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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군, 신화인가 실체인가…93년 北단군릉 발굴

    단군은 신화상의 인물인가, 실존인물인가. 국내 단군연구의 실상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초·중·고의 국사교과서다.단군의 탄생일을 추정하여 제정한 개천절이 4대 국경일 가운데 하나이나국사교과서에는 아직도 단군이 곰의 자식으로 나온다. 국내 사학계의 단군연구가‘신화’의 벽을 넘지 못하는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이다. 국내의 단군연구는 한동안 실증사학의 전통에 밀려 학계에서 주요 테마로인정받지 못한채 고조선의 사회체제 등을 은유한 신화로 이해됐다.이 때문에단군연구는 사학계보다는 국문학·민속학·신화학·신학·철학·사상사 분야에서 산발적으로 진행돼 왔다. 본격적인 단군 연구는 지난 93년 10월 북한의 조선사회과학원이 단군릉을발굴,단군의 실체를 확인하였다고 발표하면서 시작됐다.그동안 국내사학계에서는 단군조선을 신석기의 고아시아족 시대로 파악하거나(고려대 金貞培교수),고조선을 비교사학적으로 분석한(서강대 李鍾旭교수)성과 등이 있다. 그러나 이 역시 국사교과서에 등재될 만큼 대중적으로 인정받지는 못했다. 최근개신교측이 단군관련 단체의 단군상 건립운동을 저지하는 배경도 이 때문이다. 반면 북한의 단군연구는 정치적인 색채를 가미하기는 했지만 남한에 비해훨씬 앞서 있다. 북한은 단군릉 발굴을 계기로 단군을 민족의 주체로 인식하면서 활발한 연구성과를 계속 내놓고 있다.릉 발굴 이전에는 단군에 관한 역사적 인식이 전혀 없었던 북한으로서는 스스로‘혁명적 변혁’이라고 일컬을만하다. 북한 학계는 단군릉 발굴을 계기로 고조선의 연대를 5011년전(93년 현재)으로 끌어올렸다.또 고조선의 강역에 관해서도 종래의 ‘요녕설’을 뒤엎고 ‘평양설’을 들고 나왔다.선문대 이형구(李亨求)교수는 “고조선의 강역,단군뼈의 발굴 및 연대측정 결과를 놓고 남북간에 논쟁이 예상된다”면서 “정치적 요소를 걷어내면 북한의 단군릉 발굴은 고조선사를 둘러싼 남북한 학계의 연구 재조명과 방향정립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운현기자
  • 재개발아파트 관리처분 인가 받은곳 가장 유망·투자 10계명

    최근 일부지역에서 고급 브랜드의 아파트 청약열기가 뜨거워지면서 서울 등도심 요지에 있는 재개발·재건축아파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재개발은 건설교통부와 지방자치단체가 특정지역의 재개발 필요성을 인정,구역을 지정해 사업을 하는 것이며,재건축은 민간차원에서 재건축 추진위원회(조합)를 구성,사업시행 승인을 받아 실시하는 것으로 개념이 다르다.재개발·재건축아파트의 투자요령을 알아본다. 재개발아파트 사업절차 행정청 내에서 이루어지는 계획단계와 사업시행자가 행정청의 인가 허가 승인 등을 받아 집행하는 시행단계,그리고 공사와 법정절차에 대한 완료단계 등 크게 3단계로 나뉘어 진다. 투자유망 재개발아파트 재개발아파트에 투자할 때는 관리처분계획의 인가를 받은 지역 등을 고르는 것이 가장 안전하고 투자가치가 높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조언이다.관리처분계획이란 참여 조합원을 확정하고 조합원 재산(건물 및 토지)에 대한 명세와 청산방법,일반 분양대상,입주날짜 등을 계획하는 것으로 관리처분계획 인가를 받은 재개발아파트는 길게 잡아 2∼3년이면 입주가 가능하다.따라서 사업시행 초기 재개발아파트보다 지분 구입비용이 많이 든다.지분 구입비용이 많이 들지만 배정평형이나 추가부담금,입주시기가거의 확정되기 때문에 투자위험을 줄일 수 있고 그때부터 값이 오르기 시작한다. 반도컨설팅의 정종철(鄭宗喆)사장은 “현재 관리처분인가를 앞두고 있거나받은 지역 중 역세권의 대단지 재개발아파트를 고르면 가장 높은 투자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재개발아파트로는 성동구 금호6·8·12구역,마포구 신공덕1·2구역·염리 대흥 공덕1구역 등,관악구 봉천7-1,2-2,봉천3·8구역,용산구 산천 도원구역,중구 신당3·4·5구역 등을 꼽을 수 있다. 초기투자로 사업초기에 적은 돈으로 지분을 확보하고 싶을 땐 구역지정이임박한 곳을 노리는 게 좋다.구역지정이 이뤄지고 나면 관리처분인가,이주비 지급 등의 일정에 맞춰 지분 값이 단계적으로 오른다. 올해안에 서울에서 구역지정이 예상되는 곳은 성동구 금호동의 금호11구역등 모두 17곳.이 가운데는 한강이 보이거나 교통 편익시설 학군이 좋은 아파트가 많아 눈여겨 볼 만하다.금호11구역 외에 마포구의 현석구역,길음 6구역 등이 추천대상이다. ▲금호11구역 오는 8월께 구역지정이 될 것으로 예상돼 가격이 조금씩 오르고 있다.성동구 일대 재개발아파트 중 한강과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어 조망권이 뛰어나다.현재 공사 중인 금호8구역 앞에 있고 지하철 3호선 및 국철환승역인 옥수역과 가깝다.40평형대를 분양받을 수 있는 지분시세는 2억2,000만∼2억3,000만원대.전세가격이 1억4,000만원에 형성돼 있어 8,000만∼9,000만원이면 지분구입이 가능하다. ▲현석구역 하반기 중 구역지정이 이루어질 전망이다.2000년 11월 개통될 지하철 6호선 창내역이 걸어서 5분거리이고 서강대교와 마포대교를 쉽게 이용할 수 있다.30평형대 지분은 7,000만원(전세 4,500만원)선으로 초기투자비 2,500만원이면 된다. ▲길음6구역 빠르면 이달 중 구역지정이 될 것으로 보인다.지하철 4호선 길음역이 걸어서 5분거리로 길음동 일대 재개발아파트 중 지하철역과 가장 가깝다.사업 추진이 빠른 길음 1·2구역보다 거래가 부진한 편이나 구역지정이 되면 수요가 늘 전망이다.지분시세는 33평형이 7,000만∼8,000만원,43평형은 1억6,000만원 선이다. 박성태기자 sungt@ - 재건축·재개발 투자 10계명 재개발·재건축아파트 투자는 일반 아파트와는 달리 자칫 판단을 잘못할 경우 자금이 묶이는 등 곤란을 겪게 된다.투자시 유의할 점을 정리한다. 1.재개발은 구역지정,재건축은 사업승인이 확실한 지 반드시 확인하라.사업시행 시기가 불투명할 경우 투자기간이 길고 금융,기회비용이 증가하기 때문이다.어떤 지역은 10년 이상 투자금이 묶여있는 곳도 있다. 2.소규모보다 대규모 단지가 유리하다. 3.조합원 자격,소유권에 대해 철저한 권리분석을 하라.이는 아파트 평형배정과 추가부담액이 얼마나 될 지를 체크하는 수단이다. 4.조합운영 주체의 투명성,합리적인 조합운영이 이뤄지는 지를 파악하라.내분이나 비리가 많은 조합은 언제나 문제가 발생하기 마련이며 조합원 피해가 속출한다. 5.시세보다 지나치게 싼 물건,조합원 자격,국공유지점유면적 등에 대한 확인이 필요하다. 6.건축비,분양가 변동요인이 있는 지 알아보라.확정금액인 지,예정금액인지 확실히 알고 투자해야 한다. 7.믿을 수 있는 시공회사인 지 여부를 확인하라.재개발 재건축아파트 시공회사 중 지나친 이익추구로 조합원 부담이 가중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8.반드시 현장을 답사해 주변여건을 눈으로 확인해야 한다. 9.신용있는 부동산 컨설팅사나 중개업소를 선택하라.최근 유행하는 ‘떳다방’(이동 중개업자)을 조심하라. 10.투자는 자신의 자금 능력에 맞게 해야 한다.분양가 입주시기 은행융자등의 조건을 면밀히 검토하는 것이 좋다. 박건승기자 ksp@[-]
  • 방송사 토론프로 활성화…토론문화 자리 잡는다

