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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 좀 받아주세요” 애걸, 긴박했던 이태원…생존자의 증언

    “아이 좀 받아주세요” 애걸, 긴박했던 이태원…생존자의 증언

    이태원 참사에서 목숨을 건진 생존자의 증언이 속속 나오고 있다. 31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는 참사 당일 현장에 있었다는 A씨가 죽음의 공포와 싸웠던 당시 상황을 전했다. 아내, 자녀와 함께 이태원을 찾았다는 A씨는 “밤 9시 30분쯤만 해도 사람이 많긴 했으나 어느 정도 통행은 가능했다. 그런데 해밀톤 호텔 쪽으로 이동할수록 사람들이 불어났고 인파에 휩쓸려서 가게 되더라”라고 밝혔다. 이어 “압박 강도가 점점 심해졌고 그때부터 사고가 일어날 수도 있겠다 싶어 뒤로 빠지려 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탈출은 쉽지 않았다. A씨는 “품에 안긴 아이가 무서워했고, 죽을 수도 있겠구나 싶어 본능적으로 탈출을 생각했다. 하지만 앞뒤로 막혀서 어떻게 할 수가 없더라”라고 설명했다. 그때 A씨 눈에 ‘비상구’가 들어왔다. 그는 “골목 쪽으로 접어드는 순간 옆에 있던 커플이 오른쪽 주점 울타리를 넘어 탈출하더라. 본능적으로 그렇게 안 하면 답이 없겠다 싶어서 (도와달라고) 불렀는데 그분들도 경황이 없었는지 빨리 가버렸다”고 전했다. A씨는 주점 울타리 안에서 지켜보고 있던 외국인에게 도움을 청한 뒤에야 겨우 인파 속을 탈출할 수 있었다. 그는 “울타리 안에 있던 외국인에게 아이를 받아달라고 외쳤고 그분이 아이를 받아준 다음에야 우리 부부도 울타리를 넘어서 그 주점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일부 업소가 문을 열어주지 않아서 피해가 커졌다는 분석도 나왔다’는 질문에 대해선 “문을 안 열어줬다기보다 사고가 난 줄 다들 몰랐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고 A씨는 답했다. A씨는 “내가 탈출했던 그 주점도 대기가 길어 인원 파악을 하고 있었다”며 “내가 울타리로 들어갔을 때 직원들이 ‘들어오면 안 된다, 나가라’는 식으로 얘기를 했는데 그때는 사고 발생 전이었기에 직원들은 자기 일을 한 것뿐”이라고 말했다. A씨가 주점 울타리를 통해 탈출한 시각은 29일 밤 10시쯤이었다. 모두 빠져나가겠지 생각하며 이태원을 빠져나간 그는 귀가 차량에서 참사 소식을 접하고 큰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사고가 났던 골목이 막혔을 때 막힌 부분을 조금만 풀 수 있는 인원 통제라도 있었으면 그런 일이 발생하진 않았을 것”이라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 “남녀 4~5명 ‘밀어라’ 외쳤다”… 생존자가 전한 ‘이태원 참사’ 현장

    “남녀 4~5명 ‘밀어라’ 외쳤다”… 생존자가 전한 ‘이태원 참사’ 현장

    ‘이태원 핼러윈 압사 사고’ 당시 골목길 행렬 뒤에서 4~5명의 남녀가 ‘밀어’라고 외쳤다는 목격자 증언이 나왔다. 사망자 154명(외국인 26명 포함)을 낸 이번 사고 당시 이태원 골목길 인파 속에 있었다는 A씨는 31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에서 문제의 ‘밀어’ 소리를 분명히 들었다고 말했다. A씨는 “인파 속에서 거의 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 정도 있었다”며 “이리저리 떠밀리고 움직일 수 없었던 시간은 30분에서 40분 정도 체감됐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A씨는 이어 “처음에는 네다섯명의 남성과 여성분들이 ‘밀어라’는 말을 시작했다. 그 이후에는 여러 명이 그 말을 따라하고 미는 압박이 더 강해져서 결국 제 뒷부분까지 저를 밀게 된 상황이었다”고 덧붙였다. ‘앞에서 ‘뒤로, 뒤로’라고 외치는 것을 왜 뒤에서는 안 들렸나’라는 진행자의 질문에 A씨는 “뒤에서는 자신들이 ‘밀어, 밀어’ 이렇게 외치고 있으니 (클럽에서 나오는) 노랫소리도 커서 앞쪽에 많은 분들이 ‘뒤로, 뒤로’를 못 들었던 것 같다”고 답했다. A씨는 “비명소리가 들렸는데 사람들이 신나서 더 지르는 줄 알고 더 밀었던 것”이라고도 했다.사고 발생 후 참혹했던 현장에 대해 A씨는 “의식을 잃어서 눈에 초점이 없는 분들도 계셨고 얼굴 색이 변하신 분들도 계셨다”며 “제가 본 것은 여성 두 명, 남성 한 명”이라고 했다. 골목에서 대로변으로 빠져나온 A씨는 바닥에 눕혀진 채 CPR을 받고 있는 사람들을 마주했다. A씨는 “당시 상황은 바닥에 CPR을 받고있는 사망자분들 그리고 그분들을 옮기고 하시는 소방관분들이 되게 많이 오신 상황이었다”며 “거의 10명에서 20명 정도 바닥에 널브러져 있고 일반인 분들도 열심히 CPR을 하고 있고 친구인 것 같은 분이 ‘일어나, 일어나, 일어나라고’ 이러면서 CPR 하시고 있었다”고 전했다. 구급차가 사이렌을 울리고 있는 상황에서도 바로 옆에서 사람들이 ‘떼창’을 하고 있는 모습도 A씨는 직접 목격했다고 했다. 사고 현장 옆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사람들은 ‘이 상황을 전혀 몰랐던 것이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A씨는 “전혀 아니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고개만 돌리면 보이는 그런 심각한 상황에서 그러고 있다는 게 너무 인간적으로 그게 옳지 않지 않나 그렇게 생각이 들었다”며 “절대 모를 수가 없다”고 강조했다. A씨는 ‘구조인력이나 경찰인력이 교통정리를 했다면 어땠을까’라는 질문에는 “그분들도 진입하기 무척 힘든 상황이어서 어쩔 수 없었던 상황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진행자가 ‘옴짝달싹 못 하는 그 상황이 되기 훨씬 전부터 교통정리가 있었다면’이라고 하자 “엄청 일찍, 한 오후 8시 전부터 (교통정리를) 했다면 없었을 수도 있겠다”라고 했다.
  • “‘운 좋게’ 당신이 아니었을 뿐”…‘삼풍’ 생존자가 본 이태원 참사

    “‘운 좋게’ 당신이 아니었을 뿐”…‘삼풍’ 생존자가 본 이태원 참사

    “이 말만은 하고 싶어요. 당신 잘못이 아닙니다.”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생존자이자 ‘저는 삼풍 생존자입니다’의 저자 이선민(46)씨는 주말 벌어진 이태원 참사를 두고 “전쟁터가 아닌 일상에서 이토록 많은 사람이 한번에 죽는다는 게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밤”이라고 전했다. ‘산만언니’라는 필명을 사용하는 이씨는 지난 30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경제 선진국이라는 대한민국에서 여전히 별다른 이유 없이 사람이 죽어 나간다는 것이 희한하다”면서 “멀쩡한 아이들이 수학여행 가다가 혹은 친구들과 축제를 즐기려다 느닷없이 싸늘한 주검이 되어 돌아온다. 종일 머리를 굴리고 굴려도 도무지 납득이 안 된다. 어째서? 왜? 또? 라는 물음만 떠오를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씨는 과거 자신의 인터뷰를 언급하며 “전에 인터뷰에서 ‘대한민국은 온 국민이 오징어 게임을 실사판으로 함께 하는 것 같다. 위험천만한 생존게임을 매일 반복하며 나와 내 가족은 안 죽을 거야 막연하게 생각한다’는 말을 다시 한번 말씀드린다”면서 “참사는 사람을 가려오지 않는다. 이번에 ‘운 좋게’ 당신이 아니었을 뿐”이라고 강조했다.이어 이태원 참사 피해자와 가족분들을 향해 “어떤 말이라고 위로가 되겠느냐. 차마 입 밖으로 아무 말도 안 나온다. 그저 먹먹하기만 하다”면서도 “이 말만은 하고 싶다. 당신 잘못이 아니다”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 일도 제 가슴에 오래 남을 것 같다. 앞서 다른 모든 무고한 참사 피해자들의 억울한 죽음이 그러했듯이”라면서 “불시에 명을 달리한 분들의 죽음에 또 가족을 잃은 그 비통함에 깊은 애도를 표한다”고 했다. 이씨는 언론사 인터뷰 요청에 대해 “어지간하면 인터뷰 응하는데 오늘은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다”면서 “서면으로 입장을 밝힌다”고 덧붙였다. 한편 삼풍사고는 지난 1995년 6월 29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의 삼풍백화점이 부실공사로 인해 무너져 502명이 숨지고 6명이 실종되고 937명이 다친 끔찍한 참사다. 이씨는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생존자로, ‘저는 삼풍 생존자입니다’라는 책을 발간하기도 했다.
  • “골목 계단 올라가 살았다”…‘이태원 참사’ 외국인 생존자 증언

