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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열독립투쟁] (14)김시현 의사

    살아 생전 24년을 감옥살이한 투사가 있다.36세에 독립운동에 발을 디딘 후,광복에 이르기까지 26년간 일곱 차례나 일제 경찰에 붙잡혀 16년을 감옥에서 보냈고,광복 이후 20년동안 8년을 또 투옥된 것이다. 독립운동에 첫 발을디딘 후,47년의 절반을 넘는 24년을 감옥에서 보낸 인물이 있으니,그가 바로김시현(金始顯)의사다. 김 의사는 1883년 경북 안동에서 태어났다.김 의사를 기억하는 안동 사람들은 먼저 그의 혀짧은 연설을 알아듣느라 애쓴 이야기를 떠올리는데,이는 김의사가 혹독한 고문을 받으면서 비밀을 지키기 위해 혀를 깨물며 투쟁한 데서 비롯된 일이다. 처음 김 의사의 호는 학우(鶴右)였는데 검사가 “도대체무엇을 구하려는가? 차라리 하구(何求)가 좋겠다”고 빈정대 그렇게 바꾸어썼다고 한다.29세때 일본으로 건너가 메이지대학 전문부를 거쳐 법학과를 만학으로 다니다가 1917년 귀국한 김 의사는 경북 상주에서 3·1의거 와중에일경에 체포된 후 본격적인 항일역정에 접어들었다. 이 사건 직후 상하이로망명했다가 지린(吉林)으로 가서 의열단에 참여해 자금과 단원모집을 위해국내로 침투하였다.이로부터 그의 국내 침투와 피체,망명은 쉼없이 반복되었다. 거사를 벌이고, 체포되고, 출옥하면 곧바로 망명하여 다시 의거를 일으키는 연속된 행위를 해방을 맞는 날까지 마치 시계바늘 돌듯 계속한 것이다. 1920년 9월경 의열단의 제1차 국내폭탄반입에 가담했다가 대구에서 체포된그는 대구형무소에서 1년간 옥고를 치렀다.출옥하자마자 다시 상하이로 망명한 그는 안병찬의 소개로 고려공산당에 입당하고, 모스크바에서 열린 극동인민대표회의에 참가하였다.이 회의장에서 김 의사는 평생의 동지요,부부가 될신여성 권애라(權愛羅·73년 작고·건국훈장 애국장)를 만났다. 그의 본부인이 고향의 집을 지키고 있었지만(본부인은 1930년 사망) 상하이로 돌아온 뒤14살 연하의 권애라와 결혼했다. 1897년 경기도 강화에서 출생한 권애라는 개성 호수돈여학교를 다니면서 3·1의거에 참가,6월형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하였다.그후 이화학당을 졸업한 권애라는 상하이 애국부인회에서 활약하는 등끊임없이 독립운동 대열에 참여하다가 신징(新京)감옥에서 해방을 맞았다. 1923년 2월 독립운동사상 최대 대규모의 무기밀반입 거사가 있었다.의열단이 국내에 아지트를 만든 뒤 대규모 투쟁을 벌이기 위해 많은 양의 폭탄과무기를 국내로 수송한 공작이었다.1923년 2월초 김 의사는 중국 톈진에서 의열단장 김원봉으로부터 다량의 폭탄과 무기 및 ‘조선혁명선언’,‘조선관공리에게’라는 선전문서를 인수했다.“동포들에게 설날 떡을 선물한다”고 표현한 그는 평소 포섭해둔 황옥(黃鈺) 경부(警部)를 동반,안동현으로 향했다. 그러나 서울에 도착한 뒤 밀고자가 생겨 관련자들이 속속 체포되었고 김 의사 역시 검거돼 10년형을 선고받았다.1930년대 김 의사의 활동은 군사간부학교 학생모집과 배신자 처단,투옥생활의 연속이었다.1929년 출옥후 곧바로 지린으로 망명한 김 의사는 그곳에서 독립군양성소 설립을 추진하다가 중국관헌에게 체포돼 3개월 동안 고초를 겪고 중국 본토로 이동하여 1932년 의열단지도부와 재결합하였다. 마침 의열단은 난징에서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를 설립,초급장교를 양성하고 있었다. 그는 베이징지역에서 학생모집 활동을 하는 한편 노을룡(盧乙龍)과 함께 한삭평(韓朔平)이라는 배신자를 처단하러 나섰다.이 의거로 체포된 그는 살인미수혐의로 1935년 징역 5년형을 선고받고 나가사키형무소에 수감되었다.1939년 9월 출옥후 이듬해 4월 다시 베이징으로 건너갔다. 1940년대에도 그는 역시 항일투쟁과 옥중생활로 보냈다.1941년에 국내와 베이징을 오가며 활동하다가 체포되어 일본영사관 구치감에서 약 1년간 미결수로 생활했다.경성헌병대로 이감됐다가 병보석으로 풀려난 그는 또다시 베이징으로 탈출하였고,항일민족전선군을 조직하고자 노력했다고 한다.그러다가1944년 베이징헌병대에 다시 체포당한 그는 1년간 수감생활을 보내다가 1945년 서울로 이송되었고,해방되면서 자유의 몸이 되었다. 1950년 5·10선거에서 민의원에 당선(안동 갑구)되어 정치활동을 펴면서 혁명가로서 그의 면모는 독재에 대한 저항으로 새롭게 타올랐다.제2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이승만은 대통령직선제개헌안을 국회에 제출했다.그러나 1952년 1월 절대 다수의 반대로 부결되자 이승만은 민족자결단·백골단 등 폭력조직과 관제 데모대를 동원,연일 시위를 벌였다. 그리고 7월에 국회의원을 연금시키고 테러를 벌이면서 이미 부결된 대통령직선제를 골자로 한 ‘발췌개헌안’을 끝내 통과시켰다.이승만의 이러한 행위가 전개되는 와중에 김 의사는 동지 유시태(柳時泰)와 함께 이승만을 처단하려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이 거사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중 4·19혁명으로 석방되었으나 1966년에 서거,사회장으로 치러졌다. 김 의사는 ‘3년 이상 징역이나 금고형을 받은 자는 포상받을 수 없다’는규정 때문에 독립유공 공적마저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김 의사는 아내 권애라를 평생토록 ‘동지’라고 불렀다.마지막 가는 길에도 그는 아내에게 “권 동지,미안하오.내가 조국독립을 위해 몸바쳐 투쟁했는데 반쪽 독립밖에 이룩하지 못했소.남은 생을 조국통일 사업에 이바지해주오”라는 말을 남겼다. [김희곤 안동대 사학과 교수] *김시현 의사 후손근황과 기념사업 김시현 의사는 집안 전체가 독립운동가 출신이다. 김 의사의 부친은 구한말의병활동을 하였으며, 둘째 동생 정현(禎顯·건국훈장 애족장)씨는 중국에서독립운동을 하다가 관동군에게 처형돼 유해조차 찾지 못한 상황이다. 김 의사는 항일동지이자부인인 권애라 여사 사이에서 일점 혈육을 남겼다. 서울 은평구 불광동에 살고 있는 김 의사의 외아들 봉년(峯年·77)씨는 1922년 중국에서 태어났다.중국 옌지(延吉)에서 농업학교를,옌안(延安)에서 항일정치군사학교를 졸업한 봉년씨는 해방후 고향에서 면의원을 역임하였으며,대한중석에 근무하다가 정년퇴직,지금은 은퇴했다.2남2녀.장남 우일(宇鎰·40),차남 홍일(弘鎰)씨는 모두 회사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한편 김 의사는 경북 예천 선영에 묘소가 마련돼 있을 뿐 뚜렷한 독립운동공적에도 불구하고 서훈은 물론 추모단체나 기념물 하나 없다. 이는 김 의사가 1954년 1월 이승만 전대통령 암살미수사건에 연루된 탓이다. 봉년씨는 “부친의 이승만 전대통령 암살미수사건 관련부분은 당국으로부터 특별사면을받은 만큼 원인무효가 됐다고 본다”며 “그동안 보훈처·청와대 등에 진정해봤지만 별다른 성과가 없어 현재 서울 행정법원에 행정소송을 제기해놓은상태”라고 밝혔다. 봉년씨는 또 “1923년 봄 의열단원들이 일제통치기관 폭파,일본인 요인처단을 목적으로 폭탄을 밀반입하다 적발된, 소위 ‘황옥 경부사건’은 주모자가부친이므로 ‘김시현의사사건’으로 고쳐 불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운현기자 jwh59@
  • 조성원-문경은 ‘3점포 슛장이’ 정면 충돌

    조성원의 현대냐,문경은의 삼성이냐-.전통의 라이벌 현대 걸리버스와 삼성썬더스가 25일 오후 7시 한밭벌에서 99∼00프로농구 첫 맞대결을 펼친다. 두팀의 격돌은 1라운드 상위권 판도를 가름할 중요한 한판.3연패를 노리는현대는 지난 시즌에 견줘 조직력이 크게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최근 4연승의 상승세를 타며 단독선두(6승1패)를 달리고 있다.삼성을 이기면 1라운드를 8승1패로 마칠 가능성이 높다.4연승을 달리다 삼보와 SK에 연패를 당한 삼성은 현대를 꺾지 못하면 중·하위권으로 처질지도 모르는 입장이어서 승리에 대한 집념이 어느 때보다 강하다. 전문가들은 현대가 전력상 한발 앞서지만 라이벌전인만큼 뜻밖의 결과가 나올수도 있다며 “조성원과 문경은의 3점포가 승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것”이라고 점쳤다.통산 전적에서는 6승7패로 현대가 앞서지만 삼성은 지난시즌에서 전력열세를 딛고 3승2패의 우위를 보였다. 조성원(180㎝)은 프로무대에서 뜬 대표적인 선수.명지대 시절까지는 기량에 견줘 크게 주목받지 못했으나 지난 두시즌 챔피언전에서 벼락같은 3점포를작렬시키면서 단숨에 스타반열에 올랐다.지난 시즌에는 플레이오프 최우수선수(MVP)의 영예를 안았고 이 덕에 생애 첫 국가대표로 뽑히기도 했다.100m를 11초대에 주파하는 발군의 스피드와 빼어난 탄력을 이용한 기습 3점포가 주무기.최근에는 자신감을 바탕으로 한 골밑 돌파로도 명성을 얻고 있다.올시즌 7경기에서 3점슛 25개를 터뜨려 1위를 기록 중. 연세대 시절부터 슛쟁이로 이름을 날린 문경은(190㎝)은 지난 두시즌에서거푸 3점슛왕을 차지한 관록의 슈터.기복이 심한 것이 흠이지만 올시즌 들어서는 슛 타임이 훨씬 빨라졌고 거리도 멀어졌다.일단 감을 잡으면 폭발적으로 몰아치는 강점을 지녀 현대로서는 끝까지 눈을 뗄수 없을 듯.올시즌 6경기에서 3점슛 21개를 성공시켜 정인교(기아)와 함께 공동 2위에 올라 있다. 오병남기자 obnbkt@
  • 백범 김구 ‘못다한 사랑’ 가수 김원중이 부른다

