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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 前대통령 서거] 주변서 전한 검찰 조사뒤 ‘盧의 23일’

    지난달 30일 검찰조사를 받고 봉하마을로 돌아온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하기까지 23일 동안 무슨 일이 있었을까. 주변에 따르면 이때 노 전 대통령의 심정을 불면증과 칩거 생활이라는 말로만 표현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측근들은 노 전 대통령이 부인 권양숙 여사의 소환을 앞둔 시점부터 모종의 결심을 했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한 관계자는 24일 “서거 5일 전쯤 노 전 대통령의 지인을 만났더니 ‘대통령이 서울에 갔다 온 뒤 보니까 일낼 것 같더라.’고 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서초동에 다녀온 뒤 방문객도 받지 않았고 방문이 이뤄져도 예전 같으면 면담이 한 시간쯤 걸렸는데 아예 (대통령이) 말이 없어서 방문객들이 인사만 하고 나올 정도였다고 한다.”고 전했다. 최인호 전 청와대 부대변인은 “최근 사저를 방문했을 때 볼살이 빠졌더라.”면서 “서거하기 3~4일 전부터 전화를 일절 받지 않았다고 한다. 그 시점을 전후해 마음을 굳히신 것 같다.”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권 여사의 초등학교 동창인 경남 김해 진영농업협동조합장 이재우(63)씨는 “노 전 대통령이 서거 당일 권 여사와 함께 등산을 가기로 해놓고 혼자 나갔다는 얘기를 권 여사로부터 들었다.”고 말했다. 권 여사는 노 전 대통령이 등산을 떠나기 전에 깨어 있었기에 “나도 같이 갈까요.”라고 물었고 이에 대해 노 전 대통령은 “그럽시다.”라고 답했지만 권 여사가 준비하는 동안 먼저 나갔다고 한다. 이씨는 그러면서 “권 여사가 ‘나를 떼어놓으려고 한 것 같다.’는 말도 했다.”고 전했다. 이씨는 당시 사저에서 경호차량이 급히 빠져나가는 것을 보고 이상한 생각이 들어 사저에 전화를 했더니 권 여사가 이같이 말했다고 전했다. 이씨는 “지난 20일 오후 6시30분쯤 대통령 내외를 사저에서 만난 뒤 나오면서 ‘독한 마음 먹지 마시라. 언제 새벽이나 밤에 저하고 등산을 하십시다.’라고 했는데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웃기만 했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노 전 대통령은 지난 19일 오후에도 사저에서 화포천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영강사 앞길을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며 고향 마을과 작별인사를 한 것으로 보인다. 영강사의 청호 스님은 “노 전 대통령이 화포천에 청소하러 가면서 자전거를 타고 하루에 두번씩 우리 절의 앞길을 지나면서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면서 “19일에는 평소와 달리 손만 흔들고 갔는데 그게 마지막일 줄 몰랐다.”며 말끝을 흐렸다. 김해 특별취재팀 zangzak@seoul.co.kr
  • [길섶에서] 빈 자리/김성호 논설위원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습니다.’ 언제부턴가 흔하게 마주치는 문구. 청결·양심을 부추기는 단문의 설득이 통쾌하다. 도덕과 절제가 숨은 목적일 터. 뒤 이을 사람, 즉 남은 자들에 대한 배려가 압권이 아닐까. 아름다움의 강요를 심어놓은 채…. ‘빈 자리’. 누군가가 머물다 남겨 놓은 자리는 살아남은 자가 챙겨야 할 몫이다. 떠난 자는 말이 없다. 그래서 부재의 공간을 채워 다른 공간으로 바꿔야 할, 살아남은 자들은 더욱 슬퍼야만 한다. 상실의 허무보다 현실의 무게이다. 내가 떠난 뒤 빈 공간을 채울 이들도 생각해야 하고. ‘서거(逝去)’. 생의 종말을 겨눈 말 중 이보다 더 큰 것이 있을까. 빈 자리의 주인공을 향한 최상의 높임. 30년 만에 맞닥뜨린 최상칭의 죽음에 또 한번 가슴을 쓸어내린다. 우리의 서거는 왜 이렇게 번번이 급작스러운 충격을 동반해야 하나. 남겨진 빈 자리를 놓고 얼마나 많은 말들과 몸짓들이 또 세상을 뒤덮을까. 아름다운 빈 자리를 만나기 위해 얼마나 더 기다려야만 하나. 지금 살아남은 자들은…. 김성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 [사설] 노 前대통령 추모, 사회분열 빌미 안돼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례가 국민장으로 치러지게 됐다. 정부는 전직 대통령의 예우에 소홀함이 없도록 최대한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전국 곳곳에 설치된 분향소에는 고인을 기리는 추모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뜨겁게 달아오르는 추모열기의 한편에서는 검찰의 무리한 수사가 노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고 간 게 아니냐는 여론도 만만치 않게 대두된다. 노 전 대통령이 ‘박연차 게이트’라는 권력형 비리 수사의 막바지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 상황에서 책임론이 제기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고인에 대한 추모 열기가 이후 어떤 형태로든 사회 분열과 반목의 빌미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우리의 견해다.가장 우려되는 것은 노 전 대통령의 추모행사가 시위로 번지는 상황이다. 노 전 대통령의 지지층이 확고한 상태에서 책임론까지 불거지면서 촛불사태에 버금가는 후폭풍의 가능성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추모행사가 5월말∼6월초로 예정된 노동계의 대형 집회와 맞물리면 대규모 시위로 발전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지난해 촛불시위로 우리는 너무나 큰 희생을 감수해야 했다. 어떤 이유에서도 이런 불행이 되풀이돼선 안 된다. 깊은 충격에 빠진 것은 이해하지만 현 정부와 정치권, 검찰에 노골적인 적대감을 드러내며 격앙된 반응을 보이고 거친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 이번 사건이 정쟁을 격화시킬 가능성도 우려된다. 당장 미디어법 처리가 예정돼 있는 6월 임시 국회가 영향권에 있다. 이번 서거 책임을 두고 법안 처리 과정이나 임시국회 전반에서 여야간 격한 대립이 벌어질 것은 분명하다. 이명박 대통령도 강력한 국정운영을 펴는 데 큰 부담을 안게 됐다. 대기업 구조조정, 4대강 살리기, 교육개혁 등 그동안 추진해 온 정책들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 정상적 국가운영에 차질이 빚어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국민장으로 거행될 노 전 대통령의 장례식은 엄숙하고 경건하게 치러져야 한다. 고인에 대한 추모 열기를 한국 정치사의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진지하게 돌아보는 자기 성찰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그것이 ‘누구도 원망하지 말라.’며 험한 세상을 등진 고인에 대한 예의이며 죽음을 헛되이하지 않는 길이다.
  • KBS, 고심 끝 25일 ‘미수다’ 결방 결정

