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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 빅데이터로 본 전통시장, 반찬 사는 곳 아닌 ‘관광지’

    [단독] 빅데이터로 본 전통시장, 반찬 사는 곳 아닌 ‘관광지’

    체험·축제·관광 순으로 많이 언급… 전문가 “문화관광 접목 노력 결실” ‘전통시장의 경쟁자는 대형마트가 아니라 놀이공원.’ 대형마트의 공습으로 존폐 위기에 내몰렸던 전통시장들이 성공적으로 이미지 변신을 하고 있다. ‘식품·생필품 사는 곳’이 아닌 ‘놀고 즐기러 가는 이색 공간’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서울신문이 디지털마케팅업체 메조미디어에 의뢰해 2014년 1월부터 올해 6월까지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트위터, 블로그 등의 글 가운데 ‘전통시장’ 또는 ‘재래시장’이 언급된 29만 8808건을 분석해 이런 결과를 얻었다. 네티즌들이 전통시장을 표현할 때 자주 언급한 연관어는 ‘체험’(1만 3431건), ‘축제’(1만 628건), ‘관광’(9778건), ‘스토리텔링’(7210건) 순이었다. 흔히 ‘전통시장=반찬거리 사는 곳’이라는 이미지를 주는 ‘생선’(7019건), ‘채소’(7006건), ‘반찬’(6085건) 등의 생계형 단어는 빈도가 적었다. 전통시장이 축제와 관광 등 이야기가 넘치는 명소로 인식된다는 증거다. 시장별로는 서울 광장시장(7만 3296건)이 압도적인 빈도로 1위를 얻었고 부산의 국제시장(3만 3837건)과 자갈치시장(2만 6999건), 대구 서문시장(2만 849건) 순으로 많이 방문하거나 거론했다. 또 전통시장에 대한 표현은 긍정적 언급이 67%로 부정적 언급 33%를 압도했다. 긍정형 주요 키워드로는 ‘맛있다’(4만 4847건), ‘저렴하다’(2만 3125건), ‘유명하다’(1만 9995건), ‘젊다’(1만 3784건) 등이 있었다. 부정형 키워드로는 ‘힘들다’(1만 3451건), ‘어렵다’(1만 3286건), ‘비싸다’(7469건), ‘덥다’(4834건) 등이 있었다. 특히 전통시장의 불친절이나 개성 없는 상품 등이 혹평의 대상이었다. 최진아 경북대 지역시장연구소 연구원은 “전통시장에 문화관광을 접목한 중앙·지방정부와 시장상인의 노력이 결실을 본 것 같다”면서 “단점을 보완하기보다 특유의 장점을 활성화하는 쪽으로 콘텐츠 개발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 [씨줄날줄] ‘이민형 탈북’/구본영 논설고문

    [씨줄날줄] ‘이민형 탈북’/구본영 논설고문

    올 들어 탈북자가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다고 한다. 탈북민 수는 연간 기준으로 2009년 2914명으로 정점을 찍었다. 이후 2011년 권력을 승계한 김정은의 강력한 통제로 2012년 1502명, 2013년 1514명, 2014년 1397명, 지난해 1276명으로 대체로 감소세였다. 더욱 주목되는 것은 탈북 동기가 달라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1990년대 후반만 해도 ‘생계형 탈북자’들이 대종이었다. 김일성 주석 사망 후 이른바 ‘고난의 행군’ 시기에 굶주림을 견디지 못한 북한 변방 주민들이 북·중 국경을 넘으면서다. 그러나 최근 더 나은 삶을 추구하는 소위 ‘이민형 탈북’이 늘어나고 있다. 단지 ‘먹고살기 힘들어서’가 아니라 ‘자녀와 가족의 미래를 걱정해서’ 북한을 이탈하고 있다는 얘기다. 최근 태영호 영국 주재 북한 공사의 탈북이 그런 경우다. 그제 정보 당국은 “‘25세 이상 외교관 자녀 귀국령’이 태 공사의 귀순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가뜩이나 세습 체제에 염증을 느껴 왔던 그가 장남이 미래가 불투명한 북으로 소환되자 망명을 행동으로 옮겼다는 것이다. 근년 들어 경제적 곤궁으로 인한 탈북민들이 줄어들고 있다니 얼핏 뜻밖이라 여겨진다. 김정은 집권 이후 북한은 핵·미사일 개발로 유엔 등 국제사회로부터 강도 높은 경제 제재를 받고 있는 상황이 아닌가. 하지만 북한 전역에서 번창 중인 장마당의 존재를 떠올리면 어느 정도 의문은 해소된다. 애초에 암시장으로 출범한 장마당들이 식량 등 기본 생필품 배급이 끊긴 북한 주민들의 생명줄이 되고 있다니…. 그렇기에 북한 당국도 이를 묵인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장마당의 이런 기묘한 역설은 체코 철학자 슬라보이 지제크의 표현을 빌려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결혼”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 같다. 태 공사가 자녀들의 미래를 생각해 한국행을 결행했다는 소식에 일선 기자 시절 비화가 생각났다. 1990∼1992년 수차례 남북 고위급회담을 취재할 때다. 평양에서 가진 한 만찬에서 김책공대에서 약전(弱電·반도체)을 전공하는 아들을 둔 북측 수행원이 남측 당국자에게 “통일이 되면 기술과목을 전공한 아들이 더 좋은 대우를 받지 않겠느냐”고 넌지시 물어 왔다고 한다. 빛바랜 취재 수첩에 적힌 이 멘트의 함의가 뭐겠나. 당시 핵심 계층 일각에서도 세습체제의 장래를 회의적으로 보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북한 체제가 아직 건재하고 있다면? 탈북자가 증가세라고 해서 김정은 체제의 붕괴가 임박했다고 보는 건 속단일지 모르겠다. “북한에선 소규모 시위도 불가능할 정도로 공안기관 같은 억압 기구들이 효과적으로 작동하고 있다”(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는 견해도 그럴싸하다. 다만 당 간부 중심 ‘이민형 탈북’ 도미노 현상이 추세로 나타난다면 ‘김정은식 공포정치’로 체제 이완을 막는 데는 결국 한계가 있을 것임은 분명할 듯싶다. 구본영 논설고문 kby7@seoul.co.kr
  • [칭찬합니다~ 자치구의 효심] 살맛 나는 용산 어르신

    [칭찬합니다~ 자치구의 효심] 살맛 나는 용산 어르신

    명절이 다가오면 더 쓸쓸해지는 사람들이 있다. 도시에 혼자 사는 노인들이 대표적이다. 서울 용산구가 지역 주민들의 온정을 독거 노인들에게 전달, 헛헛한 마음을 달래주기로 했다. 구는 20일부터 다음달 9일까지 지역 내 홀몸 어르신을 찾아 생필품과 효도편지를 전달하는 ‘기가팍팍, 효 나눔 봉사활동’을 벌인다고 18일 밝혔다. 이번 행사는 기업(기)과 가족(가)이 지역 독거 노인들에게 사랑과 나눔을 ‘팍팍’ 전한다는 의미로 기획됐다. 용산에 기반을 둔 기업(단체) 또는 2인 이상 가족이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샴푸와 보디워시, 참치캔, 치약 등 생필품을 가지고 용산구자원봉사센터를 방문하면 된다. 참여자들은 자원봉사를 위한 기본 교육을 받고 생필품을 상자에 담은 뒤 효도편지를 써 함께 넣는다. 모두 150개의 효 상자를 만들 예정이다. 오는 추석 연휴(9월 14~16일)를 앞두고 자원봉사센터에서 홀몸 어르신들을 직접 찾아뵙고 상자를 전달한다. 참여를 원하는 구민은 1365자원봉사포털(www.1365.go.kr)을 통해 신청할 수 있다. 일정 등 문의사항은 용산구자원봉사센터(전화 02-718-1365)에서 안내받으면 된다. 구 자원봉사센터는 참여자들이 지속적으로 봉사활동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돕는다. 가족봉사단 늘해랑, 용산굿핸즈, LH, 에뛰드하우스, HDC현대산업개발, 하나은행, 코레일네트웍스 등이 지속적으로 봉사에 참여하고 있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 [新국토기행] 천년 역사 품은 ‘호남의 한양’… 나주, 古都의 낭만 흐른다

