 이명박 전 시장(2002.7.1.~2006.6.30 재임)은 시청 앞 광장에 서울광장을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서울시는 광장의 명칭을 공모해 ‘서울광장’으로 이름을 정했다. 마침내 2004년 5월 1일 서울광장 개장식이 열리며 서울광장이 탄생했다. 그러나 서울광장 역시 탄생과 함께 ‘전시행정’이라는 비판에 직면했다. 서울광장 ‘디자인 공모전’에서 시멘트 바닥을 기초로 한 구조가 1위에 올랐음에도 사람들에 의해 쉽게 망가질 수 있는 잔디광장을 채택했고, 시의회가 ‘광장 조성목적에 위배되는 경우에 사용 불허’하는 내용을 담은 조례안을 통과시켜 시민들의 광장 사용에 제약을 가했기 때문이다. 이에 반발한 시민단체들은 서울광장이 개장한 2004년 4월 직후 ‘집회·시위의 자유를 허하라!’라는 주제로 문화행사를 열어 ‘서울광장’이 온전한 광장의 역할을 수행할 것을 요구했다. 각계의 단체와 인사들이 끊임없이 요구한 끝에 시의회는 2010년 서울광장에서의 집회를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바꾸는 내용으로 골자로 한 ‘서울광장조례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를 바탕으로 서울광장에서는 2006년 남아공 월드컵과 2010년 독일 월드컵 거리응원이 이어졌고, 2009년 5월 서거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노제와 2016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집회가 벌어졌다. ● 거대 중앙분리대 오명도…광화문광장 이명박 전 시장은 서울광장의 완공과 함께 ‘광화문광장’의 재탄생을 추진했다. 이 전 시장은 ‘시민광장 조성 기본계획’을 통해 도로 양측에 나눠 광장을 배치하는 방안을 제시했고, 문화재청은 2005년 세종문화회관 쪽으로 치우쳐 광장을 조성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같은 해 서울시는 ‘시민광장 조성계획’을 통해 중앙 배치안을 확정했다.공사는 오세훈 전 시장(2006.7.1.~2010.6.30. 재임) 기간에 완료됐다. 2006년 광화문 철거 공사를 시작으로 광화문 광장 조성 사업이 시작됐고 2009년 완공됐다. 공사에 투입된 예산은 총 722억원이었다. 그런데 새로 만들어진 광화문광장은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중앙분리대’라는 오명을 안고 시작했다. 세종대로 사이에 갇혀 시민들이 광장을 온전히 이용할 수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전시행정’이라는 비난 역시 뒤따랐다.광화문광장의 세종문화회관 방면 이전이나 세종로의 전면 지하화 같은 주장도 이어졌다. 여기에 3선 연임 도전에 나선 박원순 시장의 카드 역시 ‘광화문광장’이다. 광장 확장을 골자로 한 박 시장의 ‘새로운 광화문광장 조성 기본계획’ 또한 비판의 도마에 올랐다. 서울시는 광화문광장 확장에 따른 교통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차량통행을 우회도로로 분산시키고 도심외곽 안내체계를 개선하는 등 개편 방안을 마련했지만 교통체증 악화를 우려는 여전하다. 또한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와 신분당선의 광화문역 설치를 추진하겠다고 밝혔지만 성사여부는 불투명하다. 신형철 기자 hsdori@seoul.co.kr
  • 노무현과 그의 사람들 이야기…다큐멘터리 ‘바보, 농부’ 촬영 중

    노무현과 그의 사람들 이야기…다큐멘터리 ‘바보, 농부’ 촬영 중

    故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를 맞아 다큐멘터리 영화 ‘바보, 농부’(가제) 제작 소식이 전해져 기대를 모은다. ‘바보, 농부’는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퇴임 후 고향 봉하마을로 돌아간 2008년부터 지금까지 그와 함께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2008년 고향을 다시 찾으며 시작한 화포천 청소부터 봉하산 가꾸기, 친환경 쌀 재배까지 참여정부 마지막 기록관리비서관 김정호를 비롯해 서거 이후에도 그의 유업을 이어가는 이들의 삶을 기록 중이다. 영화는 2017년 최고의 다양성 영화로 인정받은 ‘꿈의 제인’ 프로듀서 백재호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또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다룬 최초의 다큐멘터리 ‘무현, 두 도시 이야기’ 연출자인 전인환 감독이 프로듀서를 맡아 더욱 기대를 모은다. 서거 10주기를 맞이해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전하고 싶던 이야기와 여전히 그와 함께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바보, 농부’는 2019년 상반기 극장개봉을 목표로 박차를 가하고 있다.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 이재명 “혜경궁김씨, 아내 계정 아닌 이유는…” 반박근거 공개

    이재명 “혜경궁김씨, 아내 계정 아닌 이유는…” 반박근거 공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경기지사 예비후보측이 혐오표현·허위사실 유포 등으로 논란이 된 트위터 계정 ‘정의를 위하여(08__hkkim)’가 아내의 계정이 아니라는 장문의 반박자료를 발표했다.이재명 예비후보는 16일 SNS에 ‘트위터 김 씨 계정 사건의 팩트와 결론’이라는 제목으로 A4용지 5장 분량의 글을 올렸다. 이 예비후보는 “김씨는 카카오스토리(이하 카스)를 잠깐 운영하다 중단한 외에 SNS 계정이 없고 하지도 않는다. 김씨의 인스타그램 계정은 2017년 대선 경선 때 캠프에서 시험용으로 만들었지만 사용은 하지 않았고 김씨의 SNS 활동도 이 예비후보의 페이스북 댓글과 기사 댓글을 보고 모니터링해준 수준이었다”고 강조했다. 문제의 계정 주인이 이 예비후보가 어머니와 찍은 대학입학 사진을 어떻게 이 예비후보보다 10분 먼저 올릴 수 있었냐는 의혹에 대해 법률 자문단은 △2014년 1월 15일 오후 10시 40분 김혜경 씨가 카카오스토리(일명 카스)에 ‘이재명 대학입학 사진’을 올렸고 △오후 10시 50분 08__hkkim이 김혜경 씨의 카스 계정에 있던 ‘이재명 대학입학 사진’을 다운받아 올렸고 △오후 11시와 11시 16분에 이 예비후보가 본인의 카스 계정과 트위터 계정에 ‘이재명 대학입학 사진’을 각각 올렸다고 적었다. 자문단은 김혜경씨의 생일 8월과 이 계정 아이디가 연관이 있다는 지적에는 “SBS 동상이몽 ‘아내 생일편’은 2017년 9월이지만 제작 사정 상 8월 말에 촬영을 한 후 다시 선물을 주는 장면을 9월 초에 찍고 실제 생일에 맞춰 방영한 것”이라며 “김혜경 씨의 실제 생일은 9월 1*이다.실제 생일이 9월로 밝혀지자 음력 생일이 8월이라는 주장도 나왔는데, 음력생일은 7월 2*”이라고 밝혔다. 고(故)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인식과 태도에서도 억울함을 표했다. 자문단은 “김혜경씨는 노 대통령과 권양숙 여사를 존경하고 자주 만나며 권 여사도 김혜경씨를 아껴줬다”면서 김혜경씨가 노 대통령 서거 당시 성남의 야탑분향소를 지켰고, 수 년 동안 매해 노무현 대통령 참배와 권양숙 여사 예방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법률자문단은 ‘08__hkkim’이 김혜경씨의 카스를 받아보는 사람이고, 이재명 예비후보에게 관심이 많은 사람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또 이번 의혹에 대해 고소·고발하지 않고 소극적이었던 이유로 “선거 상황에서 내부를 향한 과잉대응으로 비춰질 우려 때문이었다”고 해명했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일제 만행 폭로한 ‘34번째 민족대표’ 스코필드 박사 48주기 추모식 열려

