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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대영의 무기 인사이드] 러시아 해군 비운의 핵잠수함 ‘쿠르스크’

    [김대영의 무기 인사이드] 러시아 해군 비운의 핵잠수함 ‘쿠르스크’

    지난 16일 개봉한 영화 쿠르스크(Kursk)가 화제다. 지난 2000년 8월 12일 노르웨이 바렌츠 해에서 발생한 러시아 잠수함 침몰 사건을 그린 영화로 우리의 세월호 참사를 떠올리게 한다. 세월호와 마찬가지로 구조에 필요한 골든 타임을 놓쳤고, 거기에 더해 러시아 군의 부족한 예산상황이 겹치면서 세계 해군 역사에 남을 비극이 발생했다.쿠르스크호는 소련 해군이 미 해군의 항공모함을 잡기 위해 만든 순항미사일 핵잠수함이었다. 일명 오스카급으로 불리는 이들 잠수함들은 1975년부터 1996년까지 10여 척이 건조되었다. 소련 해군은 유사시 미 해군의 항공모함에 맞서 똑같이 항공모함을 건조해 대응하려고 했다. 하지만 당시 소련의 경제력으로는 이를 감당하기 어려웠고 새로운 게임체인저가 필요했다. 이러한 게임체인저로 선택된 것은 순항미사일 핵잠수함이었다. 소련 해군은 그 전에도 순항미사일 핵잠수함을 건조해 운용했지만, 오스카급은 탑재한 잠대함 미사일과 그 크기가 상상을 초월했다. 1번함인 아르한겔스크호는 수중배수량이 2만 톤이 넘었고, 탑재된 미사일 P-700 그라니뜨는 소형 전투기 크기의 대형 대함 미사일로 750㎏의 고폭탄이나 핵탄두를 탑재할 수 있었다.최대 사거리가 600여㎞에 달하는 P-700 그라니뜨 잠대함 미사일은 렘제트 엔진을 장착해, 마하 2.5의 비행속도로 미 해군 항공모함을 파괴시킬 수 있었다. 러시아에서 초기형은 '그라니뜨급' 후기형은 '안티급'로 불리는 오스카급은, P-700 그라니뜨 잠대함 미사일을 잠수함 좌우 양 옆으로 12발씩 총 24발을 탑재할 수 있었다. 또한 이밖에 6개의 어뢰발사관을 가지고 있다. 여타 소련 해군의 잠수함들처럼 복각식 선체를 가지고 있으며, 8인치 두께의 고무패드를 부착해 잠수함에서 발생하는 소음을 차단했다. 이밖에 장기간 항해할 잠수함 승조원들의 사기진작을 위해, 작지만 수영장과 사우나 그리고 체력단련실과 휴게실을 별도로 만들었다. 2개의 원자로를 가진 오스카급은 수중에서 최대 32노트로 항해할 수 있었다. 비록 32노트의 속도를 낼 경우 적에게 발각될 가능성이 높지만, 그 만큼 빠른 속도로 미 해군 항공모함을 추적할 수 있었다.쿠르스크호는 12번째로 건조된 오스카급 잠수함이다. 쿠르스크는 지명으로 러시아 쿠르스크주의 주도이며 동시에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최대 격전지였다. 러시아 북해 함대의 자랑이었던 쿠르스크호는 연습용 어뢰가 폭발하면서 아수라장이 되었고, 뒤이어 어뢰가 연달아 터지면서 결국 침몰하게 된다. 당시 폭발은 지진파 계측장비를 통해 미국의 알라스카에서도 감지되었다. 천만 다행인 것은 잠수함의 동력원인 원자로가 승조원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정지되었다는 점이다. 만약 원자로가 정지되지 못하고 폭주했다면 쿠르스크호 침몰 사건은 대재앙이 될 수도 있었다. 어뢰 폭발과 함께 100여명의 승조원 대부분이 사망했지만 20여명은 살아남아 구조를 애타게 기다렸다. 하지만 구조잠수정이 수 차례 구조를 위해 도킹을 시도했지만, 노후된 부품으로 인해 실패하게 된다. 침몰 사건 발생 뒤 한참이 지나서야 영국과 노르웨이 구조대가 도착했고, 이 때는 남은 생존자들도 전부 사망한 시점이었다. 김대영 군사평론가 kodefkim@naver.com
  • 부산 재개발 반대집회서 차량 덮쳐…경찰관 21명 등 24명 부상

    부산 재개발 반대집회서 차량 덮쳐…경찰관 21명 등 24명 부상

    부산에서 재개발 반대 집회 현장에서 차량이 사람들을 덮쳐 경찰 21명과 집회 참가자 3명 등 24명이 다쳤다. 24일 오후 3시 46분께 부산 사상구 덕포동 사상초등학교 인근 도로(왕복 4차로)에서 집회 후 거리행진을 하던 집회 참가자들과 안전관리 중이던 경찰관들을 뒤따라오던 승합차가 덮쳤다. 다친 사람 중 1명이 골절상을 당했으며, 나머지 23명은 타박상 등 가벼운 상처를 입은 것으로 전해졌다. 사고는 덕포 1구역 재개발 반대 집회를 끝낸 뒤 재개발 현장까지 거리행진을 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사고 차량은 집회 주최 측 차량(운전자 A·48)인 것으로 알려졌다. 차를 몰고 집회 대열을 따라가다가 운전 미숙으로 사고를 낸 것으로 경찰은 파악했다. 경찰은 운전자 A씨와 목격자 등을 상대로 사고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덕포철거민연대는 이날 오후 1시 부산 사상구 감전동 사상구청 앞에서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생존권 쟁취 결의대회를 한 뒤 거리행진을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은성수 수출입은행장 “올해 62조원 금융 지원”

    은성수 수출입은행장 “올해 62조원 금융 지원”

    “수주산업 경쟁력 강화와 혁신성장산업 육성을 위해 올해 총 62조원의 금융을 지원하겠습니다.” 은성수 수출입은행장은 24일 “‘금융이 없어서 수주를 못 했다’는 말이 나오지 않게 노력하겠다”며 이렇게 말했다. 은 행장은 이날 기자간담회를 열고 2019년 주요업무 추진계획을 발표했다. 수은은 대출과 투자 등 자금공급은 지난해보다 1조원 늘어난 49조원, 보증지원은 3조 9000억원 늘어난 13조원을 공급할 예정이다. 은 행장은 “건설, 플랜트, 선박 등 수주산업의 회복세를 고려했다”면서 “산업별로 차별화된 전략적 금융을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업황이 악화된 자동차 산업에 대해서는 수출실적과 매출이 감소하고 신용등급이 하락한 기업도 대출 한도 축소나 금리 인상을 한시적으로 유예해 주기로 했다. 조선 산업은 시황이 회복될 때까지 생존과 경쟁력 유지에 필요한 조선사별 맞춤형 금융지원 체제를 만들 예정이다. 수은은 ‘핵심전략국’ 10곳을 선정해 이들 국가에 대한 우리 기업들의 수주를 집중적으로 지원할 계획이다. 은 행장은 “수은은 지난해 5000억원대 순이익을 거둬 재도약할 수 있는 기초체력을 다졌다”고 강조했다. 최선을 기자 csunell@seoul.co.kr
  • [이범수의 시사상식설명서] 택시-카풀 업계 극한 갈등 무슨 일이? 한방에 정리

    [이범수의 시사상식설명서] 택시-카풀 업계 극한 갈등 무슨 일이? 한방에 정리

    지난 22일 ‘택시-카풀 사회적 대타협 기구’가 출범했습니다. 그간 많은 진통이 있었는데요. 어떤 일이 있었던 건지 꼭꼭 씹어보겠습니다. 우선 사회적 대타협 기구가 마련됐다는 건 택시업계와 카풀업계의 갈등이 상당히 심했다는 거겠죠. 그럼 왜 서로 관계가 틀어졌냐. 지난해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카카오모빌리티라는 회사가 카풀, 그러니까 승차공유서비스라고 하는데 출퇴근 시간에 방향이 같은 사람끼리 차를 타고 가게끔 하는, 뭐 이런 식의 서비스를 내놓기 위한 준비에 들어갑니다. 개인 자동차를 소유하고 있는 운전자도 모집하고, 정식출시는 아니지만 우선 시범서비스도 시작하고 말이죠. 그런데 택시업계가 “카풀 업계가 법을 위반하면서 자신들의 생존권을 위협 한다”, “2005년부터 택시의 수를 제한하는 택시 총량제를 시행하고 있는데 카풀 규제를 풀어주는 것은 모순이다”라며 반발한 겁니다. 택시 운행을 멈추고 광화문, 여의도 등에서 파업을 하고, 안타깝지만 두 분의 택시기사가 분신자살을 선택하기도 하고요. 시민들이 택시에 불만이 높은 지금, 카풀로 몰려가버리면 택시업계는 힘들어지잖아요. 여하튼 이런 상황 속에서 카카오모빌리티가 시범서비스도 중단하고, 정식 서비스 출시도 무기한 연기를 했습니다. 한 자리에 모일 수 있는 명분이 마련 된 겁니다. 지금까지의 전체적인 흐름은 이렇고요. 사실 카풀업계가 승차공유서비스를 할 수 있었던 건 애매한 법 때문입니다. 현재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을 보면 81조에 ‘자가용자동차를 돈을 받고 운송용으로 제공하거나 임대해서는 안 되고 누구도 이를 알선해서는 안 된다’라고 돼 있습니다. 택시운전사들이 끄는 사업용 자동차만 돈을 받고 운행할 수 있거든요. 81조만 보면 카카오모빌리티는 개인 자동차 운전자를 모집해서도 안 되고 사업 자체를 할 수 없는 거죠. 그런데 법의 예외 조항을 보면 ‘출퇴근 때 자동차를 함께 타는 경우’가 있습니다. 출퇴근 시간이 오전 6시부터 8시인지, 9시인지 정확히 시간도 명시가 안 돼 있고요. 이게 무슨 말이냐면 카카오모빌리티가 마음만 먹으면 ‘출퇴근 시간이 뭐 정해져 있지도 않은데 하루 24시간 언제든 운행해도 되겠다’고 나설 수 있는 거죠. 실제로 이렇게 하지는 않았지만, 법적으로는 그런 허점이 있는 겁니다. 현재 야당을 중심으로 예외조항을 삭제하는 법안, 출퇴근 시간을 명확히 규정하는 법안 등이 국회에 발의 된 상태입니다. 양측이 대립하는 상황에서 정부와 여당은 사회적 대타협 기구를 출범시켰지만 이견을 좁히는 건 쉽지 않아 보입니다. 여당(더불어민주당)·정부(국토교통부)·택시업계·카풀업계가 참여하는 데요.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택시산업을 위한 근본적인 대책을 수립하고 2월 국회에서 입법할 부분은 하겠다”며 ‘택시업계 달래기’에 나섰지만 택시업계는 ‘카풀 문제부터 결자해지하라, 택시업계 해결방안을 논의하는 건 나중’이라고 선을 그은 상태입니다. 회의는 고성이 오간 끝에 비공개 전환 10분 만에 종료됐습니다. 사실상 정부 여당은 사회적 합의를 우선시 하며 각 주체들을 자리에 불러 모았지만 4차 산업혁명의 흐름 속에서 공유경제가 필요하다는 게 기본 입장이라 택시업계와의 간극을 줄이기는 쉽지 않을 듯 한데요. 그만큼 국회의 갈등조정 능력이 힘을 발휘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오늘은 택시업계와 카풀업계의 갈등에 대해 짚어봤습니다.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이범수의 시사상식설명서> 팟캐스트는 ‘팟빵’이나 ‘팟티’에서도 들을 수 있습니다. - 팟빵 접속하기 - 팟티 접속하기
  • [월드피플+] 암 걸린 19세 임신부의 용감한 출산…母子 모두 하늘로

