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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찬호, 아내 내조가 선수생활에 에너지!

    박찬호, 아내 내조가 선수생활에 에너지!

    박찬호가 부인 박리혜 씨의 내조가 선수 생활에 큰 에너지가 된다고 밝혔다. 박찬호는 5일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요리 전문가인 아내 박리혜 씨의 신간 ‘리혜의 메이저 밥상’ 출판 기념회에 앞서 기자회견을 갖고 아내의 새로운 책을 소개했다. 회견을 시작할 때 “나는 오늘 사회자로서 아내를 도와주러 나왔다”고 말하는 등 아내에 대한 사랑을 한껏 드러냈다. 박찬호는 “아내가 1년 이상 준비한 책”이라며 “처음에는 내조와 아이들 뒷바라지에 소홀해질까봐 출간을 반대했는데 힘들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을 것과 ‘수익금 전액 기부’라는 조건을 달고 책을 준비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두가지 약속을 지켜준 선물로 출판기념파티와 기자회견을 마련하게 됐다”는 박찬호는 “아내 덕분에 아침을 거르지 않는 습관이 생겼다. 이번 두산의 미야자키 캠프에서 김경문 감독이 ‘좋은 습관을 가졌다’며 칭찬하시기도 했다”며 “아내의 내조가 선수 생활에 큰 힘이 된다”고 밝혔다. 어머니의 한식과 재일교포인 아내의 한식 중 어느 쪽이 더 맛있냐는 짖궂은 질문에는 “어머니 음식을 33년 먹었고, 아내의 음식은 3년 먹었으니 어머니 음식에 길들여져 있지 않았겠냐”면서도 “결혼 초 아내의 음식이 싱겁고 입에 안 맞아 억지로 먹을 때도 많았지만 지금은 오히려 다른 음식을 먹으면 짜다”고 대답했다. 박리혜 씨는 “남편의 식성이 까다롭지 않다고는 말 못하겠다”고 말해 취재진의 웃음을 자아낸 뒤 “하지만 운동선수로서 당연히 그래야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운동선수로서 만점이고, 바쁜 가운데서도 집에 신경을 많이 써줘 마음만은 만점인 남편”이라고 박찬호를 추켜세웠다. 한편 이 책의 수익금은 박찬호 부부의 뜻에 따라 사회복지법인 하트하트재단을 통해 어려운 아이들을 위해 사용될 예정이다. 기사제휴/스포츠서울@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글로벌 경제를 묻다]미스터 엔 사카키바라 와세다大 교수

    [글로벌 경제를 묻다]미스터 엔 사카키바라 와세다大 교수

    │도쿄 박홍기특파원│‘미스터 엔’이라는 별칭으로 더 유명한 사카키바라 에이스케(68) 일본 와세다대 교수는 4일 특별 인터뷰에서 현재 진행 중인 세계적인 경제·금융위기를 ‘21세기형 금융공황’이라고 규정했다. 또 미국을 비롯, 각국 금융당국의 협력은 해결책이 아닌 급한 불을 끄기 위한 대응책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현재의 금융위기는 2∼3년간 지속될 것이라는 비관적인 견해를 내놓았다. 특히 한국의 원화가치 하락과 관련, “너무 심하다.”며 정부의 과감한 대응을 제안했다. 사카키바라 교수를 도쿄의 와세다대 인도경제연구소에서 만났다. →세계적인 금융 위기 및 경제 침체에 대한 전망은 -21세기형의 금융 공황이라고 부를 수 있다. 앞으로 2∼3년간 금융 위기는 계속된다고 생각된다. 유럽은 미국만큼 심각하지는 않지만 금융 위기에 직면해 있다. 문제는 버블 붕괴 후의 금융 위기인 탓에 쉽게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이다. 모든 선진국들은 올해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할 것이다. 일본이나 유럽도 마이너스 2%대 정도이다. 그러나 폭이 더 커져 마이너스 5∼4%대가 될 가능성도 있다. →대응 및 해결책을 찾는다면. -세계가 동시 불황 아래 있다. 일단 각국의 금융 당국이 협력해야 한다. 물론 이미 시행되고 있는 부분이다. 지금부터 해야 할 과제는 금융 감독의 재조정, 즉 금융을 다시 새로운 규제의 테두리에 넣는 일이다. 규제 강화다. 국제적으로 어떤 금융 시스템을 만들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질 것이다. 그렇다고 금융이 회복되는 것은 아니다. 단지 금융 버블의 붕괴에 따른 대응이라고 할 수 있다. 경기 후퇴와 관련해 재정정책이 중심되고 있다. 미국·일본·유럽의 금리는 낮아졌다. 사실상 제로금리다. 양적 완화가 모든 선진국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거듭 강조하지만 간단하지 않다. →실물 경제의 영향이 뚜렷해졌는데. -주가 및 부동산 가격의 하락은 당분간 계속된다. 과거 12년간에 걸쳐 축적돼 온 금융 버블의 붕괴이기 때문이다. 현재 헤지펀드, 이퀴티펀드, 투자은행 등 금융투기세력들은 자산 매각을 통해 대차대조표를 압축해 가고 있다. 특히 미국에서는 빚에 의한 소비의 감소에 따라 금융 수축이 일어나고 있다. 지난해 10월부터 시작됐다. 자산 가격의 하락과 소비의 감소는 앞으로도 계속된다는 말이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성의 목소리가 높다. -지금과 같은 신자유주의 체제가 파탄났다고 하는 것은 신자유주의를 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가 아니다. 지금처럼 ‘뭐든지 시장에 맡기면 잘돼 간다.’는 사고방식은 깨졌다. 규제 완화만이 아닌 관리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보호주의로의 회귀가 아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정권 때 규제완화가 현재의 상황을 심화시켰다는 지적도 있는데. -그런 부분도 있다. 2006년 기업 위주의 파견 제도는 현재 사회 문제가 된 파견직 해고와 연결되고 있다. 고이즈미 정권이 전면적인 신자유주의를 실시했다고 할 수는 없다. →한국의 경제회복에 대한 견해는. -심각한 세계의 동시 불황이다. 그 안에서 한 나라만이 근본적으로 경기를 회복하는 것은 정말 어렵다. 한국이나 일본도 수출 환경이 나빠지고 있다. 미국이 마이너스 성장에 들어갔고, 중국의 성장률은 급속히 떨어지는 상황이다. 일본도, 한국도 힘든 환경이다. 올해 마이너스 성장은 피할 수 없다. →한국에 대해 특별히 제안한다면. -솔직히 말하기 어렵다. 특효약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착실한 노력이 가장 중요하다. 경제의 본질을 되돌아볼 필요도 있다. →한국의 원화가치 하락이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는데. -원화가치의 하락이 너무 심하다. 이전에는 대체로 1엔에 10원이었다. 그 정도가 안정된 추이다. 경기 침체에서 온 결과이기 때문에 한국 당국이 좀 더 무엇인가를…. 한국의 자세한 상황은 알지 못하지만 대응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은 확실하다. 예를 들어 일본은 1997년부터 1998년에 걸쳐 엔화절상이 꽤 심각했다. 엔 매각·달러 매입 등 여러 형태로 정부가 개입했고, 미국과 협조도 했다. 방법이 많아 더 힘들다. 그러나 가능한 한 당국이 돌파구를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미국 오바마 정권의 경제대책을 평가하면. -기대가 너무 크다. 2∼3개월이 지나면 오히려 실망감이 커질 것이다. 정책으로 완성되는 것은 극히 한정돼 있다. 큰 재정정책을 세우고 있지만 정책 자체를 위해 재정을 확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경제가 흔들린 상황에서 한꺼번에 경제 회복을 바랄 수는 없다. 여러 가지 노력을 해도 2년 정도의 기간으로는 상당히 벅찰 수밖에 없다. →세계적으로 기업들이 구조조정에 힘을 쏟고 있다. 특히 비정규직의 해고는 이미 사회적 문제로 부각됐다. -인원 감축은 불가피하다. 특히 제조업이 가장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 일본뿐만 아니라 미국·유럽·한국에서도 같은 현상이다. 제조업을 급속히 축소해야 하는 지경에 처했다. 공장폐쇄, 정리해고 등은 경제 전체적인 측면에서 좋은 방식은 아니지만 ‘정리해고를 해선 안 된다.’고 정부가 말할 수는 없다. 대신 정부는 비정규직의 실업보험 등 사회안전망에 대한 정비에 적극 나서야 한다. →현재 추진되는 일본의 경제대책은. -잘하지 못하고 있다. 정책만으로 경기가 바로 설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게 좋다. 감세나 정액교부금 지급과 같은 정책은 효과가 없다. 이를 계기로 실질적인 구조개혁을 구상하는 편이 낫다. 지금껏 수출이 일본을 이끌어 왔지만 수출이 급격히 추락한 만큼 무엇을 확대해 나갈 것인가를 고심할 필요가 있다. 내수 진작을 위한 지방경제의 활성화도 한 방안이다. 또 태양광·풍력 등 자원에너지의 개발을 위해 재정을 투입하거나 식량자급률을 현재 40%에서 60∼70%까지 끌어올리는 등의 과감한 농림수산업 정책도 경제 활성화를 겨냥해 추진해 볼 만하다. →엔고 현상에 기업들이 아우성인데. -통화가치의 상승에 따른 영향을 따지려면 복잡하다. 당장 수출기업에서는 타격을 받겠지만 원재료를 싼값에 수입, 생산단가를 낮출 수 있다. 지금은 자원·식량·에너지의 가격이 높아지는 시대다. 소비자도 물건을 싸게 살 수 있어 좋다. 때문에 통화가치의 상승에 대해 일방적으로 마이너스라고 여길 필요는 없다. 엔고는 일본에 플러스다. hkpark@seoul.co.kr ●사카키바라는 누구 일본 대장성(현 재무성) 관료 출신인 국제금융통의 경제학자다. 1999년 7월 대장성 재무관(차관급)으로 퇴직할 때까지 34년간 공직생활을 했다. 이후 게이오대 교수를 거쳐 2006년 4월부터 와세다대 종합연구기구의 교수 겸 인도경제연구소의 소장을 맡고 있다. 도쿄대에서 프랑스문학을 공부하려다 1960년 일본을 휩쓴 안보투쟁 과정에서 마르크스의 자본론에 심취, 경제학부에 입학했다. ‘미스터 엔’의 별칭은 1995년 달러당 80엔대까지 치솟던 엔고를 1998년 달러당 140엔대, 즉 엔저로 이끈 장본인이어서 붙여졌다. 1994년부터 대장성 재정금융연구소장·국제금융국장·재무관 등을 거치면서 미국과 협의, 엔·달러의 가치를 조정했다. ‘외국환 및 외국무역법’을 개정한 데다 적극적으로 환율에 개입했다. 당시 ‘일본 금융의 빅뱅’으로 불릴 정도였다. 미국을 상대로 한 거리낌 없는 추진력과 돌파력을 높게 평가, 금융가 및 매스컴에서 ‘미스터 엔’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지난해에만 ‘오류투성이의 경제정책’, ‘사카키바라식의 스피드 사고력’, ‘대전환’ 등 무려 6권의 책을 썼다. “항상 사물을 외우고 되새겨보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며 글을 쓸 때 컴퓨터가 아닌 원고지를 고집하고 있다. 또 “몸을 써야 머리가 말끔해진다.”며 쉬는 날에는 체육관에서 1500m가량 수영과 함께 운동을 하고 있다.
  • 박찬호 “결혼 초 아내요리 억지로 먹었다”

    박찬호 “결혼 초 아내요리 억지로 먹었다”

    야구선수 박찬호가 “결혼 초 아내가 만들어준 요리가 너무 싱거웠지만 표현 못 하고 억지로 먹은 적이 많았다.”고 털어놓았다. 박찬호 선수는 5일 오후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진행된 ‘리혜의 메이저 밥상’(저자 박리혜)의 출판기념 기자간담회에서 결혼 후 달라진 점을 묻자 “식생활이 많이 바뀌었다. 그동안은 아침을 늦게 먹는 경우가 많았는데 결혼 후에는 달라졌다. 사실 아침을 먹는 게 처음에는 좋다는 생각을 못했는데 일본으로 두산캠프에 갔을 당시 김경문 감독님께서 아침 먹는 건 아주 좋은 습관이라고 해주셨다.”며 “나 스스로도 체력적으로 도움이 됐다고 생각한다.”고 환하게 웃었다. 아내 요리와 어머니 요리의 맛을 비교해 달라는 요청에 박찬호 선수는 “어머니와 아내 요리는 아예 다르다. 어머니는 33년을 해줬고 아내는 3년을 해줬다. 사실 아내의 요리는 굉장히 싱거웠다. 전 원래 얼큰하고 짭짤한 맛을 좋아했는데 표현도 못하고 억지로 먹은 적도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맛있다는 표현을 하면서 먹고 있다. 이제는 어머니 요리와 구별할 수 없을 만큼 맛있다. 정성이 많이 담겨서 그런 것 같다.”며 아내의 요리 실력을 높게 평가했다. 또 박찬호 선수는 아내와의 행복한 결혼생활에 대해 펼쳐보였다. 그는 “결혼 후 음식 외적으로 달라진 점은 평소에 아내가 잘 웃는다. 게임결과랑 상관없이 참 잘 웃는다. 그 모습을 보면 게임 중에 기분 나쁜 홈런이나 에러, 실책도 다 잊어버릴 수 있다. 아내한테 정말 많은 도움을 받는다.”면서 “아내가 있는 그대로를 표현하는 성격이다. 아내를 보면 솔직함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생각하게 만든다.”고 아내로 인해 느끼는 행복을 전했다.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란 부인 박리혜씨가 이후 미국생활로 한국어가 서툰 부분에 있어 박찬호 선수는 “아내가 혼자 한국어 공부를 많이 하고 있다. 제가 아내에게 일본어를 배우고 싶은 마음도 있었는데 오히려 한국어를 다 배워서 저를 배려해준다.”며 “미국에서는 영어로 대화하고 한국에서는 한국어로 많이 하려고 한다. 얼마 전에는 딸아이가 일본에 있으면서 일본어를 배워 내가 못 알아들었다.”는 해프닝을 소개했다. “유부남이 된 후 총각 때 받았던 여러 유혹을 자연스럽게 뿌리칠 수 있게 됐다.”는 박찬호 선수는 “게임이 끝나면 아내와 아이들이 있는 집으로 향한다. 결혼하고 누구를 위해서 인내하고 일을 해야 하는지 야구 외적으로도 많은 공부를 하게 됐다.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도 관심이 많아져 최근에는 육아관련 서적이 눈에 띈다.”고 귀띔했다. 박찬호 선수의 아내 박리혜씨는 재일교포 3세로 일본의 요리메뉴 플래너와 푸드라이터를 겸한 요리 전문가다. 일본 도쿄 조치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으나 요리 사관학교라고 불리는 CIA(Culinary Institute of America)에 입학했다. 활발하고 다양한 요리 관련 경험을 쌓았던 박리혜씨는 2005년 11월 박찬호 선수와 결혼해 슬하에 3살, 5개월 된 두 딸을 두고 있다. ‘리혜의 메이저 밥상’은 한국 최초의 메이저리거 박찬호 선수의 밥상을 공개했다. 총 4가지 파트로 나눠진 이 책은 ‘첫 번째 이야기 결혼과 함께 배운 한국요리’, ‘두 번째 이야기 우리 입맛에 잘 맞는 일본요리’, ‘세 번째 이야기 정성스레 준비하는 손님초대요리’, ‘네 번째 이야기 남편 위해 만드는 건강요리’로 구성됐다. 서울신문NTN 김예나 기자 yeah@seoulntn.com / 사진=유혜정 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문화마당] 상처의 기원/소설가 구효서