    일제 만행 폭로한 ‘34번째 민족대표’ 스코필드 박사 48주기 추모식 열려

    3·1운동 당시 일제의 만행을 폭로하면서 ‘34번째 민족대표’로 알려진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한국명 석호필) 박사의 48주기 기념식이 12일 열렸다. 스코필드 박사는 독립운동에 이바지하는 등의 공로로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된 유일한 외국인이다. 서울대 주최로 수의과대학 스코필드홀에서 진행된 추모기념식에는 국무총리를 지낸 정운찬 ‘호랑이스코필드기념사업회’ 명예회장,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성낙인 서울대 총장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 참석자들은 기념식에 앞서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된 스코필드 박사 묘역에 참배했다. 정 명예회장은 “3·1운동의 기록자와 홍보자의 역할을 감당했던 스코필드 박사를 한국사회는 민족대표 33인에 이어 34번째 민족대표라 부른다”면서 “약자에 대한 배려, 정의감, 불의와 부패에 대한 투쟁은 3·1운동을 겪으며 스코필드 박사가 다듬어 온 소중한 가치”라고 강조했다. 성 총장은 “이번 추모기념식은 스코필드 박사의 나눔과 베풂의 정신을 나누는 자리”라고 말했다. 성 총장은 관악구에 사는 중학생과 서울대 수의과 재학생들에게 스코필드 장학증서를 전달했다. 김 위원장은 ‘21세기의 스코필드를 향하여-공정거래위원회의 역할과 과제’라는 주제로 특별강연을 펼쳤다. 1916년 선교와 교육을 위해 한국에 온 스코필드 박사는 1919년 탑골공원과 시청 앞에서 벌어진 3·1운동과 경기 화성시 제암리 학살현장을 사진으로 담아 전 세계에 알렸다. 1958년 한국에 돌아온 박사는 1970년 서거할 때까지 서울대 수의대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고아와 어려운 학생을 돌보는 일에 여생을 바쳤다.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 패트릭 리드, 생애 첫 ‘그린재킷’ 입다

    패트릭 리드, 생애 첫 ‘그린재킷’ 입다

    9언더파 맹추격 스피스 따돌리고 최종 15언더파 마스터스 우승패트릭 리드(28·미국)가 생애 처음으로 ‘그린 재킷’의 주인이 됐다. 리드는 9일(한국시간)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파72·7435야드)에서 열린 제82회 마스터스 토너먼트 4라운드에서 버디 4개와 보기 3개로 1언더파 71타를 쳤다. 최종합계 15언더파 273타를 기록한 리드는 이로써 14언더파 274타의 리키 파울러(미국)를 1타 차로 따돌리고 생애 첫 메이저 정상을 밟았다. 우승 상금은 198만 달러(약 21억1000)다. 조던 스피스(미국)는 8타를 줄이는 맹추격을 벌였으나 13언더파 275타로 3위에 만족해야 했다. 스피스는 4라운드 한때 공동 선두까지 오르며 우승권을 위협했지만 마지막 18번홀(파4)에서 보기가 나오는 바람에 3위로 경기를 마쳤다.이번 대회에서 우승했더라면 ‘커리어 그랜드 슬램’을 달성할 수 있었던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는 9언더파 279타로 공동 5위에 머물렀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미국)는 최종합계 1오버파 289타로 공동 32위, 한국 선수로는 유일하게 출전한 김시우(23)는 1언더파 287타로 공동 24위를 각각 기록했다. 재미교포 아마추어 덕 김(22)은 8오버파 296타, 공동 50위에 머물렀지만 아마추어 선수 가운데 가장 좋은 성적을 냈다. 단독선두로 최종 라운드를 시작한 리드는 이날 뜻밖의 추격자에 진땀을 흘렸다. 스피스는 3라운드까지 5언더파로 리드에 무려 9타나 뒤진 9위에 머물러 있었다. 하지만 1, 2번 홀 연속 버디로 타수 줄이기에 나서더니 전반에만 5타를 줄여 식간에 선두 경쟁에 합류했다. ‘아멘 코너’인 12, 13번 홀에서도 연속 버디를 낚은 스피스는 급기야 리드와 공동 선두에서 어깨를 나란히 하기까지 했다.하지만 리드도 11번홀(파4) 보기로 공동선두를 허용했지만 12번홀(파3) 버디로 다시 리드를 되찾았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던 양상은 스피스가 18번홀 티샷을 실수하면서 균형이 깨졌다. 티샷이 나무를 맞고 페어웨이로 들어오기는 했지만 177야드밖에 가지 못해 버디 기회를 잡기 어려워졌고, 약 2m 파 퍼트까지 놓치면서 리드와 간격이 2타 차로 벌어졌다. 스피스가 우승 경쟁에서 탈락하자 이번엔 리키 파울러가 리드 추격에 나섰다. 파울러는 18번홀에서 버디를 잡고 14언더파로 먼저 경기를 끝내 리드를 1타 차로 압박했다. 하지만 리드는 15번~18번 홀까지 연달아 파를 침착하게 지키면서 1타차 리드를 끝까지 지켜냈다. 지난해 마지막 메이저 대회였던 PGA 챔피언십 공동 2위로 메이저 정상을 노크했던 리드는 올해 첫 메이저 대회를 제패하며 세계 남자 골프계에 새로운 강자로 떠올랐다. 2014년 처음 마스터스에 출전한 리드는 올해까지 5차례 출전, 2번이나 컷 탈락을 당했고 최고 성적은 2015년 공동 22위였으나 이번 대회에서 ‘골프 명인’의 꿈을 이뤘다. 최병규 전문기자 cbk91065@seoul.co.kr
  • 머리 꺾인 채 으르렁… ‘좀비 라쿤’ 습격받은 美 마을