    KBS 등 방송사들이 토론문화의 정착에 앞장서고 있다.토론프로의 숫자가 부쩍 늘었고,전문가들이 격론을 펼치는 등 새로운 토론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주제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으로 폭이 크게 넓어졌다. 방송사가 내보내는 토론프로는 ‘생방송 심야토론’(KBS1 토 밤 10시30분)‘길종섭의 쟁점토론’(KBS1 목 밤10시) ‘일요진단’(KBS1 일 오전 10시15분)과 ‘배유정의 열린아침-터놓고 말해봅시다’(MBC 일 오전 8시),‘갑론을박 동서남북’(SBS 일 오전 8시10분),‘생방송 난상토론’(EBS 토 저녁 8시55분)등이 있다. 현재 방송되는 토론프로 중 가장 오래 된 것은 KBS1 ‘생방송 심야토론’. 지난 87년 ‘터져나오는 민주화의 요구를 담는 그릇’으로 불리며 화려하게출발,이듬해인 88년 방송대상을 받았다.이 프로에는 재야인사나 운동권 출신도 거리낌없이 나왔다.전문가와 명사들이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는 장면은당시로선 좋은 구경거리였다.90년대 들어 인기가 다소 떨어졌으나 최근 ‘박정희 전 대통령,그를 어떻게 볼 것인가’나 ‘공자논쟁’을 다뤄 다시 관심을 모으고 있다.전화와 PC통신을 통해 시청자의 의견을 반영하고 실시간(리얼타임)으로 패널과 시청자가 토론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EBS의 ‘난상토론’도 토론프로의 재미를 더해준다.지난해 9월 첫방송된 이 프로는 토론프로의 열기를 더욱 뜨겁게 달군 것으로 평가된다.이 프로는 우선 주제를 시민단체와 함께 선정,시사성과 공정성을 살렸다.좌석배치도 다른 방송사와 달리 했다.그동안 TV 토론프로들은 시청자를 위해 일렬로 앉는 방식으로 자리를 꾸몄다.그러나 이 프로는 찬·반 양론으로 분명하게 나뉘는사람들을 마주 앉게 했다.서로 침을 튀기며 생각을 밝히다,때론 인신공격이벌어지고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 방송이 끝나기도 한다. ‘싸움판같다’‘질서가 없다’‘찬·반 이분법을 강조한다’는 등의 비난도 받지만 인기도 그만큼 드높다..최근 서강대학 경제학과에는 이 프로를 본따 ‘시사토론회’란 토론동호회가 생기기도 했다. 이철수PD는 “난상(爛商)이란 어지럽게 널려있다는 뜻이 아니라 ‘낱낱이들어 잘 의논함’이라는 뜻”이라면서 “난상이라는 말 그대로 복잡한 사안을 자세히 설명해주고 시청자 가족들이 서로 토론을 벌이도록 돕는 게 이 프로의 목적”이라고 말한다. 토론프로가 이처럼 시청자의 관심을 모으면서 제작자들은 출연자 선정 등에 더욱 신중을 기하고 있다.한 관계자는 “토론프로의 생명은 찬반양론이 팽팽하게 접전을 벌이는 데 있다”면서 “출연자에게 논리를 적극적으로 펼쳐달라고 주문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들 토론프로는 예상밖의 수확도 거두고 있다.출연자들이 예전과 달리 철저하게 준비를 해오는 것이다.자칫하면 논리에서 밀려 억지주장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탓에 토론프로에 출연하는 교수나 전문가들사이에 ‘공부해야한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토론프로에 관한 아쉬움도 있다.YMCA시청자시민운동본부 이승정실장은 “좋은 주제와 토론자도 필요하겠지만 이른 아침이나 늦은 밤이 아니라,EBS의 ‘난상토론’처럼 저녁 가족시간대에 과감한 편성이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지적했다.그는 아울러 “방송사들이 토론문화 정착에 책임감을 갖고 토론프로를 잘 운영해달라”고 주문했다. 허남주기자 yukyung@
  • 金대통령, 정책기획위원들과 터놓고 대화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14일 청와대에서 대통령자문기구인 정책기획위 위원들과 오찬을 함께하며 정국상황에 대해 심중에 담아놓은 많은 얘기를 털어놨다.기획위원들도 김대통령에게 특검제 도입 필요성을 비롯한 정국대처 방안에 관해 허심탄회한 의견을 개진했다.마치 ‘대통령의 눈과 귀를 막고 있다’는 세간의 우려가 기우(杞憂)라는 것을 보이기로 작심이라도 한 듯 언로(言路)가 열린 현장이었다. 김대통령은 최근 고급옷 로비 의혹 사건과 조폐공사 파업유도 의혹에 대한나름의 분석내용을 설명했다.즉 중산층과 저소득층의 박탈감 상승작용이 국민의 분노원인이라고 풀이했다.우리는 이렇게 어려운데 고관부인들이 비싼옷집을 출입한 사실에,노동자들은 피눈물을 흘리고 있는데 공안대책회의에서 파업유도를 논의했다는 내용에 분노하고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김대통령은 “사실 여부를 떠나 민심이 그러하다”며 조폐공사 파업유도 의혹사건의 투명한 처리를 거듭 다짐했다. 김대통령은 정부도 반성해야 할 점이 있다고 지적했다.공직기강을 바로 세우고 중산층과 서민들의 생활을 뒷받침해야 한다는 것이었다.“민주주의와시장경제의 원칙에 덧붙여 일할 수 있는 사람에게 기회를 주고 스스로 벌 수 있는 생산적 복지라는 개념을 좀더 깊이 연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상진(韓相震)정신문화연구원장은 “정부의 개혁안에 대해 민심이 반목·대립·상호불신의 역사적 잔재를 거듭하면서 증폭되고 있는 느낌”이라고 진단했다.또 “대통령이 국정의 전면에 서 있는 현 상황이 부담으로 작용하고있다”며 “다른 사람들에게 많은 역할을 부여,대통령의 권위를 살리고 대통령의 지시를 강력히 추진할 개혁기구 구성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참고로 판단하겠다”고 밝힌 김대통령은 대북문제 전문위원들에게 북한경비정 서해안 침범사태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오기평(吳淇坪)서강대교수는“북한측이 대화에 쉽게 응하지 않으려는 조건들을 반영한 것”이라며 이 사건으로 정부의 대북정책이 바뀌어서는 안될 것이라고 주문했다.한겨레신문김근(金槿)논설주간도 이에 가세했다. 이어 황태연(黃台淵)동국대교수가 “밖에서는 측근들이 눈과 귀를 막고 있다고 들었는데,와서 보니 그렇지 않다”며 단독 국정조사는 명분이 약하다고 지적한 뒤 특검제 수용을 건의했다.조우현(曺尤鉉)숭실대 노사관계대학원장도 “민심이반이 심각하다”며 특검제가 여의치 않으면 20% 개방직을 활용,수사의 공정성을 확보하자는 의견을 개진했다.김대통령은 “밖에서 여러 얘기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나 대통령의 입장에서 어떤 문제를 판단할 때 더 많은 점을 고려해야 하고,여러가지 어려움도 뒤따른다”고 토로했다. 이날 새로 위촉된 위원은 경제분과에 김효근(金孝根·이화여대 경영학과 교수)·이동걸(李東傑·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정창영(鄭暢泳·연세대 경제학과 교수)·지용희(池龍熙·서강대 경영학과 교수),사회·노동·문화분과에 조우현(曺尤鉉·숭실대 노사관계대학원장),과학기술·국토환경분과에 박양호(朴良浩·국토연구원 국토계획연구실장)·박진애(朴眞愛·인제대 환경학과 교수)씨 등이다. 양승현기자 yangbak@
  • [굿모닝 새천년 패러다임을 바꾸자](5)장르떠나 전문성 융합을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는 다음달 23일 사상 최초로 사이버공간과 음악을 연계시킨 ‘두뇌오페라(brain opera)’를 선보인다.과학과 음악의 벽을 허물어내는 새 시도로써 뇌의 신비를 밝히기 위한 것이다.이 행사에서는 뉴욕줄리아드음대 컴퓨터에 음악가 및 인터넷가입자 1,390명이 음악에 관한 정보를 각각 입력하면 컴퓨터가 이를 오페라로 종합해 뉴욕링컨센터의 청중에게들려주게 된다.오페라를 기획한 인공지능학자 민스키교수는 “인간 뇌세포는 각각 독립적이지만 다른 뇌세포와 조화를 이뤄 지능을 형성한다”면서 “컴퓨터와 음악을 통해 이같은 뇌의 움직임을 증명하려는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연말 미국의회는 국방부가 ‘4개년 국방계획(QDR)’을 작성하자 민간전문가 20여명으로 자문단을 구성,평가작업을 벌였다.이들은 20년후의 시각에서 미국이 전세계에서 차지하는 위치와 그에 따라 갖춰야할 군사력 수준 등을 민간차원에서 검토했다.미 국방부는 이 비판을 내년부터 작성하는 다음번 계획서에 포함시키게 된다.비밀성이 요구되는 군사력 방향을 놓고 정부가민간기구의 지혜를 선뜻 수용한 것이다. 이같은 ‘벽 무너뜨리기’또는 ‘전문성의 융합’은 미국만의 현상이 아니다.유럽도 벌써부터 채비를 갖추고 있다. 네덜란드의 전자회사인 필립스는 현재 ‘미래의 비전’계획에 따라 비디오폰 손목시계,음악이 나오는 티셔츠 등 2∼3가지 개념을 종합한 신제품을 개발중이다.종래의 제품으로는 21세기 회사의 운명을 개척하기 어렵다는 인식에 따른 것이다.프랑스 드쿠플레무용단은 80년대들어 무용 마임 아크로바트영상 컴퓨터를 종합한 새로운 복합공연을 펼치고 있다.이들은 지난 4월 내한공연을 가져 국내 문화계에 큰 충격을 던졌다. 세계는 이처럼 민간과 정부부문,학문과 학문,과학과 예술 등 모든 분야에서 장르와 전문영역의 두터운 울타리를 부수고 새로운 조화와 창조를 이뤄내려 안간힘을 쏟고 있다.21세기 글로벌경쟁의 시대를 맞아 성장과 효율이라는두마리 토끼를 잡음으로써 시대의 흐름을 주도하려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떨까.최근 정부는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있다.태스크포스를 구성해 실용적 처방을 찾고자 애쓰고 있다.그러나‘성공’으로 평가받는 것은 매우 적은 편이다.정부의 잘된 태스크포스는 규제개혁위원회와 수질개선기획단 등이 고작이다.수많은 태스크포스 가운데 대부분은 부처이기주의,영역다툼 등에 부딪쳐 결실을 맺지 못하고 있다.지방자치단체간의 협력은 더욱 어렵다.행정자치부의 한 관계자는 “쓰레기문제를처리하기 위해 자치단체간 협의체가 있지만 운영이 잘 안된다”고 말한다.또 개방형 공직임용제의 경우 당초 1만3,000여개의 직위 가운데 30%를 민간인으로 채용하려 했으나 공직사회의 반대로 자리가 빈 데 한해 민간인을 채우는 것으로 대폭 축소됐다.기업들도 최근 사외이사제를 도입했으나 아직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러나 희망은 보인다.정부의 인식변화,학문의 협력 등과 함께 문화계의 크로스오버 등 ‘장르 가로지르기’가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학문과 학문,지역과 지역,세대와 세대,보수와 진보,기득권층과 소외계층,전문가와 전문가의 갈등 등 곳곳에 쌓인 우리의 벽은 아직 높기만 하다.그러나 이 벽을 쳐다보고 한숨만 내쉴 수는 없다.세계가 무한경쟁에 뛰어든 지금,영역과 사고,마음의 담을 부수고 새로운 통합의 길로 나서는 일이 시급하다. - 밀레니엄 탐방-한국과학기술원 디지털문화예술연구회 대덕연구단지내 한국과학기술원(KAIST) ‘석학의 집’에서는 매주 월요일이색적인 만남이 이루어진다.20여명의 내로라는 KAIST 석학들이 한자리에 모인다.인문학과 이공학의 융합에 나선 ‘디지털문화예술연구회’ 회원 모임이다. ‘디지털문화예술연구회’는 지난 92년부터 KAIST의 몇몇 교수들이 간헐적으로 프로젝트와 프로그램을 시도해오다 지난해 3월 공식 발족했다.디지털정보화시대로 표현되는 미래사회에선 지금의 독립된 학문구분으론 도저히 적응할 수 없다는 공통인식을 바탕으로 한다.그래서인지 이들은 자기 분야의연구에 다른 분야의 기술이나 이론을 서슴없이 받아들이고 자기 것으로 소화한다. 모임의 시초는 전산학과 원광연교수가 미국 하버드대 및 펜실베이니아 대학 강의시절 느낀 점을 토대로,전공·학제가 개방적인 KAIST 특유의 체질을 살려 이공·인문학의 교류를 제안한 것.지난 92년의 일이다.과학·공학·인문사회과학·문화예술 분야의 교수 20명이 선뜻 동의했다.여기에는 사이버 가수 ‘아담’의 지도교수인 원 교수를 비롯해 96년부터 3년 연속 최우수강의교수로 뽑힌 윤정로교수(사회학),KAIST 연구처장 이귀로교수(전기전자공학),과학영재학회 부회장인 박상찬교수(산업공학),KAIST 부설 연구개발정보센터소장 김진형교수(전산학)등이 참여하고 있다. 한글 전산화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최기선교수(전산학)는 “전산분야의 일이지만 인문학 성격이 강한 디지털작업인만큼 인문학 소프트웨어 지원이 절실한 실정”이라면서 “이 분야에서 제대로 교육받은 전문가나 전문과정이없어 모임을 통해 큰 도움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권은숙교수(산업디자인학)는 “외국의 경우 디자인이 이미 기술마케팅 차원을 떠나 삶의 한부분으로통합되고 있다”면서 “문화와 기술의 융합이 어떤 가치를 창출해내는지를함께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의 모델은 인간 커뮤니케이션의 미래형태를 연구,실험하는 MIT의 미디어랩.이곳은 TV 영화 신문 도서 컴퓨터 등 온갖 커뮤니케이션 미디어의 거대한 융합을 실천하고 있다.학부 및 석·박사과정이 개설돼 있으나 특정 전공을 두지않고 있다.다양한 전공이 교차하는 창조적 실험장인 셈이다. 원 교수는 “지금의 단절된 학문체계로는 한계를 느낄 수 밖에 없는 실정”이라면서 “기술이나 과학,혹은 인문학 등의 융합,즉 공동작업은 앞으로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 밀레니엄 포인트 공학도로 임원이 된 사람들은 대부분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배운다.마케팅을 모르고 회사를 운영하는 게 쉽지 않은 탓이다. 이러한 현실적 이유가 아니라도 학문간의 장벽은 급속히 허물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대학의 학생 모집은 학과단위가 아니라 기초과학군,지구과학군,인문학부 등으로 광역화되고 있다.대학의 수요자인 학생들에게 선택권을 넓혀주자는 취지도 있지만 칸막이가 쳐진 학과로는 급격한 사회변화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례로 세포복제는 윤리문제를야기시켜 과학과 철학적 배경을 요구한다.매스컴은 컴퓨터 등 공학적 지식과 연계된다.아시아와 태평양 지역의 통상문제를 다루기 위해선 외국어뿐만 아니라 외교학과 비즈니스,인류학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서강대학교는 올해부터 6개 연계전공과정을 개설했다.미디어공학,스포츠경영학,여성학,한국학,PRT(Philosophy,Religion,Theology),PEP(Politics,Economics,Philosophy)가 그것이다.미디어 정보처리를 통한 창의적인 엔지니어 양성을 목표로 한 미디어공학 과정에서는 신문방송학에 대한 이론과 전자,컴퓨터 등을 배운다.스포츠경영학은 말 그대로 스포츠와 경영학이 결합한 것.스포츠 스타의 상품성을 극대화하는 방안 등을 연구한다.PRT는 철학과 종교·신학,PEP는 정치학과 경제학·철학을 결합시킨 것이다. 한양대학교는 영상산업학과를 개설하고 연극과 경영학,정보처리,컴퓨터그래픽 등을 종합적으로 가르친다. 한동대학교는 아예 무전공제를 실시하고 있다.컴퓨터와 영어 등 사회생활에 필요한 분야는 이수학점을 정해 놓았으나 나머지는 자유롭게 공부할 수 있도록 했다. 임태순기자
  • ‘언론개혁시민연대’ 신문개혁 토론회

