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생존자
    2026-08-09
    검색기록 지우기
  • 지역 돌봄
    2026-08-09
    검색기록 지우기
  • 피고
    2026-08-09
    검색기록 지우기
  • 대학원
    2026-08-09
    검색기록 지우기
  • 조직력
    2026-08-09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5,096
  • 몸 데고 맘 데고 다시 쪽방 갇힌 삶

    몸 데고 맘 데고 다시 쪽방 갇힌 삶

    “더 이상 몸 누일 방 한 칸 없어 쫓겨 다니지 말고, 편히 쉬세요….” 25일 오전 10시30분 서울 남대문경찰서 뒤 ‘쪽방촌’. 화재로 시커멓게 그슬린 건물 맞은편 담장 아래에는 조촐한 빈소가 차려졌다. 이틀 전 화재로 숨진 이모(49)씨의 길거리 추모식. 거리에서 살다간 그는 죽어서도 거리에 남았다. 얼굴 없는 영정 사진 앞에 국화 몇 송이만 놓였고, 난데없는 봄바람에 향불도 붙지 않았다. 빈소는 초라했고, 분향소 앞에 모인 사람들도 더 없이 가난했다. ●1평 남짓한 쪽방촌엔 750명의 고단한 삶이 오랜 노숙자 생활을 했던 노숙인당사자모임 한울타리회 대표 송주상(35)씨는 “살아보겠다고…,1평도 안 되는 방에서 죽지 않겠다며 발버둥친 사람에게 왜 이런 일이 생기냐.”며 울부짖었다. 이씨가 화재로 숨진 서울 중구 남대문로5가동 614번지 4층짜리 건물. 이 건물 3층에는 미처 챙기지 못한 신발과 옷가지들이 검은 재로 바스라졌고, 탈출 과정에서 뜯어낸 철창살만 창틀에 매달려 대롱거렸다. 화재 당시 잠을 자던 11명 중 1명은 숨졌고, 5명은 병원 치료중이며, 5명은 회현동사무소의 주선으로 인근 쪽방으로 거쳐를 옮겼다. 불구덩이 쪽방에서 살아나온 이들은 다시 쪽방으로 들어갔고, 화재 건물 1·2층 사람들 또한 하루 방값 7000원을 내며 힘든 삶을 이어가고 있다. 화마(火魔)로 상처를 입었지만 이들의 삶은 쪽방을 벗어나지 못하는 ‘쪽방에 갇힌 삶’이었다. 중구청에 따르면 쪽방촌에는 700가구 750여명이 생활하고 있다. 중구청은 화재 피해자들을 ‘긴급복지 대상자’로 지정, 최장 2개월까지 월 26만원을 지원할 방침이다. 적십자사에서 제공한 회색 트레이닝복을 입고, 생존자 몇몇이 잿더미에서 건진 가재 도구들을 날랐다. 창문을 통해 탈출한 이모(55)씨는 “공기도 안 통하고 빛도 안 들어오는 곳이지만, 방안에서 잔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했다.”며 불탄 방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추모(52)씨는 골목길에 쪼그려 앉아 한숨 섞인 담배연기를 내뿜었다. 그는 “외환위기 직후부터 거리를 떠돌다 이곳에 와 3년을 살았다.”면서 “팬티 한 장 빼고는 모두 다 타버렸다. 며칠 동안 잠도 못자고 밥도 못먹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비통해 했다. 노후화된 건물, 다닥다닥 붙은 건물구조, 부엌 한 칸 없어 방에서 밥을 지어먹어야 하는 현실 등 쪽방촌은 화재 위험에 노출돼 있다. ‘노숙인복지와 인권을실천하는사람들’ 이동현 상임활동가는 “화재 사고로 사람이 죽어야 쪽방 문제가 잠시 이슈화되지만 화재만이 문제의 전부는 아니다.”라고 말했다.1평이 채 안 돼 발도 제대로 못 뻗는 공간, 사방이 꽉 막혀 원천적으로 차단된 빛과 공기, 여름이면 방이 있어도 노숙을 자청할 만큼 더운 실내온도 등 주거환경 전반이 더할 수 없이 열악하다. 화재 건물에서 2년 동안 살았다는 50대 남성은 “옆방에 아픈 사람이 있으면 바로 전염된다.”며 밀집 공간의 비위생성을 지적했다. ●화재·전염병 위험에 노출 김윤이 한국도시연구소 연구원은 “쪽방의 입지 조건이 좋으니까 도시 개발 과정에서 항상 철거 위협에 놓여 있다.”면서 화재 건물 뒤편 쪽방촌을 헐고 들어서는 고층 빌딩들을 예로 들었다. 이동현 활동가는 “화재 대책을 넘어 쪽방 거주민 및 노숙인 정책 전반에 대한 검토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추모식을 마친 직후 빈소 앞을 지키던 쪽방 주민들과 건물 임대 업자들 사이에서 고성이 오갔다. 임대 업자들은 “죽은 사람 쳐다보는 거 불쾌하다. 담장에 빨래 널어야 하니까 빈소 정리하라.”고 요구했다. 송주상씨는 “아저씨들을 상대로 돈을 벌면서 너무한 것 아니냐. 우리도 사람이다.”라고 소리쳤다. 송씨의 말은 너무도 절절했다.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승희야, 널 미워하지 않아…”

