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생활고
    2026-03-14
    검색기록 지우기
  • 생산 로봇
    2026-03-14
    검색기록 지우기
  • 호기심
    2026-03-14
    검색기록 지우기
  • 거래 끝
    2026-03-14
    검색기록 지우기
  • 인천시장
    2026-03-14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2,625
  • 계속되는 생활고에 불안심리 팽배/점·손금보기 등 미신 유행

    ◎지관·무당 등장… 월급 80원에 복채 20∼40원/적발되면 강제 수용소 보내도 계속 확산 최근 북한에서 점을 치거나 손금과 관상을 보는 사람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북한을 탈출해 지난 4월 서울에 온 여만철씨 일가와 김대오씨(북한 원자력공업부 남천화학 연합기업소 근무)등 최근의 귀순자들은 북한 사회에 점술과 손금·관상보기등 갖가지 유형의 미신이 점차 만연하고 있다고 전했다. 여씨의 부인 이옥금씨의 경우 북한을 탈출하기 보름전인 지난 3월3일 함흥시내 용하다고 소문난 할머니 점집을 찾았다고 한다.이씨는 내심 국경을 넘어 중국에로의 탈출을 염두에 두고 『세대주(남편)가 직장을 옮기려고 하는 데 괜찮겠느냐』고 물었다.물론 그녀는 『집주인이 하려는 일을 따르는 게 좋다.3월에 북쪽으로 가면 운이 트이고,도와주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는 점괘를 받고 탈북 결단을 내릴 수 있었고 이에따른 불안감도 어느 정도 덜 수 있었다고 했다. 당시 이씨는 궁핍한 형편에도 불구하고 복채로 무려 20원(한화 약 6천원)을 냈다.북한의 보통 노동자들의 한달치 봉급이 70∼80원 정도이므로 이는 상당히 큰 액수다. 그러나 함흥시내 몇군데 있는 것으로 알려진 점집에서는 보통 30∼40원씩의 북채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점술에 따른 복채는 현금이외에도 옥쌀(강냉이쌀),술,기타 생필품까지 받고 있다고 귀순자들은 증언하고 있다. 이같이 북한 각지에선 점쟁이는 물론 관상쟁이,지관까지 등장하고 있고 단속을 피해 몰래 굿판까지 벌이는 사례가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북한에서도 점보는 일은 비과학적으로 치부되어 단속의 대상이지만 실제로는 알게 모르게 묵인돼오다 최근 경제난으로 생활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자 점을 보려는 사람이 급증하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주민들 사이에는 김정일도 평양시 외곽의 용악산에 유명한 점쟁이를 숨겨놓고 『누가 흑심을 품고 있는가』라고 물어 자신의 정적이 누구인지를 점쳤다는 소문까지 나돌 정도라고 한다. 이처럼 북한에서 미신행위가 번지고 있는 것은 북한당국이 「종교는 인민의 아편」으로 규정하고 혹독한 종교말살 정책을 펴와 주민들이 신앙생활을 거의 할 수 없는데다 갈수록 어려워지는 생활고로 인해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북한당국은 주민들 사이에 미신행위가 성행하자 조직단위별로 「미신행위 근절을 위한 비판토론회」까지 정기적으로 개최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특히 상습적으로 점을 보는 주민들을 「사회주의 기강 저해자」로 분류,중노역장으로 강제 수용한 사례도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점보기풍조가 근절되기는 커녕 당고위간부 부인들사이에도 암암리에 성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북한당국은 『미신행위는 문화적으로 미각성된 사람들이 과학적 근거가 없는 초자연적 힘을 믿는 것』이라고 규정해 미신을 공식적으로는 금지하면서도 다른 한편 김부자에 대한 충성심 유도에 교묘히 활용하고 있다. 이를테면 얼마전 북한의 TV가 김일성우상화 프로그램에서 「김일성 손금」이라는 것을 클로즈업 시켜 놓고 『손금이 손바닥 끝부분에서 검지까지 일자로 그어져 있어 장군·수령을 할 사람으로 태어났으며,생명선이 손가락마디까지 뚜렷하게 이어져 있어 영생불멸할 운명을 타고 났다”고 선전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 핵기술밀매·유출방지/미,3천만불 러에 제공

    ◎과학자 3천만불 러에 제공/과학자 3천명 혜택 【워싱턴=이경형특파원】 미국은 러시아의 핵과학자들이 평화적인 연구활동에 종사하도록 하고,생활고 때문에 북한,리비아 등에 그들의 비밀 핵기술을 파는 일이 없도록 막기 위해 지원자금을 제공하기 시작했다고 워싱턴포스트지가 24일 보도했다. 미행정부소속 과학자인 글렌 슈와이처 소장이 현재 모스크바에서 이끌고 있는 한 국제기구는 향후 3년동안 55개 민간분야 사업에 3천1백만달러를 지원키로 승인했으며 이는 구소련을 위해 핵과 생화학무기를 개발했던 3천여명의 과학자들에게 혜택을 제공하게 될 것이라고 이 신문이 전했다.
  • 「지존파」의 엽기적 범행을 보고/백상창(기고)

    ◎“네탓”만 하는 사회풍조 20대 초반의 범인들이 6명씩 떼를 지어서 치밀하고 반복된 훈련 끝에 그랜저를 타고다니는 사람들을 골라서 금품을 뜯은뒤 납치살해,『용기를 북돋우며 힘을 얻는다』며 시체의 일부를 먹는등 차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범죄가 벌어졌다.그렇지 않아도 박한상의 부모살해사건,60대 노인의 생활고로 인한 80대 어머니의 살해,그리고 인천에서 공무원들이 짜고 국민의 혈세를 조직적으로 착복하여 모처럼 발족된 문민정부의 개혁의지를 손상케하는 일등이 터지고 있는 가운데 이번 「지존파」범죄사건은 차라리 경악을 넘어선 절망감과 불길한 예감마저 던져주고 있다. 어째서 이런 망국적 범죄가 일어나야 하는가. 여기에는 현정부만 나무랄수 없는 사회병리적 원인들이 누적되어 왔다고 생각된다. 무엇보다 이들 20대 초반의 범인들이 치밀한 계획과 수차례에 걸친 끔찍한 범죄행위를 반복하는 동안에도 아무도 관심을 쏟거나 충고,선도하거나 따뜻한 사랑을 베푼 일이 없었을 것으로 보이는 점이다.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는 무엇이그리 바쁜지 쫓기며 살고,남에 대한 철저한 무관심과 불신등이 판을 치고 있는 점이다. 또 당사자들에게 있어 인면수심의 도덕적 양심의 결핍증을 들수 있다.이들에게는 본능적 충동을 억제하고,무엇이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초자아(Superego)즉,양심층이라는 인성에서 마치 오존층이 파괴되듯 일부 마비증상이 나타난 것으로 보이고,심지어는 살인·방화·시체의 일부를 먹기등에서 묘한 병적 쾌감마저 느낀 것으로 해석된다. 이번 사건은 선량한 한국전체 국민들의 위신마저 송두리째 추락시켰으며 그 원인은 정신의학에서 말하는 투사심리(Projection)와도 관계가 있다. 원래 겸양했고 천지인의 조화를 강조해 왔으며 동방례의지국으로 일컬어져온 한국의 전통가치는 상처를 입었다.너나 할것없이 자기중심적이고 자신의 존재를 과대하게 보며,바라는 일들이 안되거나 실패하게 되면 남을 원망하고 제도·사회·조상등에 책임을 돌리는 풍조가 만연된 현상은 아닌가 생각해봐야 할 때다. 이번 사건과 같이 반사회적인 범죄의 빈발을 차단하는 처방은 무엇인가.우선 보다 건강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정치권을 비롯한 행정부및 지식층등의 분발이 요구된다. 김영삼대통령이 「한국병」을 진단하고 이의 퇴치를 다짐하고는 있지만 대통령의 뜻을 정확히 이해하고 추진하겠다는 정치지도층의 불같은 정열과 곰같은 뚝심,명경지수 같은 개혁의지의 동참이 요청된다. 이번 사건과 같이 상상을 넘는 범죄행위는 영원히 사회에서 격리되어야 하며 엄중하고 단호한 처벌이 있어야 일벌백계의 교훈을 얻게된다. 더욱이 이런 동물과도 같은 극악한 범죄꾼이 나오지 못하도록 가정·학교·사회가 혼연일체가 된 인격교육(Educationforpersonality)이 요청되는데 특히 만1세에서 7세까지의 인격형성기에 있어 「따뜻한 모유주기」,「가정속에서 안도감주기」,「아버지는 모범적인 모습보이기」,「어머니는 과잉보호,무관심이 아닌 적절한 사랑주기」,「자신의 뜻을 펴되 남에게 폐를 끼치거나 해롭히는 일을 하지않도록 교육하기」등을 가르쳐주는 사회운동이 요청된다. 끝으로 정치권의 책임을 들수 있다.좌절감,실망감에 빠지는 일이없는 사회정책을 펴고,많은 기회를 주는 고용창출을 하며,외롭거나 방황하는 이들이 쉽사리 접근하여 도움을 요청할수 있는 상담실운영 등이 요청된다. 범인은 반드시 붙잡히고 처벌을 받는다는 대중적 인식이 확산되게 해야할 것이다.
  • 남아공/활개치는 폭력범/만델라정권 사회개혁 시험대(세계의 사회면)

