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생존 신고
    2026-04-11
    검색기록 지우기
  • 톨게이트
    2026-04-11
    검색기록 지우기
  • 우리금융
    2026-04-11
    검색기록 지우기
  • 아이스크림
    2026-04-11
    검색기록 지우기
  • 사형 선고
    2026-04-11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403
  • [박동섭 가족클리닉 행복만들기] 딸들에 상속포기 강요하는 아버지

    저는 3남2녀 중 둘째딸로서 시집가서 잘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친정아버지가 저를 비롯한 출가한 언니에게 아버지 재산에 대한 상속포기를 하라고 강요하고 계십니다.“인감도장과 인감증명서를 가지고 와서 상속포기서에 도장을 찍어라.”고 요구하십니다. 아버지는 3명의 아들들에게 집을 사주었고, 조그마한 건물도 이미 주었는데 딸들에게는 재산이라고는 전혀 주지 않고 이제는 상속포기만을 고집하고 계십니다. 공증까지 받자고 하십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박신덕(가명)- 아버지의 소원이라면 그렇게 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그렇게 포기하더라도 법률상 무효이기 때문입니다. 옛날 농업경제 시대의 가부장적 가족제도 하에서는 호주 겸 가장의 권한이 너무 막강해 가족이 그 명령에 안 따르면 살아남을 수 없었습니다. 가장은 가족구성원들의 일상생활은 물론, 혼인·입양 등에 관한 신분상의 행위에 대해 모든 권한을 갖고 있었습니다. 본인이 아무리 싫어도 아버지가 정한 혼인에 따라 시집가고 장가가야 했습니다. 신덕씨의 친정아버지는 전통적인 가부장적 가장인 것 같습니다. 그러한 가족제도에서는 재산문제도 가장의 마음대로 처리했던 것입니다. 그 대신 가장은 가족의 부양책임을 떠맡고 있었습니다. 현재의 상속법에는 피상속인인 아버지가 생전에 자기 명의의 재산을 처분하는 것은 아버지의 자유이고 그 어느 누구도 간섭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자식들이 아버지의 재산처분에 항의하거나 이의를 제기할 수 없습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만 재산을 물려주는 것은 자유이지만, 딸들이나 특히 시집간 딸에게 미리 상속포기를 강요하는 것은 오늘날의 법을 잘 몰라서 하는 고집일 뿐입니다. 상속포기는 2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상속받은 재산에 대한 권리를 포기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상속채무를 면하기 위하여 상속포기 신고를 하는 것입니다. 어느 경우이든 시간적 선후관계에 따라 이를 다시 2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아버지 사망(상속개시) 이전의 포기이고, 다른 하나는 아버지 사망 이후의 포기입니다. 원래 상속인의 권리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비로소 발생하는 것이고, 아버지가 생존해 있는 동안에는 생길 수 없는 권리입니다. 굳이 표현한다면 상속받을 가능성이 있는 하나의 추정적 지위 혹은 자격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아버지가 돌아가시기도 전에 아들·딸이 상속을 포기한다.’는 말은 아직 생기지도 아니한 권리, 즉 없는 권리를 포기한다는 말입니다. 포기할 것이 없는 것을 포기한 꼴이니 이는 무효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상속포기는, 일단 상속이 개시된 후에 생긴 구체적인 재산에 대한 상속권리를 포기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권리의 포기는 포기로서 법률상 유효한 것입니다. 상속개시 후의 상속권을 포기하려면 공동상속인인 형제자매 등에게 포기한다는 의사표시를 하면 됩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거액의 채무(債務)를 지고 있어서 그가 남긴 상속재산으로는 도저히 이를 갚을 수 없는 상태, 즉 채무초과 상태인 경우도 있습니다. 이때는 상속인들은 누구도 빚을 물려받기 싫어하고, 상속채무를 면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할 것입니다. 그 방법의 하나가 바로 상속포기 신고입니다. 포기신고는 상속인이 피상속인의 사망사실, 상속인 스스로 상속인이 된 사실을 안 날부터 3개월 안에 가정법원에 상속포기 신고를 하여야 합니다. 상속포기신고는 상속인 각자의 인감증명서를 첨부하여 인감도장을 찍어서 신고하여야 하고, 상속인이 미성년자·한정치산자·금치산자인 경우는 후견인 등 법정대리인이 위 사실을 안 날로부터 3개월 안에 신고해야 합니다. 포기신고의 경우는 상속재산목록을 첨부할 필요는 없고, 단순히 “청구인은 피상속인(주민등록번호와 주소도 필요)의 상속재산에 대한 모든 상속을 포기한다.”고 기재하여 신고합니다. 아버지가 생전증여로 모든 재산을 아들에게만 주었을 경우, 딸들은 아버지 사망 후 1년 안에(사전의 상속포기와 무관하게) 아들을 상대로 유류분 반환청구를 할 수 있습니다. ●가족클리닉의 상담 의뢰는 인터넷 서울신문(www.seoul.co.kr)에서 받습니다.
  • [박동섭 가족클리닉 행복만들기] 삼청교육대서 남편 사망 뒤늦게 혼인신고… 보상 받나

    저의 남편은 1980년 삼청교육 대상자로 끌려가 훈련 중 사망했습니다. 최근에 정부에서 무슨 보상을 해 준다는데 받을 길이 없을까요. 문제는 남편이 사망한 지 2년 뒤인 1982년에 혼인신고를 했는데 그것이 보상수령에 장애가 되지는 않을까요. 사실 남편에게는 친족이 아무도 없고, 단지 저와 결혼해 살다가 아이를 낳지도 못하고 교육 중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이 경우 저는 사실상 배우자로서 보상을 받을 수는 없을까요. -이영숙(가명)- ‘삼청교육 피해자의 명예회복 및 보상에 관한 법률’이 공포되어 시행되고 있고, 그 명예회복과 보상금의 신청기간이 공고되었습니다. 지난해 9월부터 올 7월 30일까지 신청해야 합니다. 삼청교육 법률에 따르면 사망자의 상속인이라야 보상금을 받을 자격이 있는데, 문제는 영숙씨가 혼인신고를 남편 생존 중에 하지 않고 남편 사망 후에 하였다는 데 있습니다. 사망한 사람과 혼인신고라도 유효한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혼인신고특례법(1968.12.31. 법률 제2067호)상의 혼인신고 뿐입니다. 남편이 전투에 참가하거나 전투 수행을 위한 공무에 종사하다가 사망한 경우 가정법원의 확인을 받으면, 아내는 단독으로 혼인신고를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혼인신고를 하면 남편 사망 시에 혼인신고가 된 것으로 간주됩니다. 이는 전쟁이나 사변 시에 나라를 지키다가 사망한 사람의 공적을 기리고 그 유가족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로서, 혼인 당사자 일방의 사망 후에도 혼인신고를 할 수 있는 유일한 특례입니다. 위 특례법에 따른 가정법원의 확인심판의 사례를 보면 “청구인은 망 김갑돌(가명)과 1947년 3월 혼인했으나, 혼인신고가 되지 아니한 채 김갑돌은 군복무중 6·25 사변 당시인 1951년 12월 경기도 동두천지구에서 전사하였음을 확인한다.”고 심판문의 주문에 적었습니다. 이런 심판을 받아 혼인신고를 한 사람은 보호를 받습니다. 그러면 영숙씨의 남편이 삼청교육 대상자로 동원되어 교육받은 것이 위 혼인신고특례법상의 ‘전투’ 또는 ‘전투수행을 위한 공무’에 해당될까요. 아무래도 그렇게 보기는 곤란할 것 같고, 따라서 영숙씨가 가정법원에 혼인신고확인심판 청구를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남편 사망 후 신고한 혼인신고를 유효한 혼인으로 볼 수는 없을까요. 심신상실자나 뇌졸중 등으로 의식을 상실한 사람이 혼인신고서를 제출한 경우, 또는 남편 사망 2개월 혹은 1일전에 신고된 혼인 등은 모두 무효입니다. 남편 사망 후 제출된 혼인신고를 호적공무원이 심사하지 않고 접수해 호적부에 기록해도 그것은 무효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음 위 삼청교육법률이 망인의 상속인을 보상금 수령자로 정하고 있습니다. 상속인은 망인의 직계비속(아들, 딸, 손자, 손녀, 외손자, 외손녀 등)과 배우자가 1순위의 상속인입니다. 망인의 직계존속(부모, 조부모, 외조부모, 양부모, 양조부모 등)이 2순위 상속인(자녀가 없는 배우자는 직계존속과 공동상속), 망인의 형제자매(이복형제자매, 이성동복 형제자매 모두 포함)가 3순위 상속인입니다. 망인의 3촌,4촌 이내의 혈족(예컨대, 백부, 숙부, 고모, 외숙부, 이모, 조카, 질녀, 생질, 생질녀, 친4촌, 외4촌, 고종4촌, 이종4촌, 조부모의 형제자매 등)이 4순위 상속인입니다. 그러면 영숙씨는 배우자로서 상속인이 될 수 있을까요. 우리나라 민법이 이른바 신고혼(申告婚) 주의를 채택하고 있어, 부부로서 혼례식을 올리고 아무리 오래 살고 있어도, 혼인신고 없이는 법률상 부부가 될 수 없고 그 부부는 사실혼 부부에 불과하게 됩니다. 법률상 부부만이 배우자로서 상속인 자격이 있고, 사실혼 부부는 서로 상속인이 될 수 없습니다. 이런 사실혼 부부를 보호하기 위해 주택임대차보호법, 근로기준법, 기타 각종 사회보장법이 많이 나와 있습니다. 하지만 삼청교육법률은 ‘사실혼 배우자’를 일절 언급하지 않고 ‘상속인’만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영숙씨는 이 중에 어느 것에도 해당되지 아니하므로, 결국 보상금을 수령할 수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사정은 딱하지만 법은 법이니만큼 지키지 않을 수 없습니다.
  • “55년만의 수료 신고합니다”

