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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체대, 학생에 10년 이상 불법 생체검사”

    한국체육대학교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10년 이상 불법 생체검사를 한 사실이 드러났다. 한 학생은 불법 생체검사 이후 다리가 마비되는 등의 부작용으로 국가대표의 꿈을 접기도 했다. 16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정진후 의원이 낸 보도자료에 따르면 한국체대 교수들과 대학원생들의 연구 논문을 분석한 결과 인체의 근육과 지방을 추출하는 불법 생체실험이 2000년 이후에만 21차례 진행된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의료법상 의료인만이 할 수 있는 시술이다. 실험에 동원된 대상자는 218명이며, 이 중 절반이 한국체대 학생이었다. 해당 연구에는 김모 교수 등 한국체대 교수 6명과 대학원생, 외부 전문가 등 모두 34명의 연구진이 참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연구진은 운동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기 위해 바늘을 생체 내에 집어넣어 근육 조직을 떼어내는 근생검과 지방을 추출하는 지방생검을 했다. 인체를 마취한 뒤 조직을 떼어내는 시술은 주로 김 교수가 담당했다. 김 교수는 걷기 운동이 중년 여성 복부 비만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기 위해 여성의 지방 조직을 떼어내는 지방생검을 직접 시술했다. 김 교수가 의료기구인 ‘바이옵시 니들’을 이용, 실험대상자 2명으로부터 지방을 추출하는 장면이 담긴 동영상도 확보됐다. 한국체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염모씨가 쓴 학위 논문 ‘역도훈련 유형에 따른 골격근 내 세포신호전달 반응의 특이성’에도 한국체대 역도선수 18명의 근육을 추출해 실험한 내용이 포함돼 있다. 김 교수는 학생들에 ‘A학점’을 주겠다며 실험에 참여할 것을 권유한 것으로 드러났다. 근생검 시술 부작용으로 국가대표의 꿈을 접은 A씨는 “실험 참여 시 A+를 주겠다는 김 교수의 부탁으로 실험에 참여했으나 (시술) 다음날부터 신경이 마비됐다”면서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 연구로 ‘고강도의 저항성 운동수행에 의한 근세포 변화’라는 논문을 같은 학교 김모 교수와 공동으로 저술해 학회지에 기고했다. 정 의원은 “이는 명백한 의료 행위 위반”이라면서 “부작용 가능성이 높은 생체실험을 학점을 미끼로 학생들에게 시행한 것은 교수로서 양심을 저버린 행위”라며 비판했다. 또 ”교육부와 한체대는 연구 윤리 규정을 위반한 논문에 대한 학위를 취하하고, 관련자 처벌과 피해 학생에 대한 보상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해당 연구에 참여했던 한 교수는 “오랫동안 해왔던 관행이며 불법인 줄 몰랐다”고 해명했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새 영화] 더 시그널

    [새 영화] 더 시그널

    SF영화의 미덕은 상상력이다. 현실을 뒤집어 보고 누구도 생각지 못한 세계를 선보이는 데 그만 한 장치가 또 없다. 그런 의미에서 UFO와 외계인을 소재로 색다르게 구성한 ‘더 시그널’(10일 개봉)은 주목해볼 만하다. 저예산 미국 영화지만 기존의 통념을 뒤흔드는 참신한 이야기 구도에 영상미가 곁들여져 재기발랄한 작품들의 향연장으로 소문난 선댄스영화제(2014년)에서 화제를 모았다.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은 끝까지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끊임없이 수수께끼를 던지며 관객을 미궁으로 빠뜨려 나간다는 점. 영화는 닉(브렌턴 스웨이츠)과 헤일리(올리비아 쿡), 조나(뷰 크냅) 등 MIT 재학생인 세 친구가 함께 여행을 하던 중 우연히 MIT를 해킹한 천재 해커 노매드와 교신하면서부터 시작된다. 노매드가 보내는 신호를 계속 따라가던 이들은 낯선 집에 도착해 갑자기 초현실적인 힘에 이끌려 전혀 다른 세계로 빠져든다. 이후 한 연구소에 격리된 이들은 외계 생명체와의 접촉으로 오염 물질에 감염됐다는 이유로 흰색 우주복을 입은 사람들에게 조사를 받는다. 연구소의 박사 윌리엄 데이먼(로렌스 피시번)은 처음 외계 생명체를 만났을 때의 신호에 대해 의문을 갖고 추궁하지만 닉은 그의 조사를 거부한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다리가 기계로 개조됐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닉은 외계인들이 지구인을 생체실험하고 있다는 음모를 알게 되고, 여자친구 헤일리와 연구소를 도망치려 하지만 길은 막혀 있다. 과연 그들이 빠져든 곳은 지구일까, 외계일까. 감독은 이에 대해 관객에게 쉽게 답을 주지 않는다. 난해한 내용에 답답함을 느끼는 관객도 적지 않을 듯하다. 그 부분이 영화의 묘미이기도 한다. 감독은 관객들이 주인공들과 함께 끝까지 추리력을 발동하게 만들며, 모호한 분위기를 덧입혀 비현실적인 경험에 참여하도록 적극 유도한다. 뮤직비디오와 광고를 제작하다 2011년 SF 영화 ‘러브’로 데뷔한 윌리엄 유뱅크 감독은 감각적인 영상으로 기존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과는 다른 색깔의 ‘예술영화 같은 SF’를 선보였다. 물론 영화 전체가 실험적이고 불친절하다는 단점은 있지만 UFO나 외계인에 관심 있는 관객이라면 흥미가 배가될 법하다. 특히 주인공들의 팔에 새겨진 ‘2, 3, 5, 41’이라는 숫자에 대해 UFO 전문가인 우석대 맹성렬 교수는 “이 숫자를 더하면 51이라는 숫자가 나오는데, 이는 미국이 외계인과 함께 실험을 하고 있다는 음모가 제기된 미국 네바다주 사막의 51구역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12세 이상 관람가.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日帝, 9년간 6500여명을 산 채로 해부”

