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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시대, 장애는 장애가 안 됐소

    조선시대, 장애는 장애가 안 됐소

    근대 장애인사/정창권 지음/사우/368쪽/2만원“폐질자(장애인) 가운데 산업(직업)이 있어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자를 제외하고 궁핍하여 스스로 살아갈 수 없는 자는 소재지 관아에서 우선적으로 진휼하여 살 곳을 잃지 말게 하라.”조선의 2대 왕 정종이 1400년에 신하들에게 지시한 내용이다. 직업이 있는 경증장애인 외에 중증장애인은 국가가 돌봐야 한다는 뜻이다. 개화기와 일제강점기를 지나며 이런 정책은 힘을 잃는다. 편견과 차별, 배제 등 장애인에 관한 사회적 차별도 이때 생겨난다. 말하자면, 근대는 장애인에게 ‘암흑기’였다. 20일 ‘장애인의 날’을 앞두고 나온 ‘근대 장애인사´는 근대의 장애 관련 사건과 정책을 분석해 장애인에 관한 사회적 차별이 언제, 어떻게, 왜 생겨났는지를 추적한다. 저자는 2011년 조선시대 장애인을 집중적으로 연구한 ‘역사 속 장애인은 어떻게 살았을까’(글항아리)를 낸 바 있다. 이번에는 관에서 펴냈던 근대 관찬사료와 신문·잡지, 문학작품, 일기·문집류, 외국인 견문록 등을 토대로 장애사 연구 보폭을 한발 넓혔다. 저자는 조선 시대 장애인 정책과 장애인에 관한 사회적 인식이 근대보다 훨씬 나았다고 주장한다. 조선은 장애를 크게 경증과 중증으로 나눠 정책을 펼치고, 장애인이 직업을 갖고 자립하도록 유도했다. 특히, 장애인에 관한 사회적 인식은 대단히 높은 수준이었다. 장애에도 능력만 있으면 장관급의 벼슬에 오를 수 있었다. 조선 건국 후 예악을 정비하고 국가 기틀을 마련한 허조는 체격이 왜소하고 어깨와 등이 굽은 척추 장애인이었다. 그러나 좌의정에 오를 만큼 세종의 신임을 받았다. 선조, 광해군, 인조 때 영의정을 지낸 이원익은 왜소증 장애인이었다. 영조 시절 우참찬을 지낸 이덕수는 청각장애인이었는데, 임금과 자주 필담을 나눌 정도로 신망을 받았다. ‘동지정사’를 맡아 청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오기도 했다.개화기에는 전 세계에서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장애인 교육제도가 도입됐다. 그러나 정부는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 선교사들이 이 역할을 대신 맡았다. 예컨대 로제타 셔우드 홀과 같은 선교사는 조선 사람도 쓸 수 있는 점자를 고안하고 조선 최초로 맹아학교를 설립하기도 했다. 기독교에 관한 거부감이나 이질감을 완화하기 위해서였다 해도 이들의 노력은 높게 살 만하다. 일제강점기 들어서면서 장애인 숫자는 크게 늘고 반대로 정책은 각박해졌다. 일제의 수탈로 조선 사람들은 극심한 생활고를 겪었다. 결막염을 비롯해 각종 전염병이 유행하며 장애인도 늘었다. 의료사고가 빈번했고 전차나 기차, 자동차 사고도 늘었다. 독립운동을 하다가 잡혀 태형과 고문을 당해 장애인이 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그럼에도, 일제는 장애인을 격리하고 감금하는 데에만 힘썼다. 문제가 심각해지자 총독부 사회과의 장애인 어용단체인 ´조선사회사업연맹´조차 “장애인과 고아를 위한 구호법을 하루속히 실시하라”고 주장할 정도였다. 1911년 일제가 설립한 거의 유일한 장애인 복지기관인 ‘제생원 맹아부’에는 일본인이 더 많았다. 1944년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에 장애 걸인들을 위한 ‘불구자 수용소’를 세웠는데, 거리의 장애인을 잡아 가두는 시설에 불과했다. 저자는 결국 정부가 어떤 시각으로 장애인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장애인 정책이 달라진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조선시대에는 ‘완전함´에 중심을 두지 않았기 때문에 장애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고, 그 차이를 이해하고 배려하려고 노력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근대화, 산업화, 그리고 식민지 상황으로 접어들며 장애인 정책은 심하게 망가지고, 이에 따라 장애인을 바라보는 인식도 매우 부정적으로 바뀌게 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장애인들이 병을 낫고자 인육을 먹고, 아이를 잡아 약을 만든다는 식의 흉흉한 소문, 장애인 생활을 견디다 못해 벌어진 각종 사건은 읽기에 섬뜩할 정도다. 조선과 근대의 장애 정책을 좀 더 풍부하게 설명했으면 좋았을 터다. 사회적 인식의 변화 역시 구체적이지 못한 측면이 강하다. 여러 현상을 나열한 뒤 장애 정책을 두루뭉술하게 설명하는 정도여서 다소 아쉽다. 그럼에도, 장애인에 관한 올바른 제도 정립 차원에서 책은 환영할 만하다. 이번 책에 이어 인간이 노동가치로 전환된 현대의 장애사를 후속으로 기대해 본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어려운 삶에 희망을 수혈해 드립니다”… 위기가정 구하는 관악구 ‘희망발굴단’

    “어려운 삶에 희망을 수혈해 드립니다”… 위기가정 구하는 관악구 ‘희망발굴단’

    서울 관악구 삼성동에 사는 김모씨는 실직 이후 수개월간 월세를 내지 못하며 생활고로 신음했다. 관악구의 인적 안전망, 희망발굴단이 그의 어려운 상황을 접하고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서울형 긴급 지원으로 주거 문제를 해결해 주고 취업 상담으로 일자리도 쥐여 줬다. 희망발굴단에서 삶의 희망을 수혈받은 그는 이제 ‘희망발굴단’의 일원으로 뛰며 더 어려운 이웃을 위해 봉사한다. 동네 구석구석을 살피며 복지 위기가정을 구해 내는 관악구의 ‘희망발굴단’이 복지 사각지대를 걷어내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구는 지역 전체에서 주민 1077명으로 구성된 희망발굴단이 올 1월부터 활동해 지난달까지 285가구의 위기가정을 발굴했다고 17일 밝혔다. 이 가운데 55가구는 기초수급, 긴급 지원 등 공적 지원 제도를 연계해 주고 230여 가구에는 민간의 후원금품을 제공하며 이웃들을 살뜰히 돌보고 있다. 희망발굴단은 빈번히 발생하는 가족 단위의 사망 사건과 고독사를 막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복지 통장, 지역사회보장협의체 위원, 자원봉사 상담가 등 지역 사정에 밝은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꾸린 모임이다. 희망발굴단은 지역을 다니며 위기가정을 발견하면 구청 공식 복지 채널인 카카오톡 플러스친구 ‘함께해요, 복지톡’으로 실시간 복지 담당 공무원에게 알린다. 박준희 관악구청장은 “고독사를 막을 근본적인 대책은 마을 공동체 회복”이라며 “위기가정 발굴에 적극 나서 주시는 ‘희망발굴단’ 주민들께 감사드리며 ‘더불어 행복한 공동체’ 실현을 위해 구도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술 취한 中 남성 자녀 4명에게 흉기 휘둘러…목에 15㎝ 자상 ‘아찔’

    술 취한 中 남성 자녀 4명에게 흉기 휘둘러…목에 15㎝ 자상 ‘아찔’