    “필승 신고합니다.” 해군 항해학교 수료 2주일을 앞둔 상태에서 6·25 전쟁을 겪은 70대 노병들이 55년 만에 수료장을 받지 못한 가슴 속의 ‘한’을 푼다.1일 해군에 따르면 박광수(74)옹 등 항해학교 5기생 17명은 오는 4일 경남 진해 교육사령부 연병장에서 후배 장병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수십년 만에 군복으로 갈아입고 수료식 행사를 갖는다. 1947년 12월 개교한 항해학교는 현 교육사 전투병과학교의 전신으로, 복무중인 일등 수병(현재 병장) 중 지원자를 받아 6개월 교육과정을 거쳐 부사관으로 배출하는 곳이다. 박옹 등은 1949년 12월 5기생으로 입교, 이듬해 7월8일 수료식을 가질 예정이었으나 6·25전쟁이 발발, 전선에 투입되는 바람에 지금까지 수료증을 받지 못했다. 전쟁 중 하사로 진급한 5기생들은 종전 후 뿔뿔이 흩어졌으나, 지난해 3월 일본 도쿄에 살고 있는 박옹의 주도로 20여명의 생존자를 찾아내 동기회를 발족, 해군본부에 수료식 행사와 수료증 발급을 요청했다. 해군은 이들의 명예를 높이고 해군에 대한 자긍심을 고양하기 위해 당시 복무기록을 뒤져 군사교육 이수사실을 확인해 이번 행사를 마련했다. 동기회 총무를 맡고 있고 화랑무공훈장을 세 차례나 받은 조용철(76)옹은 “전쟁으로 연기된 수료식을 해군에서 잊지 않고 마련해줘 고맙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조승진기자 redtrain@seoul.co.kr
  • [클릭 이슈] 한일협정후 일제피해자 보상 어디까지 왔나

    한일협정 문서가 1차 공개된 뒤 정부는 지난 2월 구성된 ‘한일수교회담 문서공개 등 대책기획단’에서 민·관 합동으로 구체적인 보상 형태와 개인 청구권 소멸 여부의 법적인 검토 등 구체적인 지원 방향에 대한 논의를 벌이고 있다. 정부는 일제 피해자들에 대해 금전·도의적인 ‘보상’을 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보상방법이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피해자들에 대한 직접적인 금전보상과 기금 건립, 생활안정지원 등이 주요한 지원 형태로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물론 어떤 방법이 되더라도 보상의 액수와 피해자 선정기준, 양국의 책임범위, 피해입증 여부 등은 논란으로 남는다. ●피해자들에 대한 직접 금전보상 일제 피해자들에게 일시금으로 지원하는 방법이다. 일제하 피해자에 대한 도의적인 차원의 보상이라는 점에서 가장 선명한 방법으로 꼽힌다. 정부는 지난 1974년 12월 ‘대일 민간 청구권 보상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1945년 8월15일 이전 일본의 불법행위로 인한 사망자에 한해 유족 8000여명에게 30만원을 지급한 적이 있다. 이번에도 일시적 금전 보상의 형태로 지원이 이루어진다면 당시에도 나머지 생존자와 부상자들에게는 지급하지 않아 형평성 논란이 야기됐던 것처럼 우선 지원의 틀을 넓혀야 하는 것이 당면과제다. 최영호 부산 영산대 교수는 “일본은 법적 책임이 없는데도 2001년부터 지난해까지 재일 한국인과 타이완인을 대상으로 사망자 270만엔과 부상자 400만엔의 기준을 마련해 일시금을 지급했다.”면서 “우리 정부가 한일협정 이후 피해자 지원을 위해 일본측으로부터 받은 돈을 제대로 쓰지 않은 책임이 분명히 있는 만큼 도의적인 차원에서도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현재 일제하 강제동원진상규명위에 신고되는 피해자 숫자가 하루 평균 3000여명에 이르고 있고 오는 6월 말까지 신고자만 20여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는 상황을 고려하면 피해자 선정 기준은 차치하고라도 막대한 예산 마련이 관건이 될 수 있다. 5·18 특별법에 근거한 피해자 지원방식처럼 피해자들 사이에 금전을 둘러싼 이해관계로 새로운 분란거리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빠뜨릴 수 없다. ●민관기금 형태의 지원 기업과 정부, 민간이 기금을 모아 장기적으로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방법이다.2차 세계대전 7개 피해국을 대상으로 독일 정부와 기업이 각각 50억마르크씩 출연해 운용하는 ‘기업·책임·미래재단’과 중국인 징용자를 위해 일본의 건설회사가 운용하는 ‘하나오카 기금’이 모델이 될 수 있다. 태평양전쟁 피해자 보상 추진위원회 김은식 사무국장은 “보상을 하더라도 피해자들이 충분하게 피해 사실을 입증하기 어렵고 사안별로 피해 기준이 마련되더라도 장기간 소요된다는 단점이 있기 때문에 기금 운용 방식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주장했다. 지원을 받기 위한 일정한 요건이 갖추어지면 기업과 정부가 기금을 내서 자체 심사규정을 마련해 지원한다는 것이다. 개인 청구권 소멸을 주장하는 일본 정부의 강경한 입장 때문에 일시적 금전 보상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그러나 기금 지원 방식은 지난 1990년대 종군위안부들에게 아시아 평화기금을 받지 않는 대신 정부가 생활지원 형태로 보상했던 사례처럼 일본 정부의 책임이 우선적으로 전제돼 있지 않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기금 출연을 하더라도 어느 기업이 어느 정도의 액수를 기부할 것인지, 기금을 출연한 재단과 피해국 기관과의 ‘파트너’그룹 선정도 만만치 않은 과제다. ●의료·주거안정 등 생활안정 지원 일제시대 피해자들의 직접적 피해에 대한 지원보다는 ‘생활 안정’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방법이다. 일부 피해자단체와 열린우리당 장복심 의원이 대표발의한 ‘태평양전쟁 희생자에 대한 생활안정지원법’이 대표적이다. 생계와 의료·임대주택 지원 등을 담고 있다. 장 의원실 관계자는 “피해자 단체가 원하면서도 보상의 분명한 주체는 일본 정부가 돼야 하기 때문에 한국 정부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지원 방법”이라는 의견을 폈다. 그러나 일제시대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은 일본의 역사왜곡과 식민지 시대의 불법행위에 대한 고발이 중심이 돼야 한다는 점에서 생활지원에 무게중심이 쏠리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방법이라는 논란도 일고 있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채찍질·배고픔… 지금도 치떨려”

    “나라에서 진작 조사를 했어야지. 우리나라가 일본보다 힘이 더 있었다면 진작 보상을 받았을 거시여….” 21일 오후 ‘일제강점하 강제동원 피해진상규명위원회’가 전국에서 처음으로 피해 신고자들을 직접 방문한 전북 익산시 황등면 죽촌리 화농마을 경로당. 이미 80이 넘은 고령자가 돼버린 강제동원 피해자들은 60년 넘게 가슴에 묻어두었던 통한의 세월에 대한 진실을 하나씩 밝혀나갔다. 진상규명위는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증언을 기록물로 남겨놓기 위해 캠코더로 녹화작업을 벌였다. 1942년 남태평양 남양군도로 끌려갔다가 해방과 함께 돌아온 임득규(84·죽촌리 633)씨는 “배고픔과 공포에 떨며 3년동안 비행장 건설, 선착장 하역작업을 해야 했다.”고 그날을 회고했다. 당시 이 마을에서 5명이 함께 끌려가 2명은 귀환후 사망하고 3명만 생존해 있다. 아들 종석(53)씨는 “아버님께서 지금도 그 시절을 떠올리시면 치를 떤다.”면서 “그 후유증으로 우울증과 각기병을 앓고 있어 더욱 안타깝다.”고 말했다. 죽촌리 최술량(85)씨는 “시모노세키항에서 어디론가 끌려가 벽돌공장에서 강제노역에 시달렸다.”면서 “가장 큰 고통은 배고픔이었다.”고 증언했다. 또 당시 한달에 120원을 준다고 했지만 처음 두달만 월급이 지급됐고 나머지는 모두 떼어먹었다고 밝혔다. 율촌리 조용섭(82)씨는 64년 전 일제강점기에 노무자로 강제동원됐던 그날을 회고하며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18살 되던 해인 1942년 11월 당시 고향인 전남 여천군 남면 두라리 구장의 지시를 받고 무작정 일본으로 가는 배를 탔다가 2년6개월만에 돌아오기까지 어두웠던 시간을 돌아보는 조씨의 눈에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매일 12시간씩 밤낮을 번갈아가며 규슈의 탄광 막장에서 목숨을 건 사투를 벌여야 했던 세월들. 조씨는 안남미와 소금에 절인 무로 연명하며, 굴 속에서 살아야 했던 그 시절을 생각조차 하기 싫다며 몸서리쳤다. “언제 막장이 무너질지 몰라 매일매일 먹는 밥이 제삿밥 같았습니다. 게으름을 부리거나 도망치다 걸리면 무지막지한 채찍질을 받아야 했고 월급을 주긴 했지만 이런저런 명목으로 모두 떼어갔지요.” 화약이 터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 도망치다 철사줄에 왼쪽 발목이 걸리는 바람에 큰 상처를 입어 평생 다리를 절고 다니는 조씨는 친구와 함께 목숨을 걸고 탄광에서 몰래 도망쳐 고국에 돌아올 수 있었다. 조씨는 “그 당시의 강제노역비라도 돌려받았으면 원이 없겠다.”며 “정부가 보상을 제대로 받아내지 못한 당시 한·일회담대표 김종필씨를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위원회는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증언과 서류, 첨부자료 중에서 사료로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관련자료는 국가기록 영구보존문서로 분류해 피해신고와 진상규명절차가 끝나더라도 영구히 보존할 방침이다. 강제동원 피해신고는 지난 18일까지 전국에서 2만 5334건이 접수됐다. 익산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60년 담아둔 恨 “밝혀달라” 봇물

