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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대주택 8만9000가구 임대료 동결

    최근 대중교통비와 상·하수도료 등 6대 공공요금 동결 방침을 밝힌 서울시가 저소득층 전·월세 융자금 확대와 공공임대주택 임대료 동결 카드를 추가로 꺼내 들었다. 고유가·고물가에 따른 서민 경제의 어려움을 감안한 조치다.●임대 4만6000가구 난방 기본요금 감면 서울시는 공공임대주택 8만 9000여가구의 보증금과 임대료를 동결하고 4만 6000여가구의 지역난방 기본요금을 전액 감면하는 내용 등을 담은 ‘서민생활 안정대책’을 11일 발표했다. 시는 “SH공사가 관리하는 공공임대주택의 경우 올해 단지별로 2.9∼5%의 임대료 인상 요인이 발생했지만, 임대료뿐 아니라 보증금도 동결해 연간 30억원의 입주자 부담을 덜어 주기로 했다.”고 밝혔다. 또 공공임대주택의 관리방식을 7월부터 직영에서 위탁방식으로 전환, 절감되는 70억원의 관리비를 입주자 부담을 덜어주는 데 사용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공공임대주택 가운데 노원과 양천 열병합발전시설 인근의 58개 단지 4만 6471가구에 대해 8월 사용분부터 가구당 월 1670원의 지역난방 기본료를 전액 감면하고, 사회복지관 18곳에 대해서도 한 곳당 연간 249만원의 기본료를 면제해 주기로 했다. 차상위계층에 대한 임대료 지원금도 이달부터 가구당 월 1만원씩 올려 지급하고 수혜대상도 지금의 3000가구에서 3500가구로 확대한다. 저소득층 2500가구에는 고효율 조명기기를 지원하고 독거노인과 소년소녀가장 1500가구를 상대로 가구당 100만원씩 15억원을 지원해 단열시스템 보강사업을 벌일 방침이다.●재래시장 저리대출대상 9곳으로 늘려 고물가와 내수부진으로 자금압박이 큰 재래시장 영세 상인에 대한 소액 급전대출(쌈짓돈 서비스)도 확대 시행한다. 이에 따라 점포당 200만∼300만원을 연리 4.5%로 대출해 주는 저리 대출 서비스가 중랑 면목시장, 광진 중곡시장, 강서 송화시장, 금천 남문시장 등 4곳에서 모두 9곳으로 확대되고 전체 대출규모도 1억 1100만원에서 1억 5000만원으로 늘어난다. 시 관계자는 “고유가로 인한 고통은 저소득층과 에너지비용 한계계층에서 더욱 크게 느끼게 마련”이라면서 “다차원의 고강도 대책을 시행해 서민들의 생활비 부담을 대폭 덜어 주기로 했다.”고 말했다.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 임대주택 8만9000가구 임대료 동결

    최근 대중교통비와 상·하수도료 등 6대 공공요금 동결 방침을 밝힌 서울시가 저소득층 전·월세 융자금 확대와 공공임대주택 임대료 동결 카드를 추가로 꺼내 들었다. 고유가·고물가에 따른 서민 경제의 어려움을 감안한 조치다.●임대 4만6000가구 난방 기본요금 감면 서울시는 공공임대주택 8만 9000여가구의 보증금과 임대료를 동결하고 4만 6000여가구의 지역난방 기본요금을 전액 감면하는 내용 등을 담은 ‘서민생활 안정대책’을 11일 발표했다. 시는 “SH공사가 관리하는 공공임대주택의 경우 올해 단지별로 2.9∼5%의 임대료 인상 요인이 발생했지만, 임대료뿐 아니라 보증금도 동결해 연간 30억원의 입주자 부담을 덜어 주기로 했다.”고 밝혔다. 또 공공임대주택의 관리방식을 7월부터 직영에서 위탁방식으로 전환, 절감되는 70억원의 관리비를 입주자 부담을 덜어주는 데 사용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공공임대주택 가운데 노원과 양천 열병합발전시설 인근의 58개 단지 4만 6471가구에 대해 8월 사용분부터 가구당 월 1670원의 지역난방 기본료를 전액 감면하고, 사회복지관 18곳에 대해서도 한 곳당 연간 249만원의 기본료를 면제해 주기로 했다. 차상위계층에 대한 임대료 지원금도 이달부터 가구당 월 1만원씩 올려 지급하고 수혜대상도 지금의 3000가구에서 3500가구로 확대한다. 저소득층 2500가구에는 고효율 조명기기를 지원하고 독거노인과 소년소녀가장 1500가구를 상대로 가구당 100만원씩 15억원을 지원해 단열시스템 보강사업을 벌일 방침이다.●재래시장 저리대출대상 9곳으로 늘려 고물가와 내수부진으로 자금압박이 큰 재래시장 영세 상인에 대한 소액 급전대출(쌈짓돈 서비스)도 확대 시행한다. 이에 따라 점포당 200만∼300만원을 연리 4.5%로 대출해 주는 저리 대출 서비스가 중랑 면목시장, 광진 중곡시장, 강서 송화시장, 금천 남문시장 등 4곳에서 모두 9곳으로 확대되고 전체 대출규모도 1억 1100만원에서 1억 5000만원으로 늘어난다. 시 관계자는 “고유가로 인한 고통은 저소득층과 에너지비용 한계계층에서 더욱 크게 느끼게 마련”이라면서 “다차원의 고강도 대책을 시행해 서민들의 생활비 부담을 대폭 덜어 주기로 했다.”고 말했다.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 私금융 이용 128만명 빚부담 경감

    私금융 이용 128만명 빚부담 경감

    우리나라 20세 이상 성인 20명 가운데 한 명꼴인 189만명이 사금융 시장에서 고(高)금리로 고통을 받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정부는 이 가운데 대부업체에 빚을 지고 있는 128만명에 대해 제도권 금융회사의 저금리 대출로 갈아탈 수 있도록 지원하기로 했다. 연체 대출금을 부실채권 형태로 정부가 사들여 채무 재조정을 실시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정부는 3일 오후 제5차 대부업 정책협의회를 열어 이런 내용의 ‘사금융 실태조사’ 결과를 공개하고, 금융 소외자 지원방안을 논의했다. 정부 차원에서 전 국민과 사금융 이용자, 대부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것은 처음이다. 정부가 추산한 전체 사금융 시장 규모는 16조 5000억원. 등록된 대부업자만 1만 8000여명에 이른다. 올 4월 현재 사금융 이용자는 189만명으로 20세 이상 인구(3500만명)의 5.4%를 차지했다. 이 중 등록 대부업체 이용자는 49.9%에 그쳤다.17.6%는 무등록 대부업체,32.4%는 아는 사람에게 빌리고 있다. 사금융 이용자 한 사람이 빌리는 돈은 평균 873만원, 평균 대출 이자율은 연 72.2%에 달했다. 연 49% 이상이 48.1%로 가장 많고, 연 30∼49%가 33.9%, 연 30% 이하가 17.8%였다. 대출 형태는 76.0%가 개인 신용대출이었다. 이용업체 수는 평균 2곳.1곳에서 빌리는 경우가 49.5%로 가장 많고,2곳(19.4%),3곳(17.2%) 등이었다.5곳 이상에서 빌리는 이용자도 5.1%나 됐다. 상환기간은 46.3%가 3∼12개월이었지만 12.7%는 빚을 갚는 데 2년 이상 걸렸다. 이용자 중 21%는 금융채무불이행자로 등록된 경험이 있었다. 사금융 연체자는 4명에 한 명꼴인 26.4%였다.3개월 미만의 단기 연체가 46.5%로 대부분을 차지했지만 1년 이상 연체한 경우도 29.4%였다. 전체 이용자의 84%는 상환가능성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연체자 가운데 상환할 수 있다는 이용자는 36.5%에 불과했다. 한 번 연체하면 빚의 굴레에서 벗어나기가 매우 어렵다는 뜻이다. 사금융을 이용하는 목적은 가계 생활자금(47.4%)과 사업(39.6%)이 주를 이뤘다. 생활자금 중에서는 생활비(46.0%)가 많았지만 교육비(24.5%)와 병원비(14.9%) 비중도 만만치 않았다. 금융위원회는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이달 안에 금융 소외자에 대한 구체적인 지원 대상과 방법, 지원 규모, 재원조성 방안 등을 마련할 계획이다. 현재로선 대부업체 연체 채권 가운데 채권 가격이 싸고 대부업체도 매각 의사를 밝히고 있는 6개월 이상의 부실채권을 신용회복기금으로 사들이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정상적으로 대출금을 갚고 있는 이용자도 신용회복기금의 보증을 받아 제도권 금융기관의 저금리 대출로 갈아탈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할 계획이다. 대상은 사금융 이용자 가운데 아는 사람에게 빌린 32.4%를 제외한 대부업체 채무자 128만명(추정치). 금융위는 이 가운데 대출금을 3개월 이상 연체한 대출자는 34만명, 정상적으로 갚고 있는 대출자는 91만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김재천기자 patrick@seoul.co.kr
  • [30일 TV 하이라이트]

