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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타워진 가족사랑 IMF 녹인다

    ◎퇴근후 곧장 귀가… 자녀·부부대화 충분히/가족 소중함 일깨우고 마음벽도 허물어/부모와 다시 한집생활… 세대갈등 해소도 설을 앞두고 살속 깊이 스며든 IMF한파. 남편은 실직위기,급여 삭감에 속앓이를 하고 아내는 빠듯해진 살림살이에 한숨 짓는다.주위에 걱정을 끼치지 않으려고 내색은 않지만 대부분 암담한 심정이다. 그래도 가족간의 정은 더욱 도타워지고 있다.어려웠던 ‘그 때 그 시절’을 떠올리며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한다.외식이나 음주를 자제,귀가시간이 빨라지면서 자녀와의 대화시간도 늘어났다.참고 이겨내자는 데 뜻을 합치다보니 가정생활은 오히려 단란해졌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생활비도 줄일겸 따로 살던 부모·자녀와 합치는 가정도 늘고 있다. 중앙부처의 과장 최모씨(49)는 얼마전 단독주택에 사는 장인·장모를 서울 강동구 둔촌동 자신의 아파트로 옮기도록 했다.기름값 인상으로 뛰어오른 난방비를 줄여주기 위해서다. 최씨는 “아내도 친정부모에게 효도할 기회를 갖게 됐다며 반기지만 아이들이 특히 좋아하고 있다”면서 “생활에 다소 불편한 점은 있지만 흐뭇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결혼한 뒤 분가한 회사원 황인철씨(29)는 지난 4일 경기도 안성에 있는 처가로 살림을 옮겼다.임신 중인 아내에 대한 배려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치솟는 물가를 견디기 어려워 이같이 결정했다.딸을 시집 보낸뒤 적적한 생활을 하던 처가에서도 흔쾌히 승낙했다. 은행직원 박윤휘씨(33)는 감원 위기에 처하자 재취업에 대비,영어공부를 시작했다.술자리도 거의 없어져 일과가 끝나면 곧장 퇴근해 집에서 공부를 한다.틈틈이 5살박이 아들과 놀아주고 집안 일도 도와주자 임신 7개월인 아내가 누구보다 고마워한다는 것이다. 맞벌이를 하며 시어머니와 함께 사는 이경아씨(33·여·서울 강남구 논현동)는 그동안 6살박이 아들을 월 25만원인 유치원 종일반에 다니도록 했다.하지만 이달 초부터 월 14만원인 오전 반으로 옮기도록 했고 하오에는 시어머니에게 맡겼다.이씨는 “시어머니도 즐거워하고 아이도 할머니와 노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고 말했다. 학교 앞에서 하숙을 하던 한국외대 이영선씨(28·베트남어과 4년)는 지난1일 생활비를 아끼기 위해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 살고 있는 형의 집으로 들어갔다.그동안 서먹했던 형수와의 관계도 좋아져 지금은 친누나처럼 친해졌다고 만족스러워했다. 어려움을 함께 견디면서 부부간의 정도 깊어져 이혼이나 불륜을 상담하는 건수도 줄었다.서울 강남구 서초동 K가정상담소의 경우,배우자 불륜관련 상담이 하루평균 5∼6건에서 요즘은 1∼2건으로 대폭 줄었다. 이화여대 함인희 교수(39·사회학)는 “이번 위기가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 일깨우고 가족끼리 마음의 벽을 허무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 ‘고졸 대통령’ 해리 트루먼(미국의 대통령 문화:8)

