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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안함 폭침’ 주도 北 김격식 사망

    ‘천안함 폭침’ 주도 北 김격식 사망

    ‘천안함 폭침 사건’의 배후로 지목된 김격식(77) 북한 육군 대장이 지난 10일 0시 30분 급성호흡부전으로 사망했다고 노동신문이 11일 보도했다. 김격식은 2010년 3월 천안함 폭침 사건 당시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담당하는 북한군 4군단장으로 활동하며 김영철 군 정찰총국장과 함께 이 사건을 주도한 인물로 알려졌다. 김격식은 천안함 사건 이후 인민무력부장과 군 총참모장 등 군부 최고 요직을 모두 거치며 출세 가도를 달렸다. 특히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절부터 오랫동안 야전사령관으로 이름을 떨쳤던 그는 김정은 체제가 들어선 이후 김 국방위원장 시절 원로 군인이 대거 한직으로 물러나는 상황에서도 유일하게 살아남아 세대교체의 공간을 메우는 역할을 했다. 그는 2012년 인민무력부장에 올랐으며 2013년 5월 군 총참모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같은 해 9월 리영길 현 총참모장에게 자리를 내주고 다시 군단장으로 물러났다. 김격식은 지난해 1월 말 김 제1위원장과 함께 항공육전병 야간 훈련을 참관하는 등 김정은 체제의 핵심 인물로 활약했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시원해요, 꿀꿀~”...새끼 돼지들 ‘다이빙수영대회’

    “시원해요, 꿀꿀~”...새끼 돼지들 ‘다이빙수영대회’

    "재밌어요, 꿀꿀~" 이보다 더 ‘희귀한 수영대회’가 또 있을까? 중국 후난성 창사에서는 보기 드문 광경이 펼쳐졌다. 돼지 10마리가 고공에서 다이빙을 하는것도 모자라, 시원한 강물을 헤엄치는 장면이 포착된 것. 아직 성체가 되기 전인 새끼돼지들은 시원한 물로 뛰어든 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물살을 헤쳤다. 후난르바오의 4일자 보도에 따르면, 현지시간으로 지난 1일 창사시의 한 돼지 농장 인근에서는 돼지들이 ‘인솔자’를 따라 높은 다리 위로 올라간 뒤 차례로 다이빙을 하고 냇물을 헤엄치는 경기가 진행됐다. 냇가에는 돼지들의 경로이탈을 막는 대나무가 띄워져 있고, 등에 등번호를 새긴 돼지들은 물살을 가로지르며 수영실력을 뽐냈다. 이 돼지들은 이번 수영 경기를 위해 특별 훈련을 받아왔으며, 현장에는 이색 수영경기를 보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이번 돼지 다이빙 수영대회는 중국의 대명절 중 하나인 노동절을 기념해 열렸다. 후난성 뿐만 아니라 푸젠성 등지에서도 열린 바 있으며, 매년 많은 관광객이 몰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부분 새끼돼지들만 참가하며, 이 ‘선수’들은 다이빙과 수영과 더불어 장애물 경기, 재주부리기 경기 등에도 참가한다. 일명 ‘돼지 운동회’라고도 불리는 이 행사에 참가하는 새끼돼지들은 생후 2개월 때부터 이 시합을 위해 훈련에 들어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나우! 지구촌] 새끼 돼지들의 다이빙수영대회

    [나우! 지구촌] 새끼 돼지들의 다이빙수영대회

    이보다 더 ‘희귀한 수영대회’가 또 있을까? 중국 후난성 창사에서는 보기 드문 광경이 펼쳐졌다. 돼지 10마리가 고공에서 다이빙을 하는것도 모자라, 시원한 강물을 헤엄치는 장면이 포착된 것. 후난르바오의 4일자 보도에 따르면, 현지시간으로 지난 1일 창사시의 한 돼지 농장 인근에서는 돼지들이 ‘인솔자’를 따라 높은 다리 위로 올라간 뒤 차례로 다이빙을 하고 냇물을 헤엄치는 경기가 진행됐다. 아직 성체가 되기 전인 새끼돼지들은 시원한 물로 뛰어든 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물살을 헤쳤다. 냇가에는 돼지들의 경로이탈을 막는 대나무가 띄워져 있고, 등에 등번호를 새긴 돼지들은 물살을 가로지르며 수영실력을 뽐냈다. 이 돼지들은 이번 수영 경기를 위해 특별 훈련을 받아왔으며, 현장에는 이색 수영경기를 보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이번 돼지 다이빙 수영대회는 중국의 대명절 중 하나인 노동절을 기념해 열렸다. 후난성 뿐만 아니라 푸젠성 등지에서도 열린 바 있으며, 매년 많은 관광객이 몰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부분 새끼돼지들만 참가하며, 이 ‘선수’들은 다이빙과 수영과 더불어 장애물 경기, 재주부리기 경기 등에도 참가한다. 일명 ‘돼지 운동회’라고도 불리는 이 행사에 참가하는 새끼돼지들은 생후 2개월 때부터 이 시합을 위해 훈련에 들어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포토] 새끼 돼지들의 다이빙수영대회 포착

    [포토] 새끼 돼지들의 다이빙수영대회 포착

    이보다 더 ‘희귀한 수영대회’가 또 있을까? 중국 후난성 창사에서는 보기 드문 광경이 펼쳐졌다. 돼지 10마리가 고공에서 다이빙을 하는것도 모자라, 시원한 강물을 헤엄치는 장면이 포착된 것. 후난르바오의 4일자 보도에 따르면, 현지시간으로 지난 1일 창사시의 한 돼지 농장 인근에서는 돼지들이 ‘인솔자’를 따라 높은 다리 위로 올라간 뒤 차례로 다이빙을 하고 냇물을 헤엄치는 경기가 진행됐다. 아직 성체가 되기 전인 새끼돼지들은 시원한 물로 뛰어든 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물살을 헤쳤다. 냇가에는 돼지들의 경로이탈을 막는 대나무가 띄워져 있고, 등에 등번호를 새긴 돼지들은 물살을 가로지르며 수영실력을 뽐냈다. 이 돼지들은 이번 수영 경기를 위해 특별 훈련을 받아왔으며, 현장에는 이색 수영경기를 보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이번 돼지 다이빙 수영대회는 중국의 대명절 중 하나인 노동절을 기념해 열렸다. 후난성 뿐만 아니라 푸젠성 등지에서도 열린 바 있으며, 매년 많은 관광객이 몰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부분 새끼돼지들만 참가하며, 이 ‘선수’들은 다이빙과 수영과 더불어 장애물 경기, 재주부리기 경기 등에도 참가한다. 일명 ‘돼지 운동회’라고도 불리는 이 행사에 참가하는 새끼돼지들은 생후 2개월 때부터 이 시합을 위해 훈련에 들어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본지 전신 대한매일신보 창간 주역 배설 선생 서거 106주기 경모 대회

    본지 전신 대한매일신보 창간 주역 배설 선생 서거 106주기 경모 대회

    ‘배설 선생 서거 106주기 경모 대회’가 1일 서울 마포구 양화진 성지공원에서 열린 가운데 사단법인 배설선생기념사업회의 정성화 상임감사가 추모 발언을 하고 있다. 영국 출신의 배설 선생은 1904년 민족지도자 박은식, 양기탁, 신채호 선생과 함께 대한매일신보(현 서울신문)를 창간해 항일 언론 투쟁을 벌였다. 박지환 기자 popocar@seoul.co.kr
  • 말로, 그의 발 닿는 곳마다 다른 바람이 불다