    [新국토기행] 천년 역사 품은 ‘호남의 한양’… 나주, 古都의 낭만 흐른다

    전남 나주시는 우리나라 4대 강의 하나인 영산강이 시가지를 관통하고, 광주 산업권의 근교로 목포, 함평, 무안, 영암, 강진, 해남군 등 10개 시·군의 관문인 교통의 중심지다. 국난을 극복하는 데 큰 공을 세운 선열이 많이 배출됐다. 임진왜란 의병장 김천일 선생과 조선의 석학 신숙주의 태생지로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진원지로 유명하다. 고려의 건국에도 토대 역할을 했다. 고려를 건국한 왕건의 부인은 나주 출신 오씨가문의 딸로 그가 낳은 아들은 2대왕 혜종이다. 왕건은 나주 오씨 세력과 손을 잡고부터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나주는 전국 12개 주요도시에 목이 생길 때 나주목이 돼 구한말까지 1000여년 동안 큰 도시의 지위를 이어갔다. 이로 인해 지금까지도 ‘천년목사 고을’로 불린다. 전라도 명칭이 ‘전주’와 ‘나주’의 머리글자를 따서 유래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역사의 향기와 자연의 감동이 살아 숨 쉬는 ‘호남의 천년고도’로 알려졌다. 나주는 영산강 고대문화의 중심지로 풍요한 맛과 멋, 여유를 주는 고장이다. 조선시대 실학자 이중환이 ‘택리지’에서 도시의 지세가 한양과 비슷하다고 적었던 나주는 당시 한양 구경하기가 힘든 전라도 백성들에게 ‘나주읍성에 가면 한양 갔다 온 것과 같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작은 서울’로 불렸다. 이 같은 역사문화도시인 나주는 금천·산포면 일대에 한국전력공사 등 14개 공공기관이 들어선 ‘빛가람 혁신도시’가 건설돼 호남권 중심도시로 재도약한다. 서울 용산역에서 나주역까지 KTX로 1시간 30분 정도 걸려 수도권 등지 관광객들이 역사의 흔적을 느끼기 위해 가족 단위로 부담 없이 찾아온다. >>볼거리 ●영산강 추억 실은 ‘황포돛배’ 황포돛배는 바닷물이 영산강 물길을 따라 오르내리던 시절 과거 영산강 물길을 이용해 쌀, 소금, 미역, 홍어 등 생필품을 실어 나르던 황토로 물들인 돛을 단 배를 말한다. 영산강 황포돛배는 육로교통이 발달한 데다 1976년 상류에 댐이 들어서고 영산강 하굿둑이 만들어지자 1977년 마지막 배가 떠난 후 자취를 감췄다. 2008년 30여년 만에 웅장하고 위엄 있는 옛 모습 그대로 부활한 황포돛배는 추억을 싣고 영산강을 오르내린다. 영산강변을 따라 자연경관을 보면서 물살을 가르는 황포돛배 체험은 자연이 주는 큰 선물이다. 옛 목선을 그대로 재현한 빛가람 1호와 2호, 한옥 지붕이 멋스러운 나주호, 발굴된 고려시대 배 조각을 복원해 놓은 왕건호, 빠르게 물살을 가르는 영산강호까지 황포돛배 투어가 풍성하다. 영산강 비단 물결을 따라 유람하는 황포돛배투어는 나주 여행의 백미다. 영산강 선착장에서 출발하는 돛배를 타면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의 해설사가 맛깔스러운 이야기를 풀어놓고 미끄러지듯 배는 강을 거슬러 오르며 과거로의 여행을 시작한다. ●좋은 일 생기는 한옥 체험 ‘목사내아’ 나주목은 전남도를 관할하는 중심고을이었다. 전라도 최고의 곡창지대인 나주 일대를 관장하는 나주목사 자리는 조정의 정3품 당상관이 맡던 고위직이었다. 100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수많은 목사가 한양에서 나주로 내려왔다. 고려와 조선시대 때 나주목사로 내려온 중앙관리가 살던 살림집이 나주목사내아다. 문화재로 지정됐지만 사람이 살지 않으면서 훼손되자 한옥체험 공간으로 리모델링해서 ‘금학헌’으로 이름 지었고 명소로 자리잡았다. 목사내아는 정적인 문화재에서 관광객이 직접 숙박을 통해 보고, 배우고, 느낄 수 있는 체험 공간으로 바뀌었다. 특히 나주목사 중에서 존경을 받았던 유석증 목사와 김성일 목사의 이름을 딴 특별한 방을 마련했는데 이곳에서 숙박을 한 뒤에는 좋은 일들이 생겨서 소원을 이루는 명당으로도 유명하다. ●체험부터 전시까지 ‘천연 염색박물관’ 나주는 예로부터 비단 직조 기술과 쪽 염색이 발달한 곳으로 오늘날에도 샛골나이와 염색장이라는 인간문화재가 활동하는 천연염색 문화의 중심지다. 영산강과 바닷물이 만나는 지리적 환경 덕에 쪽과 뽕나무를 재배하기에 좋았던 게 큰 이유다. 이러한 장점을 최대한 살려 건립한 천연염색 문화관은 다양한 전시와 교육, 염색 체험을 통해 우리 고유의 전통문화를 지키고 계승 발전하고자 노력하는 곳이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천연염색 문화를 알 수 있는 장소다. 200명이 동시에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체험관과 세미나실, 연구실 등을 갖췄다. 어린이 등 가족 단위 체험을 위한 상설 체험장을 운영, 천연염색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교육의 장으로 활용된다. 천연염색 상품을 전시, 판매하는 공방도 있다. ●고대왕국 반남고분군·복암리 고분군 반남고분군은 나주시 반남군 자미산(98m)을 중심으로 낮은 구릉지에 산재해 있다. 신촌리 8호분, 덕산리 14호분, 대안리 12호분 등 총 34호분으로 이뤄졌다. 이곳에는 대형 옹관고분 수십 기가 분포한다. 대형 옹관고분이란 지상에 분구를 쌓고 분구 속에 시신을 안치한 커다란 옹(항아리)을 매장하는 방식이다. 이것은 고구려의 적석총, 백제의 석실분, 신라의 적석목곽분, 가야의 석곽묘 등과 구별되는 영산강 유역 고대사회의 독특한 고분 양식이다. 대형 옹관고분은 기원전 3세기부터 6세기까지 4세기 동안 영산강 유역에서 크게 유행했다. 3세기쯤에는 옹관 절반을 지하에 묻는 반지하식이었으나 4세기 중반부터는 지상식으로 발전하며 이때에는 분구의 규모가 훨씬 대형화돼 그 규모가 40~50m에 이른다. 또 1996년 인근에서 발견된 총 4기의 복암리 고분군도 신비함으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복암리 고분군 중 제일 큰 3호분은 도굴을 당하지 않아 금동신발, 은제장식, 환두대도 등의 유물이 나왔다. 40여기의 다양한 묘가 한 봉분 안에 촘촘히 조성돼 일명 아파트 고분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반남면 고분로에 세워진 국립나주박물관은 신촌리 9호분 금동관을 비롯해 출토된 유물 1500여점을 전시한다. ●드라마 ‘주몽’의 감동 영상테마파크 나주시 공산면 일대 14만㎡의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나주 영상테마파크는 35억원을 투입해 특화한 영상촬영지다. 드라마 ‘주몽’ 촬영지로 유명한 이곳은 옛 고구려의 모습을 완벽에 가깝게 재현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입구에 들어서면 그동안 이곳에서 촬영한 드라마 및 영화에 출연했던 송일국, 한혜진, 전광렬, 이계인, 진희경, 최정원, 정진영, 김정화, 오윤아 등 주연배우의 핸드 프린팅과 출연 사진을 배너로 표현한 ‘스타거리’가 눈에 들어온다. 테마파크 안에 들어가 고구려궁 맞은편에 있는 성루에 올라서면 S자로 굽이치는 영산강과 넓게 펼쳐진 다야뜰을 볼 수 있어 막혀 있는 가슴이 시원하게 뻥 뚫리는 청량감을 맛볼 수 있다. 2005년 건립 후 100만명이 넘는 방문객이 다녀갔다. 초가집으로 조성됐던 저잣거리를 너와 형태로 개조해 천연염색, 죽물, 소목, 한과, 한지, 비누, 점토공예 등 다양한 체험을 즐길 수 있는 공방으로 조성했다. 세트장 입구에는 ‘삼족오의 비상’ 조형물과 광장이 조성됐고, 망루와 누각·성문 주변도 고증을 거쳐 복원했다. 실내 스튜디오 한쪽에는 밀레, 고흐, 뭉크, 마티스, 클림트, 신윤복, 김홍도 등 국내외 유명 화가들의 작품을 그대로 실사(實寫)한 그림을 내건 명화미술관이 있다. 규모가 방대해 테마파크를 제대로 돌아보려면 1시간 정도 걸린다. 나주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먹거리 ●맑고 담백한 국물 ‘나주곰탕’ 소뼈를 고아 낸 물에 소고기, 양지와 내장을 썰어 넣은 뒤 다시 푹 고아서 낸 국물로, 맑고 담백한 맛으로 유명하다. 윤기가 자르르한 나주쌀밥을 넣어 먹는 나주곰탕은 이제는 전 국민의 영양식으로 자리잡았다. 곰탕은 어디나 있지만 나주곰탕은 다른 지역에서 넘볼 수 없는 독특한 맛으로 유명하다. 흔히 곰탕 하면 우윳빛 뽀얀 국물을 떠올리지만 나주곰탕은 국물이 말갛다. 색깔부터 다르다. 소뼈를 우려내는 일반 곰탕과 달리 소뼈를 적게 넣고 양지나 사태 등 좋은 고기를 삶아 육수를 내 맛이 짜지 않고 개운하다. 소고기는 단백질과 양질의 지방이 풍부하며 소뼈에서 우러난 풍부한 칼슘이 성장기 아이들과 여자들의 골다공증 예방에도 좋다. 나주곰탕은 고기 누린내를 없애기 위해 무, 파, 마늘 등을 많이 넣기 때문에 비타민과 무기질도 충분한 영양식이 된다. 나주답사1번지인 금성관 인근에 곰탕거리가 조성돼 있다. 하얀집, 노안곰탕, 남평할매곰탕, 제일곰탕 등 전통 있는 음식점이 많이 있다. ●임금님 진상품 ‘나주배’ 나주는 배로 유명한 고장이다. 예로부터 임금께 올리는 진상품이었다는 기록(1454년 세종실록지리지)에서 알 수 있듯이 그 우수성을 오래전부터 인정받았다. 2400여 농가가 매년 6만여t을 생산해 1200억원의 수익을 올린다. 영산강 유역 양질의 토양과 연평균 기온 14도 내외 최적의 기후조건, 오랜 경험으로 축적된 기술로 재배해 향이 좋고 당도가 높다. 연하고 부드러우며 과즙이 많고 색깔이 고운 게 특징이다. 전국에서 배 수확이 가장 빨라 추석 제수용품으로 나주배 생산량의 절반가량이 출하된다. 이때 전국으로 유통되는 배의 대부분이 나주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외국인들의 입맛도 잡으면서 미국, 대만, 베트남 등지로 수출된다. 지난해 미국에 1530t이 팔렸다. ●세상만사 좋을시구 ‘영산포 홍어’ 영산포는 홍어의 고장이다. 영산포 선창가 일대에는 홍어 전문점 30여곳이 성업 중이다. 톡 쏘는 홍어에 잘 삶은 돼지고기와 묵은 김치를 곁들이면 유명한 홍어삼합이 된다. 여기에 막걸리 한잔이면 ‘세상만사 좋을시구’가 절로 나온다. 과거에 흑산도에서 잡힌 홍어가 영산강을 따라 올라오는 일주일간 자연 발효되면서 독특한 맛의 홍어가 됐다. 지금은 웰빙식품으로도 많이 알려진 전라도 대표 음식이다. 홍어는 홍어회와 홍어무침, 홍어찜, 홍어탕 그리고 나주에서만 맛볼 수 있는 홍어애보릿국 등 다양하게 즐길 수 있다. “참으로 이것은 뭐라 형용할 수 없는 혀와 입과 코와 눈과 모든 오감을 일깨워 흔들어 버리는 맛의 혁명이다.” 소설가 황석영이 홍어를 처음 먹어본 후 토해낸 말이다. ●미꾸라지 먹고 자란 ‘구진포 장어’ 영산포를 지나 다시면 회진마을로 가는 길목에 구진포가 있다. 구진포는 영산강 뱃길이 끊기기 전까지 사람들과 물건을 실어 나르던 나루터였다. 구진포 장어는 구진포가 번성하던 시절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포구 주변에서 잘 잡히면서 유명해졌다. 특히 구진포 장어는 미꾸라지를 먹고 자라 맛이 뛰어나고 건강에도 좋다. 장어는 민물에서 살지만 산란을 위해 바다로 나가고 부화한 장어들이 민물로 들어온다. 포구는 기능을 잃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옛맛이 그리워 구진포 장어집을 찾는다. 1940년대부터 들어선 장어 음식점들로 장어구이촌이 형성, 지금도 구진포 도로변에는 고소한 냄새가 끊이지 않는다. 나주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생필품 대란 베네수엘라… 휴지 사러 안데스 넘어

    생필품 대란 베네수엘라… 휴지 사러 안데스 넘어

    베네수엘라와 맞닿은 콜롬비아의 국경도시 쿠쿠타는 각종 생필품을 구하러 온 베네수엘라인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이들이 안데스 산맥의 험로를 마다않고 걸어 넘어오는 것은 순전히 경제가 결딴난 베네수엘라에서는 휴지조차 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베네수엘라와 콜롬비아의 국경이 다시 열린 지난 13일(현지시간) 베네수엘라인 5만 4000명이 국경을 넘었다. 베네수엘라가 마약 밀수 등을 이유로 국경을 폐쇄한 지 1년 만이다. 이번엔 걸어서 건널 수 있는 통행로 5곳만 열렸지만 한 달 안에 차량 통행도 허용될 예정이다. 두 나라는 지난달에도 국경 일부를 한시 개방했는데 당시 베네수엘라인 15만명이 쿠쿠타로 원정쇼핑을 가기도 했다. 쿠쿠타에서 만난 베네수엘라인 마리솔 사야고(여)는 “두루마리 휴지 15통과 설탕 한 봉지를 샀다”며 “베네수엘라에서는 아무것도 구할 수 없다”고 한숨지었다. WSJ는 두 나라 국경 통행이 도보로 제한돼 있는 만큼 콜롬비아에서 생필품을 얼마나 사올 수 있는지는 돈이 얼마나 있느냐보다 짐을 얼마나 많이 들 수 있느냐에 달렸다고 지적했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현재 현금 고갈로 설탕과 밀가루, 달걀의 수입 대금조차 치르기 어려운 형편이다. 현지 슈퍼마켓에선 줄을 서서 몇 시간씩을 기다리는 게 일상이 됐고 생필품을 노린 약탈이 횡행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달 베네수엘라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8%에서 -10%로, 물가상승률 전망치는 480%에서 700%로 조정했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전기료 인하에 與野 정치권 반응이…