    ●60분 부모-2.0(EBS 오전 10시) 결혼 2년차,13개월 딸을 둔 김지혜·이건호 부부. 평소 가정적이고 아내와 아이에 대한 관심이 깊은 남편과 완벽주의적 성향의 아내. 결혼생활 전반에 만족도가 높은 아내와 달리 출산 후 뜸해진 부부관계에 대해 남편은 큰 아쉬움을 표현한다. 전문가에게 이 부부의 문제점과 해결책을 들어본다. ●코끼리(MBC 오후 7시45분) 핸드폰을 연분홍으로 예쁘게 꾸민 현지. 그러자 세영은 휴대전화를 진분홍으로 바꾸고 나타난다. 현지가 머리를 반묶음 하고 외출하면, 어느새 세영도 방향만 바꿔서 반묶음 머리를 하고 있다. 자꾸만 자신을 따라하는 세영이 얄밉게 느껴지는 현지. 게다가 끝까지 따라한 게 아니라고 우기는 세영 때문에 현지는 점점 더 열받는다. ●사랑과 전쟁(KBS2 오후 11시5분) 어쩌다 보수적이기 짝이 없는 영웅을 만나 결혼하게 된 천방지축 라희. 친구들과 나가 놀기 좋아하던 그녀가 하루 생활비로 몇 천 원 씩 쥐어주는 째째한 남편과 살자니 좀이 쑤신다. 오랜만에 남편 몰래 만난 친구들과 만취하도록 술을 마신 라희는 하필이면 택시기사인 남편 차에 올라타 딱 걸리고 만다. ●이영돈PD의 소비자고발(KBS1 오후 10시10분) 지난 4월18일, 미국과의 쇠고기 협상에서 수입 위생조건을 완화한 이후 현재 우리나라는 전 세계 어느 곳보다 광우병 논란이 뜨겁다. 지금까지도 안전성과 관련된 과학적 사실과 근거없는 추측이 뒤섞여 혼란과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세계적 전문가에게 미국산 쇠고기의 진실을 들어본다. ●주말(N)(YTN 오전 10시35분) 여성들 사이에서 인기몰이 중인 밸리댄스 동호회를 소개한다. 화려한 춤과 의상,S라인을 뽐내는 밸리댄스 미녀들. 심지어 벨리댄스 봉사 공연으로 뜻깊은 주말 만들기에 한창이다. 아름다운 그녀들의 매력을 느껴본다. 도심 속 주말코스로 재미있고도 안전하게 교육받을 수 있는 서울 시민안전체험관을 소개한다. ●웃음을 찾는 사람들(SBS 오후 8시50분) 웅이의 외할머니가 갑자기 위독해지면서 웅이네 가족에게 위기가 닥친다. 웅 아범과 웅 어멈의 슬프도록 웃긴 가난한 사랑의 노래를 ‘웅이 아버지’를 통해 들어본다. 요절복통 개그 ‘왕 오빠’편에서는 내시들이 왕의 연애를 돕기 위해 나섰다. 내시들이 왕에게 여자를 꼬시기 위한 노하우와 비법을 전수한다.
  • [한·중 정상회담] 이념보다 실용 중시

    이명박 대통령과 후진타오 중국 주석은 성장 배경은 다르지만 동년배이며 실용정신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는다. 두 정상의 개인적 철학이나 관심사가 같다는 점에서 어느 때보다 내실있는 회담결과를 내놓을 것으로 기대되는 부분이다. 이 대통령은 1941년생, 후 주석은 1942년생으로 비슷한 시기 유년 시절을 보냈지만 성장 배경은 무척 다르다. 이 대통령은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중학교에 입학할 때부터 과일행상, 환경미화원 등을 하며 생활비와 학비를 벌었다. 그러나 그는 타고난 부지런함과 패기로 현대건설에 입사한 지 2년도 안돼 대리로 승진,29세에 이사,35세에 최연소 CEO가 되는 ‘샐러리맨의 신화’를 남겼다. 이후 14·15대 국회의원과 서울시장을 거쳐 국가 최고지도자 자리에까지 올랐다. 이에 비해 후 주석은 중학교 때부터 엘리트 코스를 밟아 명문 칭화(靑華)대를 졸업한 후 일찌감치 ‘차세대 젊은 간부’의 일원으로 뽑혀 공산주의청년단 일원으로 덩샤오핑(鄧小平)과 후야오방(胡耀邦)의 총애를 받았다. 이어 50세 나이로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파격적으로 발탁되었고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을 중심으로 하는 7명의 최고정책결정자 중 최연소자로 권력의 중심부에 진입한 뒤 2003년 국가권력 서열 1위 자리에 올랐다. 그럼에도 두 사람의 가장 큰 특징이자 닮은 점은 이념보다는 현장과 실사구시 정신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점이다. 이 대통령은 취임과 동시에 실용주의를 주창하며 대대적인 개혁 드라이브를 걸고 나섰다. 후 주석 역시 한결 같이 ‘경제 우선주의’를 주된 통치기조로 내세우고 ‘실사구시’‘무실역행’을 중시하는 인물이다. 특히 이날 단독 및 확대 정상회담에서 후 주석은 3∼4 차례에 걸쳐 실천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빚탈출 행복찾기-김관기 채무상담실] 결혼전 빚 버거워 파산 신청하려는데…

    Q집안 사정 때문에 6000만원의 금융채무를 진 상태에서 2004년 결혼했습니다. 아이 둘이 생기고 나서 최근 시어머니가 신랑 앞으로 아파트를 한 채 증여해 저희가 여기서 살게 되었습니다. 시세는 1억 6000만원 정도이고 담보대출이 5000만원 있습니다. 신랑은 개인사업을 하고 있으며, 월 200만원 정도 생활비를 줍니다. 제가 파산신청을 하면 신랑 앞으로 집이 있고 수입이 있다는 이유로 거절당하지 않을까요. -이정숙(가명·33세) A부부 사이에서도 재산은 각자가 관리하고 부채도 각자 해결하도록 하는 것이 현대의 법원칙입니다. 부부별산제라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렇지만 원만한 가정 생활을 하고 있는 대다수 소비자는 경상적인 수입과 지출 및 재산의 취득과 처분을 부부 공동으로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비록 법적으로는 가족 구성원 개인의 활동이라고 하더라도 경제적으로는 이것들을 ‘가계’라는 단위로 통합해 인식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재정적 파탄상태를 치유하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하는 파산법은 법 형식 여하에 상관 없이 경제적인 실질을 따지는 방식으로 운용되는 것이 정상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가족이 하나의 단위로 경제생활을 하면서 재산은 일방 배우자 앞으로 취득하는 반면 다른 배우자는 금전을 빌려 가족 전부가 생활하면서 거액의 채무를 부담하게 된다면, 채무자가 채권자에게서 돈을 빌려 감추어 놓은 상황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부부별산제의 법 원칙을 들어 채무자가 자신의 채무에 관해 파산과 면책을 신청한다면 파산제도를 남용하는 것으로 보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것이 실무입니다. 그리하여 2008년 1월 이후 시행된 표준 파산면책신청서 양식에는 배우자, 부모, 자녀 명의의 1000만원 이상 재산이 있으면 이를 기재하고, 부동산인 경우에는 등기부등본과 재산세과세증명서, 인근 중개업소나 인터넷에서 확인한 적어도 2곳 이상의 시가확인서 등 시가증명자료를 첨부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지급불능 직전에 채무자가 가족 앞으로 재산을 도피하는 행위가 있었는지를 심사하는 부수적 효과도 있습니다. 그리하여 표준 양식은 나아가 재산의 취득시기가 지급이 불가능하게 된 시점으로부터 2년 이내인 경우에는 재산 취득 자금 마련 경위에 관한 소명자료(예를 들어 재산 명의자의 취득 자금에 관한 금융 거래 명세 등)를 첨부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채무가 발생한 것이 ‘가계’ 전체와 관련된 것일 경우 그것을 가계 전체적으로 해결하라는 고려일 뿐입니다. 질문하신 바와 같이 아내가 빚을 져서 남편에게 주거나 공동의 생활비를 하고 남편이 그 돈으로 또는 자신이 번 돈으로 재산을 취득한 것이 아니고, 아내가 결혼하기 이전에 발생한 채무인 것이 명백하다면 법률상 별산제의 원칙이 그대로 적용됩니다. 이같은 경우에는 ‘가계’의 책임을 물을 상황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시어머니가 증여해 준 것으로 부동산등기부에 기재되어 있다면 그것이 채무자의 노력과 전혀 관계가 없다는 점이 명백하게 증명되기 때문에 이정숙씨가 과거의 채무로부터 놓여나기 위해 파산 신청을 하는 데 전혀 지장이 되지 않습니다. 물론 표준서식에 의하면 파산신청시 배우자의 재산 이외에도 현재 올리고 있는 소득이 얼마인지를 기재하게 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채무자의 생활상황, 즉 현재 채무가 지급불능인지, 앞으로 상환 가능성이 있는지 등을 따지기 위한 참고자료일 뿐입니다. 생활비를 대야 하는 상황이라면 본인이 어느 정도 소득을 올려도 상환능력이 없다고 볼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본인의 생계비를 뺀 나머지 소득 전액을 상환할 수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지요. 가계와 상관 없이 배우자 일방이 진 빚을 다른 배우자에게 갚게 하는 일은 결코 없습니다.
  • “굶주린 아이들에 사랑의 손길을”

    이 시대에 3만 5000원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 누군가에겐 한끼 식사비일 수도, 누군가에겐 주말 데이트 비용일 수도 있다. 그리고 또 누군가에겐 한달을 지탱해 주는 생활비일 수도 있을 것이다. 24일 오후 11시40분에 방영되는 MBC 스페셜 ‘3만 5000원의 비밀’은 한달 3만 5000원의 후원금으로 1대1 결연을 맺는 방식으로 세계각국의 어린이들을 돕는 국제어린이 양육기구 ‘컴패션(Compassion)’의 활동을 조명했다. 컴패션은 한국전쟁 때 유엔군에 설교를 하기 위해 한국에 왔던 청년 에버렛 스완슨이 미국으로 돌아가 한국 고아들을 돕기 위해 만든 기구. 이 기구에는 선행 연예인으로 소문난 차인표-신애라 부부도 동참하고 있다. 지난 20일 서울 여의도 MBC 경영센터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차인표는 “먼 나라의 누군가를 후원하는 것이 아이를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렇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보내주는 것이 아이가 자라는 데 자양분이 될 거란 믿음이 있다.”고 말했다. 현재 차인표 부부가 후원하는 아이는 자그마치 30여명이다. 차인표는 “전세계적으로 기아로 고통받는 아이들이 8억 5000만명쯤 된다.”면서 “이들을 도와줄 수 있는 8억 5000만명의 후원자들을 찾아 연결해줬으면 하는 것이 지금 내가 가진 단순한 꿈’”이라고 덧붙였다. 이 프로그램은 후원 어린이를 만나기 위해 직접 에티오피아를 찾아간 차인표 부부의 여정을 함께 했다. 가난했던 지난 시절, 우리가 세계로부터 받았던 사랑의 손길을 이젠 되갚아야 할 때라는 사실을 현장취재를 통해 오롯이 담아냈다.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법정서 본 가정의 위기] (1)위기의 현장에서 희망을 읽다