    말로, 그의 발 닿는 곳마다 다른 바람이 불다

    앙드레 말로 평전/장 라쿠튀르 지음/김화영 옮김/김영사/652쪽/2만 5000원 ‘인간의 조건’, ‘정복자’ 등 문학사에 길이 남은 걸작을 남긴 뛰어난 문인이자 샤를 드골 프랑스 대통령의 측근으로 문화부 장관을 지낸 프랑스의 대표 지성 앙드레 말로(1901~1976)는 “나의 모든 소설 중 최고의 소설은 바로 나의 삶”이라고 했다. “오직 나 개인에게만 중요한 것이 무슨 중요성이 있겠는가”라며 문학, 미술, 탐험, 전쟁, 영화, 정치를 종횡무진했던 ‘행동하는 지식인’의 삶이 얼마나 드라마틱했는지를 웅변하는 말이다. ‘르몽드’와 ‘누벨옵세르바퇴르’지 등 프랑스 유수의 언론 매체에서 저널리스트로 일했던 대기자이자 전기작가로 확고한 명성을 쌓은 장 라쿠튀르가 펴낸 ‘앙드레 말로 평전’이 불문학자 김화영 고려대 명예교수의 번역으로 출간됐다. 말로가 세상을 떠나기 3년 전인 1973년 초판이 발행된 평전은 1982년 김 명예교수의 번역으로 처음 소개됐으나 출판했던 홍성사가 문을 닫아 오랫동안 절판됐었다. 평전은 무엇보다도 말로가 그 누구보다 위대한 작가였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그의 삶과 문학, 사유와 행동의 궤적을 저널리스트이자 역사가의 관점에서 충실하게 기록하고 있다. 거칠고 밀도 짙었던 말로의 삶을 하나의 작품처럼 재구축해 보여 준 라쿠튀르는 말한다. “그가 다녀온 지평에서는 항상 바람이 다르게 분다.” 20세기가 첫발을 내디딘 1901년 파리 몽마르트르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10대에 1차 세계대전의 격동을 맞이한 말로는 파리에서의 댄디 생활을 털고 인도차이나, 스페인, 소련, 오리엔트의 사막 등 광대한 지역에서 벌어진 치열한 모험 속으로 몸을 던졌다. 희귀본을 찾아내 판매하며 출판사 기획자로, 집필자로 활동하던 그는 스무살 때 이국에 대한 호기심에 프랑스령인 인도차이나 반도로 향한다. 고대 앙코르와트 사원의 조각을 밀반출하려다 도굴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았으나 프랑스 지식인들의 구명운동으로 풀려난다. 하지만 감옥에서 식민 지배에 심한 혐오감을 느낀 그는 열렬한 반식민주의자가 됐다. 1924년 프랑스로 돌아오던 길에 중국에 들른 말로는 사회주의혁명의 소용돌이를 직접 목격한다. 1933년 장제스가 공산당을 탄압한 상하이 쿠데타를 무대로 한 소설 ‘인간의 조건’을 발표해 프랑스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공쿠르상을 수상하면서 이름을 알렸다. 나치 수용소를 그린 ‘모멸의 시대’로 전체주의를 비판한 그는 1936년 스페인내전이 일어났을 때는 직접 가담해 싸웠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쓴 ‘희망’에서 스페인의 파시즘을 고발한다. 2차 세계대전 중에 프랑스 레지스탕스운동에 참여했던 그는 전선에서 샤를 드골 장군을 만났다. 드골 장군의 첫 번째 내각에서 공보장관을 지냈으며 1959년부터 10년간 드골 내각에서 문화부 장관을 역임한 그는 1969년 드골이 대통령직에서 물러나자 함께 은퇴했다. 1976년 만성 폐출혈로 파리에서 생을 마감한 말로는 1996년 서거 20주기를 맞아 프랑스 최고의 국가유공자들만 안장된 파리 판테온 사원에 유해가 안장됐다. 김 명예교수는 해제에서 “소용돌이치는 역사적 사건들 속으로 몸을 던진 말로는 인류의 복지와 건전한 사회를 구현하고자 하는 정치가가 아니다”라며 “말로에게 중요한 것은 인간에게 주어진 운명을 치열한 모험을 통해 초극하는 것이었다”고 전한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배설 선생 서거 106주기 경모행사

    배설선생기념사업회(회장 이재용)는 1일 오전 11시 서울 마포구 합정동 양화진 성지공원에서 배설 선생 106주기 경모행사를 연다. 오후 3시에는 세종문화회관 예인마당에서 예술제를 개최한다. 배설(영국 본명 어니스트 토머스 베델) 선생은 영국 브리스톨에서 태어나 1904년 영국 데일리크로니클 특별통신원으로 러·일전쟁을 취재하기 위해 한국에 왔다. 같은 해 6월 민족지도자 박은식, 양기탁, 신채호 선생과 함께 대한매일신보(현 서울신문)를 창간해 항일언론투쟁을 벌였다. 일제의 언론 탄압과 영국의 압력 등으로 1908년 사장직에서 물러난 후 1909년 5월 1일 지병으로 타계했다.
  • 세월호 가족協 “경찰 차벽 설치 헌소 청구할 것”

    경찰이 세월호 참사 추모집회에 차벽(車壁)을 동원한 것과 관련해 세월호 피해자 측이 헌법소원을 청구한다. 4·16가족협의회와 4·16연대(세월호 가족과 국민대책회의 등이 설립한 상설단체)는 22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16일과 18일 세월호 추모 집회에서 경찰의 위법적이고 위헌적인 차벽 설치 조치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박주민 변호사는 “이르면 다음주 초에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청구할 계획”이라며 “경찰 차벽으로 이동권을 제한당하고 대치 과정에서 다친 시민을 모아 국가배상을 청구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앞서 헌법재판소는 2011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직후 경찰이 서울광장을 경찰버스로 에워싸 통행을 막은 조치가 행동자유권을 침해했다며 위헌 결정을 내렸다. 당시 헌재는 “불법·폭력집회 및 시위로 변할 가능성이 있다 하더라도 이를 막기 위한 조치는 최소한의 범위에서 이뤄져야 했지만 통행을 전면적으로 막았던 조치는 최소한이라고 보기 어려워 과잉금지 원칙에 위반된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경찰은 “이번 세월호 추모 집회는 명백하고 중대한 위험성이 있었기 때문에 2011년과는 다르다”고 맞서고 있다. 집회 전 주최 측이 집단행진을 해 청와대를 둘러싸겠다는 사전 공지를 했고, 집회 후 시민 1만명이 갑자기 태평로 전 차로를 점거한 뒤 비로소 차벽을 설치했다는 것이다. 한편 지난 18일 세월호 참사 범국민대회 이후 벌어진 충돌사태로 연행된 집회 참가자 가운데 2명에 대한 구속영장이 이날 발부됐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경찰 “세월호 1주기 집회 때 차벽 세울 수 있다”

    오는 16일 세월호 참사 1주년 추모집회를 앞두고 경찰이 대응 수위를 놓고 고심하고 있다. 지난 11일 세월호 추모문화제 이후 가두행진 과정에서 경찰이 유가족을 포함한 시위대의 얼굴에 캡사이신 최루액을 뿌린 것과 관련, 야당과 시민사회단체는 물론 국민들의 비난 여론이 들끓었기 때문이다. 16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세월호참사국민대책회의 등이 주최하는 범국민대회와 추모문화제에는 1만 4000여명(집회 신고 인원 기준)이 모여 촛불집회를 할 것으로 전망된다. 강신명 경찰청장은 13일 기자간담회에서 “16일 예정된 세월호 참사 1주년 추모집회 때 지난 토요일과 같은 상황이 예견되면 차벽을 부득이하게 설치할 수 있다”고 잘라 말했다. 이어 “(11일 집회에서) 평소 보지 못했던 과격한 공격 양상이 벌어졌다”며 “경찰이 설치한 차단막을 뜯어내고 경찰관을 직접 공격하는 등 심각한 공무집행 방해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캡사이신을 뿌린 것에 대해서는 “얼굴을 조준했다고 보긴 어렵지만 최루액 자체가 얼굴에서 작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노약자, 임산부에게 사용하지 말 것’ 외에 특별히 얼굴을 겨냥하지 말라는 분사규정은 없다”고 말했다. 경찰은 앞서 11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세월호 추모문화제 이후 청와대로 향하는 희생자 유가족을 포함한 시위대에 대해 최루액을 살포한 것은 물론 유족 3명 등 20명을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의 혐의로 연행했다. 경찰은 16일 추모집회에도 차벽을 준비하는 한편 시위대가 청와대로 진출할 경우 적극 저지한다는 입장이다. 경찰 관계자는 “경찰관을 향한 직접 공격이 있거나 참가자들이 무리하게 청와대로 진입하려 할 경우 차벽 설치는 물론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진보 진영 시민사회단체들은 헌법재판소가 위헌이라고 결정한 차벽을 경찰이 남용하고 있다며 비난하고 있다. 2011년 헌재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당시인 2009년 6월 경찰이 서울광장을 차벽으로 둘러싸 시민 통행을 막은 것과 관련, “불법 집회 가능성이 있다 해도 이를 방지하기 위한 조치는 최소한의 범위에서 이뤄져야 한다”며 위헌 결정을 내렸다. 일각에서는 지난해 말 구은수 서울지방경찰청장이 “차벽 사용을 최소화할 방침”이라고 밝힌 것과 최근 상황이 모순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IS 성노예 9세 소녀, 임신까지…” 충격 증언

