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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국 군부 정치에서 손 떼나

    태국 군부 정치에서 손 떼나

    3·24 태국 총선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2014년 5월 쿠데타 이후, 군부 통치 5년만에 총선거이다. 전국 선거로는 2011년 7월 조기 총선 이후 8년 만이다. 정권을 장악해 왔던 군부가 전면에서 물러날 지 아니면, 민간 정당들이 정권교체를 이룰 지가 이번 선거의 초점이다. 특히, 1932년 입헌군주제도를 채택한 뒤, 19번의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정치 전면에 나와있던 군부의 거취가 주목된다. 민간 정당들이 승리했을 경우, 군부는 순순히 물러날까? 그동안 선거에서 특정 정당이 승리했더라도, 군부는 자신들의 잣대를 갖고 쿠데타를 일으켜 국회를 해산하고, 새로 선거를 실시하면서, 자기 입맛대로 정국을 주도해 왔다. 동남아시아국가연합, 아세안의 대표국가의 하나인 태국 총선의 궁금증을 살펴봤다. - 선거에서 패배하면 군부는 순순히 물러날까. “ 당장은 승복하고 정국 추이를 보겠지만, 자신들의 기준과 잣대에 따라 또다시 쿠데타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19번의 쿠데타라는 기록이 보여주 듯, 태국 정치에서 군부의 정치 개입은 변수가 아닌 상수다. 정치에서 손을 떼기 어렵다는 의미이다.” - 최근 10여년동안 군의 역할이 더욱 활발해 졌는데. “군부는 2006년 9월 쿠데타를 일으켜 당시 농민과 도시 근로자 등 서민계층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던 탁신 친나왓 총리를 실각시켰다. 그 뒤 2007년 12월, 탁신 지지자들이 중심이 돼 설립한 민중권력당(PPP)이 다시 총선에서 승리했지만, 1년 뒤인 2008년 12월 해산됐다. 이에 굴하지 않고, 탁신 지지자들이 중심이 된 푸어 타이당이 총선에서 이겨, 탁신의 여동생인 잉락 친나왓을 총리로 추대했다. 그러나 군부는 이를 그냥 두지 않았다. 2014년 쿠데타를 일으켜 잉락 친나왓 당시 총리를 실각시켰다. 잉락도 오빠인 탁신과 함께 해외 망명중이다. - 군부의 정치개입을 국민들은 순응했나. “탁신 지지자들의 시위와 불복종 운동들이 일어났다. 탁신 전 총리가 창설을 주도하고, 탁신을 따르는 정치인들이 운영해 온 탁신계 정당들이 2001년 이후 선거에서 무패 기록을 갖고 있다. 이는 탁신 지지자들과 탁신을 따르는 농민, 노동자 계층들이 군부 정권을 불신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런 와중에서 2009년 4월에는 친탁신파 ‘레드셔츠’들이 방콕 등에서 거리 시위와 점거 농성을 벌이다 군대와 충돌하면서, 정치 혼란을 겪기도 했다. 이번 선거에 앞선 방콕대학 등의 여론조사에서 유권자의 절반가까이가 자신의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는 것도 억압적인 정치 분위기를 보여준다.” - 군부의 정치개입의 논리는 무엇이고, 어떤 입장을 펴고 있나? “태국 군부는 자신들이 국가와 왕실, 민족주의의 수호자이며, 근대화와 국가안정을 이뤄낸 주역이라고 자부하는 엘리트 집단이다. 이들은 정치 불안정과 사회 갈등 상황에서 자신들의 쿠데타가 이를 해소하고, 국가사회 안정을 지키는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다. 지지자들도 태국적인 특수성을 강조하면서, 사회정치적 갈등을 푸는 태국식 민주주의의 한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태국의 엘리트 계층과 왕실·군부·재벌 등 기득권층이 하나로 엮어있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 왕실은 군부 편인가? “입헌군주주의 제도아래 태국의 국왕은 정치 불간섭 및 중립을 표방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상 정치 막후에서 깊이 개입해 왔다. 2016년 10월 서거한 푸미폰 아둔얏데 전 국왕은 재위 70년 동안 정치적 막후 조정자 역할을 하며 절묘한 ‘정치 안정판’ 역할을 했다. 개인적인 역량과 카리스마, 노력한 정치 감각을 바탕으로 국민적인 사랑도 한 껏 받았다. 그를 계승한 마하 와치라롱껀 국왕의 역할은 아직 미지수이다. 왕실은 전통적으로 엘리트 군부를 지지해 왔다. 왕실은 군부, 엘리트 관료, 기업인, 도시민 등에 친화적이란 평을 받아왔다. 그렇지만, 현 국왕은 왕세자 시절부터 탁신 및 탁신계 정치인들과 깊은 친분 관계를 유지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떤 상황이던지 그 역시, 조정자 및 중재자 역할을 하려고 노력할 것으로 보인다.” - 탁신 친나왓 전 총리가 막후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탁신계 정당인 푸어타이당이 집권하면 깨끗한 정치, 정치 안정이 가능할까? “2001년 1월부터 2006년 9월 쿠데타로 실각하기 전까지 집권했던 탁신 전 총리는 농민 및 서민 친화적인 정책으로 이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농민들로부터 쌀 등 농산물에 정부 보조금을 얹혀 높은 가격에 사들였다. 싸고 광범위한 국민의료보험을 실시해 인기를 얻었다. 그 뒤 군부 정권이 들어선 뒤 농산물 가격 하락, 양극화 심화 등으로 탁신에 대한 향수가 커졌다. 그러나 반면, 엘리트 및 탁신의 비판자들은 돈을 뿌리는 정책이 결국 국가 재정을 파탄으로 몰고 가고, 경쟁력을 떨어뜨릴 것이라면서 그를 대중선동주의자라고 비판해 왔다. 이 같은 계층적 골, 이해관계의 차이와 함께 지역적 대립 등도 정치안정을 이루기 어려운 요소로 꼽힌다. 게다가 경찰관 출신의 성공한 기업로, 통신 재벌을 일궜던 탁신은 깨끗한 정치가란 이미지 보다는 수완적인 사업가의 이미지가 강하다.” - 탁신의 푸어타이당의 집권 등 정권교체가 가능할까? “ 푸어타이당은 지금까지 여론조사에서 근소한 차이로 선두이고 군부 정권의 집권 팔랑쁘라차랏당이 이를 추격하고 있는 형세이다. 그러나 어느 당도 과반 의석을 넘지 못하는 상황에서 연립 여당구성이 예상된다. 현재 지지 정당을 밝히지 않은 부동층도 유권자의 절반 가까이가 된다. 식상한 젊은이들은 젊은 기업인이 창당한 퓨처포워드당에 지지를 많이 보내고 있다. 결국 선거 이후 4개의 주요 정당들이 어떤 선택(연립 구성)을 할 지가 관건이다. 이석우 선임기자 jun88@seoul.co.kr
  • ‘서민층 지지’ 탁신계 불안한 선두… 군부 연장 가능성도

    과반 의석 못 넘고 ‘연립여당’ 구성될 듯 군인총리 가능성… BBC “혼합민주주의” 태국이 24일 총선을 치른다. 아세안 대표국가의 하나인 태국 총선의 궁금증을 Q&A로 살펴봤다. -8년 만에야 총선이 치러지는 이유는. “2014년 5월 쿠데타 이후 군부 정권이 선거를 미뤄 왔다. 군부 집권 5년 만이고 2011년 7월 총선 이후 8년 만이다.” -탁신 친나왓 전 총리가 선거 중심에 있다는 말은 왜 나오나. “해외 망명 중이지만, 그의 영향력과 인기는 여전하다. 치앙마이 등 북부지역 기반에다 농민·도시 근로자 등 서민 계층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고 있다. 이를 기반으로 한 푸어타이당과 군부 인사들이 만든 팔랑쁘라차랏당의 첨예한 대립은 양극화 속에서 ‘계층과 지역으로 갈라진 태국’을 상징한다.” -탁신의 푸어타이당 집권 등 정권교체 가능한가. “탁신계 정당들은 최근 여론조사에서 근소한 차이로 선두를 달리고 있다. 어느 당도 과반 의석을 넘지 못하는 상황에서 연립 여당 구성이 예상된다. 보수 색채의 민주당, 젊은 기업인이 창당한 퓨처포워드당이 선거 이후 어떤 선택(연립 구성)을 할지가 관건이다.” -마하 와치라롱꼰 국왕의 역할은. “2016년 10월 서거한 푸미폰 아둔야뎃 전 국왕을 계승한 그의 역할은 아직 미지수이다. 입헌군주제이지만 푸미폰 국왕은 정치적 막후 조정자 역할을 하며 ‘정치 안정판’ 역할을 했다. 왕실은 군부, 엘리트 관료, 기업인, 도시민 등에 친화적이다. 현 국왕은 탁신과도 친분 관계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주목된다.” -선거가 자유롭고 공정하게 치러질 수 있나. “휴먼라이트워치는 지난 19일 언론·집회·결사 자유를 제약하는 억압적인 법률, 언론 검열, 독립성 없는 선거위원회 등과 함께 상원(250석) 전원을 군정이 낙점하는 것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의원내각제면서도 의원이 아니더라도 총리가 될 수 있다. 군인 총리의 길을 열어 놓은 셈이다. BBC는 이를 ‘혼합(하이브리드) 민주주의’라고 비꼬았다.” -군부는 태국 민주화의 암적 존재인가. “1932년 입헌군주제 이후 19차례 쿠데타를 일으켰다. 군부는 왕실과 함께 근대화와 국가안정을 이뤄 낸 국가의 수호자라고 자부한다. 지지자들은 태국의 쿠데타는 사회·정치적 갈등을 푸는 태국식 민주주의의 한 방법이라고 강변한다.” -한국 정부의 신남방정책에서 태국의 위치는. “인도네시아에 이은 동남아 제2경제체로서 아세안 전자산업의 중심지이자 물류·교통 등 동남아 내륙의 중심국이다. 한국의 동남아 진출과 한류 확대의 교두보 역할을 해 왔다. 소비시장은 동남아의 시험대 역할을 한다.” 이석우 선임기자 jun88@seoul.co.kr
  • 왜 이러나 교학사… 한국사 교재에 ‘盧비하 사진’

