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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 여객기 추락/26명 사망

    【하이델베르크 AP AFP UPI 연합】 승객과 승무원 등 30명을 태우고 프랑크푸르트를 출발한 DC­3 여객기가 22일 하오8시(한국시간) 독일 하이델베르크시 남쪽 1백㎞ 상공에서 추락,26명이 사망하고 4명의 생존자도 중경상을 입었다고 현지 경찰이 밝혔다. 한 경찰대변인은 이 여객기가 프랑크푸르트에 본사를 둔 클라식 윙스 항공사 소속이라고 밝히고 사고로 여객기가 산산조각 났다고 전했으나 사고 원인에 대해서는 즉각 파악되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 “2차대전때 미 명분은 정당했다”/부시

    ◎“전체주의 분쇄시킨 자유·인권의 승리”/일 외상,“전쟁책임 시인… 희생자에 애도”/「진주만」 50돌… 미·일의 표정 【진주만(하와이) AFP 연합】 조지 부시 미국대통령은 7일 일본의 진주만공격 50주년 기념식행사에 참석,연설을 통해 『전체주의의 비극이 이제 종언을 고한만큼 2차대전에서의 미군의 희생은 그 보답을 받게 됐다』며 참전용사들에게 감격에 겨운찬사를 보냈다. 이날 2차대전 생존자및 가족 4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국립태평양묘지에서 거행된 기념식에서 부시대통령은 참전용사들이 『국가의 부름에 용기있게 응했기 때문에 우리는 승리했고 평화를 쟁취했다』고 엄숙한 어조로 말했다. 자신도 2차대전시 폭격기 조종사였던 부시대통령은 이어 미국의 대의명분은 『정당하고 명예로웠다』고 말하고 『우리는 어떤 국가나 인종과 싸운것이 아니고 전체주의에 대항해 자유와 인권의 존엄성을 위해 싸웠다』고 강조했다. 부시대통령은 또 일본정부에 「경제적 고립주의」를 거부토록 촉구하는 한편 미국 국민들에게도 일본에 감정적으로 맞비난하는것을 자제해줄 것을 당부했다. 【도쿄 AFP 연합】 와타나베 미치오(도변미지웅)일본외상은 8일 일본은 50년전 진주만기습으로 2차대전을 시작한데 대해 『깊이 후회하고 있다』고 밝혔다. 와타나베외상은 이날 상오 조지 부시미대통령이 하와이에서 진주만기습 50주년 기념연설을 한뒤 발표한 성명에서 이같이 밝히고 『나는 전쟁중에 목숨을 잃은 관련국및 일본의 모든 국민들에게 다시 한번 심심한 애도의 뜻을 표한다』고 말했다.
  • 종군 위안부 3명/대일 피해보상소/유족 회원 32명도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회장 김종대)는 29일 국내에 생존해 있는 종군위안부 3명이 군인,군속생존자,전상자등 유족회회원 32명과 함께 일본정부를 상대로 공식사죄와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다음달 6일 도쿄지방재판소에 정식으로 제기한다고 밝혔다. 한국인 종군위안부가 피해보상과 관련,일본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해부터 대일보상청구소송을 준비해온 유족회가입회원(1만5천여명)들을 대표한 이번 소송의 피해보상청구액은 한사람앞에 2천만엔(한화 1억1천5백만원상당)씩 총 7억엔에 달한다. 소송을 제기하는 사람은 김순자씨(68·전남거주),김학순씨(67·서울종로구 충신동),김택씨(69·부산거주)로 이들 가운데 지난 8월14일 자신의 과거를 공개적으로 밝힌 김학순씨의 경우 일본으로 건너가 직접 소장을 제출할 예정이다.
  • “남북 고위회담서 핵문제 해결하자”

    ◎노 대통령 한반도 비핵화선언/전문 국민여러분,나는 오늘 한반도와 나아가 동북아시아에 항구적인 평화를 구축하기 위한 중용한 결단을 밝히려 합니다.오늘날 세계는 반세기간의 암울했던 냉전시대의 유산을 청산하고 평화를 구현하기 위해 지난 시대에는 생각할 수 없던 과감한 조처를 이루어 나가고 있습니다.지난날의 적대세력들이 손을 잡고 인류공동의 미래를 위해 우호와 협력을 기약하고 있습니다.순식간에 인류를 파멸로 이끌 수 있는 대량파괴무기에 대해서도 획기적인 조처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미국과 소련은 핵무기의 폐기와 대폭적인 감축을 추진하고 있으며,가공할 무차별상상력을 가진 화학무기의 완전폐기를 위한 협상도 제네바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화해와 협력의 물결이 넘치고 있는 세계를 보며 우리가 사는 한반도에도 대결의 위험이 사라진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 세계에서 유독 한반도에서만 역사의 거대한 흐름과 배치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습니다.세계적으로 핵무기 폐기와 감축이 이루어지고 있는 이 시간에도 북한은 핵확산방지조약 가입국으로서 마땅히 이행해야할 의무를 거부한 채 핵무기를 제조하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고 있습니다.북한이 화학생물무기를 만들어 보유하고 있는 것도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한반도에는 동족상잔의 비극적인 전쟁이 있었고 그 후 근40년간 군사적 대결과 군비경쟁이 지속되어 왔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의 핵무기 개발은 이제까지의 문제와는 차원을 달리하는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것은 민족의 생존자체를 위협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그로인해 동북아시아와 세계의 평화가 한순간에 파괴될 수 있는 위험을 안게 되는 것입니다. 온 세계가 북한의 핵무기 개발에 큰 우려를 갖고 이를 저지하기 위해 우리와 함께 온갖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도 이때문입니다. 나는 지난 9월 유엔총회 연설을 통해 북한이 핵안전조치협정에 서명하여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고 남북한간에 군사적인 신뢰를 구축하기 위한 조처에 응한다면 한반도의 핵문제에 대하여 북한과 협의할 용의가 있다는 것을 분명히 밝혔습니다.북한은 우리의 이러한 적극적인 제의에 호응하는 대신 오히려 더욱 비현실적인 주장만을 내세우며 국제적인 의무이행에 등을 돌리고 있습니다. 나는 한반도의 핵문제를 선도적으로 해결하고 이 땅에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중대한 결단을 내리고 이를 실행하는 조처를 취해 나가기로 결정하였습니다. 나는 우리의 평화의지를 바탕으로 한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하고 화학생물무기를 이땅에서 제거하기 위하여 우리의 정책을 다음과 같이 선언합니다. 첫째,우리는 핵에너지를 평화적 목적을 위해서만 사용하며 핵무기를 제조·보유·저장·배비·사용하지 않는다. 둘째,우리는 핵무기의 확산방지에 관한 조약과 이에 따라 국제원자력기구와 체결한 「핵안전조치협정」을 준수하여 한국내의 핵시설과 핵물질은 철저한 국제사찰을 받도록 하며 핵연료 재처리및 핵농축시설을 보유하지 않는다. 셋째,우리는 핵무기와 무차별살상무기가 없는 평화적인 세계를 지향하며 화학생물무기의 전면적 제거를 위한 국제적 노력에 적극 참여하고 이에 관한 국제적 합의를 준수한다.우리는 핵과 화학생물무기를 갖지 않는 이와같은 정책을 성실히 이행해 나갈 것입니다. 이제 북한이 국제사찰을 피하며 핵무기를 개발해야 할 아무런 이유도,명분도 있을 수 없습니다. 나는 이자리에서 북한도 나의 이 선언에 상응하는 조처를 취할 것을 강력히 촉구합니다. 북한은 우리와 함께 핵재처리 및 농축시설의 보유를 분명히 포기해야 할 것입니다. 북한이 핵안전조치협정에 조속히 서명하고 이와같은 조처를 취한다면 남북한은 고위급회담을 통해 핵문제를 포함한 모든 군사안보문제를 협의,해결해 나갈수 있을 것입니다. 한반도의 제반문제는 어디까지나 남북한 당사자간의 직접협의를 통해 자주적으로 해결되어야 합니다. 나는 북한이 핵개발 기도를 하루빨리 포기하여 핵무기가 없는 한반도를 실현함으로써 이땅에 진정한 평화의 시대를 열게 되기를 7천만동포와 더불어 충심으로 바랍니다. 국민여러분,오늘 이 정책을 선언하기에 앞서 정부는 이 정책이 안보에 미칠 영향을 면밀히 검토하였으며 우리의 안보에는 흔들림이 없을 것이라는 확신위에서 이와같은 결단을 내렸습니다.나는 북한이 이 세계의 현실을 직시하여 우리와 함께 민족적 비극의 소지를 없애고 민족화합과 평화통일을 이루는 길로 나아가기를 기대합니다.
  • 비 태풍… 사망·실종 7천명으로/이재민 12만… 사상자 늘듯