    지난 11일 서울 은평천사원의 강당.백범 김구 서거 50주년을 맞아 12월 4∼6일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될 창작뮤지컬 ‘못다한 사랑’(작시 고은,연출 박인배)의 연습이 한창이었다.3·1만세운동후 상해로 건너와 임시정부 주석으로 독립투쟁을 계속하던 중 아내의 부음을 접한 백범.쫓기는 몸이라 병원에도 가보지 못하는 애절한 심정을 절절한 노래에 담아 부르는 극중의 백범은 뜻밖에도 ‘바위섬’의 가수 김원중이었다. “역사적으로 존경받는 인물을 무대에서 형상화하기가 쉽지 않습니다.더욱이연기경험이 전혀 없는 저로서는 부담이 훨씬 크지요.”난생 처음 서보는 뮤지컬 무대에,그것도 김구라는 큰 인물을 연기한다는 게엄두가 나지 않아 처음엔 여러차례 사양했다.그러나 “연습하면 충분히 할수 있다”는 연출자의 집요한 설득에 못이겨 결국 ‘엄청난 배역’을 떠맡게됐다. “연습에 들어가기 전 ‘백범일지’를 읽고 그동안 그분에 대해서 몰라도 너무 몰랐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제가 그분의 정치적인 신념과 인품을 제대로표현할 수 있을지두려운 마음이 앞섭니다.”걸음떼기도 어려웠던 초기에 비해서 연기에는 어느 정도 익숙해졌지만 이때문에 배역 부담은 갈수록 커진다는 설명이다. 남북평화협상을 위해 홀홀단신 38선을 넘는 김구를 현재화함으로써 ‘통일운동의 선구자’로서의 의미를 재조명하게 될 ‘못다한 사랑’은 여러면에서기존 뮤지컬과는 다른 시도를 했다.민요 대중가요 독립군가 가곡 트로트 등한국 대중음악사의 모든 장르를 일관된 테마 아래 다양하게 변주해 ‘대중적이면서도 아카데믹한 음악’을 지향하는 한편,각설이의 등장과 빠른 장면전환 등 마당극을 활용한 연출기법으로 새로운 ‘한국형 뮤지컬’을 지향한다. 80년대 ‘바위섬’‘직녀에게’를 히트시킨 김원중은 한동안 고향인 광주에서만 활동하다 최근 새앨범을 낸 뒤 라이브무대를 중심으로 활약하고 있다. 이 작품에 출연하느라 예정된 일본 7도시 순회 콘서트를 포기하고 하루 12시간씩 연습에 땀흘리는 그는 “과장되지 않은 내면 연기로 백범의 모습을 충실히 보여주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못다한 사랑’은 12월 서울 초연이후 전주·광주 등 전국 5도시를 순회하고,일본공연도 초청받았다.(02)720-9272. 이순녀기자 co
  • 주가 폭등 970선 육박

    주식시장이 연일 폭등세를 보이고 있으나 외환시장은 환율 급락(원화가치급등)으로 수출에 비상이 걸렸다.12일 주식시장은 거래량과 거래대금,시가총액이 한꺼번에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며 주가가 큰 폭으로 올라 970선에 육박했다.그러나 원-달러 환율은 5일째 큰 폭으로 하락하며 한때 1,160원대까지떨어졌으나 당국의 개입으로 간신히 1,170원선을 지켰다. 이날 주식시장에서는 국내외 금융시장의 불안이 진정되면서 외국인 투자자들의 강한 매수세가 이어지고 투신권을 이탈한 시중자금이 대거 유입돼 종합주가지수가 전날보다 21.84포인트 오른 969.26을 기록했다.장중 한때 980선을 돌파하기도 했다. 특히 외국인·기관투자자들과 개인투자자들이 치열한 매매공방을 벌이면서거래량과 거래대금은 모두 사상 최고치를 경신,각각 5억3,890만주와 7조3,503억원을 기록했다.종전 거래량과 거래대금 최고치는 4억8,918만주(지난 7월12일)와 6조8,304억원(지난 7월30일)이다.시가총액도 316조6,927억원에 달해지난 9월13일의 종전 최고기록(313조5,285억원)을 깼다.코스닥시장은 차익실현 매물이 쏟아져 나오면서 지수가 전날보다 5.91포인트 내린 219.50에 마감됐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장중 한때 달러당 1,168원80전까지 떨어지는 등 폭락조짐을 보이다 당국의 정책적 매수세에 힘입어 전날보다 2원50전이 하락한 1,170원50전으로 마감됐다. 박건승 박은호기자 ksp@
  • 삐딱한 자세 디스크 부른다

    ‘디스크에 걸리지 않으려면 자세부터 고쳐라’디스크를 걱정하는 사람에게 의사들이 흔히 하는 말이다.디스크 뿐만 아니라 수많은 병이 나쁜 자세로부터 온다.목과 어깨 근육의 긴장과 통증,긴장성두통,만성피로,집중력 저하,무기력증,귀울림,목·허리디스크,팔·어깨 결림,척추 휘어짐,자세 불균형 등이 모두 잘못된 자세와 깊게 연관돼 있다. 왜 그럴까.한 연구에 의하면 사람이 20도만 앞으로 굽혀도 반듯이 서거나 앉아 있을 때보다 요추 3번(배꼽뒤) 디스크가 받는 힘이 1.5배 이상 증가한다고 한다.따라서 구부리거나 몸을 꼰 상태로 자주 생활하면 당연히 무리가 올 수 밖에 없다. 또 고개를 너무 숙이고 생활하면 뒤로 휘어져 있어야할 목뼈가 앞으로 꺾여일자목이 되기 쉽고,머리는 어깨선 앞으로 나가게 된다.이렇게 되면 꺾인 부분의 디스크에 무게가 쏠려 목디스크 질환을 유발하기 쉽다.또 목덜미 및 양 어깨 근육은 어깨선 앞으로 나간 머리를 지탱하기 위해 항상 경직돼 단단하게 뭉치게 된다.이로인해 뒷목이 뻣뻣해지고 긴장성 두통과 함께 근육에통증이 오며 쉽게 피로해진다. 순천향대병원 재활의학과 이양균 교수는 “목과 어깨,허리 등 각종 통증을호소하는 환자 대부분이 일자목 등 척추가 변형된 변형된 상태”라고 말한다.이교수는 “평소 올바른 자세로 생활하는 것이 척추변형을 막는 최선의 예방책”이라며 “일단 변형되면 의사 처방에 따라 환자 스스로 각고의 재활노력을 기울여야 바로잡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러면 어떤 자세로 생활하면 척추변형을 막을 수 있을까.다음은 중앙의원척추건강 클리닉 김순열 원장이 척추질환 예방과 치료를 위해 권하는 올바른 자세들이다. ●서 있을 때나 걸을 때 고개는 뒤로 젖히듯이 들고 가슴은 앞으로 내민다. 골반은 가능한 한 뒤로 빼주는 것이 좋다.처음에는 이런 자세를 유지하기 힘들지만 차츰 어깨와 허리에 힘이 들어가면서 편해진다. ●잠잘 때 척추 및 그 지지구조에 무리를 주지 않으면서 자연적인 곡선을 유지하는게 포인트.목베개를 하고 곧게 누워 자되 머리 뒷부분은 바닥에 닿게하고 턱을 약간 들어 뒤로 젖혀주고 목과 어깨에서 힘을 뺀다. 베개 높이는 개인 팔뚝 굵기 정도면 무난하다.옆으로 누워 자면 어깨 통증의 주원인이 될 수 있다.부득이 옆으로 자야 한다면 목과 같은 높이의 베개를베 척추가 일직선이 되게한다.엎드려 자는 것은 요추가 휘어지거나 목을 뒤틀리게 해 근육과 인대를 과로시켜 매우 좋지 않다. ●앉아 있을 때 척추에 가장 무리를 적게주는 의자 각도는 150도이다.하지만 업무가 어렵기 때문에 대부분 100∼110 정도 각도의 의자를 사용한다.따라서 가능한 한 탄력성이 있는 등받이가 달린 의자로 이를 보완하는 것이 좋다.또 엉덩이를 뒤로 빼줄수 있도록 등받이 아래가 움푹 들어가 있는 것이어야한다. 일할 때는 상체를 바로 세우는 습관이 중요하다.고개도 공부나 일하기에 지장이 없을 정도로 최대한 세워주는 것이 좋다.이를 위해 책상 위에 책을 쌓고 그 위에 독서대를 놓아 눈높이를 맞추는 좋은 방법.또 틈틈이 머리를 뒤로 젖히는 운동으로 목덜미와 어깨 근육의 긴장을 풀어준다. 그밖에 허리를 구부린 상태서는 절대로 무거운 물건을 들거나 옮기지 말아야 허리 근육손상을 막을 수 있다.물건은 끌어 당기기보다 밀어 옮기는 것이척추에 부담이 적으며,가방은 앞이나 옆으로 메지 말고 등뒤로 어깨띠를 이용해 메야 등·허리 근육의 부담을 덜 수 있다.한쪽 어깨로만 메면 그쪽 어깨가 반대쪽보다 올라가 자세 불균형과 척추 변형을 가져올 수 있다. 임창용기자 sdragon@
  • 이 가을 영혼을 살찌우는 책들