    60년 담아둔 恨 “밝혀달라” 봇물

    “생사조차 알 수 없는 우리 시아버지의 억울함 좀 풀어주세요.” 서울 광화문에 위치한 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를 찾은 주부 정윤현(53)씨는 시아버지의 피해사실을 규명하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발을 동동 굴렀다. 정씨는 “시아버지가 일제 때 규슈지방 노역장으로 끌려간 이후 소식이 두절돼 생사조차 모르고 있다.”면서 “아버지 때문에 속태우던 남편은 속병을 얻어 지난 1992년에 세상을 떴고, 이제 시아버지의 피해사실을 밝힐 사람은 나밖에 없다.”고 한 숨을 내쉬었다. 보상이 문제가 아니라 강제동원 진상부터 하루 빨리 밝혔으면 좋겠다는 게 정씨의 바람이다. 일제강제동원 피해 신고 접수가 1일 전국 250개 지방자치단체에서 일제히 시작됐다. 진상규명위 본부를 비롯, 지자체 접수처에는 첫 날부터 북새통을 이루며 정부의 진상규명조사에 높은 기대감을 나타냈다. 반면, 일부 지자체에서는 사전 준비 미비로 민원인들의 불만을 사기도 했다. 올 겨울 들어 가장 춥다는 영하 10도 안팎의 강추위에도 불구, 각 지역 접수처에는 강제동원 피해신고와 문의가 잇따랐다. 진상규명위에 따르면, 이날 본부에만 1800여명이 신고를 접수하는 등 전국에서 2573명이 피해사실을 신고했다. 특히 진상규명위 본부에는 이른 아침부터 수백명의 민원인들이 몰렸다. 당초 오전 9시 접수를 개시하려던 진상규명위측도 8시부터 접수자들이 몰리자 접수시간을 30분 정도 앞당겼다. 태평양전쟁 피해보상추진협의회를 통해 신고하려는 피해자와 피해자 유가족 200여명이 함께 위원회를 찾았고, 사할린으로 강제 징용됐다가 영구귀국한 경기도 안산시 사동 고향마을 주민 30명도 위원회를 찾아 피해사실을 신고했다. 일본군에 강제 징용돼 만주에 근무하다 소련군 포로가 됐던 피해자 13명도 러시아가 발급한 근로증명서를 증거로 첨부해 신고를 마쳤다. 위원회를 찾은 피해자와 유가족들은 접수실 옆에 마련된 민원실에서 삼삼오오 자리를 함께 하며, 각자 억울한 사연들을 쏟아냈다. 경기도에 사는 주부 정인옥(41)씨는 “시할아버지는 일본 헌병 2명을 살해한 죄로 형무소에서 복역하다 4년 만에 한국에 돌아와 후유증으로 돌아가셨고, 친할아버지도 탄광에 끌려가 혹사당하다 평생 폐병을 앓으셨다.”면서 시할아버지와 친할아버지의 피해사실을 신고했다. 관동군에 끌려가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는 권태규(82) 할아버지도 “징병을 당해 부모형제와 생이별을 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번 조사는 지난해 국회를 통과한 ‘일제강점하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특별법’에 따른 과거청산의 첫 단계로, 오는 6월30일까지 일제 강점기간 일본에 강제동원됐던 피해사례를 신고받는다. 강혜승 이효용기자 1fineday@seoul.co.kr ■ 전기호 진상규명위원장 “진상규명을 위해서는 일본 등 관련국가들의 협조가 필수적입니다.” 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 전기호 위원장은 1일 “당시 강제동원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서는 피해자들의 신고뿐만 아니라 각종 자료연구가 병행돼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전 위원장은 “신고접수를 받기 전 국가기록원과 독립기념관으로부터 자료를 받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면서 “일본, 미국, 러시아, 중국 등 주변국들이 관리하고 있는 자료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전후 처리과정에서 일정부분 역할을 담당했던 이들 국가측 자료가 강제동원의 피해진상을 규명하는 데 필수적인 증거자료로 활용될 것이라는 얘기다. 그는 “진상조사가 이제서야 추진되다 보니 피해 생존자들이 많지 않고, 유족들도 정황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해 사실 확인에 어려움이 있다.”면서 증거로 활용할 자료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최대한 많은 증거자료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특히 일본의 적극적인 협조가 요구된다. 이에 따라 위원회는 오는 16일 현지조사차 일본을 방문한다는 계획이다. 전 위원장은 “관방장관 등 일본 관계장관과의 면담을 추진하고 있고, 일본측 국회의원들과 경제인단체 관계자들과도 만나 협조를 요청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이어 “경제인단체가 많은 자료를 가지고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면서 “당시 강제동원은 일본 기업체를 중심으로 이뤄졌기 때문에 자료가 풍부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 위원장은 “이번 조사는 피해보상과 관계없이 진상을 규명한다는 데 목적이 있지만 추후 보상이 논의될 때 기초자료로 활용될 것”이라고 그 의미를 부여했다. 강혜승기자 1fineday@seoul.co.kr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56) 김제 심포갯벌과 망해사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56) 김제 심포갯벌과 망해사

    고깃배 두어척이 심포항에 닻을 내린다. 어선이 겨우 닿는 자그마한 포구가 제법 커져서 민박집, 횟집이 즐비하지만 불황 탓에 찾는 사람이 거의 없다. 김제땅에 들어서면 늘 찾게되는 곳, 바로 심포갯벌이다. 심포갯벌은 새만금 갯벌의 깊숙한 안쪽을 말한다. 사실 ‘억만금’을 발견이라도 하 듯 억지로 지어진 새만금이라는 명칭부터 작위적이고 거북스럽다. ●심포갯벌은 새만금갯벌의 깊숙한 안쪽 군산에서 김제를 거쳐 부안까지 망망대해로 이어지는 흑갈색의 ‘바다 들판’이 펼쳐지고,‘징게멩게 외야미들’의 누런 들판이 비슷한 넓이로 뭍을 덮는다. 17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최고의 치수시설인 벽골제가 지척이니 예로부터 쌀농사와는 불가분인 곳이다. 지평선 없는 나라에서 유일하게 ‘지평선 축제’가 열리는 곳이다. 그러나 일제의 수탈적 농업정책에 의해 동진 만경강이 간척되고, 가난한 농민들이 피땀을 흘리면서 일본인 농장주와 척식회사의 채찍에 내몰리면서 개간한 들판이다. 전국 각처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이 헐벗고 굶주리면서 개딱지 같은 집에서 짐승처럼 살면서 울부짖던 통한의 땅이기도 하다. 그렇게 생산된 쌀은 지금의 새만금을 빠져나가 군산에 집결돼 모조리 일본으로 실려 나갔다. 황금들판의 끝에 황금갯벌이 이어지다가 이윽고 갈색의 바다로 수렴되는 심포갯벌의 망해사를 찾아든다. 바다를 굽어보는 뛰어난 절이라면 으레 양양 낙산사, 여수 향일암 따위를 내세우리라. 바위 끝에서 그대로 부서져 내리는 낙산사의 씩씩하면서도 장엄한 우조, 미려청고(美麗淸高)하고 애원처절한 향일암의 계면조, 이 모두 빼어난 절창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망해사의 해조음(海潮音)도 그에 못지 않다. 이유는 단 하나. 망망대해로 펼쳐진 갯벌을 마주보고 있어 밀물 썰물에 따라 소리가 끊어질 듯 이어지고, 이어질 듯 끊어지는 까닭이다. ●앞마당이 갯벌인 망해사 망해사에는 앞마당이 없다. 정확히 말하면 없기도 하고, 무한히 넓기도 하여 무량(無量)이다. 무망한 갯벌이 모두 앞마당인 탓이다. 그래서 망해사 앞에서 이렇게 말하곤 한다.“바다가 절을 부르고, 절이 바다를 부르나니!” 김제땅 진봉반도의 윗자락에 자리잡은 작은 암자, 처처불불(處處佛佛)인데 초가삼간이면 어떻고, 거창한 내력이 또한 무슨 소용 있겠는가. 이곳에 눈발이 나부끼고 절집의 큰나무가 바다로 굽이쳐서 흔들린다. 눈발에 감싸인 낙서루에 앉아 눈을 감는다. 그 옆에는 청조헌(聽潮軒)이 있다. 말 그대로 물결의 소리를 듣는 곳. 소녀들의 시구에 등장하는 해조음보다도 청조음은 얼마나 걸찍한가. 가히 서해다운 표현이다. 계곡물이나 강물소리를 듣는 정자나 불당은 널렸지만 앞마당에서 밀물 썰물이 흐르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곳이 어디 흔하던가. 질퍽거리는 갯벌로 나간다.20분쯤 걸었을까. 북쪽으로 군산항이 손 끝에 들어오고, 서쪽으로는 고군산열도의 섬들이 줄지어 서 있는 그곳에 새만금간척지의 둑방이 멀리 시야를 가로지른다. 해가 지고 있다. 망해사 앞마당 갯벌에서 마주하는 일몰, 서해 낙조의 말할 수 없는 슬픔이 갯벌 위에 깔리고 있다. 끝내 갯벌이 사라지고, 아스팔트 포장이 깔릴지 모른다. 서해는 애초부터 바다가 아니라 중국과 연륙된 뭍이었다. 빙하가 흘러내려 서해가 창조되었다. 운동은 사물을 변화시켰다. 뭍에서 실려온 미세한 퇴적물이 쌓이면서 갯벌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전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8m에 이르는 조석간만의 차이는 드넓은 조간대를 형성했다. 오랜 조석운동의 결과는 질과 양의 변화를 가져와 바닷가에 변증법의 지평을 쌓았다. 그리하여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갯벌이 형성된 것이다. 인간에게는 억겁이지만 지구 나이로 보자면 이 갯벌의 나이는 청년기에 불과한 고작 8000년. 갯벌 생성은 서해안의 조석 변화를 끊임없이 반복해 온 ‘청년운동’이라고 표현함이 어떨른지. 너무 흔하면 소중한 줄을 모르는 법일까. 영국, 독일, 네덜란드를 포함한 북해 해안, 캐나다의 동부 해안, 미국 동부의 조지아 해안, 남아메리카 아마존 하구 등 일부 지역에서만 갯벌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야 배운다. 수차례 새만금을 찾았던 독일 홀스타인갯벌센터의 켈러만 박사는 새만금의 종다양성에 관해 “세상에, 이런 갯벌이 있다니….”라며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러나 증산·수출·건설을 지고의 좌표로 삼고 자란 우리는 간척지가 우리를 먹여 살릴 유일한 해법인 줄로만 알았다. 소중함을 깨닫기 시작했을 때, 바다는 이미 결단이 나있었다. 갯벌이 어둠 속으로 잠겨들었다. 동죽을 캐던 심포 아낙들이 부지런히 서두르는 것을 보니 물이 들어올 시간인가보다. 망해사 불빛이 하나, 둘 켜지기 시작한다. 흡사 등대처럼 느껴진다. 갯벌을 마구 없애버리는 혼돈을 일깨우는 등대 같다. 동죽을 하나 집어든다. 나이테가 분명하다. 나무만 나이테가 있는 게 아니다. 여름 나이테는 성기고, 겨울에는 촘촘하게 선이 그어져서 삶의 흔적을 분명히 보여준다. 연륜뿐 아니라 조석에 따라 물이 들어오고 빠질 때 나타나는 성장의 결과물인 일륜까지 온몸으로 보여준다. ●토양 정화시키는 수많은 게 구멍 물이 들고 나는 매일매일의 일기를 자신의 몸에다 직접 쓰는 셈이다. 고작 생년월일, 주민등록번호, 생일잔치, 출생신고 따위의 통과의례로 연륜을 확인할 수 있는 인간과는 그런 점에서 확연히 대비된다. 하찮은 조개같은 미물 하나에도 생명의 숨겨진 역사가 각인되어 있다. 물이 들어오자 갯벌의 수많은 구멍마다 난리가 난다. 먹이의 사슬 속에서 적자생존의 삶을 체득해 살아남기 위해 갯벌에 은신처를 마련한 게. 그 구멍 깊숙이 밀물이 채워지자 마침내 그 은신처에서 몸을 뺀 미물들의 시간이 된다. 그들이 죽도록 파헤치는 노동 덕분에 신선한 물이 구멍을 통해 갯벌 지층의 썩은 흙을 정화시킨다. 구멍들의 어마어마한 정화작용은 우리의 상상력을 뛰어넘는다. 무심코 잡는 갯벌의 게, 별다른 경제적 이득이 없는 데도 불구하고 게들을 잡아다 파는 무심한 ‘살인’은 이제 그만 둘 일이다. 심포갯벌만 하더라도 게들이 정화공장 수십개 이상의 역할을 공짜로 해준다. 갯벌전문가 서울대 고철환 교수(지속가능발전위원회위원장)는 “찬반 논란을 떠나 생명체를 살리는 것은 인간이 자연에 갖출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라고 정리한다. 서해안 갯벌 연구의 메카로 나아가고 있는 서해수산연구소 갯벌연구센터 조영조 소장은 “만경강 동진강은 탯줄, 갯벌은 태반”이라고 말한다. 탯줄과 태반, 그보다 적절한 비유가 있을까. 새만금 일대를 샅샅이 조사하면서 찬반 논란을 넘어서 실사구시적으로 데이터를 축적, 분석하고 있는 송재희 박사는 “해수 유통만 제대로 보장된다면 새만금을 충분히, 그것도 일시에 되살릴 수 있다.”고 말한다. 천만 다행이다. 마침 법원에서 선택을 요구하고 있으니, 새만금을 살리는 문제는 이제 국민 모두의 손으로 공이 넘어온 셈이다. 해수를 유통시켜 갯벌과 생명체들을 영구히 살릴 것인가, 아니면 갯벌을 땅으로 만들어 농사라도 지을 것인가. 환경운동연합의 장지영 갯벌팀장은 “쌀이 남아도는 마당에 갯땅으로 국가적 투기판이라도 벌일 것인가.”고 되묻고 있다. 반면에 ‘새만금완공연대’라는 지역조직에서는 ‘끝까지 밀어붙이기’를 선언하고 있다. 이제 새만금을 둘러싸고 각각의 다른 시각을 보였던 이들에게 마지막 답이 제시될 시간이 착착 다가오고 있다. 어떤 선택을 해야할까. 한 가지는 분명한 것 같다. 모든 선택 권이 양측에만 있지는 않다는 점이다. 법원도 사실 최종적 결정권한이 없다고 생각된다. 인간은 왜 갯벌의 ‘망둥이거사’와 ‘조개보살’에게 선택권을 주지 않는가. 정작 그들이야말로 이 갯벌의 주인 아닌가. ●죽어가는 생태자원의 보고 완강하기만 한 ‘토건(土建)국가’에서 풍전등화의 석양을 지켜보는 망해사의 저 등대 불빛은 언제 꺼질까. 서해안의 8000년 청년운동사를 우리는 단 몇 년의 간척사로 대체시키고 있다. 법원 결정을 놓고서 사회적 논란이 재연되고 있으나 토론하고 동의를 구할 시간은 거의 없다. 죽어가는 ‘망둥이거사’와 ‘조개보살’들에게 남은 시간, 선택의 여지는 아예 없다. 문득 망해사와 인연을 맺은 진묵스님을 떠올린다. 비승비속처럼 살다간 그의 행장은 거의 알려지지 않다가 다산 정약용과 늘 마주하였던 대둔사의 초의선사가 편찬한 ‘진묵조사유적고’를 통해 겨우 세상에 알려졌을 뿐이다. 조선 중기에 바람처럼 나타났다가 한 소리를 남기고 떠난 거인. 초의는 그를 두고 ‘석가여래의 응신(應身)’이라는 헌사를 올렸다. 남은 기록이 몇 줄이라면 민중의 구전 역사책은 수십권이니 그를 생불(生佛)로 여기는 전설이 지금껏 유전되는 것 아니겠는가. 김제 만경의 심포에서 지척인 불거촌 사람으로 알려진 그는 “고기를 잡은 뒤에는 통발을 잊는 법(得魚忘筌)”이라고 했다. 토건국가를 그만 지향해도 될 법한데 여전히 토건만이 살길이라고 믿는 우리 시대의 부끄러움에 관하여 그는 무어라 했을까. 끝내 바다를 굽어보는 망해사가 아니라 어처구니없는 ‘망륙사(望陸寺)’를 택할 것인가! 잘못되면, 훗날 이곳에 다시 와 관해기가 아닌 관륙기(觀陸記)를 써야할지도 모른다. 그 얼마나 참담하고 민망한 일이겠는가.
  • 피해자·유족 문의전화 폭주

