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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곽병찬의 역사앞에서 묻다] 박순부·허은·이은숙 여사…그들은 ‘독립군의 어머니’였다

    [곽병찬의 역사앞에서 묻다] 박순부·허은·이은숙 여사…그들은 ‘독립군의 어머니’였다

    “네 어머니와 아내를 무겁게 대하라.” 지난달 8일 시인 이윤옥씨의 ‘서간도에 들꽃 피다’ 10권 완간 기념 ‘책 잔치’가 열렸다. 권마다 20명의 여성 독립운동가의 삶을 시와 산문으로 담은 책이다. 속표지에는 이런 짧은 헌사가 실려 있다. “이 책을 이 땅의 모든 남성에게 바칩니다.” 이유는 굳이 묻지 않아도 알 만하다. 다음은 지은이의 머리말 일부. “원고 뭉치를 들고 백방으로 뛰어다녀봤지만 선뜻 이 책을 찍어 준다는 곳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독립운동이 남성의 전유물이 돼 버린 풍토에서 여성독립운동가만의 책을 출간하는 것은, 독립운동처럼 십시일반의 정성을 모아야 가능했다.3·1운동 100주년을 맞는 올해 여성 독립운동가 이야기가 홍수를 이뤘다. 그동안 여성의 역할을 액세서리 정도로 평가절하했던 것에 대한 반성의 결과라고 믿고 싶다. 하지만 반성치고는 너무 피상적이었다. 양적으로만 늘었지 질적으로는 달라지지 않았다. 선택 기준은 언제나 ‘남성 못지않은 활동상’이었다. 삼종지도의 억압구조 속에서 수행했던 여성 혹은 어머니의 희생과 헌신은 외면당했다. 건국훈장 서훈자 1만 5537명 가운데 여성 독립지사가 전체의 2.3%(357명)에 불과한 현실이나, 5등급의 건국훈장 가운데 대부분 마지막 등급인 애족장을 서훈했거나, 훈장이 아닌 건국포장이나 대통령 표창을 받은 것은 이런 기준 때문이었다. 일송 김동삼 선생의 며느리 이해동 여사는 1987년 독립운동기념관 개관식 때 보훈처 초청으로 중국에서 잠시 귀국했다. 개관식 치사에선 온통 일송 이야기뿐이었다. 행사가 끝난 뒤 이 여사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시아버지께 공이 있다면 반 이상은 시어머니(박순부 여사) 몫이었다. 독립운동도 의식주가 있어야 가능한데, 의식주 문제를 해결하는 건 온전히 여자의 몫이었다. 여자들은 하루 스무 시간씩 일하며 밥해 먹이고 옷 지어 입히고 땔감 마련해 추위를 피하게 했다. 공산주의 나라에서도 남녀를 동등하게 대하는데, 왜 한국에서는 여성의 역할을 하찮게 보는지 모르겠다.” 박순부 여사는 만주 벌판을 호랑이처럼 떠돌며 항일투쟁에 나섰다가 옥사한 남편 일송과 그 동지들의 후방을 말없이 지키다가 만주에서 쓸쓸하게 돌아갔다. 이 여사 역시 1989년 영구귀국할 때까지 77년간 여러 남매를 낳아 키웠지만, 둘째 중생을 제외하고는 모두 먼저 떠나보내야 했다. 상하이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 석주 이상룡 선생의 맏아들 이준형은 출소한 뒤 “일본 놈들 밑에서 하루라도 더 사는 것은 치욕”이라며 자결했다. 다음은 그가 남긴 네 가지 유언 가운데 하나. “독립운동을 하면서 여자들의 고생이 심했다. 여성을 대할 때 보통으로 대하지 말고 무겁게 대하라.” 허은 여사는 조부 허형, 재종조부 허위 등 집안이 모두 독립지사였다. 어른들을 따라 1915년 만주로 망명한 허 여사는 1922년 석주의 손자 이병화와 결혼한 뒤 끝없이 찾아오는 독립군을 수발하는 ‘독립군의 어머니’ 역할을 했다. 시집온 첫해 집에서는 서로군정서 회의가 서너 달 계속됐다. 만주의 독립지사치고 그의 집을 드나들지 않은 사람은 없었으며, 따듯한 밥 한 그릇 먹지 않은 이가 없었다. “집에는 항상 손님이 많았는데 땟거리가 부족해 삼시세끼가 녹록지 않았다. 양식이 없을 때는 좁쌀 쭉정이로 죽을 끓였다.” “의복도 단체로 만들어서 조직원들에게 배급했다. 부녀자들이 동원되어 흑광목과 솜뭉치를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대량생산을 했다. (중략) …김동삼, 김형식 어른들께 손수 옷을 지어드린 것은 지금도 감개무량하다.” 고생이 얼마나 심했던지 밥 짓다가 기절해 가마솥 안으로 고꾸라질 뻔하기도 했다. “시집온 이듬해, 한번은 감기에 걸렸으나 누워서 쉴 수가 없었다. 무리했던지 부뚜막에서 죽 솥 안으로 쓰러지는 걸 마침 시고모부가 보시고는 잡아 떠메고 방에 눕혔는데 꼬박 24시간을 혼절했다.” (‘아직도 내 귀엔 서간도 바람소리가’에서) 시조부, 시부에 이어 남편도 7년간의 옥고 탓에 일찌감치 세상을 떴다. 남겨진 5남2녀를 키우고 가문을 지키는 것은 온전히 허 여사의 몫이었다. 형제들이 때론 고아원에도 가고, 보육원에도 보내진 것은 그 때문이었다. 4남1녀는 허 여사보다 먼저 세상을 떴다. ‘혁명 가족의 안주인’ 이은숙 여사의 간난신고는 ‘고초당초’보다 매웠다. 결혼 당시 지금 시세로 수천억 혹은 수조 원에 달한다는 남편 우당 이회영 여섯 형제의 재산은 신흥무관학교를 세우고 경학사 등을 경영하는 데 모두 썼다. 불과 몇 해가 지나지 않아 “하루 잘해야 일중식이요, 한겨울에도 절화하기(불피우지 못하기)를 한 달이면 반이 넘”었다. ‘매일 사는 것이 죽는 것만 못’했다. “언젠가 이을규 형제분과 백정기, 정화암 네 분이 오셨다. 그날부터 먹으며 굶으며 함께 고생하는데 짜도미라고 하층민들이 먹는 곡식조차 살 수 없었다. 강냉이로 멀건 죽을 쑤어 연명했다. 내 식구는 오히려 걱정이 안 되나, 노인과 사랑에 계신 선생님들에게 너무도 미안하여, 죽을 쑤는 날은 얼굴이 화끈 달아올라 상을 가지고 나갈 수가 없었다.”(‘서간도 시종기’에서) 이 여사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해야 했다. 고무공장 직공으로, 부잣집 침모로, 심지어 유곽 여인네의 옷을 수선하는 삯바느질까지 했고, 몇 푼 벌면 송금했다. 이 사실이 드러나 경찰서로 불려가곤 했다. 이 과정에서 두 손녀와 아들 규오가 성홍열로 차례로 죽어가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규숙, 현숙 자매는 천진 부녀구제원에 보내야 했고, 외손녀 현덕은 늑막염으로, 딸 현숙은 폐렴으로 그리고 외손자는 영양실조로 사망했다. 둘째 아들 규학은 친일파 암살 과정에서 체포돼 고문으로 청력을 잃었고, 셋째 아들 규창 역시 13년형을 받았다. 이 여사 자신은 마적떼의 총격으로 어깨에 관통상을 입어 사경을 헤매기도 했다. 우당은 1932년 일제의 감옥에서 고문당한 끝에 세상을 떴고 첫째 시숙 이건영은 질병으로, 조선 10대 갑부로 꼽히던 둘째 시숙 이석영은 영양실조로, 셋째 시숙 이철영은 풍토병으로, 여섯째 시숙 이호영은 일본군에 의해 가족 전체가 몰살당했다. 함께 망명했던 식솔 60여명 가운데 살아서 귀국한 이는 다섯째 시숙 이시영 선생 포함 20여명뿐이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의 부인 박자혜 여사는 살아서는 일제의 핍박에 시달리고, 죽어서는 단재의 호적에도 오르지 못했다. 망명 전 박 여사는 조선총독부 의원에서 간호부로 일하던 엘리트였다. 파업 태업 등을 주도해 불령선인으로 낙인찍힌 터였기에 1922년 귀국한 뒤 온갖 생활고에 시달려야 했다. 그럼에도 나석규 의사 등 국내로 잠입한 독립운동가들의 거사를 뒤에서 도왔다. 단재는 1936년 뤼순 감옥에서 순국하고 둘째 아들은 1942년 영양실조로 사망했으며, 그 자신은 잦은 체포와 고문 후유증으로 1944년 단칸방에서 홀로 세상을 떠났다. 단재는 일제의 호적을 거부한 탓에 2009년 가족관계등록부가 생기기까지 무국적자였다. 가족관계부가 생기고도 혼인관계를 확인할 수 없다 하여, 단재의 가족관계부에는 지금도 아들과 손주 이름만 달랑 올라 있다.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하고, 일경 15명을 사살한 김상옥 의사의 어머니 김점순 여사도 세 아들을 조국의 독립에 바쳤다. 김 여사는 평소에도 잠입한 독립지사들을 숨겨 주고, 먹여 주고, 입혀 줬다. 백범의 부인 곽낙원 여사는 시장에 버려진 배추 겉껍질을 모아 김치를 담갔고, 그것은 임시정부 요인들의 둘도 없는 반찬이 되었다. 베트남에는 ‘어머니 영웅’이란 칭호가 있다. 항불, 항일, 항미 독립전쟁에 자식을 바친 어머니들에게 주어지는 ‘서훈’이다. 세상에 어머니를 배반할 자식은 없다. 베트남이 물질적으로는 풍부하지 않아도 정신적으로는 여전히 견고한 것은 그 덕분일 것이다. 2018년 허 여사에게 건국훈장이 추서되자 아들 이항증씨는 이렇게 말했다. “이것은 가사노동에 대한 첫 서훈이며 음지에서 피와 땀과 눈물을 쏟은 여성 독립지사에 대한 첫 훈장입니다.” 이제 우리에게도 ‘어머니 영웅’, ‘아내 영웅’이 있어야 한다. 어머니와 아내가 없었다면 안중근도 이회영도 이상룡도 김동삼도 김구도 여운형도 신채호도 없었다. 논설고문 kbc@seoul.co.kr
  • 홍성흔 “어린시절 부모님 이혼-생활고, 이해창 세 마디로 버텼다”