    “골목 계단 올라가 살았다”…‘이태원 참사’ 외국인 생존자 증언

    “사람들이 뒤에서 파도처럼 밀기 시작했고,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주말 ‘이태원 참사’로 154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가운데, 현장에 있었던 한 외국인은 자신의 생존기를 영국 BBC를 통해 생생하게 전했다. 인도 출신 IT업계 종사자 누힐 아흐메드(32)는 지난 5년간 이태원 ‘핼러윈’ 축제에 참여했다. 그는 “지난해에는 더 많은 경찰이 있었지만, 올해는 ‘군중 통제’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3년만에 열린 이태원 축제에 낮부터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고 했다. “오후 5시부터 거리에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고 밝힌 아흐메드는 어느 순간 군중 속에 휘말려 있었다고 전했다. 그는 문제의 골목으로 들어서자마자 무언가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아흐메드는 “사람들이 뒤에서 밀치기 시작했는데 마치 파도같았다”면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가만히 서 있어도 뒤에서 앞에서 누군가가 밀치고 있었다”고 말했다. 아흐메드는 군중에 밀려 넘어지기도 했지만, 골목 옆으로 난 계단을 찾아 간신히 기어올라갔다. 그는 “사람들은 숨이 막히고 비명을 질렀다”면서 “나는 계단에 서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바라봤지만 속수무책이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아흐메드는 “소방대원들이 도착할 때까지 사람들은 쓰러진 이들에게 심폐소생술을 했다”며 “한 남성은 친구가 죽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30분 동안 심폐소생술을 계속했다”고 안타까워했다. 힘든 밤을 보낸 아흐메드는 “지난 밤 한 숨도 못잤다”며 “지금도 내 앞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이 눈에 어른거린다”고 덧붙였다.한편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에 따르면 31일 오전 6시 기준 이태원 압사 사고로 인한 인명피해는 사망자 154명이다. 중상자는 33명, 경상자는 116명이다. 사망자 중 여성은 98명, 남성은 56명이다. 외국인 사망자는 14개국 26명이다. 사망자 중 1명을 제외한 153명의 신원확인은 완료됐으며, 1명에 대한 신원확인 작업은 진행 중이다.
  • [사설] 이태원 참사, ‘안전’ 잊은 사회의 재앙이다

    [사설] 이태원 참사, ‘안전’ 잊은 사회의 재앙이다

    믿기지 않는 참담한 사고다. 서울 한복판에서 제대로 손써 볼 겨를도 없이 많은 청춘들이 목숨을 잃었다. 삽시간의 참극 앞에서 말문이 막힌다. 그제 밤 핼러윈 축제가 벌어진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해밀톤호텔 근처의 골목에서 초유의 압사사고가 일어나 154명이 숨지고 132명이 다쳤다(30일 밤 9시 현재). 발 디딜 틈도 없이 몰려든 인파가 인근 도로를 가득 메운 가운데 호텔 옆 3.2m 폭의 좁고 가파른 골목에서 사고가 시작됐다고 한다. 누군가 내리막길 앞쪽에서 쓰러지자 뒤에서 떠밀려 오던 사람들이 마치 도미노처럼 이들 위로 잇따라 쓰러지면서 참극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날벼락이라고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재앙이다. 사고 현장은 차마 눈 뜨고 보기 힘든 아수라장이었다. 한꺼번에 속출한 사상자들이 길거리에 방치돼 누워 있고 생존자들은 그 옆에서 발을 구르며 울부짖었다. 전시 상황을 방불케 했다. 정확한 사고 경위는 더 따져 봐야겠지만 안전불감증이 원인이었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안전의식이 마비된 사회에서 꽃다운 생명들을 또 속수무책으로 잃었다. 자괴감을 감출 수 없는 명백한 인재(人災)다. 사고 상황은 전 세계 외신으로도 긴급 타전됐다. 어이없는 재난을 미리 막을 방법은 조금도 없었는가. 답답하기 짝이 없다. 3년 만에 사회적 거리두기 없는 핼러윈을 맞아 이태원에 젊은층이 몰려들 것은 진작에 예상됐다. 참사 전날에도 수만 명이 몰렸다고 한다. 사람이 너무 많아 걷기가 힘든 데다 인파에 떠밀려 넘어진 사고도 있었다는 목격담도 잇따랐다. 그렇다면 당국은 최소한 안전관리 대책을 세웠어야 마땅하다. 그런데도 현장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인력은 없었다. 더군다나 행사가 집중된 이태원 세계음식거리 일대는 유난히 좁은 골목이 많다. 차량 통행을 일시 중단시키더라도 인파를 수용할 공간 확보는 미리 할 수 있었던 안전 대책이다. 국가 애도 기간을 정하고 대규모 행사장의 안전을 점검하겠다는 정부 대책이 나오고 있다. 사후약방문일 뿐이다. 304명의 목숨을 잃은 세월호 참사가 겨우 8년 전이다. 국민 소득 3만 달러의 정부와 시민사회가 모두 입으로만 안전을 외쳐 왔다. 우리의 안전의식은 여전히 후진국 수준인 현실을 뼈가 아프도록 되새겨야 한다. 이런 후진국형 안전 재난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우리가 무엇을 놓치고 망각했는지 처절하게 돌아봐야만 한다.
  • 동대문 노점 관리 특사경 구역책임제로

    동대문 노점 관리 특사경 구역책임제로

    “2050년 미래도시 동대문구를 위한 첫걸음은 거리가게의 정비에 있습니다. 제기동역에서 청량리역 구간이 노인 보행자 교통사고가 가장 자주 발생하는 지역으로 알려졌는데 거리가게의 생존권이 노인 보행자의 생명권보다 우월할 수 없습니다.” 이필형 서울 동대문구청장은 30일 지역 내 불법 노점 정비 의지를 강조하며 이같이 밝혔다. 거리가게 전면 정비를 목표로 지난달 자치구 최초로 7명의 대규모 특별사법경찰(특사경)을 투입한 동대문구는 내년 하반기 대규모 정비를 대비해 오는 11월부터 거리가게에 대한 특사경 구역책임제를 시행한다. 특사경 구역책임제는 거리마다 전담 특별사법경찰 1명과 단속 지원 인력 2명을 배정해 책임 구역을 지정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구역 내 거리노점에 대한 관리 책임을 명확히 함으로써 더 체계적인 정비를 지원하도록 추진된다. 3명이 1조를 구성해 구역책임자로서 불법 거리가게가 생기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고 허가받은 가게라도 허가 조건에 맞게 운영되고 있는지 확인할 계획이다. 이 밖에도 기존의 거리가게에 대해 정밀 실태조사를 하고 거리가게와 관련된 모든 분야를 집중 점검하는 등 내년 하반기에 있을 대규모 정비를 준비할 방침이다.
  • 봉화 광산 사고 5일째… 매몰자 생사 확인 위해 땅 뚫는다

    봉화 광산 사고 5일째… 매몰자 생사 확인 위해 땅 뚫는다

    경북 봉화 아연 광산 갱도 붕괴 사고로 매몰자 구조 작업이 닷새째 이어지는 가운데 소방당국이 광부 2명의 생사 여부 확인을 위해 기존 구조 작업과 별도로 땅을 뚫는 작업에 들어갔다. 봉화소방서는 30일 오전 경북 봉화군 재산면 광산 매몰 사고 현장에서 브리핑을 열어 “갱도 작업과 병행해 대피 예상지역으로 구조자들이 피신했는지 확인하려 시추작업을 진행하고 있다”며 “대피 예상지역 두 곳에 천공기를 설치했고, 어제 오후 7시 20분쯤 시추를 시작해 현재 깊이 53m가량 시추했다”고 밝혔다. 깊이 170m까지 땅을 뚫어 관을 설치해 매몰자가 관을 두드리는 등 생존이 확인되면 관을 통해 의약품과 생수 등을 내려보낸다는 게 소방당국의 계획이다. 소방당국 관계자는 “구조 작업이 장기화됨에 따라 다양한 구조 방법을 찾아야 했고 관계자 회의 끝에 시추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소방당국은 시추 작업과 별도로 갱도 진입로 확보 작업도 이어 가고 있다. 수평 거리 45m 구간은 지난 29일 복구를 완료했고, 암석 등을 나르는 수레 작업을 위해 2m 공간을 추가 확보할 예정이다. 이 작업을 마치면 수평거리 45m에서 수평 거리 100m 구간에 선로를 연결하고 이 구간 암석을 제거하는 작업도 이어 갈 예정이다. 소방당국은 당초 29일 오전쯤 매몰 광부들을 구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갱도 안에 크고 작은 암석들이 쌓여 진입로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소방당국은 이들 구조에 최소 2~4일 정도 더 걸릴 것으로 예상했다. 매몰 광부 2명이 갇힌 곳은 지하 190m 지점으로, 이들은 지난 26일 오후 6시쯤 채굴 작업 중 갱도가 무너지면서 연락이 끊겼다.
  • 일제 강제동원 배상 판결 4년… ‘99엔 노동자’ 10명 스러졌다