    ◎냉전속 국제질서 이끈 위대한 지도자/전후 서유럽 부흥위해 ‘마샬 플랜’ 강력 추진/일에 원폭 투하·맥아더 해임 등 결단력 돋보여/한국에선 “한반도 분단 책임자” 시선 곱지 않아 【인디펜던스(미 미주리주)=나윤도 특파원】 “그는 보통사람이 위대해 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였습니다.그리고 대통령도 일반 시민일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 주었습니다” 1972년 12월26일 88세를 일기로 서거한 미국의 33대 대통령 해리 트루만의 조사(조사) 마지막 부분을 컬럼니스트 메리 맥그로리는 이렇게 끝 맺었다. 원폭투하라는 인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했고 2차대전후 극렬한 대립을 보인 민주진영과 공산진영 양극의 한 정점에서 냉전의 국제질서를 강력하게 이끌었던 트루만 대통령은 민주주의 수호와 대통력직의 권위를 지키기 위한 결단력을 보여준 지도자란 평가를 받고있다.그러나 인간적인 측면에서는 가장 서민적인 ‘보통사람’대통령으로 꼽힌다. 45년 4월12일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이 4선 취임 80여일만에 숙환으로 급서,당시 부통령으로서 트루만이 대통령직을 승계하게 됐을 때 미 언론들 대부분은 루즈벨트의 큰 자리를 트루만이 어떻게 채울 수 있을까 우려했다.왜냐하면 트루만은 당초 민주당내 부통령 지명과정에서 최적의 인물로 선택된 것이 아니라 좌파 헨리 월리스와 보수파 제임스 번즈의 각축 중에 중도파로 있다 어부지리로 부통령 자리를 얻었기 때문이었다. 두차례의 상원의원을 지내면서 2차대전중 수십억달러의 국방예산낭비 조사를 위한 소위원회의 위원장을 맡을 당시 차분하고 공정한 업무처리로 인정받았던 그는 3차투표까지 간 부통령 지명전에서 막판에 루즈벨트로부터 제의를 받았을 때 정중히 사양했으나 거듭된 간곡한 부탁에 가까스로 응했다. 국민들이 우려를 나타낸 또 한가지 이유는 그가 20세기 미대통령 가운데 유일한 ‘고졸대통령’이라는 점이었다.과거 무학 대통령들의 입지전적인 스토리들이 있기는 했으나 20세기들어서는 직전의 루즈벨트가 하버드 출신인 것을 비롯,스탠퍼드 출신의 후버,프린스턴의 윌슨,예일의 태프트 등과 같이 최고의 학력이 대통령의 필수조건처럼 돼있었다. 그러나 막상 대통령으로서의 트루만은 어떤 명문대학 출신 못지 않은 업무수행능력을 보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2차대전 이후 새로운 전후질서 형성과정에서 미국을 부동의 지도국 위치에 올려놓았고 국내적인 안정도 가져와 라이딩스의 대통령 랭킹에 따르면 조사 각분야에서 상위를 기록,41명중 종합 7위로 나타났다. 2차대전 막바지 대통령직에 오른 그에게는 전쟁의 마무리가 가장 큰 임무였다.독일은 5월초 무조건 항복을 했으나 일본이 문제였다.45년 2월 맥아더 장군의 마닐라점령을 계기로 연합군이 승기는 잡았으나 일본군이 완강히 저항하고 있었기 때문에 일본 본토상륙이 불가피한 시점이었다.그러나 그를 위해서는 100만명의 인명손실이 예상되고 있었다.따라서 때마침 실험에 성공한 원자탄이 자연스레 그 대안으로 부상했으며 트루만은 그해 8월6일과 9일 두차례에 걸쳐 일본에 원폭을 투하하라는 가장 고독한 결정을 내려야 했다. 더우기 소련의 공산주의 팽창 야욕에 맞서 그는 외교안보적으로는 공산세력의 침투로부터 자유민주주의의 수호했다는 평가를 받는 ‘트루만독트린’을,경제적으로는 전후 피폐해진 서부유럽국가들의 부흥을 위한 대대적 경제원조인 ‘마샬플랜’을 강력히 추진했다. 이같은 그의 강공은 소련의 베를린봉쇄를 가져왔고,유엔 설립을 위한 대서양헌장 채택,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탄생 등 냉전체제의 골격을 완성시켰다.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국가안전보장법을 제정해 국방부와 CIA를 창설했다. 그러나 국내적으로 취임초기 물가상승과 노동자들의 파업으로 인한 사회불안이 높아져 46년의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압승,여소야대 정국이 초래됐다.48년 마샬플랜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미국내 반대세력이 늘어갔으며 또한 민주당내 분열이 심화돼 언론들 대부분은 그해 말 대통령선거에서 공화당의 토마스 듀이 후보가 당선할 것이라고 예측했다.그러나 트루만은 유명한 3만마일 역전유세를 통해 유권자에 직접 호소,재선할 수 있었다. 재선후 트루만은 농민보조금 제공,의무적 건강보험 실시 등 새로운 사회개혁정책을 시도했다.이 정책은 “모든 집단과 모든 개인은 정부로부터 공정한 대우(Fair Deal)를 받을 권리가 있다”는 그의 연설에서 ‘페어 딜’정책으로 명명됐다.그러나 일련의 개혁정책들은 의회내 보수파들에 의해 대부분 묵살돼 이렇다할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한편 한국전쟁을 둘러싸고 당시 연합군 사령관인 더글러스 맥아더가 중국군대의 개입을 저지하고자 만주에 원폭투하를 요청하면서 트루만과 공공연히 맞섰는데,이에 그는 맥아더 사령관을 전격 해임해 대통령직 권위에 대한 도전에 단호히 대처했다.한국쪽에서 볼 때에는 한반도 분단의 책임이 있는 당사자라 곱지 않은 시선이 있다.당시 국민적 영웅으로 칭송되던 맥아더의 해임은 여론의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켰으나 결국 의회의 동의를 얻어냈다. 그러나 미국민들에게 남아 있는 트루만은 정치적 업적보다도 그의 인간됨이다.미주리주 인디펜던스 소읍을 둘러싸고 청년농부 트루만과 후에 퍼스트레디가 된 읍내 소녀 엘리자베스 월리스(베스라는 애칭으로 불렀음)와의 사랑이야기는 ‘아메리칸 러브스토리’로 남아 있다.그가 그녀에게평생을 쓴 1천600통의 사랑의 편지는 지금도 젊은이들의 연애편지로 읽히고 있다. 그는 52년 퇴임후 20년 동안 고향 미주리주 인디펜던스에서 보여준 보통사람으로서의 삶 때문에 후세에 더욱 높은 인기도를 유지하고 있다.고향집으로 돌아온 그는 1마일쯤 떨어진 트루만도서관의 사무실로 매일 걸어서 출근했으며 강의와 회고록 집필 등으로 바쁜 나날을 보냈다.특히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와 동네사람들,옛친구들과 함께 어울려 여생을 보내던 그가 가장 불편해 했던 것은 63년 케네디 암살 이후 통과된 전직대통령 경호법에 의해 경호팀이 집부근에 상주하면서 활동에 제약을 받게된 일일 정도로 그는 완벽하게 보통사람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인디펜던스의 그의 사저 일대는 역사공원으로 지정돼 있으며 인근의 언덕위에 높게 자리잡은 트루만도서관과 함께 보통사람 대통령의 체취를 느끼려는 관광객과 학생들의 행렬이 끊이지 않고 있다. ◎랜드 스웰 트루먼 대통령 도서관 자료담당관/퇴임후 평범한 삶 후세에 귀감/한국 좋아해 고려청자 현관에 보관/어머니에 배운 피아노 연주 수준급 【인디펜던스(미 미주리주)=나윤도 특파원】 미주리주 캔자스시티 옆의 소읍인 인디펜던스시 북부의 언덕위에 넓게 위치한 트루만도서관은 냉전 초기의 역사에 관한 기록들로 가득 차 있다.이 도서관의 랜드 스웰 자료담당관은 “트루만대통령은 많은 정치적 업적에도 불구하고 그 인간적인 측면이 더 부각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트루만 대통령이 높은 인기도를 유지하는 이유는. ▲가장 중요한 시기에 가장 중요한 결정을 내린 지도자로서 결단력과 대통령직을 마친 후 평범한 이웃으로 다시 돌아온 점이다.대통령이 살던 집으로 돌아와 그 집에서 살다 죽은 예는 흔치 않다. ­대통령 퇴임후의 생활은 어땠는가. ▲인디펜던스 읍내 노스 델라웨어 스트리트 219번지 자택은 원래 트루만의 부인 베스 트루만의 집으로 1919년 결혼후 줄곧 이 집에서 살아왔다.그는 퇴임후 강연과 저술로 바쁜 나날을 보냈다.59년 입법 후에야 전직대통령에 대한 연금이 지급됐기 때문에 그 전까지는 생활비를 벌어야 했다. ­도서관의 특별한 활동은. ▲95년부터 그의 ‘50주년 행사’를 계속해오고 있다.지난해는 트루만독트린 50주년 세미나및 전시회를 가졌고 올해는 이스라엘 건국 50주년,99년에는 NATO 50주년,2000년에는 한국전쟁 50주년 행사를 가질 예정이다. ­한국인들은 트루만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그의 한국에 대한 인상은 어떤 것이었나. ▲공산주의 저지의 최후 보루로 인식했기 때문에 남침 즉시 유엔 결의를 기다릴 것 없이 미군의 참전을 명했다.다만 한국전쟁때 마샬플랜에 더 열중하고 있었기 때문에 다소 소극적이었던 것은 사실이다.그러나 개인적으로 한국을 좋아했다.46년 한국 교육계대표 장이욱 박사로부터 선사받은 고려청자가 현관에 보관돼 있는데 의 위치는 그가 잡은 것이다. ­그의 피아노를 잘 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어머니에게 배운 것이 수준급에 달해 45년 포츠담회담때 처칠과 스탈린 앞에서 연주했고 케네디 취임식때도 연주했다.트루만이 백악관 당시 즐겨 치던 피아노가 닉슨 대통령의 기증으로 전시관에 진열돼 있다.
  • 기로에 선 해외 유학생

    ◎학비 부담에 U턴 급증… 국내 대학 편입 문 좁아/총 13만여명중 10% 이상 이미 귀국/올해 편입 경쟁률 100 대 1 넘어설듯 94년 지방대를 다니다 미국 켄터키주립대에 유학했던 김모군(23)은 지난 해 12월 중순 3학년까지만 마친 채 귀국했다.환율급등과 부친의 사업부진으로 등록금 8천달러,생활비 1만2천달러 등 연간 2만달러에 이르는 학비를 더 이상 감당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김군은 다음달 초로 예정된 4년제 대학 편입시험을 준비 중인 김군은 “영어시험만을 보는 학교 가운데 이름 있는 대학을 골라 편입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95년 지방대학 2학년을 마치고 미국 캘리포니아로 유학갔던 박모양(23·경기 성남시 분당구)도 지난 연말 귀국했다.월 1백여만원 가량이던 송금액이 지난 해 11월부터 2백만원 이상으로 뛰자 급히 돌아왔다.박양은 서울 Y대학 학사 편입 시험을 준비 중이다. 경제난과 환율급등으로 해외유학을 중도에 포기하고 돌아온 학생들이 급증하고 있다.외국 유학생은 96년말 현재 13만3천명이다.이는 외국 주재 우리 대사관이나영사관에 신고한 수치로 실제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구체적인 통계는 잡히지 않고 있지만 이들 가운데 최소 10% 이상은 이미 귀국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귀국학생 대부분은 국내 대학의 2,3학년으로 입학하는 일반편입으로 몰릴 전망이다.경제사정으로 미루어 한동안은 외국 대학에 복학할 가능성이 희박한데다 상당수 대학들이 다음달 초 실시하는 편입시험에서 영어만을 시험과목으로 채택,‘국내파’보다 크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올 1학기 전국 대학의 편입정원은 5만여명이다.1·2학기 합해 5만명이었던 지난 해보다 2배가량 많다. 따라서 귀국학생이 마음만 먹는다면 웬만한 대학에 편입하는데 어려움이 없을 만큼 입학의 문은 넓다. 하지만 대부분 학생들이 갑자기 귀국해 시험 준비에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때문에 연세대 고려대 성균관대 한양대 등 국어나 논술,수학시험 등을 보는 대학보다는 한국외대 중앙대 건국대 동국대 단국대 홍익대 등과 연세대 원주캠퍼스,이화여대·숙명여대 인문계열 등 영어로만 뽑는 대학을선호하고 있다. 한국외대 관계자는 “하루에 걸려 오는 수백통의 문의전화 가운데 80%가 외국유학생 출신들로 대부분 유학경력에 따른 특혜가 있는지를 묻고 있다”면서 “유학생 출신들의 지원으로 올해 경쟁률은 지난해 2학년 78대 1,3학년 28대 1보다도 더욱 높아져 100대 1을 웃돌 수도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407명을 뽑는 연세대에는 전형방법과 학과별 모집인원 등을 묻는 전화가 하루 1천여통에 이르고 있으며 이 가운데 40%가 외국에서 돌아온 학생들이다. 편입 붐으로 편입시험 전문학원도 IMF한파 속에 대목을 만났다.한국대학편입학원에는 지난 해에는 유학생 출신들의 문의전화가 한달 평균 1∼2통에 그쳤으나 최근에는 하루에 10여통이 넘고 수강생도 크게 늘었다.
  • 프랑스 실업자들의 파워/김병헌 파리 특파원(오늘의 눈)