    5월은 가정의 달,21일은 부부의 날이다. 하지만 갈수록 증가하는 이혼율과 부부간 재산 분쟁 등으로 가정은 위기를 맞고 있다. 법정에서는 이처럼 우리 시대 가정이 겪고 있는 다양한 위기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가정과 부부의 현 주소를 살펴보고 그 위기를 극복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시리즈를 3회에 걸쳐 연재한다. 서울 서초동 서울가정법원에서는 날마다 이혼과 양육권을 둘러싼 가사재판이 열린다. 한때 가족이라 불리던 이들이 얼굴을 붉히고 목소리를 높인다. 이때 타협점을 찾기 위한 ‘해결사’로 나서는 것이 변호사·교수 등으로 구성된 서울가정법원 가사조정위원들이다. 서울신문은 가사조정위원 5명에게 법정에서 경험한 가정의 위기와 이를 극복하는 노하우를 들어봤다. 김영희 조정위원협의회 회장과 변호사인 전세봉·김삼화 위원,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연구위원인 김병주 위원, 목동가족치료연구소 소장인 이남옥 위원 등이다. 이들은 16∼18일 제주도에서 이같은 주제로 워크숍을 갖기도 했다. ●이혼의 ‘경제학’ 2004년 결혼한 맞벌이 부부 A(35)·B(32)씨는 통장을 따로 관리했다. 생활비로 매달 100만원씩 내놓고 나머지 월급은 각자 ‘알아서’ 썼다. 싱글 때만큼 자유로워 둘 다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나자 사정이 달라졌다. 생활비가 불어나면서 통장을 합쳐야 했다. 둘째가 태어나면서 부인은 회사를 그만뒀다. 부부 싸움이 잦아졌다. 남편은 “왜 나 혼자 벌어야 하느냐.”며 짜증 냈고, 부인은 “나 혼자 아이들을 낳았느냐.”며 맞받았다. 이들은 결국 법원을 찾았다. 김삼화 위원은 “요즘은 경제적 갈등 때문에 이혼하는 부부가 많다.”면서 “불륜·폭력 등 전통적인 이혼 사유는 점차 줄고 있다.”고 설명했다. 황혼이혼에도 경제적 이유가 작용한다. 김영희 회장은 “결혼하고 20년 이상 남편을 뒷바라지하고 자녀를 키웠다면 가정주부에게 재산을 50% 분할해주는 게 추세”라고 말했다. 황혼이혼에는 부인보다는 남편이 부정적이다. 전세봉 위원은 “나이가 들수록 부인과 가정이 절실한데다 재산까지 절반을 떼줘야 하니까 이혼을 꺼릴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고부갈등 ‘노’, 장모갈등 ‘예스’ 어머니 C(58)씨는 딸(29)이 사위와 이혼하도록 소장을 대신 작성했다. 전문직에 종사하는 맞벌이 부부인데도 사위는 집안 일을 일방적으로 딸에게 미뤘다. 딸의 친정 출입이 잦다며 화도 냈다.C씨는 “똑같이 공부하고, 일하는데 왜 여자라고 업신여기느냐.”면서 “아이 낳기 전에 빨리 헤어지는 게 낫다.”고 잘라 말했다. 김영희 회장은 “일부 친정 부모는 딸의 이혼을 말리지 않고, 사위의 잘못을 하나라도 더 들추려 든다.”고 말했다. 일종의 보상심리라고 했다. 딸이 자신처럼 참고 살지 말고 당당히 제몫을 찾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이남옥 위원은 “장모는 딸이 괜찮다고 해도 ‘더 요구해야 한다.’고 밀어붙이고 그게 부부 갈등의 원인이 된다.”고 지적했다. ●부부투자는 최고의 재테크 행복한 가정을 유지하기 위한 비법은 무엇일까. 김영희 회장은 ‘부부 투자로 노후를 준비하라.’고 조언했다.“우리는 평균 수명이 90세인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자식과는 고작 30년 같이 살지만, 부부는 60년을 함께 합니다. 노후를 제대로 준비하려면 부동산·펀드가 아니라 남편·부인에게 투자하십시오. 높은 수익률이 보장될 것입니다.” 김병주 위원은 ‘가정을 부부 중심으로 바꾸라.’고 강조했다.“자녀 위주로 생활하다 보면 부부 관계가 소홀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위기가 찾아옵니다. 극단적인 사례가 바로 ‘기러기 아빠’이지요. 부부가 행복해야 자녀도 행복합니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사설] 세계 최고 생활물가론 경쟁력 없다

    한국의 생활물가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한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의 ‘세계경쟁력연감 2008’에 따르면 한국은 생활비 지수 항목에서 122.4로 55개국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 생활비 지수의 기준이 되는 미국 뉴욕(100)에서보다 상품, 서비스, 주거비를 20% 이상 비싸게 지불한다는 얘기다. 외국인들은 한국을 ‘가격은 비싼데 서비스는 보통’인 나라로 인식하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세계 100대 도시 가운데 서울의 하루 식비는 202달러로 세계적 부호들의 휴양지인 몬테카를로 다음으로 비싸다. 휘발유값은 런던 다음으로 비싸고, 커피 값은 신흥공업국 중 최고라는 조사도 있다. 물가가 비싼 만큼 다른 여건이 좋으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외국 문화에 대한 개방 정도, 노사 관계에 대한 평가, 기술분야 규제에서도 가장 낮은 평가를 받았다. 이렇게 여건이 취약한 데다 물가마저 비싼 나라가 손님을 끌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외국인 직접투자 비중은 55개국 중 54위로 바닥권을 기록했다. 아무리 정부가 ‘기업 프렌들리’를 외치며 글로벌 기업들을 유치하려 한들 세계 최고수준의 생활물가로는 싱가포르, 홍콩, 일본 등과 경쟁할 수 없다. 매력지수를 높이려면 물가의 거품부터 빼야 한다. 과도한 세금과 규제의 완화, 유통구조 개선 등 정부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적극 강구할 것을 당부한다. 근면하고 성실한 국민성,IT기반 등 탄탄한 인프라가 합리적인 생활물가와 결합한다면 ‘아시아 금융·물류 허브’의 꿈이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 “사랑의 손길로 수용자 사회복귀 도와주자”

    “사랑의 손길로 수용자 사회복귀 도와주자”

    서울신문사와 한국방송공사(KBS)가 주최하고 법무부가 후원한 제26회 교정대상 시상식이 16일 오전 11시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열렸다. 이날 시상식에는 김경한 법무부장관과 노진환 서울신문사 사장, 이원군 KBS 부사장, 승성신 교정본부장, 교정공무원·교정 참여인사 수상자 18명 등 400여명이 참석했다. 김 장관은 이 자리에서 31년 남짓 결핵환자 관리 담당근무를 성실하게 수행하고, 지난 10여년간 지역내 독거노인을 방문해 식사와 생활비를 지원한 마산교도소 김진철(53)교위에게 대상을 수여하고,1계급 특진(교감)계급장을 달아줬다. 노 사장과 이 부사장은 27년 1개월 동안 교도관으로 근무하며 수용자의 취업을 알선하고 무료 의료혜택을 주선한 전준석(52) 부산교도소 교위 등 8명에게 본상을,30년 11개월 동안 수용자 교정교화에 헌신한 윤동한(55) 대구교도소 교위 등 9명에게 특별상을 수여했다. 김 장관은 치사를 통해 “행복한 선진 법치국가 건설을 위해서는 법질서 바로세우기가 기본”이라면서 “준법이 존중되는 법무행정에 매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장관은 특히 “우리 사회 구성원들도 수용자들을 사랑과 봉사의 손길로 감싸주면서 안정적인 사회복귀를 도와달라.”고 강조했다. 교정대상은 수용자 교정교화에 헌신적으로 봉사해 온 교정공무원과 민간 자원봉사자들을 포상·격려하고, 교화활동에 대한 국민의 참여의식을 높이기 위해 1983년 제정됐다. 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 “영어·논술 등 잘할땐 ‘우수자 전형’ 노려라”

    “영어·논술 등 잘할땐 ‘우수자 전형’ 노려라”