    [문화마당] 상처의 기원/소설가 구효서

    다른 일도 마찬가지겠지만 소설 쓰며 사는 일도 녹녹지만은 않다. 쓰는 것보다 훨씬 많이 읽어야 하며, 때로는 텔레비전 카메라 앞에서 어색한 포즈를 취해야 한다. 수백 편의 장편 응모작을 산더미처럼 쌓아 놓고 밤새워 읽는 일이 예사다. 소설 쓰는 법이 따로 있을 리 없는데도 마치 대단한 비법이라도 있는 것처럼 작가 지망생들 앞에서 진지한 표정을 짓는다. 이런저런 강연에 불려 다니고, 때로는 시국관련 선언문에 서명을 하기도 한다. 소설가이기 때문에 그러하기도 하겠지만 그런 일과 경험들이 소설의 반성적 씨앗이 되기도 한다. 경제 상황이 어려워 먹고살기 힘들다는 말이 돌수록 소설을 쓰고자 하는 인구는 늘어난다. 불황일수록 신문과 잡지에 응모하는 소설의 편수가 늘어나는 이유를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해가 거듭될수록 남성에 비해 여성 응모자가 비약적으로 많아지는 이유도 알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분명한 점은 여성 응모자들의 소설을 읽을 기회가 아주 많아졌다는 것이다. 소설을 흔히 갈등구조라고 한다. 갈등 내용 없이 소설이라는 구조가 성립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그러한 만큼 소설은 대개 슬픔·상처·아픔·번민 따위를 안고 시작한다. 소설 쓰기는 그러한 갈등의 원인, 즉 ‘상처의 기원’이 무엇에서 비롯되는가를 알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아는 순간 갈등은 해소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갈등 해소는 물론이고 갈등의 설정까지 작가의 몫임은 말할 것도 없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여성 지망생의 경우 ‘상처의 기원’을 남성에게 두려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배경으로 한 소설에서는 남성의 부재가 슬픔과 번민의 기원이 된다. 가장이 징용이나 징병으로 끌려가면서 일가족의 불행이 시작되며, 그 불행은 현재로 이어져 일상생활의 소소한 갈등으로 지속된다. 좌우대결에서 희생되거나, 전장에서 전사하거나, 납북된 가장으로 인해 남은 여성과 가족들은 사회적 차별과 가난을 대물림한다. 남은 가족의 생계를 떠안고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늙도록 기다리는 여성의 이중고는, 무심한 세월의 혹독한 외로움을 견뎌내는 인고의 아름다움으로 미화되거나, 민족사의 비극으로 환기되거나, 실존적 비장미마저 자극하며 감동을 유발한다. 그런가 하면 도박과 음주를 일삼는 무책임한 아버지에 의해, 외도와 폭행을 자행하는 부도덕한 남편에 의해, 혹은 비행과 탈선으로 속 썩이는 아들에 의해 소설 속 많은 여주인공들이 상처를 입는다. 놀랍다. 우리 사회의 남성들, 지탄받아 마땅할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닐 테지만 예나 지금이나 여성들이 자신의 삶과 세계를 남성이라는 창을 통해서만 인식하는 습관은 분명 우려스럽다. 여성을 그 지경으로 만든 것 또한 남성들이라면 더욱더 그렇다. 여성이 요구하는 바람직한 남성상이래 봤자 그 역시 ‘남성’이기 때문이다. 남성을 사회나 국가나 민족이라는 개념으로 확대해서 본다면 우려스러움은 비단 여성들만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모든 걸 국가 탓으로 돌리거나 모든 걸 국가가 잘 알아서 해 주기를 바라는 국가 의존적 국민이라면, 국가라는 창을 통해서만 자신의 존재와 세계를 바라보는 저 끔찍한 국가사회주의적 근시안에 갇히게 될 것이다. ‘상처의 기원’은 어쩌면 남성이나 국가가 아닐지도 모른다. 무조건적 의존이 이미 무의미해진 시대임에도 아직 버리지 못한 미련이 우리의 갈등을 지연시키는 건 아닌지. 더 나은 남성, 더 나은 국가에 대한 기대는 그만큼 더 나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이제는 우리의 ‘기대’ 자체를 자문하고 반성해 볼 때이다. 소설가 구효서
  • 서울대 첫 도입 입학사정관제 합격 들여다 보니

    서울대 첫 도입 입학사정관제 합격 들여다 보니

    학생의 잠재능력을 보고 뽑는 입학사정관제가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최근 서울의 한 명문 사립대가 사실상 고교등급제를 적용, 특목고 학생을 대거 선발한 전형 방식과 대비돼 주목된다. 서울대는 올해 수시모집 기회균형선발로 30명, 정시모집 농어촌특별전형으로 86명(정원 88명) 등 116명을 입학사정관제로 처음 선발했다. ●꼬치꼬치 면접만 15분 홀어머니(44)와 단둘이 사는 전남 담양고 김창남(18)군은 올해 기회균형선발로 서울대 생명과학부에 합격했다. 김군은 ‘서울대가 왜 자신을 뽑아야 하는가를 3분 안에 설득해 보라.’는 방문 면접관의 질문에 “내용은 기억조차 안 나지만 아무튼 ‘자신있게’ 대답했다.”고 웃었다. 이후 교우관계, 봉사활동 내용, 생활습관 등을 캐묻는 면접관 2명의 질문에 진땀을 쏟았다고 말했다. 그는 ‘시골학교’에서 이과 1등이지만 수능성적은 6개 과목에서 1, 2, 3등급이 각각 2개여서 합격까지는 예상치 못했다고 털어놨다. 기회균형선발로는 전남에서 김군만 합격했다. 올해 서울대 등 전국 16개 대학에서 입학사정관제를 도입했다. 전남에서만 이 제도로 5개 시골학교에서 10명이 서울대에 합격했다. 기회균형선발로 1명, 이전부터 해오던 농어촌특별전형으로 9명이다. 김경범 서울대 입학관리실장은 “입학사정관제는 점수(수능·내신)와 비점수(추천서·소개서) 영역은 고려되지 않는다.”며 “응시자의 환경요인, 학업 관심도, 열정 등에 역점을 둔다.”고 강조했다. 서울대의 입학사정관은 학내교수 23명과 입학관리실 관계자 11명 등 모두 34명이다. ●현장확인은 아주 일부만 학생이 낸 자기소개서와 추천서 등에 불명확하거나 애매한 내용이 있으면 현지에서 확인조사를 벌인다. 김 실장은 “서울대의 올해 서류통과자만 500명이 넘어 시간에 쫓긴 나머지 현지조사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강진고 오진영(18·과학교육), 김다애(18·식품영양학)양도 올해 입학사정관제(농어촌특별전형)로 서울대 합격증을 손에 쥐었다. 김양은 “‘라면의 식품영양학적 측면과 불량식품의 퇴치방안을 말하라.’는 질문을 받았다.”고 말했다. 물론 이들도 입학사정관들의 현지조사 대신 제출서류로 면접을 받았다. 반면 능주고 김호연(18·기계항공공학)군은 입학사정관들의 현장방문을 받았다. 시골학생치고는 성적(5과목 1등급)이 너무 뛰어난 게 사정관의 방문을 받은 이유였다. 한 고교의 진학담당자는 “입학사정관이 현지 확인을 내려왔다면 합격 가능성이 90% 이상으로 봐야 한다.”고 귀띔했다. 이같은 선발 방식 때문에 일부 고교에선 학생들의 진학지도가 달라질 전망이다. 올 수능에서 전남 수석(곽준성·서울대 사회과학대 합격)을 배출한 전남 장성고는 내년에 입학사정관제에 주력할 계획이다. 황의갑 교감은 “입학사정관제 도입 이후 농어촌특별전형이 지난해에 비해 크게 달라진 것은 없지만 자기소개서와 추천서 내용에 정확성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담양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 용어 클릭 ●입학사정관제 수시모집의 기회균형선발제, 정시모집의 농어촌특별전형제와 특수교육대상자 특별전형제 등 3가지 전형방법에 한한다. 입학사정관제는 성적보다 학습 태도와 열정, 인성 등 응시자의 잠재성을 중시한다. 입학사정관은 응시 수험생의 자기소개서와 추천서, 봉사활동 내용, 교우관계, 가정형편 등이 서류와 맞는지를 현지에서 직접 확인한다.
  • [굿모닝 닥터]난 항상 숨이 찰 뿐이고…

    “조금만 움직이면 숨이 찹니다. 담배는 피우지 않습니다. 내 몸 어디가 어떻게 안 좋습니까?” 심장내과 진료실에서 흔히 듣는 환자의 질문이다. 이런 경우 1차 검사의 초점은 심장이나 폐의 이상을 밝히는 것이다. 가슴 방사선촬영, 심전도, 폐기능검사, 심장초음파검사 등을 할 수 있다. 그리고 빈혈, 갑상선 질환 등의 가능성을 찾기 위해 ‘혈액검사’도 한다. 특히 심장병이 의심될 때 시행하는 ‘심장 초음파검사’는 심장의 형태학적 이상과 심장기능에 대한 세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심장의 펌프기능이 감소해 우리 몸 전체에 혈액을 충분히 공급하지 못하는 증상을 ‘심부전’이라고 하며, 가장 흔하고 중요한 증상은 호흡곤란이다. 과거에는 판막성 심장병이나 선천성 심장병 등이 주요 원인으로 꼽혔지만, 최근에는 서구식 생활습관과 고령에 의한 허혈성 심장병(협심증, 심근경색증), 고혈압, 부정맥 등에 의해 많이 발병한다. 심부전을 개선할 수 있는 요소가 조금이라도 있으면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하다. 특히 나이가 많거나 여성 또는 고혈압 환자는 비록 심장의 펌프기능은 정상일지 몰라도 갑자기 심부전이 발생할 수 있고 예후도 좋지 않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만약 숨이 차는 원인을 1차검사에서 찾지 못했다면 드물지만 ‘폐 고혈압’의 가능성도 고려해 볼 수 있다. 1997년 살빼는 약인 ‘펜펜’이 이 병을 유발한다는 사실이 밝혀져 미국에서 판매 중지된 후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려졌다. 폐혈관의 혈압이 비정상적으로 증가해 폐혈관과 심장에 부담을 주는 폐고혈압은 호흡곤란을 야기, 환자를 사망에 이르게 하는 난치성 질환이다. 이 희귀 질환은 원인을 모르는 경우부터 선천성 심장병, 약물, 폐동맥의 만성혈전 및 색전 등 다양한 원인에 의해 발병한다. 현대의학으로 완치는 어렵지만 최근 새로운 약들이 잇따라 개발되고 있다. 만약 숨이 차서 밤에 잠을 못 이루거나 활동에 제한이 있지만 병명을 모를 때는 한가지만 명심하자. 포기하거나 가만히 있지 말고 전문의와 적극적으로 상담해 치료해야 한다는 것이다. 백상홍 강남성모병원
  • [Healthy Life] (9) 겨울철 복병 독감

    [Healthy Life] (9) 겨울철 복병 독감

    겨울에 발병하기 쉬운 병을 나열하면 ‘독감’과 ‘감기’가 빠지지 않는다. 올 겨울에는 특히 독감이 전국적으로 유행해 면역력이 약한 노인과 어린이들에게 주의령이 내려지기도 했다. 하지만 감기와 독감은 고열과 기침, 콧물 등 주요 증상이 같아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 고려대 안암병원 호흡기내과 이상엽 교수를 만나 독감과 감기가 어떻게 다른지, 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살펴봤다. ●독감은 감기와 어떻게 다른가? 독감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원인이지만, 감기는 ‘리노바이러스’ ‘아데노바이러스’ 등 다른 바이러스로 생기는 호흡기 염증성 질환이다. 감기 바이러스는 종류도 200여 가지에 이른다. 감기에 걸리면 콧물, 코막힘, 재채기, 인후통 등 가벼운 호흡기 증상이 나타나고 대부분의 환자는 특별한 후유증 없이 1주일 정도 지나면 저절로 낫는다. 치료제를 사용해도 병원체를 죽일 수 없고 증상을 완화시킬 뿐이다. 독감은 감기와 증상이 유사하지만 좀 더 심한 호흡기 증상과 고열, 전신 몸살기가 올 수 있다. 감기는 예방접종이 불가능하지만 독감은 예방백신이 있다. 따라서 독감 예방접종을 했다고 해서 감기를 예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증상으로 나타나는 독감의 특이성은 무엇인가? 독감의 특징적인 증상은 38도 이상의 갑작스러운 고열과 오한, 심한 근육통과 두통, 피로감 등의 전신증상과 기침, 인후통 등의 형태로 나타난다. 주로 증상이 1주일 이상 지속된다. 합병증은 고령자나 만성 심장질환자, 만성 폐질환자, 만성 신장질환자와 당뇨병 환자에게서 자주 발생하는데 폐렴이 가장 흔하다. 폐렴은 심한 경우 사망까지 초래할 수 있다. 독감은 전염성이 강해 한번 유행하게 되면 주변에 빠른 속도로 전파되기도 한다. ●독감 바이러스는 감기 바이러스와 어떻게 다른가? 자세히 설명해 달라. 독감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의해 발병하는 유행성 호흡기 질환이다. 감기바이러스는 200종이 넘지만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A·B·C형 등 3가지로 압축된다. 그 중에 A형의 증상이 심하며 대유행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자주 유전자 변이를 일으켜 매년 유행하는 바이러스가 조금씩 달라지기 때문에 매년 2월 세계보건기구(WHO)가 다가올 독감시즌에 유행할 바이러스 3가지를 예측해 추천한다. 이 자료를 기초로 매년 독감백신이 생산되기 때문에 올 겨울에 유행할 독감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유행 바이러스에 적합하게 제조된 독감백신을 접종해야 한다. ●독감도 그냥 놔두면 감기처럼 저절로 낫나? 독감을 그대로 두면 저절로 낫는 경우도 있지만 심해지면 폐렴과 같은 호흡기 합병증 발병 위험이 매우 높다. 또 폐질환 등 기존에 발병한 만성질환을 악화시킬 수 있으므로 초기부터 적극적으로 치료해야 한다. ●독감을 ’毒感’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있나? 독감은 사전적 의미대로 지독한 감기는 아니다. 하지만 감기는 증상이 서서히 나타나 지속되는 반면 독감은 심한 증상이 갑작스럽게 생기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毒感’으로 부른다. ●독감으로 환자가 사망하기도 하나? 독감은 다른 바이러스질환과는 다르게 2차 감염에 의한 폐렴, 심부전 등의 합병증을 유발하고 만성질환을 악화시켜 환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다. 전 세계적으로 매년 25만~50만명의 사람들이 독감으로 사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정부와 의료계의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는 매년 12∼4월에 전체 인구의 5∼20%가 감염돼 적어도 1600명의 사망자와 약 1조 3000억원의 경제적 부담을 초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왜 독감은 추운 겨울에 잘 걸리나? 겨울에 독감이 잘 걸리는 이유는 독감의 원인인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활동하기 좋은 습도 및 온도를 갖췄을 뿐만 아니라 추운 날씨로 인해 실내에서 많은 사람이 밀집생활을 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전파가 잘 된다. ●독감은 어떻게 확산·전염되나? 독감의 전염은 환자가 기침, 재채기를 할 때 공기 중으로 튀어나오는 분비물(aerosol)을 통해 전파된다. 이 분비물에는 바이러스가 섞여 나오는데 주로 환자의 손이나 외부 물체에 묻게 되고, 이 분비물이 묻어 있는 손이나 물체를 다른 사람이 만지면 손에 바이러스가 묻어 전염이 된다. 특히 전염성이 강해 한번 유행하게 되면 빠른 속도로 전파되는데, 겨울철 밀집생활로 인해 확산 속도가 더 빨라진다. 가족 간 독감이 전파되는 가장 일반적인 경로는 어린이들이 놀이방이나 학원, 유치원 등에서 감염된 뒤 집에 돌아와 퍼뜨리는 것이다. 따라서 어린이에 대한 감기 예방과 위생 교육이 매우 중요하다. ●독감 예방을 위한 생활 속 실천방안을 소개해 달라. 가장 중요한 수칙은 ▲자주 손씻기 ▲독감 환자와 접촉하지 않기 ▲독감 예방 주사 맞기 등 3가지다. 평소에 자주 손을 씻고 특히 외출 후 돌아오면 반드시 얼굴, 손·발을 씻고 양치질을 해야 한다. 독감이 유행할 때는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을 되도록 피해서 환자와 접촉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다. 기침, 재채기 등을 할 때 손에 바이러스가 묻지 않게 휴지에 대고 한다. 노약자, 만성 질환자, 의료시설 종사자 등은 반드시 독감 예방주사를 맞아야 한다. 이 밖에 몸의 저항력이 높아지도록 과로, 과음 등을 피하고 충분한 휴식을 취하는 것도 필요하다. 또 ▲적절한 운동 ▲균형 있는 식사 ▲금연 ▲적절한 실내 온도 유지 등 건강한 생활습관과 환경을 만들도록 노력해야 한다. 목이 아플 때는 따뜻한 물을 많이 마시고 젖은 빨래를 내걸어 적정 습도를 유지하도록 해야 한다. 가습기를 이용해 목이 건조해지지 않도록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단백질이 풍부한 육류, 생선, 계란, 콩 등의 음식과 비타민이 많이 들어 있는 신선한 과일, 야채 등을 많이 섭취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노약자, 만성 질환자 등은 추운 날씨에 바깥 활동을 피하는 것이 좋다. 정현용기자 junghy77@seoul.co.kr
  • [만나고 싶었습니다] ‘술-한국의 술문화’ 내는 이상희 前장관