    홍성흔 “어린시절 부모님 이혼-생활고, 이해창 세 마디로 버텼다”

    전 프로야구 선수 홍성흔과 이해창의 특별한 인연이 주목을 받고 있다. 홍성흔은 22일 방송된 KBS1 ‘TV는 사랑을 싣고’에 출연해 야구선수의 꿈을 계속 꿀 수 있게 해준 이해창 스승을 찾고 싶다고 밝혔다. 이날 방송에서 홍성흔은 “중학교 1학년 때 부모님이 이혼을 하시면서 경제적으로 많이 어려웠다”며 방송 최초로 가정사를 고백했다. 이어 “2006년도에 발목, 팔꿈치 부상을 입으면서 수술을 두 번이나 했고, 모든 감각들을 잃어버린 상황이었다. 야구를 그만해야 하나 생각했던 시기에 이분의 말 덕분에 제 인생이 바뀌었다. 제 인생의 키를 주신 스승님이다”고 말했다. 두 사람의 만남은 단 한 번. MBC 청룡 이해창 선수가 도봉 리틀야구단에 방문한 것. 당시 이해창은 어린 홍성흔을 보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가졌다. 절대 포기하지 말라. 포기하지 않으면 잠실야구장에 네 이름이 울려 퍼질거야”라고 희망을 심어줬다. 홍성흔은 “선배님께서 나에게 포기하지 말라는 인생의 뿌리가 된 말 한마디를 해주셨다. 정신력을 심어주셨고 그 말 때문에 내가 단단해질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지금도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에게 당시 선배님이 했던 그 세 마디를 꼭 해준다”고 말하며 대선배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전했다. KBS1 ‘TV는 사랑을 싣고’는 추억 속의 주인공 또는 평소에 고마움을 전하고 싶었던 주인공을 찾아 만나게 하는 프로그램. 매주 금요일 오후 7시 40분 방송.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의정부 고교생 장 파열 폭행’ 청원 동의 20만명 넘어

    ‘의정부 고교생 장 파열 폭행’ 청원 동의 20만명 넘어

    경기도 의정부에서 고교생이 동급생에게 폭행을 당해 장이 파열되는 등 심각한 상해를 입었다는 피해자 어머니의 청와대 국민청원에 대한 동의가 20만명을 넘었다. ‘우리 아들 **이의 억울함을 풀어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원글은 20일 오전 9시 현재 20만 2518명이 동의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국민청원 게시판에 글이 올라온 지 4일 만이다. 청와대는 20만명 이상 동의하면 이 청원에 답변해야 한다. 지난 18일 피해 학생의 어머니라고 밝힌 A씨는 “우리 아들 ○○이의 억울함을 풀어주세요”라는 글을 올렸다. A씨는 지난해 아들이 고등학교에 입학한 뒤 또래 1명에 무차별 폭행을 당해 장이 파열되고 췌장이 절단되는 중상을 입어 생사 기로에서 사망 각서를 쓰고 수술을 해 기적처럼 살아났다고 전했다. A씨는 167㎝의 키에 50㎏도 안 되는 아들을 폭행한 가해 학생이 수년간 이종격투기를 배워 탄탄한 몸과 근육질을 가랑하는 학생이라고 했다. A씨는 가해 학생이 무릎으로 아들의 복부를 걷어찬 뒤 아프다고 호소하는 아들을 영화관, 노래방 등으로 끌고 다녔다고 했다. 다음날에서야 아들은 병원으로 이송됐고, 힘든 수술을 거쳐 겨우 살아났다는 것이다. A씨는 “가해 학생의 아버지가 고위직 소방 공무원이고, 큰아버지가 경찰의 높은 분이어서인지 성의 없는 수사가 반복됐다”면서 “살인미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지만 고작 집행유예 2년과 사회봉사 160시간을 선고받았을 뿐”이라고 전했다. 이어 “아들을 간호하면서 병원비 약 5000만원이 들어갔고, 생활고에 시달리는 등 1년이라는 시간을 지옥에서 살았다”면서 “그러나 가해 학생은 자신의 근육을 자랑하는 사진을 올리고 해외여행까지 다니는 등 너무나도 편하고 행복하게 살았다”고 분노했다. 또 “가해자의 부모도 반성은커녕 사과 한번 하지 않았고, 내가 올린 탄원서들을 위조한 것 아니냐면서 필적 감정까지 들어갔다”고도 했다. 수사기관 등에 따르면 가해 학생은 지난해 3월 31일 오후 6시쯤 학교 밖에서 피해 학생의 복부를 무릎으로 폭행해 다치게 한 혐의로 기소돼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과 160시간의 사회봉사를 선고받았다. 다만 ‘가해자 아버지가 소방직 고위공무원이고 큰아버지가 경찰의 높은 분’이라는 A씨의 주장은 사실 관계가 다른 것으로 확인됐다. 논란이 확산되자 가해학생의 아버지라고 밝힌 B씨는 19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이 세상 둘도 없는 악마와 같은 나쁜 가족으로 찍혀버린 가해학생의 아빠입니다’라는 제목으로 반박글을 올리기도 했다. 이 글은 이날 오전 9시 현재 1310명이 동의했다. 최혜영 경기북부경찰청장은 지난 20일 언론에 “경찰이 모든 사안을 따져보고 수사를 성의 있게 진행했다”면서 “양측의 합의가 잘 안 돼서 감정싸움으로 비화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힌 바 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의정부 장 파열 폭행’ 가해학생 아버지 반박글 올려 진실 공방

