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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활고에 ‘벼랑 끝’ 죽음마저 쓸쓸했다

    생활고에 ‘벼랑 끝’ 죽음마저 쓸쓸했다

    “시체 썩는 냄새가 자꾸 나요.” 지난 3일 오후 3시 30분쯤 서울 중랑소방서에 전화가 걸려왔다. 중랑구 한 다세대주택 안에 사람이 죽어 있는 것 같다는 신고였다. 출동한 119구급대원들이 집에 쓰러져 있는 50대 남성 A씨를 발견했지만 이미 숨을 거둔 상태였다. 경찰은 A씨가 사망한 지 2~3일 지난 것으로 추정했다. 장애가 있던 A씨는 고시원을 전전하며 어렵게 생활을 이어 왔다. 가족, 친척들과는 오래전 교류가 끊겼고 불편한 몸으로 홀로 수십 년을 살았다. 2014년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인정된 그는 지방자치단체에서 전세금을 지원받아 빌라에서 거주했다. 장애와 심한 알코올 중독으로 일을 구하기가 어려워지자 빈곤은 그를 더 옥죄었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 코로나19가 심해지면서 정기적으로 그를 찾던 복지사의 발길도 끊겼다. 지자체 지원금으로 근근이 버티던 그는 그렇게 쓸쓸한 죽음을 맞았다. ●장애 있던 ‘기초수급자’ 50대男… 아무도 몰랐던 그의 죽음 최근 안타까운 기초생활수급자 고독사가 잇따르고 있다. 코로나19 장기화의 영향으로 취약계층을 위한 대면 복지 서비스가 제한되면서 방치되는 1인가구가 늘어난 탓이 크다. 시민사회는 정부·지자체의 긴급 점검과 지원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은다. 서울 강서구 화곡동에서는 최근 한 달 사이 한동네에서 기초수급가정 2가구가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지난달 5일에는 생계급여 외에 벌이가 없던 어머니와 아들 등 일가족 3명이 숨졌고 이달 4일에는 40대 남성이 이웃 주민의 ‘악취 신고’로 발견됐다. 지난 8일 노원구에서는 집 대신 낡은 승용차에서 먹고 자던 50대 남성이 두세 달 걸리는 기초생활보장 수급 자격 인정을 기다리다 지병으로 사망했다. 앞서 지난해 12월에는 서초구 방배동에서 발달장애 아들을 둔 60대 여성이 사망한 지 약 5개월 만에 발견되기도 했다. ●화곡동 일가족 사망 이어 계속되는 비극… 정부 대책 절실 빈민 활동가들은 언론에 보도되지 않은 취약계층 고독사가 더 많을 것으로 추정한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고영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보건복지부에서 받은 고독사 추이 자료를 보면 지난해 전국의 무연고 사망자 수는 2880명으로 5년 전(1820명)보다 58.2% 증가했다. 복지 전문가들은 지난해 고독사가 급증한 원인으로 코로나19를 꼽았다. 중랑구에 따르면 숨진 A씨는 분기별 대면 방문 대상자였다. 지자체는 정기적으로 상태를 확인하지만 코로나19가 재확산된 지난 6월 이후 복지공무원의 대면 방문은 제한됐다. 사회관계망의 붕괴도 취약계층을 위협한다. 한 주민센터 복지공무원은 “기초생활수급자는 혼자 지내는 경우가 많다”면서 “이웃 주민끼리 서로 안부를 묻고 이상이 생기면 지자체에 알리는 역할을 했지만 최근 이마저 어려워졌다”고 전했다. 공공병원이 대부분 코로나19 지정병원이 되면서 공공의료 서비스를 받기 힘들어진 것 역시 영향을 줬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기초생활수급자들에겐 관계적 지원이 갖는 의미가 상당하다. 오히려 대면 복지를 확대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 펄 벅 양녀 자서전 ‘개천에 핀 장미’ 출간

    펄 벅 양녀 자서전 ‘개천에 핀 장미’ 출간

    노벨상 수상 작가인 펄 벅의 입양 딸이 겪은 애환과 한국전쟁의 참상 등을 담은 자서전이 발간됐다. 한국펄벅재단은 펄 벅의 한국인 양녀인 줄리 헤닝의 자서전 ‘개천에 핀 장미’(고요아침)를 출간했다고 9일 밝혔다. 자서전에는 한국전쟁 막바지였던 1953년 부산에서 태어나 1968년 펄 벅에게 입양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에서 한국계 미국인으로의 삶을 이어 간 줄리 헤닝의 사연이 담겼다. 책에는 전쟁의 폐허와 종전 후 생활고 속에서도 15년 동안 그를 양육한 친모의 사연과 펄 벅에게 입양된 뒤 미국에서의 삶이 고스란히 담겼다. 특히 펄 벅이 ‘아메라시안’(Amerasian)이라고 이름 붙인 한국·미국 혼혈인 출신인 그가 차별과 가난을 이겨 내는 과정을 서술했다.
  • ‘유럽의 북한’ 벨라루스… 러와 밀착하며 27년 독재·공포 정치

    ‘유럽의 북한’ 벨라루스… 러와 밀착하며 27년 독재·공포 정치

    반정부 언론인을 체포하겠다고 지난 5월 그리스에서 리투아니아로 향하던 아일랜드 국적 여객기를 강제 착륙시킨 나라, 자국팀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도쿄올림픽 출전 선수의 강제 귀국을 추진하는 나라. 이런 벨라루스의 별칭은 ‘유럽의 북한’이다. 소련이 해체되고 독립국가로 출범한 이후 1994년부터 지금까지 알렉산드르 루카셴코(76) 대통령의 장기 독재가 이어지는 점이나, 냉전 시대 때와 다를 바 없이 러시아 의존 외교가 이어지는 모습이 북한과 닮은꼴이다. 반정부 인사들의 강제 구금이나 의문사가 잇따르는 모습 또한 북한의 공포정치를 연상시키는 대목이다. 그러나 ‘유럽의 북한’이라는 별칭에도 불구하고 벨라루스와 북한의 대외 도발 방식은 다른데, 이는 벨라루스가 동유럽의 복판에 위치했다는 환경에서 비롯된 차이점이다. 벨라루스는 북한과 왜 닮게 됐을까, 또 두 나라의 결정적 차이는 무엇일까.강제 귀국당할 뻔했다 공항에서 일본 경찰에게 보호를 요청, 결국 폴란드로 망명하게 된 올림픽 육상선수 크리스치나 치마노우스카야는 정부나 루카셴코 대통령을 비판한 적이 없다. 그저 육상 코치가 아무 언질 없이 자신을 여자 계주 선수로 등록했다며 소셜미디어에 불평한 것이 치마노우스카야가 한 행동의 전부다. 다만 루카셴코 대통령이 전직 벨라루스 올림픽위원회(NOC) 위원장이었고, 그의 아들 빅토르 루카셴코가 현 벨라루스올림픽위원회 위원장이라는 게 문제였다. 치마노우스카야가 코치의 결정에 불만을 터뜨린 것은 루카셴코 가문이 이끄는 벨라루스올림픽위원회를 모욕한 것과 같은 모습이 된 것이다. 물론 이는 벨라루스의 독자적인 견해일 뿐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치마노우스카야의 망명 이후 벨라루스 육상 대표팀 코치 2명을 올림픽에서 퇴출하기로 결정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올림픽 정신을 해치려던 벨라루스의 시도를 비판하며 “오랫동안 ‘유럽의 마지막 독재국’으로 불리던 벨라루스가 이제 갱스터(폭력집단)의 길을 가고 있다”고 혹평했다. 코치에 대한 비판 한마디에 올림픽 출전 선수를 강제 귀국시키는 벨라루스에서 노골적으로 반(反)루카셴코 노선을 따르는 이들에 대한 박해는 소련 시절 첩보기관인 KGB 활동을 떠올리게 한다. 지난해 8월 루카셴코의 6선이 이뤄진 대선이 부정선거로 치러졌다는 의혹이 여전한 가운데 지난달 21일 벨라루스 경찰은 자국 내 14개 시민단체 사무실을 급습해 회원들을 체포했다. 인구 949만명인 이 나라에서 이미 지난 1년 동안 체포당한 인원은 3만 5000명이 넘으며, 수천명이 고문 피해를 입은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엔 탄압을 피해 고국을 떠나 우크라이나에서 ‘우크라이나의 벨라루스인 집’이란 사회단체를 결성해 활동하던 반정부 인사 비탈리 시쇼프가 실종 하루 만에 키예프의 한 공원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생전에 그가 자신이 미행을 당하고 있다고 호소한 데다 시신의 코와 무릎에서 상처가 발견되면서 그가 암살당한 것이란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작년 反정부 시위로 3만 5000여명 체포당해 ‘냉전의 종언’에 힘입어 출범한 나라를 여전히 냉전시대의 공기 속에 방치하는 장본인은 루카셴코 대통령이다. 루카셴코는 벨라루스 독립 이후 첫 번째 수반은 아니다. 소련 연방 해체 뒤인 1991년 벨라루스 국가원수인 최고회의 의장이 된 이는 핵물리학자 출신인 스타니슬라프 슈스케비치였다. 보리스 옐친 러시아 전 대통령 등과 함께 독립국가연합(CIS)의 창설을 주도한 슈스케비치 의장은 소련 해체 뒤 벨라루스 영토에 남은 탄도미사일 81기와 핵탄두를 러시아에 반환했으며, 친서방적인 입장을 취하며 민주개혁에 나섰다. 그러나 당시 의회반부패위원장이던 루카셴코가 국가재산 횡령 등을 이유로 불신임 투표를 주도해 1993년 슈스케비치 의장을 탄핵했다. 이듬해부터 루카셴코의 장기 집권이 시작됐다. 1994년 집권한 이후부터 러시아와의 국가연합을 적극 추진하며 친러시아 정책을 편 루카셴코에게 서방이 반발한 시기는 언제일까. 그가 재선에 성공한 2001년부터다. 그해 선거에서 루카셴코는 76%의 득표율을 달성했지만 미국과 유럽연합(EU), 일본 등은 이 선거 결과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후에도 루카셴코는 77.3%(2004년), 79.7%(2010년), 83.5%(2015년), 79.0%(2020년)의 압도적 득표로 당선됐다. 그러나 재선 이후 선거에 대해 서방 진영은 국제사회가 요구하는 민주적 선거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고 평가했는데, 선거 때마다 야당 인사 탄압이 병행됐기 때문이다. 반복적으로 서방의 제재를 당하면서 한층 더 친러시아 행보를 한 루카셴코 정부는 경제성장의 돌파구를 찾아내지 못했다. 벨라루스 대외 무역의 50%는 러시아를 상대로 이뤄진다. 에너지 의존도도 높아서 벨라루스는 가스의 99%, 원유의 80%를 러시아로부터 공급받는다. 이 에너지를 저렴하게 자국민에게 공급하는 게 루카셴코 정권의 통치 기반 중 하나다. 러시아 역시 벨라루스를 유럽으로 석유와 가스를 수출하는 주요 통로로 활용하고 있다. 2017년 벨라루스에서 반정부 시위가 벌어진 적이 있는데, 연간 최소 183일을 근무하지 않는 경제활동인구를 대상으로 실업세를 부과하겠다는 대통령령이 발표되자 반발이 일어났던 것이다. 당시 시위는 민간 생활고가 발생할 경우 독재 권력의 존속 자체가 위협받는 상황이 실현된 것으로, 루카셴코 정권이 러시아 의존 행보를 포기하기 어려운 사정이 여기에 있는 셈이다. ●바이든 “벨라루스 국민의 보편적 인권 지지” 루카셴코의 러시아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벨라루스와 서방 간 외교적 거리는 멀어지고 있다. EU는 벨라루스 대외무역량의 약 30%를 담당하는 지역이지만, 지난 5월 EU 국가의 여객기를 강제 착륙시킨 뒤 벨라루스를 상대로 EU의 경제제재가 강화됐다. 2014년 우크라이나 사태 당시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을 지지해 달라는 러시아 요구를 벨라루스가 거절하고 중재자 역할을 자처하면서 벨라루스를 재평가하던 미국과 EU는 지난해 불법 대선에 이어 올해 비행기 강제 착륙, 올림픽 선수 강제 귀국 사태에 경악하는 분위기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백악관에서 벨라루스 야권 지도자인 스베틀라나 티하놉스카야와 면담하며 “미국은 민주주의와 보편적 인권에 대한 벨라루스 국민의 요구를 지지한다”고 말하고, 추가 제재를 취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서방의 제재 경고가 잇따르자 벨라루스는 또다시 상식에 반하는 공세로 맞대응했다. 동유럽의 복판에 위치했다는 점을 활용, 자국의 국경 경계를 느슨하게 해 인접국으로 중동 지역에서 온 이민자들을 유입시킨 것이다. ‘하이브리드 전쟁’으로 명명된 이 전략은 아시아 동쪽 끝에서 ‘고립주의’를 선택한 북한의 대응과 대비되는 부분이다. 벨라루스는 이라크 출신 이민자들을 받아들인 뒤 인접한 폴란드, 리투아니아 등 EU 국가로 보내고 있다. 비행기 강제 착륙에 따른 서방의 제재 이후 벨라루스가 의도적으로 이라크 출신 이민자들을 인접국으로 보냄에 따라 리투아니아 의회는 지난달 불법 이민자 추방 절차를 신속 처리하는 패스트트랙 법안을 신설해 의결했다. 리투아니아는 벨라루스와의 국경 지대 550㎞ 구간에 철조망을 설치했고, EU도 국경경비기관인 프론텍스 인력을 파견했다. 폴란드 내무부 역시 “벨라루스가 이주민을 살아 있는 무기로 이용하고 있다”고 맹비난했다.
  • 청소년임신부, 부양의무자 적용에 생활고 극심