    “IS 성노예 9세 소녀, 임신까지…” 충격 증언

    수니파 무장조직 ‘이슬람국가’(이하 IS)가 현지시간으로 지난 8일 이라크 북부 소수민족인 야지디족 어린이 40여 명과 노인 등 216명을 풀어준 가운데, 포로로 잡혀 있던 야지디족의 9세 소녀가 IS 대원들의 끔찍한 성노예로 생활하던 중 임신했다는 주장이 나와 충격을 주고 있다. 캐나다 지역 일간지 토론토스타의 12일자 보도에 따르면, 풀려난 야지디 족 여성 한 명은 IS에 붙잡혀 있는 동안 성노예로 지내야 했으며 9세 소녀 한 명은 최소 10명의 남성들에게 성폭행을 당한 뒤 임신했다고 주장했다. 문제의 IS 소속 남성들은 칼리프(이슬람 제국 주권자의 칭호)의 지위를 주장했으며, 이들은 대부분 전투의 선봉에 서거나 자살폭탄을 앞두고 어린 소녀들을 ‘포상’으로 받아 성적 학대를 자행했다고 덧붙였다. 캐나다에서 활동하는 국제 구호원인 요시프 다오우드는 토론토스타와 한 인터뷰에서 “이 어린 소녀가 아이를 출산하게 될 경우 목숨이 위험할 수 있다. 의료진들은 제왕절개 수술을 하더라도 산모(소녀)가 살아남지 못할 수 있다. 게다가 이미 심각한 정신적·육체적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토론토스타는 임신한 9세 소녀가 쿠르드의 자선구호단체를 통해 지난 주 초 독일로 옮겨져 의료진의 도움을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국제 구호가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야지디족이 IS의 손아귀에 붙들린 채 성노예로 끔찍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며 국제사회의 관심을 촉구했다. 한편 IS가 200여 명의 야지디족을 풀어준 정확한 이유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IS는 키르쿠크 남서쪽의 히메라 지역에서 야지디족을 쿠르드자치정부 군사조직인 페쉬메르가에 넘겼으며, 석방된 사람들은 곧장 응급차와 버스로 후송돼 치료를 받고 있다. UN은 지난 달 공식 발표에서 “IS가 야지디족 등 소수민족에 대한 집단학살을 자행했다”고 발표한 바 있으며, 지난해 여름 이후 현재까지 IS는 4만 명이 넘는 야지디족을 납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글로벌 시대] 리콴유 전 총리의 세계관/정해문 전 한·아세안센터 사무총장, 전 주그리스·태국 대사

    [글로벌 시대] 리콴유 전 총리의 세계관/정해문 전 한·아세안센터 사무총장, 전 주그리스·태국 대사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가 91세를 일기로 지난달 타계했다. 그의 아들 리셴룽 총리는 국장 추도사를 통해 “싱가포르는 캄캄한 한 주를 보내고 있다. 여태껏 우리 모두를 인도해 온 불빛이 마침내 꺼졌다”고 국부의 서거를 애도했다. 그는 1959년 자치정부 시절부터 작고 직전까지 싱가포르를 밝혀 준 횃불이었을 뿐만 아니라 사실상 전 세계를 비춘 지혜와 통찰력의 성화였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그를 역사의 진정한 거인이라고 칭송했으며 시진핑 주석은 그를 중국의 ‘라오펑유’(朋友·오랜 친구)라고 추모했다. 리 전 총리는 2013년 발간된 그의 마지막 역저 ‘한 사람의 세계관’에서 중국의 민주화 문제에 대해 이렇게 설파하고 있다. 5000년 동안 중국인들은 중앙이 강력할 때만 나라가 안전하다고 믿어 왔다. 중앙이 취약하다는 것은 혼돈과 혼란을 의미한다. 강력한 중앙은 평화롭고 번영하는 나라를 가져온다. 모든 중국인들이 이렇게 이해하고 있다. 일부 서방세계에서는 중국이 서방의 전통에 따라 민주주의가 되기를 원하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리 전 총리는 동일한 저서에서 1986년 덩샤오핑 최고지도자가 싱가포르를 방문했을 때 싱가포르가 어떻게 중국 최고지도자에게 개방 경제의 혜택을 확신시켜 줄 수 있었는지 술회하고 있다. 덩샤오핑은 어떻게 부존자원 없는 조그마한 섬이 외국 투자, 경영, 기술 및 시장을 유치함으로써 인민들이 양질의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할 수 있는가를 면밀히 관찰했다. 그는 중국 경제의 개방 필요성을 확신하고 귀국하자마자 싱가포르 모델을 원용해 6개 특별경제구역을 출범시켰다. 그의 싱가포르 방문은 중국 역사에서 한 획을 긋는 순간이자 전환점이었다. 같은 저서에서 그는 미·중 관계는 21세기의 가장 중요한 양자 관계이며, 양 거인 간의 평화와 협력은 아시아에 안정을 가져다줄 것이며, 양국 간 충돌은 양국이 핵무기 보유국임을 감안하면 발생하지 않을 가능성이 많다고 내다봤다. 미국으로서는 군사기술 향상 노력을 늦추지 않으면서 중국의 국제사회 통합을 도와주고 중국이 국제질서 형성에 일정한 역할을 하도록 지원해야 하며 그러면 중국은 글로벌 사회의 일원으로서 의무를 준수하는 것이 가치 있다고 판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리 전 총리는 상기 저서에서 북한에 대한 자신의 평가를 기술하고 있다. 북한은 돌아오지 못할 지점을 이미 지났으며, 중국이 북한 지도자들을 중국의 상하이·광저우 및 선전 등 중국 개혁·개방 중심 도시를 보여 주면서 권력을 놓치지 않고 점진적 개방을 할 수 있는 길이 있음을 설득했음에도 북한은 중국과는 판이한 다른 길로 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북한은 개인 숭배에 의해 봉합돼 있으며 숭배 인물이 붕괴하면 나라 자체가 붕괴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리 전 총리는 동서양을 아우르는 전략가이자 사상가였다. 미국과 중국을 비롯한 전 세계 지도자들이 그의 통찰력과 비전을 높이 사서 그의 조언을 구했다. 그는 1976년부터 거의 매년 베이징을 방문해 중국 공산당 최고지도자를 모두 만났다. 1962년부터 미국을 방문하기 시작했으며 그의 워싱턴 방문은 일종의 국가적 이벤트였다. 미국 대통령과의 대화는 거의 자동적이었다. 그의 통찰력은 우리 후대에 유산으로 넘겨졌다. 그가 행동으로 실천한 국가경영 철학, 특히 양질의 교육, 효율성, 책임성, 투명성, 반부패 등은 우리 모두가 본받아야 할 소중한 가치다.
  • [프로축구] 2562일 만에 … 간절했던 한 골

    [프로축구] 2562일 만에 … 간절했던 한 골

    무려 7년 7일 만에 박주영(30·FC서울)이 국내 그라운드에서 골망을 흔들었다. 박주영은 12일 인천전용구장을 찾아 벌인 프로축구 K리그 클래식 인천과의 5라운드 전반 9분 에벨톤이 얻은 페널티킥을 성공시켜 2008년 4월 6일 광주 상무전 이후 2562일 만에 K리그 득점을 신고했다. 제주와의 4라운드 후반 교체 출전했던 박주영은 국내 복귀 두 경기 만에 득점포를 가동했다. 오른발로 찬 공이 유현 골키퍼에게 살짝 걸렸지만 슈팅이 강해 그물을 갈랐다. 이날 대결은 고려대 선배이자 나란히 K리그 신인왕 출신인 이천수(34·인천)와의 대결로 눈길을 끌었다. 둘은 2005년 박주영이 데뷔한 뒤 최우수선수(MVP)를 놓고 경합했지만 챔피언 결정전에서 팀을 우승으로 이끈 이천수가 기자단 투표에서 박주영을 눌렀다. 이날 둘의 만남은 2006년 이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해외로 진출하며 헤어진 뒤 거의 9년 만에 성사됐다. 박주영에게 선제골을 내준 인천은 전반 후반 가열찬 반격을 가했다. 36분 코너킥 크로스를 니어 포스트 앞에서 솟구쳐 오른 요니치가 머리에 맞혀 공의 방향을 살짝 돌렸으나 골대를 붙잡고 서 있던 고요한이 침착하게 걷어냈다. 3분 뒤에도 김인성이 날카로운 슈팅을 날렸으나 김용대 골키퍼가 쳐내 동점 기회를 또 놓쳤다. 이천수는 42분 문전에서 흘러나온 공을 페널티 지역 왼쪽 안에서 달려들며 강력한 슛을 날렸지만 골포스트를 벗어났다. 이천수는 후반 4분 프리킥 크로스로 케빈의 머리를 거쳐 김인성에게 연결된 동점 골 기회를 엮어낸 뒤 19분 사각지대에서 김용대의 의표를 찌르는 슈팅을 날렸으나 김용대가 간신히 걷어 냈다. 인천은 후반 20분 조수철이 경고 누적으로 퇴장당하며 수적 열세마저 안았다. 서울은 후반 40분 김현성이 윤일록의 침투 패스를 받아 유현 골키퍼와 일대일로 맞섰지만 그의 슛을 유현이 오른발로 걷어 내고 말았다. 전북은 전남 목포축구센터에서 레오나르도의 두 골과 한교원의 1골 1도움 활약을 엮어 광주FC를 3-2로 눌렀다. 전북은 4승1무(승점 13)를 기록하며 전날 꼴찌 대전과 1-1로 비긴 울산(3승2무)을 제치고 리그 선두로 다시 올라섰다. 수원은 광양스틸야드를 찾아 전남과 1-1로 비겼다. 염기훈이 전반 25분 양상민의 시즌 1호 골을 도우며 리그 4경기 연속 공격포인트(1골 3도움)를 기록했다. 그러나 수원은 10분 뒤 이종호에게 시즌 2호 골을 내줘 승점 1을 얻는 데 그쳤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재계 인맥 대해부 (4부)뜨고 지는 기업&기업인 대상그룹] 3세 오너 경영 등장 최대 관심… 임세령·상민 두 딸 경영수업