    언론개혁 시민연대(상임대표 金重培)는 8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신문개혁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가졌다. 토론은 포괄적·정책적 접근을 피하고 ‘신문발전위원회’ 구성 등 신문개혁을 위한 구체적인 방법론을 집중적으로 조명했다. 김정기(金政起·한국외국어대)교수는 모두발제를 통해 신문개혁에 있어서정부의 역할을 강조하고 영국 정부의 타블로이드 신문개혁 사례를 소개했다. 김교수는 “한국 신문은 사기업이면서 공기(公器)이기 때문에 정부가 간여해서는 안된다는 믿음을 신화처럼 붙들고 있다”고 일침을 가했다.이어 “언론의 자발적 개혁이 지지부진한 만큼 정부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요구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장호순(張浩淳·순천향대)교수는 지난 44년 구성돼 미국 언론개혁의 실마리를 마련했던 허친스위원회의 사례를 들었다.장교수는 “미국 언론이 소수의거대기업군에 의해 소유됐기 때문에 언론자유가 심각한 위험에 처해 있고 신문시장이 경제논리에 밀려 선정적이고 자극적 뉴스와 오보들을 양산했다”고 지적했다.그는 구체적 대안으로 정부가 신문에 독점금지법을 적용,소유집중을 막는 방법과 법적으로 ▲강제 정정 ▲반론권 보장 등을 제시했다. 박용규(朴用圭·상지대)교수는 한국 실정에 맞는 신문의 개혁과 발전을 논의하기 위해 언론인과 국회의원,시민단체,학자 등이 참여하는 ‘신문발전위원회의 구성’을 제안했다.이 위원회는 국회 산하기구 또는 공익기금으로 운영되는 독립기구 형태가 돼야 한다며,▲신문 소유구조의 문제점 해결 ▲경영투명성의 확보 ▲ABC제도나 공동판매제 실시 등 신문시장 정상화 방안 ▲신문시장의 독과점 문제 해결 ▲편집권 독립 등을 주요 의제로 꼽았다. 주제발표에 이어 김학수(金學洙)서강대교수와 국민회의 정동채(鄭東采)·한나라당 박성범(朴成範)의원,우승용(禹勝勇) 전문화일보 편집국장,조성부(趙成富) 한국기자협회 회장 등이 나서 신문개혁 방향,신문의 역할과 책임을 놓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정의원은 “김대중(金大中)대통령도 최근 언론의 비판을 봉쇄하는 것은 독약을 한사발 마시는 것과 같다는 견해를 피력했다”고 전하고 ▲질·내용·이념의 다양성 추구 ▲거품제거를 통한 경영투명성 확보 ▲공동판매 등을 통한 신문판매질서 확립 등을 촉구했다. 박의원은 입법부에 의한 제도적 개혁과 신문의 자발적 개혁이 상호보완적으로 추진돼야 한다며,▲정부의 개입 최소화 및 합리적 조정자 역할 ▲언론사의 성의있는 자구노력 ▲시민단체의 소비자 주권운동 등을 제시했다. 오일만기자 oilman@
  • 한강을 숨쉬는 자연·문화공원으로

    한강변을 환경 친화적인 시민 휴식공간으로 만들기 위한 종합개발계획이 내년부터 연차적으로 추진된다. 고건(高建)서울시장은 8일 기자회견을 갖고 오는 2003년까지 한강을 시민들의 자연·문화공원으로 조성하기 위한 ‘새서울 우리 한강 사업’계획을 발표했다.무엇보다 한강의 생태환경을 복원,보존하고 시민들이 쉽고 편리하게강에 다가갈 수 있도록 한강의 재생 및 접근성에 중점을 둔 것이 특징이다. ‘살아 숨쉬는 한강’‘즐겨 찾는 한강’‘가까운 한강’‘미래를 여는 한강’ 등을 기본주제로 모두 16개 분야 53개 단위사업으로 짜여 있다. 우선 한강의 권역을 크게 5개로 나눠 고덕·광나루지구 및 난지·강서지구는 자연생태지구,잠실·뚝섬지구는 역사문화지구,여의·양화·망원지구는 국제화·미래화지구,반포·이촌지구는 중심핵지구로 조성하는 등 권역별 특성을 살릴 방침이다. 주요 사업내용은 양화대교 부근 선유도와 노량진의 노들섬,성산대교 옆 난지지구 등 3곳에 시민공원을 새로 조성하고 여의도 63빌딩 앞과 월드컵주경기장 앞,뚝섬지구등 3곳에는 다양한 분수대를 설치한다. 이와 함께 지하철역과 시민공원을 잇는 교량과 보도육교를 신·증설하고,서강대교 북단과 뚝섬∼광진교 구간,잠실철교,청담대교 등에는 자전거도로를새로 만들어 강·남북을 오갈 수 있게 할 계획이다. 시는 각 분야 전문가들로 ‘우리 한강 사업추진단’을,시민단체 등으로는‘한강을 사랑하는 시민의 모임’을 각각 구성해 추진단계에서 의견을 수렴하고 건설교통부·환경부 등 정부기관과의 협의를 거쳐 8월중 계획안을 확정,내년부터 연차적으로 사업을 추진할 방침이다. 김재순기자 fidelis@
  • 서울시 ‘새 한강’ 개발계획 주요내용

    8일 서울시가 발표한 ‘새서울,우리 한강’계획은 새 천년을 맞아 한강을환경친화적이며 시민이 즐겨찾는 휴식공간으로 탈바꿈시키는 것을 주내용으로 담고 있다. 한강은 시민공원 이용객이 연간 1,400만명에 이르지만 각종 개발의 부작용으로 훼손이 심하고 접근성도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따라서 새로운 천년을맞아 개발시대의 모습에서 탈피,자연이 살아 숨쉬고 시민이 즐겨 찾는 마당으로 만든다는 것이 서울시의 구상이다.16개 부문 53개 사업으로 나뉘어 2003년까지 추진될 ‘새서울,우리 한강’ 계획의 주요 내용들을 요약한다. 시민공원 신규조성 인구 감소와 강북정수장 확충으로 2001년 이후 폐쇄되는 양화대교옆 선유도에 환경재활용공원을 조성하고 이곳과 양화지구 사이에 무지개다리를 놓아 시민들의 접근을 쉽게 한다.또 동작구 노량진정수장 터에 물박물관 수족관 정수시스템전시장 등 수도공원이 들어서고 인근 노들섬에는 제방과 연결되는 보행자도로가 건설된다.상암동 월드컵경기장 앞쪽의난지지구는 경기장 주변 평화의 공원과 연계된 환경재생공원으로 탈바꿈한다.평화의 공원과 난지지구를 연결하는 평화의 다리는 설계비 30억프랑을 프랑스의 밀레니엄위원회에서 부담,서울시는 공사비만 맡는다.한강변에는 유람선 선착장이 조성된다. 시민공원 재조성 강북 강변북로와 청담대교 건설 등으로 여건이 많이 변함에 따라 시민공원을 재조성한다. 뚝섬지구는 광진구 능동로 ‘걷고싶은 거리’와 연계,광장을 갖추도록 하고 문화기능도 대폭 강화한다.잠실지구는 탄천의 대규모 주차장과 견인차보관소를 정리하고 잠실대교,잠실철교 및 아파트 재건축과 연계해 접근성을 높인다.몽촌토성 풍납토성 광나루지구 암사유적지 등 한강주변의 유적지와 연계된 문화·관광프로그램을 개발한다.광나루지구는 인근 고덕지구와 연계,생태공원으로 단장한다. 수경 랜드마크 대규모 분수를 만들어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하고 이를 통해 한강을 서울의 대표적 관광명소로 육성한다.난지지구 월드컵경기장 앞에는이동이 가능한 고사(高射)분수를 만들고 여의지구 63빌딩 앞에는 수막(水膜)분수를,뚝섬지구에는 제트분수를 만든다. 접근성 개선 한강시민공원에 걸어서도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시설을 개선,이용도를 높인다.우선 올 하반기에 잠실대교 남단을 개선한 뒤 다른 교량으로 확대한다.내년까지 당산·응봉·동작역에 한강 시민공원으로 연결되는 보도육교를 설치하고 잠실·반포·이촌 등 재건축지역에는 한강으로 통하는 보행자 전용육교를 건설한다. 순환 자전거도로망 구축 한강 교량에 자전거도로를 신설,강남북 순환 자전거도로망을 구축한다.서강대교 북단및 뚝섬∼광진교를 잇는 강북구간을 비롯해 잠실철교 잠수교 청담대교 광진교 서강대교 등에도 자전거도로를 만든다. 나무 식재 및 자연형 호안 조성 비교적 물흐름이 느린 한강시민공원 제방에 나무를 시험적으로 심고 점차 확대한다.소하천 합류점과 생태공원 인접부에 자연석을 깔고 갈대 갯버들 등 친수성 식물을 심어 자연형 하천을 만든다. 지천 환경개선 한강의 주요 지천을 자연천으로 복원해 경관 및 수질을 개선하고 생태계를 회복시킨다.성내천 제방에 경관도로를 조성,올림픽공원과한강을 연결하고 지하철둔촌역에서 나오는 하루 2,000t의 지하수를 성내천에 공급해 항상 물이 흐르도록 한다.탄천의 기존 주차장을 축소하고 갈대와나무 등을 심어 자연친화적 하천을 만든다. 생태공원 및 생태통로 조성 시민공원을 생태공원으로 조성하고 주변의 녹지대와 연결되는 생태통로를 만든다.난지지구는 환경생태학습공원으로,강서생태공원은 습지생태공원으로,고덕지구는 생태식물원으로 각각 특화한다.또난지지구와 동작동 광나루지구,고덕지구 등에는 인근 습지대와 연결되는 생태통로를 만든다. 조덕현기자 hyoun@
  • 2000학년도 대입 특별전형 발표

    2000학년도 대학입시에서 전국 145개 대학이 재외교포와 해외주재 공무원및 상사원 자녀 등 모두 5,593명을 특별전형으로 선발한다. 특히 서울교대 등 6개 교육대는 처음으로 이 분야의 특별전형을 도입하고서강대 등 일부 대학은 이중국적자의 입학을 허용한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회장 玄勝一)는 6일 전국 186개 대학(산업대·교육대포함) 가운데 내년도 입시에서 재외국민·외국인 특별전형을 실시하는 145개대의 모집요강을 취합해 발표했다. 모집인원은 128개 일반대 5,185명,6개 교육대 42명,11개 산업대 366명 등 5,593명으로 전년보다 18개대 344명이 늘었다. 선발인원 100명 이상인 대학은 고려대 연세대 등 8개대,80∼100명은 경북대 성균관대 중앙대 등 9개대,60∼80명은 한국외국어대 이화여대 등 14개대,40∼60명을 뽑는 대학은 서울대 숭실대 등 34개 대학이다. 대부분 대학이 상사주재원 자녀의 경우 부모 한쪽만 외국에 체류해도 지원할 수 있도록 했고,서강대 홍익대 충남대 등은 이중국적자의 입학도 허용한다. 서울대 고려대 이화여대 등 21개대는 해외 재학기간에 따라 가산점을 부여하며,한국외국어대 등 12개대는 ‘졸업 후 2년6개월 이내’라는 입학허용 기한을 없앴다. 선교사 자녀,현지법인 근무자 및 자영업자 자녀,취업자,귀순북한동포 등을 선발하는 대학도 100개대로 늘었다. 대부분 대학이 논술과 면접·구술고사,필답고사 등을 실시하지만 가천의대대구대 등 6개대는 별도의 시험 없이 서류전형이나 최종 학교의 성적으로만신입생을 뽑는다. 주병철기자 bcjoo@
  • [제2공화국과 張勉](26)장면의 정치역정·생애(下)