    ◎3m넘는 수마… 도시 완전히 잠겨/익사자 시신·트럭 뒤엉켜 떠다녀 【오르모크(필리핀) 로이터 AFP 연합 특약】 지난 5일 필리핀 중부지대를 강타하면서 7년만에 최악의 홍수를 야기한 열대성 태풍 셀마의 피해가 시간이 갈수록 늘어나 7일 현재 3천4백명이 사망하고 3천5백명 이상이 실종됐으며 이재민도 최소한 12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레이테섬의 해안도시 오르모크에서만도 폭풍으로 인해 범람하기 시작한 다나오 저수지가 붕괴되면서 3m 높이의 물결이 마을을 뒤덮어 13만명의 주민가운데 2천명의 사망자가 확인되고 1천명 이상이 실종됐다. ○…가장 피해가 심한 오르모크에서는 시가지가 4m가 넘는 물에 잠겨있으며 어린이들을 포함한 무수한 익사자들의 시체가 가족들의 시체 및 가재도구 차량들과 함께 곳곳에 떠다니고 있으며 상어떼가 몰려와 시신을 뜯어먹고 있다고. 구조요원들은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희생자들을 트럭에 실어 공동매장하고 있으며 오르모크공동묘지 입구에는 악취를 풍기는 트럭들이 줄지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고.○…생존자들은 야채등 재고식량에 진흙이 뒤섞여 음식과 식수 부족으로 고생. 필리핀정부는 유엔에 인도적 차원의 긴급원조를 요청. ○…이번 태풍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본 레이테섬의 동부해안도시인 오르모크에서는 시신을 위한 관이 부족해 파괴된 나무판자 등을 이용,관을 만들고 있다고 목격자들은 전했다. 구조작업에 나선 적십자의 한관계자는 『시체가 없는 거리는 찾아볼 수 없었고 자동차와 트럭들은 마치 장난감처럼 물위에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고 말했다.
  • 송여인 신병확보에 수사 집중/검찰수사 중간점검

    ◎「오대양」→「구원파」→「세모」 연결 추정/집단자수 동기·행적등 정밀조사 【대전=박국평·손성진·최용규기자】 이른바 「구원파」로 불리는 기독교복음침례회및 주식회사 세모와의 관련설로 갖가지 의문과 추측이 갈수록 증폭되고 있는 「오대양사건」의 진상을 밝히기 위한 검찰의 수사가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검찰은 그동안의 수사를 통해 진상규명에 필요한 증인·증거 자료 등을 모으는데 온힘을 다하는 한편 사건해결의 중요한 열쇠를 쥐고 있을 것으로 여겨지는 송재화씨(45·여)를 찾는데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검찰은 연일 사건관련자들을 소환,증언을 수집하고 있고 세모의 유병언사장 등 27명에 대해 출국금지조치를 내려 필요할 때 소환조사할 준비를 갖추고 있다. 검찰은 폭행치사 및 사체유기등 혐의로 구속 또는 입건된 9명과 소환 조사를 받은 오대양생존자 대부분이 구원파의 신자임을 밝힌데다 「오대양교주」로 알려진 숨진 박순자씨 또한 한때 구원파에 몸담았고 구원파는 세모의 「사교」로 여겨질 정도로 세모측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음을 확인했다. 이에따라 검찰은 오대양→구원파→세모로 이어지는 연결관계를 가정,구원파와 세모사이에 송재화씨와 같은 중간매개역이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집단자수 동기◁ 검찰은 김도현씨등 자수자 6명과 자수를 권유한 것으로 알려진 이재문씨(39)등을 조사한 결과 이들이 대부분 구원파 신자이며 특히 자수자 가운데 김강규씨(31)는 구원파 지도자 권신찬목사(63)의 생질인 사실을 밝혀냈다. 그러나 이들은 자수가 「양심의 가책」때문이었을 뿐이라는 경찰에서의 주장을 되풀이하고 배후세력이 있거나 자수논의 모임에 주식회사 세모의 고위간부나 송씨가 있었다는 사실은 완강히 부인하고 있다. ▷사채의 행방◁ 1백7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진 오대양 사채의 행방에 대한 수사는 이번 사건의 가장 중요한 부분의 하나로 세모측에의 유입여부에 수사력이 집중되고 있다. 검찰의 은행계좌,수표추적결과 박순자씨의 본명 또는 가명으로 송씨에게 10억여원이 송금된 사실이 확인됐으며 이는 일부로 여겨지는데다 송씨 손에서 어디로 흘려갔는지는 명백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송씨 행적◁ 지난 84년이후 송씨는 세모가 운영하는 경기도 안성의 한스농장과 서울 청담동 태양열주택,전남 완도읍의 「별들의 아침」이라는 식당을 옮겨가며 구원파신도들과 집단생활을 한 것으로 밝혀졌다.사기혐의로 구속기소돼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지난 89년 7월20일 출감한 뒤에는 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나의 고향」과 「은성주물럭」이라는 식당에서 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송씨는 최근 오대양사건이 터지면서 종적을 감췄으며 세모측이 보호하고 있거나 사망했을 것이라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구원파◁ 지난61년 미국과 네덜란드 선교사들로부터 깨달음을 받은 권신찬목사가 대구에서 포교를 시작한 것이 시초이고 현재 전국에 15만명 정도의 신자가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검찰,「오대양」 전면 재수사/전담반 편성