    KBS, 고심 끝 25일 ‘미수다’ 결방 결정

    KBS 2TV ‘미녀들의 수다(이하 ‘미수다’)도 결국 결방된다. KBS는 오늘(25일) 방송 예정이던 월요 예능 프로그램 ‘미수다’를 방송하지 않기로 전격 결정했다. ’노무현 前 대통령의 서거’로 방송 3사가 예능 프로그램을 전면 자제하고 있는 가운데 KBS는 25일 ‘미수다’ 편성을 두고 고심을 거듭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KBS는 25일 오후 5시 22분 홈페이지 편성표를 통해 ‘미수다’의 긴급 결방 소식을 알렸다. ‘미수다’가 방송되는 오후 11시 5분에는 앙코르 드라마 ‘유행가가 되리’가 대체 편성됐다. 이와 관련 KBS 측 한 관계자는 “KBS는 1TV와 2TV의 두 개의 채널로 유동적인 편성 조율이 가능해 고심해 왔으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추모 물결이 일고 있는 만큼 예능 프로그램인 ‘미수다’를 연기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한편 KBS는 지난 24일 간판 예능 프로그램인 ‘해피선데이’를 결방했으며 MBC와 SBS 측도 주말 인기 프로그램인 ‘무한도전’과 ‘스타킹’의 방송을 연기했다. 서울신문NTN 최정주 기자 joojoo@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노 前대통령 서거] 노무현의 공과 2

    [노 前대통령 서거] 노무현의 공과 2

    ■ 금권정치 극복 “특권과 반칙이 없는 사회,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사회, 부정부패와 정경유착이 없는 사회” 2008년 1월 퇴임을 앞둔 노무현 전 대통령은 취임 초기부터 바라던 사회의 모습을 이렇게 표현했다. 돈도 계보도 없던 소수파 정치인이 대통령에 오르기까지 지켜 본 금권정치에 대한 환멸이 노 전 대통령의 마음 속에 깊이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대선 후보시절부터 “특권과 차별을 시정하고 부정부패를 척결해 공정하고 깨끗한 나라를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실제로 당시 대선에서부터 금권선거가 눈에 띄게 퇴색했다. 금품살포는 물론이고 청중을 대거 동원하는 유세작전도 거의 사라졌다. 이후 불거진 대통령 선거 자금 시비에서 “내가 만약 한나라당이 받은 불법 대선자금의 10분의1 이상을 받았다면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나겠다.”고 말할 정도였다. 2003년 2월 취임식에서 노 전 대통령은 “부정부패를 없애기 위해 사회지도층의 뼈를 깎는 성찰을 요망한다.”면서 “정치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임기간 중에도 “지난 수십년간 끊어내지 못했던 정치와 권력, 언론, 재계 간의 특권적 유착구조는 해체될 것이며 투명하고 공정한 사회로 다가설 것”이라고 자부했다. 실제 참여정부는 정치개혁법을 통과시켜 돈 안 드는 선거를 제도화했다. ‘3김 정치’를 청산했다는 평이 뒤따랐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의 최대 무기인 ‘도덕성’은 친노 인사를 비롯해 형 건평씨,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 등이 정치자금법이나 뇌물수수 혐의로 법의 심판을 받게 되면서 점차 힘을 잃었다. 결국 노 전 대통령과 가족마저 검찰에 소환되는 처지를 맞았다. 스스로의 표현대로 “임기 후 넘어야 할 ‘게이트의 고개’”를 넘지 못한 셈이다. 정치 지도자의 의지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정치인과 그 주변의 의식 변화, 법 제도의 착근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허백윤기자 baikyoon@seoul.co.kr ■ 지역주의 해소 “지역대결은 답이 없는 감정싸움이며 독재시대의 유산이다. 불신과 적개심을 부추겨 편을 가르고 분노와 증오로 반목하게 하는 것은 정치인이 발명한 득표수단 중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재임 당시인 지난 2005년 2월 국정연설에서 여야 의원들을 향해 소선거구제를 개편해줄 것을 이렇게 호소했다. 후보자의 인물 됨됨이와 관계없이 특정 정당의 깃발만 흔들면 무조건 당선되는 선거제도를 바꿔야 망국적 지역주의를 극복할 수 있고, 국민통합과 선진국가 진입이 가능하다는 논리였다. 정치적 의도가 있는지를 떠나 ‘정치인 노무현’의 언행에는 지역주의 해소라는 일관성이 담겨 있었다. 노 전 대통령은 1988년 부산에서 당선됐지만 이후 3당 통합을 거부하며 김대중 전 대통령과 손을 잡았다. 김 전 대통령 시절 해양수산부장관을 지내기는 했으나 1992년 이후 연거푸 부산 지역에서 국회의원 및 시장 선거에 도전했다가 낙선, 국정에 주도적으로 참여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 ‘바보 노무현’이란 수식어가 따르는 이유다. 2002년 대선 때에도 영남 출신으로 호남에 기반을 둔 민주당 후보로 출마했다. 지역주의 극복은 재임 기간에도 화두가 됐다. 지역간 균형발전을 목표로 기업도시, 혁신도시, 공공기관 이전, 행정수도 건설, 산업클러스터 정책 등을 추진했다. 그는 2003년 4월 국정연설에서 “특정 정당이 특정 지역에서 3분의2 이상의 의석을 독차지할 수 없도록 선거법을 개정해달라. 이런 제안이 내년 총선에서 현실화되면 과반 의석을 차지한 정당 또는 정치연합에 내각의 구성 권한을 이양하겠다.”고 선언했다. 여대야소가 붕괴된 2005년 7월에는 “지역주의 극복은 내 필생의 과업”이라며 한나라당에 대연정을 제안했다. 한나라당이 진정성을 의심하며 거부하자 “대연정을 않더라도 선거제도만 고친다면 권력을 내줄 수 있다.”고도 했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의 지역주의 극복은 여전히 미완의 숙제로 남아 있다. 주현진기자 jhj@seoul.co.kr
  • [노 前대통령 서거] “가족압박 등 10년전 방식 되풀이”