    여야는 12일 당정이 올 7~9월 주택용 전기요금 일부를 경감하기로 발표한 데 대해 긍정적인 자평과 비판적인 지적을 내놓으며 엇갈린 반응을 보였다. 새누리당은 이번 누진제 조정이 한시 조치이지만 당장 가계부담 완화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 반면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경감 효과도 적을뿐더러 미봉책에 불과하다며 일제히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여야는 모두 중장기적으로 전기요금 누진제를 전면 개편할 필요성이 있다는 데 공감대를 나타내 향후 국회 차원의 논의가 가속화할 것임을 예고했다. 새누리당 김광림 정책위의장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작년에는 (누진제 일시조정으로) 전기료를 많이 쓰는 분들에게 혜택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대한민국 2200만 가구 모두에 7∼9월 전기료가 20% 가까이 인하되는 효과가 생긴다”고 강조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장인 조경태 의원도 회의에서 “당과 정부가 7∼9월 누진제를 완화하고, 누진제 개편을 위한 태스크포스(TF)팀을 구성하는 등 발 빠른 대응책을 마련한 것은 바람직한 조치”라고 환영했다. 이장우 최고위원도 이날 SBS 라디오에서 민심이 기대한 것보다 가계 부담 완화 효과가 부족하지 않으냐는 사회자 질문에 “그렇지 않다. 전 가구에 돌아가는 혜택이 약 4200억원 수준”이라면서 “(인하 효과가) 대폭 확대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더민주 변재일 정책위의장은 YTN 라디오에서 이번 조치가 ‘찔끔 인하’가 아니냐는 질문에 “정확하게 표현했다”며 “폭염, 열대야가 일상화돼 국민이 엄청나게 고통받고 있고, 분노를 넘어 저항을 하고 있는데 국민을 달래기 위해서 내놓은 조치치고는 너무나 미약하다”고 지적했다. 박주민 의원은 SBS 라디오에서 “효과도 미미할 뿐만 아니라 문제가 있는 누진제를 전혀 손보지 않은 한시적인 대책”이라며 “매년 한시적으로 완화하는 것을 대책으로 내놓는 것보다는 지금 국민이 요구하는 것처럼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라는 주문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국민의당 김성식 정책위의장은 TBS라디오에서 “누진 폭탄 때문에 1년에 두 번씩 국민을 열 받게 할 일을 이렇게 한시적으로 하겠다는 것인지 저는 정부의 방침, 또 이것을 환영하는 여당의 방침을 이해할 수가 없다”고 비판했다. 조배숙 의원은 비대위 회의에서 “시원하게 여름을 나게 하겠다는 것은 새누리당이 2012년 대선과 2014년 지방선거, 2016년 총선에서 공약한 것”이라며 “그때 전기요금 누진제를 개편하겠다고 분명히 공약했지만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여야 3당은 그러나 현행 전기요금 체계가 시대변화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어 근본적인 제도 개편이 필요하다는 데 한목소리를 냈다. 새누리당 유기준 의원은 “폭염에 에어컨이 생필품이 된 만큼 에어컨 사용으로 과다한 전기요금이 부과되는 걸 국민이 공감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더민주와 국민의당 등 야권도 누진단계 및 배수 조정 등 근본적인 전기요금 체계 개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열린세상] 당신이 지옥에 있다면/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

    [열린세상] 당신이 지옥에 있다면/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

    신문을 펴기가 무서울 정도로 테러와 경제 위기로 세계가 위태로워지는 요즘 각종 사건에 러시아가 제법 많이 등장한다. 영국의 브렉시트(유럽연합 탈퇴)가 결정되자 가장 먼저 나온 반응은 유럽연합(EU)이 약화되면 그 반대 세력인 러시아의 푸틴이 가장 큰 수혜를 볼 것이라는 것이었다. 또한 터키의 쿠데타가 진압되는 과정에서 러시아가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음이 밝혀지면서 두 나라의 밀월관계를 예고하고 있다. 지난 200여년간 유라시아의 패권을 두고 러시아와 겨루던 터키가 친러로 기운다면 유라시아에 대한 서방의 영향력은 극도로 약화될 수 있다. 여기에 미 대선에 등장한 트럼프마저 러시아의 푸틴을 공개적으로 옹호하고 나섰다. 이 모든 사건들의 주인공인 러시아는 정작 올해 초까지도 곧 망할 나라처럼 보도됐다. 석유값의 폭락으로 석유에 의존하던 러시아 경제는 극도로 악화됐고 EU의 강력한 경제 제재가 더해지면서 루블화는 순식간에 3배 이상 폭등했었다. 그리고 푸틴의 정적이었던 넴초프가 암살되는 등 러시아 정치도 혼란해지는 듯 보였다. 하지만 서방의 우려와 달리 정작 러시아는 오히려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 배경에는 얼마 전 소련의 붕괴라는 지옥 같은 상황을 이겨 낸 러시아 국민의 의연한 모습에 있다. 1990년대 중반에 추운 시베리아에서 유학 생활을 하던 시절 나는 소련이 붕괴한 이후 참담했던 러시아의 혼란을 목도했다. 평생을 사회주의라는 틀에서만 살아왔던 러시아 사람들은 눈뜨고 러시아의 자본이 마피아와 소수의 자본가들에게 지배되는 것을 보고만 있었다. 생필품이 부족해서 하루하루를 힘들게 살아가면서 결혼과 출산율은 급격히 감소했고, 인재들의 해외 유출로 러시아의 국력은 심각하게 추락했다. 이런 혼란을 겪으면서도 러시아는 자포자기 대신 미래를 위한 전략 수립에 골몰했었다. 국가의 지원에 전적으로 의존하던 러시아과학원은 90년대 중반 예산이 대부분 삭감되면서 큰 곤란에 처했다. 그러자 각 연구소의 소장들이 모여서 배고픔의 괴로움은 잠시지만 젊은 학자가 사라지는 것은 과학의 멸종을 의미한다며 뜻을 모았다. 그리고 젊은 학자들을 위한 연구비를 만들어 필사적으로 학문의 맥을 잇고자 했다. 그 결과 당시 젊은 대학원생들은 지금 40대 중반의 중진이 돼서 러시아 과학의 세대를 잇고 있다. 최근 세계적인 경제 위기 속에서 러시아가 흔들리지 않는 데에는 이러한 러시아인들의 보이지 않는 노력이 숨어 있다. 얼마 전 영화 ‘내부자’에 나와서 유명해진 ‘지옥에 있다면 계속 전진하라’라는 금언이 있다. 이 어구는 2차대전 당시 히틀러에게 선전포고를 하는 윈스턴 처칠의 담화로 잘못 알려졌는데, 원래는 아일랜드의 속담이다. 만약 당신이 지옥 길에 들었다면 악마에게 덜미를 붙잡혀 지옥으로 끌려가기 전에 우왕좌왕하지 말고 정신 차리고 도망치라는 뜻이다. 2~3년 전부터 우리 사회에서도 지옥의 조선(헬조선)이라는 말이 회자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지옥 길에 들어섰을 뿐 아직 지옥에 빠진 것은 아니다. 적어도 90년대의 러시아나 지금의 시리아 같은 나라쯤 돼야 지옥을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헬조선이라고 탄식하기보다는 우리의 미래와 후속 세대를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 불평은 언제라도 할 수 있지만 미래를 향한 대안은 시기를 놓치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10~20년 후 현재의 자포자기한 상태의 젊은 세대가 별다른 대책 없이 사회의 중진이 된다면 우리의 지옥은 그때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이다. 세계 각국이 모두 지옥 길로 접어드는 즈음에 우리가 지옥을 빠져나올 수 있다면 우리에게 그것은 또 다른 기회가 될 것이며, 그 길은 전적으로 젊은 세대에게 있음을 기억하자. 위대한 사람이 위기를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위기를 이겨 내기 때문에 위대해지는 것이다. 멀리 러시아가 아니라 한국전쟁 후 한국을 보아도 그렇다. 전후 한국의 엄청난 교육열은 궁극적으로는 젊은 세대를 위한 미래에 대한 투자였다. 그리고 그 수혜를 받은 우리 기성세대들도 젊은 세대들을 대책 없이 ‘헬조선’으로 내보내기 전에 그들을 위한 미래 전략과 투자를 구체적으로 수립해야 한다.
  • “라오스 친구들과 희망 나누러 가요”

    “우리보다 더 어려운 라오스 학생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 줄래요.” 경북도 내 아동양육시설(고아원) 학생들이 라오스 고아원생 등을 위한 해외 봉사활동에 나섰다. 지난해 캄보디아에 이어 두 번째다. 도내 15개 아동양육시설의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학생 45명과 교사 17명 등 62명으로 구성된 봉사단은 8일 도청에서 출정식을 갖고 오는 13일까지 4박 6일간 라오스 해외 봉사활동에 들어갔다. 봉사단은 비엔티안 지역의 사판모 초등학교와 하노이 프렌드십 직업학교를 방문해 컴퓨터와 학용품, 축구공, 체육복 등을 나눠 주고 친선 축구경기를 벌인다. 이어 방비엥 지역의 국립 무앙 사이세타 고아원을 찾아 현지에서 구입한 150만원 상당의 각종 생필품과 먹거리 등을 전달할 계획이다. 사이세타 고아원에는 어린이 30여명이 60여㎡의 좁은 공간에서 열악하게 산다. 단원들은 또 현지 주민과 학생들을 위해 플루트와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합기도 시범 공연도 펼칠 예정이다. 네일아트와 페이스 페인팅 봉사활동에도 나선다. 출정식에 참가한 오모(17)양은 “라오스 어린이들에게 내 꿈(간호장교)을 소개하고, 꿈을 가지고 열심히 공부해 줄 것을 부탁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원경 경북도 여성가족정책관은 “이번 봉사활동에 참가하는 아동 대부분은 생전 처음 해외 봉사활동하는 기회를 갖게 된다”면서 “이를 통해 긍지를 갖게 됨은 물론 나눔과 실천을 통해 글로벌 인재로 성장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된다”고 말했다. 안동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경북 고아원생들의 아름다운 해외 봉사활동

    경북 고아원생들의 아름다운 해외 봉사활동

    “우리보다 더 어려운 라오스 학생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 줄래요.” 경북도 내 아동양육시설(고아원) 학생들이 라오스 고아원생 등을 위한 해외 봉사활동에 나섰다. 지난해 캄보디아에 이어 두 번째다. 도내 15개 아동양육시설의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학생 45명과 교사 17명 등 62명으로 구성된 봉사단은 8일 도청에서 출정식을 갖고 오는 13일까지 4박 6일간 라오스 해외 봉사활동에 들어갔다. 봉사단은 비엔티엔 지역의 사판모 초등학교와 하노이 프렌드쉽 직업학교를 방문해 컴퓨터와 학용품, 축구공, 체육복 등을 나눠 주고 친선 축구경기를 벌인다. 이어 방비엥 지역의 국립 무앙 사이세타 고아원을 찾아 현지에서 구입한 150만원 상당의 각종 생필품과 먹거리 등을 전달할 계획이다. 사이세타 고아원에는 어린이 30여명이 60여㎡의 좁은 공간에서 열악하게 산다. 단원들은 또 현지 주민과 학생들을 위해 플룻과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합기도 시범 공연도 펼칠 예정이다. 네일아트와 페이스 페인팅 봉사활동에도 나선다. 출정식에 참가한 오모(17)양은 “라오스 어린이들에게 내 꿈(간호장교)을 소개하고, 꿈을 가지고 열심히 공부해 줄 것을 부탁하고 싶다”고 말했고, 합기도 2단인 이모(16)군은 “합기도와 호연지기를 가르쳐 주겠다”고 했다. 이원경 경북도 여성가족정책관은 “이번 봉사활동에 참가하는 아동 대부분은 생전 처음 해외 봉사 활동하는 기회를 갖게 된다”면서 “이를 통해 긍지를 갖게 됨은 물론 나눔과 실천을 통해 글로벌 인재로 성장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된다”고 말했다. 안동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중국인 소고기 폭식’ 무역 판도 바꿨다