    ◎「정치적 소요」 그치자 강도·강간·유괴 빈발/생활고­실업난 해결없인 치안확보 “요원” 넬슨 만델라 대통령이 이끄는 새 남아공정부가 「폭력망령」에 시달리고 있다.국민들은 새 민주정부 출범후 한세기이상 지속돼온 폭력이 수그러들길 기대했지만 오히려 폭력범죄가 급증하는 현상을 빚고 있다. 이전의 폭력이 대부분 흑백갈등에 의한 정치폭력이라면 최근의 폭력은 대부분 생활고 때문에 생긴 생활관련 폭력이라는데 그 특징이 있다.이전에는 또 소웨토 등 주로 흑인밀집지역이 폭력의 「장소」였지만 최근에는 요하네스버그 교외의 백인거주 지역에서부터 흑인들이 많이 사는 빈민가에 이르기까지 어디서나 폭력범죄가 난무하고 있다. 집에 철제 대문을 달고 사설경비회사에 경비를 의뢰하는 사람이 느는가 하면 가난한 지역에서는 책상과 침대로 무장강도들의 침입을 막고 있다.여자들은 밤에 혼자서 차를 몰고 다니지 않도록 경고를 받고 있고 레스토랑들은 경비원들을 고용하면서 원치 않던 비용을 부담하고 있다.경비원 가운데 일부는 기관총으로무장을 하고 있는 모습도 눈에 띈다.몇몇 호텔에서는 장기숙박손님을 위해 경비원을 무료로 「제공」해주고 있다. 올 1·4분기 남아공에서의 강도발생건수는 지난 93년 1·4분기의 1만9천3백65건에서 올해 2만3천2백74건으로 약 20%가 늘어났고 성폭행 건수도 7천8백55건으로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1천1백9건이나 늘어났다. 정치적 소요가 끊임없이 일어났던 흑인 거주지역 소웨토는 지난 4월 남아공 최초의 다인종 선거가 실시된 뒤 비교적 평온을 유지하고 있다.그러나 7월 한달동안에만 이곳에서 35명의 어린이가 유괴당했다. 뿐만 아니라 이들 지역에서는 노상에서 차를 막고 세워 운전자를 묶고 차를 훔쳐 달아나는 승용차 「하이재킹」도 빈발하고 있다.지난해 남아공의 노상에서 강탈되거나 도난당한 승용차대수는 9만대 이상으로 액수로는 33억란드(미화 10억달러)에 달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도난당하거나 강탈된 차량들은 일부가 케냐까지 팔려간다고 경찰은 귀띔하고 있다.자동차 강도사건의 빈발과 관련,현지의 한 신문은 『승용차를 운전하는 것은 사형집행 영장에 서명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이에 대해 『인종차별정책의 굴레에서 벗어난지 얼마되지 않아 다시 폭력의 굴레에 빠져들었다』고 개탄하고 『이는 전적으로 남아공의 경제난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했다. 요하네스버그에 있는 비트바터스란드 대학의 한 교수는 『정부가 실업과 같은 사회적 병폐를 제거하고 사회·경제적 개혁을 하지 않으면 남아공은 폭력의 수렁에서 영원히 헤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일부 전문가들은 흑인들 사이의 실업률이 50%까지 이른다고 추산하고 있다. 요하네스버그의 한 경찰관은 『새 정부에서 모든 것이 잘될 것이라고 기대했다』면서 『그러나 상황은 점점더 악화되고 폭력은 정치적 동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생활이 어려워 빈발하고 있다』고 잘라 말했다.
  • “자식들 냉대·생활고로 모실 곳 없다”/60대아들,90대노모 살해

    【광주=최치봉기자】 90대 노모를 생활고와 건강악화로 모시지 못하게된 60대 아들이 노모를 살해해 암매장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전남 고흥경찰서는 9일 김홍두할아버지(69·무직·경기도 시흥시 거모동)를 존속살인혐의로 구속했다. 김할아버지는 지난달 24일 상오 2시쯤 어머니 임유수씨(94)를 고향인 전남 고흥군 도화면 당오리 속칭 노루맥 야산에서 목졸라 숨지게한뒤 이곳으로부터 5m쯤 떨어진 능선에 가매장한 혐의다. 김할아버지는 경찰에서 『생활능력이 없는데다 거동조차 불편할만큼 건강이 악화됐는데도 자식들이 나와 노모를 홀대해 12년전 지병으로 숨진 아내의 무덤을 찾아 어머니를 부여안고 통곡을 하다 목을 졸랐다』고 말했다. 김할아버지는 5남3녀의 자녀들을 출가시키고 고향인 전남 고흥에서 노모를 모시고 살다가 12년전 부인이 지병으로 죽으면서부터는 서울과 경기도 안산등지의 아들,딸집과 여수의 여동생집을 전전해왔다. 그러다 지난해 8월 셋째아들이 교통사고로 사망하자 울화를 못이긴 폭음으로 위장이 파열되는등 건강이급격히 악화되자 김할아버지는 지난 5월말부터는 전남 여수의 여동생(64)집에서 노모와 함께 기거해왔다는 것이다. 여동생집에 한동안 머문 김할아버지는 범행 이틀전인 지난달 22일 경기도 안산에 사는 큰아들(47·노동)집으로 갔으나 큰아들과 서울 영등포에 사는 둘째아들(42·사진관경영)등 자녀들이 박대하자 지난달 23일 하오 11시쯤 큰아들집을 나와 부인의 무덤앞에서 노모를 살해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 “북정치범 비공개 재판후 처형”/귀순 9명 회견

    ◎일반 형사범 공개사형 예사/벌목공 매년 3백여명 탈출 시베리아 벌목장에서 일하다 지난달 16일 제3국을 통해 귀순한 안충학씨(36·재러임업대표부 제1연합13사업소)등 북한벌목공 9명은 8일상오 기자회견을 갖고 『북한의 정치범들은 비밀재판을 받고 처형되는 반면 일반 형사범들은 잔혹한 방법으로 공공연히 공개처형을 당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안씨는 『86년 함흥시 호령천 철교부근에서 북송교포의 집에 들어가 아이를 인질로 잡고 강도짓을 했던 죄수 5명이 입이 틀어막히고 온몸이 묶인 상태에서 안전원들에게 총살당한뒤 인근 화장터에서 화장당하는 것을 직접 보았다』면서 『공개처형의 경우 2∼3일 전에 공개처형을 당하게 될 사람의 신상과 죄목,공개처형일시등을 미리 공시해 주민들이 직접 보는 앞에서 처형한다』고 밝혔다. 엄만규씨(37)도 『북한에 있을당시 정치범 수용소에 근무했었다는 노인을 만나 정치범들은 도안전부장과 보위부장등이 참석하는 비밀재판에서 1분정도 재판을 받은뒤 처형당한다는 얘기를 들었다』면서 『그는 주로 술을마신뒤 취한 상태에서 이들을 죽였으며 10년동안 30여명의 정치범들을 직접 살해했다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또 89년부터 시베리아등지의 벌목장에서 심한 통제와 생활고로 탈출하는 사람들이 급격히 늘기 시작해 최근에는 1년에 3백여명이 중앙아시아와 인근 독립국가연합등지로 탈출하고 있으며 이는 벌목공 전체의 3∼4%에 달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89년 이전에는 돈문제로 인한 개인적인 이유로 탈출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나 이후에는 하바로프스크지역에 남한의 상품이 많이 들어오면서 이를 사용하는 문제로 안전요원과 갈등이 빚어져 정치범으로 몰리게 될 위기에 처해 탈출하는 사람들이 늘고있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이들과 함게 위장귀순한 박문덕씨(54)가 대한민국에 정착키 위해 위장귀순한 점을 감안,인도적 차원에서 국내 정착을 허용키로 했다고 밝혔다.
  • 러시아 플루토늄 어떤 경로로 밀매되나