    ‘의정부 장 파열 폭행’ 가해학생 아버지 반박글 올려 진실 공방

    경기도 의정부에서 고교생이 동급생에게 폭행을 당해 장이 파열되는 등 심각한 상해를 입었다는 글이 피해자 어머니의 소셜미디어를 거쳐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까지 올라가며 확산 중인 가운데 가해 학생 아버지가 일부 내용에 대해 반박글을 올렸다. 지난 18일 피해 학생의 어머니라고 밝힌 A씨는 “우리 아들 ○○이의 억울함을 풀어주세요”라는 글을 트위터에 올렸다. A씨는 지난해 아들이 고등학교에 입학한 뒤 또래 1명에 무차별 폭행을 당해 장이 파열되고 췌장이 절단되는 중상을 입어 생사 기로에서 사망 각서를 쓰고 수술을 해 기적처럼 살아났다고 전했다. A씨는 167㎝의 키에 50㎏도 안 되는 아들을 폭행한 가해 학생이 수년간 이종격투기를 배워 탄탄한 몸과 근육질을 가랑하는 학생이라고 했다. A씨는 가해 학생이 무릎으로 아들의 복부를 걷어찬 뒤 아프다고 호소하는 아들을 영화관, 노래방 등으로 끌고 다녔다고 했다. 다음날에서야 아들은 병원으로 이송됐고, 힘든 수술을 거쳐 겨우 살아났다는 것이다. A씨는 “가해 학생의 아버지가 고위직 소방 공무원이고, 큰아버지가 경찰의 높은 분이어서인지 성의 없는 수사가 반복됐다”면서 “살인미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지만 고작 집행유예 2년과 사회봉사 160시간을 선고받았을 뿐”이라고 전했다. 이어 “아들을 간호하면서 병원비 약 5000만원이 들어갔고, 생활고에 시달리는 등 1년이라는 시간을 지옥에서 살았다”면서 “그러나 가해 학생은 자신의 근육을 자랑하는 사진을 올리고 해외여행까지 다니는 등 너무나도 편하고 행복하게 살았다”고 분노했다. 또 “가해자의 부모도 반성은커녕 사과 한번 하지 않았고, 내가 올린 탄원서들을 위조한 것 아니냐면서 필적 감정까지 들어갔다”고도 했다. 수사기관 등에 따르면 가해 학생은 지난해 3월 31일 오후 6시쯤 학교 밖에서 피해 학생의 복부를 무릎으로 폭행해 다치게 한 혐의로 기소돼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과 160시간의 사회봉사를 선고받았다. ‘아버지가 소방직 고위공무원이고 큰아버지가 경찰의 높은 분’이라는 A씨의 주장은 사실 관계가 다른 것으로도 확인됐다. 논란이 확산되자 가해학생의 아버지라고 밝힌 B씨는 19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이 세상 둘도 없는 악마와 같은 나쁜 가족으로 찍혀버린 가해학생의 아빠입니다’라는 제목으로 반박글을 올렸다. B씨는 “죄인이기에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어야 한다는 거 너무도 잘 알고 있지만 사실과 다른 부분이 많은 것에 대해 다른 여러분들이 이유 없이 지탄을 받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에 조심스럽게 글을 적는다”면서 “먼저 잊혀질 수 없는 고통과 아픔 속에 1년이라는 긴 시간을 보낸 피해 학생 및 피해자 가족분들에게 진심으로 죄송하고 또 죄송하다”고 글을 시작했다. B씨는 “아들은 피해 학생을 무차별적으로 구타한 것이 아니고 우발적으로 화가 나 무릎으로 복부를 한 대 가격한 것”이라면서 “이후 친구들이 화해를 시켜 화해한 후 피해 학생 스스로 걸어서 영화를 보러 간 것”이라고 A씨의 주장을 반박했다. 아들이 폭행을 휘두른 이유에 대해서도 “아들이 여자친구와 헤어진 뒤 헤어진 이유에 대해 채팅방에서 이야기했는데, 피해 학생이 그 내용을 헤어진 여자친구에게 보여준 데 대해 사과를 받으려 한 것”이라면서 “피해 학생이 사과를 하지 않고 발뺌을 하는 것에 화가 났던 것”이라고 전했다. 특히 병원 이송이 늦어진 이유에 대해 “피해 학생조차 한 대 맞은 것이 이렇게 크게 다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해 일시적인 통증이라 생각하여 참다가 수술이 늦어진 것”이라고 반박했다. 가해자인 아들의 체격 등에 대해서도 “당시 169㎝의 키와 몸무게 53㎏의 체격을 가진 평범한 학생”이라면서 “이종격투기를 한 적은 없고 권투를 취미로 조금 했다”고 밝혔다. 또 “아들의 폭행 사실을 알고 바로 병원으로 달려가 가족 모두 피해자 어머니에게 무릎을 꿇고 사과를 했다”고도 했다. 특히 자신은 서울소방에 19년째 근무 중인 소방위 계급의 하위직 공무원이고, 큰아버지는 경찰서에 가보지도 못한 일반 회사원이었으며 7년 전 식도암 수술 이후 치매 진단을 받아 3년째 치료 중이라고 반박했다. 치료비는 학교공제회 및 검찰을 통해 5100만원을 지급했으며, 합의는 감당하기 어려운 금액을 요구해 결렬됐다고 전했다. 또 “피해자 가족에게 ‘맞은 것도 죄’라고 말한 적이 결코 없으며 사건 이후로 단 한번도 해외여행을 다녀온 적이 없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너무 크나큰 잘못을 저질러놓고 이런 송구스런 글을 올리게 돼 또한 부끄럽다”면서도 “저희의 잘못된 행동으로 아무런 잘못한 일도 없는 판사님, 검사님, 경찰공무원분들, 소방공무원분들이 왜곡된 사실로 이런 지탄을 받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에 글을 올렸다”고 밝혔다. B씨가 글과 함께 덧붙인 2심 판결문에서 재판부는 “이 사건은 피고인이 친구인 피해자와 다투다가 무릎으로 피해자의 복부를 차 췌장에 심각한 상해를 입게 한 것으로서 죄질이 가볍지 않은 점, 피해자는 향후에도 계속 치료를 받아야 하고 장해가 남을 것으로 예상되는 등 결과가 중한 점, 피해자와 합의하지 못하였고 피해자와 그 부모가 피고인에 대한 엄한 처벌을 탄원하면서 공탁금 수령도 거부하고 있는 상황인 점은 피고인에게 불리한 정황이다”라고 밝혔다. 이어 “피고인이 범행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는 점, 피고인이 행한 폭력의 정도에 비추어 일반적으로 예상할 수 있는 정도를 넘어서는 중한 상해의 결과가 발생한 점, 피고인의 부모가 합의를 위하여 나름대로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보이고 치료비 상당의 금액은 모두 지급된 것으로 보이며, 원심에서 1500만원을, 당심에서 500만원을 각 공탁한 점, 피고인이 아직 어린 학생이고 부모의 선도의지가 강해 보여 교화의 가능성이 남아 있다고 보이는 점은 피고인에게 유리한 정상이다”고 판단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또래에 폭행당해 장 파열…가해자는 해외여행·근육 자랑”

    “또래에 폭행당해 장 파열…가해자는 해외여행·근육 자랑”

    경기도 의정부에서 고등학생이 또래 1명에게 맞아 장 파열 등 심각한 상해를 입었는데 가해자는 집행유예를 받았다는 내용의 글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퍼지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와 공분을 사고 있다. ‘○○이 엄마’라고 밝힌 글쓴이는 18일 트위터에 “18세 아들이 지난해 고등학교에 입학한 지 한 달도 안 돼 또래 학생에게 무차별 폭행을 당했다”면서 “이로 인해 장이 파열되고 췌장이 절단되는 중상을 입고 생사 기로에서 사망 가서를 쓰고 수술해 기적처럼 살아났다”고 밝혔다. 글쓴이는 “아들은 167㎝의 키에 50㎏도 안 되는는 아이인데 가해 학생은 이종격투기를 몇년 동안 하고 탄탄한 몸과 근육질을 자랑하는 학생이었다”면서 “가해 학생은 ‘여자친구를 모욕했다’는 거짓말을 듣고 ‘그냥 한 대만 맞자’라면서 무차별 구타했다”고 했다. 글에 따르면 가해 학생은 피해 학생의 얼굴에 침을 뱉고 철망이 있는 벽에 밀어넣은 다음 무릎으로 복부를 걷어찼다. 이후 폭행해서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아프다고 호소하는 아들을 데리고 영화관, 노래방 등을 끌고 다녔다고도 했다. 아들이 다음날에서야 병원으로 이송됐고, 24시간이 지나서야 수술을 할 수 있었다면서 “5명 중 4명이 죽는 힘든 수술이라는 의사의 말을 듣고 하늘이 무너졌다”고 글쓴이는 전했다. 아들이 수술을 받는 동안 아들의 친구에게 폭행 사실을 전해듣고 경찰에 신고했다. 글쓴이는 “가해 학생의 아버지가 고위직 소방 공무원이고, 큰아버지가 경찰의 높은 분이어서인지 성의 없는 수사가 반복됐다”면서 “결국 살인미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지만 고작 집행유예 2년과 사회봉사 160시간을 선고받았다”고 전했다.이어 “아들을 간호하면서 병원비 약 5000만원이 들어갔고, 생활고에 시달리는 등 1년이라는 시간을 지옥에서 살았다”면서 “그러나 가해 학생은 자신의 근육을 자랑하는 사진을 올리고 해외여행까지 다니는 등 너무나도 편하고 행복하게 살았다”고 분노했다. 또 “가해자의 부모도 반성은커녕 사과 한번 하지 않았고, 내가 올린 탄원서들을 위조한 것 아니냐면서 필적 감정까지 들어갔다”고도 했다. 가해 학생의 폭행이 이전에도 있었다고도 전했다. 글쓴이는 “불과 한달 전 다른 학생의 코뼈를 부러트리고 기소유예로 풀려났다”면서 “가해 학생은 누구를 때렸을 때 미안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 없다고 당당하게 말하고, ‘맞은 것도 죄’라고 말하는 가해 학생 아버지의 말에 너무나 억울해 항소를 했다”면서 “그러나 검찰 측에서 피해자 측에 연락도 없이 재판을 진행했고 알지도 못한 채 항소가 기각됐다는 통보를 들었다”고 전했다. 글쓴이는 “음악적 재능이 뛰어난 아들이 부푼 꿈을 안고 입학했는데 지금은 악기도 못 들고 공황장애까지 생겨 사람 많은 곳에서 발작한다”면서 “18살 생일날에 겨우 단 둘이서 조용히 생일파티를 하고 나 역시 울분이 터지고 억울하고 마음이 아파서 매일 밤을 눈물로 보내고 있다”고 했다. 이 글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우리 아들 **이의 억울함을 풀어주세요.‘라는 제목(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530372?navigation=petitions)으로도 게재돼 19일 오후 5시 현재 5만 9000명 이상이 청원에 동의했다. 그러나 청원 글과 달리 당시 이 사건을 살인미수 혐의가 아닌 상해 혐의로 입건됐던 것으로 연합뉴스가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가해 학생은 지난해 3월 31일 오후 6시쯤 학교 밖에서 동급생인 피해 학생과 어깨가 부딪히자 피해 학생의 배를 무릎으로 한차례 가격해 상처를 입힌 혐의를 받았으며, 재판에 넘겨져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과 160시간 사회봉사를 선고받았다. 검찰이 “양형이 부당하다”면서 항소했으나 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또 가해 학생의 큰아버지가 고위 경찰이라는 주장에 대해 해당 경찰서는 “일반 사업자로 확인됐다”면서 “소방관인 아버지도 고위직은 아니다”고 해명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홀로이지만, 혼자가 아니다… 쓸쓸·고통으로 묶인 우리는