    ‘중국인 소고기 폭식’ 무역 판도 바꿨다

    소고기 자본주의/이노우에 교스케 지음/박재현 옮김/엑스오북/272쪽/1만 4800원 섭생 아닌 이익수단 된 먹거리 통해 동물·자연에 대한 인간의 착취 고발 美월가 ‘머니자본주의’ 폐해 되새겨 공존 가능한 사회시스템 구축 역설 이제 먹거리는 생존을 위한 섭생의 영역에 머물지 않는다. 그보다는 이익 창출을 위한 투자 거래의 유용한 수단이란 속성이 더 강하다고 할 수 있다. 일본 NHK방송의 시사보도 PD가 쓴 이 책은 바로 소고기를 중심으로 가속화하는 ‘먹거리의 자본화’를 파고들어 흥미롭다. 그 천착의 출발점은 일본에서 음식값이 폭등하기 시작한 소고기 덮밥이다. 저자 자신도 2주에 한 번꼴로 끼니를 때운다는 소고기 덮밥 가격의 인상에 의문을 품고 전 세계를 다니며 실상을 건져낸 보고서로 읽힌다. 우선 그 소고기값의 폭등 원인이 중국에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전통적인 중국의 식육은 돼지나 닭이었다. 왜 바뀐 것일까. 우선 글로벌 중산층 문화의 중국 유입이 큰 원인이다. 경제수준이 향상되면서 돼지나 닭 대신 소고기 섭취로 옮겨간 것이다. 미국 농무부 통계를 보면 2000년 이후 그 추세가 또렷하다. 일본의 소비량이 10년 이상 평행선을 유지한 반면 중국의 소비량은 꾸준히 증가해 2014년에는 유럽연합(EU) 전체 소비량과 비슷하게 됐다. 소고기 수입량을 보면 그 추이는 더욱 도드라진다. 2014년까지 5년간 6배나 증가했고 2013년 무렵엔 일본을 앞질렀다. 중국의 소고기 폭식에는 중산층 문화 유입 말고도 또 다른 이유가 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전통적으로 EU에 기계제품을 팔아 먹고살던 무역상들이 소고기 수입에 눈독을 들이면서 수요가 폭증한 것이다. “소고기가 뛰면 양고기도 뛴다.” 저자의 이 표현대로 중국의 소고기 폭식 후유증은 곳곳으로 뻗친다. ‘사람보다 양이 더 많이 산다’던 뉴질랜드의 낙농업자들이 양 아닌 소를 사육하기 시작했고 머지않아 양 사육을 앞지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뉴질랜드에서 중국으로 향하는 유제품과 소고기 수출액은 최근 1년 새 80%나 증가했다. 브라질의 광활한 세라두초원은 빠른 속도로 사료용 콩, 옥수수 밭으로 바뀌고 있다. 베트남에는 중국의 거대 식육 가공업체가 진출했다. 전 세계를 훑어 건져낸 실상의 편린들은 역시 갈수록 심해지는 동물과 자연에 대한 인간의 착취로 모아진다. 그 과정에서 짚어내는 소비자본주의의 거대화가 일반 독자도 쉽게 이해할 수준의 현장 이야기와 사람들 모습을 통해 속속들이 고발된다. 월스트리트의 흐름도 빼놓지 않았다. 월스트리트는 잘 알려졌듯이 누구보다 앞서 엄청난 자금을 흡수해 이율을 높이는 새 금융상품을 개발해 내는 연금술사들의 경연장이다. 저자는 생필품 ‘인덱스 펀드’가 세계금융의 중심지인 뉴욕 월가에서 개발된 점에 주목한다. 월가가 생필품 인덱스 펀드를 개발한 것은 금융 쇼크 이전이지만 그것으로 돈을 벌 수 있다며 투자에 열을 올린 것은 금융 쇼크 이후이다. 인덱스 펀드가 선물시장으로 유입되면서 밀의 시장가격은 37%나 급등했다. 금융 쇼크 이후 주식, 채권, 금융파생상품의 투자시스템이 붕괴되면서 돈의 거친 물결이 코모디티(상품)로 흘러들어 비정상의 상황을 부른 것이다. 돈이 돈을 낳는 머니자본주의의 피해는 고스란히 서민의 몫으로 돌려지기 마련이다. 뉴욕 맨해튼 뒷골목엔 중산층으로 풍요를 누리던 노숙자들이 무료 급식소를 찾아들고 있다. “언젠가는 소고기 덮밥을 먹지 못하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저자는 책 말미에 2014년 재닛 옐런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의 발언을 전한다. “오랜 세월에 걸쳐 벌어진 경제 격차의 확대는 미국의 가치관을 흔들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이렇게 매듭짓는다. “성장, 수익 일변도의 트랙에서 벗어나 우리가 현재 발붙이고 사는 그 땅에서 자연친화적인 생산환경을 만들고 공존 가능한 사회시스템을 구축할 때 희망이 보인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4명의 딸 둔 싱글맘 도운 노신사의 배려 감동

    4명의 딸 둔 싱글맘 도운 노신사의 배려 감동

    미국의 한 방송사 기자에게 제보된 한 싱글맘의 체험담이 화제가 되고 있다. 지난 27일(현지시간) KTVU의 프랭크 서머빌 기자는 자신의 페이스북 페이지에 한 여성의 체험담을 공개했다. 이후 이 게시글은 좋아요(추천) 3만 개, 댓글 2400개, 공유 1만5000회 이상을 기록했고 다른 외신을 통해 소개될 정도로 크게 주목받고 있다. 화제의 체험담을 공개한 이는 플로리다주(州)에 사는 29세 여성 타우니 넬슨. 그녀는 4명의 딸을 둔 싱글맘이다. 넬슨은 남편이 집을 나간 뒤 9세, 5세, 2세, 6개월 된 딸을 혼자의 힘으로 키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어느 날 그녀는 세 딸(9세, 5세, 6개월)을 차에 태우고 생필품을 구매하기 위해 쇼핑을 갔다. 딸들과 함께 무사히 쇼핑을 마친 그녀는 주차장에 세워둔 차로 돌아가 시동을 걸었다. 그런데 차에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생각을 돌이켜보니 세 딸 중 한 명이 실수로 차량 등을 켜 놔 배터리가 그만 방전되고 말았던 것. 때마침 비까지 쏟아졌다. 그녀는 어떻게든 시동을 걸기 위해 다른 차량의 운전자들에게 전기 좀 나눠 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2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20여 명의 운전자는 보고도 못 본 척하고 지나가 버렸다. 시간이 지체될수록 5살 된 딸은 불안해했고 6개월 된 딸은 배가 고파 울기 시작했다. 넬슨 자신도 힘이 들어 그만 흐르는 눈물을 막을 수 없었다. 그때 누군가 차량 창문을 조심스럽게 노크했다. 그는 바로 74세의 한 노신사. 할아버지는 넬슨에게 치킨과 비스킷을 주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딸에게 먹이세요. 지금 견인차를 불렀어요. 또 내 아내가 곧 차로 이곳에 오니 당신들을 집까지 바래다줄게요.” 이날 넬슨은 딸들과 함께 노신사 부부의 차를 타고 무사히 귀가할 수 있었다. 그런데 다음날 오전 노신사가 넬슨의 집으로 정비공을 데려왔다. 정비공은 넬슨 가족 차의 배터리 교체 뿐만 아니라 깨져 있던 창문까지 수리해줬다. 이후 넬슨이 수리비를 내려고 하니 정비공은 이미 (노신사분이) 지급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비공은 노신사의 말을 전해달라고 했다면서 “무언가 보답하고 싶다면 절대로 포기 말고 좋은 엄마로 계속 있어 달라”고 말했다. 넬슨은 “지금까지 살면서 그렇게 울어본 것은 처음”이라고 회상하며 당시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전했다. 또 “내가 무너질 것만 같을 때 자신감을 되찾아줬다. 고맙다는 말조차 못했지만 언젠가 누군가에게 내가 받은 것과 같은 일로 보답하고 싶다”면서 “쓰라린 경험을 하는 사람이 이 글을 읽는다면 천사는 뜻밖의 순간에 찾아온다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런 사연을 소개한 서머빌 기자는 “친절한 노신사가 이 글을 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 해당 게시글에는 “나쁜 소식이 아닌 이런 이야기를 전해줘 감사하다” “9살짜리 딸은 이날 받은 친절을 절대 잊지 않을 것이다” 등 호평이 이어졌다. 사진=Facebook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여대생 치마 속 촬영 40대 경찰관 파면

    생필품 판매점에서 핸드폰으로 여대생 치마 속을 촬영한 경찰관이 파면됐다. 전북 진안경찰서는 1일 징계위원회를 열고 여대생 치마 속을 촬영한 A(48)경위를 파면했다. A경위는 지난달 7일 오후 1시 50분쯤 전주시 완산구 한 생필품 판매점에서 휴대전화로 여대생 B씨의 치마 속을 촬영하다 시민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붙잡혔다. A경위는 경찰 조사에서 혐의 일부를 시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최근 A 경위를 불구속 입건하고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경찰 관계자는 “민중의 지팡이 역할을 하는 경찰이 성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만으로 중징계가 불가피하다”며 “비위 행위가 줄어들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명인·명물을 찾아서] 오랜 건물·젊은 상인 조화…기찻길 옆 시장은 오늘도 ‘북적’

    [명인·명물을 찾아서] 오랜 건물·젊은 상인 조화…기찻길 옆 시장은 오늘도 ‘북적’