    최근 러시아 플루토늄 밀반출사건이 급증하면서 핵물질 반출 커넥션이 점차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이같은 밀반출사건은 국제사회의 핵확산금지노력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지금까지 드러난 플루토늄의 반입경로,시장,밀매조직,고객등을 심층분석해 본다. ◎“북·이라크가 핵물질 암시장 고객”/전KGB관리­러 마피아 반출 주도/이란·리비아요원,구입선 찾기 혈안/구소국 외화벌이 악용… 적발량 “빙산일각” ▷국제커넥션◁ 최근 독일에서 풀루토늄의 밀반입사건이 잇따라 터지면서 돈만 있으면 핵무기를 쥘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지난 4개월동안 독일에서 핵물질을 밀거래하다 적발된 사례는 4건에 달하고 있는데 양적인 차이만 있을 뿐 모두 핵폭탄 제조가 가능한 핵물질이라는 점에서 국제적인 우려를 낳고 있다. 특히 지난 10일 모스크바발 뮌헨행 루프트한자 여객기에서 발견된 플루토늄 239,3백g은 고농축 플루토늄으로 IAEA 관계자들은 원시적인 핵폭탄제조에 직접 이용 가능한 것으로 보고 있을 정도다. 이와관련,체르노빌 원전의 핵오염 정화작업을 지휘했던 러시아 핵전문가 블라디미르 체르노센코는 『반출된 핵무기제조용 핵물질은 국제사회가 인식하고 있는 양보다 훨씬 많을 것』이라면서 『러시아 연방정부가 지방정부를 거의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러시아 경제사정이 호전되지 않을경우 외화획득 수단으로서의 핵물질 유출은 더욱 심각한 상황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체르노센코의 주장과 함께 일각에서는 러시아의 핵산업이 전통적으로 KGB의 통제를 받아왔으나 KGB가 해체됐음을 들어 핵에 대한 관리체계도 이미 흔들려 왔다고 주장한다. 문제는 이들 핵물질이 도대체 어디에서 유출되고 있느냐는 것.이 부분에 대해 독일 수사관계자들은 러시아나 옛 소연방국가라고만 밝히고 있다.이는 외교적 마찰이나 국제적인 충격을 가능한 줄이려는 독일정부의 판단때문이다. 그러나 핵전문가들은 독일정부가 압수한 플루토늄의 분석을 통해 이미 출처를 확인했으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카자흐공화국등 구소연방국가에서 유출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들 국가의 원자력발전소나 핵무기저장소,핵잠수함 원자로등에서 핵물질들이 유출되고 있다는 것이 현재까지의 정설이다.러시아의 경우 지난 수십년간 비밀기지에서 플루토늄을 생산해온 크라스노야르스크,톰스크,첼리아빈스크 지역이 밀매꾼들이 주요 거래대상지역으로 삼고 있는 것으로 분류되고 있다. 이곳은 핵시설 뿐아니라 주요 산업시설이 밀집 돼 있음에도 중앙정부의 손길이 거의 미치지 않아 옐친대통령도 당혹감을 느끼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핵전문가들은 바로 이곳에서의 핵시설 관리자와 핵에 관한 고급정보를 가진 전직 KGB출신 관리들이 생활고와 마피아와 같은 범죄조직의 유혹때문에 거액을 받고 조금씩 핵물질을 팔아넘기고 있는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이와관련,루이스 프리 미FBI국장은 최근 적발된 일련의 핵물질 불법거래에 대해 『냉전종식후 새로 부각된 또 하나의 핵문제로 세계평화에 중대한 위협요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암시장 고객◁ 최근 독일에서 잇따라 핵물질 밀거래 사실이 터진데서 보듯 현재까지 핵물질의 최대 중계시장은 독일로여겨지고 있다.러시아의 모스크바,레닌그라드도 중계시장에 포함돼 있음은 물론이다.이밖에도 오스트리아·스위스등도 중계시장까지는 이르지 않지만 간혹 핵물질 거래통로로 이용되고 있다는 것이 러시아 핵전문가들의 주장이다. 이처럼 독일이 최대의 핵물질 중계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은 통일독일이 유럽금융의 중심지인데다 밀매조직원 가운데 옛 동독출신이 의외로 많아 이들이 연고지로 활용하기 때문.특히 구동독의 비밀경찰인 「슈타지」출신·군출신이 핵정보를 한때 거머쥔 옛 KGB요원과의 친분을 내세워 핵물질 밀거래에 개입하는 사례가 점점 늘고 있는 추세다. 또 다른 이유로는 독일이 안고있는 사법제도상의 문제가 거론되고 있다.독일법에 따르면 경찰이 핵물질 밀매망에 침투해 위장 구입자로 활동하는 것을 금지,수사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옛 동독출신자 말고도 최근에는 돈많은 신흥 부동산업자가 개입하거나 전문 밀매꾼도 생겨나 독일당국을 긴장시키고 있다.독일당국의 조사결과 이들은 주로 베를린·브레멘·바이에른·뮌헨등을 거점으로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당국은 이들의 배후조직을 캐는데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독일인 외에 폴란드·체코·슬로바키아·파키스탄인도 밀매조직원으로 가담하고 있다.이처럼 동유럽인이 많은 것은 옛 소련관습이나 정보에 밝은데다 돈의 유혹에 쉽게 넘어가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정작 중계시장으로 가장 의심되면서도 「조용한」 곳은 러시아다.러시아 핵전문가들은 소문없이 가장 큰 「거래」가 이뤄지는 곳으로 러시아를 지목하고 있다.이들은 최근 모스크바 근교에 있는 한 핵발전연구소의 연구원 전원을 포함한 핵물리학자 3천여명이 「큰돈」을 준다는 제의를 받고 중국으로 이미 건너간 적이 있다고 전하고 『이 사실은 소량의 플루토늄 밀거래사실과는 비견될수 없는 엄청난 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 전문가들은 러시아의 가장 큰 「핵시장」으로 모스크바 당국의 손길이 뻗치기 힘들고 비교적 유럽중심부와 가까운 레닌그라드를 용의선상에 올려놓고 있다. 밀매조직은 주로 러시아의 신흥 정치·경제세력으로 떠오르고 있는 「러시아 마피아」가 장악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이 마피아는 조직을 공개적으로 드러내고 각종 지하경제 활동을 서슴없이 행하고 있어 옐친정부에 큰 정치적 부담이 되고 있다.이들은 이미 자본주의 초기단계가 진행되고 있는 러시아의 지하경제를 장악,막강한 자금력으로 핵물질에 손을 대고 있다는 것이 핵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들은 마피아로부터 플루토늄을 구입하고 있을 개연성이 큰 나라로 북한과 이라크·시리아등을 지목하고 있다.실제로 독일당국은 핵물질 밀매용의자들을 조사한 결과 북한이나 이라크가 독일의 핵물질 암시장을 통해 플루토늄 구입을 시도했다는 증거를 찾아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또 러시아 일부 언론에서는 러시아 마피아가 이들 국가들과 「핵거래」를 하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사실 확인작업을 벌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플루토늄의 「고객」으로는 그밖에 이란·리비아·파키스탄·알제리등이 지목되고 있는데 이들 나라에서는 해당국의 무관이나 정보요원의 활동이 두드러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있다.최근에는 국제 테러조직도 테러와 공갈용으로 핵물질의 반입을 시도하고 있다. ◎관련국 반응/“러시아서 유출 확증” 외교문제화/독/“증거없다” 자국출처설 강력 부인/러 핵물질 유출에 대한관련국 반응 독일에서 잇따라 발생한 핵물질 밀거래사건과 관련,핵물질 유출의 책임소재를 둘러싸고 독일을 비롯한 서방진영과 러시아간에 치열한 외교공방이 계속되고 있다. 특히 이번 핵물질 유출공방은 북한핵문제가 해결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는 시점에서 터져나와 새로운 국제적 긴장의 불씨가 되고 있다. 독일정부는 잇따른 핵물질 유출사건의 책임을 러시아 당국의 관리소홀에서 찾고 있다.지난 12일 올들어 4번째 적발된 핵물질 밀거래 사건 당시 범인으로부터 압수한 플루토늄 239 샘플에서 러시아어로 쓰여진 증명서가 발견됐다는 점에 근거를 두고 있다. 이에따라 독일 외무성과 사법당국은 『최근 적발된 핵물질이 러시아에서 흘러들어 왔을 것으로 추정된다』면서 『핵물질에 대한 통제강화조치를 취할 것』을 러시아측에 요구했다.또 콜 독일총리는 옐친러시아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내 핵물질 불법유통을 막기 위한 협조를 요청하는 한편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조만간 러시아에 특사를 파견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러시아는 이같은 핵물질 밀반출 출처설을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옐친대통령의 안보보좌관 블라디미르 클리멘코는 『국내 핵시설을 조사한 결과 플루토늄 239나 우라늄 235와 같은 핵물질이 도난당한 사실이 없었다』면서 『핵무기 제조급 핵물질이 러시아로부터 밀반출되고 있다는 보도들은 러시아핵무기에 대한 통제권을 장악하려는 서방측의 음모』라고 맞섰다. 러시아 방첩본부도 『독일에서 적발된 핵물질이 러시아에서 밀반출된 것이라는 확실한 증거가 없다』며 독일당국의 수사 협조요청에 앞서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할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그러나 이 문제는 독일과 러시아 뿐아니라 유럽연합(EU)과 서방선진 7개국(G­7)회원국들이 시급한 사안으로 논의할 방침을 세우는등 국제문제화 되고있다. 미국무부는 이와관련,『핵물질이 러시아로부터 밀반출된 것이라는 확실한 증거는 없으나 이번 사건은 긴급문제로 다루어야 할 심각한 사안』이라고 규정하고 외교경로를 통해 러시아측에 독일당국과 긴밀히 협조하도록 촉구했다. 미국은 특히 오는 9월 워싱턴에서 열릴 미­러 정상회담에서 핵물질 암거래문제를 핵심의제로 채택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며 정상회담에 앞서 워런 크리스토퍼 국무장관이 유럽국가들과 이 문제를 심도있게 논의할 계획이다. 러시아정부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서방 핵전문가들이 러시아를 핵물질의 최대공급원으로 지목하고 소연방 해체이후 러시아의 플루토늄이 독일과 발트 연안국,스칸디나비아 국가들로 밀반출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어 당분간 이를 둘러싼 외교적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 감독·배우 등 영화인 83%/“방화수준 아직 멀었다”

    ◎서강대 언론문화연,270명 조사/「시나리오 빈곤」 가장 큰 문제 18%/심의는 등급심사로 전환을 56% 영화감독·배우·촬영감독등 영화인들은 한국영화 전반의 질을 낮게 평가하고 있으며 현행 영화심의제도는 등급심사제로 전환돼야 한다는 의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같은 사실은 서강대 언론문화연구소가 영화진흥공사의 의뢰를 받고 지난 5월초 영화감독과 배우·평론가·기술및 촬영감독등 영화인 2백7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19일 밝혀졌다. 총 42문항으로 구성된 이번 설문조사중 한국영화 전반의 질을 물은데 대해 응답자의 83%가 「좋지 않다」고 한 반면 「보통이다」(10%),「좋다」(7%)등 긍정적인 평가를 내린 사람은 17%에 불과했다. 영화심의문제와 관련,56.1%가 성인영화관의 허용을 전제로 하는 자율적인 등급심사제로의 전환을 희망했고,24%는 「기존 조항의 수정」,14%는 「폐지해야한다」는등 개선 또는 폐지의견이 대부분이었다. 일본영화의 수입개방문제에 대해서는 62%가 찬성,36.9%가 반대의사를 나타냈다.찬성자들을 상대로 개방의 시기를 물어본 결과 1,2년후 개방(30.3%),즉각개방(21.4%),10년내 개방(11.1%)등의 순으로 조사됐다. 영화인들의 월 수입은 45.4%가 「50만원 미만」(21%) 또는 「99만원이하」(24.4%)라고 응답했으며 나머지는 「1백49만원 이하」(17.7%),「1백99만원 이하」(10.7%),「2백만원 이상」 (11·4%)등으로 조사돼 대부분이 생활고에 시달렸다. 해외 영화사의 직배체제에 대항한 영화 흥행업의 체인화 방법과 관련,▲대기업 직접투자(31.4%) ▲대기업 간접투자(26.2%) ▲영화관 협력체제(20.3%) ▲외국과의 합작투자(5.5%)등이 대안으로 제시됐다. 우리 영화계의 가장 취약 부문에 대해서는 18.5%가 「시나리오 빈곤」을 들었으며 「제작회사」(16.4%) 「영화배급망」(14.4%),「기획」(12.2%),「제작기술」(11.3%)을 꼽았다. 이밖에 앞으로 발전가능성이 높은 매체로는 영화(26.6%),유선방송(25.8%),직접위성방송(21%),텔레비전(19.2%)을 꼽았다.
  • 「북 정치범 실태」 발표에 대한 각계의 반응