    지난 달 29일 독일 베를린의 쾨르버 재단본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일본군이 난징을 점령하고 30만명 이상을 학살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지난달 초 중국 최대 정치 행사인 ‘양회’에선 중국 헤이룽장성에 남아 있는 일제 ‘731부대’의 유적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해야 한다는 주장이 빗발쳤다. 일제의 만행과 731부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731부대가 생산한 살상용 세균 탓에 중국인 20만명가량이 목숨을 잃었다는 게 중국 정부의 주장이다. 정일성 전 서울신문 편집부국장은 ‘책과 인생’ 4월호에 기고한 ‘731부대의 인체실험 면죄 내막’을 통해 이 같은 사실을 적시했다. 저자는 쓰네이시 게이치의 ‘사라진 세균전부대 관동군 제731부대’ 등 저작물과 그간 공표된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731부대가 히로히토 일본왕의 칙령으로 1932년 창설됐으며, 반인륜적 생체실험이 종전 이후 도쿄전범재판소에 기소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소련과의 군비경쟁에 나선 미국이 세균전 자료 등을 넘겨받는 조건으로 일본과 은밀한 뒷거래를 벌인 탓이라는 것이다. 헤이룽장성 하얼빈 동남쪽 베이인허에 ‘관동군방역반’이란 이름으로 처음 문을 연 부대는 패전 직전 1000개가 넘는 사람의 머리·팔·내장 표본을 인근 송화강에 갖다버리고 50명가량의 살아있는 인체실험자를 파묻는 방법으로 교묘히 은폐에 나섰다. 애초 연구소가 아닌 제재소를 짓는다는 소문을 내 인체실험자는 통나무를 뜻하는 ‘마루타’로 불렸다. 교토제국대 의학부를 수석 졸업한 세균전문의 이시이 시로가 총책임자로 히로히토의 막내동생도 이 부대의 장교로 복무했다고 한다. 부대 규모는 군인 1200여명 등 한때 3560명까지 늘었고, 300~400명을 한꺼번에 수용할 수 있는 실험실을 갖췄다. “날마다 2~3명, 많게는 5명을 산 채로 해부했다”는 증언에 따라 9년간 희생자는 6500명으로 추정된다. 희생자 명단에는 이청천, 심득룡, 이기수, 고창률 등 독립운동가로 보이는 조선인 희생자의 이름도 담겨 있다. 저자는 “인체실험 기록을 미국에 넘겨주고 면죄부를 받은 가해자들은 의대와 국립연구소, 병원, 제약회사에서 전후 일본 의학계의 중진으로 우뚝 섰다”고 말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열린세상] 미래지향적 한·일관계와 위안부 역사관/김경민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열린세상] 미래지향적 한·일관계와 위안부 역사관/김경민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유엔 인권회의에서 한국의 외교부장관으로서는 최초로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심대한 고통을 당한 종군위안부 문제에 대해 공식적으로 언급했다. 일본이 과거사를 올바르게 직시하기를 인내하며 기다려 왔지만 더 이상 인내할 수 없을 만큼 일본 정계 인사들의 망언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통한의 일제 식민지배와, 종군위안부와 강제 징용에 대한 사죄가 고노 담화, 무라야마 총리의 사죄 등으로 근근이 위안을 받아 왔지만 일본 관료들의 수없는 과거사 부정도 함께 이어져 오면서 억울함을 겨우 추스르던 한국의 국민들은 수없는 좌절감을 맛보곤 했다. 그런데 아베라는 인물이 총리직에 두 번이나 올라서면서 더 이상 용인할 수 없는 망언을 쏟아내고 있기에 윤 장관의 유엔인권회의 발언은 시의적절한 처신이었다고 평가된다. 그리고 한국의 외교부 장관이 유엔인권회의에서 공식적으로 거론하기 시작한 만큼 일본의 전격적인 과거사 직시의 처신이 없는 한 범정부적인 정책으로 일본 측의 잘못된 역사인식을 바로 잡아야 한다. 그러면서도 도쿄 시내 한복판에서 “한국인은 일본에서 나가라”는 인종차별적 데모를 하는 일본 극우세력을 보면서 21세기 개명천지에 이런 나라도 있으니 경악을 금치 못할 판이다. 만약 한국에서 일본인들을 나가라고 하면 일본 국민은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세계의 경제대국이라는 일본 일각에서 벌어지는, 있을 수도 없는 반인권적 집단행동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 필자는 동북아의 번영과 평화의 미래를 이렇게 꿈꾸어 왔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패전한 일본은 민주주의라는 길을 한국과 중국보다 오래 경험했기 때문에 과거의 침략사를 진정으로 잘못되었다고 회개하면 한국과 미래의 동반자로서 공산주의 중국을 민주화시키는 데 힘을 합치면 동북아의 평화와 미래가 있다고 생각해 왔다. 그리고 이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런데 일본의 과거 침략사 부정에 국제사회뿐만 아니라 가장 가까운 동맹국인 미국마저 잘못되었다고 할 정도이니, 이제는 그냥 덮어둘 일이 아닌 것이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지식인층의 상당수가 아직도 희망을 갖고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를 민들어가야 한다고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참에 종군위안부의 문제만큼은 종결을 지어야겠다. 일본의 인권유린을 역사에 남기기 위해 종군위안부 역사관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여성으로 가장 수치스러웠을 종군위안부 생활을 어둠에 묻어 두었다가 용기를 내어 이 사회에 얼굴을 드러내고 나와 주신 피해자 어르신들의 진정한 용기를 영원히 기록할 기념관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는 전쟁을 통한 참혹한 인권유린이 일어나지 않도록 국제사회가 널리 알 수 있는 역사관을 만들어야 하겠다. 100만여명 이상의 사람들이 독가스실에서 죽어 갔던 폴란드 아우슈비츠의 복원 사업도 폴란드 의회의 결정으로 이루어진 것이며 지금도 1년에 1000만명 이상 방문하고 있어 역사의 산 교육현장이 되고 있다. 독일은 그 수치스러운 현장을 진정한 사죄의 가슴으로 협력하고 있다. 감히 인간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독살의 현장과 굶주림, 강제노역 등의 현장을 아우슈비츠뿐만 아니라 독일 뮌헨 근처의 다카우 수용소, 생체실험을 자행했던 베를린 근처의 작센하우스, 베를린 한복판의 나치 홀러코스트 기념관 등 독일 전역에 역사의 현장을 보존하고 있다. 그래서 독일은 그 진정성으로 인해 폴란드로부터도 용서를 받고 있는 것이다. 연세가 들어 임종이 얼마 남지 않은 종군 위안부 어르신들이 모두 다 사라져 가기 전에 가능한 한 많은 그 당시의 참상을 기록해둬야 한다. 중국이 일본의 센카쿠 열도를 넘보면서 더욱 광분하고 있는 일본은 과거사를 잘못됐다고 인정하고 다시는 그런 인권유린이 없도록 하겠다는 모습이 있을 때 센카쿠 영토 문제도 국제사회가 일본 편에서 도와주게 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일본이 이성을 찾아 과거사를 제대로 직시하기를 촉구한다.
  • ‘말라리아 모기’로 만든 대량살상 무기 있다?

    ‘말라리아 모기’로 만든 대량살상 무기 있다?

    과거 독일 나치 정권이 모기를 대량 살상무기로 만드는 계획을 추진했던 사실이 밝혀졌다. 히틀러 정권의 잔악상을 드러낸 이 계획은 최근 독일 튀빙겐대학교 생물학 박사 클라우스 라인하르트의 연구결과 드러났다.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수용소로 악명을 떨친 다하우 강제수용소의 자료를 바탕으로 얻어진 이 연구결과는 특히 그간 소문으로만 나돌만 ‘모기의 무기화’가 사실이었음을 또다시 증명했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모기의 무기화 계획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42년 1월로 당시 나치의 친위대장 하인리히 힘러에 의해 추진됐다. 힘러는 당시 잔혹한 생체실험이 진행된 다하우 강제수용소에서 연합군의 전력을 크게 약화시킬 각종 생화학 무기개발에 공을 들였다. 이때 주목한 것이 바로 말라리아로 힘러는 말라리아에 감염된 모기를 연합군에 대량으로 방사하는 계획을 세웠으나 실제 진행되지는 않았다. 라인하르트 박사는 “그간 나치 정권이 수용소에서 말라리아 치료제 개발을 위한 생체실험을 실시한 사실이 있지만 군사용 목적도 확인된 것” 이라면서 “일부 역사가들은 말라리아 모기를 실제 전장에 투입하는데 히틀러가 반대했다고 주장하지만 진실은 알 수 없다”고 밝혔다. 한편 지난 2006년 미국 예일대 역사학자 프랭크 스노든 교수도 “연합군의 진격을 막기위해 나치 정권이 말라리아에 감염된 모기를 사용하려 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사진=하인리히 힘러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나치 정권, 대량 살상용 ‘말라리아 모기’ 개발 추진

    나치 정권, 대량 살상용 ‘말라리아 모기’ 개발 추진

    과거 독일 나치 정권이 모기를 대량 살상무기로 만드는 계획을 추진했던 사실이 밝혀졌다. 히틀러 정권의 잔악상을 드러낸 이 계획은 최근 독일 튀빙겐대학교 생물학 박사 클라우스 라인하르트의 연구결과 드러났다.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수용소로 악명을 떨친 다하우 강제수용소의 자료를 바탕으로 얻어진 이 연구결과는 특히 그간 소문으로만 나돌만 ‘모기의 무기화’가 사실이었음을 또다시 증명했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모기의 무기화 계획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42년 1월로 당시 나치의 친위대장 하인리히 힘러에 의해 추진됐다. 힘러는 당시 잔혹한 생체실험이 진행된 다하우 강제수용소에서 연합군의 전력을 크게 약화시킬 각종 생화학 무기개발에 공을 들였다. 이때 주목한 것이 바로 말라리아로 힘러는 말라리아에 감염된 모기를 연합군에 대량으로 방사하는 계획을 세웠으나 실제 진행되지는 않았다. 라인하르트 박사는 “그간 나치 정권이 수용소에서 말라리아 치료제 개발을 위한 생체실험을 실시한 사실이 있지만 군사용 목적도 확인된 것” 이라면서 “일부 역사가들은 말라리아 모기를 실제 전장에 투입하는데 히틀러가 반대했다고 주장하지만 진실은 알 수 없다”고 밝혔다. 한편 지난 2006년 미국 예일대 역사학자 프랭크 스노든 교수도 “연합군의 진격을 막기위해 나치 정권이 말라리아에 감염된 모기를 사용하려 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사진=하인리히 힘러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씨줄날줄] 생체실험 박사 논문/최광숙 논설위원