    ◎자수동기·행적·자금행방에 초점/경찰,내일 피의자·기록 송치 【대전=박국평·오승호·최용규기자】 대전지검은 17일 오대양사건을 수사해온 충남도경이 김도현씨(36)등 6명이 집단자수해온 동기와 사채의 행방등에 대해 별다른 단서를 찾아내지 못함에 따라 19일 경찰로부터 사건을 송치받아 전면 재수사에 착수하기로 했다. 검찰은 오대양의 직원·신도등 생존자 70여명가운데 이 회사를 설립할때부터 관여했거나 자금거래가 있던 사람들에 대해 집중 조사하기로 했다. 검찰은 특히 이들가운데 송모씨(45·여)등이 오대양의 전신인 미얀코리아를 운영했던 박순자씨와 동생 용택씨(36)형제와 함께 서울에서 사채를 얻으러 다녔고 지난 83년 박씨로부터 3천5백만원을 은행구좌로 송금받았으며 자신에게 돈을 빌려준 사람들을 오대양에 견학시켜준 사실이 알려짐에 따라 빠른 시일내에 소환,조사할 방침이다. 경찰은 지난16일 자진출두한 이재문씨(43)와 최의호씨(31·전오대양경리과장)등 2명에 대해 이날 상오까지 사채의 행방등을 캤으나 뚜렷한 단서를 찾지못해 모두 돌려보냈다. 경찰은 이씨로부터 집단자수한 6명의 진술과는 달리 이들이 지난 2월부터 자수하기로 뜻을 모았으며 지난5일 이들을 포함,모두 15명이 이씨집에 찾아가 집단자수문제를 의논했다는 사실을 밝혀냈으나 자수동기의 진위에 대해서는 더이상 밝혀내지 못했다. 경찰은 그러나 이날 돌려보낸 최씨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오대양직원 3명의 살해·암매장사건에 가담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진술을 받아냄에 따라 18일 최씨를 다시 불러 이 사건과의 관련여부를 추궁하기로 했다.
  • 「오대양」수사 “짙은 안개속”/진전없는 수사 중간점검

    ◎「집단변사」 결정적 단서 못찾아 원점에/자수자진술 진위 확인에 수사력 집중 4년동안 의문에 싸여있던 오대양집단변사사건은 김도현씨(38·관리부차장)등 직원들의 집단자수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의혹만 증폭시킨채 또다시 미궁속에 빠질 공산이 짙어지고 있다. 이 사건 수사를 맡고 있는 충남도경은 김씨등이 지난 10일부터 한꺼번에 자수해온 뒤 1주일째 수사를 벌이고 있으나 「오대양사건」의 전모에 대해서는 당시 수사결과를 재확인하는 선에서 머물러 이렇다할 결실을 얻지 못하고 있다. 경찰은 그동안 집단으로 자수한 6명 말고도 이 사건을 해결하는데 열쇠를 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던 오대양교주 박순자씨의 동생이며 당시 오대양 전무였던 박용택씨(38)와 박씨의 남편 이기정씨(57)및 살해·암매장된 총무과장 노순호씨의 부인 박명자씨(35)등 6명의 자진출두자를 대상으로 수사를 벌였으나 『오대양사건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진술만을 받아냈다. 경찰은 김씨등이 자수한 초기부터 이들이 채권자인 박상배씨(55)를 폭행한 혐의로 4개월동안 구속된 상태였기 때문에 집단변사사건과는 관련이 없을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김씨등이 사건이 발생한지 4년 가까이 지나 세인의 관심밖으로 밀려나고 있는 시점에서,그것도 집단으로 자수해온 점이 석연치 않다는 점을 중시,집단자수 동기와 배후 및 타살여부,1백30억원의 사채등 자금의 행방 등에 대해 전면 재수사를 벌이기로 했다. 경찰은 그동안 지난 12일 폭행치사 및 사체유기 혐의로 구속된 김도현씨 등 7명과 불구속 입건된 2명 등을 포함,15일까지 모두 15명에 대해 조사를 벌였으나 살인 및 암매장 사건만을 종결지었을 뿐 4년남짓만에 다시 화제가 된 집단변사사건에 대해서는 아무런 단서를 찾지 못했다. 이들이 집단으로 자수하게 된 동기마저 이들의 진술대로 「양심의 가책」과 「박교주에게 속았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는 이유외에는 아무런 새사실을 찾아내지 못했다. 이처럼 지금까지 보여준 경찰의 소극적인 수사태도만으로는 이 사건을 해결하기에는 벅차지 않나 하는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이에대해 충남도경 채천득강력과장은 15일 『지금까지는 집단 자수한 6명과 자진출두한 사람들의 진술만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선에 머물렀으나 이제부터는 2차수사에 들어가 이들이 한 진술의 진위여부를 밝히는데 주력하겠다』고 말했다. 이에따라 경찰은 앞으로 「오대양사건」의 전모를 밝히는데 가장 중요한 열쇠인 집단자수 동기를 밝히는데 모든 수사력을 모을 것임에 틀림없다. 경찰은 경기도 용인 오대양공장 천장에서 발생한 집단변사사건의 타살여부와 사태의 행방 등 이 사건의 전모를 밝히는데 결정적인 제보가 없는한 한계에 부딪친 느낌이 짙다. 이에따라 경찰은 15일부터 집단자수한 6명이 출소한 지난 87년12월24일부터 자수직전인 지난 10일까지의 행적을 밝히기 위해 오대양 직원과 신도 등 70여명의 생존자에 대한 소재확인수사에 기대를 걸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수사과정에서 보여주듯 경찰은 아무런 단서를 찾지못해 애를 먹고 있다. 여기에다 경찰은 자수자들을 오는 18일쯤 검찰로 송치할 예정이어서 집단자수동기를 제대로 밝혀낼 수 있을지 조차 의문시되고 있다.
  • “「변사 현장」서 반나생활”/LA거주 오대양생존자 밝혀

