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생포
    2026-04-12
    검색기록 지우기
  • CIA
    2026-04-12
    검색기록 지우기
  • PCR
    2026-04-12
    검색기록 지우기
  • PB
    2026-04-12
    검색기록 지우기
  • 3-0
    2026-04-12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679
  • 美 아프간 공격/ ‘부시독트린’왜 나왔나

    [워싱턴 백문일특파원] 공격의 목표가 바뀐 것일까, 아니면작전계획에 차질이 생긴 것일까. 아프간 공습이 개시되면서 부시 행정부가 오사마 빈 라덴에 대한 언급을 극도로 자제하고 있다.대신 내용상 전혀 새로울 게 없는 ‘부시 독트린’을 전면에 내세우기 시작했다.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수차례 강조한 “테러세력을 지원하는 단체나 나라는 미국의 적이 된다”는 식상한 내용이다. ‘생사불문’하고 빈 라덴을 정의의 심판대에 세우겠다던전시내각이 갑자기 전쟁교본에서나 봄직한 ‘독트린’을 들고나온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무엇보다도 빈 라덴에공격 초점을 맞출 경우 부작용이 우려되기 때문이다.한마디로 말해 잡을 수도,그렇다고 방치할 수도 없는 상황에 부닥쳤다. 워싱턴의 군사소식통은 9일 빈 라덴을 조기에 사살하거나생포할 경우,미국은 전쟁을 중단하라는 국제적 압력에 당면할 것이라고 밝혔다.확전을 바라지 않는 국제사회는 아프간공격의 목표가 빈 라덴의 제거이며, 추가적인 테러와의 전쟁은 군사행동이 아닌 외교·정보전 등으로 충분하다는 시각이다.빈 라덴이 당장 제거될 경우 이슬람권의 반발과 추가 테러공격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될 게 뻔하다. 반면 미국은 빈 라덴을 1차 목표로 세웠지만 아프간에 근착된 추종세력과 아랍권에 포진한 테러단체들을 완전히 뿌리뽑으려 한다.빈 라덴이 모습을 드러내면 당연히 제거하겠지만 이로 인해 전쟁의 최종목표까지 지장을 받아서는 안된다고 본다. 또한 지상군을 투입하더라도 40명의 무장경호원과 3,000여명의 병력을 거느린 빈 라덴을 제거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도 고려해야 했다.소재파악이 정확한지도 불투명하며,빈 라덴이 산악지대의 은신처에 숨어 있을 경우 찾는 데만 수주일이 걸릴 수도 있다.빈 라덴의 추적이 소기의 성과없이 해를 넘길 경우 전시내각은 ‘전쟁무용론’에 시달리며 국내외 지지를 상실할 가능성이 크다. 반미·반전 시위가 예상외로 크게 확산되자 부시 대통령은전쟁의 목표가 빈 라덴에 국한된 게 아니라 테러세력과 이들을 지원한 국가들임을 다시 규정할 필요가 생겼다.8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자위권 차원에서 다른 조직이나 국가에 대한 추가행동이 필요하다”고 밝힌 것도 당장 확전에나선다기보다 조기 종전론에 미리 족쇄를 채우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그러나 부시 독트린이 확전 가능성을 시사,오히려 반전론을 확산시키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아직 대내외적으로 전쟁에 대한 지지가 높지만 동맹국내에서조차 평화단체 등을중심으로 반전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동시에 독트린의 대두가 전시내각 내부에서 군사작전에 대한 완전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음을 내포할 수도 있다. mip@
  • 美 아프간 공격/ 뉴욕 최고경계령 ‘오메가’ 선포

    ●美 후속테러 초긴장. 미국의 아프간 공습으로 미 전역이 다시 테러 공포에 휩싸였다. 오사마 빈 라덴의 테러조직 알 카에다가 재보복 차원에서추가 테러를 가할 가능성이 다분하기 때문이다. 실제 최근미 정부의 한 정보 관계자는 의회에서 “추가 테러 가능성이 100%”라고 예상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미국인들의 테러 공포가 얼마나 큰지는 7일 예정됐던 에미상 시상식이 53년만에 처음 취소된 사태만 봐도 알 수있다.미국의 갑부들은 방탄차량을 구입하고 자녀들이 다니는 사립학교의 보안점검을 의뢰하는 한편,사립탐정을 고용해 정원사나 유모,요리사의 신원조회까지 벌이는 등 ‘집단적 히스테리’ 증상까지 보이고 있다. 미국인들은 대도시에 대한 생화학무기 공격과 민간 항공기에 대한 스팅어 미사일 공격은 물론,옷가방 속에 감춰진핵폭탄 폭발 가능성까지 우려하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미 주요 도시의 대형 경기장과 공항의 보안당국은경찰 헬기와 전투기까지 동원,경비를 강화하고 있다.군사시설과 핵발전소 및 생화학관련 시설도 경비수준을높였다. 특히 지난 번 테러를 당했던 뉴욕시는 사상 처음으로 최고 비상단계인 ‘오메가 상태’에 들어갔으며 연방수사국(FBI)이 위치한 연방법원청사 주변에 대한 통행을 엄격히통제하고 있다.또 다리와 터널을 통해 도시로 들어오는 차량을 대폭 규제하고 있다. 루돌프 줄리아니 뉴욕시장은 “뉴욕시가 봉쇄되거나 폐쇄되지는 않았다”면서도 추가 테러의 대상이 될 수 있는 ‘민감한 지역’에 무장경찰과 방위군을 배치했음을 시사했다. 수도 워싱턴 경찰은 국무부 청사 앞 통행을 차단했으며,딕 체니부통령은 전시체제중 대통령과 부통령의 신변 분리계획에 따라 모처로 이동한 것으로 전해졌다.그동안 제2의테러대상으로 우려돼온 로스앤젤레스와 샌프란시스코 등서부지역 주요 공항에는 이미 지난 5일부터 무장 주방위군이 배치돼 승객들의 소지품을 검색하고 주변 순찰을 강화하고 있다. 2002년 동계올림픽 개최지 솔트레이크시티 경찰은 경기장등 주요 시설에 대한 보안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보스턴 소재 매사추세츠주 의사당에는 3개 출입구를 제외한모든 문이 폐쇄되고 출입구엔 금속탐지기와 X레이 투시기가 설치됐다.미주리주 경찰도 주의사당 건물을 폐쇄했다. 이에 대해 브루클린 연구소의 국방분석가인 마이클 오핸런은 “지난 9월11일 테러이후 경계태세가 강화되긴 했으나,무수히 많은 목표에 대해 가해질 수 있는 수많은 테러공격을 막기 위한 실질적 진전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한편 부시 행정부의 아프간 공습은 일단 미 국민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는 것으로 나타났됐다.각종 여론조사에서미 국민 10명 가운데 9명 이상이 공격을 지지하는 것으로조사됐다. 워싱턴 포스트와 ABC방송이 8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94%가 군사행동을 지지하고,부시 대통령의 위기대처 방식에 찬성했다. 10명 중 8명은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 또는 생포하기 위한 지상군 투입을 지지했으며,아프간 집권 탈레반 정권을무너뜨리기 위한 미군 파병에도 찬성했다.응답자의 80%는이번 공습이 장기간 지속될 전쟁의 시작이라고 전망했다. 김상연기자 carlos@
  • “CIA, 라덴 제거위해 특수부대 훈련”