    머리 꺾인 채 으르렁… ‘좀비 라쿤’ 습격받은 美 마을

    미국의 한 평범한 마을이 마치 좀비처럼 움직이는 라쿤의 습격으로 때 아닌 소동을 겪고 있다고 라이브사이언스, WKBN 등 현지 언론이 5일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최근 오하이오 영스타운 경찰은 보통 동물들과는 전혀 다른 형태의 움직임을 보이는 라쿤을 목격했다는 제보 전화를 지속적으로 받았다. 현지 주민인 로버트 코기쉘의 증언에 따르면 딸과 함께 실외에 있던 그가 발견한 라쿤은 네 다리가 아닌 뒷다리 2개로만 서 있었고, 매우 날카롭고 뾰족한 이빨을 드러내며 사람을 공격할 듯한 태세였다. 놀란 로버트와 그의 딸은 혼비백산한 채로 집으로 도망쳐야 했다. 코기쉘은 “단 한 번도 라쿤이 두 다리로 꼿꼿하게 서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면서 “두 다리로 서거나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 거리는 모습이 마치 좀비 같았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좀비 라쿤’의 습격에 놀란 주민들의 신고에 당국이 조사를 나섰다. 오하이오 자연자원부 측은 라쿤에게서 광견병이 나타난 전례는 없으며, 디스템퍼(distemper)로 불리는 전염병에 걸렸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디스템퍼는 개나 너구리같은 갯과 동물과 고양이 등의 동물이 잘 걸리는 바이러스성 전염병이다. 여우와 늑대, 코요테, 스컹크 등의 동물들에게서도 나타나며 치사율이 매우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바이러스는 주로 호흡기관과 소화기계통, 신경 시스템을 집중적으로 공격한다. 최초 증상은 눈 등 신체기관에서 고름과 같은 분비물이 흘러나오며 식욕이 감퇴하고 구토를 하는 등의 증상으로 이어진다. 시간이 지나면 신경계에 영향을 미치면서 턱 등을 포함한 몸 전체에서 근육 경련이 발생하고, 머리가 한쪽으로 꺾이거나 계속 돌리는 등 마치 좀비와 같은 행동을 보인다. 전문가들은 디스템퍼 바이러스에 걸린 것으로 추정되는 ‘좀비 라쿤’과의 접촉을 피하는 한편, 개나 고양이를 키우는 경우 반드시 디스템퍼 백신 주사를 맞히는 것이 좋다고 권장했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마틴 루서 킹 서거 50주년 추모 행진

    마틴 루서 킹 서거 50주년 추모 행진

    흑인 인권 운동가이자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마틴 루서 킹 주니어 목사 서거 50주기인 4일(현지시간) 킹 목사가 암살당한 미국 테네시주 멤피스 시내에 수만명의 추모객이 행진하고 있다. 이날 모인 시민, 시민단체 활동가들은 킹 목사가 지지했던 청소 노동자들의 구호 ‘나는 사람이다’를 적은 손팻말을 들었다. 킹 목사가 피격된 시간인 오후 6시 1분에는 그의 39세 생애를 상징하는 39회 타종이 이뤄졌다. 워싱턴DC에도 수만명이 모여 행진·타종 행사를 했다. 멤피스 AP 연합뉴스
  • 홍준표 “내 막말의 시작은 노무현 자살이었다”

    홍준표 “내 막말의 시작은 노무현 자살이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자신의 막말 논란이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서 시작됐다고 주장해 파문이 예상된다.홍 대표는 31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나를 막말 프레임에 가둔 것의 출발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살했다는 말에서 출발했다”면서 “서거했다는 말을 했다면 그런 프레임이 등장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홍 대표는 상황에 잘 들어맞는 비유를 들었을 뿐인데 품위 없는 막말로 매도당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살이라는 표현은 가장 알기 쉬운 일상적인 용어인데 자기들이 존경하는 전직 대통령을 모욕했다고 받아들이다보니 그걸 막말이라고 반격을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자살’이라는 용어는 결코 일상적인 용어가 아니다. 언론에서도 언급을 자제하는 단어다. 자살을 부추기거나 유족 등에게 2차 가해가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한국기자협회와 보건복지부 중앙자살예방센터는 지난 2013년 ‘자살보도 권고기준 2.0’을 마련하고 “언론은 자살이라는 단어는 자제하고 선정적인 표현을 피해야 한다”는 원칙을 정했다. 또 “기사 제목에 ‘자살’을 포함하지 않아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공개발언을 통해 전국민에 영향을 끼치는 제1야당의 대표가 공적인 자리에서 ‘자살’을 언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홍 대표는 페이스북에 논란을 일으켰던 ‘막말’을 연달아 적었다. “향단이, 바퀴벌레, 암덩어리, 연탄가스, 영남지역에서는 친밀감의 표시로 흔히 하는 영감탱이 등 우리가 통상 쓰는 서민적 용어를 알기쉬운 비유법으로 표현하면 할말 없는 상대방은 이것을 품위 없는 막말이라고 매도해 왔다”고 주장했다. 홍 대표는 “나는 막말을 한 일이 없는데도 그 상황에 가장 적절한 비유를 하면 할말 없는 상대방은 언제나 그걸 막말로 반격한다”면서 “맞는 말도 막말로 매도하는 세상”이라고 말했다. 홍 대표는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노 전 대통령에 대해 “뇌물 먹고 자살한 사람”이라고 언급해 당시 야권인 더불어민주당 진영을 중심으로 거센 반발을 샀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커버스토리] 좌·우 ‘영토 전쟁터’ 된 그곳… 광장