    중국에서 술에 취한 남성이 자녀들에게 흉기를 휘두른 뒤 자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11일(현지시간)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등 중국 언론은 9일 밤 오후 11시쯤 푸젠성 안시현에서 술에 취한 남성이 흉기를 휘둘러 자녀 4명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고 보도했다. 현지 경찰은 다음날 살인미수 혐의로 왕모씨(30)를 체포했다. 경찰은 왕씨가 아이들에게 흉기를 휘두른 뒤 자해해 아이들과 함께 병원으로 옮겼으나 상처가 깊지 않았다고 밝혔다. 아이들을 치료한 안시현 병원 관계자는 “여자 아이 2명은 상처가 깊지 않아 당일 퇴원했으나 6살, 9살짜리 남자아이는 목 부위에 각각 13cm와 15cm 길이의 자상을 입었다”고 말했다. 다행히 흉기가 동맥은 비껴가 응급처치 후 수술을 진행했으며 아이들의 상태는 안정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아이들에게서 “아버지가 술만 마시면 때렸다”는 진술을 확보하고 이웃들을 상대로 학대 사실을 조사하고 있다. 왕씨의 친척과 이웃들은 그가 실직 상태였으며 평소 자주 술에 취해 있었다고 전했다. 남편 대신 샤먼 지역으로 일을 나갔던 아내는 사고 소식을 듣고 급히 집으로 돌아왔다. 경찰은 왕씨가 정신병력은 없지만 알코올 중독 증상을 보여 검사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 아이들의 생명에는 지장이 없지만 지속적인 가정폭력 정황이 드러난 만큼 왕씨와 그의 부인에 대해 조사를 진행하는 한편, 전문기관과 연계해 아이들의 안정을 돕는다는 계획이다. 중국에서는 지난 2016년 8월 가난에 시달리던 28세의 여성이 4명의 자녀를 죽인 뒤 음독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중화권 매체인 NTDTV는 최근 몇 년 사이 생활고 등으로 궁지에 몰린 가정에서 참극이 계속되고 있다며 정부와 지역 사회의 관심을 촉구했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김생환 서울시의회 부의장, ‘찾동 2.0 출범식과 시민찾동이 발대식’ 축사

    김생환 서울시의회 부의장, ‘찾동 2.0 출범식과 시민찾동이 발대식’ 축사

    서울특별시의회 김생환 부의장(더불어민주당, 노원4)은 4월 9일 오후 3시 서울시청 8층 다목적홀에서 개최된 ‘2019 찾동 2.0 출범식 및 시민찾동이 발대식’ 행사에 참석해 축하의 메시지를 전했다. 이 날 행사에는 박원순 서울시장, 서울시 25개 자치구청장 외 시민 약 500여명이 참석하여 대성황을 이뤘다.김 부의장은 축사에서 “찾아가는 동 주민센터 2.0 출범식 및 시민 찾동이 발대식을 축하 하며 이 자리의 주인공이신 시민 찾동이 대표 여러분께 진심어린 감사와 환영의 인사를 드린다 ”고 전했고 “지난 2014년 송파구에서 세 모녀가 생활고를 이기지 못하고 목숨을 끊은 안타까운 사건은 우리 사회의 복지제도에 많은 숙제를 던져 주었다”고 말했다.김 부의장은 “그 후 우리 사회 복지정책의 패러다임이 가난을 증명해야 하는 신청주의에서 직접 찾아가는 발굴주의로 바뀌었고, 그 중심에는 ‘찾아가는 동 주민센터’가 있었다”고 강조했다. 또한,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고 제도를 보완하여 올해부터는 서울 전 지역에서 찾동 2기 서비스가 시행되고, 특히 이번 찾동 2기에서는 ‘시민찾동이’ 여러분의 동행으로 서울시 전체동 골목골목까지 찾아가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하니 여러분의 활동으로 지역과 이웃이 연결되고 서울 곳곳을 더욱 따뜻하게 만들어 줄 것으로 확신 한다”고 전했다. 이 날 행사의 축제 분위기를 감동적인 축사로 마무리한 김 부의장은 “서울시의회도 또 한명의 시민 찾동이가 되어 적극적인 협조와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며 함께 해 주신 모든 분들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 드린다”고 감사의 뜻을 전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생활고 시달리던 60대 편의점 20만원 강도...징역 3년 선고

    생활고 시달리던 60대 편의점 20만원 강도...징역 3년 선고

    생활고에 시달리던 60대가 편의점에서 20만원을 훔쳤다가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춘천지법 형사2부(부장 박이규)는 특수강도 혐의로 기소된 A(64)씨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고 30일 밝혔다. A씨는 지난 1월 31일 오전 강원도 춘천시 퇴계동 한 편의점에 침입해 종업원(48)에게 흉기를 들이대며 “돈이 없으니 돈을 달라”고 협박해 20만원을 빼앗아 달아난 혐의로 기소됐다. 범행 직후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5분 만에 붙잡힌 A씨는 “별다른 직업이 없어 생활고에 시달리다 범행을 저질렀다”고 경찰 조사에서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용산 공인중개사 ‘이웃 돌보미’ 활약

    서울 용산구에서는 공인중개사가 ‘이웃 돌보미’로 활약한다. 용산구는 이촌2동주민센터와 한국공인중개사협회 용산구지부 이촌제2동분회가 지난 26일 ‘복지사각지대 발굴·지원에 관한 업무 협약’을 맺고 생활고를 겪는 취약계층을 발굴·지원하기로 했다고 28일 밝혔다. 이달 현재 이촌2동에서 영업하는 부동산중개업소는 모두 26곳이다. 이번 협약에는 이들이 모두 참여해 부동산 중개 과정에서 월세를 제때 못 내거나 생활고에 시달리는 위기 가구를 발견하면 곧바로 동주민센터에 신고하기로 했다. 동주민센터는 즉시 해당 가구를 방문해 상담을 진행하고 필요한 도움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동주민센터 관계자는 “공인중개사들과 함께 사각지대를 상시적으로 발굴하는 체계를 구축하겠다”고 말했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또 빈곤 참사

    월세 밀린 30대男 “가족 데려간다” 유서 아내와 6세 아들 살해 후 극단 선택 중태 집 월세를 내지 못해 고민하던 30대 가장이 아내(34)와 어린 아들(6)을 살해한 후 극단적 선택을 해 중태에 빠진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21일 경기 양주경찰서에 따르면 A(39)씨는 지난 18일 양주시 회천동의 한 아파트 자택에서 아내와 아들을 살해하고 달아난 혐의를 받고 있다. A씨는 범행 후 자신의 차를 몰고 부친의 묘가 있는 양평 방향으로 도주하던 중 경찰이 접근하자 차 안에서 부탄가스에 불을 붙였다. A씨는 생명에 지장이 없지만 심한 화상을 입어 말을 할 수 없는 상태다. 경찰은 A씨가 범행 전날 아내와 아들을 데리고 샤부샤부 음식점에서 마지막 저녁식사를 한 사실을 확인했다. 평소 아내가 먹고 싶어 하던 음식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A씨는 방 안에서 아내와 함께 잠든 아들을 거실로 옮긴 뒤 범행한 것으로 파악된다. A씨는 유서에서 ‘아내와 아들을 내가 데려간다’는 등의 글을 남겼다. 그는 범행 후 처형에게 전화를 걸어 “우리집에 와보라”고 말한 뒤 양평으로 이동하다 경찰 추격을 받았다. 경찰조사 결과 범행 당일은 A씨가 집주인에게 ‘방을 빼겠다’고 약속한 날이었다.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50만원씩을 내던 A씨는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월세를 제대로 내지 못해 보증금이 400만원으로 줄어든 상태였다. 경찰은 A씨가 범행을 인정하고, 사건 전후 상황을 종합했을 때 생활고를 비관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의료진과 상의해 구속영장 시점을 잡을 예정이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또 빈곤 참사… 월세 밀린 30대男, 아내와 아들 살해 후 극단 선택 중태