    [만나고 싶었습니다] ‘술-한국의 술문화’ 내는 이상희 前장관

    꽃은 반쯤 피었을 때가 가장 아름답다고 한다. 활짝 핀 꽃은 이내 시들어버리니 그 모습은 허망할 뿐이다. 술을 마시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적당히 취했을 때 멈춰야지 흠뻑 취하면 추한 몰골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혹자는 이취(泥醉)의 주범으로 폭탄주를 지목하기도 한다. 그러나 폭탄주야말로 소통의 촉매라고 믿는 무리도 적지 않다. 시인 송종찬은 폭탄주에 사뭇 진지한 헌사를 바친다. “…위벽이 타는 폐허의 잿더미/너와 나의 경계를/무너뜨릴 수만 있다면” 회오리바람을 일으키며 위벽을 태워야 마음의 울타리를 허물 수 있을까. 알코올 소비량 세계 수위를 다투는 음주대국 대한민국. 이제 그 달갑잖은 명성을 걷어내야 한다. 양이 아니라 질로 승부하는 진정한 음주문화 선진국으로 나아가야 한다. 지난 주말 서울 낙원동 선출판사에서 이상희(77) 전 내무부 장관을 만났다. 한국의 술문화를 훤히 꿰뚫고 있는 그는 새달 중 ‘술-한국의 술문화’라는 200자 원고지 8000여장 분량의 초대형 저서를 낼 예정이다. 그래서인지 한껏 부푼 표정이었다. ●폭탄주는 반문화의 전형 보물급 희귀본을 포함해 6만여권의 진적(珍籍)을 소장하고 있는 국내 최고의 장서가. 그에게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은 더 이상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숨을 쉬듯 자연스러운 생활의 일부다. ‘술-한국의 술문화’는 바로 그런 독서의 내공과 자료의 힘이 어우러진 결과다. 이 백과전서 같은 저서를 통해 그는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일까. “우리나라는 어렸을 때부터 ‘소학(小學)’을 통해 술 마시는 예절을 가르쳤습니다. 주례(酒禮)를 무엇보다 중시했지요. 그러나 전래의 고상한 술문화가 요즘 폭탄주라는 반문화에 의해 훼손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조선시대에도 여러 종류의 술을 섞어 마시는 음주문화가 있었어요. 고전소설 ‘삼선기(三仙記)’를 보면 평양감사가 대동강에 유람선을 띄우고 잔치를 베푸는 장면이 나오는데 여기 등장하는 술이 수십종이에요. 청소주, 황소주, 계당주, 과하주, 감홍로, 천일주…. 풍류가 증발된 지금의 ‘속도전’ 폭탄주 문화와는 차원이 달랐지요. 자유당 때까지만 해도 없던 폭탄주 문화가 이렇게 유행하게 된 건 아마도 1960년대 군사문화의 영향이 큰 것 같아요. ” 그는 폭탄주는 결코 무용담의 소재가 될 수 없다고 강조한다. “내가 내무부 차관 때니까 옛날 얘기지요. 당시 정석모 내무부 장관, 김성기 법무부 장관과 함께 술자리를 했어요. 김 법무 장관이 국회에서 곤욕을 치른 걸 위로하기 위해서였지요. 그때 김 장관은 앉은 자리에서 18잔의 폭탄주를 거뜬히 마셨습니다.” 폭탄주 대가로 알려진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와 고시 동기이기도 한 그의 말에 따르면 진정한 ‘폭탄주 지존’은 고(故) 김성기 전 법무부 장관이다. 폭탄주 못지않게 그가 경계하는 것이 술잔을 주고받으며 마시는 수작(酬酌)이다. “정이 오가는 수작문화 자체는 아름다운 것입니다. 하지만 잔을 주고받다 보면 음주 속도가 빨라지니 과음과 폭음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지요. 수작문화는 한국 특유의 주법입니다. 술잔을 주고받는 음주습관이 남아 있는 곳은 우리 말고는 아프리카의 이름조차 없는 어느 종족밖에 없다고 해요. 일본도 한때 수작문화가 있었지만 지금은 사라졌다고 합니다. ” ●주도유단론은 억지이론 우리의 과장된 술문화 담론에 대한 비판도 잊지 않는다. 술꾼을 18단계로 나누는 조지훈 시인의 이른바 주도유단론(酒道有段論)에 대해 그는 “억지로 짜맞춘 도식적 이론”이라고 비판한다. 굳이 계급을 매기자면 주졸(酒卒) 주사(酒士) 주걸(酒傑) 주장(酒將) 주선(酒仙) 주신(酒神) 등 6단계 정도가 적당하다는 것. 그는 “소주 서너잔의 주졸”이다. ‘술-한국의 술문화’의 집필 과정은 곧 자료와의 싸움이었다. “이 책에는 모두 1200여점의 사진 혹은 그림 자료들이 실려 있어요. 일제시대 맥주광고 여성 모델 사진 등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것들도 적지 않습니다. 이백이 술에 취해 강에 비친 달을 건지는 그림이나 용수를 장대에 꽂아 매단 주막 사진 같은 것은 구하느라 무척 애를 먹었지요. 돈도 만만찮게 들었어요.” 그는 놀이딱지만한 일제시대 술광고 모델 사진을 50만원에 샀고, 중국 죽림칠현 가운데 한 명인 유령의 주덕송(酒德頌)을 옮겨쓴 한석봉의 탁본은 경매에서 200만원에 구했다고 했다. 그러나 그런 투자를 결코 아깝게 생각하지 않는다. “한 고을의 정치는 술맛으로 알고 한 집안의 일은 장맛으로 안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만큼 술은 그 나라의 정치 수준까지 가늠해볼 수 있는 중요한 문화적 척도라고 할 수 있지요. 술문화를 바로 알리는 데 필요한 자료라면 거만의 돈을 준들 무엇이 아깝겠어요. ” 그는 지금부터 꼭 10년전 1500쪽이 넘는 대작 ‘꽃으로 보는 한국문화’(넥서스)를 펴내며 “한국 정신문화사의 신기원을 이룩했다.”는 평을 들었다. 꽃과 술. 이것은 그의 저술작업의 양대 축이자 인생의 화두다. 하지만 그가 탐닉하는 것은 꽃이나 술 그 자체가 아니다. 술을 좋아하지도 화초를 애써 가꾸지도 않는다. 중국의 시인 도연명이 현(絃) 없는 악기를 뜯으며 그 분위기를 즐겼듯 술을 굳이 마시지 않아도 스스로 도도한 취흥에 빠져들 수 있는 경지라고나 할까. 이제 눈이 침침해 책 읽기도 힘들다는 그는 안총(眼聰)이 허락하는 한 계속 저술활동을 하고 싶다고 했다. 김종면 편집위원 jmkim@seoul.co.kr ▲77세 ▲경북 성주 출생 ▲성주 농업고·고려대 법학과 졸업 ▲고등고시 행정과 합격 ▲진주 시장, 산림청장, 대구직할시장, 경북지사, 내무부 장관, 한국수자원공사 사장, 한국토지개발공사 사장, 건설부 장관 등 역임 ▲저서 ‘지방세제론’ ‘지방재정론’ ‘파신(波臣)의 눈물’ ‘꽃으로 보는 한국문화’ ‘우리 꽃문화 답사기’ ‘매화’ ‘오늘도 걷는다마는-백년설 그의 삶과 그의 노래’ ‘술-한국의 술문화’ [다른 기사 보러가기] 군포살해범 수원 실종 40대女도 살해 ”우리도 다 벗겨놓고 싶죠” 구로다 지국장 “총재님 이건 좀 아닌 듯” ”우리보고 Mouth Tank나 하라고?”
  • [어린이 책]

    ●우리말 왕중왕 (김하늬 지음, 주미 그림, 뜨인돌어린이 펴냄) 우리말이 외래어와 외국어, 한자어 등의 무분별한 사용으로 설자리를 잃어가는 상황에서 어린이들에게 올바른 언어 습관을 심어줄 수 있다. 일반적인 학습서와는 달리 동화가 전개되면서 순우리말들이 나오기 때문에 문맥 속에서 단어의 뜻을 이해할 수 있다. ‘남새밭, 솔바람, 미주알고주알.’ 1970년대에는 생활에서 가까이 쓰던 용어들이다. 9000원. ●갈릴레오, 목성의 달을 발견하다 (진 페테나티 지음, 파올로 루이 그림, 이원경 옮김, 비룡소 펴냄) 현대 천문학의 아버지 갈릴레오가 직접 만든 망원경으로 1년 동안 관찰해 목성에 달이 네 개라는 사실을 밝혀 세상에 알리기까지를 관측 일기로 재구성해 생생하게 전달하는 그림 동화책이다. 2009년 천문의 해에 맞춰 나왔다. 망원경을 직접 만드는 과정이 나오고, 갈릴레오 얼굴이 매우 현대적이라 고리타분해 보이지 않는다. 9000원. ●주식회사 6학년 2반 (석혜원 지음, 한성언 그림) 돈을 열심히 모으면 부자가 될까. 그것보다는 어릴 때부터 효율적이고 계획적으로 삶을 운영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생활습관을 기르는 것이 필요하다고 한다. 사업가 집안에서 주로 사업가 나오는 이유는 경제원칙을 어릴 때부터 경험할 기회가 생기고, 소비하는 돈이 아니라 투자하는 돈에 대한 개념이 생기기 때문. 최고경영자(CEO)란 누구이고, 생산과 소비, 분배란 무엇인지, 이윤창출의 과정 등을 어린이 눈높이로 소개한다. 1만원. ●패션, 역사를 만나다 (정해영 글·그림) 고대 이집트에서 오늘날까지 서양 옷의 변천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사실 옷의 변천사는 사회적 흐름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비잔틴이니 르네상스, 바로크, 고전주의, 낭만주의 등 서양 철학의 흐름도 이해하게 된다. 화보가 무척 화려하고 섬세해 옷 입기를 즐기는 여자 어린이들에게 좋은 참고서가 될 듯. 1만 5000원.
  • [현장행정] 양천구 건강증진팀

    [현장행정] 양천구 건강증진팀

    서울 양천구가 어린이와 청소년의 건강을 지키는 ‘잔소리꾼’을 자임하고 나섰다. 19일 양천구에 따르면 이 잔소리꾼은 연말까지 월 3~4차례씩 가족 없는 어린이들이 모여 사는 신월3동의 아동양육시설 ‘SOS어린이마을’을 찾아 12개 건강증진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로 했다. 소외된 어린이와 청소년에게도 건강한 생활습관 등을 길러주기 위해서다. 찾아가는 건강프로그램은 장애인보호시설과 양로원에도 확대될 방침이다. 추재엽 구청장은 “자라는 어린이의 건강이야말로 지역 사회가 책임져야 할 부분”이라면서 “누구나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서울 최고의 도시가 될 수 있도록 모든 행정력을 집중하겠다.”고 다짐했다. ●소외 아동·청소년 찾아 건강검진 “너, 몸무게 진짜 많이 나간다.” “너도 그래. 히히히…” 지난 16일 SOS어린이마을에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했다. 이날 구청 지역보건과 건강증진팀에서 이 어린이의 ‘비만도 측정’을 한 것이다. 구청의 건강증진 담당직원 이경자씨가 “성민아, 너는 군것질을 너무 많이 하는 것 같아. 키에 비해 몸무게가 많이 나가는구나.” 라고 말했다. 신원초등학교 4학년 성민(11)이는 겸연쩍은 듯 웃으며 혀를 빼물었다. 이씨는 보육담당자에게 비만도가 심한 어린이 4명은 간식 등에 더 신경을 써줄 것을 당부했다. 23일은 이곳의 어린이와 청소년 120명에게 ‘성교육’이 이뤄질 예정이다. 또 29일은 절주 교육, 2월4일엔 금연교육 등도 순차적으로 실시된다. 이번 프로그램의 특징은 개인별 맞춤형 건강지도로 정상적인 신체발달을 꾀하는 데 있다. 또 올바른 정신을 가진 성인으로 자랄 수 있는 밑거름이 될 수 있도록 꾸몄다. ●금주·흡연 예방 등 가상체험도 금주·금연 교육, 영양교육, 성교육 등에서 ▲폐 모형을 이용한 음주·흡연 가상체험 ▲성폭력 유형 및 특징, 성적 자기결정권 찾기 ▲‘컬러 푸드’ 영양교육 등 12개 체험위주의 세부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특히 각 프로그램에 ‘OX 퀴즈’ 등 어린이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했다. 또 청소년 건강 전문강사가 직접 방문해 영양교육, 금주 및 흡연예방 등을 맡았다. 윤종범 지역보건과장은 “어려운 사회적 환경에 놓인 어린이와 청소년은 정신적·신체적 건강을 잃기 쉽다.”면서 “앞으로 다양한 건강 프로그램을 더욱 개발하면서 장애인, 홀몸어르신 등 약자층의 건강도 보호하는 사업도 진행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서울광장] 그래도 희망을 노래해야 한다/우득정 논설위원

    [서울광장] 그래도 희망을 노래해야 한다/우득정 논설위원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올 초 ‘위기의 가정이 마침내 지갑을 닫기 시작했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금융위기가 불러온 미국 중산층의 생활변화를 집중조명했다. 이 신문은 아이다호 주 보이시에 사는 두 가정이 각종 생활비를 줄여 저축에 나서는 것을 사례로 들어 미국의 가계부채가 56년만에, 소비지출은 17년만에 감소세로 돌아섰다며 ‘절약의 역설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경기침체로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으면서 업체들의 매출이 타격을 받는 등 근검절약과 저축률 상승이 도리어 미국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경제학자 케인스가 70여년 전 설파한 절약의 역설현상은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로 우리 경제가 지난해 4·4분기 큰 폭의 감소세로 돌아선 것으로 추정되는 가운데 올 1분기와 2분기에는 실물위기가 더욱 가시화될 전망이다. 한국은행은 올 상반기 4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으로 예상했으나 지난 12월에 이미 1만 2000개의 일자리가 증발했다. 올해에는 일자리 소멸속도가 훨씬 가속화될 것 같다. 성장률도 당초 예상한 2%를 한참 밑돌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경기하강과 일자리 증발 속도를 제어하기 위해 감세와 재정 확대 등 내수진작책 총동원령을 내렸다. 하지만 추경 카드를 만지작거릴 정도로 수정예산안을 통해 마련한 실탄은 한 달만에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잇따른 공세적 금리인하로 금리정책 여력도 한계에 직면했다.  이명박 정부는 경제팀을 전면 교체하는 등 ‘전투모드’에 돌입했다. 이 대통령은 지하벙크에서 비상경제대책회의를 주관하며 각부처 장관들을 독려하고 있다. 위기의식이 미흡하다고 수시로 질타한다. 동시에 ‘내복예찬론’을 펼치는 등 절약을 주문한다. 어린시절부터 몸에 밴 근검절약 습관이 발동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재계도 앞다퉈 조직을 슬림화하고 임직원의 월급을 깎는 등 절약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축소지향 풍조 확산은 경제주체들의 심리를 필요 이상으로 위축시키는 등 부작용이 더 크다.  따라서 당장 어렵다고 모두가 움츠려선 곤란하다. 재정 확대의 정책 목표는 내수진작이다. 그렇다면 이 대통령부터 확장 투자는 아니어도 수요 회복에 대비한 선점 투자와 여유층의 소비가 이뤄질 수 있도록 희망 분위기를 유도해야 한다. 미국 일각에서는 주택가격 하락이 2006년부터 본격화된 점을 들어 구조조정 3년째를 맞는 올 하반기에는 금융위기가 어느 정도 수습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미국경제의 70%를 차지하는 소비는 금융의 자금중개기능이 회복되면 빠른 속도로 되살아날 가능성이 높다.  공무원들이 열심히 일하는 것은 국가경제 전체적으로 볼 땐 부차적인 필요조건에 불과하다. 무엇보다 먼저 기업이 움직일 수 있게 해야 한다. 교육·의료·관광 등과 같은 고부가가치 서비스산업의 투자가 과감하게 이뤄져야 한다. 지금처럼 공무원들이 밑그림을 그린 뒤 기업더러 투자하라고 윽박지르는 식이어선 곤란하다. 투자의 주체인 기업에 주도권을 부여하고 정부는 규제 완화 등으로 뒷받침하면 된다. 그것이 바로 시장논리다.  우리 경제가 절약의 역설이라는 늪에 빠지지 않으려면 이 대통령부터 지하벙크에서 벗어나야 한다. 침체의 골이 아무리 깊다 할지라도 언젠가는 끝나기 마련이다. 우리가 희망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할 이유다.   우득정 논설위원 djwootk@seoul.co.kr
  • 동 주민센터서 비만 체크한다

