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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줄날줄] 유관순 컬러사진/박록삼 논설위원

    [씨줄날줄] 유관순 컬러사진/박록삼 논설위원

    1919년 1월 21일 고종 서거는 유관순(1902~1920) 열사 등 학생들을 격동케 했다. 유관순과 이화학당 학생들은 상복을 입고 대한문 앞에서 망곡(望哭)한 뒤 3·1 만세운동에 참여했다. 3월 5일 학생연합시위 때는 일제 경찰에 붙잡혔으나 곧 풀려났다. 13일 휴교령 뒤 이들은 독립선언서를 품고 고향으로 내려갔다. 1919년 4월 1일 아우내 장터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한 유관순은 3년형을 선고받았다. 일제의 재판권을 인정할 수 없다며 상고하지 않았다. 이듬해 3·1운동 1주년에 서대문형무소 안에서 옥중 만세운동을 벌였다. 전 국민이 기억하고 있는 유관순의 모습은 서대문형무소 담벼락을 배경으로 수형복을 입고 찍은 사진, 이른바 ‘머그샷’이다. 어두운 표정임은 물론 혹독한 고문과 영양실조가 겹쳐 얼굴 전체가 부어 있다. 세상에 남겨진 거의 유일한 유관순의 사진이기에 역사가 기억하는 ‘유관순의 얼굴’이 됐다. 서거 100년을 맞은 2020년 페이스앱을 통해 붓기가 빠지고 활짝 웃는, 고문받기 전 꽃다운 사진으로 복원돼 마음속 아쉬움을 달래기도 했다. 국가보훈처가 104주년 3·1절을 맞아 유관순을 비롯해 김구, 김좌진, 안중근, 이승만 등 독립운동가 15명의 흑백사진을 컬러로 복원해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외벽에 송출하기 시작했다. 임시정부 수립 기념일인 4월 11일까지 계속된다. 인공지능(AI) 기술이 활용됐다. 얼굴 복원 기술(GFP-GAN)과 안면 복원(Face Restoration) 기술을 이용해 성균관대 인공지능학과, 소프트웨어학과가 함께 작업했다. 지난달 한국전쟁 참전용사의 얼굴을 청년 그대로 모습으로 복원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한 AI 기술팀의 작품이다. 영상은커녕 오직 흑백사진 한 장만 남은 이들은 유관순 외에도 윤봉길 의사, 김좌진 장군, 만해 한용운 등이 있다. 색이 입혀진 모습만으로도 독립운동가들이 우리 곁으로 가까이 훅 다가온 듯 친근한 느낌이다. AI가 과거의 모습을 생생히 복원해 내고, 이제 이들이 추구했던 가치와 정신까지 입혀서 또 다른 대화까지 나눌 세상도 머지않은 듯하다. 독립운동가들이 더이상 역사 속 먼 인물, 교과서 속 박제된 위인이 아닌 ‘지금, 여기’의 의미를 가진 인물로 다가올 날이 머지않았다.
  • [단독] “영웅의 헌신, 제복의 희생… 보훈부 승격은 이분들 더 존중하는 일”

    [단독] “영웅의 헌신, 제복의 희생… 보훈부 승격은 이분들 더 존중하는 일”

    박민식 국가보훈처장은 3·1절을 하루 앞둔 28일 서울신문과 가진 단독인터뷰에서 국가보훈처의 국가보훈부 승격 의미를 강조하며 “국가를 위해 헌신한 이들을 존중하고 예우하는 것이야말로 대한민국이 미래로 나아가는 튼튼한 기초”라고 말했다. 박 처장은 1988년 외무고시(22회), 1993년 사법시험(35회)을 통해 외교부와 검찰청에서 모두 일해 본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다. 2008년부터 2016년까지 제18·19대 국회의원을 지냈고 2022년 5월 보훈처장으로 취임했다.-국가보훈부 승격을 골자로 한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전날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는데. “6월 국가보훈부가 공식 출범한다. 본회의 통과에 이어 3·1절을 하루 앞둔 오늘 국무회의에서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의결돼 의미가 크다. 보훈부 승격은 ‘일류보훈’을 국정운영 최우선과제로 삼은 윤석열 정부의 강한 의지가 반영된 결과인 동시에 김진표 국회의장을 비롯해 국회의원들이 여야 가리지 않고 동참해 준 덕분이다. 보훈은 대한민국 번영을 위한 사활적 가치를 지닌 핵심 기능이다. 국가를 위해 헌신한 영웅들을 존중하고 기억하고 예우하는 문화를 조성하는 건 국가의 존재 이유라고 할 수 있다.” -국가보훈부가 출범하면 국민들이 느낄 변화는 무엇인가. “무엇보다 정책 대상이 국가유공자와 제대군인에서 의무복무자와 일반 국민까지 확대된다. 특히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보훈교육과 캠페인을 활발하게 전개해 국가를 위해 헌신하신 분들에 대한 존경과 예우가 사회 전반에 문화로 자리잡도록 하고, 이를 통해 국가정체성 확립과 튼튼한 안보에 기여할 것으로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제복에 대한 존중’을 확산시키는 것을 앞으로 추진해야 할 최우선 과제로 생각하고 있다. 사실 군인, 경찰, 소방, 해양경찰, 교정 등 제복을 입은 사람들은 존경보다는 폄하와 조롱의 대상일 때가 더 많았다. 이제는 보훈부가 앞장서서 제복을 헌신과 희생의 상징으로 바꿔 나갈 것이다.” -국가보훈부 설립을 계기로 보훈과 관련한 업무를 조정하는 문제가 현안이 될 듯하다. 특히 국방부 소관으로 돼 있는 서울현충원이나 전쟁기념관은 보훈부로 이관해야 하지 않느냐는 지적이 있다. “현재 보훈처는 12개 국립묘지 가운데 대전현충원 등 11곳을 관리하고 있다. 유일하게 서울현충원만 국방부가 관리하고 있는데, 이는 보훈가족 등 국민들께도 상당한 혼란과 불편을 초래하고 있다. 국립묘지는 국가유공자의 마지막 안식처이기 때문에 최고 예우와 품격을 갖추고 통일된 관리·운영체계로 유가족들께 안장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전쟁기념관 역시 국가보훈 관점에서 운영하는 게 취지에 맞다고 본다. 다만 전쟁기념관을 이관하려면 전쟁기념사업회법을 개정해 사업회 소관을 변경해야 한다. 현재 보훈처는 독립기념관과 전국 기념관 100곳, 현충시설 2173곳을 관리하고 있다. 앞으로 이관을 통해 전쟁기념관을 국가수호 관련 기념관의 컨트롤타워로 육성해 독립기념관과 함께 보훈선양의 중심기관으로 운영한다는 구상이다. 중요한 건 관계부처와 생산적인 협의를 거쳐 국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다.”-최근 영국을 방문해 대한매일신보(현 서울신문)를 창간한 어니스트 베델 동상 건립 계획을 밝혔다. 앞으로의 계획은. “올해는 한영 수교 140주년이다. 언론활동을 통해 일제 침략을 전 세계에 알린 베델 선생의 헌신은 한국과 영국을 잇는 가교로서 부족함이 없다. 베델 선생은 1904년 러일전쟁 취재를 위해 영국 신문 특파원으로 한국에 왔다가 대한매일신보와 영문판 코리아 데일리뉴스를 창간했다. 옥고까지 치르며 건강을 해치는 바람에 1909년 37세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 서울 양화진 외국인묘지에 묻혔다. 정부에서도 베델 선생의 활동을 인정해 1968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베델 선생의 고귀한 정신과 업적이 영국에서 널리 알려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선생이 나고 자란 브리스틀에 동상 건립을 계획했다. 최근 마빈 리스 브리스틀 시장과 콜린 크룩스 주한영국대사에게 협조 요청 서한문을 보냈다. 올해는 동상 건립을 위한 예산 반영을 한 뒤 늦어도 내년 하반기에는 브리스틀 광장에 베델 선생 동상을 세울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주인공인 ‘유진 초이’의 모델인 황기환 지사, 연해주 독립운동 거목이었던 최재형 선생 부인 유해를 고국으로 모시는 준비가 한창인데. “황기환 지사는 미국 유학 중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미군으로 참전했고, 이후 임시정부 파리위원부 서기장 활동 등 미국과 유럽에서 조국 독립을 세계 각국에 호소하는 활약을 했다. 1923년 4월 17일 40세에 뉴욕에서 심장병으로 서거해 뉴욕 마운트 올리벳 묘지에 안장됐다. 보훈처는 2013년부터 유해 봉환을 추진해 왔지만 유족이 없다 보니 두 차례에 걸쳐 미국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는 등 많은 어려움을 겪은 끝에 순국 100년이 되는 올해 유해를 고국으로 모실 수 있게 됐다. 늦어도 4월 초에는 유해를 국내로 모실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아울러 보훈처는 최재형 선생처럼 유골이나 시신이 없는 순국선열의 위패를 배우자의 유골과 함께 안장할 수 있도록 하는 국립묘지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법이 개정되면 현재 키르기스스탄에 있는 최재형 선생 부인 묘를 이장해 최재형 선생 위패와 합장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최근 영국·이스라엘 방문을 비롯해 보훈을 주제로 다양한 외국 인사들을 활발히 만나고 있다. 외국 사례에서 특별히 인상적이었던 것이 있다면. “용산호국보훈공원 조성을 위해 세계적인 위상을 갖고 있는 영국 국립추모수목원, 이스라엘의 대표 추모시설인 야드바과 국립현충기념관 등을 현지조사했다. 보훈의 가치를 통해 국민의 마음을 어떻게 하나로 결집하는지 느끼고 배울 수 있었다. 특히 이스라엘의 국가정체성 교육프로그램인 ‘셸라흐’가 인상적이었다. 셸라흐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개인과 연결시켜 국가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한 교육과정인데, 중·고등학교 필수 교육과정이며 대학입학시험 과목으로도 운영된다.” -보훈대상자 의료서비스 문제는 오랜 현안이다. 코로나19 치료와 돌봄에 공공의료가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보훈병원은 사실상 의미 있는 역할을 못 했다는 지적이 있다. “현재 보훈·위탁병원이 많이 부족하다 보니 보훈 대상자들이 일반 병·의원을 더 많이 이용하는 실정이다. 의료 접근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도록 민간 위탁병원 규모를 2021년 기준 518곳에서 2027년까지 1140곳으로 두 배 이상 늘리고 보훈병원이 없는 권역에서도 보훈병원에 준하는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지역 공공병원을 ‘준보훈병원’으로 지정하도록 제도 개선을 추진 중이다. 아울러 보훈병원을 노인질환, 중증 외상,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등 보훈 특화질환 서비스를 제공하는 특성화 병원으로 육성하도록 할 계획이다.” -초대 국가보훈부 장관이 누가 될지도 관심사다. 초대 장관 후보로 거론되는데. “장관 지명은 인사권자가 결정할 사안이라 내가 답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 앞으로 장관 후보자가 지명되면 인사청문회 준비에 최선을 다하고 보훈부 출범을 차질 없이 준비하는 게 내가 할 일이다. ‘국가가 끝까지 책임지는 일류보훈’을 실천할 수 있는 보훈부가 되는 게 차기 장관이 누가 되는지보다 훨씬 더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 [K-CSI] 백범 김구 선생이 서거 당시 입고있던 혈의(血衣)의 분석

    [K-CSI] 백범 김구 선생이 서거 당시 입고있던 혈의(血衣)의 분석

    오래 전 문화재연구소로부터 백범 김구(1876~1949) 선생이 서거 당시 입고 계셨던 피 묻은 옷에서 유전자분석이 가능한 지에 대한 문의가 왔었다. 일단 분석을 해보겠다고 했지만 선생이 서거한 지 50년 이상이 지났기 때문에 과연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지 자신할 수 없었다. 혈흔이 아무리 잘 보관되었더라도 자연환경에 오랜 시간 노출되어 환경의 영향을 오랜 시간 받아 DNA가 완전히 분해되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었다. 보내 온 증거물 봉투를 조심스럽게 뜯었다. 봉투 안에는 새까맣게 변색된 숯덩이 같은 고체 덩어리 소량이 들어 있었다. “이 혈흔이 백범 김구 선생의 혈흔!” 나는 혼잣말로 말하며 의뢰되어 온 혈흔을 자세히 살폈다. 서거 당시 입고 계셨었다는 옷에서 채취된 혈흔을 접하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김구 선생의 숨결이 느껴지는 듯하였다. 탈색된 혈흔 속으로 긴 세월만큼이나 흐릿한 영상으로 서거 당시의 모습이 스쳐지나가는 것 같았다. 어찌 가슴이 떨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큰 인물을 가슴으로 만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감동도 잠시, 시료를 본 순간 눈앞이 캄캄했다. 숯덩이 같은 혈흔에서 과연 유전자분석이 가능할까?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이 되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어떻게 하면 혈흔에서 여러 가지 분석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을까? 혈흔이 새까맣게 되었을 정도로 상태가 안 좋은데 분석이 가능하기나 할까?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 있는데 완충용액에 풀리기나 할까?” 온통 머리는 이런 생각으로만 차 있었다. 여러 가지 궁리를 하다가 시간이 좀 소요되더라도 완충용액에 장시간 추출하면서 가능성을 보기로 하였다. 하지만 돌덩이 같이 굳어진 혈흔이 금방 풀릴 것 같지가 않았다. 일부의 혈흔을 완충용액에 넣은 다음 사람의 체온과 비슷한 37℃ 온탕기에서 혈흔이 녹을 때까지 기다리기로 하였다. 며칠이 지나도 혈흔 덩어리는 전혀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처음 넣었을 때보다는 조금 풀린 듯 했으나 그 정도로는 시험을 진행할 수 없을 정도였다. 보통 일반적으로 오래된 혈흔의 경우 몇 분에서 길어도 몇 시간이면 다 풀리는데 며칠이 지나도 약간의 붉은 기만 있을 뿐 풀리지 않았다. 모든 실험은 혈흔이 풀려야 시작되는 것인데 시작도 못 하고 끝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며칠이 지나자 붉은색이 진해지기 시작했다. 오랜 세월 얽혀있던 세월이 풀리듯 그 단단했던 덩어리도 천천히 풀리기 시작했다. 또다시 며칠이 지났다. 이제는 제법 많이 풀려서 처음보다는 덩어리가 많이 작아져 있었다. 벌써 열흘 이상이 흘렀다. 어느 정도 실험을 하기에 적당한 것으로 판단되어 작은 덩어리를 꺼내고 풀린 혈흔을 실험에 사용하기로 하였다. 풀린 혈흔에서는 여러 가지 실험이 가능하다. 심하게 변색되어 실제로 혈흔인지 의심스러울 정도였기 때문에 혈흔인지 여부에 대한 실험을 먼저 실시하였다. 실험 결과 혈흔 반응 양성이었다.본격적으로 혈흔에서 혈액형 그리고 유전자분석을 실시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혈액형 실험은 슬라이드 응집법이다. 하지만 혈흔의 경우에는 다른 시험법을 사용한다. 혈흔의 경우 항원-항체 반응을 응용한 방법을 사용하는데 이를 해리 및 흡착시험법이라 한다. 해리시험법은 항혈청을 혈흔이 묻어 있는 거즈 등과 반응시키면 A형인 경우 항혈청 A의 항체가 가서 붙게 된다. 이렇게 반응한 항체는 약 56℃에서 약 10분간 가열하면 다시 떨어지는데 그 떨어져 나온 항체는 눈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에 결과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알고 있는 혈액형의 혈구를 떨어뜨려 반응시킨 후 응집 여부로 판단한다. 흡착은 이와 반대의 과정을 거친다. 혈액형 검사 결과 김구 선생의 혈액형은 'AB형'인 것으로 밝혀졌다. 혈액형을 성공적으로 검출한 후 유전자분석을 실시하였다. 혈흔이 수십 년 이상 자연 환경에 노출되어 있었기 때문에 여기서 DNA를 분리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하였다. 분리된 DNA를 아가로오스 겔에 전기영동하여 DNA의 상태를 관찰하였다. 예상대로 DNA는 많이 깨진 상태였다. 당시에는 일부 좌위의 유전자형이 검출되지 않았지만 최근에 다시 실험을 하여 깨끗한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최근의 분석 방법은 극소량의 DNA에서도 유전자 분석이 가능해졌을 뿐만 아니라 단연쇄반복(STR) 좌위의 분석으로 많이 손상된 DNA에서도 유전자 분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술들은 범죄사건 현장에서 채취되어 의뢰되는 많은 증거물들에 적용되고 있으며 많은 사건들을 해결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거의 불가능할 것 같았던 혈흔에서 유전자형을 성공적으로 검출하고 나니 기분이 매우 좋았다. 우리 민족의 위대한 인물인 김구 선생이 살아 돌아오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성공적으로 모든 실험을 마칠 수 있었던 것은 서거 당시 입고 있었던 옷의 혈흔이 마른 상태로 보관되어 부패가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과학의 영역은 제한이 없다. 범죄 관련 증거물의 분석에 사용되는 여러 가지 분석 방법들이 역사적인 사건들의 진실을 밝히는데 응용될 수 있음을 증명하였으며, 앞으로는 이러한 과학적 분석 방법들이 또 다른 역사적 사실을 밝히는데 응용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 ‘전북교육청 독도체험관’ 전북 부안군에 문 연다