    나치의 의사 요제프 멩겔레는 ‘죽음의 천사’로 불린다. 독일 친위대 대위이자 아우슈비츠의 강제수용소 내과 의사이던 그는 끔찍한 인간 생체실험들을 자행했다. 쌍둥이를 하나로 꿰매 샴쌍둥이로 만들고, 푸른 눈을 만든다며 어린 아이의 눈에 화학약품을 넣었다. 아이의 생식기 교체와 마취 없이 간 꺼내기 등 그의 생체실험은 엽기 그 자체였다.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에도 멩겔레 못지않은 ‘냉혈 의사’가 있었다. 생체실험으로 유명한 ‘731부대’ 책임자 이시이 시로다. 교토제국대 의과를 졸업한 의사인 그가 지휘한 731부대에서는 포로로 잡힌 중국군, 우리 독립투사, 여성과 어린이 등 모두 1만여명을 생체실험한 것으로 전해진다. 세균전에 대비해 페스트균과 탄저균 등을 주입한 음식과 물을 포로수용소의 사람들에게 먹였다. 거리의 아이들에게도 콜레라균이 묻은 사탕을 나눠주기도 했다. 산 채로 사람의 피부를 벗겨 내기도 했고, 성병 연구를 위해 남녀 수용자에게 강제로 매독·임질균을 감염시키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심지어 동상실험을 한다며 중국인을 발가벗겨 물벼락을 내린 뒤 추위에 저녁 내내 방치하기도 했다. 최근 일본 교토대와 규슈제국대, 심지어 서울대의 전신인 경성제국대 의학부에서 731부대 관계자 수십여명에게 박사 학위를 수여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들이 생체실험을 바탕으로 쓴 논문은 일본 국회도서관에 극비 문서로 대량 보관돼 있다고 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에 회부된 23명의 전범 중 20명이 의사였다. 하지만 마루타 실험에 나섰던 일본 의사들은 오히려 전후 의학계, 학계에서 유명인사로 출세했다. 독일과 달리 일본은 전쟁의학 범죄에 대한 단죄는커녕 오히려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 역사의 역주행을 일삼고 있다. 731부대원들이 생체실험도 모자라 이를 바탕으로 박사학위까지 받은 사실은 일본의 니시야마 가쓰오 시가대 의대 명예교수에 의해 이번에 처음 드러났다. 그가 용기 있게 진실을 밝히지 않았다면 이런 사실은 영원히 묻혔을지도 모른다. 일본의 몰역사인식을 비난하기에 앞서 과연 일제 강점기를 비롯한 과거사 연구에 우리는 얼마나 매달리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한다. 일본과의 ‘역사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정부 차원에서 일제 강점기 전문가를 비롯한 일본 전문가들을 긴 안목을 갖고 길러내야 한다. 우리의 힘만으로는 부족하다면 일본 내의 양식 있는 지식인들과 연대해서라도 과거의 자료를 발굴하고 연구해야 일본의 억지 논리에 실증적으로 반박할 수 있지 않겠는가.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日 ‘마루타 실험’에 박사학위 줬다

    일본 국립대학인 교토대가 생체실험으로 악명을 떨친 일본군 ‘731부대’ 구성원들에게 박사학위를 수여한 사실이 21일 한 일본인 학자의 논문에서 확인됐다.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연구에 명문 국립대학과 관할 문부과학성이 개입된 것에 대해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니시야마 가쓰오 시가대 의대 명예교수는 2012년 ‘사회의학연구’라는 학술지에 실은 ‘731부대 관계자 등의 교토대학 의학부 박사 논문의 검증’이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이 같은 사실을 밝혔다. 논문에서 이 부대 관계자 최소 23명이 1960년까지 교토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확인된 논문 중에는 ‘특수대량생산을 목적으로 하는 생균(독성을 약화시킨 생 바이러스) 건조 보존의 연구’ ‘약한 독성의 페스트균의 동결진공건조법에 의한 생존보존방법 연구’ 등 731부대의 생체실험 결과를 활용했을 가능성이 있는 저작들이 포함됐다. 니시야마 교수는 논문에서 “윤리적으로 문제 있는 연구에 종사한 사람에게 학위를 주는 과정에서 교토대와 관할 부처인 문부과학성이 어떻게 관여했는지를 구체적으로 밝혀야 한다”며 “731부대 장교를 지낸 인사가 2차대전 종전 직후 서울대의 전신인 경성제국대 의학부에 제출한 의학박사학위 논문을 문부과학성이 인정한 사례도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1932년 만주 하얼빈 근교에 세워진 731부대(정식명칭 관동군방역급수부본부)는 포로로 잡힌 중국인과 한국인, 러시아인 등을 상대로 각종 세균과 독가스 실험 등 이른바 ‘마루타 실험’을 자행했다. 2차대전 종전 당시 미국이 이 부대의 연구 결과를 넘겨받는 조건으로 이시이 시로 부대장을 비롯한 관련자들을 처벌하지 않기로 해 진상 규명과 관계자 처벌이 이뤄지지 않았다. 도쿄 김민희 특파원 haru@seoul.co.kr
  • “日731부대 관계자들, 교토대에서 박사학위”

    일본의 명문 국립대학인 교토(京都)대가 생체실험으로 악명을 떨친 일본군 ‘731부대’ 구성원들에게 박사학위를 수여한 사실이 21일 한 일본인 학자의 논문에서 확인됐다. 니시야마 가쓰오(西山勝夫) 시가(滋賀)대 의대 명예교수는 2012년 ‘사회의학연구’라는 학술지에 실은 ‘731부대 관계자 등의 교토대학 의학부 박사 논문의 검증’이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이 같은 사실을 밝혔다. 니시야마 교수는 교토대 도서관과 국회 도서관 등의 소장자료 목록을 검색한 결과 731부대 관계자 최소 23명이 1960년까지 교토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확인된 논문 중에는 ‘특수대량생산을 목적으로 하는 생균(독성을 약화시킨 생 바이러스) 건조 보존의 연구’, ‘약한 독성의 페스트균의 동결진공건조법에 의한 생존보존방법 연구’ 등 731부대의 생체실험 결과를 활용했을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저작들이 포함됐다. 니시야마 교수는 논문에서, 윤리적으로 문제 있는 연구에 종사한 사람에게 학위를 주는 과정에서 교토대학과 관할 부처인 문부과학성이 어떻게 관여했는지를 구체적으로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니시야마 교수는 또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731부대 장교를 지낸 인사가 2차대전 종전 직후 서울대의 전신인 경성제국대 의학부에 제출한 의학박사학위 논문을 문부과학성이 인정한 사례도 확인했다고 밝혔다. 1932년 만주 하얼빈 근교에 세워진 731부대(정식명칭 관동군방역급수부본부)는 정체를 철저히 비밀에 부친 채 포로로 잡힌 중국인과 한국인, 러시아인 등을 상대로 각종 세균실험과 독가스 실험 등을 자행한 일제 전쟁범죄의 상징이다. 731부대는 반인도적 만행을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2차 대전 종전 당시 미국이 이 부대의 연구결과를 넘겨받는 조건으로 이시이 시로(石井四郞) 부대장을 비롯한 관련자들을 처벌하지 않기로 해 진상규명과 관계자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열린세상] 아베 정권의 탈선과 우리의 선택/김경민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열린세상] 아베 정권의 탈선과 우리의 선택/김경민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아베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함으로써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고야 말았다. 침략의 전범들이 합사돼 있는 야스쿠니 신사는 한국과 중국이 가장 싫어하는 역사의 현장인데 일본을 대표하는 총리가 참배하는 것은 과거 침략의 역사를 부인하는 의미가 된다. 이런 일본의 앞날을 예측했던가. 일본을 항복시킨 맥아더 원수는 일본을 점령하자마자 중요한 몇 가지 정책을 펼쳤다. 첫째, 지독하리만큼 독한 일본의 보수세력들의 결합을 끊는 일이었다. 맥아더는 일본이 침략전쟁을 일으킨 원동력을 군벌과 재벌의 결탁이라고 보았다. 군국주의를 내세운 군벌은 결집된 재벌의 자본력을 배경으로 항공모함, 가미카제 전투기 등 수많은 무기로 무장할 수 있었다. 그래서 맥아더는 점령정책의 첫째를 군사력 해체, 두 번째를 재벌 해체로 정책목표를 삼았다. 그리고 군국주의에 물든 국민들의 사상을 바꾸기 위해 민주화를 단행시켰다. 그래서 일본은 패전한 지 70년 가까이 되는 기간 동안 나름대로 민주주의를 경험하면서 미국과의 동맹하에 조용히 경제발전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일본의 보수세력의 생각은 경제력뿐만 아니라 정치·군사력으로 강대국이 되는 염원을 간직하고 있었고 그 속마음이 북한의 대포동 미사일 발사와 중국의 센카쿠 위협으로 수면 위로 부상해 본격화되는 것이다. 어느 나라나 보수세력은 존재하는데 일본의 보수세력은 성격이 다르다. 한국이나 중국이 일본의 침략전쟁을 비판하면 잘못되었다고 진정하게 반성하는 것이 아니라 두 나라가 그 당시 국력이 약해 자신들의 나라를 못 지킨 것일 뿐 침략전쟁이 잘못됐다고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60년 이상 사과와 반성에 대한 서로 다른 주장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것이다. 나치 학살의 독일은 지금도 침략의 역사를 인정하며 주변국들과 동행하려 한다. 작년 봄 베를린의 중심가 브란덴부르크 문 옆에 나치 학살의 잘못됨을 수많은 관 모양의 건축물로 만들어 놓은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독일 뮌헨 근처에는 최초의 강제수용소 다카우가 있고 베를린 근처에는 나치가 생체실험을 했다는 작센 하우스가 있어 과거 나치 만행의 시설을 보존하며 반성에 반성을 거듭하고 있는데, 수도 중심가에 어쩌면 흉물스럽기도 한 진회색의 관들로 건축돼 있는 침략전쟁에 대한 반성은 독일을 신뢰받게 한다. 일본은 독일과 일본을 비교하지 말라고 손사래를 친다. 비겁한 일이다. 세계는 동북아 세 나라 한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을 부러워하기도 하고 두려워도 한다. 각각의 한 나라가 세계의 어느 국가와도 견줄 만큼 경제력이 발달한 나라들이다. 서로가 평안하여 협력하면 인류 역사상 가장 풍요로운 동북아를 만들 수 있는데 소아적인 생각에 머물러 값비싼 무기를 사들이는 군비경쟁에 휩싸여 있다. 일본은 침략 역사를 부정하며 우경화의 길을 가고 있고, 중국은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를 넘보며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평온 상태를 깨뜨리려 한다. 그러면 한국은 어떻게 해야 하나. 우선 일본의 침략 역사 부정에 대해서는 인내심을 갖고 꾸준히 주장해야 한다. 36년의 식민지배를 당한 한국은 직접적인 피해자이며 일본의 침략 역사를 그 누구보다도 잘아는 당사자다. 독일은 교과서에 나치 만행을 제대로 쓰고 정권이 바뀌어도 피해자들을 어루만져 주기 때문에 후세들이 선대의 잘못에서 자유로운 것이다. 반면에 일본의 후세들은 제대로 역사를 배우지도 못해 한국이나 중국을 여행하면서 선조들의 잘못을 알게 되는 수치를 당하는 것이다. 일본의 지도자들이 역사를 바르게 가르치지 못하면 중국이 방공식별구역을 확대하며 센카쿠를 넘보는 것에 국제사회의 협력을 얻어낼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또 하나는 한국 외교의 역할이다. 일본의 보수우익화가 더욱 강화되는 것은 중국의 위협이 근저에 깔려 있다. 일본과 중국의 무기 사재기는 한국에도 영향을 미쳐 재정적자에 허덕이는 한국 경제에 주름이 지게 하고 있다. 동북아의 군비경쟁 축소라는 화두를 갖고 한국이 선제적 외교에 나서야 동북아 평화의 미래가 있다.
  • [씨줄날줄] 오시비엥침의 추억/서동철 논설위원