    [커버스토리] 좌·우 ‘영토 전쟁터’ 된 그곳… 광장

    각종 정치·사회 이슈가 사회를 휩쓸 때마다 광장은 늘 인파로 뒤덮였다. 광장에 모인 시민의 목소리는 사회를 바꿔놓기도 했다. 2016년 말부터 지난해 초까지 이어진 ‘박근혜 퇴진’ 촛불집회는 우리 사회의 적폐를 솎아 내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하지만 광장이 아직은 좌우 세력 간 대결의 장이라는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정권의 부침에 따라 광장은 진보·좌파의 영역이 됐다가 보수·우파의 영역으로 바뀌기도 한다. 서울 도심 내 집회 장소를 둔 진보·보수 세력 간 영토전쟁의 흐름을 짚어본다.박근혜 전 대통령이 헌법재판소로부터 탄핵심판 선고를 받은 지 1년째인 지난 10일 서울 도심 곳곳에서 보수·진보 단체의 집회가 잇따라 열렸다. 박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보수세력은 ‘서울역광장’과 ‘덕수궁 대한문 앞’,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 모였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처벌을 촉구하는 진보세력은 ‘광화문광장’과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 자리를 잡았다. 그동안 진보 단체의 주 무대였던 서울 도심 대부분의 집회 장소를 보수 단체가 점령한 것이다. 최근 들어 서울 도심 집회 장소를 놓고 진보·보수 세력이 서로 빼앗고 빼앗기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돌아보면 1980~90년대 대규모 집회·시위는 군사정권의 독재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기 위한 목적이 강했다. 때문에 참여하는 단체들의 정치적 성향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정부를 규탄하는 시민이 광장을 장악했고 이를 막으려는 정부와 충돌을 빚었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집회 세력은 정권 지지 세력과 반대 세력으로 분화했다. 특히 박 전 대통령 탄핵을 계기로 탄핵에 반대하는 보수 세력과 찬성하는 진보 세력이 선명하게 갈렸다.정치적 이념에 따라 크게 양분됐다. 대표적인 것은 지난해 11월 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 광화문광장은 방한에 반대하는 진보 세력이, 서울시청 앞은 방한을 환영하는 보수 세력이 점령했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앞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 찬반을 놓고 두 세력이 충돌하는 상황이 빚어졌다. 안진걸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최근 보수 단체들의 집회 횟수가 상대적으로 많아지면서 서로 다른 목적의 집회를 여는 단체들 간에 보이지 않는 갈등이 적지 않게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온 첫 번째 계기는 2002년 주한미군 궤도차량에 치어 숨진 심미선·신효순양 사건이었다. 한·미 주둔군지휘협정(SOFA)에 따라 미군에서 재판을 받은 사고 장갑차 운전병 마크 워커와 관제병 페르난도 니노가 무죄 판결을 받자 분노한 국민들은 촛불을 들고 광화문 거리로 나왔다. 당시 광화문은 차도로만 이뤄져 있어 도로 옆 촛불시위 참가자들은 인도에서 집회를 열었다. 정희선 상명대 지리학과 교수는 2004년 논문 ‘서울시 집회·시위 발생 공간의 특성과 변화 : 1990~2003’에서 “시위를 강력하게 탄압하던 1990~91년에는 진압 경력이 들어올 수 없는 명동성당이나 대학교 교내 등 ‘성역형’ 공간에서 주로 집회가 이뤄졌다”면서 “2002년 월드컵 거리응원과 미선·효순양 사망사건, 이라크 파병 반대 집회 영향으로 서울 교보문고·동화면세점 앞 등 광화문 광장이 부각된 ‘광장의 시대’가 시작됐다”고 분석했다. 보수 단체가 본격적으로 집회를 열기 시작한 것은 2006년 어버이연합이 설립되면서부터다. 주로 70대 이상의 노인층들이 중심이 돼 결성된 어버이연합은 초창기 종북 세력에 대한 반대나 국가 안보 위기 등을 앞세워 서울역 광장, 종묘공원 등 주로 노인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를 중심으로 집회를 열었다. 그러나 촛불집회 등에 비하면 당시까지는 미미한 수준이었다.2008년 광우병 파동이 벌어지면서 다시 촛불을 든 대규모 시위대가 등장했다. 이때 어버이연합과 고엽제 전우회 등 보수 단체들은 미국산 소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촛불 세력을 규탄하며 집회를 열였다. 진보 단체의 촛불집회와 보수 단체의 ‘맞불집회’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셈이다. 당시 촛불집회는 광화문 ‘청계광장’을 중심으로 개최돼 여당이었던 한나라당 당사가 있었던 여의도 등지에서 집회를 이어갔다. 보수단체들의 맞불집회는 서울역광장을 중심으로 열린 후 촛불집회가 열렸던 청계광장으로 진출해 양측이 충돌하기도 했다. ‘진보 단체=광화문, 보수 단체=서울역’이라는 ‘영토공식’이 본격적으로 자리잡기 시작한 시기다. ●노 전 대통령 서거, 진보의 시청 광장 진출 계기 2009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는 시청앞 광장까지 진보 진영의 영토가 확장되는 계기가 됐다. 당시 경복궁에서 노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진행된 뒤에 서울광장에서 노제를 지냈다. 이후 대한문에 시민분향소가 마련되면서 노 전 대통령의 지지자를 포함한 진보 진영의 영토는 광화문에서 시청 앞과 대한문 앞까지 커졌다. 같은 해 9월 공사를 마치고 일반 시민들에게 개방된 광화문광장의 등장으로 집회 시위의 영토는 또 다른 변곡점을 맞는다. 광화문광장이 미국대사관 100m 이내 거리에 있어 집시법상 허가를 받아야 하는 허가제로 운영되고 있어 서울시의 결정에 따라 집회·시위의 개최 여부가 갈린다. 광화문광장을 개장했던 2009년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 시절에는 집회·시위보다는 대형 행사가 주로 열렸다. 그러다 2011년 박원순 당시 무소속 후보가 재보궐 선거에 당선되면서 집회 시위의 허가가 상대적으로 많아졌다. 2012년에는 쌍용자동차 파업 사태 이후 병으로 숨지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해고자 등을 기리기 위한 분향소가 설치되면서 대한문 앞 광장은 진보 진영의 영토로 재확인됐다. 2014년 6월 14일 세월호 참사는 광장에 지각변동을 가져왔다. 광화문광장에 세월호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한 분향소가 설치됐고, 그동안 대형 행사 위주로 사용되던 광화문광장은 본격적으로 시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광장’의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2016년 말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는 광화문광장을 진보 진영의 상징으로 만들었다. ‘촛불’로 상징되는 진보 진영의 영토가 광화문광장으로 집중되는 사이 보수 진영의 영토확장이 이뤄졌다. 그때까지 서울역을 중심으로 집회를 열어 왔던 보수단체들은 대한문 앞 광장을 집회장소로 쓰기 시작했다. 과거 진보 진영의 영토로 여겨졌던 대한문 앞 광장이 보수 진영으로 넘어간 셈이다. 진보와 보수의 집회·시위 영토전쟁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최근 보수 단체들은 매주 토요일 종로구 혜화동 대학로에서 대규모 집회를 개최하며 영토를 넓히고 있다. ●“광장, 소외된 자들의 목소리 대변하는 상징으로” 이택광 경희대 교수는 “대한문 앞 광장의 경우 오랜 시간 쌍용차 희생자들의 빈소가 유지되면서 ‘소외된 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장소’라는 상징성을 보여줬다”면서 “‘태극기 집회’로 불린 보수 단체 집회 참가자들의 면면을 보면 자신이 사회에서 소외됐다고 느낀 70대 이상의 고령층 비중이 높은데, 소외된 목소리를 대변하는 장소인 대한문 앞 광장에서 이들이 사회적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으로 분석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중요한 것은 과거와 달리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사회적 목소리를 표출하고 있다는 것이고, 우리에게는 이들의 목소리도 결국 우리나라 민주화 발전의 결과물이라고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집회 장소에 대해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보다 시대적 상황과 집회의 목소리에 집중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서이종 서울대 교수는 “‘태극기 집회’를 여는 보수 진영이라고 광화문 광장에서 집회를 열고 싶지 않겠나. 결국 집회 장소는 정치적 세력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또 그 세력에 대항하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얼마나 크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면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이들이 어떤 목소리를 내고 그 목소리가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에 대한 것”이라고 말했다. 박재홍 기자 maeno@seoul.co.kr
  • [팩트체크] ‘세월호 7시간’ 검찰 수사로 드러난 ‘박근혜 청와대’의 거짓말