    |블랙스버그 이도운특파원·서울 안동환기자|“승희, 네가 그토록 필요했던 도움을 받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돼 슬프구나. 네게 하느님의 축복을 기원해.”(바버라).“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자리잡은 분노가 이제 용서로 바뀌기를….”(데이비드). 20일(이하 현지시간)은 33명의 버지니아 공대 총기참사 사망자를 기리는 ‘애도의 날’이었다. 미국 전역에서 정오를 기해 조종이 울려 퍼졌고 희생자들을 위해 묵념했다. 비극의 현장인 버지니아 공대 캠퍼스에서는 33차례에 걸쳐 종소리가 울렸다. 그때마다 사망자를 상징하는 풍선이 하나씩 하늘로 올려 보내졌다. 찰스 스티거 총장 등 학교 관계자는 공식 희생자는 범인 조승희씨를 포함해 33명이라고 강조했다. 탄식과 흐느낌. 가슴을 에는 고통과 슬픔. 지워지지 않는 참사의 흔적이 남아 있는 블랙스버그 버지니아 공대에는 치유의 희망과 용서의 싹이 트고 있었다. 교내 광장인 드릴 필드에 안치된 32명의 피해자들과 조승희씨 추모석. 그의 자리에도 학교를 상징하는 ‘VT’ 카드와 ‘2007년 4월16일 조승희’라는 기록이 놓여 있다. 높이 20㎝의 화강암으로 된 추모석 위에는 평화와 안식을 기원하는 편지들이 놓여 있다. 장미와 카네이션, 성조기가 보였다. 오른쪽 옆에는 바버라가 쓴 ‘조승희의 가족에게 사랑을 담아.’라고 쓰인 종이가 있다. 로라는 “승희야, 난 널 미워하지 않아. 네가 어떤 도움과 안식도 찾지 못한 게 가슴이 미어진다. 평화와 사랑을 찾기 바랄게.”라고 썼다. 조씨의 총격으로 다친 가레트도 언론을 통해 “조승희를 용서한다.”고 말했다. 그는 “사건 전에 조씨를 만났더라면….”이라며 진한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추모석 앞에서 흐느끼는 한인들도 있었다. 23년이라는 짧은 삶을 외로움과 분노, 광기 어린 증오로 마감한 조씨는 이제 편히 눈을 감을 수 있을까. 조씨는 죽어서야 그의 아픔을 이해하는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홀로코스트’ 생존 교수 장례식 참사 당시 제자들을 구하려다 숨진 리비우 리브레스쿠 교수의 장례식도 20일 이스라엘 중부 란나나에서 치러졌다. 장례식장에는 가족, 동료와 그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정부 대표 등 수백명이 참석했다. 고인의 아들 아리에는 “통계와 함수 강의는 끝나고 당신은 영웅적인 희생을 가르치는 새로운 강의를 시작했다.”고 애도했다. 리브레스쿠 교수는 2차대전 중 나치 대학살에서 살아남은 홀로코스트 생존자다. 총기 참극 당일이 홀로코스트 기념일이었다. 대학 인근 장로교회에서도 기계공학과 캐빈 그라나타 교수의 장례식이 거행됐다. 희생자 시신이 가족에게 인도된 뒤 블랙스버그에서 치러진 첫 장례식이다. 그라나타 교수의 장례식장에도 동료 교수·학생 등 800여명이 참석했다. 희생자 시신이 본격적으로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가고 있는 가운데 조씨 시신의 인계 여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미 신문 “한국 사과 그만 하라” 미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지는 ‘한국인에게’로 시작하는 ‘한국에 보내는 편지, 여러분의 사과에 담긴 교훈’이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이제 사과는 그만하라. 이것(총기 참사)은 여러분의 잘못이 아니다.’고 당부했다. 이 신문은 서울의 주한 미국대사관 앞에서 열린 촛불 추모식, 세 차례에 걸친 대통령의 충격 표시 등은 감동적이고 인상적이지만 문제는 한국이 아니라 이민자를 제대로 돌보지 못한 미국에 있다고 강조했다. 신문은 조씨가 미국에서 자랐으므로 ‘우리가 그를 제대로 돌보지 못한 것에 대해 여러분에게 사과해야 할지 모른다.’면서 ‘우리는 (한국인) 여러분의 사과를 신의 은총과 인간애에 대한 교훈으로 받아들이며 여러분의 가르침을 배우는 것이다. 감사한다.’고 지적했다.●권총 탄창 이베이에서 구입 경찰 수사는 조씨와 처음 살해된 여학생 에밀리 힐스처(18) 두 사람의 관계에 집중되고 있다. 힐스처의 랩톱 컴퓨터와 휴대전화도 분석되고 있다고 CNN이 보도했다. 경찰은 조씨와 힐스처간 평소 이메일 등의 교신 여부를 알아내기 위해 버지니아 공대의 컴퓨터 서버도 조사할 계획이다. 통상 살인사건에서 희생된 사람의 80∼85%가 범인에게 얼굴이 알려진 사람이기 때문이다. 조씨가 범행에 사용한 권총 탄창은 온라인 경매 사이트인 이베이에서 구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베이는 조씨가 지난 3월22일 ‘Blazers5505’라는 회원명으로 22구경 발터 P22 권총의 탄창을 아이다호 주에 있는 한 총포상에서 구입했다고 밝혔다. 조씨는 10발이 장전되는 탄창 2개를 구입했다. 그는 또 이베이에서 폭력적인 주제의 책 몇 권과 버지니아 공대 미식축구 티켓, 그래픽 계산기 등을 산 것으로 나타났다.dawn@seoul.co.kr
  • “나주 동박굴재 학살 진실규명”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18일 ‘나주 동박굴재’ 사건에 대해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한국전쟁 전후 우리나라 군인·경찰에 의해 저질러진 민간인 학살사건 가운데 진실규명 결정이 내려진 것은 이 사건이 처음이다. 진실화해위는 “그동안 유족과 마을주민 진술로 전해오던 동박굴재 사건을 관련 증언과 자료를 확보해 조사한 결과 사실임을 확인했다.”고 밝히고, 공권력에 의해 민간인이 희생된 사건인 만큼 피해 회복을 위해 국가가 나설 것을 권고했다. 동박굴재 사건은 1951년 2월26일 전남 나주시 봉황면 철천리 철야마을 뒷산 동박굴재에서 나주경찰서 소속 경찰관들이 인민군 점령기 때 부역했다는 이유로 주민 20여명을 총살한 사건이다. 생존자 김모씨는 “사건 당일 새벽 4시쯤 ‘공비가 마을에 숨어들었으니 마을 앞으로 집합하라.’는 방송을 듣고 마을 사람들이 모였는데 경찰이 무작위로 30여명을 지목해 뒷산으로 끌고 가 총을 쐈다.”고 증언했다. 이명곤 진실화해위 부대변인은 “정부 차원에서 특별법을 제정해 진상규명에 나선 거창양민학살사건과 제주4·3사건을 제외하면, 민간인학살 사건 7500여건 가운데 과거사법에 의거해 진실규명 결정을 내린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진실화해위는 결정문을 수정, 보완해 빠른 시일 안에 발표할 예정이다.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美 총기난사 충격] ‘킬링 필드 강의실’…25명중 4명만 무사

    |워싱턴 이도운특파원|미국 버지니아공대(버지니아텍)는 사망 33명 등 6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미국 대학 사상 최악의 총격사건의 범인이 이 학교 영문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인 한국교포 학생 조승희씨라고 17일 대학 웹사이트를 통해 공식 발표했다. 이날 용의자 신원을 전하는 미국 언론들은 중국계->상하이 출신 중국인->아시아계 남성->한국계->한국인으로 수차례 정정 보도했다. 이날 오후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킬링 필드’가 돼버린 대학을 찾아 희생자를 추모했다. ●“경찰 함구한 채 밤샘 사건 조사” 버지니아주 경찰당국은 이날 “9㎜ 권총과 22 구경 권총이 노리스 홀에서 발견됐고 노리스 홀과 웨스트 앰블러 존스턴 레지던스 홀 범행 현장에서 수집한 증거를 토대로 탄도실험이 메릴랜드 알코올담배총기국(ATF) 연구실에서 실시됐다.”고 밝혔다. 연구실 실험결과, 노리스 홀에서 확보한 두 자루의 권총 중 하나가 2차례 총기 난사 과정에서 사용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과 대학측은 미국 언론에서 범인이 지난해 상하이에서 비자를 받고 건너온 중국계 남학생이라고 보도할 때도 확인을 거부했으며 공식 수사결과 발표에 임박,“기숙사에 거주하는 아시아계 학생”이라고만 밝혔다. 사망자들은 노리스홀 2층에 있는 최소 4개의 강의실과 계단 통로에서 나왔고 그리고 자살한 범인도 강의실내 희생자들 속에서 경찰에 의해 발견됐다. ●무차별 총격 후 다시 돌아와 난사 이날 생존자들은 악몽과 같았던 현장의 상황을 증언하며 전율했다. 노리스홀 총격에서 생존한 1학년 여학생 에린 시한은 “범인이 교실에 들어오기 전 2차례 정도 강의실 안을 훔쳐봤다.”면서 “누군가를 찾고 있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2층 강의실에 독일어 수업을 들으러 갔다가 사건을 겪은 시한은 CNN 인터뷰에서 범인의 무차별 총격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강의실 바닥에 납작 엎드려 죽은 척을 했으며 학우들이 총격에 줄줄이 쓰러지는 모습을 보았다고 증언했다. 범인은 권총 한 자루를 손에 쥔 채 출입문을 열었고 교실 안으로 1.5m가량 들어선 다음 갑자기 총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시한은 “범인은 30초 뒤 일단 교실을 나갔으나 다시 돌아와 똑같은 짓을 시작했고 교실은 온통 피투성이로 변했다.”며 “아마 범인이 생존자들이 주고받는 음성을 듣고 다시 돌아온 것 같다.”고 전했다. 이어 “범인이 나간 뒤 우리는 문을 안에서 막았다.”면서 “범인은 세 번째 난사를 하려 했으며 출입문을 열 수 없자 문에다 대고 총을 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녀는 당시 강의실에는 교수를 포함해 모두 25명이 있었으나 오직 4명만 걸어서 나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시한은 범인이 “범인은 보이스카우트 복장처럼 다소 이상한, 매우 짧은 소매의 황갈색 셔츠를 입고 그 위에 탄약이 든 것으로 보이는 검은 조끼를 걸치고 있었다.”고 상세히 설명했다. 같은 교실에 있던 트레이 퍼킨스(기계공학 전공 2학년)는 워싱턴포스트 인터뷰에서 범인이 오전 9시40분쯤 강의실에 침입했으며 1분30초간 30발가량을 발사했다고 말했다. 범인은 가장 먼저 교수의 머리에 총을 쏜 뒤 학생들에게 총구를 옮겼다고 전했다. 퍼킨스는 19세 정도로 보이는 범인이 “매우 진지하면서도 침착한 표정이었다.”고 말했다. 응용수리학 강의실에서 범인의 총격을 받고 부상한 한국인 박창민씨는 “범인은 권총 2자루로 탄창을 바꿔가면서 총격을 가했다.”며 “모자와 마스크. 안경을 쓰고 있었다.”고 전했다. dawn@seoul.co.kr
  • 죽음으로 내몰린 ‘보트 피플’