    [워싱턴 연합] 미중앙정보국(CIA)이 지난 1999년 오사마빈라덴을 생포 또는 암살하기 위해 약 60명의 파키스탄 정보장교들을 비밀리에 훈련시켰다고 워싱턴포스트가 3일 보도했다. 이 작전은 나와즈 샤리프 당시 파키스탄 총리와 파키스탄정보 책임자,클린턴 미 행정부간에 수립된 것으로,미국은그 대가로 파키스탄에 대한 제재조치를 해제하고 경제원조를 제공하기로 약속했다고 워싱턴포스트는 익명의 당시 관리의 말을 인용해 전했다. 이 작전 계획은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 있는 빈 라덴의 훈련소를 순항 미사일로 공격한 지 12개월이 채 못돼 세워진것이나 샤리프 정권이 군사쿠데타로 전복되는 바람에 유보됐다고 신문은 말했다. 당시 파키스탄 특수부대는 1999년 10월까지 아프간에 잠입해 빈 라덴을 공격할 준비가 돼 있었다고 포스트는 전했다. 이 작전은 미국이 대규모 폭격, 특수부대 동원 등 폭넓은군사 행동을 고려하고 있다고 보도된 것보다 훨씬 더 강력한 빈 라덴 제거 노력이었다고 신문은 분석했다. 한편 포스트는 별도의 기사에서 수단이 1996년 봄 빈 라덴을 체포해 사우디아라비아에 수감하는 방안을 미국측에 제의했으나,당시 클린턴 행정부가 사우디를 설득하는 데 실패해 무산됐다고 말했다.클린턴 행정부는 당시 빈 라덴을 미국 법정에 기소할 혐의도 부족했다고 신문은 덧붙였다. 수단은 1996년 5월 빈 라덴을 아프간으로 추방했다.
  • “학자금 대출도 인터넷서”

    대학생들의 2학기 등록을 앞두고 인터넷 포털사이트와 금융업체가 손잡고 학자금 대출상품을 앞다퉈 내놓고 있다.대출금리가 상대적으로 낮아 학부모와 학생들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대학생포털 젝시캠퍼스(www.xy.co.kr)는 금융포털 웰시아(www.wealthia.com)와 함께 삼성생명·동부신용금고·한솔신용금고의 학자금 대출상품을 판매한다.금액이 작으면 보증인 없이도 대출이 가능하다. 한국장학정보㈜의 스콜라119(www.scholar119.com)와 라이코스코리아(e-loan.lycos.co.kr)는 삼성캐피탈의 학자금 대출서비스를 제공한다.최고 1.5% 할인된 금리로 학기당 500만원까지 대출해준다.이밖에 대학생포털 칼리넷(www.collenet.com)은 골드신용금고·LG캐피탈,다음(www.daum.net)은삼성캐피탈의 인터넷 학자금 대출서비스를 제공한다. 김미경기자
  • 울산 장생포에 고래전시관

    우리나라 고래잡이의 전초기지였던 울산시 남구 장생포동에 고래전시관이 들어선다. 울산시 남구청은 최근 행정자치부로 부터 7억원의 고래전시관 건립 예산을 교부받아 남구 장생포동 장생포초등학교옆 공터에 내년까지 고래전시관을 짓기로 했다고 13일 밝혔다. 전시관은 지상 2층 연면적 660㎡ 규모로 고래뼈와 고래잡이 도구,고래와 관련된 해양자료가 전시될 예정이다. 울산 강원식기자 kws@
  • 8월의 호국인물 김용식일병

    전쟁기념관은 30일 국군 창설 이래 병사로는 최초로 태극무공훈장을 수상한 전쟁영웅 김용식(金龍植) 육군 일등병을 ‘8월의 호국인물’로 선정했다. 1931년 2월8일 경기도 옹진군에서 출생한 김 일병은 6·25전쟁 발발 직전인 50년 5월 자원 입대,수도사단 17연대 3대대 9중대에 배치된지 1개월만에 최전선에 투입됐다.이어 8월 낙동강 전선의 비학산 전투에 참가,돌격작전의 선봉에서서 수류탄과 대검으로 군관 1명을 포함,15명의 적을 사살,생포하는 공을 세웠다. 김일병은 같은해 9월 19일 경북 안강 전투에서 척후병으로 정찰중 북한군의 만행을 보고 격분,홀로 적 6명을 사살하고 장렬히 전사했다. 황해도 옹진군 강령초등학교와 옹진중학교 재학 시절 줄곧 반장을 맡으며,리더십과 의협심이 뛰어났던 그는 전장에서도 앞장 서는 등 불퇴전의 용기를 보여줬다. 정부는 살신보국 정신을 기리어 1계급 특진과 함께 태극무공훈장을 추서했으나,유족이 없어 전달하지 못한채 보관해오다 이번에 호국인물로 헌양했다. 노주석기자 joo@
  • 동해안 고래 ‘수난’

    경북 동해 연안에 서식하는 고래가 수난을 겪고 있다. 6일 포항해양경찰서에 따르면 고래잡이가 금지된 80년대 중반 이후 동해 연안에 서식하는 고래 수가 급증하면서 어민들이 바다 속에 쳐놓은 정치망과 자망,통발 등 각종 그물에 걸려 질식사하는 고래가 매년 늘고 있다. 특히 일부 어민들은 작살 등을 이용,고래를 불법 포획하고있어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최근 2년여간 그물 등에 걸려 질식사한 고래는 99년 93마리(밍크고래 47·돌고래 46마리),지난해 95마리(〃 43·〃 49마리,기타 3마리),올들어 현재까지 82마리(〃 54·〃 25,〃3마리) 등 모두 270여마리나 된다.이 가운데 일부는 어민들에 의해 잡힌 것으로 조사됐다. 실제로 지난달 29일 경주 감포 앞바다에서 울산 장생포항소속 선장 이모씨(45)가 조업중 길이 4m 크기의 밍크고래 한 마리를 작살로 불법 포획,경찰에 구속되는 등 올들어 3명이 구속됐다. 이들 고래가 수산시장 등을 통해 위판될 경우 밍크고래는마리당 가격이 최소한 1,000만원,돌고래는 100만∼200만원선을 호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우리나라는 국제포경협회(IWC) 결정에 따라 86년 1월부터 고래잡이가 전면 금지됐으며,고래를 포획 또는 사살할경우 3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돼 있다. 포항 김상화기자
  • 유조선 폭발·침몰… 9명 사망·실종

    15일 오전 9시55분쯤 경남 거제시 남녀도 북동쪽 5마일 해상에서 파나마 선적 유조선 P-하모니호(5,544t급·선장 이창무·44·서울 서대문구 홍제동)에서 연료탱크 청소중 발생한 것으로 보이는 유(油)증기폭발사고가 일어나 2항사 심경철씨(25·서울 동작구 노량진동) 등 선원 3명이 사망하고 선장 이씨 등 선원 6명이 실종됐다. 사고선박은오전 10시30분쯤 침몰했다. 해경과 해군 등은 구명정에 타고 있던 여자 실습생 김영은씨(22·경남 함안군 가야읍 현곡리) 등 선원 16명 가운데 7명을 구조하고 심씨등 사체 3구를 인양했다. 또 실종 선원 6명에 대한 수색사업을 벌이는 한편 정확한 폭발원인을 조사중이다. SK해운이 세낸 사고 선박은 이날 오전 4시55분쯤 울산 장생포부두에서 출항,전남 여수항으로 항해중이었다. ■사망자 ▲심경철▲1기사 신기범(54·서울 마포구 아현1동)▲갑판원감의식(37·부산 서구 서대신동)■실종자 ▲이창무▲1항사 이종식(32·부산 해운대구 좌동)▲2기사이승호(24·전남 목포시 상동)▲갑판장 박종식(44·인천 남구 주안동)▲갑판원 장일병(56·부산 수영구 망미2동)▲기관원 최상봉(61·인천 남동구 간석1동)부산 이기철기자 chuli@
  • 외교가 사람들/17년 이어온 한·일 학생포럼