    [팩트체크] ‘세월호 7시간’ 검찰 수사로 드러난 ‘박근혜 청와대’의 거짓말

    검찰이 세월호 침몰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의 ‘7시간’ 행적에 대한 수사 결과를 28일 발표했다. 검찰이 규명한 바에 따르면 그동안 박근혜 청와대 관계자들의 관련 진술들은 대부분 거짓인 것으로 드러났다. 2014년 4월 16일 오전 476명이 탑승한 세월호가 가라앉기 시작했다. 8시 52분쯤 좌현으로 30도 가량 기울어졌고 8시 54분 탑승객의 신고가 접수됐다. 목포해양경찰서가 해경123정에 전화해 사고 현장으로 이동할 것을 지시한 시간이 8시 57분. 청와대는 이보다 20여분이 지난 9시 19분에 세월호 침몰 사실을 처음 알게 된다. 박근혜 청와대의 인사들은 사고가 발생한 뒤부터 줄곧 박 전 대통령이 10시에 첫 보고를 받고 보고를 받자마자 구조 지시와 함께 하루종일 11차례의 서면보고를 받으며 상황을 계속 챙겼다고 주장했다. 2014년 7월 10일 국회에서 열린 세월호 침몰사고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위의 대통령비서실 보고에서 김기춘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은 박 전 대통령이 10시에 첫 보고를 받았고 이후 해경에 인명구조를 지시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검찰의 수사 결과 박 전 대통령이 처음 서면보고를 받은 시간은 10시 19~20분쯤이었고, 당일 실시간으로 11차례 서면보고를 받은 것이 아니라 오후와 저녁 각 한 차례씩 일괄적으로만 보고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청와대가 박 전 대통령이 처음 보고받은 시각을 수정한 이유로 ‘골든타임’ 전에 보고를 받고 신속하게 구조 지시를 했음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고 파악했다. 검찰은 “세월호 사고 발생 직후부터 ‘대통령이 출근하지 않은 채 관저에 머무르고, 국가안보실이 사고 상황을 신속하게 보고하지 못해 골든타임을 허비하는 바람에 수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했다’는 비난이 고조됐다”면서 “탑승자가 마지막 카카오톡을 발송한 시간인 10시 17분 전에 박 전 대통령이 보고를 받고 인명구조와 관련된 지시를 한 것처럼 가장할 필요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후 4월 16일 오후 박 전 대통령의 ‘비선 실세’ 최순실씨가 청와대 관저에 들어간 것으로 밝혀지면서 “관저에 외부 인사의 출입이 없었다”는 청와대 관계자들의 진술도 거짓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박 전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 관련 행적을 당시 청와대 인사들의 주장과 검찰의 수사 결과를 시간대별, 상황별로 정리해 비교해 봤다.■ 대통령 첫 보고 시각…靑 10시 vs 檢 10시 19분 ●朴 청와대 주장 (김기춘 전 비서실장, 2014년 7월 10일 국회 세월호 침몰사고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위 보고내용) -9시 19분 청와대 국가안보실, 사고상황 처음 인지해 해양경찰청 상황실에 유선으로 사고 사실 확인 -9시 24분 청와대 내부 문자로 사고 상황 전파 -9시 31~33분 대통령비서실, 중대본과 해경 통해 상황 보고 접수 -10시 이후 사고상황 추가로 확인해 사고 개요 및 현장상황을 박 전 대통령에게 보고 윤전추 전 청와대 행정관은 2017년 1월 5일 헌법재판소의 박 전 대통령 탄핵심판의 증인으로 출석해 “대통령이 9시경 관저 집무실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고, 10시에 보고서를 전달해 드렸다”고 말했고, 검찰은 이는 명백한 위증이라고 강조했다. ●검찰 수사 결과 -9시 19분 국가안보실 위기관리센터 TV 속보 통해 세월호 사고 발생 인지 -9시 24분 청와대 내부 문자 발송 -9시 22~31분 위기관리센터 실무자들, 선박 명칭, 승원 인원, 출항시간, 배의 크기 등 파악 -9시 39~42분 위기관리센터 실무자들, 구조세력 동원 현황 파악 -9시 54분 위기관리센터 실무자들, 구조 인원수 파악 -9시 57분 “구조된 인원 56명이 사고지점 북쪽 4마일 거리에 위치한 서거차도로 이동 예정‘ 확인해 상황보고서 1보 초안 완성 -10시 김장수 전 국가안보실장, 1보 초안 전달받고 신인호 전 위기관리센터장에게 전화 보고 받음 -김장수 전 실장, 박 전 대통령에게 휴대전화 걸었으나 연결 안 되자 안봉근 전 제2부속비서관에게 ”대통령에게 보고될 수 있도록 조치해 달라“고 말함 -10시 12~13분 신인호 센터장 상황보고서 1보 완성한 뒤 상황병에게 관저 전달 지시 -10시 12분 이영선 전 행정관이 본관 동문으로 나가 승용차를 이용해 관저 도착. 침실 앞에서 수회 대통령을 부름 -10시 19~20분 상황병이 관저 경호관 통해 내실 근무자에게 보고서 전달, 내실 근무자는 대통령 침실 앞 탁자에 보고서 올려둠■ 대통령 최초 지시시간 및 횟수…靑 10시 15분 vs 檢 10시 22분 ●朴 청와대 주장 (김기춘 전 비서실장, 2014년 7월 10일 국회 세월호 침몰사고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위 보고내용) -10시 15분 박 전 대통령의 유선 지시사항을 해경에 전달 -10시 30분 박 전 대통령이 직접 해경청장에게 인명구조 독려 지시 김규현 당시 외교안보실장도 2017년 2월 1일 헌법재판소의 박 전 대통령 탄핵심판의 증인으로 나가 “대통령에게 서면으로 10시에 보고를 드렸고 10시 15분 대통령이 김장수 실장에게 전화를 걸어 구조 지시를 했으며, 10시 22분 다시 김장수에게 전화를 걸어 추가 지시를 하셨다”고 증언했다. ●검찰 수사 결과 -10시 22분 김장수 전 실장에게 처음으로 전화로 지시 -10시 25~26분 김장수 전 실장, 해경 상황실에 ‘핫라인’으로 대통령 지시 전파■ 보고받은 횟수…靑 11회 ‘실시간’ vs 檢 아침·저녁 1회씩 ●朴 청와대 주장 (김기춘 전 비서실장, 2014년 7월 10일 국회 세월호 침몰사고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위 보고내용) -11회 (첫 보고+국가안보실이 서면보고 3회+유선보고 7회) 김기춘 전 실장은 2014년 7월 10일 국정조사 특위 기관보고에서 김광진 의원이 박 전 대통령에게 대면보고를 하지 않은 점 등을 지적하자 “저희들이 계속 간단없이 2, 30분 단위로 문서로 보고를 드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통령이 충분히 직접 만나서 물어보는 것 이상으로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고 저희들은 생각을 합니다”라고 답했다. 2016년 11월 당시 청와대는 홈페이지에 게재한 ‘세월호 당일 이것이 팩트입니다’ 타임 테이블에 따라 박 전 대통령이 4월 16일 오전 9시 53분 외교안보수석실로부터 국방과 관련된 서면보고를 받은 뒤 10시에 국가안보실로부터 세월호 구조 인원수와 구조세력 동원 현황 등 종합 서면보고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10시 15분 박 전 대통령이 김장수 전 안보실장에게 상황을 보고받은 뒤 지시사항을 전달했고, 22분 다시 전화해 추가 지시시항을 하달한 뒤 10시 30분 김석균 전 해양경찰청장에게 특공대를 투입해서라도 인원 구조에 최선을 다하라고 지시했다고 설명했다. 이후 10시 36분 정무수석실로부터 70명이 구조됐다는 보고를, 10시 40분 안보실로부터 106명이 구조됐다는 서면보고를 각각 받았고, 11시 20분과 23분 안보실로부터, 11시 28분 정무수석실에서 서면보고를 또 받았다고 주장했다. ●검찰 수사 결과 -대통령비서실이 10시 36분 정호성 전 부속비서관에게 상황보고 1보를 이메일로 발송한 뒤 밤 10시 9분까지 11회에 걸쳐 상황보고서 전달 -그러나 정 전 비서관은 박 전 대통령에게 보고서를 실시간으로 전달하지 않고 오후와 저녁 1차례씩 그 때까지 수신된 보고서를 일괄 전달■ 외부인의 청와대 방문 여부…靑 “없었다” vs 檢 “최순실 관저 방문” ●朴 청와대 주장 -“간호장교와 미용사 외에 없었다” 청와대는 당초 세월호 참사 당일 관저를 방문한 외부인은 없었다고 설명해 왔다. 그러다 2016년 국정농단 사건이 불거지면서 본격적으로 세월호 7시간에 대한 의혹이 증폭되고 특히 의료·미용 시술 의혹까지 제기되면서 간호장교의 관저 출입 사실을 확인했다. 2016년 12월 22일 국회 최순실 국정농단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위 청문회에서 당시 이영석 대통령경호실 차장은 외부인의 관저 출입을 묻는 질의에 “저희들이 확인해 본 결과에 의하면 관저 근무자들이 얘기한 결과로는 외부에서 들어온 인원은 없는 걸로 확인이 됐습니다”라고 답했다가 “청와대 내부 근무자, 특히 의무실의 간호장교를 포함한 사람의 출입은 있었느냐”고 재차 묻자 “간호장교가 가글을 전달해 주러 간 그것은 저희들이 확인하고 있습니다”라고 답변했다. 간호장교가 머문 시간은 약 4분 정도였다고 덧붙였다. 미용사의 출입은 이에 앞선 2016년 12월 6일 한겨레의 보도로 알려졌다. 박 전 대통령의 미용사로 알려진 정송주·정매주씨 자매는 2017년 1월 9일 국정조사특위 청문회의 증인 출석을 거부했다. 정매주씨는 청문회에 불출석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지만 지난 1월 증인 출석 요구 과정에서 위법이 있었다며 무죄를 선고받았다. ●검찰 수사 결과 -오후 2시 15분 이영선 전 행정관이 운전한 업무용 승합차를 타고 ‘A급 보안손님’인 최순실씨가 청와대 관저 방문 -관저 내실에서 박 전 대통령과 최씨, 이재만·정호성·안봉근 전 비서관이 5인 회의를 갖고 중대본 방문 결정 -정호성 전 비서관은 윤전추 전 행정관에게 머리 손질을 담당하는 정송주·정매주씨를 불러줄 것을 지시 검찰은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수사 과정에서 이영선 전 행정관이 운전한 업무용 승합차의 남산 1호터널 통과내역(오후 2시 4분과 오후 5시 46분), 이 전 행정관의 신용카드 결재내역을 확인해 이를 근거로 청와대 관계자들을 조사해 최씨의 출입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또 박 전 대통령과 최씨, 문고리 3인방 비서관들의 5인 회의는 매주 열렸던 것으로, 4월 16일 최씨의 관저 출입은 사전에 예정됐던 것으로 파악됐다고 알렸다. 박 전 대통령은 5인 회의를 통해 중대본 방문을 결정한 뒤 오후 4시 33분 관저를 출발해 5시 15분쯤 김기춘 전 실장과 함께 중대본에 도착했다. 이후 6시쯤 다시 청와대 관저로 복귀해 그 뒤로 계속 관저에 머물렀다고 검찰은 설명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고전의 향연-옛 선비들의 블로그] 평생 ‘울울한 삶’을 산 지식인… 생육신으로 절개를 지키다