    죽음으로 내몰린 ‘보트 피플’

    ‘예멘 앞바다의 비극’이 국제사회에 큰 충격을 던지고 있다. 비극은 지난 22일 새벽(이하 현지시간) 예멘 근해인 아덴만에서 일어났다. 내전과 빈곤을 피해 예멘으로 입국하려던 450명의 소말리아·에티오피아 난민들이 상어가 득실대는 바다로 내던져진 것이다. 밀무역상들은 난민들이 바다에 뛰어들지 않자 그 자리에서 흉기로 찌르고 쇠파이프를 휘두르는 등 잔인한 폭력이 이어졌다. 네 척의 밀항선에 나눠탄 450명 가운데 생존자는 290여명이다. 미 CNN방송은 26일 예멘 경비대의 추격을 받자 밀무역상들이 배의 속도를 높이기 위해 ‘반인륜 범죄’를 저질렀다고 보도했다. BBC방송은 유엔난민고등판무관(UNHCR) 발표를 전하면서 최소 29명이 숨지고 71명 이상이 실종됐다고 전했다. 참혹한 상황은 속속 전해지고 있다. 바다로 던져진 ‘보트 피플’ 일부는 상어에게 물려 신체 일부가 절단된 채 바다 위를 떠다니고 있다. 일부 여성은 선원들에게 성폭행을 당했으며 예멘 경비대는 생존자로부터 돈까지 빼앗으려고 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에 나선 UNHCR는 “우리는 이 비극에 큰 충격을 받았다.”면서 “최악의 반인륜 범죄가 발생했다.”고 강력하게 비난했다. 자유를 찾아 바다를 헤매는 ‘보트 피플’ 비극은 반복되고 있다.2006년 1월 이후 3만여명이 에티오피아와 소말리아를 탈출했고, 그 중 500여명이 사망하고 300여명이 실종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소말리아 보사소는 탈출 난민들이 주로 이용하는 밀항선의 출발지이다. UNHCR 에리카 펠러는 “희생자들은 정치적 박해와 폭력, 빈곤으로부터 목숨을 걸고 탈출에 나선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CNN은 24일에도 330명의 난민을 실은 두 척의 배가 예멘에 도착했지만 인명 피해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안동환기자 sunstory@seoul.co.kr
  • ‘만선의 악몽’ 통영서 선장등 4명사망 5명실종

    ‘만선의 악몽’ 통영서 선장등 4명사망 5명실종

    한밤중 남해안에서 조업 중이던 ‘쌍끌이’어선 1척이 전복돼 선장 등 4명이 숨지고,5명이 실종됐다. 취업연수생 신분으로 사고 선박에 승선했던 인도네시아인 선원 1명만 구조됐다. 23일 오전 1시10분쯤 경남 통영시 한산면 홍도 남서쪽 2.6마일 해상에서 조업 중이던 통영선적 중형 기선저인망 어선 102해승호(59t·선장 김원진·36)가 끌어올린 멸치 무게를 견디지 못해 전복됐다. 이 사고로 선장 김씨 등 4명이 숨지고, 항해사 박동기(40)씨와 인도네시아인 다우르(36)씨 등 5명은 실종됐다. 유일하게 살아 남은 인도네시아인 선원 토토(32)씨는 통영 적십자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으며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사고가 난 102해승호는 멸치가 가득찬 그물을 갑판에 쏟는 순간 선체가 중심을 잃고 기울어졌고, 복원력을 잃은 선체는 순식간에 뒤집혔다. 만선의 기쁨이 비극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한 어민은 “배 두 척이 양쪽에서 그물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균형을 맞춰줘야 하는데 한쪽으로 무게중심이 쏠리면 배가 전복될 수 있다.”고 말했다. 생존자 토토씨도 병원에서 “고기 마니, 마니”를 되풀이해 이를 뒷받침했다. 사고가 나자 함께 조업하던 101해승호는 물에 뛰어든 조기장 김청수(35)씨와 토토씨를 구조했으나, 김씨는 병원으로 옮기는 도중 숨져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사망자들은 통영 강남병원 장례식장에 안치됐다. 해경은 사고 해역에 해경 경비정 16척과 해군 함정 2척, 특수기동대 등이 실종자 수색 작업을 벌였으나 생존자를 찾지 못했다. 사망·실종자 명단은 다음과 같다. 사망 ▲김원진(36·선장·부산시 영도구 동삼동) ▲정순태(46·기관원·부산 부산진구 초읍동) ▲김신욱(49·항해사·부산 영도구 남항동) ▲김청수(35·조기장·경북 영주시 휴천2동) 실종 ▲최삼규(49·기관장·부산 사하구 신평동) ▲박동기(40·항해사·광주 광산구 지평동) ▲노해성(37·갑판장·경기 부천시 원미구 심곡동) ▲다우르(36·선원·인도네시아) ▲순찡지에(37·선원·중국선원) 통영 이정규기자 jeong@seoul.co.kr
  • [18일 TV 하이라이트]