    가을이 깊어가는 가운데 마음을 살찌우는 책들이 잇따라 출간돼 관심을 모은다.‘나를 찾아가는 여행’,‘빵장수 야곱의 영혼의 양식’,‘인생으로의두번째 여행’등이 그것. ‘나를…’은 소설형식으로 다람쥐 쳇바퀴돌 듯 바쁜 일상사에 함몰된 ‘회사인간’들에게 새로운 시각을 제시해준다.회사만이,일만이 인생의 전부는아니라고….일에 찌든 유명변호사가 갑자기 혈압으로 쓰러진 다음 새로운 인생을 찾아 인도여행을 떠나 그곳에서 얻은 지혜를 전해주는 형식으로 되어있다.▲푸른 정원 ▲아름다운 꽃 ▲붉은 등대 ▲거대한 일본 스모선수 ▲황금 스톱워치 ▲노란 장미의 향기 ▲꼬불꼬불한 길 등의 상징을 제시하고 현실을 극복하는 마음의 힘에 관해 설명한다.로빈 샤르마 지음,산성미디어 펴냄.값 7,800원. ‘빵장수 야곱…’은 10년전 출간되어 화제가 된 명상에세이의 후속서.노아 벤샤가 지은 이 책은 가난하지만 경건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빵장수를 통해 삶의 의미를 찾아본다.여기에는 ‘어떤 질문에도 첫째 가는 가장 현명한대답은 침묵이다’,‘지혜로운 사람은 어디서나 교사를 만난다’,‘다른 이들에게 항구를 제공해줄 때 우리 자신의 풍랑이 가라앉는다’등의 지혜가 담겨 있다.김영사 펴냄.값 6,900원. ‘인생…’은 ‘30대 이후 마음의 위기를 다스리는 16가지 이야기’라는 부제가 보여주듯 중년에 다가서거나 중년에 들어선 사람을 위해 정신분석학자가 쓴 책이다.‘젊고 멋지고 용감한 왕자가 늙어 대머리가 되고 공주가 중년의 위기에 처하면 어떻게 될까’를 주제로 삼아 갖가지 얘기를 전개한다.알렌 치넨 지음,황금가지 펴냄.값 8,000원. 박재범기자
  • 朴전대통령 20주기 4,000여명 추모행렬

    박정희(朴正熙) 전대통령 서거 20주기 추도식이 26일 오전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에서 열렸다. 민족중흥회(회장 白南檍) 주도로 열린 이날 추도식에는 김수환(金壽煥)추기경,정주영(鄭周永) 현대 명예회장을 비롯,일반 참배객 4,000여명이 몰렸다. 특히 김영삼(金泳三) 전대통령을 제외하고 전두환(全斗煥)·노태우(盧泰愚)·최규하(崔圭夏) 전대통령 등 전직 대통령 3명이 참석,고인을 추모해 눈길을 모았다. 박준규(朴浚圭)국회의장,국민회의 이만섭(李萬燮)총재권한대행,자민련 박태준(朴泰俊)총재와 김봉호(金琫鎬)국회부의장,자민련 박철언(朴哲彦)·박구일(朴九溢)·이건개(李健介)의원,한나라당 양정규(梁正圭)의원 등 여야 의원 40여명도 자리를 함께 했다. 김종필(金鍾泌)총리는 국회 대정부질문 일정 때문에 참석하지 못했다.김총리는 길전식(吉典植) 민족중흥회 부회장이 대신 읽은 인사말을 통해 “어른께서 씨뿌려 가꾸신 조국 근대화와 민족중흥의 열매가 이제 하나둘씩 결실되어 오늘날 우리 한민족의 좌표가 세계 속에 우뚝 선 것을 생각하니 어른의높은 경륜과 선견지명에 새삼 경외와 감사의 마음을 금할 수 없다”고 밝혔다. 박 전대통령의 맏딸 한나라당 박근혜(朴槿惠)의원은 동생 서영(書永)·지만(志晩)씨와 함께 참석,“올해는 선친의 기념사업을 위해 국가적 차원에서 첫 걸음을 내디딘 뜻깊은 해”라면서 “기념사업에 더욱 많은 관심을 기울여달라”고 당부했다. 김성수기자 sskim@
  • [박정희 전대통령 서거 20주년] (하) 인물평가의 두 시각