    주말인 지난 10일 서울 이화여대 대강당. 고려대, 서강대, 성균관대, 연세대, 이화여대, 중앙대, 한양대 등 서울 지역 7개 대학의 공동 입학설명회가 열렸다. 행사에는 2500여명의 학부모와 수험생이 참가해 북새통을 이뤘다. 자리를 잡지 못해 서서 듣는 사람들이 많을 정도로 관심이 뜨거웠다. 이 대학들의 입학전형은 지난해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때문에 수험생은 자신의 ‘강점’에 적절한 ‘입학전형’이 무엇인지 파악해 ‘맞춤형 대비’를 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학교성적은 좋은데 수능이 잘 안 나와요” 대부분의 대학은 수시 2학기에 학교성적 위주의 전형을 실시한다. 성균관대 ‘학업우수자전형’은 수능 최저학력기준이 없으며 최대 535명을 선발한다. 한양대와 서강대는 수능 최저학력기준을 두고 있지만 학생부 100%로 선발하기 때문에 수능에 큰 부담은 없다. 수능은 강한데 학생부 성적이 좋지 않다면 ‘정시 우물’을 파는 게 좋다. 고대와 연대 등 대부분의 대학이 정시 모집인원의 50%를 수능으로만 우선 선발한다. ●“논술만큼은 자신 있어요” 수시 2학기 전형의 논술 우수자 전형을 노려본다. 고려대는 ‘일반전형 우선선발’ 1단계에서 학생부로 15배수를 선발한 뒤 논술 100%로 최종 합격자를 결정한다. 성대도 ‘1단계전형 우선선발’에서 정원의 50%를 논술로만 뽑는다. 중요한 것은 학생부와 수능의 ‘기본기’가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논술 우수자 선발 전형을 시행하는 대학들은 대부분 수능 최저학력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한양대, 중앙대는 전형 과정에서 학생부 성적을 합산한다. ●“네이티브 수준의 영어실력이 있어요” 외국어 우수자 선발 전형이 적당하다. 연세대의 ‘언더우드국제대학전형’은 모든 전형과정이 영어로 진행된다. 자기소개서, 학업계획서 등을 모두 영어로 작성해야 하고 영어 구술면접을 한다. 고려대의 ‘국제학부특별전형’은 고득점의 공인 어학성적이 필요하다. 토플의 경우 CBT 270,IBT 110,PBT 637, 텝스는 857점 이상이 지원 자격이다. 때문에 영어도 ‘적당히’ 잘해서는 어렵다. ●“전국대회에서 상을 탔어요” 국제수학과학올림피아드, 신춘문예 등 내로라하는 대회에서 수상한 경력이 있다면 입학의 문은 더 넓어진다. 많은 대학이 ‘특기자전형’을 두고 있고, 재학 중에는 장학금도 지원해 준다. 한양대는 ‘재능우수자전형’에 수능 최저학력기준도 없다. 대신 전공별로 학생부 성적이 20∼30% 적용된다. 면접고사도 20∼40% 반영된다. 단, 각 대학별로 인정하는 대회가 따로 있으니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수학·과학에 일가견이 있는 학생은 영재선발전형에 도전할 만하다. 고려대는 ‘과학영재특별전형’에서 수학·과학 관련 활동서류와 수상증명서 등을 제출해야 한다. 한 명의 수험생에게 다수의 면접관이 붙어 심층면접을 한다. 학생부 30%와 서류 20%로 1단계 전형을 마친 뒤 심층면접 50%로 최종 합격자를 발표한다. 성대는 ‘과학인재전형’에서 최대 191명을 선발할 예정이다. 두 대학 모두 수능 최저학력기준이 없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걱정이네요” 성적은 그런대로 나오지만 집안 형편이 어려운 중·상위권 학생은 저소득층 관련 선발전형에 도전하면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다. 모든 대학이 기초생활비 수급 대상자 및 차상위 계층에게 입시의 문을 열어 놓고 있다. 재학중 장학금 및 생활비가 지원되는 등 혜택도 크다. 한양대는 ‘사랑의 실천전형’에서 이 대학들 가운데 가장 많은 128명의 저소득층 수험생을 선발할 계획이다. 학생부 50%와 수능 50%가 전형 과정에 반영된다. 성대도 66명을 선발한다. 서강대는 수능 최저학력기준이 없어 부담이 덜한 편이다.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18) 작은 학교 서당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18) 작은 학교 서당

    김홍도의 그 유명한 그림 ‘서당’이다. 앞에 사방관을 쓰고 도포에 검은 띠를 띠고 있는 근엄한 선생님이 앉아 있다. 앞에는 서안이 있고, 오른쪽에는 연상(硯床)이 있다. 선생님의 서안에 책이 없는 것은, 아마 그 책이 선생님의 머릿속에 다 있기 때문일 것이다. 조선의 교육은 원래 텍스트를 외는 것을 기본으로 삼기 때문에 초학자를 가르치는 책쯤이야 다 외우고 있다. ●김홍도의 서당그림 당시의 글방 풍경 그려 그림 왼쪽에 머리를 땋은 아이 셋이 있고, 오른쪽에 넷이 있다. 오른쪽 맨 위에 역시 땋은 머리 넷이 있다. 그리고 그 위쪽에 초립을 쓴 약간 나이가 든 학생이 있는 바, 이 놈은 관례를 치른 놈이다. 서당의 학생은 모두 9명이다. 그런데 김홍도가 그린 서당 그림은 서당 안만 보여주고 있다. 제대로 된 서당의 전체 모습을 보려면, 작자 미상의 또 다른 그림 ‘서당’을 보라. 제법 규모가 잡혀 있다. 김홍도의 서당 그림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그림 중간의 매를 맞고 훌쩍이는 놈이다. 학생들이 모두 책을 한 권씩 앞에 놓고 있는데, 이 녀석은 책을 등 뒤에 두고 훌쩍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서안 왼쪽에 가는 회초리가 있는데, 아마도 이 회초리로 맞았을 것이다. 요즘 같으면 학생들이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어 포도청에 전송해서 폭력 교사를 고발했겠지만, 조선시대에는 아쉽게도 그런 문명의 이기가 없었다. 지금은 거의 사라졌지만, 필자 연배 이상의 분들은 기억할 것이다. 부모들은 아이가 학교에서 맞고 오면, 속이야 쓰라렸겠지만 병원에 가서 입원치료를 받을 정도가 아니면, 도리어 네가 맞을 만하니까 맞았지 하고 자식을 나무랐다. 이건 조선시대로부터 물려받은 관념이다. 즉 선생은 자기 자식을 윤리적 인간으로 성장시키기에 ‘사람 되라고’ 체벌을 가했다는 그 관념은 조선시대의 유물이었던 것이다. 교사의 체벌이 결코 정당화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식이 체벌을 받았다 해서 학교로 찾아가 선생님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 역시 정당화될 수 없다. 초학자를 가르치는 서당의 교육은, 선생님이 먼저 한문으로 쓰인 교과서를 천천히 읽고 한자의 음과 뜻을 일러주면, 학생들은 따라 읽고 머릿속에 새긴다. 그리고 선생님이 문장의 뜻을 천천히 새겨준다. 간단히 말하면 이것으로 끝이다. 학생들은 그 날 배운 한자를 반복해 쓰고, 문장을 외운다. 서당에 따라서는 그 날 배운 것을 그 날 테스트하는 경우도 있고, 다음날 테스트하는 경우도 있다. 테스트할 때 책을 등 뒤에 두고 전날 배운 부분을 암송하고, 번역하고 뜻을 풀이해야 한다. 만약 못하면 당연히 회초리가 따른다. 위 그림의 훌쩍이는 녀석은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기에 맞은 것이다. ●16세기 지방사림이 만든 성인교육기관 민간의 서당처럼 작은 학교의 존재는 저 멀리 삼국시대까지 소급되지만, 우리가 서당 하면 떠올리는 그런 모습의 서당은 16세기 어림에 지방 사림들이 주동이 되어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서당은 원래 성인들의 교육기관이고, 어린아이들과는 별 상관이 없었다. 안동의 도산서원도 원래 퇴계 선생이 열었던 도산서당 자리에 세운 것이다. 퇴계 선생의 문인이었던 황준량이 쓴 ‘자양서당기(紫陽書堂記)’란 글은, 김응생(金應生)이란 사람이 세운 서당의 기념문이다. 김응생은 여러 차례 과거에 낙방한 뒤 고향에서 서당을 열어 후진을 양성하고자 했던 것이다. 건물이 10칸이나 된다고 하였으니, 어지간한 규모의 학교였다.‘자양서당기’에서 황준량은 서당이 학문과 도덕을 닦는 곳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그것은 명분일 뿐이고 사실 과거 준비가 더 큰 목적이었다. 조선중기 관료이자 학자였던 김응조(金應祖)의 ‘의산서당기(義山書堂記)’를 보면 의산서당에서 문장을 전공하는 사람들이 모여들어 진사시와 문과에 합격한 사람이 쏟아졌다고 하니, 원래 서당이란 교육시설이 없는 지방에서 과거에 응시하기 위해 공부하는 사람들을 위한 학교였던 것이다. 물론 퇴계의 도산서당처럼 도학을 공부하는 곳이 있기도 했지만, 조선시대 양반들의 교육이란 것이 과거를 지향하기 때문에 서당은 자연히 과거 준비를 하는 곳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중인훈장 등 월사금 받아 생활비로 김홍도가 살았던 18세기 후반이면 서울과 지방 모두 서당이 적잖이 생겨났을 것으로 보인다. 또 양반이 아닌 사람 역시 서당에 다닐 수가 있었다. 서당을 설립하는 것이나, 서당에 입학하는 데 무슨 자격 제한이 있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또 양반이 아닌 사람이 교육자로 나서는 일도 흔했다. 정조 때 천수경(千壽慶)이라는 사람은 양반은 아니고 서리층에 속하는 사람인데, 지금의 인왕산 아래 누상동 누하동 부근에 서당을 열었다.‘희조일사’란 책에는 그가 열었던 서당 규모를 이렇게 전하고 있다. “송석(松石, 천수경의 호)은 원래 가난하여 늙은 어머니를 봉양할 수 없었다. 그래서 동네 아이들을 모아 가르쳤는데, 자신의 한 달 생활비를 학생들의 수로 나누어 받았다. 얼마 안 있어 학생들이 점점 불어났고, 월사금은 점점 많이 들어왔다. 그래서 한 달에 60전만 내게 하니, 사람들이 “하루에 글을 읽는 값이 어찌 동전 두 잎 밖에 안 된단 말인가?”라고 하였다. 이 때문에 학생들이 점점 더 불어나 많을 때는 300명이나 되었고, 좀 나이가 든 학생들이 어린 학생들을 다시 가르치니, 마치 군대에서 군법을 세운 것처럼 질서가 있었다.” 천수경은 양반이 아니니, 과거를 칠 필요가 없었다. 그는 평생을 시인으로 보낸 사람이다. 어머니를 모시고자 하여 서당을 열었던 것인데, 교육 내용이 괜찮고 또 월사금이 저렴했기에 학생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던 것이다. 천수경과 같은 사람은 이 시기에 많이 있었다. 양반 아닌 중인이나 서리들 사이에서 천수경처럼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을 생활의 방편으로 삼는 훈장님들이 적지 않았던 것이다. 천수경의 친구 장혼이란 사람은 교서관의 서리였는데,‘아희원람’‘계몽편’ 등의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과서를 짓고 출판을 했으니, 이런 책들은 아마도 천수경의 서당에서 사용되었을 것이다. 천수경이나 중인 서리들이 연 서당에서 배운 사람들이 양반일 리는 없고, 역시 자신들의 자제들이나 시정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즉 천수경의 서당은 비양반층의 교육열을 반영해서 생긴 것이다. ●조선말 일반 상민들도 서당 열어 서당은 조선조 말이면 일반 상민들까지 다니는 교육기관이 된다. 김구 선생의 ‘백범일지’를 보면 서당을 상민들이 어떻게 여는지 잘 알 수 있다. 상민이라 하여 천대를 받는 것이 억울했던 백범은 자신도 글을 배워 진사가 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아버지를 조른다. 백범의 부친은 동네에 서당이 없고, 또 이웃 고을의 양반 서당에서는 받아 줄 리가 없으니, 아예 서당을 차리기로 한다. 문중과 동네 상놈 아이 몇을 모아 자기 집에 서당을 열고 청수리의 이생원을 선생으로 초빙한다. 이생원은 양반이지만 글이 짧아 양반에게는 초빙되어 가지 못하고 상놈서당의 선생이 된 것이다. 석 달 뒤 서당은 신씨 성을 가진 사람 집으로 옮겨가는데, 얼마 있지 않아 그는 이생원을 해고한다. 이유는 이생원이 밥을 많이 먹는다는 것이었지만, 사실은 자기 손자는 열등생인데 백범은 최우등의 학생인 것을 시기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서당의 훈장은 가을에 쌀과 보리를 강미(講米)라고 하여 받기로 하고 초빙되었다. 백범의 회고를 들어보면, 아무 선생은 ‘벼 열 섬짜리’ 아무 선생은 ‘다섯 섬짜리’로 일컫는다 하였으니, 수강료의 다소가 그 선생의 실력을 가늠하는 기준이 되었던 것이다. 백범이 전한 청수리 이생원처럼 조선후기 서당의 훈장을 하는 사람은 대체로 몰락한 양반이거나, 양반은 아니지만 지식이 있던 사람이었다. 지식을 파는 것 외에 다른 생활수단이 없는 사람들이 훈장으로 나섰던 것이다. 서당 교육은 20세기 전반까지 성행했고, 시골에는 1950년대까지 있었다. 필자가 한문학을 하다 보니, 과거 서당에서 글(한문)을 배우신 선생님들을 종종 만나 뵌다. 그분들은 가끔 과거 서당에서 공부하던 시절을 회상하며 들려주곤 한다. 이제 그분들이 돌아가시면 서당에 대한 기억도 거의 사라질 것이다. 서당은 작은 학교다. 어떻게 보면 선생님과 학생이 얼굴을 맞대고 가르치고 배우는 그 작은 학교가 정말 학교일 것이다. 나에게는 오직 대학입시를 위해 맹진하는 요즈음의 학교는 학교가 아니라, 수용소로 보인다.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 “위장결혼 하려다 사랑빠져 진짜 결혼 무죄”

