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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 대통령 바웬사­티민스키 9일 결선/양인 모두 과반득표에 실패

    ◎중간개표/바웬사 40%·티민스키 23%/마조비에츠키 현 총리,3위에 그쳐 탈락 【바르샤바 외신 종합】 25일 실시된 폴란드대통령선거에서 폴란드 출신의 캐나다 무명기업인 스타니슬라브 티민스키가 자유노조 지도자 레흐 바웬사와 함께 내달 9일 실시될 결선투표에 진출했다. 타데우스 마조비에츠키 현 총리는 3위로 밀려 결선진출이 좌절되는 참패를 당했다. 폴란드 관영 PAP통신은 46개주의 개표결과 바웬사가 40.36%로 1위를 차지했으며 티민스키는 22.94%,마조비에츠키는 16.59%를 차지했다고 보도했다. 최종 공식집계결과는 26일밤(현지 시간)이나 27일중에 발표될 것으로 보인다. 이날 투표율은 60.8%를 기록했다. 첫 공식집계가 나온 직후 마조비에츠키총리는 폴란드 라디오방송과의 회견에서 자신이 이끄는 정부는 이번 선거 후 물러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북부항구도시 그다니스크에 머물고 있는 바웬사는 그가 이번 총선에서 단번에 대통령에 당선되기 위해 필요한 50% 지지를 확보치 못한데 대해 실망해 있으며 낙담한 그의 보좌관들이 25일 저녁에 사용하려던 샴페인과 불꽃놀이 기구를 성급히 치우는 헤프닝을 벌였다. 그다니스크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바웬사는 이번 선거결과에 대해 『민주주의를 하는데 유용한 교훈이 됐다』고 평하고 결선투표에 나가겠다는 뜻을 강하게 피력했다.
  • 새 「역사의 장」여는 통독의 현장에서/이기백특파원

    ◎“이제 독일은 하나”… 거리마다 샴페인 축제/“우리는 자랑스런 독일인”… 얼싸안고 환호/통일 알리는 종소리에 목메어 국가합창/동ㆍ서베를린 잇는 마라톤엔 2만5천명 참가 그것은 새 역사의 장을 여는 감격적인 축제였다. 성당과 교회의 종이 일제히 울려 퍼지면서 거리를 메운 시민들은 저마다 「아인하이트 아인하이트」(통일)를 외쳐대며 민족재결합의 기쁨을 만끽했다. 분단의 상징이었던 브란덴부르크 문 주변에 몰려든 시민들은 손에 손을 잡고 자유ㆍ평화ㆍ정의를 강조하는 국가를 목이 터져라고 불렀으며 통일을 축복하는 폭죽이 밤하늘을 현란하게 수놓았다. 이제 독일은 하나,통일축제가 시작되는 2일 자정부터 4일까지 베를린 시내에서는 기념행사가 다채롭게 펼쳐지며 금세기들어 3번째 세워지는 새 독일의 탄생을 축복하고 밝은 미래를 기원했다. ○…통일축제의 서막을 알리는 성당과 교회의 종소리가 2일 0시 일제히 울려퍼지자 축제행사가 중점적으로 진행되는 운텐 덴린덴거리와 6월17일 거리에 나와 있던 시민들은 주먹을 공중으로 치켜올리며 환호했으며 각 가정에서는 샴페인을 터뜨려 이 순간을 축복했다. 운텐 덴 린덴 거리에 부인ㆍ여동생과 함께 나온 지그마 캡슐씨(35)는 『통일이 이같이 빨리 이뤄질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습니다. 감격스럽고 독일인이라는 것이 자랑스럽다』며 가족들과 얼싸안고 기뻐했다. 동베를린에 산다는 에버린 쾨러양(22)은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하늘을 수놓은 폭죽의 섬광처럼 우리는 빛을 발할 것입니다』며 감격스러워했다. 10월3일이 「통일의 날」로 국경일이 됨에 따라 독일국민들은 매년 이날 휴무하게 되며 지금까지 동서독이 별도로 통일을 기원하던 기념일은 폐지된다. 동독은 지금까지 건국일인 10월7일을,서독측은 동독에서 공산정권에 항거해 시민들이 일제히 궐기했던 6월17일을 기념해 공휴일로 지정했었다. ○인산인해 교통마비 ○…베를린은 역사적인 백림마라톤대회가 때마침 통일축제 직전인 30일 열려 축제분위기를 더욱 돋웠다. 60여개국에서 2만5천여명의 선수가 참가한 이번 대회의 코스는 독일통일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서베를린 샤로텐부르크문을 출발,6월17일 거리를 지나 동베를린지역인 칼 막스거리를 거쳐 브란덴부르크 문과 통일전 체크 포인트였던 찰리 검문소를 통과하는 등 반세기만에 전 베를린 시가지를 질주해 시민들을 열광시켰다. 이 때문에 독일각지에서 몰려든 사람들과 각국의 취재기자ㆍ외국관광객으로 숙박난ㆍ교통난을 가중시켰으며 도심은 거리를 나다니기조차 힘들정도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호텔과 여관이 초만원을 이루자 베를린시당국은 TV방송을 통해 시민들에게 민박을 강조하는 계몽을 펼치고 있으며 축제기간중 지하철을 24시간 운행하는 한편 역주변과 광장등에서 노숙하는 행위를 당분간 단속하지 않기로 해 텐트족의 천국을 이루기도. ○…통일축제의 절정은 몸퍼 서베를린 시장이 2일 상오 9시 시의회에서의 통합을 선언하는 행사. 몸퍼시장은 이 자리에서 독일과 독일인은 영원히 하나이며 세계평화에 기여할 것임을 다짐. 이어 몸퍼시장은 연합군 사령관들에게 베를린의 자유수호에 기여한 노고를 치하하고 연합군 사령관의 고별사에 이어 곰을 상징하는 베를린기가 시장에게 되돌려 진다. 이에 앞서 독일분단 이후 베를린 시정을 담당했던 연합군 사령관 레이먼드 하드도크(미국),로버트 콜베트(영국),프랑세스 샹(프랑스)장군 등은 1일밤 마지막으로 브라보검문소에서 간단한 철수기념식을 갖고 장병들을 위문. ○일부선 통일반대 시위 ○…통일축제가 시작되고 있는 가운데 브란덴 부르크문 광장에서는 「우리는 통일 반대한다」는 플래카드를 든 3백여명의 전동독 노동자들이 시위를 벌여 눈길. 이들은 통일이 된 뒤 사회주의 국가에서 누려온 정부 복지시책의 혜택을 받지 못하게 된다는 「불이익」과 불확실한 통일후의 생활을 우려해 연일 이곳에서 통일반대시위를 벌여왔는데 이날도 축제가 시작되기 전부터 광장의 한 귀퉁이에서 시위를 강행. 