    청소년임신부, 부양의무자 적용에 생활고 극심

    가족으로부터 외면받고 근로능력도 없는 청소년임신부가 부양의무자 기준 때문에 극심한 생활고를 겪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9일 국회입법조사처가 발간한 ‘2021 국정감사 이슈 분석’에 따르면 한부모에게는 부양의무자 기준을 적용하지 않지만, 아이를 출산해 한부모가 되기 이전의 임신부는 부양의무자 적용을 받고 있다. 가족이 자신을 보호하지 않더라도 가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국민기초생활보장법과 한부모가족지원법에 따른 각종 지원을 받지 못한다. 출산 이후 한부모가 되면 부양의무자 기준이 적용되지 않아 지원 신청을 할 수 있지만 통상 심사기간이 3개월가량 소요돼 지원 공백이 발생한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부양가족과 연락이 단절됐다면 지방생활보장위원회 심의를 거쳐 지원받을 수 있지만 이 ‘단절’을 입증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입법조사처는 “청소년임신부 중 이렇게 원가족과 단절돼 있는 경우 극심한 생활고를 겪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가 발표한 ‘2019 청소년부모 생활실태 조사 및 개선방안 연구’에 따르면 청소년 임산부 315명을 조사한 결과 국민기초생활급여와 한부모가족급여 모두 받고 있지 않다는 응답이 50.8%로 절반을 웃돌았다. 동일집단 절반가량은 월수입이 100만원 이내였다. 연구보고서를 작성한 은주희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책임연구원은 “임신 전부터 출산에 이르기까지 청소년 부모들은 자기 집 또는 배우자 집, 미혼모시설에서 부모와 떨어져 거주하는 경향을 보인다”며 “이는 부모 또는 원가족으로부터 충분한 보호와 지원을 받지 못했음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입법조사처는 “임신·출산기에 경험하는 절대 빈곤은 미혼모가 자녀양육을 포기하게 하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면서 “청소년임신부의 생계부양의무자 적용을 폐지해 안전한 출산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캐나다 퀘벡주의 경우 부모가 있더라도 함께 살지 않는 청소년임신부는 임신 20주 이후부터 정부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영국은 부모와 따로 사는 청소년 미혼모에게 부모의 부양능력과 관계없이 소득지원, 주거지원, 세액공제 등을 지원하고 있다.
  • 부양의무자 기준 때문에...‘가족과 단절’ 청소년임산부 생활고

    부양의무자 기준 때문에...‘가족과 단절’ 청소년임산부 생활고

    가족으로부터 외면받고 근로능력도 없는 청소년임신부가 부양의무자 기준 때문에 극심한 생활고를 겪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9일 국회입법조사처가 발간한 ‘2021 국정감사 이슈 분석’에 따르면 한부모에게는 부양의무자 기준을 적용하지 않지만, 아이를 출산해 한부모가 되기 이전의 임신부는 부양의무자 적용을 받고 있다. 가족이 자신을 보호하지 않더라도 가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국민기초생활보장법과 한부모가족지원법에 따른 각종 지원을 받지 못한다. 출산 이후 한부모가 되면 부양의무자 기준이 적용되지 않아 지원 신청을 할 수 있지만 통상 심사기간이 3개월가량 소요돼 지원 공백이 발생한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부양가족과 연락이 단절됐다면 지방생활보장위원회 심의를 거쳐 지원받을 수 있지만 이 ‘단절’을 입증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입법조사처는 “청소년임신부 중 이렇게 원가족과 단절돼 있는 경우 극심한 생활고를 겪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가 발표한 ‘2019 청소년부모 생활실태 조사 및 개선방안 연구’에 따르면 청소년 임산부 315명을 조사한 결과 국민기초생활급여와 한부모가족급여 모두 받고 있지 않다는 응답이 50.8%로 절반을 웃돌았다. 동일집단 절반가량은 월수입이 100만원 이내였다. 연구보고서를 작성한 은주희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책임연구원은 “임신 전부터 출산에 이르기까지 청소년 부모들은 자기 집 또는 배우자 집, 미혼모시설에서 부모와 떨어져 거주하는 경향을 보인다”며 “이는 부모 또는 원가족으로부터 충분한 보호와 지원을 받지 못했음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입법조사처는 “임신·출산기에 경험하는 절대 빈곤은 미혼모가 자녀양육을 포기하게 하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면서 “청소년임신부의 생계부양의무자 적용을 폐지해 안전한 출산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캐나다 퀘벡주의 경우 부모가 있더라도 함께 살지 않는 청소년임신부는 임신 20주 이후부터 정부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영국은 부모와 따로 사는 청소년 미혼모에게 부모의 부양능력과 관계없이 소득지원, 주거지원, 세액공제 등을 지원하고 있다.
  • 홈리스 출신 코리 부시 ‘노숙 시위’… 퇴거 위협받던 360만 가구 구했다