    세계가 연말연시 분위기로 들떠 있던 지난해 12월초 프랑스의 남쪽 항구도시 마르세이유에서 실업자들의 시위가 있었다.수백명 만이 참가,규모는 작았지만 연말 화제거리가 됐다.연말을 맞아 실업자들에게도 1인당 3천프랑의 크리스마스 보너스를 지급해 달라고 요구했기 때문이다.물론 실업수당을 1천500프랑 인상하고 최저생활비 지급 대상을 25세 이하 젊은 실업자들에게까지 확대 적용하라는 다른 요구도 있었다. 의사,경찰,공무원들까지 시위를 벌이는 ‘시위의 천국’ 프랑스에서 누구라고 시위를 하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실업자들까지 그것도 크리스마스 보너스 지급 요구를 위해 시위에 나선 것은 하나의 해프닝이라 할 수 밖에 없다.그러나 실소를 자아내게까지 했던 이들의 시위는 새해들면서 어느 시위보다 심각하면서도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실업보험급여기관 사무실을 점거하는 등 이들의 실력행사가 프랑스 전역으로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전국의 636개 실업보험급여기관 시무실중 이미 26개 사무실이 실업자들에게 강제로 점거된 상태다.7일에는 노동총동맹 등 실업자노조 단체들이 파리를 비롯 전국에서 조직적인 대규모 시위까지 벌였다. 리오넬 조스팽 총리의 좌파정부는 실업자 시위가 확산되자 5억프랑(약 1천3백억원)을 실업자 전직교육을 위해 내놓겠다고 발표했다.실업자들은 정부의조치가 미흡하다며 막무가내다.실력행사까지 할 명분이 있느냐고 따지는 이도 없다.프랑스 국민들 모두가 이를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일까. 프랑스는 3백11만명이 실업자로 공식 등록돼 있으며 이중 36%에 해당하는 1백11만명은 1년 이상 장기실업 상태다.이처럼 실업의 문제가 심각하고 실업자들의 입장에서도 앞날이 캄캄하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들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는 여지가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IMF 한파로 월급과 보너스가 대폭 깎이더라도 직장에 붙어있다는 사실을 다행으로 여기고 회사에서 내몰려도 말한마디 못하고 실업을 능력부족으로 치부하는 우리의 현실을 들으면 이들은 뭐라고 말할까.우리가 오히려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쯤으로 비춰질지도 모르는 일이다.세상은 참 넓다는 생각이다.
  • 단칸방 시댁식구 동거/남편에 가정파탄 책임(조약돌)

    ○…서울가정법원 항소부(재판장 박준수 부장판사)는 3일 김모씨(42·여)가 단칸방에 시댁식구들을 불러들여 정상적인 부부관계를 어렵게 했다는 이유를 들어 남편 이모씨(42)를 상대로 낸 이혼 및 위자료 청구소송에서 “두사람은 이혼하고 남편 이씨는 부인 김씨에게 1천만원을 지급하라”고 원고승소 판결.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남편 이씨가 동생이 모시던 어머니와 시댁식구들을 단칸방으로 불러들여 부인이 부엌바닥에서 자게 하는 등 부부생활을 어렵게 한 책임이 있다”면서 “비록 부인 김씨가 생활비를 주지 않는다고 부부관계를 거절하는 등 관계를 악화시킨 측면도 있지만 가정파탄의 주된 책임은 남편에게 있다”고 밝혔다. 94년 말 결혼한 부인 김씨는 남편이 96년 2월에 어머니,8월에는 누나를 단칸방으로 불러들이자 부부싸움을 계속한 끝에 소송을 제기.
  • “이대로 주저앉나” 극도의 위기감/은행 환전창구 표정

    ◎송금 고객 “유학간 딸 귀국시켜야겠다” ]원화의 달러환율이 연일 치솟아 11일 1천7백원을 돌파하자 정책당국자와 은행관계자,기업,일반수요자들은 ‘외환시장이 붕괴되고 있다’는 위기감을 감추지 못하고 침통해 했다. ○…한 외환시장 관계자는 “더 이상 환율 예측이 불가능하며 달러당 2천원을 넘어 서는 것은 시간 문제”라며 “이제는 정부가 직접 나서 외국에서 외화를 구해 공급하는 길밖에 없다”고 망연자실. ○…이날 상오 10시쯤 조흥은행 김포공항지점은 1달러당 1천700원을 넘어서자 한사람당 환전금액을 3천달러에서 500달러로 제한.이날 하룻동안 은행을 찾은 환전자들도 평소의 30% 수준인 40여명에 그쳤다. ○…하루 평균 20∼30명의 환전객이 찾던 외환은행 명동지점에는 이날 손님들의 발길이 뚝 끊겨 ‘숨겨진 달러 모으기’ 차원에서 동전 등 소액 달러를 들고온 손님 10여명만이 객장을 찾았다. 서성준대리는 “여행 등을 위해 달러를 바꾸는 사람은 물론 해외 자녀들에게 학비·생활비를 송금하는 고객도 찾기 힘들다”고 말했다.○…캐나다에 유학중인 딸에게 학비를 부치러 이날 외환은행을 찾은 회사원 이모씨(54)는 “올 여름까지만 해도 한달에 1백만원 정도를 송금했으나 오늘은 1백70만원이 들었다”면서 “더이상 학비를 부담할 수 없어 4학년이 되는 딸을 내년초에 일단 귀국시킬 생각”이라고 털어놨다. ○…엔화를 공항에서 원화로 바꾸던 한 일본인 관광객은 “일본에서 출국할 때 미처 이 정도로 원화가치가 떨어진 줄은 몰랐다“면서 “10만엔을 바꾸면서 막연히 70만원를 예상했으나 1백30여만원이나 됐다”고 말했다.
  • 국방부,20% 저축 더하기/경기대,내년 등록금 동결

    ◎경제난 극복운동 확산 우리 경제를 살리기 위한 자발적인 운동이 행정부처와 각계 각층으로 확산되고 있다. 국방부는 7일 ‘20% 저축 더 하기’ 등 근검·절약 생활화 운동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사병을 제외한 장교 하사관 군무원 등에게 생활비의 20%를 절약,‘경제난 극복 통장’을 만들도록 지시했다. 경기대는 경제난에 따른 학부모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98학년도 등록금을 지난해와 같은 수준으로 동결하기로 했다. 손종국 총장은 6일 긴급 교무회의를 열어 이같이 밝히고 “내년도 학사 운영에 필요한 예산을 동결하고 물가인상에 따른 부족 예산은 학교 전체의 절약 운동으로 메워 나가겠다”고 덧붙혔다.
  • 절약 이렇게(경제위기 극복/우리 모두 나서자:10·끝)