    폴란드 남부의 유서 깊은 도시 크라쿠프를 찾았을 때는 6월이었지만, 비가 내리면서 기온이 떨어져 반팔 옷으로 견디기가 어려웠다. 성 마리아 성당이 있는 중앙광장 주변의 시장을 둘러보다 야겔로니안 대학의 로고가 가슴에 새겨진 긴팔 티셔츠를 사 입었던 기억이 난다. 1364년 개교한 이곳 야겔로니안 대학은 중부 유럽에서는 1348년 문을 연 체코 프라하의 카를 대학에 이어 두 번째로 역사가 길다. 크라쿠프는 14세기 초반부터 17세기 초반까지 폴란드의 수도였다. 하지만 1759년 오스트리아에 편입됐고, 1815년부터는 크라쿠프공화국의 수도가 되기도 했다. 나치의 ‘살인 공장’이었던 오시비엥침과 브제진카 수용소는 크라쿠프에서 40㎞ 남짓 떨어져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아우슈비츠와 비르케나우는 오스트리아 통치 시절 독일식으로 바뀌어 불린 지명이라고 한다. 폴란드 사람들은 오시비엥침과 브제진카를 외지 사람들이 침략자식 표현인 아우슈비츠와 비르케나우로 부르는 것을 불편해한다. 그런 방식의 호칭은 서울이나 부산을 여전히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처럼 게이조우(경성·京城)나 가마야마라고 부르는 것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폴란드군 막사를 개조했다는 오시비엥침 제1수용소는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았다. 입구에 ‘노동이 자유를 주리라’는 유명한 나치의 선전 문구가 높이 내걸린 바로 그 수용소다. 반면 광활한 평원에 세워진 오시비엥침 제2수용소, 즉 브제진카 수용소는 그야말로 ‘초대형 살인 공장’이라고 해도 좋았다. 제1수용소의 20배가 넘는 크기에 300동의 막사가 들어서 있었다고 한다. 그러니 학살 대부분은 이곳에서 이루어졌다. 철길이 붉은 담장의 수용소 내부로 이어졌는데 사람들은 ‘죽음의 문’이라고 불렀다. 197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수용소를 둘러보고 있노라면 인간이 어디까지 악해질 수 있는지 실감하게 된다. 그럼에도 감수성이 풍부하지 못한 탓인지 다큐멘터리 필름에서 강조하는 엄청난 전율은 느끼지 못했다. 한국사람은 다르지 않은 분노를 이미 경험했기 때문은 아닌지…. 관동대지진 당시와 난징의 대학살이 그렇고, 731부대의 생체실험이 그렇다. 타민족을 말살하는 국가권력 차원의 폭거라는 점에서는 오시비엥침에서 나치가 했던 짓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그러니 오시비엥침을 찾은 일본인 가운데 아베의 과거사 정책을 지지하면서도 이곳의 참상에는 분노하는 사람이 있다면 안타까운 일이다. 신문에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오시비엥침을 방문해 희생자의 넋을 기리는 사진을 보면서 지난 여행의 기억이 떠올랐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日 731부대, 민간 거주 지역에 ‘페스트 벼룩’ 살포”

    군국주의 시절 잔혹한 생체 실험으로 악명 높은 일본 ‘731부대’가 중국 민간인 거주 지역에 세균을 살포하는 실험을 해 수천명을 숨지게 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서울대 사회학과 서이종 교수가 30일 발표한 ‘일본관동군 제731부대의 생체실험 대상자 동원 과정과 생명윤리’라는 논문에 따르면 731부대는 지난 1940년 6월 4일 중국 지린성 눙안현에 페스트에 감염된 벼룩 5g(약 1만마리)을 살포했다. 이로 인해 눙안현에서는 3주 후 8명, 100일 후 607명이 숨진 것을 비롯해 신징, 첸궈치, 정자툰 등 지린성 일대 주민 2500여명이 사망했다. 서 교수는 특정 지역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세균실험은 세균의 효과를 검증하는 동시에 대규모 감염을 통제해 일본군의 피해를 줄이는 방역 통제력을 확보하려는 목적이라고 분석했다. 일본군이 전쟁포로가 아닌 항일활동가와 사상범 등을 ‘특수이송’ 명목으로 731부대에 보내 생체 실험 대상으로 삼은 정황도 드러났다. 서 교수는 중국 하얼빈 731부대 연구소에서 보관 중인 731부대 가네코 준이치 소령의 논문 등 극비 문서를 분석한 결과 이런 정황을 찾아냈다고 밝혔다. 그는 “문건을 근거로,731부대가 민간인 거주지역 일반인을 대상으로 생체실험한 사실을 규명한 것은 처음”라면서 “부대는 눙안현에서 세균전 전초 실험을 하며 중국 본토에서의 대규모 세균전을 준비했다”고 전했다. 731부대는 1932년부터 1945년까지 중국 하얼빈 일대에 주둔하며 생체 해부 실험과 냉동 실험 등을 자행했다. 이 부대는 중국인과 한국인, 러시아인 등 전쟁 포로에게 발진티푸스와 콜레라, 기타 세균 등을 주입해 세균전 실험을 자행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북한 전문가 “北, 정치범 대상 화학무기 생체실험 자행”