    일제 강제동원 배상 판결 4년… ‘99엔 노동자’ 10명 스러졌다

    70건 피해 소송 중 66건 계류김옥순 할머니 등 올 5명 별세“정부 지연 전략에 판결 늦어져”대법원이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배상 판결을 확정한 지 4년이 흐른 30일 일본의 반발 속에 피해자들은 사과도 받지 못하고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배상금 지급을 거부하는 신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 미쓰비시중공업 등 일본 전범기업을 상대로 국내 자산 압류를 시도했지만 현금화 또한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그사이 고령의 피해 생존자들은 하나둘씩 세상을 떠나고 있다.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과 민족문제연구소 등에 따르면 2018년 10월 30일 대법원의 첫 배상 판결 확정 이후 소송에 참여한 피해자 가운데 최소 10명이 숨졌다.2019년에는 심선애 할머니 등 3명이 세상을 떠났다. 2020년에는 박순덕 할머니와 이동련 할머니 등 2명이 별세했다. 올해에만 김옥순 할머니, 최희순 할머니, 전옥남 할머니 등 5명이 세상을 떠났다. 그동안 국내에서 직접 원고로 손해배상 소송에 참여한 피해자는 약 200명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법원의 속도는 더디다. 유족을 포함해 원고 1139명이 70건의 소송을 제기했으나 4건을 제외한 사건은 각급 법원에 계류 중이다. 미쓰비시나 신일본제철, 후지코시 등을 상대로 배상금을 요구했던 피해 생존자는 17명만 남았다. 이 중 15명은 대법원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대법원에서 승소 판결을 받은 피해자 14명 중 생존자도 이춘식 할아버지, 김성주 할머니, 양금덕 할머니 3명뿐이다. 배상금 지급을 이행하지 않는 미쓰비시로부터 배상금을 받기 위해 김 할머니와 양 할머니는 이 기업들의 국내 자산을 강제 매각해 달라는 소송을 진행해 왔다. 외교부가 지난 7월 대법원에 “외교적으로 협의하고 있다”는 취지의 의견서를 제출한 탓에 대법원이 결론을 보류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됐다. 이국언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이사장은 “대부분의 생존자들이 요양병원에 머무르며 병마와 싸우고 있다”면서 “대법원 판단을 지연시키는 정부의 작전은 피해자나 유족에게 이 힘겨운 싸움을 포기시키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일본 정부는 강제동원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후생연금을 탈퇴한 양 할머니 등 강제동원 피해자에게 수십년간의 물가 상승분도 반영하지 않고 1인당 99엔(약 955원)을 지급하고 있다.
  • “우리 딸 어딨어…” “쌍둥이형 함께였는데 나만…” “살아 있을 거야…”

    “우리 딸 어딨어…” “쌍둥이형 함께였는데 나만…” “살아 있을 거야…”

    30일 새벽 4시 희생자 46명이 안치된 서울 원효로 다목적 실내체육관 앞은 밤새 연락이 닿지 않은 가족을 찾아 헤맸던 유가족들의 절규와 오열로 가득했다. 옷 갈아입을 시간도 없이 달려온 일부 유가족들은 잠옷 차림으로 주저앉아 “얼굴이라도 확인하게 해 달라”며 울부짖었다. ●딸 남자친구가 1시간 CPR했지만… 안연선(54)씨는 남자친구 입대를 앞두고 함께 이태원에 놀러 갔다 사고를 당한 둘째딸을 찾고 있었다. 안씨는 “딸이 숨을 못 쉬어 딸의 남자친구가 딸에게 심폐소생술(CPR)을 1시간 동안 했지만 결국 구급대원이 심정지 판정을 내린 뒤 구급차에 실려 갔다는 연락을 받고 왔다”며 “한창 놀러 갈 나이의 생때같은 젊은이들이 큰 행사가 있었다고 이렇게 무방비하게 죽었다는 게 말이 되나”라고 눈물을 흘렸다. 그러면서 “어려운 가정형편에 대학도 못 간 둘째딸은 올해 스무 살이 돼 처음으로 핼러윈 축제가 재밌다고 들었다면서 신난 모습으로 나갔다”며 “낮에 다녀오겠다고 손을 흔들면서 ‘엄마, 나 5만원만 주면 안 되냐’고 하기에 줬는데, 그게 마지막이 될 줄 몰랐다”고 토로했다. ●희생자 남편 “왜 여기 누워 있어 ” 오열 다른 부모들도 아수라장이 된 참사 현장에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희생자 3명이 안치된 광진구 건국대병원에서는 한 희생자의 남편이 사망자 신원을 확인한 후 “왜 여기 누워 있냐. 일어나라”고 오열하다 지인의 부축을 받고 비틀대며 나왔다. 종로구 서울대병원에서 만난 한 20대 남성은 “쌍둥이 형과 사고 현장에 함께 있다가 저만 살아 돌아왔다”며 형의 소식을 기다리며 힘겨워했다. 한양대병원에 안치된 딸 이모(25)씨의 시신을 인수한 이씨는 새벽 1시에 딸의 사망 소식을 듣자마자 전남 목포에서 서울까지 쉬지 않고 올라왔다. 서울에서 간호사로 일해 온 딸은 교대 근무를 마치고 친구들과 놀러 왔다가 변을 당했다고 한다. 부친 이씨는 고향으로 내려가기 전 취재진과 만나 “노 마스크 첫 핼러윈이라 10만명이 모일 것이라는 예상을 지방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었던 상황인데 정부와 서울시 대응이 너무 미비했다”면서 “대부분 10~20대 여성이 희생당한 안타까운 이번 사고는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인재”라고 큰소리로 쏘아붙였다.●“딸 폰 경찰이 보관해 밤새 전화돌려” 정해문(62)씨는 작은 딸 주희(30)씨가 이태원에 친구와 놀러 갔다가 연락이 끊겨 밤새 딸을 찾아다녔다. 112에 문의하니 딸의 휴대전화를 경찰이 보관하고 있다는 말만 들었다. 실종 신고를 한 뒤 오전 내내 사망자가 안치된 모든 병원에 전화를 돌렸다. 답을 듣지 못하다가 30일 오후 1시쯤 딸의 시신이 평택제일장례식장에 안치돼 있다는 경찰 연락을 받고 실낱같은 희망마저 끊어졌다. 딸 주희씨는 독립해 따로 살았지만 매일 실시간 메시지를 주고받을 정도로 정씨와 각별한 사이였다고 했다. 정씨는 “딸에게 어제 오후 5시쯤 저녁을 같이 먹자고 했는데 친구와 약속이 있다고 해서 안 된다고 했다”면서 “그때 내가 붙잡았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지도 모른다”고 말을 잇지 못했다. 최모(33)씨는 30일 새벽 1시쯤 강원도 강릉 본가에 있는 부모님으로부터 ‘해밀톤호텔 뒷골목에서 동생(24)이 실종됐다’는 연락을 받고 동생을 찾아나섰다. 아홉 살 아래인 동생은 평소 오빠에게 많이 의지했다고 한다. 제발 자고 있기를 기대하며 찾은 약수역 인근 동생의 자취방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날 오전 9시 30분쯤 경찰이 동생의 사망 소식을 전해왔다. 강릉에서 밤새 운전해 서울에 도착한 최씨의 부모도 소식을 듣자마자 대성통곡했다. 26명의 외국인 희생자는 지문 등록이 안 돼 있어 신원 파악이 더 어려웠다. 고려인 김오리아나(29)씨는 이번 사고로 실종된 사촌 동생 김옥사나(24)씨의 한국 내 유일한 가족이다. 김씨는 전날 오후 11시 9분쯤 함께 이태원에 놀러 온 직장 동료가 “이태원에 함께 놀러 온 옥사나가 보이지 않는다”는 연락을 받고 여러 병원을 돌아다니며 동생을 찾기 시작했다. 김씨는 “사촌 동생이 아직 살아 있으리라고 믿는다”면서 “한 달 전 저를 만났을 때 환하게 웃던 동생이 이렇게 우리를 떠나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울먹였다. ●“현장서 도와달라 그렇게 외쳤는데…” 호주 출신 네이든은 “사고 현장에서 저는 어떻게든 나왔는데 함께 있던 친구 1명은 죽고 2명은 병원에 있다”며 큰 소리로 울음을 터트렸다. 그는 “현장에서 우리 좀 도와달라고 크게 소리쳤는데 비상 시스템은 너무 늦었고 아무도 우리를 도와줄 사람이 없었다”면서 “그래서(이런 미비한 대응 탓에) 내 친구들이 다치고 죽은 것”이라고 분노했다. 이날 새벽 6시부터 실종자 접수처와 여러 병원을 전전하며 실종된 친구를 찾고 있다는 스리랑카 출신 카디(36)는 친구 2명과 함께 주민센터 앞을 서성였다. 그는 “어젯밤부터 이태원에 사는 친구와 연락이 되지 않아 실종자 신고를 한 뒤 여기저기 수소문하고 있다”면서 “스리랑카에 있는 친구의 가족들도 뉴스로 한국 소식을 듣고는 아들의 행방을 찾고 있는데 아직 그들에게 전할 소식이 없다”고 안타까워했다.●생사 엇갈린 실종자 가족 대기실 실종자의 신원 확인을 기다리는 한남동 주민센터 곳곳에서는 가족의 사망 소식을 접한 가족들의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한 부부는 가족의 사망 소식을 알리는 전화를 받고는 주차장 차문 옆에 주저앉아 한참을 오열하다 힘겹게 운전대를 잡았다. 자녀의 사망 소식을 접하고 차량으로 이동하던 한 가족의 절규와 오열이 온 건물에 퍼지기도 했다. 대기실에서 함께 기다리다가 다른 가족이 대성통곡하는 모습을 보고 “(남의 일 같지 않아) 마음이 힘들다”며 견디지 못하고 대기실을 떠나는 실종자 가족도 있었다. 지난밤부터 한남동 주민센터에 파견돼 밤샘 근무를 했던 한 여성 공무원도 10대 고등학생 조카가 병원에 실려 갔다는 소식을 듣고 눈물을 흘리며 급히 뛰쳐나가기도 했다. 이날 주민센터에서는 20개 회선으로 실종 신고를 접수했다. 실종자 접수와 동시에 새로운 소식을 문의하는 가족들의 전화가 폭발해 주민센터에는 전화벨이 울릴 새도 없이 계속해서 통화가 이어졌다. 150여명이 깔리는 압사 사고 과정에서 소지품이 뒤섞이면서 경찰은 희생자 신원 파악에 어려움을 빚었다.
  • “우리 딸 어딨어…” “쌍둥이형 함께였는데 나만…” “살아 있을 거야…”