그러나 통일을 환영하는 군중들의 환호에 이들의 주장은 더욱 초라하게 보였으며 1일로 독일 경찰에 편입된 전동독경찰관들이 이들의 데모를 보호. ○「통일의 횃불」기념촬영 ○…역사적인 통일이 이루어짐에 따라 지난 40여년동안 독일 통일의 열망을 불태우던 테오도르 호이스 광장의 횃불도 꺼지게 된다. 서독 초대대통령 테오도르 호이스(Theodor Heuss)가 취임하면서 독일국민의 통일염원을 북돋우기 위해 광장 한가운데 마련됐던 통일횃불은 냉전시대의 파란만장했던 베를린의 과거를 지켜보며 베를린 시민들에게 꿈과 희망을 일깨워온 명소. 「Freiheit(자유)ㆍRechts(정의)ㆍFrieden(평화)」라고 새겨진 대리석 받침대 위에서 꺼질 줄 모르고 타오르던 희망의 횃불이 꺼지는 것을 아쉬워하는 베를린시민들은 연일 이곳에 몰려들어 헌화를 하고 기념사진을 찍기도. 1일 가족과 함께 통일횃불을 배경으로 가족들과 사진을 찍던 헬무트 센켄씨(52)는 『호이스의 염원은 드디어 성취돼 우리에게 기쁨을 안겨주었으나 횃불이 소멸되는 것은 슬픈 일』이라며 통일의 횃불은 독일인들 마음속에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표시. ○동독군복등 기념판매 ○…독일의 신문들과 방송들은 대부분 차분한 자세로 베를린의 분단에서 통일에 이르는 과거를 재음미하며 통일행사와 관련한 프로그램을 시민들에게 소개. TV는특히 통일이후의 국내ㆍ세계정세를 논의하는 좌담회를 방영하는 가운데 ARDㆍZDF 등 전국적인 방송망을 갖고 있는 TV는 60년대초 케네디 전 미국대통령이 베를린을 방문,『이히빈 베를리너(나는 베를린시민)』이라고 연설하며 소련과 동독의 봉쇄로 고난을 겪고 있던 베를린시민들에게 용기를 북돋웠던 기념비적인 장면을 보여줘 감회를 새롭게 하기도. 또 통일축제기간동안 재빠른 상업주의가 극성을 부려 2차대전때 파괴된 상흔을 간직한채 도심 한가운데 을씨년한 모습을 하고 서 있는 카이저 빌헬름교회 주변 광장에는 상인들이 전 동독군인의 모자와 제복,계급장을 기념품으로 팔고 있는가 하면 베를린의 한 회사는 베를린 봉쇄때 시민들의 생필품을 공수했던 C46수송기를 임대해 축제기간동안 프랑크푸르트에서 베를린 템펠로프 공항까지 기념비행을 광고하면서 손님들을 끌기도. ○교민무용단 공연도 ○…이번 행사에는 우리나라 교민여자 무용단인 「아리랑무용단」이 참가,2일 하오 11시부터 동베를린 오페라하우스 앞 베벨프라츠에서 공연을 할 예정이어서눈길. 무용단 관계자들에 따르면 베를린시 당국에서 축제참가 초청장을 보내와 2차대전으로 인한 마지막 분단국인 한국이 참가하는 것이 큰 의의를 가질 것이라는 결론을 내려 참가를 결정했다는 것. 20여명으로 구성된 한국무용단은 이날 공연에서 한복으로 차려입고 30여분동안 우리나라 전통춤을 공연할 예정인데 통일의 현장에서 「통일기원춤판」이 한바탕 벌어질 것으로 보여 관심이 집중. ○…통일축제는 승전 4대국 수뇌들이 참석하지 않게됨으로써 당초 계획과는 달리 순수한 독일인 자체의 축하행사로 진행될 전망. 통일축제의 공식행사는 2일 하오 5시 동서베를린시 의회가 개최됨으로써 시작되며 4일 상오 9시 베를린에 있는 라이흐스탁(국회)에서 동서독 합동의회가 열림으로써 끝을 맺으나 기념공연 등 각종 행사는 시내 곳곳에서 잇따라 열린다. 축제의 절정은 3일의 동서베를린 경계선에서 펼쳐질 시민잔치와 국회건물의 통일독일기 게양식. 국회에 통일독일기가 게양되는 것과 동시에 동서베를린의 모든 공공건물과 대형건물,차량들에도 독일기가 게양되거나 꽂혀진다.
  • 소 요청 프로젝트·소비재 내용

    소련측이 제시한 경제협력 프로젝트와 소비재 내용은 다음과 같다. ◇경제협력 프로젝트 △앙가르스크·옴스·톰스크 등의 석유가공및 석유화학기업의 현대화(보상거래) △서시베리아 석유가스화학공단 건설참여(보상거래 또는 합작) △토볼스크의 합성고무 생산시설(보상거래) △유럽 러시아지역의 종이생산기업 설립(합작) △전자복사장비 생산(합작) △극동지역의 승용차 조립(합작) △극동의 고무·금속제 무한궤도 생산(합작) △야금생산공정 자동화 설비등(합작) △비디오·비디오카메라·퍼스널컴퓨터 △전자제품등의 생산을 위한 군수산업 전환에 기술참여 △우다칸 동광 개발(보상거래) △셀리그다르스크 인회석광 개발(보상거래) △출리마코프스크의 콕스탄 개발 △야크츠크 동광 개발(보상거래) △볼로조의 아스베스크광 개발(보상거래) △야크츠크 야금공장 설립 △사할린 대륙붕 가스전 개발(보상거래) △야크츠크 가스 개발(보상거래) △칸칼라스크의 갈탄 개발(보상거래) △엔겔스크 석탄 개발(보상거래) △칸스크,아찬스크 석탄괴 생산(보상거래) △미완성 건설목표의 이용가능성 검토 ◇소비재 목록과 연간 필요량 △냉장고·냉동기=3천20만대 △세탁기=35만5천대 △전기청소기=1백57만5천대 △TV=4백81만5천대 △녹음기=26만1천대 △라디오=3백15만대 △비디오=2백55만대 △자전거=93만5천대 △경운기=75만대 △재봉기=2백10만대 △동력톱=25만대 △모터사이클=8만3천대 △모터롤러=3만4천대 △전기다리미=90만대 △종합주방기기=75만5천대 △커피메이커=1백30만대 △자봉틀 바늘=1억2천만개 △면도날=12억개 △전자오븐=1백30만대 △봉제기계=12만대 △원형뜨개질기계=1천8백대 △원형스타킹자동기계=8백대 △장갑자동기계=9백대 △담배생산·포장라인=30대 △차포장기계=15대 △샴페인병주입라인=20대 △소시지 포장라인=30대 △곡물가루 포장라인=25대 △1회용 주사기=4억2천만개 △심전도 측정기=7천9백80대 △종합수술대=4천9백80대 △살균용 광선투사장치=3백4대 △의료장=11만개 △수술용 조사장치=3천7백대 △소독기=6천9백대 △마취기=3천5백대 △봉합장치=9천7백대 △출혈장치 압착기=2백50만개 △수면용 고리=1천개
  • 샴페인병에 폭음탄 넣다 폭발/생일기분 내려던 5명 중상(조약돌)

    ○…21일 하오10시10분쯤 서울 동대문구 이문3동 238의25 W생맥주집에서 설동기씨(23ㆍ공원ㆍ중랑구 면목3동 458의36)가 3㎝가량의 폭음탄심지에 불을 붙여 샴페인병에 넣는 순간 폭발해 함께 있던 박현복씨(26ㆍ공원ㆍ동대문구 이문3동 238의19) 등 5명이 1∼3도의 중화상을 입었다. 학교선후배 및 친구사이인 이들은 이날 박씨의 생일을 축하해 주기위해 모였다가 설씨가 『그냥 샴페인을 터뜨리는 것보다 폭음탄으로 기분좀 내자』면서 갖고있던 사제폭음탄에 불을 붙이려다 사고를 냈다.