    ◎신용카드 없애고 가계부 쓴다/백화점 가는 대신 할인매장 이용/해외여행·외국승용차 구입 취소/담배·음료도 외제 대신 국산 구입/자가용 운행 억제로 생활비 절감 회사원 문희정씨(30·삼성전관)는 지난 2일 자신이 갖고 있던 3장의 신용카드를 모두 없애 버렸다.최악의 경제난을 헤쳐나가려면 충동구매나 과다구매로 이어지기 쉬운 신용카드를 없애는게 우선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자가용승용차도 특별한 날이 아니면 집에 그냥 세워둘 계획이다. 대학생 강태선양(23·숭실대 4년)은 지난 1일부터 용돈의 사용처를 꼼꼼히 메모를 한다.아르바이트를 하는 강양은 “메모를 하면서 따져보니 오락성경비 등을 줄이면 용돈을 30% 이상 줄일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회사원 이모씨(29·서울 동작구 사당동)는 지난달 말 정기휴가를 내 중국을 여행하려던 계획을 취소했다.그는 “5년전부터 매년 휴가 때마다 해외여행을 했지만 환율이 엄청나게 뛴데다 어려운 국가경제를 감안해 내년으로 미뤘다”고 설명했다. 경제위기를 이겨내려는 시민들의 ‘작은 지혜’는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내핍의 고통쯤은 감수하겠다는 자세다.이른바 ‘아나바다’(아껴쓰고 나눠쓰고 바꿔쓰고 다시쓰자) 운동도 사회 각계로 급속히 확산돼 가고 있다. 지난달 독일제 벤츠승용차를 사기로 계약했던 김종진씨(45·레저사업체운영)는 지난 3일 해약했다.“어려운 경제와 주위의 시선을 생각하니 차마비싼 외제차를 새로 살 수가 없었다”고 털어놨다.서울 강남의 수입자동차판매업체 P사 관계자는 “최근들어 해약이 잇따라 업종전환을 고려중”이라고 말했다. 절약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백화점이나 수입품전문상점의 매출은 준 반면 할인매장의 매출은 증가했다. 수입상품이나 외국에 로열티를 주는 제품은 사소한 것이라도 사지 않겠다는 사람들도 크게 늘고 있다. 대형 할인매장인 킴스클럽의 판촉계장 박찬규씨(30)는 “19개 전국 지점에서 매상이 5% 정도 늘었다”면서 “외형상으로는 소폭이지만 시중백화점의 매상이 60∼70% 정도로 뚝 떨어진 점을 감안하면 엄청난 매출 증가”라고 전했다. 회사원 이준영씨(30)는“줄곧 미제 담배를 피워왔지만 얼마전부터 국산담배로 바꾸었다”면서 “주스 한 병을 사더라도 순수 국산품만을 골라 사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 기관의 절약운동도 본격화됐다.대검찰청은 지난 2일 전국 52개 지검·지청에 청사의 전기와 수돗물 등 물자를 절약하라는 긴급공문을 내려보냈다.대검은 청사의 실내온도를 평소보다 1∼2도 가량 낮추고 2개짜리 실내등은 한쪽만을 사용토록 했다. 검사들은 회식때 양주 대신 국산 술을 마시고 자가용 출·퇴근도 자제키로 했다.
  • 무분별 유학­연수(경제위기 극복/우리 모두 나서자:9)

    ◎월 400만원 해외유학 가야하나/미 유학생 33%가 한달 250만원이상 써/매년 급증… 여행수지적자의 절반 차지/최근 초·중등생 어학연수 붐… “지탄 대상” 무용가 지망생인 중3짜리 외동딸을 올초 미국 시카고로 유학보낸 L씨(42·성남시 분당구)는 매달 생활비 2백만원과 교육비 1백만원 등 3백만원 가량을 보내고 있다.“가계에 부담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한국에있을 때는 레슨비를 포함,한 달에 5백만원이 들었기 때문에 오히려 싸게 드는 편”이라고 말한다. 최근 한 채용정보업체가 미국 유학생 771명을 대상으로 학비 및 생활비를 조사한 결과 33.5%가 월 평균 2백50만∼4백만원(연 3만∼5만달러)을 쓴다고 응답했다.한달에 4백만원 이상을 쓰는 ‘부유층’ 학생도 3.6%나 되는 등 불황에도 불구하고 유학생들의 씀씀이는 헤픈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의 여행수지 적자 26억달러 가운데 유학 및 연수비용은 11억달러를 차지했다.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해외유학생은 13만3천여명이다.94년에는 9만5천명,95년에는 10만6천여명 등으로 해마다증가추세에 있다. 고졸 이하의 조기 유학자도 1천5백여명은 족히 될 것이라는 것이 교육당국의 잠정집계다.현행법은 국내외 주요 발표회에서 우수상을 받은 예능계 학생이나 특수국가기술자격자를 제외한 고졸 미만의 해외유학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 모두가 탈법을 자행하고 있는 셈이다. 방학을 이용한 초·중등학생의 어학연수도 올들어 더욱 늘어 여행수지 적자에 한 몫을 했다.이들이 여행사에 내는 돈은 2백50만원 이상이다.대개 3주 과정에 하루 2∼3시간씩 영어공부를 한다고 하지만 대부분 관광 프로그램으로 짜여져 있다. 지난해 6월 초·중등학생 나이인 6∼15세 출국자는 4천427명이었다.그러나 방학기간인 7,8월에는 5만301명과 4만8천782명으로 급중했다.겨울방학때도 7만5천명 가량이 출국했다. 교육부 재외동포교육담당 노일숙 과장은 “나라 경제도 어려운데 법적 규제를 어겨가면서까지 조기유학을 보내는 것은 지탄받아 마땅하다”고 말했다. 교육당국은 환율이 치솟고 외화낭비를 줄이자는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유학·연수바람도 수그러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공무원들의 명분없는 해외근무와 연수도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정부조직 개편 등과 관련해 현재 해외에서 떠도는 공무원(인공위성)은 1천명이 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지역별로 차이가 있지만 이들에게는 월 4천500달러 정도가 지급된다.이들 가운데는 현지 사람들은 쳐다 보지도 못하는 비싼 사립학교에 자녀를 보내고,고급 주택에 사는 공무원들도 적지 않아 빈축을 사고 있다.
  • 21세기 한국의 비전과 교육­정책위의장과의 토론­Ⅱ