    집 월세를 내지 못해 고민하던 30대 가장이 아내(34)와 어린 아들(6)을 살해한 후 극단적 선택을 해 중태에 빠진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21일 경기 양주경찰서에 따르면 A(39)씨는 지난 18일 양주시 회천동의 한 아파트 자택에서 아내와 아들을 살해하고 달아난 혐의를 받고 있다.  A씨는 범행 후 자신의 차를 몰고 부친의 묘가 있는 양평 방향으로 도주하던 중 경찰이 접근하자 차 안에서 부탄가스에 불을 붙였다. A씨는 생명에 지장이 없지만 심한 화상을 입어 말을 할 수 없는 상태다.  경찰은 A씨가 범행 전날 아내와 아들을 데리고 샤부샤부 음식점에서 마지막 저녁식사를 한 사실을 확인했다. 평소 아내가 먹고 싶어 하던 음식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A씨는 방 안에서 아내와 함께 잠든 아들을 거실로 옮긴 뒤 범행한 것으로 파악된다.  A씨는 유서에서 ‘아내와 아들을 내가 데려간다’는 등의 글을 남겼다. 그는 범행 후 처형에게 전화를 걸어 “우리집에 와보라”고 말한 뒤 양평으로 이동하다 경찰 추격을 받았다.  경찰조사 결과 범행 당일은 A씨가 집주인에게 ‘방을 빼겠다’고 약속한 날이었다.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50만원씩을 내던 A씨는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월세를 제대로 내지 못해 보증금이 400만원으로 줄어든 상태였다.  경찰은 A씨가 범행을 인정하고, 사건 전후 상황을 종합했을 때 생활고를 비관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의료진과 상의해 구속영장 시점을 잡을 예정이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집 월세 못내던 30대 아내와 아들 살해 후 중태

    집 월세를 내지 못해 고민하던 30대 가장이 아내(34)와 어린 아들(6)을 살해한 후 극단적 선택을 해 중태에 빠진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21일 경기 양주경찰서에 따르면 A(39)씨는 지난 18일 양주시 회천동의 한 아파트 자택에서 아내와 아들을 살해하고 달아난 혐의를 받고 있다. A씨는 범행 후 자신의 차를 몰고 부친의 묘가 있는 양평 방향으로 도주하던 중 경찰이 접근하자 차 안에서 부탄가스에 불을 붙여 극단적 선택을 했다. 병원으로 옮겨진 A씨는 생명에는 지장이 없지만 얼굴에 심한 화상을 입어 말을 할 수 없는 상태다. 경찰은 A씨가 범행 전날 아내와 아들을 데리고 샤브샤브음식점에서 마지막 저녁식사를 한 사실을 확인했다. 샤브샤브는 평소 아내가 먹고 싶어하던 음식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A씨는 방 안에서 아내와 함께 잠든 아들을 거실로 옮긴 뒤 범행 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밤새 1장 분량 자필 유서를 작성한 A씨는 ‘아내와 아들을 내가 데려간다’는 등의 글을 남기고 끔찍한 범행을 저질렀다. 그는 범행 후 처형에게 전화를 걸어 “우리집에 와보라”고 말한 뒤 부친의 산소가 있는 양평으로 이동하던 중 경찰의 추격을 받았다. 경찰조사 결과 범행 당일은 A씨가 집주인에게 ‘방을 빼겠다’고 약속한 날이었다.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50만원씩을 내던 A씨는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월세를 제대로 내지 못해 보증금이 400만원으로 줄어든 상태였다. 경찰은 A씨가 범행을 인정하고 있고, 사건 전후 상황을 종합했을 때 생활고를 비관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의료진과 상의해 구속영장 시점을 잡을 예정이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블로거와 비방 주고받은 ‘도도맘’ 김미나, 1심서 벌금 200만원

    블로거와 비방 주고받은 ‘도도맘’ 김미나, 1심서 벌금 200만원

    다른 블로거와 비방을 주고받다가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유명 블로거 ‘도도맘’ 김미나씨가 1심에서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5단독 장원정 판사는 19일 김미나씨에게 벌금 200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SNS를 통한 공격적 발언은 대상자의 명예를 크게 손상할 수 있다”면서 “피해자로부터 용서받지 못해 피해자가 엄벌을 탄원하는 등 불리한 정상이 있다”고 밝혔다. 다만 김미나씨가 깊이 반성하며 재범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있고, 분쟁의 경위와 정황에 다소 참작할 사정이 있다는 점을 고려했다고 덧붙였다. 김미나씨는 지난해 3월 자신의 페이스북에 여성 블로거 함모씨를 비방하는 내용의 글을 올린 혐의로 기소됐다. 애초 검찰은 벌금 200만원에 약식기소했지만 김미나씨 측이 정식재판을 요구했다. 함씨는 김미나씨에 대한 비방 글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혐의 등으로 먼저 기소돼 지난해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앞서 함씨는 2017년 1월부터 2월까지 3차례에 걸쳐 인터넷에 “니네가 인간이고 애를 키우고 있는 엄마들 맞냐”는 등 김미나씨를 비난하는 글을 올린 혐의(모욕)로 기소돼 징역 8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현재 항소심 재판 중이다. 함씨가 실형을 선고받자 김미나씨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법정에선 생활고로 원룸으로 쫓겨나 산다고 눈물 쏟으며 다리 벌벌 떨며 서 있다가 SNS만 들어오면 세상 파이터가 되는지”라면서 “항소하면 또 보러 가야지. 철컹철컹”이라고 적은 혐의(정보통신망법 명예훼손)를 받았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생활고 시달린 英 남성, 9살·16살 두 아들 데리고 도둑질

    생활고 시달린 英 남성, 9살·16살 두 아들 데리고 도둑질

    어린 두 아들에게 ‘부끄러운 아빠’가 된 한 남성의 사연이 세상에 공개됐다. 12일(현지시간) 영국 메트로 등 현지매체에 따르면, 잉글랜드 랭커셔주(州) 로선데일 베이컵에 사는 두 아들의 아버지 폴 쇼(34)는 아들들을 데리고 마트에 가 물건을 훔치다가 붙잡혀 재판에 넘겨졌다. 폴 쇼는 지난달 6일 정오쯤 인근지역 번리에 있는 한 대형마트에 9살과 16살 된 두 아들을 데리고 방문했다. 그리고는 차량용 블랙박스 3개와 TV 스트리밍 스틱 1개를 한 아들이 메고 있던 책가방에 몰래 집어넣었다. 키가 작은 아들의 가방에 넣으면 도난방지 알림음이 잘 울리지 않으리라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경보음이 울리자마자 보안요원들이 폴 쇼를 막아섰고 아들의 가방에서 훔친 물건들이 나왔다. 이들 물건의 가격은 총 192파운드(약 28만9000원)로 전해졌다. 심지어 그는 1월 28일에도 같은 매장에서 비슷한 물건들을 훔쳤던 것이 CCTV 확인 결과 드러났다. 재판에서 그는 두 건의 절도죄를 모두 인정하면서도 자신이 왜 어리석을 생각을 하게 됐는지 해명했다. 원래 그는 용접공으로서 돈을 벌었지만 허리 부상 탓에 1년 동안 일을 하지 못해 집세를 밀리고 술에 의존했다는 것이다. 그러자 검사 측은 아이들을 범죄 행위에 끌어들인 것은 명백하게 잘못됐으며 같은 매장에서 비슷한 물건을 훔친 것만 봐도 계획성이 엿보인다며 그를 비난했다. 변호인은 “의뢰인은 일을 하지 못하게 돼 아이들을 부양할 수 없다는 점을 걱정했다. 범행을 깊이 반성하고 있으며 목격자가 자식들이라는 것도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다”면서 “생활고를 가족들에게 알리지 않고 해결하려 했지만 결과적으로 어리석은 도둑질을 두 번이나 해버렸다”며 그를 옹호했다. 이에 대해 판사는 피고에게 실형을 부과하는 대신 12개월의 봉사활동과 25일의 재활 활동을 명령했다. 아울러 3개월의 금주 치료와 나아가 마트 측에 팔아버린 물건값 180파운드(약 27만 원)를 배상하라고 지시했다. 법원은 폴이 번리에 있는 마트에 출입하는 것을 반년 동안 금지했지만 이미 마트 측은 폴에 대해 어느 매장에도 들어가지 못하도록 영구 출입 금지 조처를 취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창업 뛰어든 청년·노년층 1월 신설 법인 1만개 육박