    【로스앤젤레스=홍윤기특파원】 지난 87년 「오대양」사건당시 유일한 생존자로 현재 로스앤젤레스에 살고있는 유재순씨(여·59)는 자신은 집단변사사건이 일어난 87년 8월27일 하오1시쯤 아래층에 있는 육아원 아동들과 노인들에게 옥수수죽을 끓여주기 위해 천장에서 내려왔다고 말했다. 유씨는 또 당시 천장은둔생활은 비좁은 공간과 더위때문에 32명 모두가 극도의 탈진상태를 보였으며 대부분이 팬티와 브래지어만 걸친채 반나상태로 지내왔다고 밝혔다.
  • 박용택씨(여교주 동생) 자진출두/경찰,철야조사

    ◎“「오대양」·살해 암매장과 무관” 주장/생존자 70여명 소재 정밀추적 【대전=박국평·오승호·박대출·최용규기자】 「오대양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충남도경은 13일 수배됐던 박명자씨(35·숨진 노순호씨의 부인)와 박용택씨(38·오대양교주 박순자씨의 동생)가 잇달아 자진출두함에 따라 이들의 오대양사건 관련 여부를 집중 추궁했으나 별다른 혐의점을 찾지 못한채 이 사건 수사는 주변을 겉돌고 있다. 그러나 경찰은 전오대양 직원 가운데 또다른 희생자가 있는지의 여부를 캐기 위해 당시의 전직원을 대상으로 전면 소재 파악에 나섰다. 경찰은 또 오대양 관련자의 뒤늦은 집단자수가 4년전 용인에서 일어났던 오대양 집단 변사사건뒤 행방이 묘연한 사채 1백억여원 등의 재산을 둘러싼 조직간의 이권다툼 때문이거나 조직을 부활시키기 위한 역공작일 가능성에 대해서도 수사를 펴고 있다. ▷박용택씨 출두◁ 박씨는 이날 하오5시50분 경찰에 자진출두,철야조사를 받았다. 박씨는 경찰에서 『최근 각 언론의 보도가 너무나 왜곡돼 진실을 밝히기 위해 나왔다』며 자신이 오대양사건 및 노씨 등의 살해,암매장사건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고 모든 의문사실을 강력히 부인했다. 특히 박씨는 『오대양 계열인 공영정밀전무로서는 일반행정업무만을 담당했을 뿐 자금문제는 누나 박순자씨가 직접 관리했다』며 이날 상오에 자수한 박명자씨와 같은 진술을 했다. 박씨는 지난 84년10월 누나 박씨의 부탁으로 오대양에 입사,전무로 있으면서 일반업무를 처리했으나 오대양의 교리와 집단생활방식이 맞지 않아 85년9월 오대양집단을 떠났다고 말했다. 박씨는 또 자신이 의심을 받고 있는 지난 85년의 황숙자씨 살해,암매장사건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주장,경찰은 박씨로부터 더이상의 혐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박명자씨 출두◁ 이날 상오1시40분쯤 경찰에 출두한 박씨는 『집단변사사건은 물론 남편 노씨등 3명의 살해,암매장사건과도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모두 부인했다. 그러나 박씨는 『남편이 살해당한 사실은 살해 직후인 87년8월19일 교주 박순자씨로부터 직접 들어 알고 있었으나 자칫하면 생명을 잃게되는 당시 오대양의 분위기 때문에 입을 열 수 없었다』고 진술했다. ▷오대양 출신자 소재 수사◁ 경찰은 박명자씨가 남편의 살해사실을 즉시 알고도 지금까지 입을 다물고 있었던 「오대양의 생리」를 감안,이들 말고도 피해자가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오대양의 직원이었던 모든 출신자의 소재수사에 나서기로 했다. 경찰은 87년 당시 오대양의 직원을 박순자씨를 사장으로 한 오대양에 40명,이복동생인 박용택씨가 전무로 있던 공영정밀(오산)에 25명등 모두 65명으로 파악,자수한 직원 9명,살해 또는 암매장당한 4명,집단변사한 4명(나머지는 신도들)을 빼면 생존자가 당시직원 50여명과 가정부등 70여명선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장검증◁ 경찰은 13일 상오11시20분부터 대전지검 송해은검사의 지휘로 대전시 서구 가수원동 구 오대양사무실에서 현장검증을 실시했다. 자수한 직원 9명을 비롯,박명자·정하진씨등 11명이 나온 이날 현장검증에선 숨진 황숙자씨(당시 40·여)의 구타부분을 시작으로 오대양총무과장 노순호씨의 1·2차폭행,살해,암매장장면이 20평가량의 시멘트블록건물인 오대양사무실과 동구 하소동 오대양농장창고(8평가량)에서 차례로 진행됐다.
  • 「오대양」의 실체는?/배후세력 있을까