    돈 때문에 허위로 결혼하려다 상대와 진짜 사랑에 빠져 결혼했다면 유죄일까 무죄일까? 2일 서울 남부지법에 따르면 이모(43·전기배관공)씨는 2005년 3월 한 위장결혼 브로커로부터 중국여성 A씨와 위장결혼해 주면 400만원을 주겠다는 제안을 받고 이에 동의했다.이씨는 이후 위장결혼에 필요한 호적등본, 주민등록등본 등 필요한 서류와 도장을 넘겨준 뒤 브로커와 함께 중국 선양시로 건너가 A씨와 혼인신고 후 한국으로 돌아와 국내 혼인신고서를 접수 했다. 이같은 사실을 알게 된 수사기관은 이씨를 입건해 “위장 결혼을 했음에도 마치 정상적인 결혼을 한 것처럼 국가기관을 속였다.”면서 공전자기록등불실기재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1심 법원은 이씨가 A씨와 혼인신고 이후 현재까지 3년여간 불과 5회 만났을 뿐 정상적 혼인생활을 하였다고 보기 힘든 점 등을 들어 유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서울 남부지법 형사합의 1부(부장판사 한병의)는 원심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씨가 일용직 노동자로 월수입이 100여만원에 불과한데도 이처럼 A씨를 보기 위해 여러 차례 중국을 방문했을 뿐 아니라 2005년 12월부터 2007년 3월까지 모두 8차례에 걸쳐 생활비로 A씨에게 30만∼40만원을 송금한 사실을 중시했다. 재판부는 “이씨는 브로커가 혼인신고서를 접수한 날인 2005년 7월 무렵 A씨와 진정으로 혼인할 의사가 있었다고 충분히 인정된다.”면서 “증거판단을 잘못해 결론을 달리한 원심 판결에는 사실을 오인한 위법이 있다.”고 판시했다.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 “프랑스 양극화 현상 심화”

    |파리 이종수특파원|프랑스의 양극화 현상이 커지고 있다는 보고가 나왔다. ‘국립 빈곤 및 사회적 배제 연구소’(ONPES)가 29일(현지시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02∼2005년 사이에 양극화 현상이 두드러졌다. 특히 2005년에는 빈곤층의 절반이 월 669유로(약 108만원) 이하로 생활한 것으로 나타나 충격을 주고 있다. 이는 빈곤층이라고 규정하는 기준인 월 생활비 817유로에 훨씬 못미치는 액수다. 또 보고서는 월 817유로 이하의 생활비로 살아가는 노동자 숫자가 2002년 16.3%로 늘어나기 시작해 2005년에는 18.2%까지 증가했다고 밝혔다. 양극화 현상이 두드러진 시기는 1998∼2005년 사이다. 이 시기에 전체 가구 중 상류층 0.01%의 실제 수입은 42.6% 증가했다. 이에 견줘 나머지 90% 가구의 수입은 4.6% 늘어나는 데 그쳤다. 또 1년 수입이 20만 1400유로 이상인 이들도 19.4% 증가했다.vielee@seoul.co.kr
  • 中드라마 촬영 중 1명 사망·40명 부상

    최근 중국에서 드라마 촬영 중 사상자가 발생하는 사고가 연이어 터져 논란이 되고 있다. 지난 8일에는 드라마 ‘나의 연대장, 나의 연대’(我的團長我的團)의 전쟁신을 촬영하던 도중 포탄 파편에 의해 스태프 1명이 사망하고 2명이 중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했다. 중국 윈난(雲南)성 바오산(保山)시에서 촬영중인 이 드라마는 일본군과 맞서는 인민해방군의 비애를 담은 드라마로 전쟁신이 유난히 많다. 이 드라마는 인민해방군과 윈난성 등이 3000만 위안(42억 7000만원)의 자금을 공동 투자한 블록버스터 급 드라마로 큰 기대를 받고 있었다. 그러나 스태프가 사망하는 큰 사고가 발생한지 채 보름도 지나지 않은 지난 20일에도 촬영도중 다리가 무너지는 사고로 38명이 부상해 또 한번 충격을 주고 있다. 무너진 다리는 바오산 텅충(騰沖)현의 관광 명물로 제작팀은 촬영을 위해 다리를 일부 개조했다. 다리 위에 목재와 플라스틱으로 만든 또 하나의 다리를 만들어 얹는 공사를 한 것. 일본군에 쫓겨 다리를 건너는 신을 찍는 도중 무게를 감당하지 못한 다리에 균열이 발생한 것이 사고의 원인이 됐다. 리허설 당시에는 문제가 없었으나 촬영이 시작되자마자 다리가 기울기 시작하더니 결국 붕괴됐고 배우들이 미처 피할 새도 없이 다리에 깔리는 부상을 당했다. 부상당한 배우들은 곧바로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으나 배우들 모두 엑스트라로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어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 제작자 우이(吳毅)는 “제작사측에서 치료비용과 생활비 등을 배상할 것”이라며 “절대 피해보상금에 대해서는 ‘뒷말’이 나오지 않도록 조치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큰 사고가 잇따라 2번이나 발생했지만 다친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꼭 드라마 촬영을 마무리하겠다.”고 의지를 밝혔다. 한편 제작진은 주·조연급 배우들의 심각한 부상이 없는 관계로 조만간 촬영을 재개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살인범(殺人犯) 박원식(朴元植)은 한방에서 두 여자(女子)와…