    ●진실〈10·26 잊혀진 사람들〉(YTN 오후 11시5분) 10·26은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이 박정희 전 대통령을 시해한 날로 기억 된다.10·26의 유일한 생존자 김계원 전 대통령 비서실장을 비롯하여 당시 궁정동 관리관, 당시 중앙정보부와 청와대 경호실 관계자 등이 대거 출연, 시대의 그늘로 사라져간 그 날의 상황을 회고한다. ●사랑의 공부방(EBS 오후 6시) 새 학기를 맞이해 공부방에 고민이 생겼다. 바로 중학교에 입학하는 아이들의 교복 문제.20만∼30만원이나 하는 교복을 마련할 수 없는 공부방 아이들은 불안한 마음으로 새 학기를 맞이하는데…. 혹여 소외된 아이들이 또 한번 상처를 입지 않을까 걱정돼 선생님이 네발자전거 제작진에게 SOS를 보내왔다. ●TV 동물농장(SBS 오전 9시40분) 미국 플로리다 템파의 지니 아줌마는 침팬지와 함께 살기 위해 5에이커(약 600평)의 땅에 벙크하우스를 지었다. 현재 이 집에서 살고 있는 5살 케냐와 3살 키라,11개월 노아 3형제 침팬지들은 모두 미숙아이거나 어미에게 버림받은 녀석들. 아줌마를 엄마처럼 따르며 자라고 있다. ●문희(MBC 오후 7시55분) 유진이 준 반지를 끼고 집에 들어간 문희는 아버지 문회장에게 유진과 결혼하겠다고 말한다. 문회장은 집안을 꼭 이렇게 엉망으로 만들어야 하냐며 몇년 외국에나 다녀오라고 한다. 문희 보고 집에서 나가라는 방숙희의 말에 문희는 내 집을 두고 왜 나가냐며 쫓겨날 것 같으면 들어오지도 않았을 거라고 말한다. ●최강! 울엄마(KBS2 오전 8시55분) 고백을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는 은기의 답변에 마음을 크게 다치고 만 최강은 어쩔 수 없이 채린이를 좋아한다며 거짓말로 상황을 모면한다. 우연히 그 말을 엿듣게 된 채린은 감히 자신을 좋아한다는 최강을 노골적으로 밀어낸다. 강이와 은기가 함께 다정히 걸어가는 모습을 본 채린은 질투를 느낀다. ●TV쇼 진품명품(KBS1 오전 11시) 진품명품을 찾아온 목가구 한점. 정교함이 돋보이는 조각, 선비들의 멋스러움이 묻어난다. 섬세한 문양, 화려하진 않지만 나뭇결을 살려 자연스러움을 강조한 이 의뢰품의 진가를 알아본다. 화사함이 돋보이는 6폭 민화병풍. 그림의 생기를 더하는 강렬한 색채. 이 속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을까?
  • “우리가 새마을운동 발상지” 청도군 vs 포항시 원조 논란

    “우리가 새마을운동 발상지” 청도군 vs 포항시 원조 논란

    경북 포항시와 청도군이 1970년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주창한 새마을운동 발상지를 놓고 원조 논쟁이 치열하다. 12일 경북 청도군과 포항시에 따르면 지금까지 30여년간 새마을운동 발상지로 국내외에서 공인받은 경북 청도군 청도읍 신도1리에 대해 포항시 기계면 문성리가 ‘진짜 새마을운동 발상지’라며 도전장을 던졌기 때문이다. 포항시는 문성리 지역 홍보와 역사적인 의미를 보존하기 위해 내년까지 부지 7500여㎡(2300여평)에 29억원을 들여 660여㎡(200평) 규모의 새마을기념관을 짓기로 했다. 새마을기념관이 건립되면 전국에서 기증받은 당시 새마을운동 관련 자료를 보존·전시해 산 교육장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앞서 시 홈페이지에 새마을운동 발상지 사이트를 개설하고 1500만원을 들여 기계면 입구에 안내간판을 세웠다. 또 문성리가 새마을운동 발상지임을 나타내는 청와대 문서, 생존자 자료와 회고록 등이 담긴 홍보용 책자 600여부를 제작해 전국 자치단체에 배부했다. 문성리가 1970년대 일어난 역사적인 새마을운동에서 전국에서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꼽혀 1971년 9월 박 전 대통령이 전국 시장·군수 비교행정 현지 회의에서 “전국 시장·군수는 임지에 돌아가서 문성동(리) 부락과 같이 지도하고 실천하여 ‘새마을 정신’ 즉 자조, 자립, 협동하는 정신 주입에 점화역할을 할 것”을 지시하면서 문성리가 사실상 새마을운동의 발상지가 됐다고 설명했다. 시는 구체적인 증거로 이같은 내용을 담고 있는 청와대 비서실공문 대비정 150-68(1971.9.23)호를 제시하고 있다. 시 관계자는 “문성리는 1967년부터 주민 스스로 마을길을 넓히고 지붕개량 등 온 동네가 뭉쳐 노력한 사실이 대한뉴스로 제작됐다.”며 “이곳이 바로 새마을 사업의 진짜 발상지”라고 주장했다. 관계자는 또 “앞으로 문성리를 전국에 적극 알리고 재조명하기 위한 각종 사업을 추진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에 청도군이 발끈하고 나섰다. 청도지역 사회·시민단체들은 규탄대회라도 개최해야 한다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새마을단체 등은 조만간 포항시청을 항의 방문하는 한편 중앙정부 등에도 분명한 입장 정리를 촉구할 방침이다. 포항시의 주장은 터무니없는 억지라며 적극 반박했다. 1969년 여름에 경부선 열차를 타고 수해지구 시찰에 나섰던 박 전대통령이 철도변의 유난히 잘 정비된 신도1리를 지나다 ‘전국 농촌이 이 마을만큼 됐으면 좋겠다.’고 잘살기운동 방향을 제시한 뒤 이듬해 5월부터 새마을운동을 추진하면서 청도가 발상지로 굳어졌다는 것이다. 또 신도1리는 이후 포항을 비롯해 국내외 공무원과 외국 자치단체, 전국 각지 새마을지도자 수천명이 새마을운동을 배우겠다며 몰려와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문성리는 1967년부터 새마을사업을 했다는 주장에 대해 신도1리는 1957년부터 새마을사업의 원조격인 농촌환경 개선사업을 했다며 응수했다. 이에 대해 경북도 관계자는 “고증작업과 각계 의견을 바탕으로 올해 말 ‘경북 새마을운동 36년사’를 발간하면서 이 문제를 정리하겠다.”고 말했다. 청도군은 올해 말 완공예정으로 새마을운동 발상지인 신도마을 입구 부지 1만 2200여㎡(3700평)에 총 46억원(국비 10억, 도비 7억, 군비 29억원)을 들여 새마을운동 전시관·기념공원·야외전시마당 등을 갖춘 ‘새마을운동 기념관’을 건립 중에 있다. 대구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여수화재’ 생존자 22명 출국 논란