    -유신시절 고초 설훈의원 유신 시절 여러 고초를 겪으며 민주화운동을 했던 국민회의 설훈(薛勳)의원은 아무래도 박정희(朴正熙)전 대통령에 대해 부정적이다.‘박통(朴統)’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독재자의 이미지’라고 말했다.다음은 설 의원과의 일문일답. ?박정희 전 대통령이 우리 사회에 미친 가장 큰 영향은 민주주의 개념의 부재(不在)를 들 수있다.유신독재는 우리의 민주주의 성장을 가로막았다.민주주의는 경제·문화 등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연계되어있다.막대한 악영향이 아닐 수 없다. ?고도 경제성장을 가져온 대통령으로서의 평가도 많은데 공은 인정한다.그러나 IMF국난의 뿌리인 재벌경제 성장의 주인공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약자나 소외계층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는 정책으로 성장에만 집중,‘IMF국난’을 잉태시켰다.‘IMF국난’이 재벌경제의 폐해가 극치에 달해 발생했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지 않는가.분배의 원칙에도 귀를 기울였더라면 오늘의 경제 비극은 없었을 것이다. ?최근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가 일고 있다.그본질은 과(過)는 작아지고 공(功)은 커진 느낌이 짙다.이는 두 가지 이유에서다.70년대 이후 세대들은 민주주의 교육을 받지 못했고 50·60대들은 교육 자체를 받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독재를 비판할 능력이 없는 것이다.또 그 뒤를 이은 전두환(全斗煥)전 대통령 등의 독재 횡포가 더 극심했다.결국 단점은 약하게 인식되어지고,공로는 돋보이게 됐다.박 전 대통령이 우리 사회의 근대화를 착근시킨 것은 사실이지만 민주주의를 억압했다는 부분도 객관적이고공정하게 평가되어야 한다.추모사업도 같은 맥락에서 추진돼야 한다. ?박 전 대통령에게 긍정적 면이 있다면 한국전쟁 이후 우리 국민은 자기 비하와 무력감에 쌓여 있었다.‘엽전 의식’이 팽배했던 당시 ‘하면 된다’는 정신으로 우리나라 국민에게 자신감을불어넣어 주었다.수출 증진과 새마을운동 등으로 우리나라 근대화에 크게 기여한 것도 인정할 만하다.주현진기자 jhj@ -맏딸 박근혜의원 고(故) 박정희(朴正熙) 전대통령의 맏딸인 한나라당 박근혜(朴槿惠)의원은25일 “아버지는 가난의유산을 후손에게 물려주지 않고 잘사는 나라를 만들고,공산주의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밤낮으로 생각하신 분이다”고 강조했다.다음은 박 의원과의 일문일답. ?10·26 20주기를 맞은 소감은 돌아가신 아버지 시대를 국민이 긍정적으로 평가·재조명하고 국가적 차원에서 기념관이 건립되는 시점에 20주기를 맞아 감회가 깊다. ?10·26을 평가해달라 10·26으로 인해 우리나라는 선진국 대열에 진입할 문턱에서 꿈이 좌절됐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세간의 평가를 어떻게 보나 장기 집권을 위해 권력을 휘두르고 나라를 망쳤다는 시각은 옳지 않다.장기 집권은 생각지도 않았고 물러날 계획에 대해서 많이 얘기했다.독재라는 용어는 부정부패와 연결되고 권력을 개인의 이익과 부의 축적을 위해 썼다는뜻인데 아버지의 경우 개인을 위해서 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박 전 대통령의 퇴임 이후 계획은 무엇이었나 아담한 산을 마련,나무를 가꾸면서 조용히 살았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가장 큰 업적을 든다면 어려운 시기에 나라를 지킨 것과 가난을물리친 것이다.또 국민의 잠재력을 끌어내서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준 것을 들고 싶다. ?현정권 들어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바뀌고 있다고 보는지 과거 정권의 매도가 심했다.정권적인 차원에서 권력 장악을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차단했다.국민이 IMF 과정 등을 지켜보면서 스스로 재평가한 것이다.정부도 국민이 원하는 것을 거스를 수는 없는 것 아니냐. ?여권의 박 전 대통령 기념사업 지원을 어찌 보나 정치적 차원에서 총선을 겨냥해서는 안된다.국민이 원하는 일을 하는 차원이어야 한다.잘하는 일이지만 한편에서 선친을 깎아내리는 행동을 해서는 안된다. 최광숙기자 bori@ -3共 주요인사 현주소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과 함께 한 시대를 풍미했던 제3공화국 당시 각료와 집권당의 핵심 인사들은 대부분 타계했거나 일선에서 은퇴했다. 총리와 국회의장을 지낸 정일권(丁一權)씨는 94년 임파선암으로 사망했다. ‘피스톨 박’으로 불렸던 박종규(朴鐘圭) 당시 청와대경호실장도 85년 고인이 됐다.한때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권세를 자랑했던 이후락(李厚洛)전 중앙정보부장은 경기도 광주의 농장에서 지내다 최근 서울에 올라와 칩거하고 있다.이씨는 민족중흥회 고문을 맡고 있지만 건강이 나빠져 바깥 나들이는 거의 안하고 있다. 신현확(申鉉碻)전 경제부총리는 현재 한·일협력위원회 회장과 ‘박정희 대통령기념사업회’ 회장이다.신씨는 광화문의 한·일협력위원회와 무교동의박정희 기념사업회 사무실에 일주일에 3∼4차례 들리는 것 외에는 특별한 활동을 안하고 있다.79년 10월27일 오전 박 전 대통령의 서거 사실을 눈물을쏟으며 처음 공식 발표했던 김성진(金聖鎭) 당시 문공장관은 박정희 기념사업회 이사를 맡고 있다.김씨는 5년 전 ‘박정희시대’라는 추모집도 발간했다. 69년부터 무려 9년3개월간 박 전 대통령을 지척에서 보좌했던 김정렴(金正濂) 당시 비서실장도 현재 박정희 기념사업회 이사다. 남덕우(南悳祐) 당시 경제부총리는 산학재단 이사장직을 맡아 거의 매일 서초동 사무실로 출근한다.공화당 의장을 지낸 4선 의원 출신의 백남억(白南檍)씨는 자동차보험 회장을 거쳐 지금은 민족중흥회 회장직을 맡고 있다.3공에서 공화당 원내총무·대변인을 지낸 김재순(金在淳)전 국회의장은 지금은 월간 ‘샘터’ 발행인이다.61년 5·16때 민간인으로 참여,5선 의원을 지낸 김용태(金龍泰)씨는 동서문화교류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데 최근 건강이 악화돼 병원에 입원중이다. 대통령공보수석,문공장관을 거친 윤주영(尹胄榮)씨는 20년 넘게 전문사진작가의 길을 걷고 있다.윤씨는 공화당 사무국 출신 모임인 은행나무동우회 회장직도 맡고 있다.검찰총장,법무장관,중정부장,대통령 법률담당특보를 지낸신직수(申直秀)씨는 81년 변호사로 개업했지만 최근에는 거의 활동을 안한다. 이밖에 김재춘(金在春)전 중정부장은 5·16민족상 이사장,길전식(吉典植)전 공화당 사무총장은 민족중흥회 상임부회장이다.10·26 당시 궁정동 술자리의 유일한 생존자인 김계원(金桂元)전 비서실장은 외부 활동을 자제하고 있다. 김성수기자 sskim@-기념사업과 10·26행사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극명하게 엇갈리는것처럼 ‘박정희기념관’ 건립을 둘러싸고도 찬반양론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가난을 퇴치한 공로를 인정해야 한다는 찬성론이 있는 반면 비민주적인 권력자의 일방적인 업적 위주 홍보가 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기념관 건립은 박정희대통령기념사업회(회장 申鉉碻)에서 추진하고 있다.정부와 여당은 내년 예산에 기념사업비 지원을 위한 100억원을 책정,국회 통과를 기다리고 있다. 기념관 후보지로는 서울 근교와 구미가 거론되고 있지만 아직 건립 기본계획이 결정되지 않았다.정부 예산안이 확정된 뒤 내년 초쯤 국내외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기념관 건립에 본격 착수할 계획이다. 기념회측은 “기념관 건립에 대해 부정적 시각이 많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있는 그대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생애와 업적을 보여줘 후손들을 위한 역사교육의 장(場)으로 활용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박 전 대통령 서거 20주년을 맞아 각종 추모행사도 성황리에 진행되고 있다.25일 저녁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생전 어록을 담은서적 ‘우리도 할 수 있다’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국민회의 이만섭(李萬燮)총재권한대행,자민련 박태준(朴泰俊)총재,한나라당이회창(李會昌)총재를 비롯해 여야 정치권과 구여권 인사,그리고 일반시민등 1,000여명이 참석했다.김종필(金鍾泌)총리는 국회 대정부 질문 일정 때문에 불참했다. 26일 오전 동작동 국립현충원에서 민족중흥회(회장 白南檍) 주도로 열리는박정희 전 대통령 20주기 추도식에도 많은 참배객이 몰릴 것으로 예상된다. 김성수기자 sskim@ - 재조사 전망@ 박정희 전 대통령의 3공 및 유신체제하에서 수많은 의혹사건들이 발생했다. 아직도 대부분의 사건들이 진상규명이 이뤄지지 않은 채 미제사건으로 남아있다. 지난 75년 발생한 장준하씨 의문사는 유신체제에서 일어난 대표적 의혹사건이다.그후 ‘민주당 장준하 선생 사인규명조사위원회’가 구성되는 등 진상규명을 위한 움직임이 있었지만 이렇다 할 실적은 올리지 못하고 있다.당시유신독재 반대투쟁에 앞장선 재야 지도자였던 장씨는 경기도 포천군 이동면약사봉 등산길에서 하산도중 사망했다.그러나 검찰은 사건발생 3일 만에 단순변사로 처리,사건을 조기 매듭지었다. 중앙정보부에서 조사받다가 투신자살한 것으로 처리된 최종길 서울법대교수사건도 진상규명이 필요하다.인혁당사건은 민주화운동을 탄압하기 위한 이념조작사건의 대표적 사례로 꼽히고 있다.지난 74년 ‘유신독재’가 절정으로치닫던 때 공산혁명을 꾀했다는 이유로 관련자 8명을 사형시킨 사건으로 사법관행상 이례적으로 판결 다음날 사형이 집행됐다.지난 98년 ‘인민혁명당사건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을 위한 대책위’가 구성됐지만 진상규명에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60년대 말 고(故) 이응로 화백 등 많은 지식인과 예술가가 연루된 것으로 발표된 동백림사건도 재조명이 요구된다. 경우는 다르지만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 실종사건도 대표적 미제사건이다. 김씨는 지난 79년 프랑스 파리에서 실종됐다. 지금까지 이런 의혹사건에 대한 진상규명이 어려웠던 가장 큰 이유는 역대정부의 미온적 태도 때문이었다.그러나 지난해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의혹사건에 대한진상규명 활동이 활기를 찾기 시작했다.특히 여당은 지난 8월 대통령 소속하에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를 두도록 하는 ‘의문사진상규명특별법’을 국회에 제출했다.이번 정기국회에서 무난히 처리될 것으로 보여 과거 의혹사건에 대한 진상규명의 길이 열리게 됐다.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안’도 국회에 제출돼 있어 3공과 유신 시절 의혹사건에 대한 진상규명은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박준석기자 pjs@
  • 국내외 최정상 발레무대 ‘손짓’/볼쇼이-국립 발레단

    깊어가는 가을 국내외 정상의 발레단이 잇따라 공연을 갖는다.세계 최고를자부하는 러시아 볼쇼이발레단을 비롯해 국내 정상을 다투는 국립발레단과유니버설발레단이 앞서거니뒤서거니 야심작을 무대에 올린다. 먼저 출발하는 팀은 국립발레단.그동안의 레퍼토리 가운데 최고 성공작으로꼽히는 ‘돈키호테’를 내세워 오늘부터 국립중앙극장 대극장에서 발레팬들을 만난다.31일까지 엿새동안 모두 8차례 공연한다.(02)2274-3507∼8. 인기 절정인 김지영-김용걸은 물론 김주원-이원국,김은정-김창기 커플을 트리플캐스팅해 내부경쟁부터가 어느때보다 치열할 전망이다. 볼쇼이와 유니버설발레단은 11월3일 동시에 첫 막을 연다.국립과 유니버설이 전막공연을 하는 것과는 달리 볼쇼이는 이번에 갈라(하이라이트 모음)를 선보인다.이번 내한공연이 4년만에 이루어질 정도로 국내팬들이 볼쇼이 무대를 직접 보기 힘든 현실을 감안하면,명장면만을 모은 갈라공연은 더욱 귀중한선물이라고 할 수 있다. 볼쇼이 공연에서 팬들이 관심을 기울이는 또하나의 요소는 정식단원이된 배주윤의 무대로,국내파 선두를 달리는 김지영과 간접비교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공연횟수가 3·4일 저녁7시30분(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단 두차례뿐인 점이 아쉬움을 준다.(02)721-5966. 유니버설발레단은 창단 15주년 기념공연에 ‘라 바야데르’를 내놓았다.11월 3∼5일 오후7시30분,6·7일 오후4시 세종문화회관 대강당.(02)2204-1041∼3. ‘라 바야데르’는 고대인도를 배경으로 힌두사원의 무희(니키아),야심찬 무사(솔라),공주(감자티)의 삼각사랑을 그린 작품.1877년 러시아 황실발레단(키로프발레단 전신)이 초연한 뒤 100년 넘게 전세계 발레팬에게서 사랑을 받아온 고전이다.그렇지만 워낙 규모가 크고 무용수들에게 고난도 테크닉을 요구하는 작품이어서 전막이 공연되는 일이 드물었다. 유니버설발레단 예술감독 올레그 비노그라도프는 ‘라 바야데르’를 택한 이유를 “‘백조의 호수’‘잠자는 숲 속의 미녀’‘돈키호테’등을 공연하면서 쌓아온 역량이 이제는 고전발레 최고봉에 도전할 만해졌기 때문”이라고설명했다. 3·4일 공연이 볼쇼이발레와 겹치는 것이 유니버설발레단에게는 불운이지만비노그라도프 예술감독의 답변은 자신감에 넘친다.“3·4일에는 당연히 볼쇼이공연에 팬들이 몰리겠지.그러나 그뒤 우리 무대를 본다면 유니버설 발레가 볼쇼이 발레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할 것이다.”문훈숙단장이 박재홍과 짝을 이뤄 3·7일 공연에 출연하고 이밖에 전은선-황재원(6일),박선희-권혁구(5일),임혜경-드라고스 미할차(4일)커플이 번갈아가며 주역을 맡는다. 이용원기자 ywyi@
  • [박정희 전대통령 서거 20주년](상) 집권 18년의 功·過