    홀로이지만, 혼자가 아니다… 쓸쓸·고통으로 묶인 우리는

    사이하테 타히라는 시인이 있다. 그의 네 번째 시집 ‘밤하늘은 항상 최고 밀도의 푸른색이다’(2016)는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많이 읽혔다는 뜻이다. 지금 여기를 살아내는 사람이 가질 수밖에 없는 고독의 정서를 이런 식의 시구로 표현했기 때문일 테다. “네가 가엾다고 생각하는 너 자신을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동안은 세상을 미워해도 돼. 그러니까 이 별에 연애란 있을 수 없어.” 외로움과 연민, 증오와 사랑을 그는 이렇게 언어화했다. 해석하기 어렵지 않게, 그러나 쉽게 읽고 금방 흘려버릴 수도 없게. 이 시집에 감응한 독자 중 한 명이 이시이 유야 감독이다. 출판사 직원들의 사전 편찬기를 다룬 미우라 시온의 소설 ‘배를 엮다’를 원작으로 영화 ‘행복한 사전’(2013)을 만들었던 그는, 이번에는 사이하테 타히의 시집을 바탕으로 영화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를 완성했다. 그러니까 관객 입장에서도 시 읽는 마음으로 영화를 보는 편이 나을 것 같다.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그것을 전하는 형식적 감각에 집중해야 감상이 수월하다는 말이다. 이 작품에 쓰인 비유와 상징을 중심으로 접근하기를 권한다. 이를테면 왼쪽 눈이 잘 보이지 않는 남자 주인공 신지(이케마츠 소스케)가 보는 반쪽 세계의 프레임이라든가, 방에서 괜히 가라테 발차기를 연습하는 여자 주인공 미카(이시바시 시즈카)의 모습이라든가, 신지와 미카가 자꾸 마주치게 되는 버스커 공연 등이 그렇다. 그 외에도 이 영화에는 형식적 감각의 차원에서 분석할 부분이 많다. 한 가지 염두에 둘 점은 이를 관통하는 감정이 누군가의 죽음으로 인한 상실감, 힘든 일로 생존을 이어 나가야 하는 생활고라는 것이다. 이것은 신지나 미카나 마찬가지다. 그들뿐이 아니다. 도쿄에 사는 사람들, 서울에 사는 사람들도 다를 바가 없다. 우리는 홀로이나 바로 그런 점에서 쓸쓸함과 고통으로 묶이는 공동체다. 이 영화가 국경을 넘어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이유다.혼자인 모두가 연결되어 있으므로 이 영화는 비관적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미카의 목소리로 들리는 사이하테 타히의 시구가 그 사실을 방증한다. “물처럼 봄처럼 네 눈동자가 어딘가 있어, 만나지 않아도 어딘가에서 숨 쉬고 있어, 희망과 사랑과 심장을 울리고 있다.” 이 구절에 기대자. 그러면 비약을 반복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신지와 미카의 관계도 그럴 듯하게 납득된다. 논리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것이 세상에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 같은 진실을 살면서 자꾸 잊게 된다. 그래서 이 같은 진실을 잊지 않으려고 우리는 시를 읽는다. 시로 만든 영화를 본다. (덧붙임: 영화 개봉을 계기로 사이하테 타히의 시집도 한국에 번역되기를 바란다.) 허 희 문학평론가·영화칼럼니스트
  • ‘36번 광수’의 분노… 그날 이후 난 최룡해가 됐다

    ‘36번 광수’의 분노… 그날 이후 난 최룡해가 됐다

    “도청 못 지키고 살아남아 평생 죄책감… 5월을 모독하지 말라”“그라믄 내가 쩌기 위에(북한) 있어야 할 거 아니여.” 극우 인사 지만원(77)씨로부터 ‘광수’ 36번, 최룡해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으로 지목된 양동남(58)씨는 “내가 광수 중에 서열이 제일 높다. 서열 2위가 뭐 한다고 여기서(한국) 살고 있겠느냐?”며 허탈하게 웃었다. ‘광수’는 ‘광주시민군으로 위장한 북한 특수군’을 지칭하는 지씨의 표현이다. 웃음으로 승화했지만, 그는 39년 전 학살의 현장에서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간직하고 있었다. 지난 13일 역사 왜곡에 항의하기 위해 국회를 찾은 그를 만났다. 양씨는 “처음에는 황당해서 사진을 보고 나라고 말도 안 했다”며 “유치한 장난을 계속 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5·18 유공자에 대한 능멸이 계속되자 양씨는 2016년 말 지씨를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양씨는 지난해 서울중앙지법에서 지씨의 변호사가 “왜 광대뼈가 튀어나왔느냐는 질문을 했다”며 “변호사가 법정에서 그게 물어볼 이야기냐”고 황당해했다. 양씨는 재판정에서 이렇게 성토했다고 한다. “당신들도 잡혀가서 한 5개월 두들겨 맞으면서 조사받아 봐라. 한 끼니에 군용 숟가락으로 세 숟가락 뜨면 식사가 끝났다. 하루에 밥을 열 숟가락도 못 먹었다. 그렇게 하면 당신들도 광대뼈가 나올 것이다.”광주 시민군 제1 기동타격대 소속으로 1980년 5월 27일 전남도청을 마지막까지 사수하다 체포된 양씨는 조사를 받을 때 북한군 이야기를 들어본 적도 없다고 했다. 담당 수사관은 “김대중이가 만약 대통령이 되면 너에게 광주경찰서 서장 자리 준다고 했지”라는 질문만 했다. 양씨는 “자기들(김영삼 정권)이 5·18 특별법까지 만들어 놓고 이제 와서 북한군 주장을 하고 있다”며 “지만원이의 뇌 구조를 한번 보고 싶은 심정”이라고 했다.앞서 지씨가 광수로 지목한 이들의 안면 분석을 했던 최창석 명지대 정보통신과 교수는 “딱 봐도 아닌데 아니라고만 할 수 없어서 객관적 비교를 했지만 역시 아니었다”고 말했다. 서울신문의 의뢰로 광수 36번, 양씨, 최룡해의 사진을 분석한 최 교수는 “광수 36번과 양씨의 눈썹, 눈, 코밑, 입의 간격이 일치했다”며 “반면 광수 36번의 콧대는 죽어 있는데 최룡해의 콧대는 서 있고, 코도 더 길다”고 전했다. 최 교수는 “광수 36번의 턱이 가려져 있고 두건을 쓰고 있어서 정확하게 보기는 어렵다”면서도 “그러면 최룡해라는 근거도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양씨와 함께 이날 국회를 찾은 5·18 관련 단체들도 북한군 개입설을 반박했다. 김후식 5·18 민주화운동 부상자회 회장은 “1988년 청문회 당시 군과 정부(자유한국당 전신인 민정당 정부)가 내놓은 자료에도 북한군이 내려왔다는 말은 한마디도 없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북한군이 개입됐다면 전두환·노태우·김영삼 정권이 가만히 있었겠느냐는 것이다. 양희승 5·18 구속부상자회 회장도 “북한군이라고 지목한 무명 열사 묘지를 파헤쳐 DNA 검사를 했는데 5세에서 7세로 나타났다”며 “지씨 말대로라면 북한 특수군이 5~7세에 내려왔다는 얘기”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북한군 묘지라고 파보면 5~7세 아이들” 1980년 5월 27일 새벽 계엄군은 도청을 장악했다. 새벽 5시쯤 마지막 순간에 시민군 박남선 상황실장은 “니기들이 마지막인 것 같다. 니기들이라도 살아서 최후진술을 해라”고 말한 뒤 총을 빼앗아 복도에 던졌다고 한다. 양씨는 계엄군의 대검에 찔려 체포돼 내란실행 혐의로 기소됐다.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그는 같은 해 12월 29일 군사고등법원에서 형집행정지를 선고받고 석방됐다. 그는 “광주와 관련된 일에 절대 가담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고 석방됐다”며 허공을 쳐다봤다. 양씨에게 80년 광주는 평생의 아픔이다. 그는 “마지막까지 도청을 지키자고 다짐했는데, 살아남았다.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을 안고 지금까지 살아왔다”며 고개를 숙였다. 죄책감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 그는 석방 이후 감시를 받으면서도 5·18을 다룬 황석영의 책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와 사진, 영상을 들고 전국을 돌며 광주의 진실을 알렸다. 양씨 같은 피해자들의 노력 덕택에 광주의 진실은 역사에 기록됐다. 그러나 양씨는 지금도 5월이 되면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그는 “취직을 해도 봄이 되면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몇 번이나 직장을 그만뒀다”며 “1990년 이후까지 신경안정제를 먹어야 잠을 잘 수 있었다”고 말했다. 양씨는 “바라는 게 없다”고 했다. 그냥 5월을 모독하지만 말라는 것이다. 양씨는 “내 주변에서만 2명이 생활고와 트라우마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며 “제대로 일도 못 하고, 빚을 내어 구입한 안정제로 버티는 이들을 모욕하지 마라”고 했다.●“깡패가 막아도 진실 알려… 두렵지 않다” 어두웠던 양씨의 표정은 딸 이야기에 이르자 비로소 밝아졌다. 이날 아침 고등학교 3학년인 딸이 “신나게 싸우고 오라”고 응원을 해 줬다는 것이다. 국회 쪽으로 걸어가니 태극기 부대가 보였다. 두렵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저런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깡패들이 항쟁 사진전을 막으려고 위협했을 때도 진실을 알렸다”며 웃어 보였다.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고혜지 기자 hjko@seoul.co.kr
  • 김연자 “남편 배신→생활고로 우울증..20년 활동 남은 건 無”

