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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대중 前대통령 서거] 보통학교 수석… 언변 뛰어나고 품행 방정

    [김대중 前대통령 서거] 보통학교 수석… 언변 뛰어나고 품행 방정

    김대중 전 대통령은 학창 시절 성적이 빼어나고 품행이 방정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전남 신안군 하의보통학교(현 초등학교) 3학년을 마치고 목포 북교보통학교로 전학한 10대 섬 소년인 김 전 대통령은 전학하자마자 1, 2등을 다투다 전교생 72명 가운데 1등으로 졸업했다. 김 전 대통령이 3학년까지 다녔던 하의보통학교 재적부를 18일 서울신문이 확인한 결과 2~3학년 성적은 10점 만점에 국어(일본어) 9~10점, 조선어 10~9점이고, 산술은 내리 10점 만점을 받았다. 체조(체육)와 창가(음악)도 8~9점이었다. 또 “소화 10년 3월25일 학업우수상 받음”으로 적혀 있었다. 1학년 성적이 보이지 않아 서당을 다니다가 2학년으로 편입했음을 보여준다. 김 전 대통령의 유일한 생존 동창생인 박홍수(86)씨는 “김 전 대통령은 남들에게 미움받을 정도로 공부를 잘했다.”며 “일본어도 잘했지. 어린데도 손을 번쩍 들어 발표했어.”라고 말했다. 1939년 4월5일 일제 강점기 때 목포상업고등학교(현재 전남제일고)에 입학한 그는 학생의 절반가량이 일본인인데도 일본인 담임교사가 파격적으로 급장에 임명할 정도로 뛰어난 성적과 통솔력을 보였다. 성적을 보면 1학년 때는 161명 가운데 1등이었고 일본인 담임교사가 작성한 종합생활기록란인 성행(性行)란에 ‘담백, 치밀, 활발, 이해력·사고력이 매우 우수하다.’고 적혀 있다. 2학년 때도 급장을 맡으면서 전교에서 4등을 했다. 그때 담임교사도 ‘두뇌가 명석하고 언변이 뛰어난 학생’이라고 평가했다. 3~5학년 때 성행란에도 ‘독서력이 왕성하고 온순, 정직하며 통계력과 판단 능력이 뛰어날 뿐 아니라 진취적’이라고 기록돼 있다. 전남제일고 강성인 교장은 “모든 과목의 성적이 좋았지만 영어는 90점 이상으로 뛰어나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었던 것도 이때 실력이 밑바탕이 된 것으로 보인다.”면서 “4학년 때 전교에서 8등으로, 5학년에는 39등으로 떨어진 것은 항일 운동을 염두에 두고 학과를 소홀히 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고 설명했다. 강 교장은 “김 전 대통령의 학적부 원본은 해방 이전 기록물로 분류돼 국가기록원으로 넘어가 학교에는 없다.”면서 “대통령 후보로 출마할 때마다 언론에서 학교에 비치된 학적부를 수없이 들춰봐 학적부가 닳고 누렇게 변했지만, 학창시절 우수한 성적과 행적은 더욱 선명했다는 말을 전임자들에게서 들었다.”고 밝혔다. 글·사진 목포·신안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 [김대중 前대통령 서거] 國民葬땐 장의기간 7일·국고 보조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함에 따라 정부는 장례 준비에 착수했다. 전직 대통령이 서거할 경우 장례는 ‘국장·국민장에 관한 법률’에 따라 국장(國葬) 또는 국민장(國民葬)으로 거행된다. 김 전 대통령 장례는 지난 5월 영면한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국민장으로 치러질 가능성이 높다. 18일 행정안전부 의정관실 관계자는 “가족장, 국민장 등 장례형식을 놓고 유족 의사를 물어봐야겠지만 주요 전직 대통령들의 전례에 비추어 국민장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면서 “유족과의 협의가 원만히 이뤄지면 즉각 임시 국무회의를 열어 장례형식을 결정하고 장의위원회 구성에 들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 전 대통령의 장례식이 국민장으로 치러질 경우 역대 14번째 국민장이 된다. 앞서 지난 5월 노무현 전 대통령과 지난 2006년 최규하 전 대통령의 장례 역시 국민장으로 치러졌다. 국장은 현직 대통령으로 지난 1979년 서거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장례가 유일하다. 국장의 장의기간은 9일이며 장의비용은 전액 국고에서 부담한다. 국민장 기간은 7일이고 장의비용은 일부만 국고에서 보조한다. 국장은 장의기간 내내 조기를 달고 장례일 당일 관공서가 쉬지만 국민장은 당일만 조기를 달며 관공서 휴무도 없다. 앞서 노 전 대통령의 장의비용은 30억원이었으며 최규하 전 대통령의 국민장에는 3억 3700만원 정도가 쓰였다. 장의위원회 규모는 유족의 희망에 따라 결정된다. 이에 따라 박지원 전 대통령 비서실장을 비롯해 국민의 정부 시절 장·차관 등이 대거 장의위원에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행안부 관계자는 “장의위원회는 법에 따라 유족이 희망하는 정부 인사들로 구성할 수 있기 때문에 노 전 대통령(1383명) 때보다 더 많아질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영결식 장소는 박정희·노무현 등 역대 대통령의 장례가 거행됐던 서울 경복궁 흥례문(興禮門) 앞뜰이 확실시된다. 한편 행안부는 이날 각 시·도에 공문을 보내 장례 기간 중 축제 등의 행사를 가급적 연기하도록 요청했다. 강주리기자 jurik@seoul.co.kr
  • [사설]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를 애도하며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을 지낸 김대중 전 대통령이 어제 영면에 들었다. 한국의 민주화를 대변하는 큰 정치인의 서거를 국민들과 함께 애도한다. 고인이 편안히 하늘나라에 들 것을 기원하면서 유족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고인이 남긴 정치적 족적은 우리 헌정사에서 뚜렷이 기록될 것이다. 남은 이들은 고인이 생전에 강조했던 민주·평화의 열망을 이어가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의 일생은 한국의 민주주의 역사를 그대로 담고 있다. 권위주의 군사정권에 항거해 수차례 죽을 고비를 넘겼다. 투옥, 가택연금, 망명생활 등 온갖 어려움을 겪었으나 결코 독재정권과 타협하지 않았다.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한국이 오늘날 민주국가로 발전하게 된 데는 고인과 김영삼 전 대통령 등 이른바 ‘양김(兩金)’의 정치투쟁에 힘입은 바 크다. 고인은 대통령선거에 4차례 출마, 3전4기 끝에 당선되는 집념을 보여줬다. 헌정사상 처음으로 민주선거를 통한 여야 정권교체를 이룸으로써 한국의 민주주의를 한 단계 성숙시켰다. 대통령 재임 중 생산적 복지를 내세워 서민과 소외계층 등을 위한 사회안전망 확충에 힘썼다. 특히 고인이 일생을 통해 추진한 것은 한반도 평화공존이었다. 근래 퍼주기 논란을 빚고 있지만 햇볕정책으로 불리는 대북정책은 고인이 심혈을 기울였던 작품이었다. 평양 정권을 대화의 장으로 이끌어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켰다. 남북 경협사업도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하게 진행시켰다. 김 전 대통령은 한국인으로서는 유일하게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고인이 추진했던 한반도 평화정책이 국제사회에서 인정받았던 셈이다. 南南갈등 증폭시키지 말기를 몇년 사이에 북한이 핵실험과 미사일 도발을 거듭함으로써 햇볕정책의 효용성이 의심받고 있다. 하지만 대화로써 북한 정권을 설득해 핵무기를 포기케 하고, 공동번영을 누리자는 데 이견이 있을 수 없다. 남남(南南)갈등을 증폭시키기보다 고인의 유지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계승되도록 하는 게 바람직하다. 고인이 궁극적으로 바랐던 것은 남북 화해와 한반도 평화정착이었던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완강하던 북한이 최근 남북관계 개선에 응할 분위기로 돌아서고,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도 나설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점은 다행스럽다. 고인의 정치일생에서 그늘도 있었다. 영남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구가 적은 호남 출신으로서 특정 지역을 기반으로 한 정치를 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스스로는 지역감정 해소를 위한 노력을 했다고 밝혔으나 고인으로 인해 지역주의가 강화됐다는 지적을 비켜가지 못하고 있다. 집권 당시의 DJP연합 등을 비롯해 정치권의 잦은 이합집산을 주도했다는 평도 듣는다. 재임시 아들들과 측근들이 비리 의혹에 휩싸인 점은 고인에게 뼈아픈 대목이다. 물론 민주화와 평화공존과 관련한 김 전 대통령의 업적이 커서 이러한 문제들은 지엽적으로 비친다. 병상서도 화해분위기 확산시켜 특히 고인이 병상에 누워 있는 동안 국내외의 많은 인사들이 병문안을 다녀갔다. 마지막 가는 길에 통합과 화해의 기운을 확산시킨 셈이다. 고인의 정치적 라이벌 김영삼 전 대통령이 병문안을 한 뒤 ‘화해’를 선언했다. 비록 고인의 육성은 없었으나 깨어 있었다면 분명히 화답했을 것이다. 양김의 불화와 대결은 한국 지역주의가 심화된 주요 요인 중의 하나였다. 양김 화해를 계기로 정치권은 행정구역 개편과 선거구제 개선으로 지역감정 타파를 위한 제도정비에 나서야 할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을 문병한 인사 가운데는 전두환 전 대통령도 있었다. 김 전 대통령을 정치적으로 박해하고, 광주항쟁을 무력으로 진압했던 장본인까지 문병객으로 맞이함으로써 화해·용서를 한 단계 끌어올렸다고 본다. 이러한 화해 무드가 전 사회로 확산되길 바란다. 김 전 대통령은 근래 현실정치에 개입하는 발언을 자주 했다. 현 이명박 대통령 정부를 매섭게 비판하기도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찰 수사를 받다가 자살이라는 충격적인 방법으로 서거한 뒤 현 정부를 향한 비난의 강도가 더욱 높아졌다. 전직 대통령으로서 현실정치에 너무 간여한다는 힐난의 목소리가 나왔지만 우리 정치를 걱정하는 고인의 충정이 깔려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제 김 전 대통령이 이승을 하직함으로써 고인의 정치적 영향력 확대 논란은 수그러들게 되었다. 수십년간 한국 정치를 눌러 왔던 양김 정치시대는 끝났다. 김 전 대통령의 진심은 민주화의 진전과 국정안정을 바랐다고 보며 여야 정치권은 고인의 유지를 함부로 훼손해서는 안 될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의 서거를 맞아 현 정부와 여야 정치권 모두 옷깃을 여며야 한다. 정부·여당은 혹시 권위주의 시대로 역행하는 일은 없는지 정책과 언행을 다시 살펴야 할 것이다. 민주당 등 야당은 고인의 영향력에 기대어 표를 모으려는 생각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음을 알아야 한다. 이제부터는 야당 스스로의 비전과 정책을 제시해 국민들로부터 평가받아야 한다. 김 전 대통령의 카리스마에 업히려 해서는 안 되고, 또 그것이 가능하지도 않다. 삼가 김 전 대통령의 명복을 다시 빌면서, 국가적인 경건함 속에 장의절차가 차질없이 진행되길 바란다.
  • [김대중 前대통령 서거] 사선 다섯번 넘어… 민주주의 유토피아 꿈꿨다