    역사적 인물의 평가는 시대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특히 시간이 지나도 영향력이 줄지 않는 지도자 일수록 평가의 스펙트럼은 폭넓고 다양하다.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의 역사적 평가도 현재진행형이다.객관적이고 엄정한 공(功)·과(過)의 분석 토대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26일 박 전대통령 서거 20주기를 맞아 역사에서 차지하는 그의 위상을 상·하로 나눠 살펴본다. 【 功 】 ‘박정희(朴正熙) 시대’가 우리 현대사에 남긴 긍정적 의미는 ‘한강의 기적’으로 요약된다.‘하면 된다’라는 자신감으로 유례없는 경제성장의 업적을 이룩했다는 평가다.초고속 성장의 잔영으로 사회 곳곳에 부작용을 남겼다는 지적도 있지만 박 전 대통령이 근대화에 기여한 통치자라는 사실에 물음표를 던지는 시각은 드물다.일부 ‘박정희 옹호론자’는 “위로부터의 경제개발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면서 “박 전 대통령이야말로 대한민국의운명을 바꿔 놓은,존경받아 마땅한 통치자”라고 찬사를 보낸다.이른바 ‘개발독재 불가피론’이다.박 전 대통령의 독재적 리더십은 경제 근대화의 동력(動力)을 제공한 ‘필요악’이었다는 시각이다. 특히 62년 시작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전후(戰後) 복구에 치중한 50년대를 극복하고 60년대 성장의 물꼬를 튼 경제개발 모델로 기록된다.이는 가난과 실의에 빠진 국민에게 미래의 희망과 도약의 의지를 심어준 계기였다.국가가 주도한 수출위주 공업화 정책은 이후 여러 개발도상국과 후진국의 발전 모델로 ‘차용’됐다.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이후 우리 사회에 ‘박정희 붐’이 일고 있는 현상도 ‘박정희 시대’의 ‘경제 신화(神話)’에 기대려는 향수 때문이다. ‘박정희 시대’의 결집된 국가적 에너지는 70년대 새마을운동이란 이름으로 더욱 고조됐다.대중동원식 개발 프로그램은 일제 치하의 1930년대 조선농촌진흥운동이나 일본의 농촌경제갱생운동 등을 비롯,2차세계대전을 전후해사회주의나 자본주의 진영 곳곳에서 전개됐지만 ‘박정희 시대’의 새마을운동이 보기 드문 성공사례로 꼽힌다. 남북관계에서 ‘박정희 시대’는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이라는 조국통일3대원칙에 합의한 72년의 ‘7·4남북공동성명’을 통해 새로운 전기를 만든 것으로 기억된다.‘7·4남북공동성명’은 유신체제를 유도하기 위한 정치 수단으로 활용되는 한계를 드러냈지만 6·25 이후 처음으로 남북한간 공식대화의 단초를 제공했다는 측면에서 분단 이후 통일운동사에서 간과할 수 없는 사건이다. 【 過 】 ‘박정희(朴正熙)정권’이 우리 사회에 드리운 암영(暗影)은 그의 공적(功績)을 무색케 할 정도로 짙고 투박하다.민주주의와 인권,분배 정의 등의 가치를 부정한 폐해가 ‘보릿고개의 극복’과 ‘초가지붕의 개량’이라는 ‘박정희 옹호론’을 일축하는 근거로 제시된다.박 전 대통령과 무원칙한 화해를 시도하면 자칫 민주주의의 가치와 역사의식의 왜곡을 부를 수 있다는 우려도 같은 맥락이다. 헌법을 무시한 쿠데타로 막을 올린 박정권은 영구집권을 위한 3선개헌과 유신체제,연고주의와 지역감정을 조장한 지역패권주의 등으로 우리 정치사에씻기 어려운 오점을 남겼다.경제성장 지상주의로 인한 물질만능 풍토와 정경유착 등 왜곡된경제구조도 박정권이 후세에 남긴 부채(負債)로 꼽힌다. 이를 두고 일부 ‘박정희 비판론자’는 “쿠데타로라도 정권만 잡으면 되고,돈이면 다 되는 관행을 만든 장본인이 박정희”라면서 박정권의 민중억압성과 냉전적 권위주의,비합리적 정치행태 등을 비판한다.최근 ‘박정희기념관건립과 국고지원’문제와 관련,강만길(姜萬吉)고려대·조동걸(趙東杰)국민대 명예교수 등 일부 역사학자가 토론회와 각종 모임을 통해 부당성을 강조하는 등 ‘박정희 비판론’은 우리 사회에 여전히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다.박정권의 국가중심 발전지상주의적 산업화가 90년대 말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의 주요 요인이라는 분석도 만만찮다.선단식 경영 위주의 재벌경제를기본축으로 하는 ‘박정희식(式)’ 권위주의 발전모델이 역사적 한계를 보이면서 한보부도,기아부도 등 IMF 위기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새마을운동도 ‘박정희 비판론자’에게는 비난의 대상이다.농민운동가나 비판적 지식인들은 새마을운동을 전시행정이라고 폄하한다.이들은 “박정권이장기집권체제를꾀하면서 사회적 저항을 희석시키기 위해 새마을운동을 정치적으로 이용했다”고 주장한다.유신독재를 유지하기 위해 정적(政敵)을 무자비하게 처형하거나 의문의 주검으로 몰아 넣은 대목에서는 ‘자연인 박정희’를 옹호하는 주장이 설득력을 잃는다는 지적이다. 박찬구기자 *朴정권 탄압사 ‘제3공화국’은 오랜 통치기간 만큼이나 많은 반체제인사를 만들어냈다.현대사의 한획을 그을 만한 굵직굵직한 ‘사건’과 ‘파동’,‘의혹’이 잇따랐고 그때마다 많은 사람들이 박해와 탄압을 받았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그 대표적인 표본이다.71년 7대 국회의원 선거를앞두고 의문의 교통사고를 당했고,73년 납치사건을 겪는 등 죽을 고비를 수차례를 넘겼다. 잡지 ‘사상계’를 이끌면서 정권비판에 앞장선 장준하(張俊河)선생도 마찬가지다.한·일회담과 월남파병문제 등 계속되는 비판으로 정권의 미움을 샀다.이로 인해 여러차례 구속됐고 세무사찰로 생활고를 겪어야 했다.75년 장선생은 결국 의문의 추락사로 생을 마감했다.최종길 서울대교수도 비슷한 경우다. 김영삼(金泳三)전 대통령도 ‘유신체제의 위험인물’로 꼽히면서 수난을 겪었다. 72년 유신체제 등장은 이른바 ‘민주인사’를 대량으로 양산하는 계기가 됐다.정계 뿐 아니라 학계,종교계,언론계,문인계 등 사회 각 분야에서 반민주·반독재 항거가 일어났다.74년 ‘긴급조치1호’는 이에 대한 탄압의 신호탄이었다.장준하·백기완씨를 시작으로 함석헌·안병무·문동환·계훈제씨 등수백여명의 재야인사와 교수들이 기소됐다.그해 ‘긴급조치4호’를 발동시킨 ‘민청학련사건’으로는 253명의 민주인사,학생들이 구속됐다.이철,유인태씨 등이 사형선고를 받았고 대부분 무기징역 등 중형을 선고받았다.배후조종자로 김동길교수,박형규목사,지학순주교,김지하시인 등이 기소됐다.75년 긴급조치9호가 선포되기까지 구속자는 수천명이나 됐다. 정치인들은 중앙정보부 지하실에서 혹독한 고문에 시달렸다.이세규·조윤형·조연하·이종남·강근호·최형우·김상현씨 등이 대표적인 피해자들이다. 이지운기자 jj@. [특별기고] 朴正熙 리더십의‘이중성’정치인의 행위나 업적을 평가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시대적 상황에대한 인식이 다를 수 있고 나타난 결과의 중요성을 보는 각도도 다를 수 있는 까닭이다.특히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 통치를 경험했던 우리 세대는지극히 주관적·감정적으로 그를 평가할 개연성이 높다. 개인을 상황과 연계시켜 구분해볼 때 정치 리더십은 이상주의자,현실주의자,그리고 창조적 지도자로 나누어진다.현실주의 리더십은 목적을 위해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기에 미사여구로 그 사회가 지향하는 목표를 제시할지언정실제 행동은 다분히 이에 부합하지 않는 형을 지칭한다. 반대로 이상주의 리더십은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성이 낮은,경우에 따라서는 불가능한 이념에 집착하여 추구하는 목표에 근접하지도 못한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 보통이다.창조적 리더십은 역사의 흐름에 부합하는 목표를 설정하고 현실적 제약을 극복하면서 이를 단계적으로 성취해 가는 유형이다. 이러한 리더십 유형에 비추어 박정희 전 대통령은 현실주의 지도자였음이분명하나 창조적 리더십의 특성도 부분적으로 갖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그가 내걸었던 국정목표는 ‘잘 살아보세’라는 구호로 상징화된 조국 근대화였다.경제성장 지상주의 정책은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이행하는 계기를마련했고 경제의 양적 성장을 이루었다는 점을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물론 ‘선(先)성장 후(後)분배’정책에서 나타난 심각한 경제불평등과 재벌에 집중된 자본,그리고 다원화되어 가는 시민사회의 강압적 통제는 문제로지적할 수 있다. 60년대 우리가 처한 상황에서 관 주도의 경제정책과 선성장 후분배정책이최선의 것이었는가는 먼 훗날 역사가 평가할 몫이다. 그의 ‘근대화’정책이 가진 본질적 문제는 정치영역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산업화가 진행될수록 다원적인 사회로 이행되고 좀더 제한적·분권적권력구조가 성립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권위주의 체제로 역행했기 때문이다. 3선개헌은 ‘나 아니면 안된다’는 오만의 상징이다.공작정치는 야권을 회유하거나 분열시켜 정권을 유지하려는 목적으로 자행되었다.시민사회의 자율성 신장에 관한 요구는 공권력을 동원하여 제도적으로,그리고 실질적으로 억압되었다. 권위주의의 제도화를 기도했던 유신체제는 결국 권력 엘리트들의 균열로 비극적 종말을 맞이하고 말았다. 거대한 민주화의 흐름이 70년대 중반 포르투갈을 시발로 나타나기 시작했으나 자유민주주의가 시대의 보편적 흐름이라는 점을 인식하지 못한 그의 정치행보는 잘못된 것이었다.분명히 그는 정치적인 측면에서 정권의 유지와 재창출이라는 목적을 위해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은 현실주의자였다. 그러나 ‘조국근대화’를 경제적 측면에서 국한시켜 볼 때 그는 어느 정도창조적 역할을 했었다.여기서 박정희 리더십의 이중적 성격을 찾아볼 수 있다.나는 그가 만일 3선개헌으로 정권을 연장하고 유신을 통해 권력의 영속화를 시도하지 않았다면 아마 위대한 대통령으로 남았을 것으로 본다. 사회환경이 변화함에 따라 정치도 변해야 하고 역사 흐름에 부응한 현실의변화도 아울러 추구해야 정치가 안정적으로 발전한다는 점을 우리는 박정희통치가 남긴 역사적 교훈으로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柳勝男 국민대교수·정치학]
  • 자민련 ‘朴正熙 전대통령 받들기’