    왜 이러나 교학사… 한국사 교재에 ‘盧비하 사진’

    교과서를 만드는 출판사에서 만든 한국사 관련 공무원 수험서에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하하기 위해 합성된 사진이 실린 사실이 뒤늦게 확인돼 파문이 일고 있다. 출판사 측은 단순한 직원 실수라며 책을 전량 회수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책이 출간돼 판매된 지 6개월이 넘도록 해당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논란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21일 교학사 등에 따르면 이 회사가 출판한 ‘한국사 능력검정 고급 1·2급’ 의 책 내용 중 ‘붙잡힌 도망 노비에게 낙인을 찍는 장면’(드라마 ‘추노’)라는 설명과 함께 게재된 그림에 노 전 대통령의 얼굴이 합성돼 삽입됐다. 해당 사진은 드라마 ‘추노’의 한 장면을 캡처해 얼굴에 노비 낙인이 찍히고 있는 배우의 얼굴을 노 전 대통령으로 합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교학사는 이날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하고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올렸다. 교학사 관계자는 “직원이 내용에 적합한 사진을 찾는 과정에서 제대로 검수를 하지 못해 이뤄진 실수”라면서 “모든 분들께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 특히 가족분과 노무현재단에는 직접 찾아뵙고 사죄의 말씀을 올리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책은 전량 회수해 폐기할 예정”이라면서 “해당 직원에 대한 문책 여부 등은 사태 수습 이후 내부적으로 결정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해당 교재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을 대상으로 지난해 8월 출판됐으며 3000부가량 인쇄됐다. 정확한 판매량은 확인되지 않았다.  극우 성향 온라인 커뮤니티인 ‘일간베스트’(일베)를 중심으로 노 전 대통령의 얼굴을 합성해 비하하는 사진은 과거에도 여러 차례 논란이 됐다. 지난해 한 국립대 강의에서는 노 전 대통령을 비하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미지가 수업에 사용돼 논란이 됐다. 당시 사용된 사진은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전하는 방송 뉴스 화면에 ‘사망’을 수학 기호인 사인으로 합성했다. 또 다른 국립대에서도 고래 회충을 설명하는 과정에 사용된 자료에 노 전 대통령의 얼굴을 합성한 사진을 써 논란이 돼 수업을 진행한 강사가 사과 글을 올리기도 했다. 박재홍 기자 maeno@seoul.co.kr
  • 여섯 번째로 로체 남벽에, 홍성택 대장 “세계 초등 꼭 성공하고 돌아와야죠”

    여섯 번째로 로체 남벽에, 홍성택 대장 “세계 초등 꼭 성공하고 돌아와야죠”

    “이번이 여섯 번째죠? 이번에는 정말로 성공하셔야 합니다. 홍 대장에게 꼭 말씀 전해주세요.” 세상에서 네 번째로 높은 히말라야 로체(해발 고도 8516m)의 남벽은 높이만 3300m에 이르러 아직까지 이 벽을 기어올라 정상을 발 아래 둔 인류가 없다. 널리 알려져 있듯이 에베레스트를 오르는 길에 일정 포인트에서 갈라져 두 봉우리를 한번의 원정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밟는 이들이 적지 않지만 남벽을 오른 이는 아무도 없었다. 세계 산악계가 마지막으로 풀지 못한 숙제로 남아 있다. 내셔널지오그래픽 공식 탐험가로 지금까지 다섯 차례 실패한 홍성택(53) 대장이 이끄는 2019 로체남벽 원정대가 5월 중순쯤 정상 등정에 도전할 계획으로 오는 25일 네팔 카트만두를 향해 떠난다. 로체 남벽은 5200m의 베이스캠프부터 정상까지 3300m의 직벽을 올라야 한다. 평균 경사 60도 이상이며 스노 샤워(가벼운 눈사태)가 끊임없이 쏟아지며, 희박한 산소, 변덕스러운 기상 등으로 산악인의 전설 라인홀트 메스너가 두 차례 실패한 뒤 “21세기에나 오를 산”이라며 발걸음을 돌렸던 일화로 유명하다. 폴란드 출신의 또다른 레전드 예지 쿠쿠츠카가 1989년 운명을 달리한 곳으로도 악명 높다. 1990년 체코슬로바키아 산악인 토모 체젠이 솔로 완등을 주장했다가 거짓으로 판명됐고, 같은 해 10월 러시아 팀이 등정했다고 주장했으나 정상에서의 사진을 제시하지 못했다. 홍성택 대장은 1999년을 시작으로 2007년, 2014년, 2015년, 2017년까지 다섯 차례 등정했으나 번번이 좌절했다. 2년 전에는 8300m 지점까지 올랐으나 정상을 눈앞에 두고 발걸음을 돌렸던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 2007년 두 번째 도전 때 로체 앞 갈림길에서 했던 고(故) 박영석 대장과 했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각별한 집념을 키우는 것도 이채롭다.이번 원정대는 홍 대장의 다섯 차례 원정과 달리 중국과 스페인, 콜롬비아, 코소보 등 여러 국적의 대원들로 꾸려졌다. 부대장을 맡은 호르헤 에고체아가(스페인)는 2년 전 원정대에 함께 한 뒤 히말라야 14좌 무산소 완등을 마치고 홍 대장을 돕기 위해 합류했다. 허징(중국)과 우타 아브라힘(코소보) 등 떠오르는 여성 산악인들이 함께 하는 점도 색다르다. 홍성택 대장은 “완전한 성공이란 모두 다치지 않고 무사히 정상에 갔다 내려오는 것이다. 정상 등정에 성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안전하게 등반하는지에 의미를 두고 있다”며 “많은 이들이 타인과 경쟁하며 사는 것을 도전이라고 생각하는데 진정한 의미의 도전이 아니며, 많은 경우 정신을 피로하게 하며 불행에 빠지게 한다”고 말했다. 이어 “어떤 이들은 왜 다시 가느냐고 묻는데, 산악인으로서 이 벽을 깨끗하게 완등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기에 완수하기 위해 가는 것이다. 여섯 번째 도전에서 이런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다”고 각오를 다졌다. 이번 원정은 텔로미어 연장 기술 특허를 바탕으로 생명 연장과 노화 방지에 도전하는 디파이타임 홀딩스(대표 조나단 그린우드)가 후원하며 내셔널지오그래픽이 원정의 모든 과정을 다큐멘터리로 제작해 방영할 계획이며 중국의 영화 촬영팀이 극장용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을 위해 함께 한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대니 로즈 “젊은 흑인들 부당한 대접 받는다는 스털링 발언 옳다”

    대니 로즈 “젊은 흑인들 부당한 대접 받는다는 스털링 발언 옳다”

    “라힘 스털링(24·맨체스터 시티)이 젊은 흑인 선수들을 미디어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비판했을 때 선수들은 하늘에 붕 떠 있었다(over the moon).” 잉글랜드 축구대표팀의 풀백 대니 로즈(28·토트넘)가 언론들이 스털링의 발언을 문제 삼았을 때 동료들이 입을 다문 것에 의아함을 느꼈다며 스털링은 “라커룸에서 우리가 늘 하던 얘기를 옮겼을 뿐”이라고 감쌌다. 로즈는 22일(이하 현지시간) 체코, 25일 몬테네그로와의 유럽축구선수권(유로) 2020 예선 경기를 앞두고 대표팀에 소집됐는데 19일 BBC 스포츠 인터뷰를 통해 “그의 발언이 100% 사실에 부합한다는 것이 몹시 슬프다”고 말했다. 스털링은 지난해 12월 첼시와의 경기 도중 한 팬으로부터 인종 차별 소지가 다분한 말을 들었다. 나중에 여러 신문들은 젊은 흑인 선수들을 묘사하는 방식 때문에 인종주의에 기름을 끼얹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 그의 발언을 문제 삼았다. “그가 미디어들로부터 받은 공격은 도가 넘어도 한참 넘은(bang out of order) 것들이었다. 그가 미디어에 대한 글을 (인스타그램에) 올려놓았을 때 우리 모두는 이 모두를 동의해놓고도 하늘에 붕 떠 있는 것 같았다. 라힘에게 페어플레이를!!” 스털링은 팀 동료인 토신 아다라비오요와 필 포든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주택을 구입했을 때 언론들이 피부색 때문에 다른 잣대를 들이댔다고 정면으로 비판했다. 스털링은 흑인인 아다라비요오를 향해 “프리미어리그 출전 경력도 없는데도 225만 파운드의 집을 샀다”고 비난한 반면, 백인인 포든에 대해선 “어머니를 위해 200만 파운드의 주택을 구입해 미래를 준비했다”고 기술하는 문제를 언론이 드러냈다고 꼬집었다. 또 자메이카 킹스턴에서 총격을 받고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기리기 위해 스털링이 다리에 새긴 라이플 문신을 보고 언론들이 무분별하게 비난한 것에 대해서도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로즈는 “소셜미디어의 몇 안되는 긍정적인 점 하나는 당신 역시 목소리를 낼 수 있고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라며 “이제 라커룸에서의 소년들 뿐만 아니라 모든 이들이 미디어가 라힘을 노리고 있음음 알게 됐다. 우리는 이것이 바뀌어 어떤 식으로든 라힘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길 바란다. 그러면 우리 모두 고마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개러스 사우스게이트 잉글랜드 대표팀 감독은 체코, 몬테네그로와의 경기를 앞두고 처음으로 칼룸 허드슨오도이(18·첼시)를 발탁했는데 그 역시 지난 14일 디나모 키예프(우크라이나)와의 유럽축구연맹(UEFA) 유로파리그 경기 도중 인종 차별 구호를 들었다. 전에 인종 차별 공격에 대해 “귀가 먹었으며” 축구 단체들이 이를 바꿀 용기를 갖고 있지 않다고 밝혔던 로즈는 “오늘 아침에도 칼룸이 견뎌냈다는 신문 기사를 읽었다. 하룻밤 새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우리가 해결책을 찾을 때까지 한두 가지 사례가 더해질 것이며 이 문제를 다루거나 걱정하는, 믿을 만한 기관이 없다고 말하고 싶지 않은 현실이 서글프다. 칼룸 역시 이런 일에 영향 받지도, 설사 이 일에 대해 얘기할 필요가 있더라도 내가 여기 이렇게 있으니 참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대형 사립유치원 모두 에듀파인 도입… 유치원 3법 통과만 남았다