    [김대중 前대통령 서거] 사선 다섯번 넘어… 민주주의 유토피아 꿈꿨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인동초’, ‘행동하는 양심’으로 불리며 반세기 한국 정치사를 풍미했다. 한국 정치사에서 ‘3김(金)시대’의 한 축이었던 고인(故人)은 1997년 겨울, 반세기만에 ‘선거혁명’을 통한 정권교체를 이뤘다. 3전4기로 대통령에 당선된 뒤에는 외환위기를 극복했고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켜 한반도 정세의 패러다임을 바꿨다. 5차례의 죽을 고비와 5년여의 감옥생활, 6년여의 가택연금, 3년의 망명생활 등 고인의 삶은 견디기 어려운 시련으로 점철됐다. 가톨릭 세례명인 ‘토마스 모어’처럼 고행하는 구도자의 삶을 이어온 셈이다. “정이 많은 분이다.” 영원한 비서실장인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김 전 대통령을 이같이 묘사했다. 말년에도 거의 매일 서울 동교동 자택을 드나든 박 의원은 “지난 1월 민주당 정세균 대표가 방문해 용산참사에 대해 말을 꺼내자 이내 김 전 대통령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면서 “평소에도 드라마 속 (비참한) 사람들을 보며 눈시울을 붉힐 만큼 평소 인정도 많으셨다.”고 전했다. 말년에는 미국의 버락 오바마 행정부 등장과 맞물려 케네디 전 대통령과 관련된 책을 탐독하고 여론주도층을 만나 서민과 비정규직을 위한 사회 안전망, 생산적 복지를 강조했다고 한다. 전남 목포에서 뱃길로 150리. 김 전 대통령은 1924년 매서운 바닷바람을 등진 하의도라는 작은 섬에서 3남2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신안군 하의면 후광리에는 지금도 생가터가 남아 있다. ‘후광’(後廣)이라는 호(號)도 여기서 따왔다. 중농의 아들이었던 그는 목포상고(현 전남제일고)에 수석 입학한 수재였지만 반일운동으로 학적부에 ‘시찰계요’라고 적힐 만큼 반골기질을 드러냈다. 1945년 약관의 나이에 ‘건국준비위원회’와 조선 신민당에 입당했지만 8개월 만에 탈당한다. 이어 3단계 통일방안(1972년)과 광주 민주화운동(1980년) 등을 거치면서 색깔론에 휘말렸다. 고인은 1946년 첫 부인 차용애 여사와 가정을 꾸리고 해운회사를 경영, 큰돈을 모은다. 뛰어난 상술로 목포일보를 인수한 뒤 주필을 겸하기도 했다. 자금을 끌어대고 경쟁상대를 꺾으며 사람의 마음을 낚는 장사와 정치는 닮은꼴이다. 1950년 한국전쟁 때는 우익단체 참여를 빌미로 인민군에게 처형될 위기에 몰렸지만 이송 중 극적으로 탈출, 첫 죽음의 고비를 넘긴다. 1954년 3대 민의원 선거에서 목포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하며 본격적으로 정치에 뛰어들었다. 3대를 포함, 4차례 낙선의 쓴잔을 연거푸 마셨다. 1958년 강원도 인제군 민의원 선거 때는 후보등록이 취소됐고, 1959년 보궐선거에선 색깔론에 휘말렸다. 4·19혁명이 일어난 1960년 선거에서도 낙선했다. 1961년 인제군 보궐선거에서 당선의 첫 기쁨을 누린 김 전 대통령. 하지만 사흘 만에 5·16을 맞아 반혁명사건에 연루돼 교도소로 직행한다. 토머스 모어의 교훈은 오히려 고난 극복의 힘이 됐다. “늦어도 100년 뒤면 (토머스 모어처럼) 역사에서 재평가받을 것”이라며 고통을 이겨냈다. 1962년 이희호 여사와 재혼한 고인은 이듬해 목포에서 민주당 후보로 공화당 후보를 제치고 당선됐다. 1964년 5시간20분간 행한 ‘필리버스터’ 발언과 6개월간 13차례 본회의 발언 등은 지금도 기록으로 남아 있다. 1971년 7대 대선은 기회이자 시련의 계기였다. 1970년 45세의 나이에 ‘40대 기수론’의 라이벌 김영삼(YS) 전 대통령을 물리치고 신민당 후보로 나섰지만 이듬해 선거에선 94만표 차로 패배했다. 이후 20년간 혹독한 시련이 밀려왔다. 일본 망명 중인 1973년 ‘김대중 납치사건’을 시작으로 전두환 군사정권까지 55차례의 연금생활, 5년반 동안의 감옥생활, 2차례의 망명생활을 겪었다. 1976년 명동 3·1구국선언으로 구속(긴급조치 9호 위반)됐고, 1981년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으로 사형선고를 받았다. 훗날 고인은 “솔직히 죽는 것이 두려웠지만 영원히 사는 길을 택했다.”고 회고했다. 가톨릭계의 구명운동 덕에 목숨을 건진 고인은 1982년 도미, 두 번째 망명길에 오른다. 한국인권문제연구소와 민주화추진협의회를 이끌며 민주화 운동의 외로운 무게중심이 됐고, ‘인동초’란 별칭도 얻게 된다. 1985년 12대 총선을 앞두고 전격 귀국한 고인은 김포공항에서 연행돼 가택연금에 처해졌다. 하지만 김영삼 전 대통령과 함께 만든 신한민주당이 2·12총선에서 109석을 확보, 1987년 6월 항쟁의 기틀을 마련한다. 사면복권 뒤 1987년 13대 대선에 출사표를 던졌지만 3위에 머무르며 김영삼 전 대통령과의 후보 단일화 실패에 따른 비난에 휩싸였다. 1988년 총선의 평민당 ‘황색 돌풍’으로 일선에 복귀했지만 1992년 12월 대선에서 패배한 뒤 정계은퇴를 선언한다. 고인은 “40여 년의 파란 많았던 정치생활에 사실상 종막을 고한다고 생각하니 감개무량한 심정을 금할 길이 없다.”며 대선 낙선의 소회를 곱씹었다. 막을 내릴 것 같던 정치인생은 영국으로 건너간 지 6개월만에 다시 불꽃을 살렸다. 1993년 귀국해 아태평화재단을 설립했고, 빗발치는 비판 여론을 무릅쓰고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했다. 이듬해 총선에서 제1야당으로 올라서자 대선 4번째 출마를 선언한다. ‘대통령병 환자’라는 비난이 일었지만 단 1.6%포인트의 표차이로 이회창 후보를 누르고 색깔론과 지역감정의 벽을 넘었다. 보수세력인 자민련과의 DJP연합이 힘이 됐지만, 역설적으로 색깔과 지역의 부조화스러운 조합이기도 했다. 고인의 대표 브랜드는 ‘햇볕정책’이다. 반세기 동안 닫혔던 북쪽의 문을 열게 하는 열쇠로, 서독 빌리 브란트 총리의 동방정책과 궤를 같이한다. 이를 바탕으로 이뤄진 역사적 남북정상회담은 한반도가 ‘레드 콤플렉스’를 벗어던지고 탈냉전체제로 진입하는 촉매제가 됐다. 고인을 한반도 유일의 노벨상 수상자로 만든 일대 사건이었고, 퇴임 뒤에도 논쟁이 있는 사안에 대해 비중있게 언급할 수 있는 유일한 지위를 부여했다. 고인은 대통령 임기말 측근들의 비리가 뒤늦게 터진 데다 아들들이 구속되는 등 마음고생도 적지 않았다. 6·15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 북한과 밀거래한 사실은 안타까운 기록으로 남게 됐다. 또 완벽주의와 제왕학적 리더십은 권위주의적 통치라는 오명도 남겼다. 오상도 허백윤기자 sdoh@seoul.co.kr
  • [김대중 前대통령 서거] “큰 인물 가셨다” 하의도 눈물바다