    자민련이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으로 통칭되는 ‘근대화세력’의 본류를 자임하고 나섰다. 박 전대통령과 깊은 인간적 관계를 맺었던 인사들이 수뇌부에 포진하고 있는 현실 때문이기도 하겠지만,내년 총선을 앞두고 TK 민심 사로잡기 차원의정치적인 뜻이 배어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또 최근 당이 중심없이 표류하고 있는 만큼 박 전대통령 서거 20주기를 계기로 당의 정체성을 확립하는데 주력하자는 의미도 있어 보인다. 박태준(朴泰俊)총재가 지난 21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6·25를 비롯한 수많은 시련 속에서도 자유민주주의를 안전하게 수호하면서 근대화와산업화에 매진해왔다”면서 “자민련 동지들은 피땀어린 고난의 발걸음에 참여했던 ‘시대의 증언자’로서 역사 수호의 막중한 책무가 두 어깨에 걸려있음을 절감하고 있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우선 김종필(金鍾泌)총리와 박총재,박준규(朴浚圭)국회의장 등 당 수뇌부는 박전대통령 관련 행사에 빠짐없이 참석할 예정이다.오는 25일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리는 박전대통령 어록 출판기념회에는 당 지도부와 함께 현역의원 및 원외 지구당위원장들이 대거 참석한다.또 26일 국립현충원에서 열리는 서거 20주기 추도식에도 거당적인 지원을 할 방침이다. 박총재는 이에 앞서 23일 호암아트홀에서 공연되는 ‘인간 박정희’ 연극을 관람한다.22일에도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박전대통령 20주기 추모 특별사진전에 참석,테이프커팅을 할 계획이었으나 박지원(朴智元)문화관광부장관해임건의안 표결처리로 부득이 불참했다. 한종태기자 jthan@
  • 지구촌 화약고 카슈미르 평화 깃드나

    인도-파키스탄 대립의 핵이자 지구촌의 대표적인 화약고인 이 두 곳에서 화해의 첫 단추가 끼워지기 시작했다. 에후드 바라크 이스라엘 총리 집권후 팔레스타인측이 최소한의 신뢰의 표시로 요구한 요르단 서안의 유태인 정착촌 철거가 19일부터 시작되고 파키스탄이 18일 인도 접경 지역에 전진 배치한 파키스탄 병력 철수에 들어간 것이다. 이스라엘 총리 대변인실은 18일 총리 지시에 따라 19일부터 요르단강 서안의 불법 유태인 정착촌 철거작업을 시작,2주안에 12개 불법 정착촌을 모두철거할 것이라고 밝혔다. 첫번째 철거지역은 우선 사람들이 거주하지 않고 있는 요르단강 서안 도시라말라 북부의 라헬 시부트 헤이 정착촌.성서의 ‘사마리아’지방인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 정착촌 지도자들은 불법 42개 정착촌 가운데 한 곳도 철거할 수 없다며 총리에 맞서왔었다. 파키스탄의 인도 접경지역 병력철수는 베르페즈 무샤라프 군 참모총장의 일방적인 대(對)인도 긴장완화조치 발표에 이은 것.군 대변인은 “지난 2개월간 카슈미르 사태가 격화되면서 전진배치된 병력을 철수,평화시 배치상태로돌아간다”고 밝혔다. 그러나 화해의 조짐을 낙관할 수만은 없는 상황.파키스탄이 병력을 철수한지역은 700㎞에 이르는 일반 국경지대로 파키스탄 인도 양국이 분할 점령하고 있는 카슈미르 지방의 군사통제선 병력은 해당되지 않았다.파키스탄측은향후 구체적인 철군일정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았다. 이스라엘의 경우엔 유태 극단주의자들의 저항이 가장 큰 변수.지난 17일 바라크의 정착촌 철거계획 발표 이후 극우주의자 수천명이 바라크 총리 관저앞에서 대규모 시위를 벌이는 등 조직적 저항태세를 보이고 있다.특히 내달4일은 95년 암살당한 이츠하크 라빈 총리의 서거 4주기.미망인 레아 여사는18일 “정착촌의 극단주의자들이 자살 테러를 시도할 지 모른다”며 우려를표시했다. 김수정기자 crystal@
  • [김삼웅 칼럼]‘양金’ 화해협력 약속지켜라

    “이제 우리 두 사람은 국민에게 말씀드리고자 합니다.지금 권력자들에 의하여 우리를 서로 이간 분열시키려 하는 의도가 곳곳에서 전개되고 있음을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그러나 우리는 유신체제 아래서 서로 협력하여 18년의 박정희정권을 종식시켰듯이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상호협력하여 나라의 민주화를 마침내 이룩하는 데 헌신할 것입니다.우리는 언젠가‘두 사람은 조국의 민주화를 위하여 헌신적으로 협력하였다’는 국민과 역사의 평가를듣는 것을 최대의 영광으로 삼고,더불어 함께 싸워나가고자 합니다.따라서우리는 이 시간부터 우리에 대한 분열적 표현과 구별을 거부합니다.”1985년 3월1일 김대중·김영삼 공동의장(민추협)은‘3·1절메시지’를 통해 3·1정신으로 군사독재와 싸우자는 궐기의 내용을 담으면서 상호협력을 다짐했다. 두 사람은 민주화투쟁 과정에서 기회있을 때마다‘민주화 이후’까지도 합심협력하겠다고 국민과 역사 앞에 약속하고 다짐했었다. 프랑스‘르 몽시(Le Moncie)’는 양김이 분열하여 각각 대통령후보에 나섰을 때인 1987년 12월16일자에 이를 비판 풍자하는 만화를 실었다.거대한 강물 위에 놓인 다리가 두 쪽으로 동강난 사이에 한 쪽은 DEMO라 쓰인 피켓을들고 다른 한 쪽은 CRATIE라 쓰인 피켓을 든 체 추종자들과 끊어진 교각을향해 걷고 있는 내용이었다. 약속,헌신짝 버리듯해서야“남북통일 등 한민족 화합의 시대로 들어가는 마당에 지역차별 의식이 아직도 온존하는 것은 시대착오적 현상이다.망국적 지역색 타파를 위해 함께 노력하겠다”(김대중),“언제부터인가 우리들 의식 속에는 배타적 지역감정이심화돼 분열과 대립이라는 우려할 만한 상황에까지 이르렀다.지역갈등을 과거사로 돌리고 번영과 화합의 발길을 내딛기 위해 함께 협력하겠다.”(김영삼) 91년 4월1일 양김은 대구의‘나라를 위한 기도회’에 참석,지역갈등 해소를 위해 함께 노력할 것을 약속했던 것이다.여기서‘함께’란 양김 스스로를말한다. 양김은 협력하여 군정을 종식시키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대통령에 당선되어한 분은‘현직’,한 분은‘전직’에 있다.그러나‘민주화 이후’까지도 협력하겠다던 약속은 깨진 지 오래이고 지금은 분열과 갈등이 심화된 상태이다. 지난 16일 김대중 대통령과 김영삼 전 대통령은 부마민주항쟁 20돌을 맞아부산 민주공원 개막식에 나란히 참석하여 치사와 축사를 했다.외형적으로는지극히 정상적인 이 행사가 실제로는 양김의 갈등과 적대라는 일그러진 모습으로 비쳐 많은 국민을 속상하게 만들었다. YS는 행사에 앞서 삼성자동차 공장과 모교 방문 등 지지들에게‘역적’‘유신 망령’ 등 극한 용어를 사용하며 DJ를 공격했다.얼마 전에는‘독재자’란 표현도 서슴지 않는 등 적대감을 보여왔다.DJ의 계속되는 화해 제스처에도YS는 공격을 멈추지 않고 있다. 양김의‘사랑과 미움’의 관계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그렇지만‘민주화’공로의 상당 부분을 양김에게 돌리는 데 인색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그런데 지금 왜 저런 관계가 되었을까.YS의 최근 언행은 신중하지 못하다는 것이 많은 국민의 생각이다.자신의 정부가 망쳐놓은 국가경제를 살리는‘동지’에 대한 지원과 격려는커녕 삼성자동차문제를 지역감정으로연계시키려 한점 그리고 민주주의와 인권신장에 기여한 공로로‘자유메달’을 받는 DJ에게‘독재자’란 표현,지역갈등을 자극하는 발언 등은 양김관계 이전에‘전직’으로서 어른답지 못한 언행이란 평가다. 지역갈등 해소에 협력을정부 또한 YS정부의 하나회 청산과 쿠데타세력 단죄 등 업적을 평가하면서화해협력을 모색해야 한다.무엇보다 양김은 지역갈등 해소의 약속을 지켜야한다.영·호남 지역주의는 박정희정권의 산물이지만 양김 또한 피해자인 동시에 수혜자인 것도 사실이다.그렇다면 현직과 전직이 힘을 모아 지역갈등을 해결하는 노력을 보여야 하지 않겠는가.‘정치적 국경선’처럼 깊어가는 동서갈등을 풀어야 하지 않겠는가. 또한 양김의 협력이 중요한 것은‘민간정부’의 실패는 과거 군사정부에 명분을 주게 된다는 점이다.그리되면 민주화운동의 명분을 잃게 된다.양김이역사와 국민을 의식하면서 화해와 협력의 대국민 약속을 지켜야 할 소이연이기도 하다. 김삼웅 주필
  • 중소기업인대회 이모저모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12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제 1회 중소기업인대회’를 주재했다.이날 대회는 ‘제 1회’에서 알 수 있듯이 김 대통령의 벤처·중소기업 육성 의지와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행사였다.박준영(朴晙瑩) 청와대대변인도 “벤처·중소기업에 대한 대통령의 의지가 담겨있는 행사”라며 “중소기업인들의 활발한 정책건의가 이어졌다”고 소개했다. 중소기업 및 벤처기업 대표 131명,상품진열업체 13명,대통령 방문업체 9명,정부·국회·학계인사 53명 등 모두 206명이 참석한 대회는 오전 11시부터오후 1시까지 2시간동안 계속됐다.행사는 개회선언에 이어 안병우(安炳禹)중소기업특위원장의 지역대회 종합보고,경원 엔터프라이즈 등 3개 기업의 우수사례 영상물 관람,중소기업인과의 대화,김대통령의 답변,중소기업헌장 채택,폐회,오찬,우수제품 관람 순으로 진행됐다. ■중소기업인과의 대화 대화는 중소기업인들이 현장에서 느낀 애로와 문제점에 대한 정책건의를 듣는 자리였다.먼저 최경주 중앙소프트웨어 대표는 정부에 “중소기업제품 우선구매를 늘려줄 것”을 요청했다.김창진 풍강금속 대표는 대기업의 장기어음 제도 개선을 건의했고,김수정 금강레미콘 대표는 “산·학·연의 연대가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정태일 한국 OSG대표는 중소기업의 연수나 경영자문의 애로점을 토로한뒤영남지역에 연수원 건립을,김미선 리베르테 대표는 소상공인 지원센터의 건립을 요청했다. ■김 대통령 답변 “오늘 행사는 만시지탄의 감이 있다”는 말로 운을 뗀 김 대통령은 먼저 총론을 얘기한뒤 기업인들의 정책건의에 답변하는 식으로 대화를 이끌었다. 김 대통령은 “중소·벤처기업의 육성은 취직을 위해서거나 자선사업을 위한 것이 아니다”며 세계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제품의 생산을 거듭 강조했다.또 “일부에서 중소기업정책이 위험하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며 중소기업 개혁의 부진을 꼬집은 뒤 “굳은 결심을 갖고 21세기 ‘속도전의 시대’에 맞게 스스로 개혁해야 할 것”을 주문했다. 김 대통령은 “중소·벤처기업을 육성하겠다는 정부 결의는 확고하다”며“중소기업이 중심이 되는 나라가 되도록 긍지를 갖고 노력해달라”고 거듭당부했다. 이어 99년 30조원에 이르는 중소기업제품 구매규모를 2000년 32조원으로 늘리고,납품대금 결제시 현금결제 비중도 높이겠다고 약속했다. 양승현기자 yangbak@
  • 경제장관 출마說 ‘모락모락’