    “과거 거물의 입을 열 때 치사하지만 아들, 딸을 소환해 압박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과학수사를 하는 중수부가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올해 초 대검에 근무했던 한 검사장이 ‘박연차 게이트’ 수사전망을 하며 내놓은 말이다. 10여년 전에는 특수 수사의 최고봉이라는 대검 중수부도 가족을 압박하는 방법을 사용했지만 과학수사가 발달한 현재의 대검 중수부는 ‘치사한’ 수사는 하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검찰은 수개월간의 수사로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노 전 대통령 주변으로 640만달러의 돈이 흘러간 정황을 포착했다. 중수부는 이 돈이 노 전 대통령에 대한 ‘포괄적 뇌물’이라고 규정했다. 반면 노 전 대통령은 ‘몰랐던 일’이라고 혐의를 강하게 부인했다. 수사가 검찰과 노 전 대통령 간 진실게임으로 변하자 검찰은 저인망식 수사로 노 전 대통령을 압박했다. 노 전 대통령을 소환한 지난달 30일까지 검찰은 아들 건호씨를 다섯 차례나 불러 조사하고 조카사위 연철호씨도 체포해 조사했다. 또 권양숙 여사를 비공개 소환조사했으며 노 전 대통령 소환 이후에는 딸 정연씨와 사위까지 검찰로 불러 조사했다. 권 여사의 재소환도 계획하고 있었다. 가족들에 대한 꾸준한 압박이 이어진 셈이다. 재경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가족을 압박하는 것이 효과적인 수사기법이기는 하지만, 사실 가장 비인간적이고 피의자를 벼랑 끝으로까지 몰고 갈 위험성이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에서 ‘도덕성’에 대한 결벽증까지 있는 노 전 대통령에게 충격적인 사실이 언론을 통해 나오기 시작했다. 노 전 대통령 부부가 박 전 회장으로부터 억대의 시계를 선물로 받았다거나 이 시계를 권 여사가 집 부근에 버렸다는 내용 등이었다. 검찰은 ‘나쁜 빨대’를 색출하겠다면서 강한 반감을 내비치기도 했다. 이와 함께 정연씨가 미국 뉴저지주에 160만달러짜리 아파트를 사려 한 정황이 포착됐다며 노 전 대통령을 몰아붙였다. 하지만 계약서는 정연씨가 검찰 수사에 대비해 찢어 버렸다고 설명했다. 이런 상황이 이어지면서 결국 검찰은 박 전 회장의 진술 외에 640만달러가 노 전 대통령의 돈이었다는 점을 밝히진 못했다. 명확한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노 전 대통령을 정신적으로 압박하기만 한 셈이다. 법원 형사재판부의 한 부장판사도 “법원은 진술에 의존한 뇌물 사건을 엄격히 심리하고 있으며 검찰이 진술의 구체성, 공여자의 진실성 등을 최대한 입증해야 한다.”면서 “이번 수사에서는 노 전 대통령이 뇌물을 수수하거나 이를 지시했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할 검찰이 오히려 노 전 대통령 쪽에 정말 몰랐다는 증거를 대라고 입증 책임을 지우는 양상이 엿보여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고 전했다. 오이석 유지혜기자 hot@seoul.co.kr
  • [노 前대통령 서거] “무리한 수사” 쏟아지는 비판… 궁지 몰린 검찰

    [노 前대통령 서거] “무리한 수사” 쏟아지는 비판… 궁지 몰린 검찰

    대검 중수부가 궁지에 몰렸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로 검찰 책임론이 급부상하는 데다 ‘최대 무기’인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이 충격으로 입을 닫을 가능성까지 대두되고 있기 때문이다. 임채진 검찰총장은 24일 무거운 표정으로 아무런 말없이 대검 청사에 출근했다. 비상근무 명령을 내리고 23일에 이어 이날도 긴급 간부회의를 열어 전국에서 열린 추모식, 추모집회 상황을 보고 받고 엄숙하게 장례 절차가 진행될 수 있도록 지원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그러나 시민과 정치권, 시민단체 등을 중심으로 검찰의 무리한 수사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특히 검찰이 지난달 30일 노 전 대통령을 소환조사한 뒤 한 달 가까이 사법처리 결정을 미루면서 노 전 대통령의 심리적 압박감이 극에 달했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책임론이 힘을 얻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는 “500만달러도 100만달러도 노 전 대통령이 알았거나, 요구했다는 증거가 없으니 계속해서 정황 증거를 찾으려고 수사를 지지부진하게 끌어 왔다.”고 지적했다. 검찰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애도하며 검찰을 비난하는 글이 수천개 올라왔다. ‘이용자 본인확인제’를 사용하는 데도 대검찰청 게시판 ‘국민의 소리’는 접속자 폭주로 이날 여러 차례 다운됐다. 대부분 “검찰의 무리한 수사가 전직 대통령을 사지로 몰았다.”는 원망과 중계식 수사상황 공개를 비난하는 내용이었다. 검찰이 권양숙 여사가 박 전 회장이 선물한 명품시계를 논두렁에 버렸다거나, 딸 정연씨가 미국 고급주택 계약서를 찢어버렸다는 증거인멸 정황을 공식 브리핑에서 밝혀 노 전 대통령을 망신주었던 점을 문제 삼았다. 본격 재판에 앞서 여론 몰이로 노 전 대통령을 범죄자로 낙인 찍으려했다는 것이다. 또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소환조사를 고집하고, 권 여사의 비공개 소환 방침을 공개해 언론을 동원한 ‘가택연금’ 상황을 연출했다는 지적도 있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수사팀 교체나 수뇌부 책임 사퇴론이 거론되고 있다. 대검 중수부는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에 대한 사전 구속영장을 노 전 대통령의 장례식이 끝나면 곧바로 청구하는 등 수사를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조은석 대변인은 “(노 전 대통령의 서거로) 사실상 수사가 중단됐다.”면서 “장례가 끝나면 검찰이 부패 수사를 해야 한다. 남은 수사가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향후 검찰 수사나 재판은 순탄하지 않아 보인다. 정치권에서 박연차 특검 도입이 논의되는 데다 심리적 충격을 받은 박 전 회장이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 전 회장의 ‘자백’은 불법 정치자금이나 뇌물을 받았다는 ‘박연차 리스트’의 혐의를 입증하는 데 결정적 구실을 해왔다. 그가 증인으로 나가야 하는 재판만 해도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 등 줄잡아 10여건에 이른다. 천 회장을 비롯해 앞으로 소환될 정치인이나 지방자치단체장과도 검찰에서 대질신문해야 한다. 그런 박 전 회장이 만약, 이번 일로 심경 변화를 일으켜 입에 자물쇠를 채울 경우 향후 수사와 재판을 이끌어야 하는 검찰은 곤경에 처할 수밖에 없다. 김해 특별취재팀 zangzak@seoul.co.kr
  • [노 前대통령 서거] 해인사스님 300여명 조문

    [노 前대통령 서거] 해인사스님 300여명 조문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빈소가 차려진 경남 김해 봉하마을회관에 합천 해인사가 대규모 조문 사절단을 보내 눈길을 끌었다. ●분향소에서 10여분간 반야심경 해인사 주지 선각 스님 등 300여명의 스님들은 24일 오전 9시20분쯤 자동차 통행이 통제된 봉하마을 입구부터 1㎞쯤 줄을 지어 걸어서 빈소에 입장했다. 스님들은 10여분간 고인의 영정 앞에서 ‘반야심경’을 외우며 합장을 했다. 이날 상주로서 추모객을 맞은 노 전 대통령의 아들 건호씨는 독경 소리가 커질 때마다 서럽게 흐느끼며 두 손을 모은 합장으로 스님들의 조문에 고마움을 표시했다. 이어 스님들은 빈소의 한쪽 공터에 자리를 잡고 노 전 대통령의 명복을 비는 의미에서 ‘금강경’을 독송했다. 불교신자 등 일부 추모객들이 그 옆에서 함께 합장했다. 독실한 불교신자로 알려진 권양숙 여사는 기력을 잃고 사저에 누워 있는 처지라 빈소의 스님들을 맞이하지 못했다. 권 여사는 몸을 일으켜 미음으로 식사를 대신하며 딸 정연씨와 종친회 사람들의 간호를 받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관스님 사저 찾아 권여사 위로 이날 빈소를 찾은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 스님은 사저를 찾아 누워 있는 권 여사에게 “건강을 챙기시고 불심으로 힘을 내시라.”는 위로의 말과 함께 염주 하나를 건넸다. 지관 스님은 앞서 “앞으로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사회구성원 모두가 조화와 포용, 자비의 정신에 대해 심사숙고해야 할 것”이라는 내용의 애도문을 전했다. 권 여사는 노 전 대통령 재임시절에 불교 조계종과 서울 봉은사에 꾸준히 시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재임 초기에는 매일 오전 6시를 전후해 봉은사를 찾아 두 자녀와 남편의 무사를 빈 것으로 전해졌다. 김해 특별취재팀 ksp@seoul.co.kr
  • [노무현 前대통령 서거] 전직 대통령 수난사