    김연자 “남편 배신→생활고로 우울증..20년 활동 남은 건 無”

    ‘인생술집’ 김연자가 전 남편의 배신으로 힘든 시기를 보냈음을 고백했다. 지난 31일 방송된 tvN 예능프로그램 ‘인생술집’에서는 설 맞이 트로트가수 특집으로 김연자, 한혜진, 박현빈이 게스트로 출연했다. 이날 김연자는 “’아모르 파티’가 우울증을 극복하고 탄생한 곡”이라며 “50대에 접어들면서 뒤돌아봤더니 아무것도 없더라. 남편에게 물어보니 돈도 없다고 하더라. 돈을 많이 모았을 줄 알았는데 없다고 했다. 일본에서 20년 활동한 게 히트곡이랑 명예밖에 없었던 거다”라고 밝혔다. 이후 김연자는 남편의 배신으로 생활고를 겪었다. 심지어 심한 우울증까지 앓았다고. 김연자는 “일본에서 20년 동안 활동했는데 남은 게 아무것도 없더라. 내 앞길이 너무 갑갑했다. 우울해서 맨날 울었다. 동생이 한국에 오라고 해서 ‘내가 갈 곳은 있구나’라는 생각으로 한국에 왔다”고 한국으로 돌아온 이유를 설명했다. 이에 MC 신동엽은 “아무것도 모르고 일만 하면 주변에서 어떻게든 해서 돈을 다 사라지게 만든다. 지금 여기 계신 게 기적이다. 보통 사람이면 멘탈이 나간다”라며 김연자를 위로했다. 이에 김연자는 “내 인생의 슬럼프였다. 그래도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니까 여기까지 왔다. 지금은 ‘아모르 파티’ 덕분에 다시 시작하고 있다. ‘아모르 파티’ 덕에 웃음이 나온다”며 긍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한편 김연자는 1974년 TBC ‘전국가요 신인스타쇼’에서 우승하며 ‘말해줘요’라는 곡으로 데뷔했다. 2년 뒤인 1977년 ‘여자의 일생’이라는 곡을 발매하며 일본 활동을 시작, ‘아침의 나라’, ‘수은등’ 등의 곡을 일본어로 개사해 불러 ‘엔카의 여왕’으로 사랑 받았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관리비 3개월 체납·가구주 사망 가구도 정부 도움 받는다

    위기가구 범위 추가… 발굴·지원 강화 국민연금·건보료 밀리고 자살자 가구도 앞으로 생계가 어려워 3개월간 아파트 관리비를 내지 못하거나 가구주가 사망해 수입이 끊긴 가구는 정부의 ‘사회보장정보시스템’(행복e음)에 자동 등록돼 먼저 요청하지 않더라도 도움받을 길이 열리게 된다. 보건복지부는 30일부터 위기가구 발굴·지원을 강화하는 내용의 ‘사회보장급여의 이용·제공 및 수급권자 발굴에 관한 법률’ 시행령 등을 입법 예고한다. 지난해 충북 증평군에서 모녀가 생활고를 비관해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을 계기로 구멍 뚫린 위기가구 발굴 정보 시스템을 좀더 촘촘히 정비한 것이다. 그동안 민간 아파트 관리비 등은 ‘행복e음’ 수집정보 범위에서 빠져 있었다. 증평 모녀가 수도와 전기 요금을 상당 기간 체납했는데도 요금이 아파트 관리비에 포함돼 당시 지자체는 이상징후를 눈치채지 못했다. 건강보험료와 국민연금 보험료가 3개월간 밀려도 위기가구 발굴 ‘레이더망’에 들어온다. 기존에 체납 6개월 가구 정보만 수집하던 것을 3개월로 당겼다. 휴·폐업 사업자의 정보도 확보한다. 이와 함께 자살자가 주소득원인 가구, 자살 시도가 우려되는 자살자의 유족, 재시도가 우려되는 자살 시도자, 빈번한 자살 시도자와 그 가족의 정보도 수집한다. 자살예방센터나 정신건강센터가 가구의 정보를 사회보장기관에 제공하면 사회보장기관이 경제적 위기 등을 판단해 지원할 수 있도록 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자살자나 자살 시도자의 가족 또한 고위험군이어서 정보 수집 대상을 개인에서 가구로 확대했다”고 설명했다. 한편 복지 부정수급 신고포상금은 부정수급으로 환수 통보된 금액의 30% 범위로, 1인당 연간 5000만원 이내에서 지급하기로 했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스스로 증명해야 하는 가난… ‘망우동 모녀’같은 비극 반복된다

    스스로 증명해야 하는 가난… ‘망우동 모녀’같은 비극 반복된다

    기초생활보장 복잡한 절차·과다한 서류 위기가구 찾아도 부양의무 기준 ‘걸림돌’ 지자체간 천차만별 상담·서비스도 문제 ‘찾아가는 복지’ 인력·예산 확대 등 절실 전문가 “복지 총량 늘려 실질적 개선을”지난해 생활고를 비관해 자살한 ‘증평 모녀 사건’과 ‘구미 부자 사건’, 이달 초 ‘망우동 모녀 사건’ 등은 기존 복지 사각지대 발굴시스템으로도 발견하지 못하는 ‘틈새 사각지대’가 있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찾아가는 보건복지서비스’의 인력과 예산을 대폭 확대하고, 수급자 스스로 가난을 증명해야 하는 현행 복지제도를 획기적으로 개선하지 않는 한 제2, 제3의 ‘망우동 모녀’가 계속해서 나올 것이란 지적이 제기된다. 지난 3일 서울 중랑구 망우동의 한 반지하 주택에서 숨진 채 발견된 김모(82)씨와 최모(56)씨 모녀는 매달 받는 기초연금 25만원으로 생계를 이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기초생활보장을 신청하지 않았고 공과금과 건강보험료는 꼬박꼬박 내 빈곤 위기 가정을 파악하는 주민센터의 레이더망에도 걸리지 않았다. 어머니 김씨는 고령에 치매까지 앓고 있었지만 사회복지전담 공무원의 전수 방문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망우동 모녀의 사례는 복지제도 시스템의 문제를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이상구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운영위원장은 27일 “기초생활보장 제도는 본인이 신청해야 받는 ‘신청주의’ 제도인데, 망우동 모녀가 기초생활보장을 신청하려 했더라도 제도가 워낙 복잡해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초생활보장을 신청하려면 내야 할 서류가 많은 데다 제도 자체도 복잡해 빈곤층의 정보 접근성이 떨어진다. 설령 망우동 모녀가 기초생활보장을 신청했더라도 부양의무자 기준에 가로막혔을 수도 있다. 문재인 정부는 돌볼 가족이 있을 경우 기초생활보장 수급 대상에서 빠지는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하겠다고 공약했지만 완전 폐지된 것은 기초생활보장 가운데 주거급여뿐이다. 생계·의료급여는 중증장애인과 노인을 부양의무자로 둔 가구에 한해 단계적 폐지 절차를 밟고 있다. 지난해 12월부터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찾아가 상담하고 복지 서비스를 연계해주는 ‘찾아가는 보건복지서비스’가 전국 모든 읍·면·동 주민센터(3509개)에서 시행됐지만 지역마다 편차가 큰 것도 문제다. 지자체가 예산의 일정 부분을 반드시 복지서비스에 사용하도록 중앙정부가 관리를 강화해 지역 간 복지 불균형을 해소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찾아가는 복지서비스 이후 전담팀 공무원을 충원했지만 여전히 현장 인력은 부족하다. 복지부 관계자는 “찾아가는 복지 업무를 전담하는 인력은 주민센터당 서울 6~7명, 도 지역 3~4명, 면 단위는 1~2명뿐”이라고 했다. 고현종 노년유니온 사무처장은 “송파 세모녀 사건 이후 복지 사각지대 발굴 노력을 하고 있지만, 위기 가구를 발굴해 긴급 자금 등을 지원해주고선 지속적인 관리가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이분들을 제도의 틀에서 보호하려면 인력과 시스템이 필요한데, 기존 예산만 가지고 복지 사각지대를 없애겠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복지의 총량을 늘려야 한다고 말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18년 사회지출’ 자료를 보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공공사회지출 비중은 11.1%로 OECD 회원국 평균인 20.6%에 크게 못 미친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본 조비, 셧다운 고통 공무원 71명에 공짜 점심 대접

    본 조비, 셧다운 고통 공무원 71명에 공짜 점심 대접

    살아있는 록의 전설, 미국 록밴드 ‘본 조비’의 보컬인 존 본 조비(57)가 한달째 이어진 미국 연방정부의 셧다운(일시적 업무정지)으로 월급을 받지 못한 공무원들을 초대해 공짜 점심을 대접했다. CNN 등 외신은 21일(현지시간) 본 조비가 뉴저지주 레드뱅크에 있는 자신의 자선 식당 ‘JBJ 솔 키친’에서 셧다운으로 생활고를 겪는 공무원 71명에게 무료로 점심을 대접했다고 전했다. 식당을 찾은 환경보호청(EPA)의 한 공무원은 “손을 뻗어 우리가 겪는 어려움에 진심으로 공감해줬다”며 식당을 운영하는 본 조비 부부에게 고마움을 드러냈다. 앞서 본 조비는 19일 생활고를 겪는 공무원들을 위해 21일 정오부터 2시간 동안 무료로 자신의 식당에서 점심을 제공하겠다고 페이스북을 통해 알렸다. 본 조비는 이 글에서 “우리의 친구이자 이웃인 공무원들이 함께 맛있는 식사를 즐기면서 우리 사회가 그들을 어떻게 지지하고 있는지 알았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본 조비는 23일에도 뉴저지 톰스리버에 있는 또 다른 자선 식당에서 연방 공무원들을 위해 점심 식사를 제공할 예정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어느새 8주기… ‘소설의 어머니’ 지상으로 내려오다