    홈리스 출신 코리 부시 ‘노숙 시위’… 퇴거 위협받던 360만 가구 구했다

    “세 번이나 집 쫓겨나 봐서 노숙 익숙”SNS로 생중계… 언론 등 관심 커져‘퇴거유예’ 기한 10월 3일까지 연장“나도 세 번이나 집에서 쫓겨나 봐서 (노숙이 익숙해) 의회 계단에서 자기로 했습니다.” 민주당 소속의 초선인 코리 부시(45) 미국 하원의원은 지난 6일(현지시간) CNN 기고에서 ‘퇴거 유예 조치’ 기한을 두 달 연장하는 변화를 이끌어 낸 노숙시위의 동기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월세를 내지 못해 2001년 집에서 쫓겨나 14개월인 첫째, 신생아인 둘째와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에서 수개월간 숙식을 해결했고, 이 일로 ‘홈리스 출신’이라는 별칭을 갖게 됐다. 그의 시위에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지난 3일 법적 근거가 없다던 기존 입장을 바꾸고 코로나19로 집세를 못 낸 세입자를 내쫓지 못하도록 했던 퇴거 유예 기한을 오는 10월 3일까지 연장했다. NBC방송은 부시의 노숙시위가 2016년 민권운동가 출신 존 루이스 상원의원이 총기규제 입법 촉구를 위해 벌였던 연좌농성을 떠올리게 한다고 전했다. 해당 시위는 역사상 첫 의원의 국회농성으로 평가된다. 부시가 노숙시위를 택한 건 초선인 만큼 정치적 영향력이 부족해서다. 무엇보다 하원에서 퇴거 유예 조치 연장이 통과돼도 상원 부결이 예상되고, 주택 소유자 측의 로비도 있어 당내 지지세력이 적었다. 이에 부시는 캠핑 의자에서 잠을 자며 농성에 나섰다. 극좌파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의원이 동참했고, 퇴거를 당하면 피해가 가장 클 뉴욕 민주당원 870만명에게 인스타그램으로 시위를 생중계했다. 사흘째 되던 날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이 전화로 퇴거 유예 조치 연장을 위한 의원 소집은 없다고 통보하며 시위는 실패로 끝나는 듯했다. 하지만 연일 계속되는 시위에 언론의 관심이 커졌고, 이튿날 민주당의 펠로시와 척 슈머 상원 원내대표가 동참해 백악관에 해법을 내놓으라고 압박하면서 기류가 바뀌었다. 부시는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과 예정에 없던 면담을 했고, 코로나19가 심한 지역에서 퇴거 유예를 또다시 2개월 연장하는 해법을 끌어냈다. 이번 시위로 퇴거 위협을 받던 360만 가구를 도우며 부시는 정치적 입지를 다졌다. 그는 생활고로 남편과 이혼한 뒤 간호대학에 다녔고, 간호사이자 목사로 활동했다. 2014년 미주리주 퍼거슨에서 18세 흑인 마이클 브라운이 백인 경찰의 총격에 사망한 사건으로 인권운동가가 됐다. 2018년 중간선거에서 당선에 실패했지만, 지난해 8월 클레이 가문이 52년간 하원의원을 했던 미주리주 1구역에서 10선인 윌리엄 레이시 클레이를 민주당 경선에서 제쳐 파란을 일으키며 미주리의 첫 흑인 여성 의원이 됐다.
  • [씨줄날줄] 이집트 3.65원 빵/황성기 논설위원

    [씨줄날줄] 이집트 3.65원 빵/황성기 논설위원

    인류 문명의 발상지답게 메소포타미아는 빵의 기원지다. 기원전 6000~4000년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은 밀가루를 반죽한 뒤 빵을 굽는 발명을 했다. 당시에 발효시킬 효소는 발견하지 못했다. 밀 재배와 빵 만들기는 고대 이집트로 넘어가서 발효빵이란 신발명품을 탄생시킨다. 남은 빵 반죽이 공기 중의 효모균과 만나 자연 발효한 것이다. 다음날 구웠더니 빵이 부풀어 올랐고 맛도 한결 좋았다. ‘우연한 발견’으로 발효빵의 기원지는 이집트가 됐다. 현대 이집트는 세계 최대급의 밀가루 수입국이다. 이집트인 1억 400만명의 주식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빵이다. 공갈빵처럼 속이 빈 ‘아에시’나 ‘발라디’가 대표적이다. 이집트의 상설시장인 ‘수크’에 가면 빵 판매소가 있다. 1이집트 파운드(약 72.9원)에 발라디 20개를 살 수 있다. 1개에 3.65원꼴이다. 세계에서 가장 싼 이집트 빵이 가능한 것은 정부가 보조금을 수십 년째 지원하는 덕분이다. 올해에만 3조 2789억원이 빵 보조금으로 책정됐다. 하루 5개까지 살 수 있는 보조금 빵은 이집트 서민들의 생명선이다. ‘빵과 자유, 사회적 공정’이란 현수막이 수도 카이로에 걸렸던 게 2011년 1월 25일 ‘아랍의 봄’으로 불렸던 이집트 혁명 때다. 이집트 국민에게 빵은 자유이자 사회적 공정이었다. 30년 독재의 무바라크 정권이 무너진 표면적 이유가 민주화 요구라면 그 배경에는 국민의 생활고와 경제난이 있었다. 이듬해 정권을 잡은 무함마드 무르시는 국제통화기금(IMF)의 금융 지원을 받고는 정부 보조금을 줄이려 빵값 인상을 시도했다. 결국은 3.65원짜리 빵에 손을 대려던 무르시는 성난 군중의 폭동에 의해 정권을 내놓아야 했다. 지금도 수크에 가면 상인들로부터 “빵에 손을 대면 큰일이 난다”는 전설과 같은 무시무시한 경고를 들을 수 있다고 한다. 무르시가 빵 보조금을 만지작거리다 낙마했고, 1977년 안와르 사다트 당시 대통령도 ‘빵 폭동’으로 곤욕을 치른 바 있으니 전설이 아닌 실화겠다. 그런 교훈에도 지금의 압둘팟타흐 시시 대통령은 “빵 20개에 담배 한 개비 가격”이라며 빵값 인상을 언급해 일파만파를 낳고 있다. 시시 정권도 IMF의 구제금융 대가로 식료품 보조금을 꾸준히 줄여 왔다. 하지만 코로나19로 관광객이 끊겨 돈이 돌지 않고 국민의 생명선인 빵 보조금 삭감 예고로 서민을 압박하면서 빈민층의 불만은 커지고 있다. 빈부 격차가 심한 남미 칠레에서는 2년 전 지하철요금 50원 인상에 폭동이 난 적 있다. 경제적 성과의 극소수 독점이 일상화한 이집트에서 빵으로 상징되는 재분배 질서를 깨려는 시시 대통령의 앞날이 불안해 보인다.
  • 이혼 후 생활고에…초등학교 1학년 아들 살해하려 한 20대 엄마

    이혼 후 생활고에…초등학교 1학년 아들 살해하려 한 20대 엄마

    살인미수·아동복지법 위반 혐의 구속기소 남편과 이혼 후 생활고와 우울증을 겪자 초등학교 1학년생 아들을 살해하려고 한 엄마가 재판에 넘겨졌다. 제주지검은 살인미수와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로 20대 여성 A씨를 구속기소 했다고 5일 밝혔다. A씨는 지난 5월부터 지난달까지 3차례에 걸쳐 제주시 자택에서 초등학교 1학년생인 아들 B(7)군의 목을 조르거나 흉기로 위협하는 등 살해하려 한 혐의를 받고 있다. A씨가 범행할 때마다 B군이 극심하게 저항해 미수에 그쳤고, A씨는 이 과정에서 B군에게 “같이 천국 가자” 등의 발언도 일삼은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남편과 이혼 후 생활고와 우울증을 겪자 범행을 저질렀으며 B군을 살해하고 자신도 죽으려 했다고 진술했다. B군은 A씨의 위협적인 행동이 여러 차례 반복되자 외할머니에게 “할머니 집에 데려가 달라”며 도움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외할머니는 지난달 16일 B군을 자신의 집으로 데려오는 동시에 경찰에 학대 의심 신고를 했다. 경찰은 B군을 상대로 경제적 지원과 함께 심리치료 등을 제공할 예정이다.
  • [세종로의 아침] 코로나19, 국가의 존재 이유를 묻다/박찬구 정책뉴스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코로나19, 국가의 존재 이유를 묻다/박찬구 정책뉴스부 선임기자