    역대 대통령의 비극적인 운명은 대한민국 현대사에 끊이지 않았다.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 전 대통령부터 23일 서거한 노무현 전 대통령까지 9명의 전직 대통령 대부분은 하야, 시해, 가족 구속, 검찰 수사 등 수난과 비운에 시달렸다. 전직 대통령의 수난사는 이승만 대통령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민주주의 체제의 싹을 틔운 이 전 대통령은 장기 집권을 이어가다 4·19혁명으로 하야했다. 그는 “국민이 원한다면 대통령직을 사임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하와이로 망명, 결국 이국 땅에서 생을 마감했다. 4·19혁명 후 대통령직을 수행한 윤보선 전 대통령은 5·16군사쿠데타로 도중 하차했다. 윤 전 대통령은 박정희 정권 시절 반유신 운동 등으로 모두 3차례에 걸쳐 사법처리돼 최초로 법정에 선 대통령으로 기록됐다. 5·16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72년 ‘10월 유신’으로 종신 집권 체제를 구축했으나 18년 장기집권 끝에 1979년 10월26일 측근인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총탄에 절명했다. 박 전 대통령은 근대화의 틀을 마련하고 경제발전을 견인했지만 그의 권력욕은 대한민국 현대사에 ‘현직 대통령 시해’라는 초유의 기록을 남겼다. 박 전 대통령 서거 후 집권한 최규하 전 대통령은 1980년 신군부의 권력 탈취로 8개월 만에 하야했다. 그는 1989년 신군부의 쿠데타에 대한 증언을 거부하다 국회 광주특위에서 국회모독죄로 기소됐고, 1996년 12·12쿠데타 및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해 항소심 공판에 강제구인됐다. 군부를 업고 대통령직에 오른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은 반란 및 내란 수괴죄로 각각 사형과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전 전 대통령은 육사 11기 동기이자 자신의 뒤를 이어 대통령직을 물려받은 노 전 대통령에 의해 백담사에서 유배 생활을 했다. 민주화 시대를 연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은 재임 중 아들이 구속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는 재임 중인 1997년 한보 비리 사건에 연루돼 구속됐고 2004년에는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다시 구속됐다. 김 전 대통령 자신도 2004년 안기부 예산의 선거전용 의혹 사건인 ‘안풍(安風) 사건’의 증인으로 채택됐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재임 중 차남 홍업씨와 3남 홍걸씨가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 기소되는 아픔을 겪었고 대국민 사과를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퇴임 후 ‘박연차 게이트’에 연루되면서 가장 큰 정치적 자산인 ‘도덕성’에 깊은 상처를 입었다. 그는 검찰 수사가 진행되던 중 갑작스럽게 서거해 비운의 역사를 이어갔다. 안동환기자 ipsofacto@seoul.co.kr
  • [노무현 前대통령 서거] 검찰이 ‘사람 잡은’ 경우

    [노무현 前대통령 서거] 검찰이 ‘사람 잡은’ 경우

    측근과 가족을 통해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에게서 640만달러의 뇌물을 받고 사업 특혜를 봐줬다는 의혹을 받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투신자살함으로써 검찰 수사 중 스스로 목숨을 끊은 첫 대통령으로 기록되게 됐다. 2003~2004년 사이 수많은 정·관계 및 재계 인사들이 검찰 수사를 받다 목숨을 끊었다. 대북송금과 관련, 특검에서 기소된 뒤 150억원대 비자금 조성 혐의로 대검 중앙수사부의 수사를 받던 정몽헌 전 현대아산 회장은 2003년 8월4일 서울 계동 현대 사옥 집무실에서 투신했다. 이듬해인 2004년에는 안상영 전 부산시장, 남상국 전 대우건설 사장 등 다섯명의 피의자가 잇따라 자살해 ‘자살 신드롬’까지 우려됐다. 안 전 시장은 운수업체에서 뇌물 1억원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기소됐고, 별건으로 서울에서 조사를 받고 내려온 뒤 2월4일 부산구치소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2004년 3월11일에는 노 전 대통령의 형 건평씨에게 인사청탁 대가로 3000만원을 준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서 조사를 받은 남 전 사장이 한강에 투신해 목숨을 끊었다. 노 전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열고 “대우건설의 사장처럼 좋은 학교 나오시고 크게 성공하신 분들이 시골에 있는 별 볼 일 없는 사람에게 가서 머리 조아리고 돈 주고…”라고 발언한 직후였다. 4월29일에는 건강보험공단이사장 재직 시절 납품비리 등의 의혹으로 서울남부지검에서 조사를 받은 박태영 전남지사가 역시 한강에 몸을 던졌고, 6월4일에는 전문대 설립 과정에서 뇌물 수천만원을 받은 혐의로 검찰의 내사를 받던 이준원 파주시장이 역시 한강에서 투신 자살했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노무현 前대통령 서거] 산행 나서기 30분전 컴퓨터에 유서 남겨

    투신 자살이라는 극단적 방법을 선택한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는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평소 즐겨하던 독서도 못한 채 밤을 설친 것으로 보인다. 노 전 대통령은 부인 권양숙 여사의 검찰 출두가 임박하자 극심한 정신적 압박에 시달린 것으로 알려졌다. 23일 노 전 대통령의 비서관과 경호원 등에 따르면 노 전 대통령은 검찰 수사로 인한 스트레스로 수일 전부터 잠도 못 자고 식사도 제대로 못 한 채 사저 집무실에도 나오지 않았다. 한동안 끊었던 담배도 피웠다. 오랜 친구이자 고교 동창인 ㈜센트랄 강태룡(63) 대표는 “검찰 수사가 진행되는 와중에 다른 친구들이 잠시 만났는데 노 전 대통령이 무척 면목없어 했다고 한다.”고 말했다. 윤원호 전 열린우리당 부산시당 위원장은 “정신적 압박감으로 몸무게가 많이 빠진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서거 하루 전인 22일 사저 움직임은 평소와 사뭇 달랐다. 이날 오후 평소 1~2명씩 퇴근하던 비서관과 사저 근무자들이 한꺼번에 6~7명 퇴근했고, 퇴근 시간도 평소에 비해 30분~1시간 정도 일렀다는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이 참모들을 사저에서 일찍 내보내고, 주변을 정리한 것이 아니냐는 추정을 가능케 하는 대목이다. 노 전 대통령은 이날 새벽 5시10분쯤 사저 안에 있는 컴퓨터로 유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유서가 최종 저장된 시간은 오전 5시21분이었다. 이미 자살 결심과 자살 방법을 굳히고 봉화산에 오른 것으로 추정된다. 유서는 한 비서관에 의해 뒤늦게 발견된 것으로 알려졌다. 노 전 대통령이 가족들에게 남긴 유서에는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중략). 건강이 좋지 않아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하지 마라. 화장해라. 운명이다.”라고 적혀 있다. 유서에는 노 전 대통령의 착잡한 심경과 함께 가족들을 위로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라는 대목에선 고향에 남고 싶은 심정을 드러냈다. 김해 특별취재팀 ksp@seoul.co.kr
  • [노무현 前대통령 서거] 후폭풍 정국 혼돈 불보듯