    이덕선 이사장 설립한 유치원도 수용 내년부터 전체 사립유치원으로 확대 유은혜 장관 “회계 투명성 높일 첫걸음” 사립유치원의 회계 투명성을 강화할 수 있는 국가회계관리 시스템인 ‘에듀파인’이 적용 대상 유치원에 사실상 100% 도입됐다. 유치원 비리를 막기 위해서는 에듀파인 도입을 넘어 ‘유치원 3법(유아교육법·사립학교법·학교급식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가 반드시 이어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교육부는 3월 15일 기준 에듀파인 1단계 도입 의무 사립유치원(원아 200명 이상) 570곳 중 568곳(99.6%)이 참여했다고 17일 밝혔다. 미도입 2개 유치원은 폐원신청을 냈고 원아가 모두 다른 곳으로 이동해 사실상 모든 유치원이 에듀파인을 도입했다고 교육부는 설명했다. 에듀파인은 국공립유치원과 초·중·고교에서 쓰는 온라인 회계관리 시스템으로 설립자와 원장 외에 일반 교사들도 회계 현황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기존에 사립유치원들은 설립자와 원장들이 ‘주먹구구’식으로 회계를 운영해 비리를 저지를 수 있는 여지가 많았고, 부정을 저지르더라도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최근 개학 연기 투쟁을 주도하다 여론의 역풍을 맞고 사퇴한 이덕선 전 한유총 이사장이 설립한 경기도 동탄의 유치원도 에듀파인 도입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유치원은 지난 13일 이 이사장의 횡령 등의 혐의로 검찰의 압수수색을 받았다. 이밖에 도입 의무 대상이 아닌 사립유치원 199곳(공영형 7곳 포함)도 자발적으로 에듀파인을 도입했다. 교육부는 현장의 에듀파인 적응을 돕기 위해 대표강사 134명 등을 투입해 사용자 교육도 실시한다. 에듀파인은 내년부터 전체 사립유치원에 의무 적용된다.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유치원 회계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첫걸음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립유치원의 공공성 강화를 위해서는 ‘유치원 3법’ 통과 등 과제가 여전히 남아 있다. 유치원 3법은 사립유치원 설립자 등이 교비를 교육 목적 외 사용할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행법으로는 유치원 교비를 사적으로 유용해도 금액만 보전하면 별다른 처벌을 받지 않는다. 지난해 12월 국회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유치원 3법은 최장 330일이 지나야 본회의에 자동 상정되는 규정에 따라 오는 12월까지 처리가 미뤄질 수 있다. 이 사이 한유총을 비롯해 유치원 3법 통과를 반대하는 강경파 유치원들이 ‘태업’(급식이나 간식의 질을 떨어뜨리는 등 고의로 서비스 질을 떨어뜨리는 것)에 나서거나 자유한국당 의원들과 공동으로 법안 통과 저지 운동을 벌일 수도 있다. 송경원 정의당 정책위원회 위원은 “유치원 3법은 사립유치원 사태를 촉발한 원인인 설립자들의 교비 사적 유용을 근본적으로 막을 수 있는 법안”이라고 설명했다. 박재홍 기자 maeno@seoul.co.kr
  • 詩적인 순간 소설적 순간 그 교집합에 내가 존재해

    詩적인 순간 소설적 순간 그 교집합에 내가 존재해

    “알 수 없는 일을 ‘알 수 없어요’라고 보여주는 게 시고, 알 수 없는 것을 알아가는 과정을 정리해 놓은 게 소설 같아요. 제 위치는 그 중간이 아닐까요.” 2007년 서울신문에서 시로, 2009년 동아일보서 단편 소설로 당선된 ‘신춘문예 2관왕’ 이동욱(41) 작가의 첫 소설집 ‘여우의 빛’(민음사)이 나왔다. 시로 등단한 지 12년, 소설로 등단한 지 10년 만에 나오는 첫 책이다. 그의 소설 속에서 킬러는 ‘멘토’를 죽이라는 조직의 명령을 받고, 오랜 기간 아내와 ‘섹스리스’였던 남편은 쓰레기 봉지에서 두 줄 선명한 임신테스트기를 발견한다. 포켓볼을 치다 당구대를 사이에 두고 불현듯 ‘내일 이별’을 말하는 여자도 있다. ‘여우의 빛’은 이 시간들 이후 남겨진 사람들의 시간에 주목한다. 킬러, 열쇠공, 트럼펫 연주자 등 특정 대상에 몰두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 ‘기능인’들은 각자의 직업적 삶 속에서 남겨진 시간들을 유희한다. 킬러야 당연히 상상이고 열쇠공은 취재한 결과, 트럼펫 연주자는 실제 군악대에서 연주자로 복무한 작가의 경험에 기반했다. 이들 직업 세계를 집요하게 보여준 의미는 뭘까. “특별하게 어떤 의도가 있었던 건 아니에요. 실체가 있으면 그림자가 있잖아요. 제가 했던 작업은 반대예요. 그림자를 먼저 보여 주고, 그 그림자를 볼 때마다 생각하는 인물들이 있죠. 그런 인물들의 A·B·C형을 보여주는 작업이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러나 ‘상실의 시대’를 겪고 있는 이들에게, 격정적인 분노 같은 일반적인 감정은 보이지 않는다. 일견 무덤덤해 보이는 이들은, 다만 그 세계를 예민하게 감각할 따름이다. “어느 시점에서 화를 내게 될 거라는 예감이 들면 돌아서거나 다른 쪽으로 (상황을) 틀게 만드는 제 성격이 반영된 거 같아요.” 그렇게 멘토를 죽인 킬러는 ‘내가 없는 사이 벽이 참았던 호흡’을 느끼고, 아내의 외도를 알게 된 열쇠공은 열쇠를 형태가 사라질 때까지 그라인더에 간다. ‘절망의 순도에 대해 생각하는 밤이다./이것은 증류수처럼 고요한 시간의 기록이다./그 속에서 나는 물방울처럼 웅크린다.’(여우의 빛) 각 소설의 포문을 여는, 시처럼 쓴 첫 문장은 작가의 지향을 정확히 알려주는 것이기도 하다. 시·소설 모두로 등단했지만 “소설이 훨씬 낫다”는 주변 이야기에 소설집을 먼저 내게 됐다는 그. “제 위치는 시적인 순간과 소설적인 순간의 교집합에 있다고 생각해요. 스스로도 그걸 차별점으로 두고 전체 작품을 관장할 수 있는 문장을 뽑아내 전면에 배치하면 어떨까 생각했습니다.” 남들은 한 번도 어렵다는 신춘문예 당선. 그것도 두 번이나 일궈낸 비결이 궁금했다. 그는 “조사 쓰는 거나 문장력, 화자의 목소리, 화법 같은 것들은 첫 문장, 첫 페이지만 보면 보인다고 한다”며 “첫 문장, 첫 페이지를 가장 공들여 쓰는 게 좋은 작품이 (심사위원들에게) 콘택트 될 수 있도록 서포트를 해주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기술적으로는 그렇지만, 기본기 없이 등단이 된다는 게 개인적으론 불행이 될 수도 있을 거 같아요. 그게 부족하다 보니 개인적으로 힘들었어요.” 솔직한 고백이다. 앞으로 어떤 시, 소설을 쓰고 싶은지 물었다. 소설 얘기가 먼저 나왔다. “흔한 말로 소설 주인공들에 계속 ‘프레셔’(압력)를 줘야 한다는 말이 있잖아요. 더 궁지로 몰라고. 알고는 있었는데, 적용해 본 적은 별로 없는 거 같아요. 사건을 예감하기만 하고 거기까지는 안 가는 경우가 많이 있어요. 근데 조금 더 가까이 가봐도 되지 않을까….” 시는? “정답은 아니지만, 시는 어릴 때 최고의 작품이 나오고 소설은 말년에 최고의 작품이 나온다는 얘기가 이해가 돼요. 시를 쓴다면 눈을 씻고, 초심으로 돌아가야 되지 않을까….” 알 수 없는 일을 알 수 없다고 솔직히 고백하는 것과, 일말의 과정을 톺아 나가는 일을 사이에 두고 시인 또는 작가는 고민이 많아 보였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故 노무현 대통령 서거 10주기 추모작 ‘노무현과 바보들’ 4월 개봉

    故 노무현 대통령 서거 10주기 추모작 ‘노무현과 바보들’ 4월 개봉

    고(故) 노무현 대통령 서거 10주기 맞아 다큐멘터리 영화 ‘노무현과 바보들’ 개봉 소식이 전해졌다. ‘노무현과 바보들’은 사람 사는 세상을 꿈꿨던 고 노무현 대통령과 그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기억으로 완성된 작품이다. 고 노무현 대통령 서거 10주기를 맞아 오는 4월 개봉된다. 3년간의 기획 과정을 거쳐 완성된 ‘노무현과 바보들’은 80여명의 인터뷰이를 통해 부림사건과 국민참여경선, 그리고 대통령 당선의 순간은 물론 거듭된 위기와 서거, 그리고 현재까지를 그렸다. 특히 ‘노무현과 사람들’에는 이전 작품에서 한 번도 공개된 적 없는 미공개 영상들이 최초 공개될 예정이다. 故 노무현 대통령 서거 10주기 추모작 ‘노무현과 바보들’은 오는 4월 극장에서 만날 수 있다.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 부족한 호스피스 병상…아쉬운 임종, 결국은 시스템·인력 문제