    [월드피플+] 암 걸린 19세 임신부의 용감한 출산…母子 모두 하늘로

    임신 후 암에 걸린 사실을 안 엄마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항암치료를 포기했고 아기를 품에 안았다. 그러나 얼마 안 가 엄마도 아기도 모두 사망하는 비극이 벌어졌다. 지난 18일(현지시간) 데일리메일은 19세의 어린 나이에 자신보다 아기를 더 위했던 용감한 엄마 브리아나의 이야기를 소개했다. 브리아나 롤링스는 임신 17주차에 ‘공격성NK세포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공격성NK세포백혈병은 혈액암의 일종으로 NK세포림프종이라고도 한다. NK세포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세포나 암세포를 직접 파괴하는 면역세포로 ‘자연살해 세포’라고 불린다. 공격성NK세포백혈병은 이 NK세포의 빠른 확산으로 정상세포까지 파괴되는 희귀질환이다.아기를 포기하고 하루라도 더 빨리 치료를 받는 게 생존 가능성을 높이는 길이었지만, 브리아나는 항암치료를 연기하고 아기를 낳기로 결정했다. 극심한 열병과 몸살에 시달리면서도 브리아나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태아에게도 전염되는 세균에 감염된 브리아나는 응급 제왕절개로 세 달 빨리 아들을 품에 안았다. 브리아나는 “아들 케이든을 안고 발가락이 몇 개인지 손가락은 몇 개인지 세던 순간, 뱃속에 있을 때처럼 끝없이 말을 걸던 순간 모두 너무 특별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케이든은 태어난지 2주 만에 세상을 떠났다. 브리아나는 슬픔에 잠겼지만 아들을 낳은 걸 후회하지 않았다. 그녀는 “아들에게도 삶의 기회를 주고 싶었다. 케이든과 함께한 12일은 내 생애 최고의 날들이었다”고 말했다. 케이든이 세상을 떠나고 다행히 브리아나의 상태는 조금씩 호전됐다. 혈액 수치도 좋아졌고 근육량도 늘어 병원 밖을 나가 짧은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그녀는 “꼭 건강해지기로 아들과 약속했다. 나는 어서 이 끔찍한 질병을 물리칠 것”이라며 투병 의지를 불태웠다. 그러나 얼마 안 가 다시 상태가 나빠졌고 오빠의 골수 이식 역시 무산됐다.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은 브리아나는 한 달에 400만 원이 드는 임상시험에도 참가했다. 만만치 않은 비용에 가족들은 모금활동을 벌여 브리아나의 투병을 도왔다. 그러나 치료 두 번 만에 브리아나의 상태는 급격히 나빠졌고 결국 지난해 12월 29일, 열아홉번째 생일을 치르자마자 세상을 떠났다. 브리아나의 가족들은 “가장 비극적인 연말”이라고 그녀의 죽음을 슬퍼하며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걸 절대 아끼지 말라”고 충고했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신동빈 “선제·지속 투자… 시기 놓쳐선 안 돼”

    신동빈 “선제·지속 투자… 시기 놓쳐선 안 돼”

    “미래 예측… 기존 틀 무너뜨릴 혁신을”신동빈 롯데 회장이 23일 경영 복귀 후 참석한 첫 사장단회의에서 ‘투자와 변화’를 강조했다. 이날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에서 열린 ‘2019 상반기 롯데 VCM(사장단 회의)’에는 신 회장을 비롯해 황각규 부회장, 계열사 사장단, 비즈니스 유닛(BU) 임원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 신 회장과 그룹 최고 경영진이 한자리에 모인 것은 지난해 상반기 사장단회의 이후 1년 만이다. 신 회장은 2007년부터 매년 두 차례 사장단 회의를 진행해 왔으나 지난해 8개월여의 구속수감 생활을 마치고 그해 10월 경영에 복귀하면서 지난해 7월 열린 사장단 회의에 참석하지 못했다. 당시 회의는 황 부회장이 주재했다. 신 회장은 도덕경에 나오는 문구인 ‘대상무형’(大象無形)을 언급하면서 “우리가 맞이하게 될 미래의 변화는 그 형태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무한하다”면서 “생존을 위해서는 미래에 대한 예측과 상황별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하며 기존의 틀과 형태를 무너뜨릴 정도의 혁신을 이뤄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그룹 내 투자가 시기를 고민하다 타이밍을 놓치거나 일시적인 투자만 하는 등 소극적인 경향이 있는데, 잘하고 있는 사업도 선제적이고 지속적인 투자를 해야 하고, 투자 시기를 놓쳐서는 안 된다”고 공격적인 경영을 촉구했다. ‘대상무형’은 무한한 것은 인간 감각으로 인지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신 회장은 또 인재에 대한 투자 확대를 당부하면서 “소극적으로 현실 안주에 빠지는 순간 시장에서 도태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가지고 과감히 도전하고 변화하는 문화를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다. 이어 “환경과 사회적 가치를 고려한 윤리경영, 투명경영을 통해 사회로부터 신뢰받고 존경받는 기업이 되자”고 말했다. 심현희 기자 macduck@seoul.co.kr
  •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년] 윤봉길 의거 후 일제 핍박…상하이 떠나 8년간 ‘고난의 행군’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년] 윤봉길 의거 후 일제 핍박…상하이 떠나 8년간 ‘고난의 행군’