    “본인은 오늘로써 부통령직을 사퇴한다.3·15부정선거로 인하여 삼천만 동포의 울분은 드디어 절정에 달하고 마침내 민족의 정화인 청소년 남녀들이불법과 불의에 항쟁하다가 총탄에 쓰러져 그 고귀한 피가 이 강산을 물들이게 됨을 볼 때에 하루라도 그 자리에 머무를 수 없는 비통한 심경에 다다른것이다.…이러한 중대위기에 즈음하여 이대통령은 3·15선거의 불법과 무효를 솔직히 시인하고 또 12년간 누적된 비정(秕政)에 대하여 책임을 지고 물러서야 할 것이다.…” 4·19가 일어난 지 나흘만인 1960년 4월23일 장면(張勉)은 기자회견을 갖고 부통령 사임을 발표했다.이틀 뒤에는 순화동 관저를 나와 명륜동 자택으로돌아갔다. 장면은 3·15선거에 부통령으로 출마해 비록 낙선했지만 3대 부통령 임기는 남아 있는 상태였다.따라서 이승만이 물러나고 3·15선거가 무효로 처리되면,대통령 직은 자연히 장면에게로 넘어오게 돼 있었다.그런데 굳이 이를 포기한 까닭은 무엇일까. 장면은 회고록에서 세 가지 이유를 들었는데 그 첫째가 이승만의 하야를 이끌어내기 위해서였다.이승만과 자유당에게 ‘정권을 내놓더라도 장면이 바로 계승하지는 않는다’고 보장해 준 것이다.아울러 부통령으로서 도의적인 책임을 함께 진다는 생각과,이승만의 불행을 틈타 권력을 잡는다는 인상을 국민에게 주기 싫어서이기도 했다. 장면이 부통령을 사직하자 곧바로 이기붕(李起鵬)이 부통령 당선과 국회의장 직을 사퇴했다.나흘 뒤에는 이승만도 국회에 사임서를 제출했다.이승만과 자유당의 퇴진을 무리없이 유도한다는 장면의 의도가 실현된 셈이다. 내각책임제로 개헌이 돼 새 정부가 출범할 즈음 장면은 대통령이냐,총리냐를 놓고 고민하게 된다.공보비서관을 지낸 송원영(宋元英)은 회고록에 “장박사와 그 가족,아주 가까운 몇몇 사람은 차라리 장박사가 실제 행정과는 초연한 대통령 자리에 앉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으로 보이지 않는 운동을 하고 있었다”고 적었다.한 측근이 ▲새 정부가 이승만정권 12년의 비정을 씻을 때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나올 수 있고 ▲부통령을 이미 했으니이제 대통령을 할 차례라고 설득한사실도 소개했다.그랬더니 장면은 “나도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하고 싶지만 그것이 내 뜻대로 되나”라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이 시기 미국도 ‘장면 대통령’을 지지했다.허터 미 국무장관은 60년 6월11일 매카나기 주한 미대사에게 보낸 전문에서 “장면을 대통령으로 선출하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못박았다.“그의 성실·청렴함과 국제정세에 대한 폭넓은 안목을 효과적으로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기 때문이다. 장면 자신과 최측근 인사들이 원했고 미국이 은밀히 지원했음에도 불구하고 장면은 대통령 아닌 총리 선출 경쟁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송원영의 표현처럼 “신파에 매인 몸이어서 대통령으로 ‘물러날 자유’가 없었던”것이다. 장면을 존경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때 총리가 아닌 대통령이 됐더라면…”하고 지금도 아쉬워하는 것은 사실이다. 총리에 취임한 뒤 장면은 특유의 근면성과 성실함으로 내각을 이끌어갔다. 아직 총리공관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여서 그는 일과후 반도호텔 828호실로옮겨 계속 집무했다.회고록에서 밝혔듯 “새벽 2시 전에 취침하는 날이 별로 없을 정도로 성심껏 무슨 일이든 잘해 보려고”했다. 이성모(李聖模)전 비서관은 “장박사는 점심도시락을 꼭 준비했고 저녁식사도 자택에서 날라왔다”면서 “밤에 반도호텔 집무실에서 보고를 다 받고 나면 보통 10∼11시쯤 됐는데 그때까지도 식사를 못해 식어빠진 저녁상이 그대로 놓여 있곤 했다”고 회상했다. 장면정부는 구파의 분당,소장파의 반발 등 정권 내부의 갈등으로 세차례나개각을 하는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그리고 이런 것들이 장면 개인,또는 그의 내각이 무능하다거나 지도력이 부족하다는 평을 듣는 주요인이 됐다. 그렇지만 쿠데타가 발생한 61년 5월 장면정부는 이미 기틀을 잡고 있었다.4월24일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단일지도체제로 당헌을 개정해 총재 직에 오른장면은 5월4일 3차 개각을 단행한다.당과 정부 양쪽에서 일사불란하게 지도력을 발휘할 구도를 마련한 것이다. 아울러 장면은 7월1일 방미해 케네디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기로 합의하고그 발표시기를 조정하고 있었다.한·일회담 재개도 눈앞에 두었다.미국의 경제원조 규모가 정상회담에서 결정되고 한·일회담에서 배상금문제가 타결되면,지난 3월 시작한 국토건설사업도,작성을 끝낸 경제개발5개년계획도 제 궤도에 오를 터였다.장면정부의 으뜸 목표인 ‘경제제일주의’가 바야흐로 국민의 피부에 와닿을 시점이었다.그런데 쿠데타가 터진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쉽게 쿠데타군에게 당한 까닭은 무엇일까.김영구(金永求)당시 내무차관의 회고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61년 3월 말,4월 초쯤이었다.반도호텔 장총리 집무실에 총리,매그루더 유엔군사령관,장도영(張都暎)육군참모총장과 나,네 사람이 모였다.쿠데타설이화제에 오르자 매그루더는 ‘내가 한국군의 작전권을 쥐고 있는데 누가 쿠데타를 하느냐.일어나더라도 금세 진압할 수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장총리도 전적으로 동의하는 듯했다.사실 많은 사람들이 미군이 있는 한 쿠데타는 불가능하다고 믿었다” 그러나 실제 쿠데타가 발생하자 장면은 진압에 나서지 못한다.휴전한 지 8년,전쟁의 상흔이 아직 짙게 남은 그 시절,쿠데타 진압이 부대간의 총격전으로까지 비화하면 자칫 북한에게 재남침의 빌미를 줄 수 있다는 판단을 했을것이다.6·25발발 직후 주미대사로서 유엔군 파병을 위해 침식을 잊었던 그로서는,만에 하나라도 그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었으리라. 장면의 묘소는 경기도 포천 천보산 기슭의 가톨릭공원묘원에 있다.그 곳에세워져 있는 묘비의 글은 장면의 삶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공(公)은 민주정치를 수립하고 경제제일주의를 표방하여 불철주야 심혈을 경주하던 도중,뜻밖인 5·16사태로 경륜을 펴지 못한 채 정치에서 물러나…깨끗한 교육자요,근엄한 종교인이요,불굴의 정치가의 생애였다”- 5·16쿠데타 직후…가택연금등 수난 5·16후 쿠데타세력은 장면(張勉)정부가 무능하고 부패했다고 대대적으로선전한다.이어 소장파가 폭로한 ‘중석불 사건’을 비롯해 비리 의혹이 제기된 온갖 사건들을 파헤친다. 그러나 몇달 뒤 군사정권이 발표한 ‘장정권 비리’는 당시 김영선(金永善)재무장관이 냉장고 한대를 뇌물로 받았다는 것뿐이었다.김장관과 친했던장경순(張慶淳) 5대 민의원은 그나마 “냉장고가 아니라 아이스박스였다”고증언했다.김장관의 오랜 친구인 부산세관장이 출장길에 들러 선물로 아이스박스 한통을 놓고갔다는 것이다. 군사정권이 쿠데타 명분을 세우려고 갖은 애를 써 증거를 찾았는데도 발표거리가 고작 ‘냉장고 한대’였다는 사실은,역설적으로 장면정부가 얼마나깨끗했는지를 확인해준 것이다. 군사정권은 아울러 각종 혐의를 붙여 장면정부의 장·차관과 민주당 간부들을 구속했다.장면은 가택에 연금당했다.가족 증언에 따르면 군인들이 20∼30명 정도 집 안팎에서 상주하며 출입자를 감시했다.심지어 가정부가 장보러드나들 때도 장바구니를 일일이 뒤졌다.장면은 감시자의 눈길이 싫어 대낮에도 창마다 커튼을 드리웠다. 연금은 1961년 11월10일 해제됐다.장면은 기독교 서적 번역에 몰두하는 한편 화초를 가꾸는 일로 하루를 보냈다.감시가 심해서인가,찾아오는 발길도뜸했다.그가 전도(傳道)한 옛 동료가 영세를 받는다는 연락을 해오면 대부(代父)를 서주느라 문밖을 나설뿐 외출은 거의 하지 않았다. 그렇게 지내던 62년 7월15일 장면은 ‘이주당(二主黨)사건’의 배후자라는혐의를 쓰고 입건된다.이 사건은,민주당 인사들이 일부 군 출신과 짜고 군사정권을 전복하려 했다는 소위 반혁명음모의 하나로 발표됐다. 장면에게 걸린 혐의는 거사 성공 후 총리로 복귀한다는 조건으로 자금 100만환을 제공했다는 것이었다.1심에서 징역 10년을 선고받지만 최종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으로 확정되고 결국은 형집행면제 처분을 받는다. 8월28일 법정구속된 장면은 10월15일 보석으로 출감한다.그는 풀려나면서 “제멋대로 잡아넣더니 보석은 무슨…”하면서 개탄했다. 장면이 연루됐다고 해서 떠들썩했던 이 사건을 비중있게 다룬 저작물은 아직도 없다.당시 구속기소된 민주당 인사들도 “그야말로 황당한 조작극이었다”고 입을 모으고,그 중에는 자신이 구속된 사건이 그것이었는지조차 기억 못하는 이가 있을 정도다. ‘이주당 사건’을 마지막으로 장면은 군사정권의 날카로운 칼끝에서 어느정도 벗어난다.66년 1월 말 간질환이 재발해입원한 뒤 그의 건강은 눈에 띄게 나빠졌다.6월4일 장면은 명륜동 자택에서 영면했다.향년 67세였다.부인김옥윤(金玉允)여사는 지난 90년 90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장면은 슬하에 5남2녀를 두었으며 모두 해외유학을 했다.맏아들(張震 서강대 생물학과 명예교수·72)과 셋째아들(張益 가톨릭 춘천교구장·66)만 국내에 있다.수녀인 맏딸(張義淑·69),건축가인 둘째아들(張建·67),정치학 교수인 넷째아들(張純·64·보스턴 리지스대)은 미국에,은행가인 다섯째아들(張興·60·파리은행)은 프랑스에 거주한다.막내딸(張明子)은 80년대 후반 세상을 떠났다. 서울미대 초대학장을 지낸 장발(張勃·98)과 한국 최초의 항공공학자인 장극(86)은 장면의 동생들이다. 이용원기자
  • 제42회 전국 역사학대회 20세기 평가“20세기 한국의 역사는…”