    창업 뛰어든 청년·노년층 1월 신설 법인 1만개 육박

    청년실업·생활고에 고육지책 분석도지난 1월 신설 법인 수가 1만개에 육박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창업 지원의 효과라는 평가를 내놓는다. 하지만 취업난과 생활고에 시달리는 젊은층과 노년층의 창업이 유독 많아 막다른 길에서 선택한 탈출구라는 해석도 나온다. 13일 중소벤처기업부가 발표한 ‘신설 법인 동향’에 따르면 1월 신설 법인 수는 9944개였다. 역대 최고인 지난해 1월 1만 41개에 이어 관련 통계 작성 이후 두 번째로 많은 규모다. 업종별로는 도소매업 2025개(20.4%), 제조업 1922개(19.3%), 건설업 1195개(12.0%) 등이었다. 중기부 관계자는 “정부의 창업 지원 사업의 결과로, 특히 청년층이 신설한 법인이 증가했다”면서 “30대의 신설 법인 중 도소매업이 줄고 정보통신업이 많아진 것도 눈에 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젊은층과 노년층이 만든 법인이 크게 늘었다는 점에서 얼어붙은 취업시장 상황을 보여 준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 30세 미만과 60세 이상의 신설 법인 수는 1년 전보다 각각 10.3%, 6.9% 증가했다. 반면 40대와 50대가 만든 법인은 각각 4.3%, 2.7% 줄어 대조를 이뤘다. 김진철 중소기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청년층의 경우 인터넷 전자상거래 쪽으로 창업을 하거나 부동산 임대·중개업으로 활로는 찾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현 연금 제도만으로는 노후를 장담할 수 없는 현실 탓에 60세 이상의 창업도 계속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여성 신설 법인은 1년 전보다 1.7% 늘어난 2518개였다. 반면 남성 신설 법인은 1.8% 줄어든 7426개였다. 지역별로는 경기(4.8%·119개), 대전(19.0%·40개), 인천(8.0%·32개) 등을 중심으로 신설 법인이 늘어난 반면 서울에서는 지난해 1월 3082개에서 올해 1월 2987개로 95개 감소했다. 조용철 기자 cyc0305@seoul.co.kr
  • 분실했다 찾은 복권으로 3104억원 당첨

    분실했다 찾은 복권으로 3104억원 당첨

    미국의 한 실직자가 잃어버렸다가 되찾은 복권으로 3000억원이 넘는 당첨금을 받았다. 9일(현지시간) 미 CBS방송에 따르면 뉴저지주에 사는 마이크 위어스키(54)는 지난 7일 복권위원회 사무실에서 당첨금을 수령한 뒤 기자회견에서 이런 사실을 털어놨다. 그는 몇 년째 직장을 구하지 못해 생활고를 겪고 있었다. 지난해 가을에는 이혼까지 당하는 신세가 됐다. 유일한 낙이라고는 매주 편의점에서 2달러짜리 복권 10장을 사서 맞춰보는 것이었다. 위어스키는 지난주에도 어김없이 가던 필립스버그 퀵첵스토어에서 숫자 맞추기 복권인 메가밀리언스 여러 장을 샀다. 그러나 마침 걸려온 휴대전화에 정신이 팔린 사이 구매한 복권을 편의점 테이블에 그대로 놔두고 귀가했다. 다음 날 주머니를 뒤져보다가 복권이 없다는 것을 알아차린 그는 편의점을 다시 찾았다. 하루 지난 뒤라 복권을 누가 가져가 버렸을 가능성도 컸다. 그러나 다행히 편의점 주인으로부터 “어제 어떤 손님이 누가 놓고 간 것으로 보이는 복권을 맡기고 갔다”는 말을 들었다. 자신이 전날 복권을 깜빡하고 놓고 간 사람이라는 정황을 자세히 설명한 뒤 복권을 되찾았다. 기분 좋은 상태로 주말을 맞은 위어스키는 지난 3일 설레는 마음으로 당첨 숫자를 확인했다. 29, 33, 39, 60, 66에 메가볼 21까지 6개 숫자를 모두 맞힌 복권을 들여다본 순간 한동안 눈을 의심해야 했다. 당첨금은 무려 2억 7300만 달러(약 3104억원)였다. 위어스키는 기자회견에서 “누군지는 모르지만 내 복권을 되찾아준 사람에게 뭐라도 사례를 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이석우 선임기자 jun88@seoul.co.kr
  • 비비안 마이어, 비극적인 인생사 ‘여성 사진작가’

    비비안 마이어, 비극적인 인생사 ‘여성 사진작가’

    비비안 마이어의 비극적인 인생사가 공개됐다. 10일 방송된 MBC ‘신비한TV 서프라이즈’에서는 억대 사진작가가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했다. 존 말루프는 노점상에게 45만 원을 주고 비비안 마이어의 필름을 구매했다. 존 말루프는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을 자신의 SNS에 업로드했고, 큰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존 말루프는 이후 신문 부고란에서 2일 전에 사망한 비비안 마이어의 이름을 찾고 크게 실망했다. 존 말루프는 비비안 마이어가 전문 사진작가가 아닌 보모였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존 말루프는 비비안 마이어의 유품인 15만 장의 사진을 전해 받았다. 존 말루프에 따르면 1926년 태생인 비비안 마이어는 프랑스에서 자랐다. 비비안 마이어는 홀로 미국으로 돌아와 25살부터 본격적으로 사진 촬영을 시작했다. 비비안 마이어는 평생 독신으로 살았으며, 보모와 간병인 등 다양한 직업을 전전하며 생활고에 시달렸다. 그럼에도불구하고 비비안 마이어는 사진을 계속 찍어왔다. 인물 사진을 주로 찍었던 비비안 마이어였지만,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으며 특히 남성들에게 극도의 경계심을 내비쳤다고 밝혀졌다. 비비안 마이어는 결국 2008년 크리스마스 무렵 사고 후유증으로 목숨을 잃었다. 비비안 마이어는 사진과 함께 비극적인 인생사가 공개되자 더 크게 인기를 얻었다. 존 말루프는 비비안 마이어를 알리기 위해 미국, 독일 등 여러 나라에 사진 전시회를 열었고, 비비안 마이어는 전 세계적인 사랑을 받았다. 비비안 마이어는 죽은 후 비로소 영화 ‘캐롤’의 뮤즈이자, 사진 한 장에 수 억 원에 팔리는 사진작가가 됐다. 사진 = MBC 연예부 seoulen@seoul.co.kr
  • [곽병찬의 역사앞에서 묻다] 박순부·허은·이은숙 여사…그들은 ‘독립군의 어머니’였다