    [재계 인맥 대해부 (4부)뜨고 지는 기업&기업인 대상그룹] 3세 오너 경영 등장 최대 관심… 임세령·상민 두 딸 경영수업

    이리농림학교 졸업 후 고창군청 공무원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딘 임대홍(95) 대상 창업주는 해방 이후 피혁공장을 운영했다. 6·25 전쟁 직후에는 복구사업이 시작되면서 무역업으로 업종을 전환했다. 임 창업주는 일본을 오가면서 경쟁 상대 없이 우리 식탁을 점령하고 있던 일본 조미료 ‘아지노모토’에 묘한 반감을 가지게 됐다. 순수 우리 기술로 만든 국산 조미료를 수출하고 싶다는 열망은 그의 인생을 바꿨다. 1955년 서른다섯 청년 임대홍은 잘나가던 무역 사업을 접고 제조 공법을 익히기 위해 무작정 일본으로 떠났다. 1년여의 연구 끝에 그가 돌아와 부산에 지은 150평 규모의 작은 조미료 공장이 바로 대상그룹의 전신인 우리나라 최초의 조미료 공장, 동아화성공업주식회사다. 미원의 신화는 바로 이곳에서 시작됐다. 임 창업주는 회장 재직 당시 조용히 자신의 공간에서 실험과 연구에만 몰두했다. 지방 출장 시에도 5만원이 넘는 숙소에는 묵지 않았고, 승용차보다는 전철을 더 많이 애용했다. ‘평생 통틀어 한 번에 양복 세 벌, 구두 두 켤레 이상을 소유했던 적이 없다’는 이야기도 유명하다. 일반적인 기업가의 이미지와는 달리 대외 활동과 사교 활동도 즐기지 않았다. 이 같은 창업주의 스타일은 경영권을 물려받았던 장남 임창욱(66) 명예회장으로까지 이어졌다. 임 명예회장은 취임 후 부친과 달리 진취성과 능력을 중시하고 인간성을 강조하는 경영을 펼치며 보수성에서 탈피하고자 했지만 본인의 성과를 과시하거나 홍보하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임 명예회장은 1997년 퇴임했고 대상은 오랜 시간 전문 경영인 체제를 유지해왔다. 대상에 쏠린 업계의 최대 관심은 3세 오너 경영인의 등장이 이뤄질까다. 임 명예회장 밑으로는 아들이 없기 때문이다. 대신 두 딸인 임세령(38) 대상 사업전략담당중역 상무와, 임상민(35) 대상 기획관리본부 상무가 나란히 경영수업을 받고 있다. 대상그룹의 지주회사인 대상홀딩스 지분 비율을 보면 임상민 상무가 35.8%로 언니 임세령 상무를 앞선다. 임세령 상무의 대상홀딩스 지분은 19.9%다. 하지만 임세령 상무도 지난해 대상 지분을 15만 9000주(0.44%)를 장내 매수하고, 초록마을 지분을 30.17%까지 늘리는 등 본격적으로 승계 보폭을 넓히는 모양새다. 임세령 상무는 2012년 대상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입사, 본격적인 경영수업을 시작했다. 현재는 식품사업 부문을 총괄하는 식품사업총괄 내 사업전략담당중역을 맡고 있다. 연세대학교에서 경영학을 공부하고, 뉴욕대에서 심리학을 전공했다. 임세령 상무는 2009년 11월 당시 대상그룹 외식법인이던 와이즈앤피가 선보인 ‘터치 오브 스파이스’ 외식사업을 과감하게 정리해 주변을 놀라게 했다. 그의 판단은 적중했다. 임세령 상무는 외식 프랜차이즈 시장을 레드오션으로 판단, 기존의 브랜드 확장전략을 전면 수정해 치열한 시장 상황에 효과적으로 대처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해 청정원의 대규모 브랜드 아이덴티티(BI) 리뉴얼 작업을 진두지휘한 숨은 리더도 바로 임세령 상무였다. 임세령 상무는 특유의 글로벌 감각을 발휘해 자연의 이미지를 형상화한 기존 심벌을 타원 형태의 모던하고 심플한 심벌로 리뉴얼했다. 대상 관계자들은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그를 표현한다. 점심시간이 되면 구내식당에서 직원들과 어울려 줄을 서거나, 회사 앞 커피전문점에서 여직원들과 함께 팔짱을 끼고 커피를 사간다고 한다. 임상민 상무는 동생이지만 입사로는 선배다. 임상민 상무는 2003년 이화여자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뉴욕 파슨스 디자인스쿨을 졸업했다. 이후 유티씨인베스트먼트를 거쳐 2009년 8월, 대상 프로세스 이노베이션 (PI)본부에 입사해 그룹 경영혁신 관련 업무를 수행했다. 이후 런던 비즈니스 스쿨에서 MBA를 한 임상민 상무는 2012년 10월, 대상 기획관리본부 부본부장으로 다시 그룹경영에 복귀했다. 현재는 그룹 신사업 발굴과 글로벌 프로젝트 참여에 주력하고 있다. 임직원들 사이에서 임상민 상무는 ‘경청의 리더’로 불린다. 임상민 상무는 임원과 실무자 간의 대화라기보다는 동등한 실무자로서 의견을 나눈다. 비교적 젊은 나이인 데도 직원들과의 벽을 허무는 데 한 몫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일을 할 땐 엄격하고 꼼꼼하다는 평을 듣는다. 핵심을 찌르는 질문에 회의에 참석하는 실무자들이 상당히 긴장한다는 후문이다. 대상 관계자는 “임세령 상무와 임상민 상무 모두 기획과 마케팅 분야에서 본인들의 역할을 수행하며 경영 전반을 익히고 있는 과정”이라면서 “임창욱 명예회장이 건재하고, 전문경영인 체제가 안정적으로 자리잡고 있는 시점에서 두 분 간 후계구도를 예측할 단계는 아니다”라고 못 박았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 [세월호 참사 1년] ‘통곡의 팽목항’ 다시 가 보니