    세기말이자 새로운 천년을 앞두고 지나온 20세기에 대한 역사학계의 평가모임이 마련된다.28,29일 서강대에서 개최되는 제42회 전국역사학대회가 그것이다.역사학회(회장 김용덕)등 10개 역사관련 학회가 주최하고 한국서양사학회가 주관하는 이번 대회는 공동주제를 ‘20세기에 대한 역사적 평가’로 정하였는데 학계의 원로인 조동걸(한국사)·민두기(동양사)·차하순(서양사)·박이문(철학)교수 등 4명이 발표자로 나선다.이날 행사장에서 발표,토론될내용을 사전에 입수,간단히 요약해본다. 한국사 분야의 조동걸 교수는 20세기 한국사의 전개와 반성을 ‘인간의 길을 향한 진통’으로 표현하고 있다.조교수는 금세기 우리의 역사를 전반기는 일제식민통치와 그에 대한 독립운동,후반기는 통일운동과 민주주의를 성장시켜간 여정으로 구분하고 일제하 독립운동이나 독재정권하의 민주화운동은모두 인권을 크게 신장시켰다고 평가한다.그러나 고도성장에도 불구하고 정경유착,빈부격차 심화,환경파괴 등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으며 특히 1900년의 대한제국이 100년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두동강이 난 상태라며 21세기를 맞는 한국인의 첫번째 관문은 ‘38띠’를 풀어내는 일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민두기 교수는 20세기 동아시아의 역사를 개관하면서 동아시아 국가들의 조급한 ‘시간과의 경쟁’을 화두로 삼았다.자본주의와 산업화에 뒤진 동아시아국가들은 역사의 시간과 숨가쁜 경쟁을 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중국은 열강의 세력다툼 속에서 망국의 위협을 제거해야했고,일본 역시 제국주의 국가 대열에 오르기 위해 침략의 수단을 조급하고도 무절제하게 사용한 탓으로두 나라 모두 역사전개에서 비정상을 초래했다고 분석하고 있다.민교수는 20세기 일본의 팽창정책은 힘과 문화를 토대로 한 것으로 근대적 국가·사회발전의 계기는 연합국으로부터 ‘패전 선물’로 받았다고 지적하고 있다. 20세기 서양의 역사를 ‘커다란 패러독스의 세기’라고 규정하는 차하순 교수는 지난 한 세기는 주기적으로 대립적 요인들이 나타난,이율배반의 세기였다고 보고 있다.전쟁·혁명·독재가 난무한 가운데 국제평화와 인권보장 문제가 심각하게 논의되었으며,또 고도 경제성장과 물질적 풍요속에서 빈곤과기아로 허덕이는 후진국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철학자 박이문 교수는 천 년후의 역사가들은 20세기를 ‘기로에 선 인간중심적 문명의 세기’로 기술할 것이라며 20세기가 물질적·양적으로는 성과를 거두었지만 본질적으로 진보한 역사인지에 대해서는 회의를 보이고 있다.박교수는 20세기는 인간중심적 문명의 파괴적 자기모순을 노출한 시기로 문명자체의 임종 혹은 역사의 종말을 재촉하는 어두운 징조가 보이고 있는데 그주범은 인간이라고 보고 있다. 한편 안병욱 가톨릭대 교수는 토론문에서 20세기 한국사는 ‘변방의식과 몰주체의 역사’였다며 끊임없이 중심부로 향하려는 강박관념으로 많은 사람들이 정체성을 상실했다고 지적한다. 박지향 서울대 교수는 차하순 교수의 발표내용과 관련,차교수가 20세기의 업적 가운데 자유민주주의의 역사적 공헌을 간과했다며 인권신장,여성지위향상,복지국가 발달 등을 들고 있다. 또 홍성욱 토론토대교수는 20세기 과학기술의 발전 가운데 유전학에 기초한 농업기술의 발전을 무시할 수 없다며 농업혁명이 20세기 세계질서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강조하고 있다. 정운현기자 jwh59@kfaily.com
  • 교수출신 관료‘중도하차’잦다

    관계(官界)에 발을 디뎠던 학계·교수 출신들이 잇따라 물러나고 있다.김태동(金泰東)전청와대경제수석에 이어 윤원배(尹源培)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도 25일 경질됐다.윤부위원장은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열리는 국제증권위원회기구(IOSCO) 연차총회에 참석차 출국했다가 25일 오전 경질을 통보받았다. 학계·교수 출신들이 단명하는 이유는 무엇일까.3공 시절 서강학파를 이끈남덕우(南悳祐)전총리나 5공때 ‘경제대통령’으로 명성을 떨치다 아웅산 폭파사건에서 순직한 김재익(金在益)전청와대경제수석처럼 성공한 케이스도 있으나 관료조직에 완전히 뿌리를 내린 사람은 많지 않다. 상대방을 배려하기보다 일방통행식 자기주장을 하는 게 단점으로 지적된다. 조직 내부에서의 반발도 있지만 서열위주로 짜여진 관료사회에 익숙지 못한탓이기도 하다. 윤전부위원장의 경우 한국은행 조사역 출신이지만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와 경실련 경제정의연구소장을 거치면서 강의식 연설이 몸에 뱄다는 평이다. 정부 조직에 몸담고 있으면 말을 아껴야 하는데도 직접 재벌들을 질타,5대그룹의 ‘기피인물 1호’였다는 후문이다.특히 현대와 대우는 여권 고위층에 윤부위원장에 대한 불만을 여러차례 토로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전경제수석은 관료조직에 적응하지 못한 케이스로 분류된다.당시 청와대비서관은 “차관회의를 하면 2∼3시간이 넘도록 일방통행식 강의를 하는 게보통이었다”며 “이 때문에 차관들은 김전수석과 마주치지 않으려고 해 부처와의 의사소통이 원활치 않았다”고 말했다. 5공과 6공에 걸쳐 경제 부총리를 두번이나 한 이승윤(李承潤)전서강대교수,경제부총리와 한은 총재를 역임한 조순(趙淳)전서울대교수 등도 조직을 제대로 장악하지 못했다.김영삼(金泳三)정권 때 청와대 경제수석과 재무부·산자부장관을 지낸 박재윤(朴在潤)전서울대교수는 승승가도를 달렸으나 결국 경제를 망친 장본인으로 지목,청문회에서는 불운을 겪었다. 백문일기자 mip@
  • 국민의 정부 2기내각 출범-새얼굴 14人 프로필