    부족한 호스피스 병상…아쉬운 임종, 결국은 시스템·인력 문제

    지난해 2월 4일 시행된 ‘연명의료결정법’으로 임종을 앞둔 환자가 품위 있는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회가 열렸다. 하지만 정작 연명 의료를 중단한 환자들의 평안한 임종을 돕는 호스피스 기관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호스피스는 말기 상태에서 극심한 통증을 겪는 환자들에게 불필요한 의료 행위를 배제하는 대신에 통증 완화에 집중하면서 정신적·영적 돌봄을 제공하는 서비스다. 우리나라는 1963년 ‘마리아의 작은 자매회’ 수녀들이 강원 강릉 갈바리의원에서 임종자들의 간호를 시작한 게 시초다. 아시아권에서는 가장 먼저 시작됐지만 전문기관 및 인력 부족, 홍보 부족 등으로 활성화는 더디기만 하다. 11일 중앙호스피스센터에 따르면 호스피스 완화의료 전문기관(입원형)의 수는 전국 84개, 병상수는 1341개다. 한 해 암으로 사망하는 환자수가 7만~8만명에 이르는 것을 감안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그나마 이용자수가 조금씩 증가해 2017년에는 암 사망자의 22%가 호스피스를 이용한 것으로 집계되지만, 미국(52.0%)이나 캐나다(40.8%), 영국(46.6%), 대만(39.0%) 등과 비교하면 열악한 수준이다. 특히 서울, 부산 등 대도시에서는 호스피스 병상이 부족해 대기자가 줄을 서거나 입원 기간이 2~3주가 지나면 퇴원을 권고받는 일도 적지 않다. 아픈 환자들도 하다 하다 안 될 때 마지막으로 호스피스를 찾는 경향이 뚜렷했다. 2017년 호스피스 이용 환자들은 사망하기 평균 한 달 전(30.3일)에 호스피스에 처음 등록했다. 그나마도 이용자 4명 중 1명(23.4%)은 호스피스를 일주일도 채 이용하지 못하고 사망했다. 임종이 임박해서야 호스피스를 찾는 사례가 많다는 얘기다. 윤영호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환자들이 삶을 잘 마무리하려면 적어도 6개월 전부터 호스피스가 연계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면서 “조기에 호스피스를 통한 완화의료가 제공되면 오히려 생존 기간이 늘어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고 강조했다. 호스피스 이용자가 대부분 암환자에게 집중되고 있다는 점도 한계로 꼽힌다. 정부는 2017년 8월부터 암 이외에도 만성폐쇄성폐질환, 만성간경화, 후천성면역결핍증(AIDS)까지 호스피스 병동을 이용할 수 있게 했다. 하지만 그해 연말까지 이용자 중 암 환자가 아닌 경우는 16명에 그쳤다. 서울신문이 대한의료사회복지사협회와 함께 지난 1~2월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자 81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심층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81.3%가 호스피스를 이용하겠다고 답했다. 그러나 동시에 ▲끝까지 의학기술에 의지하려는 환자나 가족의 태도(36.5%) ▲호스피스에 대한 부정적 인식(28.4%) ▲대상자 및 시기 판단의 어려움(25.7%) ▲호스피스 기관 및 인력 부족(23.0%) 등이 호스피스 활성화에 어려움을 겪는 요인으로 꼽혔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과 함께 왕진 제도를 부활시킨 가정형 호스피스 등 다양한 시스템을 연계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2016년 3월 시범사업으로 시작한 가정형 호스피스는 환자들이 친숙한 공간에서 의료 서비스를 받는다는 점에서 만족도가 높다. 경기 파주시에 사는 전모(52·여)씨는 암의 일종인 가성점액종으로 투병하면서 지난해 11월부터 국립암센터 가정형 호스피스를 이용하고 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의사나 간호사, 사회복지사가 방문해 전씨의 증상을 살피고 24시 전화상담도 받는다. 전씨의 남편 최모(57)씨는 “의료진이 주기적으로 집으로 와서 살펴봐 주니까 너무 좋다”면서 “주변에서 돈을 얼마나 내야 하느냐고 묻길래 7000원(1회·암환자 본인부담 5% 적용) 정도라고 하면 다들 놀란다”고 말했다. 윤미진 국립암센터 가정전문간호사는 “의료진 입장에서도 환자와 보호자가 편안하게 느끼는 환경에서 환자의 질환뿐만 아니라 심리 상태와 인간적인 부분들을 공유하고 보다 전인적인 완화의료를 제공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가정형 호스피스를 제공하는 의료기관은 전국 33곳에 불과하다. 사망 전 가정형 호스피스를 이용한 사람들의 이용 횟수도 1회에 그친 경우가 대부분(2017년 기준 83%)이었다. 가정형 호스피스가 닿지 않는 지역이 많은 데다 환자를 돌볼 가족이 없는 경우 입원형 호스피스에 대한 선호도가 높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송인규 중앙호스피스센터 선임연구원은 “질환 초기에는 기존의 병원에서 완화의료를 제공하고, 환자가 말기에 접어들면 가정형·입원형 호스피스가 집중적으로 개입하는 방식으로 호스피스를 설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혜리 기자 hyerily@seoul.co.kr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 안현모·라이머 부부 “3월 10일, 안창호 서거일 기억하나요?”

    안현모·라이머 부부 “3월 10일, 안창호 서거일 기억하나요?”

    방송인 안현모·라이머 부부가 3월 10일 ‘안창호 서거일’을 맞아 서경덕 교수가 전개하는 ‘대한민국 역사, 실검 프로젝트’에 동참했다. 안현모·라이머 부부는 자신의 SNS 등을 통해 서 교수가 제작한 카드뉴스를 확산시켜 ‘안창호 선생’을 포털사이트 실검에 오르도록 하루 동안 활동한다. ‘대한민국 역사, 실검 프로젝트’는 역사적인 날에 맞춰 그날의 정확한 한국사 지식을 누구나 다 이해하기 쉬운 카드뉴스로 제작해 SNS상에 널리 퍼트리는 캠페인이다. 지금까지 배우 소이현, 박솔미, 박하선, 방송인 박명수, 정준하, 하하, 송은이, 김숙, 알베르토, 다니엘, 아나운서 배성재, 이지애 등이 참여했다. 1장의 카드뉴스에는 안창호 선생의 사진과 함께 “신민회와 대성학교, 흥사단 등을 설립하고 대한매일신보와 공립신보를 발행하는 등 애국계몽활동 및 실력양성운동을 펼친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였다”는 내용이 담겼다. 또 “3.1운동 직후에도 상해임시정부 내무총장을 맡아 임시정부의 조직과 운영을 주도하기도 했다. 윤봉길 의사의 홍커우 의거와 동우회 사건으로 수감생활 중 옥중에서 얻은 병이 악화되어 1938년 3월 10일에 순국하였다”고 설명했다. 안현모와 라이머는 “의미 있는 역사 캠페인에 동참하게 되어 기쁘다. 팔로워들이 ‘좋아요’를 통해 함께 힘을 모은다면, 안창호 서거일을 널리 알릴 수 있을 것”이라며 적극적 동참을 부탁했다. 서경덕 교수는 “올해는 3.1운동 및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맞는 역사적인 해”라며 “이를 기념해 대한민국 독립운동 역사의 의미 있는 날을 함께 기억하자는 대국민 캠페인을 지속적으로 펼칠 예정”이라고 전했다.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 봉하 찾아온 황교안에 권양숙 “여기가 아방궁” 뼈 있는 농담

    봉하 찾아온 황교안에 권양숙 “여기가 아방궁” 뼈 있는 농담

    黃 “노무현 정신 다시 되새기게 됐다” 권 여사와 30여분 대화… 홍삼 선물 시민단체 20여명 “한국당 해체” 시위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5일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이 있는 경남 김해 봉하마을을 방문해 통합의 정신을 강조했다. 하지만 일부 시민들은 “한국당을 해체하라”며 황 대표에게 시위했다. 황 대표와 한선교 사무총장 등 신임 지도부는 이날 오후 봉하마을을 찾았다. 황 대표는 방명록에 “대통령님의 통합과 나라 사랑의 정신 깊이 기억하겠다”고 적었다. 이어 황 대표는 노 전 대통령 사저로 이동해 권양숙 여사와 30여분간 대화를 나눴다. 권 여사는 노 전 대통령의 서재 등 집안 곳곳을 황 대표에게 소개했다. 황 대표는 “대통령이 계셨던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 제일 좋은 것”이라며 선물로 준비한 홍삼을 권 여사에게 전달했다. 권 여사는 “집의 규모가 애매해 둘러볼 것은 없고, 살림하기에 (커서) 애매하다. 그래도 참 잘 지은 집”이라며 “아방궁이 맞는 것 같다”고 농담을 건넸다고 민경욱 한국당 대변인이 전했다. 아방궁은 한국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이 노 전 대통령의 사저를 두고 “호화로운 아방궁”이라고 비판할 때 등장했던 표현이다. 권 여사는 황 대표에게 “어려운 일을 어떻게 하시렵니까”라고 했고, 황 대표는 “서거 10주년을 맞아 여러 가지 마음이 무겁고 힘드실 텐데 노 전 대통령 뜻을 기리는 일을 잘 감당하시길 바란다”고 했다. 권 여사는 “서울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오시기 불편했을 텐데 귀한 시간 빼앗아 죄송하다”고 했다. 황 대표는 이후 기자들과 만나 “노 전 대통령님의 통합과 나라 사랑의 정신을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됐다”며 “우리 사회 현안인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이라크 파병 등 갈등들을 해소한 걸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적폐청산민주사회건설경남운동본부 등 일부 시민 단체 소속 회원 20여명은 봉하마을 주차장 입구에서 황 대표의 도착 전부터 ‘5·18 역사 왜곡 한국당 해체하라’, ‘국정농단 공범 황교안은 집에 가라’라는 피켓을 들고 시위를 했다. 충돌을 막기 위해 경찰 병력도 배치됐다. 결국 황 대표는 이들을 피해 차에서 내려 직접적인 충돌은 피했지만 시민들은 묘역을 참배하는 황 대표의 뒤를 쫓아와 “망언 정당 해체하라”고 소리를 질렀다. 황 대표는 비판의 목소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오늘은 노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것에만 마음을 모으는 게 좋다”며 답변을 피했다. 한국당 계열 보수 정당의 대표가 봉하마을을 찾은 것은 황 대표가 세 번째다.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는 2015년 보수 계열 정당 대표로서 처음으로 노 전 대통령 묘역을 찾았으나 당시 권 여사가 선약을 이유로 만남 제의를 거부했다. 같은 해 6주기 추도식에선 추모객들이 김 전 대표에게 야유와 함께 물병을 던지며 욕설을 퍼부었다. 박희태 전 한나라당 대표는 2009년 노 전 대통령 서거 직후 봉하마을을 찾았지만 주민들의 거센 반대로 발길을 돌렸다. 김해 서유미 기자 seoym@seoul.co.kr
  • 황교안이 노 전 대통령 묘역 참배하고 방명록에 남긴 글