    1929년 10월 미국발(發) 경제공황이 전 세계로 퍼졌다. 1차 세계대전 승전국인 미국과 영국, 일본은 그간 협력하던 자세를 버리고 각자도생에 나섰다. 내수시장 규모가 작았던 일본은 경제 위기를 탈출하고자 1931년 9월 중국 만주를 공격했다. 1932년 1월에는 상하이도 침공했다. 이 지역 이권을 선점한 미국과 영국이 철군을 요구하자 일본은 1933년 2월 국제연맹을 탈퇴하며 이들과 갈라섰다. 이 시기 임정은 일본의 공세를 피해 상하이에서 항저우, 전장, 창사, 광저우, 류저우, 치장 등으로 ‘고난의 행군’을 시작했다. 마지막 정착지인 충칭에 도착하는 데 8년이 걸렸다. 역사학계에서는 이를 ‘임정의 이동시기’라고 부른다.●“임정 지도자 중 군대 편성 실현은 김구뿐” 일본이 열강 질서에서 이탈해 파시즘으로 치닫던 1932년 4월 29일. 중국 상하이 훙커우 공원에서 일왕 히로히토(1901~1989)의 생일 축하연이 열렸다. 일제가 점령지 한복판에서 보란 듯 승전고를 울리는 모습에 중국인들은 말할 수 없는 굴욕감을 느꼈다. 이런 상황에서 스물네 살 한국인 청년 윤봉길(1908~1932)이 폭탄을 던져 시라카와 요시노리(1869~1932) 등 일본군 수괴들을 한꺼번에 처단했다. 그의 희생으로 한국 독립운동이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각지에서 지원금이 쇄도하며 임정의 권위가 되살아났다. 중국인들은 자신들의 모욕을 한국이 대신 갚아준 것에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이때부터 두 나라는 항일 역사 인식을 공유했다. 중국 국민당 정부도 임정을 ‘진정성 있는 파트너’로 대하기 시작했다. 국민당 지도자 장제스(1887~1975)는 임정을 경제적으로 지원하고 중국군관학교 뤄양분교에 한인특별반도 마련했다. 한국독립군(1930년대 북만주에서 활동하던 항일부대) 출신 이청천(1888~1957) 등이 교관으로 참여했다. 이곳 출신들은 1940년 9월 임정 최초 정규 부대인 한국광복군의 주축이 됐다. 장제스는 일본의 패망이 유력하던 1943년 전후처리를 논의하려고 연 카이로회담에서 미국과 영국의 반대에도 한국 독립 약속을 받아냈다. 임정 연구의 권위자인 한시준(65) 단국대 사학과 교수는 “1919년 임정이 세워진 뒤로 수많은 지도자가 있었다. 하지만 (항일투쟁의 최종 목표인) 군대 편성 계획을 실현한 이는 김구뿐이었다”며 “한반도에서 멀리 떨어진 충칭에서 광복군을 만들어 낸 일은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임정은 잃은 것도 많았다. 일제가 즉각 보복에 나섰기 때문이다. 윤봉길이 훙커우 공원에서 거사를 벌인 것이 오전 11시 40분쯤이었는데, 일본 경찰은 오후 1시 프랑스 조계로 들이닥쳤다. 대대적인 체포 작전을 벌여 안창호(1878~1938)를 비롯한 임정 관계자 12명을 체포했다. 그간 임정은 ‘폭력을 쓰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프랑스 조계 당국의 보호를 받았다. 하지만 윤봉길 의거에 충격을 받은 프랑스는 더이상 임정을 지켜 주지 않았다. 이때부터 임정은 상하이를 떠나 생존을 위한 장정에 나섰다. 일본 경찰과 군대, 밀정을 피해 중국 각지를 떠돌았다. 우선 급한 대로 찾아간 곳이 상하이에서 멀지 않은 항저우였다. 1932년 5월 임정 국무위원 대다수가 상하이에서 빠져나와 이곳으로 모였다. 반면 김구와 일부 위원들은 항저우 인근 자싱으로 몸을 숨겼다. 서로 흩어져 있는 것이 임정 존속에 유리하다고 판단해서였다. 중국 국민당 첩보기구 소속 천리푸(1899~2001)가 김구의 피난처를 주선했다. 그는 저장성장을 지낸 자싱의 유명인사 추푸청(1873~1948)에게 “김구를 누구보다 잘 챙기라”고 부탁했다. 이때부터 김구는 추푸청의 비서 겸 수양아들 천둥성의 별채(메이완제 76호) 등에서 숨어 지냈다. ●가장 두려운 것은 돈에 눈이 먼 ‘한국인 밀정’ 항저우는 ‘물의 도시’라는 별명답게 호수와 수로가 산재해 있다. 임정 요인들은 일제의 감시를 피하려고 배를 띄우고 호수 위에서 회의를 열었다. 말 그대로 ‘물 위에 떠다니던 정부’였다. 항일무장단체 의열단 리더 김원봉(1898~1958)이 배를 타고 김구를 만나러 가는 장면이 나오는 영화 ‘암살’(2015)은 바로 이 시기 항저우 임정을 배경으로 했다. 하지만 이곳 생활도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임정이 상하이를 떠났다는 것을 눈치챈 일제가 추격에 나섰다. 특히 김구에게는 일본 외무성과 조선총독부, 중국 상하이주둔군 사령부가 각각 20만 대양(大洋·중국 화폐단위)을 걸었다. 60만 대양은 지금 가치로 150억~200억원에 달하는 거액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년’ 취재에 동행한 이원규(72) 작가는 “당시 김구 등 임정 요인들은 일본 경찰보다 한국인 밀정을 더욱 두려워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독립운동의 큰 적은 현상금에 눈이 먼 우리 자신이었다”고 씁쓸해 했다. 김구는 많은 이들에게 쫒기며 인생에서 가장 외롭고 힘든 때를 보냈다. 다음은 광복군 출신 인권변호사 태윤기(1918~2012)가 쓴 수기 ‘회상의 황하’ 가운데 일부다. “윤봉길 의거 뒤로 일본은 대(大)상금을 건 동시에 밀정 300여명을 풀어 백범을 생포하는 데 집중했다. 김구는 이를 눈치채고 2년 가까이 행적을 감췄고 임정 요인에게도 위치를 알리지 않았다. 그의 행방을 아는 이는 안공근(1889~1940·안중근의 동생)뿐이었다. 그러면 김구는 어디에 있었을까. 그는 중국옷을 입은 촌로 복장을 하고는 ‘정크’라고 부르는 작은 배로 이 마을 저 마을 떠돌아다녔다.”‘풍찬노숙’ 김구 지키며 생사 함께한 中 처녀 뱃사공 주아이바오 ●부인 역할하며 日검문서 보호한 주아이바오 풍찬노숙하던 김구를 5년이나 돌보며 일본 경찰과 밀정으로부터 안전하게 지켜준 중국인 여성이 있다. 자싱에서 뱃사공으로 일하던 주아이바오(1913~?)다. 사실상 김구의 두 번째 부인이었다고 할 수 있다. 당시 김구는 ‘장천’, ‘왕사장’, ‘장전추’라는 가명을 쓰며 광둥인 행세를 했다. 하지만 중국어가 서투른 데다 키도 너무 커 쉽게 의심을 샀다. 실제로 일본 경찰에 체포됐다가 풀려나는 등 일촉즉발의 위기를 맞기도 했다. 1933년 추푸청의 장남 추펑장은 그에게 신분 세탁을 위해 위장결혼을 제안했다. 김구는 자싱에서 추푸청의 집에 갈 때 우연히 만난 처녀 뱃사공을 떠올렸다. 세상 물정에 어두워 자신의 정체에 관심을 두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그렇게 김구와 주아이바오의 선상(船上) 생활이 시작됐다. 백범이 57세, 주아이바오가 20세였다.처음에는 김구에게서 매달 일정 금액을 받고 일하는 계약 관계였던 것 같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신뢰가 쌓여 운명공동체로 바뀌었다. 주아이바오는 9년 전 아내 최준례(1889~1924)를 잃고 혼자 살던 김구를 애틋한 마음으로 보살폈다. 밤낮없이 이뤄지는 경찰 불심검문에서 그를 지켰다. 1937년 중일전쟁 때는 일제의 폭격이 극심하던 난징까지 따라가 그와 생사를 함께 했다. 이들은 정식으로 혼인하지 않았을 뿐 부부로 살았다. 둘 사이에 자녀가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사실 여부는 확인되지 않는다. 시간이 갈수록 일본의 공세가 거세지던 1937년 11월. 김구는 주아이바오의 안전을 염려해 집으로 보냈다. 그것이 그와의 마지막이었다. ‘백범일지’에도 당시 안타까운 감정이 기록돼 있다. “난징에서 떠날 때 주아이바오를 고향인 자싱으로 돌려보냈다. 지금도 이따금 후회되는 것은 그와 헤어질 때 여비를 100원밖에 주지 못한 것이다. 뒷날을 기약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해 돈을 넉넉하게 주지 못한 것이 지금도 미안할 따름이다.” 김구는 왜 그와 재혼하지 않았을까. 가족들의 반대가 극심했다고 전해진다. 서른일곱 살이라는 나이 차가 큰 걸림돌이었다. 서울신문 중국 취재에 동행한 김주용(53) 원광대 교수는 “주아이바오는 김구의 장남 김인(1917~1945)과 네 살밖에 차이가 안 났다. 차남 김신(1922~2016)은 한국 독립운동의 상징이 된 아버지가 이런 일로 구설에 올라 대사(大事)를 그르치지 않을까 걱정이 컸다”고 설명했다. 그런 부담 때문이었을까. 김구는 해방 뒤 주아이바오를 찾아가지 않았다. 그를 한국에 데려갈 때 생길 정치적 파장을 고려한 결정이 아니었나 싶다. 김구의 경쟁자인 이승만(1875~1965)이 스물다섯 살 연하였던 벽안(碧眼)의 이혼녀 프란체스카 도너(1900~1992)와 함께 귀국한 것과 대비되는 대목이다.●중국 작가에 의해 소설 ‘선월’로 재탄생 중국 작가 샤녠성(71)은 김구와 주아이바오의 이야기를 소설 ‘선월’로 재탄생시켰다. 여기서 주아이바오는 1949년 김구가 살해됐다는 소식에 충격을 받아 자살한 것으로 나온다. 하지만 샤녠성은 몇 년 전 중국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그가 1970년대까지 생존했다는 것을 최근에 들었다. (김구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결혼하지 않고 평생 혼자 살았다고 한다”고 밝혔다. 이원규 작가는 “주아이바오는 백범과 함께 살며 어렴풋하게나마 그의 목에 거액이 걸려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것”이라고 전했다. 당시 현상금을 받고자 김구를 노리던 한국인이 많았지만 이 가난하고 순박한 중국 여성은 그와의 인연을 소중히 여겨 끝까지 의리를 지켰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임정의 법통을 계승했다고 믿는다면 이 나라가 주아이바오에게도 큰 빚을 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한다. 상하이·항저우·자싱·난징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실종 카디프 살라 마지막 메시지 “추락하는 비행기에, 진짜 무섭다”

    실종 카디프 살라 마지막 메시지 “추락하는 비행기에, 진짜 무섭다”