    북한이 정치범들을 대상으로 화학무기에 대한 생체실험을 하고 있다는 주장이 나와 눈길을 끌고 있다. 북한 군사문제 전문가인 조지프 버뮤데스는 11일(현지시간) 북한전문 웹사이트인 ‘38노스’에 기고한 글에서 “북한이 장기간에 걸쳐 정치범 수용소에서 낮은 수준의 화학무기 작용제 실험을 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면서 “간헐적이지만 북한이 수용소내 정치범들을 상대로 화학무기 실험을 실시했다는 탈북자들의 보고가 나오고 있다”고 밝혔다. 버뮤데스의 글에 따르면 북한군 보안요원으로 근무한 탈북자 권혁씨가 “건강한 정치범들을 유리가스실에 수용한 뒤 독가스를 주입했다”고 주장했고 특수부대 출신인 임춘용씨도 서해의 한 섬에서 비슷한 실험이 벌어지고 있다고 증언했다. 버뮤데스는 또 “북한이 10여 개의 시설에서 화학무기를 생산하고 있으며 북한이 상당량의 화학무기를 생산해 한반도 지역과 세계 전역에 배치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면서 “평시에는 연간 4500t의 화학무기를, 전시에는 연간 1만2000t의 화학무기를 생산할 능력이 있다”고 전했다. 이어 “북한은 18개 시설에서 20여가지의 다양한 화학무제 작용제를 생산할 수 있으며 특히 설파머스타드, 염소, 포스겐, 사린, V계열 작용제를 생산하는데 주력하고 있다”면서 “이원화 화학무기(비독성 화학물질이 서로 합성돼 치명적인 독성 물질로 바뀌도록 하는 무기)도 일부 생산중인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는 “화학작용제와 해독제 등 관련장비의 생산은 주로 평원 279공장에서, 연구개발은 평원 398 연구소에서 이뤄지고 있다”고 밝혔다. 버뮤데스는 “북한이 1990년대 이후부터 이집트와 이란, 리비아, 시리아에 화학무기와 화학작용제,관련기술을 제공해왔다는 보고가 있다”면서 “작년 12월에는 이란과 북한 전문가들이 시리아의 화학무기 개발을 지원하고 있다는 시리아 군 장교의 증언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글로벌 시대] 망언과 망국/전가림 호서대 교양학부 교수

    [글로벌 시대] 망언과 망국/전가림 호서대 교양학부 교수

    말은 의식과 교양의 정도에 따라 구조와 품격이 결정되기 때문에 착할 수도, 악할 수도 있다. 최근 일본 아베 신조 총리를 비롯해 몇몇 정치인들의 말은 착하기는커녕 악하다 못해 심히 망령되다 하여 양식 있는 일본인을 포함, 국제사회까지 거세게 비난하고 있다. 사리에 맞지도 않고 떳떳하지도 않은 말을 해 대는 일본인들의 망언(妄言)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멀리는 ‘일본서기’와 같은 역사서와 ‘메이지유신’ 그리고 ‘정한론’이 망언을 담고 있으며, 가깝게는 나카소네 내각에서 문부성 장관을 지낸 후지오는 ‘한·일 병합은 합의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라 했고, 방위청 장관을 지낸 오쿠노는 ‘일본은 자신의 안전을 위해 싸웠고, 일본의 이상적 목표는 각국의 독립이었다’고 했다. 최근 아베 총리는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는 것은 미국의 알링턴 국립묘지를 참배하는 것과 같다”고 했고, 아소 다로 부총리는 “독일의 바이마르 헌법은 어느새 바뀌었다. … 그 수법을 배우면 어떻겠는가”라고 하면서 개헌 의도를 드러내기도 했다. 일본 지도층은 어찌하여 이런 망언을 아무런 역사의식이나 죄책감도 없이 내뱉고 있는 것일까. 그들에겐 쉽게 치유되지 않는 고질이 있어서 그렇다. 그 고질은 일본인의 합리적 사고와 객관적 판단 능력을 앗아 간 정신질환을 말한다. 일찍이 ‘국화와 칼’의 저자 루스 베네딕트는 일본 문화에 대해 ‘국화’와 ‘칼’처럼 두 개의 극단적 형태를 구성 요소로 한 문화 패턴이 특징이라고 진단한 바 있다. 역사상 일본인들은 이웃 나라를 수없이 노략하고 침탈한 민족이었고, 진주만 기습과도 같은 국제전까지 자행한 민족이기도 하다. 특히 그들의 병사들은 칼이 잘 드는가를 실험하기 위해 포로들의 목을 쳤고,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수많은 어린 여성들까지 강제 동원, 일본군 위안부라는 이름으로 성적 노리개로 삼음은 물론 학대까지 자행했다. 어디 그뿐인가. ‘난징 대학살’과 ‘731부대 생체실험’이라는 반문명적 잔혹성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아무런 범죄 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오히려 그들이 저지른 범죄를 정당화하고 합리화하기 위해 온갖 억지와 부회를 마다하지 않는 것은 특유의 문화적 배리와 도덕적 불감증에 연유한다고 하겠다. 그런데 문제는 그 같은 문화적 배리와 도덕적 불감증이 망언을 낳고, 망언은 힘에 대한 과신으로 이어지며, 과신은 힘의 오용을 불러오는 데 있다. 힘의 오용은 또 다른 힘의 응징으로 마침내 자멸을 초래하고 만다(亡國)는 역사적 사실은 인류가 체험한 힘의 논리며 결과였다. 이 같은 사실은 지난 세기 일본인 모두가 경험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일본인들이 그 경험을 까맣게 잊은 것 같아 안타깝다. 박근혜 대통령도 안타까운 나머지 이번 광복절 경축사에서 전향적인 한·일 관계를 위해 일본 정치인들은 역사를 직시하고 이웃 민족에게 입힌, 아물지 않은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용기 있는 리더십을 보이라고 촉구했다. 몇 년 전 폴란드에 갔을 때 아우슈비츠 수용소 입구에서 “역사를 기억하지 않는 자는 그 역사를 다시 살게 마련이다”라는 경구를 보았다. 이 말이 자꾸 뇌리를 스치는 건 요즘 망언을 일삼고 있는 일본 지도층에게 들려주고 싶어서일까. 비록 일본은 우리에겐 가깝고도 먼 나라라고 하지만 이웃 나라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인간적인 연민을 느끼는 건 비단 나만이 아닐 것이다.
  • 정찬성 “UFC, 日 전범기 금지를”

    정찬성 “UFC, 日 전범기 금지를”

    종합격투기(MMA) 선수 정찬성(25)이 일본 전범기(욱일기)와의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정찬성은 지난 4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조제 알도와 UFC-163 페더급 타이틀전을 벌이기에 앞서 욱일기가 그려진 옷을 금지하도록 요청하는 서한을 UFC 관계자에게 전달한 것으로 11일 뒤늦게 알려졌다. 최근 MMA 전문지 ‘엠파이트’에 따르면 당초 정찬성은 로렌조 퍼티타 UFC 회장이나 데이나 화이트 대표에게 서한을 건넬 계획이었지만 두 사람이 경기장을 찾지 않아 매치메이커 조 실바에게 이를 전달하도록 부탁했다는 것. 최근 UFC가 제작하는 격투기 서바이벌 TV 프로그램인 TUF-18에서 여자 밴텀급 챔피언 론다 로우지가 욱일기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나온 것이 서한을 전달하게 된 계기가 됐다. 정찬성은 지난 3월에도 웰터급 챔피언 조르주 생피에르가 욱일기가 그려진 가라테 도복을 입고 경기에 나서자 트위터 등을 통해 비판하고 사과도 이끌어냈다. 당시 문제의 도복을 제작한 하야부사도 욱일기가 들어간 의류 등은 판매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정찬성은 서한에서 “욱일기는 전범기로, 정의와 UFC를 위해 욱일기 문양이 들어간 의류와 장구류 착용을 금지시켜 달라”고 요청했다. 이어 “선수들을 포함한 대다수 서양인들은 욱일기가 무엇을 상징하는지 잘 모른다”며 “욱일기는 독일 나치의 ‘하켄크로이츠’와 마찬가지로 군국주의와 전쟁범죄의 상징”이라고 설명했다. 또 “부당한 침략, 고문, 학살, 성노예, 생체실험 등이 많은 사람들에게 평생 아물지 않는 상처를 남겼고 이들은 제대로 보상받지 못한 채 죽어가고 있다”고 호소했다. 이어 UFC가 아시아 진출을 추진하는 것과 관련해 “아시아인들은 선수들이 전범의 상징을 걸친 모습을 보면 분노해 불매운동을 벌일 것”이라고 경고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열린세상] 또 꿈틀대는 ‘대동아전쟁’/김정기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언론정보대학원장