    살인범(殺人犯) 박원식(朴元植)은 한방에서 두 여자(女子)와…

    살인강도범 박원식(朴元植·38)이 거쳐간 6인의 여자. 포악하고 비정한 박(朴)이지만 여자다루기에는 명수. 천성이 방랑아였던 그의 발자취가 닿는 곳마다 연인이 생겼고, 그는 또 연인의 돈으로 방랑을 계속, 새 여자를 만들곤 했다. 그의 엽색 행각을 더듬어 보면-. 애인의 돈우려 새 애인 만드는 자금 삼아 박은 1933년3월29일 경남 김해(金海)군 이북(二北)면 병(屛)리 법동곡(法洞谷)부락 695 박모(75·사망)씨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호적에 의하면 박의 형은 1930년에 태어났다가 3살때 죽었으며, 박의 아래로는 3남(34), 누이 둘(29·21)과 4남(24)이 입적돼있다. 이중 4남은 47년에 출생, 53년에 죽은것으로 돼있으나 3남은 주민등록 신고도 없이 행방불명으로 돼 있는데, 부산 영도구 신선동에 살고있는 박의 어머니 김(金)노파(68)에 의하면 3남은 오래전에 죽었다고 한다. 박은 70년 8월 10일자로 김모 여인(30)과 혼인신고가 돼있으며, 70년 3월30일 출생한 딸이 같은 날짜로 입적돼있다. 박이 주민등록증을 발부받은 곳은 시내 서구 남부민동 220번지 4통2반으로 돼있는데 이곳은 박의 시집간 큰누이가 사는곳으로 박이 누이 집에 더부살이 하면서 주민등록을 한것으로 보인다. 박은 찢어지도록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교육도 제대로 받지못했고 고향인 김해에서 국민학교 3년을 중퇴, 집에서 놀고있다가 14살때 김해를 떠나 부산(釜山) 대구(大邱)등지로 떠돌아 다니다 6·25가 나던 해인 18살때 군에 입대, 20살때 제대한것으로 알려졌다. 군에서 제대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박은 남의집 품팔이등으로 가난한 생활을 하다 집안은 부유하나 천성의 벙어리로 시집을 못가고있던 동네 처녀에게 데릴사위 형식으로 장가를 들었다. 장가를 든 박은 처가집에서 놀고먹으면서 벙어리부인을 툭하면 때리는 등 행패를 부리다 1년만에 아무말없이 사라져 버렸다는게 고향사람들이 박을 기억하고 있는 전부다. 이후의 박의 행적중 뚜렷한 것은 22살때 대구지법 영덕지원에서 절도죄로 징역10월을 선고받고 복역했으며, 2년뒤 다시 절도죄로 김천(金泉)지원에서 징역2년, 교도소내에서도 담배를 피우고 소란을 떠는등 문제수(囚)로 지목받았었다. 59년 9월 부산지법에서 모종사건으로 징역7년형을 받고 복역중 64년도 9월 1차감형때 풀려나와 오늘까지 별로 하는일없이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면서 「베일」에 가린 생활을 해왔다. 성격이 난폭하고 여자낚기와 사격의 명수인 박은 이름도 김창식(金昌植), 박태동등 나오는대로 주워 섬기면서 때와 장소에 따라 「카메레온」처럼 변신해왔다. 박으로부터 제일 처음 피해를 입은 한독약국 김근상씨(34)에 의하면 김씨가 박을 본 것은 7년전이었는데 이때 박은 자기가 모처에서 일을 한다면서 거드름을 떨며 알수없는 몇마디 말을 하고 헤어진후 강도를 당한 지난 6월29일밤 처음 봤다는 것이다. 이처럼 박의 행적은 뚜렷하지않은데, 호적에 입적돼 있는 본처와 어머니가 70년2월이후 살고있는 영도구 신선동 본집에도 한달에 한두번 바람처럼 나타났다가 생활비조로 1,2만원을 던져주고 휙 나가버려 처와 어머니도 박이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모르고있다. 박이 현재 본처로 돼있는 김모여인을 만나기는 68년도에 박이 탕아로 부산의 사창가인 완월동 등지를 드나들면서 만나 서로 정이 들자 동거생활로 들어갔다한다. 이때(68년12월) 박은 웬일인지 대구로 김여인과 함께 옮겨가 지난 11일 제2의 범행을 저지른 대구시 비산(飛山)동 296의30 진(陳)기춘씨집 근처에 집을 얻어 생활을 하면서 사형인 진씨에게 『생활이 곤란하면 함께 일본으로 뛰자. 준비는 다 돼있다』는 등의 말로 자주 접근해 왔다. 이를 수상히 여긴 진씨가 모기관에 박을 고발했는데, 고발당한지 5일만에 다시 박이 나타나 『재미없다, 죽을줄 알아라』는 등의 협박을 하고는 부산으로 간다면서 대구에서 바람같이 사라져 버렸다. 여자다루는 마력(魔力) 지녔나? 질투없이 몸대고, 돈대고 70년 3월 부산에 나타난 박은 친척들이나 자기를 오래알고 있던 곳에는 전연 얼굴을 내밀지 않고 남부민동 220 자기 누이집으로 『자신이 다른지방으로 전근간다』면서 가족을 보내고는 행방을 감추었다. 이리저리 혼자 떠돌던 박은 이해 6월 송도 모주점에서 두번째 내연의 처인 문(文)모여인(28)을 만났다. 해녀생활을 하다 주점에 나온지 얼마 안된 문여인은 박의 능수능란한 여자다루는 솜씨에 그만 녹아떨어져 자기집에서 박과 함께 동거생활을 시작했다. 문여인은 이때 얼마나 박을 좋아했는지 박없이는 세상을 살아가는 맛이 없다는 식으로 제나름의 시를 지어「노트」에 적어놓는등 박을 붙잡기에 온갖 노력을 다했다. 그러나 박은 두달후에 온다간다 말한마디없이 문여인의 곁에서 증발했는데, 이때 박은 문여인덕으로 먹고살면서 부산의 번화가를 드나들다가 중앙동 K다방의 고용「마담」으로 있던 김모여인(28·동래구 부곡동)을 구슬러 김여인의 언니가 살고있는 부곡동으로 김여인과 함께 옮겨가 버렸다. 박은 새로 사귄 김여인과 어울려 김해를 비롯, 경남(慶南)의 명소를 돌아다니며 새로운 연인과의 정을 두텁게 했다. 하는일없이 놀고먹는 박은 무슨 해상장사를 하겠다는등 알쏭달쏭한 소리를 해가며 김여인과 김여인의 언니돈 89만여원을 갖다 흥청대면서 지난 5월 박이 김여인과 함께 일본으로 밀항하기위해 함남동 문여인집으로 올때까지 죽 이곳에 눌러있었다. 5월말 문여인집으로 김여인과 함께 옮겨온 박은 한집에서 한달가까이 김여인을 거느리고 있으면서도 어떻게 여인들을 잘돌봤는지 이들은 한번도 싸우거나 불평을 늘어놓은적이 없다고한다. 타고난 「플레이·보이」인 박은 공식적으로 드러난 김·문등 여인말고도 서울 모다방에 있다는 손(孫)모, 대구에 있다는 김(金)모등 이루 헤아릴수없을 정도로 많은 여인들을 주변에 두었는데 이들에게서 들은 박의 여인낚기의 특징은 뛰어난 화술에 있다는 것이다. 중졸정도의 교육을 받은 여인들은 박과 앉아 5분정도만 이야기해도 금방 좋아질 정도로 그는 이 방면에 비상한 재간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부산(釜山)=김홍석(金弘錫) 기자> [선데이서울 71년 7월 25일호 제4권 29호 통권 제 146호]
  • 노년기 재테크 이렇게

    노년기 재테크 이렇게

    나이가 들수록 돈 관리가 중요하다. 그런데 정보력이나 판단력은 뒤진다. 노년기의 재테크도 미리미리 점검해두자. ●남자 60세, 여자 55세면 ‘금융 노인’ 해당 연령이 넘으면 1인당 3000만원까지 ‘생계형 저축’을 들 수 있다. 이자소득세(세율 15.4%)가 전액 비과세다. 특별한 상품이 있는 것은 아니다. 금융회사에서 상품에 가입할 때 생계형저축으로 해달라고 요구하면 된다. 모든 금융기관에 걸쳐 3000만원까지 가능하다. 자녀로부터 생계비를 받는 계좌라면 이 계좌를 생계형저축으로 해두는 것도 좋다. 생계형저축의 장점은 다른 세금우대 상품과 달리 중도해지나 1년 미만 가입 시 세금을 뱉어낼 우려가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머니마켓펀드(MMF)나 종합자산관리계좌(CMA) 등 이율이 높으면서도 수시로 돈을 찾아쓰는 금융상품을 생계형 저축으로 들어두는 것이 좋다. 주식형 펀드는 주식매매차익에 대해 비과세가 이미 적용되기 때문에 생계형 저축으로 해도 얻는 혜택은 미미하다. 생계형저축 한도가 다 찼다면 세금우대에 눈을 돌려보자. 세금우대는 1인당 2000만원이지만 해당 연령이 지난 노인에 한해서는 6000만원까지 받을 수 있다. 세율은 9.5%다. 또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이 경우 1년 이상 가입을 해야 비과세 요건에 해당한다. ●연금상품 가입·역모기지로 생활비 확보 노후 생활에 반드시 필요한 것은 매달 일정액의 생활비다. 젊어서 연금 상품에 가입, 은퇴 이후 받는 방법과 살고 있는 집을 담보로 역모기지를 이용해 생활비를 받는 방법 두 가지가 있다. 역모기지는 부부가 모두 65세가 넘어야 하고 1가구 1주택이며 집값이 6억원 미만이어야만 한다. 이전에는 대출금이 있으면 역모기지를 받을 수 없었으나 지난 3월부터 주택금융공사로부터 일시금을 받아 대출금을 상환한 뒤 나머지 돈으로 다달이 연금을 받을 수 있도록 바뀌었다. 대신 대출금을 받았기 때문에 매달 받을 수 있는 돈은 줄어든다. 연금은 돈을 낼 때 소득공제를 받고 연금을 받을 때 연금소득세 5.5%를 내는 세제적격연금,10년 이상 가입한 뒤 연금을 받을 때 연금소득세를 면제받는 세제비적격연금 두 가지가 있다. 은행의 연금저축 또는 증권사의 연금신탁은 적격연금으로 매년 300만원까지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다. 단,10년간 납입해야 하고 5년 이상 연금형태로 받아야 한다. 수령시기도 만 55세 이후여야 한다. 중도 해지하면 기타소득세로 간주돼 세율 22%에 해당하는 세금을 내야 내야 한다.5년,10년 등 정해진 기간에 한해서 연금을 받을 수 있다. 보험사의 세제비적격연금은 연금을 받을 수 있는 시기가 55세 이후로 확정되지는 않는다. 연금가입요건을 채우면 그 이전에도 가능하다. ●개인정보 보호에 신경을 요즘 들어 기승을 부리는 전화금융사기의 주 피해자가 노인층이다. 금융지식이 부족하거나 피해가 발생할 경우 대응이 다소 늦은 점을 악용한 것이다. 미리 준비해두는 것이 상책이다. 주거래은행을 정하고 쓰는 신용카드는 1∼2개로 줄이는 것이 좋다. 신용카드 사용내역이나 계좌이체 내용을 문자메시지로 알려주는 서비스를 신청해놓는 것도 한 방법이다. 자연스럽게 고객센터 번호와 친숙해지고 이상한 거래를 감지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신용카드사, 경찰 등이라며 사람이 바뀌면서 계속 전화가 오거나 쓰지도 않은 신용카드가 결제됐다거나 신청하지도 않은 신용카드가 신청됐다며 전화가 오면 일단 의심해보는 것이 안전하다. 가까운 은행이 어디냐며 현금지급결제기로 가라고 하면 100% 사기로 봐야 한다. 이 과정에서 계좌번호, 신용카드번호, 주민번호 등 금융거래에 필요한 정보는 누구에게도 넘겨줘서는 안 된다. 문제가 발생하면 바로 해당 금융사에 지급정지를 요청해야 한다. 전경하기자 lark3@seoul.co.kr
  • [아일랜드에서 배우자] (하) 도전받는 경제 기적