    “우리 딸 어딨어…” “쌍둥이형 함께였는데 나만…” “살아 있을 거야…”

    30일 새벽 4시 희생자 46명이 안치된 서울 원효로 다목적 실내체육관 앞은 밤새 연락이 닿지 않은 가족을 찾아 헤맸던 유가족들의 절규와 오열로 가득했다. 옷 갈아입을 시간도 없이 달려온 일부 유가족들은 잠옷 차림으로 주저앉아 “얼굴이라도 확인하게 해 달라”며 울부짖었다. ●딸 남자친구가 1시간 CPR했지만… 안연선(54)씨는 남자친구 입대를 앞두고 함께 이태원에 놀러 갔다 사고를 당한 둘째딸을 찾고 있었다. 안씨는 “딸이 숨을 못 쉬어 딸의 남자친구가 딸에게 심폐소생술(CPR)을 1시간 동안 했지만 결국 구급대원이 심정지 판정을 내린 뒤 구급차에 실려 갔다는 연락을 받고 왔다”며 “한창 놀러 갈 나이의 생때같은 젊은이들이 큰 행사가 있었다고 이렇게 무방비하게 죽었다는 게 말이 되나”라고 눈물을 흘렸다. 그러면서 “어려운 가정형편에 대학도 못 간 둘째딸은 올해 스무 살이 돼 처음으로 핼러윈 축제가 재밌다고 들었다면서 신난 모습으로 나갔다”며 “낮에 다녀오겠다고 손을 흔들면서 ‘엄마, 나 5만원만 주면 안 되냐’고 하기에 줬는데, 그게 마지막이 될 줄 몰랐다”고 토로했다.●희생자 남편 “왜 여기 누워 있어 ” 오열 다른 부모들도 아수라장이 된 참사 현장에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희생자 3명이 안치된 광진구 건국대병원에서는 한 희생자의 남편이 사망자 신원을 확인한 후 “왜 여기 누워 있냐. 일어나라”고 오열하다 지인의 부축을 받고 비틀대며 나왔다. 종로구 서울대병원에서 만난 한 20대 남성은 “쌍둥이 형과 사고 현장에 함께 있다가 저만 살아 돌아왔다”며 형의 소식을 기다리며 힘겨워했다. 한양대병원에 안치된 딸 이모(25)씨의 시신을 인수한 이씨는 새벽 1시에 딸의 사망 소식을 듣자마자 전남 목포에서 서울까지 쉬지 않고 올라왔다. 서울에서 간호사로 일해 온 딸은 교대 근무를 마치고 친구들과 놀러 왔다가 변을 당했다고 한다. 부친 이씨는 고향으로 내려가기 전 취재진과 만나 “노 마스크 첫 핼러윈이라 10만명이 모일 것이라는 예상을 지방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었던 상황인데 정부와 서울시 대응이 너무 미비했다”면서 “대부분 10~20대 여성이 희생당한 안타까운 이번 사고는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인재”라고 큰소리로 쏘아붙였다. ●“딸 폰 경찰이 보관해 밤새 전화돌려” 정해문(62)씨는 작은 딸 주희(30)씨가 이태원에 친구와 놀러 갔다가 연락이 끊겨 밤새 딸을 찾아다녔다. 112에 문의하니 딸의 휴대전화를 경찰이 보관하고 있다는 말만 들었다. 실종 신고를 한 뒤 오전 내내 사망자가 안치된 모든 병원에 전화를 돌렸다. 답을 듣지 못하다가 30일 오후 1시쯤 딸의 시신이 평택제일장례식장에 안치돼 있다는 경찰 연락을 받고 실낱같은 희망마저 끊어졌다. 딸 주희씨는 독립해 따로 살았지만 매일 실시간 메시지를 주고받을 정도로 정씨와 각별한 사이였다고 했다. 정씨는 “딸에게 어제 오후 5시쯤 저녁을 같이 먹자고 했는데 친구와 약속이 있다고 해서 안 된다고 했다”면서 “그때 내가 붙잡았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지도 모른다”고 말을 잇지 못했다. 최모(33)씨는 30일 새벽 1시쯤 강원도 강릉 본가에 있는 부모님으로부터 ‘해밀톤호텔 뒷골목에서 동생(24)이 실종됐다’는 연락을 받고 동생을 찾아나섰다. 아홉 살 아래인 동생은 평소 오빠에게 많이 의지했다고 한다. 제발 자고 있기를 기대하며 찾은 약수역 인근 동생의 자취방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날 오전 9시 30분쯤 경찰이 동생의 사망 소식을 전해왔다. 강릉에서 밤새 운전해 서울에 도착한 최씨의 부모도 소식을 듣자마자 대성통곡했다. 20명의 외국인 희생자는 지문 등록이 안 돼 있어 신원 파악이 더 어려웠다. 고려인 김오리아나(29)씨는 이번 사고로 실종된 사촌 동생 김옥사나(24)씨의 한국 내 유일한 가족이다. 김씨는 전날 오후 11시 9분쯤 함께 이태원에 놀러 온 직장 동료가 “이태원에 함께 놀러 온 옥사나가 보이지 않는다”는 연락을 받고 여러 병원을 돌아다니며 동생을 찾기 시작했다. 김씨는 “사촌 동생이 아직 살아 있으리라고 믿는다”면서 “한 달 전 저를 만났을 때 환하게 웃던 동생이 이렇게 우리를 떠나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울먹였다.●“현장서 도와달라 그렇게 외쳤는데…” 호주 출신 네이든은 “사고 현장에서 저는 어떻게든 나왔는데 함께 있던 친구 1명은 죽고 2명은 병원에 있다”며 큰 소리로 울음을 터트렸다. 그는 “현장에서 우리 좀 도와달라고 크게 소리쳤는데 비상 시스템은 너무 늦었고 아무도 우리를 도와줄 사람이 없었다”면서 “그래서(이런 미비한 대응 탓에) 내 친구들이 다치고 죽은 것”이라고 분노했다. 이날 새벽 6시부터 실종자 접수처와 여러 병원을 전전하며 실종된 친구를 찾고 있다는 스리랑카 출신 카디(36)는 친구 2명과 함께 주민센터 앞을 서성였다. 그는 “어젯밤부터 이태원에 사는 친구와 연락이 되지 않아 실종자 신고를 한 뒤 여기저기 수소문하고 있다”면서 “스리랑카에 있는 친구의 가족들도 뉴스로 한국 소식을 듣고는 아들의 행방을 찾고 있는데 아직 그들에게 전할 소식이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생사 엇갈린 실종자 가족 대기실 실종자의 신원 확인을 기다리는 한남동 주민센터 곳곳에서는 가족의 사망 소식을 접한 가족들의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한 부부는 가족의 사망 소식을 알리는 전화를 받고는 주차장 차문 옆에 주저앉아 한참을 오열하다 힘겹게 운전대를 잡았다. 자녀의 사망 소식을 접하고 차량으로 이동하던 한 가족의 절규와 오열이 온 건물에 퍼지기도 했다. 대기실에서 함께 기다리다가 다른 가족이 대성통곡하는 모습을 보고 “(남의 일 같지 않아) 마음이 힘들다”며 견디지 못하고 대기실을 떠나는 실종자 가족도 있었다. 지난밤부터 한남동 주민센터에 파견돼 밤샘 근무를 했던 한 여성 공무원도 10대 고등학생 조카가 병원에 실려 갔다는 소식을 듣고 눈물을 흘리며 급히 뛰쳐나가기도 했다. 이날 주민센터에서는 20개 회선으로 실종 신고를 접수했다. 실종자 접수와 동시에 새로운 소식을 문의하는 가족들의 전화가 폭발해 주민센터에는 전화벨이 울릴 새도 없이 계속해서 통화가 이어졌다. 150여명이 깔리는 압사 사고 과정에서 소지품이 뒤섞이면서 경찰은 희생자 신원 파악에 어려움을 빚었다.
  • 응급차 막고 춤춘 사람들… 클럽 전광판엔 ‘압사 ㄴㄴ, 즐겁게 놀자’