    황교안이 노 전 대통령 묘역 참배하고 방명록에 남긴 글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5일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역이 있는 경남 김해 봉하마을을 방문했다. 황 대표는 이날 오후 5시 30분쯤 봉하마을에 도착해 노 전 대통령 묘역부터 찾았다. 묘역 입구에는 황 대표 명의의 추모 화환이 자리하고 있었다. 준비된 조화를 묘역에 바치고 참배한 황 대표는 방명록에 ‘대통령님의 통합과 나라 사랑의 정신, 깊이 기억하겠습니다’라고 적었다. 앞서 황 대표는 당 대표 취임 첫날인 지난달 28일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아 고 이승만·김영삼·박정희·김대중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했다. 당시 방명록에는 ‘위대한 대한민국의 새 전진, 자유한국당이 이뤄내겠습니다’라고 적었다. 노 전 대통령 묘역 참배를 마친 황 대표는 권양숙 여사와 약 30분 동안 면담했다. 황 대표는 권 여사에게 홍삼을 선물로 건넸다. 민경욱 대변인에 따르면 황 대표는 이 자리에서 “(노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를 맞아 여러가지 마음이 무겁고 힘드실텐데, 노 대통령의 뜻을 기리는 일을 잘 감당하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권 여사는 “올해가 김대중 대통령 서거 10주기이기도 해서 민주당에서도 신경을 쓰는 것 같다”고 말했다.황 대표는 노무현 기념관은 언제 건립이 완료되는지도 물었다. 권 여사는 “기념관은 2020년에 준공된다”고 답했다. 황 대표는 “잘 마무리가 되길 바란다”고 화답했다. 권 여사는 노 전 대통령이 사용했던 거실과 서재, 뒤뜰 등을 황 대표에게 직접 소개하기도 했다. 권 여사는 황 대표에게 매화꽃을 선물했다. 황 대표는 권 여사와 만난 뒤 소감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노 대통령의 통합과 나라 사랑의 정신을 다시 한 번 되새기게 됐다”면서 “(노 대통령 재임 시절) 현안들에 있어 한·미 FTA(자유무역협정)나 이라크 해외 파병이라든지, 이런 부분에서 갈등을 해소하신 것을 기억한다”고 말했다. 이날 일부 진보단체들은 집회를 열어 ‘5·18 망언 너희가 괴물이다’, ‘5·18 망언, 탄핵 불복 자유한국당 OUT’, ‘탄핵 촛불 부정하는 황교안이 박근혜다’ 등의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황 대표의 봉하마을 방문을 항의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오로지 국가·민생 위하여… 18년 유배생활서 ‘실사구시’ 꽃피우다

    오로지 국가·민생 위하여… 18년 유배생활서 ‘실사구시’ 꽃피우다

    다산은 유배된 후 할 일이 없어 고금을 연구하고 민생 문제와 국가의 대계에 유념하여 토론하고 저술하였다. 그는 근본적인 것을 규명하여 실제 사용할 수 있는 학문을 중시하였기 때문에 저술은 모두 후세의 법이 되었던 것이다. -황현, ‘매천야록’ 권1 다산 정약용(1762∼1836)은 조선조 후기 실학을 집대성하고, 민과 국가가 처한 위기를 타개하고자 개혁 사상을 내세운 실학자다. 그가 남긴 저술과 제시한 개혁안이 당대는 물론 후대에도 새로운 차원에서 기억되고 호출되고 있는 것은 어째서일까. 이는 그가 남긴 학문적 성취가 현재까지 남아 현재로 이월되었기 때문 아니겠는가. 그의 학술적 역량과 개혁적 사유는 ‘여유당전서’에서 확인할 수 있다. 매천이 다산의 저술을 두고 현실에서 활용할 수 있는 전범으로 주목한 것은 다산의 실사구시 정신을 주목한 것일 터이다.#시대를 아파하고 민을 노래한 거인 다산은 실학자이기도 하지만, 그가 남긴 시문은 여느 시인과 달리 현실 문제를 소재로 포착하고 있어 진한 울림을 준다. 더욱이 다산의 남시문은 그의 학술적 성취와 안팎을 이룰 정도로 조화를 이룬다. 임금을 사랑하고 나라를 근심하지 않으면 시가 아니요, 시대를 슬퍼하고 세속을 개탄하지 않으면 시가 아니며, 높은 덕을 찬미하고 나쁜 행실을 풍자하여 선을 권하고 악을 징계한 것이 아니면 시가 아니다. -‘다산시문집’ 권21, ‘아들 연아(淵兒)에게 보냄’ 다산은 일찍이 “나는 조선사람. 조선시를 즐겨 지으리라”라고 해 ‘조선시 선언’을 주장하고, 한편으로는 한시 특유의 음풍농월과 달리 민의 삶을 포착하여 민을 위한 비가(悲歌)로 표출한 바 있다. 나라와 시대를 걱정하고 권선과 징악을 풍자하는 시만이 진실한 시라고 주장한 다산의 사유 속에는 항상 민과 나라가 자리잡고 있었다. 다산은 다른 글에서 “백성들에게 혜택을 주려는 마음이 없는 자는 시를 지을 수 없다”고 단언할 정도로 매우 단호한 문학인식을 보여 줬다. 그 문학적 단호함은 ‘애절양’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다산은 목민심서에서 ‘군적을 만들어 군포(軍布)를 거두는 폐단을 고치지 않는다면 백성들은 모두 죽을 것’이라고 확언하면서 ‘애절양’을 인용한 바 있다. ‘애절양’은 조선조 후기 백성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군포 착취로 농민이 스스로 자신의 남근을 자른다는 비참한 내용을 담은 한시다. 다산은 ‘경세유표’ 앞머리에서 “지금 개혁하지 않으면 나라는 반드시 망하고야 말 것”이라고 발언하고 있거니와, 이는 남근을 스스로 자르는 비참한 현실을 개혁하려는 의지를 여실히 보여 주는 것이자 당대 현실의 정확한 진단이다.#좌절을 딛고 고뇌 속에 꽃핀 창조 다산은 유배 생활에서 숱한 좌절을 겪지만, 그 상황에 굴하지 않고 학단을 만들어 제자를 기르는 한편 그들의 학문적 역량을 빌려 저술활동을 하고 개인적 좌절도 이겨 내었다. 그는 유배 기간 내내 학문적 고뇌 속에 창조적 예봉을 마다하지 않았다. ‘경세유표’를 비롯해 ‘목민심서’와 ‘흠흠심서’ 등 500여권의 방대한 저술은 대부분 유배 시기에 구상하거나 저술했다. 학술적 두 축인 경세학과 경학의 성취가 모두 이 시기에 이루어졌음은 물론이다. 다산은 18년 동안 유배 생활을 창조적 시간으로 활용해 학술적 역량을 꽃피운 것이다. 유배를 마친 이후에도 다산은 저술을 보완하고 수정을 거듭하며 자신이 구상한 사회개혁과 새로운 국가건설의 대안을 녹여 내었다. 하지만 자신의 학술적 성취가 유명무실해지는 것을 항상 두려워했다. 내 죽은 뒤에 아무리 정결한 희생과 풍성한 안주를 두고 제사를 지낸다 하여도, 내가 진정 흠향하고 기뻐하는 것은 내 책 한 편을 읽고 내 책 한 장을 베껴 주는 일보다는 못할 것이니, 너희는 그 점을 기억해 두어라. -‘다산시문집’ 권21, ‘두 자식에게 보여 주는 훈계’ 유배지에서 학술 교류가 없던 상황이다 보니 자신의 성취를 외면하지 말 것을 자식에게 당부하지만, 언젠가 자신의 저술을 알아줄 사람이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이는 민을 위하고 국가를 혁신하는 대안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다산의 저술은 민과 국가를 자양분으로 사고한 학술적 꽃이다. 무엇보다 다산 스스로 유배지에서 넉넉한 민의 품성을 재발견하고, 이를 기반으로 국가를 개혁하려 한 역사적 전망을 지녔기 때문이다. 다산이 시문에서 ‘민’을 중심에 놓고 노래한 것이나, 사서삼경과 같은 경전을 재해석한 저술과 ‘경세유표’와 같은 경세서에서 국가를 중심에 놓고 혁신적 안을 마련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래서 다산은 ‘자찬묘지명’에서 ‘낡고 오랜 우리 조선을 새롭게 혁신’(新我之舊邦)할 것을 주장했다. ‘경세유표’ 머리글에서는 “지금 곧 개혁하지 않으면 나라는 반드시 망하고야 말 것이다”라는 발언을 거리낌 없이 했다. #난세에 호출되는 ‘여유당전서’ 다산의 저술은 한국학의 거점이자 19세기 학술의 뛰어난 성과다. 그의 저술은 이후 역사 공간에서 비상한 주목을 받는다. 과거사가 아닌 현재진행의 역사 공간에서 지속적으로 호출된다. 고종은 부강정책에 예의주시하여 경장을 서둘렀다. 그러나 많은 신하 중에서 누구 하나 의지할 사람이 없었으므로, 을유년과 병술년 사이에 ‘여유당집’을 올리라고 하였다. -‘매천야록’ 권1 고종이 부국강병을 위해 다산의 저술을 기억한 것은 새로운 국가체제의 구상에 필요한 대안을 다산의 경세서에서 찾으려 한 것임은 물론이다. 시대의 호출에 다산의 저술이 부활한 것이다. 다산의 혁신적 사유와 개혁적 여러 안들은 갑오농민전쟁 시기에도 다시 주목을 받는다. 1930년대 실학 연구의 선구자인 최익한은 ‘강진읍지’를 인용하면서 전봉준, 김개남 등의 갑오농민군 지도자들이 ‘경세유표’를 활용하였음을 밝힌 바 있다. 역사적 사실 여부를 떠나 우리는 정약용의 저술이 역사적 변혁기에 재발견되고 호출하고 있는 점을 중시할 필요가 있다. 다산의 저술은 일제강점기에 이월돼 조선학 운동을 추동하는 기제로 작동하기도 한다. 1930년대 중반 정인보, 안재홍, 홍명희 등은 ‘신조선사’라는 출판사에서 ‘여유당전서’와 ‘담헌서’ 등을 출간하면서 조선학 운동을 전개했다. 이는 근대적 학술이 식민지 조선에서 본격적으로 전개할 수 있도록 토대를 구축하기 위한 것으로, 식민지학에 대응한 자국학의 정립에 방점이 있다. 자국학의 구체적 학술적 성과에 ‘여유당전서’를 그 중심에 둔 것은 지금의 한국학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이처럼 다산의 저술은 시공을 넘어 수시로 기억된다. 진재교 성균관대 한문교육과 교수 ■ 여유당전서는 다산의 저술 정리한 문집 필사·목판본 등으로 간행 다산의 저술은 일찍이 필사본과 목판본, 연활자본 등으로 유통됐다. 다산의 자제와 제자들은 문집 간행을 위해 원고본을 만들었지만 500권 100책에 이르는 저술은 조선조가 끝날 때까지도 간행하지 못했다. 그의 저술 중에서 실용적인 문헌은 19세기까지 필사본으로 유통됐지만, 공식 출판은 19세기말 목판본인 ‘이담속찬’이 유일하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와 일부 학술단체의 일본인들이 다산의 저술을 필사하고 연활자로 간행한 바 있고 이후 장지연, 최남선, 정인보 등 지식인들은 다산의 저술을 재발견해 일부 저술을 연활자로 간행했다. 다산 서거 100주년을 전후로 1934~38년 신조선사에서 154권 76책 ‘여유당전서’를 간행했다. 이 ‘여유당전서’는 정약용 스스로 구상한 체재와 다르게 7집 체재로 돼 있다. 한국고전번역원에서는 일찍이 ‘목민심서’와 ‘경세유표’를 번역했고 1982~94년 ‘여유당전서’ 중에서 시문집 22권 10책을 국역 간행했다.
  • [데스크 시각] ‘양비’의 귀환/임일영 정치부 차장