    ‘사실상 강제 출국당했다. 계속된 철창 생활에 대한 공포를 벗어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출국에 동의했다.’ 전남 여수출입국관리사무소 화재 참사가 발생한 지 한달이 지난 12일, 사고 직후 청주외국인보호소에 재구금된 생존자 22명이 출국한 것과 관련해 ‘자의냐 타의냐’라는 논란이 일고 있다.‘출국종용’과 함께 화제로 입은 정신적 육체적인 후유증을 제대로 돌보지도 않고 출국시켰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여수외국인보호소 화재참사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에 따르면 당시 사망자 10명과 부상자 17명을 뺀 나머지 28명 중 22명이 지난달 23일과 27일 두 차례에 걸쳐 출국했다.●화재 공포에서 벗어나고 싶어 출국 동의 2월23일 출국한 중국인 W(45)씨는 이날 공대위와의 전화통화에서 “나는 사실상 강제출국을 종용당했다.”고 주장했다. 현재 중국에 살고 있는 그는 청주보호소에 재구금된 지 12일 만인 지난달 23일 귀국길에 오르기까지의 기억을 상세히 밝혔다.W씨는 화재 참사 직후 병원에서 간단한 검사와 경찰서 조사를 받은 뒤 곧바로 청주보호소에 다시 구금됐다. 함께 보호소에 갇힌 상당수가 화재 참사에 대한 공포로 크고 작은 고통을 호소했다고 그는 전했다. 그는 “계속 심장이 뛰고 머리가 아팠으며 혈압이 아주 높아지는 등 재구금 공포에 떨어야 했다.”고 회고했다.W씨는 그러나 재구금된 사람들은 치료 등과 관련해 어떤 법적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해 정보를 얻지 못했고, 결국 스트레스와 불안감에 견디다 못해 출국을 감수하고서라도 보호소를 나갈 결심을 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청주보호소에 갇힌 뒤 여수 상황과 나의 앞일에 대해 보호소측에 여러 차례 물었지만 아무런 답변도 듣지 못했다.”면서 “일시보호해제를 통해 보호소 밖에서 치료받을 수 있었다면 절대 출국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지금도 매일 검은 연기가 뒤덮인 현장의 악몽이 되살아나고, 화재로 얻은 고혈압과 화재 당시의 기억 때문에 심장이 마구 뛰곤 한다.”면서 “방법만 있다면 한국에 다시 가서 치료받고 일도 하고 싶다.”고 덧붙였다.●‘자의냐 타의냐’ 공방 이들의 출국을 놓고 공대위와 보호소측의 주장이 엇갈리고 있다. 공대위는 “여수출입국관리소가 생사의 기로에서 극적으로 살아난 생존자들을 외형상 중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청주외국인보호소로 재구금했다.”면서 “외상뿐 아니라 정신적 고통으로 괴로워하는 이들을 공포의 철창 안에 가둔 뒤 결국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출국하게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청주보호소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반박하고 있다. 보호소 관계자는 “22명이 출국한 사유는 본인들이 출국을 원했고 내보내주지 않으면 소요사태까지 일으킬 지경이었다.”면서 “자신이 원해서 나가는 것임을 분명히 하기 위해 자필 서명을 받고 녹취까지 해뒀다.”고 설명했다.또 “보호해제는 보호소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면서 “강제출국은 여수출입국관리소에서 이미 결정된 사안이었고, 청주보호소는 화재 피해 노동자들이 출국 전까지 잠시 머무르는 곳이었을 뿐”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W씨는 서명 및 녹취에 대해 “불안감과 화재로 인해 생긴 고혈압으로 건강이 안 좋았지만, 끔찍한 보호소생활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에 ‘아주 건강하고 몸에 아무 문제없다.’란 동의서에 서명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했다.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日에 야스쿠니 합사취하 요청” 정부, 韓人생존자 12명 확인

    멀쩡하게 생존해 있는데도 불구하고 일본 야스쿠니 신사 명부에 합사(合祀)된 한국인이 최소한 12명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을 포함해 명부에 합사된 것으로 파악된 한국인은 60명 이상으로 늘어났다. 국무총리실 산하 일제강제동원진상규명위원회 지원단 관계자는 6일 이같은 사실을 밝힌 뒤 “생존자와 유족들로부터 합사취하요청서를 취합해 일본측에 이들의 이름을 명부에서 삭제해달라고 요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일제 강제동원 진상’ 묻히나

    20만명에 이르는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진상규명과 지원법 마련을 위해 활동해 오던 ‘일제강점하강제동원진상규명시민연대’(시민연대)가 3·1절을 앞두고 공식 해산해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시민연대는 2001년 결성된 ‘일제강점하 강제동원피해 진상규명 등에 관한 특별법 추진위원회’를 모태로 2004년 3월 창립했다. 따라서 이 단체가 해산되면 피해자 지원과 관련한 법 제정과 진상규명에 적지 않은 차질을 빚을 것이란 우려가 적지 않다. 시민연대의 해산은 정부가 국회에 상정한 ‘일제강점하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법률안’(희생자 지원법) 제정안에 생환 후 사망자에 대한 지원 항목이 빠지면서 생긴 피해자들 간의 갈등이 주된 원인이 됐다. 1일 시민연대에 따르면 회원들은 지난달 25일 서울역 인근 식당에서 해산 준비위원회를 열어 해산을 결의했다. 시민연대는 “2003년 창립한 이래 지금까지 최선을 다해 활동했지만 법 제정 약속을 지켜내지 못했고, 피해자 단합이라는 절체절명의 과제를 해결하지 못한 책임을 통감한다.”고 해산 배경을 설명했다. 피해자들 간의 갈등이 1차적으로 해산을 불러왔다. 정부 입법안이 생환 후 사망자에 대한 지원 없이 생환 후 생존자에 대해서만 의료비로 연 50만원 이하를 지원하겠다는 내용으로 추진되면서 생환 후 사망자 유족들과 생존자들 사이에 의견 차이가 컸기 때문이다. 지난해 의원 42명의 공동 발의로 국회 행정자치위원회에 상정한 ‘태평양전쟁전후강제동원희생자지원법(안)’은 생환 후 사망자에게도 지원금을 주도록 규정했지만 18조원에 이르는 막대한 예산 확보가 쉽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정부 입법안과도 차이가 크다는 점도 피해자들간 갈등의 불씨로 작용했다. 김보나 시민연대 사무국장은 “당초 시민연대는 정부 입법안을 통과시킨 뒤 생존자 지원금을 공탁해 생존 후 사망자 지원 조항을 담은 개정 운동을 함께 벌이려고 했다.”면서 “하지만 생존자와 사망자 유족들 입장이 워낙 확고하고 시민연대의 방향을 지지하는 사람도 적어 도저히 운동을 계속할 수가 없었다.”고 밝혔다. 그는 “준비위원회 회의에서 일부 회원은 눈물을 흘리며 안타까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면서 “그래도 모두가 최선을 다했으니 후회는 없다.”고 말했다. 정부 입법안은 지난해 9월 국회 행자위에 제출됐으나 논의가 지지부진해 지난달 21일에야 행자위 소위에 상정됐다. 게다가 지난해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정부 입법안에 의해 올해 시행에 대비, 정부가 확보하려 했던 예산 4505억원을 전액 삭감했다. 김 국장은 “정부가 지난해 3월 법 제정안 입법 예고를 한 뒤 같은 해 상반기 중 국회에 제출하겠다고 발표해 놓고 9월에야 국회에 상정하는 등 법안 통과를 위한 노력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면서 “왜 생환 후 사망자를 방치하려 하는지 따져 묻고 싶다.”고 말했다.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멀쩡히 산 사람을 日전범과 합사하다니…”

    “멀쩡히 산 사람을 日전범과 합사하다니…”