    ■ 고향 신안군 후광리 표정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고향인 전남 신안군 하의도는 18일 온통 슬픔과 안타까움에 젖어들었다. 김 전 대통령이 영면의 길로 접어들었다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하의도 주민들은 농사일을 중단한 채 마을회관 앞으로 속속 모여들었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가 상제인 듯 비통한 분위기에 휩싸였다. 주민들은 “참말로 큰 인물이 가셨다.”며 소매로 눈물을 훔치곤 했다. ●온 마을이 喪家… 농사 접고 탄식 면사무소 앞에서 만난 주민 김경선(50·웅곡리)씨는 “지난 4월 14년 만에 김 전 대통령께서 하의도를 찾으셨을 때만 해도 건강해 보였는데 이렇게 가시다니 정말 안타깝다.”고 말했다. 농협 하나로마트 직원 이미영(30·여)씨는 “손님들마다 김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묻는 등 모두가 안타까운 심정을 말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 전 대통령의 조카이자, 큰형님인 대봉(1972년 작고)씨의 아들인 홍선(48)씨는 “집념이 워낙 강한 분이셔서 이번에도 금세 일어서실 것으로 믿었는데 가슴이 멘다.”고 울먹였다. 생가가 있는 후광리와 친척들 대부분이 모여 사는 대리1구 주민들의 슬픔은 남달랐다. 8촌 동생인 도미(58)씨는 “대통령이 우리 고향은 물론 대한민국이 자랑할 만한 분으로 좀 더 오래 사셨으면 하는 바람이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후광리 이장 이형렬(61)씨는 “김 전 대통령의 지난 4월 고향 방문이 생전 마지막 길이었다는 게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고 김 전 대통령의 모교인 목포북교초등학교와 전남제일고(옛 목포상고) 정문에는 ‘삼가 김대중 전 대통령님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플래카드가 내걸렸다. ●생가·관공서 분향소 조문객 줄이어 신안군청 직원들은 관공선 2척을 타고 하의도로 들어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생가(후광리)에 분향소를 마련했다. 하의도 주민들은 인근 지역에서 조문객들이 몰려올 것에 대비, 음료와 음식을 마련하는 등 조문객 맞이에 매달렸다. 정연순(46) 하의도 부녀회장은 “마을과 면사무소 등에서 정수기를 가져다 조문객들이 마실 물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의도에 들어온 취재진도 슬퍼하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을 실시간으로 전했다. 목포여객선터미널과 목포역에는 촌로와 시민들이 텔레비전 앞에 모여들어 눈물을 글썽거리거나 줄담배를 피워가며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하의도 14개 섬마다 추모 플래카드 하의면사무소와 우체국·신안군청·목포시청·전남도청 등 전남지역 주요 관공서에는 일제히 조기가 내걸렸고, 분향소도 마련됐다. 하의도 14개 섬마다 면사무소와 중심가에 김 전 대통령의 서거를 추모하는 글귀를 적은 플래카드가 2개씩 내걸렸다. 김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박지원 의원의 목포 사무실과 민주당 전남도지부·광주시지부 등에 분향소가 마련돼 조문객들의 발길이 줄을 잇고 있다. 박종원(50) 하의면장은 “면사무소 회의실에 분향소를 마련해 인근 지역 주민들이 분향토록 했고 주민자치센터에도 기자실을 만들어 취재에 불편함이 없도록 조치했다.”고 밝혔다. 신안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정치적 고향 광주 표정 “할 일 태산같은데…” 시민들 눈시울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광주는 서거 소식이 전해진 직후 ‘결국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는 체념으로 일순간 적막감에 휩싸인 듯했다. TV 속보를 지켜보던 시민들은 ‘영원히 떠나가는 임’의 명복을 빌었다. 사무치는 슬픔을 가슴에 묻었다. 버스터미널에 나온 김영준(65)씨는 “민주화의 거목이 쓰러졌다.”며 “우리는 그분의 민주주의와 평화에 대한 신념을 큰 덕목으로 삼아야 한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광주는 김 전 대통령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김 전 대통령 자신도 그동안 “광주는 나를 키워주고 밀어주고 한없는 사랑을 줬다. 항상 빚을 짊어지고 있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1980년 5·18민주화운동으로 상처받은 시민들에겐 김 전 대통령이 ‘지역의 한’을 풀어줄 유일한 대안이었다. ‘김대중’은 ‘희망’이었다. 5·18유족회원 임근단(78)씨는 “그분이 1980년대 후반 처음으로 5·18묘지를 방문해 ‘내가 죽었어야 하는데, 여러분들이 죽었다.’며 어찌나 서럽게 눈물을 흘리시던지,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코끝이 찡하다.”며 기억을 더듬었다. 고 명노근 전남대 교수의 부인 안성례(70·오월 어머니집 관장)씨는 “그분의 회생을 빌며 새벽마다 기도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시민 문현석(48)씨는 “남북통일과 국민화합 등 아직도 할 일이 태산처럼 많으신데…. 너무 안타깝다.”며 말끝을 흐렸다. 광주시청사와 민주당 광주시지부 사무실 등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님의 명복을 빕니다’란 대형 현수막이 내걸렸다. 광주시청에 차려질 예정이던 분향소는 접근이 쉬운 광산동 옛 전남도청 건물에 마련됐다. ‘광주시민합동분향소’로 이름 붙여진 분향소는 시와 민주당 광주시당, 시민단체가 공동으로 운영한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김대중 前대통령 서거] 충성심으로 정통야당 명맥 지켰던 ‘동교동계’