    [곽병찬의 역사앞에서 묻다] 박순부·허은·이은숙 여사…그들은 ‘독립군의 어머니’였다

    “네 어머니와 아내를 무겁게 대하라.” 지난달 8일 시인 이윤옥씨의 ‘서간도에 들꽃 피다’ 10권 완간 기념 ‘책 잔치’가 열렸다. 권마다 20명의 여성 독립운동가의 삶을 시와 산문으로 담은 책이다. 속표지에는 이런 짧은 헌사가 실려 있다. “이 책을 이 땅의 모든 남성에게 바칩니다.” 이유는 굳이 묻지 않아도 알 만하다. 다음은 지은이의 머리말 일부. “원고 뭉치를 들고 백방으로 뛰어다녀봤지만 선뜻 이 책을 찍어 준다는 곳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독립운동이 남성의 전유물이 돼 버린 풍토에서 여성독립운동가만의 책을 출간하는 것은, 독립운동처럼 십시일반의 정성을 모아야 가능했다.3·1운동 100주년을 맞는 올해 여성 독립운동가 이야기가 홍수를 이뤘다. 그동안 여성의 역할을 액세서리 정도로 평가절하했던 것에 대한 반성의 결과라고 믿고 싶다. 하지만 반성치고는 너무 피상적이었다. 양적으로만 늘었지 질적으로는 달라지지 않았다. 선택 기준은 언제나 ‘남성 못지않은 활동상’이었다. 삼종지도의 억압구조 속에서 수행했던 여성 혹은 어머니의 희생과 헌신은 외면당했다. 건국훈장 서훈자 1만 5537명 가운데 여성 독립지사가 전체의 2.3%(357명)에 불과한 현실이나, 5등급의 건국훈장 가운데 대부분 마지막 등급인 애족장을 서훈했거나, 훈장이 아닌 건국포장이나 대통령 표창을 받은 것은 이런 기준 때문이었다. 일송 김동삼 선생의 며느리 이해동 여사는 1987년 독립운동기념관 개관식 때 보훈처 초청으로 중국에서 잠시 귀국했다. 개관식 치사에선 온통 일송 이야기뿐이었다. 행사가 끝난 뒤 이 여사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시아버지께 공이 있다면 반 이상은 시어머니(박순부 여사) 몫이었다. 독립운동도 의식주가 있어야 가능한데, 의식주 문제를 해결하는 건 온전히 여자의 몫이었다. 여자들은 하루 스무 시간씩 일하며 밥해 먹이고 옷 지어 입히고 땔감 마련해 추위를 피하게 했다. 공산주의 나라에서도 남녀를 동등하게 대하는데, 왜 한국에서는 여성의 역할을 하찮게 보는지 모르겠다.” 박순부 여사는 만주 벌판을 호랑이처럼 떠돌며 항일투쟁에 나섰다가 옥사한 남편 일송과 그 동지들의 후방을 말없이 지키다가 만주에서 쓸쓸하게 돌아갔다. 이 여사 역시 1989년 영구귀국할 때까지 77년간 여러 남매를 낳아 키웠지만, 둘째 중생을 제외하고는 모두 먼저 떠나보내야 했다. 상하이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 석주 이상룡 선생의 맏아들 이준형은 출소한 뒤 “일본 놈들 밑에서 하루라도 더 사는 것은 치욕”이라며 자결했다. 다음은 그가 남긴 네 가지 유언 가운데 하나. “독립운동을 하면서 여자들의 고생이 심했다. 여성을 대할 때 보통으로 대하지 말고 무겁게 대하라.” 허은 여사는 조부 허형, 재종조부 허위 등 집안이 모두 독립지사였다. 어른들을 따라 1915년 만주로 망명한 허 여사는 1922년 석주의 손자 이병화와 결혼한 뒤 끝없이 찾아오는 독립군을 수발하는 ‘독립군의 어머니’ 역할을 했다. 시집온 첫해 집에서는 서로군정서 회의가 서너 달 계속됐다. 만주의 독립지사치고 그의 집을 드나들지 않은 사람은 없었으며, 따듯한 밥 한 그릇 먹지 않은 이가 없었다. “집에는 항상 손님이 많았는데 땟거리가 부족해 삼시세끼가 녹록지 않았다. 양식이 없을 때는 좁쌀 쭉정이로 죽을 끓였다.” “의복도 단체로 만들어서 조직원들에게 배급했다. 부녀자들이 동원되어 흑광목과 솜뭉치를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대량생산을 했다. (중략) …김동삼, 김형식 어른들께 손수 옷을 지어드린 것은 지금도 감개무량하다.” 고생이 얼마나 심했던지 밥 짓다가 기절해 가마솥 안으로 고꾸라질 뻔하기도 했다. “시집온 이듬해, 한번은 감기에 걸렸으나 누워서 쉴 수가 없었다. 무리했던지 부뚜막에서 죽 솥 안으로 쓰러지는 걸 마침 시고모부가 보시고는 잡아 떠메고 방에 눕혔는데 꼬박 24시간을 혼절했다.” (‘아직도 내 귀엔 서간도 바람소리가’에서) 시조부, 시부에 이어 남편도 7년간의 옥고 탓에 일찌감치 세상을 떴다. 남겨진 5남2녀를 키우고 가문을 지키는 것은 온전히 허 여사의 몫이었다. 형제들이 때론 고아원에도 가고, 보육원에도 보내진 것은 그 때문이었다. 4남1녀는 허 여사보다 먼저 세상을 떴다. ‘혁명 가족의 안주인’ 이은숙 여사의 간난신고는 ‘고초당초’보다 매웠다. 결혼 당시 지금 시세로 수천억 혹은 수조 원에 달한다는 남편 우당 이회영 여섯 형제의 재산은 신흥무관학교를 세우고 경학사 등을 경영하는 데 모두 썼다. 불과 몇 해가 지나지 않아 “하루 잘해야 일중식이요, 한겨울에도 절화하기(불피우지 못하기)를 한 달이면 반이 넘”었다. ‘매일 사는 것이 죽는 것만 못’했다. “언젠가 이을규 형제분과 백정기, 정화암 네 분이 오셨다. 그날부터 먹으며 굶으며 함께 고생하는데 짜도미라고 하층민들이 먹는 곡식조차 살 수 없었다. 강냉이로 멀건 죽을 쑤어 연명했다. 내 식구는 오히려 걱정이 안 되나, 노인과 사랑에 계신 선생님들에게 너무도 미안하여, 죽을 쑤는 날은 얼굴이 화끈 달아올라 상을 가지고 나갈 수가 없었다.”(‘서간도 시종기’에서) 이 여사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해야 했다. 고무공장 직공으로, 부잣집 침모로, 심지어 유곽 여인네의 옷을 수선하는 삯바느질까지 했고, 몇 푼 벌면 송금했다. 이 사실이 드러나 경찰서로 불려가곤 했다. 이 과정에서 두 손녀와 아들 규오가 성홍열로 차례로 죽어가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규숙, 현숙 자매는 천진 부녀구제원에 보내야 했고, 외손녀 현덕은 늑막염으로, 딸 현숙은 폐렴으로 그리고 외손자는 영양실조로 사망했다. 둘째 아들 규학은 친일파 암살 과정에서 체포돼 고문으로 청력을 잃었고, 셋째 아들 규창 역시 13년형을 받았다. 이 여사 자신은 마적떼의 총격으로 어깨에 관통상을 입어 사경을 헤매기도 했다. 우당은 1932년 일제의 감옥에서 고문당한 끝에 세상을 떴고 첫째 시숙 이건영은 질병으로, 조선 10대 갑부로 꼽히던 둘째 시숙 이석영은 영양실조로, 셋째 시숙 이철영은 풍토병으로, 여섯째 시숙 이호영은 일본군에 의해 가족 전체가 몰살당했다. 함께 망명했던 식솔 60여명 가운데 살아서 귀국한 이는 다섯째 시숙 이시영 선생 포함 20여명뿐이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의 부인 박자혜 여사는 살아서는 일제의 핍박에 시달리고, 죽어서는 단재의 호적에도 오르지 못했다. 망명 전 박 여사는 조선총독부 의원에서 간호부로 일하던 엘리트였다. 파업 태업 등을 주도해 불령선인으로 낙인찍힌 터였기에 1922년 귀국한 뒤 온갖 생활고에 시달려야 했다. 그럼에도 나석규 의사 등 국내로 잠입한 독립운동가들의 거사를 뒤에서 도왔다. 단재는 1936년 뤼순 감옥에서 순국하고 둘째 아들은 1942년 영양실조로 사망했으며, 그 자신은 잦은 체포와 고문 후유증으로 1944년 단칸방에서 홀로 세상을 떠났다. 단재는 일제의 호적을 거부한 탓에 2009년 가족관계등록부가 생기기까지 무국적자였다. 가족관계부가 생기고도 혼인관계를 확인할 수 없다 하여, 단재의 가족관계부에는 지금도 아들과 손주 이름만 달랑 올라 있다.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하고, 일경 15명을 사살한 김상옥 의사의 어머니 김점순 여사도 세 아들을 조국의 독립에 바쳤다. 김 여사는 평소에도 잠입한 독립지사들을 숨겨 주고, 먹여 주고, 입혀 줬다. 백범의 부인 곽낙원 여사는 시장에 버려진 배추 겉껍질을 모아 김치를 담갔고, 그것은 임시정부 요인들의 둘도 없는 반찬이 되었다. 베트남에는 ‘어머니 영웅’이란 칭호가 있다. 항불, 항일, 항미 독립전쟁에 자식을 바친 어머니들에게 주어지는 ‘서훈’이다. 세상에 어머니를 배반할 자식은 없다. 베트남이 물질적으로는 풍부하지 않아도 정신적으로는 여전히 견고한 것은 그 덕분일 것이다. 2018년 허 여사에게 건국훈장이 추서되자 아들 이항증씨는 이렇게 말했다. “이것은 가사노동에 대한 첫 서훈이며 음지에서 피와 땀과 눈물을 쏟은 여성 독립지사에 대한 첫 훈장입니다.” 이제 우리에게도 ‘어머니 영웅’, ‘아내 영웅’이 있어야 한다. 어머니와 아내가 없었다면 안중근도 이회영도 이상룡도 김동삼도 김구도 여운형도 신채호도 없었다. 논설고문 kbc@seoul.co.kr
  • 홍성흔 “어린시절 부모님 이혼-생활고, 이해창 세 마디로 버텼다”