    ◎관련자 자수에도 증폭되는 「의혹」/거액 사채 싸고 「조종」­「생존」세력간 다툼 추정/실체 노출·제2살인 숨기려 자수강요 풀이도 「한국판 인민사원사건」으로까지 불려지고 있는 「오대양 집단변사사건」과 살인암매장사건을 낳은 「오대양」의 실체는 무엇이며 과연 배후조종세력은 있을까. 동료를 살해,암매장했던 오대양직원들의 집단자수를 계기로 4년전 32명이 집단변사한 사건이 재조명되면서 온갖 의혹이 증폭돼 배후세력의 실존여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암매장 사건의 수사과정에서 점차 김도현씨(38)등 자수자들이 뭔가에 쫓기고 있는듯한 인상을 강하게 풍기고 있는 것이다. 김씨 등의 자수동기및 행적을 보면 배후세력으로부터 신변의 위협을 느꼈거나 압력또는 협박에 못이겨 자수의 길을 택했을 가능성도 있다. 배후세력이 실체가 탄로될 지경에 이르렀거나 또다른 부정을 숨기기 위해 김씨 등을 자수시킨게 아니냐는 논리도 나오고 있다. 이와함께 오대양과 관련된 생존자들끼리 행방이 묘연한 사채 1백70억원을 둘러싸고 이권다툼을벌이다가 조직을 부활시키려는 세력과 「배후세력」이 알력을 일으켜 상대적으로 약세에 놓였던 「부활세력」이 쫓겨 경찰에까지 오게된 것이 아니냐는 추측도 가능하다. 집단변사한 교주 박순자씨는 오대양을 세우기 전 모종파에 관련돼 있었으며 13일 새벽 경찰에 출두한 숨진 노순호씨의 부인 박명자씨(36)와도 이때부터 알고 지낸 각별한 사이로 알려져 다른 종교와의 관련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당시 오대양의 계열회사인 오대양과 공영정밀에는 모두 65명이 있었으며 사건이후 생존한 직원 53명과 신도들은 조직이 와해돼 대부분 흩어져 있는지 아니면 또다른 종교집단을 구성해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지는 일체 알려져 있지 않다. 배후조종세력의 존재가능성은 자수한 김씨 등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우선 자수한 김씨등이 채권자 이상배씨를 폭행한 혐의로 집단변사사건이 일어난 날보다 5일 전인 87년8월24일 구속돼 이 사건과는 직접 관련이 없다고 주장하는 대목에 미심쩍은 부분이 있다. 채권자 이씨는 변제의사가 없던 오대양측으로부터 『돈을 갚아 줄테니 어음을 모두 갖고 오라』는 전화를 받고 김씨등과 만나 집단폭행을 당했고 이 때문에 김씨등이 구속됐다.이는 살인을 은폐하기 위해 철창행을 택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낳게 하고 있다. 또 노씨가 살해된 87년8월19일 주택은행 대전지점에서 노씨의 저금통장으로 50만원이 인출됐으며 4일 뒤인 23일에는 경기도 오산의 야산입구에 노씨의 승용차가 버려져 있는 등 누군가가 사건을 조작하려 한 점도 눈에 띈다. 또 집단변사사건의 경우에도 박씨가 가장 먼저 살해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당시 이 단체에서 신처럼 떠받들고 있던 교주 박씨를 신도가 살해할 수 있겠느냐 하는 의문과 함께 살해된 장소의 정황으로 보아 적어도 건장한 청년 10여명이 동원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도 함께 나왔다. 따라서 이들을 조종할 수 있는 진짜 실력자인 인물 또는 조직은 어떤 것인가라는데 초점이 모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에 대해 당시 교주 박씨의 상위에 있는 종교집단이나 정치적인 폭력집단의 소행일 수도 있다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또 사건해결의 핵심인물로 지적돼온 숨진 노씨의 부인 박명자씨가 뒤늦게 경찰에 출두,『남편의 피살소식을 교주 박씨로부터 전해 들었다』면서 자신은 사채의 향방과 관련없다고 주장하는 것도 배후세력이 수사에 혼선을 줄 목적으로 조종한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게 하고 있다.
  • 구동독 치하 투옥인사 복권작업 활발/베를린=이기백(특파원코너)

    ◎군재등서 “유죄”… 15만명 억울한 옥살이/정부 명예회복 추진… 6만명 복권신청/연내 법개정… 보상금 인상 구동독 치하에서 정치적인 이유로 투옥되었던 인사들에 대한 복권작업이 최근 들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소련 군사재판 또는 구동독 정권에 의해 부당하게 유죄선고를 받은 사람은 15만여 명에 이르며 이 가운데 2만7천여 명이 소련 군재에 의해 투옥됐던 것으로 집계되었다. 현재 복권신청중인 사람은 6만여 명. 독일정부는 올해 안에 이들에 대한 복권절차를 단순화해 명예회복이 빨리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한편 형편없이 낮은 보상금을 대폭 인상할 방침이다. 킨켈 법무장관은 독일 분단의 희생자인 이들에 대한 복권이 늦어지고 있는 데 대해 『통일 후 구동독지역 법원들이 겪고 있는 법관 부족사태 때문』이라고 밝히고 『구서독의 각주들은 법관들을 구동독지역으로 파견,이들의 복권수속이 신속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협조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독일정부는 구동독 판사들이 이들에 대해 유죄판결을 내린만큼 복권업무에서 구동독 판사들을 배제시키고 구서독 판사들을 참여시켜 결정을 내리도록 했으나 구동독지역 법원에서 근무하기를 희망하는 판사가 적어 복권업무가 차질을 빚고 있는 것이다. 독일통일조약은 「정치적인 동기로 형을 선고받거나 합법적인 절차가 아닌 방법으로 투옥된 희생자들을 구제하기 위해 통일 후 지체없이 법적 제도를 마련,소정의 절차를 밟아 복권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복권과 동시에 이에 상응하는 보상도 받을 수 있도록 돼 있다. 통일조약 체결 직후 치러진 자유선거에 의해 구성된 구동독 의회는 복권법을 제정,형법에 의한 복권규정·연합군 점령시 투옥자에 대한 복권규정·부당한 법집행에 따라 전과자가 된 사람들에 대한 복권규정 등을 마련했다. 이 복권규정에 따르면 1945년부터 55년 사이에 소련 군재에 의해 형을 선고받은 독일인들은 복권대상에서 제외토록 되어 있다. 이는 소련 군사재판에 의해 결정된 판결을 독일 법정에서 다시 다룰 경우 소련의 주권이 손상당할 소지가 있다는 모스크바측의 주장이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이 규정으로 인해 소련군이 동독을 통치했던 45년부터 50년까지 소련군에 의해 검거돼 소련 수용소에서 옥살이를 했거나 사망한 사람과 후에 재판도 받지 않고 석방된 사람들은 복권대상에서 제외되게 됐다. 45년 소련군은 동독 진주와 함께 비밀경찰을 동원,나치군대에 복무했던 군인들과 정치인,12세 이상의 독일인 가운데 소위 위험인물들을 가려내 나치가 사용했던 전쟁포로수용소와 집단수용소에 감금했다. 많은 사람들이 수용소에서 죽었으며 이들 가운데는 억울하게 끌려온 사람들도 많았다. 구동독 정부가 들어선 1년 후인 50년 소련군의 수용소는 폐쇄되고 생존자들은 재판도 받지 않은 채 석방되었다. 점령군의 지위에서 소련군은 독일인들에 대한 재판권을 55년까지 행사했으며 군재에 의해 대지주·기업가·공무원·각종 자영업자들이 유죄판결을 받고 그들의 재산을 몰수당했다. 소련측의 집계에 따르면 45년부터 50년까지 이들 수용소에 억류되었던 독일인들은 모두 12만2천6백71명이었으며 이 가운데 4만5천2백62명이 석방되고 1만4천2백2명이 동독정부에 인계되었으며 1만2천7백70명이 소련으로 이송되었다. 또 4만2천8백89명이 수용소 생활중 사망했으며 7백56명이 군사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들은 현재 구동독이 마련한 복권법에서는 복권대상에서 제외되어 있어 앞으로 구조방법을 놓고 격론이 일 것으로 보아진다. 그러나 소련군이 수용소를 폐쇄하면서 50년 켐닛츠시 지방법원에 인계해 발트하임수용소에서 재판을 받은 3천5백여 명은 독일법정에서 판결을 받았기 때문에 다른 수용자들과는 대조적으로 복권의 대상이 되고 있다. 「발트하임 법정」으로 알려진 판결과정에서 피고인 한명당 재판시간은 불과 몇분에 지나지 않았으며 이같은 속성판결에서 수백명이 10∼25년의 징역형을,32명이 사형을 선고받아 이 중 26명이 교수형에 처해졌다. 이같은 이유로 같은 무렵에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일지라도 어떤 사람은 복권이 되고 어떤 사람은 복권대상에서 제외되는 등 형평성을 잃고 있어 킨켈 법무장관은 올해 안에 복권법의 불합리한 점을 개정하겠다고 강조하고 있다. 한편 분단의 희생자들에 대한 복권방법과 함께 이들에 대한 보상금 지급액수와 보상방법 등도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복권법에는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복권된 사람들에게 형기가 2년 미만일 때는 한달에 80마르크(3만3천6백원)씩,2년 이상인 때는 한달에 2백70마르크(11만3천4백원)씩 환산해 보상하도록 되어 있어 2년 복역자의 경우 1천9백20마르크밖에 안 된다. 이 때문에 독일정부는 복권법을 개정,보상금 액수를 현재보다 4∼5배까지 인상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한편 복권대상자 보상의 경우 수용소에서 석방된 뒤 구 동독지역에서 살아온 사람과 구 서독으로 넘어와 생활한 사람들을 구별해야 한다고 킨켈 법무장관이 최근 시사해 관심을 끌고 있다. 킨켈 장관의 주장에 따르면 출소 후 서독으로 넘어와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자신의 정치적 소신과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사람과 계속 구 동독에 머물러 있으면서 억압을 받아왔던 사람과는 엄연히 차등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구 동독의 과도의회가 마련한 보상법이 획일성을 띠고 있는반면 킨켈 장관의 주장은 개인적인 상황을 고려하고 있다는 점에서 보상방법을 놓고 사회주의적인 방법과 민주주의적인 방법이 갈등을 빚고 있는 것 같아 그 결과가 주목된다.
  • 인 열차습격,1백26명 사살/시크교민병대