    [김대중 前대통령 서거] 충성심으로 정통야당 명맥 지켰던 ‘동교동계’

    “동교동계라는 표현을 쓰지 마라. (동교동계는) 나로써 끝났다.”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지난 2003년 1월, 핵심측근들에게 엄명한 말이다. 대통령직 퇴임을 한 달 앞둔 때다. 그러나 한국 정치사에서 ‘동교동계’는 면면이나 영향력 면에서 계파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민주세력과 정통 야당의 명맥을 이어온 정치세력이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동교동계를 말할 때 김 전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을 빼놓기 어렵다. 한 핵심 측근은 18일 “배신자가 거의 없고 심지어 비판세력도 없다.”고 할 정도다. 그러나 이는 동교동계 인사들에게 오히려 부메랑으로 돌아왔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만큼 독자적 자생력이 없다는 뜻이다. 실제 김 전 대통령의 퇴임 후 동교동계는 이렇다 할 위상을 갖지 못한 채 각자도생하는 분위기다. ‘DJ의 사람들’은 비서 출신인 가신그룹과 재야그룹, 재임시절 관료그룹 등으로 구분지을 수 있다. 측근들은 폭을 넓히면 해외 친교그룹까지 포함할 수 있다고 말한다. 거슬러 올라가면 1960년대 김 전 대통령이 신민당 대변인 시절, 이용희 전 국회부의장과 함께 만든 ‘내외문제연구소’를 동교동계의 뿌리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정통 가신그룹은 김 전 대통령의 ‘40년 그림자’로 통하는 권노갑 전 민주당 상임고문과 한화갑 전 민주당 대표, 김옥두 전 의원이 1세대다. 한광옥 전 새천년민주당 대표와 남궁진·최재승·설훈 전 의원도 핵심 일원이다. 권 전 상임고문은 DJ의 고향 후배이자 목포상고(현 전남제일고) 후배로 지난 1963년 김 전 대통령의 비서관을 시작으로 평민당 총재 비서실장(1987년), 국민회의 총재 비서실장(1996년) 등을 지냈다. 권 전 상임고문이 “내가 죽으면 비석에 ‘김대중선생 비서실장’이라고 새겨주면 영광”이라고 한 말은 김 전 대통령과의 인연을 함축하는 것으로 통한다. 한화갑 전 대표는 ‘리틀 DJ’로 불린 측근 중의 측근이다. 1967년 6·8총선 때 김 전 대통령의 선거운동을 도우면서 인연을 맺은 뒤 김 전 대통령 공보비서(1975년), 김 전 대통령 특별보좌역(1987년), 새정치국민회의 총재특보단장(1999년)을 맡았다. 그러나 권 고문에 비해 직위에선 소외됐다. 김옥두 전 의원은 지난 1965년 김 전 대통령의 비서로 인연을 맺은 뒤 비서실 차장, 평민당 김대중 대통령후보 수행실장, 제14대 대통령선거 당시 김대중 후보 비서실 차장을 지냈다. 국민의 정부 시절 대통령비서실장을 지내고 DJP연대의 밀사 역할을 했던 한광옥 전 민주당 대표는 지난 4월 재·보궐선거에서 전주 완산갑에 도전장을 내밀었으나 민주당 공천을 받지 못했다.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미국 한인회총연합회장을 맡았던 때, 망명중이던 김 전 대통령과 만난 이후부터 30년 넘게 영원한 DJ맨으로 불렸다. 국민의 정부 청와대 비서실장과 공보수석, 문화부장관을 거쳤고 김대중 평화센터의 비서실장을 맡는 등 김 전 대통령의 곁을 끝까지 지켰다. 재야·지식인그룹은 김 전 대통령의 민주화 역정을 대변하는 인맥이다. 김 전 대통령은 유신철폐와 민주화를 촉구했던 1976년 3·1 민주구국선언을 계기로 재야그룹과 결합했다. 당시 박정희 정권은 선언서에 서명했던 김 전 대통령과 고 문익환·이해동 목사, 함세웅·문정현 신부 등을 구속기소했다. 김 전 대통령은 이때 고 문익환 목사와 첫 만남을 가지는 등 이 사건은 정치인 김대중과 재야 지식인을 연결해준 첫 고리가 됐다. 구혜영 홍성규기자 koohy@seoul.co.kr
  • [김대중 前대통령 서거] 균형성장 강조한 인간적 자본주의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경제 정책은 그의 저작이자 철학인 ‘대중경제론’을 빼놓고 말하기 어렵다. 1971년 대선 국면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조국 근대화론’에 맞서 첫 모습을 드러낸 대중경제론은 ‘지속가능한 경제’, ‘양적·질적 성장의 균형’을 핵심으로 한다. 수출주도 자본주의 산업화 대신 대중 및 민중의 역할과 가치가 회복된 시장경제 질서를 확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국민의 정부 출범 전후로 ‘DJ 노믹스’라는 경제 철학으로 구체화됐다. DJ 정부 첫 경제수석을 지낸 김태동(전 금융통화위원회 위원) 성균관대 경제학부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은 당선 직후 소감과 취임사 등을 통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함께 커가는 병행발전론을 일관되게 강조했다.”면서 “국내에서 경제 철학을 가진 첫 대통령이었다.”고 회상했다. 확고한 경제 철학은 당선 직후 불어닥친 외환위기의 조기 극복에도 큰 힘이 됐다. 김 전 대통령은 국제통화기금(IMF)과의 자금지원 합의를 통해 취임 뒤 불과 한 달만에 214억달러를 도입했다. 금융기관 단기외채에 대한 만기연장과 외국환평형기금채권 발행도 성공적으로 이어지면서 환율·금리 안정을 이끌어 냈다. 신속한 구조조정을 위해 64조원에 이르는 대규모 공적자금을 투입, 부실 금융사와 기업의 퇴출작업을 진행한 점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재벌의 독과점 폐해 견제와 재무구조 건전성 강화, 순환출자 및 상호지급보증 해소 등 시장경제 규율을 확립하는 조치들도 우리나라가 IMF체제에서 4년만에 벗어나는 밑거름이 됐다는 평가다. 외환위기 극복 이후 기초생활보장제의 첫 도입 역시 김대중 경제 정책의 대표적인 공적으로 손꼽힌다.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보장하는 동시에 일하면서 혜택을 받는 ‘생산적 복지’의 원형을 손수 빚었다.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는 복지 확충을 통한 내수시장 활성화가 필수적인 만큼, ‘인간적인 자본주의’라는 대중경제론의 원점으로 되돌아온 셈이다. 다만 재벌 계열 카드사들의 과당 경쟁을 막지 못해 발생한 2002년 카드대란은 그의 경제 정책의 큰 오점으로 남았다. 외국인 주식투자 한도 철폐와 노동시장 유연성 확대 등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은 국부(國富)의 해외 유출과 중산층 붕괴 등의 단초를 제공했다는 비판도 나오는 등 평가가 엇갈린다. 이두걸 이경주기자 douzirl@seoul.co.kr
  • ‘상상플러스’ DJ서거로 결방…‘다큐 3일’로 대체