  • “통독 만세”… 폭죽ㆍ경적속 열광/경제통합 첫날 베를린 표정

    ◎비밀경찰 본부서 “밤샘 춤파티”/환전인파 쇄도… 실신사태 속출 그것은 한편의 감동적인 드라마였다. 1일 0시 역사적인 동서독 경제통합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동독은 일순간 환희로 가득찼다. 동베를린 중심부 알렉산더광장을 꽉메운 수만명의 동독인들은 광장시계탑의 대형시계가 0시를 알리자 일제히 환호성을 울렸다. 그순간 동베를린 하늘은 폭죽의 불꽃과 섬광으로 수놓아졌으며 가정에서,거리 곳곳에서 샴페인이 터뜨려졌다. 자동차들은 경적을 울려대고 많은 사람들은 서로 부둥켜 안고 춤을 추기도 했다. 지난해 11월 베를린장벽이 개방되던 날 전세계를 감동시켰던 「광란의 축제」가 재연되는 순간이었다. 동베를린 하늘에 울려퍼진 알렉산더광장 시계탑의 자정을 알리는 종소리는 단순히 하루를 마감하는 종소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동독의 마지막을 알리는 역사의 종소리였다. 동독은 이제 종소리와 함께 역사속으로 묻히고 있는 것이다. ○…자정을 앞두고 쓸모가 없게 된 동독 화폐 잔돈부스러기들을 다 써버리기 위해 거리로 몰려나온 동베를린 시민들은 길거리 카페와 주유소등에 장사진을 쳤으며 한밤중인데도 불구하고 잔뜩 들뜬 분위기가 시가지를 뒤덮었다. 동서독의 모든 국경들은 일시에 개방됐으며 동서베를린 경계에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찰리검문소를 지키고 있던 경비병들은 자리를 떠서 사라져갔다. ○…다른 은행들과는 달리 동베를린 시민들의 편의를 위해 유일하게 이날 0시부터 화폐교환을 해줄 수 있도록 은행문을 연 동베를린시내 알렉산더광장 근처의 도이체방크 주변에는 쓸모없게 된 동독 화폐를 서독 마르크화로 바꾸려는 시민들이 1만명이상 몰려들어 축구장에 몰려든 관중을 방불케 하기도.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일시에 몰려들어 밀고 밀치는 소란과 아우성이 계속되고 일부 시민들이 군중사이에 끼여 실신하는 사태가 빚어지자 은행측은 질서정리에 나선 경찰의 휴대용 확성기를 통해 바꿔줄 돈이 충분하니까 서두르지 말라는 안내방송을 거듭하는등 고객 접대에 안간힘. ○…이날 도이체방크에서 동독화폐를 서독 마르크화로 가장 먼저 환전한 사람은 올해 41세의한스 요하임 코살리씨로 그는 은행측으로부터 1백마르크와 꽃다발을 선물로 받는 행운을 잡았다. 코살리씨는 예금액중 약 1천2백달러 상당을 서독 마르크화로 환전했는데 그는 이 돈으로 가족과 휴가를 즐길 계획이라고 응답. ○…이날부터 서독 마르크화만이 동서독 양국의 공식화폐로 통용되게 됨에 따라 못쓰게 된 동독 화폐들이 화폐 수집가들의 투자대상이 돼 주화 풀세트의 경우 벌써부터 고가로 거래되고 있다고. ○…동베를린의 비밀경찰 병영으로 사용되던 건물에서 30일 밤 서독마르크화 시대의 도래를 기념하는 주요행사의 하나로 「도이치 마르크화속에서 춤을」 즐기자는 구호아래 개최된 파티에는 1천명이상의 동서독 젊은이들이 쇄도해 춤과 열기로 범벅. 주최측은 예상을 넘는 고객들이 몰려들자 정원을 초과한 수백명의 젊은이들을 돌려보냈으나 그래도 준비한 음식과 맥주등이 모자랐다고 즐거운 비명. ○…동베를린시내 문화의 전당건물에 모여 영화관람등을 하고있던 수백명의 젊은이들은 이날 0시 구내 방송을 통헤 『때로는 사랑했고 때로는 증오했던 우리의 조국 동독 인민공화국에 작별을 고한다』는 방송이 흘러나오자 휘파람과 환성을 지르며 환호. 연인들이 입을 맞추고 동전을 공중에 던지는등 한바탕의 소동이 가라앉으면서 방송에서는 곧이어 동독국가가 흘러나왔다. ○…대부분의 동독 국민들은 이날 동서독의 경제통합을 환영했으나 일부에서는 앞으로 예상되는 대량의 실업사태및 인플레등과 관련,불안한 표정을 감추지 않기도. 동독에서 앞으로 일자리를 잃게될 것으로 추정되는 실업자 수는 최저 50만명에서부터 최고 4백만명까지 전문가들에 따라 추정치에 큰 차이가 나고 있는 실정이나 어떻든 대량의 실업사태가 올 것이라는 점은 분명한 실정. ○…동독 당국은 공중전화와 기차표 판매대등에서 서독 마르크화를 받아들이고 동독 화폐를 사용할 수 없도록 기계를 재조정하는 작업을 진행하는등 경제ㆍ화폐통합에 따라 생겨날 문제점들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 조치로 분주한 모습. 또 백화점과 대형상점들도 아예 문을 닫고 1일부터 판매될 서방상품들을 위해 기존판매상품들을 창고로돌리고 서방상품들을 위한 매장진열과 서구풍의 화려한 실내장식작업에 나서는등 달라진 환경에 대처하기 위해 기민하게 움직이고 있는 실정.