    ‘제2기 내각은 우리에게 맡겨라’.‘5·24’ 개각으로 김대중(金大中)정부제2기 내각의 진용(陣容)이 갖춰졌다.기존 국무위원 가운데 11명이 바뀌었다.신설된 기획예산처장관도 국무위원에 합류했다.장관급인 중앙인사위원회 위원장과 차관급인 국정홍보처장도 첫선을 보였다.신임 장관들은 저마다 맡은분야에서 전문성과 참신성·개혁성을 인정받아 내각에서의 역할이 주목되고있다.내각에 그대로 남은 6명의 국무위원들과는 신·구(新·舊) 조화를 꾀할 것으로 기대된다.새 내각의 면면을 소개한다. ■康奉均 재정경제 행정고시 6회로 옛 경제기획원에서 관리를 시작한 정통 기획원 출신 관료. 경제정책 기획과 조정에 탁월한 능력으로 초기 새 정부의 경제개혁정책을 청와대에서 뒷받침했다.기획원 핵심요직인 경제기획국장과 차관보를 각각 4년씩 장수하는 등 5차례나 경제개발 5개년계획 수립에 참여했다.예산담당 과장과 국장으로 10년 근무했다.총리실 행정조정실장 재직때는 사회·경제정책을 매끄럽게 조정했다.업무처리에서 적당주의를 인정치 않아 후배들이 어려워하는 편.미국 윌리엄스 칼리지 경제학석사,한양대 경제학박사 학위를 갖고있다.부인 서혜원(徐惠源·53)씨와 1남1녀. ■金泰政 법무 호방한 성격에 의협심이 강하고 뒤끝이 없는 보스형 인물.친화력이 뛰어나지인(知人)이 많고 부하들로부터 신망도 두텁다. 형광펜을 그어가며 보고서를 읽을 정도로 꼼꼼한 일면도 있다는 평. 문민정부 당시인 97년 검찰총장에 오른 뒤,‘DJ비자금 사건’ 수사를 유 보했다. 잔정이 많아 가끔 눈물을 보이기도 한다. 지난 2월 심재륜고검장 항명파동 당시 일선 검사들로부터 사퇴압력을 받는 등 위기를 맞기도 했으나 특유의 뚝심으로 극복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며 바둑을 즐긴다.부인 연정희(延貞姬·50)씨와 3녀. ■朴智元 문화관광 청와대대변인을 떠나는 고별사에서 “어디에 있건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모신 영광을 잊지 않고 행동하겠다”고 말할 정도로 충성심이 강하다.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정계복귀때는 전국구 의원직을 버리기도 했다. 야당 총재시절부터 지금까지 거의 매일 김대통령과 아침을 함께한 ‘측근중 측근’으로 8년동안 ‘김대통령의 입’으로 활약했다. 오랜 대변인생활로 달인(達人)의 경지에 올랐다는 주위의 평이다.언론계에지인도 많다. 미국에서 사업가로 성공,뉴욕한인회장과 미주한인총연합회장을 지냈다.부인 이선자(李善子·56)씨와 2녀. ■孫 淑 환경 현 정부 출범 이후 입각이나 국회의원 후보로 거론돼온 DJ인맥의 대표적 문화예술인. 지난 2월 연극 ‘어머니’의 주연으로 20년간 출연키로 정동극장과 계약하는 등 100편 가까운 작품에 출연했다.MBC 라디오 ‘여성시대’도 9년째 진행중. 93년 환경운동연합 창립시 지도위원을 맡은 뒤 지난 2월 공동대표로 추대됐다. 다정다감한 성격에 눈물이 많아 별명이 ‘수도꼭지’.‘무엇이 이토록 나를’등 3편의 책도 냈다. 고려대 연극반 선배인 연극배우 겸 탤런트 김성옥(金聲玉·64)씨와 3녀. ■陳 稔 기획예산 업무 장악력과 조정능력이 뛰어난 정통 경제관료.리더십과 정치감각을 겸비했다는 평.누구를 만나도 자기편으로 만드는 인간적 매력이 있으며 논리가정연해 상대방을 설득시키는 능력이 탁월하다.추진력은 있으나 결론을 정해놓고 오락가락한다는 지적도 있다. 박정희(朴正熙) 당시 대통령으로부터 ‘공무원 중에서 저렇게 똑똑한 사람은 처음’이란 말을 들을 정도로 두뇌회전이 빠르다. 단신이나 소주를 좋아하는 소탈한 성격.성신여대 음대학장인 서인정(徐仁貞·52)씨와 한국은행에 근무하는 장남 등 2남이 있다. ■趙成台 국방 세밀한 부분까지 직접 챙기는 꼼꼼한 업무 스타일이다. 정책통답게 영관장교 시절부터 전략기획 및 군사작전 분야에서 탁월한 군사적 식견을 갖췄으며 조직장악력과 업무추진력도 뛰어나다는 평이다. 94년 정책기획관으로 있으면서 3억달러 규모의 한·미 방위비 분담협상을총괄하면서 500만달러를 깎기 위해 협상결렬 위기까지 몰고 간 일화를 남겼다. 외아들은 육사를 거쳐 대위로 복무중이다. 틈날 때마다 독서와 낚시를 즐기며 부인 이영숙(李永淑·53)씨와의 사이에1남1녀. ■鄭德龜 산업자원 재무부 재산세제과장과 증권정책과장,주영 재무관,경제협력국장,국제금융국장 등의 요직을 두루 거친 금융·세제·외환분야 전문가. 부가가치세 도입시 실무를 맡아 정착시켰고 대러 경협차관 협상도 주도했다.특히 97년말 IMF와의 자금지원 협상과 98년초 218억달러의 단기외채 만기연장,40억달러의 외평채 발행에 성공하는 등 환란을 수습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추진력과 판단력,담력이 탁월하다는 평을 듣지만 한편으로는 부하직원들을지나치게 엄하게 대한다는 얘기도 있다.부인 이명덕(李明德·49)씨와 2남. ■李相龍 노동 9급 서기보로 공직을 시작,38년만에 장관까지 오른 입지전적 내무관료.강원도와 내무부에서 잔뼈가 굵었다. 노동부 관련업무를 직접 다룬 적은 없으나 일선 시·도에서 재정·세무업무를 담당했다.대통령비서실과 건설부 차관을 지내면서 실업문제에 나름대로식견을 갖췄다는 평가다.지난해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국민회의에 입당한뒤,자민련 한호선(韓灝善)후보와의 후보단일화 논란 끝에 무소속으로 출마,낙선했다. 업무처리가 꼼꼼하면서도 부하들에게 자상하다는 평이다.부인 윤명규(尹明奎·60)씨와 2남1녀. ■金光雄 중앙인사위 방송을 통해 낯이 익은 행정학 교수.깔끔한 외모에 핵심을 찌르는 말솜씨가 일품이다.두뇌회전도 빠르고 합리적이지만 다소 깐깐한 성격이란 평가도 받는다. 98년 국민의 정부 출범 당시에 정부조직개편심의위원회 실행위원장을 맡아행정조직 축소를 주도했다. 제 2건국 범국민추진위원회 상임위원으로도 활동해 일찌감치 입각 대상자로 꼽혀왔다. 지난해 9월에는 서울대 22대 총장후보로도 거론됐다.취미는 등산이며 술도즐기는 편이다. 부인 유정희(柳貞嬉·57)씨와 1남1녀. ■林東源 통일 통일·외교·안보분야의 ‘3박자’전문가.외교안보연구원장,통일원차관,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을 거치는 등 이론과 실무를 겸비했다. 90년 1차 남북고위급회담부터 대표를 맡은 이래 일관되게 대북 포용론을 옹호해왔다.지난 95년부터 아태평화재단에 관여하면서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다.북한 핵위협 등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포괄적 접근’구상을 기획,집행해왔다. 예비역 육군소장으로 5공 출범과 함께 외교관으로 변신했으나 군인체취가없고,부드러운 성품이라는 평. 부인 양창균(梁昌均·60)씨와 3남. ■金德中 교육 개혁적 성향에 추진력이 강하다.현 정부 들어 대통령자문기구인 새교육공동체위원회 위원장을 맡아온데다 김영삼(金泳三)정부때도 교육개혁위원회 부위원장을 역임했다. 아주대 총장으로 재임하면서 학부제와 교수연봉제 등을 과감히 도입,대학개혁의 ‘전도사’라는 별명을 얻었다.그같은 개혁성향이 발탁 배경이라는 후문이다. 대우그룹 김우중(金宇中)회장의 친형으로 서강대 교수(경제학)를 정년퇴직한 뒤,대우그룹 계열사 사장을 맡기도 했다.골프 실력도 수준급이며 부인 박용주(朴容珠·60)씨와 1남2녀. ■車興奉 보건복지 일에 적극적이고 토론문화에 익숙한데다 리더십까지 갖췄다.지난 2월 국민연금관리공단의 총체적 난맥상을 조기 수습,제 궤도를 찾도록 했다. 사회보험의 두 축인 국민연금과 의료보험을 가장 잘 아는 사회복지학계의대표적 개혁론자로 꼽힌다.지난해 지역의보조합과 공무원·교직원의보조합의 통합에 따른 단일보험료 부과체계를 개발했다.박정희(朴正熙)대통령 시절청와대비서실 행정관으로 관가와 첫 인연을 맺었으며,83년 보험제도과장 재직때 의보통합 파동으로 불명예 퇴진하는 아픔도 겪었다.부인 송외숙(宋外淑·50)씨와 1남1녀. ■李建春 건설교통 특유의 친화력과 리더십이 트레이드마크.정통세무관료로서의 전문성 못지않게 부하직원들에게는 손을 잡고 이끌어주는 자상한 선배의 덕성을 갖췄다.외부에도 지인들이 많다.이러한 성격 탓에 ‘정치적’이라는 지적도 받는다. 국세청장에 오른뒤 납세서비스의 질을 높이기 위해 세무서 조직을 세목중심에서 기능중심으로 재편하는 등 강도높은 세정개혁으로 청와대로부터 높은점수를 받았다. 별명은 호남형의 외모와는 동떨어진 ‘불곰’.지난 80년대 후반 부동산 투기 억제시책을 강력히 밀어붙이면서 얻었다.부인 문영인(文玲仁·56)씨와 2남. ■吳弘根 국정홍보 지난 88년 군을 비판한 칼럼을 썼다가 정보사 요원들에게 테러를 당한 ‘정보사 테러사건’으로 잘 알려진 30년 경력의 언론인.칼럼이나 사설 등으로개혁적인 성향을 뚜렷이 드러내는 논객으로 알려져 있다.시경 출입기자때 신세지기 싫다며 도시락을 싸들고 다닌 일화를 남겼으며 후배들을 잘 챙겼다. 원칙을 지나치게 고집하고 주관이 강해 주위사람들과 가끔 마찰을 빚기도 했다.평소 책을 많이 읽으며 자기관리에 엄격하다.취미는 바둑.부인 송명견(宋明·54)씨와 2남. [알 림]‘제2공화국과 張勉'연재물 26회는 기사 넘쳐 쉽니다.
  • 학술단체협-5·18기념재단 주최 심포지엄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와 교훈을 남겼는가.그리고 5·18정신을 계승·발전시키기 위한 앞으로의 과제는 무엇인가. 5·18 광주민주화운동 19주년을 맞아 5·18의 의미를 되새기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제시하는 학술 세미나가 열렸다.학술단체협의회와 5·18기념재단 주최로 최근 서강대에서 열린 국제심포지엄에서는 ‘5·18은 끝났는가’라는주제로 5·18의 의미와 평가,남은 과제들을 학술적으로 조명했다. 동국대 강정구(姜禎求·사회학과)교수는 “5·18은 우리가 추구한 반외세민족자주화를 통한 해방공간에서의 통일국가 형성의 역사적 계기를 복원한역사적 사건”이라고 규정하고 “그러나 어렵게 복원된 계기가 제대로 성숙해 민족통일의 터전을 닦기도 전에 동구 사회주의의 몰락,미국 중심의 단일패권주의 구축 등 세계사적 전환과 IMF 경제신탁통치라는 내외적 강풍에 의해 위축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냉전과 탈냉전,동북아 질서의 변화,제3세계와 미국과의 관계,미국의 이윤축적 방식의 변화 등 여러가지 요인에 의해우리의 민족자주화 운동은 숱한 고난을 겪어왔다”면서 “한반도는 특히 미국의 개입 정도에 따라 많은 변화를 겪어왔다”고 주장했다. 강교수는 “5·18을 비롯한 일련의 민주화운동과 한반도의 통일은 하나로이어진다”면서 “5·18의 민족사적 의의는 한반도의 탈냉전에 기초한 국가통합으로 완성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 루이스 앤 클라크대 랜즈버그(경제학과)교수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민주적인 발전에 대한 한국 민중의 투쟁에서 분수령적 사건”이라면서“신군부의 압제에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단결해 대항한 민중의 잠재력을 보여준 항쟁”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5·18이 ▲한국 엘리트들의 자본주의적 특권보호를 위한 폭압 ▲한국의 민주발전 촉진을 무시한 미국의 정책 ▲민주주의 발전 현실화의 장애물로 나타난 남북분단이라는 교훈과 통찰력을 남겼다고 주장했다. 한국정치연구회 정해구(丁海龜·정치학)연구위원은 5·18이 한국의 지배체제에 대해서 갖는 의미에 대해 정리했다. 정연구위원은 한국의 지배체제를 ‘국가적·체제적지배체제’와 ‘정권적차원의 지배체제’로 나누면서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지배체제의 은폐된본질을 여실히 보여준 사건이라고 규정했다.또 이렇게 드러난 지배체제의 본질은 결국 지배체제의 정당성을 급속히 약화시켜 오늘날 민주화를 이루는 원동력이 됐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와 함께 “5·18은 당시 민주화운동이 전개됐던 실제 역사의 현장에서 지역공동체적 차원의 ‘민중’을 형성시키는 역할도 했다”면서 각 시대별 민주화운동의 예를 들며 한국 민주변혁운동 자체 맥락 속에서의 5·18의의미도 되새겼다. 전남대 나간채(사회학과)교수는 ‘관련단체들을 중심으로 한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과제’라는 주제로 앞으로 해결해 나가야 할 5·18운동의 과제에 대해 의견을 발표했다. 나교수는 “최근 5·18관련 운동은 유가족과 부상자,구속자 등 5·18 관련단체들이 법인화·통합화하고 기념재단 설립 등을 추진하는 추세”라면서 “5·18관련 책임자 처벌 등을 명시한 96년 ‘5·18재판’을 기점으로 5·18운동의 저항적 투쟁성도 기념사업활동이나 항쟁 정신을 구현하는 시민운동적성격으로 바뀌고 있다”고 정리했다. 그는 5·18운동이 해결해 나가야 할 구조적 측면의 과제로 ▲관련단체들의내부 통합성 강화 ▲지역사회와의 연대성 강화 ▲비합법적·폭력적 방식에서 절차적 민주성을 실천하는 방식으로의 전환 ▲5·18의 전국화와 세계화 문제 등을 꼽았다. 이와 함께 활동적 측면의 과제로는 ▲진실규명과 과거 청산을 위한 문제 ▲미완의 처벌과 재심 문제 ▲불완전한 보상에 관한 문제 등 미해결 과제와 ▲각종 조형물을 포함한 기념사업 ▲학술연구회나 토론회 ▲5·18관련 사회운동 등을 제시했다. 나교수는 “이러한 모든 과제들은 한국사회의 민주화가 5·18을 포함하는광주문제의 완전한 해결 없이는 언제까지나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는 인식에서 나온 것”이라면서 “5·18의 기본정신을 확대·재생산할 수 있고 변화된 현재의 환경 속에서 인권·정의·자치정신을 발전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과제들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톨릭대 안병욱(安秉旭·국사학과)교수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우리민족의 통일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면서 “한국 역사의 민주적 발전과 민족통일을 위해 꼭 넘어야 할 과제인 미국의 대한(對韓)정책과 한국인들의 대미(對美)인식의 전환문제가 광주항쟁을 통해 어떻게 투영됐는가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안교수는 “민족의 통일로 가는 과정은 또 하나의 변혁운동”이라고 전제하고 “단순히 보편적인 개념이나 이론틀을 내세운 논리에 의해서가 아니라 역사의 자취 속에서 그 구체적 의의를 추구할 때 5·18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고 남겨진 과제들을 발전적으로 해결해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록기자 myzodan@
  • 金대통령 러시아·몽골 국빈방문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올 첫 정상외교 상대국으로 러시아를 찾는 것은 정상차원에서의 한반도 주변 4강외교 ‘완결판’이라는 의미를 갖고있다.집권1년차인 지난해 미국·일본·중국을 차례로 방문,우리의 대북 포용정책에 대한 지지를 얻어내고 21세기를 향한 미래지향적 관계를 구축함으로써 한반도평화와 안정을 위한 기본틀을 구축해놓은 터이다.이번 러시아의 방문은 이의 마무리이자 올해말 남북 당국자간 대화가 기대되고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출발의 의미를 동시에 지닌다고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우리의 포괄적 대북포용정책에 대한 러시아의 확고한 지지와 협조의사의 확인은 한반도 냉전구조의 해체를 추진함에 있어 필수불가결한 요소로 지적된다.러시아가 최근들어 이미 폐기된 북·러간 동맹조약을 대신할 우호선린협정에 가서명하는 등 대북 접근을 강화하고 있어 그 의미가 더욱 크다.우리측의 노력으로 양국 정상회담후 발표할 공동성명에 대북 포용정책이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라는 두나라간 공통 인식을 ‘명문화’하기로 한 것도이 때문이다.이 연장에서 김대통령은 남북한과 한반도 주변 4강이 참여하는 6자대화나,몽골까지 포함하는 7자대화와 같은 다자안보협력체(ARF) 구성 문제도 논의할 것으로 관측된다. 또다른 의미는 한·러관계의 정상복원을 꼽을 수 있다.양국은 지난 94년6월 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의 방문이후 지난 5년동안 다소 소원했던 관계가 김대통령의 방문으로 해소되는 전기를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두나라 실무자들이 21세기 동반자관계를 심화·발전시키기 위한 7∼8개의 공동성명 문안협의 작업을 벌이고 있는 것도 이를 반증하는 대목이다.특히 정부 및 민간차원의 경제협력을 중심으로 실질 협력관계를 꾀한다는 복안이다. 아울러 김대통령은 몽골 방문을 통해 양국의 역사적·문화적 유대관계를 보다 공고히 다진다는 구상이다.문화적 뿌리가 유사한 한국의 국가원수로서는첫 방문이라는 점이 이를 뒷받침해주고 있다.따라서 구체적인 현안 논의보다는 지도자간 친분 및 신뢰구축의 계기가 되는데 주력할 것으로 여겨진다. 양승현기자 yangbak@-韓·러 정상 뭘 논의할까 北핵·미사일개발 저지 러 협조 요청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러시아 방문 기간중 보리스 옐친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안보·경제 등 양국간의 공동관심사와 현안을 포괄적으로 협의할 예정이다.두나라 정상의 회담에서 논의될 주요 현안은 다음과 같다. 정치·안보 김대통령은 대북 포용과 한반도 냉전구조 해체 등 우리의 ‘햇볕정책’을 자세히 설명하고 러시아의 적극적인 지지를 요청할 계획이다.또북한의 핵무기 등 대량파괴 무기 및 미사일 개발을 저지하는데 러시아의 협조가 필요하다는 뜻도 전달할 예정이다.옐친 대통령은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남북한,미국,중국간의 4자 회담에 러시아측이 참가,6자회담으로 확대토록 희망할 것으로 관측된다. 경제 러시아의 자원,과학기술과 한국의 자본,생산기술을 결합해 미래의 시장을 개척하는 방안이 집중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이를 위해 구상무역 등 한·러간 교역 및 투자를 확대하는 방안도 논의될 예정이다.또 나홋카 한러공단 조성과 이르쿠츠크 가스전 개발 등 양국이 이미 추진중인주요 프로젝트를 활성화하기 위한 노력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김대통령은 우리기업의 대 러시아 진출에 러시아 정부의 배려를 요청할 예정이다. 김대통령은 이와함께 정부의 외환위기 극복 경험을 전해주고,경제난을 겪고 있는 양국이 긴밀한 협력을 통해 어려움을 극복해나가자고 다짐할 것으로알려졌다. 법적·제도적 기반 구축 형사사업공조조약과 나홋카 한러공단 개발협정,원자력협력협정,산업협력양해각서 등이 체결될 예정이다.군축·인권·환경 등범세계적 문제 및 인류의 보편적 가치창달 노력에 있어서도 한·러간 협력을 강화할 방침이다. 과학기술 분야 및 러시아 지방정부와의 협력강화 방안도 논의된다.이밖에대사관 부지 상호 교환 등 양국간 묵은 현안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것으로 보인다. 교류 확대 문화·학술·청소년 등 사회 각 계층간의 상호교류를 확대할 수 있는 방안이 토의될 예정이다.양국의 중견기업인이 참석하는 한러무역포럼개최 문제도 협의된다. 또 김대통령의 러시아 방문에 앞서 대한매일과 러시아의 유력 신문인 ‘러시스카야 가제타’가 제휴약정을 맺는다. 이도운기자 - 몽골대통령 딸 바야르마양 두차례 서울유학한 知韓派 ‘아버지는 친한파(親韓派),딸은 지한파(知韓派)’.오는 31일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는 나차긴 바가반디 몽골대통령은 ‘한국통’인딸이 있다.바야르마 바가반디양(28)으로 한국을 두번 유학했다. 바가반디양은 지난 94년 3월 한국과 첫 인연을 맺었다.이듬해 9월까지 연세대 한국어학당에서 한국말을 수학했다.한국경제를 배우기 위한 준비단계다. 일단 귀국한 뒤 1년만인 96년 3월 다시 한국에 왔다.2년5개월동안 서강대 경제대학원에서 국제경제학을 전공했다.여의도 증권가,은행 등을 돌며 ‘실물경제’도 틈틈히 익혔다. 그녀는 석사학위를 따내고 돌아갔다.지금은 영국에서 유학중이다.오는 27일부터 순방외교에 나서는 김대통령은 30일 몽골을 방문한다.김대통령과 그녀와의 만남 여부가 주목되고 있다. 양승현기자
  • [제2공화국과 張勉](22)-지지부진한 혁명과업(上)