    정국은 극도의 혼돈으로 빠져들게 됐다. ‘엄청난 파장’을 예감할 뿐 정치권 어느 누구도 전망을 내놓기를 꺼려할 정도다. “어느 쪽이든 먼저 움직이기 어렵다. 한동안 민심의 동향을 지켜보는 길 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여권의 한 중진 의원은 23일 말했다. 여든 야든 섣불리 나섰다가는 ‘국가적 불행을 정치화 하려 한다.’는 거센 비난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당장 정치권은 개점 휴업 상태에 놓일 가능성이 높다. 6월 임시국회는 예정된 일정을 제대로 소화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방송법 등 미디어 관련법을 비롯해 민감한 법안의 처리는 사실상 물건너 갔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지극히 일상적인 일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을 것 같다.”고 한나라당의 한 당직자는 내다봤다. 그러나 일정 시간이 지나면서 노 전 대통령의 서거는 여권에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한 여권 인사는 “조만간 수사 형평성 논란에 이어 여권 및 검찰 인사들에 대한 강도 높은 수사 요구가 이어질 것”이라면서 “하지만 어떤 수사 결과도 친노 지지세력을 만족시킬 수 없을 것이므로, 이후 여권은 엄청난 사회적 반발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관측했다. 이 무렵이면 야당도 대정부·대여 투쟁 강도를 극대화 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디어 관련법·비정규직법·금산분리완화법 등 민감한 법안들이 투쟁에 불을 지필 주요 재료들이다. 민주당은 최근 들어 강한 야성(野性)으로의 회귀를 거듭 공언해 왔다. 다만 노 전 대통령의 서거가 정국 전략의 재료로 온전히 전환될 지는 예단키 어렵다. 섣불리 다루다가 해를 당할 수 있을 만큼의 메가톤급 이슈이기 때문이다. 윤여준 전 한나라당 의원은 “향후 정국에 관한 모든 것은 전적으로 민심에 달렸다.”고 강조했다. 정국을 움직이는 ‘운전자’가 정치권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는 “여권이 이번 사태의 부담을 떠안을지, 떠안게 된다면 어느 정도로 어떻게 떠안을 지는 민심이 좌우할 것”이라면서 “정치권에서 왈가왈부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강조했다. 이지운 홍성규기자 jj@seoul.co.kr
  • [노무현 前대통령 서거] 檢 “형언할 수 없이 슬프고 안타까워” 애도성명

    [노무현 前대통령 서거] 檢 “형언할 수 없이 슬프고 안타까워” 애도성명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이 전해진 뒤 검찰 수뇌부는 당황한 가운데 긴급 회의를 소집하고, 애도 성명을 발표했다. 김경한 법무부 장관은 이날 오전 일찍 격려차 의정부지검을 방문했다가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듣고 곧바로 과천 청사보다 가까운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뒤 법무부 출입국관리사무소로 가 경위 파악을 지시하는 등 상황을 주시했다. 곧바로 실·국장 회의를 연 뒤 낮 12시13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와 관련하여’라는 성명을 내고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 갑작스레 서거하시게 된 점에 대하여 충격과 비탄을 금할 수 없다.”고 밝혔다. 또 “사망원인과 경위에 대해서는 검찰과 경찰에서 조사 중에 있으며, 신속히 규명해 국민 여러분께 소상히 알려드리도록 하겠다.”면서 애도의 뜻을 표했다. 대검찰청 역시 당황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임채진 검찰총장은 10시48분쯤 출근했으며 11시쯤 곧바로 간부회의를 시작, 오후 3시쯤까지 논의를 계속했다. 대검 조은석 대변인은 회의 중간인 오후 1시쯤 애도성명을 내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에 대하여 형언할 수 없이 슬프고 안타깝게 생각한다. 깊은 애도를 표한다.”고 밝혔다. 이날 회의에는 문성우 차장과 이인규 중앙수사부장을 비롯한 대검 검사장 7명과 홍만표 수사기획관, 오세인 공안기획관, 강찬우 범죄정보기획관 등이 참석했다. 회의에 참석한 검찰 관계자는 “상상도 못할 일이 벌어졌다며 다들 충격을 받아 망연자실해 있다.”면서 “임 총장도 별다른 이야기도 못하고, 다들 침울한 분위기”라고 전했다. 중수과장을 비롯한 수사팀도 급히 출근해 상황을 지켜봤다. 이들은 당초 이날 오전 천신일 세중나모회장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하고, 조만간 김태호 경남지사를 소환조사할 계획을 세우는 등 수사 막바지를 향해 가다 예상치 못한 비극이 일어나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노무현 前대통령 서거] 진보도 보수도 “가슴 아프다”