    ◎“북은 고상문씨등 납북자 즉각 보내라”/납북자 송환·경수로지원 연계 마땅/「북인권」 국제사회 공동압력 넣어야 국제사면위원회가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 실태를 밝힌 데 대해 사회 각계는 충격으로 받아들이면서 이제부터라도 북한의 인권문제를 본격적으로 문제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특히 고상문씨가 정치범 수용소에 수감돼 있었다는 사실이 확인돼 그가 자진입북했다는 북한의 주장이 거짓으로 드러난 만큼 북한은 고씨를 조기에 석방·송환해야 하며 아울러 나머지 납북인사에 대한 귀환조치도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여정동(서울대교수 외교학)=폐쇄된 북한사회가 인권사각지대에 처해 있음을 이번 국제사면위원회의 보고로 여실히 입증됐다.북한의 심각한 인권문제를 북한당국이 제 입으로 토로한다는 것은 기대할 수 없으므로 정부는 미국등 주변 우방국들을 통한 정부차원의 확인 뿐 아니라 민간외교통로·국제기구등 가능한 모든 채널과 적극적인 교섭을 벌여 확실한 증거를 확보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정부는 이제부터라도 진중하고도 확실한 정보입수노력을 기울여 그 심각성이 확인되면 외교상 강경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김동현(쌍용그룹 종합조정실 이사)=자진해서 월북했다는 고씨가 정치범 수용소에 있다는 사실은,고씨가 자의가 아닌 강제 납북됐음을 입증하는 것이다.국제사면위원회의 발표로 북측 주장의 허구성이 드러난만큼 북한은 애타게 기다리는 가족들 품으로 고씨를 돌려 보내야 마땅하다.동진호 선원 등 북한에 억류된 다른 납북인사들에 대해서도 인도적 차원에서 같은 조처가 따라야 한다.우리가 이인모노인을 북으로 보낸 것과 같은 이치로,북한측이 우리의 정당한 요구를 수용해야 남북한 간의 진정한 화해가 가능하다. ▲최경선(대한상의 이사)=이역만리로 공부하러 간 고씨를 납치하고도 자진 월북한 것으로 날조,그 가족들에게 엄청난 고통을 주고 우리 국민 뿐 아니라 세계를 우롱한 데 대해 분노를 참을 수 없다. 조금이라도 양심이 남아있다면 고씨를 15년 동안 애타게 기다리는 가족들에게 당장 돌려보내야 한다.그것만이 저지른 죄의 만분의일이라도 갚는 길이다. 우리 국민들도 이번 일을 계기로 북측의 속셈과 정체를 똑똑히 파악하고 정신무장을 철저히 해 또 다른 기만술에 대비해야 할 것이다. ▲이병웅(대한적십자사 사무총장)=국제사면위원회 발표를 통해 고상문씨가 정치수용소에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이상 고씨는 자진월북이 아니라 납북된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 고씨의 생존사실이 확인됐으므로 인도주의와 이산가족 재회차원에서 최대한 빨리 가족상봉이 이뤄질 수 있도록 북측은 성의 있은 자세를 보여야 한다. 특히 김일성사후 북한에 새정권이 들어선 만큼 인권문제에 있어서도 획기적인 자세를 보여야 할 것이다. ▲이호철(작가)=북한의 인권문제는 국내 뿐 아니라 국외에서도 지속적으로 논란이 돼 왔던 문제이다.인도적 차원에서 볼 때 이번 기회에 북한의 인권문제가 국제적으로 공론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더구나 79년 납치된 고교사 가족의 안타까운 모습을 보고 아픔을 금할 수 없었다.북한은 납북한 이들을 하루 빨리 돌려보내야 한다. 우리 정부가 직접 협상을 하는 것은 힘들다고 보기 때문에 일단 세계적으로 여론화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김정일체제가 들어서는 시점이기 때문에 북한도 국제적인 인권문제제기를 외면할 수 만은 없을 것으로 본다. ▲박종웅(민자의원)=그동안 북한에는 수십만명의 정치범이 인권의 사각지대에 갇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이번에 국제사면위원회가 처음으로 북한의 정치범 명단을 공개한 것은 말로만 전해져오던 북한의 정치범과 정치범 수용소에 대한 최초의 국제적 검증이란 면에서 큰 의미가 있다.아울러 그 파장은 남북대화 과정에서는 물론 국제사회에서도 이슈화 될 것으로 전망된다.우리가 인도적 차원에서 이인모노인을 넘겨준 만큼 북한도 강제납북한 고상문씨를 포함한 납북인사를 즉각 송환해야 할 것이다.정부는 앞으로 이 문제를 북한측에 공식요청하고 이들의 송환에 적극 노력해야 한다. ▲조순승(민주의원)=국제사면위원회 보고서에 명백히 이름이 나와 있는 만큼 고상문씨가 살아있는 것은 분명하고 따라서 고씨는 반드시 석방되어야 한다.국제적십자사나 유엔인권위원회를 통해 압력을 가할 필요가 있다.이번에 구체적인 사례가 드러났으므로 북한의 인권문제를 확실히 매듭지어야 한다.북·미 3단계 고위급회담에서 핵문제,특히 대북 경수로 지원문제와 함께 고씨의 석방을 포괄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정부가 외교적 수단을 모두 동원해야 할 것으로 믿는다. ▲김태주(납북 동진호 어로장 부인)=국제사면위원회가 발표한 수용자의 명단에 지난 87년 1월 서해상에서 조업중 피랍된 남편 최종석씨의 이름이 없어 더욱 답답하다.남편의 생사만이라도 꼭 확인하고 싶다. 남편이 어딘가 꼭 살아 있으리라는 믿음에는 변함이 없다.이제는 대학을 졸업한 맏딸을 자랑도 하고 싶고…가족(1남1녀)과 함께 묵묵히 기다릴 뿐이다.그동안 주소조차 모르는 남편에게 편지도 여러차례 썼다.정부에서 서신왕래라도 가능하도록 적극 주선해줄 것을 바란다. ◎“인권사각”에 분노… “행방 알려달라” 호소/“북서 생활고 극심” 편지 올4백통 접수/일의 북송자 가족들 북한 정치범 수용소에 일본에서 건너간 재일동포와 일본인처가 갇혀 있다는 국제사면위원회의 발표와 관련,일본내에서는 북송자 가족들을 중심으로 이같은 발표에 대한 분노가 커짐과 동시에 북한으로 갔다 행방불명된 재일동포와 일본인들의 생명과 인권을 지키기 위한 사회운동이 활발해지고 있다. 「북한귀국자의 생명과 인권을 지키는 회」는 북송자들중 일부가 승호리의 정치범 수용소에 갇혀 있다는 국제사면위의 발표가 있은지 이틀만인 1일 기자회견을 갖고 북한에서 행방불명된 재일동포와 일본인들의 생명과 인권보장을 요구하고 일본적십자사에 「요청서」를 제출했으며 재일동포들은 가족·친척들의 행방이라도 알려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북한귀국자의 생명과 인권을 지키는 회」는 요청서에서 ▲지난 67년 행방불명된 조호평씨와 그의 일본인처 고이케 히데코및 3명의 자녀들에 대한 행방을 조사해 달라 ▲지난 67년 수용소에서 살해된 김태원씨 자녀 2명에 대한 행방을 형 김민주씨가 찾고 있으니 알려달라 ▲일본적십자사는 행방불명된 사람들의 안부조사 의뢰를 북한적십자사에 끈질기게 요구하고 응답이 없을 경우는 국제위원회에 협력을 요청,성사되도록 해주기 바란다는 등 5개항을 요구했다. 이 회는 이에앞서 30일 하오 도쿄에서 심포지엄을 가졌으며 오가와 하레히사 회장은 이자리에서 『일본적십자사가 당초 북송사업을 인도적 입장에서 시작된 것으로 그 추진취지는 좋은 일이었으나 행방불명되고 강제수용소에 갇히는 등 북송이후 그들의 인권상황은 큰 문제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심포지엄에서는 일본에 있는 가족의 주소나 연락처를 문의하는 북송자들의 편지 4백여통이 올해 북한적십자사를 통하지 않고 직접 일본적십자사에 도착했다고 보고됐다. 북송사업은 지난 62년 일·북한 적십자사의 협정에 의해 시작됐다.그이후 10여만명의 재일동포와 일본인처가 북한으로 건너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외부정보 “밀물”… 주민통제에 한계/탈북자 왜 자꾸 늘어나나

    ◎외국사정 밝은 상사원·지식층 확산/“북체제 붕괴 전주곡 아니냐” 예견도 북한이 국제적 고립과 경제난으로 총체적 난국을 맞고 있는 가운데 주민들의 탈북사태가 계속 이어지고 있어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특히 27일 밝혀진 북한 정무원총리 강성산의 사위 강명도씨의 귀순사실에서 보듯 탈북대열이 북한의 일반주민 뿐만 아니라 권력 수혜층에까지 이어져 북한체제의 앞날과 관련해 커다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더 나아가 북한체제의 붕괴를 예고하는 전주곡이 아닌가 하는 추측이 나올 정도이다. 특히 올들어 탈북자와 우리측으로의 귀순자가 급증하고 있어 심상치 않다.지난 3월 북­중 국경을 넘어 탈출한 여만철씨 일가를 비롯해 러시아벌목장 탈출 벌목공 등 올해 우리측으로 귀순한 인사만 해도 25명에 이르고 있다. 이 가운데에서도 이날 당국이 귀순발표한 강씨와 지난 18일 귀순사실이 공개된 조명철씨 등은 모두 북한의 내로라하는 고위급 인물의 친·인척이라는 점에서 북한당국자들에게도 엄청난 충격을 안겨줄 것으로 관측된다.강씨는김일성의 이종사촌 동생으로 현재 북한 권력서열 3위인 강성산의 사위이고,조씨는 건설부장을 지낸 조철준의 차남이다. 이들 북한의 특권층 인사들의 귀순이 지난 5월과 7월18일 등 김일성사망을 전후한 시점에서 이뤄졌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다시 말해 김일성말기에 이르러 북한권력 내부가 상당히 불안정해졌다는 반증인 동시에 김일성의 뒤를 잇는 김정일체제가 얼마가지 못할 것임을 예고하는 신호탄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북한의 수혜층에 속한 만큼 외국사정에 밝아 북한체제의 불합리함을 일찍 깨우친 데다 다른 개인적인 탈출동기를 갖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탈북현상이 단순히 탈출자 개인차원의 문제이기에 앞서 북한의 전반적 사회불안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 북한전문가들간에 공통된 견해이다.즉 탈북사태는 주민들의 생활고와 폐쇄된 북한체제에 외부세계의 정보가 유입됨으로써 북한주민들의 불만이 상승작용을 일으킨 결과라는 것이다. 지난 90년 이래 연4년째 마이너스 경제성장과 누적된 식량난으로 북한주민들은 50년대 이후최악의 생활고를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더욱이 북한당국의 대남 적대정책이나 핵문제 등으로 긴장조성을 통한 구태의연한 대내 결속작업에도 불구하고 주민들의 불만이 급속히 증폭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북한당국은 나진·선봉 자유무역지대의 기존 주민들을 소개한 뒤 당성이 강한 평양주민들을 이주시키는 등 자본주의 바람이 스며드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교관이나 무역회사 주재원 및 해외교포들에 의해 남한을 포함한 외부사정이 조금씩 알려지면서 주민통제에도 한계점을 노출하고 있다.심지어 북한의 지식층 일각에서는 북한체제가 회복불능의 위기에 빠져 있다는 인식이 은밀히 확산되고 있다는 첩보도 있다.지난 91년 고위급회담 당시 김일성종합대를 나온 모 북측 수행원이 자신의 전공을 알려주면서 『통일이 되면 서울에서 어떤 일자리를 얻을 수 있느냐』고 우리측 인사에게 타진한 것이 이를 입증하는 비화다. 작금의 잇단 탈북현상이 북한체제의 붕괴로 이어지리라 예단하기엔 아직 성급한지도 모른다.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우리식 사회주의」라는 이름으로 강요되고 있는 폐쇄체제와 주민통제에 한계가 명확히 드러난 만큼 북한으로 하여금 점진적이나마 개혁·개방을 통한 체제유지를 도모하도록 만드는 요인이 될 게 분명하다.
  • 평통자문회의 세미나… 종교계 인사들 범종교단체 결성 제안