    장면(張勉)정부는 실로 산더미처럼 쌓인 과제를 짊어지고 출범했다.그 가운데 하나가 이승만(李承晩)정권이 남긴 유산을 4월혁명에서 확인된 민의(民意)대로 처리하는 일이었다.이정권이 저지른 정치비리인 ‘6대 사건’과 경제비리인 ‘부정축재자 처벌’이 주요 관심거리였다. 6대 사건이란 ▲4·19 때의 발포 ▲장면부통령 저격 ▲서울·경기도 부정선거 ▲민주당 전복 음모 ▲정치깡패 ▲제3세력 제거 음모 등을 말한다.한결같이 이승만의 장기집권을 노려 국민과 야당을 탄압한 사건들이었다.이와 관련한 재판을 ‘혁명재판’이라고들 불렀다. 혁명재판의 진행은 그러나 순조롭지 못했다.먼저 법리상의 문제가 제기됐다.피고인측 변호사들은 “6월15일 헌법이 개정되었으므로 ‘3·15선거’ 때의 관련법은 효력을 상실했다.따라서 몇몇 피고인은 무죄”라는 논리를 들고나왔다. 이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4월혁명유족회’회원들이 법원에 들어와 규탄데모를 벌이는 등 한바탕 소동이 일었다.그러자 변호사들은 재판이 안전한 상태에서 질서정연하게 진행된다는보장이 없는 한 참석하지 않겠다며 출정을거부했다. 혁명재판은 지지부진했고 민심은 부정선거 원흉들이 그냥 석방되는 게 아닌가 걱정했다.장면정부도 사태 진행을 우려했지만 과거 이승만이 했던 것처럼 법원에 압력을 가하지는 않았다.민주주의 원칙에 따라 사법권을 존중한다는 뜻에서였다.변호사들에게 안전을 보장하겠다고 설득해 법정으로 돌아오게한 것이 고작이었다. 10월8일 서울지법 형사1부(재판장 張俊澤부장판사)는 피고인 48명에게 1심형량을 선고했다.검찰이 사형을 구형한 13명 가운데 3명에게만 사형을 언도했고,8명에게는 무죄·공소기각·면소(免訴)판결을 내려 풀어주었다. 이에 앞서 마산지법은 ‘3·15부정선거’피고인들에게 사형 등 중형을 내린 바 있어 서울지법의 ‘경미한’ 판결이 불러일으킨 분노는 더욱 컸다.장판사는 훗날 “국민감정과 동떨어진데다 기존 법의 한계를 보인 판결이지만 증거에 따라 당시 법대로만 판결했다”고 밝힌다. 온유하기로 유명한 장면도 이 판결에는 크게 화를 냈다.그는 회고록에서 “나 자신도 분격했다.법조문에 의한 공정한 판결이었을지는 모르나 국민감정에 미치는 영향도 참작했어야 할 것이다.적어도 혁명재판이라는 성격을 띠었다면 말이다.여하간 평상시의 법조문에 의한 것으로도 너무 가벼운 형이었다”고 술회했다. 전국적으로 벌떼와 같은 시위가 벌어지고 3일 후 4·19 부상자들이 민의원에 난입하는 사건이 터지면서 분위기는 급변한다.소급입법으로 특별법을 제정해서라도 피고인들을 엄중 처벌하라는 여론이 불길처럼 일어난 것이다. 민의원은 10월13일 ‘민주반역자에 대한 형사사건 임시처리법’을 서둘러통과시켰다.주요 내용은 ▲특별입법을 할 때까지 재판을 중단하고 ▲관련 피고인들에게는 구속기간을 제한하지 않으며 ▲재판에서 석방되더라도 즉시 재구속한다는 것이었다. 특별입법을 전제로 한 ‘임시처리법’이 통과된 뒤 소급입법을 위한 개헌논의가 핫 이슈로 떠올랐다.총리로서 장면은 이를 거부한다.보복을 목적으로한 소급입법은 정치도의상 도저히 있을 수 없다는 신념 때문이었다.대신 현행법에서 가장 무거운 벌을 받도록 하는 방안을 강구했다. 장면은 민주당 의원들이 소급입법을 놓고 최종 토론을 벌인 현장에서도 강력히 반대했다.심지어 “소급법을 고집한다면 나는 당을 떠날지도 모르겠다”고까지 굳은 결심을 보였다.그렇지만 소급법은 결국 제정되고,장면은 회고록에서 “격렬한 국민감정과 지배적인 공기로 보아서는 이를 안 할 도리가없을만큼 험악했다”면서 “소급법이 가능하게 된 점을 부끄럽게 여긴다”고 심정을 밝혔다. 장면이 자기 주장을 관철하지 못한 원인은 신·구파 갈등과 소장파 반발 등으로 안정된 의석수를 확보하지 못한 데 있었다.민주당 구파는 이미 분당작업에 들어갔고 소장파도 공공연하게 정부 정책을 비판했다. 결국 민주당 신·구파로 이루어진 제2공화국 행정부와 의회는 사회적 압력에 대단히 취약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장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소급입법은 구파의 주도 아래 차근차근 진행됐다.민의원은 10월17일 헌법 개정안을 발의해 11월23일 통과시켰다.투표에 참석한 200명 가운데 191명이 찬표를 던졌다.부정선거관련자·반민주행위자의 공민권을 제한하고 부정축재자를 처벌하는 소급입법을 할 수 있으며,이를 맡을 특별재판부·특별검찰부를 설치한다는 내용이었다. 후속조치로 부정선거관련자 처벌법,반민주행위자 공민권제한법,특별재판소및 특별검찰청 조직법이 잇따라 연내에 제정됐고 부정축재 특별처리법만 61년 4월 공포됐다. 특별재판소는 61년 1월25일 5개 심판부를 구성,전국 각지의 법원이 맡던 관련사건을 이송받아 구체적인 활동에 들어갔다.이 가운데 제1심판부(재판장桂昌業대법관)는 4월17일 부정선거 사건 피고인들에게 선고를 내렸다.최인규(崔仁圭)전내무장관에게는 구형대로 사형을,이강학(李康學)전치안국장에게징역 15년,이성우(李成雨)전내무장관에게 징역 7년,최병환(崔炳煥)전내무부지방국장에게는 징역 5년을 각각 언도했다. 소급입법은 이후 두차례 더 등장한다.박정희(朴正熙)가 만든 ‘정치활동정화법’과 전두환(全斗煥)의 ‘정치풍토쇄신특별법’이 그것이다.둘 다 구정치인의 정치활동을 일정기간 제한하는 법이었고,제2공화국에서 소급법을 제정한 당사자들이주로 대상에 들었다.이용원기자 ywyi@-실패한 許政과도정부 4월혁명이 난 뒤 장면(張勉)정부가 들어서기까지는 넉달이 소요됐다.그 넉달 동안 혁명과업의 첫 처리를 맡은 정치 주체가 허정(許政)과도정부이다. 허정정부는 이름 그대로 과도기에 한시적으로 존재했고 따라서 역사·사회발전에 큰 구실을 하리라는 기대와는 거리가 있는 정권이다.그렇지만 이승만(李承晩)정권이라는 구체제가 무너지고 처음 등장한 정권이라는 점에서,어차피 4월혁명이 제기한 갖가지 혁명적 요구를 수행해야 할 임무를 부여받은 것도 사실이다. 허정정부에 대한 정치학자들의 평가는 대체로 ‘실패했다’는 쪽으로 모아진다.“실제 과도정부가 행한 역할은 스스로 천명한 원칙에도 훨씬 미치지못했다“(孫浩哲 서강대교수 등)고 본다.그 이유는 “4·19 취지에 의거해구체제와의 단절을 제도화할 수 있도록 과도정부 자신과 민주당,그리고 4·19혁명에 참여한 중요한 지식인 및 사회세력의 대표들이 참여하는 개혁을 위한 타협의 장을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崔章集 고려대교수)이다.그 결과 “후계정권(장면정부)에게 제한된 행동의 자유를 가지고 ‘혁명’을 수행해야하는 어려운 숙제를 남겨주었다.”(韓昇洲 고려대교수)허정은 서울 각대학 교수들이 시위를 벌인 1960년 4월25일 외무장관에 임명된다.이틀 뒤 이승만이 하야하자 그는 대통령직을 대행하게 된다.대통령승계권을 가진 장면부통령이 4월23일 이미 사임했기 때문이다. 과도정부의 내각수반이 된 허정은 각료진 구성을 마치고 5월3일 ‘5대 시책’을 발표한다.‘반공정책을 한층 더 견실하게 전진시키는 것’을 비롯해▲부정선거 처벌대상은 고위책임자와 잔학행위를 한 자에 국한하고 ▲혁명적 정치개혁을 비혁명적인 방법으로 단행하며 ▲4월혁명에서의 미국의 역할을 ‘내정간섭’운운하는 것은 이적행위로 간주하고 ▲한·일관계 정상화를위해 노력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는 “전 국민이 이 시기에 위대한 관용을 보이고 그 정력의 전부를 국가의 부강과 국민 공익에 기울여야 한다”고 호소해 정치보복에 대한 예방조치를 취했다.한마디로 “최소한의 정책변화를통해 현상유지를 담보하는 정책”(최장집)을 편 것이다. 이같은 기본원칙은 각 부문에 그대로 적용됐다.먼저 ‘3·15부정선거’등정치비리 관련자 처리를 이승만정권 때부터 유지된 법원·검찰에 맡겼다.이때문에 ‘혁명재판’성격은 사라지고 국민감정이 용납못할 판결이 잇따랐다. 서울지법 형사1부의 10월8일 선고가 대표적인 예이다.“공판은 장면이 이끄는 다음 정부로 넘겨졌으며,장면정권에게는 심각한 고민거리의 원인이 되었다”(한승주)‘부정축재자 처벌’도 마찬가지였다.과도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처벌 의지를 여러차례 공표했지만 명백히 ‘축소지향적’이었다.6월 1∼20일을 부정축재 자수기간으로 정했고,7월2일에는 허정이 “부정재산을 정부에 반환하면 형사책임을 감면하겠다”고 밝혔다.사흘뒤 부정축재 1차 조사대상자로 기업인18명,기업체 61사를 공개했다. 결국 과도정부에서는 몇몇 사람이 부정축재 사실을 자진 발표하고 축재분을 사회에 환원하는 것으로 그쳤다.장면정부가 들어설 때까지 과도정부는 부정축재자를 처벌하는 실질적인 행동을 하지 않았다. 이밖에 ▲고위장성의 반발을 두려워해 군 개혁을 외면했고 ▲민원(民怨)의 대상인 경찰을 민주화하는 방안도 자리바꿈을 하는 정도에 그쳤다. 허정과도정부는 ‘비혁명적인 방법으로 혁명과업을 수행한다’는 슬로건을내세웠지만 결과는 “사회 내 어떤 부문도 다치게 하지 않으려는 무능과 무작위 탓으로 장면이 이끄는 그후의 정권에 심각한 영향을 주고”(한승주)말았다.이용원기자
  • 저자와의 대화-‘자아와 자유- 펴낸 엄정식교수