    ‘상상플러스’ DJ서거로 결방…‘다큐 3일’로 대체

    KBS 2TV ‘상상플러스’가 18일 김대중 前 대통령의 서거로 결방된다. KBS 측은 18일 방송 예정이던 ‘상상플러스’ 대신 ‘다큐3일’을 방송하기로 결정했다. 김 전 대통령이 서거한 이날 방송 3사 가운데 유일하게 심야시간대 방송이 예정된 예능 프로그램이었던 ‘상상플러스’는 김보연, 남상미, 백지영, 서인영 등이 출연하는 ‘여름특집 2탄’을 방송할 예정이었다. 이외에도 KBS는 1TV ‘9시 뉴스’를 10분 늘려 70분으로 확대 편성했다. 또 뉴스 직후엔 당초 예정됐던 ‘시사기획 쌈’ 대신 김 전 대통령의 역정을 되돌아보는 보도특집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인동초의 삶과 꿈’이 방송된다. 한편 김대중(金大中.85) 前대통령은 지난달 13일 폐렴으로 신촌세브란스에 입원한 뒤 중환자실에서 집중치료를 받았지만 8월 18일 오후 1시43분 끝내 눈을 감고 말았다. 사진제공 = KBS 서울신문NTN 정병근 기자 oodless@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김대중 前대통령 서거] 세브란스병원에 임시 빈소

    18일 서거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빈소가 차려진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지하 2층 특1호에는 정·관계 등 각계각층 인사들은 물론 시민들의 애도물결이 이어졌다. 영안실 안에서는 고인의 둘째 아들 홍업씨가 상주로서 조문객들을 맞았다. 장남 홍일, 삼남 홍걸씨는 병원 20층에서 누워 있는 이희호 여사를 간호했다. 동교동계 인사들과 구(舊)민주계 인사들도 영안실을 지키면서 장례절차 등을 논의했다. 한명숙 전 국무총리, 문희상 전 국회부의장, 임동원·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원, 추미애 민주당 의원 등도 조문객들을 맞았다. 한 전 총리는 “좀 더 살아계셨더라면….”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직접 조문에 앞서 조화를 보냈다. 오후 7시 출국 예정이던 반기문 유엔사무총장도 일정을 바꿔 조문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부인 권양숙 여사는 이희호 여사에게 전화를 걸어 위로했다. 글 / 서울신문 이재연 허백윤기자 oscal@seoul.co.kr 영상 / 서울신문 나우뉴스TV 김상인VJ bowwow@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서태지 “김 前대통령 대중문화와 음악 사랑하신 분”

    서태지 “김 前대통령 대중문화와 음악 사랑하신 분”

    가수 서태지(37)가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에 애도의 뜻을 표했다. 서태지는 18일 소속사를 통해 “(김 전 대통령은)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인권신장, 그리고 평화를 위해 평생을 헌신하신 분. 특히 대한민국 젊은 세대의 ‘대중문화’와 ‘음악’을 사랑해주신 분으로 ‘존경’과 함께 안타까운 마음으로 ‘조의’를 표합니다.”라는 추모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서태지는 대중 문화를 사랑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아꼈던 대표적인 대중 예술인. 김 전 대통령은 생전 서태지를 ‘가요계의 대통령’으로 부르며 그에게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사진제공 = 서태지 컴퍼니 서울신문NTN 우혜영 기자 woo@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이준기 “애통한 2009년, 큰 별들이 지다” 애도

    이준기 “애통한 2009년, 큰 별들이 지다” 애도

    영화배우 이준기가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에 애도를 표했다. 이준기는 서거 소식이 전해지자 미니홈피에 국화 사진을 띄우고 “근조(謹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짧은 글귀로 애도를 나타냈다. 또 이준기는 지난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지 3개월 만에 날아든 전 대통령 서거 소식에 비통함을 느끼는 듯 보였다. 그는 “애통한 2009년, 큰 별들이 지다. 민주주의를 위해 평생을 헌신하신 고인의 뜻은 국민들의 가슴 속에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라는 글을 남겼다. 이준기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당시에도 “사랑합니다.”라고 적고 슬픔을 드러낸 바 있다. 이에 몇시간 앞서 가수 서태지도 “김 전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인권신장, 그리고 평화를 위해 평생을 헌신하시고 특히 대한민국 젊은 세대의 ‘대중문화’와 ‘음악’을 사랑해주신 분”이라면서 “‘존경’과 함께 안타까운 마음으로 ‘조의’를 표한다”고 비통한 마음을 전한 바 있다. 한편 지난 달 13일 병원에 입원한 김 전 대통령은 한달 여 동안 병상에서 힘겨운 사투를 벌였지만 이날 오전 혈압과 산소포화도가 급격히 떨어졌고 오후 1시 43분 끝내 절명했다. 사진=이준기 미니홈피 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김대중 전 대통령 18일 오후 1시43분 서거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을 지낸 김대중(金大中·85) 전 대통령이 18일 오후 1시 43분 서거했다. 지난달 13일 폐렴으로 입원한 김 전 대통령은 한달간 힘겨운 사투를 벌였으나 끝내 회복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은 기자회견에서 “다발성 장기부전으로 인해서 심장이 멎으셨고, 급성호흡곤란 증후군과 폐색전증 등을 이겨내지 못해 서거하셨다.”고 공식 발표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TV 김상인VJ bowwow@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방한 크렉 데이빗 “DJ 서거 애도 무대 가질 것”

    방한 크렉 데이빗 “DJ 서거 애도 무대 가질 것”

    영국의 R&B 가수 크렉 데이빗이 한국을 방문해 김대중 前대통령 서거로 슬픔에 빠져있는 한국 국민들에게 위로의 말을 전했다.18일 오후 4시 30분 인천공항을 통해 가수 크렉 데이빗(Craig Ashley David)이 ‘현대카드 슈퍼콘서트V-크렉 데이빗 내한공연’을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청바지에 가죽점퍼와 선글라스로 멋을 내고 등장한 크렉 데이빗은 입국 후 가진 인터뷰에서 “도착해 비보를 접했다. 김대중 前대통령에게 조의를 표한다.” 며 “슬픔에 빠져있는 국민과 가족들에게도 위로의 말을 전한다.”고 말했다.또 “그를 위한 애도의 무대를 가지고 싶고, 슬픔에 빠진 많은 사람들이 나의 무대를 보며 에너지를 얻어갈 것”이라고 덧붙였다.크렉 데이빗은 이번 공연에서 휘성이 국내에서 리메이크하여 큰 인기를 모은 ‘Insomnia’를 비롯해 스팅(Sting)과 함께 해 더욱 주목을 받았던 ‘Rise & Fall’, ‘Fill Me In’, ‘7days’등 환상적인 레퍼토리를 선보일 예정이다.’현대카드 슈퍼콘서트V-크렉 데이빗 내한공연’은 19일 오후 8시 서울 올림픽공원 내 올림픽홀에서 화려하게 펼쳐진다.서울신문NTN 강정화 기자 kjh@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해외언론 “민주화의 상징, 김 前대통령 서거”

    해외언론 “민주화의 상징, 김 前대통령 서거”