    [세월호 참사 1년] ‘통곡의 팽목항’ 다시 가 보니

    “지켜주지 못해 미안합니다.” “우리 곁으로 빨리 돌아와 줘.“ 지난 1일 전남 진도군 임회면 팽목항 방파제 난간 곳곳엔 실종자가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을 담은 노란 리본들이 바람에 나부낀다. 진달래, 유채꽃 등이 흐드러진 새로운 4월이 찾아왔지만 세월호 참사로 생채기를 입은 사람들은 그대로다. 난간에 매달린 각종 사진과 리본 등은 점점 빛이 바래간다. 방파제 입구엔 아직도 차가운 바닷속에 남겨진 9명의 사진이 걸려 있다. 권재근씨와 그의 아들 혁규군의 똘망똘망한 눈망울이 보는 이의 가슴을 저민다. 교사 고창석·양승진씨, 단원고생 조은화·허다윤·남현철·박영인군, 이영숙씨 등도 돌아오지 못했다. 실종자 가족인 권오복(60)씨는 “하루빨리 선체가 인양되길 애타게 기다린다”며 “지금껏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못하는 정부를 더 믿을 수 없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방파제 입구엔 인근 섬을 오가는 주민들이 배 시간을 기다리느라 서성일 뿐 인적이 드물다. 1년 전쯤 통곡과 앰뷸런스, 언론매체, 자원봉사자 등으로 인산인해를 이뤘던 모습과 대조적이다. 유가족 임시 숙소, 분향소, 식당 등이 있는 공터와 방파제 사이 500m 남짓한 구간도 한산하다. 오는 16일 세월호 참사 1주년을 맞아 사회·종교 단체 등이 추모행사를 준비하느라 바삐 움직인다. 추모 공간으로 변한 폭 7~8m, 길이 200m가량의 방파제는 다녀간 사람들의 흔적만 쌓여 있다. 양측으로 내걸린 노란 리본 물결 사이 사이엔 인공 구조물들이 들어섰다. 서남쪽인 맹골수도를 향해 차려진 나무 밥상엔 누군가가 놓고 간 캔 음료수, 초콜릿, 바나나 등이 전날 내린 빗물에 젖어 있다. 고등학생들이 좋아하는 신발, 액세서리, 묵주 등도 한곳에 놓여 있다. 조도 가는 배를 기다리다가 방파제에 들른 김영주(64·조도면 신웅리)씨는 “실종자 사진을 보면 절로 눈물이 난다”며 “세월호 사고가 우리 지역에 엄청난 피해를 가져왔지만 유가족들의 슬픔에 비하겠느냐”고 고개를 떨궜다. 방파제 끝엔 빨간색 ‘하늘나라 우체통’이란 설치 작품이 있다. 구원과 새 생명의 열망을 담은 노아 방주를 본떴다. 바로 뒤편엔 병아리 모양의 철골 구조물과 붉은색의 등대가 덩그러니 서 있다. 언제 돌아올지 모를 실종자를 기다리듯 방파제 너머로 넘실대는 파도와 마주한다. 방파제 중간쯤엔 사각형 모양의 타일들이 붙어 있다. 타일에는 세월호 희생자를 기리는 문구와 그림이 있다. 조만간 완공되는 ‘천개의 타일로 만드는 세월호, 기억의 벽’이란 추모 작품이다. 지난해 11월 정부가 세월호 인양을 발표한 이후 대부분 유가족과 관계자 등이 철수하면서 팽목항은 겉으론 일상을 되찾은 모습이다. 실종자 2~3가족, 안산시청과 경기교육청 파견 인력, 경찰 등이 인근 공터의 가건물과 컨테이너에서 생활하며 현장을 지킨다. 그러나 주변 상권과 수산업은 몰락하다시피 했다. 병풍도와 동·서거차도 등 주변 섬사람들은 미역과 톳 등 수산물을 오염으로 제때 수확하지 못하거나 했더라도 ‘진도산’이란 이유로 판로가 막혔다. 항구 주변의 민박집과 식당, 슈퍼마켓 등도 거의 장사를 하지 못해 생계를 걱정해야 한다. 방파제 입구에서 만난 여연수(49· 동거차도)씨는 “지난해 봄 이후 사고해역 인근에서 많이 나는 조기, 갈치, 병어 등을 잡지 못했다”며 “진도곽 등 해조류를 채취해 살아가는 주민들은 더욱 힘들다”고 말했다. 팽목 선착장에서 식당을 하는 이모(60·여)씨는 “사고 이전에는 관광객들로 식당이 북적였으나 1년간 파리만 날리고 있다”고 한숨지었다. 진도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회장님들에게 새로 생긴 명함 ‘인문학 전도사’

    회장님들에게 새로 생긴 명함 ‘인문학 전도사’

    재벌가 회장님들이 직접 인문학 강의에 나서거나 사재를 털어 학술연구를 지원하고 있다. 인문학을 증흥시키려는 대기업 오너들의 열기가 달아오르고 있는 것이다. 신세계그룹은 다음달 9일 고려대 인촌기념관에서 열리는 ‘세상을 바꾼 청년 영웅, 나폴레옹’이란 주제의 인문학 콘서트를 시작으로 ‘2015 지식향연’ 프로그램을 진행한다고 26일 밝혔다. ●정용진 부회장 등 연사로 나서거나 학술 지원 첫 고려대 강연에는 신세계그룹 정용진 부회장이 직접 연사로 나서 인문학에 대한 그룹의 투자 계획 등 그룹의 인문학 중흥 사업에 대해 설명한다. 강연은 6월 초까지 고려대, 제주대, 건국대, 경북대, 강원대 등 전국 10개 대학에서 진행된다. 송동훈 문명탐험가, 이진우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석좌교수 등도 강사로 참여한다. 신세계그룹은 ‘지식향연’ 프로그램을 인문학 중흥사업으로 브랜드화해 매년 20억원씩 지원할 방침이다. 또 온·오프라인 채널을 통해 2000~3000부의 인문학 서적도 판매할 예정이다.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 중국 철학가 팡둥메이(方東美)의 ‘중국의 사상과 문명’ 등 국내에서 발간되지 않았거나 주목받지 못한 서적을 중심으로 내놓을 방침이다. ●“사원 채용땐 인문계 외면” 볼멘소리도 한샘그룹 창업주인 조창걸 명예회장은 장학 사업과 국내외 학술 연구비 지원 사업 등을 위해 사재 4400억여원을 공익재단에 출연한다. 한샘그룹 측은 이날 조 명예회장이 ‘재단법인 한샘드뷰 연구재단’에 한샘 지분 60만주(1056억원)를 기부했다고 공시했다. 조 명예회장은 이를 시작으로 200만주(약 3400억원)를 추가로 출연해 자신이 보유한 한샘 주식 534만주 가운데 절반인 260만주를 재단 운영을 위해 내놓을 계획이다. 조 회장이 수천억원을 연구재단에 출연하려는 것은 미래 변화를 예측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싱크탱크가 국내에는 부족하다는 판단에서다. 경술국치, 남북분단, 6·25전쟁 등 한국의 현대사가 아픈 기억으로 점철된 것이 미래의 변화를 예측하고 대비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그러나 기업들이 인문학과 학술 연구에 투자하는 것과 달리 신입사원 채용에서는 이공계를 선호한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207개 주요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대기업의 올 상반기 대졸 신규 채용 인원 가운데 이공계 비중이 평균 59.2%로 집계됐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 살랑살랑 봄바람 머무니 울긋불긋 달아 올랐네~