    홍성흔 “어린시절 부모님 이혼-생활고, 이해창 세 마디로 버텼다”

    전 프로야구 선수 홍성흔과 이해창의 특별한 인연이 주목을 받고 있다. 홍성흔은 22일 방송된 KBS1 ‘TV는 사랑을 싣고’에 출연해 야구선수의 꿈을 계속 꿀 수 있게 해준 이해창 스승을 찾고 싶다고 밝혔다. 이날 방송에서 홍성흔은 “중학교 1학년 때 부모님이 이혼을 하시면서 경제적으로 많이 어려웠다”며 방송 최초로 가정사를 고백했다. 이어 “2006년도에 발목, 팔꿈치 부상을 입으면서 수술을 두 번이나 했고, 모든 감각들을 잃어버린 상황이었다. 야구를 그만해야 하나 생각했던 시기에 이분의 말 덕분에 제 인생이 바뀌었다. 제 인생의 키를 주신 스승님이다”고 말했다. 두 사람의 만남은 단 한 번. MBC 청룡 이해창 선수가 도봉 리틀야구단에 방문한 것. 당시 이해창은 어린 홍성흔을 보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가졌다. 절대 포기하지 말라. 포기하지 않으면 잠실야구장에 네 이름이 울려 퍼질거야”라고 희망을 심어줬다. 홍성흔은 “선배님께서 나에게 포기하지 말라는 인생의 뿌리가 된 말 한마디를 해주셨다. 정신력을 심어주셨고 그 말 때문에 내가 단단해질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지금도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에게 당시 선배님이 했던 그 세 마디를 꼭 해준다”고 말하며 대선배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전했다. KBS1 ‘TV는 사랑을 싣고’는 추억 속의 주인공 또는 평소에 고마움을 전하고 싶었던 주인공을 찾아 만나게 하는 프로그램. 매주 금요일 오후 7시 40분 방송.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의정부 고교생 장 파열 폭행’ 청원 동의 20만명 넘어

    ‘의정부 고교생 장 파열 폭행’ 청원 동의 20만명 넘어

    경기도 의정부에서 고교생이 동급생에게 폭행을 당해 장이 파열되는 등 심각한 상해를 입었다는 피해자 어머니의 청와대 국민청원에 대한 동의가 20만명을 넘었다. ‘우리 아들 **이의 억울함을 풀어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원글은 20일 오전 9시 현재 20만 2518명이 동의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국민청원 게시판에 글이 올라온 지 4일 만이다. 청와대는 20만명 이상 동의하면 이 청원에 답변해야 한다. 지난 18일 피해 학생의 어머니라고 밝힌 A씨는 “우리 아들 ○○이의 억울함을 풀어주세요”라는 글을 올렸다. A씨는 지난해 아들이 고등학교에 입학한 뒤 또래 1명에 무차별 폭행을 당해 장이 파열되고 췌장이 절단되는 중상을 입어 생사 기로에서 사망 각서를 쓰고 수술을 해 기적처럼 살아났다고 전했다. A씨는 167㎝의 키에 50㎏도 안 되는 아들을 폭행한 가해 학생이 수년간 이종격투기를 배워 탄탄한 몸과 근육질을 가랑하는 학생이라고 했다. A씨는 가해 학생이 무릎으로 아들의 복부를 걷어찬 뒤 아프다고 호소하는 아들을 영화관, 노래방 등으로 끌고 다녔다고 했다. 다음날에서야 아들은 병원으로 이송됐고, 힘든 수술을 거쳐 겨우 살아났다는 것이다. A씨는 “가해 학생의 아버지가 고위직 소방 공무원이고, 큰아버지가 경찰의 높은 분이어서인지 성의 없는 수사가 반복됐다”면서 “살인미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지만 고작 집행유예 2년과 사회봉사 160시간을 선고받았을 뿐”이라고 전했다. 이어 “아들을 간호하면서 병원비 약 5000만원이 들어갔고, 생활고에 시달리는 등 1년이라는 시간을 지옥에서 살았다”면서 “그러나 가해 학생은 자신의 근육을 자랑하는 사진을 올리고 해외여행까지 다니는 등 너무나도 편하고 행복하게 살았다”고 분노했다. 또 “가해자의 부모도 반성은커녕 사과 한번 하지 않았고, 내가 올린 탄원서들을 위조한 것 아니냐면서 필적 감정까지 들어갔다”고도 했다. 수사기관 등에 따르면 가해 학생은 지난해 3월 31일 오후 6시쯤 학교 밖에서 피해 학생의 복부를 무릎으로 폭행해 다치게 한 혐의로 기소돼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과 160시간의 사회봉사를 선고받았다. 다만 ‘가해자 아버지가 소방직 고위공무원이고 큰아버지가 경찰의 높은 분’이라는 A씨의 주장은 사실 관계가 다른 것으로 확인됐다. 논란이 확산되자 가해학생의 아버지라고 밝힌 B씨는 19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이 세상 둘도 없는 악마와 같은 나쁜 가족으로 찍혀버린 가해학생의 아빠입니다’라는 제목으로 반박글을 올리기도 했다. 이 글은 이날 오전 9시 현재 1310명이 동의했다. 최혜영 경기북부경찰청장은 지난 20일 언론에 “경찰이 모든 사안을 따져보고 수사를 성의 있게 진행했다”면서 “양측의 합의가 잘 안 돼서 감정싸움으로 비화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힌 바 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의정부 장 파열 폭행’ 가해학생 아버지 반박글 올려 진실 공방