    [고전의 향연-옛 선비들의 블로그] 평생 ‘울울한 삶’을 산 지식인… 생육신으로 절개를 지키다

    생후 8개월 만에 글을 알고 세 살에 시를 짓고 다섯 살 때 ‘중용’, ‘대학’에 통달해 신동으로 불렸던 사람. 이런 기이한 재주를 세종 임금이 전해 듣고 직접 불러 시험하고 ‘뒷날 크게 쓰겠노라’ 다짐했던 사람. 그러나 평생 울분과 방랑으로 전국을 떠돌아다니다 충청도 허름한 절간에서 생을 마감했던 사람. 우리 한문소설의 명편 ‘금오신화’(金鰲新話)를 지은 김시습(金時習·1435∼1493)이다.그가 쓸쓸한 삶을 살게 된 계기는 거듭된 가정사의 참극으로 지쳐 가던 중 접한 수양대군의 왕위 찬탈 사건이었다. 불의의 소식을 들은 젊고 순수했던 21세 김시습은 문을 걸어 잠근 채 몇 날 며칠을 통곡했다. 그러다 돌연 서책을 모두 불태워 버리고 나서 승려의 행색으로 전국을 떠돌기 시작했다. 어린 조카의 왕위를 빼앗은 것도 모자라 영월로 쫓아 보낸 뒤 죽음으로 내몰았던 그의 반인륜적 행위를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전국을 방랑하던 끝자락, 경주 금오산 용장사에서 한동안 지내며 금오신화를 지었다. 그리고는 “뒷날 반드시 나, 김시습을 알아줄 자가 있으리라”면서 그 책을 석실에 감췄다. 당대 현실과 화해할 수 없던 자신의 고뇌, 그리고 한번도 펼쳐보지 못했던 자신의 꿈을 기이한 이야기에 은밀하게 담아두었음을 짐작게 하는 일화이다. 그런 점에서 금오신화는 울울한 삶을 살아간 한 중세 비판적 지식인의 소설적 독백이라 일컬을 만하다. 우리는 지금 그의 바람처럼, 그의 이름과 삶을 뚜렷하게 기억한다. #산사를 전전하던 자의 자기 초상 평생 전국을 전전하며 지내던 김시습은 충청도 홍산 무량사에서 59세를 일기로 쓸쓸하게 생을 마감했다. 이런 최후는 자신이 젊은 시절 썼던 ‘금오신화’에 등장하는 주인공과 너무도 닮았다. 소설 속 주인공들도 모두 깊은 산속으로 홀연 자취를 감춰 버리거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삶을 마감했는데, 김시습은 자신의 비극적 최후를 젊은 시절부터 그렇게 예감했는지도 모른다. 실제로 그는 궁벽한 산사에 몸을 의탁하고 지내며 자신의 초라한 몰골을 직접 그림으로 그린 뒤, 거기에 다음과 같은 찬시를 적어두기도 했다. 나의 초상에 쓰다(自寫眞贊) 俯視李賀(부시이하) 이하(李賀)도 내려 볼 만큼 優於海東(우어해동) 조선에서 최고라고들 했지. 騰名譽(등명만예) 높은 명성과 헛된 칭찬 於爾孰逢(어이숙봉) 네게 어찌 걸맞겠는가. 爾形至(이형지묘) 네 형체는 지극히 작고 爾言大閒(이언대동) 네 언사는 너무도 오활하네. 宜爾置之(의이치지) 너를 두어야 할 곳은 丘壑之中(구학지중) 이런 산골짝이 마땅하도다. 흔히 이백을 ‘적선’(謫仙)으로 부르듯, 당나라 시인 이하는 ‘귀재’(鬼才)로 불리던 천재 시인이었다. 김시습은 찬시 첫머리에서 당시 사람들이 자신을 ‘오세 신동’으로 부르며, 그런 이하와 견주었던 어린 시절을 회고한다. 아름다운 과거였다. 하지만 이하가 27세라는 젊은 나이에 요절한 것처럼 그 자신도 뛰어난 재주를 타고났음에도 세상에 한번도 쓰이지 못한 자신의 현실에 몸서리치고 있다. 깊은 자괴, 아니 자조와 자기 경멸이 뼛속까지 배어들었다. 실제로 김시습의 문집 ‘매월당집’에는 이런 소외된 자의 울울한 심경을 담아낸 작품이 많다. 자신의 상처받은 마음을 어루만져 줄 것이라고는 오로지 시밖에 없었던 셈이다. 그의 “마음이 세상살이와 어긋나기만 하니, 시를 빼놓으면 즐길 것이 없다네(心與事相反, 除詩無以娛).”라는 고백은 결코 허투가 아니었다. 불의에 영합하지 않고 평생 방외인, 곧 ‘아웃사이더’로 살아간다는 것은 혹독한 일이었다. 물론 그런 대가를 치러낸 덕분에 지금 우리는 그를 생육신(生六臣)이라는 이름으로 기억하고 있지만.#서울로 복귀한 또 다른 삶의 면모 김시습을 기억하는 우리 대부분은 머리를 깎고 승려의 복색을 한 채, 평생 산사를 전전했던 행적만을 주목한다. 그러나 김시습은 삶의 가장 중요한 장년기에 서울의 저잣거리를 누비며 다니기도 했다. 그가 38세 때인 성종 3년(1472년) 경주에서 서울로 올라오고 나서 49세 때인 성종 14년(1483년) 다시 관동으로 떠날 때까지다. 이 12년 동안 수락산에 거처를 정해 놓고 종종 도성으로 내려와 당대 인물들과 교유했다. 어린 시절 교분이 있던 서거정, 김수온과 같은 고관대작도 만났지만, 진정 마음으로 교유한 부류는 자기보다 스무 살쯤 어린 젊은 선비들이었다. 그들 중 가장 절친했던 남효온은 그런 사실을 ‘사우명행록’에서 이렇게 증언하고 있다. “사람들은 김시습의 행동을 위태롭게 여기고는 교유하던 자들이 모두 절교하고 왕래하지 않았다. 그러자 홀로 저잣거리의 미치광이 같은 자들과 놀다가 술에 취해 길가에 쓰러져 자기도 하고, 바보처럼 웃고 돌아다니기도 했다. 뒤에 설악산에 들어가기도 하고 춘천 산에서 살기도 하여 드나듦에 일정함이 없었으니 사람들이 그 종말을 알지 못했다. 