    살랑살랑 봄바람 머무니 울긋불긋 달아 올랐네~

    섬진강은 대한민국 ‘꽃전선’의 북상 경로다. 남해를 휘휘 돌아온 봄바람이 발 디딘 자리마다 매화와 산수유, 벚꽃, 배꽃 등이 줄지어 핀다. 전남 광양과 구례, 경남 하동 등 해마다 울긋불긋 꽃 대궐을 차리는 곳들이 섬진강 자락에 몰려 있는 건 이런 이유다. 올해 산수유와 매화는 다소 늦다. 21일 이후에나 볼만하고, 이달 하순께 절정에 이를 듯하다. 먹거리도 덩달아 풍성해진다. 참게들이 소상하고, 재첩잡이가 기지개를 켠다. 벚굴(강굴)이 제 몸피를 한껏 키우는 것도 이맘때다. 눈이 즐겁고 입은 행복하니, 영화 제목처럼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지 싶다. 섬진강에 봄 소식을 알려주는 꽃은 산수유다. 봄의 전령 자리를 두고 매화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다투며 핀다. 산수유 감상 1번지로 꼽히는 구례에서도 가장 이름난 곳은 산동면 상위마을이다. 만복대 자락에서 흘러내린 다랑논과 마을 한가운데를 흐르는 개울이 산수유와 어우러져 풍경화를 그려낸다. 마을 안쪽의 오래된 돌담길과 어우러진 풍경도 빼어나다. 이웃한 반곡마을은 계류와 어우러진 정취가 일품이다. 산수유 마을 전경을 보려면 상위마을 위쪽의 팔각정이나 산수유 사랑공원 전망대에 오르면 된다. 한적한 꽃동네를 찾는다면 계천리 현천마을이 제격이다. 마을 입구 연못에 산수유꽃이 반영되는 풍경이 백미다. 계척마을은 산수유 시목지(始木地)가 있는 마을이다. 현천마을에서 19번 국도를 타고 남원 쪽으로 5분 남짓 떨어져 있다. 화엄사 각황전 옆의 홍매화도 놓칠 수 없다. 조선 숙종 때 각황전을 중건한 후 이를 기념하기 위해 심었다고 전해진다. 색이 검붉어 ‘흑매’라고도 불린다. 국보 35호인 4사자 삼층석탑 주변에는 동백꽃이 만개했다. 베풂의 정신을 실천한 99칸짜리 운조루, 구례 최고의 전망대 사성암 등도 잊지 말고 돌아보자. 구례를 지난 섬진강은 하동을 지나 바다 냄새를 맡으면서 한껏 그 폭을 넓힌다. 민물과 바닷물이 합쳐지는 이쯤부터 재첩이 익어간다. 재첩은 민물에서 자라고 바닷물에 맛이 든다. 기수역 위쪽에도 재첩은 있지만 어민들의 손길이 이르지는 않는다. 하동을 찾은 외지인들에게 인상적인 풍경 중 하나가 야생 차밭이다. 꼭 푸른 융단을 깔아놓은 듯하다. 특히 우리나라 차의 시배지(始培地)로 알려진 화개면 일대에 야생차 재배지가 넓게 펼쳐져 있다. 신라 흥덕왕 3년(828년)에 당나라 사신으로 갔던 김대렴이 차나무 종자를 가져와 쌍계사 주변에 처음 심은 것으로 전해진다. 머지않아 차 애호가들의 ‘로망’ 우전차(곡우 전에 따는 차)가 나온다. 첫 수확한 찻잎을 덖을 때면 손 데는 줄 모르고 향기에 환장한다던 바로 그 차다. 남도 먹거리로 배를 채웠다 해도 차 한 잔 들어갈 여유는 그래서 남겨 둬야 한다. 쌍계사 인근에 차 시배지 비석이 있다. 화개골 끝자락엔 가야 김수로왕의 일곱 왕자가 성불했다는 전설이 얽힌 칠불사가 있다. 한번 불을 때면 온기가 49일이나 간다는 신비의 온돌 아자방(亞字房)도 만날 수 있다. 화개장터를 지나 차로 십분 쯤 하동 방면으로 내려가면 평사리 최 참판댁이다.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의 배경이 된 기와집으로, TV드라마 ‘토지’ 세트장이었던 초가 20여 채와 더불어 마을을 이루고 있다. 사랑채 대청마루에 올라 앉으면 평사리 너른 들녘이 한눈에 들어온다. 담장 주변엔 영춘화(迎春花)와 매화, 산수유가 흐드러질 채비를 마쳤다. 최 참판댁에서 섬진교를 건너면 광양시 다압면 매화마을이다. 봄철 매화 꽃놀이의 성지처럼 여겨지는 곳이다. 홍매는 벌써 빠알갛게 익었고, 청매는 이제 막 꽃망울이 터져 나오는 중이다. 지구 온난화에 꽃들이 일찍 핀다고 호들갑이지만, 정작 자연의 시계는 더디거나 이르지 않게 꽃소식을 전하고 있다. 광양 끝자락의 망덕포구는 섬진강의 끝이자 남해가 시작되는 곳이다. 이맘때면 한적했던 포구가 외지인들의 발걸음으로 들썩대기 시작한다. 벚굴 때문이다. 이른바 벚꽃 필 무렵 맛이 최고조에 달한다는 녀석으로, 크기가 건장한 남도 사내의 손바닥에 견줄 정도다. 보통 15∼30㎝, 큰 놈은 40㎝까지 자란다. ‘강굴’이라고도 불리는 벚굴은 남해와 만나는 섬진강 하구에서 자생한다. 하동 쪽에서는 고전면 전도리의 신방, 선소, 전도마을, 광양 쪽에서는 망덕포구 일대가 주산지다. 제철은 2월부터 4월까지다. 5월 초까지도 먹는데, 그 이후는 독성이 생기기 시작해 채취를 하지 않는다. 망덕포구에선 정병욱(전 서울대 국문과 교수) 가옥을 찾아야 한다. 윤동주 시인의 친필 유고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발견된 고택이다. 2007년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안내판은 “윤 시인이 일본 유학을 떠나면서 건네준 육필 원고를 연희전문 후배 정병욱이 마루 밑에 숨겨 두었던 집”이라 적고 있다. 글 사진 구례·하동·광양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구례·광양 061, 하동 055) →가는 길:수도권에서 승용차로 갈 경우 호남고속도로 익산분기점에서 익산~포항간 고속도로를 탄 뒤 완주분기점에서 다시 완주~순천간 고속도로로 바꿔 탄다. 구례나들목으로 나와 19번 국도를 따라 산수유와 만난 뒤 하동, 광양 순으로 돌아본다. 광양 망덕포구를 먼저 가겠다면 순천분기점에서 남해고속도로로 갈아탄 뒤 진월나들목으로, 하동 끝자락인 남해대교에서부터 되짚어 오겠다면 하동나들목으로 각각 나온다. 남해대교 주변에 신노량항, 남해 충렬사 등 볼거리가 많다. 하동 최참판댁은 입장료가 어른 1000원이다. →맛집:구례 사람들은 이맘때 참게를 ‘영등게’라 부른다. 음력 2월 영등철에 잡히는 참게를 이르는 말이다. 다리마다 살이 꽉 찬 참게는 주로 탕으로 먹는다. 섬진강 참게에 겨우내 말린 시래기 넣고, 된장 풀어 끓여낸다. 구례읍내에서 곡성으로 가는 섬진강변에 맛집들이 늘어서 있다. 지리산회관 (782-3124), 노고단식당(782-2171), 노고단산장(782-1877) 등이 그중 유명한 참게탕집들이다. 구례읍내 영실봉(782-2833)은 갈치조림만 40년 넘게 해 온 집이다. 구례터미널 인근의 동아식당(782-5474)은 가오리찜과 족발탕이 유명하다. 하동에선 아무래도 재첩 잘하는 집을 찾게 된다. 화개장터에서 쌍계사 쪽으로 올라가다 만나는 청송회식당(883-2485)과 혜성식당(883-2140)은 이십년 넘는 라이벌 맛집이다. 1990년대 화개장터에 이어 현 위치로 이사 온 뒤에도 대문을 마주한 채 영업을 하고 있다. 부흥재첩식당(884-3903)과 하옹촌(883-8261), 부두횟집(883-8288), 금양가든(884-1580) 등도 이름난 재첩 맛집들이다. 한국 3대 차 생산지로 꼽히는 화개 지역은 찻잎 파는 가게만 많고 정작 찻집은 보기 쉽지 않다. 산유화(884-5262)와 다우찻집(883-0765) 등이 정갈하다. 광양에선 벚굴(강굴)이 제철 음식이다. 주로 2~4월을 제철로 치는데, 망덕포구 일대 식당 십여 곳에서 구이와 찜 등을 낸다. 이름이 조금 알려지면서 가격은 많이 뛰었다. 광양읍사무소 뒤편 금목서(761-3300)는 등심과 생고기, 달달한 불고기 등으로 이름난 집. 반찬을 ‘남도 한정식 급’으로 가득 차려낸다. 도선국사마을 아래 옴서감서(762-9186)는 피리(피라미)탕을 잘한다. 예약해야 한다. 시내식당(763-0360), 대중식당(762-5670) 등도 광양불고기로 이름난 집들이다. →잘 곳:구례 쪽에선 지리산 화엄사 초입의 한화리조트, 산동면 산수유마을 맞은편의 지리산온천호텔(783-8100) 등이 가족 단위 여행객들이 묵어가기 좋은 숙소다. 마산면의 전통 한옥 쌍산재(www.ssangsanje.com)도 이름난 한옥 스테이다. 하동 화개면의 쉬어가는 누각(884-0151∼2)은 한국관광공사가 지정한 ‘굿 스테이’ 숙박업소이다. 건물 앞쪽으로 섬진강 상류의 계곡물이 흐르고, 맞은편 산자락에는 야생차밭이 펼쳐져 있다. 수류화개(882-7706)는 한옥 펜션이다. 화개장터에서 5분 거리다. 광양읍내 필레모 호텔(761-8700)은 깔끔해서 가족단위 투숙객들이 묵기 좋다.
  • [세종로의 아침] 셔먼 對 메르켈/김성호 문화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셔먼 對 메르켈/김성호 문화부 선임기자

    요즘 부쩍 과거사와 관련한 아베 신조 일본 정부의 역사의식을 겨눈 발언이 봇물 터지듯 나오고 있다. ‘과거사 빨리 정리하고, 북핵 같은 현안에 치중하자’(웬디 셔먼 미 국무부 차관), ‘독일은 과거와 정면으로 마주했다’(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8월의 아베 담화가 미래지향적이길 기대한다’(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일본의 사죄 아직도 충분하지 않다’(오에 겐자부로)…. 국제적 거물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던진 말의 파장이 만만치 않다. 특히 셔먼 차관과 메르켈 총리의 언사는 대비되는 시각과 반향 탓에 뒤끝이 시끌벅적하다. 이들의 말을 다시 곱씹어 보자. 셔먼은 과거사 문제의 해결과 화해가 안 되는 책임이 한·중·일 모두에 있다고 했다. 여기에 ‘정치 지도자가 과거의 적을 비난해 값싼 박수를 받는’ 식의 표현이 자극적이다. 지난 1월 방한 때 ‘위안부 동원 강제성을 인정하고 일본의 아시아 침략·식민지배에 사죄한 고노·무라야마 담화가 견지되기를 바란다’던 것과는 사뭇 다르다. 반면에 일본 심장부에서 ‘과거사 정리가 화해를 위한 전제’라며 아베 총리에게 전범국가의 진정한 반성을 촉구한 메르켈은 ‘존경의 아이콘’으로 등극한 느낌이다. 셔먼 차관의 말에 ‘우리 편인 줄 알았는데 뒤통수 맞았다’는 반응이 쏟아졌다면 메르켈 총리의 발언에는 ‘속이 시원하다’는 평이 압도적이다. 말의 전후 사정은 뒤로 물린 채 일단 ‘내 편 네 편’ 식의 보편적인 점수 매기기가 월등히 앞선다. 과거사 해결 방식을 향한 한국민의 입장이야 대동소이할 것이다. 가해자 일본의 책임 인정과 반성, 그 후 더 나아가서 보상이다. 셔먼 미 국무부 차관이나 메르켈 독일 총리의 언사는 당연히 그 국민적 감정을 거스르거나 보듬는 것이다. 하지만 역사를 되돌아보자. 좋게 만들었건 나쁘게 만들었건 한반도의 운명을 갈랐던 주체들이 뭘 책임졌는가. 주어진 굴레를 짊어지고 해결한 건 늘 우리였다. 한마디에 웃고 우는 어린애 같은 단세포적 반응을 이젠 치우자는 말이다. ‘말의 성찬’에 우왕좌왕 쏠리기보다 현실을 직시하는 게 우선이다. ‘독일 정부에 들어보니 일본 정부더러 어떻게 하라는 건 아니었다고 하더라.’ 메르켈 총리의 과거사 관련 발언에 일본 정부를 대변하는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이 낸 이 공식 논평이 압권이지 않은가. 하기야 그 강변은 새삼스럽지 않다. 문제의 발언을 한 메르켈 총리의 방일 하루 전 집권 자민당이 창당 60주년을 기념해 올해 주요 활동 목표로 설정한 게 바로 ‘평화헌법’ 개정과 야스쿠니 신사 참배이다. 누가 뭐래도 ‘군사 대국화’ 구상을 밀어붙이겠다는 심산이 빤해 보인다. 일본이 8월 발표할 예정인 전후 70년 담화에 ‘통절한 반성’이니 ‘마음으로부터의 사죄’ 같은 표현이 담길지 모른다는 기대가 있다고 한다. 물론 기대되는 일이다. 하지만 ‘눈 가리고 아웅’ 식의 입에 발린 말은 상처를 더 깊이 곪게 만들 뿐이다. ‘혹시’와 ‘역시’의 되풀이 대신 눈을 부릅떠 현실을 지켜보자. 미 국무부 홈페이지 지도에 ‘리앙쿠르암’(독도의 서양식 표기)이 왜 사라졌다가 불쑥 나타났는지 그 이유부터 정색하고 따지자는 말이다. kimus@seoul.co.kr
  • 183m 절벽 기둥 위에서 펼치는 아찔한 요가 묘기