    서울 영등포구는 다음달 한달 동안 동 주민센터를 돌며 청소년과 성인을 대상으로 비만 여부를 정확히 측정해주는 ‘비만 스크리닝 검사’를 실시한다고 13일 밝혔다.이번 비만 스크리닝 검사에서는 신장·체중·허리둘레 등 신체 계측과 혈압·혈당 측정은 물론, 체성분을 분석해 개인별 맞춤 운동법도 알려준다. 아울러 건강행태 개선을 위한 설문조사 및 교육을 실시해 잘못된 습관을 버리고 올바른 식습관과 생활습관을 익힐 수 있도록 안내할 예정이다. 검사는 2월3일 양평2동 주민센터를 시작으로 4일 영등포동, 6일 도림동, 10일 양평1동, 11일 당산2동, 13일 문래동, 17일 영등포본동, 18일 신길1동, 20일 당산1동 순으로 9개 동에서 차례로 진행된다. 동마다 지역주민 50명이 선착순으로 참여할 수 있으며, 다음달 2일까지 영등포구보건소 보건지원과 건강증진센터를 방문하거나 전화(2670-4789~90)로 신청하면 된다. 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논술불패’ 꼼꼼한 책읽기 습관부터

    ‘논술불패’ 꼼꼼한 책읽기 습관부터

    겨울방학이 열흘 남짓 지났다. 벌써 각오가 슬슬 풀어질 만한 때다. 초·중·고 어느 학년에게나 겨울 방학은 기회고 위기다. 특히 중학교와 고등학교 진학을 앞둔 예비 중1, 예비 고1은 각오를 다잡아야 한다. 겨울방학을 어떻게 보내느냐가 앞으로 3년을 좌우할 수도 있다. 이전과는 학습 분량과 범위가 확 달라진다. 학습환경도 판이하게 변한다. 겨울방학을 알차게 보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전문가들로부터 예비 중고생들을 위한 효과적인 학습법을 알아본다. ●영어 회화 벗어나 문법 기본단계부터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학습환경에서 큰 차이가 난다. 특히 7차 교육과정에 접어들면서 초등 교육은 지식보다는 체험으로, 주입식 교육보다는 참여로 큰 변화를 이뤘다. 학습량도 적은 편이고 시험 성적도 대부분 등수를 매기지 않고 서술형으로 통보한다. 그러나 중학교에 입학하면 사정이 달라진다. 중학 교육은 예전 교육과정 시절과 큰 차이가 없다. 당장 중 1년생들은 엄격해진 생활 지도와 빡빡한 교과 과정에 적응해야 한다. 교사와 학생 사이에 이해도도 초등학교와는 차이가 있다. 중학교부터는 과목별 담당 교사가 따로 교과를 지도한다. 학생 수준에 맞춰 다양한 배려를 하던 초등학교 시절과는 상황이 달라졌다. 스스로 공부 계획을 세우고 교과 과정을 따라가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대성마이맥 전상돈 상무는 “현재 학생의 수준을 판단하고 학습계획을 세우는 일이 선행돼야 한다.”면서 “평가 문제집이나 무료 진단 평가 등을 활용해 자녀가 얼마나 초등교과 내용을 이해하고 있는지를 먼저 파악하라.”고 조언했다. 중1과정은 초등학교 수업을 충실히 받았다면 진도를 따라가는 게 어렵지는 않다. 학습 수준이 뒤처진다고 판단되면 초등 6학년 과정을 확실하게 복습하는 게 우선이다. 자녀의 학습지도에 어려움을 느끼는 학부모들은 손쉽게 학원에 기대려 한다. 하지만 학생의 학습 수준에 대한 파악 없이 무리하게 선행학습을 강요하면 공부에 대한 흥미만 떨어진다. 남들이 다 선행학습에 나선다고 무조건 따라가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국어는 읽기 능력이 핵심이다. 폭넓은 어휘 감각만 있으면 대입까지도 큰 어려움 없이 대비가 가능하다. 중학교 올라간 뒤에는 시간이 없다. 어휘력은 폭넓은 독서가 밑바탕이다. 겨울방학을 활용해 많은 책을 읽고 고민하는 시간을 가지는 게 좋다. 책 한권을 읽어도 대충 읽지 말고 저자 입장에서 다양한 질문을 던져보는 것도 필요하다. 어떤 지문이 나와도 당황하지 않을 기본 능력 배양을 위해서다. 영어는 이전에 놀이 영어에서 본격적인 시험 영어로 형태가 바뀐다. 회화 위주의 초등학교 수업과 달리 문법을 기본단계부터 배우기 시작한다. 어느 정도는 선행학습이 필요한 이유다. 시중에 나와 있는 기초 문법 교재를 택해 문법 용어에 익숙해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영어 자체보다 각종 용어에 스트레스 받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다. 관건은 수학이다. 1318클래스 고길동 수학강사는 “생각하는 학습 습관과 사고하는 능력 배양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당장 문제 하나 더 푸는 것보다 생각하는 습관과 사고 능력을 갖추는 데 중점을 두도록 한다. 아직은 점수 그 자체보다는 기본 개념 습득과 유연한 사고력 터득이 중요한 때다. 중1 수학은 ‘초등학교 과정을 모두 이해했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크게 바뀌는 2012학년 대입 제도 유의 현 중 3년생들이 치르는 2012학년도부터 대학입시는 크게 바뀐다. 탐구영역의 응시과목이 최대 4과목에서 3과목으로 줄고 인문계 수리영역에 ‘미적분’이 포함되는 등 수학 과목의 학습부담은 늘어난다. 따라서 대입을 위한 장기 계획을 염두에 두고 학습 전략을 짜야 한다. 전 상무는 “중3 겨울방학은 목표 대학과 학과를 결정하는 첫 단추를 꿰는 시기”라면서 “자신이 지망하는 대학, 자신이 원하는 학과에서 우대하는 과목에 전략적인 우위를 둘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대부분 대학은 내신과 수능에서 특정 과목에 가산점을 주고 있다. 미리 준비할수록 유리할 수밖에 없다. 수시모집 전형 중 하나로 소수 인원만을 선발했던 입학사정관제도 확대 실시될 가능성이 많다. 입학사정관제는 토플, 토익 등의 영어능력 인증시험 점수와 SAT, 수능 등의 학력인증 시험, 학생부와 같은 학력평가 지표를 조건화해 반영한다. 수상경력, 자기소개서, 봉사활동 등의 서류평가 및 인터뷰는 결정적인 선발지표에 해당한다. 이 역시 고1 때부터 미리 준비해야만 유리하다. 국어는 어휘력과 어법 능력을 키우는 기회로 겨울방학을 활용해야 한다. 교과서에 수록된 문법 단원과 표준법·맞춤법 규정을 반복적으로 학습하면 효과를 볼 수 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에 필요한 현대소설이나 고전시가와 같은 문학 필독서도 완본을 훑어볼 시간은 지금뿐이다. 고교 영어는 양이 방대하다. 중학교 때처럼 적당히 시험 범위만 암기해선 좋은 성적을 낼 수 없다. 영어 성적 향상을 위해선 꾸준히 학습하는 수밖에 없다. 방학 기간 매일 일정 분량의 어휘를 습득하고 중학 시절 놓친 문법을 복습하자. 내신 시험이 수능형으로 출제되는 경우가 많으니 모의고사를 풀어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고등학교 수학은 난이도가 급격히 높아진다. 어느 정도 선행학습이 불가피한 과목이다. 학습량이 급격히 늘어나므로 예습이 큰 효과를 발휘한다. 고교 수학은 개념을 이용한 논리적 풀이 과정을 요구한다. 박창규기자 nada@seoul.co.kr
  • ‘건강B’ 땐 생활습관 개선해야

    ‘건강B’ 땐 생활습관 개선해야

    건강검진이 일상화되면서 해마다 건강검진 수검자가 늘고 있으나 결과 통보서가 온통 의학 전문용어로만 채워져 있어 읽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통보서의 요당·요단백·요잠혈·콜레스테롤·트리글리세라이드 등을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 때문에 별것 아닌 내용 때문에 속을 태우는가 하면 정말 신중하게 받아들여야 할 내용을 지나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건강에 대한 중요한 정보가 담긴 검진결과 통보서가 대부분 서랍 속에 파묻히고 만다. ●4단계로 표시되는 건강상태 건강검진 후 개인별 건강상태는 ‘건강A’, ‘건강B’, ‘건강주의’, ‘질환의심’ 등으로 표시된다. 여기에서 ‘건강A’는 양호한 건강상태를 뜻한다. ‘건강B’는 추가검사나 약물치료는 필요없지만, 평소에 특정 질환에 걸릴 가능성이 높으므로 생활습관 개선 등 주의가 필요하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된다. ‘건강B’는 건강에 전혀 문제가 없는 경우도 있지만 주의 깊게 관찰해야 할 경우도 있으므로 결과의 해석이 애매할 때는 의사와 상담하는 것이 좋다. ‘건강주의’는 당장 치료를 해야 할 필요는 없지만 정기적인 검사나 추가검사가 필요한 경우를 뜻한다. ‘질환의심(또는 일반질병)’은 약물 등 적절한 치료가 필요하다는 의미로 보면 된다. 건강검진은 특정 질병의 진단보다 질병에 걸렸는지를 개략적으로 훑어보는 선별검사의 성격이 강하다. 따라서 검진 결과를 보고 본인의 건강상태를 임의로 해석하거나 근거없이 판단하는 것은 위험하다. 건강검진 결과 역시 수검자별 개인 특성에 맞춘 해석이 아니라 일률적으로 정해져 있는 일반적인 결과 해석의 기준에 따른 것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당뇨병 환자의 경우 혈압이 138/85 ㎜Hg이면 ‘건강에 이상은 없으나 자기관리가 필요’한 ‘건강B’로 분류되지만 이는 정상인에 해당되는 내용이고 실제로는 당뇨병 환자인 만큼 훨씬 엄격한 혈압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검사항목별 결과 읽기 요당뇨는 소변에서 당이 검출되는 경우로, 당뇨병과 과도한 흥분·임신 등이 원인이다. 요단백은 소변에서 단백질이 검출되는 경우로, 신장염·고혈압·기립성단백뇨 등이 원인이다. 요PH검사는 소변의 산도를 측정하는 검사로, 산성뇨는 임신·발열·생리가, 알카리뇨는 요로감염자에게 주로 나타난다. 요당·요단백·요잠혈은 건강한 사람의 경우 ‘음성’반응이 나타난다. 따라서 ‘양성’이라면 의사와 상담을 해 원인을 알아내야 한다. 요PH는 5.5∼7.5가 정상이다. 혈액검사 중 혈색소는 헤모글로빈 수치로, 남자는 13∼16.5g/㎗,여자는 12∼15.5g/㎗이면 정상으로 본다. 이 수치가 기준에 못 미치면 빈혈·백혈병·관절염 등이, 기준을 초과하면 심장질환· 일산화탄소 중독증 등이 원인이다. 감마-GTP는 간기능 수치로, 남자 11∼63U/L,여자는 8∼35U/L이 정상이다. 수치가 기준을 초과할 경우 알코올성간염이나 지방간염이 의심된다. ●건강검진 결과에 따른 진단 이런 내용을 바탕으로 실제 사례를 들어 알아보자. 직장인 윤충섭(40)씨는 직장 건강검진 결과 혈압 139/86㎜Hg,총콜레스테롤 191㎎/㎗,혈색소 16.6g/㎗로 ‘정상B’ 판정과 함께 ‘간장질환 의심’ 소견을 받았다. 정상 범주에서 높은 편인 혈압은 방치하면 관상동맥질환(협심증, 심근경색증)이나 뇌혈관질환(뇌경색, 뇌출혈), 심부전증 등의 합병증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정기검사와 식생활 개선을 통해 꾸준히 관리해야 한다. 헤모글로빈 수치인 혈색소가 정상치보다 높은 것은 흡연으로 인한 일산화탄소 중독증이 원인일 수 있으므로 금연을 해야 한다. 총콜레스테롤 수치는 정상이나 HDL(몸에 좋은 콜레스테롤·60 이상이 정상)은 58㎎/㎗로 정상에 못 미친다. 트리글리세라이드(정상 100∼150 미만)는 189㎎/㎗, LDL(몸에 나쁜 콜레스테롤·100 미만이 정상)은 116㎖/min으로 정상에 비해 높다. HDL은 수치가 높을수록 좋으나 LDL은 낮을수록 좋다. 윤씨의 경우 콜레스테롤 관리를 위해 HDL이 풍부한 등푸른 생선 등을 자주 섭취하고, LDL과 트레글리세라이드를 함유한 트랜스지방 섭취를 줄이는 식습관이 필요하다. 또 간 기능 검사에서 감마-GTP가 208U/L로 정상보다 훨씬 높아 간장질환이 의심되므로 2개월간 금주 후 재검을 받아야 한다. 을지대병원 가정의학과 김정환 전문의는 “같은 결과라도 개별적 특성에 따른 재해석이 필요한 경우가 있기 때문에 ‘정상A’가 아니라면 의사와 상담을 거쳐 적절한 대책을 찾는 것이 좋다.” 고 조언했다.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 도움말:을지대병원 가정의학과 김정환 교수
  • 생활습관병 다스리는 슬로푸드의 비밀

    생활습관병 다스리는 슬로푸드의 비밀

    21세기의 또 하나의 키워드 ‘느림’. 시간에 쫓기듯 바쁘게 사는 현대인들에게 ‘느림’은 바로 삶의 질(質)과 직결되는 화두다. 하지만 한국에선 느긋함이 곧 게으름이 되어버리고, 우리는 그속에서 ‘빨리빨리’를 외치며 속도에 휩쓸리듯 살아가고 있다. 8일 오후 10시에 방송되는 KBS 1TV ‘생로병사의 비밀’에서는 신년특집 2부작으로 ‘느림의 건강학’을 방송한다. 오염되지 않은 우리 땅에서 난 신선한 제철식품을 천천히 숙성시키거나 조리해 맛을 낸 음식인 ‘슬로푸드’. 과연 ‘슬로푸드’는 우리 건강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 우리 선조들이 즐겨 먹던 음식은 김치나 된장과 같이 오랜 시간을 두고 발효한 음식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불과 몇 십 년 사이 우리의 밥상은 180도 달라졌다. 가공식품과 패스트푸드가 넘쳐 나면서 식습관이 서구화되었고, 현대인들의 건강에 심각한 적신호가 켜졌다. 이에 제작팀은 평소 잘못된 식습관으로 개선이 필요한 성인 5명, 아동 7명을 대상으로 슬로푸드 식단을 제공한 ‘슬로푸드 캠프’를 진행했다. 개인별 처방과 미션을 들고 굳은 각오로 캠프에 입소한 12인의 참가자들. 하지만 패스트푸드와 가공식품에 길들여진 오랜 식습관과 입맛을 단시간 내에 바꾸기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8일 동안 진행된 캠프 기간 과연 그들에게는 어떤 변화가 일어났을까.건강을 지키기 위한 참가자들의 눈물겨운 노력과 그 결과를 공개한다. 21세기를 살고 있는 바쁜 현대인들, 그들의 식사 속도는 얼마나 될까. 조사결과 직장인의 72%가 한 끼 식사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약 15분. 그리고 그들에게 사랑받은 것 또한 빠르고 간편한 패스트푸드와 인스턴트 음식이다. 최근 경제 한파로 인해 그 인기가 더 높아지고 있다. 우리의 식탁 역시 빠르게 조리되고 빨리 먹는 음식들로 채워지고 있다. ‘슬로푸드 캠프’ 참가자인 문종권 (38)씨는 친구들 사이에서도 밥을 빨리 먹기로 유명하다. 밥 한 공기를 먹는 데 걸리는 시간은 불과 3분, 뜨거운 국밥도 5분이면 비운다. 그런데 8년 전, 30세의 젊은 나이에 그에겐 당뇨와 고혈압이 찾아왔다. 체중 감량과 빨리 먹는 식습관을 고치기 위한 노력도 많이 했지만 결과는 매번 실패였다. 캠프에서 그에게 주어진 미션은 ´30분간 천천히 먹기´. 평소보다 6배 이상 느리게 먹어야 하는 슬로푸드 식단은 그의 건강에 어떤 결과를 가져왔을까. 천천히 조리하거나 오래 숙성시켜 느리게 먹는 음식, 생활습관병을 다스리는 ‘슬로푸드’의 숨겨진 효과를 밝힌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진정한 좌파라면 대한민국을 긍정하라”