    “서로에 대한 오해나 불신,함께 토론하고 생활하면서 줄여나가요” 올해로 17년째를 맞는 한·일학생포럼(kjsf.woorizip.com)은 한국과 일본 대학생들의 순수 민간외교클럽.지난 86년 ‘한·일 관계와 언론 및 한·일 경제관계’라는 주제로 첫 포럼이 개최된 이래 매년 새로운 주제의 포럼이 열리고 있다. 이들이 지향하는 목표는 바람직한 양국관계 설립에 도움이 되겠다는 것.‘포럼’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학술교류 활동을 주로 한다.매년11월에 선발된 양국 40명의 회원들은 본행사가 열리는 8월까지 상대국 리서치 파트너와 함께 공통주제를 정해 연구하게 된다.독도문제,한·일어업협정,정신대문제 등 민감한 주제들도 마다하지 않는다. 한일학생포럼 회원들이 가장 기다리는 것은 8월 한국 혹은 일본에서 열리는 본행사다.14박 15일간의 합숙을 통해 서로의 생활과 문화를배우게 된다.이 기간 중에는 심포지엄과 토론 등 딱딱한 학술교류 뿐 아니라 역사유적을 함께 돌아보는 필드트립,전통 문화를 회원들이직접 준비해 보여주는 문화의 밤 등이 펼쳐진다.이를 위해 회원들은방학과 학기 중 짬짬이 시간을 내어 사물놀이,봉산탈춤 등을 정성껏준비한다.그러나 본행사의 하이라이트는 각 회원집에서 가족과 함께생활하는 민박이다.3박4일 동안 한국·일본 전국 각지에 있는 집으로 흩어져 서로의 실생활을 배우게 된다. 한·일학생포럼은 연령·학년 제한없이 국제관계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간단한 인터뷰와 리포트 제출을 통해 참가할 수 있다. 단,자신의 생각을 영어로 논리정연하게 말할 수 있을 정도의 영어실력이 필요하다.모든 과정이 영어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이진아기자
  • 울산 초등생 체내 중금속 급증