  • 노대통령 「6ㆍ29」 3주년 기자간담 내용

    ◎“「윗물」은 직접 점검,사정반 계속 가동”/국정 우선부문은 갈등ㆍ위화감 해소/우리 경제 1∼2년뒤엔 활력 회복 확신/“지도자는 때로는 「물」,때로는 「불」이 되어야” 노태우대통령은 28일 낮 청와대에서 6ㆍ29선언 3주년을 하루 앞두고 출입기자들과 오찬간담회를 갖고 내각제개헌문제,특명사정활동,한소및 한중관계,대북한관계 등 국정전반에 걸쳐 약 1시간20분동안 자신의 견해를 피력했다. 다음은 노대통령과의 일문입답 요지. ­내일이면 6ㆍ29선언 3주년이 됩니다. 당시 선언과 관련된 공개되지 않은 비화라도 있습니까. ▲나는 본래 비밀을 간직하기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설사 있다 해도 여러분들이 가만히 놔두길 합니까. 보도될 것은 다 되어버렸어요. ­6ㆍ29선언에 대해 평가하는 시각이 여러가지인 것 같은데요. ▲여러 눈으로 보는 것이 당연하겠지요. 마침 내일(29일) 저녁에 6ㆍ29선언 3주년을 맞아 「국민과의 대화」 시간이 있는데 그 자리에서 회고도 있을 것이고 무엇이 잘 돼 왔고 무엇이 잘 안돼 왔는지도 결산을 하게 되리라 봅니다. 오늘 이 자리는 내일을 위한 예행연습이 되는 셈이군요. 사람들은 흔히들 망각속에 산다고들 하지만 망각이 때로는 좋을 수도 있고 어느 때는 아쉬울 수 있지요. 6ㆍ29이후 변화된 상황에 대해서는 책도 문헌도 많이 나와 있다지요. 일반적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편안하고 영광스러웠던 것은 얼른 잊어버리고 무엇이 문제인가 하는데 집착하는 경향이 있지요. 물론 이런 점이 좋을 수도 있습니다. 어려운 문제가 계속 생기고 문제가 와글와글하는 나라는 발전하고 반면 잠잠하면서 겉으로 문제가 없는 듯이 보이는 나라는 정체하고 후퇴하는 게 사실입니다. 6ㆍ29이후 모든 것이 잘 됐다고 하는 것은 현실안주가 되기 쉽고 뭔가 계속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미래지향적인 발전의 에너지가 될 수 있다고 봐요. 사회 각계 각층의 얘기들을 지도자들이 수렴해 발전적으로 풀어 나가야지요. ­대통령은 스스로 국민에게 부드럽게 보인다고 보십니까,아니면 강하게 보인다고 생각하십니까. ▲얼마전 워싱턴포스트 소련지국장이 회견을 요청해 만났는데이렇게 묻더군요. 「6ㆍ29선언이후 대통령의 통치스타일이나 하는 일을 보고 어떤 이는 마음이 약하다고 하고 또 어떤 이는 옛날의 강경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며 「어느 쪽이냐」고 질문했어요. 나는 이에 「민주주의를 하려니 유할 때는 유해야 하고 또 질서를 잡을 때는 강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대답했습니다. 지도자는 물이 될 때는 물이 되고 불이 될 때는 불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변화가 너무 잦아서는 안되겠지요. 그렇게 되면 국민이 불편하고 자연히 통치도 어려워지지요. 나는 스스로 나의 개성이 유하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습니다. 군에 있을 때 1년에 한두번 화를 내는 일이 있을까 말까 하는데도 부하나 참모들이 나를 어렵고 무섭게 느낀다고 하더군요. 총체적으로 말한다면 나는 권위주의를 싫어합니다. 권위주의는 반민주 정치문화이지요. 과거엔 권위주의가 정치문화의 주류를 이뤄왔으나 이것을 깨뜨리지 않고는 민주주의가 안된다고 생각해왔습니다. 6ㆍ29선언이후 권위주의 문화가 다 없어졌다고는 말할수 없지만 적어도 이제는 그것이 정치문화의 주류를 이루고 있지는 않다고 확신합니다. ­집권 중반기에 들어선 이 시점에서 국정의 가장 중요한 부문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이 시점이라기 보다는 이 시대의 과제라고 할 수 있는 것은 갈등과 위화감을 해소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 다음 현실적이면서 또 그 목표가 보이는 것이 통일문제라고 봅니다. 통일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두가지의 요소가 필요합니다. 첫째는 국민의 의지가 통합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 사회의 통합과도 직결되는 것이지요. 둘째는 경제적으로 후퇴해서는 안되고 안정적으로 발전시켜나가는 것입니다. 경제가 안되면 민주주의도 기대할 수 없지요. 어려운 경제를 어떻게 발전시켜 나가느냐가 시대적 과제입니다. ­「노­고르비」회담이후 한소관계는 어디까지 와있습니까. ▲회담 당시 분위기가 아주 좋았습니다. 소련측이 공개를 꺼렸습니다만. 지금 문제는 소련측 자체내에 있습니다. 정치ㆍ경제ㆍ사회적으로 갈등이 뒤엉켜 있지요. 내달(7월)에 당대회가 열리겠지만 워낙 경제가 안풀려 안심을 할 수 없습니다. 경제가 안풀리면 보수세력이 반격을 가할 수 있고 급진개혁파도 공격을 할 가능성이 있지요. 고르바초프대통령이 중간에서 고민이 크겠지요. 그러나 소련은 국내문제를 해결해 나갈 것으로 보여 고르비도 페레스트로이카정책으로 개혁을 이뤄낼 것으로 기대합니다. 우리가 너무 초조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순리적으로 되게 마련입니다. ­김영삼 민자당대표최고위원이 한소회담직전 노대통령의 연내방소를 자신있게 전망했는데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습니까. ▲희망사항으로 얘기했겠지요. 그 양반도 소련에 갔다 와서 그쪽 분위기도 알고 하니까 그렇게 희망을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방소수교단 파견은 언제쯤 이뤄집니까. ▲다음달 소련의 전당대회가 끝나는 것을 봐야 알겠습니다. ­한소회담후 한­중국관계도 급진전되고 있다는데. ▲중국과의 관계개선은 시작이 소련보다 빨리 되었고 또 진전이 진행되어오다가 천안문사태로 주춤해졌지요. 중국은 지금 스스로 정치적 변화를 하기도 어렵고 우리가 강요할 수도 없는 입장이고 해서 경제협력도 자연히 영향을 받게되었지요. 한때 경제교류도 둔화되었으나 최근 회복추세를 보이고 있으며 9월 아시안게임을 계기로 다시 상승하게 될 것으로 봅니다. ­항간에는 아시안게임때 대통령이 북경을 방문한다고 하는데요. ▲고르비와 회담이 뜻밖에 이뤄졌다고는 하지만 어디 원인없는 행위가 어떻게 이뤄집니까. 한소회담에서도 느꼈지만 사회주의국가와의 협력,수교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릅니다. 특히 언론의 보도문제입니다. 