    대한민국 제 15대 대통령을 지낸 김대중 전 대통령이 18일 오후 서거하자 외신도 발 빠르게 소식을 전하고 있다. 중국 신화통신은 김 전 대통령의 서거소식이 알려진 직후 인터넷판 톱기사로 ‘김대중 전 한국 대통령이 서거했다.’고 보도했다. 신화통신은 김 전 대통령의 출생부터 서거까지의 일대기를 자세히 소개하며 애도의 뜻을 표했다. 이 통신은 “김 전 대통령은 1998년 11월 중국과 국사(國事)를 논의하려 중국을 방문한 이후 여러 차례 방중했다.”면서 “특히 2009년 5월에는 중국인민외교학회의 초청을 받아 강연을 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뉴스전문사이트 ‘중궈왕’(china.com)도 김 전 대통령의 서거소식을 전하며 “그는 한국 민주화의 불굴의 상징이었다.”면서 “어려운 경제위기를 단시간 안에 회복했고, 한국을 IT선진국으로 이끈 대통령이었다.”고 전했다. 이어 “외교방면에서는 북한에 ‘햇볕정책’을 펼치며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회담에 이끌어내는데 성공했고, 이로써 남북관계의 긴장을 완화하고 경제융합을 이루는데 긍정적인 작용을 했다.”고 덧붙였다. 미국 언론도 발 빠르게 소식을 전했다. LA타임스는 서울발 장문의 기사를 싣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향년 85세로 서거했다.”면서 “과거 군사정권 하에서 자행된 사형선고와 암살기도에도 살아남은 반정부 인사이며 북한에 유례없는 ‘햇볕정책’으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인물”이라고 소개했다. 이어 “일부 서구인들은 김 전 대통령을 ‘아시아의 넬슨 만델라’라고 추앙하지만 오히려 자국민들에게는 상대적으로 인색한 평판을 받았다.”고 언급해 눈길을 모았다. 영국 BBC 방송은 김 전 대통령을 “(한국의) 역사를 쓴 인물”이라고 소개했다. 또 “한 평생을 민주화와 북한 관계 회복에 바쳤으며, 수차례 암살 시도와 사형 선고와 고문에도 살아남았다.”고 전하며 김 전 대통령의 ‘인동초의 삶’을 조명했다. 일본의 주요일간지인 요미우리와 아사히 신문도 각각 인터넷판 톱기사로 고인의 서거 소식을 실시간으로 보도했다. 이밖에도 중동 알자지라 방송과 워싱턴 포스트, CNN 방송 등 많은 매체들 역시 이를 전하며 관심과 애도를 표하고 있다. 사진=신화통신, CNN, BBC 캡처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강경윤 기자 huimin0217@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객원칼럼] 광대를 위한 변명/김무곤 동국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객원칼럼] 광대를 위한 변명/김무곤 동국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당신하고 당신 딸들은 정말 피붙이인가요? 딸들은 내가 진실을 말한다고 매질을 하려고 대들고, 당신은 내가 거짓말을 하면 매질한다고 으름장을 놓거든요. 말을 안 하면 말을 안 한다고 매 맞을 테지? 그러니 이젠 무슨 짓을 해먹든 바보광대는 면해야겠어.” 셰익스피어의 비극 ‘리어왕’에 나오는 대사다. 왕에게 이렇게 직설적인 언어를 쏟아부어도 목이 잘리거나 저잣거리에 매달리지 않아도 되는 것은 화자(話者)가 바로 광대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하는 대사는 대개 썰렁하다. 그 썰렁함이 객석으로 번져서 관중의 가슴을 서늘하게 한다. 관중은 깨닫는다. 광대는 바보나 미치광이가 아니라는 것을. 아니, 비극의 양쪽 끝으로 치닫고 있는 극중 인물들 중에 오직 광대만이 제정신이라는 사실을. 이 시대의 출중한 광대들이 대거 동원된 한 편의 연극이 여름의 한국 논단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한 미국산 쇠고기 수입유통업자가 “악의적 발언과 MBC ‘PD수첩’의 왜곡 보도로 매출액이 감소한 데 대해 3억원을 배상하라.”며 영화배우 김민선씨와 MBC를 상대로 손해 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한다. 이어 한나라당의 한 의원이 광우병과 관련한 연예인의 발언을 문제 삼는다. “김민선의 발언은 과학적인 사실을 근거로 하지 않은 주장이기에 책임을 져야 한다”. 이에 다른 배우가 나타나서 반박을 한다. 이때, 셰익스피어극 광대의 그것처럼 직설적인 대사를 주로 쓰는 보수논객이 갑자기 등장한다. 대사는 이렇다. “지금까지 등장한 배우들은 사회적 의견을 개진할 지적 수준이 안 된다.” 무대 뒤에서 숨죽여 바라보고 있던 또 다른 남자배우가 나선다. 그는 이른바 국민배우다. 관중석이 술렁였다. ‘지적수준’ 사행시로 논객의 발언을 풍자한다. 가슴 아프다. 한국 보수의 천박함과 인색함이여. 광대들을 적으로 돌리다니. 너무 둔감한 것인가. 아니면 오버하는 것인가. 언젠가는 미네르바라는 이름의 ‘인터넷 광대’를 단죄한다고 해서 웃음도 안 나오는 희극을 연출하더니, 이제는 진짜 본물(本物) 광대들을 몰아붙이고 있다. 쇠고기 수입업자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 아니다. 그러나 이 소동은 나라에도 정부에도 보수진영에도 한나라당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헛다리 짚기다. 사법적인 판단은 사법부에서 내릴 일이다. 그러나 이 소동이 촛불집회, 노무현 대통령 서거, 쌍용차 사태 등을 겪으면서 이제 겨우 사회 갈등의 불씨를 수습하고 있는 한국사회에 기름을 확 부어버리는 비극이 될까 걱정이다. 연극에 광대가 필요하듯 사회에도 광대의 역할이 있다. 그들은 우리를 기쁘게 하고, 우리를 쉬게 하고, 우리 대신 부상(浮上)하고 우리 대신 추락한다. 이런 의미에서 광대들이 가지는 표현의 자유는 일반인의 그것보다 훨씬 더 넓게 보장되어야 한다. 광대의 가장 큰 존재 의미가 풍자(諷刺)이기 때문이다.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풍자를 말하는 자 죄 없으며 이를 듣는 자 훈계로 삼을 가치가 있다.”라고 했다. 안동의 하회탈춤 역시 양반에 대한 광대들의 질펀한 풍자가 압권이다. 하지만 하회탈춤이 지금까지 번성할 수 있었던 것은 막강한 세도가문 풍산 류씨의 재정지원 덕분이었다. 양반들을 풍자하는 연희(演戱)를 양반 자신들이 지원하는 넉넉한 사회정신을 우리 사회가 계승해야 한다. 광대의 말을 무시하다가 완전히 몰락한 리어왕에게 광대가 말했다. “금관을 줘버린 것은 그대 골통 속에 지혜가 없어서이지.” 김무곤 동국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 [무슨 영화 볼까]