    한·일협정 문서가 전날 공개됨에 따라 관련 단체들은 18일 피해자를 접수하고 설명회를 여는 등 분주한 움직임을 보였다. 이들 단체에는 피해자와 유족의 문의전화가 폭주했고, 소송 등 대응 방법도 구체화되고 있다.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 사무실에는 이틀 동안 업무가 마비될 정도로 문의전화가 쏟아졌다. 생존자와 유가족은 보상 방법과 절차를 물었고,2월부터 피해 접수를 하는 강제연행진상규명위원회의 신고 절차에 관심을 보였다. 이효용기자 utility@seoul.co.kr
  • [韓日협정 문서 공개] 사망 1인당 1650弗 받아 30만원 지급

    [韓日협정 문서 공개] 사망 1인당 1650弗 받아 30만원 지급

    ‘일제 피해자를 두 번 울린 박정희 정부의 한일 협정과 쥐꼬리 보상.’ 한일협정을 통해 일본 정부로부터 받은 무상 3억달러(당시 원화 948억여원) 중 우리 정부가 실제 개인보상에 사용한 금액은 불과 91억 8769만원(9.7%)에 불과했다. 협상과정에서 민간 피해자에 대한 보상 금액으로 3억 6400만달러을 요구했음을 감안하면 턱없이 부족한 액수다. 이는 당시 박정희 정부가 협상 과정에서 일본측에 피해자 보상 명목으로 청구권을 내세웠으면서도 협상 이후에는 실제 피해자에게 제대로 보상하지 않았음을 확인해 주는 대목이다. 그래서 향후 무더기 개별 소송이 예상된다. ●신청기간 10개월, 부상·생존자 보상안해 1965년 ‘제7차 한일회담 청구권 및 경제협력위원회 제1차 회의 회의록’을 보면, 청구권 분쟁을 우려한 일본측 대표와 달리 우리 정부측 대표는 “각종 청구권이 덩어리로 해결된 만큼 이후 개인청구권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는 각각 국내의 문제로 취급되어야 한다.”며 개인청구권 청구 가능성을 차단했다. 당시 우리 정부측의 제시 자료에 따르면 일제 피징용자는 노무자, 군인·군속을 합쳐 사망자 7만 7603명에 부상자는 2만 5000명, 생존자는 93만명이 넘어 모두 103만여명이다. 청구 금액은 사망자 1억 2800만 달러, 부상자 5000만 달러, 생존자 1억 8600만 달러 등 3억 6400만 달러로 계산됐다. 하지만 당시 정부가 1975년부터 2년 동안 실제로 사망자 8552명에게 지급한 금액이 1인당 평균 30만원에 불과한 25억 6560만원에 불과했다. 당시 정부가 피해자 보상 청구를 지렛대로 삼아 청구권 자금을 따내려 했을 뿐 실제 피해자에 대한 보상의 의지는 없었음을 보여준 것으로 해석된다. 특히 부상자와 생존자들이 피해 보상 청구를 했음에도 사망자 외에는 보상하지 않았음도 드러났다. 정부 관계자는 17일 “이 액수는 당시 군인 및 대간첩작전 중 사망한 향토예비군에게 지급하는 일시 급여금에 준하는 금액”이라고 설명했다. ●무상 3억달러 농림수산에 가장 많이 사용 당시 정부는 한일협정을 체결한 이듬해부터 보상의 법률적 근거를 단계적으로 밟았다.1966년 ‘청구권 자금 운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무상자금 중 민간보상의 근거를 마련했다. 그로부터 약 5년 뒤인 71년 ‘대일 민간청구권 신고에 관한 법률’을 제정, 노무자·군인·군속 등 일제에 의해 강제로 징용된 사람 중 사망자와 재산권 소지자에 한해서 71년 5월부터 72년 3월까지 10개월간 보상 신청 신고를 받았다. 74년에는 ‘대일 민간청구권 보상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75년 7월부터 77년 6월까지 2년 동안 총 인명·재산 신고건수 10만 9540건 가운데 인명보상은 8552명에게 25억 6560만원, 재산보상은 7만 4967명에게 66억 2209만원을 각각 지급했다. 모두 8만 3519건에 대해 91억 8769만원을 보상했다. 무상공여 3억달러 중 나머지는 농림수산업 부문에 37.4%인 402억 6600만원이 쓰였고, 포철 건설에 16.2%인 174억 4200만원 등이 사용됐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사설] 협정공개, 韓·日정부가 할 일