    “진짜 무섭다.” 잉글랜드 프로축구 카디프 시티로 이적해 팀에 합류하기 위해 영국 도버 해협을 건너던 경비행기가 실종돼 축구 팬들의 안타까움을 사고 있는 에밀리아노 살라(28)가 변을 당하면서 가족들에게 이런 말을 남겼던 것으로 알려졌다. 아르헨티나의 한 매체는 왓츠 앱(애플리케이션)의 목소리 메시지를 통해 “추락하려 하는 비행기 안에 있다. 진짜 무섭다”는 내용의 메시지를 전했다고 보도해 더욱 안타까움을 샀다. 살라가 지난 21일(이하 현지시간) 저녁 프랑스 낭트 공항을 이륙했던 경비행기가 사라진 채널 제도의 알더니 섬 근처 해역에 대한 수색 작업이 23일 재개됐다. 전날 5대의 비행기와 2명의 구조선이 1000평방마일의 해역을 샅샅이 뒤졌으나 성과가 없었지만 이날은 2대의 비행기가 더 투입돼 파이퍼 말리부 호의 흔적을 찾게 된다. 채널 제도 항공수색의 존 피처랄드 최고경영자(CEO)는 “슬프게도 개인적으로 희망이 전혀 없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몸짱인 사람이라도 물 속에 이보다 더 적게 있었더라도 지금껏 생존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건시 경찰은 트위터에 네 가지 가능성을 놓고 수색을 하고 있다며 비행기가 해수면과 접촉하며 산산조각 나면서 탑승자들을 퉁겨냈을 가능성과 물에 착륙해 동체를 보드 삼아 표류하고 있을 가능성이다. 그런데 그는 표류하고 있을 가능성에 우선치를 두고 있다고 했다. 아르헨티나의 부친 호라시오도 현지 매체 인터뷰를 통해 “시간이 다 흘러갔다. 우리도 이제 최악의 경우를 각오하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낭트는 지난 19일 1500만 파운드(약 219억원)의 구단 역대 최고 이적료를 받고 살라를 이적시키기로 합의했다. 그는 22일 카디프의 새 팀 동료들과 훈련을 함께 할 예정으로 전날 낭트를 출발하며 정든 동료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한 사진을 소셜미디어에 올리고 마지막 안녕이라고 인사를 했는데 정말 마지막이 됐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모든 구단과 낭트 등 프랑스 리그앙 구단들은 모두 그의 무사를 기원하고 있지만 희망은 갈수록 희박해지고 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에밀리아노 살라 실종 “도버해협서 사라진 경비행기” 생존 가능성은?

    에밀리아노 살라 실종 “도버해협서 사라진 경비행기” 생존 가능성은?

    프리미어리그 카디프시티 이적이 확정된 축구선수 에밀리아노 살라(28·아르헨티나)가 실종된 가운데 생존 가능성이 희박한 것으로 전해졌다. 영국 BBC는 23일 “에밀리아노 살라를 포함해 2명이 탑승한 경비행기가 22일 오전 5시 30분경 영국과 프랑스 사이 도버해협의 올더니섬 인근에서 사라졌다. 해안경비대가 주변을 수색 중”이라고 보도했다. 에밀리아노 살라가 탑승한 경비행기가 연락 두절된 지점은 영국 직할령 건지 섬에 속하는 올더니 섬 카스케츠 등대 근처 8마일 지점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영국과 프랑스 당국은 해안 경비대와 헬리콥터, 구명보트 등을 투입해 수색에 나섰고, 건지 섬 경찰 측은 몇 개의 비행기 파편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이에 에밀리아노 살라의 비행기가 추락했을 것으로 보고 있으며 탑승자의 생존 가능성은 극히 희박한 것으로 경찰 측은 분석하고 있다. 한편 아르헨티나 출신의 에밀리아노 살라는 FC 낭트에서 세 시즌 연속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한 공격수다. 이번 겨울 이적시장을 통해 카디프 이적이 확정됐고 구단 최고 이적료를 기록하며 영국으로 향하던 중이었다. 뉴스팀 seoulen@seoul.co.kr
  • ‘경비행기 실종’ 에밀리아노 살라는 누구

    ‘경비행기 실종’ 에밀리아노 살라는 누구

    영국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EPL) 카디프시티와 이적 계약을 맺은 지 3일 만에 경비행기 사고로 실종된 에밀리아노 살라(29)의 생존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 등 외신 보도에 다르면 프랑스 프로축구 리그앙 FC낭트의 스트라이커인 살라는 영국 웨일스에서 카디프 이적 협상을 마무리한 뒤 원 소속팀 식구들과 작별인사를 하기 위해 지난 21일(현지시간) 낭트로 돌아왔다. 낭트 주장인 살라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동료들과 기념사진을 올리고 “낭뜨, 마지막 안녕(La ultima ciao @FCNantes)”이란 글귀를 남겼다. 이후 다시 카디프로 가기 위해 경비행기에 몸을 실은 살라는 그날 밤 9시에 도착하기로 돼 있었지만 영국과 프랑스 사이 채널제도 근처에서 실종되고 말았다.살라가 탄 경비행기는 ‘파이퍼 PA-46’으로 2인승이다. 영국해협 저지섬 항공관제센터로부터 비행기와 교신이 끊겼다는 신고를 접수한 당국이 15시간 동안 수색했지만 비행기와 생존자를 찾지 못했다. 영국 경찰은 “비행기가 바다로 떨어졌다면 불행히도 지금 단계에선 (실종자) 생존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트위터에 밝혔다. 살라는 아르헨티나 산타페에서 태어났지만 스스로 10대 시절을 보낸 프랑스를 고향이라고 불러왔다. 지난 2015년 지롱댕 드 보르도에서 FC낭트로 이적한 살라는 올 시즌 12골을 넣으며 리그앙 득점 5위를 기록했다.리그앙에서 3년 반동안 모두 42골을 넣은 살라를 눈여겨본 카디프시티는 역대 최대 이적료인 1500만 파운드(약 220억원)에 살라를 영입했다. 유럽 무대에서 뛰고 싶었던 살라는 3배가 넘는 연봉을 제안한 중국 리그의 러브콜도 거절한 것으로 전해졌다. 살라는 성실하고 겸손한 성격으로 팀 동료와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낭트 구단주인 발더미르 키타는 “살라는 모두에게 사랑받는 예의 바르고 친절하고 사랑스러운 사람”이라며 안타까워 했다. 켄 추 카디프시티 최고경영자(CEO)도 “좋은 소식을 위해 계속 기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팬들은 살라의 인스타그램에 RIP(Rest in Peace) 등 애도의 댓글을 남기고 있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사설] 택시·카풀 상생 방안, 사회적 대타협 기구서 꼭 찾아야

    카풀(승차 공유) 서비스를 둘러싼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사회적 대타협 기구가 어제 출범했다. 더불어민주당, 국토교통부, 택시 노조 4개 단체, 카풀 업체 등 이해당사자들이 전부 참여했다. 첨예한 대립 양상을 보이던 택시업계와 카카오모빌리티가 대화를 위해 한자리에 앉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지난달 7일 카카오가 카풀 시범 서비스를 시작하자 택시업계는 극렬히 반발했다. 한 달 새 2명의 택시기사가 극단적 선택을 했고, 수차례 파업 시위도 벌였다. 일촉즉발로 치닫던 갈등 상황은 카카오가 지난 18일 시범 서비스 중단을 선언하고, 뒤이어 택시업계가 대화 참여 의사를 밝히면서 숨통이 트이게 됐다. 어렵사리 출범한 대타협 기구인 만큼 양측은 충분한 대화를 통해 갈등을 해소하고, 당·정은 실질적인 지원책을 제시해 반드시 상생 방안을 도출하길 기대한다. 협상의 관건은 택시운송업 종사자의 생존권 보호, 공유경제 활성화, 소비자의 편익이라는 세 가지 영역에서 최적의 균형점을 찾는 것이다.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당정이 우선적으로 법인 택시 사납금 폐지와 기사 월급제 도입, 개인택시 감차 보상금 지원 등 택시업계 체질 개선과 기사 처우 개선 방안을 내놓은 것은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본다. 다만 이날 출범식에서 택시노조 관계자가 “카풀 문제를 반드시 먼저 해결해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재차 강조한 점은 유감이다. 택시업계가 ‘카풀 원천 봉쇄’라는 원래의 뜻을 고수한다면 대타협 기구에서의 논의는 하나마나다. 정보기술 발달에 따른 공유경제 확산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다. 미국소비자기술협회가 최근 발표한 국제혁신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차량 공유 분야에서 F등급을 받았다. 정부가 뒤늦게 혁신성장에 주목해 관련 법·제도 개선에 나섰지만 좀더 속도를 낼 필요가 있다. 소비자의 편익도 더는 외면해선 안될 일이다. 11인승 렌터카 승차 공유 서비스인 ‘타다’가 왜 돌풍을 일으키는지 택시업계와 당·정은 면밀히 살펴 지혜로운 대안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 [글로벌 In&Out] 중국 배달음식의 3대 문제점/저우위보 인민망 한국지사 대표