    응급차 막고 춤춘 사람들… 클럽 전광판엔 ‘압사 ㄴㄴ, 즐겁게 놀자’

    떼창·떼춤 영상 20만명 넘게 시청“술 취해서” “몰라서” 의견은 분분 사고난 골목 술집 대처방식 논란“살려고 난간에 매달리니 쫓아내”직원들끼리 “싹 다 막아” 무전도지난 29일 밤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서 발생한 압사 참사를 담은 영상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 속속 게시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긴급 상황에서 출동한 구조 인력이 어마어마한 인파 때문에 사고 현장에 가는 것조차 힘들었는데, 일부 시민들이 응급차를 막아서는 장면도 있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핼러윈 축제의 하나로 착각한 시민들의 의도치 않은 행동일 수도 있다고 봤다. 30일 SNS에는 이태원 압사 현장 근처에서 큰소리로 음악을 튼 채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의 모습이 담긴 영상이 다수 올라왔다. 유튜브에 올라온 관련 영상은 13시간 만에 20만명 넘게 봤고, 대부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의 댓글이 이어졌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한 시민은 “바로 옆에서 사람이 죽어서 구조하고 있는데, 잔뜩 흥이 오른 사람들이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응급차를 막아섰다”고 전했다. 다른 시민은 “경찰, 소방대원이 계속해서 사람들에게 ‘길을 비켜 달라’, ‘실제 상황’이라고 안내 방송을 했는데도 사람들이 술에 취해 듣지 않았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사고 당시 현장에 사람이 너무 많아 응급 상황인 걸 파악하기조차 어려웠다는 증언도 나온다. 현장에 있었다는 한 시민은 “당시 워낙 정신이 없어 응급차를 보고도 그냥 작은 사고인 줄 알았다는 사람이 많았다”며 “출동한 경찰과 소방대원들을 핼러윈 복장으로 착각했을 수도 있다”고 했다. 인파가 몰리자 “뒤로, 뒤로”라고 외쳤는데, “밀어, 밀어”로 잘못 들은 사람들이 더 거세게 밀어붙여 피해가 커졌다는 주장도 나오는 상황이다. 생사를 다투는 긴급한 상황이 수십분간 이어진 만큼 좁은 골목에 즐비한 식당과 가게 관계자들의 대처 방식도 도마에 올랐다. 현장에 있었다는 한 호주 국적 남성은 “골목에 클럽들이 있었는데 ‘사람들이 죽는다, 우리를 들여 보내 달라’고 소리쳤지만 누구도 심각하게 듣지 않았다. 아무도 우리를 도와줄 사람이 없었다”며 급박했던 상황을 설명했다. 온라인에서는 사고 현장 바로 옆에 있던 한 술집을 저격한 고발성 글도 잇따랐다. 관련 글에 따르면 “현장에 있던 지인이 이러다 죽겠다는 생각에 해당 술집 테라스 난간으로 올라갔다. 성인 남성 키보다 높은 난간이었는데도 목숨을 구하려고 그랬다”고 했다. 하지만 이 술집 직원들이 ‘입장을 확인할 수 있는 팔찌 등이 없다, 영업에 방해되니 내려가라’고 소리를 질렀다는 것이다. 글 작성자는 “직원들이 욕을 하며 무전기로 ‘올라오는 놈들 싹 다 막아, 던져 버려서라도 내려보내라고’ 등의 발언을 했다”며 “살고자 올라왔던 지인과 다른 생존자를 다시 그 아비규환으로 내보냈다”고 항변했다. 또 다른 클럽에서는 전광판에 ‘압사 ㄴㄴ(아니다), 즐겁게 놀자’는 문구를 띄워 비난받기도 했다.
  • 일제 강제동원 배상 판결 4년…늦어지는 사과, 10명 스러졌다

    일제 강제동원 배상 판결 4년…늦어지는 사과, 10명 스러졌다

    대법원이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배상 판결을 확정한 지 4년이 흐른 30일 일본의 반발 속에 피해자들은 사과도 받지 못하고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배상금 지급을 거부하는 신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 미쓰비시중공업 등 일본 전범기업을 상대로 국내 자산 압류를 시도했지만 현금화 또한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그 사이 고령의 피해 생존자들은 하나둘씩 세상을 떠나고 있다.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과 민족문제연구소 등에 따르면 2018년 10월 30일 대법원의 첫 배상 판결 확정 이후 소송에 참여한 피해자 가운데 최소 10명이 숨졌다. 2019년에는 심선애 할머니 등 3명이 세상을 떠났다. 2020년에는 박순덕 할머니와 이동련 할머니 등 2명이 별세했다. 올해에만 김옥순 할머니, 최희순 할머니, 전옥남 할머니 등 5명이 세상을 떠났다. 2019년엔 동생 고 김순례씨 대신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던 김중곤 할아버지가 눈을 감았다. 그동안 국내에서 직접 원고로 손해배상 소송에 참여한 피해자는 약 200명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법원의 속도는 더디다. 유족을 포함해 원고 1139명이 70건의 소송을 제기했으나 4건을 제외한 사건은 각급 법원에 계류 중이다. 미쓰비시나 신일본제철, 후지코시 등을 상대로 배상금을 요구했던 피해 생존자는 17명만 남았다. 이 중 15명은 대법원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2013년부터 피해자와 유족 등 1004명의 집단소송을 지원한 장덕환 일제강제노역피해자 정의구현전국연합회장은 “당초 피해자 약 150명이 생존해 있었지만 지금은 두 자릿수로 줄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법원에서 승소 판결을 받은 피해자 14명 중 생존자도 이춘식 할아버지, 김성주 할머니, 양금덕 할머니 3명뿐이다. 배상금 지급을 이행하지 않는 미쓰비시로부터 배상금을 받기 위해 김 할머니와 양 할머니는 이 기업들의 국내 자산을 강제 매각해달라는 소송을 진행해 왔다. 외교부가 지난 7월 대법원에 “외교적으로 협의하고 있다”는 취지의 의견서를 제출한 탓에 대법원이 결론을 보류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됐다. 이국언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이사장은 “대부분의 생존자들이 요양병원에 머무르며 병마와 싸우고 있다”면서 “대법원 판단을 지연시키는 정부의 작전은 피해자나 유족에게 이 힘겨운 싸움을 포기시키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구지법도 지난달 이 할아버지에게 배상금을 지급하기 위해 신일본제철이 보유한 주식을 현금화하는 게 타당하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파악됐지만 신일본제철이 재항고하면 이 할아버지도 또다시 대법원 판단을 기다려야 한다. 이 할아버지는 “살아있을 때 사과도 받고 보상도 받을 수 있게 매듭을 지어달라”고 지난달 자신을 찾은 박진 외교부 장관에게 촉구했다. 양 할머니도 박 장관에게 보낸 편지에서 “일본으로부터 사죄를 받기 전에는 죽어도 죽지 못하겠다. 다른 사람이 (돈을) 대신 주면 일본에서 나를 얼마나 무시하겠냐”고 했다. 일본 정부는 강제동원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후생연금을 탈퇴한 양 할머니 등 강제동원 피해자에게 수십년간의 물가 상승분도 반영하지 않고 1인당 99엔(약 955원)을 지급하고 있다.
  • 응급차 막고 떼창, 사람 내쫓은 술집…‘이태원 참사’ 낳았다