    ‘의정부 장 파열 폭행’ 가해학생 아버지 반박글 올려 진실 공방

    경기도 의정부에서 고교생이 동급생에게 폭행을 당해 장이 파열되는 등 심각한 상해를 입었다는 글이 피해자 어머니의 소셜미디어를 거쳐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까지 올라가며 확산 중인 가운데 가해 학생 아버지가 일부 내용에 대해 반박글을 올렸다. 지난 18일 피해 학생의 어머니라고 밝힌 A씨는 “우리 아들 ○○이의 억울함을 풀어주세요”라는 글을 트위터에 올렸다. A씨는 지난해 아들이 고등학교에 입학한 뒤 또래 1명에 무차별 폭행을 당해 장이 파열되고 췌장이 절단되는 중상을 입어 생사 기로에서 사망 각서를 쓰고 수술을 해 기적처럼 살아났다고 전했다. A씨는 167㎝의 키에 50㎏도 안 되는 아들을 폭행한 가해 학생이 수년간 이종격투기를 배워 탄탄한 몸과 근육질을 가랑하는 학생이라고 했다. A씨는 가해 학생이 무릎으로 아들의 복부를 걷어찬 뒤 아프다고 호소하는 아들을 영화관, 노래방 등으로 끌고 다녔다고 했다. 다음날에서야 아들은 병원으로 이송됐고, 힘든 수술을 거쳐 겨우 살아났다는 것이다. A씨는 “가해 학생의 아버지가 고위직 소방 공무원이고, 큰아버지가 경찰의 높은 분이어서인지 성의 없는 수사가 반복됐다”면서 “살인미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지만 고작 집행유예 2년과 사회봉사 160시간을 선고받았을 뿐”이라고 전했다. 이어 “아들을 간호하면서 병원비 약 5000만원이 들어갔고, 생활고에 시달리는 등 1년이라는 시간을 지옥에서 살았다”면서 “그러나 가해 학생은 자신의 근육을 자랑하는 사진을 올리고 해외여행까지 다니는 등 너무나도 편하고 행복하게 살았다”고 분노했다. 또 “가해자의 부모도 반성은커녕 사과 한번 하지 않았고, 내가 올린 탄원서들을 위조한 것 아니냐면서 필적 감정까지 들어갔다”고도 했다. 수사기관 등에 따르면 가해 학생은 지난해 3월 31일 오후 6시쯤 학교 밖에서 피해 학생의 복부를 무릎으로 폭행해 다치게 한 혐의로 기소돼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과 160시간의 사회봉사를 선고받았다. ‘아버지가 소방직 고위공무원이고 큰아버지가 경찰의 높은 분’이라는 A씨의 주장은 사실 관계가 다른 것으로도 확인됐다. 논란이 확산되자 가해학생의 아버지라고 밝힌 B씨는 19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이 세상 둘도 없는 악마와 같은 나쁜 가족으로 찍혀버린 가해학생의 아빠입니다’라는 제목으로 반박글을 올렸다. B씨는 “죄인이기에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어야 한다는 거 너무도 잘 알고 있지만 사실과 다른 부분이 많은 것에 대해 다른 여러분들이 이유 없이 지탄을 받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에 조심스럽게 글을 적는다”면서 “먼저 잊혀질 수 없는 고통과 아픔 속에 1년이라는 긴 시간을 보낸 피해 학생 및 피해자 가족분들에게 진심으로 죄송하고 또 죄송하다”고 글을 시작했다. B씨는 “아들은 피해 학생을 무차별적으로 구타한 것이 아니고 우발적으로 화가 나 무릎으로 복부를 한 대 가격한 것”이라면서 “이후 친구들이 화해를 시켜 화해한 후 피해 학생 스스로 걸어서 영화를 보러 간 것”이라고 A씨의 주장을 반박했다. 아들이 폭행을 휘두른 이유에 대해서도 “아들이 여자친구와 헤어진 뒤 헤어진 이유에 대해 채팅방에서 이야기했는데, 피해 학생이 그 내용을 헤어진 여자친구에게 보여준 데 대해 사과를 받으려 한 것”이라면서 “피해 학생이 사과를 하지 않고 발뺌을 하는 것에 화가 났던 것”이라고 전했다. 특히 병원 이송이 늦어진 이유에 대해 “피해 학생조차 한 대 맞은 것이 이렇게 크게 다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해 일시적인 통증이라 생각하여 참다가 수술이 늦어진 것”이라고 반박했다. 가해자인 아들의 체격 등에 대해서도 “당시 169㎝의 키와 몸무게 53㎏의 체격을 가진 평범한 학생”이라면서 “이종격투기를 한 적은 없고 권투를 취미로 조금 했다”고 밝혔다. 또 “아들의 폭행 사실을 알고 바로 병원으로 달려가 가족 모두 피해자 어머니에게 무릎을 꿇고 사과를 했다”고도 했다. 특히 자신은 서울소방에 19년째 근무 중인 소방위 계급의 하위직 공무원이고, 큰아버지는 경찰서에 가보지도 못한 일반 회사원이었으며 7년 전 식도암 수술 이후 치매 진단을 받아 3년째 치료 중이라고 반박했다. 치료비는 학교공제회 및 검찰을 통해 5100만원을 지급했으며, 합의는 감당하기 어려운 금액을 요구해 결렬됐다고 전했다. 또 “피해자 가족에게 ‘맞은 것도 죄’라고 말한 적이 결코 없으며 사건 이후로 단 한번도 해외여행을 다녀온 적이 없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너무 크나큰 잘못을 저질러놓고 이런 송구스런 글을 올리게 돼 또한 부끄럽다”면서도 “저희의 잘못된 행동으로 아무런 잘못한 일도 없는 판사님, 검사님, 경찰공무원분들, 소방공무원분들이 왜곡된 사실로 이런 지탄을 받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에 글을 올렸다”고 밝혔다. B씨가 글과 함께 덧붙인 2심 판결문에서 재판부는 “이 사건은 피고인이 친구인 피해자와 다투다가 무릎으로 피해자의 복부를 차 췌장에 심각한 상해를 입게 한 것으로서 죄질이 가볍지 않은 점, 피해자는 향후에도 계속 치료를 받아야 하고 장해가 남을 것으로 예상되는 등 결과가 중한 점, 피해자와 합의하지 못하였고 피해자와 그 부모가 피고인에 대한 엄한 처벌을 탄원하면서 공탁금 수령도 거부하고 있는 상황인 점은 피고인에게 불리한 정황이다”라고 밝혔다. 이어 “피고인이 범행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는 점, 피고인이 행한 폭력의 정도에 비추어 일반적으로 예상할 수 있는 정도를 넘어서는 중한 상해의 결과가 발생한 점, 피고인의 부모가 합의를 위하여 나름대로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보이고 치료비 상당의 금액은 모두 지급된 것으로 보이며, 원심에서 1500만원을, 당심에서 500만원을 각 공탁한 점, 피고인이 아직 어린 학생이고 부모의 선도의지가 강해 보여 교화의 가능성이 남아 있다고 보이는 점은 피고인에게 유리한 정상이다”고 판단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또래에 폭행당해 장 파열…가해자는 해외여행·근육 자랑”

    “또래에 폭행당해 장 파열…가해자는 해외여행·근육 자랑”