    [글로벌 In&Out] 중국 배달음식의 3대 문제점/저우위보 인민망 한국지사 대표

    얼마 전 중국의 모 동영상 사이트에서 배달음식 제작 과정의 내막을 폭로해 큰 관심을 모았다. 제작 과정을 보면 절로 진저리가 쳐지는 음식이지만 일일 판매량은 40만개에 달한다는 사실에 온 사회가 뒤집혔다. ‘저가 배달음식 제작 과정’이란 해시태그가 중국판 트위터 웨이보에서 순식간에 검색어 1위를 차지하며 50만명의 페이지뷰를 기록했다. 영상에서 배달음식 가공업체에 고기를 공급한 한 상인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공급한 고기는 시중가보다 훨씬 싼 걸로 한꺼번에 10여t을 구매한 거예요. 갈비는 쌓아 놔둔 지가 1년이 넘었어요. 소고기에 콩 단백을 주입해서 20% 정도 무게를 부풀린 거니 먹을 수 없죠. 냉동육은 한꺼번에 물로 해동한 후 바로 꺼내 요리 제작에 투입합니다.” 충격적인 영상 속에 해당 업체 관계자는 이런 고기를 사용해 제작한 볶음요리 반제품은 하루에 40만개 정도 생산되며 그 중 절반은 배달음식 업체에 공급된다고 덧붙였다. 특히 상하이 등 대도시가 밀집된 화둥(華東)지역만 해도 한 달 판매량이 300만개에 달한다고 하니 문제의 심각성이 어느 정도인지 충분히 짐작된다. 이런 불량 배달음식 반제품 공급 업체를 보면 식품 안전은커녕 발로 식자재를 처리하는 등 최소한의 양심도 찾아볼 수 없다. 중국에서 배달음식을 주로 이용하는 젊은층은 가슴을 두드리며 통곡할 일이다. 배달음식업의 3대 문제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식품안전 문제다. 생산 과정에서 엄격한 위생기준 등 관리기준이 없어 식품 원료의 출처를 역추적할 수 없고 불량 및 유해 식자재가 넘쳐난다. 둘째, 영양 문제다. 저가, 저품질, 인공합성한 식자재는 영양분이 떨어져 도시의 생존 전선에서 고군분투하는 젊은 사람의 건강을 좀먹는다. 셋째, 환경오염 문제다. 플라스틱, 비닐, 스티로폼, 나무젓가락 등 일회용 화학용기와 식기는 대량의 백색오염을 만든다. 또한 집에서 배달음식을 플라스틱 용기째 가열하면 유해 물질이 나와 인간의 내분비 시스템을 교란할 수도 있다. 대다수 배달음식은 기름기가 많고 짜고 맛이 강하다. 또한 식자재의 신뢰성이 떨어진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젊은 사람들은 왜 배달음식을 끊을 수 없는가. 중국에는 ‘백성들은 먹는 것을 하늘로 여긴다’라는 속담이 있다. 밥 먹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수요다. 배달음식이 21세기의 가장 위대한 발명이라 불리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배달음식은 아무리 문제점이 많더라도 적잖은 젊은이들의 삼시세끼를 해결해 주는 역할을 하므로 존재하는 것이다. 중국에서 온라인으로 배달음식을 주문하는 사람이 전체 네티즌의 40%를 차지할 정도로 배달음식 고객군이 상당히 방대하다. 특히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 등 대도시에서 직장에 다니는 화이트칼라들은 천정부지로 치솟은 부동산 가격 때문에 보통 도시의 외곽에서 살 집을 구한다. 출퇴근하는데 한두 시간이 걸리는 것은 극히 정상적이다. 맞벌이 부부는 잦은 추가 근무를 한 후 집으로 돌아오면 오후 8~9시가 넘곤 한다. 밥을 스스로 해먹으면 최소한 또 40분에서 1시간이 걸린다. 녹초가 된 몸으로 밥하기가 싫어 배달음식을 자주 이용할 수밖에 없다. 온라인 경제가 활성화됨에 따라 소위 말하는 ‘게으른 사람’들이 중국에서 속출하고 있다. 필요하면 뭐든지 배달해 주는 세상이니 밥하기와 같은 번거롭고 힘든 일은 더더욱 기피한다. 통계에 따르면 2017년 배달음식업 시장 규모가 2000억 위안(한화 33조원)을 돌파했고 2018년 2430억 위안, 2019년에는 3000억 위안으로 추정된다. 이 업종도 다른 요식업과 마찬가지로 양에서 질로 승부하는 단계로 도약할 필요가 있다. 건강, 안전, 경제성, 영양가, 맛이라는 5대 관문을 통과하지 못하고서는 이 시장에서 살아남기 힘든 세상이 곧 올 것이다.
  • 카디프 에밀리아노 살라 경비행기 실종, 이틀째 수색도 별무성과

    카디프 에밀리아노 살라 경비행기 실종, 이틀째 수색도 별무성과

    지난 19일(이하 현지시간) 잉글랜드 프로축구 카디프 시티와 이적 계약을 맺어 프랑스를 떠나 카디프로 향하던 에밀리아노 살라(28·아르헨티나)가 탑승한 경비행기가 이틀째 수색에도 발견되지 않았다. 프랑스 리그1 낭트에서 뛰던 그는 21일 저녁 7시 15분 낭트를 출발한 경비행기 파이퍼 말리부에 몸을 실었는데 1524m 상공에서 관제탑과 마지막으로 교신하면서 하강한다고 했는데 700m 지점에서 레이더 상에서 사라졌다. 채널 제도의 알더니 섬 북서쪽으로 8km 떨어진 곳이었다. 22일 아침 8시부터 수색이 재개됐지만 아무 성과 없이 일몰로 중단됐다고 영국 BBC가 전했다. 현지 경찰 관계자는 사라진 경비행기의 항로를 추적할 어떤 실마리도 찾지 못했다고 밝혔다. 5대의 비행기와 2대의 구조선이 동원된 수색 작업의 초기 붉은 불꽃을 봤다는 보고가 있었지만 의미있는 물체를 확인하지 못했다고 구조대 대변인이 밝혔다. 이날 수색이 중단된 뒤에는 뭍이나 섬에 불시착하지 않고 물 위에 있다면 생존이 힘들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낭트는 1500만 파운드(약 219억원)의 구단 역대 최고 이적료를 받고 살라를 이적시키기로 했다. 그는 22일 카디프 훈련에 합류, 새 팀 동료들과 처음 인사를 나눌 계획이었다. 그는 이번 시즌 리그와 컵대회에서 13골을 넣어 킬리안 음바페(파리생제르망 PSG), 니콜라스 페페(릴)에 이어 득점 3위를 달리고 있었다.이적이 발표됐을 때 그는 “내게 큰 기쁨을 줬다. 훈련을 시작하고 새 친구들을 만나 빨리 함께 하고 싶다”고 밝혔다. 그가 트위터 계정에 마지막 남긴 것은 자신과 낭트 동료들이 함께 촬영한 사진을 올리며 “마지막 인사”라고 설명을 단 것이었다. 정말 마지막이 아니길 기원한다. 낭트 팬들은 플라체 로얄레에 모여 그의 무사를 기원하며 분수에 튤립을 놓는 헌화 의식을 진행했다. 잉글랜드 레전드 개리 리네커 등이 제발 아무 일 없기를 기원한다고 소셜미디어에 적었다.낭트는 23일 엔텐트, 26일 생테티엔과의 경기를 일단 연기했다. 물론 이날 훈련도 취소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일단 뜨겁게 청소하라’ 오늘(22일) 결방..한국vs바레인 경기 중계

    ‘일단 뜨겁게 청소하라’ 오늘(22일) 결방..한국vs바레인 경기 중계

    ‘일단 뜨겁게 청소하라’가 오늘(22일) 결방한다. 22일 JTBC는 오후 9시 40분부터 2019 AFC(아시안 축구 연맹) 아시안컵 한국과 바레인의 경기를 생중계한다. 이에 따라 이날 9시 30분 방송 예정이던 JTBC 드라마 ‘일단 뜨겁게 청소하라’는 결방된다. 한편, JTBC ‘일단 뜨겁게 청소하라’는 청결보다 생존이 먼저인 열정 만렙 취준생(김유정 분)과 청결이 목숨보다 중요한 꽃미남 청소업체 CEO(윤균상 분)가 만나 펼치는 완전무결 로맨스. 매주 월, 화 오후 9시 30분 방송.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장수철의 생물학을 위하여] 진핵세포의 위대한(?) 탄생

    [장수철의 생물학을 위하여] 진핵세포의 위대한(?) 탄생

    우리 주변 친숙한 동식물을 포함해 수많은 생물종들은 다양한 세포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들 세포는 모두 진핵세포이다. 다세포 생물들이 가지고 있는 세포는 모두 진핵세포란 말이다. 아메바, 짚신벌레, 유글레나 같은 단세포 생물들도 진핵세포이다. 생물을 구성하고 있는 세포들은 하나하나가 모두 중요하다. 이들 세포를 생명 현상에 필요한 역할에 따라 나눌 경우 사람은 210여 가지 세포로 구성되어 있다.진핵세포는 핵이 ‘있는’ 세포를 의미한다. 이와는 다르게 원핵세포는 ‘핵이 생기기 전’이라는 의미를 가지는데 세균과 고세균 세포를 구성한다. 진핵세포는 핵이 있고 원핵세포보다 크며 여러 세포 소기관을 갖고 있어 복잡한 구조를 나타낸다. 그리고 원핵세포는 진핵세포보다 먼저 지구상에 출현하여 퍼져 나갔다. 진핵세포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논란의 여지가 없이 비교적 잘 정리되어 있다. 진핵세포의 유전자들은 대략 4분의3은 세균에서 유래했고, 4분의1은 고세균, 즉 원핵세포들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진핵생물은 세균과 고세균이 융합한 결과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현재에도 무수히 다양한 종류의 세균과 고세균이 건재해 생태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여전히 큰 것을 볼 때 진핵세포의 탄생이 자연스럽고 필연적이었다고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사실 진핵세포는 고세균과 세포의 에너지 공장이라 불리는 ‘미토콘드리아’의 조상 세균이 공생한 결과 탄생했다. 이런 공생은 쉽게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만약 일어난다면 생존에 매우 유리했을 것이다. 공생에 성공한 조상 진핵세포는 에너지 면에서 주변 원핵세포를 압도한다. 이 세포는 미토콘드리아 조상 세균들을 품을 만큼 크고 에너지를 더 많이 사용할 수 있어서 다른 세포들을 먹어 치우는 데에 유리했다. 에너지가 풍부해 세균보다 훨씬 더 많은 유전자들을 만들어 사용할 수 있었다. 이렇게 얻은 많은 유전자로 인해 다양해진 기능으로 여러 종류의 세포를 탄생시킬 수 있었고 그 결과 우리 주변의 다양한 곤충, 아름다운 꽃, 귀여운 고양이 등 다양한 생물들이 출현하게 된다. 활용 가능한 에너지가 많아짐으로 인해 다양한 유전자를 보호하고 이들의 기능을 조절할 수 있는 기구인 핵이 만들어졌고 에너지가 풍부하여 핵에서 여러 유전자들이 다양한 기능을 발휘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 일례로 원핵세포는 생명 현상을 담당하는 단백질을 수천 가지 만들 수 있음에 비해 인간은 10만 가지에 육박하는 단백질을 만들 수 있다. 많은 생물학자들은 지구에서의 생명 탄생이 그리 희귀한 과정이 아니기 때문에 우주에서 생명이 탄생할 가능성도 클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이때 생겨나는 생명은 원핵세포 형태일 것이며 진핵세포의 탄생은 쉽지 않을 것이라 추측한다. 여러 과학적 증거가 진핵세포는 단 한 번의 우연하지만 성공적인 공생의 결과로 생겨났음을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많은 종류의 귀중한 세포들이 있는데, 그 근본은 진핵세포에 있다. 고세균과 미토콘드리아의 조상 세균이 손을 맞잡고서 진핵세포라는 보물을 탄생시켰다. 손을 맞잡으면 기적이 일어날 수 있다. 많은 다툼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게 인간사라지만 우리도 손을 맞잡아 보는 건 어떨까.
  • “김정은, 영변핵 넘어 ‘+α’ 내놓을 것… 美, 상응조치 가능성 높아”