    “진정한 좌파라면 대한민국을 긍정하라”

    ■ 왜 진보에 길을 묻나  지리멸렬이다. 좋게 말하면 암중모색이고 거칠게 얘기하면 방향 상실이다. 우리 사회의 개혁과 근본적인 변혁을 갈망해온 진보진영 얘기다. 지난해 초 민주노동당은 종북주의 청산을 놓고 분열했고 대중은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연이은 ‘촛불’로 보수 우파정권은 막다른 골목에 내몰렸지만 이 과정에 좌파나 진보진영의 목소리를 찾기는 힘들었다. 지금도 여의도에서 계속되는 신자유주의 정부 여당과 ‘초록이 동색’인 야당의 틈바구니 속에서도 ‘왼쪽’의 목소리는 찾기 힘들다. 서울신문은 신년 온-오프라인 공동기획 ‘’진보‘에 길을 묻다’ 시리즈를 주대환 사회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전 민주노동당 정책위 의장)와의 인터뷰로 문을 연다. 글로벌 금융위기에 자본이나 노동,시민사회 할 것 없이 할퀴고 상처받는 이즈음,악전고투하는 좌파와 진보진영의 새로운 진로 모색을 지켜보는,흔치 않은 기회가 될 것이다.  15일자에 게재되는 2회에선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교수로부터 글로벌 금융위기의 진단과 전망,다음달 임시국회로 처리가 미뤄진 정부 여당의 금산분리 완화 정책 등에 대해 들어본다. ■ 주대환 사회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 일문일답  -언젠가 인터뷰에서 스스로를 말이 없는 사람,혼자 있고 싶어하는 사람으로 표현하셨는데 선거에 몇번 나가는 바람에 많이 극복이 되신 건가요.  “아마도 지하조직 생활을 많이 해서,지하조직 생활이라는 게 항시 미행이라든지 감시를 당한다고 생각하니까,조직원들끼리도 서로 자주 만나질 못하고 특히 저는 조직에서 중요한 핵심부에서 활동하니까 거의 사람을 많이 못 만나는 생활을 오래 했지요.그래서 습관이 그렇다는 거고.선거를 세 번이나 출마하면서 대중화됐다는 걸 강조하기 위해 그런 말을 한 것 같아요.”  -요즈음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합니다.  “마산이 집이니까 마산에서 살고 제 아내가 생계를 위해서 일을 합니다.저는 말하자면 주부지요.남성주부.글쎄 오래된 것 같은데 전 전업주부라고 주장은 하는데 제 식구들이 전업주부로 인정 안해주고 반업주부로 인정하지요.”(웃음)  -책 같은 것도 사모님 버시는 걸로 사시는 건지  “그런 것까지 얘기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제 처하고 저는 결혼생활 28년 됐는데 돈 만원도 서로 빌리면 반드시 갚습니다.그래서 제가 활동하는 활동비는 한 푼도 제 아내한테서 받지 않았습니다.”  -책을 읽으며 참 생각을 많이 하시는 분 같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때 반장선거에서 당선된 적이 있는데 여자친구들 표를 많이 받았던 것 같아요.그때부터도 제 자신의 마음 속에 여성적인 면도 있지 않나,저 자신 그렇게 느끼고 있거든요.여성들과 잘 어울리고 남자친구들이 여자친구들을 괴롭히면 그게 상당히 싫고 그렇더라구요.”  -책을 보신 분 가운데 안 좋은 반응이 있다면.  “책이 나온 지 얼마 안돼서.제가 조금 실망스러운 반응 같은 거는 하루 만에 다 읽었다든지,너무 쉽다,피상적이다 하는,조금 더 깊은 연구를 바란다 이런 것이었습니다.저로선 결코 쉬운 얘기들이 아니다.저로선 굉장히 많은 용기를 내서 오래 생각을 해서 한 얘기인데 예를 들면 비유가 적절할지 모르지만 산은 산이다 물은 물이라고 하더라도 정말 오랫동안 생각하고 평생을 탐구하니깐,한 후에 산은 산이다 물은 물이다라고 할 수 있는 거잖아요.결국 상식으로 돌아온다.이제 상식으로 돌아와서 하는 얘기를 그저 흘려 들으면 듣는 사람 몫이겠지요.”  -책을 쓴 동기를 간략하게 설명하신다면.  “저는 이제 나이도 많고 저와 같이 민주화운동이나 노동운동을 했던 분들도 먼저 가신 분들도 많고 어떻게 보면 제 인생을 정리하고 새로운 뭔가 새롭다기 보다도 더 먼 미래를 생각하고 있는 중인데요.그런 점에서 저는 우리 마음 속에 민주화운동으로부터 유래됐던 좌파 또 노동운동가들 사회주의 운동을 한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의 마음 속에 무엇이 문제인가,잘못됐는가 이런 것들을 깊이 성찰하고 반성하고 새롭게 나갈 어떤 방향이라도 제가 잡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게 제 유일한 관심사고 희망이지요.제가 말하자면 먼 훗날의 세대들을 위해서 우리 세대의 잘못이라든지 한계라든지 반성해서 앞으로 이렇게 나아가는 것이 좋겠다는,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없겠지요.”  -좌파나 진보진영에 몸담은 이로선 “대한민국을 긍정해야 한다.”는 얘기가 쉽지 않을 텐데.  “이 얘기는 굉장히 길 수도,복잡할 수도 있는데요.우선은 대중의 입장에서 국민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답이 나오는 문제라고 생각하거든요.그러니까 국민 대중들은 특정한 사상 이념 이데올로기 등을 기준으로 보는 게 아니잖아요.국민 대중들은 어떻게 보면 얄밉도록 이기적인,대중 자신의 이해관계에 충실하게 보는 거든요.국민 대중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대한민국이란 나라도 건국할 때부터 그 이후 60년의 발전과정 역시 그런대로 괜찮은 나라다.아니 뭐 어쩌면 절대적인 게 없다고 전제한다면 상대적으로 본다면 대한민국 만한 나라도 드물다는 것이 대중의 정서고 관점이고 느낌일 것 같습니다.그런 관점에서 보자.또 대중이 왜 그렇게 보는가를 깊이 이해해야 되겠지요.연구를 해보니까 대한민국이 건국 당시부터 우선 사회경제적 토대에서 건국과 거의 동시에 토지개혁을 했습니다.이 토지개혁이 어떤 학자들에 의해서는 한계가 있다,동기가 그렇다 하지만 그런 건 대단하지 않다.토지를 분배받은 농민의 입장에서 보자 이거지요.이런 일들은 수백년에 한번 일어날 만한,예를 들어 우리나라 같으면 고려에서 조선으로 바뀔 때나 있을 법한 일이다.세계사적으로도 볼 때도 그렇게 흔한 일이 아니거든요.필리핀 같은 데서는 토지개혁이 항시 정치적인 슬로건으로 제시됐지만 아직도 토지개혁을 하지 못하고 있거든요.그만큼 힘든 일이라는 거지요.기득권 저항도 거세고 하기 때문에.전 농민이,국민의 70%가 농민이었는데 조그만 땅덩어리 하나를 나눠 가졌다는 엄청난 거지요.”  정리 인터넷서울신문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주대환 누구인가  ‘네 차례 투옥에 세 차례 낙선’ 주대환 사회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에 따라다니는 이율배반이면서 서로 맥이 통하는 꼬리표다.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의 ‘지적 설계자’,그리고 정당운동 이론가로서의 삶이 오롯이 담겼다.  1954년 경남 함안에서 태어나 1973년 서울대 종교학과에 입학했다.민청학련사건 등에 연루돼 네 차례 복역했다.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을 기획했고 2004년 6월 정책위 의장에 당선됐다. 지난해 2월 분당때 당적을 정리하고 현재는 사회민주주의연대를 만들어 좌파 진보의 새 활로 모색에 열심이다.  지하조직 경력과 달리 그는 부드럽다. 말할 때도 한참 생각한 뒤에 어렵게 한땀 한땀 내뱉는다. 지난해 책 ‘대한민국을 사색하다’를 읽어본 이들이라면 그가 참 오래 생각하는 좌파란 것을 감지할 것이다. 2시간 인터뷰 며칠 뒤 이메일을 세 차례나 보내 말하지 못했던 바를 부연했다. 그런 사람이다.  1982년 이후 정기적으로 월급을 받아본 적이 없어 부인이 생계비를 댔지만 본인은 어떻게든 돈을 마련해 활동했단다. 처남이 이병천 강원대 교수. 아들 둘은 모두 고등학교까지만 학비를 댔고 대학 교육은 ‘대한민국 덕에’ 각기 다른 방식으로 해결했다. ■ 주대환의 못다한 얘기  2시간에 걸친 인터뷰 며칠 뒤 주대환 대표는 기자에게 이메일을 보내왔다.하고싶은 얘기를 다 못했다는 취지였다.해서 그의 못다한 얘기를 정리했다.  책 ‘대한민국을 사색하다’를 쓰면서 돌아보니 저희들 세대는 5.16의 밥을 먹고 4.19의 시를 읽으면서 자랐습니다.5.16과 4.19를 다 취한 것이 현명한, 아니면 똑똑한,아니면 탐욕스런, 아니면 교활한 이 땅의 민중이었습니다.이 민중의, 백성의, 국민의 복잡하고 변화무쌍한 마음을 이해하고 싶었습니다.“”민심은 천심“”이라고 했지만 이 말에는 정치하는 사람이 받들어 모시고 따라야 한다는 뜻도 있지만 바로 복잡하고 변화무쌍하여 알기 어렵다는 뜻도 있다는 것이 저의 독창적(?) 해석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랜 반성과 사색 끝에 “”상식“”으로 돌아가서 “”물은 물이다 산은 산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그러므로 장석준(진보신당 정책실장)은 전혀 헛다리를 짚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정직”“이란 단어를 키워드로 삼고 싶습니다.  저는 다만 정직하게 제가 보고 경험한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정치적 고려나 누구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 혀를 꾸부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그것이 마치 제가 좌파의 내부고발자라고 되는 듯이 비치고 오늘도 조선일보 논설위원 어느 분이 칼럼에 저를 거명했다던군요.  마지막으로 제가 강조하는 사회민주주의는 바로 양극화라는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유럽형 복지국가를 만들지 않고서는,선진국으로 갈 수 없는 현재의 한국에 꼭 필요한 이념입니다.그리고 자본주의를 넘어서니 마니 하는 따위의 ”“공론(空論)”“이나 ”“허언(虛言)”“을 일삼는 좌파가 아니고 당장 생존의 위협에 노출된 영세자영업자와 비정규직 노동자와 청년 실업자의 생존의 문제를 해결할 방법에 몰두하는 좌파의 정치철학입니다.  그리고 오랜 역사로 다양한 경험을 축적하여 풍부한 정책을 가진,국민 대중 모두에게 공신력있는 정치 이념이고,더욱이 해석의 폭이 넓어서 다양한 좌파를 아우를 수 있는 정치철학입니다.  그래서 저는 평생 해오던 노동당을 포기한 저가, 더 이상 잃을 것이 없고 나이도 이미 많은 제가 일체의 정치적 사심을 버리고 순수하게 대한민국의 지식인들과 정치인들과 시민운동가와 노동운동가들에게 이제 자기의 정체성으로 고백하자, 정체성으로 돌아가자,아무런 세속적이거나 정치적 고려없이 자기의 정체성이 ”“사회민주주의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다 모여 보자 라고 제안하는 것입니다.그것이 <사회민주주의연대>를 만들자는 제안입니다.  그것은 바로 대안야당이 되지는 않습니다.그러나 바로 그런 힘이 형성되어야 좌파의 재구성도 이루어지고 대안야당의 올바른 방향이 제시되어 일이 제대로 되리라고 보는 것입니다.즉 뉴라이트의 <선진화재단>이나 <시대정신>이 보수에서 하는 역할과 비슷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유전자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현실의 모든 사물이 그러하듯이 온갖 요소들이 다 있습니다.그런데 새삼 보니 “”평등“”이라는 유전자가 너무나 뚜렷하더라는 것입니다.그리고 그 “”평등“‘이란 유전자는 한강의 기적의 가장 근원적인 원인이라는 것이 저의 주장이니 우파에게는 매우 위협적인 주장입니다.  그리고 좌파는, 만약 민족주의에 포획된 엉터리 좌파가 아니라면 ”“평등”“”이라는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대한민국 속에서 발견하고 또 그것이 가진 힘을 발견하니 매우 반가운 소리인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래서 현명하고 똑똑한 인민이, 백성이, 국민이 대한민국을 긍정하니, 인민이, 백성이, 국민이 긍정하는 대한민국을 좌파도 긍정하자는 것이고,그들이 긍정하는 이유로, 긍정하는 만큼만 긍정하자는 것입니다.“”인민과, 국민과 함께하는 좌파“”가 되자는 말이지요.
  • 주대환 “진정한 좌파라면 대한민국을 긍정하라”