    “(야스쿠니 신사에서) 멀쩡히 살아 있는 사람을 마음대로 합사시켰지. 빼달라고 했더니 유패에 ‘생존자’라고 붙여 놨더라고. 이번에 가면 차라리 ‘강제징용자’로 고쳐 달라고 할 거야.” 김희종(82) 할아버지는 최근 하루도 편안하게 잠을 못 이뤘다. 일본 정부와 야스쿠니 신사를 공동 피고로 한 ‘야스쿠니신사 합사철폐 재판’ 원고인단 가운데 생존자로는 유일하게 참여해 25일 일본땅을 밟기 때문이다.23일 서울 신림2동의 자택에서 만난 그는 귀가 조금 어두웠지만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꼭꼭 눌러왔던 한(恨)을 풀어냈다.50년 넘게 함께 산 유희훈(74) 할머니에게도 3년 전에야 징용 사실을 털어놓았을 만큼 일부러 잊고 지낸 그의 과거사는 불행했던 우리 역사를 오롯이 담고 있었다. ●일본에서 미국, 다시 한국으로, 힘 없는 민족의 설움 황해도 황주 출신인 그가 제국주의의 망령이 드리워진 야스쿠니 신사에 ‘긴 기시오(金喜種)’란 이름으로 전범들과 함께 합사된 것은 지난 1944년 일본 군속으로 징용당한 뒤 전사한 것으로 잘못 기록된 탓. 그는 “개 끌고 다니듯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채 끌려갔어. 배를 탔을 때에야 남양군도로 간다는 것을 알았지.”라고 그때를 떠올렸다. 요코하마에서 기초 군사훈련을 받은 뒤 사이판으로 옮겨갔다. 죽음의 위협 속에서 일본군 기지를 구축하던 그는 44년 6월 미군의 포로가 됐고, 이후 캘리포니아 목화 농장에서 노예처럼 노역을 했다. 광복을 맞았지만 돌아올 길이 마땅치 않아 1년을 더 기다린 끝에 46년 고국 땅을 밟았다. 48년 순경 시험에 합격해 73년 정년 퇴직한 그는 퇴직금으로 조그마한 문방구를 열었지만 신통치 않았고 구슬 꿰기를 하는 등 힘겹게 2남1녀를 키웠다. 지금은 자식들이 마련해준 3500만원짜리 전셋집에 살고 있다. 지난 세월 일본의 망언이 이어질 때마다 가슴을 후벼내듯 아팠지만 일부러 잊고 지낸 악몽들이 새삼 떠오른 것은 지난해 2월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정부 조사가 이뤄지면서였다. 등록을 하라는 연락을 받고 여러 가지 서류를 떼서 해당 관청을 찾아간 할아버지는 화가 머리 끝까지 났다. “일본에서 사이판, 다시 미국까지 짐승처럼 끌려다녔어. 한 달에 50만원도 아닌 1년에 50만원이라니. 기도 안차. 죽은 사람에겐 2000만원이래. 쓴웃음만 나오더라고.” 지난해 5월에는 뜻밖의 소식을 들었다. 멀쩡하게 살아 있는 자신이 야스쿠니 신사에 모셔져 있다는 것. 관련 단체의 도움으로 일본을 찾아간 할아버지는 자신을 합사자에서 빼달라고 말했지만 야스쿠니 신사 측에선 묵묵부답이었다. “잘못을 감춰 보려는 것 아니겠어. 당시에 조선 사람들이 일본에 충성했다고 선전하기 위해서겠지. 정신대 문제의 방패막이로도 이용할 수 있을 테고”라며 애써 분을 감췄다. 그는 정부에 대해서도 따끔한 충고를 잊지 않았다.“고작 1년에 50만원 지원하겠다고 해놓고 그나마 정치인들끼리 치고받느라고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대. 내가 100살까지 살 것도 아닌데 이젠 줘도 안 받을 거야. 언제 힘없는 백성들을 생각한 적이 있나.”라고 힐책했다. ●야스쿠니신사 합사 철폐 재판 야스쿠니 신사에는 도조 히데키 등 14명의 A급 전범을 포함해 240여만명의 일본인 이외에도 약 2만 1000여명의 한국인이 강제 합사돼 있다. 일제강점하 강제동원 피해 진상규명위원회에 따르면 야스쿠니 신사 합사자 가운데 13명은 현재까지 살아 있다. 야스쿠니 신사에 무단으로 합사된 국내 생존자와 유족들은 당사자나 유족의 동의도 구하지 않은,‘민족적 인격권을 침해하는 행위이며 즉각 철폐해 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신사 측은 ‘한번 합사된 이상 취하할 수 없고 당시 일본인으로 희생됐고, 죽으면 야스쿠니 신사에 모셔진다는 것을 알고 참전했기 때문에 합사는 유족들의 의사와 관계없다.’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이번 소송은 한국인 합사자만을 원고로 해 제기되는 소송이다. 오는 26일 도쿄지방재판소에 정식으로 제소된다. 글 사진 임일영 김동현기자 argus@seoul.co.kr
  • [오늘의 눈] ‘성폭력 피해자’ 아닌 ‘생존자’/유지혜 기획탐사부 기자

    “성폭력 피해를 입고도 살아가야 하는 이들에게 그것은 엽기스러운 사건이라기보다 원치 않지만 우리의 삶으로 침입한 세균이나 칼에 베인 상처 같은 것이다. 그래서 싸우고, 마음 아프고, 상처도 남는다. 하지만 그 사건이 나의 모든 것을 뒤흔든 것은 아니다.” 초등학교 5학년때부터 9년 동안 친아버지에게 성폭행당한 이 여성은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식지 ‘나눔터’에 ‘水(수)’라는 필명으로 수기를 연재하고 있다. 그는 “저런 일 당하면 살기 어렵겠다, 정신이 이상해지겠다고 생각하는 사회의 편견이 싫다. 전문가들도 성폭력을 당하면 정신병자가 된다고 하는데, 그 말은 정말 싫다.”고 했다. 水처럼 성폭력 피해를 당한 이들을 힘들게 하는 것은 ‘당했다’는 사실 자체뿐만이 아니다. 그 상처가 평생 아물지 않은 채 그들을 괴롭힐 것이라는 시선은 그들을 두 번 죽인다. 본인이 아무리 극복했다고 해도 가족들조차 “겉으로만 저렇지, 속으로는 평생 갈 거야.”라고 안쓰럽게 바라본다. 기자도 초등학생 때 길을 가다 추행을 당한 적이 있다. 창문 여는 것을 도와달라고 해 순진하게 따라갔다가 그가 내 몸에 손을 대자 갑자기 뭔지 모를 기분 나쁜 느낌이 들어 전력을 다해 도망쳤다. 그게 성추행이라는 사실은 나중에야 알았다. 물론 이런 아픈 기억은 잊지 못한다. 그걸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그 상처가 지금도 생생해 괴롭고 힘들지는 않다. 기자도, 다른 피해자들도 스스로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시민사회단체는 성폭력 피해자라는 말 대신 ‘생존자’라는 말을 쓴다. 당하기만 하고 보호받아야만 살 수 있는 무기력한 존재가 아니라 피해를 극복할 힘을 지닌 당당한 존재로 인정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정말 이들이 끝내 ‘생존’하기를 바란다면 그들의 평생이 난도질당한 것이라는 통념을 버리고 그 힘을 믿어줘야 한다. 유지혜 기획탐사부 기자 wisepen@seoul.co.kr
  • 하벨 前체코 대통령등 3인 北인권보고서 유럽의회 제출

    |파리 이종수특파원|유럽 전직 국가수반 등 국제평화에 노력한 명망가 3인이 새달 유럽의회에 북한 인권서를 제출하고, 북한의 인권 참상에 대한 유럽연합(EU) 차원의 적극적 관심을 촉구할 예정이다. 셸 망네 보네비크 전 노르웨이 총리, 바츨라프 하벨 전 체코 대통령, 홀로코스트 생존자로 노벨평화상을 받은 엘리 위젤 보스턴대 교수 등 3인은 오는 3월20일 지난해 말 유엔 안보리에 제출됐던 북한 인권보고서를 공개할 방침이다.또 유럽의회 의원들에게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압력을 높이기 위해 EU가 적극 나서줄 것을 촉구할 예정이라고 유럽의회 소식통이 18일(현지시간) 전했다. 이 보고서는 이들 3인의 요청으로 지난해 미국 북한인권위원회와 법무법인 DLA 파이퍼가 작성한 것이다. 보고서는 1990년대 말 주민 100만여명을 굶겨 죽였고 어린이 37% 이상을 영양실조 상태에 빠뜨린 북한의 식량정책,30년 동안 20만명에 이르는 정치범을 가둬 두고 있는 형무소 등 인권탄압 사례를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이번 계획은 유럽의회 한반도관계위원회 부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스트반 셴트 이바니 의원의 제의로 성사됐다. 또 보네비크 전 총리 등 3인은 인권보고서를 제출하기 전에 유럽의회 의원들과 간담회를 갖고 북한인권 해결방안 등을 논의한다.vielee@seoul.co.kr
  • 英 TV쇼 ‘인종차별’에 분노한 印