    ◎서울신문사 주최­3당 대선후보 초청강연회 ▲이해귀 의장=당의 기본 생각은 사학진흥법을 제정한다는 것이다.내용에 재정의 10% 지원이 포함돼 있다.어떤 방법으로든지 사립대 육성 차원에서 몇 %로 못박을수 없지만 좌우지간 검토하고 있다. 세제지원의 경우,원칙이 국·공립은 물론 사립대와 지방대를 지원하겠다는게 실천 약속으로 걸고 있다.국·공립 학교와 동일 체계로 해달라는 요구에 대해서는 그런 정신하에서 검토하겠다. 지방대 육성문제에 대해 이대순총장이 말했지만 지방대 육성을 주요 실천공약으로 내걸고 있다.여러 가지로 지방대 육성을 위한 기반을 조성하면서 집권하면 근본적으로 우리나라의 모든 기능을 재배치하겠다.재정지원·교수지원·취업·인재활용 등 모든 차원에서 지방대 육성방안을 마련하겠다. ○전교조 원칙론에 찬성 전문대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관련,본질적인 병폐 가운데 하나가 학벌 위주이다.이제 능력 위주로 가야 한다.외형보다는 내용·실력이 중심이 돼야 한다.이런 면에서 전문대도 능력위주으로 가야 한다.다양화 정보화 사회에서 전문대의 존재 필요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 강제 보충수업은 윈칙적으로 폐지돼야 한다.사교육비·불법 과외를 줄이는 현실적 문제와 결부해 당장 폐지하겠다는 대답은 곤란하다.불법·과대 과외는 5년내 해결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갖고 있다. 보충수업 문제는 어린이들의 자율성·창의성을 억누르는,새로운 시대정신과 맞지 않는 것인 만큼 진지하게 검토하겠다. 교육재정은 투명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하다.깨끗한 정부·깨끗한 정치.모든 면에서 반드시 밝고 투명한 사회 구축이 큰 방향이다.교육예산에서도 유념하겠다. 교육개혁은 학생·학부모 즉 수요자가 참여하는 진정한 밑으로부터 개혁을 해야 한다는 말에 동감한다.대통령 직속에 교육개혁추진단을 만들겠다고 했지만 이는 위로부터 한다는 것이 아니고 추진력·공정성 차원에서 대통령 직속에 둔다는 취지이다. 전교조 문제에 대해서는 이미 말한 바와 같다.민주적 방향으로는 원칙적으로 맞다.그러나 우리 문화,선생님을 존경하는 사회적 시각에 있어 당장에는 문제가 있다.우리당에서는 아직도 유보적이다. 한자교육에 대한 공약은 아직 안걸었지만 개인적으로 생각할 때 한자교육의 제한은 문제 있다.한자교육을 확대하는 쪽으로 하겠다. 입시는 대학 자율에 맡기려 한다.수능과 내신을 어떤 비율로 반영하는가를 대학에 일임하려고 한다.한번 보면 그 사람의 평가니까 꼭 그 해에 한해 활용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2∼3차례 기회를 주는 것은 대학 자율에 맡긴다. 우리 당의 기본방침은 대학 입시로부터 과외로부터 얽매인 중·고교 교육을 해방시키는 것이다. ▲김원길 의장=사립대의 재정지원에 대해 운영비의 10∼15%를 지원할 수 있어야 한다.세제혜택 등 간접 지원도 있어야 한다.사학진흥법이 바로 이 내용이다.이는 기부금입학제가 아니다.기여입학제는 장기적으로 고려하겠지만 선거에 임하는 시점에서 우리 교육풍토상 시기상조라고 생각한다. 사립대학의 자율성 제고를 위해 법인이사 취임을 보고제로 바꾸는 것은 자율성 확대되면 그렇게 될 것이다. ○과외 대체효과 적을것 개혁추진방향에서 하향식으로 잘못돼 있다.교육주체인 교사·학부모·학생의 참여가 없는 것 아니냐는 지적은 옳다.한국의 시민사회 형성과정에서 가장 뒤진 부분이 교육이 아닌가 생각한다.교육시민운동 조직이라든지 교육시민단체의 교육정책 참여를 제도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민간운동지원에 관한 법률을 만들려고 한다.그렇게 할 때 진정한 의미의 교육개혁과 함께 민주화 이룰수 있다. 방과후 강제보충수업은 공교육의 정상화로 없애야 한다.강제 보충수업 또는 강제 자율수업이 학원에 가고 과외 받는 것 보다 대체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다.보충수업은 궁극적으로 없어져야 하지만 과외를 없앤다는 차원에서 금년이나 내년까지는 과도기적으로 인정할 수도 있다. 전교조는 요즘 돈봉투 사건·열린 교육 등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하지만 아직도 국민정서의 상당한 부분이 따라오지 못해 노동단체로서 보다는 교원단체가 되어야 한다.차후에 국제노동기구 기준에 따라 전교조가 합법화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지방대학의 육성에 있어 학생 1명을 서울로 보내면 1년에 학비·생활비를 합치면 2천만원이든다.1만명을 보내면 2천억이다.경제면에서 심각하다.농촌의 전망은 어둡다.이는 농촌에 일을 해낼수 있는 인재가 없기 때문이다.이제 지방도 장기화되면 농촌처럼 인재 부족으로 아무 일도 못하는 현상이 올것이다.그런 면에서 인재지역할당제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수능시험은 기본적으로 대학 자율에 맡기겠다고 했지만 미국 SAT처럼 아주 자유롭게 2∼3차례 시험을 보고 좋은 성적을 반영하는 제도는 적극 환영할 만 하다.하루의 시험에다 그것도 자기가 원하는 곳도 아닌 상태에서 한번의 시험으로 모두 결정한다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 ▲한이헌 의장=사립대 지원을 법제화할 때 모법을 만들고 시행령을 만드는 방법이 있다.또 법에서 어느 수준까지 지원할 수 있다는 훈시적 규정을 두고 시행령을 만드는 방법도 있다.당은 훈시적 규정이라도 두고 시행령에 규정하는 방법으로 의견을 모으고 있다. 세제지원은 국·공립대와 같은 수준으로 지원하는데 내부적으로 의견 일치를 봤다. 자율성 제고와 관련,임원 취임에 대해 교육부의 승인 취소를 제안했는데 당연하다.교육부가 승인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통보로써 족하다.보고라는 것도 적합하지 않다.보고는 대학과 교육부 사이의 권위적 관계를 전제로 한 것이다.전문대의 신설 보다 내실화에 힘을 실어야 한다는 제안에 전적으로 공감한다.사학진흥법은 재정 지원과 자율성 보장이라는 양대 정신을 담아야 한다.인재할당제 이외에 지역학생이 그 지역 대학에 입학할 때 학비 일부 또는 세제를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누가 정권 잡더라도 시행해 볼 만하다.강제 보충수업제도는 용어를 강제보충수업이라고 한다면 당장 폐지돼야 할 것이다.돈없는 학생들은 교실에 앉아 비교적 싼 선생님의 과외를 받는 반면 부유한 아이들은 고액 과외를 하면 문제가 되니까 한꺼번에 하자고 한 것 같다.선생님과 학부모의 의견을 모아 해결해야 한다. ○전문대 내실화에 공감 예산의 투명성을 보장하고 비리를 척결하는 방안은 우리 당 후보도 말했다.하지만 학부모·학생·스승 사이에 감시체제가 상시 움직인다면 동양의 사제지간,선생님과 학부모 사이가 바람직하지못한 분위기로 흐를 것이다.이점이 걱정이다. 교육자치를 통해 교육위원회 등 지역주민이 적극 참여해서 전체 의견을 수렴하는 단계가 좋다.교육현장에 너무 뒤엉켜서 내 주장만을 하며 다툰다면 대학에서도 어려운데 초·중등학교에서는 더욱 거북스럽다.교육위에 문제를 여과하고 해결하는 장치를 생각해볼수 있다. 전교조 문제는 국민과 전교조,전교조와 정책 당국자,학부모와 전교조 사이에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한자교육은 젊은이들이 고생하겠지만 받는 것이 좋겠다.수능시험의 분산에 대해서는 교육전문가의 영역이 되겠지만 지금도 수능과외가 문제되고 있는데 2∼3차례하면 더 문제될 가능성도 있다. GNP 대비 교육재정 6% 확보는 교육세 연장,교육재정교부금 11.8%의 적정수준 인상 등을 통해 가능하다.또 정부가 직접 맡고 있는 사회간접자본즉 철도 항만 공항을 민간 또는 자치단체에서 추진할 수 있도록 하면 그만큼 재정에 도움이 될 수 있다.재정 규모에 못지 않은 각종 정부관리기금을 정비하고 채권도 발행하면 된다.문제는정부의 의지와 국민의 동의다.국민이 그 고통을 감수하지 않겠다고 하면 못한다.
  • 푸른자연을 후세에 물려주자/최광숙(발언대)

    어머니께서는 아침이면 늘 바닷가에 나가셨고 돌아오실 때는 어김없이 게,조개 등을 가득 담은 바구니를 머리에 이고 오셨다.동네 아주머니들도 농삿일 틈틈이 바닷가에 나가 각종 조개를 잡아 생활비와 자녀 학비에 보탰다. 우리들은 학교 수업이 끝나면 바닷가에 나가 물장구를 치며 신나게 놀았다.우리 마을에는 수영을 못하는 어린아이가 한명도 없었다.갯벌에서 맨몸에 진흙을 바르고 전쟁놀이를 하던 초등학교 시절,지금도 가끔 고향에 들르면 지난 날이 생각난다. 장마철이 되면 친구들과 뒷 산앞 개천에 나가 송사리 피라미 등을 잡곤했다.고향은 흙냄새가 물씬 묻어나는 어머니의 품안 바로 그것이었다.자연을 벗삼아 뛰어 놀던 그 개구쟁이 시절,그때가 그리워진다. 그러나 이제는 어디를 가보아도 옛 정취를 느낄수가 없다. 어촌은 바닷내음 대신 각종 악취가 코를 찌르고 농촌에는 그 흔하던 메뚜기 미꾸라지조차 찾아보기 어렵다. 15년전부터 오염된 환경을 되살리기 위해 조그마한 힘이 되고자 무었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친구 서너명과 함께 등산객들에게 ‘쓰레기 되 가져가기 운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지금은 한국 야생동물 환경탐조회 회원 200명을 중심으로 달마다 전국의 산과 강,바다를 찾아 자연생태계를 돌아보며 새집 달아주기.등산로 흙덮어주기운동 산불조심캠페인 등 각종 환경보전 활동을 하고 있다.이런 캠페인을 벌이다보면 어려움이 많이 따른다.교통편,숙식,야생동물 먹이 마련 등 모든 것을 자체 회비로 충당해야 했다. 탐조활동에 참가한 초등학교 어린이들이 가재나 풀벌레 등을 무섭다고 만지지도 못하는 것을 보면 격세지감을 느낀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우리들이 향유했던 자연의 모습을 되돌려 주어야 한다는 책임의식이랄까,그런 생각이 들곤한다.
  • 달러화 원화 환전 소액 늘고 거액 줄어/환율 쇼크… 대응 백태