    23일 오전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서거소식에 국민들은 충격을 감추지 못한 채 침통해했다. 서울광장 등 서울 시내에서는 가슴에 근조 리본을 단 검은 옷 차림의 시민들이 모여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애통해 했다. 검찰의 과잉수사가 노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내몰았다며 검찰 수사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부정과 비리로 얼룩진 후진적 정치문화를 꼬집으며 다시는 이 같은 역사의 비극이 재연되지 않아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일반 시민 김수현(34·여·약사)씨는 “수천억원의 비자금을 만들고 감옥에 수감됐던 전 대통령들도 버젓이 잘사는데 너무 꼿꼿하신 분이어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 같다.”면서 “마음 고생 많이 하셨으니 좋은 곳으로 가셔서 편히 쉬시길 바란다.”고 애도했다. 김인숙(40·여·주부)씨는 “전직 대통령 중 가장 존경할 만한 사람이었다. 비록 측근 비리에 연루됐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서서 권력에 저항해 왔던 본인의 발자취가 사라지는 것이 아닌데 이렇게 비극적 죽음을 맞이한 점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지난 3월 김해 봉하마을에 다녀왔다는 권시영(48·회사원)씨는 “호탕하고 너그럽던 그 웃음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면서 “우리 시대에서 바른 말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어른이었다.”고 기억했다. 강희철(29·회사원)씨는 “사회의 일원으로 엄청난 충격이고 슬픔을 감출 수 없다.”면서 “검찰의 수사가 전 대통령에 대한 예우를 지키지 않고 너무 강경하게, 표적형으로 진행된 게 가장 큰 원인 아니겠느냐.”고 밝혔다. 인터넷 주요 포털과 커뮤니티에는 애도하는 국민들의 글이 이어졌다. 다음 아고라에는 이날 오전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추모서명란이 개설돼 오후 6시 현재 모두 8만여명에 달하는 네티즌이 헌화했다. 네티즌 ‘이성재’씨는 “추하고 악한 인간들과 비추어 보니 님은 비록 먼저 갔지만 더욱 빛이 납니다.”라고 적었다. 네티즌 ‘승경(seung-kyung)’은 “(노 전 대통령이) 시대의 희생자라고 생각한다.”고, ‘해다미’는 “아귀다툼하는 대한민국 정치판에서 큰 별이 졌다.”고 적었다. 노 전 대통령의 공식 홈페이지인 ‘사람사는 세상들’에 개설된 추모게시판에도 2만여명의 네티즌들이 찾았다. 아이디 ‘산유화’는 “이렇게 아프게 님을 보낼 수는 없다.”면서 “햇살 고운 날에 맑은 차 한잔 하고 싶었는데….”라며 글을 맺지 못했다. ●학계 진보 성향의 학자인 서울대의 임현진 사회학과 교수는 “과거 대통령이 받은 액수에 비하면 적은 것은 분명한데, 자신이 평소 이야기했던 도덕성에 비춰 아마 검찰의 압박을 참기 어려웠을 것”이라면서 “검찰이 너무 압박을 가한 건 모양새가 좋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중도 성향의 윤평중 한신대 철학과 교수는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은 한국 정치 풍토의 구조적 책임”이라며 “검찰 수사는 전직 대통령을 망신주는 방향으로 기획 수사됐고, 살아있는 권력은 120% 목표를 달성했다고 본다. 이는 역사의 후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살아있는 권력이 죽은 권력을 망신주는 정치적 보복의 악순환은 단절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수학계를 대변하는 서울대의 박효종 국민윤리교육과 교수는 “노 전 대통령이 한국 정치에 이바지한 부분이 있는데, 그러한 사실을 제대로 평가받기도 전에 그와 같은 비극적인 결정을 했다니 너무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그는 “검찰의 무리한 수사도 이번 비극의 원인이 될 수 있으나, 그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퇴임 후 전직 대통령이 직면하는 ‘비극’은 다른 대통령에게도 공통적인 일이었다는 점에서 더더욱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시민사회단체 시민사회단체는 검찰 수사에 대한 비판을 두고 엇갈린 반응을 보였다. 한국 진보연대 장대현 대변인은 “검찰이 수사할 때 친정권 성향 인사보다 노 전 대통령 측에 훨씬 가혹했던 측면이 있다.”며 “정부와 검찰을 강력히 규탄하며 깊은 반성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자유청년연대 최용호 대표는 “일부에서 검찰의 무리한 수사 때문에 죽음을 택했다고 하는데 확실한 사실을 갖고 수사를 한 검찰에 대한 비난은 자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화계 참여정부 시절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에 임명됐다가 최근 문화체육관광부의 감사로 사퇴한 황지우 시인은 “자초지종이 어찌됐든 세상을 의롭게 살려던 사람이 자신으로 인한 오류가 압박으로 다가왔을 때 죽음 이외에는 선택의 길을 열어주지 않는 우리 사회의 강퍅함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때”라고 안타까워했다. ‘노사모’ 회장을 맡기도 했던 배우 명계남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소식이라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영화 ‘서편제’의 임권택 감독은 “뉴스를 보고 너무나 놀랐다.”면서 “있을 수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다.”라고 충격을 드러냈다. 평소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연기자 권해효는 “이번 사건이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인지 개인 문제인지 고민해야 할 것 같다.”면서 ”고인의 명복을 빌 따름”이라고 애도했다. ●종교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는 권오성 총무 이름으로 낸 애도문에서 “노 전 대통령은 80년대 인권 변호사로 앞장섰으며 결국에 참여 정부를 세워 민주주의와 정치개혁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다.”며 “노 전 대통령이 이뤄낸 이 땅의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가 대통령의 서거에 따른 향후 상황에 제대로 반영되기를 원한다.”고 촉구했다. 천주교 신자였던 노 전 대통령의 서거에 대해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인 정진석 추기경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불의의 서거 소식에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 갑작스러운 서거 소식으로 큰 슬픔과 충격에 빠져있는 유족과 국민들에게도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라는 메시지를 발표했다. 불교 조계종은 “국민과 애도의 마음을 함께하며, 큰 충격과 슬픔에 잠겨 있을 유가족에게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는 애도문을 내놓았다. 이순녀 홍지민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검찰·법무부 “노 관련 수사 종료”

    김경한 법무부 장관은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와 관련하여’라는 제목의 성명을 내고 “현재 진행 중인 노 전 대통령에 관한 수사는 종료될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검찰은 조만간 공식적으로 노 전 대통령에 대해 ‘공소권 없음’ 처분을 내릴 계획이다. 공소권 없음 처분은 검찰이 내리는 불기소 처분의 하나로, 피의자의 사망이나 공소시효 만료 등으로 재판을 진행할 수 없을 때 하는 결정이다. 대검 중수부는 그동안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이 사업 혜택을 보기 위해 노 전 대통령의 가족에게 ‘포괄적 뇌물’ 을 건넸고, 노 전 대통령도 이를 알고 있었다는 정황을 잡고 수사를 벌여왔다. 이와 별도로 서울중앙지검에서는 노 전 대통령에 대해 퇴임 뒤 ‘e지원 서버(옛 청와대 온라인 업무관리시스템)’를 봉하마을에 구축하고 기록물을 가져간 국가 기록물 유출 혐의와 남상국 전 대우건설 사장이 인사 청탁을 했다고 허위사실을 유포한 명예훼손 혐의로 수사 중이었다. 한편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 이규진)는 세종증권 매각 로비 사건으로 실형을 선고받은 노 전 대통령의 형 건평씨가 상을 치를 수 있도록 29일 오후 5시까지 7일동안 집과 빈소, 장지 등으로 장소를 제한해 구속집행을 정지한다고 결정했다. 이에 따라 건평씨는 이날 오후 5시5분쯤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에서 석방됐다.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은 이미 지난 기일에 뇌졸중 등을 이유로 보석과 형 집행정지를 신청해 놓은 상황이라 재판부가 노 전 대통령 서거까지 감안해 최종 결정을 내릴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노무현 前대통령 서거] “저기 사람 지나가네” 시선 돌린 뒤