    1913년 개업… 90년대 쇠락 KTX 뚫려 하루 수천명 방문 광주 광산구 ‘1913송정역시장’이 최근 새롭게 단장하면서 남도의 ‘핫 플레이스’로 떠오르고 있다. 100년이 넘은 시장의 성공적인 대변신이다. 지난 4월 문을 연 이 시장 안 카페에는 젊은이들이 몰리고 빵집은 줄을 서야 빵을 살 수 있을 만큼 북적인다. 송정역을 통해 유입된 관광객들이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식료품을 사는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했다. 낡은 건물과 텅 빈 상점 등 예전 모습은 간데없고 사람들로 넘쳐난다. 국밥, 인절미, 호떡, 계란밥, 닭발볶음, 초코파이, 양갱 등 전체 상가의 70% 이상이 먹거리 점포로 채워졌다. 건물 내·외벽은 옛것을 그대로 살리고 차양막, 새시, 간판 등 일부를 손봤을 뿐인데 현대와 전통이 조화를 이룬 깔끔한 공간으로 변신했다. 새로 이름이 바뀐 가게는 옛날 가게의 이름과 흔적 등의 히스토리를 출입문 등에 기록했다. 시장 안에 열차 시간표를 알리는 전광판이 설치됐고 입구 벽면에 대형시계를 세워 랜드마크로 활용했다. 시장 외관의 리모델링을 맡은 현대카드 디자인팀 관계자는 “시장 경기가 가장 좋았던 1960~70년대 모습을 살려 추억과 스토리가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하는 콘셉트를 적용했다”고 말했다. 이 시장이 다시 문을 연 뒤 하루 평균 방문객은 평일 2000여명, 주말엔 4000여명에 이른다. 그 이전엔 고작 하루 200여명에 불과했다. 특히 17명의 청년 상인들이 들어오면서 시장에 활력을 더하고 있다. 광산구와 중소기업청은 공모를 통해 청년창업자를 선정했고 이들에게 11개월치 임대료와 인테리어 비용, 창업 교육 등을 지원했다. ‘또아’ 빵집을 운영하는 유양우(38)씨는 “오전 11시부터 오후 9시까지 한두 시간 간격으로 빵을 굽는데 갓 구워낸 빵을 사려는 손님들이 장사진을 이룬다”고 말했다. 그는 15년간 빵집에서 제빵사로 일하다가 최근 송정역시장에서 창업했다. 그는 “하루 손님이 500여명, 매출이 250만원에 이른다”며 환하게 웃는다. 이 밖에 청년 창업주들이 시장에서 운영하는 점포는 느린먹거리, 카페1913, 갱소년, 꼬지샵, 계란밥, 무등산 보리밥, 또바기 농부, 동네호떡 등 다양하다. 이 시장은 일제강점기인 1913년 송정역 개설과 함께 ‘송정역전 매일시장’이란 이름으로 자연스레 형성됐다. 당시엔 인근 전남 나주, 함평 등지에서 푸성귀와 수산물 등을 팔러 온 상인들로 북적였다. 산업화 시기엔 바로 옆 블록에 ‘1003번지’로 알려진 홍등가가 생기면서 매일 시장이 열릴 정도로 성업했다. 닭집, 방앗간, 옷가게, 식료품 상점 등이 즐비했다. 송정역을 통해 들어온 주변 농어촌 사람들과 많을 때는 600여명에 이르던 업소 ‘아가씨’들이 생필품을 구입하고 농수축산물이 거래됐던 곳이다. 이 시장 역시 다른 전통시장처럼 1990년대 이후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리모델링하기 전에는 63개 점포 가운데 17개가 텅 빈 채로 방치됐고 물건을 구입하는 손님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생활 잡화와 음식점, 농수산물 판매점이 근근이 명맥을 유지할 정도였다. 그러나 호남고속철(KTX)이 지난해 4월 개통된 이후 사정이 달라졌다. 광주 관문역인 송정역 하루 이용객이 1만 3000명을 웃돌면서 주변이 사람들로 북적였다. 이 시장은 송정역 길 건너편(200m 거리)에 자리하고 있다. 향후 송정역복합환승센터 등 역세권 개발이 이뤄질 경우 전통 식자재, 음식, 토산품과 숙박·관광서비스 산업 등이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광산구와 중소기업청, 광주창조경제혁신센터(현대카드), 상인회가 손을 잡고 이 같은 환경 변화에 맞춰 시장 살리기에 나섰다. 구와 중소기업청은 문화와 전통이 공존하는 추억의 명소로 육성한다는 복안을 세웠다. 구와 중소기업청 등은 이를 위해 지난해 8월부터 지난 3월까지 10억여원을 들여 시장이 형성된 골목길 200m 구간의 전선 지중화와 대리석을 사용한 바닥 정비 사업을 마쳤다. 현대카드 디자인팀이 빈 점포와 시장 외관 리모델링을 맡았다. 광주창조경제혁신센터는 시장 운영 비결과 노하우를 외부에 전파하고 교육·홍보·지속적인 콘텐츠 개발 등을 지원한다. 구와 중소기업청은 주차타워, 상인교육관 등 시설 확충 등을 추진 중이다. 이처럼 각계의 노력에 힘입어 재래시장이 되살아나고 있다. 시장 현대화 작업 이후 기대 이상으로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원주민들과 기차 시간을 기다리는 외지인들의 입소문도 보태졌다. 이 시장 인근엔 송정5일시장과 송정매일시장 등 걸어서 10분 거리에 2개의 대형 전통시장이 자리한다. 관광객 중 청소년층은 이곳에서 먹을거리 등을 즐기고, 노장년층은 인근 재래시장의 방앗간에서 직접 짜낸 참기름 등 토산품을 구입할 수 있는 ‘쇼핑 동선’도 잘 갖춰진 셈이다. 지속적인 시장 활성화를 위해 건물주들도 힘을 보탰다. 광산구는 지난 5월 시장에 입주한 청년 창업주 17명과 상가 건물주 16명 등이 모인 가운데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협약’을 맺었다. 이들은 임대료 인상으로 상인들이 내몰리는 서울 ‘홍대 거리’의 전철을 되밟지 말자고 결의했다. 건물주 배모(68)씨는 “청년들의 참신한 아이디어로 시장이 살아나고 명소로 거듭나고 있다”며 “멀리 내다보고 서로 배려하면서 좋은 기회를 잘 살려 냈으면 한다”고 말했다. 청년상인 손경재(33)씨는 “사업에 임대료가 가장 큰 걸림돌이었는데 이 문제가 해결된 만큼 좋은 아이디어와 상품으로 1913송정역시장 활성화에 앞장서는 것으로 보답하겠다”며 상생 의지를 내보였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다시 베네수엘라 국경 막은 콜롬비아, “한시적 개방 없다”

    다시 베네수엘라 국경 막은 콜롬비아, “한시적 개방 없다”

    콜롬비아가 더 이상 베네수엘라와의 국경을 한시적으로 개방하진 않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마리아 앙헬라 올긴 콜롬비아 외교장관은 19일(이하 현지시간) 국경도시 쿠쿠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최근 두 번의 주말을 이용해 한시적으로 베네수엘라 국민에게 국경을 개방했지만 이런 일이 되풀이되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신 콜롬비아는 안정적인 영구적 국경 개방을 추진할 방침이다. 올긴 장관은 "베네수엘라와의 국경을 개방한다면 이젠 영구적 개방이 되어야 한다"며 "베네수엘라 외교당국과 이 문제를 논의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8월 베네수엘라 정부의 결정으로 폐쇄된 콜롬비아-베네수엘라 국경은 지난 10일과 16~17일 한시적으로 개방됐다. 극심한 경제난으로 생필품을 구하지 못하는 베네수엘라 주민을 위해서다. 콜롬비아 정부에 따르면 16~17일 식품과 의약품을 구하기 위해 국경을 넘은 베네수엘라 주민은 12만3000명에 이른다. 앞서 처음으로 국경이 열린 10일엔 3만 명이 콜롬비아로 생필품 '원정쇼핑'을 했다. 베네수엘라의 '생필품 난민'이 줄지어 건넌 국경엔 '인류적 통로'라는 애칭을 얻기도 했다. 콜롬비아가 한시적 국경개방은 더 이상 없을 것이라고 선언한 건 밀려드는 주민의 불법이주 등을 우려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올긴 장관은 "콜롬비아는 베네수엘라 주민을 얼마든지 받아들일 용의가 있지만 (방문과 체류는) 합법적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앞으로 국경을 영구적으로 개방해도 방문) 서류를 제대로 구비하지 않고 국경을 넘는 사람은 추방할 것"이라고 말했다. 산유국 베네수엘라는 유가가 곤두박질치면서 사상 최악의 경제위기에 빠졌다. 생필품과 의약품의 경우 정상 공급량의 80%가 부족해 경제위기는 사회-정치 위기로 확대되고 있다. 지난해 베네수엘라의 물가상승률은 180.9%로 세계 최고였다. 사진=라테르세라 손영식 해외통신원 voniss@naver.com
  • [여기는 남미] 국경 넘은 베네수엘라 ‘생필품 난민’ 인산인해

    [여기는 남미] 국경 넘은 베네수엘라 ‘생필품 난민’ 인산인해

    "시장이 있어 너무 행복해요." 지난 10일(이하 현지시간) 베네수엘라와 콜롬비아 국경 근처 마트 앞에서 한 중년의 여자가 이렇게 말하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박수를 치며 공감을 표시했다. 그는 "(우리나라엔) 정말 아무 것도 없어요. 약이 없어 아이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라고 덧붙인 말이 뜨거운 박수 소리에 파묻힐 정도였다. 이날 베네수엘라 산안토니오 델 타치라와 콜롬비아 쿠쿠타의 월경로가 11개월 만에 열렸다. 줄지어 밤을 지새우며 국경이 열리길 기다리던 베네수엘라 주민들은 콜롬비아로 떼지어 넘어갔다. 쿠쿠타 당국에 따르면 월경로 개방 3시간 만에 국경을 넘은 베네수엘라 주민은 약 2만5000명. 대부분은 마트로 달려가 밀가루와 식용유, 휴지, 샴푸 등 생필품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시장을 보니 행복하다던 여자는 "베네수엘라에선 이제 빨랫비누조차 구할 수 없게 됐다"면서 "(생필품이 있다는) 베네수엘라 정부의 말은 새빨간 거짓"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베네수엘라 산안토니오 델 타치라와 콜롬비아 쿠쿠타는 약 700m 거리를 둔 국경도시다. 예전엔 통행이 비교적 자유로워졌지만 지난해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정부는 국가 안전을 이유로 국경을 폐쇄했다. 그랬던 마두로 정부가 한시적으로 국경을 개방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견디다 못한 베네수엘라 주민 500여 명이 생필품을 사기 위해 최근 국경라인을 무시하고 무단으로 콜롬비아로 넘어가는 일이 발생하면서다. 대규모 엑소더스를 우려한 마두로 정부는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12시간 동안 국경을 개방했다. 소식이 알려지자 베네수엘라 쪽 국경엔 전날부터 주민들이 몰려들어 대기자가 인산인해를 이뤘다. 현지 언론은 "국경을 넘기 위해 밤을 세우며 기다리는 주민들이 많았다"고 보도했다. 콜롬비아는 질서유지를 위해 경찰과 공무원 등 300명을 쿠쿠타에 배치했다. 생필품을 사기 위해 국경을 넘었다는 남자 호세 그레고리오 산체스는 "생필품에 목마른 베네수엘라 주민을 맞아준 쿠쿠타에 감사한다"며 "평가절하 때문에 콜롬비아 물가가 우리에겐 비싼 편이지만 그래도 암시장보다는 가격이 저렴한 것 같다"고 말했다. 산체스는 "마두로 정부가 베네수엘라의 산업을 완전히 죽여버렸다"며 "베네수엘라엔 정말 식품과 의약품이 절대 부족하다"고 덧붙였다. 사진=트리부나 손영식 해외통신원 voniss@naver.com
  • [자치단체장 25시] 김홍섭 인천 중구청장