    ■ 4교시 추리영역(공포, 스릴러/15세 관람가) 감독 이상용 줄거리 4교시 체육시간. 빈 교실을 지키던 우등생 정훈(유승호)은 자신이 자리를 비운 사이 태규가 교실에서 죽어있는 것을 발견한다. 태규는 평소 그와 앙숙처럼 지내던 친구. 모든 정황으로 봤을 때 정훈은 유일한 용의자로 몰릴 가능성이 높다. 당황하는 그를 반에서 왕따인 다정(강소라)이 돕겠다고 나선다. 억울한 누명을 쓰지 않을 방법은 4교시가 종료하기 전까지 범인을 찾는 길밖에 없다. 감상 추리물로서의 기본기조차 갖추지 못했다. ‘국민 남동생’ 유승호의 키스신밖에 남는 게 없다. ■ 아이스 에이지 3:공룡시대(애니메이션/전체 관람가) 감독 카를로스 살다나, 마이크 트메이어 줄거리 얼음이 녹는 위기를 함께 이겨낸 빙하기 친구들은 아기 맘모스 탄생을 앞두고 들떠 있다. 시드는 자신에게도 가족이 생겼으면 하는 욕심에서 공룡 알을 훔치고 만다. 위험에 처한 시드. 그를 구하기 위해 빙하기 친구들은 얼음 속 야생 세계 속으로 들어가는데 곳곳마다 거대한 공룡들의 위협이 도사리고 있다. 공룡 사냥꾼 벅은 이들을 새로운 모험으로 이끈다. 감상 어린이들의 피서거리로 손색없는 3D 애니메이션.
  • [여의도 블로그] 위중한 DJ와 정치 공방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위중한 병세가 정치의 다양한 모습들을 투영하고 있다. 우선 그가 입원 중인 신촌 세브란스병원은 정치인들의 ‘해후’의 장이 되고 있다. 수십년 반목을 이어온 상도동계와 동교동계도 ‘화해’의 모습을 연출했다. 그러나 역시 정치 공방의 소재로도 활용됐다.민주당은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해 앞서 한나라당 지도부가 병문안을 간 것에 대해 고마움을 표시하면서도 ‘진정성’을 거론했다. 12일 열린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송영길 최고위원은 “김 전 대통령의 쾌유를 비는 마음들이 진정성을 가지려면 그의 집권기를 잃어버린 시간으로 폄훼한 것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난 김대중·노무현 정권 시절에 합의했던 6·15, 10·4 선언이 계승돼 이번 8·15를 계기로 남북관계가 개선되길 바란다.”고도 주문했다.그는 “김 전 대통령의 병세 악화 원인은 노 전 대통령의 서거 등 심적 고통이었다.”면서 김 전 대통령이 ‘내 몸의 반쪽을 잃은 것 같다.’고 표현했던 것을 근거로 들었다.김유정 대변인도 브리핑에서 “민생 쇼에 이은 병문안 쇼가 아니라면 김 전 대통령에 대한 반인륜적 발언에 대한 진정성 있는 사과부터 하는 게 도리”라고 꼬집었다. 그동안 여권에서 김 전 대통령에 대해 ‘돈키호테·심신허약·아프리카 후진국의 반군 지도자’라는 등의 발언을 쏟아낸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한나라당 공성진 최고위원은 이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잃어버린 10년’ 표현과 관련, “정치인들이 좀 더 과장된 표현을 통해 자기 진영의 사람들에게 강한 이미지를 심으려고 하는 차원이 있다.”면서 “많은 정치학자들이 특히 이분의 민주화에 대한 열정, 남북관계에 대한 새로운 접근 등은 평가받아야 된다는 얘기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한편 일부 동교동계 인사들은 김 전 대통령과의 인연을 내세우며 ‘적통(嫡統)’ 경쟁을 벌여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한 측근은 “지도자의 위중에 따른 불안정한 심정이 잘못 표출된 것일 뿐”이라며 큰 의미를 두진 않았다.허백윤기자 baikyoon@seoul.co.kr
  • ‘박정희 기념관’ 세운다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업적을 기리는 기념관이 건립된다. 기념관의 공식명칭은 정치적인 논란 가능성을 감안해 ‘설립자 박정희 과학기술 기념관’이 될 전망이다. 12일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동문회는 KIST 설립자인 박 전 대통령의 서거 30주년을 맞아 국제게스트하우스(International Guest House) 형식의 기념관을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에 있는 KIST 부지내에 건립할 계획을 세웠다고 밝혔다. KIST는 1965년 5월 베트남 파병에 대한 보답의 자리로 마련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박 전 대통령이 미국에 공업기술 및 응용과학 연구기관 지원을 요청, 한·미 대통령 공동성명으로 이듬해 2월 건립됐다. 기념관에는 박 전 대통령의 동상이 들어설 예정이다. 기념관은 4~5층 정도의 규모로 지어질 것으로 보인다. 제16대 KIST 원장이었던 박원훈(69) 동문회 회장은 “설립 비용은 100억원 정도로 예상하며 ‘KIST 연우회’라는 비영리법인 등록이 완료되면 모금에 돌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영준기자 apple@seoul.co.kr
  • ‘애증의 50년’… DJ - YS 역사적 화해

    ‘애증의 50년’… DJ - YS 역사적 화해

    죽음의 문턱에서야 풀린 50년 애증의 한(恨). ‘이제 화해한 것으로 봐도 되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김영삼(YS) 전 대통령은 굳은 표정으로 “이제 그렇게 봐도 좋다. 그럴 때가 됐다.”고 말했다. 10일 오전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병문안을 마치고 나오는 길이었다. YS는 DJ를 직접 위문하지는 못했다. 이에 앞서 YS를 맞은 DJ 부인 이희호 여사는 “염려해 주시고 와주셔서 감사하다.”면서 “오셨다는 말씀을 들으면 위로가 될 것”이라고 감사의 뜻을 표했다. 반세기를 이어온 한국 정치사 두 거목 간의 반목은 이렇게 청산됐다. YS는 이날 “(DJ는) 나와는 가장 오랜 경쟁관계이고 협력관계”라면서 “세계에서 유례없는 특수한 관계”라고 말했다. 또 “둘이 합쳐 한국 민주주의를 이룩하는 데 큰 힘을 쏟았다. 목숨 걸고 싸웠다.”면서 정적이자 동지인 DJ를 회고했다. 내내 침통한 표정이었다. 협력과 반목을 거듭하던 두 거목은 1997년 결정적으로 갈라서게 된 것으로 알려진다. 문민정부 말기 터져 나온 YS 차남 현철씨의 비리 사건이 화근이었다. YS는 DJ가 조속히 사면해줄 것으로 기대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앞서 97년 DJ의 비자금 의혹에 대해 수사유보를 결정하며 민주화 동지의 대선 승리에 길을 터줬다고 생각해온 YS는 DJ의 늑장(?) 사면을 ‘배신 행위’로 여겼다. YS의 독설이 늘어간 것도 이때부터다. DJ의 노벨상 수상 소식에도 “상의 가치가 떨어졌구먼….”이라며 깎아내렸다. 지난 6월 DJ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직후 이명박 정부를 ‘독재’로 규정하자 “그 입을 닫으라.”고 했다. DJ는 묵묵부답, 무대응 전략으로 일관했다. DJ는 이날 위중한 병세로 YS에 직접 화답하지는 못했다. 대리인격인 권노갑 전 의원이 “이번 일을 계기로 화해 문제가 해소됐다.”며 사의를 전달했다. YS의 차남인 김현철 여의도연구소 부소장은 “아버지가 대승적으로 생각해 더 이상 늦춰서는 안 되겠다 싶어서 가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청와대와 여야 정치권은 DJ의 병세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9일 병세 악화 소식을 접한 청와대는 이명박 대통령의 10일 일정을 전격 취소하는 등 민감하게 반응했다. 당초 이날 전남 여수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여수세계박람회 D-1000일’ 행사에 참석하려 했으나 청와대는 DJ의 병세에 따라 “이 대통령이 갈 수 없다.”는 뜻을 여수세계박람회 측에 통보했다. 8·15 전후로 예정됐던 개각과 청와대 개편도 상당기간 늦춰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날 여야 정치권도 병문안을 위해 줄줄이 신촌 세브란스병원을 찾았다.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는 오전 10시20분쯤 공성진·박순자 최고위원, 윤상현 대변인 등과 함께 이희호 여사를 위로했다. 민주당 정세균 대표, 송영길·김민석·안희정·장상 최고위원 등은 병원에서 쾌유를 비는 예배를 했다. 김형오 국회의장과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는 이 여사를 만나 DJ의 쾌차를 기원했다. 한편 병원 측은 “이날 새벽부터 혈압과 맥박 등 건강 수치가 일정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면서도 “고령에 지병으로 신체 기능이 서서히 저하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홍성규 김지훈 오달란기자 cool@seoul.co.kr
  • [2010년 지방선거 D-300]영·호남 출마예상자