    생계가 어려운 사람에게 최저생활을 보장하는 생활보호법이 기초생활보장법으로 대체된 것은 국민의 정부 때다. 1997년 말 외환위기로 실직자가 잇따르고 빈곤 문제가 심화하던 당시 최소한의 기초생활을 국가가 보장하기 위한 취지로 2000년부터 시행됐다. 기존 생활보호대상자는 기초생활수급권자로 명칭이 바뀌었다. 국가가 사회적 약자인 빈곤층을 보호대상으로 여겨 시혜와 보살핌을 베푸는 게 아니라, 사회 구성원의 일원으로서 빈곤층이 기초생활을 보장받는 당연한 권리를 지닌다는 의미다. 빈곤을 개인의 책임으로만 치부하지 않고 공동체가 책임져야 할 구조적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는 사회적 약속이기도 하다. 외환위기 못지않은, 어쩌면 당시보다 더 깊은 상흔을 공동체와 사회적 약자들에게 남기고 있는 코로나19 확산세가 끝을 모른 채 이어지고 있다. 고립감과 생활고로 극단적 선택에 내몰리는 이웃들도 있다. 황태연 생명존중희망재단 이사장은 현재의 상황을 ‘폭풍전야’에 비유했다. 과거 외환위기와 금융위기 당시를 보면 2~3년이 지난 뒤 극단적 선택이 늘어났다는 점에서 코로나19에 따른 이웃들의 고통이 갈수록 심해질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재난은 사람의 의지와 노력으로만 극복될 수 있는 게 아니다. 재난에 따른 공동체의 희생을 줄이고 피해를 당한 구성원의 삶을 구제하는 것은 국가와 공동체의 당연한 의무이자 존재 이유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생활고로 일가족이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례들에서 보듯 일선 현장의 복지지원 문턱은 높고 사각지대는 좀처럼 해소되지 않고 있다. 최근 관계부처에 접수된 민원사례를 보면 코로나19로 저소득층을 지원하고자 기초생활보장과 긴급복지지원 문턱을 낮췄지만 공적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하거나 냉대를 경험하는 사례들이 적지 않다. 일선 공무원이 부정수급자를 걸러내지 못하면 감사를 받을 수 있다는 우려 탓에 힘들게 문을 두드린 저소득층 민원인에게 무리한 서류를 요구하는가 하면 민감한 개인 가정사를 캐묻기도 한다. 마음먹고 주민센터 문턱을 넘은 민원인으로서는 위로나 격려를 받기는커녕 빈손으로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는 처지다. 한 예로, 디스크로 일을 할 수 없게 된 한 일용직 노동자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주민센터를 찾았다가 자격지심에 모멸감까지 느꼈다고 했다. 70대 아버지를 홀로 부양해야 하는 처지로, 최근 12개월간 근로소득은 월평균 95만원 안팎이었다. 건설현장과 물류센터 일용직을 전전하며 월세와 생활비를 빠듯하게 맞춰 왔지만, 그마저도 허리를 다치면서 곤란한 처지에 놓였다. 1년치 수도세에 당장 월세도 해결하지 못할 상황이었다. 그는 ‘국가가 도움을 주는 것이 복지제도 아니냐. 꼬박꼬박 냈던 세금이 이럴 때 쓰이는 것’이라는 생각에 자신의 형편을 A4용지에 꼼꼼하게 적은 뒤 주민센터를 찾았다. 하지만 담당 공무원의 반응은 달랐다. 준비해 간 자료를 꺼내지도 못했다. 기초생활수급 신청 기준 등에 대한 어려운 설명을 쏟아내고 이혼한 어머니와 연락은 하는지 등 민감한 가정사까지 캐물었다. 옆자리 직원이 자신을 힐끗 쳐다보는 모습에 자격지심이 들었다고 했다. 그는 적어도 칸막이가 있는 부스에서 1대1 상담이 이뤄질 줄 알았는데 담당 직원은 모든 사람이 다 보는 공간에서 평소와 같은 목소리로 이것저것 꼬치꼬치 물어보더라고 하소연했다. 한 개인의 사례로 치부할 일이 아니다. 지원 대상인지 여부와 상관없이 코로나19로 더 힘들어진 빈곤층에게 일선 공무원들의 말 한마디는 삶의 용기를 줄 수도 있고 열패감을 안길 수도 있다. 신분이나 처지와 상관없이 최소한의 생계 유지는 공동체의 당연한 책무라 할 수 있다. 코로나19 위기 상황에서 국가와 사회의 존재 이유를 되새길 때다.
  • [이종수의 헌법 너머] 기후변화가 정말 걱정스럽다면/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종수의 헌법 너머] 기후변화가 정말 걱정스럽다면/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파란색 번호판을 붙이고 도로를 달리는 전기차들이 부쩍 많아졌다. 교류 전기를 발견한 전기공학자의 이름을 딴 고가의 수입 전기차들이 특히 눈에 자주 띈다. 내연기관차들이 그동안 내뿜어 온 배기가스가 지구 환경에 미친 해악을 생각하면 전기차가 더 친환경적이라는 데 수긍한다. 그리고 요즘 유행하는 말로 내 돈 주고 내가 샀다는 ‘내돈내산’이라니 딱히 뭐라 할 말이 없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비싼 전기차를 구입할 때에 정부와 지자체가 각기 지급하는 보조금을 합치면 족히 1000만원이 넘는다. 얼마 전까지는 이 보조금이 기천만원에 달했다.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및 환경부가 합심해서 만든 정책이란다. 그것도 예산 범위에서 지급된다 해서 이 보조금을 놓칠까봐 서로 앞다투게끔 만든다. 뭔가 이상하다 싶었는데, 뒤늦게서야 올해부터는 전기차 가액에 따라서 보조금을 깎거나 아예 제외하는 걸로 바뀌었다. 그런데 이조차도 국내 자동차 업계의 이익을 의식한 정책 변경이라고 한다. 전기차 보급 확대와 관련 인프라 구축에는 이 보조금이 타당할지 몰라도, 환경 보호라는 정책 취지가 그저 입에 발린 소리가 아니려면 적어도 가구당 전기차 한 대만을 유지하는 조건으로 지급해야 하지 않을까. 차들이 전기차로 죄다 바뀌면 대기오염이 한결 덜해질 것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이 전기가 그저 생겨나는 게 아니다. 현 정부가 탈원전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앞으로 그 많은 전기 수요를 어떻게 감당해 낼지가 벌써부터 걱정스럽다. 후쿠시마 원전 사태가 있고 나서 탈원전 정책을 꾸준히 추진해 온 독일에서는 이미 수년 전에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의 전체 발전량이 화석에너지 발전량을 능가했다. 그래서 아우토반 곳곳의 주변 언덕에 태양광 패널이 수킬로미터에 걸쳐 깔려 있는 낯선 풍광을 접한다. 마을의 풍경도 바뀌었다. 집집마다 지붕 위에 온통 태양광 패널이다. 물론 오래전부터 전기요금도 꽤나 비싸다. 국내에 독일의 환경 수도로 소개되는 프라이부르크시는 지난 1990년에 연중 이용할 수 있는 저렴한 ‘환경패스’를 만들어서 이를 구입한 시민들이 버스와 트램은 물론이고 근거리 철도까지 추가 비용 없이 환승이 가능하게끔 했다. 자동차 이용을 자제해 달라는 당부이자 인센티브인 셈이다. 당시에 도시 곳곳에 내걸린 공익 광고판의 문구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움뎅켄, 움슈타이겐!”(Umdenken, Umsteigen!) 즉 “생각을 바꾸세요. 환승하세요!”다. 최근의 기후변화 국면에서는 더욱 와닿는 표현이다. 그래서 바람직한 교통 및 환경 정책은 대중교통망을 보다 확충하고, 평소에 대중교통을 애용하는 뚜벅이들에게 더 많은 편의와 혜택을 부여하는 게 아닐까 싶다. 수년 전부터 룩셈부르크 등 일부 국가의 도시들에서는 시내 및 근거리 교통수단 이용을 전면 무료화했다. 전기차 보조금으로 지급되는 국가 재원을 이렇듯 대중교통 무상 이용으로 돌릴 수는 없을까. 아마도 여기에는 업계의 이익과 로비가 없으니 쉽지가 않을 거라고 짐작된다. 게다가 환경 보호를 꾀하는 정부에 많은 뚜벅이들은 이미 붙잡힌 물고기와도 같다. 아니나 다를까. 자동차 관련 산업계와 노동조합이 지속가능한 발전과 일자리 유지ㆍ창출을 위해 국회에 미래 자동차산업으로의 효율적인 전환을 위한 재정 지원 입법을 요청했다는 기사를 최근에 접했다. 이들 업체가 그동안 벌어들인 그 많은 수익은 대체 어디에다 쓰는지가 궁금해졌다. 요즘 특히나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시름을 겪는 이들이 주변에 많다. 당장 수백만 원의 돈이 없어서 생활고를 겪다가 소중한 삶을 스스로 끊어 내는 안타까운 이들이 허다한데도 고가의 전기차를 구입하려는 이들에게는 이렇듯 거액의 보조금이 손에 쥐여진다. 이로써 형평성 논란도 불거졌다. 그런데 1인당 기십만원 남짓한 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급을 두고서는 나라 곳간 사정을 걱정하면서 인색하기 짝이 없는 기재부가 거액의 전기차 보조금에는 이렇듯 후하다. 대량생산 체제를 상징하는 ‘포드 시스템’과 함께 현대 자본주의의 문이 활짝 열렸으니 이제 새로운 전기차에 사활을 거는 대량소비 사회에서 전기차 보조금이 그저 당연하게 여겨질 법도 하다. 오래전에 올더스 헉슬리가 풍자했던 그 ‘멋진 신세계’가 어느새 이렇듯 우리 곁에 자리하고 있다.
  • ‘행방불명’ 9살 소년, 초코파이 쥐어준 경찰이 수용소로 데려갔다 [형제복지원 생존자, 다시 그곳을 말하다]

    ‘행방불명’ 9살 소년, 초코파이 쥐어준 경찰이 수용소로 데려갔다 [형제복지원 생존자, 다시 그곳을 말하다]