    ◎“「평화통일종교협의회」 창설하자”/남북한 종교인 교류·대화창구 일원화/쌀보내기 등 인도적 차원의 노력 강조 남북분단 반세기를 곧 맞는다.그 오랜 분단의 역사속에서 첫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게 되었다.그래서 국민들은 남북관계 정상화와 나가서는 통일이 성큼 다가서길 기대하고 있다.이런 전환점에서 민주평통자문회의 사무처가 「통일을 생각하는 모임」을 주선했다. 「통일과 종교,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주제로 한 세미나(29일·세종문화회관)형식 모임에서는 통일에 대비한 종교계 역할이 다각도로 논의되었다. 주제발표에 나선 김병서교수(이화여대·사회학)는 각 종교가 통일에 대해서 만큼은 같은 목표를 가지고 있기때문에 하나의 평화통일운동을 펴나갈 수 있을 것으로 내다 보았다.김교수는 이를 구체화하기 위해서는 우선 평화통일 노력을 운동차원에서 펴나갈 「평화통일종교협의회」같은 범종교단체 창설이 필요하다는 견해를 제시했다.그러면서 남북종교인 교류나 대화창구 역시 이 협의체로 일원화해야 된다는 주장을 폈다. 김교수는 교류상의 문제점으로 북한은 현재 종교의 자유가 전면 보장되어 있지 않고,종교와 대표자들의 활동도 당의 노선을 따를 수 밖에 없는 현실을 지적했다.그러나 평화통일의 이름으로 자주 만날 수만 있다면 신뢰도가 쌓여나갈 것으로 전망했다.평화통일종교협의체가 생활고에 허덕이는 북한동포들을 돕는 일에 나설 것을 제의한 김교수는 정치성이나 기업의 이윤과 무관한 쌀보내기 운동을 한 실례로 들었다. 이어 「통일에 대비한 종교계의 현안」을 논의한 자리에서 김법혜스님은 북한 주민들의 정서 속에 남아있을 잠재적 종교의식에 불교홍포의 기대를 걸었다.특히 불교는 1천6백여년의 민족신앙으로 자리를 굳히면서 샤머니즘과 융합했다는 점에서 이같은 가능성을 찾았다.일부 사찰들이 관광명소로 개방내지 개발되는 가운데 직업승려가 존재한다는 사실 또한 불교홍포의 디딤돌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천도교의 입장을 정리한 노태구교수(경기대·정치학)는 민족상잔의 긴장국면을 동학이념을 통해 해결할 수도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하늘과 사람,물질을본위로 한 삼경문화가 조화를 이룬 사상이 곧 인내천이라는 점을 들어 이같은 견해를 내놓은 노교수는 북에는 아직도 천도교조직이 존재하고 있음을 상기시켰다.그러나 당장은 특정종교 교리보다는 인도적 차원의 북한지원이 시급하다는 말로 평화통일종교협의회 창설을 동의했다. 가톨릭 백남익신부(천주교중앙협의회 사무총장)는 먼저 통일을 준비하는 종교인들이 북한의 형제들은 용서할 수 있는지를 반문했다.「2국가 1민족」이었던 통일이전의 독일이 오늘날 「1국가 2민족」이 되었다는 탄식의 소리를 들으면 이 문제는 심각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그래서 종교는 통일준비를 위한 인도적 원칙을 세워야 한다는 백주교는 정신과 물질을 망라한 선투자를 통해 실질적인 통일사업에 착수할 것을 제의했다. 개신교계를 대표한 이삼열교수(숭실대·철학)는 기독교의 통일운동은 평화가 복음의 핵심이라는 인식에서 출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화해와 공존을 모색하는 기독교통일운동을 시민사회영역의 평화운동으로 귀결시킨 이교수는 남북관계개선이후의 종교적과제로 ▲남북 민간의 화해운동 ▲인도적 삶의 회복운동 ▲평화교육을 통한 의식화운동을 꼽았다.
  • 6·25전 좌익활동 학계의견 정리

    ◎“대구폭동­제주 4·3사건 항쟁일수 없다”/박헌영의 「미군정 타도」 폭력 노선이 원인/민중사관 주장 극복… “분명한 폭동” 결론 「대구폭동」인가 「10월항쟁」인가,「제주도 4·3사건」인가 「제주도 4·3항쟁」인가.지난 봄 교과서의 역사용어 변경을 위한 시안을 놓고 벌어졌던 이같은 논란은 과거와 같은 권위주의 정부 아래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비록 논의 차원이기는 했지만 새 정부가 그처럼 진보적인 사관을 교과서개편 문제에까지 개방했기에 일어난 일이었기 때문이다.그만큼 정부의 자신감이 바탕이 되었다는 평가였다. 그러나 나라 전체가 들썩거렸을 만큼 파문이 길었던 것은 이 시비가 대한민국의 정통성 시비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6·25 44주년을 앞두고 이 문제가 다시 기억되어야 하는 것도 「10월 항쟁」「4·3항쟁」이라는 시각이 수용된다면 6·25 또한 「민족해방전쟁」이라고 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박성수한국정신문화연구원교수는 『「10월항쟁」이나 「4·3항쟁」이라는 표기는 첫째 국내의 민중사관,둘째 북한의조선전사,셋째 중국의 혁명사관에서 영향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한다』고 단언했다.그들의 시각에 따르면 일제하의 독립운동은 이른바 「민족해방투쟁」인 만큼 8·15는 광복이 아닌 「민족해방」이다.또 일제하 「민족해방투쟁」은 8·15이후 미군정 치하 남한에서 「민중항쟁」이라는 형태로 계속 진행된다는 것이다. 박교수는 『이같은 논리에 따라 그들은 「민족의 통일염원을 저버린 대한민국의 건국은 1950년 한국전쟁으로 징벌을 받게되며 6·25는 북침이었을지도 모르는 단지 한국전쟁일 뿐」이라고 해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현강연세대교수는 『그같은 민중사관을 그동안 적지않은 학자들이 편향적이 아닌가 우려하면서도 용인해 온 것은 학문의 자유를 존중했기 때문』이라면서 『학계를 벗어나면 용인되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학자들은 「폭동」과 「사건」이라는 단어의 차이만큼 현재 국사 교과서의 표기대로 「대구폭동」과 「4·3사건」을 차별화한다. 이현희성신여대교수는 먼저 『「대구폭동」은 폭동일 뿐』이라고 말했다.아무리 진보적인 연구성과가 나와 있다고 해도 그 때를 체험·목격한 격앙의 세대가 악의적의 공산 파괴공작의 맥락에서 비롯된 당시 상황을 증언·열변하고 있는 한 달리 평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진덕규이화여대교수는 『1948년 대구에서 일어난 사건을 폭동으로 보느냐 항쟁으로 보느냐는 문제는 타협의 여지가 없다』면서 『이는 우리 국가의 이념까지 연결되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이현희교수는 그러나 『과거 일반화된 표기였던 「4·3제주폭동」은 그 간의 연구와 지역적 특수성으로 볼 때 「폭동」이라 표기하기에는 사실과 거리가 있다는 것이 학계 대다수의 시각』이라고 전하고 『이같은 시각은 교과서에 「4·3사건」이라고 표기됨으로써 이미 수용된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승조고려대교수는 이 두 사건을 남로당 총책 박헌영과 직접적으로 연결시켰다.남로당은 미소공동위원회가 실패하자 1946년 가을부터 폭력투쟁 노선으로 전술을 바꿨으며 이는 좌익세력에 대한 과신과 우익 세력에 대한 과소평가에서 비롯된 과오로「대구폭동」과 「4·3사건」이 대표적이라는 것이다.한교수에 따르면 박헌영이 보기에는 미군정이 국민적 지지기반을 갖지 못했고 보수세력도 한줌 밖에 안되므로 밀어붙이면 된다고 계산했다.한편으로는 북한 인민군이 도와줄 것이라고 생각해 3만명의 경찰과 5만명의 국방경비대를 상대로 폭력과 무장투쟁을 하다 좌익세력은 모두 소진됐다.또 박헌영은 남로당 조직에게 모두 총탄이 되어서 「5·10총선거」를 저지할 것을 명했으나 많은 인명의 살상과 대량 구속을 초래했을 뿐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저지하지 못했다.결론적으로 상대방의 전력을 정확하게 평가하지 못하고 극한투쟁을 벌이다 좌익세력의 총 붕괴를 재촉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동안 정통주의적 입장에 서는 학자들 사이에는 자성의 목소리도 있었다.사람에 따라 다르기는 하나 좌익·혁신적인 학자들에 비해 무기력하고 나약하며 기회주의적인 경향이 없지 않았다는 것이다.좌파학자들에게 보수·반동·어용으로 낙인찍히며 공격당할까 두려워 사실과 다른 억지주장을 하고 있음에도 이의나 반론을 제기하기를 꺼려온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우려 속에서도 이제 폭동을 폭동이라고 제목소리를 내는 학자가 많아졌다는 것은 폭동이냐 항쟁이냐의 논쟁을 계기로 우리 학계가 한부분의 건강은 되찾았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평가이다. ◎46년10월 대구폭동/경찰서 등 방화·군수 살해/식량요구 시위가 발단… 경남북 등 확산 「대구폭동」은 1946년10월1일 상오 쌀을 나누어준다는 풍문을 듣고 대구시청 앞에 모인 1천여명의 시위가 발단이 됐다.당시는 미군정 아래 좌우대립으로 정국불안이 계속되고 물자부족과 군정당국의 식량공출로 생활고가 극심한 가운데 좌익계열의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전평)가 주도한 이른바 「9월총파업」이 전국을 휩쓸고 있는 상황이었다. 사태는 하오 들어 시위군중이 1만여명으로 늘어난 가운데 하오7시쯤 대구역 앞에서 경찰의 사격으로 한 시민이 숨지면서 걷잡을 수 없이 번져나갔다.흥분한 시민들은 이튿날인 2일 아침부터 경찰서·역·시청 앞 등에서 대규모시위를 벌였고 당초 식량배급을 요구하던 구호도 애국자석방,조선인에게 행정권이양 등 정치적 문제로 발전되어갔다.경찰서를 점거해 무기를 탈취하고 대구시청 간부의 집을 습격하기에 이르렀다.이에 군정당국은 하오7시 대구일원에 계엄령을 선포했고 미군의 출동으로 대구의 소요사태는 진정국면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시위는 다음 날인 3일 저녁부터 영천·달성 등 주변지역으로 번져나가 11월 중순까지 경북전역과 경남·전남·강원지역에서 계속됐다.시위가 일어난 대부부의 지역은 경찰서가 습격당하고 교량·철도가 파괴됐다.특히 시위가 극심한 영천의 경우 경찰서·군청·재판소가 불타고 군수가 살해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48년4월 4·3사건/좌익의 지서습격이 원인/9년간 희생자 3만∼8만명 추정 「4·3사건」은 제주도에서 1948년4월부터 만9년동안 최소 3만명에서 최대 8만명으로 추정되는 희생자를 낸 해방후 최대의 유혈사태였다. 사건은 단독정부수립을 위한 5·10총선을 한달남짓 앞둔 4월3일 상오2시,산중에 집결해 있던 제주도민 2천여명이 도내 15개 경찰지서 가운데 14개를 일제히 습격하면서 시작됐다.이들은 「미군철수」와 「단독선거반대」 「이승만매국도당타도」 등 구호를 외치며 일부는 일본군이 남기고 간 99식소총으로 무장한 상태에서 좌익세력의 지도를 받고 있었다. 미군정은 즉각 1천7백여명의 경찰을 비롯,국방경비대와 우익인사들인 서북청년단으로 구성된 대규모 진압군을 파견했다.이에 봉기대와 이에 동조한 도민들은 한라산으로 들어가 장기적인 유격전의 성격으로 전환됐다. 이후 봉기대를 주민으로부터 분리시키기 위해 근거지가 되는 마을전체를 불살라버리고 주민들을 집단이주시키는 군·경의 소개작전과 이에 맞선 봉기대의 격렬한 저항이 이어졌다.이 과정에서 양민을 포함해 수많은 인명피해가 났다. 이 사건은 또 진압을 명령받은 군대가 이를 거부하고 소요를 일으킨 48년10월 「여순반란사건」을 촉발시키기도 했다.「4·3사건」은 1957년4월2일 마지막 「빨치산」 오완권이 생포되어서야 비로소 막을 내렸다.
  • 「6·25」 3년1개월간 인명·재산피해