    ◎힌두교도 대상 자동화기 난사 【루디아나(인도) 로이터 연합】 인도의 시크교 민병대들이 15일 펀잡주에서 운행중인 두 열차를 정지시켜 승객 중 힌두교도들을 골라내 1백26명을 사살했다고 경찰과 생존자들이 16일 밝혔다. 경찰은 약 10명씩으로 구성된 시크교 민병대 2개 그룹이 15일 펀잡주내 루디아나시 부근에서 같은 시간대에 두 열차를 점거,각각 인근역 부근에 정지시켜 시크교도 승객들은 내리게 한 뒤 여성과 어린이들도 포함된 힌두교도들을 열차내 좁은 통행로에 줄세워놓고 자동화기를 발사했다고 말했다.
  • “오 여객기 폭발사고 폭탄테러는 아닌듯”/태 공항당국·오 경찰

    【방콕 AP 연합】 공중폭발한 오스트리아 라우다항공 NG040 편 보잉767 여객기의 수색작업을 벌이고 있는 태국경찰은 27일 수백명의 구조대를 동원,밀림지대를 샅샅이 뒤졌으나 생존자는 발견하지 못했다. 한편 사고원인을 조사중인 태국공항 당국은 폭발물에 의한 공중폭발 가능성을 배제했으며 오스트리아경찰도 태국측의 견해를 뒷받침했다.
  • 소,KAL참사 진상밝혀야(사설)

    83년 소련의 대한항공(KAL) 민간여객기 격추사건이 다시 한번 새로운 충격과 분노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 KAL기 사건에 관한 일본 TV의 최근 보도에 접하면서 느끼는 분노요 충격이다. 사건자체의 야만적이고 비인도적인 성격에 대해서는 물론 7년반의 긴세월이 지나고 소련도 변했으며 수교까지 이루어졌는데도 사건의 진상은 밝혀지지 않고 있는 데 대한 분노요 충격이며 실망이다. 일본 아사히 TV는 KAL기를 직접추격한 소 전투기조종사 오시포비치와의 회견을 통해 충격적인 당시의 사건화면과 함께 그동안 소련정부가 밝혀온 사실과는 다른 새로운 사실들을 폭로했다. 민간항공기임을 알고 있었으며 충돌방지용 점멸 등이 켜져있었고 경고용 예광탄이 아니라 장갑탄으로 경고사격을 가했다는 것이다. 그밖에도 현장수색에 참가했던 잠수부들의 증언을 통해 블랙박스도 인양되고 많은 유체와 잔해도 인양된 것으로 보도되었다. 이러한 내용들은 그동안 소련 정부가 공식적으로 밝혀온 내용들과는 정반대인 것이다. 발설자가 격추의 장본인이란 점에서 그리고 그내용이 대단히 구체적이며 현장사진의 증거물들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소정부의 공식발표 보다는 훨씬 신뢰감을 주는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을수 없다. 특히 이번 보도는 지난 1월 소련정부기관지 이즈베스티야의 KAL기 격추사건관계폭로 시리즈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진 것이며 이때도 비슷한 내용이 보도되었었다. 소련정부는 그간 거짓을 발표해 왔으며 숨기고 있는 비밀이 많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는 것이다. 소군부가 이즈베스티야의 보도를 억제하기 위해 압력을 가했던 사실도 우리는 알고 있다. 소정부가 진실의 은폐를 기도하고 있다는 증거라 하겠다. 진실은 밝혀져야하며 밝혀질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환기시키지 않을수 없다. 그리고 진실의 은폐가 가져오는 무리와 부작용이 어떤 것인가를 소련정부 당국자는 하루속히 깨달아야 할 것이다. 희생자의 유해를 인양해 비밀리에 화장해버렸다는 보도가 있는가 하면 생존자가 있어 소련내 어디선거 수용되어 있다는 보도도 있어 소련정부가 서둘러 부인해야하는 사태도 연출되었다. 소련은 그동안 우리정부의 진상해명 요청에 대해 진상을 조사중이니 기다려달라는 회답으로 일관하는 미온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그런 소련에 대해 우리는 실망하지 않을수 없다. 오늘의 소련은 KAL기 격추 때의 소련이 아니다. 고르바초프의 개방과 개혁,그리고 민주화가 진행되고 있는 새 소련인 것이다. 그래서 우리와의 국교도 수립하고 경제협력도 추진하고 있다. 과거의 불행했던 사건의 진실을 조속히 밝히는 것은 민주화 새 소련의 의무요,책임이라고 생각한다. 진심으로 뉘우치는 사죄의 행동적 실천인 것이다. 새로운 소련관계의 발전을 위해서도 필요한 순서라고 생각한다. KAL사건 규명에 대한 새 소련의 신사고를 촉구하고 싶다. 소련의 호응을 유도하는데 그동안 우리정부도 너무 소홀하지 않았나 하는 반성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대소관계도 중요하다. 그러나 건전하고 바람직한 한소관계의 발전을 위해서도 진실의 규명과 그것을 토대로한 사건의 청산은 필요한 것이다. 정부의 보다 적극적인 관심과 노력을 촉구한다.
  • 전후 이라크·쿠웨이트 어떻게 될까