그들은 공식이든 비공식이든 그런 문제를 논의할 때 첫째 내거는 조건이 논의의 보안입니다. 한중관계의 언론추측보도는 상대방을 당혹하게 만들고 국익차원에서도 큰 폐해를 끼치게 됩니다. ­중국과의 사이에도 「원인행위」가 이뤄지고 있습니까. ▲내가 직접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은 하나도 없어요. ­지난 16일 김대중 평민당총재와의 회담에서 내각제개헌문제등에 대해 알려지지 않은 얘기가 있다는 설이 있던데요. ▲여러번 김총재와 회담을 해봤지만 지난번 회담이라고 해서 특별히 다른 게 없었어요. 한가지 이 사람(김대중총재)이 오해하는 것은 금년내에 당장 개헌을 하여 내각제로 바꾸어 내가 또다시 대통령으로 뽑혀 장기집권을 하지 않나 하는 것이었는데 이번에 그 오해는 풀린 것 같았어요. ­내각제개헌 추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대통령중심제나 내각책임제나 정부형태문제를 정치인이면 자유스럽게 논의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까. 김 평민총재와의 회담에서도 밝혔듯이 나는 6ㆍ29선언 당시에도 내 소신은 내각제라고 단서를 붙여 놓고 직선제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내각제를 갖고 무슨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은 없습니다. 내각책임제가 아무리 좋다 해도 국민이 싫다하면 하지 않을 것이고 야당과도 논의할 용의가 있습니다. 헌법개정문제는 여야가 상의하고 협력해서 할 일이며 일방적으로 몰아부치는 일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금년은 국민들에게 정치ㆍ경제ㆍ사회의 안정을 약속한 큰 일이 있는데 금년안에 개헌을 추진한다고 하는 것은 다 뜬 소문입니다. ­부동산투기 근절ㆍ특명사정반 활동을 어떻게 평가합니까. ▲야당에서 권력남용이라고 하고 있으나 국가의 모든 행정책임을 지고 있는 대통령이 참모에게 무엇을 못 시킵니까. 특히 부동산문제는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뿌리를 뽑을 것입니다. 5ㆍ7특별담화를 통해 한 약속을 반드시 지켜야 하는데 이를 지킬 주체는 공직자입니다. 공직자의 자세가 되어 있지 않으면 약속을 지킬 수 없으니 그들의 자세를 점검 안 할 수 없는 것이지요.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말이 있지만 윗물은 내가 직접 점검하여 틀림없다 확일될 때까지 특명사정반을 계속 가동할 작정입니다. 부동산투기ㆍ물가ㆍ민생치안 등에 대해서는 열심히 하고 있으나 아직 국민들의 피부에 와 닿지 않고 있는 만큼 더 열심히하여 이만하면 됐다고 할 때까지 노력을 계속할 것입니다. ­특명사정반으로부터 정치인 비리내사에 대한 보고를 받은 적이 있습니까. ▲또 신문에 정치인 비리를 내사한다고 대문짝만하게 쓸려고 그러지요. 그 문제는 알쏭달쏭함이라고만 하겠어요. ­한소 정상회담이후 대북한정책을 어떻게 정리하고 있습니까. ▲기본원칙 자체가 흔들려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나 북한측의 주장을 수용하는 범위가 전보다 넓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저쪽은 대화의 목적 전부가 선전에 있어 종전에는 끊어버리는 입장이었으나 앞으로는 선전목적이더라도 웬만한 것은 수용하는 선에서 폭을 넓혀 대화를 해 나가게 될 것입니다. ­경제구조의 문제등으로 수출부진등 경제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지난 86년이후 경기가 좋을 때 경제구조 변경을 했어야 했습니다. 어느 외신기자가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렸다고 한국경제를 평했듯이 샴페인을 터뜨리기 전에 경제구조 조정을 하고 기술향상 제조업등에 투자의 우선순위를 두었으면 지금의 어려움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추진하고 있는 정부의 정책이 금방 효과가 나타날 수는 없겠지만 1∼2년뒤에는 반드시 활력을 회복할 것이고 특히 소련등 동구권국가들과의 교역이 본격화되면 소비재 분야등 중소기업의 붐이 일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습니다.
  • 외언내언

    국민총생산(GNP)은 한나라의 경제력과 생활수준,그리고 국방력 평가의 척도로 사용된다. 2차대전이후 많은 개발도상국들은 GNP 성장을 국가발전의 신조로 삼았으며 GNP의 증가를 정치적ㆍ경제적 승리로 간주하기도 했다. 그리고 GNP의 급성장이 그리 용이한 일은 아니다. 전후 개도국이 선진국으로 도약한 사례가 없음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고 하겠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GNP의 국제비교는 그런 점에서 주목되고 경이롭다. 한은은 우리나라의 경제규모(GNP)가 지난해 세계 13위로 부상했으며 1인당 GNP는 30위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6ㆍ25의 전란으로 인하여 가난과 절망에서 허덕이던 나라가 경제개발에 착수한지 약 30년만에 10위권의 선진국에 근접하고 있다는 사실은 신선한 충격을 주기에 충분하다. ◆최근 외국 언론들의 비아냥을 잊고 GNP에 담긴 의미를 음미해 볼만하다. 외국언론들이 아무리 우리 경제를 「종이 호랑이」또는 「지렁이」로 비유하거나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렸다』고 꼬집어도 우리 경제 규모가 89년 현재 13위에 있는 것만은 변함이 없다. 90년 경제성장 또한 8% 이상의 경제성장이 가능해 최소한 그 순위의 고수는 거의 틀림이 없다. ◆물론 우리 경제는 과거 3년간의 고도성장에 의한 순환적 경기후퇴와 기술개발의 소홀로 인한 구조 조정의 지연및 인플레 우려등 여러가지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길어도 앞으로 1년 내지는 1년반 정도의 조정기간을 거치면 경제가 회복되리라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경제를 보는 눈이 너무 낙관적이거나 지나치게 비관적인 것 모두가 금물이다. 더욱이 외국 언론의 보도에 일희일비할 때는 지났다. 우리가 경제의 실상을 정확히 파악하고 적절하게 대응해 나간다면 2천년대에 대망의 선진국권 진입이 가능할 것이다.