    [데스크 시각] ‘양비’의 귀환/임일영 정치부 차장

    ‘양비’(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가 돌아온다. 2017년 대선 이후 외국을 떠돌던 그가 집권 여당 더불어민주당의 싱크탱크 민주정책연구원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양비 역할론’은 2017년 5월 이후 정치권의 화두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그를 ‘양비!’라고 불렀다고 한다. 웬만해선 ‘~씨’나 ‘직함’을 붙이는 문재인 대통령도 그를 ‘양비’라고 편하게 부른다. 그만큼 믿고 의지하는 ‘복심’이기에 거취는 늘 관심이었다. 2016년 여름 일찌감치 문재인 후보의 대선 베이스캠프에 해당하는 ‘광흥창팀’을 꾸리고, 간판으로 임종석(전 대통령 비서실장) 전 서울시 부시장을 영입한 것도 그다. 2012년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외연 확대가 불가피하다고 판단했다. 대선 공신이지만, 인수위원회 없이 출범한 현 정부의 초기 인선 작업을 매듭지은 뒤 권력에서 스스로 멀어졌다. 문 대통령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문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가 고공행진을 벌일 때도 언젠가는, 어떤 식으로든 복귀하리라는 전망은 끊이지 않았다. 양비는 ‘비선 실세’나 ‘삼철’(정치권·언론이 이호철·전해철·양정철을 문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일컫는 표현)이란 표현에 대해 “지긋지긋하다. 삼철은 문재인을 흠집 내기 위한 존재하지 않는 허구의 프레임”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청와대·내각은 물론 공기업·언론사 사장 인사에서도 ‘양비가 추천했다’, ‘양비와 친하다’는 말이 돌 만큼 비선 실세 프레임은 질긴 생명을 이어 갔다. 여권 관계자는 “양비의 존재가 그렇다. 문 대통령과 ‘거리’를 지키려고 했던 것 같지만, 세상이 그를 놓아 두지 않고, 이 정부에서는 계속될 것”이라고 했다. 이 때문에 청와대는 아니더라도 양비가 공식 직함을 갖는 게 낫지 않으냐는 의견이 여권에서 적지 않았다. 양비도 외국을 떠도는 생활에 많이 지쳤다는 게 가까운 이들의 전언이다. 그의 복귀에 대한 기대감은 여권, 특히 친문 핵심에서 크다. 50% 안팎의 국정 지지율로 집권 3년차를 맞은 상황에서 대통령의 의중을 정확하게 읽고, 일이 되도록 만들어 갈 사람이 당정청에서 손에 꼽을 정도라는 이유다. ‘자기 정치’에 대한 미련이 없어야 욕먹을 일도 할 수 있는데, 총선 출마 의지가 없는 그만한 인물이 없다는 것이다. 정권 재창출이 절실하다는 점도 조기 등판 배경으로 거론된다. 5년 단임제에서 문재인 정부가 ‘오버페이스’를 하지 않고, 개혁 성과를 뿌리를 내리도록 하려면 다음 대선에서 승리해야 하는데 ‘설계자’로서 양비의 능력은 이미 검증됐다는 얘기다. 물론 참여정부 시절 대야·대언론 관계에서 날을 세웠던 모습을 기억하는 이들의 우려도 적지 않다. 그도 지난해 펴낸 ‘세상을 바꾸는 언어’에서 “지금도 남아 있는 강성 이미지는 그때 비롯됐다. 혈기 왕성한 시절이기도 했고, 철저하게 시시비비 가리는 것이 최선의 방어라고 생각했다”며 “돌아보면 고위 공직자로서 지혜로운 방식이 아니었고, 성숙한 대응도 아니었다. 깊이 후회된다”고 했다. 직함을 맡아도 ‘비선 실세’ 꼬리표는 따라다닐지 모른다. 그의 말 한마디, 만나는 사람 면면을 두고 대통령의 의중과 연결지어 해석될 수도 있다. 어쩔 수 없다. 외국을 떠돌던 시간 ‘권력의 언어’의 무게에 대해 깊게 고민했던 그다. 밖에 머물던 때보다 큰 책임과 비판도 감내할 몫이다. 그는 “정권교체로 여한이 없다.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모든 게 부질없다고 느꼈던 시절을 생각하면 가외인생을 선물로 받은 것만 같다”고 했다. 정치권에 발을 담근 뒤 노무현으로, 또 문재인으로 살았던 그가 꿈꾼다는 ‘더 좋은 다음 세상’과 다음 행보가 궁금한 이유다. argus@seoul.co.kr
  • 봉건군주제 뛰어넘은 3·1운동… 상하이 임시정부 씨앗되다

    봉건군주제 뛰어넘은 3·1운동… 상하이 임시정부 씨앗되다

    급작스런 고종 서거… 3·1운동에 도화선복벽주의 아닌 왕정 극복한 민족자결주의 19세기말 독립협회 등 민주공화정 꿈꿔 수많은 임정 탄생… 세 키우기 위해 통합우리나라 헌법 전문에는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했다”고 돼 있다. 정부는 중국 상하이의 대한민국 임시정부(임정) 수립일인 4월 11일을 공휴일로 지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1919년 3·1운동의 정신을 계승한 임정의 의미를 기리자는 취지다. 19세기 말부터 우리 민족은 민주공화정에 대한 열망을 서서히 키워 나갔다. 고종의 죽음을 계기로 3·1운동으로 이를 분출했고 상하이에 임정을 세워 계승했다. ●3·1만세운동 도화선이 된 고종의 죽음 “사실 조선 멸망의 최대 원인은 궁정 자체에 있었다.” 1910년 중국의 대표적 개혁가 량치차오(1873~1929)는 사라진 대한제국을 두고 이렇게 개탄했다. 그는 “오늘날(20세기 초) 입헌국에서 군주는 정치적 책임이 없고 약정도 할 수 없다. 하지만 전제국가는 이와 다르다. 국가의 운명이 전부 궁정 한 곳에 달려 있다”고 설명했다. 조선이 전제군주제에서 입헌군주제로 탈바꿈하지 못해 망국에 이르렀다는 지적이다. 1910년 8월 29일 일본은 강제로 병탄조약을 맺고 대한제국을 식민지로 삼았다. 육군 대장이 조선 총독으로 부임해 행정과 입법, 사법권을 모두 장악했다. 우리 역사의 최대 암흑기였던 36년간의 일제 통치기간이 시작됐다. 1919년 1월 21일 고종(1852~1919)이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한반도 전체가 충격과 비통에 휩싸였다. 건강 하나만큼은 ‘완전체’에 가깝던 그가 돌연사하자 ‘고종이 독살당했다’는 소문이 빠르게 퍼져나갔다. 성난 민초들이 고종의 서거를 애도하고자 서울로 향했다. 이런 움직임이 3·1운동의 직접적인 도화선이 됐다. 하지만 이들이 ‘복벽주의’(나라를 되찾아 왕을 다시 세우겠다는 주장)를 내세운 것은 아니다. 되레 일본으로부터 독립할 새 나라는 대한제국(조선)을 계승하되 국가의 주인은 왕이 아니라 인민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은 24일 “3·1운동 당시 고종에 관한 구호가 아예 없었다”면서 “1911년 중국 신해혁명, 1917년 러시아혁명, 1918년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의 공통점은 황제로 상징되는 절대 권력을 부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 민족은 고종의 죽음을 계기로 왕정을 완전히 극복했다. 3·1운동은 과거 봉건군주제를 넘어선 것이기에 가히 ‘혁명’이라고 부를 만하다”고 강조했다. ●1896년 독립협회 때부터 민주공화제 열망 우리 민족은 대한제국 멸망 이전인 19세기 말부터 민주공화정에 대한 열망을 키워 나갔다. 1896년 조선에 기독교인을 중심으로 독립협회가 만들어진 것이 대표적이다. 자주독립과 천부인권 존중, 한글 사용 등을 강조했는데, 배후에는 헨리 거하드 아펜젤러(1858~1902)를 포함해 서양 선교사들이 있었다. 아펜젤러는 배재학당을 만들어 조선인에게 영어와 민주주의를 가르쳤다. 이승만(1875~1965)도 이 학당의 학생이었다. 독립협회는 종종 대중집회인 만민공동회를 열었다. 만민공동회는 관민공동회로 이어지며 국정개혁의 대원칙을 결정하기도 했다. 미국의 한인들이 발간한 신한민보 1910년 7월 6일자 사설에는 독립협회 정신을 계승해 “현 정부(대한제국)가 일본에 투항한 지 오래됐는데, 우리는 인민의 정신을 대표해 우리의 복리를 도모할 만한 정부를 세울 것임을 선언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런 움직임은 일본 병합 뒤 국내외 망명정부 수립으로 이어졌다. 1911년 12월 연해주 한인들은 항일 결사체인 권업회를 세웠다. 이들은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대한광복군 정부를 수립했다. 1917년 12월에는 ‘전로한족중앙총회’를 세워 독자적인 활동에 나섰다.1915년 3월 중국 동포들은 상하이에서 신한혁명당을 결성했다. 1917년 7월 박은식과 신채호, 김규식 등 독립운동가 14명이 대동단결선언을 발표했다. 이들은 독립운동 최고기관으로 공화정제로 운영되는 임시정부를 건설하자고 주장했다. 국내에서도 3·1운동을 준비한 천도교를 중심으로 임시정부수립운동을 펼쳤다. 3·1운동을 계기로 수많은 임시정부가 생겨났다. 이 가운데 러시아 대한국민의회(노령정부)와 중국 상하이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서울의 한성임시정부는 힘을 모으고자 하나로 통합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아는 임정의 시작이다. 김정인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추진회’ 기획소통분과위원회 위원장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을 명시한 임정의 임시헌장은 정당성의 기원을 3·1운동에서 찾고 있다”고 밝혔다. 1920년 1월 임정 신년축하회 연설에서 내무총장 안창호는 민주공화국 탄생의 감격을 이렇게 전했다. “오늘날 우리나라에는 황제가 없나요? 있습니다. 과거에는 황제가 단 한 사람밖에 없었지만 이제는 2000만 국민이 모두 황제요. 제군 모두가 황제란 말입니다. 황제란 무엇이오? 주권자의 이름입니다. 지금은 제군이 모두 다 주권자외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IS 전 선전요원 美여성 본국 송환 요청 “모든 것은 무지 탓…미국 가고싶다”