    183m 절벽 기둥 위에서 펼치는 아찔한 요가 묘기

    높이가 200m 가까이 되는 절벽 위에서 요가 묘기를 펼치는 모습이 포착됐다. 16일 미국 뉴욕데일리뉴스는 최근 유타의 댈린 스미스(Dallin Smith·29)가 만든 요가 전문가 케슬리 온딘(Kesley Ondine)과 브라이언 모스바우(Brian Mosbaugh)가 절벽 기둥 위에서 펼치는 요가 묘기 영상을 기사와 함께 보도했다. 영상에는 유타주 모압의 600피트(약 183m) 높이 절벽 기둥 위에서 고난도 요가 동작을 취하며 아슬하게 중심을 잡고 있는 케슬리와 브라이언의 모습이 담겨 있다. 이들은 사막 한 가운데 우뚝 선 절벽 기둥 위에서 요가 매트를 깐 채로 물구나무를 서거나 둘이 함께 곡예를 선보인다. 이 영상을 제작한 댈린은 데일리뉴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번 도전은 지상의 높은 곳에서 자신의 평정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며 “그것은 단지 요가가 아니다. 심장이 요동치는 300피트(약 91m) 이상의 절벽 기둥 가장자리에 설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은 기술이 아니라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케슬리와 브라이언은 이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세계에서 유일한 두 사람”이며 “이들은 나와 함께 수 편의 아드레날린 중독자(패러글라이딩이나 번지점프 등 일반인들이 시도하기 힘든 행위들을 하면서 몸속에서 아드레날린이 솟구침을 느끼는 사람) 비디오를 제작했으며 익스트림 스포츠인 고공줄타기(highlining)를 할만큼 높은 곳에서의 많은 경험을 가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사진·영상= Trimr youtube 영상팀 seoultv@seoul.co.kr
  • “늘 말씀하셨죠, 사법권은 썩지 않았다고…”

    “늘 말씀하셨죠, 사법권은 썩지 않았다고…”

    “돌아보니 참 행복한 삶이었다.” 1965년 3월 16일. 아침부터 진눈깨비가 내리던 봄날 훗날 ‘사형수들의 아버지’, ‘사도법관’으로 기억될 김홍섭 판사는 50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20년 넘게 남편을 뒷바라지해 온 아내 김자선씨와 당시 대학생이던 맏딸 철효씨가 간암으로 시름하던 김 판사의 임종을 지켰다. 욕심 없이 살아온 삶처럼 그는 가는 길에도 특별한 당부의 말을 남기지 않았다. 최근 서울신문과 만난 철효씨는 반세기가 지나는 동안 차츰 흐려져 얼마 남지 않은 아버지에 대한 기억 중 하나를 꺼냈다. 예전에는 재판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 보따리를 싸들고 집에 찾아오는 일이 잦았다. 하지만 김 판사는 작은 물건도 결코 받지 않았다. 사람들이 슬그머니 보따리를 놓고 돌아가면 재빨리 뒤따라가 물건을 돌려주는 일은 자녀들 몫이었다. 철효씨는 “아버지의 이런 평소 모습이 산교육이 됐다”고 회상했다. 김 판사는 자상하면서도 엄했다. 자녀들이 아플 때면 밤을 새워 간호했지만 잘못했을 때는 준엄하게 꾸짖었다. 하지만 회초리를 드는 법은 없었다. 소년부에 자원해 재판할 때도 미성년자인 아이들을 성인 범죄자와 같은 방식으로 대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생각했고 벌을 주기보다는 타일러 교화하려 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소년 범죄에 대한 형벌이나 규칙은 성인 범죄와 크게 구별이 없어서 이를 시정하는 것이 시급히 필요하다.” 1950년 한 일간지에 연재한 글에서는 이 같은 그의 철학이 오롯이 드러난다. 자녀들에게는 일기 쓰기를 강조했다. 하루 동안 한 일을 되돌아보고 스스로 반성하는 기회를 만들기를 바랐다. 여덟 남매를 둔 아버지였지만 김 판사는 더 많은 아이들을 마음으로 보듬고자 했고, 틈나는 대로 고아원을 찾아가 아이들을 위로했다. 1915년 전북 김제에서 태어난 김 판사는 21살이 되던 해 전주의 한 변호사사무실에서 일하다 전주지원 군산지청 서기시험에 합격했다. 1940년에는 18명이 합격한 조선변호사시험에 붙었고 이듬해 가인 김병로(초대 대법원장) 선생의 사무실에서 변호사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서울지검 검사, 서울지법 판사, 서울고법 부장판사, 전주지법원장을 거쳐 1964년 서울고법원장에 올랐다. 판사로 재직하면서 늘 값싼 중고 양복에 검정 고무신을 신었다. 점심은 언제나 아내가 싸준 무짠지 반찬 도시락이었다. 많지 않던 봉급 중 일부는 사형수들에게 보내 줄 책과 영치금에 썼다. 가족조차도 외면한 그들이 묻힐 묘지를 마련하기도 했다. 피고인들에게 판결을 내리면서도 늘 자신을 되돌아보며 법관이기 이전에 인간이 되고자 다짐했던 김 판사는 수시로 사형수들을 찾아가 그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가톨릭에 귀의한 뒤에는 사형수들의 대부가 되길 자처했다. 그들과 주고받은 수백 통의 편지는 현재 190여통이 전한다. 한 사형수는 “인간으로서는 하지 못할 죄악을 범하고 지금은 최고형이 확정된 보잘것없는 저에게 친히 노력을 아끼지 않으시는 영감님의 뜻 대단히 감사히 생각합니다. 영감님의 따뜻한 손길에 감화받아 얼마 남지 않은 기간 참삶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라고 썼다. 베푸는 삶을 살았기에 가정은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못했지만 가족들은 가난을 불평하지 않았다. 철효씨는 “오히려 ‘사법권만은 절대로 썩지 않았다’고 누누이 하시던 말씀에 자부심을 가졌다”고 말했다. 김 판사가 세상을 떠난 뒤 집안 살림은 더욱 어려워졌지만 부인은 이후에도 수십년간 교도소를 찾으며 남편의 뜻을 이어 갔다. 서울고법은 제10대 서울고법원장을 지낸 김 판사 탄생 100주년, 서거 50주기를 맞아 16일 추념식을 연다. 가족들을 비롯해 양승태 대법원장, 이상민 국회 법제사법위원장 등 법조계 인사들이 대거 참석한다. 법조인으로 구성된 법조 관현악단이 기념 연주를 하고 ‘어느 법관의 삶-사도가 된 법관 김홍섭’이라는 다큐멘터리가 상영된다. 최종고 서울대 명예교수의 특별강연도 이어진다. ‘사도법관 김홍섭 회고전’은 오는 18일까지 계속된다. 김 판사가 생전에 남긴 자작시, 스케치, 사진, 사형수들과 주고받은 편지, 그가 입었던 법복 등 유품이 전시된다. 현직 법관들과 생전 지인들이 말하는 김 판사에 대한 기억과 그가 맡았던 주요 사건의 판결, 신문 등에 기고한 논문 등을 실은 자료집도 발간된다. 글 사진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커버스토리-마을로 뛰어든 청년들] 청춘이 뭉쳤다 골목이 변했다 마을이 웃는다