  • 외언내언

    외국언론에서 불과 3년전만 해도 포효하는 호랑이로 비유되었던 한국경제가 지난 연말에는 지렁이가 되더니 이번에는 이빨 빠진 호랑이로 불리어졌다. 영국에서 발행되는 파이낸셜 타임스지는 지난 24일자에서 『아시아의 호랑이들은 이빨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고 전망했다. 이 신문은 그 이유로 한국의 경우 원화절상과 임금인상을 들었다. ◆외국 신문이나 잡지가 그 나름대로의 분석에 의하여 한국경제를 평가하고 있겠지만 몇년사이에 시각이 1백80도 달라진데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영국의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는 86년 8월호에서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2006년에 영국수준에 접근해서 세계 10위권에 랭크하게 되고 2032년에는 미국의 국민소득을 추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들 언론뿐이 아니라 외국학계의 한국경제에 관한 전망 역시 매우 고무적이었다. 일본 동경외대 나카지마 미네오교수는 그의 저서에서 『한국ㆍ일본ㆍ대만의 스리 타이거즈(3마리 호랑이)가 21세기를 주도하는 국가가 될 것이라고 내다보았고 일본 동해대의 사세휘교수는 『한국이 일본을 추월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기도 했다. ◆이런 한국경제에 대한 예찬론이 비관론으로 기울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부터이다. 격심한 노사분규와 높은 임금인상에다가 원화의 절상이 진행되면서 수출경쟁력이 눈에 띄게 약화되자 외국 언론들의 한국경제에 대한 시각이 비판적으로 돌아섰다. 워싱턴 포스트지가 『한국이 너무 일찍 샴페인을 터뜨렀다』고 꼬집더니 프랑스의 피가로지가 『한국은 이제 아시아의 용이 아니라 한마리의 지렁이로 전락했다』고 보도했다. ◆과연 한국경제가 포효하는 호랑이에서 종이 호랑이로 전락한 것인가. 경제는 무릇 순환적 조기를 거친다. 우리경제가 구조적 조정기에 있는 것 만은 사실이다. 쉽게 말해서 호랑이가 춘골증에 걸려 있는 것이지 영원히 잠자는 호랑이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 대미무역 적신호… 적자로 반전우려/무공,올 수출동향 분석

    ◎3저시대 기술개발ㆍ품질고급화 소홀 여파/수출주종 자동차ㆍ전자 일본에 밀려 치명타/엔화 절하ㆍ미의 보호무역정책도 악재로 우리나라 전체수출의 3분의1 가량을 차지하는 미국시장에서 한국상품들이 크게 고전하고 있다. 미주지역에 대한 수출의 급격한 감소가 현재와 같이 계속된다면 대미 무역수지가 최악의 경우 올해 적자로 반전될 수도 있다는 전망(무공)이 나오는 등 여러가지 상황으로 볼 때 심각한 조짐들이 나타나고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 자동차수출의 선봉장이자 「신데렐라」처럼 돼 있는 현대자동차의 엑셀 4도어 모델은 미국시장에서 7천8백79달러에 팔려 동급의 경쟁모델인 일본 혼다 시빅의 9천4백40달러에 근접하고 있다. 현대엑셀의 88년 당시 산매가격이 7천1백19달러로 1년여만에 7백달러가 오른 반면 혼다 시빅의 같은기간 가격차이는 2백50달러에 그쳤다. 아직 엑셀 판매가가 1천6백달러정도 싼 편이나 1년여전에 비해 가겨차이가 4백50달러 정도나 줄어들어 손님이 크게 줄고 있다는 얘기다. 미국시장에서 일본에 이어 2등을 마크하던 한국전자제품의 가격경쟁력이 급속히 떨어지고 있다. VTR의 경우 일본의 중간급 제품의 대미수출가격이 지난해 말 1백45달러 수준으로 한국제품의 1백50∼1백53달러보다 오히려 쌌다. 그런데 최근 일제가격이 1백32달러선으로까지 떨어져 가격차가 더욱 커졌다. 우리나라 전자제품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미국을 비롯,유럽ㆍ동남아시장에서 일본의 2류제품과 가격면에서는 뒤졌으나 품질면에서 다소 앞섰다. 이것이 최근 일본의 2류 메이커들이 가격을 내리고 품질경쟁력을 강화하는 바람에 우리 시장을 잠식해 들어가고 있다는 분석이다. 또 주력수출품목 가운데 하나인 철강제품도 미국내 수요가 줄어들고 있는 가운데 브라질 등 철강 생산국들이 가격을 낮춰 미국시장에 진출,상대적으로 가격경쟁력을 상실한 한국제품의 대미수출을 가로막고 있다. 올들어 지난 3월말까지 1ㆍ4분기 동안 대미수출은 VTR가 전년 동기대비 61.7%,승용차가 55.7%씩 각각 감소해 가장 큰 타격을 받았고 전자전기(16.4%) 완구(14.1%) 반도체(2.7%)도 수출이 줄어드는 등 수출 부진현상이 전 품목으로 확대되고 있다. 반면 수출이 증가한 품목은 신발(18.3%) 컴퓨터(0.4%) 플라스틱제품(0.2%)정도에 불과하다. 80년대 들어 대미 무역수지는 통관기준으로 82년 1억6천2백만달러 흑자를 기록한 이래 지난해 까지 9년연속 흑자시대를 누려왔다. 대미수출은 88년 2백14억4백만 달러로 전년대비 16.9%가 늘어났으나 89년 2백6억4천만달러로 3.6%가 감소했으며 올들어 1ㆍ4분기 동안엔 41억9천만달러 전년 동기대비 7%나 감소했다. 특히 올들어 4개월 연속 통관기준 무역수지가 적자를 보여 총적자액이 23억3천만달러를 기록한 상황에서 한국수출의 황금어장격인 미국시장에서의 고전은 경제안정기반을 위협하고 있다. 이처럼 대미무역에 「빨간 불」이 켜진 것은 물론 우리수출 상품의 품질 및 수출경쟁력이 다른 나라 제품,특히 경쟁국이 일본에 비해 뒤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일본엔화의 급격한 절하가 우리원화의 절하폭에 비해 훨씬 커 수출경쟁력을 형편없이 약화시키고 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이유는 우리나라 상품 가운데 자신있게 팔 물건이 없다는 점이다. 취임후 의욕적인 수출 드라이브 정책을 펴고 있는 박필수 상공부장관도 이를 시인,『3∼4년전 3저시대때 수출이 잘 되다보니까 주문을 받아 팔기만 했을뿐 기술개발이나 신제품개발,품질고급화는 등한시 한 결과 현재와 같은 상황을 초래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특히 대미수출시장의 퇴조는 무역수지 흑자가 급격히 늘고 한미 통상마찰이 심화되면서 정부와 업계가 수출진흥을 사실상 등한시 한데서 온 결과라는 점이 공통적으로 지적되고 있다. 실제로 불과 1년전만 해도 상공부는 수입촉진을 위한 주요 시책을 국내업체에 시달하며 수입이 미덕인 것처럼 여겨 왔으나 올들어 수출부진이 가시화됨에 따라 종합무역상사들에게 수입억제 지침을 내리는 등 호들갑을 떨고 있다. 대미무역수지를 악화시키는 다른 요인으로는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성향이 확대되고 있는 점이 꼽힌다. 미국은 우루과이 라운드협상을 통한 새로운 무역규범의 정립을 표면상 내세우면서도 GSP(일반 특혜관세)제도운영,섬유쿼타의 결정등에 있어 아시아 선발개도국에 주어왔던 혜택을 축소하는등 사실상 보호무역주의 성향을 확대해 왔다. 상공부는 올들어 감소세였던 수출이 전년동기대비 증가추세로 회복됐고 현대의 신차종인 스쿠프의 대미수출 개시,철강경기의 회복조짐 등에 따라 대미무역수지가 다소 줄어들지언정 적자로 반전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장담하고 있다. 그러나 불과 1년만에 수입촉진이 수입규제로 바뀌고 밀려드는 주문으로 기술개발을 소홀히 한 결과가 지금 쓰디쓴 대미무역 기조 위기로 나타나고 있는 것을 볼때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렸다」는 외국언론의 지적을 다시한번 뼈아프게 되새겨 봐야 할 것이다.