    어느새 8주기… ‘소설의 어머니’ 지상으로 내려오다

    “소설의 어머니이자 소설의 집이다.”(함정임 작가) “박완서 소설가는 한국어로 소설을 읽는 사람이 남아 있는 한, 언제까지고 읽힐 것이다.”(정세랑 작가) 박완서 작가 8주기를 맞아 그의 문학 정신을 기리는 짧은 소설집 2종이 출간됐다. 박 작가 최초의 짧은 소설집 ‘나의 아름다운 이웃’(개정판·이하 작가정신)과 한국 대표 작가 29명의 짧은 소설을 엮은 ‘멜랑콜리 해피엔딩’이다. 짧은 소설, 콩트에 대해 ‘방 안에 들어앉아 창호지에 바늘구멍을 내고 바깥세상을 엿보는 재미’로 비유했던 박 작가. 짧은 소설은 개념이 명확지 않고 분량이 짧다는 이유로 독자들의 관심 밖이었지만 그는 달랐다. ‘나의 아름다운 이웃’에서 작가는 10페이지 안팎의 소설 46편에 산업화가 한창 진행 중이던 1970년대 사회의 단면을 예리하게 포착했다. ‘멜랑콜리 해피엔딩’은 박완서 문학의 세례를 받은 작가들이 ‘인간다운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에 끊임없이 천착한 그의 문학 정신을 기린다는 의미로 기획됐다. 강화길, 김사과, 김숨, 박민정, 임현, 손보미, 정세랑, 조남주, 정지돈 등 문단의 최전선에서 활약 중인 젊은 작가들과 권지예, 김종광, 백민석, 이기호, 이장욱, 전성태, 조경란, 최수철, 한창훈, 함정임 등 문단의 중추를 담당해 온 중견 작가들까지 참여했다. 고인을 직접 언급하지 않은 소설들이 대부분이지만 후배 작가들은 고인 특유의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은 그대로 가져간다. 생활고에 치인 가장이 술김에 아들 장난감으로 고가의 레고 블록을 샀다가 아내의 지청구를 듣고 환불하러 가는 길을 그린 이기호 작가의 ‘다시 봄’ 등이 그렇다. 반면 함정임 작가는 과거 편집자로 일할 당시 계간지에 고인의 장편소설 연재를 받거나 작품 세계를 망라하는 특집호 기사를 냈던 기억을 떠올리며 그를 향한 각별한 애정을 직접적으로 고백한다. 작가와 편집자라기보다는, 시집간 딸과 딸을 갸륵하게 바라보는 친정 엄마 같았다는 회고다. ‘한국 문단의 대모’ 고인의 온기가 곳곳에서 느껴지는 책이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역사적 경제 성과”… 트럼프 취임 2주년 자화자찬

    셧다운 30일… 공무원들 전당포 찾기도 미국 연방정부 셧다운(일시적 업무정지)이 30일째 이어지는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취임 2주년을 맞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20일(현지시간) 자신의 트위터에 경제 성과를 자랑하는 한편, 셧다운 책임이 민주당에 있다고 강한 비난을 이어갔다. 하지만 셧다운 여파로 한 달 동안 급여를 받지 못한 연방정부 공무원들의 본격적인 생활고가 이어지면서 민심은 싸늘해지고 있다는 평가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트위터에 “우리는 역사상 가장 훌륭한 경제를 갖고 있다”면서 “큰 국내총생산(GDP), 최저 실업률, 미국으로 돌아오는 많은 기업, 엄청난 새로운 무역 거래 발생”이라면서 자신의 경제 성과를 ‘셀프 홍보’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다른 트윗에서 국경장벽의 정당성을 강조하고 셧다운 책임을 민주당에 돌렸다. 그는 “우리는 지금 장벽의 큰 부분들을 만들고 개조하고 있다. 빨리 움직이면 (건설) 비용이 훨씬 적게 들 것”이라면서 “어쨌든 건설은, 심지어 돈을 쉽게 구할 수 없을 때도, 내가 가장 잘하는 것”이라고 자화자찬했다. 그는 이어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와 일부 민주당원들은 내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내 제안을 거절했다”면서 “(민주당은) 범죄와 마약 문제를 보지 않고 이기지도 못할 2020년 대선만 보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에 펠로시 의장이 “정부를 다시 열고 공무원들이 급여를 받을 수 있게 하라”며 즉각 맞불을 놓자 미치 매코널 상원 원내대표는 이번 주 안에 트럼프 대통령의 제안을 담은 장벽 예산안을 표결에 부치겠다고 밝혔지만 쉽지 않아 보인다고 워싱턴포스트가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 2주년이 최장기 셧다운과 맞물리면서 민심은 싸늘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이번 사태(셧다운)로 트럼프 대통령의 몇 가지 근본적 기질이 드러났다”면서 “셧다운 사태로 급여를 받지 못하고 있는 공무원들에 대한 ‘공감 부족’과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의식 부족’ 그리고 자신의 정적에 대한 ‘보복 성향’”이라고 지적했다. 뉴욕타임스는 “소수이지만 연방정부 공무원들이 전당포를 꾸준히 찾고 있다”면서 “셧다운 사태가 이들의 생계를 위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워싱턴 한준규 특파원 hihi@seoul.co.kr
  • 美셧다운 30일째…연방공무원들 TV·반지 들고 전당포 찾아

    美셧다운 30일째…연방공무원들 TV·반지 들고 전당포 찾아

    미국 연방정부의 셧다운(일시적 업무 정지)이 30일째를 맞으며 역대 최장 기록을 연일 경신하자 급여를 받지 못하는 공무원들이 생활고에 시달리며 일부는 전당포를 찾는 것으로 전해졌다. 20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미국과 멕시코 국경에 대한 장벽 건설 예산을 둘러싸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야당인 민주당이 서로 양보 없이 물러서지 않으면서 지난해 12월 22일 셧다운이 시작된 이후 연방 공무원들의 전당포행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현재 셧다운으로 보수를 지급받지 못하고 있는 연방 공무원들은 80만명 정도다. 연방 공무원들이 TV에서부터 보석을 비롯해 값이 나가는 물건을 전당포에 맡기고 필요한 자금을 융통, 이에 대한 이자를 전당포에 지불하고 재정 상황이 나아지면 원금을 내고 물건을 찾아가는 것이다. 미 몬태나주 빌링스에서 ‘옐로스톤 전당포’를 운영하는 블레인 포트너는 “하루 평균 3명의 연방 공무원들이 우리 전당포를 찾는다”고 말했다. 포트너는 한 연방 공무원은 구매가가 수백 달러에 달하는 펜들턴 담요를 맡기고 50달러를 빌려 갔다고 설명했다. 포트너는 2달에 20%의 이자를 부과한다. 라스베이거스에서 ‘맥스 전당포’를 운영하는 마이클 맥은 전당포를 찾는 연방 공무원들이 꾸준히 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공무원들에 빌려준 자금에 대해 4개월간 이자 상환을 유예해주고 있다. 맥스는 지난달 말 한 여성이 “캘리포니아에서 친척이 찾아오는데 크리스마스 만찬을 대접할 돈이 충분하지 않다”면서 찾아왔다면서 자신 어머니의 결혼반지를 맡기고 자금을 융통해갔다고 설명했다. 버지니아주에서 ‘알렉산드리아 전당포’를 운영 중인 리처드 앤드루스는 지난주 한 가족이 60인치 고화질 평면 TV를 들고 와 200~300달러를 요구했지만 75달러를 내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앤드루스는 “모든 사람이 (셧다운으로) 자신들이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불평을 털어놓고 있다”고 설명했다. 연방 공무원들의 실업수당 청구도 늘고 있다고NYT는 전했다. 지난 17일 발표된 통계에 따르면 연방정부 공무원들의 실업수당 청구 건수는 1월 첫째 주(~1월 5일) 기준으로 1만 454건을 기록했다. 이는 한 주 전의 4760건에서 5694건이나 대폭 늘어난 것이다. NYT는 지난 16일자 기사에서 셧다운 시작 이후 4주간 80만명의 미 연방 공무원들이 지급받지 못한 보수는 자체 분석 결과, 1인당 평균 5000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평가됐다고 전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1971년 8월 그날 생존권 외친 죄…반백년을 폭도로 낙인찍혔다