    ‘전북교육청 독도체험관’ 전북 부안군에 문 연다

    ‘전라북도교육청 독도체험관’이 부안군 학생해양수련원에 조성된다. 28일 도교육청에 따르면 ‘전북교육청 독도체험관’이 오는 3월 20일 부안에 위치한 학생해양수련원으로 이전, 개관한다. 지난 2014년 고창 삼인학습장에 설치된 전북교육청 독도체험관은 석면공사 및 안전진단 문제로 이전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도교육청은 학생들의 접근성 등을 고려해 부안 학생해양수련원을 최적지로 선정했다. 독도체험관은 ▲일반현황 ▲독도의 자연환경 ▲독도의 역사 ▲독도 체험 등 총 4개 분야로 구성됐으며, 보고·듣고·느낄 수 있는 체험적이고 교육적인 콘셉트로 전체 공간을 구축했다. 전시 공간은 독도의 지리·역사·체험 공간으로 구획하되, 각 공간별 핵심 주제를 지역적 특성과 조화롭게 결합해 관람객에게 독도를 알리고, 체험하는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도록 조성했다.지리 공간은 독도의 자연환경(지형, 지질, 동식물 등)이 관람객에게 특별하게 부각될 수 있도록 그래픽, 조명, 모형 등으로 전시 환경을 구축했다. 독도의 역사 공간은 문헌 기록과 사진, 그래픽, 영상, 고지도 활용 등의 시각 자료를 이용해 상세하게 전달하고 이해도를 높일 수 있는 꾸몄고 체험 공간은 디스플레이 변화, 영상, 인터렉티브, 터치패드와 스크린을 연동해 체험이 가능하도록 했다. 서거석 교육감은 “독도체험관 운영을 통해 학생과 전북도민의 독도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독도 사랑의 마음을 실천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한다”면서 “다양한 자료를 통해 독도 교육 내실화 및 우리 영토주권 확립에 대한 공감대를 확산해 나갈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 여자 배구 1위 쟁탈전… 마지막까지 예측 불허

    지난 15일 프로배구 여자부 흥국생명이 106일 만에 리그 선두를 탈환하면서 현대건설과의 리그 1위 쟁탈전은 아무도 쉽게 점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2022~23시즌 정규리그에서 남은 경기는 단 8개뿐. 자칫 선두 싸움이 최종전까지 이어질 가능성도 고개를 든다. ●흥국, 106일 만에 V리그 선두 탈환 흥국생명은 15일 홈경기에서 페퍼저축은행을 3-0으로 완파하고 승점 63(21승7패)이 되면서 전날 3연패에 빠진 현대건설(승점 61)을 2위로 끌어내리고 리그 1위에 올랐다. ‘주포’ 야스민의 공백 속에 근근이 선두를 지켜 왔던 현대건설은 더이상 버티지 못했다. 남은 경기는 8개. 남은 일정을 보면 두 팀 모두 고비와 기회가 동시에 존재한다. 흥국생명에는 6라운드 초반 원정 3연전이 고비가 될 전망이다. 오는 26일 GS칼텍스, 다음달 2일 페퍼저축은행에 이어 7일에는 한국도로공사를 상대로 원정에 나선다. 3연패에 빠진 현대건설은 연패 흐름을 끊는 게 급선무다. 남은 5라운드 두 경기 모두 원정길이다. 17일에는 KGC인삼공사, 22일에는 IBK기업은행과 쉽지 않은 일전을 치러야 한다. ●8경기 남아… 새달 19일 맞대결 최종전 일진일퇴를 거듭하는 상황 속에서 바뀐 선두인 까닭에 쟁탈전의 끝은 쉽게 보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이제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리그 막판까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다면 리그 최종전이 끝나는 순간까지 1위가 확정되지 않을 수 있다. 공교롭게도 다음달 19일 올 시즌 V리그 여자부의 대미를 장식할 마지막 경기는 두 팀 간의 맞대결이다. 건곤일척의 혈투가 조심스레 점쳐지는 이유다. ●아본단자, 흥국 차기 감독으로 유력 한편 튀르키예 페네르바흐체에서 김연경과 인연을 맺은 마르첼로 아본단자(35·이탈리아) 튀르키예항공 감독이 흥국생명의 유력한 차기 감독 후보로 부상해 주목된다. 튀르키예 발리볼 매거진은 16일 “아본단자 감독이 튀르키예항공과 결별하고, 2023~24시즌 흥국생명을 이끌기로 했다”고 전했다. 폴란드 매체도 “아본단자 감독이 튀르키예항공과의 계약을 해지했다. 팀이 유럽배구연맹(CEV) 컵대회 출전을 위해 이탈리아로 이동했는데 아본단자 감독은 동행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이에 흥국생명 측은 ‘유력한 후보’라고 인정하면서도 “아직 계약이 확정되지 않았다”며 말을 아꼈다.
  • 여자배구 흥국-현대 1위 쟁탈전 리그 최종전까지 가나

    여자배구 흥국-현대 1위 쟁탈전 리그 최종전까지 가나

    지난 15일 프로배구 여자부 흥국생명이 106일 만에 리그 선두를 탈환하면서 현대건설과의 리그 1위 쟁탈전은 아무도 쉽게 점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2022~23시즌 정규리그에서 남은 경기는 단 8개 뿐. 자칫 선두 싸움이 최종전까지 이어질 가능성도 고개를 든다. 흥국생명은 15일 홈 경기에서 페퍼저축은행을 3-0으로 완파하고 승점 63(21승7패)이 되면서 전날 3연패에 빠진 현대건설(승점 61)을 2위로 끌어내리고 리그 1위에 올랐다. ‘주포’ 야스민의 공백 속에 근근히 선두를 지켜왔던 현대건설은 더 이상 버티지 못했다. 남은 경기는 8개. 남은 일정을 보면 두 팀 모두 고비와 기회가 동시에 공존한다. 흥국생명에게는 6라운드 초반 원정 3연전이 고비가 될 전망이다. 오는 26일 GS칼텍스, 다음달 2일 페퍼저축은행에 이어 7일에는 한국도로공사를 상대로 원정에 나선다. 3연패에 빠진 현대건설은 연패 흐름을 끊는 게 급선무다. 남은 5라운드 두 경기 모두 원정길이다. 17일에는 KGC인삼공사, 22일에는 IBK기업은행과 쉽지 않은 일전을 치러야 한다.일진일퇴를 거듭하는 상황 속에서 바뀐 선두인 탓에 쟁탈전의 끝은 쉽게 보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이제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리그 막판까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다면 리그 최종전이 끝나는 순간까지 1위가 확정되지 않을 수 있다. 공교롭게도 다음달 19일 올 시즌 V리그 여자부의 대미를 장식할 마지막 경기는 두 팀간의 맞대결이다. 건곤일척의 혈투가 조심스레 점쳐지는 이유다. 한편 튀르키예 페네르바체에서 김연경과 인연을 맺은 마르첼로 아본단자(35·이탈리아) 튀르키예항공 감독이 흥국생명의 유력한 차기 감독 후보로 부상해 주목된다. 튀르키예 발리볼 매거진은 16일 “아본단자 감독이 튀르키예항공과 결별하고, 2023~24시즌 흥국생명을 이끌기로 했다”고 전했다.폴란드 매체도 “아본단자 감독이 튀르키예항공과 계약을 해지했다. 팀이 유럽배구연맹(CEV) 컵대회 출전을 위해 이탈리아로 이동했는데 아본단자 감독은 동행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이에 흥국생명 측은 ‘유력한 후보’라고 인정하면서도 “아직 계약이 확정되지 않았다”고 말을 아꼈다.
  • 英 커밀라 왕비, 대관식에 105캐럿 다이아몬드 왕관 안쓰는 이유

    英 커밀라 왕비, 대관식에 105캐럿 다이아몬드 왕관 안쓰는 이유

    영국 커밀라 왕비가 오는 5월로 예정된 영국 찰스 3세의 대관식에서 식민지의 피눈물 상징인 코이누르 다이아몬드 왕관을 착용하지 않기로 했다. 앞선 왕비들의 전통대로 105.6캐럿, 무게 21.12g짜리 달걀 크기의 코이누르 다이아몬드가 박힌 왕관을 착용할지 여부에 초미의 관심이 쏠렸으나 이 보석이 인도가 제국주의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던 시절을 상징한다는 점에서 인도와의 외교 갈등을 피하기 위해 이 같은 결정을 한 것으로 보인다. 영국 왕실은 14일(현지시간) 커밀라 왕비가 코이누르 다이아몬드가 박힌 왕관 대신 1911년 메리 왕비가 대관식에 사용했던 왕관을 재사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메리 왕비는 찰스 3세의 증조할머니이자 조지 5세 부인이다. 대관식 때 기존 왕관을 재사용한 사례는 18세기 조지 2세 부인인 캐롤라이 왕비가 마지막이다. 하지만 왕실은 이번 대관식에서 현재 런던탑에 보관된 것으로 알려진 기존 왕관에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착용했던 브로치 속의 남아공산 컬리넌 다이아몬드를 장식해 재사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여왕이 쓴 왕관에는 총 2800개의 보석이 박혀 있는데, 그 중 논란의 중심에 선 것은 코이누르 다이아몬드다. 이는 영국이 인도로부터 이 다이아몬드를 빼앗아간 방식 때문인데, 처음 원석이 채굴된 12~14세기 카카티얀 왕조 당시에는 원석의 크기가 무려 793캐럿에 달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동인도회사가 1840년대 말 손에 넣었는데, 이때 영국은 원래 주인이었던 인도 소유권자에게 강제로 토지와 재산을 포기하도록 강요해 이 다이아몬드를 강탈했고 보석을 최종적으로 손에 넣은 이들은 다름 아닌 빅토리아 여왕과 그의 부군 알버트 공이었다. 이것이 후에 현재의 모습으로 제작돼 알렉산드라 왕비와 메리 왕비의 왕관에 장식된 뒤, 1953년 엘리자베스 2세 대관식 때도 사용됐다. 그 후 이 보석은 줄곧 영국 왕비들의 왕관에 달리게 됐다. 20세기 내내 역대 영국 왕비들이 대관식에서 이 왕관을 썼는데, 에드워드 7세의 부인인 알렉산드라 왕비가 1902년에, 조지 5세의 부인인 메리 왕비가 1911년에 대관식을 치를 때 이를 썼다. 이어 나중에 엘리자베스 2세의 어머니가 된 엘리자베스 왕대비가 1937년 왕비로서 남편 조지 6세 왕과 함께 대관식을 치를 때도 이 왕관을 썼다. 엘리자베스 왕대비의 2002년 장례 기간에는 이 왕관이 고인의 관 위에 놓여 있었다. 반면 영국 왕실 손에 들어간지 170년이 된 이 보석은 인도 등 옛 영국 식민지 출신 주민들에게 영국의 침략과 잔혹한 식민지배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인도 집권당인 바라티야 자나타 당(BJP)의 공보 관계자는 찰스 3세 대관식 소식이 들려온 직후였던 지난해 10월경, 텔레그래프 기자에게 “카밀라의 대관식에서 이 보석이 박힌 왕관이 사용되는 것은 과거 식민지 시대의 고통스러운 기억이 다시 떠오르도록 하는 일”이라며 강한 반대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또, 인도, 아프가니스탄, 이란, 파키스탄 등에서도 이 보석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해왔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해 9월 대영제국을 70년 이끌었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서거하자 인도에서는 왕비가 썼던 왕관에 박힌 105.6캐럿의 코이누르 다이아몬드를 반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즉각적으로 제기된 바 있다. 하지만 영국은 이를 일축해왔다. 
  • ‘김정일 술친구’ 93세 오극렬 사망…김정은, 화환 보내