  • 5월에는 우리 제자리를 찾자(사설)

    4월은 너무 힘들었다. 어떻게 보냈는지도 모르게 보냈다. 이제 5월이다. 그러나 세월만 지났을뿐,4월에 잉태했던 고난과 시련은 별로 해결되지 못한 채 들어섰다. 어쩌면 4월보다 더 힘겨운 5월이 될지도 모른다. 그럴 징조는 얼마든지 있다. 골리앗 크레인에 남아 최극한투쟁에 들어간 현대중공업 노사와 계열사들의 심상찮은 움직임,그걸 기화로 파업을 전국으로 확산시켜 세다짐을 하고 싶어하는 근로자집단,도시게릴라처럼 날뛰는 화염병대학생들의 대구시경침입,7백선을 무기력하게 무너뜨리고 주저앉아가는 증시 등,4월에서 5월로 넘겨준 짐은 암담하고 우울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5월이 4월처럼 힘들고 혼란된다면 큰일이다. 그 결과는 4월과 비교할 수 없이 큰 불행을 부를 것이다. 그것이 너무 걱정스럽다. 제발 4월의 어지러움이 5월까지 연장되어 정말로 회생할 수 없는 불행을 만들지 않게 하기 위하여 우리 부디 제자리로 돌아가야 하겠다. 1천포인트 돌파로 샴페인을 터뜨리던 증시가 당년에 3백포인트 가까운 추락곡선을 그리고,흑자수지에 들떠서 분수없이 나대던 경제가 걷잡을 수 없는 적자기록을 그리게 된 경험을 통해 우리는 우리경제가 얼마나 부실하고 믿음직하지 못한가를 알게 되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제자리를 이탈하여 비틀거리며 헤매는 「진로」를 제자리로 돌려세우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아직은 중요한 한끝이 궤도위에 있어서 탈궤한 부분을 수습만 잘 한다면 다소간의 지체는 했지만 그런대로 순조로운 항진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더 늦기 전에 상궤를 벗어난 모든 사람들이 제자리로 돌아와야만 이 순항은 가능해진다. 그러기 위해서는 특히 「힘」을 가진 사람들이 힘을 절제하는 노력을 보여야 한다. 힘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대주주,공권력,정치집단을 생각한다. 그 힘들이 현명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오늘날의 힘의 소재는 목소리를 크게 낼 수 있는 다중에게로도 많이 귀속되었다. 사용자인 기업이 부당하게 「힘」을 행사하는 일도 악덕이지만 근로자가 다중으로 조직된 힘을 무리하게 행사하는 것도 부도덕이다. 시민들은 「투쟁」만을 존재의미의 과시로 휘두르는 듯한 전노협의「힘」에게서,솔직히 말해서 불안의 먹구름을 감득한다. 민생위를 우울하게 뒤덮는 불길의 먹구름이다. 법도 유린하고 타협도 묵살하는 세력에게서 느끼는 속수무책의 불안이다. 근원을 따지면,이런 세력의 출현은 법질서의 무능과 부도덕한 기업의 오래된 업보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라와 국민의 삶이 언제까지나 그 업보계승의 볼모가 될 수는 없다. 모두가 한몸안의 지체이므로 종당에는 스스로를 해치는 결과를 부르기 때문이다. 그래도 5월의 시작은 한가닥의 서광을 비추며 출발했다. 4월을 경직시켰던 KBS도 새 국면을 맞고 있고 춘투를 무사히 넘긴 현장도 상당히 있고 경제의 회복기미가 조금씩 비치고 있다. 또 위기가 오면 놀랄만큼 이성을 찾고 현명해지는 국민의 슬기도 살아나고 있다. 거기다가 5월은 아름답고 좋은 달이다. 성숙하고 윤기있는 계절의 덕성을 받아들여,5월에는 우리 모두 제자리를 찾아가자.
  • 엇갈리는 「위기경제」진단/염주영 경제부기자(오늘의 눈)

    우리경제는 하루가 다르게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 수출은 부진하고 기업은 불황에 허덕이는데 물가는 치솟고 증시는 연일 폭락하는 속에 투기가 성행한다. 우리경제가 이대로는 더이상 성장할 수 없는 한계에 도달한게 아니냐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우리 경제를 바라보는 해외의 시각도 예전과 같지 않다. 개발도상국 경제의 모범생이라던 찬사는 이제 『한국국민들은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렸다』는 조롱으로 바뀌고 있다. 7일 조순부총리를 출석시킨 가운데 열린 국회경과위의 여야의원들의 정책질의는 한국경제가 처한 위기의 본질은 무엇이며 그 타개책은 어디에서 구해야 하느냐는 점에서 관심을 모았다. 그러나 경제위기에 관한 각자의 백가쟁명이 있었을뿐 기업과 근로자,정부 모두가 힘을 한데 모아 위기를 헤쳐나갈 수 있는 구심점을 제시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소득이 있었다면 여야간에 판이하게 엇갈리는 두개의 시각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정도일 것이다. 민자당소속의 황병태의원은 『경제문제는 경제논리로 풀어야 한다』며 정부의 시장개입을 최소화하고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지배하도록 경제를 시장의 원리에 자유롭게 맡겨두어야 한다는 논지를 폈다. 그럴 때에만 경제효율을 극대화시킬 수 있다는 주장이다. 황의원은 조부총리에게 『소련의 고르바초프도 생산수단 사유화와 임금노동제 등의 시장원리를 도입하고 있는 마당에 우리의 개혁은 정부의 시장규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으니 어찌된 영문인가』고 묻고 『잘못된 개혁이 경제의 숨구멍을 틀어 막고 있지 않느냐』고 따지기도 했다. 그는 잘못된 개혁의 예로 토지공개념과 금융실명제를 지적하기를 잊지 않았다. 잘못된 개혁이 기업의 자유로운 생산활동을 위축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효율의 위기」라는 시각에서 경제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평민당소속 이해찬의원은 다른 방향에서 경제위기를 진단했다. 이의원은 『불로소득이 노동소득의 두배나 되는 상황에서 투기가 없어지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고 지적하고 『땅을 사두면 앉아서 떼돈을 버는데 어느 기업가가 힘들여 산업자본에 투자하겠느냐』『전세값이 마구 뛰는데 근로자들에게 임금인상을 자제하라고 외쳐본들 무슨 설득력이 있겠느냐』 정부의 보다 과감한 시장규제를 통한 소득분배구조의 개선이 없이는 경제안정도 성장도 불가능하다는 것이 이의원의 주장이었다. 「형평의 위기」라는 시각에서 경제를 바라보았다. 조부총리를 매개자로 펼쳐진 여야의원간의 공방전은 경제위기를 바라보는 상반된 여러개의 시각이 걸러지지 않은 상태로 혼재해 있음을 느끼게 했다. 누구나 경제가 위기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 위기가 어디에서 연유했고,어떻게 치유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국민의사의 최대공약수는 찾지 못하고 있다. 「효율」과 「형평」이라는 상반된 방향으로 달리도록 조부총리를 열심히 채근하는 두의원의 질문모습에서 우리 경제가 처한 위기의 또다른 일면을 읽을 수 있었다.