    응급차 막고 떼창, 사람 내쫓은 술집…‘이태원 참사’ 낳았다

    지난 29일 밤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서 발생한 압사 참사를 담은 영상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 속속 게시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긴급 상황에서 출동한 구조 인력이 어마어마한 인파 때문에 사고 현장에 가는 것조차 힘들었는데, 일부 시민들이 응급차를 막아서는 장면도 있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핼러윈 축제의 일부로 착각한 시민들의 의도치 않은 행위일 수도 있다고 봤다. 30일 SNS에는 이태원 압사 현장 근처에서 큰소리로 음악을 튼 채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의 모습이 담긴 영상이 다수 올라왔다. 유튜브에 올라온 관련 영상은 13시간 만에 20만명 넘게 봤고, 대부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의 댓글이 이어졌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한 시민은 “바로 옆에서 사람이 죽어서 구조하고 있는데, 잔뜩 흥이 오른 사람들이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응급차를 막아섰다”고 전했다. 다른 시민은 “경찰, 소방 대원이 계속해서 사람들에게 ‘길을 비켜달라’, ‘실제 상황’이라고 안내 방송을 했는데도 사람들이 술에 취해 듣지 않았다”고 말했다. 종합방재센터 등에 의하면 핼로윈 축제 분위기가 절정으로 치닫던 10시 17분쯤 “사람 10여명이 깔렸다”는 신고 전화가 접수됐고, 소방당국은 최초 신고 후 2분 만인 10시 19분 곧바로 구조대를 현장에 투입했다. 관내 구급차도 총동원했으나 구름처럼 몰린 인파 탓에 진입부터 어려움을 겪었다.일각에서는 사고 당시 현장에서 사람이 너무 많아 응급 상황인 걸 파악조차 하기 어려웠다는 증언도 나온다. 현장에 있었다는 한 시민은 “당시 워낙 정신이 없어 응급차를 보고도 그냥 작은 사고인 줄 알았다는 사람이 많았다”며 “경찰, 소방대원들 역시 핼러윈 코스튬으로 착각했을 수도 있다”고 했다. 인파가 몰리자 “뒤로, 뒤로”라고 외쳤는데, “밀어, 밀어”로 잘못들은 사람들이 더 거세게 밀어붙여 피해가 커졌다는 주장도 나오는 상황이다. 생사를 다투는 긴급한 상황이 수십분간 이어진 만큼 좁은 골목을 따라 붙어 있던 식당과 가게 관계자들의 대처 방식도 도마에 올랐다. 현장에 있었다는 한 호주 국적 남성은 “골목에 클럽들이 있었는데 저와 다른 사람들이 ‘사람들이 죽는다, 우리를 들여보내달라’고 소리쳤다”며 “그런데도 아무도 심각하게 듣지 않았다. 아무도 우리를 도와줄 사람이 없었다”며 급박했던 상황을 설명했다.온라인에서는 사고 현장 바로 옆에 있던 한 술집을 저격한 고발성 글도 잇따랐다. 관련 글에 따르면 “현장에 있던 지인이 이러다 죽겠다는 생각에 해당 술집 테라스 난간으로 올라갔다. 성인 남성 키보다 높은 난간이었는데도 목숨을 구하려고 그랬다”고 했다. 하지만 이 술집 직원들이 ‘입장을 확인할 수 있는 팔찌 등이 없다, 영업에 방해된다며 내려가라’고 소리를 질렀다는 것이다. 글 작성자는 “직원들이 욕을 하며 무전기로 ‘올라오는 놈들 싹 다 막아, 던져버려서라도 내려보내라고’ 등의 발언을 했다”며 “살고자 올라왔던 지인과 다른 생존자를 다시 그 아비규환으로 내보냈다”고 항변했다. 또 다른 클럽에서는 전광판에 ‘압사 ㄴㄴ(아니다), 즐겁게 놀자’는 문구를 띄워 비난받기도 했다. 반면 힘겨운 상황에서 사람들을 조금이라도 살리기 위해 십시일반 도움을 보탠 점주들도 있었다. 또 다른 시민은 “사람이 너무 많아서 도저히 오도가도 못했는데, 상황이 점점 심각해지자 한 클럽에선 입장 팔찌가 없는 사람들도 그냥 들여보내줬다”며 “나 역시 친구랑 같이 사람들 물 마시게 도와주고, 손을 잡아주면서 버틸 수 있을 거라고 말해줬다”고 했다. 그러면서 “심정지 온 사람들이 많아지자 술집에서도 다 오픈해서 사람들을 누이고, 구급대원들이 올 때까지 사람들이 심폐소생술을 했다”고 전했다.
  • “우리 아이 소식 좀 알려주세요”…울음소리 울려 퍼진 실종자 접수처

    “우리 아이 소식 좀 알려주세요”…울음소리 울려 퍼진 실종자 접수처

    지난 29일 밤 서울 용산구 이태원 일대에서 압사 참사가 발생한 가운데 실종자 접수처와 실종 가족 대기실이 마련된 한남동 주민센터에는 30일 초조한 마음으로 이곳을 찾은 가족들과 생사확인 전화를 받고 병원으로 이동하는 가족들의 발걸음이 교차했다. 이른 아침부터 일가족과 함께 주민센터에서 기다리다가 32세 조카의 사망 소식을 전해 들은 정해복(65)씨는 경황이 없는 동생 부부를 데리고 평택의 한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정씨는 “이태원 축제에 간다던 조카가 밤부터 갑자기 연락이 안 돼 온 가족이 잠도 못 자고 내내 체크하다가 여기에서 기다리고 있었다”면서 “가족들은 애가 타는데 아무도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말해주는 사람이 없더라”며 울분을 토했다. 정씨는 “경찰이나 병원에서 연락을 받은 게 아니라 우리가 직접 여기저기 수소문해서 평택 병원에 아이 이름이 떴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동하는 것”이라며 “시나 책임 있는 기관에서 빨리 가족들에게 명단과 장소를 알려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덧붙였다. 이태원 대규모 압사 사고 당시 현장에 있던 생존자인 호주 출신 20대 남성 네이든도 함께 있었던 친구들의 소식을 수소문하고 있었다. 네이든은 “사고 현장에서 저는 어떻게든 나왔는데 함께 있던 친구 1명은 죽고 2명은 병원에 있다”며 큰 소리로 울음을 터트렸다. 그는 “현장에서 우리 좀 도와달라고 크게 소리쳤는데 비상 서비스는 너무 늦었고 아무도 우리를 도와줄 사람이 없었다”면서 “그래서 내 친구들이 다치고 죽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새벽 6시부터 실종자 접수처와 여러 병원을 전전하며 실종된 친구를 찾고 있다는 스리랑카 출신 카디(36)는 친구 2명과 함께 주민센터 앞을 서성였다. 그는 “어젯밤부터 이태원에 사는 친구가 연락되지 않아 실종자로 접수하고 수소문하고 있다”면서 “스리랑카에 있는 가족분들도 뉴스로 한국 소식을 듣고는 아들의 행방을 찾고 있는데 아직 전할 소식이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한남동 주민센터 곳곳에서는 가족의 사망 소식을 접한 가족들의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한 부부는 가족의 사망 소식을 알리는 전화를 받고는 주차장 차문 옆에 주저앉아 한참을 오열하다 겨우 운전대를 잡았다. 자녀의 사망 소식을 접하고 차량으로 이동하던 한 가족의 울음소리는 엘리베이터를 뚫고 온 건물에 퍼지기도 했다. 대기실에서 함께 기다리다가 다른 가족의 오열하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힘들다”며 대기실을 떠나는 실종자 가족도 있었다. 지난밤부터 한남동 주민센터에 파견돼 밤샘 근무를 했던 한 여성 공무원도 10대 고등학생 조카가 병원에 실려갔다는 소식을 듣고 눈물을 흘리며 급히 뛰쳐나가기도 했다. 이날 주민센터에서는 20개 회선으로 실종 전화 접수를 받았다. 실종자 접수와 동시에 새로운 소식을 문의하는 가족들의 전화가 이어져 주민센터에는 전화벨이 울릴 새도 없이 계속해서 통화가 이어졌다. 오신환 서울시 정무부시장은 이날 정오쯤 가족 대기실을 찾아 실종자 가족들의 애타는 마음을 위로했다.
  • 이태원 참사, 피해 왜 컸나…비좁은 내리막길 골목에 인파 몰려