    ◎“후세인 축출” 군부 쿠데타 가능성 고조/독재정권 붕괴로 정정불안 가속/이라크/일단 왕정복귀… 민주화 진통 예상/쿠웨이트 걸프전 이후 이라크의 새로운 지도자는 누가 될까. 쿠웨이트는 왕정체제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을까. ▷이라크◁ 걸프전쟁이 이라크의 수세속에 마무리 단계로 접어들어감에 따라 후세인의 운명과 집권대체 세력의 향방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후세인의 운명은 이번 전쟁이 마무리 되는 모양새에 따라 아직도 여러가지 가능성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굴욕적인 항복을 요구하는 미국의 자세로 볼 때 후세인이 종전후까지 권력을 유지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후세인은 계산착오와 무모함 때문에 이라크 군부내로부터도 반발을 사고 있으며 이라크 국민들의 반정부 시위도 간간히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현상황에서 이라크의 정권교체 가능성은 군부내 쿠데타,다국적군의 후세인 제거 등 몇가지로 나눠 예상해 볼 수 있다. 이라크 군부내의 쿠데타는 이번 전쟁이 당초 의도대로 쿠웨이트합병이나 아랍의 단결을 성취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결과적으로 수많은 이라크 국민들의 생명과 재산피해,아랍의 분열만 초래했기 때문에 후세인이 그 책임을 져야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있음직하다. 후세인이 일선 부대와 연락하기도 힘들정도로 감시체제가 느슨해져 군부내 불만세력의 행동이 자유로워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있다. 종전후 후세인의 입지강화를 위해 당연히 뒤따를 대규모 군부 숙청 대상에 포함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도 쿠데타 가능성을 더해주는 요인이다. 다국적군의 공격에 의해 후세인이 제거될 경우 우선 당장에는 집권층 내부에서 권력승계가 이뤄지겠지만 결국은 쿠데타의 악순환 등 정정불안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다. 이 과정에서 미국·소련·시리아 등 중동지역에서의 패권을 노리는 강대국들이 자신들의 이익에 부합되는 꼭두각시 정권을 세우기 위한 각축전도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이라크내에는 20년 이상 지속된 철권통치 때문에 겉으로 드러난 반정부 세력이 존재하지 않고 있다. 회교 원리주의파,공산주의파,후세인에 의해 축출된 군장교단파,왕정파 등 수십종류의 반정부 단체가 해외에서 활동하고 있기는 하지만 국내기반이나 영향력면에서 미미한 실정이다. 17개 반정부 단체가 지난해 12월 시리아의 다마스쿠스에 모여 반후세인 연합전선을 결성하고 시리아·사우디아라비아·미국 등과 접촉을 활발히 하고는 있으나 큰 기대를 받지는 못하고 있다. ▷쿠웨이트◁ 6개월여만의 쿠웨이트 해방이 눈앞의 현실로 다가옴에 따라 쿠웨이트 왕정체제의 변화여부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자진 철수하든,쫓겨나든 간에 일단 이라크군이 쿠웨이트에서 물러나면 지난해 8월2일 사우디아라비아로 피신해 갔던 알 사바왕가의 망명정부가 당연히 복귀하겠지만 사바왕정이 앞으로 얼마만큼의 민주화 조치를 실천에 옮길 것인지,궁극적으로 왕정체제 자체가 붕괴되지는 않을 것인지가 많은 사람들의 궁금증을 불러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사바왕은 일단 정부가 회복되면 쿠웨이트를 보다 민주화 시키겠다는 입장을 망명기간 동안 거듭 강조해 왔다. 그러나 사바왕이 최근 한 인터뷰에서구체적인 계획은 제시하지 않은채 민주화를 실시하겠다고 말하면서 의회제도만은 계속 허용하지 않겠다고 밝힌 것으로 미뤄볼때 앞으로 쿠웨이트의 정치상황이 순탄치만은 않을 전망이다. 지난 62년 제정된 헌법에 명시된 의회가 지난 86년 정정불안을 이유로 해산돼 상당수 국민들의 원성을 샀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의회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것은 본질적인 변화는 거부한채 피상적인 변화만을 추구하겠다는 의도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이라크군이 침공에 앞서 국경지대에 병력을 증강할때 아무런 대비를 하지 않았다는 비판과 침공개시 수시간전 파드 사우디국왕으로부터 사전연락을 받고 도주했다는 구설수에까지 올라있는 사바왕으로서는 의회를 통해 이같은 불만이 공개적으로 여론화될 것을 우려하겠지만 의회가 없다고 해서 국민들의 불만이 사그러들지는 미지수다. 미국의 입장에서도 향후 중동안보구조를 의식,다루기 쉬운 왕정형태를 최소한 유지하되 민중봉기를 통한 정부전복을 예방할 수 있도록 민주화압력을 가중시킬 것으로 보인다. 쿠웨이트는 이번 전쟁으로 유전의 25%가 파괴되는 등 국가전체가 만신창이가 돼 복구하는데만도 총 6백억달러의 투자와 수년의 기간이 소요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2천∼5천명의 사망자와 생존자들의 비참한 생활은 보상받지도 못할 형편이다. 쿠웨이트 국민들은 이제 전후복구의 부담과 함께 새로운 정치체제 개척의 소임마저 짊어지게 된 것이다.
  • 다국적기 미사일 2발 방공호에 떨어져