    “김정은, 영변핵 넘어 ‘+α’ 내놓을 것… 美, 상응조치 가능성 높아”

    2차 북·미 정상회담의 2월 말 개최가 정해진 가운데,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남·북·미가 모여 비핵화 관련 실무 협상을 진행 중이다. 지난해 말의 교착 상태를 감안할 때 극적 반전이다. 일부는 북·미가 이번에는 실질적 성과를 도출할 수 있겠느냐고 불안감도 내비친다. 이종석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전 통일부 장관)을 21일 경기 성남 세종연구소 집무실에서 만나 북·미 비핵화 협상과 남북 관계 전반에 대해 물었다. 그는 영변핵시설 영구 폐기 외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플러스 알파’에 해당하는 비핵화 조치를 내놓을 것으로 전망했다. 또 대북제재 완화 등 미국의 상응조치와 어떤 수준, 어떤 형식으로든 맞교환이 된다면 2차 회담을 성공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설명하고, 그 가능성을 높게 봤다.→지난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대한 평가는. -우리 기대치가 굉장히 높아져 있어서 지난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진전에 대한 평가가 온전하게 내려지지 않는 거 같다. 3가지의 큰 진전이 있었다. 2017년 말과 같은 전쟁 위협이 사라졌다. 북한의 핵·미사일 시험 발사가 중단됐다. 능동적인 중단 선언이었고, 풍계리 핵시험장 폐기 등 남북 및 북·미 간 어떤 협상에도 없었던 비핵화 조치가 현실화됐다. 그리고 한·미 연합훈련이 잠정 중단됐다. 마지막으로 전쟁 종식선언에 버금가는, 김 위원장도 사실상 불가침 선언이라고 표현할 정도의 남북 간 군사긴장 완화가 있었다. 이 중 하나를 실현하는 데도 10년 이상 걸릴 수 있다. 분단 73년 만에 최대폭의 평화 증진이 있었다. 워낙 기대치가 높고 가야 할 길이 멀고 과제가 많지만, 우리가 걸어온 평화의 길 중에 가장 풍성하고 알찬 길을 걸었다는 건 인정해야 한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의 성패는 어디에 달렸나. -북한이 현재까지 제안했던 비핵화 조치로 북·미 정상회담이 성사되진 않은 것 같다. 북한의 ‘플러스 알파’가 있다고 본다. 사실 지난해 9월 평양정상회담에서 미국의 상응조치에 따른 영변핵시설의 영구 폐기가 명시됐지만, 이후 미국은 상응조치를 내놓지 않았다. 진전을 만드는 데 역부족이었다는 의미다. 따라서 북한의 플러스 알파는 미국의 안전과 밀접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연관됐을 수 있고, 핵동결이나 이에 따른 사찰일 수도 있다. 반면 북한이 미국에서 받기를 원하는 건 경제 제재 완화와 관련돼 있다. 이 두 가지가 어떤 형식으로든, 또는 어떤 수준으로든 맞교환된다면 성공으로 볼수 있다. →맞교환 가능성은 어느 정도로 보는지. -이달 초 북·중 정상회담을 보도한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양측은 비핵화 과정 및 협상과 관련한 공동 연구·조정 문제를 심도 있게 논의했다. 즉 북·미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비핵화 카드는 북·중 공동의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중국은 무역갈등 등으로 미국과의 간극을 키울 생각이 별로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북·중이 북·미 정상회담에 앞서 비핵화 문제를 협의한 것은 그만큼 북·미 간에 조건을 맞교환할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미국이 그간 비핵화 협상이 지지부진할 때 중국이 부정적 영향을 북한에 끼쳤다는 의혹을 제기해 왔던 점을 감안하면, 중국으로선 이번이 그간의 의혹을 해소할 수 있는 기회다.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남·북·미가 참여한 가운데 실무협상이 진행 중이다.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와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의 라인이 중요한 시점이라고 본다. 1차 북·미 회담 때 미국은 구체적 합의안을 마련한 뒤 개최하는 것을 원했고, 북은 우선 만나서 하자는 식이었다. 결국 북한의 의도가 관철됐는데 미국이 2차 회담에서는 다를 것으로 보인다. 또 과거를 돌아볼 때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과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통일전선부장) 라인이 효과적인지는 양쪽이 다 의문을 품을 것 같다. 반면 비건 대표는 지난해 연말부터 한국에서 (대북 인도지원을 위한 미국인 여행 허가 검토, 남북 철도 공동조사 협의 등) 긍정적인 모습을 보였고, 한국 정부도 비건 대표에 힘을 실어 주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과 김 부위원장의 만남에 비건 대표가 배석했는데, 김 부위원장이 전한 김 위원장의 전언과 트럼프 대통령의 의중을 모두 들은 뒤 스웨덴으로 향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결국 북·미 모두 비건·최선희 라인에서 실무조율이 이뤄지기를 바라는 것 같다.→북한이 핵보유국으로 가는 수순을 밟고 있다는 의혹도 일각에서 나온다. -북한의 주장은 무조건 비핵화가 아닌 조건부 비핵화이기 때문에 미국의 자세가 북한의 비핵화에 영향을 줄 수 있다. 하지만 북한이 핵보유를 인정받기 가장 어려운 길로 가는 건 명백하다. 비핵화 협상을 안 하고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시험을 멈추기만 해도 미국이나 국제사회는 추가 대북제재를 하기 힘들다. 즉 도발만 안 하면 현 정세를 유지해 나갈 수 있다. 또 이번에는 북한이 비핵화만 하는 게 아니다. 경제집중노선을 채택했고 전체 사회가 군 중심에서 당정이 이끄는 식으로 동조화되고 있다. 북한의 교과서라 불리는 올해 신년사에서 김 위원장은 군수공업 분야에 대해 ‘경제건설에 모든 힘을 집중할데 대한 우리 당의 전투적 호소를 심장으로 받아안고 여러가지 농기계와 건설기계, 협동품과 인민소비품 생산해 경제발전과 인민생활향상을 추동했다’고 평가했다. 무기 만드느라 애썼다는 게 아니라 농기계 생산하느라 힘썼다는 거다.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 수순은. -김 위원장은 2차 북·미 정상회담 뒤에 오는 게 좋다. 북·미 간 성과로 제재 완화에 대한 분위기가 있을 때 그 흐름으로 남북 공동번영에 대한 얘기를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판단이다. 다만 남북 정상이 북·미 정상회담 전에 원포인트로 판문점에서 만나는 것은 긍정적이다. →김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다자 구도를 언급하며 4자·6자 구도에 대한 관심이 다시 커졌다. -김 위원장의 언급은 정전협정 당사자로서 남·북·미·중이 평화협정 당사자라는 것을 언급한 것이고, 사실상 합의된 사안이기도 하다. 다만 6자회담까지 이어지느냐는 부분이 해석의 여지가 있는데, 필연적으로 갈 것으로 본다. 비핵화에 대한 일정한 타결이 있으면 제재완화가 거론되고 이는 경제적 보상 문제로 연결된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원자력 발전도 못하게 된다면 보상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때는 6자 회담이 불가피하다. 6자 회담은 한국에도 중요하다. 비핵화 이후 새롭게 전개될 한반도 중심의 동북아 안보질서를 구축하는 것과 관계가 깊어서다. 한·미 동맹도 유지돼야겠지만 공동안보를 지향하는 다자안보협력으로 가자는 것을 합의한 유일한 문서가 6자 회담 9·19 성명이다. →중재자로서 한국의 입지가 좁아졌다는 시각도 있다. -중재자 역할은 한국이 자임한 것보다 북·미가 부여했다. 9월 평양 정상회담의 결과가 다음의 진전으로 이어지지 못해 중재자로서 일정 한계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는 미국 사회가 가진 북한에 대한 큰 불신이 원인이었다. 또 북·미가 직접 풀어야 하는 문제들도 있다. 하지만 한국의 역할은 여전히 중요하다. 예를 들어 한국 정부는 지난해 말 비건 대표에 대해 대북 관계에서 미국을 대표하는 실질적 통로라는 걸 북한에 보여 주었다. 비핵화와 관련한 아이디어도 비건 대표 측에 전달했을 것이다. →김 위원장은 비핵화에 상응하는 경제성과를 조속히 보여야 하고, 트럼프 대통령은 내부 입지가 불안한 듯하다. 시간은 누구 편인가. -지금은 미국 편이다. 1차 북·미 정상회담 때는 시간은 북한 편이었다. 민주국가는 단기적 성과를 중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북한의 도발이 멈추면서 일단 트럼프 대통령이 선방을 했다. 이는 북한이 관리된다는 뜻이고 미국의 우선순위에서 북핵이 밀려났다는 우려도 나온다. 김 위원장은 경제발전 즉 생존이 진짜 목적이기 때문에 시간적 여유가 매우 적다. 특히 미국이 한·미 연합훈련만 재개해도 북한은 경제개발에 자원을 집중하기 힘들어진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아모르파티’ 치타 “17세 때 인공뇌사, 2차 수술 포기한 母 선택”