    영국의 한 인기 있는 리얼리티TV 쇼에서 불거진 인종차별 논란이 인도인의 거센 분노를 부르고 있다.TV 프로 한 편이 영국의 옛 식민지였던 인도 전역에서 반영 감정에 불을 지피며 민족주의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텔레그래프·인디펜던트 등 영국의 주요 신문들이 1면 머리기사로 게재하고 방송들도 일제히 보도하는 등 영국 사회의 ‘주요 이슈’로 부각됐다고 BBC 인터넷판이 18일 전했다. 이 때문에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가 의회에서 유감을 표시해야 했고 유력 차기 총리후보인 고든 브라운 재무장관도 방송을 호되게 비판했다. 인도에서는 격렬한 시위까지 일어났다. 논란이 된 방송 프로그램은 하루 350만명이 시청하는 채널4 TV의 ‘빅 브러더’. 인도의 할리우드로 불리는 ‘볼리우드’의 정상급 인도 여배우가 이 프로그램에 출연했다가 모욕을 당하는 장면이 고스란히 방송되면서 사태가 일파만파로 커졌다. 이 방송은 24시간 출연자의 일상을 보여주는 쇼.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에 나오는 ‘빅 브러더’에서 이름을 땄다. 매주 시청자 투표로 출연자가 1명씩 퇴출되며, 최후의 ‘생존자’에게 최고 상금을 주는 프로그램이다. 새 출연자로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인도의 국민 배우 슐파 셰티(31)를 영국인 출연자들이 인종차별적 발언으로 모욕하면서 인도인의 분노가 폭발하고 있다. 제이드 구디라는 출연자는 셰티를 가리켜 “구역질 나고 소름이 돋아.”라고 말했다. 구디의 남자 친구인 잭 트위드는 셰티를 ‘파키’라고 부른 것으로 전해졌다. 파키는 영국인들이 이민 온 파키스탄인들을 경멸할 때 쓰는 말이다. 또 다른 출연자 대니얼 로이드는 “인도에서는 손으로 음식을 먹잖아, 아니 중국이 그런가.”라며 “그 손으로 뭘 했는지 알게 뭐야.”라고 비야냥거렸다. 이들은 셰티의 인도식 영어 발음과 이름도 놀렸다. 셰티가 울상을 짓고 항의하는 모습과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그대로 방영됐다. 세계 최대 동영상 커뮤니티인 ‘유튜브’에 오르면서 해당 프로그램 게시판에는 2만 5000건이 넘는 항의 메일이 쏟아졌다. 인도에서는 프로그램 연출자의 허수아비를 불태우는 시위가 일어났다. 프리야란잔 다스문시 인도 방송통신부 장관은 셰티에게 영국 주재 인도 대표부를 방문해 줄 것을 요청했다. 그는 “그녀에 대한 인종차별적 행위가 있었다면 그것은 여성과 인도에 대한 공격”이라고 격분했다. 블레어 총리가 의회에서 “영국은 어떤 형태의 인종차별도 반대한다.”고 유감을 표시했다. 영국 경찰은 인종차별 조사에 착수할 예정이다. 수많은 비난과 분노가 쏟아지는 와중에도 이 프로그램 시청률은 급등했다. 지난 16일 350만명에서 17일 450만명으로 늘었다.안동환기자 sunstory@seoul.co.kr
  • 中 마지막 ‘8대 원로’ 보이보 사망

    |베이징 이지운특파원|이른바 중국 ‘8대 원로’의 마지막 생존자인 보이보(薄一波) 전 부총리가 98세로 사망했다.홍콩의 봉황(鳳凰)위성TV와 성도일보(星島日報)는 16일 소식통의 말을 인용, 보 전 부총리가 15일 오후 중국 베이징(北京)의 한 병원에서 숨졌다고 보도했다. 보시라이(薄熙來) 현 상무부장이 그의 막내 아들이다. 덩샤오핑(鄧小平)을 중심으로 한 8대 원로는 1980년대 후야오방(胡耀邦) 전 당총서기를 축출하며 정계 막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이들은 후 전 당총서기 사망을 계기로 발생한 1989년 톈안먼(天安門)사태 때도 덩을 도와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을 지도자로 발탁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보이보 전 부총리는 1908년 산시(山西)성 북부 딩샹(定襄)에서 태어나 1926년 중국공산당에 가입했으며 베이징대학 재학중 일제에 맞서 무장저항운동을 전개했다.공산정권 수립 이후 재정부장, 국가건설위원회 주임, 국가경제위원회 주임, 당 중앙위원 및 중앙정치국 후보위원, 국무원 부총리 등을 역임했다.jj@seoul.co.kr
  • [Book Review] 레비는 왜 화학자 아닌 증언자였나

    “…, 어떻게 분노하지 않고도 사람을 때릴 수 있을까.…, 객차 안에서는 남녀노소가 싸구려 상품들처럼 무자비하게 포개진 채 무(無)를 향한, 아래쪽을 향한, 바닥을 향한 여행을 했다. 이번엔 그 객차 안에 있는 사람들이 바로 우리라는 점만 달랐다.…, 나와 같은 객차에 탔던 45명 중 다시 집으로 돌아간 사람은 네명에 불과했다. 그런데 이 객차가 가장 운이 좋은 경우였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죽음이 예고된 ‘죽음의 수용소’ 아우슈비츠행 객차의 풍경은 이랬다. 움베르토 에코가 ‘이탈리아 문학사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 중 한 사람’이라고 평가한 프리모 레비(1919∼1987)의 역저 두권이 동시에 출간됐다.‘이것이 인간인가’와 ‘주기율표’(이현경 옮김, 돌베개 펴냄). 유대계 이탈리아인인 프리모 레비는 아우슈비츠에서 ‘살아 돌아온’ 사람이다. 그리고 자신의 체험을 기록으로 증언했다. 안네 프랑크의 ‘안네의 일기’ 등과 함께 나치즘과 유대인 학살의 진실을 전하는 증언문학의 대표작품으로 꼽히는 ‘이것이 인간인가’. 극한의 폭력에 노출된 인간의 존엄성과 타락의 과정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프리모 레비는 2차 세계대전 말 반파시즘 저항운동에 참여하다 체포돼 아우슈비츠 제3수용소로 이송당했다.‘이것이 인간인가’는 그가 체험한 10개월간의 수용소 기록이다. 제3수용소는 화학공장과 붙어 있는 강제노역 수용소였다. 화학박사였던 그는 건강한 체력과 몇번의 행운으로 극소수의 생존자 대열에 낄 수 있었다. 레비는 1945년 힘겨운 여정 끝에 고향인 토리노로 돌아와 수용소 시절 비밀리에 기록한 메모들을 토대로 ‘이것이 인간인가’의 집필에 들어갔다. 47년 첫 출간 때는 거의 주목받지 못했으나 57년 재출간되면서 문제작으로 떠올라 그의 이름을 알리는 계기가 됐다.8개 국어로 번역됐고, 라디오 드라마와 연극으로 공연되기도 했다. 레비는 “이야기를 해야 할 필요성을 참을 수 없을 만큼 강렬히 느꼈기 때문에 나는 그곳, 독일 연구실에서, 추위와 전쟁속에서, 감시의 눈초리를 피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며 이 책의 초고였던 ‘메모’를 작성하게 된 까닭을 밝혔다. 하지만 ‘이것이 인간인가’에서 레비의 독일인에 대한 증오심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너무나 차갑게 실상만 전한다. 동시대를 살았던 유대계 독일인 한나 아렌트가 미국에서 ‘전체주의의 기원’을 저술하면서 파시즘 등 전체주의의 재등장 가능성을 경고한 것과 마찬가지로 레비도 “파시즘은 죽지 않았다.”고 경고한다. ‘아우슈비츠의 증인’ 레비는 87년 자택에서 돌연한 자살로 생을 마감, 끝까지 세상에 물음을 던져줬다. 1975년에 저술한 ‘주기율표’는 화학자인 레비의 과학과 기술에 대한 열정이 엿보이는 독특한 구성의 회고록이다. 아르곤부터 탄소까지 주기율표상의 원소들을 설명하면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와 연관된 자신의 삶, 조상의 연원 등을 재미있게 회고한다. 유년 시절의 추억과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회상, 역사적·윤리적 성찰 등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철’이라는 장에서 레비는 청춘시절 자신에게 화학이나 물리학이 ‘파시즘의 해독제’였다고 말한다.21장으로 구성된 ‘주기율표’는 대중적으로 그의 저술 가운데 가장 인기를 끌었다. ‘이것이 인간인가’ 340쪽 1만 2000원,‘주기율표’ 383쪽 1만 4000원. 박홍환기자 stinger@seoul.co.kr
  • [씨줄날줄] 유황도 전투/이용원 수석논설위원