    내년 4월의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경제부처 장관들의 정계진출설(說)이파다하다.연말쯤에는 총선에 따른 대폭적인 개각이 단행될 것으로 예상되고있다.여권은 내년 총선 승리를 위해 경쟁력 있는 경제부처 장관들에 욕심을낼만도 하다.여권이 경제부처 장관들에 관심을 두는 것은 유권자들의 반응도 괜찮을 뿐 아니라 경제전문가를 정책위의장으로 기용할 수도 있기 때문으로보인다. 본인의 뜻과는 관계없이 내년 총선에 나설 것으로 정계와 관계,증권가에서거론되는 경제부처 장관만 현 단계에서 4명이다.강봉균(康奉均) 재정경제부장관,남궁석(南宮晳) 정보통신부 장관,진념(陳稔) 기획예산처장관,이헌재(李憲宰) 금융감독위원장 등이 주인공들이다. 강 장관과 진 장관은 고향인 전북에서 나올 것이라는 말이 그럴듯하게 나오고 있다.진 장관은 지난 ‘3·30’ 재·보선 때 서울 구로을의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금배지를 단 뒤 정책위의장에 기용될 것이라는 말까지 나왔었다.남궁장관은 고향인 경기 용인에서 출마하지 않겠느냐는 말도 심심치 않게나온다.경제부처 장관 중 가장 가능성이 있는 장관이 이 위원장이라는 얘기도 들린다.그는 자민련 김용환(金龍煥) 전 수석 부총재와 가깝다.이 위원장의 정계진출설은 구조조정과 관련이 있다는 분석도 있다.금배지를 달 경우 보다 확실한 신분보장책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곽태헌기자 tiger@
  • ‘서정시인’ 바이올리니스트 강동석 독주회

    강동석을 두고 바이올린의 시인,그것도 서정시인이라고 부른다.그런 강동석이 가을에 어울리는 시적인 레퍼토리를 골라 독주회를 갖는다.20일 부산에서 시작해 다음달 7일 청주까지 전국 9개 도시를 찾아간다. 강동석이 이처럼 많은 도시를 찾아가는 것은 전례가 없다.아직도 지방에는좋은 음악회가 드문만큼 서울과의 문화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되도록 많은 곳을 찾겠다는 뜻이다.연주자쪽에서도 활동무대와 시장이 넓어지고 새로운 청중을 만나는 좋은 기회가 된다는 소신이다.여기에 전국 어디든 청중이몰리는 강동석의 인기가 이런 마라톤 독주회를 가능케 했다는 얘기다. 강동석은 이번에 풀랑과 생상의 소나타와 쇼송의 ‘피아노,바이올린과 현악사중주를 위한 협주곡’등 모두 프랑스 곡으로 프로그램을 짰다.자신의 장기이기도 하지만,한국 청중에게 낯선 곡을 집중적으로 소개함으로서 새로운 음악의 즐거움을 맛보게 하겠다는 뜻도 읽혀진다. 올해가 풀랑 탄생 100주년이자 쇼송 서거 100주년인데다,피아노 반주를 할파스칼 드봐이용이 프랑스 사람이라는 것도 고려했다고 한다. 이번 연주회에 대한 기대는 강동석과 20년 지기로 듀오 파트너라는 드봐이용이라는 존재 덕에 더욱 극대화된다.비오티·부조니·리즈 콩쿠르에 입상하고 프랑스인으로는 처음으로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에서 은상을 수상한 뒤 독주자로서도 강동석 못지않은 명성을 날리는 피아니스트다.그 또한 강동석처럼‘진정한 시인’이라는 평을 뉴욕 타임스로 부터 들었다고 한다. 연주 일정은 ▲20일 부산문화회관 ▲23일 대구 문화예술회관 ▲25일 진주 경남문화예술회관 ▲26일 울산 현대예술관 ▲31일 서울 예술의 전당 ▲11월 2일 전주 전북대 삼성문화회관 ▲3일 인천 종합문화예술회관 ▲5일 목포 문화예술회관 ▲7일 청주 예술의 전당.(02)548-2078. 서동철기자
  • 중국 건국50돌…32년간 취재 AP기자가 본 두거목

    [베이징 AP 연합] 지난 30년대 중반 중국 공산당의 대장정(大長征)이 끝난뒤 옌안(延安)에서 7개월 동안 마오쩌둥(毛澤東)과 함께 지내는 등 이후 32년 동안 중국을 취재한 AP통신의 존 로드릭 기자가 중국 건국 50년을 맞아중국을 다시 찾아 마오쩌둥과 덩샤오핑(鄧小平) 두사람을 비교하는 기사를보내왔다. 마오쩌둥과 덩샤오핑은 살아가는 방식은 달랐지만 10월1일 건국 50주년을맞는 공산주의 중국을 상징하는 두 거목이다.지난 76년 타계한 마오가 중화인민공화국의 아버지였다면 97년 서거한 덩은 중국 근대화의 어머니였다.이들은 전우였으나 마오가 수정 자본주의와 제한 민주주의를 통해 중국을 부자로 만들겠다는 약속을 저버리자 적대관계로 돌아섰다. 나는 중국을 취재하면서 두사람 모두 알게 됐다.두사람은 한때 추앙을 받다가 비판을 받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냉혹하고 계산이 치밀했던 마오는 53세때까지 수많은 전투를 치렀으며 20년 이상 무수한 분쟁에 개입했다.옌안 시민들처럼 평범하게 생활했지만 화려한 황제,황후 의상을 차려입은 베이징 오페라를 좋아했다. 마오는 중국을 근대화 물결에 편승할 수 있도록 만든 장본인이라 할 수 있다.다만 너무 낭만적 몽상가여서 중국을 강력하고 자족이 가능한 고대 중세왕국으로 간주,조공을 받을 순 있지만 외국의 지원이나 유대는 필요없다는식의 사고를 가진 게 문제였다. 반면 덩샤오핑은 철저한 현실주의자였다.마오의 공산주의 관념에서 탈피,각종 유인제도와 정치적 개방성으로 부(富)를 창조할 수 있다고 믿었다.덩은 16세부터 5년 동안 유럽에서 지낸 탓에 경제적 마인드와 세계지향적인 안목을 갖고 있었다. 나는 그를 79년 처음으로 만났다.당시는 덩이 마오의 사망 직후 권력을 장악하고 개혁·개방정책을 거세게 밀어붙일 시점이었다.키가 작고 까다롭고시원한 눈매를 가졌던 덩은 마오와는 체질적으로도 큰 차이가 있었다.유머감각이 뛰어났고 얼버무리는 대화술도 능란했다.마오가 낭만적이고 의심이 많으면서도 아첨을 수용할 줄 아는 편이었다면,덩은 냉정하면서 조심성있고 자신감이 강했다. 덩은 나에게 중국 지도자들은 임기가 있어야 한다고했다.특히 정치 또는행정분야중 하나를 택해야지 모두 차지해서는 안된다고 했다.그는 자신이 도입한 자유시장경제를 사회주의자나 자본주의자 모두에게 ‘정당한 도구’라고 생각했다.덩의 명예에 누를 끼친 게 있다면 그것은 바로 두려움이었다.3번이나 실각하고 다시 살아나 ‘부도옹(不倒翁)’이라는 별명까지 얻은 그였지만 89년 톈안먼(天安門)사태 때 두려움 때문에 군에 발포를 지시했다.이발포 명령은 그의 명예에 큰 오점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그는 눈을 감기 전까지 자신의 개혁정책 실현을 위해 최선을 다했고 중국을 가장 성공적으로 근대화시킨 20세기 영웅으로 남게 됐다.
  • ‘빈손’‘보허자’ 내일·2일 무대올라