    [자치단체장 25시] 김홍섭 인천 중구청장

    김홍섭(67) 인천 중구청장만큼 ‘입지전적’이라는 말과 들어맞는 단체장은 흔치 않다. 김 구청장은 영종도의 가난한 농가 7남매 중 맏이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조그만 농토를 일구었지만 3남 4녀를 키우기에는 궁핍하기 그지없었다. 장남으로서 책임감을 느낀 그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중퇴하고 동생들 학비를 대고자 염전·공장 등에서 노동자 생활을 했다. 일을 하면서 익힌 경험을 토대로 가마니를 짜 염전에 공급하는 사업을 시작했으나 마대가 등장하면서 빚만 잔뜩 졌다. 그러나 그는 좌절하지 않고 생필품을 인천의 섬 등에 유통하는 일을 해 제법 큰 돈을 벌었다. 이 돈을 모두 투자해 1980년대에 연안부두에 목욕탕을 열었다. 영업이 시원찮았다. 고민하던 그는 오래전 월미도에 있었다는 조탕을 떠올렸다. 국내 최초로 해수탕을 만들어 보겠다고 각오했다. 인하공대로 가서 해수 성분에 대한 전문적인 분석을 의뢰, 그 데이터를 바탕으로 수질이 좋고 특이한 느낌을 주는 해수탕을 개발했다. 결과는 대박이었다. 해수탕은 전국적인 유명세를 타게 됐다. 1990년대 초에는 월미도에서 놀이기구 사업을 펼쳐 상당한 부를 축적했다. 김 구청장은 늘 “아무리 어려운 일이 닥쳐도 열심히 궁리하면 하늘이 무너지지 않는 한 해결책이 나온다”고 말한다. 이런 인생 역정 덕분인지 그는 누구보다 서민들의 고단한 삶을 안다. 이는 자연스레 소외 계층을 배려하는 정책으로 이어졌다. 그가 2000년 중구청장에 처음 당선된 이후 한결같이 유지해 온 행정철학이다. 인천의 대표적인 달동네였던 인현동 쪽방촌과 북성동 새우젓 거리를 말끔한 공동주택으로 변모시키는 등 김 구청장은 열정적으로 펼친 주거환경 개선 사업을 펼쳤다. 이런 일까지 있었다. 구청장에 당선된 직후인 2000년 7월 첫 봉급 전액을 불우이웃 돕기 성금으로 기부했다. “나는 먹고살 만하니 봉급은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써 달라”는 의도였다. 뜻밖에 선거법 위반 논란이 일었다. 2006년 기부를 중단했다. ●근대문화시설·관광 만나면 일자리 창출 김 구청장은 낙후한 중구가 발전할 해법으로 관광을 제시했다. 그는 놀이기구 사업 전문성을 인정받아 유럽에 초청받아 갔는데 이때 관광이 유럽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그 지역의 문화를 접하고 사람 사는 모습을 보는 것이 관광의 진수라는 것도 깨달았다. 이때의 경험은 중구에 산재해 있는 근대문화시설을 관광과 접목시키면 예산을 많이 들이지 않고도 일자리 창출과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김 구청장이 인천항 내항 개방과 재개발에 치중하는 것은 민원 해결과 관광 활성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인천항은 1883년 제물포항으로 개항한 이래 번성기를 누리며 우리나라 관문 역할을 해 왔다. 하지만 원목, 고철 등을 하역·운반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분진, 소음, 교통문제 등으로 주민들은 환경 피해는 물론 생존권까지 위협받아 민원이 끊이지 않았다. 김 구청장은 인천항 내항이 재개발되면 인근 차이나타운 및 월미관광특구와 연계된 친수·문화·상업 공간으로 탈바꿈돼 지역경제의 틀을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내항을 전면 개방하겠다는 애초 약속과는 달리 지난 4월 1일 8부두 일부만을 개방했다. ●“1~8부두 전체 개방돼야 종합적 투자” 김 구청장은 “8부두 일부를 개방하는 것만으로는 관광과 연계된 복합시설을 설치하기에 부족하다”면서 “1∼8부두 전체가 개방돼야 종합적·체계적인 투자를 유치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내항의 기능은 남항·북항·송도 신항 등의 외항으로 이전하면 되며, 실제로도 상당 부분 진행된 상태”라며 “인천을 동남아 비즈니스 관문으로 만들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고 정부의 결단을 촉구했다. 김 구청장은 인천시에 대한 쓴소리도 주저하지 않았다. “내항 개발이 이뤄지면 뛰어난 입지 때문에 서울 명동, 남대문, 동대문에 버금가는 상업·관광 기능을 할 수 있다”면서 “시가 특별한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은 관광의 중요성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인천항을 부산항과 견줘 분석하기도 했다. 그는 “부산 북항은 태평양과 유라시아 대륙을 연결하는 국제적인 관문 도시로 발전하고자 정부 지원을 받아 153만㎡에 8조 5190억원의 사업비를 들여 개발하고 있다”면서 “인천의 경쟁력은 결코 부산에 뒤지지 않는다. 오히려 13억 인구의 중국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고 세계 최고의 공항인 인천국제공항이 자리 잡아 잠재력이 무한하다”고 강조했다. ●‘유커 겨냥’ 한중무역유통단지 추진 김 구청장은 중구의 비전을 창출하기 위해 중국을 주목하고 있다. ‘큰손’으로 부상하는 중국인들이 들어오는 관문인 중구의 입지를 전략적으로 활용하면 둥북아 허브를 지향하는 꿈을 실현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특히 지난해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되면서 중국 시장이 중구뿐 아니라 인천의 경제를 살리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세부적인 계획을 위해 항동에 중국 무역상을 타깃으로 하는 한중무역유통단지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위해 지난 3월 서울 강서유통단지사업협동조합과 양해각서(MOU)를 맺었다. 원도심인 신포·신흥동은 쇼핑, 숙박, 먹거리, 볼거리를 다양하게 제공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 일자리 창출과 내수 활성화에 기여한다는 구상이다. “중국 관광객들이 인천을 찾았을 때 편하게 먹고 자고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게 중요합니다. 인천공항 환승객을 위한 다양한 관광상품 개발에도 힘쓰겠습니다.” 김 구청장은 “기본적으로 항공으로 1∼2시간 거리에 있는 중국 도시를 겨냥하고 장기적으로 베트남, 태국 등 동남아시아까지 커버할 수 있는 시설들이 들어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한국의 경제적·문화적 위상이 높아진 만큼 일단 인프라가 구축되면 주변 국가 관광객·무역상들이 찾아올 것”이라며 “공항과 항만을 통해 들어오는 외국인들을 바라만 볼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그들을 붙잡을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관광·레저, 국제 비즈니스, 해양문화, 갑문·역사영역 등을 기본 주제를 꼽았다. 여기에는 해양문화·관광산업과 연계된 벤처기업 유치, 해양 스포츠 등 테마관광, 여객 편의시설 기능을 갖춘 휴식공간, 전시·무역공간, 다양한 형태의 숙박시설 등이 포함된다. 한마디로 무역과 관광, 해양레저를 아우르는 복합벨트를 조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송도에 개발 치중… 영종도는 소외돼” 김 구청장은 경제자유구역 지정 이후 개발이 지지부진한 영종도 문제도 거론했다. “정부가 20조원 투자 등 거창한 청사진을 제시하며 2003년 영종도를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했지만 영종하늘도시를 조성한 것 외에는 지금까지 한 일이 없다”면서 “개발이 송도에 치중돼 있고 영종도는 소외돼 주민들의 불만이 극에 달한 상태”라고 밝혔다. 이어 “정작 외국인들이 들어오는 곳은 영종도인데 외국인 발을 묶을 만한 시설이 없으니 도착하자마자 서울로 가는 것 아니겠으냐”고 반문했다. 사회복지 분야에 대한 적극적 지원 계획도 밝혔다. 김 구청장은 “취약 계층에 대한 안정적인 일자리 창출과 지역 특성에 맞는 사회적기업을 발굴해 육성하겠다”면서 “여성,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를 보호할 수 있도록 복지시설 운영을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고 강조했다. 김학준 기자 kimhj@seoul.co.kr
  • [톡!톡! talk 공무원] 임종현 경남창원시 내서읍 주민센터 주무관

    [톡!톡! talk 공무원] 임종현 경남창원시 내서읍 주민센터 주무관

    본인도 장애겪는 사회적 약자 저소득층 보호로 장관상 받아 “복지담당 공무원 더 늘리길” 경남 창원 마산회원구 내서읍 주민 A씨와 복지담당 공무원 임종현(30) 주무관의 인연은 5년 전부터 시작됐다. A씨는 걸핏하면 내서읍 주민센터를 찾아 행패를 부리는 ‘문제 주민’이었고, 임 주무관은 이제 막 공무원 생활을 시작한 내서읍 주민센터의 ‘새내기’였다. “처음 A씨를 봤을 때는 무서웠어요. 수차례 주민센터에 오셔서 직원들과 승강이를 벌이기도 하고, 계장님을 때리고 밀치기도 했어요. A씨를 말리느라 저를 비롯해 주민센터 직원들이 진땀을 빼곤 했어요.” A씨는 결국 공무집행 방해죄로 18개월 복역하고 출소했다. 정신장애까지 있던 터라 지역 주민들도 A씨를 피했다. 임 주무관도 18개월 전 폭력과 폭언을 일삼던 A씨의 모습이 떠올라 다시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그가 생계 문제로 어려워한다는 소식을 전해 듣게 됐다. “제가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담당자인 데다, 처음 공무원 생활을 시작할 때 봤던 A씨가 어렵게 산다고 하니 짠하기도 하고 신경이 더 쓰였어요. 그래서 출소한 A씨의 집을 찾아갔죠.” 임 주무관은 A씨에게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서 받을 수 있는 복지 서비스를 연계해 주고 생필품을 지원했다. 이후에도 종종 A씨를 찾아 다른 어려움은 없는지 살폈다. 관심과 보살핌을 받자 A씨도 달라졌다. 행패를 부리지도 않고 필요한 생필품이 있으면 주민센터를 찾아 복지 담당 공무원들에게 차분히 요청했다. 임 주무관은 “이분을 통해 어떤 분이라도 이웃으로 함께 살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임 주무관 자신도 장애가 있는 사회적 약자다. 성대에 장애를 입어 목소리를 잘 내지 못한다. 임 주무관은 “목소리를 잘 내지 못해 주위의 도움을 많이 받아 왔다”며 “그래서 사회복지에 관심을 두게 됐고 복지 공무원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상대가 귀를 기울여야 들릴 정도로 목소리가 작아 직접 주민과 상담할 때는 동료 직원이 도와준다. 주민들과는 눈빛으로도 통하는 게 있어 소통에 문제는 없다. 임 주무관의 바람은 현장에서 더 많은 주민을 직접 만날 수 있도록 복지 담당 공무원이 충원되는 것이다. 임 주무관은 “나를 포함해 2명이 기초생활보장 수급 가구 500가구를 책임지다 보니 신청 들어온 것을 처리하는 데만 해도 시간이 부족하다”며 “사람을 그리워하는 홀로 사는 어르신들을 더 많이 찾아뵙고 싶다”고 말했다. 임 주무관은 지난 1년간 사각지대에 놓인 425가구를 기초수급자로 보호했으며, 저소득층 2007가구에 지역 내 민간 기부 자원을 연계해 5000만원 상당의 후원금과 물품을 지원했다. 지난 4일에는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보건복지부 장관상을 받았다. 세종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여기는 남미] 환전 못해 미스터월드대회 포기한 조각남

    [여기는 남미] 환전 못해 미스터월드대회 포기한 조각남

    선남선녀가 많기로 유명한 남미 베네수엘라가 돈 때문에 미스터월드의 꿈을 접기로 했다. 베네수엘라 미스-미스터월드조직위원회는 1일(이하 현지시간) "올해 열리는 미스터월드대회에 베네수엘라 대표를 보내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조직위원회의 이런 결정에 따라 통한의 눈물을 삼키게 된 주인공은 2016년 미스터베네수엘라 레나토 바라비노(18). 만 18세인 바라비노는 지난 5월 28일 수도 카라카스에서 열린 미스터베네수엘라대회에 참가해 경쟁자 13명을 누르고 당당히 우승했다. 바라비노는 베네수엘라 대표가 되면서 2016년 미스미스터대회 참가 자격을 얻었다. 현지 언론은 "조각 같은 얼굴의 몸짱 18세 청년이 베네수엘라 대표로 남성미를 세계에 한껏 뽐내게 됐다"고 기대했다. 하지만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한 달 만에 국제대회 출전의 꿈은 물거품이 됐다. 이유는 경제난. 바라비노는 미스터베네수엘라 우승 후 참가경비를 확보하기 위해 사방으로 뛰었지만 적지 않은 돈을 마련하기란 쉽지 않았다. 더 큰 문제는 외환부족이었다. 해외에서 열리는 대회에 참가하려면 경비를 환전은 필수지만 베네수엘라에서 달러나 유로 등 외환을 구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려웠다. 사정을 알게 된 조직위원회는 바라비노의 국제대회 출전을 지원하기 위해 애를 썼지만 조직위가 나서도 환전은 불가능했다. 조직위원회는 결국 미스터월드대회 불참을 선언했다. 1996년 첫 대회가 열린 미스터월드대회는 격년제로 개최된다. 미남미녀가 많기로 유명한 베네수엘라는 1998년 2회 대회에서 미스터월드를 배출했다. 올해 대회는 7월 29일 영국에서 열릴 예정이다. 한편 미스터월드대회 불참을 결정하면서 베네수엘라의 경제위기는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 남미 최대 산유국인 베네수엘라는 유가가 곤두박질치면서 2014년 중반부터 극심한 경제난을 겪고 있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석유수출로 벌어들이는 외화가 급감하자 엄격한 환전규제를 실시, 사실상 달러를 독점하다시피하고 있다. 일반 국민은 달러를 구경하기도 힘들어졌다. 지난해 베네수엘라 인플레이션은 180.9%까지 치솟았고 생필품은 바닥을 드러내 곳곳에서 약탈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사진=코메르시오 손영식 해외통신원 voniss@naver.com
  •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K-9 자주포 전성시대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K-9 자주포 전성시대