    ■ 왜 진보에 길을 묻나  지리멸렬이다. 좋게 말하면 암중모색이고 거칠게 얘기하면 방향 상실이다. 우리 사회의 개혁과 근본적인 변혁을 갈망해온 진보진영 얘기다. 지난해 초 민주노동당은 종북주의 청산을 놓고 분열했고 대중은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연이은 ‘촛불’로 보수 우파정권은 막다른 골목에 내몰렸지만 이 과정에 좌파나 진보진영의 목소리를 찾기는 힘들었다. 지금도 여의도에서 계속되는 신자유주의 정부 여당과 ‘초록이 동색’인 야당의 틈바구니 속에서도 ‘왼쪽’의 목소리는 찾기 힘들다. 서울신문은 신년 온-오프라인 공동기획 ‘’진보‘에 길을 묻다’ 시리즈를 주대환 사회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전 민주노동당 정책위 의장)와의 인터뷰로 문을 연다. 글로벌 금융위기에 자본이나 노동,시민사회 할 것 없이 할퀴고 상처받는 이즈음,악전고투하는 좌파와 진보진영의 새로운 진로 모색을 지켜보는,흔치 않은 기회가 될 것이다. ■ 주대환 사회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 일문일답  -언젠가 인터뷰에서 스스로를 말이 없는 사람,혼자 있고 싶어하는 사람으로 표현하셨는데 선거에 몇번 나가는 바람에 많이 극복이 되신 건가요.  “아마도 지하조직 생활을 많이 해서,지하조직 생활이라는 게 항시 미행이라든지 감시를 당한다고 생각하니까,조직원들끼리도 서로 자주 만나질 못하고 특히 저는 조직에서 중요한 핵심부에서 활동하니까 거의 사람을 많이 못 만나는 생활을 오래 했지요.그래서 습관이 그렇다는 거고.선거를 세 번이나 출마하면서 대중화됐다는 걸 강조하기 위해 그런 말을 한 것 같아요.”  -요즈음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합니다.  “마산이 집이니까 마산에서 살고 제 아내가 생계를 위해서 일을 합니다.저는 말하자면 주부지요.남성주부.글쎄 오래된 것 같은데 전 전업주부라고 주장은 하는데 제 식구들이 전업주부로 인정 안해주고 반업주부로 인정하지요.”(웃음)  -책 같은 것도 사모님 버시는 걸로 사시는 건지  “그런 것까지 얘기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제 처하고 저는 결혼생활 28년 됐는데 돈 만원도 서로 빌리면 반드시 갚습니다.그래서 제가 활동하는 활동비는 한 푼도 제 아내한테서 받지 않았습니다.”  -책을 읽으며 참 생각을 많이 하시는 분 같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때 반장선거에서 당선된 적이 있는데 여자친구들 표를 많이 받았던 것 같아요.그때부터도 제 자신의 마음 속에 여성적인 면도 있지 않나,저 자신 그렇게 느끼고 있거든요.여성들과 잘 어울리고 남자친구들이 여자친구들을 괴롭히면 그게 상당히 싫고 그렇더라구요.”  -책을 보신 분 가운데 안 좋은 반응이 있다면.  “책이 나온 지 얼마 안돼서.제가 조금 실망스러운 반응 같은 거는 하루 만에 다 읽었다든지,너무 쉽다,피상적이다 하는,조금 더 깊은 연구를 바란다 이런 것이었습니다.저로선 결코 쉬운 얘기들이 아니다.저로선 굉장히 많은 용기를 내서 오래 생각을 해서 한 얘기인데 예를 들면 비유가 적절할지 모르지만 산은 산이다 물은 물이라고 하더라도 정말 오랫동안 생각하고 평생을 탐구하니깐,한 후에 산은 산이다 물은 물이다라고 할 수 있는 거잖아요.결국 상식으로 돌아온다.이제 상식으로 돌아와서 하는 얘기를 그저 흘려 들으면 듣는 사람 몫이겠지요.”  -책을 쓴 동기를 간략하게 설명하신다면.  “저는 이제 나이도 많고 저와 같이 민주화운동이나 노동운동을 했던 분들도 먼저 가신 분들도 많고 어떻게 보면 제 인생을 정리하고 새로운 뭔가 새롭다기 보다도 더 먼 미래를 생각하고 있는 중인데요.그런 점에서 저는 우리 마음 속에 민주화운동으로부터 유래됐던 좌파 또 노동운동가들 사회주의 운동을 한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의 마음 속에 무엇이 문제인가,잘못됐는가 이런 것들을 깊이 성찰하고 반성하고 새롭게 나갈 어떤 방향이라도 제가 잡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게 제 유일한 관심사고 희망이지요.제가 말하자면 먼 훗날의 세대들을 위해서 우리 세대의 잘못이라든지 한계라든지 반성해서 앞으로 이렇게 나아가는 것이 좋겠다는,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없겠지요.”  -좌파나 진보진영에 몸담은 이로선 “대한민국을 긍정해야 한다.”는 얘기가 쉽지 않을 텐데.  “이 얘기는 굉장히 길 수도,복잡할 수도 있는데요.우선은 대중의 입장에서 국민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답이 나오는 문제라고 생각하거든요.그러니까 국민 대중들은 특정한 사상 이념 이데올로기 등을 기준으로 보는 게 아니잖아요.국민 대중들은 어떻게 보면 얄밉도록 이기적인,대중 자신의 이해관계에 충실하게 보는 거든요.국민 대중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대한민국이란 나라도 건국할 때부터 그 이후 60년의 발전과정 역시 그런대로 괜찮은 나라다.아니 뭐 어쩌면 절대적인 게 없다고 전제한다면 상대적으로 본다면 대한민국 만한 나라도 드물다는 것이 대중의 정서고 관점이고 느낌일 것 같습니다.그런 관점에서 보자.또 대중이 왜 그렇게 보는가를 깊이 이해해야 되겠지요.연구를 해보니까 대한민국이 건국 당시부터 우선 사회경제적 토대에서 건국과 거의 동시에 토지개혁을 했습니다.이 토지개혁이 어떤 학자들에 의해서는 한계가 있다,동기가 그렇다 하지만 그런 건 대단하지 않다.토지를 분배받은 농민의 입장에서 보자 이거지요.이런 일들은 수백년에 한번 일어날 만한,예를 들어 우리나라 같으면 고려에서 조선으로 바뀔 때나 있을 법한 일이다.세계사적으로도 볼 때도 그렇게 흔한 일이 아니거든요.필리핀 같은 데서는 토지개혁이 항시 정치적인 슬로건으로 제시됐지만 아직도 토지개혁을 하지 못하고 있거든요.그만큼 힘든 일이라는 거지요.기득권 저항도 거세고 하기 때문에.전 농민이,국민의 70%가 농민이었는데 조그만 땅덩어리 하나를 나눠 가졌다는 엄청난 거지요.” 글 / 인터넷서울신문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영상 / 서울신문 나우뉴스TV 손진호기자 nasturu@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시론] 4대강 생태·문화 회랑으로 거듭나도록/김용학 중앙대 겸임교수ㆍ도시공학박사

    [시론] 4대강 생태·문화 회랑으로 거듭나도록/김용학 중앙대 겸임교수ㆍ도시공학박사

    최근 4대강 살리기의 진위 논쟁이 뜨겁다. 이 와중에 필자는 지난 20년간 습관처럼 해온 하천순례의 일환으로 최근 4대강을 다시 둘러보았다. 인구에 비해 산이 많은 데다 노년기 지질에 속한 우리 국토는 비만 오면 토사의 유출이 심해 강의 퇴적이 가속, 배수의 기능을 다 못했다. 특히 1925년 을축년 대홍수 때는 광화문 앞까지 범람해 경기도의 지도가 바뀔 만큼 큰 재앙을 당했다. 그 후 근대화 과정에서 상당히 정비됐으나, 한강의 서울권역을 제외하면 아직 취약하기 짝이 없다. 이런 면에서 4대강 살리기는 너무 늦은 감이 있다. 최근에도 거의 매해 가뭄과 큰 홍수로 엄청난 재산과 인명피해를 입고, 4대강을 다 정비하고도 남을 세금을 복구와 치수에 쓰고도 계속 가뭄과 홍수를 걱정하며 살고 있다. 4대강 살리기의 주요 목표는 물그릇을 크게 만들고 물길을 복원해 가뭄과 수해라는 수천년 지속된 재앙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고, 낙후될 수밖에 없는 내륙지역을 광역경제권 활성화의 거점으로 발전시켜 일자리를 창출하고 경제위기를 극복할 경기부양 대책의 하나로 활용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진정한 4대강 살리기라면 다음과 같은 몇 가지 방향과 아이템도 충분히 반영하고 고려해야 한다. 먼저 4대강을 따라 생태섬을 포함한 생태축을 조성하고 폐경지나 산지를 늪지나 숲으로 조성함은 물론 지역에 따라 여울과 계류를 그대로 보존하고 지천을 잘 살려 생태계가 단일화하지 않도록 하며, 기후 변화에 따른 수서생물들의 강 상류 이동도 고려해 강이 ‘생명의 터전’으로서 역할을 다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또 이번 기회에 4대강을 수질 오염으로부터 영원히 해방시킬 수 있는 종합적인 치유책을 모색해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수질 관리 목표를 미국은 어렵더라도 일본 수준만큼으로는 상향 조정하는 일이다. 또한 증대하는 삶의 질 개선 요구에 부응해 친수(親水) 생활체육 시설과 공원은 물론 도농연계 생태마을, 옛 나루터의 연결, 습지체험과 에코투어리즘, 이전 대상인 서원·고택·정자·비각 등을 집단화한 문화재 단지 등을 조성해 생태·건강·문화회랑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계획되어야 바람직하다. 이러한 아이템이 유비쿼터스 등 첨단 IT기법과 결합될 때 기존의 선진국보다 뛰어난 녹색사회기반시설로 자리 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일자리 창출이 또 하나의 주요 목표일 게다. 이를 위해서 4대강 살리기의 본 사업에 포함될 사업간, 그리고 본 사업과 광역권 혹은 지역별 경제 살리기 사업간에 다목적으로 결합과 연계가 가능하도록 해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국가 전체 성장 동력의 확충효과와 함께 지역 균형적인 고용 증대도 모색해야 하겠다. 이왕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자면 기획·설계·사업시행을 동시에 추진하는 패스트 트랙(Fast Track) 방식을 적용해 경기부양 효과를 최대한 높여야 한다. ‘4대강 살리기냐, 대운하의 사전 포석이냐?’는 논쟁이 일고 있다. 하지만 이는 속이려야 속일 수도 없다. 개발계획, 실시계획과 실시설계가 나오면 모든 면에서 확연히 차이가 난다. 오히려 이 기회에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국토의 품격이 두어 단계 선진화되기를 기대하며 중지(衆智)를 모으는 것도 성숙한 국민의 덕목이 아닐는지. 김용학 중앙대 겸임교수ㆍ도시공학박사
  • [Healthy Life] (6) 저혈압

    [Healthy Life] (6) 저혈압

    고혈압이 무섭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그 자체가 질병이기도 하지만 치명적인 심장질환이나 뇌혈관 질환을 부르는 직접적인 요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그러나 이런 고혈압 인지도에 비해 저혈압은 아직 모르는 사람이 많다.그도 그럴 게 저혈압은 아직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질병으로 분류되어 있지 않다.특이한 경우를 제외하면 혈압이 다소 낮은 저혈압은 고혈압과 달리 치명적이지 않아서다.그러나 아직도 많은 이들이 “난 저혈압이야.”라고 자가진단을 하고는 “들으니 저혈압이 고혈압보다 훨씬 겁나고 무섭대.”라고들 말하기도 한다.이들은 장기·지속적으로 혈관에 심한 압박을 가하는 고혈압의 반대 개념을 적용해 저혈압이 종국에는 혈관을 맥없이 짜부라뜨리고 그 때문에 자신의 건강과 삶이 빈 캔처럼 쉽게 구겨져 버릴 수도 있다고 믿는 건 아닐까.이런 일상적 의문에 대해 연세대의대 세브란스병원 심장내과 고영국 교수가 바른 답을 제시했다.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런 걱정을 사서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흔히 ‘저혈압이 고혈압보다 무섭다’고들 말한다.이런 의식이 의학적 근거가 있는 말인가? 저혈압이란 정상보다 혈압이 낮은 상태를 말한다.수축기 혈압이 100㎜Hg 이하일 때 일반적으로 저혈압이라고 하지만 사실 저혈압의 정확한 의학적 정의는 없다.오히려 정상 혈압의 기준은 수축기혈압 120㎜Hg미만,확장기혈압 80㎜Hg 미만으로 상한치만 있을 뿐 하한치가 없어 어지럼증,실신과 같은 증상이 나타나지만 않는다면 혈압은 낮으면 낮을수록 심혈관계 질환의 발생률도 낮아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따라서 특별한 증상이 없이 혈압만 낮은 것은 해가 되기보다는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이런 관점에서 ‘저혈압이 고혈압보다 무섭다.’는 세간의 인식은 상당 부분 의학적 근거가 없다고 봐도 된다.의사들이 흔히 말하는 ‘저혈압’은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면 질병으로서의 저혈압이 아니라 혈압이 정상치에 못 미친다는 뜻이므로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단순히 혈압이 조금 낮은 수준인 저혈압과 질병으로서의 저혈압은 어떻게 다른가? 우리 몸의 혈압은 일반적으로 혈액량,심장기능,미세한 말초혈관의 저항에 의해 변하게 되며,자율신경에 의해 자동적으로 조절이 된다.특별한 원인질환이 없이 젊은 사람에게서 흔히 관찰되는 저혈압은 자율신경의 부조화 등에 의해 나타날 수 있으며,그 밖에도 피로,고열,탈수,감염 등에 의해 일시적으로도 나타날 수도 있다.또 특별한 신체질환이 없이 혈압이 정상치보다 낮으면서 특히 앉았다가 일어설 때나 장시간 서 있을 때 현기증이 나타나는 경우도 대부분 휴식을 취하면 회복되고,고혈압과 달리 합병증을 일으키는 경우도 극히 드물다. 이에 비해 심장혈관계,신경계,내분비계의 이상으로 계속되는 저혈압이나 특히 중증의 감염,출혈,탈수,심장질환,알레르기 반응이 원인이 되어 혈압이 낮아지는 경우라면 문제가 다르다.이런 상태는 뇌,심장,신장 등 주요 장기의 혈액 공급에 문제가 생기는 쇼크 상태로 이어져 생명을 앗아갈 수도 있는 심각한 경우이다.따라서 혈압이 낮으면서 어지럼증 또는 실신과 같은 증상이 나타난다면 이런 증상을 초래한 원인 질환이 따로 있는지 반드시 검사해 봐야 한다.하지만 증상이 아예 없거나 일시적인 증상만 있는 가벼운 정도의 저혈압이라면 일반적으로 특별한 치료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적절한 휴식과 규칙적인 운동만으로도 얼마든지 상태가 나아질 수 있다. ●저혈압의 종류와 각 종류에 따른 증상을 설명해 달라. 저혈압은 원인에 따라 본태성과 2차적,기립성 저혈압 등 세가지로 나눌 수 있다. 본태성 저혈압은 특별한 원인이 없이 태어나면서부터 지속적으로 혈압이 낮은 상태를 유지하는 것을 말한다.주로 마른 체형의 사람과 젊은 여성들에게 나타나며,저혈압의 일반적인 증상을 보인다. 2차적인 저혈압은 주로 내분비,심혈관계,뇌혈관계 질환을 가진 사람들에게서 나타날 수 있는 저혈압을 말한다.이런 경우라면 당연히 검진을 통해 원인질환을 알아내야 한다.앉았다 일어서거나 할 때 어지럼증이 나타나는 기립성 저혈압은 젊은 여성,특히 다이어트를 심하게 하는 여성들에서 많이 나타나며,고혈압 치료제,전립선비대증 치료제 등을 복용하는 노인들에게서도 흔히 나타날 수 있다.하지만 이런 기립성 저혈압은 하나의 현상일 뿐 질병으로 여기지는 않는다. ●우리나라에서의 저혈압 발병추이는 어떤가,또 발병 추이에 나타난 특이성은 무엇인가? 저혈압은 하나의 질병으로서 정의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정확한 통계자료 역시 마련되어 있지 않다.저혈압은 고혈압과 달리 다른 질병에 의해서 갑작스럽게 나타나거나,증상을 가지고는 있지만 스스로 자각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 추이를 파악하거나 추이의 특성을 간파하기가 쉽지 않다. ●저혈압 치료는 어떻게 하며,일반인들 대처법은? 대부분의 저혈압은 어지럼증 같이 일시적인 증상을 보이거나 약물 등에 의한 경우가 대부분이다.내분비,심혈관계 또는 뇌신경계 질환에 의한 2차적 저혈압은 매우 드문 편이다.하지만 일단 저혈압 증상이 시작된 사람 중 만성적으로 어지럼증 등의 저혈압 증상이 나타나거나 증상이 심해져 실신 등을 겪는다면 내과 및 신경과 진료를 받아볼 것을 권고한다. 여러 가지 약물과 시술 등을 동원해 치료하는 고혈압과 달리 저혈압은 대부분 안정과 휴식을 취하면 증상이 완화되므로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면 약물치료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하지만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저혈압 증상이 지속적으로 나타난다면 정밀검사를 통해 원인을 찾아 치료를 해야 한다.일상생활을 하다 이유없이 갑작스럽게 피로와 무기력증이 나타나고,어지럼증 등 저혈압의 증상이 나타난다면 일단 무조건 휴식을 취해야 한다.또 휴식을 취하면서 충분한 수분을 섭취해 자칫 나타날 수 있는 탈수 현상에 대비하는 것도 현명한 대처법이다. ●저혈압 극복할 수 있는 바람직한 생활태도는 무엇인가? 저혈압은 특별한 예방법이 없다.따라서 평소 저혈압 증상을 완화시킬 수 있는 습관을 생활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규칙적인 운동은 혈관수축 운동을 도와줘 저혈압 예방에 도움을 줄 뿐 아니라 혈액순환에도 도움을 준다.하지만 혈관계 질환을 가졌다면 지나친 운동은 금물이다.또 5대 영양소(단백질·탄수화물·지방·무기질·비타민)를 충분히 섭취할 수 있는 식단을 만들어 실행하며,일상생활 속에서 충분한 수분을 섭취하는 것도 중요하다.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 [신춘문예 평론 당선작] 연애시의 두 형식,기쁨의 윤리와 슬픔의 윤리 - 이병률과 김행숙의 시/박슬기