그가 좋아한 사람은 이정은, 우선언, 안응세 그리고 나 남효온이다.” 남효온은 김시습이 영의정 정창손의 행차를 만나자 길거리에서 “너 같은 놈은 벼슬을 그만두어야 한다”고 소리쳤다는 일화를 소개한다. 모두 위태롭게 여겨 절교할 만하지만, 이정은, 우선언, 안응세, 남효온 등과는 절친하게 지냈다. 이들은 모두 20대의 젊은이들이다. 수양대군 왕위 찬탈을 용납할 수 없어 서울을 떠났던, 바로 그 혈기 왕성한 나이들이었다. 김시습은 그런 맑고 순수한 그들에게 자신이 20대 때 목도한 반인륜적인 비화를 들려줬다. 성종대의 젊은 신진사류들이 세조대의 일그러진 역사를 바로 세우려는 분투를 시작하는 결정적 계기도 생겼다. 김시습보다 스무 살 어린 남효온은 성종 9년(1497년) 스물다섯 나이에 단종의 생모인 소릉을 복위해야 한다는 상소를 올림으로써, 모두 침묵하고 있던 세조의 행태를 역사 무대 위로 끄집어냈다. 또한 역적의 이름으로 죽어간 인물들을 충절의 인물로 복권하기 위해 ‘육신전’을 짓기도 했다. 그 대가로 남효온 또한 김시습처럼 평생 전국을 떠돌며 울울한 삶을 살게 된다. 이처럼 김시습은 승려의 행색으로 산사에 숨어 살며 은둔의 길만 걸었던 것은 아니다. 잘못된 과거를 바로 잡아 바른 세상을 만들기 위한 시대정신을 당대 젊은이들과 함께 벼려가기도 했다. 뒷날, 선조 임금의 분부를 받아 ‘김시습전’을 지은 율곡 이이는 그런 면모를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그는 절의를 세우고 윤기를 붙들어서 그의 뜻은 일월과 그 빛을 다투게 되고, 그의 풍성을 듣는 이는 나약한 사람도 용동하게 되니, ‘백세의 스승’이라 한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애석한 것은 김시습의 영특한 자질로써 학문과 실천을 갈고 쌓았더라면, 그가 이룬 것은 헤아릴 수 없었을 것이다.” 율곡은 김시습을 미친 자가 아니라 ‘백세의 스승’으로 마음에 간직했다. 실제로 김시습은 서울로 복귀해 지내다 환속해 머리를 기르고 결혼도 하며, 유자의 삶을 살아가겠노라고 굳게 다짐도 했다. 그러나 세상은 그런 그를 받아들여 주지 않았다. 김시습은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다시 승려의 행색으로 관동으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가 보여준 꼿꼿한 삶의 자세 덕분에 그가 서울을 떠났다 해도 결코 감춰질 수 없었다. 그 뒤로도 많은 지식인이 그를 추모했던 까닭이다.#마음은 유자, 자취는 불자(心儒跡佛) 율곡은 김시습의 삶을 ‘심유적불’(心儒跡佛)이라는 네 글자로 집약했다. 마음은 유자였지만, 불자의 행적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 실제로 김시습은 승려 생활을 하면서도 머리는 깎았지만, 수염은 깎지 않았다. 그 이유를 “머리를 깎은 것은 세상을 피하기 위함이요, 수염을 남겨둔 것은 장부의 뜻을 드러내기 위함”이라 설명하기도 했다. 김시습은 유교와 불교의 삶을 함께 살았다고 할 수 있지만, 도교의 세계에도 조예가 깊었다. 유·불·도에 정통했기에 많은 사람이 그를 다양한 사유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든 자유인으로 치켜세우기도 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김시습의 그런 삶은 그 어디에도 심신을 잠시도 누이지 못했던, 극심한 방황의 흔적으로 읽는 게 올바른 독법일 것이다. 정출헌 한국고전번역원 밀양분원장·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매월당집’은 김시습 사후 이자가 첫 유고 수집…선조의 명으로 총 23권 9책 발간 남효온은 ‘사우명행록’에서 “그가 지은 시문은 수만 편이 되는데,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바람에 거의 모두 흩어져 없어졌다. 조정의 신하들과 선배들이 혹 그의 글을 절취해 마치 자신의 작품인 양 하기도 했다”고 증언한다. 작품을 도적질해 갔던 것이다. 실제로 김시습의 시문을 그의 사후, 그를 존중하던 이자가 중종 16년(1521년) 여기저기 흩어진 유고를 수습해 겨우 3권으로 묶을 수 있었다. 그 뒤에도 박상, 윤춘년 등이 꾸준히 모아 가며 정식 간행했다고 하는데, 현재 그 매월당집은 사라지고 없다. 지금 전해지는 매월당집은 선조 16년(1583년) 임금의 명을 받아 경진자 활자로 간행한 중간본이다. 분량은 총 23권 9책으로, 시집이 15권이고 문집이 8권이다. 매월당집 서두에는 이산해가 쓴 서문과 이이가 쓴 ‘김시습전’이 실렸다. 1927년 후손이 김시습 관련 기록을 부록으로 덧붙여 신활자로 간행하기도 했다. 1979년 세종대왕기념사업회에서 5책으로 번역·출간했다.
  • 이인규 “반기문 웃긴다, 돈 받은…” 언론사 상대 소송 패소