    태평양 전쟁에서 미군의 우위가 확고해진 1945년 2월19일 미 해병대는 일본령인 유황도(硫黃島·이오지마)에 상륙했다. 이 때는 레이테 섬 전투의 승리로 미 해군이 이미 동남아시아 일대의 제해권을 장악한 뒤였고, 개전 초 필리핀에서 쫓겨난 맥아더 장군도 마닐라에 복귀한 시점이었다. 그 무렵 미군의 목표는 일본을 ‘덩굴째 말려 죽이는 것’이었다. 따라서 도쿄에서 불과 1200㎞ 떨어진 유황도는 미군에게 일본 본토를 직접 공습하는 데 꼭 필요한 공군기지였다(조지 베어 저 ‘미국 해군 100년사’에서). 유황도는 면적이 20여㎢에 불과한 작은 섬이다. 사흘 동안 집중적으로 함포 사격을 한 다음 미 해병대가 섬에 상륙했지만 그곳을 지키는 일본군의 기세는 수그러들지 않았다. 당시 종군기자가 남긴 증언에 따르면 전투가 끝난 해변 백사장에는 미군·일본군 가릴 것 없이 팔다리가 제대로 붙은 시신을 찾기 힘들 정도였다고 한다. 그만큼 백병전이 치열했던 것이다. 이 전투에서 미 해병대는 전사자 6000명을 비롯해 2만여명의 사상자를 냈다. 그래서 이 전투는 미 해병 역사상 가장 피비린내 나는 전투로 기록됐다. 반면 섬을 수비하던 일본군 또한 2만명이 전사해 생존자 비율은 5%에 불과했다. 결국 유황도는 일본인에게 ‘옥쇄의 섬’이 되었다. 태평양전쟁 중에서도 가장 참혹한 전장으로 꼽히는 유황도 전투를 소재로 해 할리우드에서 한 감독이 동시에 두 가지 버전의 영화를 만들었다. 국내에서도 조만간 소개될 예정이라는 이 작품들은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연출한 ‘아버지의 깃발’과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이다.‘아버지’는 승자인 미 참전군인들의 시각에서,‘이오지마’는 섬을 사수하려 한 일본 군인들의 시각에서 각각 유황도 전투를 그려냈다고 한다. 역사를 흔히 이긴 자의 기록이라고 하지만 패배한 자에게도 하고픈 이야기는 있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승자와 패자의 관점을 함께 수용해야 역사의 의미를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다. 하긴 역사뿐인가. 일상적인 삶에서도 상대방의 시각으로 나를 되돌아보는 건 정말 중요한 일이다. 까닭에 모처럼 시도된 이 영화적인 실험이 성공을 거둘지를 주목하게 된다. 이용원 수석논설위원 ywyi@seoul.co.kr
  • 印尼 여객기 실종

    印尼 여객기 실종

    인도네시아가 지난해 말부터 새해 벽두까지 대형 참사의 늪에서 헤어나질 못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아체와 수마트라 북부지역의 폭우로 332명이 사망·실종한 데 이어,30일 자바주 해역에서 여객선이 침몰해 500여명이 실종됐다. 급기야 새해 첫날 민영 여객기 1대가 악천후 속에 비행하다 실종됐다. 게다가 실종 상태인데도 여객기가 발견되고 생존자까지 있다는 공군 책임자의 발표가 보도돼 전세계에 타전되는 오보 소동까지 벌어졌다. 하타 라드자사 인도네시아 교통부 장관은 “승객과 승무원 102명을 태운 채 1일 술라웨시 섬 상공에서 실종된 여객기의 잔해를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고 2일 밝혔다. 라드자사 장관은 이날 엘-신타 라디오 방송과 인터뷰에서 “수색 구조팀이 여전히 추락 지점을 찾고 있다.”면서 여객기의 잔해가 발견됐다는 보도는 마을 주민들의 소문에 근거한 것이며 여객기의 잔해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실종 여객기의 잔해가 발견됐다고 발표했던 하사누딘 공군기지 사령관 에디 수얀토도 “우리가 발표한 소식은 사실이 아니다.”라며 사과했다. 수얀토 사령관은 앞서 구조대원들이 서부 술라웨시주(州)의 폴레와리 지방 산악지대에서 추락한 여객기의 잔해를 발견했다고 발표했으며, 항공사측은 탑승 인원 가운데 90명이 숨졌고 12명이 생존했다고 밝혔었다. 사고 여객기인 애덤 항공사 소속 KI-574 국내선 여객기는 동부 자바주(州)의 수라바야 공항을 1일 오후 12시59분(현지시각)에 이륙,2시간 거리에 있는 술라웨시 섬 북쪽 끝의 마나도로 향하던 중 연락이 두절된 채 실종됐었다. 김수정기지 crystal@seoul.co.kr
  • [국제플러스] 印尼 여객선 침몰 500여명 사망·실종

    |베이징 이지운특파원|승객과 승무원 600여명을 태우고 항해하던 인도네시아 여객선 ‘세노파티’호(號)가 30일 0시쯤(현지시간) 중부 자바섬 연안에서 폭풍우로 침몰,500여명이 숨지거나 실종됐다. 승객과 승무원 등 109명이 구조됐다. 인도네시아는 선박 침몰 직후 4척의 해군 함정과 수척의 선박, 헬기 등이 동원돼 긴급 구조작업에 나섰으나 시계가 나쁘고 파고가 높아 구조작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하지만 사고 해역의 수온이 섭씨 20∼32도여서 생존자들이 수일간 버틸 수 있을 것으로 보고 구조 작업을 서두르고 있다. 침몰의 원인은 아직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으나 보르네오에서 자바 섬의 수마랑항으로 향하던 이 여객선이 수도 자카르타에서 북동쪽으로 300㎞쯤 떨어진 만달리카 섬 부근에서 높이 5m의 파도가 갑판을 덮치면서 배가 침몰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vielee@seoul.co.kr
위로