    정부가 한·일협정 외교문서를 일부 공개한 데 따른 논란은 두 원칙에 의해 풀어야 한다. 첫째, 한국 정부는 개발연대에 대외관계에서도 국민 기본권을 소홀히 했음을 인정하고 일제치하 피해자 보상책을 법적으로 강구해야 한다. 둘째, 일본 정부는 협정 문구에 매달리는 편협한 자세를 버리고 미래로 나아간다는 차원에서 보상문제에 함께 나서야 한다. ●일제 피해자 보상 특별법 마련해야 어제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협상 당시 일본측은 일제강점 기간 한국민의 피해를 배상하려는 생각이 없었다. 경제협력자금이라는 형식을 통해 과거사를 비켜가려는 의도가 곳곳에 나타나 있다. 한국측은 청구권 금액을 조금이라도 늘려볼 욕심에 일제 피해자들의 개인청구권을 앞장서 포기하는 우를 범했다. 한국 정부는 노동자, 군인, 군속으로 강제동원됐던 피해자를 103만 2684명으로 산정해 총 3억 6400만달러의 포괄적 피해보상을 일본측에 요구했으나 숫자 집계가 주먹구구였으며, 피해 당사자들의 동의절차가 없었다. 결국 일본이 무상 3억달러, 유상 2억달러를 제공하는 선에서 청구권 문제를 매듭짓는 협정을 체결했지만, 박정희 정부는 이중 10%만을 피해자 보상에 썼다. 그것도 성의 없이 신고를 받아 사망자 및 재산피해에 국한된 보상을 했다. 한국인 피해자들의 개인청구권을 무시했고, 정확한 피해규모가 전제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한·일협정 자체가 무효라는 주장은 일리가 있다. 군위안부 등 새로운 역사적 사실들이 드러나고 있으므로 상황변경의 논리에 의해 신협정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지금 당장 한·일협정 폐기를 선언하거나, 전면 재협상을 추진하기에는 외교적 어려움이 많다. 한·일 국교정상화라는 협정의 근간을 유지하면서 일제 치하 피해자들에 대한 명예회복 및 실질적 보상조치를 추진하는 게 현실적이다. 정부는 봇물을 이룰 소송결과를 기다리지 말고, 특별법 제정을 통한 합리적 보상을 추진해야 한다.‘태평양전쟁희생자 생활안정지원법’이 의원입법으로 계류되어 있지만, 그 법으론 불충분하다. 피해자 단체를 포함한 각계의 의견을 수렴한 종합특별법안이 필요하다. 박정희 정부때 보상에서 제외됐던 징용 피해와 함께 생존자·부상자 보상도 충분히 인정되어야 한다. 강제징용자 노역 미불임금 부분은 일본측에서 해결하도록 촉구해야 한다. 피해자 보상 및 명예회복조치에 엄청난 자금이 소요되리라 예상된다. 예산확보가 우선 필요하지만 다른 방안도 찾아야 한다. 일본에서 받은 청구권 자금은 포철을 비롯한 국가기간산업과 고속도로 건설에 쓰였다. 피해자들의 피땀이 밴 돈으로 발전을 이룩한 공기업 등이 앞장서 이익의 일정 부분을 보상기금으로 내놓는 방안도 검토해 볼 만하다. 이와 함께 관련 문서를 전면공개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 청구권 협상 당시 한·일간에 정치자금 거래가 있었는지와 함께 독도 문제를 불분명하게 처리한 배경도 석명해야 할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개인배상 계속한 독일예 본받아라 일본 정부는 한·일협정 자체를 무효화하자는 목소리가 더 커지기 전에 스스로 변해야 할 것이다. 나치 피해자들에게 개인 배상을 계속해온 독일의 예를 본받아야 한다. 독일은 유엔을 통해 개인 배상을 하면서, 배상액의 일부를 폴크스바겐 등 기업들이 냈다고 한다. 침략전쟁의 혜택으로 성장한 일부 일본 대기업들에 모범이 될 만하며 국가사회 전체에서 식민지배를 사과하고 보상하겠다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북·일 수교 문제도 풀린다. 십수명의 납북 일본인 문제를 갖고 그렇듯 떠들썩하면서 수백만명에 달하는 일제 피해자들을 몇억달러 경협자금 제공만으로 모른 척한다면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등 대국이 될 수 없다. 올해는 을사조약 100주년, 광복 60주년, 한·일협정 체결 4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이번 문서공개를 계기로 한·일 정부가 옛 정권, 지난 시대의 일이라 하더라도 무한책임을 진다는 자세를 가질 때 진정한 과거청산이 되고, 양국 관계의 미래도 밝아진다.
  • [환경·생명] 멸종위기 고래 “SOS”

    [환경·생명] 멸종위기 고래 “SOS”

    아득히 먼 옛날, 고래의 모습을 더듬으려면 신화의 골짜기로 내려가야 한다.2500만년 전 물고기 형태로 출현한 사실은 화석연구로 밝혀져 있지만, 그보다 훨씬 이전엔 네발로 걷던 쥐나 개 정도 크기의 뭍짐승이었다고 한다. 사는 곳이 바다라는 점 말고는 자궁이 태아를 품고 새끼가 어미 젖을 빠는 등 인간을 비롯한 포유동물과 모든 점에서 같은, 유일한 바다 생명체가 바로 고래다. 그 신비롭고 특이한 존재, 고래가 올해 긴박한 SOS 신호를 보내오고 있다. ●밍크고래등 68종 절멸위기 적색목록에 오는 5월말부터 한달여 동안 울산에서는 제57차 국제포경위원회(IWC) 연례회의가 열린다.1986년부터 금지해 온 상업적 목적의 포경(捕鯨·고래잡이)을 부분적으로 허용할지 여부가 판가름날 것으로 보여 이를 둘러싼 논란도 후끈 달아오를 전망이다. 지난해 이탈리아 소렌토에서 열린 총회에서 “상업포경을 재개하되 첫 5년간은 각국 200해리 수역 내로 한정한다.”는 의장 동의안이 상정됐지만 논란 끝에 부결됐다. 하지만 올해는 사정이 다르다. 일본을 위시한 포경국가들이 “IWC 탈퇴도 불사하겠다.”며 배수진을 치면서 압박의 강도를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현존하는 고래의 종류는 84종 이상으로 추정될만큼 다양하다. 하지만 대부분이 멸종위기에 처한 상태다. 귀신고래·브라이드고래·밍크고래 등 68종이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의 절멸위기종 적색 목록에 올라있다. 야생동식물의 국제무역에 관한 국제협약(CITES)에서 모든 종류의 고래에 대한 거래를 제한한 것도 이런 까닭이다. 지난 19년 동안 IWC 스스로 결정한 상업포경 금지는 이런 국제사회의 압력과 고래자원에 대한 불투명한 전망에서 비롯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과 노르웨이, 러시아 등 포경국들은 과학적 조사 목적을 내세워 해마다 남극해 등지에서 수백∼수천마리씩 잡아 공공연히 유통시켜 왔으며, 이젠 ‘상업포경 허용’까지 관철시키겠다는 데까지 이르게 됐다. 국내외 환경단체들의 움직임도 부산해졌다. 환경운동연합은 국제적 환경단체인 그린피스와 손잡고 불법 포경 및 상업포경 재개 반대를 위한 국제적 캠페인에 돌입할 계획이다. 이번 울산 총회가 고래 종(種)의 멸종여부를 가르는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18일 국회에서 열린우리당 제종길·이미경 의원 등과 공동으로 ‘고래보호위원회’ 발족 및 심포지엄 개최를 시작으로 3월엔 그린피스의 선박 한 척이 국내로 들어와 한반도 해안에서 시위를 벌인다. 환경연합 부설 시민환경연구소 최예용 기획실장은 “그린피스 선박의 국내 시위 및 캠페인은 1984년 우리 해역에서 반핵 투어를 벌인 이후 10년 만에 처음”이라면서 “그만큼 이번 울산 총회를 주시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인류 빼닮은 ‘우산종’… 반드시 보전을 고래의 활동과 생존 여부가 주목받아야 할 까닭은 여럿이다. 최예용 실장은 “지구역사 45억년 동안 나타난 가장 큰 동물로 장구한 세월을 생존해 온 고래가 멸종위기에 처해 있다는 사실 자체가 관심을 기울여야 할 대목”이라고 말한다. 인간 다음으로 높은 지능에다 임신 기간이 1년 안팎이고, 수명도 돌고래(25년)를 빼면 60년(향고래)∼100년(수염고래류)에 이른다. 여러 모로 인류와 빼닮았다는 점에서 사람의 감성을 건드리는 호소력이 없을 리 없다. 생태계 보전 차원의 중요성은 더욱 크다. 울산대학교 신만균 교수(생명과학부)는 “생물보전학적으로 먹이사슬의 가장 꼭대기에 있는 이른바 우산종(umbrella species)이 보호되면 그 아래 종을 비롯한 생태계 전체가 건강해진다.”면서 “고래의 생존 여부는 해양생태계의 건강성을 가리키는 척도이기 때문에 보전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라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상업포경의 재개 여부를 논하기에 앞서 고래의 회유 경로나 서식 실태 등 개체수 회복과 위기에 몰린 고래종의 복원을 위한 과학적 제반 조사가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고래를 해양개척 길잡이로 삼아야 물론 반대논리도 있다. 일본은 이미 오래 전부터 상업포경을 재개해야 바다 생태계가 살아난다고 주장해 왔는데,“밍크고래가 남극 생태계에서 크릴 새우를 먹는 최대의 소비자로 떠오르면서 대왕고래에게 돌아갈 먹이를 가로채고 있다.”는 것이다. 밍크고래를 잡아야 남극 생태계가 제대로 살아날 수 있다는 말인데, 학계에서는 대체로 고개를 가로젓는 분위기다. 신 교수는 “종이나 아종(亞種), 개체군 등 남극 고래의 자원 수에 대한 추정 자체가 불가능한 실정인데다, 먹이에 대한 문제도 일본 주장이 그대로 받아들여질만큼 확인된 것도 아니다.”고 반박했다. 고래는 어떻게 보면 위대한 모험가이자 불굴의 개척자다. 수천만년전 뭍을 떠나 바다로 향한 뒤 숱한 진화를 거치며 해양생태계의 꼭지점에 다다른 것이 그렇고, 빙하기 등 혹독한 기후변화를 이겨내며 면면히 생을 이어온 점이 이를 웅변하고도 남는다. 고래를 적으로 돌릴 것이 아니라 해양개척의 길잡이로 삼아야 할 이유가 아니겠는가. 박은호기자 unopark@seoul.co.kr
  • 부패방지팀 가동 1년만에 ‘클린 한국전력’

    부패방지팀 가동 1년만에 ‘클린 한국전력’