    최근 잇따라 불거진 방산비리 잡음 때문에 이제는 자주 쓰이지 않지만, 한때 국산 무기들을 홍보할 때 언제나 따라다녔던 수식어가 있다. 바로 ‘명품’이다. 관계 당국과 제작사 측은 한국형 무기체계가 등장할 때마다 ‘명품’이라는 수식어를 붙여 국민에게 홍보했지만, 총기류부터 항공기, 미사일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터져 나오는 결함과 비리, 그리고 여기에 대한 국민적 분노 때문에 이제는 쉽사리 ‘명품’이라는 수식어를 붙이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첨단 무기 국산화에 본격적으로 소매를 걷어붙인 것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는 점을 생각하면 열악한 개발 환경과 부족한 예산이라는 악조건 속에서 일명 ‘공돌이를 갈아 넣는’ 방법으로 개발된 국산 무기들에 완벽한 무결함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 하지만 이러한 열악한 환경 속에서 개발되었음에도 ‘대박’을 친 무기가 있었다. 바로 우리 육군의 주력 자주포이자 세계 각국에서 러브콜을 받는 K-9 자주포이다. 성능은 No.2, 경쟁력은 No.1 K-9 자주포는 심각한 불균형을 이루고 있던 남북 간의 포병전력 격차를 만회하기 위한 회심의 카드로 1980년대 후반 개발이 시작됐다. 당시 우리 군이 6.25 전쟁 때 사용하던 구식 견인포를 주력으로 사용하고 있던 것과 달리 북한은 자주포와 방사포를 대규모로 보유한 포병 강국이었다. 북한의 포병은 전면전 상황에서도 대단히 위협적이었지만, 수도 서울이 휴전선에서 불과 50km도 떨어져 있지 않은 우리나라 입장에서 북한이 가진 대규모 장사정포 전력은 공포 그 자체일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1994년 1차 북핵 위기 당시 박영수 북측 대표의 ‘서울 불바다’ 한 마디에 우리 국민은 패닉에 빠졌고 극심한 전쟁 공포로 인해 생필품 사재기 광풍에 휩싸이기도 했다. K-9 자주포는 바로 이러한 포병 전력의 열세를 만회하기 위한 구원투수로 기획됐다. 당시 우리나라는 미국의 구식 M-114 견인포를 기반으로 KH-179 견인포를 개발했던 것과 미국의 M109A2를 K-55라는 이름으로 라이센스 생산했던 경험만 있었을 뿐, 독자적인 자주포 개발 경험과 기술은 전무(全無)에 가까웠다. 그런 우리 기술진에게 육군이 던진 요구사항은 그야말로 가혹했다. 첫째, 15초 이내에 3발의 포탄을 발사할 수 있어야 했고, 둘째 주행 중 정지해 30초 이내에 포탄을 발사하고 곧바로 기동해 적의 대포병 사격을 피할 수 있어야 했으며, 셋째 사정거리가 40km 이상에 달할 것 등이었다. 1980년대 중반 기준으로 이러한 성능을 가진 자주포는 세계 그 어느 나라에도 존재하지 않았고, 우리 기술력으로 개발이 가능할 것이냐에 대한 논란이 있었지만, 국방과학연구소(ADD)와 삼성테크윈(現 한화테크윈)은 불과 7년 만에 시제품을 만들어냈고, 10년 만에 양산을 시작하는 무서운 저력을 보여주었다. K-9 자주포는 소요제기 당시 군이 요구했던 대부분의 요구 성능을 충족했다. 당시 일반적인 155mm 곡사포 사거리의 1.5배가 넘는 40km의 사정거리를 달성했으며, 자동화된 사격통제장치와 장전장치를 통해 대단히 빠른 발사 속도와 우수한 명중률을 확보했다. 기존의 자주포들은 이동 중에 사격명령을 접수하면 평평한 지면을 찾아 정차하고, 정확한 사격제원 산출을 위해 지도를 보고 자신의 좌표를 확인한 뒤 스페이드나 말뚝 등을 통해 화포를 지면에 단단히 고정하고 화포의 방향을 표적 방향으로 돌리는 방열 작업이 필요했다. 사격지휘소에서 사격제원을 전달해주면 승무원들은 수동으로 레버를 돌려 포의 편각과 사각을 맞추고 포탄과 장약을 있는 힘껏 밀어 넣어 장전해야만 사격할 수 있는데, 아무리 숙련된 인원들이라 하더라도 이러한 작업은 5~10분 이상 소요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K-9은 이 모든 것이 자동화되어 30초 이내에 사격을 위한 모든 준비를 마칠 수 있다. 이동 중에 BTCS(Battalion Tactical Command System)를 통해 사격명령이 내려오면 곧바로 정차, 포탑 내의 전시기 화면을 조작해 사격제원과 포탄 종류를 입력하면 포탑은 자동으로 표적 방향으로 돌아가고 포탄과 장약 역시 자동으로 장전되기 때문에 K-9 포수는 버튼만 누르면 된다. 이러한 완전 자동화 시스템 덕분에 K-9의 발사 속도는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데, 특히 발사 각도를 다르게 해서 15초 이내에 3발을 연속 발사해 3발의 포탄이 표적 상공에 동시에 떨어지게 하는 1문 TOT(Time On Target) 성능은 1문의 K-9으로 3문의 자주포 효과를 낼 수 있게 만들어 주는 독보적인 성능이다. K-9은 K-9 그 자체로도 대단히 우수하지만, K-9 자주포의 차체를 이용해 개발한 K-10 탄약보급장갑차와 결합해 운용될 경우 그 위력은 배가된다. 기존의 자주포들은 내부에 탑재한 포탄을 모두 소진하고 나면 트럭을 통해 추가 포탄을 보급받았고, 이 과정은 모두 인력에 의해 수동으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포탄이 빗발치는 전쟁터에서 40kg이 넘는 포탄을 들고 트럭에서 자주포까지 왔다 갔다 하는 것은 보급 속도나 병사들의 생존 가능성 측면에서 대단히 불리했고,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K-10 탄약보급장갑차이다. K-10 장갑차는 104발의 포탄과 504개의 장약유닛을 적재할 수 있는데, 평상시 K-9 자주포를 따라다니다가 포탄 공급 요청이 있으면 K-9 자주포 뒤에 가서 이송기를 결합한 뒤 버튼만 누르면 분당 12발의 속도로 포탄과 장약이 자동 보급된다. 우수한 자주포와 독창적인 완전 자동화 탄약보급장갑차의 패키지 운용 개념은 기존의 포병 전술 교리를 완전히 바꾸어놓기 충분했고, 이에 힘입어 K-9은 세계 최고의 명품 자주포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각지에서 쏟아지는 러브콜 K-9 자주포의 성능에 만족한 우리 군은 1999년부터 현재까지 1,000문에 가까운 K-9을 일선 부대에 배치해 주력 자주포로 운용하고 있으며, 지난 2010년 연평도 포격 도발을 통해 첫 실전 경험을 쌓았다. 당시 해병대의 K-9 자주포는 별다른 관측자산이 없었음에도 카탈로그 데이터보다 우수한 포격 정밀도를 보이며 세계 각국 포병 관계자들의 이목을 끌었다. 그 이전까지 세계 무기 시장에 출시된 자주포 가운데 가장 주목받던 제품은 독일의 PzH-2000이었다. 독일육군의 차세대 자주포로 개발된 이 자주포는 개발된 지 20여 년이 넘었지만, 현재까지도 현존하는 모든 자주포의 성능을 압도하는 막강한 성능을 가지고 있었다. 이 자주포는 40km라는 긴 사거리를 가진 것은 물론, 1분에 12발이라는 경이적인 발사속도와 우수한 정밀도를 가지고 있는데 이러한 우수성 때문에 세계 각국이 이 자주포의 도입을 희망했지만, 문제는 가격이었다. 2010년 호주 육군의 차기 자주포 도입 사업에 제시된 PzH-2000 자주포의 가격은 1문에 180억 원. 당시 입찰했던 K-9 자주포와 K-10 탄약보급장갑차 1세트 가격이 60억 원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상식을 뛰어넘는 엄청난 가격이 아닐 수 없다. 신형 자주포 도입을 검토하는 나라가 중국제나 러시아제를 배제한다면 고려할 수 있는 자주포는 독일의 PzH-2000이나 영국의 AS90, 프랑스의 시저(Caesar), 미국의 M109A6 등이 있는데, PzH-2000과 AS90은 100억 원이 넘는 가격이 문제이고, 시저는 본격적인 자주포가 아닌 트럭에 곡사포를 올려놓은 간이 자주포이며, M109A6는 경쟁 모델들보다 성능이 떨어지는 문제점이 있었다. 이러한 시장 상황에서 세계 최고의 자주포인 PzH-2000에 준하는 성능을 가졌으면서 가격은 PzH-2000의 1/4에 불과한 K-9 자주포는 대단히 매력적인 대안이었다. K-9 자주포는 PzH-2000보다 포탄 발사 속도가 약간 뒤질 뿐 대부분 성능에서 대등 또는 우월하며, K-10과 패키지로 운용될 경우 PzH-2000을 능가하는 작전 능력을 발휘할 수 있으므로 각국은 경쟁적으로 K-9에 러브콜을 보내기 시작했다. 첫 번째 고객은 터키였다. 무기 직도입보다 기술도입을 통한 자체 모델 개발을 선호하는 터키는 10억 달러를 지급하고 K-9의 기술과 부품을 구매해 T-155 자주포를 개발했다. 이 자주포는 터키 육군의 주력 자주포일 뿐만 아니라 중앙아시아와 중동 일부에 수출되기도 했다. 터키 이후에도 구매 문의는 이어졌다. 우선 호주가 PzH-2000과 K-9을 비교 검토한 결과 K-9의 호주형인 AS-9 오지 썬더(Aussie Thunder) 도입을 결정했다. 그러나 이 결정은 호주 국방예산 삭감에 따라 번복되어 호주는 자주포 구매를 포기하고 K-9보다 훨씬 더 저렴한 M777 견인포를 도입했다. 비록 수출에는 실패했지만 PzH-2000과 맞붙은 경쟁에서 K-9이 이김으로써 해외 무대에서 그 우수성을 증명한 것이다. 호주에 이어 폴란드가 K-9 수입 의사를 타진했다. 폴란드는 자체 개발한 크랩(Krab)이라는 자주포가 있었지만, 포탄을 쏘고 나면 차체가 심하게 흔들리는 등 기술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결국 K-9 자주포의 차체를 수입해 크랩 자주포의 포탑을 이식하는 과정을 거쳐 문제를 해결했다. 터키와 호주, 폴란드에 이어 K-9 자주포 구매를 결정했거나 검토 중인 국가는 5개국이 더 있다. 인도가 K-9 VAJRA-T라는 이름으로 100대 도입을 확정 지었으며, UAE는 K-9 도입을 위해 현지 시험 평가를 요청했다. 최근 핀란드가 중고 K-9 40대 판매를 요청했으며, 덴마크와 노르웨이 역시 신형 자주포 도입 사업에서 K-9을 유력한 후보로 검토하는 등 K-9은 이제 아시아와 중동을 넘어 유럽 시장에 상륙,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특히 최근 공개된 시험평가 영상에서 K-9은 일부 경쟁 모델보다 2배 이상 빠른 초탄 발사속도를 보이며 각국 군 관계자들과 군사 마니아들의 호평을 받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최근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된 무기전시회 ‘유로사토리(Eurosatory) 2016‘에 출품된 K-9이 또 한 번의 대박 조짐을 보인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에서 7개국이 K-9 구매 의사를 밝히거나 계약 절차를 밟고 있으며, 특히 일부 국가는 별도의 성능 평가 없이 곧바로 계약을 체결하거나 빠른 도입을 위해 중고 제품 구매를 문의하는 사례도 나오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야말로 ’K-9 자주포 전성시대‘이다. 이일우 군사 전문 통신원(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finmil@nate.com
  • [문경근의 남북통신] 뜨는 신의주와 지는 원산…북한 지역 간 ‘흥망성쇠’