    ‘김정일 술친구’ 93세 오극렬 사망…김정은, 화환 보내

    북한군 총참모장과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지낸 군부 원로 오극렬이 사망했다. 조선중앙통신은 11일 “김일성 훈장, 김정일 훈장 수훈자이며 공화국2중영웅인 전 인민무력성 고문 오극렬 동지는 급성심장기능부전으로 주체112(2023)년 2월 9일 9시 93살을 일기로 애석하게도 서거했다”고 보도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깊은 애도의 뜻”을 표하며 화환을 보냈다. 통신은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충직한 혁명전사”였다면서 “김정은 동지의 크나큰 믿음속에 우리 당과 국가의 강화발전과 나라의 방위력을 튼튼히 다지는 성업에 헌신하여온 로혁명가”라고 소개했다. 이어 “김정은 동지의 령도를 충직하게 받들어나가는데서 당과 국가의 로간부로서 훌륭한 모범”을 보였다며 “수령에 대한 티없이 맑고 깨끗한 충성심을 지녔다”고 했다. 1931년 중국 지린성에서 태어난 오극렬은 군 총참모장, 당 작전부장,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공군사령관 등을 지냈다. 광복전 김일성 부대원이었던 오중성의 외아들로 ‘빨치산 2세’다. 김정일과는 어렸을 때부터 친분이 있었던 술친구다. 김정일이 직접 하사한 특수번호 승용차를 타고 다닐 정도로 최측근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김정은 시대에도 주요 행사마다 주석단에 모습을 나타내는 등 건재를 과시했고 2016년 6월 최고인민회의에서 국방위 부위원장에서 물러나며 은퇴했다. 한편 미국은 2013년 3월 핵 개발 및 탄도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WMD) 개발에 연루됐다며 오극렬을 대북 독자제재 대상으로 지정한 바 있다. 또 2016년 6월 미국이 북한의 인권유린 책임자들을 제재할 때도 그의 이름이 포함됐다. 워싱턴타임스는 2009년 6월 오극렬이 미화 100달러짜리 위폐인 ‘슈퍼노트’ 제작과 유통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 “어떤 어려움에도 오로지 농구만”…캐롯, 난적 kt 격파하고 6강 PO 디딤돌 추가

    “어떤 어려움에도 오로지 농구만”…캐롯, 난적 kt 격파하고 6강 PO 디딤돌 추가

    김승기 고양 캐롯 감독이 말했다. “우리는 우리 일을 열심히 하면 되지요.” 10일 고양체육관에서 2022~23 프로농구 정규시즌 수원 kt와의 홈 경기를 앞두고서다. 우리의 일이란 바로 농구. 농구단 운영주체인 데이원스포츠의 모기업 대우조선해양건설이 경영난에 빠지며 농구 외의 일로 이슈가 많지만 오로지 본업에만 집중하겠다는 의미였다. 이날 경기는 6강 플레이오프로 향하는 길목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경기였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김 감독은 물론, 선수들의 승리에 대한 의지도 불타올랐다. kt를 상대로 1라운드에서 승리한 뒤 내리 3연패했던 캐롯은 그야말로 몸을 불사르며 83-67이라는 승리의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디드릭 로슨(22점 9리바운드)과 이정현(16점 3점슛 4개 5어시스트), 조나단 알렛지(13점), 전성현(10점)이 득점 면에서 승리의 토대를 닦았다. 너나 할 것 없이 3점을 던지는 캐롯은 이날도 2점슛보다 3점슛을 많이 던지는 특유의 양궁 농구로 36점을 쌓았다. 캐롯은 21승19패로 5위를 유지했다. 2연패에 빠진 7위 kt는 17승23패. 캐롯은 6위 전주 KCC(17승21패)와는 3경기, kt(17승23패)와는 4경기로 간격을 벌리며 6강 플레이오프 진출 가능성을 더욱 끌어올렸다.1쿼터는 하윤기(19점 11리바운드)를 앞세운 kt와 앞서거니 뒷서거니 접전을 벌였다. 하윤기는 쿼터 막판 투핸드 덩크를 포함해 17점을 쓸어담았다. 1쿼터를 23-25로 내준 캐롯은 그러나, 2쿼터 초반 전성현의 3점슛으로 28-27로 승부를 뒤집은 뒤 경기를 주도하기 시작했다. 전성현, 알렛지, 김강선(8점)이 3점포를 릴레이하며 전반을 52-42로 마무리했다. kt로서는 체력 관리를 위해 하윤기가 벤치에 앉은 사이 점수 차가 벌어져 버린 게 아쉬웠다. 반면 캐롯은 로슨 대신 나온 알렛지가 이날 올린 득점을 2쿼터에 쏟아부으며 제몫을 해줬다. 전성현의 의견을 귀담아 들은 김승기 감독이 투입한 박진철(6점 9리바운드)은 시원한 왼손 덩크를 터뜨리며 팀 분위기를 끌어올렸다.3쿼터는 로슨과 캐롯의 수비가 빛난 시간이었다. 1쿼터에 10점을 넣으며 버텨준 로슨은 3쿼터에 다시 10점 3리바운드 2스틸 1블록을 뿜어내며 공수에서 맹활약을 펼쳤다. kt는 캐롯의 악착 같은 수비에 3쿼터에만 턴오버 6개를 쏟아내며 흔들렸다. 68-53으로 앞서 앞서 마지막 쿼터에 돌입한 캐롯은 이정현과 조한진(6점)이 거푸 3점을 터뜨리며 74-53, 21점 차로 앞서기도 했다. 74-63으로 kt가 점수 차를 좁힌 4쿼터 중반에는 김진유가 알토란 같은 활약으로 kt의 흐름을 끊었다. 로슨의 골밑슛이 빗나가자 공격 리바운드를 따내 로슨의 골밑 득점을 거들더니 이후 kt 제로드 존스(9점)의 공을 가로채 이정현의 3점포에 디딤돌을 놨다. 4쿼터 종료 2분 59초 전이었다. 79-63으로 달아난 캐롯은 승리를 완전히 굳힐 수 있었다.김승기 감독은 경기 뒤 “어떤 어려움도 스스로 열심히 뛰며 이겨낸 선수들이 너무 고맙다”고 말했다. 김 감독에게 명가드가 되기 위한 조련을 받고 있는 이정현은 ”6강 경쟁을 위한 중요한 경기에서 좋은 경기력으로 이겨 의미가 크다“며 ”아직 반발짝 정도 앞서 있어 안전한 순위가 아니기 때문에 동요 없이 앞으로도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 학교 구성원 전체 보호하는 ‘전북도교육청 교육인권조례’ 전국 최초 제정

    학교 구성원 전체 보호하는 ‘전북도교육청 교육인권조례’ 전국 최초 제정

    전북도교육청이 학교 구성원 전체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전북도교육청 교육 인권 증진 기본 조례안’을 전국 최초로 제정한다. 10일 도교육청에 따르면 전북교육인권조례 공식 명칭을 공개하고, 학생, 교직원, 학부모 등 교육 주체들의 다양한 의견을 청취한 뒤 관련 조례안을 입법예고 했다.전북교육인권조례는 기존 전북학생인권조례의 인권보호 대상이 학생에만 국한돼 있어 학교 구성원 전체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조례가 제정돼야 한다는 서거석 교육감의 선거 공약에 바탕을 둔 것이다. 정성환 민주시민교육과장은 “오는 3월 열리는 도의회 임시회에서 전북교육인권조례 통과를 목표로 법제 심의 등 자체적인 절차를 이달 안에 마친 뒤 도의회에 송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전북교육인권조례의 주요 내용은 조례 적용 범위를 학생 외에 교원, 교육행정직, 교육공무직, 보호자로 확대하고, 집행 기관인 학생인권센터를 전북교육인권센터로 대체하는 것이다. 전북교육인권센터는 인권정책, 인권보호, 교육활동보호 등 3팀으로 구성된다. 이는 기존 학생인권센터의 인권구제팀, 인권교육팀 2팀제보다 1개팀이 늘어나는 것이다. 또 교육감에게 구제나 징계 조처를 권고하던 학생인권심의위원회를 교육청인권위원회로 대체해 학생 인권 외에 교권 인권 침해에 대해서도 다루도록 한다. 전북교육인권조례가 제정되면 학생인권조례와 충돌되거나 중복되는 10개 조항은 학생인권조례 개정을 통해 삭제할 예정이다.
  • “올 ‘크리에이터 이코노미’ 국내 시장 1위 굳히고 日·동남아 진출”

    “올 ‘크리에이터 이코노미’ 국내 시장 1위 굳히고 日·동남아 진출”

    “창업 9년차로 이젠 기업인의 자격을 어느 정도 갖췄다고 자부한다. 그간 적자 연속의 플랫폼 기업에서 수익을 내는 사업 구조를 만들어 냈다. 올해에는 국내 ‘크리에이터 이코노미’ 시장에서 1위를 굳히는 동시에 일본과 동남아시아에 진출하려 한다.” 최근 10대와 20대 여성들 사이에 온라인으로 상품을 거래하는 플랫폼 ‘젤리크루’가 인기다. 젤리크루는 크리에이터들이 생산한 상품을 팔고 사는 플랫폼이자 생태계다. 귀엽고 예쁜 문구류와 리빙·잡화가 대다수지만 패션 브랜드도 있다. 젤리크루에 입점한 브랜드는 500여개에 이른다. 8개의 오프라인 직영점과 350개의 위탁 채널도 있다. 젤리크루는 온라인으로 월 30만명, 오프라인 매장엔 월 5만명이 방문하는 국내 1위의 크리에이터 커머스 플랫폼이다. 젤리크루를 운영하는 스타트업 핸드허그의 박준홍 대표를 지난달 중순 서울 강남구 역삼동 사무실에서 만났다.박 대표를 만나자마자 ‘최근 고금리로 자금 지원이 줄어 힘들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는 “우리는 2021년부터 손익분기점을 넘어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흑자 상태로 2년 정도 끌고 오니 사업 모델을 긍정적으로 보고 투자 의향을 밝힌 곳도 적지 않다. 소위 말하는 ‘데스 밸리’(죽음의 계곡)를 건넜다”고 자신감 있게 말했다. 한화생명·신한캐피탈 등으로부터 유치한 누적 투자액은 100억원이 넘었다. 지난해 11월에는 기업가치 1000억원 이상의 예비 유니콘으로 성장하도록 지원하는 ‘아기유니콘 200’으로 선정됐다. ●온라인 월 30만명·오프 5만명 방문 인터뷰에 앞서 살펴본 그의 이력은 범상치 않았다. 1985년 광주에서 태어난 그는 2005년 연세대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2009년 연세대 총학생회장을 지낸 뒤 삼성전자에 2013년 입사했다. “입사 연수를 받을 때 내가 우리 차수에서 1등을 했다. 그 성적을 바탕으로 반도체 기획팀에 배치받았다.” ‘총학생회장 출신이면 정치권으로 많이 가지 않느냐’는 물음에 그는 기업인의 길을 선택한 이유를 풀어놨다. “학생회장 출신 선배 다수가 정치 쪽으로 갔다. 내가 학생회 활동을 할 때 노무현·김대중 대통령이 서거했다. 학생회가 중심이 되어 전국 학생회를 연결하는 등의 일을 많이 했다. 그런 인연으로 정치에 입문한 이들도 많다. 하지만 나는 기업인이 과거보다 훨씬 더 우리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고 좀더 큰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기업인으로 살기로 마음먹고 1등 기업인 삼성전자를 선택했다.” 지난해 대선 때도 청년 기업가인 그에게 한 캠프에서 ‘러브콜’이 왔지만 주저 없이 ‘노’(No)라고 답했단다. 그는 입사 2년 남짓 만인 2015년 8월 삼성전자에 사표를 던졌다. “삼성전자에서 투자와 자금 운영, 의사 결정 등에 대해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그리고 이렇게 큰 조직이 굉장히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 사업을 하고 싶었다.” 곧바로 창업하면서 크게 3가지 조건에 맞는 아이템을 선택지로 삼았다. 당시 5명이 1년 정도 연구하면서 내린 결론은 글로벌 시장으로 확장할 수 있는 아이템, 우리 팀이 잘할 수 있는 아이템 등을 고려해 성장하는 한국 콘텐츠를 활용한 사업으로 정했다.●기업인, 과거보다 선한 영향력 행사 창업 초기는 가시밭길이었다. “처음에는 콘텐츠를 가진 회사와 제조업체를 연결해 주고, 우리는 수수료를 받자는 구상이었다. 좋은 콘텐츠가 있는데 제조할 줄 몰라 못 만든다는 가설에서 출발했는데 잘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가 직접 주문제작(OEM)방식으로 아이템을 바꿔 3~4년 했다. 매출은 났지만 적자가 심했다. 적자 이유는 우리의 역량 부족도 있었지만 시장 구조가 이미 30~40년 한 유통업체와 제조업체 중심으로 돌아갔다. 우리가 비집고 들어가기 어려운 구조였다. 다시 사업 아이템을 피버팅(트렌드나 감염병 등 급속도로 변하는 외부 환경에 따라 기존 사업 아이템을 바탕으로 사업 방향을 다른 쪽으로 전환하는 것)했다. 우리가 ‘젤리크루’라는 브랜드로 크리에이터들이랑 전속 계약을 맺고서 콘텐츠 매니지먼트부터 작가 관리까지 하고, 발생한 수익은 나누는 구조였다. 어떤 콘텐츠가 잘될지 우리가 임의로 판단한 게 문제였다. 적자가 계속 발생했고 사람을 관리하는 문제 등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부분이 너무 많았다.” 그러면서 수년째 계속된 적자가 불어났다. 2017년 개인 부채는 10억원이 넘었다. “대표인 내가 빚내서 회사에 넣었다. 이게 가수금이다. 연속 실패하면서 1500원짜리 김밥 한 줄 사 먹을 돈도 없었다. 편의점에서 김밥 사려고 카드를 내밀면 ‘한도 초과’가 떴다. 당시 월 한도가 30만원 정도였다. 그래도 직원들 월급은 줘야 하니까 제2금융권에서 카드론도 엄청 당겨 썼다. 이런 내 경험으론 후배들에게 창업하라고 권하지 못하겠다.” “가족을 비롯해 주위 사람들이 고마웠다. 폐업을 권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2019년 당시 내가 서른다섯이었는데 폐업해서 정리하면 채무가 5억원 정도로 줄겠더라. 남은 5억원을 10년간 갚는 개인회생을 신청하는 방법까지 알려 줬다. 취업 자리를 알아봐 주겠다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박 대표는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더 해 보자고 결심했다. 2019년 운영 방식을 플랫폼으로 다시 방향을 전환했고, 그게 지금의 사업 모델이 됐다. “진짜 뒤가 없는 상황이었다. 성공하는 것이 간절했고 절실했다.” 2021년 매출 51억원에 처음 흑자를 기록했다. 영업이익은 3억 8000만원으로 적지만 가능성이 보였다. 그리고 작년 매출 132억원에 영업이익은 8억원(추정치)으로 늘어났다. 직원도 110명으로 불었다. 빚에 시달리던 그도 한숨을 돌렸다. 회사 부채 비율이 작년 매출 기준으로 30% 정도다. “창업 초기엔 기업인으로 살겠다고 큰소리쳤고, 자신감이 넘쳤다. 하지만 실패가 반복되다 보니 내가 ‘깜냥’이 되나 하는 의구심이 들더라. ‘내가 능력이 있는 사람인가’, ‘내가 많은 사람들에게 같이 일하자고 설득해 데려왔는데, 잘못 생각한 것이 아닌가’ 하는 회의감, 혼란스러움이 너무 컸다. 버텨 내기에 집중했다.” 기업인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는 말이 있다. “기업인이나 창업자는 실제로 다양한 경험을 하고, 여러 난관을 이겨 내면서 자질을 하나씩 갖춰 가는 것이라는 걸 실감했다. 창업 9년차로서 남들 못지않은 경험을 해 왔다. 어려운 상황들을 이겨 낸 경험이 쌓여 기업인으로서 최소한의 자격을 갖추는 데 영향을 줬다. 더 성장하고 더 잘하고 싶다. 어느 정도 역량이 있다고 믿는다.” 라이벌을 묻자 그는 “교보문고의 핫트랙스는 경쟁 상대이면서도 사업 파트너”라고 강조했다. 교보문고에서도 서가 쪽보다는 음반과 온갖 문구류를 파는 핫트랙스 쪽이 언제나 젊은층으로 붐비는 곳이다. ●크리에이터 누적 정산금 65억원대 그래도 배고픈 크리에이터가 없게 하겠다는 것이 젤리크루의 가장 큰 장점이다. 크리에이터들에게 돌려준 누적 정산금은 론칭 3년 만에 65억원을 넘기면서 크리에이터 이코노미를 구축했다. 크리에이터 이코노미는 MZ세대를 중심으로 자신이 만든 콘텐츠로 직접 돈을 버는 경제 구조를 말한다. 젤리크루 상위 3명의 평균 누적 정산액은 4억원이 넘는다. 회사 매출의 95%가 10~30대 여성에게서 나온다. 지나치게 편중된 것이 아닐까. “우리의 10~20대 여성 고객이 한 50만명쯤 된다. 그런데 그 층의 한국 여성은 550만명이다. 단기적으로 고객 연령층을 확장하지 않고, 이들에게 집중하려 한다. 10~20대 여성이면 누구나 알고 쓰는 서비스가 되는 것이 1차 목표다.”
  • 설 흥행작들 속 ‘의미 있는 다큐’…사라진 새와 아메리카 원주민