    이태원 참사, 피해 왜 컸나…비좁은 내리막길 골목에 인파 몰려

    29일 밤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일대에서 벌어진 압사 사고가 대규모 인명피해로 이어진 것은 가파르고 비좁은 골목에 예상을 뛰어넘는 인원이 몰린 것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3년 만에 실외 마스크를 쓰지 않고 다닐 수 있는 핼러윈을 맞아 토요일 밤 핼러윈의 명소로 꼽히는 이태원에는 이날 수만명이 한꺼번에 몰려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길이 40m, 폭 4m…성인 5~6명 지나갈 정도 참사가 발생한 장소는 이태원동 중심에 있는 해밀톤호텔 뒤편인 세계음식거리에서 이태원역 1번 출구가 있는 대로로 내려오는 좁은 골목길이다. 해밀톤호텔 옆 좁은 내리막길로 길이는 40m, 폭은 4m 내외다. 성인 5~6명이 지나갈 수 있을 정도다. 번화가와 대로변을 잇는 골목이다 보니 세계음식거리가 있는 외쪽에서 내려오는 사람과 이태원역에서 나와 아래에서 올라가려는 사람의 동선이 겹쳐 인파가 대규모로 운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이 길의 한쪽은 해밀톤호텔의 외벽이어서 사람들이 피할 수 있는 샛길도 없었다. “순식간에 통제불능…넘어지며 대열 무너져”참사가 벌어지기 전 한때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우측통행을 하면서 어느 정도 통행이 이뤄졌지만 어느 순간 골목이 수용할 수 있는 이상의 인파가 몰리면서 혼란이 빚어졌다는 게 현장의 경험담이다. 이때부터 사고가 난 골목에선 자신의 의지로 움직이지 못하고 그저 인파에 휩쓸려 골목길을 오르내렸다는 경험담도 다수 나오고 있다. 현장에 있다가 참변을 피한 생존자들은 오지도 가지도 못하는 상황에 갇혀 있다가 갑자기 누군가 넘어지면서 대열이 무너지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대부분 사고가 일어난 시점이나 결정적 계기를 특정하기보다는 그저 “순식간이었다”고 전했다. 주변 인파로 구급 활동도 애 먹어인파로 인한 사고였던 탓에 당시 출동한 소방과 경찰도 구조에 애를 먹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소셜미디어에서 확산하는 구조 영상을 보면 출동한 소방대원과 경찰 여러 명이 넘어진 인파 속에서 사람들을 빼내려고 힘껏 당겨 보지만 워낙 사람들이 뒤엉켜 꽉 끼인 탓에 쉽사리 피해자들을 구조하지 못하는 장면이 나온다. 소방서와 사고 현장이 100m 거리로 멀지 않았지만 사고 현장 주변에도 인파가 많이 몰려 있었던 바람에 인파를 뚫고 구급대가 응급환자에게 도착하는 데에도 평소보다 많은 시간이 걸렸던 것으로 전해진다. 주변 시민들까지 심폐소생술 도와또 심정지, 호흡곤란 환자가 300명 가까이 나오면서 1대1로 해야 하는 심폐소생술(CPR)을 할 구급대원이 턱없이 부족해 전문적이지 않은 시민들까지 가세해 구급활동에 나섰다. 당시 현장에서 CPR에 동참했던 한 의사는 “환자 1명에 2~3명이 둘러싸여 CPR을 도왔고, 나중에는 주변 시민들이 CPR을 하는 옆에서 다리를 주무르거나 기도확장을 돕는 등 환자 1명당 1시간 가까이 CPR을 계속 시도했다”고 전했다. 참사 뒤 귀가하려는 시민들의 차량이 이태원로에 집중되면서 환자를 실은 구급차가 병원으로 가는 일도 쉽지 않았다는 목격담도 있다. 현장에서는 사람들이 자체적으로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뒤로 뒤로”라고 외쳤는데 일부가 “밀어 밀어”로 잘못 듣고 앞 사람들을 밀었다거나, 유명 연예인을 보기 위해 인파가 한꺼번에 몰리면서 사태가 심각해졌다는 얘기가 나온다. 그러나 아직 구체적인 경위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일대 업소에서 마약 성분이 든 사탕이 돌았다는 소문도 나왔으나 경찰은 참사와 관련한 마약 신고는 접수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경찰은 수사본부를 꾸리고 본격적인 사고 원인을 수사할 계획이다. 현장이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돼 최초 사고 경위가 불명확한 만큼 신고자나 목격자, 주변 업소 관계자의 진술, 현장 폐쇄회로(CC)TV 등을 토대로 사고의 발단이 무엇인지 파악할 계획이다. 아울러 관할 지자체가 사전에 사고 예방 조치를 충실히 했는지도 따질 계획이다. 소방당국은 이날 오전 10시 기준 사망자는 151명(남성 54명, 여성 97명), 부상자 82명(중상 19명, 경상 63명)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피해자 대부분은 10~20대로 나타났다. 당국은 중상자가 다수 있어 사망자가 더 나올 수 있다고 보고 있다.
  • “나흘째 갱도 고립” 봉화 광산 매몰사고 구조작업 난항

    “나흘째 갱도 고립” 봉화 광산 매몰사고 구조작업 난항

    경북 봉화 광산 매몰사고가 발생 나흘째로 접어들었지만 고립자 구조작업은 난항을 겪고 있다. 구조당국은 29일 오전 브리핑에서 “고립자들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장소로 진입하기 위한 2차 구간과 연결되는 고난도 45m 구간을 확보해 암석과 토사 제거작업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당국은 전날 오후 5시쯤 고난도 45m 작업구간 통과를 예상했지만, 예상외로 대형암석이 많고 암석의 강도도 높아 파쇄작업에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구조당국 관계자는 “고립자들이 있을 것으로 보이는 공간까지 연결되는 2차 구간은 직선거리 100m정도 되는데 ‘중’ 정도의 난이도로 예상된다”며 “후반부로 갈수록 난이도는 더욱 낮아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구조당국은 고난도 구간 진입이 확보된 뒤 이날 오전 고립자 가족 2명, 소방구조대 2명, 관계자 2명 등 6명이 제2수직갱도로 내려가 작업현장에 대한 확인을 할 수 있도록 했다. 구조작업에는 인력 117명과 장비 32대 등이 동원됐으며, 광산구조대 4개조 28명이 6시간씩 교대해가며 갱도 내 진입로를 확보하고 있다. 고립자들의 생존 여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구조당국은 갱도 수평공간이 가로·세로 각각 2.1m가량인데다 산소가 존재하고 지하수도 흐르고 있는 점을 들어 고립자들이 아직 생존해 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사고가 발생한 지점은 제1 수직갱도 지하 190m에서 수평으로 70m 더 들어간 곳으로 추정된다. 구조인력은 매몰된 제1 수직갱도로 들어가지 못하고 옆의 폐쇄된 제2 수직갱도를 통해 구조작업을 벌이고 있다. 두 갱도간 거리는 약 250m다.앞서 지난 26일 오후 6시쯤 발생한 사고는 14시간이 지난 27일 오전 8시 34분쯤 소방당국에 신고 접수됐다. 이 사고로 50대와 60대 작업자 2명이 갱도 내에 고립됐다. 다른 작업자 5명 가운데 2명은 사고 당시 지하 30m 지점에서 작업하다 이상 신호를 감지하자 26일 오후 8시쯤 자력으로 탈출했다. 3명은 업체 측의 자체구조대가 들어가 3시간여 만에 구조됐다. 사고는 제1 수직갱도 지하 46m 지점에서 갑자기 밀려든 토사가 수직으로 쏟아지며 발생한 것으로 파악됐다. 소방당국 관계자는 “업체 측이 자체적으로 구조가 가능하다고 판단해 신고가 늦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채굴업체 대표이사는 28일 오후 현장을 찾아 고립된 광부들의 가족들에게 사과하고 “사고 후 119 신고가 늦은 것에 대한 법적 책임을 지겠다”고 말했다.
  • “생존 반응 없다”…4년 전 딸과 ‘갑자기’ 사라진 아내

    “생존 반응 없다”…4년 전 딸과 ‘갑자기’ 사라진 아내

    막내딸을 데리고 홀연히 사라진 아내의 행방이 묘연하다. 29일 방송되는 SBS TV 시사·교양물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4년 전 갑작스레 사라진 양산 모녀 실종사건을 면밀히 들여다보고, 발견된 단서들을 통해 모녀의 행방을 추적해 본다. 사건은 2018년 11월 3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날 집에는 김씨(가명)의 친정 식구들이 방문했다. 하지만 반가움도 잠시, 김씨와 친정 식구들 사이에 언성이 높아지자 남편 장씨(가명)는 싸움을 말리기 위해 처가 식구들만 데리고 저녁식사를 나갔다. 장씨가 집에 돌아와 보니 첫째 딸만 남겨둔 채, 아내와 둘째 딸이 사라져 버렸다. 장씨는 아내 김씨의 핸드폰으로 수없이 연락했지만 전화기는 꺼져있었고, 이웃과 주변을 샅샅이 찾아도 두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 후 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내와 둘째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실종 수사를 하고 있는 경찰은 지금까지 모녀의 어떤 생존 반응도 확인되지 않았다고 답했다. 경찰 조사 결과, 그날 밤 집을 나선 아내 김씨와 둘째 딸은 시내 터미널로 이동해 고속버스를 탔고 전주 터미널에 내렸다. 그러나 그 이후 행적은 추적할 수 없었다. 장씨에 따르면 전주에는 아내나 자신에게 아무런 연고가 없고, 가족 여행으로 방문했던 게 전부였다고 한다. “딸, 초등학교 입학 할 나이…어떤 학교서도 확인되지 않았다” 어디선가 살아있다면 이제는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을 예은(가명)이. 안타깝게도 교육 당국에 확인한 결과, 예은이의 존재는 어떤 학교에서도 확인되지 않았다. 장씨는 아내가 누군가의 협박 때문에 이동한 건 아닌지 의심된다고 말했다. 아내의 수상한 금융거래의 흔적들 때문이었다. 50여 개에 달하는 통장과 이상한 거래내역, 게다가 아내가 수많은 곳에서 대출한 사실이 확인됐다. 장씨는 평소 네 식구가 생활하는 데 모자람이 없을 정도의 생활비를 줬을뿐만 아니라, 전직 은행원이었던 아내에게 사업체나 가정에서의 돈 문제 일체를 모두 위임했었다고 밝혔다. 그런 아내였기에 불법 대출까지 사용한 건 분명 아내가 범죄와 연관된 피해자이고 그래서 협박까지 받은 게 아니냐고 추측했다. 한편 제작진은 각종 온라인 사이트 접속 계정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적어놓은 아내 김씨의 메모를 발견한다. 사이버 전문가들과 함께 여러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조합해 로그인을 시도해 본 결과, 최근 이 계정이 사용되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또 ‘안녕하세요. 저는 예은이에요’로 시작하는 이상한 기록들이 발견돼 전문가들은 그것이 예은이가 보낸 구조신호일 수도 있다고 해석했다.
  • ‘금쪽이’ 10살 아이, 교사에 “아줌마가 돌았나” 욕설