    ‘아모르파티’ 치타 “17세 때 인공뇌사, 2차 수술 포기한 母 선택”

    가수 치타가 고등학생 시절 교통사고를 당했을 당시 부모가 인공뇌사를 선택한 사연을 공개했다. 20일 방송된 tvN ‘아모르파티’ 2기 싱글 황혼들의 이탈리아 시칠리아 여행에서 치타의 사고 이야기가 나왔다. 치타 어머니는 ‘딸이 어떻게 가수가 됐냐’는 질문에 “우리 애는 태어났을 때부터 꿈이 가수였다”며 “그런데 버스에 치이는 사고가 나서 붕 떠서 머리로 떨어졌다. 일산에서 사람이 다친 가장 큰 사고였다. 신문에도 나왔다. 심장만 살리고 다 죽였다”고 밝혔다. 치타는 스튜디오에서 “그 사고로 제가 뇌를 다쳤는데 겉에 피가 고여서 심각한 상황이었다”며 “그걸 걷어내는 1차 수술 후 부모님이 병원에 도착했을 때 의사 선생님이 2차 수술을 진행하는 것과 인공 뇌사를 시키는 것 두 가지 중 하나를 빠르게 결정해야 한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2차 수술은 생존 확률은 높지만 장애 가능성이 컸다. 인공뇌사는 생존 확률이 떨어지지만 장애 확률도 낮았다. 당시 치타의 부모는 딸이 장애를 가지면 깨어나서 절망할 것 같다며 인공뇌사를 선택했다. 치타는 “부모님이 ‘만약 은영(본명)이가 잘못되면 우리도 따라가자’고 했다더라”며 “그 믿음과 사랑은 정말 예측도 가늠도 할 수 없다”고 존경과 감사를 드러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공권력의 피해자들] “전향 안 한다고 찍힌거죠… 고문한 수사관도 배상책임 지게 해야”

    [공권력의 피해자들] “전향 안 한다고 찍힌거죠… 고문한 수사관도 배상책임 지게 해야”

    남들 다하는 전향서와 준법서약서를 거부하고, 남들 다하는 보안관찰 신고를 하지 않은 강용주(56)씨는 어떤 사람일까. ‘심지가 굳다’, ‘고집이 세다’, ‘악바리다’ 이런 말이 떠올랐다. 강씨는 스스로를 “몸이 편한 것보다는 마음이 편한 대로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강씨는 1985년 ‘구미유학생간첩단’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뒤 최연소 비전향 장기수로 14년을 복역했다. 강씨는 감옥에 있을 때, 특별사면으로 출소할 때, 출소하고 나서도 남들과 다르게 살아 왔다. 보안관찰법 위반으로 두 번째로 기소된 사건에서 지난해 2월 무죄를 선고받았다.지난 9일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에 자리한 병원에서 그를 만났다. 강씨는 “나는 늘 싸움을 피해 다녔다”며 “보안관찰법 위반 소송도, 그전에 국가보안법 위반 재판도 내가 건 적은 한번도 없었고 그들이 나를 재판이라는 링 위에 올리길래 싸웠을 뿐”이라고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가정의학과 전문의 강씨는 2012년 8월부터 2016년 12월까지 광주트라우마센터의 초대 센터장을 맡아 5·18 피해자와 유족의 트라우마를 치유했다. →법무부가 지난달 보안관찰처분 면제 결정을 내렸는데 기분이 어땠나요. -보안관찰이랑 싸우기 시작할 때만 해도 감옥에서 산 14년보다 더 길게 싸워야 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어요. 출소하고 19년을 보안관찰과 싸웠네요. 국가가 야만적이고 폭력적이라는 것, 우리 사회가 아직도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 준다고 생각합니다. 국가보안법으로 징역 3년 이상 받거나 형법상 내란죄나 반란죄로 징역 3년 이상 받으면 보안관찰 대상이에요. 그런데 12·12군사반란을 일으킨 전두환이나 노태우는 왜 아닌가요. 전두환은 회고록에서 자신의 행위를 합법화해서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기소까지 됐잖아요. 이런 말을 하고 다니는 거야 말로 명백하게 재범의 우려가 있는 거 아닌가요. 저처럼 착실하게 생활하는 사람을 잡아넣을 게 아니라 전두환을 보안관찰 대상에 집어넣어야죠. 저는 구미유학생간첩단 사건에서 ‘넘버4’로 기소됐어요. ‘넘버1’부터 ‘넘버3’까지는 모두 면제하면서 나만 보안관찰 대상인 이유는 딱 하나죠. 재범 우려는 핑계고 그냥 국가에 고분고분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감옥에서부터 전향서와 준법서약서를 거부했으니까요. 한마디로 찍힌 거죠.→남들처럼 전향서나 준법서약서에 사인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전향하면 몸은 편하겠지만 제 마음은 불편하죠. 그냥 내가 편하게 마음 가는 대로 살고 싶어서 전향하지 않았어요. 사건 이름이 ‘구미유학생간첩단´이고, ‘구미’(歐美)는 유럽이랑 미국이잖아요. 그런데 저는 미국, 유럽은 물론 북한도 안 가 본 사람이에요. 사건이 벌어진 1985년에는 광주에서만 살던 사람이었어요. 전향할 내용이 없어요. 조작한 것에 내가 굴복할 수 없죠. 안기부에서 한 달 넘게 고문받고 ‘구미유학생간첩단´ 사건으로 방송사에서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는데 거기 출연해서 안기부가 시킨 대로 주절거렸어요. 그런 자신을 용서할 수가 없어요. 만약 전향을 하지 않고 다른 방법이 있다면 그렇게 했을 거예요. 강기정 정무수석이 저와 전남대 82학번 동기예요. 강 의원이 2016년 필리버스터 연설 때 ‘지금처럼 자유롭게 토론할 기회가 있었으면 폭력의원이라고 낙인 찍히지 않았을 텐데’라고 말하며 울었잖아요. 저도 전두환이 저를 고문한 뒤 조작해서 사형을 구형하지 않았다면 전향을 거부하는 일도 없었을 거예요. →간첩단 사건 대부분이 재심을 청구해서 무죄를 받았는데 왜 재심 청구를 하지 않았나요. -재심을 한다면 다시 과거로 돌아가야 해요. 남산 안기부에서 고문당하던 순간으로요. 트라우마적 상황으로 돌아가는 거죠. 과거의 기억을 다 일깨워야 돼요. 어떻게 잡혔다가 어떻게 고문당했고 그런 일 모두를요. 트라우마를 재경험한다는 건 정말 힘들어요. 회피하고 도망가고 싶죠. 제가 광주 사람인데 서울에서 개업했잖아요. 광주에서 도망 나오고 싶어서예요. 게다가 한창 다들 재심을 신청할 때 저는 인턴, 레지던트여서 시간이 정말 없었어요. 최근 들어서는 보안관찰법 위반으로 기소돼서 시간적, 감정적 여력이 없었죠. 근본적으로 국가가 저지른 범죄에 대해서 진실을 규명하고 명예회복을 하는 건 개별적 구제가 아니라 국가가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광주트라우마센터장은 어떻게 맡으셨나요. -2008년 6월 전문의를 땄는데 한국에서 과거사 진실규명 관련 재심 등이 많이 진행되던 상황이었어요. 기념관을 짓거나 기념사업회를 만드는 경우는 많은데 정작 고통당한 인간의 내면과 아픔을 치유하는 것은 소홀하더라고요. 한국의 과거 청산은 물신주의적 과거청산이에요. 고통당한 피해자의 아픔이 도외시된 과거 청산이죠. 인권활동가와 인권변호사들 권유로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문요한씨와 강남 봉은사에서 고문피해자치유모임을 시작했어요. 그러던 중 고문피해자지원센터를 만든다고 광주시에서 연락이 왔어요. 이 분야를 알거나 경험한 사람이 없으니 와 달라고요. 당시에 서울 중랑구 면목동에서 개인병원을 하고 있어서 못 간다고 했어요. 무엇보다도 저는 5·18의 상처가 트라우마로 남아 있어서 광주에서 도망친 사람이잖아요. 그래서 광주에 내려가고 싶지 않았어요. 그런데 여러 사람이 저를 설득하더라고요. 결국 운명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의대 다니고, 전문의 따고, 개원해서 통증 전문으로 일한 것이 결국 국가폭력 피해자, 고문 피해자를 만나기 위한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결국 광주로 가게 됐죠. 나는 결국 광주와 같이 갈 수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달까요. →광주트라우마센터는 어떤 일을 하나요. -5·18을 비롯한 국가폭력 생존자와 가족들을 치유하는 기관이에요. 단순 치유뿐만 아니라 이분들이 사회 속에서 인정받을 수 있도록 사회적 재활 사업도 해요. 결과적으로는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인권옹호 활동도 하고요. 단순한 의료기관하고는 달라요. ‘전두환이 민주주의 아버지다´는 망언을 듣거나 육군사관학교 사열을 받는 걸 보면 트라우마적 상황이 다시 옵니다. 전두환이 군인을 이용해서 광주시민을 학살했는데, 군인을 양성하는 육사에서 사열을 받는 모습을 보고 ‘세상이 변하지 않았구나´ 이런 생각이 들거든요. 그럼 트라우마센터를 찾아오는 거죠.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트라우마센터에서 응급지원팀을 꾸려서 상담을 해요. 국가 폭력 피해자들이 원하는 건 진실규명이에요. 어떻게 죽었고, 왜 죽었냐는 거죠. 5·18도 진실이 다 드러나지 않았어요. 전두환과 노태우가 5·18로 처벌받지 않았잖아요. 첫 번째가 진실규명이라면 다음으로는 가해자가 처벌받아야죠. 그래야 정의가 실현됐다고 할 수 있죠. 정의가 실현된 뒤에는 피해자와 생존자에 대한 명예회복과 배상이 이뤄져야 하고요. 그걸로만 끝나면 그런 일이 또 생길 수 있으니까. 국가가 사과하고 재발 방지책을 세워야 해요. 재심에서 무죄를 받으면 고문한 수사관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제기하잖아요. 국가에서 수십억원을 배상하는데 정작 문제를 일으킨 사람은 책임을 안 져요. 고문한 수사관도 공동배상해야 돼요. 나쁜 짓 해도 아무 책임을 지지 않으면 당연히 되풀이되죠. →본인의 트라우마는 어떻게 이겨 냈나요. -트라우마는 이겨 내는 게 아니에요. 극복하는 것도 아니에요. 넘어져서 무릎 까지면 상처가 아물어도 흉이 남잖아요. 그냥 그렇게 견디며 사는 거예요. 어마어마한 바윗돌 같던 게 시간이 지나면서 아주 조금씩 천천히 작아지거든요. 서로 상처를 보듬고 껴안고 살아가는 거죠. 그걸 어떻게 이기고 극복하고 살 수 있겠어요. 저는 광주트라우마센터에 가서 다른 분들을 치유하면서 도리어 제가 치유받는 경험을 했어요. 제 상처가 둥글둥글해지더라고요. 아픔도 조금 작아지고요. 그게 저한테는 치유였던 것 같아요.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 쇠말뚝에 골든타임 놓칠라… 계륵이 된 고령 우륵교