    ◎“더 오르기전에” 유학비 등 송금 ‘부쩍’/920원 기준 관광객모집 여행사들 울상 원화에 대한 달러화의 환율이 하루가 다르게 치솟으면서 달러 환전과 해외송금이 크게 느는 등 환율급등 사태의 여파가 일반인들에게까지 확산되고 있다. 시중은행 환전창구에는 돈을 바꾸려는 사람들이 눈에 띄게 늘었고 공항을 통해 입국하는 관광객들의 선물꾸러미는 크게 줄어 들었다. 외환은행에는 지난주부터 달러화를 원화로 바꾸려는 사람들이 50% 이상 늘었다.대개 300∼500달러 가량의 소액을 환전,환율이 오른 틈을 타 환차익을 챙기려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1만달러 이상 환전은 오히려 이전보다 더 줄었다.규모가 큰 만큼 달러화가 더 오를 때까지 기다려 더 큰 차익을 챙기려고 하기 때문이다.상업은행 본점에는 평소 6∼7명에 불과하던 환전손님들이 최근 들어 1천달러이하 소액을 중심으로 15명으로 늘었다. 하루 150명의 환전 손님이 찾는 조흥은행 이태원지점에는 종전 원화와 달러화를 바꾸려는 사람들이 반반씩이었으나 요즘에는 달러를 원화로 바꿔가려는사람들의 증가세가 두드러진다. 달러화가 더 오르기 전에 해외송금을 하려는 사람들도 크게 늘었다.외환은행에서는 송금이 20% 정도 늘었다.관계자는 “당분간 환율이 오를 것으로 보고 유학중인 자녀의 학비와 생활비를 몇달치씩 미리 보내는 사례가 많다”면서 “내년초에 떠날 신혼여행에 대비해 미리 달러화로 바꿔가는 예비부부도 있다”고 귀띔했다. 해외관광을 마치고 입국하는 내국인들의 손에 든 선물꾸러미도 눈에 띄게 가벼워졌다. 세일여행사 직원은 “지난해 환율이 700∼800원일때에 비해 여행자들이 들여오는 선물값이 싸지고 양도 크게 줄었다”면서 “특히 해외에서도 여행객들이 씀씀이가 크게 줄었다는게 현지 가이드들의 말”이라고 전했다. 여행사들은 환차손 때문에 부심하고 있다.한주여행사는 환율을 920원으로 잡고 관광객들을 모집,여행경비를 받았기 때문에 손해가 막심하다.
  • 개천에서 난 ‘조선족 용’(흑룡강 7천리:10)

    ◎한때 중국 행정부·군 최고자리 올라/“30∼40년대 한족간부와 항일운동·해방전쟁 참가 정치적으로 한자리씩 감투…” 흑룡강이 가음현에 이르면 그야말로 도도한 강을 이루었다.가음하와 결렬하,오운하 등 26갈래의 지류를 품에 안아 강폭이 바다처럼 넓어지기 시작했다.강 저쪽 러시아의 바스커워가 가물가물하게 시야로 들어왔다.극동 시베리아의 대철도가 지나는 화물집산지라서 중국쪽 흑룡강 대안은 가음통상구가 되었다. 그 흑룡강에는 20만t급 화물선들이 드나들고 있다.그런데 강폭이 넓은 가음현 경내의 흑룡강은 이름 그대로 용이 살던 곳인지도 모른다.강변공원에는 ‘공룡가족’과 ‘공룡세계’ 조각품이 들어선 것을 보면 태고때 공룡이 살았던 모양이다.그래서 가음현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공룡화석 발굴지역이라는 것이다.1915년부터 지금까지 가음현 용골산에서는 모두 6마리몫의 완형 공룡화석이 발굴되었다.러시아 레닌그라드박물관과 흑룡강성박물관 등이 보관하고 있다. ○성 행정 최고간부도 배출 강변공원 입구에 세운 안내판에는 ‘중화민족은 용의 자손’이라는 글귀를 담았다.중화민족은 물론 한족을 가리키는 말이다.용의 후손들이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한족들은 뿌리깊은 용문화를 지키고 있다.음력 설날부터 보름까지는 아직도 용춤을 추고 단오날에는 용주를 타는 민족이다.그리고 용은 지고의 권력을 상징했다.임금의 옷을 용포,얼굴은 용안,앉는 의자를 용상이라 하지 않았던가.우리 민족도 용을 우러르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한족과는 비할 바가 아니다. 한족의 용은 어마어마한 권력의 상징물이다.그 권력은 타고난 것이거니와,세습이었다.그래서 여느 사람이 출세해서 높은 자리에 오르면 ‘개천에서 용이 났다’는 말을 한다.한족사회에서 조선족의 출세는 그야말로 개천에서 용이 나는 것과 다름이 없을 것이다.그런 조선족으로는 전 중앙민족사무위원회 문정일주임과 전 중국인민해방군 총후군부장 조남기상장을 꼽을수 있다.이들은 중국의 행정부와 군부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른 조선족들인 것이다. 흑룡강성에서 고위직에 올랐던 조선족중에는 전 성민족사무위원회 이민주임이 있다.그녀의 남편 진뢰는 성장이었는데,부가 항일투사였다.지금은 항일과 해방전쟁 출신의 조선족 간부들은 다 퇴직하고 새로운 조선족 세대들이 들어섰다.그러나 옛날처럼 정치적인 출세라기보다는 기술직과 전문행정직이 대부분이다.흑하시에 사는 퇴직간부 한정순씨(64)는 조선족들이 기술이나 전문직에서만 출세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예전의 조선족 간부들은 한족 간부들과 어울려 항일이나 해방전에 함께 참여한 동지이자 전우였디요.기래서리 정치적으로 길이 열려 한 자리씩을 했던거우다.요즘은 사정이 달라져 한족 틈새에서 간부를 하자면 실력이 뛰어나지 않고는 퍽 어렸습네다.개천에서 용이 나던 세월도 다 갔디요.” 그도 역시 1950년 한국전쟁 당시 한족들과 함께 중국인민지원군으로 참전한 조선족이다.평북 신의주 태생인 그는 1958년 대퇴한 이후 흑룡강성 밀산현 농업개간국에서 근무하다 1964년 흑하시 당학교로 전근했다.중학교를 졸업했으나 중국인민지원군으로 참전했던 덕분에 지식인 대접을 받았다.그러나 문화대혁명이 일어나고 아내의친척들이 남과 북에 산다는 이유로 조선간첩 누명을 썼다.당시 흑하시의 조선족 간부 13명 모두 간첩이 되었다.조선족과의 관계가 악화되어 북한도 백안시했던 때라 기쁜 소식을 말하는 ‘해보’를 통해 ‘김일성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어떻든 조선족은 연변과 같은 자치구역이 아닌 한족구역 공공직장에서 제1인자가 되기는 점점 어렵게 되었다.용은 감히 바라지도 못하고 이무기만 되어도 다행스럽게 여길 정도로 조선족 위치가 변했다.자리가 높아진다 해도 자리를 지키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다.치치하얼시에서 12년간 물자국장으로 일했던 성영석씨(58)의 회고담에는 그런 어려운 사연이 역역히 들어있다.소수민족이 다수민족 사이에서 홀로 서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만했다. “물자국 직원은 600명이나 됐드랬디요.그런데 조선족은 내 혼자였디요.내가 총경리가 되고 나서리 밑에 있는 직원들이 상급기관에 고자질하기를 밥먹듯 합데다.그때 고자질 내용이 흑룡강신문에도 났디요.시에서 전문조사단을 통해 1년동안 검사를 해봤디만 헛물만 켠꼴이 되었댔습네다.내가 청렴하게 살았는데 걸려들 것이 있을리 만무했디요.내 인물이 잘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상부에 아첨 잘한 것도 아닙네다.오로지 실력과 청렴으로 버틴 것이우다.” ○물가국장 12년간 봉직 그는 1964년에 치치하얼 물자국에 배치되어 1982년 총경리로 올라갔다.그리고 1994년까지 꼭 12년간 국장을 지냈다. 그는 당시 북한의 유일한 공과대학이었던 김책공대 출신의 기술엘리트다.흑룡강성 용강현에서 태어나 내몽골 우란하오터에서 중학교를 나온 뒤 1960년에 하얼빈공업대학에 입학했다.그런데 3학년때 북한으로 도망을 가서 김책공대에 시험을 쳤다.북한은 조선족을 무조건 받아주고 공부도 시켜주는 때라 김책대학에 들어가 매달 20원의 생활비도 받았다.김책공대를 졸업하고 잠깐 집에 들렀다가 아버지가 세상을 뜨는 바람에 중국에 주저앉아 버렸다. 오늘날 흑룡강유역에서 현직으로 활동하는 ‘개천의 용’은 겨우 두 손가락을 꼽을수 밖에 없다.막하현 기술감독국 박청천 국장(50)과 흑하시 우전국 서리희 국장(53)이 그들이다.그런 현실을 보면 기술전문분야를 파고들지 않고는 조선족중에서 ‘개천의 용’이 나올수 없다는 사실이 예견되었다.2백만 조선족을 대변할 정치적 ‘용’은 영영 나오지 않을 것인가.그 숙제는 조선족의 부단한 노력과 단결력에 달려있을 것이다.
  • 미,이민허용기준 강화/12월19일부터/미 거주 친척 보증 의무화