    노무현 전 대통령이 23일 생애 마지막으로 남긴 육성은 “담배 하나 있느냐…저기 사람이 지나가네.”였다. 노 전 대통령은 이른 아침 집을 나서면서 기구한 자신의 일생을 정리하려고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 이른바 ‘박연차 게이트’에 대한 검찰 수사가 마무리되고 있고, 권양숙 여사의 검찰 출두가 임박한 시점이었다. 자신도 사법처리 대상에 오를 것이 예견되는 상황이었다. ●“담배 하나 있나” 회한에 찬 목소리 노 전 대통령은 이날 아침 5시10분 유서 작성을 마친 뒤 조금 있다가 사저를 나섰다. 평소와 달리 경호관 1명만 그를 따랐다. 노 전 대통령은 어릴 때부터 오르며 정들었고, 평소에도 가끔씩 오르던 뒷산을 올랐다. 노 전 대통령은 힘든 일이 있을 때 자주 찾던 ‘부엉이 바위’ 부근에 섰다. 경호관에게 회한에 찬 목소리로 “담배 하나 있느냐.”고 물었고, 경호관은 “가져올까요?”라고 되물었다. 노 전 대통령은 “그럴 필요없다.”고 짧게 응대한 뒤 마을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바위 위에 올라섰다. 찢어지게 가난한 어린 시절부터 대통령 당선, 환호의 귀향과 검찰 수사에 이르기까지 60여년 그의 인생이 주마등처럼 스쳤으리라. 노 전 대통령은 산 아래 마을사람들을 바라보며 “저기 사람이 지나가네.”라고 담담하게 말한 뒤 곧바로 바위 아래로 뛰어내렸다. 깜짝 놀란 경호관이 어떻게 손을 써볼 틈도 없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다. 경호관은 급히 병원에 연락을 하고 부엉이 바위 아래로 달려 내려왔다. 바위 아래 소나무밭에는 노 전 대통령의 처참한 모습이 고꾸라져 있었다. ●봉하마을이 훤히 보이는 바위에서 봉화산은 그리 높지는 않지만 크고 작은 바위가 어우러져 경치가 빼어난 산이다. 노 전 대통령 사저를 구경하려는 관광객들도 자주 봉화산에 올라 마을 전경을 감상한다. 노 전 대통령의 어머니가 산 중턱의 봉화사에서 불공을 드렸고, 자신이 젊은 시절 고시 공부를 했던 곳이다. 봉하마을로 내려온 뒤에도 권양숙 여사와 함께 자주 산을 올랐다. 사저에서 봉화산 입구까지는 200여m. 사저를 나와 산 입구까지 가는 길은 감나무밭 사이로 평평하게 나 있다. 산 입구 왼쪽에는 농업용수로 쓰는 마을 저수지가 자리잡고 있다. 부엉이 바위는 주민들이 ‘부엉이처럼 생기고 부엉이가 많이 찾는다.’고 해서 이름 붙었다. 두 개의 큰 바위가 겹쳐 있으며 직각으로 30여m 높이의 깎아지른 듯한 절벽을 이루고 있다. 바위 위에는 작은 소나무 두 그루가 있다. 다소 가파른 220m 등산로를 따라 130여m쯤 올라가면 바위틈 속에 비스듬히 누워 있는 마애불이 나온다. 자연 바위에 조각된 좌불로 경남도 유형문화재 제40호다. 마애불을 지나 나무다리를 건너 80m쯤 가면 부엉이 바위가 나온다. 나무다리 앞에서 오른쪽으로 320m쯤 더 오르면 봉화산 정상 사자바위에 이른다. 사자바위는 오른쪽으로 노 전 대통령 사저를 비롯한 봉하마을과 마을앞 들판 등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망이 빼어난 곳이다. 노 전 대통령 사저를 취재하기 위해 한때 카메라기자들이 진을 치던 곳이기도 하다. 사자바위와 부엉이 바위 중간지점 뒤쪽에는 호미를 든 관음상이 우뚝 솟아 있다. 노 전 대통령은 어릴 적 꿈을 키웠던 봉화산을 생의 마감 장소로 택했다. 대통령이라는 최고의 꿈을 이뤘으나 유년시절에 홀로 앉아 호연지기를 다졌던 부엉이 바위에서 뛰어내림으로써 파란만장한 삶을 마쳤다. 글 / 김해 특별취재팀 ksp@seoul.co.kr 영상 / 서울신문 나우뉴스TV 손진호 기자 nasturu@seoul.co.kr [관련영상] ☞ 유서 “화장해라.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 충격과 비탄속 노 전대통령 시신 봉하마을에 ☞ 경찰, 盧 추모집회 봉쇄…시청역 ‘충돌’ ☞ 봉하마을 임시 분향소 조문 잇따라…일부에선 몸싸움도 ☞ 서울도 노 전대통령 추모 열기…‘촛불’ 켜졌다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노무현 前대통령 서거] 노 전대통령 시간대별 행적

    23일 오전 5시10분. 노무현 전 대통령은 평소보다 일찍 눈을 떴다. 혼자 컴퓨터 앞에 앉아 유서를 작성했다. 내용을 미리 생각해 둔 듯 막힘없이 짧은 글을 작성했다. 오전 5시45분. 봉하마을 사저의 문을 나서 마을 뒷산인 봉화산에 올랐다. 평소 산에 오를 때마다 비서관 등을 동행하고 이야기를 나누길 좋아했지만, 이날은 경호관 한 명만 함께했다. 초여름의 이른 아침 날씨는 상쾌했다. 침묵 속의 산행이 계속된 지 1시간이 지난 오전 6시40분. 노 전 대통령은 산 정상 부근의 ‘부엉이 바위’에 올랐다. 어릴 적부터 오르며 익숙했던 바위다. 오래전 돌아가신 어머니와 아내에게도 정이 깃든 곳이다. 노 전 대통령은 낮은 음성으로 경호관에게 담배를 찾았다. 대통령 재임시절에 끊었던 담배를 검찰의 수사가 시작되면서 다시 입에 댔다. 그는 20여분 동안 초점없는 눈으로 산 아래 마을 사람들을 응시하다, 곧바로 바위 아래로 뛰어내렸다. 운명의 추락 시각은 오전 6시40분. 동행한 경호관이 놀라 제지하려 했지만, 때가 늦었다. 오전 7시. 봉하마을 인근 세영병원에 이송됐지만, 머리를 심하게 다쳐 의식이 없었고, 온몸이 상처투성이였다. 상태가 호전되지 않자 오전 8시13분 양산 부산대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이미 호흡은 멈춘 상태였다. 의료진은 전직 대통령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여러 응급처치를 시도했다. 더 이상의 노력이 무의미하다고 판단한 의료진은 결국 오전 9시30분쯤 심폐소생술을 중단했다. 오전 9시25분. 병원에 도착한 권양숙 여사는 남편의 처참한 모습을 눈으로 확인하고 정신을 잃었다. 양산 부산대병원은 오전 9시30분 노 전 대통령의 사망을 공식 확인했다. 병원측은 “정수리에 11㎝ 정도의 열상이 발견돼 뇌 손상을 크게 입은 것이 직접적인 사인”이라고 설명했다. 노 전 대통령의 시신은 오후 6시30분쯤 주민들의 오열 속에 영원한 고향인 봉하마을로 돌아왔다. 오전 한때 그의 사인을 놓고 단순 추락사가 아니냐는 논란도 있었지만, 집을 나서기 30분쯤 전 자신의 컴퓨터에 “집 가까운 곳에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라는 유서를 작성한 것이 확인되면서 자살로 결론났다. 김해 특별취재팀 ksp@seoul.co.kr
  • [노무현 前대통령 서거] 검찰과의 질긴 악연