    30년 가까운 세월을 몸짓만으로 연기해온 한국 마임의 산증인,유진규와 김성구가 이번주 앞서거니 뒤서거니 대학로 무대에 오른다.워낙 ‘돈 안되는’장르인지라 공연계 안팎에서 찬밥신세를 면치 못하는 게 우리 마임의 현실.그런데 이번에 서울연극제 주최측에서 두 중견 마임이스트에게 모처럼 멍석을깔아줬다. 유진규가 이끄는 ‘유진규네 몸짓’은 29일부터 10월1일까지 동숭아트센터동숭홀에서 ‘빈손’을 공연한다.한국마임협의회 회장이자 춘천국제마임축제를 이끄는 그는 마임의 진정한 매력을 깨달은 뒤부터 서양식 판토마임의 틀에서 벗어나 우리 몸짓과 마음을 표현하는 새로운 양식에 천착해 왔다. ‘빈손’은 지금까지 그가 움켜쥐고 싸워온 고민의 한 해답.인간의 욕심을주제로 한 이 작품은 ‘우리는 누구이며,무엇을 위해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존재’‘검은 비닐’‘향’‘한지’등 4가지 소제목으로 나눠 보여준다.무언가를 움켜쥐는 손,검은 비닐봉지,빛을 자유자재로 변화시키는 한지 등의 오브제가 흥미롭다.(02)921-1874. 파리,뉴욕 등지에서 활약하다 지난해 귀국해 극단을 만든 김성구는 유진규의 뒤를 이어 10월 2∼4일 같은 곳에서 창작 마임드라마 ‘보허자(步虛子)’를 무대에 올린다.시인 겸 극작가 김용범이 조선조 궁중음악의 하나인 ‘보허자’에서 제목를 빌려 도교적 색채가 짙은 30편의 연작시를 지었고,김성구가 이를 몸짓 언어로 형상화했다. 잘 훈련된 신체를 바탕으로 한 볼거리 위주의 마임이 아니라 자연스런 몸짓으로 우리 정서를 표현해낼 요량.김성구는 “연극의 기능을 빌려 영화적 이미지를 펼쳐보일 것”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친다. 386세대보다 더한 어려움을 겪는 40대에게 보내는 희망과 초월의 메시지가작품의 주제.김성구외에 민경진 오민애 차재성 등 연극배우와 국악 전문가 15명이 참여하는데,마임 무대에 이렇게 많은 출연진이 한꺼번에 등장하는 것도 드문 경우이다.(02)3663-4663. 이순녀기자 coral@
  • [김삼웅 칼럼] 격차심한 여야정치자금

    한문에 홀로 독(獨)자가 들어가는 어휘는 부정적인 의미를 담는 것이 많다. 독재·독선·독식·독주·독존·독단·독불장군·독수공방 등이 그렇다. 물론 독립·독학·독창·독야청청 등 긍정적인 어휘도 적지는 않다. 우리는 오랜 독재의 시대를 끝내고 지금 독점재벌의 개혁을 서두르고 있다.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독재나 독점이 사라져야 한다. 정치적 독재나 경제적 독점 뿐만 아니라 좁게는 가정에서 부터 공사기관에 이르기까지 일체의 독재와 독점과 독선을 뿌리뽑아야 한다. 새삼스럽게 원론적인 이야기를 하는 데는 까닭이 있다. 무엇보다도 균형을이루어야 할 여야의 정치자금이 공동여당의 독점상태로 지속되고 있다는 안타까움 때문이다. 여야가 신당창당과 제2창당을 목표로 개혁과 변신의 몸부림을 치고 있는 터에 정치자금의 균형성 문제도 정리돼야할 과제라 하겠다. 올 상반기 중앙당후원금의 실태를 보면 국민회의가 154억여원,한나라당이 8,000만원으로 188대 1이라는 격차를 보이고 있다. 정당의 후원금이 돈내는 사람의 성향에 따른 것이기에 제3자가 왈가왈부하기는 어려울지 모른다. 그렇지만 건전한 정당정치의 발전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치자금의 공정한 배분이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에 공론(公論)이 필요하다고 본다. 현행 정치자금법에는 정당후원금 외에도 국고보조금이 각 정당에 배분된다. 이 경우 한나라당에도 분기마다 23억원 규모의 보조금이 지급되고 있다. 이를 감안하더라도 정당후원금의 여야 격차는 너무 심한 편이다. 정권교체 이전에는 그 반대현상이던 것이 ‘권력이동’과 함께 후원금도 따라 이동하게 되는 염량세태를 보게 되는 것이다. 정권교체후 처음 모금된 98년 1∼6월까지의 정당후원금의 경우,국민회의 140억원,자민련 30억원,한나라당 6억원으로 나타났다. 이후 후원금의 이동현상은 더욱 심화되어 올 상반기에는 국민회의와 한나라당이 188대 1이라는 믿기 어려운 격차를 드러냈다. 과거 한나라당에 기탁했던 상당수 기업인들이 국민회의와 자민련 쪽으로 이동한 것이다. 기업인들의 ‘권력 눈치보기’가 극심함을 보여준다. 요즘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감정을 고려할 때 정당후원금 문제를 거론하기는 민심을 모르는 처사일시 분명하다. 더구나 국세청을 동원하여 거액의 선거자금을 모으고 그중 일부를 소속의원들이 착복했다는 검찰수사가 나온지며칠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야당에 대한 정치자금 지원문제는 쉽게 공감을얻기 어려울지 모른다. 그렇다고 해도 정당후원금이 여당에만 주어지고 야당은 외면되는 비뚤어진현실은 바로잡아야 할 과제라 하겠다. 정치자금의 독과점 현상을 고치지 못하고는 건전한 정치발전이나 원만한 여야관계를 유지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여야는 이번 정기국회에서 중앙선관위가 지난 봄에 내놓은 정치자금법개정안을 중심으로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선관위는 3억원 이상의 법인세를 내는 기업들은 법인세액의 1%에 해당하는 금액을 선관위에 의무적으로 기탁토록 하고 있다. 또 법인세액이 3억원 미만인 기업들은납부세액의 1% 이내 범위에서 임의로 정치자금을 기탁할 수 있도록 하자는내용을 담고 있다. 1997년 말 현재 3억원 이상의 법인세를 낸 기업은 8,000개 정도로,여기서거둘 수 있는 정치자금은 630억원 정도다. 이 돈에서 60%는 지정정당에 주고 나머지는 의석수와 총선득표율에 따라 배분토록 하여 정치자금 배분에 어느 정도의 균형성을 유지하도록 했으면 한다. 여야당은 역지사지(易地思之)하기 바란다. 여당은 야당시절 궁핍했을 때를돌아보고 야당은 여당시절 당시 야당에 어떻게 했던가를 반성하면서 심각한빈부격차를 줄여나가야 한다. 무엇보다 고비용 저효율의 정당구조를 고쳐야 한다. 한나라당은 현재 사무처 직원이 420명(시도지부 포함)에 이르는 방대한 규모의 유급직원을 거느리고 있다. 비록 3분의 1씩 무급휴가라는 미봉책을 쓰고 있다고는 하지만 지나친 고비용 저효율 구조라 하겠다. 국민회의도 신당창당을 계기로 저비용 고효율체제로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 빈부격차가 심한 여야 정치자금의 시정을 통해 건전한 정당정치의 발전을모색해야 할 때이다. 김삼웅
  • 쇼팽과 4人의 피아니스트

    음악애호가를 대상으로 “국내에서 활동하는 남성 피아니스트 가운데 가장뛰어난 사람은 누구인가”라는 설문조사를 한다면,아마 다음 네 사람의 이름이 가장 많이 오르지 않을까.문익주·김영호·강충모·김대진.이렇듯 높이 평가되는 네사람이 한자리에 모이는 ‘호화판’무대가 마련됐다.이름하여 ‘쇼팽과 4인의 남성 피아니스트’.28일 오후7시30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막을 연다. 이 연주회는 쇼팽 서거 150주년을 기념하여 마련된 것.따라서 쇼팽의 작품으로만 꾸며진다.마치 쇼팽이 이날 연주회를 염두에라도 둔듯 네곡씩 남긴 즉흥곡과 발라드,스케르초를 각자 한곡씩 연주한다.피아노를 공부하는 사람에게는 필수적인 쇼팽을,그것도 네 사람의 연주를 비교하여 들어볼 수 있다는 점에서,학생들로서는 공부하는 기회라는 것이 강충모의 ‘추천사’이기도 하다. 네 사람은 연주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선후배 사이의 깊은 우의를 과시하고 있다.나이는 1955년생인 문익주(서울대교수)가 가장 많고,56년생인 김영호(연세대교수)와 61년생인 강충모(한국예술종합학교교수),62년생인 김대진(〃)이 뒤를 잇는다. 연주자들은 한 작곡가라도 체질에 맞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조금은 꺼려지는 곡도 있는 법.그럼에도 네사람은 선배가 먼저 좋아하는 작품을 고른 뒤,후배가 남은 곡을 물려받았다.따라서 ‘막둥이’김대진은 “이번 연주를 위해새로 배워야 하는 입장이 됐다”고 말하고 있다. 연주순서도 마찬가지.김대진으로 부터 시작해 강충모와 김영호를 거쳐 맏형인 문익주가 피날레를 장식한다.서로간 경쟁의식이 없을 수 없음에도 철저히 ‘형님 먼저’를 실천한 셈이다.이에 따라 맨먼저 나서는 김대진은 즉흥곡 1번과 발라드 4번,스케르초 1번을,강충모는 즉흥곡 3번과 발라드 3번,스케르초 2번을 들려준다.휴식시간이 끝나면 김영호가 즉흥곡 2번과 발라드 2번,스케르초 3번을,문익주가 ‘환상’즉흥곡과 발라드 1번,스케르초 4번을 연주하게 된다. 서동철기자 dcsu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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