    ◎군인·민간인 258명 사망·실종/장애자·미망인·고아 등 전재민 5백망/항만1백곳·교량 3백12㎞ 완전 파괴/주택·학교·병원·공장 등 63곳 초토화 1950년 6월25일 새벽 4시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시작된 한국전쟁은 53년 7월27일 판문점에서 휴전협정이 체결되기까지 3년1개월동안 계속돼 막대한 인명·재산피해를 냈다. 남북한군은 물론 연합군등 수백만명과 민간인 수십만명이 목숨을 잃거나 한 부상을 입어 4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고통에 신음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또 산업·생산시설이 모두 파괴돼 휴전뒤 남북 주민들이 헐벗고 굶주리며 전쟁복구에 땀흘려야만 했다. 우선 군인의 피해를 보면 한국군은 전쟁중 14만9천5명이 전사하고 71만7천83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13만2천2백56명이 실종됐다. 또 포로로 붙잡힌 사람은 9천6백34명으로 한국군 전체의 인명피해는 1백만여명에 이른다. 또 한국군을 돕기 위해 참전한 유엔군은 5만7천6백15명이 전사하고 11만5천3백12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실종과 포로는 8천8백97명으로 집계돼 유엔군의 피해는 18만여명에 달했다.이중 대부분은 미군으로 전사 5만4천2백46명을 비롯,부상 10만3천2백84명과 실종·포로 5천5백29명등 16만여명이다. 공산측의 피해는 더욱 커 북한군은 29만4천명이 전사하고 부상 22만6천명,포로 11만2천명등 모두 63만2천여명이나 되고 중공군은 전사 18만4천명,부상 71만6천명,포로 3만1천명등 93만1천여명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산가족 1천만 이같은 군인피해에서 사상자수만 따로 떼어내 보면 유엔·한국·북한·중국군을 통틀어 사망 41만4천여명,부상 1백77만4천여명등 모두 2백18만8천여명이다. 6년동안 계속된 제2차 세계대전에서의 사상자가 일본 6백46만명,미국 1백7만명이었고 14년간 계속된 월남전에서 1백90만명의 사상자가 생긴 것과 비교했을 때 3년여의 비교적 짧은 기간에 치러진 한국전쟁이 다른 전쟁과 상대적으로 비교해 얼마나 치열했었나를 입증하고 있다. 민간인들의 희생과 피해는 더욱 엄청나다. 남한의 경우 민간인 사망 24만4천여명,학살 12만8천여명등 37만2천여명이 귀중한 목숨을 잃었고 부상 22만9천명,납치 8만4천명,행방불명 30만명등 모두 99만1천여명이 피해를 입은 것으로 집계됐다. 또 전재민 3백62만명과 미망인 50만명,불구자 33만명,결핵환자 1백만명,전쟁고아 10만명등 무려 5백55만여명이 전쟁후유증으로 고통을 겪었다. 당시 2천50만명 정도였던 남한인구의 4분의 1정도가 직접적인 전쟁피해를 입은 것이다. 특히 6·25전쟁은 「게르만민족의 대이동」보다 더많은 민족의 이동을 불러 북한에서 남한으로 피란한 남북이산가족이 1천만명에 이르는 등 지금까지도 전쟁의 깊은 상처가 가시지 않고 민족적인 비극으로 남아있다. 서울의 경우 49년 6월 1백43만명이던 인구가 52년 3월 67만명으로 추계돼 전쟁으로 76만명이 피란살이를 떠나 돌아오지 않았거나 사망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남한의 총인구는 55년 1천8백92만여명으로 전쟁전보다 1백만명 이상 감소됐다. ○재산피해 40조원 6·25전쟁으로 인한 재산피해는 50년도 불변가격으로 약 4천억원이었으며 이를 93년 기준으로 환산하면 무려 40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계산됐다. 당시 재산피해 내용을보면 민간가옥 61만호,각급학교 4천23개교 15만4천여동,경찰관서 1천9백여곳,행정관서 2천7백여곳,의료기관 1천5백여곳,금융기관 1천1백여곳,종교단체 8백여곳,생산업체 1만3천여곳이 파괴됐다. 또 기간시설을 보면 항만은 1백개소가 파괴됐고 철도 3백29㎞,교량 3백12㎞,전선 61㎞등이 끊겨 전국토의 도로망과 통신이 완전 초토화 되었다. 이같은 사회간접시설등의 파괴로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은 전쟁발발 당시 56달러에서 전쟁이 끝난 53년에는 67달러로 겨우 11달러가 증가하는데 세계최빈국 가운데 하나로 전락했다. 또한 전쟁통에 물가는 천정부지로 솟구쳐 예를들면 전쟁직전 5백30원하던 어떤 물건의 경우 51년 그 값이 2천1백28원으로 4배나 껑충 뛰어올랐고 52년에는 다시 2.5배 오른 5천2백43원으로,53년에는 7천6백18원으로 급상승했다. 전쟁전과 종전직후를 비교하면 물가는 3년만에 무려 14배가 오른 셈이다. 그러나 이같은 물가상승은 휴전협정이 체결된뒤에도 계속돼 54년에는 73%,55년에는 57%등의 놀랄만한 인플레율을 보인 바람에 민생고가극에 달했다. 당시 주요 공업생산규모를 보면 면직물은 50년 1백34만필생산에서 전쟁이 끝난 53년 생산량이 27만필로 4.9배가 줄었고 시멘트는 1만t에서 2천여t으로 4.3배,전깃줄은 1백78t에서 50t으로 3.6배나 줄어들었다. ○담배소비만 급증 그러나 담배만은 유일하게 생산량이 늘어 연간 4백11만개비보다 무려 1백76배 급증한 7억9백53만개비를 생산,생활고와 전화에 시달린 나머지 국민들이 엄청나게 담배를 피워댄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만일 제2차 한국전쟁이 발발할 경우 최신무기의 엄청난 파괴력으로 미루어 인명과 재산피해는 이루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막대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한반도에서 다시는 동족상잔의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된다는 것은 한민족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절대명제이다.
  • 평양 우라늄공장 출신 탈출자 김대호씨 증언