    한국전력이 ‘깨끗한 회사’로 확 바뀌었다. 한전은 그동안 전기공사 시공업체와 각종 민원인을 상대하는 과정에서 금품수수 등 불미스러운 일이 적지 않았으나 지금은 말끔히 사라졌다. 부패근절을 위한 1년간의 ‘치밀한 작전’ 덕분이다. ●수년째 하위권에서 획기적인 변신 지방도시에서 전기시설 시공업을 하는 A씨는 지난해 초 한전의 지방사업소로부터 5000만원짜리 공사를 수주하면서 사업소의 중간 간부에게 200만원을 사례비로 전달했다. 지난해 설 명절을 앞두고 30만원짜리 선물에 30만원어치 상품권을 보태 선물한 적이 있다. 그런데 자신의 사업장 근처에 있는 전신주에 문제가 생겼다. 신고를 받고 나온 현장 직원이 신속한 처리를 대가로 웃돈을 요구했다. 그는 답답한 노릇이었지만 5만원을 건넬 수밖에 없었다고 한전 중앙본부의 부패실태 조사반에 털어놓았다. 그러나 이같은 부패 사례는 이미 옛일이 되고 말았다. 한전은 국무총리실 산하 부패방지위원회가 민원인 7만 5317명을 대상으로 2004년 공공기관 청렴도를 조사한 결과,1년 사이에 가장 많이 향상된 기관 1위로 선정됐다. 한전의 종합청렴도 점수는 10점 만점에 8.92점. 전년도에 비해 2.92점이 올라 향상도가 313개 정부부처·자치단체·공기업 등을 통틀어 가장 높았다. 청렴도 점수는 조사대상 평균보다 0.26점 높았다. 한전은 2003년엔 5.80점,2002년엔 4.47점으로 수년째 하위권을 맴돌던 처지에서 종합 4위로 올라섰다. ●투망식 부패방지 작전 한준호 한전 사장은 지난해 3월 취임 직후 업무보고를 받으면서 깜짝 놀랐다. 한전이 해마다 실시하는 부방위의 청렴도 조사에서 바닥을 헤매고 있었기 때문이다.‘무슨 인허가 업무가 그리 많다고 이렇게 썩었단 말인가.’하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사정이 이런데도 직원은 부패의 실상에 대해 무감각한 모습이었다. 부패를 뿌리뽑지 않으면 회사가 망할 지경이었다. 한전은 전국 사업소에서 가장 청렴하다고 소문난 과장급 직원 18명을 뽑아 감사실에 배치하고 부패방지팀을 만들었다. 전권을 부여받은 18명은 1주일 동안 합숙하면서 아이디어를 짜냈다. 우선 의식을 바꾸고 제도를 보완하는 데 힘을 모으기로 했다. 전국 239개 사업장을 돌면서 1만 7000여명 전 직원을 대상으로 부패방지에 대한 정신교육을 했다. 소장급 간부 271명은 추가로 불러 거래업체와의 관계 등에 대해 별도교육을 했다. 일반 연수에도 부패방지 시간을 배정했고, 사이버교육도 수시로 했다. 이쯤되자 직원들의 입에서는 “부패라는 말만 들어도 소름이 끼친다.”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이어 청렴계약 규정을 만들었다. 이를 어긴 입찰업체에는 2년 동안 입찰자격을 제한했다.300만원 이상의 공사에 대해서는 전자입찰을 실시했고, 수의계약의 범위를 200만원 이하로 줄였다. 모든 공사에는 표준집을 만들어 그대로 시행하도록 했다. 표준집은 한국전기안전공사에서도 채택할 정도로 우수하게 만들어졌다. 부패방지 활동이 활기를 띠면서 부패에 취약한 업무에 대해 집중적인 감찰활동을 했다. 한전에서 부패에 취약한 업무는 신규 전기공사를 한 건물 등을 대상으로 한 사용전 점검 업무다. 한전의 인증이 떨어져야 전기계량기를 설치하고 전기를 사용하게 된다. 이 때문에 사업주들은 점검을 나온 한전 직원에게 1만∼15만원의 수고비를 주고 서둘러 인증을 부탁하곤 한다. 암행감찰반은 전국을 돌면서 4건의 부패현장을 적발했다. 부조리 신고전화에 신고하면 포상금도 지급했다. ●단돈 10만원에 목숨 걸지 말자 직원들도 변하기 시작했다. 높은 강도의 부패방지 교육이 효력을 나타냈다. 우선 ‘단돈 10만원에 목숨 걸지 말자.’라는 우스갯소리가 나돌았다. 회사는 직원들의 고소득을 보장하는 대신에 그에 걸맞은 능력과 품위를 요구했다. 이어 불우이웃돕기, 헌혈행사, 자원봉사 등을 사회공헌 활동에 적극 참여하면서 직원들도 ‘봉사참여의 즐거움’을 느끼도록 했다. 한 사장은 앞으로는 직원들이 글로벌 에너지기업에서 일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깨닫도록 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부패방지팀 관계자는 “기업부패의 폐해를 직원들 스스로 느끼고 깨닫게 함으로써 회사 방침 때문에 참여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치밀한 계획을 짠 것이 적중했다.”고 말했다. 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 ■ 서해 관광명소로 변모 한국전력은 지난해 서해상에 세계적인 볼거리 하나를 만들었다. 인천광역시 옹진군 영흥도에 국내 최대용량의 화력발전소 2기를 지었고, 발전소에서 경기도 시흥까지 세계최대 규모의 해상 송전선로를 완공했다. 영흥발전소는 해마다 전력부족으로 공급 중단의 위험에 놓이는 수도권 지역에 차질없는 전력공급을 책임지게 됐다. 기존의 50만㎾급 화력발전소에 비해 출력을 60% 이상 향상시켜 국내 최대용량인 80만㎾급 발전소로 건설됐다. 그러면서도 연료는 석탄을 사용, 액화천연가스(LNG)에 비해 연료가격을 3분의1로 낮췄다. 연간 5873억원의 외화를 절약할 수 있게 됐다. 첨단공법으로 친환경시설도 잘 갖춰 1999년 착공 당시 온수 배출에 따른 해수온도 상승에 대한 주민들의 우려를 깨끗이 잠재웠다. 한국전력과 발전소 운영자회사인 한국남동발전은 1716억원을 들여 선제대교와 영흥대교도 지어 지역주민들로부터 대환영을 받고 있다. 영흥발전소에서 생산된 전력을 수도권까지 공급하는, 세계에서 보기 드문 해상송전 선로도 일반인의 큰 관심을 끌고 있다. 발전소에서 대부도와 시화호를 거쳐 신시흥변전소까지 78㎞ 구간에 600m 간격으로 송전탑 137기를 세운 것이다. 대부도에서 바라보면 바다위에 일정한 간격으로 높이 솟은 탑이 장관을 이룬다. 해상구간 송전탑의 높이는 세계 최고인 170m에 달한다. 송전탑에 겹겹이 걸쳐져 지나는 전선의 길이는 자그마치 1900㎞로, 서울과 제주(452㎞)를 네번 왕복할 수 있다. 이같은 규모의 송전탑 건설을 아무나 할 수 없기 때문에 세계에 자랑할 만한 기술로 꼽힌다. 우선 송전탑의 간격이 일반 송전탑의 간격(350m)보다 훨씬 길다. 국내에서 처음 개발된 ‘고장력 내열전선’ 덕분이다. 또 태풍이나 지진, 파도, 염해 등 해상의 악조건에도 송전탑이 바다 속에서 끄떡없이 지탱할 수 있는 밑바탕에는 신공법과 특수자재의 역할이 크다. 시화호의 환경오염 방지를 위해 철 구조물의 겉은 모두 특수코팅 처리했다. 영흥발전소와 해상선로 건설은 5년4개월이나 걸린 난공사였다. 총 사업비는 2조 3174억원, 연간 작업인원만 275만명에 달했다. 그러나 발전설비의 효율성을 높이고, 해상을 관통하는 놀라운 건설공법으로 연간 9623억원의 외화를 절감했다. 한국전력 홍혁 홍보실장은 “한마디로 신기술 개발과 환경보호, 외화절약의 3박자를 모두 만족시킨 대역사(大役事)”라면서 “우리나라와 한전의 큰 자랑임에 틀림없다.”고 말했다. 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 ■ 한준호 한국전력 사장 “공기업의 윤리경영은 이제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기업의 생존이 걸린 문제입니다.” 한준호(59) 한국전력 사장은 요즘 공기업들 사이에 불고 있는 윤리경영과 구조조정 바람을 언급하면서 이같이 강조했다. 그는 올해 초 부패방지위원회의 청렴도 조사에서 한전이 높은 평가를 받은 데 대해 “한전의 모든 가족들과 함께 축하받고 싶다.”며 뿌듯하게 여겼다. 한 사장은 이어 “한전은 수년 안에 글로벌 에너지그룹으로 발전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걸맞은 모습으로 변신해야 한다.”면서 “우선 윤리경영과 열린경영을 정착시켜 구태의 이미지를 벗는 것이 절실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사회공헌 활동을 통해 기업 이미지를 향상시키고 지역사업소에도 책임경영체제를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사장은 최근 과장에서 부장으로 세 직급을 파격적으로 승진시킬 수 있는 권한을 사업소장에게 위임했다. 보건복지부가 정한 기초생활수급자 가구의 경우 2개월 이상 전기요금을 내지 못해도 혹서기(7∼8월), 혹한기(1∼2월)에는 일반 가구와 달리 단전을 하지 않고 있다. 한전은 지난 5년을 끌어온 전력산업 구조개편이 ‘배전(配電)분할 추진의 중단’으로 가닥이 잡히자 필리핀, 중국 등 해외사업을 강화하기로 했다. 한 사장은 “한전이 현재 필리핀 전체 발전의 14%를 책임지고 있다.”면서 “세부(Sebu)섬에 지을 20만㎾급 화력발전소를 세계 신혼부부들의 관광명소로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재임 중 그의 꿈은 중국 전역에 건설될 30기의 원전 사업을 한전이 주도할 수 있는 기틀을 세우는 것이다. 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
  • 형수 ‘의사자’ 인정위해 3년 법정투쟁 이록상씨