    울산지역 초등학생들의 몸속 중금속 농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것으로 나타났다. 또 전원지역 초등학생들의 몸속 중금속 함유량이 해마다 크게 늘어공단지역 초등학생들의 함유량에 육박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울산시는 6일 울산지역환경기술개발센터에 의뢰해 공단지역인 장생포(49명)·선암초등(101명)과 전원지역인 언양초등(99명) 등 3개 초등학교 학생 249명을 대상으로 지난 7월 10∼14일 ‘어린이 건강평가’를 실시한 결과 평균 중금속 농도가 97·99년 1·2차 조사때보다높게 나타났다고 밝혔다.그러나 정상인의 허용기준치를 넘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조사결과 장생포초등학생들의 경우 중독되면 정신착란과 빈혈 등을일으키는 납은 1차 조사때 혈중농도 7.96㎍/㎗에서 2차 6.40㎍/㎗으로 줄었다가 올해 다시 7.53㎍/㎗으로 높아졌다. 뼈를 손상시켜 이타이 이타이 병을 일으키는 카드뮴도 요중에 1.04㎍/ℓ에서 0.96㎍/ℓ으로 다소 낮아졌다가 1.49㎍/ℓ으로 높아졌다. 근육약화와 구토 등을 유발하는 비소는 1,2차때 요중 5.17㎍/ℓ로변동이 없다가 8.83㎍/ℓ로 높아졌다. 선암초등학생들에게서는 납이 1차 4.39㎍/㎗,2차 4.89㎍/㎗,3차 7.11㎍/㎗로 꾸준히 높아졌다.카드뮴은 1.16㎍/ℓ에서 1.09㎍/ℓ으로 떨어졌다 다시 1.83㎍/ℓ으로 높아졌다.비소도 1차 4.40㎍/ℓ,2·3차 4.60㎍/ℓ로 높아졌다. 특히 전원지역인 언양초등학생들도 1·2·3차 세차례의 조사결과 납 농도가 3.94㎍/㎗,4.75㎍/㎗,7.19㎍/㎗ 등으로 갈수록 증가,공단지역 초등학생들과 거의 차이가 없었다.카드뮴과 비소도 각각 1차 0.74㎍/ℓ에서 2차 1.29㎍/ℓ,3차 1.48㎍/ℓ로,1차 2.25㎍/ℓ에서 2차 4. 75㎍/ℓ,3차 7.07㎍/ℓ 등으로 크게 늘어났다. 다만 전체 학생들에 대한 세차례의 건강평가 결과 미국질병관리센터의 혈중 납 허용농도(10㎍/㎗)나 세계보건기구(WHO)의 요중 비소(30㎍/ℓ) 및 카드뮴(2㎍/ℓ)기준은 넘지 않았다. 울산지역환경기술개발센터는 “3차례 조사 결과만으로 공단지역 오염환경이 주변 학생들의 몸속 중금속 축적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정확하게 판단할 수 없다”면서 “공단지역과 전원지역 초등학생들의 중금속 함유량이 거의 차이가 없는 만큼 울산 전역을 대상으로 대기 및 토양 등에 전반적인 환경조사 및 건강조사가 주기적으로 실시돼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울산 강원식기자 kws@
  • [해외 항일전적지를 찾아서] (18)러시아 하바로프스크·이르쿠츠크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침대열차를 타고 밤새 15시간을 달려 새벽녘에하바로프스크에 내렸다.800㎞를 북상한 까닭으로 기온이 뚝 떨어져입김이 허옇게 퍼져나갔다.어디 따뜻한 수프라도 먹을 곳이 있을까하고 몸을 움츠린 채 두리번거리는데 역전 광장에 동상 하나가 아침햇살을 받으며 우뚝 서 있다.17세기 중반 이곳을 탐험한 하바로프였다.그래서 지명도 그렇게 붙여진 모양이다. 하바로프스크는 우수리강과 아무르강의 합류지점에 자리잡고 있다. 예스런 건축물들이 훌륭하고 강변을 따라 만들어진 공원의 산책길도아름답기 그지없다.인구가 60만명밖에 안 되지만 러시아의 극동 경영중심지로서 대통령 대리가 상주하고 있다.이 도시 곳곳에 우리의 항일투쟁 자취가 남아 있다. 만주와 러시아를 오가며 투쟁하던 이동휘(李東輝)는 1918년 2월 하바로프스크로 와서 볼셰비키 혁명의 완수를 다짐하는 한인혁명가회의에 참석했다.이 자리에서 볼셰비키 측으로부터,한인들이 러시아 혁명투쟁에 참가한다면 그 대가로 독립운동을 지원하겠다는 제안을 받았다.그리하여 그는 3월28일 유동열(柳東說)·김알렉산드라 스탄케비치등과 더불어 한인사회당을 창당하고 위원장에 취임했다. 한인사회당은 연해주 내 한인 유격대를 통합하고 힘을 집중시켰다.이동휘가 이른바 상해파 공산당의 거두로서 이르쿠츠크파와의 알력을 조정하지못했고 그 결과로 자유시 참변이라는 비극을 가져왔지만 한인사회당이 항일투쟁에 끼친 영향은 지대했다. 김알렉산드라는 러시아 혁명의 완성이 조국 독립의 첩경이라는 확신을 가졌던 열정적인 여성투사였다.1918년 2월 한인혁명가회의를 발기하여 성사시켰고 그것을 발전시켜 한인사회당을 결성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그해 4월 일본이 무장간섭군이라는 명분으로 연해주에출병하자 적위군 편에 서서 무장투쟁에 나섰다. 하바로프스크가 적에게 포위되자 300∼400명의 대원을 이끌고 탈출하다가 러시아 백군에체포당했다.“혁명군의 승리만이 조국 독립을 돕는다는 확신 때문에수많은 조선인이 적위군에 가담해 일본군과 백군을 상대로 싸우는 것이다.내가 이제 13보 걷는 것은 조선의 13도를 의미한다.곧 조국 13도에 자유와 행복이 깃들일 것이다.” 최후 발언을 하고 열세 걸음을걸은 그녀는 절벽 위에서 총살되어 벼랑 아래 아무르강으로 떨어졌다. 취재팀은 이 곳 주재 한국교육원(원장 양형렬)을 찾아가 컵라면과커피로 아침을 때웠다.그런 다음 처음 찾아간 곳이 한인사회당 창당현장이었다.무라브요바 아무르스크 22번지에 있는 그 건물 외벽에 김알렉산드라의 얼굴 부조가 붙어 있었다.원동('遠東)중앙은행이 들어있었다는데 내부 수리중이었다.차를 몰아 그녀가 처형된 ‘우쩌스(절벽)’로 갔다.시립 문화휴식공원의 한 쪽으로 거무튀튀한 바위 절벽이었는데, 처형 현장에는 그녀를 추모하는 듯한 순백색의 전망대가서 있다.김알렉산드라가 유언을 남기고 떨어진 벼랑 아래는 아무르강의 파도가 힘차게 꿈틀거리고 있다.멀리 강 대안에 중국 땅이 보인다.취재팀이 숙소로 잡은 인투리스트 호텔 앞에 있는 역사박물관에 김알렉산드라의 유물을 찾으러 갔다.나나이·야쿠트·에벤키 등 시베리아 소수민족 자료와 동식물 표본,러시아 혁명 투쟁에 관한 사료가 충실히 전시된 이 박물관에 사진 몇 점과 일기,편지 등이 있었다.취재팀은 1937년 강제이주 직전 반발을 막기 위해 한인지도자들을 처형해매장한 묘지 자리(칼 마르크스 거리 입구), 정찰대를 이끌고 일본군과 싸우다가 전사한 김유경(러시아 표기법 때문에 김유천으로도 읽힌다) 거리,조명희(趙明熙) 시인이 살았던 집을 돌아보았다.하바로프스크에는 그밖에 70㎞ 북쪽 야스코에 마을의 ‘붉은군대 제88저격여단’에 배속되었던 김일성과 만주 항일유격대의 유적이 있다. 취재팀은 이튿날 러시아 국내선 항공기를 타고 마지막 목적지 이르쿠츠크로 떠났다.비행시간이 3시간이 넘는 먼 거리였다.이르쿠츠크는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에 이르는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중간지점이다.제정 러시아 때 데카브리스트의 폭동 주동자들을 실어 보낸이후로 유배지 구실을 했는데, 우리의 항일 운동가들도 유배되거나이 곳 감옥에 수감된 적이 있다.그 감옥은 지금도 남아 있다. 한국 공산주의 운동사를 이해하는 사람은 ‘이르쿠츠크 공산당’을떠올리게 마련인데,이동휘가대표하는 상해파 공산당과 주도권을 다툰 일파를 말한다.이 도시에는 그들과 관련된 현장이 있다.그리고 이르쿠츠크파의 편을 들어,상해파에 동조하는 우리 독립군단을 압살하여 이른바 ‘자유시 참변’을 연출하고 동조세력과 투항자들을 이끌고 이 도시로 온 갈란데시베리 장군이 주둔한 5군단 거리도 있다.이르쿠츠크 공항 청사 밖으로 나가자 기온은 빙초산처럼 차가웠다.더구나 공항청사를 촬영하다가 공안요원의 경고를 받아 마음은 더 추웠다.마음씨 좋아 보이는 60대 초반의 택시기사를 골라잡아 취재에 나섰다.처음 찾아간 곳은 고려공산당 1차 대회장소.레닌가(街) 23번지에있는 옛 ‘인민의 집’ 극장은 붉은 벽돌로 된 3층 건물인데 아직도장려한 아름다움을 갖고 서 있었다.이 곳에서 1921년 5월에 오하묵·최고려 등의 주도로 열린 대회는 상해파를 제외하고 이르쿠츠크파가요직을 독점함으로써 한 달 뒤의 자유시 참변을 예비하는 불씨를 만들고 말았다. 늙은 택시 기사는 취재팀을 5∼6㎞쯤 떨어진 도시 외곽 바리깟 거리의 교도소로 데려다 주었다.제정 러시아 시절부터 감옥으로 사용되었던 이 곳에는 1921년 자유시 참변 때 포로가 된 수이푼지역 유격대장최영(崔英)을 포함해 400여명의 항일투사들이 갇혀 신음했다. 기록을보면 한인 수감자들이 너무 많아 감방이 넘쳤다고 한다. 1910년 한·일합방 강제체결 직후 이상설(李相卨)과 이범윤(李範允)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체포되어 이 도시로 유배되었었다는 기록도 있는데 이 감옥에 머물렀는지는 알 수가 없다.건물이 낡고 우중충했지만 망루에경비병이 있고 지상에도 동초(動哨)가 보였다.촬영이 문제였다.감옥정면은 달리는 차 안에서,뒷면은 민가 고샅으로 가서 찍을 수밖에 없었다.시내로 돌아가는 길에 문화휴식공원에 있는 그 원망스러운 갈란데시베리 장군의 기념비를 돌아보고 그의 군대가 주둔했던 5군단 거리로 갔다.1873년에 준공되었다는, 찬란하면서도 우아한 아흐로브고프 극장 사거리 길목이었다.이르쿠츠크파에 동조함으로써 갈란데시베리 장군에게 일찌감치 복속한 우리 독립군 부대원과 투항자들 1,745명이 이 거리로 실려와 한인연대로 재편성되었다. 독립전쟁의 영웅 홍범도(洪範圖)는 이 곳에서 러시아 적위군 연대장군복을 입었다. 자유시에서 이르쿠츠크파 편에 섬으로써 자신과 부하들의 목숨을 구했지만 결과는 무엇인가.북만주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전투에서 혁혁하게 싸운 수많은 투사들, 그들은 도와주겠다는 볼셰비키 측의 약속을 믿고 이동해 왔다가 무수히 죽거나 생포당해 이 도시의 감옥에 갇혔다.복속한 사람들도 러시아 적위군이 되어 버렸다.모두 독립전쟁과는 먼 운명을 안게 되었던 것이다.홍범도의 감정이 어찌했을까 상상하며 쓸쓸히 이 거리를 걷는데 뉘엿뉘엿 해가 지기 시작했다.취재팀은 시베리아의 평원으로 떨어지는 낙조를 바라보며 러시아 지역 답사의 수첩을 덮었다. 이르쿠츠크 이원규(소설가·동국대 겸임교수)
  • 국군포로 1명 또 귀환

    국가정보원은 6·25 전쟁 때 북한군에게 억류됐던 국군포로 김준서씨(66·가명)가 가족과 함께 최근 북한을 탈출해 제3국을 거쳐 귀환했다고 27일 밝혔다. 김씨는 51년 7월 국군 7사단 5연대 소총수로 참전중 강원도 태백지구 전투에서 북한군에게 생포돼 함경북도 온성군 강안탄광 등에서 광부로 생활해오다 지난 10월 북한을 탈출했다고 국정원은 전했다. 홍원상기자 wshong@
  • 50~99년 남파공작원 6,446명

    한나라당 김원웅(金元雄) 의원은 7일 통일부 국정감사에서 “지난 50년부터 99년까지 북한의 남파공작원은 6,446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김 의원은 이날 국방부 자료를 인용,“이들 공작원 가운데 3,177명은 생포되고,1,644명은 사살됐으며,275명은 자수했다”고 말했다. 김상연기자 carlos@
  • 오늘 이·팔 정상회담 전망