    북한 원자력공업부 남천화학 연합기업소 폐수처리반장으로 일하다 생활고와 차별대우를 견디다 못해 북한을 탈출,중국을 거쳐 귀순한 김대호씨(35)는 12일 서울신문에 구술한 탈출기에서 북한이 체제수호를 위해 우라늄 증산을 독려하는 등 핵무기 개발에 혈안이 돼 있다고 증언했다. ◎“북 핵개발비 김일성 특별회계서 지출”/“통일은 핵으로 시작… 핵으로 마무리” 교시/“영변사업 성과에 만족” 김부자 TV 선물/“공해상 섬 날아갔다”… 핵무기 실험소문 여러차레 나돌아 지난 2월 2일 새벽 2시쯤.중국 땅의 따사로운 불빛이 두만강 너머로 희미하게 보였다.이제 저 강만 건너면 지긋지긋한 북한을 탈출하게 된다.가슴이 뛰었다.주위는 쥐죽은듯 고요했다.순찰도 심하지 않은 것 같았다.강변의 갈대숲을 헤치고 나가 강을 건너기 시작했다.소리를 내지 않으려 애쓰며 약간 전진했다가 5분동안 주위를 살피고 또 앞으로 나아갔다.회색 코트를 입어 눈에 잘 띄지않을 것이라는 점이 조금 위안이 됐다. 강을 건너며 31년전 길림성에서 살다 어머니의등에 업혀 북한으로 오던 생각이 문득 났다.일제때 만주땅으로 건너간 부모님은 탁아소에서 중국말을 먼저 배우고 있던 나를 내내 못마땅해 했다.부모님이 귀국을 결심하게 된 것은 이런 나를 조국에서 떳떳이 키워보리라는 뜻에서였다.그러나 북한에서 살아온 지난 30년은 결코 떳떳하지 못했다.저주스러울 뿐이었다. ○생일날 “남행” 첫발 한편으로 저 강을 건너더라도 앞으로의 내 인생은 어떻게 펼쳐질까 하는 두려움이 앞섰다.연길에 사는 친척의 전화번호는 갖고 있었지만 만나지 못한다면….북한 관원들에게 붙잡히기라도 한다면…. 1시간만에 일단 중국 땅에 발을 딛는데 성공했다.긴장이 한꺼번에 풀리며 피로감이 몰려왔다.주위는 아직도 어두웠다.정신을 차리고 수첩을 꺼내 들었다.글쓰기를 좋아하는 나는 이때 심정을 이렇게 옮겨 놓았다. 「내 진정 사랑했어요 충성을 다했어요 하지만 그대는 사랑하지 않았어요… 아 북녘의 하늘아래 이내 짝사랑 원한으로 묻혔어요… 내 이젠 깨달았어요 늦게야 알았어요 나는야 이제라도 찾겠어요 진정한 사랑을」 85년 8월 제대한 나는 북한 원자력 공업부 산하 남천화학연합기업소의 건설을 맡았던 1248부대에서 복무했다는 이유로 우라늄 정광 생산공장인 평북 운전군 4월기업소에서 우라늄 폐수처리작업 노동자로 일하게 됐다.북한은 김정일의 지시로 1248부대의 제대자들을 4월기업소와 영변지구에 배치했던 것이다.이때부터 내 뜻과는 관계없이 핵원료 제조공장에 몸담게 되었다. 87년 9월에는 건설중이던 남천화학으로 옮겨 조업준비업무를 맡았다가 그후 남천화학의 폐수처리작업반장을 담당하게 됐다. 북한의 핵문제가 전세계적인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고 하지만 나는 북한이 진정 핵무기를 갖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뭐라고 말할 수는 없다.나의 직책이 우라늄 정련공장의 폐수처리작업반장으로 핵무기 개발과정에 접근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북한이 옆 공장의 공정조차도 다른 부서 사람들이 알 수 없게 할 만큼 핵개발과정을 극비에 붙이기 때문이다.그러나 나는 4월기업소와 남천화학에서 9년동안 일하면서 북한이 우라늄증산을 독려하는등 핵무기 개발에총력을 기울이고 있음을 알게됐다. 북한은 평남 순천과 황북 평산 1월기업광산,황북 금천 월암광산등 3곳의 우라늄광산에서 우라늄을 캐내고 있고 다른 지역에도 탐사대를 두고 대대적인 탐사 활동을 벌이고 있다.평산과 금천광산에서 생산된 우라늄 원광은 남천화학으로 보내져 정련하게되고 순천광산의 광석은 4월기업소로 보내진다.4월기업소는 또 남천화학에서 정련하다 남은 찌꺼기를 다시 모아 재정련하는 일도 한다. ○안도의 심정 수첩에 두곳에서 정련된 우라늄은 다시 핵개발 시설이 집중돼 있는 평북 영변의 8월기업소와 12월기업소에 보내져 재정련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8월기업소는 핵발전 동력원으로 쓰이는 순수한 우라늄 연료봉을 생산하고 12월기업소는 연료봉을 연소시켜 핵발전물질을 추출하는 일을 한다. 남천화학은 1천5백여명의 노동자가 있는 우라늄정광 생상공장과 501연구소,월암광산,1월광산,보조기업소인 67건설사업소,6월20일 농장등으로 구성돼 있고 총 노동자는 8천명이 넘는다. 남천화학은 파쇄,침출,추출,바나듐추출,폐수처리등 공정별로 나눈 11개 공장으로 편성돼 있고 우라늄뿐만 아니라 바나듐,라외듐,니켈,몰리브덴등도 생산한다.501연구소는 준박사(박사 아래를 지칭)인 소장아래 핵물리학을 전공한 1∼2급연구사 2백여명이 연구활동을 하고 있다.67건설사업소는 직원들의 주택이나 공공건물을 짓는 일을 담당하고 6월20일 농장은 기업소의 부업농장이다. ○우라듐 증산 독려 남천화학의 설계상 우라늄 생산능력은 40만t이었으나 91년 6월 조업을 시작할 당시의 생산능력은 20만t이었다.그러나 설비는 갖춰 놓았어도 현재는 많이 생산할 때가 한달에 8∼10t가량밖에 되지 않는다. 채광하는 데도 문제가 많을 뿐 아니라 캐낸 원광을 원반할 차량의 기름이 없고 갈아 끼울 타이어가 없어 생산량이 크게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여기에다 생산설비들이 우라늄추출 첨가제인 유산으로 인해 산화돼 정상가동을 못하는데다 노동자들의 직업병으로 생산능력이 크게 떨어진 상태다.4월기업소 또한 많이 생산할 때가 한달에 1t정도로 두공장을 합쳐 1년 생산량이 1백여t 정도밖에 되지 않는 셈이다. 이상이 내가 알고 있는 북한의 핵원료 생산과정이다.앞서 밝혔듯이 핵무기 보유여부에 대해서는 이렇다 저렇다 확실히 말할 수는 없다.그러나 북한의 핵개발은 여러 정황으로 보아 극히 위험한 단계에 와 있다고 분명히 말할 수 있다. 4월기업소에 근무할 때 언젠가 극비문건으로 취급되는 김일성부자의 지시문을 본 일이 있다.거기에는 「원자력 공업을 자체의 기술과 설비 자재로 주체화해야 한다.원자력에서 조국통일을 시작해 원자력에서 조국통일을 총화(마무리)해야한다」는 내용이었다.원자력개발을 위한 자금은 「주석자금」으로 불리는,말하자면 김일성의 특별회계에서 지출된다. 3공병국이라는 원자력 건설담당부대는 김정일이 친위대라고 부른다.그만큼 김부자는 원자력개발에 총력을 쏟고 있는 것이다.이 부대는 88년 10월 평북 대관군에 핵저장고를 건설했고 90년 10월에는 함북 화성군에 핵시험소를 건설하는등 핵시설 개발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핵물리학자 수백 88년에는 김부자가 영변지구를 시찰한뒤 핵개발에 성과가 있었다고 매우 만족했다고 하며 핵기술자와 과학자들에게 「색테레비」를 선물로 주었다는 얘기도 들었다.그뒤에 핵무기 생산원료로 쓰이는 플루토늄도 생산했다는 말도 들었지만 이것이 어디에 쓰이는지는 알 수 없다. 핵무기와 관련해서 이런 소문도 있다.「일본 도쿄만큼 멀리 떨어져 있는 공해상의 섬이 북한의 핵실험으로 없어졌다」는 것이다.이것말고도 북한이 어디어디에서 핵실험을 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북한의 핵개발 상황에 대해 내가 아는 것은 이 정도이고 다시 내가 북한을 탈출하기까지의 과정을 다시 얘기하고자 한다. 91년 어느날 남천화학의 초급당 비서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너한테는 현재 그자리도 과분하다』는 말이었다.나는 무슨 뜻인지 금방 알 수 있었다.나는 중국에서 태어난데다가 장인이 6·25때 치안대에 가담해 출신성분이 좋지 못한 관계로 나에게 쏟아지는 따가운 시선을 느껴왔던 것이다. 나의 장래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한 끝에 남포 수산기지의 책임자로 자원하기로 했다.거기가서 당에 충성하면 평가를 받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이 수산기지는 남천화학이 자체 외화벌이를 위해 전복이나 해삼,대합조개등을 따 수출하는 사업체였다. 이곳으로 간 것이 결국은 나의 운명을 바꾸었다.한 무역회사의 간부에게서 미화 5천달러의 이자를 주기로 하고 일화 3백10만엔을 기지 운영자금으로 빌렸다가 종업원의 동생인 골동품 장수와 태권도 국장의 아들에게 그만 사기를 당하고 만 것이다.이 일로 해서 나는 체포령을 받아 쫓기던 끝에 두차례 감옥생활도 하고 강제노동도 했다.그후 교화소에 보내려는 것을 피하기 위해 가짜 진단서를 만들어 병원에 입원을 했다.병원에서 나는 「여기서 일생을 망칠바에야 탈출하자」는 결심을 하기에 이르렀다. ○뇌물주고 증명떼 인민위원회 2부의 관리에게 뇌물로 양복지를 주고 여행증명서를 얻어 친척집이 있는 두만강 하류 새별시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실은 것은 1월 7일 새벽1시.그곳 친척집에 머물다 첫머리에 쓴대로 두만강을 넘어가 중국 연길시의 친척집에서 두달동안 지냈다.이곳에서 지내는 동안 「북한 밀정들이 탈북자를 손에 쇠줄을 꿰어 끌고 갔다」는둥 하는 별의별 흉흉한 소문을 다 들었다. 하루는 북한이 한 군관이 남방으로 가 남한에 귀순,후한 대접을 받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그 소식을 듣고 나는 결심했다.나도 남한으로 가자.친척을 통해 귀순 경로에 대한 도움을 받고 중국돈 3천원을 품속에 넣은채 남행을 출발한 것은 4월 9일 새벽 5시.그날은 마침 나의 생일이었다. 남방으로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길림성 역전에 앉아 생일을 자축하는 소주잔을 들이키며 지난 시절을 되돌아 보았다. 그리고 서른다섯번째 생일인 오늘 나는 다시 태어났다고 생각했다.
  • 탈북동포 돕기/운동본부 발족/회장에 오제도씨

    「북한탈출동포돕기 운동본부」(회장 오제도변호사)는 10일 상오 서울 중구 저동 고당기념관에서 정남렬 개신교교단연합회장,송원영 전국회의원등 각계인사 3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발기인대회를 갖고 공식출범했다. 운동본부측은 이날 대회에서 『북한의 인권탄압과 생활고를 피해 중국으로 탈출한 북한동포와 시베리아 북한 벌목공들은 우리정부는 물론,러시아와 중국으로부터도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면서 『이들의 국내 송환및 정착을 지원하기 위해 시민들이 직접 국민운동을 전개하게 됐다』고 밝혔다.
  • “북한,90년에 핵시험소 건설”/귀순 3명 회견

    ◎88년 김부자 독려후 플루토늄 생산/우라늄공장 3곳 가능 북한을 탈출,중국을 통해 귀순한 김대호씨(35·북한 원자력 공업부 남천화학 연합 기업소 폐수처리반장)와 황광철(20·탄광 채탄공)·광일(18·궁신 고등중학교 6년)형제등 3명은 9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북한은 우라늄 광산 3개소,정련공장 2개소,재정련 공장 1개소등을 두고 원자력 개발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다』면서 『북한에 핵무기가 있다고 단언하지는 못하지만 극히 위험한 단계에 와있다』고 폭로했다. 김씨는 『88년 김일성부자는 영변지구를 시찰하며 핵개발을 독려한 적이 있으며 그후 플루토늄을 생산하고 89년에는 핵저장고를,90년에는 핵시험소를 건설했다』고 밝혔다. 김씨는 자신이 일하던 우라늄 정련 공장인 남천화학은 종업원 8천여명이 11개 공정에서 우라늄·라늄·몰리브덴등을 생산하고 있으며 연간 우라늄 생산량은 20만t 정도라고 말했다. 김씨등은 『북한의 간부들은 일반 주민들과는 달리 남한 방송을 자유롭게 들으며 남한사정을 잘 알고 있다』면서 『특히 간부들 사이에서 반정부 의식이 높다』고 밝혔다. 이들은 또 『북한주민들도 최근 식량난과 생활고로 김일성부자에 대한 반감이 커지고 있고 대부분의 주민들이 「지금까지 속아 살았다」는 한탄을 하며 살고 있다』면서 『그러나 불만자들에 대한 가혹한 탄압에 따른 공포심으로 집단 시위를 벌이지는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덧붙였다. 이들은 이밖에 『김일성부자가 북한 태권도협회의 간부를 통해 유사시에 해외로 도피하기위해 스위스나 일본등지의 외국에 외화를 도피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 「임정 법통잇기」 문민정부 의지/서재필·전명운선생 유해봉환 의미