    지난 2002년 5월1일 발생한 경남 마산시 석전동 마도장여관 화재당시 투숙객들을 대피시키다 숨진 권오남(여·당시 51)씨가 사고 2년6개월여 만에 의사자로 인정됐다. 권씨가 뒤늦게 의사자로 인정받은 것은 시동생 이록상(47·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행신동 소만마을)씨가 정부를 상대로 법정투쟁한 결과다. 서울고법은 지난 10일 이씨가 보건복지부를 상대로 제기한 ‘의사자 불인정처분 취소청구소송’에서 원고승소 판결했다. 이씨는 14일 “여관에서 청소일을 하다 화재가 발생하자 투숙객을 깨워 대피시키다 숨진 사람을 의사자로 인정하지 않는데 분노했다.”면서 그간의 과정을 설명했다. 권씨가 불의의 사고를 당한 것은 이날 새벽 3시. 휴업중인 2층 레스토랑에서 원인모를 불이 나 3∼5층 객실로 번졌다. 매캐한 냄새에 잠이 깬 권씨가 방문을 열고 나오자 복도는 연기로 가득찼다. 화재임을 직감한 권씨는 우선 119에 신고한 후 방문을 두드려 투숙객들을 깨워 대피시켰지만 정작 자신은 유독가스에 질식, 숨지고 말았다. 권씨의 선행은 당시 생존자들의 입을 통해 알려졌다. 사고 소식을 들은 이씨는 마산시를 거쳐 보건복지부에 의사자 인정을 신청했지만 의사상자심사위원회는 인정하지 않았다. 권씨의 행위가 “직무와 관련이 있다.”며 직무외 행위로 타인을 구제한 경우 의사상자로 인정된다는 관련 법규를 제시했다. 이어 행정심판이 기각되고, 복지부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도 1심에서 같은 이유로 패소했지만 2심 재판부는 “권씨가 주로 청소를 하면서 여관 관리 보조업무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생명을 무릅쓰고 투숙객을 대피시킬 직무상 의무가 있었다고 볼 수 없다.”며 의사자로 인정했다. 권씨는 20년전 합천에서 농사짓던 남편과 사별하고 시어머니(76)를 모시며 3남매의 학비를 벌기 위해 일하던 식당주인을 따라 여관에서 청소일을 하고 있었다. 이씨는 “형수의 숭고한 희생을 인정받아 다행이지만 의사자 인정을 거부한 보건복지부의 처사는 못내 아쉽다.”고 뼈있는 말을 했다. 마산 이정규기자 jeong@seoul.co.kr
  • 경인방송 직장폐쇄

    오는 21일쯤 방송위원회의 재허가 추천 최종 결정을 앞두고 있는 경인방송(iTV)의 노사간 대립이 벼랑 끝으로 치닫고 있다. 경인방송은 13일 0시를 기해 직장폐쇄에 돌입했다. 이에 앞서 경인방송은 12일 밤 11시쯤 용역회사 직원을 동원, 회사를 장악한 데 이어 13일 새벽 1시30분쯤 폐업신고를 인천지방노동청에 냈다. 동시에 ‘14일 오후 6시까지 어떤 형식으로든 복귀의사를 담당 실국장에게 밝히지 않으면 법적으로 대응하겠다.’는 뜻을 노조측에 전달했다. 법적 대응에는 해고 등 징계뿐 아니라 민·형사상 고소·고발조치가 포함된다. 박광순 대표이사 직무대행은 이날 발표한 호소문에서 경인방송이 생존하기 위해 ▲즉각적인 방송정상화와 ▲이를 통해 대주주로부터 추가투자의향서를 받아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노조측은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노조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방송위가 재허가 추천을 거부하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에 따라 노조를 무력화하겠다는 의미”라면서 “끝까지 투쟁하겠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14일 오전부터 시민사회단체와 연대, 지배주주 퇴진운동을 전면적으로 벌일 예정이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논술 키워드] 성매매 특별법

    [논술 키워드] 성매매 특별법

    성매매특별법이 시행된 지 한 달이 지났다. 매매춘의 악순환을 끊으려는 정부, 여성단체, 종교계의 강력한 의지와 생존권을 요구하는 성매매 여성 및 포주 등의 몸부림이 뒤섞여 파열음을 냈다. 이 법의 시행으로 우리 사회의 성매매 관행에 일대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하지만 단군이래 처음으로 성매매 여성들이 주도한 집단 시위가 국회의사당앞에서 열렸고 단속을 피하기 위한 숨바꼭질이 곳곳에서 펼쳐졌다. 드러내놓고 반대할 수는 없지만 식욕과 더불어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망인 성욕을 통제하려는 정부정책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만만찮았다. 이 과정에서 ‘풍선효과’‘좌파적 정책’‘성(性)파라치’‘성전(性戰)’같은 신종 용어도 파생됐다. ●용어 따라잡기 성매매특별법이라고 통칭되는 이 법은 두 개의 특별법으로 구성돼 있다. 성매매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특별법과 성매매방지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 그것이다. 이 속에는 성매매업주 및 성구매자에 대한 처벌을 대폭 강화하고 성매매 피해여성을 보호하기 위한 여러가지 장치가 담겼다. 시행 한달 동안 검거된 관련 사범은 모두 3354명. 이중 50% 이상이 성구매 남성이었고 20%는 성매매알선 업주였다. 삐뚤어진 성 문화와 접대문화를 바로잡는 데 성공했다는 일부의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성매매 여성들에 대한 생계대책 부족, 토끼몰이식 단속은 오히려 반대의 빌미를 줘 저항을 초래했다. 유흥, 숙박업소 등 관련 산업은 된서리를 맞았다. 형사정책연구원의 ‘성산업규모와 성매매실태에 관한 전국조사’에 따르면 최소 33만명의 여성이 전문적으로 성매매에 종사하고 있으며 시장규모는 2002년 기준으로 24조원의 초 거대 지하경제시장을 이루고 있다. 관련업계에서는 한걸음 더 나아가 시장규모 30조원, 성매매 여성 100만명이상으로 추정하고 있다. ●파생 용어 성매매를 신고하면 최고 200만원을 지급하기로 하면서 보상금 사냥꾼인 ‘성(性)파라치’가 생겨났다. 자발적인 시민참여로 경각심을 높이는 데 효과가 있다지만 공권력이 해야 할 일을 ‘돈’을 매개로 국민에게 떠넘긴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단속의 손길을 피해 성매매가 집창촌에서 오히려 주택가, 인터넷, 해외 등으로 숨어들거나 옮겨갈 뿐이라는 ‘풍선효과’이론도 제시됐다. 엄연히 수요와 공급이 있는 시장경제원리를 뒤집은 ‘좌파적 정책’이라는 비유도 등장했다. 보다 강력한 단속을 요구하는 시민단체와 생존권을 내세운 집창촌 성매매 여성, 포주들간의 설전이 ‘성전(性戰)’으로 묘사됐다. 우리 나라는 1961년 윤락행위방지법을 제정해 공창제를 정식 금지했으나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일본은 매춘금지법, 스웨덴은 성구매금지법, 대만은 공창제 폐지 등 유사입법을 통해 인류의 역사와 함께 시작된 매매춘과의 고리를 끊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대비 포인트와 예상 논제 성매매특별법은 단순히 법 내용에 대한 암기보다 시행 과정에서 야기되는 문제점과 인간의 본성 등에 착안한 문제의식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 사회, 나아가 인류의 기본적 욕구, 욕망과 관련된 논쟁거리이기 때문에 앞으로 구술 및 논술, 면접시험에 단골 출제가 예상된다. 예상 논제로는 ▲성매매 여성들의 생존권 주장에 대한 나의 의견 ▲공창제 존속 및 폐지에 대한 나의 입장 ▲성매매관련 입법사례를 통해 본 우리 나라와 외국의 비교 ▲성매매특별법과 윤락행위방지법과의 비교 ▲성매매특별법이 시장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논하라 ▲성매매특별법 시행에 따른 찬반논리를 제시하라 등이 있다. 노주석기자 joo@seoul.co.kr
  • [오일만특파원 베이징은 지금] 中 영화계에 한국 배우기 바람

    요즘 생존 위기에 직면한 중국 영화계의 화두는 ‘한국 배우기’로 집약된다.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빈사상태’를 헤맸던 한국영화가 어떻게 세계 영화산업의 총아로 변신했느냐가 중국 영화인들의 최대 관심거리인 것이다. 인민일보는 최근 평론을 통해 “중국보다 역사가 늦은 한국영화가 국제적인 상을 휩쓰는 이유는 무엇인가?”라고 묻고 임권택 감독의 ‘취화선’과 김기덕 감독의 ‘빈집(空房間)’ 등을 예로 들며 무한한 창조성과 다양한 소재, 선명한 배우 캐릭터 등을 비결로 꼽았다. 반면 빈약한 창조공간과 소재 빈곤, 모호한 인물 창조 등을 이유로 중국 영화가 관중들로부터 외면을 당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최근 한국에서 연인(燕人)이란 타이틀로 상영된 장이머우 감독의 ‘십년매복(十年埋伏)’ 등 대작들도 나오고 있지만 중국 영화계의 사양길은 뚜렷한 추세이다. 영화 이외에 별 오락거리가 없었던 90년대 초반엔 22억위안(3300억원)의 매표소 수입을 올렸지만 지난해는 10억위안 이하로 떨어졌다. 컴퓨터 TV 등 다양한 매체의 성장과 불법 DVD의 난무, 틀에 박힌 소재 등으로 중국영화가 관중들로부터 외면당한 것이다.2002년의 경우 9억위안의 매표소 수입 가운데 장이머우 감독의 ‘영웅(英雄)’이 2.5억위안을 차지했고 그나마 수입영화가 절반이 넘는 5억위안이 넘는다. 중국영화 협회 우이궁(吳貽弓) 주석은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현재 모든 면에서 중국영화는 최악의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하소연하면서 “이런 의미에서 관중들을 끌어모으는 한국 영화는 우리의 본보기가 될 것”이라고 극찬했다. 중국인 1인 평균 5년에 한번꼴로 영화관을 찾는다고 소개한 우 주석은 지난해 320편의 중국산영화가 제작됐지만 100편만이 상영됐고,220편은 함량미달로 신고식도 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oilman@seoul.co.kr
  • “국감장 주변은 이익단체 집회장”