  • 6공화국 2년… 경제적 과제/송기철 고대교수ㆍ경제학(특별기고)

    ◎경쟁력ㆍ저축ㆍ투자ㆍ노동의 「4고정책」 긴요/「제2도약」으로 통일ㆍ민주화 기반 조성/국민ㆍ기업에 용기와 자신감 부축해야 지난 2월 25일은 노태우 대통령 취임 2주년을 맞는 날이었다. 이제 제6공화국도 3년째로 접어들고 앞으로 3년은 열심히 일하면서 무엇인가를 보여 주어야 할 중요한 잔여임기일 뿐만 아니라 90년대를 이어 21세기 범태평양시대의 한 주인공으로서 선진국으로의 재도약을 위한 기반다짐을 해야 할 아주 중요한 고비의 시기로 생각된다. ○앞으로 3년이 고비 돌이켜 보건대 지난 2년은 여러가지 어려운 사정이 있기는 했지만 정말로 지루한 5공청산의 시기였었다. 사람에 따라서 미진한 느낌을 갖는 경우도 없지 않겠으나 일단은 끝난 일,이제야말로 과거에 지나치게 얽매이지 말고 앞으로 3년 평화통일의 큰 길을 위해서 안팎으로 외교ㆍ안보체제를 구축하고 진정한 민주주의를 정착시키며 우리의 각종 문화를 높이고 균형잡힌 복지 경제사회를 건설하는 일이야말로 6공 잔여기간 사이에 정열적으로 해야 할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 90년대에 우리가 추구하는 평화통일,민주주의 정착,외교안보체제 강화,균형적 사회발전과 각종문화 향상 이들 모두는 경제의 뒷받침없이는 원활하게 추진할 수 없으며 그 기반이 취약화되므로 경제의 제2도약에 모든 힘을 기울여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우리 경제는 62년이후 국민 모두가 「우리도 한번 잘 살아 보자」는 국민적 합의하에 눈물겨운 피와 땀의 노력으로 한강의 기적으로 일컬어지는 경제도약을 이루어 86년이후 88년까지 우리 경제는 「마의 삼각선」이란 12%이상의 고도성장,1백42억달러까지 이른 경상수지 흑자,그리고 1∼4%이내의 물가안정과 고용증대등을 균형있게 풀어 나가 「한국인이 몰려온다」 또는 「제2의 일본」이라든가 「일본을 뛰어넘는다」든가 하는 찬사와 질시까지 받게끔 되었고 우리 국민들에게도 「하면 된다」 「할 수 있다」는 용기와 자신감을 불어넣어 준 것이 현실이었다. 그리 좋던 우리 경제가 민주화 선언 이후의 무궤도적인 정치혼란과 사회불안 등으로 국민들의 기강이 해이해져서 어렵게 이루어 놓은 경제기반이 흔들려89년에는 반감된 경제성장,경상수지 흑자의 대폭적인 감소 그리고 피부물가의 앙등등 우리경제는 또다시 마의 삼각선에 휘말려 저성장하의 고물가란 스태그플레이션 징후하에 자칫하면 경상수지 적자의 재발이란 축소재생산 마저 보이고 있는 안타까운 국면을 보이고 있어 「대한민국은 너무 일찍 샴페인을 터뜨렸다」는 야유까지 받고있다. 왜 우리가 이런 꼴이 되었는가하고 서글픔을 느끼게 한다. ○모두가 “우리때문” 문제는 이제 90년대에 들어 이 서글픔을 타파하고 또다시 경제의 재도약을 이룩하며 범태평양시대를 맞아 평화통일과 진정한 민주화의 기반을 굳건히 하는 일이 긴요한 것으로 생각한다. 이를 위해선 각계각층의 국민들에게 자신감과 용기 그리고 신바람을 불어넣는 일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세계대전 패망후 실의에 빠져 엉망이 된 독일 국민들에게 『건물이나 기계가 파괴된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영토와 사람을 잃은 것 또한 아무것도 아니다. 국민들이 자신감과 용기를 잃는 것이 가장 큰 손실이고 문제』라면서 독일 국민들에게 자신감과 용기를 불어넣으려고 힘쓴 역사상의 선례에서 제2경제 도약의 기본을 찾아야 한다. 우리 국민은 고래로 「신바람」이 나야 제대로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그것이 제1경제 도약의 바탕이 되었고 또 88 올림픽에서의 놀라운 성과가 바로 신바람적 용기와 자신감에서 이룩된 것이었음을 회상할 수 있다. 국민에게는 앞으로의 밝고 보람된 비전을,기업가에게는 투자의욕을,공무원에게는 공복으로서의 시대적 사명감을 불어넣어 주는 일이 앞으로 제6공화국이 해야할 근본적 과제로 생각된다. 지금 우리는 모두 「너 때문이야」일색이다. 우리가 어려워진 것이 왜 「너 때문이야」만이겠는가. 차라리 「나 때문이야」 「우리 때문이야」로 보는 것이 옳은 것으로 보여진다. 미국에서도 미국경제가 어려워진 것이 미국 자신때문이 아니라 한국때문이요 일본 때문이며 대만 때문으로,「너 때문이야」로 돌리고 있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미국을 걱정하는 진짜 지성은 그 원인을 미국인 자신에게서 찾고 그 회생책으로 4고정책을 강조하고 있다. 첫째는 고경쟁력,둘째는 고저축,셋째는 고투자,넷째는 고노동의 4고정책을 들고 있는데 이것은 바로 우리 한국에도 그대로 해당이 되는 것으로 보여진다. 우리 경제가 어려워지고 있는 것은,인류에 꼭 필요한 물건이나 서비스를 우리나라만이 생산하면서 그것도 값이 싸면서도 좋은 것으로 유리한 조건으로 제공해야 할 우리국가,우리산업,우리기업,우리상품의 경쟁력이 최근 몇년 사이에 뚝 떨어져 수출이 많이 줄어들었고 이에따라 일자리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왜 경쟁력이 떨어졌는가. 신제품 개발과 기술개발이 소홀했으며 종전의 상품이 노임상승 등으로 비싼 상품이 되었고 상승된 상품가격에 상응할만큼 품질이 좋아지지 않아 「값비싸고 나쁜」물건으로 전락해 해외시장에서의 경쟁력을 잃었기 때문으로 보여진다.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선 왕성한 생산투자를 해야 하는데 투자 분위기가 식어가고 있으며 투자를 하더라도 비생산적인 재테크나 부동산투자만 하니 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지금 일부 사장들 사이에 나도는 유행어 『아직도 제조기업의사장을 하고 계십니까』라는 자조적 분위기가 불식되어야 함이 긴요한 것으로 보여진다. ○사회분위기 전환을 투자를 활발히 하기 위해선 투자자금 원천으로서의 높은 저축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지금 우리는 과소비로 저축률이 떨어지고 있음을 한탄해야 하며 그 방지책에 부심해야 한다. 그리고 궁극적 기본은 열심히 일을 해야 하는데 우리의 경우 급격한 노동 기피현상 특히 위험한 일,더러운 일,힘드는 일 그리고 사회적으로 「스타일 구기는」일의 기피현상이 두드러지고 노동기강이 해이해져 가고 있는 사회 분위기를 돌리는 4고정책의 촉구가 제6공화국이 해야 할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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