    ◎이민자 연방정부 빈민지원혜택 못받아 【워싱턴 AFP 연합】 미국연방이민국(INS)은 오는 12월19일부터 미국거주 친척의 초청으로 미국에 새로 이주하려는 사람들에 대한 이민허용기준을 강화한다고 20일 발표했다. 이민개혁법의 일부인 이 새로운 규정은 모든 미국 이민자는 이미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친척의 보증을 받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보증인은 미국시민권자이든 아니든 빈곤계층 수입기준(4인가족당 2만62달러)의 125%이상에 달하는 수입및 3년연속 소득세 납부실적을 갖고 있어야 하며,일정기간동안 자신이 보증한 이민자의 금융관련 의무를 책임져야 한다. 이민자들은 또 식량보조,생활비 보조금등 연방정부의 빈민지원혜택을 받을 수 없게 된다. 이민자들은 이주 5년후에는 빈민지원을 신청할 수 있지만 지원여부 결정시 보증인의 수입까지 합산,평가하기 때문에 앞으로 사실상 이민자가 빈민지원을 받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INS는 이민자가 자격이 되지 않는데도 연방정부 빈민지원을 받았을 경우 이민자를 추방하고 보증인에게 지원액을 대신 상환토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INS 관리 폴 버튜는 “그러나 오는 12월19일 이전 이민자에게는 이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 미 ‘결혼하면 세금중과’ 폐지 추진

    ◎부부합산 소득신고때 공제적고 세율 높아/“불공정·비윤리적” 공화당 세제개편 촉구 우리나라와는 달리 결혼한 사람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물리는 미국의 ‘결혼 벌금’ 세제가 ‘잘하면’ 내년부터 없어질 전망이다. 현재 미국은 두 사람이 함께 생활하면 두명이 한 사람씩 단독으로 살 때보다 생활비가 덜 들고 따라서 실수입이 더 많아지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아주 ‘과학적인’ 이유로 부부 합산소득 신고를 단독 소득신고보다 중과하는 세제를 실시하고 있다. 결혼에 벌금을 부과하는 셈인 이 연방소득세 항목은 국가적 큰 일을 벌이기 위해 되도록이면 세금을 많이 거둬야 한다는 ‘큰정부’론의 민주당이 20여년전 만들었다.입만 열면 가족의 가치를 높이 외치고 어쨋든 세금은 덜 내야 한다는 주의인 공화당이 뒤늦게 내년부터 이를 폐지하자는 법안을 내놓았다. 윤리에 맞지 않을 뿐더러 불공정하다는 것이다.같이 살되 결혼신고도 않고 소득신고도 각자 하는 커플이 이들과 똑같은 소득을 신고한 부부보다 상당한 세금 헤택을 보고 있다.이 결혼벌금중과세를 피하려면 결혼하지 않고 동거하던가,이혼해야 된다는 결론이 나온다. 예컨대 남녀가 각각 연 3만7천500달러를 버는 경우를 상정해보자.우선 과세액 공제에서 각자 단독신고하면 이 커플은 합해 1만3천100달러를 공제받지만 이들이 부부로 합산해 7만5천달러를 소득으로 신고하면 단지 부부라는 이유로 1천300달러를 ‘덜’ 공제받는다.이어 세율에서 부부는 차별적인 중과세를 당한다.미 소득세는 우리나라와 똑같이 누진세제로 혼잣몸의 단독 납세신고를 할 경우 과세액 2만4천달러까지 세율 15%가 적용되는데,부부로 소득을 신고하면 이 과세상한액의 두사람 분인 4만8천달러 대신 4만100달러까지만 15% 세율이 적용된다.15% 다음 세율은 28%.부부는 동거커플보다 이 높은 세율의 적용을 받는 과세액이 공제 및 세율 차별로 훨씬 많아 결국 단독신고 커플보다 1천391달러(1백26만원)나 세금을 더 물고 있다. 이를 모두 합하면 얼마나 될까.부부로 합산신고하는 전 5천만쌍 가운데 중산층 이상인 42%가 이런 손해를 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는데 총액은 무려 180억달러(16조원).폐기법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미국 부부들은 한국 국방예산을 웃도는 결혼벌금조의 세금을 매년 계속 물어야 한다.
  • ‘장애인 복지’ 제도보다 인식전환을/김상원(공직자의 소리)

    우리 사회에서 대부분의 장애인들이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는 거리를 다닐수 없고 지하철이나 버스 등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는 것도 거의 불가능해서 집 밖에만 나서면 외톨이가 되는 것이 현실이다. 또한 장애인 가정의 소득은 다른 가정의 절반도 안되며 장애로 인한 교통비와 의료비 등 생활비는 정상인들보다 오히려 매월 10여만원씩 더 지출된다고 한다. ○적은 소득에 더 많은 지출 한 연구기관에서 기업인들을 대상으로 장애인을 고용할 의사가 있는지 조사했더니 4% 정도만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그러나 “만일 장애인이 된다면 일할 의사가 있겠는가”라는 질문에는 91%가 “물론”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처럼 정상인들의 이기적이고 그릇된 편견 때문에 장애인은 취업은 물론 교육이나 치료 등에서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반면 장애인들은 정상인도 견디기 어려운 경쟁체제에서 “우리도 사회구성원으로서 차별도 혜택도 아닌 대등한 경쟁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해달라”고 절규하고 있다. 선진국에서는 장애인에게 고용의 차별도 없으며어디를 가나 좋은 위치에 가장 편리하게 장애인시설이 설치되어 있다.식당 극장 관청 등은 장애인 누구라도 이용할 수 있도록 되어 있고 모든 교통수단은 장애인이 우선적으로 탑승하도록 되어 있다. 사회적 약자인 장애인에 대한 복지는 자비나 시혜가 아니라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즉 몸이 불편한 사람들도 당당한 사회구성원으로서 자부심과 자긍심을 가지고 마음의 상처를 잊으면서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다.또한 장애인이 용기와 희망을 잃지 않도록 사외정의와 국민 일체화의 입장에서 정상인과 동등하게 인권을 보장하고,특히 이들의 생존을 위한 소득보장 차원에서 고용의 차별은 반드시 없어져야 한다. 장애인을 위해 제도나 법을 정비하고 편의시설을 설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장애인인데 할 수 있을까”하는 일부 국민들의 그릇된 인식의 전환이 무엇보다 선행돼야 한다. ○“할수 있을까” 선입관 배제 나라와 사회가 이만큼 발전했으면 이제 장애인과 그 가족이 겪고 있는 불편과 고통을 해소해서 이 땅에서 마음 편히 살 수 있도록 하는것이 우리 모두의 책무요 사명이다. 아울러 유엔이 발표한 장애자 10년 계획에 담긴 ‘경제불황 등의 처지에서도 장애인은 최우선적으로 고용돼야 하고 최후로 해고돼야 한다’는 내용을 외면하는 것은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우리 자존심에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사실을 깊이 각성해야 한다.〈복지부 서기관·마약관리과〉
  • “아내몰래 모은돈은 남편 재산”/서울지법 판결