    <9>1983~1987, 형제원 강제수용된 박재형씨 진술서“집에 데려다주겠다”던 경찰이 형제원 끌고가초등학생에게 시멘트·돌 나르는 강제노동 시켜생기부엔 ‘행방불명’, “집 보내달라” 호소 외면퇴소 후에도 생활고·차가운 시선에 트라우마12년간 수용인원 총 3만 8000여명, 공식 사망자 513명. 1970~1980년대 국가 최대 부랑인 수용시설이었던 ‘부산 형제복지원’에서 벌어진 인권 유린 사태는 1987년 처음 세상에 알려졌다. 34년이 지난 지금, 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이는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진상 규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더는 기다릴 수 없다”는 생존자 13명은 지난 5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에 나섰다. 법원에 낼 진술서를 쓰는 과정 또한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반드시 쓰여져야 할 글이었다. 서울신문은 매주 1명씩 이들의 증언을 기록으로 남긴다. 친구 집 다녀오던 길, “집 데려다 주겠다”던 경찰이 끌고간 형제원 박재형(가명·47)씨는 형제복지원에서의 기억을 잊으려 애쓰며 살았다.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지옥이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형제원 주소(부산시 북구 주례2동 산18번지)와 그가 형제원에 끌려 간 날짜는 끝까지 잊혀지지 않았다. 1983년 1월 12일, 9살 소년이었던 박씨는 친구 집에서 자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경찰에게 붙잡혀 형제원에 보내졌다. 초코파이를 사 주며 “집에 데려다주겠다”고 한 경찰의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이후 박씨는 1987년 3월 형제복지원이 폐쇄될 때까지 4년간 그곳에 갇혀 있었다. 집과 학교에서는 박씨가 행방불명된 줄로만 알고 있었다. 형제원에선 굶주림과 매질이 일상이었고, 어린 소년들도 교회 증축 공사나 운동장 공사에 강제 동원돼 무거운 건설 자재를 날라야 했다. 하루는 박씨의 숙소 안에 있던 환풍기 통로로 일부 수용자들이 탈출했다. 탈출에 실패한 박씨는 양손이 묶인 채 기절할 때까지 구타를 당했다. 그때 생긴 흉터가 부끄러워 박씨는 한여름에도 반팔을 입지 못했다. 박씨는 돌아갈 집이 있다고 호소했지만 모두가 외면했다. 퇴소 후에도 소년의집과 갱생원에 강제로 보내졌다. 갱생원에서 취업 알선을 해준 기업에서는 박씨가 ‘고아’라며 제대로 임금을 주지 않았다. 박씨는 한참 후에야 집을 찾았다. 그러나 이미 폭력과 착취로 얼룩진 유년기의 흔적을 그의 삶에서 지우긴 쉽지 않았다. 아래는 박씨의 진술서 전문. ※원문에서 일부 표현만 다듬어 그대로 옮겼습니다.[진 술 서] 제목: 형제복지원 피해자 진술서 성명: 박재형 진술내용: 많은 세월이 흘렀고, 너무나 고통스러운 그때의 일이라 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지금은 거의 단편적인 기억들 뿐이네요. 이글을 쓰면서 다시금 옛 기억을 하나둘씩 떠올리려니 많이 힘드네요. 1983년 1월 12일 (이 날짜와 형제원 주소는 90년이 지나도 기억에서 잊혀지질 않아요.) 이른 아침으로 기억됩니다. 친구 집에서 자고 집으로 가고 있는데 경찰 아저씨가 “어디 가느냐” 물으시길래 집에 간다고 했습니다. “집이 어디냐. 데려다 주겠다” 하시면서 초코파이를 사주셨습니다. 그리고 데려간 곳이 바로 형제복지원이였습니다. 그 길로 기나긴 악몽이 시작되었네요. 너무나도 아프고 힘든 생활, 정말 하루하루가 지옥과도 같은 생활이 계속 반복되었습니다. 먹는 것도 잘 못 먹고 기합에 매질. 어린나이에 들기도 힘든 시멘트 푸대와 모래자루와 돌 등을 (나르며) 교회 증축과 운동장 공사···. 그야말로 지옥이 따로 없었습니다. 자다가도 일어나 기합을 받았고 밥 먹을 때도 선착순 몇 번까지만 먹고 그 뒤로는 기합과 매질에 밥을 굶기도 수없이 하였네요. 그리고, 그곳에서 가장 큰 악몽은 도망 가다가 잡혔을 때였습니다. 심하게 두드려 맞아서 팔에 심한 상처가 남았고 머리에는 아직도 가끔 통증이 오는 혹이 있습니다. 탈출 주모자로 몰려 기절할 때까지 구타···“집 찾아달라” 호소 외면 탈출을 시도할 때 환풍기 구멍으로 탈출을 했는데 몇 명은 빠져나가고 정작 환풍기가 있던 침대자리가 내 자리라 저는 탈출을 못했습니다. 주모자로 몰려서 소대 입구에 있는 파란 물통에 몇시간 담겨져 있다가 매질을 당했습니다. 그때 양손을 묶어서 때렸는데 뭔가에 잘못 맞았는지 잘 기억이 나질 않지만 양쪽 팔에 피가 무지 흘렀습니다. 기절을 한 듯 합니다. 그 뒤 치료도 마취 없이 대충 했고 밥도 친구가 몇일을 먹여주었습니다. 다행히 팔이 완치는 되었지만 너무 심한 흉터가 남아서 어릴 땐 이게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나중에 사회에 나와서도 전부 이상한 눈으로 쳐다 보는 게 힘들어 여름에도 반팔을 못 입고 다녔습니다. 지하철 수사대에도 이유없이 끌려 간 적도 두어번 됩니다. 지금은 오랜 세월이 흘러 흉터가 많이 옅어져서 그나마 좀 낫지만 아직도 사람들의 그 시선이 너무 힘듭니다. 그곳은 별의별 사람들이 다 있어서 나쁜 것도 많이 배웠던거 같네요. 10살 나이에 그곳에서 담배도 처음 배웠으니까요.밤마다 혹시나 불려가지 않을까 공포에 떨었던 기억이 납니다. 소대장, 서무, 조장들이 밤이면 얼굴이 이쁘장하게 생긴 애들을 불러다 성학대를 했습니다. 수차례 분교(형제복지원 내 학교) 담임 선생님에게도 전에 다니던 학교가 있으니 그쪽 담임 선생님께 말씀 드리면 집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상의 드렸지만 도움을 받지 못했습니다. 아쉽게도 예전에 다니던 초등학교에서 형제원에서 하는 개금분교로 전학만 되어 온 상황이었습니다. 이번에 자료를 받아보니 생활기록부에도 ‘행방불명’이라고 적혀 있었는데, 학교 측에서 왜 집으로 연락을 안해주었는지 그것도 묻고 싶습니다. 저는 어린시절이 없습니다. 그저 악몽과 같은 기억들 뿐이 없어요. 아직 학력도 초졸이구요. 먹고 살기 힘들어(집도 그리 넉넉하지 않음) 검정고시를 볼 엄두를 내지 못하였습니다. 형제원에서 소년의집으로, 소년의집에서 다시 갱생원으로(갱생원도 형제원이랑 비슷한 환경) 보내졌습니다. 갱생원에서 사회 취업을 했는데 그 취업되어 간 곳에서도 고아라고 임금도 제대로 주지 않고 일만 했습니다. 그렇게 정처 없이 이곳저곳 여러곳 떠돌아 다니다 운좋게 좋으신 분 만나 예전에 다니던 학교 정보를 토대로 집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알려주셔서 그렇게 집을 찾아갔습니다. 집을 찾고도 집안 형편이 그리 좋지를 못해서 바로 생활전선으로 뛰어들었고 여지껏 정신없이 살았네요. 이글을 적으면서도 기억 저 구석에 꼭꼭 닫아둔 감당하기 어려운 기억들이 쏟아져 나올까 겁이 나기도 하네요. 부디 저희들의 이 억울한 사연들을 잘 살펴주시고 검토 해주시길 바랍니다. 형제복지원 사건 어디까지 왔나 형제복지원을 운영한 고(故) 박인근 원장은 1989년 특수감금 혐의에 대해 무죄가 확정됐다. 2018년 문무일 전 검찰총장은 무죄 판결을 취소해 달라며 비상상고를 신청했지만 지난 3월 대법원에서 기각됐다. 다만 재판부는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인정했고 정부에서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당부했다. 형제복지원 사건과 관련해 국가를 상대로 첫 손해배상 소송에 제기한 형제복지원 서울경기피해자협의회는 현재 2차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1차 소송에 참여한 13명은 모두 입·퇴소 증빙자료가 준비돼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은 이러한 증거가 없어 피해사실 입증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형제복지원 서울경기피해자협의회는 비용 부담 때문에 소송 참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피해자들을 위해 후원금을 모금하고 있다.
  • 9억 쓴 자가검사키트… 4차 대유행 고개숙인 오세훈

    9억 쓴 자가검사키트… 4차 대유행 고개숙인 오세훈

    오세훈 서울시장이 16일 코로나19 4차 유행과 관련해 “서울 방역의 총책임자로서 진심으로 죄송하다”라며 고개를 숙였다. 오 시장은 이날 서울시청에서 코로나19 관련 브리핑을 열고 “오랜 기간 사회적 거리 두기와 방역 조치로 극도의 불편함과 생활고를 겪으면서 방역에 협조해줬다”라며 “그럼에도 수도권을 중심으로 코로나19가 확산돼 무한한 책임감을 느낀다”라고 말했다. 오 시장은 자가검사키트 도입을 기반으로 방역 조치를 완화하는 ‘서울형 상생방역’을 추진하면서 물류센터 등에서 관련 시범사업을 진행해 왔다. 이 사업을 우수협업상 대상으로 선정해 포상하겠다고 하면서 논란이 일었다. 서울시가 위음성률이 높은 자가검사키트를 적극 활용하면서 ‘조용한 전파’의 확산을 불러왔다는 일각의 비판도 커졌다. 오 시장은 이러한 비판에 대해 “방역에 성공한 나라들에선 자가검사키트를 얼마든지 사서 쓸 수 있고, 무료로 배부하는 나라도 있다. 자가검사키트는 코로나19 극복의 좋은 보조수단”이라며 “방역은 과학인데 정치적 입장이나 판단이 개입하면 왜곡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4차 대유행이 본격화되자 오 시장은 취임 직후 제시한 독자적 방역 정책보다는 중앙정부와 협력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오 시장은 “모든 실행은 중대본과 사전에 협의를 거치고, 합의에 이른 것만 시행하도록 관련 부서에 지시했다. 서울형으로 별도로 한 것은 거의 없는데 서울형 상생방역이 성공이냐 실패냐 이런 논쟁이 의미가 있을까 싶다”라고 말했다.오 시장은 국민의당이 추천한 김도식 서울시 정무부시장이 중앙정부가 방역 실패 책임을 서울시에 떠넘긴다고 지난 14일 주장해 빈축을 산 것에도 사과했다. 오 시장은 정무부시장의 발언을 ‘돌출발언’이라고 규정한 뒤 “이 자리를 빌려 사과 말씀을 올리겠다. 방역에 총력을 기울여도 모자라는 상황에서 공직자가 이인삼각을 해야 할 상대를 탓하는 것은 부적절한 언행이고 시민 여러분께 도리가 아니라고 판단돼 강하게 질책했다”고 전했다. 서울시의회 서윤기 의원에 따르면 서울시는 재난관리기금에서 15억원을 마련해 이 중 9억원을 자가검사키트 매입 자금으로 사용했다. 서울시는 지난 12일 자가검사키트 사업을 상반기 우수협업상 수상 대상으로 선정해 포상하기로 했지만 반론이 제기돼 뒤늦게 유보 결정을 내렸다. 서 의원은 “오 시장의 자가진단키트 사업은 시민들에게 방역에 대한 잘못된 신호를 보내 서울 4차 대유행의 단초를 제공했다”며 “자가진단키트 검사 수십만 건 중 확진자 선별 실적이 4건에 불과해 사실상 성과가 없고, 이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 각종 특혜와 법령 위반이 밝혀지는 등 처참하게 실패한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 [영상] 생방송 인터뷰 중 잡혀간 유튜버…쿠바의 반정부 시위 통제