    ‘금쪽이’ 10살 아이, 교사에 “아줌마가 돌았나” 욕설

    28일 방송된 채널A ‘요즘 육아 금쪽같은 내 새끼’에서는 엄마와 함께 학교 출석을 하는 금쪽이의 모습이 공개됐다. 이날 욕설을 일삼는 금쪽이의 학교 생활이 공개됐다. 등교하면서 엄마의 손을 거부하며 도망간 금쪽이는 친구에게 남자친구가 있는지 물어보며 “걔 못생겼다. 인성이 쓰레기야. 애들 등쳐먹고 살아”라고 해 모두를 놀라게 했다. 금쪽이 엄마는 금쪽이의 교실 앞까지 함께갔다. 분노 조절이 안 되는 금쪽이의 통제가 협력 교사만으로는 어려워 학교 측에서 금쪽이 엄마에게 출석을 부탁했고, 금쪽이 엄마는 생계를 뒤로하고 5개월째 등교 중이라고 밝혔다. 수업이 시작되자 금쪽이는 대상을 가리지 않고 욕을 하는가 하면 수업 시간에 교실을 이탈하기도 했다. 책상을 내려치며 “이 아줌마가 돌았나”라고 욕설을 내뱉고, 수업 중 강아지 소리를 과도하게 행하기도 했다. 원인 분석을 위한 대화에서 금쪽이 엄마가 “기질 검사에서 충동성과 폭력성이 높게 나왔다”고 하자 오은영 박사는 “아이가 어른의 욕설을 한다. 금쪽이는 어른 행세를 하고 싶은 아이다. 멋있어 보여서가 아니라 힘이 중요한 아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그는 “금쪽이에게 욕설은 생존 언어다. 문제가 너무 심각하다. 하지만 너무 불쌍하고 처절한 느낌”이라고 하며 “봐줍시다가 아니라 문제를 파악해 고쳐줘야 한다”고 말했다.
  •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로큰롤 여명기 열었지만 킬러로 불린 제리 리 루이스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로큰롤 여명기 열었지만 킬러로 불린 제리 리 루이스

    1950년대 로큰롤 황금 시대를 이끌었던 마지막 생존자 제리 리 루이스가 8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에이전트 자크 파넘은 28일(현지시간) 아침 루이스가 미국 미시시피주 데소토 카운티에 있는 자택에서 일곱 번째 부인 주디스가 임종한 가운데 숨을 거뒀다고 전했다. 연예전문 매체 TMZ는 건강이 좋지 않았던 그가 며칠 전에 세상을 등졌다고 오보를 내기도 했다. 워낙 많은 질환을 갖고 있었고, 부상도 잦아 의료진은 세상을 떴어도 수십년 전에 떴어야 했다고 입을 모았다고 파넘은 전했다. 격정적인 피아노 연주와 개성 있는 창법으로 유명했던 루이스는 엘비스 프레슬리와 척 베리, 팻 도미노 등과 함께 로큰롤의 여명을 연 사람으로 꼽힌다. 1935년 루이지애나주 페리데이에서 태어난 그는 컨트리 뮤직과 리듬 앤드 블루스, 가스펠을 들으며 성장했고, 열네 살 때 처음 무대에 섰다. 그는 주로 컨트리 뮤직을 연주했지만 테네시주 멤피스로 이주, 스물한 살 때인 1956년 프레슬리가 몸 담았던 선 레코드와 계약한 뒤 본격적으로 로큰롤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이듬해 그가 발표한 ‘홀 랏 오브 셰이킹’은 세계적으로 600만장이 팔리면서 로큰롤 초창기에 가장 많이 팔린 노래 중 하나가 됐다. 이어 대표곡인 ‘그레이트 볼스 오브 파이어’를 히트시키면서 당시 최고 인기 가수였던 프레슬리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성장했다. 이 노래를 주제로 1989년 같은 제목의 영화가 제작됐는데 데니스 퀘이드가 루이스를, 위노나 라이더가 마이라를 연기했다. 그는 인기가 절정에 달했던 1958년 추문에 얽히면서 인기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불과 스물두 살 나이에 세 번째 부인을 맞았는데 사촌 마이라 게일 브라운이었고, 이 사실이 언론에 공개되면서 비난 여론이 확산하자 월드투어를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더불어 1960년대로 접어들면서 루이스가 연주하던 1950년대풍 로큰롤에 대한 수요도 줄었다. 그러자 그는 1960년대 말 컨트리 가수로 복귀해 인기를 얻었지만 주변에서 일어난 다양한 비극이 그의 발목을 붙잡았다. 1962년에는 세 살 된 아들이 익사했고, 1973년에는 열아홉 살 아들이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1982년에는 네 번째 부인이 이혼 조정을 앞두고 수영장에서 익사했다. 물론 스스로도 사고를 쳤다. 1976년 총기를 들고 프레슬리를 만나야겠다고 그의 자택 그레이스랜드 앞에서 기다리다 감옥에 갇히기도 했다. 같은 해에 그는 콜라병 뚜껑을 총으로 맞추는 놀이를 하다 베이스 연주자 노먼 버치 오언스의 가슴에 총탄을 박는 오발 사고를 내기도 했다. 다행히 오언스는 목숨을 건졌고, 12만 5000 달러의 손해배상을 받아냈다.피아노에 불을 놓는 등 과격한 무대 매너로 ‘킬러’라는 별명을 얻었던 그는 1986년 로큰롤 명예의전당에, 올해 컨트리 뮤직 명예의전당에 헌액됐다. 마지막 앨범은 평생을 함께 한 사촌이자 복음주의 목사 지미 스와가르트와 함께 만든 가스펠 음반이었다. 스와가르트는 젊었을 때부터 고인이 음악하는 것을 반대해 꾸준히 말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많은 이들이 애도 행렬에 동참했다. 롤링스톤스의 로니 우드는 “RIP(영원한 안식을) JLL 킬러-남자다운 남자”라고 했고, 비틀스의 링고 스타는 “고인에게 축복을, 평화와 사랑이 유족에게 내리길”이라고 기원했다. 고인 때문에 피아노를 사랑하게 됐다고 늘 털어놓은 엘튼 존은 인스타그램에 둘이 함께 찍힌 사진을 올리고 “그가 없었다면 지금의 내가 없었을 것이다. 그는 지형을 바꾸는 인물이었으며 재미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는 피아노를 박살낸 인물이었다”고 적었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의 닐 맥코믹 음악전문기자는 고인을 “로큰롤에서 가장 위험한 남자였으며 총질을 해대고 트러블에 불을 지르는 인물이었다. 동시에 이제껏 살아온 이들 가운데 가장 진정한 로커였다. 숙취와 약물중독, 설상가상의 여색 등의 논란이 그의 생애 대부분을 망쳤다”고 적었다.
  • 한소희, 강원도 원주 술집서 알바 근황

    한소희, 강원도 원주 술집서 알바 근황

    한소희가 강원도 원주의 한 술집에서 일일 아르바이트를 했다. 27일 한소희는 자신의 인스타스토리에 “알바 끝!”이라는 글과 함께 사진 한 장을 공유했다. 공개된 사진 속에는 강원도 원주에 있는 지인의 술집에서 일일 아르바이트를 한 한소희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한소희는 이날 가게를 찾은 여성 팬들과 포옹을 하며 사진을 찍는 팬서비스까지 선보인 걸로 알려졌다. 한소희는 2023년 공개 예정인 넷플릭스 시리즈 ‘경성크리처’에 윤채옥 역으로 출연한다. ‘경성크리처’는 시대의 어둠이 가장 짙었던 1945년의 봄, 생존이 전부였던 두 청춘이 탐욕 위에 탄생한 괴물과 맞서는 크리처 스릴러다. 극중 한소희는 죽은 사람도 찾아낸다는 소문난 토두꾼(실종된 사람을 찾는 이들을 일컫는 별명) 윤채옥 역을 맡아 박서준과 호흡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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