    ◎비자금 5천만원 가로챈 전처에 “돌려줘라” ‘남편의 비자금에 대해 아내가 지분을 요구할 수 있나’ 서울지법 민사합의15부(재판장 장용국 부장판사)는 7일 K씨(법무사)가 전 부인 L씨를 상대로 낸 부당이득금 반환청구소송에서 “남편의 비자금은 남편의 재산”이라면서 “L씨는 5천5백만원을 돌려주라”고 원고승소 판결을 내렸다. 지난 68년 결혼한 두 사람은 K씨가 상속받은 돈을 밑천으로 70년대 초부터 사채업 등을 해 재산을 상당히 불렸다. 그러다가 88년 L씨가 친정에서 수억원의 돈을 상속받은뒤부터 뒤틀리기 시작했다.L씨가 물려받은 재산 전부를 자기 명의로 등기하자 K씨도 L씨에게 최소한의 생활비만 주는 등 불화가 깊어졌다. 둘의 감정은 뜻밖의 사건에서 폭발했다.91년 4월 딸이 미스코리아 선발대회 예선에서 탈락하자 K씨는 대회 후원사 간부에게 건넸던 로비 자금 5천5백만원을 돌려받으려다가 동석했던 L씨에게 빼앗겼다.이후 K씨는 L씨와 별거에 들어가 지난해 5월 이혼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민법상 부부가 혼인중에 자기명의로 취득한 재산은 그 사람의 재산으로 하고 있다”면서 “여기에는 부동산이나 주식,예금통장 등 뚜렷이 공시되는 것외에 금전 등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것도 포함된다”고 밝혔다.
  • 월생활비·임대주택 제공/정부 훈할머니 지원책

    정부는 훈할머니가 혈육을 찾아 한국인임이 밝혀짐에 따라 국적회복절차를 밟아 생계를 지원하는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정부는 현재 캄보디아 국적인 훈할머니가 희망할 경우,우리 국적을 갖도록 한뒤 보건복지부에 일본군 위안부피해자로 등록토록해 일시금 5백만원,매달 50만원씩을 지급하고 영구임대주택을 제공할 방침이다.또 위안부에 대한 생활안정지원법에 따라 월 16만원정도의 보조금을 주고 의료비도 면제해줄 예정이다.
  • 수원시 음식쓰레기 줄이기 최우수상 안경심 주부의 사례

    ◎‘환경 식단’으로 쓰레기 원천봉쇄/발생원인 분석… 찌꺼기 많은 탕류 피해/남은밥·반찬은 식혜·비빔­볶음밥 활용 “음식물쓰레기는 재활용도 중요하지만 남기는 음식을 최소화해야 합니다.음식물 쓰레기의 심각성을 아이들이 깨닫도록 함께 쓰레기 발생량 조사를 했지요” 최근 수원시의 음식물쓰레기 줄이기 사례발표회에서 가정부문 최우수상을 받은 안경심씨(34 수원시 장안구 송죽동 동명빌라)는 음식물 쓰레기줄이기 운동은 가정에서 부터 시작돼야 한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진 억척 주부다. 그는 우선 음식물 쓰레기 줄이기를 실천하기 앞서 집에서 배출되는 음식물 쓰레기 발생량을 알아내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남편과 아이들에게 음식물 쓰레기문제의 심각성을 알려주기 위해 함께 조사에 나섰다. “네식구인 우리집에서 이틀간 발생한 음식쓰레기는 모두 1천150g이었고 대부분 밥찌꺼기 야채 찌개 나물 등이었습니다.한국가정의 평균 음식쓰레기 발생량에는 미치치 않았지만 의외로 많다고 느꼈습니다“ 조사 결과를 토대로 매주 월요일 한주의 식단을 짰다.찌꺼기가 많이 나오는 탕류는 가급적 피하고 가족 모두 반찬을 남기지 않토록 했다. 또 구입한 식품 이름과 날짜를 냉장고에 써두어 식품이 상하는 일이 없도록 했다.배나 사과 등 과일은 씨방을 따로 모아 나중에 차로 끓였다.과일 껍질과 야채 쓰레기는 베란다에 말려 퇴비로 사용했다. 남은 반찬은 모아 두었다가 비밥밥 볶음밥등 요리에 사용하고 찬밥으로는 식혜를 만들었다. 이같은 노력으로 안씨집의 음식물쓰레기는 대폭 줄었다. 종전 20ℓ들이 쓰레기 봉투를 사흘 사용하면 고작이었는데 일주일을 사용해도 남을 정도가 됐다. 생활비도 매월 2∼3만원씩 절감됐다. “처음에는 지키기가 번거롭고 중요성도 느끼지 못했으나 10여개월 계속하다 보니 이제 완전히 생활화됐습니다” 안씨의 이같은 실험정신은 이웃들에도 확산돼 이 동네에서는 물이 흥건하게 고인 쓰레기봉투를 찾아 보기 어렵다.
  • 한보 피고인 부인도 도덕 불감증

    ◎남편 돈뭉치 상자의 출처 묻지도 않아/꺼내 주는대로 받아 생활비 등에 사용 한보 사건으로 구속기소된 피고인의 부인들은 대부분 1만원권 돈뭉치가 가득 담긴 사과상자를 건네 받고도 출처를 묻지 않고 생활비 등으로 받아 쓴 것으로 밝혀졌다. 26일 공개된 한보 사건 수사기록에 따르면 정태수 총회장으로부터 2차례에 걸쳐 2억원을 받아 징역4년을 선고받은 김우석 전 내무장관의 부인 김모씨(53)는 지난 2월 검찰 조사에서 『94년 9월 어느날 하오 9시쯤 남편과 함께 귀가한 운전기사가 사과상자 1개를 현관에 놓고 갔으며 남편이 「돈이 들어있다」고 해 열어보니 1만원권이 1백만원씩 묶여 모두 1억원이 들어 있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돈의 출처에 대해 묻지 않았느냐』는 검사의 질문에 『어디서 났는지,누구와 저녁을 먹었는지는 물어보지 않았으나 남편이 시키는 대로 쇼핑 백에 담아 안방 장롱에 보관했다가 2∼3차례에 걸쳐 1천5백만씩을 꺼내주는대로 생활비로 썼다』고 말했다. 정총회장에게 2차례에 걸쳐 4억원을 받아 징역 4년을 선고받은 신광식 전 제일은행장의 부인 강모씨(57)도 『96년 7월 어느날 저녁 남편과 함께온 낯선 사람이 사과상자 1개를 현관에 놓고 갔으며 남편은 「아무 것도 아니니 만지지 말라」며 서재로 직접 들고 갔다』고 말했다. 강씨는 『며칠뒤 청소를 하면서 몰래 뜯어보니 1만원권 돈뭉치가 있었지만 남편이 바깥 일에 대해서는 얘기하는 것을 싫어해 출처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면서 『며칠뒤 남편이 그 돈에서 딸의 혼수비용으로 1천만∼7천만원씩 4∼5차례 주었고 생활비로도 몇차례에 걸쳐 2백만원씩 타 썼다』고 말했다. 정총회장으로부터 2억원을 받아 징역 3년을 선고받은 황병태 의원의 부인 김모씨(62)도 『96년 12월 조찬 약속을 마치고 돌아온 남편이 직접 사과상자 1개를 힘겹게 들고 들어와 「돈이 들었다」며 보관하라고 해 돈을 세어 옷가방에 담았으나 돈의 출처나 사용처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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