    [영상] 생방송 인터뷰 중 잡혀간 유튜버…쿠바의 반정부 시위 통제

    쿠바 유튜버가 생방송 인터뷰 도중 군 당국에 끌려가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14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CNN은 반정부 시위가 격화한 쿠바에서 생방송 인터뷰에 나선 유튜버가 국가 보안군에게 잡혀갔다고 보도했다. ‘디나 스타스’로 알려진 유튜버 디나 페르난데스는 13일 현지 방송국 쿠아트로와 11일 벌어진 대규모 반정부 시위 관련 생방송 인터뷰를 진행했다. 비대면 화상 인터뷰로 진행된 방송에서 페르난데스는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있다”며 국제 사회에 도움을 요청했다.페르난데스는 “식량 부족이 이번 사태의 시작”이라며 반정부 시위가 극심한 경제난으로 인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어떤 정부도 믿지 않은 지 오래됐다. 쿠바 대통령은 국민을 대표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페르난데스가 생방송 인터뷰를 통해 소신 발언을 이어가는 사이, 그의 자택에는 쿠바 보안군이 들이닥쳤다. 방송 도중 “밖에 보안군이 왔다”며 자리를 뜬 페르난데스는 얼마 후 다시 돌아와 “보안군이 함께 가자고 한다. 내게 무슨 일이 벌어지든 정부 책임”이라는 말을 남기고 방송을 끝냈다. 당시 방송에는 페르난데스가 굳은 표정으로 자리를 뜨는 모습과, 함께 있던 친구가 대신 카메라를 잡고 현장 상황을 대신 전하는 모습이 그대로 송출됐다. 진행자는 “아무 일 없었으면 좋겠다”며 초조한 표정으로 사태를 지켜봤다.11일 쿠바에서는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격렬한 항의 시위가 벌어졌다. 생활고에 지친 시민들은 거리로 나와 “자유”와 “독재 타도” 등을 외쳤다. 인권단체 국제앰네스티에 따르면 이날 시위로 독립 언론인과 반체제 인사 등 최소 140명이 체포되거나 실종됐다. 21세 아들의 행방을 찾기 위해 수도 아바나의 경찰서를 찾은 50세 여성은 AFP통신에 “(경찰들이) 집으로 와서 아들에게 수갑을 채우고 때렸다. 셔츠도 못 입고 마스크도 못 쓴 채로 끌려갔다”고 말했다. 체포된 사람 중에는 스페인 일간지 ABC 등에 기사를 쓰는 쿠바 국적 카밀라 아코스타(28) 기자도 포함됐다. 아코스타는 11일 시위를 취재하고 이튿날 잡혀갔다.하지만 쿠바 당국은 시위자 1명이 시위 도중 사망한 것 외에 다른 사망자는 없다고 밝혔다. 또 시위자 일부를 체포했으며 부상자도 발생했다고 전했지만, 구체적으로 그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다. 시위 확산을 막기 위해 온·오프라인 통제도 지속 중이다. 12일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왓츠앱, 텔레그램 등 소셜미디어와 메시지 앱을 시위 선동의 수단으로 지목하고 접속을 차단했다. 반정부 시위가 미국 내 반혁명주의자들의 소셜미디어 선동에 의한 것이라는 게 쿠바 정부 입장이다. 거리에 경찰 순찰을 늘리고 시위 참가자 등도 무더기로 잡아들였다. AP통신은 아바나 곳곳에 경찰이 끊임없이 순찰하고 주요 건물 주변 경비가 삼엄해졌다고 전했다. 무허가 집회가 금지된 공산국가 쿠바 내에서 마지막으로 이 정도 규모의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던 것은 1994년 8월이었다. 1959년 쿠바 혁명 이후 처음이었던 당시 시위도 극심한 경제난이 원인이었는데, 이번 시위와 달리 수도 아바나에서만 일어났으며 진압도 빠르게 진행됐다.
  • 20개월 딸 살해하고 ‘아이스박스’ 유기...비정한 아버지 구속

    20개월 딸 살해하고 ‘아이스박스’ 유기...비정한 아버지 구속

    생후 20개월된 딸을 발로 짓밟아 숨지게 한 뒤 시신을 아이스박스에 방치한 20대 아버지가 구속됐다. 대전지법 조준호 영장전담부장판사는 14일 대전경찰청 여성청소년수사대가 양모(29)씨에 대해 아동학대 살해 및 사체유기 등 혐의로 신청한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진행한 뒤 “증거인멸 및 도주의 우려가 있다”며 영장을 발부했다.양씨는 지난달 15일 밤 술을 마시고 대전 대덕구 중리동 자신의 집(2층)에서 생후 20개월된 딸(A)이 잠을 자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불을 덮어 씌운 뒤 주먹으로 마구 때리고 발로 수십 차례 짓밟아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양씨는 딸이 다리가 부러진 채 숨지자 아이스박스에 넣어 화장실에 방치했다. 아내 정모(26)씨는 이를 방조해 지난 12일 사체 유기 등 혐의로 구속됐다. 딸을 상습 학대해온 양씨는 경찰에서 “생활고로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딸의 울음소리가 짜증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딸의 엉덩이 뼈가 부서졌을 뿐 아니라 전신이 손상을 입어 죽음에 이르렀다는 부검 결과를 발표했다. 국과수는 특히 양씨가 딸의 시신을 한 달 가까이 아이스박스에 넣은 채 방치해 심하게 부패한 상태여서 특정부위 출혈 여부는 정밀 조사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경찰 관계자는 “성폭행 의혹이 있어 정밀 부검 및 친모 추가 조사로 확인하겠다”고 말했다.양씨의 범행은 지난 9일 오전 5시쯤 “아이가 숨져 있다”는 A양 외할머니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아이스박스에 담겨 있는 A양 시신을 발견하면서 들통이 났다. 외할머니는 정씨 부부와 연락이 닿지 않자 수소문해 집을 찾았다 정씨한테 “남편이 평소 심하게 아이를 학대했다”는 말을 듣고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이 출동하자 정씨는 집에 있었으나 양씨는 옆집 담을 넘어 도주했다. 양씨는 도주 사흘만인 지난 12일 대전 동구 중동 한 모텔에서 숨어 있다가 동선을 추적한 경찰에 붙잡혔다.
  • “발로 짓밟아 다리 부러뜨려”…딸 시신 아이스박스 넣은 20대 아빠

    “발로 짓밟아 다리 부러뜨려”…딸 시신 아이스박스 넣은 20대 아빠

    딸의 시신을 아이스박스에 방치한 20대 아버지는 생후 20개월된 딸을 주먹으로 마구 때리고 발로 수십 차례 짓밟아 다리를 부러뜨려 숨지게 한 것으로 드러났다. 대전지법 조준호 영장전담부장판사는 14일 오후 2시 30분부터 아동학대 살해 및 사체유기 등 혐의로 구속된 양모(29)씨에 대한 영장실질심사를 벌이고 있다. 양씨는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대전둔산경찰서를 나오면서 ‘아기한테 미안하지 않느냐’ ‘혐의를 인정하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모자 쓴 머리를 푹 숙인 채 아무런 답변 없이 호송차에 올랐다. 양씨는 지난달 15일 밤 술을 마시고 대전 대덕구 중리동 자신의 집(2층)에서 생후 20개월된 딸(A)이 잠을 자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불을 덮어 씌우고 폭력을 휘둘렀다. 주먹으로 수십 차례 때리고, 발로 수십 차례 짓밟았다. 딸은 다리가 부러진 채 목숨을 잃었다. 양씨는 경찰조사에서 “딸의 다리를 잡아당길 때 부러진 것 같다”고 진술했다. 아내 B(26)씨는 이를 방조했다. 양씨의 딸 폭행은 상습적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양씨는 경찰에서 “생활고로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어느 순간부터 딸의 울음소리가 짜증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딸의 엉덩이 뼈가 부서졌을 뿐 아니라 전신이 손상을 입어 죽음에 이르렀다는 부검 결과를 발표했다. 국과수는 특히 양씨가 딸의 시신을 한 달 가까이 아이스박스에 넣은 채 방치해 심하게 부패한 상태여서 특정부위 출혈 여부는 정밀 조사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경찰 관계자는 “성폭행 의혹이 있어 부검결과 및 친모 추가 조사로 확인하겠다”고 말했다. 양씨의 범행은 지난 9일 오전 5시쯤 “아이가 숨져 있다”는 A양의 외할머니의 신고를 받고 출동해 아이스박스에 숨진 채 담겨 있는 시신이 발견되면서 들통이 났다. 외할머니는 B씨 부부와 연락이 닿지 않자 수소문해 집을 찾았다 B씨한테 “남편이 평소 심하게 아이를 학대했다”는 말을 듣고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이 출동하자 B씨는 집에 있었으나 양씨는 곧바로 옆집 담을 넘어 도주했다. 양씨는 도주 사흘만인 지난 12일 대전 동구 중동 모텔에서 숨어 있다 동선을 추적한 경찰에 검거됐다. 경찰은 앞서 양씨의 아내 B씨를 사체 유기 및 아동복지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했다.
  • “잠 안 자서 다리 부러뜨려”…20개월 딸 살해·아이스박스 유기 친부