    자칫 전면전으로 이어질 것으로 우려되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사태가 16일 정상회담 합의로 수습 실마리가 잡혔다.그러나 사태해결을 위한 양측의 시각차가 워낙 커 어느 정도의 성과를 거둘지는 미지수다.15일 레바논의 친이란계 이슬람 과격단체인 헤즈볼라가 이스라엘군 대령 한명을 생포했다고 밝힘으로써 새로운 변수로 대두됐다. ◆전기마련=유엔과 미국 등 국제사회의 적극적인 중재노력과 압력을받아온 양측의 회담 참석 합의로 지난 12일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공격으로 대두된 전면전 위기는 일단은 수그러들었다.아라파트 수반은 그동안 회담참석 전제조건으로 요구해온 ‘국제진상 조사위’구성과 국경지역 봉쇄조치 해제 등 전제조건을 거둬들였다.바라크 총리도 팔레스타인측의 폭력중단 우선 합의 등 조건을 달지 않았다. 두 지도자가 정상회담 제의를 받아들인 것은 현 사태의 지속이 양측 모두에게 더 이상 유리할 것이 없다는 판단에서다. ◆전망= 16일 회의에 거는 기대는 한마디로 ‘제한적’이다.물론 빌클린턴 미 대통령이 14일 밝힌 것처럼‘폭력중단 방안’‘폭력 충돌 재발 방지’‘진상조사’‘중동 평화협상 재개 방안 마련’등 의제들이 다뤄질 예정이다.그러나 현실적으로 기대가능한 성과는 임시 봉합조치라 할 ‘현 유혈사태 종식합의’정도다. 미국의 한 고위관리는 “한걸음 물러나 잠시 폭력사태의 결과에 대해 생각할 기회만 된다하더라도 성공적”이라고 밝혔다.이미 중단된평화협상의 재개는 거론조차 어렵다는 분석이다.이번 회담이 아무런합의없이 실패할 경우 중동사태는 통제불능의 사태로 악활 될 것이란 데는 이견이 없기 때문에 현 사태종식안에는 합의가 이뤄질 것으로보고있다. 그러나 유혈 종식안이 마련된다 해도 그 이후는 불안한 상황.팔레스타인내 과격 단체와 무장저항단체 하마스 등은 정상회담에 격렬히 반대하고 있다.만일 자살폭탄 테러같은 돌발적인 폭력사태가 벌어질 경우,다시 위기국면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아라파트 수반이 하마스 등 무장저항단체구속 요원들의 석방을 승인하고 바라크 총리는 우파인 리쿠드당과의 거국 내각 구성을 선언한것도 이같은 우려를 더하고 있다.팔레스타인 무장저항 요원의 석방은 오슬로협정의 파기를,바라크 총리와 리쿠드당과의 제휴는 기존 평화노선의 포기를 뜻한다. 일부에서는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압둘라 2세 요르단 국왕,코피아난 유엔 사무총장과 함께 이번 회담에 참석하는 클린턴 대통령의레임덕 상태도 회담 성과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분석한다.임기전모양새를 어느정도 갖추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려는 그의 의지에도 불구,분쟁 당사자들에게는 입김이 줄어들 것이란 진단이다. 김수정기자 crystal@
  • 北派공작원 366명 명단공개

    한국전 휴전협정을 전후로 남한이 북한에 파견한 공작원 가운데 일부의 명단이 처음 공개됐다. 국회 통일외교통상위 소속 민주당 김성호(金成鎬) 의원은 2일 북파공작원 양성·파견부대였던 HID(첩보부대) 소속 공작원 가운데 지난53년부터 56년까지 활동했던 HID 1∼3기 366명의 명단을 생존 공작원중 1명으로부터 입수,공개했다. 이 명단은 그동안 비공식적으로만 알려져 온 북파공작원의 실체를 처음 입증하는 물증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 명단은 정보사령부가 ‘종결 공작원 명부’라는 이름으로 컴퓨터용지에 기록한 것으로,53년 처음으로 북파한 HID 교육대 1기생 150명,2기생 144명,3기생 72명의 명단이 수록돼 있다. 명단에는 공작원의 성명,생년월일,본적,공작형태,소속대,채용인,해고인등 북파공작원에 대한 기본적 신상명세 등이 구체적으로 기재돼있다.공작원의 평균 나이는 20대가 27%를 차지해 가장 많았지만 2기생중 이 모씨는 당시 나이가 14세에 불과했으며,김 모씨는 52세로 최연장자였다.공작원들은 전쟁고아,넝마주의,빈농 및 도시빈민 출신으로 소외계층이 대부분이었고,출신 지역별로는 이북출신이 전체의 77%를 차지해 초기 북파공작원들이 월남 피란민 위주로 편제됐음을 보여준다. 김 의원은 “지난 72년 7·4남북공동성명 전까지 북파된 공작원 가운데 실종,사망,생포돼 귀환하지 못한 공작원 수가 7,726명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며 “우리도 북파공작원의 존재를 인정, 생존확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현진기자 jhj@
  • EBS, 3년간 각종 상 받은 다큐 5편 재방송

    방송사 중에서 자연다큐 프로그램은 EBS가 유독 강하다.지난 90년 개국 이후 자연다큐에 많은 정성을 쏟아왔고 박수용·이의호 PD 등 이 방면에 유명한 제작진이 포진해 있기도 하다.EBS가 공사창립을 맞아 지난 3년간 방송된자연다큐 중에서 시청자들의 재방 요청이 많고 이런저런 상들을 수상한 다큐5편을 5일부터 매일 한 편씩 다시 방송한다. ‘물총새 부부의 여름나기’(5일 오후 8시·사진 위)는 ‘자연다큐의 거장’으로 평가받는 박수용 PD의 97년 작품.그 해 한국방송 프로듀서 작품상을받았다. 물총새는 한국의 여름철새로 깨끗한 숲속의 물가에서만 산다.물고기와 양서류 등을 먹고 사는 특이한 식성,화려한 색상에 참새만한 크기 등이 열대 조류로 착각될 정도다.박PD는 부부간,부모와 자식간의 애틋한 사랑이 새에게도 있음을 보여준다.물총새 암수 한쌍이 처음 만나 부부가 되고,깊이 1m의 토굴에 알을 낳고 새끼를 기르는 모든 과정이 담겨져 있다. ‘생명의 터,논’(6일 오후 8시)은 카메듀서(카메라맨과 PD의 합성어)인 이의호 PD의 99년작으로 그해 일본 도쿄에서 열린 지구환경영상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 등을 받았다. 국토의 13.5%를 차지하는 논이 단지 쌀 생산을 위한 공간일 뿐만 아니라 생물들이 나름대로 생존전략을 펼치며 살아가는 중요한 서식지라는 점을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로 나눠 밀도있게 포착,‘소우주’로서의 논을 아름답게담아냈다. ‘야생의 시베리아 호랑이 생포기’(8일 오후 8시·사진 아래)는 98년 8월방송돼 99년 각종 방송관련 상을 휩쓸었다.하나의 생명에 집착하는 박수용PD의 다큐정신이 그대로 녹아있다. 이 프로는 시베리아 타이가지대를 무대로 펼쳐지는 야생 시베리아 호랑이의 추적과정을 기록했다.한정된 식량과 혹독한 추위 속에서 호랑이와 머리싸움을 하며 스키와 도보로 450㎞를 추적,생포한 장면을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이외 우리나라 포유류 중 유일하게 하늘을 날 수 있는 천연기념물 328호 하늘다람쥐의 짝짓기와 새끼를 기르는 과정을 담은 ‘하늘다람쥐의 숲’(7일오후 8시),한반도 연안에 서식하는 고래를 추적한 ‘한국의 고래를 찾아서’(9일 오후 8시)등이 준비됐다. 전경하기자 lark3@
  • 탈출 사육곰 11개월만에 생포