    1 잘못 보내진 연애편지 - 소통 불능이라는 아픔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 있어서 나는 그에게 편지를 쓴다.날씨 이야기이거나 나의 일상 이야기이거나하는 내용의 편지다.그런데 편지는 며칠 후 수신자 부재라는 빨간 도장을 얹고 되돌아온다.혹은 망설이고 망설이다 전화를 걸었는데 잘못된 번호라는 안내 방송만이 내게 대답해 줄 때,나는 망연히 슬퍼진다. “면아 네 잘못을 용서하기로 했다”(‘별’)라고 어느 날 문자메시지 하나가 도착한다.그런데,받아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다.나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제가 아닙니다, 제가 아니란 말입니다.”라고 문자를 보낸다.이번엔 감옥에 면회를 와 달라는 내용을 담은 “어느 먼 지방 우체국 사서함번호가 적힌 편지”(‘아무것도 아닌 편지’)가 나에게 배달된다.봉투에는 버젓이 내 주소가 적혀 있지만,내 이름이 아니기에 나는 답장을 보낼 수가 없다.어찌할까 망설이며 오래 책상 위에 올려 두었다가,나는 “새 봉투에 또박또박 그의 주소를 적고 편지를 밀어넣고 풀칠을 하”여 되돌려 보낸다. 며칠 뒤 편지는 되돌아온다.이유는 알 수 없지만,편지를 보낸 이가 출옥했거나 아니면 그가 편지를 받는 것을 거부했기 때문일 것이다.그래서 나는 “그가 출감한 것으로 치자”라고 생각한다.편지를 받을 사람이 사라진 일로 그가 “모두를 미워하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문자는 잘못 보내지고,편지는 받을 사람이 없다.당신이 떠났거나,죽었거나,혹은 나의 말을 거부하기 때문이다.나는 그래도 열심히 쓴다. 그러므로 이병률(‘당신은 어딘가로 가려한다’(2003),‘바람의 사생활’(2006))의 시는 붉은 도장을 얼굴에 찍고 울먹이는 편지다. 이런 경우도 있지 않을까? 나는 당신이 보고 싶고,당신을 만나고 싶다는 마음을 담은 편지를 정성껏 썼다.답장이 오기는 왔는데 거기에는 비웃음과 냉소만 가득하다.전화를 걸었는데,그는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장광설을 늘어놓는다.그럴 때 나는 당신이 미쳤다고 생각해서 무서워지거나,당신에게 상처를 받아서 화가 날 것이다. 소년이 손에 칼을 꽉 쥐어서 피를 낸 다음에,은밀히 그것을 소녀에게 보여준다.자해하는 사람이 대개 그러하듯 다만 위로를 받고 싶을 뿐인데 소녀는 “연필이나 깎지 그러니?”(‘칼-사춘기 3’)라고 비웃어버린다.소년은 “아무것에도 놀라지 않는” 소녀가 무서워진다. 아이들이 울자 “공기가 가시처럼 찌르나봐요”(‘우는 아이’)라고 무심히 말할 때,“우수수 이별 눈물/ 받아도 마음의 용수철은 움직이지 않”(‘정석가’)을 때, 건네진 마음의 신호는 당신의 표면에서 미끄러져버린다.김행숙의 시집 ‘사춘기’는 당신의 표면에서 튕겨 나와 당신과 나 사이에서 떠도는 언어들이다.귀신들과 여자들과 사춘기 소년 소녀들이 서로에게 보내는 무수한 ‘사.랑.해.요.’와 ‘&.%.*.#’,그 어디로도 스며들지 못하고 떠도는 독백이자 대화.여기에는 내가 미쳤는지 당신이 미쳤는지 혹은 둘 다 미쳤는지 알 수 없지만,하여간에 서로가 존재하는 양식이 너무 달라서 결코 서로를 알아 볼 수 없는 사태가 있다.“우편물을 잘못 배달했을지도”(‘다섯 살을 떠나며’) 모르지만,무슨 상관이랴.어차피 전달되지도 못할 말인 것을.그래서 “그뿐입니다.언제나 그뿐이에요.그뿐.”이라고 털어버릴 수밖에 없는 체념이 여기에 있다.그래도 나는 열심히 신호를 보내고 모르는 신호를 받는다.그러니 김행숙(‘사춘기’(2003),‘이별의 능력’(2007))의 시는 외계어로 쓰인 편지다. 한 편에서 편지는 도달점을 찾지 못하고 영원히 떠돌고 있고,한 편에서는 누구도 해독하지 못할 내용을 담은 편지가 마구잡이로 보내지고 받아진다.즉,둘 다 편지를 잘못 보낸 것이다.자신의 마음을 전달하려는 의도는 다르지 않은데,결코 마음이 전달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 둘은 소통 불능이라는 아픔에 빠져 있다.그러나 타인에게 건네는 말이란,늘 잘못 보내지는 편지가 아닌가? 소통 불능의 아픔은 애당초에 해결이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그래도 이들은 또 다시 편지를 보낸다.어떻게 하면 당신의 응답을 들을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그러니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이들의 시는 연애편지다. 잘못 보내진. 2 김행숙, 기이한 변신담 - 함께 사라져 희미해지기 당신이 미쳤거나 귀신들이어서,즉 나와 전혀 다른 존재 방식을 가진 존재들일 때 나는 그에게 도달하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그러나 그에게 도달하고자 한다면,존재를 겹쳐 놓는 방법밖에 없을 것이다.이러한 방법을 동일화라고 부르되,여기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다.하나는 내가 그들이 되는 방법이고,또 하나는 그들로 하여금 나를 닮도록 만드는 방법이다.전자의 방법을 취하는 자가 있어,그가 귀신의 언어로 말하고 귀신의 흉내를 낸다면 우리는 그를 광인이라고 부른다.그러나 광인은 아직 ‘인간’,즉 미쳤을 뿐인 인간이기에 귀신의 존재 형식을 따르지 못한다.그는 다만 ‘흉내’만을 낼 뿐이다.만일에 정말로 전자가 되고자 한다면,죽는 길밖에 없다.죽어서 귀신이 될지 어떨지는 알지 못하므로,여기에는 존재를 건 도박이 있다.그러나 존재를 걸고 도박을 할 수 없기에 우리는 오랫동안 후자의 방법을 취해왔다.그것을 ‘계몽’이라고 부르거니와,계몽이란 나와 다른 존재 형식을 가진 타자들로 하여금 나의 존재 형식을 따르도록 하는 것이다.그것은 ‘귀신들린 남자에게서 귀신 쫓기’다. 예수가 귀신들린 남자에게서 귀신을 쫓아내려 할 때,그들은 살려달라고 울부짖었다.귀신들을 불쌍히 여겨,예수는 그들로 하여금 근처에 모여 있던 돼지떼들 속으로 들어가게 했다.귀신들이 돼지떼 속에 들어가자,남자는 살았으되 미친 돼지떼는 스스로 바다에 빠져 죽고 말았다.복음서가 전하는 이 이야기는 계몽이 미신을 몰아낸 서사이자,예수라는 동일성이 어떻게 “미친 것”들을 세상 밖으로 몰아내었는가에 대한 서사이다.그런데, 돼지의 몸 속에 들어가 스스로 바다에 빠져 죽었던 그 미지의 타자들이 “목욕하는 여인”에게 돌아와서,뻔뻔하게도 “그대와 내가 복수이니 우리네”(‘귀신 이야기 3’)라고 말한다. 귀신이 말하는 이야기란,이런 식이다.“너는 십 년 만에 비춰보는 내 거울이야.난 그때 네가 꼭 죽을 줄만 알았는데,그래서 유감없이 탈출했는데,같이 죽기에는 피차 지겨웠으니깐,이해해?”(‘귀신 이야기 1’) 귀신은 나에게서 10년 전에 탈출했다.아니 정확하게 10년 전엔 귀신과 나는 한 몸이었다.이해할 수 있겠는가? 이해할 수 없다.또한 어떻게 대답할 수 있는지 알 수 없으므로 나는 “등을 구부릴 때,나는 의문형”(‘귀신 이야기 8’) 이 되는 방식으로 말한다.나는 왜 귀신의 이야기를 알아들을 수 없으며,왜 귀신에게 내가 아는 언어로 대답할 수 없는가? 그것은 귀신이 나에게서 쫓겨난 존재이므로,그로 인해 그와 나의 세계가 너무 달라졌기 때문이다. 김행숙의 시에서는 모든 존재하는 것들이 각각 다른 세계에 존재한다.그들은 결코 만날 수 없고 서로 소통할 수 없다.내가 보는 것은 “그를 비껴간 것”일 뿐이고,라디오에서 웃긴 이야기를 떠들어도 그 이야기를 알아들을 수 없기에 나는 “왜 웃는지 알 수 없”(‘타일’)다.마치 우리가 함께 모여 있는 공간에 여러 겹의 층이 있는데,우리는 각각 다른 층에 있어서 결코 만날 수 없는 것과도 같다.우리가 서로를 “총총히 관통해”도 “아무도 흔들리지 않”는 세계,이 세계에서 나는,그리고 당신은 다만 “분명히 장애물이 아니다.”(‘사소한 기록’)라는 정도의 인식만을 할 수 있을 뿐이다.우리는 모두 서로에게 ‘귀신들’인 것이다. 남자에게서 쫓겨나 울며 사라졌던 귀신들은 복음서의 명령을 어기고 돌아와 몰래 속삭인다.‘너와 나는 하나이니라’.돼지떼 속에 몰아 넣어 그들을 쫓아버린 계몽의 역사가 있었다.이를 니체를 따라 역사적 기억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내가 이 분리의 아픔을 넘을 수 있는 길은 단 하나뿐이다.그것은 망각이되,아픔을 반복적으로 각인시키는 역사적 기억을 잊는 일이다.너와 내가 분리되어 있다는 사태를 망각하고,나아가 나에게 혹은 당신에게 붙여진 이름들,계몽의 전략이 구사한 ‘이름붙이기’의 역사를 망각하는 일이다. “매일 밤 나는 눈을 감으면서 세상이 감기는 걸 느끼”고,“이렇게 간단히 세상이 바뀌는 걸 뭐,”(‘기억은 몰래 쌓인다’)하고 중얼거린다.망각을 통해 세상은 눈을 감는 것과 함께 도르르 감긴다.물론 이러한 망각은 백치의 그것이 아니다.당신과 내가 결코 만날 수 없다는 조건 자체를 망각함으로써 아픔의 기원을 ‘거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그러나 이 기원은 이미 ‘나’라는 주체의 존재 조건이 되었기 때문에 망각이란 나의 존재 자체를 망각하는 일과 동일해진다.나의 차원을 망각하고,당신의 차원을 망각해서 당신과 나 사이에 놓인 무한한 거리를 마치 없었던 것으로 만들어버릴 때 비로소 나와 당신이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릴 것이다.잊음,망각은 새로운 행위를 위한 가능성이기 때문이다. 눈사람에 대한 애정과 관심 때문에 나는 점점 이상해진다는 말을 들었다.내가 어떻게 보이는지 자세히 좀 말해줄래? 요즘은 거울도 내 얼굴을 보여주지 않아.나는 아직 남아 있는데 마치 다 녹았다는 듯이.(‘눈사람’) 밤의 정원.저녁의 정원에도 정혜,은혜,미혜 같은 명찰이 붙여진 나무들이 잎사귀,그림자,잎사귀,그림자를 드리우나.정원의 여자들은 어디로 다 흩어졌나.//우리들은 어디에 모여서 한 사람이 되었나.우리는 이곳까지 달려오면서 많은 이름들을 붙였다,뗐다,붙였다,투명테이프처럼.안녕.안녕.금방 버려진 이름들과 함께하였던 우리의 유머와 블랙.사랑과 블랙.우리들은 사랑스럽고 드디어 모호해진다.(‘한 사람3’) 눈사람에 대한 애정 때문에 눈사람을 닮아 가는 화자는 눈사람에 한없이 가까이 가고 있는 중이다.눈사람이란 태양이 비치면 녹아버리는 것,눈사람이 녹아서 사라지자 그에게 가까이 가 있는 나는 “마치 다 녹았다는 듯이” 거울이 얼굴을 비춰주지 않는다.눈사람과 나는 이런 식으로 만난다.나는 녹아내려서 눈사람이 되고,나의 정체성의 상징인 얼굴은 사라지지만 여전히 나는 “남아 있는” 존재다.그러나 나로서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눈사람들에게 얼굴을 나누어 준 형태로,즉 눈사람들 속에 남아 있다.이 눈사람들은 “은혜,정혜”와 같은 이름표들을 달고 있는 “나무”와도 같은 존재들이고,우리는 서로를 만나기 위해 달려온다.붙였던 이름표들은 떼어도,붙여도 상관없는 얼굴들일 뿐이다.우리는 우리의 얼굴과 이름을 다 갖다 버리고서 서로에게 “달려오”고,그렇게 만나서 “우리들은 사랑스럽고 드디어 모호해”진다. 이 모호해짐,이것이 김행숙의 시에서 만남의 사태다.여기에는 당신과 나 사이의 거리를 극단적으로 좁혀 버리는 시도가 있다.그러나 이 만남의 사태는 내가 당신-사물을 끌어당겨서 나를 닮도록 하는 것도 아니고,내가 당신-사물들에게 가서 나를 버리고 당신-사물이 되는 것도 아니다.그것은 다만 이미 녹아내려 주체라고 부를 수 없는 존재들,타자라고도 부를 수 없는 존재들이 서로를 향해 “양팔을 벌리고 한없이 다가가”서 “함께 희미해”지는 일(‘다정함의 세계’)일 뿐인 것이다. 함께 희미해지는 방법,당신과 내가 동시에 사라지는 일이 망각의 능동적 행위와 결부될 때,이는 “어쩌면 포개질지도 모를”(‘귀신이야기 8’) 가능성을 겨냥한다.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포개진다는 것,그것은 둘이자 하나이고 하나이자 모든 것이 되는 방법이다.나는 점점 작아지고 점점 사라져서 아이들의 말을 끝까지 다 들을 수 없는 상태로 그리고,“끝까지 다 듣지 못했”다는 말조차 완결할 수 없는 상태로 사라지지만(‘더 작은 사람’) 나는 소멸되지 않는다.나는 “더 작은 사람,더 작은 개,더 작은 도마뱀”에서 “파동의 굴절,만져지는 빗방울,빗방울”이 되다가 “돌풍과 함께 지나가는 소나기”가 되는 변신의 끝에 모든 것이 되어 세계를 뒤덮어 버린다.이러한 만남의 사태에서 사람과 사물의 존재 형식의 구별이란 없다.끝없이 그 존재 형식을 자유자재로 바꾸는 존재가 되기 때문이다.그러니 한 사람은 한 “개찰구”도 되고,“안내 방송”도 되고,“주차장”도 되고, “기둥”도(‘한 사람 2’) 된다.그리고 ‘고양이’가 된다. 어쩜 너는 고양이처럼 생겼구나.죽은 고양이 미미,죽은 고양이 샤샤,죽은 고양이 쥬쥬,저 골목과 함께 사라지면서 그림자가 되는 고양이 라라를 정말이지 군데군데 닮았어.그런 고양이는 불멸의 이름이야.그들은 희미하게 사라졌기 때문이지. (‘소녀 고양이군을 만나다’) 고양이가 되겠다고 집을 뛰쳐 나온 ‘고양이군’은 한 고양이이면서도 여러 고양이이다.죽은 고양이 미미,샤샤,쥬쥬,라라를 “군데군데” 닮은 고양이이기 때문이다.이 고양이는 고양이들이 서로 달려와 함께 희미해졌을 때 나타나는 고양이이다.고양이군은 미미이자 샤샤이고, 쥬쥬이며 라라인 동시에 그 어느 고양이도 아니다.이 고양이들을 합쳐 놓는다고 해서 고양이군이 되지도 않는다.즉,고양이군은 고양이군이면서도 다른 모든 고양이인 것이다.이러한 ‘변신’은 그러므로 한 고양이의 변태 양상이 아니다.애당초에 ‘고양이군’이라는 변신의 원천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고양이군이 고양이가 되기 위해 집을 뛰쳐 나오기 전에도 “원래 고양이 새끼”(‘고양이군의 수업시대’)였던 것처럼 하나의 변신의 원천이 있어서,그것이 끊임없이 다른 것으로 ‘변신’하는 것이 아니라,하나에 여럿이 덧붙여져서 나타나는 고양이인 것이다.그러므로 고양이군이 “불멸의 이름”(‘고양이군의 25시’)이 된다고 했을 때,이는 고양이를 초월하여 되는 것이 아니라 많은 고양이의 존재를 덮어씀으로써,덮어쓴 채 사라지면서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흔적으로 남는 것이다. 그러므로,사라지면서 생성되는 많은 것들은 오직 그 ‘흔적’들일 뿐이다.그것은 나의 흔적이자 나에게 덧붙여진 타자의 흔적이고,동시에 타자에게 덧붙여진 나의 흔적이다.나와 타자는,이 둘은 서로의 기원이 혼종되어 있다는 점에서 동일하지만 결코 같지 않다.이는 실로 변신하되 변신하지 않는 변신,기이한 변신담인 것이다.김행숙의 시에서 이 기이한 변신의 최종 형태는 “해변의 얼굴”이다. 이 얼굴은 “코는 한없이 옆으로 펴지고”,“귀는 늘어져 늘어져”(‘얼굴의 몰락’) 있는 이상한 얼굴이고,녹아내렸기 때문에 아무리 해도 “얼굴의 높이”를 회복할 수 없는 얼굴이다.“녹아내리는,끝없이 다가오는,웅웅웅웅 끓어오르는,” 얼굴(‘소수점 이하의 사람들’)은 이렇게 녹아내려서 한없이 펼쳐진 평면이 된다.이는 “얼굴로부터 넘친 얼굴”이자,우리 모두가 밟고 지나가고 그 위에서 휴가를 보내는 “해변”(‘검은 해변’)인 것이다.이 얼굴은 나의 얼굴이 깨어지는 순간,즉 사라지는 순간 나타나는 얼굴이고 ‘다른 모든 것’이 들어 있는 해변으로서의 얼굴이다.