    설 흥행작들 속 ‘의미 있는 다큐’…사라진 새와 아메리카 원주민

    ‘북미의 새’ 펴낸 오듀본 발자취1827년부터 12년간 489종 담아영화 속의 새들 상당수는 멸종“지구·환경 훼손 땐 화 미쳐” 경고 설 연휴 흥행작들의 틈바구니에서 의미 있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관객들을 향해 손짓한다. 오는 25일 개봉하는 ‘새를 사랑한 화가’(자크 루엘 감독)다. 1827년부터 12년에 걸쳐 50명의 채색가를 동원해 북미 대륙의 조류 489종 1065마리를 435점의 그림으로 담은 ‘북미의 새’(Birds of America)를 펴낸 존 제임스 오듀본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미국의 역사를 통찰한다. 오듀본은 아이티에서 태어나 프랑스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뒤 1803년 미국으로 이주, 펜실베이니아에 정착하며 새들과 새들의 서식지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라질 위기에 처한 새들을 찾아 미시시피강을 오르내린다. 이렇게 새 관찰과 기록에 30년을 바쳤다.이 책 초판본은 2010년 소더비 경매에서 1150만 달러에 낙찰되면서 17세기에 만들어진 ‘베이 시편집’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비싼 책이 됐다. 사실 영화를 시사하기 전에 기대한 것은 새들의 화려한 비상이나 군무, 얼마나 생생한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많은 새의 상당수가 이미 오래전 멸종됐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영화는 새들을 실물 크기로 그려 세로가 70㎝쯤 돼 보이는 특이한 판형의 책장을 무심한 듯 넘긴다. 실망도 잠시, 너무도 생생해 금세라도 날아오를 듯한 새들의 매력에 빠져든다. 미시시피의 진짜 이름이 미시지비인데 무자비한 영어가 그것을 지워 버렸다는 사실도 처음 알게 됐다. 여객비둘기, 캐롤라이나앵무새, 상아부리딱따구리 등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보게 됐다. 특히 오듀본이 직접 촬영한 상아부리딱따구리의 흑백 동영상과 울음소리는 감동의 크기를 키웠다. 영화는 사라진 새를 안타까워하다 이내 앞서거니 뒤서거니 사라진 아메리카 원주민들로 시선을 옮긴다. 앤드루 잭슨 대통령의 강제 이주 명령이 왜 반헌법적인지, 강에서 쫓겨나 산림의 보호구역에 갇힌 이들이 어떻게 시들어 갔는지, 목화 농장이 유전과 공장으로 바뀌어 환경이 어떻게 파괴되는지 카메라는 강변을 훑으며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카메라가 뉴올리언스의 철교 아래를 통과하는데 내레이터가 사라진 원주민 부족 이름을 차례로 들려주는 장면은 아릿하다. 새들의 생태에 향해 있던 오듀본의 관심은 자연스레 인간 활동이 새들에게 미치는 영향과 자연보호로 옮겨간다. 새들을,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지구와 환경을 훼손하고 짓밟으면 그 화가 백인에게 미칠 것이라고 예언했고 그대로 됐다. “모든 동물이 사라진다면 인간은 고독한 영혼으로 죽을 것”이라고 경고했는데 이에 대한 답은 아직 우리에게 남아 있다.
  • 사라진 북미의 새들, 아메리카 원주민들, 의미있는 다큐 ‘새를 사랑한 화가’

    사라진 북미의 새들, 아메리카 원주민들, 의미있는 다큐 ‘새를 사랑한 화가’

    설 대목 흥행작들의 틈바구니에서 의미있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관객들을 손짓한다. 25일 개봉하는 ‘새를 사랑한 화가’(자크 루엘 감독)다. 1827년부터 12년에 걸쳐 50명의 채색가를 동원해 북미 대륙의 조류 489종 1065마리를 435점의 그림으로 담은 ‘북미의 새’(Birds of America)를 펴낸 존 제임스 오듀본의 발자취를 따라 가며 미국의 역사를 통찰한다. 오듀본은 아이티에서 태어나 프랑스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뒤 1803년 미국으로 이주, 펜실베이니아에 정착하면서 새들과 새들의 서식지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라질 위기에 처한 새들을 찾아 미시시피강을 오르내린다. 이렇게 새 관찰과 기록에 30년을 바쳤다. 이 책 초판본은 2010년 소더비 경매에서 1150만 달러에 낙찰돼 17세기에 만들어진 ‘베이 시편집’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비싼 책이 됐다.사실 영화를 시사하기 전에 기대한 것은 새들의 화려한 비상이나 군무, 얼마나 생생한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많은 새들의 상당수가 이미 오래 전 멸종됐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영화는 새들을 실물 크기로 그려 세로가 70㎝쯤 돼 보이는 특이한 판형의 책 장을 무심한 듯 넘겨간다. 실망도 잠시, 너무도 생생해 금세라도 날아오를 듯한 새들의 매력에 빠져든다. 미시시피의 진짜 이름이 미시지비인데 무자비한 영어가 그것을 지워버렸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됐다. 여객비둘기, 캐롤라이나 앵무새, 상아부리 딱따구리 등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본다. 특히 오듀본이 직접 촬영한 상아부리 딱따구리의 흑백 동영상과 울음소리는 감동의 크기를 키웠다. 영화는 사라진 새를 안타까워하다 이내 앞서거니 뒤서거니 사라진 아메리카 원주민들로 옮겨간다. 앤드루 잭슨 대통령의 강제 이주 명령이 왜 반헌법적인지, 강에서 쫓겨나 산림의 보호구역에 갇힌 이들이 어떻게 시들어갔는지, 목화 농장이 유전과 공장으로 바뀌어 환경이 어떻게 파괴되는지 카메라는 강변을 훑으며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카메라가 뉴욕 맨해튼 현수교 아래를 통과하는데 내레이터가 사라진 원주민 부족 이름들을 차례로 들려주는 장면은 아릿하다. 새들의 생태에 관심있던 오듀본은 자연스레 인간활동이 새들에게 미치는 영향과 자연보호로 옮겨간다. 이렇듯 새들을,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지구와 환경을 훼손하고 짓밟으면 그 화가 백인에게 미칠 것이라고 예언했고 그대로 됐다. “모든 동물이 사라진다면 인간은 고독한 영혼으로 죽을 것”이라고 경고했는데 아직 이에 대한 답은 우리에게 남아있다.
  • 하루 군것질에 1320만원…67억 ‘펑펑’ 쓴 브라질 대통령

    하루 군것질에 1320만원…67억 ‘펑펑’ 쓴 브라질 대통령

    지지자들의 브라질 대통령궁 및 의회 난입 폭동을 부추겼다는 비판을 받는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전 대통령이 임기 중 한국 돈으로 67억원을 쓴 자료가 공개됐다. 하루에 제과점 한 곳에서 1320만원, 주유소 한 곳에서 1700만원을 쓰는 등 브라질이 발칵 뒤집혔다. AFP통신·더타임스 등은 13일(현지시간) 보우소나루가 대통령 임기 중 사용한 업무용 신용카드 내역에 석연치 않은 부분이 적지 않다고 보도했다. 브라질 정부가 지난 6일 웹사이트에 공개한 관련 자료에 따르면 보우소나루가 2019년 초부터 4년간 대통령으로 재직하면서 사용한 업무용 카드에는 2760만 헤알(원화 약 67억원)이 청구됐다. 보우소나루는 “(개인 비용을 업무용 카드로) 단 한 푼도 청구한 적이 없다”고 여러 차례 주장했으나, 그는 재직 마지막 해를 제외하고 매년 휴가 기간에 업무용 카드를 사용했으며 이로 인해 2억9100만원이 청구된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전임자들과 달리 재직 중 업무용 카드의 사용내역을 공개하지 않았고, 지난해 8월 사용내역을 100년간 비공개로 한다는 명령까지 내렸다. 그러나 지난 1일 취임한 루이스 이냐시오 룰라 다시우바 대통령이 이 같은 비공개 조치를 해제하면서 재임 당시 카드 사용내역이 드러나게 됐다. 보우소나루는 보좌진 21명과 함께 업무용 카드를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출장 비용 지불이나 소규모 혹은 긴급 구매에 쓰도록 되어 있던 카드는 사냥, 낚시, 스포츠기구 구매, 침대시트 등 침구 구매에도 사용된 것으로 나타났다. 아이스크림 구입에 240만원을 쓰거나, 음식점에서 하루 2600만원을 쓴 내역도 포함됐다.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 지지자들은 그가 쓴 업무용 카드 청구액이 현 대통령인 룰라가 첫 임기인 2003∼2006년에 쓴 것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지만, 룰라 지지자들은 룰라의 업무용 카드 사용 내역 대부분이 해외 출장 숙박비라고 반박하고 있다. 지지자들과 사진 찍고 슈퍼마켓 나들이 보우소나루는 지난해 10월 대통령선거에서 패배해 재선에 실패한 뒤, 룰라의 취임식 직전에 브라질을 떠나 미국 플로리다로 가 체류중이다. 그는 13일 내려진 브라질 대법원 결정에 따라 수도 브라질리아에서 지난 8일 발생한 대선 불복 폭동 등 불법행위를 선동한 혐의로 연방검찰의 수사 대상에 올랐다.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은 브라질 폭동 사태 하루 뒤인 지난 9일 트위터에 플로리다에 있는 병원 침대에 누워있는 자신의 사진을 올리고, 2018년 대선 유세 중 흉기에 찔린 복부의 상처로 인해 치료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병원에 있다고 주장하는 보우소나루는 어디에 있는가’란 제목의 기사를 보도하며 “그가 플로리다 주민으로서 새 삶을 살고 있다”고 전했다. 신문은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이 미국 플로리다주 도시 올랜도에 있는 앙코르 리조트에 위치한 2층 주택에 머물고 있다고 전했다. 해당 주택은 브라질 종합격투기 선수인 호세 알도 소유의 집으로, 올랜도 디즈니월드로 가는 고속도로 인근에 있다. 그는 자신을 찾아오는 지지자들과 집 앞에서 사진을 같이 찍고, 슈퍼마켓에서 줄을 서거나 KFC에서 홀로 식사하는 등 미국에서의 일상을 즐기는 모습도 목격됐다고 신문은 전했다.
  • 서거석 전북교육감 허위사실 공표 혐의 부인

    서거석 전북교육감 허위사실 공표 혐의 부인

    서 전북교육감 “폭행 없었다” 고 부인 6·1 지방선거 TV 토론회 등에서 전북대학교 총장 재직 시절의 ‘동료 교수 폭행 의혹’을 부인한 혐의(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상 허위 사실 공표)로 재판에 넘겨진 서거석 전북교육감이 첫 재판에서 혐의를 부인했다.13일 전주지법 제11형사부(노종찬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이 사건 첫 재판에서 서 교육감의 변호인은 “피고인은 동료 교수를 폭행한 사실이 없다”며 “(피고인의 발언이) 허위 사실 공표에 해당하지 않아 검찰의 공소사실 전부를 부인한다”고 말했다. 이어 “피해자로 지목된 A 교수의 진술이 계속 바뀌고 있다”며 “이 교수를 증인으로 신청해 폭행 사실이 있었는지 확인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검찰은 폭행 목격자 5명을 증인으로 신청했다. 재판부는 공판준비기일을 한 차례 열고 증인 신청 인용 범위를 결정할 예정이다. 다음 재판은 오는 2월 1일 열린다. 서 교육감은 재판 직후 “혐의를 모두 부인한다”며 “법정에서 모든 걸 소명하겠다”고 말했다. 서 교육감은 지방선거 TV 토론회 등에 출연해 ‘A 교수를 폭행한 적이 없다’고 말해 상대 후보 측에 의해 고발당했다. 폭행 피해자로 지목된 A 교수는 경찰 조사에서는 ‘폭행이 있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가 이후 공식 석상에서 “폭행을 당하지 않았다”고 발언해 ‘말 바꾸기’ 논란을 낳았다. 검찰은 A 교수의 진술뿐만 아니라 사건 관련자 조사 등을 종합해 당시 서 교육감의 폭행이 있었다고 판단했다.
  • 브라질 대선불복 전 대통령…디즈니월드 옆에 살며 지지자와 사진찍어