    이인규 “반기문 웃긴다, 돈 받은…” 언론사 상대 소송 패소

    이인규 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이 언론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패소했다.서울남부지법 민사15부(부장 김국현)는 22일 이인규 전 중수부장이 노컷뉴스와 기자를 상대로 제기한 2억원 규모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의 청구를 모두 기각한다”고 선고했다. 노컷뉴스는 2016년 12월 26일 ‘이인규 “반기문 웃긴다…돈 받은 사실 드러날 텐데”’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이인규 전 중수부장이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대선 출마설에 대해 “반기문 웃긴다. 돈 받은 사실이 드러날 텐데 어쩌려고 저러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이 돈을 건넨 인사들을 정리한 ‘박연차 리스트’를 수사했던 이인규 전 중수부장이 주변인들에게 “박연차 전 회장이 반기문 전 총장에게 3억원을 줬다”는 얘기를 하기도 했다는 내용도 기사에 포함됐다. 이에 이인규 전 중수부장은 “그렇게 말한 사실이 전혀 없다”면서 노컷뉴스를 상대로 정정보도를 요청하고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해당 기사는 복수의 전현직 검찰 고위 관계자의 말을 빌려 이인규 전 중수부장의 해당 발언을 전했다. 이인규 전 중수부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를 지휘한 인물로 유명하다. 박연차 전 회장의 탈세 혐의를 조사하던 대검 중수부는 노 전 대통령이 600만 달러 규모의 뇌물을 받았다며 노 전 대통령을 소환 조사했다. 2009년 5월 수사를 받던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한 뒤 ‘망신주기 수사’를 했다는 비판이 일자 이인규 전 중수부장은 사표를 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그 책속 이미지] 붉은 깃발 휘날리는 北 토목 공사장

    [그 책속 이미지] 붉은 깃발 휘날리는 北 토목 공사장

    평양미술 조선화 너는 누구냐/문범강 지음/서울셀렉션/292쪽/4만 4000원수많은 일꾼들이 대형 배수관을 나르려 안간힘을 쓴다. 이를 악물고 일하는 이들의 옷은 이미 진흙투성이다. 드문드문 보이는 굴착기와 기중기가 공사 현장임을 알려준다. 그러나 일꾼들 속에서 휘날리는 붉은 깃발은 이곳이 단순한 공사 현장만은 아님을 암시한다. 마치, 전쟁터 같다. 이 그림은 북한 청천강 계단식 발전소 공사 현장을 그린 집체화 ‘청천강의 기적’이다. 집체화는 여러 화가가 합동해 그린 그림이다. 북한 화가 최창호를 포함한 6명이 이 그림을 2014년 그렸다. 역사적인 사건을 주제로 하는 북한 집체화는 국가적 사안이 걸린 대형 토목 공사, 지도자의 서거 등을 주로 그린다. 문범강 조지타운대 교수가 최근 낸 ‘평양미술 조선화 너는 누구냐’는 이처럼 흔히 접하기 어려운 북한 미술을 담았다. 2011년부터 6년간 평양을 9차례 방문한 문 교수는 평양의 만수대창작사, 백호창작사, 삼지연창작사에서 화가들을 직접 만났다. 조선화(한국화를 뜻하는 북한말)를 비롯한 북한 미술의 생생한 제작 현장도 살폈다. 대구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대학을 다닌 그는 학창 시절 받은 반공교육의 영향으로 북한 그림을 처음 봤을 때 “두려움에 뒤로 물러섰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북한 미술의 예술성은 그가 이런 두려움을 뛰어넘게 했다. 이런 게 예술의 힘일 것이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민주당 “철저 수사”… 한국당 “정치 보복”

    “한국 대통령 끝은 감옥이거나 비극” 외신들도 ‘수난사’ 비중있게 보도 여야는 14일 이명박 전 대통령이 헌정 사상 다섯 번째로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소환조사를 받자 상반된 입장을 내놓았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이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의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는 반면 자유한국당은 ‘정치보복’이라고 맞섰다. 민주당 추미애 대표는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20개에 달하는 이 전 대통령을 둘러싼 권력형 비리와 범죄혐의는 범죄 기네스북에 오를 정도”라며 “검찰은 불법과 잘못을 명백히 밝혀야 하고 법과 원칙에 따라 한 점 의혹 없는 철저한 수사를 해 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민주평화당도 검찰의 엄정한 수사와 함께 중형으로 엄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경환 대변인은 “이 전 대통령의 검찰 출두는 이 전 대통령의 불명예가 아닌 대한민국과 국민의 불명예”라며 “검찰은 성역 없이 철저하게 수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의당 추혜선 수석대변인은 “이 전 대통령은 더이상 물러날 곳이 없는 만큼 자신이 지은 죄를 남김없이 실토하고 용서를 빌어야 할 것”이라며 “검찰은 좌고우면하지 말고 구속수사를 하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바른미래당 유승민 공동대표는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 “전직 대통령 한 분이 감옥에 수감돼 재판받는 와중에 또 한 분이 수사받는 상황은 대한민국 헌정사의 큰 불행”이라고 언급했다. 반면 한국당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언급하며 이 전 대통령의 검찰 소환이 ‘정치보복’이라고 주장했다. 장제원 수석대변인은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것은 만고불변의 진리이고 전직이든 현직이든 결코 예외일 수 없다”며 “검찰의 피의 사실 유포를 통한 면박 주기 수사가 노 전 대통령 죽음의 중요한 이유였고 그것이 정치보복이라면 9년이 흐른 지금 대한민국에서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외신들도 박근혜 전 대통령이 부패 혐의로 30년을 구형받은 지 2주 만에 이 전 대통령이 같은 문제로 검찰 조사를 받는다는 데 주목하고 비중 있게 다뤘다. AFP통신은 “한국 대통령은 감옥에 갇히거나 적절하지 않은 끝을 맞게 되는 경향이 있다”면서 군부독재통치를 한 박정희 전 대통령은 총격으로 서거했고,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은 뇌물수수와 반역죄 등으로 수감된 비운의 대통령 역사를 조명했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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