    1971년 8월 그날 생존권 외친 죄…반백년을 폭도로 낙인찍혔다

    “우리는 아무것도 모른 채 끌려가 두들겨 맞고 고문을 당하며 ‘데모꾼’으로 몰렸습니다. 성남시에서 관심을 갖고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한다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1971년 8월 10일 경기 광주대단지(현재 성남시 중원·수정구) 주민 5만여명이 정부의 불도저식 도시정책에 반발해 생존권을 걸고 일으킨 최초의 도시 빈민투쟁으로 불리는 광주대단지 사건에 대한 재조명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광주대단지 사건은 전매 입주자들의 재산권 투쟁이기도 했다. ‘관선’ 서울시는 ‘선 입주 후 개발’ 정책으로 도시 기반시설을 전혀 갖추지 못한 광주대단지에 서울 도심의 철거민들을 트럭으로 실어 날랐다. 덩달아 이주민들은 극심한 생활고와 굶주림에 시달려야만 했다. 서울시가 토지 분양대금 확보를 위한 분양지 전매 금지조치를 내리는 한편 경기도가 과도한 취득세를 부과하면서 주민들의 불만은 극에 달했다. 시위는 6시간이나 이어졌다. 마침내 서울시가 주민들의 요구를 무조건 수용하기로 했다. 하지만 광주대단지 주민 전체가 난동과 폭동의 주범으로 낙인찍히며 사회적 차별이 심했고, 18~20세 꽃다운 청소년들의 아픔은 48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서울 마포구 공덕동이 고향인 송상복(66)씨는 학교도 다니지 못하고 막노동을 하고 있었다. 마장동 뚝방에서 부모님과 같이 살다가 새벽에 일어난 화재로 무허가 주택 200여채가 잿더미로 바뀌었다. 끝내 숟가락 하나 건지지 못한 채 그날 대한통운 화물차 1대에 3~4가구씩 타고 맨몸으로 대한적십자사에서 주는 생활용품만 가지고 광주대단지로 이사를 떠났다. 당시 열여덟 소년이었던 송씨는 “사건 당일 집회 장소에 모이라고 해서 아무것도 모른 채 나갔다. 친구들하고 놀다가 시위대가 서울로 가자고 시영버스를 타고 내려오기에 같이 합류해 현재 수정구 관할인 수진리 고개까지 올라가 전투경찰들과 마주쳐 돌팔매질 몇 번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날 낮에 집앞에서 친구들이랑 만화책을 보다가 형사 두 명한테 체포돼 신흥동 성남파출소로 가서 엄청 얻어맞고 온갖 고문을 다 당했다”고 회고했다. 다음날 광주경찰서로 옮겨 가서도 고문을 많이 당하고 10여일 있다가 서대문형무소로 송치됐다. 그 당시 고문으로 걸음을 제대로 못 걸었다. 10여차례 국선변호인의 도움으로 재판을 받고 다음해 1월 말쯤 6개월 만에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송씨는 또 “전과자 낙인이 찍혀 취직도 못하게 돼 막노동으로 연명하면서 어렵게 살았다”고 억울한 심경을 밝혔다. 금세 눈물도 내비쳤다. 송씨는 “지금 5명의 동지하고만 연락이 된다. 죽은 사람도 서너 명 있다. 지난해 11월 은수미 성남시장과 면담도 했다. 앞으로 명예회복을 위해 신경을 써 주신다니 고맙다. 48년이나 지났고 잊혀졌지만, 이제라도 하루빨리 명예회복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22세 청년이었던 박기연(70)씨는 부모님이 서울시에서 일자리를 주고 20평 주택 분양권을 준다고 하기에 억지로 이주를 했다. 그는 “처음 왔을 땐 허허벌판이었다. 덜렁 언덕배기만 보이고 아무것도 없었다. 24인용 군용 텐트를 반으로 잘라서 잠자리를 깔았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박씨는 “사건 당일 아무것도 모른 채 집회 장소에 모이라고 해서 동료들과 갔다 왔다. 아침에 잠을 자고 있는데 광주경찰서 형사들이 들이닥쳐 다짜고짜 끌고가 고문을 해댔다. 우리가 하지도 않았는데 증인이 있다면서 죄를 덮어씌웠다. 영문도 모르고 두들겨 맞고 데모 주동자로 변질됐다”면서 “구속 6개월 뒤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직장을 잡으려 해도 데모꾼 낙인 탓에 번번이 가로막혔다. 시에서 명예회복을 위해 애써 준다니 매우 감사하다”며 살짝 웃었다. 인천에 살다가 고등학생 때 부모님을 따라 광주대단지로 둥지를 옮긴 김기철(68)씨는 당시 20세였다. 사건 당일 친구들과 시위에 참가했다가 다음날 경찰에 끌려가 고초를 겪었다. 김씨는 “집행유예로 6개월 만에 풀려난 후에도 정보과 형사들에게 쫓겨다니며 감시를 받아 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고 직장 문턱도 넘지 못했다”고 증언했다. 김씨는 “지금까지 고생한 것은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성남시의 관심과 명예회복 노력에 감사하다. 먹고살 수 있도록 일이나 계속 있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당시 20세였던 이세묵(68)씨는 충남 공주에서 부모님과 살다가 형들과 광주 송평동 판잣집으로 옮겨 왔다. 그는 “현재 중원구에 속한 모란동에서 형이 다과점을 하고 있었는데 그날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가운데 집회를 한다고 해서 수진리 고개로 올라가 보니 전경과 시위대가 새카맣게 모여 대치를 하고 있었다. 시위를 구경하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그날 밤 경찰들이 몰려들어 모란파출소로 붙잡혀 갔다”며 “누군가 시위대에 끼어들어 빨간 인주를 몸에 묻혔는데 옷에 인주가 묻은 사람들을 무조건 체포했다”고 증언했다. 광주경찰서로 2~3명이 함께 끌려가 엄청 얻어맞고 실토하라고 고문을 당했다. 그는 또 “뒤늦게라도 진상이 밝혀지고 억울한 한이 풀렸으면 좋겠다”고 부연했다. 성남문화원 성남학연구소 상임위원인 윤종준 박사는 “반세기를 향해 달리고 있다. 2년 뒤면 50주년이다. 사건 당사자들이 70대 노인이 됐다. 일부 돌아가신 분들도 있다. 생존해 있을 때 진상규명과 권리회복, 명예회복이란 숙원을 이뤄 사건을 긍정적인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하루빨리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재조명하려는 움직임은 이미 20여년 전부터 있었다. 성남문화원에서도 2003년 학술회의를 열었다. 하지만 부끄러운 도시 등 부정적인 이미지 때문에 힘들었다. 윤 소장은 “사건을 촉발한 원인을 규명하는 게 사건의 성격을 바로잡을 수 있는 단초일 것이다. 국가의 주먹구구식 ‘선 입주 후 개발’ 신도시정책 탓에 생계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경제활동 공간조차 전무했다. 집도 없는 곳에 사람들을 강제 이주시켜 극한 상황을 만들었다”면서 “사건의 전모를 알 수 있는 보고서나 백서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을 바탕으로 진상규명·명예회복위원회를 꾸리고, 사건 현장에 기념비라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 ‘DNA 아버지’ 왓슨, 12년전 인종차별 발언으로 패가망신

    ‘DNA 아버지’ 왓슨, 12년전 인종차별 발언으로 패가망신

    ‘유전자(DNA)의 아버지’로 불린 미국 과학자 제임스 왓슨(90)이 인종차별 발언으로 자신이 수장으로 근무했던 연구소의 명예직까지 박탈당했다. 왓슨은 DNA 구조를 밝혀내 196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고 세계 최고의 분자생물학 연구소인 콜드스프링하버연구소를 이끌어온 석학이다. 미국 뉴욕의 콜드스프링하버연구소는 13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연구소는 인종과 유전학 주제에 관한 왓슨 박사의 근거없는 개인적 견해를 전적으로 거부한다”며 “왓슨에게 부여했던 모든 직함과 명예를 박탈한다”고 발표했다. 왓슨은 2007년 영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백인과 흑인이 동등한 지적 능력을 갖췄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흑인 직원을 다뤄본 사람들은 다 안다”고 발언해 큰 파문을 일으켜 과학계에서 사실상 퇴출당했다. 당시 연구소는 왓슨의 총장직을 박탈했지만 명예 총장, 명예 석좌교수, 명예 이사직을 부여해왔다. 하지만 왓슨이 지난 2일 방송된 미국 PBS 다큐멘터리에서 2007년에 했던 인종차별적 견해가 바뀌었냐는 질문에 “전혀 아니다”라고 말해 파장이 커지자 결국 연구소는 왓슨과의 모든 인연을 끊기로 결정했다. 그동안 생활고에 시달려온 왓슨은 2014년에는 자신의 노벨상 메달을 매각하기까지 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양육비 때문에’ 지인 아들 살해한 뒤 유기한 30대 무기징역 확정