    국정감사장 주변이 노조나 관련단체,지역주민의 민원성 집회와 시위로 얼룩지고 있다.해당 부처나 지자체,정치권에 요구사항을 알리고 압력을 행사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미신고 집회가 늘고 일부 시위가 물리적 충돌로 이어지자 경찰청은 국감장의 출입을 막거나 국감을 방해하는 사람은 현장에서 즉각 검거하는 등 엄정 조치토록 일선 경찰서에 지시했다.또 미신고 집회는 해산조치하고,국감 상임위원장의 요청이 있으면 국감장 내부에도 경찰을 배치키로 했다. 6일 한국가스공사에 대한 국회 산업자원위 국정감사는 오전 내내 열리지 못했다.국감장인 경기 분당 가스공사 정문 앞에서 공사 노조원 100여명이 국감 시작 1시간 전부터 구조개편 추진과 민영화에 반대하는 피켓 시위를 벌인 것이 발단이 됐다.한나라당 김용갑 의원 등은 “이런 상황에서는 감사를 진행하기 어렵다.국감장을 국회로 옮기자.”고 주장했고,국감은 4시간 남짓 정회됐다. 비슷한 시간 행정자치위의 국감이 진행된 서울시청 앞에서도 공공연맹 소속 노조원 150여명이 서울시측과 장기간 분쟁중인 공공부문 사업장 문제의 해결을 촉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국감 방청을 요구하다 사전허가가 없었다는 이유로 국감장 출입이 봉쇄되자 경찰들과 10분 남짓 몸싸움을 벌였다.이 과정에서 일부 노조원이 경찰 방패에 맞아 부상을 입기도 했다. 판교주민대책위 소속 주민 200여명도 이날 국정감사가 열린 분당 한국토지공사 정문 앞에서 개발에 따른 이주단지 조성과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는 구호를 외치며 집회를 가졌다. 앞서 전날에는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노동부 국정감사가 열린 정부과천청사 앞에서 집회를 갖고 악덕 기업주들의 구속을 촉구했다. 4일에는 세종로 문화관광부 앞에서 제주도 카지노 생존권 확보를 위한 투쟁위원회 소속 100여명이 카지노 증설 계획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으며,같은 날 한국전력 국감장 주변에서는 해고자 복직을 요구하는 노조의 시위가 벌어졌다. 이에 대해 상지대 정치학과 정대화 교수는 “국정감사와 정기국회 중 각종 단체의 집회 시위가 많은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강화된 국회의 권한에 비해 그만큼 국민의 이해와 요구를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면서 “하지만 이익집단의 비정상적이고 과도한 요구가 있다면 국회가 공익적차원으로 걸러내야 한다.”고 말했다.경찰청 관계자는 “노동,환경,인권 등 각 분야 국회의원들이 모이는 데다 언론의 관심을 끌 수 있어 사태해결을 촉구하는 시위가 줄을 잇고 있다.”면서 “국감이 정상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불법 시위에는 강력 대처하겠다.”고 밝혔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성매매법 항의 7일 집회

    성매매에 종사하는 전국 집창촌 여성들이 성매매특별법에 항의하는 대규모 집회를 갖고 법 집행을 3년간 유예할 것을 요구할 예정이다.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오는 7일 서울 여의도에서 미아리텍사스와 영등포역 인근 집창촌 종업원 등 2000여명이 항의 집회를 개최한다는 정보를 입수했다고 1일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집창촌 여성들이 서울에 집결해 항의 집회를 개최할 예정이지만 현재까지 집회 신고는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집회에 앞서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집창촌인 속칭 ‘미아리 텍사스’ 성매매 종사 여성 200여명은 이날 자율정화위원회 사무실에 모여 “정부가 당초 약속한대로 2007년까지 단속을 유예해주면 그때까지만 일하고 깨끗이 손을 털겠다.”며 단속유예 등 생계대책을 논의했다. 대책위원회 회장을 맡게 된 김모씨는 “좋은 일은 아니지만 필요악 아니냐.”면서 “없애지 말자는 게 아니라 유예기간만 주면 열심히 한 뒤 정리하고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애절한 사연도 많았으며 여성부와 여성단체에 대한 불만도 터져나왔다. 이들은 또 각 집창촌 종업원을 주축으로 대표를 선출해 ‘생존권 사수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안동환 김효섭기자 sunstory@seoul.co.kr
  • 日 백화점 살아남기 몸부림

    日 백화점 살아남기 몸부림

    |도쿄 이춘규특파원|일본 백화점들이 처절한 살아남기 경쟁에 돌입했다.장기불황의 직격탄을 맞은 데다 대형할인점이나 통신판매 등 경쟁업종이 영역을 급속히 잠식해 들어오는 데 따른 것이다. 이에 따라 기존의 영업전략에서 과감히 탈피,영업이 안 되는 점포는 폐쇄하고 대도시 도심부 진출을 강화 중이다.종신고용에 익숙했던 종업원들에 대한 조기·희망퇴직도 단행하고 있다. 백화점업계의 생존경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게 올해 개점 100주년을 맞은 미쓰코시백화점의 군살빼기다.미쓰코시는 영업실적이 좋지 않은 오사카·요코하마 등 4개 대형점을 내년 5월5일 폐쇄한다.800여명의 조기희망퇴직도 병행한다. 반면 도쿄 니혼바시점은 11일 공격적으로 신장개업한다. 다른 백화점들도 비슷하다.마쓰자카야는 오사카 구즈하점을 올 3월,오사카점을 5월 각각 폐쇄했다.경영 위기에 직면한 소고나 세이부백화점도 대형점포를 연쇄 폐쇄할 움직임이다. 수치상으로도 백화점의 위기는 심각하다.백화점 매출은 전국적으로 6년 연속 감소했다.이에 따라 “이대로 가면 백화점은 타업종(할인점 등)에 잠식돼 구조적 불황에 빠질 수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장탄식이다. 이에 따라 백화점 업계는 과감한 변신으로 위기 돌파를 시도 중이다.재개발 등으로 인구밀집 지역이 변하고,교통체계 등도 급변한 환경에 적극 대응할 방침이다.대도시 점포 투자는 적극 늘리고 있다.다카마쓰야는 올 봄에 이어 이번 가을에도 니혼바시점을 전면개수한다.오사카점은 식료품 위주로 탈바꿈시킨다.이세탄은 1년 전 신주쿠점의 남성관을 개수,성공했다.미쓰코시는 신주쿠점을 잡화전문점으로 바꾼다. taein@seoul.co.kr
  • 성매매법 시행 1주일…유흥업소 신풍속도

    성매매법 시행 1주일…유흥업소 신풍속도

    성매매특별법 시행 이후 ‘밤 문화’에 새로운 풍속도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지난달 23일부터 일주일째 경찰의 특별단속이 이어지자,관련 업소와 술집,여관 등이 다양한 생존전략에 골몰하고 있다.성매매를 둘러싼 사슬구조가 바뀌면서 희비도 엇갈리고 있다. ●집창촌 찾던 외국인 관광패턴 변해 성매매특별법 시행은 일본 등 외국 남성의 관광 패턴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종전에는 집창촌이 공공연한 ‘단골 코스’였지만,사정이 달라졌다.업계 관계자들은 “더욱 은밀한 서비스를 준비하거나 아예 그런 코스를 없앴다.”면서 “단속이 장기화되면 관광객의 감소로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일본 관광객을 많이 태운다는 모범택시 운전사 박모(57)씨는 “종전에는 술과 2차까지 풀서비스를 제공받거나 미아리·청량리 집창촌을 삼삼오오 찾았다.”면서 “이제는 비밀이 보장되는 렌터카 회사나 호텔,여행사를 통해 거래가 이뤄진다.”고 귀띔했다. ●인터넷에서도 몸조심 인터넷에서도 바람은 거세다.‘물 좋은 곳’으로 소문난 단란주점이나 룸살롱 등을 소개해 주는 사이트들은 ‘성매매’를 의미하는 단어 사용을 금지시켰다.성매매특별법상 ‘인터넷을 통한 성매매 알선과 광고 등의 행위’로 처벌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20만명의 회원을 가진 ‘나가요닷컴’은 “성매매를 의미하는 은유적인 표현을 발견하는 즉시 삭제하겠다.”고 공지했다. 자체 홈페이지를 꾸리며 홍보를 벌이던 일부 고급 술집도 ‘몸사리기’에 나섰다.청소년의 접근을 막기 위해 초기화면에 주민등록번호 인증 장치를 새로 설치하고,신분을 확인할 수 있도록 회원제를 다투어 도입하고 있다. ●가격경쟁과 소수단골 위주 영업 대구 달서구 본리동 유흥업소의 모텔들은 숙박료 인하 경쟁을 벌이고 있다.하루 3만 5000∼4만원에서 2만원으로 절반 가까이 내렸다. 일부 유흥업소는 ‘검증된’ 단골 손님에게만 은밀한 거래를 제안한다.성매매특별법상 ‘유사성행위’로 단속되는 변태적인 ‘쇼’나 이른바 ‘2차’는 아무래도 위험부담이 크기 때문이다.서울 북창동 A룸살롱 종업원 장모(27)씨는 “단속이나 신고를 우려해 단골이라는 확신이 드는 손님에게만 쇼나 2차를 권한다.”고 전했다. ●주변 상인,“생존권 보장”읍소 집창촌 주변 상인들은 살길이 막막해졌다고 하소연한다.서울 동대문구 ‘청량리 588’일대에서 약국과 슈퍼마켓,세탁소 등을 운영하는 자영업자 10여명은 30일 이곳 ‘자율정화위원회’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아무런 대책없이 갑자기 소나기 단속을 했다.”며 생존권 보장과 단속유예를 촉구했다.횟집과 주차장을 운영하는 이영일(60)씨는 “매출이 하루 20만원에서 10만원 미만으로 줄고,주차하는 차량도 180대에서 20대로 줄었다.”고 말했다.회견 도중 박승철 자율정화위원장이 단속의 부당함을 지적하자 일부 자영업자는 “588을 대변하지 말고 당장 먹고 살기 어려운 우리 입장이나 얘기하라.”고 언성을 높여 서로 다른 속내를 내비치기도 했다. ●오픈된 술집,콘돔업계 ‘희색’ 반면 30∼40대 회사원을 겨냥한 ‘오픈된’ 술집은 인기를 끌고 있다.여종업원 없이 70∼80년대 가요나 팝 등을 생음악으로 들을 수 있는 저렴한 술집이 최근 대구에서만 20여개나 새로 생겨 성업 중이다. 불황이 예상됐던 콘돔업계도 오히려 주식시장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다.코스닥 등록 콘돔생산업체인 유니더스의 주가는 성매매특별법 시행 한달 전부터 지속적인 하락세를 유지하다 법이 시행된 23일 3.61% 오른 데 이어 추석연휴를 지난 30일에는 5.26%나 상승했다.상승이유에 대해 회사측은 “경찰단속으로 성매매가 더욱 음성화될 경우 성병감염을 우려해 콘돔 착용이 늘어날 것이라는 예측이 반영된 것”이라고 주장했다.하지만 한 증권사 관계자는 “경찰의 특별단속이 끝나는 10월 중순 이후에는 콘돔의 주요 소비처인 성매매 산업이 원상태로 회복될 것이라는 기대심리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을 달리했다. 유영규 김효섭기자·전국종합 whoami@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