    “잠 안 자서 다리 부러뜨려”…20개월 딸 살해·아이스박스 유기 친부

    생후 20개월 딸을 폭행·학대해 살해한 뒤 보름 넘게 아이스박스에 유기한 친부가 “아이가 잠을 자지 않아” 범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14일 경찰에 따르면 아동학대살해 혐의로 붙잡힌 친부 A씨(29)는 경찰 조사에서 “아이가 평소 자주 울어 짜증이 났는데, 그날(범행 당일) 밤 잠을 자지 않아 이불로 덮어 마구 때리고 다리를 부러뜨렸다”고 진술했다. A씨는 또 생활고로 스트레스를 받던 중 술에 취한 상태로 범행했다며 혐의를 일부 인정하는 태도를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이후 A씨와 친모 B씨(26)가 공모해 숨진 C양을 집 안 아이스박스에 넣어 보름 넘게 유기한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 중인 C양의 시신은 부패 정도가 심해 정밀 검사를 진행 중이며, 1차 부검 결과 우측 대퇴부 골절 등 폭행으로 인한 전신 손상이 발견됐다. 경찰은 전날 A씨에 대한 아동학대살해 혐의 구속영장을 신청, 이날 대전지법에서 영장 실질심사가 진행될 예정이다. 한편 C양은 지난 9일 C양의 외할머니가 아이가 학대를 당했다고 경찰에 신고하면서 대전 대덕구의 한 가정집에서 발견됐다. B씨는 신고 당일 현장에서 검거, 사체유기 혐의로 구속 수사를 받고 있다. A씨는 경찰이 출동하기 전 도주했으나 사흘 만에 대전 지역 한 모텔에서 붙잡혔다.
  • 거세지는 남아공 폭동… LG전자 공장 약탈·방화로 전소

    거세지는 남아공 폭동… LG전자 공장 약탈·방화로 전소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제이컵 주마 전 대통령이 재임 시절 부패, 사기 혐의로 구금된 것에 항의하는 시위가 폭동으로 번지면서 대형 쇼핑몰 등에 대한 방화와 약탈이 이어지고 있다. 일부 지역에선 총으로 무장한 자체 경비대와의 충돌로 사상자가 발생하고 군부대까지 투입됐다고 13일 외신들이 전했다. 폭동은 코로나19로 인한 오랜 봉쇄와 생활고에 지친 시민들이 가세하면서 확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은 약탈, 방화로 전소된 항구도시 더반 산업단지 내 LG전자 공장. 지역 내 여러 한인 업체들도 약탈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요하네스버그 연합뉴스
  • ‘# SOS cuba’ 지지한 바이든… 쿠바 정부는 SNS부터 막았다

    ‘# SOS cuba’ 지지한 바이든… 쿠바 정부는 SNS부터 막았다

    美·스페인·멕시코 등 쿠바 봉기 동조 시위“쿠바에는 굶주림·질병뿐… 美가 도와달라”깜짝 놀란 쿠바 당국 페북·텔레그램 차단바이든 “자유 얻으려는 메시지 공감한다”사회주의 국가인 쿠바에서 27년 만에 대규모 시위가 벌어진 가운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확산, 미국 내 쿠바계의 세력 확대, 신세대 출현 등이 이전과 다른 동력으로 꼽힌다. 마이애미, 워싱턴DC, 뉴욕 등 미국 곳곳은 물론 스페인, 멕시코 등지에서도 쿠바 봉기에 동조하는 시위가 벌어졌고, 시위 기세를 막으려 쿠바 정부는 부랴부랴 SNS 차단에 들어갔다. 외신에 따르면 12일(현지시간) 쿠바계 미국인들의 집중 거주지인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8번가에 가득 모인 시민들은 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쿠바 사회주의 정권의 자유 억압을 규탄했다. 전날 인근에서 5000여명이 모여 시작된 지지 시위는 이날 여러 곳으로 확산됐다. 캔자스시티에 모인 시민들은 “자유 쿠바 만세”를 외쳤고, 라스베이거스 시위에 참여한 한 시민은 “음식, 코로나19 백신, 전력 등이 없는 쿠바에는 굶주림과 질병뿐”이라며 미국이 쿠바 국민들을 도와야 한다고 호소했다. 휴스턴, 뉴욕, 필라델피아, 올랜도, 워싱턴DC 등에서도 시위가 열렸고 CNBC방송은 스페인과 멕시코에서도 지지 시위가 있었다고 이날 전했다. 미국 전역에 뿌리내린 쿠바계는 바이든 행정부에 쿠바의 사회주의에 맞서 줄 것을 요구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성명에서 “우리는 쿠바 국민을 지지한다. 쿠바 권위주의 정권에 따른 수십년 압제와 경제적 고통, 또 팬데믹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으려는 그들의 분명한 메시지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이번 시위는 1994년 8월 경제난에 따른 봉기 이후 최대 규모다. 이번에도 미국의 경제봉쇄에 따른 생활고, 코로나19 확산, 관광객 급감, 사탕수수 작황 악화 등에 따른 민생고가 원인이다. 미국행을 택한 쿠바 이민자들은 2020년 49명에서 올해 500여명으로 늘었다. 27년 전 벌어진 시위는 공권력에 막혀 불씨가 금방 꺼졌지만 이번에는 양상이 다르다. 2018년부터 쿠바에서 모바일 인터넷 접속이 가능해졌기 때문에 SNS를 통해 시위가 조직되고 있다. 해시태그 ‘SOS cuba’(에스오에스 쿠바)를 통해 쿠바 안팎의 목소리를 결집하려는 시도는 미국, 스페인, 멕시코 등지의 시위로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고 있다. 깜짝 놀란 쿠바 당국은 즉각 페이스북, 왓츠앱, 인스타그램, 텔레그램 등 SNS부터 차단했다. ABC방송은 “중국과 북한 등도 시민들의 반대를 억누르기 위해 온라인 접속을 철저히 통제한다”며 2011년 튀니지와 이집트의 독재 정권이 무너지며 찾아온 ‘아랍의 봄’이 소위 트위터 혁명으로 평가된 뒤부터 이런 현상이 가속화된 것으로 설명했다. 쿠바 인구 1100만명의 중위연령이 42세로 피델 카스트로의 1959년 쿠바 공산 혁명을 보지 못한 새로운 세대가 급증한 것도 시위가 커진 원인으로 꼽힌다. 이목은 바이든의 관여 정도에 쏠려 있다. 바이든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때처럼 쿠바와 화해 분위기를 조성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강화한 쿠바 제재를 유지했다. 백악관은 그간 쿠바 문제가 최우선 과제는 아니라고 설명했는데, 중간선거를 감안해 정치적으로 양분된 이슈를 건드리지 않으려 한다는 분석도 있다. 그럼에도 폴리티코는 이날 “백악관의 면밀한 검토가 (쿠바 시위) 시국에 추월당할 수 있다”며 이번 시위로 바이든이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고 봤다.
  • ‘공짜쇼핑’ 약탈…남아공 폭동에 LG 이어 삼성도 일부 피해

    ‘공짜쇼핑’ 약탈…남아공 폭동에 LG 이어 삼성도 일부 피해

    “간밤에 콰줄루나탈주 물류창고 털려”‘공짜쇼핑’ 약탈 확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폭동과 약탈이 급속도로 번지면서 한국 기업 중 LG에 이어 삼성도 일부 피해를 봤다. 13일(현지시간) 현지 기업 주재원 등에 따르면 이번 소요의 주요 발생지인 동남부 콰줄루나탈주에 있는 삼성 물류창고에 피해가 발생했다. 익명을 요청한 소식통은 “삼성 물류창고는 남아공 내 판매를 위한 수입 제품들을 보관하는 곳으로, 어제 저녁 현지 경비업체와 직원들이 다 도망갔다고 한다”며 “물류창고가 털렸으나 피해가 어느 정도인지는 아직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다만 콰줄루나탈주 항구도시 더반의 삼성 공장은 보안이 강화된 공항 근처에 있는 관계로 피해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날 더반 공장이 전소된 LG의 경우 초기 투자만 2000만 달러(약 230억 원) 규모이고, 액정표시장치(LCD) TV와 모니터의 연간 생산 규모는 5000만 달러(약 573억원)인 것으로 전해졌다. 창고에 보관 중이던 완제품과 자재까지 약탈당하고 설비가 불타면서 손실액만 수천만 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이에 LG 현지 사업장은 이전이나 철수, 복구 등의 중대한 갈림길에 선 상황인 것으로 보인다.“대형할인 매장 이어 창고들까지 택시 타고 돌아다니면서 털고 있다” 이광전 더반 한인회장은 이날 “오전에도 계속 약탈이 진행되고 있다”면서 “경찰은 손을 놓았고 군이 투입됐다고는 하나 전국적으로 2500명, 더반에는 1000명도 안 되며 그나마 관공서 위주로 배치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어 “폭도들이 대형할인 매장에 이어 창고들까지 아예 택시를 타고 돌아다니면서 털고 있다”면서 “(대형할인매장) 매크로 창고로 약탈을 가는데 20랜드(약 1570원)씩 받는 미니버스 택시까지 생겼다고 한다”고 말했다. 코로나19으로 인한 봉쇄령 속 생활고에 시달리던 주민들이 쇼핑센터를 돌면서 상품을 하나라도 훔쳐 가려는 ‘프리(공짜) 쇼핑’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현지 온라인매체 뉴스24는 더반 고속도로 N2에서 폭도들과 경찰 간 실탄 총격전이 벌어지는 동영상을 올렸고, 보도채널 eNCA방송은 폭동으로 인해 콰줄루나탈의 사망자가 26명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이에 따라 전국 사망자는 전날 6명에서 이날 현재 32명으로 늘었다. 다만 군 투입에 따라 자동차부품업 등을 하는 일부 교민들은 이날 영업을 재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이번 폭동과 약탈은 지난 8일 재임 기간 부패 혐의를 받는 제이콥 주마 전 대통령이 수감되면서 그의 출신지인 콰줄루나탈주를 중심으로 일어나 수도권 하우텡 등으로 확산됐다.
  • “조선의 비통한 소리 들어라”… 독립운동가 변호한 ‘일본의 쉰들러’