    지난달 30일 충북 진천군 백곡면 구수리 야산에서 발견됐던 곰이 21일 오후9시10분쯤 같은 장소의 13m 높이 낙엽송 위에 있다가 주민과 공무원에 의해생포됐다. 곰은 모내기를 하던 주민들이 새참으로 먹기 위해 논두렁에 둔 빵 등 음식물 냄새를 맡고 농가 근처에 내려왔다가 발견됐다. 문제의 곰은 지난해 6월 충북 진천읍 산계리 김동구씨 사육장에서 도망친 15개월짜리(99년 2월생) 불곰으로 추정되며 키 90㎝,몸무게는 50㎏ 가량에 길이 3∼4㎝의 날카로운 발톱을 갖고 있다.환경부는 이 곰을 진천군과 협의를거쳐 야생 동식물 ‘서식지 외 보전기관’으로 지정된 서울대공원으로 옮겨기를 방침이다. 한편 독립 생활이 불가능할 것으로 보이는 생후 4개월짜리 사육곰이 어미의품을 떠나 11개월 동안 어떻게 야생에 잘 적응하며 살 수 있었는지에 대해관심이 모아지고 있다.생포된 곰은 사육 상태의 비슷한 연령의 곰과 체격면에서 차이가 없는 데다 겨울까지 났기 때문이다. 환경부가 추진 중인 야생 반달곰 복원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김원명 박사는이에 대해 “곰이 발견된 만뢰산은 해발 618m로 학계에 보고된 적정 곰 서식환경(해발 600m 이상의 활엽수 지대)과 유사하고 이 산 일대에는 곰의 먹이로 적당한 도토리 나무 등이 많았기 때문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김박사는 “야생 상태에서 월동기를 지낸 곰은 체중이 최고 30%까지 줄기때문에 새끼 불곰이 먹이를 얻지 못했다면 아사했을 것”이라면서 “사육 곰이 야생에 적응한 첫 사례여서 반달곰 복원 사업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문호영·진천 김동진기자 alibaba@
  • ‘장생포 고래’ 관광자원화

    울산시가 남구 장생포 앞바다 일대 고래 서식지와 회유지를 관광자원화하기로 해 눈길을 끈다. 울산시는 우선 장생포 앞바다 고래의 관광자원화 가능성을 검토하기 위해공무원과 국립수산진흥원 관계자 등 각계 전문가들로 탐사팀을 구성,3일 서식지 실태파악에 나섰다. 탐사 첫날인 이날에는 고래연구 전문가인 국립수산진흥원 김장근 박사와 포경선을 탔던 주민들까지 참여해 천연기념물 제126호인 장생포 앞바다 ‘극경(克鯨·귀신고래)회유면’을 중심으로 1차 조사를 벌였다. 울산시가 구상하고 있는 관광자원화 방안은 유람선을 타고 고래서식지를 관광하는 것과 포경항으로 유명한 장생포 일대를 공원화하는 것,포경선을 타고고래잡이를 재현하는 것 등이다. 울산시 관계자는 “장생포 앞바다의 고래 서식지를 관광자원화하자는 시민들의 건의가 많아 이번에 실태조사에 나서게 됐다”며 “탐사를 통해 고래가많은 것이 확인되면 외국의 사례들을 참고해 구체적 관광자원화 계획을 세워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울산 강원식기자 kws@
  • [대한광장] 민주 기지론

    ‘민주기지론(民主基地論)’이라는 것은 원래 북한에서 전개된 이론으로 북한이 통일을 위한 ‘민주주의 근거지’로서 우선 튼튼한 기반을 구축해야 된다는 것이었다.이것은 1946년 봄­여름 사이에 개념이 잡히기 시작했다.그때부터 50여년이 지난 지금,이제는 남쪽에서 이 개념을 생각할 때가 된 것이아닌가 한다. 북쪽에서는 소군정의 지도하에 토지개혁을 하고 친일파들을 내몰고 이기분자(異己分子)들을 숙청하고 ‘인민정권’을 창출하여 통일에 대비한 ‘민주기지’를 만들려고 노력했으나 현 시점에서의 남쪽에서는 우선 산적한 문제가운데에서 억울한 사람들을 신원하고 지역감정을 해소하는 것이‘민주기지’로서의 선행조건이 되지 않을까 한다. 필자는 일본을 자주 다니면서 부러웠던 것이 딱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국민들 사이에 상호 증오감이 적다는 점이었다.국민 사이에 서로 증오감이 적으면 적을수록,억울한 사람이 적으면 적을수록 그 나라는 강국이다.가난한 나라가 원자탄을 가지는 것보다도 월등히 효과적이다. ‘억울한 사람들’이라는 범주는 상당히 넓지만 그중에서도 6·25 이전에공권력에 의해 억울함을 당한 사람들을 생각해본다.제주도의 4·3사태가 그렇고 문경 석봉리의 한 마을 학살사건이 그렇다.대만에서는 1947년의 2·28사건을 슬기롭게 극복한 것으로 알고 있으며 중국의 처참했던 문화대혁명 뒤처리에 있어서도 대국답게 보상할 것은 보상한 것으로 안다. 그런데 한국은 어떠하였는가?지금에야 해결책을 모색중에 있는 느낌이 있다.너무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근자에 있어 문화방송의 4·3사건 특집들이 진지한 노력이라 생각된다.물론,필자는 ‘억울하게 된 원인’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제공자는 소련과 그 주위라고 지목한다.북한에서의 소련군정은 알다시피 자신들의 노선에 반대되는 세력은 인정하지 않고 당초부터 남한 미군정의 교란을 적극적으로 획책했었다.이것은 ‘쉬티코프 비망록’이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이에 반하여,모두가 아는 사실이 되어 다시 꺼내는 것도 쑥스럽지만 남쪽에서는 사회상의 여러 기존 모순에,북쪽에서의 공세적 교란공작,미 당국의 ‘계산’과 ‘실책’ 등으로 혼란이 가중하여 갔다고 보여진다.의젓한 시골 선비가 좌경운동에 몰두하게도 되고 대지주의 자제가 월북하는 현상을 보게 된다.월남자,우익 민족주의자와 남쪽 기득권층(친일 부역자집단을 포함하여)으로서는 남한내에서조차 몰리면 갈 곳이 없다는 위기감에 붙잡혀 필사 반격을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때문에 ‘이에는 이로,피에는 피로’의 악순환이 생기는 것으로 생각된다.얼마전 ‘대한매일’에 실린 ‘문경사건’을 생각해 보자.경북 문경군 산북면 석봉리 석달마을은 평화스러운 산간벽지의 마을일 뿐이다.두 개의 상반되는 외세의 분단 점령이 없었던들 여태껏 평화스럽게 살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 일대는 북쪽에서 지리산쪽으로 게릴라가 이동하는 길목에 위치했다.1949년 가을의 북쪽 신문을 보면 경북 산간지대에서는 피아의 교전뿐만아니라 생포한 경관들을 처단했다는 보도 등을 볼 수 있다.동료들이 생포당한 후 처형되는 것을 보고 발작적인 분노가 발생하기 쉬운 것이다.이러한 환경하에서 문경경찰서에서도 우호적이라고 분류된 석달마을 남녀노소가 전멸적 학살을 당한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6·25축소판의 비극을 6·25 이전의남한 사회에서 본다. 이제는 대한민국도 어른이 됐으니 나이에 걸맞게 서슴없이 명예회복과 응분의 보상을 하여야 통일을 위한 ‘민주기지’로서의 역량이 더욱 튼튼해질 것이다.필자는 지난 8월 27일 새벽 일찍 떠나 800㎞를 주파하여 어느 시골에다녀왔다.1950년도 4월 빨치산과 좌익군인을 처형하는 천연색 동영상물(動映像物)을 보기 위해 갔던 것이다.당연하다고 하면 그만이지만 너무도 슬픈 광경이었다. 통일,통일,부르기 전에 우선 주위부터 다지자.슬기로운 국민화합운동은 바로 통일의 첩경인 것이다. [方善柱 한림대 객원교수]
  • [義烈 독립투쟁](5) 안중근 의사