    경기도 의정부에서 고등학생이 또래 1명에게 맞아 장 파열 등 심각한 상해를 입었는데 가해자는 집행유예를 받았다는 내용의 글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퍼지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와 공분을 사고 있다. ‘○○이 엄마’라고 밝힌 글쓴이는 18일 트위터에 “18세 아들이 지난해 고등학교에 입학한 지 한 달도 안 돼 또래 학생에게 무차별 폭행을 당했다”면서 “이로 인해 장이 파열되고 췌장이 절단되는 중상을 입고 생사 기로에서 사망 가서를 쓰고 수술해 기적처럼 살아났다”고 밝혔다. 글쓴이는 “아들은 167㎝의 키에 50㎏도 안 되는는 아이인데 가해 학생은 이종격투기를 몇년 동안 하고 탄탄한 몸과 근육질을 자랑하는 학생이었다”면서 “가해 학생은 ‘여자친구를 모욕했다’는 거짓말을 듣고 ‘그냥 한 대만 맞자’라면서 무차별 구타했다”고 했다. 글에 따르면 가해 학생은 피해 학생의 얼굴에 침을 뱉고 철망이 있는 벽에 밀어넣은 다음 무릎으로 복부를 걷어찼다. 이후 폭행해서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아프다고 호소하는 아들을 데리고 영화관, 노래방 등을 끌고 다녔다고도 했다. 아들이 다음날에서야 병원으로 이송됐고, 24시간이 지나서야 수술을 할 수 있었다면서 “5명 중 4명이 죽는 힘든 수술이라는 의사의 말을 듣고 하늘이 무너졌다”고 글쓴이는 전했다. 아들이 수술을 받는 동안 아들의 친구에게 폭행 사실을 전해듣고 경찰에 신고했다. 글쓴이는 “가해 학생의 아버지가 고위직 소방 공무원이고, 큰아버지가 경찰의 높은 분이어서인지 성의 없는 수사가 반복됐다”면서 “결국 살인미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지만 고작 집행유예 2년과 사회봉사 160시간을 선고받았다”고 전했다.이어 “아들을 간호하면서 병원비 약 5000만원이 들어갔고, 생활고에 시달리는 등 1년이라는 시간을 지옥에서 살았다”면서 “그러나 가해 학생은 자신의 근육을 자랑하는 사진을 올리고 해외여행까지 다니는 등 너무나도 편하고 행복하게 살았다”고 분노했다. 또 “가해자의 부모도 반성은커녕 사과 한번 하지 않았고, 내가 올린 탄원서들을 위조한 것 아니냐면서 필적 감정까지 들어갔다”고도 했다. 가해 학생의 폭행이 이전에도 있었다고도 전했다. 글쓴이는 “불과 한달 전 다른 학생의 코뼈를 부러트리고 기소유예로 풀려났다”면서 “가해 학생은 누구를 때렸을 때 미안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 없다고 당당하게 말하고, ‘맞은 것도 죄’라고 말하는 가해 학생 아버지의 말에 너무나 억울해 항소를 했다”면서 “그러나 검찰 측에서 피해자 측에 연락도 없이 재판을 진행했고 알지도 못한 채 항소가 기각됐다는 통보를 들었다”고 전했다. 글쓴이는 “음악적 재능이 뛰어난 아들이 부푼 꿈을 안고 입학했는데 지금은 악기도 못 들고 공황장애까지 생겨 사람 많은 곳에서 발작한다”면서 “18살 생일날에 겨우 단 둘이서 조용히 생일파티를 하고 나 역시 울분이 터지고 억울하고 마음이 아파서 매일 밤을 눈물로 보내고 있다”고 했다. 이 글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우리 아들 **이의 억울함을 풀어주세요.‘라는 제목(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530372?navigation=petitions)으로도 게재돼 19일 오후 5시 현재 5만 9000명 이상이 청원에 동의했다. 그러나 청원 글과 달리 당시 이 사건을 살인미수 혐의가 아닌 상해 혐의로 입건됐던 것으로 연합뉴스가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가해 학생은 지난해 3월 31일 오후 6시쯤 학교 밖에서 동급생인 피해 학생과 어깨가 부딪히자 피해 학생의 배를 무릎으로 한차례 가격해 상처를 입힌 혐의를 받았으며, 재판에 넘겨져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과 160시간 사회봉사를 선고받았다. 검찰이 “양형이 부당하다”면서 항소했으나 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또 가해 학생의 큰아버지가 고위 경찰이라는 주장에 대해 해당 경찰서는 “일반 사업자로 확인됐다”면서 “소방관인 아버지도 고위직은 아니다”고 해명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홀로이지만, 혼자가 아니다… 쓸쓸·고통으로 묶인 우리는

    홀로이지만, 혼자가 아니다… 쓸쓸·고통으로 묶인 우리는

    사이하테 타히라는 시인이 있다. 그의 네 번째 시집 ‘밤하늘은 항상 최고 밀도의 푸른색이다’(2016)는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많이 읽혔다는 뜻이다. 지금 여기를 살아내는 사람이 가질 수밖에 없는 고독의 정서를 이런 식의 시구로 표현했기 때문일 테다. “네가 가엾다고 생각하는 너 자신을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동안은 세상을 미워해도 돼. 그러니까 이 별에 연애란 있을 수 없어.” 외로움과 연민, 증오와 사랑을 그는 이렇게 언어화했다. 해석하기 어렵지 않게, 그러나 쉽게 읽고 금방 흘려버릴 수도 없게. 이 시집에 감응한 독자 중 한 명이 이시이 유야 감독이다. 출판사 직원들의 사전 편찬기를 다룬 미우라 시온의 소설 ‘배를 엮다’를 원작으로 영화 ‘행복한 사전’(2013)을 만들었던 그는, 이번에는 사이하테 타히의 시집을 바탕으로 영화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를 완성했다. 그러니까 관객 입장에서도 시 읽는 마음으로 영화를 보는 편이 나을 것 같다.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그것을 전하는 형식적 감각에 집중해야 감상이 수월하다는 말이다. 이 작품에 쓰인 비유와 상징을 중심으로 접근하기를 권한다. 이를테면 왼쪽 눈이 잘 보이지 않는 남자 주인공 신지(이케마츠 소스케)가 보는 반쪽 세계의 프레임이라든가, 방에서 괜히 가라테 발차기를 연습하는 여자 주인공 미카(이시바시 시즈카)의 모습이라든가, 신지와 미카가 자꾸 마주치게 되는 버스커 공연 등이 그렇다. 그 외에도 이 영화에는 형식적 감각의 차원에서 분석할 부분이 많다. 한 가지 염두에 둘 점은 이를 관통하는 감정이 누군가의 죽음으로 인한 상실감, 힘든 일로 생존을 이어 나가야 하는 생활고라는 것이다. 이것은 신지나 미카나 마찬가지다. 그들뿐이 아니다. 도쿄에 사는 사람들, 서울에 사는 사람들도 다를 바가 없다. 우리는 홀로이나 바로 그런 점에서 쓸쓸함과 고통으로 묶이는 공동체다. 이 영화가 국경을 넘어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이유다.혼자인 모두가 연결되어 있으므로 이 영화는 비관적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미카의 목소리로 들리는 사이하테 타히의 시구가 그 사실을 방증한다. “물처럼 봄처럼 네 눈동자가 어딘가 있어, 만나지 않아도 어딘가에서 숨 쉬고 있어, 희망과 사랑과 심장을 울리고 있다.” 이 구절에 기대자. 그러면 비약을 반복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신지와 미카의 관계도 그럴 듯하게 납득된다. 논리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것이 세상에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 같은 진실을 살면서 자꾸 잊게 된다. 그래서 이 같은 진실을 잊지 않으려고 우리는 시를 읽는다. 시로 만든 영화를 본다. (덧붙임: 영화 개봉을 계기로 사이하테 타히의 시집도 한국에 번역되기를 바란다.) 허 희 문학평론가·영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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