    [아일랜드에서 배우자] (하) 도전받는 경제 기적

    |더블린 글·사진 김태균특파원 windsea@seoul.co.kr|아일랜드 제조업 근로자 평균임금은 시간당 26달러(약 2만 5000원)에 이른다. 미국(24달러)보다 높고 동유럽에서 최상의 인력을 보유한 폴란드(5달러)의 5배가 넘는다. 지난해 더블린의 생활비는 세계 주요도시 중 16위였다. 로마(18위), 암스테르담(25위)보다 높고 파리(13위), 뉴욕(15위)과 비슷했다. 특히 더블린의 사무실 임대료는 런던, 도쿄, 파리에 이어 세계 네번째인 1평방피트당 77유로(약 12만원)나 됐다. 20년 초고속 성장을 구가해 온 아일랜드 경제가 강력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내부적으로는 높은 물가와 임금 등 고비용 구조가, 외부적으로는 높은 환율과 세계경기 침체가 성장의 발목을 잡을 조짐이다. 미국의 경제지 비즈니스위크는 최근호에서 ‘아일랜드 기적이 끝나가는가’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유로화 강세로 장기호황과 경쟁력이 훼손되고 있다.”면서 올해 국민총생산(GNP) 성장률은 1.6%로 추락하고 실업률은 6%대로 치솟을 것으로 전망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아일랜드의 올해 경제성장률은 지난해(4.6%)에 크게 못 미치는 3.0%로 떨어지고 실업률은 5%를 넘을 것으로 전망했다. 아일랜드 경제가 직면한 어려움은 크게 ▲인건비·물가 상승 ▲유로화 강세 ▲동유럽 국가의 부상 등으로 요약된다. 특히 높은 임금이 경제의 중추인 외국자본들에 부정적인 이미지를 주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아일랜드 법인은 아일랜드 인건비가 서유럽 평균보다 높다고 불만을 나타내고 있고, 모토롤라는 지난해 5월 코크시 공장을 폐쇄했다.1989년 들어온 아일랜드 외자유치 성공의 대명사인 인텔과 국제금융서비스센터(IFSC)에 입주한 세계 최대 금융회사 씨티그룹도 다른 나라 이전을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아일랜드는 대외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특히 요즘과 같은 상황에서 동요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국가경제에서 미국·영국 두 나라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무려 40%에 이른다. 실업률도 IBM,HP, 델 등 다국적 기업들의 채용규모에 따라 춤을 춘다. 대부분 나라에 공통적인 소득의 양극화라는 성장의 그늘을 아일랜드도 비켜가지 못했다. 학교를 일찌감치 포기하는 아이들, 미혼모 등 개방에 따른 사회문제도 심각해졌다. 정부는 최근 5년 동안 이런 문제가 심해져서 어린이들을 위한 특별 프로그램을 실시했다. 아일랜드는 ‘2016년을 향하여’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기술력 증대와 사회인프라 구축에 대대적인 투자를 함으로써 자생력을 기르는 데 주력할 계획이다. 아일랜드 국책 싱크탱크 포파스(FORFAS)의 데클런 휴즈 경쟁력분과 위원은 “대학 진학률을 2016년까지 현재의 32%에서 48%로 끌어올리는 등 기술과 인재 혁신을 이뤄 하이테크의 나라로 변신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벤치마킹 올바른 방향은 우리나라에 ‘아일랜드 참고서’의 값어치는 얼마나 되는 것일까. 우리가 ‘일본’(선진국)을 추월하고 ‘중국’(개발도상국)을 따돌리는 해법으로 활용할 수 있는 것인가. 유사점도 많고 차이점도 많은 두 나라를 우선 비교해 보자. 한국이 일제 36년 식민지배를 비롯해 숱한 외적의 침입을 받았던 것처럼 아일랜드도 700년간의 영국 식민지배 역사를 갖고 있다.100만명이 사망한 1840년대 ‘감자 대기근’, 독립전쟁, 독립내전 등 거듭된 참화도 6·25전쟁 등 아픈 역사를 안고 있는 우리와 비슷하다. 세계 최고 수준의 교육열, 순수하고 술과 노래를 좋아하는 국민적 특성도 두 나라간 유사점에 해당한다. 경제적 측면에서는 똑같이 자급자족이 아닌 대외개방형 구조를 갖고 있다. 반면 아일랜드는 인구 420만명으로 남한의 10분의1이 안 된다. 공업화로 경제발전을 이룬 한국과 달리 농업에서 첨단 지식산업으로 직행했다. 영어를 공용어로 쓰고 부유한 해외교포들과 인접 국가들이 든든하게 버티고 있다.‘공화주의’라는 한 뿌리로 모이는 양당정치의 역사, 인구의 90% 이상이 가톨릭교도라는 점은 통일된 국민합의를 도출하기 좋은 구조다. 아일랜드식 발전 모델의 국내 적용에 대한 전문가들의 생각은 엇갈리지만 노·사 관계 혁신이 국가경쟁력을 얼마나 획기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지 보여준다는 데에는 의견이 일치한다. 신동면 경희대 교수(행정)는 “근로자와 기업이 상대방의 역할과 영향력을 존중하며 타협점을 찾아가고, 그 과정에서 정부가 중립적 지위를 유지하며 다양한 정책을 통해 유인책을 제공한 것이야말로 우리 사회가 참고해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강원택 숭실대 교수(정치외교)는 “자유무역, 기업친화적 환경 등을 통해 외국자본을 유치하는 선에서 끝난 게 아니라 이를 국내외의 네트워크와 성공적으로 연계함으로써 세계화된 경제로 통합해낸 것이 아일랜드 모델에서 배워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최인철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아일랜드는 인구가 적은 데다 재계·노동계가 높은 통일성을 보이는 등 우리와 다른 점이 많기 때문에 한국에 적절한 실천 모델을 넓은 관점에서 찾아야지 아일랜드의 사례를 세세하게 따지고 들어가서는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존 던 상공회의소장 “전세계 대상으로 정책 벤치마킹 인력·영어사용 등 외자유치 강점” “미래를 내다보는 비전과 강한 실천능력이 아일랜드 경제 성장의 가장 큰 원동력이었다고 봅니다. 한번 방향을 잡으면 반드시 관철시키려 애썼고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문제점들은 그때그때 지체없이 수정해 나갔습니다.” 존 던 아일랜드 상공회의소장은 20년 넘게 지속되고 있는 사회연대협약과 여기에서 파생되는 정부의 힘을 그 배경으로 들었다.“해묵은 노·사 반목이 사라지고 사회가 안정되면서 정부가 어느 한쪽의 눈치를 보며 고민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지요. 오직 경제발전이라는 한 방향으로만 매진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됐던 겁니다.” “아일랜드는 처음에는 영국에서 대부분의 정책을 베껴 왔습니다. 이후에는 핀란드·스웨덴 등 다른 유럽 국가에서 좋은 정책들을 배웠지요. 그 뒤에는 미국, 이스라엘, 싱가포르 등 전 세계 국가로 벤치마킹 대상을 확대했습니다.” 던 소장은 “한국이 아일랜드에서 배울 점이 있겠지만 이 가운데 상당수는 한국과는 전혀 다른, 아일랜드 문화의 특수성에 비롯된 것”이라고 했다. 그는 “아일랜드에서는 대규모 토목공사 등 사회간접자본 확충이 쉽지 않지만 한국에서는 매우 쉽게 이뤄지는 것으로 들었다.”면서 국민적 특성과 현재 처한 여건 등을 복합적으로 고려해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수한 인력과 지리적 요건, 영어 사용 국가 등의 강점이 여전하기 때문에 임금·물가 등 비용측면을 좀더 개선한다면 외국자본이 다른 나라로 빠져나갈 일은 없을 것”이라면서 “비용 측면에서 비교우위를 유지하는 것은 한국에도 중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브렌든 할핀 산업개발청 대변인 “정권 바뀌어도 정책기조 유지 금융 등 R&D센터 유치에 주력” “다른 어떤 나라, 어떤 기업에도 없는 고유한 ‘경쟁우위’를 확보하는 것이 최우선입니다. 매킨토시의 컴퓨터 운영체제(OS) ‘맥OS’가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보다 더 좋은데도 윈도를 쓰는 것은 대부분 컴퓨터가 윈도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없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게끔 만드는, 그런 배타적인 우위를 갖고 있어야 하는 것이지요.” 외국자본 유치를 전담하는 아일랜드 산업개발청(IDA) 브렌든 할핀 대변인은 “교육·기업환경·세제 등에서 확실한 경쟁우위를 갖고 있기 때문에 아일랜드의 경제기적이 가능했던 것”이라고 강조했다. “시스템도 중요합니다. 아일랜드에서는 정권이 바뀌어도 정책기조가 그대로 유지되고 공무원이 바뀌어도 외국자본에 대한 ‘원스톱 서비스’는 똑같이 제공됩니다. 시스템이 탄탄하게 구축돼 있기 때문에 사람이 바뀌어도 과거와 달라질 게 없다는 얘기입니다.” 그는 “동유럽의 약진으로 우리의 경쟁우위가 약화될 것이라는 관측도 있지만 결코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미 정보기술(IT)·디지털미디어·의약·금융·무역서비스 등을 중심으로, 생산라인이 아닌 연구개발(R&D)센터 유치에 주력하고 있기 때문에 값싼 인건비 등이 장점인 동유럽과는 시장 자체가 다르다는 것이다.
  • 국민가수 양희은의 극복기