    ‘양육비 때문에’ 지인 아들 살해한 뒤 유기한 30대 무기징역 확정

    양육비를 노리고 지인의 아들을 데려가 학대하다 숨지자 시신을 불태워 유기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30대에게 무기징역형이 확정됐다. 8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영리약취·유인등) 및 사기·사체은닉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31)씨의 상고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A씨는 2016년 10월 같은 세차장에서 일하며 알게 된 B씨의 아들인 C(당시 4세)군을 데려가 폭행하고 학대하다 숨지자 경북 구미시의 강변에서 시신을 태우고 묻었다. B씨가 이혼하고 혼자 아들을 키우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을 알고 보육시설에 맡길 것을 제안했고, B씨가 응하자 C군을 데려간 것이다. 그러나 A씨는 수년 전부터 도박과 주식투자 등을 반복하면서 빚이 쌓였고 돌려막기를 하는 등 생활고에 시달리자 C군의 양육비를 이유로 돈을 뜯기 위해 이 같은 계획을 세운 것으로 드러났다. 막상 C군을 집으로 데려갔으나 씻기다가 C군이 소리를 치자 폭행해 넘어뜨리는 등 학대했고 멍이 든 C군을 보고 자신의 폭행사실이 드러날까 걱정하며 C군을 모텔에 방치했다. C군은 A씨가 데려간 지 나흘도 채 안 돼 숨을 거뒀다. 그러나 A씨는 B씨에게 아들의 사망 소식을 숨기고 “아는 지인에게 부탁해 인천의 좋은 보육시설에 맡겼으니 보육비를 주면 대신 전해주겠다”며 7개월을 140여만원을 받아 챙겼다. B씨는 아들이 숨진 지 1년여 지난 뒤인 2017년 10월 경찰에 “아들이 보고 싶은데 A씨가 보여주지 않는다”며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의 추궁 끝에 C군이 1년 전 이미 사망한 것을 확인하고 백골 상태의 시신을 발견했다. 1심은 “C군은 극심한 공포와 육체적 고통 속에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고귀한 생명을 빼앗겼고 유족들은 평생 치유할 수 없는 깊은 상처를 입게 되었다”면서 “그런데도 A씨는 진심어린 사과를 하기는커녕 범행을 일부 부인하고 유족들의 피해를 회복하기 위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며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2심도 “범행 과정에서 보여준 A씨의 인명경시 태도는 상식적으로 도저히 믿기 어려울 정도”라며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A씨는 “형량이 너무 무겁다”며 상고했지만 대법원은 “범행 동기 및 수단과 결과, 이후 정황 등을 살펴보면 하급심의 양형이 심히 부당하다고 볼 수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월세 밀린 가구 지원… 중구 틈새 가정 발굴단 출동

    서울 중구는 새해 2월까지 극심한 생활고로 임대료나 관리비가 밀린 위기 가구를 찾아 이들이 안전하게 겨울을 보낼 수 있도록 지원하는 틈새 가정 발굴 사업에 나선다고 24일 밝혔다. 대상은 월 1만원 이하 소액 건강보험료 납부자 및 임대주택 거주자 중 임대료를 3개월 이상 또는 관리비를 6개월 이상 체납한 주민이다. 구는 전수 실태조사를 한 뒤 대상자를 지원한다. 구 관계자는 “겨울은 피복비, 난방비 등 생계에 필수적인 지출이 늘어날 수밖에 없어 사각지대에 놓인 주민들의 고통이 가중되기 마련”이라면서 “가용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이들을 발굴하겠다”고 말했다. 구는 고시원, 쪽방, 여관 등 주거취약지역 거주자도 전수조사해 지원 대상임에도 누락된 경우가 있는지 살필 예정이다. 단전, 단수, 건강보험료 체납, 국민연금 체납 등의 정보도 이용해 위기 상황을 파악한다. 앞서 구는 지난겨울 379곳의 위기 가구를 찾아내 각종 지원을 한 바 있다. 주현진 기자 jhj@seoul.co.kr
  • 복지 사각 찾는다더니 기존 수급자만 지원

    복지 사각 찾는다더니 기존 수급자만 지원

    복지부 “돈 든다” 소득·재산 점검 생략 수급 이력 없어 빠지고 자산가는 혜택 감사원 “발굴시스템 조정하라” 통보#1. 인천에 사는 김민환(가명)씨는 최근 생활고에 정신질환이 겹쳐 어려운 시기를 보냈다. 1200만원 전셋집에서 거동이 어려운 아내, 자녀 2명과 함께 산다. 하지만 보건복지부의 ‘복지 사각지대 발굴관리시스템’에서는 발굴 대상으로 포함되지 않았다. 과거 복지 급여를 받은 경험이 없어 정부가 김씨의 소득을 파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2. 시가 10억원이 넘는 부동산을 갖고 있는 장인환(가명)씨는 ‘차상위계층’으로 선정돼 정부로부터 기저귀와 분유 구입 금액을 일부 지원받았다. 복지부가 차상위계층을 선정할 때 건강보험료만 판정기준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복지부가 장씨의 소득을 면밀하게 점검했다면 혜택을 받지 못했을 것으로 분석됐다. ‘송파 세 모녀’처럼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을 찾기 위해 정부가 마련한 복지시스템이 이미 복지서비스를 받는 수급자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건보료만으로 차상위계층을 선정하는 바람에 지원이 필요하지 않은 가구에도 복지 혜택이 돌아갔다. 감사원은 이런 내용을 담은 ‘차상위계층 지원사업 추진 실태’를 19일 공개했다. 2014년 2월 송파 세 모녀 사건 이후 복지부는 복지 사각지대 발굴관리시스템을 구축했다.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위기가구를 찾아 지원하는 것이 목표였다. 복지부는 위기가구를 발굴할 때 과거 복지서비스를 신청했거나 기초생활보장 수급 이력이 있는 가구의 소득인정액 정보를 위주로 시스템을 운용했다. 그 결과 위기가구 발굴 대상으로 선정된 가정 대부분이 기존에 혜택을 받았던 곳이었다. 복지 사각지대를 찾겠다는 제도 시행 취지와는 정반대였던 것이다. 복지부는 가구의 소득, 재산을 조사할 때 행정 비용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2006년부터 차상위계층 지원 대상 여부를 판정할 때 건보료만을 기준으로 삼았다. 실제 소득과 비교·점검하는 과정은 생략했다. 그러자 건보료는 적게 내지만 빈곤층이 아닌 사람도 지원 대상에 포함되는 문제가 생겼다. 시가 10억원이 넘는 부동산을 보유하고도 ‘저소득층 기저귀 및 조제분유 지원사업’의 혜택을 받는 가구가 지난 5월 기준 82가구나 됐다. 감사원은 “복지 사각지대 발굴관리시스템을 합리적으로 조정하고 차상위계층을 선정할 때 소득, 재산을 조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감사원은 또 “취약계층의 소득인정액을 산정할 때 저소득층의 저축 정보를 이용한 자동 공제를 적용하지 않았다”며 개선 방안을 마련하라고 복지부 장관에게 통보했다. 오경진 기자 oh3@seoul.co.kr
  • [2030 세대] ‘살아남은 아이들’은 어디로 갔나

    [2030 세대] ‘살아남은 아이들’은 어디로 갔나

    지난 10월 15개월 된 아이가 위탁모의 학대로 숨졌다. 뒤늦게 위탁모가 우울증을 오래 앓았으며 학대 의심 신고가 5차례나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많은 사람이 대체 경찰은 뭘 했냐고, 어떻게 자격도 없는 사람이 버젓이 위탁모 활동을 할 수 있었냐고 분노했다. 뭘 믿고 애를 맡겼냐며 아이의 부모를 탓하는 목소리도 있었다.그렇다면 질문을 조금 바꿔 보자. 왜 부모는 낯선 이에게 선뜻 아이를 맡겼을까. 왜 경찰은 의심스러운 정황 앞에서 그냥 돌아서고 말았을까. 답은 간단하다. 아이들을 돌보거나 맡아 줄 공공시설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보건 당국이 운영하는 가정위탁지원센터는 부모가 이혼, 수감, 질병 등의 특정한 상황인 경우에 한하여, 혹은 아이가 학대를 당한 전력이 있을 때만 입소할 수 있다. 따라서 생활고나 우울증 등으로 양육능력이 없음에도 자격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사람들은 인터넷에서 찾아낸 사설 위탁모에게 아이를 맡길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그마저도 양육비를 부담할 의지와 여유가 있는 소수의 부모만이 이와 같은 선택을 한다. 그대로 방임하거나 스트레스를 못 이겨 직접 학대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학대 경험이 있다고 무조건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전국 60여개에 불과한 학대 피해 아동 쉼터의 정원은 시설별로 7명 남짓이다. 한 해 2만명이 넘는 피해 아동에 비해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현실이 이러하다 보니 경찰과 관련자들은 적극적인 대응을 하기 어렵다. 가해자를 처벌한들 아이들은 달리 갈 곳이 없다. 결국 신고가 접수돼도 훈방과 경고 등 애매한 조치로 끝내기 마련이고, 이는 다시 심각한 학대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학대 피해 아동 10명 중 9명이 5년 이내에 같은 사람에게 학대를 당한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아동이 문자 그대로 양육자에게 ‘맞아 죽는’ 사건이 반복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사람들은 분노하고, 가해자를 비난하고, 청와대에 청원을 넣지만, 가해자에 대한 법적 절차가 끝나면 곧 관심을 잃는다. 정부 역시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대책 마련에 급급해하면서도 이미 태어난 아이들을 지키는 일에는 무관심하다. 피해 아동의 보호와 재발 방지를 위한 후속조치가 절실함에도 예산은 몇 년째 제자리다. 결국 ‘살아남은 아이들’은 그대로 잊혀지고 만다. 사설 위탁모 김모씨가 운영하던 시설에는 사망한 아동 말고도 아이들이 더 있었다. 부모와 사회의 보호를 받지 못했던 4명의 아이들이 그 뒤 어디로 갔는지는 밝혀진 바 없다. 며칠 전에는 한 남성이 안 자고 보챈다는 이유로 22개월 된 아들을 놀이터에 방치해 사람들의 공분을 사기도 했다. 그런데 이는 사실 지난해에 발생한 일로 아이 아빠가 징역을 선고받으면서 다시 화제가 된 건이다. 그때 놀이터에서 밤을 지새우고 다음날 발견됐다는 아이는, 온몸에 모기향과 담뱃불의 흔적이 가득했다는 그 아이는, 지금 어디서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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