    쇠말뚝에 골든타임 놓칠라… 계륵이 된 고령 우륵교

    인근 종합병원 개원 앞둔 고령 군민들 “응급차들 15㎞ 우회 환자 생존권 위협 상생차원에서라도 통행 전면 허용을”“종합병원을 눈앞에 두고도 응급차량이 지름길인 교량을 통행할 수 없으면 환자들이 아까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경북 고령군민들이 인근 종합병원 개원을 앞두고 응급차량의 우륵교 전면 통행 허용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나섰다. 강정고령보 상단에 있는 우륵교는 길이 810m·왕복 2차로로 지어졌지만 달성군 측의 반대로 차량이 다닐 수 없다. 20일 고령군과 강정고령보 차량통행추진위원회에 따르면 계명대 동산의료원은 다음달 대구시 달서구 성서캠퍼스에 건립한 새 병원으로 이전한다. 이 병원은 지상 20층, 지하 5층, 1033병상 규모로 심장이식을 포함한 심·뇌혈관질환 응급환자 치료에 집중할 것으로 알려졌다. 병원이 문을 열면 차로 10분 내 거리인 고령군 다산면민 1만명은 물론 인근 성산면, 대가야읍 주민들이 신속하고 수준 높은 의료서비스를 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우륵교가 막혀 있어 응급차량이 인근 사문진교 등으로 최소 10분 이상 우회해야 해 응급환자를 살려내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초기 시간인 골든타임 확보가 어려울 것으로 우려된다. 이에 따라 고령군민들은 종합병원 개원과 함께 응급차량의 우륵교 통행을 요구하고 있다. 우륵교는 한국수자원공사가 4대 강 사업을 추진할 당시인 2012년 12월 대구시 달성군 다사읍과 고령군 다산면을 잇는 총연장 1㎞가량의 강정고령보 유지·관리를 위해 250억원을 들여 준공한 공도교이다. 고령군은 32억원을 들여 우륵교 진입도로도 만들었다. 그러나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한 달성군 측 반대로 우륵교 차량 통행이 6년이 넘도록 금지되고 있다. 달성군 측은 “주민과 관광객, 자전거만이 다닐 수 있도록 한 우륵교 고유 기능을 유지해야 한다”면서 “교량에 차량이 다닐 경우 관광객 등의 안전이 크게 우려된다”고 주장한다. 왕복 2차로 차량통행이 가능한 교량을 갖춘 5개 보(낙동강 강정고령보, 영산강 승촌보, 금강 공주보, 낙동강 창녕함안보·합천창녕보) 공도교 가운데 유일하게 우륵교만 차량 통행이 금지돼 있다. 이재섭(57) 고령소방서 다산119안전센터 팀장은 “우륵교 차량 통행금지로 약 15㎞를 우회해 환자 생존권에 위협을 받고 있다”면서 “사람의 생명을 살릴 수 있도록 응급차량과 소방차에 대해서는 우륵교 통행을 24시간 전면 허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용택(83) 강정고령보 차량통행추진위원회 위원장은 “국민 세금으로 건설한 교량에 대해 특정 지자체가 차량 통행을 못하도록 할 권리가 없을 뿐만 아니라 상생발전과 화합에도 역행하는 것”이라며 “달성군은 대구 및 달성 주민들도 우륵교 통행을 원한다는 것을 잘 알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정고령보 차량통행추진위는 우륵교 차량 통행을 위해 지금까지 청와대와 국회 등에 진정서를 제출했고, 국민권익위원회는 달성군과 고령군을 수차례 방문해 중재 활동을 벌였지만 달성군 측의 반대로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글 사진 고령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10년 기다렸는데… 용산 망루 위 불구덩이 못 벗어나”

    “10년 기다렸는데… 용산 망루 위 불구덩이 못 벗어나”

    외압 논란 등 檢진상조사팀 사실상 와해 다른팀 단원 투입… 사건 재배당 가능성 “법무부 의지만 있다면 시한 연장 길 있어” 과거사위·조사단 분리 ‘태생적 한계’ 지적 “몸통 위기 일때 머리가 어떤 역할도 못해”“10년을 기다렸습니다. 조사를 중단한 것은 용납할 수 없습니다.” 철거민 5명과 경찰특공대원 1명이 목숨을 잃은 용산참사 사건의 검찰권 남용 의혹 등을 조사하는 대검찰청 진상조사단의 관련 팀이 사실상 와해된 것으로 알려지자 유족들은 참담한 심정을 드러냈다. 정부가 “과거의 잘못을 되돌아보겠다”며 스스로 진상규명을 한다고 해 놓고선 이렇게 허망하게 끝내는 게 말이 되느냐는 것이다. 20일 경기 남양주 마석모란공원에서 열린 ‘용산참사 10주기’ 추모제에서 철거민 희생자 고 이상림씨의 부인 전재숙(75)씨는 “검찰에서 작은 것(진실)이라도 나올까 하고 기다렸는데 검찰은 조사조차 못하고 무산돼 가고 있다”면서 “더 열심히 투쟁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족들은 검찰이 무리한 진압 작전을 벌인 경찰을 기소하지 않은 이유와 수사기록을 공개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만큼은 조사 결과를 내놓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유족들의 바람대로 검찰 진상 규명이 이뤄질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지난해 7월 이후 용산참사 사건을 다뤄 온 대검 진상조사단 조사3팀에는 검사 2명만 남아 있다. 검사 1명은 비상근이라 사실상 1명만 출근한다. 나머지 외부단원 4명(교수, 변호사)은 사퇴했거나 출근을 안 하고 있다. 과거 용산사건 검찰 수사팀이 이번 조사 과정에서 불복 수단으로 민·형사상 조치를 취하겠다고 하자 부담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현재로서는 약촌오거리 살인 사건 등 최근 조사를 끝낸 다른 팀에서 단원을 수혈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성접대 의혹 사건처럼 사건 재배당을 통해 조사를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새로 단원이 투입돼도 걱정은 남아 있다. 세 차례 연장된 활동 시한인 3월 말까지 조사, 심의를 모두 끝내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조사단의 한 관계자는 “과거사 조사를 서둘러 끝낼 이유는 없다”면서 “법무부가 의지만 있다면 훈령을 개정해 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결국 용산참사 사건의 진상 규명은 법무부의 손에 달려 있다는 뜻이다. 첫 단추부터 잘못 채워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법무부는 2017년 12월 과거 인권 침해와 검찰권 남용 의혹 사건의 진상을 규명한다며 검찰 과거사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실제 조사를 수행할 기구는 대검 산하에 두기로 했다. 조사단이 수사 기록을 열람하려면 감찰권을 가진 대검 산하에 있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머리와 몸통이 분리된 이원화된 구조는 조사단(몸통)이 위기에 봉착했을 때 과거사위(머리)가 어떤 역할도 할 수 없는 한계를 갖게 했다. 조사 권한 등이 법률이 아닌 훈령에 근거한다는 점도 태생적 한계로 지적됐다. 법조계 관계자는 “독립성을 보장한다는 말 이면에는 ‘알아서 하라’는 무책임이 도사리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에 법무부 관계자는 “과거사위가 대검에 조치를 취해 달라고 요청했는데 아직 통보가 안 왔다”며 “대검이 애를 써야 한다”고 말했다. 대검 관계자는 “(조사 재개를 위해) 다각적으로 노력 중”이라고 답했다. 한편 이날 열린 10주기 추모제에는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유가족, 생존 철거민, 일반 추모객 등 150여명이 참가했다. 생존 철거민 김창수씨는 “함께 망루에 올랐던 우리는 10년 전 불구덩이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면서 “당시 이명박 정부는 왜 우리를 그 높은 곳으로 내몰았는지, 진실이 드러나는 것을 왜 방해하는지 묻고 싶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이근아 기자 leegeuna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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