    국민가수 양희은의 극복기

    불후의 명곡 ‘아침이슬’로 38년째 인기를 이어가고 있는 국민가수 양희은(56)씨. 지난해 한 TV프로그램에서 한때 난소암으로 투병했다는 사실을 밝혀 팬들을 놀라게 했다. 잘못된 빚보증으로 가세가 기울자 세 자매 중 장녀였던 양씨는 학비와 생활비를 함께 버느라 20대부터 고생을 많이 한 것으로 알려졌다. 열심히 노력한 덕분에 30대에는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지만 서른살에 느닷없이 찾아온 ‘난소암’ 앞에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난소암 판정을 내린 의사의 말은 더 충격적이었다. 암세포가 너무 많이 자라 다른 장기를 밀어올리는 위급한 상황에 처해 있다는 것이었다. 양씨는 “당시 의사가 ‘3개월 생존이 가능하다.’는 시한부 판정을 내렸다. 시한부 선고를 받고 나서 한동안 ‘멍’한 상태로 지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양씨는 어려운 상황에 포기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항암치료를 받기로 결정했다. 치료를 받은 뒤 3개월이 지나고 5년이 지나도 뚜렷한 증상은 나타나지 않았다. 5년이 지난 뒤에는 완치 판정까지 받았다. 그러나 결혼 뒤 암이 재발해 아이 갖기를 단념해야 했다. 하지만 병 치료를 포기하지 않았다. 최근 한 TV프로그램에 출연해 “지금은 장기가 모두 제자리를 찾았다.”고 농담을 건넬 정도로 현재 몸 상태는 정상을 되찾았다. 난소암 투병을 끝냈던 시기를 ‘인생의 전환점’이라고 말하는 그는 왕성하게 활동하며 데뷔 40년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당시 항암치료의 고통은 이루 말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난소암은 수술을 받아도 항암치료를 병행해야 하기 때문에 일정기간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어려움 속에서도 그는 긍정적인 사고로 생활했다.“아이가 없어서 노래를 더 잘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할 정도이다. 양씨의 한 측근은 “시한부 선고를 받았지만 수술이 잘됐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열심히 생활하고 있다.”며 “치료 후 더 많은 것을 하고, 더 적극적으로 활동을 하자는 것이 그의 철학이 됐다.”고 전했다. 정현용기자 junghy77@seoul.co.kr
  • “너만을 사랑해”는 몽땅 거짓말

    “너만을 사랑해”는 몽땅 거짓말

    「하이·틴」의 우상이 되고있는「보컬·그룹」「멤버」에게 유린당한 한 여인의 수기. 이 수기는「보컬·그룹·팬」들에게 경종을 울려주고 있다. 여기 지적된 Y씨는 지금도 인기 절정의 「드럼」연주자. 필자 윤혜민양(가명·24)은 S대 1년때 그와 동거생활을 시작했다. 달콤한 말 믿었던 여대생(女大生) 본처 있는줄 모르고 임신 여학교를 나와 대학의 문에 갓들어선 나는 마냥 어리기만한 철부지였읍니다. 나는 친한 친구의 소개로 철부지 소녀들의 우상적인 존재였던 한「보컬·그룹」「멤버」를 사귀었읍니다. 현 K「그룹」의「리더」이며「드러머」인 Y씨였읍니다. 『혜민아 난 너만을 사랑한다』는 그의 달콤한 속삭임에 어린 나로서는 너무나 큰 결단을 내려야만 했읍니다. 지방공연을 할 때마다 거의 반강제로 끌려다녔읍니다. 그는 주위사람들에게 나를 아내라고 소개했읍니다. 부끄러웠지만 그이를 사랑했기에 내 가슴은 뿌듯하였읍니다. 정말 꿈 같은 시간들이 반년이나 지난 어느 날. 그와 나 사이에 뜻하지 않은 여자가 나타났읍니다. 그녀는 그의 부인이었읍니다. 그러나 그이는 그저 옛날에 동거하던 정도의 여자라고 얼버무리며 나를 달래는 것이었읍니다. 그이를 믿었기에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읍니다. 그러던 중 아이를 갖게되었고 그이는 월남에 장기 공연을 떠났읍니다. 그이마저 없어 의지할 곳 없는 나는 불러오는 배를 안고 친구집을 전전해가며 피눈물 나는 고생을 했읍니다. 따뜻한 집과 부모님이 계셨지만 이미 죄인이 된 나는 찾아뵐 수가 없었읍니다. 찬바람이 약해질대로 약해진 나의 몸을 휘감던 작년 2월, 어쩔수없이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 S병원에 입원하여 딸 쌍동이를 9개월 만에 제왕절개로 조산하였읍니다. 그 때는 이미 부모님들도 그이가 본 부인이 있고, 그 부인한테도 딸이 둘이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읍니다. 그래도 아기 아빠가 아이들의 장난감과 아기들이 보고 싶다는 편지를 보내줄 땐 저는 행복에 겨웠읍니다. 그러면서도 본 부인에 대한 양심의 가책만은 어쩔수가 없었읍니다. 그러던 중 기다리고 기다리던 그이가 돌아오셨읍니다. 아빠는 저와 아기들을 열심히 사랑해 주셨읍니다. 본 부인과 결혼한 그날도 신혼여행은 다른 여자와 부모님들도 집과 차를 사주는등 경제능력이 없는 그이를 위해서 많이 애써 주셨읍니다. 그때마다 그이는 본부인과 이혼하고 저와 정식 결혼을 하겠다고 했읍니다. 저는 본 부인의 아이들까지 맡아 기른다 해도 가정을 이루기 위해선 모든걸 희생할 각오가 돼 있었읍니다. 그러나 저에게 행복이라는 것은 걸맞지 않는 것일까요. 그이에게 또 다른 제3의 여인이 나타난 것입니다. 그 여인 뿐만 아니라 다른 여자들과의 관계도 항상 복잡다난 했읍니다. 본 부인의 말에 의하면 결혼식은 자기와 올리고 신혼여행은 다른 여자와 갈 정도로 그이는 바람둥이였읍니다. 저는 제3의 여인을 추적하기 시작했읍니다. 그녀는 모 항공사의「스튜어디스」였읍니다. 그녀를 아기아빠가 월남에서 돌아오던 비행기 안에서 알았다고 했을 때 귀국 당시의 천연덕스러웠던 아빠의 행동에 환멸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읍니다. 저는 누구와 의논할 수도 없었읍니다. 착하기만한 본부인은 그저 저를 달래며 위로해 줄 뿐이었읍니다. 그 부인을 생각 해서라도 그이를 그여자의 손아귀에서 빼내야만 했읍니다. 저는 그 여자를 찾아가 눈물로 호소했읍니다. 그러나 뜻밖에도 그녀는 생글생글 웃기조차 하면서 자기는 단순히 「엔조이」로 아기아빠를 상대했을 뿐이지 오래 사귀고 싶지도 않다고 하였읍니다. 그뒤에도 그녀는 저에게 전화를 걸어 아기엄마는 너무 상심하지말고 밥 잘먹고 기운차려 애들을 잘 보살피라고까지 하였읍니다. 그리고 아기아빠가 바람피면 알려주겠다고 했읍니다. 얼마나 무서운 여자입니까? 아빠와의 관계를 계속하면서 그런 말로 나를 달랜 그녀. 하지만 비밀은 오래가지 못했읍니다. 단원들과 주위 사람들의 이야기로 그들이 S「호텔」과 D「호텔」등을 전전해가며 동거하고있는 것을 알았읍니다. 새벽4시부터 따라다니며 마침내 현장을 목격했을때의 저의 모습은 참으로 비참했읍니다. 그이는 처음부터 본부인과 저에게 생활비라고는 조금도 보태주지 않았읍니다. 그렇다고 그이가 수입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제3의 여인 나타나 이혼키로 했으나 두 가정이 충분히 쓰도도 남을 만큼의 돈을 벌고 있지만 그것은 전부 여자들과의 유흥비로 썼읍니다. 오히려 저의 집에서 「팀」을 만든다고 가져간 돈만도 상당하였읍니다. 집의 차마저 잡혀가지고는 그 여자와의 애정행각에 소비해 버렸읍니다. 드디어 더 견딜수 없는 상태에 이르고 말았읍니다. 그이가 이혼하자고 제의해 왔읍니다. 저는 공항으로 그녀를 찾아갔읍니다. 마침 그녀는 그이와 만나 얘기하고 있었읍니다. 세사람만이 이야기 할수있는 기회였읍니다. 저는 그 여자에게 우리 아이들과 본부인의 아이들을 맡아 키울수 있겠냐고 물었읍니다. 그녀는 당황하는 표정이었지만 애써 자신이 있다고 얘기했읍니다. 그뒤 가산을 정리하여 보니 그이는 내주위 사람들에게 말할수 없이 많은 빚을 지고 있었읍니다. 나는 별수없이 그것을 떠 맡아야만했읍니다. 채권자들이 그를 걸어 고소를 하게되면 우리 아이들이 불쌍해서 였읍니다. 이왕 이렇게 된이상 그 여자와 그이가 결합해서 제 아이들을 행복하게 해주기를 빌었읍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그 여자는 처음의 약속과는 달리 자기는 직장이 있고 나이가 어리므로 아이도 맡을수 없고 결혼도 할수 없다는것입니다. 아빠는 본부인을 달래 아이를 맡기고 말았읍니다. 본부인은 그렇게 되면 아빠가 자기가정으로 돌아오고 또 경제적 도움이라도 있을까 해서 맡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생활비조차 주지 않고 얼굴도 내밀지 않았다고 저에게 다시 아이를 데려가라는 것이었읍니다. 저의 아이들의 갈 곳은 어디입니까. 찢어진 가정을 다시 이을수도 없읍니다. 눈물 겹도록 살아보려고 노력했던 저이지만 이제는 어쩔수 없읍니다. 다시는 사회에 나같은 불행이 없도록 비sms 마음에서 이 글을 썼읍니다. 1970년 7월 7일 윤혜민 드림 [선데이서울 71년 7월 18일호 제4권 28호 통권 제 14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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