그것은 나의 얼굴이자 다른 모든 것의 얼굴이다. 우리의 현재를 구성해 온 과거의 역사를 접어버리면,새로운 미래가 열린다.세계를 깜빡 “정전”(‘정전’)시켜 버리고 당신과 나는 그 암흑의 거리를 넘어서 만난다.마구 달려와 잠깐 숨 죽였다가 팡!팡! 터져서 조각조각 떨어지는 얼굴들의 축제.분리의 사태라는 아픔의 기원을 망각하고,기어이 서로를 만나려는 열정에 찬 기쁜 얼굴들이 밤하늘의 폭죽처럼 마구 터져 쏟아져 내리는 것이다. 3 이병률, 바람의 삶 - 당신에게 가지 않는 방랑 그러나 그럴 수 없다면 어떻게 되는가.이 세계가 아예 마치 없는 것처럼 깜빡 잊어버릴 수 없다면,아니,서로 다른 언어로 떠든다는 사실은 모른 체하더라도,나의 말을 전할 수 있는 당신이 ‘거기’에 없다면 어떻게 되는가. 이번 어느 가을날,/저는 열차를 타고/당신이 사는 델 지나친다고/편지를 띄웠습니다//5시 59분에 도착했다가/6시 14분에 발차합니다//하지만 플랫폼에 나오지 않았더군요/당신을 찾느라 차창 밖으로 목을 뺀 십오 분 사이/겨울이 왔고/가을은 저물 대로 저물어/지상의 바닥까지 어둑어둑했습니다(‘장도 열차’) 나는 당신에게 편지를 보냈다.“열차를 타고 당신이 사는 델 지나친다”고 쓴 편지에는 아마 이런 내용이 덧붙어 있었을 것이다.‘부디 나와 주길 바랍니다’라고,혹은 ‘안 나와도 괜찮지만,혹시 시간이 된다면’.이 편지를 당신이 받았는지는 모르겠지만,당신은 나오지 않는다.나는 오지 않는 “당신을 찾느라 차창 밖으로 목을” 길게 빼고 당신을 기다린다. 5시 59분에서 6시 14분까지,15분 동안 길게 뺀 삶 위로 가을이 내리고 겨울이 내려 마음이 어둑어둑해진다. 이병률에게 삶은 온전히 한 사람을 만나고 잊는데 바쳐진다.“만나는 데 삼십 년”,“잊는 데 삼십 년”(‘생의 절반’)이 걸린다면,생의 절반은 “홍수이거나 쑥대밭”이어서 이 삶이란 온전히 슬픔의 삶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니 이 아픔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당신을 적극적으로 만나야 할 것이다.혹시 당신이 그 자리에 없어서 나의 편지를 받지 못했을지도 모르니,당신을 찾아 내 편지가 도달하는 곳에 앉혀 놓아야 할 것이다.그러나 이병률의 시는 전혀 다른 방식을 택한다. 당신을 향해 가는 열차가 아니라,당신을 지나치는 열차를 탄 것처럼,그는 당신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더라도 가급적 피한다. 그는 “깊은 밤 쓰레기 자루를 뒤지던 눈과/사랑을 하러 가는 눈과 마주”치자 “뒷걸음질”(‘累(루)’)을 치고,“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요”(‘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요’)라고 말을 건네는 당신에게 가지 않는다.낯선 타국에서 만난 동양 사내가 말을 건네자 “고개를 저을 뿐 그에게 왜 혼자냐고 묻지 않”(‘동유럽종단열차’)음으로써 대화를 거부한다. 나는 당신과의 거리를 좁히기를 원하지 않는다.당신과 만나기를 원하지 않고,오히려 당신이 더 “멀리 먼 곳으로 갔으면 하고”(‘겹’) 그래서 “어디 더 더 먼 곳에서 자신을 데리러 와달라고 했으면”하고 바란다.행여나 약속을 하더라도 오지 않는 당신을 기다리다가 “한 한 시간 돌처럼 앉아 있다 돌아온다면/여한이 없겠다”면서,“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화분’)라고 고백한다.당신과 이별한 사태,멀리 있는 당신을 더 멀리 보내고 당신을 결코 만날 수 없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화자는 당신과의 거리를 점점 더 벌려 놓는다.이러한 방식을 아픔에 대한 ‘승인’의 방식이라도 해도 좋겠다.당신과 내가 이별한 상태,결코 만날 수 없는 존재론적 조건 자체를 승인함으로써 출발하는 것이다.여기에 걸려 있는 것은 오지 않는 당신에 대한 그리움과 이후의 만남의 약속에 대한 열망을 무한히 확대하는 것이다.그러니 이러한 방식은 아픔에 ‘복종’하는 것이 아니다.아픔에 복종하는 자는 아픔의 원인을 설정해 놓고 끊임없이 여기에 비난을 가하는 자이기 때문이다.비난은 아픔을 낳고,아픔은 다시 비난을 낳으니,이 사람은 결코 아픔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러나 아픔을 ‘승인’한다는 것은 모든 것을 수용하려는 자세,당신의 어떠한 존재 조건도 받아들이겠다는 일종의 결의가 있다.나는 당신과 나의 거리를 좁히지 않는다.당신을 내가 원하는 자리에 놓겠다는 것은 당신을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존재하도록 만들겠다는 폭력이기 때문이다.나는 당신을 그렇게 다루기를 원하지 않는다.그러나 이는 내가 당신에게 한량없이 베푸는 호의가 아닌데,당신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도록 존재하기 때문이다. 애초 내가 맡은 일은 벽에 그려진 그림의 원본을 추적하여 도화지에 옮겨 그리는 일이었다(…)처음 한 일은 붓으로 벽을 터는 일이었다 벽에다 말을 걸듯 천천히//도저히 겹치지 않는 다른 그림이 나왔다(…)벽을 찔러 조심스레 들어내어 박물관으로 옮기면서 육백여 년 동안 그려진 그림이 수십 겹이라는 사실에 미어지는 걸 받치느라 나는 가매지고 무거워진다 책 냄새를 맡는다 살 냄새였던가 (‘별의 각질’) 한 오만 년쯤 걸어왔다며 내 앞에 우뚝 선 사람이 있다면 어쩔테냐 그 사람 내 사람이 되어 한 만 년쯤 살자고 조른다면 어쩔테냐(…) 그 사람이 걸어왔다는 오만 년이, 오만 년 세월을 지켜온 지구의 나무와 무덤과 이파리와 별과 짐승의 꼬리로도 다 가릴 수 없는 넓이와 기럭지라면 그때 문득 죄지은 생각으로 오만 년을 거슬러 혼자 걸어갈 수 있겠느냐 (‘인기척’) 벽에 그려진 그림의 원본을 추적하여 옮겨 그리는 일을 맡은 한 사람이 있다.그는 오랜 세월 동안 켜켜이 쌓인 먼지 밑에 숨어 있는 그림의 원본을 조심스레 드러내고 싶었기에,“벽에다 말을 걸듯 천천히” 붓질을 한다.이토록 당신을 만나고 당신의 깊은 곳까지 알기 위해서는 조심스럽게,천천히 말을 걸어야 하는 법이다.그런데 이렇게 말을 걸자,예기치 못하게 “도저히 겹치지 않는 다른 그림이” 출현한다.한 그림 밑에 그림이 있고,또 그 그림 밑에 다른 그림이 있어서 벽에 그려진 그림은 “수십 겹”인 것이다.여기서 그림의 원본을 추적하는 일은 불가능하다.애초에 원본이라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이러한 수십 겹의 그림을 무시하고 하나의 원본을 찾아내어 도화지에 옮겨 그린다면,그림은 파괴되어 버릴 것이다. 당신을 아는 일이 그러하지 않겠는가.당신은 오랜 세월 동안 겹겹이 쌓여 온 존재이니,섣불리 ‘이것이 당신이오’라고 말할 수 없다.말할 수 없기에,당신을 일러 수십 겹의 각질을 가진 ‘별’이라고 부른다.내가 볼 수 있는 것은 다만 별을 둘러싸고 있는 ‘각질’일 뿐이다.그러니 화자는 그림을 도화지에 옮기지 못하고 벽 전체를 들어내면서 “미어지는 걸 받치느라” “가매지고 무거워진다”.당신을 알 수 없는 상태,결코 당신을 만날 수 없는 사태에 대한 슬픔의 무거움이 여기에 있다. 당신은 도저히 내가 알 수 없는 존재로 나에게 모습을 드러낸다.육백여 년 동안 겹이 된 그림처럼 “한 오만 년쯤 걸어”서 나에게 온다.당신은 나에게 “내 사람이 되어 한 만 년쯤 살자고” 조르지만,나는 망설이고 망설인다.당신이 짊어진 그 오만 년의 세월이 온 세상을 다 걸어도 가릴 수 없는 “넓이와 기럭지”를 가졌기 때문이다.내가 당신의 제안에 혹하여 냉큼 그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나는 “죄지은 생각으로 오만 년을 거슬러 혼자 걸어가”는 일을 떠맡아야 한다.그 죄란 당신이 걸어온 오만 년을 한순간에 없애버리는 일을 가리킬 것이며,그 죄를 속죄하기 위해서는 당신이 나에게 걸어 온 오만 년의 시간 동안을 다시 거슬러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당신은 오만 년의 세월과 육백 여년의 시간을 등에 짊어지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당신과의 온전한 만남은 완전히 불가능하다.그것은 당신의 존재 조건이 그러하기 때문이며,그런 한에서 나는 이 이별의 사태를 나 자신의 존재 조건으로 받아들인다.이병률의 시가 이 이별의 아픔을 ‘승인’한다는 것은 바로 이 지점에서 가능하다.이 무한한 거리,만남의 불가능성을 온몸으로 승인할 때,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당신의 주변을 끝없이 배회하는 일 뿐이다.그것은 당신이라는 목적지를 향해 똑바로 나아가는 여행이 아니고,당신을 나의 목적지에 데려다 놓는 일도 아니다.차라리 당신을 지나치는 ‘방랑’이라고 부를진대,그 방랑은 “무심히 당신 앞을 수천년을 흘렀던”(‘바람의 사생활’) 바람의 삶이다.유럽과 아시아 대륙을 떠도는 이 거대한 방랑은 마치 “서너 달에 한 번쯤 잠시 거처를 옮겼다가 되돌아오”(‘여전히 남아 있는 야생의 습관’)는 것처럼 사소해 보이는 일이지만 “한 대접의 붉은 물을 흘려야 하는 운명”이되 “자신을 타이르는” 일이다.그렇지 않고서는 당신과 만날 수 없다는 이 아픔을 도저히 견뎌낼 수 없기 때문이다.뿐만 아니라 끝없이 당신을 지나치는 방랑이,당신과 나의 거리를 끝없이 벌려 놓는 방랑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랑의 경로”이자,“문득 부닥친 한 목숨에게/뼈가 아프도록 검고 차가운 피를 채워넣는 일”(‘피의 일’)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내가 알고자 하는 자리에 있지 않을 때,그래서 결코 도달할 수 없을 때 오히려 나는 당신에게서 점점 더 멀리 가고자 한다.그것은 당신을 떠나고자 하는 방랑이자 아주 먼 곳에서 당신을 만나고자 하는 방랑이어서,오직 당신을 스쳐 지나갈 뿐인 바람의 방랑인 것이다. 4 연애편지 전하기 - 사랑을 실현하는 윤리적 주체들 아픔의 사태가 있다.당신에게 전해지지 않는 편지를 열심히 쓰고 있는 자의 삶이 매달려 있는 고통이다.나는 마음을 담아 보내는데,마음이 전달되지 않는다.나의 사랑은 수신자를 찾지 못해 영원히 허공에서 떠돌거나,결코 응답받지 못한 채 당신의 마음을 비껴나간다.결코 만날 수 없는 당신과 만나고자 하는 노력,이를 두고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이 주체들은 결코 사랑을 실현할 수 없다는 고통과 마주친다.고통을 벗어나고자 하는,사랑을 실현하고자 하는 주체들 앞에는 두 가지의 방법이 놓일 것이다. 당신과 내가 분리되어 있다는 사태를 수긍하고,아픔의 사태를 ‘승인’하는 방식과 아픔의 기원을 망각하여,아픔의 사태를 ‘거부’하는 방식이 그것이다.이병률의 시를 아픔을 승인하고 당신의 주변을 떠도는 바람의 삶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김행숙의 시는 아픔을 거부하고 당신을 향해 달려가는 변신담의 세계다.그러나 그것은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두 가지 방식일 뿐이다.그러므로 이상하게 들리겠지만,이들의 시는 연애시다.당신을 향한 사랑을 실현하는 방식인 것이다. 김행숙의 시에서 사랑은 오직 ‘사랑하라’라는 내면의 명령을 끝까지 추구할 때 실현된다.당신과 나의 거리를 극단적으로 좁혀서,당신과 만나고 싶다는 주체의 욕망을 끝까지 추구하기 때문이다.이러한 주체는 당신을 향해 가는 길을 방해하는 모든 것을 없애버리는 파괴적인 주체다.내가 거주하는 세계를 접어 버리고,그 동안 나라고 믿어 왔던 나의 정체성인 얼굴마저도 없애버린다.아무것도 계산하지 않고,그것이 나에게 어떤 이득을 줄 것인지도 생각하지 않는다.그것이 나에게 어떤 파멸을 가져다 줄 것인지도 고려하지 않는다.이런 주체에게는 ‘사랑’이라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한 가지 것이 있어서,이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다.그리고 모든 것을 한순간에 희생함으로써 사랑을 실현한다.그러므로,‘사랑하라’라는 마음의 명령만을 향해 달려가는 이 주체는 윤리적이다. 그러나 당신에게 달려가 만나고 싶지만 당신을 향해 달려가지 않는 자 역시 사랑을 실현한다.이 사람에게도 ‘사랑’이라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한 가지 것이 있다.이를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할 준비가 되어 있는데 여기에는 이 ‘사랑’이라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것도 포함된다.나는 모든 것과 함께,사랑마저도 포기하면서 역설적으로 사랑을 실현한다.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린 자에게 사랑만은 최후에 남는다.그것은 그가 가진 마지막 것이자 유일한 것이다.그러나 이 사랑마저 버리는 자에게는 사랑마저도 남지 않는다.그는 아무것도 가질 수 없는 것이다.그러나 바로 이 자리에서 사랑이 솟아오른다.사랑의 ‘절대성’을 포기함으로써,부정적으로 사랑을 실현하는 이 주체 역시 윤리적이다. 이 두 윤리적 주체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아픔의 사태를 넘어선다.당신을 향해 달려가는 자의 내면에는 오직 열정적 기쁨만이 자리하기 때문에 아픔에 포섭되지 않는다.또한 모든 것,결코 버릴 수 없는 것마저도 버린 자에게는 무한한 슬픔만이 있지만 그 슬픔을 기꺼이 받아들이기에 그는 아프지 않다.이를 두고 각각 기쁨의 윤리와 슬픔의 윤리라고 부를 수 있다면,이 윤리적 주체들은 아픔의 밖에 거주하는 자들이다.이들은 ‘도덕’적이지는 않지만,윤리적이다.이는 새로운 ‘감정 윤리’라고도 부를 수 있는 것이다. 이 새로운 윤리적 주체들은 자신들의 기쁨과 슬픔으로 우리 시의 지도 위에 뚜렷한 기압도를 그려 넣는다.소통 불능의 언어를 주고 받는 모든 ‘포스트 모던’한(이렇게 이름붙일 수 있다면) 시들이 그려 넣는 것은 아마 기쁨의 기압도일 것이다.자신의 욕망을 결코 양보하지 않는 시,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까지 당신과 만나고자 하는 시들이 거칠고 파괴적인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마도 우연한 일은 아닐 것이다.그들은 결코 다른 것들을 되돌아보지 않기 때문이다.다른 한편에 한없이 슬퍼하는 시들이 있다.그들은 체념하고,그 체념으로 인해 슬퍼한다.그러나 이 체념은 패배적이지 않다.그들은 기쁨을 포기함으로써,당신과 만나는 사랑을 부정적인 방식으로 실현하고 있기 때문이다.이들은 기쁨의 기압도 옆에다 슬픔의 기압도를 그려넣는다.그러니 그 기쁨과 슬픔의 강도와 모양에 따라 크거나 작거나 네모나거나 동그랗거나 하는 다양한 기압도가 지금,현재 그려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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