    “조선의 비통한 소리 들어라”… 독립운동가 변호한 ‘일본의 쉰들러’

    독립운동을 도운 공로로 건국훈장을 받은 순수 외국인은 70명이다. 중국인(쑨원, 장제스 등 33명), 미국인(헐버트와 알렌 등 21명), 영국인(베델 등 6명), 캐나다인(스코필드 등 5명) 순으로 많다. 일본인도 2명이 있다. 한 사람은 일본 황태자를 암살하려 했던 박열 의사의 일본인 부인 가네코 후미코(애국장)로 2018년에 받았고 다른 한 사람은 박 의사를 변호했던 후세 다쓰지로 2004년에 받았다. 당시 정부 일각에서는 일본인에게 건국훈장을 추서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반대했지만, 후세의 삶을 알고 나면 그런 생각을 버리게 된다. 일본인으로서 한국인 변호에 앞장섰던 그를 독일 나치 치하에서 죽어가던 유대인들을 도왔던 독일인 쉰들러에 비유해 ‘일본의 쉰들러’라 불러도 과하지 않다.●두 번 투옥, 세 번 변호사 자격 박탈 ‘살아야 한다면 민중과 함께, 죽어야 한다면 민중을 위하여’. 후세의 현창비에는 이렇게 씌어 있다. 후세는 조선인 지원 활동으로 일본 정부와 조선총독부의 미움을 사 두 번 투옥당하고 변호사 자격을 세 번이나 박탈당한 인권변호사, 민중변호사였다. 후세는 재판에서 이렇게 소리쳤다. “조선 민중이 모두 이 재판을 주목합니다. 피고들의 향후 활동에 민족의 운명이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재판관은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조선 민중의 비통한 양심의 소리를 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독립운동가들은 후세를 ‘우리의 변호사’라고 부르며 존경심을 나타냈다. 후세는 1880년 일본 미야기현 오시카군에서 한 농부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1899년 고향을 떠나 도쿄 메이지법률학교에 입학한 후세는 조선인 등 유학생과 교류하며 조선의 상황을 이해하게 됐다. 후세가 조선에 관심을 보인 것은 훨씬 전이었다. 청일전쟁에서 돌아온 일본군 출신 마을 주민에게서 조선인 민간인들에게 닥치는 대로 칼을 휘둘렀던 이야기를 무용담처럼 들었다고 한다. 후세는 일본인에게는 잔인성을, 조선인에게는 연민을 느꼈다.1902년 학교를 졸업한 후세는 고시에 합격, 시보로 부임했다가 넉 달 만에 사직했다. 아이 3명과 동반자살을 기도한 엄마를 살인미수로 기소한 것에 대한 반발이었다. 후세는 검사의 직무를 ‘늑대와도 같은 일’이라고 비난했다. 후세는 이후 변호사로서 핍박받는 조선인과 노동자·농민 등 사회적 약자를 돕는 길로 들어섰다. 1911년 일본의 조선 강제병합을 비난하고 조선의 독립을 주장하는 ‘조선의 독립운동에 경의를 표함’이라는 글을 발표해 검사국으로 불려가 호된 조사를 받았다. 그가 처음 변호한 조선인은 1919년 도쿄 2·8 독립선언으로 현장에서 검거된 최팔용, 백관수 등 9명이었다. “일본은 체코 독립을 위해 시베리아에까지 군대를 보냈는데 조선민족 독립을 탄압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이런 논리로 재판부의 허점을 파고들었다. 조선인들은 무료로 변론한 후세를 크게 신뢰하게 됐다. 후세는 계속해서 조선인 사건 변호와 구원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다음해 5월 후세는 ‘민중의 변호사’로 변신하겠다는 장문의 ‘자기혁명의 고백’을 선언했다. 입신출세를 거부하고 약자와 더불어 살겠다는 의지 표명이었다. 그러면서 조선인의 이익을 위해 직접 나서겠다고 했다. 후세는 계급투쟁이라는 시대적 사조에도 관심을 가졌다. 1923년 7월 조선을 처음 방문해 강연을 다닌 것은 총독 정치 비판뿐만 아니라 그런 사상적 이유 때문이기도 했다.●“조선 농민의 생활고에 눈물이 난다” 후세가 일본으로 돌아온 직후 관동대지진이 발생하자 일본인들은 조선인 수천 명을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후세는 죽창을 든 자경단에 쫓기는 조선인 유학생들을 집으로 데려가 숨겨 주고 차를 대접하고는 안심시켰다. 조선인 학살사건을 고발하기 위한 자유법조단의 선두에서 활약했다. ‘피살동포추모회’에서 후세는 이렇게 말했다. “천만 개의 추도의 말을 늘어놓더라도 무념에 가득 찬 그 사람들의 마지막을 추도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 뒤 조선을 방문했을 때는 만행을 사죄하는 글을 신문사에 보냈다. 1924년에는 의열단원으로 일본 왕궁 이중교에 폭탄을 던진 김지섭 의사를 변론했다. 후세의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박열과의 만남이었다. 박열이 1923년 이른바 ‘대역사건’으로 기소된 후 3년여간 그의 무죄를 변론했다. 일본의 국체(國體)를 전면 부정한 후세의 변론은 목숨을 건 법정투쟁이었다. 박열이 법정에서 사모관대를 입을 수 있었던 데도 후세의 노력이 컸다. 옥사한 박열의 부인 가네코 후미코의 유해를 거두어 박열의 고향으로 운구한 것도 후세였다. 또 하나의 업적은 동양척식회사의 전남 나주 농민토지수탈 사건 규탄과 변호였다. 1926년 3월 두 번째로 조선을 방문한 후세는 나주 궁삼면 토지사건을 조사했다. 동양척식회사는 일본 헌병과 경찰의 힘을 빌려 유혈 참극을 벌이며 궁삼면 농민들의 땅을 빼앗았고 농민들은 물리적 저항과 법적 소송으로 맞붙고 있었다. 후세는 농민들의 열정에 감격하고 식민지 농촌 문제의 심각성을 몸소 느낄 수 있었다. 후세는 “조선 무산계급 농민의 생활고에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다. 소위 식민지정책의 피지배 계급에 대한 압박에 분개할 수밖에 없다”며 절절한 감회를 토로했다. 1927년 조선공산당 활동으로 체포된 권오설·강달영 등이 고문 만행을 폭로하고 고소를 제기할 때 조선으로 건너와 법률 업무를 도와주고 최후변론을 맡았다. 이 밖에도 조선 수해이재민 구원운동, 미에현 조선인 살해사건 변호, 재일 조선인 노동산업 희생자 구원회 결성, 김한경 등의 치안유지법 위반 사건 변호 등의 활동을 했다. 후세는 일본과 조선을 오가면서 조선인들의 인권과 독립운동을 위해 헌신했다.●종전 후 ‘운명의 승리자 박열’ 출간 일본은 그런 후세를 가만두지 않았다. 1932년 법정을 모독했다는 이유로 변호사 자격을 박탈당했다. 이듬해에는 신문지법, 우편법 위반으로 금고 3개월의 실형을 받았다. 출옥 직후 일본 노농변호사단 사건에 연루돼 징역 2년을 받았고 변호사 등록도 말소당했다. 와중에 후세의 셋째 아들 모리오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검거돼 교토형무소에서 옥사했다. 후세는 종전 후에도 한국인들을 위한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일본 정부의 횡포로부터 재일 한국인의 권리를 획득하려는 투쟁에 힘을 쏟았다. 또 박열이 1945년 출옥한 후에도 관계를 이어 가며 ‘운명의 승리자 박열’을 출간하고 1947년에는 ‘관동대진재 백색테러의 진상’을 기고하는 등 한국인들과 연대 투쟁을 벌였다. 이어 후카가와 사건, 조련(朝連)·민청(民靑) 해산 사건, 도쿄 조선고등학교 사건, 다이토우회관 사건 등 일련의 재판에서 변호인으로 활약했다. 한국전쟁 시기에는 한국인도 연루된 메이데이 사건과 수이타 사건을 변호하며 죽을 때까지 한국인 관련 사건을 도맡다시피 했다. 후세는 1953년 73세로 세상을 떠났다. 장례식에는 많은 한국인이 참석해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정부는 2004년 후세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일본인으로는 최초였다. 일본에서도 기념사업회를 만들어 후세를 기리고 있고 그의 고향 미야기현 이시노마키시에는 시민들이 기부금을 모아 기념비를 세웠다. 기념비에는 후세가 조선인 탄압과 학살에 항의하고 변호한 기록이 새겨져 있다. 후세는 일본인이었지만 한국인들과 함께 한국을 위해 일본에 저항했다. 후세가 한복을 입고 활동한 사진이 한 장 남아 있다. 조선인을 진심으로 걱정하고 생각하는 그의 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사진이다. 이런 마음이었을 것이다. “나는 한국 사람인 당신과 같습니다. 당신의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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