    ◎이라크 민간인 500명 사망/아지즈외무,17일 방문 【바그다드·모스크바·니코시아 외신종합연합】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이 처음으로 걸프전의 평화적 해결을 시사하고 있는 가운데 13일 새벽(현지시간) 다국적군 공군기들이 발사한 미사일 2발이 바그다드 시내의 한 지하 대피소에 명중,5백여명의 이라크 민간인들이 사망했다고 현지 목격자들과 민방위 관계자들이 밝혔다. 목격자들은 다국적군 전폭기들이 이날 상오4시(한국시간 상오10시)쯤부터 시작된 바그다드 공습도중 발사한 미사일 가운데 최소한 2발이 바그다드 시내 알 아메리에 구역에 있는 지하방공호 입구에 명중했으며 구조대원들이 무너진 건물안에서 8명의 생존자를 구출했다고 전했다. 한편 이라크방송은 후세인대통령이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 대통령의 특사인 예브게니 프리마코프와 회담한 자리에서 『이라크는 걸프정세를 포함한 이 지역의 핵심현안들에 대한 평화적이고 정치적이며 동등하고 존경할만한 해결책을 찾기 위해 소련 등의 국가들과도 협력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햇다고전했다. 소련 대통령 보좌관인 이그나텐코는 이날 뉴스브리핑에서 타리크 아지즈 이라크 외무장관이 오는 17일 모스크바를 방문,18일 아침 고르바초프 대통령과 회담을 가질 예정이라고 전하고 이 회담의 목적은 양국관계를 지속시키는 데 있다고 밝혔다.
  • 부동산 취득·등록세 감면 폐지/93년부터 공시가의 100% 과세

    ◎내무부,감면률 연차인하 방침/검인 계약서도 없애기로/우선 올해 40%로 낮춰 납세액 갑절 올라 관인계약서의 사용을 권장하기 위해 현재 부동산에 대한 취득세 및 등록세를 부과할때 거래가격의 일정률을 감면해 주는 제도가 오는 93년부터 폐지되며 공시지가의 1백%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게 된다. 이와 함께 부동산 중개업자 및 부동산을 사고 판 사람의 탈세를 막기 위해 시행하고 있는 검인계약서 제도도 폐지된다. 8일 내무부에 따르면 부동산등기 신청때 부과하는 취득세와 등록세를 지난해까지는 신고된 거래가격의 30%에만 세금을 부과했으나 올해부터는 지난해 9월 건설부에서 발표한 공시지가의 60%에까지 과세하고 92년에는 80%를,93년에는 1백%를 적용키로 했다. 미성년자·부녀자 등의 부동산 취득과 투기를 막기 위해 국세가운데 상속세와 양도소득세는 그동안 과세표준액에 의해 과세해오다 올해부터 공시지가의 1백%를 적용하고 있다. 내무부가 취득세 및 등록세의 거래가격 적용률을 이같이 조정함에 따라 올해 부동산 거래자의 실제 납세액은지난해보다 2배가량 높아지게 됐다. 내무부의 이같은 방침은 부동산 거래질서를 확립하고 중개업소 및 매매자의 세금포탈을 막기 위해 지난88년 9월부터 검인계약서 제도가 시행되면서 당초 취지와는 달리 대부분의 경우 취득가액을 실제보다 낮게 신고하거나 시가표준액 정도만을 신고하고 있어 아무런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회원들은 이날 시민들에게 나눠준 유인물에서 『일제하의 정신대 징집은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범죄행위』라고 지적하고 ▲일본측의 공식사과 ▲희생자 위령비 건립 ▲정신대 생존자 및 유족들에 대한 배상 등 6개항을 요구했다.
  • 45년전 교토항수송선폭발…한인5백명 급사/“일군의 계획적폭파사건”

    ◎미군 조사문서 발견 【도쿄=강수웅특파원】 태평양전쟁 종료 직후인 1945년 8월 하순 다수의 한국인을 태운채 교토(경도)의 마이쓰루(무학)만에서 의문의 폭발로 침몰한 일본 해군 특별수송함 우키시마마루(부도환·4천7백30t)의 생존자가 그해 12월 미군 조사과정에서 『이 배의 폭침은 일본군에 의한 계획적이고 잔혹한 폭거』라고 고발한 문서가 일본 국회도서관의 연합군 총사령부(GHQ) 문서속에서 11일 발견됐다. 이 배의 폭발진상은 아직도 베일에 싸여 있는데 기록으로 남아있는 생존자의 증언 및 점령군의 조치가 밝혀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증언은 ▲배에 상비되어 있던 구명구 등을 바다에 던지는 것을 목격했으며 ▲한국인들이 선실에 들어가도록 선원들로부터 명령을 받은 직후 폭발이 일어났고 ▲폭발전에 소형발동선이 다가와 주요인물 4∼5명을 태워갔으며 ▲당시 만내에는 적기가 꽂혀 있었는 바 우키시마마루가 이 깃발을 넘는 순간 폭발이 일어났다고 생생하게 기술되어 있다. 우키시마마루는 종전 직후의 혼란기인 45년 8월22일 아오모리(청삼)현의 시모기타(하북) 반도에서 강제노동을 하고 있던 한국인 징용자와 가족 다수를 태우고 부산을 향해 오미나토(대주)항을 떠난뒤 이유가 밝혀지지 않은채 마이쓰루항에 기항하려다 8월24일 만내에서 폭발하는 바람에 한국인 5백24명과 해군승무원 25명이 사망한 바 있다.
  • 사고버스,불법영업 자가용/보험도 안들어 보상금 논란 클듯

    ▷사고버스◁ 사고버스는 지난해 11월22일 아시아자동차에서 출고된 대형버스로 운전사 함석동씨(40ㆍ서울 마포구 도화동 376의18)는 보험에도 가입하지 않고 자가용 번호판을 달고도 「신동양고속관광」이라는 유령회사이름을 차체에 새기고 불법영업행위를 해오다 사고를 낸 것으로 경찰조사결과 밝혀졌다. 특히 함씨는 운수사업법 위반 6건,폭력행위와 사기 등 19건 등 전과 25범으로 그동안 불법영업행위로 6번이나 경찰에 입건되었으나 계속하여 불법영업을 해온 것으로 보인다. 한편 사고버스를 타고 서울로 돌아오다가 속초에 사는 친척을 병문안하기 위해 인제시내에서 내리는 바람에 기적적으로 화를 면한 승객 김경숙씨(36)는 『버스가 처음 서울을 출발할때는 남자 21명과 여자 22명(운전사 함씨부인 포함)이 타고 있었으며 상오11시20분에 백담사에 도착하여 점심을 먹고 전전대통령 부부를 접견한 뒤 하오2시30분에 백담사를 출발했었다』고 말했다. 김씨의 진술에 따라 경찰은 사고당시 버스에는 운전사 함씨 이외에 모두 42명의 승객이 타고 있었으며 이 가운데 20명이 숨지고 21명이 구조된 것으로 미루어 실종자는 1명인 것으로 보고 있다. ▷사고수습◁ 사고가 나자 강원도는 성로방 부지사와 김기수 도경국장을 현장에 보내 구조작업을 벌이는 한편 사고수습대책본부(위원장 고제현 인제군수)를 구성,생존자치료 및 분향소설치ㆍ유족보상대책 등을 마련중이다. 그러나 사고차량이 보험에도 가입하지 않은 무허가 자가용영업이어서 피해보상 등 대책마련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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