    [문경근의 남북통신] 뜨는 신의주와 지는 원산…북한 지역 간 ‘흥망성쇠’

    서울과 인접한 ‘인천’의 인구가 300만명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조만간 제2의 도시 ‘부산’을 앞지를 기세입니다. 남북이 38선을 경계로 국경을 맞닿아 있는 현 상황에서 항만과 공항을 보유하고 있는 인천은 다른 의미에서 ‘접경도시’이기도 합니다. 특히 중국의 부상은 인천이 부산을 추월할 수 있는 근거로 지목됩니다. ‘14억 인구’, ‘세계의 공장’, 미국과 더불어 ‘G2’로 불리는 중국과 인접하고 있는 인천은 그야말로 ‘복터졌다’는 표현이 적절해 보입니다. 1970~80년대 부산이 일본의 호황과 맞물려 번성했듯이 지금은 인천이 중국‘덕’을 보고 있습니다. 북한에도 일본의 침체와 중국의 부상으로 ‘희비’가 엇갈리는 지역 있습니다. 바로 ‘신의주’와 ‘원산’ 입니다.  뜨는 신의주와 ‘화교·조선족’ 북한의 대외무역에서 90%이상이 중국과의 교역이고, 압록강 철교를 통한 육로 수송인 점을 감안하면 북한 내 대부분의 무역활동이 신의주에서 이뤄진다고 보면 될 것입니다. 북한이 핵 실험을 지속하면서 신의주 인근 황금평, 위화도 등 대표적인 북중 경협 프로젝트들이 모두 중단돼 현재는 괄목할 만한 개발이 없지만, 핵문제가 어느 정도 진전을 보이면 북중 간 사업들은 봇물 터지듯 재개될 것으로 보입니다. 중국이 뜨면서 덩달아 북한에 살고 있는 화교들과 조선족들의 위상도 높아졌습니다. 전세계에 화교들이 안 가있는 나라가 없듯이 북한에도 많은 화교들과 조선족들이 살고 있습니다. 이들 대부분은 1960~70년 중국 ‘문화대혁명’ 때 정권의 핍박을 피해 북·중 국경을 넘어 북한으로 피신한 사람들로 알려져 있습니다. 북한주민들도 1990년대 ‘고난의 행군’ 당시 살기 위해 국경을 넘어 중국으로 간 사람이 3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으니, ‘인생사 돌고 돈다’는 말이 무관치 않아 보입니다. 화교들과 조선족들 대부분은 북·중 국경이 맞닿아 있는 신의주와 룡연, 정주, 선천 등 평안북도를 중심으로 분포돼 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이들은 중국이 발전을 시작한 1990년대 친척방문을 통해 북한과 중국을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는 잇점을 활용해 자연스럽게 보짐장사를 하면서 ‘부’(富)를 축적했습니다. 단동-신의주, 신의주-평양 열차를 이용해 봇짐장사를 하는 화교들과 조선족들이 늘어나면서 점차 그들 중심으로 북한의 경제권이 형성돼 갔습니다. 북한이 국제사회로 부터 대북제재가 강화될수록 역설적이게도 중국과의 정상 교역이나 밀무역을 통한 상거래는 더욱 활발해지고, 화교들과 조선족들의 영향력은 확대됐습니다. 중국에서 ‘부’의 상징은 ‘집’입니다. 중국의 문화를 고스란히 옮겨온 화교들은 신의주에서 정원과 주차장을 곁들인 ‘고대광실’(높은 누대(樓臺)와 넓은 집이라는 뜻으로, 크고도 좋은 집을 이르는 말)에서 살고 있습니다.  화교들과 조선족들이 1990년대는 봇짐장사로 부를 늘려나갔다면, 2000년대 들어서는 식당과 상점 등을 통해 북한 상권을 잠식해 갔습니다. 신의주와 룡연, 정주 등지에서 웬만큼 큰 식당들은 화교, 조선족들과 북한 당국간의 합자형태로 인해 생겨난 식당들이었습니다. 신의주를 터전으로 삼고 평양과 남포 등 대도시로 진출한 이들은 고리대금업, 부동산 개발·임대, 당구장, 노래방, 사우나, 오락실 등은 물론 운수업, 광물거래, 자원개발 등 문어발식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중국경제가 침체되지 않는 한, 북한 내 화교들과 조선족들의 영향력은 지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지는 원산과 ‘재일동포’ 원산은 남한의 부산과 마찬가지로 항구도시이자 북한과 일본을 연결하는 ‘접경도시’입니다. 원산항을 중심으로 길게 뻗은 항구도시는 1980년대 세워진 북한 내 지방도시 중 가장 화려한 경관을 자랑합니다. 현재는 낡은 아파트들과 상가들이 줄비하지만 과거에는 평양 다음으로 부유한 도시였습니다.  원산은 북한에서 평양을 제외하고 재일동포들이 가장 많이 살고 있는 지역입니다. 그러나 일본이 2006년 북한인권법을 시작으로 독자 대북제재에 나서기 전까지 일본과 북한을 왕래하던 여객선 ‘만경봉 92호’는 재일동포들의 생명줄이었습니다. 이 배는 사람만 실어나른게 아니었습니다. 일본에 남겨진 재일북송동포 가족들은 가난한 조국에서 고생하는 형제·자매, 친척들에게 갖가지 생필품과 돈을 보내줬습니다. 수많은 물자들이 이 배를 통해 원산항에 도착해 북한전역으로 펴져갔습니다. 또한 일본의 중고제품은 중국 동북 3성 지역에서도 수요가 높아, 북한은 일본과 중국의 중간 교역국가 역할도 했습니다. 덩달아 원산에 거주한 재일동포들은 일본에서 보내온 물자들을 팔아 생계를 꾸려갔습니다. 일제 물건은 북한에서도 ‘최상품’으로 취급돼 고가에 거래됐습니다.  2000년대는 화교와 조선족의 세상이었다면, 1980~90년대는 재일동포들이 ‘부의 상징’이었습니다. 도요타, 니싼, 마즈다, 미쓰비시 등 일제차를 타고, 화려한 옷을 입은 재일동포들은 북한주민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습니다. 북한 주민들은 재일동포들이 부러운 나머지 “우리 가족이나 친척들은 일제시대 때 왜 일본에 안갔나”며 불평하기도 했습니다. 1970~80년대 일본 내 도쿄, 오사카 지역에서 ‘빠칭꼬’(일본의 도박 게임)와 ‘야끼니꾸’(일본식 불고기), ‘다다미’(일본식 주택에서 쓰는 돗자리) 등 사업을 통해 큰 돈을 번 재일조선인들 중 일부가 북한에 있는 가족들과 합작사업을 하면서 점차 북한에도 부자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평양시 중구역에 거주했던 재일동포 배모씨는 1990년대 기준으로 400만 달러(약 45억원)를 ‘조선합영은행’에 예치하기도 했습니다. 재일동포들 중 일부는 일본에서도 비싸기로 소문난 ‘도요다 크라운’ 승용차를 타며, 평양과 원산 등지에 2층 규모의 서양식 단독주택을 짓고 살 정도였습니다. 또 평양과 원산의 고급식당과 호텔 등지에서 돈을 펑펑 쓰며 사치스럽게 살았습니다.  그들 중 몇몇은 ‘만경봉 92호’를 통해 일본에서 중고 자동차, 오토바이는 물론 자전거, TV, 냉장고, 세탁기 등 가전 제품을 들여와 높은 값을 받고 팔아 이익을 챙겼습니다. 특히 일본에서 가장 수요가 높은 ‘기모노’(일본 전통옷)를 들여와 북한 노동자들로 하여금 옷깃이나, 소매에 ‘수예’를 놓은 뒤 일본에 되파는 방법으로 큰 돈을 버는 재일동포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북한의 핵 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 일본인 납치문제에 반발한 일본이 독자제재를 시작하면서 북한에서 살고 있는 재일동포들에게도 시련이 찾아왔습니다. 일본정부는 우선 재일조선인들이 북한 내 가족, 친척들에게 보내는 대북송금을 차단했습니다. 북한 선박의 입항금지는 물론 교역도 중단했습니다. 그러자 직격탄을 맞은 곳이 원산입니다. 원산 주민들 대부분이 일본과의 무역을 통해 먹고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대일 관련 운송, 가공, 판매, 외환거래 등 연계사업들이 하루 아침에 도산하게 되면서 원산은 부유한 도시에서 가난한 도시로 전락했습니다.  일본과의 무역이 중단되자 원산을 중심으로 살던 재일교포들도 길고 긴 ‘동면’에 들어갔습니다. 일부는 그동안 모아둔 재산으로 다른 사업을 통해 현상 유지에 나섰으나, 대부분은 일본에서 주는 돈을 받고 살던 습관을 버리지 못해 생활고에 찌들게 됐습니다. 북한 내 재일동포들은 ‘오매불망’ 일본의 대북제재 해제를 바라고 있지만, 그 바람은 아득히 멀어 보입니다.   앞으로 주목해 볼 지역은? 북한에서 주요 거점으로 뜰 지역은 평양을 제외하면 우선 ‘나진-선봉’(나선)과 ‘남포’가 될수 있습니다. 나선과 남포 모두 항구 도시로서 이미 북한에서는 특구로 지정돼 있습니다. 북·중·러·일 모두와 교역할수 있는 지리적 이점을 가지고 있는 나선은 향후 한반도에서 가장 활발한 무역 거점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나선의 주변에는 청진과 혜산 등 대도시들이 있어 인구 흡수 측면에서도 다른 곳보다 유리할 전망입니다. 일각에서는 나선에 중국과 러시아, 일본 관광객을 상대로 카지노를 비롯한 복합리조트를 건설할 경우 막대한 경제적 이익을 거둘 것이란 전망도 내놓습니다. 실현 여부는 역시 북핵 문제의 진전 여부에 달려 있을 것입니다.  남포 역시 평양과 인접해 있는 항구 도시로 남한의 인천과 비슷한 환경입니다. 바다와 수도를 잇는 항구도시로서 평양과도 2개의 고속도로로 연결돼 접근성 측면에서도 다른 지역보다 유리합니다. 북한 내 몇 안되는 특급시로 인구면에서도 평양 다음으로 많습니다. 정확한 인구는 파악되지 않지만 약 80만 정도로 알려졌습니다. 남포는 정련소, 제강소를 시작으로 철강, 유리, 조선, 화학공업이 발달했습니다. 남포는 현재는 북한 내에서도 유리, 기계, 유색 금속류 중심 산업 지역입니다. 이미 남한의 대우그룹이 세운 남포공단 등 합작기업을 한 경험도 있어, 앞으로 남북 간 경제협력이 활성화 될 경우 첨단 산업단지로 손색이 없습니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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