    IS 전 선전요원 美여성 본국 송환 요청 “모든 것은 무지 탓…미국 가고싶다”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에 합류했던 미국인 여성이 IS에 참여했던 지난날을 후회하며 가족들이 있는 미 앨라배마로 돌아가고 싶다는 의사를 보였다고 17일(현지시간) 영국 가디언이 전했다.한 때 IS에서 가장 유명한 선전활동가 중 한 명이었던 호다 무타나(24)는 시리아 북부 알홀 난민캠프에서 4년 전 그가 미국을 떠나 IS에 투신한 건 ‘커다란 실수’였으며, 온라인을 통해 세뇌됐었다고 전했다. 무타나는 “당시 친구들과 나는 무지한 상태였고, 그렇게 지하디(이슬람 전사)가 됐다”면서 “내가 신의 뜻에 따르고 있다고 여겼다”고 말했다. 무타나는 2014년 11월 미국을 떠나 터키를 경유해 IS에 합류했다. 몇 개월간 계획을 세우면서도 가족들에겐 이를 비밀로 했다. 그는 시리아의 락까에 정주하며 세 번 결혼했다. 첫 번째는 오스트리아 출신 지하디스트인 수한 라만이었으나 전투 중 사망했다. 무타나는 남편의 사망 직후 트위터를 통해 폭력성이 짙은 게시글을 수차례 올리며 선동에 앞장섰으나 이에 대해 그는 “계정이 해킹당했던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튀니지 출신 전투원인 두 번째 남편과의 사이에서 아들 아담을 낳았고 남편이 모술에서 사망한 뒤 다른 수십명의 여성들과 함께 후퇴했다. 지난해엔 시리아 전투원과 잠시 세 번째 결혼을 하기도 했다. 무타나는 앨라배마에 있는 그녀의 가족들이 매우 보수적이었으며 그녀의 행동과 움직임에 제한을 뒀다고 회상했다. 그런 분위기가 자신의 급진화에 기여했다고 덧붙였다. 독학으로 종교에 심취했던 시절에 대해 무타나는 “당시 매우 거만했으며, 지금은 내 아들의 장래가 걱정된다”고 말했다. 캠프에 온 뒤 미 정부와 따로 접촉하지 않은 무타나는 “미 정부가 내게 두 번째 기회를 줄 거라고 믿는다. 중동엔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이며, 당국이 내 여권을 가져간다고 해도 개의치 않을 것”이라고 호소했다. 무타나는 3만 9000명이 머물고 있는 난민캠프 내에서 유일한 미국인이다. 캠프에는 1500여명의 외국인 여성과 그들의 아이들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 중에는 2015년 2월 16세의 나이로 자발적으로 IS에 합류한 샤미마 베굼(19)도 있다. 최근 캠프에서 아들을 출산한 베굼은 IS에 합류한 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다”고 밝히면서 “그러나 아이를 생각해 영국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전해 영국 사회 내 논란이 일고 있다. 난민캠프에 있는 여성들은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하지 않은 상황이다. 무장 경비원들이 언제나 동행하며 약간의 음식과 원조만 받을 뿐이다. 스웨덴 출신 리사 안데르손은 “러시아인과 튀니지인들이 (난민캠프에서) 우리의 삶을 지옥으로 만들고 있다”면서 “부르카(머리에서 발끝까지 여성의 신체를 가리는 천) 없이 텐트를 나서거나 관리자에게 민원을 제기하면 여성과 아이들을 때리면서 텐트를 불태우겠다고 위협한다”고 전했다. 안데르손의 한 살배기 딸은 한 달 전 캠프에서 사망했다. 한편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이날 서방국가에 생포된 IS 전사들의 송환을 촉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은 영국, 프랑스, 독일 등 다른 유럽 동맹국에 우리가 시리아에서 체포한 800명 이상의 IS 전투원들을 본국 재판에 회부할 것을 요청한다”고 밝혔다. 민나리 기자 mnin1082@seoul.co.kr
  • “5000억 넘는 다빈치의 세계서 가장 비싼 그림은 위작”

    “5000억 넘는 다빈치의 세계서 가장 비싼 그림은 위작”

    르네상스의 거장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이자 ‘세계에서 가장 비싼 그림’으로 알려진 ‘살바토르 문디’(구세주)가 위작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살바토르 문디는 2017년 11월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4억 5030만 달러, 한화로 약 5040억 원에 낙찰돼 ‘세계에서 가장 비싼 그림’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하지만 프랑스의 예술사학자이자 루브르박물관의 자문위원인 자크 프랭크는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와 한 인터뷰에서 “살바토르 문디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이 아닌 그의 제자가 그린 것”이라고 주장했다. 해당 작품이 위작이라는 주장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8월 옥스퍼드대학의 레오나르도 연구자인 매슈 랜드루스 교수는 다빈치가 해당 그림 작업에 20~30%만 참여했을 뿐 나머지 상당수는 그의 제자 베르나르디노 루이니가 그린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당시 CNN과 한 인터뷰에서 ”살바토르 문디는 화실 조수들의 도움으로 완성된 레오나르도의 작품이다. 베르나르디노 루이니의 도움이 특히 눈에 띈다“고 주장했다. 비슷한 주장을 펼치고 있는 자크 프랭크는 엠마누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에게 “루브르박물관이 진행하려는 다빈치 기념전시에 위작이 포함돼 있다면 반드시 이를 재고해야 한다”는 충고성 편지까지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프랭크는 "루브르박물관 측은 살바토르 문디가 다빈치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물관 측은 오는 10월 다빈치 전시에 살바토르 문디를 전시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다빈치의 최대 걸작으로 꼽히는 ‘모나리자’를 소장하고 있는 루브르박물관은 올해 다빈치 서거 500주년을 기념해 하반기에 다빈치의 회화 걸작들을 한 자리에 모은 특별전을 기획하고 있다. 이를 위해 박물관 측은 다빈치의 주요 그림 다수를 소장하고 있는 이탈리아와 2017년 협약을 맺고 특별전을 위한 회화 작품들을 공수받기로 합의했다. 여기에 2017년 전 세계의 이목을 한 몸에 받은 살바토르 문디도 포함시키기 위해 현재 이 작품의 실소유주로 알려진 사우디 아라비아의 하메드 빈 살만 왕세자 측과 협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살바토르 문디가 위작이라는 주장과 관련해 루브르 측은 ”그의 개인적인 견해에 불과하다“며 일축했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한국당 5·18 망언이 불러낸 ‘김영삼(YS) 계승의 자격’ 논란