    브라질 대선불복 전 대통령…디즈니월드 옆에 살며 지지자와 사진찍어

    브라질에서 지난 8일 대통령궁 등에 수천명이 난입해 대선불복 폭동을 일으킨 배후로 지목되는 자이르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을 향한 사법부의 수사 압력이 거세지고 있다.  10일(현지시간) AP통신 등에 따르면 대선불복 폭동 사태와 관련해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 최측근이었던 전임 장관에 대해 체포 영장이 발부됐다.  보우소나루 정부에서 법무부 장관을 지낸 안데르송 토레스 전 브라질리아 안보 장관이 폭동 조짐을 미리 인지하고도 방관했거나, 느슨한 치안 관리로 폭동을 막지 못한 책임을 지게 됐다. 토레스 전 장관은 지난 8일 대통령궁과 의회, 대법원이 시위대에 의해 쑥대밭으로 변할 당시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이 머무는 미국 플로리다에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0월의 대선 결과에 불복하고 군의 쿠데타를 촉구하는 보우소나루 지지자들은 지난 8일 브라질리아 의회와 대통령궁, 대법원 등지에 난입해 기물을 부수고 난동을 부렸다. 브라질 경찰은 폭력 사태를 벌이다 체포된 1500여명 가운데 고령이거나 환자인 599명을 ‘인도주의적 이유’로 석방했다.  브라질 검찰은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 자산동결 명령도 법원에 청구해 이미 그가 수사 대상이라는 관측도 제기됐다. 2018년 입은 자상에 따른 복통 등을 호소하며 전날 미국 올랜도의 병원에 입원했던 보우소나루는 하루 만에 퇴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디즈니월드 근처인 키시미에 있는 주택에서 지내며 찾아오는 지지자들과 함께 사진을 찍었던 근황도 워싱턴포스트(WP)를 통해 공개됐다. 보우소나루가 머물고 있는 집은 브라질 격투기 선수 조제 아우두가 소유한 곳으로, 슈퍼마켓에서 줄을 서거나 햄버거를 사 먹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다.  WP는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대통령의 취임식 전에 대선 결과에 승복하지 않고 미국으로 떠난 보우소나루의 행태가 이번 폭력 사태의 배경이라고 지목했다. 보우소나루는 1·8 폭동에 대해 불법이라고 비판했지만, 득표율 1.8%차이로 진 선거 과정에 의혹을 제기하면서 지지자들을 자극했다는 것이다. 보우소나루는 CNN 브라질과의 인터뷰를 통해 “원래 미국에 1월말까지 머물려고 했지만, 예정보다 빨리 브라질로 돌아가 치료를 받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2018년 대선 유세 과정에서 복부에 자상을 입었다.  보우소나루 아들인 플라비우 보우소나루 상원 의원은 “3부에 대한 공격은 심각한 범죄로, 책임 있는 사람들은 최대한 처벌받아야 한다”면서도 “침묵한 채 상처 치유에 전념하고 있는 부친의 이름을 폭동과 연관 지으려 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룰라 대통령은 이달 말까지 연방정부 공권력을 브라질리아에 투입해 추가 테러 방지 및 폭동과 연관된 이들에 대한 전방위적인 조사 등을 예고했다.
  • “교육 정책, 학생이 직접 만든다” 전북학생의회 출범 가시화

    “교육 정책, 학생이 직접 만든다” 전북학생의회 출범 가시화

    학생자치활동을 보장하고 학생 참여활동을 확대하기 위한 ‘전북학생의회’ 출범이 가시화되고 있다. 전라북도교육청은 2023년 제1기 전라북도교육청 학생의회 의원을 공개모집한다고 10일 밝혔다. 전북학생의회는 ‘전라북도교육청 학생의회 구성 및 운영 조례’에 따른 것으로 서거석 교육감의 핵심 공약 중 하나다. 이번에 공개모집하는 인원은 10명으로 도내 초·중·고·특수학교에 재학하는 학생으로, 초등학생은 5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다. 또 14개 교육지원청이 추천하는 40명을 포함해 총 50명으로 전북학생의회가 구성된다. 전북학생의회는 ▲교육정책에 대한 제안 및 심의 ▲입법 및 예산편성에 대한 제안 및 심의 ▲학생 자치활동 역량 강화를 위한 제도 개선 제안 및 심의 ▲학생인권 보장에 대한 제안 ▲학생의회 및 분과위원회 개정에 관한 사항 ▲그밖에 의장 또는 교육감이 요구하는 사안에 대한 심의 등의 역할을 하게 된다. 서거석 교육감은 “전북학생의회는 학생들이 교육정책 제안·검토, 수립에 직접 참여할 수 있도록 해 ‘학생중심 미래교육’을 강화하고자 하는 정책”이라면서 “우리 학생들이 학생의회 활동을 통해 민주주의의 가치를 배우고 성숙한 민주시민으로 성장해 나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편, 전북학생의회 참여 신청은 오는 27일까지 도교육청 7층 민주시민교육과로 방문 또는 우편, 팩스(063-220-9414), 이메일(star1756@jbedu.kr) 등으로 접수하면 된다. 이후 오는 31일 공개추첨을 거쳐 3월 공식 출범한다.
  • 전북교육청, 저소득 가정 학생에 생일축하금 지급한다

    전북교육청, 저소득 가정 학생에 생일축하금 지급한다

    전라북도교육청이 저소득 가정 학생에게 생일축하금을 지급한다. 전북도교육청은 올해부터 저소득 가정 학생의 맞춤형 복지 강화를 위한 ‘행복 가족 ON! 따뜻한 밥상’을 추진한다고 4일 밝혔다. 지원대상은 도내 초·중·고·특수학교 및 학력인정평생교육시설에 재학 중인 교육급여 대상 학생이다. 지원금은 별도 신청 절차 없이 교육청에서 대상 학생 교육급여 계좌로 현금 지급한다. 교육급여 수급 자격을 보유하고 있는 학생의 생일 달에는 생일축하 지원금 4만원을, 설과 추석에는 명절맞이 지원금 각 4만원씩 1인당 연 3회, 총 12만원을 지급한다. 지난해 교육급여를 지급받은 학생에게는 오는 17일까지 명절맞이 지원금을 우선 지급하고, 2023년 1월 신규로 교육급여 수급자가 된 학생에게는 1월 31일까지 지원금을 지급할 예정이다. 서거석 교육감은 “‘행복 가족 ON! 따뜻한 밥상’은 초·중·고 저소득층 학생의 생일과 명절에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으로 전북교육청의 대표적인 학생복지 정책 중 하나”라면서 “가족 간 축하와 감사를 통해 소통하고 화합하면서 가족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 체조합시다/김사사 [서울신문 2023 신춘문예 - 소설]

    체조합시다/김사사 [서울신문 2023 신춘문예 - 소설]