    [열린세상] 또 꿈틀대는 ‘대동아전쟁’/김정기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언론정보대학원장

    착잡했다. 만감이 교차했다.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사람의 복부를 사무라이 칼로 가르고 파헤쳐 내장을 드러나게 하는 천하의 무뢰배들. 난도질은 부녀자도 예외가 아니었다. 살육과 폭력의 조종으로 조선을 울린 흉포한 무뢰한들. 매화꽃을 찾아 떠난 길에 들른 목포의 ‘근대역사관’에서 목격한 일본군의 만행이었다. 식민지의 피와 땀을 착취하려고 1920년 6월에 설립한 동양척식주식회사의 목포지점 건물에 전시된 일제침략의 실증적 유적·역사 교육이 뒷전으로 밀려난 시대를 살면서 부끄럽게도 오랜만에 우리 역사를 자각했다. ‘임산부와 노약자 관람 주의’라는 권고문에 예상은 했다. 사람을 포박하여 땅바닥에 앉혀 놓았는데, 방금 잘린 목이 붙어 있던 부위에서는 검붉은 피가 솟구쳤고, 강제동원됐을 사람들은 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항일조직 간부들은 무릎을 꿇리고 뒤에서 머리를 쏘아 사살했다. 짐승만도 못할 짓은 이뿐만이 아니다. 부모가 처형당하는 것을 보고 공포에 일그러진 표정으로 우는 아기와 동생을 안간힘으로 안고 있는 어린 형. 그 시대와 사람들의 지옥 고통을 알려주는 자료들은 필설로 형언할 수 없이 처참했다. 천인공노할 짓거리를 사진으로 찍어 식민지 무단통치의 수단으로 삼았던 인면수심의 범죄자들. 일제 침략자들의 후예는 오늘도 침탈을 대한민국 근대화로 견강부회한다. 동양척식의 서양식 건물은 앞선 세계건축양식을 조선에 도입했다는 식이다. 삼천리 금수강산의 자원을 수탈하려고 만든 신작로와 철도를 교통의 근대화라고 억지를 쓴다.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담은 사진촬영기는 문명사진술로 강변된다. 이러니 탈아입구(脫亞入歐)라는 민족과 문명에 대한 편견을 교묘하게 위장해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본제국주의는 과거가 아니라 현재로 존재하는 것이다. 더욱이 일본 총리 아베는 일제의 침략을 정당화하는 망언과 망동에 앞장서고 있다. “(신사참배와 관련하여) 생명을 바친 사람들을 참배하는 것은 당연하고 총리의 책무다”(2005년 4월), “(위안부 모집의) 강제성을 증명하는 증언이나 뒷받침하는 것은 없다”(2007년 3월), 2012년 12월 26일 총리 취임 이후에는 “(식민지 지배와 침략을 사과하는 내용이 포함된) 무라야마 담화를 그대로 계승하지 않겠다”(2013년 4월 22일), “침략의 정의는 학계에서도, 국제적으로도 정해지지 않았다. 국가 간의 관계에서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다르다”(2013년 4월 23일). 이쯤 되면 아베의 심신은 조선의 무고한 양민의 배를 가르고, 목을 자르고, 머리에 총을 쏘고, 어린 자식 앞에서 부모를 죽이던 ‘대동아전쟁’(태평양전쟁)의 하수인들과 다르지 않다. 지난 5월 12일 아베는 731이라는 번호가 붙은 자위대의 항공훈련기 조종석에 올라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웠다. ‘731 세균부대’는 수많은 한국·중국·몽골·러시아인들을 마루타(통나무)로 취급하며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생체실험을 자행했다. 유대인을 학살한 나치의 홀로코스트와 함께 인류가 저지른 최악의 범죄행위이다. 정치적 인기를 위해서든, 영혼 없는 집단최면의 발로에서든 망언을 제조하고 있는 아베와 일본 정치인들은 제2의 태평양전쟁을 도발하고 있다. 1970년 12월 7일 폴란드 바르샤바 전쟁희생자 비석 앞에 무릎을 꿇고 나치 독일의 전쟁범죄를 사죄한 브란트 전 독일 총리 같은 정치인이 일본 풍토에서 나오기는 불가능한가. 2차 세계대전이 종전되고 68년이 지나서도 93세의 나치 용의자를 찾아 기소하는 독일 국민의 반성을 일본 사회에서 기대할 수 없다면 대한민국이 가야 할 길은 자명하다. 역사에 대한 건망증을 경계하며 자기반성을 상실한 일본과는 전혀 다른 대한민국을 만들어 가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과거에 대한 철저한 반성을 현재와 미래에 반영하는 사회, 동시에 지구촌 세계의 일원으로서 보편적 가치와 양식을 공유하는 국가로 가야 한다. 이는 자신의 야만을 부정하고 정당화하는 역사 왜곡은 물론이고 반인륜적·반문명적 저질행태를 지속하는 일본에 대한 지혜로운 대처이기도 할 것이다.
  • [사설] 일본 전쟁범죄 국제공조로 해결하자

    일본 정부가 역사 망각이라는 집단 최면에 걸린 듯한 분위기다. 노다 요시히코 총리가 일제가 강제동원한 ‘일본군 성노예(위안부)’의 증거를 대라며 앞장서자 겐바 고이치로 외무상이 뒤를 받쳤다. 마쓰바라 진 국가공안위원장은 위안부 문제에 대해 사죄를 했던 1993년 ‘고노 담화’의 존폐 여부를 논의해야 한다고 했다. 명백한 역사적 사실도 눈감아 버리는 그들의 맹목성에서 2차 대전 시 가미카제(자살 특공대)가 연상된다. 일본은 제국주의의 길을 걸으며 아시아·태평양에서 온갖 전쟁범죄를 저질렀다. 여성들을 끌고가 군인들의 성노리개로 이용한 것은 물론 만주 주둔 731부대의 생체실험, 필리핀 바탄에서의 전쟁포로 죽음의 행진 사건 등 부지기수다. 성노예 희생자에는 한국, 중국, 필리핀, 타이완, 태국 등의 여성이 포함돼 있다. 1990년에는 인도네시아에 있던 네덜란드 여성까지 끌려갔다는 새로운 사실이 밝혀졌다. 731부대는 산 사람을 대상으로 무기와 세균의 성능을 실험하고 장기까지 해부해 나치 독일의 유대인 가스 학살 못잖은 잔혹한 일을 저질렀다. 그러나 그 주역들은 전후 전범재판에서 도조 히데키 등 내각과 일부 군인들이 교수형에 처해졌을 뿐 가벼운 처벌을 받았다. 유럽에선 영국·프랑스·러시아 등이 전승국이자 피해자여서 독일을 단죄했지만, 아시아에선 한국·중국·필리핀 등 피해국이 배제된 채 전승국 미국 주도 하에 재판이 이뤄진 탓이다. 2차 대전 참전 책임이 큰 히로히토 일왕에게 면죄부가 주어지고 난징 대학살이나 731부대 사건도 상징적 인물에 대한 처벌만 이뤄졌다. 그러나 일제의 전쟁범죄 진상규명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지난 2005년 8월 중국 하얼빈일보는 생체실험대상자 명단 1463명을 발굴, 공개했다. 여기에는 한국인 6명도 포함됐다. 한국, 중국, 필리핀 등 아시아 피해국들은 일본의 역사 역주행에 서로 힘을 모아 함께 대응해야 한다. 전쟁범죄 피해사례를 공동 연구하고 자료를 공유하는 것은 물론 미국, 유럽, 유엔 등 국제사회에 꾸준히 알려 주의를 환기시켜야 한다. 전쟁범죄와 역사 왜곡에 대해서 공동대응하는 협약을 맺어 일본이 또다시 역사를 망각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 의학이 부추긴 女性 쇼핑