    엄정식 서강대 철학과교수는 그의 저서 ‘자아와 자유:현대철학의 쟁점들’에서 정체성의 위기를 맞고 있는 현대철학의 쟁점을 조명하고 철학의 미래를 탐구하고 있다.그는 신합리주의라는 프리즘을 통해 철학의 미래를 본다. 그의 철학적 탐구여행은 현대철학이 정체성의 위기에 빠져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중세에는 철학이 신학이라는 태양에 너무 가까이 갔다가 그 방법론의 날개를 잃고 제 기능을 다 발휘할 수 없었다.오늘날에는 철학이과학이라는 바닷물에 젖어서 비틀거리고 있다”.퍼트남 하버드대 석좌교수는 “현대철학의 최대 과제는 철학 그 자체를 재정립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철학의 정체성 위기 문제는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자들에 의해 가장 실감나게 다루어져 왔다.“데리다·푸코·리오타르·로티 등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전통적인 철학에 강한 반발을 보인다.합리성·진리성·객관성을 상대화하고다원화하여 주체성을 송두리째 뽑아버리려는 이른바 ‘해체주의’를 표방해왔다.그들은 철학이 서구가치와 서구의 권력구조를 합리화하는 학문으로 전락했다고 비판한다”고 엄 교수는 말한다. 포스트모더니즘학파 보다는 덜하지만 포퍼·아펠·하버마스·롤스·데이비슨·퍼트남 등 신칸트학파적 비판철학자들도 어느정도 정체성의 위기를 말한다.이들은 그러나 칸트적 합리성의 회복을 통해서 정체성의 위기가 극복될수 있다고 지적한다. 엄 교수는 정체성의 위기 극복을 ‘신합리주의’ 철학에서 찾는다.“정체성의 위기 극복은 근대적 합리주의 만으로는 안된다.서구 근대문명의 특징인합리성 그 자체를 강하게 비판하는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의 반합리적 접근으로도 안된다.합리주의 범위의 비판적 확장과 구조적 개혁,그리고 포스트모더니스트의 비판을 큰 틀로 통합하는 신합리주의에서 정체성의 문제를 푸는 해답을 얻을 수 있다”. 신합리주의는 소크라테스의 이념과 칸트 사상에 바탕을 두고 있다.이성적능력을 신뢰하는 신합리주의는 여러가지 형태로 나타난다.“이성의 비판적기능을 강조할 때는 포퍼의 비판적 합리주의로,이성의 반성적 기능을 강조할 때는 롤스의 반성적 합리주의로,이성의 소통적 기능을 강조할 때는 하버마스의 소통적 합리주의로,이성의 초월적 기능을 강조할 때는 퍼트남의 초월적 합리주의 형태로 그 모습을 나타낸다. “신합리주의는 그러나 서양철학에만 머물러서는 안된다.동양적 가치를 많이 수용하고 지구촌에 흩어져 있는 다양한 합리주의 정신도 포용해야 한다”고 엄 교수는 강조한다. 그는 비판적 합리주의는 우리나라에도 뿌리깊은 유산으로 남아 있다고 말한다.“성(聖)과 속(俗)을 종합한 원효,교(敎)와 선(禪)을 양립시킨 지눌,이(理)와 기(氣)를 보완관계로 승화시킨 율곡,이론과 실천을 변증법적으로 융화시킨 다산 등은 한국의 빛나는 비판적 합리주의 철학자들이다”. 엄 교수는 “우리의 전통적인 비판 철학과 신합리주의가 만나면 동서고금(東西古今)의 절묘한 사상적 융합을 이룰 수 있다”고 말한다.그는 이러한 사상적 융합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이 책은 사상적 융합이라는 그의 학문적탐구의 첫 출발이다. 그는 “현대인들의 삶은 당분간 이진법으로 디지털화한 정보의 배를 타고상대주의를 배경으로한 실용주의와 논리·수학적 사고를 배경으로 한 신비주의 사이에서 표류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창순기자 cslee@
  • [출판가] 잡지 ‘진보평론’ 8월 창간

    국내 진보세력이 전열을 재정비하고 오는 8월 전문잡지 ‘진보평론’을 창간할 예정이다. 진보성향의 학계·실천운동가 100여 명은 지난 17일 서울 사간동 대한출판문화회관에서 ‘진보평론’ 발간모임 발족식과 함께 ‘현시기 한국의 사회운동과 이론활동’이라는 주제의 창립기념 심포지엄을 가졌다. ‘진보평론’ 창간호를 위해 김진균 서울대교수(사회학) 손호철 서강대교수(정치학) 최갑수 서울대교수(서양사학)가 공동대표를 맡고 편집위원장에는김세균 서울대교수(정치학)가 선임됐다. 창간호는 특집으로 ‘마르크시즘의 오늘과 내일’을 준비하고 있으며 이밖에 코소보사태,‘제3의길’ 비판,최근 프랑스의 사상·지성 흐름의 전환 등에 관한 글도 실을 예정이다.
  • 서강대총장 李漢澤신부

    서강대는 21일 이사회를 열고 제10대 총장에 이한택(李漢澤·65)신부를 선임했다. 이 신임총장은 59년 미국으로 건너가 65년 예수회재단인 미국 세인트루이스대학 및 대학원 수학과를 졸업했다.67년부터 서강대 수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학교법인 이사 및 이사장,예수회 영성연구소 소장 등을 역임했다.
  • [기고] 되살아나는 수유리의 영웅들

    수유리는 (국립)묘지다.이 화사한 봄날에 묘지를 찾는 이들은 죽은 이들을사랑하고 기억한다.그러나 그들의 죽음이 우리 양심에 던지는 메시지가 너무도 버거워선지 수유리는 40년 가까이 폐허지였고,4·19에 그 곳을 찾아오는젊은이들은 해마다 최루탄으로 눈물지었다. 지난 정부가 묘지를 단장하면서부터 그곳에 묻혀 있는 이들도 민족사의 경계선을 넘어선 영웅으로 되살아나고 있다.만주 벌판에서 쓰러진 항일 투사들,잘 사는 겨레의 모습을 내다보면서 이 땅 그 많은 골짜기와 들녘에서 쓰러진 군인과 민간인들,그리고 5·18민주화운동 중에 산화한 광주시민들처럼 수유리의 영령들도 ‘사느냐 죽느냐’는 결정적인 선을 넘었다.“인간은 죽음에 붙여진 존재”라고 하이데거가 단정하였지만 그토록 젊은 나이에 공포와절망의 선,죽음의 선을 넘어 앞으로 나아갔기에 ‘벗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구세적 실존을 살았다. 그들은 단지 뜻바른 젊은이들이 흠모하고 모범이 되는 데서 그치지 않으리라.그들의 피가 한반도의 흙 속으로 깊숙이 스며들어 이 민족사를자유와 민주,개혁과 번영으로 밀고나가는 추동력이 되고 있는 것이다. 한반도의 이 소용돌이치던 반세기 역사에서 외세에 의한 분단과 군사독재에서 조장된 온갖 사회불의라는 진창 속에 빠진 민족사의 수레를 저들은 맨손으로 돌리려 했다.그러다 수레에 치어죽고 흙탕물 속으로 사라졌고,우리 살아남은 자들은 수레 위에 거들먹거리면서 여태까지 목숨을 구가해 왔다.그것이 부끄럽다면 민족사의 탄두를 이루어온 이들을 지역과 이념을 가리지 말고 추서하고 만약 오명을 뒤집어썼다면 벗겨주어야 하겠다.지금은‘국민’의정부 치하니까. 4·19정신은 무덤을 단장하는 자들이 계승하는 게 아니고 민주와 자유,정의와 개혁을 사랑하고 실천하는 사람들이 계승한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고 어느 선구자는 목이 쉬도록 외쳤다.하나 지역이기주의와 극우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머리도 가슴도 없이 자칫 국민을살상하는 무기로 변하곤 하던 군부의 통치는 마치 일직선으로만 나는 미사일 같았다.오로지 경제성장,오로지 효율만을 목표로 내달았다.그러던 정치가역사상 처음으로 개혁을 희구하는 이들과 안정을 도모하는 이들로 두 날개를 하고 이륙했다.그러나 아무래도 수평잡기가 서툴고 항속도 느린가보다.더군다나 보수언론의 역풍,지역감정이라는 에어포킷,구조조정이라는 거대한 난기류,국가재정이나 국민을 숙주(宿主) 정도로 간주하는 듯한 부패공무원들의복지부동이라는 사보타주는 이 정부의 항로를 한사코 훼방한다. 하지만“정의 없는 국가는 강도떼일 따름”이라던 철학자 아우구스티누스의 경고대로 정의는 실현되어야 하고 개혁은 추진되어야 한다.의료보험은 통합되어야 하고 전국민연금제도는 시행되어야 하며,농·어촌은 부활해야 하고대기업은 구조를 조정해야 한다.경제정의 없는 정치만의 민주주의는 허구다. 제네바 유엔 인권위원회에서 장만순 제네바 주재대사가 한국정부 대표로서국가보안법 개정 혹은 대체 문제를 신중히 고려하고 있다고 한 공약은 신선한 바람이지만 온갖 규제로 국민의 삶과 말과 사상을 사로잡는 악법들은 개정되어야 한다. 기업이든 노조든,개혁 열망 집단이든 훼방 집단이든,자기 보퉁이를 꼭 안은 채로 수레에 올라 타고서 남들이 밀고 끌기만 기다린다면 IMF의 거대한 늪속으로 빠져들고 말 것이다.‘4월이 잔인한 달’인 까닭은 수유리의 진달래가 죽음에서 생명이 온다는 역설을 우리한테 가르치기 때문이리라. [성임 서강대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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