    이것은 아시아나 스포츠 상설 매장에서 산 트램펄린. 공중부양. 수양은 뛰고 있다. 흔들리고 있다. 조금씩 어지럼증을 느끼고 있다. 전시제품이므로 모서리 변색 있음. 그러나 탄력 좋음. 아시아나 아저씨는 이것이 아주 튼튼한 물건이라고 말했고 정말 그렇게 생겼으니 괜찮겠다 싶지만 수양은 어쩔 수 없이 좀 무서워진다. 그녀는 변색한 트램펄린 모서리를 손톱으로 살살 긁으면서 물었다. 아저씨. 만약 부러지면 어떻게 할 건지? 그건 내가 어떻게 해 줄 수 있는 부분이 아니지요 아가씨…. 맞는 말이다. 수양은 칼을 팔러 가기 전에 튼튼하고 단단한 물건들을 생각하며 오십 분씩 뛰었다. 붉은 벽돌과 철제 의자 강화유리로 된 창문 그리고 칼…. 트램펄린 앞에는 높이 백칠십 센티미터짜리 거울이 있고 수양은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도록 주의하며 열심히 뛴다. 이것은 은근히 땀이 나는 일이므로 겨울에는 얇은 반소매 티셔츠만 입고 뛰어야 하고 여름에는 다 벗고 뛰어야 한다. 뛰어오를 때는 정말로 공중부양하는 기분이지만 그것은 기분일 뿐이고 어쨌든 떨어지는 일이다. 수양이 영양제나 선크림이나 치약이나 칫솔이 아니라 칼을 파는 이유는 사람들이 무서워하는 물건이기 때문이다. 무서워서라도 사 준다는 말이다…. 수양은 칼 판매상이다. * 수양은 택기와 알고 지낸 지 꽤 되었고 택기의 사육장에 가 본 적도 있다. 사육장은 동굴처럼 길고 캄캄해서 거기에 무엇이 있기는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고 보고 있으면 기분이 나빴다. 수양이 택기야 저렇게 하면 토끼가 살 수 있냐 너무 어둡지 않냐 물었을 때 택기는 원래 조명을 켜 두는 곳이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지금은 왜 어두운 거니 묻자 기주가 깜박한 거라고도 했다. 사육장 입구에는 파란색 파라솔이 있었고 그 아래로 작은 탁자와 바퀴 달린 접이식 침대, 플라스틱 의자를 두었다. 의자에는 헐렁한 러닝셔츠와 익은 노른자색 사부 반바지를 입은 사람이 늘어져 있었는데, 수양은 그 사람이 말로만 듣던 기주라는 사실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택기의 둔하고 쓸모없는 동생 기주. 네가 바로 기주다. 기주는 고개를 뒤로 기울인 채 눈을 감은 모습이었고 무릎 위로 까만 총이 놓여 있었다. 택기야 저거 진짜 총이냐. 비비탄총이지. 그렇구나 난 또. 정오를 지나던 때였으므로 하늘을 향한 기주의 얼굴은 서서히 달궈지는 중이었다. 그늘을 벗어난 얼굴 위로 노랗고 깨끗한 햇빛이 일렁거렸으니 기주는 잘 먹고 잘 자라는 중인 아이처럼 보였다. 스포츠머리에다 늘 하얀 두건을 쓰는 택기와는 전혀 닮지 않았다. 수양은 기주의 뺨 위로 조심스레 검지를 얹었고 손가락으로 전해지는 미세한 따듯함을 느꼈다. 택기가 토끼 한 마리를 잡아 사육장 밖으로 걸어 나왔을 때, 그의 표정은 중요한 약속을 앞둔 사람처럼 신중하고 뻣뻣했다. 기주는 그때까지도 절대 깨지 않았으므로 수양은 택기야 기주가 졸고 있어… 하고 작게 속삭였다. 택기는 기주가 졸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런 척을 하는 거라고 말했다. 잿빛 토끼는 몸집이 컸다. 그냥 큰 게 아니라 아주 컸다. 택기는 자이언트 토끼라고 말했다. 크고 따듯하고 순한걸. 택기야 이 토끼는 정말로 순하다고. 털에 파묻힌 토끼의 눈이 마름모 모양이었기 때문에 수양은 토끼의 미간을 마름모꼴로 문질렀다. 몸집이 큰 것과는 별개로 토끼는 부드럽고 무른 표피를 가져서 조금만 세게 쥐면 으스러질 것 같았다. 수양이 토끼도 우는가 어떻게 우는가 기억이 나지 않네 하자 택기는 토끼를 가리켜 커서 문제다, 크고 소리도 없어서 문제다, 하고 중얼거렸다. 그게 왜 문제야. 커야 더 좋지. 너는 토끼로 요리하는 요리사니까 커야 좋은 거지. 개새끼들이 도망을 간다고. 토끼는 개새끼가 될 수 없었지만 택기는 달리 부를 말이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도망을 간다니 탈출한다는 것인가. 어떻게 탈출해. 이렇게 큰데. 크기가 이런데. 가끔 유연한 토끼들이 있다고 해도 토끼는 액체가 아니므로 수양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택기가 하는 탕집은 사육장과 마주 보고 있고 탕집 주방 쪽창은 사육장 입구를 향해 나 있었다. 택기는 하얀 두건을 쓰고 방수 앞치마를 두른 모습으로 탕을 끓인다. 매일 그렇게 한다. 그러다 보면 택기의 몸에서는 아주 이상한 냄새가 나기 시작하는데 그래도 수양은 택기의 냄새에 대해 이야기해 본 적이 없다. 택기가 한참 탕을 끓이다가 쪽창을 쳐다보면 토끼 두어 마리가 잔디밭에 우뚝 서 있는 것이다. 어떤 때는 택기와 단번에 얼굴이 마주치고 어떤 때는 뒷모습이 보이지만, 뒤돌아 있던 놈도 언젠가 택기 쪽으로 고개를 돌리게 되어 있고 그러다가 산으로 사라진다고 했다. 택기는 개새끼들이 사람을 놀릴 줄 안다고 싫어했다. 사실 토끼는 번식이 빠른 동물이라서 두어 마리가 없어진다고 문제 되는 것은 아니었는데 택기는 기주더러 탈출하는 놈들을 되는 대로 잡아내라고 거기에 앉혀 두었다. 기주는 그동안 뭔가를 잡아낸 적이 없다. 쟤는 아무것도 못 잡아. 택기가 말했다. 기주는 여태껏 바닥에만 비비탄을 쏘아 댔기 때문에 기주가 앉은 부근으로는 잔디가 자라지 않았고 살짝 젖은 토양이 드러났다. * 수양은 이제 택기의 탕집에서 칼을 팔게 되었지만 원래는 여기저기에서 잘 팔고 다녔다. 모르는 집의 문을 두드리고 칼 세트를 재빠르게 보여 준 뒤 현관에 걸터앉아서 800방짜리 숫돌에다 느릿느릿하게 칼을 갈고 이것 보세요 참 쉽지요 하는 일을 잘했다. 배낭에 챙긴 A4 용지 다발 중 한 장을 꺼낸 뒤에 막 갈아 낸 칼로 비스듬히 잘라 내고 한번 해 보세요 정말 부드럽고 예리하지요 하는 일도 잘했다. 가끔은 몇 달 전에 팔았던 집에 가서 또 팔아 내고 이번에는 업그레이드되었으니 다르다고 거짓말하는 일도. 그런 일을 못 하게 된 것은 어느 날 귀가 잘 들리지 않는 사람의 집에 갔기 때문인데, 그가 원로 마술사였다는 소문이 있다. 그는 특히 손도 대지 않고 멀리 있는 폭죽을 터뜨리는 마술을 잘했는데 그것만큼 사람들의 반응이 좋은 게 없어서 터뜨리고 터뜨리다 귀가 먹었다고 했다. 어쨌든 수양은 원로 마술사쯤은 상대도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 사람은 수양이 아무리 이것 보세요 이것 보세요 해도 칼을 제대로 보지 않았고 대신 전화기를 들었다. 수양은 그날 처음으로 지구대에 가 보았는데, 눈썹이 짙고 목소리가 큰 박 순경은 그냥 말하는 것이지만 소리 지르는 것처럼 들리는 볼륨으로 말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당신은 당신이 얼마나 위험한 사람인지 알 필요가 있어요 알아야 해요 하며 조금은 간절한 표정으로 수양의 손을 꼭 붙잡았다. 박 순경의 손바닥이 참 축축해서 수양은 이 사람 겁이 많은 사람이잖아 생각했고 앞으로는 그런 식으로 칼 파는 일을 그만두고 싶어졌다. 그래도 수양은 칼 파는 데 재능이 있었고 다른 일은 생각해 본 적이 없었으므로 지구대를 나와 집으로 돌아가서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어떻게 하지 하며 트램펄린을 뛰었다. 뒤통수가 팽팽하게 조여드는 느낌이 들자 수양은 앞으로도 트램펄린 타는 일을 계속하고 싶다고 생각했고 멈추고 싶지 않았으나 나중에는 기운이 빠져서 잠들었다. 다음 날에는 오전 다섯 시에 잠에서 깼다. 잠 없는 노인들이나 일찍 나가는 공장 사람들한테는 그만큼 이른 시간에 찾아가서 칼을 파는 수밖에 없었으니 수양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려 노력하는 편이었는데 그것이 그만 몸에 익어 버린 것이다. 잠자는 동안에는 땀을 조금 흘렸다. 날이 점점 더워져서 그랬다. 수양은 택기가 토끼탕을 잘 끓인다는 사실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택기가 만든 탕을 먹어 본 적이 없고 그때까지 택기의 얼굴을 본 적도 없었지만, 오가는 길에 택기의 탕집을 자주 보았고 거기에는 늘 사람이 많았으니 그런 집이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택기의 탕집 앞에는 국도가 있고 작은 산도 있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몰라도 그 작은 산이 국내 100대 명산 중 칠십 번째나 팔십 번째쯤 되었다. 수양은 그 산이 얼마나 명산인지 궁금했다. 지구대에 다녀온 다음 날, 수양은 일찍 일어나게 되었으니 산책을 하기로 마음먹었고 싱크대에서 미지근한 물로 얼굴을 씻어 낸 뒤 밖으로 나가 아주 천천히 걸었다. 그녀는 무척 여유로운 사람처럼 보이고 싶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차분한 음악을 듣고 따뜻한 차를 끓여 마신 뒤에 산책하기를 즐기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었기 때문에 몸을 앞뒤로 조금씩 흔들어 가며 걸을 수 있도록 신경 썼다. 수양은 칼을 팔러 갈 때 주로 흰옷을 입었는데, 가장 친절하고 상냥해 보이면서도 미묘하게 위협적인 색깔이 바로 흰색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제 그런 식으로 칼을 팔지 않게 되었으나 자연스레 흰 옷을 골라 입었다는 사실이 좀 웃겼다. 어디서 자꾸만 하나둘하나둘하나둘하나둘 하고 조금도 쉬지 않고 구호를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수양은 곧 택기의 탕집 앞 잔디밭에 다다랐고 거기에서 등산복을 입은 사람들이 열을 맞춰 잔뜩 서 있는 모습을 보았다. 아니 저건… 새천년 체조잖아. 수양은 원래 칼을 잘 파는 사람이었지만 그날처럼 칼을 많이 팔아 본 적은 없었다. 하나둘하나둘하나둘 구호는 알맞게 외치는데 동작은 전혀 들어맞지 않는 사람들이 체조를 끝내고 명산이라는 산을 탄다고 우르르 사라졌을 때, 수양은 생각을 하자 생각을 해, 하며 걷던 길을 다시 걸었고 명산 앞에 있는 ‘명산 앞 간이 휴게소’로 들어섰다. ‘명산 앞 간이 휴게소’에서는 전자레인지에 돌려 먹는 만두를 팔았는데 택기의 탕집만큼은 아니더라도 장사가 잘됐다. 여기까지 따라오기는 했으나 산을 타기 싫은 아이들이 김밥과 만두를 먹고 있었고 산 타는 사람들만 노리는 일명 등산객 전문 린치족들이 교복을 꼬박꼬박 챙겨 입은 모습으로 담배를 계산하는 중이었다. 수양은 매운맛 만두를 사서 전자레인지에 돌린 뒤에 자리에 앉았다. 김이 나는 만두를 젓가락으로 조금씩 잘라 먹으며 산을 타는 사람들에게 칼을 팔아야겠어 하고 중얼거렸다. 김밥과 만두를 먹던 아이들에게 혹시 칼을 사겠니 물었지만 아이들은 무시했고 김밥에서 빼낸 단무지만 계속해서 찔러 댔다. 수양은 왠지 섭섭해져서 입을 쩝쩝 다셨다. 그래 역시 어른들에게 팔아야겠지…. 수양은 하나둘하나둘하나둘 체조하던 사람들이 내려올 때까지 만두를 야금야금 베어 먹다가 벽걸이형 선풍기의 약풍을 맞으며 졸았다. 그러곤 결국 그들이 다시 돌아오는 데 무려 여섯 시간이 걸린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저렇게 작은 산에서 도대체 무엇을 하기에 그만큼이나 걸린단 말인가. 알 수 없었지만 알고 싶지도 않았다. 수양은 사람들이 손바닥을 짝짝 부딪치며 내려와서는 곧장 택기의 탕집으로 향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러고는 집으로 달려가서 칼 세트와 함께 A4 용지가 든 배낭을 챙겼는데, 그 사람들 앞에서는 종이를 자르는 시범 따위 보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로는 그런 것들을 챙기지 않았다. 택기의 탕집 앞에는 하얀 두건을 쓰고 분홍색 방수 앞치마를 두른 남자가 서 있었다. 그것이 바로 택기였다. 택기는 탕집 입구로 들어서려는 수양을 붙잡았다. 탕을 드시려면 예약을 하셔야 하는데요. 저는 탕 먹으러 온 사람 아니거든요. 그런 음식은 좋아하지도 않습니다. 그럼 왜 들어갑니까? 칼을 좀 팔고 싶어서요. 택기가 수양의 팔뚝을 가볍게 내려놓으며 약간의 미소를 지었을 때 수양은 이 사람이 설마 나를 좋아하게 되었나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택기의 손바닥이 너무 두꺼웠고 반짝거리는 그의 분홍색 앞치마가 마음에 들지 않았으며 무엇보다 그의 몸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길 바랐다. 탕이 싫으면 뭘 좋아하시죠. 택기가 물었다. 저는 감자튀김을 좋아해요. 수양이 대답했다. 산을 좀 타 봤다 하는 사람들은 주로 택기의 탕집에 모인다. 수양이 테이블 여러 개를 이어 붙인 곳으로 다가가서 제 칼을 좀 보시겠어요 하면 어어 그렇지 봐야지 하는 사람들이었다. 수양의 칼은 그다지 특별한 게 아니었고 일주일에 두어 번 방영하는 홈쇼핑 식칼과 유사한 모양새였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수양이 칼을 꺼내 들 때마다 마술을 본 것처럼 좋아했다. 제 칼을 좀 사시겠어요 하면 당연히 사 줘야지 이걸로 기필코 그놈을 죽이고 말리라 그런데 아가씨는 누군가? 하는 제정신이 아닌 사람들이 많다. 그런 사람들은 모두 칼을 사게 되어 있다. 수양은 매일 아침 몸을 앞뒤로 흔들며 산책하게 되었다. 하나둘하나둘하나둘 체조하는 사람들을 지켜본 뒤 명산 앞에 있는 ‘명산 앞 간이 휴게소’에 앉아 조금 식은 만두를 먹었고 할 일이 없어지면 린치족들의 대화를 엿들어 보려 했다. 그들은 늘 길쭉한 막대 모양 아이스크림을 핥으며 중얼거렸다. 그게 어떤 말인지는 들리지 않았다. 택기는 수양의 칼을 사지 않았지만 매일 웃는 얼굴 모양의 동그란 감자튀김을 내 주었고 수양은 그것을 천천히 먹어 치웠다. * 기주야 너는 왜 토끼를 잡지 못하니. 수양은 매일 택기의 탕집에서 칼을 팔게 되었으므로 기주의 얼굴도 매일 보았다. 택기는 두피부터 손등과 발가락까지 온몸에 땀이 많은 편이었는데 기주는 그렇지 않았다. 기주는 파라솔 아래 탁자 앞에서 밥을 먹고 침대나 플라스틱 의자에서 잠을 자거나 휴식을 취하고 하여튼 그런 식으로 종일 바깥에 있지만 가까이 다가가도 바짝 마른 풀 냄새나 무언가를 태우는 냄새 같은 것만이 났다. 밥을 먹고 나서는 바닥에다 비비탄총을 쏘고 종아리나 팔뚝 주위로 부채질을 조금 하다가 신문에서 오려 낸 스도쿠를 한참 붙잡고 있었는데 빈칸을 모두 채우는 모습은 본 적이 없다. 수양은 접이식 침대 위에 누워서 천천히 복식호흡을 했다. 언젠가 그것이 송장 자세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기 때문에 아주 편안해진다. 너는 왜 토끼를 못 잡냐고. 몰라. 그걸 왜 몰라, 보고 있는데 왜 몰라. 그냥 잠깐 눈을 감았는데 밖으로 나와 있었어, 저기에 서 있었어. 토끼를 왜 좋아하나. 누가? 여기 오는 사람들이. 정력에도 좋고 건강에도 좋대. 토끼는 조루라던데? 그거랑 무슨 상관이야. 일간 신문에서 오려 낸 스도쿠가 바람에 날아가도 기주와 수양은 몸을 움직이지 않는다. 내일은 또 다른 스도쿠가 배달될 것이기 때문이다. 기주는 공중에서 나부끼는 스도쿠 종이를 보며 이마를 조금 구겼고 모든 것이 무게중심 때문이라고 말했다. 따지고 보면 사람의 심장은 아주 미세하게 왼쪽으로 치우친 상태이므로 무게중심도 왼쪽에 있을 수밖에 없고 따라서 모두의 왼쪽 엉덩이는 조금 더 눌려 있고 작다고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늘 왼쪽으로 살짝 돌아앉게 되어 있다고. 안 그래도 사람이라면 모두 그런 편인데, 기주는 특히 자신이 왼쪽으로 조금씩 돌아앉는 상상만 해도 본능처럼 왼쪽으로 이끌리고 그래서 자꾸만 왼쪽을 주시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런데 토끼들은 하필 오른쪽에서만 출몰하고 그런 이유로 도저히 놈들을 발견할 수가 없다고. 그렇지만 기주가 신경을 써서 오른쪽으로 돌아앉아 보아도 변하는 건 없었다. 어떻게 해도 토끼들은 탈출하고 기주는 밥을 먹고 있었거나 스도쿠를 풀고 있었거나 눈을 감고 있었거나 무게중심 때문이었거나 무슨 무슨 이유로 토끼를 발견하지 못했다. 뒤늦게 산 쪽으로 멀어지는 토끼를 발견하고 아아아아 토끼가 나타났다 지금은 멀어지는 중이다 하고 소리를 지르면 택기가 뛰어나오지만 이미 모든 게 사라지고 난 뒤였다. 수양은 사라진 토끼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그 전에 살아 있기는 한 건지 궁금해졌다. 이만큼이나 사라졌으면 이미 산에는 토끼가 천지일 텐데 산을 타는 사람들은 자꾸만 택기의 탕집에 와서 토끼탕을 먹었고 산을 타다 토끼를 본 사람은 없다고 하니 저녁에는 산에 올라가 보기로 했다. 수양은 보이지가 않네 여기로 좀 와 봐라 이리 좀 와라 하며 산을 오르다 페도라를 만났는데, 그가 페도라를 쓰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부르게 되었다. 페도라는 까맣고 큰 페도라를 쓰고 있었고 걸친 옷이 없었다. 아주 깊은 페도라여서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페도라는 줄무늬 사각팬티만 입은 모습으로 큰 소나무를 껴안고 있었는데 팔이 긴 편이어서 편안하고 안정적인 모습이었다. 기본적으로 자신의 몸을 잘 다룰 줄 아는 사람 같았다. 수양이 ‘명산 앞 간이 휴게소’에서 만난 린치족들을 떠올리며 옷까지 모두 벗겨 가다니 정말 답도 없는 놈들이로군, 하자 페도라가 고개를 저었다. 저는 산을 타고 또 탔지요. 그러다 보니 점점 더워져서 옷을 한 꺼풀씩 벗었고 이것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벗을 때마다 길을 잃는 기분이더군요.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사람들을 만나기는 했다만 뭐라고 했던가요…. 페도라는 여기에서 말을 멈추고 목을 가다듬더니 얇고 연약한 목소리를 내었다. 우리는 아주 건강해 너무 건강해 우리는 내일이 없는 사람이에요 하면서 나를 지나쳤습니다. 정말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외우는 일은 잘해서 말이죠. 밤이 되니 추워져서 나무를 안고 싶었습니다. 그는 손가락을 세워 모자와 팬티를 가리켰다. 이건 제 자존심이라 남겨 두었습니다. * 택기의 손은 두껍다. 손등은 거칠지만 손바닥은 부드러워서 영 이상한 손이다. 수양은 택기가 탕집 안에서 날카로운 칼을 다루다 그 손까지 어떻게 해 버리는 건 아닌가 가끔 생각하는데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난 적은 없다. 산을 타고 온 사람들은 자리를 떠날 때까지 쉴 새 없이 떠들기 때문에 괴로울 만큼 시끄럽고 그것은 모두 택기의 탕집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므로 택기는 자주 지치고 늘어진다. 늘어진 택기는 수양의 집에서 잠을 잔다. 택기의 탕집과 택기와 기주가 사는 집은 아주 가까이 붙어 있는데도 택기는 가끔 수양의 집에서 자겠다고 성가시게 굴고 징징거리다 결국 그렇게 했다. 수양은 이제 칼 가는 시범을 보일 필요가 없지만 습관처럼 칼 가는 연습을 하고 트램펄린을 탔다. 그만 타. 왜. 나 머리가 아파. 이것만큼 긴장되는 게 없다고. 수양이 칼을 갈고 있으면 택기가 조용히 옆으로 다가가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리고 허공에다 수양과 같은 동작으로 칼을 갈아 보고 바보 같은 표정을 짓는다. 요리하는 택기는 두건을 쓰는 데다 표정도 굳어 있으니 어느 폭력배의 막내쯤으로 보이는데, 이럴 때는 바보 같은 표정을 지으니 정말 바보 같았다. 그러다가 너무 집중하면 택기의 작은 입술이 동그랗게 벌어지고 침이 떨어진다. 수양은 그때마다 택기의 목에 하얀 수건을 매 주었다. 아무리 그런 일이 자주 일어나도 침이 떨어지기 전까지는 수건을 매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택기는 칼 가는 시늉을 한참 하고 나서 미끄러지듯 바닥에 드러눕는다. 택기야 내일은 몇 마리나 잡냐. 아마 스물세 마리. 