    [2010년 지방선거 D-300]영·호남 출마예상자

    전국 단위 선거에서 ‘텃밭’ 사수는 여야 모두에 승리의 기반이 된다. 승패의 관건인 수도권 못지않게 고정 지지 기반을 빼앗기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은 영남 불패를, 민주당은 호남 장악을 기본 목표로 삼고, 덤으로 상대의 ‘안방’을 노린다. 여기에 한나라당 내 친이-친박 싸움, 민주당 내 공천 개혁 기류, 친노(親) 진영의 도전이 맞물려 복잡한 함수관계를 그릴 전망이다. ▶▶부산·울산·경남 내년 지방선거의 비 수도권 지역중 대표적인 격전지로 꼽힌다. 이제까지 한나라당의 텃밭으로 분류됐지만 현 정부 들어 지지율 하락세가 뚜렷하다. 특히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노풍(風)’이 재점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현 정부의 대구·경북(TK) 편중인사로 인해 상대적 박탈감도 크다. 핵심 당직자는 6일 “정권 초기부터 하락세가 완연하던 당 지지율이, 부산이 정치적 고향인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계기로 뚝 떨어졌다.”면서 “대구·경북과는 확실히 분위기가 다르다.”고 전했다. ●큰 인물론에 친노 바람 솔솔 부산에서는 한나라당 허남식 시장이 3선에 도전할 것이 유력하지만 같은 당 중진 의원들이 도전의사를 밝히고 있어 긴장감이 팽팽하다. “중앙권력에서 소외됐다.”는 민심이 “이번엔 ‘큰 인물’을 뽑자.”는 쪽으로 흐르고 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장을 맡고 있는 친박 서병수 의원의 도전이 거세다. 출마 의사를 굳힌 것으로 알려진 그는 “좀 지켜보겠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이 지역의 다른 친박 중진인 김무성·허태열 의원과의 입장 정리가 남았기 때문이다. 친이 핵심인 안경률 의원도 거론된다. 친노(親) 인사들도 대항마로 떠오른다. 노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 출신인 문재인 변호사가 강력한 후보로 꼽힌다. 문 변호사가 “정치에 뜻이 없다.”고 밝혔지만,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조직적인 출마 요구가 나오고 있다. 참여정부 시절 해양수산부 장관을 지낸 오거돈 한국해양대 총장도 거론된다. 진보신당에서는 김석준 시당위원장이 3수에 도전할 것으로 보인다. ●현지사에 장관·리틀 노무현 도전 경남에서는 한나라당 김태호 지사의 3선 도전에 빨간 불이 켜진 상태다. 젊고 참신한 인물로 ‘최고경영자(CEO) 도지사’ 이미지를 가진 김 지사가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 사건에 연루돼 수사를 받으면서다. 개혁적 이미지가 상당부분 훼손됐다는 게 지역 정가의 평이다. 이 틈을 비집고 이달곤 행정안전부 장관과 박완수 창원시장이 거론된다. 황철곤 마산시장도 출마를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해군수 출신의 하영제 농림부 제2차관도 유력한 후보군 중 한 명이다. 친노 인사로는 ‘리틀 노무현’인 김두관 전 행자부 장관이 거론된다. ●진보 표심 잡는 게 관건될 듯 울산에서는 한나라당 박맹우 시장의 3선 도전 속에 같은 당 정갑윤·강길부 의원의 출마설이 나온다. 민주당에서는 임동호 시당위원장과 심규명 전 시당위원장이 거론된다. 차의환 울산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 송철호 전 국민고충처리위원회 위원장도 자천타천으로 이름이 나온다. 진보진영에서는 민주노동당 김창현 시당위원장과 진보신당 노옥희 시당위원장이 출마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4월 재선거에서 진보신당 조승수 의원의 당선으로 표출된 민심이 내년 선거에서도 이어질지 주목된다. 김지훈 허백윤기자 kjh@seoul.co.kr ▶▶대구·경북 대구·경북은 한나라당이 1995년 민선 1기 지방선거 이후, 전신인 민자당을 포함해 한 차례도 시·도지사 자리를 빼앗긴 적이 없는 곳이다. 그만큼 본선보다 당내 공천 경쟁이 치열하다. 친박 성향이 강하다는 특징도 갖고 있다. 내년 선거에서 친박 인사들이 얼마나 위력을 보일지가 핵심 포인트로 꼽힌다. ●비(非)경북고 친박 핵심 통할까 대구에서는 비교적 중립 성향인 한나라당 김범일 시장이 재선을 노리는 가운데 같은 당 의원들의 도전이 거세다. 친박 핵심인 서상기 의원과 강재섭 전 대표와 가까운 이명규 의원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서 의원은 이 지역의 ‘박근혜 정서’를 등에 업고 강력히 도전할 태세다. 통상 지역 의원들이 1년씩 돌아가며 맡는 시당위원장을 서 의원이 최근 연임한 것도 이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서 의원은 2006년 대구시장 후보를 선출하는 당내 경선에서 김 시장과 맞붙어 큰 표 차이로 패한 경험이 있다. 당시 주변에서는 서 의원의 패인으로 ‘비(非) 경북고 출신’을 꼽은 사람이 많았다. 서 의원은 경북중을 졸업해 경기고를 나왔다. 반면 김 시장을 포함한 역대 민선 대구시장은 예외없이 경북고 출신이다. 대구고 출신의 이 의원은 시당위원장 자리를 놓고 서 의원과 경쟁하다가 막판에 양보했다. 대구시장을 노린 행보라는 해석이 뒤따른다. 경북고 출신의 이한구 의원도 거론된다. 이 의원은 서 의원이 시당위원장으로 선출될 때 “시당위원장을 하면서 지방선거에 나서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점을 들어 지역 정가에서는 서 의원이 도전장을 내면 이한구 의원도 가세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민주당에선 이재용 전 환경부 장관,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 등이 오르내리고 있다. ●경북, 친이가 친박에 도전장 경북에서는 친박 성향의 한나라당 김관용 지사에 맞서 친이 진영의 도전이 거세다. 포항시장을 지낸 친이계의 정장식 중앙공무원연수원장이 ‘리턴 매치’에 나선다. 김 지사는 구미, 정 원장은 포항 출신이다. 정 원장은 2006년 당내 도지사 경선에서 김 지사에게 패한 뒤 3년간 와신상담했다. 친이 쪽에서는 권오을 전 의원도 거론된다. 민주당에선 참여정부에서 교육부총리를 지낸 윤덕홍 최고위원의 이름이 오르내린다.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광주·전남·전북민주당의 텃밭으로 공천 경쟁이 치열할 전망이다. 정세균 대표가 시사한 ‘공천 물갈이’도 관전 포인트다. ●박광태 3선에 강운태 등 각축 광주시장 예비 후보자로 거론되는 인사는 10명을 넘는다. 민주당에서는 박광태 시장이 3선을 노린다. 지역현안인 2015년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회를 유치하면서 탄력을 받고 있다. 여기에 강운태 의원이 강력한 대항마로 떠오르고 있다. 광주시장과 내무부장관을 지낸 경력에 최근 복당으로 더욱 힘을 얻고 있다. 박주선 최고위원과 김동철·이용섭 의원도 거명된다. 한나라당은 광주 출신 인사를 내세워 표심(票心)을 두드릴 참이다. 정용화 청와대 연설기록비서관과 김태욱 시당위원장 등이 거론된다. 민주노동당에서는 오병윤 사무총장, 강기수 현 시당위원장, 장원섭 전 시당위원장 등이 출마를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동영 복당·새만금편지 등 변수 전북에서는 민주당 김완주 지사가 재선에 나선다. 김 지사가 대통령에게 보낸 ‘새만금 감사 편지’나 무소속 정동영 의원의 복당 문제가 변수로 작용할지 주목된다.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과 재정경제부 장관을 지낸 강봉균 의원과 옛 민주계의 중심인 한광옥 상임고문도 거론된다. 정읍 출신의 무소속 유성엽 의원은 ‘정동영-신건’ 무소속 연대의 주자로 거론된다. ●박준영·주승용·이석형 3파전 민주당 박준영 전남지사가 3선에 도전할 것이 확실시된다. 여수 출신으로 도당위원장을 맡고 있는 주승용 의원도 주목받고 있다. 최근 민주당에 복당한 이석형 함평군수도 높은 지명도와 농민단체의 지지를 업고 출마를 저울질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나라당에서는 김기룡 도당위원장을 비롯해 지역출신 관료들을 중심으로 적임자를 물색하고 있다. 허백윤기자 baikyoo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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