    안중근(安重根) 의사가 1909년 10월 26일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처단하자 일제는 이를 ‘암살’이라고 주장했다.이에 대해 안 의사는 공판정에서자신은 의병 참모중장으로서 독립전쟁의 일환으로 이토를 공격, 처단했다고설명했다. 안 의사는 1879년 9월 2일 황해도 해주의 향반(鄕班)집안에서 태어났다.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된 직후인 1906년 3월 안 의사는 황해도 신천군 청계동에 있는 가문의 재산을 모두 팔아 진남포로 이사한 후 삼흥학교와 돈의학교를 설립하였다.두 학교의 교장이 된 안 의사는 애국교육과 신학문 교육을 통해 애국청소년들을 양성하였다.1907년 ‘국채보상운동’이 일어나자 안 의사는 국채보상기성회 관서지부를 설치하여 자신이 지부장을 맡고 부인과제수의 패물까지 모두 헌납하는 모범을 보였다. 1907년 7월 ‘헤이그밀사사건’으로 고종이 폐위되고 한국군대가 강제로 해산되자 안 의사는 적극적인 무장투쟁을 위해 의병부대를 조직,국내 진공작전을 위해 러시아령 연해주로 망명하였다. 이범윤(李範允)·최재형(崔在亨)등 연해주 유력자들의 지원을 받아 300여명의 동포 청년들을 모집하여 연추(煙秋·노보키에프스크)에서 의병부대를편성한 안 의사는 당시 이 부대의 실질적 통솔자였다. 안중근부대는 모두 세차례의 전투를 치렀다.1908년 4월 초순 두만강 최하단인 함경북도 경흥군 일본군 수비대 진지를 공격한 안중근부대는 단 한 사람의 부상자도 없이 완벽한 승리를 거두고는 귀환하였다.이어 1908년 7월 제2차전투에서는 함경북도 신아산(新阿山) 부근의 일본군 수비대를 수 차례 기습공격,10여 명의 일본군 병사를 생포하였다.청년 휴머니스트였던 안 의사는 일본군 포로들을 ‘국제공법’에 의거,무기만 빼앗고 석방하였는데 이것이화근이 돼 제3차 전투에서는 참패를 하고 말았다.석방된 일본군 포로들이 안중근부대의 정확한 위치를 알고 기습해온 때문이었다.겨우 목숨을 건진 안의사는 부하·동지 몇 명과 연추로 돌아왔다. 한편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동포신문 ‘대동공보’의 연추지국장으로 일하고있던 안 의사는 이토 히로부미가 만주 분할 협의차 만주로 온다는 소식을 접하고 거사를 도모하였다.1909년 10월 10일 대동공보사 사장실에서는 총무 유진율(兪鎭律),주필 정재관(鄭在寬),기자 윤일병(尹日炳)·이강(李剛)·정순만(鄭順萬),연추지국장 안중근,회계원 우덕순(禹德順) 등 7명이 모였다.이자리에서 안 의사는 “특공대를 조직하여 이토를 처단하겠다”고 자원하였고 우덕순도 자원하고 나섰다.특공대는 2개조로 나뉘어 안중근·유동하(劉東夏)조는 하얼빈에서,우덕순·조도선(曺道先)조는 채가구(蔡家溝)에서 거사키로 하였다.그러나 이토가 탄 특별열차가 채가구에서 정차하지 않고 그냥 통과함으로써 결국 거사임무는 안중근조에게 넘어갔다. 거사당일인 1909년 10월 26일 오전 하얼빈역 주위에는 삼엄한 경계가 펼쳐졌다.안 의사는 러시아 경비병에게 ‘취재차 나온 신문기자’라고 속이고는일본인 환영객 집단 구역까지 깊숙이 진입하였다.이날 오전 9시 이토 히로부미가 열차에서 내리자 안 의사는 여섯발의 총탄을 날렸는데 그 중 세 발이이토에게 적중하였다.거사에 성공한 안 의사는 그 자리에서 러시아말로 ‘코레아 우라’(대한 만세)를 연창하였다. 안 의사는 재판정에서 자신의 거사는 ‘암살’이 아니라 한국 의병 참모중장으로서 ‘독립전쟁’의 일환으로 특공작전을 전개한 결과라고 누차 밝혔다.안 의사의 의거로 일제의 만주침략은 장기간 지연되었다.중국인들이 만주·중국 관내에서의 한국인들의 독립운동을 방임한 것은 바로 안 의사와 한국인에 대한 감사의 표시였다. 신용하 서울대 사회과학대학장*안중근 의사 직계후손 근황 안중근 의사는 부인 김아려(金亞麗) 여사와의 사이에 2남 1녀를 두었다.장남 분도(芬道)는 6세때 사망해 후손을 남기지 못했다.분도보다 3살 위인 장녀 현생(賢生)씨는 백범 김구 선생 휘하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황일청(黃一淸·작고)씨와 결혼,은주(恩珠·71)·은실(恩實·68·미국 텍사스 거주) 자매를 두었다.은주씨는 남편 이용문(李容文·작고)씨와 미국으로 이민갔다가 남편 작고후 귀국,경기도 용인 수지에 살고 있다.국내에 거주하고 있는 안 의사의 유일한 직계후손이다. 항주(杭州) 호강대학을 졸업한 차남 준생(俊生·1951년 45세로 작고)씨는 부인 정옥녀(鄭玉女·91년 작고)씨와의 사이에서 1남 2녀를 두었는데 현재 모두 미국에 살고 있다.안 의사의 장손격인 준생씨의 장남 웅호(雄浩·67)씨는 미국에서 의사로 활동하다가 지금은 은퇴,새크라멘토에 거주하고 있다. 간호대학 출신인 장녀 선호(善浩·70)씨는 한국인 2세와 결혼,4남매를 두었으며 현재 로스앤젤레스에 거주하고 있다.차녀 연호(蓮浩·65)씨는 시애틀에거주하고 있다.정운현기자*白凡과 안중근家의 인연 19세의 청년 김창수(金昌洙·김구의 아명)는 1894년 양반사회를 타도하고자 황해도 동학농민전쟁의 해주성 전투에 선봉장으로 참여한다.그런데 당시 황해도에서는 반농민군 세력으로 의병이 조직되는데,그 대표적 인물이 안중근(安重根)의 아버지 안태훈(安泰勳)이다. 그는 1884년 갑신정변 당시 박영효(朴泳孝)가 모집한 해외파견 유학생 70명에 선발되었다.그러나 갑신정변이 실패하고 박영효가 일본으로 망명하자 출세의 길을 버리고,대가족을 이끌고 신천군 청계동(淸溪洞)으로 들어갔다.1894년 황해도 동학군이 일어나자 이에 맞서 안태훈은 안중근 등 그의 아들과처자들까지 편입시킨 의병을 일으켰다.그 위력과 명성이 자자하여 황해도 동학군은 안태훈 부대를 두려워하였고,김창수 부대 역시 청계동을 특별히 경계하였다. 그런 안태훈이 청년 김창수에게 밀사를 보냈다.그 결과 두 진영 사이에는서로 공격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어느 한 쪽이 불행에 빠지면 서로 돕는다’는 공동원조까지 성립되었다.즉 안태훈은 비록 동학군을 토벌하는 입장이었지만 인재를 아끼고 있었고 개화에 뜻을 두고 있었지만 청일전쟁 전후의민족적 위기를 감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김창수 부대는 점차 토호화하고 있던 같은 동학접주 이동엽(李東燁)부대에의해 해체되었다.얼마간의 잠적 이후 이듬해 김창수가 찾아 간 곳은 청계동의 적장 안태훈 집이었다.