그렇구나 바쁘겠다. 택기와 수양은 아무 사이도 아니지만 가까이 붙어 잔 적이 많고 그러다 보니 서로에게 바로 오늘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는 때가 종종 있었다. 그러면 수양은 아무래도 칼 있는 집에서 하는 건 좀 그렇지, 하고 택기에게 말을 걸고 택기는 나도 방금 개새끼들 잡고 와서 좀, 이라고 대답한 뒤 눈을 감았다. 기주 말로는 자기 몸은 왼쪽이 더 무겁대. 걔는 원래 헛소리를 잘해. 나 어제 페도라를 봤어. 어디서 파는데. 아니 페도라 쓴 사람 봤다고. 어디서 봤는데. 산에서. 산에서 그런 걸 왜 쓰고 있어. 내가 박 순경을 불렀어. 박 순경은 왜. 데려가 줄 것 같아서 불렀어, 진짜 데려가더라. 택기는 새벽 일찍 일어나서 토끼를 잡아야 하고 수양은 흔들흔들 걷는 산책을 해야 하므로 그때쯤이면 수양이 이제 자자, 하고 그들은 잠을 잤다. 그런데 그날따라 택기가 수양의 팔뚝에 얼굴을 비벼 댔고 수양은 그것이 아주 뜨겁게 느껴졌기 때문에 택기의 얼굴이 언제부터 뜨거웠는지 궁금해졌다. 택기야 너는 왜 요리를 잘하냐. 사실 택기는 요리를 썩 잘하는 편이 아니었고 탕집은 택기의 고모가 소유하던 것이었는데, 그녀는 매일 저녁 식사를 마친 뒤 잠자리에 들기 전 택기와 기주의 얼굴을 조심스레 붙잡고 볼 키스를 해 주는 다정한 사람이었다. 당시의 택기는 이미 어른이었고 그런 일이 시들했지만 어린 기주는 그 시간을 좋아하는 편이었다. 고모는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고 생활력이 강했으나 아름다운 것을 좋아했으므로 종일 동물을 관리하고 탕을 끓이는 일을 견딜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녀가 이제는 정말 견딜 수 없겠다고 느낄 때마다 탕집을 찾는 사람들은 늘어나기만 했다. 고모는 하루하루 침실 방문을 잠그고 우는 일을 반복했으며 아주 먼 곳에 사는 친구와 긴 통화를 이어 가다 결국은 떠날 수밖에 없었다는데, 수양은 도대체 그 고모가 어디로 떠났다는 것인가 이해할 수 없었다. 그게 말이 되냐. 말이 안 될 건 뭐지 나는 거짓말을 안 하는데. 택기가 말했다. 택기와 기주는 그녀가 아주 먼 곳에 있다던 친구를 찾아간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고모로부터 딱 한 번 받은 엽서에는 그런 소식이 적혀 있지 않았고 감기는 걸리지 않았니 하는 식의 시답잖은 안부와 함께 탕을 맛있게 끓이는 조리법이 정갈한 글씨로 적혀 있었다. 그보다 조금 더 시간이 흐른 뒤에 고모는 택기 앞으로 분홍색 방수 앞치마가 담긴 택배를 보냈다. 멀리 있는 곳에서 모텔 장사를 시작했으며 경치가 좋다는 내용의 쪽지를 함께 남기곤 연락이 닿지 않았으므로 그녀가 어디에 있는지, 밤마다 전화를 걸었던 누군가가 정말로 있었던 건지는 알 수 없었다. 고모가 보낸 엽서 앞면에는 어떤 지역의 문화재 사진이 크게 붙어 있었는데 기주는 택기 몰래 그곳으로 찾아가기 위해 짐을 꾸렸다가 들킨 적이 있다. 어쨌든 택기는 돈 때문에 요리사가 되었고 자꾸자꾸 토끼를 잡고 자꾸자꾸 탕을 끓이다 보면 다 잘하게 되어 있다고도 말했다. 실망이야. 대대로 내려오는 명장 집안인 줄 알았는데. 택기는 이제 내가 명장이 되겠어 하고 속삭였다. * 수양은 아침 식사로 매운 컵라면을 먹은 뒤 집을 나섰다. 그날따라 날이 무척 더웠다. 이상하게도 수양은 배가 아주 헛헛한 기분이었고 뜨겁기도 해서, 어쩐지 저녁이 되면 배가 몹시 고파지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시원한 게 먹고 싶다 차갑고 시원한 게, 하며 걸었다. 탕집 앞에서는 하나둘하나둘 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고 대신 몸을 꼭 죄는 회색 양복을 입은 페도라가 서 있었다. 그는 양손을 주먹 쥔 채 정면을 바라보았다. 산 타는 사람들은 구호를 외치는 대신 바둑판처럼 깔끔한 간격을 유지하며 페도라를 마주 보았다. 그 속에서 러닝셔츠를 입은 기주의 뒷모습이 함께 보였다. 바닥에 놓인 시디플레이어에서 노래 전주가 흐르자 수양은 트로트잖아, 했고 가장 뒤에 서 있던 짧은 파마머리 여자가 뒤돌아 이건 샹송이야 아가씨, 하고 단호하게 속삭인 뒤 고개를 돌렸다. 페도라는 긴장한 것처럼 보였는데 정말 그런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가 오른손을 올려 가슴 부근을 꼭 쥐더니 툭 하고 가볍게 무릎을 꺾어 쓰러지자 산 타는 사람들과 기주가 똑같은 모션을 했다. 왼쪽 가슴 위로 손을 얹고 살며시 주먹을 쥔 뒤 바닥으로 주저앉았다. 바짝 서 있던 잔디가 푹푹 꺼지는 소리가 얕게 들렸다. 움직임 없이 서 있는 것은 수양과 탕집 입구에서 담배를 피우던 택기뿐이었다. 페도라는 곧바로 일어나 정자세를 취했는데 그 과정이 너무나 유연하고 부드러웠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그를 따라 할 수 없었다. 그런 일은 노래가 끝날 때까지 반복되었고 사람들은 산을 타기 위해 흩어졌으며 페도라는 시디플레이어를 들고 잰걸음으로 멀어졌다. 수양은 그날 밤에 페도라를 다시 만났다. 그는 기주와 함께 접이식 침대에 앉아서 사육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페도라는 페도라를 쓰지 않은 채였고 품이 큰 티셔츠와 반바지에 납작한 가죽 슬리퍼를 신었다. 얼굴 끝이 뾰족한 데다 길쭉하고 마른 몸을 가지고 있어서 물 위에서 흔들리는 수생식물 같은 모습이었다. 침대 옆 의자에는 박 순경이 등을 둥그렇게 말고 앉아 기주의 스도쿠를 대신 채우고 있었다. 수양은 그 모습이 믿기지 않았기 때문에 저것이 진짜인가 생각했다. 날이 더웠으므로 휴게소에 들러 과일과 빙과류를 사 오던 길이었고 기주가 수양을 발견하고서 손을 흔들었기 때문에 그들 넷은 한자리에 모이게 되었다. 기주야 택기는 어디 있냐. 사육장에. 또 토끼 잡으러 갔냐. 그래야 내일 팔지. 그렇긴 하지. 수양은 고개를 아래위로 흔들었다. 페도라가 수양에게 수양씨 반갑습니다 하자 수양이 네 페도라씨, 하고 대답했다. 페도라씨와 박 순경님은 왜 여기에 있나요. 저는 지금 박 순경의 집에 살고 있습니다. 언제부터요. 그날부터요. 수양은 페도라의 어조에서 어느 해안지역을 떠올렸으나 구태여 말하지는 않았다. 기주는 수양에게 페도라가 극장에서 일했다고 일러 주었고 수양은 배우이시군요, 하며 페도라를 바라보았다. 페도라는 그렇다면 그렇고 아니라면 아닌 것도 같다고 대답했다. 박 순경은 수양의 노란 장바구니에서 크림 맛 아이스크림을 꺼내 먹더니 수양의 칼로 참외를 깎아 탁자 위에 한 조각씩 올려 두었다. 모두 참외를 아작아작 씹어 먹었다. 박 순경은 시간 간격을 두고 참외 다섯 개를 깎아 냈는데, 넷은 그것을 모조리 해치웠다. 탁자 한쪽에 쌓인 참외 껍질이 아주 얇게 깎인 모양새여서 박 순경은 그런 일에 소질이 있는 사람으로 보였다. 페도라는 수양이 페도라씨, 하고 부를 때마다 턱 끝을 당기며 조금씩 새는 웃음을 참았다. 한때 자신이 그런 별명으로 불렸다고 했다. 그래서 배우라고요 아니라고요. 극장은 극장인데 영화를 보여 주는 극장은 아니고요…. 카바레라고 더 많이 부르던데요…. 그러면 가수인가 보군요. 그것도 애매한 것이 나는 노래에도 소질이 있었지만 다른 것을 조금 더…. 페도라는 관광지에 있는 관광 카바레 출신으로, 밤무대 가수를 노렸으나 실력이 그만큼은 되지 못해서 코미디와 차력을 하다가 나중에는 가수 뒤에서 춤을 추는 댄서가 되었다. 그는 주로 샹송 가수의 뒤편에서 팔다리를 부드럽게 흔들며 흐느적거리는, 춤이라고는 할 수 없는 그런 춤을 추었다. 노래의 분위기에 맞춰 페도라를 쓰고 실크 셔츠를 입었으므로 전체적으로 잠들기 직전인 사람이 몽롱한 정신으로 침실이나 거실을 슥슥 걸어 대는 느낌이었다. 샹송이 한국인에게 인기가 많은 것과는 별개로 카바레에서 잘 통하는 장르는 아니었으니 샹송을 부르던 여자 가수와 페도라가 무대에 올라가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대체로 에이급 무대가 시작되기 전에 잠깐 세워지거나 펑크 난 공연을 메우기 위해 급조하는 식이었다. 원형 무대를 둘러싸고 앉거나 서거나 춤추거나 하며 술을 마시는 사람들은 이미 정신이 나간 상태여서 이런저런 욕을 하고 술이나 음식 던지기를 좋아했으며 샹송 가수와 페도라에게는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짧은 공연을 마치면 유령처럼 사라지던 샹송 가수와 페도라가 ‘덜떨어진 듀오’로 불리게 된 것은 어느 날 페도라가 춤을 추다 크게 미끄러졌기 때문이었다. 그의 춤에는 정교함이나 정신 집중 같은 것이 필요하지 않았으니 그는 늘 언제쯤 이따위 춤을 그만두게 될 것인가 골몰하며 춤을 추었다. 그 일은 다만 페도라의 정신이 다른 데 있었고 밑창이 닳아 본드 칠을 한 그의 구두가 미끄러운 무대 바닥을 견디지 못해 생긴 불상사였을 뿐이지만 제정신이 아닌 사람들에게는 페도라가 마치 허공에서 날아온 강렬한 펀치를 맞고 쓰러진 사연 있고 가련한 남자로 보였다. 그가 쓰러져 있는 동안 샹송 가수는 엉덩이를 좌우로 왔다 갔다 하며 클라이맥스를 불렀다. 샹송 가수는 주로 앙리코 마시아스의 ‘추억의 솔렌자라’를 불렀는데 그것은 프랑스의 민요를 빌려 만들어진 노래였고 그날 샹송 가수가 부르던 노래 역시 그것이었다. 아무래도 민요라는 것이 공동체적이면서도 신비스러운 것이라… 라고 페도라는 덧붙였다. 그 노래는 세계적으로 히트를 쳤다. 프랑스인이 아니고서야 웬만한 사람들은 들어 보지도 못했을 곳이 솔렌자라였지만 어느새 솔렌자라는 모두에게 추억의 솔렌자라가 되어 있었다. 페도라가 쓰러지자 사람들이 무대를 주시하기 시작했고 이내 샹송 가수의 목소리를 따라 흥얼거렸다. 무대 아래에서 뒷짐을 지고 서 있던 안내요원은 두 손을 입가로 모은 뒤 야 이 새끼야 계속해, 계속하라고. 멈추지 마!라고 외쳤다. 안내요원과 페도라는 가끔 함께 술을 마신 적이 있다. 그가 주춤거리며 일어서자 누군가 휘파람을 불었고 누군가는 소리를 질렀다. 그날부터 샹송 가수와 페도라는 ‘덜떨어진 듀오’로 불리며 완벽한 B급이 되었다. 페도라는 완벽한 B급이 된 이후로 춤을 그만두고 마임을 했다. 주된 특기는 역시 쓰러지거나 넘어지는 것이었고 그중에서도 ‘화살 맞는 남자’를 가장 잘했다. 어떤 식으로 화살을 맞게 되는지는 매번 달라졌기 때문에 ‘덜떨어진 듀오’가 무대에 오르면 페도라는 먼저 무대 앞으로 한 발짝 나서서 말했다. 오늘은 도망치다 화살을 맞는 소년입니다 이번에는 사랑하는 사람 대신 화살을 맞는 남자입니다 하는 식이었다. 페도라는 관광 카바레의 유명 인사가 되어서 ‘덜떨어진 듀오’가 아닌 ‘페도라’로 불리기 시작했다. 카바레를 찾아오는 사람들은 이미 페도라에 대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는 어떤 이유로 화살을 맞는 콘셉트인지 설명할 필요가 없어졌다. 무엇보다 페도라 역시 그 일을 자꾸만 반복하다 보니 정말로 자신이 화살을 수없이 맞아 본 가슴 아픈 사람처럼 느껴졌고 그 감정은 관객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화살을 맞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일어나느냐였는데, 사람들은 원하는 것이 많았다. 화살을 맞고 쓰러진 뒤에 재빨리 일어나 정면을 바라보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자세였다. 그 외에도 아주 천천히 일어나거나 몸을 조금씩 굴려 일어나거나 하는 많은 방식이 있었다. 화살을 맞는 모습이 리얼하게 느껴지는 것보다도 어떻게든 다시 일어나는 일이 중요했다. 크고 동그란 무대를 둘러싼 사람들은 무대 앞 바리케이드에 달라붙어 페도라를 향해 다트를 던지는 듯한 가벼운 자세로 툭툭 한 손을 뻗거나 활시위를 당기는 척했고 그러면 페도라는 타이밍을 노려 바닥으로 주저앉아야 했다. 일어나! 일어나! 일어나! 사람들이 외치는 순간 알맞은 자세로 일어나는 것이 핵심이었다. 어느 틈에 관광 카바레 포스터에는 깊고 검은 페도라를 쓰고 하관만을 드러낸 페도라가 매력적으로 미소 짓는 측면 모습이 들어섰다. 그들의 캐치프레이즈는 ‘페도라는 무조건 일어난다’였다. 사람들이 ‘화살 맞는 남자’를 원한 것은 물론이고 페도라 역시 그런 일에 사로잡혔으므로, 그는 넉넉한 실크 셔츠 대신 흰색 쫄쫄이만을 입고 무대에 서게 되었다. 쫄쫄이는 페도라가 자세를 달리할 때마다 미세하게 꿈틀거리는 근육을 치밀하게 보여 주었다. 무대 조명 아래에서 길쭉하고 마른 페도라는 석고상처럼 보였다. 페도라는 그날 아침 택기의 탕집 앞에서 ‘화살 맞는 남자’를 시도할 때 입은 양복이 박 순경의 것이라고 했다. 가장 작은 사이즈를 찾느라고 고생했습니다. 그가 길게 한숨을 쉬었다. 기주는 페도라를 향해 떼돈을 벌었냐고 물었다. 물론 그렇지요. 페도라가 답했다. 페도라가 점차 이름을 알리면서 샹송 가수는 잊히게 되었다. 그녀는 카바레에서 완전히 떠나기로 한 날 분장실로 페도라를 불러내었고 그를 향해 이렇게 말했다. 자다가 화살이나 맞아라…. 그는 그날의 분장실과 샹송 가수를 상기하며 은밀한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 끝내줬지요. 그는 잠시간 굉장한 화살을 맞은 기분을, 그것이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화살이라는 기분을 온몸으로 느꼈고 ‘페도라’로 사는 일을 그만두었다. 그는 이제 밝은 낮부터 일하는 직업을 얻고 싶어졌으므로 골목길에 커피숍을 차렸는데, 그곳은 분명 커피숍으로 시작했으나 나중에는 또 다른 카바레가 돼 버리고 말았다. 카바레의 단골들은 종종 무리 지어 커피숍에 들렀다. 그들은 테이블에 앉아 페도라가 내린 커피를 음미하고 얌전히 책을 읽고 이야기 나누는 일을 반복하다 어느새 에이프런을 두른 바리스타 페도라의 구역을 침범했고, 손수 커피를 내려 마신 뒤 커피값과 팁을 금고에 채워 넣기 시작했다. 장소는 달라졌으나 정신을 차리고 보니 페도라는 또다시 화살 맞는 남자가 되어서 쓰러졌다 일어나기를 반복하는 중이었다. 카바레의 단골들은 매일 아침 일찍 경직된 얼굴로 찾아와서 페도라의 쇼를 관람한 뒤 만족스러운 얼굴을 하고 돌아갔다. 커피숍을 접고 책 대여점과 노래 연습장을 차례로 열었지만, 그것은 아무 소용 없는 일이었다. 끝으로 번 돈을 모두 까먹은 페도라가 백화점 주차요원이 되었을 때는 그가 들고 있던 주홍색 경광봉마저 화살이 되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에 그는 멀리 도망쳤고 그렇게 하는 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그들은 아주 캄캄한 시간까지 파라솔 아래에 있었다. 시간이 지나도 줄곧 무덥고 눅눅했다. 페도라의 이마에서 땀이 죽죽 흘러내려 턱 끝에 매달렸다. 기주는 비비탄총을 매만졌고 수양은 사육장 천장에 달린 노란 조명을 바라봤다. 박 순경이 수양씨 아직도 칼을 파신다고요, 하고 물었다. 정말 이상하시네 나한테 왜 자꾸 그러세요. 수양은 억울한 기분으로 되물었다. 저 사실 산을 잘 탑니다. 순경님이 산을 잘 타는데 나더러 어쩌라고요. 저도 린치족이었습니다. 뭐라고요? 그냥 그렇다는 겁니다. 박 순경은 코끝을 조금 긁적이다 또다시 수양의 장바구니를 뒤적였다. 이제는 깎아 먹을 참외도 없었기 때문에 그는 날씨가 참 덥네요 같은 말만 몇 번 더 했다. * 페도라는 매일 시디플레이어를 들고 나타났고 사람들은 새천년 체조를 하는 대신 화살 맞는 사람들이 되어 갔다. 쓰러졌다 일어나는 순간에는 분위기가 고조되었기 때문에 모두 흥분한 모습으로 크게 숨 쉬었다. 방수 앞치마를 두른 택기도 종종 수양과 나란히 서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들은 주로 산 타는 사람들 한복판에서 왼쪽 가슴을 그러쥐고 쓰러지는 기주를 구경했다. 택기야 기주가 제일 열심인 거 아냐. 쟤가 얼마나 땀이 없는데 저렇게 축축해지다니. 택기는 가만히 기주를 보다 사육장으로 걸어 들어가서 한참 동안 나오지 않았다. 시디플레이어의 노래는 한 시간가량 반복 재생되었으므로 사람들은 한 시간 동안 화살 맞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 수양은 이른 오전마다 택기의 탕집 앞에 서서 기주와 페도라를 번갈아 보며 시간을 보내는 일에 익숙해졌다. 그런 뒤에는 ‘명산 앞 간이 휴게소’에 갔다. 페도라는 일이 끝난 후에 시디플레이어를 챙겨 신속하게 걸었다. 아무래도 박 순경과 함께 아침을 먹기 위한 속도일 거라고 수양은 생각했다. 페도라의 ‘화살 맞는 남자’가 또다시 유명해지자 화살 맞는 사람이 되겠다는 이들은 끊임없이 늘어났다. ‘화살 맞는 산악 동호회’ 슬로건이 걸린 전세버스가 페도라를 찾아온 날에는 분반이 필요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먼저 맞는 조와 나중에 맞는 조로 나뉘었다. 그날의 페도라는 이전보다 땀을 많이 흘렸고 모든 일을 마친 뒤 ‘명산 앞 간이 휴게소’ 쪽으로 걸어가는 수양을 불러 세웠다. 수양씨, 칼을 파는 분이라고 들었습니다. 다 알면서 왜 그러세요. 페도라가 입가를 우물우물 달싹였다. 나를 죽여 주십시오…. 수양은 그 순간 몹시 울고 싶어졌다. 나는 칼 파는 사람이지 칼 쓰는 사람이 아니라고요, 하고 말한 뒤 침을 삼켰다. 잘 알고 있습니다. 페도라는 그렇게 대답하고는 깊게 미소 지었다. 수양은 바로 그 미소가 한때 관광 카바레 포스터 속에 자리했던 그의 모습임을 알 수 있었다. 수양씨, 나는 이제 평생 이렇게 살게 되었습니다. 페도라는 느린 걸음으로 멀어졌다. 페도라의 속도가 아주 느렸기 때문에, 수양은 그의 크기가 도저히 작아지지 않는 것 같다고 생각하며 다시 걸었고 ‘명산 앞 간이 휴게소’에 앉아 만두를 베어 먹다 다리를 덜덜 떠는 린치족과 눈이 마주쳤다. 이봐, 한가하면 우리랑 놀지 그래? 우리는 꽤 괜찮은 사람들이라고. 나는 칼 파는 사람이다…. 어쩌라고! 크게 외친 린치족이 도망쳤다. 흐트러진 플라스틱 의자를 보던 수양은 애매한 기분이 되어서 린치족의 목소리를 되새겼다. * 페도라가 자취를 감춘 어느 아침에도 시디플레이어는 잔디밭 위에 놓여 있었기 때문에, 산 타는 사람들과 기주는 화살 맞는 사람이 되기 위해 착실히 열을 맞췄다. 기주가 시디플레이어의 재생 버튼을 눌렀을 때 택기가 사육장 밖으로 뛰어나왔다. 수양은 사육장 바깥으로 몸을 내민 잿빛 토끼를 단 한 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너는 그때 그 토끼구나. 너는 지금까지 계속 거기에 있었구나…. 잿빛 토끼 뒤로 몇 마리의 토끼들이 튀어나와 잔디밭 위에 선 사람들 사이를 헤집었다. 빠르고 부드러운 움직임이었다. 오랫동안 화살 맞기를 훈련한 기주는 교묘한 움직임으로 발밑의 토끼를 피할 수 있었으므로, 끊임없이 화살을 맞고 쓰러지고 다시 일어나 정면을 바라보는 자세를 취했다. 사람들은 이리저리 고꾸라지다 분산되었다. 몇몇이 토끼를 잡기 위해 두 손을 죄며 바닥 가까이 몸을 숙였고 토끼는 매끄러운 몸짓으로 벗어났다. 택기가 기주의 비비탄총을 손에 들었지만 비비탄이 다 떨어져 틱틱 소리만 났다. 제법 많이 사라진 토끼 때문에 택기는 한동안 탕집 문을 닫았다. 박 순경은 꽤 오랜 시간 페도라를 찾다 ‘명산 앞 간이 휴게소’ CCTV에 찍힌 그의 마지막 흔적을 확인한 뒤 조용해졌다. 화면 속에 무엇이 있었는지는 끝내 말하지 않았다. 기주야 너는 이제 화살을 맞지 않니. 나는 이제 다 해냈어. 화살 맞는 사람들은 드문드문 찾아오다 발길을 끊었다. 페도라가 다시 돌아오지 않았으므로 그에 대한 모든 것이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수양은 이제 페도라의 옆얼굴이나 자세, 목소리와 같은 것들을 묘연한 실루엣만으로 떠올렸다. 그러고는 택기와 잠을 자거나 트램펄린을 타거나 칼을 갈았다. 깰 생각 없이 느슨하고 풀어진 얼굴로 잠을 자는 기주의 뺨 위로, 수양은 그들이 아주 처음 만난 날처럼 손가락을 얹었다가 뗐다. 박 순경은 새로 마련한 자신의 과도로 참외를 깎았다. 그는 매일 누군가 내버려 둔 스도쿠를 채워 넣는 데 몰두했는데, 어떤 날에는 작은 탄성과 함께 저기에 토끼가, 하며 잔디밭 어딘가를 가리켰다. 저건 진짜 토끼야, 진짜다. 작게 속삭인 수양이 살금살금 다가갔다. 그러나 방수 앞치마를 한쪽 어깨에 걸친 택기가 탕집 처마 아래에 서서 그곳을 바라보기만 했으므로 수양은 걸음을 멈추었다.
  • 서울 남산 힐튼호텔, 오늘 역사 속으로