    의학이 부추긴 女性 쇼핑

    “인간의 난자는 나무에 열리지 않는다.” 의료윤리 연구자인 저자가 한마디 툭 던져놨다. 가슴 아린 한마디다. 황우석 사태가 비극인 까닭은 연구 자체가 거짓말이어서가 아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거짓 연구 자체는 그냥 희극이다. 진정한 비극은 그 파문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몸, 구체적으로는 난자 문제가 여전히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런 뜻에서 ‘인체 쇼핑’(도나 디켄슨 지음, 이근애 옮김, 소담출판사 펴냄)은 번역이 때늦은 감이 있지만 여전히 의미 있는 책이다.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언급하자면 황우석의 방법은 체세포 핵이식이다. 영국의 이언 윌머트가 복제양 돌리를 만들 때와 같은 기법이다. 난자에서 핵을 제거한 뒤 체세포의 핵을 대신 넣는 것이다. 거짓 연구라는 걸 들키기 전부터 이미 외국에선 의심의 눈초리가 쏟아졌다. 애국주의자들 눈에는 한국의 성취에 대한 질투로만 보였겠지만 의심받은 이유는 간단했다. 윌머트는 400개의 난자를 획득한 뒤 핵을 제거했더니 267개가 사용가능했고 이 267개 가운데 1개에서 돌리를 탄생시켰다고 했다. 그렇게 어려운 작업인데 황우석은 무려 11개의 줄기세포주를 만들어내는 데 난자는 200개도 채 안 썼다고 주장했다. 돌리에다 단순비교하자면 난자 4400개 정도는 써야 했는데 말이다. 이런 의심에 대한 황우석의 과학적(?) 반론은 연구원의 손기술을 진화시킨 한민족의 젓가락문화였다. 물론 거짓 연구가 들통난 뒤 난자에 대한 해명 역시 거짓임이 드러났다. 200개도 채 안 된다고 했는데 난자 “2200여개를 119명의 여성에게서 채취”했다. 한 여성에게서는 무려 “43개의 난자”를 얻었는데 이는 “배란촉진제를 치명적일 정도로 과다투여했을 것이라는 점을 암시”한다. “난자 기증자의 15~20%가 심각한 난소과자극증후군을 앓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연구팀 소속 연구원에게 난자를 기증하라 했다. 이는 나치정권의 생체실험을 비판하면서 이타주의로 치장된 거짓 자발성을 엄격히 금지했던 과학계의 대원칙을 위배한 것이다. 그뿐 아니라 기증자의 절반 이상이 “평균적으로 난자 1개당 1400달러”를 받았다. 기증이 아니라 매매였다. 그러면 이렇게 물어보자. 황우석 연구가 진실이었다면? 위대한 젓가락문화가 진화시킨 연구원의 세심한 손가락 놀림 덕분에 정말 그런 결과를 이뤄냈다면? 그래서 영국의 시민운동가 세라 색스턴은 황우석 연구가 진실이란 가정하에 필요한 난자량을 계산해 봤다. 치료대상은 영국 당뇨병 환자로 한정했다. 의료전문가들이 황우석 기술이 가장 널리 쓰이게 될 분야로 당뇨병을 지목해서다. 그 결과는 “영국 젊은 여성 3분의1 내지 2분의1이 난자를 기증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포인트는 두 가지다. 다른 어려운 질병을 제쳐 두고 당뇨 하나만에도 그렇게 많은 난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너를 일어서 걷게 하리라.’는 복음을 위해서는 얼마나 더 필요할까. 다른 하나는 “젊은”이다. 성공률은 여전히 낮기 때문에 이 과정을 견딜 수 있는 젊고 싱싱한 난자가 필요하다. 그래서 만약 그 당시 황우석 연구가 진짜로 판명났다면 지금쯤 대한민국 젊은 여성들에게는 난자를 기증해 박애주의자로 거듭나라는 지속적인 대국민 캠페인이 벌어졌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난자 채취는 말처럼 그리 쉽지 않다. 책에는 자세히 소개되어 있는데 불임클리닉에 다닌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그에게 물어보는 게 제일 빠른 길이다. 저자는 난자를 얻기 위해 난소를 지나치게 자극하다 죽음에까지 이르는 실제 사례들도 소개해뒀다. 더구나 여성이 생산할 수 있는 난자 수는 한정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난자를 뽑아 쓸 경우 조기 폐경이 우려된다는 경고가 나오는 이유다. 골밀도가 떨어지고 자궁암 발병률이 높아진다는 일부 연구결과도 있다. 실제 이런 이유 때문에 캐나다는 난자 기증 자체를 중지시켰다. 과학적으로 아직 확실히 규명되지 않았지만, 그렇기에 여성의 몸에 해가 안 된다는 증거가 분명해질 때까지 금지한다고 선언해버린 것이다. 가장 한심한 소리는 체외수정을 위해 쓰고 남은 난자를 연구용으로 쓰는 것은 무방하지 않으냐는 주장이다. 저자는 목적에 따라 난자를 얻는 방법이 달라진다는 점을 분명히 지적한다. 가령 영국의 한 연구팀은 체외수정용으로 쓰고 남은 난자를 모으기 위해 사력을 다했지만 7개월 동안 겨우 66개를 모았다. 반면 뉴캐슬 불임클리닉을 조사해 보니 29세의 한 여성에게서만도 44개의 난자를 뽑아낸 경우가 있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어차피 남는 난자인데 다른 사람 치료를 위해 연구용으로 쓰는 게 뭐 어때.”라고 합리화하는 순간, 불임클리닉들은 체외수정에 적당한 수준 이상으로 난소를 더 자극해 더 많은 난자를 뽑아내려 들 것이라는 점이다. 더구나 특허로 인한 학문적 명망과 경제적 이득이 연구자 혹은 병원장의 양심을 마비시키고, 국익이라는 애국적 가치가 지켜보는 이들의 입까지 다 막아버릴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렇게 보면 차라리 황우석의 연구가 거짓으로 들통나 일찍 중단되어버린 것이 차라리 다행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있을까. 책은 제목에서 보듯 황우석 사태만 다룬 건 아니다. 불로장생을 가져다 줄 것처럼 떠들어대는 생명의학계가 얼마나 엉뚱한 짓을 일삼는지 보여준다. 죽은 자의 뼈를 아무렇지도 않게 거래하는 대형병원들, 이 병원들에 제품을 잘 공급하기 위해 밀매조직들이 내놓은 각종 인체조직들의 가격표, 언론에서 크게 부풀려진 장기이식 수술 성공사례들의 널리 알려지지 않은 비참한 결과 같은 것들이 빼곡하다. 얼마 전 ‘헨리에타 랙스의 불멸의 삶’(레베카 스클루트 지음, 김정한·김정부 옮김, 문학동네 펴냄)으로 널리 알려진 헨리에타 랙스의 사례는 물론, 그와 비슷한 사례와 이를 둘러싼 각종 법적 공방까지 모두 다뤄뒀다. 그 가운데 제대혈이 눈길을 끈다. 출산 때 태반과 함께 버려지는 제대혈에서 줄기세포를 추출해낼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제대혈 보관이 유행이 됐다. 저자에 따르면 여기엔 거짓말, 그것도 중대한 거짓말이 하나 있다. 제대혈은 그냥 ‘버려지는’ 게 아니다. 저자의 설명을 요약하자면 제대혈은 아기에게, 특히 조산아에게 신선한 산소 공급 같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더구나 제대혈 채취는 산후출혈이라는, 출산과정에서 산모에게 가장 위험한 시기에 행해진다. 제대혈 보관은 어차피 버려질 것을 소중하게 다시 쓰는 기법이 아니라, 산모에게 가장 위험한 순간에 아기에게 주어지는 소중한 무언가를 일부 덜어내는 것이다. 이는 난자와 똑같은 문제를 불러일으킨다. 필요한 만큼 최소한으로 억제한다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어차피 버릴 거 유용하게 쓰는데 뭐 어때.’라고 합리화하는 순간 큰 위기를 몰고 올 수 있다. 그러고 보니 합리화란 대개 양심을 마비시킬 때 쓰는 전략이다. 1만 5000원.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황우석, 女 119명의 난자 2200개 채취해놓고…