    ◎우리민족 자존심 회복에도 큰 도움 유해가 4일 미국에서 봉환된 서재필박사와 전명운의사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 평생을 바친뒤 이역만리에 묻혔던 독립운동가들이다. 서박사는 조선말 위기에 처한 민족의 현실을 구하기 위해 우리나라 처음으로 순한글 민간신문 「독립신문」을 발행한 언론인이자 정치가·독립운동가로,전의사는 친일 미국외교관의 저격을 기도한 항일투사로 민족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특히 독립신문은 개화기에 독립운동과 자주근대화의 기폭제가 된 독립협회의 창설을 이끌었다는 점이 높이 평가돼 후세에는 독립신문이 발행된 1896년 4월7일을 기념,매년 4월7일을 「신문의 날」로 정해놓고 있다. 지난해 박은식·신규식·노백린·김인전·안태국선생등 상해임시정부요인 5위의 유해가 봉환된데 이어 이번에 다시 두 독립운동가의 유해가 봉환된 것은 유족과 민족의 오랜 염원에 의한 것이다. 현정부는 상해임시정부의 문민전통을 잇고 있음을 널리 알리기 위해 애국선열의 유해 국내봉환에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왔다. 이같은 정부의의지는 김영삼대통령이 지난해 박은식선생등을 봉환할 당시 『이들 선열을 모시는 것은 새정부가 상해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받았기 때문』이라고 밝힌데서도 엿보인다. 정부는 이에 따라 지난해 처음으로 중국정부에 협조를 촉구,중국이 유해봉환요청을 수락하자 지난해 6월 선열봉환국민제전 계획을 확정함으로써 선열유해봉환을 국민적 행사로 끌어올렸다. 따라서 두분 유해의 환국은 문민정부의 정통성을 확보하고 40여년간을 이역만리에 방치해 왔던 독립유공자들의 유해를 모국에 모시게 됐다는 점에서 국민의 자존심을 회복하는 커다란 계기가 됐다는데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1864년 전남 보성에서 태어난 송재 서박사는 1882년 과거에 급제,김옥균·서광범·박영효등 개화파인사들과 폭넓게 교유했다. 서박사는 1884년 갑신정변에 적극 가담했으나 정변이 「3일천하」로 끝나자 미국으로 망명,컬럼비아의과대(현 조지워싱턴대)를 졸업한뒤 제이슨이라는 이름으로 미국국적을 취득했다. 1894년 갑오경장으로 개화파에 대해 무죄가 선언되자 귀국,중추원고문으로 임명된 그는 국민의식을 일깨우기 위해 독립신문을 창간했다. 그뒤 미국으로 건너간 서박사는 현지에서 광복운동을 펼쳤으며 87세로 생을 마감했다. 한편 전의사는 1908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대한제국의 외교고문이던 미국인 스티븐스가 친일언행을 일삼자 그를 암살하려한 독립운동가이다. 1884년 서울에서 태어나 16세때 하와이로 이민간 전의사는 철로공사장등지에서 막노동을 하다가 미국내 항일단체인 공립협회에 가입했다. 그는 당시 미국내의 반일감정을 무마키 위해 미국에 돌아온 스티븐스가 「일본의 한국지배가 한국에 유익하다」는 요지의 연설을 하자 이에 격분,1908년 3월23일 샌프란시스코 페링역에서 권총으로 스티븐스를 쏘았다. 전의사는 대부분의 독립운동가처럼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리다 1947년 63세로 세상을 떠났다. ◎서·전선생 유해 봉환하던 날/이 부총리는 3백여명 경건한 환영 ○…서재필박사와 전명운의사의 유해는 4일 하오 2시30분 대한항공 061편으로 김포공항에 도착,반세기만에 그리던 고국 품에안겼다. 선열들의 유해와 영정은 이란 승객들이 내리고 난뒤 비행기안에서부터 국방부 의장대에 의해 운구돼 일반 입국장을 거쳐 공항청사 밖에 대기중이던 6대의 운구용무개차에 영정과 훈장,유골순으로 옮겨진뒤 국립묘지로 봉송됐다. ○…선열들의 유해 봉송에는 미국 현지에서 서박사의 종증손인 서동성씨(59·미국 변호사)와 전의사의 둘째 딸 전경련씨(71),사위 표한규씨(53)등 유족과 봉환단장인 김시복국가보훈처 차장,서박사의 고향인 전남 보성의 유준상의원(민주당),오세응의원등 20여명이 동행했다. 또 유해 봉환위원장인 이영덕부총리와 이충길국가보훈처장,김승곤광복회장이 공항에 나와 유해 봉환식에 참석했으며 서박사의 종손인 서희원 전 이화여대 교수(70),전의사의 종손인 전의식씨(49·서울신문 TV가이드부 부국장)등 유족과 각계인사등 3백여명이 유해를 맞았다. ○…서박사의 유해 환국이 성사된 데는 미국 뉴저지주에서 사업을 하는 재미교포 장익태씨(58)의 숨은 공로가 있었던 사실이 밝혀졌다. 서박사의 종손인 동성씨와 선후배관계인장씨는 지난 59년 미국으로 건너가 서박사의 유해가 방치되다시피 한 것을 보고 지난 68년부터 지금까지 납골당을 관리해 왔다는 것. 10년 전에도 서박사의 유해를 봉환하려 했으나 여러 사정으로 무산됐다고 밝힌 장씨는 『이제야 유해가 환국하게 돼 한편 섭섭하면서도 감사하다』면서 『84년 작고한 서박사의 둘째딸 서 뮤리얼씨가 겨울에 난방을 할 수 없을 정도로 가난하게 살아 내가 유골을 돌보게 됐다』고 말했다. 장씨는 서박사의 유해가 처음 안치됐던 챌튼힐의 납골당이 비가 새는 등 관리가 부실해지자 지난 83년 유해를 필라델피아 웨스트로렐힐로 옮겨 관리해 왔다.
  • 러시아에 고급사립학교 부쩍 늘어

    ◎모스크바에만 1백60곳… 학비 월24∼48만원 러시아에도 고급 사립학교가 부쩍 늘고있다.졸부들이 너도나도 자식들에게 「보통집」애들과는 다른 교육을 시키고 싶어하는 욕구에 맞춰 생겨난 현상이다. 지난 89년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사립학교는 현재 모스크바에만 1백60여개에 이른다.이들 사립학교는 「슈콜라」라고 부르는 11년제의 초급학교과정에 세워지고 있는데 우리의 초·중·고교과정을 합친 것과 같다.학교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으나 공통점은 하나같이 비싼 학비에 유럽식 사립학교 교과를 따른다는 점이다.라틴어·프랑스어·예절교육등이 필수로 돼있고 컴퓨터·테니스·수영등을 주2회정도 가르친다. 수업료는 공립학교가 슈콜라에서 대학까지 전액무료인데 비해 이들 사립학교는 매월 미화 3백∼6백달러씩 받는다.이는 러시아국민의 월평균임금 2백달러에 비하면 엄청나게 많은 돈이다. 따라서 학부형들은 새로 등장한 상업은행·사기업·외국합작기업의 사장,범죄조직의 두목들이 대부분이다. 사립학교에 자녀를 보내는 사람들은 공립학교의학생수가 너무 많고 교사들이 무책임해 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1차적인 이유로 든다.그러나 실제로는 자식들의 안전문제가 큰 이유인 것으로 알려져있다. 날로 늘어나는 범죄조직들의 첫째 표적이 이들 졸부이고 보면 유괴등을 우려해 자녀들을 보다 안전한 사립학교로 보내는 것이다. 아이들의 건강에도 특별히 신경을 써 주2회씩 테니스와 수영을 가르치고 아침·점심 두끼의 식사를 먹이는데 일반시민들이 엄두도 못낼 각종 채소와 과일등 영양식을 듬뿍 먹인다. 자본주의를 지향하는 나라에서 돈많은 사람이 제 자식에게 좋은 교육을 시키겠다는 것을 굳이 탓할수는 없다.하지만 생활고에 찌든 일반 러시아인들의 눈에는 곱게 보일리가 없는 여러 현상들중의 하나다.
  • 근로여건 열악·사납금 못내 비관/60대 택시기사 자살

    ◎완전월급제 촉구 탄원서 남겨 24일 상오8시45분쯤 서울 중랑구 상봉1동116 택시회사인 「상호운수」 1층 주차장 천장에 이 회사소속 택시운전사 김성윤씨(62·마포구 노고산동109)가 비닐끈으로 목을 매 숨져있는 것을 이기창씨(33·노동)가 발견,경찰에 신고했다. 이씨는 회사측 요청을 받고 건물2층의 내부공사를 하기 위해 계단을 올라가다 보니 감색 근무복을 입은 김씨가 1층 주차장 천장에 푸른색과 노란색 비닐끈으로 목을 매 숨져 있었다』고 말했다. 경찰은 이날 상오3시40분쯤 김씨가 『사납금 5만2천원 가운데 2만2천원밖에 채우지 못해 미안하다』고 말한뒤 퇴근했다는 직원들의 말과 김영삼대통령앞으로 택시요금의 현실화와 완전월급제 실시를 촉구하는 내용의 탄원서를 남긴 점등으로 미뤄 김씨가 택시운전사의 근로여건과 생활고를 비관,자살한 것으로 보고 있다.
  • 사정회오리 실권인사들/은둔·해외도피·영어의 세월

    ◎미서 9월 귀국… 문화재단 설립 박차/박준규씨/일 체류… 경제난·신병·집압류 3중고/박태준씨/수뢰혐의 구속… 관절염 등 지병 앓아/박철언씨 크리스마스와 연말을 남달리 조용히 보내면서 계유년 한해를 되새겨 보는 사람들이 있다.새정부의 「재산공개」 회오리와 이런저런 이유로 의사당을 떠났거나 비정상적인 의정활동을 하고 있는 국회의원들이다. ○…「격화소양」이란 말을 남기고 국회의장직과 의원직을 떠난 박준규전의장은 5개월 남짓 미국에 체류하다 지난 9월 귀국해 서빙고동 신동아아파트 전셋집에서 부인및 딸과 함께 살고 있다.강남에 사무실을 내고 새해초 발족할 예정인 송산문화재단의 설립준비에 바쁘다.그는 문화재단의 설립으로 양서보급을 위한 도서출판사업과 장학사업을 구상하고 있고 바둑과 독서로 하루를 보내면서 수영으로 건강을 다지고 있다. 김재순전국회의장은 「토사구팽」이라는 고사성어로 심경을 밝히고 지난 4월 미국에 건너가 8개월 남짓 된 10월에 귀국했다.하와이대 동서문화센터 객원연구원 과정을 마저 마치기 위해 27일 부인과 함께 다시 출국해 새해2월초쯤 귀국할 예정이다.국내에 있을 때는 정치인은 거의 찾아 오지 않았고 이사장으로 있는 샘터사에 나가 40여년 몸담았던 정계시절에 대한 회고록을 준비해온 것으로 알려진다. 탈당을 거부하면서 부인이 모자를 쓴채 당기위에 나와 소란을 부렸던 정동호의원도 8개월째 대만에 거주하고 있다. 이밖에 유학성·김문기의원등이 재산문제로 의원직을 내놓고 칩거 또는 수감돼 있다. ○…대권 후보경선 과정에서 반YS(김영삼대통령의 애칭)전선에 섰던 박태준전민자당최고위원은 지난해 10월 「광양담판」이후 출국,해외를 전전하다 지금은 일본에 체류중이다.의원직을 사퇴한지도 1년이 지난 그는 출국 당시 1만달러만 갖고 나간데다 친분이 두터운 일본 정계인사들마저 올들어 실세로 전락해버리는 바람에 생활고를 겪고 있다고 측근들은 전한다. 최근에는 미국 MIT공대를 나온 외아들이 일본의 한 재벌회사에 취직,근근히 생활을 꾸려가고 있다는 것이다.건강도 좋지 않은데다 북아현동 자택의 압류등으로 3중고를 겪고있는 그의 귀국일정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박철언의원은 슬롯머신사건과 관련해 구속돼 관절염과 시력저하등을 호소하면서 차가운 영어생활을 하고 있으며 지난 27일 3번째 보석을 신청하고 지역구민에게 새해를 맞는 심경을 밝힌 옥중인사장을 우편으로 발송하는등 정치적인 재기를 노리고 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