청계동에서 ‘적장(敵將)과의 동거’는 청년 김창수에게 중요한 인연과 계기들을 마련해 주었다.안태훈의 각별한 후원으로 김창수는 부모님과 더불어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었으며,안태훈가(家)의 식객인 고능선(高能善)은 동학의 꿈이 깨진 청년 김창수에게 새로운 사상적 지주가 되었다.또다른 식객 김형진(金亨鎭)은 같이 의기투합해 청국원정을 떠나사선을 넘나드는 동지가 되었다. 김창수는 청계동에서 스승과 동지를 얻었을 뿐 아니라,안태훈가와도 특별한 인연을 맺게 된다.안중근의 아우 공근(恭根),조카 우생(偶生)은 임시정부 시절 백범의 측근이 되었으며,질녀 미생(美生)은 백범의 맏며느리가 되었다.또한 안태훈과의 화해,고능선의 교도로 백범은 양반이냐,상놈이냐 하는 계급의식 이상의 차원,즉 조국·민족문제에 눈뜨게 되었다.都珍淳 창원대 사학과 교수*安의사 5촌조카 民生씨 편지 발굴 안중근 의사의 집안은 우리 나라에서 대표적인 독립운동가 가문으로 꼽힌다.그러면 안 의사 집안의 후손들은 해방후 어떻게 살았을까.지난 8월말 학술행사 참석차 중국을 방문한 본사 김삼웅(金三雄)주필이 연변대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입수한 두 통의 편지에 따르면,안 의사 집안의 후손들 가운데 더러는 해방된 조국에서 대접은 커녕 분단과 독재권력에 맞서 싸우다 ‘한많은 일생’을 마친 것으로드러났다. 김 주필이 중국서 입수한 편지는 지난 88년 한국에 거주하던 안 의사의 5촌조카인 민생(民生·생사불명)씨가 중국 연길(延吉)에 있던 사촌여동생 경옥(京玉)씨에게 보낸 것으로 당시 경옥씨는 70세였다. 88년 1월 27일자 첫 편지에서 민생씨는 “지난 (87년)11월 15일 독립기념관장 춘생(椿生)형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너의 소식을 들었다”며 연락이 닿은 경위를 밝혔다.두 사람은 안 의사의 삼촌인 태건(泰健)씨의 손자녀들로 46년 7월 민생씨가 귀국하면서 서로 소식이 끊겼었다. 민생씨는 편지 서두에서 “해방후 형제·자매들이 귀국하였으나 모두 전재민(戰災民)의 신세를 면할 길이 없어 더러는 눈물을 흘리며 미국으로 떠나버렸다”며 해방후 집안 인척들의 이산을 안타까워 했다. 특히 민생씨는 “1961년 5월(‘5·16’을 지칭함) 조국의 평화통일 이념을주장했다는 이유로 나는 반국가범죄 혐의로 10년형을 선고받았으며 경근(敬根) 당숙도 7년형을 선고받아 일제때 명근(明根) 당숙이 옥고를 치르시던 서대문형무소 특감(特監)8사(舍)에서 감옥살이를 했다”며 “해방,독립된 내조국에 돌아와서 또 감옥살이를 치러야 함으로써 우리 안씨 가문은 이역과조국에서 선후대(代)에 걸쳐 50여 년이라는 세월을 감옥에서 지내야 했다”고 통탄해 했다. 안 의사 집안 가운데 안 의사의 사촌동생 경근과 5촌 조카인 민생씨는 해방후 유달리 험난한 삶을 살다가 생을 마쳤다.두 사람은 이승만 정권하에서 민주구국동지회를 결성,반독재 투쟁에 앞장섰으며,장면(張勉) 정권 하에서는민족자주통일중앙협의회준비위원회(민자통)에 참여하기도 했었다.5·16후 군사정권의 혁신세력 탄압 때 두 사람은 반국가범죄 혐의로 투옥됐으며 경근은 출옥 직후 작고했다. 민생씨의 경우는 ‘최악’이었다.1933년 만주에서 만주군에 붙잡혀 혹독한고문을 당한 후 도주하다가 다시 붙잡혀 양쪽 발끝을 작두로 절단당한 민생씨는 그 몸으로 감옥살이를 한 데다 68년 가석방으로 풀려났으나,업친데 덮친 격으로 교통사고까지 당해 오른쪽 다리를 절단하고 말년에는 지팡이와 의족에 의존해야 했다. 편지를 쓸 때 이미 70고개를 넘긴 민생씨는 “헤어진 동료들과 형제들이 그리울 때면 저 머-ㄴ 북녁(만주땅을 지칭한 듯)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가슴 쥐고 나무밑헤 쓸어진다 혁명군/가슴속에 솟는 피는 푸른 풀에 절벅해’… 이 노래를 부른다”고 적은 뒤 “가마귀도 우름을 멈추고 바람만 스치고지나갈 무덤없는 그들의 핏자죽 위에 한 송이 들꽃이라도 받쳐들고 가서 명복을 빌어드릴 날이 오기를 고대한다”며 눈물지었다.현재 민생씨는 생사가불명이다.광복회·국가보훈처·안중근의사기념관은 물론 사촌형인 안춘생씨마저 민생씨의 생사를 모르고 있다. 5월 28일자 두번째 편지에서 민생씨는 “과거 우리들은 안중근의 집안이라는 이유 때문에 왜놈들에게 죽어야 했고,징역을 살아야 했는데 해방후에는왜놈의 앞잡이 노릇을 하던 주구들이 권력을 잡게 됨으로써 애국자들의 피해는 여전했다”며 역대 권력자 가운데 친일경력자들의 면면을 거론하였다. 정병학(鄭秉學·79)안중근기념관장은 “안 의사 집안의 인사 가운데 민생씨처럼 해방후 불우한 삶을 보낸 인사가 적지않다”며 “이는 해방후 친일·독재정권이 들어선 것이 주원인”이라고 말했다.정운현기자* 안중근家의 독립운동가들 안중근 의사의 가문은 안 의사를 포함,모두 9명이 독립유공 공적으로 건국훈장을 받았으며 현재도 몇 명이 포상 심사중이다. 1909년 한국침략의 원흉 이토(伊藤博文)를 처단한 안 의사는 독립유공훈장가운데 가장 높은 등급인 대한민국장(1등급)을 받았으며,안 의사의 두 친동생 정근(定根)·공근(恭根)은 각각 임시정부에서 활동한 공로로 독립장(3등급)을 받았다.또 사촌동생 가운데 명근(明根)은 ‘105인사건’으로,경근(敬根)은 임시정부 활동으로 각각 독립장을 받았다. 안 의사의 조카뻘인 ‘생(生)’자 항렬에서도 여러 명이 훈장을 받았다.대표적으로는 광복군 제2지대 구대장 출신으로 해방후 육사교장·국회의원·독립기념관장 등을 역임한 춘생(椿生·87·독립장)을 비롯해 춘생과 친형제로신민부에서 활동한 봉생(鳳生·애국장),그리고 안 의사의 첫째 동생인 정근의 장남으로 임정 임시의정원 의원을 지낸 원생(原生·애족장)과 둘째 동생공근의 차남낙생(樂生·애족장) 등이 있다. 이밖에도 납북이나 공적서류 미비 등으로 서훈이 보류된 인사도 여럿 있다. 우선 공근의 장남 우생(偶生)은 중경 임시정부 시절 임정 편집부 과원으로활동했으며 해방후에는 백범의 대외담당비서로 활동했으나 그 후 납북돼 포상이 보류돼있다.또 안 의사의 사촌 봉근(奉根)의 자제인 민생(民生)과 그의형 호생(鎬生) 역시 독립운동을 했으나 해방후 ‘반정부활동’을 했다는 이유나 서류미비 등으로 아직 공적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정운현기자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