    [커버스토리-마을로 뛰어든 청년들] 청춘이 뭉쳤다 골목이 변했다 마을이 웃는다

    산업화 이후 사실상 해체된 ‘마을’이란 관계망 안으로 뛰어드는 청년들이 늘고 있다. 이유는 제각각이다. 창작공간을 찾아 나서거나 공동체 복원을 꿈꾸는 이들은 물론 경쟁사회에서 만족할 만한 삶을 발견하지 못했거나 쳇바퀴 같은 일상에서 ‘혼자’라는 느낌을 위로받기 위해 나선 이들도 있다. 혹자는 이들을 ‘낙오자’ 또는 ‘돈키호테’로 부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돈은 많이 못 벌더라도 내가 뿌리내리는 공간에서 이웃들과 함께 재미있고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싶다’는 청년들의 용기는 이미 조용한 변화를 이끌어 내고 있다. 13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성미산로. 빌라와 주택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골목 담벼락을 수놓은 꽃 모양의 벽화가 눈에 들어왔다. 분명 어른들 솜씨다. 맞은편 담벼락에도 벽화가 그려져 있다. 아이들이 그린 흔적이 역력했다. 20~30대 디자인 작가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문화예술 창작 모임인 ‘일상예술창작센터’(이하 센터)의 어린이 벽화반에 참여한 아이들의 솜씨다. 최현정(33·여) 사무국장은 “(센터가 운영하는) 공방에 주민들이 자연스럽게 찾아와 창작 활동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2003년 5월 출범한 센터는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다’는 가치를 표방한다. 센터는 ‘새끼’라는 이름(새끼줄을 꼬듯이 서로 소통하고 협력하며 작업한다는 뜻)의 공방에서 주민들을 위해 바느질, 그림, 목공예 강좌를 운영하고 있다. 강사로 마을 주민이 나서기도 한다. 신문자(33·여) 교육팀장은 “80대 중반에도 세련되고 젊은 감각의 패션을 뽐내는 할머니를 바느질반 선생님으로 초빙해 강의를 부탁한 적도 있다”고 설명했다. 센터가 마을 주민들의 참여를 유도한 계기는 무엇일까. 최씨는 “창작작업을 주민과 함께 공유하고 싶었다. 문화활동에 대한 주민 욕구와 맞아떨어졌다”며 “마을시장을 열면 이제는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직접 쓰던 물건이나 만든 물건, 재배한 작물 등을 사고판다”고 덧붙였다. 동대문구 이문동의 ‘도꼬마리’는 1년여 전 청년 8명이 모여 만든 생활공동체의 이름이다. 도꼬마리의 창립 멤버이자 상근활동가 이선화씨는 “이문동에 사는 대학생, 대학원생, 회사원뿐만 아니라 40~50대 주민들도 회원으로 있다”며 “처음에 우리 활동을 보고 ‘새롭다’, ‘신선하다’는 호기심에 회원이 된 마을 주민들도 있다”고 말했다. 도꼬마리가 운영하는 카페는 때로 요리 공간, 공연장, 공부방으로 활용된다. 지난해 10월에는 ‘반찬모임’을 만들었다. 자녀들을 학교나 유치원에 보낸 어머니들이 매주 화요일 낮 시간에 모여 코다리조림, 겉절이, 파래무침 등의 맛깔난 반찬을 만든다. 이 밖에도 영화·다큐멘터리 상영회, 마을 토크콘서트, 수제비누 만들기 강좌, 세미나 등을 열어 주민들을 맞는다. 또 과거 ‘아나바다 운동’을 연상시키는 ‘되살림 물품’도 판매하고 있다. 주민들이 기증한 옷, 모자, 신발, 소품 등을 저렴한 가격에 되파는 사업이다. 이씨는 “마을이 안고 있는 문제를 발굴하고 그것을 해결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일도 도꼬마리가 마을과 공존하고 마을에 공헌하는 방법 중 하나”라며 “소비자 권리를 알리는 강연을 연 뒤로, 강연에 참석했던 주민 중 일부가 소비자 권리 알기 모임을 만들어 자발적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밝혔다. 도꼬마리는 반찬모임을 청년과 경력단절 여성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반찬가게’로 진화시키고, 그 판매수익으로 마을 어린이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까지 만들 계획이다. 성북구 정릉동에는 협동조합 ‘성북신나’가 있다. 지난해 2월 출범한 성북신나는 다양한 세대와 계층이 공존하는 마을을 목표로 문화·교육 관련 활동을 기획한다. 조합원 구성도 다양하다. 20~30대 청년들이 다수지만 문화예술 활동을 하거나 공동육아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40~50대도 조합원 30여명 안에 포함돼 있다. 성북신나의 상근활동가인 오창민(26)씨는 “정릉동이 가진 고유한 지역 자원을 활용해 재개발·재건축 등을 하지 않고도 마을을 매력적인 공간으로 가꿀 수 있는 활동들을 고민하고 있다”며 “정릉동에 있는 사람, 공간, 이야기를 발굴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덧붙였다. 성북신나는 사양길을 걷고 있는 전통시장을 살려 보자는 취지에서 마을 주민들의 도움으로 지난해 정릉동 재래시장인 정릉시장 상인들과 함께 정릉천에서 ‘개울장’이라는 이름의 마을장터를 열었다. 단순히 먹거리만 팔지 않고 인디밴드를 초청해 공연도 했고, 아이들이 이면지를 활용해 공책을 만들거나 요구르트병으로 악기를 만들어 보는 체험 행사도 열었다. 오씨는 “자동차를 타고 멀리 나가지 않아도 마을장터에 얼마든지 보고 즐길 거리가 많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성북신나는 주민들을 상대로 꽃꽂이 방법을 알려주는 특별 강좌를 진행하는가 하면 지난달에는 중·고교생을 위한 ‘동네 탐험 프로젝트’도 진행했다. 학생들이 성북구 동선동 탐방코스를 만들어 그동안 몰랐던 공간들을 새롭게 조명하는 체험형 프로그램이다. “정릉동은 북한산 국립공원하고도 가깝고, 한옥 가구도 많은 데다, 굿당이 밀집해 있어 ‘샤머니즘 박물관’과 같은 이색 장소도 있어요. 평소 학교, 학원, 집만 오가는 10대들에게 ‘정릉도 재미있는 게 많다’는 생각을 심어 주는 계기가 됐다고 봅니다.” 성북신나는 청년일자리를 만들겠다는 또 다른 목표도 있다. 오씨는 “다양한 문화 활동을 통해 청년들이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일자리’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며 “상근활동가가 외부에서 봤을 때는 직업으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지만, 마을에서 (성북신나가) 하고 있는 여러 사업을 통해 활동가란 직업도 청년들의 지속 가능한 일자리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지속적인 활동이 곧 지역 생태계에 기여하는 일이 아닐까 싶다”고 덧붙였다. 용산구 한남동 이슬람 사원으로 통하는 우사단길에서는 ‘청년장사꾼’을 비롯한 20~30대 청년 창업가들이 ‘우사단단’을 조직해 마을과 공존을 꾀하고 있다. 우사단길은 2003년 뉴타운 재개발 지역으로 묶인 뒤로 10년 넘게 재개발이 지체돼 침체에 빠져 있다. 미묘한 변화가 시작된 것은 2~3년 전 청년들이 게스트하우스, 카페, 작업실 등을 차리면서부터다. 우사단길 청년들은 마을을 살리는 일에 팔을 걷어붙였다. ‘이태원 계단장’이라는 이름으로 벼룩시장을 열고 우사단길을 배경으로 마을 지도와 신문도 만들었다. 14일에는 음식뿐만 아니라 소품, 잡화, 의류 등을 판매하는 총 40여개의 상점이 참여하는 야시장 ‘열정도(원효로 인쇄소 골목 동네를 살려 보자는 취지에서 지난해 시작한 프로젝트 이름) 공장’ 행사를 앞두고 있다. 청년장사꾼의 오단(26) 활동가는 “마을에 먼저 자리를 잡은 주민들과 어떻게 공존할지에 대한 고민이 끊임없이 필요하다”며 “무언가를 할 때 첫 번째 기준은 ‘마을 사람들과 우리(활동가)가 즐거울 것’인지에 달려 있다. 다 같이 재미있게 놀자고 시작한 일이 누군가에게 희생을 요구하거나 힘든 노동이 되어 버린다면 지속할 수 없다”고 말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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