    23일 서거한 노무현 전 대통령과 검찰의 ‘악연’은 노 전 대통령이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던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노 전 대통령은 81년 사회과학 서적을 읽은 혐의로 대학생 20여명이 기소된 ‘부림사건’을 맡아 검찰에 맞섰다. 87년에는 대우조선 노동자가 시위 도중 사망한 사건에 연루됐다가 제3자개입 혐의로 구속수감됐다. 당시 검찰은 그를 구속하기 위해 하룻밤새 3번이나 판사들 집을 찾아다니며 영장 청구를 시도했고, 이를 전해들은 노 전 대통령은 검찰에 대한 불신을 키우게 된 것으로 알려진다. 대통령이 된 뒤에도 악연의 끈은 끊어지지 않았다. 참여정부 출범 직후 2003년 3월 인사 쇄신을 통한 검찰 개혁을 내세워 판사 출신의 강금실 전 장관을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한 데 대해 평검사들이 조직적으로 반발했다. 이에 노 전 대통령은 직접 나서 ‘검사와의 대화’를 갖고 평검사들과 생중계 토론을 벌였다. 당시 “대통령도 취임 전 부산 동부지청장에게 청탁전화를 한 적 있지 않느냐.”는 질문이 나오자 “이쯤 되면 막가자는 거죠.”라고 맞받아쳐 화제를 모았다. 이듬해 3월 검찰이 고(故) 남상국 전 대우건설 사장에게서 인사청탁 대가로 3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형 건평씨를 불구속기소하자 기자회견을 열어 남 전 사장을 비판했고, 결국 남 전 사장은 한강에 투신자살했다. 남 전 사장의 유족은 최근 검찰에 노 전 대통령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다음 검찰의 칼끝은 본인을 직접 향해 왔다. 노 전 대통령이 퇴임 뒤 ‘e지원 서버(옛 청와대 온라인업무관리시스템)’를 봉하마을에 구축하고 임의로 기록물을 가져간 데 대해 검찰이 지난해 8월부터 수사에 착수한 것. 기록물 유출 혐의가 있다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검찰이 방문조사 카드를 꺼내자 노 전 대통령은 곧바로 “혐의가 있다면 내가 자진출석해 조사받겠다.”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검찰은 이후 노 전 대통령쪽과 의견을 조율하는 데 상당 시간을 소요했고, 세종증권 매각비리 사건이 터져 건평씨가 구속되면서 수사는 사실상 중단됐다. 악연의 끝은 노 전 대통령의 후원자인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과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을 구속한 ‘박연차 게이트’로 마무리됐다. 노 전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검찰에 소환돼 권양숙 여사와 아들 건호씨, 딸 정연씨가 박 회장으로부터 돈을 받았는지 등에 대해 조사를 받았다. 유지혜 김민희기자 wisepen@seoul.co.kr
  • [노무현 前대통령 서거] 혐의입증 어려워… ‘무리한 수사’ 책임론일 듯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로 종결된 이번 검찰 수사를 두고 법조계에서는 당초부터 ‘어려운 수사’라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에 검찰이 무리한 수사를 강행했다는 ‘책임론’도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이 수사는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의 홍콩법인 APC 계좌에서 흘러나온 수상한 뭉칫돈들이 노 전 대통령을 향하면서 본격화됐다.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의 부인인 권양숙 여사를 비롯해 아들 건호씨, 조카사위 연철호씨, 딸 정연씨 부부 등을 소환조사하면서 압박 수위를 높였지만 정작 노 전 대통령이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는 물증은 확보하지 못했다. 이에 대해 법조계에서는 혐의 입증 자체가 쉽지 않은 사건이었다는 의견이 적지 않았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는 “사실상 노 전 대통령이 직접 금품을 받았다거나 지시했다는 물증은 확보된 것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이런 경우 진술거부권을 행사하거나 혐의를 부인하면 유죄로 판단하기가 힘든데 법률가인 노 전 대통령이 이를 몰랐을 리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을 소환·조사한 뒤 공식적으로는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고 자평했지만, 수사팀 내부 기류는 이와 달랐던 것으로 전해졌다. 노 전 대통령은 중요한 대목마다 묵비권을 행사하거나 혐의를 부인하는 방법으로 강경하게 ‘디펜스’를 했고, 이에 한 번밖에 부를 수 없는 전직 대통령 조사에서 실제로 건진 것이 없어 실망이 컸다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에는 검찰 내부에서도 수사팀을 제외하고는 불구소 기소가 적절하다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검찰 관계자는 “법원도, 검찰도 프로페셔널한 집단인데 입증이 부족한 상황에서 검찰 부담을 좀 줄여보겠다고 영장을 청구하면 이를 심리하는 법관이 어떻게 생각하겠느냐.”면서 “이럴 경우 공판으로 넘어간 뒤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도 있으니 무리수를 두지 말자는 의견이 많았다.”고 전했다. 중앙지법의 또 다른 판사도 “검찰이 박 전 회장 게이트 수사에 착수한 뒤 법원에서 체포나 압수수색 영장을 상대적으로 순조롭게 내 준 것도 처음부터 노 전 대통령의 영장 청구 상황까지 염두에 두고 ‘일단 수사는 최대한 하라. 대신 구속영장 심리 단계에서 얼마나 입증했는지 철저하게 보겠다.’는 속뜻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임채진 검찰총장은 끝까지 구속영장 청구 카드를 손에서 내려놓지 못하고 고심하면서 시간을 끌었다. 이에 입증이 불충분한 수사를 밀어붙이려 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특히 박 전 회장에게서 금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일부 피고인들은 “박 전 회장의 진술이 기억에 의존한 것으로 부정확하다.”면서 일부 무죄를 주장하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지방 고법의 한 판사는 “진술뿐인 뇌물 사건에서는 공여자의 평소 태도까지 살펴 그 말을 얼마나 믿을 수 있는지 신빙성에 따라 유무죄를 결정한다.”면서 “다른 피고인의 공판에서 박 전 회장의 진술이 부정됐다면, 이것이 노 전 대통령의 법정 공방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노무현 前대통령 서거] 친노진영 “정치적 타살” 격앙

    친노(親盧) 진영은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와 관련, “믿기지 않는 일”이라며 큰 충격에 빠졌다. 친노 진영은 이날 오전 서거 소식이 처음 전해졌을 때만 해도 “믿을 수 없다.”면서 봉하마을 쪽에 사실 관계를 확인하느라 분주했다. 이들은 서거 사실을 최종 확인한 뒤 “정치적 타살”이라며 이명박 정부와 검찰에 대한 격한 감정을 여과없이 드러냈다. 이들은 이날 저녁 봉하마을로 속속 모였다. 노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민주당 안희정 최고위원은 “말할 수 없는 분노와 슬픔을 느낀다.”고 말했다. 사고 소식을 접한 직후 열차편으로 현지로 내려가던 안 최고위원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한동안 한숨만 내쉬다가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엊그제까지만 해도 비서관이나 찾아온 손님들과 말씀을 잘 나눴다고 해서 ‘잘 견디고 계시구나.’라고 안심하고 있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민주당 조정식 의원 역시 “너무 충격적이다. 너무 안타깝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노 전 대통령의 비서 출신인 민주당 서갑원 의원은 “지금 어떤 말도 할 수 없다.”고 밝혔다. 외국 출장 중이던 서 의원은 서거 소식을 듣고 급히 귀국길에 올랐다. 참여정부 당시 청와대 춘추관장을 지낸 민주당 김현 부대변인은 “본인이 끊임없이 항변하는데도 현 정권과 검찰이 무시하고, 견딜 수 없는 수모를 줬다.”면서 “명백한 정치적 타살”이라고 울분을 토했다. 김 부대변인은 “정말 분노스럽다. 예의는 갖췄어야 했다.”고 울먹였다. 민주당 최철국 의원은 “온 가족이 전부 수사를 당하면서 노 전 대통령은 정말 고통스러웠을 것”이라면서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라고 말했다. 참여정부 초대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낸 문희상 국회 부의장과 천호선 전 청와대 대변인, 노 전 대통령 시절 청와대 행정관을 지낸 백원우 의원 등은 휴대전화를 아예 꺼놓거나 전화를 받지 않았다. 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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