    서울 남산 힐튼호텔, 오늘 역사 속으로

    서울 중구 남산 기슭에 자리한 밀레니엄 힐튼 호텔이 40년 만에 영업을 종료한다. 1980년대를 대표하는 한국 건축물이 대우그룹의 흥망의 스토리와 함께 역사 속으로 들어갔다. 힐튼 호텔 관계자는30일  “내일(31일) 오후 3시까지만 영업한다”며 “31일 오전 체크아웃을 끝으로 사실상 모든 영업이 중단된다”고 말했다. 호텔 웹사이트에는 “2023년 1월 1일부터 밀레니엄 힐튼 서울은 힐튼 포트폴리오에 포함되지 않는다”며 호텔 운영 종료를 알렸다. 1983년 건립된 힐튼 호텔 서울은 지하 1층~지상 22층 규모의 5성급 호텔로 현대 건축가 김종성(86)씨가 설계했다. 1977년 당시 일리노이공대 건축학과 교수였던 그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으로부터 직접 부탁받아 설계한 지하 1층·지상 22층 호텔이다.김씨는 호텔이 남산을 에워싸는 듯한 형태로 밀레니엄 힐튼을 설계했다. 입구를 남산 쪽으로 내고, 호텔의 양끝이 병풍처럼 남산 방향으로 꺾인 것이 특징이다. 이와 관련, 김씨는 “표준 객실 640개의 특급 호텔을 남산에 지으려고 보니 고도 제한 때문에 옆으로 길게 늘릴 수밖에 없었다. 그냥 ‘한일(一)’ 자로 하려니 심심해서 양쪽을 120도로 꺾어 객실이 서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했다. 마치 남산과 마주 보며 대화하는 모양을 만들었더니 모두 좋아했다. 힐튼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고 말한 바 있다. 1997년 국제금융위기 때 미셸 캉드쉬 IMF 총재와 2009년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때 북한 조문단이 머물렀다. 김 전 회장의 부인인 정희자씨가 직접 밀레니엄 힐튼을 운영하면서 집기부터 미술품까지 곳곳에 정성을 들인 것으로 전한다.대우개발이 운영하던 힐튼 호텔 서울은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를 거치며 1999년 싱가포르 투자전문 기업인 홍릉의 자회사 CDL에 2600억원에 매각됐다. 당시 정씨가 호텔 방문을 닫고서 통곡했다는 일화도 전한다. 이후 수익성 악화와 코로나19로 인한 해외 관광객 감소로 경영난을 극복하지 못하고 지난해 이지스자산운용에 팔렸다. 매각대금은 1조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이지스자산운용은 호텔을 허물고 오피스·호텔 등으로 구성된 복합단지로 지을 예정이다. 복합단지는 2027년 준공 예정이다. 한편 밀레니엄 힐튼에서 2005년 영업을 시작한 외국인 전용 카지노 세븐럭은 입찰을 거쳐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드래곤시티 내 이비스호텔 5층 그랜드볼룸으로 31일 영업장을 옮긴다. 이름도 ‘세븐럭 서울드래곤시티점’으로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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