    자유한국당 김진태·김순례·이종명 의원의 5·18 민주화 운동 모독 망언이 2015년 서거한 김영삼(YS) 전 대통령을 16일 정치권으로 다시 불러냈다. 지난 8일 문제의 공청회 이후 연일 날 선 비판을 이어간 정치권은 한국당 회의실 벽에 걸린 김 전 대통령의 사진을 문제 삼았다. 더불어민주당 등 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은 한국당이 세 의원에게 꼼수 징계를 내린 것을 강하게 비판하며 김 전 대통령의 사진을 걸 자격이 없다고 비판했다. 김 전 대통령 사진 논란에 불을 댕긴 것은 YS의 차남이자 김영삼민주센터 상임이사를 맡은 김현철씨다. 김씨는 1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한국당 전당대회가 수구적인 모습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확인되면 아버님 사진은 그곳에서 내려주기 바란다”고 했다. 지난 8일 문제의 공청회를 주최한 후 한국당 전당대회 당대표 경선에 출마한 김진태·김순례 의원을 겨냥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특히 김씨는 “그런 수구반동적인 집단 속에 개혁 보수의 상징인 김영삼 대통령의 사진이 걸려 있다는 자체가 어울릴 수 없는 빙탄지간(氷炭之間·얼음과 숯처럼 서로 어울릴 수 없는 사이)”이라고 지적했다. 김씨는 지난 13일에도 “아버님은 문민정부 당시 5·18 민주화 운동의 정신을 계승하는 정부가 문민정부라고 규정하고 특별법을 만들어 전두환을 위시한 신군부세력을 단죄했다”며 “김 전 대통령은 지난 1983년 5·18일을 기념하기 위해 23일간의 목숨을 건 단식투쟁을 하기도 했다”고 적었다. 이해식 민주당 대변인도 15일 국회 정론관 브리핑에서 “5·18 민주화 운동을 왜곡 날조하고, 그 유공자들을 모욕하고 있는 당 일각의 망동 주의자들에게 판(전당대회)을 깔아주고 있는 한국당은 차라리 김 전 대통령의 사진을 당사에서 떼라”며 “그것이 최소한의 예의”라고 비판했다. 여야를 막론한 정치권에서는 5·18의 부정은 김 전 대통령에 대한 부정과 마찬가지라는 게 공통 인식이다. 1980년 5월 전두환 신군부에 의해 3년간 불법 가택연금을 당한 김 전 대통령이 당시 자신의 사저를 둘러싼 전경들을 향해 “나를 감금할 수는 있어, 힘으로 이런 식으로 할 수는 있어. 그러나 내가 가려고 하는 민주주의의 길은 말이야, 내 양심을, 마음을 전두환이가 뺏지는 못해!”라고 외친 장면은 한국 민주화 투쟁 역사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다. 김 전 대통령은 취임 후 1993년 5·18 특별담화를 통한 광주민주화운동 명예회복을 선언했다. 1995년 5·18 특별법 제정을 지시했고, 1997년 대법원 판결로 전두환씨에게 무기징역이 선고됐다. 김 전 대통령은 2010년 8월 15일 이명박 전 대통령 초청으로 청와대을 방문했을 때 전씨가 함께 초대되자 “전두환이는 왜 불렀노, 대통령도 아니데이. 죽어도 국립묘지도 못 간다”라고 면박을 준 적도 있다. 한국당이 세 의원에 대한 입장을 명확히 표하지 못할 때 YS와 정치를 함께한 김무성 한국당 의원, 무소속 서청원 의원 등 상도동계가 가장 먼저 나선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지난 11일 두 의원은 각각 입장문을 내고 5·18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김병준 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도 지난 10일 “한국당 회의실 벽에는 ‘건국’ 이승만, ‘근대화’ 박정희 대통령과 함께 ‘민주화’ 김영삼 대통령의 사진이 걸려 있다”며 “한국당은 다양한 의견이 제기될 수 있는 정당이지만, 기본적으로는 5·18에 관한 문민정부의 역사적 결단을 존중하고 계승할 책무가 있다”고 했다. 하지만 14일 한국당 윤리위가 이종명 의원만 제명하고, 전당대회에 출마한 김진태·김순례 의원의 징계는 전당대회 뒤로 미루면서 한국당이 김 전 대통령과 문민정부를 계승한 정당이 맞느냐는 비판이 계속되고 있다. 손지은 기자 sson@seoul.co.kr
  • 서경덕 교수, 안중근 사형 선고일 맞아 SNS 캠페인 진행

    서경덕 교수, 안중근 사형 선고일 맞아 SNS 캠페인 진행

    성신여대 서경덕 교수팀이 안중근 사형 선고일(2월 14일)을 맞아 ‘안중근 의거를 도운 또 한 사람의 이야기’가 담긴 카드뉴스를 14일 SNS에 배포했다. 안중근 사형 선고일을 맞아 매년 진행하는 ‘안중근 조력자’ 소개 캠페인의 일환이다. 앞서 안 의사의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 의거가 성공하기까지 함께한 우덕순, 유동하, 조도선 의사의 활약상을 소개했다. 세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은 안중근 의거의 가장 큰 조력자 역할을 한 러시아 한인민족운동의 대부이자 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이다. 6장으로 구성된 이번 카드뉴스는 안중근 의거에 사용한 권총 준비를 비롯해 의거 뒤 변호사를 선임하여 구명 활동을 펼친 일, 안 의사 서거 후 남은 가족을 돌본 것도 최재형이었다는 것을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안중근 조력자’ 소개 캠페인을 진행하는 서경덕 교수는 “안중근 의사의 의거도 중요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의거를 위해 도왔던 최재형 선생의 이야기를 네티즌들에게 소개하고자 이번 일을 기획했다”고 전했다. 또한 그는 “올해는 안중근 의거 110주년이 되는 역사적인 해”라면서 “하얼빈에서 거사까지의 ‘안중근 루트’를 널리 알리고자 ‘네티즌 홍보단’을 꾸려 조만간 현장을 방문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서 교수팀은 3.1운동 및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맞아 유관순 열사 서훈등급 상향 위한 서명운동 전개 및 3.1독립선언서 전 국민 읽기 캠페인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현재 추진 중이다.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 태국 국왕의 누나, 왕족 사상 첫 총리직에 출사표

    태국 국왕의 누나, 왕족 사상 첫 총리직에 출사표

    마하 와치랄롱꼰(라마 10세) 태국 국왕의 누나인 우본랏타나 라자칸야(67) 공주가 8일 총리직에 출사표를 던졌다. AP·AFP통신 등에 따르면 탁신 친나왓 전 총리 지지세력인 푸어타이당의 자매정당인 타이락사차트당 프리차 폴퐁파닛 대표는 오는 3월 24일 실시되는 태국 총선에서 작고한 푸미폰 아둔야뎃 전 국왕의 맏딸인 우본랏타나 공주를 총리 후보로 이날 공식 지명했다. 타이락사차트당 관계자는 오전 태국 선관위에 관련 서류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쁘라윳 짠 오차 총리도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친(親)군부 정당인 팔랑쁘라차랏당의 총리 후보 지명을 수락한다고 발표했다. 태국 국민의 절대적 지지를 받는 왕실의 공주가 2014년 군부 쿠데타로 축출된 탁신 전 총리를 ‘지지’하는 정당의 총리 후보로 나서는 바람에 군부정권 수장인 쁘라윳 총리의 재집권 시나리오에 먹구름이 몰려올 전망이다. AFP는 우본랏타나 공주의 총리 후보 출마로 재집권을 노리는 쁘라윳 짠 오차 총리의 구상에 타격을 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에 따라 군부 정권과 탁신계 정당 간 팽팽한 힘겨루기 양상이 예상되던 태국 총선 판도는 크게 요동칠 것으로 보인다. 태국 영문 일간지 방콕포스트도 우본랏타나 공주의 총리 후보 출마로 3·24 총선 정국이 혼돈 속으로 빠져들게 됐다고 전했다. 태국은 1932년 절대 왕정을 종식하고 입헌군주제로 전환했지만 태국 국왕과 왕실의 권위는 다른 나라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다. 태국 헌법에 따르면 국회의원이 아닌 사람은 총리 취임이 가능하다. 각 정당은 최대 3명까지 총리 후보를 내세운 후 경선을 실시할 수 있다. 우본랏타나 공주의 총리직 도전은 현실 정치에는 참여하지 않아 온 왕실의 오랜 전통을 깬 것인 만큼 주목된다며 왕실 고위 인사가 선거에 참여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AP 등이 전했다. 태국 나레수안 대학 아세안연구소의 폴 체임버스 교수는 “태국에서 이는 전례없는 일이다. 어떤 당도 공주에 맞서 싸우기는 어려울 것이다. 유권자들도 공주가 아닌 다른 후보를 선택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본랏타나 공주는 2016년 서거 이후에도 태국 국민의 존경을 받는 고(故) 푸미폰 아둔야뎃 전 국왕의 네 자녀 중 맏딸이자 마하 와치랄롱꼰 국왕의 누나다.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유학 중 만난 미국인 피터 젠슨과 1972년 결혼하면서 왕족 신분을 포기한 그는 MIT에서 이학사를 취득한 뒤 캘리포니아대에서 공중보건 석사학위를 받았다. 우본랏타나 공주는 결혼 후 26년간 미국에서 살다가 1998년 젠슨과 이혼한 뒤 태국으로 돌아와 왕실로부터 공주 칭호를 받았다. 슬하에 세 명의 자식을 뒀지만, 아들 한 명은 2004년 인도양 쓰나미 당시 21살의 나이로 숨지는 비극을 겪기도 했다. 비영리재단 네 곳을 이끌고 있는 그는 TV프로그램의 호스트 역할을 맡거나, 마약 방지 캠페인, 자폐증 환자들과 빈민들에 대한 지원 등 적극적인 사회활동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왕실의 다른 형제자매들과는 달리 태국 영화 제작과 관련한 활동을 활발하게 해 언론에 여러번 등장해 왔다. 태국 영화산업 대사 자격으로 칸영화제 등에도 자주 참석했다. 열렬한 소셜미디어 사용자인 공주는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10만명에 달할 정도로 인기도 많다. 노래를 좋아해 크리스마스 휴가 기간 노래 부르고 춤추는 동영상을 직접 인스타그램에 올리기도 했다. 우본랏타나 공주가 탁신계 정당 후보로 총리에 도전하면서 탁신 전 총리와의 관계도 관심을 모은다. 그는 2006년 군부 쿠데타로 축출된 뒤 해외를 떠도는 탁신 전 총리와 그의 여동생으로 역시 2014년 쿠데타로 실각해 해외 도피 중인 잉락 친나왓 전 총리와 함께 지난해 러시아 월드컵에서 웃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다. 우본랏타나 공주는 또 군부 집권 기간에도 소셜미디어를 통해 탁신·잉락 전 총리의 주장에 대한 공감의 뜻을 간접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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