    황우석, 女 119명의 난자 2200개 채취해놓고…

    “인간의 난자는 나무에 열리지 않는다.” 의료윤리 연구자인 저자가 한마디 툭 던져놨다. 가슴 아린 한마디다. 황우석 사태가 비극인 까닭은 연구 자체가 거짓말이어서가 아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거짓 연구 자체는 그냥 희극이다. 진정한 비극은 그 파문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몸, 구체적으로는 난자 문제가 여전히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런 뜻에서 ‘인체 쇼핑’(도나 디켄슨 지음, 이근애 옮김, 소담출판사 펴냄)은 번역이 때늦은 감이 있지만 여전히 의미 있는 책이다.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언급하자면 황우석의 방법은 체세포 핵이식이다. 영국의 이언 윌머트가 복제양 돌리를 만들 때와 같은 기법이다. 난자에서 핵을 제거한 뒤 체세포의 핵을 대신 넣는 것이다. 거짓 연구라는 걸 들키기 전부터 이미 외국에선 의심의 눈초리가 쏟아졌다. 애국주의자들 눈에는 한국의 성취에 대한 질투로만 보였겠지만 의심받은 이유는 간단했다. 윌머트는 400개의 난자를 획득한 뒤 핵을 제거했더니 267개가 사용가능했고 이 267개 가운데 1개에서 돌리를 탄생시켰다고 했다. 그렇게 어려운 작업인데 황우석은 무려 11개의 줄기세포주를 만들어내는 데 난자는 200개도 채 안 썼다고 주장했다. 돌리에다 단순비교하자면 난자 4400개 정도는 써야 했는데 말이다. 이런 의심에 대한 황우석의 과학적(?) 반론은 연구원의 손기술을 진화시킨 한민족의 젓가락문화였다. 물론 거짓 연구가 들통난 뒤 난자에 대한 해명 역시 거짓임이 드러났다. 200개도 채 안 된다고 했는데 난자 “2200여개를 119명의 여성에게서 채취”했다. 한 여성에게서는 무려 “43개의 난자”를 얻었는데 이는 “배란촉진제를 치명적일 정도로 과다투여했을 것이라는 점을 암시”한다. “난자 기증자의 15~20%가 심각한 난소과자극증후군을 앓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연구팀 소속 연구원에게 난자를 기증하라 했다. 이는 나치정권의 생체실험을 비판하면서 이타주의로 치장된 거짓 자발성을 엄격히 금지했던 과학계의 대원칙을 위배한 것이다. 그뿐 아니라 기증자의 절반 이상이 “평균적으로 난자 1개당 1400달러”를 받았다. 기증이 아니라 매매였다. 그러면 이렇게 물어보자. 황우석 연구가 진실이었다면? 위대한 젓가락문화가 진화시킨 연구원의 세심한 손가락 놀림 덕분에 정말 그런 결과를 이뤄냈다면? 그래서 영국의 시민운동가 세라 색스턴은 황우석 연구가 진실이란 가정하에 필요한 난자량을 계산해 봤다. 치료대상은 영국 당뇨병 환자로 한정했다. 의료전문가들이 황우석 기술이 가장 널리 쓰이게 될 분야로 당뇨병을 지목해서다. 그 결과는 “영국 젊은 여성 3분의1 내지 2분의1이 난자를 기증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포인트는 두 가지다. 다른 어려운 질병을 제쳐 두고 당뇨 하나만에도 그렇게 많은 난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너를 일어서 걷게 하리라.’는 복음을 위해서는 얼마나 더 필요할까. 다른 하나는 “젊은”이다. 성공률은 여전히 낮기 때문에 이 과정을 견딜 수 있는 젊고 싱싱한 난자가 필요하다. 그래서 만약 그 당시 황우석 연구가 진짜로 판명났다면 지금쯤 대한민국 젊은 여성들에게는 난자를 기증해 박애주의자로 거듭나라는 지속적인 대국민 캠페인이 벌어졌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난자 채취는 말처럼 그리 쉽지 않다. 책에는 자세히 소개되어 있는데 불임클리닉에 다닌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그에게 물어보는 게 제일 빠른 길이다. 저자는 난자를 얻기 위해 난소를 지나치게 자극하다 죽음에까지 이르는 실제 사례들도 소개해뒀다. 더구나 여성이 생산할 수 있는 난자 수는 한정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난자를 뽑아 쓸 경우 조기 폐경이 우려된다는 경고가 나오는 이유다. 골밀도가 떨어지고 자궁암 발병률이 높아진다는 일부 연구결과도 있다. 실제 이런 이유 때문에 캐나다는 난자 기증 자체를 중지시켰다. 과학적으로 아직 확실히 규명되지 않았지만, 그렇기에 여성의 몸에 해가 안 된다는 증거가 분명해질 때까지 금지한다고 선언해버린 것이다. 가장 한심한 소리는 체외수정을 위해 쓰고 남은 난자를 연구용으로 쓰는 것은 무방하지 않으냐는 주장이다. 저자는 목적에 따라 난자를 얻는 방법이 달라진다는 점을 분명히 지적한다. 가령 영국의 한 연구팀은 체외수정용으로 쓰고 남은 난자를 모으기 위해 사력을 다했지만 7개월 동안 겨우 66개를 모았다. 반면 뉴캐슬 불임클리닉을 조사해 보니 29세의 한 여성에게서만도 44개의 난자를 뽑아낸 경우가 있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어차피 남는 난자인데 다른 사람 치료를 위해 연구용으로 쓰는 게 뭐 어때.”라고 합리화하는 순간, 불임클리닉들은 체외수정에 적당한 수준 이상으로 난소를 더 자극해 더 많은 난자를 뽑아내려 들 것이라는 점이다. 더구나 특허로 인한 학문적 명망과 경제적 이득이 연구자 혹은 병원장의 양심을 마비시키고, 국익이라는 애국적 가치가 지켜보는 이들의 입까지 다 막아버릴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렇게 보면 차라리 황우석의 연구가 거짓으로 들통나 일찍 중단되어버린 것이 차라리 다행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있을까. 책은 제목에서 보듯 황우석 사태만 다룬 건 아니다. 불로장생을 가져다 줄 것처럼 떠들어대는 생명의학계가 얼마나 엉뚱한 짓을 일삼는지 보여준다. 죽은 자의 뼈를 아무렇지도 않게 거래하는 대형병원들, 이 병원들에 제품을 잘 공급하기 위해 밀매조직들이 내놓은 각종 인체조직들의 가격표, 언론에서 크게 부풀려진 장기이식 수술 성공사례들의 널리 알려지지 않은 비참한 결과 같은 것들이 빼곡하다. 얼마 전 ‘헨리에타 랙스의 불멸의 삶’(레베카 스클루트 지음, 김정한·김정부 옮김, 문학동네 펴냄)으로 널리 알려진 헨리에타 랙스의 사례는 물론, 그와 비슷한 사례와 이를 둘러싼 각종 법적 공방까지 모두 다뤄뒀다. 그 가운데 제대혈이 눈길을 끈다. 출산 때 태반과 함께 버려지는 제대혈에서 줄기세포를 추출해낼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제대혈 보관이 유행이 됐다. 저자에 따르면 여기엔 거짓말, 그것도 중대한 거짓말이 하나 있다. 제대혈은 그냥 ‘버려지는’ 게 아니다. 저자의 설명을 요약하자면 제대혈은 아기에게, 특히 조산아에게 신선한 산소 공급 같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더구나 제대혈 채취는 산후출혈이라는, 출산과정에서 산모에게 가장 위험한 시기에 행해진다. 제대혈 보관은 어차피 버려질 것을 소중하게 다시 쓰는 기법이 아니라, 산모에게 가장 위험한 순간에 아기에게 주어지는 소중한 무언가를 일부 덜어내는 것이다. 이는 난자와 똑같은 문제를 불러일으킨다. 필요한 만큼 최소한으로 억제한다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어차피 버릴 거 유용하게 쓰는데 뭐 어때.’라고 합리화하는 순간 큰 위기를 몰고 올 수 있다. 그러고 보니 합리화란 대개 양심을 마비시킬 때 쓰는 전략이다. 1만 5000원.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日 세균전 피해자 2만6000명”

    중일전쟁 당시 생체실험으로 악명을 떨쳤던 일본군 세균부대인 731부대의 세균전 피해자가 2만 6000명에 육박한다는 극비 문서가 일본에서 발견됐다. 16일 도쿄신문에 따르면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이 중일전쟁 때 6차례 작전에서 세균 무기를 사용해 1·2차 감염자가 2만 5946명에 달했다는 극비문서가 일본 시민단체에 의해 공개됐다. 시민단체인 ‘731부대의 실체를 밝히는 모임’은 15일 도쿄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교토의 국립국회도서관 간사이관에 보관돼 있는 이런 내용의 731부대 관련 자료를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이 자료는 육군 군의학교 방역연구실에 근무하던 군의관이 작성한 극비 보고서다. 이 군의관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대형 제약회사에서 근무한 것으로 알려졌다. 극비 문서에는 731부대가 1940년부터 1942년까지 중국 지린(吉林)·저장(浙江)·장시(江西)성 등에서 페스트균에 감염된 벼룩을 살포했을 때의 기록이 남아 있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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